레위기 27장 해석

레위기 27장

영적 의미 요약

* 의지와 이해함이 함께 심사숙고 하는 가운데 주님을 모시는 모든 이는 주님으로부터 온 진리의 선을 받는 상태 또는 품질에 의거 평가되어진다, 1-8절.
* 주님을 섬기되 내면에 있는 애착을 바침, 그리고 그 품질의 평가에 관하여, 9-13절.
* 위와 같되 외면에 있는 자연적 애착들에 관하여, 14-15절.
* 주님을 섬기되 진리 측면에서의 외면에 있는 자연적 인간을 바침, 그리고 차이가 있는 환경에서의 평가들에 의하여, 16-25절.
* 특히, 어느 누구도 선함을 자기 탓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선함은 주님으로부터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불순한 자연적인 선, 이는 주님으로부터가 아닌 바, 순수한 선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은 소외될 수 없고 이기적 용도에 충당되어서도 안 된다. 아껴두신 모든 것은 주님으로부터 임을 인정해야 한다. 인간에게 있는 모든 선과 진리는 자기 속에 주님께서 아껴두신 것들을 수단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어느 누구도 자신에서 비롯되는 총명으로 자신의 품질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26-33절.
* 위 모든 사항은 신성한 선의 유입으로부터 신성한 진리로 된 신성한 질서의 법칙들이다. 이 모든 것은 영적 인간의 유익을 위해 주님의 순수한 사랑과 자비에서 비롯되어 있다, 34절.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지각을 주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주님께서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은 유입을, 모세는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말하심은 지각을 뜻한다. (2001, 2951, 7010, 1791, 1822)

2절. 이스라엘의 자손에게 이야기 하라,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라, 사람이 서약을 이루려 할 때, 그 인물은 네 평가에 의해 주님을 위해 있을 것이다.

영적 의미

영적 인간은 반드시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것, 자신의 의지와 이해함이 동의함으로 신중하게 자신을 주님께 바치는 모든 이는 주님으로부터 온 진리의 선을 받는 상태 또는 품질에 의거 평가가 있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야기함이란 영적 인간은 가르쳐져야만 함을; 사람이 서약을 성취함이란 의지와 이해함이 동의하는 가운데 심사숙고 해서 주님께 자신을 바치는 사람을; 그 사람이 주님을 위해 “평가, (값을 매김)”이란 주님으로부터 온 진리의 선을 받는 상태나 품질에 의거 평가되어짐을 뜻한다. (3654, 7304, 3732, 3880, 2001, 7010)
이 구절에서 이해하고 넘어갈 것이 있다. 가장 높은 측면에서 신성한 진리만이 예배하는 모든 이의 진짜 품질을 식별할 수 있다. 낮은 측면에서 선은 거듭나는 모든 사람의 본질인 반면, 진리는 그 생명의 형체이다. 그러므로 형체로부터 품질을 밝히 알게 된다.

3절. 그리고 네 추정가는 이십 세부터 육십 세까지의 남성일 경우, 성소의 세겔로 은 오십 세겔이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진리와 선에 총명한 이들은 그 총명을 통해 신성한 진리에 의거 진리를 충만 되게 받음으로 시험에 견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오히려 시험을 수단으로 그 진리는 선과 결합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십 세 된 남자의 값이란 진리와 선에 총명한 이들을, 육십 세 까지란 총명을 통해 시험에 견딜 능력이 있음을; 값을 매김이란 신성한 진리에 따라서임을; 은 오십 세겔이란 진리를 충분히 받는 상태를; 성소 세겔에 따라서 란 “시험을 수단으로 선과 결합되어짐을” 뜻한다. (725, 2280, 10225, 3306, 8888, 7010, 2959. 3210)

4절. 만일 여성이면 그다음 네 추정가는 삼십 세겔이다

영적 의미

그러나 지식 없이 애착으로부터서 진리에 총명한 이들은 시험에 견딜 능력을 덜 갖게 되는 바 주님을 온전하게 예배 할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자이면 삼십 세겔이다 란 지식 없이 애착으로부터 진리에 총명한 이들은 시험에 견딜 능력이 덜 한 바 주님을 완전히 예배할 수 없다는 뜻이다. (725, 2276)

5절. 그리고 만일 오 세로부터 이십 세까지이다면 네 추정가는 남성은 이십 세겔, 여성은 십 세겔이다.

영적 의미

다시, 진리와 선에 무지한 상태에서 주님을 예배하고 자신을 그분께 바치고자 하는 이들은 선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구원된다. 그러나 진리들이 결핍되어서 악과 싸우지 못한다. 그러나 선을 사랑함에 있을 경우의 그들의 품질은 그들 속에 리메인스(remans, 아껴두신 것) 덕택에 구원을 위한 능력을 가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오 세로부터 이십 세까지란 진리와 선에 무지한 상태에서 주님을 예배하는 이들 또는 그분께 자신을 바치고자 하는 이들을;, 값을 매김이란 신성한 진리에 의거함을; 남자는 이십 세겔이란 어떤 진리를 가진 선 때문에 구원은 되나 전투를 위해서는 충분치 못함을; 여자는 십 세겔이다 란 선에 대한 애착뿐이라면 그 품질은 리메인스(remans, 아껴두신 것) 덕택에 구원받을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2280, 7010, 725)

6절. 그리고 만일 한 달로부터 오 세 까지이다면, 그 다음 네 추정가는 남성은 은 다섯 세겔, 여성은 은 삼 세겔이다.

영적 의미

그러나 유아의 선 속에 있는 이들, 그들의 신앙이 싹틀 조짐만 있고 선행은 아주 조금만 있을 경우, 그들은 영적 생명을 지니되 매우 조금 뿐인데 그 이유는 소량의 진리가 애착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작아질 경우 거기에는 진리는 없고 애착만 있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한 달 된 나이로부터 오 세까지란 유아의 선 가운데 있는 바 그 신앙이 싹틀 가능성만 있을 뿐이고 선행은 매우 적은 양을 지닌 이들을, 값을 매김이란 신성한 진리에 의거함을, 사내아이는 은 오 세겔이다란 영적 생명의 품질이 작다는 것을, 그 이유는 애착에 결합된 진리가 적기 때문이다. 여자아이는 은 삼 세겔이란 애착만 있고 진리가 없어 더욱 적음을 뜻한다. (2280, 10225, 7010, 725, 4495-3, 10225)

7절. 그리고 만일 육십 세 그 이상이다면, 네 추정가는 남성은 은 십오 세겔, 그리고 여성은 은 십 세겔이다

영적 의미

지혜의 선 속에 있는 이들, 그들은 시험을 충분히 거친 상태인 바, 그 생명의 품질은 진리가 풍부하면서도 선과 결합되어 있어 새로운 상태, 즉 그들은 진리를 수단으로 사랑으로부터 행동한다. 그러나 조금밖에 안 되는 진리가 선과 결합할 경우 그들의 품질은 리메인스(remans, 아껴두신 것)가 충만된 상태로부터 존재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육십 세 이상이란 시험의 과정을 충분히 거처 지혜의 선 가운데 있는 이들을, 값을 매김이란 신성한 진리에 의거함을, 남자는 십 오 세겔이다 란 진리가 풍부하고 새 상태에서 선과 결합된 생명의 품질이요 이 품질에서 그들은 진리를 수단으로 사랑으로부터 행동함을, 여자는 십 세겔이란 적은 진리가 애착과 결합될 때 그 품질은 리메인스(remans, 아껴두신 것)가 충만됨으로부터 있게 됨을 뜻한다. (7010, 10225, 8400, 9296-5, 10225, 576)

8절. 그러나 만일 그가 네 추정가 보다 더 가난하다면, 그다음 그는 성직자 앞에 놓여질 것이다, 그리고 성직자가 그를 평가한다.

영적 의미

그러나 진리에서 파생되는 품질이 없는 이들은 그들이 지닌 선의 상태로부터서 가늠해 보아야한다. 그 이유는 선은 선의 품질을 표현하는 진리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님께 헌신하려는 그 사람이 지닌 선으로부터의 진리에 의거 위 사람은 평가되어지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매긴 값보다 더 가난한 사람이 성직자 앞에 선다란 진리로부터 파생된 품질을 가지지 않은 이들은 선에 관한 그들의 상태를 가지고 검토됨을, 성직자가 그 사람의 값을 매김이란 선은 그 선의 품질을 표현하는 진리들을 생산함을, 서약하는 자의 능력에 따라 성직자가 값을 매김이란 주님께 자신을 바치려는 사람에게 있는 선으로부터 오는 진리에 의거 위의 사람은 평가되어짐을 뜻한다. (7010, 4459-4, 9946, 4985, 8304, 3732, 3880, 9946)

9절. 그리고 만일 어떤 사람이 주님에게 봉헌물을 바치는 것이 짐승이다면, 이런 것의 모두가 주님에게 거룩하다.

영적 의미

자기는 주님으로부터 있게 되었다고 인정함을 수단으로 내면에 있는 자연적 애착들을 주님을 섬기는데 바치고자 하는 이들은 그것으로 인해 거룩한 상태로 들어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짐승이란 사람 또는 “혼, soul”에 관련된 것을 명시하는데 내면에 있는 자연적 애착을, 봉헌물로 바침이란 그것이 주님으로부터 이다는 것을, 이런 사람이 드리는 모든 것은 거룩하다란 거룩함의 상태가 예배에서 진실로 인정함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1823, 349, 5619, 8402)

10절. 그는 그것을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좋은 것을 나쁜 것으로 변경하지 못한다. 그리고 만일 짐승을 짐승으로만 바꿀 것이다면, 그다음 그것과 그것과 바꾸어지려는 이것 모두가 거룩하다.

영적 의미

위에 속하는 사람이 선 또는 진리가 우세해 있는 상태에서 다른 데로 건너가는 것, 혹은 악 또는 거짓이 우세해지는 상태는 허용될 수 없다. 내면에 있는 통치하는 애착으로 예배하는 사람이 외면에 있는 애착으로 내려가 예배할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에 반대되는 시험의 과정에서 선과 악 사이에서 오르내리고 있다면, 승리를 수단으로 선이 확증되고 악이 거절되는데 확증과 거절 모두 거룩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것은 변경하지 못하고, 바꾸지도 못한다란 위의 사람이 선 또는 진리가 우세해 있는 상태에서 악 또는 거짓이 우세해지는 상태로 건너가는 것을 허용할 수 없음을, 좋은 것을 나쁜 것과 나쁜 것을 좋은 것과 바꾸지 못함이란 내면에서 통치해주는 애착으로부터 예배하는 사람은 외면에로 내려 갈 수 없고 그 반대도 될 수 없음을, 짐승끼리 맞바꾸려고 하면 그 바꾸려던 둘 다 거룩해진다란 인간이 자기 의지에 반대되는 시험의 과정 중 선과 악 사이에서 흔들거리고 있다면 승리를 수단으로 선이 확증되고 악이 거절되는 바, 확증과 거절 모두가 거룩함을 뜻한다. (1463, 683, 1276, 1377, 1823, 8042, 847)

11절. 그리고 만일 이것이 불결한 짐승이다면, 이것으로부터 그들은 주님에게 봉헌물을 바치지 못할 것이다. 그 다음 그는 성직자 앞에 그 짐승을 놓아야 한다.

영적 의미

누가 자기의 내면에 있는 자연적 애착을 주님께 바치고자 하는데 그 애착이 불순하다면 그는 자기 속에서 우세해 있는 선의 상태로부터 주님께 자기의 불순함을 인정해야 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그것이 주님께 제물로 바칠 수 없는 불결한 짐승일 경우 성직자 앞에 세워 둔다란 누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자연적 애착을 주님께 바치고 싶은데 그것이 불순할 경우 그는 자기 속에서 우세해 있는 선이 통치하는 상태로부터 자기의 불순함을 주님 앞에서 인정해야 할 것을 뜻한다. (10130, 9946)

12절. 그리고 성직자가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를 평가하라, 네 성직자가 그것을 평가하는 그대로, 그것은 그렇게 있을 것이다.

영적 의미

이로부터 그는 불순한 자연적 애착들의 품질을 알게 되고 동시에 자기 예배의 신실한 상태를 평가할 수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 평가함이란 그런고로 그는 불순한 자연적 애착들의 품질을 알게 될 것임을, 다시 말해 선에 관한 자기 상태로부터 알게 됨을, 성직자가 평가한 그대로 그 값이 결정됨이란 위와 동시에 그는 자기 예배의 신실성을 평가하게 될 것이다를 뜻한다. (9946, 10217)

13절. 그러나 만일 그가 참으로 그것을 되찾겠다면, 그러면 그는 네 추정값에 오분의 일을 보태라.

영적 의미

그래서 그가 자기 예배의 상태에 따라 회개의 일을 진실로 행한다면 자기 속에 아껴 저장된 선한 어떤 것들로부터의 인정도 있게 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그것을 되찾고 싶을 경우 그는 그 값에 오분의 일을 더해야 함이란 만일 그가 예배의 자기 상태에 따라 회개의 일을 진실로 행한다면 그는 리메인스(remans, 아껴두신 것) 속에 있는 선으로부터서도 인정함이 있을 것임을 뜻한다. (2996, 6156)

14절. 그리고 사람이 자기 집을 주님에게 거룩해 있도록 신성하게 할 때, 그러면 성직자는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 그것을 추정하라. 성직자가 그것을 추정하는 대로 그렇게 그것은 서있을 것이다.

영적 의미

누가 선의 저장소인 외면에 있는 자연적 애착을 예배에서 주님께 바치겠다면 이런 애착의 품질도 선에 관해 우세해 있는 상태에 따라 있게 된다. 그 이유는 이 선이 예배의 품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자기 집을 주님께 바쳐 신성해지게 함이란 선의 저장소인 외면에 있는 자연적 애착들을 예배에서 주님께 바침을, 좋은지 나쁜지를 성직자가 평가함이란 이 애착들의 품질은 선에 관해 우세해 있는 그의 상태에 따라 아직은 있다는 것을, 성직자가 평가한 대로 되어짐이란 이것이 예배에 있는 품질에 관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임을 뜻한다. (1488, 8042, 7724, 10217)

15절. 그리고 만일 그것을 신성하게 한 그가 자기 집을 되찾을 것이다면, 그 다음 그는 그것에 대한 네 추정값의 오분의 일의 돈을 더하라, 그리고 그것은 그의 것이다.

영적 의미

예배자가 주님으로부터 회개의 일을 기쁘게 행하고자 한다면 그는 자신에게 남아 있는 선의 상태로부터 오는 어떤 인정함을 수단으로 행해야 하고 이에 더하여 자신 속에 악이 있음을 인정해야한다. 그러면 그는 선을 자기 것 같이 삼게 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신성하게 한 자기 집을 되찾을 경우 매겨진 값의 오분의 일에 해당하는 돈을 더해야 그의 것이 됨이란 만일 예배자가 회개의 일을 주님으로부터 기꺼이 할 경우 그는 선에 관해 아껴두신 자기 상태로부터 어떤 인정함을 수단으로 회개가 있게 되는데 이에 더 보태야 하는 것은 자기가 악 속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의 것이다란 그는 자신으로부터 인 듯 선을 자기 것 삼게 될 것을 뜻한다. (2966, 6156, 1488)

16절. 그리고 만일 사람이 주님에게 자기 소유지의 일부를 신성하게 할 것이다면, 그다음 네 추정값은 그것의 씨뿌림에 따라 있다. 보리 한 호멜의 씨뿌림은 은 오십 세겔(로 평가될 것)이다

영적 의미

누가 진리에 관한 외면에 있는 자연적 인간을 그분을 섬기는데 바침으로 주님을 예배하겠다면 이 예배의 품질은 선 안에서 진리를 받는 정도에 따라, 다시 말해 진리의 선에 따라 정해진다. 그리고 그 상태는 그 선에 의거 충만 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누가 자기 소유의 들판 일부를 주님께 바쳐 신성해지게 함이란 누가 진리에 관한 측면에서의 자연적 인간을 주님을 섬기는데 바침으로 주님을 예배할 경우를; 값을 매김이란 신성한 진리에 의거함을; 거기에 뿌리는 씨앗에 따라서란 위의 예배의 품질은 선 안에 있는 진리를 받는 측면에서 있게 됨을; 보리 한 호멜 뿌리는 양의 값이 은 오십 세겔이다란 진리의 선에 의거해서, 그 선에 따라 충만된 상태가 있을 것임을 뜻한다. (9272, 10262, 7602, 2261, 425, 2959)

17절. 만일 그가 희년의 해로부터 자기 들판을 신성하게 한다면, 네 추정에 따라 그것은 서있을 것이다.

영적 의미

그래서 예배의 이 상태가 자기 생명의 가장 깊은 곳에서 선과 진리의 결혼으로부터 파생되고 있다면 그것은 확증되어 선의 그 상태는 영구적이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희년의 해로부터 자기 들판을 신성하게 한다면 네 추정에 따라 그것은 서있는다 란 예배의 상태들이 자기 생명의 가장 깊음에서 선과 진리가 결혼함에서 파생되어진다면 그 상태는 확증되어지고 선의 상태는 영구적일 것이 된다. (4982, 8042, 8802, 7010, 4926)

18절. 그러나 만일 그가 희년 이후 자기 들판을 신성하게 한다면, 그 다음 성직자는 그에게 희년의 해까지 남은 년수에 따라 돈을 계산하라, 그리고 감해지는 액수는 네 추정값으로부터 만들어 질 것이다.

영적 의미

그러나 예배의 이 상태가 위와 같은 가장 깊은 결합에서 파생되지 않고 단지 선으로부터 기대 할 수 있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면 그 품질은 거듭나는 과정에서 획득된 진리에 따라 있어진다. 그런고로 시작에서도 덜 완전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희년이 지나서 자기 들판을 신성해지게 함이란 예배의 상태가 위와 같이 가장 깊은 결합으로부터 파생되지 않고 기대만 될 뿐이다 면을, 성직자가 희년까지 남은 년수를 세어 그 값을 그에게 세어 줌이란 선으로부터의 품질은 거듭나는 동안 선 안에 이식된 진리를 획득한 정도에 따라 있게 될 것임을 뜻한다. (8802, 9946, 10217, 725, 2966)

19절. 그리고 만일 들판을 신성하게 한 그가 참으로 그것을 되찾을 것이다면, 그 다음 그는 그것에 네 추정값의 오분의 일을 더하라, 그리고 그것이 그에게 보증을 설 것이다.

영적 의미

만일 예배자가 선한 자기 상태로부터 회개의 일을 수행하는 것을 참고 견디지만 회개의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지 못 할 경우, 그런데 아껴두신 선한 어떤 것으로부터 주님을 인정하고 있다면 그는 주님으로부터 새 생명을 계속 받을 것이고 선한 그의 상태도 확증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신성해지게 바친 들판을 되찾을 경우, 매겨진 값에 오분의 일을 더 하면 자기 것이 된다란 예배자가 회개의 일을 하는 동안은 선에 관한 자기 상태로부터 버텨내는데도 그가 회개의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지 못하고 있고, 그러나 자기는 주님으로부터 새 생명을 계속 받고 있다는 것을 아껴두신 선의 상태로부터 인정하고 있다면 선에 관한 그의 상태는 확증된다는 것을 뜻한다. (4982, 8042, 2966, 6156, 4926)

20절. 그리고 만일 그가 들판을 되찾지 않을 것이다면, 또는 만일 그가 또 다른 사람에게 들판을 팔았다면, 그것은 더 이상 되찾지 못한다.

영적 의미

그러나 이와 같은 예배가 일시적일 뿐이고 회개가 따르지 않으면, 다시 말해서 악을 확증함을 통해 그의 선이 소외되고 있다면 그의 구속은 불가능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들판을 되찾지 않음이란 위와 같은 예배는 일시적일 뿐 회개가 수반되지 않음을, 남에게 그 들판을 팜이란 악을 확증한 결과로 선이 소외됨을, 더 이상 그 들판은 물러내지 못함이란 악이 확증되었으나 아직도 되찾음(구속)은 가능할 수 있다는 뜻이다. (2966, 4758, 4747)

21절. 그러나 들판이 희년에서 나갈 때, 그것은 마치 들판이 헌납된 것 같이 주님에게 거룩하다. 그것의 소유는 성직자이다.

영적 의미

그러나 심판에서 그 사람과 함께 있는 진리의 선으로 예배하는 모든 상태는 가능한 한 그에게 이로운 쪽으로 있어질 것이다. 그 이유는 그것이 진리와 선에 괸한 양면에서 거룩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모든 상태는 주님으로부터 이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희년이 될 때 그 들판은 주님에게 거룩하다란 심판에서 진리의 선으로부터 예배한 모든 상태는 예배자에게 이익이 되는 한도에서 있게 된다는 것을, “바쳐진 들판 같이…”란 반대 의미 일경우, 이는 악과 거짓으로 확증되어 완전히 정죄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좋은 의미일 경우, 이는 진리와 선으로부터 예배되어져 거룩해진 것을 뜻한다. 그 소유가 성직자에게 있다란 위와 같은 모든 상태도 주님으로부터 임을 뜻한다. (4982, 8042, 8802, 9193, 8042, 9946)

22절. 그리고 만일 그가 자기 소유지가 아닌, 자기가 샀던 들판을 주님에게 신성하게 한다면,

영적 의미

더구나 예배의 이런 상태가 단지 외적 동기들로부터 획득되어 옷을 입듯 하고 있을 뿐 순수한 선으로부터가 아니라면,

세부적 영적 의미

자기 소유였던 들판은 아니지만 사들인 들판을 주님께 바쳐 거룩하게 함이란 위와 같은 예배의 상태가 단지 외적인 동기들로부터 획득되고 입혀져 있을 뿐 순수한 선으로부터가 아니면을 뜻한다. (8042, 4982, 2967, 4397)

23절. 그다음 성직자는 그에게 희년의 해까지 네 추정값의 가치를 계산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주님께 거룩한 것으로 그 날에 네 추정값을 매길 것이다

영적 의미

그러면 이와 같은 예배의 품질은 선으로부터 신성한 진리에 의거 예배자의 가장 깊은 상태가 무엇인지에 관해서, 심판에서 있어질 것이 식별된다. 그래서 순수한 선을 원하도록 그는 강요 당할 것이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네 추정값의 가치를 계산함이란 이와 같은 예배의 품질은 선으로부터 신성한 진리에 의거 식별될 것임을; 희년까지란 예배자가 어떨 것인지 또는 예배자가 심판에서 그의 가장 깊은 상태에 관해 어떨 것인지를, 주님께 거룩한 것으로 당일에 값을 매겨줌이란 그는 이 상태에서 순수한 선을 원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도록 강요될 것임을 뜻한다. (9946, 10217, 7010, 8802, 2966, 8802, 7010, 2119)

24절. 희년의 해에 들판은 그것을 팔았던 자에게, 토지의 소유가 속해 있었던 자에게 되돌아 간다.

영적 의미

심판에서 모든 선은 주님으로부터 있고 그 선은 거듭남을 수단으로 획득된다는 것이 보여질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희년이 되면 들판을 팔았다 해도 토지의 상속권을 가진 임자에게 그 들판이 돌아간다란 심판에서 순수한 선은 주님으로부터 임을 알게 될 것이고 거듭남을 수단으로 획득된 모든 선도 주님으로부터 임을 알게 되리라. (8802, 4982, 2028-9, 7833, 3239)

25절. 그리고 모든 네 추정값은 성소의 세겔에 따라서 이다. 즉 이십 게라가 한 세겔이다.

영적 의미

인간의 상태에 괸해 신성한 진리가 평가함은 선에서 파생된 진리에 따라 있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값을 매기는 모든 것은 성소의 세겔에 의거함이란 인간의 상태에 관한 신성한 진리의 평가는 선으로부터 파생되는 진리에 의거 있게 됨을, 이십 게라가 한 세겔이다란 선에 관해 아껴두신 모든 것을 뜻한다. (10221, 2959, 10222)

26절. 짐승 사이에 첫배 새끼 만이 주님에게 첫배 새끼로 만들어지는 바, 아무도 그것을 신성하게 하지 못한다. 그것이 수소이든 양이든 그것은 주님의 것이다.

영적 의미

진리에 앞서서 존재한 선은 주님으로부터 있어진 선인 바, 어느 누구도 선의 존재가 자기 탓이라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이 선의 수준이 영적 선이든 자연적 선이든 모두 주님으로부터 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짐승 중 맏배란 진리에 앞서 존재하는 선을, 맏배는 주님에게 첫배 새끼로 돌려야 한다란 주님께로부터 기인된다고 생각해야 함을; 어느 인간도 그것을 신성하게 하지 못함이란 어느 인간도 그 선이 자기 것이라고 해서는 안 됨을; 뿐만아니라 지식만으로 존재하는 진리는 거룩한 상태를 생산하지 않음을, 소든 양이든 그것은 주님의 것이다란 선이 자연적 선이었든 영적 선이었든 모두 주님으로부터 존재함을 뜻한다. (3325-8, 5619, 5913, 6126)

27절. 그리고 만일 그것이 불결한 짐승으로부터 이다면, 그 다음 그는 너의 것 추정값에 따라 그것의 값을 치루라, 그리고 그것에 그것의 오분의 일을 보태라. 또는 만일 그것이 되찾아지지 않는다면, 그 다음 그것은 너의 추정값에 따라 팔리운다.

영적 의미

그러나 주님으로부터가 아닌 불순한 자연적 선은 신성한 진리를 통해 순수한 선으로 대체되어진다. 이리하여 주님께서 각 사람 안에 아껴 두신 것들로해서 인정하는 어떤 것을 수단으로 자연적 인간은 위의 선을 획득한다. 만일 회개가 수행되지 않으면 자연적일 뿐인 선은 거절되는데, 그 이유는 그 선은 신성한 진리와 하모니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불결한 짐승이란 불순한 자연적 선을, 매겨진 값에 따라 그 값을 치르고 되찾음이란 불순한 자연적 애착도 신성한 진리를 통해 순수한 선으로 대체될 수 있음을; 그 값에 오분의 일을 더 함이란 위 방법 속에서 자연적 인간도 아껴두신 것들로부터 오는 인정함을 수단으로 선을 획득함을; 되찾지 않겠다란 회개의 일이 수행되지 않으면을; 매겨진 값에 판다란 자연적일뿐인 선은 거절되어져야 한다는 것, 그 이유는 신성한 진리와 조화를 이루지 않기 때문이다. (46, 10130, 8078, 7010, 2966, 4758)

28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쳐진 것, 즉 그가 가진 모든 것, 그것이 사람이든, 짐승이든, 또는 자기 소유의 들판이든 사람이 주님에게 바친 것은 팔려지거나 되찾지 못한다. 바쳐진 모든 것은 주님에게 최고로 거룩하다.

영적 의미

더구나 자신의 것으로 여겨지는 삶으로부터, 또는 자신의 재량으로 주님께 바치는 애착이나 힘, 그것은 내적이든, 내면이든, 외적이든 소외되어진다거나 또는 이기적이고 세상적인 용도에 충당되지 못한다. 그것도 주님께 모두 돌려드려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가진 것 중에서 주님께 바치기로 결심해서 바쳐진 것은 그것이 사람이든 짐승이든, 소유한 들판이든, 팔거나 물러 내지 못한다란 자기 것처럼 보이는 그 삶으로부터, 또는 자기 재량으로 주님께 바치는 애착이나 능력, 그것이 내적이든, 내면에 있든, 외적이든 소외되어져서는 안 되고, 이기적이고 세상적인 용도에 응용되어서는 안 된다. 바쳐진 것은 모두 주님께 더 없이 거룩하다란 위 사항은 주님으로부터 완전히 비롯된다는 뜻이다. (9193, 8042, 2001, 7424, 4982, 4758, 2966, 8078, 8042)

29절. 바쳐짐이 사람일 경우, 아무도 몸값을 치루고 되찾지 못한다. 그는 정년 죽음에 놓여야 한다.

영적 의미

한마디로 내적으로 인정함으로부터 주님께 헌신하는 것은 이기적 사랑을 수단으로 소외될 수 없다. 모두는 진리가 선과 결합함을 수단으로 주님께 모두 그 원인을 돌려야 한다. 그러므로 옛 생명은 거절되어야 하고 새 생명은 영원해야만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완전히 바치기로 해서 바쳐진 사람은 되찾을 수 없고 반드시 죽여야 한다란 내적으로 인정해서 주님께 바치는 것은 어떤 것이든 이기적 사랑으로 소외되어질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진리가 선과 결합함으로 주님께 온전히 돌려드려야 한다는 것, 그런고로 옛 삶은 거절되어야만 한다는 것, 새로운 삶은 확실히 영원하다는 뜻이다. (9193, 683, 2966, 4758, 1408, 1854)

30절. 그리고 토지의 모든 십분의 일, 토지의 씨뿌림으로부터 이든 나무의 열매로부터 이든, 주님의 것이다. 그것은 주님에게 거룩하다.

영적 의미

진리에 관해 아껴두신 것이든, 선에 괸해 아껴두신 것이든 인간과 함께 있는 모든 아껴두신 것은 주님으로부터 이다. 그것들은 신성한 자비로부터 인간 안에 저장되어 있을 뿐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씨뿌림에서 나는 곡식이든 나무에 열리는 열매이든 토지에서 난 것의 십분의 일은 주님의 것이다란 사실 인간에게 있는 아껴두신 모든 것, 그것이 진리에 속하든 선에 속하든 모두 주님으로부터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신성한 자비로부터 인간 안에 저장된 것임을 뜻한다. (576, 57, 8042)

31절. 그리고 만일 사람이 십분의 일의 뭔가를 되찾겠다면, 그는 그것에 그것의 오분의 일을 추가할 것이다.

영적 의미

회개의 일을 수단으로 선을 마치 자기 것처럼 삼기 위해서 그 선이 주님으로부터 전적으로 있다는 것을 자기 속에 아껴두신 것 속의 선들로부터 인정해야만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자기의 십분의 일 중 어떤 것을 되찾고 싶다면 오분의 일을 더 해야 한다란 인간이 선을 자기 것이 되게 하기 위하여, 회개의 일로 마치 자기 것이듯 되게 하려면 아껴두신 것의 어떤 선으로부터 인정함이 있어야 하고, 더 나아가 모든 선이 주님으로부터 임을 확실히 인정해야 한다. (2966, 6156)

32절. 목축이나 양떼의 모든 십분의 일, 막대기 아래를 지나가는 열 번째는 주님에게 거룩하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자연적이고 영적인 모든 선은 진리의 힘으로 획득되는데, 자신 스스로 행동하듯 움직이는 사람을 수단으로 하되 위의 선 모두가 아껴주신 것들을 수단으로 주님으로부터 임을 인정해야 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목축이든 양떼이든 지팡이 밑에서 오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 십분의 일은 주님께 거룩하다란 자연적이고 영적인 모든 선, 이 선이 진리의 힘으로, 마치 자신 스스로 인 듯 행동함으로 해서 획득되는데 이것 모두는 주님께서 아껴두신 것을 수단으로 있어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576, 5913, 6126, 4876, 2001)

33절. 그는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를 헤아리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바꾸지 못한다. 그리고 정녕 그가 그것을 바꾸겠다면, 그러면 그것과 바꾸려는 그것 둘 다 거룩할 것이다. 그것은 되찾아지지 못한다.

영적 의미

인간이 자기 총명으로 선이든 악이든 자기 품질을 평가하려 들어서는 안되고, 선에서 악으로 되돌아가도록 허용할 수 없고, 시험의 흔들림에서 악에 빠지지 않는다면 악에서 저항하고 선 쪽으로 결정함을 수단으로 주님께 예배해야 한다. 이럴 경우, 두 상태는 거룩해 진다. 인간은 선과 진리의 상태로부터 악과 거짓의 상태로 건너 갈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좋고 나쁜 것을 헤아리지 못하고 바꾸지도 못한다란 인간은 자기 품질이 선한지 악한지를 자기로부터 파생된 총명으로부터서 평가하지 못하며 또한 선으로부터 악으로 되돌아 가는 것도 허용되지 못함을; 기어이 바꾼다면 바꾸려는 것 모두 거룩하다란 시험이 요동칠 때에 악에 빠진다면 그는 악에 저항하고 선 쪽에서 결심함을 수단으로 주님을 예배해야만 한다는 것을; 되찾지 못함이란 인간은 선과 진리의 상태로부터 악과 거짓의 상태에로 건너 갈 수 없음을;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인간은 구속의 일을 수단으로 주님으로부터 전적으로 있는 아껴두신 것 속의 선과 진리를 자신의 것으로 주장할 수 없다는 뜻이다. (4162, 1276, 1377, 847, 8042, 2966)

34절. 이것들은 명령들이다, 이것을 주님께서는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모세에게 명령하셨다.

영적 의미

모든 위의 사항은 신성한 질서의 법칙이요, 이는 신성한 선이 신성한 진리에 유입되어서 비롯되고, 이는 주님의 순수한 사랑과 자비로 영적 인간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것들은 명령이요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명령 하셨다란 모든 위의 사항들은 신성한 질서의 법칙이요, 이는 신성한 선의 유입이 신성한 진리 안에 있게 되어서 이고, 이는 주님의 사랑과 자비로부터 영적 인간의 유익을 위해서 이다. (2634, 2951, 2001, 7010, 3654, 8753)

27장의 종합적 고찰

우선 주목해 보아야 할 주제는 어떤 사람이나 물건을 평가함(값을 매김)이 모세나 성직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에 관해서이다. 글자대로 일 경우 평가란 제한된 의미 즉 값을 매김 그대로 이다. 그러나 영적일 경우는 그렇지 않다. 그 이유가 내적 의미는 보편적 의미 이어서 대체로 인류에 관계되는 바, 특정한 어떤 국가나 개인에 국한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세의 평가는 신성한 진리로 모든 이에 대한 주님의 평가이다. 누군가에 대해 주님이 하시는 평가에는 미미한 실수조차 결코 없다. 더구나 모든 각 개인은 주님의 평가에 의거 영원까지 자기에게 할당된 위치를 가지게 된다. 이는 너무나 확실한 바, 우리 삶이 건설되는 기초인 이 세상에서 태어나 이루어진 삶에 따라 지옥 이든 천국 이든 우리의 위치는 결정되어 고정되어진다. 이런 생각은 이제 공부하는 본문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비록 값을 매김이 주님의 권한에 절대적으로 속한다 해서 인간이 그것을 이해 못하도록 장치해두신 게 아니라 그 반대이다. 몇 세겔로 값을 매김, 특히 인간 존재를 몇 세겔의 가치가 있다고 하는 것은 매우 이상한 느낌을 줄런지 모른다. 그러나 수를 세고 물건을 달고, 재는 측량은 내적 의미에서는 사랑과 총명에 관한 우리의 품질을 발견하는 것과 관계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주님으로부터 오는 능력을 수단으로 자신을 평가하든 타인을 평가하든 지극히 올바르게 평가하는 것은 모두 가장 가치가 있는 완성(accomplishment)임을 보게 된다. 비록 모든 평가가 주님으로부터, 또는 그분의 말씀으로부터 거행되는 것이 확실하다 해도 자신의 운명을 고정시켜주는 삶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다. 지상 마지막 순간에서 우리가 어떤 인격이 되어있든 그 인격이 자신과 꼭 맞고 거기에 자신이 언제나 만족해 있는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날수를 제대로 헤아릴 수 있도록 가르치시어 지혜의 심정을 얻게 하소서” (90:12). 이제 우리 모두는 위 구절을 이해하고 있으리라 본다. 설사 상응이라 불리는 지식이 없다 해도 우리가 해야만 하는 것이 어떤 것들인지 그것들의 광대함과 중량감을 느끼리라. 사실 자연계에 사는 동안에도 주님으로부터 오는 힘으로 누구를, 또는 어떤 사물의 값을 매길 수 있다는 것은 아마 최고도로 가치있는 일 임은 틀림없다. 이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은 가장 성공적으로 자기 지식을 응용했다고 보아야 하는 바, 최고의 사람이라 생각된다. 이를 행할 수 없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값이 덜 나가는 사람이 된다. 그러나 어떤 환경 조건에서도 한 인간 존재의 가치는 너무나 커서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바, 본문의 값을 매김(estimation)이 지닌 의미의 절대적 측면에서는 어느 누구라도 그 값을 잃는 경우를 주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신다. 천사와 악마는 대단히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이 반대되기 때문이다. 이는 악과 선, 거짓과 진리 사이에 놓인 반대됨과 같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 가장 나쁜 악령 조차도 주님의 견지에서는 돌보아 줄 가치가 있으시다. 물론 어느 누구도 자기가 선택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악령이 되도록 강요당하지 않는다. 게다가 무한하신 분이 보시는 수준에서 어떤 대상을 우리는 볼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자신이 자유로이 선택해서 자신이 흡족해 하는 것도 없이, 그 만족이 피할 수 없는 제한을 포함함도 없이 영원한 존재로 살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실히 해두는 것은 유한한 우리의 능력을 가지고 주님으로부터서 100%가능하다.
주제와 연결되는 일반적인 진리들을 위와 같이 생각해보게 되면 이제 흥미를 주는 본문에 묘사된 목차들의 일반 요점을 살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첫 문항에 기술된 네 가지 사항들은 「천국의 비밀들 10225항」에서 모두 설명되어 있다. 따라서 한, 두가지 정도의 실용적인 측면 외에 더 확대 해 볼 필요는 없으리라 본다. 첫째로, 거듭남에 있게 되는 발전은 점진적이다는 것, 그래서 인간의 자연계 삶의 각기 다른 시기들로 묘사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이동하는 여행 또는 토지를 경작하는 과정과도 비슷하다. 성경의 어떤 부분에서는 이를 두고 창조의 일이라 부르고, 다른 곳에서는 새로운 탄생이라고도 일컫고 있다. 이와 같이 여러가지 다른 묘사들을 수단으로 거듭남에 관한 다양한 진리들이 말씀의 영적 의미에서 명백하게 그 모습을 나타내 주고 있다. 그리고 모든 각 경우마다 그것은 점진적이다. 우리는 잎이 돋을 때, 이삭이 패일 때, 그리하여 그 이삭 안에 알곡이 가득찰 때까지를 맞이한다. 한 단계 한 단계를 거쳐서 하늘 나라에 도달해야 하는 것이 우리 인간임을 실감하면 이 세상 삶에 적지 않은 위로를 받게 된다. 본문의 첫 문단에서 꼭 주목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모든 이가 유아로부터 노령에로 전진해가는 것과 똑같게 거듭난다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도 있지 않느냐고 혹 어떤 이는 반문 할 런지 모른다. 그러나 여러 인간의 삶을 관찰해 본 사람이라면 실질적인 과정은 삶의 초기 또는 후기에도 개시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극단적인 경우 어떤 이에게는 전혀 개시조차 되지 않는 경우도 발생한다. 어떤 이의 경우 실제 40살을 먹고 있는데도 그의 거듭남은 유아로부터 다섯 살 또는 십대까지로 본문에서 상징화 된 초보적인 상태에 머물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유아라 불리는 자연계의 것과 거듭나는 상태와의 상응 차원에서는 아직 선을 붙들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다. 어찌됐든 우리는 위의 사항들을 유념해두면 매우 유익하리라 생각된다.
둘째로, 본문에서 삶의 각기 다른 시기가 정규적인 순서로 언급되고 있지 않다는 것에 관해서이다. 인생의 셋째 시기에 해당되는 나이(이십세)가 시리즈들의 문을 열고 둘째 시기, 첫째 시기 그리고 넷째 시기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문단은 모세가 아닌 성직자가 가난한 자의 값을 매김으로 마감되고 있다. 왜 이렇게 되는 걸까? 본 장의 전체 주제가 영적 교회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적 사항에 관련되는 것, 즉 영적 교회의 내적 상태에 관한 묘사가 선행된 다음, 셋째 시기와 둘째 시기인 영적 교회의 외적 상태가 기술된다. 그 다음 천적 사항에 관련되는 것 즉 무지의 순진에 관해 먼저 기술되고 지혜의 순진이 뒤따르는데 이것이 인생의 첫째 시기와 넷째 시기로 각각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은 각 층의 사람들, 즉 그들의 상태가 선의 측면에서, 선으로부터 진행된 진리 측면에서 값을 매길 수 있을 뿐인 사람들을 의미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순서대로 뒤따르는 내용은 자연적 애착들, 그것의 내면과 외면에 있는 것들, 그리고 자연적 수준의 지적 능력들 또는 지식에 대한 애착, 뿐만 아니라 자연적 수준의 기쁨들이 열거되고 있다. 넷째 문단에서 주어지는 세부 사항들을 숙고하게 되면 우리가 상기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주님의 말씀이 헤아리는 속성에 관한 것이다. 이 품성을 수단으로 모든 이는 그의 삶에 따라 평가되어 판단되어 진다. 따라서 우리가 회개를 하되 가장 좋은 동기, 가장 높은 동기로 이루어지는 순수한 회개가 절대 필요하다는 것을 자연히 느끼게 만든다. 따라서 시편의 말씀을 응용하면 더욱 유익하리라. “하느님, 나를 헤쳐 보시어 내 심정을 알게 해주소서 나를 파헤쳐 내 생각을 알게 하소서, 사악한 길 걷는지 보게 하시고 영원한 길로 나를 인도해 주소서” (시편 139:23-24).
마지막 문단에 포함된 영적 진리를 호기심의 눈초리로 흘겨보기만 해도 그 속에 얼마나 실용적 중요성이 훌륭하게 담겨 있는지 누가 알 수 없을까? 우리 모두가 대단히 성품이 호의적이라 가정해보아도, 흔들거리는 삶의 상태 동안 자신의 총명과 신중성을 한껏 발휘해 얻은 선함들이라 해도 그 선이 주님으로부터 이요 그분이 소유자이심을 망각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진짜 선함을 행하는데 있어 친절과 관대함이 단지 자연적 수준의 충동에 멈추어 있어 거듭남에서는 실수가 얼마나 연발되는지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이다. 이런 것들을 식별하고 응용해가기 위해 말씀의 가르침에서 꾸준히 배워 간다면 우리 거듭남은 더욱 정진되어 자연적일 뿐인 애착들의 품질이 과연 무엇인지 지각할 능력을 갖추게 되고 수준 낮고 천한 애착들을 거절하면서 진정한 선함의 공적을 자신에게 돌리지 않으면서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더구나 이런 능력이 확실히 있게 되는 조건은 주님을 인정함이 심정으로부터 더욱더 있게 됨에 비례한다는 것, 이에 신성한 진리를 계발된 이해함으로 받아 결합시켜야 한다는 것, 심정과 이해함이 하나되어 결론지은 원리들이 일상 생활에서 적절히 응용되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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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26장 해석

레위기 26장

영적 의미 요약

* 인간이 어떤 이기적인 애착, 어떤 세상적인 애착에 집착되지 않도록, 그리고 무엇보다도 먼저 천적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도록 명령하신다. 그 이유는 그가 순종할 경우 평화와 고요의 상태를 포함하는 모든 영적 축복을 즐기게 되고, 모든 시험들에서 보호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그분의 백성과 함께 계시는 바, 선용으로 작동되는 삶이 우세해진다. 그 이유는 그분께서 구속해 주시는 일을 완성하셨기 때문이다, 1-13절.
* 위와 반대로 영적 교회인이 불순종해서 주님과 그분의 신성한 법도를 거절한다면 본문에 기술된 바 같이 온갖 종류의 재난을 겪게 된다, 14-39절.
* 그러나 타락한 상태에 있다 해도 자신이 사악했다는 것을 고백하고 진실로 회개 할 경우 주님께서는 그를 다시 받아 주실 것이다. 그 이유는 그분께서 구속의 일이 결과되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씀을 수단으로 각 사람의 삶의 상태에 적용될 수 있는 충분한 진리들을 공급해 주시었다, 40-46절.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너희는 우상들을 만들지 말라, 너희는 새긴 상, 또는 기둥을 곧추세우지 말라, 너희는 너의 토지 안에 석상을 놓지 말라, 이것들에 절하지 말라. 그 이유는 내가 주 너의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영적 인간에게 명령되는 바, 어떤 이기적 애착 또는 그 애착에서 파생되는 거짓들, 그것들이 내적 인간 또는 외적 인간, 설사 교회에 있다 해도 그것들로 예배하는데 자신이 빠져들어 그것에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주님만이 예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어떤 우상도 만들지 말라란 영적 인간은 어떤 이기적 애착을 예배하는 데에 자신이 빠지게 해선 안 됨을, 새긴 상을 만들지 말라란 이기적 애착에서 파생된 어떤 거짓도 예배하지 말 것을, 엎드려 절하려고 토지에 기둥을 곧추 세우거나 석상을 놓지 말라란 악과 거짓을 예배하여 악과 거짓에 노예가 되지 말 것을 각기 뜻한다. 우상(idols)과 새긴 상(graven images)은 내적 인간에, 기둥(pillars)과 석상(figured stones)은 외적 인간에 관계된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란 주님만이 예배되어야 함을 말한다. (8869, 10643, 8873, 8106, 2001)

2절. 너희는 내 안식일들을 지켜라, 그리고 내 성소를 공경하라. 나는 주이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주님은 천적 사랑으로부터 거룩함에서 진행되는 진리를 수단으로 예배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주님을 사랑함이 모든 예배의 필수이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의 안식일을 지키고 그분의 성소를 귀하게 여김이란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천적 사랑으로부터, 그리고 그로부터 진행되는 진리를 수단으로 주님이 예배되어져야 하는데, 그 이유는 주님을 사랑함이 모든 예배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87, 3210, 2001)

3절. 만일 너희가 내 법령들에서 걷고, 내 명령들을 지키고, 그것들을 실행한다면.

영적 의미

그래서 교인이 신성한 질서의 법칙에 따라 내향적으로나 외향적으로나 살아간다면,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의 법령대로 걷고, 그분의 명령을 준수해서 그대로 행한다면 이란 만일 교인이 신성한 질서의 법칙에 의거 바깥쪽으로, 안쪽에서도 살아 간다면을 뜻한다. (8420, 3382, 4258)

4절. 그러면 나는 그것들의 때에 맞추어 비들을 내릴 것이다, 그리고 토지는 그녀의 소출을 낼 것이다, 그리고 들판의 나무들은 그것들의 열매를 산출할 것이다.

영적 의미

그러면 그는 주님으로부터 자기 상태에 따라 신성한 진리의 유입을 받게 되고, 그 선으로부터 진리도 불어나 다시 그 선은 진리를 수단으로 열매를 맺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때에 맞추어 비를 주심이란 각 사람의 상태에 따라 주님으로부터 신성한 진리의 유입을 받는 것을, 토지가 소출을 냄이란 진리가 선으로부터 배가됨을, 들판의 나무들이 열매 맺음이란 다시 선이 진리를 수단으로 결실을 갖게 됨을 뜻한다. (8416, 2571, 4981, 983, 3310)

5절. 그리고 너의 타작은 너의 포도 수확에까지 이르고, 그리고 포도 수확은 파종기에까지 이를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너의 빵을 배불리 먹을 것이다, 그리고 너의 토지에서 안전하게 거주할 것이다.

영적 의미

거듭남을 통하여 선을 실감하게 됨은 신성한 진리들과 공존할 것이다. 선 안에 진리가 주입되는 방식으로 신성한 진리를 수용하는 것이 충만히 이루어지는 바, 천국적 삶의 상태는 악과 거짓이 침입하려드는 데서 안전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타작이 끝나면 포도를 수확함이란 거듭남을 통하여 선을 실감함은 진리를 받는 것과 동시에 있게 됨을, 포도 수확이 끝나면 씨를 뿌림이란 신성한 진리를 받는 것은 선 안에 진리가 심어지는 것과 동시에 있게 됨을, 배불리 먹는다란 선을 자기 것이 되게 함이 충만될 것임을, 안전하게 그 땅에 거함이란 천국 삶의 상태는 악 또는 잘못이라는 것들의 습격에서 안전함을 뜻한다. (6377-4, 4482, 9272, 2187, 2165, 2177, 10160)

6절. 그리고 나는 토지에 평화를 줄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드러누울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너를 두렵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악한 짐승들이 네 토지로부터 중단되게 할 것이다, 검이 네 토지를 통과하지 않으리라.

영적 의미

또한 평화가 마음에 넘치고, 고요가 생활 속에 널리 퍼져 있는 바, 어떤 악과 거짓도 건드리지 못한다. 그 이유는 악한 열정이 완전히 제거되었고 파괴하는 거짓 역시 더 이상 교회를 황폐되게 하는 원인이 못 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 땅에 평화를 줌이란 평화가 마음에 고루 미칠 것임을, 너희는 드러누울 것이다(걱정이 없음)이란 고요함이 삶 속에 차있는 것, 악과 거짓이 소동을 일으키지 못할 것을; 악한 짐승(맹수)가 그 땅에서 중단됨이란 악한 열정이 전부 제거 될 것임을; 검이 네 토지를 통과하지 않음이란 파괴하는 거짓들이 더 이상 교회를 황폐되게 하는 원인이 안 될 것을 뜻한다. (3696, 2799)

7절. 그리고 너희는 너의 적들을 추격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너희 앞에서 검에 의해 쓰러질 것이다.

영적 의미

따라서 시험이 발생할 때 선을 사랑함이 악들을 흩어지게 하고 진리를 사랑함은 거짓들을 사그라지게 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너희 적들을 몰아 붙여 네 앞에서 검에 맞게 하리라란 시험이 발생할 때 선을 사랑함이 악을 흩트고, 진리를 사랑함이 거짓을 종식시킨다는 뜻이다. (2851, 9259, 2799)

8절. 그리고 너희 중 다섯이 백 명을 쫒고, 그리고 너의 백 명은 만 명을 쫒을 것이다. 그리고 너의 적들은 검에 의해 네 앞에서 쓰러질 것이다.

영적 의미

그 이유는 진리가 아무리 적게 남아 있다 해도 풍부한 거짓들보다 더 강한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요, 선을 아무리 적게 실감했다 해도 악의 모든 힘에 저항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성한 진리는 타락한 자연적 모든 애착의 반발에 승리를 보장 해주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너희 중 다섯이 백 명을 추격함이란 담고 있는 진리가 아주 조금이어도 풍부한 거짓보다 더 강한 힘이 있을 것을; 백 명이 만 명을 무찌른다란 선을 실감함이 아무리 적어도 악의 모든 권세를 꺾을 수 있다는 것을; 네 앞에서 너의 적이 쓰러진다란 신성한 진리는 타락한 자연적 애착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보증함을 뜻한다.(5291-2, 2686, 576, 2575, 2686, 683, 2851, 9259, 2799)

9절. 나는 너희에게 관심을 둘 것이다, 그리고 너를 열매 픙성하게 만들고, 그리고 너희를 불어나기 만들 것이다. 그리고 너희와 더불은 내 언약을 확립할 것이다.

영적 의미

그래서 신성한 선은 영혼을 내적으로 채우고 외적으로는 선 자체가 명백해지게 되어 진리들이 풍성해지면서 인간은 주님과 결합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께서 너희에게 관심을 가진다란 신성한 선이 영혼을 내적으로 채울 것 임을, 열매 풍성하게 함이란 외적으로 선이 명백해짐을, 너희를 불어나게 하리라란 진리들도 풍성해질 것을, 주님이 너희와 맺은 계약이란 인간은 주님과 결합하게 될 것 임을 뜻한다. (2001, 10420, 983, 665)

10절. 그리고 너희는 오래 보관한 묵은 것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새 것 때문에 묵은 것을 내놓을 것이다.

영적 의미

더 나아가 오랫동안 저장되었던 아껴두신 것들에 있는 선을 자기 것으로 삼게 되고, 진리는 변함 없이 실패 없는 정신을 통해 충만 되어짐을 즐기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오래 보관한 묵은 곡식을 먹음이란 오래 저장되고 있던 아껴두신 것들로부터 선이 자기 것 되는 것을; 새 것 때문에 묵은 것을 퍼냄이란 진리는 꾸준히 충만 되게 즐기게 되고 갱신되는데 결코 실패하지 않음을 뜻한다. (2187, 5299, 5370, 1854, 8400, 3768, 5244)

11절. 그리고 나는 너희 사이에 내 장막을 세워 둘 것이다. 그리고 내 혼이 너를 혐오하지 않을 것이다.

영적 의미

또한 주님은 그분의 백성과 함께 거하시는 바, 상응에 관해 부족하게 앎이 천국 진리를 충분히 지각하는 것을 방해 않으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께서 너희가운데 그분의 장막을 세우고 그분의 혼이 너를 혐오하지 않을 것이다란 주님께서 그분의 백성과 함께 계실 것이고 상응 지식의 결핍으로 천국 진리를 충분히 지각하는데 방해받지 않을 것을 뜻한다. (9668, 9784, 7327)

12절. 그리고 나는 너희 사이에서 걸을 것이다, 그리고 너의 하느님일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백성일 것이다.

영적 의미

적극적인 선용의 삶이 우세해져 천국 축복을 서로 즐기게 됨이 있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께서 너희 사이에서 거닐으시어 너희 하느님이 되시고, 너희는 그분의 백성이 된다란 선용이라는 적극적 삶이 천국 축복을 상호 즐김으로 해서 우세해진다는 뜻이다. (519,2001,1259, 2004)

13절. 나는 주 너의 하느님, 너희를 이집트의 토지로부터 데려와서, 너희가 그들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 나는 네 멍에의 가름대를 부수었다, 그리고 너를 직바로 걷게 만들었다.

영적 의미

이렇게 된 연유는 주님께서 그분의 인간을 신성이 되게 하심을 수단으로 영적 인간을 단지 자연적일 뿐인 것의 속박에서 영원히 구속해주시어 자연적인 것에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해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 거듭남에 장애가 되는 것은 하나도 남아 있지를 않다. 그래서 처음에는 단지 자연적 인간이었겠지만 후에는 진정으로 영적 인간이 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나는 주 너희 하느님, 너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냈다”란 주님께서는 그분의 인간을 신성이 되게 하심을 수단으로 영적 인간이 더 이상 자연적일 뿐인 인간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그 속박에서 벗어나게 되찾아 주셨음을; 너희가 맨 멍에의 가름대를 부수어 너희로 떳떳이 살게 하리라란 인간 거듭남에 장애가 되는 찌꺼기들이 없어 자연적일 뿐인 상태에서 후에 진정 영적 인간이 되게 해주시겠다는 뜻이다. (2001, 8866, 1664-2, 9496, 892, 6952)

14절. 그러나 만일 너희가 나에게 귀기울이지 않고 이 모든 명령들을 실행 않는다면.

영적 의미

그러나 위와 반대일 경우, 즉 영적 인간이 바깥쪽에서나 안쪽 측면에서나 불순종하면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의 규정을 귀담아 듣지 않고 그분의 계명을 행치 않는다란 불순종이 바깥쪽으로, 안쪽에서도 있음을 뜻한다.(2542, 3382)

15절. 그리고 만일 너희가 내 법령을 거절한다면, 그리고 너희 혼이 내 판단들을 혐오한다면, 하여, 내 모든 명령들을 행하지 않을 것이다면, 내 언약을 깨트린다면,

영적 의미

그래서 외적 예배에 게을러지고 내면의 진리에 대한 공부를 경멸하여 불순종이 내적으로 확산되어 주님과의 결합이 깨뜨려진다면,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의 법령을 거절함이란 외적 예배를 게을리 함; 그분의 판단을 혐오함이란 내면의 진리에 관한 공부를 경멸함을; 모든 명령들을 행치 않음이란 불순종이 내적으로 확산되었음을; 계약을 깸이란 주님과의 결합이 깨어짐을 뜻한다.(8357, 3382, 665)

16절. 나 또한 너희에게 이것을 행하리라. 즉 나는 너희 위에 공포를 임명할 것이다, 즉 폐병과 열병이다, 하여, 눈이 없어지고, 혼은 한탄하며 지내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너의 씨들을 뿌리나 헛될 것이다, 그 이유가 네 적들이 그것을 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그러면 영적 인간은 그 결과에 고통받게 된다. 그 이유는 그 자신 스스로 신성한 실재의 두려움을 자신 위에 불러오는 바 진리가 황폐해지고 선을 파괴하는 맹렬한 열정의 힘이 덮쳐 모든 진리들을 거두어가 차츰 선에 관한 모든 원리까지 강탈해간다. 그래서 더 이상 진리로부터 선으로의 발전도 없게 되는데 그 이유는 삶 속의 악이 영적 성장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나도 너희에게 이렇게 하리라”란 영적 인간이 위 결과로 고통을 겪게 됨을; 너희 위에 공포, 폐병과 열병이 덮친다란 그는 자신 위에 신성한 실재의 두려움, 진리는 황폐되고 선을 파괴하는 맹렬한 열정을 초래되게 함을; 네 눈이 사그라지고 네 혼은 한탄함이란 모든 진리가 거두어지고, 선에 관한 모든 원리도 차츰 박탈된다는 것을; 씨를 뿌려봐야 헛된 바 그 이유는 네 적들이 그것을 먹어치우기 때문이다란 이 인간은 더 이상 진리로부터 선 쪽으로 인도됨이 없을 것인 바, 그 이유는 삶에 있는 악이 영적 성장을 파괴시키기 때문이다. (696, 986, 8364, 3820, 1436, 7795, 9272, 2851, 5149)

17절. 그리고 나는 내 얼굴을 너와 맞서 놓을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네 적들 앞에서 쳐죽임을 당할 것이다. 너를 미워하는 그들이 너를 지배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추격하는 자가 아무도 없는데 도망 할 것이다.

영적 의미

또한 사람은 내적 선과 진리를 더 이상 납득 못하게 된다. 그는 악이 가져다주는 처벌로 고통받게 된다. 이기적인 지배욕이 강세해지고 신성한 진리에 무지해서 야기될 고통의 두려움이 더욱 격렬해 지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께서 그분의 얼굴을 너희와 맞서게 놓으리라”란 인간은 더 이상 내적 선과 진리를 납득 못함을; 네 적들 앞에서 쳐죽임을 당한다란 그들은 악이 가져다주는 처벌로 고통을 겪게 됨을; 너를 미워하는 그들이란 이기적인 지배욕이 강세해짐을; 아무도 추격하지 않는데도 도망침이란 신성한 진리에 무지한 바 더욱 강한 두려움에 고통을 겪게 됨을 뜻한다. (222, 358, 7871, 2851, 10814, 1689, 270)

18절. 그리고 만일 너희가 이런 것들로 해서도 나에게 귀기울이지 않는다면, 그다음 나는 너의 죄들을 위해 일곱 배를 더 응징할 것이다.

영적 의미

참으로 영적 인간이 불순종하겠다고 고집 부린다면 그는 악과 거짓의 결합, 완전히 황폐된 상황에 자신을 가져다 놓게 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그런데도 너희가 내 말에 경청 않으면 나는 너희 죄를 일곱 배로 벌하겠다” 란 만일 영적 인간이 불순종을 고집 한다면 악이 거짓과 결합함을 자초해서 완전히 황폐해지리라는 뜻이다. (2542, 696, 433, 10360)

19절. 그리고 나는 네가 자랑해대는 네 힘을 부러뜨릴 것이다. 나는 너의 하늘을 쇠로, 네 땅을 놋쇠로 만들 것이다.

영적 의미

또한 자아 총명을 자랑함을 통해 그의 모든 진리는 박탈된다. 내적 측면은 혼합 안 된 거짓들이 통치하고 외적 측면에는 자연적 기쁨만 있으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자랑하는 네 힘을 부수리라란 자아에서 나오는 총명을 자랑함으로 해서 그에게서 모든 진리가 박탈될 것임을, 네 하늘을 쇠같이 네 땅을 놋쇠 같이 만든다란 내적 인간 측면에서는 혼합 안 된 거짓들이 통치 할 것이고, 외적 측면에서는 자연적 기쁨만 있게 됨을 뜻한다. 이 구절의 쇠와 놋쇠는 반대적 의미에서 사용되고 있다. (8678, 10481, 4535, 425)

20절. 그리고 너의 강함은 헛되이 소비될 것이다. 그 이유가 네 토지가 그녀의 소출을, 토지의 나무들은 그것들의 열매를 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거짓이 선하고 참된 것을 생산할 리 만무이다. 악이 선을, 악에 바탕을 둔 거짓이 진리를 생산함은 불가능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힘을 써 봐야 헛되다란 거짓에서 선하고 참된 것이 생산 될 리 만무함을, 토지가 소출을 내지 않음이란 악이 선을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함을, 나무는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이나 지각을 뜻하나 이 구절에서는 반대 의미여서 악하고 거짓된 것에 관한 지식과 지각을 뜻하고 있다. (3727, 2571, 4981, 7690)

21절. 그리고 만일 너희가 나에게 반대적으로 걷는다면, 그리고 나에게 경청 않는다면, 나는 네 죄들에 의거 일곱 배 더 재앙을 네 위에 가져올 것이다.

영적 의미

그래도 영적 인간이 신성한 질서의 법칙에 반대되는 생활을 고집하고 신성한 법칙에 불순종하겠다면 신성한 진리인 말씀에서 표현된 바 같이 완전한 황폐함이 그의 악행 수준에 따라 그를 덮으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에 반대되게 걷고 그분께 경청 않는다란 신성한 질서의 법에 반대되게 사는 것을 고집하고 신성한 사랑으로부터 세워진 법들에 불순종하기를 고집함을, 그리고 신성한 진리인 말씀에서 표현된 대로의 순종을 거절함을, 죄에 따라 일곱 배나 더한 재앙을 주님이 내리심이란 완전히 황폐함이 악행 수준에 따라 영적 인간을 타도 할 것임을 뜻한다. (519, 2001, 2542, 696, 433, 10361)

22절. 그리고 나는 너희 사이에 들판의 짐승을 보낼 것이다, 이것들이 너로부터 네 어린이들을 강탈할 것이다, 그리고 네 가축떼를 파괴할 것이다, 그리고 너로 숫자가 적어지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너의 길들은 황폐해질 것이다.

영적 의미

그이유가 혐오스러운 악한 애착이 그를 소유하게 되어 모든 순진, 모든 선한 자연적 애착, 진리로부터 행동할 능력까지 박탈할 것이다. 결국 진정한 교회의 어떤 교리도 거기에 있지 않으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너희 사이에 들판의 짐승(맹수)를 보낸다란 지긋지긋한 악한 애착들이 영적 인간을 점유할 것임을; 네 어린아이들을 강탈한다란 모든 순진이 그에게서 박탈됨을; 네 가축을 파괴함이란 모든 선한 자연적 애착까지 그에게서 박탈될 것임을; 소수만이 남게 만든다란 진리로부터 행동할 모든 힘이 그에게서 박탈됨을; 너의 길이 삭막해진다란 그에게는 진정한 것인 교회의 진리도 없을 것임을 뜻한다. (3696, 5342-2, 430, 9135-2, 2227, 2234, 411)

23절. 그리고 만일 이런 것들에 의해 너희가 나에게 개혁되질 않고, 나에 반대로 걷는다면,

영적 의미

그래도 더욱 신성한 법칙에 반대하여 바깥쪽으로도 순종하기를 거절한다면,

세부적 영적 의미

이래도 개혁되지 않고 주님께 반대하여 걷는다란 신성한 법도에 더욱 반대하고 바깥쪽으로 불순종한다면을 뜻한다. (696, 519, 2001)

24절. 그다음 나 또한 너에게 반대로 걸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너를 네 죄들을 위해 일곱 배 세게 칠 것이다.

영적 의미

그러면 더욱 격렬한 황폐가 그 사람 위에 있게 된다. 그 이유는 신성한 기운의 현존으로부터 몸부림치는 고통을 겪게 되고 거룩하고 순진하고 평화스러운 모든 것을 더 심하게 두려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너에게 맞선다란 자신에게 더욱 심한 황폐함을 자초한다는 것을; 너를 부수리라란 그는 신성한 기운으로부터 찢기는 고통을 겪음을; 그 이유는 그의 거짓이 신성한 선과 진리에 반대되기 때문이다. 네 죄에 일곱 배 란 거룩하고 순수하고 평화스러울 수 있는 모든 것이 공포의 원인임을 뜻한다. (696, 519, 10510, 433, 10361)

25절. 그리고 나는 네 위에 검을 가져올 것이다, 하여, 언약의 앙갚음을 집행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성읍들 안에 함께 모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너희 사이에 유행병을 보낼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적의 손 안으로 넘겨질 것이다.

영적 의미

그런 이유가 악으로부터 오는 거짓들이 주님과 결합할 가능성들을 그 사람에게서 파괴시켜 버리고, 거짓이라는 바깥 장벽들이 들러 쳐지며, 어떤 선한 나머지도 없게 되어 악만이 그를 장악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계약을 어긴 것을 보복하게 너희에게 검을 가져온다란 악으로부터 온 거짓이 영적 인간을 뒤덮어 주님과 결합 가능한 영적 인간의 모든 것이 파괴 될 것임을, 성 안으로 피해 모이면 이란 그는 거짓의 외적 장벽들로 둘러쳐지게 됨을, 너희 사이에 유행병을 보냄이란 아껴두신 것들이 온통 멸해짐을, 적의 손에 넘어감이란 악이 그 사람을 완전히 장악함을 뜻한다. (2799, 665, 8223, 6463, 402, 2851, 878)

26절. 내가 빵의 네 지팡이를 부러뜨릴 때, 열 여인이 하나의 오븐에서 네 빵을 구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네 빵을 무게로 달아 다시 전달하리라. 그리고 너희는 먹을 것이다, 그리고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영적 의미

선한 애착들이 완전히 황폐될 때 가득 찬 거짓들만이 그에게 악한 애착의 수준에 따라 이기적 사랑의 열기로부터 자양분을 공급할 것인 바, 이런 악을 자기 것으로 삼음은 지옥 사랑들의 열망을 채워줄 뿐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지팡이 같은 빵이 끊어짐이란 선한 애착들이 완전히 황폐됨을; 여인 열 명이 한 오븐(oven)에서 너의 빵을 굽는다란 충만해진 거짓들이 이기적 사랑의 열로 그를 위해 자양분을 공급한다는 것을; 무게로 달아 네 빵을 받는다란 악한 애착의 품질에 의거함을; 먹되 만족치 못함이란 위 같은 악들을 자기 것 삼아 보아야 지옥 사랑들의 계속되는 열망에 흡족하지 않음을 뜻한다. (9163, 9323, 9716, 409, 8496, 9323, 7356, 2187, 8410)

27절. 그리고 너희가 이런 모든 것에서도 나에게 경청하지 않고, 나에게 반대하여 걷는다면,

영적 의미

더 더욱 영적 인간이 순종을 거절하여 신성한 법칙에 계속 반대하려 든다면,

세부적 영적 의미

이렇게 해도 너희가 내 말을 경청 않고 반대쪽으로만 걷겠다면 이란 만일 영적 인간이 순종을 거절하고 신성한 법에 계속 반대할 것이다 면을 말한다. (2542, 519)

28절. 그다음 나는 더 맹렬하게 너와 반대되게 걸을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네 죄를 위해 일곱 배를 네게 징계할 것이다.

영적 의미

그러면 이런 반대함의 결과는 더욱 격렬해진다. 선에 관한 모든 것의 황폐해짐은 이런 삶의 당연한 결과가 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크게 노하여 맞서겠고 너희 죄의 일곱 배로 징계한다란 위 같은 반대의 결과가 더욱 격렬해질 것 임을, 그 이유는 모든 선의 황폐됨이 위 삶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519, 696, 10618, 433, 10361)

29절. 그리고 너희는 네 아들들의 살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네 딸들의 살을 너는 먹을 것이다.

영적 의미

악은 이해함과 의지 또는 생각과 애착 자체 모두를 살라 버리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네 아들들의 살을 먹고 네 딸들의 살을 먹는다란 악은 이해함과 의지 또는 생각과 애착 양 측면에서 자체가 살라진다는 뜻이다. (5149, 8408, 568)

30절. 그리고 나는 너의 높은 장소들을 파괴할 것이다, 그리고 너의 태양-상들을 잘라 내릴 것이다, 그리고 너의 우상들의 시체 위에 네 시체를 던질 것이다. 그리고 내 혼은 너를 혐오할 것이다.

영적 의미

더 나아가, 이해함에서 온 예배라는 모든 외형, 의지에서 온 예배라는 모든 외형은 파괴되리라. 삶의 죽은 형체만이 주님에게서 돌려서게 만든 악의 탐닉을 통해 영혼도 없이 남아 있으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네 높은 장소(산당)을 헌다란 이해함으로부터 온 예배 같은 듯 여겨진 모든 외관이 파괴 될 것을; 네 태양-상을 잘라버림이란 의지로부터 온 예배같이 보이는 외관이 파괴될 것임을; 네 우상의 주검 위에 네 주검도 던져진다란 삶의 죽은 형체만이 영도 없이 남게 됨을; “내 혼이 너를 혐오한다”란 비켜 있는 상태를 뜻한다. (2722, 2441, 3900-10, 3605, 693, 694)

31절. 그리고 나는 너의 성읍들을 황폐해지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너의 성소들을 황량하게 가져다 놓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너의 달콤한 향기의 풍미를 냄새맡지 않을 것이다.

영적 의미

진리로 질서있는 체 했던 것들은 진짜 황폐함으로 본색을 들어낸다. 그럴싸했던 예배의 모든 것은 폐지된다. 평화와 쉼에 관한 더 이상 왜곡된 것도, 흠양될 예배도 더이상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너희 성읍들을 폐허로 만든다란 진리로 잘 배열된 듯 보이는 것도 진짜로는 황폐해 있다는 것이 노출될 것임을; 네 성소들이 황량해지게 한다란 예배인 것 같은 모든 것도 포기 될 것임을; 달콤한 향의 풍미를 냄새맡지 않을 것이다란 거기에는 쉼이 왜곡되게 나타나는 것, 예배에서 감사히 여겨 나타나는 어떤 것도 없을 것임을 뜻한다. (402, 411, 9457, 411, 10054)

32절. 그리고 나는 토지를 황무함으로 가져다 놓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거주하는 네 적들이 그것에 깜짝 놀랄 것이다.

영적 의미

황막해짐은 모든 선한 애착에 걸쳐 완전하게 있게 되어 사악한 자들 스스로도 놀랄 수밖에 없으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네 토지가 황량해지고 그 안에 거주하는 적들이 놀라리라 란 삭막해짐이 선한 애착 모두에서 완전하여 사악한 자들까지도 놀라게 될 것임을 뜻한다. (620, 411, 2851)

33절. 그리고 너를 나는 나라들 사이에 흩어지게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네 뒤를 좇아 검을 뺄 것이다. 그리고 너의 토지는 황무해질 것이다, 그리고 너의 성읍들은 황폐해 있을 것이다.

영적 의미

그런고로 뒤집혀져 부패된 영적 인간은 악과 거짓에 온전히 주어질 것이다. 거짓은 끝까지 그를 추격한다. 그래서 모든 선한 애착은 진리를 잃어버리고 진정한 교리에 관한 모든 지식은 선을 상실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나라 사이에 너희를 흩트리라란 뒤집혀지고 부패된 영적 인간은 악과 거짓까지 모두 포기됨을; 검을 빼들고 네 뒤를 쫓는다란 거짓들이 계속 그들을 추격함을, 네 토지는 황량해짐이란 모든 선한 애착이 삭막해짐을, 네 성읍이 폐허가 됨이란 진정한 교리에 관한 모든 지식이 선에 관하여 황폐해질 것을 뜻한다. (6361, 1259, 2799, 620, 411, 402)

34절. 그다음 토지가 황폐해 있는 한, 토지는 그녀의 안식을 즐길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너의 적들의 토지 안에 있을 것이다. 그때 조차도 토지는 쉴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안식을 즐길 것이다.

영적 의미

그러면 진정한 영적 인간은 모든 악의 억압을 수단으로 천적 사랑의 완전한 천국 상태를 즐기게 되리라. 이는 외적으로 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진정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토지가 황량해 있는 동안 너희가 적의 땅에 있는 동안 그 토지는 안식을 누리리라란 진정한 영적 인간은 모든 악의 억압을 수단으로 천적 사랑의 완전한 천국적 상태를 즐기게 될 것 임을; “그리하여 그 토지는 쉬면서 안식을 즐긴다”란 위 사항은 외적으로 뿐 아니라 내적으로도 또는 이해함 뿐 아니라 의지에서도 참되다를 뜻한다. (620, 87, 411, 2851, 683)

35절. 그것이 황폐한 채 있는 한, 그것은 쉼을 가질 것이다. 너희가 그것 위에 거주할 때 그것이 너의 안식시에 가지지 못했던 쉼까지 가질 것이다.

영적 의미

그 이유는 모든 악의 억압은 교회가 부패된 영적 인간과 더불은 내적인데서 분리된 외적인 것을 수단으로 가질 수 없었던 평화까지 가져다 줄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너희가 여기에 사는 동안 안식년에도 쉬지 못하던 토지가 황량해 있는 동안 쉬게 되리라”란 악의 모든 억압이 평화를 가져오는데 교회가 가질 수 없었던 평화까지도 갖게 되는데 이는 부패된 영적 인간과 더불어 있는 내적인 것에서 분리된 외적 예배를 수단으로 한다. (411, 620, 87, 제 14-15절)

36절. 너희 중에 남아있는 그들에 관하여, 나는 그들이 적들의 토지에서 겁에 질려 살게 할 것이다. 그리고 떨어지는 잎의 소리가 그들 뒤를 쫓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검을 피해 도망하듯 달아날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추격하지 않아도 그들은 엎어질 것이다.

영적 의미

진정한 교회에 아주 경미한 수준에서 몰려든 사악함으로 해서 그들은 악을 거절하는 모든 힘을 잃을 것이다. 신앙의 흔적까지도 거꾸로 된다. 그래서 진리가 자기를 파괴하는 듯 여겨 진리를 피하는데 기뻐하고, 선이 재난을 가져오는 듯해서 선으로부터 도망함에 기뻐하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너희 중 남아 있는 자들에 관하여”란 진정한 교회에 출몰하는 것이 아주 경미한 수준에서 계속되는 사악함에 관하여를; 적들의 토지에서 겁에 질려 산다란 악과 거짓 사이에서 거절됨을 통해 모든 힘을 상실함을;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가 그들 뒤를 쫓는다란 신앙의 아주 작은 자국까지도 반감을 사게 됨을; 아무도 쫓아오지 않는데 넘어지고 검을 피해 도망하듯 달아남이란 그들은 진리가 자기들을 파괴하는 듯 여겨 진리에서 피하는 것을 매우 기뻐함을; 그리고 선 역시 자기들에게 재난을 줄 것 같이 여겨 선에서도 도망함을 매우 기뻐한다는 뜻이다. (7564-5, 6111, 7272, 216, 884, 4555, 1689, 2799, 696)

37절. 그리고 그들은 아무도 뒤쫒지 않는데도, 마치 검 앞에 있기라도 한 듯 서로에게 걸려 넘어질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네 적들 앞에 서있을 힘도 가지지 못할 것이다.

영적 의미

그이유가 황폐된 상태의 사악한 자는 진리와 거짓을 식별할 수 없다. 그들은 선과 악의 차이점을 납득 못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뒤쫓아오지도 않는 검 앞에서 엎치락뒤치락함이란 황폐 속의 사악한 자는 진리와 거짓을 식별 할 수 없음을; 너는 적과 대적할 힘이 없다란 그들은 선과 악의 차이를 전혀 납득 못함을 뜻한다. (9163-2, 2799, 696, 7530, 4926-5, 2851)

38절. 그리고 너희는 나리들 사이에서 멸해질 것이다, 그리고 네 적들의 토지가 너를 먹어치울 것이다.

영적 의미

그 이유가 악들은 다른 사람의 것을 파괴한다. 거짓도 거짓끼리의 싸움으로 살라져 버린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나라들 사이에서 망하고 네 적의 토지가 너를 먹어치운다란 악은 서로가 파괴하고 거짓은 거짓들과의 싸움으로 철저히 살라지고 만다는 뜻이다. (1849, 7655, 620, 2851, 5149)

39절. 그리고 너로부터 남은 그들은 네 적들의 토지 안에서 자기들의 불법을 한탄할 것이다. 조상들의 불법으로 한탄 할 것이다.

영적 의미

아주 조금 남은 선까지도 확증한 악들로 해서 흩어지고 만다. 악에서 온 거짓의 확증 역시 모든 진리를 흔들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너희 중 남아있는 자들은 적들의 토지에서 자기들의 불법을 한탄 한다란 겨우 남은 선까지도 악의 확증을 통해 사라져버리고 말 것 임을; 조상들의 불법으로 한탄함이란 악에서 온 거짓으로의 확증은 모든 진리를 사라지게 할 것 임을 뜻한다. (7564, 1460-2, 예레미아4:9, 620, 2581, 7564, 9156, 3703-20)

40절.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의 불법을, 자기들 조상들의 불법을, 자기들이 나에 맞서 범칙한 자기들의 법위반을 고백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들이 나에게 반대하여 걸었기 때문에,

영적 의미

그러나 부패된 상태의 교회에 있는 선한 이들은 이렇게 인정한다. 자기들은 거짓들 속에 악 가운데 있는 이들의 거짓 속에 있다는 것, 이런 거짓들 때문에 진리에 무지해 있다는 것, 신성한 진리에 반대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자기들의 죄와 조상의 죄를 고백함이란 영적 교회의 부패된 상태 안에 있는 선도 인정하는 것은 자기들은 악 속에 있는 이들 속의 거짓들로부터 거짓 속에 파묻혀 있다는 것을; 나에 맞서 범칙한 것이란 그들이 신성한 진리에 반대되어 있는 거짓들 때문에 오는 진리에 무지해서 잘못한 것을; 그리하여 주님에 반대되게 걷는다란 그들의 실지 악들 때문에 그들은 진리에 반대되게 살았다는 뜻이다. (9156, 3703-20, 9156, 519)

41절. 나 역시 그들에 반대하여 걸었고, 그들을 그들의 적들의 토지 안으로 데려 왔다. 그다음 만일 그들의 할례받지 아니한 심정이 겸허해지고, 그들이 자기들의 불법에 대한 벌을 받아들인다면,

영적 의미

그러므로 진리가 자기들 원수나 된 듯 나타나 자기들에 있는 악을 괴롭힌다. 그러나 만일 선한 자가 이렇게 고백한다면, 악은 스스로를 벌해 자기들 스스로는 불순한 것밖에 없다는 것을 고백한다면,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이 그들과 맞서고 그들을 적들의 토지에 데려다 놓았다란 진리가 그들에게 적이 된 듯 나타나고, 악이 그들에게 과해짐을, 할례 받지 않은 심정이 겸허해진다란 악은 그 자체가 벌한다라고 그들이 고백함을, 자기 죄벌을 달게 받음이란 자기들 스스로는 불순함밖에 없다는 것을 그들이 고백함을 뜻한다.(7272, 7225, 7418-3, 7225, 3994)

42절. 그 다음 나는 야곱과 더불은 언약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역시 이삭과 더불은 언약도, 그리고 또한 아브라함과 더불은 나의 언약도 나는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토지를 기억할 것이다.

영적 의미

그들은 주님과 결합할 수도 있는데, 먼저 그분으로부터 오는 선을 받은 자연적 수준의 상태를 통해서, 둘째로 그들의 영적 상태를 통해서 세째로 그들의 천국 상태를 통해서 결합될 수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야곱과 이삭 그리고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고 토지를 기억함이란 그들은 먼저 그분으로부터 선을 받는 자연적 상태를 통해 주님과 결합 할 수 있고, 두 번째로 영적 상태에서, 셋째로 천적 상태에서 결합 할 수 있다는 것, 그 다음 선으로 인도 해주는 진리도 공급될 것임을 뜻한다. (840, 665, 6098, 620)

43절. 토지는 그들 없이 황폐해 있는 동안, 토지 역시 그들로부터 떠나 그녀의 안식들을 즐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의 불법의 처벌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내 판단들을 거절했고, 그들의 혼이 내 법령을 혐오했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그러나 악 가운데 있는 모든 이는 진정한 교회로부터 분리될 것인데 이 교회는 악에서 분리될 때 선의 상태를 보호해주게 된다. 악한 자는 자기들 악의 결과대로 살아 견뎌가야 한다. 그 이유는 제 스스로 신성한 진리를 거절했고, 내적인데서 분리된 외적 예배를 바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들 없이 황폐해 있는 토지란 악 가운데 있는 모든 이들은 진정한 교회에서 분리될 것임을; 토지는 폐허가 된 동안에 안식을 누림이란 악이 분리될 때 교회는 선의 측면이 보호될 것임을; 자기들의 불법의 벌을 받아들인다란 자기들 악의 결과대로 살고 견뎌야 함을; 주님의 심판을 거절하고 그분의 법령을 혐오함이란 신성한 진리를 내적으로 거절하고 내적 예배에서 분리된 외적 예배 마저 드리는 것을 거절함을 뜻한다. (87, 620, 411, 9937, 9257, 8357)

44절. 그리고 이런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자기들의 적들의 토지에 있는 동안, 나는 그들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들이 깡그리 파괴되라고 그들을 혐오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 더불은 내 언약을 깨뜨리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나는 주 그들의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주님께서는 사악한 자가 황폐될 때에도 그들을 보호해 주시기를 멈추시지 않는다. 또한 그들이 보호가 없음으로 야기되는 지독한 파괴를 허용치도 않으신다. 그 이유가 그분께서는 비록 열리지는 않은 채 있는 그들 생명 속의 더 높은 수준을 통해 결합을 유지시키고 있으시기 때문이다. 이런 결합 때문에 그들은 영원히 살아가야만 한다. 주님께서 사악한 자와 결합되어 있는 것은 그들도 선해질 수 있도록, 더 높은 수준으로 완전해 질 수 있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적의 땅에 있는 그들이 거절되지는 않는다란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사악한 자들이 황폐될 때 그들을 보호하시는 것까지 중단하시는 것은 아님을; 그들이 깡그리 파괴되도록 혐오하시지는 않을 것이란 보호가 결핍되어 지독하게 파괴되는 것을 허용치 않을 것임을; 그들과 맺은 언약을 깨지 않을 것이다란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아직 열리고 있지 않은 더 높은 수준의 생명을 통해 그들과 계속되어 있을 것임을; 이 결합 때문에 그들은 영원까지 계속 살아야만 함을;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란 주님은 사악한 자들과도 결합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도 선해질 수 있도록, 더 높은 수준으로 완전해질 수 있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1875, 620, 2851, 3605, 693, 694, 696, 9163, 665, 4364-3, 4525, 2001)

45절. 그러나 나는 그들을 위하여 그들 선조들과의 언약, 곧 내가 그들의 하느님이 되도록 나라들이 보는 앞에서 이집트의 토지로부터 데려 온 것을 기억할 것이다. 나는 주이다.

영적 의미

이런 결합 때문에 주님께서는 사악한 자도 살아 있게 허용하신다. 절대적 악의 속박에서 인류를 구속하심으로 그분께서는 그들을 보호하실 수 있었기 때문에, 그분으로부터 아직도 그들은 영원히 자기들 생명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께서 그들을 위해 그들 선조와 맺은 계약을 기억함이란 이 결합 때문에 주님께서는 사악한 자도 살아 있게 허용하심을; 그분이 그들의 하느님이시도록 나라들이 보는 가운데 이집트 땅에서 선조들을 이끌어 내셨음이란 악의 절대적인 속박에서 인류를 되찾으심으로 그분께서는 인류를 보호하실 수 있으시다는 것을; “나는 주”란 그분으로부터 그들은 영원히 계속 자기 생명을 가진다는 뜻이다. (4525, 2001, 8866, 10152, 2706)

46절. 이것들이 법령들과 판단들과 법들인즉, 이것을 주님께서 자기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시내산에서 모세의 손을 수단으로 만드셨다.

영적 의미

이상의 사항들은 영적 인간의 외적 측면, 내면의 측면, 내적 측면에 관련된 질서의 법칙이요, 이를 수단으로 해서 주님과 인간 종족사이의 결합이 유지되는데, 이는 그분의 신성한 사랑으로부터 있고 그분의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해서 가능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께서 모세의 손을 수단으로 시내산에서 당신과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세우신 여러 가지 법령과 판단들과 법들이란 위 사항들은 영적 인간의 외적 측면과 내면, 그리고 내적 측면에 관한 질서의 법칙들이고, 이를 수단으로 주님과 인간 종족이 결합되는데 이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그분의 사랑으로부터이다. (8357, 7995, 3654, 8399, 7010)

26장의 종합적 고찰

다시 생각해보는 말씀의 부분에는 일반적으로 세 가지가 명확히 존재한다. 즉 주님과 말씀에 포함된 바와 같은 신성한 질서의 법칙에 순종할 경우의 유리한 것들, 불순할 경우 자신에게 자초하고 마는 재난들, 부패된 교회라는 조건이나 부패된 사람인 것도 아닌데 회개해야 하고 거듭남을 원해야 한다는 것에 대하여서이다.
위 간략한 소개가 의미심장해지는 이유는 인간은 자신과 세상 것을 숭배하려드는 경향이 있지만 그 반면 어떤 상태로든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예배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인류 시작 초부터 있어 왔는데 아마 언제나 그런 상태에 있을 것이다. 그 이유가 인간은 악과 선 사이를 선택할 자유 속에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조된 맨 처음의 인간은 어떤 것을 행하면 잘못된 것이고, 어떤 다른 것만을 행해야 올바르다는 것에 관해 지각이 없을 경우 위 자유 선택을 행사할 수 없었다. 그들이 거듭나는 상태에서 창조된 게 아니라 거듭날 능력만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듭나지 않은 천사는 천국에 없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 스스로서는 악밖에 가진 게 없음을 인정하지 않는 천사도 없다. 그래서 최초의 창조된 인간 존재들, 그들이 누구이던, 설사 그들이 영적 질서와 구별되는 천적 질서 속에 있었다 해도 악에 빠졌고, 그들 후손에 자기들 악을 전달해 주었다. 이로부터 지금까지 모든 각 사람은 거듭남을 위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 그가 선택만 하면 거듭날 수 있게 되어있다.
따라서 두 문단의 주석으로서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것은, 글자 측면에서의 호소함은 인간의 이기적인 원리까지 쉽게 인지되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점, 즉 순종한 사람에게는 이러이러한 좋은 것들이 약속되고, 사악한 자에게는 심한 처벌로 위협되고 있다. 이는 모든 인간이 자연적일 뿐인 상태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당연한 것인 바, 각 사람은 자신으로부터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필수 요건이 되게 해서 차츰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인류에 계속 떨어지기 쉬운 본문 같은 재난들을 피할 수 있는 가를 심각히 생각하게 해준다. 만일 우리가 사회에 짐이 되지 않기 위해 가족이나 자신을 위해 준비할 수 없다면 타인의 복지라 할 수 있는 더 높은 선용을 어떻게 수행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인간 사이에 주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데에 한 몫을 담당할 수 있겠는가? 더 더욱 필수적인 것은, 자신을 위해 준비해 가는데, 설사 근면을 발휘해서 자기 재산을 관리하여 낭비되지 않고 잘 사용된다 해도 그 모든 행동 역시 이기적 동기로부터 있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특별한 사건에 관련해 언급된 것이지만 위와 같은 신중함을 발휘하신 때도 있으셨다는 것을 다음 구절에서 찾아 볼 수도 있다. 즉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고 난 뒤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조금도 버리지 말고 남은 조각을 다 모아 들여라’하고 이르셨다”(요한 6:12) 이상과 같이 행동하는데 있어 어떻게 하면 통치하는 동기들을 더 높은 동기를 간직하면서 해낼 수 있는가를 본문 첫 문단에 있는 내적 의미가 보여주고 있다. 사람에게 원기를 주는 나무의 열매, 곡식과 포도주로 표현된 의미들만이 인간으로 이타적이 될 수 있게 하는 참 원리들이다. 그 이유는 주님으로부터 온 천국적 진리, 선한 행동의 다양한 종류들은 자연적 삶의 수준까지도 유용해지게 하기 때문이다. 영혼에 자양분을 주는 생명의 빵, 하느님 나라의 포도주, 이것들은 품성 속에 신뢰되는 힘과 에너지를 주면서 모두 이타적인 것들이다. 그래서 단순한 인간 복지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형체가 어떠하든 모든 형체 속에서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해준다. 다음 사항도 진실이다. 즉 이기적인 사람들이 위 원리들을 이기적인 용도에까지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든지, 어느 때든지 그들이 남용한 참 진리와 선함은 그들을 단죄하고 그들 본성으로부터 가르쳐지도록 평가하면서 더 나은 쪽을 역설한다.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것들은 피할 수 없는 당연한 결과들, 외관으로는 그 반대같이 보일 수도 있는 결과들이 거론되는데 어찌됐든 선과 진리는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 두 원리의 동시 존재는 언제나 평화와 안전의 확고부동한 거처를 제공한다.
첫 문단을 끝내기 전, 악을 정복하는 진리의 힘에 관하여 곰곰이 생각해야만 할 것이라 본다. 즉 아껴두시는 것들의 이식과 그 이식된 것들을 자기 것으로 삼는 것에 관해, 주님을 진정으로 예배함에 관해, 우리가 그분을 진실로 예배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이다. 신성한 존재는 전능하시다는 것, 이 사항은 널리 인정된 진리여서 이를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전능하심의 속성에 관해서는 잘 이해되지 않고 있다. 주님은 어떤 것이든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라고 믿는 반면 그 어떤 것은 신성한 사랑에 일치해야하는 것을 뜻한다는 것을 우리는 잊고 있다. 그러므로 그분이 많은 것을 해주실 수 있기는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신성한 사랑에 관한 그분의 속성에 반대되는 게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분께서는 인간 영혼을 파괴하실 수 없다. 그분은 사랑 외에는 더 달리 인간 영혼을 향해 행동하실 수 없다. 설사 최악의 악령이라 해도 그들이 삶을 계속 할 수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분의 실패할 수 없는 사랑 때문이다. 게다가 주님께서는 잘못된 어떤 것을 행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잘못된 것은 신성한 지혜에서 나오는 그분의 신성한 법칙에 반대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하늘 아버지의 전능하심은 모든 것을 행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시다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라 그분은 모든 힘의 근원 되신다는 사실에 있는데, 그 이유는 그분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요 생명 없는 힘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항에 그분이 신성한 사랑이실 뿐 아니라 신성한 질서이시다는 것을 더 첨가 해보면 그분께서는 그분의 질서에 반대되게 행하실 수 없다는 것도 당연지사로 생각 될 수밖에 없다. 모든 힘의 근원 되심이 명백한 바 천사 또는 선한 자는 그분으로부터서만 힘을 가진다는 것, 이와 반대로 사악한 자는 선한 자를 향해 힘을 가진 게 아니라는 것도 명백해진다. 이런 생각들은 방금 위에서 명명한 네 요점 중의 첫째를 예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말씀에서 많이 말해지는 것, 그래서 스웨덴볽의 저서에서도 많이 거론되는 것은 리메인스(아껴두신 것들, remains)에 관해서 이다. 유아 때부터 삶의 마지막까지 주님께서는 인간 안에다 계속적으로 아껴 저장해두시는 것들이 있다. 설사 당사자가 선한 용도로 아껴 두신 것을 사용하든 그렇게 안 되고 말든, 그것들이 절대적으로 파괴되거나 상실되지 않도록 설비해두신다. 그것들은 모든 선하고 참된 영향이나 감명, 모든 거룩한 애착, 생활 속에서 가지게 되는 모든 경건한 생각 등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들은 주님에 의해 저장되어 보존된다. 이것들은 주님의 영이 작동하는 거듭 나아지는 사람 안에 있는 것들이요, 이것들이 창세기 1장 2절, 요한복음3장 5절에서 물(water)로 상징화되어 있다. 본문이 가르치는바, 인간이 거듭날 때 이것들은 외적 인간 안에 이식되어 명백해져 그 사람의 실제 생명의 일부가 되어 더욱 풍성해지고 더욱 드높여 지게 된다고 말한다. 이와 거듭나는 당사자의 것이 되는 모습이 오랫동안 간직했던 묵은 곡식을 먹는 것, 새 곡식 때문에 묵은 곡식을 꺼내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면 이 결과는 무엇일까? 그 결과는 하느님의 성막에 인간과 함께 있는 것, 모든 악에서 완전히 해방됨으로 해서 예배가 진실 되고 거룩하고 순수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억압받은 이집트의 속박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해방되는 말씀에 담겨있다.
두 번째 문단은 비교적 긴데 부패된 교회와 연결되는 많을 요점들을 말하고 있다. 이런 상태는 끝장을 보게 되는 것까지 이어져 가고 있는데 앞의 장들에서 누누이 설명된 바 있으므로 긴 본문에 비해 설명은 간단히 해도 될 것으로 본다. 이런 사항들을 잘 생각해봄에 있어 먼저 상기해둘 필요가 있는 것은, 주님께서는 어떤 인간에게도 악이나 처벌을 가져다주시지 않는다는 것, 실제로 발생하는 끔찍한 고통까지도 그러하다. 그래서 본문에서 명명되는 여러 가지 재난으로 표현된 것 모두는 악한 상태의 자연스런 결과일 뿐이다. 그런고로 사악한 자들 스스로 재난을 불러들인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주님은 이런 재난을 그분 스스로 있게 하신다든가 그런 재난이 그분의 탓인 듯 여겨지게 한 이유는, 그분께서는 자연적, 영적, 모두 포함되는 우주의 만물을 통제하신다는 것, 나쁜 자, 악령들은 거짓과 악 속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수단으로 그들은 약해지고 어두워져 있는데 그들은 주님께서 자기들을 실제 벌한다고, 자기들 고통의 원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 때문이다. 이를 좀더 세심하게 생각해본다면 각자의 처지와 상태에 따라 생각하는 게 각자를 위해 더 나을는지 모른다. 그 이유는 각자가 그렇게 생각함으로 악한 자들도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외적인 회개의 상태로 인도되어, 잘된다면 나중에 외적 회개가 순수한 회개가 될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그들이 저 세상에 있어 악 속에 있는 자기들을 확증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자기들이 질서에 위반되어서 심한 고통을 겪도록 허용하고 지시를 내렸다는 쪽으로 설득되고 마는바, 그들은 더 강한 억제로 들어가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어떤 쓸모 있음을 기꺼이 수행할 수 있게 배려된다. 그 이유는 각 사람 모두는 결국 쓸모 있어짐의 어떤 형체가 되어가기 때문이요, 이것이 어떤 환경이나 조건 밑에서의 신성한 정부 체제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문단은 보다 더 세심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것인데, 그 이유가 교회의 마지막에서 선 가운데 있는 이들만이 회개의 기회를 가지는 게 아니라, 확증된 악한 상태에 있는 사악한 자들, 비록 주님이 그들과 상반되지만 아직 주님에 의해 보호되고 언젠가 어떤 유용함이 되도록 배려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마지막 문단은 자연스럽게 두 부분, 즉 40-42절과 43-45절로 나뉘어 있다. 이 여섯 절 모두를 하나로 취급하면 한 가지 사실, 즉 신성의 방침에는 마지막 상태에서 선한 자나 악한 자 모두에서 사랑과 자비 중 하나를 포함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문항을 보면, 자기들의 불법을 고백하는 이들은 회개의 일을 하는 이들, 그러므로 교회의 마지막에서 선 가운데 있는 이들을, 그 반면 그 땅을 버린 이들, 그들이 없는 그 땅이 안식을 누리는 것은 악한 상태가 확증되었기 때문에 자신을 교회로부터 분리시킨 이들을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다른 용어들도 위 원칙에 따라 적용되었다. 예를 들면 “자신의 불법에 대한 처벌”이 어느 구절에서는 자신들에게는 불법밖에 없음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으로, 또 다른 구절에서는 자신의 악의 결과에 따라 살고 견뎌야 하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와 같이 44-45절에 있는 사악한 자들에 관해 언급한 주석 역시 43절에 기술된 품성에 의거하고 있다. 영어 번역 성경에 있는 표현 “because, even because”가 포함하는 내적 의미는 그들이 의지와 이해함 양면에서 확증된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상의 마지막 문단의 두 부분의 비교 검토 역시 어떻게 주제를 예증하는지 알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로, 어떻게 주님의 사랑과 자비가 매우 험악한 상태의 인간 존재에 까지 영원히 뻗쳐 가는 가를 미약하나마 실감하게 해 준다. 그리고 누가복음13장 34-35절을 본문의 주제와 함께 생각해보길 바란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너는 예언자들을 죽이고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을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으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들을 모으려 했던가! 그러나 너는 응하지 않았다. 너희 성전은 하느님께 버림을 받을 것이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 받으소서!’ 하고 너희가 말할 날이 올 때까지 너희는 정녕 나를 다시 보지 못하리라.”

레위기 25장 해석

레위기 25장

영적의미 요약

* 영적 인간에게 가르침이 있다. 주님에 대한 사랑이 완전할 때 쉼과 평화가 있다. 이 상태는 악과 싸워 승리하는 상태가 충만될 때를 전제로 한다. 이 상태 안에 있는 자연적 인간은 합법적인 기쁨을 즐기게 된다, 1-7절.
* 위의 인간의 경우처럼 천적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거듭남이 완성된 상태에서 그는 선과 진리가 더 강렬하게 된 상태에로 들어간다. 이 안에서 완전한 자유가 있고, 이 안에는 완전한 정의가 있고, 이 안에는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이 공급되어 있어 선이 결핍될 수 없다. 그 이유는 그가 그것들을 계속 간직하고 있어 주님에 의해 악에서 해방되어 있기 때문이다, 8-24절.
* 완전한 천국 상태에 들어가기 위해 정식으로 준비해야 하는 사람이 거듭나는 동안 준수해야 할 법칙에 관하여, 변동하는 상태에 관계되는 것들, 다양한 환경 속에서 그 사람과 함께 있는 선과 진리가 양도되고 되찾음에 관하여, 25-55절.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주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신성한 선으로부터 진행되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주님께서 지각을 주시어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께서 시나이 산에서 모세에게 일러 말하심이란 신성한 선으로부터 진행되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주님께서 밝히 알게 하심을 뜻한다.(2001, 2951, 7010, 1822, 8399 )

2절.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야기하라.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라, 너희는 내가 너에게 주는 토지에 오면, 그다음 토지가 주님에게 안식을 지킨다.

영적 의미

영적 교회의 사람에게 유입과 가르침을 수단으로 알게 하시는 바, 주님에 대한 사랑이 천적 상태이면 쉼과 평화가 있게 된다는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야기하라란 영적 교회의 사람에게 유입이 있고 또한 가르침이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주시는 토지에 옴이란 천국 상태에 들어감을; 주님에게 안식일을 지킴이란 쉼과 평화의 상태를 뜻한다.( 2951, 10355, 3705, 87 )

3절. 육 년 동안 너는 네 들판에 씨를 뿌려라, 그리고 육년 동안 너는 네 포도원을 가지치기를 하라, 그리고 그것의 열매를 그러모아라.

영적 의미

위 상태에 다음 사항이 선행되어진다. 인간의 거듭 나아감은 악과 싸우는 상태가 충만해짐을 수단으로 하는데 이 충만에는 다음 사항이 포함된다. 의지 측면이 시험을 받는 동안 선에 관한 지식이 신장되고, 이해함 측면이 시험받는 동안 진리에 관한 지식이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선한 일들이 선행을 원리로 수행되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육 년 동안 들판에 씨를 뿌리고 포도원의 가지치기를 하고 열매를 그러모아라란 거듭나는 동안 이렇게 진행된다는 것, 악과 충분히 싸우는 상태를 수단으로 해서 의지 측면에서는 시험이 포함되는데 이 시험동안 선에 관한 지식이 함양되고, 이해함 측면의 시험에서 진리에 관한 지식이 흡수되고, 선한 일들이 선행의 원리로 수행된다.
(8888, 737, 9272-3, 9277 )

4절. 그러나 칠 년째는 토지를 위한 엄숙한 쉼의 안식, 주님에게 안식이다. 너는 네 들판에 씨를 뿌리지 말고, 네 포도원의 가지치기를 하지 말라.

영적 의미

위의 상태가 완성될 때 사랑으로부터의 선인 천국적 수용은 쉼과 평화를 준다. 이는 신성한 사랑으로부터 온전히 있어 질 뿐, 인간이 내적 측면 이든 외적 측면 이든 진리의 상태로부터 선의 상태로 진행시키는 게 아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칠 년째에 그 땅을 위해 엄숙히 쉬게 하는 안식년이 되게 해서 주님의 안식년을 지켜, 들에 씨를 뿌리지 말고 포도원의 가지치기를 하지 말라란 위 상태가 완성될 때 사랑으로부터 오는 선을 천국적으로 받게 되어 쉼과 평화가 주어지는데 이는 외적 측면 이든 내적 측면 이든 인간이 진리의 상태에서 선의 상태로 진행시키는 게 아니라 모두 신성한 사랑으로 있어진다는 뜻이다.( 9274, 9272, 9277 )

5절. 저절로 성장한 너의 수확물을 거두지 말라, 그리고 너의 손질하지 않은 포도나무로부터의 포도들을 너는 그러모으지 말라. 이것은 토지를 위한 엄숙한 쉼의 해이다.

영적 의미

위 사람은 이기적 사랑에서 튀어나오는 어떤 애착이나 자아에서 파생되는 총명으로 획득되는 어떤 진리도 자기 것으로 되게 하지 말라. 그 이유가 위 상태는 시험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것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저절로 성장한 너의 수확물을 거두지 말라, 그리고 너의 손질하지 않은 포도나무로부터의 포도들을 너는 그러모으지 말라. 이것은 토지를 위한 엄숙한 쉼의 해이다란 인간은 이기적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어떤 애착도, 자아 총명으로부터 획득되는 어떤 진리도 자기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 그 이유가 이 상태는 시험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9278, 9279 )

6절. 그리고 토지의 안식년은 너를 위한 식품을 위해 있는다. 즉 너를 위해, 그리고 네 종과 여종을 위해, 그리고 네가 고용한 종과 너와 더불어 체류하는 네 낯선 사람을 위해.

영적 의미

위와 같을 경우 선 자체가 영혼 즉 내적 인간, 내면의 이해함과 의지 그리고 외면의 의지와 이해함에 진리를 생산하여 자양분을 공급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 토지의 안식은 식품을 위함이란 선 자체는 영혼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진리를 생산한다. 그이유가 안식은 진리를 수단으로 형성되는 선의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고 선과 진리는 인간의 순수한 영적 양식이 되기 때문임을; “너희”란 영적 인간 자신 그러므로 내적 인간을; 남종과 여종이란 내면의 이해함과 의지를; 고용한 종(품꾼)이란 보상을 위해 선을 행하는 것, 그러나 이 구절의 경우는 선에 대한 외면의 의지를 나타내는데 그 이유는 좋은 측면에서 사용되기 때문이다. 너와 더불어 체류하는 낯선 자란 낯선 것이면서도 동시에 훈육되는 상태에 있는 것 즉 외면의 이해함을 뜻한다.
(8889, 680, 제2절, 3654, 2541, 2567, 8002 )

7절. 그리고 네 가축떼를 위해, 그리고 네 토지에 있는 짐승들을 위해 그것의 모든 소출은 식품을 위해 있다.

영적 의미

위 같을 때, 외적 감각과 육적 애착도 종속된 상태에서 기쁨과 쾌락을 풍부히 즐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가축이란 감각적인 애착을, 그 땅에 있는 짐승 또는 산 짐승이란 육적인 애착을, 여기서 말해지는 감각적 또는 육적이라 함은 시리즈에서의 의미이다. 그것의 모든 소출은 식품을 위해 있다란 거론되는 모든 애착들이 종속된 탓에 기쁨과 즐거움을 풍부히 누린다는 뜻이다.( 6049, 46, 680)

8절. 그리고 너는 네게 일곱 안식의 해를, 칠 년을 일곱 번 셀 것이다. 그리고 일곱 안식년의 날들, 하여, 사십 구년이 네게 있는다.

영적 의미

천적 교회 속의 사람이 지니는 선의 품질은 내, 외적으로 더욱 강도가 높아진다. 또한 진리가 선과 결합하는 것도 내, 외적으로 더 강도가 높아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일곱 해를 일곱 번 해서 안식년을 세어라. 이렇게 일곱 안식년을 일곱 번 맞아 사십 구 년이 됨이란 천적 교회 사람의 품질은 선의 상태에서 강도가 더 하다는 것, 이는 내적, 외적 측면 모두에서 그러하고, 진리의 상태 역시 내적, 외적 측면 모두에서 더욱 강도 높다는 것, 이는 숫자 일곱이 거룩함을 의미함에서 나타난다. 해들(years)은 세부적인 상태들을, 날들(days)은 일반적인 상태들을, 처음에 표현된 두 겹은 내적 인간에 관련되고, 뒤의 두 겹은 외적 인간에 관련된다. 내적 측면들에 있는 것은 세부적 사항들에 있는 것을, 외적 측면에 있는 것들은 일반 사항들이다. 이중 표현이 두 쌍인 것은 의지와 이해함에 각각 관련된다. 사십 구란 초기에 해당되는 결합을 말한다. (A.C 8802, 716, 488, 3513, 3739, 683, 1988, 2252 )

9절. 그 다음 너는 일곱째 달의 십일에 큰 나팔소리를 널리 보내라. 즉 보상 받는 날에 너희는 네 모든 토지를 망라해 나팔 소리를 널리 보내라.

영적 의미

이로 인해 천적 선의 일반적 지각이 영적 인간에게 파생되어 진다. 이는 영적 인간 속에 아껴 두신 것이 충만될 때 매체 역할을 하는 천사를 통해 이루어지고 그때의 상태는 신앙과 선행이 결합한 상태 중의 하나이다. 이 결합은 악을 제거함으로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하모니를 가져올 때 발생한다. 그 이유는 진리의 지각은 천적 선의 지각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일곱째 달 십 일에 나팔소리를 널리 보냄(크게 울림)이란 천적 선의 지각 또는 주님 사랑에 대한 일반적인 지각이 영적 인간에게 파생되어짐을, 보상 받는 날 이란 악의 제거를 수단으로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하모니를 이룰 때를, 그 이유가 진리에 대한 지각은 천적 선의 지각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열(ten)은 아껴두신 것의 충만된 상태를, 일곱째 달은 선행이 신앙과 결합된 상태를 말한다. (716, 8802, 2075, 851, 10042II, 8802, 3107,851 )

10절. 그리고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라. 그리고 그곳의 모든 주민들에게 토지를 통털어 자유를 선포하라. 이것은 너희에게 희년이다. 그리고 너희는 모든 사람을 각자의 소유지로 돌아가게 하라, 그리고 너희는 모든 사람을 그의 가족에게로 돌아가게 하라.

영적 의미

그 다음 천적 사랑이 충만 되고 거룩함 속에 있게 된다.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가 온 천국에 널리 퍼지는데 이는 가장 깊은 천국에서 선과 진리가 결혼함으로 결과되는 것이고, 이로부터 각자에게 있는 특별한 선과 진리를 실감하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오십 년째 되는 해를 거룩히 여겨 너희 토지의 모든 주민들에게 자유를 선포함이란 참으로 천적 사랑은 충만함과 거룩함 속에 있다는 것, 그 안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가 온 천국을 장악한다는 것을, 희년(Jubilee)은 “가장 깊은 천국에서 선과 진리의 결혼으로 결과됨”을 뜻한다. 제 소유지를 찾아 돌아가 제 가족(지파)에게로 돌아감이란 위 상태로부터 각 사람은 각자에 특별한 진리와 선을 실감함을 뜻한다.
(2252, 8042, 892, 8802, 2028-9, 7833, 3239 )

11절. 희년은 너에게 이런 오십 년일 것이다. 즉 너희는 씨뿌리지 말라, 그것 안에서 저절로 성장한 것을 거두지 말라, 가치쳐주지 아니한 포도나무의 포도들을 모우지 말라.

영적 의미

중간 천국 안에서 역시 선행이 충만된 상태에서 받아진다. 거기서 더 이상 진리로부터 선으로의 어떤 진행도 없고 의지나 이해함 측면에서 있는 자연적일 뿐인 선을 자기 것으로 삼는 일도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오십 년이 되는 해가 희년이다란 중간 천국에서도 역시 선행이 충만 되게 받아들임이 있다는 것을, 뿌리지도 말고 거두지도 말라란 위 상태에서는 진리로부터 선으로까지의 어떤 진행도 없다는 것을, 저절로 자란 것도 거두지 말고 저절로 자란 포도덩굴의 포도도 따지 말라란 의지 이든 이해함 이든 자연적일 뿐인 선을 자기 것으로 삼는 일이 없음을, 순을 쳐주지 않은 포도나무란 선이 없는 진리를, 거둔다란 자기 것으로 삼음을 뜻한다. (A.C 2252, 9274, 9272, 9277, 3580,1071, 9273 )

12절. 이것이 희년인바, 이것은 너희에게 거룩이다. 너희는 들판의 소출을 먹는다.

영적 의미

최말단 천국에서의 가장 깊은 선은 순종을 사랑함이요. 이 순종이란 진리가 생활 안에서 선과 결합하는 것, 이 천국 사람은 진리를 실제화 할 때 그 선을 자기 것으로 삼는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 해가 희년이다란 위 상태는 최말단 천국에도 진정 그러하다는 것, 즉 이 천국의 가장 깊은 선은 순종을 사랑하는 것임을, 이 해가 거룩하다란 삶 안에서 선과 진리가 결합함을, 들판에서 난 소출을 먹는다란 이 천국의 사람들이 선으로부터의 진리를 실제 사용할 때 그 선을 자기 것이 되게 한다는 뜻이다.(2252, 9812, 2146, 2187, 3310 )

13절. 희년의 바로 그 해에 너희는 모든 사람을 각자의 소유지로 돌려보내라.

영적 의미

각 천국은 완전한 사랑으로 충만 되어 각자는 자신의 특별한 선을 영원까지 즐기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 희년에 저마다 자기 소유지로 돌아간다란 완전한 사랑이 충만한 가운데, 각 천국 안에서 모든 이는 자신의 특별한 선들을 영원히 즐긴다는 뜻이다.(2028, 2029, 7833, 3239 )

14절. 그리고 만일 네가 네 이웃에게 어떤 것을 팔거나, 네 이웃의 손으로부터 살 때, 너희는 서로에게 잘못되게 하지 말라.

영적 의미

선이 상호적으로 서로 간에 교통되어 받아진다 해도 각 개인에게 어떤 손실도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무엇을 사거나 팔거나 할 때 서로 잘못되게 말라란 선이 교통되어 상호적으로 서로 간에 받게 될 때에 어떤 개별적인 것에서도 손실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5886, 2967, 9196 )

15절. 희년 이후의 년수에 따라서 네 이웃으로부터 사라, (그리고) 농작물의 년수에 따라 그는 네게 팔라.

영적 의미

가장 깊은 자기 속에서 선과 진리가 결혼함으로 거듭나는 선의 품질에 의거 모든 것 속의 선을 각기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결합된 선과 진리를 받은 데 따라서 모든 것에 선을 교통시킬 수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희년이 몇 해가 지났는지에 따라 이웃에게서 사라란 각자의 가장 깊은 속에서 선과 진리가 결혼함을 수단으로 거듭나는 가운데 있는 선의 품질에 따라 각각은 모든 것 속의 선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농작물의 년수를 세어 팜(소출을 거둘 햇수를 세어 팜)이란 주님으로부터 결합된 선과 진리를 각 인간이 받음에 따라 그는 모든 이에게 있는 선을 교통할 수 있다는 뜻이다.(10217, 8802, 2967, 10217, 5212, 5886 )

16절. 년수가 많음에 따라 그것의 값은 올라가고, 그리고 년수가 적음에 따라 너는 그것의 값을 줄여라. 그 이유가 농작물의 숫자로 그는 네게 팔 것이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각자는 자기 선으로부터의 진리의 상태에 따라 선용의 능력이 모든 천국에 있게 된다. 각 사람의 진리의 품질은 각 사람의 선에 따라 있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햇수가 많으면 값을 많이 치르고 적으면 값을 적게 치룸이란 각자의 선에서 오는 진리의 상태에 따라 그의 힘은 온 천국에 사용된다는 것을, “농작물의 숫자로(소출을 거둘 햇수를 따라) 팔아야 하기 때문”이란 모든 이의 진리의 품질은 그의 선에 의한다는 뜻이다. (6172, 6285, 2966-7, 10217, 5212, 5886)

17절. 그리고 너희는 서로 나쁘게 하지 말라. 그러나 너는 네 하느님을 경외하라. 그이유가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누구도 천국에서 불의하게 행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천국 안의 사람은 선으로부터 오는 진리에 의거 행동하기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와 더불어 진리는 그의 선을 표현한다. 그리고 주님의 인간 역시 신성을 표현하고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서로 나쁘게 하지 말라란 천국에서는 어느 누구도 불의하게 행동하지 않음을, 하느님을 경외함이란 선으로부터 진리에 의거 행동함을,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란 각자에게 있는 진리는 그의 선을 표현한다는 것, 주님의 인간도 신성이 표현된 것임을 뜻한다. (9196,2826-5, 2001, 3049 )

18절. 그러므로 너는 내 법령을 행하라, 그리고 내 판단을 지키고 그것들을 행하라. 그리고 너희는 토지에서 안전하게 거주할 것이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외적 예배는 내적 상태에 의거 정확히 있어져야 한다. 그리고 바깥쪽 삶은 온전해서 거짓이 침입할 수 없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의 법령을 행함이란 외적 예배는 정확히 내적 예배에 따라야 함을, 주님의 법을 지킴이란 외적 인간에 관련된 서술이고, 그대로 행함은 내적 인간에 관련된 서술이다. 그 토지에서 안전하게 산다란 거짓의 어떤 침입에서도 자유로울 것임을 뜻한다. (2001, 7884, 8357, 4480, 10160 )

19절. 그리고 토지는 그녀의 열매를 산출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양껏 먹을 것이다,그리고 그 안에서 안전히 거주할 것이다.

영적 의미

천국에서는 선용의 결핍이 없다. 모든 이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을 충분히 자기 것으로 삼는다. 어느 누구도 악에 침입 당하는 위험을 받지 않는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 토지가 열매를 산출함이란 천국에서 사용하는데 어떤 부족함도 없음을, 양껏 먹음이란 모든 이는 힘껏 충만 되게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음을, 그 땅에서 안심하고 산다란 어느 누구도 악에 습격 당하는 위험에 처하지 않음을 뜻한다.(3705, 7690, 2187, 4480, 10160, 683 )

20절. 그리고 칠 년째 해에 우리는 무엇을 먹을 것인가? 보라, 우리는 씨를 뿌리지 않을 것이고, 우리의 소출을 그러모으지 아니할 것이다 하고 말한다면.

영적 의미

비록 천사들이 자기들 선의 상태를 알고 있어서 자기들로서는 선을 받거나 자기 것 되게 할 수 없다 할지라도,

세부적 영적 의미

“너희는 혹, 칠 년째 되는 해에는 씨를 심지도 말고 소출을 거두지도 말라면 무엇을 먹을 것인가 라고 말한다면”이란 참으로 천사들이 자기들 선의 상태를 지각해서 자기들 스스로서는 선을 받을 수도 없고 자기 것 삼을 수도 없다 해도를 명시하는데, 그 이유는 “…말한다면”이 선한 인간 또는 천사의 지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엇을 먹을 것인가”란 자기들 스스로는 선을 자기 것 삼을 수 없다고 하는 생각을 의미한다. “일곱째 해”란 선이 충만된 상태를, 뿌리지도 거두지도 말라란 그들 스스로서는 진리를 획득하지도, 선을 자기 것으로 삼지도 못함을 말한다. (1822, 2187, 9274, 9272, 9273)

21절. 그다음 나는 육 년째 해에 너희 위에 내 복을 명령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삼 년을 위한 열매를 산출할 것이다.

영적 의미

그럼에도 그들이 아는 것은, 유입해 주심과 상응을 수단으로 거듭나는 일과 그에 따른 깨끗해짐을 통하여 주님과 결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들은 천사들의 어떤 상태의 생활에서도 선을 행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의 명령으로 육 년째 되는 해에는 삼 년 먹을 열매를 산출하게 하리라란 그들이 아는 바, 또 한 가지란 주님과 결합하려면 유입과 상응을 수단으로 해야 되고 거듭남과 그에 따른 깨끗해짐을 통해야 한다는 것, 그리하여 자기들이 천사들의 삶의 모든 상태에서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5486, 3514, 3017, 8988, 8891, 913 )

22절. 그리고 너희는 팔 년째 해에 씨를 뿌려라, 그리고 옛 창고에 있는 열매들을 먹어라. 구 년째 해까지, 그녀의 열매들이 나오기 까지, 너희는 옛 창고(의 것을) 먹어라.

영적 의미

그들의 영원한 생활은 주님으로부터 계속 갱신되어가기 때문에 그들은 진리를 함양할 힘을 가지고 있어 그분으로부터 오는 선을 자기 것으로 되게 한다. 그 이유가 그들은 그분과 세 겹의 결합을 가지기 때문이고 그 선은 그분과 영구적으로 교통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팔 년째 되는 해란 그들의 영원한 삶은 주님으로부터 계속적으로 갱신된다는 것을, 씨를 뿌리고 옛 창고에 있는 열매들을 먹는다란 위로부터 그들은 진리를 함양할 힘을 갖고 그분으로부터의 선을 자기 것 삼음을, 묵은 곡식이란 주님께서 아껴두신 것들 속의 선은 영원함을, 구 년째란 주님과의 세 겹된 결합을, 소출이 날 때까지 묵은 곡식을 먹음이란 선은 주님에 의해 항구적으로 교통되어짐을 뜻한다. (2044, 9227, 9272, 2187, 5299, 5370, 1854, 2075, 2788-10, 913, 5299, 5370, 1854)

23절. 그리고 토지는 영구히 팔지 말라. 그 이유는 토지는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너희는 낯선 사람들이고 나에게 몸붙여 사는 체류자들이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주님으로부터 천국 안에서 받게 된 선은 딴 데로 돌려지지 않는다. 그것은 주님이 계속 주시는 선물이다. 천사들은 그분으로부터 내적, 외적인 모든 선을 계속 받는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 땅은 영구히 팔지 말라 란 천국에서 주님으로부터 받아지는 선은 결코 소외될 수 없음을; 그 토지는 주님의 것이다 란 선은 주님이 계속 주시는 선물임을; 이스라엘 백성은 그분에게 몸붙여 사는 체류자란 천사들은 그분으로부터 내적, 외적인 모든 선을 계속 받음을 말한다. (3705, 4758, 3705, 8002)

24절. 그리고 네 소유의 모든 토지에서, 너희는 토지의 되찾음을 수여할 것이다.

영적 의미

위 사항은 모든 천국의 천사들이 인정하는 바이고, 더불어 자기들은 주님에 의해 악으로부터 억제되고 선 가운데 계속 있게 된다는 것도 인정하고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소유하는 토지 어디에서나 제 토지는 되돌려 살 수 있다란 모든 천국에서 위 사항은 그들에 의해 인정되고 있고, 자기들은 주님에 의해 악에서 유보되고 선 안에 있게 된다는 것도 인정한다는 뜻이다. (3705, 8002, 2966, 10218)

25절. 만일 네 형제 중 누가 지독하게 가난하다면, 그리고 그의 소유의 얼마를 판다면, 그다음 그에게 가장 가까운 친척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의 형제가 판 것을 되찾으라.

영적 의미

더구나 영적 교회의 사람이 비록 선 가운데 있음에도 진리가 부족할 경우, 그리고 시험 상태 동안 그의 선과 진리가 소외되어 있다 해도 그가 선을 원리로 삼은 덕택에 주님에 의해 보호되고 보존되는 바, 소외되었던 선과 진리도 싸움에 승리함으로 회복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네 형제 중 누가 지독하게 가난하다면”이란 비록 영적 교회인이 선 가운데 있다 해도 진리가 결핍할 경우를; 제 소유를 판다란 시험이 있는 동안에 선과 진리가 소외됨을,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주님으로부터 온 선이 거듭나고 있는 그 사람과 더불어 실지로는 소외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와 가까운 친척이 와서 그의 형제가 판 것을 되돌려 산다란 선을 원리로 삼은 덕택에 주님에 의해 보호되고 보존되며 시험에 승리함을 통해 소외된 선이든 진리든 모두 회복됨을 말한다. (2360, 9207-7,3705, 4758, 제 23 절, 3703-2, 2937, 2966)

26절. 그리고 만일 그것을 되찾을 사람이 없다면, 그리고 그가 지독하게 부자이고 그것을 되찾기에 충분하다면.

영적 의미

그런데 만일 영적 교회인이 선을 원리로 하지 않고 있음에도 풍부한 진리를 갖추고 있다면 나중에 회개의 일을 거쳐 주님으로부터 선을 실지로 받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되돌려 살 사람이 없다면”이란 선을 원리로 하지 않고 있음을, 부유해짐이란 풍부한 진리들이 공급됨을, 되돌려 살 힘이 생겼다란 그가 회개의 일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을 실지 받게 되어 감을 뜻한다. (3703-2, 2937, 2966, 10152)

27절. 그다음 그에게 그것의 판 햇수를 계산하게 하고 그는 그것을 판 사람에게 여분을 반환하라. 그리고 그는 자기 소유지로 되돌아 가라.

영적 의미

그의 선의 품질은 거듭남으로 선 가운데 이식된 진리의 품질에 의거 있어진다. 그래서 주님이 자기에게 만들어 주셨던 선, 그가 소외되게 했던 선들은 그 선을 일반적 형체로 한동안 보존하는 천국 사회에 있는 이들을 통해 주님 만으로부터 실지로 있다는 것을 그는 인정할 것이다. 그러면 거듭나는 주제가 자신을 특별한 선 안으로 충분히 오게 해주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판 햇수를 센다란 그의 선의 품질은 거듭남을 수단으로 선 안에 이식된 진리의 품질에 의거 있어짐을; 나머지는 그 땅을 산 사람에게 물어줌이란 자기가 소외시켰던 선, 자기로 하여금 할 수 있게 주님이 만드신 선, 이 선들이 일반 형태로 한동안 천국 사회 안에서 보존되게 하셨다는 것을 인정함을; “제 소유지로 돌아감”이란 그가 특별한 자기의 선 안으로 충분히 오게 될 것임을 뜻한다. (10217, 3705, 4758, 2037, 9087, 9097, 2966, 3705, 4758)

28절. 그러나 만일 그가 자신을 위해 그것을 되돌려 얻을 수 없다면, 그다음 그가 판 것을 그것을 산 자의 손에서 희년까지 머무를 것이다. 그리고 희년에 그것은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 소유지로 되돌아 간다.

영적 의미

그러나 만일 인간의 상태가 이럴 경우 즉 거듭남이 진리에 관해 또는 선에 관해 소외되어 있어 지연될 경우 그가 밝히 알게 되어 자기 삶의 가장 깊은 수준에서 선과 진리가 충분히 결합하는 결과가 있을 때까지 그를 위해 소외된 선은 주님에 의해 보존 될 것이다. 이 결합으로 해서 선은 주님에게서 흘러 갈 것이고 진리는 그의 외적 인간 안에서 그 선과 결합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스스로서는 되돌려 살 수 없다란 그의 상태는 거듭남이 지연되는 것과 같음을; 그가 팔았던 것이란 그가 소외되게 한 것, 진리의 결함으로 계속 소외되어 있는 것을, 그가 판 것이 산 사람의 손에서 희년이 올 때까지 남아 있는다란 이와 같이 소외된 선 또는 진리는 그가 밝히 알게 되어 그의 가장 깊은 수준에서 선과 진리가 충분히 결합하는 결과가 있을 때까지 그를 위해 주님에 의해 보존 될 것임을, 희년이 되어 해약이 이루어져 제 소유지로 돌아감이란 위 결합 때문에 선은 주님으로부터 흘러가게 되고 진리는 외적 인간 안에서 그 선과 더불어 즐겨지게 된다. (9087, 9097, 2966, 3705, 4758, 3705, 4758, 878, 2964, 2966, 8802, 2028, 2029, 7833, 3239)

29절. 그리고 만일 벽을 두룬 성에 있는 거주하는 집을 판다면, 그다음 그는 그것을 판 그 해 안에 그것을 되찾을 수도 있다. 한 해 동안 그는 되찾을 권리가 있다.

영적 의미

누가 교회의 교리로 건립되어 그 까닭에 방어 할 수 있는데 선이 한동안 소외 된 채 있다면 시험에 승리함을 수단으로 시련기간 동안 소외된 상태를 회복할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선과 악 중 하나를 선택하는 자유 가운데 아직 있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누가 성곽 도시 안에 있는 주택을 판 경우란 자기를 방어해주는 교회의 교리가 건립된 누군가에게서 선이 소외될 경우를; 팔린 후 한 해동안 무를 힘을 가진다란 시험에 승리함을 수단으로 비록 수련 기간 동안 선의 상태가 소외되었다 해도 회복 될 수 있음을; 무를 수 있는 유효 기간은 일 년이다란 그는 아직 선과 악 중 하나를 선택할 자유 속에 있기 때문임을 뜻한다. (2233, 4758, 402, 6419, 2966, 2906, 4758, H.H, 479, 480)

30절. 그리고 만일 그것이 한 해 안에 되찾지 못하면, 그 다음 벽이 있는 성에 있는 집은 영구히 그 자손 대대로 그것을 산 자의 것이 된다. 그것은 희년에 나가지 않을 것이다.

영적 의미

그런데 시련 상태 동안 위 같은 결과가 없다면 이 선은 거듭남을 수단으로 획득하는 자에게 확증 될 것이나 그것을 거절하고 소외되게 한 사람에게는 심판에서 그의 것이 되어 질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한 해 기간 내에 무르지 못함이란 구속은 수련 상태에서는 결과되지 않음을; 성곽 도시에 있는 그 집은 아주 산 사람의 것이 되어버린다란 이 선은 거듭남을 수단으로 그 선을 획득한 사람에게 확증될 것임을; 희년이 되어도 해약이 안 된다란 선을 소외되게 했거나 거절한 사람은 심판에서까지 그 선을 자기 것이 되게 할 수 없다는 뜻이다. (2966, 2906, 2232, 6419, 402, 984, 2964, 1041, 8802)

31절. 그러나 빙두른 벽이 없는 마을의 집은 시골의 들판들과 같은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그것들은 되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희년에 나갈 것이다.

영적 의미

교회 밖 선 가운데 있어 진정한 교리로 보호되지 않는 선한 이방인 사이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심판에서 밝히 알게 될 때 진리로 가르쳐 질 수 있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 있는 선은 가장 깊은 수준에서 진리와 결합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 밖에 있는 시골집은 들에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란 교회 밖 선 가운데 있는 이들, 그리고 진정한 교리로 보호되지 않는 이들은 선한 이방인 사이에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을; 희년이 되면 해약되고 물러진다란 위의 사람들은 심판에서 밝히 알게 되어질 때 진리로 훈육될 수 있음을 뜻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에게 있는 선은 가장 깊은 수준의 진리와 결합되어지기 때문이다. (2233, 3271, 7407, 620, 2966, 8802)

32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위인의 성읍들, 그들 소유의 성읍들 속의 집들은 레위인이 언제나 되찾을 수 있다.

영적 의미

그럼에도 선으로부터 진리 가운데 있는 이들, 그리고 진리를 체현 해낸 이들은 소외된 진리 또는 선을 되찾을 능력을 계속 갖고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레위인들의 성읍이란 선에서 파생되는 진리들을, 그들이 소유한 성읍의 집이란 진리로 체현되어진 선을, 언제든지 레위인은 무를 수 있다란 그들은 소외된 선과 진리를 구속하는 능력 가운데 계속 있음을 뜻한다. (402, 6716, 2233, 2966, 3705, 9150)

33절. 그리고 만일 레위인들 중의 누가 되찾는다면, 그다음 팔렸던 집, 그리고 그의 소유의 성읍은 희년에 나갈 것이다. 그 이유가 레위인들의 성읍들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서 그들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선이 진리로 활동하는 곳은 어디서든지 심판에서 선이 진리와 아주 깊숙한 수준에서 결합되는 바 소외된 진리 이든 선 이든 회복되어 진다. 그 이유는 진리로 체현된 선이 확증될 경우, 이 선은 영적 교회인의 필수되는 생명이 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레위인 중의 누가 되물림이란 선이 진리로 말미암아 작동되는 곳은 어디든지를, 팔려진 집 그리고 그의 소유가 된 성은 희년이 되면 무효가 된다란 심판에서 선이 가장 깊게 진리와 충분히 결합될 때 소외된 선 이든 진리 이든 회복된다는 것을, 레위인들의 소유가 된 성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서 영원히 그들 소유이다란 진리 안에서 체현된 선은 확증되어질 때 영적 교회인의 본질 되는 생명 임을 뜻한다.(6716, 2966, 2233, 402, 2029, 2966, 8802, 2028, 2029, 3654)

34절. 그러나 그들 성읍들의 외곽에 있는 들판은 팔려지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가 이것은 그들의 영구한 소유지이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진리와 선이 충분히 결합되어 있는 사람의 외적인 선은 소외될 수 없다. 그 이유는 이런 상태라면 외적 선 역시 주님으로부터 온전히 있게 됨을 지각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들 성읍들의 외곽에 있는 들판은 영구 소유지로서 사고 팔 수 없다란 진리와 선이 충분히 결합되어 내적으로 있는 사람에게 있는 외적인 선은 그것이 제 탓이라고 하여 소외되어질 수 없다. 그 이유는 그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임을 그가 지각하기 때문이다. (7407, 6078, 402, 4758, 6148, 2029)

35절. 그리고 만일 네 형제가 지독하게 가난하다면, 그리고 그의 손이 너에게 기대고 있다면, 너는 그를 받쳐줄 것이다. 즉 낯선 자나 체류자로서 그는 너와 함께 살 것이다.

영적 의미

진리가 결핍되어 선을 행할 힘이 부족한 외적 교회에 있는 사람, 그래서 진리 없는 자연적 선을 행하고 있다거나 선과 진리에 대해 가르침을 받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을 후원하는 것이 영적 교회인의 의무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만일 네 형제가 옹색해져서 의탁해야 할 처지라면”이란 진리들이 부족해서 선을 행할 힘이 결핍된 외적 교회 안에 있는 이들을, 그를 붙들어줌이란 그를 지원해 줌을, 그가 낯선 자나 체류자(식객)로 살아감이란 한 동안 위 같은 사람들은 진리 없는 자연적인 선으로부터 행동하거나 선과 진리에 대한 가르침을 받는 과정에 있게 됨을 뜻한다. (1222, 2360, 9209, 878, 3901-2, 6343, 8002)

36절. 너는 그 사람으로부터 이자를 취하거나 소출을 가져가지 말라. 그러나 네 하느님을 경외하라. 하여, 네 형제는 너와 함께 살 수 있다.

영적 의미

보상을 기대해서라든가 세상적, 이기적 동기로부터 타인에게 선을 행하지 말라. 오로지 외적 인간은 하모니가 유지되게 해서 사랑과 진리에 바탕을 둔 거룩한 두려움을 느껴서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세나 이자를 그에게서 받지 못함이란 선은 보상을 기대해서, 세상적이거나 이기적 동기로부터 행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하느님을 경외함이란 외적 인간은 사랑과 진리에 바탕이 있는 거룩한 두려움을 느낌으로 도움 받아져야 함을, “네 형제는 너와 함께 살 수 있다”란 하모니가 유지될 수 있기 위하여를 뜻한다. (9210, 2826, 1222, 290)

37절. 너는 그에게 이자를 붙이는 돈을 주지 말라, 그리고 그에게 소출을 위하여 네 양식을 주지 말라.

영적 의미

세상적 동기 이든 이기적 이든 어느 것으로부터서 이든 보상을 목적으로 선을 행하는 것은 불법이 되는 바,

세부적 영적 의미

그에게 이잣돈을 놓지 못하고 양식을 장리로 꾸어 주지도 못한다란 세상 동기 또는 이기적 동기로부터이든 보상을 기대해서 선을 행하는 것은 불법이다는 뜻이다.(9210)

38절.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 즉 너희의 하느님이기 위해, 가나안의 토지를 네게 주려고, 이집트의 토지로부터 너를 데려왔다.

영적 의미

그 이유는 주님께서는 순수한 사랑과 진리로부터 행동하시고 영적 인간이 주님으로부터 선을 받고 이 선으로 해서 진리까지 받을 수 있게 하시기 위해 위와 같은 모든 동기들로부터 그를 구속해 주셨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나 여호와가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낸 너희 하느님이다. 나는 너희에게 가나안 땅을 주어 너희의 하느님이 되리라”란 주님은 순수한 사랑과 진리로 행동하시는 바, 위와 같은 동기들로부터 영적 인간을 구속해주시는 것은 그가 주님으로부터 선을 받을 수 있게, 그럼으로 해서 진리까지 받을 수 있게 해주려는 이유에서이다. (2001, 2966, 3705)

39절. 그리고 만일 네 형제가 지독하게 가난하여, 자신을 네게 판다면, 너는 그를 노예로서 섬기게 만들지 말라.

영적 의미

더구나 외적 인간이 영적 인간에 스스로 복종할 때 진리 없는 외적 인간이라 해도 이기적 동기로 조절되어서는 안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너희 동족 중 누가 옹색해져 너에게 몸을 판다면 그를 노예 부리듯 부리지 못한다”란 진리가 없는 외적 인간도 그 인간이 영적 인간에 스스로 복종할 경우 이기적 동기로부터 통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1222, 9209, 6142, 6143, 8074)

40절. 고용한 종 같이, 체류자 같이, 그는 너와 있을 것이다. 그는 희년의 해까지 너를 섬길 것이다.

영적 의미

종교에서 그가 보상을 목적으로, 또한 자연적 수준의 마음이 내켜서 하는 행동은 한동안 허용되고, 또 수련 기간의 상태에서 계속될 지라도,

세부적 영적 의미

그가 품꾼이나 식객처럼 주인과 함께 있음이란 종교에서조차 보상을 기대해서, 또는 자연적 수준의 마음만이 내켜서 행동할지라도를, 희년이 될 때까지 섬김이란 위 행동은 잠시 허용되고 수련 상태에서는 계속 될 수 있다는 뜻이다. (8002)

41절. 그다음 그는 너로부터 나갈 것이다, 그와 더불은 어린이들(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자기 원래의 가족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자기 아버지(조상)의 소유지로 그는 되돌아갈 것이다.

영적 의미

그럼에도 선과 진리가 영적 인간에게 가장 깊은 수준에서 충만되게 결합될 때, 자연적 인간도 선의 측면에서 진리의 측면에서 모두 자유로워 질 것이다. 영적 인간처럼 의지와 이해함 모두에서 영적 동기로부터 행동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희년에 그를 자식들과 함께 내보냄이란 선과 진리가 영적 인간과 더불어 가장 깊은 수준에서 충분히 결합될 때 자연적 인간의 선 이든 진리 측면 이든 자유로워질 것 임을, 자기 지파와 자기 조상의 소유지로 돌아감이란 영적 인간의 경우같이 그는 의지와 이해함 측면에서 영적 동기들로부터 행동할 것이라는 뜻이다. (8802, 489, 2966, 7833, 3239, 2028, 2029)

42절. 그들은 내가 이집트의 토지로부터 데려온 나의 종(servant)들인 바, 그들은 노예로서는 팔려지지 않는다.

영적 의미

그 이유는 자연적 인간도 단지 자연적일 뿐인 애착으로부터 주님에 의해 구속되었기 때문인 바 소외되어서는 안 되고 이기적 사랑으로부터 영적 인간에 의해 규율되어서는 안 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그들은 내가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낸 나의 종들인 바 종이 팔리듯 팔려서는 안 된다란 자연적 인간도 주님에 의해 자연적일 뿐인 애착에서 구속되는 바 소외당해서는 안되고 이기적 사랑으로부터 영적 인간에 의해 통치되어서도 안 된다는 뜻이다. (7038, 8866, 4758, 8974)

43절. 너는 그를 가혹하게 통치하지 말라. 그러나 네 하느님을 경외하라.

영적 의미

자연적 인간은 선에서 떨어진채 있는 진리로 규율되어서는 안 되고 선과 결합된 진리로 규율되어야 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심하게 부리지 말고 하느님을 경외 해라란 그는 선에서 분리된 진리로 통치되어서는 안 되며 오로지 선과 결합된 진리로만 통치되어야 한다는 뜻이다.(6148, 4180)

44절. 그리고 너는 남자 노예들과 여자 노예들은 소유할 것이다. 너 주변의 나라들로부터 너는 남종과 여종을 살 것이다.

영적 의미

그러나 악이 있는 애착과 자연적인 능력들, 또는 악 가운데 있는 자들은 처벌이라는 두려움을 수단으로 통제될 수 있을는지 모른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나라 주변에 있는 남자 노예나 여자 노예(bondmen and bondmaid)란 악이 있는 자연적 힘과 애착들을, 그들을 남자 노예와 여자 노예로 사라란 위의 힘과 애착은 처벌의 두려움으로 통제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7998, 7999, 3718)

45절. 더욱이 너 사이에 체류하는 낯선 자의 어린이들로부터 너는 살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네 토지에서 낳은 너와 더불어 있는 그들의 가족들로부터 (살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네 소유물이다.

영적 의미

또한 자연적 인간 속의 악으로부터 오는 거짓 가운데 있는 이들, 그리고 훈육 받고 있는 이들은 자기들의 이기적인 두려움과 동기들에 호소함을 수단으로 통제될는지 모른다. 그 이유가 이것들은 교회와 연결되어 받아지는 선과 진리를 증진되게 하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한동안 종속될 수도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몸붙여 사는 외국인의 자손이란 자연적 인간의 악에서 온 거짓 속에 있는 이들, 그리고 가르침 밑에 있는 이들을, “너희 땅에 와서 낳은 자식과 너희와 섞여 사는 그들의 친척들에게서 사라”란 이들은 그들의 이기적인 두려움과 동기에 호소하게 함으로 통제될 수 있음을, 소유로 삼음이란 그들은 교회와 연결됨으로 받게 되는 선과 진리가 증진해 주는 수단이 될 수도 있음을, 그리고 이런 사람은 한동안 종식되어야 함을 뜻한다. (1147, 8002, 7998, 7999, 3718, 1215, 1145, 1708, 2028, 2029)

46절. 그리고 너희는 그들을 너 이후 너의 자손을 위해 소유물로 붙잡도록 상속을 하라. 그들로부터 너는 너의 종을 영원히 취한다. 그러나 네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너는 지배하지 말라, 서로가 가혹함을 가지고 지배하지 말라.

영적 의미

그런고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자연적 애착은 영적 힘으로 통제될 수도 있고 진실로 종속될는지 모른다. 참으로 자연적 힘은 계속 종속되어야 하리라. 그러나 영적 동기로부터 자진해서 종속된 자연적 힘은 이기적 동기로부터 또는 선이 없는 진리로부터 통제되어서는 안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자손 대대로 물러 준다란 거듭나는 과정 속에서도 역시 자연적 애착들은 영적 힘에 의해 통제되어야 하고 진실로 종속되어야 함을; “그들을 종으로 영원히 부린다”란 참으로 자연적인 힘은 계속적으로 종속되어야 함을; 너희 동족 이스라엘 백성끼리는 아무도 심하게 부릴 수 없다란 영적 동기로부터 기꺼이 종속하는 자연적인 힘은 이기적 동기로부터 라든가 선이 없는 진리로부터 통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1799, 1802, 2567-7, 4286, 6148, 4180)

47절. 그리고 만일 너와 더불어 있는 낯선 자나 체류자가 지독하게 부유해지고, 그들 옆의 너는 지독하게 가난해져 있어, 너와 함께 있는 낯선 자나 체류자에게 자신을 판다면, 또는 낯선 자의 가족이 되었다면,

영적 의미

이 외에, 만일 자연적인 수준의 마음이 내켜서 선을 행하는 이들, 또는 선이 없이 진리 가운데 있는 이들이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에 풍부해 있는 데도, 외적 교회 속의 인간이 진리에 결핍되어 있어 선과 진리가 소외된 채 있고, 악과 거짓들이 위 같은 자연적 성향을 통해 힘을 발휘하고 있다면,

세부적 영적 의미

외국 출신 거주자란 가르침 밑에 있는 사람, 그런고로 선이 없는 진리 가운데 있는 사람, 동시에 자연적 수준에서 마음이 내킴으로부터 행동하는 사람을; 부유해짐이란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을 풍부히 가지고 있음을; 너희 동족이란 외적 교회에 속한 사람을; 매우 가난해짐이란 진리에 결핍되어 있음을; 외국인에게 자신을 팜이란 선과 진리가 소외되고 악과 거짓들이 자연적 수준의 마음을 지배함으로 해서 세력을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8002, 10227, 1222, 4758)

48절. 그가 팔려진 이후, 그는 되찾을 수 있다. 그의 형제 중의 하나가 그를 되찾을 수도 있다.

영적 의미

위와 같은 고통 당하는 이들에게도 구속은 가능하다. 그들도 자기들이 사랑하는 단순한 선으로부터의 진리에 순종함으로 구원될 수도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팔린 후 이더라도 풀려 날 수 있고 그의 동기 중 누가 물러 낼 수 있다란 위와 같아서 고통받는 이들도 구속 될 수 있다는 것, 그 이유는 그들도 자기들이 사랑하는 단순한 선 속의 진리에 순종함으로 구원될 수 있기 때문이다. (4758, 2966, 1222)

49절. 또는 그의 삼촌, 또는 그의 삼촌의 아들이, 또는 그에게 가까운 친척의 누구가 그를 되찾을 수 있다. 또는 만일 그가 지독하게 부자로 된다면, 그는 자신을 되찾을 수 있다.

영적 의미

또는 방계에 속하는 외적인 선 또는 진리를 수단으로, 또는 자기들 상태에 걸맞은 어떤 종류의 선이든 그 선을 수단으로, 또는 만일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이 그들에게서 증가된다면 그들 스스로 구속 될 수도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의 삼촌 또는 삼촌의 아들이란 방계에 속하는 외적 선 또는 진리를, 가까운 친척 중 누구란 그들 상태에 적합한 어떤 종류의 선을; 만일 그가 부유해진다면 이란 만일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이 그들에게 증가 된다 면을; 물러냄이란 생활에 진리를 응용함으로 악에서 해방됨을 뜻한다.(3612, 489, 3703-2, 10227, 2966)

50절. 그리고 그는 그가 자신을 판 해로부터 희년 까지를 자기를 산 자와 계산하라. 그리고 그의 판매가는 년수에 따라서, 그가 그에게 고용된 종으로서의 시간에 따라서이다.

영적 의미

이렇게 구속됨은 수련 기간의 상태 동안에 해당되는 거듭나는 과정에서 노력함으로 성취되어진다. 자기들 삶의 품질은 계속되는 상태에 있어지는 선과 진리에 의거 있어진다. 그리고 선을 취득함에 있는 이기적 동기들의 세력이 어떠 하느냐에 의거 있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팔려진 해에서 희년까지의 햇수를 계산함이란 위와 같은 구속은 수련 상태 동안 거듭나는 과정에서 노력하여 성취 될 수 있다는 것을, 그의 판매가는 년수에 따라서 이다란 그들 삶의 품질은 계속되는 상태에 있는 진리의 선에 따라 정해짐을, 고용된 종으로 침이란 선을 획득하는 것은 이기적 동기가 얼마나 우세해 있었는가에 의해 지연될 것임을 뜻한다. (10217, 2937, 4758, 8802, 2252, 8002)

51절. 만일 아직도 많은 년수가 (남아) 있다면, 년수에 따라 그가 사들여진 값으로부터 그의 되찾음의 값을 되물려라.

영적 의미

이런 영향에 의거 자기들은 주님에 의해 그들에게 자유로이 주어진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악에서 구원되고 선 안에 보존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희년까지 남은 햇수가 많으면 그 햇수를 따라 그 만큼 많이 내고 무를 수 있다란 악에서 해방되어 선 안에 보존된 것은 주님에 의해 그들에게 자유로이 주어진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있어졌다는 것을 위의 영향에 따라 인정함을 뜻한다. (2966, 10217)

52절. 그리고 만일 희년까지 몇 년 남았다면, 그러면 그는 그와 셀 것이다. 즉 그의 년수에 따라 그는 자기 되찾음의 값을 도로 줄 것이다.

영적 의미

만일 진리와 가장 깊은 선과의 결합이 덜 떨어진 상태라면 그 품질은 자기들의 생명이 주님으로부터 임을 인정하는 수준에 따라 있어질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희년까지 남은 햇수가 적으면 그만큼 적게 무름이란 선과 더불어 진리의 충분한 결합이 아직 멀리 떨어지지 않고 있다면 자기 생명이 주님으로부터 임을 아직 인정하고 있는 수준에 따라 그의 상태는 정해질 것임을 뜻한다. (2966,10217)

53절. 고용된 종으로 매 해 그는 그와 더불어 있을 것이다. 그는 네가 보기에 가혹하게 그를 다루지 말라.

영적 의미

계속되는 상태들 안에 있는 이기적 동기들의 영향에 비례해서 그들의 일반적 상태가 있어질 것이다. 자연적 인간이 영적 인간을 지배하도록 허용되지는 않으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그를 한해 한해 고용된 종으로서 대접을 해야 하고 심하게 부리지 못한다란 계속되는 상태 안에 있는 이기적 동기의 영향에 따라 그들의 일반 상태가 있어진다는 것, 자연적 인간은 영적 인간을 누르도록 허용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8002, 487, 488, 6148, 4180)

54절. 그리고 만일 그가 이런 (수단)으로 되찾아지지 못한다면, 그다음 그는 자기 어린이와 더불어 희년에 가서야 나갈 것이다.

영적 의미

만일 선 가운데 있는 위와 같은 자연적 인간이 제반 경험들을 수단으로 교회 속의 거짓의 힘에서 구속되지 않는다 해도 그들이 선 가운데 있었던 이유로 심판에서 진리가 선과 가장 깊은 수준에서 상호적으로 서로 결합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가 이런 조건으로 물리지 못했으면 희년에야 자식들과 함께 해약이 된다란 만일 위와 같이 선 가운데 있는 자연적 인간이 위 같은 경험에 의해 교회 안에 있는 거짓의 권세에서 충분히 구속되지 않는다 해도 심판에서는 그들이 선하기 때문에 진리는 모든 충만함 속에서 상호적으로, 서로 간에 가장 깊게 그 선과 결합된다는 뜻이다. (2966, 8802, 2252, 489)

55절. 나에게 이스라엘의 자손은 종들이다. 그들은 내가 이집트의 토지로부터 데려온 나의 종들이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

영적 의미

그 이유는 영적 교회인은 내적으로 이든 외적으로 이든 주님의 종들이요, 주님께서 내적 인간에 있는 것들, 외적 인간에 있는 것들, 모두 구속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교회인과 더불어 진리가 모든 선과 결합하는 유일한 근원으로서 예배되어져야 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의 종이다란 영적 교회인은 내적으로 외적으로도 주님의 종 임을; 이집트 땅에서 데려옴이란 주님께서는 내적 인간 인 것과 외적 인간 모두를 구속해주셨음을;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란 그분은 교인 속에서 선과 진리를 결합되게 하는 유일한 근원이심을 각기 뜻한다. (3654, 1713, 7038, 8866, 2001)

25장의 종합적 고찰

성경을 세심하게 읽는 독자라면 본문과 다음 두 장은 레위기 전체에 걸쳐 있는 내적 의미의 시리즈에서 정점을 이루는 부분임을 이미 알고 있으리라 본다. 그 이유가 지금 다루어 온 본문이 갖가지 수준에서 갖가지 국면에서 인간 거듭남이 충만 되는 것을 주제로 하기 때문이다. 간단히 살펴보자.
통상적으로 말한다면 안식일 또는 쉼의 날은 모든 영적 싸움이 끝났을 때 있게 되는 거듭남의 완성을 표현한다는 것은 기독교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 이유로 천국 자체가 영원한 안식일이라고도 불린다. 인간이 모든 시험에서 영원히 쉬는 상태, 그 결과 주님을 영원히 예배하는 곳이 천국인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상상했듯, 천국에서의 쉼과 평화라는 상태는 활동 없는 영원한 상태, 천사들의 할 일은 오로지 성소를 돌보는데, 주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데 영원히 고용되고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착각일 뿐이다. 천국의 쉼과 평화는 영적 전투로부터 자유로운 것, 그곳에서 영원히 있게 되는 예배는 선한 생활로 이루어진 예배이고, 이 생활은 각종의 선용을 수행함 속에서, 선용을 수행하여 기쁨을 느끼는 가운데서, 순수한 선용의 품질이 무엇인지 식별하는 지혜를 가지고 이루어진다. 천국에서 천사들의 생활에도 계절, 즉 상태의 변화가 있되 그 안의 모든 사람은 그분의 인간을 신성이 되게 하신 주님과 하나가 되고, 신성한 존재에 대한 가르침과 모든 선이 주님으로부터 라고 입을 모아 실감하는 가운데 서로의 사랑을 표현한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로부터 찬양을 받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신성한 사랑과 지혜에 진정 감사를 느끼기 때문이요, 이 사랑과 지혜는 그분과 자녀 간에 상호 교통이 가능하게 한다. 게다가 그분이 찬양과 예배에 흡족해 하시는 것은 자아 영광으로 도취하셔서가 아니다. 천사들조차도 자아 영광 같은 것 때문에 찬양과 영예와 영광으로 기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일이 있으면 고개를 돌린다. 그 이유는 모든 진짜 축복은 주님으로부터만 가능함을 그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고, 영예로 단순히 기뻐해지는 것은 자신 속에 잠복된 자아 사랑의 어떤 암시 때문인 것까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의 안식일이 완전한 천국 상태이어야 이치가 맞는다. 한 마디로 안식년, 희년은 천국 상태가 더욱 강렬한 완전함을 명시한다.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세 가지 안식은 낮은 천국, 중간 천국, 높은 천국을 각기 의미한다는 것을 본 장의 모든 항목들로부터 자세히 나타나고 있다.
안식년에는 세 가지 사항이 지시되고 있다. 그중 두 가지가 본문에서 언급되는데, 그것은 씨를 뿌리고 거둠을 중지하는 것과 가난한 자와 짐승에게 토지의 산물을 주라는 명령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사항은 신명기 15장 1-3절에 있는데 모든 빚을 삭쳐 주라는 명령이다. 이제 이 세 가지 명령의 영적 취지를 생각해보자. 육 년 동안은 씨를 뿌리고 거두어들이고 들과 포도원에서 열심히 일하게 되어있다. 이 육 년은 영적 전투를 하는 인간의 상태들을 의미하고 칠 년째는 쉼과 평화를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의미만이 위 사항 만에 포함된 전부는 아니다. 그 이유는 씨를 뿌리고 거두는 육 년은 우리 지성이 진리로 계발되는 쪽으로 인도되고, 심정은 지식을 사랑함으로부터 선한 원리를 채택하여 주님과 이웃을 순수하게 사랑해야 한다는 의무감 밑에 선을 실행해보는 것까지 포함하여 의미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칠 년째란 사랑을 완전히 실감해서 과거의 상태들이 중지되는 것까지 의미하는 용어이다. 물론 전투의 상태와 계발의 상태는 동시에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천국 상태에서 지성의 계발은 없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을는지 모른다. 확실히 그러하다. 그러나 천국 상태에서 우리가 선해지기 위해 지식을 획득하고 우리의 능력들을 발달시키려는 것 대신 우리는 선을 세부적으로 사랑하는 결과, 위 사항들이 행해져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기능 면에서와 일반적 선용 면에서 우리의 목적은 더욱더 완전해져 간다고 표현되어야 할 것이다.
천국 삶에 포함되어 있는 두 번째 사항은 내적, 외적으로 있는 모든 선한 것들을 즐기는 그 속에 자유가 있다는 것, 다른 말로해서 모든 선한 것을 자기 것 삼는데 있어 자연적 인간 안에서 뿐아니라 영적 인간 안에서도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5-7절) 셋째로, 위 자유의 더 나은 상태가 빚을 사면해주는 것으로 나타내지고 있다. 이는 “주님으로부터 이다고 인정하는 진리에 순종하는 모든 상태가 선을 사랑함으로 해서 순종하는 상태, 즉 진리를 원리로 할 때 있어지는 의무감의 순종이 중단되고 사랑이 지금은 모든 행동의 동기이기 때문이다. 이 상태에서는 선행이 우세해져 자아 강박감으로부터 자유로움이 뒤따른다.” (신명기 15:1-3). 이 셋째 항목은 차후 신명기를 살필 때 더 자세히 거론 할 것이다.
두 번째 항목에서는 희년을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이 희년은 천적 인간의 완전한 상태, 또는 천국, 영적 인간에 속하는 것 또는 어떤 세부적인 측면에서의 천국의 완전한 상태를 표현한다. 이는 시리즈의 배열로부터 알게 된다. 그 이유가 시리즈의 뒷부분은 앞 부분에 의존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것에 응용되는 것은 다른 것과도 관련되기 때문이고 더 멀리까지 즉 완전한 자연적 인간 또는 최말단 천국에까지 관련을 이룬다. 이것이 일곱째 달 십일, 보상(죄 벗음)받음의 날, 나팔을 분다로 표현되어 있다. 왜 그럴까? 신성한 사항을 더 명백하게 지각하거나 밝히 알게 되면 반드시 악의 제거, 아마 완전한 악의 제거가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선이 주님으로부터 흘러들게 되고, 주님께서 우리 속에 아껴둔 것들이 열매를 맺는 바, 신앙의 상태가 충만 되어 완성된다.
위의 결과 기쁨이 어떠한지 실감해 보자. 거기에 전체 인간을 망라해서 완전한 자유가 있는다. 거기에 가장 깊은 수준에서 주님과의 충만된 결합이 있는다. 이로부터 바깥쪽 즉 자연적 평면에 있는 선한 모든 것을 충분히 즐기기까지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희년이 세 번 말해진 것이다. 그리고 저마다 제 소유지로 돌아간다는 것에 각자가 지닌 선을 실감하는 것이 상징화되어 있다. 천국은 하나의 장엄한 인간이고, 거기서 각 천사는 자신에게 꼭 맞는 기능을 가진다. 게다가 각 천사는 그 직능을 포기하려는 바램을 갖는 적이 없다. 그들은 삶 전체를 통해 사고 파는 일을 계속한다. 즉 간직하려 했던 것과 헤어지고 한때 자신의 것으로 되어 있던 것이 영구히 자신의 것으로 획득된다. 그래서 모든 것은 내향의 삶 속에 있는 깊은 쉼 속에서 올바른 생각과 느낌이 신비스런 하나됨에 의존한다. 우리는 영적으로 옹색한데 그 이유는 부유한데 부유한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좌우지간 우리가 고향, 우리의 소유지에로 되돌아 갈 때 우리는 결코 우리의 부자 된 것들을 잃지 않게 된다. 그래서 우리의 희년에 비정의는 없고 어느 형제에게도 잘못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의 삶이 사랑과 총명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17절). 따라서 이 절에 이어지는 두 절은 우리로 하여금 천국에서는 어떤 악과 거짓도 괴롭힐 수 없다는 것, 거기에는 충만된 즐거움만이 있으리라는 것을 보증해주고 있다. 이 항목 끝에 있는 요점은 매우 흥미 있다. 천사들, 또는 각 수준에 있는 모든 천적 인간이 의식하는 바, 자기들이 주님께 의존되어 있다는 것, 그분만이 자기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실 수 있는다는 것, 자기들의 선은 어느 누구의 것도 될 수 없고 소외당할 수도 없다는 것, 이 선은 주님의 것이라는 것, 자기들 스스로서는 선을 가지지 못하고, 지식을 지니는 것조차도 불가능하다는 것, 이런 사항들을 자기들은 계속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항은 완전한 인간에 속하는 모든 상태들이다. 이런 상태로 가기 위해 불완전한 인간에게 분투노력함이 필요한 것이다.
이제 25절 이하에 있는 여러 가지 규정들, 거듭남에 관련된 사항을 살펴보자. 첫 대목에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전자는 가까운 친척이 있어 되돌려 살 경우, 후자는 친척이 없어 되돌려 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전자는 거듭나는 동안에 선 가운데 있긴 하나 그 선이 소외되게 한 상태이고, 후자는 선이 없이 진리 가운데만 있어 선이 소외되게 한 상태이다. 어찌됐든 악에 어떤 길을 허용할 때 우리는 선과 진리가 소외당하게 만든다. 이런 경우의 발생은 거듭남의 진보가 시작되려할 때 또는 진보해가고 있을 때 자칫 일어나기 쉬운 상태들이다. 그래서 이 구절은 각 경우에 발생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되물려 살 친척은 누구일까? 이 친척이란 자신이 속한 천사들 사회에 있는 일반적 선을 통해서, 그리고 가장 깊은 측면에 있는 선을 통해 역사 하시는 주님이시다. 모든 이는 자신이 선을 행하겠다고 선택만 하면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은 구속되어 있어 선과 악 사이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두 번째의 경우가 주어지고 있다. 부자가 된 가난한 사람은 위 능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자기가 소유한 진리를 적절히 사용하는 것, 주님을 인정하고 회개의 일을 수행해 갈 수 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자신의 구속이 나타나게 된다. 이제 27절에 기술된 과정에 주목해 보자. 이 과정은 천국의 신비 제 2966항에 있는 가르침 즉 “되찾는 값이란 인간이 수용하는 것, 수용하는 정도만큼을 서술하는 용어이다”는 사항과 일반적으로 일치한다. 그가 그것을 팔 사람에게 나머지를 회복시켜주는 것을 “자기로 가능할 수 있게 된 선은 그 선을 일반 형태로 한동안 보존되게 한 천국 사회 안에 있는 이들을 통해 주님 만으로부터임을 인정함”을 뜻한다. 이는 천국의 신비 제 8685항에서 알 수 있는데, 또한 그곳에서 보여주는 것은, 자신의 선한 상태에 오게 될 때 그 사람에게 직, 간접적으로 주님으로부터의 유입이 있는다는 것, 즉 직접적으로는 주님 자신으로부터서, 간접적으로는 천국을 통해 유입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전에, 또한 “한 동안” 직접적인 유입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게 되는 바, 어떻게 거듭나는 인간이 그의 천국 사회를 통해, 그 사회에서 선에 관한 자기 상태를 실감하게 되는가에 대하여서 이다. 이에 대한 사항은 28절에 기술된 바 같은 거듭남이 지연되는 경우까지 설명해준다.
다음 문단에 관한 검토는 외적 측면에 보다 더 치우쳐 있는 이들과 더불어 있는 소외된 선의 구속함(되찾음)에 관한 것이다. 이에 대한 기본 되는 진리는 유효기간 일 년(whole year)으로 나타내진 것 즉 수련 기간 동안 또는 자연적인 삶 동안에서만 되칮아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수련 기간 동안 모든 이는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속에 있다는 것, 이 상태는 자연적인 삶에 한정되어 있다. 그 이유는 자연적인 삶이 최말단 삶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언제나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거듭남은 창조같이 첫 번째 되는 것, 즉 가장 높은 원리들의 작용으로부터 있게 되어 마지막 째 되는 것 또는 가장 낮은 원리가 높은 원리에 협동하는 작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 더 달리는 거듭남이 결과될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다. 이 진리에 관하여는 천국과 지옥 470-483항을 읽기 바란다. 그 항을 보면 성경으로부터, 추론으로부터, 스웨덴볽의 경험으로부터의 확증들이 있다. 그러나 레위인들의 성읍이나 집들은 언제든지 글자대로 보면 약정된 해가 넘었어도 무를 수 있다고 말해지고 있다. 이는 일반 진리와 모순되는 듯 여겨진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레위인들은 어느 정도라도 이미 선 가운데 있는 사람, 또는 진리의 선 가운데 있는 사람, 거듭남의 진보를 만들고 있는 사람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at any time”라는 용어는 수습 기간 동안 어느 상태에서 이든지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라 본다. 이 수습 기간은 하나의 희년으로부터 그 다음의 희년까지의 햇수들로 표현된다. 이는 희년의 의미로부터 알 수 있다. 레위인에 관해 말해지는 한 가지가 더 있다. 그들의 마을에 딸린 들판은 사고 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인데, 이는 외적인 선은 내적으로 선과 진리가 충분히 결합되어 있을 경우 소외 되어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시한다.
위 사항 외에도 여러 가지 규정들이 있는데 여기서 상세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주님과 종에 관련되는 것, 모두 희년에 관계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일반적 관점만을 언급하면 충분할 것으로 본다. 본문에 주어진 지시 사항에서 아주 명확한 것은, 인간이 자기 동족을 노예로 만드는 것은 신성한 사랑의 속성에 일치되지 않는다는 것, 신성한 질서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동족을 노예로 삼아 팔고 사지 않도록 명령받았는데 이래야 주님의 의지에 일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으로 부리려는 쪽으로 행동하려는 것은 그들이 지닌 자연적 수준의 마음에 있는 성향이었기 때문에 여기서 기술되는 규정들은 그들이 지닌 오로지 자연적일 뿐인 사랑을 온건하고 부드러워지게 하려는 쪽으로 의도 된 것만은 틀림없다. 이런 경우와 비슷한 성서 구절이 마태복음 19장 8절인데 아내와 이혼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을 인용한 대목에서 이다. 이런 허용의 이유까지도 그들 심정이 완악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복음서로부터서도 보다 쉽게 이해되는데 이는 내적 의미를 밝히 알게 되면 확증까지 되어진다.
주인과 종의 관계가 비록 천국에서도 확실히 구분 지어져 있다 할지라도 그곳에서의 모든 통제는 서로 간의 사랑으로 이루어진다. 주인은 종을 사랑하면서 사랑으로부터 지시하고, 종은 주인을 사랑하면서 사랑으로부터 순종해간다. 이는 이기적 사랑에서 발생되는 지배를 사랑하여 통치하는 것과 상반된다. 이기적 사랑은 권력을 사랑하고 세상에 있는 재물 모두를 소유하려드는 욕망으로 만인을 종속되게 하려 든다. 이런 저런 것을 생각해 볼 때 본문에서 거론되는 영적인 모든 규정들이 얼마나 우리를 유익하게 해주는지 감지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세부 사항에서 주목되는 한 가지는, 자신을 통치하는 원리를 이기적 사랑 안에 둔 이들은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원리로는 통제 될 수 없다는 것, 그들은 이 사랑을 실감 못할 뿐아니라 결코 실감하길 원치도 않는다는 것, 그러므로 자기들 삶의 평면을 통제하는 법칙에 따라 고통의 두려움으로 강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되어질 때 결국 그런 조치에 대한 의심도 없어져 그것에 만족하는 바 고통도 더이상 없게 된다. 그런 이유는 주님 자신이 천국 뿐아니라 지옥도 통제하시기 때문이고 양쪽 모두에서 그분의 통치는 신성한 사랑과 지혜, 통치의 목적은 인류로부터 천국을 형성하고 보존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련 기간인 자연계의 삶에 아직 있는 우리들은 자기를 정녕 천국 사랑으로 통제되도록 선택하는 것, 자신의 상태에 따라 모든 인간 영혼의 영원한 복지를 사랑해 가는 것을 선택해야 하리라. 그리하여 인생 어느 국면에서 이든 주님의 모양과 형상에 가능한 가까이 접근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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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24장 해석

레위기 24장

영적 의미 요약

* 영적 인간의 상태에 적합한 천적 사랑의 선은 모든 영적 진리의 근원이며 영적 왕국에서 항구적으로 빛이 되어 있다, 1-4절.
* 천적, 영적 선이 명백해짐 다시 말해 주님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에 관하여, 이 두 선은 정밀하게 구별된다는 것, 이 두 선은 영적 투쟁으로 획득된다는 것, 이 두 선은 인간의 저장소 안에 존재한다는 것, 이 두 선은 주님으로부터 존재함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이 두 선은 각각에 상응하는 진리를 동반한다는 것, 이 두 선은 인간에 의해 자기 것으로 삼아지게 된다는 것에 관하여, 5-9절.
* 교회에 만연되고 진리를 더럽히는 악에서 나온 거짓들에 관하여, 특히 신성한 인간에 관한 교리를 모독함에 관하여, 이런 악한 품성을 지닌 자들은 한동안 외적인 속박으로 억류되었다가 심판을 맞게 되어 단죄된다는 것에 관하여, 10-14절.
* 모독에 관하여, 진리와 선에 가해진 피해에 대하여, 악과 거짓들이 스스로 심판을 하게 되는 응보에 관하여, 15-23절.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지각을 주시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주님께서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말씀하심은 유입을; 말하심은 지각을; 모세는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각기 명시한다. (2001, 2951, 7010, 1791, 1822)

2절.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명령하여, 그들이 너에게 빛을 내기 위해 찧어 만든 순수한 올리브 기름을 가져오게 하여, 등불이 계속적으로 타도록 하라.

영적 의미

주님으로부터 영적 교인에게 유입되는 것 때문에 영적 교인은 자기 상태에 걸맞는 천적 사랑의 선을 영적 진리의 근원이 되는 빛으로 인정하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함이란 영적 교회인에게 주님으로부터의 유입이 있음을, 빛을 내기 위해 순 올리브 기름을 모세에게 가져옴이란 영적 교회 상태에 적합한 천적 사랑의 선은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주님으로부터 있게 됨을 인정함을, 빛을 내기 위한 기름이란 선이 진리의 근원이라는 것을, 계속 불을 밝힘이란 항구적으로 영적 왕국에 빛이 있도록 하기 위함을 뜻한다. (5486, 3654, 886, 10303, 7010, 9296-5, 9667, 9549, 9550, 10200-02)

3절. 증거(궤)의 베일 밖, 만남의 천막에서, 아론은 등불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주님 앞에서 계속적으로 (빛을 내게) 정돈하라. 이것은 너의 세대를 통틀어 영원한 법령이다.

영적 의미

그 이유가 위 빛은 인간의 천적 수준으로부터 영적 수준으로 흐르면서 희미한 상태와 밝은 상태 안에 있는데 이는 천적 선의 작용을 통하여서이다. 이 빛은 거듭나는 과정동안, 그 후 영원하게 내적 인간과 외적 인간 모두에게 빛이 되어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이 등불을 켜서 만남의 천막 안 증거궤 앞 베일 밖에 두어 저녁부터 아침까지 계속 주님 앞을 비추게 함이란 이 빛은 천적 선이 작동함으로 해서 희미한 상태에서 밝은 상태에 이르는 모든 상태 안에 있는 인간 마음의 영적 수준에 천적 수준으로부터 흘러감을 뜻한다. 이것은 너의 세대를 통틀어 영원한 법령이다란 이는 내적, 외적 인간 모두에, 거듭나는 기간 그리고 그 후의 기간에 걸쳐 있는 영원한 규정이라는 뜻이다. (9946, 10200-02, 9670, 3540-2, 10133, 7884, 7931)

4절. 그는 계속적으로 주님 앞 순수한 등잔대 위에 등불을 배열하라.

영적 의미

그 이유가 영적 수준은 계속 주님에게서 오는 거짓과 혼합 안 된 신성한 진리의 특별한 저장소이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는 계속적으로 주님 앞 순수한 등잔대 위에 등불을 배열하라란 영적 수준은 주님으로부터 계속 오는 거짓과 혼합 안 된 신성한 진리를 저장하는 특별한 곳이다는 뜻이다. (9548-50, 10133)

5절. 그리고 너는 고운 곡식 가루를 가져와, 그리고 그것으로 열 두 과자(cake)들을 구워라. 십분의 이 에바가 과자 하나이다.

영적 의미

또한 순수한 천적 진리 안에 천적 선이 있어 명백해진다. 그리하여 영적 선이 영적 인간에 의해 획득된다. 위 순서를 통해 천적 천국과 영적 천국이 결합되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고운 곡식 가루를 가져다가 열 두 과자들을 구워라란 천적 진리, 그 안에서 천적 선이 명백해진다. 그런고로 해서 영적 선이 영적 왕국에 파생된다. 과자 한 개는 십 분의 이 에바이다란 천적, 영적 천국이 결합됨을 통하여를 뜻한다. (9995, 2177, 2280, 3272, 2177, 2280)

6절. 그리고 너는 그것들을 두 줄로, 각 줄에 여섯 개씩, 주님 앞 순수한 탁자 위에 차려놓아라.

영적 의미

위와 같이 결합된다 해도 영적 선은 천적 선에서 구별되어 진다. 그리고 위 두 선 모두 충만된 시험에서의 승리를 통해 획득된다. 위 두 선은 영적 교회인의 저장소 안에 있게 되고 이 선이 주님으로부터 임을 인정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섯 개씩 두 줄로 주님 앞 순수한 탁자 위에 차려 놓아라란 위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영적 선은 천적 선과 구분된다는 것, 둘 다 시험에 완전히 승리함으로 획득된다는 것, 둘 다 영적 교회인의 저장소 안에 있다는 것, 그리고 둘 다 주님으로부터 임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5194, 9864, 8888, 9545, 2001, 3272)

7절. 그리고 너는 각 줄 위에 순수한 유향을 놓아라, 하여, 이것은 기념물을 위한 빵(bread), 주님에게 불로 만든 제물이다.

영적 의미

위 선은 각각에 상응하는 진리를 동반하는데 이 진리는 일반적으로 볼 때 신앙의 진리이다. 그 이유가 진리는 선의 형체, 선을 표현해 주기 때문이다. 이 진리를 통해 선은 항구적으로 기억 안에 있는다. 그리하여 주님이 인정되어져 사랑으로부터, 이 사랑과 결합된 신앙을 수단으로 예배되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께 태워 바치는 제물이요 기념을 위한 빵이 되도록 각 열 위에 순수한 향을 올려 놓아라란 위의 선들은 그 선에 상응되는 진리를 동반한다는 뜻인데, 그 이유는 진리가 선을 표현하고 그 선의 형체이고, 이 진리를 통해 선은 기억 속에 항구적으로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사랑으로부터 그 사랑과 결합된 신앙을 수단으로 인정되어진다. (2177, 10177, 6888, 10055)

8절. 안식일 마다 그는 계속적으로 주님 앞에 그것을 차려 놓아라. 이것은 이스라엘의 후손들을 위하여서이고, 영원히 지속되는 언약이다.

영적 의미

천적, 영적 선 모두 주님으로부터 인간에게 파생되나, 주님께서는 그분의 인간이 신성이 되심을 수단으로 하시는 바, 위 선들은 인간과 함께 신성한 인간으로부터 존재한다. 따라서 천적, 영적 선을 수단으로 교회 속의 사람은 주님과 영원한 결합을 이룬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안식일 마다 계속적으로 주님 앞에 그것을 차려 놓아라란 천적 선이든 영적 선이든 모두 주님으로부터 인간에게 파생된 것임을, 이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영원히 지속되는 언약이다란 주님의 인간이 신성이 되신 덕택에 위의 선들은 신성한 인간으로부터 인간과 더불어 있게 되었음을, 이를 수단으로 교인은 주님과 영원히 결합할 수 있다는 뜻이다. (2177, 8886, 8889, 8886, 8889, 665, 666)

9절. 그리고 이것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위해 있다. 그리고 그들은 거룩한 장소에서 그것을 먹어라. 그 이유가 이것은 영구적인 법령을 수단으로 불로 만든 제물인 바, 그에게 최고로 거룩하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이리하여 천적, 영적 인간 모두는 거룩한 상태에서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을 자기 것으로 가능하게 된다. 그런 이유는 선은 천적 인간의 참 생명으로 진리 안에서 직접 명백해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위 인간으로 주님을 인정할 수 있게 해서 탁월한 수준의 사랑 속에서 주님을 예배할 수 있게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것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위함이란 천적, 영적 인간을 위한 선임을, 그들은 그것을 거룩한 장소에서 먹어야 한다란 위 선들은 거룩한 상태에서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음을, 여호와께 태워 바치는 음식 가운데서도 더 없이 거룩한 바, 영구적인 법령이다란 선은 천적 인간의 참 생명이요, 진리 안에서 직접적으로 명백해진다는 것을, 이 인간은 빼어난 수준의 사랑으로 주님을 인정하고 예배할 수 있음을 뜻한다. (9946, 2187, 3210, 10055, 7884, 7931)

10절. 그리고 자기 아버지가 이집트인인 이스라엘의 여인의 아들이 이스라엘의 자손들 사이에서 밖에 나갔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여인의 아들과 이스라엘의 사람이 진영에서 서로 승강이했다.

영적 의미

위와 다른 면이 있다. 자연적 사랑 뿐인 데에 있는 악에서 파생되는 거짓이 영적 교회를 뒤집으려는 이기심인데, 계속 이 교회에 만연되고 이 결과 다툼이 발생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버지가 이집트 출신인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란 자연적 사랑 뿐인 악으로부터 파생된 거짓을; 이 악은 거꾸로 된 영적 교회에 있는 이기심에 근원된다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빠져나갔다란 교인에게 악에서 나온 거짓이 유입됨을;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과 이스라엘 사람이 진영에서 다툼이란 거짓이 만연되고 그것과 싸우는 것을 뜻한다. (1147, 3654, 3703-20, 9391-10, 3703, 7488, 7124, 1571)

11절. 그리고 이스라엘의 여인의 아들이 (주님의) 이름을 모독하였다, 그리고 저주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를 모세에게 데려왔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슬로밋인데, 단 지파 디브리의 딸이다.

영적 의미

이리하여 교회 안에 있는 거짓 즉 악에서 나오는 거짓 속에 있는 모든 이들은 교회의 진리를 더럽히는데, 특히 신성한 인간에 관한 교리를 더럽힌다. 그렇게 해서 이들은 스스로 주님께 등을 돌려 자신들이 악 가운데 있음을 확증한다. 그러므로 이런 상태에 있는 이들은 신성한 진리의 심판에 놓여지면 이들의 교회는 끝장을 본다. 이런 상태의 외적 근원은 감각적이고 육적 기쁨인데, 이 기쁨은 감각적 오류로부터, 바깥쪽인 외관으로부터 사물을 판단하는 오로지 자연적 수준뿐인 인간의 착상으로부터 온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 주님의 이름을 모독함이란 교회 안에 있는 거짓 또는 악에서 나오는 거짓 속에 있는 이들은 교회의 진리들을 모독하는데 특히 신성한 인간에 관한 교리를 모독한다. 그러므로 해서 그들 스스로 주님께 등을 돌리고 자신들이 악에 있음을 확증하게 된다는 것을; 모세에게 데려옴이란 교회의 말기에 신성한 진리의 심판에 서게 됨을; 그 어미의 이름은 슬로밋인데 단 지파에 속한 디브리의 딸이었다란 위 상태의 외적인 근원지는 감각에 관한 오류들로부터, 그리고 오로지 외관으로만 판단하는 자연적일 뿐인 인간의 상상으로부터 오는 감각적이고 육적일 뿐인 기쁨이다. 그 이유가 어머니는 외적 근원을; 이름은 품질 또는 상태를; 슬로밋이란 “나의 평화, 나의 행복, 나의 보상”이라는 뜻을 지녔기 때문이다. 사실 슬로밋이 지닌 뜻은 좋은 의미에서는 천국의 평화, 행복, 그리고 보상이지만 본문의 경우 반대 의미인 바 오로지 감각적이고 육에 속한 행복 또는 기쁨을 뜻한다. 딸은 좋은 의미에서는 애착 또는 선을 뜻하나 이 구절의 경우 그 반대인 악한 애착을 뜻하고 있다. 디브리는 “설득력이 있는, 능변이 있는”(Gesenius 참조), “들로부터의 어떤 것”(Früst 참조)을 뜻한다. 그러므로 본문의 경우 감각적인 것에 바탕을 둔 생각들 또는 감각 속의 오류들을 뜻할 것이라 생각된다. 단은 판결하는 자, 그리고 좋은 의미에서 거듭나지는 처음 사항에 있게 되는 진리의 확언, 그리고 거듭난 이들에게 있는 마지막 사항들이다. 본문의 경우 반대 의미인 바, 바깥쪽인 외관으로부터 사물을 판단하기만 하는 자연적 인간이 상상하여 추론함을 뜻한다. (1147, 8882, 6887, 379, 7010, 931, 1815, 8897, 144, 145, 4681, 995, 489, 568, 9987, 4440, 3923, 6397-6401)

12절. 그리고 그들은 그를 안쪽에 가두었다, 하여, 주님의 입에서 그들에게 선포가 있을지 몰라서였다.

영적 의미

이런 품성을 지닌 이들은 그들 악이 극점에 달하는 상태가 올 때까지 한동안 외적 속박으로 억류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의 입에서 선포가 있을 때까지 그를 가두어 놓음이란 위 품성을 지닌 사람들은 그의 악이 극에 달할 때까지 한동안 외적 속박으로 억류되어진다는 뜻이다. (5037, 5096, 4217, 9096)

13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그 다음 지각을 주시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주님께서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은 유입을; 모세는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말하심은 지각을 뜻한다. (2001, 2951, 7010, 1791, 1822)

14절. 진영 밖으로 저주했던 그를 끌어내라. 그리고 그의 저주하는 말을 들었던 모든 이는 그들의 손을 그의 머리 위에 놓게 하라, 그리고 모든 회중이 그를 돌로 치게 하라.

영적 의미

악과 거짓으로 확증한 이들의 진짜 품성은 심판 과정에서 밝히 드러나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불순종을 통해 스스로 확증했다는 것이 신성한 진리의 증언으로 입증될 때, 자기들 삶의 결과는 단죄되고 영적 인간에 의해 거절되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저주한 자를 진영 밖으로 끌어냄이란 악과 거짓이 확증된 진짜 품성은 심판 과정에서 명백해져야만 함을; 그가 저주하는 것을 들은 모든 사람이 그 사람 머리에 손을 얹는다란 신성한 진리의 증언으로 입증함을; 온 회중이 그를 돌로 친다란 그 삶의 결과에 대한 단죄, 영적 인간에 의한 거절을 뜻한다. (379, 10038, 10023, 9311, 4197, 10023, 6338, 8799, 7456)

15절. 그리고 너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야기하라, 말하기를, 자기 하느님을 저주하는 자는 누구든지 자기 죄를 낳는다.

영적 의미

사악한 삶으로 주님에게 등을 돌리는 자는 자신의 선택에 의해 황폐되고 만다는 것이 신성한 진리의 증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러 말함이란 이것은 신성한 진리의 증언이다를; 저주함이란 사악한 생활로 주님께 등을 돌리는 것을; 죄를 낳음이란 자신이 선택해서 황폐해짐을 뜻한다. (7010, 10355, 1822, 379, 8882, 9937)

16절. 그리고 주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자, 그는 확실히 죽음에 놓인다. 모든 회중이 그를 반드시 돌로 칠 것이다. 낯선 자 이든 본토박이 이든 (주님의) 이름을 모독할 경우, 죽음에 놓이게 하라.

영적 의미

특히 진리를 모독한 이들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그 결과 그들에게서는 모든 진리가 박탈된다. 그가 교회의 내적 상태 이든, 외적 상태 이든 모두 해당된다. 그 이유는 이런 모독은 내적 이든 외적 이든 계속될 수 없고 오로지 제거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의 이름을 모독한 자는 반드시 사형 시켜라란 특별히 진리를 모독하는 이들, 그들은 모든 진리를 박탈당하는 결과를 맞이하고야 만다는 것을; 온 회중이 그를 돌로 치라란 거짓은 처벌되고 교회에 의해 거절된다는 것을; 낯선 자 이든 본국인 이든 이란 그들이 교회의 외적 측면에 속하든, 내적 측면에 속하든 임을; 내 이름을 모독한 자는 정녕 죽으리라란 이런 모독은 내적으로 이든 외적으로 이든 계속 될 수 없는 바 오로지 제거되어야만 한다는 뜻이다. (8882, 6887, 2908, 6338, 8799, 7456, 7908, 8882, 6887, 2908)

17절. 어떤 사람을 세게 때려 죽게 만드는 자는 정녕 죽음에 놓인다.

영적 의미

시련(수습) 받는 상태에서 악한 생활로 진리를 거절하는 이는 반드시 황폐됨을 겪게 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남의 목숨을 끊은 자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란 수련 상태에서 악한 생활로 진리를 거절한다면 황폐됨을 겪어야 한다는 뜻이다. (8902, 4251, 2908)

18절. 그리고 짐승을 세게 쳐서 죽게 만든 자는 그것을 변제할 것이다. 즉 목숨을 위해서(인바) 목숨으로 (변제하라).

영적 의미

그러나 누가 자연적 인간 안에 있는 선한 생활만을 파괴했다면 그는 이기적 삶을 거절함으로 거듭날 수 있어 천국 생명을 받을 수도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짐승의 목숨을 끊은 자는 변제하라(산 짐승으로 보상하라)란 누가 자연적 인간 안에 있는 선한 생활만을 파괴한다면 그는 이기적 삶을 거절함으로 거듭날 수 있고 천국 삶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4251, 7424, 9097, 9048, 9049)

19절. 그리고 만일 사람이 자기 이웃을 흠집나게 했다면, 그가 했던 대로 그것을 그에게 해줄 것이다.

영적 의미

반대로 만일 그가 다른 사람 안에 있는 선행을 파괴한다면 그 사람 안에 있는 선행 역시 파괴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누구든지 동족에게 상처를 입힌 자에게는 같은 상처를 입혀라란 누가 타인의 선행을 파괴한다면 자신에게 있는 선행도 자신에 의해 파괴됨을 뜻한다. (7837, 10490, 9048, 9049)

20절. 파괴(breach)에는 파괴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되갚으라). 즉 그가 사람에게 손상을 입게 하였으면, 그렇게 그도 손상을 입게 하라.

영적 의미

위 경우는 이해함, 의지, 바깥쪽 생활 측면에서이다. 그 이유는 악은 그 악 위에 피할 수 없는 처벌을 가져오고, 거짓으로부터 행동하는 이는 거짓의 결과로 고통 당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파괴함에는 파괴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란 19절의 경우가 의지, 이해함, 바깥쪽 생활에 관한 것임을; “남에게 상처를 입힌 만큼 자신도 상처를 입는다”란 악은 피할 수 없는 처벌을 제 스스로 가져온다는 것, 거짓으로부터 행동하는 사람은 거짓의 결과로 고통받는다를 뜻한다. (9163, 2148, 6380, 9048, 9049)

21절. 그리고 짐승을 죽인 자는 그것을 변제하라. 그리고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음에 놓인다.

영적 의미

외적 인간 안에 있는 선만 파괴한 사람은 회개로 거듭날 수 있다. 그 반면 내적 인간 안에 있는 선을 파괴한다면 황폐되고야 만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남의 짐승을 죽인 자는 물어주어야 하고 살인한 자는 사형에 처해야 함이란 외적 인간 안에 있는 선만을 파괴한 사람은 회개로 거듭날 수 있으나, 내적 인간 안에 있는 선을 파괴한다면 황폐되어질 수밖에 없다. (8902, 9097, 7424, 2908)

22절. 낯선 자 이든, 본토박이 이든 너희는 한 가지 법을 가진다. 그 이유가 내가 주 너의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위 같은 응보의 법칙은 교회 내에 있는 사람 이든 밖에 있는 사람 이든 공히 적용된다. 그 이유는 신성한 선은 신성한 진리에 의거 불변하게 행동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외국인 이든, 본국인 이든 한 가지 법만 있을 따름이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란 응보의 법칙은 교회 내에 있든, 밖에 있든 공히 적용되는데, 그 이유는 신성한 선은 신성한 진리에 의거 불변하게 행해지기 때문이다. (9048, 9049, 6887, 2001)

23절. 그리고 모세가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들은 진영으로부터 그를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그를 돌로 쳐죽였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한 대로 실시했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신성한 진리는 악이 거짓과 결합하도록 내버려 두어 악 가운데 있는 자들을 거절하는 도리 외에 심판에서 달리 행할 수 없다. 그리하여 지옥적 삶 가운데 있는 이들은 신성한 선으로부터 나온 신성한 진리에 순종하는 천국적 삶 속에 있는 이들로부터 분리되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야기함이란 신성한 진리는 심판에서 악 가운데 있는 이들을 거절할 도리밖에 없음을; 저주한 자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 돌로 쳤다란 악은 악 속의 거짓과 결합되도록 내버려둠을; 주님이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했다란 지옥적인 삶 속에 있는 이들은 신성한 선으로부터 신성한 진리에 순종하는 천국적 삶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서 분리되어짐을 뜻한다. (7010, 2951, 3654, 379, 10023, 10038, 6338, 8799, 7456, 3654, 7010, 2001, 5486)

24장의 종합적 고찰

만물이 존재하게 되는 보편적 원리들을 알고 있다면 거기서 파생되는 모든 세세한 사항들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모르고 있는 사람보다 더 나은 위치에 있게 된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는 보편적 원리이다. 이런 연유로 교회에 관한 저술 속에서 위 원리는 대단히 많게 사용되고 있다. 선과 진리의 형체가 아닌 창조물에 관한 착상은 창조물 안에는 아무 것도 없다. 무엇 보다 먼저, 선은 작동 중인 사랑 외에 더 다른 게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들이 사랑하는 것을 놓고 선한 것이라고 말하고, 자기 사랑에 일치하는 것들, 제 사랑을 체현해 주고 표현하는 것들을 두고 참된 것이라고 말한다.
어찌됐든 사랑은 보편적인 것이라 불리는 것이 합당할는지 모른다. 그 이유는 사랑은 사랑이기 때문이고 사랑은 주님, 지존하신 분, 만물은 그분으로부터이기 때문이다. 신성한 사랑이 모든 것의 근원이라고 알게 되면 넓은 측면에서의 사랑은 인간 존재들 안에서 아주 다양하게 사랑 자체를 전시한다는 것에도 주목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신성한 사랑에 관한 뭔가 다른 구분된 정의가 무엇일까라고 묻지 않을 수도 없다. 이렇게 간단히 말해볼 수 있다. 생명과 행복, 기쁨과 즐거움을 이기적인 어떠한 동기 없이 나누어 주는 게 사랑이라는 것, 또는 인류로부터 천국을 형성하는 게 사랑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성한 선은 위 사랑이 명백해진 상태이다. 이를 본문에서 순수한 올리브 기름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런 기름이 언급된 말씀 몇 군데를 살펴보자. 즉 레위기 8장 10-12절, 열왕기상 1장 39절, 열왕기하 4장 2-7절, 누가복음 10장 34절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위 기름을 가져온다는 것은 자기가 받고 있는 선함이 주님으로부터 임을 인정하는 것이 인간에게 할당된 부분임을 명시하는 말이다. 찧어서 짰다는 것은 위 상태에 순응한다는 뜻이고, 그 기름은 불을 밝히기 위함이라는 것은 선이 진리의 근원이라는 뜻이다. 이 등불을 늘 켜둔다는 말은 영적인 빛은 선의 상태로부터 언제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위와 같이 본문의 첫 단원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들이 함축되어 있다. 이런 사항이 뒤로 이어지는 구절들에서 세부적으로 명백해지고 있다. 왜 위 등불이 베일 밖에 위치하고 있을까? 영적 인간은 선과 진리를 자기가 사용하는 위치에 계속 놓고, 그 선과 진리를 자기의 모든 상태 속에서 제 자신으로부터인 듯 변장하여 나타나야만 한다는 것, 동시에 이 인간이 알아야 하는 것은 작동하는 힘은 등불 뒤 베일 안에 존재한다는 것, 다시 말해 그가 현명하다면 자신의 납득을 초월해 존재하는 신성한 신비를 꿰뚫어 보려고 시도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각각에 걸맞는 천국을 지니고 즐긴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얼마나 기쁜 일인가! 게다가 자신이 결코 도달하지도 못할 어떤 드높은 위치를 포부적으로 갈망해대거나 바래지 않으면서 자신의 위치에서 더 나은 상태로만, 최소한 더 이상 뒤로 미끄러질 염려는 없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편하게 기쁨을 즐길 수 있는가 말이다. 이 문단을 맺는 말, “이것은 너희가 대대로 길이 지킬 법령이다”는 특별히 주목해 두어야 한다. 그 이유는 법령이란 내적 삶의 상태로 결과되는 외적 삶에 관한 상태임을 이 부분에서 특별히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완전히 거듭나기 전 내적 인간과 외적 인간 사이에는 계속되는 다툼이 있다. 이를 두고 시험(temptation)이라 부른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위 같은 종류의 다툼은 없고 평화로운 상태, 언제나 하모니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고로 이 세상 삶이라는 여정 동안 시험이나 위의 다툼 같은 것을 거쳐 가는 게 꽤 가치 있는 고통이라고 반문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말씀의 글자 속에 있는 내적 의미를 자세히 관찰함으로 수습기간인 이 세상 삶에 필요한 힘과 용기를 수집해야 하리라. 이제 두 번째 문단을 살펴보자.
먼저 주목해 볼 것이 있다. 빵은 천적 선을 의미하고 선은 진리에 앞서 존재한다. 그럼에도 등불을 밝히는데 대한 지시 사항이 빵을 거론한 이 문단 앞에 전개되어 있다. 왜 그렇게 되어 있을까? 그 이유는 본문의 일반 주제가 영적 천국과 영적 교회이기 때문이다. 또한 주님으로부터 진행되는 신성한 진리는 비록 천적 천국까지도 그들 상태에 적합하기 때문이고 신성한 선 역시 신성한 진리 안에 거처를 두기 때문이다. 그 외 달리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 또는 사랑이 그분에 의해 받아질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경우가 천적 인간에 해당되는 바 진리를 수단으로 선의 상태에로 인도되는 영적 인간의 경우 더더욱 해당되는 바, 천적 인간은 주님을 사랑하는 그들의 사랑으로 구별되고, 영적 인간은 선행 또는 이웃을 사랑하는 그들의 사랑으로 구분되어지는 것이다.
위에서 살핀 내용들이 어떻게 그러한지를 보여주게 된다. 베일 밖에 있는 모든 것은 영적 인간에 관련되는 것이다. 그리고 천적 인간을 통해 간접적으로 오는 신성한 사항에 관한 지각이 영적 인간에게는 천적 인간을 통해 간접적으로 온다. 이를 다시 생각해 보면 의미심장한 실용적인 열매를 얻게 된다. 즉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이상 진정한 선행(이웃 사랑)이 있을 수 없다는 것, 순수한 신앙과 선행이 없으면 진정한 자연적 친절 또는 선도 없다는 것, 보다 낮은 천국의 기쁨은 보다 높은 기쁨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것, 그 반면 악은 위의 사항들을 남용함으로서 생산된다는 것이다.
완전한 삶은 정밀한 구분을 만들면서 동시에 각각의 적절한 관계를 앎으로서만 획득될 수 있다. 숫자 여섯이 나타낸 것, 즉 다툼이 없음, 또는 기꺼이 잘 해내는 상태에 인간이 도달했다 해도 인간은 역시 자연적인 상태에 필연코 남아 있어야 한다. 순수한 탁자로 의미된 것, 즉 더러움에서 자유로워진 자연적 삶으로부터서 영적, 천적 삶은 분리되어질 수 없는 바 우리가 선을 지닌다 해도 그 선에 상응하는 진리 없이는 불가능하고, 우리의 예배와 기도가 주님이 기뻐하시어 받을 수 있기 위해서는 향을 피워 올리는 것, 즉 진정한 예배자는 불로 명시되는 천국적 사랑의 열렬함이 진리와 결합되어 있어야만 한다. 이제 이런 사람은 자신이 진실로 사랑하는 것이 최상의 것임을 기억하고 있다. 이런 상태는 안식일로 의미되는 싸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에서만 존재한다. 그리고 이 사람은 어느 정도지만 더 높은 삶, 그 삶의 천국적 질서를 실감한다. 이 실감함은 계약으로 상징되는 것, 즉 주님과 결합할 수 있게 한다. 그리하여 이 사람은 순종을 사랑하는 거룩한 상태에서 먹는 것으로 명시된 것, 자기 삶 속의 선을 자기 것으로 삼는다. 선을 자기 것이 되게 하는 것이야말로 타인과 구별되게 하는 선용의 삶으로, 언어나 행동으로 표현되는 사랑으로부터 오는 충만한 내적 예배인 것이다.
천국적 선과 진리의 근원, 그 결과들을 생각해 보는 위 문단을 떠나 이제 우리는 악과 거짓의 근원, 그 결과를 응시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이렇게 갑자기 방향이 바뀌는 게 불합리한 듯 여겨질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나 필수적이다. 그 이유는 두 품질을 대비해 보게 될 때 얼마나 반대되는지 밝히 알게 해 주기 때문이다. 또 하나 이유는 선한 품질로부터 악의 품질이 어떤지를 볼 수 있지만 악의 품질로부터서는 선의 품질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한 자가 개혁이라든가 거듭나는 길을 걸을 때 악한 자의 이해함도 선과 진리를 지각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인간 존재로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거듭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악 이든 선 이든 선택하도록 강요당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악이나 지옥의 근원은 주님이 아니고 자연적 수준의 능력을 남용한 인간으로부터 이다. 이런 사실이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의 아버지가 이집트 출신이라는 이야기로 묘사되고 있다.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은 아버지 쪽의 근원이 악 인 바 악에서 파생된 거짓을 뜻한다. 그런고로 주님께서 이렇게 말하신다. “너희는 악마의 자식들이다. 그래서 너희는 그 아비의 욕망대로 하려고 한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고 진리 쪽에 서 본 적이 없다. 그에게는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거짓말을 할 때마다 제 본성을 드러낸다. 그는 정녕 거짓말쟁이며 거짓말의 아비이기 때문이다”(요한 8:44). 거짓의 근원을 알려주는 어떤 견해도 위 말씀보다 더 명백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본문을 통해 좀 더 들여다보는 것은 유익하리라 생각된다. 좋은 의미에서 이스라엘 여인은 진리에 대한 애착이고 그녀의 아들은 그 진리 자체이다. 이를 염두에 두면 그 뒤에 따라오는 모독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그 이유는 누가 진리를 조금이라도 인정하지 않는 상태에 있다면 그는 진리를 모독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시비가 진영 즉 교회 내에서 벌어졌다는 대목이 기술되는 것이다. 진영이란 천국을 의미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계시록 12장 7절에 기술된 것과 같은 하늘에서의 전쟁이라고도 생각될지 모른다. 그러나 계시록의 전쟁이란 사라져버린 이전 천국에서의 싸움, 즉 사라져 버리는 부패된 교회에서의 싸움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사항이 본 장에서 두 사람 사이에 있는 싸움이다. 어찌됐든 천국 자체 안에서는 싸움이 있을 수 없다. 그 이유는 거기서 누구든 주님의 도움으로 모든 시험을 극복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문단의 세부 사항들은 앞 장들에서 살핀 바 있으므로 특별히 재고할 필요가 없으리라 생각된다. 이 문단의 일반적 시리즈 역시 앞의 세부적 영적 의미들과 연결해 생각하면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짚어두고 끝내야 하리라 생각된다. 신성과 영적 법칙을 위반했어도 회개로 구원되어 깨끗해질 수 있는 반면, 악한 상태를 확증했을 경우 천국적 삶에서 영원히 분리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의 내적 의미가 주는 사항들을 심각하게 되새겨 보아야 한다. 우리는 정의 속에 자신이 있음을 확증하게 하는 일관된 삶, 다시 말해 하느님의 법을 지켜 가는 삶에 어떤 예외도 두지 않는 삶 속에서 성실하게 삶의 문제를 해결해 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강행할 때만이 더 없는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이렇게 쓰여 있다. “나는 승리하는 자들에게 하느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겠다” (계시록 2:7).

레위기 23장 해석

레위기 23장

영적 의미 요약

* 넓은 측면에서 거듭나는 삶의 계속적인 상태들에 관하여, 이에는 악과의 싸움 그리고 쉼의 상태가 포함되어 있다, 1-3절.
* 거듭나는 삶에 종속될 첫 번째 상태는 악에서의 해방 중 하나인데 이에는 선과 결합하는 진리를 내면으로 받는 것과 깨끗해짐 그리고 선 밑에 진리들이 배열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4-8절.
* 거듭나는 삶에 종속될 두 번째 상태는 선 안에 진리가 이식되는 것이다, 9-22절.
* 그 결과 밝히 알게 됨에 관한 것, 23-25절.
* 그 결과 모든 악이 제거됨에 관하여, 26-32절.
* 거듭나는 삶에 종속될 세 번째 상태는 선이 이식되는 것, 이에는 모든 완전함과 거룩함에 있는 심정의 기쁨과 즐거움을, 가장 낮은 원리에서 가장 높은 원리에 이르기까지 쉼과 평화의 상태를 가지게 되고 이 상태는 계속 갱신되어진다, 33-34절.
(* 성경 구절은 44절까지 인데 요약 부분에서는 34절로 끝나고 있음. 역자주)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그리고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주님께서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지각을 주시어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speaking)이란 유입을; 모세란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말함(saying)이란 지각을 뜻한다. (2951, 7010, 1791, 1822)

2절.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야기 하라, 주님의 절기들, 이것을 너희는 거룩한 모임이다고 선포할 것이다, 이것들이 나의 절기들이다.

영적 의미

영적 교회인에 대한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으로부터 그는 거듭나는 삶에 관한 일반적 상태를 분별하며, 이 삶에 있는 세부적 상태들을 신성한 질서로 배열하고 규율해 가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러둠이란 영적 교회인이 식별할 수 있게 가르치심을; 주님의 절기(축절)들이란 거듭나는 삶의 계속되는 상태들을; 거룩한 모임이도록 이 절기들을 선포함이란 모든 진리들은 선에 의거 질서대로 배열되어야 함을; “이것들이 나의 절기들이다”란 신성한 질서에 따름을 각각 말한다. (10355, 3654, 1791, 1822, 9294, 7891, 5288, 37, 10133)

3절. 육 일 동안 일을 할 것이다. 그러나 칠 일째 날은 엄숙한 쉼의 안식일, 거룩한 모임이 있다. 너희는 어떤 일도 하지 말라. 그것은 너희의 모든 거주지에서 주님에게 안식일이다.

영적 의미

그러나 악과 싸우는 상태들이 먼저 선행되고 그 뒤를 이어 일반적인 쉼과 평화의 상태가 있게 된다. 이 가운데 진리들이 선으로부터 질서 있게 배열된다. 그러면 이기적 동기로부터 행동될 리 없고 시험에 견디어낼 필요도 없는 바, 주님으로부터 온 선이 그의 모든 세부 상태에 이르기까지 자유롭게 그리고 기쁘게 받아지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육 일 동안 일을 함이란 악과 싸우는 상태가 선행됨을; 칠 일째 되는 날은 엄숙한 쉼의 안식일이다란 위 전투에 수반되는 넓은 측면에서의 쉼과 평화의 상태를; 거룩한 모임이란 모든 진리들은 선으로부터 오는 질서에 따라 배열될 것임을; 어떤 일도 하지 말라란 인간은 이기적 동기로부터 행동하지 않는 것 또는 시험을 견디어 내는 것이 없어야 함을; “이 날은 주님에게(여호와에게 바치는) 안식일이다”란 자유롭게, 기쁘게 주님에게서 선을 받음을, “너희의 모든 거주지에서”란 세부적인 특별한 상태에 관하여를 각각 뜻한다. (84, 8889, 7891, 8890, 8888, 8889, 2001, 471)

4절. 이것들은 주님의 절기들, 거룩한 모임들이다, 이것을 너희는 그것들의 지정된 계절에서 선포하라.

영적 의미

일반적 상태는 그 안에 종속된 상태들을 포함한다. 또한 이 안에는 선 밑에 진리들의 배열이 있고 이 배열이 질서 있게 계속됨을 인간은 실감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것들은 주님의 절기들, 거룩한 모임들이다, 이것을 너희는 그것들의 지정된 계절에서 선포하라란 넓은 측면에서의 거듭나는 상태에는 종속되는 상태들이 포함된다는 것, 그 안에는 선 밑에 진리들이 배열되는데 이것이 질서적으로 이어져감을 인간이 실감하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9294, 5288, 37, 10133)

5절. 첫째 달에서, 그 달의 십 사일 저녁은 주님의 유월절이다.

영적 의미

그래서 종속된 첫 상태는 주님이 악에서 해방해 주신 상태이다. 이 상태 중 사랑으로부터 온 신앙의 상태가 가장 우세해져 있는다. 그리고 의지와 이해함 모두가 신성한 진리에 복종함으로 해서 거룩한 상태가 동반되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정월 십 사일 저녁은 주님의 유월절이란 종속된 첫 상태는 주님께서 악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시는 것 중 어떤 것 한 가지를, 정월 십 사일이란 사랑으로부터 오는 신앙의 상태가 우세해져 거룩함의 상태가 동반된다는 것을, 해거름 또는 저녁 동안이란 의지와 이해함 양면에서 신성한 진리에 복종함을 통하여를 뜻하는데, 그 이유는 위 상태는 이기적 사랑만이 우세했던 상태가 끝나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상태가 시작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며, 그리고 순종이란 의지로부터 진행되고 이해함에 의해 인도 받아감을 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7867, 859, 7900, 7844, 8750-3)

6절. 같은 달의 십 오일은 주님에게 누룩 넣지 않은 빵의 절기(무교절)이다. 칠 일 동안 너희는 누룩 넣지 않은 빵을 먹어라.

영적 의미

그 다음 즉각 새로운 상태, 즉 거짓에서 깨끗해지는 것, 더 나아가 선을 자기 것으로 삼게 되는 거룩한 상태가 뒤를 잇는다.

세부적 영적 의미

정월 십 오일이란 위 새로운 상태 안에 있음을; 누룩 없는 빵의 절기(무교절)이란 거짓에서 깨끗해짐을; 누룩 없는 빵을 칠 일간 먹음이란 위의 상태에서 거룩함이 더 진전된 상태를; 먹는다란 선을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8400, 9296-5, 9287, 9294, 716, 2187)

7절. 첫째 날에 너희는 거룩한 모임을 가져라. 너희는 노예 근성의 일을 하지 말라.

영적 의미

그 안에 진리에 관한 지식들이 선 밑에 우선 배열되는데 이 동안에는 시험이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첫째 날에 거룩한 모임을 열고 모든 노예 근성의 일(생업)에서 손을 뗌이란 위 상태 안에 먼저 진리에 관한 지식들이 선 밑에 배열되고, 배열되는 동안에는 시험이 없음을 말한다. (7891, 8888, 8890)

8절. 그러나 너희는 칠 일 동안 주님에게 불로 만든 제물을 바쳐라. 칠 일째 날에 거룩한 모임이 있다. 너희는 노예 근성의 일을 하지 말라.

영적 의미

그런 다음 선으로부터 제 스스로 주님을 인정함이 있어진다. 그리고 계속해서 진리들이 더 완전하게 배열되면서 시험으로부터의 더 큰 해방이 있는다.

세부적 영적 의미

칠 일간 주님께 제물을 태워 바침이란 주님이 선으로부터 자유롭게 인정됨을; 칠 일째 되는 날 거룩한 모임을 가진다란 진리들이 더 완전하게 배열됨을; 노예 근성의 일(생업)을 하지 않음이란 시험에서 더 많이 자유로워짐을; 계속성이 칠 일 동안 제물을 바침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그 이유가 칠이라는 숫자는 거룩함과 쉼 그리고 평화, 뿐만 아니라 충만함과 완성됨까지 뜻하기 때문이다. (10055, 716, 923, 7891, 10127)

9절. 그리고 주님은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다시 주님께서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지각을 주시어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speaking)이란 유입을; 모세란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말함(saying)이란 지각을 말한다. (2001, 2951, 7010, 1791, 1822)

10절.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야기하라,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준 토지 안으로 들어올 때, 그리고 거기로부터 수확물을 거둘 때, 그러면 너희는 성직자에게 너의 수확물의 첫 열매들의 곡식단을 가져 와라.

영적 의미

영적 교회인은 유입과 가르침을 통하는 바, 거듭나는 삶에 종속되는 두 번째 상태 안에서 진리들이 선 안에 이식되기 시작한다. 그 다음 이식된 진리들은 기쁘게 순종함을 원리로 해서 질서 안에 모두 집합되며 이 모든 것이 주님께서 해 주신 것임을 인정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야기하라란 영적 교회인에 대한 가르침임을; 주님께서 주시는 땅으로 들어가서 추수를 할 때란 거듭나는 삶의 두 번째 종속되는 상태에서 진리들이 선 안에 이식되기 시작할 때를; 수확물의 첫 곡식단을 성직자에게 가져옴이란 위의 진리들이 주님께로부터 임을 인정함으로서 기쁘게 순종함이라는 원리로부터 그 진리들이 한데 모아지는 것을 말한다. (10355, 3654, 1791, 1822, 9294, 3705, 995, 10083)

11절. 그리고 그는 주님 앞에서 곡식단을 흔들어라, 너를 위하여 받아질 것이다. 안식일 다음 날, 성직자는 그것을 흔들어라.

영적 의미

이 선으로부터 영적 인간은 생명 있게 되고 그의 예배는 주님께 깊은 감사를 나타내는 바 주님께서 받으실 수 있다. 이 예배에는 항구적으로 있게 되는 거룩한 쉼과 평화의 상태가 포함되어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께서 받으시도록 곡식단을 흔듦이란 선으로부터 오는 인간의 영적 생명은 주님에 의해 생명이 있어지고 그분으로 인해 활동하게 됨을, 받으심이란 그분께 드리는 위의 예배는 주님에 대한 깊은 감사의 표시인 바 그분께서 열납하신다는 것을, 안식일 다음 날 곡식단을 흔들어 바친다란 선으로 말미암아 진리가 생명 있게 됨은 영원히 존재할 쉼과 평화의 상태 안에 포함되어져 있음을 말한다. (84, 8889, 3998, 요한 14장 27절, 16장 33절)

12절. 그리고 네가 곡식단을 흔든 날에, 너는 주님에게 태워 바침을 위해 첫 번째 해의 흠이 없는 수양을 바쳐라.

영적 의미

이러한 초보적인 선의 상태에서 주님은 순진의 상태로부터 예배된다. 이 예배에서 진리는 선의 저장소임을 인정함이 있고, 모든 거짓과 악들이 제거되는 바, 주님을 섬기는데 완전히 봉헌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곡식단을 흔든 날에 일 년된 흠이 없는 어린 수양을 바치라란 초기에 해당되는 위와 같은 선의 상태에서는 순진의 상태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을, 동시에 진리들은 선을 저장하는 곳임을 인정하고 모든 악과 거짓이 제거되면서 주님을 섬기려는 충만된 헌신이 있게 된다. (3994, 725, 7837, 7839, 349, 923)

13절. 그리고 그것의 식사 제물은 기름을 섞은 고운 곡식 가루 십분의 이 (에바), 달콤한 향기를 위해 불로 만든 제물이다. 그리고 그것의 음료 제물은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이다

영적 의미

위 상태에는 아껴두신 것들을 통해 충만됨 속에서 진리와 결합된 선을 내면으로 받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주님으로부터 온 순수한 사랑을 수단으로 결과된 것이고, 쉼과 평화의 기운이 바깥으로 흘러나와 그 자체를 드러낸다. 또한 이해함 안에 선과 결합된 내면의 진리가 있고, 이를 수단으로 해서 교리가 승강 되면서 영적으로 되는 시작이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식사 제물은 기름을 섞은 고운 곡식 가루 십 분의 이 에바란 위 상태 안에는 주님께서 아껴두신 것들을 통하여 선이 진리와 충만되게 결합됨이 포함되어 있음을; 달콤한 향기를 위해 불로 만든 제물이란 위 상태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순수한 사랑의 작용으로 결과되어 거기에 쉼과 평화의 기운이 흘러들면서 외적으로도 그 자체가 명백해 진다는 것을; 음료 제물로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이란 진리의 외적 상태가 이해함 안에서 선과 결합됨이 있는데 이러므로 해서 교리들이 승강 되어 영적 수준이 되어지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2177, 5194, 576, 10137, 10262, 4581-5, 요한 2장 1-11절)

14절. 그리고 너희는 이 동일한 날 까지, 너희가 너희 하느님에게의 봉헌물을 가져올 때까지, 빵을, 볶음 곡식도, 생이삭도 먹지 말라. 이것은 모든 너의 거주지들에서 대대로 영원한 법령이다.

영적 의미

우선 주님을 진실로 인정하게 되는 상태 즉 선의 상태가 개시되기 전에는 어떤 선도 내적으로 자기 것이 되게 할 수 없고 선과 진리에 관한 애착도 외적으로 자기 것이 되게 할 수 없다. 이는 세부적인 거듭남이 계속 진보하기 위해, 그리고 영적 생명을 받기 위한 외적 기초가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제물을 바치는 날 이전에는 빵도, 볶은 곡식도, 생 이삭도 먹지 못한다란 선의 상태가 개시될 때까지는 어떤 선도 내적으로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고, 외적으로 있는 선과 진리에 대한 애착도 자기 것이 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너희의 하느님에게 바치라란 자기 것으로 삼기 전 반드시 주님이 진실로 먼저 인정되어야 함을; 대대로 길이 지킬 법령이다란 주님을 인정함은 계속되는 거듭나는 과정의 외적 기초가 된다는 것, 그리고 거듭남의 세세한 과정에서 영적 생명을 받는 영원한 외적 기초가 된다는 것을 말한다. (5212, 9295, 7884, 9845, 471)

15절. 그리고 너희는 안식일 다음 날로부터, 너희가 흔들어 바침의 곡식단을 가져온 날로부터 너는 (날수를) 세라. 일곱 안식일들이 거기에서 (셈을) 완성할 것이다

영적 의미

선 안에 진리가 이식되는 상태가 진보되는 것은 쉼과 평화를 결과하게 하는 악과 잘못들에서 승리하는 거룩한 순종을 수단으로 생명을 얻었던 초기 상태에 이어 영원히 계속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날 수를) 셈이란 상태들의 품질을 알아낸다는 것을; 곡식단을 가져옴이란 선 안에 진리가 이식되는 상태가 더 진전됨을; 다음 날이란 항구적이고 계속적임을; 곡식단을 흔듦이란 생기 있게 됨을; 만 일곱 주간이란 악과 잘못들에서 승리하여 쉼과 평화의 거룩한 상태가 옴을 각각 말한다. (10217, 9204, 9295, 3998, 10083, 716, 8889, 8890)

16절. 일곱째 안식일 이후 다음 날이면 오십 일이 세어질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주님에게 새로운 식사 제물을 바쳐라.

영적 의미

항구적으로 발전해감 속에는 내적으로 선에 관한 것 뿐만 아니라 이식된 진리가 충만해지는 상태까지 포함된다. 그리고 이식된 진리와 결합한 내면의 선까지 충만된다. 그러므로 주님은 새로운 예배 상태에서 더욱 충분히 인정되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일곱째 안식일 다음 날까지 해서 오십 일을 셈이란 항구적으로 진보해 가는 것들, 이에는 내적으로 선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외적으로 이식되기 위해 진리가 충만 하는 상태까지 포함됨을; 새로운 식사 제물을 주님께 바침이란 내면에 있는 선이 이식되는 진리와 결합함으로 해서 새로운 예배 상태에서 주님이 더욱 인정되어짐을 뜻한다. (2252, 3998, 2177, 349)

17절. 너희는 너희 거처로부터 십분의 이 에바로 만든 빵덩어리를 가져와라. 이것은 주님에게 첫 열매를 위해 누룩을 넣어 구워라.

영적 의미

그리하여 인간이 지각하는 바, 제 스스로 행동하는 것 같지만 자기는 자기 속에 주님이 아껴 두신 것들을 통해 주님께서 생기를 넣은 진리와 결합한 선으로부터 행동하고, 이해함 안에는 선에서 오는 순수한 진리가 있게 되었다는 것, 이는 시험에 승리함으로 획득된다는 것, 진리를 사랑함으로 선이 더욱 진보된다는 것을 지각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너희는 너희 거처로부터 십분의 이 에바로 만든 빵덩어리를 가져온다란 인간이 지각하는 바, 자기는 진리와 결합된 진리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행동하는 것이 자신 스스로 그렇게 하는 듯 여기고 있다는 것, 이 행동은 우리 속에 아껴 두신 것들을 통해 주님께서 생명 있게 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고운 곡식 가루였다 함은 이해함 안에 있는 선에서 온 진리의 순수한 상태를; 이 가루에 누룩을 넣고 굽는다란 시험에서 승리함을 통해 획득되어졌음을; 이것이 주님께 드리는 첫 열매(맏물)이란 진리를 사랑함을 통해 선을 실감하는 쪽으로 발전됨을 뜻한다. (9205, 5194, 576, 2177, 8496, 7906, 9295, 10083)

18절. 그리고 너희는 빵과 더불어 한 살 된 흠 없는 어린 양 일곱과 어린 수소 하나, 그리고 수양 둘을 빵과 더불어 제출하라, 그것들은 그것의 식사 제물과, 그리고 그것의 음료 제물과 더불어 주님에게 태워 바쳐라. (이는) 주님에게 달콤한 향기의 불로 만든 제물이다.

영적 의미

이제 주님은 가장 깊은 천적 선이 작동되어 인정되어지는데 이에는 거짓에서 자유로워진 순진이라는 충만된 거룩함이 포함되어 있고, 또한 주님과 협동하는 결합으로 해서 외적, 내적 인간 안에 순진의 선이 있게 된다. 이 결합을 수단으로 선과 진리에 관한 측면에서, 외적 진리와 선에 관한 측면에서 충분히 정화되는데 이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한 그분의 순수한 사랑을 통해 주님이 해주셨음을 인정한다. 그 결과 쉼과 평화를 더욱 많이 결과하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빵과 더불어 일곱 어린 양이란 이제 가장 깊은 천적 선의 작용으로 주님이 인정되어짐을; 흠이 없음이란 거짓에서 자유로움을; 어린 수소 한 마리와 수양 두 마리란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 안에 있는 순진의 선을; 둘이란 결합을, 그러므로 주님에 관한 내적 인간 부분일 경우 협동을 말한다. 태워 바침의 제물이란 위 결합을 수단으로 충분히 성별 됨을; 식사 제물과 음료 제물이란 내면에 있는 선과 진리, 외면에 있는 진리와 선에 관한 것임을; 불로 태워 바침이란 이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한 그분의 순수한 사랑을 통해 주님으로부터임을 인정하는 것을; 주님께 달콤한 향기를 풍김이란 쉼과 평화의 상태로 한걸음 더 진전되었음을 말한다. (349, 10132, 7839, 716, 7837, 9591, 10042, 5194, 10053, 2177, 10137, 10054, 10855)

19절. 그리고 너희는 죄 바침을 위해 수염소 하나, 그리고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로 일 년된 수양 둘을 바쳐라.

영적 의미

위 사항 외에 인정함이 더 있다. 즉 모든 악과 거짓은 주님이 제거해 주신다는 것, 모든 순진의 선은 외적, 내적 인간이 진리로 충만된 가운데 주님으로부터 받게 된다는 것, 이렇게 주님이 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완전한 자유 속에서 예배드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죄 바침을 위해 수염소 한 마리란 위 상태에 하나 더 인정하는 상태가 있는데 이는 모든 악과 거짓은 진리 또는 신앙을 수단으로 주님께서 제거해 주신다는 것이다. 평화 제물로 그 해 태어난 수양 두 마리란 순진의 모든 선은 내적, 외적 인간에 있는 진리가 충만해진 가운데 주님으로부터 받아지고, 그러므로 해서 완전한 자유 속에서 주님이 예배된다는 뜻이다. (4169, 725, 3400, 349, 10132, 5194, 725, 7839, 10097)

20절. 그리고 성직자는 주님 앞에서 흔들어 바침을 위한 첫 열매로부터의 빵과 더불어, 두 어린 양과 더불어 그것들을 흔들어라. 그것들은 성직자를 위한 주님에게 거룩하다.

영적 의미

이리하여 인간의 모든 삶, 내적으로 있는 선의 측면, 외적으로 있는 선의 측면 모두 그리고 선 안에 진리가 처음 이식된 때로부터 그것이 완성되기까지 모든 측면이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살아있게 된다. 그리고 모든 선의 근원이 주님이심을 진실로 인정하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위의 제물을 흔든다란 인간의 생명, 그것이 내적으로 있는 선 이든, 외적으로 있는 선 이든 모두 주님에 의해 생명 있게 된다는 것을; 곡식단을 흔듦은 선 안에 진리가 이식되기 시작함을; 첫 열매로서 드리는 빵을 흔듦은 위의 이식 작업이 충만해졌음을; 이것은 성직자의 몫이고 주님에게 거룩하다란 인간이 자기 것으로 삼는 모든 선의 근원이 주님이심을 진실로 인정함을 뜻한다. (9295, 10083, 10079, 제 11, 20절, 9223, 8042, 2187, 6148-7)

21절. 그리고 너희는 바로 같은 날에 선포하라. 거기서 너에게 거룩한 모임이 있을 것이다. 너희는 노예 근성의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너희 대대로 영원히 너의 거주지들에서 법령이다.

영적 의미

위 결과로 있는 상태에서 주님께서는 매우 밝히 알게 해 주신다. 즉 선 아래 진리가 완전하게 배열되고, 주님을 예배함 안에서 이기적이고 세상적인 동기들로부터 행동하려드는 모든 기질로 야기되는 시험도 정지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같은 날 (모임을) 선포함이란 위의 결과 그 상태에 주님으로부터 충분히 밝히 알게 하심이 있다는 것을; 이것이 거룩한 모임이다란 선 밑에 진리가 완전히 배열됨을; 어떤 노예 근성의 일(생업)에 종사하지 말라란 시험이 정지되었음을; 어디서 살든 대대로 길이 지킬 규정이다란 주님을 예배하는 가운데 이기적이고 세상적인 동기로부터 행동하려던 모든 기질이 사라짐을 뜻한다. (8802, 8815, 7891, 8890, 7884, 471, 9845, 8888)
주목해둘 게 있다. 14절의 끝 부분에서 “대대로, generations”라는 말이 “거하는 곳들, dwellings” 앞에 오고 있는데 이는 일반적 상태들로부터 세부적인 상태로 발전함을 명시해 주고 있고, 본 절의 경우 14절과 반대 순서인 바 이는 진리가 선 안에 충분히 이식될 때, 선 밑에 진리가 질서 있게 배열되는 상태가 세부적으로도 있게 됨을 명시해 놓고 있다.

22절. 그리고 너희가 너의 토지의 수확물을 거둘 때, 들판의 모퉁이까지 싹슬어 거두지 마라, 너는 네 수확물의 이삭을 모아들이지 마라. 너는 그것들을 가난한 자와 낯선 자를 위해 남겨두라.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이제는 진리가 선 안에 이식된다 해도 그 진리가 능력 있게 최말단에서 표현될지라도 이기적 용도에 충당하려고 더 이상 자기 것으로 삼지 않고, 선은 외적으로 있는 이기적인 동기로 더 이상 오염이 안 된다. 오히려 이 모든 선과 진리를 선행과 선행으로부터 오는 신앙의 일들로 해서 주님께 돌리는 바, 거기에는 어떤 이기적, 세상적인 동기가 없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추수할 때 곡식을 모조리 거두지 말고, 거두다 남은 이삭도 줍지 말라란 진리가 선 안에 이식되는 때 내적으로 있는 능력들이 최말단에서 표현된다 해도 더 이상 이기적 용도를 위해 자기 것으로 삼지 않으며, 외적으로도 그러한 것임을; 그것을 가난한 자와 외국인이 줍도록 하라, 나는 너희 하느님이시다란 이기적이고 세상적 동기가 없는 선행과 그 선행으로부터 온 신앙으로 일하게 된 것을 주님께 돌려 드림을 뜻한다. (4955, 10669, 2146, 2001, 7192, 제 19장 10절)

23절.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더 나아가, 주님께서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지각을 주시어 밝히 알게 해 주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호와란 그분의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speaking)이란 유입을; 모세란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표현하고; 말하심이란 지각을 뜻한다. (2951, 7010, 1791, 1822)

24절.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야기 하라, 말하기를, 일곱째 달에서, 그 달의 첫째 날에, 너희에게 엄숙한 쉼이 있는다, 나팔을 불어 기념하는 (날), 거룩한 모임(이 있다).

영적 의미

영적 교회인에 대한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으로부터 그가 지각하는 바, 선 쪽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상태 또는 신앙의 상태가 선 안에 진리가 이식됨으로 마감 지어질 때 거룩한 평화의 상태가 수반되고 거기에 주님께서 밝히 알게 해 주심도, 선 밑에 진리가 재배열된다는 것까지 지각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둠이란 영적 교회인에 대한 가르침, 이로부터 그가 지각한다는 것을; 일곱째 달 첫 날 반드시 쉬어야 한다란 신앙의 상태 또는 진리의 상태가 발전함은 선 쪽으로 인도해 가는 진리가 이식됨으로 마감 짓게 됨을; 엄숙한 쉼 또는 안식일이란 위의 발전에 따라 오는 거룩한 평화의 상태를; 나팔을 불어 기념함이란 주님께서 밝히 알게 하심을; 거룩한 모임이란 선 밑에 진리들이 재배열됨을 말한다. (10355, 3654, 1791, 1822, 851, 893, 894, 851, 8802, 7891, 8815, 6888, 8620)

25절. 너희는 노예 근성의 일을 하지 말라. 그리고 너희는 주님에게 불로 만든 제물을 바쳐라.

영적 의미

위 결과 영적 싸움, 그리고 이기적이고 세상적 사랑까지 중지된다. 동시에 순수한 천적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어떤 노예 근성의 일(생업)에도 종사하지 말라란 영적 싸움 그리고 이기적, 세상적 사랑으로 행동함이 정지됨을; 주님께 태워 바침이란 정지됨과 동시에 순수한 천국적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한다는 것을 말한다. (8888, 8890, 10055)

26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다시 주님께서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지각을 주시어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speaking)이란 유입을; 모세란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표현하고; 말함이란 지각을 뜻한다. (2001, 7010, 1791, 1822)

27절. 이 일곱째 달의 십 일은 보상의 날이다. 너에게 거룩한 모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너희 혼들을 괴롭힐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주님에게 불로 만든 제물을 바쳐라.

영적 의미

진리가 선 안에 이식될 때 거기에는 악의 충분한 제거가 있고, 선 밑에 진리가 재배열되며, 인간 스스로에는 악밖에 가진 게 없는 바, 주님으로부터 순수한 사랑을 받아야만 그분을 예배할 수 있다고 고백하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칠월 십일은 보상(죄 벗음)의 날이다란 진리가 선 안에 이식될 때 거기에는 악이 완전히 제거됨도 있다는 것을; 이 날 거룩한 모임을 열라란 선 밑에 진리가 재배열됨을, 혼을 괴롭힘(단식함, afflicting the soul)이란 인간 스스로서는 악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것을, 주님께 태워바친다란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예배할 수 있게 됨을 말한다. (2075, 10042-III, 7891, 1937, 1947, 10055)
주목해둘 게 있다. 위 구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단식(영혼을 괴롭게 함)이 스스로의 강박 충동(self-compulsion)을 뜻하는 듯 보여진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자아 강박 충동과 함께 예비 사항으로 붙어 다니는 것은 인간 스스로는 악밖에 없어 자신 스스로 계명을 지킴으로 주님으로부터서만 선을 행할 수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너는 네 영혼을 괴롭게 하리라”라는 표현도 내적 의미로 볼 때 거기에는 진실된 겸허함이 이미 포함되어 있다. 이 겸허 없이 인간은 합당한 고백을 할 수 없다. (1937-1항)

28절. 그리고 너희는 동일한 이 날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가 이것은 보상의 날이어서, 너의 하느님 주님 앞에 너를 위해 보상을 받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위 상태에서는 견뎌내어야 할 어떤 시험도 없는데 그 이유는 선과 진리 양 측면에서 주님으로부터 오는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과의 재회가 있기 때문에서 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 날에 어떤 일도 하지 못함이란 위 상태에서는 견뎌 내어야 할 어떤 시험도 없다는 것을, 너희 하느님 주 앞에서 보상의 날이라 함은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재회함, 이는 주님으로부터 이고 선과 진리 양면 모두에서 재회가 있다. (8888, 8890, 10042-III, 683, 2001)

29절. 같은 이 날 괴로움 받지 않는 혼은 누구든지 그의 백성들로부터 잘리운다.

영적 의미

만일 위 상태에서 인간 스스로는 악밖에 가진 게 없음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면 그는 그 이유로 해서 교회로부터 분리되어야만 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이 날 괴로움 받지(단식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의 백성들로부터 잘리운다(겨레로부터 추방시켜야 한다)란 위의 상태에서 누군가가 자신 스스로부터서는 악밖에 없음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면 그는 그 이유로 해서 그 즉시 교회로부터 분리된다. (1937, 1947, 10042-III, 5302, 1259)

30절. 그리고 같은 이 날에 어떤 일이든지 하는 혼은 누구이든 나는 그의 백성들 사이로부터 그 혼을 파괴할 것이다.

영적 의미

또한 넓은 의미의 교회의 위 상태 안에 있는 누군가가 영적 싸움에 종사하고 있거나 또는 이기적, 세상적 동기로 행동하고 있다면 그는 반드시 교회에서 분리될 필요가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 날 일을 하는 사람은 그의 백성 사이로부터 그 혼을 파괴함(겨레로부터 추방함)이란 위와 같은 교회의 일반적인 상태에 있는 누군가가 영적 싸움에 종사하고 있거나 세상적, 이기적 동기로부터 행동한다면 그는 반드시 분리될 필요가 있게 된다. (8888, 8890, 5302, 1259)

31절. 너희는 여하튼 일을 하지 말 것이다. 이것은 너의 모든 거주지들에서 대대로 영원히 법령이다.

영적 의미

그 이유가 거듭남을 진전시키고 있는 사람은 이기적, 세상적 동기로부터 행동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내적, 외적 인간 모두에 해당되고, 거듭남의 모든 세부적인 상태에도 해당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어떤 일도 하지 않는 것, 이것은 대대로 길이 지킬 법령이다란 거듭나는 과정에 있는 사람은 이기적, 세상적 동기로부터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이는 내적, 외적 인간에, 그리고 세세한 모든 상태에서도 해당됨을 뜻한다. (8888, 8890, 7884, 471, 9845)

32절. 너에게 엄숙한 싐의 안식일이 있다. 그리고 너희는 너희 혼을 괴롭게 하라. 달의 아홉째 날 저녁, 저녁으로부터 저녁까지 너희는 너의 안식일을 지켜라.

영적 의미

이 상태에서는 천국적인 쉼과 평화를 미리 맛봄이 있고, 인간 스스로는 악밖에 없음을 진실로 인정함도 있는데 이는 신앙과 선행의 결합이 이전 상태에서 새로운 상태로 바뀔 때 있게 되는 희미함 속에서 거행될 때이다. 그 이유가 희미한 상태는 주님 안에서의 쉼과 평화의 상태에 앞서 있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엄숙히 쉬는 안식일이다란 위의 상태에서는 천국적인 쉼과 평화를 미리 맛볼 수 있음을; 단식함이란 인간 스스로는 악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것을; 그 달 구일 저녁부터 안식일을 지킴이란 신앙이 선행과 결합함은 이전 상태에서 새 상태로 변화함에서 발생하는 희미함에서 거행된다는 것, 그 이유는 희미한 상태는 주님 안에서 있게 되는 쉼과 평화의 상태 앞에 있기 때문이다. (851, 1937, 1947, 제 27절, 2075, 7844, 851)

33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기를,

영적 의미

더 나아가 주님께서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지각을 주시어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speaking)은 유입을; 모세는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표현하고; 말하심(saying)은 지각을 뜻한다. (2001, 2951, 7010, 1791, 1822)

34절. 이스라엘의 자손에게 이야기하라, 말하기를, 이 일곱째 달의 십오 일은 주님에게 칠 일 동안 장막(tabernacle)의 절기이다.

영적 의미

영적 교회인에게 가르침이 있다. 이로부터 지각하는 바, 새로운 상태는 선 안에 진리가 이식되는 그 뒤를 이어야만 한다는 것, 이 새로운 상태란 진리 안에 선이 이식되는 것이요 이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거듭나는 작업의 정점이라는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러둠이란 영적 교회인에 대한 가르침, 이로부터 그는 지각함을; 일곱째 달 십오 일부터 장막절(초막절, feast of tabernacles)이다란 새로운 상태는 선 안에 진리가 이식됨에 이어 오게 된다는 것, 이 새로운 상태란 진리 안에 선이 이식되는 것이요, 이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거듭나는 작업의 최정점이라는 뜻이다. (10355, 3654, 1791, 1822, 9294, 9295, 9296-5, 716)

35절. 첫째 날에 거룩한 모임이 있을 것이다. 너희는 노예 근성의 일을 하지 말라.

영적 의미

그런고로 선 밑에 진리가 새롭게 배열된다. 그리하여 이기적이고 세상적인 모든 동기를 마지막으로 거절해 버리면서 시험이 끝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첫 날 거룩한 모임을 열고 노예 근성의 일(생업)에 종사하지 말라란 위로부터 선 밑에 진리가 새롭게 배열되어서 이기적으로 세상적인 모든 동기의 마지막 거절과 더불어 시험도 끝나게 됨을 뜻한다. (7891, 8888, 8890)

36절. 칠 일 동안 너희는 주님에게 불로 만든 제물을 바쳐라. 팔 일째에 너에게 거룩한 모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주님에게 불로 만든 제물을 바쳐라. 이것은 엄숙한 집회이다. 너희는 노예 근성의 일을 하지 말라.

영적 의미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상태에 포함되는 것들, 즉 이 새로운 상태 안에는 선 밑에 진리가 재배열됨이 있고, 의지뿐만 아니라 이해함 측면에서 거룩한 예배의 재배열이 있고, 또한 세상적, 이기적 동기를 거절함과 더불어 외적 인간 안에도 선 밑에 진리가 질서 있게 배열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칠 일간 주님께 제물을 태워 바침이란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상태를, 팔일 째 거룩한 모임을 연다란 이 새로운 상태에서 선 밑에 진리가 재배열됨을, 다시 주님께 제물을 태워 바침이란 의지 뿐만 아니라 이해함 측면까지에서 있는 거룩한 예배, 그러므로 이는 상호적이다. “이 날은 축제일(엄숙한 집회)이다”란 외적 인간 안에서 선 밑에 진리들이 질서 있게 배열됨을, 노예 근성의 일(생업)을 하지 말라란 이 역시 이기적이고 세상적 동기를 거절해야 함을 뜻한다. (716, 10055, 9296-5, 7891, 9296-5, 8888, 8890)

37절. 이것들은 주님의 절기이다, 너희는 거룩한 모임이 있기 위해, 주님께 불로 만든 제물, 태워 바침, 그리고 식사 제물, 희생 제물, 음료 제물을 각기 그것 (바치는) 날에 바치도록 (절기를) 선포하라.

영적 의미

가장 보편적인 거듭남 안에 있는 선을 자기 것을 삼는 데에 종속되는 상태들, 이 상태는 모든 이에게 질서에 따라 발생된다. 즉 진리의 새 배열이 거행되는 것, 이는 완전히 봉헌함을 수단으로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주님을 인정함으로 내면의 선을 자기 것으로 삼기 위해서, 영적 진리를 자기 것으로 삼기 위해서 거행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것들은 주님의 절기이다란 거듭남 가운데는 선을 자기 것으로 삼는 데에 종속되는 일반적인 상태들이 있다는 것을; 거룩한 모임을 선포함이란 위 상태에서 진리들의 새로운 배열이 거행된다는 것을; 제물을 주님께 불로 태워 바침이란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을; 태워 바침은 충만된 봉헌, 식사 제물과 제물은 주님을 인정함으로 내면에 있는 선을 자기 것 삼는 것, 음료 제물(제주)을 그날그날 절차를 따라 바침이란 각 상태에 따라 영적 진리를 자기 것으로 삼아 감을 뜻한다. (9294, 7891, 10055, 10053, 2177, 4581, 10079, 10137, 10262, 4581-5, 487)

38절. 주님의 안식일 외에, 그리고 너의 선물들 외에, 그리고 모든 너의 서원물 외에 그리고 모든 자유의 바침 외에, 이것을 너희는 주님에게 드리라.

영적 의미

가장 일반적인 상태 외에도 더 있다. 즉 선은 주님으로부터만 있다는 것, 인간은 진리로 더 다져져야 한다는 것, 주님을 예배함은 자기 스스로 그분께 모든 선을 돌려야만 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 외 주님의 안식일이란 가장 일반적인 또는 보편적인 상태를; 선물이란 선이 주님으로부터임을 인정함; 서약함이란 인간은 진리들로 확증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마음에 우러나서(자유 의지로) 바침이란 주님을 예배함은 자유로운 상태로부터 있어야 함을; 주님께 바치는 것들이란 모든 선은 그분으로부터임을 인정함을 뜻한다. (84, 8889, 5619, 3880, 10097, 5619)

39절. 너희가 토지의 열매들을 거두어 들일 때, 일곱 째 달의 십 오 일에 너희는 칠일 동안 주님의 절기를 지킨다. 첫째 날은 엄숙한 쉼이다. 그리고 팔 일째 날은 엄숙한 쉼의 날이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선행과 결합된 신앙으로 충만된 마지막 새로운 상태가 있다. 이 상태들이 선한 일로 결실을 맺을 때 거기에 가장 높은 원리로부터 가장 낮은 원리에 이르기까지 쉼과 평화, 이와 더불어 완전하고 충만된 심정 속의 기쁨과 즐거움이 있게 된다. 이 상태는 항구적으로 갱신되어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칠월 십 오일이란 신앙이 선행과 결합해서 충만해지는 상태 중 마지막 새로운 상태를; 거둔 땅의 소출이란 신앙과 선행이 선한 일들 안에서 열매를 맺을 때를; 칠 일간 주님의 절기를 지킴이란 모든 완성함과 거룩함 속에서 심정이 기뻐하고 즐거워함을; 첫 날 엄숙하게 쉬고 팔일 째에도 엄숙하게 쉬어라란 항구적으로 갱신되어지는 쉼과 평화의 상태가 가장 수준 낮은 원리에서 높은 수준에 이르기까지 모두 되어져 이를 통해 진리와 선, 선과 진리의 상호결합이 있게 됨을 뜻한다. (9294, 9295, 9296-5, 2044, 851, 7690, 9286, 9287, 2044, 716, 84, 8889, 9296-5)

40절. 그리고 너희는 첫째 날에 훌륭한 나무들의 열매, 종려나무의 가지들, 무성한 나무들의 큰 가지, 그리고 개울의 버드나무를 가져와라. 그리고 너희는 칠 일 동안 주 너의 하느님 앞에서 즐거워하라.

영적 의미

그러므로 이 상태에는 진리들로부터 오는 온갖 종류의 즐거움, 즉 영적, 합리적, 자연적, 감각적 진리들로부터 오는 즐거움이 있다. 또한 심정과 이와 병합된 이해함으로부터 주님 가운데서 즐거워하는 충만된 상태, 거룩한 상태도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첫 날 훌륭한 나무의 과일, 종려나무 가지, 무성한 나무의 큰 가지, 개울의 버드나무를 가져옴이란 위의 상태에서는 진리들 즉 영적, 합리적, 자연적, 감각적 진리들로부터 오는 온갖 종류의 선을 즐기게 된다는 것을; 칠 일간 주 너의 하느님 앞에서 즐거워 하라란 심정과 이해함이 병합되어 주님 안에서 기뻐하는 거룩한 상태를 뜻한다. (9296-6, 2001, 2044, 716)

41절. 그리고 너희는 해마다 칠 일을 주님에게 절기로 그것을 지킬 것이다. 이것은 너의 대대로 영원한 법령이다. 너희는 일곱 째 달에 그것을 지켜라.

영적 의미

그리고 위 상태는 거듭나는 사람 즉 외적, 내적 인간의 양 측면 모두에서 항구적으로 거룩한 상태이다. 이는 신앙을 수단으로 인정하는 데서 시작되어 사랑으로부터 즐거워하는 끝에까지 이르는 거듭나는 상태의 최정점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해마다 칠 일간 주님에게 바치는 축제일로 지킴이란 위의 상태는 항구적으로 거룩한 상태가 될 것임을; 대대로 길이 지킬 규정이란 외적으로도 항구적임을; 일곱째 달이란 거듭나는 상태는 신앙을 수단으로 주님을 인정함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부터 즐거워하여 끝맺는다는 것을 뜻한다. (2044, 716, 7884, 851)

42절. 너희는 칠 일 동안 초막(오두막, booth)에서 거주하라. 이스라엘(족)에 속하는 본토박이인 모든 이는 초막에서 거주한다.

영적 의미

참으로 위 상태는 선 가운데 건설되는 내적 교회인, 외적 교회인에 속하는 갖가지 수준의 교회인에 대한 천적 상태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칠 일간 초막에서 거하되 이스라엘 국민은 누구나 초막에서 살아야 한다란 위 사항들을 갖가지 수준에 있는 교인들의 천적 상태, 즉 선 안에서 건설되는 내적, 외적으로 있는 교회에 속하는 사람들의 상태라는 뜻이다. (9296-6)

43절. 내가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이집트의 토지로부터 데려올 때, 내가 그들을 초막에 거주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너의 자손 대대로 알게 하려 해서 이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모든 이가 알아야 하는 바, 자연적일 뿐인 인간 수준의 굴레를 주님께서 벗겨주실 때,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의 거룩한 상태는 영적 교회인에 소속된다는 것, 이리하여 그는 선과 진리가 영원히 결합함으로 심정과 이해함 안에서 그분을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렇게 하는 것은 내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 초막에서 살게 했던 일을 후손 대대로 상기시켜 주려는 것이다. 나 여호와가 너희 하느님이다”이란 모든 이가 알아야 할 것이 있는 바,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의 거룩한 상태는 영적 교회인이 주님에 의해 자연적일 뿐인 인간의 굴레에서 해방될 때에 그들에게 귀속되고, 그렇게 해방시켜 주신다는 것을 영적 교회인으로 하여금 선과 진리가 영원히 결합함을 수단으로 심정과 이해함에서 인정하게 하려는데 있다는 뜻이다. (9296-6, 8866, 2001, 9845)

44절. 그리고 모세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주님의 절기들을 선언하였다.

영적 의미

말씀 안에 있는 기쁨과 즐거움과 더불어 선을 자기것이 되게 하는 거듭남의 위 거룩한 과정에 관해 밝히 알게 하시는 것은 신성한 섭리에 속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모세가 주님의 절기들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선포함이란 선이 말씀 안에 있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더불어 자기 것이 되는 거듭나는 이 거룩한 과정을 밝히 알게 하시는 것은 신성한 섭리에 속한다 라는 뜻이다. (7010, 3654, 10355, 9294, 2187)

23장의 종합적 고찰

본 장의 주제들을 살펴보기에 앞서 생각해 보아야 할 네 가지 것이 있다. 즉 글자적 의미 측면에서의 말씀, 글자적 의미에 있는 상응, 상응을 수단으로 글자적 의미가 함유하고 있는 내적 의미, 내적 의미에 묘사되어 있는 인간을 실지 체험하는 상태들이다. 말씀은 인류가 저작해 왔던 여느 책들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책이다. 그 이유는 크게 나눌 수 있는 세 가지 의미 즉 천적, 영적, 자연적 의미들이 집합하여 완전한 시리즈로서의 내적, 영적 의미를 형성해 가는 방식으로 배열된 상응적 표현으로 빈틈없이 건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말씀을 얼핏 본다면 마치 글자적 의미가 영적 의미를 생산하고 있는 듯 여겨질는지 모른다. 따라서 말씀의 외관인 글자적 의미를 가지고 확증하는 것은 잘못된 방식이다. 사실 말씀의 글자적 의미 또는 외관을 생산하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말씀 속의 내적 의미이다. 마치 주님께서 신성한 사랑으로부터 그분의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영계의 모든 것, 자연계의 모든 것을 생산하시는 것과 같다. 따라서 자연계는 영계의 상응물일 뿐이다. 이 방식으로 말씀을 생각하게 되면 이른바 창조물들은 인간의 생산물이 아니라 신성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연계의 모든 것에는 최말단 형체로서의 신성한 진리 또는 신성한 지혜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말씀은 최말단 형체 안에 있는 신성한 인간이요, 바꿔 말해 본질인 신성한 생명 또는 사랑이 최말단 형체 안에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유한한 인간 생명은 무한하신 분 즉 신성한 인간의 생명으로부터인 바, 말씀은 인간 존재가 거듭나아가는데 따르는 모든 상태들을 기술하고 있다는 것까지도 자연히 납득된다. 그러므로 여느 인간 생명 그리고 그 생명의 상태 변화를 묘사해 주는데 있어 이 세상 어떤 것도 말씀보다 더 완전하게 그려내 주지 못한다. 본 장에 묘사된 것으로부터 배우는 바, 인간은 거듭나는 동안 그 사람과 더불어서 싸움과 쉼이 번복되어 가는 상태들을 체험해 간다는 것이다. 한가지 유의할 사항이 있다. 싸움의 상태가 여섯 번 반복된다고 해서 거기에 꼭 맞게 여섯 번의 쉼의 상태가 있으리라는 수학공식 같은 생각을 글자 의미로부터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육 일 간 또는 여섯 번이라는 숫자 여섯은 영적으로는 양을 말하는게 아니라 상태들의 품질을 명시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6은 전투 상태를, 7은 휴식 상태를 의미한다. 이미 살핀바 있지만 말씀 안에서 위 두 숫자 모두는 각기 다른 국면에 있는 충만과 완성을 명시한다. 본 장에서 6은 싸움에 관련되는 모든 상태를, 7은 쉼에 관련되는 모든 상태들을 명시하고 있고 이로부터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인간의 일반적인 상태는 세부적인 상태와 구별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주목해 두어야 한다. 그 이유는 글자적 의미 만에서 생각을 끌어낼 경우 내적 의미에 관한 우리의 지각함이 혼동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제 주목해 볼 것은, 안식일이 거룩한 모임이라 불리는 것, 글자적 의미로 이렇게 불리는 것은 매우 적절한 표현이라는 것에 대해서이다. 어찌됐든 이런 생각은 영적일 경우 사라지게 되어있고 동시에 이는 주님에 의해 선 밑에 진리들이 질서 있게 배열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 이유는 선을 수단으로 진리들은 결합되고, 선으로부터 진리들은 생명과 활동력을 가진다. 그리고 진리들 안에 있는 선에 의거 인간은 각자의 품질을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해서 “너희는 어디에서 살든지 이 날은 주님에게 안식일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가 사람들이 집안에 거주하듯 선은 진리 안에 언제나 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특정한 개인 안에 있는 선은 여느 어떤 개인 안에 있는 선과 언제나 구별되고 진리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반적 상태에는 종속되는 세부적인 상태들이 언제나 포함되어 있다. 세부 상태 중 첫 번째 상태는 주님에 의해 악으로부터 해방되는 상태임은 두 말할 여지가 없다. 이는 인류라는 전체적 측면에서, 또는 개개인의 측면에 적용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모든 인간은 인간 측면에서의 주님에 관한 가설을 수단으로 구속되어 왔다. 이 가설 안에는 인간을 속박하는 지옥의 권세를 이겨내시는 것, 그러므로 해서 거의 잃어버릴 뻔 했던 자유, 즉 선과 악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자유가 각 개인들에게 보존되게 해 주셨던 사항이 포함되어 있다. “거의 잃어 버릴 뻔 했던”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악의 권세가 절대적으로 득세하기 시작했기 때문인데 만일 구속의 역사가 결과되지 않았다면 인류는 멸망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의 안전은 선과 악 또는 천국과 지옥 사이의 영적 균형(equilibrium)에 의존되기 때문이다. 이 균형으로 인해 인간은 선택의 자유 속에 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주님의 강림은 당연히 있어져야 했던 것이고 이 위대한 구속이 성취되는 한편 건전한 마음을 지닌 모든 사람은 계속 선택하는 자유를 가졌고 악을 선택하게 하는 강요가 없어졌던 것이다. 예를 들면 세례자 요한의 선교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 마태복음 7장 끝 절의 경우같이 주님의 가르침에 경청하게 된 것 모두가 이에 해당된다. 이후 인간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잃어버리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러하리라.
이제 악으로부터 해방되는 사항을 일반 측면 뿐만 아니라 개인 측면에서도 생각해 보자. 이는 주님이 하시는 일에 인간이 협동(co-operation)함을 통해 주님께서 결과되게 하신다. 그 이유는 협동하느냐 않느냐를 선택하는 자유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자유 의지 또는 자유로운 결정을 각 개인이 실시하는 사항이 유월절이 제정되는 사건으로 표현되어져 있는데 좀 더 집어내어 말한다면 어린 양 또는 염소를 선택하는 것으로 의미되고 있다 (출애굽 12:5). 그 이유가 이 짐승이 순진 측면의 주님으로부터 온 선을 나타내고, 이 선이 인간을 해방한다. 그리고 이 짐승의 고기를 먹는 것은 이 선을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다. 한편, 그 피는 집의 좌우 문설주와 문 상인방에 바르도록 지시되었는데 이는 자연적 수준의 인간 안에 있는 진리들이 앞서 받아들여지게 됨을 의미한다. 본 장을 다루는 이 지면을 통해 유월절의 사건 모두를 설명할 수는 없고 단지 그 사건이 개개인의 측면에서 있게 되는 구속의 방법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만을 강조하고 생략하기로 한다. 위와 같은 관점이 무교절, 누룩 없는 빵을 먹는 절기에 관한 사항에도 적용된다. 누룩이 안 들어간 빵을 먹는 것, 즉 무교절은 거듭나는 과정에서 개개인이 깨끗해지는 것을 나타내준다. 무교절에 관한 주제를 살피는 가운데 명확히 알게 되는 것은 보편적인 구속과 세부적인 구속 즉 인류라는 차원에서의 구속과 각 개인 차원에서의 구속이 어떻게 연결을 이루고 있는가에 대해서이다. 한 가지 상념해야 할 사항은, 위의 구속 또는 악에서의 해방, 그 결과 깨끗해짐은 언제나 인간과 더불어서라는 것, 그리고 이는 계속적인 경험 뿐만 아니라 한 가지 경험 안에서 동시에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악행을 계속 중단해가고 선행을 잘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다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위의 역사를 차츰 밝히 알게 해 주신다.
인간 거듭남에 종속된 두 번째 상태는 위의 사항보다 좀더 신경을 써야 하리라 본다. 이 두 번째 상태가 추수절(the feast of Pentecost)로 표현되고 있는데 선 안에 진리가 이식되는 상태이다. 이 표현은 악에서 해방됨이라는 앞 문단의 주제만큼 쉽게 이해될 수 없는 말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이런 질문이 있을는지 모른다. “어떻게 선 안에 진리가 이식될까?” 사실 대답은 단순하다. 인간이 진리를 원하고 사랑해서 실천할 때 그 진리는 선 안에 이식되어진다. 그러나 우리가 진리를 알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진리를 바래고 사랑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 이 질문으로부터 얻게 되는 명확한 것은, 가르침을 받는 상태가 먼저 있어야 할 것이라는 것, 이 가르침 안에 진리들이 있고, 이 진리가 땅(마음)에 뿌려져서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도록 장치되어 있다는 것일 게다. 추수절의 햇곡식(첫 열매)은 거듭나는 인간이 습득한 진리들에 의거 자기 생활을 만들어 가는 과정 중 첫 노력을 상징하기에 꼭 맞는 표현이다. 그래서 두 번째 절기와 연결을 이루게 하는 햇곡식에 관련된 사항이 매우 상세하게 언급되고 있다. 우리의 초년 시절에 단순한 자극 때문만이 아닌 원리로 삶을 꾸린다는 것은 대단히 큰 가치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리를 습득하지만 자신 스스로 그 진리에 언제나 순종되도록 준비되는 것은 아니다. 한가지 여기서 알게되는 것은 진리가 선 안에 이식되는 과정은 악으로부터의 해방에 이어 시작되어 항구적으로 있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순종의 각 행동은 올바른 방향으로의 한 단계이다. 이런 한 단계가 시작되기 전 먼저 주님을 인정함이 있게 되는데 이것이 곡식단을 흔듦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흔듦(waving)은 신성한 작용의 결과 또는 신성이 마음에 흘러듦으로 인해 있게 되는 마음의 활동이다. 유월절은 유대교의 달력으로 보아서 7월 14일이고, 안식일이 15일, 흔들어 바침은 16일에 있어진다. 이는 인간 삶에 있는 상태들에는 연속성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 우리는 거듭나는 과정 속에서 순종을 수단으로 진리를 선 안에 항구적으로 이식해 간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우리는 선과 진리에 관한 각자의 애착을 주님께 바침으로 그분을 예배하게 되어 있다. 이것이 어린 양을 바치는 것, 식사 제물, 음료 제물을 바치는 것으로 의미되어 있다. 그렇게 예배드렸다고 해서 진리가 선 안에 완전히 이식되는 정점인 마지막을 장식하는 절기에 도착된 것은 아니다. 영적으로 어떤 셈(count)을 해야 할 게 있다. (날 수를) 세어 본다는 것은 각자의 상태에 관한 품질을 알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날수를 제대로 헤아릴 줄 알게 하시어 우리의 심정이 지혜를 얻게 하소서.” 이는 시편 90편 12절의 말씀이다. 이는 주님만이 우리 속 모든 상태에 관한 품질을 아실 수 있어 각자 상태의 품질에 꼭맞는 납득을 해주실 수 있으시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분만이 우리의 모든 상태를, 아마 우리가 할 수 없는 것들까지 모두를 정리정돈 해 주신다. 또한 우리의 상태들은 선 안에 진리가 이식됨을 수단으로 결과되는 선의 발전에 달려 있다. 이로부터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것은 세부적으로 있는 사항들, 즉 흔들어 바침의 반복, 추가되는 세세한 제물들에 관한 비밀스런 원인들일 것이다. 그리하여 선 밑에 진리들이 완전히 배열되는 상태, 이른 바 “충분히 밝게 하심, 충만된 계시”라는 최정점에 도달되어 각종 시험들, 즉 주님을 예배하는데 이기적이고 세상적 동기로부터 행동하려는 모든 기질이 정지된다. 이 항목에서 특이한 것은 누룩을 넣어 만든 새 식사 제물이다. 그 이유가 일반적으로 제단에 바쳐지는 식사 제물에는 누룩을 넣어 굽지 않도록 명령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문의 경우 이에 반대되는데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진리가 선 안에 이식되는 동안 진리가 먼저 깨끗하기 위해 진리와 거짓의 싸움이 있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우리로 알도록 명시해 두시기 위해서이다.
이제 선의 이식을 의미하는 세 번째 절기를 살피기 전 먼저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나팔 부는 절기(새해맞이)와 보상(죄 벗음)의 날과 더불어 절기 세 가지 모두가 칠월에 거행된다는 것이다. 중간 중간에 있는 절기들이 정확히 지정된 날 칠월에 거행되어야 하는 이유가 글자적 의미에서는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영적 의미로는 충분한 설명이 가능하다. 일곱째 달은 진리가 선 안에 이식되는 작업이 계속되는 동안 거룩한 신앙의 상태가 최정점에 이르는 것을 명백히 표현한다. 그리고 칠월 첫째 날과 열 번째 날도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즉 특별한 계시(밝히 알게 해 주심, 첫째 날)는 진리가 선 안에 충분히 이식되게 하고, 이 이식된 진리는 숫자 열로 명시되는 주님께서 우리 속에 아껴두신 것들(remains)이 충만해지는 상태로 완성된다는 뜻이다. 이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사항은 악의 완전한 제거인데 이것이 보상받는 날로 의미된다. 이에 관해서는 제 16장에서 충분히 살폈으므로 생략한다. 엄밀히 말한다면 완전한 악의 제거나 계시는 인간의 실제 경험에 의거한 심판 과정에서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우리 속에 든 악이 충분히 제거되기 전에는 우리 속에 진리가 아무리 많아도 선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개개인에 관련된 거듭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는 본문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느낄 수밖에 없으리라.
한정된 지면 관계로 세 번째의 큰 절기에 관련하여 한 두 가지 것만을 살펴볼까 한다. 이 절기는 선이 진리 안에 이식되는 것을 의미한다. 먼저 상기해둘 사항이 있다. 우리 삶의 두 상태들이 두 번째, 세 번째 절기로 나타내지고 있다는 것, 비록 우리가 의식하는 상태에 따라 계속적으로 거행되고 있다 해도 우리는 전자의 상태에 있을 경우 자연적 삶 속에서 선을 충분히 실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연적 수준의 인간은 그 속에 있는 악과 잘못들 때문에 영적 수준의 인간과는 하나를 이루지 못한다. 더구나 주님으로부터 있어지는 선이 이식되는 것은 진리의 이식과 거의 동시적으로 발생한다. 한마디로 우리는 거의 동시에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진다. 인생이라는 여행에 위 사항을 첨가해 생각해 본다면 여행기간 동안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에 얽힌 심정 상태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큰 위로가 될 수도 있다. 여행의 종착지인 천국에서 실감하게 될 마지막 선의 상태는 아주 어린 삶의 시기에 주님께서 우리 안에 이식해 두신 선과 정확히 같을 것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선의 이식을 의미하는 절기들이 수확하는 절기(the feast of the ingathering)라 불릴 뿐 아니라 장막절(the feast of tabernacles)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장막(초막)절은 사람들이 칠 일간 자기 집처럼 거주하는 곳이 천막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텐트에 거주함은 선이 진리 안에 거주하는 것, 또는 내적 인간이 외적 인간 안에 거하는 것을 명시해준다. 이로부터 알 수 있는 장막절에 관한 게 있다. 즉 선이 이식될 때 외적 인간은 내적 인간과 하나를 이루고 선은 최말단에 존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절기라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이 세상, 저 세상 삶 모두에서 선에 관한 자기의 외적 상태가 내적 상태와 하모니를 이룩하도록 노력해 가는 과정은 계속된다. 계속되는 가운데 있게 되는 충만함의 모두 안에서 위 두 상태의 일치는 점점 더 쉽게, 더 빨리 이루어져 가게 된다.
마지막으로 주목해둘 것이 있다. 훌륭한 과일과 종려나무가지가 위 장막절의 의미와 어떻게 연결되는 가에 대해서이다. 이 구절은 우리가 완전한 상태 안에서 온갖 종류의 선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있는 모든 선들을 어떻게 즐기게 되는지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식물 형태로 볼 때 종려나무에는 가지가 없다. 그러나 그 나무에는 나뭇가지처럼 보이는 무성한 잎들을 가지고 있다. 형태가 이러하다고 해서 그 나무가 지니는 의미에 어떤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상응으로 살피면 알게 되므로 첨언했을 뿐이다. 본 장에 걸쳐 있는 각종 절기를 내적 의미로 살폈다. 이는 거듭나는 인간의 전 생애, 계속적인 체험과 더불어 동시에 일어나는 거듭남, 주님의 역사에 인간의 협동이 어우러져 거듭남은 작은 완성에 작은 완성이 겹쳐 물방울에 물방울이 합쳐져 시냇물과 강물이 되듯 어떻게 완성되는가를 우리로 발견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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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22장 해석

레위기 22장

영적 의미 요약

* 선 가운데, 그리고 그 선에서 파생된 진리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 대한 가르침, 여러 가지 불순함들로 해서 더럽혀질 때 그들은 주님을 인정할 수 없고 예배할 수도 없다. 따라서 모독하는 죄를 범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1-9절.
* 선을 자기 것이 되게 할 수 있는 품질을 갖추지 못한 이들에 관하여, 모독이 있지 않도록 해야 하리라, 10-16절.
* 선으로부터의 모든 예배는 진리를 수단으로 완전해져야 한다. 어떤 악이나 거짓 때문에 불완전한 예배는 열납될 수 없다, 17-25절.
* 주님을 예배하는데 모독을 피하기 위한 세부 사항들이 더 추가된다, 26-33절.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 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지각을 주시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주님께서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은 유입을; 모세는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말하심은 지각을 말한다. (2001, 2951, 7010, 1791, 1822)

2절.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야기하라, 그들은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나를 거룩히 받드는 것, 즉 그들의 거룩한 것들로부터 그들 자신들을 분리하여, 그들이 내 거룩한 이름을 모독하지 않게 하라. 나는 주이다.

영적 의미

천적이거나 영적인 선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가르침이 주어진다. 불순할 경우 그들은 주님을 예배함과 영적 교회 사람의 성직 임무에서 분리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모독이 있지 않도록 하라. 그 이유는 천적, 영적 선과 진리는 신성한 선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야기하심이란 천적, 영적 선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가르치심을; 이스라엘의 자손들의 거룩한 것들로부터 그들 자신들을 분리함이란 그들은 주님을 예배함에서 분리될 수밖에 없음을; 또한 주님을 예배하는 성직 임무에서 분리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 이유는 모든 진정한 예배는 선을 수단으로 결과되고, 아론과 그의 아들은 성직자들로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를 거룩히 받드는 것”란 위의 예배, 성직 임무는 거룩하다는 것을; “나의 거룩한 이름을 모독하지 않게 하라”란 신성한 선과 진리는 자신들 안에 있는 천적, 영적인 선과 진리를 더럽힘으로 모독된다는 것을; “나는 주”란 천적, 영적인 선과 진리는 신성한 선으로부터 존재함을 뜻한다. (2951, 7010, 9946, 9903, 2776, 9946, 8882, 2001)

3절. 그들에게 말하라, 자손 대대로 너의 씨로부터 있는 자는 누구든지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주님에게 바친 것, 즉 거룩한 것들에 접근하는데, 그의 불결함을 가지고 있으면, 그 혼은 내 앞에서 잘리운다. 나는 주이다.

영적 의미

그런고로 천적 인간과 영적 인간이 지각하는 바, 누구든지 모든 선과 진리, 거룩함이 그분으로부터라고 인정함으로 해서 순수한 예배 안에서 주님께 접근 될 것인데, 그럼에도 이기적 동기로부터 주님께 접근을 한다면 선과 진리에서 분리되는데, 그 이유는 그 근원이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들에게 말하라란 그러므로 천적 인간과 영적 인간은 지각함을; 너희 후손 대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께 바치는 거룩한 제물을 가까이 하는 자란 순수한 예배 안에서 주님께 접근하는 사람은 누구든지를; 이 예배는 제물을 바침으로 표현되고 있고 “주님의 거룩한 것들”이란 모든 선과 진리, 거룩함은 그분으로부터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불결함이 있는 자란 이기적 동기가 혼합되어 모독함을, 주님 앞에서 잘리움이란 선과 진리에서 분리되고, 따라서 주님에게서도 분리됨을; “나는 주”란 주님이 모든 선의 근원임을 뜻한다. (9946, 10249, 2776, 9903, 349, 5619, 868, 8882, 10130, 5302, 223, 2001)

4절. 아론의 씨로부터 있는 자가 나병이나 유출을 가지고 있을 경우, 그가 깨끗해질 때까지 그는 거룩한 것들을 먹지 못한다. 그리고 죽은 자로 인해 불결한 어떤 것에 닿은 자, 또는 자기의 씨가 자기로부터 나간 사람.

영적 의미

선으로부터의 애착을 지녔는데, 외적 이든, 내적 이든 진리를 모독하는 사람은 그가 예배에서 이기적 동기로부터 행동하기를 멈출 때까지 선을 자기 것이 되게 할 수 없다. 이는 아래에 열거되는 것에 아주 경미하게 접촉해도 마찬가지인 바, 즉 영적 생명이 없는 표면적 행사에 불과한 예배, 또는 선에서 분리된 진리의 애착으로 드리는 예배,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의 후손은 누구를 막론하고 나병자든 유출을 가진 자든 이란 진리를 외적, 내적으로 모독하는 사람을, 그 이유는 그가 선으로부터 나오는 애착 안에 있기 때문이다. 깨끗해지게 되기 전에는 거룩한 음식을 먹지 말라란 예배에서 이기적 동기로 행동하는 것을 중단할 때까지 선을 자기 것을 삼을 수 없다는 것을; 죽은 자로 해서 어떤 불결한 것에 닿은 사람이란 영적 생명이 없는 오로지 예식뿐인 예배에 아주 경미하게 접촉함을; 씨가 나간 자(정액을 흘린 사람)이란 선에서 분리된 진리의 애착으로 예배함을 뜻한다. (6963, 10283, 10130, 10249, 9946, 2187, 4545, 10130, 5407, 880, 1798, 4837)

5절. 또는 자기를 불결하게 만들런지 모르는 어떤 기는 것을 만진 자는 누구든지, 또는 지니고 있는 불결함이 무엇이든 불결함을 가지고 있을런지 모르는 사람과 접촉한 자,

영적 의미

또는 불순함의 원인인 감각적일 뿐인 기쁨, 또는 종류가 어떠하든 불순해지게 되는 여하한 악들,

세부적 영적 의미

기는 것을 만진 자란 단지 감각적 기쁨 뿐인 불순한 것과 접촉함을, 어떤 종류의 불결 이든 불결한 사람과 접촉한 자란 종류 여하를 막론하고 불순해지려는 어떤 악들을 뜻한다. (10130, 746, 7424, 10130)

6절. 이렇게 접촉한 혼은 저녁까지 불결하다, 그리고 그가 물로 자기 살을 목욕하지 않으면 거룩한 것을 먹지 못한다.

영적 의미

위와 같은 행동은 상태의 변화가 있을 때까지 불순해 있게 한다. 그래서 그는 회개함에서 진리로 깨끗해질 때까지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불결한 것에 닿은 사람은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란 위 같은 행동은 인간의 상태가 변할 때까지 불순하게 한다는 것을, 목욕을 할 때까지는 거룩한 음식을 먹지 못함이란 회개 함 속에서 진리로 깨끗해질 때까지 선을 자기 것 삼을 수 없음을 뜻한다. (10130, 7844, 2187, 2776, 3147)

7절. 그리고 태양이 질 때, 그는 깨끗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그는 거룩한 것들을 먹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이것이 그의 빵이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그러나 이기적 사랑을 거절함으로 위 상태가 죽어질 때 그 사람은 깨끗하다. 그러면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것이 그의 통치하는 기쁨이요 그의 영적 삶을 지탱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해가 질 때 깨끗하게 된다란 이기적 사랑을 거절함으로 상태가 지나갈 때 그 사람은 깨끗해진다는 것을, 그 다음에야 자기 양식인 거룩한 음식을 먹는다란 그의 통치하는 기쁨이 선이기 때문에 선을 자기 것으로 삼게 될 것이고, 그 선만이 그의 영적 생명을 받쳐 줄 수 있다는 뜻이다. (8615, 8487, 4545, 2187, 2776, 2105)

8절. 저절로 죽은 것, 또는 짐승들로부터 찢기운 것은 그것과 함께 자신을 더럽게 하는 바, 그는 먹지 말라. 나는 주이다.

영적 의미

그러나 자연적일 뿐인 선, 다시 말해 무의식중에 악과 혼합된 선은 자기 것이 되게 못한다. 그 이유는 그것이 그를 불순하게 하기 때문인 바 그의 선은 주님으로부터서만 있어야 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자연사한 짐승이나 찢겨 죽은 짐승은 불결하게 하는 바 먹지 말라란 그는 단지 자연적일 뿐인 선은 자기 것 삼지 않아야 한다는 것, 또는 무의식적으로 악과 혼합되어지는 자연적인 선을 자기 것 삼지 않아야 하는데 그 이유는 그 선이 그를 불순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나는 주”란 그의 선은 오로지 주님으로부터만 있다는 것을 뜻한다. (2187, 4171, 10130, 2001)

9절. 그러므로 그들은 내 명령을 지켜서, 그들이 그것 때문에 죄짓지 않도록 하라, 그리고 만일 그들이 그것을 모독하면 그 때문에 죽을 것이다. 나는 그들을 정화하는 주이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교인들은 내적 선과 진리가 외적인 것과 결합해 있음으로 예배하되 자신이 악 속으로 붕괴되지 않도록 하라. 모독은 그를 황폐케 하고야 만다. 그 이유는 주님으로부터 온 선만이 인간을 거룩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의 명령을 지킴이란 교인은 외적인 것과 결합된 내적 선과 진리로 예배해야 함을; 그대로 지켜 죄를 낳지 않도록이란 그가 악 쪽으로 붕괴되지 않기 위해서임을; 죽으리라란 황폐됨 또는 모든 선과 진리가 박탈됨을; 그들이 그것을 모독한다면이란 모독 때문임을; “나는 그들을 정화하는 주”란 주님 만으로부터 오는 선만이 인간을 깨끗하게 함을 뜻한다. (3382, 9156, 9937, 2908, 2001, 8042)

10절. 낯선 자는 거룩한 것을 먹지 못한다. 성직자의 체류자나 고용된 종도 거룩한 것을 먹지 못한다.

영적 의미

교회 밖의 사람은 거룩한 선을 자기 것으로 삼는 것, 단지 자연적 수준일 뿐인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교회 내라도 자연적 수준의 지식 속에 있는 사람, 또는 뭔가를 얻고자 올바른 것을 행하는 사람도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낯선 자는 거룩한 음식을 먹지 못한다란 교회 밖의 사람은 거룩한 선을 자기 것 삼지 못함을;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연적일 뿐인 사람은 거룩한 선을 자기 것 삼지 못함을; 성직자를 찾아온 사람(체류자)이나 그의 고용된 종도 거룩한 음식을 먹지 못함이란 자연적 지식으로 교회 내에 있는 사람과 이득을 위해 의를 행하는 사람은 거룩한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다는 뜻이다. (4544, 8002)

11절. 그러나 만일 성직자가 어떤 혼을 산다면, 자기 돈으로 구매하면, 그는 그것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성직자의 집에서 출생된 자도 그러한 바, 그들은 그의 빵을 먹을 것이다.

영적 의미

그러나 진리에 순종하는 선한 생활을 수단으로 죄로부터 구속되어진다면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다. 내적으로 선 가운데 있는 사람은 외적으로 있는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으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사들인 혼, 성직자의 집에서 태어난 혼이란 진리에 순종함으로 선한 생활을 하여 죄에서 구속되는 사람과 내적으로 선 가운데 있는 사람을, 그들이 빵을 먹을 수 있다란 자기 것으로 삼음을 뜻한다. (5374, 9946, 1708, 2187, 2165)

12절. 그리고 만일 성직자의 딸이 낯선 자에게 시집간다면, 그녀는 거룩한 것에서 들어올린 제물을 먹지 못한다.

영적 의미

만일 누가 내적으로 주님으로부터 파생된 선에 대한 애착 가운데 있는 데도 이기적 사랑 속의 악을 그 애착에 결합시켜 모독한다면 그 애착이 주님으로부터 임을 지각하는 선을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낯선 자와 결혼한 성직자의 딸은 거룩한 양식으로 들어 올린 제물을 먹지 못한다란 만일 누가 내적으로 주님에게서 오는 선의 애착 안에 있으면서도 이기적 사랑의 악을 그 애착과 결합시킴으로 그 애착을 모독한다면, 주님으로부터 있게 됨이 지각되는 천적 선을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은 불가능하다. (3703-15, 9946, 2173, 4544, 2187, 10093)

13절. 그러나 만일 성직자의 딸이 과부이다면, 또는 이혼했다면, 그리고 아이가 없다면, 그리고 자기 아버지의 집으로 되돌아와 어린 시절 같이 있다면,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의 빵을 먹을 것이다. 그러나 낯선 자는 그것으로부터의 것을 먹지 못한다.

영적 의미

누가 선한 애착을 가지고 있되 진리 또는 선이 없이 비생산적인데도 선과 내적 연관을 지니고 있어 마치 거듭나는 초기 같다면 그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자연적일 뿐인 애착은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의 딸이란 선의 애착 가운데 있는 사람을, 과부 또는 이혼함이란 진리 또는 선이 없음을; 자식이 없다란 진리 또는 선이 생산되지 않음을; 아버지의 집으로 되돌아옴이란 서로가 내적으로 연합됨을; 어렸을 때와 같이란 거듭나는 시작 때와 같이를; 제 아버지의 빵을 먹는다란 아직 선이 자기 것 될 수 있음을; 낯선 자는 먹지 못함이란 자연적일 뿐인 애착은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음을 뜻한다. (3703-15, 4844-16, 489, 3703-15, 3183, 4544, 2187)

14절. 그리고 만일 사람이 모르고 거룩한 것을 먹었다면, 그 다음 그는 그것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놓을 것이다, 그리고 성직자에게 거룩한 것을 주어라.

영적 의미

누가 무지해 가지고, 또는 부주의해서 거룩한 선을 모독했다면 그는 제 스스로 자기에게 선이 남아 있는 게 없다는 것, 주님으로부터 받아야 함을 인정함으로 원상 회복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사람이 모르고 거룩한 것을 먹을 경우란 누가 몰라 가지고 또는 부주의해서 거룩한 선을 모독하는 경우를; 거룩한 음식의 오 분의 일을 더 보탠다란 제 스스로는 남아 있을 선이 없음을 인정함으로 원상 복귀해야만 함을; 성직자에게 거룩한 음식을 줌이란 그가 주님으로부터 선을 받음을 뜻한다. (9156, 10042 II, 2187, 2776, 9946, 10227, 2776)

15절. 그리고 그들은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주님에게 바친 거룩한 것들을 모독하지 말라.

영적 의미

선 가운데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자기 속의 선이 모두 주님의 것인데 자기 것이라고 우겨 그 선을 모독해서는 안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께 바친 거룩한 것들을 모독하지 말라란 선 가운데 있는 사람은 누구나 주님께 모두 되돌려야 할 것들을 자기 공적인냥 치부하여 모독해서는 안 됨을 뜻한다. (8882, 2776, 9946)

16절. 그들이 자기들의 거룩한 것들을 먹을 때, 죄가 있음을 가져오는 불법을 그들로 하여금 낳게 하는 원인이 된다. 나는 그들을 정화하는 주이다.

영적 의미

그렇게 행하면 그는 책임져야 할 악한 상태에 자신을 가져다 놓게 된다. 그러면 그가 선을 받는데 손상을 입는다. 그러므로 진실로 인정해야 하는 것은 자신을 거룩하게 하는 모든 선은 주님으로부터 이다는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들로 해서 죄를 가져오는 불법을 낳게 한다는 것은 그렇게 행함으로 책임져야 하는 악한 상태에 자신이 있게 한다는 것을; 그들이 거룩한 음식을 먹을 경우란 위 경우에 선이 손상을 입음을; “나는 그들을 정화하는 주이다”란 인간을 거룩하게 하는 모든 선은 주님으로부터임을 진정으로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을 뜻한다. (9937, 2187, 2776, 2001, 8042)

17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더 나아가 지각을 주시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주님께서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말씀하심이란 유입을; 모세란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말하심이란 지각을 뜻한다. (2001, 2951, 1791, 1822)

18절. 아론에게, 그리고 그의 아들들에게,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들에게 이야기하라,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가문으로부터 이든, 이스라엘에 있는 낯선 자 이든 누구든지, 자기 봉헌물을 바칠 경우, 그것이 자기들의 서원들로부터의 어떤 것 이든지, 또는 자발적인 바침 이든지, 이것을 그들이 태워 바침으로 주님께 바칠 경우,

영적 의미

천적, 영적, 자연적 선 가운데 있는 이들, 그가 내적, 외적 교회 어디에 속해 있든 모든 이 각자가 자유 가운데 주님을 예배하되 그 목적이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 은택의 느낌을 가져서, 주님께 전적으로 자신을 헌신하고 싶은 바램을 내향으로 가지고 있다면,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과 그의 아들,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이야기하심이란 천적, 영적, 자연적 선 가운데 있는 이들에 대한 가르침 임을; 이스라엘 가문에 속한 사람과 그들에게 붙어 사는 낯선 자란 내적 교회와 외적 교회에 속한 이들을; 봉헌물을 바침이란 주님을 예배함을; 마음에 우러나서 드리거나 서약을 위해서란 은택에 감사해서든지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이든지 자유로움으로부터 예배함을; 태워 바침으로 드림이란 주님께 완전히 헌신함을 뜻한다. (9946, 4286, 3654, 7908, 923, 3880, 10053)

19절. 너희는 받아지도록 소들(beeves)이나 양들이나 염소들로부터 흠이 없는 수컷을 바쳐라.

영적 의미

그의 예배를 주님이 받으실 수 있게 하려면 이기적이거나 세상적 동기가 전혀 없어야 한다. 이는 자연적 선의 수준 이든, 영적 선의 수준 이든, 신앙의 선 이든 모두 해당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흠 없는 수컷이란 진리를 수단으로 선으로부터 예배함, 그리고 이기적, 세상적 동기가 없이 예배함을, 소나 양이나 염소 가운데서란 자연적 선으로부터, 영적 선으로부터, 신앙의 선으로부터를; “그분이 받으신다”란 주님이 받을 수 있는 것을 뜻한다. (725, 7837, 2180, 2088, 4169, 9506)

20절. 그러나 흠이 있는 것은 무엇이든, 너희는 바치지 말라, 그것은 너를 위해 받아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따라서 그 예배가 이기심 또는 세상욕으로 오염되어 있다면 받으실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흠 있는 것을 바치지 말라, 그리고 그것은 받아지지 않음이란 예배가 이기심과 세상 욕으로 더러워진다면 받아질 수 없음을 뜻한다. (7837, 9506)

21절. 그리고 누구든지 서약을 성취하기 위해, 또는 자발적으로 바치고 싶어서 이든, 주님에게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을 바칠 경우, 그것은 소떼나 양떼로부터 이다. 그것이 받아지기 위해서는 온전해야 할 것이다. 거기에 흠이 없어야 한다.

영적 의미

그리고 그가 자유함에서 주님을 예배하여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의지와 이해함 양쪽에서 하모니를 이루거나, 또는 사랑과 신성한 섭리에의 복종이 자연적 애착 수준이나 영적 애착 수준에서 있어져 예배한다면 이 예배는 완전할 것이다. 그리고 이기적이거나 세상적 동기가 혼합되어서는 안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께 평화 제물을 바친다는 것은 자유로부터 예배함을; 서약을 성취하기 위해서든가 마음에 우러나서 바치든지란 의지와 이해함의 양 측면에서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조화를 이루도록, 또는 자연적 애착 측면과 영적 측면에 관한 신성한 섭리에 복종함으로부터 또는 사랑으로부터임을; 흠이 없음이란 이 예배는 완전해야 하는 것, 그리고 이기적이고 세상적 동기가 어떤 혼합도 없어야 함을 뜻한다. (10097, 3880, 5913, 6126, 7837, 9506)

22절. 눈먼 것, 부러진 것, 또는 절뚝거리는 것, 또는 혹(wen)달린 것, 또는 비듬투성이(scurvy), 또는 딱지(scabbed) 있는 것, 이런 것들을 너희는 주님에게 바치지 말 것, 그것들을 주님에게 제단 위에서 불로 바치지 말라.

영적 의미

주님을 예배함은 무지로부터, 이해함이나 의지 속의 불완전한 애착으로부터, 또는 감각적, 세상적, 이기적인 결함들로 부패된 자연적 애착으로부터 있어져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이런 것들이 주님께 봉헌될 수 없는 인간을 섬기는데 만 소용이 닿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눈먼 것이나 뼈가 부러진 것, 절뚝거리는 것이나 혹 달린 것, 비듬투성이, 딱지 있는 것이란 의지 속의 불완전한 애착으로부터, 세상적, 이기적, 감각적인 것으로 부패된 자연적 애착으로부터의 예배를; 이것들을 주님께 바치지 못하고 주님께 바치려고 제단에서 태워 바치지도 못한다란 이런 애착들은 주님께 전적으로 봉헌되어질 수 없고, 인간을 섬기는데 만 바칠 수 있을 뿐임을 뜻한다. (2383, 9163, 210, 4302, 7524, 제 21장 18-20절, 923, 10053, 10055)

23절. 너무 길거나 너무 짧은 몸 부위를 가진 수소나 어린 양은 너희 자발적 바침을 위해서는 바쳐도 좋다. 그러나 서약을 위해서는 그것은 받아지지 않는다.

영적 의미

그러나 비록 불완전하다 해도 순진에 바탕을 둔 외적, 또는 내적 애착은 자유로이 예배될 때 주님께 바칠 수 있다. 그러나 의지와 이해함 모두를 수단으로 확증되었다면 위의 예배는 받아질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수소나 어린 양 가운데 한 다리는 길고 한 다리는 오그라진 것을 마음에 우러나 바치는 제물로 삼을 수 있다란 순진에 바탕을 둔 외적 또는 내적 애착들은 비록 불완전해도 그의 예배 드림이 마음에 우러난 경우라면 주님께 바칠 수도 있다는 것을; 서약을 위해서는 위의 짐승을 바칠 수 없다란 불완전함이 이해함과 의지 모두에서 확증되어 있다면 위의 예배는 받아질 수 없음을 뜻한다. (10021, 10132, 10109, 581, 583, 673-3, 21장 18절, 10097, 3880, 9506)

24절. 불알이 타박상을 입은 것, 으스러진 것, 또는 깨진 것, 또는 잘라진 것의 경우, 너희는 주님께 바치지 못한다. (고로) 너희는 너희 토지에서 (이것을) 행치 말라.

영적 의미

사랑과 지혜, 선함과 진리, 선행과 신앙, 또는 애착과 총명의 천국적 결혼을 위반함을 통해 내적, 외적으로 거룩치 못하다거나 불순해 있는 애착은 내적이든 외적이든 주님을 예배함에 봉헌될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불알이 타박상을 입은 것, 으스러진 것, 깨진 것, 잘라진 짐승이란 사랑과 지혜, 선함과 진리, 선행과 신앙, 또는 애착과 총명이라는 천국 결혼을 위반하여 내적, 외적으로 불순하여 거룩치 않은 것을; 너희 땅에서 그런 것을 바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란 위의 애착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주님을 예배하는데 봉헌될 수 없다는 뜻이다. (10303, 431, 2173, 5053, 5060, 9163, 9056, 2799-23, 923, 683)

25절. 낯선 자의 손으로부터 이런 것들 중의 어떤 것을 너희는 너희 하느님의 빵으로 바치지 말라. 그 이유는 그들의 부패함이 그것 안에 있기 때문, 그것들에 흠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너희를 위하여 받아지지 않을 것이다.

영적 의미

어떤 종류이든 자연적일 뿐인 사랑의 힘으로 주님의 진정한 예배를 증진시키려 들지 말라. 그것들은 느낌과 생각에서 불순하기 때문이요 주님과 결합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위의 불구나 병신을 낯선 자의 손에서 받아 너희 하느님의 빵으로 바치지 말라란 주님을 진정으로 예배함을 증진시키는데 어떤 종류의 자연적 사랑 만에서 나오는 힘을 사용하지 말라를; 부패함이 그들 안에, 흠이 그들 안에 있어 열납되지 않는다란 그것들을 주님께 드릴 수 없고 결합되게 할 수도 없다는 뜻이다. (4544, 878, 2165, 923, 10420, 7837, 6832, 9506)

26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지각을 주시는 신성한 진리로 주님께서 더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여호와)란 사랑 측면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은 유입을; 모세는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말하심은 지각을 말한다. (2001, 2951, 7010, 1791, 1822)

27절. 수소, 또는 양, 또는 염소가 산출될 때, 그 다음 그것은 칠 일 동안 어미 아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팔 일째로부터 그리고 그 이후 그것은 주님에게 불로 만드는 제물의 봉헌물로 받아질 것이다.

영적 의미

시초가 되는 자연적 애착, 영적 애착, 또는 진리의 애착들은 교회 안에서 선을 원리로 작동됨을 통하여 깨끗해져야 한다. 그러면 그 뒤에 오는 새 상태에서 순수한 영적 예배로 주님을 섬기는 가운데 바쳐지게 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수소나 양이나 염소가 산출됨이란 초기에 해당되는 자연적 애착 또는 영적 애착 또는 진리의 애착을; 제 어미 품에 칠 일 동안 있음이란 교회 안에서 선을 원리로 작동되어 깨끗해지는 것을; 팔 일 째 되는 날로부터 주님께 태워 바치면 받아진다란 뒤이어 오는 새로운 상태에서 순수하고 영적인 예배로 주님을 섬기는데 바쳐짐을 뜻한다. (2180, 2088, 4169, 264, 창세기 1장, 716, 289, 290, 2044, 923, 10055)

28절. 그리고 그것이 암소나 암양이든지 너희는 그것과 그것의 새끼를 같은 날에 죽이지 말라.

영적 의미

자연적 인간 또는 영적 인간 안에 있는 선은 이전의 선과 이후의 선이 뒤섞이게 해서는 안 된다. 새 영적 삶의 상태가 이전의 상태를 계승해가기만 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같은 날에 암소나 암양(ewe)을 새끼와 함께 죽이지 말라란 자연적 인간 안에 선이 있든, 영적 인간 안에 선이 있든 전자의 선이 후자의 선과 혼합되어서는 안 됨을, 오직 영적 삶의 상태는 이전 상태를 계승해야만 함을 뜻한다. (2180, 2088, 10024, 487, 2866)

29절. 그리고 너희가 주님에게 감사함의 희생제물을 바칠 때, 너희는 받으실 수 있는 것을 바쳐야 한다.

영적 의미

은택의 영으로부터 주님을 자유로이 예배하면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의 결합이 있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감사함의 희생제물을 바치되 그분이 받으실 수 있는 것을 바치라란 은택의 고마움으로 마음에 우러나 주님을 예배하는 가운데 내적 인간과 외적 인간의 결합이 있을 것임을 말한다. (3880, 9506, 10042 II, 제 1장 3,4절)

30절. 같은 날에 그것은 먹어질 것이다. 너희는 아침까지 그것의 어떤 것도 남겨두지 말라. 나는 주이다

영적 의미

그 결합에서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음은 준비되는 상태 안에만 있게 되는 바, 어떤 이기적인 동기, 세상적 동기가 그것을 썩게 하지 말라. 그 이유는 순수한 애착들을 주님의 것으로 돌려야 하는데 그것들은 주님으로부터 근원 되었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같은 날 먹는다란 선을 자기 것 삼음은 위 준비하는 상태에만 있을 수 있음을; 아침까지 남겨두지 못함이란 이기적 동기는 자기 것 삼은 선을 부패시킬 것임을; “나는 주”란 순수한 애착만이 주님께 돌려 드릴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그분으로부터 왔기 때문을 뜻한다. (2187, 487, 10114-7, 7860, 8480-3, 2001)

31절. 그러므로 너희는 내 명령들을 지켜라, 그리고 그것들을 행하라. 나는 주이다.

영적 의미

참으로 진정한 예배는 주님의 도움을 수단으로 신성한 계명들을 내적, 외적으로 순종함에서 있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의 명령을 지켜 행함이란 참으로 진정한 예배는 주님의 계명을 내적, 외적으로 순종함으로 있게 됨을, “나는 주”란 주님의 도우심으로 라는 뜻이다. (3382, 5755, 2001)

32절. 그리고 너희는 내 거룩한 이름을 모독하지 말라. 그러나 나는 이스라엘의 자손들 사이에서 거룩하다고 존대를 받아야 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주이다.

영적 의미

주님으로부터 오는 신성한 진리를 자기 것으로 돌리지 말라. 그럴 경우 모독이 있게 된다. 따라서 진정한 영적 인간은 내향으로, 외향으로도 거룩해야만 한다. 모든 거룩함은 주님으로부터 내적 인간을 통해 존재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내 거룩한 이름을 모독하지 말라”란 주님에게서 오는 신성한 진리를 자아의 것으로 삼지 말라를; “나는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서 거룩하다고 존대를 받아야 할 것이다”란 진정한 영적 인간은 내향과 외향의 양쪽에서 거룩해져야만 함을; “너희를 거룩하게 한 이는 나다”란 모든 거룩함은 주님으로부터 내적 인간을 통하여 있게 된다는 뜻이다. (8882, 2001, 3654, 4286, 2001, 1557)

33절. 너희 하느님이 되기 위해 너를 이집트의 토지로부터 데려 왔다. 나는 주이다.

영적 의미

신성한 진리를 받고 이 진리로 시험과 싸워감을 통해서 각자 속에 있는 특이한 악에서 실제 구원해 주시는 구속의 역사를 통해 신성한 진리는 인간과 교통된다. 그리하여 주님이 신성한 사랑이심을 분명히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너희의 하느님이 되기 위해 이집트 땅에서 너희를 이끌어 냈다”란 거룩함이 인간에게 교통되는 것은 악으로부터 실지 구원되는 구속의 일을 통해서인데, 이는 각 사람의 세부 측면에서 신성한 진리를 받고 이를 통해 시험과의 싸움에서 있어짐을; “나는 주”란 위와 같은 과정으로 해서 자신에게 드러나 명백해진 신성한 사랑이신 주님을 인정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8866, 2001)

22장의 종합적 고찰

본 장을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는데 필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치는 거룩한 제물”이 영적으로 의미하는 것을 명백하게 알아두는 것이다. 이는 주님을 예배함, 그리고 이 예배의 성직 임무 수행을 뜻한다고 앞에서 살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족에 의해 주님께 바쳐지는 것은 예배드리는 사람이 주님을 섬기는데 헌신하는 선한 애착, 그리고 이 애착이 주님으로부터 임을 인정하는 것을 실지로 표현한다. 그 이유가 모든 진정한 예배는 이런 헌신과 인정함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그 다음 이런 예배를 집전하는 것은 진정으로 예배하는 외적 형체에 해당된다. 따라서 이런 선한 애착들이 수행하려 뜻하는 선용의 수행 속에서, 성소에서 주님을 예배하고 인정하는 가운데에서도 모두에 해당된다. 그런고로 성직자가 거룩한 제물을 함부로 다루면 안 된다는 말씀이 지닌 의미는 엄밀히 보면, 선용을 수행할 때 이든 공적 예배에 참석할 때 이든 이기적 동기 그 자체가 표현되는 것은 어떤 것이든 매우 조심스럽게 분리되고 거절되어야 한다는 것, 이는 성직 임무 수행에만 국한 되는 게 아니라 교인 전체에 해당된다. 따라서 이 가르침은 아주 무게 있는 가르침이다. 따라서 아주 심각하게 생각해 두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수행하는 선용이나 예배에 이기적 동기를 혼합시킬 때 우리는 “불결해지게” 된다. 우리 모두 경험에서 알고 있는 바, 우리는 걸핏하면 이기적 생각이 말함이나 행동 속에 있어 곤경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 더 경험으로 인정하는 바, 우리가 이기적인 생각과 느낌을 탐익하여 허용할 때 우리는 진실로 신성한 현존으로부터 분리됨 또는 “추방된다”는 것이다.
예배 중인 사람이 그 예배로부터 거룩한 음식을 먹는 것, 즉 선과 진리를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을 방해하는 불순함에 관해 몇 가지 사항의 언급이 주어지고 있다. 나병자란 예배를 외적으로 이기적 용도에 응용하여 진리를 모독함을, 유출(고름)은 악한 애착에서 흘러나오는 악한 생각인데 본문과 연결해 말할 경우 선으로부터의 예배를 내적으로 모독함을, 죽은 시체에 닿아 불결함은 영적 생명이 결여된 애착, 사랑이 없음을, 그 사람으로부터 정액이 분출됨은 진리가 선에서 분리된 것을, 기는 짐승이란 단지 감각적이기만 한 것을, 감각적일 뿐인 것은 그 자체 죽어 있는 것인 바, 선과 진리를 거절하는 자연적일 뿐인 애착을, 찢겨 죽은 것이란 무의식적으로 악과 혼합되는 것을 각기 표현한다. 이상의 여러 가지 것들은 영적 인간이 선과 진리라는 주님의 생명을 받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으리라 본다. 우리는 위와 같은 것들에 의식적으로 오염되면서 동시에 주님을 예배할 수 없고 선을 자기 것이 되게 할 수 없다. 만일 이것들이 무의식적으로 행해졌다면 물로 씻는 것 즉 진솔한 회개를 통해 깨끗해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여기서 두 가지 사항은 조심스럽게 주목해 보아야 하리라 본다. 회개 후라 해도 저녁 때까지, 즉 그의 심판이 거행되어 가라지가 밀에서 분리되는 때까지 그 회개자는 전체적으로는 깨끗하지 않다. 이런 이유는 한꺼번에 깨끗해지는 것 즉 잘못들이나 악을 한꺼번에 제거하려 들면 선 자체까지 피해를 입거나 파괴까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태 13:29). 둘째로, 거듭나는 동안, 그리고 마지막으로 심판에서 태양으로 명시되는 이기적 사랑의 거절이 끝나게 된다. 사실 해가 진다는 것은 주님에 대한 사랑이 하강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때로 이는 이기적 사랑이 끝나는 것도 의미한다. 이런 질문이 즉각 있을 수 있다. “인간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 또는 자기에게 타당한 삶으로부터 행동하는 것이 어떻게 중단될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응답해야만 하는 것은, 위와 같은 중단은 필수적인 것이 아니고 유해하다는 것인데 그 이유가 교회도 인간 자아에 생명을 불어넣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를 위해 주님의 사랑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 스스로부터인 듯 행동해야 한다. 그러나 자기가 수행하는 온갖 것이 이기적이 되는 것을 중단함으로서만 이 가치 부여도 유효하다. 그러므로 자아를 타당하게 사랑함은 모든 악의 원인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뒤집히면 이기심이라 불리게 된다. 이런 문제에 관한 진리는 “그들은 내가 지키라고 한 것을 그대로 지켜야 죄벌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어기면 죽으리라”는 구절이 글자 의미에서, 영적 의미에서도 매우 강하게 보여 준다. 따라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을 타당하게 사용하는지에 우리에게 책임이 있음을 스스로 계속 느끼고 있어야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리라 생각된다.
위 구절에 이어지는 10절의 영적 의미들을 반복해 읽게 되면 상응으로부터 있게 되는 가르침들을 저절로 알 수 있으리라 본다. 교회 밖의 사람도 거듭날 수 있고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더 진보할 수 없고, 그의 자연적 선이 영적 선이 될 수도 없다. 그리고 교회 안에 있다 해도 가르침을 받고만 있는 수준에 머무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두 부류의 사람 모두 필수 조항인 인간과 주님과의 협동 작전이라 말할 수 있는 선에 대한 새 의지가 적절히 실시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11절의 경우는 10절과 매우 다르다. 이에 관한 진리를 보는 데는 실패할 수 없으리라. 그 다음 구절의 경우는 심각한 품성에 해당된다. 그 이유는 확증된 모독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거듭나는 삶을 어느 정도 진보시킨 교인의 경우 이 구절 같은 모독을 범하지 않기 위해 이 구절을 그대로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선 또는 진리에 관한 지식이 아직 없는데도 선에 관한 애착 속에 있는 사람의 경우는 위와 다른데 그 이유는 명백하다. 우리가 흔히 범하는 잘못들이 주님께서 우리 속에 아껴 두신 것들을 통하는 선의 상태로부터 주님을 인정하여 어떻게 치료되는가는 쉽게 이해해 볼 수 있다. 이에 관해 주어진 예가 이 문단의 마지막(16절)에 묘사되어 있다. 여하튼 어떤 때에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거룩한 양식을 자기 것으로 삼을까? 우리는 매일 생활 속에서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그야말로 섭리적으로 천국적 영향을 받는 때가 자주 있다. 한 예만 들어보자. 우리가 어떤 책을 단지 흥미만을 위해 읽을 때가 있다. 그렇다해도 그 안에 있는 뭔가가 우리로 선한 느낌과 생각들을 가지도록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느낌들은 우리 속에 남아 있도록 저장되는데 이후 우리의 상태에 적절한 시기를 갖게 되면 이런 느낌과 생각들은 거듭나는 자연적 인간 안에 이식되어진다. 게다가 일상 생활 속에서 꾸준히 노력해야 할 때, 또는 심각한 영적 싸움이 있게 될 때 위와 같이 저장된 느낌과 생각들을 회상함으로 더 강한 힘을 얻는데 이는 대다수의 사람의 체험에 다분히 들어 있을 것이라 본다.
다음 시리즈를 조심스럽게 공부해 보면 두 개의 일반적이고 실용적인 진리들이 더욱 확증될 기회를 가지리라 본다. 첫째로 주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려면 예배는 선으로부터 또는 애착이 있어야 하되 반드시 진리를 수단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수컷을 바쳐야 한다로 의미되고 있다. 둘째로 예배는 악과 거짓에 오염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흠이 없어야 함으로 의미되고 있다. 더 나아가 위 일반 원칙은 주님께 내적 인간을 충분히 봉헌해야 한다는 것도 언급하고 있다. 이것이 태워 바침으로 나타내고 있고 의지와 이해함에 관한 외적 인간을 바침은 서약과 마음에서 우러난 제물로 명시되고 있다. 이제 흠이 있는 것, 또는 악과 거짓에 속하는 특별한 종류들이 열거되는데 이를 살펴보자. 첫 세 가지는 마음의 영적 수준과 관계되고 나머지 세 가지는 자연적 수준과 관계된다. 그 이유는 눈이 멀고, 부러진 것, 불구인 것은 혹이나 비듬투성이, 딱지 있는 것에 비해 더 심한 몸의 고통을 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부류 모두 나쁜 것은 마찬가지지만 전자는 후자보다 더 심한 영적 결함을 의미한다. 이 정도의 상응은 말씀의 다른 부분에서도 언급이 많으므로 누구나 쉽게 지각하리라 본다. 확실하게 무지한 사람, 눈이 먼 짐승 같고, 애착이 불완전한 사람은 부러진 짐승 같고, 눈이 멀지도 않고 부러지지도 않았는데도 영적 삶을 진보시키지 못하는 사람, 자기 행동에 자기의 지식과 애착을 담아 표현 못하는 사람은 불구인 짐승 같은 바 주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드릴 수 없다. 그리고 내적으로 계발되어 있고 마음도 호의적인데 활력이 없는 채, 그의 자연적 애착만을 허용할 때 혹 달린 상태(score, wen)에 비유되고, 그가 감각적 능력만을 발휘할 때의 경우는 비듬(옴)증세(scurvy)에, 그가 육적 기쁨만을 허용할 때의 경우는 딱지(종기)(scab) 증세와 비슷하다.
이에 이어지는 구절 역시 방관하지 않아야 할 품질들이다. 심정으로부터 진행되고 마음에 우러나 드리는 결함 있는 예배가 외적 또는 내적 순진을 동반하는 경우 소나 양으로 명시되는데 이 예배는 마치 완전한 예배인 듯 취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예배가 이해함에 의해 확증될 경우는 주님이 받을 수 없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서약(vow), 물론 좋은 의미에서는 의지로부터 이해함이 결정하는 것, 또는 주님이 설비해 주신 그대로를 수용하는데 기뻐함을 뜻한다. 그러나 이 본문 이 문단의 경우 불완전한 예배와 연결을 이루고 있는 바, 예배가 이해함을 수단으로 확증됨을 의미한다. 진정한 고백은 의지와 관계되고 본문 같은 경우는 불완전한 예배라는 계산적인 서약인 바, 이해함에 관계된다. 24, 25절은 천국 결혼에 관련되지만 여기서는 흠 있는 예배와 관련되어 예증해 주고 있다.
나머지 문단을 글자대로 읽으면서 생각해 보라. 그러면 왜 어떤 동물이 태어난 후 정확히 칠일 간 어미 품에 두어야 하는지, 왜 팔 일째 되어야 바칠 수 있는지, 왜 감사 제물은 그 날로 다 먹고 다음 날까지 남겨두지 못하는지, 왜 신성한 존재는 이집트의 속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에 마땅히 존대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쉽게 머리에 착상되지 않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상응의 도움을 수단으로, 주님께서 해주시는 계발을 힘입어 내적 의미 안으로 들어갈 때, 위와 같은 주님의 세부 지시 사항이 왜 그러한지 이해할 수 있다. 말씀은 표현적인 교회를 계승하게 될 미래 세대의 영적 교회에 도움을 주시고자 쓰여져 있다. 그 이유는 칠 일간 이란 거듭나는 거룩한 상태를, 팔 일 째란 거듭남을 이어받는 새로운 상태를 명시하기 때문이다. 어미와 그 새끼를 같은 날 죽이지 말라란 인간 삶의 계속되는 상태들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감사 제물은 바친 그 날로 먹고 다음 날까지 남겨두지 말라란 은택으로 우러나서 드리는 예배는 이기적 사랑으로 오염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주님의 계명을 지키라는 것, 그분의 이름을 모독하지 말고 오로지 거룩히 여겨야 할 것, 이집트의 속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이다란 거룩한 상태가 주님을 순종함에 포함되어야 하는 바, 그 이유는 단지 자연적일 뿐인 삶의 속박에서 해방되게 해주시고 사랑으로 주님과 영원히 결합되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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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21장 해석

레위기 21장

영적 의미 요약

* 선 가운데 있는 이들, 이로부터 진리 가운데 있는 이들이 금해야 할 여러 가지, 1-9절.
* 영화하시는 가운데 있는 주님, 천적 인간에 관한 위와 비슷한 금지조항과 지시들, 10-15절.
* 선 가운데 있는 이들, 이로부터 진리 가운데 있는 이들의 거듭나는 삶이 충분히 발달하는데 따른 장애물에 관하여, 16-23절.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하셨다, 아론의 아들들, 성직자에게 이야기하라,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라, 자기 백성 사이에 죽은 자로해서 자신을 더럽히는 자가 없게 하라.

영적 의미

주님께서 지각을 주시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선 가운데 있고 그로부터 진리 가운데 있는 영적 교회 속의 사람들이 영적 생명이 없는 거짓으로 오염되지 않도록 밝히 알게 하시는 사항이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하심은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신성한 선으로부터의 계시임을; 말함은 유입과 지각, 그리고 계시(밝히 알게 함)를; 아론의 아들 성직자들에게 이야기하라란 선 가운데 있고 그로부터 진리 가운데 있는 영적 교회 속의 사람이 가지는 지각을; 성직자는 자기 백성 사이에 죽은 자로 해서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란 위와 같은 품성을 지닌 사람은 영적 생명이 없는 거짓으로 오염되어서는 안 됨을 말한다. (2001, 7010, 5743, 10130, 3813, 5407)

2절. 그의 친척은 예외이다, 즉 자기와 가까운 친척, 자기 어머니, 아버지, 아들, 딸, 형제.

영적 의미

천사들, 즉 천적 진리와 천적 선에 있는 이들, 또는 영적 진리와 그 진리로부터의 애착에 있는 이들, 또는 영적 선에 있는 이들 조차도 피할 수 없는 것은 제외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의 친척은 예외이다란 천사들에게 조차 피할 수 없는 것은 제외한다는 뜻인데, 그 이유는 가까운 친척이란 이 구절에서 유전적인 악과 거짓을 말하고 동시에 비록 인간이 거듭났다해도 그에게 남아 있는 실제적인 악과 거짓을 뜻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진리 측면에서의 천적 인간을; 아버지는 선 측면에서의 천적 인간을 말하나 반대 의미로는 거짓과 악을 뜻한다. 아들은 진리 측면에서의 영적 인간을; 딸은 애착 측면 또는 선행의 선 측면에서의 영적 인간을 말하나 반대 의미로는 거짓과 악을 뜻한다. 형제는 영적 선을 의미하나 본문의 경우 자연적 수준에 있는 영적 선 또는 교회의 외적 측면 또는 최말단 천국에서의 선을 뜻하지만 반대 의미로 본문이 사용하는 바, 악을 뜻한다. (3703-2, 3703-20, 568, 9946, 9950, 5686, 10490)

3절. 그리고 자기와 가깝고, 남편이 없고, 처녀인 그의 누이 때문이라면 자신을 더럽힐 수 있다.

영적 의미

또는 순수하게 이해함 안에 영적 진리를 지닌 이들이라 해도 아직 선과 결합이 안되고 있을 경우 주님 보시기에는 순수하지 못하다. 이것을 영적 인간은 인정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누이는 자연적 인간의 이해함에 있는 영적 진리를 뜻하나 반대 의미로는 거짓을; 처녀는 순수한 것을; 자기에게 가까운 자란 가까운 친척과 동일한 뜻을; 남편이 없음이란 선과 결합 하지 않은 진리를;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란 악과 거짓을 함유한 것이 인간인 바, 천국도 주님 보시기에 깨끗하지는 않다는 것을 영적 인간은 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3160, 3703-22, 3081, 3703-20, 2728, 10130)

4절. 그는 백성들 사이에서 우두머리인즉 자신이 모독되도록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

영적 의미

그러나 선 가운데 있는 이들이라 해도 선은 모든 진리의 본체인 바, 영적 생명이 없는 거짓으로 자신이 오염되게 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이것이 모독이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란 어찌됐든 선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부주의해서 라든지 심사숙고해서 든지 악과 거짓으로 오염되어서는 안 됨을, 백성의 우두머리란 선이 진리의 본체인 바, 선은 진리 위에 있다는 것을,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란 이는 분명히 모독임을 뜻한다. (10130, 2148, 9667, 1259, 571, 582)

5절. 그들은 자기들의 머리 위에서 대머리를 만들지 말라, 그들은 자기들의 수염의 모퉁이를 면도하지 말 것과 자기들 살에 어떤 베임도 만들지 말라.

영적 의미

선 가운데 있는 이들은 자연적 인간 내면 또는 외면에 진리가 없는 채로 있어서는 안 되고, 그의 자연적인 선은 그릇된 관념의 원인인 외관을 중시함과 각종 오류에서 파생되는 거짓들로 해서 손상을 입게 해서는 안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대머리를 만들거나 수염의 모퉁이(구레나룻)을 만들지 말라란 내면 이든 외면 이든 자연적 인간에 진리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몸에 칼자국을 내지 말라란 그릇된 관념의 원인인 오류와 외관으로부터 나오는 거짓으로 그의 자연적 선이 손상을 입어서는 안 됨을 뜻한다. (5247-3, 9056, 2799-23)

6절. 그들은 자기들의 하느님에게 거룩히 있으라, 그리고 자기들의 하느님의 이름을 모독하지 말라. 그 이유는 불로 만든 주님에 대한 제물, 자기들 하느님의 빵을 그들은 바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거룩하게 있으라.

영적 의미

그러므로 선 가운데 있는 이들은 진리 가운데에도 온전히 있어야 한다. 신성한 인간을 부정함으로 그 진리를 모독하지 말라. 그 이유가 그들은 순수한 사랑으로 주님을 예배해야 하고 모든 선은 신성한 진리이신 그분으로부터 존재함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거룩한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하느님에게 거룩해 있음이란 선 가운데 있는 이들은 진리 가운데에도 역시 온전하게 있어야 함을; 하느님의 이름을 모독하지 말라란 신성한 인간을 부정함으로 진리를 모독 말라를; 불로 살라 주님께 바침이란 순수한 사랑으로 주님을 예배함을; 하느님의 빵을 그들이 바친다란 모든 선은 그분으로부터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있게 됨을 인정함을; 그러므로 거룩하리란 본문의 경우 선과 진리를 결합함을 통해 거룩해야 함을 뜻한다. (2001, 6887, 8882, 10055, 276, 9993, 2001, 9993, 2001, 2190)

7절. 그들은 창녀인 여인, 또는 모독된 여인을 데려오지 말라. 그들은 남편으로부터 포기당한 여인을 데려오지 말라. 그는 자기 하느님에게 거룩하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그런고로 선 가운데 있는 사람은 왜곡된 진리로 또는 모독하는 왜곡된 진리로 또는 선행과 분리된 신앙과 결합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 이유는 선과 진리만이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창녀나 모독된 여인(몸을 더럽힌 여자)를 얻지 말라란 왜곡된 진리, 그것이 확증되었든 아직 확증 안 되었든 자신에게 결합시키는 것은 선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불법임을; 남편에게 소박맞은 여자를 취하지 말라란 선행에서 분리된 신앙을 자신과 결합되게 말라는 것을; 하느님께 거룩해 있음이란 선과 진리만이 서로 일치함을 뜻한다. (6348, 4844-16, 2190)

8절. 그러므로 너는 그를 신성시해야 한다. 그 이유는 그가 너희의 하느님의 빵을 바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너를 정화하는 나 주가 거룩하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모든 이는 선과 진리가 결합되게 해야 하고 자신의 선이 진리 안에 계신 주님으로부터 있게 되었다는 것, 주님께서 자신으로 하여금 진리를 수단으로 선 가운데 있음이 확증되도록 힘을 주시어 가능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를 신성시함이란 선 가운데 있는 모든 이는 진리와 결합해야 함을; 하느님의 빵을 바침이란 선은 진리 안에 계신 주님으로부터 임을 인정함을; 그는 너희에게 거룩하다란 인간은 이를 행할 수 있다는 것, 즉 주님으로부터 선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을; “너희를 정화하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다”란 그는 진리를 수단으로 선 안에서 자신을 확증시킬 힘을 주님으로부터 가진다를 뜻한다. (276, 999-3, 9946, 2001, 2190, 9680)

9절. 그리고 어떤 성직자의 딸, 만일 그녀가 창녀짓을 하여 자신을 모독한다면,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를 모독하고 있다. 그녀는 불로 태워라.

영적 의미

선을 향한 애착, 만일 그것이 왜곡된 진리와 결합한다면 모독되어진다. 그로 인해 선 자체가 모독된다. 그러면 이기적 사랑으로 선에 관한 측면의 황폐함이 반드시 뒤따른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의 딸이란 선에 관한 애착을; 창녀로 놀아남이란 진리의 왜곡을; 이것이 모독인 바, 그 이유는 선에 관한 애착이 거짓으로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불로 태워라란 이기적 사랑을 통해 모든 선이 황폐해짐을 말한다. (6775, 6348, 4601-2, 934)

10절. 그의 형제들 사이에 대 성직자인 자는 자기 머리에 기름이 부어졌고, 성직 수임을 받아 옷들을 입었는바, 머리를 풀거나 자기 옷들을 찢지 못한다.

영적 의미

또한 주님은 신성한 인간 측면에서 볼 때 신성한 진리가 신성한 선에 하나되어 계신 것인 바, 이로부터 천적 인간 안에서도 신성한 선은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명백해진다. 그러므로 진리가 분산됨으로 선이 분산되지 못하는데 이는 내적 이든 외적 이든 모두 해당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형제 사이에서 대 성직자란 주님은 그분의 인간 부분에서 신성한 진리와 신성한 선이 하나되어 있음을, 이로부터 천적 인간 안에서 신성한 선은 그 선으로부터 진행되는 신성한 진리로 명백해진다는 것을; 자기 머리 위에 기름을 부었음이란 위 결합을; 성직 수임을 받아 옷들을 입었다는 것은 신성한 선은 신성한 진리 안에서 명백해짐을;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말라란 내적 으로든 외적 으로든 진리를 분산시켜 선까지 분산되게 말라를 뜻한다. (9946, 9806, 10010, 10011, 9999, 4247-3, 4763)

11절. 그는 어떤 죽은 몸에로 가지 못하고, 그의 아버지를 위해, 또는 자기 어머니를 위해 자신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

영적 의미

신성한 인간 측면의 주님은 인간 측면에 있는 유전적 악과 거짓으로 전혀 오염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천적 인간은 실제의 악과 거짓 속에 남겨진 것들로 해서 오염되지 않는다.

세부적 영적 의미

대 성직자는 어떤 죽은 몸에도 가지 못하고 자기 부모가 죽어도 가까이 가서 자신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란 신성한 인간 안에 계신 주님은 유전적인 악과 거짓으로 오염되지 않으며, 천적 인간은 그에게 남아있는 실제의 악과 거짓들로 해서 오염되지 않음을 뜻한다. (9946, 9806, 10130, 3813, 3703-20)

12절. 그는 성소를 떠나지 못한다, 자기 하느님의 성소를 모독해서도 안 된다. 그 이유는 자기 하느님의 기름부음의 기름의 왕관이 그 사람 위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주이다.

영적 의미

선 가운데 있는 사람은 거듭난 천적 인간 같이 되는데 있어서 중단은 없다. 그는 선을 진리에서 분리시킴으로 어떤 수준에 있는 선이라 해도 모독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삶의 투쟁에서 승리하였기 때문에, 그러므로 진리를 선과 결합시켰기 때문에, 그리하여 그 진리는 선을 완전히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소를 떠나거나 성소를 더럽히지 못한다란 선 안에 있는 사람은 거듭나는 천적 인간 같이 거듭남이 결코 중단되지 않는다. 그는 어떤 경우에서도, 아주 경미한 수준에서 일지라도 선에서 진리를 분리시킴으로 선을 모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하느님의 기름부음의 기름의 왕관이란 삶의 투쟁에서 승리함으로부터 선과 진리의 결합이 있음을, “나는 주”라 함은 위 진리는 선을 완전히 표현한다는 뜻이다. (4144, 3210, 8882, 9930, 9954, 2001)

13절. 그는 처녀 상태의 여인을 아내를 데려와라.

영적 의미

이러므로 그분의 인간을 신성이 되게 하신 주님은 모든 불순함 속에 있는 악을 제거함으로 그분의 교회와 영원히 결합된다. 그래서 거듭난 사람은 불순함 없이 선과 진리가 결합된 가운데 있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처녀만을 아내로 맞아라란 그분의 인간을 신성이 되게 하신 주님은 모든 불순함을 교회로부터 제거함으로 그분의 교회와 결합하게 됨을, 거듭나는 사람은 불순함 없이 선과 진리가 결합되어야 함을 뜻한다. (1468, 3081)

14절. 과부, 또는 이혼 당한 자, 또는 모독한 여인, 창녀, 이들을 데려오지 말라. 그러나 자기 자신의 백성으로부터의 처녀를 그는 아내로 데려와라.

영적 의미

거듭나는 사람이 진리 없는 선 가운데 또는 선이 없는 진리 가운데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구나 모독하는 왜곡된 진리가 자신과 결합되게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거듭나는 과정에서 모든 악에서 깨끗해져야 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과부란 진리 없는 선 또는 선이 없는 진리를; 모독한 여자도 선이 없는 진리를; 창녀란 왜곡된 진리를; 처녀란 모든 악에서 깨끗한 교회를; 아내란 선과 결합된 진리, 그러므로 천적인 결혼 상태임을 뜻한다. (9198, 4844-16, 3081, 1468)

15절. 그리고 그는 자기 백성 사이에서 자기 씨를 모독되게 하지 말라. 그 이유가 나는 그를 신성시 하는 주이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마지막으로 천적 인간은 진리를 모독 말아야 할 것이다. 이를 수단으로 낮은 수준에서도 교회가 증가되고 팽창된다. 그 이유는 그가 신성한 선으로부터 행동하기 때문이고 이를 수단으로 그는 순수하고 거룩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자기 백성 사이에서 자기 씨를 모독되게 하지 말라란 천적 인간은 진리를 모독해서는 안 되는데 이러므로 해서 그 교회는 낮은 수준에서까지 증가되고 팽창된다는 것을; “그를 신성시되게 하는 이는 나 주이다”란 천적 인간은 신성한 선으로부터 행동해야 한다는 것, 이를 수단으로 그는 순수해지고 거룩해짐을 뜻한다. (880, 1259, 2001, 8042)

16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더 나아가 지각을 주시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주님께서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여호와)이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speaking)이란 유입을; 모세란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말하심은 지각을 말한다. (2001, 2951, 7010, 1791, 1822)

17절. 아론에게 이야기하라, 말하기를, 자손대대로 네 씨로부터 있는 자가 흠을 가지고 있다면, 그가 자기 하느님의 빵을 바치려 접근하게 해서는 안 된다.

영적 의미

천적 인간 또는 선 가운데 있는 이들의 경우 그들이 거듭나는 모든 과정에서 진리를 수단으로 온전해지지 않을 경우 모든 선이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충분하게 인정할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은 선 가운데 있는 천적인 사람을; 이 사람에게 이야기하심이란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가르쳐 짐을; 아론의 후손이란 선으로부터의 진리 가운데 있는 이들을; 자손대대로란 거듭나는 모든 과정 동안을; 흠이 있음(몸이 온전하지 않음)이란 진리를 수단으로 아직 완전해지지 않았음을; 자기 하느님께 빵을 바치러 접근하지 못함이란 위와 같은 사람은 모든 선이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주님에게서 있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9946, 7304, 7010, 880, 1041, 7837, 10042 II, 2165, 2001, 5619)

18절. 흠을 가진 자는 누구이든 접근하지 못한다. 즉 소경, 절음발이, 또는 편평한 코를 가진 자, 또는 여분의 어떤 것을 가진 자.

영적 의미

선 또는 진리 측면에 어떤 결함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위와 같은 것을 인정하는데 방해받는다. 그 결함을 예를 들어 말한다면, 그가 자연적 인간 안에 있는 선 또는 진리에 무지할 경우, 그의 영적 성장이 훼방될 경우, 그의 지적 능력을 자연적 수준에서 자랑할 경우 등등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흠을 가진 자 누구든지 이란 선 이든 진리 이든 어떤 결함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를; 그는 접근하지 못한다란 위와 같은 진리를 인정하는데 그는 방해받게 됨을; 소경이란 진리에 무지한 사람을; 절음발이란 자연적 인간 안에 있는 선에 무지한 사람을; 편평한 코를 가진 자란 영적 성장이 훼방 놓여진 사람을; 여분의 어떤 것(너무 키가 큼, superfluous, too tall)이란 자기의 지적 능력을 자연적 수준에서 자랑하는 사람을 뜻한다. (7837, 제 17절, 2383, 210, 4302, 10109, 5658, 7984-3, 581, 583, 1673-3)

19절. 또는 망가진 발, 또는 망가진 손이 있는 자,

영적 의미

자기의 자연적 수준의 애착들이 거꾸로 된 상태인 사람, 영적 능력들이 심하게 훼손된 상태인 사람,

세부적 영적 의미

망가진 발이란 자연적 애착들이 거꾸로의 상태인 것을, 망가진 손이란 영적 힘이 훼손된 것을 뜻한다. (9163, 2162, 9163, 5328)

20절. 또는 곱추, 또는 난쟁이, 또는 자기 눈에 흠있는 자, 또는 괴혈병 있는 자, 또는 딱지투성이(scabbed)인 자, 또는 불알이 깨진 자.

영적 의미

영적 사항들을 승강 시키는데 힘이 약한 자, 진리를 삶에 응용하는데 결함이 있는 사람, 지성이 약한 사람, 악이나 거짓들로 해서 외향적으로 괴로움을 받고 있는 사람, 또는 진리를 선에 결합하는 능력에 상해를 받은 사람들,

세부적 영적 의미

곱추란 자신을 영적 수준으로 승강 시키는 힘이 약해진 것을 (눅. 13:11-13 참조); 난쟁이란 진리를 생활에 응용하는데 있어 흠이 있는 것을; 눈에 흠이 있는 것은 지성이 약한 것을; 딱지투성이(scabby, full of warts)이란 거짓들이나 악들로 해서 바깥쪽에서 괴로워하는 것을; 불알이 깨진 것은 진리가 선과 결합하는 힘이 상해를 입은 것을 뜻한다. (6952-1, 6952-6, 누가 13:11-13, 10550, 10303, 431, 7837, 2148, 7524, 10303, 431, 2173, 5053, 5060)

21절. 흠을 지닌 성직자, 아론의 씨로부터의 사람은 불로 만드는 주님의 제물을 바치러 가까이 오지 않을 것이다. 그는 흠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기 하느님의 빵을 바치려 가까이 오지 못한다.

영적 의미

선 가운데 있는 사람, 또는 내적인 선으로부터 진리 가운데 있는 사람, 그런데 외적으로는 결핍되어있다면 모든 선이 신성한 사랑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있게 됨을 충분히 인정할 수 없다. 그는 자기 결함 때문에 방해받는다. 이럴 경우 주님과 영원히 결합할 수는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 아론의 씨로부터의 사람이되…안 되는 자란 선 가운데 있지 않은 것 또는 내적 선의 진리 가운데 있지 않음을; 흠이 있음이란 외적으로 결핍된 것이 있음을; 주님께 불로 살라 바치는 제물을 드리러 가까이 나옴이란 모든 선은 신성한 사랑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임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을; “흠이 있는 사람”이란 자기 결함으로 방해받음을; 그는 하느님께 빵을 바치러 가까이 오지 못함이란 그는 위와 같이 인정을 수단으로 외적 측면에서 주님과 결합될 수 없음을 뜻한다. (9946, 7837, 10042 II, 10055, 7837, 10042 II, 2165)

22절. 그는 가장 거룩한 자기 하느님의 빵, 그리고 거룩한 자기 하느님의 빵 모두를 먹을 것이다.

영적 의미

참으로 그는 의지와 이해함 측면에서 내적으로 선을 자기 것이 되게 할 수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가장 거룩하거나 거룩한 하느님의 빵을 먹는다란 그는 의지와 이해함에서 내적으로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음을 뜻한다. (2187, 2165, 3210)

23절. 그는 베일 안으로, 제단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그는 내 성소를 모독하지 말 것이다. 그 이유가 나는 그들을 정화하는 주이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그러나 그는 외관에 속한 모든 것을 제거함으로 자신의 가장 깊은 선을 실감할 준비를 아직 갖추지 않고 있다. 자기 결함이 제거될 때까지 그는 주님을 진실로 예배할 수 없다. 그래서 만일 위선이 명백히 드러난다면 그는 그 선을 모독할 것이다. 그러나 신성한 선으로부터의 주님이 그의 장애물을 제거하실 것이다. 그 이유는 그분만이 인간을 최대 한도로 정화해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베일 안으로 가지 말라란 그가 가장 깊은 선을 실감하는데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음을; 베일은 외관(appearances)을; 흠이 있기 때문에 제단 가까이 오지 못함이란 그의 결함이 제거될 때까지 그는 주님을 진실로 예배할 수 없음을; “나의 성소를 모독하지 말라”란 만일 위 선이 그에게 명백해진다면 그는 그 선을 모독할 것임을; “나는 그들을 정화한다”란 신성한 선으로부터 주님은 이 장애물을 제거하실 것인데 그 이유는 그분만이 최대한도까지 인간을 정화해 주실 수 있기 때문임을 뜻한다. (9670, 2576, 4541, 7837, 3210, 9670, 2001, 9229)

24절. 모세는 이 말씀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일러주었다

영적 의미

이상 모든 것은 선 가운데 있는 사람, 천적, 영적 천국에 속한 사람 또는 최말단 천국들에 속한 사람들이 받아 적어야 할 신성한 진리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모세가 아론에게, 그의 아들들에게, 그리고 모든 이스라엘의 아들들에게 이야기를 함이란 천적 선 안에 있는 자에게, 영적 선 안에 있는 자에게, 최말단 천국들에 있는 자에게 신성한 진리를 받아적게 하심이다. (AC7010, 2951, 9946, 4286)

21장의 종합적 고찰

이 장의 영적 의미는 큰 흥미를 주고 있다. 그 이유는 말씀의 여러 부분들에 있는 가르침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선의 상태를 실감한 사람은 선 쪽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상태로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 더욱이 자연적인 것에 깔려 있는 악이나 잘못들로 인한 불완전한 상태에는 더욱 되돌아가지 말아야 한다 라든가, 이런 사항을 인간의 완전한 상태를 묘사하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완전한 상태에서는 인간이 되돌아 갈 수도 없을 것인데 그 이유는 그가 되돌아가는 것을 더 이상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한 가지 큰 이유는 인간이 선 가운데 건설될 때 그는 더 이상 시험에 고통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서술을 읽을 수 있다. “지옥과의 전투와 승리라는 점은 이러하다. 한 때 그것을 정복한 사람은 계속적으로 그렇게 해간다. 그 이유는 정복을 수단으로 그는 지옥을 누룰 힘을 획득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신앙 속에 있는 진리, 사랑 속에 있는 선을 자신 스스로 자기이 것 되게 해서 확증하게 되면 그 후 지옥은 그에게 어떤 시도도 감히 하기 힘들어진다.” 본문의 각 절에서의 설명이 보여주었듯이 성직자는 선, 또는 선 가운데 있는 이들을 말한다. 이는 주님께서 언급하신 대목, “지붕에 있는 사람은 집안에 있는 세간을 꺼내러 내려오지 말며 들판에 있는 사람은 겉옷을 가지러 집으로 돌아가지 말아라” (마태. 24:17,18)에 있는 사람과 같다. 이 말씀의 의미는, “선 가운데 있는 사람은 신앙의 교리들에 들어있는 여러 가지 것들로 되돌아가지 말라”는 뜻이다. 더 자세히 언급한다면, 선 가운데 있는 이들은 악과 잘못들, 본문에서 더럽혀지는 원인으로 언급된 여러 가지 사항의 의미이기도 한 각종 악과 잘못들 쪽으로 자신이 되돌아가지 않도록 하라는 뜻이다. 자신을 더럽게 하는 것들이 가까운 친척(일가 친척)으로 표현되고 있다. 천사들이 선 가운데 자신을 건설하듯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자기 스스로 자신 속에 있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악밖에 없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 특별한 측면에서는 비록 천사가 된 그들에게 더 이상 활동적이지 않은 유전적 악과 자신이 저질렀던 실제의 악으로 인해 자기 생명 속에 남아있는 악들을 고백하는 것도 있다. 이런 것들이 천사들에게 남아 있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인간 존재의 구성 성분이기 때문, 다시 말해 한 때라도 자신에게 알려져서 생각했고 말했던 것, 또는 행동된 것은 그의 기억으로부터 절대적으로 지워질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록 많은 이들이 각자 자기들 기억 안에 서로 똑같은 것을 가졌다고 가정해도 실제로 똑같은 두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는 말도 된다. 왜 그렇게 안 될까? 그 이유는 모든 이 각자 안에 있는 선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명의 똑같은 사람이 영원히 존재될 수 없다. 이 다양한 선을 수단으로 그와 함께 있는 진리가 질서 있게 배열된다. 또한 이런 과정으로부터 각자는 생명을 지닌다. 그러면 이 진리가 선의 품질을 결정 짓는다. 이렇게 선과 진리의 상호작용이 있다. 본문에서 예증되는 구절들 속의 진리를 수단으로 우리는 어떤 것이 참되고 거짓된 것인지 일반적인 지식을 이해하게 되고, 선을 수단으로 어떤 것이 선 또는 악인지 일반적인 애착을 이해하게 된다. 인간 체험은 이 세상까지 포함해서 체험 속에 나열되는 진리를 보여주는데 한 몫을 한다. 사실 우리는 오래 전에 있었던 일들이 잊어버린 듯 생각되어도 다시 기억에 떠올리는데 별 노력이 없어도 가능하다. 그 외에도 “심판의 날에 자기가 지껄인 터무니없는 말을 낱낱이 해명해야 한다” (마태. 12:36).
그러나 이런 물음도 있을는지 모른다. 만일 인간의 생명에 속한 것이 위와 같이 남아 있는다면 일가 친척인 아버지나 어머니, 아들, 딸, 형제, 자매 때문에 영적으로 자신을 더럽혀 있게 된 악밖에 없음을 천국에서조차 항구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면 그의 악이 수그러져 있는다는 데 대한 질서의 법칙은 무엇인가? 이는 보편적 법칙에 의해 있게 되는데 저 세상에서는 심판의 과정을 통해 악과 선이 분리되고 이 분리 때문에 시험 역시 더 이상 있지 않는다. 이를 잘 생각해 보면 선 가운데 있는 사람, 설사 천국에 있다 해도 자신을 더럽힐 수도 있을는지 모른다는 것, 어떤 측면에서 그는 2, 3, 4, 11절과 같이 행할 수 없다. 물론 본문의 첫 문단은 선 가운데 있는 영적 인간, 천국에 있는 영적 인간, 선을 원리로 하는 지상의 영적 인간에 관련된 사항들이다. 이런 점에서 이 문단이 주는 가르침이 있다. 영적 인간은 세 등차에서 유전적인 악과 실제의 악으로 해서 자신이 더러워져 있음을 항구적으로 인정해야 하는 한편, 그런 모독에 빠지는 시험에 한껏 저항해 가서 실제의 악을 탐닉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 문단은 특별한 흥미를 주는데 그 이유는 그분의 인간을 신성이 되게 하시는 주님, 이로부터 가장 깊은(높은) 삼층 천국의 천적 인간에 관련된 사항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도 두 가지 사항 즉 대 성직자로 표현되는 가장 깊은 천국의 천적 인간과 보통 성직자로 표현되는 보통의 천적 인간 사이의 차이점에 관해서 이다. 주님의 인간과 인간 사이의 본질적 차이는 주님의 인간은 임신과 출생부터 신성(무한)하였고 이에 반해 인간은 임신과 출생부터 유한하다. 그런고로 주님의 인간은 신성이 되심을 수단으로 외적 측면까지, 즉 모든 측면이 신성으로 충만 되셨다. 그 이유는 본질적으로 신성이었던 것만이 실지로도 신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한한 인간은 어떤 과정을 거쳐도 신성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 또 한 가지, 주님의 인성은 임신과 출생을 수단으로 신성이 되셨지만 그분에게는 유전적인 악이 내적으로는 없으셨고 게다가, 어떤 실제적인 악도 없으셨다. 그러나 유전적인 악을 외적으로 가지셨는데 이는 처녀인 그의 어머니로 부터이다. 반면 보통의 인간은 양 부모로부터서 유전적으로 악을 가지고, 이에 더해 실제 자기가 만든 악까지 가지고 있다. 이상의 관점은 본문에서 보통의 성직자는 그의 어머니, 아버지, 그 외 일가 친척으로 해서 더럽혀지는 것이 허용되는 가에 대한 이유를 알기 위해 미리 거론해 둔 것이다. 그래서 위 두 가지 차이점이 본문에 기록되었는 바, 보통의 모든 사람은 유전적 악과 실제의 악을 가지고 있고 이는 영원히 그와 함께 남아 있는 까닭에 각 인간은 거듭나는 동안, 거듭난 후라 해도 위 사실을 반드시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 이에 비해 주님은 그분의 인간을 신성이 되게 하심을 수단으로 유전적인 어머니 쪽의 생명은 사라졌는데, 그 이유는 그분에게 알맞은 인간 삶은 어떤 부분에서도 실지 없으셨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그분은 시험을 이기시고 악의 권세를 정복하셨으며 인간 삶의 최말단에 속하는 것까지도 신성이 되게 하셨다. 따라서 그분은 이 세상에서 가졌던 육체와 더불은 죽음으로부터서 일어나셨는 바, 이는 보통의 인간과 아주 다른 점이다. 그런고로 그분은 그분의 어머니나 아버지로 해서 자신을 더럽히지 않았다. 이를 영적으로 말할 경우 그분은 유전적인 거짓과 악이 전혀 남아 있지 않게 되셨다는 말이다.
다음으로 살필 것은 후자의 다른 점, 즉 삼층 천국의 천적 인간과 여느 천국 인간의 차이점인데, 이것 역시 대 성직자와 보통 성직자를 수단으로 표현되어 있다. 삼층 천국의 천사에게는 유전적인 악과 실제의 악이 남아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창조된 인간, 태어난 인간 모두는 거듭남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 역시 자신 스스로서는 악밖에 가진 게 없음을 인정하지 않고는 삼층 천국에 머무를 수 없다. 그 이유는 태고적 사람(the Most Ancient People)도 거듭남은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그들도 타락한 인간 속에 있는 욕망으로 괴로워했다. 그렇게 괴로워했던 그들이 최상의 상태에 속한 태고 교회를 구성했던 그들의 후손들에게 악과 거짓을 물려주었다. 이 교회의 모든 멤버 역시 그들이 지닌 유전적 악과 실제의 악 그리고 후손에 내려온 악들 모두 때문에 거듭남은 더욱 요구되었다. 이런 악은 구속하심이 대두될 때까지 계속 퇴적 되어왔다. 태고 교회의 천적 인간 또는 삼층 천국의 천적 인간은 자기들에게 유전적 악이 없어서 보통의 천적 인간과 다른 것이 아니라, 그들은 이해함을 통해서가 아닌 의지를 통해 거듭났다는데서 다르다. 다시 말해서 진리를 통하여서가 아닌 선을 통하여 거듭났다는 말이다. 그들은 선으로부터 진리를 분리시키지 않는 바, 본문 12절에서 그들은 성소로부터 나가지 말라고, 그들의 하느님의 성소를 모독하지 말라고 말해지고 있는 것이다. 자기 부모가 죽어도 가까이 가서 부정을 타면 안 된다고 그들에 관해 말해진 것은, 비록 천적 수준인 그들이 천적이나 자신 스스로서는 악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해도 그들에게 남아 있는 유전적 악 또는 거짓 이든, 실제의 악 또는 거짓 이든 그것들로 해서 더럽혀지지 않음을 명시해 주시려는 데 있다.
본 장의 마지막 문단에서는 영적 결함들이 일일이 열거되어 말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세 가지 사실만을 주목하기로 한다. 어느 누구도 진리를 수단으로 하지 않으면 자기 수준에 맞추어 천적 인간이 되는 것, 다시 말해 진리가 없으면 자기 수준에 맞추어 선을 충분히 실감할 수 없다. 어느 누구도 불완전한 자신 그대로에서 천적 인간이 되거나 선을 실감할 수 없다. 천사 같은 가장 깊은 수준의 삶을 충분히 실감할 수 있게 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주님 뿐이시다. 천적 인간, 그가 삼층 천국의 천사가 되려면 비록 그가 의지를 통하여 거듭나고 있다 해도 진리를 수단으로 완전해져야 한다. 영적 인간, 그가 이층 천국의 천사가 되려면 먼저 진리에 관한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자연적 인간, 그가 일층 천국 즉 최말단 천국의 천사가 되려면 그의 천국 삶을 구성하게 되는 단순한 순종의 상태에 도달될 수 있도록 진리에 관한 지식에 의존해야 한다. 따라서 위 세 천국의 천사들 모두 주님께 감사 드려야 하는 공통된 한 가지는 우리에게 말씀이라는 선물을 주신데 대하여서 일 것이다.
두 번째, 우리 품성 속에 있는 결함들은 우리가 발전하는데 장애물이다. 비록 그 결함들이 선을 우리 것이 되게 하는 점진적인 진보에 방해 안 되는 듯 여겨도 결국 장애물인 것은 부정 못한다. 우리는 갖가지 이유들로 해서 가장 깊고 높은 생명으로 충만된 예배를 드릴 수 없다. 그 이유는 우리 삶의 여행이 소경과 절름발이 같은 자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측면에서 빈약하다. 그렇다 해도 우리가 진리와 선을 원리로 채택하여 그 안에 굳게 서있는다면 우리 주님의 살을 먹고, 우리 주님의 피를 영적으로 언제나 마실 수 있다.
셋째로, 주님을 인내로 기다리는 우리 몫을 해나가노라면 우리 결함이 어떤 것이든 주님께서는 제거해 주시어 깨끗해져 거룩해질 수 있다. “악한 자는 망하게 마련이요, 여호와를 기다리는 자 땅을 물려받으리라” (시편 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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