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지명과 상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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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약자표
창 창세기 이 이사야 학 학개 마 마태복음
출 출애굽기 예 예레미야 슥 스가랴 막 마가복음
레 레위기 겔 에스겔 말 말라기 눅 누가복음
민 민수기 단 다니엘 요 요한복음
신 신명기 호 호세아 계 요한계시록
여 여호수아 욜 요엘
사 사사기 암 아모스
삼상 사무엘상 옵 오바댜
삼하 사무엘하 욘 요나
왕상 열왕기상 미 미가
왕하 열왕기하 나 나흠
욥 욥기 합 하박국
시 시편 습 스바냐
차례
가나 (Cana)-가나안 (땅, 토지, Land of Canaan)-가데스 (Kadesh)-가버나움 (Kapernaum, Capernaum)-가사 (Gaza)-갈대아 (Chaldea)-갈라 (Calah)-갈르엣 (Galeed)- 갈릴리 (Galilee)-갈멜 (Carmel)-강 (river)-개천 (ditch)-거리 (street)-거십 (Khesib, Chesib)-게네사렛 (Gennesaret)-게헤나 (Gehenna)-겟세마네 (Gethemane)-경계 (boundary, term)-끝내다 (terminate)-고모라 (Gomorrah)-고센 (Goshen)-골짜기 (valley)-광야 (wilderness)-구덩이 (pit)-구렁(텅이)(gulf)-구멍 (hole)-그랄 (Gerar)- 기랴다임 (Kiriathaim)-기럇-아르바 (Kirjath-arba)-기브아 (Gibeah)-기혼 (Gihon)-길 (way)-길갈 (Gilgal)-길르앗 (Gilead)-꼭대기 (top)
나일 (Nile)-낙원 (paradise)-넓은 장소 (broad places)-높은 장소 (high place)-니느웨 (Nineveh)
다마스커스 (Damascus)-다메섹-달시스 (Tarshish)-데만 (Teman)-도단 (Dothan)- 도벳 (Tophet)-동굴 (cave)-동산 (garden)-두로 (Tyre)-두아디라 (Thyatira)-(강)둑 (bank)-드단 (Dedan)- 들판 (field)-딤나 (Timnath)-땅 (earth)-토지 (land)-뜰 (court)
라마 (Ramah)-라메시스(Rameses)-라사 (Lasha)-라오디게아 (Laodicea)-랍바 (Rabbah)
-레바논 (Lebanon)-레센 (Resen)-루즈 (Luz)-르비딤 (Rephdim)-르호봇 (Rehoboth)
마라 (Marah)-마싸 (Massah)-마을 (village)-마하나임 (Mahanaim)-막벨라 (Machpelah)-막게다 (Makkedah)-만 (gulf)-맨끝 (extreme)-메사 (Mesha)-멤피스 (Memphis)-모레 (Moreh)-모리아 (Moriah)-목초지 (pasture)-못 (pool)-무덤 (grave, sepulchre)-물웅덩이 (pool)-못 (pool)-므깃도 (Megiado)-므리바 (Meribah)-미스갑 (Misgab)-미스바 (Mizpah)-믹돌 (Migdol)
바다 (sea)-바닷가 (shore)-바드로스 (Pathros)-바란 (Paran)-바산 (Bashan)-밖에 (without)-밧단 아람 (Padden Aram)-밧모 (Patmos)-버가모 (Pergamos)-베데스다 (Bethesda)-베들레헴 (Bethlehem)-베렛 (Bered)-벧엘 (Bethel)-보금자리 (nest)-보스라 (Bozrah)-부스 (Buz)-브라데 (Phrath)-브엘 (Beer)-브엘-라해-로이 (Beer-lahai-roi)- 브엘세바 (Beershaba)-비돔 (Pithom)-비손 (Pison)-비-하히롯 (Pi-hahiroth)-빨랫집 (fuller)
사데 (Sardis)-사렙다 (Sarepta)-사론 (Sharon)-사마리아 (Samaria)-사마리아 사람 (Samaritan)-사막 (desert)-사웨 (Shaveh)-사초 (sedge)-사할 (Zachar)-산 (mountain)- 살렘 (Salem)-새 땅 (new earth)-샘 (fountain)-샘 (spring)-샘 (well)-섬 (island, isle)-성지 (holy land)-세겜 (Shechem)-세바 (Shibah)-세일 (Seir)-소돔 (Sodom)-소안 (Zoan)-소알 (Zoar)-수르 (Shur)-술 (Shur)-수에네 (Seveneh)-수프 바다 (Sea Suph)-숨긴 장소 (hiding place)-숫곳 (Succoth)-습지 (marsh)-시날 (Shinar)-시내 (brook)-시내 (Sinai)- 시내산 (Mount Sinai)-시띰 (Siddim)-시온 (Zion)-시홀 (Sihor)-신 (Sin)-실로 (Shiloh)-
실로암 (Siloam)-십마 (Sibmah)-쓸쓸한 곳(solitude)
아골 (Achor)-아드마 (Admah)-아라랏 (Ararat)-아라비아 (Arabia)-아마겟돈 (Armageddon)-아시아 (Asia)-아싸 (Azzah)-아웬 (Aven)-아이 (Ai)-악갓 (Acad)-얍복 (Jabbok)-양우리 (sheepfold)-어디 (where)-어디서 (whence)-언덕 (hill)-에네글라임 (En-eglaim)-에담 (Etham)-에덴 (Eden)-에베소 (Ephesus)-에브라데 (Ephrath)-에스골 (Eshcol, 시내 또는 골짜기)-엔게디 (Engedi)-엔미스밧 (En-Misphat)-엘림 (Elim)-여관- (inn)-여리고 (Jericho)-예루살렘 (Jerusalem)-오빌 (Ophir)-요단 (Jordan)-우르 (Ur) -우바스 (Uphaz)-위치 (station)-유대 (Judea)-유브라데 (Euphrates)
자리 (seat)-자비석 (mercy-seat)-작은 길 (path)-장소 (place)-…주위에 (around)-
지면 (ground)-지역 (quarter)-지옥 (hell)
큰 폭포 (cataract)
타작 마당 (threshing floor)
평지 (plain)-포도원 (vineyard)-풀밭 (meadow)-필라델피아 (Philadelphia)
하란 (Haran, 장소)-하윌라 (토지) (Havilah)-한가운데 (midst)-항구 (haven)-헤레스 (Heres)-헤르몬 (Hermon)-헤브론 (Hebron)-헤스본 (Heshbon)-헬본 (Helbon)-호렙 (Horeb)-호바 (Hobah)-호수 (lake)-홍해 (Red Sea)-(유대교) 회당 (synagogue)-힛데겔 (Hiddekel)
가나 (Cana)
요2:1-‘갈릴리 가나의 결혼’=이방인들과 더불은 교회.
가나안 (땅, 토지, Land of Canaan)
* 토지도 참조
겔16:3-여기서의 경우, 내적인 것 없는 외적 예배가 ‘가나안’이다.
창12:5-‘(아브람외 여러 사람들은) 가나안의 토지로 가려고 나아갔다’=그리하여 주님은 사랑의 천적인 것들 쪽으로 나아가셨다는 것. ‘가나안의 토지’는 천국 안에, 그리고 땅 위에 있는 주님의 왕국을 표현한다; 이러므로 해서 거기에 표현적인 교회가 설립되었다…이로부터 가나안의 토지는 비록 그곳에 거룩한 것이라고는 거의 없이, 오히려 우상숭배자들이나 모독하는 백성들이 차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거룩한 토지라 불리웠다. 이런 이유에서 이 절과 다음 절에서 ‘가나안의 토지’에 의해 사랑의 천적인 것들이 의미되어진다; 그 이유가 사랑의 천적인 것들은 주님의 왕국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고 그분의 왕국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창13:9-‘네 앞에 토지 전체가 있지 않느냐?’=모든 선. ‘토지’ 좋은 의미에서, 그리고 여기서 ‘가나안의 토지’=천적인 것, 고로 선.
창13:12-‘아브람은 가나안의 토지에서 거주했다’=내적 인간, 이 인간은 사랑의 천적인 것 안에 있었다는 것.
창13:15-‘네가 보는 모든 토지를 나는 너에게 줄 것이다’=천적 왕국, 이 왕국은 주님의 것이다는 것…’ 그 이유가 토지’, 또는 ‘가나안의 토지’는 천국들에 있는 주님의 왕국, 또는 천국, 그리고 땅 위의 하느님의 왕국, 또는 교회가 표현되어지고 있다.
창13:17-‘일어나 이 토지 여기저기를 걸어라’=그분은 천적 왕국을 탐사하실 것이다는 것…’토지’, 또는 ‘가나안의 토지’는 천국들에 있는 하느님의 왕국, 또는 천국, 그리고 땅 위에 있는 하느님의 왕국, 또는 교회가 의미되고 있다.
창15:18-‘가나안의 토지’=주님의 왕국. 그러므로 ‘네 씨에게 나는 이 토지를 줄 것이다’=천국적인 왕국이 선행으로부터 그분에 대한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 유업으로 주어질 것이다는 것
창16:3-이것들은 아브람이 ‘가나안의 토지’에 거주한지 십년에 의해 의미되는 남겨진 것들이다.
창17:8-‘가나안의 모든 토지’=천국의 왕국.
민13:2,3-‘바란 광야로부터 그들은 가나안의 토지를 탐험했다’=주님의 신성한 인간을 통하여 영적인 것을 위한 천국의 왕국이 있다.
창22:17-인간이 영적으로 되어갈 때, 또는 거듭나아질 때, 악들과 거짓들, 마찬가지 것으로 악귀와 악령들이 그의 문으로부터, 또는 그의 마음으로부터 추방되고, 그 다음 선들과 진리들, 또는 선행과 신앙이 그것들의 자리를 대신 꿰차고 들어앉는다; 이것이 ‘네 씨가 네 적들의 문을 상속 받는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이것이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가나안의 토지로부터 나라들을 추방하는 것으로 표현되어지고 있다.
창28:1-‘너는 가나안의 딸들로부터 여인을 데려오지 마라’=악과 거짓에 대한 애정들과 결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가나안’=거짓과 악인 것.
창28:8-‘가나안의 딸들’, 여기서의 경우=순수하지 않은 것으로부터의 진리에 애착함들; (그 이유는 헷의 딸들로 이해되기 때문).
창31:18-‘가나안의 토지에 있는 자기 아버지 이삭에게 오는 것’=그분의 인성이 신성이 되기 위하여 합리성의 신성한 선과 결합하는 것. ‘가나안의 토지’=주님의 천적 왕국, 그리고 최고 의미에서, 즉 주님을 서술할 때, 그분의 신성한 인간.
여11:16,17-세일 산은 한쪽 측면으로는 가나안의 경계였다.
창33:18-‘가나안의 토지에서’=주님의 왕국에서.
창15:18-가나안의 토지는 (태고 교회의 때에는) 이집트의 강으로부터 유브라데 강까지 이르는 모든 토지를 두고 그렇게 불리웠다.
창35:12-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었던 토지, 나는 그것을 너에게 줄 것이다’=자연에 있는 신성한 선을 내 것되게 해주심…’가나안의 토지’, 여기서는 ‘토지’를 말하는데, 내향의 의미에서=주님의 왕국, 그리고 이로부터의 교회, 이는 땅에 있는 주님의 왕국; 그러므로 그 토지=선, 그이유가 선은 주님의 왕국과 교회의 참 본질이기 때문. 그러나 최고 의미에서, ‘가나안의 토지’=주님의 신성한 선; 그 이유가 천국들과 땅에 있는 주님의 왕국에 있는 선은 주님으로부터이기 때문.
신11:11-‘가나안의 토지’에 의해 주님의 왕국과 그분의 교회가 의미되어지는 바, ‘이 토지는 산들과 계곡이 있어 하늘의 비가 내리면 물들을 마신다’ 라고 불리우고 있다.
창42:5-‘가믐이 가나안의 토지에 있었기 때문에’=자연의 교회 속에 있는 것들의 삭막함.
창44:8-‘우리는 가나안의 토지로부터 당신에게 (은을) 되가져왔습니다’=종교적인 것으로부터 있는 복종.
창45:17-‘가라, 너희는 가나안의 토지로 가라’=그들의 주거지, 즉 자연의 교회 속의 진리들의 것…‘가나안의 토지’=교회 속에 있어 왔던 이들의 주거지; 고로 선과 더불은 교회 속의 진리들의 주거지, 그 이유는 이런 것들이 교회를 구성하기 때문.
창47:14-‘가믐이 가나안의 토지에 극심하였다’=교회에 있어야 할 것들이 결핍됨.
창50:24-(‘토지’ 여기서, 가나안을 뜻하는데, 고대 교회, 또는 고대인들이 있었던 교회의 상태.)
출3:8-‘아름답고 넓은 토지로’=천국, 선행의 선과 신앙의 진리가 있는 곳. ‘토지’ 여기서 ‘가나안의 토지’=주님의 왕국, 고로 천국.
출6:4-‘그들에게 가나안의 토지를 주는 것’=주님의 신성한 인간을 통한 결합을 수단으로 천국으로 승강됨.
출12:25-‘너희는 여호와께서 너에게 줄 토지로 올 것이다’=주님으로부터 그들과 더불어 있는 천국으로.
출15:15-‘가나안의 모든 주민들은 점차 사라질 것이다’=이것은 교회 속에 있는 이들과도 똑같다는 것, 그리고 그들은 선들을 섞음질하고 진리들을 왜곡해버렸다는 것.
출16:35-‘그들은 가나안의 경계에 당도 할 때까지 만나를 먹었다’=그들은 천국의 영역에 올 때까지 진리로부터의 선을 자기 것 되게 하는 경험을 가졌다는 것…‘가나안의 토지’=천국.
출32:34-‘가나안의 토지로 백성을 인도하는 것’=그들로 교회이도록 하는 것.
사5:19-‘가나안의 왕들이 싸웠다’=악의 거짓들과 맞서는 전투가 있다.
가데스 (Kadesh)
창14:7-‘그들은 엔머스밧으로 왔다, 이곳은 가데스이다’=계속됨…‘가데스’에 의해 진리들이 의미되어진다, 또한 진리들에 관하여 논쟁함도 의미된다. 여기서는 주님이 그분의 첫 전투에서 정복하신 거짓들과 이 거짓에서 파생된 악들에 관한 것을 취급하고 있기에, ‘엔머스밧, 가데스’라는 언급이 있는데, 그이유는 거기서 진리들에 관한 다툼이 있었기 때문.
겔47:19, 48:28-‘가데스=진리에 관하여 논쟁이 있는 것.
민21:1-13, 27:14, 신32:51-‘모세가 바위를 친 곳’..이 물은 ‘므리바’라 불리우고 있다. 이는 다툼으로부터이다.
민13:26-스파이들이 되돌아 온 곳 역시 ‘가데스’이고, 거기서 그들은 불평하고 다투었다.
창16:14-‘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다’=품질, 즉 그분은 이 진리의 품질이 무엇이었는지 보셨다는 것…‘가데스’=진리, 또한 진리들에 관하여 다툼.
창20:1-주님이 선행과 신앙에 관한 교리적인 것들로 처음 가르쳐졌을 때 그분이 계셨던 상태가 ‘가데스와 수르’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시29:8-‘광야’, 그리고 ‘가데스 광야’에 의해 어떤 진리와 선도 있지 않는 교회가 의미되어진다.
가버나움 (Kapernaum, Capernaum)
마11:23-‘가버나움’=가르쳐진 이들.
가사 (Gaza)
창10:19-‘가사’=선행에 관련하여 계시된 일련의 사항들.
갈대아 (Chaldea)
창11:28-‘갈대아 (나라)의 우르’=거짓이 있는 외적 예배.
* ‘갈대아’=진리를 모독함.
겔23:17-갈대아인들이 ‘바벨의 아들들’이라 불리는데 이는 예배에서 모독된 진리들을 명시한다.
갈라 (Calah)
창10:11-‘르호보딜과 갈라’=또다른 근원으로부터 오는 유사한 것.
* ‘갈라’=탐욕들로부터의 거짓.
* 교리적인 것들로부터의 거짓들의 셋째 근원은 의지 속에, 고로 탐욕 속에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자기들의 탐욕을 사랑해주는 것 말고는 어떤 것도 진리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거기서 파생된 거짓들이 ‘갈라’라 불리워지고 있다.
갈르엣 (Galeed)
창31:47-‘야곱은 그것을 갈르엣이라 불렀다’=신성한 자연 평면의 선의 측면에서의 그것의 품질…‘갈르엣’은 ‘쌓아올린 것’, ‘증거자’, 또는 ‘증거가 되게 쌓아 놓은 것’을 뜻한다.
창31:48-‘쌓아 올린 것’=선…그리고 ‘증거’, 진리를 수단으로 선을 확증함…품질 자체가 이름 ‘갈르엣’에 함유되어 있다…이는 라반이 했던 말, ‘이 더미는 오늘 너와 나 사이에 증거이다, 그러므로 그는 ’갈르엣‘이라 불렀다’에 의해 주님의 신성한 자연 평면의 선에 여기서 라반에 의해 의미된 선의 결합의 증거를 의미함이 분명해진다. 그리고 선을 수단으로 주님과 이방인의 결합도 의미된다.
갈릴리 (Galilee)
요2:1-‘갈릴리의 가나에서’=이방인들 사이에서.
마4:13, 이9:1-‘스불론의 토지와 납달리의 토지 그리고 이방인의 갈릴리’=생활의 선 안에 있고 진리를 받는 이들 사이에서 교회가 건설됨, 고로 이들과의 결합, 그리고 악들과 거짓들에 맞선 전투.
갈멜 (Carmel)
이16:10-영적 교회, 이는 ‘갈멜’(또는 ‘열매 풍성한 들판).
예50:19-‘갈멜과 바산에서 풀을 뜯는 것’=신앙과 선행으로부터의 선 안에서 훈육되는 것.
이35:2-‘레바논’=영적 교회. ‘갈멜과 사론’=천적 교회. 후자는 ‘여호와의 영광’의 속성이라 단정된다. 이는 선행(charity)인 천적 진리가 뜻해질 때이다. 전자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영예’의 속성이라 단정된다. 이는 선행인 영적 선이 뜻해진다.
이10:18-‘갈멜’=영적 교회, 거기에 포도원이 있기 때문이다.
이35:2-‘갈멜과 사론의 영예’=그들이 받는 신성한 선.
이16:10-교회의 선이 ‘갈멜’에 의해 뜻해진다. 그리고 그로부터의 진리들은 ‘포도원들’에 의해 뜻해진다.
암1:2-‘갈멜의 꼭대기’=교회의 모든 진리들. 그이유는 갈멜에 포도원들이 있기 때문.
예4:26-‘갈멜’=선으로부터 진리 안에 있는 영적 교회. 그것이 ‘황무지’임=거기 선으로부터의 진리들이 없음.
이33:9-‘레바논’=선과 진리를 합리적으로 이해함에 관련한 교회. ‘사론, 바산, 갈멜’=말씀의 자연적 의미로부터의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에 관련한 교회.
이10:18-‘숲의 영광, 그리고 갈멜, 이는 불과 불꽃이 먹어치워 소멸할 것이다’=진리와 교회의 선으로부터의 진리, 이것이 거짓들과 거짓으로부터의 악들로 변했는바 파괴될 것이다.
예48:33-심정의 참 환희인 영적 사랑과 천적 사랑의 즐거움이 멸해진다는 것이 ‘갈멜로부터 기쁨과 즐거움이 모두 그러모아짐’에 의해 의미되었다.
강 (river)
* brook도 참조
시36:8-‘당신의 유쾌하심의 강’=신앙 속의 영적인 것. (=사랑의 선으로부터 있는 진리). (총명과 행복).
겔31:15-지옥으로부터의 추잡한 것들이 ‘강들’이라 불리운다.
예46:8-‘이집트의 강들’=갖가지 거짓된 과학적 사실들.
예47:2-‘범람하는 시내’=거짓. (=진리를 이해함을 파괴하는 과학적인 것)
이30:33-‘유황이 타는 시내’=자아 사랑의 악으로부터의 거짓들.
시24:2-‘그분은 홍수들 위에 그것을 설립하셨다’=총명 속에 있는 것들 위에. (=신앙 속의 진리들 위에).
출1:22-‘모든 아들…너희는 강에 던질 것이다’=그들은 모든 진리들을 거짓에 담글 것이다는 것.
이18:1-‘구스의 강들 넘어’=그들이 거짓 원리들을 확증하는 수단인 지식들 쪽으로
출2:3-‘그녀는 강둑의 창포 안에 그것을 놓았다’=거짓된 과학물 사이에. ‘이집트의 강’=거짓인 것.
이19:6-‘강들’=총명 속의 것들
출2:5-‘강에서 씻는 것’=거짓인 것으로부터의 예배.
출7:15-‘강둑’=거짓의 상태 안에 침입된 이들이 있었다.
출7:19-‘그들의 시내 위에, 그리고 그들의 강들 위에’=거짓의 교리들 안으로…‘시내들과 강들’, 이는 물의 집합인 바,=교리들; 이 구절의 경우 거짓 교리들. ‘시내들’=총명에 관한 것들, 고로 진리 속의 것들; 반대 의미에서 총명에 반대되는 것, 고로 거짓 속의 것들.
겔32:14-이집트의 ‘물들’ 그리고 ‘강들’=과학적 진리들.
요7:38-‘생명 있는 물의 강들’=주님 만으로부터 (풍부하게) 있는 신성한 진리.
마7:27-‘홍수들이 왔다, 그리고 그 집을 때렸다’=거짓들이 넘쳐남…또한 ‘홍수들’=시험들, 시험은 거짓의 범람이다.
계12:15-‘뱀은 홍수 같은 물을…토했다’=거짓들로부터의 추론이 대단히 풍부함.
시24:2-‘홍수들’=교리적인 것들.
단7:10-‘불의 시내가 흐른다’=사랑의 신성한 선; 그리고 ‘발행됨, going forth’=신성한 진리가 진행됨.
이33:21-‘장엄한 여호와는 우리에게 강들의 장소, 시내의 장소(일 것이다)’…‘강들’=지혜; ‘시내’=총명.
시110:7-‘그분은 길에서 시내를 마실 것이다’=글자로 있는 말씀.
계9:14-‘큰 강 유브라데’=지식들로부터 있는 인간의 합리성.
시72:8-‘강으로부터 땅의 끝들까지’=합리적이고 영적인 것들의 확장.
요7:38-‘배에서 나오는 강들’=내면적으로 이해함, 또는 총명.
이19:5,6-‘시내들이 물러갈 것이다’=영적 총명의 모든 것들이 떠날 것이다.
마7장-‘홍수들’=이 구절의 경우 비로부터 물의 범람=시험들.
창2장-‘강’, 동산에서=지혜; ‘첫째 강’=선과 진리; ‘둘째 강’=선과 진리, 또는 사랑과 신앙 속에 있는 모든 것들에 관한 지식들; ‘셋째 강’=이성; ‘넷째 강’=외적 인간 속에 있는 지식. 위 모두는 지혜로부터 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랑과 주님에 대한 신앙으로부터 이다.
* ‘에덴으로부터 흐르는 강’=사랑으로부터의 지혜.
창15:18-‘이집트의 강으로부터 큰 강, 유브라데 강까지’=영적인 것들과 천적인 것들의 확장; ‘이집트의 강까지’=영적인 것들의 확장; ‘유브라데 강까지’=천적인 것들의 확장.
겔31장-‘강들’ 등등=영적 선들, 이 선들 사이에 그것의 뿌리가 있었다.
시89:25-‘강들에 오른손을 놓는 것’=진리에 관한 지식 안에서 힘을 얻는 것.
창24:10-‘아람 나하라임’, 또는 ‘강들의 시리아’=진리에 관한 지식들, 그 이유는 ‘강들’=총명, 이것은 진리에 관한 지식 속에 있다.
겔47:9-‘강’=말씀; ‘모든 것을 살아있게 하는 물들’=말씀 안에 있는 신성한 진리들.
이30:28=‘범람하는 시내’=거짓이 넘쳐 흐름.
창31:21-‘(야곱)이 강을 건넜다’=결합이 있는 상태. 여기서의 강은 유브라데=신성과 결합, 그 이유는 이 강은 저쪽 편에서 가나안의 경계였기 때문…이제 야곱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바, 이 강은 그의 첫 번째 경계였다, 고로=결합…
창32:23-‘(야곱은) 그것들이 강을 건너게 만들었다’=한층 더 은근히 심어짐(further insinuation).
계8:10-‘강들, 물들의 원천들’=총명과 말씀으로부터의 지혜.
예2:18-‘앗수르와 강의 물들’=생활의 선과 신앙 속의 진리에 맞서 이런 과학적 사실로부터 추론함.
창41:2-(바로가 꿈을 꾸기를) ‘그는 강가에 서있었다’=경계로부터 경계까지. ‘강’, 여기서는 이집트의 강, 또는 나일 강,=경계인데, 큰 강들, 즉 유브라데, 요단, 그리고 나일은 가나안의 최말단 경계들이었다.
창41:3-‘강둑에서’=경계들에서.
겔47장-‘강둑에서 양식이 될 모든 나무가 올라왔다’=총명과 지헤의 것들.
이35:6-‘광야에서 물들이 터져나오고 사막의 평지에 시내들(이 흐른다)’=그들을 위한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
계12:15-‘홍수 같은 물’=악으로부터의 거짓, 그리고 이것으로부터 추론함.
출7:18-‘강이 악취를 풍길 것이다’=그것을 혐오함. 여기서의 강은 이집트의 강이고 이 강이 피로 변했다=왜곡된 진리.
출8:3-‘강이 개구리들을 출현시킬 것이다’=이런 거짓들로부터의 추론들.
출8:9-‘강 안에서만 그것들은 살아남을 것이다’=그들은 이런 것들이 있는 거짓들과 더불어 남겨져야 할 것.
시74:15-‘당신은 세찬 강들을 말리셨다’=한층 더 센 거짓들이 흐트러지는 것
겔47장-‘강들’=총명에 관한 것들, 이것은 믿음 속의 진리들로부터 있다.
이30:33-‘유황의 시내’=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의 악들로부터의 거짓들.
출23:31-‘사막으로부터 강에까지’=감각성의 즐거움으로부터 합리성의 선과 진리까지. (그 이유가 유브라데 강을 뜻하기 때문)
시80:11-‘바다로 그리고 강으로’=내면의 진리들과 선들 쪽으로.
이50:2-‘나는 강을 광야로 만든다’=진리들 자체가 황폐되는 것.
이7:19-‘황량함들의 강들’=교리 속의 진리들이 완전히 황량해졌다. (=거기에 진리들은 없다)
계8:10-‘강들의 삼분의 일이 떨어졌다’=모든 진리들이 완전히 왜곡되었다. ‘강들’=풍부한 진리들.
계16:4-‘그의 대접을 강들 위에 쏟았다’=그것들과 더불어 이해성 안으로 유입됨…‘강들’=교리와 생활을 위한 합리적 인간, 고로 이해성을 섬기는데 충분한 진리들.
계22:1-‘수정 같이 빛을 내는 생명의 물의 순수한 강’=말씀의 영적 의미로부터 반투명 하는 신성한 진리가 풍부함.
계22장-‘강’=신성한 진리. (=총명)
이19:5-‘강이 말리울 것이다’=진리로부터의 교리가 없다, 이러므로 총명도 없다
이48:18- ‘강 같은 평화’=풍부함.
신8:7-교회가 ‘물 있는 강들의 토지’라 불린다, 그 이유는 ‘물 있는 강’=진리로부터의 교리들이기 때문.
시104:10-‘그분은 샘들을 강들 안으로 보내신다’=거기로부터의 총명.
이57:5-‘강들’=자기 고유의 총명.
이41:18-‘강들을 여는 것’=총명을 주는 것.
시74:15-‘원천과 홍수들’=교리 속의 거짓들, 이것은 인간 고유의 총명으로부터 이다. ‘세찬 강들’=거짓의 원리들이 확증되어 파생됨.
이43:2-‘네가…강을 통과하여 건널 때, 그것들이 너를 침몰되게 하지 않을 것이다’=진리들에 맞서는 거짓들로부터의 추론들(이 들어와 부패하게 하지 못할 것이다)
이50:2-‘나는 강들을 광야로 만든다’=(진리들에 관한) 합리적 인간을 박탈하는 것, 고로 더 이상 총명은 없다.
이43:20-‘쓸쓸한 장소에 강들이..’=이전에 있지 않았던 진리로부터의 총명.
겔47장-‘강’=신성한 진리를 영접함으로부터의 총명…(=총명과 지혜)
예17:8-‘강가로 그의 뿌리들을 보내는 것’=영적인 것으로부터 자연적인 것으로 총명이 확장됨.
민24:6,7-‘강가에 심었다’ 그리고 ‘물들’=신성한 진리가 흐름, 이로부터 총명이 있음.
겔31:4-총명이 증가함이 ‘그것의 강들이 그의 심은 것을 빙둘러 달린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시105:41-‘그분은 바위를 여셨다…강 같이 메마른 장소에서 내달렸다’…‘강들’=총명과 지혜.
합3:8-‘강들’, 그리고 ‘바다’=교회의 모든 것, 그 이유는 그들=그것의 최말단들.
시46:4,5-말씀, 또는 교회를 위한 신성한 진리는 멸해지지 않는다가 ‘강이, 시내가 있어 하느님의 도성을 기쁘게 만들 것이다…그것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여기서의 ‘강’은 ‘원천’과 같은 의미, 즉 말씀을 의미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그것의 ‘시내들’ 때문, 시내=진리들.
이37:25-‘이집트의 강들’=진리에 관한 지식과 통각함, …그 이유는 자연적 인간(이집트)이 지식과 통각을 가지는 것은 마치 영적 인간이 총명을 가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겔30:12-‘나는 강들을 마른 (토지)로 만들 것이다’=진리에 관한 지식과 통각함은 더 이상 없다.
이42:15-‘나는 강들을 섬들로 만들 것이다’=총명이 멸해질 것이다는 것.
이18:2-‘강들이 망쳐버린 토지’ ‘강들’=인간 고유의 총명 속에 있는 거짓들.
시124:4-‘시내가 우리 혼을 삼켰다’. ‘시내’=진리들에 맞서 이런 거짓들로부터 추론함. 이것은 인간이 진리들과 진리들에 따른 생활을 통하여 받는 영적 생명을 파괴했다.
신1:7, 여1:4-‘큰 강’=영적인 것들이 합리적인 것들 안으로 유입됨.
이8:7-‘힘차고 많은 강의 물들, 앗수르 왕’=오류와 거짓들 만으로 추론함.
이19:6-‘이집트의 강들이 줄어들고 마를 것이다’=자연적 총명의 모든 것들이 멸해질 것이다.
열하19:24-‘이집트의 강들’=영적 근원으로부터 있는 과학물로부터의 자연적 인간의 총명.
예2:18-‘어찌하여 너는 강의 물들을 마시려고 앗수르로 가는 길에 있는가?’=거기로부터 추론함, 그때부터 믿음 속의 거짓들이 있다.
시107:33-‘그분은 강들을 광야로 만드신다’=진리를 이해함으로부터의 총명, 또는 말씀을 이해함으로부터의 총명이 악으로부터의 거짓을 수단으로 황폐되었다
이41:18-‘나는 절벽들에 강들을 열 것이다’=영적 진리들로부터의 총명.
시104:10-‘원천들’=말씀 속의 진리들; 그리고 ‘강들’=거기로부터의 총명.
이30:28-‘범람하는 시내’=거짓들로부터 추론함.
개천 (ditch)
단9:25-‘거리와 개천이 회복될 것이다.’ ‘거리’=진리, ‘개천’=교리.
거리 (street)
예9:21-‘거리에 있는 유아’=발생하고 있는 진리.
애2:12-‘도성의 거리들’=진리들.
애2:19-‘거리들’=진리들.
창19:2-‘우리는 거리에서 밤을 지낼 것이다’=말하자면 그분은 진리로부터의 심판을 원하셨다는 것…말씀에서, ‘거리’는 ‘길’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즉 진리. 그이유가 거리는 도성의 길이기 때문.
단9:25-‘거리와 개천이 회복될 것이다’=그 당시 진리와 선이 있을 것이다.
눅14:21-‘거리와 골목길로 빨리 가거라’=그는 얼마간의 진짜 진리, 즉 선으로부터 빛을 내는 진리를 어느 곳에서 구해야 할 것이다는 것.
예6:11-‘예루살렘의 거리들’=교회 안에 군림하는 거짓들.
이51:20-‘모든 거리의 머리에 눕는 것’=모든 진리를 빼앗는 것. (=진리가 흐트러지게 나타나는 것)
이24:11-‘거리에서 포도주 위에 울음이…’=거짓의 상태…‘거리들’=진리들 쪽으로 인도하는 것들 (=진리의 결핍 때문에 탄식함, 그리고 진리가 거짓과 뒤섞임)
눅13:26-‘당신은 우리의 거리에서 가르쳤다’=주님의 말씀으로부터 진리들을 전도하는 것. 그이유가 이전에는 전도가 거리에서 행해졌기 때문. ‘거리들’=교회의 교리 속의 진리들.
예48:38-‘거리들에서 슬퍼함’=모든 진리가 황폐됨.
계11:8-‘그들의 시체는 큰 도성의 거리 위에 뉘일 것이다’=…믿음 만으로 정의로워진다는 교리의 거짓들. ‘거리’=거짓.
계21:21-‘도성의 거리는 말하자면 투명한 유리 같은 순금이었다’=새 교회의 모든 진리, 그리고 이 교회의 교리 속의 모든 진리는 형체에서 주님으로부터 천국으로부터 나와 빛과 함께 흐르는 사랑의 선이다는 것…‘도성의 거리’에 의해 교회의 교리 속의 진리가 의미된다.
계22:2-‘그것의 거리 한가운데에 생명의 나무가 있었다’=교리의 가장 안쪽에서 주님은 그분의 신성한 사랑 안에 계신다. ‘거리’=교회의 교리 속의 진리.
예5:1-‘예루살렘의 거리들을 이리저리 달려라’, 그리고 ‘거기로부터 사방으로 찾아보라’=그 교회의 교리물들 안을 보고 조사하는 것…‘거리들’, ‘방면들’=교리물들.
예2:19-‘모든 거리들의 머리에서 배고픔을 통하여 현기증나는 것’=진리와 선에 대한 지식의 결핍을 통하여 영적 생명이 박탈되는 것.
슥8:15-‘도성의 거리들은 거리에서 노는 소년 소녀들로 꽉 찰 것이다’…‘도성의 거리들’=교리 속의 진리. ‘거리들에서 노는 소년들과 소녀들’=진리와 선에 애착함 들 (그리고 그들의 기쁨들. 이 기쁨은 교리의 진리들로 사는 이들에게 풍부해 있을 것이다) (=교리물로부터 기뻐 환호하는 순진으로부터의 진리들과 선들.)
예11:13-‘예루살렘의 도로들’=교회의 교리 속의 거짓들.
애4:14-‘거리들에서 눈멀어 방황하는 것’=진리들을 전혀 보지 못하는 것.
겔26:11-‘그들에 의해 짓밟힐 거리들’=교회의 교리 속의 진리들, 이것은 완전하게 파괴될 것이다.
애4:8-‘거리들에 알려져 있지 않는 것’=순수한 진리들에 의해 인식되지 않는 것.
예14:16-‘예루살렘의 거리들’=교회의 진리들.
예7:17-‘예루살렘의 거리들’=(교회의) 진리들. 여기서는 거짓들 (=교회의 교리 속의 진리들)
계11:8-‘큰 도성의 거리’=교리로부터의 진리와 선. 반대적 의미에서 교리로부터의 거짓과 악. 그이유가 ‘거리’에 의해 인도하는 진리, 반대 의미로는 인도하는 거짓.
이59:14-‘거리’=진리가 인도하는 곳인바, ‘진리가 거리에서 헛딛어 곱드러졌다’라고 말해지고 있다.
나2:4-‘거리들’과 ‘구역들’=각 사람의 애착과 지각과 일치하는 것. 이렇게 말해진다. ‘병거가 거리들에서 격노했고, 그것들은 사방으로 이리저리 달렸다.’
애4장-‘거리들’=생활의 선 쪽으로 인도하는 교리 속의 진리들. 또는 우리가 그것에 따라 살아 갈 진리.
예44:9-‘예루살렘의 거리들’=교리 속의 거짓들.
이15:3-‘거리들’=그들과 더불은 외면의 것들.
거십 (Khesib, Chesib)
창38:5-‘그녀가 그를 낳았을 때, 그는 거십에 있었다.’ ‘거십’=‘셀라’에 의해 의미된 우상숭배의 상태, 이 상태에 유대 나라가 있었다.
게네사렛 (Gennesaret)
눅5:1-‘바다, 또는 게네사렛 호수’, 주님을 서술할 경우,=복합체에 있는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들.
게헤나 (Gehenna)
마18:9-‘불의 게헤나’
막9장-여기서 게헤나, 또는 지옥이 취급된다.
마5:29-‘그리고 네 온 몸을 게헤나 안으로 던지지 마라’
* ‘게헤나’는 현세에의 욕망으로부터의 지옥이다.
막9:45-‘꺼질 수 없는 불 안으로, 게헤나 안으로 던져지는 것’
겟세마네 (Gethemane)
* 이와같은 것이 겟세마네와 십자가에서의 주님의 마지막 시험이었다.
*(이 세 제자들이) 겟세마네에서 주님을 시중들었다.
경계 (boundary, term)
끝내다 (terminate)
* border, canaan도 참조
창10:19-‘가나안족의 경계선’=그들과 더불은 지식들의 확장.
창23:17-‘경계선’과 ’주변‘=외면에 있는 것들.
창28:18-‘그는 기둥을 위해 그것을 놓았다’=거룩한 경계…선은 선 안에서 종결되어질 수 없다, 그러나 진리 안에서 가능한데, 그이유는 진리가 선의 그릇이기 때문.
창40:16-‘구멍이 있다, perforated’=중간 어느 곳에서 종결됨이 없다. 내면의 것들은 등급별로 구분되어진다, 그리고 각기 제 등급에서 종결되어진다, 그리고 종결됨을 통하여 더 낮은 등급과 분리되어진다…모든 등급들은 잘 종결될 필요가 있다, 이 종결을 수단으로 서로서로 구분되기 때문이다.
출10:4-‘네 경계 안에 메뚜기’=가장 바깥쪽 것들에 있는 거짓,
출13:7-‘모든 네 경계에’=선으로부터의 진리가 그 자체 넓혀지는 곳은 어디든지. ‘경계, border’=선으로부터의 진리가 팽창함. 그이유가 모든 진리는 각기 자신의 팽창을 가진다, 고로 그것의 경계선을 가진다.
출16:36-‘그들은 가나안 토지의 경계에 올 때 까지 만나를 먹었다’=그들은 천국의 영역에 올 때까지 진리로부터의 선을 제 것 되게 했다. ‘가나안의 토지의 경계’=천국의 입구, 또는 천국이 시작되는 구역.
출19:12-‘너는 백성 주변에 경계를 세울 것이다’=선의 영적 영역 쪽으로 보다 더 먼 것은 아닌 천국 쪽으로의 확장.
출23:31-‘너는 네 경계를 홍해로부터 블레셋의 바다에 까지로 세울 것이다’=과학적 진리로부터 신앙의 내면적 진리 쪽으로 확장함.
출28:14-‘끝들’=가장 바깥쪽 것들.
출28:22-‘너는 가슴받이 끝에 사슬을 놓아라’=가장 바깥쪽 것들에서 천국의 전체가 결합하는 것.
출34:24-‘나는 네 경계가 확장되게 만들 것이다’=선으로부터의 진리가 불어나고 확장됨.
이60:18-‘경계들에서’=자연적 인간에서, 이 인간에서 영적인 것들이 종결된다.
시144:14-‘경계’=이 모든 것들.
시105:31-‘경계’=내면의 것이 중단되는 최말단, 여기에 모두 함께 있다.
출28:31-‘나는 네 경계를 홍해에서 블레셋의 바다에 까지, 그리고 사막으로부터 강에 까지.’ 가나안의 경계들=교회의 최말단 것들, 이는 과학적 진리들, 말씀으로부터 진리와 선에 대한 지식들, 그리고 합리적인 것들이다.
이19:19-‘(이집트의) 경계’=과학적 진리.
고모라 (Gomorrah)
창13:10-‘고모라’=거짓된 설득들.
* ‘고모라’=자아 사랑과 거짓으로부터 명령을 집행하는 파생된 탐욕
* ‘고모라’=자아 사랑의 악으로부터 있는 모든 거짓.
신32:32-‘들판들과 고모라의 포도들’=거짓들로부터의 악들.
예23:14-‘고모라 주민 같은 주민들’=교리의 거짓들로부터의 악한 생활.
고센 (Goshen)
창45:10-‘당신은 고센의 토지에 거주할 것입니다’=자연 평면에서 중간인 것. ‘고센 토지’=중간, 또는 가장 안쪽. 이 토지가 이집트에 있고, 이집트가 자연 평면에 있는 과학적인 것을 의미하는 바, 고센=자연에서 중간인 것, 또는 가장 안쪽인 것이다. 그이유가 고센은 이집트의 토지 중에서 가장 좋은 지역이기 때문, 마찬가지로 과학물이 있는 곳, 자연에서 가장 좋은 것은 중간에, 또는 중앙에 있기 때문. 그이유가 선 자체, 일종의 태양 같이, 거기에 있다, 그리고 측면에 있는 것에 빛을 준다.
창46:28-‘그 자신 앞에 고센을 보여주는 것’=자연에서 중간에 관하여…자연에서 중간 또는 가장 깊은 것은 거기 안의 가장 좋은 것이 의미된다. 그 이유가 가장 좋은 것은 중간에 있기 때문…그리고 그것 주위 각처에 선들이 천국적 형태에서 배치된다.
출8:18-‘나는 그 날에 고센의 토지를 구별할 것이다’=그들은 비록 영적 교회의 이들 근처에 나타난다 해도, 그들을 감염되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골짜기 (valley)
창11:2-‘그들은 시날의 토지에서 골짜기를 발견했다’=그들의 예배는 더 불순해지고 모독되었다는 것…’골짜기’=산 보다 더 낮은 것; 고로 예배에서 보다 더 낮은 것, 즉 외면의 것.
이22:1-‘환상의 골짜기’=몽상과 추론에 의해 예배가 왜곡되어지고 결국 모독되었다.
창14:3-‘싯딤의 골짜기에서’=탐욕의 불결한 것들.
창14:17-‘사웨 골짜기에서, 이는 왕의 골짜기이다’=그 당시 선과 진리에 관련한 외적 인간의 상태. ‘사웨의 골짜기’=외적 인간의 선들. 그리고 ‘왕의 골짜기’=외적 인간의 진리들. 외적 인간이 ‘골짜기’라 불리운다. 이는 골짜기가 보다 아래쪽이다는 사실로부터이다.
창26:17-‘(이삭은) 그랄 골짜기에 천막을 치고 거기 거주했다’=그분은 자신을 더 낮은 합리적인 것들에서 시작하게 하셨다, 즉 자신을 내면의 나타남으로부터 외면의 나타남으로 가게 하셨다는 것. ‘골짜기’=보다 낮은, 또는 외면의 것들.
창26:19-‘골짜기에서 (땅을) 파는 것’=그들이 있는 곳에 관하여 진리들에 의거 아래쪽 더 낮은 것을 추구하는 것. ‘골짜기’=더 낮은 것.
눅3:5-‘모든 골짜기가 채워질 것이다.’ ‘골짜기’=낮게 있는 것.
창37:14-‘그는 헤브론의 골짜기로부터 그를 보냈다’=신성의 자연적 평면과 감각 평면으로부터. ‘골짜기’=아래 있는 것들.
이22:1-‘환상의 골짜기’=감각적인 것들로부터 영적인 것들에 관한 몽상, 고로 더 낮은 것으로부터.
이22:7-‘골짜기들의 선택’=자연적 또는 외적 인간에 있는 선들과 진리들.
이40:4-‘모든 골짜기가 드높여질 것이다.’ ‘골짜기’=낮은 것.
예2:23-‘골짜기에 있는 네 길을 보라.’ ‘골짜기’=과학적, 감각적인 것들. 그들이 남용함으로 인해 더 낮아진 것들.
예21:13-‘골짜기의 주민들’=선행이 있지 않은 신앙.
예49:4-‘너는 골짜기들을 자랑하려들지 마라. 네 골짜기는 흘러가버렸다, 타락한 딸아.’ ‘계곡’=예배에 있는 외적인 것들, 이는 또한 가장 낮은 것이다.
시23:4-‘그늘의 골짜기’=더 낮은 것들, 이는 상대적으로 그늘에 있다.
신111:11-골짜기들이 산들과 언덕들 사이에, 또는 그것들 아래에 있는바, ‘골짜기’는 교회의 보다 낮은 또는 외면의 것을 의미한다. 그 이유가 ‘언덕’, ‘산’은 더 높은 것, 또는 내면의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나안의 토지에 의해 주님의 왕국과 그분의 교회가 의미되는바, 말해지기를, ‘산들과 골짜기들의 토지, 하늘로부터의 비의 물을 마신다.’
사5:15-‘그의 발 아래 계곡에서’=가장 낮은 것들에서 섬기는 것.
신21:4-‘경작하지도, 씨를 뿌리지도 못하는 메마른 골짜기’=계발되지 않은 자연적 마음, 그 결과 신앙의 선과 진리에 무지한 자연적 마음.
슥14:4-‘동쪽을 향하여 그리고 바다쪽을 향하여 산이 쪼개짐, 큰 계곡에서’=천국과 지옥의 분리.
이65:10-‘아골의 골짜기’=(천적 선이 있는) 외적인 것.
겔36:6-‘물의 흐름과 골짜기들’=교회의 최말단들인 진리들과 선들.
신8:7-외면의 진리들이 ‘골짜기로부터’ 솟는다고 말해진다. 그 이유는 ‘골짜기’=이와 같은 진리들이 있는 곳이 낮고 외면의 것들이기 때문.
이28:4-‘살찐 것들의 골짜기의 머리’=자연적 인간의 총명.
시104:8-‘당신이 그들을 위해 발견한 장소로 산들이 올라가고, 골짜기들이 내려간다’=그들로부터의 자연적 사랑들과 악들 대신에 그들로부터 천적 사랑들과 선들이 삽입되었다. 그리고 거짓들 대신에 일반적 진리들이 승인되었다.
슥14:5-‘그때에 너는 내 산들의 계곡을 통과하여 도망하라’=그때에 선으로부터 진리들에 있는 이들은 구조될 것이다…‘산들의 계곡’=진리에 대한 지식들에 있는 이들, 이로부터 선으로부터의 진리들에 있는 이들.
겔6:3-‘운하들과 계곡들’=외면 또는 자연적인 것들.
미1:4-‘계곡들’=파생되는 거짓들.
이41:18-‘계곡들의 한가운데’=외면적인 인간 안에.
민24:6-‘계곡 같이 그들은 심었다’=자연적 인간의 총명. 이에 비해 ‘동산’=영적 인간의 총명.
신11:11-‘산들과 계곡들의 토지’=교회의 더 높은 것과 더 낮은 것, 즉 교회의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시23:4-‘내가 그늘 있는 골짜기에서 걸을 때,’=불명료한 이해로 진리들이 그들의 빛에 의해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41:18-‘계곡 한가운데 샘들’=자연적 진리들로부터의 총명.
시65:13-‘계곡들이 곡식으로 덮혀있다’=자연적 마음이 자연적 진리를 받고 있다.
광야 (wilderness)
사막 (desert)
이40:3-‘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목소리’=신앙이 없는 교회 안에서.
창16:7-‘광야에서 물들의 샘 근처’=아직은 생명을 획득하지 못한 자연적 진리; 그이유가 ‘광야’=생명이 있다고는 하나 거의 없는 상태.
민32:11-이십 세 이상 모두는 광야에서 죽었다. 그이유는 악이 그들에게 귀속되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시험에 노출된 이들을 표현했다.
창21:14-‘하갈은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했다.’… ‘광야에서 방황하는 것’=변하기 쉬운 상태, 또는 헤매는 상태.
이35:1,6-‘사막이 기뻐날뛰며…광야에서는 물이 솟는다…’…‘광야’, 또는 ‘사막’=진리의 황무함.
창21:20-‘소년(이스마엘)은 광야에서 거주하였다’=상대적으로 희미한 것.
계12장-‘광야로 피신한 여인’=교회의 시험.
이21:1-‘바다의 사막’=과학물과 파생되는 추론들을 수단으로 황폐된 진리.
시107:4-선에 관하여 무지한 이들에 관해, ‘그들은 광야에서 방황했다’라고 말해진다; 그리고 진리에 관하여 무지한 이들에 관해서는 ‘황량한 길에서’ ‘그들은 방황했다’라고 말해진다.
마24:26-‘만일 그들이 보라, 그가 광야에 있다 라고 말한다면, 가지마라’=그들이 진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믿지 말라는 것. 황폐된 진리가 ‘광야’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예12:10-‘고독의 광야’=교회의 황폐함.
창37:22-‘그를 광야에 있는 이 구덩이 안에 넣자’=그들의 거짓들 사이에.
호9:10-‘광야에서 포도들’=아직 영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합리적 선.
겔36:4-거듭남에 선행하는 황무함이 ‘황무지와 버린 성읍들’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호2:3-‘광야 같이 그녀를 만드는 것’=모든 진리를 소멸하는 것.
출3:1-‘그는 광야 뒤쪽으로 양떼를 이끌었다’=단순한 선으로부터의 진리 안에 있는 이들이 시험들을 수행한 후…
출3:18-‘광야 안으로 삼일 동안 가게 하라’=비록 희미함에 있다해도 거짓들로부터 완전히 옮겨진 상태에 있는 진리로부터의 생활.
이35:6-‘광야에 물들이 솟고, 사막에 시내가 흐를 것이다’=그들이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을 소유함. ‘광야’, ‘사막’=무지의 결과로 신앙에 관한 지식.
출4:27-‘광야 안으로’=전에는 결합이 없던 곳.
출5:1-‘그들이 광야에서 나에게 축제를 열도록’=그들은 자기들이 지닌 희미한 신앙에서도 주님을 기쁜 마음으로부터 예배할런지 모른다는 것.
출7:16-‘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기도록’=희미한 것 안에서 예배함.
이41:18-‘나는 광야를 물들의 못으로 만들 것이다’=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을 주는 것…
출13:18-‘하느님은 백성들을 돌려 광야의 길로 인도했다’=신성의 후원 아래 그들은 시험들을 통하여 신앙 속의 선들과 진리들을 확인하도록 데려와졌다.
출13:20-‘광야 끝’=시험들의 첫 상태.
출14:3-‘광야가 그들을 감금했다’=희미함이 그들을 점유했다.
출14:11-‘광야에서 죽는 것’=시험의 상태에서 굴복하는 것.
출16:2-‘광야에서’=시험의 상태.
출16:10-‘그들은 광야 쪽을 뒤돌아 보았다’=그들이 있어왔었던 시험의 상태를 마음에서 상기해봄.
출16:14-‘보라, 광야의 얼굴들 위에’=새 자발성(의지).
출16:32-‘내가 광야에서 너희를 먹인 빵을 그들이 볼 수 있게 하려 해서이다’=시험의 상태 안에 있을 때 진리로부터의 선.
출18:5-‘(이드로가) 광야로 모세에게 (왔다)’=시험들이 있을 때, 거듭나기 전 상태에서 결합.
출19:1-‘그들은 시내 광야에 왔다’=신앙의 진리들이 심어지게 되는 선의 상태.
출23:31-‘광야로부터 강에까지’=감각적 평면으로부터의 즐거움으로부터 합리성의 선과 진리에까지 조차.
이50:2-‘나는 강들을 광야로 만든다’=진리 자체가 황폐해져 있는다.
레16:21,22-속죄 염소가 ‘광야’로 보내졌다, 그리고 ‘분리된 토지’=지옥.
호2:3-‘광야’=선이 결핍된 것; ‘가믐의 토지’=진리들이 결핍된 것.
이41:19-‘광야에 이것들을 심는 것’=교회 밖 토지에, 고로 이방인 사이에.
이51:3-‘그는 그녀의 광야를 에덴으로 만드셨다; 그리고 그녀의 황무지를 여호와의 동산으로 만드셨다’=진리의 결핍과 진리에 무지함을 지혜와 총명 쪽으로.
계12:6-‘여인은 광야로 피신했다’=아주 적은 사람들 사이에서 새 예루살렘이 있는 처음의 교회.
계12:14-‘그녀는 광야 쪽으로, 그녀의 장소 쪽으로 날아갔다’=아주 적은 사람 사이에 있는 동안 (이 교회의) 보호.
계17:3-‘그는 영에서 나를 광야 쪽으로 운반했다’=그는 교회의 모든 것들이 황폐된 것들과 더불어 있는 이들 쪽으로 영적 상태에서 운반되었다.
이35:1-‘너희 광야와 메마른 장소는 즐거워하라, 그리고 사막은 크게 기뻐하라, 그리고 장미 같이 꽃피라.’ 이것은 이방인들이 계몽됨을 다룬다; 그들이 진리와 선에 무지함이 ‘광야와 메마른 장소’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그리고 자기들이 가르침 받는 것 때문에 있는 그들의 환희가 ‘즐거워함’, ‘크게 기뻐함’, 그리고 ‘꽃이 핌’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이41:19-‘나는 광야에 싯다의 삼나무, 도금양, 기름의 나무를 심을 것이다.’ 이는 이방인들 사이에서 교회가 건립됨을 다룬다; ‘광야’=선 없음, 그이유는 진리에 무지함 때문.
이6:12-‘버려진 장소들이 토지 한가운데에서 불어날 것이다’=어떤 진리도 없는바 어떤 선도 없을 것이다.
예23:10-‘광야의 목초지가 말랐다’=이런 교회에 영적 자양분이 없다.
이42:11-‘광야와 거기의 성읍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높이게 하자.’ 이는 교회 밖에 있는 이들 사이에서 교회의 건립이 있음을 취급한다.
이51:3-‘그분은 그녀의 광야를 에덴 같이, 그녀의 황무지를 여호와의 동산 같이 만드실 것이다’=그들은 진리와 선을 풍부히 가질 것이다.
겔34:25-‘그들은 광야에서 안전하게 거주할 것이다’=악의 탐욕들이 그들에게 침입 못할 것이다.
시107:35-‘그분은 광야를 물들의 못으로 바꾸신다’=진리의 무지함이 있는 곳에 진리의 풍부함이 있을 것이다.
욜2:22-‘광야의 주거지가 풀이 무성하게 만들어졌다’=전에 아무 것도 있지 않았던 거기에 진리에 관한 것이 그들과 함께 거기에 있을 것이다.
이32:14-‘궁전이 광야일 것이다’=전체 교회의 황폐함.
예13:24-‘광야의 바람’=진리가 없는 곳, 그 결과 거짓만 있는 곳.
호13:15-‘광야로부터의 동풍’=외적 감각적인 것들로부터 있는 오류들에 의한 그것의 파멸.
이54:6-‘여인이 버림받고 영에서 고뇌한다’=진리 안에 있지 않은 교회, 그러나 아직도 진리에 애착하고 갈망하는 교회.
예12:10-‘값나가는 들판을 황량한 광야로 만드는 것’=교회에 선과 진리가 하나도 남지 않게 주님의 교회를 파괴함.
계12장-여인이 ‘자양분을 받는 광야’=선과 진리를 받음이 없음.
이43:20-‘나는 광야에서 물들을 주었다, 그리고 황무지에서 강들을 주었다’=전에 무지함에 있어 왔었던 이들이 진리와 파생되는 총명을 빨아들이는 것.
겔34:25-‘광야에서 대담하게 거주하는 것, 그리고 숲들에서 잠자는 것’=그들은 비록 그것들 사이에 있다해도 탐욕들에 의해 감염됨으로부터 안전히 있을 것.
욜3:19-‘에돔은 황폐한 광야에 있을 것이다’=자연적 인간은 선들이 결핍해 있을 것, 그 결과 단지 악들에 있을 것이다.
겔19:13-‘그리고 지금 그녀는 광야에, 가믐과 목마름의 토지에 심기어진다’=교회가 진리의 선, 선의 진리가 없을 때까지 황폐해질 것이다.
예4:26-‘가르멜 광야’=선으로부터의 진리들이 결핍된 영적 교회.
욜1:19-‘불이 광야의 주택을 삼켰다…’=자아 사랑이 선으로부터의 말씀의 글자 의미로부터 모든 지각을 살라버렸다.
욜2:3-‘폐물의 광야’=선으로부터의 진리를 이해함이 없음, 그 결과 악으로부터 있는 거짓들로부터 사악함.
시107:33-‘그분은 강들을 광야로 만드신다’=내적 의미 측면에서 말씀을 이해함, 진리를 이해함으로부터 있는 총명이 악으로부터의 거짓들에 의해 황폐되었다.
욜3:2-‘광야에 있는, 아라비아 사람’=광야에 있는 강도 같이 노략질하고 죽이는 자.
눅13:35-‘네 집이 사막 같이 되어 남겨졌다’=교회는 선이 없기 때문에 진리들이 결핍되어 있다.
이32:15-‘그다음 광야는 열매있는 들판일 것이다’=영적 근원으로부터의 진리가 그들 안에 심어질 것이다.
시65:12-‘광야의 주택들이 서서히 드러난다’=그들의 마음들, 전에는 무지 안에 있었으나 진리들을 인정하고 받는다.
호2:14-탐욕들과 거짓들은 시험을 수단으로 제거되어야만 한다는 것이 ‘나는 그녀를 광야 안으로 데려오겠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호13:5-‘나는 가믐의 토지에, 광야에 있는 너를 알았다’=선 없는 상태와 진리 없는 상태.
구덩이 (pit)
습2:9-‘소금 구덩이’=황폐된 진리.
이51:1-주님이 신성한 진리에 관련해 ‘구덩이’라 불려진다.
시88:4-‘구덩이에 있는’ 이들.
창37:20-‘구덩이 중 하나에 그를 놓아두자’=거짓들 사이에. ‘구덩이들’=거짓들인 이유는 거짓의 원리에 있어왔던 사람들은 사후 더 낮은 땅에 한동안 있게 해서 거짓들이 그들로부터 제거될 때 까지이다…‘구덩이’라 불리는 장소, 더 낮은 땅 아래는 ‘구덩이’라 불리는 황폐된 곳이다.
창37:28-‘그들은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 올렸다’=도와줌, 그가 거짓들 사이에 있지 않도록 이다.
창37:29-‘르우벤이 구덩이로 돌아왔다’=교회의 신앙이 분리된 신앙 속에 있는 거짓들을 쳐다보게 되었다.
슥9:11-‘구덩이로부터 갇힌 자를 내보내는 것’=황폐함에 있는 이들, 그리고 시험에 있는 이들.
창40:15-‘그들이 나를 구덩이에 넣었다’=거짓들 사이에 있기를 거절함.
창41:14-‘그들은 성급히 그를 구덩이에서 꺼내었다’=시험의 상태로부터 방해하듯 성급한 거절…‘구덩이’=황폐한 상태. 또한 시험의 상태.
출12:29-‘구덩이의 집에 있는 포로된 자’=육체의 감각적인 것 안에 있는 이. 고로 진리들과 선들에 관한 짙은 어둠에 있는 이, 그이유는 지각하는 능력 조차 없기 때문.
출21:33-‘만일 사람이 구덩이를 열게 된다면’=만일 누군가가 또다른 사람으로부터 거짓을 받을 것이다면.
출21:33-‘또는 만일 사람이 구덩이를 파고 (그것을 덮지 않았을 때)’= 또는 만일 그 자신 거짓인 것을 고안할 것이다면.
출21:33-‘…구덩이에 빠지는 것’=자연 평면의 선과 진리를 서술할 때=악용하는 것.
마15:14-‘구덩이’=거짓인바, 주님께서 교회의 거짓들에 관하여 이야기 하셨을 때 이렇게 말하셨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때,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 ‘구덩이에 빠지는 것’=진리를 뒤집는 것.
출21:34-‘구덩이의 주인은 되갚을 것이다’=그와 더불어 있는 거짓은 수정해야 될 것이다.
겔19:4,8-‘나라들이 그를 잡은 구덩이’=악의 거짓.
슥9:11-‘구덩이에 갇힌 자’=세상으로 주님의 강림에 의해 구원된 영적 교회의 사람들. ‘물이 없는 구덩이’라 말해지는데, 그 이유는 ‘물’=진리이기 때문.
예14:3-‘구덩이들’=진리들이 있는 곳. 고로 교리.
이51:1-‘구덩이로부터 파내지는 것’=신성한 선들로부터 거듭나지는 것.
예2:13-‘깨어진 구덩이(저수탱크)’=조리가 서지 않는 교리물들.
예2:6-‘구덩이의 토지, 짙은 그늘의 토지’=진리에 무지한 상태, 그리고 이로부터 파생되는 거짓의 상태.
이51:14-무지의 거짓들로부터의 해방이 ‘그는 구덩이에서 죽지 않을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예38장-‘예레미야를 내던져 둔 구덩이’=왜곡된 교리의 진리.
시88:4-‘구덩이로 내려간 이들과 더불어’=마치 지옥 안에 있는 것처럼.
시88:6-‘당신은 나를 더 낮은 것들의 구덩이에 놓아두었다’=이런 것이 있는 지옥의 장소에.
시40:2-‘황폐됨의 구덩이’=교리의 거짓.
예2:6-‘적막함의 토지, 구덩이의 토지’=문제를 일으키는 악들과 거짓들에 관련한 시험들의 상태.
구렁(텅이)(gulf)
* 만(gulf)을 보라
구멍 (hole)
이19:9, 겔8:7-10, 창40:16-19-‘구멍들이 가득한 일들’, ‘구멍들’에 의해 의미되는바 선과 진리에 애착함들이 없어 의지에서 종결됨, 실행이 없는 것, 선과 진리가 무가치한 것으로 전락함을 의미한다.
출33:22-‘모세는 바위의 구멍 안에 놓였다’=신앙의 불명료한 것, 안개 낌이 그를 덮었다, 그리고 이를 수단으로 그는 보호되어졌다.
예13:4-‘바위의 구멍 안에 허리띠가 감추어졌다’=진리가 왜곡되었다.
예16:16-‘바위들의 구멍들 안에’=신앙 속에 있는 이들, 그럼에도 계발되지 않는 이들. 고로 신앙의 불명료함에 있는 이들.
옵3절-‘바위들의 구멍들에 거주하는 것’=신앙의 거짓들 안에…다른 삶에서 이런 자들은 바위의 구멍에 거주한다.
마19:24-‘바늘의 눈’=영적 진리.
이11:8-독사의 구멍.
예16:16-‘바위의 구멍에 있는’ 이들=진리의 불명료한 것에 있는 이들.
예49:16-‘바위의 구멍에 거주함.’ 자신의 총명으로부터 거짓들에 있는 이들, 그리고 그것들에 들어감은 거기에 있는 구멍 같이 나타난다. 이것이 (위에서) 뜻해졌다.
예13:4-‘바위’=진리 측면에서 교회의 모든 것, 여기서는 거짓 측면에서 교회의 모든 것, 그이유가 ‘바위의 구멍 안에’라고 말해지기 때문.
예13:7-생활의 악들과 교리의 거짓들을 통하여 말씀이 왜곡됨, 그것을 옹호하는 파생적인 추론들이 ‘유브라데강에서 바위의 구멍에 있는 손상된 허리띠’에 의해 의미된다.
이11:8-‘독사의 구멍’=사기치고 현혹하는 영들이 있는 지옥들
그랄 (Gerar)
* ‘그랄’=신앙에 관련하여 계시된(밝히 알게 해주신) 것들; 고로 일반적으로는 신앙 자체.
창20:1-‘(아브라함은) 그랄에 체류하였다’=그때부터 있는 신앙의 영적인 것들에 대한 가르침…‘그랄’=신앙의 영적인 것. ‘그랄’은 창세기의 여러 곳에서, 즉 10:19, 26:1,6,17,20,26에서 언급되고 있다. 그것=신앙. 이런 이유는 그랄이 불레셋 지역에 있기 때문; ‘불레셋 지역’에 의해 영계에서 알고 있는 신앙에 관한 자연계의 지식이 사라져 없어짐이 의미되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랄은 불레셋 왕 자신이 거주한 장소 였다. 이로부터 ‘그랄’은 신앙 자체를 의미했다; 그리고 ‘그랄의 왕’에 의해서는 신앙 자체 속의 진리가 의미되었다.
창26:6-‘이삭은 그랄에 거주했다’=인접되어져 있는 합리적인 것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앙 속에 있는 이런 것들에 관련한 주님의 상태. (그 이유가) ‘그랄에 거주하는 것’=신앙 속에 있는 이런 것들에 있는 것, 고로 이런 것들에 관한 상태…‘그랄’=신앙 속에 있는 이런 것들.
창26:17-‘그는 그랄의 계곡에 천막을 쳤다, 그리고 거기서 거주했다’=그분께서는 자신을 더 낮은 합리성 쪽으로 향하게 하셨다. 또는 내면의 나타남으로부터 외면의 나타남 쪽으로 향하게 하셨다. (그 이유가) ‘그랄의 골짜기’=더 낮은 합리적인 것들, 또는 진리의 외면적 나타남. 그 이유가 ‘계곡’=낮은 것들…그리고 ‘그랄’=신앙 속에 있는 것들, 고로 진리 속에 있는 것들.
창26:20-‘그랄의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들과 다투었다’…‘그랄’=신앙. 고로 ‘그랄 계곡의 목자들’=말씀의 글자 의미 외에는 어떤 의미도 인정하지 않는 이들.
창26:26-‘아비멜렉이 그랄로부터 그에게 갔다’=합리적인 것들을 중시하는 신앙 속의 교리…‘그랄’=신앙.
기랴다임 (Kiriathaim)
예48:1-그들의 흠뻑 물든 거짓들이 ‘느보, 기랴다임’ 등등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기럇-아르바 (Kirjath-arba)
창23:2-‘기럇아르바에서, 여기는 가나안의 토지에 있는 헤브론이다’=교회에서. (그이유가) ‘기럇-아르바’=진리 측면에 관련한 교회.
창35:27-‘마므레 기럇-아르바’=진리 측면에 관련한 자연 평면의 상태…‘기럇-아르바’=진리 측면에 관련한 교회, 고로 진리.
기브아 (Gibeah)
호5:8-‘기브아, 라마, 벧아웬’=베냐민인 천적인 것으로부터 영적 진리 속에 있는 것들. 그 이유가 기브아는 베냐민 속에 있기 때문.
삼하6:2,3-교회의 자연 평면인 교회의 최말단이 유다의 바알이 있었던 곳, 기브아에 의해 표현되어졌다.
기혼 (Gihon)
창2:13-‘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다’=선과 진리, 또는 사랑과 신앙 속에 있는 모든 것들에 관한 지식.
길 (way)
* 걷다, walk도 참조.
* 지각 (perception)은 내적인 길을 수단으로, 교리는 외적인 길을 수단으로 있게 된다.
창6:12-‘모든 육체가 땅 위 그것의 길을 타락시켰다’=인간의 육체적인 것(물질적인 것)이 진리에 대한 모든 이해를 파괴했다. ‘길’=진리에 대한 이해, 또는 진리 자체.
창16:7-‘술(Shur)로 가는 길’=과학물들로부터 진행하는 것들. ‘길’=진리로 이끄는 것, 그리고 진리로부터 진행하는 것.
창18:19-‘여호와의 길을 간직하는 것’=그들이 훈육되는 수단인 교리, 그리고 이것은 그분으로부터 있다.
창19:2-‘너는 네 길을 갈 것이다’=진리 안에서 확증함.
시25:12-‘그분은 그분이 선택한 길에서 그분을 가르칠 것이다’=진리에서.
애1:4-‘시온의 길들이 통곡한다’=선으로부터의 진리는 더 이상 없다.
창24:21-‘여호와께서 그의 길을 번성하게 하실 것인지, 아닌지를 아는 것’=신성한 진리에 관하여 문의함. ‘길’=진리.
창24:27-‘제가 길에 있는 동안’=합리성에서 진리가 결합하는 상태에서. 그 이유가 이것이 여기서 취급된 주제이기 때문. ‘길’=진리. 그리고 누군가가 ‘길 가는 중에’ 있다 라고 말해질 때, 이는 그가 자기가 목적한 방향으로의 전진해감이다.
이40:3-‘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진리를 받을 수 있게 자아를 준비하는 것.
창24:56-‘여호와가 내 길을 번영하게 하셨다’=선과 결합되어지게 되어 있는 진리에 관련한 모든 것이 지금 설비되어 있다. 그 이유가 ‘길’=진리.
눅8:5-‘어떤 것은 단단한 길에 떨어졌다’=거짓 안으로.
눅3:5-‘거친 길들이 편편한 길이 될 것이다’=무지로부터의 거짓들이 진리들로 바뀔 것이다.
시107:4-‘그들은 광야에서, 길의 고독함에서 배회할 것이다’=선에 관해 무지함에, 진리에 관해 무지함에 있는 이들.
창30:36-‘그는 사흘 길이 뜨게 하였다’=완전하게 분리되었다.
창31:23-‘칠 일의 길’=진리로부터의 거룩인 것.
창38:16-‘길’=거짓.
이49:8-‘길 위에서 풀을 뜯는 것’=진리들로 가르쳐지는 것.
창42:25-‘길에서 (먹을) 양식을 그들에게 주는 것’=그들이 가진 진리들을 떠받침. ‘길’=진리. 그러나 여기서, ‘길에서(길을 가는 중에)’=그들이 그 상태에 있는 한. 그 이유가 ‘길을 가는 중 인 것’=선과 결합한 진리의 상태.
창45:23-‘길을 가는’=한편.
창49:17-‘단(은) 길에 있는 뱀’=진리에 관하여 그들이 추론함.
출4:24=‘길에서’=설립된 것.
출13:17-‘블레셋의 토지의 길’=선으로부터 있지 않은 신앙의 길로 건너감. ‘길’=진리, 여기서는 그것 쪽으로 건너감.
출13:18-‘광야의 길’=시험들을 수행하는 것, 고로 신앙으로부터의 진리들과 선들을 확증하는 것.
출13:21-‘길에서 그들을 인도하는 것’이 여호와의 인도하심을 말하는데,=섭리, 그리고 신성의 후원.
이58:13-‘네 고유의 길들(방법들)로 행동하지 않는 것’=자아로부터 행동하지 않는 것.
출18:8-‘길에서 그들이 마주 친 모든 곤경’=시험들에서의 수고함. 그이유가 여기서의 ‘길’은 광야이기 때문.
출18:20-‘너는 그들이 걸어야만 하는 길을 그들이 알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총명의 빛, 그리고 파생되는 생활. 그이유가 ‘길’은 진리를 이해함을 서술하는데, 여기서는 내면의 수준에서의 이해함이다.
마21:8-‘군중은 자기들의 옷을 길에 깔았다.’ 그이유는 교인들을 인도하는 수단이 ‘길’ 즉 진리이기 때문이다.
이30:21-‘이것이 길이다, 너는 그것에서 걸으라’=교리의 진리에서, 그리고 생활의 선에서. ‘길’=인도하는 진리.
출23:20-‘길에서 너를 지켜주는 것’=그분의 섭리 그리고 악의 거짓들로부터 후견역을 해주심.
예2:17-‘길을 인도하는 것’=진리를 가르치는 것.
출32:8-‘그들은 내가 그들에게 명령했던 길에서 떠났다’=그들은 자신들을 신성한 진리로부터 제거했다는 것.
출33:13-‘내가 당신을 알게 하소서, 당신의 길을 나에게 알게 만드소서’=품질에 관련하여 신성에 관하여 훈육하심. ‘여호와의 길’=신성한 진리가 인도함.
눅8:5-‘어떤 것은 길 위에 떨어졌다’=진리에 관심 없는 이들.
계15:3-‘정의와 진실이 당신의 길입니다’=그분으로부터 진행하는 모든 것들은 정의와 진실이다는 것.
계16:12-‘태양이 올라옴으로부터 왕들의 길이 준비되어진다는 것’=주님으로부터 선으로부터의 진리들에 있는 이들. ‘길을 준비하는 것’=입문을 위해 준비하는 것.
예17:10-‘그의 길들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주는 것’=신앙 속에 있는 그의 진리들에 따라.
시107:7-‘그는 직바른 길쪽으로 그들을 인도했다’=진짜 진리 쪽으로,
이42:16-‘나는 그들이 알지 못했던 길로 소경을 인도할 것이다. 나는 그들이 알지 못했던 작은 길로 그들을 인도할 것이다’=진리들과 진리들로부터의 선들, 그들은 이것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이33:8-‘도보 여행자가 중단되었다’=더 이상 신앙으로부터의 어떤 진리도 없다.
레26:22-‘네 길은 황폐되어 놓여있을 것이다’=그들은 진리들을 박탈 당할 것이라는 것. 그이유가 ‘길들’=선으로 인도하는 진리들이기 때문.
말2:8-‘너는 길을 벗어나 다른 쪽으로 돌아섰다’=이스라엘 교회는 말씀 속의 진리를 악용했다. ‘길’=교리 속의 진리들.
사5:20-‘그들의 진로로부터의 별들이 시스라에 맞서 싸웠다’=천국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오는 진리와 선에 대한 지식들을 수단으로 전투함.
이43:19-‘나는 광야에 길을 만들기 까지 할 것이다’=전에 거기에 아무 것도 없었던 곳에 진리가 있을 것이다.
시86:11-‘나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치소서, 오 여호와여’=우리가 따라 살아야만 하는 진리를 가르침.
시128:1-‘그분의 길에서 걷는 자는 복있다’=신성한 진리들에 따라 사는 것.
예32:39-‘나는 그들에게 한 마음, 한 길을 주어서 나를 경외하게 할 것이다’=주님을 예배하려는 하나의 의지와 하나의 이해성. ‘길’=이해성의 진리가 인도함.
예6:25-‘너는 길에서 가지 마라’=이와 같은 때…자아를 위해 상담할 때, 교리 속의 것들이 상담되어져서는 안된다는 것.
이10:26-‘이집트의 길’=자연적 인간의 과학물들. 이로부터 추론들이 결과되어진다.
예3:2-‘아라비안이 광야에서 같이 길들 위에 너는 앉았다’=진리의 어떤 것이 출시되고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려고 기다리는 상태에 있는 것. ‘길들’=교회의 진리들.
호13:7-‘표범 같이 나는 길 위에서 지켜볼 것이다’=자연적 인간으로부터 추론들을 통하여 진리가 왜곡됨.
이45:13-‘나는 그의 모든 길들을 곧바르게 할 것이다’=선으로부터 진행하는 진리들.
길갈 (Gilgal)
여5:9-‘그는 그 장소의 이름을 길갈,이라 불렀다.’ 즉 굴림, 넘겨짐.
* 여호수아가 여리고의 동쪽에 있는 길갈에 이 돌들을 세운 이유는 ‘길갈’=교회로의 입문을 위해 봉사하는 자연적 진리로부터의 교리 이었기 때문이다.
길르앗 (Gilead)
창31:21-‘그는 길르앗 산을 향하여 자기 얼굴들을 놓았다’=거기 있는 선. ‘산’=사랑의 천적 평면. 그리고 ‘길르앗’=그것의 품질. 강이 그 경계선이었고, 결합이 처음 있었던 곳이기에 ‘길르앗 산’, 이는 요단 이쪽(가나안 영역에 진입하기 이전)에 있었는바=선과 더불어 처음 결합.
민32:1,26-41, 신3:8,10-16, 여13:24-31-산이 있었던 길르앗의 토지는 넓은 의미에서 이해한다면 가나안의 토지의 한계 내에 있었다. 그것은 요단 이쪽 편이었다. 그리고 르우벤, 갓, 므낫세 반쪽 지파 들에 양도되었다. 그러므로 가나안의 토지가 한 복합체로 표현되어질 경우, ‘길르앗부터 단 까지’라고 말해졌다.
창31:23-‘그리고 길르앗 산에서 그에게 합류했다’=그것에 의해서 결합의 어떤 것이 있다. ‘길르앗 산’=처음 결합이 있는 선.
창31:25-‘그리고 라반은 자기 천막을 그의 형제들과 함께 길르앗산에 고정 시켰다’=얼마간의 결합이 있는 선의 상태. ‘길르앗 산’=처음 결합과 마지막 결합이 있는 곳.
사5:17-‘길르앗’=감각적인 선, 또는 즐거움. 거듭나질 때 인간은 이 선을 통하여 처음 거듭남이 개시된다.
창37:25-‘이스마엘족의 한 무리가 길르앗으로부터 왔다’=단순한 선에 있는 이들. ‘길르앗’=외면의 선, 이를 통하여 인간이 거듭날 때 처음 거듭남이 개시된다.
슥10:10-‘그들을 길르앗의 토지로, 레바논으로 데려오는 것’=선행의 선이 있는 교회의 선 쪽으로, 그리고 신앙의 선과 진리 쪽으로., 후자는 ‘레바논’이다. 전자는 ‘길르앗의 토지’이다.
예1:19-이방인들이 주님에 의해 인도되어지고 선행의 선 안에서 훈육될 것이다는 것이 ‘그들은 갈멜에서, 바산에서, 에브라임과 길르앗에서 풀을 뜯을 것이다’에 의해 뜻해지고 있다.
사5:17-‘길르앗’에 의해 자연적 인간이 의미된다.
시60:7, 108:8-‘길르앗’에 의해 자연 평면이 의미된다.
사5:17-‘길르앗’은 ‘므낫세’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므낫세’에 의해 자연적 인간의 선이 의미된다. 그리고 므낫세 지파는 드보라와 바락과 함께 싸우지 않았다. 이 구절에서 말해지기를, ‘길르앗, 왜 너는 요르단 건너에서 거주하는가?’에 의해 왜 너는 자연적 인간 속에 있는 외적인 것들에만 거주하는가?가 의미되고 있다. 그이유가 교회의 외적인 것이 요단 넘어 있는 지역에 의해 의미되기 때문.
슥10장-‘길르앗의 토지’와 ‘레바논’에 의해 자연적 인간에 있는 교회의 선들과 진리들이 의미된다.
예46:11-‘길르앗’에 의해 말씀의 글자 의미로부터 추론함이 의미된다, 이로부터 거짓들이 확증되어진다.
꼭대기 (top)
창49:26-‘나지르인의 머리의 관’=외면의 것들
창49:26-‘그의 형제의 뽑힌 자의 머리의 관’=그 교회의 모든 진리들과 선들 안을 흐르는 영적 왕국.
이3:17-‘벗어지게 만들 머리의 관’=이 교회에서 박탈될 총명.
신33:16-‘그의 형제의 나지르인의 머리의 관’=외적 인간 속에 있는 총명과 지식
호4:13-‘산 꼭대기에서 제물을 바치는 것’=자아 사랑으로부터 예배함.
신33:20-‘머리의 관’=내적 진리
암1:2-‘갈멜(산)의 꼭대기’=교회의 진리들, 그 이유는 갈멜에 포도원들이 있었기 때문.
나일 (Nile)
창41:1-‘강’, 여기서의 경우, 이집트의 강, 또는 나일,=경계(선). 그 이유가 큰 강들, 즉 유브라데, 요단, 나일은 가나안의 토지의 맨 끝 경계이기 때문. 나일, 또는 이집트의 강은 지적 부분에 복종하는 감각적인 것들, 고로 그것들로부터 있는 과학물들을 표현했다. 그 이유가 이것들은 주님의 왕국의 영적인 것들의 최말단들이기 때문이다.
이23:3-‘나일의 수확’=교회 밖(즉 과학적인 진리로부터)의 선.
낙원 (paradise)
* garden 참조
* 낙원=천국.
* 여섯째 날의 끝에서, 인간은 천국으로, 또는 천국적 낙원이 소개받아진다.
계2:7-‘하느님의 낙원의 한가운데 있는…’=내면적으로 지혜와 신앙의 진리들 안에. ‘하느님의 낙원’=지혜로부터의 진리들과 신앙으로부터의 진리들, 이는 말씀에 있는 ‘동산, garden’의 의미로부터 분명하다.
계2:7-‘하느님의 낙원의 한가운데 있는…’=저쪽에서 보고, 저쪽으로부터 진행하는 교회 안에, 천국 안에 있는 선과 진리에 관한 모든 지식들. ‘낙원’=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과 파생되는 총명. 그리고 이것들이 ‘낙원’에 의해 의미되는바, ‘하느님의 낙원’은 천국을 의미한다. 그리고 천국, 교회가 ‘하느님의 낙원’이라 불리기 때문에, 주님이 거기 한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그리고 그분으로부터 모든 총명과 지혜가 있기 때문에, 창세기 2장의 ‘낙원’은 낙원의 동산이 뜻해진다고 믿어지고 있다. 그러나 지상의 낙원이 뜻해진 것은 아니다. 이 낙원은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으로부터 총명과 지혜 안에 있는 이들에 의해 소유되어진다.
넓은 장소 (broad places)
눅14:21-‘거리와 넓은 장소로 나가는 것’=진짜 진리를 위해 사방으로 찾아 보는 것.
예5:1-‘넓은 장소’ 특별하게, 도성의 귀퉁이들을 뜻한다. 고로 그들이 거주하는 구역들. 그리고 영계에서 모든 각각은 명료하든, 어둠침침하던 각자의 선과 진리에 의거 도성들에서 거주한다. ‘넓은 장소’=각 사람의 지각과 애착에 따른 진리들과 선들.
예9:21-‘거리들’, ‘넓은 장소들’=교리로부터의 진리들, 생활 속의 진리들, 이것들이 총명과 지혜에로 인도한다.
높은 장소 (high place)
이49:9-‘그들의 목초지의 모든 높은 장소에’=선으로부터 버텨지는 것. 그 이유가 ‘높은 장소, ’산‘과 마찬가지로=사랑의 선.
이41:18-‘나는 높은 장소들 위에 강들을 열 것이다’ (=내면의 총명을 주는 것) (=영적 진리들로부터의 총명).
이32:14-‘언덕과 망대가 영원히 굴 위에 있을 것이다’=그들과 더불어서는 더 이상 어떤 교회도 있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는 생활의 악과 교리의 거짓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41:18-‘높은 장소들에’=내면의 인간 안에.
호10:8-‘아웬의 높은 장소(산당)’=자아 사랑.
겔16:16-‘높은 장소들’=예배.
이58:14-‘땅의 높은 장소를 타는 것’=총명. (=보다 높은 이해함이 선물되는 것)
출14:8, 이33:5-‘이스라엘의 아들들은 드높은 손과 더불어 나갔다’=악령들이 그들을 복종시키려 고심함이 신성의 힘에 의해 해방되었음…‘드높은’=신성인 것인 이유는 그것에 의해 신성이 있는 천국이 의미되기 때문. 이로부터 여호와에 관해 말해지는바, ‘그분은 높은 곳에 거주하신다’
겔16:16-‘얼룩덜룩한 산당’=거짓인 것을 예배함.
미1:3-마지막 심판이 ‘여호와께서 땅의 높은 장소들 위에서 짓밟으신다’에 의해 뜻해진다. ‘땅의 높은 장소 위에서’=높은 장소에 있는 이들.
시78:35-‘드높은 하느님’
이14:14-자아 사랑에 있는 이들이 ‘구름의 높이 넘어로 올라갈 것이다’라고 말해지고 있다.
이2:15-‘드높은 탑과 견고한 성벽’=거짓으로부터 확증한 원리들.
겔16:24-고대인과 더불은 높은 장소는 천국을 의미했다. 이때로부터 높은 산에서 제물을 바치는 의식이 왔다. 그리고 그들의 장소에 있는 높은 장소를 더 높게 건축했다. 그러므로 악과 교리 속의 거짓으로부터의 예배가 ‘드높은 장소를 만들고, 모든 거리에 높은 장소를 만드는’ 것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니느웨 (Nineveh)
창10:11-‘그 토지로부터 앗수르로 나아갔고, 니느웨를 건설했다…’…’니느웨’=교리 속의 거짓들…’니느웨’=추론들로부터의 거짓.
* ‘니느웨’에 의해 교리적인 것들로부터의 거짓들을 의미한다는 것은 말씀에서 니느웨의 의미로부터 분명하다. 이런 종류의 거짓들의 근원은 세 가지, 즉 감각의 오류로부터, 예증되지 않아서 불명료한 이해함으로부터, 그리고 무지함으로부터이다. 요나가 니느웨로 보내졌다, 이 도성은 용서되었는데, 그들이 위와 같았기 때문….
이37:37,38-앗수르 왕이 니느웨에 머물렀을 때, 그가 자기 신, 니스록의 집에서 구부려 절할 때, 그의 아들들이 검으로 그를 살해했다…여기서, ‘니느웨’는 거짓들이 들어있는 외적 예배를 의미했다. 이것은 우상적이었기 때문에 그는 죽임을 당했다.
욘4장-이방인들이 ‘니느웨’에 의해 의미된다.
습2:13-‘그분이 황폐해진 장소 같이, 광야 같이 메마른 장소 같이 한 니느웨’에 의해 교리 속의 거짓들이 의미된다.
다마스커스 (Damascus)
다메섹
창14:15-‘그는 다마스커스 왼편인 호바까지 그들을 추격했다’=그만큼 멀리 넓혀짐.
삼하8:5,6-‘다마스커스’는 시리아의 첫째가는 성읍이었다. 그래서 이 도시는 시리아와 거의 같은 의미를 지닌다.
암5:26,27-단(지역)을 넘어가는 가나안의 가장 먼 경계가 ‘다마스커스’에 의해 기술된다.
겔47:16~18, 48:1-북쪽을 향한 거룩한 토지의 경계, 또는 주님의 왕국의 경계가 ‘다마스커스의 경계’라 불리운다.
창15:2-‘다마스커스의 엘리에젤’=외적 교회. 다마스커스는 시리아의 수도였고, 거기에는 고대 교회의 잔존물이 있어 왔다.
겔27:18-‘다마스커스는 너의 거래자였다…’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커스’= 일치하는 과학적 사실.
이사야17:3-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의 파괴가 여기서 의미되고 이 장에서 취급되고 있다
달시스 (Tarshish)
창10:4-‘야완의 아들들…달시스’=유행했던 외적 예배가 있었던 아주 많은 나라들; 이들을 수단으로 야완과 더불은 외적 예배로부터 파생된 의식들, 아주 많은 교리물이 의미되고 있다.
* ‘달시스’ 등등이 외적 예배로부터 ‘섬’이라 불리워진다.
시72:10-‘달시스와 섬들’=내적인 것에 상응하는 외적 예배.
이60:9-‘달시스의 배들’=지식들. (=교리물들과 말씀으로부터의 진리들) (=선과 진리에 대한 교리물들) (=진리와 선에 대한 지식들) (=악과 거짓에 대한 지식들).
예10:9-‘달시스로부터의 은’=말씀으로부터 때문에 외적 형체에서 그렇게 나타나는 진리.
이60:9-‘달시스로부터의 은과 금’=진리와 선에 대한 기억.
시72:10-‘달시스와 섬들의 왕들’=자연적 인간의 내,외면의 진리들.
이60:9, 왕상10:22-‘시작에서 달시스의 배들…’=그들이 산출하고 행하는 선들. 그이유는 ‘달시스’=지식들에 관련한 자연적 인간. 그리고 ‘시작에서 달시스’=선에 관한 지식에 관련한 자연적 인간, 그이유는 달시스에 금과 은이 있었기 때문, 그리고 배들이 그것들을 거기로부터 운반했기 때문.
시48:7-‘당신은 동풍으로 달시스의 배들을 깨뜨리신다’=거짓 교리물들은 황폐되었다.
데만 (Teman)
합3:3-‘하느님이 데만으로부터 오셨다’=천적 사랑에 관련한 주님의 신성한 인간.
예49:20,21-‘에돔의 몰락의 소리에, 그리고 데만 거주민의 소리에 땅이 전율하였다‘=교회는 이런 악들과 거짓들에 의해 바뀌었고 멸망했다.
도단 (Dothan)
창37:17-‘나는 그들이 도단으로 가자 하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그들은 자신들을 일반적인 것으로부터 교리의 특별한 것들로 향하게 했다는 것. ‘도단’이 이 의미를 가진다는 것은 말씀의 다른 문맥으로부터 확증적으로 말해질 수는 없다. 그이유가 오로지 왕하 6:13로부터만 언급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도단’=말씀으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엘리사가 있었던 도단=말씀으로부터 선과 진리에 대한 교리적인 것들. 여기서도 마찬가지 의미이지만, 단지 교리의 특별한 것들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경우, 반대 의미인 거짓 원리들로부터의 특별한 것들.
창37:17-‘그리고 요셉은 그의 형제들 쪽으로 갔다 그리고 그들을 도단에서 발견했다’=그들은 거짓 원리들의 특별한 것들에 있었다는 것.
도벳 (Tophet)
예19:11-‘그들은 도벳에 매장할 것이다, 그이유는 매장할 장소가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모든 진리들과 선들이 소멸되어 버린 곳.
이30:33-‘도벳’=교회의 모든 진리들과 선들을 파괴히는 끔직하고 맹렬한 사랑을 지배하는 지옥, 특히 순진의 선들을 파괴하는 맹렬한 탐욕을 통치하는 곳.
동굴 (cave)
* hollow도 참조
창19:30-‘그는 동굴에 거주했다’=거짓으로부터의 선. 동굴은 어쩌면 산에 거주하는 종류에 속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거주는 어두운 상태, 그리고 집 같은 곳에 거주하는 종류는 선들을 의미한다, 이 선들이 그들 자신들이다. 여기서는 동굴인바, 어두운 곳에 거주함, 거짓으로부터의 선이 의미된다.
왕상19:9-이사벨을 피해 도망친 엘리야가 ‘호렙산에 있는 동굴로 왔고, 그는 거기서 밤을 보냈다.’ 여기서 ‘동굴’은 내향의 의미에서 희미한 선, 즉 시험들 가운데 있는 선의 종류를 의미한다.
창23:9-‘그로하여금 막벨라의 동굴을 나에게 주도록 하라’=신앙으로부터의 희미한 것. ‘동굴’=희미한 것. 동굴이 희미한 것을 의미한 이유는 그 장소가 어둡기 때문에서이다. 산에 있는 ‘동굴’일 경우 선의 희미한 것, 그러나 들판의 ‘동굴’은 진리의 희미한 것을 말해주게 된다.
창23:17-‘막벨라’, 그것에 동굴이 연합될 때, 즉 ‘막벨라의 동굴’이라 말해질 경우, 희미함 안에 있는 신앙이 의미된다, 그러나 동굴 없이 언급될 경우의 ‘막벨라’, 그리고 ‘들판과 동굴’이 거기에 있다고 말해질 경우, ‘막벨라’는 거듭남으로 이해된다. 그이유가 ‘들판과 동굴’에 의해서 신앙으로부터의 선과 진리가 의미된다, 이 선과 진리를 통하여 거듭남이 결과된다.
창49:30-‘동굴’=희미한 것.
창50:13-‘막벨라 들판의 동굴’=거듭남의 시작.
출33:22, 예49:16, 옵3절-‘바위의 구멍들에 거주하는 것’=신앙의 거짓들에. 이는 자기가 타인 보다 더 배웠다고 믿고 자신을 타인 위에 두어 우쭐대는 이들, 그런데 정작 자신들은 거짓들 안에 있고, 진리들을 보지 못하기 조차 한다. 저 세상 삶에서 그들은 바위의 구멍들에 거주한다. 게다가 바위 밖으로 나오는 것도 때로는 거절한다. 그리고 바위 아래 구멍이나 굴 안으로 더욱 기어든다.
이11:8-‘독사의 구멍과 바실리스크의 굴(den)’=사기치고 현혹하는 영들이 있는 지옥.
여10:16-‘막게다의 굴’=악으로부터의 끔찍한 거짓.
동산 (garden)
* eden, paradise 참조
* 에덴의 동산, 이는 낙원이라 불리워진다.
* 천적 인간이 이와 같은 동산이다.
* ‘동산’에 의해 총명이 의미된다.
창3:8-‘동산의 나무 한가운데’=얼마 정도의 지각이 있는 자연적 선을 의미한다는 것은…천적 인간이 들어 있었던 동산으로부터 분명해진다; 그 이유가 선하고 참된 모든 것, 각 인간이 그것을 경작하는 정도나 수준에 차이는 있겠지만 이것 모두는 ‘동산’이라 불리운다.
* ‘동산’=총명, 또는 진리를 이해함.
예29:5-‘동산을 심는 것’은 이해 측면에 속한다.
창13:10-‘여호와의 동산 같고…’=그의 합리적인 것들…‘여호와의 동산’=총명, 그러므로 합리적인 것, 이것은 내적 인간과 외적 인간 중간에서 중매 (intermediate)역할을 한다; 합리성은 외적 인간 속의 총명이다. 합리성이 천적 수준일 때, 즉 그 근원이 천적 왕국으로부터 일 때, ‘여호와의 동산’이라 불리우고, 이는 태고 교회와 더불은 경우이다….그러나 ‘하느님의 동산’이라 언급될 경우, 이는 합리성이 영적 수준, 즉 그 근원이 영적 왕국으로부터 일 때이고, 이는 고대 교회와 더불은 경우이다. 인간의 합리성은 ‘동산’에 비교되는데, 이는 천국에서 표현되는 표징으로부터이다.
겔31:8-‘하느님의 동산’=영적 왕국의 교회
예31:12-‘그들의 혼은 물을 댄 동산 같이 될 것이다’…‘혼’=교회 속의 사람과 더불은 신앙의 생명, 이 사람이 ‘동산 같이 된다’라고 말해진다, 그이유는 ‘동산’에 의해 신앙 속의 진리로부터 있는 총명이 의미되기 때문이다.
이51:3-‘에덴’=선이 풍부함; 그리고 ‘여호와의 동산’=진리가 풍부함.
예31장-그러므로 그들은 총명과 지혜를 가진다는 것이 ‘그들의 혼은 물을 댄 동산 같이 될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그 이유가 말씀에서 ‘동산’에 의해 총명이 의미되기 때문이다…
암9:14-‘그들이 만들고, 그 속에서 열매를 먹게 될 동산들’은 지혜를 의미한다; ‘동산’에 의해 총명의 모든 것들이 의미되고, ‘열매’에 의해 생활의 선들이 의미된다.
암4:9-‘동산들’에 의해 총명과 지혜를 만드는 교회 속의 모든 것들이 의미된다.
이1:30-‘동산’에 의해 인간의 합리성이 의미된다.
민24:6-‘계곡’에 의해 인간의 자연적 총명이 의미된다; 그리고 ‘동산’에 의해 인간의 영적 총명이 의미된다.
창2:10-‘동산을 적심’=총명을 주는 것.
암4:9-‘동산들’에 의해 영적 총명 속에 있는 것들이 의미된다.
이51:3-‘여호와의 동산’=(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 있는 지혜.
두로 (Tyre)
이23:17,18-‘두로의 상품=지식들.
겔28장-‘두로의 왕자’=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의 제일가는 것들.
겔28장-‘두로의 왕자’=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들이 있는 말씀. (=말씀의 글자 의미로부터 있는 교회의 진리에 관한 지식들.)
슥9:3-‘두로…은을 먼지 만큼, 금은 거리의 진흙 만큼 쌓아두고 있다.’ 여기서 ‘두로’=자신들을 위해 지식들을 획득하는 이들.
욜3:4-6-‘두로와 시돈’=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들을 지닌 교회 안의 사람들. 그러나 이 구절의 경우 반대 의미, 즉 이 지식들을 거짓들에, 그리고 거짓으로부터의 악들에 응용한 이들.
이23:1-‘두로는 황폐한채 놓여있다’=진리에 관한 지식들이 더 이상 없다.
이23:15,16-‘두로’=영적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들에 관련한 교회. 이 구절의 경우, 이 지식들이 왜곡되어진 상태에서의 교회.
이23:5-‘두로에 관한 보고(report)’=말씀으로부터의 지식들이 거짓들과 악들에 응용함으로 해서 황폐되었다.
예25:22-‘두로와 시돈의 왕들’=자연적 인간 안에서 말씀으로부터의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들.
예47:4-‘남아 있는 모든 조력자를 두로와 시돈으로부터 끊어버리는 것’=그들은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시45:12-‘두로의 딸’=진리와 선의 지식들에 관한 애착.
욜3:4-6=‘두로와 시돈’, 그리고 ‘블레셋들’=말씀 속의 진리들과 선들을 왜곡한 이들.
슥9:4-‘두로’=진리와 선의 지식들에 관련한 교회. 고로 ‘두로’=교회로부터 있는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들. 이것의 황폐함이 여기서 의미되어진다.
이23:18-‘두로의 상품’=모든 종류의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들.
이23:4,5-‘시돈’과 ‘두로’=말씀으로부터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 교회가 이 지식들을 수단으로 총명과 지혜의 어떤 것도 획득하지 못했다는 것, 어떤 유용함도 일궈내지 않았다는 것.
두아디라 (Thyatira)
계2:18-‘두아디라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쓰거라’=선행으로부터의 신앙 안에, 그래서 선한 일들에 있는 이들에게, 그들에 관하여. 그리고 또한 선행으로부터 분리된 신앙, 그래서 악한 일들에 있는 이들에게, 그리고 그들에 관하여.
(강)둑 (bank)
창41:3-‘강의 둑 근처에’=경계들에. ‘강’=경계(선).
출2:3-‘그녀는 그것을 강 둑에 있는 창포(flag, 사초,sledge, 갈대,reed)들 사이에 놓아두었다’=최초에는 거짓된 과학적인 것들에…‘이집트의 강’=거짓인 것.
출7:15-‘그를 만나기 위해 강둑 근처에 서있거라’=상태에 따른 유입…‘강의 둑’=해치는 이들이 지닌 거짓의 상태…‘이집트의 강’=거짓인 것. 여기서 오류로부터의 거짓. 그리고 둑, 이는 마치 강물을 담는 용기와 비슷하다. 강둑은 되돌아 구부리고 안쪽에 머물게 닫아거는바=이 거짓의 상태. 모든 이 각각은 자신만의 상태를 가진다. 이 상태 범주에서, 이 상태에 따라 그것이 있다.
드단 (Dedan)
창10:7-‘스바와 드단’은 (신앙에 관한 이런 지식들이) 있었던 나라들이다; 내적 의미에서 이와 동일한 나라들에 의해 지식 자체가 의미되어진다; 그러나 이런 차이는 있다, ‘구스의 아들들’에 의해서는 영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들, ‘라아마의 아들들, 즉 세바와 드단은 천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들이 의미되어진다.
예49:8-‘드단’, 여기서의 경우,=내적 예배가 안에 없는 의식들, 또는 심정으로부터 주님을 숭배함.
창25:3-‘욕산이 스바와 드단을 낳았다’=첫 계층(lot)으로부터의 갈래들.
겔38:13-‘스바와 드단’=예배의 내적인 것들, 즉, 신앙으로부터의 선들… 적당한 의미에서 스바=선에 관한 지식 안에 있는 이들, ‘드단’=선으로부터의 진리에 관한 지식에 있는 이들.
창25:3-‘드단의 아들들은 앗수르 족속, 르두시 족속, 르움미 족속이었다.’=둘째 계층(lot)으로부터의 갈래들. ‘드단’=신앙으로부터의 선 안에 있는 이들, 적절하게, 선으로부터 신앙의 진리 안에 있는 이들.
이21:13-‘드단족의 군대들(troops)’=지식들 안에 있는 이들.
겔27:20-‘드단은 병거를 위한 자유의 의복을 가진 너의 상인이었다.’ ‘드단’=천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 안에 있는 이들.
들판 (field)
창2:5,6-‘지면과 들판’=천적 인간이 되어 가는 때의 외적 인간.
눅17:31-‘들판’=교회, 그 이유가 들판이 씨를 받기 때문; 고로 ‘들판에’ 있는 이들=교리의 선에 있는 이들.
마24:18-‘들판에 있는 그는…’=영적 왕국의 교회 안에 있는 이들.
창23:9-‘들판의 끝에 있는…’=교회 속에 들어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들판’=교회; 또한 교회 속에 있는 교리.
창23:17-‘들판과 들판 안에 있는 동굴’=믿음으로부터의 선과 진리에 관련하여. 천적인 것, 즉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부터의 선은 지면 또는 밭에 비교되는데…그 이유는 밭, 또는 들판은 씨를 받는바 이는 천적인 것, 또는 선이고 씨는 믿음으로부터의 진리들에 비교된다.
창24:63-‘이삭은 들판에서 명상하려고 나갔다’=합리성이 선 안에 있는 상태…‘들판’=교리 그리고 교리에 속하는 것들, 고로 선에 관련되는 교회 속에 있는 것들. ‘들판에서 명상하려고’라는 말의 근원은 고대인들이 사용하던 말로부터서 인데, 선 안에서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창25:27-‘들판의 사람’=교리적인 것들로부터 생활의 선.
창25:29=‘에서가 들판으로부터 왔다’=생활의 선을 공부함…‘들판으로부터 옴’=선으로부터 공부함; 그이유가 ‘들판에서 명상함’=선 안에서 생각함이기 때문.
창27:3-‘들판으로 가라’=옥토인 곳. ‘들판’=교회 속의 선; 또한 교리로부터의 선.
창27:27-‘들판의 냄새 같이…’=진리가 와지게 하는 옥토로부터 같이. ‘들판의 냄새’=선으로부터 진리를 지각함, 마치 수확하는 들판이 내뿜는 냄새를 맡음 같다. ‘들판’=옥토.
마24:18-‘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가려고 돌아서지 마라’=진리로부터의 선 안에 있는 이들은 자신을 선으로부터 떠나 진리로부터의 교리에 의지하려 들지 마라. 말씀에서 ‘들판’=선에 관련되는 인간의 상태.
창29:2-‘들판에서’=교회를 위해. ‘들판’=선에 관련된 교회.
사5:18-악은 어떤 것도 두려워 않는 이들, 그 이유가 그들은 진리들과 선들 안에 있기 때문이다. 즉 이들이 ‘들판의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창30:14-‘들판에서 합환채’=사랑과 선행의 선과 진리에 있는 결혼적 사랑으로부터의 것들…‘들판’=교회; 고로 믿음으로부터의 진리와 선행으로부터의 선, 그 이유는 이것들이 교회를 만들기 때문.
창30:16-‘야곱이 저녁에 들판으로부터 왔다’=선의 상태에 있는 진리로부터의 선, 그러나 어두컴컴한 상태의 선…‘들판’=선에 관한 교회, 고로 선.
창33:19-‘그는 들판의 지분을 샀다’=저 진리로부터 선을 자기 것 되게 함…‘들판’=선에 따른 교회. 고로 선.
창34:5-‘그의 아들들이 들판에서 그의 물질(목축)과 더불어 있었다’=그의 후손들은 그들 자신의 광신적 신앙 안에 있었다…‘들판’=교회…그 이유가 이런 종류의 교회가 광신적 신앙이라 불리우기 때문.
창39:5-‘들판’=교리 속에 있는 진리.
마13:44-‘들판’=선.
창47:20-‘이집트 사람 각각 모두는 자기의 들판을 팔았다’=교회를 쓸모 있게 하는 모든 것들이 종속되고 포기됨. ‘들판’=교회 속에 있는 교리; 그리고 일반적 의미로, 교회.
창47:24-‘들판의 씨를 위해’=마음의 자양분을 위해…‘들판’, 일반적 의미에서=교회; 그리고 특별한 의미에서, 인간과 더불은 교회, 인간 안에 있는 교회, 선과 진리를 받는 자가 교회이다: 그가 ‘들판’이라 불리울 때, 이 들판은 그의 마음을 뜻해준다.
출1:14-‘들판의 모든 봉사에서’=교회의 것들에 맞서 복종시키려는 의도.
출8:10-‘들판’=아직 더 일반적인 것들, 고로 아직 더 외면적인 것들; 그 이유가 들판은 집과 집뜰 밖에 있기 때문.
출9:21-‘들판에…놔두었다’=따로 떼어두고 저장하지 않음.
출16:25-‘오늘은 너희가 들판에서 그것을 발견 못할 것이다’=진리를 통하여 선을 획득함은 더 이상 있지 않을 것이다…‘들판’=인간; 여기서, 진리를 통하여 선이 이식되는 인간의 마음; 그 이유가 인간이 신앙으로부터 진리들을 받고…선을 생산한다는 사실로부터 인간은 ‘들판’이라 불리기 때문.
출22;4-‘그리고 다른 사람의 들판을 황폐케 할 것이다’=밀착하는 선들이 사라짐…‘다른 사람의 들판’=밀착하는 선들; 그 이유가 ‘들판’=교회; 그리고 들판에 있는 것들은 선들이다; 고로 다른 사람의 들판에 있는 것들=밀착하는 가까운 선들…
겔39:10-‘들판으로부터 나무들’=교회의 내면의 선들.
출22:30-‘너는 들판에서 찢기운 살을 먹지 말 것이다’=왜곡된 신앙으로부터의 선, 왜곡된 교회의 선은 자기 것 삼는 일이, 결합되는 일도 있어져서는 안된다.
신21:1-‘…토지에서 꿰뚫린 자가 들판에 누워있다…’=선이 있는 교회에서 진리와 선이 소멸됨.
출23:16-‘너희가 들판에서 일한 것을 거두어 들임에서’=선 안에 이식된 모든 것들을 사용하고 향유함.
시132:6-‘나무의 들판에서’=말씀의 글자적, 자연적 의미에서.
예32:44-‘은으로 들판을 구입함’=진리들을 수단으로 교회의 선을 자신들을 위해 획득함.
겔 17:5-‘씨뿌리는 들판’=(진리를) 자라나게 하는 선.
마13:24-‘들판’=선한 자와 악한 자 모두가 있는 영적 세계와 교회를 뜻한다. (말씀이 있는 교회)
사5:18-‘들판의 높은 곳’=교회의 내면적인 것들, 이로부터 전투가 있다.
미4:10-‘들판’=진리들과 선들이 풍부히 있는 곳.
딤나 (Timnath)
창38:12, 사14:1-7, 여19:43-‘딤나’=교회를 위해 조언을 구하는 상태. 삼손이 불레셋의 딸로부터 데려온 여인=선이 아닌 것으로부터의 진리, 고로 불명료한 진리. 또한 딤나는 단 지파의 상속분의 장소 사이에 있었다.
창38:14-‘딤나로 향한 길에서’=교회의 사용을 위해. 그이유가 ‘딤나’=교회를 위해 의논하는 상태이기 때문.
땅 (earth)
토지 (land)
창1:1-‘태초에 하느님께서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셨다’…‘땅’=거듭나기 이전 외적 인간
창1:2-‘땅은 공허하고 텅비었다’=거듭나기 이전의 인간.
창1:11,12-‘땅’이 그러므로해서 준비되었을 때, 즉 인간…
마13:19~24-‘땅’은 인간을 의미한다는 것, 그분 자신이 말해주고 있으시다.
이62:4-이해성이 의지와, 또는 믿음이 사랑과 한쌍되었을 때, 인간은 ‘결혼한 땅’이라 불리운다.
창2:1- ‘하늘과 땅이 마무리되었다’=인간은 이제 ‘엿새째 날’인 영적 인간이 되었다; ‘하늘’=인간의 내적 인간; 그리고 ‘땅’=그의 외적 인간.
창2:4-‘이것들은 하늘들의 태생과 땅의 태생의 사람들인데, 이는 여호와 하느님이 땅과 하늘들을 만드셨던 그 날에, 그분이 그들을 창조하셨을 때이다’. ‘하늘들 태생의 사람과 땅 태생의 사람들’=천적 인간의 형성.
창2:5,6-‘땅’=그가 영적 인간인 동안에서 외적 인간; ‘지면(ground)’ 그리고 ‘들판(field)’=그가 천적 인간이 될 때 외적 인간.
예4:23-‘땅’=외적 인간.
겔20:41-‘지면’=내적 예배; 그리고 내적 예배가 없는 경우 ‘토지’라 불리운다.
말3:12-‘토지’=담는 것, 고로 토지=사람; ‘지면’이 교회 또는 교리라 불리울 경우 사람=토지이다.
창6:5-‘인간의 악이 땅에서 불어났다’=선에 속한 의지가 없기 시작했다는 것…글자 의미에서 ‘땅’= 인간이 있는 곳; 내적 의미에서 사랑이 있는 곳, 의지가 이에 해당되는데 탐욕도 있는 곳이다…‘땅’은 인간의 의지 자체를 뜻하도록 채용되고 있다…‘가나안의 토지’, 또는 ‘거룩한 토지’는 사랑을 뜻하려고 채용되고 있다. 고로 천적 인간의 의지를 뜻하려 채용되고 있다. 이런 경우들은 말씀의 많은 구절들로 확증할 수도 있다; 이런 방식으로 다른 나라들의 토지들은 그들의 사랑들을 뜻하려고 채용된다. 일반적으로 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이다….이로부터 명백한 바, ‘땅에 있는 인간의 악’=그의 자연성의 악, 이는 의지 속에 있다.
창6:11-앞서 취급한 그 나라.
창6:12-‘하느님이 땅을 보셨다’=하느님은 인간을 아셨다는 것.
창6:13-‘땅은 폭력으로 가득찼다’=선의지는 더 이상 없었다.
창8:13-‘물들이 땅 위로부터 말랐다’=거짓들이 나타나지 않았다…여기서의 ‘땅’=인간의 의지, 이 의지는 탐욕밖에 더 아니다.
창8:17-그들은 인간의 신체를 땅, 또는 지면에 비교해 말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구절에서 같이 그들은 그것을 땅 또는 지면이라 불렀다. 거기서 ‘땅’은 외적 인간 외 더 다른 의미는 없다.
창8:22-‘땅의 모든 날들’=모든 시간…땅이 있는 한, 또는 땅 위에 주민이 있는 한…
창9:1-‘땅을 채우는 것’=외적 인간과 더불어
창9:7-‘너희는 땅 위에서 열매가 많이 열리게 하고 번성하라’=‘땅’인 외적 인간 안에서 선과 진리의 증가함.
창9:13-‘이것은 나와 땅 사이에 언약의 표시를 위해 있을 것이다’=주님은 선행 안에서 현존하신다에 대한 표시. 여기서의 ‘땅’=인간의 자아(proprium)…그러므로 명백해지는 바, ‘땅’=거듭나지 않은 것, 그리고 거듭나질 수 없는 것, 이것은 인간의 의지 부분에 있는 인간 자아이다는 것이다.
창9:14-‘땅 위에서 구름으로 나 자신을 흐리게 하는’=인간의 의지 부분의 자아 때문에 선행으로부터 있는 신앙이 나타나지 않을 때…
창10:5-‘그들의 토지 안에 있는 나라들의 섬들’, ‘토지들’=그들의 일반적인 것들.
창10:8-‘그는 땅에서 용사였다’=이런 종교가 교회에서 세력을 떨쳤다. ‘땅’=교회
창10:20-‘그들의 가문에 따라, 그들의 언어에 따라, 그들의 토지에서, 그들의 나라에서’=일반적으로, 특수적으로나 각각의 특질에 따라서.
창10:25-‘그의 시대에서 토지가 나뉘었다’=그 때에 새로운 교회가 일어섰다.
창10:32-‘이들로부터 땅에 있는 나라들이 흐트러졌다’=그때부터 선들에, 또는 악들에 관련되는 교회의 모든 예배들이 왔다.
창11:1-‘전체 땅은 한 입술 속에 있었다’=모두 각각은 일반적으로 한 교리이였다.
창11:9-‘여호와께서 온 땅의 입술을 혼동되게 하셨다’=고대 교회의 상태…‘온 땅의 얼굴’=교회의 상태.
창12:1-‘너는 네 토지로부터 떠나가라’=육적이고 세상적인 것들에서 손을 떼어야 하리라는 것.
창12:10-‘그 토지에 기근이 있었다’=주님이 아기이셨을 때 지식의 빈궁함이 그분을 짓누르고 있었다.
창13:6-‘그 토지는 함께 거주하도록 그들을 받쳐주지 못했다’=내적인 천적인 것들에 속하는 일련의 것들은 롯에 의해 의미되는 것들과는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것.
창13:7-‘그 당시 가나안족과 브리스족이 그 토지에서 거주하고 있었다’=외적 인간에 있는 악들과 거짓들.
창14:19-‘하늘들과 땅의 소유자’=내적 인간 또는 여호와가 내면과 외면의 인간과 결합함.
창15:7-‘그것을 상속받도록 이 토지를 너에게 주는 것’=주님의 왕국, 그 속에서 주님 홀로 소유자이시다…‘토지를 상속받는 것’은 여기서 주님의 인간 본질을 서술하고 있다; 그 이유가 그분의 신성 본질에 관련하여 서술한다면 그분은 영원부터 우주의 소유자, 천국 왕국의 소유자 되시기 때문.
창15:13-‘그들의 것들이 있지 않은 토지에서’=비록 교회가 선행과 신앙 안에 있지 않다 하더라도 교회가 있는 곳.
계10:2-‘바다’=자연적 진리들, ‘땅’=자연적 선들
이66:1-‘땅이 나의 발판이다’….‘땅’=이전에 상응하는 보다 낮은 것들; 보다 낮은 합리적이고 자연적인 것들과 같다…보다 낮은 천국들에 있는 것과 같다, 또한 교회 안에 있는 것과 같고, 외적 예배에 있는 것들과 같다. 또한 말씀의 글자 의미에 있는 것과 같다; 한마디로 내적인 것들로부터 진행되는 모든 것들, 그리고 외적인 것 안에 표출되는 것들. 이런 것들은 자연적인 바, ‘땅’이라, 그리고 ‘주님의 발판’이라 불리운다.
창18:25-‘온 땅의 재판관’=진리인 것으로부터 있는 선 자체.
창20:1-‘남쪽의 토지’=믿음으로부터의 선과 진리.
창20:15-‘아비멜렉이 말했다, 보라 내 토지가 네 앞에 있다’=사랑과 선행의 교리에 관하여 주님께서 지각하심…‘토지’=사랑과 선행의 교리.
예4:7-‘토지를 못쓰게 만드는 것’=교회를 황폐해지게 하는 것.
애2:9-‘문들이 땅 안으로 가라앉는다’=자연적 마음이 악들과 거짓들에 의해 소유되어진다.
신28:49-‘땅의 맨 끝으로부터…나라가..’=악들과 거짓들.
창24:4-‘너는 내 토지, 내 출생지로 갈 것이다’=주님께서 자신을 위해 획득하신 신성한 천적이고 영적인 것들. ‘토지’=사랑으로부터의 천적인 것; 그리고 ‘출생지’=사랑으로부터의 영적인 것.
창24:7-‘내 아버지의 집, 그리고 내 출생의 토지’=어머니다운 것, 또는 어머니로부터 유전된 것, 이로부터 주님께서 맞서 싸우셨던 악과 거짓이 왔다….‘아버지의 집’=악에 관련하여 어머니로부터 상속된 것, ‘내 출생의 토지’=거짓들에 관련되어 어머니로부터 상속된 것.
창26:3-‘나는 이 모든 토지들을 줄 것이다’=영적인 것들; (그 이유가) 여기서 ‘토지들’=합리적인 것들, 이것은 신성에 의해 계발되는 바, 진리의 나타남이다…
창26:4-‘그리고 나는 네 씨에게 모든 이 토지들을 줄 것이다’=그때부터 교회들이 파생되었다..‘토지들’=신성에 의해 계발된 진리의 나타남인 합리적인 것들.
호9:3-‘여호와의 토지에 거주하지 않는다’=사랑의 선의 상태에 있지 않는 것, 고로 주님의 왕국 안에 있지 않는 것.
창26:22-‘우리는 토지에서 열매 있을 것이다’=그때부터 선의 증가가…‘토지’=교회, 그리고 교회 속의 것은 무엇이든지.
슥8:12-‘땅은 그것의 생산물을 줄 것이다’=교회의 천적인 것 또는 선행의 선은 진리를 줄 것이다.
창28:4-‘네가 거류하는 토지’=교훈들의 생명…‘토지’= 생명이 있는 곳.
창28:13-‘네가 누운 토지, 나는 네게 그것을 줄 것이다’=그가 있었던 선, 그것은 자아로부터였다는 것. 여기서의 ‘토지’=자연 속의 선.
창28:14-‘네 씨는 땅의 먼지 같이 있을 것이다’= 자연 속의 신성한 진리는 자연적 선으로서 있을 것이다…‘땅의 먼지’=선인 이유는 ‘땅’=주님의 왕국, 그러므로 선이기 때문. 땅의 먼지=선이기는 하나 그 선은 자연적 선이다, 그 이유는 ‘땅’= 주님의 왕국에서 보다 낮은 것, 즉 자연적인 것이기 때문…
이33:17-‘먼 거리의 토지를 보는 것’=사랑의 선.
창30:25-‘나를…내 토지로 보내라’=자연성이 합리성 속의 신성과의 결합을 갈망함…그 이유가 ‘내 토지’는 그의 아버지 이삭과 그의 어머니 리브가를 뜻하기 때문.
창31:13-‘네 출생지의 토지로 되돌아 가는 것’= 진리로부터의 신성한 선과 결합함.
마24:35-‘하늘과 땅은 사라질 것이다 등등’=이전 교회의 내, 외적인 것은 멸해지나 주님의 말씀은 남아 있을 것이다.
창32:3-‘시날의 토지’=자연적 선 속의 천적인 것.
창34:1-‘토지의 딸들을 보려고’=진리에 애착함, 이로부터 파생된 교회들을 아는 것…‘토지’. 여기서는 가나안의 토지,=교회가 있는 넓은 땅과 나라, 고로 교회 자체.
창34:2-‘토지의 왕자’=교회들 중에서 최초인 것.
창34:10-‘토지가 네 앞에 있을 것이니, 너희는 거주하라’=교회, 이것은 하나이다.
창34:21-‘토지에 거주하는 것’=교회 속에 있는 일련의 것들에 따른 생활로 비슷해짐.
창34:30-‘토지의 주민’=고대 교회 속에 있었던 이들.
습1:18-이 토지가 ‘종말을 보았다, consumated’라고 말해질 때, 이는 나라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있는 나라 속의 거룩한 예배를 뜻하여 말해지는 것이다.
창35:22-‘토지’=선에 관련된 교회. 이 구절의 경우 진리로부터의 선에 관련된 교회.
슥5;3-‘온 땅의 얼굴’=보편적 교회.
창41:54-‘기근이 모든 토지에 있었다’=자연의 모두 각각이 황폐함.
창42:9-‘토지의 벌거벗음’=교회에 진리가 없음.
창43:1-‘토지 안에서’=교회 속에 있는 이런 것들에 관하여.
창43:11-‘네 그릇에 토지의 노래(chanting, song)를 취하거라’=믿음으로부터의 진리 안에서 선택한 교회 속의 것들.
창44:11-‘그들 모두 각각은 자기 자루를 땅에 내려 놓았다’=그들은 자연 안에 있었던 이런 것들을 감각적인 것들에로 내려가도록 아래쪽으로 가져왔다. ‘땅’이 이 구절 같이 ‘그들은 그쪽으로 내려가게 했다’라고 말해질 경우,=최말단인 것, 그리고 가장 낮은 것, 고로 감각적인 것.
예47:2-‘그들은 땅을 채우고 침수시킬 것이다’=전체 교회.
시24:1, 89:11-‘땅’= 특별한 측면에서의 교회.
창48:1-‘그분은 너를 네 아버지들의 토지로 도로 데려다 놓을 것이다’=두 고대 교회들의 상태.
창49:15-‘그리고 기쁨이 있는 토지’=주님의 왕국에 있는 이들은 행복하다. 그 이유가 ‘가나안의 토지’는 말씀에서 ‘토지’에 의해 의미되는 것인 주님의 왕국을 표현했기 때문; 그리고 아주 고대 시대 때부터 그 토지에는 교회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출1:7-‘그리고 토지는 그들로 가득찼다’=교회 속이 가득차기까지 조차. ‘고센의 토지’, 거기는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그때 당시 있었던 곳=교회.
예46:8-(이집트가 말했다) ‘나는 땅을 덮을 것이다’=교회.
암8:8, 9:5-‘움직일’ ‘땅’=교회
이18:1-‘날개들로 그늘지고 있는 토지’=과학물로부터 추론함에 의해 자체를 어둡게 하는 교회.
예12:4-‘통곡할 토지’=교회.
출2:15-‘그는 미디안의 토지에 거주하였다’=단순한 선 안에 있는 이들 사이에서 생활함. ‘토지’가 언급된 이유는 그곳의 교회를 뜻했기 때문.
출2:22-‘그는 말했다, 나는 외국의 토지에서 거류자이다’=그는 자신의 교회가 아닌 교회의 진리들로 훈육되었다는 것.
출3:8-‘좋고 넓은 토지로’=천국으로, 선행의 선과 믿음의 진리가 있는 곳. ‘토지’, 여기서 가나안의 토지=주님의 왕국, 고로 천국; ‘좋은 토지’=선행의 선이 있는 곳; 그리고 ‘넓은 토지’=믿음의 진리가 있는 곳.
출4:3-‘그것을 땅에 던져라’=주님의 신성한 자연성 속의 권능이 감각적인 것 안으로 유입됨.
출5;5-‘오, 토지의 백성이 지금은 많다’=영적 교회 속에 있는 많은 이들.
출6:1-‘그는 그의 토지로부터 그들을 내몰 것이다’=그는 그들을 그의 근처로부터 싸우도록 놔둘 것이다…그 이유가 영적 교회 속의 이들이 거짓들을 수단으로 침입받는 토지는 그것들을 침입하는 지옥 근처에 있기 때문, 그리고 그 토지는 보다 낮은 땅이라 불린다.
출8:16-‘토지의 먼지를 강타한다’=지옥에 떨어질 자연적 마음 안에 있는 것들.
출8:22-‘나 여호와는 토지 한가운데에 있다’=주님은 교회의 유일한 하느님이시다.
출9:15-‘너는 토지로부터 잘라내질 것이다’=교회 속에 있는 일련의 것들과는 더 이상 어떤 소통도 없다.
출8:23-‘땅에서 걷는 것’=자연적 마음의 가장 낮은 것들까지 조차 소유하는 것.
출10:15-‘그것은 땅의 표면을 덮을 것이다’=자연적 마음 속의 최말단의 것들.
출12:19-‘외국인이든, 토지에서 태어난 자이든’=교회에서 태어났든, 태어나지 않았든 교회 속에 있는 이들.
출13:5-‘젖과 꿀이 흐르는 토지’=즐거움과 기쁨이 있는 곳.
출14:3-‘그들은 토지에서 얽혀져 있다’=그들은 교회 속에 있는 일련의 것들에서 혼동하는 가운데 있다…‘토지’=교회 속에 있는 것들
출15:12-‘땅이 그들을 삼켰다’=지옥에 떨어짐과 지옥…악으로부터 거짓들 안에 있는 이들이 사막의 토지로 나타나는 장소, 여기는 저주된 토지라 불린다; 지옥 안으로 던져진 이들이 그 아래에 있다.
출16:35-‘그들이 사람이 살 수 있는 토지에 올 때까지’=그들이 천국에 오기 전에. ‘토지’ 여기서는 가나안의 토지=주님의 왕국, 고로 천국.
출18:3-‘그중 하나의 이름은 게르솜이었는데, 그 이유는 그가 나는 외국 토지에서 거류자가 되어왔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교회 밖에 있는 이들 속에 있는 진리로부터의 선에 관한 품질…‘외국 토지’=교회가 없는 곳…‘외국 토지’=진짜 교회가 없는 곳인 이유는 ‘토지’=교회이기 때문. 그리고 ‘외국, strange’=진짜이지 않은 것이 있는 곳.
출18:27-‘그는 그 자신의 토지로 갔다’=신성 자체로…‘그의 자신의 토지로 가는 것’= 이전 상태로, 고로 신성으로. 더구나 내적 의미에서 ‘토지’=교회, 그리고 또한 천국; 그로부터 최고 의미에서 토지=신성인 것…최고 의미에서 ‘토지’=신성인 것인 이유는 ‘이드로’가 신성한 선, 고로 신성 자체를 표현했기 때문이다…‘토지’=교회가 가장 적절하다. 그 이유는 천국에 있는 이들은 말씀에서 ‘토지’를 읽을 때 자연계의 토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토지에 있는 나라의 영적 상태에 관해, 고로 거기 있는 종교적인 것에 관해 생각한다. 그러므로 토지가 교회가 있는 곳으로 읽게 될 때, 그들은 교회에 관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들은 주님의 왕국에 관한 생각, 고로 천국에 관한 생각도 가진다; 그리고 그들이 천국에 관한 생각을 가질 때, 그들은 또한 천국에 있는 신성에 관한 생각도 가진다. 그러나 표현된 어떤 것이 교회 안에 있는 거룩한 것, 또는 천국 안에 있는 거룩한 것을 취급할 경우, 이런 것들이 ‘토지’를 수단으로 뜻해질런지 모른다. 즉 사랑, 선행, 선, 믿음 등등을 뜻할런지 모른다. 그러기에 명백한 바, 단어에 적절히 속하는 의미는 아직도 남아 있다; 마치 사랑, 또는 선, 또는 선행이 의미될 때, 그 단어에는 아직도 교회에 관련되는 보편적 의미가 남아 있는 것과 같다; 그 이유가 이런 것들이 교회의 필수 본질이기 때문이다.
출19:5-‘모든 땅이 나의 것이다’=주님은 하늘과 땅에서 모든 권능을 가지신다는 것. (그 이유가) 내적 의미에서 ‘땅’=땅에 있는 주님의 왕국, 그리고 또한 천국에 있는 주님의 왕국.
출20장-‘위로 하늘에 있는 것, 그리고 아래로 땅에 있는 것’=영적 빛에 있는 것과 자연적 빛에 있는 것.
출20장-‘여섯째 날에 여호와께서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를 만드셨다’=거듭남 그리고 내적, 외적 인간에 있는 것들이 생기 있게 됨…‘하늘과 땅’=교회 또는 인간 안의 주님의 왕국; ‘하늘’=내적인 것. ‘땅’=외적인 것…그런고로 이것은 거듭나는 인간이다.
출20장-‘네 날들이 토지 위에서 길어질런지 모른다’=결과적으로 당연히 수반되는 천국에서의 삶…‘토지’, 여기서는 가나안의 토지, 그 이유는 이것이 이스라엘의 아들들=주님의 왕국에게 말해졌기 때문이다.
이26:21-‘땅’=옛 교회
* ‘일곱째 해에 토지를 휴식시키는 것’=두 번째 상태, 교회 속의 사람이 선 안에 있을 때.
왕하2:19-‘불모의 토지’=교회의 선이 살아있지 않음.
왕하2:29-‘토지가 황폐해지지 않도록’=결핍, 영적 생명이 거의 없음.
말3:12-‘너희는 아주 기뻐하시는 토지일 것이다’=거듭난 인간.
출28:30-‘네가 토지를 상속할 때 까지’=선 안에 있는 동안, 또는 거듭나는 동안…여기서의 토지는 가나안의 토지=주님의 왕국, 고로 천국. 그러므로 ‘토지를 상속받는 것’=상속자 같이 천국을 받는 것.
출23:33-‘그들은 네 토지에서 거주 못할 것이다’=악들은 교회의 선과 함께 있게 해서는 안된다…‘토지’= 선에 관련되는 교회, 고로 교회의 선.
단8:9-‘우아함의 토지’=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이 있는 주님의 교회.
이48:13-‘그가 찾아낸 땅’=최말단의 것.
출31:17-‘엿새 동안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만드셨다’=교회가 설립되어질 때 겪는 수고와 전투의 상태…‘하늘과 땅’=교회…‘하늘’은 교회의 내적인 것, ‘땅’은 교회의 외적인 것을 뜻해주고 있다.
출32:13-‘내가 말했던 이 모든 토지를 나는 네 씨에게 줄 것이다’=천국과 교회에 있는 이들로부터…교회가 ‘토지’에 의해 의미되듯 천국도 의미해준다; 그 이유가 교회는 땅에 있는 주님의 천국이기 때문; 그리고 교회 또한 천국과 하나로서 행동한다; 그 이유가 전자는 후자로부터 발생하고 지탱되기 때문.
출33:1-‘토지로 올라가는 것’=교회를 설립하는 것.
예14:4-‘땅’=교회가 있는 곳; 그리고 ‘지면’=교회 자체.
출34:12-‘너희는 너희가 들어가는 토지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않도록’=악이 있는 종교에는 어떤 것이든 들러붙지 말라는 것…‘토지’=교회, 또는 교회 속의 것은 무엇이든지, 고로 종교적인 것.
출34:24-‘누구도 네 토지를 탐내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선들과 선들로부터 진리들을 보고 지각할 때, 악들과 악들로부터의 거짓들에 있는 교회 속에 있는 것들에 혐오감을 느낀다는 것…‘토지’=교회, 교회 속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마28:18-‘그분은 하늘에서 그리고 땅에서 모든 권능을 가지고 있으시다.’ ‘하늘에서 그리고 땅에서’라고 말해지는데, 그 이유는 천국을 통치하시는 그분이 땅 역시 통치하시기 때문; 그 이유가 이것은 저것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1:5-‘땅의 왕들의 왕자’=교회 안에서 선으로부터 있는 모든 진리는 그분으로부터 있다.
계1:7-‘땅의 족속들’=교회 속의 선들과 진리들.
이13:9-‘황폐해지게 놓일 토지’=교회, 교회가 황폐해져 있음 속에서도 말씀에 있는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계3:10-‘땅에 거주하는 그들을 심리하는 것’=마지막 심판의 날 (이전에 천국 안에 있었던 이들을 방문함)
계5:3-‘하늘에도, 땅에도, 땅 아래에도 아무도 없었다’=보다 높은 천국들 안에, 보다 낮은 천국들에도 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는 것….요한은 영 안에 있었다, 이 상태에서 그에게 나타난 땅은 영계의 땅 밖에 더 다른 땅은 없었다; 그 이유가 자연계에 땅이 있듯 거기에도 땅들이 있기 때문이다…보다 높은 천국들은 산이나 언덕들 위에 나타난다; 보다 낮은 천국들은 땅 아래에 나타난다; 최말단의 천국은 마치 땅 아래 있는 것 같이 나타난다. 그 이유가 천국들은 광활한 공간(expanse)이어서 이것이 저것 위에, 저기 있는 이들의 발 아래 있는 땅 같기 때문이다. 가장 높은 광활한 공간은 산꼭대기와 같다; 두 번째 광활한 공간은 첫 번째 아래에 있다, 그러나 그 자체 옆으로 더 넓게 빙둘러 넓혀지고 있다. 그리고 가장 낮은 광활한 공간은 두 번째 보다 더 넓게 넓혀져 있다. 그래서 후자가 전자 아래 있는 바 같이, 땅 아래 있는 그들이 거기에 있다. 세 천국들 또한 보다 높은 천국들 안에 있는 이들에게 그와 같이 나타난다. 그 이유는 그들 아래 두 천국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와 똑같은 방법으로 그것들이 요한에게 나타났다, 그 이유는 요한이 그것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영계에 관한 어떤 것 그리고 거기에 있는 땅들에 관하여 알지 못하는 이들은 ‘땅 아래’, 또는 ‘땅의 더 낮은 것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이 구절에서 뜻하고자 하는 것이 영계의 땅들임을 누가 알지 못할까? 그 이유는 땅 아래 거주하는 사람은 아무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계5:6-‘모든 땅 안으로’=종교가 있는 보편적 세상 안으로 (=천국과 교회)
계5:10-‘땅을 통치하는 것’=주님의 왕국 안에 있는 것, 그리고 그분 자신과 하나되어 있는 것
계7:1-‘네 천사들이 땅의 네 모퉁에 서있었다’=영들의 세계 안에 있었던 이들 위에 마지막 심판을 결과되게 하려고 시도하는 보편적 천국. (주님으로부터의 신성인 것이 보편적 영계 안으로 진행함.)
계7:1-‘땅의 네 바람들을 붙잡고 있어, 그것이 땅에, 바다에, 어떤 나무에도 불지 못할 것이다’=선한 것과 악한 것이 결합된 채 있는 곳인 더 낮은 것들 안으로 더 가까이 그 결과 더 센 유입이 주님에 의해 보류되고 제지되고 있다.
계8:5-‘땅으로 향로를 던지는 것’=유입이 더 낮은 부분들 안으로.
계8:7-‘그들은 땅으로 내던져졌다’=교회의 내적인 것들과 믿음 만에 있는 자들과 더불어…
계8:13-‘땅의 주민들에게 슬픔이 있다’=교리와 생활에서 선행에서 분리된 믿음으로 자신을 굳힌 이들의 상태는 지옥에 떨어질 상태인지라 통곡함.
계9:1-‘나는 하늘로부터 땅으로 떨어진 별을 보았다’=영적 신성한 진리가 천국으로부터 그들과 더불은 교회 안으로 흘러들어, 탐구하고, 명백해진다…‘땅’은 여기서 교회의 내적인 것들 안에 있는 이들과 더불은 교회를 의미한다. (=멸망함)
계9:3-‘땅의 전갈’=교회 속의 것들 안에 있는 설득력 있는 것.
계10:2-‘그는 자기의 오른 발을 바다 위에, 그의 왼발은 땅에 두었다’=주님은 교회의 내적, 외적 안에 있는 모두를 포함하는 보편적 교회를 그분의 후원과 지배 아래 가지신다.
계10:6-‘하늘과 그 안에 있는 것을 창조하신 분, 땅과 그 안에 있는 것을 창조하신 분, 바다와 그 안에 있는 것을 창조하신 분’=천국 안에 있는 이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각각 그리고 전부를 살아있게 하시는 분, 교회 안에 있는 이들, 그리고 그 안의 모두 각각의 것을 생기 있게 하시는 분…‘하늘’은 천사들이 있는 천국을 뜻하고 있다; ‘땅’은 교회의 내적인 것들 안에 있는 이들, ‘바다’는 교회의 외적인 것들 안에 있는 이들을 뜻한다. ‘그 안에 있는 것들’이란 그들과 더불어 있는 각각, 전부를 뜻한다.
계11:6-‘갖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는 것’=갖가지 종류의 악들과 거짓들을 수단으로 교회 위에 파멸을 초래케 하는 것.
계11:10-‘땅 위에 거주하는 그들’=교회 안에 있는 그들; 이 구절의 경우, 믿음 만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이들. ‘땅’=이들이 있는 교회.
계11:18-‘땅을 파괴하는 그들을 파괴하는 것’=교회를 파괴한 이들을 지옥으로 내침.
계12:4-‘하늘로부터 끌어내리는 것, 그리고 땅으로 내던지는 것’=교회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깡그리 파괴함.
계12:9-‘그가 땅으로 내쳐졌다, 그리고 그의 천사들이 그와 더불어 내쳐졌다’=그가 영들의 세계로 내쳐졌음…이 세계는 지상의 사람들과 직접적 결합이 있다. 용이 내쳐진 땅이 영들의 세계인 이유는 이 세계는 천국 바로 아래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천국으로부터 내쳐졌을 때, 그가 즉시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천국 아래 이 세계의 땅으로 떨어진다….(지옥으로 정죄되기 위해).
계12:12-‘땅과 바다의 주민들에게 슬픔이 있다, 그 이유는 악마가 큰 분노를 가진채 너희에게 내려갔기 때문이다’=믿음 만으로 (구원된다) 라는 교리의 내, 외적인 것 안에 있는 이들에게 통곡함이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의 것과 대충 닮은 것이 천국으로부터 영들의 세계 안으로 내쳐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구의 사람들과 결합하여, 새 교회를 미워함으로부터 그들은 자기들의 거짓들과 이 거짓에서 파생된 악들을 보존하려 휘젖고 있다. (=오로지 자연적이고 감각적인 이들에게 통곡함이 있다)
계12:16-‘땅이 여인을 도왔다; 그리고 땅은 그녀의 입을 열었다, 그리고 용이 그의 입으로부터 토한 홍수를 삼켰다’=용의 추종자(dragonist)들이 풍부하게 발상해낸 거짓들로부터의 추론들은 합리적으로 이해된 진리들 앞에서 무(nothing)로 전락한다. 이 합리적으로 이해된 진리가 미가엘이고, 새 교회와 일치되는 진리이며 새 교회가 공표하는 진리이다. ‘여인을 도운 땅‘= 교리 측면에서의 새 교회; 그리고 용의 추종자들이 짜낸 거짓들로부터의 추론이 취급되는 바, 땅은 말씀으로부터의 진리들이다. 이 진리, 땅, 즉 교회가 여인을 돕는다. ’그녀의 입을 연다는 것‘=이런 진리들을 공표하는 것. (=진리들 안에 있지 않은 교회 속의 사람은 원조를 되돌렸다, 그리고 (선행과 분리된 믿음 안에 있는 이들의 속임수의 추론을 받지 않았다)
계13:3-‘온 땅이 놀라워하며 짐승을 따랐다’=그 당시 이 신앙은 흔쾌히 받아졌다, 그리고 온 땅의 교리가 되었다….‘온 땅’=모든 개혁 교회.
계13:11-‘나는 땅으로부터 올라오는 또다른 짐승을 보았다’=개혁 교회 속의 성직자들…‘땅’=교회의 내부적인 것.
계13:12-‘땅과 그 안에 거주하는 그들’=개혁 교회.
계14:3-‘땅으로부터 샀다’=거듭나질 수 있는 이들, 고로 세상에서 구속될 수 있는 이들.
계14:16-‘땅은 거두어 들여졌다’=교회의 끝장.
계14:19-‘그는 땅의 포도원을 수확했다’=현 기독 교회의 끝장.
계16:1-‘가서 땅에 하느님의 분노의 대접을 쏟으라’=개혁 교회 안으로의 유입.
계17:2-‘첫째가 나갔다, 그리고 그의 대접을 땅에 쏟았다’=개혁 교회의 내면의 것들에 있는 이들 안으로.
계18:24-‘땅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거짓들을 통하여 멸해졌었던 기독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자들.
계20:8-‘땅의 네 모퉁이’=보편적 영적 세계; 이 구절의 경우, 영들의 보편적 세계 안에 있는 이들.
계20:9-‘땅의 폭 위에 가는 것’=교회의 모든 진리를 쫓아버림.
계20:11-‘그분의 얼굴로부터 하늘과 땅이 도망했다’=모든 첫 번째 천국들 위에 있는 보편적 심판…그들의 땅과 더불어 하늘들이 완전하게 흩뜨려졌다.
요8:6-‘주님께서는 그분의 손가락으로 땅에 쓰셨다’=그들도 동등하게 간음 사건에서 정죄되었다…
계21:24-‘땅의 왕들’=선으로부터 진리들 안에 있는 모든 이.
이49:8-‘땅을 회복하는 것’=교회를 회복하는 것; 그 이유가…주님께서는 유대 백성에게 땅을 회복시켜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분은 이방인들 사이에서 교회를 설립하셨다.
* 반대적 의미일 경우, ‘땅’=황폐된 교회, 이것은 오로지 교회 안에 악과 거짓 만 있을 때 거행된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인간을 지옥에 떨어지게 하는 바, 이럴 경우, ‘땅’=지옥에 떨어짐.
시135:6-‘땅’=아래 있는 이들.
이60:18-‘폭력이 너희 토지에서 더 이상 들리지 않을 것이다’…‘토지’=내적, 영적 인간, 그이유는 ‘토지’에 의해 의미된 일반적 측면의 교회가 있기 때문이다.
이28:24-‘땅을 써레질하는 것’=기억 안에 모아두는 것.
학2:6-‘하늘과 땅’=교회 속의 모든 내면의 것들; ‘바다, 그리고 마른 토지’=외면의 모든 것들.
시136:6-‘그분이 물들 위에 펼치신 땅’=교회의 외적인 것, 한마디로 자연적 인간이라 불린다.
신33:13-‘(요셉의) 토지’=영적 왕국, 마찬가지로 이 왕국에서 파생된 교회.
이13:9,13-‘토지’ 그리고 ‘땅’은 영계 안에 있는 땅을 뜻한다; 그 이유가 거기에도 우리의 지구와 같이 땅들이 있기 때문, 그리고 마지막 심판 동안, 그들은 황폐함을 만들고 있고, 그들의 장소로부터 흔들려지고 있다…그럼에도 ‘땅’의 영적 의미는 (성경) 각처에서 교회를 뜻하고 있다; 그이유가 영적 세계에서, 땅의 얼굴은 거기 땅 위에 거주하는 이들과 더불어 있는 교회의 상태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멸해질 때, 땅 역시 멸해진다. 그이유가 그 둘은 하나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당시 이전의 땅의 장소 안에 새로운 땅이 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바뀜들은 땅들 안에 있는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
계7:1-‘땅의 바람들’이 말해진 이유는 ‘땅’이 영계 안에 있는 모두 각각의 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적 의미에서 ‘땅’은 천국과 교회를 의미하고 있다.
계10장-‘바다’ 그리고 ‘땅’, 이 위에 그는 자기 발을 놓았다=최말단 천국과 지상의 교회
호9:3-‘그들은 여호와의 토지에서 거주하지 않을 것이다’=그들은 천국 안에서의 생활과 같은 것인 선으로부터의 삶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겔26:16-‘그들은 땅 위에 앉을 것이다’=그들은 왜곡된 것들, 고로 거짓들 안에 있을 것이다…그 이유는 영계에서 땅 아래는 지옥이기 때문, 여기로부터 악들과 거짓들이 계속 내뿜어지고 있다.
슥8:12-‘땅’=진리에 대한 자연적 애착과 관련된 교회.
이24:1-‘땅을 텅비게 만듦’이란 사랑의 선과 선행의 선이 (교회에서) 황폐해짐.
시107:34-‘소금밭으로 놓여진 열매 있는 토지’= 사랑의 선과 생활 속의 선이 거짓들을 통하여 철저히 황폐해짐.
계12:13-‘땅으로 내던지는 것’=이 종교는 인정되지 아니 하였다는 것, 그리고 대단히 나쁜 것으로 간주 되었다는 것.
계13:8-‘땅에 거주하는 그들’=교회 안에서 태어나는 이들.
계13:12-‘땅’= 진리들 안에, 또는 거짓들 안에 있는 교회; 이 구절의 경우는 후자이다.
계14:7-‘하늘과 땅’=천국과 교회.
뜰 (court)
* 각 천국의 외부가 소위 최말단, 또는 첫 번째 천국이다, 그리고 ‘뜰’에 의해 표현되어졌다. 그러므로 뜰에는 성전에 관련하여 두 겹, 즉 외면과 내면(이 있다). 바깥 뜰에는 영적 왕국의 외부에 있는 이들, 그리고 안쪽 뜰에는 천적 왕국의 외부에 있는 이들(이 거주한다), 참고로 왕상6:36, 왕하21:4, 겔40:17,31, 34, 42장, 그리고 40:23,28,32,44, 42:3, 43:5를 보라.
계11:2-‘성전 밖인 뜰은 내쫒으라, 그리고 그것을 측량하지 마라’=아직 있는 것과 같은 지상의 교회의 상태, 제거되어져야 할 것, 알려지지 않게 해야 할 것. ‘성전 밖 뜰’=땅 위 교회.
겔10:5-‘날개들의 소리가 바깥 뜰에서 들려졌다’=최말단 천국에 있는 신성한 진리의 품질.
시84:2-‘여호와의 뜰들’=보다 낮은 천국들, 거기에 입구가 있다.
시92:13-‘우리 하느님의 뜰들’=외적 교회.
계11:2-‘뜰’=말씀의 외적 측면, 이로부터 교회의 외적 측면, 예배의 외적 측면.
시65:4-‘네 뜰들에 거주하는 것’=천국에서 사는 것.
시84:10-‘당신의 뜰들에 있는 하루가 (다른 곳에서의) 천 날 보다 더 낫다.’ 여기서 ‘뜰’=첫 번째 천국, 더 높은 천국 안으로 가는 입구가 이 천국을 통하여 있다. 그러므로 이어지는 말, ‘나는 내 하느님의 집에서 문에 서있기를 선택했다.
욜2:17-‘뜰과 제단 사이에서 우는 것’=교회에서 신성한 진리와 신성한 선이 황폐해짐에 애통함. 그이유가 ‘뜰’은 ‘성전’과 유사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 즉 신성한 진리 측면에서의 교회.
라마 (Ramah)
호5:8-‘기브아, 라마, 그리고 벧아웬’=‘베냐민’인 천적인 것들로부터 있는 영적 진리에 속하는 것들. 그이유가 라마는 베냐민 영토에 있기 때문(여18:25).
라메시스(Rameses)
창47:11-‘라메시스의 토지에서’=마음의 가장 안쪽, 그리고 그것의 품질. ‘고센의 토지’=자연적 마음의 가장 안쪽, ‘라메시스’는 고세 토지에서 가장 좋은 지역이었다=자연적 마음에 있는 영적 평면의 가장 안쪽.
출1:11-‘그들은 창고-성읍들을 건설했다’=왜곡된 진리들로부터의 교리들…‘비돔과 라암세스’=왜곡된 진리들로부터의 교리들의 품질.
출12:37-‘그들은 라암세스로부터 숙곳으로 여행했다’=떠남의 첫 번째 상태와 그 품질.
라사 (Lasha)
창10:19-‘소돔,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 라사에까지’=거짓들과 악들 안에 그들은 종결되었다.
라오디게아 (Laodicea)
계3:24-‘라오디게아의 천사에게’…여기서는 발가벗은 지식들 안에 교회의 모든 것을 놓아두는 교회, 그리고 이로부터 다른 것을 뛰어넘어 그것 자체를 드높이는 교회를 취급한다.
계3:14-‘라오디게아의 천사에게 쓰라’=때로는 자신들로부터, 때로는 말씀으로부터 번갈아 믿는 이들, 고로 거룩한 것들을 모독하는 이들에 관하여, 그리고 그들에게…교회 안에는 믿는데 믿지 않는 자가 있다. 즉 하느님은 계시다, 말씀은 거룩하다, 영원한 삶은 존재한다, 등등 같은 교회로부터, 교회의 교리로부터의 많은 것들을 믿는다는데도 불구하고 믿지 않는 교인들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감각적 자연 평면에 있을 때, 위 사항들을 믿는다, 그러나 그들이 합리적 자연 평면에 있을 때, 그들은 그것들을 믿지 않는다. 고로 그들은 외적인 것들에서는 믿는다. 즉 그들이 타인들과 더불은 사회나 대화를 할 때는 믿는다. 그러나 그들은 내적인 것들에서는 믿지 않는다. 즉, 자신 혼자 있을 때는 믿지 않는다. 이들에 관해서 말해지는바, ‘그들은 차지도 뜨겁지도 않다…그들은 토해내질 것이다.’
랍바 (Rabbah)
신3:11-‘암몬의 랍바’=진리를 거짓화함.
예49:3-랍바, 등등. 갓에게 주어졌다. 그러므로 이들의 토지들=갓에 의해 일반적으로 의미된 것과 같은 것이 특별한 측면에서…. ‘랍바의 딸들’=자연적 인간에 있는 진리에 애착함들.
레바논 (Lebanon)
호14:6-이 구절의 ‘레바논‘은 삼목들을 나타내고 있는바,=영적인 것들, 또는 믿음으로부터의 진리들.
* 레바논 숲의 나무들=내면의 지각들, 또는 합리적인 것들.
호14:7-영적 교회에 관한 기억은 ‘레바논의 포도주’에 비교된다.
이35:2-‘레바논’=영적 교회.
겔31:3-‘아수르’=예증되어진 교회 속의 사람의 합리성; 이것이 ‘레바논의 삼목(cedar)’이라 불리고 있다, 그 이유는 ‘삼목’=‘아수르’; 특별하게는 선으로부터 있는 진리; 그리고 ‘레바논’은 선으로부터의 진리가 있는 지성(mind), 그 이유는 레바논에 삼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33:9-‘레바논은 시들어져 간다’=진리 측면의 교회
겔17:3-‘레바논’=주님으로부터 있는 교회 속의 교리.
이35:2-‘그들에게 주어진’ ‘레바논의 영광’=신성한 진리.
호14:6-‘레바논의 냄새’=감사히 여김으로부터 있는 영적 선.
슥10:10-‘레바논으로 그들을…데려옴’=신앙 속의 선과 진리에로…
이37:24-‘레바논 쪽에’=교회의 선들이 진리들과 결합되어 있는 곳; ‘레바논’=영적 교회.
이2:13-‘레바논의 삼목들’=자기 총명으로부터 있는 자부심.
예18:14-‘레바논의 눈(snow)’=거기로부터 있는 교회 속의 진리들…‘레바논’=(그들이 근원된) 교회.
여1:4-교회의 한 끝, 이것은 인식력과 학술적 논리인데, 이것이 ‘레바논’과 ‘바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합2:17-‘레바논의 폭력’=말씀으로부터 지각된 진리들에 합리적 인간에 의해 과해진 무력; 그 이유가 ‘레바논’=합리적 인간으로부터 진리가 지각됨에 관련된 교회.
슥10:10-‘길르앗의 토지’와 ‘레바논’에 의해 자연적 인간에 있는 교회 속의 선들과 진리들이 의미되고 있다.
겔31:15-그들이 합리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나는 그 위에서 레바논을 검게 할 것이다’에서 의미되고 있다.
레센 (Resen)
창10:12-‘니느웨와 갈라 사이에 레센…’=그들은 자신들을 위한 삶의 교리물들을 형성했다는 것; 그리고 ‘레센’에 의해 그때부터의 거짓 교리물들이 의미되어진다…삶의 거짓들이 여기서 ‘레센’에 의해 의미되나 말씀에서는 더 이상의 언급은 없다. 레센은 ‘니느웨와 갈라 사이에’ 건설되었다, 즉 추론들로부터의 거짓과 삶의 거짓을 생산하는 탐욕들로부터의 거짓 사이에 건설되었다. 이것은 ‘큰 성’이라 불리우는데, 그 이유는 이것이 의지와 이해성 모두로부터 있기 때문이다.
루즈 (Luz)
창28:19-‘도성의 이름은 첫 번째에서 루즈였다’=이전 상태의 품질…원어에서 루즈는 퇴거(recession), 고로 분열(disjunction)을 뜻한다, 이는 진리, 또는 진리의 교리적인 것이 첫째 자리를 점거하고 선은 소홀시 될 때 발생된다. 그러나 진리가 질서의 최말단에서 선과 더불어 함께 있을 때, 퇴거 내지 분열은 없고, 접근(accession), 결합이 있다. 이것이 ‘루즈’에 의해 의미되는 상태의 품질이다.
창35:6-‘야곱은 가나안의 토지에 있는 루즈에 왔다’=이전 상태에 있는 자연 평면. ‘이것이 벧엘이다’=신성의 자연 평면, 이는 루즈의 의미, 즉 이전 상태에 있는 자연 평면, 또는 인간이었던 자연 자체로부터 분명하다.
창48:3-‘전능하신 하느님께서 가나안의 토지에 있는 루즈에서 나에게 나타나셨다’=(이전 상태에 있는) 자연 평면에서 신성의 나타남…‘루즈’=이전 상태에서의 자연 평면.
르비딤 (Rephdim)
출17:1-‘르비딤’=시험의 상태에 있는 진리 측면의 품질.
르호봇 (Rehoboth)
* 갈라 참조
* 그 때로부터 거짓들이 ‘르호봇’이다
창26:22-‘그는 그것의 이름을 르호봇이라 불렀다’=진리 측면에 관련하여 그때부터의 품질…’르호봇’=진리들; 그이유가 ‘르호봇’은 원어에서 ‘넓이’를 뜻한다.
마라 (Marah)
* 영적 (왕국의) 교회의 두 번째 시험이 백성이 불평함에 의해 묘사되어져 있다.
출15:23-‘그들은 마라에 당도했다’=시험의 상태.
그 시험의 상태와 품질…그 이유가 ‘마라’는 ‘쓴 것’이란 뜻이기 때문.
출15:23-마라에서의 물들, 그들은 그것의 쓴맛 때문에 마실 수 없었다는 섞음질한 진리들을 표현했다. ‘쓴맛, bitterness’=섞음, 간음, adulteration.
마므레 (Mamre)
창13:18-‘아브람은…헤브론에 있는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숲에서 거주했다’=주님께서는 더 내면적으로 지각하는 수준에 도착하셨다는 것…이 지각이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라 불리우고 있다.
창14:13-‘그는 아모리족의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숲에서 거주하고 있었다’=합리적 인간으로부터의 지각의 상태.
창14:13-‘마므레, 에스골, 아넬’에 의해 표현된 것은 주님께서 그분의 첫 어린 시절에 싸우셨을 때, 그분과 더불어 있었던 천사들인데, 이들은 그때 당시 주님과 더불어 있는 선들과 진리들에 잘 어울리는 천사들이었다.
* ‘마므레. 에스골, 그리고 아넬’은 주님의 외적 측면에 관련되는 합리적 인간의 상태, 그리고 그것의 선들과 진리들의 품질이 의미되었다. 고로 그것들을 수단으로 그분이 싸우셨을 때 주님과 더불어 있었던 천사도 의미되었다.
창18:1-그분의 인간 안에서 주님이 지각하시던 때의 상태가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숲’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창23:17-‘마므레 앞 막벨라’=거듭남. (‘막벨라’=거듭남; 그리고 ‘마므레’=거듭남의 질과 양)
창23:19-‘헤브론인 마므레’, 그리고 창13:18의 ‘헤브론에서’=질과 양을 말하는데, 여기서와 같이 막벨라와 접합될 경우 거듭남의 질과 양; 그리고 ‘헤브론’과 접합될 경우, 교회의 질과 양; 그리고 ‘상수리나무 숲’과 접합될 경우, 지각의 질과 양. 고로 ‘마므레’는 어떤 것의 상태에 대한 결정일 뿐이다; 그 이유가 이곳은 아브라함이 거주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삭이 거주했고, 이곳으로 야곱이 왔다.
창25:9-‘마므레의 얼굴에’=선에 관련하여…
창35:27-‘키럇-아르바의 마므레’=그것의 상태; (그이유가) ‘마므레’=접합되어진 것에 관련되는 질과 양.
마싸 (Massah)
출17:7-‘그는 그곳의 이름을 마싸라고 불렀다’=시험의 상태의 품질…원어에서 ‘마싸’=시험을 뜻한다.
신33:8-그들이 마싸에서, 므리바의 물에서 시험한 거룩한 사람에 의해 신성한 진리 측면에서의 주님이 뜻해진다.
마을 (village)
여21:12-‘들판과 마을에 관하여 갈렙에게 주어진 (헤브론)=다시 새로운 교회.
창25:16-‘그들의 마을들에서’=교회의 외적인 것들…이것들이 ‘마을들’에 의해 표현되었는데, 그이유는 그들이 성읍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42:11-‘마을들’=자연적인 지식들과 과학물들.
마하나임 (Mahanaim)
창32:2-‘야곱은 그 장소의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불렀다’=상태의 품질…원어에서 마하나임은 두 진영을 뜻한다. 그리고 ‘두 진영’=두 천국, 또는 주님의 두 왕국…그리고 최고 의미에서, 주님의 신성한 천적 평면과 신성한 영적 평면. 주님의 자연 평면이 영적 선과 천적 선에 의해 예증될 때, 주님의 상태의 품질이 ‘마하나임’에 의해 의미되어지고 있다.
막벨라 (Machpelah)
창23:17-‘마므레 앞인 막벨라’=거듭남.
창23:9-‘그로하여금 나에게 막벨라의 동굴을 주게 하라’=신앙으로부터의 희미한 것. ‘막벨라’=희미함에 있는 신앙…여기서 ‘막벨라의 동굴’이 말해지되, 막벨라는 들판이 있는 곳에, 그 들판의 끝에 동굴이 있었다고 말해지는바, 이는 진리의 희미한 것, 또는 같은 말로 신앙의 희미함이다. 이로부터 ‘막벨라’는 희미함에 있는 신앙임이 분명하다.
창23:17-‘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것’=거듭남의 질과 양…‘막벨라’=신앙으로부터 있는 진리를 통하여 거듭남.
창25:10-‘막벨라의 동굴로’=진리 측면에서의 부활.
창49:30-‘막벨라의 들판에 있는 동굴 안에’=이 희미함안에. ‘동굴’=희미한 것, 그리고 또한 ‘막벨라’. 그러나 ‘막벨라’=희미함의 품질.
창50:13-‘막벨라의 들판의 동굴에’=거듭남의 시작…‘막벨라’=거듭남. 고로 거듭남의 시작, 그이유가 거듭남의 시작에서는 신앙이 희미함에 있기 때문.
막게다 (Makkedah)
여10:27-‘막게다의 동굴’=악으로부터의 끔찍한 거짓.
만 (gulf)
구렁(텅이) (gulf)
눅16:26-‘그들 사이에 만…’=선으로부터 그 자체를 제거함(removal), 이는 또한 만이 사이에 끼어드는 나타냄을 준다.
* ‘큰 만’=생활의 상태들의 반대됨과 불일치함.
맨끝 (extreme)
신28:49-‘땅의 맨끝으로부터의 국가’=악들과 거짓들.
마24:31-‘하늘들의 맨끝으로부터 그것들의 맨끝 까지’=교회의 내적, 외적인 것들.
이7:18-‘이집트 강들의 맨끝에서 파리…’=자연적 마음의 맨끝에 있는 거짓들.
출19:12-‘그것의 맨끝을 만지는 것’=중재하는 것들 까지도 안된다.
출25:18-‘자비석의 두 맨끝으로부터’=천적 선과 영적 선.
출26:4-‘접합하는 맨끝으로부터 한 커튼의 끝머리 위에’=이쪽 영역이 다른 쪽 영역과 결합함.
출26:28-‘맨끝으로부터 맨끝 까지 지나는 것’, 힘이 의미되는 가로장에 관해 말해지는바,=거기서부터 힘이 파생되어 각 곳으로 계속되었다.
출27:4-‘그것의 네(4) 맨끝들 위에’=모든 곳.
출28:7-‘두 맨끝들’, 또는 오른쪽, 왼쪽=모든 측면들에.
출28:23-‘너는 가슴판의 두 맨끝들 위에 두 고리들을 놓을 것이다’=맨끝들에서…고로 천국의 맨끝들에서 신성한 선의 영역의 결합.
출28:25-‘두 사슬들의 두 맨끝들을 너는 박아끼는 두 구멍(socket)들에 놓을 것이다’=맨끝들에서 떠받쳐주는 것들을 가지고 결합하는 방법.
이26:15-‘그분이 제거한 땅의 맨끝들’=교회를 감염시킨 거짓들과 악들, 이로부터 그분은 그것들을 순수하게 하셨다.
예31:17-‘맨끝에서 희망’=이전 교회의 끝, 그리고 새 교회의 시작.
메사 (Mesha)
창10:30-‘메사’에 의해 진리가 의미된다.
멤피스 (Memphis)
호9:6-‘이집트’, 그리고 ‘멤피스’=자신과 과학물들로부터 신성한 것들에 관련해 슬기로워지기를 원하는 이들.
호9:6-‘멤피스가 그들을 묻을 것이다’=악의 거짓들에 말씀의 글자 의미로 부터의 참 진리들을 적용함으로 야기되는 영적 죽음.
모레 (Moreh)
창12:6-‘모레의 상수리나무 숲’=(주님의) 세 번째 상태이다.
창12:6-‘모레의 상수리나무에 조차’=세 번째 상태; 즉, 첫 번째 지각, 이는 ‘모레의 상수리나무’이다.
창12:6, 신11:29-30-상수리나무 숲의 나무들에 의해 외면의 지각들, 과학적인 것들…이로부터 ‘모레의 상수리나무’=주님의 첫 지각; 그이유는 그분이 아직 어린아이이셨기 때문…더우기, 모레의 상수리나무숲은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요르단 강을 건널 때 처음 왔던 곳, 그리고 가나안의 토지를 보았던 곳, 이 지역에 의해 지각의 첫 번째가 의미된다.
* ‘마므레의 상수리나무’에 의해 의미되는 지각이…’모레의 상수리나무’에 의미되는 것보다 더 내면적이다.
모리아 (Moriah)
창22:2-‘모리아의 토지로 가라’=시험의 장소와 상태…’모리아의 토지’=시험의 상태인 것은 아브라함이 그쪽으로 가도록 명령받았다는 사실, 그의 아들을 거기서 번제물로 바쳤다는 것, 고로 시험의 마지막 번째를 수행했다는 사실로부터 분명해진다. 예루살렘, 거기서 주님 자신께서 마지막 시험을 이겨내셨는데, 모리아와 같은 장소이다. 모리아산은 다윗이 제단을 쌓은 곳, 후에 솔로몬에 의해 성전이 지어졌다. 대하3:1, 대상21:16-28, 삼하24:16-25도 비교참조.
목초지 (pasture)
* 목자도 참조
이48:9-‘목초지’=가르침 자체.
창47:4-‘당신의 종들이 양떼를 위한 풀밭이 없기 때문입니다’=안쪽에 진리로부터의 선들이 있는 과학물이 결핍되고 있다는 것. ‘양떼를 위해 있는 목초지’=진리로부터의 선들이 안에 있는 과학물들….내적 의미에서, ‘목초지’=영적 생명을 받쳐주는 것, 그리고 특별하게는 과학적 진리이다. 육체가 음식을 갈망하듯, 혼은 이것을 갈망한다. 그러므로 ‘(풀을) 먹이는 것’=가르침이 있는 것.
애1:6-‘수사슴이 목초지를 찾지 못했다’=진리들 없는 자연적 애착들과 그것의 선들. ‘목초지’=진리와 진리로부터의 선, 이것이 인간의 영적 생명을 받쳐준다.
시23:2-‘풀잎의 목초지’=영적인 자양분, 이는 혼의 자양분이다. 그러므로 말해진다, ‘내 혼을 그분은 소생하게 해준다.’
욜1:18-그들이 ‘가지지 않은 목초지’에 의해 가르쳐지게 될 진리가 없다가 의미되어 있다.
요10:9-‘목초지를 발견하는 것’=가르쳐지고, 예증되어지고, 신성한 진리들로 자양분이 공급되는 것.
나2:12-그들의 ‘목초지’=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들.
겔34:31-‘내 목초지의 양떼’=영적인 선과 진리. ‘목초지’=주님을 수단으로 그들이 받아들임.
예23:10-‘광야의 목초지가 말라졌다’=이런 교회 안에 영적 자양분은 없다.
욜1장-‘목초지 없다’=가르침 없다.
못 (pool)
* 물웅덩이(pool)를 보라.
무덤 (grave, sepulchre)
매장 (burial)
매장하다 (bury)
* death도 참조.
민19:16-‘죽은 자, 죽여진 자, 사람의 뼈, 무덤을 만진자는 불결해진다.’ 이런 모든 것=인간에게 어울리는 것들, 이것들은 죽은 것, 모독인 것들이다.
창15:15-‘너는 장수하다가 묻힐 것이다’=주님에 속한 이들에 의해 모든 선들이 향유됨. 그이유가 인간은 죽고 매장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불명료한 삶(dim life)으로부터 명료한 삶(clear life)으로 건너가는 것이기 때문.
창23:4-‘당신의 매장지를 나에게 주어 소유하게 하라’=그들은 거듭나질 수 있다는 것. 말씀의 내적 의미에서, ‘무덤, grave’=삶, 또는 천국, 그리고 반대 의미에서, 죽음 또는 지옥. 천사들은 무덤에 관한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이유는 그들은 죽음이라는 것은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다. 무덤이라는 말 대신 그들은 삶의 계속을 지각한다, 고로 부활. 인간은 영 측면에서 일어나고, 그의 몸 측면은 매장되어진다. ’매장‘=부활인바, 매장 또한=거듭남이다. 그이유가 거듭남은 인간에게 첫 번째 부활, 즉 이전의 사람의 측면에서 죽고 새로운 사람 측면에서 다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
창23:4-‘내가 내 앞의 내 죽은 자로부터 매장하는 것’=그분은 그들과 더불어 있는 밤으로부터 다시 일어나시고 공표하실 것.
창23:6-‘우리들 중 아무도 당신의 무덤(his sepulchre)에 매장하는 것을 제지하지 않을 것이다’=모두가 거듭남을 받을 준비가 되어졌다는 것.
창28:11-‘당신의 죽은 자를 묻는 것’=밤으로부터 나와 소생되는 것. ‘묻히는 것’=다시 일어나는 것, 또는 소생하는 것.
창28:13-‘나는 내 죽은 자를 매장할 것이다’=그들은 밤으로부터 나와서 생기있어질 것이다. ‘매장되는 것’, 여기서=생기있어지는 것, 그이유는 그들이 신앙을 받는 과정에 있기 때문…‘나는 내 죽은 자를 매장할 것이다’=영적인 밤과 생기 있어짐인 이유는 이전의 교회가 죽고, 주님에 의해 새로운 교회가 그 곳에 일어날 때, 죽음 대신 생명이, 밤 대신 아침이기 때문. 또한 개혁되고 영적으로 만드는 모든 이와 더불어 그 사람에 관한 죽은 것은 매장되듯 해지고, 그리고 새로운 것, 즉 살아있는 것이 다시 일어난다. 고로 그 사람과 더불어 밤 대신, 또는 어둠과 찬(cold) 것 대신 그것의 빛과 열을 가진 아침이 떠오른다. 이로부터 주님의 생명 안에 있는 천사들과 더불어서는 인간이 죽은 자를 매장함에 관하여 가지는 생각 대신, 부활과 새로운 생명에 관한 생각을 가진다.
창23:19-‘아브라함은 그의 아내 사라를 매장했다’=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선과 결합한 진리를 받았다.
창23:20-‘아브라함이 무덤의 소유자로…’=이것은 거듭남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만 있었다. ‘무덤, sepulchre=거듭남.
창25:9-‘그의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매장했다’=주님을 표현함(대리인, representation)이 지금 이삭과 이스마엘에 의해 계속되어졌다. 여기서 ‘매장하는 것’=소생되어지는 것 그리고 다시 일어나는 것…그이유가 말씀에서 대리인이 계속되기 때문…그리고 죽음들은 어떤 중단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매장=대리인이 소생함 그리고 또다른 사람에서 계속됨이다.
마23:27-‘뼈들’=거짓들, 그리고 ‘무덤들’=그들이 들어 있는 악들, 그리고 위선은 바깥쪽으로는 선으로 나타나나, 안쪽에는 거짓으로부터 추잡하고 모독적인 것들인 바. 주님께서 말하신다, ‘너희는 하얗게 칠한 무덤 같다, 바깥으로는 아름다운듯 나타나나 내부는 죽은 자의 뼈와 모든 불결함들로 가득해 있다.
창35:8-‘(드보라는) 벧엘 아래 상수리나무 아래 매장되었다’=영구히 거절됨. ‘매장되는 것’=거절되는 것.
창35:19-‘라헬이 죽었다, 그리고 에브라데로 가는 길에서 매장되어졌다’=내면 진리에 대한 이전 애착의 끝…‘매장되는 것’=이전 상태의 거절, 그리고 새로운 것이 소생됨.
창35:20-‘그리고 야곱은 그녀의 무덤에 상(statue)을 세웠다’=영적 진리의 거룩함이 거기서 다시 일어날 것이다…‘무덤’=부활.
창35:29-‘그의 아들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매장했다’=그는 자연 평면의 선과 진리로부터의 선에서 다시 일어났다. ‘매장되는 것’=부활…이런 이유는 몸이 죽을 때, 혼이 다시 일어나기 때문. 이로부터 ‘매장’이 말씀에서 언급될 때, 천사들은 거절된 몸을 생각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혼을 생각한다.
창37:35-‘나는 슬피울며 무덤으로 내 아들에게로 내려 갈 것이다’=고대 교회는 멸해지리라는 것.
창42:38-‘슬퍼하며 무덤으로’=소생의 희망 없이…‘무덤’=부활과 거듭남. 고로 소생함. 즉 교회의 소생.
창44:29-‘너는 내 회색 머리카락들을 악 안에서 무덤으로 내려가게 할 것이다’=영적 선은 이제 막 멸해지려 한다는 것, 고로 교회의 내적 부분이 멸해지려한다는 것…선 안에서 무덤으로 내려가는 것=다시 일어나는 것, 그리고 거듭나는 것. ‘악 안에서 무덤으로 내려가는 것’=멸해지는 것.
창50:5-‘내가 나를 위해 가나안 토지에 파놓은 내 무덤에, 거기에 너는 나를 매장할 것이다’=교회가 전에 있었던 곳에서 소생되어지리라는 것. ‘무덤’, 그리고 ‘매장되는 것’=소생함.
창50:5-‘그리고 지금 나는 올라가서 내 아버지를 매장할 것이다’=거기에 내적인 것으로부터 교회의 소생함이 있다.
창50:14-‘그의 아버지를 매장하러 그와 더불어 올라갔던 모든 이’=거듭남에 도움이 되는 모든 것들. ‘매장되는 것’=거듭남과 소생함. ‘매장하는 것’=거듭남과 소생함, 또한 교회의 갱신과 소생, 이런 이유는 모든 이런 의미들이 같은 것을 포함해서이다. 즉 거듭남은 부활이다. 그리고 교회의 소생은 거듭남을 통하여 결과되어진다.
출14:11-‘이집트에 무덤이 없었기 때문에’=지옥에 떨어짐(damnation).
예8:2-‘매장되지 않는 것’=생명으로 부활이 없는 것.
계11:9-‘무덤 안에 놓이지 않을 것’, 또는 매장되지 않을 것‘=지상적이고 불결한 것으로 남는 것. 그리고 더나아가 거절되어 지옥에 떨어지는 것.
겔39:12-‘(곡)을 매장하고 토지를 깨끗이 하는 것’=그들 모두를 파괴하는 것, 그리고 그들로부터의 교회를 통째로 걸러내 깨끗이 하는 것.
예14:16-‘매장되지 않는 것’=지옥에 떨어지는 것.
이22:16-거짓을 사랑함이 ‘높은데 있는 무덤’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시88:11-당신의 자비를 무덤에서, 당신의 진리를 파괴함에서 말해질 것입니까?’=신성한 선과 신성한 진리는 악들과 거짓들이 있는 지옥에 전파되어질 수 없다는 것…‘무덤’=악들이 있고 출현하는 지옥, ‘파괴함’=거짓들이 있고 출몰하는 지옥. ‘무덤’=지옥인 것은 지옥에 있는 이들은 영적으로 죽어 있다는 사실로부터 분명하다.
물웅덩이 (pool)
못 (pool)
* lake도 참조.
이22:9-‘더 낮은 물웅덩이의 물들’=전통들, 이를 수단으로 그들은 말씀에서 위반 행위들을 만들었다.
요9:7-‘실로암의 못’=글자 측면에서의 말씀.
므깃도 (Megiado)
슥12:11, 왕하23:29,30, 대하35:20-24-고고함(오만함, loftiness)으로부터의 사랑이 옛 히브리 언어에서 ‘므깃도’에 의해 뜻해진다. 이는 아랍어의 뜻으로부터도 분명하다.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 역시 같은 의미이다.
왕하23:29,30, 슥12:11-‘아마겟돈’에 의해 므깃도가 뜻해진다고 여겨져왔다. 즉 거기서 유다의 왕 요시아가 바로와의 싸움에서 죽임을 당했다. ‘아마겟돈’에 의해 영예, 명령, 특출함을 사랑함이 의미되어진다. 이 사랑이 옛 히브리어에서 ‘므깃도’에 의해서도 뜻해진다. 이는 아랍어에 있는 이 단어의 뜻으로부터 분명해진다.
므리바 (Meribah)
겔47:19, 48:28-‘므리봇의 물에서’
출17:7-‘그리고 므리바’=불평의 품질. ‘므리바’, 원어에서는 ‘다툼, contention’, 또는 ‘꾸짖음, chiding’을 뜻한다. 그리고 꾸짖음=시험에서 불평의 품질…
미스갑 (Misgab)
예48:1-그들에게 불어 넣어진 거짓들이 ‘미스갑’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미스바 (Mizpah)
창31:49-‘(그는 그것을) 미스바라 불렀다. 그이유는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를 쳐다보셨기 때문’=주님의 신성의 자연 평면의 현존.
믹돌 (Migdol)
출14:2-‘그들은 믹돌과 바다 사이에 진영을 쳤다’=시험들을 수행하는 상태의 시작.
바다 (sea)
창1:27-이러한 지식들은 ‘한 장소애 모아진 물들’ 그리고 ‘바다라 불렀다’
시104:25-‘바다들’=영적인 것들
창12:8-‘바다 쪽(서쪽)의 베델=그분의 희미한 상태.
창14:3-‘이것은 소금의 바다이다’=거기로부터 있는 거짓들 속의 더러운 것들.
눅21:25-‘바다와 큰 파도가 포효할 것이다’=이교와 말다툼이 소란스럽게 있을 것이다.
계10:1-‘바다’=자연적 진리들; ‘땅’=자연적 선들.
겔47:8-‘바다 쪽을 향해 가는 것’=과학적 사실들을 향하여; ‘바다’=그것들의 집합.
이21:1-‘바다의 사막’=과학적 사실과 그로부터 추론함을 통하여 황폐된 진리. (=사용되지 않은 지식의 무가치함)
합3:15-‘당신께서는 당신의 말들이 바다를 짓밟도록 만드셨다’ ‘바다’=지식들; 그리고 이들은 하느님으로부터 말씀을 이해함 속에 있는바 위 구절 같이 말해진다.
시89:25-‘나는 그의 손을 바다에 놓을 것이다’=진리의 지식들에 있는 강함.
이60:5-‘바다가 많음 (풍부함)’=자연적 진리가 엄청나게 풍부함
여1:4-‘큰 바다,’ 그리고 ‘태양이 내려가는….’=(주님의 왕국의) 다른 쪽 경계, 이를 수단으로 최말단(의 천국)이 표현되었고, 이 천국은 관계적으로 볼 때 희미하다.
창38:14-‘너는 바다 쪽으로 그리고 동쪽으로 퍼져나갈 것이다’=선의 무한한 확장…‘바다’ 또는 서쪽=개시 되고 있기에 아직은 미미한 선,
암8:12-‘바다로부터 바다까지 배회하는 것’=지식들이 있다는 곳을 찾아 나섬; ‘바다들’=일반적인 측면에서의 지식들.
시114:3-‘바다가 그것을 보았고 도망했다’…‘바다’=진리의 지식들.
계4장-‘보좌 앞의 유리의 바다’=자연에 있는 모든 진리; 고로 지식들과 과학적 사실들.
시24:2-‘여호와께서는 바다들 위에 세상의 기초를 두셨다’=지식 속에 있는 것들.
창49:13-‘…바다들의 항구에서 거주할 것이다’= 과학적 사실들로부터 진리의 종결이 있는 삶… ‘바다들’=복합체 안에 있는 과학적 사실들.
계8:9-‘혼들을 가진 바다의 창조물들’=선들과 더불은 과학적 진리들.
이18:2-‘바다로 대사들을 보내는 것’=과학적 사실을 참작하는 것.
신33:19-‘바다의 풍부한 것을 흡수함’=그들은 과학적 진리를 풍부히 받아들인다는 것, 또는 그것이 은근히 심어지리라는 것.
이63:11-‘그분은 백성을 바다로부터 올라오게 만들었다’=이들은 지옥에 떨어짐으로부터 구조되었다.
슥10:11-‘해협의 바다를 통과하는 것’=시험들.
출15:8-‘바다의 심장’=자아를 사랑함, 그로부터의 거짓들…(=탐욕들로부터의 거짓들이 있는 지옥들)
예6:23-‘그들의 음성은 바다 같이 요동친다’=그로부터 추론함.
출20:11-‘엿새 동안 그분께서는 하늘을, 땅을, 그리고 바다를 만드셨다=내적, 외적 인간에 있는 것들의 거듭남…’바다’=인간의 육체에 붙어있는 감각적인 것.
출23:31-‘불레셋의 바다’=신앙 속의 내면의 진리.
출26:22-‘바다 쪽으로 향하고 있는 주택의 두 넓적 다리’=선이 불명료한 상태로 있는 천국과의 결합…‘서쪽’ 또는 ‘바다’=불명료한 선의 상태.
겔26:16-‘바다의 왕자들’=제일 가는 과학적 사실들, 이것은 교의(독단적 주장)라 불린다…‘바다’=일반적 측면에서의 과학적 사실인 것.
출27:12-‘바다 쪽의 모퉁이에서 바깥뜰의 넓이’=과학적 진리들에 관련하여 있는 천국의 상태…‘바다’=과학적 사실이 집합된 곳, 이곳으로부터 진리들에 관한 추론이 있다. 이곳은 진리들을 담는 그릇 역할을 하는 자연성과 감각적인 것도 있다.
슥14:8-‘동쪽 바다’, 그리고 ‘뒤쪽의 바다’=자연적인 것과 감각적인 것, 여기에 과학적 사실들이 있고, 여기에 진리들도 집합되어 있다.
계4:6-‘보좌가 보이는 곳에 수정 같은 유리의 바다가…’=글자의 의미로부터 있는 일반적 진리들 안에 있었던 기독교인들로부터의 새 천국.
계7:1-‘땅과 바다’=보다 수준 낮은 모든 것들 (=거기서 땅의 최말단 것들)
계8:8-‘불로 태워지고 있는 산이 바다에 내던져졌다’= 교회의 외적인 것들 안에, 그리고 믿음 만에 있는 이들과 더불은 지옥적 사랑이 나타남.
계13:1-‘바다 안으로부터 짐승’=개혁 교회 속의 평신도…(=자연적 인간 속의 것들)
계15:2-‘나는 불이 혼합된 유리의 바다 같은 것을 보았다’=영적 세계의 마지막 경계선, 이곳은 종교를 가졌고 그 종교로부터 파생된 예배를 드렸긴 했는데 생활 속의 선은 없었던 이들이 집합되는 곳이다….이것은 21장에서 의미하는 바다이다. (=사랑의 선으로부터 있는 영적 진리들로부터 명료해지는 말씀의 일반적 진리들)
계18:17-‘바다에서 일하는 많은 자들’=광신적 신앙…을 사랑하는…모든 이…그이유는 ‘바다’에 의해 광신적 신앙이 의미되었기 때문; 그이유가 ‘바다’에 의해 교회의 외적인 것들이 의미되었기 때문; 그리고 이런 광신적 신앙은 오직 외적일 뿐이다.
계20:13-‘바다가 그 안에 있는 죽은 자들을 포기했다’=교회 속의 외적이고 자연적인 사람들 모두가 심판을 받도록 부름받았다. ‘바다’=교회의 외적인 것, 즉 자연적인 것.
계21:1-‘바다는 더 이상 있지 않았다’=주님의 생명의 책에 씌어진 이들이 끄집어내어 구원된 이후, 교회가 복구된 그 처음 때부터 있었던 기독교인들로부터 모은 외적인 것이 같은 방법으로 사라졌다는 것. ‘바다’=천국과 교회 속의 외적인 것, 단순한 자들은 이 안에 있다.
시89:9-‘바다가 파도를 들어 올릴 때, 당신께서는 바다의 들어올림을 규율하신다’=자연적 인간, 그이유는 일반적 진리들이 거기에 있기 때문; 바다의 파도=거짓들.
시33:7-‘그분은 퇴적 더미 쌓듯 바다의 물들을 함께 모으신다’=진리에 관한 지식들, 그리고 일반적으로 있는 진리들, 이것들은 다함께 자연적 인간 안에 있다.
시77;9-‘당신의 길이 바다 안에 있고 당신의 작은 길이 많은 물들에 있다’=주님이 안에 계시는 곳, 이는 말씀으로부터 있는 일반적인 진리들에 관한 지식들, 그리고 거기 있는 진리들; ‘바다’=이러한 지식들; 그리고 ‘물들’=진리들; 지식들은 자연적 인간 속에 있고, 진리들은 영적 인간 속에 있다.
예51:36-‘바벨의 바다’=그들의 전통들, 이것은 말씀으로부터 있는 선에 섞음질함이다.
단7장-짐승이 ‘바다 안으로부터’ 올라오는 것이 보여졌다, 그 이유는 ‘바다’에 의해 영적 인간으로부터 분리된 자연적 인간이 의미되었기 때문이다…
슥4:8-‘서쪽의 바다’= 악 안에 있는 이들; 그이유가 영계에서 서쪽 방위에 있는 바다는 분리되고 있기 때문.
단7:2-‘큰 바다’=이들이 오는 지옥.
시104:25-‘크고 넓은 바다’=외적 자연적 인간, 이들은 선들과 진리들을 과학적 논리에 입각해 받는다; 거기서 ‘크다’는 선에 관해, ‘넓다’는 진리에 관해 말해진다..‘바다에서 노는 것’=앎이 주는 기쁨 그리고 그로부터 슬기로워짐에 따른 기쁨.
마14장-‘주님께서 바다 위에서 걸으심’=그분의 현존과 (천국과 교회) 안으로 그분이 유입되심; 그리고 천국의 최말단에 있는 이들을 위해 신성으로부터 파생되는 생명…그리고 그들의 믿음은 희미하고 동요되는 믿음임이 바다 위를 걷다가 빠지고 만 베드로의 모습에 의해 표현되었다. 그러나 주님이 붙잡아 주셨고 구조되었다. ‘걷는 것’=사는 것…바다가 바람으로 요동쳤고 주님께서 잠잠케 하셨는바, 이는 앞서 있는 삶의 자연적 상태, 이 상태는 비평화롭고 마치 시험받고 있는 것 같다.
호11:10-‘경외함으로 바다 쪽으로부터의 아들들이 가까이 당겨질 것이다’=자연적 선에 있는 이들이 교회에 동의할 것이다.
계10:6-‘천국’, ‘땅’, ‘바다’=여기서는 특별한 측면에서인데, 보다 높은 천국들과 보다 낮은 천국들.
시65:7-‘바다들의 떠들썩함, 그리고 파도들의 요란함’ (이것을 그분은 중단되게 만드신다)=천국들 아래 있는 이들, 그리고 자연적이고 감각적인 이들의 추론과 논쟁들.
계12:12-‘땅의 주민들과 바다의 주민들에게 화있을 것이다’=단지 자연적이고 감각적이기만 한 이들에게 닥치는 애통함.
눅17:6-‘너(뽕나무, sycamore)는 바다에 심어져라’= 악으로부터의 거짓 속의 이런 신앙은 지옥에 내던져진다.
계16:3-‘둘째 천사가 그의 대접을 바다에 쏟았다’=자연적 인간 안에 있는 진리에 관한 지식들에 관련된 교회의 상태가 명명백백해짐.
계18:21-‘바다에 던지는 것’=지옥으로
바닷가 (shore)
출14:30-‘바다의 바닷가에서’=지옥의 맨끝들 가까이.
겔25:16-‘바다 해안에 남은 자’=진리로부터의 모든 것.
바드로스 (Pathros)
겔29:14-진리의 지식들을 수단으로 한 그들의 예증이 ‘나는 그들을 바드로스의 토지에 다시 데려다 놓을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이 토지는 그즐이 자신들을 위해 포획한 지식들로부터 ‘장사하는 토지’라 불리운다.
바란 (Paran)
* ‘세일 산’, 그리고 ‘바란’은 그분의 인간 실체로부터 있는 것들을 표현했다. 즉 사랑의 천적인 것들.
창14:6-‘광야에 있는 엘-바란 까지’=확장됨.
창21:21-‘그는 바란의 광야에 거주했다’=선 측면에서의 영적 인간의 삶.
합3:3-그분이 천적 사랑 측면에서는 ‘데만으로부터 오신다’고 말해진다. 그리고 영적 사랑 측면에서는 ‘바란 산으로부터’ 오신다고 말해진다.
신33:2-주님의 신성한 인간이 ‘그분은 세일 산으로부터 떠오르시고, 바란 산으로부터 빛을 발한다’에 의해 묘사되어 있다. ‘세일로부터’는 천적 사랑 측면에서, ‘바란 산으로부터’는 영적 사랑 측면에서.
창14:6-주님의 신성한 인간이 ‘세일 산’과 ‘엘-바란’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민12,13장-가나안의 토지를 탐사하는 작업이 ‘바란의 광야로부터’ 착수함에 의해 주님의 신성한 인간을 통하여 영적 인간은 천국의 왕국을 가진다가 의미되어 있다.
바산 (Bashan)
신32:14-‘바산의 아들들, 숫양들’=영적 평면 속에 있는 천적인 것들.
신33:22-‘바산으로부터’라고 말해지는 이유는 자연의 선으로부터이기 때문.
예50:19-‘갈멜과 바산에서 풀을 뜯기는 것’=신앙의 선들과 선행의 선들로 훈육하는 것.
신3:11-‘바산’에 의해 교회의 외적 측면, 고로 자연 평면이 의미되어진다. 그이유가 바산은 가나안 경계 밖에 위치하기 때문.
신32:14-‘어린 양들의 지방(기름기), 바산의 숫양 들의 지방, 그리고 숫염소의 지방’=순진의 선의 세 등급들.
시68:15, 여13:29-32-‘바산의 산’=자발적인 선, 이는 교회의 바깥쪽 것들에 있는 이들의 선과 같다. 그이유가 바산은 므낫세 반쪽 지파에게 주어진 요단 건너 지역이기 때문. 그리고 므낫세에 의해 바깥쪽 또는 자연적 인간의 자발적 선이 의미되기 때문. 이 자발적 선은 바깥쪽 인간에 있는 사랑의 선과 동일하다. 그 이유는 사랑의 모든 선은 의지 속에 있기 때문…‘바산의 산’이 이 선을 의미하기에 이 산의 ‘언덕들’에 의해 행동에 있는 선이 의미된다.
이2:13-‘레바논의 삼목들’, 그리고 ‘바산의 상수리나무들’에 의해 인간 고유의 총명으로부터의 자부심이 의미된다. 내면의 자부심은 ‘레바논의 삼목들’, 외면의 자부심은 ‘바산의 상수리나무들’에 의해 각기 의미된다.
암4:1-말씀과 예언의 글들을 가졌기에 (영적인) 지식들을 풍부히 지닌 이들이 ‘사마리아의 산’에 있는 ‘바산의 암소’로 뜻해지고 있다.
이2장-‘바산의 상수리나무’에 의해 자기들 지식(을 자랑해대는 이들)이 의미된다.
겔39:18-‘바산의 살진 것들’=영적 근원으로부터 있는 자연적 인간의 선.
미7:14-‘바산과 길르앗에서 풀을 뜯게하자’=말씀의 자연적 의미로부터 교회의 선들을 가르침, 그리고 교회의 진리들을 가르침.
이33:9-‘레바논’은 선과 진리를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교회를, ‘샤론’, ‘바산’, 갈멜‘은 말씀의 자연적 의미로부터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을 지닌 교회가 의미된다.
밖에 (without)
창24:31-‘왜 당신은 밖에 서있느냐?’=거기로부터 여하튼.
계22:15-‘밖에 개들이 있다…’…그것들이 천국 또는 교회 밖에(outside) 있을 때 ‘밖에’ 라고 말해진다.
신32:25-‘밖으로는 칼이…빼앗을 것이다’=내면의 의지로부터의 거짓과 악은 자연적 인간과 합리적 인간 모두를 황폐해지게 할 것이다.
밧단 아람 (Padden Aram)
창28:2-‘밧단 아람으로 가라’=그러한 진리에 대한 지식들. ‘아람’, 또는 ‘시리아’=지식들. ‘밧단 아람=진리에 대한 지식인 이유는 그것이 강들의 시리아에, 나홀, 브두엘, 라반이 있었던 곳에 있었다는 사실로부터 파생되기 때문.
창28:6-‘그를 밧단 아람으로 보냈다’=이 선의 지식들을 수단으로 명명백백해짐…‘밧단 아람’=진리에 대한 지식들. 선에 대한 지식들이라 말했는데, 그이유는 모든 진리들은 선에 대한 지식들이기 때문, 그러나 그것들이 교리를 중시하는 한 그것들은 진리에 대한 지식들이라 불리운다.
창28:7-‘그리고 (야곱은) 밧단 아람으로 갔다’=이 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들이 불어넣어지는 것…이것이 밧단 아람에 의해 의미된다.
창31:18-‘그가 밧단 아람에서 획득한 것’=자연 평면에서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 ‘밧단 아람’=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
창33:18-‘그는 밧단 아람으로부터 이쪽으로 옴에서’=이전 상태 후에…‘밧단 아람’=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들, 그러나 외면의 지식들, 이것은 순수한 선들과 진리들을소개하는 것을 돕는다. 그이유가 라반이 거기 있었기 때문, 라반에 의해 이런 선에 애착함 이 표현되어졌다.
창35:9-‘야곱이 밧단 아람으로부터 오는 중에 하느님이 그에게 다시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를 축복하셨다’=내면의 자연적 수준의 지각..‘그가 밧단 아람으로부터 오는 중에 다시’=그에게 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이 불어넣어진 후에.
창35:26-이들은 밧단 아람에서 그에게 태어난 야곱의 아들들이다‘=이 때에서 그들의 근원과 상태..
창48:7-‘내가 밧단 아람으로부터 오는데’=지식들의 상태로부터. ‘밧단 아람’=진리와 선에 대한 지식들.
밧모 (Patmos)
계1:9-‘나는 밧모라 불리우는 섬에 있었다’=그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상태와 장소. 요한에게 만들어진 계시가 밧모에서 있은 이유, 그것은 그리스의 섬, 가나안의 토지로부터 과히 멀지 않은 곳, 그리고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 위치했기 때문. 그리고 섬들은 하느님을 예배함과는 한층 더 먼 상태에 있는 국가들, 그럼에도 하느님을 예배해야한다는 것에 동조할 국가들을 의미한다. 그이유는 그것들은 구체적으로 말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그리스에 의해, 그리고 교회 자체는 가나안의 토지에 의해, 그리고 아시아는 교회에 속한 이들, 이들은 말씀으로부터의 진리의 빛에 있는 이들이 의미된다. 그리고 유럽은 말씀이 가게 될 이들. 이로부터 ‘밧모의 섬’은 그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상태와 장소를 의미한다..
* ‘나는 밧모라 부르는 섬에 있었다’=이방인들에게 계시함. (그이유가) ‘밧모’=묵시록에 있는 계시(이기 때문)…‘밧모’=계시인 이유는 거기서 요한에게 만들어진 계시의 기억할만한 [사건]으로부터이기 때문.
* 말씀을 쓰는데 사용된 모든 인물들은 의미를 가졌던 장소로 인도되어졌다. 이는 모든 것들이 영적인 것들로부터의 의미를 지니도록 하기 위함이였다. 그중의 한명이 요한이고 그는 교회의 마지막에 있게 될 것들을 계시받도록 하기 위하여 밧모의 섬으로 향하도록 설비되어졌다. 그 이유는 ‘섬, island’=교리의 진리들을 받을 국가들. 더욱이 이 섬은 여러 섬이 있는 것 중 하나이다. ‘그리스’ 역시 말씀에서 이런 국가들을 의미한다.
버가모 (Pergamos)
계2:12-‘버가모에 있는 교회’=선한 일들에 교회의 모든 것을 두는 이들, 그리고 교리로부터의 진리들에 있는 어떤 것도 중시 않는 이들. (=시험들에 있는 교회의 사람들).
베데스다 (Bethesda)
요5:2-이 절에 베데스다의 못이 언급되어 있다.
베들레헴 (Bethlehem)
* ‘베들레헴’=새로운 상태에서 천적인 것 속의 영적인 것.
창35:19-‘여기는 베들레헴이다’=천적인 것으로부터 있는 새로운 영적인 것의 부활. ‘베들레헴’=새로운 상태에서 천적인 것 속의 영적인 것, 그이유가 ‘유브라데’=이전 상태에서 천적인 것 속의 영적인 것이기 때문.
* 주님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이유는 그분 만이 영적 천적 인간으로 탄생되셨기 때문.
* ‘베들레헴’=자연적 인간에서 선과 결합된 진리인 바, 다윗이 거기서 출생되었고, 또한 기름부은 왕으로 거기서 되었다…
* 주님이 왕으로 태어나셨고, 그분 만이 출생으로부터 진리가 선과 더불어 결합되어 있었기에 그분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다…주님과 더불어서만이 자연 평면이 선을 간절히 바라고, 진리를 갈망함으로 자연을 채웠다.
* ‘유브라데’=자연적 의미 측면에서의 말씀, 그리고 ‘베들레헴’=영적 의미 측면에서의 말씀, 그리고 주님이 말씀이기 때문에 그분은 거기서 태어나도록 뜻하셨다.
베렛 (Bered)
창16:14-‘가데스와 베렛 사이에’=품질, 즉 그는 이 진리의 품질을 보았다는 것, 고로 합리성의 품질…‘가데스’=진리…‘베렛’, 아래쪽인 것, 고로 과학적 진리, 이로부터 또한 합리성이다.
벧엘 (Bethel)
창12:8-‘바다 쪽으로는 벧엘을, 동쪽으로는 아이를 가진 산’=주님의 네 번째 상태.
창12:8-‘벧엘’=천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그리고 주님께서 ‘벧엘’로 의미되는 것, 즉 천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들 쪽으로 이제 막 발전해가셨을 때, 이것이 여기서 ‘그는 벧엘의 동쪽에 있는 산으로 옮겼다’라고 말해지고 있다.
창12:8-‘서쪽으로는 벧엘, 그리고 동쪽으로는 아이…’=아직까지는 그분의 상태는 천적이고 영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에 대하여는 희미한 수준이었다는 것…이것이 ‘바다 쪽으로는 벧엘,’ 즉 ‘서쪽으로는 벧엘’ 그리고 ‘동쪽으로는 아이’로 묘사되어 있다. 그이유가 ‘벧엘’이 천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들이, ‘아이’는 세상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이 의미되기 때문.
창28:17,19-야곱이 사다리를 보았을 때, 그는 말했다, ‘이것이 과연 하느님의 집이요, 천국의 문이로구나.’ 그리고 그는 이 장소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다. 거기서 ‘벧엘’에 의해 천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이 의미된다; 그이유가 인간이 천적인 것에 관한 지식 안에 있을 때, 그는 ‘벧엘’, 즉 하느님의 집‘, 또는 ’천국의 문‘이기 때문. 인간이 거듭나는 동안, 그는 영적이고 천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들을 수단으로 천국을 소개받으나, 그가 거듭나지면 이미 그는 지식들 속의 천적이고 영적인 것들 안에 있는다.
창35:1,6,7-후에 하느님이 야곱에게 말하셨다, ‘일어나라, 벧엘로 올라가라, 그리고 거기서 거주하거라, 그리고 거기에 네게 나타났던 하느님에게 제단을 만들어라.’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벧엘’에 의해 지식들이 의미된다.
사20:18,26,27, 삼상7:16, 10:23-여호와의 궤가 벧엘에 있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그리로 와서 여호와께 묻곤 했다.
왕하17:27,28-앗시리아의 왕이 사마리아에서 끌려온 사제들 중의 한 명을 보내, 그는 ‘벧엘에서 그들과 더불어 앉았고, 그들에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왕상12:32-그러나 여로보암이 벧엘을 모독한 후, 이것은 반대적 (의미를) 표현했다
창13:3-‘남쪽으로부터 벧엘 쪽으로 조차’=총명의 빛으로부터 지혜의 빛 안으로…‘벧엘’=지식들로부터 근원하는 천적인 빛.
창13:3-‘벧엘과 아이 사이’=지식들 속의 천적인 것들과 세상적인 것들. ‘벧엘’=지식들을 통하여 있는 지혜의 빛.
암3:14, 7:13-‘나는 벧엘의 제단들을 방문할 것이다’…‘벧엘’=신성한 선, 그러므로 ‘왕의 성소’, ‘왕국의 집’이라 불린다.
창28:19-‘그는 이 장소를 벧엘이라 불렀다’=상태의 품질…언어의 뿌리로부터 보면, ‘벧엘’은 ‘하느님의 집’을 뜻한다, 이 하느님의 집=질서의 최말단에 있는 선.
창31:13-‘나는 벧엘의 하느님이다’=자연에 있는 신성. ‘벧엘’=질서의 최말단, 고로 자연에 있는 선, 그이유가 자연은 질서의 최말단인 바, 거기에 천적이고 영적인 것들은 종결되기 때문….’벧엘’=자연에 있는 선이므로 벧엘=거기 있는 천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 그이유가 이 지식들은 선 속에 있기 때문.
창35:1-‘일어나라, 벧엘로 올라가라’=신성한 자연성을 지각함…’벧엘’=자연에 있는 신성, 또는 질서의 최말단에 있는 신성; 그이유가 언어의 근원에서, ‘벧엘’은 ‘하느님의 집’을 뜻하기 때문, 그리고 하느님의 집은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이 있는 곳이기에 대략적 의미로 이런 지식들이 의미된다. 그러나 내면적인 것들은 질서의 최말단이 종착지이고 그 안에서 함께 묶인 상태, 즉 한 집 안에서 있고 함께 거주하는 셈이다, 그리고 인간과 더불은 자연은 내면의 것들이 있는 최말단이다, 고로 ‘벧엘’ 또는 ‘하느님의 집’이 자연, 정확히 말하면, 자연에 있는 선을 의미한다.
창35:3-‘일어나 벧엘로 가자’=신성한 자연.
창35:7-‘그는 그 장소를 엘벧엘이라 불렀다’=거룩한 자연.
창35:15-‘야곱은 하느님이 자기와 이야기한 장소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다’=신성한 자연과 그것의 상태.
창35:16-‘그들은 벧엘로부터 여행했다’=신성한 자연으로부터 신성의 발전이 계속됨.
암3:14-‘벧엘의 제단들’=악으로부터의 예배.
* ‘벧엘’은 ‘하느님의 집’을 뜻한다, 그리고 ‘하느님의 집’=선 측면에서의 교회, 그리고 가장 높은 의미에서 신성한 인간 측면의 주님.
왕상12:29-여로보암이 두 제단, 즉 ‘하나는 벧엘에, 또 하나는 단에 세웠다.’ ‘벧엘과 ‘단’에 의해 교회에서 최말단인 것이 의미되고, 교인 속의 최말단인 것들은 자연의 감각적인 것들, 또는 자연의 세상적이고 육체적인 것들이라 불린다. 이런 것들이 ‘벧엘’과 ‘단’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즉 ‘벧엘’에 의해서는 선의 최말단이. ‘단’에 의해서는 진리의 최말단이 의미된다. 이로부터 이것들의 ‘제단’은 최말단에 있는 예배를 의미한다…
보금자리 (nest)
시104:17-‘새들이 어디에 자기들의 보금자리를 만드느가?’…‘새들’=그의 합리성 또는 자연적 진리들, 이는 마치 보금자리 같다.
신32:11-진리로 그들을 가르침이 ‘독수리가 자기 보금자리를 휘젖는’에 의해 묘사되어 있다.
옵4절-이것이 ‘별들 사이에 보금자리를 배치하는 것’에 의해 뜻해져 있다.
겔31:6-그러므로 ‘하늘의 모든 새들이 그의 가지들에 자기들의 보금자리를 만듬’에 의해 의미된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
예49:16-자아사랑과 자신의 총명으로 교만함이 뜻해지는 것이 이 말씀, ‘만일 네가 독수리 같이 보금자리를 드높인다면 나는 너를 아래로 내던질 것이다’라고 말해진 것으로부터 분명해진다.
예48:28-‘골짜기 어귀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비둘기 같이 하거라’=내부로부터가 아닌 외부로부터 있는 진리에 대한 정신적 관찰…‘보금자리를 만드는 것’=‘거주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즉 생활을 이끄는 것. 그러나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은 새를, ‘거주하는 것’은 사람을 서술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보스라 (Bozrah)
이63:1-글자 의미 측면의 말씀은 유대 백성에 의해 찢기워졌고, 그렇기에 신선한 진리는 섞음질되었기 때문에, ‘보즈라로부터 튀기어 더럽혀진 옷을 입은…’이라고 말해지고 있다….‘보즈라로부터의 옷’=말씀의 최말단, 이는 말씀의 글자 의미이다.
부스 (Buz)
창22:21-‘부스’ 등등=다양한 종교들과 거기서 파생된 예배들.
브라데 (Phrath)
* 유브라데를 보라
브엘 (Beer)
민21:16-여기에서 이름 ‘브엘’, 그리고 이름 ‘브엘세바’, 그리고 그것의 의미, 이는 교리 자체이다.
민21:16-18-‘브엘’, 원어에서, ‘우물’을 뜻한다, 그리고 ‘우물’=말씀, 그리고 말씀으로부터의 교리. ‘브엘세바’도 마찬가지이다
브엘-라해-로이 (Beer-lahai-roi)
창24:62-‘이삭이 브엘-라해-로이로부터 왔다’=합리성으로부터의 신성한 선(Divine Good rational), 이는 신성한 진리 자체로부터 태어난다…‘브엘-라해-로이’, 원어에서, ‘살아계신 그분이 샘이시다. 그리고 나를 보신다’를 뜻한다.
창25:11-‘이삭은 브엘-라해-로이에서 거주하였다’=신성한 빛에 있는 주님의 신성한 합리성.
브엘세바 (Beershaba)
창21:14-‘(하갈은) 가서 브엘세바의 광야에서 배회했다’=신앙 속의 교리적인 문제들이 방랑하는 상태…‘브엘세바’=신앙의 교리.
창21:31-‘그는 그곳을 브엘세바라 불렀다’=교리의 상태와 품질. ‘그들 둘 다 거기서 맹세했기 때문에’=결합으로부터. ‘그리고 그들은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웠다’=인간 합리성의 것들이 신앙의 교리에 인접하였다는 것.
창21:33-‘(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작은 숲(grove)을 심었다’=거기서부터 파생된 교리가 그것의 영적 지식과 더불어, 그리고 그것의 품질.
창21:22-33, 26:32,33-‘브엘세바’=교리의 상태와 품질, 즉 그것은 신성인 것, 여기에 인간 합리성의 것들이 인접되어져 있다는 것이 22절로부터 여기까지에 있는 시리즈로부터 분명해진다. 또한 원어에 있는 이름 자체의 의미로부터, 이는 ‘맹세의 우물’이란 뜻이다. 그리고 ‘일곱’, 그리고 ‘우물’=신앙 속의 교리, ‘맹세’=결합…그리고 ‘일곱’=거룩인 것, 고로 이는 신성이다…이것이 이름 브엘세바의 근원이었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말들로부터 분명하다. 즉 ‘너는 내 손으로부터 일곱 암양 새끼를 가져가서 그것으로 내가 이 우물을 팟다는 증거로 삼으라. 그러므로 그는 그 장소를 브엘세바라고 불렀다. 그이유는 그들이 둘 다 거기서 맹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웠다.’ 위와 마찬가지가 이삭의 말들로부터도 있다. ‘그날에 이삭의 종들이 와서 자기들이 팟던 우물에 관하여 말하기를, 우리가 물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세바(맹세, 그리고 일곱)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그 성의 이름은 오늘까지 브엘세바이다.’ 이 대목에서 또한 아비멜렉과 다투었던 우물이 취급되고 있다. 그리고 또한 그와 언약도 있다, 그리고 ‘브엘세바’에 의해 인간의 것들이 다시 신앙의 교리에 인접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다시 인접하였기 때문에, 하여 인간의 납득에 잘 순응된 교리로 만들어졌다. 고로 그것은 ‘성’이라 불린다. 이것=복합체에서 교리적인 품성 속에 있는 것.
창22:19-‘그들은 함께 브엘세바로 갔다’=신앙으로부터의 교리와 선행으로부터의 교리로 발전함, 이는 신성한 교리인 것이 인간의 합리적인 것들에 인접해 있는 것.
창22:19-‘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거주했다’=주님이 그 교리 자체이시다는 것…‘브엘세바에 거주하는 것’=교리 안에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이 주님을 서술할 경우,=교리가 되는 것.
창26:23-‘(이삭은) 거기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다’=그때부터 신앙으로부터의 교리는 신성이었다는 것. ‘브엘세바’=신성으로부터 있는 신앙에 관한 교리. 여기서 ‘브엘세바’에 의해 의미되는 신앙의 교리는 말씀의 글자 의미이다, 그이유가 말씀은 교리 자체이기 때문이다.
창26:33-‘그러므로 성의 이름은 브엘세바이다’=거기서부터 교리의 품질이 파생되었다…‘브엘세바’, 이는 원어에서, ‘맹세의 우물’이란 뜻이다. 고로 확증된 진리로부터의 교리이다. ‘브엘세바’=교리.
창26:33, 21:30,31-창21장 30,31절의 ‘브엘세바’에 의해 신성으로부터 있는 교리의 상태와 품질, 그것에 의해서 결합이 있다. 그리고 이 장의 주제는 교회의 내적인 것들인 바, 그 장소는 ‘브엘세바’라 불리웠다. 그러나 26장 33절의 경우, 주제가 교회의 외적인 것들이기 때문에, 성이 ‘브엘세바’라 불리워지고 있다.
창28:10-‘야곱은 브엘세바로부터 나아갔다’=신성한 교리적인 것들로부터 더 멀어진 생활…‘브엘세바’=신성한 교리.
암8:14-‘하느님은 살아 있다, 오 단. 그리고 브엘세바의 길이 살아있다’=그들은 신앙으로부터의 모든 것들, 그리고 그것의 교리로부터의 모든 것들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
창46:1-‘(이스라엘은) 브엘세바에 왔다’=선행과 신앙. ‘브엘세바’=선행과 신앙의 교리. 여기서, 선행과 신앙, 그리고 그것들로부터의 교리는 아니다, 그 이유는 그것이 ‘이스라엘’인 영적 선을 서술하기 때문.
창46:5-‘(야곱은) 브엘세바로부터 (일어났다)’=선행의 교리로부터와 신앙의 교리로부터.
사20:1,2-‘단으로부터 브엘세바에 까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에 의해 최말단 원리로부터 첫째 원리까지 아울러 있는 것들이 의미되어진다.
비돔 (Pithom)
출1:11-‘비돔과 라암셋’=왜곡된 진리들로부터 있는 교리들의 품질.
비손 (Pison)
* 강도 참조
창2:11-첫째 강, 또는 ‘비손’=사랑으로부터 있는 믿음 속의 총명.
비-하히롯 (Pi-hahiroth)
출14:2-‘그들은 비-하히롯 앞에 진을 쳤다’=겪어야하는 시험들의 상태가 시작함.
빨랫집 (fuller)
말3:2-‘빨랫집의 비누’.
사데 (Sardis)
계3:1-‘사데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쓰거라’=죽은 예배 안에 있는 이들, 또는 선행의 선들과 신앙의 진리들이 결핍된 예배 안에 있는 이들과 그것들에 관하여. (=도덕적 생활은 하는데 영적 생활을 하지 않는 이들, 그이유는 영적인 것에 관심이 별로 없는 이들, 그리고 지혜와 총명이 없는 이들.)
계3:4-‘너는 사데에서 조차 몇 이름들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 옷들을 더럽히지 않았다’=자기들 생활에 시용하려고 말씀으로부터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들을 응용함을 수단으로 영적 근원으로부터 도덕적 생활을 이끄는 이들.
사렙다 (Sarepta)
눅4:26-‘시돈의 사렙다’=진리를 갈망하는 교회 밖 사람들.
눅4:26-‘시돈의 사렙다, 과부 여인 외에는’=선 안에 있고 진리를 갈망하는 이들 외에는. 시돈의 사렙다가 말해지는데, 그이유는 ‘시돈’=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이기 때문.
사론 (Sharon)
이35:2-‘갈멜과 사론’=천적 교회.
* ‘사론’=천적 교회의 내적 측면.
이33:9-‘사론, 바산, 그리고 갈멜’=말씀의 자연적 의미로부터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 측면에서의 교회.
사마리아 (Samaria)
사마리아 사람 (Samaritan)
겔16장-‘사마리아’, 고모라의 장소에서 언급되는바,=거짓들 측면에서의 [교회].
겔23장-‘사마리아’=진리에 애착함 안에 있는 교회 (=영적 교회).
마10:5-‘사마리아 사람들의 성읍들’=거짓들에 있는 이들.
왕하6:9,20-그들은 엘리사에 의해 사마리아로 데려와졌고, 거기서 그들의 눈들이 열렸다=말씀을 통하여 가르침.
눅10장-‘사마리아 사람’=진리에 애착함 안에 있는 자…그이유는 ‘사마리아’, 말씀에서,=이 애착.
미1:5-‘사마리아’=변질된 신앙으로부터의 교회.
암3:12-‘사마리아에 거주하는 그들’=외적 예배 안에 있는 그들.
호7:1-‘사마리아의 악들’=의지 속의 악들.
마10:5-‘사마리아의 성으로 너희는 들어가지 마라’=주님을 거절하는 이들로부터의 거짓 교리…그이유가 사마라아 사람이 그분을 시인하지 않았던 때문에.(눅12:52-56)
호10:7-‘사마리아’=영적 교회, 또는 선행과 신앙이 하나를 만드는 교회 그러나 그것이 상도를 벗어난 상태에서의 ‘사마리아’=선행이 신앙으로부터 분리되어간 교회, 더욱이 그것이 본질이라고 발표한다. 그러므로 또한 ‘사마리아’=선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진리가 없는 것, 선 대신 악한 생활이 있다, 그리거 진리 대신 교리의 거짓이 있다. 이것이 ‘사마리아는 잘라진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미1장-‘사마리아’=교리의 진리들 측면에서의 영적 교회. 여기서의 경우, 교리의 거짓들.
사막 (desert)
* 광야(wilderness)를 보라.
사웨 (Shaveh)
창14:17-‘사웨의 골짜기’=외적 인간의 선들.
사초 (sedge)
창41:2-‘그들은 사초에서 먹고 있었다’=가르침…사초, 또는 강가에 있는 큰 풀밭=자연적 인간 속에 있는 과학물들.
이19:6-더이상 자연적 진리들과 감각적 진리들이 있지 않을 것임이 ‘갈대와 사초가 시들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사할 (Zachar)
겔27:18-‘사할의 양털’=자연적 선.
산 (mountain)
시72:3-‘산들’과 ‘언덕들’=태고 교회.
창7:19-‘높은 모든 산들이 덮여졌다…’=선행의 모든 선들이 소멸되었다…태고인들과 더불어 산은 주님을 의미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산 위에서 그분을 예배했기 때문이다; 그이유는 산은 땅이 가장 높이 치솟아 있는 것이기 때문. 이로부터 산들은 천적인 것들을 의미했다. 이것 역시 가장 높은 것들, 즉 사랑과 선행이라 불리웠다. 고로 사랑과 선행으로부터의 선을 의미했다…반대적 의미에서, 마음 안에서 의기양양해져 있는 것들, 즉 자아 사랑도 산이라 불리운다. 말씀에서 태고 교회는 산이 땅 위 높게 승강되어 있다는 사실로부터, 마치 천국에 더 가까운듯, 어떤 것의 시작에 가까운듯 하여 산에 의해 의미되어지고 있다.
시73:3-‘산들’=주님을 사랑함
겔20:40-‘거룩함의 산’=주님을 사랑함. ‘이스라엘의 높은 산’=이웃을 사랑함.
이2:2-‘여호와의 집의 산은 산들의 머리에 건설되었다’=주님, 그리고 천적인 모든 것.
이25:6-‘이 산’=주님, 그리고 천적인 모든 것.
이30:25-‘모든 드높은 산 위에’. 산들‘=사랑으로부터의 선들.
이30:29-‘여호와의 산’=사랑으로부터의 선들 측면에서의 주님.
이40:9-‘높은 산으로 오르고 복음을 전하는 것’=사랑과 선행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는 것, 이는 가장 깊은 것들, 고로 가장 높은 것이라 불리운다.
이42:11-‘산들의 머리로부터 외치는 것’=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는 것.
이52:7-‘산 위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사랑의 교리와 선행의 교리로부터 주님을 전도하는 것, 그리고 이 교리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는 것.
이55:12-‘산들과 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할 것이다’=사랑과 선행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는 것.
이49:11-‘산’=사랑과 선행.
이65:9-‘산’=주님의 왕국, 그리고 천적인 선들.
마24:16-‘유대에 있는 이들은 산으로 도망하라’에서 ‘산’에 의해 사랑과 선행이 주님에 의해 뜻해지고 있다.
창8:4-‘아라랏의 산들’=발광(체, lumen). (그이유가) ‘산’=사랑과 선행. (이것들로부터) 새로운 빛이 조명된다.
창8:5-‘산들의 머리가 나타났다’=신앙으로부터의 진리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 ‘산들’=사랑과 선행.
겔38:8-선행(charity)이 ‘이스라엘의 산들’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창10:30-‘동쪽의 산’=선행. 사실상 주님으로부터의 선행. 말씀에서 ‘산’=주님을 사랑함과 이웃을 향한 선행.
예51:25-‘태워진 산’=자아 사랑.
창12:8-‘벧엘의 동쪽의 산으로 옮겨가는 것’=사랑의 천적인 것들이 발전해 감. ‘산’=천적인 것.
이2:14-‘높은 산들’=자아 사랑, ‘드높인 언덕들’=세상 사랑.
이40:4-‘모든 산과 언덕은 낮아지게 만들 것이다’=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
이42:15-‘나는 산들과 언덕들을 황무해지게 할 것이다.’ ‘산들’=자아 사랑, ‘언덕들’=세상 사랑.
신32:15-‘산들의 기초’=지옥들.
창19:17-‘산으로 도망하라’=사랑과 선행의 선 쪽으로.
창19:19-‘저는 산으로 도망할 수 없습니다’=자신의 존재가 선행의 선을 소유할 수 있는지 의심함.
마24:16-‘산으로 (너희들은) 도망하라’=주님을 사랑함과 이 사랑에서 파생되는 이웃을 향한 선행.
창19:30-‘그는 산에서 거주했다’=어떤 종류의 선 쪽으로 자신이 향하도록 해보는 것.
호4:13-‘산들’과 ‘언덕들’=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
시104:10-‘산들’=선과 진리를 사랑함.
창22:2-‘산들 중의 하나 위에’=신성으로부터의 사랑. ‘산’=사랑, 여기서는 신성으로부터의 사랑.
시114:4-(영적 선으로부터의) 영적인 것 속의 천적인 것이 ‘숫양들 같이 껑충껑충 뛰는 산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창22:14-‘산에서 여호와께서 보실 것이다’=선행, 이를 통하여 영적 평면이 구원되도록 설비하셨다.
예16:16-‘….모든 산 위에, 모든 언덕 위에 사냥꾼들…’선에 애착함, 진리에 애착함을 가진 이들을 가르치는 것.
겔35:12-영적 선들과 진리들, 이것이 ‘이스라엘의 산들’이다.
여11:17, 12:7-‘세일 산’, 거기서 에서가 거주했는데, 털많은 것 역시 비슷한 뜻을 지닌다. 이런 의미를 가졌기 때문에 그들이 세일로 올라간 산, 이는 ‘매끈한 산’이라 불려졌다. 그리고 이것은 선으로 올라가는 진리를 표현하고 있다.
이55:9-‘유다로부터 내 산들의 상속자…’=주님. 표징적 의미에서 그분을 사랑함에 있는 이들. 고로 양쪽 사랑들로부터 선에 있는 이들. ‘산들’=이런 선들.
슥6:1-‘두 산들 사이에’=두 사랑들, 즉 천적 사랑, 주님을 사랑함, 영적 사랑, 이웃을 사랑함.
창31:21-‘그는 자기 얼굴을 길르앗 산에 놓았다’=거기에 선. ‘산’=사랑의 천적인 것. 즉 선, 이와 더불어 결합이 있었다.
창31:25-‘야곱은 산에서 자기 천막을 고정시켰다’=선이 있었던 사랑의 상태. ‘산’=선.
창31:54-‘야곱은 산에서 제물을 바쳤다’=사랑의 선으로부터 예배함. ‘산’=사랑의 선.
창31:54-‘그들은 산에서 밤을 보냈다’=고요함.
시95:4-교회의 진리들이 선으로부터 그 진리의 힘을 가지는 바, ‘산들의 힘’이라 불리운다.
겔6:13-고대인들이 언덕과 산에서 예배했었는데, 기 이유는 언덕과 산이 천적 사랑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구절 경우 같이 그들의 예배가 우상 숭배로 전락했을 때, 산과 언덕=자아와 세상 사랑.
욘2:6-‘산들의 적출(excision)’=가장 세게 정죄되어진 이들이 있는 곳. 그들 주위에 나타나는 짙은 안개(mist)가 ‘산들’이다.
호4:13-악을 예배함이 ‘산들의 머리 위에서 제물을 바침’에서 의미되고 있다.
암9:13-사랑과 선행으로부터의 선이 ‘산들이 포도액을 떨어트리고 언덕들은 녹아질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시104:13-‘산들에 물을 주는 것’=주님을 사랑함과 이웃을 향한 사랑에 있는 이들에게 복주시는 것. ‘산’=사랑의 천적인 것.
계8:9-‘불로 타는 큰 산’=자아 사랑.
이2:2, 미4:1-‘여호와의 산이 산들의 머리를 위해 있을 것, 그리고 언덕들 위로 들어올려질 것.’ ‘여호와의 산’, 이는 시온이다=주님의 천적 왕국, 고로 이 왕국의 선, 이는 주님을 사랑함이다. 고로 최고 의미에서 주님 자신. 그이유가 천적 왕국의 모든 선과 모든 사랑은 주님으로부터 있기 때문.
이30:25-‘물의 시내들’이 ‘모든 높은 산과 들어올린 언덕 위에’ 있는다고 말해진다., 그이유는 이런 지식들은 천적 사랑의 선과 영적 사랑의 선으로부터 흐르기 때문.
합3:6-‘영원으로부터의 산들’=태고 교회의 것이었던 사랑으로부터의 선. ‘시대의 언덕들’=상호 사랑의 선, 이것이 이 교회 속에 있었다.
신33:19-‘산으로 백성을 부르는 것’=진리들이 선들이 되게 하는 것. ‘산’=선행으로부터의 선.
출3:1-‘그리고 하느님의 산에 왔다’=그당시 신성한 사랑으로부터의 선이 나타났다.
출3:12-‘너는 이 산 근처에서 하느님을 예배할 것이다’=사랑으로부터 신성을 지각하고 인정함…‘산’=신성한 사랑으로부터의 선.
출4:27-‘그는 하느님의 산에서 그를 만났다’=거기에서 사랑의 선 안에서 결합함…‘하느님의 산’=신성한 사랑으로부터의 선.
계6장-‘산들과 바위’에 의해 악들과 거짓들이 의미되어진다.
출15:17-‘당신의 상속의 산에서’=선행의 선이 있는 천국.
출18:5-‘그는 하느님의 산에서 진영을 차렸다’=진리의 선 가까이…‘하느님의 산’=사랑의 선, 여기서는 진리의 선, 그이유는 영적 교회를 취급하기 때문.
호4:13-‘산들’, 그리고 ‘언덕들’=자아사랑, 그리고 세상 사랑.
시18:7-‘산들’=사랑의 선.
이11:9-‘내 거룩함의 산’=순진의 선이 있는 천국과 교회.
예17:3-‘들판에 있는 내 산’=천적 교회의 사랑.
시90:2-‘산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교회의 회복을 뜻한다. 그이유가 ‘산’, 말씀에서=천적 사랑, 고로 이 사랑이 있는 교회.
출32:12-‘산에서 그들을 죽이는 것’=선에 있는 이들이 멸해지리라는 것.
계17장-그들이 있었던 산들은 ‘일곱 산들’에 의해 계시록에서 뜻해진 이들이다…‘일곱 산들’에 의해 명령함의 모독된 사랑이 뜻해진다.
계6:13-‘모든 산과 섬이 그것들의 장소로부터 옮기워졌다’=사랑의 모든 선과 신앙의 모든 진리가 물러나졌다는 것.
계6:15-‘산들의 바위들’=악으로부터의 거짓들.
계6:16-‘그들은 산들과 바위들에게, 우리 위에 떨어져라 하고 말했다…’=거짓을 수단으로 악을 확증함, 그리고 악으로부터 거짓을 확증함.
계17:9-‘일곱 머리들은 일곱 산들이다, 거기에 여인이 앉아 있다…’=말씀의 신성한 선들, 이 위에 로마카토릭의 광신적 신앙이 기초되어 왔고, 시간 안에서 파괴했고, 결국 모독했다.
계21:10-‘그는 나를 크고 높은 산 위에 영 안에서 운반했다…’=요한이 셋째 천국으로 이동되어졌다는 것.
신1장-‘아모리족의 산들에 의해 악령의 세계가 의미되어졌다.
예3:6-‘모든 높은 산에 가는 것’=말씀으로부터서 조차 선에 관한 모든 지식들을 얻으려 애쓰는 것.
마5:14-‘산에 놓인 성읍’=사랑의 선으로부터 있는 교리 속의 진리.
예4:24-‘산들’과 ‘언덕들’=주님을 사랑함과 이웃을 향한 선행.
이7:25-‘괭이로 파질 산들’=선을 사랑함으로부터 선을 행하는 이들.
시46:2-‘산들’=사랑의 선들, 진리의 필수적 지식들이 남용될 때, 이 산들이 ‘바다의 심장에서 동요된다’라고 말해진다.
이14:25-‘내 산들 위에서’=거기는 사랑의 선과 선행의 선이 통치한다.
이49:13-‘산들’=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 선에 있는 이들.
겔36:6-‘산들과 언덕들에게 말하라…’…‘산들’=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의 선.
이42:12-‘산들의 머리’=그들과 더불은 사랑의 선.
슥6장-‘놋쇠 산’=자연적 인간에 있는 사랑의 선.
이66:20-예루살렘이 진리를 사랑함으로부터 ‘거룩함의 산’이라 불리운다.
시72:3-‘백성에게 평화를 가져 올 산들’=주님을 사랑함.
이52:7-‘(복음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있는) 산들’=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의 선.
욜3:18-‘산들이 포도액(또는 포도주)을 떨어뜨린다’=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의 선으로부터 모든 진짜 진리가 있다.
겔39:4-‘이스라엘의 산들’=선행의 선들.
시43:7-‘산들의 기초들’=교회가 기초를 둔 진리들.
나1:5-‘(여호와 앞에서 떠는) 산들’=주님을 사랑함이 있는 교회.
겔38:20-‘(전복되어질) 산들’=사랑의 선.
이30:25-‘모든 높은 산 위에 있는’ 그들=주님을 사랑함의 선에 있는 이들.
합3:10-‘산들이 동요되었다’=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에 있는 이들은 거절되어졌다.
미4:1-주님의 왕국이 ‘산들의 머리에서 설립될 여호와의 산’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시65:6-‘산들’=사랑의 선.
시121:1-‘나는 산 쪽으로 내 눈을 들어올렸다, 거기로부터 도움이 온다.’ 여기서의 ‘산’은 천국을 뜻한다.
이30:25-(마지막 심판에서)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향한 선행에 있던 이들은 천국으로 들려지고 총명과 지혜를 빨아들일 것임이 ‘모든 높은 산 위에, 들어올린 언덕위에 시내가 있을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이49:11,13-‘나는 길을 위해 모든 나의 산들을 놓을 것이다…’=사랑의 선들과 선행의 선들에 있는 이들은 진짜 진리들에 있을 것이다…사랑의 선으로부터 근원하는 환희로부터 고백함이 ‘너희 산들이 노래한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이44:23-‘네 산들아 노래하여라’=사랑의 선으로부터 근원하는 환희로부터 고백함. 여기서 ‘산들’은 선행의 선을 의미한다.
이55:12, 시148:9-‘산들과 언덕들이 노래하기 시작한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너희 산들과 언덕들아…’ 이 구절에는 시랑의 선과 선행의 선으로부터 있는 심정의 환희를 묘사하고 있다.
이42:11-‘그들은 산들의 머리로부터 소리칠 것이다…’‘산들의 머리’=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의 선.
시68:15-‘하느님의 산은 바산의 산이다’. ‘바산의 산’은 자발적인 선을 의미한다. 이는 교회의 외적인 측면에 있는 이들과 더불어 있는 선이다.
시114:4-‘산들이 숫양 같이 뛰고, 언덕들이 양떼의 새끼들 같이 뛴다’=천적인 선, 이는 사랑의 선. 그리고 영적인 선, 이는 이 선으로부터의 진리, 기쁨으로부터 선을 행하는 것.
시80:10-‘산들이 그것의 그림자에 의해 가리워졌다’=모든 교회는 영적 선으로부터 있다…‘산들’=영적 선들.
이64:9-‘내 산들’, 이의 ‘상속자가 유다로부터 있을 것이다’=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의 선, 이로부터 그것 안에 있는 이들.
예16:16-‘그들은 그들을 모든 산들 위에서, 그리고 모든 언덕들 위에서 사냥할 것이다’=사랑의 선에 있는 이들. ‘언덕 위의 이들’=선행의 선에 있는 이들.
겔36:8-‘이스라엘의 산들’=선행의 선들.
시36:6-‘하느님의 산들’=선행의 선.
시104:6,8,10,13-‘물들이 산 위에서 서있다’=거짓들이 자연적 사랑들의 즐거움 넘어 있다, 이 즐거움들은 그자체 악들이다. ‘산들’=이런 사랑들로부터의 악들…‘산들이…당신이 그들을 위해 기초한 장소로…’=그들로부터의 악들과 자연적 사랑들이 있던 장소에 그들로부터 선들과 천적 사랑들이 삽입되어진다는 것…‘그들은 산들 사이에서 갈 것이다’=그들은 천적 사랑의 선들로부터 있을 것이다는 것… ‘그분의 침실로부터 산에 물을 대시는 분’=모든 선들은 천국으로부터 진리들을 수단으로 있다는 것…‘산들’=사랑의 선들.
슥6장-‘병거들이 산들 사이로부터 나가고 있다’=진리들을 수단으로 선으로부터 형성되어질 교리.
슥14:5-‘그다음 너희는 내 산들의 골짜기를 통하여 도망할 것이다’=그다음 선으로부터 진리들에 있는 이들이 구조될 것이다.
겔40:2-에스겔에 의해 보여진 새예루살렘은 ‘높은 산’ 위에 지어졌음이 틀림없다.
시48:1-영적 선으로부터 있는 영적 진리가 ‘우리 하느님의 도성에, 그분의 거룩함의 산 위에’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이14장-‘(루시퍼가) 회합의 산에 앉을 것이다’=주님의 천적 왕국을 구성하는 천국들 위에.
이37:24-‘레바논의 측면, 높은 산들로 올라감’=교회의 선들과 진리들을 파괴하려 골몰함.
시147:8-‘그분이 자라게 만드는 풀이 있는 산들’=사랑의 선, 이로부터 이 선에 있는 이들.
신33:15-‘동쪽 산들의 첫 열매, 그리고 시대의 언덕들의 귀중한 것들’=진짜 선들, 주님을 사랑함과 이웃을 향한 선행 둘 모두.
마28:12-‘산들 위에 양들…’=사랑의 선과 선행의 선에 있는 이들. 그러나 ‘길을 잃은 하나’는 이 선에 있지 않은 하나, 그 이유는 무지로부터 거짓들 안에 있기 때문.
막13:14-‘유다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게 하라’=주님의 교회 속에 있는 이들은 사랑의 선에 반드시 남아있어야 한다.
이2:14-‘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높은 산들과 솟아오른 모든 언덕들 위에 닥칠 것이다’=마지막 심판,, 이때 악한 자들은 그들이 영계에서 점거했던 산들과 언덕들로부터 내던져질 것이다.
이40:4-‘모든 골짜기가 드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산과 언덕이 낮게 만들어질 것이다’=심정에서 겸손한 모든 이들, 즉 선들과 진리들에 있는 이들은 영접되어질 것, 그리고 마음이 득의 양양해있는 모든 이, 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에 있는 이들은 풀이 죽게 될 것이다.
겔33:28-더이상 선행의 선과 신앙의 선이 없다는 것이 ‘이스라엘의 산들이 황무해진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겔6:2,3=‘네 얼굴을 이스라엘의 산들 쪽에 놓고, 그들을 향하여 예언하라…이스라엘의 너희 산들아, 주 여호비의 말씀을 들어라. 하여 주 여호비께서 산들과 언덕들에 말하신다…’ ‘이스라엘의 산들’=영적 교회 속에 있는 이들에게 더 이상 생활의 선이 없을 때, 이들로부터 발생하는 자아와 세상 사랑으로부터 진행하는 악들.
겔38:20-‘이스라엘의 산들’=영적 사랑으로부터의 선들. 그러나 여기서는 이런 선들에 반대되는 사랑으로부터의 악들.
미6:2-‘너는 산들과 논쟁하라, 하여 언덕들이 네 음성을 듣도록…들어라, 오, 너희 산들아, 여호와의 논쟁…’ ‘산들’에 의해 선행의 선, ‘언덕들’은 신앙의 선, 그러나 여기서는 반대 의미인바, 선에 반대되는 악들과 거짓들.
예51:25-‘나는 네게 맞서 있다, 오, 온 땅을 파괴하는 산. 그리고 나는 네게 내 손을 뻗을 것이다, 그리고 바위들로부터 너를 굴려내릴 것이다, 그리고 나는 네게 불타진 산을 줄 것이다.’…자아 사랑과 이 사랑으로부터 파생되는 거짓들로부터 (바빌론이) 파괴하는 산이라 불리운다. ‘땅’=교회, ‘불타짐’=자아사랑. 이런 사항으로부터 명백한바, ‘산들’에 의해 자아와 세상사랑으로부터의 악이 의미된다는 것.,
미1:4-(마지막 심판에서) 산들과 골짜기에 있는 이들의 파멸, 자아 사랑과 이 사랑으로부터 파생된 거짓들로부터 악들 안에 있는 이들의 파멸이 ‘산들이 그분 아래에서 녹아질 것이고, 골짜기들은 쪼개질 것’에서 의미되고 있다.
예4:24-‘산들이 동요함’에 의해 자아 사랑의 악들에 있는 이들의 파멸이 의미되고 있다. 그리고 ‘언덕이 전복됨’은 세상 사랑의 악에 있는 이들의 파멸이 의미되고 있다.
시144:5-‘그들이 연기를 내도록 산들에 접촉함’=그분의 현존하심에 의해 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 이로부터 거짓들에 있는 이들이 파괴됨.
신32:22-‘불이 산들의 기초에 불붙게 놓일 것이다.’ ‘산들의 기초들’=사랑의 산들이 기초한 진리들. 이것이 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에 의해 ‘불에 놓인다’라고 말하여진다.
이34:3-‘산들이 그것들의 피로 녹아질 것이다’=그들과 더불은 사랑의 악들은 거짓들을 가지고 억지로 채워질 것이다.
이42:15-‘나는 산들과 언덕들을 황폐하게 만들 것이다’=주님을 사랑함과 이웃을 사랑함으로부터의 모든 선이 파괴되는 것.
이41:15-‘너는 산들을 타작질 하여 두드려 작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너는 겨 같이 언덕들을 만들 것이다’=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으로부터 근원하는 악들의 파멸.
이54:10-‘산들이 물러날 것이다, 그리고 언덕들이 옮겨질 것이다. 그러나 내 자비는 너로부터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악한 사랑에 있는 이들은 그렇게 행할 것이다…‘산들’과 ‘언덕들’에 의해 여기서는 특별히 이전 교회 속에 있는 이들이 뜻해진다.
예9:10-‘산들 때문에 나는 슬피울고 곡해야 한다’=자아와 세상 사랑으로부터 튀어나오는 갖가지 종류의 악들.
예50:6, 겔34:6-‘양들이 산으로부터 언덕 위에 가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산들에서 모든 높은 언덕에서 배회한다’=그들은 선들과 진리들을 찾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을 발견 못한다. 그것들 대신에 그들은 악들과 거짓들을 붙잡는다. ‘산이 돌아서버렸다’는 것=선들 대신 악들이 있다는 것.
예13:16-‘해질녘의 산에서 네 발이 걸려넘어지기 전에’=자연 평면으로부터의 악들이 소유권을 가지지 못하도록.
막11:22, 마17:20-이 신앙을 수단으로 주님은 자아와 세상 사랑으로부터 튀어나오는 모든 악들을 옮겨 그것들이 있는 지옥으로 내던지시는 바, 그분께서 말하신다, 즉 ‘만일 네가 산에게 너는 옮겨져 그자체를 바다에 던지거라 하고 말한다해도 그렇게 행해질 것이다.’
계6:15-‘산들의 바위들’=여기서의 경, 악들로부터의 거짓들.
이2:14-‘산들과 언덕들’=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 이것들로부터 튀어나오는 악들과 거짓들.
계6:16-‘그리고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여 우리에게 떨어져라’=악들과 이로부터 파생되는 거짓을 가지고 덮음.
예51:25-악들에 의해 지옥에 떨어짐이 ‘나는 불타진 산을 네게 줄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이2장-‘산들의 머리에서 건설되어질 여호와의 산’에 의해 시온이 뜻해진다, 그리고 천적 교회가 의미된다. 그리고 이 교회 속에 있는 이들이 소유한 주님을 사랑함이 뜻해진다.
이65:9-‘산들’=사랑의 선.
신33:15-‘산으로 백성을 부름’=그들은 사랑의 선이 있는 천국 안에 있기 때문.
신33:15-‘동쪽의 산들’=태고 교회, 이 교회는 주님을 사랑함에 있었다.
예17:26-‘산으로부터’=천적 선에 있는 이들.
시104:10-‘그들은 산들 사이에서 간다’=사랑의 선으로부터 있을 (진리들).
이27:13-‘거룩함의 산’=사랑의 선 측면에서의 교회.
시98;8-‘산들이 함께 환호성을 지르게 하자’…‘산들’=사랑의 선들.
시46:2-‘산들’=사랑의 선들.
이42:15-‘나는 산들과 언덕들이 황폐된채 있게 하겠다’=사랑의 선들과 선행의 선들이 멸해질 것이다는 것.
욘2:6-‘그가 내려간 산들의 적출’=악들이 있는 지옥들.
미7:12-선의 확장이 ‘산으로부터 산까지’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이13:4-‘산들’=악들.
시147:8-‘풀이 자라는 산을 만드신 분’=사랑의 선에 있는 이들을 위한 자양분.
이40:9-‘높은 산’=천적인 사랑.
겔39:17-‘이스라엘의 산들’, 이 위에서 그들이 ‘먹을 것이다’=영적 교회, 이 안에서 선행의 선은 필수적인 것이다.
합3:6-‘영원으로부터의 산들이 흩어졌다’=태고인들과 더불어서 있던 것과 같은 천적 교회, 즉 주님을 사랑함에 있는 교회인이 멸해졌다.
이40:12-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그분의 권능으로부터
천국들에 있는 모든 것들이 배열됨이 ‘그분은 명칭으로 산들을, 간칭으로 언덕들의 무게를 달으셨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신11:11-‘산들과 골짜기들의 토지’=교회의 더 높고 더 낮은, 또는 내적, 외적인 것.
예51:25-바벨이 ‘파괴하는 산’이라 불리운다.
시65:6-‘그분의 힘으로 흔들리지 않게 놓은 산들’에 의해 더 높은 천국들이 뜻해진다.
말1:3-자연적 인간의 사랑의 선들이 파괴되리라는 것이 ‘나는 황폐됨을 위해 (에서의) 산들을 놓아두겠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겔28:14-‘너는 하느님의 거룩함의 산에 있어왔다’…‘거룩함의 산’=사랑과 선행의 교리 측면에서의 교회.
말1:3-‘(에서의) 산들’에 의해 자연적 인간의 사랑으로부터의 악이 의미된다.
이2:3, 미4:2-‘여호와의 산’, 그리고 ‘야곱의 집’에 의해 주님을 사랑함이 있는 교회, 이 사랑으로부터 예배하는 교회가 의미된다.
시90:2-‘산들’에 의해 천국들에서 산들 위에 거주하는 이들, 천적 선에 있는 이들이 의미된다.
시15:1-‘거룩함의 산’에 의해, 이것에 의해 예루살렘이 뜻해지는데, 사랑의 선으로부터의 교리 속의 진리 측면에서의 교회가 의미된다.
이14장-‘북쪽 측면에서 회합의 산’은 천국들로 승강함이 있는 곳이다.
시24:3-‘여호와의 산으로 오르는 자는 누구인가’…‘여호와의 산’에 의해 시온이 뜻해진다, 이를 수단으로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주님이 통치하는 곳이 의미된다.
겔17:23-‘이스라엘의 높은 산에 새 싹을 심는 것’=선행의 선이 있는 영적 선 안에. 이선이 ‘이스라엘의 높은 산’에 의해 의미된다.
시104;10-‘산들’=사랑의 선.
예4:24-‘산들’과 ‘언덕들’=천적 사랑들과 영적 사랑들.
이66:20-‘예루살렘, 거룩함의 산’에 의해 선행이 지배하는 교회가 의미된다.
이25:6-‘이 산에서 살진 것들로 잔치…’=이 ‘산’에 의해 (주님을 숭배하고 인정하는) 이들로부터 있는 새로운 교회가 의미된다.
살렘 (Salem)
창14:18, 시76:2-‘살렘의 왕’=내적, 또는 합리적인 것에 관련하여 평화의 상태. 원어에서 ‘살렘’은 ‘평화’를 뜻한다. 또한 완전(perfection)도 뜻한다. 고로 평화의 상태, 그리고 완전한 상태. 평화의 상태가 주님의 왕국의 상태이다. 이것이 ‘그분의 성막은 살렘에 있다’에서 ‘살렘’에 의해 뜻해지고 있다.
창33:18-‘야곱이 세겜의 성읍, 살렘에 왔다’=고요함이 있는 신앙 속의 내면의 진리들. ‘살렘’=평화의 고요함.
요4:5,6-살렘의 성읍은 후에 ‘세겜’이라 불리웠다…또한 ‘수가’…이 성읍은 내면의 진리를 의미한다.
시76:2-‘살렘에 여호와의 성막이 있다, 그리고 시온에 그분의 거처가 있다’=그분의 영적 왕국과 그분의 천적 왕국. ‘살렘’=진짜 진리가 있는 영적 왕국.
시76에서-예루살렘이 ‘살렘’이라 불려진다, 그이유는 ‘살렘’에 의해 평화가 뜻해지기 때문, 이로부터 예루살렘이 명명되었다. 이렇게 명명된 이유는 ‘평화’=위쪽에서 이름지어지는 모든 것들. 거기에 있었던 ‘하느님의 성막’=그들로부터의 교회.
새 땅 (new earth)
* 새 하늘도 참조
* 에스겔서에서 ‘새 땅’에 의해 메시아의 왕국이 의미된다.
* ‘새로운 땅’, 또는 ‘거룩한 땅’=주님의 왕국, 또한 새로운 교회, 이는 땅에 있는 주님의 왕국이다.
* 이66:22-‘새로운 땅’=외적 교회.
샘 (fountain)
창7:11-‘큰 깊음의 모든 샘들이 터졌다’=자발적인 측면에서 있는 시험의 극단.
창16:7-‘광야에 있는 물들의 샘에서’=생명을 아직 획득하지 않은 자연적 진리. ‘물들의 샘’=진리.
창16:7-‘술로 가는 길에 있는 샘에서’=이 진리는 과학물로부터 진행되는 것들로부터 였다는 것. ‘샘’=진리.
시104:10-‘샘들’=지식들.
창16:14-‘그러므로 그녀는 샘(spring)이라 불렀다’=거기서부터 있는 진리의 상태…이 진리는 합리성에서 보여지지 않고 합리성 아래 수준에서 보여졌기에, 여기서의 샘에 대한 원어의 표현은 fountation이 아닌 spring에 가까운 어원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두 단어 모두 샘이라는 의미에 공히 사용되고 있다.
창16:14-‘나를 살펴보신 하느님에게 샘’=진리 고로 명료함.
* ‘물의 샘(well)’, 그리고 ‘샘(fountain)’=말씀, 또한 말씀으로부터의 교리, 결과적으로 진리 자체.
신33:28-‘야곱의 샘’=말씀, 그리고 말씀으로부터 파생된 진리로부터의 교리…(이런 의미 때문에) 주님께서는 야곱의 샘에 오셨을 때, 그분은 사마라아의 여인에게 이야기하셨고, ‘샘’, 그리고 ‘물’에 의해 의미되는 것을 가르치셨다…‘야곱의 샘’이 말씀을 의미하는바, ‘물’은 진리를, ‘사마리아’는 영적 교회를 의미한다…주님께서는 사마리아 출신 여인에게 신앙 속의 교리는 그분으로부터 있다는 것, 그것이 그분으로부터 일 때, 그것은 ‘영원한 생명으로 솟아오르는 물의 샘이다’고 가르치셨다.
창24:13-‘보십시오, 저는 물들의 샘에서 위쪽에 서있습니다’=주님의 인간 안에서 신성으로부터의 진리가 결합하는 상태. ‘샘’=진리, 여기서는 신성으로부터의 진리, 그이유는 주님이 취급되기 때문. 결합 자체의 상태가 ‘샘에서 위쪽에 서있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창24:16-‘그녀가 샘으로 내려왔다’=신성으로부터의 진리.
창24:29-‘라반이 사람에게, 샘으로 달려갔다’=신성으로부터의 진리로 시작하여 있었던 진리를 향한 선에 애착함의 왕성한 정신(강한 바램). ‘샘’=진리, 여기서는 신성으로부터의 진리.
창29:30-‘샘에서’=신성으로부터의 진리로부터 그들이 계발됨…말씀이 신성으로부터의 진리인 바, 그것은 샘(fountain)이라 불린다…‘샘에서 서있는 것’, 여기서는 자연적 인간에 있는 이러저런 것들의 계발을 포함한다…그이유가 신성으로부터의 진리가 있는 곳에 계발도 있기 때문.
* ‘브엘-라해-로이’, 원어에서 ‘살아계시고 나를 보시는 그분에게 샘’을 뜻한다.
창29:2-말씀이 이 구절에서는 샘(well)이라 불리는데, 그이유는 말씀이 자연적인 것을 다르기 때문…그러나 말씀이 합리적인 것을 다룰 경우, ‘샘(fountain)’이라 불린다.
계8:10-‘강들과 물들의 샘들’=총명, 그리고 말씀으로부터의 지혜.
창38:14-‘그녀는 딤나로 가는 길에 있는 샘들의 문에 앉았다’=교회의 진리, 그리고 거짓들 그 사이에 중간의 것. ‘샘들’=말씀으로부터 있는 교회의 진리들. 그이유가 보편적 의미에서 ‘샘’=말씀.
창38:21-‘길에 있는 샘들에서’=그것이 진리인듯 나타나는 것. ‘샘들’=교회의 진리들.
창49:22-‘샘 위에 열매있는 자의 아들’=말씀으로부터의 진리로부터 결실이 풍부함. ‘샘’=말씀.
민21:7-‘샘’=신성으로부터의 진리로부터의 교리.
출15:27-‘물들의 열 두 샘들이 있는 곳’=거기서 그들은 진리를 아주 풍성하게 가졌다는 것. ‘샘들’=신앙으로부터의 진리.
계21:6-‘생명의 물의 샘’=신앙으로부터의 진리와 선.
계7:17-‘그리고 그들을 물들의 살아있는 샘들로 인도할 것이다’=말씀으로부터의 진리들을 수단으로 그분 자신과 결합하도록 인도하심. ‘물들의 살아있는 샘’=주님, 또한 말씀.
계8:10-‘강들의 삼분의 일이 떨어졌다, 그리고 물들의 샘들 위에 떨어졌다’=이것으로부터 말씀 속의 모든 진리들이 지독하게 왜곡되었다. ‘물들의 샘들’=말씀.
계14:7-‘물들의 샘들을…만드신 그분을 경배하라’=주님 만이 예배되어져야할 것이다, 그이유는 그분 만으로부터 교회와 천국에 속하는 모든 것이 있기 때문…‘물들의 샘들’=교리와 생활을 위해 교회에서 Tm임을 받고 있는 말씀 속의 모든 진리들.
계16:4-‘세째 천사가 그의 대접을 강들에, 그리고 물들의 샘들에 쏟았다’=그들과 더불은 말씀을 이해함 안으로 유입이 있다. ‘물들의 샘들’=말씀 측면에서의 주님, 고로 주님의 말씀. 그러므로 ‘물들의 샘들’=말씀으로부터 파생된 신성한 진리들.
계21:7-‘나는 목말라 있는 그에게 생명의 물의 샘으로부터 무료로 줄 것이다’=어떤 영적 사용으로부터 진리들을 바라는 이들에게 주님은 그 사용에 도움이 될 모든 것을 말씀을 통하여 그분 자신으로부터 주신다는 것…‘생명의 물의 샘’=주님과 말씀.
욜3:18-이것들이 말씀으로부터 있다는 것이 ‘샘이 여호와의 집으로부터 나가고 있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예31:9-그들이 진리들에로 인도된다는 것이 ‘나는 그들을 올바른 길에서 물들의 샘들에 인도할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시68:26-‘구원의 샘’=영적 선, 그이유는 이를 통하여 구원이 있기 때문.
신8:7-‘샘들과 깊은 곳들이 골짜기로부터 그리고 산으로부터 나간다’=말씀으로부터의 내면과 외면의 진리들.
신33:28-‘야곱의 샘’=신성한 진리, 그리고 말씀.
이49:10-‘샘, spring, 또는 fountain’=말씀, 또는 말씀으로부터의 진리.
시114:8-‘물들의 샘’=(진리에 대한 지식이) 오는 말씀.
시104:10-‘샘들’=말씀으로부터의 진리들. ‘샘들이 강들에로 보냈다’=거기로부터 파생된 총명.
욜3:18-‘샘이 여호와 집으로부터 나갈 것이다, 그리고 싯딤의 강에 물을 댈 것이다’=지식에 있는 이들을 계발하려고 주님으로부터 천국으로부터 교리 속의 진리에 온다는 것.
이41:18-‘샘들을 놓는 것’=진리에서 가르치는 것.
창49:22, 요4:5,6-‘(요셉이 근처에 있다 라고 말해지는) 샘’은 야곱의 샘을 뜻한다. 그이유가 그 샘이 있었던 들판이 그의 아버지에 의해 요셉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민21장-브엘에 있는 ‘샘’에 의해 말씀으로부터의 교리가 의미되어진다. 그이유가 원어에서 ‘브엘’은 샘을 뜻하기 때문.
호13:15-‘샘(spring)’=교리. ‘샘(fountain)’=말씀.
이41:18-‘계곡들의 한가운데 샘들이…’=자연적 진리로부터의 총명.
샘 (spring)
시36:9-‘생명의 샘(fountain)’=사랑으로부터 있는 천적인 것.
이49:10-‘물들의 샘들’=말씀으로부터 있는 진리에 관한 지식.
예51:36-‘바빌론의 샘(fountain)을 마르게 만드는 것’=이 교회의 가장 중요한 것들로부터 시작하여 이 교회 속의 모든 진리를 소멸시키는 것.
이41:18-‘물들의 샘들 위에로 그분은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다…’=모든 진리 측면에서 계발됨. ‘샘, spring, 또는 fountain 모두’=말씀, 또는 말씀으로부터의 교리.
호13:15-‘그분의 샘(fountain)’=왜곡된 것으로부터의 교리. ‘그의 샘’=그것의 거짓.
이35:7-‘목마른 장소가 물들의 샘들이 될 것이다’=그들이 가지게 될 진리들.
샘 (well)
* 우물을 보라
섬 (island, isle)
창10:5-(내적인 것으로부터) 한층 더 멀리 있는 이들이 ‘나라들의 섬들’이다.
창10:5-‘이들로부터 그들의 토지들에 있는 나라들의 섬들로 흩어졌다. ‘섬들’=특이한 지역들; 고로 한층 더 멀리 떨어진 특이한 예배들.
이41:1,5-‘섬들’=교회 밖 곧바른 이방인들, 이들은 자기들의 외적 예배를 종교적으로 준수해왔다.
이42:4,10,12-‘섬들’=교회 밖 이방인들, 이들은 무지하나 순박하고 성실(probity) 안에서 사는 이들이다.
습2:11-‘나라들의 섬들’=신앙의 지식들로부터 더 멀리 떨어진 나라들.
시72:10-‘다르싯과 섬들’에 의해 내적 예배와 상응하는 외적 예배가 뜻해진다.
이24:15-‘바다의 섬들에…’=신앙의 거룩한 것들로부터.
겔27:15-‘많은 섬들’=예배에서 더 멀리 있는 이들.
이23:2-‘섬들의 주민들은 조용하다’=더 먼 선들.
예47:4-‘갑돌의 섬의 남은 자들’=외면의 진리들.
계6:13-‘그리고 모든 산과 섬은 그것들의 자리로부터 옮겨졌다’=사랑의 모든 선과 신앙의 모든 진리가 퇴조되었다는 것.
이60:9-‘섬들이 나를 신뢰할 것이다’=신성한 예배에 있는 나라들, 그러나 교회의 진리들로부터서는 더 멀리 있는 나라들.
겔26:18-‘바다에 있는 섬들’=진리들로부터 더 멀리 있어 진리에 대한 지식을 갈망하는 나라들.
이42:15-‘나는 강들을 섬으로 만들겠다’=진리에 대한 모든 이해를 절멸시키는 것. ‘강들’=진리로부터 있는 총명. ‘섬들’=총명이 없는 것.
겔26:15,16,18-인간이 그의 유아 시기를 포함하여 말씀으로부터 끌어내왔던 것, 그리고 이 말씀을 확증하는 수단이었던 과학적 진리들에 속한 모든 지식들이 혼란스러워지고, 그것들 각각의 자리로부터 옮겨지고, 퇴조한다는 것이 ‘섬들이 흔들리고, 바다의 모든 군주들이 자기들의 왕좌로부터 내려올 것이다’와 ‘섬들이 그것의 함락의 날에 두려워 떨고, 바다에 있는 섬들이 괴롭혀질 것이다’에서 의미되고 있다. ‘섬들’=이런 지식들과 자연적 인간에 있는 과학적 진리들. ‘바다의 군주들’=거기 제일 가는 것들. ‘바다’=자연적 인간, 그리고 이 인간에 일반적으로 있는 모든 것들.
겔27:35-자연적 인간의 진리로부터의 모든 선들이 진리에 대한 지식들이 황폐해져감으로부터 그 선들의 상태도 변해졌다는 것이, ‘섬들의 모든 거주민들이 너를 보고 놀라워할 것이다, 그리고 섬들의 왕들이 너로 인해 오싹해질 것이다, 괴로워함이 그들의 얼굴에 역력할 것이다’에서 의미되고 있다. ‘섬들의 거주민들’=자연적 인간의 진리로부터의 선들…‘거주민들’=생활의 선들.
예25:22-‘바다 건너에 있는 섬의 왕들’=자연적 인간의 최말단에 있는 진리에 대한 지식들.
계16:20-‘그리고 모든 섬이 달아났다’=신앙으로부터의 어떤 진리도 더 이상 있지 않았다. ‘섬’=자연적 인간의 진리들 측면에서의 교회. 이는 과학적 진리라 불린다, 그리고 또한 진리와 선에 대한 지식이라 불린다.
성지 (holy land)
* 표현 교회(the Representative Church)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성지라 불려졌다.
* 가나안의 토지-주님의 왕국과 교회, 그리고 사실 상, 천적인 것들과 영적인 것들. 그러므로 그것은 성지라 불려졌다.
* ‘새 땅’, 또는 성지=주님의 왕국, 그리고 또한 새 교회 (the New Church).
세겜 (Shechem)
* 하몰도 참조
창12:6-‘아브람은…지나……세겜에’=주님의 두 번째 상태, 이 때 사랑의 천적인 것들이 그분에게 나타나셨다.
창33장-야곱이 첫 번째로 세겜에 왔다. ‘세겜’=빛의 첫 번째.
여20:7, 21:21, 24:1,25-세겜은 도피성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성직자들의 성읍, 거기서 언약이 만들어졌다.
창33:18-‘야곱은 세겜의 성, 살렘에 왔다’=평온에 있는 신앙 속의 내면의 진리들…‘세겜의 성’=신앙 속의 내면의 진리들.
창34:2-‘세겜이 그녀를 보았다’=진리; 그이유가 ‘세겜’=진리, 여기서는 고대 (시대)로부터의 교회 속의 진리; 그 이유는 세겜이 있었던 나라는 고대 교회의 나머지들이었기 때문이다…더구나 세겜의 성은 아브람의 처음 도착지이었기도 하다. 이로부터 ‘세겜의 성’=처음의 빛; 그 결과 내면의 진리.
창34:8-‘세겜 나의 아들’=그 선으로부터의 진리; 그이유가 ‘세겜’=내면의 진리, 이 진리는 내면의 본질 측면에서는 선행의 선 밖에 더 없다; (그이유가) 태고 교회의 나머지들이 히위족 하몰, 그의 아들 세겜과 더불어 이었기 (때문).
창34:11-‘세겜이 그녀의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말했다’=신성한 고대 지주로부터의 진리가 이 깊은 신앙심 속의 선과 진리와 상담함.
창34:18-‘세겜’, 여기서의 경우=교리.
창37:12-‘세겜에서’=첫번 째 기본(초보)인 것. ‘세겜’=고대 신성한 지주로부터의 진리; 교리; 여기서는 신앙에 관한 첫 번째 기본이 되는 교리. 첫 기본적인 것은 교리물의 일반적인 것; 이것들이 제일 먼저 받아진다.
창37:14-‘(요셉)이 세겜에 왔다’=교리물의 일반적인 것에 관한 지식.
예41:5-‘세겜으로부터의 사람들’=모독하는 이들.
세바 (Shibah)
창26:33-‘그는 그것을 세바라 불렀다’=그것으로 확증된 진리가 결합함.
세일 (Seir)
창14:6-‘세일산에서 호리족…’=자아 사랑으로부터 있는 거짓된 설득들.
민24:18=‘에돔’, ‘세일’, ‘상속 재산(inheritance)’=주님의 신성한 자연 측면으로부터의 신성한 선.
여11:17, 12:7-세일 산, 거기는 에서가 거주한 곳, 세일은 에서의 모습과 비슷하게 ‘털복숭이인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산을 수단으로 세일로 올라감이 있었고, 세일 산은 ‘매끄러운 산’이라 불리웠다. 하여 세일은 선으로 승강하는 진리를 표현하였다.
창32:3-‘세일 토지’=천적 수준에서의 자연적 선. ‘세일 토지’. 최고 의미에서,=주님의 천적인 자연적 선. 그이유는 세일 산은 가나안 토지의 한쪽 경계에 해당하였기 때문…그리고 모든 경계선들은 최말단의 것들을 표현하였다.
창33:14-‘제가 세일에 있는 내 주에게 갈 때까지’…‘세일’=자연 평면에서 영적인 것들이 천적인 것들과 결합함. 즉 신앙 속의 진리가 선행 속의 선과 결합함. 진리는 자연 평면에서 선에게 결합되어진다. 최고 의미에서, 자연 평면에서 진리가 선에 결합한 측면에서의 주님의 신성한 자연 평면..
창33:16-‘에서는 자기 길로해서 세일로 돌아갔다’=선으로부터의 진리들이 인접해 있는 신성한 자연적 선의 상태…‘세일’=진리가 선에게 결합함.
창36:8-‘에서는 세일 산에서 거주하였다’=자연적 선으로부터의 진리.
창36:10-‘세일 산에서’=선으로부터의 진리.
이21:11-‘세일’, 거기로부터 경비원이 ‘부른다’=어둠에 있는 이방인들에게 밝게 비추심(illumination).
사5:4-‘세일로 나가는 것…’. 여호와에 관해서 말해질 때,=여호와께서 인간을 입으셨을 때 주님에 의해 이방인들에게 밝게 비춤(계몽해줌).
소돔 (Sodom)
창10:19-‘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에 오기 까지’=거짓과 악들 안에서 그것들이 종결되었다…거짓들에 두 근원이 있다…진리들 위에서 통치하기를 원하는 거짓이 (이런 성읍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창13:10-‘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외적 인간은 악의 탐욕들과 거짓된 설득에 의해 파멸되어진다.
창13:12-‘(롯은) 자기 천막을 소돔 아주 가까이에서 고정시켰다’=탐욕들로 넓혀감; (그이유가) ‘소돔’=탐욕.
창13:13-‘소돔의 사람들은 악했고, 여호와께 극도로 죄인들이었다’=과학물들이 탐욕쪽으로 자신들을 확장시켰다.
창14:2-‘그들은 소돔왕 베라와 고모라왕 비르사와… 전쟁을 만들었다…’=주님께서 맞서 싸우셨던 아주 많은 거짓의 설득들과 악의 탐욕들.
창14:10-‘소돔왕과 고모라왕이 도망했다, 그리고 거기에 추락했다’=이런 악들과 거짓들이 정복되었다. ‘소돔과 고모라’=탐욕들의 악들, 설득들의 거짓들.
창14:11-‘소돔과 고모라의 재물’=악과 거짓.
창14:17-‘소돔왕이 그를 만나러 나갔다’=악과 거짓이 그자체 복종되게 했다.
창18장-‘소돔’=자아 사랑과 악으로부터 파생된 탐욕이 명령을 실행함.
창18:16-‘그들은 소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인류의 상태.
창18:20-‘소돔과 고모라의 함성이 크다’=자아 사랑으로부터의 악과 거짓이 극점에 까지 이르도록 증가했다.
신32:32-‘소돔의 포도나무’=악으로부터의 거짓.
창18:22-‘그들은 소돔을 향하여 갔다’=인류가 이런 큰 악 안에 있었다. ‘소돔’=자아 사랑으로부터 악…‘소돔’=이런 큰 악에 있는 인류의 상태인 이유는 소돔에 의해 소돔이 뜻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아 사랑에 있는 보편적 세상에 있는 모든 이들을 뜻하기 때문, 그리고 소돔에 대한 묘사는 이 악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의 상태를 뜻해준다.
창19장에서-‘소돔의 주민들’에 의해 선행의 선에 반대하는 (영적 왕국의) 교회 내에 있는 이들의 상태가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시간의 경과에 따라 악과 거짓이 증가하여 결국 악과 거짓만 있는데 까지 이르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창19:1-‘두 천사들이 저녁에 소돔에 왔다’=심판을 진행하는 방문.
창19:1-‘롯이 소돔의 (성)문에서 앉아 있었다’=선행의 선에 있는 이들, 그러나 악들 사이에서 외적 예배에 있는 이들, 그러나 그것들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이들.
창19:4-‘소돔의 사람들’=악들에 있는 이들.
창19:24-‘여호와께서는 소돔과 고모라 위에 유황과 불이 비오듯 하게 하셨다’=자아 사랑의 악들과 그로부터 파생된 거짓들에 있는 이들의 지옥.
마10:15-‘소돔과 고모라에 대해 더 참을 수’ 있을 것이다인 이유는 ‘소돔과 고모라’에 의해 생활의 악에 있는 이들, 그러나 주님과 말씀에 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는 이들, 그리고 그것들을 받을 수 없었던 이들이 뜻해진다.
계11:8-‘영적으로 소돔과 이집트라 불리우는 것’=두 지옥의 사랑들, 즉 자아 사랑으로부터 지배함을 사랑함과 자신의 총명으로부터의 자만으로부터 통치를 사랑함, 이것들이 하느님이 한분이 있지 않은 교회, 주님이 예배되지 않는 교회, 십계명의 가르침에 따라 살지 않는 이들이 있는 교회 안에 있다. ‘소돔’은 영적 의미에서 자아 사랑으로부터 지배를 사랑함을 의미한다.
겔16:46,47-이로부터 예루살렘은 소돔이라 불리울 뿐아니라 소돔 보다 더 나쁜 짓을 했다고 말해진다…자아 사랑의 악이 소돔의 악이었다는 것…
소안 (Zoan)
이19:13-‘소안의 군주들, 이집트의 슬기있는 조언자들’=제일 가는 과학물들.
이30:4-‘그의 군주들이 소안에 있었을 때’=왜곡된 진리들, 고로 거짓들.
소알 (Zoar)
창13:10-‘소알에 이르는 이집트의 토지 같이’=선에 애착함들로부터의 과학물들…‘소알’=선에 애착함.
창13:10-소알은 소돔으로부터 멀지 않은 성이었다…그리고 그 외에도 ‘소알’은 창14:2,8, 신34:3, 이15:5, 예48:34에서도 언급되는데…소알=애착. 그리고 소알=선에 애착함 인 바, 반대 의미에서 소알=악에 대한 애착.
창14:2-‘벨라, 즉, 소알 왕’=악의 탐욕과 설득.
창19:20-‘(이 성은) 아주 작다’=진리가 조금 있다.
창19:21-‘나는 이 성(소알)을 전복하지 않으리라’=인간 안에 진리가 있고 이 진리 안에 선을 가지고 있다면 멸하지 않을 것이다.
창19:22-‘그러므로 그는 이 성을 소알이라 불렀다’=진리에 애착함 …진리에 애착함에 있는 이들은 진리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그이유는 그들은 선에 애착함에 비교하면 선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창19:23-‘롯은 소알로 왔다’=진리에 애착함에 있는 이들은 구원되어진다. 그이유가 ‘소알’=진리에 애착함.
창19:30-‘롯은 소알로부터 올라갔다’=그들이 진리에 애착함에 더 이상 있지 않았을 때,..그이유는 진리로부터의 모든 선이 황폐되었기 때문.
창19:30-‘그들은 소알에 거주하기가 두려웠기 때문’=그는 진리에 애착함으로부터 선을 더 이상 찾을 수 없었기 때문. ‘소알’=진리에 애착함, 그리고 이것이 황폐되었을 때, 선을 찾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수르 (Shur)
술 (Shur)
창16:7-‘수르로 가는 길에 있는 샘’=과학물로부터 진행한 것들로부터 있은 진리.
창20:1-주님께서 선행과 신앙의 교리들에서 자신을 처음 가르치셨을 때, 주님의 상태가 ‘가데스와 수르’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창25:18-‘하윌라로부터 앗수르로 가는 이집트의 얼굴 위쪽인 수르까지 조차’=총명의 확장.
출15:22-‘그들은 수르 광야로 나갔다’=그 당시 그들이 가져다 놓인 시험의 상태…‘수르’=아직 생명을 획득하지 못한 교회의 과학물. 과학물 같은 것은 시험을 통하여 생명을 획득한다.
수에네 (Seveneh)
겔30:6-거짓들이 진리에 대한 이해성을 파괴한다는 것이 ‘수에네의 탑(tower)로부터 그들은 칼로 그것 안에서 엎드려질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겔29:10-‘이집트의 토지는 수에네의 탑으로부터 구스의 경계에까지 황폐될 것이다’=자연적 인간에 있는 교회 속의 최고의 것으로부터 최말단의 것에 이르기까지 모두 파멸된다는 것.
수프 바다 (Sea Suph)
* 홍해(red sea)를 보라.
숨긴 장소 (hiding place)
시18:11-천국들 안에 있는 것과 같은 신성한 진리가 (글자 의미 안에) 있다는 것이 ‘그분은 그분의 숨기는 장소로 어둠을 두셨다’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이45:3-어둠의 보물, 그리고 숨긴 장소 속의 감추어둔 재물=천국으로부터 있는 내면의 총명. 그이유가 천국으로부터 들어가는 것들은 은밀히 와서, 인간과 더불어 있는 모든 것에 영향을 주기 때문.
시64:4-은밀한 장소에서 곧바른 자를 쏘는 것‘=선으로부터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을 현혹하는 것.
이4:6-너무나 많은 빛으로부터, 그리고 너무나 많은 그늘로부터 거짓들이 방해하지 않도록 함이 ‘그것은 폭풍과 비로부터 피난처와 숨긴 장소를 위해 있을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애3:10-‘은밀한 장소에 사자’=내면의 자연적 인간은 그 인간에 있는 악들로부터 말씀의 진리의 모든 의미를 뒤집는바, 이로부터 거짓들이 온다.
시61:4-‘그분의 날개의 숨는 장소를 신뢰하는 것’=신성한 진리들에서…
숫곳 (Succoth)
창33:17-‘야곱은 숫곳으로 여행했다’=그당시 진리로부터 선의 삶의 상태…‘숫곳’=이 상태의 품질.
창33:17-‘그러므로 그는 이 장소의 이름을 숫곳이라 불렀다’=이 상태의 품질…즉 그당시 선으로부터 진리 안에 있는 거룩함의 상태의 품질. 그이유가 ‘숫곳’은 천막을 뜻하고 ‘천막’=진리로부터의 거룩함이기 때문.
출12:37-‘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으로부터 숫곳으로 여행했다’=떠남의 첫 상태와 그것의 품질.
출13:20-‘그들은 숫곳으로부터 여행했다’=그들이 해방된 이후 두 번째 상태.
스미르나 (smyrna)
계2:8-‘스미르나에 있는 교회’=생활 측면에서는 선 안에 있으나, 교리 측면에서는 거짓들에 있는 이들. (=말씀을 이해하기를 원하는 이들, 그럼에도 아직 말씀을 이해 못하는 이들, 그들의 심정은 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들을 열망하지만 아직은 조금만 지녔음)
* 영적 진리에 애착함 이 스미르나 교회의 천사에게 보내는 말에서 취급되고 있다. 이 애착은 교회의 첫째되는 것 중의 하나이다.
습지 (marsh)
* 호수(lake)도 참조
겔47:11-‘진흙투성이와 습지’=하찮고 불순한 것들.
겔47:11-그들이 악의 거짓들에 있기 때문에 개혁되어질 수 없는 이들이 ‘치료되지 않는 진흙과 습지, 그래서 소금 (땅)으로 되어가는 것’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시날 (Shinar)
창10:10-‘바벨, 등등, 시날의 토지에서’=외형상 거룩하게 나타나나, 내면은 모독된 예배들.
* ‘시날의 토지’=모독이 있는 외적 예배.
창11:2-‘그들은 시날의 토지에서 계곡을 발견했다’=그들의 예배는 더 불순해지고 모독적이 되어갔다.
창14:1-‘시날의 왕 아므라벨’, 등등=여러 종류의 외관적인 선과 진리.
여7:21-‘시날의 외투’=거짓의 한 종류.
슥5:11-‘시날’=모독인 것이 들어 있는 외적예배.
시내 (brook)
이30:25-신앙 속의 진리들, 이것이 ‘시내와 물의 흐름’이다.
신9:21-‘시내산으로부터 시내’=신성으로부터의 진리(truth Divine), 고로 글자 안에 있는 말씀.
겔36:6-‘산, 언덕, 시내, 계곡’=교회의 첫째가는 원리로부터 마지막 째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모든 것들. ‘시내와 계곡’=교회의 최말단에 있는 진리들과 선들.
욜3:18-‘유다의 시내들’=주님의 천적 왕국의 한 개 한 개의 세부적인 것들. 또한 말씀의 한 개 한 개의 개별적인 사항들.
이30:25-‘시내’=지혜, ‘물의 흐름’=총명.
시65:9-‘물로 가득찬 강’=진리들로 가득한 교리.
욜1:20-‘물들의 강들이 말라졌다’=교리 속의 진리들이 자연적 사랑을 통하여 사라졌다.
시내 (Sinai)
시내산 (Mount Sinai)
* 산=주님, 그리고 그분의 천국의 것들, 이런 이유로 주님께서는 시내산으로부터 법을 선포하셨다.
출16:1-‘시내’, 거기서 선포한 법으로부터,=선 그리고 이 선에서 파생하는 진리.
출19:1-‘그들은 시내 광야에 왔다’=신앙의 진리들이 심어지지게 되는 선의 상태…‘시내’=진리들 자체.
출19:1-시내산, 최고 의미에서,=신성한 선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 ‘산’=신성한 선. ‘시내’=신성한 진리. 내적 의미에서 시내산=선으로부터의 신앙 속의 진리. 여기서는 선 안에 심어지게 되는 신앙 속의 진리, 그이유는 법이 시내산으로부터 아직 선포되지 않았기 때문.
신33:2-‘시내산’=복합체에 있는 신앙 속의 진리들.
출19:11-‘시내산 위에’=선 안으로 진리가 심어지게 되는 것.
출19:18-‘시내산 전체가 연기로 덮혔다’=가장 큰 희미함에서 천국의 선이 나타남.
출19:20-‘여호와께서 시내산 위에 내려오셨다’=천국에서 주님의 현존.
출19:23-‘사람들은 시내산으로 오를 수 없다’=영적 왕국의 사람들은 천적 왕국으로 자신들을 승강되게 할 수 없다. ‘시내산’=천적 왕국.
출20:22-여기서 시내산이 ‘하늘’이라 불리우고 있다.
출24:13-시내산을 여기서 ‘하느님의 산’이라 불렀다=법, 또는 주님으로부터 있는 신성한 진리, 고로 천국에서 있는 말씀 같은 말씀.
출24:16-‘여호와의 영광이 시내산 위에 머물렀다’=천국에서 주님의 말씀의 내면들.
출34:2-‘아침까지 준비해서, 너는 시내산으로 오르거라’=신성한 진리의 계시가 새로이 일어남. ‘시내산’= 신성한 진리가 있게 한 천국으로부터. 고로 거기로부터 계시가 있다.
출34:2-‘너는 산의 머리 위 거기서 나에게 서있거라’=신성한 사랑이 있는 가장 깊은 천국으로부터. ‘시내산’=계시를 있게 하는 천국.
출34:29-‘모세가 시내산으로부터 내려왔을 때’=말씀, 교회, 그리고 예배의 외적인 것 안으로 내적인 것이 유입됨.
시68:17-‘시내’=신성한 진리가 있고, 있게 하는 천국. 그러므로 말해지는바, ‘성소에서 시내산 ’이라 말해진다.
시띰 (Siddim)
창14:3-‘시띰 골짜기’=탐욕들로부터의 불결한 것들.
창14:8-‘시띰 골짜기’=불결한 것.
창14:10-‘시띰 골짜기는 역청 수렁으로 꽉차있었다’=거짓들과 탐욕들로부터 불결한 것.
시온 (Zion)
* ‘시온산’에 의해 신앙의 천적인 것, ‘시온성’에 의해 신앙의 영적인 것이 뜻해진다.
예6:2-‘시온의 딸’=천적 교회.
이31:4-‘시온산’=주님. 그리고, 파생적으로, 모든 천적인 것, 이는 사랑이다.
애2:6-‘시온’=멸해지고 있는 교회
이52:1-‘네 강함을 입어라 오 시온아.’ ‘시온’=천적 교회. ‘예루살렘’=영적 교회.
이33:5-‘시온’=교회.
애1:4-‘시온의 길이 슬퍼한다’=선으로부터 진리들이 더 이상 없다. ‘길, way’=진리.
삼하2:1-11, 왕상2:11-다윗은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을 통치한 후, 그는 예루살렘으로 갔다, 그리고 시온의 소유권을 취했다. 그당시 처음에는 주님의 영적 교회가 예루살렘에 의해, 그분의 천적 교회가 시온에 의해 표현되기 시작했다.
이37:22-‘시온의 처녀 딸’=천적 교회.
이3:16-‘시온의 딸들이 자신을 높여 으쓱댄다’=교회 내부의 악에 대한 애착들.
이51:3-‘여호와께서 시온을 위로하실 것이다’=천적 교회.
미4:7-‘여호와께서 그들을 시온산에서 지금 이후 영원까지 통치하실 것이다…’. 여기서 주님의 천적 왕국이 묘사되고 있다. 이 왕국의 가장 깊은 측면, 주님을 사랑함이 시온에 의해, 그것의 파생인 것인 상호 사랑이 ‘시온의 딸의 언덕’에 의해, 이 사랑, 영적 의미에서 이웃을 향한 사랑이다…
애2:1,2-‘시온의 딸’, 그리고 ‘유다의 딸’=천적 교회, 이 구절의 경우, 이 교회가 파괴되었다.
예14:21-시온이 ‘여호와의 영광의 왕좌’라 불리워진다. ‘시온’에 의해 주님의 천적 왕국이 뜻해진다. (이 왕국의 제일 가는 것은 신성한 선으로부터 신성한 진리이다.)
이49:18-21-‘시온’, 또는 천적 교회, 그리고 황폐됨 이후 이 교회의 열매 풍성해짐이 취급되고 있다.
이31:4-‘이와같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시온산 위에서, 이 산의 언덕 위에서 싸우시기 위해 내려오실 것이다.’…‘시온산’=신성한 사랑으로부터의 선. 그리고 ‘그것의 언덕’=파생되는 신성한 진리. (=천적 교회, 그리고 영적 교회).
애1:6-‘시온의 딸‘=선에 애착함, 이 애착은 천적 교회 속에 있다.
이2:2-‘여호와의 산’, ‘시온’=주님의 천적 왕국, 고로 이 왕국의 선, 주님을 사랑함. 고로 최고 의미에서 주님 자신…
욜2:23-‘기뻐하라, 너 시온의 아들들아’. ‘시온의 아들들’=선으로부터의 진리들.
이60:15,16-여기서 시온과 예루살렘이 취급된다. 시온은 천적 교회의 내적 측면, 예루살렘은 천적 교회의 외적 측면.
이31:9-‘시온’=천적 교회, 고로 사랑의 선, 이 선은 이 교회 속에 있다.
예6:23-‘시온의 딸’=선이 있는 교회.
시20:2-‘시온’=사랑의 선이 있는 천국.
예4:31-‘시온의 딸’=천적 교회.
이3:24-‘시온의 딸’=천적 교회, 즉 주님을 사랑함 안에 있는 교회.
이4:5-‘시온의 산의 주택’=천국과 교회. (=천적 교회의 선)
시110:2-‘여호와께서는 시온으로부터 강한 홀을 보내실 것이다’=천적 선으로부터 힘, ‘시온’=선.
이33:5-‘여호와께서는 공정과 정의로 시온을 채우셨다.’ ‘시온’=천적 교회는 신성한 진리로부터 총명을, 신성한 선으로부터 지혜로 (채워졌다).
이62:1-‘시온을 위하여 나는 잠잠히 있지 않을 것이다.’ ‘시온’과 ‘예루살렘’에 의해 교회가 뜻해진다. ‘시온’은 천적 교회, ‘예루살렘’은 파생되는 영적 교회.
시2:6-‘시온, 내 거룩함의 산’=사랑의 선이 있는 천적 왕국. 이 왕국은 천국의 가장 깊은 곳, 교회의 가장 깊은 곳에 있다.
이4:3,4-‘시온에 남겨진 자…’. ‘시온’, 그리고 ‘예루살렘’에 의해 교회가 의미된다. ‘시온’은 사랑의 선 안에 있는 이들과 더불은 교회를, ‘예루살렘’은 이 선으로부터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과 더불은 교회가 의미된다. ‘시온의 딸들의 배설물을 씻어내는 것’=사랑의 선 안에 있는 교회 안의 이들을 악들로부터 순수하게 함.
이49:17,18-이런 것들이 시온에 관해서 말해진다, 이를 수단으로 천적 교회가 의미되어진다.
계14:1-‘시온산 위에 서있는 어린 양’=새 천국에 계신 주님…‘시온산’에 의해 주님을 사랑함 안에 있는 천국이 의미되어진다.
미4:13-‘시온의 딸’=천적 교회.
슥8:3-‘나는 시온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한가운데에 거주할 것이다.’ 여기서 ‘시온’에 의해 천적 교회가 뜻해진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의해 진리의 교리 측면에 관련된 교회가 뜻해진다.
이3:17-‘시온의 딸들’=천적 교회, 그 교회 속의 것들, 그러나 이 구절에서는 반대 의미이다.
이4:5-‘시온’=말씀에 관련한 교회.
이12:6-‘시온의 거주민’=’시온의 딸‘과 같은 의미, 즉 천적 교회, 즉 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 선 안에 있는 교회.
미4:13-‘일어나서 도리깨질하라, 오, 시온의 딸아’=교회 속에 있는 이들과 더불은 악을 흩뜨림…‘시온의 딸’=선을 애착함에 있는 교회.
이62:11-‘시온의 딸’=주님을 사랑함 안에 있는 교회.
이18:7-‘시온의 산’=교회, 여기로 그들은 초대되어진다.
시128:5-‘시온’=천국.
시133:3-‘시온의 산들’=천적 사랑으로부터의 선이 있는 곳.
시69:35-‘하느님께서 시온을 구하시고, 유다의 성읍들을 세우실 것이다’=천적 교회, 그리고 이 교회의 교리.
이52:7-‘시온’=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의 선이 있는 교회.
시147:12-‘예루살렘’=교리 속의 진리 측면에서의 교회. ‘시온’=사랑의 선들 측면에서의 교회.
시128:5-‘여호와께서 너희를 시온으로부터 축복하실 것이다’=사랑의 선으로부터 있는 축복. ‘시온’=사랑의 선 측면에서의 교회.
예31:12-‘시온의 높은 곳에서 노래하는 것’=내적 측면에서의 천적인 환희. 즉, 주님의 천적 왕국 안에 있는 것과 같다.
시147:12-‘여호와를 찬양하라, 오, 예루살렘아. 네 하느님을 찬양하라, 오, 시온아’…‘예루살렘’=교리 속의 진리들에 관련한 교회. 그리고 ‘시온’=사랑의 선들에 관련한 교회.
시2:6-‘나는 내 왕을 내 거룩함의 산, 시온 위에서 기름부웠다’=사랑의 선 안에 있는 천적 왕국. 이 왕국은 천국의 가장 깊은 곳, 교회의 가장 깊은 곳에 있다.
시133편-‘시온의 산들’=신성한 선. 그러므로 ‘시온의 산들 위에 내려오는 헤르몬의 이슬 같이’=진리와 선의 결합.
시51:18-‘당신의 흡족해하시는 기쁨 안에서 시온에 선을 베푸시고, 예루살렘의 성벽을 세워주소서’=교회를 사랑의 선 안으로 인도함으로, 그리고 교회를 교리의 진리들 안에서 가르침으로 교회를 회복하는 것.
이40:9-‘오, 시온아, 좋은 소식을 선포하라’=주님을 사랑함으로 선 안에 있는 교회.
시48:2-시온산, 그리고 예루살렘이 가능한한 천국의 형체에 따라 지어졌던바, ‘북쪽에 위치한 시온의 산, 위대한 왕의 성’에 의해서도 분명해진다.
슥9:9-‘드높여라, 시온의 딸이여, 외쳐라, 예루살렘의 딸이여’=주님의 강림, 그리고 그분에 의해 사랑의 선 안에, 이로부터 파생되는 교리의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과 더불어 교회를 세우심.
옵17절-‘시온의 산 안에 피신될 것이다’=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 구원이 있다.
시48:12-‘시온의 산이 즐거워한다’=천적 교회, 이 교회 안에 주님을 사랑함 안에 있는 이들이 있다.
애2:10-‘시온의 딸의 원로들’=교회에 있는 슬기롭고 총명한 자들, 추상적으로 지혜와 총명. ‘시온의 딸들’, 그리고 ‘예루살렘의 처녀들’=선과 진리의 애착 안에 있는 교회 사람들.
욜2:23-‘시온의 아들들’=진짜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 이를 통하여 그들은 사랑의 선을 가진다. ‘시온’=진짜 진리들을 통하여 주님을 사랑함의 선 안에 있는 천적 교회.
애5:11-‘시온’=천적 교회, 이 교회는 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 선 안에 있다, 그리고 이런 교회를 유대 교회가 표현했다.
시132:17-‘시온에서 나는 다윗의 뿔이 싹트게 만들 것이다’=천국과 교회 안에 그분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의 힘.
미4:8-‘시온의 딸’=천적 교회, 이 교회의 본질은 사랑의 선이다.
삼하6장-‘시온으로 궤를 가져옴’=세째 천국으로 승강함.
시102:14-‘시온의 돌들’=신성한 진리들. ‘시온, 이 위에서 여호와께서는 자비를 가지신다’에 의해 천적 사랑 안에 있는 교회가 뜻해진다.
이51:3-‘시온’=새로운 교회.
예4:31-‘시온의 딸’= 사랑의 선으로부터 교리 속의 진리들 안에 있는 교회.
시110:2-‘시온’=주님을 사랑함 안에 있는 교회, 이 교회가 천적 교회라 불리워진다.
이10:24-‘두려워 말라, 시온의 거주민아’=진리들은 천적 사랑과 이 사랑에서 파생된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과 더불어서는 악용되지 않는다는 것.
이29:8-‘시온의 산에 맞서 싸우는 모든 나라들의 군중’=교회의 선들에 맞서 싸우는 악의 거짓들…‘시온의 산’=사랑의 선 측면에서의 교회.
이33:20-‘시온을 쳐다보라, 정해진 우리의 절기를 (지키는) 성, 네 눈이 예루살렘, 조용한 주택을 보게 하라.’ ‘시온’과 ‘예루살렘’=사랑의 선, 교리 속의 진리 측면에 관련한 천국과 교회.
애2:4-‘시온의 딸’=사랑의 선으로부터 진리에 애착함 안에 있는 교회.
이49장-여기서 취급된 시온의 아들들=주님을 사랑함과 이로부터 진리들에 있는 이들.
시14:7, 53:6-‘시온’=주님으로부터 사랑의 선 안에 있는 이들.
이52:1-‘네 강함을 입어라, 오, 시온아. 네 아름다움의 옷을 입어라, 오 예루살렘, 거룩함의 성이여.’ ‘시온’에 의해 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 선 안에 있는 교회. 그리고 이 선으로부터의 진리가 ‘강함’에 의해 의미된다.
이52:2-‘시온의 딸’=주님으로부터 사랑의 선으로부터 진리에 애착함 안에 있는 이들.
시홀 (Sihor)
이23:3-그들 안에 내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이런 지식들은) ‘시홀의 씨(seed)’라 불리운다.
예2:18-‘시홀의 물들’=거꾸로 뒤집는 과학물들. (=거짓 과학물, 또는 거짓들을 확증하는 과학물들).
예2:18-‘네가 시홀의 물들을 마시겠다 하여 이집트의 길과 더불어 무엇을 하려 하느냐?=거짓들과 더불어 과학물을 거꾸로 되게 응용하여 꾀어내는 것. (=자연적 인간의 과학물을 도구로 영적인 것을 탐사하는 것).
신 (Sin)
출16:1-‘신 광야’=시험의 또 다른 상태…’신’=이 상태의 품질. 이 백성들이 빵과 고기가 없다고 불평해댐에 의해 의미된 시험의 상태로부터, 그리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의미된 위로받음의 상태로부터, ‘신’=진리로부터 있는 선임이 분명하다. ‘신’이 이집트의 성읍이었다는 것으로부터 신 광야라는 이름도 얻어졌다, 반대 의미에서 =거짓으로부터 있는 악.
출17:1-‘신의 광야로부터’=선에 관련된 시험의 상태…’신’=선의 측면에서의 시험의 상태와 품질.
겔30:15,16-‘이집트’, ‘신’, 그리고 ‘노’=자연적 인간 속에 있는 과학물(과학적 지식)과 오류들, 이것들은 말씀으로부터의 진리들을 통하여 개혁되고 거듭나는데에 장애물이다. 진리들이 알려졌는데, 이것을 생명 안에서 받지 않고, 고로 개혁되어질 수 없었다는 것이 ‘신은 진통으로 괴로워할 것이다, 그리고 (자궁을) 뚫고 나갈 (힘은) 있지 않을 것이다.
실로 (Shiloh)
* ‘실로’=주님.
* 주님은 그분이 진정시키고 모든 것을 조용해지게 만드신다는 사실로부터 ‘실로’라 불리우신다. ‘실로’는 원어에서 조용한 것을 뜻하는 단어로부터 파생되었다.
예41:5-‘실로로부터 사람들’=모독하는 이들, 그리고 모독들.
창49:10-‘실로가 올 때 까지’=주님의 강림, 그당시 평화의 고요함.
시78:60-‘실로의 주택(habitation)’=사랑의 선 안에 있는 교회.
실로암 (Siloam)
요9장-‘실로암 못’=글자로 있는 말씀.
* 실로암 못의 물들=말씀 속의 진리들.
십마 (Sibmah)
* 그들이 흠뻑 젖어든 거짓들이 ‘십마’에 의해 의미되어지고 있다.
이16:9-‘십마의 포도나무’=외적 교회 속의 사람들.
쓸쓸한 곳(solitude)
시107:4-진리에 무지한 이들을 놓고 ‘그들은 길의 쓸쓸한 곳에서 방황한다’라고 말해진다.
예12:10-‘쓸쓸한 곳의 광야’=교회의 황폐함.
이51:3-‘사막’, 그리고 ‘쓸쓸한 곳’=진리 측면에 결함이 있고 무지함.
이51:3-‘사막을 에덴 같이, 쓸쓸한 곳을 여호와의 동산 같이’=그들은 선과 진리를 풍부히 가질 것이다는 것. ‘쓸쓸한 곳’=진리가 없는 곳.
예2:6-‘쓸쓸하고 메마른 토지’=선을 비지각하는 상태.
겔29:12-‘쓸쓸하고 황폐함’=모든 진리와 모든 선이 결핍됨.
이1:7-‘너의 토지는 쓸쓸한 곳’=교회가 모든 진리 측면에서 황폐하였다.
아골 (Achor)
이65:10-‘아골 골짜기’=천적 교회의 외적인 것.
호2:15-‘아골 골짜기’=자연적 진리들.
아드마 (Admah)
*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끝에 다다른 거짓들과 악들.
아라랏 (Ararat)
* ‘아라랏 산’=발광(빛을 냄)..‘아라랏’=발광, 사실상 거듭나는 자의 발광. 이 발광은 시험 후 첫 발광이다. 이 첫 발광은 대체로 어둑하다.
아라비아 (Arabia)
예49:28-‘아라비아와 동쪽의 아들들’=천적인 재물들을 소유함, 또는 사랑으로부터 있는 이들의 소유물.
겔27:21-‘아라바아와 게달의 모든 왕자들, 이들은 무역상이었다.’ 거기서 두로가 취급되고 있다, 두로는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을 의미한다. ‘아라비아’는 그들의 지혜를 표시한다. ‘게달의 왕자들’은 그들의 총명을 표시한다.
예49:28-‘아라비아와 하솔의 왕국들’=반대 의미에서인바, 이들은 천적, 영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을 지녔으되 이 지식을 사용하는 목적이 자신과 세상에 의해 총명해지고 명성이 드높혀졌다는 것을 뒷받침하려는 것.
이21:13-‘아라비아’=천적인 것들 안에 있는 이들, 즉 신앙으로부터의 선 안에 있는 이들.
이60:6,7 겔27:21-‘게달’이 아라비아이다는 것은 이어지는 장소로부터 분명하다. 그리고 아라비아는 이스마엘의 아들로부터 게달이라 이름지어졌다는 것…
겔27:21-‘아라비아’는 영적 선을 표시한다. ‘게달의 왕자들’은 영적 진리들을 표시한다.
이13:19,20, 42:11, 예3:2, 시120:5-선 안에 있지 않기 때문에 진리 안에 있지 않은 이들이 ‘아라비아 사람’에 의해, 사막에 있는 ‘게달족’에 의해 표현되어져 있다.
이21:13-‘아라비아의 숲에서 밤을 보내는 것’=진리 측면이 황폐해지는 것.
예49:28,29-‘아라비아와 동쪽의 아들들’=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을 지닌 이들.
이60:7-‘아라비아의 양떼들’=내향의 인간으로부터의 모든 선들…’아라비아’=선이 있는 곳.
겔27:21-‘아라비아와 게달의 왕자들’=지식으로부터 선과 진리 안에 있는 이들.
이42:11-‘아라비아’=자연적 인간, 그이유가 사막에 있는 아랍은 자연적 인간이기 때문.
예2:10,11-‘아라비아’=선들 안에 있되 자연적 수준에서 사는 이들, 즉 자기들 만의 좀 광신적인 신앙에 따라 선 안에 사는 이들.
예49:32-‘아라비아와 하솔’=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들.
예49:28-동방 사람들이 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동쪽의 아들들’이라 불리웠다. 그리고 아라비아로부터 있었던 그들이 그렇게 불리웠다는 것…
예3:2-‘사막에 있는 아랍’=사막에서 타인을 죽이고 강탈하는 강도 같은 자.
이13:19-20-‘아라비아인’=사막에 사는 이들.
예49장-‘아라비아’=선에 대한 지식을 오용하는 이들.
왕상10:1-13, 마2:1-12-지혜가 아라비아에서 무성했다는 것은 시바 여왕의 솔로몬 방문, 세 ‘현자들’로부터 나타나고 있다.
아마겟돈 (Armageddon)
계16:16-‘아마겟돈’=거짓들이 진리들에 맞서 전투하는 상태, 그리고 새교회를 파괴하겠다는 의향이 지배욕과 걸출하다는 평을 듣기를 사랑함으로부터 돌출하고 있다.
아시아 (Asia)
계1:4-‘아시아에 있는…’=말씀으로부터 진리의 빛에 있는 이들에게…이런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태고 교회, 그리고 이 교회 이후 고대 교회가, 그리고 이 교회 이후 이스라엘 교회가 아시아에 있었기 때문, 또한 그들은 오랜 후에 이스라엘 교회가 지닌 말씀이기도 한 고대 말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
계1:11-‘그것을 교회들에게, 아시아에 있는 이들에 보내라’=말씀으로부터 진리의 빛에 있는 기독교회의 사람들을 위하여.
계1:4-‘아시아에…’=총명의 빛에 있는 이들. 천사들은 아시아가 언급될 때 남쪽을 지각한다…그리고 ‘남쪽’에 의해 총명으로부터의 밝은 빛이 의미되기에, 이 빛이 ‘아시아’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이것은 내(스베덴보리)가 영적 생각 안에 있을 때, 그리고 아시아에 관해 생각할 때는 언제든지 나로 위와 같은 의미를 지각하도록 나에게도 허락되어지곤 했다. 아시아에 관하여 이와같은 생각이 있는 까닭은 교회가 고대 시대 때에 거기에 있었기 때문…그리고 그러므로 고대 시대 때로부터 천국에 있는 이들은 총명의 빛에 있다. 아시아가 생각되어질 때, 빛은 천국의 남쪽 지역에서 흘러든다…이 구절에서의 아시아는 아시아에 있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총명의 영적 빛, 또는 같은 말로 선으로부터의 진리들에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다 가리켜하는 말이다….이런 사람들이 주님의 교회를 구성한다.
아싸 (Azzah)
창10:19-‘아싸(가자)’에 의해 선행에 관련하여 계시되어왔었던 것들.
아웬 (Aven)
호10:8-‘아웬의 높은 장소(산당)’=자아 사랑.
호10:8-‘아웬의 산당은 파괴되어질 것이다’=거짓의 원리들, 그리고 거기로부터 파생된 추론들, 이것들이 이 예배에 있는 이들 안에 있다, 그자체로만 보면 이는 내면의 우상인바, 파괴될 것이다. 그이유가 생활의 악과 교리의 거짓들에 있는 그들은 자신과 세상을 예배하기 때문.
아이 (Ai)
창12:8-바다 쪽으로 벧엘, 동쪽으로 아이를 가진 산=주님의 네 번째 상태.
창12:8-‘바다 쪽에 벧엘과 동쪽에 아이’=그럼에도 그분의 상태는 천적, 영적인 것들에 관련하여 희미하셨다는 것.
창12:8-‘아이’=세상적인 것에 관한 지식.
창13:3-‘벧엘과 아이 사이’=천적인 것과 세상적인 것으로부터의 지식.
예49:1-3-‘아이’=진리로부터의 교리.
여8:26-29-‘아이’=선에 관한 지식, 반대 의미에서 악을 확증함.
악갓 (Acad)
* 바벨을 보라
얍복 (Jabbok)
창32:22-‘그는 얍복 나루를 건넜다’=처음 은근히 심어짐(insinuation). 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얍복이 가나안 토지의 경계선에 있기 때문. 얍복 나루는 가나안 토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요르단 넘어에 위치하기 때문, 그리고 얍복은 르우벤과 갓 지파의 상속분의 경계선이었기도 했기 때문. ‘르우벤’은 이해함, 또는 교리 측면에서의 신앙, 그리고 ‘갓’은 신앙의 일을 표현했다. 이것은 거듭남의 단계 중 첫 번째에 해당된다. 즉 이를 통하여 거듭나고 있는 이들에게 선이 은근히 주입되어진다. 이로부터 ‘얍복 나루’는 처음 있는 은근히 심어짐(주입됨)을 의미한다.
* 야곱이 가나안의 토지로 들어갈 때 처음 건넌 곳이 얍복이었는바, 이는 진리에 애착함이 처음 은근히 주입됨이 의미된다.
양우리 (sheepfold)
* 주님의 교회가 ‘양우리’라 불리운다
요10:1-‘양우리 안으로 들어가는 것’=주님의 교회 안으로, 그리고 또한 천국 안으로
어디 (where)
창37:16-‘그들은 자기들의 양떼를 어디서 먹이는가?’=그들이 무슨 상태에서 있는지…‘어디’=상태, 모든 장소들=상태들이기 때문.
어디서 (whence)
창16:8-‘너는 어디에서 오느냐? 그리고 어디로 가느냐?’=상태에 관한 가르침.
계7:13-‘이들은 누구이며 어디서 왔느뇨?’=그들의 품질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의 품질은 어떠해왔었는지.
눅13:27-말씀을 읽어 가르침을 받는다 해도 가르침에 따른 생활이 없으면 쓸모없다는 것이 ‘나는 네가 어디로부터서인지 알지 못한다, 나로부터 떠나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언덕 (hill)
* mountain도 참조.
* ‘언덕들’=이웃을 향한 사랑.
이2:14-‘들려진 언덕들’=세상 사랑.
시114:4-(거듭난 후 영적 선으로부터의) 천적인 자연 평면이 ‘양떼의 자식 같이 뛰는 언덕들’에 의해 묘사되어 있다.
예16:16-‘모든 언덕에 …사냥꾼이…’=진리에 애착함 안에 있는 이들을 가르치는 것.
호4:13-거짓인 것을 예배함이 ‘언덕에서 향을 바치는 것’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이31:4-‘시온 산’=신성한 사랑으로부터의 선, 그리고 ‘언덕’=거기로부터의 신성한 진리.
창49:26-‘시대의 언덕들의 바램에’=천적 수준의 상호 사랑에. ‘시대의 언덕들’=상호 사랑으로부터 있는 것들.
출17:9-‘내일 나는 언덕의 머리에 서있다’=신성으로부터의 진리가 선행으로부터의 선과 결합함, 그리고 유입됨이 파생됨. 그리고 영적 의미에서는 선행(chatity).
예13:27-‘들판에 있는 언덕들’=교회에 있는 진리의 선들, 이것이 악용되었다.
예4:24-‘뒤집어 엎어진 언덕들’=이웃을 향한 사랑. 이런 의미를 갖는 이유는 천국에서 이웃을 향한 사랑 안에 있는 이들은 언덕 위에 거주하기 때문.
예12:12-‘낭비자(wasters)들이 당도한 광야에 있는 언덕들’=선행으로부터 있는 것들.
겔36:6-‘언덕들’=이웃을 향한 선행으로부터의 선들.
시72:3-‘정의에 있는 언덕들’=이웃을 향한 사랑.
욜3:18-‘언덕들이 젖을 흘릴 것이다’=이웃을 향한 선행의 선으로부터 영적 생명이 있다.
예17:2-‘높은 언덕들 위에’=선에 섞음질함과 진리를 왜곡함.
나1:5-‘언덕들’=이웃을 향한 사랑이 있는 교회. ‘언덕들’에 의해 이웃을 향한 사랑이 의미된다. 그이유가 이웃을 향한 사랑에 있는 천사들이 언덕 위에 거주하기 때문. 이웃을 향한 사랑 대신에 세상을 사랑함이 지배할 때, ‘언덕들이 녹아졌다’고 말해진다. 그이유가 언덕 위에서 천국의 모습을 자신들로 만드는 영인들과 더불어 영계에서 그렇게 되고 있기 때문.
이30:25-‘모두 각각의 드높아진 언덕 위에 있는 이들’=이웃을 향한 선행의 선 안에 있는 이들.
시68:15-‘이 산(바산)의 언덕들’=행동 중인 사랑.
신33:15-‘시대의 언덕들’=이웃을 향한 선행으로부터의 선들.
신33:15-‘시대의 언덕들로부터의 귀중한 것’=이웃을 향한 선행의 선 안에 있었던 고대 교회 안에 있었던 진짜(순수한) 진리들.
이40:12-천국들에서 모든 것들을 정돈 배열함이 ‘그는 저울로 언덕들의 무게를 달았다’에 의해 의미된다…‘산들’, ‘언덕들’=보다 높은 천국들…‘언덕들’=이웃을 향한 선행 안에 있는 이런저런 천국들.
겔34:26-‘여호와의 언덕을 빙둘러’=교리의 진리에 있어, 이로부터 선행의 선에도 있는 모든 이들.
에네글라임 (En-eglaim)
* 엔게디(Enge야)를 보라.
에담 (Etham)
출13:20-‘그들은 에담에 진영을 차렸다’=그들이 해방된 이후 두 번째 상태…이 두 번째 상태가 숙곳으로부터 에담으로의 여행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에덴 (Eden)
창2:8-‘에덴’=사랑…고로 ‘동쪽의 에덴에 동산’=주님으로부터 사랑을 통하여 흐르는 천적 인간의 총명.
* ‘동산이 여호와 하느님에 의해 동쪽의 에덴에 창설되었다’ 최고 의미에서,=주님 자신; 가장 깊은 의미에서, 또는 보편적 의미에서,=주님의 왕국, 그리고 인간이 천적 인간으로 만들어 질 때 놓여지는 천국.
창2:10-‘강이 에덴에서 밖으로 나왔다’=사랑으로부터의 지혜, 이 사랑은 에덴이다.
창2:15-‘여호와께서는 사람을 에덴의 동산에 두셨다.’ ‘에덴의 동산’에 의해 천적 인간에 부속되는 모든 것들이 의미되고 있다
겔31:16-‘지옥에 있는 에덴의 나무들’ 이곳의 ‘에덴의 나무들’=그들이 추론함을 수단으로 모독해버린 말씀으로부터의 지식들과 과학적 사실들.
창3:23-‘에덴의 동산 밖으로 내쫓는 것’=모든 총명과 지혜를 박탈하는 것.
창4:16-이전의 자리로부터 신앙을 옮기는 것이 ‘가인은 동쪽을 향하여 거주했다’에서 의미되고 있다.
이51:3-거듭나는 인간이 선에 관련하여질 경우, 그는 ‘에덴’에 비교된다.
창3:24-‘에덴의 동쪽’=천적 사랑 안에서 주님의 현존이 있는 곳.
이51:3-‘광야를 에덴 같이 놓을 것’= (선이 없는 곳이 선이 풍부해질 것) ‘에덴’=선이 풍부함.
겔31장-‘하느님의 동산 에덴’=주님으로부터 말씀을 통하여 있는 총명; 그 이유가 ‘에덴’, 동쪽과 마찬가지로=주님.
욜2:3-‘에덴의 동산’=선으로부터 진리를 이해함, 그리고 그로부터 지혜.
에베소 (Ephesus)
계1:11-‘에베소’ 등등에게=주님과 그분의 교회를 받는 모든 상태들.
계2:1-‘에베소의 천사에게 쓰거라’=생활의 선들이 아닌 교리의 진리들을 중시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그들에 관하여.
에브라데 (Ephrath)
* bethleham도 참조.
창35:16-‘에브라데에 당도하기전 아직 그 토지에 있을 때였다’=지금은 천적 평면 속의 영적인 것이었다…‘에브라데’=이전 상태에서 있는 천적 평면 속의 영적인 것.
창35:19-‘라헬이 죽었다, 그리고 에브라데의 길에서 매장되었다’=내면의 진리에 대한 이전의 애착이 끝남…‘에브라데’=이전 상태에서 있는 천적 평면 속의 영적인 것. 이로부터 명백한바, (이런 말들은)=내면의 진리에 대한 이전의 애착의 상태가 끝남, 그리고 ‘베들레헴’인 새로운 상태가 소생함. 순수한 의미에서, (이 말들은) 유전적인 악(the hereditary)이 의미된다, 이것이 시험을 수단으로 영원히 축출되어진다.
시132:6-태고 시간대로부터 ‘에브라데’는 천적 평면 속의 영적인 것이 의미되고 있다. 이로부터 후에, ‘베들레헴’이 에브라데와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로부터 말해지는바,) ’오, 우리는 에브라데에서 그분에 관해 들었다.‘
창48:7-‘에브라데에 오는 것’=이전 상태에서 천적 평면 속의 영적인 것.
창48:7-‘그리고 나는 그녀를 에브라데의 길에서 매장했다’=이 상태를 거절함.
창35:19-‘에브라데 베들레헴’=영적 평면의 교회(the Spiritual Church), 이 교회는 선으로부터의 진리들, 즉 선행으로부터 있는 신앙 안에 있다.
에스골 (Eshcol, 시내 또는 골짜기)
신1:24-‘에스골 강’, 거기에는 열매들과 포도덩굴이 있었다=내면적인 천국.
엔게디 (Engedi)
겔47:10-‘어부들이 에네글라임으로부터 엔게디에 까지 그물들을 펼칠 것이다’=신앙의 진리들에 관하여 자연적 인간들을 가르치는 이들.
엔미스밧 (En-Misphat)
창14:7-‘엔미스밧’은 ‘판결의 샘’, 또는 ‘가데스인 미스밧의 샘’인바=진리들에 관하여 다툼, 그리고 계속적으로 다툼.
엘림 (Elim)
* (두번째 시험 후에 영적 교회인을) 위로함이 취급된다, 이것이 백성들이 열 두 샘이 있고 칠십 그루의 종려나무가 있는 엘림에 진을 차렸다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출15:27-‘그들은 엘림에 왔다’=계발되는 상태와 애착하는 상태, 고로 시험 후 위로받는 상태. 이는 ‘엘림’의 의미로부터 분명하다.
출16:1-‘엘림과 시내(Sinai) 사이에’=계속인 것, 그리고 품질…거기 있는 샘과 종려나무로부터, ‘엘림’=시험 후 위로됨에 속해 있는 진리와 선.
여관 (inn)
창42:27-‘여관에서 자기 나귀에게 먹이를 주는 것’=그들이 자연 평면의 외면에 있는 과학물들을 곰곰이 생각하여 볼 때….‘여관’=자연 평면의 외면.
창43:21-‘우리가 여관에 당도해서, 우리의 자루들을 열었을 때’=자연 평면의 외면 안으로 자기 반성이 있음.
출4:24-‘길에 있는 여관에서 이였다’=야곱의 후손은 내적인 것 없이 외적인 것들 안에 있었다는 것.
눅10:34-‘그가 그를 여관 안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그들이 그를 간호해달라고 말했다’=그는 그를 말씀으로부터 있는 교회의 교리에서 가르침 받는 이들에게 데려왔다는 것.
눅2:7, 10:34, 22:11, 막14:14-이것이 행해진 이유는 ‘여관 안에 장소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해졌다. 그이유가 ‘여관’은 가르침이 있는 장소를 의미하기 때문. 그때 당시 유대인들은 말씀에 섞음질함으로 인해 오로지 거짓들에만 있었기에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장소가 없었다. 하여 거기에 참 진리가 묵을 장소가 없었다.
여리고 (Jericho)
* ‘여리고의 성벽들’=악들을 방어하는 거짓들.
왕하2:19-21=이것이 여리고에서 행해진 이유는 이 성이 요르단(강)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이다. 그리고 요르단에 의해 처음 진리들을 받는 교회 사람들과 더불은 것, 즉 자연 평면에서의 진리가 의미되어지고 있다.
왕하2;19-21-‘여리고의 물들’에 의해 글자 의미 안에 있는 진리들이 의미되고 있다.
* 여리고는 요르단 (강) 근처에 있는 성이었다. 그리고 요르단 강에 의해 교회에서 처음 있는 것, 그리고 말씀의 글자 의미 안에 있는 신성한 진리가 의미되기에, 그 성은 ‘종려나무의 성’이라 불리웠다.
눅10장-‘여리고’=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이 있는 교회…‘예루살렘으로부터 여리고로 내려가는 사람’=교회의 지식들과 진리들 안에서 가르침 받기를 원하는 이들.
여5:13-15, 6:24-…그리고 ‘여리고’=이 선인 바.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여리고 있었을 때, 그는 서있는 사람을 보았다…그가 여호수아에게 말했다, 네 신발을 네가 서있는 곳으로부터 네 발로부터 벗어라, 그곳은 거룩하기 때문에서이다.’ 그리고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리고를 공략한 후에’…그들은 거기서 발견한 은과 금, 그리고 놋쇠와 철 그릇들은 여호와의 집의 보물 안으로 주었다. 이런 사항들로부터 여리고가 ‘종려나무의 성’이라 불리운 이유가 분명해진다.
여6장-여리고 성에 의해 왜곡된 진리에 관한 지식들이 의미된다.
여6장-여리고 성에 의해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 안에서 가르침이 의미된다. 이 지식들을 수단으로 인간은 교회 안으로 받아들여진다. 그이유가 여리고는 요르단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성이었기 때문…그리고 ‘여리고’=가르침. 또한 여리고=생활 속의 선인 이유는 교리 속의 진리들은 생활의 선 안에 있지 않은 이들 외에는 가르쳐질 수 없었기 때문. 그러나 가나안의 토지가 우상 숭배 나라들에 의해 소유되었을 때, 그 토지에 있는 장소나 성들의 의미는 반대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그 결과 ‘여리고’는 선과 진리를 모독함을 의미하였다. 이런 것들로해서 이 성 자체는 거짓과 악에 관 교리를 의미하였다. 이 교리는 교회 속의 선들과 진리들을 악용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모독한 것이다. ‘여리고의 성벽’=이 교리를 보호하는 악으로부터의 거짓들. 그리고 ‘여리고의 거주민’=모독자. 그리고 이 모독자는 선괴 진리를 인정한 후에 지옥의 사랑으로부터 있는 바, 이 성은 불로 태워졌고, 그곳의 거주민은 저주받아졌고, 그것의 성벽은 허물어졌다.
왕상16:34-여리고를 재건하는 자는 저주받으리라는 것…=신성한 진리를 모독함…이 모독함이 아합왕 아래 거행되었다.
예루살렘 (Jerusalem)
* 새 예루살렘, 시온도 참조하라
* ‘예루살렘’=천국
* ‘거룩한 예루살렘’=보편적 측면에서의 주님의 왕국, 또는 각 인물일 경우, 각 사람 안에 있는 주님의 왕국.
욜3:6-‘예루살렘의 아들들’=신앙의 영적인 것들.
계21장-‘거룩한 예루살렘’=천국들과 지상에 있는 주님의 왕국.
겔16장-‘예루살렘’=고대 교회.
예6:6,11-‘예루살렘의 거리’=교회 안에서 통치하는 거짓들.
슥14:12-‘그들이 예루살렘에 맞서 싸울 것이다’=주님의 영적 왕국의 교회에 맞서,,,. 그리고 그 교회의 진리들에 맞서…
말3:4-‘예루살렘의 선물’=영적 사랑으로부터 예배함.
삼하2:1-11, 5:5, 왕상2:11-다윗이 헤브론에서 7년 6개월간 통치한 이후, 그는 예루살렘으로 갔고, 시온을 점령했다. 그리고 그때서야 처음 주님의 영적 왕국의 교회가 예루살렘에 의해, 주님의 천적 왕국의 교회가 시온에 의해 표현되기 시작했다.
눅21:20-‘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 의해 에워싸인 것을 볼 때’=주님의 교회.
말3:4-신앙으로부터 있는 예배가 ‘예루살렘의 식사 공물’이다.
미4:8-‘예루살렘의 딸의 왕국’=천적인 것으로부터의 영적 왕국.
예17:25-‘도성’, 또는 예루살렘=주님의 영적 왕국.
예3:17-‘예루살렘’=주님의 영적 왕국. 이 왕국은 에스겔서에서 ‘새 예루살렘’에 의해, 계시록에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예루살렘’에 의해 뜻해진다. 주님의 영적 왕국은 안에 선이 있는 신성한 진리를 제일의 것으로 삼는 곳이다…그러므로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왕좌’라는 불리는 이유도 분명해진다.
계21:11-‘거룩한 성 예루살렘’=천국들에 있는 주님의 영적 왕국, 그리고 땅에서는 그분의 영적 교회, 이에 관해 ‘영광’이라 단언되고 있다.
단9:25-‘예루살렘을 회복하고 짓는 것’…여기서의 ‘예루살렘’=새로운 교회.
마5:35-‘예루살렘을 두고 맹세하는 것’=말씀 속의 진리로부터의 교리. 그이유가 ‘예루살렘’ 폭넓은 의미에서=주님의 교회. 그러나 ‘땅’이 언급되어질 때, 땅=교회, 그다음 ‘예루살렘’=교회 속의 교리, 고로 말씀으로부터 있는 신성한 진리로부터의 교리. 그러므로 ‘큰 하느님의 도성’이라 불리운다.
예3:17-‘예루살렘’, 여기에 나라들이 모일 것이다=이 새로운 교회.
애1:8-‘예루살렘’=악으로부터 거짓들 안에 있는 교회.
계21장-‘예루살렘’=주님의 교회, 더 걸출한 의미에서천국.
겔16장-‘예루살렘’=이스라엘 교회와 유대 교회.
* 마24장, 막13장, 눅21장은 성전과 예루살렘의 파괴를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 교회 상태의 계속적인 변화를 묘사하고 있다…
눅18:31-‘보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여기서의 ‘예루살렘’=유대 교회.
겔3장-‘예루살렘’=안에 선들이 없고 악들이 있는 교회.
시76:2-여기서 예루살렘이 ‘살렘’이라 불리운다, 그이유는 ‘살렘’이 평화를 의미하기 때문. 이로부터 예루살렘 또한 이름되어졌다.
여10:1-‘예루살렘의 왕’=거짓들로해서 완전하게 황폐된 교회 속의 진리.
이40:9-‘예루살렘, 복음을 전하는 자’=교리의 진리들 안에서 말씀으로부터 있는 교회.
시122:3-‘예루살렘은 그자체 함께 응집하는 도성으로서 건설되어져 있다’=교리 측면에서의 교회…교리속의 모든 것들이 동의함 안에서 만장 일치 할 때, 그리고 그것들이 시작과 끝에서 주님을 중시하고 그분으로부터 그분을 사랑하는 상호 관계에 있을 때.
슥12:6-이 교회는 악들과 거짓들의 침투로부터 안전해 있을 것임이 ‘예루살렘은 예루살렘 그자체 아래 거주할 것이다’에서 의미되어 있다.
여18:11-28-베냐민…=자연적 인간 안에서 선과 결합된 진리인바, 그러므로 가나안 토지에서 그에게 할당된 토지는 유다와 요셉의 아들들 사이에 있었다. 그리고 또한 이 지파에게 그 당시 여부스족이 거주했던 곳인 예루살렘이 상속분으로 할양되었다. 하여 베냐민의 아들들은 후에 이 성을 점령한 유다인들과 함께 거기서 거주했다…예루살렘이 이 지파에게 할양된 이유는 ‘예루살렘’이 교리에 관련하여, 예배에 관련하여 교회를 의미했기 때문. 그리고 교회의 모든 교리는 선과 결합된 진리로부터의 교리이기 때문. 그리고 교리에 의거한 모든 예배가 자연적 인간을 수단으로 결과 되어진다.
이22:10-‘예루살렘의 집들을 세는 것’=진리로부터의 선들을 왜곡하는 것.
단9:25-‘예루살렘을 회복하고 건설하는 것’=주님에 의해 건립될 교회.
이51:17-악의 거짓들 안으로 모르는 사이에 빠져버린 교회의 회복이 ‘깨어라, 깨어라, 오 예루살렘아…’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예루살렘’=교리 측면에서의 교회.
미4:2-‘예루살렘’에 의해 천국과 이 신성한 진리로부터 있는 교리 측면에서의 교회가 뜻해진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강론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나갈 것이다’고 말해진다.
이66:20-‘내 거룩함, 예루살렘의 산에게’=선행이 통치하는 교회.
오빌 (Ophir)
창10:29-‘오빌’, 욕단의 아들=의식(예식).
* ‘오빌로부터의 금’=영적인 선.
시45:9-‘오빌의 최상의 금에서’=사랑의 선에서 (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의 선.) (=신성한 선.)
요단 (Jordan)
여1:11, 3:2-그래서 여호수아는 ‘삼일 째’ 날에 요단을 건너게 되었다…요단을 건넘은 거듭나는 자를 주님의 왕국에 받아들임을 표현했다; 그리고 삼일 째 날에 그들을 받아들인 여호수아는 주님 자신을 표현했다.
창13:10-‘그는 요단의 모든 평야를 보았다’=외적 인간에 있는 일련의 선들과 진리들…’요단 가까이 있는 평야’, 내적 의미에서,=외적 인간의 모든 선들과 진리들에 관련한 외적 인간. 요단 평야=이것들인 이유는 요단은 가나안의 경계였다는 사실로부터 파생된다.
시42:6-‘나는 너를 요단의 토지로부터 기억할 것이다.’ ‘요단의 토지’=낮은 데 있는 것; 그리고 천국적인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것. 마치 인간의 외적인 것들이 그의 내적인 것들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과 같다.
예12:5-…그리고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을 계속 공격하는바, 이것은 예언적 말씀에서 공식화 되었는데, 예를 들면 요단의 ‘교만’, 또는 ‘의기양양’ 같은 것이 있다. ‘요단의 의기양양’=외적 인간 속에 있는 것들, 이것들은 봉기해 일어나 내적 인간 위에서 지배하려든다.
예49:19-‘요단의 교만’=내적 인간의 선들과 진리들에 맞서는 외적 인간의 득의만만.
민34:12, 여15:5-요단이 가나안 토지의 경계였다는 것은 이 구절로부터도 분명하다. 그리고 이것은 동쪽을 향하여는 유다의 경계였다.
창13:11-‘롯은 요단의 모든 평야를 선택했다’=외적 인간, 그는 이와 같았다는 것. ‘요단 평야’=외적 인간.
창32:10-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는데, 지금 나는 두 진영들 안에 있다’=거의 없는 상태에서 대단히 많아졌다…’요단’=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들 안으로 시작함.
시114:5-‘요단은 뒤쪽을 향하여 그 자체 돌아섰다’…’요단’=선에 관한 지식들, 이 지식들은 사랑의 선이 지배권을 쥘 때 ‘그 자체 뒤쪽으로 돌아 선다’라고 말해진다; 그이유가 이때 지식들은 이 선으로부터 관심되어지기 때문.
사5:17-‘길르앗은 요단 건너에 거주한다’…’요르단 건너에 거주하는 것’=시작에서 있는 것들, 고로 주님의 교회와 왕국의 처음과 마지막 것들.
왕하2:8,14-이러한 것들이 또한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가나안의 토지로 진입할 때 표현되어졌다; 요단이 갈라지고 마른땅을 밟고 건넘에 의해 악들과 거짓들의 제거, 그리고 선들과 진리들에 있는 이들의 입장이 허가됨이 의미되어졌다. 마찬가지로 엘리야가 승천할 때, 요단의 물을 가른 것에 의해서도, 엘리야의 예언 직분을 승계한 엘리사에 의해서도 요단의 물은 갈라졌다.
겔47:18-‘요단’=주님의 왕국과 교회 속의 처음과 마지막인 것들, 이와같은 것들은 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들이다; 그이유가 인간은 이것들을 수단으로 소개되어진다; 그러므로 또한 요단은 새로운 토지, 또는 거룩한 토지의 경계로서 언급되어진다.
창50:10-‘요단 건너에 있는…’=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 쪽에서 시작하고 있는 것. ‘요단’=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 쪽에서 시작, 고로 처음은 입구 측면에 관련한 주님의 왕국과 교회, 마지막은 출구 측면에서의 주님의 왕국과 교회.
마4:15, 이9:1-교회의 설립과 이방인들의 개혁이 이런 말들에 의해 뜻해진다는 것은 ‘요단 건너편, 이방인들의 갈릴리’라고 말해진 사실로부터도 분명하다.
사5:17-므낫세 지파가 적들에 맞서 싸우지 아니했는바…‘길르앗 왜 너는 요단 건너에 거주하는가?’라고 말해지고 있다; 이를 수단으로 왜 너는 자연적 인간 속에 있는 외적인 것들 안에서만 오로지 살고 있는가?가 의미되고 있다. 교회의 외적인 것이 요단 건너 지역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그리고 교회의 내적인 것은 요단 안쪽 지역에 의해 의미된다. 교회의 외적인 것은 영적 측면 보다 자연적 측면에 있는 이들과 더불어 있다.
슥11:3-‘버려진채 놓여 있는 요단의 의기양양’=받아들이는 신성한 진리 측면에 관련한 교회.
우르 (Ur)
창11:28-‘갈대아의 우르’=거짓들이 안에 있는 외적 예배.
창15:7-‘나는 너를 갈대아의 우르로부터 데려왔다’=외적 인간의 첫 상태. 주님께서 탄생 때에 어머니쪽으로부터 받은 것이 여기서 ‘갈대아의 우르’에 의해 의미되어지고 있다.
우바스 (Uphaz)
단10:5-‘우바스의 금’=사랑으로부터 있는 지혜의 선.
예10:9-‘우바스로부터 금’=외적 형체에서 나타나는 선, 그 이유는 말씀으로부터이기 때문. (=글자 의미에서 있는 말씀으로부터의 선)
위치 (station)
창40:13-‘당신의 위치로 당신을 회복되게 하는 것’=(이런 것들이) 질서 안으로 환원되어 질 것, 하여 그것들이 마지막 장소에 있을 런지 모른다.
유대 (Judea)
마24:16-‘유대에 있는 이들은 산으로 도망하라.’ ‘유대’=교회. 참으로 천적 교회.
마24:16-주님을 사랑함 안에 있는 이들인 첫째가는 교회 사람이 산으로 도망하라는 이들로 특별하게 의미되어진다.
마24:16-말씀의 내적 의미에서 ‘유대’가 유대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씀의 많은 대목들로부터 분명해질 것이다. 유대는 말씀에서 ‘유다의 토지’, 그리고 ‘가나안의 토지’가 언급되는 횟수에 비해 그렇게 자주 언급된 편은 아니나 모두 주님의 왕국, 결과적으로 교회가 의미되어진다. 그런 이유는 ‘유다’, 또는 유대 나라에 의해 주님의 천적 왕국이 표현되기 때문이다.
눅21:21-‘유대’에 의해 교회가 뜻해진다.
*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라’=주님의 교회 속에 있는 이들은 사랑의 선에 남아있어야 한다는 것. ‘유대’에 의해 주님의 교회가 표현되어 있다.
유브라데 (Euphrates)
창2:14-‘브라데’ 또는 ‘유브라데’=지식, 이는 최말단 또는 경계(선)이다.
창15:18-유브라데는 아시리아 방향의 경계선이고, 이스라엘이 거기까지 지배했었듯이, 기억 속의 과학적 사실들은 천적, 영적 인간의 총명과 지혜의 경계선이다. 이와 같은 의미가 ‘네 씨에게 나는 이 토지, 이집트의 강으로부터 큰 강 유브라데 까지의 (토지를) 줄 것이다’에도 담겨 있다. 이 두 경계선들은 비슷한 것들을 의미하고 있다.
창15:18-‘이집트의 강으로부터 큰 강 브라데 까지’=영적인 것들과 천적인 것들의 확장; ‘이집트의 강’=영적인 것들의 확장; ‘브라데 강’=천적인 것들의 확장.
창31:21-‘그는 강을 건넜다’=결합이 있는 (곳의) 상태; (그이유가) ‘강’ 여기서의 경우=결합, 즉 신성과 결합. 여기서 이 강이 이런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이것은 저쪽에서의 경우 가나안 토지의 경계 였기 때문; 그리고 가나안의 모든 경계들은 마지막, 또는 최말단의 것, 그리고 처음의 것을 표현했다… 야곱이 지금 가나안으로 들어가고 있는바, 이 강은 첫 경계였다. 결과적으로 보면 최고의 의미에서 신성과의 결합.
창15:18-(태고 교회의 시기에서) 가나안은 이집트의 강으로부터 유브라데 강 까지의 모든 토지 였다.
출23:31-‘광야로부터 강에 이르기 까지’=감각적인 것의 즐거움으로부터 합리성의 선과 진리에 이르기 까지…유브라데, 여기서 말하는 ‘강’=합리성의 선과 진리. 유브라데가 이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아시리아가 거기 있었기 때문, 아시리아=합리성. ‘유브라데’가 가지는 이 의미는 ‘광야로부터 유브라데 까지’ 또는 ‘이집트 강으로부터 유브라데 까지’에서도 동일하게 지니고 있다.
계9:14-‘큰 강 유브라데에서 묶여 있는 네 천사들을 풀어라’=외적인 속박들이 그들로부터 제거 될 것이다, 이는 그들의 마음 속의 내면들이 나타나게 하려 해서이다…‘유브라데’, 말씀에서=인간의 마음 속의 내면적인 것들, 이는 합리적인 것들이라 불리워는데, 이것은 선으로부터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과 더불어서는 지혜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악으로부터 거짓들 안에 있는 이들과 더불어서는 사악한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이것들이 말씀에서 ‘큰 강 유브라데’에 의해 의미되는데, 그이유는 이 강이 아시리아로부터 가나안의 토지를 나뉘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나안의 토지‘=교회; 그리고 아시리아=교회의 합리성; 그러므로 경계를 지어주는 강=가나안 쪽이든 아시리아 쪽에서 이든 공히 합리적인 것이라 불리는 마음 속의 내면의 것들.
계16:12-‘여섯 천사가 그의 유리병을 큰 강 유브라데 위에 쏟았다’=그들이 믿음 만으로 의로워짐에서 자신들을 확증하는 수단이 된 그들의 내면적인 것들 안으로 주님의 유입이 있다를 의미한다. ‘큰 강 유브라데’=내적 추론들; 여기서, 이 교회의 내적 추론들, 이를 수단으로 그들은 믿음 만으로 의로워짐을 확증한다.
예51:63-‘유브라데 한가운데’=바다와 유사한 의미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이유는 유브라데는 바벨이 있었던 곳, 그리고 그것이 가나안의 토지로부터 분리되게 했던 아시리아의 경계였기 때문.
예13장-‘유브라데’=선에 관련한 교회의 모든 것; 여기서의 경우 악에 관련한 교회의 모든 것.
슥10:11-‘강(즉 유브라데)의 모든 깊음들이 마를 것이다’=자아 총명으로부터의 날카로운 추론들이 멸해질 것이다.
이8:7-‘앗수르’=합리성; 여기서, 뒤집혀진 합리성. 이로부터 유브라데 이었던 그것의 ‘강’은 추론함을 뜻한다.
예46:6-‘유브라데 강’=거짓 추론들.
계16:12-유브라데 강이 마름.
자리 (seat)
시89:36-‘그분의 자리’=그분의 왕국.
창41:40-‘자리’, 또는 왕좌=자연 평면. 그이유가 자리에 앉은 자가 영적 평면으로부터의 천적인 것을 뜻할 때 ‘자리’는 자연 평면을 뜻하게 되기 때문.
자비석 (mercy-seat)
* 속죄, 속죄소(propitiatory)를 보라
작은 길 (path)
이11:16-‘남은 백성을 위한 큰길’=질서 안으로 배열함.
창49:17-‘길’, 그리고 ‘작은 길’=진리.
* 단어 ‘사다리’, 원어에서 ‘작은 길’, 또는 길을 뜻하는 단어로부터 파생되었다. 이는 진리를 서술한다.
이33:8-‘큰 길들이 황폐되어 있다’=진리가 더 이상 어느 곳에도 없다.
이58:12-‘거주하도록 작은 길들을 원상복귀하는 자’=선으로부터 있는 진리들. ‘작은 길들’, 또는 ‘길들’=진리들. ‘거주하는 것’은 선을 서술한다.
창49:17-‘작은 길 위의 독사’=선에 관하여 진리로부터 추론하는 것. ‘작은 길’=진리.
호2:6-‘길들’, ‘작은 길들’=진리들.
예31:21-‘네 심정을 네가 가는 길, 큰 길에 놓는다’=삶을 인도하는 진리에 애착함.
호2:6-‘그녀는 네 작은 길들을 찾지 못할 것이다’=어느 진리도 더 이상 보여질 수 없다.
이33:8-‘큰 길이 황폐되어, 그 길을 따라 지나가는 자가 끊겼다’=천국으로 인도하는 선들과 진리들이 더 이상 있지 않다는 것. (큰 길이 황폐됨은 더 이상 생활의 선이 없다는 것. 그리고 ‘그 길을 지나가는 자가 끊겼다’는 신앙의 진리가 더 이상 없다는 것.)
이49:11-‘길을 위해 놓이는 것’=진리들 안에 있는 것. 그리고 ‘높혀질 큰 길’=진짜 진리들 안에 있는 것. 그이유가 ‘길들’, 그리고 ‘큰 길들’=진리들, 이는 선으로부터 ‘높혀짐, exalted’이라고 말해진다. 그리고 선으로부터 있는 진리들은 진짜(genuine) 진리들이다.
이30:11-‘길’과 ‘작은 길’=교회의 진리와 선.
이3:12-‘작은 길의 길을 파괴하는 것’=인도하는 진리가 알려지지 않음.
사5:6-황무함이 묘사되어 있다. 즉 ‘길들이 끊겼다. 작은 길로 가던 이들의 구부러진 길로 갔다.’ ‘길들’, 그리고 ‘작은 길들’에 의해 인도하는 교리 속의 진리들이 의미되어져 있다. 그리고 ‘구부러진 길로 가는 것’=진리들로부터 탈선함.
이2:3-그들은 진리들 안에서 가르쳐질 것, 이를 수단으로 그들이 인도될 것이다는 것이 ‘그분은 우리에게 그분의 길들에 관하여 가르치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의 길들에서 갈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길들’=진리들. 그리고 ‘작은 길들’=생활 속의 가르침들.
애3:9-자신의 총명으로부터의 거짓들이 진리의 유입을 돌려 거절한다는 것이 ‘그는 다듬은 돌 가지고 나의 길들에 울타리를 쳤다. 그는 내 길들을 뒤집어 엎었다’에서 의미되어져 있다. 하느님의 ‘길’, 그리고 ‘작은 길’은 선으로 인도하는 진리를 의미한다.
장소 (place)
* situation, space도 참조.
창24:25-‘방(room)=상태
마24:15-‘거룩한 장소에 서있다’=선과 진리의 모든 것에서 황폐됨. ‘거룩한 장소’=사랑과 신앙의 상태.
창28:16-‘여호와께서 이 장소에 계신다’=신성이 이 상태 안에 있다.
출3:5-‘네가 서있는 장소’=여전히 그가 있는 상태.
출3:8-‘가나안족과 헷족의 장소로’=거짓들로부터의 악들에 의해 점령된 영역.
출15:7-‘당신이 거주하실 장소에’=신성으로부터 있는 선의 상태. 그이유는 천국이 뜻해지기 때문.
출23:20-‘내가 준비한 장소로 너를 데려오는 것’=사랑으로부터의 선과 신앙으로부터의 선에 따라 천국 안으로 받아들임.
계6:14-‘그들의 장소로부터 이동되어지는 것’=물러나는 것.
계12:6-‘하느님이 예비한 장소’=그당시 이 교회의 상태.
계12:8-‘그들의 장소는 천국 안에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았다’=그들은 천국과 결합됨으로부터 떼어내 내던져졌다.
나3:17-‘그들의 장소는 알려져 있지 않다’=(진리와 선이) 남아있지 않다.
이60:13-‘주님의 발이 있는 장소’=천국과 교회의 모든 것들. 그리고 세부적 의미에서는 교회.
예42:18-‘너는 이 장소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교회의 어떤 것도 더 이상 그들과 함께 있지 않다.
…주위에 (around)
창23:18-‘모든 그것의 경계선 주위에…’=외면의 지식들…’경계’ 그리고 ‘주위’=외면에 있는 여러 가지 것들.
창23:18, 여6:1-7, 예50:14,15-내면들이 어둠인 이들과 더불어서 그들의 외면들은 마치 환한 듯 나타난다….그러나 그들 주위에 있던 여러 가지 것들이 파괴될 때, 그들은 곤두박질치듯 지옥으로 운반되어진다. 이런 모습이 궤를 지닌 성직자가 성 주위를 돈 후 성벽이 무너지는 광경에서, 그리고 예레미야서에서는 ‘네 자신을 바빌론에 맞서 주위에 배열하고 활을 구부린 모든 자들, 주위에서 그녀에게 소리치는 모든 이들, 그녀는 그녀의 손에 주어졌다, 그녀의 기초들은 무너졌다, 그녀의 벽들은 파괴되어졌다’로 표현되어졌다.
출2:3-‘그녀는 골풀 상자(ark, coffer)를 가져왔다’=주위에 있음을 뜻하는 것, 그러나 여전히 진리로부터 파생된 것…’상자, 또는 작은 궤’=주위에 있는 어떤 것, 또는 안의 것을 에워싸는 어떤 것.
출19:16-‘극도로 강력한 나팔 소리가 있었다’=천국 둘레에 있는 천국의 상태.
계5:11-말씀에서 ‘주위에’에 의해 더 먼 경계에 있는 것, 고로 더 먼 것이 뜻해진다. 그러나 천국이 취급되는 곳에서는 이는 총명과 지혜의 수준에서 더 먼 것, 고로 아래쪽에 있는 것이 뜻해진다.
계7:11-‘둘러 섬’=결합.
지면 (ground)
* 거듭나기 전의 인간은 선과 진리의 어떤 것도 뿌려지지 않은 ‘지면’이라고도 불리운다.
창2:5-‘지면’ 또는 ‘들판’=그가 천적인 수준이 되어 갈 때의 외적 인간.
창3:17-‘지면이 너를 위하여 저주 된다’=그의 삶의 상태는 비참해질 것이다는 것.
창3:19-‘네가 취해졌었던 지면으로 돌아가는 것’=그가 거듭나기 전과 같은 외적 인간으로…
창3:23-‘네가 취해졌었던 지면을 경작하는 것’=거듭나기 전 그가 소유했었던 것인 물질적으로 되는 것.
창4:11-곡해한 교리가 ‘지면으로부터 저주됨’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창4:2-‘지면의 경작자(농부)’=선행의 결핍, 사랑으로부터 분리된 신앙으로부터의 많은 것, 이는 제아무리 많아도 신앙이 없다…물질적이고 지상의 것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들이 ‘지면을 경작한다’라고 말해지는데, 이는 사람이 ‘지면을 경작하도록’ 에덴으로부터 내보내지는 구절로부터 명백해진다.
창4:3-‘지면의 열매’=선행 없는 신앙의 일들.
창4:12-‘지면을 경작하는 것’=이 (교회의) 분파, 또는 이교를 경작하는 것.
창4:14-‘지면의 얼굴 위로부터 내던져짐’=교회의 모든 진리로부터 분리되어지는 것. ‘지면’ 순수한 의미에서=교회, 또는 교인, 고로 교회가 공언하는 것 모두…그러므로 신앙에 관한 잘못 공언, 교파에 관한 잘못 공언, 이교에 관한 잘못 공언을 만들어내는 자 또한 ‘지면’이라 불린다.
창6:1-‘지면의 얼굴들’=교회가 있었던 모든 넓은 지면. 그 이유가 말씀을 꼼꼼히 살피면, ‘지면’은 ‘땅, earth’으로부터 구별되고 있다. ‘지면’이 씌어진 곳은 대부분 교회, 또는 교회에 관련된 어떤 것이 의미되고 있다; 이로부터 즉 지면으로부터 사람, 또는 아담의 이름이 오고 있다.
이7:16-‘지면은 사막이 될 것이다’=교회, 또는 신앙 속의 참 교리.
창6:7-‘지면의 얼굴 위로부터 내가 창조한 사람을…’=태고 교회의 후손들로부터의 인간…‘지면’=교회가 있는 곳.
창8:8-‘지면의 얼굴들’=교인과 더불어 있는 것들; 그리고 ‘지면’이 언급된 이유는 인간이 교회가 되어감에 있어 첫 상태이기 때문…신앙에 관련된 선과 진리가 잉태되어질 수 있을 때, 그 인간은 ‘지면’이라 불리워진다. 이 상태 이전의 경우 그 인간은 창세기 1장에서와 같이 ‘땅’이라 불리워진다, 이 첫 장에서, 인간이 천적 인간 이전 인 바, ‘땅’이 그 인간에 관련해 서술되지만, 2장의 경우, 그가 천적 인간이기에 그 인간에 관련해서는 ‘지면’ 또는 ‘들판’이 서술되고 있다. 본 8장의 경우도 똑같은 바, ‘땅’과 ‘지면’이라는 단어 만으로도 내적 의미가 보여질런지 모른다. 즉 ‘지면’이 보편적 의미에서 교회를 의미하고 교인 역시 의미하는데 그 이유는 각 교인은 (작은) 교회이기 때문이다.
창8:13-‘지면의 얼굴이 말라졌다’=거듭남; ‘지면’=교인. 거짓들이 다 사라져서 더 이상 사라질 것이 없을 때, 지면의 얼굴들이 말리워졌다고 말해진다.
창9:2-‘지면이 기게 만드는 모든 것’=선에 애착함들, 이는 지면으로부터 기거나 생산되는 것들로부터 있는 지면의 의미로부터 명백하다. 일반적으로 ‘지면’=교회 그리고 교회 속에 있는 무엇이든; 그리고 여기서는 주님에 의해 내적인 것을 통하여 외적인 것 안에서 생산되어지는 것은 무엇이든. 지면 자체는 외적 인간 안에, 그의 애착 안에, 그의 기억 안에 있다; 그 이유가 이것은 마치 인간이 선들을 생산한 것 처럼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이 본문에서, ‘지면이 기도록 만드는 모든 것’이라 말해진다. 그러나 이것은 외관일 뿐, 이것은 주님에 의해 내적 인간을 통하여 있어진다…
창9:20-‘노아는 지면의 사람이 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신앙 속의 교리적인 것들로부터 훈육되어진다. ‘지면’=교인, 똑같은 것으로 교회…교회가 ‘지면’이라 불리는 것은 지면이 신앙 속에 있는 씨들, 또는 신앙 속의 선들과 진리들을 받는다는 사실로부터 이다. ‘지면’은 ‘땅’과 구별되어진다. 땅 역시=교회이다. 마치 신앙이 선행으로부터 있는 것과 같다. 선행이 신앙을 담는 그릇이듯, 땅은 지면을 담는 그릇이다. 고로 교회가 일반적으로 취급될 경우 이 교회는 ‘땅’이라 불리우고, 특별한 측면에서 교회가 취급되면 ‘지면’이라 불리워진다.
창12:3-‘네 안에서 지면의 모든 가족들이 복될 것이다’=모든 선들과 진리들은 주님으로부터 있다는 것…이것의 존재가 ‘지면의 모든 가족들’이라 말하는데, 그이유는 교회 속에 있는 것은 사랑으로부터 신앙 속에 있는 모든 선들과 진리들이기 때문이다. ‘지면’에 의해 교회가 의미된다는 것, 그러므로 교회 속에 있는 신앙도 의미하고 있다.
이7:16-‘저버린 지면’=그당시 신앙이 없는 신앙.
창19:25-‘지면의 어린 싹’=교회 속에 있는 모든 것…‘지면’=교회
창28:14-‘네 안에서 지면의 모든 가족들이 복있을 것이다’=교리의 선으로부터의 모든 진리들이 선과 결합할 것이다…‘지면’=교회 속에 있는 것, 결과적으로 외적 인간 안에 있는 선과 진리에 관한 교리.
창28:15-‘나는 너를 이 지면으로 도로 데려다 놓을 것이다’=신성한 교리와 결합함…‘지면’=자연적 인간에 있는 선과 진리에 관한 교리; 여기서는 신성한 교리.
창47:18-‘우리의 몸과 지면 외에는…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은 없다’=선과 진리를 담을 용기들이 완전하게 황폐되었다…‘지면’=진리의 그릇…그 이유는 지면이 씨를 받기 때문이다…순수한 의미에서, ‘몸’=사랑으로부터의 선; 그리고 ‘지면’=신앙으로부터의 진리.
창47:19-‘그리고 지면은 황폐해지지 않을 것이다’=마음은 교회의 과학적 사실로 경작되어 질 것이다. ‘지면’=진리를 담는 용기; 용기 자체는 마음(mind)이다; 여기서의 경우 자연적 마음, 그이유가 이 지면이 이집트의 지면이기 때문…이집트의 지면=특별한 측면에서 자연적 마음.
창47:22-‘그는 성직자들의 지면 만은 사지 않았다’=자연으로부터의 내적인 것은 선을 받는 자질을 스스로 포획했다, 그이유는 그것들은 자체로부터 있기 때문…‘지면’=진리를 담는 그릇; 여기서의 경우 선을 받는 자질; 그이유가 자질은 수용력이기 때문…선을 받는 자질이 자연으로부터 있다는 것이 지면이 이집트에 있음에서 의미되어져 있다.
창47:23-‘보라 나는 바로를 위해 오늘 너희와 너희 지면을 샀다’=그는 이런 것들을 자신을 위해 포획했다는 것, 그리고 그것들을 내적인 것의 후원 아래 있었던 자연에 종속시켰다는 것…‘지면’= 진리의 저장소.
출3:5-‘네가 서있는 장소는 거룩함의 지면이기 때문에…’=이와 달리해서는 신성이 들어 갈 수 없다…‘거룩함의 지면’=주님으로부터 진행되는 거룩함.
출10:6-‘그들이 지면 위에 있었던 날로부터 오늘 까지’= 그당시 있었던 교회에는 이와 같은 거짓이 거기에 있지 않았다는 것…‘지면’=교회.
출20:24-‘너는 나에게 지면의 제단을 만들 것이다’=선으로부터 있는 예배의 표현…‘지면’=선. 지면이 선인 이유는 ‘지면’이 선 안에 있는 교회를 의미하기 때문. 이런고로 아담은 지면으로부터 그렇게 불리웠다; 그이유가 그를 수단으로 천적 교회의 사람, 또는 선 안에 있는 교회가 의미되었기 때문이다…선으로부터 있는 예배가 지면의 제단에 의해 의미되었다; 그리고 진리로부터 있는 예배는 돌들의 제단에 의해 의미되었다.
지역 (quarter)
* broad place도 보라.
눅14:21-‘거리들과 지역들로 가라’=진짜 진리, 또는 선으로부터 빛을 내는 진리가 어디에 있든 찾아나서라는 것.
예5:1-‘거리들을 이리저리 달려 다니고 예루살렘의 지역들에서 찾아보라’=이 교회의 교리적인 것들을 보고 조사하는 것.
사5:6-황무해짐이 ‘길들이 중지되었다…지역들이 이스라엘에서 중지되었다’에서 묘사되어 있다. ‘길’, ‘작은 길’은 ‘거리’나 ‘지역’ 처럼 인도하는 교리 속의 진리를 의미한다.
암5:16-‘모든 거리들에서 탄식함이 있고, 모든 지역들에서 그들은 아아 슬픈지고! 라고 말한다’=진리와 선이 모든 곳에서 황폐해졌기 때문에 있는 애통함.
시144:14-‘우리의 지역들에서 울음이 없다’=그것들의 결핍으로 인한 애곡함이 어느 곳에도 없다.
예9:21-‘거리들과 지역들’=총명과 지혜로 이끄는 생활 속의 진리들과 교리 속의 진리들.
지옥 (hell)
요2:2-‘지옥’=더 낮은 땅.
민16:33-‘땅이 그들을 삼켰다’=저주됨과 지옥.
계1:18-‘나는 지옥의 열쇠와 죽음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그분 만이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
계20:13-‘죽음과 지옥이 그것들 안에 있던 죽은 자를 포기했다’=심정에서 불경한 교인들, 이들은 그 자체로 사탄들과 악마들이었는바 모두 심판으로 불리웠다.
계20:14-‘죽음과 지옥은 불 못 안으로 내던져졌다’=심정에서 불경한 자, 그 자체로 악마들과 사탄들인바 이들은 악을 사랑하고 이 악에 일치하는 거짓을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 있는 지옥 안으로 내던져졌다.
시149:8, 암9:2-하느님은 천국에서 같이 지옥에서도 전능하심이 ‘만일 내가 지옥에 내 침대를 만든다면, 보라 당신은 거기에 계신다’, ‘만일 그들이 지옥 안으로 파고든다면, 거기로부터 내 손이 그들을 받을 것이다’로부터도 분명해진다.
큰 폭포 (cataract)
말3:10-‘하늘의 큰 폭포들’
창7:11-‘하늘의 큰 폭포들이 열려졌다’=지적인 것에 관련된 시험의 마지막 수준…’하늘의 큰 폭포’는 거짓들, 또는 추론들이 범람함…높은데로부터 큰 폭포들이 열린다(이24:18).
이24장-‘높은데로부터 열린 큰 폭포’=악과 거짓의 범람.
타작 마당 (threshing floor)
호9:2-사랑의 선은 낟알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빵으로부터 ‘타작 마당’이다.
창50:10-‘그들은 아닷 타작 마당에 이르렀다’=첫 상태; 그 이유가 ‘타작 마당’=진리로부터의 선이 있는 곳이기 때문; 타작 마당에는 낟알이 있는바, 낟알은 진리로부터 있는 선, 또는 선으로부터 있는 진리를 의미한다.
마3:12-‘타작 마당’=분리가 결과하는 곳.
욜2:24-‘타작 마당’=교회의 교리.
호9:1,2-‘모든 곡식 마당들 위에’=말씀 속의 모든 것들 그리고 말씀으로부터 있는 교리 속의 모든 것들; 그 이유가 ‘곡식’, 이로부터 빵이 있는바,=영적으로 자양분을 주는 모든 것, 그리고 ‘타작 마당’=함께 집합되어 있는 곳, 고로 말씀. ‘타작 마당과 압착기가 그들을 먹이지 못할 것이다’=그들은 말씀으로부터 선행의 선들과 사랑의 선들을 길어내지 않을 것이다, 고로 영혼에 자양분을 대줄 어떤 것도 길어내지 못할 것이다. 그이유가 이 구절에서 ‘타작 마당’=선행의 선들에 관련하여 있는 말씀; 그리고 ‘압착기’=사랑의 선들에 관련하여 있는 말씀: ‘압착기’는 여기서 기름이 의미되어진다.
신16:13-‘타작 마당의 생산물’=교회의 모든 선; ‘빵’과 ‘곡식’도 이와 같다.
평지 (plain)
창13:10-‘그는 요단의 모든 평지를 보았다’=외적 인간에 있는 일련의 선들과 진리들. 요단 근처 평지=그의 모든 선들과 진리들에 관련한 외적 인간.
창13:11-‘롯은 요단의 모든 평지를 선택했다’=외적 인간은 이와같았다는 것.
창13:12-‘롯은 요단의 성읍들에 거주했다’=외적 인간이 과학적인 것들에 있었다.
포도원 (vineyard)
창9:20-‘노아는 포도원을 창설했다’=파생적인 교회. ‘포도원’=영적 교회.
풀밭 (meadow)
이30:23-‘넓은 풀밭에서 풀을 먹는 것’=가르침이 풍부하게 있는 것.
시65:13-‘풀밭들’=영적 마음 속에 있는 이런저런 것들, 그리고 이로부터 합리적 마음 속에 있는 이런저런 것들.
필라델피아 (Philadelphia)
계3:7-‘필라델피아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주님으로부터 있는 선으로부터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에게, 이것들에 관하여.
* ‘필라델피아에 있는 교회’=선행으로부터 있는 신앙 안에 있는 교인들.
* 필라델피아와 라오디게이아에 있는 교회에 쓰여진 것들에서는 생활에 의거한 신앙에 관련한 것을 취급하고 있다.
하란 (Haran, 장소)
* 아브라함을 참조.
창12장-‘하란’=(주님의) 첫 번째 상태, 이는 희미한 상태였다.
창12:4-‘그가 하란으로부터 갔을 때’=주님의 희미한 상태, 인간의 어린 시절도 이와 흡사하다.
창12:5-‘그들이 하란에서 만들었던 혼’=이 희미한 상태에서 가능한 생명있는 모든 실체(essential).
창27:43-‘너는 내 형제, 라반에게로, 하란으로 피신하라’=외적, 또는 육체적 선에 애착함 쪽으로.
창28:10-‘그는 하란으로 갔다’=그 수준의 선과 진리 쪽으로. ‘하란’=외적인 선과 진리. ‘하란’은 외적인 것, 하란에 있는 ‘라반’=선과 진리.
창29:4-‘그들은 말했다, 우리는 하란으로부터 이다’=공동의 지주로부터의 선으로부터. ‘하란’=공동의 지주(common stock)로부터의 방계의(collateral) 선.
하윌라 (토지) (Havilah)
창2:11-‘하윌라 토지’=마음(지성, mind)
창25:18-이 구절 역시 ‘하윌라 토지’가 이스마엘의 아들들에 관련되어 말해진다. 즉 ‘그들은 하윌라에서 이집트의 얼굴 근처, 앗수르로 가는 술에 까지 거주했다’= 총명 속에 있는 것, 또는 총명이 확장됨.
창 2:11-‘하윌라로부터의 금’=지식들 속의 선.
한가운데 (midst)
중앙 (midst)
중간 (medium)
매개 (medium)
한가운데의 (middle)
중간의 (middle)
수단 (means)
* Benjamin, Laban, goshen, second( or middle) Heaven도 참조.
창2:9-‘동산의 중앙에’=내적 인간의 의지 안에.
창3:8-‘동산의 나무의 중앙’을 수단으로 그 안에 ‘그들은 자신들을 숨겼다’=자연적 선이 의미되어진다. 가장 안쪽인 것이 ‘중앙’이라 불리운다.
창9:21-‘천막 중앙에’=신앙의 주요한 것…‘중앙’, 말씀에서=가장 안쪽…선행이 가장 안쪽이다. 즉 선행은 신앙과 예배의 주요한 것이다. 고로 ‘천막의 중앙’이다.
출23:21-‘내 이름이 그의 중앙에 있기 때문’…‘중앙에’=가장 깊은 곳에.
창15:10-‘부분들 사이 중간의 공간‘=인간과 더불어 지각이라 불리는 것, 내적 지령, 그리고 양심. 위쪽에 있는 것은 주님에 속하는 것. 아래쪽에 있는 것은 인간과 더불어 있는 것.
창18:24-‘도성의 중앙에’…‘중앙’=안쪽에.
창23:10-‘헷의 아들들 중앙에 앉아있는 에브론’…‘중앙’, 또는 ‘중앙에’=제일인 것, 또는 주요한 것, 또한 가장 안쪽에 있는 것.
창37:7-‘들판의 중앙에서 단을 묶었는데’=교리로부터 가르치는 이들
창40:20-‘자기 종들의 중앙에’=외면의 자연 평면 안에 있는 것들 사이에 있는 것. ‘중앙에’=그것들 사이에.
창41:48-‘그것 주위에 있는 것들을 그는 거기로부터의 중앙에 쌓았다’=이전에 외면의 자연 평면 안에 있던 것들이 내면의 자연 평면으로부터의 내면적인 것 안에 저장되었음.
창45:6-‘토지의 중앙에 가근이 2년 동안…’=자연적 마음에 선이 결핍됨. ‘중앙에’=가장 안쪽에, 이곳에 선이 있다.
창48:16-‘토지의 중앙에서 그들이 번성하게 하소서’=가장 안쪽으로부터 (시작하여) 확장됨.
출3:20-‘그것의 중앙에서 내가 행하는 것’=그들에게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것.
출8:22-‘너희는 나 여호와가 토지의 중앙에 있다는 것을 알런지 모른다’=주님 만이 교회의 하느님이심을 통각함.
출9:24-‘(우박의) 중앙에서 걷는 것’=함께 있는 것, 그리고 참으로 가장 깊게 있는 악으로부터의 탐욕.
출11:4-‘나는 이집트의 중앙 안으로 갈 것이다’=모든 곳에 신성이 현존한다.
출12:9-‘그것의 머리와 다리와 그것의 중간의 것’=가장 안쪽으로부터 외적인 것 까지. ‘중간의 것’=상대적으로 더 낮은 것들, 즉 복부나 내장에 속하는 것들.
출23:21-‘나의 이름이 그 사람의 중앙에 있다’=그분으로부터 사랑의 모든 선과 신앙의 모든 진리가 있다는 것.
출23:25-‘나는 질병을 너희 중앙으로부터 제거할 것이다’=진리가 왜곡됨으로부터, 선이 섞음질됨으로부터 보호함.
출26:28-‘중간의 장대는 널판의 중앙에서 가장 끝으로부터 가장 끝 까지를 통과하여 갈 것이다’=제1인 힘으로부터 (시작되어) 모든 곳에서 힘(의 발휘는) 계속 된다는 것…‘중앙’=가장 깊은 것, 그리고 제1인 것.
출28:33-‘빙둘러 그것들 중앙에’=모든 측면에서 선으로부터의 과학물의 내면들로부터…‘중앙에’=내면인 것. 고로 ‘중앙에’가 교리와 예배로부터의 들음과 지각을 두고 말해질 때…=내면으로부터…그이유가 벨이 석류의 중앙에 놓여졌고, 이 과학물은 그릇(recipient)에 해당되기 때문.
출29:45-‘나는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중앙에 거주할 것이다’=주님이 현존하심, 그리고 그분의 유입
출33:3-‘나는 너희 중앙에서 승강 않을 것이다’=그럼에도 신성은 이 나라 자체와 더불어 있지 않다는 것…‘너희 중앙에’=그것의 내적 측면에서.
출34:9-‘부디 주께서는 우리들 중앙에서 가시옵소서’=신성이 그것에서 안쪽에 있을 런지 모른다는 것.
계1:13-‘사람의 아들 같으신 분이 일곱 촛대들 중앙에서’=말씀 측면에 관련된 주님, 이 분으로부터 이런 것들이 있다는 것…‘중앙에’=가장 안쪽에. 안쪽으로부터 빙둘러 있는 것들의 본질이 파생된다, 여기서는 빛, 또는 총명.
계2:1-‘중앙에’=가장 안쪽에, 그리고 거기로부터 그것의 모든 것 안에.
계2:7-‘하느님의 낙원의 중앙에 있는 것’=지혜로부터의 진리들과 신앙으로부터의 진리들 안에 내면적으로. ‘중앙에’=가장 안쪽에, 여기서는 내면적으로.
계4:6-‘왕좌 중앙에, 그리고 왕좌 빙둘러 네동물들’=첫째되는 것으로부터 최말단에 속하는 것이 이르기까지에서 있는 주님의 말씀, 그리고 그것의 지킴.
계5:6-‘왕좌 중앙에, 그리고 네 동물들의 중앙에, 그리고 원로들의 중앙에’=가장 안쪽으로부터, 그리고 안쪽으로부터 천국의 모든 것 안에, 말씀의 모든 것 안에, 그리고 교회의 모든 것 안에. ‘중앙에’=가장 안쪽의 것들, 이로부터 모든 것들 안에.
계6:6-‘나는 네 동물들의 한가운데에서…하는 음성을 들었다.’ ‘그들의 한가운데에서’에 의해 내적으로 있는 영적 의미 측면에서의 말씀이 뜻해진다. 이 말씀을 주님께서는 지켜 보호하신다.
계7:17-‘왕좌 한가운데에 어린 양’에 의해 가장 안쪽에 계신 신성한 인간 측면에서의 주님, 고로 천국의 모든 것 안에 계신 주님이 의미되어진다. ‘한가운데(중앙)에’=가장 안쪽에, 고로 모든 것 안에.
계8:13-‘하늘의 한가운데에서 날고 있는 천사’=주님에 의한 가르침과 예견…‘하늘의 한가운데에서 날면서 말함’=지각하고 이해하는 것.
계8:13-‘천국의 중앙에’=넓은 측면에서의 천국, 고로 천국들 안에 있는 모든 이.
신21:12-‘집의 중간‘=내면들, 영적인 것.
이19:19-‘이집트 토지의 중앙에’=각처에 그리고 자연적 인간의 모든 것 안에.
시5:9-‘그것들의 중간’=내면적으로.
단9:27-‘주간(week)의 중간’은 시간 차원에서의 중간이 아니라 개혁 교회와 더불은 가장 안쪽의 상태.
항구 (haven)
창49:13-‘그는 바다들의 항구에서 거주할 것이다’=과학물들로부터 진리의 결말이 있는 삶. ‘항구’=과학물이 시작하고 종결하는 정거장(station); 여기서는 과학물들로부터 진리의 결말이 있는 정거장; 그이유가 여기서는 ‘스블론’에 의해 신앙의 진리를 지닌 이들을 취급하기 때문. ‘바다들’=복합체에 있는 과학물들.
창49:13-‘그리고 그는 배들의 항구에서 있을 것이다’=말씀으로부터 교리적인 것들이 있는 곳. ‘항구’=정거장; 고로 이런 것들이 있는 것. ‘배들’=말씀으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
* ‘바다들의 항구에서 거주하는 것’=자연적 진리들과 더불어 영적인 것들이 결합함. ‘바다들’=과학물들, 이는 자연적 진리들이다. ‘바다들의 항구에서 거주하는 것’=말씀으로부터 교리적인 것들과 더불은 영적 결합. ‘배들’=모든 종류의 교리적인 것들과 지식들.
* ‘스블론’=선과 진리의 결합; ‘그는 바다들의 항구에서 거주할 것이다’=진리로부터 생활함; ‘그는 배들의 항구에서 있을 것이다’=말씀으로부터 교리적인 것에 따라서.
헤레스 (Heres)
이19:18-‘일 헤레스(ir heres)’=자연 평면에서 영적 진리들로 반짝거리는 교리; ‘일(ir)’은 ‘성(city)’을 뜻한다.그리고 ‘헤레스’는 태양 같이 반짝거림을 뜻한다.
이19:18-‘모든 이 각각은 헤레스의 성이라 불릴 것이다’=각각 안에 있는 선행의 선의 교리…‘헤레스’, 히브리어에서 태양과 그것의 광선을 뜻하는데,=선행의 선과 파생되는 신앙의 선.
헤르몬 (Hermon)
시89:12-‘다볼과 헤르몬’=신성한 선 안에, 그리고 신성한 진리 안에 있는 이들.
시133:3-‘헤르몬의 이슬’=신성한 진리…고로 ‘시온의 산 위에서 내려오는 헤르몬의 이슬’=진리와 선의 결합.
헤브론 (Hebron)
창13:18-‘아브람은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숲에서 거주했다’=주님께서는 더욱 더 내면적 지각에 도달하셨다…이 지각이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의 상수리 나무 숲’이라 불린다.
창23장-‘가나안 토지의 헤브론’=새로운 교회.
창23:2-‘기럇아르바에서, 이곳은 가나안의 토지에 있는 헤브론’=교회에서…’기럇아르바’=진리 측면에서의 교회; 그리고 ‘가나안의 토지에 있는 헤브론’=선 측면에서의 교회.
창23:19-‘이곳은 헤브론이다’=이것은 새로운 교회였다는 것; (그 이유가) ‘헤브론’=영적 교회…..’헤브론’에 의해 선 측면에서의 교회가 의미되어진다. 그러나 여기서는 기럇아르바라 라고는 더 이상 부르지 않고 ‘헤브론’인데, 그 이유는 거듭난 이들, 즉 진리로부터가 아닌 선으로부터 행동하는 이들이 취급되기 때문.
창35:27-‘마므레 기럇아르바’에 의해 진리 측면에서의 자연의 상태; 그리고 ‘헤브론’=선 측면에서의 자연의 상태.
창37:14-‘그는 그를 헤브론 골짜기로 보냈다’=자연 측면과 감각 측면으로부터 있는 신성…’헤브론’=선 측면에서의 주님의 교회.
헤스본 (Heshbon)
예49:3-헤스본은 갓 지파에게 주어졌다…그리고 그러므로 이 토지에 의해 일반적으로 갓에 의해 의미되는 것이 특별히 의미되어지고 있다…‘헤스본’=자연적 인간 안에서 진리의 결실이 풍성함.
예49:3-‘곡하라, 오 헤스본아, 아이가 황폐해졌기 때문이다’=산으로부터 진리의 열매 풍성함이 더 이상 없다는 것, 그이유는 진리의 교리가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이16:9-‘헤스본과 엘르알레’=외적 교회의 사람들, 이들은 세상 사랑을 옹호하는 쪽으로 말씀을 설명한다.
헬본 (Helbon)
겔27:18-‘헬본의 포도주’=자연적 진리.
호렙 (Horeb)
출3:1-‘호렙’=품질(quality); 즉 나타난 신성의 사랑으로부터의 선의 품질…‘호렙’이 포함하는 것들의 품질은 거기서 보여진 것들, 떨기나무 한가운데의 불의 불꽃으로부터 분명하다; 고로 이것=신성의 법으로부터 있는 진리에 의해 빛을 발하는 신성한 사랑의 선.
출17:6-‘보라, 나는 호렙에 있는 바위 위 거기에서 네 앞에 서있다’=신앙의 진리들 측면에서의 주님…‘호렙’=신성한 법.
시106:19-‘호렙에서 송아지를 만드는 것, 그리고 녹여 만든 형상에 자신을 굽혀 절하는 것’=우상적인 예배, 예배가 외적 형체로만 있을 경우 그것의 의식들, 규례들, 판단들, 가르침들 속에 존재한다.
출33:6-‘호렙산으로부터’=예배와 교회와 말씀의 외적인 것들 안에서. ‘호렙산’=외적인 것들에 있는 신성의 진리.
출17:6-‘바위’=신성의 진리 측면에서의 주님인 것은 ‘호렙에 있는 바위로부터 물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졌음’으로부터 분명하다.
호바 (Hobah)
창14:15-‘그는 그들을 호바 까자 뒤쫓았다, 이는 다마스커스의 왼쪽이다’=확장의 분량(amount).
호수 (lake)
출7:19-‘그리고 그들의 못들 위에’=진리, 또는 거짓들을 섬기는 과학물 안으로.
이41:18-‘광야에 물들의 못을 놓는 것’=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을 주는 것, 그리고 이전에 그들이 있지 않던 파생되는 총명을 주는 것.
이19:10-‘혼의 못들’=지식들로부터 총명 속에 있는 것들.
출8:5-‘시내 위에, 강들 위에, 못들 위에’=거짓들에 맞서.
계19:20-‘유황이 타는 불의 호수’=이 거짓으로부터의 사랑들 안에, 동시에 악으로부터의 탐욕들 안에 있는 자들이 있는 지옥. ‘호수’에 의해 거짓이 풍부함이 의미된다.
계20:10-‘불의 호수 안으로 그는 던져졌다’에 의해 거짓으로부터의 사랑들과 악으로부터의 탐욕들이 있는 지옥이 의미된다.
계20:14-‘그리고 죽음과 지옥이 불의 호수 안으로 내던져졌다’=심정에서 불신앙이 악을 사랑하고 이 악에 일치하는 거짓을 사랑함에 있는 이들의 지옥 안으로 내던져졌다.
계21:8-‘그들의 몫은 유황으로 타고 있는 호수 안에 있다’=거짓으로부터의 사랑들, 악으로부터의 탐욕들이 있는 지옥.
이41:18-‘물들의 못’, 그리고 ‘물들의 원천(spring)’=선, 그 이유는 진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모든 영적인 선은 진리들을 통하여 포획되어진다.
시107:35-‘물들의 못’=진리의 풍부함.
시114:8-‘물들의 못’=진리에 관한 지식들. ‘물들의 수원(fountain)’=그것들이 있게 한 말씀.
이42:15-‘나는 못들을 말리겠다.’…‘못들’=진리를 지각함. 진리를 이해함은 진리의 빛으로부터 있다. 그러나 진리를 지각함은 심정으로부터, 또는 진리를 사랑함으로부터 있다.
이41:18-‘물들의 못’=진리에 대한 지식이 풍부함.
이35:7-과거 어떤 것도 지니지 않았던 이들에게 신성한 영적 진리를 통하여 총명이 있을 것임이 ‘마른 장소에 못이 있는다’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이41:18-영적 인간 안에 진리가 풍부함이 ‘물들의 못’에 의해, 그리고 자연적 인간 안에 진리가 풍부함이 ‘물들의 원천’에 의해 뜻해져 있다.
홍해 (Red Sea)
수프 바다 (Sea Suph)
출10:19-‘(메뚜기들이) 수프 바다로 던져졌다’=지옥 안으로.
출14:2-인간이 시험받고 있을 때, 그는 특별하게 ‘수프 바다’에 의해 의미된 이 지옥 가까이 있는다; 그이유가 이 지옥에 진리에 관한 지식을 지녔던 이들, 그러나 악한 생활 안에 있었던 이들, 그렇기 때문에 악으로부터 거짓들에 있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옥으로부터 시험이 유입됨이 ‘너희는 수프 바다 근처…진영을 차려라’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출14:9-‘그들은 바다 근처 진을 친 그들을 따라잡았다’=악들로부터 거짓들인 지옥 영역 주위와 교통함. 바다, 여기서는 수프 바다=선행으로부터 분리된 신앙 안에 있고, 생활이 악한 이들의 악으로부터 거짓들이 있는 지옥.
출14:16-‘바다를 가르는 것’=수프 바다로 표현된 지옥의 거짓들이 사라짐.
출15:4-‘수프 바다 안에 침수되었다’=그들은 자신들을 악으로부터의 거짓들로 포진하게 했다.
출15:22-‘모세는 이스라엘을 수프 바다로부터 여행하게 했다’=그들이 지옥의 영역을 통과한 후, 신성의 진리에 따라 계속 있는 것.
출23:31-‘나는 수프 바다로부터 너희 경계를 둘 것이다’=과학적 진리들로부터 확장함…‘수프 바다’=감각적, 과학적인 것으로부터의 진리들, 이것은 인간과 더불은 마지막(최말단) 진리들이다; 그이유가 수프 바다는 이집트 최말단 경계였기 때문.
예49:21-‘수프 바다’=저주(지옥에 떨어짐, damnation).
시114:3-악들이 분산됨이 수프 바다를 통과함에 의해 의미되어지고 있다, 이에 관해 말해지는바, 그것이 ‘도망쳤다.’
왕상9:26-‘에돔의 토지 안에서 수프 바다의 해안가 쪽으로’=자연적 인간의 지식…그이유가 수프 바다는 가나안 토지의 최말단 경계였다. 이것에 의해 교회의 최말단들이 의미된다. 이 최말단은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들을 납득하는 지식들이다.
출23:31-수프 바다로부터 유프라테스 강까지 토지를 소유하는 것=교회의 모든 확장과 더불은 교회, 이 교회는 신성의 진리를 통하여 그분과 결합되는 이들과 더불어 주님으로부터 있다.
(유대교) 회당 (synagogue)
계2:9-‘그러나 사탄의 회당이다’=그들이 교리 측면에서 거짓들 안에 있기 때문. 유대인들이 있기 때문에 ‘회당’이 언급된다. 그리고 그들이 회당에서 가르쳤던바, ‘회당’에 의해 교리가 의미되어진다.
계3:9-‘나는 사탄의 회당으로부터 줄 것이다’=믿음만으로의 교리 안에, 그리고 선행 없음 안에 있는 이들.
힛데겔 (Hiddekel)
창2:14-‘힛데겔 강’=이성, 또는 명료하게 보는 이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