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공간과 상응

성경의
공간과 상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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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약자표

창 창세기 이 이사야 학 학개 마 마태복음
출 출애굽기 예 예레미야 슥 스가랴 막 마가복음
레 레위기 겔 에스겔 말 말라기 눅 누가복음
민 민수기 단 다니엘 요 요한복음
신 신명기 호 호세아 계 요한계시록
여 여호수아 욜 요엘
사 사사기 암 아모스
삼상 사무엘상 옵 오바댜
삼하 사무엘하 욘 요나
왕상 열왕기상 미 미가
왕하 열왕기하 나 나흠
욥 욥기 합 하박국
시 시편 습 스바냐

차례

공간 (space)-공기 (air)-광활한 공간 (expanse)-구름 (cloud)-궁창 (expanse)-그늘 (shade), 그림자 (shadow)
달 (moon, lunar)
무지개 (rainbow)
발광체 (luminary)-별 (star)-별자리 (constellation)-불 (fire)-불꽃 (flame)-빛 (light)
새 하늘 (new heaven))
어둠 (darkness)-에테르 (ether)-연기 (smoke)
태양 (sun, solar)
파도 (wave)
하늘 (heaven, heavenly)

공간 (space)

창34:21-‘공간이 넓다’=진리에 관련하여 확장.
이33:21-‘공간의 넓이’=불어나고 확장하는 선으로부터의 진리들.

공기 (air)

계16:17-‘일곱째 천사가 공기 안으로 그의 대접을 쏟았다’=개혁 교회들의 사람들과 더불은 모든 것 안으로 주님으로부터의 유입이 즉시 있었다.

광활한 공간 (expanse)

창1:6-‘물들의 한가운데에 광활한 공간이 있으라, 그리고 그것이 물들과 물들을 구분되게 하라’…내적 인간이 ‘광활한 공간’이라 불리운다. 내적 인간 안에 있는 지식들이 ‘광활한 공간 위의 물들’이라 불리우고, 외적 인간의 과학적 사실들이 ‘광활한 공간 아래의 물들’이라 불리운다.
창1:14-그러므로 발광체들이 ‘하늘들의 광활한 공간에’ 놓여졌다고 말해진다. 즉 내적 인간 안에…
겔27:7-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들이 배에 속한 것들, 즉 돛(sail, expansionem) 같은 것에 의해 묘사되었다.
출9:29-‘내가 여호와께 내 손바닥을 펼 것이다’=중재…‘손바닥을 펴는 것’은 심정의 탄원에 상응하는 몸짓이다.
단12:3-‘그다음 총명한 자는 궁창의 빛남 같이 빛을 낼 것이다’.
시150:1-‘권능의 궁창에서 찬양하는 것’=주님으로부터 있는 선행의 선으로부터.
겔19:8-‘그 사람 위에 그물을 펴는 것’=지상적 사랑들과 그로부터 추론함을 수단으로 꾀는 것.
출25:20-‘거룹들이 그들의 날개들을 위쪽으로 펼칠 것이다’= 믿음의 진리의 승강

구름 (cloud)

마24:30-‘하늘들의 구름들’=말씀의 글자 의미.
겔30:3-‘구름의 날’=거짓.
창9:13-‘나는 구름에 활을 주었다’=거듭나는 영적 인간의 상태.
* ‘구름’=어둑한 빛, 밝은 빛에 있는 천적 인간에 비교해본다면 상대적으로 영적 인간은 이 빛에 있다. 그와 더불은 어둑함, 여기서 ‘구름’이라 불리는데, 이는 거짓이다. 이는 그의 지적인 자아와 같다. 그리고 순진과 선행, 주님으로부터의 자비가 이 자아 안으로 은근히 심어질 때, 이 구름은 더 이상 거짓으로서 나타나지 않는다.
* 선행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그들의 구름 안으로 들어가 일하신다. 이로부터 마치 태양이 구름에 맞부딛치듯 빛이 일어난다. 그러면 구름은 더 밝아지고 색갈도 다양해져 있는다. 또한 구름 안에 활의 모습이 발생한다. 구름이 더 얇다면, 즉 신앙으로부터의 진리들과 더 혼합된다면, 활은 더 아름답다. 그러나 이 구름이 더 밀집되고 있다면, 즉 신앙으로부터의 진리들이 더 적다면 활은 덜 아름답다…
* 진리의 나타남들(외관, appearances) 모두는 구름들이다. 인간이 말씀의 글자 의미에 있을 때, 인간은 이 구름 안에 있다. 그 이유가 말씀은 나타남들에 따라 말해지기 때문. 그러나 그가 말씀을 단순히 믿을 때, 비록 그가 나타남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해도 선행을 가지고 있다면, 이 구름은 비교적으로 얇다. 이 구름에서 주님에 의하여 교회 밖 사람들의 양심이 만들어진다.
* 진리에 대한 모든 무지함 역시 구름들인데, 이는 사람이 신앙 속의 진리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때이다. 이 구름에서 주님에 의해 교회 밖 사람들의 양심이 만들어진다.
* 모든 거짓들 또한 구름들이다, 그러나 이 구름들은 어둠이다. 이는 거짓 양심, 또는 양심이란 것이 없는 이들에게 널리 퍼져있다.
* 이런 것들이 일반적 측면에서의 구름들의 품질이다. 그들의 (구름의) 양에 관련하여도 인간과 더불은 이런 구름들이 있다. 아주 밀집한 경우, 그런데 그가 그것들의 밀집함을 알았다면 그는 주님으로부터의 어떤 광선도 그것들을 통과하여 갈 수 없었다는 것에 의아했을 것이다. 자기의 구름의 양은 아주 작다고 상상하는 그의 구름의 양은 때때로 대단히 많다. 자기의 구름이 많다고 여긴 그는 때때로 아주 적다.
* 이와 같은 구름이 영적 인간과 더불어 있는 구름들이다. 그러나 천적 인간과 더불어 이와 같은 큰 구름들은 없다.
* 그의 지적 측면에서 어둑함 모두, 또는 자기 구름의 밀집함 모두는 (그의 옛 의지)로부터이다. 이것은 거기로부터 안으로 계속적으로 흘러든다. 그리고 흘러듬에 비례해서, 이 구름은 지적 부분에서 빽빽한 상태가 되어간다. 그러나 제거됨에 비례해서 그것은 얇아진다.
창9:14-‘땅 위 구름으로 해서 내가 흐려짐에서, in clouding Me with a cloud upon the earth’= 인간의 자발적 자아 때문에 선행으로부터의 신앙이 나타나지 않을 때.
시68:4-‘구름들을 타는 것’=내면의 것, 또는 내적 의미에 관련하여 말씀을 이해하는 것. ‘구름들’=글자에 있는 말씀, 이 안에 내적 의미가 있다.
마24:30-‘그들은 힘과 큰 영광과 더불어 하늘들의 구름들에서 오는 사람의 아들을 볼 것이다’=그때에 말씀은 그것의 내적 의미에 관련하여 밝히 알려질 것이다. ‘구름들’=글자 의미.
삼하22:12-‘하늘들의 구름들’=글자로 있는 말씀.
이4:5-‘낮에는 구름’=말씀의 글자 의미.
이4:5-외적 의미에 관련한 말씀은 구름에 있다, 그 이유는 인간 마음이 어둠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일 말씀이 구름에 있지 않다면, 그나마 말씀은 거의 누구에게도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적 의미 속에 있는 거룩한 것들은 세상에 있는 악들에 의해 모독되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사야에게 말하신다. ‘여호와는 시온 산의 모든 거주하는 장소에, 그녀의 회합에 낮에 구름을 창조할 것이다.’
출24장-마찬가지로 시내 산에서도 구름과 영광. 구름, 그리고 여호와의 영광이 보여진 이유는 모세가 산으로 올라갔을 때, 그 안에 있는 모세는 율법, 즉 역사적 측면의 말씀을 표현했기 때문에서 였다.
시68:4-‘구름들을 타시는 그분을 격찬하라.’ ‘구름들’=말씀의 글자 의미.
출19:9-‘구름의 한가운데에’라고 말해지는데, 그 이유는 ‘구름’=글자로 있는 말씀.
출18:21-‘낮에는 구름 기둥’=계발의 상태에 있을 때, 진리의 어둑함을 수단으로 이 계발은 완화되어졌다…‘구름’=진리의 어둑함, 그 이유는 구름은 태양으로부터의 빛을 감소시키기 때문. 따라서 빛의 강도를 완화되게 하기 때문. 말씀에서 여호와는 구름에서 나타나셨다, 구름으로 휘감으셨다, 또는 구름들이 그분의 발 아래 있었다 라고 말해지고 있다. 거기서 ‘구름’에 의해 진리의 어둑함이 뜻해진다. 특별하게는 말씀의 글자 의미….이것은 주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영광 안에서 나타나셨을 때, ‘구름’에 의해 의미되어졌다. 말씀의 글자 의미가 ‘구름’이라 불리우는데, 그 이유는 내적 의미가 ‘영광’이라 불리기 때문이다. 이것은 거듭난 자, 계발된 자 외에는 인간에 의해 납득되어질 수 없다.
출14:20-‘구름과 어둠이 있었다’=한쪽 측면에 악으로부터의 거짓이 농축된 것… ‘구름’=거짓.
출16:10-‘여호와의 영광이 구름에서 보여졌다’=지각에 숙박하고 있는 진리에 주님이 현존하심(임재함). ‘구름’=말씀의 글자 의미, 고로 지각에 숙박하고 있음..
출19:9-‘보라, 나는 빽빽한 구름 안에서 너에게 갈 것이다’=이는 자연 평면의 가장 높은 수준에 있는 나타남에서 거행될 것이다.
출19:16-‘무거운 구름이 산 위에 있었다’=받아지게 되는 이들에 비교된 신성의 상태, 고로 글자에서의 말씀, 여기서의 경우, 야곱으로부터 있는 백성에게 숙박하는 신성으로부터의 진리. 그것들이 신성으로부터의 진리들에 관련하여 큰 어둠에 있었기에, ‘무거운 구름’, 그리고 ‘빽빽한 구름’이라 말해진다. 이것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실 때 무거운 구름에 계셨던 이유이다. 다른 삶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악으로부터의 거짓들 안에 있는 이들은 그 거짓들의 품질과 양에 따라 빽빽하고 검은 구름을 휘감고 있다.
출24:15-‘산을 덮은 구름’= 내적인 것을 덮고 있는 말씀의 외적인 것, 또는 천국을 덮고 있는 외적인 것.
출24:16-‘구름이 이것을 덮었다’=말씀의 최말단, 이는 상대적으로 희미하다. ‘구름’=말씀의 최말단. 이 의미가 ‘구름’이라 불리는 이유는 내적 의미에 비해 희미하기 때문.
이4:5-‘낮에 구름’=진리에 베일을 침. 고로 납득력에 따라 숙박함.
시104:3-그분이 ‘그분의 병거를 만드는’ ‘구름들’=진리로부터 교리가 있음.
출24:18-‘모세는 구름의 한가운데로 들어갔다’=외적 의미로 있는 말씀.
마24:30-‘구름들’=세상의 빛에서 있는 것과 같은 신성한 진리. 고로 인간과 더불어 있는 것과 같은 신성한 진리. 그러므로 말씀의 외적 의미에 관련된 말씀이 ‘구름’에 의해 뜻해진다.
출34:5-‘여호와께서 구름에 내려오셨다, 그리고 거기서 그와 더불어 서셨다’=신성이 있는 말씀의 외적인 것.
마24:30-‘구름들’=말씀의 글자의 의미.
마17:5-제자들을 뒤덮은 ‘빛나는 구름’=글자 의미에 있는 말씀, 그러므로 음성이 그것으로부터 들려졌다, 이렇게 말하셨다, ‘이는 내 사랑되는 아들, 너희는 그에게서 들으라’.
계1:7-‘그분은 하늘의 구름들을 사용하여 오신다’=주님은 말씀의 글자 의미에서 자신을 밝히 알리실 것이다, 그리고 교회의 마지막에서 말씀의 영적 의미를 여실 것이다.
계10:1-구름에 휩싸였고, 그의 머리 넘어 위에 무지개가…=그분의 신성한 자연 평면과 영적 평면. 그가 휩싸였던 ‘구름’=신성한 자연 평면. 그러므로 ‘구름’=자연적 의미에서의 말씀, 이 의미 또한 그분으로부터 있다, 고로 그분의 것이요, 그분 자신이다.
계11:12-‘그들은 구름 안에서 하늘로 올라갔다’=천국으로 올려짐, 그리고 거기서 말씀의 글자 의미에 있는 말씀 속의 신성한 진리를 통하여 주님과 결합함, ‘구름’=말씀의 글자 의미, 그리고 이를 통하여 주님과 결합함이 있고 천사들과 제휴함도 있다.
계14:14-‘나는 보았다, 그리고 바라보니 흰 구름, 그리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을 닮은 분이 앉아 계셨다’=말씀에 관련한 주님. ‘구름’=글자 의미로 있는 말씀. 그리고 ‘흰 구름’=내면적으로 있는 글자 의미의 말씀. 그리고 ‘사람의 아들’은 말씀에 관련되는 주님을 뜻한다. 그러므로 말해지는 바,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을 닮은 분이 앉아계셨다.’
계1:7-‘잘 보라, 그분은 구름들을 사용하여 오신다’=주님께서는 내적 의미를 통하여 말씀 안에서 자신을 밝히 알리신다는 것. ‘구름들’=최말단에 있는 신성한 진리, 고로 글자로 있는 말씀.
* ‘구름들’=최말단에 있는 신성한 진리인 이유는 영계에서의 나타남 때문이다: 거기서 구름은 여러 빛깔로 나타난다. 세 번째 천국에서는 불꽃의 빛으로, 두 번째 천국에서는 빛나는 흰 빛으로, 첫 번째 천국에서는 보다 밀도가 높은 빛으로 나타난다. 거기서 모든 이는 이 빛들이 천사들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오는 신성한 진리임을 알고 있다. 그 이유가 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가 천사들을 통과하여 갈 때, 이 진리는 그들의 총명에 따라 보다 희박하거나 보다 빽빽한 구름 같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계14:14-‘흰 구름’=말씀의 글자적 의미.
시77:17-‘구름들이 물을 떨어 뜨렸다’=말씀의 글자 의미로부터의 진리들.
예4:13-‘그는 구름 같이 올라갈 것이다’=거짓들.
이60:8-‘구름 같이 나르고, 창문으로 비둘기 같이 나르는 것’=말씀의 글자 의미로부터 찾고 조사하는 것.
시104:3-‘구름을 병거로 만드시는 분’=말씀의 글자 의미로부터의 진리로부터의 교리.
이4:5-‘진리들에 관련한 외적 또는 글자적 의미가 ’낮의 구름‘에 의해 뜻해진다.
예4:29-거짓들이 ‘구름’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겔38:16-‘구름들’=악의 거짓들.
시58:37-‘구름들에 있는 신뢰하는 증거’=글자 의미에 있는 말씀.
시147:8-여호와께서 하늘들을 덮은 ‘구름들’=외적 진리들, 이는 말씀의 글자 의미와 같다.
예4:29-‘구름들 안으로 가는 것’=진리를 인정함이 없는 것 안으로.
삼하23:4-‘구름들 없는 아침’=순수한 신성한 진리.
단7:13-‘하늘들의 구름들’=글자로 있는 말씀, 이 안에서 그분은 오신다고 말해진다, 그 이유는 말씀이 그분을 취급하기 때문.
이25:5-‘그분은 구름의 그림자로 열기를 제압하실 것이다’=그분은 거짓으로부터의 현세에의 욕망을 방어하실 것이다.
이19:1-‘여호와께서는 빠른 구름을 타신다’=주님은 진리들을 가지고 이해성을 계발하신다. ‘빠른 구름’=진리.
신33:26-‘구름들 위 하늘에서 타시는 것’=말씀의 글자의 의미인 자연적 진리를 영적 진리의 유입을 통해 계발하시는 것. 천국들에 있는 신성한 진리는 영적 진리이고, 땅에 있는 신성한 진리는 자연적 진리이고, 후자는 전자를 통하여 계발되어지는바, 말해지기를 ‘구름 위에서 그분의 장엄함에서.’
시18:12-글자적 의미의 불명료함이 거기로부터 사라짐이 ‘그분 앞 빛남에서 구름들은 사라졌다’에 의해 뜻해지고 있다.
시68:4-‘구름들을 타시는 그분’=계발에 관련한 주님. ‘구름들’=영계로부터 신성한 진리인 빛의 유입을 통하여 계발되어지는 최말단 진리들.
나1:3-‘구름들은 그분의 발의 먼지들이다’=최말단에 있는 진리, 이는 말씀의 글자의 의미이다. 영적인 진리인 천국에 있는 신성한 진리는 글자 의미에서 안주하고 살아간다.
이5:6-‘나는 비오게 하는 구름들에게 비 없게 하라고 명령할 것이다.’ ‘구름들’=글자로 있는 말씀. ‘비 없음’=말씀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를 이해함이 없음.
시147:8-‘구름들을 가지고 하늘을 덮는 것’=말씀의 영적인 것들을 보존하고 보호하는 것. 이는 말씀의 글자의 의미에서와 같은 자연적 진리들을 통하여 천국들에서 이다
사5:4-‘하늘들이 떨어트렸다, 구름들이 물을 떨어트렸다’=신성한 진리의 가르침, 유입, 지각. ‘하늘들’=진리의 내면적인 것들. ‘구름들’=말씀의 글자 의미와 같은 외면의 것들.
시77:17-‘구름들이 물들을 떨어트렸다’=진짜 진리들이 말씀의 글자의 의미로부터 파생되어진다는 것.
이18:4-‘이슬의 구름’=선으로부터의 진리가 열매 풍성함.
겔10:4-‘구름’ 그리고 ‘여호와의 번쩍임’=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
눅12:54-‘서쪽으로부터 올라오는 구름’=교회의 마지막에서 주님이 강림하심이 말씀에서 미리 말해졌다. ‘구름’=글자에서의 말씀.
겔30:3-‘구름의 날’=이해 못하는 진리로부터, 고로 거짓으로부터 있는 교회의 상태.
이19:1-‘가벼운 구름’=영적 자연적인 것에 있는 신성한 진리. 이로부터 자연 평면의 인간의 품질이 어떤지가 나타난다.
민10:34-‘낮에 여호와의 구름’=글자의 의미에 있는 말씀 같은 최말단에 있는 신성한 진리를 통하여 보호함. 그이유가 이를 수단으로 할 경우, 주님은 악을 수단으로 접근하실 수 있기 때문. 그리고 이것은 말씀의 내면의 것들을 보호한다.
출19:9-‘구름의 어둠’이 언급되어진다. 그 이유는 ‘구름’=글자에서의 말씀이기 때문.
이14:14-‘구름의 높음들’=말씀의 내면의 진리들.

궁창 (expanse)
* 광활한 공간을 보라

그늘 (shade)
그림자 (shadow)

창19:8-‘내 들보의 그림자’=희미한 일반적 (지각).
이9:2-‘죽음의 그림자에서 사는 것’=선과 진리의 무지함에서.
시23:4-‘그림자의 골짜기’=상대적으로 그늘진 더 낮은 것들.
이18:1-날개들로 그림자지게 하는 토지‘=과학물들로부터 추론함들을 통하여 그 자체를 어둡게 하는 교회.
이4:6-‘낮 때에 그늘’을 위하여
시121:5-‘네 오른 선에 그늘 있기 위해’=악과 거짓에 맞서 보호되는 것. 여기서의 ‘그늘’은 태양 그늘이다.
이25:5-‘구름의 그늘’=이런 것들로부터 방어함.
예2:6-‘밀집한 구름의 토지를 통과하여’=진리에 무지한 상태, 그 결과 거짓 (=희미한 진리에 대한 이해성)
애4:20-‘그의 그림자에서 사는 것’=악으로부터의 거짓들에 맞서 그분의 보호 안에 있는 것.
이38:8-‘아하즈의 계단에서 그림자를 뒤로 당김’=그 때를 길어지게 함.
시44:19-이것들이 있는 거짓이 ‘죽음의 그림자’라 불리운다.
시23:4-‘그늘진 계곡에서 걷는 것’=희미하게 이해함은 빛으로부터 진리들을 나타내지 않는다.
겔17:23-‘그것의 가지들의 그림자에서 거주하는 것’=자연적인 진리들에서 종결됨. 그 이유가 이것들이 합리적 진리들을 감싸서 보호하고 안내하기 때문.

달 (moon, lunar)

시72:5,7-‘달’=신앙. ‘달이 있지 않을 때 까지’=신앙이 사랑이 되는 것.
* 신앙이 ‘밤’이라 불리는 이유는 신앙은 달이 해에서 빛을 받듯 선행으로부터 빛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앙은 달에 비교되고 ‘달’이라 불린다.
* 주님은 영적 천국의 천사들에게 달이다.
이13:10-‘달은 그녀의 빛을 빛나게 하지 않을 것이다’=(그렇게 행동되지 않는) 신앙 속의 진리들.
이30:26-주님이 영적 천국의 천사들에게 달로서 나타난다는 사실이 나에게 확인 되었다. 나는 빛나는 달을 뚜렷하게 보았는데, 이 달은 많은 작은 달에 의해 휘감겨 있었고, 그것의 광도(lumen)는 거의 햇빛이었다, 마치 이 구절, ‘달의 빛이 태양의 빛 같이 있을 것이다’와 같다…‘달빛’은 앞쪽, 오른 쪽에서 나타났다.
마24:29- ‘달은 그녀의 빛을 주지 않을 것이다’= ‘달’에 의해 신앙이 의미되어진다.
마24장-‘달’=사랑으로부터의 신앙과 선행으로부터의 신앙.
이24:23-‘달이 얼굴을 붉힐 것이다’=신앙이 얼굴을 붉힐 것이다.
계12장-‘달’=영적인 사랑.
욜2장-‘태양과 달’=사랑의 선과 이 선으로부터의 진리.
이60:20-‘너의 달이 거두어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진리의 생활 안에 그리고 총명 안에 있을 것이다, 그이유는 영적 사랑과 주님의 빛 안에 있기 때문.
시104:19-‘달’=총명; ‘태양’=주님으로부터의 지혜.
마24장-‘달이 그녀의 빛(lumen)을 주지 않을 것이다’=…이웃을 향한 선행…이것이 ‘달’인데…나타나지 않을 것이다…‘달’=사랑의 영적인 것; 즉…‘달’= 신앙을 통해 있는 이웃을 향한 선행. ‘달’의 의미가 이런 의미인 이유는…저 삶에서 주님은 영적 왕국에 있는 사람들, 즉 이웃을 향한 선행에 있는 이들에게 달로서 나타나시기 때문.
창37:9-‘바라보니 태양과 달’=자연적 선과 자연적 진리…‘달’=영적 선, 또는 진리…‘달’ 최고 의미에서,=주님, 그이유는 그분이 영적 사랑 안에 있는 이들에게 달로서 나타나기 때문…그리고 천국 안에서 달로부터의 빛은 사랑의 영적인 것, 또는 진리이다. 여기서 그러므로 ‘달’=자연적 진리, 그이유는 이것이 (10절을 참조하면) 레아를 서술하기 때문…그이유가 ‘레아’는 자연적 진리를 표현했기 때문.
계6:12-‘달’=신앙 속의 진리.
예31:35-‘밤의 빛으로 달과 별들을 지정하셨다’=신앙과 지식들 속의 선들로부터 어둠에 진리의 빛이 있다.
마24장-천사들은 ‘달’을 가지고 달이 아닌 주님에 대한 신앙을 지각한다.
마24장-‘달은 그녀의 빛을 주지 않을 것이다’=총명과 신앙이 더 이상 없다.
이30장-‘달빛’=선행으로부터의 신앙.
계6:12-‘달이 피같이 되었다’=그들과 더불어…신앙 속의 모든 진리는 왜곡되었다.
계21:19-‘그 성은 달이 필요 없다..’ 여기서 ‘달’에 의해 영적 총명과 신앙에서 분리된 자연적 총명과 신앙, 즉 자기 고유의 것, 자아로부터의 신앙이 의미되었다.
눅21:25-‘달’=주님 안에서의 신앙. (=사랑으로부터의 신앙).
이24:23- ‘달과 태양’에 의해 그들의 우상적 예배가, 또한 신앙 속의 거짓과 사랑 속의 악이 의미되고 있다.
시121:6- ‘달’=악의 거짓.
이13:10-‘달’=신앙.
계6:12, 욜2:31-말씀에서 ‘달’에 의해 신성한 진리, 즉 신성의 영적인 것이 의미되고 있다; 그러므로 ‘달이 피로 변했다’라고 말해진다.
겔32:7-신앙 속에 진리가 없다는 것이 ‘달이 비추기 위한 그녀의 빛을 만들지 않는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달’에 의해 신앙의 진리가 의미되었다.
계6:12-‘달이 피같이 되었다’=신앙 속의 모든 진리가 왜곡되어졌다. (그이유가) ‘달’=영적 진리, 이 진리는 신앙 속의 진리라 불리기 (때문이다).
시89:37-‘그분의 보좌는…달 같이 영원히 고정될 것이다’=영적 선, 즉 신성한 진리 안에 있는 천국과 교회.
이13:10-‘달’=이웃을 향한 선행의 선, 이 선은 그것의 본질에서 선으로부터의 진리, 그리고 신앙 속의 진리라 불리워진다…‘달이 비추기 위한 빛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외관에 의거 말해지고 있다.
여10:12,13-‘달은 아직 야알론 골짜기에 서있었다’=모든 진리 측면에서 교회는 완전하게 황폐되었다.
욥31:26-‘빛’, 그리고 ‘달’=영적 진리들.
계21장-‘달’=자연적 빛(lumen); 그이유가 그 자체만 참작하면, 자연적 빛(lumen)은 자연적 사랑으로부터이고, 빛(lumen)의 품질은 사랑의 품질에 따라 있기 때문이다.
이60:19-‘달’=자연적 빛(lumen). 그러나 20절의 달은 천사들의 천국의 달을 뜻하고 이 달은 신성한 진리를 의미한다.
시89편-‘달 같이’=신앙 속의 진리에 관련하여.
예8:12-‘달’=이 사랑으로부터 파생된 양쪽 의미에서의 신앙.

무지개 (rainbow)

* 활, bow도 참조
계10:1-‘천사들의 머리 주위에 무지개’=내적 의미에서 있는 말씀.
겔1:28-‘빛남’과 ‘무지개’=사랑으로부터의 지혜와 총명.
계4:3-‘왕좌 주위에 무지개’=선으로부터 투명한 진리들. 거기의 색깔들은 천국의 빛으로부터 있기 때문.
계4:3-‘왕좌 주위에 무지개, 그 광경이 에메랄드 같다’=주님 주위에 (신성한 사랑과 지혜)의 나타남.
계10:1, 겔1장, 창9장-‘그의 머리 넘어 무지개’=신성의 영적 평면. 이는 자연 평면 넘어 있는바, 무지개가 그의 머리 넘어 있다…주님의 신성한 영적 평면이 에스겔 1장에서 ‘무지개’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무지개’=신성한 영적 진리. (창세기 9장에서) ‘무지개’=거듭나지고 있는 이들과 더불은 자연 평면에 있는 신성한 영적 진리.
창6장-‘무지개’=거듭남, 이는 신성한 진리에 따른 삶을 통하여 결과되어진다. 그런고로 이 ‘활’이 언약의 표시로 취해졌다.

발광체 (luminary)

창1:16-(사랑과 신앙이) 이제 내적 인간 안에서 불붙는다, 그리고 ‘두 발광체’라 불리워진다.
창1:14~17-‘하느님께서 말하셨다, 하늘들의 광활한 공간에 발광체들이 있어, 낮과 밤이 구별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들과 계절들과 날들과 해들을 있게 하라. 그리고 발광체들은 하늘들의 광활한 공간에서 땅 위에 빛을 주게 하라,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두 큰 발광체들을 만드셨다; 큰 발광체는 낮을 주관하고, 보다 작은 발광체는 밤을 주관하고 별도 (만드셨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것들을 하늘들의 광활한 공간에 두시고, 땅 위에 빛을 주도록 하셨다’. ‘큰 발광체’가 무엇인지는, 먼저 신앙의 본질인 것, 또한 그것의 발전이 새로이 창조되는 이들과 더불어 어떠한지를 알지 않으면 잘 이해할 수 없다. 과학적이고 지적인 신앙은 생명 없는 것들에 의해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사랑에 의해 생기가 있는 신앙은 생명 있는 것들에 의해 표현되어져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먼저 취급하는 것은 사랑이고, 파생된 신앙이 취급된다. 이것이 ‘발광체들’이라 불린다. 사랑은 ‘낮을 주관하는 큰 발광체’이다; 사랑으로부터의 신앙은 ‘밤을 주관하는 보다 작은 발광체’이다. 이것들이 하나를 이루어야 하기에 ‘발광체들이…거기 있으라, Let there be- (sit)…luminaries’라고 하여 단수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 사랑과 신앙은 내적 인간 안에 놓여있다, 마치 열과 빛이 외적 육체적 인간에 놓인 형국과 같다….그러므로 발광체들은 ‘하늘들의 광활한 공간에’, 또는 내적 인간 안에 놓였다고 말해진다; 큰 발광체는 그의 의지 안에, 보다 작은 것은 그의 이해성 안에 놓여져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오직 의지와 이해성에서만 나타날 뿐이다. 마치 태양의 빛이 대상물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같다. 사랑을 가지고 의지에, 진리 또는 신앙을 가지고 이해성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오직 주님의 자비 뿐이다.
계21:11-‘그녀의 발광체는 지극히 귀한 돌의 것 같다.’ (=신성으로부터의 진리) (=믿음 속의 진리, 이로부터 파생된 총명)
* ‘발광체를 위한 기름’=상호적인 사랑 안에, 선행 안에 있는 내적 선…‘발광체’=상호 사랑과 선행. ‘발광체’= 상호 사랑인 이유는 불꽃으로부터 빛이 있기 때문, 이를 수단으로 사랑이 의미되어진다; 그리고 그것=선행인 이유는 거기 있는 열과 빛으로부터이기 때문.
출27장에서-선행의 선이 취급되고 있다, 이를 통하여 영적 왕국의 천국은 신앙의 진리 안에서 주님에 의해 빛을 내고 있다. 이런 것들이 ‘올리브 기름’에 의해, 그리고 ‘발광체’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출27:20-‘발광체를 위해’=영적 왕국의 천국.
겔32:8-‘하늘들에 있는 빛의 발광체들’에 의해 태양, 달, 별들이 뜻해진다; 그리고 태양에 의해 사랑이, 달에 의해 파생된 신앙, 그리고 별들에 의해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이 의미되어진다.

별 (star)

민24:17-그분의 인간 본질이 ‘야곱에게서 나온 별‘이라 불리고 있다.
창15;5-‘별들을 셈’=별자리들의 정신적 관점에 있는 선들과 진리들의 표현. (그이유가) ‘별들’=선들과 진리들. 말씀의 어디에서이든 ‘별’이 언급되면=선들과 진리들; 반대 의미에서 악들과 거짓들.
눅21:25-‘별들’=선들과 진리들, 또는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 이 지식들은 시대의 종말에서…검게 되었다.
마24:29-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 이것이 ‘별들’이다, 그리고 여기서 ‘하늘들의 권능들’로 불리운 것은 떨어져 사라졌다. (=믿음에 관한 지식들).
창22:17-‘하늘들의 별들 같이’=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이 배가됨.
계12:1-‘열 두 별’=신앙 속의 모든 것들; 그 이유가 ‘별들’=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 이것이 믿음 속에 있기 때문.
욜2:10-‘별들의 빛남이 철회되었다’=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
창26:4-‘나는 하늘들의 별들 같이 네 씨를 불리겠다’=진리들, 그리고 믿음 속의 지식들.
마24:29-‘별들이 하늘로부터 떨어질 것이다’=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은 멸해질 것이다.
창37:9-‘열 한 별’=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
겔32:7,8-그 당시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이 멸해진다는 것이 ‘나는 하늘들의 별들을, 그리고 빛을 내는 모든 발광체들을 검게 할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계12:4-‘하늘의 별들’=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 ‘그것들을 땅으로 내던지는 것’=그것들을 파괴하는 것.
단12:3-천사들의 처소가 별들 같이 빛나는 것이 이 구절에서 서술되어지고 있다.
욜2:10-‘별들’=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 이것이 믿음과 사랑으로부터, 고로 천국으로부터 더 이상 빛을 가지지 않을 것이 ‘별들의 반짝임이 철회됨’에서 의미되고 있다.
단12:3-‘별들 같이 빛남’=진리의 총명과 선의 지혜에 있는 것, 그리고 이로부터 영원한 행복이 있다; 그이유가 ‘별들’=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 이로부터 총명과 지혜가 있다.
민24:17-박사들은 …별 하나가 그들에게 나타나리라는 것을 알았다, 발람 역시 이것에 관하여 예언했다. 더욱이 ‘별 하나’=주님으로부터 있는 내적인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
단8:10-‘그 군대와 별들 중의 얼마를 내던지는 것‘=천국의 선들과 진리들을 파괴하는 것, 그리고 선과 진리에 관한 참 지식들.
욥38:7-‘아침 별들’=선과 선으로부터의 진리에 관한 지식들…이것들이 떠오를 때 ‘노래한다’라고 말해진다.
출32:13-‘나는 네 씨를 하늘들의 별들 같이 많게 하겠다’=선과 진리, 그리고 그것들에 관한 지식들.
계9:1-‘별이 천국으로부터 떨어졌다’=진리에 관한 지식들이 파괴되었다.
마2장-‘그들 앞에 갔던 별’=천국으로부터의 지식.
마24장-‘별들’=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에 관련된 주님.
계1:16-‘그분의 오른 손에 일곱 별’=말씀 안에서 선과 진리에 관한 모든 지식들, 이 지식들은 말씀으로부터 천국의 천사들과 교회 속의 사람들과 더불어 있다.
계1:20-‘네가 본 내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의 신비’=새 천국에 관한 환상들에 있는 신비(arcana). ‘일곱 별’=천국들에 있는 교회. (=그분으로부터 있는 선들과 진리들에 관한 계시).
계2:1-‘그분의 오른 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계신 그분이 이런 것들을 말하신다’=주님으로부터 말씀을 통하여 모든 진리들은 있다…‘오른손의 일곱 별’=말씀 안에 있는 선과 진리에 관한 모든 지식들, 이것은 주님으로부터 천국의 천사들과 교회의 사람들과 있다.
계2:28-‘나는 그에게 아침 별을 줄 것이다’=총명, 그다음 지혜. (=주님의 신성한 인간으로부터의 총명과 지혜).
계3:1-‘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것을 말하신다’=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에 관한 모든 지식이 있다.
계8:10-‘마치 횃불 처럼 타는 큰 별이 천국으로부터 떨어졌다’=지옥적 사랑으로부터 발생되는 교만으로부터 있는 그자신의 총명. (=인간 자신의 사랑으로부터 왜곡된 말씀 속의 진리).
계8:11-‘이 별의 이름은 쑥이라 불리웠다’=지옥의 거짓으로부터 그들 자신의 총명이 있다. (=악의 거짓과 혼합된 진리).
계8:12-‘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 받았다’=거짓들로부터의 악, 악들로부터의 거짓 때문에 그들은 어떤 진리라도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는 것…‘별들’=말씀으로부터의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 (=선과 진리에 관한 모든 지식들이 멸해졌다).
계9:1-‘나는 천국으로부터 땅으로 떨어지는 별 하나를 보았다’=영적 천국의 신성한 진리가 그들과 더불어 있는 교회 안으로 흘러들어 조사하고 명명백백하게 함. 여기서의 ‘별 하나’=영적 천국의 신성한 진리, 그 이유는 그것이 영적 천국으로부터 떨어지기 때문이다. (=왜곡되어 왔었던 진리에 관한 지식, 이리하여 거짓으로 되어버린 지식).
계2:28, 22:16-계9:1에서와 같은 의미가 여기서도 단수 표현인 ‘별 하나’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그 이유가 복수인 ‘별들’은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을 의미하기 때문, 그리고 이것들을 통하여 총명이 있다.
계12:1-‘그녀의 머리 위에 열 두 별의 왕관이…’=말씀으로부터 신성한 선과 신성한 진리에 관한 지식들로부터 있는 새 교회의 지혜와 총명. (=말씀으로부터 선과 진리 속의 모든 것들에 관한 지식들과 교리적인 것들을 통하여 이 교회 속에 있는 이들의 총명과 지혜.
계12:4-‘그것의 꼬리가 천국의 별들의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으로 내던졌다’=말씀 속의 진리들을 왜곡함을 통하여 그들은 선과 진리에 관한 모든 영적 지식들이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그리고 이 지식들을 거짓에 응용함으로 파괴했다. (=말씀 속의 모든 진리들을 섞음질하고 왜곡함)
예31:35-‘달과 별들을 지정하심으로부터 밤의 빛이 있다’=영적 선으로부터의 진리들, 그리고 지식들로부터 총명이 있다.
사5:20-‘그들의 진로(course)로부터 별들이 시스라와 맞서 싸웠다’=진리에 관한 지식, 그리고 악의 거짓에 맞서 이 지식으로부터 전투함.
옵4절-‘별들 사이에 그것을 두는 것’=진리에 관한 지식에 있는 이들이 거주하는 고지에서.

별자리 (constellation)

* ‘별들’과 ‘별자리’=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
이13:10-‘하늘의 별들과 별자리가 그것들의 빛을 주지 않을 것이다’=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
이13:10-‘별들’=선에 관한 지식. ‘별자리’=진리에 관한 지식.

불 (fire)

겔10:2-그들은 자기들의 사악한 탐욕들에 남겨져 있었다는 것이 이 구절에서 ‘도성에 흩뿌린 불’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이66:16-‘불’=탐욕의 형벌.
이43:2-‘불과 불꽃’=악들과 탐욕들.
겔1:13-‘불’=사랑
시104:4-‘타오르는 불’=영적인 것으로부터 있는 천적인 것 (the Celestial Spiritual).
레6:12,13, 16:12-14, 9:24-‘불’=사랑인 바, 불은 주님을 표현하게 되었다는 것이 번제단의 불로부터서도 분명해진다. 결코 꺼지는 일이 없는 이 불은 주님의 자비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론이 자비석으로 들어가기 전, 그는 번제단의 불을 가지고 분향해야 했다. 이는 예배가 주님에 의해 열납되고 불이 천국으로부터 내려와져 번제물을 사른다는 것을 의미하기 위하여서였다.
레10:1,2-또한 ‘불’=자아 사랑과 이 사랑의 탐욕, 천적 사랑이 동의 할 수 없는 사랑; 그러므로 아론의 두 아들들은 불에 의해 살라져 죽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이상한 불(낯선 불, 주님이 모르시는 불)로 향을 태웠기 때문. ‘이상한 불’=자아와 세상 사랑의 모든 것, 그리고 이 사랑들로부터의 모든 탐욕.
겔1:27-‘그분의 허리 위쪽의 불의 외관은 불꽃이 튀는 석탄’=사랑으로부터의 천적인 것; ‘그분의 허리 아래쪽 주변의 불의 빛남은 구름에 있는 활 같다’=영적 왕국으로부터의 천적인 것.
나3;15-‘불’=탐욕의 형벌.
창15:17-‘불의 횃불’=가장 더러운 악, 이것이 마지막 때에 교회를 소유할 것이다.
계16:8,9-자아 사랑과 그것의 탐욕들이 ‘사람들이 불로 태워졌고, 큰 열로 그을려졌다’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창19:24-‘유황’=자아 사랑으로부터의 악들의 지옥; 그리고 ‘불’=거기서부터 초래된 거짓들.
창22:6-‘그는 자기 손에 불과 칼을 취했다’=사랑의 선과 신앙 속의 진리.
창22;7-‘보라, 불과 장작…’=사랑과 정의가 현존하는 것.
겔5:2-‘불로 태워짐’=색욕으로 파멸함.
마25:41-그들이 떠나 들어가야 하는 ‘영원한 불’은 초보 수준의 불이 아니고, 양심이 고뇌하는 수준의 것도 아니다; 이것은 악으로부터의 현세에의 강한 욕망이다; 인간과 더불은 현세에의 욕망(concupiscense)은 육체의 생명에서 그를 살라버리는 영적인 불이고, 저 세계 삶에서 그를 고문한다; 이 지옥의 불에 의해 그들은 서로를 끔직한 방법들로 고문한다.
단7:9,10-‘불의 불꽃’ 그리고 ‘불이 흐름’은 신성한 사랑의 선을 표현한다.
단7:9-주님의 신성한 사랑의 신성한 선이 여기서 ‘불의 불꽃’으로 보여졌다.
계19:12-주님의 신성한 선으로부터 말씀 안에 있는 신성한 진리.
겔20:47-‘불’과 ‘불꽃’=악과 거짓의 탐욕, 이것은 교회의 모든 선과 진리를 소멸하여 황폐되게 한다
계19:20, 20:10,14,15, 21:8-‘불과 유황’=자아 사랑, 그리고 이로부터 파생된 탐욕; 그 이유가 자아 사랑과 그것의 탐욕은 초보적인 불이 아닌 영적인 불, 즉 인간에게 그의 생명을 주는 불 밖에 더 아니다. 사랑들이 생명의 원천을 이루는 불임은 곰곰이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분명한 사실이다. 천국들에서는 거룩한 불로 의미되는 불이 있고, 지옥에서도 그들의 불이 있다. 초보적인 불은 두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계8:7-‘피와 뒤범벅된 불’=거짓화된 진리들과 더불은 탐욕들의 불.
출9:23-‘불이 땅에서 걸었다’=탐욕들의 악들이…자연적 마음의 가장 낮은 부분들로 내려가 그 마음들을 소유하고 있다.
출12:8-‘불로 굽다’=사랑의 선…그 이유가 ‘불’=사랑.
출12:10-‘나머지를…너희는 불로 태울 것이다’=…시험들을 경험하는 것. 시험이 ‘불로 태움’에 의해 의미된 이유는 순수해짐이 불을 수단으로 결과되어지기 때문; 그리고 또한 인간이 시험 안에 있을 때, 그는 불인 그의 탐욕들 안으로 놓이기도 하기 때문.
말3:2-‘제련자의 불’=시험, 이를 수단으로 순수해짐이 있다.
단7:9-‘타고 있는 불’=사랑과 선행으로부터의 것들.
출35:3-‘안식일에 불을 지피는 것’은 금하여졌는데, 그 이유는 ‘불’에 의해 생명 속에 있는 모든 것이 의미되기 때문; 그리고 ‘불을 지피는 것’은 자아로부터 생명 속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출19:18-‘여호와께서 불 안에서 그것 위에 내려오셨기 때문에’=거기 천적 사랑 안에 신성. (그이유가) 불 안에 여호와가 있으신 바=신성한 천적 사랑. ‘불’=사랑.
욜2:3-‘그것 앞에서 삼키는 불’=악의 욕망; ‘그것 뒤를 따라 타오르는 불꽃’=거기서 파생된 거짓의 욕망.
출22:5(또는 6)-‘불이 번져 버릴 때’=악의 애착으로부터 성남; (그이유가) ‘불’=사랑; 여기서 악의 사랑과 그것의 애착; (그리고) 인간이 사랑한 것이 공격당할 때, 불길 같은 것이 폭발되듯 튀어나간다, 그리고 다 태워버린다. 이로부터 성남이 불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타는 것’이라고 말해지고 있다.
시118:12-‘가시들(thorns)의 불’=악으로부터 있는 현세에의 욕망(concupiscense).
이47:14-‘불’과 ‘불꽃’=자아의 사랑.
신13:16-‘전리품과 도성을 불로 태울 것이다’=자아를 사랑함으로부터의 악.
막9:49-‘불로 소금치는 것’=진리를 위하여 선을 갈망함.
겔39:9-‘칠년 동안 그것들을 가지고 불을 지피는 것’=자아와 세상 사랑들을 수단으로 완전하게 파멸됨.
사9:15-‘가시나무(bramble)로부터 불’=현세에의 강한 욕망으로부터의 악
시11:6-‘불과 유황’=자아와 세상의 사랑으로부터의 악들.
레10장-‘향로에 있는 이상한 불’=말씀보다는 어떤 다른 근원으로부터 있는 교리. ‘불’=사랑의 선..
신9:21-‘금송아지를 태운 불’=자아와 세상을 사랑함으로부터의 악.
출24:17-‘여호와의 영광의 모습은 삼킬듯한 불 같았다..’=사랑의 선으로부터 반짝반짝 빛나는 천국에 있는 신성한 진리, 그러나 내적 인간으로부터 분리된 외적 인간 안에 있는 이들에게는 고통을 주는 상처와 황폐함만 있다…’불’=양 측면의 의미에서의 사랑, 신성한 사랑 자체.
계9:17-‘불’=악의 지옥의 사랑.
계8:8-‘불에 타는 큰 산’=자아 사랑.
이33:11-‘불’=현세에의 강한 욕망, 악으로부터 있고 파괴한다.
시104:4-‘그것들을 불꽃이는 불로 만드는 것’=신성한 선, 또는 신성한 사랑의 영접
마3:11-‘불로 세례하는 것’=신성한 사랑의 신성한 선으로부터 거듭나는 것.
출29;14-‘너는 진영 밖에서 불로 태울 것이다’=이런 것들은 지옥에 보내기로 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자아 사랑의 불로 살라야 한다는 것.
출29:34-‘너는 나머지를 불로 태울 것이다’=그것들의 흩뜨림…인간에게 어울리는 사랑을 수단으로, 고로 이런 사랑들의 악들을 수단으로.
이9:19-‘불을 위한 식품’=자아와 세상의 사랑으로부터의 악들 또는 탐욕들을 자기 것 만듦.
출32:20-‘그는 불로 (송아지를) 태웠다’=온전히 자아와 세상의 사랑으로부터, 이것은 지옥에로 정죄되어져 있다. ‘불’=천적인 사랑, 이는 주님을 사랑함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다; 그리고 반대 의미에서, 지옥의 사랑, 이는 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이다. 이로부터 ‘불로 태워지는 것’=자아와 세상의 사랑들로 온전히 채워지는 것, 고로 지옥에 정죄되어 있는 것…
출32:24-‘나는 그것을 불에 던졌다’=자아와 세상의 사랑들 안으로.
계3:18-‘불에서 단련된 금’=천적 사랑의 선. (=순수한 선)
계8:5-‘천사는 제단의 불을 가지고 향로를 채웠다’=천적인 사랑이 들어 있는 영적인 사랑.
계8:7-‘우박과 불’=지옥의 사랑으로부터의 거짓.
계9:17-‘불길 같은 가슴받이’=지옥의 사랑으로부터의 상상적이고 환상적인 그들의 변론.
계9:17-‘그들의 입으로부터 불이 나왔다…’=그들의 생각들과 대화들, 내면을 들여다보건대, 자아와 세상 사랑 외에 더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겔1:27-‘그분의 허리들 주위의 불’=천적인 사랑. (=그분의 신성한 사랑)
계10:1-‘그분의 발들은 불의 기둥들 같다’=신성한 사랑 측면에서의 주님의 신성한 자연, 이것이 모든 것들을 받쳐준다.
계11:5-‘불이 그들의 입으로부터 나갈 것이다’=지옥의 사랑(이는 실지로 두 증인으로부터가 아니고 지옥의 사랑 안에 있는 이들로부터 이다.)
계13:13-‘그는 불을 하늘로부터 내려오게 만든다’=그들의 거짓들이 천국의 진리들이다는 증거들.
계14:10-‘불과 유황으로 고통당할 것이다’=자아를 사랑함과 세상을 사랑함 그리고 그것들로부터 탐욕들.
계14:18-‘불을 다스리는 힘을 가지고 있는…’=…천사들은 자기들 안에 있는 신성한 사랑을 보호한다.
계15:2-‘불과 뒤섞인’ 종교와 예배, 그러나 생활의 선은 없다…’불’ 여기서=악으로부터의 사랑,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생활의 악.
계18:8-‘그녀는 불로 깡그리 태워질 것이다’=그들은 주님, 그리고 그분의 천국과 교회를 미워할 것이다.
계19:20-‘유황으로 타고 있는 불못‘=이런 거짓의 사랑들, 그리고 동시에 악의 탐욕들 안에 있는 자들이 있는 지옥.
계20:9-‘불이 하느님으로부터 천국으로부터 와서 그들을 살랐다’=그들은 지옥의 사랑의 현세에의 욕망에 의해 멸망하였다.
단7:10-‘불의 시내가 나갔다’=사랑의 신성한 선.
시66:12-‘불 안으로’=자아 사랑으로부터 있는 악들 안으로.
창15:17-‘불의 횃불’=자아로부터의 섬뜩한 사랑.
예23:29-말씀이 ‘불 같이’ 있다고 말해진다. 그 이유는 ‘불’=사랑의 선.
시148:8-‘불과 우박’=자연적 인간의 사랑들로부터의 기쁨.
이43:2-‘불을 통과하여 가되 타지 않는다’=악들이 상처받지 않는다.
계8:8-‘불로 타는 큰 산’=자아의 사랑과 거기로부터의 자신 고유의 총명.
슥13:9-‘불로 입증하는 것’=사랑의 애착을 수단으로; 그이유가 만일 진리가 이것과 일치 않는다면, 그것은 순수하지 않기 때문.
욜3:3-‘불’=말씀의 선이 간음질화 되었다.
겔28:14-‘불의 돌들’=사랑의 선으로부터의 진리들.
계16:8-‘불로 그을려 사람을 고통스럽게 함’=갖가지 종류의 악들로부터의 거짓들을 위한 색욕 또는 탐욕, 결과적으로 악을 위하여, 타인에게 상처주기 위하여.
계18:8-‘그녀는 불로 태워질 것이다’=이것이 악마의 사랑인고로 그들은 멸망할 것이다.

불꽃 (flame)

창3:24-‘그 자체 회전하는 검의 불꽃’=사악한 탐욕들과 이로부터 파생되는 설득들을 지닌 인간 고유의 사랑.
* 불꽃은…열과 빛의 본질이다, 그 이유가 그것들이 불꽃으로 나오기 때문.
이13:8-‘불꽃들의 얼굴들’=탐욕들.
출3:2-‘덤불 한가운데로부터 불의 불곷’=과학적 진리에 있는 신성한 사랑. ‘불의 불꽃’=신성한 사랑.
단7:9-주님의 신성한 사랑으로부터의 신성한 선이 불의 불꽃 같이 여기서 보여졌다.
계19:12-고로 ‘불의 불꽃’은 말씀에 있는 신성한 진리이다, 이는 주님의 신성한 선으로부터 이다.
계1:14-‘불의 불꽃’같은 눈=주님의 신성한 선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
시29:7-‘불의 불꽃’=주님으로부터 진행되는 신성한 진리.
욜2:3-‘그들(him) 뒤를 태우는 불꽃’=거짓의 바램.
이47:14-‘불’, 그리고 ‘불꽃’=자아의 사랑.
시29:7-‘불의 불꽃’에 의해 거짓에 대한 애착이 의미되어진다.
계1:14-‘그분의 눈은 불의 불꽃 같았다’=신성한 사랑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불의 불꽃’에 의해 영적 사랑, 즉 선행이 의미되어진다. 그러므로 주님을 서술할 경우, 그것은 신성한 사랑이다.
시104:4-‘불꽃이는 불’=사랑으로부터의 선.
시105:32-‘불꽃들의 불’=세상의 사랑.
겔20:47-악으로부터의 거짓을 사랑함에 의해 교회의 황폐와 파멸이 ‘비통한 불의 불꽃’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단11:33-‘그들은 검과 불꽃에 의해 망할 것이다’=거짓들과 거기서 파생된 악들로부터 멸망함.

빛 (light)

창1:3-‘빛이 있으라, 그리고 빛이 있었다’…인간이 새로이 임신되었을 때, 그는 첫째로 그의 선들이 선들이 아니다는 것을 알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빛 쪽으로 더 오게 될 때, (그는) 주님이 존재하신다는 것, 그리고 주님이 선 자체이시고 진리 자체이심을 (알기 시작한다)
창1:4,5-‘하느님께서 빛을 보셨다, 그것은 선이었다; 그리고 하느님은 빛과 어둠 사이를 구별하셨다. 그리고 하느님은 빛을 낮이라,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빛이 선이다 말해진 이유는 그것이 주님으로부터 있기 때문이다…주님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은 ‘낮’에 비교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것들이 빛 속에 있기 때문이다.
창1:18-‘빛과 어둠을 나누는 것’…‘빛’에 의해 진리가 의미되어진다.
요12:36-영적 인간…‘빛의 아들’이라 불리운다.
이58:10-‘너의 빛이 어둠에서 일어날 것이다’=그들은 진리의 총명을 가질 것이다는 것.
이5:20-‘빛을 위하여 어둠을 놓고, 어둠을 위하여 빛을 놓는 이들에게 화있을 것이다.’ ‘어둠’=거짓, 그리고 ‘빛’=진리들.
요3:19-‘이것이 심판이다, 즉 빛이 세상 안으로 왔다, 그러나 인간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 이유가 그들의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빛’=진리들, 그리고 ‘어둠’=거짓들; 그리고 ‘빛’=주님, 그 이유는 모든 진리가 그분으로부터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둠’=지옥들, 그 이유는 모든 거짓들이 거기서부터 있기 때문이다.
요11:10-‘빛이 그 사람 안에 있지 않다’…‘빛’=참되고 선인 것.
합3:4-‘빛남과 밝음’=계발
이60:19,20-‘태양은 낮에 더 이상 빛을 (내지 않을 것이다)’=자연적 빛 속에 있는 것들이 아닌 영적인 빛 속에 있는 것들, 이것이 ‘여호와께서 영원의 빛을 위해 있으심’에서 의미되고 있다.
이9:2-‘큰 빛을 보는 것’=믿음 속에 있는 진리들을 받고 믿는 것. 천국의 빛은 믿음 안에 있는 이들 위에서 빛을 발한다 라고 말해지고 있다; 그 이유가 천국 안에 있는 빛은 신성으로부터 있는 신성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계18:23-‘등의 빛이 네 안에서 빛을 내지 않을 것이다’=진리의 총명이 없다.
시4:6-‘얼굴의 빛을 위로 향함’=자비로부터 선을 주는 것.
이59:9-‘빛을 기다리는 것’=진리를 기다리는 것.
출10:23-‘이스라엘의 모든 아들들은 자기들 처소에 빛을 가졌다’=영적 교회 속의 이들은 그들 마음 어느 곳에서나 예증을 가졌다…‘빛’=예증; 그이유가 주님으로부터 있는 빛이 이해성을 계몽하기 때문, 이 빛 안에서 총명과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요3:21-‘빛으로 오는 것’=주님 안에서의 믿음 쪽으로, 고로 주님으로부터 있는 믿음 쪽으로.
이51:4-‘백성들의 빛을 위하여’=예증을 위하여.
이30:26-‘달의 빛’=선행으로부터 있는 믿음; ‘태양의 빛’=사랑으로부터, 고로 주님으로부터 있는 총명과 지혜.
마5:14-이러한 것들이 제자들에게 말해졌던바, 이들에 의해 복합체로 있는 모든 진리들과 선들이 의미되었다; 그러므로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해졌다; 그이유가 ‘빛’은 신성한 진리와 그로부터 파생된 총명을 의미한다…
이30:26-‘달의 빛이 태양의 빛 같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태양의 빛은 일곱 날들의 빛 같이 일곱 겹 일 것이다’…=천국에 있는 신성한 진리, 거짓이 전혀 없다, 고로 완전하게 충분하게 순수하다.
마5:14-‘세상의 빛’=교회 속의 진리.
이60:3-‘나라들이 네 빛으로 걸을 것이다’=신성한 진리에 의거한 생활
시36:9-‘네 빛에서 우리는 빛을 볼 것이다.’=…신성한 진리 안에서.
눅11:34-이해성 안에서 지각되고 의지에서 받아진 진리가 악으로부터 행해지는 것인 거짓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는 것이 ‘그러므로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두워지지 않는가를 보라’에서 의미되고 있다.
이2:5-‘여호와의 빛 안에서 가자’=그들은 지혜의 삶을 이끌 것. ‘여호와의 빛’=신성한 진리; 그리고 ‘그것 안에서 가는 것’=그것에 따라 사는 것, 고로 지혜의 삶 안에 있는 것.

새 하늘 (new heaven))

* 예언서와 계시록에서 ‘새 하늘들과 새 땅’=주님의 왕국, 그리고 주님의 왕국에 있는 모든 이 각각, 또는 각 사람에 있는 주님의 왕국.
이65:17, 66:22, 계21:1-이전 것을 계승할 ‘새 하늘과 새 땅’=내적, 외적인 새로운 교회.
계21장-‘새 하늘과 새 땅’은 이전 것이 사라질 때, 계승할 새로운 교회를 뜻한다. ‘하늘’=이 교회의 내적 측면., ‘땅’=이 교회의 외적 측면.
* (말씀에서) ‘새 땅’에 의해 새로운 외적 교회, 그리고 ‘새 하늘’에 의해 새로운 내적 교회가 뜻해진다.
계21장-‘새 하늘과 새 땅’을 사람과 더불어 있는 천사들은 새로운 교회라고 이해한다..
계21장-내적, 또는 영적 의미에서 ‘새 하늘과 새 땅’, 그 안에 천사들이 있는바, 천국들과 땅, 모두에서 새로운 교회를 뜻한다.
계21장-‘새 하늘’은 기독인들로부터의 새 천국이다. ‘새 예루살렘’은 이 새 천국과 하나되어 행동할 땅에 있는 새 교회이다.
계11:19-‘하느님의 성전이 천국에서 열려졌다, 그리고 그분의 성전 안에서 그분의 언약의 궤가 보여졌다’=새 천국 (the New Heaven), 이 천국에서 주님은 그분의 신성한 인간 안에서 예배되어진다, 그리고 그들은 그분의 십계명의 가르침에 따라 살고 있다. 십계명에 새 교회 (the New Church)의 두 본질되는 요소가 있고, 십계명을 통하여 결합이 있다.
계14:1-7, 19:1-9, 20:4,5-천국이 ‘영 (the Spirit)’에 의해 뜻해진 이유는 천사와 같은 영들, 이들로부터 새 천국 (the New Heaven)이 뜻해지기 때문.

어둠 (darkness)

창1:2-첫 상태란 유아로부터, 그리고 직접적으로는 거듭남 이전, 둘 다에 선행되는 상태인데, 이 상태가 ‘텅빔’, ‘공허함’, 그리고 ‘어둠’이라 불리고 있다.
시97:2-그들의 무지함이 여기서 ‘구름과 어둠’에 의해 표징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함과 직바름에 있기에, ‘그분 둘레에’라고 말해지고 있다.
창15:17-‘짙은 어둠이 깔렸다’=선행의 장소에 미움이 있을 때. ‘어둠’=거짓들, 그러나 ‘짙은 어둠’=악들. 진리 대신에 거짓이 있을 때 ‘어둠’이 있다, 그리고 ‘짙은 어둠’은 선 대신에 악이 있을 때, 이와 똑같은 표현으로 선행 대신에 미움이 있을 때 이다. 선행 대신에 미움이 있을 때 그 어둠은 아주 커서 인간은 그것이 악인지 아예 알아채지도 못한다. 하물며 저 세상 삶에서 그가 그것이 얼마나 큰 악인지 알아채는바 악은 그를 지옥으로 내던진다.
시18:9-똑같은 것 (=자연적이고 육체적인 것들)이 ‘짙은 어둠이 그분의 발 아래 있었다’에서 의미되고 있다.
욜2:1-주님의 강림이 ‘어둠의 날과 짙은 어둠의 날’이라 불리고 있다, 그 이유는 그 당시 선한 자가 악한 자로부터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시18:9-‘짙은 어둠’=구름들.
창27:1-‘(이삭의) 눈들은 어두워져서 그는 볼 수 없었다’=합리성이 신성이었던 것을 가지고 자연성을 계발하기를 원했을 때…눈들이 ‘어두워진다’라고 말해질 때, 그것=더 이상 통각 작용이 없음; 여기서 자연성에 있는 것들의 통각 작용이 없음; 그리고 이것이 이런 말들의 의미인바, 그것=합리성이 신성이었던 것을 가지고 자연성을 계발하기를 원했다.
시91:6-‘짙은 어둠을 기어다니는 악성 유행병’=숨겨 있는 악.
출10:21-‘이집트의 토지 위에 짙은 어둠이 있을 것이다’=선과 진리의 완전한 결핍. (한 구절 안에서) ‘어둠’ 그리고 이어서 ‘짙은 어둠’이 말씀에서 언급되는 경우, ‘어둠’은 거짓을 서술하고, 그리고 ‘짙은 어둠’은 거짓과 함께한 악을 서술한다. 이 절에서 사용된 단어 ‘짙은 어둠’은 모든 어둠 중에서도 최고로 짙은 어둠을 표현하고 있다. 이 표현을 수단으로 악으로부터 시냇물같이 흐르는 거짓이 의미되고 있다; 이와 같은 거짓들은 교회에 속해 오고 있었던 이들과 함께 나와, 그들이 알고 있었던 믿음의 개념들과 반대되는 악한 생활을 영위했었다. 이런 거짓들이 솟아나게 하는 악은 교회에, 천국에, 주님에 정반대이다; 고로 선과 진리에 완전 반대이다; 이 상태가 여기서 ‘짙은 구름’에 의해 묘사되어 있다.
* ‘어둠’=진리에 무지함, 이는 이방인들과 더불어 그러하였다. 그리고 ‘짙은 어둠’=선에 무지함.
출10:22, 이8:22,-‘사람들이 짙은 어둠에서 더듬을 것이다’=악으로부터 있는 거짓의 밀도. ‘짙은 어둠 안에서 더듬는 것’=악으로부터의 거짓은 매우 짙어서 선과 진리에 대한 어떤 것도 알려질 수 없다. 그럼에도 만일 알려한다면 이는 마치 짙은 어둠에서 더듬는 것과 같다. 따라서 걸려 넘어지거나 모든 것을 두드려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사야서에서 짙은 어둠이 ‘좌초하게 하는 짙은 어둠’이라 부르고 있다. 이와 똑같은 묘사가 이사야서의 다른 곳에서도 있다. 즉 ‘우리는 짙은 어둠에서 걷는다, 우리는 맹인 같이 담을 더듬는다. 그리고 눈 없음 같이 우리는 더듬는다; 우리는 대낮에 황혼에 있을 때 같이 걸려 넘어진다. 살아 있는 자 사이에서 우리는 죽은 자 같이 있다.’
출20:21-‘모세는 하느님이 계신 짙은 어둠쪽으로 가까이 접근했다’=영적 선으로부터의 진리가 신성으로부터의 진리와 아직 더 결합함. 신성으로부터의 진리가 (영적 교회)에 짙은 어둠인 이유는 그들이 신성한 진리들에 관련된 어떤 빛 안에도 있지 않기 때문. 영적 교회에 속한 그들은 자기들이 빛 안에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은 희미함 안에, 그 뿐만 아니라 신성으로부터의 진리에 관련해서는 짙은 어둠 안에 있는다. 이는 그들이 교회가 말하는 것을 내적 지각으로부터 알지 못하는바 그들은 교회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렇다고 믿어야지 하는 사실로부터 명백하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참된지 거짓인지 를 확증한다. 그리고 신성으로부터의 진리에 관하여 내적 지각 안에 있지 않는 사람은 짙은 어둠 안에 있는다. 바꿔 말하면 그에게 신성한 진리는 짙은 어둠이다. 이로부터 더 알 수 있는바 희미함 안에, 짙은 어둠 안에 영적 교회가 있다는 것이다.
이60:2-‘어둠, 그리고 땅과 백성들을 덮는 짙은 어둠’=믿음의 희미한 것들과 사랑의 희미한 것들; 그이유가 이것은 이방인들 사이에서 있는 교회의 건설에 관련하여 말해지기 때문이다.
이59:9,10-‘어둠’=거짓들.
이8:22-‘보라 곤란과 짙은 어둠’=(선들과 진리들)이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오로지 거짓들 뿐이다는 것; ‘짙은 어둠’=밀도 높은 거짓.
이58:10-‘그다음 네 빛이 어둠 안에서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네 짙은 어둠은 정오 같이 있을 것이다’.
시18:9-‘그분의 발 아래 짙은 어둠’=더 낮은 것들 안에 있는 악으로부터의 거짓.
이59장-‘짙은 어둠’=악으로부터의 거짓
이58:10-‘어둠과 짙은 어둠’=진리에 무지함, 그리고 선에 무지함.
창1:4,5-‘하느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구별되게 하셨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빛을 낮이라,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어둠’은 인간이 새로이 임신되어 태어나기 전 빛으로서 나타나 있었다; 그 이유는 악이 선 같이 나타났고, 거짓이 진리인 듯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어둠이고, 인간에게 남아 있고 인간에게 어울리는 것들이다.
겔32:8-‘나는 네 토지 위에 어둠을 놓을 것이다’=그들은 감각적인 것과 과학적 사실들을 통하여 사랑과 신앙을 구분했다.
이13:10-‘올라오는 태양이 어두워졌다’
욜2:2-‘어둠의 날, 그리고 짙은 어둠의 날’
이60:2-이 구절은 세부적 측면을 다루는바 어둠 안에 있는 개개인들에 관한 것, 그리고 빛을 받는 이들, 그리고 거듭나지는 이들에 관한 것을 취급하고 있다.
창1:18-‘빛과 어둠을 구별하시는 것’. ‘어둠’=거짓.
창15:12-‘오! 큰 어둠의 공포가 그를 덮치고 있다’= 어둠은 무서운 것, 그리고 어둠은 거짓들이다는 것은 ‘어둠’이 거짓들이다의 의미로부터 명백하다. 마감 직전의 교회의 상태, 그러나 태양이 이제 막 지려는 때가 ‘큰 어둠의 공포’에 의해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태양이 이미 저버린 때의 상태는 ‘짙은 어둠’에 의해 묘사되고 있다.
이5:30-‘보라 어둠, 곤경, 그리고 빛이 어두워짐’. ‘어둠’=거짓들, ‘빛이 어두워짐’=진리가 나타나지 않음.
습1:15-‘어둠’, 그리고 ‘짙은 어둠’=거짓들과 악들.
마6:23-‘만일 네 눈이 악이다면, 네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네 안에 있는 빛(lumen)이 어둡다면 그 어둠은 얼마나 크겠느냐?’ ‘어둠’=거짓들, 이것은 지식들에 있는 이들이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어둠이 얼마나 큰지가 지식들이 없는 이방인의 것과 비교되어 뜻해지고 있다.
마8:12, 22:13-‘바깥쪽 어둠’=교회 안에 있는 이들의 더 끔직한 거짓들. 그 이유가 이 인물들은 빛을 어둡게 하고, 진리들에 맞서 거짓들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이런 짓은 이방인들의 경우 가능치 않다.
요1:5-‘빛이 어둠에 나타나나 어둠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둠’=교회 내에 있는 거짓들.
마4:16-교회 밖의 거짓 역시 어둠이라 불린다, 그러나 계발될 수 있는 거짓이다. 마치 본 구절, 즉 ‘어둠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와 같은 경우이다. ‘어둠’=이방인들과 더불어 존재한 것 같은 어둠, 즉 무지의 어둠.
요3:19-‘이것이 심판이다, 빛이 세상에 왔으나 인간들은 빛 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이유가 그들의 일들이 악하기 때문이다.’ ‘빛’=진리들, 그리고 ‘어둠’=거짓들. ‘빛’=주님, 그이유는 모든 진리가 그분으로부터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둠’=지옥들, 그 이유는 모든 거짓이 거기서 오기 때문이다.
요12:35,46-‘어둠이 너를 붙잡아 두지 않도록 네가 빛을 가지고 있는 동안 걸으라; 그이유가 어둠에서 걷는 그는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는바, 나를 믿는 모든 이는 어둠에 거주하지 않으리라’…‘어둠’=거짓들, 이는 주님 만에 의해 흔들려 떨구어진다.
마27:45, 막15:33, 눅23:44-이 구절에서 ‘어둠’이라 불리고, 그것이 ‘큰 어둠의 공포’라 서술되는 마지막 때의 거짓들이 ‘제 육시로부터 제 구시까지 온 땅을 덮은 어둠’에 의해 표현되고 의미되었다. 또한 ‘태양이 어두워짐’에 의해서도 표현되고 의미되었다. 이를 수단으로 표현되고 의미된 것은 그 당시 사랑이 없었고, 더 이상 어떤 믿음도 없다는 것이다.
시104:20-‘어둠을 배치하는 것은 밤일런지 모른다.’=희미함의 상태를 온건해지게 함.
삼하22:10-‘그분의 발 아래 밀도 높은 어둠’=인간에게 존재하기위해(보여지도록) 나타나는 것들. ‘어둠’= 예를 들면 말씀의 글자 의미 같은 것.
이42:7-‘소경의 눈을 여는 것, 갇힌 자를 감옥으로부터 데려오는 것, 어둠에 앉은 그들을 감금된 상태로부터 데려오는 것’=선과 진리에 무지한 이들, 그럼에도 그것들을 알고 싶어 하고 그것들을 자기들 속에 불어넣기를 갈망하는 이들.
겔12:12-‘왕자들이 어둠에서 어깨 위에 멜 것이다’= 전력을 다해 거짓들 사이에 가져다 내려 놓을 것이다.
겔32:8-‘그러므로 거짓들 만이 자연적 마음을 점유할 것임이 ‘나는 너희 토지 위에 어둠을 놓을 것이다’에서 의미되고 있다. ‘어둠’=거짓들.
암8:9-‘나는 빛의 낮에 어둡게 할 것이다’=거짓들이 교회를 소유할 것이다.
출10:15, 마8:12-‘토지가 어두워졌다’=거짓이 진리가 있어 왔던 곳에 가져다 놓였다는 것. ‘어둠’=거짓들; 고로 ‘어둡게 되는 것’=거짓 안에 있는 것; 그리고 이것은 교회 안에 있어온 이들, 진리들을 알고 있었던 이들, 그러나 악하게 살았던 이들의 황폐됨을 다루고 있는바, ‘토지가 어두워졌다’=진리가 있었던 곳에 거짓이 있다. 진리가 ‘빛’에 의해 의미되듯, 거짓은 ‘어둠’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그이유가 진리와 거짓은 빛과 어둠 같이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빛은 진리 안에 있는 이들과 더불어, 어둠은 거짓 안에 있는 이들과 더불어 있다. 저세상 삶에서 거짓 안에 있는 그들에게 있는 루멘(lumen)은 천국의 빛의 현존에서 짙은 어둠이 되어간다, 그리고 더욱이 교회 속에 있어왔던 이들과 더불어서는 한층 더 짙은 어둠이 되어 간다. 그이유는 그들과 더불은 거짓은 믿음의 진리와 반대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네 안에 빛이 어둡다면, 그 어둠은 얼마나 크겠느냐’ 그리고 다시, ‘왕국의 아들들이 바깥 어둠으로 내던질 것이다.’…‘바깥 어둠’=더 비통한 거짓들; ‘바깥쪽’이라 불리운 이유는 가장 바깥 것들에 있는 거짓이 가장 비통하기 때문이다.
출14:20-‘구름과 어둠’=악으로부터의 거짓이 응축됨…‘어둠’=거짓.
이45:3-‘어둠 속의 보물, 감추여 있는 장소 속의 감추여 있는 재산’=천국의 총명과 지혜 같은 것들, 이것은 자연적 인간으로부터는 감추여 있다.
계8:12-‘그것들의 삼분의 일이 어두워졌다’=그들은 사랑이 무엇인지, 신앙이 무엇인지, 어떤 진리도 알지 못했다는 것…‘어두워지는 것’=거짓들로부터의 악 때문에, 악들로부터의 거짓 때문에 보여지지도 않았고 알지도 못했다는 것…‘어둠’=이런 것들인 이유는 ‘빛’=진리이기 때문; 그리고 빛이 소진될 때 어둠이 그 뒤를 계속 잇는다.
마8:12, 22:13, 25:30-‘어둠’=진리에 무지함으로부터, 종교의 거짓 원리로부터, 또는 악한 생활로부터 야기되는 거짓. 종교의 거짓들에 있는 이들, 그로부터 악한 생활을 즐긴 이들에 관해 주님께서 말하신다. ‘그들은 바깥 어둠에 내던져질 것이다.’
계16:10-‘그의 왕국은 어둡게 되었다’=나타난 것이라고는 거짓 밖에 없다. 거짓들이 ‘어둠’에 의해 의미되는 이유는 진리가 ‘빛’에 의해 의미되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들 자신의 시야에서 그들의 믿음 속의 거짓들은 어둡게 나타나지 않는다, 즉 거짓이 아니게 나타난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들이 모든 것을 열어 제쳐 주는 천국의 빛으로부터 관조 할 경우 그들은 어둡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천국의 빛이 지옥에 있는 이들의 깊숙한 방으로 흘러들 때 이 빛은 어둡게 되어 그들은 서로를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모든 지옥은 닫힌다…그이유는 어둠에 있다는 것이 자신들에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록 그들이 거짓 안에 있다 해도 루멘(lumen) 안에서일 경우, 그들의 거짓들은 그들이 거짓들을 확증한 후라면 그들에게는 진리로서 나타난다. 그 결과 이것이 그들의 루멘, 얼빠진 루멘이다. 이 루멘은 올빼미나 박쥐에 상응한다. 이 동물에게 어둠이 루멘이고 루멘이 어둠이다. 이것들에게 태양은 한낱 짙은 어둠일 뿐이다.
겔32:8-‘토지 위에 어둠’=교회에 있는 거짓들.
시139:12-‘어둠 조차 너를 위해 어둠을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밤은 맑은 날 만큼하다; 어둠이 있는 만큼이나 빛도 있다’…‘어둠’=거짓들.
마22:13-‘그를 바깥 어둠에 던지는 것’=악으로부터의 거짓들에 있는 이들 사이에. ‘바깥 어둠’=악으로부터의 거짓들.
이42:16-무지의 거짓이 사라짐, 그리고 계발이 있음이 ‘나는 어둠에 빛을 놓을 것이다’에서 의미되고 있다.
시18:28-‘어둠을 눈부시게 밝게 만드는 것’=진리의 빛을 수단으로 무지로부터의 거짓들이 사라지는 것.
창1장-그들이 이전에 심한 무지 안에 그리고 거짓들 안에 있어 왔음이 ‘어둠이 심연의 얼굴 위에 있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시11:2-‘어둠’=나타남, 외관. 그들은 세상에 나타나 있는 것으로부터, 오류들로부터, 또한 말씀의 글자 의미로부터 추론한다.
미3:6-그들이 거짓을 점치리라는 것이…’어둠이 너를 위하여 점치는 것 대신 일어날 것이다’에서 의미되고 있다.
예13:16-‘그분이 어둠을 일으키시기 전에’=거짓들이 점유하지 않도록.
이49:9-‘어둠’=무지의 거짓들.
요1:4,5, 8:12, 12:35,46-‘어둠’=지옥의 거짓; 그이유는 어둠에 반대되는 ‘빛’=진리이기 때문…그리고 신성한 진리가 천국들 안에서 빛이듯, 지옥들 안에 있는 거짓인 악으로부터의 거짓은 ‘어둠’이다.
시143:3-‘그것이 나로 어둠에 앉게 만들었다’=거짓들 안에
이59:9-‘우리가 빛을 기다리나 어둠을 바라본다’=진리를 예상하나 거짓을 바라본다; ‘광휘를 바라나 우리는 짙은 어둠에서 걷는다’=진리들을 통하여 선들을 예상하나 악들로부터의 거짓으로 살고 있다.
눅22:53-이 죄를 범하는 힘을 주님께서는 어둠의 권세’라 부르시고 있다. 그이유는 그들이 악의 거짓들 안에, 주님에 관련된 거짓들 안에, 그분에 맞선 악들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어둠’=지옥인 이유는 거기에 이런 악의 거짓들이 있기 때문이다.
눅11:35-우리가 한때 진리를 이해성 안에서 지각했고 의지 안에 받았으나 거짓으로 변했다는 것, 이것이 악들이 하는 짓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채야할 것임이 ‘그러므로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 아닌가를 보라’에서 의미되고 있다; 그이유가 이런고로해서 거짓들이 더 악화되기 때문이다.
이47:5-‘침묵하여 앉아 있으라, 그리고 어둠으로 들어가라, 오 갈대아인들의 딸이여’=진리의 왜곡; 고로 ‘어둠’=악의 거짓, 그이유는 악이 진리를 거짓화하기 때문이다.
창1장-‘어둠’=또한 자연적 루멘(lumen), 그이유가 이 루멘을 영적 빛과 연계해보면 상대적으로 어둠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사들이 인간의 자연적 지식에서 우세를 떨치는 것과 같은 것인 인간의 자연적 루멘을 내려다 볼 경우, 그들은 그것을 어둠으로 본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이들이 어둠 안에 이들이다 라고… 이 루멘이 창세기 1장에서 ‘어둠’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이5:30-‘잘 보라 어둠, 근심, 그리고 빛이 거기서의 폐허에서 어두워지고 있다.’ 이는 교회의 황폐됨을 묘사한 것이다. ‘어둠’=거짓들; ‘근심’=악, ‘빛이 어두워짐’=신성한 진리가 소멸되어 사라짐.
요8:12-‘나를 따르는 그는 어둠에서 걷지 않을 것이다’=그는 거짓들 안에 있지 않을 것.
에테르 (ether)
시77:17-‘창공(sky, 더 높은 구름들)이 음성을 주었다’=말씀의 영적 의미로부터 있는 진리들.
시36:5, 77:18, 78:23-신성한 진리가 천국의 빛인바, 이렇게 말해진다, ‘당신의 진리는 에테르들에 까지 (그 힘이) 미치고 있다.’ 그러므로 복수로 된 ‘에테르들’에 의해 최고 높은 천국 까지 비추는 신성한 빛이 의미된다…

연기 (smoke)

창15:7-‘연기 뿜는 용광로…’=가장 지독한 거짓.
창19:28-‘토지로부터의 연기가 마치 용광로로부터의 연기 같이’=교회 내에 악의 상태로부터 있는 거짓의 상태.
이14:31-‘북으로부터 연기’=지옥으로부터의 거짓. ‘연기’=악으로부터의 거짓.
이7:4-‘연기나는 관솔(firebrand)’=분노.
출19:18-‘시내산이 연기가 자욱했다’=가장 큰 희미함 안에서 나타나는 천국적인 선.
출19:18-‘그것의 연기는 용광로의 연기 같이 올라갔다’=탐욕들로부터의 희미함 같은 불명료함.
출20:18-‘연기 자욱한 산’=외적인 형태에서 외에는 지각되지 않는 진리로부터의 선.
이4:5-‘연기’ 등등=신성으로부터의 진리로 덮으심, 즉 신성으로부터의 진리가 숙박함(accommodation).
계9:2-‘구덩이로부터의 연기가 마치 용광로의 연기 같이’=그들의 악한 사랑들로부터 내뿜어지는 현세에의 욕망으로부터의 거짓.
계9:17-‘그들의 입들로부터 연기, 등등이 분출되었다’=그들의 생각들과 대화 안에는 자아 총명으로부터의 자만 밖에 더 있는 것이 없었다.
계14:11-‘괴롭힘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올 것이다’=자아 총명으로부터의 자만, 이것으로부터 지옥 안에서 괴롭힘을 당함.
계15:8-‘성전은 하느님의 영광으로부터 있는 연기로 채워졌다…’=천국의 가장 깊은 곳은 주님으로부터 있는 신성한 영적 진리와 천적 진리로 가득하다.
계18:9-‘그녀를 태우는 연기’=이런 거짓들. (=말씀에 섞음질하고 모독함 때문에 지옥에 떨어짐).
계19:3-‘그녀의 연기는 세세토록 올라간다’=이 모독하는 광신적 신앙은 영원히 지옥에 계속 떨어질 것이다.

태양 (sun, solar)

마24:29-‘태양’=사랑, 이것이 어두워지리라는 것. (=사랑과 선행이라는 천적인 것이 어두워지리라는 것), (=선행 없음), (여기서의 ‘태양’=주님을 사랑함과 이웃을 향한 선행), (이 구절의 ‘태양과 달’=사랑과 선행, 또는 선과 진리…이것이 그 당시 멸해진 것이다. 천사들은 ‘어두워질 태양’이 언급될 경우, 그들은 태양이 아닌 주님을 사랑함을 통각한다. 그리고 달의 경우, 주님에 대한 신앙을 통각한다. (‘태양’=사랑 측면에서의 주님, ‘달’=신앙 측면에서의 주님.) (해가 어두워질 것이다=사랑과 선행이 더 이상 없다.) (‘태양’은 이 구절, 기타 많은 구절에서 사랑을, ‘달’은 신앙을, ‘별’은 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 ‘하늘들의 권능들’은 위 셋이 천국들과 교회를 떠받치고 안정되게 함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셋이 한 구절에 모여 한 의미를 전달할 경우 이는 사랑 없음, 신앙 없음, 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 없음이 교회의 마지막 때의 기독교 안에 잔존할 것이다를 의미하게 된다.)
계12:1-‘태양’=사랑. (=천적인 사랑) (=사랑의 선) (=주님으로부터의 사랑과 지혜.)
시139:36-‘태양’=사랑.
시72:5- ‘태양’=사랑.
이54:12-‘태양들’ 또는 창문들=선행으로부터의 지적인 것들.
욜2:10-‘태양과 달’ 즉 사랑과 믿음. (사랑의 선과 그것의 진리.)
이1310-이런 예배의 내적인 것은 거룩한 사랑인 ‘태양이 검게 됨’에 의해 묘사되고 있다. (=주님을 사랑함이 인간에게 공표될 수 없다는 것.)
창15:12-‘해질 때에’=종말 직전의 상태와 시간; 그이유가 ‘태양’=주님, 이로부터 사랑과 선행 속에 있는 천적인 것들, 결과적으로 사랑과 선행 자체. 고로 ‘태양이 저뭄’=교회의 마지막 때.
창19:23-‘태양이 땅 위로 솟았다’=마지막 심판이라 불리는 마지막 때…(그이유가) 태양의 떠오름, 또는 태양이 땅 위로 솟음=주님의 현존 자체, 그 이유는 ‘태양’과 ‘동쪽’ 둘 다=주님…그이유가 다른 삶에서 주님은 보편적 천국의 태양이기 때문; 이 태양은 그들의 눈 앞에 나타나는 그분의 사랑의 신성한 천적인 것이기 때문.
이24:23-‘해가 부끄러워한다’=선행이 부끄로워할 것임.
이60:19-‘태양은 낮에 더 이상 네 빛이 되어주지 않을 것’=자연적 빛 속에 있는 것들이 아닌 영적인 빛 속에 있는 것들.
창28:11-‘해가 저물었기에’=희미함 안에.
미3:6-‘태양이 예언자들 위에서 내려 갈 것이다’=그들은 어떤 진리도 더 이상 가지지 못할 것이고 진리를 이해함도 더 이상 없다.
암8:9-‘정오에 태양이 내려가게 할 것’=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 안에 있는 이들과 더불어 진리에 관련하여 희미해짐. (=천적 사랑의 선이 퇴조하리라는 것)
이60:20-‘태양이 더 이상 내려가지 않는다’=그들은 선 속의 생활 안에, 지혜 안에 있을 것, 그 이유는 천적인 사랑과 주님의 빛 안에 있기 때문.
시104:19-‘태양은 그의 내려감을 알고 있다.’ ‘태양’=주님으로부터의 지혜.
창32:31-‘태양이 그 사람 위로 올라왔다’=선들의 결합.
창37:9-‘바라보니 해와 달’=자연적 선과 자연적 진리. (그이유가) ‘태양’=천적인 선…‘태양’ 최고 의미에서 =주님, 그 이유는 그분은 천적 사랑, 또는 선에 있는 천국의 사람들에게 태양이기 때문…여기서의 경우, ‘태양’=자연적 선…그 이유는 이 대목은 야곱을 서술하고 있기 때문.
예31:35-‘낮의 빛을 위해 태양을 주신 분’=사랑의 선과 선행의 선.
계6:12-‘태양은 머리털로 짠 베옷 같이 검게 되었다…’태양=사랑의 선.
겔32:7-사랑의 선이 더 이상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 ‘나는 구름으로 태양을 덮을 것이다’에서 의미되고 있다.
출16:21-‘태양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그것은 녹았다’=그것은 육의 욕망이 증가함에 따라 사라진다는 것.
출17:12-‘해가 질 때 까지’=상태가 중단되었을 때.
출22;3-‘만일 태양이 그 사람 위에 떠올랐었다면’= 만일 그가 그것을 내면인 것으로부터 볼 것이다면.
이30:26-‘태양’=주님으로부터의 사랑, 고로 주님을 사랑함…‘태양의 빛이 일곱 날의 빛 만큼 일곱 배’=사랑과 주님에 대한 신앙으로부터 총명과 지혜가 충만한 상태.
마13:43-‘정의로운 자는 하늘의 태양 같이 빛날 것이다’=주님으로부터 사랑의 선 안에 있는 이들; 그이유가 주님은 다른 삶에서 태양이시기 때문
말4:2-그리고 주님으로부터 태양 같이 사랑의 선이 있다. 그런고로 주님은 ‘정의의 태양’이라 불린다.
예31:35-‘낮의 빛을 위한 태양’=사랑의 선으로부터 진리들 안에 빛이 있다.
겔8:16-이 구절의 ‘태양과 태양의 떠오름은’ 세상의 태양과 그것의 떠오름을 뜻하고 이를 수단으로 자아사랑이 의미되어진다…그런고로 세상의 태양은 천사들의 생각에서는 그들 뒤에 지독하게 희미한 어떤 것으로 표출된다.
계9:2-‘태양과 공기가 검게 되었다’=진리의 빛이 짙은 어둠을 만들었다.
마5:45-‘그분은 그분의 태양을 악한 자 위에, 선한 자 위에 떠오르게 만드신다’. ‘태양’은 이 구절, 여타 많은 구절에서도 신성한 사랑의 신성한 선이 의미되고 있다.
계1:16-‘그분의 얼굴은 그분의 권능 안에서 해같이 빛나고 있었다’=신성한 사랑과 신성한 지혜, 이는 그분 자신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분으로부터 진행되어 나온다…주님은 천국에서 천사들 앞에 태양 같이 보여진다, 그리고 그분의 신성한 지혜와 함께 그분의 사랑이 해같이 나타나는 것이다.
계6:12-‘태양은 머리털로 된 베옷 같이 검게 되었다’= 그들과 더불은 사랑의 모든 선은 섞음질 되었다…‘태양’은 신성한 사랑에 관련한 주님, 고로 그분으로부터의 사랑의 선이 의미되고 있다; 그리고 반대 의미에서 주님의 신성하심이 부인됨, 고로 사랑의 선이 섞음질됨.
계7:16-‘태양이 그들 위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이후 그들은 악에 대한 육의 욕망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태양’=신성한 사랑과 이로부터 파생된 선에 애착함 ; 반대 의미에서 악마의 사랑, 그로부터 파생되는 악에 대한 육의 욕망.
계8:12-‘태양과 달과 별들의 각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의 삼분의 일이 어두워졌다’=거짓들로부터의 악들과 악들로부터의 거짓들 때문에 그들은 사랑이 무엇인지, 신앙이 무엇인지, 어떤 진리도 알지 못한다. (=사랑의 모든 선, 믿음 속의 모든 선과 진리, 그리고 선과 진리에 관한 모든 지식들이 멸해졌다.)
계9:2-‘태양과 공기가 구덩이의 연기로부터 어두워졌다’=그로부터 진리의 빛이 짙은 어둠이 되었다. ‘태양과 공기’는 여기서 진리의 빛을 의미한다. 그이유가 ‘태양’은 사랑을 의미하고, 태양으로부터의 빛은 신성한 진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태양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동시에 ‘공기’가 말해질 때 신성한 진리가 짙은 어둠이 되었다를 뜻하게 된다.
계12:1-‘여인이 태양으로 둘러싸이고 달은 그의 발 아래’=천국들 안에 있는 주님의 새 교회, 이 천국은 새 천국이다; 그리고 땅 위에 있게 되는 주님의 새 교회, 이는 새 예루살렘이다…여인이 태양으로 둘러싸였음이 보여진 이유는 새 교회는 주님을 사랑함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 교회는 그분을 인정하고, 그분의 명령들을 행하는 바, 이것이 주님을 사랑함이다…땅 위에 교회가 있듯 천국들 안에도 교회가 있다…그리고 거기의 교회가 여인이 태양으로 둘러싸고 그녀의 머리에 열 두 별의 왕관에 의해 뜻해지고 있다.
계16:8-‘네째 천사가 태양 안으로 그의 대접을 쏟았다’=그들의 사랑 안으로 유입이 있음…그이유가 ‘태양’을 수단으로 주님의 신성한 사랑이 의미되기 때문, 그리고 반대 의미에서 자아 사랑을 의미하기 때문.
계19:17-‘나는 태양 안에 서있는 천사를 보았다’= 신성한 사랑으로부터의 주님.
계21:19-‘그 성은 성을 비출 태양과 달이 필요 없다’=이 교회의 사람들은 자아 사랑 안에 그리고 자아 총명 안에, 이로인해 자연적 일 뿐인 인간 안에 있지 않을 것이다…여기서 ‘태양’은 영적 사랑으로부터 분리된 자연적 사랑, 즉 자아 사랑을 의미하고 있다.
계22:5-‘그들은 등불과 태양의 빛이 필요 없다’= 새 예루살렘 안에서 사람들은 자기 고유의 총명인 자연적 빛(lumen)으로부터, 그리고 자만에 근원을 둔 영예로부터 하느님에 관한 지식들 안에 있지 않을 것이다.
이24:23-‘태양과 달’=그들의 우상적 예배, 또한 믿음 속의 거짓과 사랑 속의 악.
예31:35-‘태양으로부터 낮의 빛이 있다’=천적인 사랑의 선으로부터 진리의 지각이 있다.
시104:22-‘태양이 떠오름’=사랑과 사랑으로부터 파생된 지혜에 관련된 주님.
말4:2-‘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는 그들에게 떠오르는 정의의 태양’=사랑의 선. ‘그의 날개에서 치료함’=신앙 속의 진리.
시121:6-‘태양’=자아 사랑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된 모든 악.
말1:11- ‘태양의 떠오름부터 내려감 까지’=선이 있는 모든 곳.
겔32:7-‘나는 구름으로 태양을 덮을 것이다’=사랑의 선이 없음.
이49:10-‘열과 태양’=거짓의 원리로부터 그리고 악을 사랑함으로부터의 뜨거움.
사5:31-그분을 사랑하는 이들에 관해서 말해지는바, ‘그의 힘 안에서 태양이 떠오름 같이’…
마13:43-그분을 사랑하는 이들을 두고 ‘그들은 태양 같이 빛날 것이다….그들의 얼굴에 관련하여 그들은 태양의 광휘 같이 빛날 것이다, 그 이유는 주님의 신성한 사랑이 그들에 소통되고, 그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그럼으로 주님은 그들의 내면들 안에 있고, 이것이 얼굴에서 자신들을 명명백백해지게 하기 때문이다.
시89:36-‘그의 보좌는 내 앞에 태양 같이’=사랑의 선인 천적인 선 안에 있는 그분의 천국과 교회.
시72:5-주님은 천적 왕국 안에 있는 이들에게 태양 같이, 영적 왕국 안에 있는 이들에게 달 같이 나타나는바, ‘그들은 태양과 더불은 당신을 두려워하며, 세세토록 달 앞에서도 그러할 것이다’라고 말해지고 있다….그분으로부터 태양 같이 진행되는 빛은 그분으로부터 달 같이 진행되는 빛과는 다르다. 마치 세상에서 낮을 비추는 태양과 밤을 비추는 달 같다… 그런고로 태양의 빛 안에 있는 이들은 순수한 신성한 진리 안에 있다.
이30:26-천적 왕국에 있는 진리가 그 당시 사랑의 선이 되었을 것임이 ‘태양의 빛은 일곱 날의 빛 같이 일곱 배 일 것이다’에서 의미되고 있다.
이60:20-그 교회 속에 있는 이들과 더불은…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의 선은 멸해지지 않을 것임이 ‘태양은 더는 내려가지 않을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그이유가 주님은 그분을 사랑함의 선 안에 있는 이들에게 태양 같이 나타나기 때문…그러므로 ‘태양’에 의해 주님을 사랑함의 선이 의미되고 있다.
암8:9-‘태양이 저무는 것’=생활의 악…그이유가 ‘태양이 떠오름’=사랑의 선, 이것은 생활의 선이다; 그리고 ‘해가 짐’=악의 사랑, 즉 생활의 악.
여10:12-태양이 ‘기브온 위에 아직 서있었다’라고 말해졌다=교회는 선에 관련하여 완전하게 황폐되었다는 것.
이24:23-‘달이 얼굴을 붉히고 태양이 수줍어 할 것이다’=신성한 선과 신성한 진리의 어떤 받아들임도 더 이상 있지 않을 것이다; 그이유가 ‘달’과 ‘태양’= 믿음 속의 진리와 사랑 속의 선이기 때문; 그리고 이것들이 ‘얼굴을 붉히고 수줍어함’이라 말해질 때, 이는 그들이 더 이상 선과 진리의 받아들임은 없고 오히려 악과 거짓만이 그것들의 장소에 받아들여져 있다는 것.
시136:8-‘태양’은 ‘낮을 규율하도록’ 만들어졌다라고 말해진다. 그 이유는 ‘낮’=영적 인간의 빛, 그리고 그는 사랑의 선으로부터 지각과 계발을 가지기 때문, 그리고 ‘달과 별들’은 ‘밤을 규율하도록’ 만들어 졌다고 말해진다, 그 이유는 ‘밤’=자연적 인간의 빛; 그리고 그것의 빛은 영적 인간의 빛에 비교해볼 때 자연계의 달과 별들로부터의 밤의 빛과 같다.
시148:3-‘그분을 찬양하라, 태양과 달아’=사랑의 선과 이 선으로부터의 진리.
신33:13-‘태양’=주님으로부터 주님을 사랑함의 선, 이것은 천적 왕국 안에 있는 이들에 의해 소유된 선.
이54:12-‘나는 네 태양들을 홍보석 같이 만들겠다’=선들은 사랑의 불로부터 번쩍거릴 것이다; 여기서의 ‘태양들’=사랑의 선들.
마5:45-‘그분은 그분의 태양을 선인에게 그리고 악인에게도 떠오르게 하신다’=주님은 사랑의 신성한 선을 가지고 천국으로부터…유대국가 밖의 사람들, 그 안의 사람들에게 균일하게 흘러드신다.
마13:6-‘해가 떠오르는 것’=자아 사랑.
욘4:8-‘요나의 머리에 내려쬔 태양’=그 국가에 널리 퍼진 자아 사랑.
이60:19-‘태양은 낮의 네 빛이 더 이상 되지 않을 것이다’=단지 자연적 사랑만이…
삼하23:4-주님은 천사들의 천국의 태양이시고, 천사들과 사람들을 계발해주는 신성한 진리가 태양 처럼 그분으로부터 진행되는바, ‘구름 없는 아침, 태양이 떠오를 때, 아침에 있는 빛 같이..’라고 말해진다.
민25:4-‘태양 앞에 목을 매는 것’=선과 진리의 파멸 때문에 있는 저주와 정죄함.
예8:2-‘그것들을 태양과 달과 천국들의 모든 군대에게 흩뿌릴 것…’=그것들을 지옥적 사랑들에, 지옥으로부터 있는 악들과 거짓들에 넘기는 것; 그이유가 ‘태양’=양쪽 의미에서 사랑; ‘달’=이 사랑으로부터 파생된 양쪽 의미에서 믿음.
이38:8-(아하즈의 시계판에서) ‘뒤로 갈 태양’=주님의 강림이 의미되고 있다.
계12:1-‘태양을 휘감고 있는 여인’=주님을 사랑함에, 이로부터 이웃을 사랑함에 있는 이들과 더불어 있는 교회…그이유가 ‘태양’=신성한 사랑에 관련된 주님, 고로 또한 주님으로부터 주님을 사랑함; ‘휘감고 있음’=이 사랑으로부터 살아감.
시19:4-‘(천국들) 안에 그분은 태양을 위하여 성막을 장치하셨다’=그분 자신의 사랑의 선에서 천국들 안에 거주하시는 신성한 사랑에 관련된 주님.
파도 (wave)
예51:42-‘파도가 바벨 위에 덮친다; 그녀가 많은 파도들로 뒤덮혔다.’ ‘바다’=과학물들로부터의 거짓; 바다의 ‘파도들’=이것들로부터 추론함들, 그리고 그결과 부정함들.
예31:35-‘바다를 휘젖어 파도들이 소란스러워지게 하는 이가 누구뇨?’=과학물 속의 거짓들을 일소하는 것, 이로부터 진리들을 추론함이 와진다.
시89:9-‘바다가 그것의 파도를 일으켜 세울 때 당신께서는 그것의 일어남, 또는 바다를 다스리신다.’ ‘바다’=자연적 인간…그리고 ‘파도’=거짓들.
시107:25,29-‘바다의 파도들이 치켜올렸다’=시험들…시험들로부터의 해방이 ‘그분은 폭풍을 고요하게 하여 그로부터의 파도들이 잠잠해지게 만드신다’에서 의미되고 있다.
슥10:11-‘이스라엘은 바다에 있는 파도들을 처부술 것이다’=선으로부터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은 진리들에 맞서는 거짓들로부터 추론들에 맞서 (주님에 의해 보호되어진다.)
시65:7-‘누가 바다의 소란함을, 파도의 소란함을 잠잠케하는가?’=천국들 아래 있는 이들의 논쟁이나 추론들, 그리고 자연적이고 감각적인 이들의 논쟁이나 추론들 (위에 주님의 신성의 권능이 있다.)

하늘 (heaven, heavenly)

창1:1-‘처음에 하느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하늘’=내적 인간…
창2:1-‘하늘들과 땅, 그리고 그 속의 모든 무리(army)가 마무리되었다’=이제 인간은 여섯째 날인 만큼 영적으로 되었다; ‘하늘’=그의 내적 인간.
창2:4-‘하늘들 태생의 사람들(nativities)과 땅들 태생의 사람들’=천적 인간의 형성.
* 위 구절에서 ‘하늘’이 ‘땅’ 앞에 놓여지고 있다. 그 후 ‘땅’이 ‘하늘’ 앞에 놓여 있다. 그 이유는 ‘땅’=외적 인간, 그리고 ‘하늘’=영적 인간과 더불어 있는 내적 인간, 영적 인간에서 재구성은 ‘땅’, 또는 외적 인간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천적 인간이 취급되는 곳이기에 재구성은 ‘하늘’, 또는 내적 인간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시편68:33-‘옛적의 하늘들의 하늘들’=태고 교회(Most Ancient Church)의 지혜
창6:17-‘하늘들 아래, 생명들의 숨이 있는 모든 육체를 파괴하는 것’=태고 교회의 모든 후손은 자신들을 파멸하리라는 것.
* ‘하늘들 아래 살(flesh)’=오로지 육체적인 것; ‘하늘들’=진리의 지적인 것들과 선의 자발적인 것들, 이것들이 육체로부터 분리될 때, 인간은 더 이상 살 수 없다: 인간을 지탱시켜주는 것은 그가 하늘과 결합되는 것이다; 즉 천국을 통하여 주님과 결합해 있는 것이다.
겔1장-그러므로 보여진 분은 주님이셨다; 그리고 그분을 수단으로 천국이 표현되어졌다; 그 이유가 그분은 천국, 즉 천국 속의 모든 것들에 있는 모두이기 때문. 그분 자신 거기서 취급된 ‘사람’이시다; ‘왕좌’=천국…그러므로 천적인 천국, 또는 천적 천사들의 천국이 허리 위쪽으로부터 표현되어졌다; 그리고 영적 천사들 속의 것, 또는 영적 천국은 허리 아래로부터 표현되어졌다…
욜2:10-교회와 교회 속의 것들이 황폐되었을 때 ‘하늘과 땅이 흔들렸다’라고 말해진다.
예4:28-교회의 외면들이 ‘땅’이고, 교회의 내면들이 하늘들이다. 교회의 내, 외면이 위 요엘서의 구절 같은 바 교회의 내, 외면들이 ‘검게 되었다’, 그리고 ‘빛이 없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창11:4-‘그것의 머리는 하늘에’=천국에 있는 것들까지 지배하려 든다.
창14:19-‘하늘과 땅의 소유자’=내적 인간 또는 여호와와 내면과 외면의 인간과 결합…인간 안의 내면이 ‘하늘’로 불리운다는 것…‘하늘’=인간 안의 내면인 이유는 인간은 자기의 내면들에 관련하여서는 하늘의 형상, 고로 일종의 작은 천국이기 때문. 주님의 내면적 인간은 우선적으로 천국이다, 그 이유는 주님은 천국의 모든 것들의 모두, 고로 천국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이66:1-‘천국들’=주님의 두 왕국 속의 천적이고 영적인 것들, 고로 가장 깊은 것들, 이는 지상에서 주님의 왕국에서도, 교회에서도 공히 같다; 또한 사랑과 선행, 이로부터 파생되는 믿음 속의 천적이고 영적인 것들; 또한 내적 예배 속에 있는 모든 것들; 말씀의 내적 의미 속에 있는 모든 것들: 이런 것들 모두가 ‘하늘들’이고 주님의 보좌라 불리워진다.
창21:17-‘하느님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하갈에게 소리쳤다’=위로함; (그이유가) ‘하늘로부터 소리치는 것’…=유입…이 유입은 주님으로부터 인간에게 내부적으로 흐르는 바 이것이 ‘하늘로부터 소리침’이라고 말해지기 때문. 그 이유는 이것이 천국을 통하여 있기 때문.
계19:11-‘하늘이 열려졌다’는 것은 말씀의 내적 의미는 천국 안에서를 제외하면 보여지지 않는다, 그리고 하늘에 열려진 자에게만 보여진다는 것을 표현하고 의미한다; 즉 사랑 안에 있으면서 이 사랑으로부터 파생된 주님에 대한 신앙 안에 있는 이들에게 하늘이 열려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계19:14-‘백마 위에 계신 그분을 따랐던 하늘에 있는 군대들’=말씀의 내면의 것들을 이해하는 이들.
창24:3-‘하늘의 여호와 하느님과 땅의 하느님’=위에 있는 신성과 아래에 있는 신성; 또는 같은 것으로, 가장 높은 것들에 있는 신성과 이로부터 있는 것들에 있는 신성. ‘하늘의 여호와 하느님’, 주님에 관하여 말한 것인 바, ‘아버지’라 불리는 여호와 자신…‘땅의 여호와 하느님’은 이 경우에서 ‘아들’이라 불리는 여호와이다…주님은 천국들 안에 있는 그분의 신성으로부터 ‘하늘의 여호와 하느님’이라 불리고…더우기 천국들 안에 있는 신성은 인간의 내적인 것과 더불어 인간과 함께 있다…그 이유가 인간의 내적인 것은 그 인간의 하늘이기 때문, 그것들을 통하여 그는 천사들과 결합되어져 왔다.
창28:12-‘그것의 머리가 하늘에 닿고 있다’=신성과 소통함…그 이유가 최고 높은 의미에서 ‘하늘’…=신성 자체, 그러나 표현적 의미에서 이 대목은 거듭나지고 있는 사람을 취급하고 있다. 그것=주님으로부터 있는 가장 깊은 선과 이 선에서 파생된 진리, 이럴 경우의 사람은 천국 안에 있고, 천국 자체의 품질로부터 있다; 이는 또한 그것이 주님으로부터이기 때문에 신성, 또는 주님 만으로부터인 신성이라 불리운다. 이 신성은 천국의 모든 것들의 모두이다: 신성으로부터 있지 않은 것은 천국 속에 없다. 이러므로 자주 말했던 바는 주님이 천국 자체이시다는 것, 그들은 천국 안에 계신 주님 안에 있다는 것이다.
마24:29-‘하늘들의 권능들이 흔들릴 것이다’=교회의 기초들…그 이유가 땅 위 교회는 천국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주님으로부터 천국들을 통한 선과 진리의 유입됨은 결국 교회 속의 사람과 더불어 있는 선들과 진리들 안에서 종료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 속의 사람이 선과 진리의 유입을 더 이상 용인 못할 정도로 뒤집어져 있게 될 때 하늘들의 권능들은 흔들려진다고 말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교회의 어떤 것이 남아 있도록 언제나 예비해두셨다…
마24:31-‘하늘들의 맨 끝에서 그것들의 맨 끝까지’=교회의 내적인 것들과 외적인 것들.
마24:35-‘하늘과 땅은 사라질 것이나, 내 말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앞 교회의 내적인 것들과 외적인 것들은 사라질 것이나 주님의 말씀은 남아 있을 것이다.
마24:36-‘천국들의 천사들이 아니고, 오직 아버지만이’=천국은 특별한 측면에 있는 선과 진리에 관련되는 교회의 상태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주님만이 아신다; 그리고 또한 교회의 이 상태가 일어났을 때 (알게 된다.)
삼하22:10-‘하늘들을 굴복시키려고 그분이 내려가셨을 때’=말씀의 내면의 것들을 감추이게 하는 것.
출9:22-‘네 손을 하늘들을 향하여 뻗어라’=천국의 용의주도함과 천국의 접근…‘천국’=천사들의 천국
출9:23-‘그리고 모세는 그의 지팡이를 하늘을 향하여 내뻗었다’=천국과 소통함…‘하늘’은 천사들의 천국을 의미하고 있다.
마27:53-내적 의미에서의 하늘이 ‘거룩한 성’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출20:4-‘위로 하늘들에 있는 것, 그리고 아래로 땅에 있는 것’=영적 빛 안에 있는 것, 그리고 자연적 빛 안에 있는 것…
출20:22-너희는 내가 하늘로부터 이야기했다는 것을 보았었다‘=천국을 통하여 신성으로부터 유입을 통해 있는 말씀 속의 모든 것들.
눅4:25-‘하늘이 삼년 육 개월 동안 닫혀졌을 때’= 내적 교회의 완전한 황폐; 그 이유가 ‘하늘’=교회의 내적인 것.
출24:10-‘깨끗함에 관하여는 하늘의 물질 같이’= 천사들의 천국을 통과하여 빛남
계21장-‘예루살렘’은 더 저명한 의미에서 =천국.
계3:12-‘내 하느님으로부터 천국에서 내려온 것’= 천국 안에 있는 것과 같은 것인 주님의 신성한 진리로부터 있을 것임.
계4장-이 장은 심판을 위해 천국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준비되고 정돈됨을 취급하고 있다.
계5:3-‘천국 안에 있는 자, 땅 위에 있는 자, 그리고 땅 아래 있는 자 아무도 할 수 없었다’=더 높은 천국들 안에 있는 자, 그리고 더 낮은 천국들에 있는 자 아무도 없었다.
계5:13-‘그리고 하늘 안에, 그리고 땅 안에, 그리고 땅 아래 있는 창조된 모든 것이 말하는 것을 나는 들었다’=가장 낮은 천국들의 천사들에 의해 있는 주님에 대한 고백과 그들을 수단으로 있는 주님의 영광되심.
계6:13-‘하늘은 다 함께 말아버린 두루마리 처럼 떠났다’=천국으로부터 분리됨, 그리고 지옥과 결합함.
계7장에서-이 장은 기독인의 천국에 있는 자 그리고 있을 자를 다루고 있다…이 후에 주님을 사랑하고 이 사랑으로부터 지혜 안에 있는 자들은 더 높은 천국들 속에 있는다. 그리고 선행 안에 있고 이 선행으로부터 주님에 대한 신앙을 지닌 이들은 더 낮은 천국들에 있는다.
계8;13-‘하늘 한가운데를 날고 있다’=주님에 의해 예견되고 훈육됨.
계10:6-‘하늘과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창조하신 분’=천국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을 생명있게 하시는 분…‘하늘’=천사들이 있는 천국을 뜻한다.
계11:6-‘이들은 하늘을 닫아 그들의 예언의 날에 비가 오지 않게 하는 권능을 가지고 있다’=새 교회의 두 필수 본질로부터 자신들을 멀어지게 하는 이들은 천국으로부터 어떤 진리도 받을 수 없다. 여기서 ‘하늘’은 천사들의 천국을 뜻하고 있다.
계11:12-‘그들은 천국으로부터의 큰 음성을 들었다, 그들에게 말하기를, 이리로 올라오라’=새 교회의 이 두 본질들은 주님에 의해 천국 안으로 들려져 보호된다.
계12:8-‘그들의 장소는 하늘에서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았다’=…그들은 그러므로 천국과의 결합으로부터 떼어져 내던져졌다.
계14:7-‘하늘과 땅을 만드는 것’=천사들의 천국과 교회를 만드는 것.
계18:5-‘그녀의 죄들이 하늘에까지 닿았다’=그들의 악들과 거짓들이 천국들에 침입하고 있다.
계18:20-‘그녀로 즐거워하라 하늘(아)’=지금 천국의 천사들은 기뻐할런지 모른다.
계19:1-‘하늘에 있는 큰 군중’=보다 낮은 천국들의 천사들.
계19:11-‘나는 하늘이 열린 것을 보았다’=…주님으로부터의 계시 그리고 명명백백함.
계19:14-‘천국의 군대들이 흰말을 타신 그분을 뒤따랐다’=…새 기독교인의 천국에 있는 천사들.
계20:11-‘이들의 얼굴로부터 하늘과 땅은 도망할 것이다’=보편적인 심판이 이전의 모든 천국들 위에 주님에 의해 결과됨…그들의 토지와 함께 있었던 천국들은 완전하게 사라졌다…
계21:3-‘나는 하늘로부터 큰 음성을 들었다’=주님께서 사랑으로부터 이야기하심…그 이유는 주님 외에 천국으로부터 이야기 할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 천국은 천사들 각각의 입맛에 맞아야 천국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신성으로부터 이 신성을 받는 그릇이 되어야 가능하다.
계21:10-‘큰 도성 거룩한 예루살렘이 하느님으로부터 천국을 통하여 내려오고 있다’=(요한에게) 도성의 형체로 있는 교리에 관련된 주님의 새 교회를 명명백백하게 만들어 주기 앞서…
시105:40-‘하늘들의 빵’이라 불리운 이유는 이슬과 함께 하늘로부터 비가 내렸기 때문; 그러나 영적 의미에서, 그렇게 불리운 것은 (천국의 사랑의 기쁨)이 천사들의 천국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흐르기 때문이다.
마6:19,20-‘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것’=영적 인간 안에; 그 이유는 영적 인간은 천국 안에 있기 때문이다.
계4:1-‘보니 문이 하늘에서 열렸다’=천국의 비밀이 계시되었다.
시136:5-‘그분께서 그분의 총명을 수단으로 만드신 천국들’이란 교회의 사람들의 내적인 것들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영적 인간이라 부른다, 거기에 총명이 주재하고 있고, 그들의 천국도 있다.
계6:14-‘하늘이 둘둘 말아버린 책 같이 떠났다’=영적 인간이 닫혀졌다는 것. ‘하늘’=일반적, 세부적으로나 공히 교회; 그 이유는 교회는 땅에 있는 주님의 천국이기 때문; 더욱이 교회는 결합을 통해 천국과 더불어 하나를 만든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이 언급될 때 교회의 내적, 외적인 것을 뜻하게 된다. 그 이유가 교회 속의 사람의 내적인 것은 그들과 더불어 있는 천국이다, 그리고 외적인 것은 그들과 더불은 세상이다; ‘하늘과 땅’이 교회의 내, 외적인 것을 의미할 때, 또한 내적, 외적 인간도 의미하게 된다…그러므로 해서 이 구절에서 ‘하늘’은 내적 또는 영적 인간을 의미한다. 영적 인간이 언급되어지고, 영적 마음도 의미되어지고 있다…
계8:1-‘하늘에 침묵이 흘렀다’=교회가 이런 모습이었음에 놀람; 그리고 그것의 끝장이 임박했음에 놀람.
예7:18-‘하늘들의 여왕(Melecheth)’=복합체로 있는 모든 악들; 그 이유가 ‘하늘들의 여왕’은 ‘하늘들의 군대들’과 비슷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성경의 의례와 상응

성경의
의례와 상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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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약자표

창 창세기 이 이사야 학 학개 마 마태복음
출 출애굽기 예 예레미야 슥 스가랴 막 마가복음
레 레위기 겔 에스겔 말 말라기 눅 누가복음
민 민수기 단 다니엘 요 요한복음
신 신명기 호 호세아 계 요한계시록
여 여호수아 욜 요엘
사 사사기 암 아모스
삼상 사무엘상 옵 오바댜
삼하 사무엘하 욘 요나
왕상 열왕기상 미 미가
왕하 열왕기하 나 나흠
욥 욥기 합 하박국
시 시편 습 스바냐

차례

결혼식 (wedding), 결혼의 (nuptial), 결혼 생활(wedlock, marriage)-결혼하다 (marry, wed)
기름을 부음 (anointing, ointment), 기름을 바름
들어올려 바침 (heave-offering)
봉헌 (oblation)
선물 (present)-성만찬 (holy supper)-세례 (baptism, baptize)-식사 공물 (meat-offering)
안식일 (Sabbath)-약혼하다 (betroth)-예물 (offering)-예배 (worship)-예복 (robe)-예복 (raiment)
제물 (sacrifice), 제물을 바치다 (sacrifice)
축제 (feast), 잔치 (feast)
태우는 공물 (burnt-offering), 태워 바침 (burnt offering), 번제 (burnt offering)
할례 (circumcision)-할례를 받지 않았음 (Uncircumcised)

결혼식 (wedding)
결혼의 (nuptial)
결혼 생활(wedlock, marriage)

마22:11-(결혼 의복을 입지 않은 것에 대한 의미가 영계에서 경험에 의해 보여졌다)
마24:38-‘먹고 마시고, 결혼하고 결혼에서 주고…’=악과 거짓을 제 것 만드는 것에 관련한 그들의 상태, 그리고 그 결과 그것들과 결합함…‘결혼하는 것’=악과의 결합, ‘결혼에서 주는 것’=거짓과의 결합. (=거짓이 악과, 악이 거짓과 결합하는 것)
마25:10-‘준비된 이들은 그분과 더불어 결혼식(장) 안으로 갔다’=선 안에 있고 이 선에서 파생되는 진리 안에 있는 이들은 천국 안으로 영접된다는 것. 천국은 선과 진리의 결혼인 천국의 결혼으로부터 ‘결혼식’과 매우 비슷하다. (=사랑과 신앙을 수단으로 주님과 결합함.) (=선과 진리의 결혼으로부터 있는 천국과 교회).
마9:15, 눅5:34-‘결혼-방(wedding-chamber)의 아들들은 신랑이 자기들과 함께 있는 한 슬퍼할 수 있겠느냐?’ 교회의 진리들 안에 있고 선을 받는 이들이 ‘결혼-방의 아들들’이라 불린다. 그 이유는 주님으로부터 있는 선이 ‘신랑’이기 때문이다. 결혼-방의 아들들이 신랑이 함께 있는 한 슬펴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복되고 행복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님과 더불어 있기 때문, 한편 그들은 그들의 선과 결합한 진리 안에 있다.
레22:12-‘외국인과 결혼한 성직자의 딸은 들어 올려 바친 제물은 먹지 못한다’=교회의 거룩한 것들은 교회의 진리들과 결합하지 않은 선과는 어울려질 수 없다.
* 진리들 안에 있지 않은 자가 ‘결혼 의복을 입지 않은’ 자로 말해지고 있다. (결혼 의복=말씀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 (=하느님의 아들, 천국과 땅의 하느님, 아버지와 하나이신 분이 주님이심을 믿는 신앙.) (=선으로부터의 진리.) (=영적 인간의 총명, 이는 진리와 선에 대한 지식으로부터이다. 그러나 ‘결혼 의복을 입지 않은 자’=위선자, 즉 여전히 자연적일 뿐인데, 도덕적 삶을 수단으로 영적 삶을 위조한다.)
마25:10-‘결혼식’=주님께서 사랑의 선과 신앙의 선을 수단으로 천국과 교회와 결혼하심.
계19:7-‘그 이유는 어린 양의 결혼이 다가오기 때문’=이 때로부터 주님과 교회의 완전한 결혼이 결과되어진다.
계19:9-‘어린 양의 결혼 만찬에 불리우는 사람은 복있다’=주님의 새 교회 속에 있는 것들을 받는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다. (=말씀으로부터의 진리들을 수단으로 주님과 결합하고, 교회로 되어가서 결국 천국 안으로 영접되는 이들.
요2장-‘갈릴리 가나에서 결혼식’=이방인들 사이에 교회가…
시78:63-‘그녀의 처녀들은 결혼하지 않았다’=진리에 애착함들이 진리에 대한 비이해함을 통해 사멸되었다.

결혼하다 (marry, wed)

이62:4-이해함이 의지와 짝을 이루었을 때, 또는 신앙이 사랑과 짝이 되었을 때, 이 사람은 ‘결혼한 토지’라고 주님에 의해 불리워진다.
창20:3-‘그녀는 남편에 결혼 했다’=참된 신앙의 교리가 천적인 것과 결합했다는 것…그러므로 여기서 ‘남편에 결혼했다’=진리가 선에 결합했다는 것, 이 진리 또한 선이다는 것.
이44:1-‘결혼된 그녀의 아들들 보다 더 많은 아들들’=이전의 황폐한 교회의 진리들 보다 더 많은 진리들.
마24:38-‘먹고 마시고, 결혼하고 결혼에서 주고’=악과 거짓을 제 것 삼은 그들의 상태, 이로부터 파생된 결합…‘결혼하는 것’=악과 결합함. 그리고 ‘결혼에서 주는 것’=거짓과 결합함.

기름을 부음 (anointing, ointment)
기름을 바름

* 올리브 기름은 머리에 기름부을 때와 등잔의 기름으로 사용되었는데, 이 기름은 천적인 모든 것을 표현한다.
* ‘그리스도’는 메시아, 기름부어진 자, 왕을 나타낸다. ‘주님’은 여호와를 나타낸다. 전자는 진리 측면에 관하여 이고, 후자는 선 측면에 관하여 이다.
* 왕들이 기름부어졌다는 것, 이로부터 ‘기름부어진 자’라 불러진 것은 그들에게 부어진 기름=선이었기 때문인바, 왕이 의미하는 진리는 반드시 선으로부터 있어야 한다.
창31:13-‘네가 기둥을 기름부은 곳…’=진리로부터의 선이 있는 곳…’기름붓는 것’ 또는 기둥의 머리에 기름을 쏟는 것=진리를 선으로 만드는 것.
창43:11-‘유향(resin)’=선으로부터의 진리, 그이유가 연고(oinment)에도 등급이 있기 때문.
요19:2,3,5-‘왕’=신성으로부터의 진리. 마찬가지로 히브리어에서 메시아인 ‘기름부은 자’, 그맄어에서는 그리스도.
미6:13,15-‘올리브를 밟으나 자신에게 기름을 바르지는 못 할 것이다’=생활의 선에 관하여 훈육받지만, 여전히 그것에 따라 살지는 않는다.
신28:40-‘기름으로 기름부어지지 않는다’=천적 사랑의 선 안에 있지 않는다.
출25:6-‘기름부음의 기름을 위한 향신료’=취임하는 선 속에 있는 내향의 진리들…’기름부음’=표현하려고 취임하는 것.
출28:41-‘너는 그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기름 부을 것이다’=사랑의 선에 관련되는 주님에 대한 표징. ‘기름붓는 것’=표현하려 취임하는 것.
삼상10:1, 15:1, 16:3,6,12, 24:6, 26:9,11,16, 삼하1:16,2:4,7, 5:3, 19:21, 왕상1:34,35, 19:15,16, 왕하9:3, 11:12, 23:30, 애4:20, 합3:13, 시2:2,6, 20:6, 28:8, 45:7, 84:9, 89:20,38, 132:17-‘여호와의 기름부음’=신성한 인간 측면에서의 주님.
출29:2-‘기름을 섞은 누룩 넣지 않은 것으로 된 과자’=바깥쪽 인간에 있는 천적인 것…과자가 빵. 그리고 떡 다음인 세 번째에서 말해지는 바 (이는 세 겹 중에서 바깥쪽을 뜻한다).
출29:7-‘너는 기름부음의 기름을 가져올 것이다’=주님에 있는 신성한 선의 표현…’기름부음’=이 선을 표현하려 취임함.
출29:7-‘그리고 너는 그의 머리에 그것을 부어서 그를 기름부을 것이다’=주님의 인간 측면 전체에서 주님에 있는 신성한 선을 표현…’기름붓는 것’=이런 것을 표현.
출29:22, 레7:32,34,35-가슴과 넓적 다리는 영적, 천적 선의 표현이기에 ‘기름부어진 것’이라 불리운다….’기름부어짐’=신성한 선 측면의 주님을 표현.
출29:29,레21:10-주님의 인간 측면을 신성화 하심( glorification)이 ‘기름부음’, 그리고 두 번째 상태가 ‘손을 채움, filling of the hand’으로 불리운다.
출29:29-‘그들(의복들)이 기름부워지기 위해…’=신성한 선 측면의 주님을 표현하는 것. ‘기름부음’=신성한 선 측면의 주님을 표현하려고 취임함.
출29:35-‘기름을 부음’은 주님의 인간 측면이 신성화되심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손을 채움’은 천국들 안으로, 그리고 교회 안으로 그분이 입류하심을 표현하였다. ‘기름을 부음’은 주님의 신성한 인간에 있는 주님의 신성한 선, 그 결과 신성화되심을 표현했다. 이 신성화되심은 신성한 인간이 ‘아버지’라 불리운 신성 자체에 합일되어지는 것이다.
출29:36-‘너는 그것(제단)에 기름을 부을 것이다’=천국과 교회에서 주님으로부터의 주님의 신성한 선을 표현하도록 취임함. ‘기름을 부음’=주님의 신성한 인간으로부터 신성한 사랑의 신성한 선 측면에서의 주님을 표현하도록 취임함. 이 구절의 경우, 천국과 교회에 계신 주님으로부터… 그이유가 주님을 표현하는 것은 무엇이든 교회인과 천국의 천사와 더불은 주님 또한 표현하기 때문.
시45:7-‘하느님은 당신, 당신의 하느님을 즐거움의 기름을 가지고 기름을 부으셨다’…’기름을 부음’은 주님의 신성한 인간에 있는 신성한 선의 표현밖에 더 아니다.
출30:25-‘고약 중의 고약’=그분의 인간 속의 각각 그리고 모든 것(신성). ‘고약’, 기름을 부음의 기름에 관련해 말해질 때, 이를 수단으로 주님의 신성한 인간의 신성한 선을 표현했다. 이는 그분의 인간의 각각 그리고 모든 것에 있는 신성이다. 이것이 ‘고약 중의 고약’에 의해 의미되어진 이유는 위에 언급된 모든 향신료가…’고약 중의 고약’을 수단으로 이해되기 때문. 원어에서 일반적인 향신료가 이 단어(고약 중의 고약)에 의해 의미되기 때문이나, 번역자들은 ‘기름을 부음으로부터의 고약’이라 말한다.
출30:25-‘고약 제조인의 일’=임신되셨던 때부터 주님 안에 있었던 그분의 신성의 일하심과 유입하심. ‘고약 제조인’=그것을 움직이는 누구, 주님에 관련해 말해질 경우=신성 자체.
출30:26-‘너는 만남의 천막을 그것과 함께 기름을 부을 것이다’=천국들에 있는 주님의 신성을 표현하는 것. ‘거룩함의 기름으로 기름을 붓는 것’=신성한 인간 측면에서 주님의 신성한 사랑의 신성한 선을 표현하도록 권유하는 것. 그 이유가 ‘기름을 붓는 것’=표현을 권유하는 것. 그이유가 기름을 부워진 것이 거룩하다고 불리우는 것은 기름으로부터가 아니라 기름에 의해 의미된 신성의 표현으로부터이기 때문.
출30:26-‘그리고 증거의 궤’…’증거의 궤에 기름을 붓는 것’=가장 깊은 천국 속에 있는 천적인 선에 있는 신성을 표현하도록 권유하는 것. ‘기름을 붓는 것’=주님의 신성을 표현하도록 권유하는 것.
출30:29-…이로부터 기름을 부어진 것들은 주님의 신성한 인간의 현존하심과 유입되심으로부터 ‘거룩들 중의 거룩’이라 불리워진다는 것은 분명해진다.
출30:33-‘이것과 똑같은 고약을 만드는 사람’=예술로부터 신성한 것들의 모조품(신성한 것들을 모방함). ‘고약’=주님 만에 속하는 신성한 진리들, 주님만으로부터 있는 신성한 진리들.
출30:34-‘고약 제조인의 일로 고약을…’=각각과 모든 것들에서 주님의 신성의 유입, 그리고 일하심. ‘고약’ 또는 ‘향신료’=예배의 각각과 모든 것들에 있는 진리들. 그리고 ‘고약 제조인의 일’, 또는 ‘향신료 (향수) 제조인’=주님의 신성이 작업하심, 그리고 유입이 있음.
시89:20,25-27,29-시편의 많은 장소에서 ‘다윗’, ‘기름을 부은 자’, 그리고 ‘왕’에 의해 주님이 의미되어진다.
시132:17-‘나의 기름 부은 자’=신성한 진리 측면의 주님.
겔16:9-‘기름을 가지고 기름을 붓는 것’=사랑의 선을 부여하는 것.
* 주님이 ‘여호와의 기름 부은 자’에 의해 의미되어지는데, 그이유가 ‘아버지’, 그리고 ‘여호와’로 불린 신성 자체, 이는 본질 측면에서 신성한 사랑의 신성한 선이고 이 신성이 신성한 인간을 기름부웠다…‘기름을 부음’=주님의 신성 자체로부터 진행하는 그분의 신성한 인간, 고로 주님의 신성한 선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
* ‘여호와의 기름부은 자’=신성한 인간 측면에서의 주님.
* ‘기쁨의 기름으로 기름을 붓는 것’=시험에서의 승리를 통하여 자신에게 하나되게 하는 것.
* ‘기름 부어지는 것’=세상에서 주님 속에 있었던 신성한 진리에 하나되어지는 것.
* ‘종’으로서의 다윗=신성한 진리 측면에서의 주님의 신성한 인간. 그리고 ‘기름 부어진 자’로서의 다윗=이것이 신성한 선에 하나됨.
* 이로부터 주님은 ‘기름 부은 자’라 불리우신다. 이는 메시아, 또는 그리스도, 신성한 선으로부터 그분의 인간 안에서 신성한 진리에 하나됨. 그이유가 이 합일로부터 주님의 인간은 ‘여호와의 기름 부은 자’에 의해 이해되어진다.
계18:13-‘고약’=천적 사랑의 선. 고약이 한계를 정했다.

들어올려 바침 (heave-offering)
들어올려짐 (heaved up)

* 여호와께 드리는 선물들이 들어올려 바침이라 불리웠다.
출29:27-‘들어올려 바침의 옆구리 살(flank)’=주님만으로부터 있는 신성의 천적 평면이 천국과 교회에서 지각되었다. ‘들어올려 바침’=드려지는 것과 받아지는 것.
출29:27-‘흔들어지고 둘어올려지는 것’=인정되어지는 것과 지각되어지는 것. ‘들어올려진 것’=주님만으로부터 있는 신성의 천적 평면이 천국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지각되었다.
출29:28-‘이것은 들어올려 바침이기 때문’=신성한 선, 그리고 이 선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를 표현함.
출29:28-‘그리고 들어올려 바침은 그들의 평화-공물로부터 이스라엘의 아들들과 더불어로부터 있을 것이다, 그것이 여호와께 대한 들어올려 바침이다’=천국들과 교회에서 받아들임. 그리고 그것이 주님만으로부터 있다는 것을 인정함.
출30:13-‘반 세겔을 여호와께 들어올릴 것이다’=선으로부터의 진리의 모든 것들은 주님만으로부터 있다는 것. ‘여호와께 들어올려 바침’=주님 만으로부터 있는 것들.
출30:14-‘그는 여호와께 들어올려 바침을 드릴 것이다’=여호와께 돌림(ascription). ‘여호와께 들어올려 바침‘=주님 만으로부터 있는 것.
시141:2-‘손을 들어 올림(lifting up)은 식사 공물에 의해 의미된 것과 같다

봉헌 (oblation)

* offer도 참조.
겔20:40-‘마찬가지로 거룩한 것들에 있는 선물들의 첫 열매와 봉헌들이란 주님으로부터의 선행을 수단으로 성별된 일들이다.
시20:3-‘봉헌들’과 ‘태워바침’에 의해 예배가 의미되어진다.

선물 (present)

* 공물(offering)도 참조
시72:10-‘선물(gift)’ 그리고 ‘선물(present)’=예배
창4:3-‘공물(offering)’ 또는 ‘선물(present)’=예배. (그이유가) 모든 제물이 ‘공물’이라 불리웠기 때문.
말3:4-‘유다의 공물’=천적 사랑으로부터 있는 예배. 그리고 ‘예루살렘의 공물’=영적 사랑으로부터 있는 예배.
이66:20-‘깨끗한 그릇 안에 공물’=내적 인간에 비교되는 외적 인간의 표징. 선물을 가져오는 것은 내적 인간이다는 것.
창32:13-‘그의 형 에서를 위한 선물’=신성한 것들이 자연적 선의 천적인 것(celestial natural good)으로 시작되었다. ‘선물’=시작. 그이유는 이것이 친절(goodwill)과 호의(favor)를 확실히 붙들게 했기 때문.
* 고대 시대에서 선물은 여러 가지 것을 의미했다…왕이나 성직자에게 가까이 감에서 그들에게 준 선물은 시작(initiation)을 의미했다. 그리고 선물들이 제단 위에, 예배에서 바쳐졌다. 그이유가 모든 제물(sacrifices)들은 일반적으로 무슨 종류이든, ‘선물(또는 공물)’이라 불려졌기 때문. 그러나 특별하게도 불려졌는데, 예를 들면, 식사 공물(meat-offering) 등등이다. 원어에서 ‘식사-공물’은 ‘선물, present’을 뜻한다.
창43:11-‘선물을 만들어 그 사람에게 내려가라’=은총을 획득하는 것.
창43:25-‘그들은 선물을 준비했다’=은근히 내비춤. 그이유가 ‘선물’=은총을 획득하는 것.
마23;19-‘어느 것이 더 위대하냐, 선물(gift)이냐, 또는 선물을 거룩해지게 하는 제단이냐?’…‘선물, 또는 제물(sacrifice)은 주님으로부터 있는 신앙과 선행 속의 것들이 의미되었다.
출23:8-‘너희는 선물을 받지 말라’=이득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혐오하라. (그이유가) ‘선물’=사랑 받아지는 세상적인 모든 것. 즉 부유함, 위엄, 명성, 또는 자연적 인간에 발림말하는 것까지도 혐오하라는 것. 이런 것들이 일반적으로 이득(gain)이라 불려진다. 그리고 내적 의미에서 ‘소경되게 하고 남용되게 하는 선물’에 의해 뜻해진다.
출23:8, 신16:19-‘그 이유는 선물은 열려있는 눈을 눈멀게 하기 때문이다’=이득은 진리들이 나타나지 않게 한다는 것. ‘선물은 지혜로운 자의 눈을 멀게 한다.’
출23:15-‘내 얼굴들이 텅빈 것을 보게 하지 말라.’ 즉 선물 없이=(주님으로부터) 선을 받기 위한 증거가 되는 것, 그리고 감사함.
시72:10-‘선물(present)을 가져오는 것, 그리고 선물(gift)을 가져오는 것’=사랑의 선과 신앙의 선.
이66:20-‘여호와께 공물’은 주님 안에서 사랑의 선들과 신앙의 선들을 뜻한다.
말3;3-여호와께 바친 선물이 사랑의 선들과 신앙의 선들인 바, ‘그들은 정의 안에서 공물을 여호와에게 가져온다’라고 말해지고 있다.
이57:9-‘왕에게 기름 안에서 선물을 바치는 것’=악들로부터 사탄을 예배하는 것. ‘기름 안에서 선물’은 식사 공물이다.
계11:10-‘그들은 서로에게 선물을 보낼 것이다’=사랑과 우정을 통하여 제휴함.
마5:23,24-‘제단에 선물(gift)을 바치는 것’=모든 신성한 예배, 그이유는 이 나라와 더불어서의 신성한 예배는 태워 바침과 제물을 바침에 우선적으로 존재했기 때문.
시45:12-이 (지식)으로 풍요로워지는 것이 ‘선물을 가져오는 것’에 의해 의미되어있다.
이45:13-주님께서 이런 것들을 무료로 해주신다는 것이 ‘가격도 없고, 선물도 없이’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시45:12-‘두로의 딸이 선물(gift)을 보낼 것이다’=진리에 관한 지식을 지닌 이들에 의한 예배.

성만찬 (holy supper)

창14:18-‘빵’=천적인 것들, 그리고 ‘포도주’=영적인 것들, 이것들은 성만찬에서 상징물로 만들어졌다.
* 성만찬에서 ‘먹는 것’ 그리고 ‘마시는 것’=주님의 신성한 사랑으로부터의 선을 자기 것 되어지게 하는 것.
* 천국에서의 모든 거룩함은 주님의 신성한 인간으로부터 진행한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교회에 있는 모든 거룩함도 진행된다. 그러므로 이것에 대한 법위반을 예방하시기 위하여 성만찬이 주님에 의해 제정되어졌다. 성만찬에서 빵은 그분의 살이고 포도주는 그분의 피이다고 말해지고 있다. 고로 이것은 그분의 신성한 인간이다, 이로부터 거룩함이 있다. 그러므로 성만찬에서 빵과 포도주로 의미되는 살과 피는 주님의 인간 자아이다…(주님의) 인간 안에 있는 이 신성한 자아가 ‘살과 피’라 불리운다. ‘살’은 그분의 신성한 사랑이다. 그리고 ‘피’는 신성한 선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이다.
마26:27,28, 막14:23,24, 눅22:20-‘잔을 가져다가…그분은 그것을 그들에게 주시며, 말하시기를…이것은 나의 피이다…여기서 포도주가 잔이라 말해지는데 그이유는 피는 영적 교회라고 단언되고, 잔은 천적 교회라 단언되기 때문…영적 교회가 천적 교회와 다른 점은, 전자는 이웃을 향한 사랑 안에 있고, 후자는 주님을 사랑함 안에 있다. 그리고 성만찬은 보편적 인류를 향한 주님의 사랑, 그리고 그분을 향한 인간의 상호적인 사랑을 의미하고 표현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다.

세례 (baptism, baptize)

* 씻다(wash)도 참조
마3:16, 요1:32, 막1:10-11, 눅3:21-22-‘세례받으신 예수께서는 물로부터 곧장 올라오셨다’…세례 자체=거듭남. 그러므로 올라오는 새 교회와 더불어 세례=신앙으로부터의 선과 진리, 이것을 새 교회인들은 거듭남을 수단으로 주님으로부터 받는다.
요3:5-이로부터 알게 되는 것은,…세례에서 사용된 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다. 이에 관해 주님께서 요한 복음에서 말하신다. ‘물과 영으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그는 하느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다.’ 즉 ‘물’=신앙의 영적 차원인 것, ‘영’=신앙의 천적 차원인 것. 고로 세례는 신앙으로부터의 선들과 진리들을 통하여 주님에 의한 인간 거듭남을 상징한다는 것. 거듭남은 세례를 통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세례에서 의미되는 생명을 통하여 말씀을 가졌기에 신앙의 진리들을 가진 기독인들이 반드시 일궈내 성취해야 하는 삶이다는 것.
왕하5:1-14-요단에서 일곱 번 씻음에 의해 나아만의 문둥병이 치료됨…세례를 표현했다. 그 이유가 세례는 교회 안으로 입문함, 그리고 교회 속에 있는 여러 가지 것들 안으로 입문함, 고로 거듭남, 그리고 거듭남 속에 있는 것들. 세례라는 요식행위를 가진다고 해서 누군가가 거듭나는 것은 아니다. 이 형식은 거듭나야 함을 기억하는 표시이기 때문. 그리고 교회 속의 이런 것들이 세례를 수단으로 의미되기에, 요단에 의해서도 역시 같은 의미를 지닌다…그러므로 그들은 요단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고, 주님 또한 거기서 요한에게 기꺼이 세례 받으신 것이다.
막10:38,39, 마20:22,23-‘…내가 받아진 세례를 가지고 너희가 세례받아 질 수 있느냐? 그들이 말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하셨다, 실로 너희는 내가 마신 잔을 마실 것이고, 내가 받은 세례를 가지고 너희는 세례받을 것이다,’ 이로부터 분명한바, ‘잔’=시험, 그이유는 시험은 선하고 참된 것들에 맞서는 거짓들을 수단으로 싸우는 악들을 통하여 발생하기 때문이다. ‘세례’=거듭남, 이는 영적 전투들을 수단으로 결과되어진다, 그러므로 시험은 이것에 의해서도 의미되어진다.
* 누구도 세례 받는 요식 행위 만으로 하느님의 왕국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세례는 거듭남을 의미한다. 이 거듭남은 교회 사람은 반드시 기억하며 살아야 하고 반드시 성취해야 하는 삶이다.
요1:33, 눅3:16-‘성령으로 [불로] 세례를 베푸는 것’=사랑의 선을 수단으로 거듭나는 것.
마3:11-‘세례베푸는 것’=거듭나는 것. ‘성령으로’=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그리고 ’불로’=신성한 사랑의 신성한 선으로부터.
막7:4, 마3:13-16, 막1:10, 왕하5:2,10,14, 마20:22-‘완전한 씻음’이 세례로 불리워진다는 것은 여러 구절로부터 분명하다. 그리고 씻음은 몸 전체에 관해서이다. 세례받는 씻음이 거행된 요단…자연적인 것을 의미했다. 세례의 씻음에 의해 시험 역시 의미되어지는데, 그 이유는 모든 거듭남은 시험을 수단으로 결과되기 때문이다.
막16:16-‘믿는 자’=주님을 인정하고, 그분으로부터 말씀을 통하여 신성한 진리들을 받는 자. ‘세례받는 자’=주님에 의해 말씀을 통하여 거듭나아지는 자.
눅3:16, 요1:33-‘(요한이 물로 세례를 베풀었던 반면) 그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베푸실 것이다’란 주님께서는 신성한 진리와 신성한 선을 수단으로 인간을 씻고 순수해지게 하실 것을 뜻한다. 그리고 요한, 그의 세례를 통하여 이런 사항들을 표현했다. 그 이유가 ‘성령’=신성한 진리. ‘불’=신성한 선, ‘물’=이런 것들에 대한 표현물. 그 이유가 ‘물’=말씀 속의 진리, 이 진리는 이 진리에 따른 삶을 통하여 선이 되어가기 때문.
마3:11,12-‘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는 것’=신성한 진리와 신성한 선을 통하여 교회를 재구성하고 교인을 거듭나게 하는 것.

식사 공물 (meat-offering)

* 식사 공물은 기름을 섞은 고운 곡식 가루로 이루어지고, 그리고 과자로 만들었다.
레2장, 6:14-17, 민15장-이 장에서는 식사 공물에 관하여, 그것의 구성 요소가 기술되고, 어떻게 과자로 만들어 준비되는지를 기술하고 있다. 식사 공물의 법이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이것은 식사 공물의 법이다. 아론의 아들들이 주님 앞 제단에 그것을 바쳐라. 그리고 그는 거기로부터 식사 공물의 고운 곡식 가루 한 웅큼, 그것으로부터 기름, 식사 공물에 있는 모든 유향을 가져가라, 그리고 그것을 주님께 달콤한 향기를 위해, 그것으로부터의 기념물로 제단 위에서 태워라, 그리고 그것으로부터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먹는다. 이것은 거룩한 장소에서 누룩 없이 먹어라. 만남의 천막의 뜰에서 그들은 그것을 먹어라. 누룩과 더불어 구워져서는 안된다. 나는 불로 만든 내 제물로부터 그들의 몫으로 그것을 주었다. 이것은 가장 거룩하다.’ ‘그들이 한 웅큼 가져오는 것’은 그들이 전력을 다해 사랑하는 것…‘고운 곡식 가루’, ‘기름과 더불어’, 그리고 ‘유향’은 선행으로부터의 모든 것들을 표현했다. ‘고운 곡식 가루’는 그것으로부터의 영적 평면, ‘기름’은 그것의 천적 평면, ‘유향’은 깊이 감사하는 것…‘누룩 넣지 않은 것, 또는 발효되지 않은 것’=신실해야 할 것, 고로 신실한 심정으로부터 있을 것, 불결한 것이 전혀 없는 것.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남은 것을 먹는다’는 것은 인간의 (영적) 상호성(Reciprocal), 그리고 자기 것 되게 함, 고로 사랑과 선행을 통하여 결합함을 표현했다. 그러므로 그것은 거룩한 장소에서 먹어야 한다고 명령되어졌다, 이로부터 그것은 가장 거룩하다고 불리운다. 이상의 내용들이 식사 공물에 의해 표현되어졌다.
출29:39-41, 레5:11-13, 6:14-21, 10:12,13, 23:10-13,16,17, 민5:15, 6:15-17,19,20, 7,28,29장-이 구절들에서 식사 공물이 더 취급되는데, 제물의 각 종류와 관련하여, 어떤 방법으로 과자로 구워지는가 등등에 관련하여… 과자로 만들어진 고운 곡식 가루는 일반적으로 빵과 동일한 것, 즉 사랑의 천적인 것을 표현했다. 그리고 식사는 그것의 영적인 것.
말3:4-‘달콤함, sweet’은 사랑으로부터의 예배, 이는 ‘유다의 식사 공물’이다. 그리고 파생되는 신앙으로부터의 예배는 ‘예루살렘의 식사 공물’이다.
* 일반적으로 모든 제물, 어떤 종류의 제물이든, ‘선물, gift’로 불리웠다. 그러나 특별한 것으로 빵과 포도주, 또는 헌주(술을 따라 바침, libation)와 더불은 과자는 식사 공물로 불렀다. 원어에서 ’식사 공물은 ’선물‘을 뜻한다.
* 제물에 식사 공물 과 헌주(음료 제물)가 추가되어지고 있다. 기름을 섞은 고운 곡식 가루로 된 식사 공물 은 천적 선, 다른 말로는 사랑으로부터의 선이 의미된다. ‘기름’=주님을 사랑함, ‘고운 곡식 가루’=이웃을 향항 선행. 그러나 포도주로 구성되는 헌주(또는 음료 제물)은 영적 선, 같은 뜻으로 신앙으로부터의 선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식사 공물 과 음료 제물 둘 모두 성만찬에 있는 빵과 포도주와 같은 의미를 지녔다.
출29:38-41, 레23:12,13,18, 민6:13-15,17, 15:3-5,11, 28:6,7-이런 것들이 태워 바침과 제물에 추가되었다.
민28:7-끝절, 29:1-끝절-다양한 종류의 제물에서 식사 공물 과 음료 공물에 관하여…
레2:4,5,7-‘오븐(oven)’의 의미가 거기로부터 파생되었기 때문에, 공물을 위해 제조된 빵…‘식사 공물’로 불리웠다. 그리고 오븐 안에서 제조된 것은 납작한 냄비에서 제조된 식사 공물과는 구별했다. 이런 것들에 의해 다양한 사랑의 선이 의미되었다.
말3:4-‘그들이 여호와께 가져올 식사 공물’은 신앙과 선행이다.
말1:11-애착 속에 있는 것들, 거기로부터 심정 속에 있는 것들이 ‘식사 공물’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신33:10-‘식사 공물과 태워바치는 공물’=애착 속에, 그리고 심정 속에 있는 것들, 그리고 사랑의 선에 관련되고 있다.
출29:41-‘아침 식사 공물에 의거, 그리고 거기로부터 헌주에 따라서, 너는 그것을 만들 것이다’=천적인 것으로부터의 영적 선, 그리고 그것의 진리는 결합을 위해 충분하다. ‘아침 식사 공물’, 또는 둘째 ‘어린 양을 위한 식사 공물’=천적인 것으로부터의 영적 선…
예17:26-‘식사 공물’에 의해 사랑의 선이 의미되어진다.
출30:9-‘태워바치는 공물 과 식사 공물(을 향제단에서 바치지) 말라’=천적 사랑의 선들과 진리들을 통하여 있는 거듭남에 대한 표현은 거기에는 없다는 것…‘식사 공물’=천적인 선, 인간은 거듭남을 통하여 이 선에 소개되어진다. 또한 거듭남의 표현.
말3:3-‘정의 안에서 식사 공물을 여호와께 가져오는 것’=선행의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는 것.
말1:11-천적 선으로부터의 예배가 ‘식사 공물’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시141:2-‘저녁의 식사 공물 같이 내 손의 들어올림이 (있게) 하소서.’ 손을 들어올림이 ‘식사 공물’이라 불리워진다, 그이유는 손을 들어올림과 식사 공물의 의미가 모두 천적 선으로 같기 때문…이 선은 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의 선이다.
욜2:14-‘식사 공물 ’, 이것은 빵이였다,=선.
말3:4-‘달콤함이 유다와 예루살렘의 식사 공물(로부터) 여호와께 있을 것이다’=그당시 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의 선으로부터의 예배가 열납되어질 것이다는 것.
예33:18-‘식사 공물’에 의해 이웃을 향한 선행으로부터의 선으로부터 예배함이 의미되어진다.
예17:26-‘식사 공물과 유향’=자연적 인간에 있는 선과 이 선으로부터의 진리.
이43:23-‘식사 공물’, 이는 고운 곡식 가루인바, 빵, 고로 천적 선이 의미된다.
레5:9,19-‘뜰에서 신성하게 한 이것들을 먹는 것’에 의해 ‘식사 공물’과 이런 ‘제물들’에 의해 의미되어졌던 교회의 선들을 자신들에게 자기 것 되게 하는 것이 의미되고 있다.
욜1:13-‘식사 공물’에 의해 교회의 선이 의미된다.
단9:27-‘제물’=진리들로부터 예배함. 그리고 ‘식사 공물’=선들로부터 예배함.

안식일 (Sabbath)

*그 다음 전투가 중단되는바, 주님은 ‘그분의 모든 일로부터 쉬셨다’라고 말해진다; 그러므로 일곱째 날은 성별되어졌고, ‘쉼’으로부터 ‘안식일’이라 불리웠다.
막2:28-천적 인간이…안식일이다는 것은 주님 자신이 안식일이시다는 사실로부터 명백한바, 그분이 말하시기를,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다’. 이 말씀은 주님이 …안식일 자체이시다를 내포하고 있다. 그분의 왕국은…그분으로부터 안식일, 또는 영원한 평화와 쉼이라 불리운다
이58:13,14-천적 인간의 ‘쉼’이 ‘안식일’에 의해 묘사되어 있다.
레23:15-‘오십’=충분한 것…그리고 그러므로 일곱 안식일의 축제가 오십 번 째 날까지 있었다.
마24:20-‘너희의 도망감이…안식일에 있지 않도록 기도하라’ ‘안식일에 도망감’=너무나 많은 열(heat)이 있는 상태에서 (사랑의 선과 순진의 선)으로부터 옮겨짐: 이 열은 내부가 자아와 세상 사랑일 때 거룩한 외적인 것.
출16:23-‘내일은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선과 진리의 결합이 영원함.
출31:14, 민15:32~37-안식일이 가장 거룩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그것은 최고 의미에서 주님 안에서 신성과 신성한 인간의 합일을 표현했기 때문; 그리고 관계적 의미에서 신성한 인간과 인류의 결합을 표현했기 때문. 이로부터 안식일은 가장 거룩했다. 그리고 안식일이 이런 것들을 표현했는 바, 선과 진리의 결합에 관련한 천국 또한 표현했다…그리고 이 결합은 주님 만에 의해 결과되기에…그리고 이것은 평화의 상태에서 결과되기에…안식일에 사람은 어떤 일도 해서는 안된다고 강도 높게 금하여졌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관한 계명은 세 번째,…즉 여호와에 대한 거룩한 예배인 첫, 두 번째 뒤를 잇고 있다; 그리고 안식일은 ‘영원한 언약’이라 불린다.
이56:2~7-‘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는 이들=주님과 결합한 가운데 있는 이들.
이58:13,14로부터-안식일 날에 어떤 일을 하지 말라에 의해 표현된 것은 그들이 자아로부터가 아니고 주님으로부터 어떤 것을 행해야 함이다.
예17:24-‘안식일에 일함’에 의해 자아로부터 있는 모든 것이 의미되어진다.
겔20:12, 출31:13-안식일은 인류와 주님의 결합을 표현했다.
출25:3-그러므로 ‘안식일에 불을 지피는’ 것이 금하여진 이유는…‘불을 지핌’=자아로부터의 생명 속에 있는 것.
출20:8-‘기억하라’=영원히 생각하고 있어야 함; ‘안식일’=최고 의미에서 신성과 주님의 신성한 인간과의 합일; 내적 의미에서 천국들 안에서 신성한 인간의 결합, 고로 그곳에서 선과 진리의 결혼. 이런 것들이 표현 교회에서 안식일에 의해 의미되었기에 그것은 가장 거룩했고, 생각 속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 즉 보편적으로 (우리 위에) 군림해야 하는 것이다.
출20:10-‘일곱째 날은 여호와 너희 하느님에게 안식일이다’=선이 뿌리박혔다, 고로 결혼; 그 이유가 ‘안식일’= 천국적 결혼; 고로 선이 진리들을 통하여 이식되었다, 그리고 이후 이것들을 수단으로 만들어진다; 그이유가 인간과 더불은 선은 그 선이 진리들에 의해 만들어질 때까지 영적 선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졌을 때, 천국적 결혼이 있다; 그이유가 이것이 선과 진리의 결합이기 때문. 그리고 그것이 인간과 더불은 천국 자체이기 때문. 이로부터 역시 ‘일곱째 날’= 거룩한 상태.
레23:11-‘안식일 이틑날’=선과 진리의 결합으로부터의 거룩한 것.
레23;39-‘첫째 날에 안식하고, 여덟째 날에 안식하라’= 진리가 선과, 선이 진리와 상호 결합함…여덟째 날이 안식일이라 불리는 이유는 ‘8’이 새로운 상태의 시작을 의미하기 때문.
출31장-그다음 표현을 통하여 이 교회와 주님의 결합을 취급하고 있다; 이것이 ‘거룩하게 준수되어야 하는 안식일’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출31:13-‘너희는 내 안식일을 지키라’=신성 자체와 주님의 인간의 합일에 관한 거룩한 생각은 변함없어야 할 것. ‘안식일’ 최고 의미에서=주님 안에서 신성 자체와 신성한 인간의 합일; 그리고 관계적 의미에서, 신성한 인간에 관련된 주님이 천국과 결합함; 또한 천국과 교회의 결합; 그리고 일반적 측면에서, 교회가 존재하는 이들과 더불어 있는 선과 진리의 결합…이로부터 ‘여호와의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에 의해 위에 열거한 결합에 관하여 거룩하고 변함없는 생각을 지녀야 함이 의미되고 있다. 이것들이 교회의 참 본질이기에 안식일에 관하여는 이 장에서 거듭 언급되고 있다.
출31:14-‘너희는 안식일을 지킬 것이다’=주님의 신성한 인간이 예배되어져야 한다는 것…‘안식일’ 최고 의미에서=‘아버지’라 불리는 신성과 ‘아들’이라 불리는 신성한 인간의 합일, 고로 신성한 인간 안에 이 합일이 있다. 이런 연유에서 이 합일이 ‘안식일’에 의해 의미된다.
이58장-‘안식일’=인간이 주님과 결합하는 상태; 고로 인간이 자아에 의해서가 아닌 주님에 의해 인도될 때의 상태, 이 상태는 그가 선 안에 있는 상태이다. 그이유가 자신이 아닌 주님에 의해 인도되는 것이 ‘안식일로부터 발을 돌리는 것; 자기 자신의 의지들을 행하는 것이 아닌 것; 자기 자신의 길들을 가는 것이 아닌 것; 자기 자신의 바램을 찾지 않는 것; (사사로운) 단어를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 그리고 안식일은 그 안에 합일이 있는 신성한 인간이다는 것이 ‘거룩함의 날’ 그리고 ‘여호와의 거룩으로 유쾌함’이라 불리는 안식일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레24:8-안식일에 의해 합일이 들어 있는 신성한 인간에 관련된 주님이 의미되는바, ‘얼굴들의 빵들이 매 안식일에 탁자 위에 배열해야 한다’라고 명령되어진 것이다; (그이유가) 신성한 인간에 관련한 주님이 ‘빵’에 의해 의미되기 때문. 그러므로 또한 주님은…자신을 ‘안식일의 주인’이라 부르신다.
출31:14-‘안식일을 모독하는 것’, 또는 안식일 날에 일을 하는 것=주님이 아닌 자아에 의해 인도되는 것; 고로 자신의 사랑들에 의해 인도되어지는 것.
출31:15-‘일곱째 날은 안식일 중의 안식일이다’=선의 상태, 이것이 목적이다; 고로 인간이 교회가 될 때와 천국에 입장할 때이다.
출31:16-‘이스라엘의 아들들은 자손 대대로 안식일을 준수하기 위해 안식일을 지킬 것이다’=교회 속의 본질 자체는 주님의 인간 안에서 신성 자체의 합일을 인정함이다는 것; 그리고 이것은 예배의 각각 그리고 모든 것들 안에 반드시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출35:2-‘일곱째 날에 너에게 거룩함이 있을 것이고, 여호와에게는 안식일 중의 안식일이다’=인간 거듭남의 두 번째 상태, 이때 그는 주님과 결합을 가진다; 그리고 최고 의미에서 안식일 중의 안식일=주님의 인간이 신성 자체와 합일됨.
출35:3-‘너희는 안식일에 너희 처소에서 불을 지피지 마라’=자아의 사랑, 즉 자아와 세상 속에 있는 것은 어떤 것도 주님으로부터 인간 속에 있는 각각 그리고 모든 것들에는 나타나서는 안된다.
예17:24-‘안식일’=주님의 인간이 천국과 교회와 결합함.
이56:6-‘안식일’에 의해 주님이 천국과 교회, 고로 거기 있는 이들과 결합이 의미된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 의해서는 주님과 결합함 안에 있는 것이 의미된다.
겔46:1-(천국과 교회 안으로의) 입문은 사랑의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을 통하여 결과된다는 것이 ‘안식일 날에 (이 문이) 열릴 것이다’에서 의미되고 있다.
눅14:5-‘안식날에 구덩이로부터 나귀나 황소를 끌어내는 것’=만일 누군가가 거짓과 악 안으로 빠진다면 그는 안식일에 주님에 의해 가르쳐진 진리를 통하여 그것으로부터 꺼내져야만 한다…‘안식일에 끌어내는 것’= 가르침을 받는 것, 그리고 받은 가르침대로 자신을 가져다 놓는 것; 그이유가 여기서 ‘안식일’=교리와 가르침에 관련한 주님; 그러므로 그분은 자신을 ‘안식일의 주인’이라 부르신다.

약혼하다 (betroth)

창24장-이 장에서 개시(initiation), 또는 약혼이 취급되고 있다.
창34:2-‘그녀와 눕고 그녀를 짓누르는 것’=결합되는 것, 그러나 약혼을 통해 결과되는 합법적인 방법이 아닌 것.
말2:11-‘이상한 신의 딸과 약혼하고 사랑하는 것’=자신을 거짓과 결합하는 것.
눅15:22-‘반지’=집에서 권위가 있음을 확증하는 것…이는 고대 시대로부터 우리에게 내려오는 예식들로부터, 즉 약혼, 연결되었음(coupling), 그리고 취임식 같은 예식들에서 반지가 손에 놓여짐으로부터 분명하다.
출21:8-‘그가 그녀와 약혼하지 않는 것’=결합되어질 수 없는 것….‘약혼되는 것’=결합되는 것. 그이유가 약혼한 그들은 결합하기 때문.
출21:9-‘만일 그가 그녀를 그의 아들과 약혼시킨다면’=만일 파생된 진리와 일치되게 해서 그것과 결합되어 질 수 있다면.
출22:15-‘사람이 약혼하지 않은 처녀를 설득할 때’=진리와 결합하지 않은 선…‘약혼되는 것’=결합.
* 말씀에서 ‘약혼’=내향의 인간 안에서 선과 진리가 결합함.
예2:2-‘약혼자들의 사랑’=신앙의 진리와 사랑의 선으로부터 있는 영적 생명에 애착함.
호2:19-‘자비와 불쌍히 여김 안에서 약혼하는 것’=선 안에 있는 이들을 향한 사랑으로부터, 그리고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을 향한 사랑 안에서.
말2:11-‘이상한 신의 딸과 약혼하는 것’=거짓으로부터의 악과 결합되는 것.
호2:19-‘공정 안에서 약혼하는 것’=신성한 진리를 통하여 결합하는 것, 고로 신앙과 신앙의 생활을 통하여 결합하는 것.
계21:2-‘준비된’에 의해 약혼자를 위해 단장함이 의미된다, 그리고 교회는 약혼을 위해, 그 후에 결합, 또는 결혼을 위해 공급되는데, 이는 말씀을 통하여서만이, 더달리 방법이 없다.
* 약혼의 상태는 마치 여름 이전 봄의 상태와 비슷하다, 열매를 만들기 이전 나무가 꽃피우는 상태, 즉 내향의 기쁨.

예물 (offering)

* 태움(burnt), 태워바치는 공물(burnt-offering), 들어올려 바치는 공물(heave-offering), 식사 공물 (meat-offering), 선물(gift), 헌물(oblation) 등도 참조.
창4:3,4-‘아벨의 예물’=선행으로부터의 예배, ‘기뻐하셨다.’ 그러나 ‘가인의 예물’=선행과 분리된 신앙으로부터의 예배, ‘반기지 아니하셨다.’

예배 (worship)

* adore, altar, babel, burnt-offering, drink-offering, idol, incense, meat-offering, praise, pray, preach, present, sacrifice, tent등을 보라.
창2:15-‘(에덴의 동산을)경작(cultivate)하고 그것을 돌보도록 하는 것’=이 모든 것을 향유하도록 그에게 증여되어졌다는 것, 그러나 자기 자신의 것으로 그것들을 소유하지 말라는 것, 그 이유는 그것들이 주님의 것이기 때문.
창4:2-‘지면의 경작자(a tiller of the ground)’=선행이 결핍된 자.
창4:12-‘지면을 경작하는 것’=종파나 이교를 탐닉하는 것.
출3:12-‘너는 이 산에서 하느님을 예배할 것이다’=사랑으로부터 신성한 것을 지각하고 인정함.
* 출27장에서는 사랑의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을 취급한다. 이 예배가 ‘제단’에 의해 의미되고, 제단의 모든 것들에 의해 예배의 일반적인 사항이 묘사되어 있다.

예복 (robe)

눅15:22-‘제일가는 예복’=일반적인 진리들.
계6:10-‘흰 예복이 모든 이 각각에게 주어졌다’=신성한 진리들에 있는 천사들과 교통하고 결합함.
계7:9-‘흰 예복을 입고’=더 높은 천국들과 교통하고 결합함.
계7:14-‘그리고 자기들의 예복을 빨았다’=거짓의 악들로부터 자기들의 종교적인 것들을 깨끗이 했었다…‘예복들’=일반적인 진리들, 이는 글자 의미로부터 있는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 이것들에 따라 그들은 살았었다. 고로 종교적인 것들. 그리고 종교적인 모든 것은 선과 진리에 관련있는바, ‘예복’이 두 번 언급된다…‘예복’, 또는 종교적인 것들은 악에 맞서 싸우는 이들과 더불어서만 깨끗해진다, 그리고 거짓들을 거절하는데 시험을 통하여서이다.
계7:14-‘그리고 어린 양의 피 안에서 그들의 예복들을 희게 만들었다’=그리고 그것들을 진리들을 수단으로 악의 거짓들로부터 순수하게 했다, 그리고 고로 주님에 의해 개혁되어 왔다…‘예복들’, 여기서도 역시=말씀으로부터 일반적 진리들, 이것이 그들의 종교적인 것들을 만든다.

예복 (raiment)

* 의복(garment)을 보라.

제물 (sacrifice)
제물을 바치다 (sacrifice)

* 태워바치는 공물(burnt-offering) 음료 공물 (drink-offering) 식사 공물 (meat-offering)도 참조.
출24:4-6-모세는 제물 바침에 관한 규례가 제정되기 전 제물을 바쳤다…고로 제단과 제물을 수단으로 하는 신성한 예배는 유대인들에게 새로이 제정된 것은 아니었다.
시106:38-‘가나안의 우상들에게 아들과 딸을 제물로 바치는 것’=내적 예배로부터 분리된 외적 예배를 수단으로 선행과 신앙 속의 것들을 모독하는 것.
창31:54-‘야곱은 산에서 제물을 바쳤다’=사랑의 선으로부터 예배함. ‘제물’=예배…그이유는 제물과 태워바치는 공물은 히브리 교회에서 모든 예배 중에서 제 일의 사항이었기 때문. 그들은 산에서 제물을 바쳤다, 그이유는 산=높이 있는 곳들이기 때문…
호4:13-악을 예배함이 ‘산의 머리에서 제물을 바침’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창46:1-‘그는 자기 아버지 이삭의 하느님에게 제물을 바쳤다’=그때부터 예배함, 그리고 신성의 지적 평면으로부터 유입이 있음.
신23:19-‘정의의 제물을 바치는 것’=선행으로부터 예배함.
출3:18-‘우리는 우리의 하느님 여호와에게 제물을 바친다’=고로 주님을 예배함. ‘제물을 바침’=일반적으로 예배함.
출8:8-‘나는 백성들을 가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여호와에게 제물을 바칠 것이다’=(판치는 자, infester가) 영적 교회인들로부터 떠나 이 교인들은 자기들의 하느님을 예배할런지 모른다.
출8:26-‘우리는 우리의 하느님 여호와에게 이집트인이 역겨워하는 것을 제물로 바칠 것이다’=그들은 지옥인 것으로부터의 거짓들에 있는 이들에게는 역겨워 할 예배로 하느님을 예배할 것이다.
출10:25-‘당신은 우리의 손에 제물과 태워바치는 공물을 줄 것이다’=그들은 모든 것들을 놓아두어 이를 통하여 예배가 수행되게 해야 할 것이다.
출12:27-‘이것은 여호와께 드리는 유월절의 제물 바침이다’=해방 때문에 주님을 예배함.
출13:15-‘나는 자궁을 연 모든 수컷을 여호와에게 제물로 바칠 것이다’=선행으로부터의 신앙은 주님께 속한 것인바, 그분께 돌려드려야 한다. 이 구절의 ‘제물을 바침’은 2절의 신성하게 함과 같다.
출22:20-‘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는 자’=악으로부터 있는 거짓들로부터 예배함.
마23:19-‘선물’, 또는 제물=주님으로부터 있는 신앙과 선행 속의 것들.
출23:18-‘너는 발효된 것 위에 내 제물의 피를 바치지 말라’=교회의 진리들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은 악으로부터의 거짓들과 뒤섞어서는 안된다.
슥14:21-‘제물을 바치는 그들 모두’=신성의 예배 안에 있는 이들.
레12:6-‘태워바치는 공물로 어린 양, 그리고 제물로서비둘기의 아들들, 또는 호도애’=순진의 선을 통하여 악들로부터 순수해짐.
출29:39-‘어린 양을 처리하는 것’, 즉 어린 양을 제물로 바치는 것‘=주님으로부터 순진의 선을 통하여 악들을 제거함.
출32:8-‘그들은 (금송아지를) 숭배했다, 그리고 그것에 제물을 바쳤다’=그들은 그것을 선 자체로서, 진리 자체로서 예배했다는 것…‘제물을 바치는 것’=진리 자체로서 예배하는 것.
출34:15-‘그들이 자기들의 하느님에게 제물을 바친다’=고로 거짓들로부터 예배함.
이65:3-‘그들은 동산에서 제물을 바친다.’ ‘제물을 바치는 것’=반대적 의미, 즉 자신의 총명으로부터 인 교리 속의 거짓들로부터 예배함.
호4:13-자아로부터 예배함이 ‘산꼭대기에서 제물을 바치는 것’에서 의미되어져 있다.
겔39:17-‘이스라엘의 산 위에서 큰 제물’=그들의 예배속의 모든 것들.
예33:18-‘태워바치는 공물’=사랑의 선으로부터의 예배; ‘식사 공물’=선행의 선으로부터의 예배; 그리고 ‘제물’=신앙의 진리들로부터의 예배.
예17:26-‘태워바치는 공물’=천적 선으로부터 예배함; ‘제물’=영적 선으로부터 예배함; ‘식사 공물’과 유향‘= 선, 그리고 자연적 인간에 있는 선으로부터의 진리.
이19:21-‘그들은 제물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식사 공물’=말씀으로부터 그분의 가르침들에 따라, 고로 교리의 진리들로부터, 그리고 사랑의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함.
단9:27-‘일주일의 중간에서 그는 제물과 식사 공물을 중단하게 만들 것이다’=개혁된 이들과 더불어 아직도 여전히 내면적으로는 예배에서 선과 진리가 없다. ‘제물’=진리들로부터의 예배; 그리고 ‘식사 공물’=선들로부터의 예배.

축제 (feast)
잔치 (feast)

* 여러 잔치들이 거룩한 장소에서 거행되었다…그리고 이는 교통함과 결합함 그리고 천적 선들을 자기 것 되게 함을 의미했다.
창19:3-‘그는 그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함께 거주함. 말씀에서 잔치가 언급될 경우=함께 거주함.
* 거룩해진 것들로부터 있는 잔치는 제물에 의해 표현되는 사랑의 거룩한 것들 안에서 인간과 더불어 주님이 함께 거주함을 표현했다. 이와 같은 것이 후에 성찬에 의해 원시 교회에서 표현되었는데, 잔치라 불리운다.
* ‘정찬(dinner)’, ‘만찬(supper)’, ‘잔치(feast)’=선행으로부터의 선, 이 선 안에서 주님은 인간과 함께 거주하신다.
창21:8-‘아브라함은 큰 잔치를 베풀었다’=함께 거주함과 합일…합일이 의미된 이유는 여기서 주님을 취급하기 때문.
창29:22-‘그는 잔치를 베풀었다’=개시함. (그이유가) ‘잔치’=자가 것 되게 함과 결합함. 여기서의 경우 개시함, 그이유는 이것이 결합에 앞서 진행되기 때문…고대 시대 때의 잔치는 상호간의 사랑이 개시됨을 의미했다. 결혼 잔치는 결혼 사랑의 개시를, 거룩한 잔치는 영적, 천적 사랑이 개시됨을 의미했다. 잔치에서 먹고 마시기 때문에 잔치는 자기 것 되게 함과 결합을 의미했다.
창40:20-‘그는 자기의 모든 종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다’=외면의 자연 평면과 결합이 개시됨.
이25:6-‘살진 것들로 잔치를’, ‘오래된 포도주로 잔치를’…‘잔치’=천국, 그리고 사랑과 천국을 통하여 거기서 천사들과 결합함.
예51:39-‘그들의 잔치들’=선과 진리에 섞음질함.
출12:14-‘축제를 여는 것’=주님을 예배함.
출23:14-‘한 해에 세 번 너희는 나에게 축제를 열어라’=지옥에 떨어짐으로부터 구조하신 주님께 감사함과 영원히 예배함.
출5:1-‘광야에서 나에게 축제를 개최하라’=기쁜 마음으로부터 그들은 자기들이 지닌 신앙의 희미함 안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을 런지 모른다는 것.
출10:9-‘그것은 우리에게 여호와께 올리는 축제가 있기 때문’=각각 그리고 모든 것들에서 주님을 예배함.
출13:6-‘일곱째 날에 여호와께 축제…’=주님을 거룩히 예배함.
말2:3-‘축제들의 똥’=예배 속의 거룩한 것들을 더럽힘.
출33:5-‘내일 여호와의 축제’…‘축제’=기념일에 관련하여 있는 교회의 예배.
출34:18-‘너는 누룩 넣지 않은 것들로부터의 축제를 준수하라’=악으로부터, 그리고 악의 거짓들로부터 해방됨 때문에 주님께 감사하고 그분을 예배함.
시118:27-‘제단의 뿔들에 축제를 묶는 것’=예배의 모든 것들을 다함께 결합하는 것. ‘축제’, 그리고 ‘제단’=예배.
시74:8-그들이 신성한 예배의 모든 것들을 완전하게 파괴했다는 것이 하느님을 경축하는 모든 장소를 태움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태우는 공물 (burnt-offering)
태워 바침 (burnt offering)
번제 (burnt offering)

* 제물 (sacrifice)도 참조.
창8:20-‘(노아는) 제단에 태우는 공물을 바쳤다”=그 때부터 파생된 예배…’태우는 공물’, 한 복합체에서,=표현적인 예배.
* ‘태워 바침 (번제)’=사랑으로부터의 예배; ‘죽여 바침 (희생제)’=사랑으로부터 파생된 신앙으로부터의 예배.
창22:2-‘태우는 공물로 (이삭을) 바치는 것’=그분은 신성과 더불어 자신을 신성해지게 해야 하리라는 것.
창22:7-‘태우는 공물을 위한 가축은 어디있습니까?’=어디에 신성해지게 될 인류 속의 이들이 있는가?
출18:12-‘이드로는 태우는 공물과 제물을 가져왔다’=사랑의 선과 신앙의 진리들로부터 예배함.
출20:24-‘너는 네 태우는 공물과 평화 공물을 (땅의 제단) 위에서 제물로 바쳐라’=각각의 영적 생명에 따라 특별하게 예배함.
출24:5-‘그들은 여호와께 태우는 공물을 바치고 어린 수소의 평화 공물을 제물로 바쳤다’=선으로부터, 그리고 선으로부터 있는 진리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을 표현함.
출29장-외적 인간, 또는 자연적 인간 안에 선과 진리를 심는 것이 어린 수소를 제물로 함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그리고 내적 인간, 또는 영적 인간 안에 선과 진리를 심는 것이 수양을 태우는 공물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출29:18-‘이것은 여호와께 대한 태우는 공물이다’=주님의 인간이 신성화 되심.
출29:18-‘태우는 제물이 ’여호와께 대한 쉼의 냄새‘라 불리는 이유는 태우는 공물에 의해 주님의 신성한 인간이 신성 자체와 하나가 됨이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출29:25-‘너는 그것들을 태우는 공물 위 제단에서 태울 것이다’=신성의 사랑으로부터의 신성의 선과 하나가 됨…‘태우는 공물’에 의해 결합 자체가 의미되고 묘사되고 있다.
출29:42-‘계속적인 태우는 공물’=일반적 측면에서 있는 모든 신성한 예배. ‘태우는 공물’=신성한 예배.
출30:9-‘태우는 공물도, 식사 공물도 안된다’=거기에 천적 사랑으로부터의 진리들과 선들을 수단으로 한 거듭남의 표현은 없다.
출32:6-‘그들은 태우는 공물을 바쳤다, 그리고 평화 공물을 가져왔다’=그들 자신의 사랑들로부터 예배함, 고로 자기들의 즐거움들로부터 예배함, 그리고 거기서 파생된 거짓들로부터 예배함.

할례 (circumcision)

창17:10-‘모든 남성은 할례받아라’=순수함…할례, 또는 포피를 자르는 것은 이런 것들, 즉 천국의 사랑들을 더럽히고 방해한 여러 가지 것들, 그리고 탐욕들로부터의 악들, 특히 자아 사랑으로부터의 탐욕들로부터의 악들, 그리고 이 악들로부터의 거짓들을 제거함을 의미한다.
여5장-천사들이 더러운 자연적인 것들로부터 순수해짐에 관한 생각을 가질 때, 거기서는 극히 빠른 속도로 영들의 세계에서 할례 같은 어떤 것이 표현되어진다…천국으로 입장 승인을 원하는 이들이 영들의 세계에서는 아주 빠른 할례받는 자들로 표현되고 있다. 이로부터 왜 이스라엘 후손들이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에 진입할 때 할례받아야 한다고 여호수아에게 명령되었는지에 대한 이유가 확실해진다.
창17:11-‘너는 너의 포피의 살을 할례할 것이다’=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의 제거. ‘할례’=더러운 사랑들로부터 순수해짐.
창17:13-‘할례 함이 할례 될 것이다. Circumcising shall be circumcised’=그들은 자아와 세상 사랑을 자신들로부터 완전하게 제거할 것이다…’할례’=자아와 세상을 사랑함으로부터 순수해짐.
창17:14-‘자기 포피의 살을 할례받지 않은 그는…’=자아 사랑 안에 있는 그는…
창17:23-‘그는 그들의 포피의 살을 할례했다’=그들의 순수해짐과 주님으로부터의 정의. ‘할례되어짐’=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으로부터 순수해지는 것.
창17:24-‘그의 할례를 행함에서 자기 포피의 살’=그분은 외적 인간으로부터의 악들을 온전하게 추방하셨다. ‘할례되어짐’=자아와 세상을 사랑함으로부터 깨끗해지는 것, 또는 악들로부터 깨끗해지는 것, 그 이유가 모든 악들이 위 두 사랑으로부터 있기 때문.
창17:26-‘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할례받았다’=주님은 그분의 인간 본질과 그분의 신성한 본질을 결합하게 하셨을 때, 그분은 진리를 수단으로 합리적으로 되어간 모든 다른 사람들과도 또한 결합하셨다, 그리고 그들을 구원하셨다…’할례받아지는 것’=순수해지는 것, 그리고 이 단어가 주님에 관련해 서술될 경우=신성화하심 (to be glorified).
창17:27-‘그들은 아브라함에 의해 할례되어졌다’=그들은 주님에 의해 정의로워졌다. ‘할례됨’=순수해짐.
창21:4-‘아브라함은 그의 아들 이삭을 할례했다’=합리성의 순수해짐.
창34:22-‘모든 남성이 할례받음 같이 그들은 할례받아라’=만일 그들이 단지 외적인 것들에 관련해서만 표현하기 시작했다면…’할례되는 것’=외적 표현성, 그들이 교회 속에 있다는 표시.
창34:24-‘그들은 그의 문으로부터 나간 모든 남성을 할례했다’=외적인 것들에 접근.
창34:25-할례받은 후의 ‘아픔’=탐욕.
출4:26-‘할례를 위한 피들의 신랑’=비록 내적인 것이 진리와 선에 대한 증오와 폭력으로 가득하다 해도, 아직 할례는 더러운 사랑들로부터 순수해짐에 대한 표시로서 받아져야 한다는 것.
출12:48-‘모든 남성은 할례받아라’=그의 진리는 불순한 사랑들로부터 깨끗해져야 한다는 것.
예4:4-그러므로 그들은 ‘여호와 쪽에 (속하도록) 자신들을 할례하고, 심정의 포피를 제거’해야 한다고 말해지고 있다, 즉 그들은 숨막히게하는 것들, 또는 결실도 없는 신앙으로부터의 선들과 진리들을 포기하여 자신들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것.
신10:16, 예4:4-‘심정을 할례하는 것’, 또는 ‘심정의 포피’=악들로부터 자신들을 순수하게 함.
레19:23,24,25-열매들이 인간의 생활 속의 선들을 의미하는 바…나무들의 열매들은 할례되어야 한다고 명령되고 있다.

할례를 받지 않았음 (Uncircumcised)

* 사랑이 없을 때 그들은 할례받지 않았음이라 부른다.
예4:4-‘네 자신을 여호와에게 할례받아라, 그리고 네 심정의 포피를 제거하라’=…천적인 사랑에 장애물이 되는 것을 제거하는 것.
신10:16-‘심정의 포피를 할례하는 것’=더러운 사랑들의 악들로부터, 그리고 이 악에서 파생되는 거짓들로부터 깨끗해지는 것.
창17:14-‘할례받지 않은 남성’=신앙 속의 진리 안에 있지 않은 남자(him)…’할례받지 않은 것’은 여기서의 경우…진리를 더럽히고 가로막는 것을 서술하고 있다.할례받지 않은 것이 어떤 다른 것과 접할 경우, 이것은 접한 다른 것을 오염되게 하고 어둡게 한다.
예6:10-‘할례받지 않은 귀’=경청함이 없는 것, 말씀이 자기들에게는 불명예스러운 것이었다는 것.
창34:14-‘포피를 가진 남자에게 우리의 누이를 주는 것’=그들이 표현성 안에 교회 속의 선과 진리를 놓지 않으면, 그리고 그들이 의미하는 이런 것들로부터 물러나야 하리라는 것; (그 이유가) ‘포피’=외적 표현성, 그들이 교회 속에 있다는 표시…이러므로 이 말들에 의해 자기들의 깊은 신앙에 접근함이 의미되어진다.
출4:25-‘그녀는 자기 아들의 포피를 잘랐다’=더러운 사랑들을 제거함, 그럼으로해서 내적인 것이 드러나 놓임…’포피’=천적, 영적 사랑을 더럽히는 지상적이고 육체적인 사랑…
출6:12-‘저는 입술을 할례를 받지 않았나이다’=그들에게 나는 불순하다는 것…=그는 교리에 속하는 이런 것들에 관련해서는 불순하다는 것; 그 이유가 ‘할례받지 않았음’은 교리와 생활 양 측면을 서술하기 때문.
출12:48-‘할레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한다’=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 안에 있는 자는 그들과 더불어 있을 수 없다.
합2:16-‘포피를 노출하는 것’=이런 것들을 더럽히는 것. ‘포피’=이런 사랑들로 해서 천적인 선들을 더럽힘.
겔44:9-다른 한편으로, ‘할례받지 않았음’, 또는 ‘포피가 있음’에 의해 오로지 자연적 사랑들의 악들로부터 깨끗해지지 않았던 자, 고로 선행 안에 있지 않은 자가 뜻해지고 있다; 그리고 심정이 깨끗하지 않은 자가 ‘포피가 있는 자’에 의해 의미되기 때문에 ‘심정이 할례되지 않은 자, 그리고 육에서 할례되지 않은 자는 내 성소에 들어오지 못한다’라고 말해지고 있다.
이52:1-‘할레받지 않은 자와 불결한 자’=악들과 거짓들에 있는 이들.
합2:16-‘포피를 노출하는 것’=더러운 사랑들을 드러내는 것.

성경의 방위와 상응

성경의
방위,방향과 상응

Dictionary
of
quarter, direction
in
Bible
by
Correspondence

성경 약자표

창 창세기 이 이사야 학 학개 마 마태복음
출 출애굽기 예 예레미야 슥 스가랴 막 마가복음
레 레위기 겔 에스겔 말 말라기 눅 누가복음
민 민수기 단 다니엘 요 요한복음
신 신명기 호 호세아 계 요한계시록
여 여호수아 욜 요엘
사 사사기 암 아모스
삼상 사무엘상 옵 오바댜
삼하 사무엘하 욘 요나
왕상 열왕기상 미 미가
왕하 열왕기하 나 나흠
욥 욥기 합 하박국
시 시편 습 스바냐

차례

남쪽 (south, southern)
동쪽 (east, eastward)-뒤 (back, hinder)-…뒤에 (after, behind)
방위 (quarter)-북쪽 (north), 북쪽에 있는 (northern)
서쪽 (west, western)
…아래에 (under)-아래쪽으로 (downwards)-…안쪽에 (within)-양쪽의 (both)-오른쪽 (right)-왼쪽 (left, left hand)-위로 향한 (upwards)
측면 (side), 쪽 (side)

남쪽 (south, southern)

* ‘남쪽에 있는 이들’=진리의 빛 안에 있는 이들.
출26:35-‘(등잔대는) 남쪽을 향한 주택의 측면에’=천국에서 주님의 신성한 인간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는 가장 큰 빛에 있다.
욥39:26-‘남쪽을 향하여 그녀의 날개들을 펴는 것’=자아를 총명의 빛 쪽으로 인도하는 것.
슥6:6-‘남쪽’=진리로부터의 명백함.
눅12:55-‘네가 남풍이 부는 것을 볼 때’=그분의 강림에 관하여 전도함.
창12-‘남쪽을 향하여 이집트로’=주님의 다섯째 상태.
창12:9-‘남쪽을 향하여’=선들과 진리들 안으로, 고로 내면들이 명료한 상태 안으로.
창12:9-‘남쪽’, 여기서의 경우,=총명, 이는 (영적)지식들을 수단으로 획득되어진다. 이것들은 천적 진리들과 영적 진리들이고, 이것들은 천국에서 아주 많은 빛을 방사한다. 주님에게 지금 이 지식들이 불어넣어지고 있는바, 이는 그분의 인간 본질에 관련하여 그분이 천국의 빛 자체가 되시도록 하기 위함인데, 이것이 ‘아브람은 남쪽을 향하여 여행했다’로 말해지고 있다.
창13:1-‘남쪽을 향하여’=천국적 빛 안으로. ‘남쪽’=내면에 관련하여 명료한 상태.
창13:3-‘남쪽으로부터 벧엘에 까지’=총명의 빛으로부터 지혜의 빛 안으로.
단11:40-‘남쪽의 왕’=선들과 진리들에 있는 이들, (=진리들) (=진리로부터의 빛에 있는 이들) (=선으로부터의 진리들).
창20:1-‘아브라함은 남쪽의 토지를 향하여 여행했다’=신앙으로부터의 선들과 진리들 안으로 주님께서 진보하심.
이30:6-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 안에 있는 이들, 그러나 지식 속에 있을 뿐, 이 지식을 생활 속에 있게 만들지 않는 이들이 ‘남쪽의 짐승들’이라 불린다.
창24:62-‘그는 남쪽의 토지에서 거주했다’=신성의 빛에서. ‘남쪽’=빛, 사실상, 총명의 빛, 이는 지혜이다.
암8:9-‘정오에 해가 짐’=지식을 가진 이들과 더불은 희미함.
슥6:6-‘남쪽의 토지’=지식들로부터의 선과 진리에 있는 이들.
창43:16-‘그들은 정오에 나와 정찬을 먹을 것이다’=매체와 더불어서 일 때, 결합되었다. 그이유가 ‘정오’=빛의 상태, 고로 매체에 의해 의미된 상태.
시91:6-‘대낮에 폐허되게 하는 죽음’=인간이 노골적으로 사는 악, 이를 수단으로 진리가 파괴되어진다.
옵19절-‘남쪽의 그들’=진리의 빛에 있는 이들.
출26:18-‘남쪽을 향하는 남쪽의 모퉁이를 위하여’=진리가 빛 안에 있는 내면의 것들과 가장 깊은 것들 쪽으로 까지. 그 이유가 ‘남쪽’에 의해 빛의 상태가 의미된다, 이는 진리들로부터의 총명의 상태이다, 고로 또한 내면의 상태이다.
이43:6-‘나는 남쪽에게 말할 것이다’=교회 내에 있는 이들인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으로부터 빛 안에 있는 이들에게. 그러므로 이들에게 ‘만류하지 말라’라고 말해진다.
계21:13-‘남쪽에 세 문들…’ ‘남쪽’에 의해 지혜, 그리고 더 높은 수준에 있는 진리에 애착함, 고로 더…그 이유는 주님이 태양이시기 때문…그리고 그분의 측면에서 남쪽과 북쪽, 그분의 오른쪽 측면은 남쪽…그러므로 진리에 대한 더 많은 애착으로부터 지혜 안에 있는 이들은 남쪽에 거주한다. 더 적은 애착으로부터 지혜 안에 있는 이들은 북쪽에 거주한다.
겔20:47-‘남쪽의 숲’=교회 내의 거짓, 결과적으로 거기 거짓들 안에 있는 이들. 교회가 ‘남쪽’에 의해 의미되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말씀으로부터 진리의 빛에 있어질 수 있기 때문.
신33:23-예증들이 ‘남쪽’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예17:26-‘남쪽’=영적 선에 있는 이들 그리고 이로부터 진리의 빛에 있는 이들.
예6:4-진리를 공개적으로 파괴하려는 골몰함이 ‘정오에 올라가자’에 의미되고 있다.
이58:10-‘네 짙은 구름이 대낮으로 있을 것이다’=무지함에 있으나 여전히 갈망하는 이들에게 진리와 선을 이해함이 주어질 것이다.

동쪽 (east, eastward)

* oriental, quarter, rise 참조
창2:8-‘여호와 하느님께서는 동쪽,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셨다’…‘동쪽’=주님. 고로 ‘동쪽 에덴에 동산’=천적 인간의 총명, 이 총명은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통하여 흐른다.
창3:24-‘에덴의 동산의 동쪽’=천적인 것, 이로부터 총명이 있다.
창4:16-‘에덴의 동쪽을 향하여’=이전에 사랑이 지배했던 지적 마음 근처.
창10:30-‘동쪽의 산’=주님으로부터의 선행…‘동쪽’=주님, 그러므로 사랑과 선행 속에 있는 천적인 것들.
창11:2-‘그들이 동쪽으로부터 여행했을 때’=그들이 선행으로부터 퇴조했을 때.
창12:8-‘그는 거기로부터 벧엘의 동쪽에 있는 산으로 이동했다’=주님이 어린아이 시절 일 때, 즉 사랑의 천적인 것들이 발전하고 있을 때인 주님의 네 번째 상태.
창 13:11-‘롯은 동쪽으로부터 여행했다’=천적 사랑으로부터 물러난 외적 인간과 더불어 있는 것들. ‘동쪽’=주님인 바, 이 구절의 경우, ‘동쪽’=주님의 내적 인간, 이는 신성이다. 고로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으로부터 물러났다는 것이 여기서 ‘롯은 동쪽으로부터 여행했다’로 의미되고 있다.
창13:14-‘북쪽을 향하여, 그리고 남쪽을 향하여, 그리고 동쪽을 향하여, 그리고 서쪽을 향하여’=우주에 있는 무엇이든지 모두…‘동쪽’=옛날 속에 있었던 것들, 즉 천적인 사랑
계16:12-‘태양이 떠오르는 (곳)으로부터 (오는) 왕들의 길’=사랑의 선으로부터 있는 신앙 속의 진리들.
이11:14-‘동쪽의 아들들’=선에 관한 지식은 가지고 있으나 선행은 아직 없는 이들.
창25:6, 열상4:30, 마2:1~2, 민22:7, 창29:1-‘동쪽의 토지를 향하여 동쪽으로’=신앙 속의 선…‘동쪽의 토지’에 의해 의미되는 신앙 속의 선은 말씀에서 이웃을 향한 선행 외에 더 다른 의미를 지니거나 불리우지 않는다; 그리고 이웃을 향한 선행은 주님의 훈령에 따른 생활 외에 더 특이한 것은 없다. 이것이 ‘동쪽의 토지’에 의해 의미되었다. 그러므로 신앙의 선에 관한 지식을 알고 있었던 이들이 ‘동쪽의 아들들’이라 불린다. 동쪽의 아들들의 토지는 아람, 또는 시리아 이였다. 이것=선에 관한 지식…그리고 시리아인, 또는 동쪽의 아들들에 의해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을 지녔던 이들이 의미된다. 그들은 열왕기상에서 ‘현자’라고 불리고, ‘솔로몬의 지혜는 동쪽의 모든 아들들의 지혜보다 훨씬 뛰어났다’라고 언급한다; 그리고 마태복음에서…‘동쪽으로부터 현자가 예루살렘에 왔다. 말하기를,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그분은 어디 계신가? 우리는 동쪽에서 그의 별을 보았다..’ 라고 말했다….그 이유가 시리아 지역에는 고대 교회의 남은 것들이 잔존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때까지도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도 남아 있었다. 이는 발람, 그가 시리아 지역의 동쪽의 아들들 속에 있었다는 것으로부터도 분명해진다…그 이유가 그가 자신을 두고 ‘모압왕 발락이 나를 시리아, 동쪽의 산들로부터 데려왔다’ 하고 말했기 때문이다. 또한 야곱이 시리아로 갈 때, 그는 ‘동쪽의 아들들의 토지로 갔다’라는 기록도 있다.
창28:14-‘너는 바다쪽(서쪽)으로 그리고 동쪽으로 퍼져 갈 것이다’=선이 무한히 팽창함; ‘그리고 북쪽으로 그리고 남쪽으로’=진리의 무한한 팽창; 고로 선과 진리의 모든 상태들…‘동쪽’=빛나는 것, 고로 완전한 선.
이43:5-‘동쪽으로부터 씨를 가져오고 서쪽으로부터 그들을 그러모은다’=선 안에 있는 이들.
마8:11-‘많은 이들이 동쪽으로부터, 그리고 서쪽에서 조차 올 것이다’=선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선하게 사는 이들, 그리고 이런 지식에 불명료하게 알거나 무지한 이들; 고로 교회 안에 있는 이들, 그리고 교회 없이 있는 이들.
창29:1-‘(야곱은) 동쪽의 아들들의 토지로 갔다’=사랑으로부터 진리들이 승강함.
마24장-‘번개가 동쪽으로부터 와서 서쪽에서 조차 나타난다’…최고 의미에서 ‘동쪽’=주님; 내적 의미에서 주님으로부터의 사랑의 선, 선행의 선, 그리고 신앙의 선. 그러나 ‘서쪽’, 내적 의미에서=존재가 중지되거나 기우는 것; 고로 주님을 인정함이 없음, 사랑의 선이 없음, 선행의 선이 없음, 신앙의 선이 없음. 고로 (이 말들)=사라짐.
사7:12-‘미디안, 아말렉, 그리고 동쪽의 아들들’=악들 안에, 그로부터 거짓 안에 있는 자들.
이11:14-‘동쪽의 아들들을 망치는 것’=믿음 속의 선들을 받아 사유하는 것; 그 이유가 ‘동쪽의 아들들’= 믿음의 선들에 있는 이들, 그리고 선에 관한 지식을 지닌 이들을 의미하기 때문.
예49:28-‘아라비아와 동쪽의 아들들’=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을 지닌 이들.
출27:13-‘떠오름을 향하는 동쪽의 모퉁이에서 뜰의 넓이’=선들이 있는 곳, 이 천국의 진리의 상태…‘동쪽’과 ‘떠오름’=사랑의 선.
열상7:39-‘놋쇠 바다가 남쪽과 마주 보는 동쪽을 향하여 오른쪽 어깨로부터 놓여진 이유=주님을 향하여 있었기 때문; 그 이유가 주님=동쪽이기 때문.
창28:14-선이 열매를 맺음이 ‘그는 자신을 서쪽과 동쪽을 향하여 펼칠 것이다’에서 의미되고 있다.
겔47장-‘물들이 집의 문지방 아래로부터 동쪽을 향하여 간다’=천적 근원으로부터의 진리들…‘동쪽’=천적 사랑으로부터의 선.
암8:12-‘동쪽’=선이 있는 곳.
슥4;4-‘동쪽’=신성한 선.
이43:5-사랑의 선에 있는 이들을 데려오고 그러모은다는 것이 ‘나는 네 씨를 동쪽으로부터 데려오고, 너희를 서쪽으로부터 그러모을 것이다’에서 의미되고 있다.
슥14:8-‘동쪽의 바다’=영계에서 동쪽을 향하는 최말단 끝, 거기는 주님의 강림 전, 신성한 진리의 영접이 없었다.
민3:38-‘모세, 아론과 그의 아들들, 그리고 유다 지파’는 신성한 선에 관련한 주님과 신성한 사랑으로부터 진행되는 신성한 진리를 표현했다; 이로부터 그들의 진영은 ‘동쪽을 향하여’ 있었다.
마24:27-주님이 ‘동쪽’이신 바, ‘번개가 동쪽으로부터 나와서 서쪽에서까지 나타나듯, 사람의 아들의 오심도 그렇게 있을 것이다’라고 말해지고 있다.
예48:28, 욥1:3-주님이 ‘동쪽’이신 바, 별이 동쪽으로부터 있었던 이들에게 나타났다. 그리고 동방 사람들은 이 지식 안에 있었는 바, 그들은 ‘동쪽의 아들들’이라 불리웠다. 그렇게 불리운 자들이 아라비아로부터 이였다는 것은 이 구절에서 분명해진다…욥도 동쪽의 아들들로부터 였다
겔8:16, 이2:6-반대 의미에서의 ‘동쪽’=자아를 사랑함, 그 이유가 이 사랑은 주님을 사랑함에 반대되기 때문.
눅12:54-‘떠오름’=주님의 강림.

뒤 (back, hinder)

계5:1-‘내가 책을 보았다…안과 뒤에 씌어진…’ ‘안’에 의해서 세부적 측면의 모든 것, ‘뒤’에 의해 일반적 측면에서의 모든 것이 뜻해진다. 또한 ‘안과 뒤에’는 말씀의 내면의 의미, 이는 영적이다, 그리고 그것의 외면의 의미, 이는 자연적이다.
계5:1-‘안과 뒤에 씌어진 책’=일반적, 세부적 측면에서 천국과 땅에 있는 모든 자의 생명의 상태…’안과 뒤에’=심정과 혼 안에 있는 것, 또는 사랑과 신앙 안에 있는 것. 사랑은 인간이나 영인들의 생명을 구성하기 때문에 ‘안’에 있다, 그러나 신앙 만일 그것이 그의 사랑 안에 있지 않으면, 즉 그 사람 안에 있지 않으면, 뒤에 있는다.

…뒤에 (after, behind)

창16:13-내향의 의미에서 위(above), 또는 내부(within)가 바깥쪽(outside), 또는 아래쪽(beneath)에서 나타날 때, 전자는 글자 의미에서는 뒤(after)로 표현되어져 있다
창17:7-‘네 뒤에’=…을 뒤따르는 것…그러므로 여기서 ‘네 뒤들의 후손’=신앙 안에 있고 그분을 뒤따르는 이들, 내향의 의미에서 그분으로부터 태어난 이들.
창18:10-‘그 사람 뒤에’=결합하지 않았음, 그러나 그의 등 뒤에서 있었음.
창18:17-‘네 뒤를 쳐다보지 마라’=교리적인 것들을 쳐다보지 마라.
창41:6-‘그들 뒤에’=가까이.
출11:5-‘맷돌 뒤에’=마지막 장소에 있는 것.
출14:19–‘그리고 그들 뒤에 갔다’=악으로부터의 거짓이 의지 안으로 흘러들지 않도록 방어함.
출23:2-‘다수 뒤에(를 따라)’=다수와 있는 것, 고로 연합하는 것, 근원적 언어에서, ‘…뒤에 있는 것’, ‘…뒤에서 가는 것’. ‘…뒤에서 걷는 것’ 등등과 같은 식으로 말해지는데, 이 의미는 더불어 있는 것, 그리고 뒤를 따르는 것, 고로 연합하는 것.
출33:8-‘모세 뒤에서 쳐다보았다’=말씀, 교회. 예배의 외적인 것을 보는 것. ‘앞에(before) 있는 것’=안에 있는 것, ‘뒤에 있는 것’=밖에 있는 것.
계1:10-요한은 ‘자기 뒤에서’ 오는 음성을 들었다……주님과 그분의 말씀이 자기들 앞이 아닌 자기들 뒤에 있는 것으로 간주하여 주님께 접근하지 않는 이들.
계1:10′-‘…내 뒤에’=명백하게.

방위 (quarter)

겔7:2-‘마지막이 토지의 네 방위들에 와진다’=교회의 마지막 때와 상태…‘네 방위들’=모든 그것의 진리들과 선들. 그리고 반대 의미에서, 모든 그것의 거짓들과 악들. 고로 교회의 모든 것들.

북쪽 (north)
북쪽에 있는 (northern)

예46:24-그때로부터 어두워짐이 ‘북쪽의 백성’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예15:12-‘북으로부터 오는’ 것=감각적이고 자연적인 것; 그 이유가 자연적인 것은 영적이고 천적인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짙은 어둠, 마치 빛의 측면에서 북향과 남향 비슷하다.
겔39:2-‘북’=거짓들.
예50:3-‘북’=짙은 어둠, 또는 진리 없음.
이43:6-‘북’=무지에 있는 이들.
창13:14-‘북을 향하여’…’북’=교회 밖에 있는 이들, 즉 신앙의 (영적) 진리 측면에서 어둠에 있는 이들.
창17:5-‘북으로부터’ 있는 이들은 교회 밖에 있는 이들,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에 관하여 무지함에 있는 이들, 그럼에도 그들이 서로의 선행 안에 살고 있을 때 그분의 이름을 부른다, 그리고 신성, 우주의 창조자를 숭배한다.
단11:40-‘북의 왕’=악들과 거짓들에 있는 이들.
예31:8-‘북의 토지’=진리에 무지함 또는 진리가 황무함.
이14:31-‘북으로부터의 연기’=지옥으로부터 거짓이 있다는 것.
겔8:3-‘북을 향하여 바라보는 안쪽 출입구의 문’=내면의 거짓들이 있는 장소. ‘북을 향한 여호와의 집의 출입구의 문’=내면의 악들이 있는 곳.
창28:14-‘너는 북으로, 남으로…흩트려질 것이다’=진리의 무한한 확장, 고로 선과 진리의 모든 상태들…‘북’=아직은 불명료함에 있는 진리.
시107:3-‘북으로부터 그리고 바다(서쪽)로부터’=진리에 무지한 가운데 있는 이들.
이49:12-‘북’=진리 측면이 희미한 가운데 있는 이들.
암8:12-‘북으로부터 동쪽에까지 조차 이리저리 달린다’=희미한 상태의 지식들로부터 빛에 있는 지식에 까지.
예3:12,18-‘북’=진리의 무지함에 있는 이들, 그런데 생활은 선 안에 있는 이들.
예16:15-‘북’=진리에 무지함.
예31:8-‘북의 토지’=선에 무지함, 그 이유는 진리에 무지함 때문…시온과 예루살렘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가나안의 부분들은 선과 진리에 관련하여 불명료한 것을 표현했다. 이런 불명료함에 있는 모든 이것이 ‘북의 토지’라 불린다, 또는 ‘땅의 가장자리’.
시89:12-‘북’=선과 진리의 빛으로부터 더 멀리 있는 이들.
슥6:6-‘북의 토지’=선과 진리에 무지함에 있는 이들, 허나 생활의 선에 있는 이들, 이 안에 곧바른 이방인들이 있다.
예23:8-‘토지로부터 북으로’=선과 진리의 무지함의 희미함으로부터.
예15:12-이들이 ‘북으로부터’라고 말해진다, 그 이유는 관계적으로 종결지요 희미함이 있는 자연으로부터 이기 때문.
단8,11장-‘북’=거짓의 짙은 어둠이다는 것은 8장으로부터 분명하다…‘남쪽의 왕’과 ‘북쪽의 왕’에 관련하여. 거기서 ‘남쪽의 왕’에 의해 진리의 지식들에 있는 이들, 그리고 ‘북쪽의 왕’은 거짓에 있는 이들이 의미되어지고 있다…‘북의 왕’=처음에는 그늘 아래 있는 이들, 후에는 거짓의 짙은 어둠에 있는 이들.
예6:1-‘북으로부터 악’=인간의 감각 측면 그리고 이 측면에서 파생된 과학물로부터.
예6:22-‘북의 토지로부터의 백성’=악으로부터 거짓 안에 있는 이들.
예1:13-‘북’=인간의 감각적 부분과 육체적 측면, 이로부터 ‘악’이 튀어나온다.
예31:8-‘그들을 북의 토지로부터 데려오는 것’=신앙의 희미함으로부터.
이43:6-‘북에 말하는 것’=진리들에 관하여 어둠에, 또는 무지함에 있는 이들에게, 이들은 교회 밖 이방인들이다.
출26:20-‘주택의 다른 측면을 위해 북쪽의 모퉁이에’=진리들이 희미함에 있는 이 천국의 외면들을 향하여…‘북’=진리가 희미함에 있는 외면들.
출26:35-‘너는 북쪽 측면에 식탁을 놓아라’=희미함에 있는 선…‘북’=신앙의 진리들에 관련하여 희미한 것, 그리고 진리가 희미함에 있을 때, 선 역시 그것과 더불어 희미함에 있다. 그이유가 주님의 영적 왕국에서 선은 진리를 통하여 나타나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식탁이 왜 북을 향한 측면에 놓였는지 명백해질 것이다.
출27:11-‘그리고 길이에서 그와같이 북쪽의 모퉁이에서’=진리의 선이 희미함에 있는 곳. ‘북쪽의 모퉁이’=진리가 희미함에 있는 곳…
겔46장-‘북’=외적 인간에서 신앙의 진리의 상태.
시89편-‘북’=진리에 관련해서 희미한 상태에 있는 교회의 사람들.
예1:13,14-‘북’=신앙의 진리에 관련하여 희미한 상태, 또한 거짓으로부터 짙은 어둠.
슥14:4-거짓들에 있는 이들이 ‘북에서’라고 말해진다.
예47:2-‘북으로부터 나와 올라가는 물들’=지옥으로부터의 거짓들.
계21:13-‘북쪽에 문이 셋’=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들…이를 수단으로 새 교회 안으로의 입문이 있다는 것, 이는 지혜가 덜한 이들, 또는 진리에 애착함 이 덜한 이들을 위해서이다.
예6장-‘북’=악으로부터의 거짓.
예1장-‘북’=거짓, 여기서, 거짓, 이로부터 악이 있다.
이43장-‘북과 남’=신앙의 진리가 희미함에 있는 곳, 그리고 명료함에 있는 곳.
예31장-‘북의 토지’=무지로부터의 거짓이 있는 곳.
예50장-‘북으로부터 오는 백성’=악으로부터 거짓들에 있는 이들.
단8:4-숫양이 돌진한 ‘서, 북, 남’은 선행과 선행에서 파생된 신앙에 있는 이들이 받는 선들과 진리들, 그리고 이를 수단으로 그들은 악들과 거짓들을 흩뜨린다.
창28:14-진리가 많이 불어남이 ‘북과 남을 향하여 그자체 흩뿌려짐’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슥6장-‘북’에 의해 그들과 더불은 진리의 희미함이 뜻해진다.
겔26:7-‘북으로부터 그가 온다’에 의해 모든 거짓이 오는 근원이 의미된다. 특히 지옥으로부터 그것이 발생한다.
예6장-‘북의 토지’=거기서부터 거짓들이 있다…그이유가 ‘북’은 진리들로부터 먼 것이 의미되기 때문.
겔38:15-‘북쪽 측면’=선들과 진리들로부터 먼 것. 고로 이로부터 악의 거짓이 온다.
예50장-‘북의 토지’=거짓 만 있는 지옥.
암8:12-‘북쪽으로부터 동쪽으로’=진리와 선이 있는 모든 측면. ‘북’=진리가 희미함에 있는 곳.
습2:13-‘북’에 의해 자연적, 감각적 인간이 의미된다, 그리거 거기에 과학물이 있다.
이41:25-‘북’=진리의 희미한 것. 고로 교회 밖에 있는 이들…
슥14:4-‘북’=악의 거짓에 있는 이들, 그 이유는 어둠에 있기 때문.
시48:2-‘북의 측면들’=천적 선으로부터의 진리들…그이유는 천국에서, 주님의 천적 왕국에 있는 이들이 동쪽에 거주하기 때문. 그리고 이 선으로부터 진리들에 있는 이들은 거기서 북쪽을 향하여 있다.
이14:13-‘북의 측면들’=주님의 천적 왕국에 있는 진리들.
예3:12-‘너희는 북에 소리질러라’에 의해 거짓들에, 이 거짓에서 파생된 악들에 있는 이들이 의미되어진다…그이유는 이들은 영계에서 북쪽 방위에 위치하기 때문.
겔20:47-‘북’=교회의 외면 또는 최말단 것들…그이유는 영계에서 북쪽 방위에는 주님으로부터의 진리에 희미한 상태에 있는 이들이 위치하기 때문. 그리고 그들 아래 지옥들에서 거짓들에 있는 이들이 있다, 거기는 어떤 자연적 발광체도 없어 이를 수단으로 그들은 자기의 거짓들을 확증한다.
예3:18-‘북의 토지’=무지의 상태, 또한 종교 속의 거짓.
예6:1-‘북’으로부터 ‘악이 내다보고 있다’=악의 거짓.
예47:2-‘북으로부터 물들’=자신의 총명으로부터 있는 교리의 거짓들.
예46:6-‘북쪽에서 그들이 걸려넘어지고 추락한다’=이런 거짓들의 근원.
시89:12-‘북과 오른손을 당신께서는 창조하셨다’..이런 것들, 또는 그것들 안에 있는 이들이 북쪽과 남쪽에 있다…‘북쪽과 오른손’이라 말해진다.
습2:13-‘북 위에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손을 뻗치실 것이다’=거짓에 있는 교회.
예10:22-‘북의 토지’=악의 거짓들에 있는 이들이 있는 곳.
예31:8-‘북’=거짓들.
예6:22-‘북으로부터 오고 있는 백성’=악의 거짓들에 있는 이들. 그리고 추상적으로, 그 당시 황폐된 교회에서 있는 악의 거짓들.
이43:5-‘북’=희미함에 있는 교리 속의 진리, 이는 진리에 무지함으로부터 있는 거짓 안에 있는 것과 같다, 그리고 여전히 진리들을 갈망한다.
이14:31-‘북’=지옥.

서쪽 (west, western)

창12:8-‘바다 쪽(서쪽)으로 벧엘’=(영적 지식들에 관련하여 희미한 상태)…그 이유가, 말씀에서 ‘서’=희미한 것.
창13:14-‘서’=와야 하는 이들; 그리고 또한 사랑 안에 있지 않은 이들.
창28:14-‘너는 바다쪽(서쪽)으로 나아갈 것이다’=아직은 희미한 수준인 선, 고로 시작 단계에 있는 선.
단8:4-‘서쪽’=자연적 인간의 악.
계21:13-‘서쪽에 문이 셋’=사랑 또는 선에 애착함이 덜한 이들을 위한 새 교회(the New Church) 안으로의 입문.
신33:23-‘오 납달리…너는 서쪽과 남쪽을 점유한다’=파생된 진리에 애착함과 계발.
민2:18-24-‘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지파들은 서쪽에 위치를 정했다.’ 그이유가 천국에서 이들은 서쪽에서, 그리고 북쪽에서 거주하기 때문, 이들은 선이 희미함에 있는 이들, 그리고 진리가 희미한 이들, 고로 자연적 선과 진리에 있는 이들이다.

…아래에 (under)

창35:8-‘그녀는 벧엘 아래 상수리나무 아래에 매장되어졌다’=영원히 거절했다. 그 이유가 ‘상수리나무 아래에’=영원히; 그리고 ‘벧엘 아래’=자연의 바깥.
창41:35-‘손 아래’=필요할 시 언제나 처분할 권한을 위해.

아래쪽으로 (downwards)

출27:5-‘너는 그것을 제단의 아래쪽으로 한바퀴돌아 놓을 것이다’=이것은 최말단에…‘아래쪽으로’=밖을 향하여(outward).

…안쪽에 (within)

출25:11-‘안쪽으로부터 그리고 바깥쪽으로부터 너는 그것을 들씌워야 한다’=모든 곳에서.
계4:8-‘그것들은 안쪽에 눈이 가득했다’=…영적 의미와 천적 의미로부터의 말씀의 신성한 지혜.
계5:1-‘안쪽에 그리고 뒤쪽에 씌여진 책’=…모든 세부적 측면, 모든 일반적 측면에 있는 말씀; ‘안쪽’=세부적 측면…

양쪽의 (both)

출22:11-‘양쪽’=각각 그리고 모든 것들에서. 그이유가 내향의 의미에서 ‘양쪽 사이에’는 둘 사이를 뜻하지 않고, 각각 그리고 모든 것들이 의미되기 때문. 그이유가 ‘둘, two’=하나로 결합.

오른쪽 (right)

* 주님의 오른쪽에 천사들이 있고, 악령들은 그분의 왼쪽에 있다.
창13:9-‘만일 왼쪽으로 하면, 나는 오른쪽으로 갈 것이고, 만일 오른쪽으로 하면, 나는 왼쪽으로 갈 것이다’=분리.
계10장-‘그분은 오른발을 바다에, 왼발은 땅에 두셨다’
마5:29-‘왼쪽 눈’=지적 측면, ‘오른쪽 눈’=거기로부터의 애착.
창24:49-‘나는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바라볼 것이다’=상호적인 자유.
시89:12-‘북쪽과 오른 손을 당신은 창조하셨다’…‘오른 손’=선과 진리의 빛에 더 가까이. 이것들은 주님의 오른 손에 있다.
* ‘베냐민’의 뜻은 ‘오른손의 아들’이다. 이를 수단으로 천적 선으로부터 있는 영적 진리, 그리고 이로부터의 힘이 의미된다. 그이유가 선은 진리를 통하여 힘을 발휘하기 때문…‘오른손’=가장 높은 힘. 이로부터 ‘하느님의 우편에 앉으심’=선으로부터 있는 진리로부터의 힘. 주님을 서술할 경우=전능하심, 그리고 또한 그분의 신성한 선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
창48:13-‘에브라임은 이스라엘의 왼쪽을 향하여 그의 오른편에, 므낫세는 이스라엘의 오른쪽을 향하여 그의 왼쪽에’=지성 속의 진리는 둘째 자리에, 자발성 속의 선은 첫째 자리에.
출14:22-‘물들이 그들의 오른쪽과 왼쪽에서 벽이…’=모든 측면들로부터 거짓이 억제됨.
출15:6-‘당신의 오른손, 여호와여, 강함에서 확대되어졌습니다’=주님의 전능하심.
출15:12-‘당신은 당신의 오른손을 뻗치셨다’=모든 것들 위에서 권능이 통제함.
마5:39-‘오른뺨’=선으로부터 진리에 애착함.
* ‘오른눈’=주님에 관한 신앙 속의 거짓.
겔1:7-외적 또는 자연적 선이 ‘오른발’에 의해 표현되어졌다.
막10:40-인간의 오른편에 있는 모든 것들은 천적인 선, 왼편의 것들은 영적인 선과 상응한다…이런 선들에 있는 이들이 ‘주님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는’것에 의해 뜻해지고 있다.
출29:20-‘오른쪽 귀’=선으로부터 진리를 지각함.
요21:6-‘배의 오른쪽에 그물을 던지는 것’=선으로부터 행하고 가르치는 것.
시80:17-‘당신의 오른쪽의 사람’=말씀 측면에서의 주님. 이렇게 주님이 불리시는 이유는 주님은 신성한 진리로부터 권능을 가지시기 때문.
계1:16-그분의 오른손에 별들을 가지시고‘=모든 영적인 지식들은 말씀을 통하여 주님 만으로부터 있다는 것.
계5:1-‘나는 그분의 오른손을 보았다…’=전지, 전능 측면에서의 그분자신.
계13:16-‘그들의 오른손에 표…’ ‘오른손’=지적인 힘, 고로 신앙 측면에서 인간의 전부.
마6:3-‘네 오른손이 하는 일을 네 왼손이 모르게 하라’=선은 선으로부터서만 반드시 행동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선을 위해서, 그리고 선이 나타나도록 자아와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어야 한다는 것.
시45:9-‘당신의 오른편에 여왕이 서있다’=선을 받음으로부터 있는 교회…오른쪽에 속하는 인간의 모든 것들은 진리가 있게 하는 선에 관련되고 있다. 더욱이 여인은 사랑 속에 있는 애착이도록, 고로 선이도록 태어나진다. 그러므로 아내가 오른쪽에 있는 것은 신성한 질서로부터 이다.

왼쪽 (left, left hand)

* 영인과 천사들의 지적인 것들은 머리, 또는 뇌의 왼쪽 측면 안으로 흐른다…
* ‘왼쪽 눈’=지적 측면.
* 뇌의 왼쪽은 합리적, 또는 지적인 것과 상응한다.
* 왼쪽 눈으로 보는 것은 진리들에 상응하고, 이것은 이해성 속에 있다…그 결과 왼쪽 눈은 신앙의 진리들에 상응한다…
창48:13-‘에브라임…이스라엘의 왼손을 향하여’=지적 측면의 진리는 둘째 서열(자리)…‘왼손’=두 번째 장소에 있는 것…
창48:14-‘그는 자기 왼손을 므낫세의 머리에 놓았다’=그는 선이 두 번째 서열이라고 간주했다는 것.

위로 향한 (upwards)

이8:21-‘위쪽을 보는 것, 그리고 땅을 보는 것’=선들과 진리들을 위해 모든 곳을 보는 것.
신28:13-‘위쪽에 있는 것’=그가 천국을 쳐다보도록 주님에 의해 승강되는 것. 그리고 ‘아래쪽을 보는 것’=주님에 의해 승강되지 않는 것.

측면 side
쪽 (side)

* part도 참조.
창49:13-‘그의 측면은 시돈쪽으로’=한쪽에서는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 쪽으로 확장됨.
예6:22-‘큰 나라가 땅의 측면들로부터’=선에 완전히 반대된 악들 안에 있는 이들.
예25:32-‘땅의 측면들’=악으로부터의 거짓들이 돌발하는 곳.
예31:8-‘땅의 측면들로부터 그들은 그러모아질 것이다’=교회의 진리와 선이 시작하는 곳; 그이유가 ‘땅’=교회; 그리고 그것의 ‘측면들’은 교회의 처음과 마지막이기 때문.
출25:14-‘궤의 측면들 위에서’=최말단들에서; 그이유가 ‘궤의 측면들’=최말단들에 있는 천국을 둘러싼 신성의 영역(sphere)이기 때문. 측면들은 마무리됨; 천국에는 공간과는 관련이 없는 바, 이는 진리들과 결합한 선들에 관련된다.
출25:32-‘촛대의 이쪽으로부터 세 갈대들, 그리고 다른쪽으로부터 세 갈대들’=선과 진리에 관련하여 충만한 것…‘이쪽으로부터와 다른 쪽으로부터’=선으로부터와 파생되는 진리로부터; 몸의 오른쪽에 있는 것들=선들, 그리고 왼쪽에 있는 것들=진리들. 예를들면, 얼굴의 오른쪽 부분과 왼쪽 부분.
출26:26-주택의 측면=쳐다봄이 어디쪽으로 향하든 (일정하게 있는) 천국의 방위
출27:7-‘제단의 두 측면에 있는 장대들’=진리가 있게하는 선의 힘, 그리고 선이 있게 하는 진리의 힘.
단2:32-‘배와 측면(옆구리)’=교회의 세 번째 상태.
출30:4-측면들, 이것이 ‘갈비들’로 불린다, 이는 남쪽과 북쪽 측면=진리들, 서쪽과 동쪽 측면으로 불러지는 측면들=선을 의미한다.
요19:34,35-‘그분의 옆구리는 찔림을 당해, 피와 물이 나왔다‘=주님께서 그분의 사랑의 신성한 선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를 통하여 인류와 결합함.
시91:7-‘측면에서 천 명이 쓰러질 것이다’=선.
겔38:15-‘북쪽의 측면들’=선들과 진리들로부터 아주 먼 것, 그러므로 악의 거짓들.
이66:12-‘측면’=영적 사랑.
시48:2-‘북쪽 측면들’=천적 선으로부터의 진리들.
이37:24-‘레바논의 측면들’=이 (선들이) 진리와 결합하는 곳.
민33:55-‘네 측면들(옆구리)에 있는 가시 같이’…‘측면들’=선행으로부터의 것들, 고로 선들.
시128:3-‘집’=마음; ‘그것의 측면들’=자연적 인간에 있는 모든 것들.
단7:5-‘(곰이) 자기 측면을 일으켰다’=탐욕이 말씀의 선들을 왜곡하고 있다.

성경의 식물과 상응

성경의
식물과 상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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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약자표

창 창세기 이 이사야 학 학개 마 마태복음
출 출애굽기 예 예레미야 슥 스가랴 막 마가복음
레 레위기 겔 에스겔 말 말라기 눅 누가복음
민 민수기 단 다니엘 요 요한복음
신 신명기 호 호세아 계 요한계시록
여 여호수아 욜 요엘
사 사사기 암 아모스
삼상 사무엘상 옵 오바댜
삼하 사무엘하 욘 요나
왕상 열왕기상 미 미가
왕하 열왕기하 나 나흠
욥 욥기 합 하박국
시 시편 습 스바냐

차례

가라지 (tares)-가시 (thorn, thorny)-가시나무 (bramble)-가시덤불 (thorn-thicket)-가지 (branch)-가지 (spathe)-갈대 (reed)-감람 나무 (olive tree, olive, olive-wood, olive-grove)-감복숭아 (almond)-감복숭아 나무 (almond tree)- 아몬드(almond)-값진나무 (thyine wood)-개암나무 (hazel)-겨자 (mustard)-고수풀 (coriander)-고페르 목재 (gopher wood)-골풀 (rush, bulrush)-관목 (shrub)- 근채 (cummin)-기름나무 (oil tree)-길르앗의 유향나무 (Balm of Gilead)-껍질 (peel)-꽃 (flower)-꽃이 피다 (flower)
나무 (wood)-나무 (tree)-느룹나무 (elm)-느티나무 (elm)
단풍나무 (plane tree)-덤불(bush)-덤불 (ticket), 얽혀 있는 (entangled)-도금양 (myrtle)-독초(hemlock)-돌무화과나무(naughty figs, sycamore)-대추야자(date)-대회향(cummin)-들호박-들감람나무 (oil tree)-떨기나무
로뎀나무-렌즈콩 (lentil)
마늘 (garlic)-무화과(fig), 무화과 나무(fig-tree)-밀 (wheat)
박넝쿨 (gouard)-박하 (mint)-밤나무 (chestnut tree)-백단향류 (Algum, Almug, Thyine)-백합 (lily)-백향목 (cedar)-버드나무 (willow)-번홍화 (suffron)-보리 (barley)-부추 (leek)-뽕나무 (sycomore, sycamine, mulbelly tree)-뿌리 (root)-(씨를) 뿌리다 (sow)
사과나무 (apple-tree)-사시나무 (poplar)-삼목 (cedar), 백향목 (cedar), 송백 (cedar)-삼림-상수리나무 (oak)-상수리나무숲 (oak-grove)-생명들의 나무 (tree of lives)-석류 (pomegranate)-선과 악에 관한 지식의 나무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소나무 (pine tree)-소돔의 포도나무-송진, 역청 (bitumen)-역청 (송진, pitch)-숲 (forest)-신풍나무-심다 (plant)-싯딤 (Shittim, Shittah-tree)-싯다 (Shittah)-싹 (blade)-싹 (bud)-싹트다 (germinate)-쌀보리 (rye, spelt)-쐐기풀 (nettle)-쓴쑥 (wormwood)-씨 (seed, sow, semination, seminal)
아카시아 (acacia)-아름다운 나무 (goodly trees)-알로에 (aloe)-야채 (vegetable)-양물푸레 나무 (ash)-양파 (onion)-엉컹퀴 (thistle)-에셀나무 (grove)-열매 (berry)-열매 (fruit), 열매를 맺게 하다 (fructify), 열매를 맺다 (fruitbearing)-열매를 맺지 않는 (unfruitful)-월계수 (bay tree)-오목 (ebony)- 오이 (cucumber)-올리브 (olive), 올리브 나무 (olive-tree), 올리브 숲 (olivegrove)-올리브-목재 (olive-wood)-우슬초 (hyssop)-운향 (rush)-유향나무 (balm, balsam)-이삭 (ear)-잎 (leaf)

작은 숲 (grove)-잡초 (weeds)-전나무 (fir)-줄기 (stalk), 그루터기 (stubble)- 줄기 식물 (cane), 창포 (calamus)-조 (millet)-종려 (palm), 종려-나무 (palm-tree)-쭉정이 (chaff)-찔레나무 (brier)
참외 (melon)-창포 (flag)-창포 (calamus)-첫 열매 (first-fruit)-추수(harvest)-침향 (aloe)-침향목 (lignaloe)
콜로신스 (colocynth)-콩 (bean)-큰고랭이 (bulrush, 파피루스, 애기부들)-키작은 나무 (shrub)-관목 (shrub)-타다남은 나무 (firebrand)
파 (leek)-팥 (lentiles)-포도 (grape), 송이 (cluster)-포도나무 (vine)-포풀러 나무 (poplar)-풀 (grass)-풀이 무성한 (grassy)-풀밭 (meadow)-풀잎 (herb, herbaceous, herbaged)-풍지향 (galbanum)-플라타너스 나무 (plane-tree)
합환채 (mandrake)-향나무 (thyine wood)-화석류 (myrtle)-황양목 (box-tree)-회향 (anise)-히솝 (hyssop)-히스 (heath)-흰가루병 (mildew)

가라지 (tares)

마13장-‘가라지들’=악들과 거짓들. (=거짓) (=이전 교회 속의 거짓들과 악들)
* ‘가라지들’인 ‘악한 왕국의 아들들’=교회의 신앙으로부터의 거짓들.
마13장-(가라지들의 비유)는 선한 자를 악한 자로부터 꼭 분리해야만 하는 때인 최후의 심판을 취급하고 있다…‘사람들이 잠자는 동안, 그의 원수가 와서 가라지들을 뿌렸다, 그리고 자기 길을 갔다’=자연적 인간들과 더불어 악으로부터의 거짓들은 지옥으로부터 흘러든다, 그리고 받아들여진다…‘가라지들’=거짓으로부터의 악, 즉 거짓들을 통하여 악 안에 있는 이들. (악들, 또는 악 안에 있는 이들) (=악한 자) (=지옥적인 거짓) (=교리, 종교, 예배 속의 거짓들, 이는 악으로부터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악한 자의 아들들’이라 불린다) (=최후 심판에서 지옥으로 내던져질 악한 자).
마13:25-‘사람들이 잠든 사이 그의 원수가 와서 가라지들을 뿌렸다’=사람들이 자연적 생활을 이끌어가는 동안, 또는 세상의 생활을 꾸려가는 동안에서 지옥으로부터의 악들은 은밀하게, 또는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거짓들을 은근히 불어 넣고 심고 간다…‘싹이 패어났을 때, 그리고 열매를 산출할 때, 이 때에 가라지들 역시 나타났다’=진리가 자라서 선을 생산했을 때, 악으로부터의 거짓들이 선들과 뒤섞여 있었다…‘주인님, 우리가 가라지들을 모아들일까요?’=선으로부터의 진리들이 받아지고 증가되기 앞서 악으로부터의 거짓들을 분리하고 내던짐.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모아들이려다가 그것들과 더불어 있는 밀이 뽑히지 않도록’=선으로부터의 진리의 증가, 그리고 멸망이 이러하다는 것. 교회의 사람들과 더불은 진리들은 거짓들과 혼합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이것들은 분리되어질 수 없다는 것…그들이 재구성될 때 까지… ‘가라지들은 악한 자의 아들들이다’=악 안에 있는 이들과 더불은 거짓들.

가시 (thorn, thorny)

* 엉컹퀴와 찔레나무도 참조
*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가시들’=악들 (=악의 탐욕).
예12:13-‘가시들을 거두어 들임’=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 속에 있는 악과 거짓들. (=거짓으로부터의 악들)
출22:6-‘만일 불이 가시 나무에 붙게 되면’=그 자체 거짓들 안으로 주입되는 (악한 애착으로부터 오는 분노).
시118:12-‘가시들의 불’=악의 탐욕.
마7:16-‘가시들로부터 포도들을 거두는 것’=탐욕의 거짓들로부터 신앙과 선행의 선들을…
호2:6-‘가시들로 길에 장애물을 놓는 것’=악의 거짓들을 수단으로 모든 생각들에 장애물을 놓는 것.
눅6:44-‘가시들’과 ‘가시나무 수풀’=악들은 이런 선들에 반대됨.
겔2:6-그들은 어떤 진리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고집세고 가시 많다’ 라고 불리운다.
민33;55-‘그들은 네 눈에 가시로 있을 것이다’=악의를 품은 거짓들은 교회 속의 진리들에 상처를 입힐 것이다.
호9:6-‘가시들이 그들의 천막 안에 있을 것이다’=예배 안에 있는 악의 거짓.
이34:13-‘가시들이 그녀의 궁전에서, 엉컹퀴와 찔레나무가 그녀의 견고한 성 안에서 자라날 것이다’…그들이 있는 거짓들과 악들이 ‘가시들’, ‘엉컹퀴’, ‘찔레나무’로 의미되고 있다.
이32:13-‘찔레나무의 가시들’=악의 거짓.
호9:6-거짓의 악들이 그들의 모든 선을 파괴할 것이다는 것이 ‘가시가 그들의 성막에 있을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가시나무 (bramble)

사9:7-15-‘가시나무’=가짜 선. (=거짓의 악이 그들에게 선인 냥 나타남)
출3:2-‘가시나무 덤불의 한가운데로부터 불의 불꽃에서’=과학적 진리에 있는 신성한 사랑…‘덤불’=과학적 진리
* ‘덤불이 불에 타고 있었다’=과학적 진리가 신성한 사랑의 선으로 가득차 있었음을 지각함.
* ‘그리고 덤불은 전혀 살라지지 않았다’=신성한 진리가 자연 안에서 신성한 선에 합일되었다.
* 주님이 모세에게 나타나셨던 ‘덤불’=신성한 사랑.
눅6:44-‘그들은 가시나무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지 못한다.’ ‘가시들과 가시나무 덤불’=(외적 인간의 선과 내적 인간의 선에) 반대되는 악들.
이9:18-‘엉컹퀴들과 가시들’=거짓과 탐욕.
이7;24-‘엉컹퀴들’=악으로부터 거짓, 그리고 ‘가시들’=거짓으로부터 악
이5:6-‘올라 갈 엉컹퀴와 가시’=악의 거짓들.

가시덤불 (thorn-thicket)

예4:7-‘가시덤불로부터 사자가…’=악으로부터의 거짓.
이7:24-‘찔레나무와 가시덤불’=거짓과 악.
이10:17-‘가시덤불과 찔레나무’=교회의 교리 속의 악들과 거짓들.

가지 (branch)

마13:32-‘가지들’=과학물들.
말4:1-‘뿌리와 가지’=선행과 진리.
겔31:10-‘수풀 사이에 가지를 주는 것’=과학물로부터 추론하는 것.
마24:32-‘그의 가지가 연하여 지는 때…’=새로운 교회의 처음. ‘무화과 나무’=자연 평면에서의 선. ‘가지’=이 선에 애착함.
겔19:10-영적 교회가 ‘포도나무’에 비교되어진다. 그리고 이 교회의 갈래들이 묘사되는데, 자연적 인간의 최말단에 까자조차, 즉 감각적인 것들로부터 과학물에 까지, 이것이 ‘엉켜진 가지들’이다.
겔36:8-거듭남이 ‘가자를 주고 열매를 맺는’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레23:40-과학적 진리가 ‘두꺼운 나무의 가지’에 의해 의미되져 있다.
막11:8-‘나무들’=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과 지각들. ‘가지들’=진리 자체.
겔31:5-‘가지들’=확장.
겔36:8-‘가지’=신앙 속의 진리.
겔19:14-‘가지들로부터의 막대’=악이 들어 있는 교리로부터의 거짓.
이19:15-‘가지’=영적 진리.
호14:6-세째 상태가 “그의 가지들이 나올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이를 수단으로 과학적 진리와 지식들이 불어남이 의미되어져 있다.
겔31:9-‘가지들이 불어남을 통해 그들은 그녀를 아름답게 만들었다’=합리적으로 지각된 과학적 진리들이 풍부함.
겔31:12-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모든 진리들이 악과 거짓들을 통하여 사라졌음이 ‘산들 위에, 골짜기 에 그의 가지들이 떨어졌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가지 (spathe)

레23:40-신앙으로부터의 선이 ‘종려들의 가지들’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이 선으로부터의 내적 진리들.)

갈대 (reed)

겔29:6-‘갈대 지팡이’=이와 같은 힘.
마11:7-각자 자기가 원하고 싶은 대로 말씀을 설명할 때, 말씀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에 비교되어진다.. 그이유가 ‘갈대’는 내적 의미에서 최말단에 있는 말씀, 즉 글자에 있는 말씀이기 때문.
시68:30-가장 낮은 것들로부터 사악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갈대로부터의 들짐승’이라 불리운다.
* ‘갈대로부터의 들짐승들’…=교회의 진리들을 뒤집는 자연적 인간의 과학물
겔29:6-‘이스라엘 가문에게 갈대 지팡이’=교인들에게 오류인 자연적 인간의 과학물을 신뢰함.

감람 나무 (olive tree, olive, olive-wood, olive-grove)

* 올리브나무를 보라.

감복숭아 (almond)
감복숭아 나무 (almond tree)
아몬드(almond)

창43:11-‘테레빈 나무 열매와 감복숭아’=이런 진리들에 상응하는 생활의 선들…‘감복숭아’=내면의 자연적 선의 진리들에 상응하는 생활의 선.
예50:11,12-‘감복숭아 나무’=내면의 진리로부터 지각함. 여기서는 여호와에 관련되어 서술되는 바=그것을 지켜 봄.
민17:8-레위 지파를 위한 아론의 막대로부터 꽃이 핀 아몬드들=선행의 선들과 생활의 선들.
출25:33-‘아몬드들 같은 세 사발(bowl)=선으로부터 과학물에 관련한 것이 가득함.
민17:8-‘아몬드’=생활의 선.
민17:8-‘아몬드’=선행으로부터의 선.

값진나무 (thyine wood)

* 계시록 18장 12절. ‘’값진 나무‘ = 자연적 선들. ’값진 나무‘ = 자연적 선인 이유는 ’나무‘ = 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값진 나무, thyine 라는 이름은 둘, two에서 파생되었는데 둘 역시 선 을 의미한다. 이 선이 자연적인 선을 의미하는 이유는 이 나무가 값비싼 재료는 아니기 때문이다. (= 자연적 인간에 있는 진리와 결합된 모든 선)

개암나무 (hazel)

* 나무의 어떤 종(species)=외면의 선들과 진리들, 이는 자연적 인간 속에 있다. 포풀러나무, 개암나무, 플라타너스나무 등등이다.
창30:37-‘개암나무와 플라타너스나무’=자연적 진리들의 힘. ‘개암나무와 플라타너스’=자연적 진리들.

겨자 (mustard)

마13:31-‘겨자 씨’=인간이 영적이기 이전 그의 선. 이 씨가 ‘모든 씨들에서 가장 작은’ 이유는 영적이지 않은 인간은 선이 행해질 때 그 선이 자기로부터라고 상상하기 때문에서이다. 자아로부터 있는 것은 악밖에 없다. 그러나 그가 거듭나는 상태에 있을 경우, 선으로부터의 어떤 것이 있게 된다. 그러나 이 선은 모든 선 중에서 가장 작다. 드디어 신앙이 사랑과 결합되는 도중에 있을 때, 이 작은 씨는 크게 되어간다. 그래서 연한 풀 수준의 식물이 된다. 마지막으로 신앙이 사랑과 결합되었을 때, 이 씨는 나무이다. 그러면 ‘하늘들로부터의 새들’, 여기서의 경우, 이는 진리들, 또는 지적인 것들이다. 이것들이 ‘이 나무의 가지들에 그들의 둥지를 만든다.’ 이것은 과학물들이다.
* 겨자 씨로부터의 나무에 의해 진리를 통하여 아주 작은 선을 개시하는 교인 또는 교회가 의미된다. 만일 이 매우 작은 영적 선이 인간에게 뿌리를 내리면, 그것은 옥토의 씨 같이 성장한다… ‘하늘의 새들, 이것이 가지에 둥지를 건축한다’=진리에 대한 지식, 그리고 파생되는 생각들.
* 만일 사람이 세상에서 악이 죄가 됨을 알고 악들에 맞서 전투함을 수단으로 영적인 어떤 것을 획득한다면, 비록 그가 획득한 것이 미미할지라도, 그는 구원되어진다. 그리고 후에 그가 획득한 영적인 것의 사용은 ‘겨자 씨가 나무로 성장하듯’ 그렇게 불어난다.

고수풀 (coriander)

출16:31-‘고수풀의 씨 같이, 희었다’=거기 안에 있는 진리, 그것은 순수했다는 것…‘고수풀의 씨’라 말해진 이유는 그것이 희었기 때문.
* ‘고수풀의 씨, 희다’=천적 근원으로부터의 진리.

고페르 목재 (gopher wood)

창6:14-‘고페르목재”=현세에의 욕망 즉 색욕, 물욕 (concupiscences)등등.
* 고페르 목재는 마치 전나무(fir) 같이 불이 잘 붙는 재질이 풍부한 나무이다.

골풀 (rush, bulrush)

츨2:3-‘그녀는 골풀 상자를 가져왔다’=주위에 있는 하찮은 것…‘골풀’=하찮은 것, 그렇다해도 아직은 진리로부터 파생된 것.
이35:7-‘갈대와 골풀 대신 풀이…’=진리를 함유하지 않은 것들 대신 과학적 진리가 있을 것이다.
이19:15-‘골풀’=감각적 과학물, 이는 최말단 진리이다.
* ‘갈대와 골풀’=감각적 근원으로부터의 지식, 또는 이 지식을 통하여 감각들의 오류가 확증되는 것. 그 자체에 한정해 생각한다면, 가장 수준 낮은 자연 평면에 있는 단지 지식인 것, 그리고 이것은 물질적, 육체적인 것이라 불리고, 이것에는 생명이 아주 조금 있거나 거의 없다.

관목 (shrub)

* 키작은 나무(shrub)도 보라.
창2:5-천적 인간의 과학적인 것과 합리적인 것이 ‘관목’과 ‘풀잎’으로 묘사되고 있다.
* 들판의 관목’=그의 외적 인간이 생산하는 일반적으로 모든 것.
이7:17-‘관목들’=발생하려고 하는 같은 종류의 진리들.

근채 (cummin)

이28:25-‘근채’=과학물들, 그 이유는 인간이 총명을 받기 위하여 습득돠는 첫 번째 것이 기억-지식(과학물)이기 때문.

기름나무 (oil tree)

이41:19-‘기름나무’=영적 인간 또는 내적 인간에 있는 어떤 것 (=선을 지각함과 이 선으로부터의 진리를 지각함.)

길르앗의 유향나무 (Balm of Gilead)

* 예레미야 46장 11절. 말씀의 글자 의미 속의 진리들, 이 진리로부터 추론하고 방어함. 지역 ‘길르앗’은 말씀의 글자 의미로부터 추론하는 것을 수단으로 거짓들을 확증하는 것을 의미한다.

껍질 (peel)
창30:37-‘그는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색을 내었다’=내면의 진리의 힘을 배치함. ‘껍질을 벗기는 것’=내면의 것들이 열려 놓이도록 외면의 것을 벗김.

꽃 (flower)
꽃이 피다 (flower)

창40:10-‘거기로부터 꽃이 올라왔다’=거듭남 근처에 와있는 상태. (그이유가) 열매에 앞서 나무로부터 올라온 꽃=거듭남 앞의 상태. 잎이 무성한 신록은 첫 번째 상태를 표현한다. 두 번째 상태는 개화기, 또는 거듭남 앞의 중간에 해당하는 상태. 그리고 세 번째 상태는 결실. 이로부터 잎=총명 속의 것들, 즉 신앙으로부터의 진리들. 그리고 꽃들은 지혜 속의 것들, 즉 신앙으로부터의 선들, 그 이유는 이것들은 거듭남으로부터 직접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열매들은 생활 속의 것들, 즉 선행의 일들이다.
왕상6:29-그룹들, 종려나무들, 그리고 성전의 벽에 꽃들이 있다=섭리, 지혜,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총명, 고로 천국 속에 있는 모든 것들. 꽃에 의해 그분으로부터의 진리 속에 있는 총명이 표현되었다.
출25:31-‘그것의 꽃들’=진리의 과학물들. ‘꽃들’=진리의 과학물인 이유는 꽃들은 열매에 앞서 내밀어진 것들이기 때문, 그리고 그들의 진로에서 열매와 씨들을 생산하기 때문. 이 경우는 총명과 지혜에 관련하여 인간과도 비슷하다. 진리의 과학물이 먼저 진행되고, 그들의 진로에서 인간과 더불은 지혜 속에 있는 것들을 생산한다. 이로부터 진리의 과학물은 꽃과도 같다. 그리고 생활의 선, 이는 지혜의 선인데 열매와 같다. 이로부터 꽃=진리로부터의 과학물, 그리고 일반적으로 진리들, 그리고 열매들은 선들임을 알 것이다.
이35:1,2-진리들로 훈육됨으로부터 그리고 계몽됨으로부터 와지는 그들의 환희가 ‘즐거워하는 것’, ‘무척 기쁜 것’, ‘꽃피는 것’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이28:1-‘시드는 영광의 꽃’=교회의 진리가 그것의 출생에서 파괴되었다.
이40:6,7-그당시 인간과 더불어 어떤 과학적 진리도, 어떤 영적 진리도 있지 않을 것임이 ‘모든 육체는 풀이다, 그리고 모든 그것의 거룩함은 들판의 꽃 같다. 풀은 시든다, 꽃이 진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풀’=과학적 진리. 그리고 ‘들판의 꽃’=영적 진리.
단4:12-‘거기로부터의 잎은 아름다웠다, 그리고 꽃은 많았다’=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들과 애착들, 그리고 파생되는 총명.
민17:8-아론의 막대기가 꽃이 피고 아몬드들(almonds)을 생산한 이유는 그의 막대기가 사랑의 선으로부터의 진리를 표현했기 때문. 그리고 사랑의 선으로부터의 진리 만이 선행의 선인 열매를 생산한다. 따라서 그의 막대기는 꽃이 피었고 아몬드들을 생산했다.

나무 (wood)

* 목재(wood)를 보라.

나무 (tree)

* wood, grove, plantation, olive, vine, fig, palm, cedar등도 참조.
창1:12-인간 거듭남의 세 번째 상태는 회개의 상태, 이 상태에서 인간은 내적 인간으로부터 선행의 일 같은 선들을 생산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아직 생명이 없다. 그 이유는 그 선들이 자신으로부터 있게 되었다고 상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열매의 나무’라 …불리우고 있다.
마13:32-신앙이 사랑과 결합되어졌을 때, 드디어 그것은 ‘나무’가 되어간다. 그런다음 진리들인 새들이 그 나무 가지들에 둥지를 튼다. 위의 진리들=과학적 사실들.
창2:9-‘보기에 유쾌한 나무들’=진리의 지각들 그리고 ‘먹기에 좋은 나무’=선의 지각들. 사랑이 ‘생명들의 나무’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신앙은 ‘지식의 나무’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 ‘생명들의 나무’=사랑과 사랑에서 파생된 신앙. ‘선과 악에 관한 지식의 나무’=감각적인 것으로부터, 즉 기억속의 지식으로부터 있는 신앙.
창2:16-‘모든 나무를 먹는 것’=선과 진리가 무엇인지를 지각으로부터 아는 것. ‘나무’=지각.
창2:16,17-너는 동산의 모든 나무(의 것을)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에 관한 지식의 나무, 너는 그것으로부터(의 것을) 먹지 말라. 그이유가 네가 먹는 그날 너는 정녕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16,17절=주님으로부터의 모든 지각을 수단으로 선하고 참된 것에 관한 지식을 획득하는 것은 허용할 수 있으나, 자아와 세상으로부터, 즉 감각적이고 과학적인 것들을 수단으로 믿음의 신비들을 수색하려 해서는 안된다, 그럴 경우 믿음 속의 천적인 것들이 죽는다.
겔31:16-‘에덴의 나무들’=과학적 사실과 말씀으로부터의 지식들. (=믿음의 지식에 관한 지식) (=지각들)
창3:2,3-‘동산의 나무의 열매’=태고 교회로부터 그들에게 계시된 선과 진리; ‘그들이 먹지 말아야 하는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믿음으로부터의 선과 진리, 이것을 그들은 자신들로부터 배우려 해서는 안된다. ‘그것을 만지지 말라’=그들은 믿음 속의 선과 진리를 자신들로부터, 또는 감각적인 것과 과학적 사실로부터 곰곰이 생각하려 들지 말라. 시도할 경우 ‘죽는다’=이러므로 있는 결과는 모든 총명, 지혜, 신앙이 멸해진다.
창3:5-‘만일 그들이 그 나무의 열매를 먹는다면 그들의 눈들이 열릴 것’=만일 감각적이고 과학적 사실로부터, 즉 자신들로부터, 믿음 속의 것들을 뒤지면 그들은 이 경우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명백하게 볼 것….
창3:8-‘동산의 나무 한가운데’ 그 안에 그들은 자신들을 숨겼다=자연적 선…’나무’=지각; 그러나 아주 적은 지각, 고로 이 지각을 표현한 나무는 단수로 표현하여 마치 나무 한 그루만이 동산에 남아 있는 듯 여겨지게 하고 있다.
창3:22-그가 ‘손을 내밀어 생명들의 나무의 열매를 취하지 않도록’=그는 믿음의 신비들을 훈육받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 이유가 그는 결코 ‘영원히 사는 것’인 영원히 구원되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창3:24-‘생명들의 나무의 길을 지키려고’=그가 거룩한 것들을 모독하지 않도록.
욜1:12-‘나무들’=지식들.
시148:9-‘열매의 나무’=천적 인간.
시104:16-‘여호와의 나무들과 레바논의 삼목(cedar)들’=영적 인간.
이4:12-‘들판의 나무들’=그때부터 있는 믿음.
창18:4-‘나무 아래 눕다’=그분이 있으셨던 그분의 상태를 지각하심에서.
창18:8-‘그는 나무 아래 그들 앞에 섰다’=그때부터의 지각…주님이 신성한 지각 쪽으로 가까이 당겨지셨다는 것.
계2:7-‘생명의 나무’=천적인 것 자체; 그리고 최고 의미에서 주님 자신, 그 이유는 모든 천적인 것, 즉 모든 사랑과 선행은 그분으로부터 있기 때문. 고로 ‘생명의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은 주님을 먹는 것과 같다; 고로 사랑과 선행, 마찬가지인 천적인 것과 천국적 생명은 주님으로부터 기부받아져야 마땅하다.
겔20:28-‘뒤엉킨 나무’=말씀을 수단으로 받아쓰지 않은 것들, 그러나 인간 고유의 과학적 사실들.
창23:17-‘들판에 있었던 모든 나무’=교회의 내면의 지식들; 그 이유가 ‘나무’=천적 교회가 취급될 때는 지각들, 영적 교회가 취급될 때는 지식들이기 때문; 여기서는 내면의 지식들, 그 이유는 ‘들판에서’…라고 말해지기 때문이다; 그다음 ‘그로부터 모든 경계 안에 있었던…’라는 말이 뒤잇는다. 이를 수단으로 외면의 지식들이 의미되고 있다.
이57:5-‘모든 푸른 나무 아래’=모든 거짓들의 신앙으로부터. (=뒤집혀진 이해성으로부터 거짓을 지각하는 것)
레23:40-기억 속의 진리가 ‘빽빽한 나무의 가지’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계9:25-‘(우박이) 들판의 모든 나무를 부러뜨린다’= (그 거짓이) 교회의 선과 진리에 관한 모든 지식들을 파괴했다.
계9:4-‘나무’=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 (=선으로부터 진리를 지각함)
출10:5-‘너희를 위하여 들판에서 자라고 있는 모든 나무를 (메뚜기가) 먹을 것이다’=그런 결과 교회로부터 그들에 의해 소유되었던 모든 지식들이 소진됨…’나무’=선과 진리에 관한 지각들, 또는 지식들.
레23:40-‘영예의 나무의 열매’=천적 선.
창3:24-‘생명들의 나무’=주님으로부터 있는 사랑의 선, 고로 주님; 그리고 (이제는) 그분은 사랑의 선을 통하여 구원에 접근하시지 않는다는 것이 거기에 이르는 길을 ‘지키심’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단4장- (느부갓네살의 꿈 속의) 나무, 그리고 그것의 높이=’바벨’로 의미되는 광신적 신앙의 성장…(=천적인 교회)
창세기에서-‘지식의 나무’=이 교회를 파괴한 과학적 사실.
창3:24-‘생명의 나무의 길’=주님 쪽으로 진입함, 이것을 인간은 말씀을 수단으로 가진다.
계7:2-‘…어떤 나무에도 바람이 불지 못하게…’= 선한 자가 악한 자와 결합되어 있는 곳인 낮은 부분들 안으로의 유입은 주님에 의해 보류되었다. (=선한 자가 해를 입지 않도록…그들과 더불어 어떤 지각이 있다)
계8:7-‘나무들의 삼분의 일이 태워졌다’=진리에 대한 모든 애착과 지각, 이것이 교회 속의 사람을 만드는데 이것이 멸해졌다….‘나무’에 의해 인간이 의미되었다; 인간이 의지 속에 있는 애착으로부터, 그리고 이해성 속에 있는 지각으로부터 사람인바, 이것들이 ‘나무’에 의해 의미되었다. 또한 인간과 나무 사이에 상응이 있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나무들의 낙원들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천사들의 애착들과 그로부터 파생된 지각들과 상응한다; 그리고 지옥의 어떤 장소에서도 역시 나무들이 있어 거기 있는 이들의 욕망과 그로부터 파생된 생각들에 따라서 나쁜 열매들을 맺고 있다.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과 지각은 악한 사랑들에 뿌리를 둔 탐욕들을 통해 사멸된다는 것.)
계9:4-‘그들은 어떤 나무도…다치지 않도록’=그들은 진리와 선에 대한 어떤 애착과 지각을…거두어 갈 수 없도록 하시는 주님의 신성한 섭리…(=그들은 말씀에 있는 진리와 선에 대한 어떤 지식에도 피해를 입히지 못한다.)
계22:2-‘그것의 도로 한가운데에서 그리고 강의 이쪽과 저쪽에 생명의 나무가 있었고, 열 두 가지 열매들을 맺고 있었다’=교회 안에서 교리와 그로부터 파생된 생활 속의 가장 깊은 곳에 신성한 사랑으로 계신 주님이 있으시고, 인간이 판단하기에 자신으로부터 인듯 외관상 나타나는 모든 선들이 그분으로부터 흐르고 있다…’생명의 나무’=신성한 사랑에 관련되는 주님.
계22:14-‘그들의 힘은 생명의 나무 안에 있을런지 모른다는 것’=결국에 사랑을 통하여, 즉 주님의 목적을 위하여 그들은 주님 안에, 그리고 주님은 그들 안에 있을런지 모른다…그이유가 신성한 사랑으로 계신 주님이 ‘생명의 나무’에 의해 의미되기 때문, 그리고 그 나무에 있는 ‘권능’은 주님으로부터의 권능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이 그들 안에 있기 때문이다.
창3장-‘생명의 나무’=천적인 사랑, 이는 주님을 사랑함이다. (=보다 높은 천국들 안에서 주님으로부터 있는 신성, 이것은 사랑의 선, 선행의 선, 이 선들로부터 파생되는 기쁨이다.
마7:19-‘좋은 열매를 산출하지 않는 모든 나무는 잘리워 불에 던져진다’=믿음 안에 있고 선행이 없는 이들.
이44:23-‘숲에 있는 나무들’=진리에 관한 지식들.
이44:23-‘모든 나무’=자연적 인간에 있는 인식력과 과학적 사실.
계22장=’생명의 나무’=선으로부터의 진리에 대한 주님으로부터 있는 지각.
예17:7-‘그는 물들 옆에 심어진 나무 같을 것이다…’ 주님에 의해 인도되어지게 하려고 자신을 고통받게 하는 이들이 ‘나무’, 그리고 나무의 성장과 결실에 비교되고 있다, 그 이유가 말씀에서 ‘나무’=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과 지각, 그 결과 이것들이 있는 인간이기 때문. ‘물들 옆에 심어진 나무’=주님으로부터 있는 진리들이 있는 인간.
겔47:7-‘강둑 이쪽과 저쪽에 있는 많은 나무들’=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들과 지각들.
창3장-그들이 먹었을 때의 그 ‘나무’는 영적인 것으로부터 분리된 자연적 인간을 의미했다.

느룹나무 (elm)

호4:13-‘상수리, 포플라, 느룹나무’=자연적 인간으로부터 있는 가장 낮은 선으로부터의 진리와 진리로부터의 선. 여기서는 거짓으로부터의 악들과 악로부터의 거짓들.

느티나무 (elm)

* 위 느룹나무 참조.

단풍나무 (plane tree)

* 에스겔 31장 8절, 플라타너스(plane tree)를 참조하시라

덤불 (bush)

* 가시나무를 참조하시라

덤불 (ticket)
얽혀 있는 (entangled)

창22:13-‘덤불에 잡힌’=과학적 자연 평면에 얽혀있는…이 의미는 ‘덤불’=과학적인 것이다는 것으로부터 분명해진다.
* 과학물들, 말씀에서 ‘덤불들’이라 불리는데, 그이유는 그것들이 자아를 사랑함과 세상을 사랑함을, 거짓의 원리들을 발산할 때, 더욱 두드러지기 때문. 천적이고 영적인 사랑은 외적 기억으로부터 있는 과학물들을 질서 안으로 배치한다. 그러나 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이 질서를 뒤집는다, 그리고 거기 안의 모든 것들을 혼돈 안으로 내던진다. 인간은 이런 것을 주목하지 않는다, 그이유는 그는 질서를 왜곡된 질서 안에, 즉 악 안에 선을, 거짓 안에 진리를 놓기 때문. 이로부터 이런 것들은 덤불 안에 있다. 그리고 과학물이 있는 외적 기억으로부터 있는 이런 것들은 합리적인 것이 있는 내적 기억에 있는 것들과 비교해볼 때 그것들은 ‘덤불’ 안에, 빽빽한 숲 안에 있는 것이다.
* ‘상수리나무’ 역시 얽혀진 것, 그리고 더나아가, 오류적이고 거짓된 것 까지도 의미할 경우가 있는데, 그이유는 자연 평면의 가장 낮은 것이 신체의 감각적인 것으로부터, 고로 오류로부터 그것의 과학적인 것과 쾌락을 끌어내는 한, 상대적으로 얽혀있고 오류적이기 때문.
츨14:3-‘그들은 토지에서 얽혀져 있다’=그들은 교회의 것들에 관련하여 혼동에 있다는 것.
이10:34-‘숲의 덤불들’=과학물들.

도금양 (myrtle)

이41:19-‘삼목, 도금양, 기름의 나무’=내면의 인간의 선들과 진리들.
이41장-‘도금양과 기름의 재목’=영적 선과 천적 선.
이41장-‘사막에 싯다(shittah)의 삼목, 도금양, 그리고 기름의 나무를 놓을 것이다’=합리적인 진리와 그것들에 대한 지각을 줄 것이다. ‘도금양’=보다 낮은 합리적 진리.

독초(hemlock)

* 호세아 10장 4절. 풀이는 없음

돌무화과나무(naughty figs, sycamore)

* 누가복음 19장 4절.
* 시편 78편 47절. ‘돌무화과나무’ = 외적 교회 속의 진리(= 교회의 자연적 진리)
* 예레미야 24장 2절
* 누가복음 17장 6절. ‘돌무화과나무’ = (악한)사랑의 믿음, 즉 악으로부터의 거짓 속의 믿음. ‘바다’ = 지옥.

대추야자 (date)

대회향 (cummin)

* 열매는 요리 향료, 약으로도 쓰인다.
* 이사야 28장 25절. ‘소회향을 뿌리고 대회향을 흐트려 뿌리며’란 과학물(scientics) 을 뜻하는데 그 이유는 과학적 지식은 사람들이 총명을 받기 위해 배움을 익힐 때 첫 번째 것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들호박

* 박넝쿨 호리병박 참조.

들감람나무 (oil tree)

* 이사야 41장 19절. 영적인 것, 또는 내적 인간에 있는 어떤 것, 선을 지각함, 그로부터 진리를 지각함.

떨기나무

* 가시나무 참조.

로뎀나무

렌즈콩 (lentil)

창25:34-‘렌즈콩죽’=교리적인 것들로부터의 선. ‘렌즈콩들’=그것들로부터의 선.

마늘 (garlic)

민11:5-‘마늘’ 등등=가장 낮은 자연 평면으로부터 있는 것들, 즉 인간의 육체의 감각적인 것들.
* 대파(leek)와 파의 코를 찌르는 냄새, 또는 마늘은 (느빌림의) (강력한) 설득력에 상응한다.

무화과 (fig)
무화과 나무 (fig-tree)

창3:7-‘그들은 무화과나무 잎을 함께 꿰매었다’…‘무화과 나무’=자연적 선…이 후손은 순진 대신 자연적 선을 소유했다….
암4:9-‘무화과 나무들’=자연적인 것들.
예29:17-그들은 ‘무서운 무화과들’ 같이 되어 있을 것이다.
신8:8-신앙 속의 선들은 ‘포도나무와 무화과 나무’이다.
마24:32-‘무화과 나무로부터의 비유를 배워라’= 새 교회의 첫(번)째되는 것; ‘무화과 나무’=자연적 평면의 선; ‘그것의 잎들’=진리들. 주님의 오심이 무화과 나무와 그것의 가지들과 잎들로 비교하여 무엇을 포함하는지는 알 수 없다….말씀의 어느 곳에서 언급되든 무화과 나무=자연적 평면에서의 선…(그런고로) 이 비유는 새교회가 주님에 의하여 창조되어질 때, 무엇 보다 먼저 자연적 평면에서 선이 나타난다는 것, 즉 새교회에 대한 애착과 진리들과 더불어 선이 외적 형태에서 나타난다는 것. 자연적 평면의 선(the good of the Natural, 첫째 천국의 선)이란 인간이 태어날 때 지닌 선이라는 뜻이 아니고 그 선의 근원이 영적인 곳에 두고 있는 선을 뜻한다. 누구도 이 선에서 태어나지지 않는다. 오로지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을 통하여 주님에 의해 그 선으로 인도되어질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 선 안에 있기 전, 즉 영적인 선 안에 있기 전일 경우, 그는 주님의 교회의 사람이 아니다. 설사 그와 더불어 태어난 선이 제아무리 많아도 그가 교회인 처럼 보일 뿐이다.
예8:13-‘포도나무에 포도가 없다’=내면의 선, 또는 합리적인 선이 없다; ‘무화과 나무에 무화과가 없다’=외면의 선, 또는 자연적 선이 없다.
호9:10-‘무화과 나무에 있는 원시적인 것(아직 익지 않은 것)’=영적으로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자연적 선.
눅6:44-선행의 내적인 선들은 ‘포도’이고 자연적 선들은 ‘무화과’이다.
시78:47, 105:33-‘무화과(sycomore)’ 그리고 ‘무화과 나무’=외적인 교회의 진리들과 선들.
욜1:7-‘무화과 나무’=자연적 선.
합3:17-‘무화과 나무’=자연적 선.
사9:10,11-‘무화과 나무’=천적 교회의 외적인 선.
욜1:12-‘무화과 나무’=외면의 선.
계6:13-‘큰 바람에 의해 흔들린 무화과 나무가 그것의 덜 익은 무화과를 내던지듯…’=자연적 인간의 추론을 통하여 영적 인간으로부터 분리됨…무화과 나무, 그것의 상응으로부터=그의 영적 선과 결합된 인간의 자연적 선; 그러나 여기서의 경우, 반대적 의미인 바, 그의 영적 선과 분리된 인간의 자연적 선, 이것은 선이 아니다. 그리고 자연적 인간이 그의 영적 인간으로부터 분리될 경우, ‘별들’로 의미된 선과 진리에 관한 주님으로부터의 지식을 추론을 통해 악용하는 바, 이 결과가 ‘큰 바람에 의해 흔들린 무화과 나무’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신8:8-‘포도나무와 무화과 나무’=영적 근원으로부터 있는 선과 진리.
호2:12-‘무화과 나무’=자연적 인간 속에 있는 외적인 교회.
학2:19-‘무화과 나무’=자연적 선과 진리.
눅6:44-‘가시나무로부터 인간들은 무화과를 수집할 수 없다’…‘무화과’= 여기서의 경우 외적 인간의 선, 또는 자연적 인간의 선.
예24장-내면에 선이 있는 그들로부터 새 천국이 형성되어진다. 이것이 ‘좋은 무화과를 담은 바구니’로 의미된다. 그리고 내면이 악한 이들은 지옥에 내던져지는데, 이것이 ‘나쁜 무화과를 담은 바구니’로 의미되어진다…그 이유가 과일로서의 ‘무화과’=내적, 외적 형태로 동시에 있는 생활의 선; 그리고 반대 의미에서, 그것=외적 형태로만 있는 생활의 선, 이것은 생활의 악이다.
욜1:12-‘포도나무’=교회의 영적 선과 진리; ‘무화과 나무’, 자연적 선과 이 선에서 파생된 진리; 그리고 ‘석류’, 감각적 진리와 선, 이것은 자연적인 것의 최말단이다.
시105:33-‘그들의 포도나무’=영적인 진리; 그리고 ‘그들의 무화과 나무’=자연적 진리, 둘 다 교회 속에 있다.
암4:9-‘무화과 나무들’=외면의 선들과 진리들, 이것들은 도덕적인 것들이라고도 불린다.
사9:7-15-그들은 외적인 천적, 영적 선인 것,., 여기서의 경우, ‘무화과 나무’인 도덕적인 선이 자기들을 지배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슥3:10-‘포도나무와 무화과 나무 아래 그들은 올 것이다’=교회와 내적 진리들로부터의 교리와 외적 진리들로부터의 교리…
예5:17-‘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이스라엘족들로부터의 영적 평면의 내적, 외적인 것. (내적 측면인 영적 교회, 외적 측면인 자연적 교회).

밀 (wheat)

창30:14-‘르우벤은 밀 수확의 날에 나갔다’=사랑과 선행 측면에서의 신앙의 상태…‘밀’=사랑과 선행.
욜1:11-‘밀’=천적 사랑. ‘보리’=영적 사랑. (=내면의 선과 외면의 선).
계6:6-‘밀 한 분량에 한 푼’=사랑이 매우 희귀하다는 것 (=선을 평가하건대…거의 없다).
마13:30-‘밀을 내 곳간으로 그러모우라’=선들 (=내면적인 선)
출9:32-‘밀과 호밀(rye)=내면의 자연 평면의 선, 그리고 그것의 진리.
출29:2-‘밀의 고운 가루를 가지고 너는 그것들을 만들 것이다’=신성한 선으로부터 있는 진리, 이로부터 이것들이 있다…‘밀’=사랑의 선. 고로 최고 의미에서 신성한 선.
계18:13-‘밀(은 아니다)’=천적 선으로부터의 예배는 없다.
예12:13-‘그들은 밀을 뿌렸었다, 그리고 가시들을 베어들였다’=말씀으로부터 선의 진리들을 취하는 것, 그리고 그것들을 악의 거짓들로 바뀌게 하는 것.
신32:14-‘밀의 콩팥들의 지방’=진짜의 선. (=일반적 측면에서의 모든 선)
시147:14-‘그는 밀의 지방(fat)을 가지고 너를 만족하게 한다’=사랑의 모든 선을 가지고, 그리고 지혜를 가지고. ‘지방’=사랑의 선. ‘밀’=사랑의 선으로부터 있는 모든 것들. 특별히, 천국의 진리들과 파생되는 지혜.
예31:12-‘밀’=자연적 인간의 선.
시81:16-‘나는 그들을 밀의 지방을 가지고 먹일 것이다’=천적 선으로부터 있는 모든 종류의 선을 가지고…‘지방’=천적인 선. 그리고 ‘밀’=모든 종류의 선.
마3:12-‘그는 밀을 곡창에 그러모을 것이다’=그분이 영원히 보존하시는 천국의 근원으로부터 있는 모든 종류의 선.
겔27:17-‘민닛 밀과 기장’=갖가지 종류의 교회의 진리들과 선들.
눅22:31-거짓으로부터의 신앙은 바람 앞에 겨 같은바, 말해진다, ‘(사탄이) 그것들을 밀로서 체질할런지 모른다’. ‘밀’=겨로부터 분리된 선행의 선.
마13:29-‘너는 가라지를 뽑다가 그것들과 더불어 밀까지 뽑히지 않도록’=선으로부터의 진리와 이 진리의 증가 또한 멸해질 것이다. 교인들과 더불어, 진리들은 거짓들과 혼합될런지 모른다, 그리고 인간이 개혁될 때까지 진리들은 분리되고 거짓들은 내던져질 수 없다. ‘둘 다 추수 때 까지 함께 자라도록 하거라. 그리고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에게 말해서, 밀은 내 곳간에 모아들이겠다’=(교회의 마지막 상태에서) 악으로부터의 거짓들은 선으로부터의 진리들과 분리되어진다. 그리고 이것들은 천국과 결합되어진다. 이것은 영계에서 거행된다.
욜1:11-‘밀 때문에, 보리 때문에 부끄러워하라, 울부짖어라’=선과 진리의 황폐함 때문에 탄식함.

박넝쿨 (gouard)

* 호리병박 참조
* 요나 4장 7절. ‘벌레가 박넝쿨을 갉아 먹어 치웠다’란 악과 그 악에서 파생된 거짓의 파괴를 의미한다.

박하 (mint)

* 마태복음 23장 23절. 이 식물의 풀이는 없음.

밤나무 (chestnut tree)

* 에스겔 31장 8절

백단향류 (Algum, Almug, Thyine)

* 계시록 18장 12절= 자연적 선들, 자연적 인간에서 진리와 결합된 선. 단어 THYINE는 결합, 또는 둘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출발했다.

백합 (lily)

* 호세아 14장 5절. ‘그는 백합 같이 핀다’ = 거듭남의 첫 상태. ‘백합’ = 열매에 앞서 있는 꽃피움.

백향목 (cedar)

* 삼목(cedar)을 보라

버드나무 (willow)

* 레위기 23장 40절. ‘시내의 버드나무’ = 가장 외적인 진리, 즉 감각적 진리.

번홍화 (suffron)

* 아가 4장 13절

보리 (barley)

겔4:9-더 고상한 선의 종류가 ‘밀’과 ‘보리’에 의해 의미되어지고 있다.
욜1:10-13-‘밀’=천적인 사랑, ‘보리’=영적인 사랑.
계6:5,6=‘밀 한 분량에 한 푼’=사랑이 아주 드물다는 것, ‘보리 세 분량에 한 푼’=선행(charity)이 드물다는 것.
신8:8-‘밀과 보리의 토지, 그리고 포도나무와 무화과 나무의 토지…’사랑으로부터의 선들과 선행으로부터의 선들이 여기서 ‘밀과 보리’이다. 신앙으로부터의 선들이 ‘포도나무와 무화과 나무’이다.
출9:31,32, 욜1:11, 사7:13-‘보리(는 내려침을 당하였다)’=외면의 자연 평면으로부터의 선(이 파괴되었다는 것). ‘보리’가 이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그것이 들판의 생산물이고, 식품에 쓰여지는 곡식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곡식은 진리로부터의 선을 의미한다. …’밀로 인해 그리고 보리로 인해, 농부들은 부끄럽게 여길지라, 포도원의 일꾼은 크게 울부짖어라, 들판의 수확이 멸해졌기 때문이다.’ 아래는 요엘서에 있는 ‘보리’의 의미이다. 보리는 외면의 자연 평면으로부터의 선, 밀은 내면의 자연 평면으로부터의 선. 선과 진리의 황폐해짐이 다음 구절에서 취급된다, ‘기드온이 진영에 다가 왔을 때, 한 사람이 그의 동료에게 꿈을 말했다, 그리고 말했다, 보라, 내가 꿈을 꾸었다, 그리고, 오, 보리 과자가 미디안의 진영으로 그 자체 굴러왔다, 그리고 천막에 까지 왔고, 그것을 짓부었다, 그리고 그것을 아래로부터 뒤집었다, 그렇게 해서 천막은 무너졌다.’ ‘미디안’은 단순한 선으로부터 진리 안에 있는 이들을 의미한다. 그러나 반대 의미에서는 선으로부터의 생활 안에 있지 않은 이들이 의미된다. 이 선은 외면의 자연 평면으로부터의 선이다, 이것이 ‘보리 빵’에 의해 의미되어지고 있다. 이 선 대신 쾌락의 기쁨을 목적으로 간주하면 이것이 ‘보리 빵의 과자’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출9;31-‘보리는 익어가는 이삭이었고, 아마는 줄기이었기 때문’=이 선과 진리는 현저하게 밖으로 돌출되어 서있고 아래쪽 것을 보고 있었다. ‘보리와 아마’=외면의 자연 평면으로부터의 선과 진리.
호3:2-‘은 열 다섯 조각’은 진리를 서술하고, ‘보리 한 오멜’은 선을 서술한다.
이28:25-‘밀’=내향의 인간으로부터의 사랑의 선, ‘보리’=외향의 인간으로부터의 사랑의 선.
계6:6-‘밀 한 분량에 한 푼, 그리고 보리 세 분량에 한 푼’=선과 진리에 매겨진 값어치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바, 가치를 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밀’과 ‘보리’에 의해 선과 진리가 의미되어진다….여기서의 경우, 말씀으로부터의 교회의 선과 진리. 그 이유는 들판의 모든 것들, 포도원의 모든 것들은 교회에 속하는 것들을 의미하기 때문.
마3:11,12-‘밀’과 ‘보리’는 교회의 선과 진리를 의미한다는 것.
호3:2, 겔4:12-‘보리’=진리들, 그리고 똥과 섞은 보리’=진리가 왜곡되고 모독됨.
계6:6-‘밀 한 분량에 한 푼, 보리 세 분량에 한 푼’=교회로부터의 순수한 선이 그들에게 조금도 없다, 또한 교회로부터의 순수한 진리도 그들에게 조금도 있지 않다는 것…’밀’=일반적 측면에서 교회로부터의 선. ‘보리’=이 선으로부터의 진리.
예41:8-‘밀과 보리’에 의해 바깥쪽 인간의 선들과 진리들. ‘기름’에 의해 안쪽 인간의 선.
신8장-‘밀과 보리’는 천적 근원으로부터의 선과 진리. ‘포도나무와 무화과 나무’는 영적 근원으로부터의 선과 진리.
이28;25-‘밀’=선, ‘보리’=진리, ‘귀리, spelt’=지식들.
호3장-‘보리 한 오멜’ 그리고 ‘보리 반 오멜’=거의 없다시피 적은 선과 진리.
계6:6-‘밀’과 ‘보리’에 의해 선과 진리, ‘기름’과 ‘포도주’도 선과 진리를 의미한다. 그러나 ‘밀’과 ‘보리’는 일반적 측면에서 교회의 선과 진리를, 고로 말씀의 글자 의미 안에 있는 선과 진리를 의미한다.
계6:6-‘밀’과 ‘보리’가 외면의 선들과 진리들, 또는 말씀의 글자 의미로부터의 선들과 진리들이 의미되는 이유는 그것들이 들판의 생산물이고 이것은 빵이나 과자로 만들기 전까지는 먹기에 적당치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빵과자’에 의해 말씀에서 내면의 선들이 의미되고, 고로 밀과 보리는 내면의 선들의 출처가 의미되는 바, 그 출처는 말씀의 글자 의미의 선들과 진리들이다.
겔4장-‘똥으로 만든 보리 과자’=(신성한 진리에) 섞음질함. ‘보리 과자’=자연적 선과 진리, 즉 글자 의미로 있는 말씀.
* 보리로부터의 ‘고운 가루’에 의해서는 자연적 근원으로부터의 진리, 그 이유가 보리=자연적 선, 밀=영적 선.

부추 (leek)

* 민수기 11장 5절 ‘부추와 파와 마늘’ = 가장 수준 낮은 자연 속의 것들, 즉 인간의 육체적, 감각적인 것에 속하는 것들.

뽕나무 (sycomore, sycamine, mulbelly tree)

시78:47-‘뽕나무’=외적 교회의 진리들 (=교회의 자연적 진리)
눅17:6-‘만일 네가 믿음을 가졌다면, 너는 이 뽕나무에게, 너는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어져라고 말할 것이다.’ ‘뽕나무’=(악)의 사랑으로부터의 믿음, 이는 악으로부터의 거짓의 신앙이다. 그리고 ‘바다’=지옥…영계에서 이와같은 일은 실제로 거행되고 있다. 악으로부터 거짓의 신앙이 때때로 뽕나무 같이 나타난다. 이것을 천사는 주님으로부터의 신앙을 통하여 뿌리채 뽑아 지옥에 내던질 수 있다. ‘무화과-나무’, 또는 ‘뽕나무’=거기서 선들과 진리들 측면에서의 자연적 인간, 반대 의미일 경우 악들과 거짓들 측면에서의 자연적 인간.

뿌리 (root)

호9:16-‘뿌리가 말리워졌다’=선행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막4:17-‘그들은 그들 자체에 뿌리가 없다’=선행이 없다, 그이유가 선행 안에 신앙은 뿌리가 있어야 하기 때문. 그리고 이 뿌리를 향유하지 않는 이들은 시험들에 노출된다.
말4:1-‘그들에게 뿌리도 가지도 남아있지 않는다’=선행이 없고, (영적) 진리도 없다.
이14:30-‘가믐으로 뿌리를 죽이는 것’=주님에 의해 내면에 저축되었던 선들과 진리들을 거두어가버리는 것.
이11:10-‘이새의 뿌리’=주님으로부터 이 선이 있다.
계5:5-‘다윗의 뿌리 유다 지파로부터’=그분의 인간 안에서 신성한 선이 신성한 진리와 하나됨을 통하여.
계22:16-‘나는 다윗의 뿌리이고 자손이다’=그분은 주님 자신, 즉 세상에서 태어나셨던 그분, 고로 주님의 신성한 인간 안에 게신 주님. 이로부터 그분은 ‘다윗의 후손과 뿌리라 불리운다.’
겔17:6-‘뿌리들’=지식들.
이14:29-‘뱀의 뿌리’=거짓이 시작됨 또는 거짓 원리.
예17:8-‘강가에 그것의 뿌리를 내보낸다’=영적 인간으로부터 자연적 인간 안으로 총명이 확장됨.
호14:5-‘그는 자기 뿌리들을 박을 것이다’란 거듭남의 둘째 상태를 의미한다. 즉 이 상태는 자연 평면에서 거듭남이 결실을 보는 것이다. 그이유가 거기에서 뿌리들이 고정되기 때문.
시80:9-‘당신은 그것의 뿌리들이 뿌리를 가지도록 하셨다’=질서에 의거한 가르침, 즉 그들은 교회 안으로 소개 받았다는 것.

(씨를) 뿌리다 (sow)

* seed도 참조
예12:13-‘밀을 뿌리는 것’=사랑과 선행으로부터 있는 선들.
예2:2-‘뿌려지지 않은 토지’=진리들의 결점.
신21:4-‘쟁기질도 말고 뿌리지도 말라’=무지 때문에 신앙으로부터의 선들과 진리들로 연마되지 않은 것.
출23:10-‘육 년 동안 너는 토지에 뿌릴 것이다’=첫 번째 상태, 즉 교인이 신앙의 선들과 진리들로 가르쳐질 때이다.
출23:11-‘(칠 년째에) 토지에 뿌리지 마라’=이전 같이 진리들로 이끌어가지 말라.
시107:37-‘들판들에 뿌리는 것’=가르쳐지는 것, 그리고 진리들을 받는 것.
신29:23-‘뿌려지지 않는 것’=교회의 진리에 대한 수용력이 없음.

사과나무 (apple-tree)

욜1:12-‘종려나무’=영적 선으로부터 있는 심정의 기쁨. 그리고 ‘사과나무’=자연적 선으로부터 있는 심정의 기쁨.

사시나무 (poplar)

* 포푸라나무
* 창세기 30장 37절. ‘야곱은 사시(버드)나무의 새가지를 가지고…’ = 자연적 선의 적절한 능력. ‘사시나무’ = 자연의 선.

삼목 (cedar)
백향목 (cedar)
송백 (cedar)

겔31장-합리성이 ‘레바논의 삼목’이라 불리운다.
시148:9-‘과일 나무’=천적 인간, ‘삼목’=영적 인간.
호14:6-‘레바논’은 삼목들을 명시힌다. 이것=영적인 것들, 또는 신앙의 진리들.
습2:14-‘삼목들이 벗겨지게 할 것이다’=지적인 진리.
이2:13-자아 사랑이 드높아 있는 ‘삼목들’에 의해 묘사되어 있다.
이60:13-교회, 교회가 소유한 천적, 영적인 것들이 ‘레바논의 영광’, 또는 ‘삼목들’이다.
겔31장-‘아시리아 사람’, 그리고 ‘삼목들’=합리성.
예22:14-‘창문을 도려내고 삼목으로 판자를 입히고 주홍으로 칠하는 것’=지적 진리들과 영적 진리들을 왜곡하는 것.
겔31장-‘삼목들’=합리적인 것들.
암2:9-자아 사랑의 악이 ‘삼목의 높이, 그리고 상수리나무의 강함’에 의해 묘사되어 있다.
민19:6-‘삼목 목재’=내적 영적인 진리. ‘우슬초’=외적 진리. 고로 ‘삼목’에 의해 순수하게 함의 내적 수단, ‘우슬초’는 순수하게 함의 외적 수단이 의미된다.
시92:12-‘종려나무’=선, ‘삼목’=진리.
사9:15-‘(가시 나무) 태워버리겠다는 레바논의 삼목들’=선으로부터의 진리들.
이60장-‘레바논의 영광’, 또는 삼목=영적인 선과 진리.
* 싯딤 목재는 가장 우수한 삼목의 목재였다. 그리고 ‘삼목’에 의해 교회의 영적 평면이 의미되어진다.
겔31:5-‘아시리아 사람’=계몽된 합리성. ‘레바논의 삼목’=영적 교회. ‘삼목의 높이’=선의 수준.
겔17:3-‘레바논’=영적 교회. 여기서의 ‘삼목’=영적 교회의 진리.
이41:19-‘삼목’ 그리고 ‘기름 나무’가 언급되고 있다. 그이유는 ‘삼목’=영적 선, 그리고 ‘기름 나무’=천적 선. 영적 선은 이웃을 향한 선행이다.
시29:5-‘삼목들과 레바논, 이것을 그분은 꺽으실 것이다’에 의해 합리적 인간으로부터의 거짓들이 뜻해진다.
시29편-‘레바논의 삼목들’=진리에 대한 지식들. 그러므로 ‘여호와의 음성이 그것들로 송아지 같이 뛰게 만드신다’라고 말해진다.
겔31장-아시리아 사람이 여기서의 경우 ‘레바논에 있는 삼목’이라 불리운다, 그이유는 ‘송백’이 ‘아시리아 사람’과 같은 의미를 가지기 때문. 특히 선으로부터의 진리. 그리고 ‘레바논’=그것이 있는 마음, 그이유가 삼목들이 있는 곳이 레바논이기 때문.
겔17:22-‘걸출한 삼목’=영적 진리.
이41:19-‘싯다의 삼목’=진짜 진리.
겔31:15-‘삼목’=영적 교회의 진리.
이41장-영적 인간, 또는 내적 인간 안에 있는 교회의 이런 것들이 ‘싯다의 삼목’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겔31:3-9-과학적 진리와 지식들을 통하여 합리성이 성장함이 ‘레바논에 있는 삼목’에 의해 묘사되고 있다. 이를 수단으로 합리성 또한 의미된다.
겔31장-‘아시리아 사람’=합리성, 그리고 ‘삼목’=지적 평면.
시80:10-‘하느님의 삼목들’=영적 진리들.
이37:24-‘레바논’=영적 교회. 그리고 ‘삼목들’=선으로부터 있는 내적 진리들.
이2:13-‘레바논의 삼목들, 그리고 바산의 상수리나무’에 의해 인간 자신의 총명으로부터의 자만심이 의미된다. 내적 자만은 ‘레바논의 삼목’, 외적 자만은 ‘바산의 상수리나무’에 의해 각각 의미된다.
시92편-‘종려나무’=영적 선, ‘삼목’=이 선으로부터의 진리, 그리고 ‘레바논’=영적 교회.
민24:6-‘침향목’=자연적 인간 속에 있는 이런 것들, ‘삼목들’=합리적 인간 속에 있는 이런 것들.
사9장-‘레바논의 삼목들’=진리들로부터 있는 합리적인 것들.
겔31장-‘삼목’=영적 근원으로부터 있는 교회속의 사람의 합리성.
이14:8-‘상수리나무, 그리고 레바논의 삼목들’=외적 의미에서, 그리고 내적 의미에서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
겔17장-‘삼목’ 여기서의 경우, 그밖의 말씀에서=영적 합리적 교회, 이는 홍수후 고대인들과 더불은 교회와 같다.

삼림

* 숲을 참조하라.

상수리나무 (oak)
상수리나무숲 (oak-grove)

* 모레, 마므레도 참조
이2:14-여기서 자아 사랑이…’바산의 상수리나무’에 의해 묘사되어져 있다.
창12:6-(천적 인간의) 과학적인 것들이 ‘상수리나무 숲’에 비교되고 있다, 그리고 이 의미는 그것들의 뒤얽킨 나뭇가지들로부터이고…상수리나무 숲의 나무들에 의해 외면의 지각들, 외적 인간 속에 있는 과학적인 것들이 의미된다.
호4:13-‘상수리나무, 포풀러나무, 테레빈나무(terebinth, robur)’=그들이 신뢰한 많은 조잡한 지각들.
창35:4-‘야곱은 그것들을 세겜 근처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 감추었다’=영원한 거절…’상수리나무 아래’=영원으로; 그이유가 상수리나무는 아주 오랜 세월 성장하는 나무이기 때문…그리고 또한 뒤엉킨 것도 의미하는데, 즉 오류와 거짓인 것도 의미한다; 그이유는 자연의 가장 수준 낮은 것은 상대적으로 더 뒤엉켜있고 오류투성이기 때문, 이것이 육체 속에 있는 감각적인 것으로부터의 쾌락과 그것의 과학적인 것들, 고로 오류로부터 끌어내는 만큼 상대적으로 더욱 뒤엉켜 있다; 그이유가 특별한 측면에서 상수리나무는 자연 속의 가장 수준 낮은 것을 의미하기 때문; 그결과 좋은 의미에서 거기 있는 진리들과 선들; 그리고 나쁜 의미에서 거기 있는 악들과 거짓들.
창35:8-‘(드보라가)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 매장했다’=항구적으로 거절했다…’상수리나무 아래’=항구적으로.
창35:8-‘알론바굿’은 ‘울고 있는 상수리나무’를 뜻한다. 이 장소가 알론바굿이라 불린 이유는 ‘상수리나무’=자연의 가장 낮은 것이기 때문. 이 낮은 것 안으로, 이 낮은 것으로부터 유전적 악은 내던져진다.
암2:9-자아 사랑의 악이 ‘상수리나무의 강함’…에 의해 묘사되고 있다.
* 올리브나무, 포도나무, 삼목(cedar), 포풀러나무, 그리고 상수리나무에 의해 각 수준, 즉 천적, 영적, 합리적, 자연적, 감각적인 교회의 선과 진리가 뜻해진다.
호4:13-‘상수리나무, 포풀러나무, 테레빈나무’=자연적 인간의 가장 낮은 선으로부터의 진리와 진리로부터의 선.
이2;14-‘레바논의 삼목들’ 그리고 ‘바산의 상수리나무들’=자신 고유의 총명으로부터의 자만…(후자)=외면의 자만.
이1:30-‘상수리나무’=자연적 인간.
이2장-‘바산의 상수리나무’=지식으로부터 자랑하는 이들; 그이유가 ‘상수리나무’는 자연적 인간을 서술하는바, 이 인간에 속하는 지식.
이14:8-‘상수리나무’, 그리고 ‘레바논의 삼목’=외적, 내적 의미에 있는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

생명들의 나무 (tree of lives)

* 나무를 보라

석류 (pomegranate)

출25:31-‘그것의 석류들’=선으로부터의 과학물들.
학2:19-‘포도나무, 무화과-나무, 그리고 석류(나무)’=각기 제 질서에서 영적인 것, 자연적인 것, 과학적인 것, 이 중에서 과학적인 것이 마지막에 해당된다.
신8:8-‘석류들’=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
습2:14-‘석류들’=말씀으로부터의 지식들.
욜1:12-석류나무=감각적인 진리와 선, 이것은 자연 평면에서 최말단이다.

선과 악에 관한 지식의 나무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 나무를 보라

소나무 (pine tree)

* 소나무잎 = 감각적 빛으로부터의 합리적인 진리.

소돔의 포도나무

* 포도나무를 참조.

송진
역청 (bitumen)

창6:14-‘그것을 역청을 가지고 안팍으로 역청으로 처리하라’=탐욕들이 침수시키려듬으로부터 보존함…원문에서는 그것이 역청을 가지고 역청으로 처리되어져야 한다라고 읽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보호를 나타내는 단어가 사용되어져 있다. 그리고 이 단어는 보상, 속죄(expiate), 또는 달램, 속죄(propitiate)로부터 파생되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같은 것을 포함한다. 그이유가 주님의 보상, 또는 달램은 악이 침수하려듬으로부터 보호함이기 때문.
창11:3-‘그들은 진흙을 위하여 역청을 가졌다’=선을 위하여 탐욕으로부터의 악
창14:10-‘싯딤의 골짜기는 역청의 샘들, 역청이 가득한 샘들이었다.’ 이를 수단으로 탐욕들로부터의 불결하고 깨끗치 않은 것들이 의미된다.
출2:3-‘그녀는 그것을 역청과 송진으로 발랐다’=선인 것이 악들과 거짓들과 혼합되었음. ‘역청’=악들과 혼합된 선, 그리고 ‘송진(pitch)’=거짓들과 혼합된 선. 역청과 송진은 불이 잘붙는 성분인 유황을 함유하고, 또한 색깔도 검정쪽인바, 이는 반대적 의미에서는 악과 거짓이 의미된다.
나3:14-‘역청’=결합하는 악으로부터의 거짓.

역청 (송진, pitch)

창6:14-‘역청’=끔찍한 몽상들.
* ‘역청과 유황’=탐욕들으로부터의 거짓들과 악들.
이34:9-‘불타는 역청’=끔찍한 탐욕들.

숲 (forest)

* (천적 인간의) 합리적인 것들이 삼목들의 숲과 이와 유사한 나무들, 레바논에 존재했던 것과 같은 나무들에 비교되어진다.
겔20:46-‘남쪽의 숲’=진리들의 빛 안에 있는 이들, 그리고 그것을 절멸시키는 것. 고로 교회 내에 이런 품성 속에 있는 이들.
이21:13-‘숲에서 밤을 보내는 것’=선 측면이 황무해지는 것. 그이유가 ‘아라비아’=천적인 것들 안에 있는 이들, 즉 신앙의 선들 안에 있는 이들. ‘거기서 숲에서 밤을 보내는 것’=선들 안에 더 이상 있지 않는 것, 이로부터 황무함이 온다.
시80:13-‘숲(wood)에 곰’=거짓.
신19:5-‘나무를 자르는 것’=일에 공적을 놓는 것. 그러나 ‘숲에서 나무를 자르는 것’=이것들과 이것과 비슷한 것들을 토의하는 것, 또한 그것들을 토론에 가져다 놓는 것. ‘숲’=종교적인 것.
예46:23-‘숲에서 나무를 베어쓰러트리는 것’=거짓 종교로부터 행동하는 것, 그리고 교회 속에 있는 이런 것들을 파괴하는 것. 그이유가 교회가 ‘숲’, ‘동산’, 그리고 ‘낙원’이라 불리우기 때문. 지식으로부터 ‘숲’, 총명으로부터 ‘동산’, 지혜로부터 ‘낙원’. 나무들(trees)=선과 진리에 관한 지각. 그리고 또한 그것들에 관한 지식. ‘숲’=지식 측면에서의 교회, 고로 외적인 것들 측면에서의 교회, 고로 종교적인 것.
시96:12, 132:6-‘그때에 숲의 나무들이 노래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나무의 들판에서 그분을 발견했다’에서 숲에 의해 지식 측면, 또는 외적인 것 측면에서의 교회가 의미된다. 이10:18에서 ‘그의 숲’=진리의 지식 측면에서의 교회. ‘갈멜(Carmel)=선에 대한 지식 측면에서의 교회.
겔39:10-‘들판으로부터 나무(wood)’=교회의 내면의 선들. 그리고 ‘숲으로부터 나무’=외면의 선들.
시29:9-‘그가 완전히 벗긴 숲들’=말씀이 그들에게 여는 (영적)지식들과 지식들.
이44:23-‘숲’=자연적 진리.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나무들’=진리에 대한 지식들.
겔34:25-‘숲에서 그들이 잠들 것이다’=그들을 해치지 않는 거기로부터 파생된 거짓들.
호2:12-‘숲’=단지 오류들, 그로부터 파생된 거짓들에 있는 감각적 인간.
이44:23-‘숲’에 의해 그에게 속하는 모든 것들에 관계하는 자연적, 또는 외적 인간이 뜻해진다. 그리고 ‘모든 나무’에 의해 그 속에 있는 지식에 관한 문제(matter)인 것이 뜻해진다.
겔20:47-‘남쪽의 숲’에 의해 교회 내의 거짓, 결과적으로 그 속에서 거짓들에 있는 이들…악으로부터의 거짓이 ‘숲’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예10:3-‘숲’=자연적인 것. 여기서는 영적인 것으로부터 분리된 자연적인 것.
시104:20-‘숲의 들짐승’=과학물에 대한 애착.
겔31:3-‘아름다운 가지와 그늘있는 숲’=과학물들을 수단으로 합리적 진리들을 통한 총명.
이56:9-교회 밖에 있는 나라들이 ‘숲에 있는 들짐승’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들짐승’=자연적 그리고 감각적 인간. 그리고 ‘숲’=그의 지식과 파생되는 희미한 총명.
왕하19:23-‘그의 열매 풍성한 들판의 숲’=과학물.
이32:15-이로부터 그는 선과 진리에 관한 (영적) 지식에 관한 지식을 소유한다는 것이 ‘열매 풍성한 들판이 숲으로 간주할 것이다’에 의미되어 있다. ‘숲’은 자연적 인간, ‘동산’은 영적 인간으로부터 있는 것을 서술한다. 그러므로 ‘숲’에 의해 지식이 의미되어지고, ‘동산’에 의해서는 총명이 의미되어진다.

신풍나무

* 밤나무, 플라타너스나무를 참조하라.

심다 (plant)

창9:20-‘포도원을 심는’ 것=영적 왕국의 교회를 창설함.
출15:17-‘당신께서는 그들을 심으실 것이다’=계속적으로 거듭남. ‘심는 것’=거듭나는 것; 그이유가 거듭남은 심어 키우는 것과 그 여건이 비슷하기 때문.
이17:10-‘기쁨의 식물을 심는’ 것=애착들을 총애하는 것들.
시128:3-‘식물들’=진리들.

싯딤 (Shittim, Shittah-tree)
싯다 (Shittah)

출25:5-‘싯딤 목재들’=주님으로부터 있는 공적의 선들, 고로 주님 만으로부터 있는 선들.
출25:5, 이41:19-싯딤 목재는 가장 우수한 삼목(cedar)으로부터의 목재였다는 것은 이41:19, 즉 ‘나는 싯다의 삼목을 광야에 놓을 것이다’로부터 분명해진다. 거기서 ‘싯다의 삼목’=영적 선.
출25:10-‘싯딤 목재들로부터’=정의.
출25:23-‘싯딤 목재들로부터’=자비로부터…그이유가 공적의 선이 자비이기 때문.
출26:15-‘싯딤 목재를 가지고’=주님의 신성한 인간으로부터 있는 공적의 선…이 선은 천국을 규율하고 천국을 떠받쳐주는 유일한 선이다.
출27:6-‘싯딤 목재로 장대를’=정의의 선, 그리고 파생되는 힘…‘싯딤 목재들’=공적의 선, 또는 정의의 선. 이 선은 그분의 신성한 인간으로부터의 사랑의 선이다.
출30:1-‘싯딤 목재로 너는 그것을 만들 것이다’=신성으로부터의 사랑으로부터. ‘싯딤 목재’=공적의 선, 그리고 주님만으로부터 있는 정의의 선. ‘싯딤 목재’=사랑인 이유는 주님이 세상에 계셨을 때, 그분은 신성한 사랑으로부터 모든 지옥들과 싸우셨고, 하여 인류를 구원하셨고, 이로부터 그분만이 공적을 가지시게 됐고, 정의가 되셨기 때문, 그러므로 주님의 공적의 선은 그분의 신성한 사랑이다.
출30:5-‘싯딤 목재로 장대를’=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 있는 선으로부터의 힘.
* ‘싯딤’이라 부른 나무(wood), 이것은 시내산 위에, 또는 시내산 기슭에 있었는데, 가장 고상한 삼목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것의 향기 높은 기름으로부터, 고로 그것의 냄새로부터, 그리고 순수성으로부터 다른 나무(tree)들에 앞서 가장 우수한 산의 나무였다.
* ‘싯다의 삼목’=진짜 진리. (=합리적 진리).
욜3:18-‘싯딤의 시내(stream)에 물을 공급할 것이다’=(영적) 지식들과 지식들 안에서 이것들을 예증할 것이다. (=이해성으로부터 예증함).

싹 (blade)

* 맨처음의 과학적인 진리.
* 풀을 참조.

싹 (bud)
싹트다 (germinate)

창40:10-‘싹이 돋았다’=유입을 수단으로 재출생이 옴. ‘싹트는(bud) 것’, 또는 잎을 생산하는 것, 그 후에 꽃이 피는 것=재출생의 첫 순서.
창41:6-‘그것 뒤를 이어 싹이 돋았다’=가까이에서 나타남. 여기서의 ‘싹트는 것’=나타남.
출10:5-‘들판으로부터 너에게 싹을 티우는 모든 나무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울 것이다’=그들이 교회로부터 가졌던 모든 지식들이 소모됨.
시132:17-이로부터 뿔이 ‘싹튼다’고 말해진다, 그이유는 모든 영적 싹틈(영적 성장)은 선으로부터 있는 진리 속에 있기 때문. 그러므로 옛날에는 그들은 뿔들을 싹트게 만들었다.
시147:8-‘누가 산에서 풀이 자라게 만드느냐?’=사랑의 선에 있는 이들을 위한 자양분.
창8장-새로운 교회의 시작이…땅이 새로이 싹틔운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이45:10-‘땅에 물을 대는 것, 하여 땅이 싹을 내고 열매를 산출하는 것’=교회가 생기있는 것. 하여 교회는 교리와 신앙으로부터의 진리와 시랑과 선행으로부터 선을 생산하는 것이다.
시147편-‘그것의 싹틔움에 복을 주시는 것’=새로운 생산을 계속하는 것, 그리고 진리들이 튀어오르게 하는 것.
시104:14-‘여호와께서는 짐승을 위하여 풀이 싹틔우게 하신다’=말씀으로부터의 진리들을 수단으로 자연적 인간에게 자양분을 주고 가르침이 있다.
시147편-‘풀이 자라게 하는 것’=말씀으로부터의 지식들을 수단으로 자연적 인간을 가르침.
마13:26-‘풀이 싹틔웠을 때’=진리가 자랐을 때…‘풀잎이 싹틀 때’=처음 받아질 때 같은 진리.

쌀보리 (rye, spelt)

* 나맥으로도 번역되고 있음
* 출애굽기 9장 32절. ‘밀과 쌀보리’ = 내면의 자연으로부터의 선, 그리고 진리.

쐐기풀 (nettle)

* 스바냐 2장 9절. ‘쐐기풀이 덮은 곳’ = 황폐된 선

쓴쑥 (wormwood)

암6:12-‘너희는 정의의 열매들을 쓴쑥으로 변하게 했다’=선들이 쓴쑥으로 변하였다. (=선이 악으로 변하였다).
계8:11-‘별의 이름은 쓴쑥이라 불리우고, 땅의 삼분의 일이 쓴쑥이 되었다’=지옥의 거짓으로부터 그들의 총명이 있고, 이 거짓을 통하여 말씀 속의 모든 진리들이 왜곡되었다.

씨 (seed, sow, semination, seminal)

창1:11-‘씨를 생산하는 풀잎(herb)’. 인간이 천국적인 씨들을 받을 만큼 준비가 되었을 때…주님은 …더 쓸모있는 어떤 것이 있게 하신다. 즉 다시 씨들이 있게 하시는 것, 이는 선한 어떤 것, 이것이 ‘그 안에 씨를 가진 열매 맺는 나무’라 불리운다
창1:29-‘씨를 생산하는 풀잎’=선용에 관계하는 모든 진리.
창3:15-‘뱀의 씨’=불행한 모든 것; ‘여자의 씨’=주님에 대한 신앙.
창4:25-‘하느님께서 나에게 아벨 대신 또 다른 씨를 점지해주셨다’=그분은 또 다른 신앙을 주셨다는 것.
창7:3-‘온 땅의 얼굴 위에서 씨를 생기 있게 하는 것’=신앙 속의 진리들; (그이유가) 이 교회를 수단으로 씨가 생기있어졌기 때문; ‘씨’=신앙.
창8:22-‘씨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거듭나지게 되는 인간, 그리고 이로부터 있는 교회…말씀에서 인간은 ‘들판’에, 고로 ‘씨뿌리는 때’에 비교된다…여기서의 경우 모두 각각의 인간을 취급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그들 모두 그리고 각각에게 씨를 뿌리심의 일이 부족되게 하는 일은 결코 없다는 것, 이는 그가 교회 안에 있든, 교회 밖에 있든 모두를 향해서이다…주님에 의한 씨뿌림 없이 인간은 그 어떤 작은 선도 행할 수 없다. 선행으로부터의 모든 선, 이방인들까지 포함해서 주님으로부터의 씨이다…
창9:9-‘네 뒤의 네 씨들과 더불어’=새로이 창조되어지는 이들…‘씨’, 글자 의미에서=후손; 그러나 내적 의미에서 신앙; 그리고 선행이 있지 않은 곳에는 신앙도 있지 않은바, 선행 자체가 ‘씨’에 의해 뜻해진다…선행이 있는 곳에…씨가 있다; 그 이유가 천적인 씨가 선행이기 때문.
예2:21-‘진리의 씨’=선행, 또는 (영적 왕국의 교회 속의) 선행으로부터의 신앙.
이6:13-‘거룩함의 씨…’=아껴두신 거룩한 것.
이65:23-사랑으로부터 거듭나지는 그분의 왕국에 있는 이들이 ‘여호와의 축복된 씨‘라 불린다.
창12:7-‘네 씨에게 나는 이 토지를 줄 것이다’=천적인 것들이 신앙을 가지는 이들에게 주어질 것이다는 것….‘씨’=주님을 향한 신앙.
창13:16-‘먼지 만큼 씨’=셀 수 없이 불어남.
창15:3-‘당신은 저에게 씨를 주지 않으셨다’=교회 안에 내적인 것이 없다. ‘씨’=사랑과 신앙.
이48:19-‘모래 만큼 씨’=선.
창15:5-‘그렇게 네 씨는 있을 것이다’=주님의 왕국의 상속자들. ‘씨’=사랑과 사랑에서 파생된 신앙; 또는 사랑과 신앙 안에 있는 천사들과 인간들.
창15:13-‘네 씨는 방랑자 일 것이다’=선행과 신앙이 찾아보기 힘들다.
창16:10-‘나는 네 씨를 불릴 것이다’=합리적 인간의 열매 풍성함…‘씨’=사랑과 신앙; 여기서의 경우, ‘씨를 불리는 것’=합리적 인간에 있는 사랑의 천적인 것들이 열매 풍성함.
창17:7-‘네 이후의 네 씨’=그분 안에서의 신앙을 가진 이들.
창17:12-‘네 씨가 아닌 외국인’=교회 밖의 사람.
창21:12-‘이삭 안에서 씨로 너에게 불리워질 것이다’= 선 안에 있는 이들의 모든 구원은 신성한 인간으로부터 있다.
창22:17-‘네 씨’=신앙으로부터의 선 안에 있는 영적 인간은 신성한 인간에 의해 구원받아진다.
창22:17-‘네 씨는 네 적들의 문을 상속받을 것이다’= 선행과 신앙이 이전에 악과 거짓이었던 장소를 계승할 것이다는 것.
창22:18-‘네 씨 안에서 땅의 모든 나라들은 복될 것이다’=선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의 구원.
창24:7-‘네 씨에게 나는 이 토지를 줄 것이다’=주님의 인간에 속하여 있는 신성한 진리. ‘씨’=선행으로부터의 신앙,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이들; 그리고 신앙으로부터의 모든 선과 진리가 주님으로부터 이듯, 최고 의미에서 ‘씨’로 뜻해지는 신성한 진리 자체.
마8장-‘씨’=주님의 말씀, 고로 신앙 속의 진리.
창26:3-‘네 씨에게’= 진리…고로 주님의 신성으로부터인 진리, 이것이 ‘네 씨’이다.
* 내적 의미에서 ‘씨’는 이삭으로부터의 어떤 후손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주님의 아들들인 모두, 고로 그분의 왕국 속의 아들들, 또는 주님으로부터인 선과 진리 안에 있는 이들이다; 이들이 ‘씨’이듯, 주님으로부터의 선과 진리 자체도 ‘씨’이다; 그이유가 이것들이 아들들이기 때문; 그러므로 주님으로부터 있는 진리들 자체가 마태복음에서 ‘왕국의 아들들’이라 불리운다. 즉 ‘좋은 씨를 뿌리는 그분은 사람의 아들이다; 들판은 세상이다; 씨는 왕국의 아들들이다.
창26:4-‘나는 네 씨를 불릴 것이다’=진리들이 증가함.
창26:12-‘이삭은 그 토지에 씨를 뿌렸다’=합리성에 나타나는 내면의 진리들…‘씨뿌리는 것’ 최고 의미에서=파종자이신 주님으로부터 있는 신성한 진리; 이로부터 내적으로 인간과 더불은 선과 진리.
신10:15-‘하느님이 선발한 씨’라 불리는 교회에 있는 그들의 선들과 진리들.
창32:12-‘네 씨는 바다의 모래 만큼’=열매 풍성함과 번창함…‘씨’=선행으로부터의 신앙, 또한 선행 자체.
창35;12- ‘네 이후의 네 씨에게 나는 이 토지를 줄 것이다’=신성한 진리에게 신성한 선이 음미될 것이다. ‘씨’=신앙으로부터의 진리; 최고 의미에서 신성한 진리…(고로) ‘네 이후 네 씨에게’=신성한 진리가 그분의 것이 되어짐.
시126:6-‘씨 던짐을 수행하는 것’=진리들을 가르침.
창38:8-‘네 형의 씨를 일으키라’=교회가 멸하지 않도록…‘씨’=선으로부터의 진리, 또는 선행으로부터의 신앙.
마8장-‘씨들’=신성한 진리들.
겔17:5-‘토지 속의 씨’=교회 속의 진리.
슥8:12-‘평화의 씨’=내적 인간 안에 있는 선. (=아껴두신 것들: 선으로부터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
창46:6-‘야곱과 그와 더불은 모든 씨’=자연적 진리와 거기에 속해 있는 신앙 속의 모든 것들…‘씨’=선행으로부터의 신앙.
창47:19-‘씨를 주는 것’=선행의 선과 믿음의 진리가 유입됨.
창47:23-‘보라 너를 위한 씨가 있다 그리고 너희는 지면에 씨를 뿌릴 것이다’=심어지게 되는 선행의 선과 신앙 속의 진리. ‘씨’=선으로부터의 진리. 고로 양쪽 모두를 의미한다.
창47:24-‘들판의 씨를 위하여’=마음의 자양분을 위하여. ‘씨’=진리와 선, 고로 신앙과 선행.
창48:4-‘나는 이 토지를 네 씨에게 줄 것이다’=주님의 왕국은 이 선과 진리 안에 있는 이들에게. ‘씨’=믿음 속의 진리와 선행으로부터의 선.
창48:11-‘하느님께서 나로 네 씨를 보게 해주셨다’ = 선과 진리.
창48:19-‘그의 씨가 국가들에 가득할 것이다’=신앙 속에 있는 진리가 지배할 것이다. ‘씨’=신앙과 선행; 여기서의 경우 신앙, 그 이유는 이것이 에브라임을 서술하기 때문.
출16:31-‘고수 씨 같이 희다’=그 안에 있는 순수한 진리. ‘씨’=신앙 속의 진리.
마13:37-‘좋은 씨’=주님으로부터 있는 신앙 속의 진리. (=신성한 진리)
이23:3-‘시홀의 씨’=과학적 진리.
단2:43-‘인간의 씨’=자아로부터 있는 신앙 속의 진리; 고로 자아와 세상을 찾음으로부터 악들을 응용함에 의해 섞음질되고 왜곡된 진리.
출30:21-‘그에게 그리고 그의 씨에게, 그들의 자손 대대로’=주님으로부터 진행되는 것들을 받는 모든 이, 고로 그분에 의해 거듭나지는 이들 모두. ‘씨’=주님으로부터 태어나는 이들.
출32:13-‘나는 네 씨를 별들 만큼 불리겠다’=선들과 진리들, 그것들의 지식들.
출33:1-나는 그것을 네 씨에게 줄 것이다’=주님으로부터 사랑으로부터의 선과 신앙 속의 진리에 있는 이들에게.
마13장-(파종자의 비유에서), 진리가 들판에 있는 ‘씨’에 의해 뜻해진다. ‘파종자’=주님; ‘씨’=그분의 말씀, 고로 주님의 진리: ‘길 위에 있는 씨’=주님의 진리를 돌보지 않는 이들과 더불어; ‘돌이 많은 곳에 있는 씨’=주님의 진리를 돌보는 이들, 그러나 진리 그 자체를 위함이 아닌 것, 즉 내면적으로가 아닌 것; ‘가시덤불 한가운데의 씨’=악의 욕망 안에 있는 이들과 더불어; ‘좋은 지면에 있는 씨’=주님으로부터 말씀 안에 있는 진리들을 사랑하는 이들, 그래서 그분으로부터 그분의 진리들을 행하여 열매 맺는 이들과 더불어.
계12:17-‘그녀의 남은 씨’=…받는 초심자들.
예22:30-‘그의 씨’=지옥적인 거짓.
이14:20-‘악행자들의 씨’=악으로부터의 무시무시한 거짓.
이30:23-‘네 씨의 비’=진리가 배가됨.

아카시아 (acacia)

* 싯딤나무를 참조.

아름다운 나무 (goodly trees)

* 레위기 23장 40절.
* 아마도 올리브나무일 것으로 추정

알로에 (aloe)

* 침향목을 참조.

야채 (vegetable)

마13:32-‘그것이 성장하자, 그것은 모든 야채들(pot-herbs) 보다 더 크다’…신앙이 사랑과 결합되어짐에 따라 신앙은 더 큰 야채가 된다.
창9:3-‘야채’=더 낮은 수준의 즐거움들…그것들이 ‘풀잎의 야채’라 불리우는데, 그이유는 그것들은 오직 세상적이고 육체적일 뿐이기 때문. 또는 외적일 뿐이다는 것.
이37:27-‘풀의 야채’=매우 수준 낮은 것.
신11:10-‘야채들의 동산’=낮은 수준인 것.

양물푸레 나무 (ash)

양파 (onion)

민11:5-‘양파’, 등등=가장 낮은 자연 평면들, 즉 감각적인 육체적 평면.

엉컹퀴 (thistle)

창3:18-‘가시와 엉컹퀴’=저주와 황폐함
호9:6-‘엉컹퀴가 그것들을 소유할 것이다’=악이 그것들을 뒤집을 것이다.
호10:8-‘엉컹퀴와 가시’=악과 거짓이 예배 속의 선들과 진리들을 황폐시킴. (=악들과 거짓들이 들어가서 예배를 만들 것이다)
창 3장-‘가시와 엉컹퀴’=거짓과 악 뿐인 것.

에셀나무 (grove)

* 작은 숲을 보라.

열매 (berry)

슥4:12-‘올리브나무들의 열매들’=거기 있는 거룩한 선들
슥4장-두 ‘올리브나무들’과 ‘올리브 열매들’=천적인 선들, 즉 주님을 사랑함과 형제와 동료를 사랑함으로부터 있는 선들.
이17:6-(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들이) 파괴되어진다는 것이 주울 것이 남아 있는 것이 마치 올리브나무를 흔들때 꼭대기에 두세개 남음 같고 열매 풍성한 나무의 꼭대기에 너댓 개 남음 같다로 묘사되어 있다.

열매 (fruit)
열매를 맺게 하다 (fructify)
열매를 맺다 (fruitbearing)

창1:22-‘열매가 많이 열리고 번성하라’…주님으로부터 그것 안에 생명을 가지는 모든 것은 그 자체 거대하게 열매를 많이 맺고 번성한다; 이는 인간이 육체와 더불어 사는 동안 보다는 다른 삶에서가 더욱 놀랄만하다. 말씀에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사랑 속에 있는 여러 가지 것들을 서술하고, ‘번성하는 것’은 신앙 속에 있는 것을 서술한다; 사랑으로부터 있는 열매는 씨를 가지고 있다. 이 씨를 수단으로 사랑은 아주 크게 그 자체를 늘린다. 주님의 복주심 역시 말씀에서 열매 많이 맺음과 번성함을 의미한다, 그이유는 이것들이 그것으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창1:28-‘열매가 많이 열리고 번성하라’…태고인들은 이해성과 의지의 결합을…결혼이라 불렀다; 이 결혼으로부터 생산되어진 선 속의 것은 무엇이든 그들은 열매가 많이 열림이라고, 그리고 진리 속의 것은 무엇이든 번성함이라 불렀다.
창1:29-‘열매 있는 나무’=신앙으로부터의 선. ‘열매’는 주님께서 천적 인간에게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열매 있게 하는 씨’는 주님께서 영적 인간에게 주시는 것이다…천적인 양식이 ‘나무로부터의 열매’이다는 것은 다음 장, 즉 천적 인간이 취급되는 곳으로부터 명백해진다.
겔47:12-‘거기로부터 열매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달마다 그것은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의 열매는 양식(meat)을 위해 있을 것이다’…‘열매’=지혜, 이것은 그들을 위한 양식일 것이다.
창3:2-‘동산의 나무의 열매’=태고 교회를 수단으로 그들에게 밝히 알린 선과 진리. ‘그들이 먹지 않았어야 했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믿음으로부터의 선과 진리, 이는 그들이 자신들로부터 습득해서는 안된다는 것.
* ‘그들이 먹어도 되는 나무의 열매’=태고 교회를 수단으로 그들에게 밝히 알린 믿음으로부터의 선과 진리, 또는 믿음에 관한 지식들이다는 것은 이런 사실로부터 명백해질 것이다. 즉 앞서 천적 인간이 취급된 곳에서는 ‘동산의 나무’라 불렀는데, 여기서는 ‘그들이 먹어도 되는 동산의 나무의 열매’라 불러 열매가 추가되고 있다. ‘동산의 나무’=선과 진리 속에 있는 지각; 이 선과 진리를 근원으로부터의 ‘열매’라 불리고 이는 말씀의 여타 많은 곳에서도 예증된다.
창4:3-‘가인은 여호와께 드리는 공물로서 지면의 열매를 가져왔다’…‘지면의 열매’=선행 없는 믿음의 일들.
이37:31, 4:2, 45:8-선행의 일들은 살아있는 바, 말해지기를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는다’ ‘위쪽으로 열매를 맺는 것’은 선행으로부터이다. 이와같은 열매는 ‘빼어난 열매’라 불린다. 또는 ‘구원의 열매’라고도 불린다.
예32:19-‘그의 일들의 열매’=선행으로부터의 삶.
겔 47:12, 계22:2-‘열매’=사랑의 선과 선행의 선.
창 8:17-‘그것들이 열매를 많이 맺게 하라’=선의 증가; ‘그것들이 번성하게 하라’=진리의 증가…. 말씀에서 ‘열매맺는 것’은 선들에 관계되어 서술되고 ‘번성하는 것’은 진리에 관계되어 서술된다…이 구절이 취급하는 것은 외적 인간이 순종 쪽으로 돌아설 때, 내적 인간이 외적 인간을 운전하는 것이다…그러면 먼저 선이 열매맺고, 그다음 진리가 배가된다. 즉 외적 인간 안에서 선이 열매맺고 진리의 번성이 거행된다; 선의 결실은 외적 인간의 애착 안에서, 진리의 번성은 외적 인간의 기억 안에서이다. 여기서 외적 인간은 ‘땅’이라 불린다…이 땅 위에서 선과 진리는 열매맺고 번성한다.
창9:1-‘열매를 많이 맺으라’=선행으로부터의 선들, 그리고 ‘번성함’=믿음의 진리들, 이것이 지금 증가될 것이다.
창9:7-‘열매가 많이 열리고 번성하라’는 내면의 인간 안의 선들과 진리들에 관해 서술하고 있다…열매가 많이 열림과 번성함이 내면의 인간, 또는 합리성에 괸련되어 서술되는 이유는 내적 인간의 작용은 아주 일반적인 것 말고는 내면의 인간 안에서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서이다.
암6:12-‘공의의 열매’=선들, 이것이 쓴 쑥(식물)로 변하였다.
창 15:5-‘네가 (별들의) 수를 셀 수 있다면…’=사랑으로부터 있는 결실, 그리고 신앙의 증가, 즉 선으로부터 열매의 열림과 진리가 배가됨…그 이유는 이것들은 셀 수 없기 때문…
마3:10, 눅3:9-‘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잘리워 불에 던져진다’. ‘좋은 열매’에 의해 선행이 뜻해지고 있다; 자신에게서 스스로 이 선행을 박탈하는 자는 자신을 스스로 잘라 이런 불구덩이에 던진다.
창1:10-‘나는 네 씨를 크게 불리겠다’=인간이 자신을 선에 인접한 내면의 인간에 복종되게 할 때 있어지는 합리적 인간의 열매는 풍성하다는 것…이 구절에서 ‘씨를 불림’은 합리성이 그 자체 내면 또는 신성한 진리에 종속되게 할 때 합리성 안에서는 사랑으로부터의 천적인 것들이 열매를 많이 맺게 된다는 것을 의미해주고 있다. ‘불어남’은 진리들을, ‘열매 맺음’은 선들을 서술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구절의 경우 주님 자신이 취급되기 때문에 ‘불림’에 의해 ‘열매 풍성함’이 의미되는데, 그 이유는 그분의 합리성 안에 있는 모든 진리 그 각각은 선, 즉 신성을 만들기 때문에서이다.
창17:2-‘나는 너를 아주 크게 불릴 것이다’=진리에 애착함의 열매 맺음은 무한하다는 것. ‘불어남’이 진리를 서술하나, 이 구절은 그것이 주님에 관련하여 서술되므로=선으로부터의 진리의 열매는 무한하다는 것.
창17:6-‘나는 너를 아주 극도로 많은 열매를 맺게 만들 것이다’= 선의 열매는 무한하다는 것. ‘열매 맺는 것’은 선에 관련하여 서술하고 있다.
창17:20-‘나는 그를 축복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가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가 아주 극대하게 불어나게 만들 것이다’=그들에게 믿음의 선들과 그로부터의 진리들이 불어 넣어지되 거대하게 선물받을 것이다는 것; (그 이유가) ‘축복되어짐’=모든 선들을 선물로 받음…‘열매 맺음’= 그들이 선물로 받은 믿음의 선들; 그리고 ‘불어남’=파생되어지는 진리들.
계22:2-‘열두 열매들’=믿음의 열매들이라 불리워지는 것들; 그 이유가 ‘12’=믿음의 모든 것들이기 때문. (=선행의 모든 것들)
시107:34-‘열매의 토지가 소금 (의 토지)로’=진리 안에 있는 선이 황폐해짐.
창 22:17-‘나는 너를 크게 축복할 것이다’=진리에 애착함으로부터 열매가 많이 열림…열매 맺음이 여기서 말해지는 이유는 애착에 관련하여 서술되기 때문, 그러나 번성함은 이 애착에서 파생된 진리들을 서술한다.
창24:60-‘너 누이여 천 만 인의 어머니를 위해 존재할지어다’=진리에 애착함의 열매 맺음은 무한하다는 것…이것이 인간과 더불어서 일 경우는 이렇다: 인간이 거듭날 때까지, 즉 선과 진리의 결합이 그의 합리성 안에서 결과될 때까지 그 인간과 더불은 선들은 열매 맺지 않고 진리들은 번성하지도 않는다; 그 이유가 이런 다음의 열매 또는 후손이어야 합법적 결혼 또는 선과 진리의 결혼인 천국적 결혼으로부터 발생되는 것이기 때문…
창26:22- ‘우리는 토지에서 열매를 많이 맺을 것이다’= 거기로부터 선의 증가됨. ‘열매 맺음’=선의 증가. ‘열매 맺음’=선의 증가, 그리고 ‘번성함’=진리의 증가에 관련해 각각 서술하고 있다..
창27:27-‘여호와께서 축복하시는 것’=신성으로부터 열매 맺고 번성하는 것.
슥8:12-‘포도나무는 자기 열매를 맺을 것이다’=교회의 영적인 것 또는 믿음 속의 진리는 선을 줄 것이다는 것.
창28:3- ‘그리고 너희는 열매 많이 열려지게 하고 너희를 불어나게 하라’=선들과 이 선들로부터의 진리들. ‘열매 맺는 것’은 선에 관하여, ‘번성하는 것’은 진리에 관련하여 각기 서술된다.
계22:2-‘그것의 열매를 매달마다 산출하고…’=선을 수용하고 동시에 선을 실시하는 것들이 그때 그때 마다 언제나 새로운 상태임.
창30:2-‘너로부터 자궁의 열매를 보류하시는 분’=이것은 내부의 것으로부터 있어야만 한다는 것….그 이유가, ‘자궁의 열매’는 출생과 같은 의미를 지니기 때문; 즉 신앙 안의 진리와 선을 인정함 그리고 행동에 있는 선과 진리, 더욱이 신앙과 행동으로부터 진리와 선의 결합은 결국은 동일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창35:11-‘열매 많이 열리고 번성하라’=선 그리고 이 선으로부터 파생되는 진리, 곧 신성. ‘열매 열림’은 선에 관련하여, ‘번성함’은 진리에 관련하여 서술되고 있다.
암9:14-‘(포도)송이들을 만들고 그것 속의 열매를 먹는 것’=거기로부터 파생된 선들을 자기 것 삼는 것.
신26:2-‘땅의 열매의 첫 열매들’=거기로부터 파생된 선들.
창41:52-‘하느님께서 나로 열매 많이 열리게 하셨다’= 그런 결과 선으로부터 진리가 번성함. ‘열매 맺게 하심’=번성함, 즉 선으로부터의 진리의 번성; 그 이유가 ‘열매 맺음’은 선에 관련되는 서술, 그리고 ‘번성함’은 진리에 관련된 서술…그러므로 에브라임은 ‘열매 맺음으로부터 명명되어졌다.
겔36:8-(이 구절에서) 거듭남이 ‘가지를 주는 것, 그리고 열매를 낳는 것’에 (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창47:27-‘그들은 자신들을 열매 많이 열리게, 극도로 번성하게 만들었다’= 선행의 선들과 믿음의 진리들이 파생됨.
창48:4-‘그리고 그분은 나에게 말하셨다, 보라 나는 너를 열매 많이 열리게 만든다’=선행의 선과 믿음의 진리를 통하여 생기 있게 됨.
창49:2-‘요셉은 열매 많이 열리는 것의 아들이다’=영적 왕국의 교회. (그 이유가) ‘요셉’…외적 의미에서=결실과 번성; 그리고 ‘요셉’=선이 열매 맺음과 진리가 번성함 인 바, 그는 ‘열매 많은 것의 아들’이라 불리워진다.
출1:7-‘이스라엘의 아들들은 열매를 많이 열고 생산적이었다’=교회 속의 진리들이 선에 관련하여 증가되었다…‘열매 있는 것’=선에 관련된 것이 증가하는 것.
레26:9-‘너희들을 열매 많이 열게 하고 너희들을 번성하게 한다’=선행과 신앙이 선물된다는 것.
레23:40-‘영예의 나무의 열매’ 등등=인간의 가장 깊은 것으로부터 그의 외적인 것에 이르러 있는 선과 진리로부터의 환희; 가장 깊은 것인 사랑의 선이 ‘영예의 나무의 열매’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출10:15-‘(메뚜기가)나무의 열매(를 먹었다)=선으로 인식되는 모든 것; (그 이유가) ‘열매’=믿음의 일들 또는 선행의 일들, 고로 선들; 이로부터 ‘열매 맺는 것’은 선에 관련하여 서술하고 있다…’열매들’=선행의 일들, 고로 선들인 이유는 나무의 첫째는 씨를 함유하는 열매이고, 나무의 마지막도 씨를 함유하는 열매, 나무의 가지나 잎은 이 열매를 맺게 하는 중간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 이런 경우는 사랑의 선과 믿음의 진리의 경우와 똑 같다…‘열매들’=선들.
레23:39-그때 당시 그러모았던 ‘땅의 열매’에 의해 선행의 선이 의미되어지고 있다.
레23:40-그들이 첫째 날에 취하기로 되어 있는 ‘영예의 나무의 열매’=이식된 선 때문에 있는 환희와 축제.
출23:30-‘네가 열매 많이 맺어지기 까지’=선이 증가함에 따라서… 말씀에서 인간은 나무에 견주어지는 때가 많다. 이때 그의 신앙 속의 진리들은 나뭇잎들, 사랑의 선은 열매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이로부터 명백해지는 바, 열매 맺는 것이 인간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선 일 뿐 아니라 선이 증가하는 것이다. 마치 열매가 나무의 중요한 것(목적)인 것과 같다. 참으로 나뭇잎은 먼저 튀어나와 진다, 그러나 나뭇잎의 목적은 열매이다.
요15:5-‘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주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는다’=모든 선은 주님으로부터 있다는 것; ‘열매’=선.
계18:14-‘네 혼의 바램의 열매들’=천국의 축복받음과 행복함; 그 이유는 이런 것들이 교리와 예배에 관련된 모든 것의 열매들이기 때문…그리고 이것들은 인간들이 죽을 때, 그 인간의 바램들이기 때문…(=그들이 바빌로니아 국가의 전통에 따른 생활과 예배로부터 기대했던 즐거움과 환희들.)
계22:2-‘열 두(가지) 열매들을 맺는 생명의 나무’=그분의 신성한 사랑에 게신 주님, 이 분으로부터 인간이 자신으로부터인 듯 외관상 보여지는 모든 선들이 흘러나온다…‘열매들’에 의해 사랑의 선과 선행의 선, 즉 선한 일들이라 불리우는 것이 의미되고 있다.
마21:43-‘열매’=선.
레19:23~25-열매들이 인간 삶의 선들을 의미하기에, 이스라엘 교회에서…나무의 열매들은…할례되어져야…한다 라고 명령되었다.
레23:40-나무의 열매들이 생활의 선들을 의미하기에, 성막의 축제에서 그들은 영예의 나무의 열매를 먹어도 된다 라고,,,그리고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고 명령되었기도 하다.
레25:3, 신20:19,20-열매들이 생활의 선, 곧 사랑의 선을 의미하기에, 들판의 나무가 열매를 산출하는 것은 축복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열매를 산출하지 않는 것은 저주의 하나였다. 이와같은 이유에서 어떤 성읍을 포위하게 되었을 때, 좋은 열매를 지닌 나무는 어떤 나무이든 도끼로 찍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겔17:8-선으로부터의 진리가 번성하고 열매를 많이 맺음, 고로 총명의 증가가 ‘좋은 땅에 심어지고…열매를 산출함’에 의해 묘사되어 있다…‘열매를 산출함’=사용함에서 선들을 생산하는 것.
이4:2-‘땅의 열매는 장엄함과 꾸미기 위해 있을 것이다’=교회의 선.
말3:11,12-‘땅의 열매와 들판에 있는 포도나무’에 의해 교회의 선들과 진리들이 의미되고 있다; ‘열매’는 교회의 선들, 그리고 ‘포도나무’는 진리들, 그들은 ‘매우 기뻐함의 토지’라 불리워진다.
시72:16-그러므로 말하여지는 바, ‘산들의 머리 위에서 그것으로부터 있는 열매는 흔들릴 것이다’. ‘산들의 머리’=천국, 이곳으로부터…그들은 ‘열매’ 즉 사랑의 선을 가진다.
겔34:27-진리들이 선을 생산하고, 이 선이 진리들을 생산한다는 것이 ‘나무가 열매를 산출하고, 땅이 그녀의 생산물을 낼 것이다’에서 의미되고 있다.
신7:13-‘배(belly)의 열매’와 ‘토지의 열매,’ 등등은 진리가 배가됨과 선이 열매 맺음을 뜻하고 있다; 그러므로 영적인 축복들.
시127:3-‘보상인 배의 열매’는 선들을 통하여 행복이 있다를 의미한다.
이13:18-‘그들은 배의 열매들을 가엾게 여겨주지 않을 것이다’=파생되는 모든 선을 파괴할 교리적인 것들…‘배의 열매들’=선들.
시107:37-‘열매가 풍성하게 소출을 내는 것’=이런 것들을 행하고 선들을 받는 것; 그 이유가 ‘열매들’=행위들, 그리고 선행의 선들.
합3:17-‘들판들은 열매를 내지 않을 것이다’=영적인 자양분은 없을 것.
눅6:44, 마7:16-‘열매’는 생활의 선을 의미하고, 생활의 선은 내적인 선으로부터 있는 외적인 선, 또는 영적 선으로부터 있는 자연적 선이다, 그리고 인간은 이런 선으로부터 알게 되는(구별되어지는)바, 주님께서 ‘모든 나무는 그것의 열매로부터 알게 된다’ 라고 말하시고 있다.
마21:18,19, 막11:12,13-‘그분이 찾지 못하셨던 열매’=자연적 선.
시104:13-‘땅이 당신의 일들의 열매로 만족해 한다’=신성의 운전하심으로부터 인간과 더불은 교회는 계속 성장한다는 것이 의미되고 있다. ‘일들의 열매’, 주님에 관해 말해질 경우=신성의 역사하심(operation).
시22:2-‘열매들’에 의해 선으로부터 있는 진리들이 의미되어 있다.
레23:39-‘영예의 나무의 열매’에 의해 천적 선이 의미되어 있다.
암6:12-그들이 말씀 속의 선들에 섞음질했다는 것이 ‘너희는 공의의 열매를 쓴 쑥으로 바꾸었다’에서 의미되고 있다.
출10:15-그들이 거기로부터 자연적 인간 안으로 들어가는 상황이 발발할 때, (감각적 인간의) 거짓과 악은 그 안의 모든 진리와 선을 파괴함으로 자연적 인간을 궤멸해버린다. 이것이 ‘메뚜기가…들판의 모든 풀잎, 그리고 나무의 모든 열매를 먹어치웠다’로 말해지고 있다….‘나무의 열매’=거기 있는 선.
이65:21-‘포도원을 일구는 것 그리고 그것들의 열매를 먹는 것’에 의해 영적 진리들로 자신들을 풍요롭게 하고 파생되는 선들을 자신들을 위해 충당함이 의미되고 있다.
시128:3-‘아내’가 (진리에 대한) 애착을 의미하기에, 그녀는 열매 많은 포도나무에 비교되고 있다; 그 이유는 ‘포도나무’가 교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열매 많은 포도나무’는 진리에 애착함에 관련하여 있는 교회가 의미되기 때문.
레26:3,4-그러므로 ‘그들이 규례에 따라 걷고 교훈들을 준수할 때’…들판의 나무는 ‘자기들의 열매를 산출했다…’ ‘나무의 열매’=사랑의 선과 선을 뜻함.
겔34:26-이(유입)로부터 선의 열매 맺음과 진리의 번성함이 있기에, 그것들은 ‘축복의 비’라 불리워진다; 그리고 ‘들판의 나무가 그것의 열매를 산출하고 땅은 그것의 생산물을 낼 것이다’ 라고도 말해지고 있다; 그리고 ‘들판의 나무’는…교회와 교인을 의미한다; ‘들판의 나무의 열매’는 선을 열매 맺음, 그리고 ‘땅의 생산물’은 그것으로부터의 진리의 번창이 의미되고 있다.
욜2:22-‘나무가 그것의 열매를 낼 것이다’=이런 지식들에 의한 생활의 선의 생산; 그 이유가 ‘나무’= 교인; 특히 이런 지식들이 불어 넣어진 마음; 그리고 ‘열매’=생활의 선.
출23:30-‘네가 열매 많이 맺기 까지’=선의 증가에 따라.
슥8:12-‘포도나무는 열매를 줄 것이고 땅은 생산물을 줄 것이다’=진리에 대한 영적 애착은 선행의 선을 생산할 것이다는 것, 그리고 선과 진리에 대한 자연적 애착은 선행의 일들을 생산할 것이다…‘열매’=선행의 선; 그리고 ‘생산물’은 그 선의 일들.
예3:1-진리의 번창과 선의 열매 맺음이 ..‘너희가 이 날에 토지에서 번창할 것이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에서 의미되고 있다.
이37:30-‘(포도원의) 열매를 먹는 것’=선들을 향유함과 그것들로부터 있는 행복을 누림, 이것들은 거듭난 인간에 속한 것들이다.
호9:16-‘그들은 열매를 생산하지 않을 것이다’=어떤 선도 없다; 그 이유가 진리가 없으면 선 역시 없기 때문.
시127편-‘배(자궁)의 열매’란 진리들을 통하여 선 안에 있는 이들을 뜻하고 있다; 천국을 가진 자, 즉 이들의 ‘보상’이 천국이다.
신28:4-‘배의 열매’에 의해 사랑의 선과 이 선으로부터의 진리가 의미되고 있다; ‘땅의 열매’에 의해 교회의 모든 것이 의미되고 있다.
겔19:12-‘동풍이 그녀의 열매를 말렸다’=거기로부터 선이 파괴됨…‘열매’=선; 이 선은 악의 거짓들에 있는 이들에게 그나마 말씀으로부터 잔존했던 것을 뜻하는데, 이 선마저 파괴됨이 ‘동풍에 의해 열매가 말려졌음’에서 의미되고 있다…‘불이…그녀의 열매를 삼켰다’=선이 소진됨.
마13장-‘싹이 자랐고 열매가 산출되었을 때, 가라지도 역시 나타났다’=진리가 증가해서 선을 생산했을 때, 악으로부터의 거짓들도 혼합되어 있었다.
예48:32-‘가을의 열매들’에 의해 교회의 선들이 의미된다…그 이유가 여기서 ‘가을의 열매’인 빵=교회의 선이기 때문.
요15:4,5-‘열매들’=선용, 또는 선행으로부터의 선들; 그리고 선행의 선들은 도덕적인 선 외에 더 다르지는 않다.
창49:22-‘열매 맺는 것(가지)’=진리로부터 열매를 냄; 그 이유가 ‘열매를 냄’은 영적 의미에서 ‘출생’과 마찬가지 여서 진리와 선의 출생.
열하19:23-‘열매 풍성한 들판의 숲’에 의해 과학적 사실들이 의미되어 있다.
이32:15-‘열매 풍성한 들판’ 또는 수확나는 토지=자연적 인간이 진리들로 해서 열매 맺었다.
열매를 맺지 않는 (unfruitful)
신7:14-‘열매를 맺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못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진리와 선으로부터의 생명의 결핍은 없다는 것, 고로 그들은 영적으로 살아있을 것이다는 것.
마4:7,18,19-세상의 염려, 등등이 (진리들로 하여금) 열매 맺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주님께서 가르치신다. 그러므로 예4:3,4에서 그들은 여호와에게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해진다…즉 신앙 속의 진리와 선으로 하여금 결실 없게 하는 것들로부터 순수해져야 한다는 것.
눅13:7-교회가 자연적 선 안에 있지 않도록 짜여진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닌바, 말해지기를 ‘왜 그것이 토지로 열매 맺지 못하게 하느냐?’

월계수 (bay tree)

오목 (ebony)

* 흑단을 보라.

오이 (cucumber)

민11:5-‘오이’ 등등=가장 낮은 자연 평면 속의 것들, 즉 감각적 육체적인 것들.

올리브 (olive)

창8:11-‘올리브 잎’=조금 있는 신앙으로부터의 진리…‘올리브’=선행으로부터의 선.
슥4장-‘두 올리브들’=천적 왕국과 영적 왕국; 고로 천적 왕국의 교회 속에 있는 사랑, 그리고 영적 왕국의 교회 속에 있는 선행. 이것들은 주님의 오른 손과 왼손에 있다.
* ‘올리브 기름’=영적 선.
미6:15-‘올리브를 밟으나 기름을 바르지 못한다’=생활의 선에 관해 가르침을 받지만 가르침에 따라 살지 않는 것은 여전하다는 것.
출30:24-‘올리브’=천적인 사랑.
슥4:12-‘올리브 열매들’=천적 왕국에 있는 거룩한 선들. 그들의 진리들이 ‘올리브의 아들들’에 의해 의미된다.
계11:4-‘이들은 두 올리브들이고, 두 등잔대들이다…’=사랑과 총명, 또는 선행과 신앙…
* ‘올리브’=사랑과 선행인 이유는 ‘올리브-나무’=천적 교회. 그러므로 이 교회의 열매인 ‘올리브’=천적 사랑, 이는 주님을 사랑함이다.
* 말씀에서 진리로부터의 열매들이 포도에 의해, 선으로부터의 열매들이 ‘올리브’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호14:6-‘올리브의 영예’=천적 선.
* ‘올리브’, 이로부터 기름이 나오는바, 행동 안에 있는 사랑의 선과 상응된다.
합3:17-‘올리브에 대한 노동이 거짓말하다(소출이 없다)’=천적 선이 없는 것.
시128:3-이런 영적 애착들로부터 태어나는 것들이 ‘올리브 묘목(plant)들’에 비교되어지고 있다. 그이유는 진리들을 통하여 ‘올리브들’인 사랑과 선행으로부터의 선들이 생산되어지기 때문.
창8장-‘잎’에 의해 진리가, ‘올리브’에 의해 진리로부터 태어난 선이 의미된다.

올리브 나무 (olive-tree)

* 올리브나무들의 숲은 예배 속의 천적인 것들을 의미한다.
* (고대 교회에서는) 올리브나무,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된 기름은 천적인 사랑 속에 있는 것들을 의미했다.
* 천적 왕국, 이는 주님의 가장 깊은 천국인데, ‘올리브-나무’, 또는 ‘올리브-숲’이라 불리운다. 그이유는 ‘기름, oil’=천적 사랑의 선이기 때문.
슥4장-‘등잔대 근처 두 올리브-나무’=천적 선과 영적 선, 이것은 주님의 오른손과 왼손에 있다.
사9장-(왕을 세우는 나무들의 비유에서) ‘올리브-나무’=천적 교회로부터의 내적 선.
왕상6:23-33-‘올리브-나무’=주님으로부터 있는 사랑의 선, 그리고 주님에 대한 사랑의 선인바, 거룹들은 올리브 목재로 만들어졌고, 밀실의 문 또한 이 나무로 만들었다.
계11:4-‘두 올리브-나무들과 두 등잔대들’=주님에 대한 사랑으로부터의 선과 이웃을 향한 선행으로부터의 선…
* ‘올리브-나무’=천적 사랑으로부터의 지각과 애착.
슥4장-‘올리브-나무’=사랑의 선 측면에서의 교회.
* ‘올리브-나무=교회의 천적 평면인바, 거룹들, 문들, 문설주들이 이 목재로 만들어졌다.
이24:13-‘올리브-나무’=교회의 선.
시128:3-‘올리브 묘목 같다’고 말해진다. ‘묘목들, plants’=진리들, 그리고 ‘올리브들’=선들.
* 일반적 측면에서, (천국들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올리브-나무=사랑의 선 속에 있는 천적인 것. 포도나무=이 선으로부터 진리 속에 있는 영적인 것. 그리고 무화과-나무=영적인 것, 또는 천적인 것으로부터 파생되어지는 자연적인 것…그러므로 이런 나무들=이런 것들을 지닌 천사 또는 인간. 그러나 일반적 의미에서, 이 나무들=교회. ‘올리브-나무’=천적 교회. ‘포도나무’=영적 교회. 그리고 ‘무화과-나무’=자연적 교회, 이 자연적 교회는 내적인 것과 상응하는 외적 교회이다.
암4:9-‘올리브-나무들’=천적인 선들과 진리들.
학2:19-‘올리브-나무’에 의해 천적인 선과 진리를 지각함이 의미되어진다.
이17:6-비교함이 ‘올리브-나무를 흔듬’으로 만들어진다. 그이유는 ‘올리브-나무’가 사랑의 선 측면에서의 교회를 의미하기 때문…‘열매있는 올리브-나무’=생활 측면에서 선 안에 있는 교인들.
계11장-‘이들은 두 올리브-나무들이고, 두 등잔대이다’=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의 선과 이웃을 향한 선행으로부터의 선, 그리고 교리 속의 진리와 신앙 속의 진리, 이로부터 천국과 교회가 있다. (그이유가) ‘올리브-숲’, ‘올리브-나무’, 그리고 폭넓은 의미에서 ‘올리브’=주님의 천적 왕국, 그리고 거기로부터 있는 천적 교회. 이 교회는 이 안에 있는 여타 교회와 구별되어진다. 이 교회로부터 있는 이들은 주님을 사랑함 안에, 이웃을 향한 사랑 안에 있다.
슥4장-‘두 올리브-나무들’, 그리고 ‘올리브 열매들(berries)’에 의해 천적 선들이 의미되어진다. 이 선은 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의 선들과 형제나 동료들을 사랑함으로부터의 선들이다. 후자의 선은 대접의 왼손 근처에서 보여지는 올리브-나무에 의해, 전자의 선은 그것의 오른손에 보여지는 올리브-나무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이 선으로부터의 진리들이 ‘온 땅의 주님 근처에 서있는 올리브-나무의 아들들’에 의해 뜻해진다.
시52:8-‘하느님의 집에 있는 푸른 올리브-나무 같이’라고 말해지는데, 그이유는 ‘푸른 올리브-나무에 의해 말씀 속의 진리를 통하여 태어나는 사랑의 선이 의미되기 때문.
예11:16-‘상태 좋은 열매를 가진 아름다운 푸른 올리브-나무’로서 이 구절에서 유다와 이스라엘의 집(가문)이 불리운다. 그이유는 ‘올리브-나무’와 ‘그것의 열매’에 의해 사랑의 선이 의미되고, ‘푸른’과 ‘아름다운’에 의해 이 선으로부터의 진리가 의미된다. 이 진리로부터 총명이 있다.
이24:13-‘올리브-나무를 벗김’=천적 선 측면에서의 교회의 황폐함.
신28:40-‘너는 너희 모든 경계선 안에서 올리브-나무들을 가질 것이다’=말씀을 통하여, 그리고 말씀으로부터 있는 설교들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의 사랑의 선들이 교회에 보편적으로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기름을 바르지 못할 것이다’=그러나 아직 어떤 선의 결실도, 파생되는 환희도 없다. ‘그이유는 올리브-나무가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 선은 멸해질 것이다.
암4:9-‘올리브-나무들’=교회로부터의 선들.
사9장-요담의 이런 말들은 세겜의 시민들은 ‘올리브-나무’인 천적 선이 자기들을 지배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 의미하고 있다.
슥4장-‘두 올리브-나무들’=두 교회들, 즉 천적 교회와 영적 교회.

올리브 숲 (olivegrove)

* 올리브-나무도 참조.
암4:9-‘올리브숲들’=(영적 교회 속의) 천적인 것들.
* ‘올리브숲’, 그리고 ‘올리브-나무’=주님을 사랑함 안에 있는 천적인 것…
신6:11-‘포도원들과 올리브숲들’에 의해 진리들과 선들 측면에서의 교회 속의 모든 것들.

올리브-목재 (olive-wood)

왕상6:31,33-‘올리브-목재(기름의 나무)’=진리로부터의 선, 또는 영적 교회 속에 있는 선.
이41:19-‘나는 사막 안에 기름의 나무를 줄 것이다’=천적 선.
왕상6장-거룹들을 만든 ‘올리브-목재’에 의해 사랑의 선이 의미되어진다.

우슬초 (hyssop)

출12:22-너는 우슬초 다발을 가져와라‘=순수해짐을 있게 하는 외적 수단들.
시51:7-‘우슬초’=순수해짐의 수단들임은 ‘우슬초로 저의 죄를 씻으소서, 그리고 저는 깨끗해질 것입니다..’로부터 분명해진다. ‘우슬초로 죄를 씻는 것’=외적인 순수해짐.
요19:29-‘그것을 우슬초에 놓음’=어떤 종류의 교회의 순수해짐.

운향 (rush)

* 누가복음 11장 42절. 이 구절의 풀이는 없음

유향나무 (balm, balsam)

* 유향나무 열매, (식물 용어로는) 멜리사
* 에스겔 27장 17절. 사랑과 이타애로부터의 선과 그 선이 주는 행복한 느낌들. 또는 선으로부터 기뻐하며 감사하는 진리들.
* 수진(rosin, resin)은 어원이 balsam과 같다.
* 예레미야 8장 22절
* 마태복음 26장 7,22절

이삭 (ear)

창41:5-‘일곱 이삭이 한 줄기에서 올라온다’=결합된 자연 평면의 과학물들.
창41:6-‘일곱 야윈 이삭’=유용함이 없는 과학물들.
창41:7-‘일곱 야윈 이삭들이 기름지고 알찬 일곱 이삭을 먹어치웠다’=쓸모 없는 과학물들이 좋은 과학물들을 몰살시켰다.
창41:26-‘일곱 우량한 이삭들 칠 년들이다’=외면의 자연 평면에서 진리가 번창하는 상태들. ‘이삭들’, 좋은 의미에서,=과학물들. 그러므로 외면의 자연 평면으로부터의 진리들. 그이유는 이것들이 과학물이라 불리기 때문.
창41:27-‘일곱 텅빈 이삭들, 동풍으로 폭파되었다’=외면의 자연 평면에 침입한 거짓인 번창하는 상태들. ‘이삭들’, 반대 의미에서,=외면의 자연 평면으로부터의 거짓들.
이27:12-내면과 외면의 과학물들이 ‘유브라데 강, 이집트 강에 이르기 까지 에서의 이삭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막4:28-‘싹, 이삭, 그리고 낱알’을 가지고 비교함은 과학물들, 신앙으로부터의 진리들, 그리고 선행으로부터의 선들을 수단으로 이루어지는 인간의 재탄생을 포함하고 있다. ‘싹’=첫 과학물, ‘이삭’=그 싹에서 파생된 진리로부터의 (영적) 과학물, ‘낱알’=이삭으로부터 파생된 선.
출9:31-‘익어가는 이삭’=그들이 앞으로 나와 섰다.
레23:14-‘볶은 이삭’=선행으로부터의 선. ‘푸른 이삭’=진리로부터의 선.
마12:1-‘이삭을 그러모으고 그것을 먹는 것’=교리적인 것들 안에서 가르쳐지는 것.

잎 (leaf)

겔47:12-‘잎’=그들이 사용하기 위해 가지는 총명. 이것이 ‘치료약’이라 불리운다. (=인류의 가르침과 거듭남을 위해 섬기는 선으로부터의 진리들.) (=신앙으로부터의 진리.)
창3:7-‘그들은 무화과 잎을 함께 엮었다.’ ‘함께 잎을 엮는 것’=변명하는 것.
창8:11-‘보라, 그녀의 입에 뜯껴진 올리브 잎’=신앙으로부터의 진리 조금. ‘잎’=진리.
예17:8-‘푸른 잎’=신앙으로부터의 진리. 고로 이것=선행으로부터 있는 신앙 자체.
마24:32-‘그것의 잎들이 돋아났을 때, 너는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안다.’ ‘잎들’=진리들.
레26:36-‘떨어지는 잎의 소리가 그들을 추격한다.’ 이렇게 말해지는 이유는 ‘잎’=진리이기때문.
단4:12,14-‘잎’=일반적 측면에서의 과학적 진리.
계22:2-‘나라들을 치료하기 위한 나무의 잎들’= 합리적 진리들, 이 진리를 수단으로 악과 악에서 파생된 거짓들에 있는 이들이 철저하게 생각하도록, 그리고 생각한 결론에 걸맞게 사는 쪽으로 데려와진다.
예17장-‘잎’=과학적인 것.
이1:30-‘잎들’=과학물들과 자연적 인간에 있는 진리에 관한 지식들.
단4:20-‘그것의 잎은 아름답고, 그것의 꽃은 많다’=지식들과 진리와 선에 애착함들, 그리고 파생되는 총명.

작은 숲 (grove)

* tree도 참조.
창21:33-‘그는 브엘세바에 작은 숲을 심었다’=그것의 지식과 품질을 지닌 거기로부터의 교리.
출34:13-‘너는 그들의 숲들을 베어뜨릴 것이다’=그들의 교리적인 것들은 깡그리 거질되어 질 것이다.
* 영적 인간 등차에서는 ‘낙원(paradises)’, 자연적 인간 등차에서는 ‘작은 숲(grove)’, 감각적 인간 등차에서는 ‘그늘진 숲들(shady forests)’
예17:2-‘푸른 나무를 가진 작은 숲’=거짓으로부터의 예배.

잡초 (weeds)

* flag(욘2:5)를 보라.

잣나무 (cypress)

* 에스겔 31장 8절, 소나무를 참조하시라.

전나무 (fir)

이41:19-‘전나무’=외적 인간의 진리들과 선들.
겔31:8-‘전나무’, 그리고 ‘플라타너스(plane)’=자연적인 것들. ’전나무‘=선 측면에서의 자연적인 것들. ’플라타너스‘=진리 측면에서의 자연적인 것들.
이60:13-‘전나무, 소나무(pine), 회양목(box)’=상응하는 자연적 선들과 진리들.
이37:24-‘전나무’=영적 교회의 외적 진리들, 또한 선으로부터의 외적 진리들.
겔31:8-‘전나무’=자연적 인간의 지각력.
왕하19:23-‘드높은 삼목과 선발된 전나무’=지각 측면에 관련하여 있는 합리적이고 자연적인 진리들.

줄기 (stalk)
그루터기 (stubble)

출9:31-‘아마는 줄기였다’=진리가 앞쪽으로 나와 섰고, 아래쪽을 향하여 보고 있었다.
출5:12-‘짚을 위해 (곡초) 그루터기를 그러모으는 것’=얼마간의 과학적 진리를 발견하는 것.
출15:7-‘그루터기와도 같이 그들을 삼켰다’=자신들에 관하여 황폐됨과 지옥에 떨어짐. 그루터기 같이 라고 말해진 이유는 충분한 황폐됨이 의미되었기 때문이다.
이41:2-악들과 거짓들이 없던 것처럼 사라진다는 것이 ‘먼지 같이, 바람에 날린 그루터기 같이’에서 의미되어져 있다.

줄기 식물 (cane)
창포 (calamus)

* 등나무, 대나무, 종려나무, 사탕수수 등등의 마디 있는 식물.
예6:20-‘세바’에 의해 지식들과 숭배함이 의미된다. 이것이 ‘향’과 ‘달콤한 줄기 식물’이다.
창41:5-‘한 줄기(stalk)에서 일곱 곡식 이삭이 올라오고 있었다’=자연 평면 속에 있는 과학물들이 다함께 결합되어 있음…‘한 줄기에서’=다함께 결합함.
출25:31-촛대의 ‘손잡이(shaft), 가지(branch), 그리고 사발(bowl)’=자연 평면에서 있는 영적인 것들.
출25:32-‘그것의 측면들로부터 여섯 가지들이 나가는데…’=복합체에서 있는 선으로부터의 진리의 모든 것들… ‘측면들로부터 나가는 가지들(branches)’=선으로부터의 진리.
출25:33-‘그렇게해서 촛대로부터 나가는 여섯 가지들이 있다’=영적 천국에 있는 모든 것들에 관련되는 선으로부터의 진리의 힘…‘가지들’=선으로부터의 진리들, 그로부터의 힘.
출30:23-‘방향성 있는 창포’=내면의 진리에 애착함과 지각함…‘창포’=이 진리; 그리고 ‘방향성 있는’=지각과 애착.
계10:1-‘지팡이 같은 갈대가 나에게 주어졌다’=천국에 있는 교회와 세상에 있는 교회를 보고 아는 힘과 능력이 주님에 의해 그에게 주어졌다. ‘갈대’, 또는 ‘줄기(cane)’=인간이 자신으로부터 지니는 연약한 힘; 그리고 ‘지팡이’=인간이 주님으로부터 가지는 강한 힘. 그러므로 ‘지팡이 같은 갈대가 주어짐’은 주님으로부터의 힘이 의미된다.
계21:15-‘금빛의 갈대’=사랑의 선으로부터 있는 능력, 또는 힘. ‘갈대’=힘 또는 능력(capacity).
이19:6,7-더 이상 진리들이 있지 않을 것, 가장 낮은 수준의 진리인 자연적이고 감각적인 진리들 까지도 있지 않을 것임이 ‘갈대와 아마가 시들고, 시냇가의 종이 갈대도 시들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이35:7-이전에 감각적 진리만을 지녔던 이들에게 자연의 신성한 진리를 통하여 지식이 있을 것임이 ‘갈대와 골풀(rush) 대신 풀’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갈대와 골풀’=감각적 근원으로부터의 지식, 또는 감각들의 오류를 통하여 확증한 지식.
시68:30-우리는 영적 인간으로부터 분리된 자연적 인간으로부터 응용된 잘못된 과학물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 ‘갈대 속의, 줄기 속의, 골풀 속의 들짐승을 꾸짖음’에서 의미되어져 있다.
왕상14:15-이스라엘의 아들들 사이에 있는 교회의 황폐됨이 ‘물에서 흔들거리는 갈대, 또는 골풀’에 비교되고 있다; 그이유는 ‘갈대’, 또는 ‘골풀’=감각적 인간의 진리, 이 진리는 최말단 진리이다; 그리고 이 진리가 영적 인간의 빛으로부터 분리될 때, 거짓이 되기 때문.

조 (millet)

* 기장이라고도 부름
* 에스겔 4장 9절. 이 구절의 풀이는 없음

종려 (palm)
종려-나무 (palm-tree)

레23:40-‘종려들의 가지들(spathes)’=신앙으로부터의 선.
출9:29-‘나는 내 손바닥들을 여호와에게 펼 것이다’=중재함.
출15:27, 레23:40-선으로부터 진리에 애착함과 파생되는 즐거움이 ‘칠십 종려-나무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출15:27-‘그리고 칠십 종려-나무들’=진리로부터의 선들이 대단히 풍부함…그이유가 ‘종려-나무들’=영적 교회의 선들, 이 선은 진리로부터의 선들이다; 그리고 , 선들이 ‘종려-나무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는바, 그것들에 의해 또한 선에 애착함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즐거움도 의미되어진다. 이렇게 종려-나무에 의해 의미되기에, 거룩한 축제들에서 종려들이 고용되어졌다. 레위기에서도 ‘종려들’에 의해 영적 선, 또는 진리로부터의 선이 의미되어지고 있다.
요12:13, 계7:9-‘종려들’=선으로부터 있는 거룩한 축제.
왕상6:29-‘종려-나무’=선, 또한 지혜, 그이유가 지혜는 선으로부터 있기 때문. 이런 의미 때문에 종려-나무들은 거룹들과 꽃들과 함께 성전의 벽 위에 새겨졌다. 벽 위에 새겨진 ‘거룹들’, ‘종려-나무들’, 그리고 ‘꽃들’은 주님으로부터 있는 섭리, 지혜, 그리고 총명을 의미했다; 고로 천국 속에 있는 모든 것들.
계7:9-‘그들의 손에는 종려들이…’=신성의 진리들로부터 고백함…그이유는 ‘종려들’=신성의 진리들이기 때문. 모든 나무=교회의 어떤 것; 그리고 ‘종려-나무’=최말단에 있는 신성의 진리, 이 진리는 글자 의미 속에 있는 신성의 진리이다.
시92:12-‘올바른 자는 종려-나무 같이 무성할 것이다’에서 ‘종려들’=신성의 진리.
신34:3, 사1:16, 3:13-여리고는 요단 근처에 있는 성이었고, 요단강은 글자 의미 안에 있는 것과 같은 신성의 진리가 의미되어졌다. 하여 이 성은 ‘종려-나무의 성’이라 불리웠다.
계7:9-‘그리고 그들의 손에는 종려들이’=이 (진리들)에 따른 생활의 선 안에. ‘종려’=진리로부터의 선, 또는 영적 선…그러므로 ‘그들의 손에는 종려들이’에 의해 진리로부터의 선이 그들 안에 있었다는 것, 또는 그들이 진리로부터의 선 안에 있었다는 것이 의미되어지고 있다. 진리로부터의 선이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이는 생활의 선이다.
왕상6:29,32, 겔41:18-20,25,26-‘종려들’에 의해 영적 선이 의미되었는데, 이 선은 둘째 천국의 선이다…그러나 최고 의미에서 ‘종려들’은 주님의 신성한 지혜가 의미되어져 있다…그이유가 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의 진리와 하나된 신성의 선이 신성의 지혜로서 둘째 천국 안에서 받아지기 때문.
겔41:18-20,25,26-위와 같은 내용이 새 성전에 있는 ‘거룹들’, 그리고 ‘종려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레23:39,40-‘종려들’=영적 선, 또는 진리로부터의 선.
욜1:12-‘종려-나무’=영적 선으로부터의 심정의 환희(joy).
예10:5-진리들을 통하여 형성된 선 같이 그것의 나타남이 ‘그것들은 종려-나무 같은 고체이다’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쭉정이 (chaff)

마3:12-‘쭉정이’=선이 안에 하나도 있지 않은 것들.
출5:7-‘너는 백성들에게 쭉정이를 보태주지 말라’=가장 낮은 과학물들, 그리고 모든 것 중에서더 가장 일반적인 것. ‘쭉정이’, 또는 짚=과학적인 진리들.
출5:10-‘나는 어떤 쭉정이도 주지 않을 것이다’=그 근원으로부터는 더 이상 가장 일반적인 과학물들은 있지 않을 것이다…‘쭉정이’=모든 것 중에서 가장 일반적인 과학물들.
마3:12-‘꺼지지 않는 불을 가지고 그분이 태울 쭉정이’에 의해 내적 근원으로부터 있고 파괴될 갖가지 종류의 거짓이 의미된다; 고로 이런 거짓 안에 있는 이들.
눅22:31-거짓으로부터의 신앙이 ‘바람 앞에 쭉정이’와 비슷한바, ‘사탄이 그들을 밀 같이 체질하려고 그들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해진다; ‘밀’=쭉정이로부터 분리된 선행의 선.

찔레나무 (brier)

이32:13-‘가시와 찔레나무’=거짓들과 거짓들로부터 파생된 악들.
겔28:24-‘찌르는 찔레나무’=자아 사랑의 탐욕의 거짓; ‘가시’=세상 사랑의 탐욕의 거짓.

참외 (melon)

* 민수기 11장 5절. 자연에 있는 것 중 가장 수준 낮은 것들, 즉 육체적, 감각적인 것에 속한 것들.

창포 (flag)

욘2:5-‘창포가 내 머리에 묶여져 있었다.’ (=거짓 과학물들이 선과 진리를 포위했다.)
출2:3, 이19:6-‘그녀는 그것을 강둑 창포 안에 두었다’=처음에 거짓 과학물 사이에. ‘창포’=과학물들…그 이유는 말씀에서 모든 풀잎=어떤 종류의 과학물인 것. 강둑에서 자라는 창포=가장 낮은 과학물. 이19:6의 경우, ‘갈대와 창포’=가장 낮은 과학물들, 이는 감각적인 것.
출2:5-‘그녀는 창포 사이에 있는 상자(coffin)를 보았다’=진리가 거짓 과학물 사이에서 가장 낮은 상태 안에 있었음을 지각함.

창포 (calamus)

* 줄기식물, cane을 보라.

첫 열매 (first-fruit)

출23:19-‘그들이 여호와의 집으로 가져온 땅의 첫 열매들’=유아 안에 존재하는 순진의 상태들.
신26:2-‘땅의 열매의 첫 열매들’=거기서부터 파생된 선들.
출23:16-‘네가 들판에 뿌린 일들의 첫 열매들의 수확의 축제’=선 안에 진리가 이식됨 때문에 주님께 감사하며 예배함….’첫 열매들’, 또는 일들의 시작=가르침에서는 마지막째이고 생활에서는 첫 번째인 것들.,
출23:19-‘네가 네 하느님의 집으로 가져올 네 지면의 첫 열매들의 첫 번째’=선으로부터의 진리들, 진리로부터의 선들, 이 모두는 거룩하다, 그 이유는 주님만으로부터이기 때문이다.
레23:10-‘첫 열매들의 다발’=거기로부터 집합적으로 있는 상태.
계14:4-‘하느님과 어린 양에게 첫 열매들’=기독교인의 천국이 개시됨…‘첫 열매들’에 의해 처음 태어난 것, 또는 처음 수확한 것, 고로 개시한 것이 의미되어진다.
출22:29,23:10, 민13:20, 15:17-21, 18:8-20, 신18:4, 26:1, 출23:14-16,19,26, 레23:9-15,20-25, 민28:26-끝절, 예24:1,2, 겔20:40, 미7:1, 신33:15,21-이렇게 명령되었던 바…들판의 생산물들, 모든 곡식, 기름, 포도액, 나무들의 과일들, 또한 양털의 첫 열매들은 거룩한 것으로서 여호와께 드려야 한다, 그리고 여호와에 의해 아론에게, 후에는 제사장에게 주어졌다. 또한, ‘그들은 빵의 첫 열매들과 수확의 첫 열매들의 축제를 준수하게 되어 있다. 그 이유인즉, 첫 열매들=처음 태어나되, 후에 성장하는 것이기 때문…고로 그들=그것이 완성될 때까지 뒤를 잇는 모든 것; 그이유가 뒤를 잇는 모든 것은 처음 안에 이미 있다. 즉 성인이 유아 안에 잠재한 것과 비슷하다…그리고 계승되는 것들에 앞서 처음 것이 존재해야하기에 첫 열매들은 주님에게 거룩했다, 그리고 첫 열매의 축제가 거행되었다.
암6:6-‘그들이 자신에게 부을 기름의 첫 열매들’=선의 외적인 것들, 이로부터 또한 예배가 있다.
신33:15-‘동쪽의 산들의 첫 열매들’=주님을 사랑함의 순수한 선들, 그리고 이로부터 이웃을 향한 선행의 순수한 선들.
신33:21-이것이 제일가는 것들로부터 이다는 것이 ‘그는 자기를 위한 첫 열매들을 보았다’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추수 (harvest)

창8:22-‘씨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거듭나지고 있는 인간, 그러므로 교회…말씀에서 인간은 들판에 비유되는바, 씨뿌리는 때와도 비교된다…그리고 그 결과인 생산물, 또는 추수와도 비교된다.
창30:14-‘르우벤은 밀 추수의 날에 나갔다’=사랑과 선행 측면에서의 신앙의 상태….‘밀’=사랑과 선행; 그러므로 밀 추수=사랑과 선행의 발전된 상태.
창45:6-‘경작함도 추수함도 없을 것이다’=한동안 선과 파생되는 진리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추수’=선으로부터 진리들.
출23:16-‘네가 들판에 뿌린 일들의 첫 열매들의 추수 절기’=주님을 예배함과 선 안에 진리를 심어주심 때문에 감사함.
마13:39-‘시대의 극점(종말), 이는 추수이다’=선 안에 신앙의 진리들을 받는 측면에서의 교회의 마지막 상태.
욜3:13-‘추수’=시대의 극점, 또는 황폐된 교회의 마지막 상태.
예51:33-‘추수의 때’=거기서 교회의 마지막 상태.
레23:10-‘추수’=선으로부터 있는 신앙의 진리의 상태; 고로 선의 상태.
출34:21-‘경작하고 추수함에서 너는 쉴 것이다’=선 안에 진리를 이식함 측면에서, 그리고 그것을 받음…‘추수함’=선 안에 진리를 받음.
계14:15-‘추수가 익는다’=이것은 교회의 마지막 상태이다. ‘추수’=신성의 진리 측면에서의 교회의 상태.
마13장-‘추수’=마지막 심판.
예5:17-그러므로 뒤잇는바, ‘그는 네 추수와 네 빵을 먹을 것이다’; 그이유가 ‘추수’에 의해 진리를 통하여 선이 있음이 의미되기 때문; 그리고 ‘빵’에 의해 파생되는 선이 의미된다.
이27:11-‘시들어진 추수’=악한 사랑들을 통하여 파괴된 선으로부터의 진리들.
마9:37,38-‘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은 적다; 주님의 추수 안으로 일꾼을 보내도록 추수의 주님에게 물어보라.’ 여기서 ‘추수’에 의해 모든 이와 더불어 주님의 교회가 설립되어졌음이 뜻해진다; 또한 일반적 측면에서의 교회도 뜻한다; 그리고 ‘일꾼’에 의해 주님으로 가르칠 모든 이가 뜻해진다.
요4:35-이 교회를 설립함이 가까웠다는 것이 ‘네 눈을 들어올려 들판을 바라보라, 그들은 추수를 위해 이미 희어 있다’에 의해 뜻해진다.
막4:26-29-세부적 측면에서 인간과 더불은 교회의 증가, 일반적 측면에서는 인간들과 더불어 주님으로부터 교회의 증가가 ‘추수’에 의해 묘사되어 있다…‘추수’=세부적, 일반적 측면에서 교회를 심음.

침향 (aloe)

시45:8-‘침향’=두번째 등급의 선.

침향목 (lignaloe)

민24:6-자연적 인간의 것들; 그리고 ‘삼목’=합리적 인간의 것들.

콜로신스 (colocynth)

왕하4:39-‘야생 덩굴식물(wild vine)로부터의 호리병박(gourd)들’=거짓화됨.

콩 (bean)

겔4:9,12,13-‘콩과 렌즈콩’=선의 덜 고상한 종류들.
겔4장-‘밀, 보리, 콩, 렌즈콩’ 등등=선의 종류들과 이 선으로부터 있는 진리의 종류들.

큰고랭이 (bulrush, 파피루스, 애기부들)

키작은 나무 (shrub)
관목 (shrub)

창21:15-하갈은 ‘아이를 키작은 나무 중 하나 아래에 내던졌다’=어떤 진리와 선을 지각하지 못해 자포자기함. ‘키작은 나무’=지각함, 그러나 지각함이 너무 적어거의 어떤 것도 지각 못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음.
창2:5-천적 인간의 과학물과 합리성이 ‘관목’과 ‘풀잎’‘에 의해 묘사되어 있다.
* ‘들판의 관목‘=그의 외적 인간이 생산하는 일반적인 모든 것.
* 평화로부터 있는 고요함이 ‘들판의 관목’으로 불리는 것을 생산한다. 그리고 ‘들판의 풀잎’, 이는 특별한 측면에서=천적인 것의 영적 근원으로부터의 합리성과 과학적인 것들.
이7:17-‘키작은 나무들’=비슷한 종류의 미성숙한 진리들.

타다남은 나무 (firebrand)

이7:4-‘연기나는 타다남은 나무들’=분노.
슥3:2-‘불에서 잡아뽑은 타던 나무 조각’=진리가 아주 조금 남아있음.

파 (leek)

민11:5-‘파, 양파, 그리고 마늘’=가장 낮은 자연 평면 속에 잇는 것들; 즉 인간의 육체의 감각적인 부분에 속하는 것들.

팥 (lentiles)

* 렌즈콩
창25:34-‘렌즈콩죽’=교리적인 것들로부터의 선. ‘렌즈콩들’=그것들로부터의 선.

포도 (grape)
송이 (cluster)

창40:10-‘거기로부터의 송이들이 포도들로 여물었다’=영적 진리가 천적 선과 결합함…‘송이들’=영적 선으로부터의 진리; 그리고 ‘포도들’=천적 진리로부터의 선…감각 평면에서 그것들의 결합은 마치 송이들이 포도들로 익어가는 형국이다…이것은 나무의 열매가 익을 때 그것들에서 표현되어지고 있다; 익지 않은 열매들, 여기서 ‘송이들’은 진리가 아직 지배력을 갖고 있는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선이 지배력을 갖는 것은 익은 포도들에서 지각되는 달콤함과 향기로 표현되고 있다.
암9:14-‘포도들을 만들고 그것들의 열매를 먹는 것’=거기로부터 파생된 선을 자기 것 되게 하는 것.
계14:18-‘땅의 포도들을 수확하는 것’=선행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
계14:18-‘땅의 포도나무의 포도 송이들을 수확하는 것’=기독 교회의 사람들과 더불어 있는 선행과 신앙의 일들에 말씀의 신성의 진리를 수단으로 있는 주님의 역사하심.
예8:13-‘포도나무에 있는 포도들’=영적 선.
신32:32-‘고모라의 포도들’=거짓들로부터의 악들.
창49:11-‘포도주와 포도들의 피’=자연 평면의 신성의 선과 신성의 진리.
이5:2-‘그는 포도들이 산출되리라 예상했다’=선행의 선; 그러나 ‘들포도가 산출되었다’=미움과 복수로부터의 악들.
예8:13-‘포도나무에 포도들이 없다’=내면의 선, 또는 합리적 선이 없다.
호9:10-‘광야에 포도들이…’=아직 영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합리적 선.
신32:14-‘포도들의 피’=영적인 것으로부터의 천적 선; 이 선은 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천국에 있는 신성이라 불리운다. 포도주가 ‘포도들의 피’라 불린 이유는 둘 다=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거룩한 진리이기 때문; 그러나 ‘포도주’는 영적 교회를 서술하고, ‘피’는 천적 교회를 서술한다.
신32:32-‘그들의 포도들은 담즙의 포도들이고, 그들에게 쓴맛의 송이들이다’=자발성(이 지옥의 사랑으로부터의 거짓들에 의해 사로잡혔다); 그이유가 ‘포도’, 좋은 측면에서,=선행인바, 자발성(Voluntary)을 서술하나, 여기서는 지적 측면에서의 자발성을 서술하고 있다.
창40:11-‘나는 포도들을 가져다가 그것들을 바로의 컵 안으로 짜넣었다’=영적 근원으로부터 선들 안으로 상호 유입됨. ‘포도들’=선행의 선들, 고로 영적 근원으로부터의 선들.
계14:18-‘그것의 포도들이 익었기 때문에’=그것이 기독 교회의 마지막 상태이기 때문에.

포도나무 (vine)

시128:3-‘네 아내는 열매 있는 포도나무 같다’=영적 교회.
요15:1-5,12-‘포도나무’=영적 교회, 그리고 선행은 영적 교회의 제 1 의 원리이고, 이 원리 안에 주님이 현존하시며, 선행을 통하여 그분은 인간과 그분 자신을 결합시키시고, 이 선행을 통하여 그분 만이 모든 선을 운행하시는 바, 주님은 그분 자신을 ‘포도나무’에 비교하시면서 영적 교회, 또는 영적 교회인을 묘사하신다. 즉 ‘나는 참 포도나무이고, 나의 아버지는 포도원지기이시다, 내 안에서 열매를 맺 않는 모든 가지를…그분은 제거하신다…나는 포도나무이고 너희는 가지이다…’
시80:8-주님은 그분에게 가르쳐진 지식 측면에 관련하여 ‘이집트로부터의 포도나무’라 불리신다
신32:32-‘포도나무’가 진리들에 관해서, 그리고 거짓들에 관해서 서술된다…고로 ‘소돔의 포도나무’=악으로부터의 거짓.
창49:11-‘포도나무’, 그리고 ‘고상한 포도나무’=영적 교회의 외적 측면과 내적 측면.
슥8:12-‘포도나무가 자기 열매를 줄 것이다’=교회의 영적 평면, 즉 신앙으로부터의 진리가 선을 줄 것이다.
신8:8-‘포도나무와 무화과’=신앙으로부터의 선들.
이5:2-‘고상한 포도나무’=영적 선. (=영적 교회의 신앙으로부터의 선.)
창40:9-‘오 내 앞에 포도나무’=영적 교회의 지적 평면.
예2:21-‘고상한 포도나무’=영적 교회인, 이것은 지적인 것으로부터 ‘포도나무’라 불리운다. ‘이상한 포도나무의 타락한 가지’=뒤집힌 교회인.
겔17:6,8-‘울창한 포도나무’, 그리고 ‘장엄한 포도나무’로 되어감=영적 교회가 되어감, 이 교회는 영적 선, 또는 선행으로부터의 선을 의미하는 포도주로부터 ‘포도나무’라 불리우고, 이로부터 신앙으로부터의 진리가 지적 부분에 심어진다.
창49:11-‘포도나무’=영적 교회 속에 있는 지적 평면; 그리고 ‘고상한 포도나무’=천적 교회 속에 있는 지적 평면.
마26:29-진리로부터의 선을 통하여, 그리고 선으로부터의 진리를 통하여 지적 평면이 새로이 만들어짐, 또는 거듭난다는 것이 ‘포도나무의 열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창40:10-‘그리고 포도나무에서 세 어린 가지가’=파생되는 파생물이 최말단의 것 쪽으로 내려감. ‘포도나무’=지적 평면.
예8:13-‘포도나무에 포도들이 없다’=내면적, 또는 합리적 선이 없다.
창49:11-‘그는 자기 젊은 나귀를 포도나무에 맨다’=외적 교회를 위한 자연 평면에 있는 진리(를 통하여 결합)…‘포도나무’=영적 교회; 여기서, 영적 교회의 외적 측면, 그이유는 ‘선발된 포도나무’=내적 교회이기 때문.
창49:11-‘그의 새끼 나귀를 선발된 포도나무에 맨다’=내적 교회를 위해 합리성으로부터의 진리(를 통하여).
시105:33-‘포도나무’=내적 교회의 진리와 선.
왕하4:39-‘야생 포도나무로부터 호리병박’=왜곡됨.
계14:18-‘땅의 포도나무를 수확함’=교회의 진리와 선이 소진되는 것.
합3:17-‘포도나무’=영적 선.
말3:11-‘들판에 있는 포도나무’=교회의 진리들.
이24:7-‘포도나무가 시들 것이다’=(영적 교회의) 진리가 중단될 것이다…‘포도나무’=영적 진리.
이7:23-‘천 그루의 포도나무’=선으로부터의 진리가 풍부함.
슥8:12-‘포도나무가 그것의 열매를 줄 것이다’=진리가 선을 생산할 것이다…‘포도나무’=진리들 측면에서의 교회, 또는 교회의 진리들.
신8:8-‘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영적 근원으로부터의 선과 진리.
이5:2-‘고상한 포도나무’=천적인 것으로부터의 영적 진리, 또는 사랑의 선으로부터의 진리.
호2:12-‘나는 그녀의 포도나무와 무회과 나무를 황폐한채 놓아둘 것이다’=영적, 자연적 선 모두 사라질 것이다…‘포도나무’=영적 인간으로부터 있는 내적 교회.
호10:1-‘이스라엘은 텅빈 포도나무이다’=더 이상 어떤 진리도 없을 때의 교회.
겔19:10-‘네 어머니는 포도나무 같다’=고대 교회, 이 교회는 생활의 선과 이 선으로부터 파생하는 진리들 안에 있었다.
신32:32-‘그들의 포도나무는 소돔의 포도나무 속에 있다’=자아 사랑으로부터 모든 악들에 있는 교회.
욜1:7-‘내 포도나무가 쓸모없는 쪽으로 쇠하여 지게 한다’=말씀의 영적 의미로부터 있는 것인 영적 진리들을 파괴함.
시80:14-‘보라, 그리고 이 포도나무를 방문하소서’=영적 교회.

포풀러 나무 (poplar)

창30:37-‘야곱은 싱싱한 포플러 나무 가지를 가져왔다’=자연적 선에 적당한 힘…‘포플러’=자연 평면의 선.
창30:37. 호4:13-어떤 나무 종류의 경우=자연적 인간으로부터 있는 외면의 선과 진리들; 예를 들면 포플러 나무 같은 경우. 여기서 명명된 포플러 나무는 흰 포플러 나무이다. 이로부터 이 포플러 나무는 진리로부터 있는 선, 또는 진리의 선이 의미되었다. 호세아서의 경우는 반대 의미인바 왜곡된 진리의 선이 의미되고 있다.

풀 (grass)
풀이 무성한 (grassy)

예14:5-‘이런 애착들이 진리들과 선들 없이 있었을 때’, 그녀는 그것을 버리고 돌보지 않는다, 그이유는 ‘풀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해진다.
* ‘잎(blade), 이삭(ear), 낟알(corn)’의 비유에는 과학물, 신앙으로부터의 진리들, 선행으로부터의 선들이라는 인간의 거듭남이 포함되어 있다. ‘잎’=첫 과학물.
이35:7-‘갈대와 골풀 대신 풀’=진리가 없는 것들 대신 과학적 진리가 있을 것이다.
계8:7-‘태워져버린 푸른 풀’=진리의 과학물들이 파괴되었다.
계9장-‘땅의 풀에는 어떤 상함도 있게 마라’=과학적인 것.
이51:12-‘사람의 아들에게 주어진 풀’=과학물을 통하여 거짓이 있다.
계8:7-‘모든 푸른 풀이 태워졌다’=신앙의 살아있는 모든 것이 멸해졌다.
계9:4-‘그들은 땅의 풀, 어떤 푸른 것도 다치게 하지 말라고 말해졌다…’=주님의 신성한 섭리, 즉 그들은 신앙의 어떤 진리와 선도 제거해버릴 수 없다는 것.
시147:8-‘풀’=그들이 가지는 영적 자양분.
삼하23:4-‘땅으로부터 풀’=총명 그리고 거기로부터의 개혁.
이51:12-과학적 진리를 통한 총명이 ‘풀 한가운데에서 싹트는 것’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시104:4-과학적 진리를 통하여 있는 총명이 ‘풀 한가운데에서 싹틈’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시104:14-‘여호와께서는 짐승을 위하여 풀이, 그리고 인간의 봉사(ministry)를 위해 풀잎이 싹트게 하신다, 하여 땅으로부터 빵을 산출하신다’=말씀으로부터의 진리들을 통하여 자연적 인간과 영적 인간을 가르치시고 자양분을 주심, 하여 사랑의 선과 선행의 선이 있어질런지 모른다는 것. ‘풀’은 자연적 인간의 진리, 이는 과학적 진리이다…‘풀잎’은 영적 인간의 진리이다.
이35:7-그들이 가지는 진리들과 선들이 ‘풀’ 등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단4:32-‘풀을 먹는 것’=감각적이 되어가는 것.

풀밭 (meadow)

이30:23-‘넓은 풀밭에서 풀을 먹는 것’=가르침이 풍부하게 있는 것.
시65:13-‘풀밭들’=영적 마음 속에 있는 이런저런 것들, 그리고 이로부터 합리적 마음 속에 있는 이런저런 것들.

풀잎 (herb, herbaceous, herbaged)

창1:12-거듭남의 셋째 상태에서, 그는 내적 인간으로부터 경건하고 헌신적으로 말하는데…(이 구절에서) ‘풀잎’, 또는 ‘씨맺는 풀잎’이라 불린다.
* 주님께서는 그로 하여금 연한 어떤 풀잎을 내게 하신다. 이것이 ‘연한 풀잎’이라 부르고 있다; 그 다음 더 유용한 어떤 것, 다시 좀더 많은 유용한 것을 내게 하시는데, 이것이 ‘씨를 가진 풀잎’이라 불리우고 있다.
* 인간이 자신으로부터 선을 행한다고 상상하는 수준에 있는 동안, 그의 진리들은…‘연한 풀잎’, 그리고 ‘씨를 가진 풀잎’이라 불릴 뿐이다.
창1:30, 시104:14-‘야채와 푸른 풀잎’이 자연에게 음식으로 주어지고 있다. 그의 자연적, 영적 양식 모두가 이렇게 묘사되고 있다. ‘여호와께서는 짐승을 위해 풀이 자라게 하시고 인간을 섬기도록 채소를 자라게 하셨다.’
창2:5-천적 인간의 과학적인 것과 합리적인 것이 ‘수증기로 적셔진 지면으로부터의 풀잎과 관목’에 의해 묘사되어 있다.
창3:18-‘들판의 풀잎을 먹는 것’, 또는 야생의 음식=야생 동물들 같이 사는 것.
예12:4-‘모든 들판의 풀잎’=교회의 모든 과학적 진리 (=교회의 모든 진리)
출9:22-‘이집트의 토지에 있는 들판의 모든 풀잎 위에’=자연적 마음에 있는 교회의 모든 진리. ‘풀잎’=진리…그 이유는 ‘토지’ 그리고 ‘들판’=교회…‘들판의 풀잎’에 의해 들판으로부터 생산되어지는 일반적인 모든 것이 뜻해진다.
마13:26-‘풀잎’=들판의 생산물. 여기서의 경우 ‘풀잎’은 교회의 진리가, ‘가라지’에 의해서는 거짓이 의미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출9:25-‘우박이 들판의 모든 풀잎을 내리쳤다’=이런 거짓들이 교회의 모든 진리를 파괴했다.
출10:12-‘토지의 모든 풀잎을 먹어치울 것이다’=모든 진리가 깡그리 소진됨…‘토지의 풀잎’=교회의 진리.
출10:15-‘토지의 모든 풀잎을 먹어치울 것이다’=진리에 관한 모든 과학적 사실이 파괴될 것이다….‘들판의 풀잎’=교회의 진리, 그 이유는 ‘들판’=교회; 그러나 ‘토지의 풀잎’=진리에 대한 과학적 사실, 그 이유가 여기서 ‘토지’=자연적 마음…
시106:20-‘풀잎을 먹는 것’=오로지 과학적으로만 그것을 자기 것 되게 하는 것.. ‘풀잎’=과학적인 것.
미5:7-‘풀잎 위의 물방울’=자연적 진리.
욜2:22-‘광야의 거주지들이 목초지가 되어 갔다’=이전에는 아무 것도 없었던 진리에 관한 지식들. ‘목초지(herbaged)’=그들의 성장과 번성함.
이42:15-‘나는 모든 그들의 풀잎을 말릴 것이다’=이 선들로부터의 진리들은 멸해질 것이다.
슥10:1-‘들판에 풀잎을 주는 것’=말씀으로부터의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 그리고 파생되는 총명.

풍지향 (galbanum)

* 출애굽기 30장 34절. 한 단계 더 깊은 내면의 진리에 대한 애착, 이 진리는 영적 인간, 또는 내적 인간에 있는 내면의 진리이다.

플라타너스 나무 (plane-tree)

창30:37-‘개암 나무와 플라타너스 나무’=자연적 진리들로부터의 힘. ‘개암 나무와 플라타너스 나무’=자연적 진리들.
겔31:8-‘전나무’와 ‘플라타너스 나무’=자연적인 것들…‘플라타너스 나무’=진리 측면에서의 자연적인 것들.

합환채 (mandrake)

창30:14-‘그는 들판에서 합환채를 발견했다’=선행의 선과 진리, 사랑의 선과 진리에 있는 결혼 사랑으로부터 있는 이런저런 것들. ‘합환채(dudaim)’=결혼 사랑 속에 있는 것들.
창30:14-‘네 아들의 합환채를 나에게 달라’=결혼 사랑 속에 있는 것들을 갈망함, 또는 애착함.

향나무 (thyine wood)

계18:12-‘모든 향나무’=자연적 선들. ‘향나무’=자연적 선인 이유는 ‘나무’=선; 그리고 향나무(thyine wood)는 그것의 이름 ‘둘(two)’로부터인데, 2란 숫자는 선 측면의 것을 의미하기 때문. 자연적 선인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값비싼 나무는 아니기 때문. (=자연적 인간 안에서 진리와 결합한 모든 선)

화석류 (myrtle)

* 도금양으로도 불리움
* 이사야 41장 19절 ‘백향목, 화석류, 기름나무’ = 내적 인간 속의 진리와 선. ‘화석류와 기름나무’ = 영적 선과 천적 선. ‘화석류’ = 보다 낮은 수준의 합리적 진리.

황양목 (box-tree)

* 이사야 60장 13절

회향 (anise)

흑단오목 (ebony)

* 에스겔 27장 15절. ‘상아의 뿔과 흑단’이란 예식 또는 예배 속의 외적 선들을 뜻한다.

히솝 (hyssop)

* 우슬초 (hyssop)를 보라

히스 (heath)

* (사막의) 떨기나무, 혹은 노간주나무로 추정.
* 예레미야 17장 6절, 48장 6절. 이에 대한 풀이는 없음

흰가루병 (mildew)

암4:9-‘말림과 흰가루병’=끝단(extremes)들에 있는 악과 거짓, 또는 육체의 감각으로부터 있는 악과 거짓.

성경의 지명과 상응

성경의
지명과 상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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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약자표

창 창세기 이 이사야 학 학개 마 마태복음
출 출애굽기 예 예레미야 슥 스가랴 막 마가복음
레 레위기 겔 에스겔 말 말라기 눅 누가복음
민 민수기 단 다니엘 요 요한복음
신 신명기 호 호세아 계 요한계시록
여 여호수아 욜 요엘
사 사사기 암 아모스
삼상 사무엘상 옵 오바댜
삼하 사무엘하 욘 요나
왕상 열왕기상 미 미가
왕하 열왕기하 나 나흠
욥 욥기 합 하박국
시 시편 습 스바냐

차례

가나 (Cana)-가나안 (땅, 토지, Land of Canaan)-가데스 (Kadesh)-가버나움 (Kapernaum, Capernaum)-가사 (Gaza)-갈대아 (Chaldea)-갈라 (Calah)-갈르엣 (Galeed)- 갈릴리 (Galilee)-갈멜 (Carmel)-강 (river)-개천 (ditch)-거리 (street)-거십 (Khesib, Chesib)-게네사렛 (Gennesaret)-게헤나 (Gehenna)-겟세마네 (Gethemane)-경계 (boundary, term)-끝내다 (terminate)-고모라 (Gomorrah)-고센 (Goshen)-골짜기 (valley)-광야 (wilderness)-구덩이 (pit)-구렁(텅이)(gulf)-구멍 (hole)-그랄 (Gerar)- 기랴다임 (Kiriathaim)-기럇-아르바 (Kirjath-arba)-기브아 (Gibeah)-기혼 (Gihon)-길 (way)-길갈 (Gilgal)-길르앗 (Gilead)-꼭대기 (top)
나일 (Nile)-낙원 (paradise)-넓은 장소 (broad places)-높은 장소 (high place)-니느웨 (Nineveh)
다마스커스 (Damascus)-다메섹-달시스 (Tarshish)-데만 (Teman)-도단 (Dothan)- 도벳 (Tophet)-동굴 (cave)-동산 (garden)-두로 (Tyre)-두아디라 (Thyatira)-(강)둑 (bank)-드단 (Dedan)- 들판 (field)-딤나 (Timnath)-땅 (earth)-토지 (land)-뜰 (court)
라마 (Ramah)-라메시스(Rameses)-라사 (Lasha)-라오디게아 (Laodicea)-랍바 (Rabbah)
-레바논 (Lebanon)-레센 (Resen)-루즈 (Luz)-르비딤 (Rephdim)-르호봇 (Rehoboth)
마라 (Marah)-마싸 (Massah)-마을 (village)-마하나임 (Mahanaim)-막벨라 (Machpelah)-막게다 (Makkedah)-만 (gulf)-맨끝 (extreme)-메사 (Mesha)-멤피스 (Memphis)-모레 (Moreh)-모리아 (Moriah)-목초지 (pasture)-못 (pool)-무덤 (grave, sepulchre)-물웅덩이 (pool)-못 (pool)-므깃도 (Megiado)-므리바 (Meribah)-미스갑 (Misgab)-미스바 (Mizpah)-믹돌 (Migdol)
바다 (sea)-바닷가 (shore)-바드로스 (Pathros)-바란 (Paran)-바산 (Bashan)-밖에 (without)-밧단 아람 (Padden Aram)-밧모 (Patmos)-버가모 (Pergamos)-베데스다 (Bethesda)-베들레헴 (Bethlehem)-베렛 (Bered)-벧엘 (Bethel)-보금자리 (nest)-보스라 (Bozrah)-부스 (Buz)-브라데 (Phrath)-브엘 (Beer)-브엘-라해-로이 (Beer-lahai-roi)- 브엘세바 (Beershaba)-비돔 (Pithom)-비손 (Pison)-비-하히롯 (Pi-hahiroth)-빨랫집 (fuller)
사데 (Sardis)-사렙다 (Sarepta)-사론 (Sharon)-사마리아 (Samaria)-사마리아 사람 (Samaritan)-사막 (desert)-사웨 (Shaveh)-사초 (sedge)-사할 (Zachar)-산 (mountain)- 살렘 (Salem)-새 땅 (new earth)-샘 (fountain)-샘 (spring)-샘 (well)-섬 (island, isle)-성지 (holy land)-세겜 (Shechem)-세바 (Shibah)-세일 (Seir)-소돔 (Sodom)-소안 (Zoan)-소알 (Zoar)-수르 (Shur)-술 (Shur)-수에네 (Seveneh)-수프 바다 (Sea Suph)-숨긴 장소 (hiding place)-숫곳 (Succoth)-습지 (marsh)-시날 (Shinar)-시내 (brook)-시내 (Sinai)- 시내산 (Mount Sinai)-시띰 (Siddim)-시온 (Zion)-시홀 (Sihor)-신 (Sin)-실로 (Shiloh)-
실로암 (Siloam)-십마 (Sibmah)-쓸쓸한 곳(solitude)
아골 (Achor)-아드마 (Admah)-아라랏 (Ararat)-아라비아 (Arabia)-아마겟돈 (Armageddon)-아시아 (Asia)-아싸 (Azzah)-아웬 (Aven)-아이 (Ai)-악갓 (Acad)-얍복 (Jabbok)-양우리 (sheepfold)-어디 (where)-어디서 (whence)-언덕 (hill)-에네글라임 (En-eglaim)-에담 (Etham)-에덴 (Eden)-에베소 (Ephesus)-에브라데 (Ephrath)-에스골 (Eshcol, 시내 또는 골짜기)-엔게디 (Engedi)-엔미스밧 (En-Misphat)-엘림 (Elim)-여관- (inn)-여리고 (Jericho)-예루살렘 (Jerusalem)-오빌 (Ophir)-요단 (Jordan)-우르 (Ur) -우바스 (Uphaz)-위치 (station)-유대 (Judea)-유브라데 (Euphrates)
자리 (seat)-자비석 (mercy-seat)-작은 길 (path)-장소 (place)-…주위에 (around)-
지면 (ground)-지역 (quarter)-지옥 (hell)
큰 폭포 (cataract)
타작 마당 (threshing floor)
평지 (plain)-포도원 (vineyard)-풀밭 (meadow)-필라델피아 (Philadelphia)
하란 (Haran, 장소)-하윌라 (토지) (Havilah)-한가운데 (midst)-항구 (haven)-헤레스 (Heres)-헤르몬 (Hermon)-헤브론 (Hebron)-헤스본 (Heshbon)-헬본 (Helbon)-호렙 (Horeb)-호바 (Hobah)-호수 (lake)-홍해 (Red Sea)-(유대교) 회당 (synagogue)-힛데겔 (Hiddekel)

가나 (Cana)

요2:1-‘갈릴리 가나의 결혼’=이방인들과 더불은 교회.

가나안 (땅, 토지, Land of Canaan)

* 토지도 참조
겔16:3-여기서의 경우, 내적인 것 없는 외적 예배가 ‘가나안’이다.
창12:5-‘(아브람외 여러 사람들은) 가나안의 토지로 가려고 나아갔다’=그리하여 주님은 사랑의 천적인 것들 쪽으로 나아가셨다는 것. ‘가나안의 토지’는 천국 안에, 그리고 땅 위에 있는 주님의 왕국을 표현한다; 이러므로 해서 거기에 표현적인 교회가 설립되었다…이로부터 가나안의 토지는 비록 그곳에 거룩한 것이라고는 거의 없이, 오히려 우상숭배자들이나 모독하는 백성들이 차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거룩한 토지라 불리웠다. 이런 이유에서 이 절과 다음 절에서 ‘가나안의 토지’에 의해 사랑의 천적인 것들이 의미되어진다; 그 이유가 사랑의 천적인 것들은 주님의 왕국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고 그분의 왕국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창13:9-‘네 앞에 토지 전체가 있지 않느냐?’=모든 선. ‘토지’ 좋은 의미에서, 그리고 여기서 ‘가나안의 토지’=천적인 것, 고로 선.
창13:12-‘아브람은 가나안의 토지에서 거주했다’=내적 인간, 이 인간은 사랑의 천적인 것 안에 있었다는 것.
창13:15-‘네가 보는 모든 토지를 나는 너에게 줄 것이다’=천적 왕국, 이 왕국은 주님의 것이다는 것…’ 그 이유가 토지’, 또는 ‘가나안의 토지’는 천국들에 있는 주님의 왕국, 또는 천국, 그리고 땅 위의 하느님의 왕국, 또는 교회가 표현되어지고 있다.
창13:17-‘일어나 이 토지 여기저기를 걸어라’=그분은 천적 왕국을 탐사하실 것이다는 것…’토지’, 또는 ‘가나안의 토지’는 천국들에 있는 하느님의 왕국, 또는 천국, 그리고 땅 위에 있는 하느님의 왕국, 또는 교회가 의미되고 있다.
창15:18-‘가나안의 토지’=주님의 왕국. 그러므로 ‘네 씨에게 나는 이 토지를 줄 것이다’=천국적인 왕국이 선행으로부터 그분에 대한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 유업으로 주어질 것이다는 것
창16:3-이것들은 아브람이 ‘가나안의 토지’에 거주한지 십년에 의해 의미되는 남겨진 것들이다.
창17:8-‘가나안의 모든 토지’=천국의 왕국.
민13:2,3-‘바란 광야로부터 그들은 가나안의 토지를 탐험했다’=주님의 신성한 인간을 통하여 영적인 것을 위한 천국의 왕국이 있다.
창22:17-인간이 영적으로 되어갈 때, 또는 거듭나아질 때, 악들과 거짓들, 마찬가지 것으로 악귀와 악령들이 그의 문으로부터, 또는 그의 마음으로부터 추방되고, 그 다음 선들과 진리들, 또는 선행과 신앙이 그것들의 자리를 대신 꿰차고 들어앉는다; 이것이 ‘네 씨가 네 적들의 문을 상속 받는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이것이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가나안의 토지로부터 나라들을 추방하는 것으로 표현되어지고 있다.
창28:1-‘너는 가나안의 딸들로부터 여인을 데려오지 마라’=악과 거짓에 대한 애정들과 결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가나안’=거짓과 악인 것.
창28:8-‘가나안의 딸들’, 여기서의 경우=순수하지 않은 것으로부터의 진리에 애착함들; (그 이유는 헷의 딸들로 이해되기 때문).
창31:18-‘가나안의 토지에 있는 자기 아버지 이삭에게 오는 것’=그분의 인성이 신성이 되기 위하여 합리성의 신성한 선과 결합하는 것. ‘가나안의 토지’=주님의 천적 왕국, 그리고 최고 의미에서, 즉 주님을 서술할 때, 그분의 신성한 인간.
여11:16,17-세일 산은 한쪽 측면으로는 가나안의 경계였다.
창33:18-‘가나안의 토지에서’=주님의 왕국에서.
창15:18-가나안의 토지는 (태고 교회의 때에는) 이집트의 강으로부터 유브라데 강까지 이르는 모든 토지를 두고 그렇게 불리웠다.
창35:12-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었던 토지, 나는 그것을 너에게 줄 것이다’=자연에 있는 신성한 선을 내 것되게 해주심…’가나안의 토지’, 여기서는 ‘토지’를 말하는데, 내향의 의미에서=주님의 왕국, 그리고 이로부터의 교회, 이는 땅에 있는 주님의 왕국; 그러므로 그 토지=선, 그이유가 선은 주님의 왕국과 교회의 참 본질이기 때문. 그러나 최고 의미에서, ‘가나안의 토지’=주님의 신성한 선; 그 이유가 천국들과 땅에 있는 주님의 왕국에 있는 선은 주님으로부터이기 때문.
신11:11-‘가나안의 토지’에 의해 주님의 왕국과 그분의 교회가 의미되어지는 바, ‘이 토지는 산들과 계곡이 있어 하늘의 비가 내리면 물들을 마신다’ 라고 불리우고 있다.
창42:5-‘가믐이 가나안의 토지에 있었기 때문에’=자연의 교회 속에 있는 것들의 삭막함.
창44:8-‘우리는 가나안의 토지로부터 당신에게 (은을) 되가져왔습니다’=종교적인 것으로부터 있는 복종.
창45:17-‘가라, 너희는 가나안의 토지로 가라’=그들의 주거지, 즉 자연의 교회 속의 진리들의 것…‘가나안의 토지’=교회 속에 있어 왔던 이들의 주거지; 고로 선과 더불은 교회 속의 진리들의 주거지, 그 이유는 이런 것들이 교회를 구성하기 때문.
창47:14-‘가믐이 가나안의 토지에 극심하였다’=교회에 있어야 할 것들이 결핍됨.
창50:24-(‘토지’ 여기서, 가나안을 뜻하는데, 고대 교회, 또는 고대인들이 있었던 교회의 상태.)
출3:8-‘아름답고 넓은 토지로’=천국, 선행의 선과 신앙의 진리가 있는 곳. ‘토지’ 여기서 ‘가나안의 토지’=주님의 왕국, 고로 천국.
출6:4-‘그들에게 가나안의 토지를 주는 것’=주님의 신성한 인간을 통한 결합을 수단으로 천국으로 승강됨.
출12:25-‘너희는 여호와께서 너에게 줄 토지로 올 것이다’=주님으로부터 그들과 더불어 있는 천국으로.
출15:15-‘가나안의 모든 주민들은 점차 사라질 것이다’=이것은 교회 속에 있는 이들과도 똑같다는 것, 그리고 그들은 선들을 섞음질하고 진리들을 왜곡해버렸다는 것.
출16:35-‘그들은 가나안의 경계에 당도 할 때까지 만나를 먹었다’=그들은 천국의 영역에 올 때까지 진리로부터의 선을 자기 것 되게 하는 경험을 가졌다는 것…‘가나안의 토지’=천국.
출32:34-‘가나안의 토지로 백성을 인도하는 것’=그들로 교회이도록 하는 것.
사5:19-‘가나안의 왕들이 싸웠다’=악의 거짓들과 맞서는 전투가 있다.

가데스 (Kadesh)

창14:7-‘그들은 엔머스밧으로 왔다, 이곳은 가데스이다’=계속됨…‘가데스’에 의해 진리들이 의미되어진다, 또한 진리들에 관하여 논쟁함도 의미된다. 여기서는 주님이 그분의 첫 전투에서 정복하신 거짓들과 이 거짓에서 파생된 악들에 관한 것을 취급하고 있기에, ‘엔머스밧, 가데스’라는 언급이 있는데, 그이유는 거기서 진리들에 관한 다툼이 있었기 때문.
겔47:19, 48:28-‘가데스=진리에 관하여 논쟁이 있는 것.
민21:1-13, 27:14, 신32:51-‘모세가 바위를 친 곳’..이 물은 ‘므리바’라 불리우고 있다. 이는 다툼으로부터이다.
민13:26-스파이들이 되돌아 온 곳 역시 ‘가데스’이고, 거기서 그들은 불평하고 다투었다.
창16:14-‘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다’=품질, 즉 그분은 이 진리의 품질이 무엇이었는지 보셨다는 것…‘가데스’=진리, 또한 진리들에 관하여 다툼.
창20:1-주님이 선행과 신앙에 관한 교리적인 것들로 처음 가르쳐졌을 때 그분이 계셨던 상태가 ‘가데스와 수르’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시29:8-‘광야’, 그리고 ‘가데스 광야’에 의해 어떤 진리와 선도 있지 않는 교회가 의미되어진다.

가버나움 (Kapernaum, Capernaum)

마11:23-‘가버나움’=가르쳐진 이들.

가사 (Gaza)

창10:19-‘가사’=선행에 관련하여 계시된 일련의 사항들.

갈대아 (Chaldea)

창11:28-‘갈대아 (나라)의 우르’=거짓이 있는 외적 예배.
* ‘갈대아’=진리를 모독함.
겔23:17-갈대아인들이 ‘바벨의 아들들’이라 불리는데 이는 예배에서 모독된 진리들을 명시한다.

갈라 (Calah)

창10:11-‘르호보딜과 갈라’=또다른 근원으로부터 오는 유사한 것.
* ‘갈라’=탐욕들로부터의 거짓.
* 교리적인 것들로부터의 거짓들의 셋째 근원은 의지 속에, 고로 탐욕 속에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자기들의 탐욕을 사랑해주는 것 말고는 어떤 것도 진리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거기서 파생된 거짓들이 ‘갈라’라 불리워지고 있다.

갈르엣 (Galeed)

창31:47-‘야곱은 그것을 갈르엣이라 불렀다’=신성한 자연 평면의 선의 측면에서의 그것의 품질…‘갈르엣’은 ‘쌓아올린 것’, ‘증거자’, 또는 ‘증거가 되게 쌓아 놓은 것’을 뜻한다.
창31:48-‘쌓아 올린 것’=선…그리고 ‘증거’, 진리를 수단으로 선을 확증함…품질 자체가 이름 ‘갈르엣’에 함유되어 있다…이는 라반이 했던 말, ‘이 더미는 오늘 너와 나 사이에 증거이다, 그러므로 그는 ’갈르엣‘이라 불렀다’에 의해 주님의 신성한 자연 평면의 선에 여기서 라반에 의해 의미된 선의 결합의 증거를 의미함이 분명해진다. 그리고 선을 수단으로 주님과 이방인의 결합도 의미된다.

갈릴리 (Galilee)

요2:1-‘갈릴리의 가나에서’=이방인들 사이에서.
마4:13, 이9:1-‘스불론의 토지와 납달리의 토지 그리고 이방인의 갈릴리’=생활의 선 안에 있고 진리를 받는 이들 사이에서 교회가 건설됨, 고로 이들과의 결합, 그리고 악들과 거짓들에 맞선 전투.

갈멜 (Carmel)

이16:10-영적 교회, 이는 ‘갈멜’(또는 ‘열매 풍성한 들판).
예50:19-‘갈멜과 바산에서 풀을 뜯는 것’=신앙과 선행으로부터의 선 안에서 훈육되는 것.
이35:2-‘레바논’=영적 교회. ‘갈멜과 사론’=천적 교회. 후자는 ‘여호와의 영광’의 속성이라 단정된다. 이는 선행(charity)인 천적 진리가 뜻해질 때이다. 전자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영예’의 속성이라 단정된다. 이는 선행인 영적 선이 뜻해진다.
이10:18-‘갈멜’=영적 교회, 거기에 포도원이 있기 때문이다.
이35:2-‘갈멜과 사론의 영예’=그들이 받는 신성한 선.
이16:10-교회의 선이 ‘갈멜’에 의해 뜻해진다. 그리고 그로부터의 진리들은 ‘포도원들’에 의해 뜻해진다.
암1:2-‘갈멜의 꼭대기’=교회의 모든 진리들. 그이유는 갈멜에 포도원들이 있기 때문.
예4:26-‘갈멜’=선으로부터 진리 안에 있는 영적 교회. 그것이 ‘황무지’임=거기 선으로부터의 진리들이 없음.
이33:9-‘레바논’=선과 진리를 합리적으로 이해함에 관련한 교회. ‘사론, 바산, 갈멜’=말씀의 자연적 의미로부터의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에 관련한 교회.
이10:18-‘숲의 영광, 그리고 갈멜, 이는 불과 불꽃이 먹어치워 소멸할 것이다’=진리와 교회의 선으로부터의 진리, 이것이 거짓들과 거짓으로부터의 악들로 변했는바 파괴될 것이다.
예48:33-심정의 참 환희인 영적 사랑과 천적 사랑의 즐거움이 멸해진다는 것이 ‘갈멜로부터 기쁨과 즐거움이 모두 그러모아짐’에 의해 의미되었다.

강 (river)

* brook도 참조
시36:8-‘당신의 유쾌하심의 강’=신앙 속의 영적인 것. (=사랑의 선으로부터 있는 진리). (총명과 행복).
겔31:15-지옥으로부터의 추잡한 것들이 ‘강들’이라 불리운다.
예46:8-‘이집트의 강들’=갖가지 거짓된 과학적 사실들.
예47:2-‘범람하는 시내’=거짓. (=진리를 이해함을 파괴하는 과학적인 것)
이30:33-‘유황이 타는 시내’=자아 사랑의 악으로부터의 거짓들.
시24:2-‘그분은 홍수들 위에 그것을 설립하셨다’=총명 속에 있는 것들 위에. (=신앙 속의 진리들 위에).
출1:22-‘모든 아들…너희는 강에 던질 것이다’=그들은 모든 진리들을 거짓에 담글 것이다는 것.
이18:1-‘구스의 강들 넘어’=그들이 거짓 원리들을 확증하는 수단인 지식들 쪽으로
출2:3-‘그녀는 강둑의 창포 안에 그것을 놓았다’=거짓된 과학물 사이에. ‘이집트의 강’=거짓인 것.
이19:6-‘강들’=총명 속의 것들
출2:5-‘강에서 씻는 것’=거짓인 것으로부터의 예배.
출7:15-‘강둑’=거짓의 상태 안에 침입된 이들이 있었다.
출7:19-‘그들의 시내 위에, 그리고 그들의 강들 위에’=거짓의 교리들 안으로…‘시내들과 강들’, 이는 물의 집합인 바,=교리들; 이 구절의 경우 거짓 교리들. ‘시내들’=총명에 관한 것들, 고로 진리 속의 것들; 반대 의미에서 총명에 반대되는 것, 고로 거짓 속의 것들.
겔32:14-이집트의 ‘물들’ 그리고 ‘강들’=과학적 진리들.
요7:38-‘생명 있는 물의 강들’=주님 만으로부터 (풍부하게) 있는 신성한 진리.
마7:27-‘홍수들이 왔다, 그리고 그 집을 때렸다’=거짓들이 넘쳐남…또한 ‘홍수들’=시험들, 시험은 거짓의 범람이다.
계12:15-‘뱀은 홍수 같은 물을…토했다’=거짓들로부터의 추론이 대단히 풍부함.
시24:2-‘홍수들’=교리적인 것들.
단7:10-‘불의 시내가 흐른다’=사랑의 신성한 선; 그리고 ‘발행됨, going forth’=신성한 진리가 진행됨.
이33:21-‘장엄한 여호와는 우리에게 강들의 장소, 시내의 장소(일 것이다)’…‘강들’=지혜; ‘시내’=총명.
시110:7-‘그분은 길에서 시내를 마실 것이다’=글자로 있는 말씀.
계9:14-‘큰 강 유브라데’=지식들로부터 있는 인간의 합리성.
시72:8-‘강으로부터 땅의 끝들까지’=합리적이고 영적인 것들의 확장.
요7:38-‘배에서 나오는 강들’=내면적으로 이해함, 또는 총명.
이19:5,6-‘시내들이 물러갈 것이다’=영적 총명의 모든 것들이 떠날 것이다.
마7장-‘홍수들’=이 구절의 경우 비로부터 물의 범람=시험들.
창2장-‘강’, 동산에서=지혜; ‘첫째 강’=선과 진리; ‘둘째 강’=선과 진리, 또는 사랑과 신앙 속에 있는 모든 것들에 관한 지식들; ‘셋째 강’=이성; ‘넷째 강’=외적 인간 속에 있는 지식. 위 모두는 지혜로부터 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랑과 주님에 대한 신앙으로부터 이다.
* ‘에덴으로부터 흐르는 강’=사랑으로부터의 지혜.
창15:18-‘이집트의 강으로부터 큰 강, 유브라데 강까지’=영적인 것들과 천적인 것들의 확장; ‘이집트의 강까지’=영적인 것들의 확장; ‘유브라데 강까지’=천적인 것들의 확장.
겔31장-‘강들’ 등등=영적 선들, 이 선들 사이에 그것의 뿌리가 있었다.
시89:25-‘강들에 오른손을 놓는 것’=진리에 관한 지식 안에서 힘을 얻는 것.
창24:10-‘아람 나하라임’, 또는 ‘강들의 시리아’=진리에 관한 지식들, 그 이유는 ‘강들’=총명, 이것은 진리에 관한 지식 속에 있다.
겔47:9-‘강’=말씀; ‘모든 것을 살아있게 하는 물들’=말씀 안에 있는 신성한 진리들.
이30:28=‘범람하는 시내’=거짓이 넘쳐 흐름.
창31:21-‘(야곱)이 강을 건넜다’=결합이 있는 상태. 여기서의 강은 유브라데=신성과 결합, 그 이유는 이 강은 저쪽 편에서 가나안의 경계였기 때문…이제 야곱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바, 이 강은 그의 첫 번째 경계였다, 고로=결합…
창32:23-‘(야곱은) 그것들이 강을 건너게 만들었다’=한층 더 은근히 심어짐(further insinuation).
계8:10-‘강들, 물들의 원천들’=총명과 말씀으로부터의 지혜.
예2:18-‘앗수르와 강의 물들’=생활의 선과 신앙 속의 진리에 맞서 이런 과학적 사실로부터 추론함.
창41:2-(바로가 꿈을 꾸기를) ‘그는 강가에 서있었다’=경계로부터 경계까지. ‘강’, 여기서는 이집트의 강, 또는 나일 강,=경계인데, 큰 강들, 즉 유브라데, 요단, 그리고 나일은 가나안의 최말단 경계들이었다.
창41:3-‘강둑에서’=경계들에서.
겔47장-‘강둑에서 양식이 될 모든 나무가 올라왔다’=총명과 지헤의 것들.
이35:6-‘광야에서 물들이 터져나오고 사막의 평지에 시내들(이 흐른다)’=그들을 위한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
계12:15-‘홍수 같은 물’=악으로부터의 거짓, 그리고 이것으로부터 추론함.
출7:18-‘강이 악취를 풍길 것이다’=그것을 혐오함. 여기서의 강은 이집트의 강이고 이 강이 피로 변했다=왜곡된 진리.
출8:3-‘강이 개구리들을 출현시킬 것이다’=이런 거짓들로부터의 추론들.
출8:9-‘강 안에서만 그것들은 살아남을 것이다’=그들은 이런 것들이 있는 거짓들과 더불어 남겨져야 할 것.
시74:15-‘당신은 세찬 강들을 말리셨다’=한층 더 센 거짓들이 흐트러지는 것
겔47장-‘강들’=총명에 관한 것들, 이것은 믿음 속의 진리들로부터 있다.
이30:33-‘유황의 시내’=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의 악들로부터의 거짓들.
출23:31-‘사막으로부터 강에까지’=감각성의 즐거움으로부터 합리성의 선과 진리까지. (그 이유가 유브라데 강을 뜻하기 때문)
시80:11-‘바다로 그리고 강으로’=내면의 진리들과 선들 쪽으로.
이50:2-‘나는 강을 광야로 만든다’=진리들 자체가 황폐되는 것.
이7:19-‘황량함들의 강들’=교리 속의 진리들이 완전히 황량해졌다. (=거기에 진리들은 없다)
계8:10-‘강들의 삼분의 일이 떨어졌다’=모든 진리들이 완전히 왜곡되었다. ‘강들’=풍부한 진리들.
계16:4-‘그의 대접을 강들 위에 쏟았다’=그것들과 더불어 이해성 안으로 유입됨…‘강들’=교리와 생활을 위한 합리적 인간, 고로 이해성을 섬기는데 충분한 진리들.
계22:1-‘수정 같이 빛을 내는 생명의 물의 순수한 강’=말씀의 영적 의미로부터 반투명 하는 신성한 진리가 풍부함.
계22장-‘강’=신성한 진리. (=총명)
이19:5-‘강이 말리울 것이다’=진리로부터의 교리가 없다, 이러므로 총명도 없다
이48:18- ‘강 같은 평화’=풍부함.
신8:7-교회가 ‘물 있는 강들의 토지’라 불린다, 그 이유는 ‘물 있는 강’=진리로부터의 교리들이기 때문.
시104:10-‘그분은 샘들을 강들 안으로 보내신다’=거기로부터의 총명.
이57:5-‘강들’=자기 고유의 총명.
이41:18-‘강들을 여는 것’=총명을 주는 것.
시74:15-‘원천과 홍수들’=교리 속의 거짓들, 이것은 인간 고유의 총명으로부터 이다. ‘세찬 강들’=거짓의 원리들이 확증되어 파생됨.
이43:2-‘네가…강을 통과하여 건널 때, 그것들이 너를 침몰되게 하지 않을 것이다’=진리들에 맞서는 거짓들로부터의 추론들(이 들어와 부패하게 하지 못할 것이다)
이50:2-‘나는 강들을 광야로 만든다’=(진리들에 관한) 합리적 인간을 박탈하는 것, 고로 더 이상 총명은 없다.
이43:20-‘쓸쓸한 장소에 강들이..’=이전에 있지 않았던 진리로부터의 총명.
겔47장-‘강’=신성한 진리를 영접함으로부터의 총명…(=총명과 지혜)
예17:8-‘강가로 그의 뿌리들을 보내는 것’=영적인 것으로부터 자연적인 것으로 총명이 확장됨.
민24:6,7-‘강가에 심었다’ 그리고 ‘물들’=신성한 진리가 흐름, 이로부터 총명이 있음.
겔31:4-총명이 증가함이 ‘그것의 강들이 그의 심은 것을 빙둘러 달린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시105:41-‘그분은 바위를 여셨다…강 같이 메마른 장소에서 내달렸다’…‘강들’=총명과 지혜.
합3:8-‘강들’, 그리고 ‘바다’=교회의 모든 것, 그 이유는 그들=그것의 최말단들.
시46:4,5-말씀, 또는 교회를 위한 신성한 진리는 멸해지지 않는다가 ‘강이, 시내가 있어 하느님의 도성을 기쁘게 만들 것이다…그것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여기서의 ‘강’은 ‘원천’과 같은 의미, 즉 말씀을 의미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그것의 ‘시내들’ 때문, 시내=진리들.
이37:25-‘이집트의 강들’=진리에 관한 지식과 통각함, …그 이유는 자연적 인간(이집트)이 지식과 통각을 가지는 것은 마치 영적 인간이 총명을 가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겔30:12-‘나는 강들을 마른 (토지)로 만들 것이다’=진리에 관한 지식과 통각함은 더 이상 없다.
이42:15-‘나는 강들을 섬들로 만들 것이다’=총명이 멸해질 것이다는 것.
이18:2-‘강들이 망쳐버린 토지’ ‘강들’=인간 고유의 총명 속에 있는 거짓들.
시124:4-‘시내가 우리 혼을 삼켰다’. ‘시내’=진리들에 맞서 이런 거짓들로부터 추론함. 이것은 인간이 진리들과 진리들에 따른 생활을 통하여 받는 영적 생명을 파괴했다.
신1:7, 여1:4-‘큰 강’=영적인 것들이 합리적인 것들 안으로 유입됨.
이8:7-‘힘차고 많은 강의 물들, 앗수르 왕’=오류와 거짓들 만으로 추론함.
이19:6-‘이집트의 강들이 줄어들고 마를 것이다’=자연적 총명의 모든 것들이 멸해질 것이다.
열하19:24-‘이집트의 강들’=영적 근원으로부터 있는 과학물로부터의 자연적 인간의 총명.
예2:18-‘어찌하여 너는 강의 물들을 마시려고 앗수르로 가는 길에 있는가?’=거기로부터 추론함, 그때부터 믿음 속의 거짓들이 있다.
시107:33-‘그분은 강들을 광야로 만드신다’=진리를 이해함으로부터의 총명, 또는 말씀을 이해함으로부터의 총명이 악으로부터의 거짓을 수단으로 황폐되었다
이41:18-‘나는 절벽들에 강들을 열 것이다’=영적 진리들로부터의 총명.
시104:10-‘원천들’=말씀 속의 진리들; 그리고 ‘강들’=거기로부터의 총명.
이30:28-‘범람하는 시내’=거짓들로부터 추론함.

개천 (ditch)

단9:25-‘거리와 개천이 회복될 것이다.’ ‘거리’=진리, ‘개천’=교리.

거리 (street)

예9:21-‘거리에 있는 유아’=발생하고 있는 진리.
애2:12-‘도성의 거리들’=진리들.
애2:19-‘거리들’=진리들.
창19:2-‘우리는 거리에서 밤을 지낼 것이다’=말하자면 그분은 진리로부터의 심판을 원하셨다는 것…말씀에서, ‘거리’는 ‘길’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즉 진리. 그이유가 거리는 도성의 길이기 때문.
단9:25-‘거리와 개천이 회복될 것이다’=그 당시 진리와 선이 있을 것이다.
눅14:21-‘거리와 골목길로 빨리 가거라’=그는 얼마간의 진짜 진리, 즉 선으로부터 빛을 내는 진리를 어느 곳에서 구해야 할 것이다는 것.
예6:11-‘예루살렘의 거리들’=교회 안에 군림하는 거짓들.
이51:20-‘모든 거리의 머리에 눕는 것’=모든 진리를 빼앗는 것. (=진리가 흐트러지게 나타나는 것)
이24:11-‘거리에서 포도주 위에 울음이…’=거짓의 상태…‘거리들’=진리들 쪽으로 인도하는 것들 (=진리의 결핍 때문에 탄식함, 그리고 진리가 거짓과 뒤섞임)
눅13:26-‘당신은 우리의 거리에서 가르쳤다’=주님의 말씀으로부터 진리들을 전도하는 것. 그이유가 이전에는 전도가 거리에서 행해졌기 때문. ‘거리들’=교회의 교리 속의 진리들.
예48:38-‘거리들에서 슬퍼함’=모든 진리가 황폐됨.
계11:8-‘그들의 시체는 큰 도성의 거리 위에 뉘일 것이다’=…믿음 만으로 정의로워진다는 교리의 거짓들. ‘거리’=거짓.
계21:21-‘도성의 거리는 말하자면 투명한 유리 같은 순금이었다’=새 교회의 모든 진리, 그리고 이 교회의 교리 속의 모든 진리는 형체에서 주님으로부터 천국으로부터 나와 빛과 함께 흐르는 사랑의 선이다는 것…‘도성의 거리’에 의해 교회의 교리 속의 진리가 의미된다.
계22:2-‘그것의 거리 한가운데에 생명의 나무가 있었다’=교리의 가장 안쪽에서 주님은 그분의 신성한 사랑 안에 계신다. ‘거리’=교회의 교리 속의 진리.
예5:1-‘예루살렘의 거리들을 이리저리 달려라’, 그리고 ‘거기로부터 사방으로 찾아보라’=그 교회의 교리물들 안을 보고 조사하는 것…‘거리들’, ‘방면들’=교리물들.
예2:19-‘모든 거리들의 머리에서 배고픔을 통하여 현기증나는 것’=진리와 선에 대한 지식의 결핍을 통하여 영적 생명이 박탈되는 것.
슥8:15-‘도성의 거리들은 거리에서 노는 소년 소녀들로 꽉 찰 것이다’…‘도성의 거리들’=교리 속의 진리. ‘거리들에서 노는 소년들과 소녀들’=진리와 선에 애착함 들 (그리고 그들의 기쁨들. 이 기쁨은 교리의 진리들로 사는 이들에게 풍부해 있을 것이다) (=교리물로부터 기뻐 환호하는 순진으로부터의 진리들과 선들.)
예11:13-‘예루살렘의 도로들’=교회의 교리 속의 거짓들.
애4:14-‘거리들에서 눈멀어 방황하는 것’=진리들을 전혀 보지 못하는 것.
겔26:11-‘그들에 의해 짓밟힐 거리들’=교회의 교리 속의 진리들, 이것은 완전하게 파괴될 것이다.
애4:8-‘거리들에 알려져 있지 않는 것’=순수한 진리들에 의해 인식되지 않는 것.
예14:16-‘예루살렘의 거리들’=교회의 진리들.
예7:17-‘예루살렘의 거리들’=(교회의) 진리들. 여기서는 거짓들 (=교회의 교리 속의 진리들)
계11:8-‘큰 도성의 거리’=교리로부터의 진리와 선. 반대적 의미에서 교리로부터의 거짓과 악. 그이유가 ‘거리’에 의해 인도하는 진리, 반대 의미로는 인도하는 거짓.
이59:14-‘거리’=진리가 인도하는 곳인바, ‘진리가 거리에서 헛딛어 곱드러졌다’라고 말해지고 있다.
나2:4-‘거리들’과 ‘구역들’=각 사람의 애착과 지각과 일치하는 것. 이렇게 말해진다. ‘병거가 거리들에서 격노했고, 그것들은 사방으로 이리저리 달렸다.’
애4장-‘거리들’=생활의 선 쪽으로 인도하는 교리 속의 진리들. 또는 우리가 그것에 따라 살아 갈 진리.
예44:9-‘예루살렘의 거리들’=교리 속의 거짓들.
이15:3-‘거리들’=그들과 더불은 외면의 것들.

거십 (Khesib, Chesib)

창38:5-‘그녀가 그를 낳았을 때, 그는 거십에 있었다.’ ‘거십’=‘셀라’에 의해 의미된 우상숭배의 상태, 이 상태에 유대 나라가 있었다.

게네사렛 (Gennesaret)

눅5:1-‘바다, 또는 게네사렛 호수’, 주님을 서술할 경우,=복합체에 있는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들.

게헤나 (Gehenna)

마18:9-‘불의 게헤나’
막9장-여기서 게헤나, 또는 지옥이 취급된다.
마5:29-‘그리고 네 온 몸을 게헤나 안으로 던지지 마라’
* ‘게헤나’는 현세에의 욕망으로부터의 지옥이다.
막9:45-‘꺼질 수 없는 불 안으로, 게헤나 안으로 던져지는 것’

겟세마네 (Gethemane)

* 이와같은 것이 겟세마네와 십자가에서의 주님의 마지막 시험이었다.
*(이 세 제자들이) 겟세마네에서 주님을 시중들었다.

경계 (boundary, term)
끝내다 (terminate)

* border, canaan도 참조
창10:19-‘가나안족의 경계선’=그들과 더불은 지식들의 확장.
창23:17-‘경계선’과 ’주변‘=외면에 있는 것들.
창28:18-‘그는 기둥을 위해 그것을 놓았다’=거룩한 경계…선은 선 안에서 종결되어질 수 없다, 그러나 진리 안에서 가능한데, 그이유는 진리가 선의 그릇이기 때문.
창40:16-‘구멍이 있다, perforated’=중간 어느 곳에서 종결됨이 없다. 내면의 것들은 등급별로 구분되어진다, 그리고 각기 제 등급에서 종결되어진다, 그리고 종결됨을 통하여 더 낮은 등급과 분리되어진다…모든 등급들은 잘 종결될 필요가 있다, 이 종결을 수단으로 서로서로 구분되기 때문이다.
출10:4-‘네 경계 안에 메뚜기’=가장 바깥쪽 것들에 있는 거짓,
출13:7-‘모든 네 경계에’=선으로부터의 진리가 그 자체 넓혀지는 곳은 어디든지. ‘경계, border’=선으로부터의 진리가 팽창함. 그이유가 모든 진리는 각기 자신의 팽창을 가진다, 고로 그것의 경계선을 가진다.
출16:36-‘그들은 가나안 토지의 경계에 올 때 까지 만나를 먹었다’=그들은 천국의 영역에 올 때까지 진리로부터의 선을 제 것 되게 했다. ‘가나안의 토지의 경계’=천국의 입구, 또는 천국이 시작되는 구역.
출19:12-‘너는 백성 주변에 경계를 세울 것이다’=선의 영적 영역 쪽으로 보다 더 먼 것은 아닌 천국 쪽으로의 확장.
출23:31-‘너는 네 경계를 홍해로부터 블레셋의 바다에 까지로 세울 것이다’=과학적 진리로부터 신앙의 내면적 진리 쪽으로 확장함.
출28:14-‘끝들’=가장 바깥쪽 것들.
출28:22-‘너는 가슴받이 끝에 사슬을 놓아라’=가장 바깥쪽 것들에서 천국의 전체가 결합하는 것.
출34:24-‘나는 네 경계가 확장되게 만들 것이다’=선으로부터의 진리가 불어나고 확장됨.
이60:18-‘경계들에서’=자연적 인간에서, 이 인간에서 영적인 것들이 종결된다.
시144:14-‘경계’=이 모든 것들.
시105:31-‘경계’=내면의 것이 중단되는 최말단, 여기에 모두 함께 있다.
출28:31-‘나는 네 경계를 홍해에서 블레셋의 바다에 까지, 그리고 사막으로부터 강에 까지.’ 가나안의 경계들=교회의 최말단 것들, 이는 과학적 진리들, 말씀으로부터 진리와 선에 대한 지식들, 그리고 합리적인 것들이다.
이19:19-‘(이집트의) 경계’=과학적 진리.

고모라 (Gomorrah)

창13:10-‘고모라’=거짓된 설득들.
* ‘고모라’=자아 사랑과 거짓으로부터 명령을 집행하는 파생된 탐욕
* ‘고모라’=자아 사랑의 악으로부터 있는 모든 거짓.
신32:32-‘들판들과 고모라의 포도들’=거짓들로부터의 악들.
예23:14-‘고모라 주민 같은 주민들’=교리의 거짓들로부터의 악한 생활.

고센 (Goshen)

창45:10-‘당신은 고센의 토지에 거주할 것입니다’=자연 평면에서 중간인 것. ‘고센 토지’=중간, 또는 가장 안쪽. 이 토지가 이집트에 있고, 이집트가 자연 평면에 있는 과학적인 것을 의미하는 바, 고센=자연에서 중간인 것, 또는 가장 안쪽인 것이다. 그이유가 고센은 이집트의 토지 중에서 가장 좋은 지역이기 때문, 마찬가지로 과학물이 있는 곳, 자연에서 가장 좋은 것은 중간에, 또는 중앙에 있기 때문. 그이유가 선 자체, 일종의 태양 같이, 거기에 있다, 그리고 측면에 있는 것에 빛을 준다.
창46:28-‘그 자신 앞에 고센을 보여주는 것’=자연에서 중간에 관하여…자연에서 중간 또는 가장 깊은 것은 거기 안의 가장 좋은 것이 의미된다. 그 이유가 가장 좋은 것은 중간에 있기 때문…그리고 그것 주위 각처에 선들이 천국적 형태에서 배치된다.
출8:18-‘나는 그 날에 고센의 토지를 구별할 것이다’=그들은 비록 영적 교회의 이들 근처에 나타난다 해도, 그들을 감염되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골짜기 (valley)

창11:2-‘그들은 시날의 토지에서 골짜기를 발견했다’=그들의 예배는 더 불순해지고 모독되었다는 것…’골짜기’=산 보다 더 낮은 것; 고로 예배에서 보다 더 낮은 것, 즉 외면의 것.
이22:1-‘환상의 골짜기’=몽상과 추론에 의해 예배가 왜곡되어지고 결국 모독되었다.
창14:3-‘싯딤의 골짜기에서’=탐욕의 불결한 것들.
창14:17-‘사웨 골짜기에서, 이는 왕의 골짜기이다’=그 당시 선과 진리에 관련한 외적 인간의 상태. ‘사웨의 골짜기’=외적 인간의 선들. 그리고 ‘왕의 골짜기’=외적 인간의 진리들. 외적 인간이 ‘골짜기’라 불리운다. 이는 골짜기가 보다 아래쪽이다는 사실로부터이다.
창26:17-‘(이삭은) 그랄 골짜기에 천막을 치고 거기 거주했다’=그분은 자신을 더 낮은 합리적인 것들에서 시작하게 하셨다, 즉 자신을 내면의 나타남으로부터 외면의 나타남으로 가게 하셨다는 것. ‘골짜기’=보다 낮은, 또는 외면의 것들.
창26:19-‘골짜기에서 (땅을) 파는 것’=그들이 있는 곳에 관하여 진리들에 의거 아래쪽 더 낮은 것을 추구하는 것. ‘골짜기’=더 낮은 것.
눅3:5-‘모든 골짜기가 채워질 것이다.’ ‘골짜기’=낮게 있는 것.
창37:14-‘그는 헤브론의 골짜기로부터 그를 보냈다’=신성의 자연적 평면과 감각 평면으로부터. ‘골짜기’=아래 있는 것들.
이22:1-‘환상의 골짜기’=감각적인 것들로부터 영적인 것들에 관한 몽상, 고로 더 낮은 것으로부터.
이22:7-‘골짜기들의 선택’=자연적 또는 외적 인간에 있는 선들과 진리들.
이40:4-‘모든 골짜기가 드높여질 것이다.’ ‘골짜기’=낮은 것.
예2:23-‘골짜기에 있는 네 길을 보라.’ ‘골짜기’=과학적, 감각적인 것들. 그들이 남용함으로 인해 더 낮아진 것들.
예21:13-‘골짜기의 주민들’=선행이 있지 않은 신앙.
예49:4-‘너는 골짜기들을 자랑하려들지 마라. 네 골짜기는 흘러가버렸다, 타락한 딸아.’ ‘계곡’=예배에 있는 외적인 것들, 이는 또한 가장 낮은 것이다.
시23:4-‘그늘의 골짜기’=더 낮은 것들, 이는 상대적으로 그늘에 있다.
신111:11-골짜기들이 산들과 언덕들 사이에, 또는 그것들 아래에 있는바, ‘골짜기’는 교회의 보다 낮은 또는 외면의 것을 의미한다. 그 이유가 ‘언덕’, ‘산’은 더 높은 것, 또는 내면의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나안의 토지에 의해 주님의 왕국과 그분의 교회가 의미되는바, 말해지기를, ‘산들과 골짜기들의 토지, 하늘로부터의 비의 물을 마신다.’
사5:15-‘그의 발 아래 계곡에서’=가장 낮은 것들에서 섬기는 것.
신21:4-‘경작하지도, 씨를 뿌리지도 못하는 메마른 골짜기’=계발되지 않은 자연적 마음, 그 결과 신앙의 선과 진리에 무지한 자연적 마음.
슥14:4-‘동쪽을 향하여 그리고 바다쪽을 향하여 산이 쪼개짐, 큰 계곡에서’=천국과 지옥의 분리.
이65:10-‘아골의 골짜기’=(천적 선이 있는) 외적인 것.
겔36:6-‘물의 흐름과 골짜기들’=교회의 최말단들인 진리들과 선들.
신8:7-외면의 진리들이 ‘골짜기로부터’ 솟는다고 말해진다. 그 이유는 ‘골짜기’=이와 같은 진리들이 있는 곳이 낮고 외면의 것들이기 때문.
이28:4-‘살찐 것들의 골짜기의 머리’=자연적 인간의 총명.
시104:8-‘당신이 그들을 위해 발견한 장소로 산들이 올라가고, 골짜기들이 내려간다’=그들로부터의 자연적 사랑들과 악들 대신에 그들로부터 천적 사랑들과 선들이 삽입되었다. 그리고 거짓들 대신에 일반적 진리들이 승인되었다.
슥14:5-‘그때에 너는 내 산들의 계곡을 통과하여 도망하라’=그때에 선으로부터 진리들에 있는 이들은 구조될 것이다…‘산들의 계곡’=진리에 대한 지식들에 있는 이들, 이로부터 선으로부터의 진리들에 있는 이들.
겔6:3-‘운하들과 계곡들’=외면 또는 자연적인 것들.
미1:4-‘계곡들’=파생되는 거짓들.
이41:18-‘계곡들의 한가운데’=외면적인 인간 안에.
민24:6-‘계곡 같이 그들은 심었다’=자연적 인간의 총명. 이에 비해 ‘동산’=영적 인간의 총명.
신11:11-‘산들과 계곡들의 토지’=교회의 더 높은 것과 더 낮은 것, 즉 교회의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시23:4-‘내가 그늘 있는 골짜기에서 걸을 때,’=불명료한 이해로 진리들이 그들의 빛에 의해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41:18-‘계곡 한가운데 샘들’=자연적 진리들로부터의 총명.
시65:13-‘계곡들이 곡식으로 덮혀있다’=자연적 마음이 자연적 진리를 받고 있다.

광야 (wilderness)
사막 (desert)

이40:3-‘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목소리’=신앙이 없는 교회 안에서.
창16:7-‘광야에서 물들의 샘 근처’=아직은 생명을 획득하지 못한 자연적 진리; 그이유가 ‘광야’=생명이 있다고는 하나 거의 없는 상태.
민32:11-이십 세 이상 모두는 광야에서 죽었다. 그이유는 악이 그들에게 귀속되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시험에 노출된 이들을 표현했다.
창21:14-‘하갈은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했다.’… ‘광야에서 방황하는 것’=변하기 쉬운 상태, 또는 헤매는 상태.
이35:1,6-‘사막이 기뻐날뛰며…광야에서는 물이 솟는다…’…‘광야’, 또는 ‘사막’=진리의 황무함.
창21:20-‘소년(이스마엘)은 광야에서 거주하였다’=상대적으로 희미한 것.
계12장-‘광야로 피신한 여인’=교회의 시험.
이21:1-‘바다의 사막’=과학물과 파생되는 추론들을 수단으로 황폐된 진리.
시107:4-선에 관하여 무지한 이들에 관해, ‘그들은 광야에서 방황했다’라고 말해진다; 그리고 진리에 관하여 무지한 이들에 관해서는 ‘황량한 길에서’ ‘그들은 방황했다’라고 말해진다.
마24:26-‘만일 그들이 보라, 그가 광야에 있다 라고 말한다면, 가지마라’=그들이 진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믿지 말라는 것. 황폐된 진리가 ‘광야’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예12:10-‘고독의 광야’=교회의 황폐함.
창37:22-‘그를 광야에 있는 이 구덩이 안에 넣자’=그들의 거짓들 사이에.
호9:10-‘광야에서 포도들’=아직 영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합리적 선.
겔36:4-거듭남에 선행하는 황무함이 ‘황무지와 버린 성읍들’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호2:3-‘광야 같이 그녀를 만드는 것’=모든 진리를 소멸하는 것.
출3:1-‘그는 광야 뒤쪽으로 양떼를 이끌었다’=단순한 선으로부터의 진리 안에 있는 이들이 시험들을 수행한 후…
출3:18-‘광야 안으로 삼일 동안 가게 하라’=비록 희미함에 있다해도 거짓들로부터 완전히 옮겨진 상태에 있는 진리로부터의 생활.
이35:6-‘광야에 물들이 솟고, 사막에 시내가 흐를 것이다’=그들이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을 소유함. ‘광야’, ‘사막’=무지의 결과로 신앙에 관한 지식.
출4:27-‘광야 안으로’=전에는 결합이 없던 곳.
출5:1-‘그들이 광야에서 나에게 축제를 열도록’=그들은 자기들이 지닌 희미한 신앙에서도 주님을 기쁜 마음으로부터 예배할런지 모른다는 것.
출7:16-‘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기도록’=희미한 것 안에서 예배함.
이41:18-‘나는 광야를 물들의 못으로 만들 것이다’=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을 주는 것…
출13:18-‘하느님은 백성들을 돌려 광야의 길로 인도했다’=신성의 후원 아래 그들은 시험들을 통하여 신앙 속의 선들과 진리들을 확인하도록 데려와졌다.
출13:20-‘광야 끝’=시험들의 첫 상태.
출14:3-‘광야가 그들을 감금했다’=희미함이 그들을 점유했다.
출14:11-‘광야에서 죽는 것’=시험의 상태에서 굴복하는 것.
출16:2-‘광야에서’=시험의 상태.
출16:10-‘그들은 광야 쪽을 뒤돌아 보았다’=그들이 있어왔었던 시험의 상태를 마음에서 상기해봄.
출16:14-‘보라, 광야의 얼굴들 위에’=새 자발성(의지).
출16:32-‘내가 광야에서 너희를 먹인 빵을 그들이 볼 수 있게 하려 해서이다’=시험의 상태 안에 있을 때 진리로부터의 선.
출18:5-‘(이드로가) 광야로 모세에게 (왔다)’=시험들이 있을 때, 거듭나기 전 상태에서 결합.
출19:1-‘그들은 시내 광야에 왔다’=신앙의 진리들이 심어지게 되는 선의 상태.
출23:31-‘광야로부터 강에까지’=감각적 평면으로부터의 즐거움으로부터 합리성의 선과 진리에까지 조차.
이50:2-‘나는 강들을 광야로 만든다’=진리 자체가 황폐해져 있는다.
레16:21,22-속죄 염소가 ‘광야’로 보내졌다, 그리고 ‘분리된 토지’=지옥.
호2:3-‘광야’=선이 결핍된 것; ‘가믐의 토지’=진리들이 결핍된 것.
이41:19-‘광야에 이것들을 심는 것’=교회 밖 토지에, 고로 이방인 사이에.
이51:3-‘그는 그녀의 광야를 에덴으로 만드셨다; 그리고 그녀의 황무지를 여호와의 동산으로 만드셨다’=진리의 결핍과 진리에 무지함을 지혜와 총명 쪽으로.
계12:6-‘여인은 광야로 피신했다’=아주 적은 사람들 사이에서 새 예루살렘이 있는 처음의 교회.
계12:14-‘그녀는 광야 쪽으로, 그녀의 장소 쪽으로 날아갔다’=아주 적은 사람 사이에 있는 동안 (이 교회의) 보호.
계17:3-‘그는 영에서 나를 광야 쪽으로 운반했다’=그는 교회의 모든 것들이 황폐된 것들과 더불어 있는 이들 쪽으로 영적 상태에서 운반되었다.
이35:1-‘너희 광야와 메마른 장소는 즐거워하라, 그리고 사막은 크게 기뻐하라, 그리고 장미 같이 꽃피라.’ 이것은 이방인들이 계몽됨을 다룬다; 그들이 진리와 선에 무지함이 ‘광야와 메마른 장소’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그리고 자기들이 가르침 받는 것 때문에 있는 그들의 환희가 ‘즐거워함’, ‘크게 기뻐함’, 그리고 ‘꽃이 핌’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이41:19-‘나는 광야에 싯다의 삼나무, 도금양, 기름의 나무를 심을 것이다.’ 이는 이방인들 사이에서 교회가 건립됨을 다룬다; ‘광야’=선 없음, 그이유는 진리에 무지함 때문.
이6:12-‘버려진 장소들이 토지 한가운데에서 불어날 것이다’=어떤 진리도 없는바 어떤 선도 없을 것이다.
예23:10-‘광야의 목초지가 말랐다’=이런 교회에 영적 자양분이 없다.
이42:11-‘광야와 거기의 성읍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높이게 하자.’ 이는 교회 밖에 있는 이들 사이에서 교회의 건립이 있음을 취급한다.
이51:3-‘그분은 그녀의 광야를 에덴 같이, 그녀의 황무지를 여호와의 동산 같이 만드실 것이다’=그들은 진리와 선을 풍부히 가질 것이다.
겔34:25-‘그들은 광야에서 안전하게 거주할 것이다’=악의 탐욕들이 그들에게 침입 못할 것이다.
시107:35-‘그분은 광야를 물들의 못으로 바꾸신다’=진리의 무지함이 있는 곳에 진리의 풍부함이 있을 것이다.
욜2:22-‘광야의 주거지가 풀이 무성하게 만들어졌다’=전에 아무 것도 있지 않았던 거기에 진리에 관한 것이 그들과 함께 거기에 있을 것이다.
이32:14-‘궁전이 광야일 것이다’=전체 교회의 황폐함.
예13:24-‘광야의 바람’=진리가 없는 곳, 그 결과 거짓만 있는 곳.
호13:15-‘광야로부터의 동풍’=외적 감각적인 것들로부터 있는 오류들에 의한 그것의 파멸.
이54:6-‘여인이 버림받고 영에서 고뇌한다’=진리 안에 있지 않은 교회, 그러나 아직도 진리에 애착하고 갈망하는 교회.
예12:10-‘값나가는 들판을 황량한 광야로 만드는 것’=교회에 선과 진리가 하나도 남지 않게 주님의 교회를 파괴함.
계12장-여인이 ‘자양분을 받는 광야’=선과 진리를 받음이 없음.
이43:20-‘나는 광야에서 물들을 주었다, 그리고 황무지에서 강들을 주었다’=전에 무지함에 있어 왔었던 이들이 진리와 파생되는 총명을 빨아들이는 것.
겔34:25-‘광야에서 대담하게 거주하는 것, 그리고 숲들에서 잠자는 것’=그들은 비록 그것들 사이에 있다해도 탐욕들에 의해 감염됨으로부터 안전히 있을 것.
욜3:19-‘에돔은 황폐한 광야에 있을 것이다’=자연적 인간은 선들이 결핍해 있을 것, 그 결과 단지 악들에 있을 것이다.
겔19:13-‘그리고 지금 그녀는 광야에, 가믐과 목마름의 토지에 심기어진다’=교회가 진리의 선, 선의 진리가 없을 때까지 황폐해질 것이다.
예4:26-‘가르멜 광야’=선으로부터의 진리들이 결핍된 영적 교회.
욜1:19-‘불이 광야의 주택을 삼켰다…’=자아 사랑이 선으로부터의 말씀의 글자 의미로부터 모든 지각을 살라버렸다.
욜2:3-‘폐물의 광야’=선으로부터의 진리를 이해함이 없음, 그 결과 악으로부터 있는 거짓들로부터 사악함.
시107:33-‘그분은 강들을 광야로 만드신다’=내적 의미 측면에서 말씀을 이해함, 진리를 이해함으로부터 있는 총명이 악으로부터의 거짓들에 의해 황폐되었다.
욜3:2-‘광야에 있는, 아라비아 사람’=광야에 있는 강도 같이 노략질하고 죽이는 자.
눅13:35-‘네 집이 사막 같이 되어 남겨졌다’=교회는 선이 없기 때문에 진리들이 결핍되어 있다.
이32:15-‘그다음 광야는 열매있는 들판일 것이다’=영적 근원으로부터의 진리가 그들 안에 심어질 것이다.
시65:12-‘광야의 주택들이 서서히 드러난다’=그들의 마음들, 전에는 무지 안에 있었으나 진리들을 인정하고 받는다.
호2:14-탐욕들과 거짓들은 시험을 수단으로 제거되어야만 한다는 것이 ‘나는 그녀를 광야 안으로 데려오겠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호13:5-‘나는 가믐의 토지에, 광야에 있는 너를 알았다’=선 없는 상태와 진리 없는 상태.

구덩이 (pit)

습2:9-‘소금 구덩이’=황폐된 진리.
이51:1-주님이 신성한 진리에 관련해 ‘구덩이’라 불려진다.
시88:4-‘구덩이에 있는’ 이들.
창37:20-‘구덩이 중 하나에 그를 놓아두자’=거짓들 사이에. ‘구덩이들’=거짓들인 이유는 거짓의 원리에 있어왔던 사람들은 사후 더 낮은 땅에 한동안 있게 해서 거짓들이 그들로부터 제거될 때 까지이다…‘구덩이’라 불리는 장소, 더 낮은 땅 아래는 ‘구덩이’라 불리는 황폐된 곳이다.
창37:28-‘그들은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 올렸다’=도와줌, 그가 거짓들 사이에 있지 않도록 이다.
창37:29-‘르우벤이 구덩이로 돌아왔다’=교회의 신앙이 분리된 신앙 속에 있는 거짓들을 쳐다보게 되었다.
슥9:11-‘구덩이로부터 갇힌 자를 내보내는 것’=황폐함에 있는 이들, 그리고 시험에 있는 이들.
창40:15-‘그들이 나를 구덩이에 넣었다’=거짓들 사이에 있기를 거절함.
창41:14-‘그들은 성급히 그를 구덩이에서 꺼내었다’=시험의 상태로부터 방해하듯 성급한 거절…‘구덩이’=황폐한 상태. 또한 시험의 상태.
출12:29-‘구덩이의 집에 있는 포로된 자’=육체의 감각적인 것 안에 있는 이. 고로 진리들과 선들에 관한 짙은 어둠에 있는 이, 그이유는 지각하는 능력 조차 없기 때문.
출21:33-‘만일 사람이 구덩이를 열게 된다면’=만일 누군가가 또다른 사람으로부터 거짓을 받을 것이다면.
출21:33-‘또는 만일 사람이 구덩이를 파고 (그것을 덮지 않았을 때)’= 또는 만일 그 자신 거짓인 것을 고안할 것이다면.
출21:33-‘…구덩이에 빠지는 것’=자연 평면의 선과 진리를 서술할 때=악용하는 것.
마15:14-‘구덩이’=거짓인바, 주님께서 교회의 거짓들에 관하여 이야기 하셨을 때 이렇게 말하셨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때,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 ‘구덩이에 빠지는 것’=진리를 뒤집는 것.
출21:34-‘구덩이의 주인은 되갚을 것이다’=그와 더불어 있는 거짓은 수정해야 될 것이다.
겔19:4,8-‘나라들이 그를 잡은 구덩이’=악의 거짓.
슥9:11-‘구덩이에 갇힌 자’=세상으로 주님의 강림에 의해 구원된 영적 교회의 사람들. ‘물이 없는 구덩이’라 말해지는데, 그 이유는 ‘물’=진리이기 때문.
예14:3-‘구덩이들’=진리들이 있는 곳. 고로 교리.
이51:1-‘구덩이로부터 파내지는 것’=신성한 선들로부터 거듭나지는 것.
예2:13-‘깨어진 구덩이(저수탱크)’=조리가 서지 않는 교리물들.
예2:6-‘구덩이의 토지, 짙은 그늘의 토지’=진리에 무지한 상태, 그리고 이로부터 파생되는 거짓의 상태.
이51:14-무지의 거짓들로부터의 해방이 ‘그는 구덩이에서 죽지 않을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예38장-‘예레미야를 내던져 둔 구덩이’=왜곡된 교리의 진리.
시88:4-‘구덩이로 내려간 이들과 더불어’=마치 지옥 안에 있는 것처럼.
시88:6-‘당신은 나를 더 낮은 것들의 구덩이에 놓아두었다’=이런 것이 있는 지옥의 장소에.
시40:2-‘황폐됨의 구덩이’=교리의 거짓.
예2:6-‘적막함의 토지, 구덩이의 토지’=문제를 일으키는 악들과 거짓들에 관련한 시험들의 상태.

구렁(텅이)(gulf)

* 만(gulf)을 보라

구멍 (hole)

이19:9, 겔8:7-10, 창40:16-19-‘구멍들이 가득한 일들’, ‘구멍들’에 의해 의미되는바 선과 진리에 애착함들이 없어 의지에서 종결됨, 실행이 없는 것, 선과 진리가 무가치한 것으로 전락함을 의미한다.
출33:22-‘모세는 바위의 구멍 안에 놓였다’=신앙의 불명료한 것, 안개 낌이 그를 덮었다, 그리고 이를 수단으로 그는 보호되어졌다.
예13:4-‘바위의 구멍 안에 허리띠가 감추어졌다’=진리가 왜곡되었다.
예16:16-‘바위들의 구멍들 안에’=신앙 속에 있는 이들, 그럼에도 계발되지 않는 이들. 고로 신앙의 불명료함에 있는 이들.
옵3절-‘바위들의 구멍들에 거주하는 것’=신앙의 거짓들 안에…다른 삶에서 이런 자들은 바위의 구멍에 거주한다.
마19:24-‘바늘의 눈’=영적 진리.
이11:8-독사의 구멍.
예16:16-‘바위의 구멍에 있는’ 이들=진리의 불명료한 것에 있는 이들.
예49:16-‘바위의 구멍에 거주함.’ 자신의 총명으로부터 거짓들에 있는 이들, 그리고 그것들에 들어감은 거기에 있는 구멍 같이 나타난다. 이것이 (위에서) 뜻해졌다.
예13:4-‘바위’=진리 측면에서 교회의 모든 것, 여기서는 거짓 측면에서 교회의 모든 것, 그이유가 ‘바위의 구멍 안에’라고 말해지기 때문.
예13:7-생활의 악들과 교리의 거짓들을 통하여 말씀이 왜곡됨, 그것을 옹호하는 파생적인 추론들이 ‘유브라데강에서 바위의 구멍에 있는 손상된 허리띠’에 의해 의미된다.
이11:8-‘독사의 구멍’=사기치고 현혹하는 영들이 있는 지옥들

그랄 (Gerar)

* ‘그랄’=신앙에 관련하여 계시된(밝히 알게 해주신) 것들; 고로 일반적으로는 신앙 자체.
창20:1-‘(아브라함은) 그랄에 체류하였다’=그때부터 있는 신앙의 영적인 것들에 대한 가르침…‘그랄’=신앙의 영적인 것. ‘그랄’은 창세기의 여러 곳에서, 즉 10:19, 26:1,6,17,20,26에서 언급되고 있다. 그것=신앙. 이런 이유는 그랄이 불레셋 지역에 있기 때문; ‘불레셋 지역’에 의해 영계에서 알고 있는 신앙에 관한 자연계의 지식이 사라져 없어짐이 의미되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랄은 불레셋 왕 자신이 거주한 장소 였다. 이로부터 ‘그랄’은 신앙 자체를 의미했다; 그리고 ‘그랄의 왕’에 의해서는 신앙 자체 속의 진리가 의미되었다.
창26:6-‘이삭은 그랄에 거주했다’=인접되어져 있는 합리적인 것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앙 속에 있는 이런 것들에 관련한 주님의 상태. (그 이유가) ‘그랄에 거주하는 것’=신앙 속에 있는 이런 것들에 있는 것, 고로 이런 것들에 관한 상태…‘그랄’=신앙 속에 있는 이런 것들.
창26:17-‘그는 그랄의 계곡에 천막을 쳤다, 그리고 거기서 거주했다’=그분께서는 자신을 더 낮은 합리성 쪽으로 향하게 하셨다. 또는 내면의 나타남으로부터 외면의 나타남 쪽으로 향하게 하셨다. (그 이유가) ‘그랄의 골짜기’=더 낮은 합리적인 것들, 또는 진리의 외면적 나타남. 그 이유가 ‘계곡’=낮은 것들…그리고 ‘그랄’=신앙 속에 있는 것들, 고로 진리 속에 있는 것들.
창26:20-‘그랄의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들과 다투었다’…‘그랄’=신앙. 고로 ‘그랄 계곡의 목자들’=말씀의 글자 의미 외에는 어떤 의미도 인정하지 않는 이들.
창26:26-‘아비멜렉이 그랄로부터 그에게 갔다’=합리적인 것들을 중시하는 신앙 속의 교리…‘그랄’=신앙.

기랴다임 (Kiriathaim)

예48:1-그들의 흠뻑 물든 거짓들이 ‘느보, 기랴다임’ 등등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기럇-아르바 (Kirjath-arba)

창23:2-‘기럇아르바에서, 여기는 가나안의 토지에 있는 헤브론이다’=교회에서. (그이유가) ‘기럇-아르바’=진리 측면에 관련한 교회.
창35:27-‘마므레 기럇-아르바’=진리 측면에 관련한 자연 평면의 상태…‘기럇-아르바’=진리 측면에 관련한 교회, 고로 진리.

기브아 (Gibeah)

호5:8-‘기브아, 라마, 벧아웬’=베냐민인 천적인 것으로부터 영적 진리 속에 있는 것들. 그 이유가 기브아는 베냐민 속에 있기 때문.
삼하6:2,3-교회의 자연 평면인 교회의 최말단이 유다의 바알이 있었던 곳, 기브아에 의해 표현되어졌다.

기혼 (Gihon)

창2:13-‘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다’=선과 진리, 또는 사랑과 신앙 속에 있는 모든 것들에 관한 지식.

길 (way)

* 걷다, walk도 참조.
* 지각 (perception)은 내적인 길을 수단으로, 교리는 외적인 길을 수단으로 있게 된다.
창6:12-‘모든 육체가 땅 위 그것의 길을 타락시켰다’=인간의 육체적인 것(물질적인 것)이 진리에 대한 모든 이해를 파괴했다. ‘길’=진리에 대한 이해, 또는 진리 자체.
창16:7-‘술(Shur)로 가는 길’=과학물들로부터 진행하는 것들. ‘길’=진리로 이끄는 것, 그리고 진리로부터 진행하는 것.
창18:19-‘여호와의 길을 간직하는 것’=그들이 훈육되는 수단인 교리, 그리고 이것은 그분으로부터 있다.
창19:2-‘너는 네 길을 갈 것이다’=진리 안에서 확증함.
시25:12-‘그분은 그분이 선택한 길에서 그분을 가르칠 것이다’=진리에서.
애1:4-‘시온의 길들이 통곡한다’=선으로부터의 진리는 더 이상 없다.
창24:21-‘여호와께서 그의 길을 번성하게 하실 것인지, 아닌지를 아는 것’=신성한 진리에 관하여 문의함. ‘길’=진리.
창24:27-‘제가 길에 있는 동안’=합리성에서 진리가 결합하는 상태에서. 그 이유가 이것이 여기서 취급된 주제이기 때문. ‘길’=진리. 그리고 누군가가 ‘길 가는 중에’ 있다 라고 말해질 때, 이는 그가 자기가 목적한 방향으로의 전진해감이다.
이40:3-‘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진리를 받을 수 있게 자아를 준비하는 것.
창24:56-‘여호와가 내 길을 번영하게 하셨다’=선과 결합되어지게 되어 있는 진리에 관련한 모든 것이 지금 설비되어 있다. 그 이유가 ‘길’=진리.
눅8:5-‘어떤 것은 단단한 길에 떨어졌다’=거짓 안으로.
눅3:5-‘거친 길들이 편편한 길이 될 것이다’=무지로부터의 거짓들이 진리들로 바뀔 것이다.
시107:4-‘그들은 광야에서, 길의 고독함에서 배회할 것이다’=선에 관해 무지함에, 진리에 관해 무지함에 있는 이들.
창30:36-‘그는 사흘 길이 뜨게 하였다’=완전하게 분리되었다.
창31:23-‘칠 일의 길’=진리로부터의 거룩인 것.
창38:16-‘길’=거짓.
이49:8-‘길 위에서 풀을 뜯는 것’=진리들로 가르쳐지는 것.
창42:25-‘길에서 (먹을) 양식을 그들에게 주는 것’=그들이 가진 진리들을 떠받침. ‘길’=진리. 그러나 여기서, ‘길에서(길을 가는 중에)’=그들이 그 상태에 있는 한. 그 이유가 ‘길을 가는 중 인 것’=선과 결합한 진리의 상태.
창45:23-‘길을 가는’=한편.
창49:17-‘단(은) 길에 있는 뱀’=진리에 관하여 그들이 추론함.
출4:24=‘길에서’=설립된 것.
출13:17-‘블레셋의 토지의 길’=선으로부터 있지 않은 신앙의 길로 건너감. ‘길’=진리, 여기서는 그것 쪽으로 건너감.
출13:18-‘광야의 길’=시험들을 수행하는 것, 고로 신앙으로부터의 진리들과 선들을 확증하는 것.
출13:21-‘길에서 그들을 인도하는 것’이 여호와의 인도하심을 말하는데,=섭리, 그리고 신성의 후원.
이58:13-‘네 고유의 길들(방법들)로 행동하지 않는 것’=자아로부터 행동하지 않는 것.
출18:8-‘길에서 그들이 마주 친 모든 곤경’=시험들에서의 수고함. 그이유가 여기서의 ‘길’은 광야이기 때문.
출18:20-‘너는 그들이 걸어야만 하는 길을 그들이 알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총명의 빛, 그리고 파생되는 생활. 그이유가 ‘길’은 진리를 이해함을 서술하는데, 여기서는 내면의 수준에서의 이해함이다.
마21:8-‘군중은 자기들의 옷을 길에 깔았다.’ 그이유는 교인들을 인도하는 수단이 ‘길’ 즉 진리이기 때문이다.
이30:21-‘이것이 길이다, 너는 그것에서 걸으라’=교리의 진리에서, 그리고 생활의 선에서. ‘길’=인도하는 진리.
출23:20-‘길에서 너를 지켜주는 것’=그분의 섭리 그리고 악의 거짓들로부터 후견역을 해주심.
예2:17-‘길을 인도하는 것’=진리를 가르치는 것.
출32:8-‘그들은 내가 그들에게 명령했던 길에서 떠났다’=그들은 자신들을 신성한 진리로부터 제거했다는 것.
출33:13-‘내가 당신을 알게 하소서, 당신의 길을 나에게 알게 만드소서’=품질에 관련하여 신성에 관하여 훈육하심. ‘여호와의 길’=신성한 진리가 인도함.
눅8:5-‘어떤 것은 길 위에 떨어졌다’=진리에 관심 없는 이들.
계15:3-‘정의와 진실이 당신의 길입니다’=그분으로부터 진행하는 모든 것들은 정의와 진실이다는 것.
계16:12-‘태양이 올라옴으로부터 왕들의 길이 준비되어진다는 것’=주님으로부터 선으로부터의 진리들에 있는 이들. ‘길을 준비하는 것’=입문을 위해 준비하는 것.
예17:10-‘그의 길들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주는 것’=신앙 속에 있는 그의 진리들에 따라.
시107:7-‘그는 직바른 길쪽으로 그들을 인도했다’=진짜 진리 쪽으로,
이42:16-‘나는 그들이 알지 못했던 길로 소경을 인도할 것이다. 나는 그들이 알지 못했던 작은 길로 그들을 인도할 것이다’=진리들과 진리들로부터의 선들, 그들은 이것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이33:8-‘도보 여행자가 중단되었다’=더 이상 신앙으로부터의 어떤 진리도 없다.
레26:22-‘네 길은 황폐되어 놓여있을 것이다’=그들은 진리들을 박탈 당할 것이라는 것. 그이유가 ‘길들’=선으로 인도하는 진리들이기 때문.
말2:8-‘너는 길을 벗어나 다른 쪽으로 돌아섰다’=이스라엘 교회는 말씀 속의 진리를 악용했다. ‘길’=교리 속의 진리들.
사5:20-‘그들의 진로로부터의 별들이 시스라에 맞서 싸웠다’=천국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오는 진리와 선에 대한 지식들을 수단으로 전투함.
이43:19-‘나는 광야에 길을 만들기 까지 할 것이다’=전에 거기에 아무 것도 없었던 곳에 진리가 있을 것이다.
시86:11-‘나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치소서, 오 여호와여’=우리가 따라 살아야만 하는 진리를 가르침.
시128:1-‘그분의 길에서 걷는 자는 복있다’=신성한 진리들에 따라 사는 것.
예32:39-‘나는 그들에게 한 마음, 한 길을 주어서 나를 경외하게 할 것이다’=주님을 예배하려는 하나의 의지와 하나의 이해성. ‘길’=이해성의 진리가 인도함.
예6:25-‘너는 길에서 가지 마라’=이와 같은 때…자아를 위해 상담할 때, 교리 속의 것들이 상담되어져서는 안된다는 것.
이10:26-‘이집트의 길’=자연적 인간의 과학물들. 이로부터 추론들이 결과되어진다.
예3:2-‘아라비안이 광야에서 같이 길들 위에 너는 앉았다’=진리의 어떤 것이 출시되고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려고 기다리는 상태에 있는 것. ‘길들’=교회의 진리들.
호13:7-‘표범 같이 나는 길 위에서 지켜볼 것이다’=자연적 인간으로부터 추론들을 통하여 진리가 왜곡됨.
이45:13-‘나는 그의 모든 길들을 곧바르게 할 것이다’=선으로부터 진행하는 진리들.

길갈 (Gilgal)

여5:9-‘그는 그 장소의 이름을 길갈,이라 불렀다.’ 즉 굴림, 넘겨짐.
* 여호수아가 여리고의 동쪽에 있는 길갈에 이 돌들을 세운 이유는 ‘길갈’=교회로의 입문을 위해 봉사하는 자연적 진리로부터의 교리 이었기 때문이다.

길르앗 (Gilead)

창31:21-‘그는 길르앗 산을 향하여 자기 얼굴들을 놓았다’=거기 있는 선. ‘산’=사랑의 천적 평면. 그리고 ‘길르앗’=그것의 품질. 강이 그 경계선이었고, 결합이 처음 있었던 곳이기에 ‘길르앗 산’, 이는 요단 이쪽(가나안 영역에 진입하기 이전)에 있었는바=선과 더불어 처음 결합.
민32:1,26-41, 신3:8,10-16, 여13:24-31-산이 있었던 길르앗의 토지는 넓은 의미에서 이해한다면 가나안의 토지의 한계 내에 있었다. 그것은 요단 이쪽 편이었다. 그리고 르우벤, 갓, 므낫세 반쪽 지파 들에 양도되었다. 그러므로 가나안의 토지가 한 복합체로 표현되어질 경우, ‘길르앗부터 단 까지’라고 말해졌다.
창31:23-‘그리고 길르앗 산에서 그에게 합류했다’=그것에 의해서 결합의 어떤 것이 있다. ‘길르앗 산’=처음 결합이 있는 선.
창31:25-‘그리고 라반은 자기 천막을 그의 형제들과 함께 길르앗산에 고정 시켰다’=얼마간의 결합이 있는 선의 상태. ‘길르앗 산’=처음 결합과 마지막 결합이 있는 곳.
사5:17-‘길르앗’=감각적인 선, 또는 즐거움. 거듭나질 때 인간은 이 선을 통하여 처음 거듭남이 개시된다.
창37:25-‘이스마엘족의 한 무리가 길르앗으로부터 왔다’=단순한 선에 있는 이들. ‘길르앗’=외면의 선, 이를 통하여 인간이 거듭날 때 처음 거듭남이 개시된다.
슥10:10-‘그들을 길르앗의 토지로, 레바논으로 데려오는 것’=선행의 선이 있는 교회의 선 쪽으로, 그리고 신앙의 선과 진리 쪽으로., 후자는 ‘레바논’이다. 전자는 ‘길르앗의 토지’이다.
예1:19-이방인들이 주님에 의해 인도되어지고 선행의 선 안에서 훈육될 것이다는 것이 ‘그들은 갈멜에서, 바산에서, 에브라임과 길르앗에서 풀을 뜯을 것이다’에 의해 뜻해지고 있다.
사5:17-‘길르앗’에 의해 자연적 인간이 의미된다.
시60:7, 108:8-‘길르앗’에 의해 자연 평면이 의미된다.
사5:17-‘길르앗’은 ‘므낫세’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므낫세’에 의해 자연적 인간의 선이 의미된다. 그리고 므낫세 지파는 드보라와 바락과 함께 싸우지 않았다. 이 구절에서 말해지기를, ‘길르앗, 왜 너는 요르단 건너에서 거주하는가?’에 의해 왜 너는 자연적 인간 속에 있는 외적인 것들에만 거주하는가?가 의미되고 있다. 그이유가 교회의 외적인 것이 요단 넘어 있는 지역에 의해 의미되기 때문.
슥10장-‘길르앗의 토지’와 ‘레바논’에 의해 자연적 인간에 있는 교회의 선들과 진리들이 의미된다.
예46:11-‘길르앗’에 의해 말씀의 글자 의미로부터 추론함이 의미된다, 이로부터 거짓들이 확증되어진다.

꼭대기 (top)

창49:26-‘나지르인의 머리의 관’=외면의 것들
창49:26-‘그의 형제의 뽑힌 자의 머리의 관’=그 교회의 모든 진리들과 선들 안을 흐르는 영적 왕국.
이3:17-‘벗어지게 만들 머리의 관’=이 교회에서 박탈될 총명.
신33:16-‘그의 형제의 나지르인의 머리의 관’=외적 인간 속에 있는 총명과 지식
호4:13-‘산 꼭대기에서 제물을 바치는 것’=자아 사랑으로부터 예배함.
신33:20-‘머리의 관’=내적 진리
암1:2-‘갈멜(산)의 꼭대기’=교회의 진리들, 그 이유는 갈멜에 포도원들이 있었기 때문.

나일 (Nile)

창41:1-‘강’, 여기서의 경우, 이집트의 강, 또는 나일,=경계(선). 그 이유가 큰 강들, 즉 유브라데, 요단, 나일은 가나안의 토지의 맨 끝 경계이기 때문. 나일, 또는 이집트의 강은 지적 부분에 복종하는 감각적인 것들, 고로 그것들로부터 있는 과학물들을 표현했다. 그 이유가 이것들은 주님의 왕국의 영적인 것들의 최말단들이기 때문이다.
이23:3-‘나일의 수확’=교회 밖(즉 과학적인 진리로부터)의 선.

낙원 (paradise)

* garden 참조
* 낙원=천국.
* 여섯째 날의 끝에서, 인간은 천국으로, 또는 천국적 낙원이 소개받아진다.
계2:7-‘하느님의 낙원의 한가운데 있는…’=내면적으로 지혜와 신앙의 진리들 안에. ‘하느님의 낙원’=지혜로부터의 진리들과 신앙으로부터의 진리들, 이는 말씀에 있는 ‘동산, garden’의 의미로부터 분명하다.
계2:7-‘하느님의 낙원의 한가운데 있는…’=저쪽에서 보고, 저쪽으로부터 진행하는 교회 안에, 천국 안에 있는 선과 진리에 관한 모든 지식들. ‘낙원’=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과 파생되는 총명. 그리고 이것들이 ‘낙원’에 의해 의미되는바, ‘하느님의 낙원’은 천국을 의미한다. 그리고 천국, 교회가 ‘하느님의 낙원’이라 불리기 때문에, 주님이 거기 한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그리고 그분으로부터 모든 총명과 지혜가 있기 때문에, 창세기 2장의 ‘낙원’은 낙원의 동산이 뜻해진다고 믿어지고 있다. 그러나 지상의 낙원이 뜻해진 것은 아니다. 이 낙원은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으로부터 총명과 지혜 안에 있는 이들에 의해 소유되어진다.

넓은 장소 (broad places)

눅14:21-‘거리와 넓은 장소로 나가는 것’=진짜 진리를 위해 사방으로 찾아 보는 것.
예5:1-‘넓은 장소’ 특별하게, 도성의 귀퉁이들을 뜻한다. 고로 그들이 거주하는 구역들. 그리고 영계에서 모든 각각은 명료하든, 어둠침침하던 각자의 선과 진리에 의거 도성들에서 거주한다. ‘넓은 장소’=각 사람의 지각과 애착에 따른 진리들과 선들.
예9:21-‘거리들’, ‘넓은 장소들’=교리로부터의 진리들, 생활 속의 진리들, 이것들이 총명과 지혜에로 인도한다.

높은 장소 (high place)

이49:9-‘그들의 목초지의 모든 높은 장소에’=선으로부터 버텨지는 것. 그 이유가 ‘높은 장소, ’산‘과 마찬가지로=사랑의 선.
이41:18-‘나는 높은 장소들 위에 강들을 열 것이다’ (=내면의 총명을 주는 것) (=영적 진리들로부터의 총명).
이32:14-‘언덕과 망대가 영원히 굴 위에 있을 것이다’=그들과 더불어서는 더 이상 어떤 교회도 있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는 생활의 악과 교리의 거짓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41:18-‘높은 장소들에’=내면의 인간 안에.
호10:8-‘아웬의 높은 장소(산당)’=자아 사랑.
겔16:16-‘높은 장소들’=예배.
이58:14-‘땅의 높은 장소를 타는 것’=총명. (=보다 높은 이해함이 선물되는 것)
출14:8, 이33:5-‘이스라엘의 아들들은 드높은 손과 더불어 나갔다’=악령들이 그들을 복종시키려 고심함이 신성의 힘에 의해 해방되었음…‘드높은’=신성인 것인 이유는 그것에 의해 신성이 있는 천국이 의미되기 때문. 이로부터 여호와에 관해 말해지는바, ‘그분은 높은 곳에 거주하신다’
겔16:16-‘얼룩덜룩한 산당’=거짓인 것을 예배함.
미1:3-마지막 심판이 ‘여호와께서 땅의 높은 장소들 위에서 짓밟으신다’에 의해 뜻해진다. ‘땅의 높은 장소 위에서’=높은 장소에 있는 이들.
시78:35-‘드높은 하느님’
이14:14-자아 사랑에 있는 이들이 ‘구름의 높이 넘어로 올라갈 것이다’라고 말해지고 있다.
이2:15-‘드높은 탑과 견고한 성벽’=거짓으로부터 확증한 원리들.
겔16:24-고대인과 더불은 높은 장소는 천국을 의미했다. 이때로부터 높은 산에서 제물을 바치는 의식이 왔다. 그리고 그들의 장소에 있는 높은 장소를 더 높게 건축했다. 그러므로 악과 교리 속의 거짓으로부터의 예배가 ‘드높은 장소를 만들고, 모든 거리에 높은 장소를 만드는’ 것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니느웨 (Nineveh)

창10:11-‘그 토지로부터 앗수르로 나아갔고, 니느웨를 건설했다…’…’니느웨’=교리 속의 거짓들…’니느웨’=추론들로부터의 거짓.
* ‘니느웨’에 의해 교리적인 것들로부터의 거짓들을 의미한다는 것은 말씀에서 니느웨의 의미로부터 분명하다. 이런 종류의 거짓들의 근원은 세 가지, 즉 감각의 오류로부터, 예증되지 않아서 불명료한 이해함으로부터, 그리고 무지함으로부터이다. 요나가 니느웨로 보내졌다, 이 도성은 용서되었는데, 그들이 위와 같았기 때문….
이37:37,38-앗수르 왕이 니느웨에 머물렀을 때, 그가 자기 신, 니스록의 집에서 구부려 절할 때, 그의 아들들이 검으로 그를 살해했다…여기서, ‘니느웨’는 거짓들이 들어있는 외적 예배를 의미했다. 이것은 우상적이었기 때문에 그는 죽임을 당했다.
욘4장-이방인들이 ‘니느웨’에 의해 의미된다.
습2:13-‘그분이 황폐해진 장소 같이, 광야 같이 메마른 장소 같이 한 니느웨’에 의해 교리 속의 거짓들이 의미된다.

다마스커스 (Damascus)
다메섹

창14:15-‘그는 다마스커스 왼편인 호바까지 그들을 추격했다’=그만큼 멀리 넓혀짐.
삼하8:5,6-‘다마스커스’는 시리아의 첫째가는 성읍이었다. 그래서 이 도시는 시리아와 거의 같은 의미를 지닌다.
암5:26,27-단(지역)을 넘어가는 가나안의 가장 먼 경계가 ‘다마스커스’에 의해 기술된다.
겔47:16~18, 48:1-북쪽을 향한 거룩한 토지의 경계, 또는 주님의 왕국의 경계가 ‘다마스커스의 경계’라 불리운다.
창15:2-‘다마스커스의 엘리에젤’=외적 교회. 다마스커스는 시리아의 수도였고, 거기에는 고대 교회의 잔존물이 있어 왔다.
겔27:18-‘다마스커스는 너의 거래자였다…’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커스’= 일치하는 과학적 사실.
이사야17:3-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의 파괴가 여기서 의미되고 이 장에서 취급되고 있다

달시스 (Tarshish)

창10:4-‘야완의 아들들…달시스’=유행했던 외적 예배가 있었던 아주 많은 나라들; 이들을 수단으로 야완과 더불은 외적 예배로부터 파생된 의식들, 아주 많은 교리물이 의미되고 있다.
* ‘달시스’ 등등이 외적 예배로부터 ‘섬’이라 불리워진다.
시72:10-‘달시스와 섬들’=내적인 것에 상응하는 외적 예배.
이60:9-‘달시스의 배들’=지식들. (=교리물들과 말씀으로부터의 진리들) (=선과 진리에 대한 교리물들) (=진리와 선에 대한 지식들) (=악과 거짓에 대한 지식들).
예10:9-‘달시스로부터의 은’=말씀으로부터 때문에 외적 형체에서 그렇게 나타나는 진리.
이60:9-‘달시스로부터의 은과 금’=진리와 선에 대한 기억.
시72:10-‘달시스와 섬들의 왕들’=자연적 인간의 내,외면의 진리들.
이60:9, 왕상10:22-‘시작에서 달시스의 배들…’=그들이 산출하고 행하는 선들. 그이유는 ‘달시스’=지식들에 관련한 자연적 인간. 그리고 ‘시작에서 달시스’=선에 관한 지식에 관련한 자연적 인간, 그이유는 달시스에 금과 은이 있었기 때문, 그리고 배들이 그것들을 거기로부터 운반했기 때문.
시48:7-‘당신은 동풍으로 달시스의 배들을 깨뜨리신다’=거짓 교리물들은 황폐되었다.

데만 (Teman)

합3:3-‘하느님이 데만으로부터 오셨다’=천적 사랑에 관련한 주님의 신성한 인간.
예49:20,21-‘에돔의 몰락의 소리에, 그리고 데만 거주민의 소리에 땅이 전율하였다‘=교회는 이런 악들과 거짓들에 의해 바뀌었고 멸망했다.

도단 (Dothan)

창37:17-‘나는 그들이 도단으로 가자 하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그들은 자신들을 일반적인 것으로부터 교리의 특별한 것들로 향하게 했다는 것. ‘도단’이 이 의미를 가진다는 것은 말씀의 다른 문맥으로부터 확증적으로 말해질 수는 없다. 그이유가 오로지 왕하 6:13로부터만 언급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도단’=말씀으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엘리사가 있었던 도단=말씀으로부터 선과 진리에 대한 교리적인 것들. 여기서도 마찬가지 의미이지만, 단지 교리의 특별한 것들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경우, 반대 의미인 거짓 원리들로부터의 특별한 것들.
창37:17-‘그리고 요셉은 그의 형제들 쪽으로 갔다 그리고 그들을 도단에서 발견했다’=그들은 거짓 원리들의 특별한 것들에 있었다는 것.

도벳 (Tophet)

예19:11-‘그들은 도벳에 매장할 것이다, 그이유는 매장할 장소가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모든 진리들과 선들이 소멸되어 버린 곳.
이30:33-‘도벳’=교회의 모든 진리들과 선들을 파괴히는 끔직하고 맹렬한 사랑을 지배하는 지옥, 특히 순진의 선들을 파괴하는 맹렬한 탐욕을 통치하는 곳.

동굴 (cave)

* hollow도 참조
창19:30-‘그는 동굴에 거주했다’=거짓으로부터의 선. 동굴은 어쩌면 산에 거주하는 종류에 속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거주는 어두운 상태, 그리고 집 같은 곳에 거주하는 종류는 선들을 의미한다, 이 선들이 그들 자신들이다. 여기서는 동굴인바, 어두운 곳에 거주함, 거짓으로부터의 선이 의미된다.
왕상19:9-이사벨을 피해 도망친 엘리야가 ‘호렙산에 있는 동굴로 왔고, 그는 거기서 밤을 보냈다.’ 여기서 ‘동굴’은 내향의 의미에서 희미한 선, 즉 시험들 가운데 있는 선의 종류를 의미한다.
창23:9-‘그로하여금 막벨라의 동굴을 나에게 주도록 하라’=신앙으로부터의 희미한 것. ‘동굴’=희미한 것. 동굴이 희미한 것을 의미한 이유는 그 장소가 어둡기 때문에서이다. 산에 있는 ‘동굴’일 경우 선의 희미한 것, 그러나 들판의 ‘동굴’은 진리의 희미한 것을 말해주게 된다.
창23:17-‘막벨라’, 그것에 동굴이 연합될 때, 즉 ‘막벨라의 동굴’이라 말해질 경우, 희미함 안에 있는 신앙이 의미된다, 그러나 동굴 없이 언급될 경우의 ‘막벨라’, 그리고 ‘들판과 동굴’이 거기에 있다고 말해질 경우, ‘막벨라’는 거듭남으로 이해된다. 그이유가 ‘들판과 동굴’에 의해서 신앙으로부터의 선과 진리가 의미된다, 이 선과 진리를 통하여 거듭남이 결과된다.
창49:30-‘동굴’=희미한 것.
창50:13-‘막벨라 들판의 동굴’=거듭남의 시작.
출33:22, 예49:16, 옵3절-‘바위의 구멍들에 거주하는 것’=신앙의 거짓들에. 이는 자기가 타인 보다 더 배웠다고 믿고 자신을 타인 위에 두어 우쭐대는 이들, 그런데 정작 자신들은 거짓들 안에 있고, 진리들을 보지 못하기 조차 한다. 저 세상 삶에서 그들은 바위의 구멍들에 거주한다. 게다가 바위 밖으로 나오는 것도 때로는 거절한다. 그리고 바위 아래 구멍이나 굴 안으로 더욱 기어든다.
이11:8-‘독사의 구멍과 바실리스크의 굴(den)’=사기치고 현혹하는 영들이 있는 지옥.
여10:16-‘막게다의 굴’=악으로부터의 끔찍한 거짓.

동산 (garden)

* eden, paradise 참조
* 에덴의 동산, 이는 낙원이라 불리워진다.
* 천적 인간이 이와 같은 동산이다.
* ‘동산’에 의해 총명이 의미된다.
창3:8-‘동산의 나무 한가운데’=얼마 정도의 지각이 있는 자연적 선을 의미한다는 것은…천적 인간이 들어 있었던 동산으로부터 분명해진다; 그 이유가 선하고 참된 모든 것, 각 인간이 그것을 경작하는 정도나 수준에 차이는 있겠지만 이것 모두는 ‘동산’이라 불리운다.
* ‘동산’=총명, 또는 진리를 이해함.
예29:5-‘동산을 심는 것’은 이해 측면에 속한다.
창13:10-‘여호와의 동산 같고…’=그의 합리적인 것들…‘여호와의 동산’=총명, 그러므로 합리적인 것, 이것은 내적 인간과 외적 인간 중간에서 중매 (intermediate)역할을 한다; 합리성은 외적 인간 속의 총명이다. 합리성이 천적 수준일 때, 즉 그 근원이 천적 왕국으로부터 일 때, ‘여호와의 동산’이라 불리우고, 이는 태고 교회와 더불은 경우이다….그러나 ‘하느님의 동산’이라 언급될 경우, 이는 합리성이 영적 수준, 즉 그 근원이 영적 왕국으로부터 일 때이고, 이는 고대 교회와 더불은 경우이다. 인간의 합리성은 ‘동산’에 비교되는데, 이는 천국에서 표현되는 표징으로부터이다.
겔31:8-‘하느님의 동산’=영적 왕국의 교회
예31:12-‘그들의 혼은 물을 댄 동산 같이 될 것이다’…‘혼’=교회 속의 사람과 더불은 신앙의 생명, 이 사람이 ‘동산 같이 된다’라고 말해진다, 그이유는 ‘동산’에 의해 신앙 속의 진리로부터 있는 총명이 의미되기 때문이다.
이51:3-‘에덴’=선이 풍부함; 그리고 ‘여호와의 동산’=진리가 풍부함.
예31장-그러므로 그들은 총명과 지혜를 가진다는 것이 ‘그들의 혼은 물을 댄 동산 같이 될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그 이유가 말씀에서 ‘동산’에 의해 총명이 의미되기 때문이다…
암9:14-‘그들이 만들고, 그 속에서 열매를 먹게 될 동산들’은 지혜를 의미한다; ‘동산’에 의해 총명의 모든 것들이 의미되고, ‘열매’에 의해 생활의 선들이 의미된다.
암4:9-‘동산들’에 의해 총명과 지혜를 만드는 교회 속의 모든 것들이 의미된다.
이1:30-‘동산’에 의해 인간의 합리성이 의미된다.
민24:6-‘계곡’에 의해 인간의 자연적 총명이 의미된다; 그리고 ‘동산’에 의해 인간의 영적 총명이 의미된다.
창2:10-‘동산을 적심’=총명을 주는 것.
암4:9-‘동산들’에 의해 영적 총명 속에 있는 것들이 의미된다.
이51:3-‘여호와의 동산’=(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 있는 지혜.

두로 (Tyre)

이23:17,18-‘두로의 상품=지식들.
겔28장-‘두로의 왕자’=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의 제일가는 것들.
겔28장-‘두로의 왕자’=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들이 있는 말씀. (=말씀의 글자 의미로부터 있는 교회의 진리에 관한 지식들.)
슥9:3-‘두로…은을 먼지 만큼, 금은 거리의 진흙 만큼 쌓아두고 있다.’ 여기서 ‘두로’=자신들을 위해 지식들을 획득하는 이들.
욜3:4-6-‘두로와 시돈’=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들을 지닌 교회 안의 사람들. 그러나 이 구절의 경우 반대 의미, 즉 이 지식들을 거짓들에, 그리고 거짓으로부터의 악들에 응용한 이들.
이23:1-‘두로는 황폐한채 놓여있다’=진리에 관한 지식들이 더 이상 없다.
이23:15,16-‘두로’=영적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들에 관련한 교회. 이 구절의 경우, 이 지식들이 왜곡되어진 상태에서의 교회.
이23:5-‘두로에 관한 보고(report)’=말씀으로부터의 지식들이 거짓들과 악들에 응용함으로 해서 황폐되었다.
예25:22-‘두로와 시돈의 왕들’=자연적 인간 안에서 말씀으로부터의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들.
예47:4-‘남아 있는 모든 조력자를 두로와 시돈으로부터 끊어버리는 것’=그들은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시45:12-‘두로의 딸’=진리와 선의 지식들에 관한 애착.
욜3:4-6=‘두로와 시돈’, 그리고 ‘블레셋들’=말씀 속의 진리들과 선들을 왜곡한 이들.
슥9:4-‘두로’=진리와 선의 지식들에 관련한 교회. 고로 ‘두로’=교회로부터 있는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들. 이것의 황폐함이 여기서 의미되어진다.
이23:18-‘두로의 상품’=모든 종류의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들.
이23:4,5-‘시돈’과 ‘두로’=말씀으로부터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 교회가 이 지식들을 수단으로 총명과 지혜의 어떤 것도 획득하지 못했다는 것, 어떤 유용함도 일궈내지 않았다는 것.

두아디라 (Thyatira)

계2:18-‘두아디라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쓰거라’=선행으로부터의 신앙 안에, 그래서 선한 일들에 있는 이들에게, 그들에 관하여. 그리고 또한 선행으로부터 분리된 신앙, 그래서 악한 일들에 있는 이들에게, 그리고 그들에 관하여.

(강)둑 (bank)

창41:3-‘강의 둑 근처에’=경계들에. ‘강’=경계(선).
출2:3-‘그녀는 그것을 강 둑에 있는 창포(flag, 사초,sledge, 갈대,reed)들 사이에 놓아두었다’=최초에는 거짓된 과학적인 것들에…‘이집트의 강’=거짓인 것.
출7:15-‘그를 만나기 위해 강둑 근처에 서있거라’=상태에 따른 유입…‘강의 둑’=해치는 이들이 지닌 거짓의 상태…‘이집트의 강’=거짓인 것. 여기서 오류로부터의 거짓. 그리고 둑, 이는 마치 강물을 담는 용기와 비슷하다. 강둑은 되돌아 구부리고 안쪽에 머물게 닫아거는바=이 거짓의 상태. 모든 이 각각은 자신만의 상태를 가진다. 이 상태 범주에서, 이 상태에 따라 그것이 있다.

드단 (Dedan)

창10:7-‘스바와 드단’은 (신앙에 관한 이런 지식들이) 있었던 나라들이다; 내적 의미에서 이와 동일한 나라들에 의해 지식 자체가 의미되어진다; 그러나 이런 차이는 있다, ‘구스의 아들들’에 의해서는 영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들, ‘라아마의 아들들, 즉 세바와 드단은 천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들이 의미되어진다.
예49:8-‘드단’, 여기서의 경우,=내적 예배가 안에 없는 의식들, 또는 심정으로부터 주님을 숭배함.
창25:3-‘욕산이 스바와 드단을 낳았다’=첫 계층(lot)으로부터의 갈래들.
겔38:13-‘스바와 드단’=예배의 내적인 것들, 즉, 신앙으로부터의 선들… 적당한 의미에서 스바=선에 관한 지식 안에 있는 이들, ‘드단’=선으로부터의 진리에 관한 지식에 있는 이들.
창25:3-‘드단의 아들들은 앗수르 족속, 르두시 족속, 르움미 족속이었다.’=둘째 계층(lot)으로부터의 갈래들. ‘드단’=신앙으로부터의 선 안에 있는 이들, 적절하게, 선으로부터 신앙의 진리 안에 있는 이들.
이21:13-‘드단족의 군대들(troops)’=지식들 안에 있는 이들.
겔27:20-‘드단은 병거를 위한 자유의 의복을 가진 너의 상인이었다.’ ‘드단’=천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 안에 있는 이들.

들판 (field)

창2:5,6-‘지면과 들판’=천적 인간이 되어 가는 때의 외적 인간.
눅17:31-‘들판’=교회, 그 이유가 들판이 씨를 받기 때문; 고로 ‘들판에’ 있는 이들=교리의 선에 있는 이들.
마24:18-‘들판에 있는 그는…’=영적 왕국의 교회 안에 있는 이들.
창23:9-‘들판의 끝에 있는…’=교회 속에 들어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들판’=교회; 또한 교회 속에 있는 교리.
창23:17-‘들판과 들판 안에 있는 동굴’=믿음으로부터의 선과 진리에 관련하여. 천적인 것, 즉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부터의 선은 지면 또는 밭에 비교되는데…그 이유는 밭, 또는 들판은 씨를 받는바 이는 천적인 것, 또는 선이고 씨는 믿음으로부터의 진리들에 비교된다.
창24:63-‘이삭은 들판에서 명상하려고 나갔다’=합리성이 선 안에 있는 상태…‘들판’=교리 그리고 교리에 속하는 것들, 고로 선에 관련되는 교회 속에 있는 것들. ‘들판에서 명상하려고’라는 말의 근원은 고대인들이 사용하던 말로부터서 인데, 선 안에서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창25:27-‘들판의 사람’=교리적인 것들로부터 생활의 선.
창25:29=‘에서가 들판으로부터 왔다’=생활의 선을 공부함…‘들판으로부터 옴’=선으로부터 공부함; 그이유가 ‘들판에서 명상함’=선 안에서 생각함이기 때문.
창27:3-‘들판으로 가라’=옥토인 곳. ‘들판’=교회 속의 선; 또한 교리로부터의 선.
창27:27-‘들판의 냄새 같이…’=진리가 와지게 하는 옥토로부터 같이. ‘들판의 냄새’=선으로부터 진리를 지각함, 마치 수확하는 들판이 내뿜는 냄새를 맡음 같다. ‘들판’=옥토.
마24:18-‘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가려고 돌아서지 마라’=진리로부터의 선 안에 있는 이들은 자신을 선으로부터 떠나 진리로부터의 교리에 의지하려 들지 마라. 말씀에서 ‘들판’=선에 관련되는 인간의 상태.
창29:2-‘들판에서’=교회를 위해. ‘들판’=선에 관련된 교회.
사5:18-악은 어떤 것도 두려워 않는 이들, 그 이유가 그들은 진리들과 선들 안에 있기 때문이다. 즉 이들이 ‘들판의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창30:14-‘들판에서 합환채’=사랑과 선행의 선과 진리에 있는 결혼적 사랑으로부터의 것들…‘들판’=교회; 고로 믿음으로부터의 진리와 선행으로부터의 선, 그 이유는 이것들이 교회를 만들기 때문.
창30:16-‘야곱이 저녁에 들판으로부터 왔다’=선의 상태에 있는 진리로부터의 선, 그러나 어두컴컴한 상태의 선…‘들판’=선에 관한 교회, 고로 선.
창33:19-‘그는 들판의 지분을 샀다’=저 진리로부터 선을 자기 것 되게 함…‘들판’=선에 따른 교회. 고로 선.
창34:5-‘그의 아들들이 들판에서 그의 물질(목축)과 더불어 있었다’=그의 후손들은 그들 자신의 광신적 신앙 안에 있었다…‘들판’=교회…그 이유가 이런 종류의 교회가 광신적 신앙이라 불리우기 때문.
창39:5-‘들판’=교리 속에 있는 진리.
마13:44-‘들판’=선.
창47:20-‘이집트 사람 각각 모두는 자기의 들판을 팔았다’=교회를 쓸모 있게 하는 모든 것들이 종속되고 포기됨. ‘들판’=교회 속에 있는 교리; 그리고 일반적 의미로, 교회.
창47:24-‘들판의 씨를 위해’=마음의 자양분을 위해…‘들판’, 일반적 의미에서=교회; 그리고 특별한 의미에서, 인간과 더불은 교회, 인간 안에 있는 교회, 선과 진리를 받는 자가 교회이다: 그가 ‘들판’이라 불리울 때, 이 들판은 그의 마음을 뜻해준다.
출1:14-‘들판의 모든 봉사에서’=교회의 것들에 맞서 복종시키려는 의도.
출8:10-‘들판’=아직 더 일반적인 것들, 고로 아직 더 외면적인 것들; 그 이유가 들판은 집과 집뜰 밖에 있기 때문.
출9:21-‘들판에…놔두었다’=따로 떼어두고 저장하지 않음.
출16:25-‘오늘은 너희가 들판에서 그것을 발견 못할 것이다’=진리를 통하여 선을 획득함은 더 이상 있지 않을 것이다…‘들판’=인간; 여기서, 진리를 통하여 선이 이식되는 인간의 마음; 그 이유가 인간이 신앙으로부터 진리들을 받고…선을 생산한다는 사실로부터 인간은 ‘들판’이라 불리기 때문.
출22;4-‘그리고 다른 사람의 들판을 황폐케 할 것이다’=밀착하는 선들이 사라짐…‘다른 사람의 들판’=밀착하는 선들; 그 이유가 ‘들판’=교회; 그리고 들판에 있는 것들은 선들이다; 고로 다른 사람의 들판에 있는 것들=밀착하는 가까운 선들…
겔39:10-‘들판으로부터 나무들’=교회의 내면의 선들.
출22:30-‘너는 들판에서 찢기운 살을 먹지 말 것이다’=왜곡된 신앙으로부터의 선, 왜곡된 교회의 선은 자기 것 삼는 일이, 결합되는 일도 있어져서는 안된다.
신21:1-‘…토지에서 꿰뚫린 자가 들판에 누워있다…’=선이 있는 교회에서 진리와 선이 소멸됨.
출23:16-‘너희가 들판에서 일한 것을 거두어 들임에서’=선 안에 이식된 모든 것들을 사용하고 향유함.
시132:6-‘나무의 들판에서’=말씀의 글자적, 자연적 의미에서.
예32:44-‘은으로 들판을 구입함’=진리들을 수단으로 교회의 선을 자신들을 위해 획득함.
겔 17:5-‘씨뿌리는 들판’=(진리를) 자라나게 하는 선.
마13:24-‘들판’=선한 자와 악한 자 모두가 있는 영적 세계와 교회를 뜻한다. (말씀이 있는 교회)
사5:18-‘들판의 높은 곳’=교회의 내면적인 것들, 이로부터 전투가 있다.
미4:10-‘들판’=진리들과 선들이 풍부히 있는 곳.

딤나 (Timnath)

창38:12, 사14:1-7, 여19:43-‘딤나’=교회를 위해 조언을 구하는 상태. 삼손이 불레셋의 딸로부터 데려온 여인=선이 아닌 것으로부터의 진리, 고로 불명료한 진리. 또한 딤나는 단 지파의 상속분의 장소 사이에 있었다.
창38:14-‘딤나로 향한 길에서’=교회의 사용을 위해. 그이유가 ‘딤나’=교회를 위해 의논하는 상태이기 때문.

땅 (earth)
토지 (land)

창1:1-‘태초에 하느님께서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셨다’…‘땅’=거듭나기 이전 외적 인간
창1:2-‘땅은 공허하고 텅비었다’=거듭나기 이전의 인간.
창1:11,12-‘땅’이 그러므로해서 준비되었을 때, 즉 인간…
마13:19~24-‘땅’은 인간을 의미한다는 것, 그분 자신이 말해주고 있으시다.
이62:4-이해성이 의지와, 또는 믿음이 사랑과 한쌍되었을 때, 인간은 ‘결혼한 땅’이라 불리운다.
창2:1- ‘하늘과 땅이 마무리되었다’=인간은 이제 ‘엿새째 날’인 영적 인간이 되었다; ‘하늘’=인간의 내적 인간; 그리고 ‘땅’=그의 외적 인간.
창2:4-‘이것들은 하늘들의 태생과 땅의 태생의 사람들인데, 이는 여호와 하느님이 땅과 하늘들을 만드셨던 그 날에, 그분이 그들을 창조하셨을 때이다’. ‘하늘들 태생의 사람과 땅 태생의 사람들’=천적 인간의 형성.
창2:5,6-‘땅’=그가 영적 인간인 동안에서 외적 인간; ‘지면(ground)’ 그리고 ‘들판(field)’=그가 천적 인간이 될 때 외적 인간.
예4:23-‘땅’=외적 인간.
겔20:41-‘지면’=내적 예배; 그리고 내적 예배가 없는 경우 ‘토지’라 불리운다.
말3:12-‘토지’=담는 것, 고로 토지=사람; ‘지면’이 교회 또는 교리라 불리울 경우 사람=토지이다.
창6:5-‘인간의 악이 땅에서 불어났다’=선에 속한 의지가 없기 시작했다는 것…글자 의미에서 ‘땅’= 인간이 있는 곳; 내적 의미에서 사랑이 있는 곳, 의지가 이에 해당되는데 탐욕도 있는 곳이다…‘땅’은 인간의 의지 자체를 뜻하도록 채용되고 있다…‘가나안의 토지’, 또는 ‘거룩한 토지’는 사랑을 뜻하려고 채용되고 있다. 고로 천적 인간의 의지를 뜻하려 채용되고 있다. 이런 경우들은 말씀의 많은 구절들로 확증할 수도 있다; 이런 방식으로 다른 나라들의 토지들은 그들의 사랑들을 뜻하려고 채용된다. 일반적으로 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이다….이로부터 명백한 바, ‘땅에 있는 인간의 악’=그의 자연성의 악, 이는 의지 속에 있다.
창6:11-앞서 취급한 그 나라.
창6:12-‘하느님이 땅을 보셨다’=하느님은 인간을 아셨다는 것.
창6:13-‘땅은 폭력으로 가득찼다’=선의지는 더 이상 없었다.
창8:13-‘물들이 땅 위로부터 말랐다’=거짓들이 나타나지 않았다…여기서의 ‘땅’=인간의 의지, 이 의지는 탐욕밖에 더 아니다.
창8:17-그들은 인간의 신체를 땅, 또는 지면에 비교해 말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구절에서 같이 그들은 그것을 땅 또는 지면이라 불렀다. 거기서 ‘땅’은 외적 인간 외 더 다른 의미는 없다.
창8:22-‘땅의 모든 날들’=모든 시간…땅이 있는 한, 또는 땅 위에 주민이 있는 한…
창9:1-‘땅을 채우는 것’=외적 인간과 더불어
창9:7-‘너희는 땅 위에서 열매가 많이 열리게 하고 번성하라’=‘땅’인 외적 인간 안에서 선과 진리의 증가함.
창9:13-‘이것은 나와 땅 사이에 언약의 표시를 위해 있을 것이다’=주님은 선행 안에서 현존하신다에 대한 표시. 여기서의 ‘땅’=인간의 자아(proprium)…그러므로 명백해지는 바, ‘땅’=거듭나지 않은 것, 그리고 거듭나질 수 없는 것, 이것은 인간의 의지 부분에 있는 인간 자아이다는 것이다.
창9:14-‘땅 위에서 구름으로 나 자신을 흐리게 하는’=인간의 의지 부분의 자아 때문에 선행으로부터 있는 신앙이 나타나지 않을 때…
창10:5-‘그들의 토지 안에 있는 나라들의 섬들’, ‘토지들’=그들의 일반적인 것들.
창10:8-‘그는 땅에서 용사였다’=이런 종교가 교회에서 세력을 떨쳤다. ‘땅’=교회
창10:20-‘그들의 가문에 따라, 그들의 언어에 따라, 그들의 토지에서, 그들의 나라에서’=일반적으로, 특수적으로나 각각의 특질에 따라서.
창10:25-‘그의 시대에서 토지가 나뉘었다’=그 때에 새로운 교회가 일어섰다.
창10:32-‘이들로부터 땅에 있는 나라들이 흐트러졌다’=그때부터 선들에, 또는 악들에 관련되는 교회의 모든 예배들이 왔다.
창11:1-‘전체 땅은 한 입술 속에 있었다’=모두 각각은 일반적으로 한 교리이였다.
창11:9-‘여호와께서 온 땅의 입술을 혼동되게 하셨다’=고대 교회의 상태…‘온 땅의 얼굴’=교회의 상태.
창12:1-‘너는 네 토지로부터 떠나가라’=육적이고 세상적인 것들에서 손을 떼어야 하리라는 것.
창12:10-‘그 토지에 기근이 있었다’=주님이 아기이셨을 때 지식의 빈궁함이 그분을 짓누르고 있었다.
창13:6-‘그 토지는 함께 거주하도록 그들을 받쳐주지 못했다’=내적인 천적인 것들에 속하는 일련의 것들은 롯에 의해 의미되는 것들과는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것.
창13:7-‘그 당시 가나안족과 브리스족이 그 토지에서 거주하고 있었다’=외적 인간에 있는 악들과 거짓들.
창14:19-‘하늘들과 땅의 소유자’=내적 인간 또는 여호와가 내면과 외면의 인간과 결합함.
창15:7-‘그것을 상속받도록 이 토지를 너에게 주는 것’=주님의 왕국, 그 속에서 주님 홀로 소유자이시다…‘토지를 상속받는 것’은 여기서 주님의 인간 본질을 서술하고 있다; 그 이유가 그분의 신성 본질에 관련하여 서술한다면 그분은 영원부터 우주의 소유자, 천국 왕국의 소유자 되시기 때문.
창15:13-‘그들의 것들이 있지 않은 토지에서’=비록 교회가 선행과 신앙 안에 있지 않다 하더라도 교회가 있는 곳.
계10:2-‘바다’=자연적 진리들, ‘땅’=자연적 선들
이66:1-‘땅이 나의 발판이다’….‘땅’=이전에 상응하는 보다 낮은 것들; 보다 낮은 합리적이고 자연적인 것들과 같다…보다 낮은 천국들에 있는 것과 같다, 또한 교회 안에 있는 것과 같고, 외적 예배에 있는 것들과 같다. 또한 말씀의 글자 의미에 있는 것과 같다; 한마디로 내적인 것들로부터 진행되는 모든 것들, 그리고 외적인 것 안에 표출되는 것들. 이런 것들은 자연적인 바, ‘땅’이라, 그리고 ‘주님의 발판’이라 불리운다.
창18:25-‘온 땅의 재판관’=진리인 것으로부터 있는 선 자체.
창20:1-‘남쪽의 토지’=믿음으로부터의 선과 진리.
창20:15-‘아비멜렉이 말했다, 보라 내 토지가 네 앞에 있다’=사랑과 선행의 교리에 관하여 주님께서 지각하심…‘토지’=사랑과 선행의 교리.
예4:7-‘토지를 못쓰게 만드는 것’=교회를 황폐해지게 하는 것.
애2:9-‘문들이 땅 안으로 가라앉는다’=자연적 마음이 악들과 거짓들에 의해 소유되어진다.
신28:49-‘땅의 맨 끝으로부터…나라가..’=악들과 거짓들.
창24:4-‘너는 내 토지, 내 출생지로 갈 것이다’=주님께서 자신을 위해 획득하신 신성한 천적이고 영적인 것들. ‘토지’=사랑으로부터의 천적인 것; 그리고 ‘출생지’=사랑으로부터의 영적인 것.
창24:7-‘내 아버지의 집, 그리고 내 출생의 토지’=어머니다운 것, 또는 어머니로부터 유전된 것, 이로부터 주님께서 맞서 싸우셨던 악과 거짓이 왔다….‘아버지의 집’=악에 관련하여 어머니로부터 상속된 것, ‘내 출생의 토지’=거짓들에 관련되어 어머니로부터 상속된 것.
창26:3-‘나는 이 모든 토지들을 줄 것이다’=영적인 것들; (그 이유가) 여기서 ‘토지들’=합리적인 것들, 이것은 신성에 의해 계발되는 바, 진리의 나타남이다…
창26:4-‘그리고 나는 네 씨에게 모든 이 토지들을 줄 것이다’=그때부터 교회들이 파생되었다..‘토지들’=신성에 의해 계발된 진리의 나타남인 합리적인 것들.
호9:3-‘여호와의 토지에 거주하지 않는다’=사랑의 선의 상태에 있지 않는 것, 고로 주님의 왕국 안에 있지 않는 것.
창26:22-‘우리는 토지에서 열매 있을 것이다’=그때부터 선의 증가가…‘토지’=교회, 그리고 교회 속의 것은 무엇이든지.
슥8:12-‘땅은 그것의 생산물을 줄 것이다’=교회의 천적인 것 또는 선행의 선은 진리를 줄 것이다.
창28:4-‘네가 거류하는 토지’=교훈들의 생명…‘토지’= 생명이 있는 곳.
창28:13-‘네가 누운 토지, 나는 네게 그것을 줄 것이다’=그가 있었던 선, 그것은 자아로부터였다는 것. 여기서의 ‘토지’=자연 속의 선.
창28:14-‘네 씨는 땅의 먼지 같이 있을 것이다’= 자연 속의 신성한 진리는 자연적 선으로서 있을 것이다…‘땅의 먼지’=선인 이유는 ‘땅’=주님의 왕국, 그러므로 선이기 때문. 땅의 먼지=선이기는 하나 그 선은 자연적 선이다, 그 이유는 ‘땅’= 주님의 왕국에서 보다 낮은 것, 즉 자연적인 것이기 때문…
이33:17-‘먼 거리의 토지를 보는 것’=사랑의 선.
창30:25-‘나를…내 토지로 보내라’=자연성이 합리성 속의 신성과의 결합을 갈망함…그 이유가 ‘내 토지’는 그의 아버지 이삭과 그의 어머니 리브가를 뜻하기 때문.
창31:13-‘네 출생지의 토지로 되돌아 가는 것’= 진리로부터의 신성한 선과 결합함.
마24:35-‘하늘과 땅은 사라질 것이다 등등’=이전 교회의 내, 외적인 것은 멸해지나 주님의 말씀은 남아 있을 것이다.
창32:3-‘시날의 토지’=자연적 선 속의 천적인 것.
창34:1-‘토지의 딸들을 보려고’=진리에 애착함, 이로부터 파생된 교회들을 아는 것…‘토지’. 여기서는 가나안의 토지,=교회가 있는 넓은 땅과 나라, 고로 교회 자체.
창34:2-‘토지의 왕자’=교회들 중에서 최초인 것.
창34:10-‘토지가 네 앞에 있을 것이니, 너희는 거주하라’=교회, 이것은 하나이다.
창34:21-‘토지에 거주하는 것’=교회 속에 있는 일련의 것들에 따른 생활로 비슷해짐.
창34:30-‘토지의 주민’=고대 교회 속에 있었던 이들.
습1:18-이 토지가 ‘종말을 보았다, consumated’라고 말해질 때, 이는 나라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있는 나라 속의 거룩한 예배를 뜻하여 말해지는 것이다.
창35:22-‘토지’=선에 관련된 교회. 이 구절의 경우 진리로부터의 선에 관련된 교회.
슥5;3-‘온 땅의 얼굴’=보편적 교회.
창41:54-‘기근이 모든 토지에 있었다’=자연의 모두 각각이 황폐함.
창42:9-‘토지의 벌거벗음’=교회에 진리가 없음.
창43:1-‘토지 안에서’=교회 속에 있는 이런 것들에 관하여.
창43:11-‘네 그릇에 토지의 노래(chanting, song)를 취하거라’=믿음으로부터의 진리 안에서 선택한 교회 속의 것들.
창44:11-‘그들 모두 각각은 자기 자루를 땅에 내려 놓았다’=그들은 자연 안에 있었던 이런 것들을 감각적인 것들에로 내려가도록 아래쪽으로 가져왔다. ‘땅’이 이 구절 같이 ‘그들은 그쪽으로 내려가게 했다’라고 말해질 경우,=최말단인 것, 그리고 가장 낮은 것, 고로 감각적인 것.
예47:2-‘그들은 땅을 채우고 침수시킬 것이다’=전체 교회.
시24:1, 89:11-‘땅’= 특별한 측면에서의 교회.
창48:1-‘그분은 너를 네 아버지들의 토지로 도로 데려다 놓을 것이다’=두 고대 교회들의 상태.
창49:15-‘그리고 기쁨이 있는 토지’=주님의 왕국에 있는 이들은 행복하다. 그 이유가 ‘가나안의 토지’는 말씀에서 ‘토지’에 의해 의미되는 것인 주님의 왕국을 표현했기 때문; 그리고 아주 고대 시대 때부터 그 토지에는 교회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출1:7-‘그리고 토지는 그들로 가득찼다’=교회 속이 가득차기까지 조차. ‘고센의 토지’, 거기는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그때 당시 있었던 곳=교회.
예46:8-(이집트가 말했다) ‘나는 땅을 덮을 것이다’=교회.
암8:8, 9:5-‘움직일’ ‘땅’=교회
이18:1-‘날개들로 그늘지고 있는 토지’=과학물로부터 추론함에 의해 자체를 어둡게 하는 교회.
예12:4-‘통곡할 토지’=교회.
출2:15-‘그는 미디안의 토지에 거주하였다’=단순한 선 안에 있는 이들 사이에서 생활함. ‘토지’가 언급된 이유는 그곳의 교회를 뜻했기 때문.
출2:22-‘그는 말했다, 나는 외국의 토지에서 거류자이다’=그는 자신의 교회가 아닌 교회의 진리들로 훈육되었다는 것.
출3:8-‘좋고 넓은 토지로’=천국으로, 선행의 선과 믿음의 진리가 있는 곳. ‘토지’, 여기서 가나안의 토지=주님의 왕국, 고로 천국; ‘좋은 토지’=선행의 선이 있는 곳; 그리고 ‘넓은 토지’=믿음의 진리가 있는 곳.
출4:3-‘그것을 땅에 던져라’=주님의 신성한 자연성 속의 권능이 감각적인 것 안으로 유입됨.
출5;5-‘오, 토지의 백성이 지금은 많다’=영적 교회 속에 있는 많은 이들.
출6:1-‘그는 그의 토지로부터 그들을 내몰 것이다’=그는 그들을 그의 근처로부터 싸우도록 놔둘 것이다…그 이유가 영적 교회 속의 이들이 거짓들을 수단으로 침입받는 토지는 그것들을 침입하는 지옥 근처에 있기 때문, 그리고 그 토지는 보다 낮은 땅이라 불린다.
출8:16-‘토지의 먼지를 강타한다’=지옥에 떨어질 자연적 마음 안에 있는 것들.
출8:22-‘나 여호와는 토지 한가운데에 있다’=주님은 교회의 유일한 하느님이시다.
출9:15-‘너는 토지로부터 잘라내질 것이다’=교회 속에 있는 일련의 것들과는 더 이상 어떤 소통도 없다.
출8:23-‘땅에서 걷는 것’=자연적 마음의 가장 낮은 것들까지 조차 소유하는 것.
출10:15-‘그것은 땅의 표면을 덮을 것이다’=자연적 마음 속의 최말단의 것들.
출12:19-‘외국인이든, 토지에서 태어난 자이든’=교회에서 태어났든, 태어나지 않았든 교회 속에 있는 이들.
출13:5-‘젖과 꿀이 흐르는 토지’=즐거움과 기쁨이 있는 곳.
출14:3-‘그들은 토지에서 얽혀져 있다’=그들은 교회 속에 있는 일련의 것들에서 혼동하는 가운데 있다…‘토지’=교회 속에 있는 것들
출15:12-‘땅이 그들을 삼켰다’=지옥에 떨어짐과 지옥…악으로부터 거짓들 안에 있는 이들이 사막의 토지로 나타나는 장소, 여기는 저주된 토지라 불린다; 지옥 안으로 던져진 이들이 그 아래에 있다.
출16:35-‘그들이 사람이 살 수 있는 토지에 올 때까지’=그들이 천국에 오기 전에. ‘토지’ 여기서는 가나안의 토지=주님의 왕국, 고로 천국.
출18:3-‘그중 하나의 이름은 게르솜이었는데, 그 이유는 그가 나는 외국 토지에서 거류자가 되어왔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교회 밖에 있는 이들 속에 있는 진리로부터의 선에 관한 품질…‘외국 토지’=교회가 없는 곳…‘외국 토지’=진짜 교회가 없는 곳인 이유는 ‘토지’=교회이기 때문. 그리고 ‘외국, strange’=진짜이지 않은 것이 있는 곳.
출18:27-‘그는 그 자신의 토지로 갔다’=신성 자체로…‘그의 자신의 토지로 가는 것’= 이전 상태로, 고로 신성으로. 더구나 내적 의미에서 ‘토지’=교회, 그리고 또한 천국; 그로부터 최고 의미에서 토지=신성인 것…최고 의미에서 ‘토지’=신성인 것인 이유는 ‘이드로’가 신성한 선, 고로 신성 자체를 표현했기 때문이다…‘토지’=교회가 가장 적절하다. 그 이유는 천국에 있는 이들은 말씀에서 ‘토지’를 읽을 때 자연계의 토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토지에 있는 나라의 영적 상태에 관해, 고로 거기 있는 종교적인 것에 관해 생각한다. 그러므로 토지가 교회가 있는 곳으로 읽게 될 때, 그들은 교회에 관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들은 주님의 왕국에 관한 생각, 고로 천국에 관한 생각도 가진다; 그리고 그들이 천국에 관한 생각을 가질 때, 그들은 또한 천국에 있는 신성에 관한 생각도 가진다. 그러나 표현된 어떤 것이 교회 안에 있는 거룩한 것, 또는 천국 안에 있는 거룩한 것을 취급할 경우, 이런 것들이 ‘토지’를 수단으로 뜻해질런지 모른다. 즉 사랑, 선행, 선, 믿음 등등을 뜻할런지 모른다. 그러기에 명백한 바, 단어에 적절히 속하는 의미는 아직도 남아 있다; 마치 사랑, 또는 선, 또는 선행이 의미될 때, 그 단어에는 아직도 교회에 관련되는 보편적 의미가 남아 있는 것과 같다; 그 이유가 이런 것들이 교회의 필수 본질이기 때문이다.
출19:5-‘모든 땅이 나의 것이다’=주님은 하늘과 땅에서 모든 권능을 가지신다는 것. (그 이유가) 내적 의미에서 ‘땅’=땅에 있는 주님의 왕국, 그리고 또한 천국에 있는 주님의 왕국.
출20장-‘위로 하늘에 있는 것, 그리고 아래로 땅에 있는 것’=영적 빛에 있는 것과 자연적 빛에 있는 것.
출20장-‘여섯째 날에 여호와께서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를 만드셨다’=거듭남 그리고 내적, 외적 인간에 있는 것들이 생기 있게 됨…‘하늘과 땅’=교회 또는 인간 안의 주님의 왕국; ‘하늘’=내적인 것. ‘땅’=외적인 것…그런고로 이것은 거듭나는 인간이다.
출20장-‘네 날들이 토지 위에서 길어질런지 모른다’=결과적으로 당연히 수반되는 천국에서의 삶…‘토지’, 여기서는 가나안의 토지, 그 이유는 이것이 이스라엘의 아들들=주님의 왕국에게 말해졌기 때문이다.
이26:21-‘땅’=옛 교회
* ‘일곱째 해에 토지를 휴식시키는 것’=두 번째 상태, 교회 속의 사람이 선 안에 있을 때.
왕하2:19-‘불모의 토지’=교회의 선이 살아있지 않음.
왕하2:29-‘토지가 황폐해지지 않도록’=결핍, 영적 생명이 거의 없음.
말3:12-‘너희는 아주 기뻐하시는 토지일 것이다’=거듭난 인간.
출28:30-‘네가 토지를 상속할 때 까지’=선 안에 있는 동안, 또는 거듭나는 동안…여기서의 토지는 가나안의 토지=주님의 왕국, 고로 천국. 그러므로 ‘토지를 상속받는 것’=상속자 같이 천국을 받는 것.
출23:33-‘그들은 네 토지에서 거주 못할 것이다’=악들은 교회의 선과 함께 있게 해서는 안된다…‘토지’= 선에 관련되는 교회, 고로 교회의 선.
단8:9-‘우아함의 토지’=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이 있는 주님의 교회.
이48:13-‘그가 찾아낸 땅’=최말단의 것.
출31:17-‘엿새 동안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만드셨다’=교회가 설립되어질 때 겪는 수고와 전투의 상태…‘하늘과 땅’=교회…‘하늘’은 교회의 내적인 것, ‘땅’은 교회의 외적인 것을 뜻해주고 있다.
출32:13-‘내가 말했던 이 모든 토지를 나는 네 씨에게 줄 것이다’=천국과 교회에 있는 이들로부터…교회가 ‘토지’에 의해 의미되듯 천국도 의미해준다; 그 이유가 교회는 땅에 있는 주님의 천국이기 때문; 그리고 교회 또한 천국과 하나로서 행동한다; 그 이유가 전자는 후자로부터 발생하고 지탱되기 때문.
출33:1-‘토지로 올라가는 것’=교회를 설립하는 것.
예14:4-‘땅’=교회가 있는 곳; 그리고 ‘지면’=교회 자체.
출34:12-‘너희는 너희가 들어가는 토지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않도록’=악이 있는 종교에는 어떤 것이든 들러붙지 말라는 것…‘토지’=교회, 또는 교회 속의 것은 무엇이든지, 고로 종교적인 것.
출34:24-‘누구도 네 토지를 탐내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선들과 선들로부터 진리들을 보고 지각할 때, 악들과 악들로부터의 거짓들에 있는 교회 속에 있는 것들에 혐오감을 느낀다는 것…‘토지’=교회, 교회 속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마28:18-‘그분은 하늘에서 그리고 땅에서 모든 권능을 가지고 있으시다.’ ‘하늘에서 그리고 땅에서’라고 말해지는데, 그 이유는 천국을 통치하시는 그분이 땅 역시 통치하시기 때문; 그 이유가 이것은 저것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1:5-‘땅의 왕들의 왕자’=교회 안에서 선으로부터 있는 모든 진리는 그분으로부터 있다.
계1:7-‘땅의 족속들’=교회 속의 선들과 진리들.
이13:9-‘황폐해지게 놓일 토지’=교회, 교회가 황폐해져 있음 속에서도 말씀에 있는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계3:10-‘땅에 거주하는 그들을 심리하는 것’=마지막 심판의 날 (이전에 천국 안에 있었던 이들을 방문함)
계5:3-‘하늘에도, 땅에도, 땅 아래에도 아무도 없었다’=보다 높은 천국들 안에, 보다 낮은 천국들에도 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는 것….요한은 영 안에 있었다, 이 상태에서 그에게 나타난 땅은 영계의 땅 밖에 더 다른 땅은 없었다; 그 이유가 자연계에 땅이 있듯 거기에도 땅들이 있기 때문이다…보다 높은 천국들은 산이나 언덕들 위에 나타난다; 보다 낮은 천국들은 땅 아래에 나타난다; 최말단의 천국은 마치 땅 아래 있는 것 같이 나타난다. 그 이유가 천국들은 광활한 공간(expanse)이어서 이것이 저것 위에, 저기 있는 이들의 발 아래 있는 땅 같기 때문이다. 가장 높은 광활한 공간은 산꼭대기와 같다; 두 번째 광활한 공간은 첫 번째 아래에 있다, 그러나 그 자체 옆으로 더 넓게 빙둘러 넓혀지고 있다. 그리고 가장 낮은 광활한 공간은 두 번째 보다 더 넓게 넓혀져 있다. 그래서 후자가 전자 아래 있는 바 같이, 땅 아래 있는 그들이 거기에 있다. 세 천국들 또한 보다 높은 천국들 안에 있는 이들에게 그와 같이 나타난다. 그 이유는 그들 아래 두 천국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와 똑같은 방법으로 그것들이 요한에게 나타났다, 그 이유는 요한이 그것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영계에 관한 어떤 것 그리고 거기에 있는 땅들에 관하여 알지 못하는 이들은 ‘땅 아래’, 또는 ‘땅의 더 낮은 것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이 구절에서 뜻하고자 하는 것이 영계의 땅들임을 누가 알지 못할까? 그 이유는 땅 아래 거주하는 사람은 아무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계5:6-‘모든 땅 안으로’=종교가 있는 보편적 세상 안으로 (=천국과 교회)
계5:10-‘땅을 통치하는 것’=주님의 왕국 안에 있는 것, 그리고 그분 자신과 하나되어 있는 것
계7:1-‘네 천사들이 땅의 네 모퉁에 서있었다’=영들의 세계 안에 있었던 이들 위에 마지막 심판을 결과되게 하려고 시도하는 보편적 천국. (주님으로부터의 신성인 것이 보편적 영계 안으로 진행함.)
계7:1-‘땅의 네 바람들을 붙잡고 있어, 그것이 땅에, 바다에, 어떤 나무에도 불지 못할 것이다’=선한 것과 악한 것이 결합된 채 있는 곳인 더 낮은 것들 안으로 더 가까이 그 결과 더 센 유입이 주님에 의해 보류되고 제지되고 있다.
계8:5-‘땅으로 향로를 던지는 것’=유입이 더 낮은 부분들 안으로.
계8:7-‘그들은 땅으로 내던져졌다’=교회의 내적인 것들과 믿음 만에 있는 자들과 더불어…
계8:13-‘땅의 주민들에게 슬픔이 있다’=교리와 생활에서 선행에서 분리된 믿음으로 자신을 굳힌 이들의 상태는 지옥에 떨어질 상태인지라 통곡함.
계9:1-‘나는 하늘로부터 땅으로 떨어진 별을 보았다’=영적 신성한 진리가 천국으로부터 그들과 더불은 교회 안으로 흘러들어, 탐구하고, 명백해진다…‘땅’은 여기서 교회의 내적인 것들 안에 있는 이들과 더불은 교회를 의미한다. (=멸망함)
계9:3-‘땅의 전갈’=교회 속의 것들 안에 있는 설득력 있는 것.
계10:2-‘그는 자기의 오른 발을 바다 위에, 그의 왼발은 땅에 두었다’=주님은 교회의 내적, 외적 안에 있는 모두를 포함하는 보편적 교회를 그분의 후원과 지배 아래 가지신다.
계10:6-‘하늘과 그 안에 있는 것을 창조하신 분, 땅과 그 안에 있는 것을 창조하신 분, 바다와 그 안에 있는 것을 창조하신 분’=천국 안에 있는 이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각각 그리고 전부를 살아있게 하시는 분, 교회 안에 있는 이들, 그리고 그 안의 모두 각각의 것을 생기 있게 하시는 분…‘하늘’은 천사들이 있는 천국을 뜻하고 있다; ‘땅’은 교회의 내적인 것들 안에 있는 이들, ‘바다’는 교회의 외적인 것들 안에 있는 이들을 뜻한다. ‘그 안에 있는 것들’이란 그들과 더불어 있는 각각, 전부를 뜻한다.
계11:6-‘갖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는 것’=갖가지 종류의 악들과 거짓들을 수단으로 교회 위에 파멸을 초래케 하는 것.
계11:10-‘땅 위에 거주하는 그들’=교회 안에 있는 그들; 이 구절의 경우, 믿음 만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이들. ‘땅’=이들이 있는 교회.
계11:18-‘땅을 파괴하는 그들을 파괴하는 것’=교회를 파괴한 이들을 지옥으로 내침.
계12:4-‘하늘로부터 끌어내리는 것, 그리고 땅으로 내던지는 것’=교회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깡그리 파괴함.
계12:9-‘그가 땅으로 내쳐졌다, 그리고 그의 천사들이 그와 더불어 내쳐졌다’=그가 영들의 세계로 내쳐졌음…이 세계는 지상의 사람들과 직접적 결합이 있다. 용이 내쳐진 땅이 영들의 세계인 이유는 이 세계는 천국 바로 아래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천국으로부터 내쳐졌을 때, 그가 즉시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천국 아래 이 세계의 땅으로 떨어진다….(지옥으로 정죄되기 위해).
계12:12-‘땅과 바다의 주민들에게 슬픔이 있다, 그 이유는 악마가 큰 분노를 가진채 너희에게 내려갔기 때문이다’=믿음 만으로 (구원된다) 라는 교리의 내, 외적인 것 안에 있는 이들에게 통곡함이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의 것과 대충 닮은 것이 천국으로부터 영들의 세계 안으로 내쳐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구의 사람들과 결합하여, 새 교회를 미워함으로부터 그들은 자기들의 거짓들과 이 거짓에서 파생된 악들을 보존하려 휘젖고 있다. (=오로지 자연적이고 감각적인 이들에게 통곡함이 있다)
계12:16-‘땅이 여인을 도왔다; 그리고 땅은 그녀의 입을 열었다, 그리고 용이 그의 입으로부터 토한 홍수를 삼켰다’=용의 추종자(dragonist)들이 풍부하게 발상해낸 거짓들로부터의 추론들은 합리적으로 이해된 진리들 앞에서 무(nothing)로 전락한다. 이 합리적으로 이해된 진리가 미가엘이고, 새 교회와 일치되는 진리이며 새 교회가 공표하는 진리이다. ‘여인을 도운 땅‘= 교리 측면에서의 새 교회; 그리고 용의 추종자들이 짜낸 거짓들로부터의 추론이 취급되는 바, 땅은 말씀으로부터의 진리들이다. 이 진리, 땅, 즉 교회가 여인을 돕는다. ’그녀의 입을 연다는 것‘=이런 진리들을 공표하는 것. (=진리들 안에 있지 않은 교회 속의 사람은 원조를 되돌렸다, 그리고 (선행과 분리된 믿음 안에 있는 이들의 속임수의 추론을 받지 않았다)
계13:3-‘온 땅이 놀라워하며 짐승을 따랐다’=그 당시 이 신앙은 흔쾌히 받아졌다, 그리고 온 땅의 교리가 되었다….‘온 땅’=모든 개혁 교회.
계13:11-‘나는 땅으로부터 올라오는 또다른 짐승을 보았다’=개혁 교회 속의 성직자들…‘땅’=교회의 내부적인 것.
계13:12-‘땅과 그 안에 거주하는 그들’=개혁 교회.
계14:3-‘땅으로부터 샀다’=거듭나질 수 있는 이들, 고로 세상에서 구속될 수 있는 이들.
계14:16-‘땅은 거두어 들여졌다’=교회의 끝장.
계14:19-‘그는 땅의 포도원을 수확했다’=현 기독 교회의 끝장.
계16:1-‘가서 땅에 하느님의 분노의 대접을 쏟으라’=개혁 교회 안으로의 유입.
계17:2-‘첫째가 나갔다, 그리고 그의 대접을 땅에 쏟았다’=개혁 교회의 내면의 것들에 있는 이들 안으로.
계18:24-‘땅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거짓들을 통하여 멸해졌었던 기독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자들.
계20:8-‘땅의 네 모퉁이’=보편적 영적 세계; 이 구절의 경우, 영들의 보편적 세계 안에 있는 이들.
계20:9-‘땅의 폭 위에 가는 것’=교회의 모든 진리를 쫓아버림.
계20:11-‘그분의 얼굴로부터 하늘과 땅이 도망했다’=모든 첫 번째 천국들 위에 있는 보편적 심판…그들의 땅과 더불어 하늘들이 완전하게 흩뜨려졌다.
요8:6-‘주님께서는 그분의 손가락으로 땅에 쓰셨다’=그들도 동등하게 간음 사건에서 정죄되었다…
계21:24-‘땅의 왕들’=선으로부터 진리들 안에 있는 모든 이.
이49:8-‘땅을 회복하는 것’=교회를 회복하는 것; 그 이유가…주님께서는 유대 백성에게 땅을 회복시켜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분은 이방인들 사이에서 교회를 설립하셨다.
* 반대적 의미일 경우, ‘땅’=황폐된 교회, 이것은 오로지 교회 안에 악과 거짓 만 있을 때 거행된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인간을 지옥에 떨어지게 하는 바, 이럴 경우, ‘땅’=지옥에 떨어짐.
시135:6-‘땅’=아래 있는 이들.
이60:18-‘폭력이 너희 토지에서 더 이상 들리지 않을 것이다’…‘토지’=내적, 영적 인간, 그이유는 ‘토지’에 의해 의미된 일반적 측면의 교회가 있기 때문이다.
이28:24-‘땅을 써레질하는 것’=기억 안에 모아두는 것.
학2:6-‘하늘과 땅’=교회 속의 모든 내면의 것들; ‘바다, 그리고 마른 토지’=외면의 모든 것들.
시136:6-‘그분이 물들 위에 펼치신 땅’=교회의 외적인 것, 한마디로 자연적 인간이라 불린다.
신33:13-‘(요셉의) 토지’=영적 왕국, 마찬가지로 이 왕국에서 파생된 교회.
이13:9,13-‘토지’ 그리고 ‘땅’은 영계 안에 있는 땅을 뜻한다; 그 이유가 거기에도 우리의 지구와 같이 땅들이 있기 때문, 그리고 마지막 심판 동안, 그들은 황폐함을 만들고 있고, 그들의 장소로부터 흔들려지고 있다…그럼에도 ‘땅’의 영적 의미는 (성경) 각처에서 교회를 뜻하고 있다; 그이유가 영적 세계에서, 땅의 얼굴은 거기 땅 위에 거주하는 이들과 더불어 있는 교회의 상태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멸해질 때, 땅 역시 멸해진다. 그이유가 그 둘은 하나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당시 이전의 땅의 장소 안에 새로운 땅이 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바뀜들은 땅들 안에 있는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
계7:1-‘땅의 바람들’이 말해진 이유는 ‘땅’이 영계 안에 있는 모두 각각의 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적 의미에서 ‘땅’은 천국과 교회를 의미하고 있다.
계10장-‘바다’ 그리고 ‘땅’, 이 위에 그는 자기 발을 놓았다=최말단 천국과 지상의 교회
호9:3-‘그들은 여호와의 토지에서 거주하지 않을 것이다’=그들은 천국 안에서의 생활과 같은 것인 선으로부터의 삶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겔26:16-‘그들은 땅 위에 앉을 것이다’=그들은 왜곡된 것들, 고로 거짓들 안에 있을 것이다…그 이유는 영계에서 땅 아래는 지옥이기 때문, 여기로부터 악들과 거짓들이 계속 내뿜어지고 있다.
슥8:12-‘땅’=진리에 대한 자연적 애착과 관련된 교회.
이24:1-‘땅을 텅비게 만듦’이란 사랑의 선과 선행의 선이 (교회에서) 황폐해짐.
시107:34-‘소금밭으로 놓여진 열매 있는 토지’= 사랑의 선과 생활 속의 선이 거짓들을 통하여 철저히 황폐해짐.
계12:13-‘땅으로 내던지는 것’=이 종교는 인정되지 아니 하였다는 것, 그리고 대단히 나쁜 것으로 간주 되었다는 것.
계13:8-‘땅에 거주하는 그들’=교회 안에서 태어나는 이들.
계13:12-‘땅’= 진리들 안에, 또는 거짓들 안에 있는 교회; 이 구절의 경우는 후자이다.
계14:7-‘하늘과 땅’=천국과 교회.

뜰 (court)

* 각 천국의 외부가 소위 최말단, 또는 첫 번째 천국이다, 그리고 ‘뜰’에 의해 표현되어졌다. 그러므로 뜰에는 성전에 관련하여 두 겹, 즉 외면과 내면(이 있다). 바깥 뜰에는 영적 왕국의 외부에 있는 이들, 그리고 안쪽 뜰에는 천적 왕국의 외부에 있는 이들(이 거주한다), 참고로 왕상6:36, 왕하21:4, 겔40:17,31, 34, 42장, 그리고 40:23,28,32,44, 42:3, 43:5를 보라.
계11:2-‘성전 밖인 뜰은 내쫒으라, 그리고 그것을 측량하지 마라’=아직 있는 것과 같은 지상의 교회의 상태, 제거되어져야 할 것, 알려지지 않게 해야 할 것. ‘성전 밖 뜰’=땅 위 교회.
겔10:5-‘날개들의 소리가 바깥 뜰에서 들려졌다’=최말단 천국에 있는 신성한 진리의 품질.
시84:2-‘여호와의 뜰들’=보다 낮은 천국들, 거기에 입구가 있다.
시92:13-‘우리 하느님의 뜰들’=외적 교회.
계11:2-‘뜰’=말씀의 외적 측면, 이로부터 교회의 외적 측면, 예배의 외적 측면.
시65:4-‘네 뜰들에 거주하는 것’=천국에서 사는 것.
시84:10-‘당신의 뜰들에 있는 하루가 (다른 곳에서의) 천 날 보다 더 낫다.’ 여기서 ‘뜰’=첫 번째 천국, 더 높은 천국 안으로 가는 입구가 이 천국을 통하여 있다. 그러므로 이어지는 말, ‘나는 내 하느님의 집에서 문에 서있기를 선택했다.
욜2:17-‘뜰과 제단 사이에서 우는 것’=교회에서 신성한 진리와 신성한 선이 황폐해짐에 애통함. 그이유가 ‘뜰’은 ‘성전’과 유사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 즉 신성한 진리 측면에서의 교회.

라마 (Ramah)

호5:8-‘기브아, 라마, 그리고 벧아웬’=‘베냐민’인 천적인 것들로부터 있는 영적 진리에 속하는 것들. 그이유가 라마는 베냐민 영토에 있기 때문(여18:25).

라메시스(Rameses)

창47:11-‘라메시스의 토지에서’=마음의 가장 안쪽, 그리고 그것의 품질. ‘고센의 토지’=자연적 마음의 가장 안쪽, ‘라메시스’는 고세 토지에서 가장 좋은 지역이었다=자연적 마음에 있는 영적 평면의 가장 안쪽.
출1:11-‘그들은 창고-성읍들을 건설했다’=왜곡된 진리들로부터의 교리들…‘비돔과 라암세스’=왜곡된 진리들로부터의 교리들의 품질.
출12:37-‘그들은 라암세스로부터 숙곳으로 여행했다’=떠남의 첫 번째 상태와 그 품질.

라사 (Lasha)

창10:19-‘소돔,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 라사에까지’=거짓들과 악들 안에 그들은 종결되었다.

라오디게아 (Laodicea)

계3:24-‘라오디게아의 천사에게’…여기서는 발가벗은 지식들 안에 교회의 모든 것을 놓아두는 교회, 그리고 이로부터 다른 것을 뛰어넘어 그것 자체를 드높이는 교회를 취급한다.
계3:14-‘라오디게아의 천사에게 쓰라’=때로는 자신들로부터, 때로는 말씀으로부터 번갈아 믿는 이들, 고로 거룩한 것들을 모독하는 이들에 관하여, 그리고 그들에게…교회 안에는 믿는데 믿지 않는 자가 있다. 즉 하느님은 계시다, 말씀은 거룩하다, 영원한 삶은 존재한다, 등등 같은 교회로부터, 교회의 교리로부터의 많은 것들을 믿는다는데도 불구하고 믿지 않는 교인들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감각적 자연 평면에 있을 때, 위 사항들을 믿는다, 그러나 그들이 합리적 자연 평면에 있을 때, 그들은 그것들을 믿지 않는다. 고로 그들은 외적인 것들에서는 믿는다. 즉 그들이 타인들과 더불은 사회나 대화를 할 때는 믿는다. 그러나 그들은 내적인 것들에서는 믿지 않는다. 즉, 자신 혼자 있을 때는 믿지 않는다. 이들에 관해서 말해지는바, ‘그들은 차지도 뜨겁지도 않다…그들은 토해내질 것이다.’

랍바 (Rabbah)

신3:11-‘암몬의 랍바’=진리를 거짓화함.
예49:3-랍바, 등등. 갓에게 주어졌다. 그러므로 이들의 토지들=갓에 의해 일반적으로 의미된 것과 같은 것이 특별한 측면에서…. ‘랍바의 딸들’=자연적 인간에 있는 진리에 애착함들.

레바논 (Lebanon)

호14:6-이 구절의 ‘레바논‘은 삼목들을 나타내고 있는바,=영적인 것들, 또는 믿음으로부터의 진리들.
* 레바논 숲의 나무들=내면의 지각들, 또는 합리적인 것들.
호14:7-영적 교회에 관한 기억은 ‘레바논의 포도주’에 비교된다.
이35:2-‘레바논’=영적 교회.
겔31:3-‘아수르’=예증되어진 교회 속의 사람의 합리성; 이것이 ‘레바논의 삼목(cedar)’이라 불리고 있다, 그 이유는 ‘삼목’=‘아수르’; 특별하게는 선으로부터 있는 진리; 그리고 ‘레바논’은 선으로부터의 진리가 있는 지성(mind), 그 이유는 레바논에 삼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33:9-‘레바논은 시들어져 간다’=진리 측면의 교회
겔17:3-‘레바논’=주님으로부터 있는 교회 속의 교리.
이35:2-‘그들에게 주어진’ ‘레바논의 영광’=신성한 진리.
호14:6-‘레바논의 냄새’=감사히 여김으로부터 있는 영적 선.
슥10:10-‘레바논으로 그들을…데려옴’=신앙 속의 선과 진리에로…
이37:24-‘레바논 쪽에’=교회의 선들이 진리들과 결합되어 있는 곳; ‘레바논’=영적 교회.
이2:13-‘레바논의 삼목들’=자기 총명으로부터 있는 자부심.
예18:14-‘레바논의 눈(snow)’=거기로부터 있는 교회 속의 진리들…‘레바논’=(그들이 근원된) 교회.
여1:4-교회의 한 끝, 이것은 인식력과 학술적 논리인데, 이것이 ‘레바논’과 ‘바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합2:17-‘레바논의 폭력’=말씀으로부터 지각된 진리들에 합리적 인간에 의해 과해진 무력; 그 이유가 ‘레바논’=합리적 인간으로부터 진리가 지각됨에 관련된 교회.
슥10:10-‘길르앗의 토지’와 ‘레바논’에 의해 자연적 인간에 있는 교회 속의 선들과 진리들이 의미되고 있다.
겔31:15-그들이 합리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나는 그 위에서 레바논을 검게 할 것이다’에서 의미되고 있다.

레센 (Resen)

창10:12-‘니느웨와 갈라 사이에 레센…’=그들은 자신들을 위한 삶의 교리물들을 형성했다는 것; 그리고 ‘레센’에 의해 그때부터의 거짓 교리물들이 의미되어진다…삶의 거짓들이 여기서 ‘레센’에 의해 의미되나 말씀에서는 더 이상의 언급은 없다. 레센은 ‘니느웨와 갈라 사이에’ 건설되었다, 즉 추론들로부터의 거짓과 삶의 거짓을 생산하는 탐욕들로부터의 거짓 사이에 건설되었다. 이것은 ‘큰 성’이라 불리우는데, 그 이유는 이것이 의지와 이해성 모두로부터 있기 때문이다.

루즈 (Luz)

창28:19-‘도성의 이름은 첫 번째에서 루즈였다’=이전 상태의 품질…원어에서 루즈는 퇴거(recession), 고로 분열(disjunction)을 뜻한다, 이는 진리, 또는 진리의 교리적인 것이 첫째 자리를 점거하고 선은 소홀시 될 때 발생된다. 그러나 진리가 질서의 최말단에서 선과 더불어 함께 있을 때, 퇴거 내지 분열은 없고, 접근(accession), 결합이 있다. 이것이 ‘루즈’에 의해 의미되는 상태의 품질이다.
창35:6-‘야곱은 가나안의 토지에 있는 루즈에 왔다’=이전 상태에 있는 자연 평면. ‘이것이 벧엘이다’=신성의 자연 평면, 이는 루즈의 의미, 즉 이전 상태에 있는 자연 평면, 또는 인간이었던 자연 자체로부터 분명하다.
창48:3-‘전능하신 하느님께서 가나안의 토지에 있는 루즈에서 나에게 나타나셨다’=(이전 상태에 있는) 자연 평면에서 신성의 나타남…‘루즈’=이전 상태에서의 자연 평면.

르비딤 (Rephdim)

출17:1-‘르비딤’=시험의 상태에 있는 진리 측면의 품질.

르호봇 (Rehoboth)

* 갈라 참조
* 그 때로부터 거짓들이 ‘르호봇’이다
창26:22-‘그는 그것의 이름을 르호봇이라 불렀다’=진리 측면에 관련하여 그때부터의 품질…’르호봇’=진리들; 그이유가 ‘르호봇’은 원어에서 ‘넓이’를 뜻한다.

마라 (Marah)

* 영적 (왕국의) 교회의 두 번째 시험이 백성이 불평함에 의해 묘사되어져 있다.
출15:23-‘그들은 마라에 당도했다’=시험의 상태.
그 시험의 상태와 품질…그 이유가 ‘마라’는 ‘쓴 것’이란 뜻이기 때문.
출15:23-마라에서의 물들, 그들은 그것의 쓴맛 때문에 마실 수 없었다는 섞음질한 진리들을 표현했다. ‘쓴맛, bitterness’=섞음, 간음, adulteration.

마므레 (Mamre)

창13:18-‘아브람은…헤브론에 있는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숲에서 거주했다’=주님께서는 더 내면적으로 지각하는 수준에 도착하셨다는 것…이 지각이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라 불리우고 있다.
창14:13-‘그는 아모리족의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숲에서 거주하고 있었다’=합리적 인간으로부터의 지각의 상태.
창14:13-‘마므레, 에스골, 아넬’에 의해 표현된 것은 주님께서 그분의 첫 어린 시절에 싸우셨을 때, 그분과 더불어 있었던 천사들인데, 이들은 그때 당시 주님과 더불어 있는 선들과 진리들에 잘 어울리는 천사들이었다.
* ‘마므레. 에스골, 그리고 아넬’은 주님의 외적 측면에 관련되는 합리적 인간의 상태, 그리고 그것의 선들과 진리들의 품질이 의미되었다. 고로 그것들을 수단으로 그분이 싸우셨을 때 주님과 더불어 있었던 천사도 의미되었다.
창18:1-그분의 인간 안에서 주님이 지각하시던 때의 상태가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숲’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창23:17-‘마므레 앞 막벨라’=거듭남. (‘막벨라’=거듭남; 그리고 ‘마므레’=거듭남의 질과 양)
창23:19-‘헤브론인 마므레’, 그리고 창13:18의 ‘헤브론에서’=질과 양을 말하는데, 여기서와 같이 막벨라와 접합될 경우 거듭남의 질과 양; 그리고 ‘헤브론’과 접합될 경우, 교회의 질과 양; 그리고 ‘상수리나무 숲’과 접합될 경우, 지각의 질과 양. 고로 ‘마므레’는 어떤 것의 상태에 대한 결정일 뿐이다; 그 이유가 이곳은 아브라함이 거주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삭이 거주했고, 이곳으로 야곱이 왔다.
창25:9-‘마므레의 얼굴에’=선에 관련하여…
창35:27-‘키럇-아르바의 마므레’=그것의 상태; (그이유가) ‘마므레’=접합되어진 것에 관련되는 질과 양.

마싸 (Massah)

출17:7-‘그는 그곳의 이름을 마싸라고 불렀다’=시험의 상태의 품질…원어에서 ‘마싸’=시험을 뜻한다.
신33:8-그들이 마싸에서, 므리바의 물에서 시험한 거룩한 사람에 의해 신성한 진리 측면에서의 주님이 뜻해진다.

마을 (village)

여21:12-‘들판과 마을에 관하여 갈렙에게 주어진 (헤브론)=다시 새로운 교회.
창25:16-‘그들의 마을들에서’=교회의 외적인 것들…이것들이 ‘마을들’에 의해 표현되었는데, 그이유는 그들이 성읍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42:11-‘마을들’=자연적인 지식들과 과학물들.

마하나임 (Mahanaim)

창32:2-‘야곱은 그 장소의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불렀다’=상태의 품질…원어에서 마하나임은 두 진영을 뜻한다. 그리고 ‘두 진영’=두 천국, 또는 주님의 두 왕국…그리고 최고 의미에서, 주님의 신성한 천적 평면과 신성한 영적 평면. 주님의 자연 평면이 영적 선과 천적 선에 의해 예증될 때, 주님의 상태의 품질이 ‘마하나임’에 의해 의미되어지고 있다.

막벨라 (Machpelah)

창23:17-‘마므레 앞인 막벨라’=거듭남.
창23:9-‘그로하여금 나에게 막벨라의 동굴을 주게 하라’=신앙으로부터의 희미한 것. ‘막벨라’=희미함에 있는 신앙…여기서 ‘막벨라의 동굴’이 말해지되, 막벨라는 들판이 있는 곳에, 그 들판의 끝에 동굴이 있었다고 말해지는바, 이는 진리의 희미한 것, 또는 같은 말로 신앙의 희미함이다. 이로부터 ‘막벨라’는 희미함에 있는 신앙임이 분명하다.
창23:17-‘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것’=거듭남의 질과 양…‘막벨라’=신앙으로부터 있는 진리를 통하여 거듭남.
창25:10-‘막벨라의 동굴로’=진리 측면에서의 부활.
창49:30-‘막벨라의 들판에 있는 동굴 안에’=이 희미함안에. ‘동굴’=희미한 것, 그리고 또한 ‘막벨라’. 그러나 ‘막벨라’=희미함의 품질.
창50:13-‘막벨라의 들판의 동굴에’=거듭남의 시작…‘막벨라’=거듭남. 고로 거듭남의 시작, 그이유가 거듭남의 시작에서는 신앙이 희미함에 있기 때문.

막게다 (Makkedah)

여10:27-‘막게다의 동굴’=악으로부터의 끔찍한 거짓.

만 (gulf)
구렁(텅이) (gulf)

눅16:26-‘그들 사이에 만…’=선으로부터 그 자체를 제거함(removal), 이는 또한 만이 사이에 끼어드는 나타냄을 준다.
* ‘큰 만’=생활의 상태들의 반대됨과 불일치함.

맨끝 (extreme)

신28:49-‘땅의 맨끝으로부터의 국가’=악들과 거짓들.
마24:31-‘하늘들의 맨끝으로부터 그것들의 맨끝 까지’=교회의 내적, 외적인 것들.
이7:18-‘이집트 강들의 맨끝에서 파리…’=자연적 마음의 맨끝에 있는 거짓들.
출19:12-‘그것의 맨끝을 만지는 것’=중재하는 것들 까지도 안된다.
출25:18-‘자비석의 두 맨끝으로부터’=천적 선과 영적 선.
출26:4-‘접합하는 맨끝으로부터 한 커튼의 끝머리 위에’=이쪽 영역이 다른 쪽 영역과 결합함.
출26:28-‘맨끝으로부터 맨끝 까지 지나는 것’, 힘이 의미되는 가로장에 관해 말해지는바,=거기서부터 힘이 파생되어 각 곳으로 계속되었다.
출27:4-‘그것의 네(4) 맨끝들 위에’=모든 곳.
출28:7-‘두 맨끝들’, 또는 오른쪽, 왼쪽=모든 측면들에.
출28:23-‘너는 가슴판의 두 맨끝들 위에 두 고리들을 놓을 것이다’=맨끝들에서…고로 천국의 맨끝들에서 신성한 선의 영역의 결합.
출28:25-‘두 사슬들의 두 맨끝들을 너는 박아끼는 두 구멍(socket)들에 놓을 것이다’=맨끝들에서 떠받쳐주는 것들을 가지고 결합하는 방법.
이26:15-‘그분이 제거한 땅의 맨끝들’=교회를 감염시킨 거짓들과 악들, 이로부터 그분은 그것들을 순수하게 하셨다.
예31:17-‘맨끝에서 희망’=이전 교회의 끝, 그리고 새 교회의 시작.

메사 (Mesha)

창10:30-‘메사’에 의해 진리가 의미된다.

멤피스 (Memphis)

호9:6-‘이집트’, 그리고 ‘멤피스’=자신과 과학물들로부터 신성한 것들에 관련해 슬기로워지기를 원하는 이들.
호9:6-‘멤피스가 그들을 묻을 것이다’=악의 거짓들에 말씀의 글자 의미로 부터의 참 진리들을 적용함으로 야기되는 영적 죽음.

모레 (Moreh)

창12:6-‘모레의 상수리나무 숲’=(주님의) 세 번째 상태이다.
창12:6-‘모레의 상수리나무에 조차’=세 번째 상태; 즉, 첫 번째 지각, 이는 ‘모레의 상수리나무’이다.
창12:6, 신11:29-30-상수리나무 숲의 나무들에 의해 외면의 지각들, 과학적인 것들…이로부터 ‘모레의 상수리나무’=주님의 첫 지각; 그이유는 그분이 아직 어린아이이셨기 때문…더우기, 모레의 상수리나무숲은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요르단 강을 건널 때 처음 왔던 곳, 그리고 가나안의 토지를 보았던 곳, 이 지역에 의해 지각의 첫 번째가 의미된다.
* ‘마므레의 상수리나무’에 의해 의미되는 지각이…’모레의 상수리나무’에 의미되는 것보다 더 내면적이다.

모리아 (Moriah)

창22:2-‘모리아의 토지로 가라’=시험의 장소와 상태…’모리아의 토지’=시험의 상태인 것은 아브라함이 그쪽으로 가도록 명령받았다는 사실, 그의 아들을 거기서 번제물로 바쳤다는 것, 고로 시험의 마지막 번째를 수행했다는 사실로부터 분명해진다. 예루살렘, 거기서 주님 자신께서 마지막 시험을 이겨내셨는데, 모리아와 같은 장소이다. 모리아산은 다윗이 제단을 쌓은 곳, 후에 솔로몬에 의해 성전이 지어졌다. 대하3:1, 대상21:16-28, 삼하24:16-25도 비교참조.

목초지 (pasture)

* 목자도 참조
이48:9-‘목초지’=가르침 자체.
창47:4-‘당신의 종들이 양떼를 위한 풀밭이 없기 때문입니다’=안쪽에 진리로부터의 선들이 있는 과학물이 결핍되고 있다는 것. ‘양떼를 위해 있는 목초지’=진리로부터의 선들이 안에 있는 과학물들….내적 의미에서, ‘목초지’=영적 생명을 받쳐주는 것, 그리고 특별하게는 과학적 진리이다. 육체가 음식을 갈망하듯, 혼은 이것을 갈망한다. 그러므로 ‘(풀을) 먹이는 것’=가르침이 있는 것.
애1:6-‘수사슴이 목초지를 찾지 못했다’=진리들 없는 자연적 애착들과 그것의 선들. ‘목초지’=진리와 진리로부터의 선, 이것이 인간의 영적 생명을 받쳐준다.
시23:2-‘풀잎의 목초지’=영적인 자양분, 이는 혼의 자양분이다. 그러므로 말해진다, ‘내 혼을 그분은 소생하게 해준다.’
욜1:18-그들이 ‘가지지 않은 목초지’에 의해 가르쳐지게 될 진리가 없다가 의미되어 있다.
요10:9-‘목초지를 발견하는 것’=가르쳐지고, 예증되어지고, 신성한 진리들로 자양분이 공급되는 것.
나2:12-그들의 ‘목초지’=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들.
겔34:31-‘내 목초지의 양떼’=영적인 선과 진리. ‘목초지’=주님을 수단으로 그들이 받아들임.
예23:10-‘광야의 목초지가 말라졌다’=이런 교회 안에 영적 자양분은 없다.
욜1장-‘목초지 없다’=가르침 없다.

못 (pool)

* 물웅덩이(pool)를 보라.

무덤 (grave, sepulchre)
매장 (burial)
매장하다 (bury)

* death도 참조.
민19:16-‘죽은 자, 죽여진 자, 사람의 뼈, 무덤을 만진자는 불결해진다.’ 이런 모든 것=인간에게 어울리는 것들, 이것들은 죽은 것, 모독인 것들이다.
창15:15-‘너는 장수하다가 묻힐 것이다’=주님에 속한 이들에 의해 모든 선들이 향유됨. 그이유가 인간은 죽고 매장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불명료한 삶(dim life)으로부터 명료한 삶(clear life)으로 건너가는 것이기 때문.
창23:4-‘당신의 매장지를 나에게 주어 소유하게 하라’=그들은 거듭나질 수 있다는 것. 말씀의 내적 의미에서, ‘무덤, grave’=삶, 또는 천국, 그리고 반대 의미에서, 죽음 또는 지옥. 천사들은 무덤에 관한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이유는 그들은 죽음이라는 것은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다. 무덤이라는 말 대신 그들은 삶의 계속을 지각한다, 고로 부활. 인간은 영 측면에서 일어나고, 그의 몸 측면은 매장되어진다. ’매장‘=부활인바, 매장 또한=거듭남이다. 그이유가 거듭남은 인간에게 첫 번째 부활, 즉 이전의 사람의 측면에서 죽고 새로운 사람 측면에서 다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
창23:4-‘내가 내 앞의 내 죽은 자로부터 매장하는 것’=그분은 그들과 더불어 있는 밤으로부터 다시 일어나시고 공표하실 것.
창23:6-‘우리들 중 아무도 당신의 무덤(his sepulchre)에 매장하는 것을 제지하지 않을 것이다’=모두가 거듭남을 받을 준비가 되어졌다는 것.
창28:11-‘당신의 죽은 자를 묻는 것’=밤으로부터 나와 소생되는 것. ‘묻히는 것’=다시 일어나는 것, 또는 소생하는 것.
창28:13-‘나는 내 죽은 자를 매장할 것이다’=그들은 밤으로부터 나와서 생기있어질 것이다. ‘매장되는 것’, 여기서=생기있어지는 것, 그이유는 그들이 신앙을 받는 과정에 있기 때문…‘나는 내 죽은 자를 매장할 것이다’=영적인 밤과 생기 있어짐인 이유는 이전의 교회가 죽고, 주님에 의해 새로운 교회가 그 곳에 일어날 때, 죽음 대신 생명이, 밤 대신 아침이기 때문. 또한 개혁되고 영적으로 만드는 모든 이와 더불어 그 사람에 관한 죽은 것은 매장되듯 해지고, 그리고 새로운 것, 즉 살아있는 것이 다시 일어난다. 고로 그 사람과 더불어 밤 대신, 또는 어둠과 찬(cold) 것 대신 그것의 빛과 열을 가진 아침이 떠오른다. 이로부터 주님의 생명 안에 있는 천사들과 더불어서는 인간이 죽은 자를 매장함에 관하여 가지는 생각 대신, 부활과 새로운 생명에 관한 생각을 가진다.
창23:19-‘아브라함은 그의 아내 사라를 매장했다’=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선과 결합한 진리를 받았다.
창23:20-‘아브라함이 무덤의 소유자로…’=이것은 거듭남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만 있었다. ‘무덤, sepulchre=거듭남.
창25:9-‘그의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매장했다’=주님을 표현함(대리인, representation)이 지금 이삭과 이스마엘에 의해 계속되어졌다. 여기서 ‘매장하는 것’=소생되어지는 것 그리고 다시 일어나는 것…그이유가 말씀에서 대리인이 계속되기 때문…그리고 죽음들은 어떤 중단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매장=대리인이 소생함 그리고 또다른 사람에서 계속됨이다.
마23:27-‘뼈들’=거짓들, 그리고 ‘무덤들’=그들이 들어 있는 악들, 그리고 위선은 바깥쪽으로는 선으로 나타나나, 안쪽에는 거짓으로부터 추잡하고 모독적인 것들인 바. 주님께서 말하신다, ‘너희는 하얗게 칠한 무덤 같다, 바깥으로는 아름다운듯 나타나나 내부는 죽은 자의 뼈와 모든 불결함들로 가득해 있다.
창35:8-‘(드보라는) 벧엘 아래 상수리나무 아래 매장되었다’=영구히 거절됨. ‘매장되는 것’=거절되는 것.
창35:19-‘라헬이 죽었다, 그리고 에브라데로 가는 길에서 매장되어졌다’=내면 진리에 대한 이전 애착의 끝…‘매장되는 것’=이전 상태의 거절, 그리고 새로운 것이 소생됨.
창35:20-‘그리고 야곱은 그녀의 무덤에 상(statue)을 세웠다’=영적 진리의 거룩함이 거기서 다시 일어날 것이다…‘무덤’=부활.
창35:29-‘그의 아들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매장했다’=그는 자연 평면의 선과 진리로부터의 선에서 다시 일어났다. ‘매장되는 것’=부활…이런 이유는 몸이 죽을 때, 혼이 다시 일어나기 때문. 이로부터 ‘매장’이 말씀에서 언급될 때, 천사들은 거절된 몸을 생각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혼을 생각한다.
창37:35-‘나는 슬피울며 무덤으로 내 아들에게로 내려 갈 것이다’=고대 교회는 멸해지리라는 것.
창42:38-‘슬퍼하며 무덤으로’=소생의 희망 없이…‘무덤’=부활과 거듭남. 고로 소생함. 즉 교회의 소생.
창44:29-‘너는 내 회색 머리카락들을 악 안에서 무덤으로 내려가게 할 것이다’=영적 선은 이제 막 멸해지려 한다는 것, 고로 교회의 내적 부분이 멸해지려한다는 것…선 안에서 무덤으로 내려가는 것=다시 일어나는 것, 그리고 거듭나는 것. ‘악 안에서 무덤으로 내려가는 것’=멸해지는 것.
창50:5-‘내가 나를 위해 가나안 토지에 파놓은 내 무덤에, 거기에 너는 나를 매장할 것이다’=교회가 전에 있었던 곳에서 소생되어지리라는 것. ‘무덤’, 그리고 ‘매장되는 것’=소생함.
창50:5-‘그리고 지금 나는 올라가서 내 아버지를 매장할 것이다’=거기에 내적인 것으로부터 교회의 소생함이 있다.
창50:14-‘그의 아버지를 매장하러 그와 더불어 올라갔던 모든 이’=거듭남에 도움이 되는 모든 것들. ‘매장되는 것’=거듭남과 소생함. ‘매장하는 것’=거듭남과 소생함, 또한 교회의 갱신과 소생, 이런 이유는 모든 이런 의미들이 같은 것을 포함해서이다. 즉 거듭남은 부활이다. 그리고 교회의 소생은 거듭남을 통하여 결과되어진다.
출14:11-‘이집트에 무덤이 없었기 때문에’=지옥에 떨어짐(damnation).
예8:2-‘매장되지 않는 것’=생명으로 부활이 없는 것.
계11:9-‘무덤 안에 놓이지 않을 것’, 또는 매장되지 않을 것‘=지상적이고 불결한 것으로 남는 것. 그리고 더나아가 거절되어 지옥에 떨어지는 것.
겔39:12-‘(곡)을 매장하고 토지를 깨끗이 하는 것’=그들 모두를 파괴하는 것, 그리고 그들로부터의 교회를 통째로 걸러내 깨끗이 하는 것.
예14:16-‘매장되지 않는 것’=지옥에 떨어지는 것.
이22:16-거짓을 사랑함이 ‘높은데 있는 무덤’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시88:11-당신의 자비를 무덤에서, 당신의 진리를 파괴함에서 말해질 것입니까?’=신성한 선과 신성한 진리는 악들과 거짓들이 있는 지옥에 전파되어질 수 없다는 것…‘무덤’=악들이 있고 출현하는 지옥, ‘파괴함’=거짓들이 있고 출몰하는 지옥. ‘무덤’=지옥인 것은 지옥에 있는 이들은 영적으로 죽어 있다는 사실로부터 분명하다.

물웅덩이 (pool)
못 (pool)

* lake도 참조.
이22:9-‘더 낮은 물웅덩이의 물들’=전통들, 이를 수단으로 그들은 말씀에서 위반 행위들을 만들었다.
요9:7-‘실로암의 못’=글자 측면에서의 말씀.

므깃도 (Megiado)

슥12:11, 왕하23:29,30, 대하35:20-24-고고함(오만함, loftiness)으로부터의 사랑이 옛 히브리 언어에서 ‘므깃도’에 의해 뜻해진다. 이는 아랍어의 뜻으로부터도 분명하다.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 역시 같은 의미이다.
왕하23:29,30, 슥12:11-‘아마겟돈’에 의해 므깃도가 뜻해진다고 여겨져왔다. 즉 거기서 유다의 왕 요시아가 바로와의 싸움에서 죽임을 당했다. ‘아마겟돈’에 의해 영예, 명령, 특출함을 사랑함이 의미되어진다. 이 사랑이 옛 히브리어에서 ‘므깃도’에 의해서도 뜻해진다. 이는 아랍어에 있는 이 단어의 뜻으로부터 분명해진다.

므리바 (Meribah)

겔47:19, 48:28-‘므리봇의 물에서’
출17:7-‘그리고 므리바’=불평의 품질. ‘므리바’, 원어에서는 ‘다툼, contention’, 또는 ‘꾸짖음, chiding’을 뜻한다. 그리고 꾸짖음=시험에서 불평의 품질…

미스갑 (Misgab)

예48:1-그들에게 불어 넣어진 거짓들이 ‘미스갑’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미스바 (Mizpah)

창31:49-‘(그는 그것을) 미스바라 불렀다. 그이유는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를 쳐다보셨기 때문’=주님의 신성의 자연 평면의 현존.

믹돌 (Migdol)

출14:2-‘그들은 믹돌과 바다 사이에 진영을 쳤다’=시험들을 수행하는 상태의 시작.

바다 (sea)

창1:27-이러한 지식들은 ‘한 장소애 모아진 물들’ 그리고 ‘바다라 불렀다’
시104:25-‘바다들’=영적인 것들
창12:8-‘바다 쪽(서쪽)의 베델=그분의 희미한 상태.
창14:3-‘이것은 소금의 바다이다’=거기로부터 있는 거짓들 속의 더러운 것들.
눅21:25-‘바다와 큰 파도가 포효할 것이다’=이교와 말다툼이 소란스럽게 있을 것이다.
계10:1-‘바다’=자연적 진리들; ‘땅’=자연적 선들.
겔47:8-‘바다 쪽을 향해 가는 것’=과학적 사실들을 향하여; ‘바다’=그것들의 집합.
이21:1-‘바다의 사막’=과학적 사실과 그로부터 추론함을 통하여 황폐된 진리. (=사용되지 않은 지식의 무가치함)
합3:15-‘당신께서는 당신의 말들이 바다를 짓밟도록 만드셨다’ ‘바다’=지식들; 그리고 이들은 하느님으로부터 말씀을 이해함 속에 있는바 위 구절 같이 말해진다.
시89:25-‘나는 그의 손을 바다에 놓을 것이다’=진리의 지식들에 있는 강함.
이60:5-‘바다가 많음 (풍부함)’=자연적 진리가 엄청나게 풍부함
여1:4-‘큰 바다,’ 그리고 ‘태양이 내려가는….’=(주님의 왕국의) 다른 쪽 경계, 이를 수단으로 최말단(의 천국)이 표현되었고, 이 천국은 관계적으로 볼 때 희미하다.
창38:14-‘너는 바다 쪽으로 그리고 동쪽으로 퍼져나갈 것이다’=선의 무한한 확장…‘바다’ 또는 서쪽=개시 되고 있기에 아직은 미미한 선,
암8:12-‘바다로부터 바다까지 배회하는 것’=지식들이 있다는 곳을 찾아 나섬; ‘바다들’=일반적인 측면에서의 지식들.
시114:3-‘바다가 그것을 보았고 도망했다’…‘바다’=진리의 지식들.
계4장-‘보좌 앞의 유리의 바다’=자연에 있는 모든 진리; 고로 지식들과 과학적 사실들.
시24:2-‘여호와께서는 바다들 위에 세상의 기초를 두셨다’=지식 속에 있는 것들.
창49:13-‘…바다들의 항구에서 거주할 것이다’= 과학적 사실들로부터 진리의 종결이 있는 삶… ‘바다들’=복합체 안에 있는 과학적 사실들.
계8:9-‘혼들을 가진 바다의 창조물들’=선들과 더불은 과학적 진리들.
이18:2-‘바다로 대사들을 보내는 것’=과학적 사실을 참작하는 것.
신33:19-‘바다의 풍부한 것을 흡수함’=그들은 과학적 진리를 풍부히 받아들인다는 것, 또는 그것이 은근히 심어지리라는 것.
이63:11-‘그분은 백성을 바다로부터 올라오게 만들었다’=이들은 지옥에 떨어짐으로부터 구조되었다.
슥10:11-‘해협의 바다를 통과하는 것’=시험들.
출15:8-‘바다의 심장’=자아를 사랑함, 그로부터의 거짓들…(=탐욕들로부터의 거짓들이 있는 지옥들)
예6:23-‘그들의 음성은 바다 같이 요동친다’=그로부터 추론함.
출20:11-‘엿새 동안 그분께서는 하늘을, 땅을, 그리고 바다를 만드셨다=내적, 외적 인간에 있는 것들의 거듭남…’바다’=인간의 육체에 붙어있는 감각적인 것.
출23:31-‘불레셋의 바다’=신앙 속의 내면의 진리.
출26:22-‘바다 쪽으로 향하고 있는 주택의 두 넓적 다리’=선이 불명료한 상태로 있는 천국과의 결합…‘서쪽’ 또는 ‘바다’=불명료한 선의 상태.
겔26:16-‘바다의 왕자들’=제일 가는 과학적 사실들, 이것은 교의(독단적 주장)라 불린다…‘바다’=일반적 측면에서의 과학적 사실인 것.
출27:12-‘바다 쪽의 모퉁이에서 바깥뜰의 넓이’=과학적 진리들에 관련하여 있는 천국의 상태…‘바다’=과학적 사실이 집합된 곳, 이곳으로부터 진리들에 관한 추론이 있다. 이곳은 진리들을 담는 그릇 역할을 하는 자연성과 감각적인 것도 있다.
슥14:8-‘동쪽 바다’, 그리고 ‘뒤쪽의 바다’=자연적인 것과 감각적인 것, 여기에 과학적 사실들이 있고, 여기에 진리들도 집합되어 있다.
계4:6-‘보좌가 보이는 곳에 수정 같은 유리의 바다가…’=글자의 의미로부터 있는 일반적 진리들 안에 있었던 기독교인들로부터의 새 천국.
계7:1-‘땅과 바다’=보다 수준 낮은 모든 것들 (=거기서 땅의 최말단 것들)
계8:8-‘불로 태워지고 있는 산이 바다에 내던져졌다’= 교회의 외적인 것들 안에, 그리고 믿음 만에 있는 이들과 더불은 지옥적 사랑이 나타남.
계13:1-‘바다 안으로부터 짐승’=개혁 교회 속의 평신도…(=자연적 인간 속의 것들)
계15:2-‘나는 불이 혼합된 유리의 바다 같은 것을 보았다’=영적 세계의 마지막 경계선, 이곳은 종교를 가졌고 그 종교로부터 파생된 예배를 드렸긴 했는데 생활 속의 선은 없었던 이들이 집합되는 곳이다….이것은 21장에서 의미하는 바다이다. (=사랑의 선으로부터 있는 영적 진리들로부터 명료해지는 말씀의 일반적 진리들)
계18:17-‘바다에서 일하는 많은 자들’=광신적 신앙…을 사랑하는…모든 이…그이유는 ‘바다’에 의해 광신적 신앙이 의미되었기 때문; 그이유가 ‘바다’에 의해 교회의 외적인 것들이 의미되었기 때문; 그리고 이런 광신적 신앙은 오직 외적일 뿐이다.
계20:13-‘바다가 그 안에 있는 죽은 자들을 포기했다’=교회 속의 외적이고 자연적인 사람들 모두가 심판을 받도록 부름받았다. ‘바다’=교회의 외적인 것, 즉 자연적인 것.
계21:1-‘바다는 더 이상 있지 않았다’=주님의 생명의 책에 씌어진 이들이 끄집어내어 구원된 이후, 교회가 복구된 그 처음 때부터 있었던 기독교인들로부터 모은 외적인 것이 같은 방법으로 사라졌다는 것. ‘바다’=천국과 교회 속의 외적인 것, 단순한 자들은 이 안에 있다.
시89:9-‘바다가 파도를 들어 올릴 때, 당신께서는 바다의 들어올림을 규율하신다’=자연적 인간, 그이유는 일반적 진리들이 거기에 있기 때문; 바다의 파도=거짓들.
시33:7-‘그분은 퇴적 더미 쌓듯 바다의 물들을 함께 모으신다’=진리에 관한 지식들, 그리고 일반적으로 있는 진리들, 이것들은 다함께 자연적 인간 안에 있다.
시77;9-‘당신의 길이 바다 안에 있고 당신의 작은 길이 많은 물들에 있다’=주님이 안에 계시는 곳, 이는 말씀으로부터 있는 일반적인 진리들에 관한 지식들, 그리고 거기 있는 진리들; ‘바다’=이러한 지식들; 그리고 ‘물들’=진리들; 지식들은 자연적 인간 속에 있고, 진리들은 영적 인간 속에 있다.
예51:36-‘바벨의 바다’=그들의 전통들, 이것은 말씀으로부터 있는 선에 섞음질함이다.
단7장-짐승이 ‘바다 안으로부터’ 올라오는 것이 보여졌다, 그 이유는 ‘바다’에 의해 영적 인간으로부터 분리된 자연적 인간이 의미되었기 때문이다…
슥4:8-‘서쪽의 바다’= 악 안에 있는 이들; 그이유가 영계에서 서쪽 방위에 있는 바다는 분리되고 있기 때문.
단7:2-‘큰 바다’=이들이 오는 지옥.
시104:25-‘크고 넓은 바다’=외적 자연적 인간, 이들은 선들과 진리들을 과학적 논리에 입각해 받는다; 거기서 ‘크다’는 선에 관해, ‘넓다’는 진리에 관해 말해진다..‘바다에서 노는 것’=앎이 주는 기쁨 그리고 그로부터 슬기로워짐에 따른 기쁨.
마14장-‘주님께서 바다 위에서 걸으심’=그분의 현존과 (천국과 교회) 안으로 그분이 유입되심; 그리고 천국의 최말단에 있는 이들을 위해 신성으로부터 파생되는 생명…그리고 그들의 믿음은 희미하고 동요되는 믿음임이 바다 위를 걷다가 빠지고 만 베드로의 모습에 의해 표현되었다. 그러나 주님이 붙잡아 주셨고 구조되었다. ‘걷는 것’=사는 것…바다가 바람으로 요동쳤고 주님께서 잠잠케 하셨는바, 이는 앞서 있는 삶의 자연적 상태, 이 상태는 비평화롭고 마치 시험받고 있는 것 같다.
호11:10-‘경외함으로 바다 쪽으로부터의 아들들이 가까이 당겨질 것이다’=자연적 선에 있는 이들이 교회에 동의할 것이다.
계10:6-‘천국’, ‘땅’, ‘바다’=여기서는 특별한 측면에서인데, 보다 높은 천국들과 보다 낮은 천국들.
시65:7-‘바다들의 떠들썩함, 그리고 파도들의 요란함’ (이것을 그분은 중단되게 만드신다)=천국들 아래 있는 이들, 그리고 자연적이고 감각적인 이들의 추론과 논쟁들.
계12:12-‘땅의 주민들과 바다의 주민들에게 화있을 것이다’=단지 자연적이고 감각적이기만 한 이들에게 닥치는 애통함.
눅17:6-‘너(뽕나무, sycamore)는 바다에 심어져라’= 악으로부터의 거짓 속의 이런 신앙은 지옥에 내던져진다.
계16:3-‘둘째 천사가 그의 대접을 바다에 쏟았다’=자연적 인간 안에 있는 진리에 관한 지식들에 관련된 교회의 상태가 명명백백해짐.
계18:21-‘바다에 던지는 것’=지옥으로

바닷가 (shore)

출14:30-‘바다의 바닷가에서’=지옥의 맨끝들 가까이.
겔25:16-‘바다 해안에 남은 자’=진리로부터의 모든 것.

바드로스 (Pathros)

겔29:14-진리의 지식들을 수단으로 한 그들의 예증이 ‘나는 그들을 바드로스의 토지에 다시 데려다 놓을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이 토지는 그즐이 자신들을 위해 포획한 지식들로부터 ‘장사하는 토지’라 불리운다.

바란 (Paran)

* ‘세일 산’, 그리고 ‘바란’은 그분의 인간 실체로부터 있는 것들을 표현했다. 즉 사랑의 천적인 것들.
창14:6-‘광야에 있는 엘-바란 까지’=확장됨.
창21:21-‘그는 바란의 광야에 거주했다’=선 측면에서의 영적 인간의 삶.
합3:3-그분이 천적 사랑 측면에서는 ‘데만으로부터 오신다’고 말해진다. 그리고 영적 사랑 측면에서는 ‘바란 산으로부터’ 오신다고 말해진다.
신33:2-주님의 신성한 인간이 ‘그분은 세일 산으로부터 떠오르시고, 바란 산으로부터 빛을 발한다’에 의해 묘사되어 있다. ‘세일로부터’는 천적 사랑 측면에서, ‘바란 산으로부터’는 영적 사랑 측면에서.
창14:6-주님의 신성한 인간이 ‘세일 산’과 ‘엘-바란’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민12,13장-가나안의 토지를 탐사하는 작업이 ‘바란의 광야로부터’ 착수함에 의해 주님의 신성한 인간을 통하여 영적 인간은 천국의 왕국을 가진다가 의미되어 있다.

바산 (Bashan)

신32:14-‘바산의 아들들, 숫양들’=영적 평면 속에 있는 천적인 것들.
신33:22-‘바산으로부터’라고 말해지는 이유는 자연의 선으로부터이기 때문.
예50:19-‘갈멜과 바산에서 풀을 뜯기는 것’=신앙의 선들과 선행의 선들로 훈육하는 것.
신3:11-‘바산’에 의해 교회의 외적 측면, 고로 자연 평면이 의미되어진다. 그이유가 바산은 가나안 경계 밖에 위치하기 때문.
신32:14-‘어린 양들의 지방(기름기), 바산의 숫양 들의 지방, 그리고 숫염소의 지방’=순진의 선의 세 등급들.
시68:15, 여13:29-32-‘바산의 산’=자발적인 선, 이는 교회의 바깥쪽 것들에 있는 이들의 선과 같다. 그이유가 바산은 므낫세 반쪽 지파에게 주어진 요단 건너 지역이기 때문. 그리고 므낫세에 의해 바깥쪽 또는 자연적 인간의 자발적 선이 의미되기 때문. 이 자발적 선은 바깥쪽 인간에 있는 사랑의 선과 동일하다. 그 이유는 사랑의 모든 선은 의지 속에 있기 때문…‘바산의 산’이 이 선을 의미하기에 이 산의 ‘언덕들’에 의해 행동에 있는 선이 의미된다.
이2:13-‘레바논의 삼목들’, 그리고 ‘바산의 상수리나무들’에 의해 인간 고유의 총명으로부터의 자부심이 의미된다. 내면의 자부심은 ‘레바논의 삼목들’, 외면의 자부심은 ‘바산의 상수리나무들’에 의해 각기 의미된다.
암4:1-말씀과 예언의 글들을 가졌기에 (영적인) 지식들을 풍부히 지닌 이들이 ‘사마리아의 산’에 있는 ‘바산의 암소’로 뜻해지고 있다.
이2장-‘바산의 상수리나무’에 의해 자기들 지식(을 자랑해대는 이들)이 의미된다.
겔39:18-‘바산의 살진 것들’=영적 근원으로부터 있는 자연적 인간의 선.
미7:14-‘바산과 길르앗에서 풀을 뜯게하자’=말씀의 자연적 의미로부터 교회의 선들을 가르침, 그리고 교회의 진리들을 가르침.
이33:9-‘레바논’은 선과 진리를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교회를, ‘샤론’, ‘바산’, 갈멜‘은 말씀의 자연적 의미로부터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을 지닌 교회가 의미된다.

밖에 (without)

창24:31-‘왜 당신은 밖에 서있느냐?’=거기로부터 여하튼.
계22:15-‘밖에 개들이 있다…’…그것들이 천국 또는 교회 밖에(outside) 있을 때 ‘밖에’ 라고 말해진다.
신32:25-‘밖으로는 칼이…빼앗을 것이다’=내면의 의지로부터의 거짓과 악은 자연적 인간과 합리적 인간 모두를 황폐해지게 할 것이다.

밧단 아람 (Padden Aram)

창28:2-‘밧단 아람으로 가라’=그러한 진리에 대한 지식들. ‘아람’, 또는 ‘시리아’=지식들. ‘밧단 아람=진리에 대한 지식인 이유는 그것이 강들의 시리아에, 나홀, 브두엘, 라반이 있었던 곳에 있었다는 사실로부터 파생되기 때문.
창28:6-‘그를 밧단 아람으로 보냈다’=이 선의 지식들을 수단으로 명명백백해짐…‘밧단 아람’=진리에 대한 지식들. 선에 대한 지식들이라 말했는데, 그이유는 모든 진리들은 선에 대한 지식들이기 때문, 그러나 그것들이 교리를 중시하는 한 그것들은 진리에 대한 지식들이라 불리운다.
창28:7-‘그리고 (야곱은) 밧단 아람으로 갔다’=이 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들이 불어넣어지는 것…이것이 밧단 아람에 의해 의미된다.
창31:18-‘그가 밧단 아람에서 획득한 것’=자연 평면에서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 ‘밧단 아람’=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
창33:18-‘그는 밧단 아람으로부터 이쪽으로 옴에서’=이전 상태 후에…‘밧단 아람’=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들, 그러나 외면의 지식들, 이것은 순수한 선들과 진리들을소개하는 것을 돕는다. 그이유가 라반이 거기 있었기 때문, 라반에 의해 이런 선에 애착함 이 표현되어졌다.
창35:9-‘야곱이 밧단 아람으로부터 오는 중에 하느님이 그에게 다시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를 축복하셨다’=내면의 자연적 수준의 지각..‘그가 밧단 아람으로부터 오는 중에 다시’=그에게 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이 불어넣어진 후에.
창35:26-이들은 밧단 아람에서 그에게 태어난 야곱의 아들들이다‘=이 때에서 그들의 근원과 상태..
창48:7-‘내가 밧단 아람으로부터 오는데’=지식들의 상태로부터. ‘밧단 아람’=진리와 선에 대한 지식들.

밧모 (Patmos)

계1:9-‘나는 밧모라 불리우는 섬에 있었다’=그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상태와 장소. 요한에게 만들어진 계시가 밧모에서 있은 이유, 그것은 그리스의 섬, 가나안의 토지로부터 과히 멀지 않은 곳, 그리고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 위치했기 때문. 그리고 섬들은 하느님을 예배함과는 한층 더 먼 상태에 있는 국가들, 그럼에도 하느님을 예배해야한다는 것에 동조할 국가들을 의미한다. 그이유는 그것들은 구체적으로 말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그리스에 의해, 그리고 교회 자체는 가나안의 토지에 의해, 그리고 아시아는 교회에 속한 이들, 이들은 말씀으로부터의 진리의 빛에 있는 이들이 의미된다. 그리고 유럽은 말씀이 가게 될 이들. 이로부터 ‘밧모의 섬’은 그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상태와 장소를 의미한다..
* ‘나는 밧모라 부르는 섬에 있었다’=이방인들에게 계시함. (그이유가) ‘밧모’=묵시록에 있는 계시(이기 때문)…‘밧모’=계시인 이유는 거기서 요한에게 만들어진 계시의 기억할만한 [사건]으로부터이기 때문.
* 말씀을 쓰는데 사용된 모든 인물들은 의미를 가졌던 장소로 인도되어졌다. 이는 모든 것들이 영적인 것들로부터의 의미를 지니도록 하기 위함이였다. 그중의 한명이 요한이고 그는 교회의 마지막에 있게 될 것들을 계시받도록 하기 위하여 밧모의 섬으로 향하도록 설비되어졌다. 그 이유는 ‘섬, island’=교리의 진리들을 받을 국가들. 더욱이 이 섬은 여러 섬이 있는 것 중 하나이다. ‘그리스’ 역시 말씀에서 이런 국가들을 의미한다.

버가모 (Pergamos)

계2:12-‘버가모에 있는 교회’=선한 일들에 교회의 모든 것을 두는 이들, 그리고 교리로부터의 진리들에 있는 어떤 것도 중시 않는 이들. (=시험들에 있는 교회의 사람들).

베데스다 (Bethesda)

요5:2-이 절에 베데스다의 못이 언급되어 있다.

베들레헴 (Bethlehem)

* ‘베들레헴’=새로운 상태에서 천적인 것 속의 영적인 것.
창35:19-‘여기는 베들레헴이다’=천적인 것으로부터 있는 새로운 영적인 것의 부활. ‘베들레헴’=새로운 상태에서 천적인 것 속의 영적인 것, 그이유가 ‘유브라데’=이전 상태에서 천적인 것 속의 영적인 것이기 때문.
* 주님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이유는 그분 만이 영적 천적 인간으로 탄생되셨기 때문.
* ‘베들레헴’=자연적 인간에서 선과 결합된 진리인 바, 다윗이 거기서 출생되었고, 또한 기름부은 왕으로 거기서 되었다…
* 주님이 왕으로 태어나셨고, 그분 만이 출생으로부터 진리가 선과 더불어 결합되어 있었기에 그분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다…주님과 더불어서만이 자연 평면이 선을 간절히 바라고, 진리를 갈망함으로 자연을 채웠다.
* ‘유브라데’=자연적 의미 측면에서의 말씀, 그리고 ‘베들레헴’=영적 의미 측면에서의 말씀, 그리고 주님이 말씀이기 때문에 그분은 거기서 태어나도록 뜻하셨다.

베렛 (Bered)

창16:14-‘가데스와 베렛 사이에’=품질, 즉 그는 이 진리의 품질을 보았다는 것, 고로 합리성의 품질…‘가데스’=진리…‘베렛’, 아래쪽인 것, 고로 과학적 진리, 이로부터 또한 합리성이다.

벧엘 (Bethel)

창12:8-‘바다 쪽으로는 벧엘을, 동쪽으로는 아이를 가진 산’=주님의 네 번째 상태.
창12:8-‘벧엘’=천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그리고 주님께서 ‘벧엘’로 의미되는 것, 즉 천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들 쪽으로 이제 막 발전해가셨을 때, 이것이 여기서 ‘그는 벧엘의 동쪽에 있는 산으로 옮겼다’라고 말해지고 있다.
창12:8-‘서쪽으로는 벧엘, 그리고 동쪽으로는 아이…’=아직까지는 그분의 상태는 천적이고 영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에 대하여는 희미한 수준이었다는 것…이것이 ‘바다 쪽으로는 벧엘,’ 즉 ‘서쪽으로는 벧엘’ 그리고 ‘동쪽으로는 아이’로 묘사되어 있다. 그이유가 ‘벧엘’이 천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들이, ‘아이’는 세상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이 의미되기 때문.
창28:17,19-야곱이 사다리를 보았을 때, 그는 말했다, ‘이것이 과연 하느님의 집이요, 천국의 문이로구나.’ 그리고 그는 이 장소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다. 거기서 ‘벧엘’에 의해 천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이 의미된다; 그이유가 인간이 천적인 것에 관한 지식 안에 있을 때, 그는 ‘벧엘’, 즉 하느님의 집‘, 또는 ’천국의 문‘이기 때문. 인간이 거듭나는 동안, 그는 영적이고 천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들을 수단으로 천국을 소개받으나, 그가 거듭나지면 이미 그는 지식들 속의 천적이고 영적인 것들 안에 있는다.
창35:1,6,7-후에 하느님이 야곱에게 말하셨다, ‘일어나라, 벧엘로 올라가라, 그리고 거기서 거주하거라, 그리고 거기에 네게 나타났던 하느님에게 제단을 만들어라.’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벧엘’에 의해 지식들이 의미된다.
사20:18,26,27, 삼상7:16, 10:23-여호와의 궤가 벧엘에 있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그리로 와서 여호와께 묻곤 했다.
왕하17:27,28-앗시리아의 왕이 사마리아에서 끌려온 사제들 중의 한 명을 보내, 그는 ‘벧엘에서 그들과 더불어 앉았고, 그들에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왕상12:32-그러나 여로보암이 벧엘을 모독한 후, 이것은 반대적 (의미를) 표현했다
창13:3-‘남쪽으로부터 벧엘 쪽으로 조차’=총명의 빛으로부터 지혜의 빛 안으로…‘벧엘’=지식들로부터 근원하는 천적인 빛.
창13:3-‘벧엘과 아이 사이’=지식들 속의 천적인 것들과 세상적인 것들. ‘벧엘’=지식들을 통하여 있는 지혜의 빛.
암3:14, 7:13-‘나는 벧엘의 제단들을 방문할 것이다’…‘벧엘’=신성한 선, 그러므로 ‘왕의 성소’, ‘왕국의 집’이라 불린다.
창28:19-‘그는 이 장소를 벧엘이라 불렀다’=상태의 품질…언어의 뿌리로부터 보면, ‘벧엘’은 ‘하느님의 집’을 뜻한다, 이 하느님의 집=질서의 최말단에 있는 선.
창31:13-‘나는 벧엘의 하느님이다’=자연에 있는 신성. ‘벧엘’=질서의 최말단, 고로 자연에 있는 선, 그이유가 자연은 질서의 최말단인 바, 거기에 천적이고 영적인 것들은 종결되기 때문….’벧엘’=자연에 있는 선이므로 벧엘=거기 있는 천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 그이유가 이 지식들은 선 속에 있기 때문.
창35:1-‘일어나라, 벧엘로 올라가라’=신성한 자연성을 지각함…’벧엘’=자연에 있는 신성, 또는 질서의 최말단에 있는 신성; 그이유가 언어의 근원에서, ‘벧엘’은 ‘하느님의 집’을 뜻하기 때문, 그리고 하느님의 집은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이 있는 곳이기에 대략적 의미로 이런 지식들이 의미된다. 그러나 내면적인 것들은 질서의 최말단이 종착지이고 그 안에서 함께 묶인 상태, 즉 한 집 안에서 있고 함께 거주하는 셈이다, 그리고 인간과 더불은 자연은 내면의 것들이 있는 최말단이다, 고로 ‘벧엘’ 또는 ‘하느님의 집’이 자연, 정확히 말하면, 자연에 있는 선을 의미한다.
창35:3-‘일어나 벧엘로 가자’=신성한 자연.
창35:7-‘그는 그 장소를 엘벧엘이라 불렀다’=거룩한 자연.
창35:15-‘야곱은 하느님이 자기와 이야기한 장소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다’=신성한 자연과 그것의 상태.
창35:16-‘그들은 벧엘로부터 여행했다’=신성한 자연으로부터 신성의 발전이 계속됨.
암3:14-‘벧엘의 제단들’=악으로부터의 예배.
* ‘벧엘’은 ‘하느님의 집’을 뜻한다, 그리고 ‘하느님의 집’=선 측면에서의 교회, 그리고 가장 높은 의미에서 신성한 인간 측면의 주님.
왕상12:29-여로보암이 두 제단, 즉 ‘하나는 벧엘에, 또 하나는 단에 세웠다.’ ‘벧엘과 ‘단’에 의해 교회에서 최말단인 것이 의미되고, 교인 속의 최말단인 것들은 자연의 감각적인 것들, 또는 자연의 세상적이고 육체적인 것들이라 불린다. 이런 것들이 ‘벧엘’과 ‘단’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즉 ‘벧엘’에 의해서는 선의 최말단이. ‘단’에 의해서는 진리의 최말단이 의미된다. 이로부터 이것들의 ‘제단’은 최말단에 있는 예배를 의미한다…

보금자리 (nest)

시104:17-‘새들이 어디에 자기들의 보금자리를 만드느가?’…‘새들’=그의 합리성 또는 자연적 진리들, 이는 마치 보금자리 같다.
신32:11-진리로 그들을 가르침이 ‘독수리가 자기 보금자리를 휘젖는’에 의해 묘사되어 있다.
옵4절-이것이 ‘별들 사이에 보금자리를 배치하는 것’에 의해 뜻해져 있다.
겔31:6-그러므로 ‘하늘의 모든 새들이 그의 가지들에 자기들의 보금자리를 만듬’에 의해 의미된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
예49:16-자아사랑과 자신의 총명으로 교만함이 뜻해지는 것이 이 말씀, ‘만일 네가 독수리 같이 보금자리를 드높인다면 나는 너를 아래로 내던질 것이다’라고 말해진 것으로부터 분명해진다.
예48:28-‘골짜기 어귀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비둘기 같이 하거라’=내부로부터가 아닌 외부로부터 있는 진리에 대한 정신적 관찰…‘보금자리를 만드는 것’=‘거주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즉 생활을 이끄는 것. 그러나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은 새를, ‘거주하는 것’은 사람을 서술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보스라 (Bozrah)

이63:1-글자 의미 측면의 말씀은 유대 백성에 의해 찢기워졌고, 그렇기에 신선한 진리는 섞음질되었기 때문에, ‘보즈라로부터 튀기어 더럽혀진 옷을 입은…’이라고 말해지고 있다….‘보즈라로부터의 옷’=말씀의 최말단, 이는 말씀의 글자 의미이다.

부스 (Buz)

창22:21-‘부스’ 등등=다양한 종교들과 거기서 파생된 예배들.

브라데 (Phrath)

* 유브라데를 보라

브엘 (Beer)

민21:16-여기에서 이름 ‘브엘’, 그리고 이름 ‘브엘세바’, 그리고 그것의 의미, 이는 교리 자체이다.
민21:16-18-‘브엘’, 원어에서, ‘우물’을 뜻한다, 그리고 ‘우물’=말씀, 그리고 말씀으로부터의 교리. ‘브엘세바’도 마찬가지이다

브엘-라해-로이 (Beer-lahai-roi)

창24:62-‘이삭이 브엘-라해-로이로부터 왔다’=합리성으로부터의 신성한 선(Divine Good rational), 이는 신성한 진리 자체로부터 태어난다…‘브엘-라해-로이’, 원어에서, ‘살아계신 그분이 샘이시다. 그리고 나를 보신다’를 뜻한다.
창25:11-‘이삭은 브엘-라해-로이에서 거주하였다’=신성한 빛에 있는 주님의 신성한 합리성.

브엘세바 (Beershaba)

창21:14-‘(하갈은) 가서 브엘세바의 광야에서 배회했다’=신앙 속의 교리적인 문제들이 방랑하는 상태…‘브엘세바’=신앙의 교리.
창21:31-‘그는 그곳을 브엘세바라 불렀다’=교리의 상태와 품질. ‘그들 둘 다 거기서 맹세했기 때문에’=결합으로부터. ‘그리고 그들은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웠다’=인간 합리성의 것들이 신앙의 교리에 인접하였다는 것.
창21:33-‘(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작은 숲(grove)을 심었다’=거기서부터 파생된 교리가 그것의 영적 지식과 더불어, 그리고 그것의 품질.
창21:22-33, 26:32,33-‘브엘세바’=교리의 상태와 품질, 즉 그것은 신성인 것, 여기에 인간 합리성의 것들이 인접되어져 있다는 것이 22절로부터 여기까지에 있는 시리즈로부터 분명해진다. 또한 원어에 있는 이름 자체의 의미로부터, 이는 ‘맹세의 우물’이란 뜻이다. 그리고 ‘일곱’, 그리고 ‘우물’=신앙 속의 교리, ‘맹세’=결합…그리고 ‘일곱’=거룩인 것, 고로 이는 신성이다…이것이 이름 브엘세바의 근원이었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말들로부터 분명하다. 즉 ‘너는 내 손으로부터 일곱 암양 새끼를 가져가서 그것으로 내가 이 우물을 팟다는 증거로 삼으라. 그러므로 그는 그 장소를 브엘세바라고 불렀다. 그이유는 그들이 둘 다 거기서 맹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웠다.’ 위와 마찬가지가 이삭의 말들로부터도 있다. ‘그날에 이삭의 종들이 와서 자기들이 팟던 우물에 관하여 말하기를, 우리가 물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세바(맹세, 그리고 일곱)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그 성의 이름은 오늘까지 브엘세바이다.’ 이 대목에서 또한 아비멜렉과 다투었던 우물이 취급되고 있다. 그리고 또한 그와 언약도 있다, 그리고 ‘브엘세바’에 의해 인간의 것들이 다시 신앙의 교리에 인접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다시 인접하였기 때문에, 하여 인간의 납득에 잘 순응된 교리로 만들어졌다. 고로 그것은 ‘성’이라 불린다. 이것=복합체에서 교리적인 품성 속에 있는 것.
창22:19-‘그들은 함께 브엘세바로 갔다’=신앙으로부터의 교리와 선행으로부터의 교리로 발전함, 이는 신성한 교리인 것이 인간의 합리적인 것들에 인접해 있는 것.
창22:19-‘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거주했다’=주님이 그 교리 자체이시다는 것…‘브엘세바에 거주하는 것’=교리 안에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이 주님을 서술할 경우,=교리가 되는 것.
창26:23-‘(이삭은) 거기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다’=그때부터 신앙으로부터의 교리는 신성이었다는 것. ‘브엘세바’=신성으로부터 있는 신앙에 관한 교리. 여기서 ‘브엘세바’에 의해 의미되는 신앙의 교리는 말씀의 글자 의미이다, 그이유가 말씀은 교리 자체이기 때문이다.
창26:33-‘그러므로 성의 이름은 브엘세바이다’=거기서부터 교리의 품질이 파생되었다…‘브엘세바’, 이는 원어에서, ‘맹세의 우물’이란 뜻이다. 고로 확증된 진리로부터의 교리이다. ‘브엘세바’=교리.
창26:33, 21:30,31-창21장 30,31절의 ‘브엘세바’에 의해 신성으로부터 있는 교리의 상태와 품질, 그것에 의해서 결합이 있다. 그리고 이 장의 주제는 교회의 내적인 것들인 바, 그 장소는 ‘브엘세바’라 불리웠다. 그러나 26장 33절의 경우, 주제가 교회의 외적인 것들이기 때문에, 성이 ‘브엘세바’라 불리워지고 있다.
창28:10-‘야곱은 브엘세바로부터 나아갔다’=신성한 교리적인 것들로부터 더 멀어진 생활…‘브엘세바’=신성한 교리.
암8:14-‘하느님은 살아 있다, 오 단. 그리고 브엘세바의 길이 살아있다’=그들은 신앙으로부터의 모든 것들, 그리고 그것의 교리로부터의 모든 것들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
창46:1-‘(이스라엘은) 브엘세바에 왔다’=선행과 신앙. ‘브엘세바’=선행과 신앙의 교리. 여기서, 선행과 신앙, 그리고 그것들로부터의 교리는 아니다, 그 이유는 그것이 ‘이스라엘’인 영적 선을 서술하기 때문.
창46:5-‘(야곱은) 브엘세바로부터 (일어났다)’=선행의 교리로부터와 신앙의 교리로부터.
사20:1,2-‘단으로부터 브엘세바에 까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에 의해 최말단 원리로부터 첫째 원리까지 아울러 있는 것들이 의미되어진다.

비돔 (Pithom)

출1:11-‘비돔과 라암셋’=왜곡된 진리들로부터 있는 교리들의 품질.

비손 (Pison)

* 강도 참조
창2:11-첫째 강, 또는 ‘비손’=사랑으로부터 있는 믿음 속의 총명.

비-하히롯 (Pi-hahiroth)

출14:2-‘그들은 비-하히롯 앞에 진을 쳤다’=겪어야하는 시험들의 상태가 시작함.

빨랫집 (fuller)

말3:2-‘빨랫집의 비누’.

사데 (Sardis)

계3:1-‘사데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쓰거라’=죽은 예배 안에 있는 이들, 또는 선행의 선들과 신앙의 진리들이 결핍된 예배 안에 있는 이들과 그것들에 관하여. (=도덕적 생활은 하는데 영적 생활을 하지 않는 이들, 그이유는 영적인 것에 관심이 별로 없는 이들, 그리고 지혜와 총명이 없는 이들.)
계3:4-‘너는 사데에서 조차 몇 이름들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 옷들을 더럽히지 않았다’=자기들 생활에 시용하려고 말씀으로부터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들을 응용함을 수단으로 영적 근원으로부터 도덕적 생활을 이끄는 이들.

사렙다 (Sarepta)

눅4:26-‘시돈의 사렙다’=진리를 갈망하는 교회 밖 사람들.
눅4:26-‘시돈의 사렙다, 과부 여인 외에는’=선 안에 있고 진리를 갈망하는 이들 외에는. 시돈의 사렙다가 말해지는데, 그이유는 ‘시돈’=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이기 때문.

사론 (Sharon)

이35:2-‘갈멜과 사론’=천적 교회.
* ‘사론’=천적 교회의 내적 측면.
이33:9-‘사론, 바산, 그리고 갈멜’=말씀의 자연적 의미로부터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 측면에서의 교회.

사마리아 (Samaria)
사마리아 사람 (Samaritan)

겔16장-‘사마리아’, 고모라의 장소에서 언급되는바,=거짓들 측면에서의 [교회].
겔23장-‘사마리아’=진리에 애착함 안에 있는 교회 (=영적 교회).
마10:5-‘사마리아 사람들의 성읍들’=거짓들에 있는 이들.
왕하6:9,20-그들은 엘리사에 의해 사마리아로 데려와졌고, 거기서 그들의 눈들이 열렸다=말씀을 통하여 가르침.
눅10장-‘사마리아 사람’=진리에 애착함 안에 있는 자…그이유는 ‘사마리아’, 말씀에서,=이 애착.
미1:5-‘사마리아’=변질된 신앙으로부터의 교회.
암3:12-‘사마리아에 거주하는 그들’=외적 예배 안에 있는 그들.
호7:1-‘사마리아의 악들’=의지 속의 악들.
마10:5-‘사마리아의 성으로 너희는 들어가지 마라’=주님을 거절하는 이들로부터의 거짓 교리…그이유가 사마라아 사람이 그분을 시인하지 않았던 때문에.(눅12:52-56)
호10:7-‘사마리아’=영적 교회, 또는 선행과 신앙이 하나를 만드는 교회 그러나 그것이 상도를 벗어난 상태에서의 ‘사마리아’=선행이 신앙으로부터 분리되어간 교회, 더욱이 그것이 본질이라고 발표한다. 그러므로 또한 ‘사마리아’=선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진리가 없는 것, 선 대신 악한 생활이 있다, 그리거 진리 대신 교리의 거짓이 있다. 이것이 ‘사마리아는 잘라진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미1장-‘사마리아’=교리의 진리들 측면에서의 영적 교회. 여기서의 경우, 교리의 거짓들.

사막 (desert)

* 광야(wilderness)를 보라.

사웨 (Shaveh)

창14:17-‘사웨의 골짜기’=외적 인간의 선들.

사초 (sedge)

창41:2-‘그들은 사초에서 먹고 있었다’=가르침…사초, 또는 강가에 있는 큰 풀밭=자연적 인간 속에 있는 과학물들.
이19:6-더이상 자연적 진리들과 감각적 진리들이 있지 않을 것임이 ‘갈대와 사초가 시들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사할 (Zachar)

겔27:18-‘사할의 양털’=자연적 선.

산 (mountain)

시72:3-‘산들’과 ‘언덕들’=태고 교회.
창7:19-‘높은 모든 산들이 덮여졌다…’=선행의 모든 선들이 소멸되었다…태고인들과 더불어 산은 주님을 의미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산 위에서 그분을 예배했기 때문이다; 그이유는 산은 땅이 가장 높이 치솟아 있는 것이기 때문. 이로부터 산들은 천적인 것들을 의미했다. 이것 역시 가장 높은 것들, 즉 사랑과 선행이라 불리웠다. 고로 사랑과 선행으로부터의 선을 의미했다…반대적 의미에서, 마음 안에서 의기양양해져 있는 것들, 즉 자아 사랑도 산이라 불리운다. 말씀에서 태고 교회는 산이 땅 위 높게 승강되어 있다는 사실로부터, 마치 천국에 더 가까운듯, 어떤 것의 시작에 가까운듯 하여 산에 의해 의미되어지고 있다.
시73:3-‘산들’=주님을 사랑함
겔20:40-‘거룩함의 산’=주님을 사랑함. ‘이스라엘의 높은 산’=이웃을 사랑함.
이2:2-‘여호와의 집의 산은 산들의 머리에 건설되었다’=주님, 그리고 천적인 모든 것.
이25:6-‘이 산’=주님, 그리고 천적인 모든 것.
이30:25-‘모든 드높은 산 위에’. 산들‘=사랑으로부터의 선들.
이30:29-‘여호와의 산’=사랑으로부터의 선들 측면에서의 주님.
이40:9-‘높은 산으로 오르고 복음을 전하는 것’=사랑과 선행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는 것, 이는 가장 깊은 것들, 고로 가장 높은 것이라 불리운다.
이42:11-‘산들의 머리로부터 외치는 것’=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는 것.
이52:7-‘산 위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사랑의 교리와 선행의 교리로부터 주님을 전도하는 것, 그리고 이 교리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는 것.
이55:12-‘산들과 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할 것이다’=사랑과 선행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는 것.
이49:11-‘산’=사랑과 선행.
이65:9-‘산’=주님의 왕국, 그리고 천적인 선들.
마24:16-‘유대에 있는 이들은 산으로 도망하라’에서 ‘산’에 의해 사랑과 선행이 주님에 의해 뜻해지고 있다.
창8:4-‘아라랏의 산들’=발광(체, lumen). (그이유가) ‘산’=사랑과 선행. (이것들로부터) 새로운 빛이 조명된다.
창8:5-‘산들의 머리가 나타났다’=신앙으로부터의 진리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 ‘산들’=사랑과 선행.
겔38:8-선행(charity)이 ‘이스라엘의 산들’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창10:30-‘동쪽의 산’=선행. 사실상 주님으로부터의 선행. 말씀에서 ‘산’=주님을 사랑함과 이웃을 향한 선행.
예51:25-‘태워진 산’=자아 사랑.
창12:8-‘벧엘의 동쪽의 산으로 옮겨가는 것’=사랑의 천적인 것들이 발전해 감. ‘산’=천적인 것.
이2:14-‘높은 산들’=자아 사랑, ‘드높인 언덕들’=세상 사랑.
이40:4-‘모든 산과 언덕은 낮아지게 만들 것이다’=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
이42:15-‘나는 산들과 언덕들을 황무해지게 할 것이다.’ ‘산들’=자아 사랑, ‘언덕들’=세상 사랑.
신32:15-‘산들의 기초’=지옥들.
창19:17-‘산으로 도망하라’=사랑과 선행의 선 쪽으로.
창19:19-‘저는 산으로 도망할 수 없습니다’=자신의 존재가 선행의 선을 소유할 수 있는지 의심함.
마24:16-‘산으로 (너희들은) 도망하라’=주님을 사랑함과 이 사랑에서 파생되는 이웃을 향한 선행.
창19:30-‘그는 산에서 거주했다’=어떤 종류의 선 쪽으로 자신이 향하도록 해보는 것.
호4:13-‘산들’과 ‘언덕들’=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
시104:10-‘산들’=선과 진리를 사랑함.
창22:2-‘산들 중의 하나 위에’=신성으로부터의 사랑. ‘산’=사랑, 여기서는 신성으로부터의 사랑.
시114:4-(영적 선으로부터의) 영적인 것 속의 천적인 것이 ‘숫양들 같이 껑충껑충 뛰는 산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창22:14-‘산에서 여호와께서 보실 것이다’=선행, 이를 통하여 영적 평면이 구원되도록 설비하셨다.
예16:16-‘….모든 산 위에, 모든 언덕 위에 사냥꾼들…’선에 애착함, 진리에 애착함을 가진 이들을 가르치는 것.
겔35:12-영적 선들과 진리들, 이것이 ‘이스라엘의 산들’이다.
여11:17, 12:7-‘세일 산’, 거기서 에서가 거주했는데, 털많은 것 역시 비슷한 뜻을 지닌다. 이런 의미를 가졌기 때문에 그들이 세일로 올라간 산, 이는 ‘매끈한 산’이라 불려졌다. 그리고 이것은 선으로 올라가는 진리를 표현하고 있다.
이55:9-‘유다로부터 내 산들의 상속자…’=주님. 표징적 의미에서 그분을 사랑함에 있는 이들. 고로 양쪽 사랑들로부터 선에 있는 이들. ‘산들’=이런 선들.
슥6:1-‘두 산들 사이에’=두 사랑들, 즉 천적 사랑, 주님을 사랑함, 영적 사랑, 이웃을 사랑함.
창31:21-‘그는 자기 얼굴을 길르앗 산에 놓았다’=거기에 선. ‘산’=사랑의 천적인 것. 즉 선, 이와 더불어 결합이 있었다.
창31:25-‘야곱은 산에서 자기 천막을 고정시켰다’=선이 있었던 사랑의 상태. ‘산’=선.
창31:54-‘야곱은 산에서 제물을 바쳤다’=사랑의 선으로부터 예배함. ‘산’=사랑의 선.
창31:54-‘그들은 산에서 밤을 보냈다’=고요함.
시95:4-교회의 진리들이 선으로부터 그 진리의 힘을 가지는 바, ‘산들의 힘’이라 불리운다.
겔6:13-고대인들이 언덕과 산에서 예배했었는데, 기 이유는 언덕과 산이 천적 사랑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구절 경우 같이 그들의 예배가 우상 숭배로 전락했을 때, 산과 언덕=자아와 세상 사랑.
욘2:6-‘산들의 적출(excision)’=가장 세게 정죄되어진 이들이 있는 곳. 그들 주위에 나타나는 짙은 안개(mist)가 ‘산들’이다.
호4:13-악을 예배함이 ‘산들의 머리 위에서 제물을 바침’에서 의미되고 있다.
암9:13-사랑과 선행으로부터의 선이 ‘산들이 포도액을 떨어트리고 언덕들은 녹아질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시104:13-‘산들에 물을 주는 것’=주님을 사랑함과 이웃을 향한 사랑에 있는 이들에게 복주시는 것. ‘산’=사랑의 천적인 것.
계8:9-‘불로 타는 큰 산’=자아 사랑.
이2:2, 미4:1-‘여호와의 산이 산들의 머리를 위해 있을 것, 그리고 언덕들 위로 들어올려질 것.’ ‘여호와의 산’, 이는 시온이다=주님의 천적 왕국, 고로 이 왕국의 선, 이는 주님을 사랑함이다. 고로 최고 의미에서 주님 자신. 그이유가 천적 왕국의 모든 선과 모든 사랑은 주님으로부터 있기 때문.
이30:25-‘물의 시내들’이 ‘모든 높은 산과 들어올린 언덕 위에’ 있는다고 말해진다., 그이유는 이런 지식들은 천적 사랑의 선과 영적 사랑의 선으로부터 흐르기 때문.
합3:6-‘영원으로부터의 산들’=태고 교회의 것이었던 사랑으로부터의 선. ‘시대의 언덕들’=상호 사랑의 선, 이것이 이 교회 속에 있었다.
신33:19-‘산으로 백성을 부르는 것’=진리들이 선들이 되게 하는 것. ‘산’=선행으로부터의 선.
출3:1-‘그리고 하느님의 산에 왔다’=그당시 신성한 사랑으로부터의 선이 나타났다.
출3:12-‘너는 이 산 근처에서 하느님을 예배할 것이다’=사랑으로부터 신성을 지각하고 인정함…‘산’=신성한 사랑으로부터의 선.
출4:27-‘그는 하느님의 산에서 그를 만났다’=거기에서 사랑의 선 안에서 결합함…‘하느님의 산’=신성한 사랑으로부터의 선.
계6장-‘산들과 바위’에 의해 악들과 거짓들이 의미되어진다.
출15:17-‘당신의 상속의 산에서’=선행의 선이 있는 천국.
출18:5-‘그는 하느님의 산에서 진영을 차렸다’=진리의 선 가까이…‘하느님의 산’=사랑의 선, 여기서는 진리의 선, 그이유는 영적 교회를 취급하기 때문.
호4:13-‘산들’, 그리고 ‘언덕들’=자아사랑, 그리고 세상 사랑.
시18:7-‘산들’=사랑의 선.
이11:9-‘내 거룩함의 산’=순진의 선이 있는 천국과 교회.
예17:3-‘들판에 있는 내 산’=천적 교회의 사랑.
시90:2-‘산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교회의 회복을 뜻한다. 그이유가 ‘산’, 말씀에서=천적 사랑, 고로 이 사랑이 있는 교회.
출32:12-‘산에서 그들을 죽이는 것’=선에 있는 이들이 멸해지리라는 것.
계17장-그들이 있었던 산들은 ‘일곱 산들’에 의해 계시록에서 뜻해진 이들이다…‘일곱 산들’에 의해 명령함의 모독된 사랑이 뜻해진다.
계6:13-‘모든 산과 섬이 그것들의 장소로부터 옮기워졌다’=사랑의 모든 선과 신앙의 모든 진리가 물러나졌다는 것.
계6:15-‘산들의 바위들’=악으로부터의 거짓들.
계6:16-‘그들은 산들과 바위들에게, 우리 위에 떨어져라 하고 말했다…’=거짓을 수단으로 악을 확증함, 그리고 악으로부터 거짓을 확증함.
계17:9-‘일곱 머리들은 일곱 산들이다, 거기에 여인이 앉아 있다…’=말씀의 신성한 선들, 이 위에 로마카토릭의 광신적 신앙이 기초되어 왔고, 시간 안에서 파괴했고, 결국 모독했다.
계21:10-‘그는 나를 크고 높은 산 위에 영 안에서 운반했다…’=요한이 셋째 천국으로 이동되어졌다는 것.
신1장-‘아모리족의 산들에 의해 악령의 세계가 의미되어졌다.
예3:6-‘모든 높은 산에 가는 것’=말씀으로부터서 조차 선에 관한 모든 지식들을 얻으려 애쓰는 것.
마5:14-‘산에 놓인 성읍’=사랑의 선으로부터 있는 교리 속의 진리.
예4:24-‘산들’과 ‘언덕들’=주님을 사랑함과 이웃을 향한 선행.
이7:25-‘괭이로 파질 산들’=선을 사랑함으로부터 선을 행하는 이들.
시46:2-‘산들’=사랑의 선들, 진리의 필수적 지식들이 남용될 때, 이 산들이 ‘바다의 심장에서 동요된다’라고 말해진다.
이14:25-‘내 산들 위에서’=거기는 사랑의 선과 선행의 선이 통치한다.
이49:13-‘산들’=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 선에 있는 이들.
겔36:6-‘산들과 언덕들에게 말하라…’…‘산들’=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의 선.
이42:12-‘산들의 머리’=그들과 더불은 사랑의 선.
슥6장-‘놋쇠 산’=자연적 인간에 있는 사랑의 선.
이66:20-예루살렘이 진리를 사랑함으로부터 ‘거룩함의 산’이라 불리운다.
시72:3-‘백성에게 평화를 가져 올 산들’=주님을 사랑함.
이52:7-‘(복음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있는) 산들’=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의 선.
욜3:18-‘산들이 포도액(또는 포도주)을 떨어뜨린다’=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의 선으로부터 모든 진짜 진리가 있다.
겔39:4-‘이스라엘의 산들’=선행의 선들.
시43:7-‘산들의 기초들’=교회가 기초를 둔 진리들.
나1:5-‘(여호와 앞에서 떠는) 산들’=주님을 사랑함이 있는 교회.
겔38:20-‘(전복되어질) 산들’=사랑의 선.
이30:25-‘모든 높은 산 위에 있는’ 그들=주님을 사랑함의 선에 있는 이들.
합3:10-‘산들이 동요되었다’=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에 있는 이들은 거절되어졌다.
미4:1-주님의 왕국이 ‘산들의 머리에서 설립될 여호와의 산’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시65:6-‘산들’=사랑의 선.
시121:1-‘나는 산 쪽으로 내 눈을 들어올렸다, 거기로부터 도움이 온다.’ 여기서의 ‘산’은 천국을 뜻한다.
이30:25-(마지막 심판에서)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향한 선행에 있던 이들은 천국으로 들려지고 총명과 지혜를 빨아들일 것임이 ‘모든 높은 산 위에, 들어올린 언덕위에 시내가 있을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이49:11,13-‘나는 길을 위해 모든 나의 산들을 놓을 것이다…’=사랑의 선들과 선행의 선들에 있는 이들은 진짜 진리들에 있을 것이다…사랑의 선으로부터 근원하는 환희로부터 고백함이 ‘너희 산들이 노래한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이44:23-‘네 산들아 노래하여라’=사랑의 선으로부터 근원하는 환희로부터 고백함. 여기서 ‘산들’은 선행의 선을 의미한다.
이55:12, 시148:9-‘산들과 언덕들이 노래하기 시작한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너희 산들과 언덕들아…’ 이 구절에는 시랑의 선과 선행의 선으로부터 있는 심정의 환희를 묘사하고 있다.
이42:11-‘그들은 산들의 머리로부터 소리칠 것이다…’‘산들의 머리’=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의 선.
시68:15-‘하느님의 산은 바산의 산이다’. ‘바산의 산’은 자발적인 선을 의미한다. 이는 교회의 외적인 측면에 있는 이들과 더불어 있는 선이다.
시114:4-‘산들이 숫양 같이 뛰고, 언덕들이 양떼의 새끼들 같이 뛴다’=천적인 선, 이는 사랑의 선. 그리고 영적인 선, 이는 이 선으로부터의 진리, 기쁨으로부터 선을 행하는 것.
시80:10-‘산들이 그것의 그림자에 의해 가리워졌다’=모든 교회는 영적 선으로부터 있다…‘산들’=영적 선들.
이64:9-‘내 산들’, 이의 ‘상속자가 유다로부터 있을 것이다’=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의 선, 이로부터 그것 안에 있는 이들.
예16:16-‘그들은 그들을 모든 산들 위에서, 그리고 모든 언덕들 위에서 사냥할 것이다’=사랑의 선에 있는 이들. ‘언덕 위의 이들’=선행의 선에 있는 이들.
겔36:8-‘이스라엘의 산들’=선행의 선들.
시36:6-‘하느님의 산들’=선행의 선.
시104:6,8,10,13-‘물들이 산 위에서 서있다’=거짓들이 자연적 사랑들의 즐거움 넘어 있다, 이 즐거움들은 그자체 악들이다. ‘산들’=이런 사랑들로부터의 악들…‘산들이…당신이 그들을 위해 기초한 장소로…’=그들로부터의 악들과 자연적 사랑들이 있던 장소에 그들로부터 선들과 천적 사랑들이 삽입되어진다는 것…‘그들은 산들 사이에서 갈 것이다’=그들은 천적 사랑의 선들로부터 있을 것이다는 것… ‘그분의 침실로부터 산에 물을 대시는 분’=모든 선들은 천국으로부터 진리들을 수단으로 있다는 것…‘산들’=사랑의 선들.
슥6장-‘병거들이 산들 사이로부터 나가고 있다’=진리들을 수단으로 선으로부터 형성되어질 교리.
슥14:5-‘그다음 너희는 내 산들의 골짜기를 통하여 도망할 것이다’=그다음 선으로부터 진리들에 있는 이들이 구조될 것이다.
겔40:2-에스겔에 의해 보여진 새예루살렘은 ‘높은 산’ 위에 지어졌음이 틀림없다.
시48:1-영적 선으로부터 있는 영적 진리가 ‘우리 하느님의 도성에, 그분의 거룩함의 산 위에’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이14장-‘(루시퍼가) 회합의 산에 앉을 것이다’=주님의 천적 왕국을 구성하는 천국들 위에.
이37:24-‘레바논의 측면, 높은 산들로 올라감’=교회의 선들과 진리들을 파괴하려 골몰함.
시147:8-‘그분이 자라게 만드는 풀이 있는 산들’=사랑의 선, 이로부터 이 선에 있는 이들.
신33:15-‘동쪽 산들의 첫 열매, 그리고 시대의 언덕들의 귀중한 것들’=진짜 선들, 주님을 사랑함과 이웃을 향한 선행 둘 모두.
마28:12-‘산들 위에 양들…’=사랑의 선과 선행의 선에 있는 이들. 그러나 ‘길을 잃은 하나’는 이 선에 있지 않은 하나, 그 이유는 무지로부터 거짓들 안에 있기 때문.
막13:14-‘유다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게 하라’=주님의 교회 속에 있는 이들은 사랑의 선에 반드시 남아있어야 한다.
이2:14-‘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높은 산들과 솟아오른 모든 언덕들 위에 닥칠 것이다’=마지막 심판,, 이때 악한 자들은 그들이 영계에서 점거했던 산들과 언덕들로부터 내던져질 것이다.
이40:4-‘모든 골짜기가 드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산과 언덕이 낮게 만들어질 것이다’=심정에서 겸손한 모든 이들, 즉 선들과 진리들에 있는 이들은 영접되어질 것, 그리고 마음이 득의 양양해있는 모든 이, 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에 있는 이들은 풀이 죽게 될 것이다.
겔33:28-더이상 선행의 선과 신앙의 선이 없다는 것이 ‘이스라엘의 산들이 황무해진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겔6:2,3=‘네 얼굴을 이스라엘의 산들 쪽에 놓고, 그들을 향하여 예언하라…이스라엘의 너희 산들아, 주 여호비의 말씀을 들어라. 하여 주 여호비께서 산들과 언덕들에 말하신다…’ ‘이스라엘의 산들’=영적 교회 속에 있는 이들에게 더 이상 생활의 선이 없을 때, 이들로부터 발생하는 자아와 세상 사랑으로부터 진행하는 악들.
겔38:20-‘이스라엘의 산들’=영적 사랑으로부터의 선들. 그러나 여기서는 이런 선들에 반대되는 사랑으로부터의 악들.
미6:2-‘너는 산들과 논쟁하라, 하여 언덕들이 네 음성을 듣도록…들어라, 오, 너희 산들아, 여호와의 논쟁…’ ‘산들’에 의해 선행의 선, ‘언덕들’은 신앙의 선, 그러나 여기서는 반대 의미인바, 선에 반대되는 악들과 거짓들.
예51:25-‘나는 네게 맞서 있다, 오, 온 땅을 파괴하는 산. 그리고 나는 네게 내 손을 뻗을 것이다, 그리고 바위들로부터 너를 굴려내릴 것이다, 그리고 나는 네게 불타진 산을 줄 것이다.’…자아 사랑과 이 사랑으로부터 파생되는 거짓들로부터 (바빌론이) 파괴하는 산이라 불리운다. ‘땅’=교회, ‘불타짐’=자아사랑. 이런 사항으로부터 명백한바, ‘산들’에 의해 자아와 세상사랑으로부터의 악이 의미된다는 것.,
미1:4-(마지막 심판에서) 산들과 골짜기에 있는 이들의 파멸, 자아 사랑과 이 사랑으로부터 파생된 거짓들로부터 악들 안에 있는 이들의 파멸이 ‘산들이 그분 아래에서 녹아질 것이고, 골짜기들은 쪼개질 것’에서 의미되고 있다.
예4:24-‘산들이 동요함’에 의해 자아 사랑의 악들에 있는 이들의 파멸이 의미되고 있다. 그리고 ‘언덕이 전복됨’은 세상 사랑의 악에 있는 이들의 파멸이 의미되고 있다.
시144:5-‘그들이 연기를 내도록 산들에 접촉함’=그분의 현존하심에 의해 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 이로부터 거짓들에 있는 이들이 파괴됨.
신32:22-‘불이 산들의 기초에 불붙게 놓일 것이다.’ ‘산들의 기초들’=사랑의 산들이 기초한 진리들. 이것이 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에 의해 ‘불에 놓인다’라고 말하여진다.
이34:3-‘산들이 그것들의 피로 녹아질 것이다’=그들과 더불은 사랑의 악들은 거짓들을 가지고 억지로 채워질 것이다.
이42:15-‘나는 산들과 언덕들을 황폐하게 만들 것이다’=주님을 사랑함과 이웃을 사랑함으로부터의 모든 선이 파괴되는 것.
이41:15-‘너는 산들을 타작질 하여 두드려 작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너는 겨 같이 언덕들을 만들 것이다’=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으로부터 근원하는 악들의 파멸.
이54:10-‘산들이 물러날 것이다, 그리고 언덕들이 옮겨질 것이다. 그러나 내 자비는 너로부터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악한 사랑에 있는 이들은 그렇게 행할 것이다…‘산들’과 ‘언덕들’에 의해 여기서는 특별히 이전 교회 속에 있는 이들이 뜻해진다.
예9:10-‘산들 때문에 나는 슬피울고 곡해야 한다’=자아와 세상 사랑으로부터 튀어나오는 갖가지 종류의 악들.
예50:6, 겔34:6-‘양들이 산으로부터 언덕 위에 가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산들에서 모든 높은 언덕에서 배회한다’=그들은 선들과 진리들을 찾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을 발견 못한다. 그것들 대신에 그들은 악들과 거짓들을 붙잡는다. ‘산이 돌아서버렸다’는 것=선들 대신 악들이 있다는 것.
예13:16-‘해질녘의 산에서 네 발이 걸려넘어지기 전에’=자연 평면으로부터의 악들이 소유권을 가지지 못하도록.
막11:22, 마17:20-이 신앙을 수단으로 주님은 자아와 세상 사랑으로부터 튀어나오는 모든 악들을 옮겨 그것들이 있는 지옥으로 내던지시는 바, 그분께서 말하신다, 즉 ‘만일 네가 산에게 너는 옮겨져 그자체를 바다에 던지거라 하고 말한다해도 그렇게 행해질 것이다.’
계6:15-‘산들의 바위들’=여기서의 경, 악들로부터의 거짓들.
이2:14-‘산들과 언덕들’=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 이것들로부터 튀어나오는 악들과 거짓들.
계6:16-‘그리고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여 우리에게 떨어져라’=악들과 이로부터 파생되는 거짓을 가지고 덮음.
예51:25-악들에 의해 지옥에 떨어짐이 ‘나는 불타진 산을 네게 줄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이2장-‘산들의 머리에서 건설되어질 여호와의 산’에 의해 시온이 뜻해진다, 그리고 천적 교회가 의미된다. 그리고 이 교회 속에 있는 이들이 소유한 주님을 사랑함이 뜻해진다.
이65:9-‘산들’=사랑의 선.
신33:15-‘산으로 백성을 부름’=그들은 사랑의 선이 있는 천국 안에 있기 때문.
신33:15-‘동쪽의 산들’=태고 교회, 이 교회는 주님을 사랑함에 있었다.
예17:26-‘산으로부터’=천적 선에 있는 이들.
시104:10-‘그들은 산들 사이에서 간다’=사랑의 선으로부터 있을 (진리들).
이27:13-‘거룩함의 산’=사랑의 선 측면에서의 교회.
시98;8-‘산들이 함께 환호성을 지르게 하자’…‘산들’=사랑의 선들.
시46:2-‘산들’=사랑의 선들.
이42:15-‘나는 산들과 언덕들이 황폐된채 있게 하겠다’=사랑의 선들과 선행의 선들이 멸해질 것이다는 것.
욘2:6-‘그가 내려간 산들의 적출’=악들이 있는 지옥들.
미7:12-선의 확장이 ‘산으로부터 산까지’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이13:4-‘산들’=악들.
시147:8-‘풀이 자라는 산을 만드신 분’=사랑의 선에 있는 이들을 위한 자양분.
이40:9-‘높은 산’=천적인 사랑.
겔39:17-‘이스라엘의 산들’, 이 위에서 그들이 ‘먹을 것이다’=영적 교회, 이 안에서 선행의 선은 필수적인 것이다.
합3:6-‘영원으로부터의 산들이 흩어졌다’=태고인들과 더불어서 있던 것과 같은 천적 교회, 즉 주님을 사랑함에 있는 교회인이 멸해졌다.
이40:12-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그분의 권능으로부터
천국들에 있는 모든 것들이 배열됨이 ‘그분은 명칭으로 산들을, 간칭으로 언덕들의 무게를 달으셨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신11:11-‘산들과 골짜기들의 토지’=교회의 더 높고 더 낮은, 또는 내적, 외적인 것.
예51:25-바벨이 ‘파괴하는 산’이라 불리운다.
시65:6-‘그분의 힘으로 흔들리지 않게 놓은 산들’에 의해 더 높은 천국들이 뜻해진다.
말1:3-자연적 인간의 사랑의 선들이 파괴되리라는 것이 ‘나는 황폐됨을 위해 (에서의) 산들을 놓아두겠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겔28:14-‘너는 하느님의 거룩함의 산에 있어왔다’…‘거룩함의 산’=사랑과 선행의 교리 측면에서의 교회.
말1:3-‘(에서의) 산들’에 의해 자연적 인간의 사랑으로부터의 악이 의미된다.
이2:3, 미4:2-‘여호와의 산’, 그리고 ‘야곱의 집’에 의해 주님을 사랑함이 있는 교회, 이 사랑으로부터 예배하는 교회가 의미된다.
시90:2-‘산들’에 의해 천국들에서 산들 위에 거주하는 이들, 천적 선에 있는 이들이 의미된다.
시15:1-‘거룩함의 산’에 의해, 이것에 의해 예루살렘이 뜻해지는데, 사랑의 선으로부터의 교리 속의 진리 측면에서의 교회가 의미된다.
이14장-‘북쪽 측면에서 회합의 산’은 천국들로 승강함이 있는 곳이다.
시24:3-‘여호와의 산으로 오르는 자는 누구인가’…‘여호와의 산’에 의해 시온이 뜻해진다, 이를 수단으로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주님이 통치하는 곳이 의미된다.
겔17:23-‘이스라엘의 높은 산에 새 싹을 심는 것’=선행의 선이 있는 영적 선 안에. 이선이 ‘이스라엘의 높은 산’에 의해 의미된다.
시104;10-‘산들’=사랑의 선.
예4:24-‘산들’과 ‘언덕들’=천적 사랑들과 영적 사랑들.
이66:20-‘예루살렘, 거룩함의 산’에 의해 선행이 지배하는 교회가 의미된다.
이25:6-‘이 산에서 살진 것들로 잔치…’=이 ‘산’에 의해 (주님을 숭배하고 인정하는) 이들로부터 있는 새로운 교회가 의미된다.

살렘 (Salem)

창14:18, 시76:2-‘살렘의 왕’=내적, 또는 합리적인 것에 관련하여 평화의 상태. 원어에서 ‘살렘’은 ‘평화’를 뜻한다. 또한 완전(perfection)도 뜻한다. 고로 평화의 상태, 그리고 완전한 상태. 평화의 상태가 주님의 왕국의 상태이다. 이것이 ‘그분의 성막은 살렘에 있다’에서 ‘살렘’에 의해 뜻해지고 있다.
창33:18-‘야곱이 세겜의 성읍, 살렘에 왔다’=고요함이 있는 신앙 속의 내면의 진리들. ‘살렘’=평화의 고요함.
요4:5,6-살렘의 성읍은 후에 ‘세겜’이라 불리웠다…또한 ‘수가’…이 성읍은 내면의 진리를 의미한다.
시76:2-‘살렘에 여호와의 성막이 있다, 그리고 시온에 그분의 거처가 있다’=그분의 영적 왕국과 그분의 천적 왕국. ‘살렘’=진짜 진리가 있는 영적 왕국.
시76에서-예루살렘이 ‘살렘’이라 불려진다, 그이유는 ‘살렘’에 의해 평화가 뜻해지기 때문, 이로부터 예루살렘이 명명되었다. 이렇게 명명된 이유는 ‘평화’=위쪽에서 이름지어지는 모든 것들. 거기에 있었던 ‘하느님의 성막’=그들로부터의 교회.

새 땅 (new earth)

* 새 하늘도 참조
* 에스겔서에서 ‘새 땅’에 의해 메시아의 왕국이 의미된다.
* ‘새로운 땅’, 또는 ‘거룩한 땅’=주님의 왕국, 또한 새로운 교회, 이는 땅에 있는 주님의 왕국이다.
* 이66:22-‘새로운 땅’=외적 교회.

샘 (fountain)

창7:11-‘큰 깊음의 모든 샘들이 터졌다’=자발적인 측면에서 있는 시험의 극단.
창16:7-‘광야에 있는 물들의 샘에서’=생명을 아직 획득하지 않은 자연적 진리. ‘물들의 샘’=진리.
창16:7-‘술로 가는 길에 있는 샘에서’=이 진리는 과학물로부터 진행되는 것들로부터 였다는 것. ‘샘’=진리.
시104:10-‘샘들’=지식들.
창16:14-‘그러므로 그녀는 샘(spring)이라 불렀다’=거기서부터 있는 진리의 상태…이 진리는 합리성에서 보여지지 않고 합리성 아래 수준에서 보여졌기에, 여기서의 샘에 대한 원어의 표현은 fountation이 아닌 spring에 가까운 어원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두 단어 모두 샘이라는 의미에 공히 사용되고 있다.
창16:14-‘나를 살펴보신 하느님에게 샘’=진리 고로 명료함.
* ‘물의 샘(well)’, 그리고 ‘샘(fountain)’=말씀, 또한 말씀으로부터의 교리, 결과적으로 진리 자체.
신33:28-‘야곱의 샘’=말씀, 그리고 말씀으로부터 파생된 진리로부터의 교리…(이런 의미 때문에) 주님께서는 야곱의 샘에 오셨을 때, 그분은 사마라아의 여인에게 이야기하셨고, ‘샘’, 그리고 ‘물’에 의해 의미되는 것을 가르치셨다…‘야곱의 샘’이 말씀을 의미하는바, ‘물’은 진리를, ‘사마리아’는 영적 교회를 의미한다…주님께서는 사마리아 출신 여인에게 신앙 속의 교리는 그분으로부터 있다는 것, 그것이 그분으로부터 일 때, 그것은 ‘영원한 생명으로 솟아오르는 물의 샘이다’고 가르치셨다.
창24:13-‘보십시오, 저는 물들의 샘에서 위쪽에 서있습니다’=주님의 인간 안에서 신성으로부터의 진리가 결합하는 상태. ‘샘’=진리, 여기서는 신성으로부터의 진리, 그이유는 주님이 취급되기 때문. 결합 자체의 상태가 ‘샘에서 위쪽에 서있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창24:16-‘그녀가 샘으로 내려왔다’=신성으로부터의 진리.
창24:29-‘라반이 사람에게, 샘으로 달려갔다’=신성으로부터의 진리로 시작하여 있었던 진리를 향한 선에 애착함의 왕성한 정신(강한 바램). ‘샘’=진리, 여기서는 신성으로부터의 진리.
창29:30-‘샘에서’=신성으로부터의 진리로부터 그들이 계발됨…말씀이 신성으로부터의 진리인 바, 그것은 샘(fountain)이라 불린다…‘샘에서 서있는 것’, 여기서는 자연적 인간에 있는 이러저런 것들의 계발을 포함한다…그이유가 신성으로부터의 진리가 있는 곳에 계발도 있기 때문.
* ‘브엘-라해-로이’, 원어에서 ‘살아계시고 나를 보시는 그분에게 샘’을 뜻한다.
창29:2-말씀이 이 구절에서는 샘(well)이라 불리는데, 그이유는 말씀이 자연적인 것을 다르기 때문…그러나 말씀이 합리적인 것을 다룰 경우, ‘샘(fountain)’이라 불린다.
계8:10-‘강들과 물들의 샘들’=총명, 그리고 말씀으로부터의 지혜.
창38:14-‘그녀는 딤나로 가는 길에 있는 샘들의 문에 앉았다’=교회의 진리, 그리고 거짓들 그 사이에 중간의 것. ‘샘들’=말씀으로부터 있는 교회의 진리들. 그이유가 보편적 의미에서 ‘샘’=말씀.
창38:21-‘길에 있는 샘들에서’=그것이 진리인듯 나타나는 것. ‘샘들’=교회의 진리들.
창49:22-‘샘 위에 열매있는 자의 아들’=말씀으로부터의 진리로부터 결실이 풍부함. ‘샘’=말씀.
민21:7-‘샘’=신성으로부터의 진리로부터의 교리.
출15:27-‘물들의 열 두 샘들이 있는 곳’=거기서 그들은 진리를 아주 풍성하게 가졌다는 것. ‘샘들’=신앙으로부터의 진리.
계21:6-‘생명의 물의 샘’=신앙으로부터의 진리와 선.
계7:17-‘그리고 그들을 물들의 살아있는 샘들로 인도할 것이다’=말씀으로부터의 진리들을 수단으로 그분 자신과 결합하도록 인도하심. ‘물들의 살아있는 샘’=주님, 또한 말씀.
계8:10-‘강들의 삼분의 일이 떨어졌다, 그리고 물들의 샘들 위에 떨어졌다’=이것으로부터 말씀 속의 모든 진리들이 지독하게 왜곡되었다. ‘물들의 샘들’=말씀.
계14:7-‘물들의 샘들을…만드신 그분을 경배하라’=주님 만이 예배되어져야할 것이다, 그이유는 그분 만으로부터 교회와 천국에 속하는 모든 것이 있기 때문…‘물들의 샘들’=교리와 생활을 위해 교회에서 Tm임을 받고 있는 말씀 속의 모든 진리들.
계16:4-‘세째 천사가 그의 대접을 강들에, 그리고 물들의 샘들에 쏟았다’=그들과 더불은 말씀을 이해함 안으로 유입이 있다. ‘물들의 샘들’=말씀 측면에서의 주님, 고로 주님의 말씀. 그러므로 ‘물들의 샘들’=말씀으로부터 파생된 신성한 진리들.
계21:7-‘나는 목말라 있는 그에게 생명의 물의 샘으로부터 무료로 줄 것이다’=어떤 영적 사용으로부터 진리들을 바라는 이들에게 주님은 그 사용에 도움이 될 모든 것을 말씀을 통하여 그분 자신으로부터 주신다는 것…‘생명의 물의 샘’=주님과 말씀.
욜3:18-이것들이 말씀으로부터 있다는 것이 ‘샘이 여호와의 집으로부터 나가고 있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예31:9-그들이 진리들에로 인도된다는 것이 ‘나는 그들을 올바른 길에서 물들의 샘들에 인도할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시68:26-‘구원의 샘’=영적 선, 그이유는 이를 통하여 구원이 있기 때문.
신8:7-‘샘들과 깊은 곳들이 골짜기로부터 그리고 산으로부터 나간다’=말씀으로부터의 내면과 외면의 진리들.
신33:28-‘야곱의 샘’=신성한 진리, 그리고 말씀.
이49:10-‘샘, spring, 또는 fountain’=말씀, 또는 말씀으로부터의 진리.
시114:8-‘물들의 샘’=(진리에 대한 지식이) 오는 말씀.
시104:10-‘샘들’=말씀으로부터의 진리들. ‘샘들이 강들에로 보냈다’=거기로부터 파생된 총명.
욜3:18-‘샘이 여호와 집으로부터 나갈 것이다, 그리고 싯딤의 강에 물을 댈 것이다’=지식에 있는 이들을 계발하려고 주님으로부터 천국으로부터 교리 속의 진리에 온다는 것.
이41:18-‘샘들을 놓는 것’=진리에서 가르치는 것.
창49:22, 요4:5,6-‘(요셉이 근처에 있다 라고 말해지는) 샘’은 야곱의 샘을 뜻한다. 그이유가 그 샘이 있었던 들판이 그의 아버지에 의해 요셉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민21장-브엘에 있는 ‘샘’에 의해 말씀으로부터의 교리가 의미되어진다. 그이유가 원어에서 ‘브엘’은 샘을 뜻하기 때문.
호13:15-‘샘(spring)’=교리. ‘샘(fountain)’=말씀.
이41:18-‘계곡들의 한가운데 샘들이…’=자연적 진리로부터의 총명.

샘 (spring)

시36:9-‘생명의 샘(fountain)’=사랑으로부터 있는 천적인 것.
이49:10-‘물들의 샘들’=말씀으로부터 있는 진리에 관한 지식.
예51:36-‘바빌론의 샘(fountain)을 마르게 만드는 것’=이 교회의 가장 중요한 것들로부터 시작하여 이 교회 속의 모든 진리를 소멸시키는 것.
이41:18-‘물들의 샘들 위에로 그분은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다…’=모든 진리 측면에서 계발됨. ‘샘, spring, 또는 fountain 모두’=말씀, 또는 말씀으로부터의 교리.
호13:15-‘그분의 샘(fountain)’=왜곡된 것으로부터의 교리. ‘그의 샘’=그것의 거짓.
이35:7-‘목마른 장소가 물들의 샘들이 될 것이다’=그들이 가지게 될 진리들.

샘 (well)

* 우물을 보라

섬 (island, isle)

창10:5-(내적인 것으로부터) 한층 더 멀리 있는 이들이 ‘나라들의 섬들’이다.
창10:5-‘이들로부터 그들의 토지들에 있는 나라들의 섬들로 흩어졌다. ‘섬들’=특이한 지역들; 고로 한층 더 멀리 떨어진 특이한 예배들.
이41:1,5-‘섬들’=교회 밖 곧바른 이방인들, 이들은 자기들의 외적 예배를 종교적으로 준수해왔다.
이42:4,10,12-‘섬들’=교회 밖 이방인들, 이들은 무지하나 순박하고 성실(probity) 안에서 사는 이들이다.
습2:11-‘나라들의 섬들’=신앙의 지식들로부터 더 멀리 떨어진 나라들.
시72:10-‘다르싯과 섬들’에 의해 내적 예배와 상응하는 외적 예배가 뜻해진다.
이24:15-‘바다의 섬들에…’=신앙의 거룩한 것들로부터.
겔27:15-‘많은 섬들’=예배에서 더 멀리 있는 이들.
이23:2-‘섬들의 주민들은 조용하다’=더 먼 선들.
예47:4-‘갑돌의 섬의 남은 자들’=외면의 진리들.
계6:13-‘그리고 모든 산과 섬은 그것들의 자리로부터 옮겨졌다’=사랑의 모든 선과 신앙의 모든 진리가 퇴조되었다는 것.
이60:9-‘섬들이 나를 신뢰할 것이다’=신성한 예배에 있는 나라들, 그러나 교회의 진리들로부터서는 더 멀리 있는 나라들.
겔26:18-‘바다에 있는 섬들’=진리들로부터 더 멀리 있어 진리에 대한 지식을 갈망하는 나라들.
이42:15-‘나는 강들을 섬으로 만들겠다’=진리에 대한 모든 이해를 절멸시키는 것. ‘강들’=진리로부터 있는 총명. ‘섬들’=총명이 없는 것.
겔26:15,16,18-인간이 그의 유아 시기를 포함하여 말씀으로부터 끌어내왔던 것, 그리고 이 말씀을 확증하는 수단이었던 과학적 진리들에 속한 모든 지식들이 혼란스러워지고, 그것들 각각의 자리로부터 옮겨지고, 퇴조한다는 것이 ‘섬들이 흔들리고, 바다의 모든 군주들이 자기들의 왕좌로부터 내려올 것이다’와 ‘섬들이 그것의 함락의 날에 두려워 떨고, 바다에 있는 섬들이 괴롭혀질 것이다’에서 의미되고 있다. ‘섬들’=이런 지식들과 자연적 인간에 있는 과학적 진리들. ‘바다의 군주들’=거기 제일 가는 것들. ‘바다’=자연적 인간, 그리고 이 인간에 일반적으로 있는 모든 것들.
겔27:35-자연적 인간의 진리로부터의 모든 선들이 진리에 대한 지식들이 황폐해져감으로부터 그 선들의 상태도 변해졌다는 것이, ‘섬들의 모든 거주민들이 너를 보고 놀라워할 것이다, 그리고 섬들의 왕들이 너로 인해 오싹해질 것이다, 괴로워함이 그들의 얼굴에 역력할 것이다’에서 의미되고 있다. ‘섬들의 거주민들’=자연적 인간의 진리로부터의 선들…‘거주민들’=생활의 선들.
예25:22-‘바다 건너에 있는 섬의 왕들’=자연적 인간의 최말단에 있는 진리에 대한 지식들.
계16:20-‘그리고 모든 섬이 달아났다’=신앙으로부터의 어떤 진리도 더 이상 있지 않았다. ‘섬’=자연적 인간의 진리들 측면에서의 교회. 이는 과학적 진리라 불린다, 그리고 또한 진리와 선에 대한 지식이라 불린다.

성지 (holy land)

* 표현 교회(the Representative Church)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성지라 불려졌다.
* 가나안의 토지-주님의 왕국과 교회, 그리고 사실 상, 천적인 것들과 영적인 것들. 그러므로 그것은 성지라 불려졌다.
* ‘새 땅’, 또는 성지=주님의 왕국, 그리고 또한 새 교회 (the New Church).

세겜 (Shechem)

* 하몰도 참조
창12:6-‘아브람은…지나……세겜에’=주님의 두 번째 상태, 이 때 사랑의 천적인 것들이 그분에게 나타나셨다.
창33장-야곱이 첫 번째로 세겜에 왔다. ‘세겜’=빛의 첫 번째.
여20:7, 21:21, 24:1,25-세겜은 도피성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성직자들의 성읍, 거기서 언약이 만들어졌다.
창33:18-‘야곱은 세겜의 성, 살렘에 왔다’=평온에 있는 신앙 속의 내면의 진리들…‘세겜의 성’=신앙 속의 내면의 진리들.
창34:2-‘세겜이 그녀를 보았다’=진리; 그이유가 ‘세겜’=진리, 여기서는 고대 (시대)로부터의 교회 속의 진리; 그 이유는 세겜이 있었던 나라는 고대 교회의 나머지들이었기 때문이다…더구나 세겜의 성은 아브람의 처음 도착지이었기도 하다. 이로부터 ‘세겜의 성’=처음의 빛; 그 결과 내면의 진리.
창34:8-‘세겜 나의 아들’=그 선으로부터의 진리; 그이유가 ‘세겜’=내면의 진리, 이 진리는 내면의 본질 측면에서는 선행의 선 밖에 더 없다; (그이유가) 태고 교회의 나머지들이 히위족 하몰, 그의 아들 세겜과 더불어 이었기 (때문).
창34:11-‘세겜이 그녀의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말했다’=신성한 고대 지주로부터의 진리가 이 깊은 신앙심 속의 선과 진리와 상담함.
창34:18-‘세겜’, 여기서의 경우=교리.
창37:12-‘세겜에서’=첫번 째 기본(초보)인 것. ‘세겜’=고대 신성한 지주로부터의 진리; 교리; 여기서는 신앙에 관한 첫 번째 기본이 되는 교리. 첫 기본적인 것은 교리물의 일반적인 것; 이것들이 제일 먼저 받아진다.
창37:14-‘(요셉)이 세겜에 왔다’=교리물의 일반적인 것에 관한 지식.
예41:5-‘세겜으로부터의 사람들’=모독하는 이들.

세바 (Shibah)

창26:33-‘그는 그것을 세바라 불렀다’=그것으로 확증된 진리가 결합함.

세일 (Seir)

창14:6-‘세일산에서 호리족…’=자아 사랑으로부터 있는 거짓된 설득들.
민24:18=‘에돔’, ‘세일’, ‘상속 재산(inheritance)’=주님의 신성한 자연 측면으로부터의 신성한 선.
여11:17, 12:7-세일 산, 거기는 에서가 거주한 곳, 세일은 에서의 모습과 비슷하게 ‘털복숭이인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산을 수단으로 세일로 올라감이 있었고, 세일 산은 ‘매끄러운 산’이라 불리웠다. 하여 세일은 선으로 승강하는 진리를 표현하였다.
창32:3-‘세일 토지’=천적 수준에서의 자연적 선. ‘세일 토지’. 최고 의미에서,=주님의 천적인 자연적 선. 그이유는 세일 산은 가나안 토지의 한쪽 경계에 해당하였기 때문…그리고 모든 경계선들은 최말단의 것들을 표현하였다.
창33:14-‘제가 세일에 있는 내 주에게 갈 때까지’…‘세일’=자연 평면에서 영적인 것들이 천적인 것들과 결합함. 즉 신앙 속의 진리가 선행 속의 선과 결합함. 진리는 자연 평면에서 선에게 결합되어진다. 최고 의미에서, 자연 평면에서 진리가 선에 결합한 측면에서의 주님의 신성한 자연 평면..
창33:16-‘에서는 자기 길로해서 세일로 돌아갔다’=선으로부터의 진리들이 인접해 있는 신성한 자연적 선의 상태…‘세일’=진리가 선에게 결합함.
창36:8-‘에서는 세일 산에서 거주하였다’=자연적 선으로부터의 진리.
창36:10-‘세일 산에서’=선으로부터의 진리.
이21:11-‘세일’, 거기로부터 경비원이 ‘부른다’=어둠에 있는 이방인들에게 밝게 비추심(illumination).
사5:4-‘세일로 나가는 것…’. 여호와에 관해서 말해질 때,=여호와께서 인간을 입으셨을 때 주님에 의해 이방인들에게 밝게 비춤(계몽해줌).

소돔 (Sodom)

창10:19-‘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에 오기 까지’=거짓과 악들 안에서 그것들이 종결되었다…거짓들에 두 근원이 있다…진리들 위에서 통치하기를 원하는 거짓이 (이런 성읍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창13:10-‘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외적 인간은 악의 탐욕들과 거짓된 설득에 의해 파멸되어진다.
창13:12-‘(롯은) 자기 천막을 소돔 아주 가까이에서 고정시켰다’=탐욕들로 넓혀감; (그이유가) ‘소돔’=탐욕.
창13:13-‘소돔의 사람들은 악했고, 여호와께 극도로 죄인들이었다’=과학물들이 탐욕쪽으로 자신들을 확장시켰다.
창14:2-‘그들은 소돔왕 베라와 고모라왕 비르사와… 전쟁을 만들었다…’=주님께서 맞서 싸우셨던 아주 많은 거짓의 설득들과 악의 탐욕들.
창14:10-‘소돔왕과 고모라왕이 도망했다, 그리고 거기에 추락했다’=이런 악들과 거짓들이 정복되었다. ‘소돔과 고모라’=탐욕들의 악들, 설득들의 거짓들.
창14:11-‘소돔과 고모라의 재물’=악과 거짓.
창14:17-‘소돔왕이 그를 만나러 나갔다’=악과 거짓이 그자체 복종되게 했다.
창18장-‘소돔’=자아 사랑과 악으로부터 파생된 탐욕이 명령을 실행함.
창18:16-‘그들은 소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인류의 상태.
창18:20-‘소돔과 고모라의 함성이 크다’=자아 사랑으로부터의 악과 거짓이 극점에 까지 이르도록 증가했다.
신32:32-‘소돔의 포도나무’=악으로부터의 거짓.
창18:22-‘그들은 소돔을 향하여 갔다’=인류가 이런 큰 악 안에 있었다. ‘소돔’=자아 사랑으로부터 악…‘소돔’=이런 큰 악에 있는 인류의 상태인 이유는 소돔에 의해 소돔이 뜻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아 사랑에 있는 보편적 세상에 있는 모든 이들을 뜻하기 때문, 그리고 소돔에 대한 묘사는 이 악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의 상태를 뜻해준다.
창19장에서-‘소돔의 주민들’에 의해 선행의 선에 반대하는 (영적 왕국의) 교회 내에 있는 이들의 상태가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시간의 경과에 따라 악과 거짓이 증가하여 결국 악과 거짓만 있는데 까지 이르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창19:1-‘두 천사들이 저녁에 소돔에 왔다’=심판을 진행하는 방문.
창19:1-‘롯이 소돔의 (성)문에서 앉아 있었다’=선행의 선에 있는 이들, 그러나 악들 사이에서 외적 예배에 있는 이들, 그러나 그것들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이들.
창19:4-‘소돔의 사람들’=악들에 있는 이들.
창19:24-‘여호와께서는 소돔과 고모라 위에 유황과 불이 비오듯 하게 하셨다’=자아 사랑의 악들과 그로부터 파생된 거짓들에 있는 이들의 지옥.
마10:15-‘소돔과 고모라에 대해 더 참을 수’ 있을 것이다인 이유는 ‘소돔과 고모라’에 의해 생활의 악에 있는 이들, 그러나 주님과 말씀에 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는 이들, 그리고 그것들을 받을 수 없었던 이들이 뜻해진다.
계11:8-‘영적으로 소돔과 이집트라 불리우는 것’=두 지옥의 사랑들, 즉 자아 사랑으로부터 지배함을 사랑함과 자신의 총명으로부터의 자만으로부터 통치를 사랑함, 이것들이 하느님이 한분이 있지 않은 교회, 주님이 예배되지 않는 교회, 십계명의 가르침에 따라 살지 않는 이들이 있는 교회 안에 있다. ‘소돔’은 영적 의미에서 자아 사랑으로부터 지배를 사랑함을 의미한다.
겔16:46,47-이로부터 예루살렘은 소돔이라 불리울 뿐아니라 소돔 보다 더 나쁜 짓을 했다고 말해진다…자아 사랑의 악이 소돔의 악이었다는 것…

소안 (Zoan)

이19:13-‘소안의 군주들, 이집트의 슬기있는 조언자들’=제일 가는 과학물들.
이30:4-‘그의 군주들이 소안에 있었을 때’=왜곡된 진리들, 고로 거짓들.

소알 (Zoar)

창13:10-‘소알에 이르는 이집트의 토지 같이’=선에 애착함들로부터의 과학물들…‘소알’=선에 애착함.
창13:10-소알은 소돔으로부터 멀지 않은 성이었다…그리고 그 외에도 ‘소알’은 창14:2,8, 신34:3, 이15:5, 예48:34에서도 언급되는데…소알=애착. 그리고 소알=선에 애착함 인 바, 반대 의미에서 소알=악에 대한 애착.
창14:2-‘벨라, 즉, 소알 왕’=악의 탐욕과 설득.
창19:20-‘(이 성은) 아주 작다’=진리가 조금 있다.
창19:21-‘나는 이 성(소알)을 전복하지 않으리라’=인간 안에 진리가 있고 이 진리 안에 선을 가지고 있다면 멸하지 않을 것이다.
창19:22-‘그러므로 그는 이 성을 소알이라 불렀다’=진리에 애착함 …진리에 애착함에 있는 이들은 진리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그이유는 그들은 선에 애착함에 비교하면 선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창19:23-‘롯은 소알로 왔다’=진리에 애착함에 있는 이들은 구원되어진다. 그이유가 ‘소알’=진리에 애착함.
창19:30-‘롯은 소알로부터 올라갔다’=그들이 진리에 애착함에 더 이상 있지 않았을 때,..그이유는 진리로부터의 모든 선이 황폐되었기 때문.
창19:30-‘그들은 소알에 거주하기가 두려웠기 때문’=그는 진리에 애착함으로부터 선을 더 이상 찾을 수 없었기 때문. ‘소알’=진리에 애착함, 그리고 이것이 황폐되었을 때, 선을 찾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수르 (Shur)
술 (Shur)

창16:7-‘수르로 가는 길에 있는 샘’=과학물로부터 진행한 것들로부터 있은 진리.
창20:1-주님께서 선행과 신앙의 교리들에서 자신을 처음 가르치셨을 때, 주님의 상태가 ‘가데스와 수르’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창25:18-‘하윌라로부터 앗수르로 가는 이집트의 얼굴 위쪽인 수르까지 조차’=총명의 확장.
출15:22-‘그들은 수르 광야로 나갔다’=그 당시 그들이 가져다 놓인 시험의 상태…‘수르’=아직 생명을 획득하지 못한 교회의 과학물. 과학물 같은 것은 시험을 통하여 생명을 획득한다.

수에네 (Seveneh)

겔30:6-거짓들이 진리에 대한 이해성을 파괴한다는 것이 ‘수에네의 탑(tower)로부터 그들은 칼로 그것 안에서 엎드려질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겔29:10-‘이집트의 토지는 수에네의 탑으로부터 구스의 경계에까지 황폐될 것이다’=자연적 인간에 있는 교회 속의 최고의 것으로부터 최말단의 것에 이르기까지 모두 파멸된다는 것.

수프 바다 (Sea Suph)

* 홍해(red sea)를 보라.

숨긴 장소 (hiding place)

시18:11-천국들 안에 있는 것과 같은 신성한 진리가 (글자 의미 안에) 있다는 것이 ‘그분은 그분의 숨기는 장소로 어둠을 두셨다’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이45:3-어둠의 보물, 그리고 숨긴 장소 속의 감추어둔 재물=천국으로부터 있는 내면의 총명. 그이유가 천국으로부터 들어가는 것들은 은밀히 와서, 인간과 더불어 있는 모든 것에 영향을 주기 때문.
시64:4-은밀한 장소에서 곧바른 자를 쏘는 것‘=선으로부터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을 현혹하는 것.
이4:6-너무나 많은 빛으로부터, 그리고 너무나 많은 그늘로부터 거짓들이 방해하지 않도록 함이 ‘그것은 폭풍과 비로부터 피난처와 숨긴 장소를 위해 있을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애3:10-‘은밀한 장소에 사자’=내면의 자연적 인간은 그 인간에 있는 악들로부터 말씀의 진리의 모든 의미를 뒤집는바, 이로부터 거짓들이 온다.
시61:4-‘그분의 날개의 숨는 장소를 신뢰하는 것’=신성한 진리들에서…

숫곳 (Succoth)

창33:17-‘야곱은 숫곳으로 여행했다’=그당시 진리로부터 선의 삶의 상태…‘숫곳’=이 상태의 품질.
창33:17-‘그러므로 그는 이 장소의 이름을 숫곳이라 불렀다’=이 상태의 품질…즉 그당시 선으로부터 진리 안에 있는 거룩함의 상태의 품질. 그이유가 ‘숫곳’은 천막을 뜻하고 ‘천막’=진리로부터의 거룩함이기 때문.
출12:37-‘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으로부터 숫곳으로 여행했다’=떠남의 첫 상태와 그것의 품질.
출13:20-‘그들은 숫곳으로부터 여행했다’=그들이 해방된 이후 두 번째 상태.
스미르나 (smyrna)
계2:8-‘스미르나에 있는 교회’=생활 측면에서는 선 안에 있으나, 교리 측면에서는 거짓들에 있는 이들. (=말씀을 이해하기를 원하는 이들, 그럼에도 아직 말씀을 이해 못하는 이들, 그들의 심정은 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들을 열망하지만 아직은 조금만 지녔음)
* 영적 진리에 애착함 이 스미르나 교회의 천사에게 보내는 말에서 취급되고 있다. 이 애착은 교회의 첫째되는 것 중의 하나이다.

습지 (marsh)

* 호수(lake)도 참조
겔47:11-‘진흙투성이와 습지’=하찮고 불순한 것들.
겔47:11-그들이 악의 거짓들에 있기 때문에 개혁되어질 수 없는 이들이 ‘치료되지 않는 진흙과 습지, 그래서 소금 (땅)으로 되어가는 것’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시날 (Shinar)

창10:10-‘바벨, 등등, 시날의 토지에서’=외형상 거룩하게 나타나나, 내면은 모독된 예배들.
* ‘시날의 토지’=모독이 있는 외적 예배.
창11:2-‘그들은 시날의 토지에서 계곡을 발견했다’=그들의 예배는 더 불순해지고 모독적이 되어갔다.
창14:1-‘시날의 왕 아므라벨’, 등등=여러 종류의 외관적인 선과 진리.
여7:21-‘시날의 외투’=거짓의 한 종류.
슥5:11-‘시날’=모독인 것이 들어 있는 외적예배.

시내 (brook)

이30:25-신앙 속의 진리들, 이것이 ‘시내와 물의 흐름’이다.
신9:21-‘시내산으로부터 시내’=신성으로부터의 진리(truth Divine), 고로 글자 안에 있는 말씀.
겔36:6-‘산, 언덕, 시내, 계곡’=교회의 첫째가는 원리로부터 마지막 째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모든 것들. ‘시내와 계곡’=교회의 최말단에 있는 진리들과 선들.
욜3:18-‘유다의 시내들’=주님의 천적 왕국의 한 개 한 개의 세부적인 것들. 또한 말씀의 한 개 한 개의 개별적인 사항들.
이30:25-‘시내’=지혜, ‘물의 흐름’=총명.
시65:9-‘물로 가득찬 강’=진리들로 가득한 교리.
욜1:20-‘물들의 강들이 말라졌다’=교리 속의 진리들이 자연적 사랑을 통하여 사라졌다.

시내 (Sinai)
시내산 (Mount Sinai)

* 산=주님, 그리고 그분의 천국의 것들, 이런 이유로 주님께서는 시내산으로부터 법을 선포하셨다.
출16:1-‘시내’, 거기서 선포한 법으로부터,=선 그리고 이 선에서 파생하는 진리.
출19:1-‘그들은 시내 광야에 왔다’=신앙의 진리들이 심어지지게 되는 선의 상태…‘시내’=진리들 자체.
출19:1-시내산, 최고 의미에서,=신성한 선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 ‘산’=신성한 선. ‘시내’=신성한 진리. 내적 의미에서 시내산=선으로부터의 신앙 속의 진리. 여기서는 선 안에 심어지게 되는 신앙 속의 진리, 그이유는 법이 시내산으로부터 아직 선포되지 않았기 때문.
신33:2-‘시내산’=복합체에 있는 신앙 속의 진리들.
출19:11-‘시내산 위에’=선 안으로 진리가 심어지게 되는 것.
출19:18-‘시내산 전체가 연기로 덮혔다’=가장 큰 희미함에서 천국의 선이 나타남.
출19:20-‘여호와께서 시내산 위에 내려오셨다’=천국에서 주님의 현존.
출19:23-‘사람들은 시내산으로 오를 수 없다’=영적 왕국의 사람들은 천적 왕국으로 자신들을 승강되게 할 수 없다. ‘시내산’=천적 왕국.
출20:22-여기서 시내산이 ‘하늘’이라 불리우고 있다.
출24:13-시내산을 여기서 ‘하느님의 산’이라 불렀다=법, 또는 주님으로부터 있는 신성한 진리, 고로 천국에서 있는 말씀 같은 말씀.
출24:16-‘여호와의 영광이 시내산 위에 머물렀다’=천국에서 주님의 말씀의 내면들.
출34:2-‘아침까지 준비해서, 너는 시내산으로 오르거라’=신성한 진리의 계시가 새로이 일어남. ‘시내산’= 신성한 진리가 있게 한 천국으로부터. 고로 거기로부터 계시가 있다.
출34:2-‘너는 산의 머리 위 거기서 나에게 서있거라’=신성한 사랑이 있는 가장 깊은 천국으로부터. ‘시내산’=계시를 있게 하는 천국.
출34:29-‘모세가 시내산으로부터 내려왔을 때’=말씀, 교회, 그리고 예배의 외적인 것 안으로 내적인 것이 유입됨.
시68:17-‘시내’=신성한 진리가 있고, 있게 하는 천국. 그러므로 말해지는바, ‘성소에서 시내산 ’이라 말해진다.

시띰 (Siddim)

창14:3-‘시띰 골짜기’=탐욕들로부터의 불결한 것들.
창14:8-‘시띰 골짜기’=불결한 것.
창14:10-‘시띰 골짜기는 역청 수렁으로 꽉차있었다’=거짓들과 탐욕들로부터 불결한 것.

시온 (Zion)

* ‘시온산’에 의해 신앙의 천적인 것, ‘시온성’에 의해 신앙의 영적인 것이 뜻해진다.
예6:2-‘시온의 딸’=천적 교회.
이31:4-‘시온산’=주님. 그리고, 파생적으로, 모든 천적인 것, 이는 사랑이다.
애2:6-‘시온’=멸해지고 있는 교회
이52:1-‘네 강함을 입어라 오 시온아.’ ‘시온’=천적 교회. ‘예루살렘’=영적 교회.
이33:5-‘시온’=교회.
애1:4-‘시온의 길이 슬퍼한다’=선으로부터 진리들이 더 이상 없다. ‘길, way’=진리.
삼하2:1-11, 왕상2:11-다윗은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을 통치한 후, 그는 예루살렘으로 갔다, 그리고 시온의 소유권을 취했다. 그당시 처음에는 주님의 영적 교회가 예루살렘에 의해, 그분의 천적 교회가 시온에 의해 표현되기 시작했다.
이37:22-‘시온의 처녀 딸’=천적 교회.
이3:16-‘시온의 딸들이 자신을 높여 으쓱댄다’=교회 내부의 악에 대한 애착들.
이51:3-‘여호와께서 시온을 위로하실 것이다’=천적 교회.
미4:7-‘여호와께서 그들을 시온산에서 지금 이후 영원까지 통치하실 것이다…’. 여기서 주님의 천적 왕국이 묘사되고 있다. 이 왕국의 가장 깊은 측면, 주님을 사랑함이 시온에 의해, 그것의 파생인 것인 상호 사랑이 ‘시온의 딸의 언덕’에 의해, 이 사랑, 영적 의미에서 이웃을 향한 사랑이다…
애2:1,2-‘시온의 딸’, 그리고 ‘유다의 딸’=천적 교회, 이 구절의 경우, 이 교회가 파괴되었다.
예14:21-시온이 ‘여호와의 영광의 왕좌’라 불리워진다. ‘시온’에 의해 주님의 천적 왕국이 뜻해진다. (이 왕국의 제일 가는 것은 신성한 선으로부터 신성한 진리이다.)
이49:18-21-‘시온’, 또는 천적 교회, 그리고 황폐됨 이후 이 교회의 열매 풍성해짐이 취급되고 있다.
이31:4-‘이와같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시온산 위에서, 이 산의 언덕 위에서 싸우시기 위해 내려오실 것이다.’…‘시온산’=신성한 사랑으로부터의 선. 그리고 ‘그것의 언덕’=파생되는 신성한 진리. (=천적 교회, 그리고 영적 교회).
애1:6-‘시온의 딸‘=선에 애착함, 이 애착은 천적 교회 속에 있다.
이2:2-‘여호와의 산’, ‘시온’=주님의 천적 왕국, 고로 이 왕국의 선, 주님을 사랑함. 고로 최고 의미에서 주님 자신…
욜2:23-‘기뻐하라, 너 시온의 아들들아’. ‘시온의 아들들’=선으로부터의 진리들.
이60:15,16-여기서 시온과 예루살렘이 취급된다. 시온은 천적 교회의 내적 측면, 예루살렘은 천적 교회의 외적 측면.
이31:9-‘시온’=천적 교회, 고로 사랑의 선, 이 선은 이 교회 속에 있다.
예6:23-‘시온의 딸’=선이 있는 교회.
시20:2-‘시온’=사랑의 선이 있는 천국.
예4:31-‘시온의 딸’=천적 교회.
이3:24-‘시온의 딸’=천적 교회, 즉 주님을 사랑함 안에 있는 교회.
이4:5-‘시온의 산의 주택’=천국과 교회. (=천적 교회의 선)
시110:2-‘여호와께서는 시온으로부터 강한 홀을 보내실 것이다’=천적 선으로부터 힘, ‘시온’=선.
이33:5-‘여호와께서는 공정과 정의로 시온을 채우셨다.’ ‘시온’=천적 교회는 신성한 진리로부터 총명을, 신성한 선으로부터 지혜로 (채워졌다).
이62:1-‘시온을 위하여 나는 잠잠히 있지 않을 것이다.’ ‘시온’과 ‘예루살렘’에 의해 교회가 뜻해진다. ‘시온’은 천적 교회, ‘예루살렘’은 파생되는 영적 교회.
시2:6-‘시온, 내 거룩함의 산’=사랑의 선이 있는 천적 왕국. 이 왕국은 천국의 가장 깊은 곳, 교회의 가장 깊은 곳에 있다.
이4:3,4-‘시온에 남겨진 자…’. ‘시온’, 그리고 ‘예루살렘’에 의해 교회가 의미된다. ‘시온’은 사랑의 선 안에 있는 이들과 더불은 교회를, ‘예루살렘’은 이 선으로부터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과 더불은 교회가 의미된다. ‘시온의 딸들의 배설물을 씻어내는 것’=사랑의 선 안에 있는 교회 안의 이들을 악들로부터 순수하게 함.
이49:17,18-이런 것들이 시온에 관해서 말해진다, 이를 수단으로 천적 교회가 의미되어진다.
계14:1-‘시온산 위에 서있는 어린 양’=새 천국에 계신 주님…‘시온산’에 의해 주님을 사랑함 안에 있는 천국이 의미되어진다.
미4:13-‘시온의 딸’=천적 교회.
슥8:3-‘나는 시온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한가운데에 거주할 것이다.’ 여기서 ‘시온’에 의해 천적 교회가 뜻해진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의해 진리의 교리 측면에 관련된 교회가 뜻해진다.
이3:17-‘시온의 딸들’=천적 교회, 그 교회 속의 것들, 그러나 이 구절에서는 반대 의미이다.
이4:5-‘시온’=말씀에 관련한 교회.
이12:6-‘시온의 거주민’=’시온의 딸‘과 같은 의미, 즉 천적 교회, 즉 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 선 안에 있는 교회.
미4:13-‘일어나서 도리깨질하라, 오, 시온의 딸아’=교회 속에 있는 이들과 더불은 악을 흩뜨림…‘시온의 딸’=선을 애착함에 있는 교회.
이62:11-‘시온의 딸’=주님을 사랑함 안에 있는 교회.
이18:7-‘시온의 산’=교회, 여기로 그들은 초대되어진다.
시128:5-‘시온’=천국.
시133:3-‘시온의 산들’=천적 사랑으로부터의 선이 있는 곳.
시69:35-‘하느님께서 시온을 구하시고, 유다의 성읍들을 세우실 것이다’=천적 교회, 그리고 이 교회의 교리.
이52:7-‘시온’=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의 선이 있는 교회.
시147:12-‘예루살렘’=교리 속의 진리 측면에서의 교회. ‘시온’=사랑의 선들 측면에서의 교회.
시128:5-‘여호와께서 너희를 시온으로부터 축복하실 것이다’=사랑의 선으로부터 있는 축복. ‘시온’=사랑의 선 측면에서의 교회.
예31:12-‘시온의 높은 곳에서 노래하는 것’=내적 측면에서의 천적인 환희. 즉, 주님의 천적 왕국 안에 있는 것과 같다.
시147:12-‘여호와를 찬양하라, 오, 예루살렘아. 네 하느님을 찬양하라, 오, 시온아’…‘예루살렘’=교리 속의 진리들에 관련한 교회. 그리고 ‘시온’=사랑의 선들에 관련한 교회.
시2:6-‘나는 내 왕을 내 거룩함의 산, 시온 위에서 기름부웠다’=사랑의 선 안에 있는 천적 왕국. 이 왕국은 천국의 가장 깊은 곳, 교회의 가장 깊은 곳에 있다.
시133편-‘시온의 산들’=신성한 선. 그러므로 ‘시온의 산들 위에 내려오는 헤르몬의 이슬 같이’=진리와 선의 결합.
시51:18-‘당신의 흡족해하시는 기쁨 안에서 시온에 선을 베푸시고, 예루살렘의 성벽을 세워주소서’=교회를 사랑의 선 안으로 인도함으로, 그리고 교회를 교리의 진리들 안에서 가르침으로 교회를 회복하는 것.
이40:9-‘오, 시온아, 좋은 소식을 선포하라’=주님을 사랑함으로 선 안에 있는 교회.
시48:2-시온산, 그리고 예루살렘이 가능한한 천국의 형체에 따라 지어졌던바, ‘북쪽에 위치한 시온의 산, 위대한 왕의 성’에 의해서도 분명해진다.
슥9:9-‘드높여라, 시온의 딸이여, 외쳐라, 예루살렘의 딸이여’=주님의 강림, 그리고 그분에 의해 사랑의 선 안에, 이로부터 파생되는 교리의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과 더불어 교회를 세우심.
옵17절-‘시온의 산 안에 피신될 것이다’=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 구원이 있다.
시48:12-‘시온의 산이 즐거워한다’=천적 교회, 이 교회 안에 주님을 사랑함 안에 있는 이들이 있다.
애2:10-‘시온의 딸의 원로들’=교회에 있는 슬기롭고 총명한 자들, 추상적으로 지혜와 총명. ‘시온의 딸들’, 그리고 ‘예루살렘의 처녀들’=선과 진리의 애착 안에 있는 교회 사람들.
욜2:23-‘시온의 아들들’=진짜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 이를 통하여 그들은 사랑의 선을 가진다. ‘시온’=진짜 진리들을 통하여 주님을 사랑함의 선 안에 있는 천적 교회.
애5:11-‘시온’=천적 교회, 이 교회는 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 선 안에 있다, 그리고 이런 교회를 유대 교회가 표현했다.
시132:17-‘시온에서 나는 다윗의 뿔이 싹트게 만들 것이다’=천국과 교회 안에 그분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의 힘.
미4:8-‘시온의 딸’=천적 교회, 이 교회의 본질은 사랑의 선이다.
삼하6장-‘시온으로 궤를 가져옴’=세째 천국으로 승강함.
시102:14-‘시온의 돌들’=신성한 진리들. ‘시온, 이 위에서 여호와께서는 자비를 가지신다’에 의해 천적 사랑 안에 있는 교회가 뜻해진다.
이51:3-‘시온’=새로운 교회.
예4:31-‘시온의 딸’= 사랑의 선으로부터 교리 속의 진리들 안에 있는 교회.
시110:2-‘시온’=주님을 사랑함 안에 있는 교회, 이 교회가 천적 교회라 불리워진다.
이10:24-‘두려워 말라, 시온의 거주민아’=진리들은 천적 사랑과 이 사랑에서 파생된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과 더불어서는 악용되지 않는다는 것.
이29:8-‘시온의 산에 맞서 싸우는 모든 나라들의 군중’=교회의 선들에 맞서 싸우는 악의 거짓들…‘시온의 산’=사랑의 선 측면에서의 교회.
이33:20-‘시온을 쳐다보라, 정해진 우리의 절기를 (지키는) 성, 네 눈이 예루살렘, 조용한 주택을 보게 하라.’ ‘시온’과 ‘예루살렘’=사랑의 선, 교리 속의 진리 측면에 관련한 천국과 교회.
애2:4-‘시온의 딸’=사랑의 선으로부터 진리에 애착함 안에 있는 교회.
이49장-여기서 취급된 시온의 아들들=주님을 사랑함과 이로부터 진리들에 있는 이들.
시14:7, 53:6-‘시온’=주님으로부터 사랑의 선 안에 있는 이들.
이52:1-‘네 강함을 입어라, 오, 시온아. 네 아름다움의 옷을 입어라, 오 예루살렘, 거룩함의 성이여.’ ‘시온’에 의해 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 선 안에 있는 교회. 그리고 이 선으로부터의 진리가 ‘강함’에 의해 의미된다.
이52:2-‘시온의 딸’=주님으로부터 사랑의 선으로부터 진리에 애착함 안에 있는 이들.
시홀 (Sihor)
이23:3-그들 안에 내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이런 지식들은) ‘시홀의 씨(seed)’라 불리운다.
예2:18-‘시홀의 물들’=거꾸로 뒤집는 과학물들. (=거짓 과학물, 또는 거짓들을 확증하는 과학물들).
예2:18-‘네가 시홀의 물들을 마시겠다 하여 이집트의 길과 더불어 무엇을 하려 하느냐?=거짓들과 더불어 과학물을 거꾸로 되게 응용하여 꾀어내는 것. (=자연적 인간의 과학물을 도구로 영적인 것을 탐사하는 것).
신 (Sin)
출16:1-‘신 광야’=시험의 또 다른 상태…’신’=이 상태의 품질. 이 백성들이 빵과 고기가 없다고 불평해댐에 의해 의미된 시험의 상태로부터, 그리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의미된 위로받음의 상태로부터, ‘신’=진리로부터 있는 선임이 분명하다. ‘신’이 이집트의 성읍이었다는 것으로부터 신 광야라는 이름도 얻어졌다, 반대 의미에서 =거짓으로부터 있는 악.
출17:1-‘신의 광야로부터’=선에 관련된 시험의 상태…’신’=선의 측면에서의 시험의 상태와 품질.
겔30:15,16-‘이집트’, ‘신’, 그리고 ‘노’=자연적 인간 속에 있는 과학물(과학적 지식)과 오류들, 이것들은 말씀으로부터의 진리들을 통하여 개혁되고 거듭나는데에 장애물이다. 진리들이 알려졌는데, 이것을 생명 안에서 받지 않고, 고로 개혁되어질 수 없었다는 것이 ‘신은 진통으로 괴로워할 것이다, 그리고 (자궁을) 뚫고 나갈 (힘은) 있지 않을 것이다.

실로 (Shiloh)

* ‘실로’=주님.
* 주님은 그분이 진정시키고 모든 것을 조용해지게 만드신다는 사실로부터 ‘실로’라 불리우신다. ‘실로’는 원어에서 조용한 것을 뜻하는 단어로부터 파생되었다.
예41:5-‘실로로부터 사람들’=모독하는 이들, 그리고 모독들.
창49:10-‘실로가 올 때 까지’=주님의 강림, 그당시 평화의 고요함.
시78:60-‘실로의 주택(habitation)’=사랑의 선 안에 있는 교회.

실로암 (Siloam)

요9장-‘실로암 못’=글자로 있는 말씀.
* 실로암 못의 물들=말씀 속의 진리들.

십마 (Sibmah)

* 그들이 흠뻑 젖어든 거짓들이 ‘십마’에 의해 의미되어지고 있다.
이16:9-‘십마의 포도나무’=외적 교회 속의 사람들.

쓸쓸한 곳(solitude)

시107:4-진리에 무지한 이들을 놓고 ‘그들은 길의 쓸쓸한 곳에서 방황한다’라고 말해진다.
예12:10-‘쓸쓸한 곳의 광야’=교회의 황폐함.
이51:3-‘사막’, 그리고 ‘쓸쓸한 곳’=진리 측면에 결함이 있고 무지함.
이51:3-‘사막을 에덴 같이, 쓸쓸한 곳을 여호와의 동산 같이’=그들은 선과 진리를 풍부히 가질 것이다는 것. ‘쓸쓸한 곳’=진리가 없는 곳.
예2:6-‘쓸쓸하고 메마른 토지’=선을 비지각하는 상태.
겔29:12-‘쓸쓸하고 황폐함’=모든 진리와 모든 선이 결핍됨.
이1:7-‘너의 토지는 쓸쓸한 곳’=교회가 모든 진리 측면에서 황폐하였다.

아골 (Achor)

이65:10-‘아골 골짜기’=천적 교회의 외적인 것.
호2:15-‘아골 골짜기’=자연적 진리들.

아드마 (Admah)

*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끝에 다다른 거짓들과 악들.

아라랏 (Ararat)

* ‘아라랏 산’=발광(빛을 냄)..‘아라랏’=발광, 사실상 거듭나는 자의 발광. 이 발광은 시험 후 첫 발광이다. 이 첫 발광은 대체로 어둑하다.

아라비아 (Arabia)

예49:28-‘아라비아와 동쪽의 아들들’=천적인 재물들을 소유함, 또는 사랑으로부터 있는 이들의 소유물.
겔27:21-‘아라바아와 게달의 모든 왕자들, 이들은 무역상이었다.’ 거기서 두로가 취급되고 있다, 두로는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을 의미한다. ‘아라비아’는 그들의 지혜를 표시한다. ‘게달의 왕자들’은 그들의 총명을 표시한다.
예49:28-‘아라비아와 하솔의 왕국들’=반대 의미에서인바, 이들은 천적, 영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을 지녔으되 이 지식을 사용하는 목적이 자신과 세상에 의해 총명해지고 명성이 드높혀졌다는 것을 뒷받침하려는 것.
이21:13-‘아라비아’=천적인 것들 안에 있는 이들, 즉 신앙으로부터의 선 안에 있는 이들.
이60:6,7 겔27:21-‘게달’이 아라비아이다는 것은 이어지는 장소로부터 분명하다. 그리고 아라비아는 이스마엘의 아들로부터 게달이라 이름지어졌다는 것…
겔27:21-‘아라비아’는 영적 선을 표시한다. ‘게달의 왕자들’은 영적 진리들을 표시한다.
이13:19,20, 42:11, 예3:2, 시120:5-선 안에 있지 않기 때문에 진리 안에 있지 않은 이들이 ‘아라비아 사람’에 의해, 사막에 있는 ‘게달족’에 의해 표현되어져 있다.
이21:13-‘아라비아의 숲에서 밤을 보내는 것’=진리 측면이 황폐해지는 것.
예49:28,29-‘아라비아와 동쪽의 아들들’=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을 지닌 이들.
이60:7-‘아라비아의 양떼들’=내향의 인간으로부터의 모든 선들…’아라비아’=선이 있는 곳.
겔27:21-‘아라비아와 게달의 왕자들’=지식으로부터 선과 진리 안에 있는 이들.
이42:11-‘아라비아’=자연적 인간, 그이유가 사막에 있는 아랍은 자연적 인간이기 때문.
예2:10,11-‘아라비아’=선들 안에 있되 자연적 수준에서 사는 이들, 즉 자기들 만의 좀 광신적인 신앙에 따라 선 안에 사는 이들.
예49:32-‘아라비아와 하솔’=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들.
예49:28-동방 사람들이 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동쪽의 아들들’이라 불리웠다. 그리고 아라비아로부터 있었던 그들이 그렇게 불리웠다는 것…
예3:2-‘사막에 있는 아랍’=사막에서 타인을 죽이고 강탈하는 강도 같은 자.
이13:19-20-‘아라비아인’=사막에 사는 이들.
예49장-‘아라비아’=선에 대한 지식을 오용하는 이들.
왕상10:1-13, 마2:1-12-지혜가 아라비아에서 무성했다는 것은 시바 여왕의 솔로몬 방문, 세 ‘현자들’로부터 나타나고 있다.

아마겟돈 (Armageddon)

계16:16-‘아마겟돈’=거짓들이 진리들에 맞서 전투하는 상태, 그리고 새교회를 파괴하겠다는 의향이 지배욕과 걸출하다는 평을 듣기를 사랑함으로부터 돌출하고 있다.

아시아 (Asia)

계1:4-‘아시아에 있는…’=말씀으로부터 진리의 빛에 있는 이들에게…이런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태고 교회, 그리고 이 교회 이후 고대 교회가, 그리고 이 교회 이후 이스라엘 교회가 아시아에 있었기 때문, 또한 그들은 오랜 후에 이스라엘 교회가 지닌 말씀이기도 한 고대 말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
계1:11-‘그것을 교회들에게, 아시아에 있는 이들에 보내라’=말씀으로부터 진리의 빛에 있는 기독교회의 사람들을 위하여.
계1:4-‘아시아에…’=총명의 빛에 있는 이들. 천사들은 아시아가 언급될 때 남쪽을 지각한다…그리고 ‘남쪽’에 의해 총명으로부터의 밝은 빛이 의미되기에, 이 빛이 ‘아시아’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이것은 내(스베덴보리)가 영적 생각 안에 있을 때, 그리고 아시아에 관해 생각할 때는 언제든지 나로 위와 같은 의미를 지각하도록 나에게도 허락되어지곤 했다. 아시아에 관하여 이와같은 생각이 있는 까닭은 교회가 고대 시대 때에 거기에 있었기 때문…그리고 그러므로 고대 시대 때로부터 천국에 있는 이들은 총명의 빛에 있다. 아시아가 생각되어질 때, 빛은 천국의 남쪽 지역에서 흘러든다…이 구절에서의 아시아는 아시아에 있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총명의 영적 빛, 또는 같은 말로 선으로부터의 진리들에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다 가리켜하는 말이다….이런 사람들이 주님의 교회를 구성한다.

아싸 (Azzah)

창10:19-‘아싸(가자)’에 의해 선행에 관련하여 계시되어왔었던 것들.

아웬 (Aven)

호10:8-‘아웬의 높은 장소(산당)’=자아 사랑.
호10:8-‘아웬의 산당은 파괴되어질 것이다’=거짓의 원리들, 그리고 거기로부터 파생된 추론들, 이것들이 이 예배에 있는 이들 안에 있다, 그자체로만 보면 이는 내면의 우상인바, 파괴될 것이다. 그이유가 생활의 악과 교리의 거짓들에 있는 그들은 자신과 세상을 예배하기 때문.

아이 (Ai)

창12:8-바다 쪽으로 벧엘, 동쪽으로 아이를 가진 산=주님의 네 번째 상태.
창12:8-‘바다 쪽에 벧엘과 동쪽에 아이’=그럼에도 그분의 상태는 천적, 영적인 것들에 관련하여 희미하셨다는 것.
창12:8-‘아이’=세상적인 것에 관한 지식.
창13:3-‘벧엘과 아이 사이’=천적인 것과 세상적인 것으로부터의 지식.
예49:1-3-‘아이’=진리로부터의 교리.
여8:26-29-‘아이’=선에 관한 지식, 반대 의미에서 악을 확증함.

악갓 (Acad)

* 바벨을 보라

얍복 (Jabbok)

창32:22-‘그는 얍복 나루를 건넜다’=처음 은근히 심어짐(insinuation). 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얍복이 가나안 토지의 경계선에 있기 때문. 얍복 나루는 가나안 토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요르단 넘어에 위치하기 때문, 그리고 얍복은 르우벤과 갓 지파의 상속분의 경계선이었기도 했기 때문. ‘르우벤’은 이해함, 또는 교리 측면에서의 신앙, 그리고 ‘갓’은 신앙의 일을 표현했다. 이것은 거듭남의 단계 중 첫 번째에 해당된다. 즉 이를 통하여 거듭나고 있는 이들에게 선이 은근히 주입되어진다. 이로부터 ‘얍복 나루’는 처음 있는 은근히 심어짐(주입됨)을 의미한다.
* 야곱이 가나안의 토지로 들어갈 때 처음 건넌 곳이 얍복이었는바, 이는 진리에 애착함이 처음 은근히 주입됨이 의미된다.

양우리 (sheepfold)

* 주님의 교회가 ‘양우리’라 불리운다
요10:1-‘양우리 안으로 들어가는 것’=주님의 교회 안으로, 그리고 또한 천국 안으로

어디 (where)

창37:16-‘그들은 자기들의 양떼를 어디서 먹이는가?’=그들이 무슨 상태에서 있는지…‘어디’=상태, 모든 장소들=상태들이기 때문.

어디서 (whence)

창16:8-‘너는 어디에서 오느냐? 그리고 어디로 가느냐?’=상태에 관한 가르침.
계7:13-‘이들은 누구이며 어디서 왔느뇨?’=그들의 품질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의 품질은 어떠해왔었는지.
눅13:27-말씀을 읽어 가르침을 받는다 해도 가르침에 따른 생활이 없으면 쓸모없다는 것이 ‘나는 네가 어디로부터서인지 알지 못한다, 나로부터 떠나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언덕 (hill)

* mountain도 참조.
* ‘언덕들’=이웃을 향한 사랑.
이2:14-‘들려진 언덕들’=세상 사랑.
시114:4-(거듭난 후 영적 선으로부터의) 천적인 자연 평면이 ‘양떼의 자식 같이 뛰는 언덕들’에 의해 묘사되어 있다.
예16:16-‘모든 언덕에 …사냥꾼이…’=진리에 애착함 안에 있는 이들을 가르치는 것.
호4:13-거짓인 것을 예배함이 ‘언덕에서 향을 바치는 것’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이31:4-‘시온 산’=신성한 사랑으로부터의 선, 그리고 ‘언덕’=거기로부터의 신성한 진리.
창49:26-‘시대의 언덕들의 바램에’=천적 수준의 상호 사랑에. ‘시대의 언덕들’=상호 사랑으로부터 있는 것들.
출17:9-‘내일 나는 언덕의 머리에 서있다’=신성으로부터의 진리가 선행으로부터의 선과 결합함, 그리고 유입됨이 파생됨. 그리고 영적 의미에서는 선행(chatity).
예13:27-‘들판에 있는 언덕들’=교회에 있는 진리의 선들, 이것이 악용되었다.
예4:24-‘뒤집어 엎어진 언덕들’=이웃을 향한 사랑. 이런 의미를 갖는 이유는 천국에서 이웃을 향한 사랑 안에 있는 이들은 언덕 위에 거주하기 때문.
예12:12-‘낭비자(wasters)들이 당도한 광야에 있는 언덕들’=선행으로부터 있는 것들.
겔36:6-‘언덕들’=이웃을 향한 선행으로부터의 선들.
시72:3-‘정의에 있는 언덕들’=이웃을 향한 사랑.
욜3:18-‘언덕들이 젖을 흘릴 것이다’=이웃을 향한 선행의 선으로부터 영적 생명이 있다.
예17:2-‘높은 언덕들 위에’=선에 섞음질함과 진리를 왜곡함.
나1:5-‘언덕들’=이웃을 향한 사랑이 있는 교회. ‘언덕들’에 의해 이웃을 향한 사랑이 의미된다. 그이유가 이웃을 향한 사랑에 있는 천사들이 언덕 위에 거주하기 때문. 이웃을 향한 사랑 대신에 세상을 사랑함이 지배할 때, ‘언덕들이 녹아졌다’고 말해진다. 그이유가 언덕 위에서 천국의 모습을 자신들로 만드는 영인들과 더불어 영계에서 그렇게 되고 있기 때문.
이30:25-‘모두 각각의 드높아진 언덕 위에 있는 이들’=이웃을 향한 선행의 선 안에 있는 이들.
시68:15-‘이 산(바산)의 언덕들’=행동 중인 사랑.
신33:15-‘시대의 언덕들’=이웃을 향한 선행으로부터의 선들.
신33:15-‘시대의 언덕들로부터의 귀중한 것’=이웃을 향한 선행의 선 안에 있었던 고대 교회 안에 있었던 진짜(순수한) 진리들.
이40:12-천국들에서 모든 것들을 정돈 배열함이 ‘그는 저울로 언덕들의 무게를 달았다’에 의해 의미된다…‘산들’, ‘언덕들’=보다 높은 천국들…‘언덕들’=이웃을 향한 선행 안에 있는 이런저런 천국들.
겔34:26-‘여호와의 언덕을 빙둘러’=교리의 진리에 있어, 이로부터 선행의 선에도 있는 모든 이들.

에네글라임 (En-eglaim)

* 엔게디(Enge야)를 보라.

에담 (Etham)

출13:20-‘그들은 에담에 진영을 차렸다’=그들이 해방된 이후 두 번째 상태…이 두 번째 상태가 숙곳으로부터 에담으로의 여행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에덴 (Eden)

창2:8-‘에덴’=사랑…고로 ‘동쪽의 에덴에 동산’=주님으로부터 사랑을 통하여 흐르는 천적 인간의 총명.
* ‘동산이 여호와 하느님에 의해 동쪽의 에덴에 창설되었다’ 최고 의미에서,=주님 자신; 가장 깊은 의미에서, 또는 보편적 의미에서,=주님의 왕국, 그리고 인간이 천적 인간으로 만들어 질 때 놓여지는 천국.
창2:10-‘강이 에덴에서 밖으로 나왔다’=사랑으로부터의 지혜, 이 사랑은 에덴이다.
창2:15-‘여호와께서는 사람을 에덴의 동산에 두셨다.’ ‘에덴의 동산’에 의해 천적 인간에 부속되는 모든 것들이 의미되고 있다
겔31:16-‘지옥에 있는 에덴의 나무들’ 이곳의 ‘에덴의 나무들’=그들이 추론함을 수단으로 모독해버린 말씀으로부터의 지식들과 과학적 사실들.
창3:23-‘에덴의 동산 밖으로 내쫓는 것’=모든 총명과 지혜를 박탈하는 것.
창4:16-이전의 자리로부터 신앙을 옮기는 것이 ‘가인은 동쪽을 향하여 거주했다’에서 의미되고 있다.
이51:3-거듭나는 인간이 선에 관련하여질 경우, 그는 ‘에덴’에 비교된다.
창3:24-‘에덴의 동쪽’=천적 사랑 안에서 주님의 현존이 있는 곳.
이51:3-‘광야를 에덴 같이 놓을 것’= (선이 없는 곳이 선이 풍부해질 것) ‘에덴’=선이 풍부함.
겔31장-‘하느님의 동산 에덴’=주님으로부터 말씀을 통하여 있는 총명; 그 이유가 ‘에덴’, 동쪽과 마찬가지로=주님.
욜2:3-‘에덴의 동산’=선으로부터 진리를 이해함, 그리고 그로부터 지혜.

에베소 (Ephesus)

계1:11-‘에베소’ 등등에게=주님과 그분의 교회를 받는 모든 상태들.
계2:1-‘에베소의 천사에게 쓰거라’=생활의 선들이 아닌 교리의 진리들을 중시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그들에 관하여.

에브라데 (Ephrath)

* bethleham도 참조.
창35:16-‘에브라데에 당도하기전 아직 그 토지에 있을 때였다’=지금은 천적 평면 속의 영적인 것이었다…‘에브라데’=이전 상태에서 있는 천적 평면 속의 영적인 것.
창35:19-‘라헬이 죽었다, 그리고 에브라데의 길에서 매장되었다’=내면의 진리에 대한 이전의 애착이 끝남…‘에브라데’=이전 상태에서 있는 천적 평면 속의 영적인 것. 이로부터 명백한바, (이런 말들은)=내면의 진리에 대한 이전의 애착의 상태가 끝남, 그리고 ‘베들레헴’인 새로운 상태가 소생함. 순수한 의미에서, (이 말들은) 유전적인 악(the hereditary)이 의미된다, 이것이 시험을 수단으로 영원히 축출되어진다.
시132:6-태고 시간대로부터 ‘에브라데’는 천적 평면 속의 영적인 것이 의미되고 있다. 이로부터 후에, ‘베들레헴’이 에브라데와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로부터 말해지는바,) ’오, 우리는 에브라데에서 그분에 관해 들었다.‘
창48:7-‘에브라데에 오는 것’=이전 상태에서 천적 평면 속의 영적인 것.
창48:7-‘그리고 나는 그녀를 에브라데의 길에서 매장했다’=이 상태를 거절함.
창35:19-‘에브라데 베들레헴’=영적 평면의 교회(the Spiritual Church), 이 교회는 선으로부터의 진리들, 즉 선행으로부터 있는 신앙 안에 있다.

에스골 (Eshcol, 시내 또는 골짜기)

신1:24-‘에스골 강’, 거기에는 열매들과 포도덩굴이 있었다=내면적인 천국.

엔게디 (Engedi)

겔47:10-‘어부들이 에네글라임으로부터 엔게디에 까지 그물들을 펼칠 것이다’=신앙의 진리들에 관하여 자연적 인간들을 가르치는 이들.

엔미스밧 (En-Misphat)

창14:7-‘엔미스밧’은 ‘판결의 샘’, 또는 ‘가데스인 미스밧의 샘’인바=진리들에 관하여 다툼, 그리고 계속적으로 다툼.

엘림 (Elim)

* (두번째 시험 후에 영적 교회인을) 위로함이 취급된다, 이것이 백성들이 열 두 샘이 있고 칠십 그루의 종려나무가 있는 엘림에 진을 차렸다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출15:27-‘그들은 엘림에 왔다’=계발되는 상태와 애착하는 상태, 고로 시험 후 위로받는 상태. 이는 ‘엘림’의 의미로부터 분명하다.
출16:1-‘엘림과 시내(Sinai) 사이에’=계속인 것, 그리고 품질…거기 있는 샘과 종려나무로부터, ‘엘림’=시험 후 위로됨에 속해 있는 진리와 선.

여관 (inn)

창42:27-‘여관에서 자기 나귀에게 먹이를 주는 것’=그들이 자연 평면의 외면에 있는 과학물들을 곰곰이 생각하여 볼 때….‘여관’=자연 평면의 외면.
창43:21-‘우리가 여관에 당도해서, 우리의 자루들을 열었을 때’=자연 평면의 외면 안으로 자기 반성이 있음.
출4:24-‘길에 있는 여관에서 이였다’=야곱의 후손은 내적인 것 없이 외적인 것들 안에 있었다는 것.
눅10:34-‘그가 그를 여관 안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그들이 그를 간호해달라고 말했다’=그는 그를 말씀으로부터 있는 교회의 교리에서 가르침 받는 이들에게 데려왔다는 것.
눅2:7, 10:34, 22:11, 막14:14-이것이 행해진 이유는 ‘여관 안에 장소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해졌다. 그이유가 ‘여관’은 가르침이 있는 장소를 의미하기 때문. 그때 당시 유대인들은 말씀에 섞음질함으로 인해 오로지 거짓들에만 있었기에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장소가 없었다. 하여 거기에 참 진리가 묵을 장소가 없었다.

여리고 (Jericho)

* ‘여리고의 성벽들’=악들을 방어하는 거짓들.
왕하2:19-21=이것이 여리고에서 행해진 이유는 이 성이 요르단(강)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이다. 그리고 요르단에 의해 처음 진리들을 받는 교회 사람들과 더불은 것, 즉 자연 평면에서의 진리가 의미되어지고 있다.
왕하2;19-21-‘여리고의 물들’에 의해 글자 의미 안에 있는 진리들이 의미되고 있다.
* 여리고는 요르단 (강) 근처에 있는 성이었다. 그리고 요르단 강에 의해 교회에서 처음 있는 것, 그리고 말씀의 글자 의미 안에 있는 신성한 진리가 의미되기에, 그 성은 ‘종려나무의 성’이라 불리웠다.
눅10장-‘여리고’=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이 있는 교회…‘예루살렘으로부터 여리고로 내려가는 사람’=교회의 지식들과 진리들 안에서 가르침 받기를 원하는 이들.
여5:13-15, 6:24-…그리고 ‘여리고’=이 선인 바.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여리고 있었을 때, 그는 서있는 사람을 보았다…그가 여호수아에게 말했다, 네 신발을 네가 서있는 곳으로부터 네 발로부터 벗어라, 그곳은 거룩하기 때문에서이다.’ 그리고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리고를 공략한 후에’…그들은 거기서 발견한 은과 금, 그리고 놋쇠와 철 그릇들은 여호와의 집의 보물 안으로 주었다. 이런 사항들로부터 여리고가 ‘종려나무의 성’이라 불리운 이유가 분명해진다.
여6장-여리고 성에 의해 왜곡된 진리에 관한 지식들이 의미된다.
여6장-여리고 성에 의해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 안에서 가르침이 의미된다. 이 지식들을 수단으로 인간은 교회 안으로 받아들여진다. 그이유가 여리고는 요르단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성이었기 때문…그리고 ‘여리고’=가르침. 또한 여리고=생활 속의 선인 이유는 교리 속의 진리들은 생활의 선 안에 있지 않은 이들 외에는 가르쳐질 수 없었기 때문. 그러나 가나안의 토지가 우상 숭배 나라들에 의해 소유되었을 때, 그 토지에 있는 장소나 성들의 의미는 반대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그 결과 ‘여리고’는 선과 진리를 모독함을 의미하였다. 이런 것들로해서 이 성 자체는 거짓과 악에 관 교리를 의미하였다. 이 교리는 교회 속의 선들과 진리들을 악용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모독한 것이다. ‘여리고의 성벽’=이 교리를 보호하는 악으로부터의 거짓들. 그리고 ‘여리고의 거주민’=모독자. 그리고 이 모독자는 선괴 진리를 인정한 후에 지옥의 사랑으로부터 있는 바, 이 성은 불로 태워졌고, 그곳의 거주민은 저주받아졌고, 그것의 성벽은 허물어졌다.
왕상16:34-여리고를 재건하는 자는 저주받으리라는 것…=신성한 진리를 모독함…이 모독함이 아합왕 아래 거행되었다.

예루살렘 (Jerusalem)

* 새 예루살렘, 시온도 참조하라
* ‘예루살렘’=천국
* ‘거룩한 예루살렘’=보편적 측면에서의 주님의 왕국, 또는 각 인물일 경우, 각 사람 안에 있는 주님의 왕국.
욜3:6-‘예루살렘의 아들들’=신앙의 영적인 것들.
계21장-‘거룩한 예루살렘’=천국들과 지상에 있는 주님의 왕국.
겔16장-‘예루살렘’=고대 교회.
예6:6,11-‘예루살렘의 거리’=교회 안에서 통치하는 거짓들.
슥14:12-‘그들이 예루살렘에 맞서 싸울 것이다’=주님의 영적 왕국의 교회에 맞서,,,. 그리고 그 교회의 진리들에 맞서…
말3:4-‘예루살렘의 선물’=영적 사랑으로부터 예배함.
삼하2:1-11, 5:5, 왕상2:11-다윗이 헤브론에서 7년 6개월간 통치한 이후, 그는 예루살렘으로 갔고, 시온을 점령했다. 그리고 그때서야 처음 주님의 영적 왕국의 교회가 예루살렘에 의해, 주님의 천적 왕국의 교회가 시온에 의해 표현되기 시작했다.
눅21:20-‘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 의해 에워싸인 것을 볼 때’=주님의 교회.
말3:4-신앙으로부터 있는 예배가 ‘예루살렘의 식사 공물’이다.
미4:8-‘예루살렘의 딸의 왕국’=천적인 것으로부터의 영적 왕국.
예17:25-‘도성’, 또는 예루살렘=주님의 영적 왕국.
예3:17-‘예루살렘’=주님의 영적 왕국. 이 왕국은 에스겔서에서 ‘새 예루살렘’에 의해, 계시록에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예루살렘’에 의해 뜻해진다. 주님의 영적 왕국은 안에 선이 있는 신성한 진리를 제일의 것으로 삼는 곳이다…그러므로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왕좌’라는 불리는 이유도 분명해진다.
계21:11-‘거룩한 성 예루살렘’=천국들에 있는 주님의 영적 왕국, 그리고 땅에서는 그분의 영적 교회, 이에 관해 ‘영광’이라 단언되고 있다.
단9:25-‘예루살렘을 회복하고 짓는 것’…여기서의 ‘예루살렘’=새로운 교회.
마5:35-‘예루살렘을 두고 맹세하는 것’=말씀 속의 진리로부터의 교리. 그이유가 ‘예루살렘’ 폭넓은 의미에서=주님의 교회. 그러나 ‘땅’이 언급되어질 때, 땅=교회, 그다음 ‘예루살렘’=교회 속의 교리, 고로 말씀으로부터 있는 신성한 진리로부터의 교리. 그러므로 ‘큰 하느님의 도성’이라 불리운다.
예3:17-‘예루살렘’, 여기에 나라들이 모일 것이다=이 새로운 교회.
애1:8-‘예루살렘’=악으로부터 거짓들 안에 있는 교회.
계21장-‘예루살렘’=주님의 교회, 더 걸출한 의미에서천국.
겔16장-‘예루살렘’=이스라엘 교회와 유대 교회.
* 마24장, 막13장, 눅21장은 성전과 예루살렘의 파괴를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 교회 상태의 계속적인 변화를 묘사하고 있다…
눅18:31-‘보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여기서의 ‘예루살렘’=유대 교회.
겔3장-‘예루살렘’=안에 선들이 없고 악들이 있는 교회.
시76:2-여기서 예루살렘이 ‘살렘’이라 불리운다, 그이유는 ‘살렘’이 평화를 의미하기 때문. 이로부터 예루살렘 또한 이름되어졌다.
여10:1-‘예루살렘의 왕’=거짓들로해서 완전하게 황폐된 교회 속의 진리.
이40:9-‘예루살렘, 복음을 전하는 자’=교리의 진리들 안에서 말씀으로부터 있는 교회.
시122:3-‘예루살렘은 그자체 함께 응집하는 도성으로서 건설되어져 있다’=교리 측면에서의 교회…교리속의 모든 것들이 동의함 안에서 만장 일치 할 때, 그리고 그것들이 시작과 끝에서 주님을 중시하고 그분으로부터 그분을 사랑하는 상호 관계에 있을 때.
슥12:6-이 교회는 악들과 거짓들의 침투로부터 안전해 있을 것임이 ‘예루살렘은 예루살렘 그자체 아래 거주할 것이다’에서 의미되어 있다.
여18:11-28-베냐민…=자연적 인간 안에서 선과 결합된 진리인바, 그러므로 가나안 토지에서 그에게 할당된 토지는 유다와 요셉의 아들들 사이에 있었다. 그리고 또한 이 지파에게 그 당시 여부스족이 거주했던 곳인 예루살렘이 상속분으로 할양되었다. 하여 베냐민의 아들들은 후에 이 성을 점령한 유다인들과 함께 거기서 거주했다…예루살렘이 이 지파에게 할양된 이유는 ‘예루살렘’이 교리에 관련하여, 예배에 관련하여 교회를 의미했기 때문. 그리고 교회의 모든 교리는 선과 결합된 진리로부터의 교리이기 때문. 그리고 교리에 의거한 모든 예배가 자연적 인간을 수단으로 결과 되어진다.
이22:10-‘예루살렘의 집들을 세는 것’=진리로부터의 선들을 왜곡하는 것.
단9:25-‘예루살렘을 회복하고 건설하는 것’=주님에 의해 건립될 교회.
이51:17-악의 거짓들 안으로 모르는 사이에 빠져버린 교회의 회복이 ‘깨어라, 깨어라, 오 예루살렘아…’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예루살렘’=교리 측면에서의 교회.
미4:2-‘예루살렘’에 의해 천국과 이 신성한 진리로부터 있는 교리 측면에서의 교회가 뜻해진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강론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나갈 것이다’고 말해진다.
이66:20-‘내 거룩함, 예루살렘의 산에게’=선행이 통치하는 교회.

오빌 (Ophir)

창10:29-‘오빌’, 욕단의 아들=의식(예식).
* ‘오빌로부터의 금’=영적인 선.
시45:9-‘오빌의 최상의 금에서’=사랑의 선에서 (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의 선.) (=신성한 선.)

요단 (Jordan)

여1:11, 3:2-그래서 여호수아는 ‘삼일 째’ 날에 요단을 건너게 되었다…요단을 건넘은 거듭나는 자를 주님의 왕국에 받아들임을 표현했다; 그리고 삼일 째 날에 그들을 받아들인 여호수아는 주님 자신을 표현했다.
창13:10-‘그는 요단의 모든 평야를 보았다’=외적 인간에 있는 일련의 선들과 진리들…’요단 가까이 있는 평야’, 내적 의미에서,=외적 인간의 모든 선들과 진리들에 관련한 외적 인간. 요단 평야=이것들인 이유는 요단은 가나안의 경계였다는 사실로부터 파생된다.
시42:6-‘나는 너를 요단의 토지로부터 기억할 것이다.’ ‘요단의 토지’=낮은 데 있는 것; 그리고 천국적인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것. 마치 인간의 외적인 것들이 그의 내적인 것들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과 같다.
예12:5-…그리고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을 계속 공격하는바, 이것은 예언적 말씀에서 공식화 되었는데, 예를 들면 요단의 ‘교만’, 또는 ‘의기양양’ 같은 것이 있다. ‘요단의 의기양양’=외적 인간 속에 있는 것들, 이것들은 봉기해 일어나 내적 인간 위에서 지배하려든다.
예49:19-‘요단의 교만’=내적 인간의 선들과 진리들에 맞서는 외적 인간의 득의만만.
민34:12, 여15:5-요단이 가나안 토지의 경계였다는 것은 이 구절로부터도 분명하다. 그리고 이것은 동쪽을 향하여는 유다의 경계였다.
창13:11-‘롯은 요단의 모든 평야를 선택했다’=외적 인간, 그는 이와 같았다는 것. ‘요단 평야’=외적 인간.
창32:10-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는데, 지금 나는 두 진영들 안에 있다’=거의 없는 상태에서 대단히 많아졌다…’요단’=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들 안으로 시작함.
시114:5-‘요단은 뒤쪽을 향하여 그 자체 돌아섰다’…’요단’=선에 관한 지식들, 이 지식들은 사랑의 선이 지배권을 쥘 때 ‘그 자체 뒤쪽으로 돌아 선다’라고 말해진다; 그이유가 이때 지식들은 이 선으로부터 관심되어지기 때문.
사5:17-‘길르앗은 요단 건너에 거주한다’…’요르단 건너에 거주하는 것’=시작에서 있는 것들, 고로 주님의 교회와 왕국의 처음과 마지막 것들.
왕하2:8,14-이러한 것들이 또한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가나안의 토지로 진입할 때 표현되어졌다; 요단이 갈라지고 마른땅을 밟고 건넘에 의해 악들과 거짓들의 제거, 그리고 선들과 진리들에 있는 이들의 입장이 허가됨이 의미되어졌다. 마찬가지로 엘리야가 승천할 때, 요단의 물을 가른 것에 의해서도, 엘리야의 예언 직분을 승계한 엘리사에 의해서도 요단의 물은 갈라졌다.
겔47:18-‘요단’=주님의 왕국과 교회 속의 처음과 마지막인 것들, 이와같은 것들은 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들이다; 그이유가 인간은 이것들을 수단으로 소개되어진다; 그러므로 또한 요단은 새로운 토지, 또는 거룩한 토지의 경계로서 언급되어진다.
창50:10-‘요단 건너에 있는…’=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 쪽에서 시작하고 있는 것. ‘요단’=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 쪽에서 시작, 고로 처음은 입구 측면에 관련한 주님의 왕국과 교회, 마지막은 출구 측면에서의 주님의 왕국과 교회.
마4:15, 이9:1-교회의 설립과 이방인들의 개혁이 이런 말들에 의해 뜻해진다는 것은 ‘요단 건너편, 이방인들의 갈릴리’라고 말해진 사실로부터도 분명하다.
사5:17-므낫세 지파가 적들에 맞서 싸우지 아니했는바…‘길르앗 왜 너는 요단 건너에 거주하는가?’라고 말해지고 있다; 이를 수단으로 왜 너는 자연적 인간 속에 있는 외적인 것들 안에서만 오로지 살고 있는가?가 의미되고 있다. 교회의 외적인 것이 요단 건너 지역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그리고 교회의 내적인 것은 요단 안쪽 지역에 의해 의미된다. 교회의 외적인 것은 영적 측면 보다 자연적 측면에 있는 이들과 더불어 있다.
슥11:3-‘버려진채 놓여 있는 요단의 의기양양’=받아들이는 신성한 진리 측면에 관련한 교회.

우르 (Ur)

창11:28-‘갈대아의 우르’=거짓들이 안에 있는 외적 예배.
창15:7-‘나는 너를 갈대아의 우르로부터 데려왔다’=외적 인간의 첫 상태. 주님께서 탄생 때에 어머니쪽으로부터 받은 것이 여기서 ‘갈대아의 우르’에 의해 의미되어지고 있다.

우바스 (Uphaz)

단10:5-‘우바스의 금’=사랑으로부터 있는 지혜의 선.
예10:9-‘우바스로부터 금’=외적 형체에서 나타나는 선, 그 이유는 말씀으로부터이기 때문. (=글자 의미에서 있는 말씀으로부터의 선)

위치 (station)

창40:13-‘당신의 위치로 당신을 회복되게 하는 것’=(이런 것들이) 질서 안으로 환원되어 질 것, 하여 그것들이 마지막 장소에 있을 런지 모른다.

유대 (Judea)

마24:16-‘유대에 있는 이들은 산으로 도망하라.’ ‘유대’=교회. 참으로 천적 교회.
마24:16-주님을 사랑함 안에 있는 이들인 첫째가는 교회 사람이 산으로 도망하라는 이들로 특별하게 의미되어진다.
마24:16-말씀의 내적 의미에서 ‘유대’가 유대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씀의 많은 대목들로부터 분명해질 것이다. 유대는 말씀에서 ‘유다의 토지’, 그리고 ‘가나안의 토지’가 언급되는 횟수에 비해 그렇게 자주 언급된 편은 아니나 모두 주님의 왕국, 결과적으로 교회가 의미되어진다. 그런 이유는 ‘유다’, 또는 유대 나라에 의해 주님의 천적 왕국이 표현되기 때문이다.
눅21:21-‘유대’에 의해 교회가 뜻해진다.
*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라’=주님의 교회 속에 있는 이들은 사랑의 선에 남아있어야 한다는 것. ‘유대’에 의해 주님의 교회가 표현되어 있다.

유브라데 (Euphrates)

창2:14-‘브라데’ 또는 ‘유브라데’=지식, 이는 최말단 또는 경계(선)이다.
창15:18-유브라데는 아시리아 방향의 경계선이고, 이스라엘이 거기까지 지배했었듯이, 기억 속의 과학적 사실들은 천적, 영적 인간의 총명과 지혜의 경계선이다. 이와 같은 의미가 ‘네 씨에게 나는 이 토지, 이집트의 강으로부터 큰 강 유브라데 까지의 (토지를) 줄 것이다’에도 담겨 있다. 이 두 경계선들은 비슷한 것들을 의미하고 있다.
창15:18-‘이집트의 강으로부터 큰 강 브라데 까지’=영적인 것들과 천적인 것들의 확장; ‘이집트의 강’=영적인 것들의 확장; ‘브라데 강’=천적인 것들의 확장.
창31:21-‘그는 강을 건넜다’=결합이 있는 (곳의) 상태; (그이유가) ‘강’ 여기서의 경우=결합, 즉 신성과 결합. 여기서 이 강이 이런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이것은 저쪽에서의 경우 가나안 토지의 경계 였기 때문; 그리고 가나안의 모든 경계들은 마지막, 또는 최말단의 것, 그리고 처음의 것을 표현했다… 야곱이 지금 가나안으로 들어가고 있는바, 이 강은 첫 경계였다. 결과적으로 보면 최고의 의미에서 신성과의 결합.
창15:18-(태고 교회의 시기에서) 가나안은 이집트의 강으로부터 유브라데 강 까지의 모든 토지 였다.
출23:31-‘광야로부터 강에 이르기 까지’=감각적인 것의 즐거움으로부터 합리성의 선과 진리에 이르기 까지…유브라데, 여기서 말하는 ‘강’=합리성의 선과 진리. 유브라데가 이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아시리아가 거기 있었기 때문, 아시리아=합리성. ‘유브라데’가 가지는 이 의미는 ‘광야로부터 유브라데 까지’ 또는 ‘이집트 강으로부터 유브라데 까지’에서도 동일하게 지니고 있다.
계9:14-‘큰 강 유브라데에서 묶여 있는 네 천사들을 풀어라’=외적인 속박들이 그들로부터 제거 될 것이다, 이는 그들의 마음 속의 내면들이 나타나게 하려 해서이다…‘유브라데’, 말씀에서=인간의 마음 속의 내면적인 것들, 이는 합리적인 것들이라 불리워는데, 이것은 선으로부터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과 더불어서는 지혜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악으로부터 거짓들 안에 있는 이들과 더불어서는 사악한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이것들이 말씀에서 ‘큰 강 유브라데’에 의해 의미되는데, 그이유는 이 강이 아시리아로부터 가나안의 토지를 나뉘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나안의 토지‘=교회; 그리고 아시리아=교회의 합리성; 그러므로 경계를 지어주는 강=가나안 쪽이든 아시리아 쪽에서 이든 공히 합리적인 것이라 불리는 마음 속의 내면의 것들.
계16:12-‘여섯 천사가 그의 유리병을 큰 강 유브라데 위에 쏟았다’=그들이 믿음 만으로 의로워짐에서 자신들을 확증하는 수단이 된 그들의 내면적인 것들 안으로 주님의 유입이 있다를 의미한다. ‘큰 강 유브라데’=내적 추론들; 여기서, 이 교회의 내적 추론들, 이를 수단으로 그들은 믿음 만으로 의로워짐을 확증한다.
예51:63-‘유브라데 한가운데’=바다와 유사한 의미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이유는 유브라데는 바벨이 있었던 곳, 그리고 그것이 가나안의 토지로부터 분리되게 했던 아시리아의 경계였기 때문.
예13장-‘유브라데’=선에 관련한 교회의 모든 것; 여기서의 경우 악에 관련한 교회의 모든 것.
슥10:11-‘강(즉 유브라데)의 모든 깊음들이 마를 것이다’=자아 총명으로부터의 날카로운 추론들이 멸해질 것이다.
이8:7-‘앗수르’=합리성; 여기서, 뒤집혀진 합리성. 이로부터 유브라데 이었던 그것의 ‘강’은 추론함을 뜻한다.
예46:6-‘유브라데 강’=거짓 추론들.
계16:12-유브라데 강이 마름.

자리 (seat)

시89:36-‘그분의 자리’=그분의 왕국.
창41:40-‘자리’, 또는 왕좌=자연 평면. 그이유가 자리에 앉은 자가 영적 평면으로부터의 천적인 것을 뜻할 때 ‘자리’는 자연 평면을 뜻하게 되기 때문.

자비석 (mercy-seat)

* 속죄, 속죄소(propitiatory)를 보라

작은 길 (path)

이11:16-‘남은 백성을 위한 큰길’=질서 안으로 배열함.
창49:17-‘길’, 그리고 ‘작은 길’=진리.
* 단어 ‘사다리’, 원어에서 ‘작은 길’, 또는 길을 뜻하는 단어로부터 파생되었다. 이는 진리를 서술한다.
이33:8-‘큰 길들이 황폐되어 있다’=진리가 더 이상 어느 곳에도 없다.
이58:12-‘거주하도록 작은 길들을 원상복귀하는 자’=선으로부터 있는 진리들. ‘작은 길들’, 또는 ‘길들’=진리들. ‘거주하는 것’은 선을 서술한다.
창49:17-‘작은 길 위의 독사’=선에 관하여 진리로부터 추론하는 것. ‘작은 길’=진리.
호2:6-‘길들’, ‘작은 길들’=진리들.
예31:21-‘네 심정을 네가 가는 길, 큰 길에 놓는다’=삶을 인도하는 진리에 애착함.
호2:6-‘그녀는 네 작은 길들을 찾지 못할 것이다’=어느 진리도 더 이상 보여질 수 없다.
이33:8-‘큰 길이 황폐되어, 그 길을 따라 지나가는 자가 끊겼다’=천국으로 인도하는 선들과 진리들이 더 이상 있지 않다는 것. (큰 길이 황폐됨은 더 이상 생활의 선이 없다는 것. 그리고 ‘그 길을 지나가는 자가 끊겼다’는 신앙의 진리가 더 이상 없다는 것.)
이49:11-‘길을 위해 놓이는 것’=진리들 안에 있는 것. 그리고 ‘높혀질 큰 길’=진짜 진리들 안에 있는 것. 그이유가 ‘길들’, 그리고 ‘큰 길들’=진리들, 이는 선으로부터 ‘높혀짐, exalted’이라고 말해진다. 그리고 선으로부터 있는 진리들은 진짜(genuine) 진리들이다.
이30:11-‘길’과 ‘작은 길’=교회의 진리와 선.
이3:12-‘작은 길의 길을 파괴하는 것’=인도하는 진리가 알려지지 않음.
사5:6-황무함이 묘사되어 있다. 즉 ‘길들이 끊겼다. 작은 길로 가던 이들의 구부러진 길로 갔다.’ ‘길들’, 그리고 ‘작은 길들’에 의해 인도하는 교리 속의 진리들이 의미되어져 있다. 그리고 ‘구부러진 길로 가는 것’=진리들로부터 탈선함.
이2:3-그들은 진리들 안에서 가르쳐질 것, 이를 수단으로 그들이 인도될 것이다는 것이 ‘그분은 우리에게 그분의 길들에 관하여 가르치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의 길들에서 갈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길들’=진리들. 그리고 ‘작은 길들’=생활 속의 가르침들.
애3:9-자신의 총명으로부터의 거짓들이 진리의 유입을 돌려 거절한다는 것이 ‘그는 다듬은 돌 가지고 나의 길들에 울타리를 쳤다. 그는 내 길들을 뒤집어 엎었다’에서 의미되어져 있다. 하느님의 ‘길’, 그리고 ‘작은 길’은 선으로 인도하는 진리를 의미한다.

장소 (place)

* situation, space도 참조.
창24:25-‘방(room)=상태
마24:15-‘거룩한 장소에 서있다’=선과 진리의 모든 것에서 황폐됨. ‘거룩한 장소’=사랑과 신앙의 상태.
창28:16-‘여호와께서 이 장소에 계신다’=신성이 이 상태 안에 있다.
출3:5-‘네가 서있는 장소’=여전히 그가 있는 상태.
출3:8-‘가나안족과 헷족의 장소로’=거짓들로부터의 악들에 의해 점령된 영역.
출15:7-‘당신이 거주하실 장소에’=신성으로부터 있는 선의 상태. 그이유는 천국이 뜻해지기 때문.
출23:20-‘내가 준비한 장소로 너를 데려오는 것’=사랑으로부터의 선과 신앙으로부터의 선에 따라 천국 안으로 받아들임.
계6:14-‘그들의 장소로부터 이동되어지는 것’=물러나는 것.
계12:6-‘하느님이 예비한 장소’=그당시 이 교회의 상태.
계12:8-‘그들의 장소는 천국 안에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았다’=그들은 천국과 결합됨으로부터 떼어내 내던져졌다.
나3:17-‘그들의 장소는 알려져 있지 않다’=(진리와 선이) 남아있지 않다.
이60:13-‘주님의 발이 있는 장소’=천국과 교회의 모든 것들. 그리고 세부적 의미에서는 교회.
예42:18-‘너는 이 장소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교회의 어떤 것도 더 이상 그들과 함께 있지 않다.

…주위에 (around)

창23:18-‘모든 그것의 경계선 주위에…’=외면의 지식들…’경계’ 그리고 ‘주위’=외면에 있는 여러 가지 것들.
창23:18, 여6:1-7, 예50:14,15-내면들이 어둠인 이들과 더불어서 그들의 외면들은 마치 환한 듯 나타난다….그러나 그들 주위에 있던 여러 가지 것들이 파괴될 때, 그들은 곤두박질치듯 지옥으로 운반되어진다. 이런 모습이 궤를 지닌 성직자가 성 주위를 돈 후 성벽이 무너지는 광경에서, 그리고 예레미야서에서는 ‘네 자신을 바빌론에 맞서 주위에 배열하고 활을 구부린 모든 자들, 주위에서 그녀에게 소리치는 모든 이들, 그녀는 그녀의 손에 주어졌다, 그녀의 기초들은 무너졌다, 그녀의 벽들은 파괴되어졌다’로 표현되어졌다.
출2:3-‘그녀는 골풀 상자(ark, coffer)를 가져왔다’=주위에 있음을 뜻하는 것, 그러나 여전히 진리로부터 파생된 것…’상자, 또는 작은 궤’=주위에 있는 어떤 것, 또는 안의 것을 에워싸는 어떤 것.
출19:16-‘극도로 강력한 나팔 소리가 있었다’=천국 둘레에 있는 천국의 상태.
계5:11-말씀에서 ‘주위에’에 의해 더 먼 경계에 있는 것, 고로 더 먼 것이 뜻해진다. 그러나 천국이 취급되는 곳에서는 이는 총명과 지혜의 수준에서 더 먼 것, 고로 아래쪽에 있는 것이 뜻해진다.
계7:11-‘둘러 섬’=결합.

지면 (ground)

* 거듭나기 전의 인간은 선과 진리의 어떤 것도 뿌려지지 않은 ‘지면’이라고도 불리운다.
창2:5-‘지면’ 또는 ‘들판’=그가 천적인 수준이 되어 갈 때의 외적 인간.
창3:17-‘지면이 너를 위하여 저주 된다’=그의 삶의 상태는 비참해질 것이다는 것.
창3:19-‘네가 취해졌었던 지면으로 돌아가는 것’=그가 거듭나기 전과 같은 외적 인간으로…
창3:23-‘네가 취해졌었던 지면을 경작하는 것’=거듭나기 전 그가 소유했었던 것인 물질적으로 되는 것.
창4:11-곡해한 교리가 ‘지면으로부터 저주됨’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창4:2-‘지면의 경작자(농부)’=선행의 결핍, 사랑으로부터 분리된 신앙으로부터의 많은 것, 이는 제아무리 많아도 신앙이 없다…물질적이고 지상의 것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들이 ‘지면을 경작한다’라고 말해지는데, 이는 사람이 ‘지면을 경작하도록’ 에덴으로부터 내보내지는 구절로부터 명백해진다.
창4:3-‘지면의 열매’=선행 없는 신앙의 일들.
창4:12-‘지면을 경작하는 것’=이 (교회의) 분파, 또는 이교를 경작하는 것.
창4:14-‘지면의 얼굴 위로부터 내던져짐’=교회의 모든 진리로부터 분리되어지는 것. ‘지면’ 순수한 의미에서=교회, 또는 교인, 고로 교회가 공언하는 것 모두…그러므로 신앙에 관한 잘못 공언, 교파에 관한 잘못 공언, 이교에 관한 잘못 공언을 만들어내는 자 또한 ‘지면’이라 불린다.
창6:1-‘지면의 얼굴들’=교회가 있었던 모든 넓은 지면. 그 이유가 말씀을 꼼꼼히 살피면, ‘지면’은 ‘땅, earth’으로부터 구별되고 있다. ‘지면’이 씌어진 곳은 대부분 교회, 또는 교회에 관련된 어떤 것이 의미되고 있다; 이로부터 즉 지면으로부터 사람, 또는 아담의 이름이 오고 있다.
이7:16-‘지면은 사막이 될 것이다’=교회, 또는 신앙 속의 참 교리.
창6:7-‘지면의 얼굴 위로부터 내가 창조한 사람을…’=태고 교회의 후손들로부터의 인간…‘지면’=교회가 있는 곳.
창8:8-‘지면의 얼굴들’=교인과 더불어 있는 것들; 그리고 ‘지면’이 언급된 이유는 인간이 교회가 되어감에 있어 첫 상태이기 때문…신앙에 관련된 선과 진리가 잉태되어질 수 있을 때, 그 인간은 ‘지면’이라 불리워진다. 이 상태 이전의 경우 그 인간은 창세기 1장에서와 같이 ‘땅’이라 불리워진다, 이 첫 장에서, 인간이 천적 인간 이전 인 바, ‘땅’이 그 인간에 관련해 서술되지만, 2장의 경우, 그가 천적 인간이기에 그 인간에 관련해서는 ‘지면’ 또는 ‘들판’이 서술되고 있다. 본 8장의 경우도 똑같은 바, ‘땅’과 ‘지면’이라는 단어 만으로도 내적 의미가 보여질런지 모른다. 즉 ‘지면’이 보편적 의미에서 교회를 의미하고 교인 역시 의미하는데 그 이유는 각 교인은 (작은) 교회이기 때문이다.
창8:13-‘지면의 얼굴이 말라졌다’=거듭남; ‘지면’=교인. 거짓들이 다 사라져서 더 이상 사라질 것이 없을 때, 지면의 얼굴들이 말리워졌다고 말해진다.
창9:2-‘지면이 기게 만드는 모든 것’=선에 애착함들, 이는 지면으로부터 기거나 생산되는 것들로부터 있는 지면의 의미로부터 명백하다. 일반적으로 ‘지면’=교회 그리고 교회 속에 있는 무엇이든; 그리고 여기서는 주님에 의해 내적인 것을 통하여 외적인 것 안에서 생산되어지는 것은 무엇이든. 지면 자체는 외적 인간 안에, 그의 애착 안에, 그의 기억 안에 있다; 그 이유가 이것은 마치 인간이 선들을 생산한 것 처럼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이 본문에서, ‘지면이 기도록 만드는 모든 것’이라 말해진다. 그러나 이것은 외관일 뿐, 이것은 주님에 의해 내적 인간을 통하여 있어진다…
창9:20-‘노아는 지면의 사람이 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신앙 속의 교리적인 것들로부터 훈육되어진다. ‘지면’=교인, 똑같은 것으로 교회…교회가 ‘지면’이라 불리는 것은 지면이 신앙 속에 있는 씨들, 또는 신앙 속의 선들과 진리들을 받는다는 사실로부터 이다. ‘지면’은 ‘땅’과 구별되어진다. 땅 역시=교회이다. 마치 신앙이 선행으로부터 있는 것과 같다. 선행이 신앙을 담는 그릇이듯, 땅은 지면을 담는 그릇이다. 고로 교회가 일반적으로 취급될 경우 이 교회는 ‘땅’이라 불리우고, 특별한 측면에서 교회가 취급되면 ‘지면’이라 불리워진다.
창12:3-‘네 안에서 지면의 모든 가족들이 복될 것이다’=모든 선들과 진리들은 주님으로부터 있다는 것…이것의 존재가 ‘지면의 모든 가족들’이라 말하는데, 그이유는 교회 속에 있는 것은 사랑으로부터 신앙 속에 있는 모든 선들과 진리들이기 때문이다. ‘지면’에 의해 교회가 의미된다는 것, 그러므로 교회 속에 있는 신앙도 의미하고 있다.
이7:16-‘저버린 지면’=그당시 신앙이 없는 신앙.
창19:25-‘지면의 어린 싹’=교회 속에 있는 모든 것…‘지면’=교회
창28:14-‘네 안에서 지면의 모든 가족들이 복있을 것이다’=교리의 선으로부터의 모든 진리들이 선과 결합할 것이다…‘지면’=교회 속에 있는 것, 결과적으로 외적 인간 안에 있는 선과 진리에 관한 교리.
창28:15-‘나는 너를 이 지면으로 도로 데려다 놓을 것이다’=신성한 교리와 결합함…‘지면’=자연적 인간에 있는 선과 진리에 관한 교리; 여기서는 신성한 교리.
창47:18-‘우리의 몸과 지면 외에는…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은 없다’=선과 진리를 담을 용기들이 완전하게 황폐되었다…‘지면’=진리의 그릇…그 이유는 지면이 씨를 받기 때문이다…순수한 의미에서, ‘몸’=사랑으로부터의 선; 그리고 ‘지면’=신앙으로부터의 진리.
창47:19-‘그리고 지면은 황폐해지지 않을 것이다’=마음은 교회의 과학적 사실로 경작되어 질 것이다. ‘지면’=진리를 담는 용기; 용기 자체는 마음(mind)이다; 여기서의 경우 자연적 마음, 그이유가 이 지면이 이집트의 지면이기 때문…이집트의 지면=특별한 측면에서 자연적 마음.
창47:22-‘그는 성직자들의 지면 만은 사지 않았다’=자연으로부터의 내적인 것은 선을 받는 자질을 스스로 포획했다, 그이유는 그것들은 자체로부터 있기 때문…‘지면’=진리를 담는 그릇; 여기서의 경우 선을 받는 자질; 그이유가 자질은 수용력이기 때문…선을 받는 자질이 자연으로부터 있다는 것이 지면이 이집트에 있음에서 의미되어져 있다.
창47:23-‘보라 나는 바로를 위해 오늘 너희와 너희 지면을 샀다’=그는 이런 것들을 자신을 위해 포획했다는 것, 그리고 그것들을 내적인 것의 후원 아래 있었던 자연에 종속시켰다는 것…‘지면’= 진리의 저장소.
출3:5-‘네가 서있는 장소는 거룩함의 지면이기 때문에…’=이와 달리해서는 신성이 들어 갈 수 없다…‘거룩함의 지면’=주님으로부터 진행되는 거룩함.
출10:6-‘그들이 지면 위에 있었던 날로부터 오늘 까지’= 그당시 있었던 교회에는 이와 같은 거짓이 거기에 있지 않았다는 것…‘지면’=교회.
출20:24-‘너는 나에게 지면의 제단을 만들 것이다’=선으로부터 있는 예배의 표현…‘지면’=선. 지면이 선인 이유는 ‘지면’이 선 안에 있는 교회를 의미하기 때문. 이런고로 아담은 지면으로부터 그렇게 불리웠다; 그이유가 그를 수단으로 천적 교회의 사람, 또는 선 안에 있는 교회가 의미되었기 때문이다…선으로부터 있는 예배가 지면의 제단에 의해 의미되었다; 그리고 진리로부터 있는 예배는 돌들의 제단에 의해 의미되었다.

지역 (quarter)

* broad place도 보라.
눅14:21-‘거리들과 지역들로 가라’=진짜 진리, 또는 선으로부터 빛을 내는 진리가 어디에 있든 찾아나서라는 것.
예5:1-‘거리들을 이리저리 달려 다니고 예루살렘의 지역들에서 찾아보라’=이 교회의 교리적인 것들을 보고 조사하는 것.
사5:6-황무해짐이 ‘길들이 중지되었다…지역들이 이스라엘에서 중지되었다’에서 묘사되어 있다. ‘길’, ‘작은 길’은 ‘거리’나 ‘지역’ 처럼 인도하는 교리 속의 진리를 의미한다.
암5:16-‘모든 거리들에서 탄식함이 있고, 모든 지역들에서 그들은 아아 슬픈지고! 라고 말한다’=진리와 선이 모든 곳에서 황폐해졌기 때문에 있는 애통함.
시144:14-‘우리의 지역들에서 울음이 없다’=그것들의 결핍으로 인한 애곡함이 어느 곳에도 없다.
예9:21-‘거리들과 지역들’=총명과 지혜로 이끄는 생활 속의 진리들과 교리 속의 진리들.

지옥 (hell)

요2:2-‘지옥’=더 낮은 땅.
민16:33-‘땅이 그들을 삼켰다’=저주됨과 지옥.
계1:18-‘나는 지옥의 열쇠와 죽음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그분 만이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
계20:13-‘죽음과 지옥이 그것들 안에 있던 죽은 자를 포기했다’=심정에서 불경한 교인들, 이들은 그 자체로 사탄들과 악마들이었는바 모두 심판으로 불리웠다.
계20:14-‘죽음과 지옥은 불 못 안으로 내던져졌다’=심정에서 불경한 자, 그 자체로 악마들과 사탄들인바 이들은 악을 사랑하고 이 악에 일치하는 거짓을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 있는 지옥 안으로 내던져졌다.
시149:8, 암9:2-하느님은 천국에서 같이 지옥에서도 전능하심이 ‘만일 내가 지옥에 내 침대를 만든다면, 보라 당신은 거기에 계신다’, ‘만일 그들이 지옥 안으로 파고든다면, 거기로부터 내 손이 그들을 받을 것이다’로부터도 분명해진다.

큰 폭포 (cataract)

말3:10-‘하늘의 큰 폭포들’
창7:11-‘하늘의 큰 폭포들이 열려졌다’=지적인 것에 관련된 시험의 마지막 수준…’하늘의 큰 폭포’는 거짓들, 또는 추론들이 범람함…높은데로부터 큰 폭포들이 열린다(이24:18).
이24장-‘높은데로부터 열린 큰 폭포’=악과 거짓의 범람.

타작 마당 (threshing floor)

호9:2-사랑의 선은 낟알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빵으로부터 ‘타작 마당’이다.
창50:10-‘그들은 아닷 타작 마당에 이르렀다’=첫 상태; 그 이유가 ‘타작 마당’=진리로부터의 선이 있는 곳이기 때문; 타작 마당에는 낟알이 있는바, 낟알은 진리로부터 있는 선, 또는 선으로부터 있는 진리를 의미한다.
마3:12-‘타작 마당’=분리가 결과하는 곳.
욜2:24-‘타작 마당’=교회의 교리.
호9:1,2-‘모든 곡식 마당들 위에’=말씀 속의 모든 것들 그리고 말씀으로부터 있는 교리 속의 모든 것들; 그 이유가 ‘곡식’, 이로부터 빵이 있는바,=영적으로 자양분을 주는 모든 것, 그리고 ‘타작 마당’=함께 집합되어 있는 곳, 고로 말씀. ‘타작 마당과 압착기가 그들을 먹이지 못할 것이다’=그들은 말씀으로부터 선행의 선들과 사랑의 선들을 길어내지 않을 것이다, 고로 영혼에 자양분을 대줄 어떤 것도 길어내지 못할 것이다. 그이유가 이 구절에서 ‘타작 마당’=선행의 선들에 관련하여 있는 말씀; 그리고 ‘압착기’=사랑의 선들에 관련하여 있는 말씀: ‘압착기’는 여기서 기름이 의미되어진다.
신16:13-‘타작 마당의 생산물’=교회의 모든 선; ‘빵’과 ‘곡식’도 이와 같다.

평지 (plain)

창13:10-‘그는 요단의 모든 평지를 보았다’=외적 인간에 있는 일련의 선들과 진리들. 요단 근처 평지=그의 모든 선들과 진리들에 관련한 외적 인간.
창13:11-‘롯은 요단의 모든 평지를 선택했다’=외적 인간은 이와같았다는 것.
창13:12-‘롯은 요단의 성읍들에 거주했다’=외적 인간이 과학적인 것들에 있었다.

포도원 (vineyard)

창9:20-‘노아는 포도원을 창설했다’=파생적인 교회. ‘포도원’=영적 교회.

풀밭 (meadow)

이30:23-‘넓은 풀밭에서 풀을 먹는 것’=가르침이 풍부하게 있는 것.
시65:13-‘풀밭들’=영적 마음 속에 있는 이런저런 것들, 그리고 이로부터 합리적 마음 속에 있는 이런저런 것들.

필라델피아 (Philadelphia)

계3:7-‘필라델피아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주님으로부터 있는 선으로부터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에게, 이것들에 관하여.
* ‘필라델피아에 있는 교회’=선행으로부터 있는 신앙 안에 있는 교인들.
* 필라델피아와 라오디게이아에 있는 교회에 쓰여진 것들에서는 생활에 의거한 신앙에 관련한 것을 취급하고 있다.

하란 (Haran, 장소)

* 아브라함을 참조.
창12장-‘하란’=(주님의) 첫 번째 상태, 이는 희미한 상태였다.
창12:4-‘그가 하란으로부터 갔을 때’=주님의 희미한 상태, 인간의 어린 시절도 이와 흡사하다.
창12:5-‘그들이 하란에서 만들었던 혼’=이 희미한 상태에서 가능한 생명있는 모든 실체(essential).
창27:43-‘너는 내 형제, 라반에게로, 하란으로 피신하라’=외적, 또는 육체적 선에 애착함 쪽으로.
창28:10-‘그는 하란으로 갔다’=그 수준의 선과 진리 쪽으로. ‘하란’=외적인 선과 진리. ‘하란’은 외적인 것, 하란에 있는 ‘라반’=선과 진리.
창29:4-‘그들은 말했다, 우리는 하란으로부터 이다’=공동의 지주로부터의 선으로부터. ‘하란’=공동의 지주(common stock)로부터의 방계의(collateral) 선.

하윌라 (토지) (Havilah)

창2:11-‘하윌라 토지’=마음(지성, mind)
창25:18-이 구절 역시 ‘하윌라 토지’가 이스마엘의 아들들에 관련되어 말해진다. 즉 ‘그들은 하윌라에서 이집트의 얼굴 근처, 앗수르로 가는 술에 까지 거주했다’= 총명 속에 있는 것, 또는 총명이 확장됨.
창 2:11-‘하윌라로부터의 금’=지식들 속의 선.

한가운데 (midst)
중앙 (midst)
중간 (medium)
매개 (medium)
한가운데의 (middle)
중간의 (middle)
수단 (means)

* Benjamin, Laban, goshen, second( or middle) Heaven도 참조.
창2:9-‘동산의 중앙에’=내적 인간의 의지 안에.
창3:8-‘동산의 나무의 중앙’을 수단으로 그 안에 ‘그들은 자신들을 숨겼다’=자연적 선이 의미되어진다. 가장 안쪽인 것이 ‘중앙’이라 불리운다.
창9:21-‘천막 중앙에’=신앙의 주요한 것…‘중앙’, 말씀에서=가장 안쪽…선행이 가장 안쪽이다. 즉 선행은 신앙과 예배의 주요한 것이다. 고로 ‘천막의 중앙’이다.
출23:21-‘내 이름이 그의 중앙에 있기 때문’…‘중앙에’=가장 깊은 곳에.
창15:10-‘부분들 사이 중간의 공간‘=인간과 더불어 지각이라 불리는 것, 내적 지령, 그리고 양심. 위쪽에 있는 것은 주님에 속하는 것. 아래쪽에 있는 것은 인간과 더불어 있는 것.
창18:24-‘도성의 중앙에’…‘중앙’=안쪽에.
창23:10-‘헷의 아들들 중앙에 앉아있는 에브론’…‘중앙’, 또는 ‘중앙에’=제일인 것, 또는 주요한 것, 또한 가장 안쪽에 있는 것.
창37:7-‘들판의 중앙에서 단을 묶었는데’=교리로부터 가르치는 이들
창40:20-‘자기 종들의 중앙에’=외면의 자연 평면 안에 있는 것들 사이에 있는 것. ‘중앙에’=그것들 사이에.
창41:48-‘그것 주위에 있는 것들을 그는 거기로부터의 중앙에 쌓았다’=이전에 외면의 자연 평면 안에 있던 것들이 내면의 자연 평면으로부터의 내면적인 것 안에 저장되었음.
창45:6-‘토지의 중앙에 가근이 2년 동안…’=자연적 마음에 선이 결핍됨. ‘중앙에’=가장 안쪽에, 이곳에 선이 있다.
창48:16-‘토지의 중앙에서 그들이 번성하게 하소서’=가장 안쪽으로부터 (시작하여) 확장됨.
출3:20-‘그것의 중앙에서 내가 행하는 것’=그들에게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것.
출8:22-‘너희는 나 여호와가 토지의 중앙에 있다는 것을 알런지 모른다’=주님 만이 교회의 하느님이심을 통각함.
출9:24-‘(우박의) 중앙에서 걷는 것’=함께 있는 것, 그리고 참으로 가장 깊게 있는 악으로부터의 탐욕.
출11:4-‘나는 이집트의 중앙 안으로 갈 것이다’=모든 곳에 신성이 현존한다.
출12:9-‘그것의 머리와 다리와 그것의 중간의 것’=가장 안쪽으로부터 외적인 것 까지. ‘중간의 것’=상대적으로 더 낮은 것들, 즉 복부나 내장에 속하는 것들.
출23:21-‘나의 이름이 그 사람의 중앙에 있다’=그분으로부터 사랑의 모든 선과 신앙의 모든 진리가 있다는 것.
출23:25-‘나는 질병을 너희 중앙으로부터 제거할 것이다’=진리가 왜곡됨으로부터, 선이 섞음질됨으로부터 보호함.
출26:28-‘중간의 장대는 널판의 중앙에서 가장 끝으로부터 가장 끝 까지를 통과하여 갈 것이다’=제1인 힘으로부터 (시작되어) 모든 곳에서 힘(의 발휘는) 계속 된다는 것…‘중앙’=가장 깊은 것, 그리고 제1인 것.
출28:33-‘빙둘러 그것들 중앙에’=모든 측면에서 선으로부터의 과학물의 내면들로부터…‘중앙에’=내면인 것. 고로 ‘중앙에’가 교리와 예배로부터의 들음과 지각을 두고 말해질 때…=내면으로부터…그이유가 벨이 석류의 중앙에 놓여졌고, 이 과학물은 그릇(recipient)에 해당되기 때문.
출29:45-‘나는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중앙에 거주할 것이다’=주님이 현존하심, 그리고 그분의 유입
출33:3-‘나는 너희 중앙에서 승강 않을 것이다’=그럼에도 신성은 이 나라 자체와 더불어 있지 않다는 것…‘너희 중앙에’=그것의 내적 측면에서.
출34:9-‘부디 주께서는 우리들 중앙에서 가시옵소서’=신성이 그것에서 안쪽에 있을 런지 모른다는 것.
계1:13-‘사람의 아들 같으신 분이 일곱 촛대들 중앙에서’=말씀 측면에 관련된 주님, 이 분으로부터 이런 것들이 있다는 것…‘중앙에’=가장 안쪽에. 안쪽으로부터 빙둘러 있는 것들의 본질이 파생된다, 여기서는 빛, 또는 총명.
계2:1-‘중앙에’=가장 안쪽에, 그리고 거기로부터 그것의 모든 것 안에.
계2:7-‘하느님의 낙원의 중앙에 있는 것’=지혜로부터의 진리들과 신앙으로부터의 진리들 안에 내면적으로. ‘중앙에’=가장 안쪽에, 여기서는 내면적으로.
계4:6-‘왕좌 중앙에, 그리고 왕좌 빙둘러 네동물들’=첫째되는 것으로부터 최말단에 속하는 것이 이르기까지에서 있는 주님의 말씀, 그리고 그것의 지킴.
계5:6-‘왕좌 중앙에, 그리고 네 동물들의 중앙에, 그리고 원로들의 중앙에’=가장 안쪽으로부터, 그리고 안쪽으로부터 천국의 모든 것 안에, 말씀의 모든 것 안에, 그리고 교회의 모든 것 안에. ‘중앙에’=가장 안쪽의 것들, 이로부터 모든 것들 안에.
계6:6-‘나는 네 동물들의 한가운데에서…하는 음성을 들었다.’ ‘그들의 한가운데에서’에 의해 내적으로 있는 영적 의미 측면에서의 말씀이 뜻해진다. 이 말씀을 주님께서는 지켜 보호하신다.
계7:17-‘왕좌 한가운데에 어린 양’에 의해 가장 안쪽에 계신 신성한 인간 측면에서의 주님, 고로 천국의 모든 것 안에 계신 주님이 의미되어진다. ‘한가운데(중앙)에’=가장 안쪽에, 고로 모든 것 안에.
계8:13-‘하늘의 한가운데에서 날고 있는 천사’=주님에 의한 가르침과 예견…‘하늘의 한가운데에서 날면서 말함’=지각하고 이해하는 것.
계8:13-‘천국의 중앙에’=넓은 측면에서의 천국, 고로 천국들 안에 있는 모든 이.
신21:12-‘집의 중간‘=내면들, 영적인 것.
이19:19-‘이집트 토지의 중앙에’=각처에 그리고 자연적 인간의 모든 것 안에.
시5:9-‘그것들의 중간’=내면적으로.
단9:27-‘주간(week)의 중간’은 시간 차원에서의 중간이 아니라 개혁 교회와 더불은 가장 안쪽의 상태.

항구 (haven)

창49:13-‘그는 바다들의 항구에서 거주할 것이다’=과학물들로부터 진리의 결말이 있는 삶. ‘항구’=과학물이 시작하고 종결하는 정거장(station); 여기서는 과학물들로부터 진리의 결말이 있는 정거장; 그이유가 여기서는 ‘스블론’에 의해 신앙의 진리를 지닌 이들을 취급하기 때문. ‘바다들’=복합체에 있는 과학물들.
창49:13-‘그리고 그는 배들의 항구에서 있을 것이다’=말씀으로부터 교리적인 것들이 있는 곳. ‘항구’=정거장; 고로 이런 것들이 있는 것. ‘배들’=말씀으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
* ‘바다들의 항구에서 거주하는 것’=자연적 진리들과 더불어 영적인 것들이 결합함. ‘바다들’=과학물들, 이는 자연적 진리들이다. ‘바다들의 항구에서 거주하는 것’=말씀으로부터 교리적인 것들과 더불은 영적 결합. ‘배들’=모든 종류의 교리적인 것들과 지식들.
* ‘스블론’=선과 진리의 결합; ‘그는 바다들의 항구에서 거주할 것이다’=진리로부터 생활함; ‘그는 배들의 항구에서 있을 것이다’=말씀으로부터 교리적인 것에 따라서.

헤레스 (Heres)

이19:18-‘일 헤레스(ir heres)’=자연 평면에서 영적 진리들로 반짝거리는 교리; ‘일(ir)’은 ‘성(city)’을 뜻한다.그리고 ‘헤레스’는 태양 같이 반짝거림을 뜻한다.
이19:18-‘모든 이 각각은 헤레스의 성이라 불릴 것이다’=각각 안에 있는 선행의 선의 교리…‘헤레스’, 히브리어에서 태양과 그것의 광선을 뜻하는데,=선행의 선과 파생되는 신앙의 선.

헤르몬 (Hermon)

시89:12-‘다볼과 헤르몬’=신성한 선 안에, 그리고 신성한 진리 안에 있는 이들.
시133:3-‘헤르몬의 이슬’=신성한 진리…고로 ‘시온의 산 위에서 내려오는 헤르몬의 이슬’=진리와 선의 결합.

헤브론 (Hebron)

창13:18-‘아브람은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숲에서 거주했다’=주님께서는 더욱 더 내면적 지각에 도달하셨다…이 지각이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의 상수리 나무 숲’이라 불린다.
창23장-‘가나안 토지의 헤브론’=새로운 교회.
창23:2-‘기럇아르바에서, 이곳은 가나안의 토지에 있는 헤브론’=교회에서…’기럇아르바’=진리 측면에서의 교회; 그리고 ‘가나안의 토지에 있는 헤브론’=선 측면에서의 교회.
창23:19-‘이곳은 헤브론이다’=이것은 새로운 교회였다는 것; (그 이유가) ‘헤브론’=영적 교회…..’헤브론’에 의해 선 측면에서의 교회가 의미되어진다. 그러나 여기서는 기럇아르바라 라고는 더 이상 부르지 않고 ‘헤브론’인데, 그 이유는 거듭난 이들, 즉 진리로부터가 아닌 선으로부터 행동하는 이들이 취급되기 때문.
창35:27-‘마므레 기럇아르바’에 의해 진리 측면에서의 자연의 상태; 그리고 ‘헤브론’=선 측면에서의 자연의 상태.
창37:14-‘그는 그를 헤브론 골짜기로 보냈다’=자연 측면과 감각 측면으로부터 있는 신성…’헤브론’=선 측면에서의 주님의 교회.

헤스본 (Heshbon)

예49:3-헤스본은 갓 지파에게 주어졌다…그리고 그러므로 이 토지에 의해 일반적으로 갓에 의해 의미되는 것이 특별히 의미되어지고 있다…‘헤스본’=자연적 인간 안에서 진리의 결실이 풍성함.
예49:3-‘곡하라, 오 헤스본아, 아이가 황폐해졌기 때문이다’=산으로부터 진리의 열매 풍성함이 더 이상 없다는 것, 그이유는 진리의 교리가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이16:9-‘헤스본과 엘르알레’=외적 교회의 사람들, 이들은 세상 사랑을 옹호하는 쪽으로 말씀을 설명한다.

헬본 (Helbon)

겔27:18-‘헬본의 포도주’=자연적 진리.

호렙 (Horeb)

출3:1-‘호렙’=품질(quality); 즉 나타난 신성의 사랑으로부터의 선의 품질…‘호렙’이 포함하는 것들의 품질은 거기서 보여진 것들, 떨기나무 한가운데의 불의 불꽃으로부터 분명하다; 고로 이것=신성의 법으로부터 있는 진리에 의해 빛을 발하는 신성한 사랑의 선.
출17:6-‘보라, 나는 호렙에 있는 바위 위 거기에서 네 앞에 서있다’=신앙의 진리들 측면에서의 주님…‘호렙’=신성한 법.
시106:19-‘호렙에서 송아지를 만드는 것, 그리고 녹여 만든 형상에 자신을 굽혀 절하는 것’=우상적인 예배, 예배가 외적 형체로만 있을 경우 그것의 의식들, 규례들, 판단들, 가르침들 속에 존재한다.
출33:6-‘호렙산으로부터’=예배와 교회와 말씀의 외적인 것들 안에서. ‘호렙산’=외적인 것들에 있는 신성의 진리.
출17:6-‘바위’=신성의 진리 측면에서의 주님인 것은 ‘호렙에 있는 바위로부터 물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졌음’으로부터 분명하다.

호바 (Hobah)

창14:15-‘그는 그들을 호바 까자 뒤쫓았다, 이는 다마스커스의 왼쪽이다’=확장의 분량(amount).

호수 (lake)

출7:19-‘그리고 그들의 못들 위에’=진리, 또는 거짓들을 섬기는 과학물 안으로.
이41:18-‘광야에 물들의 못을 놓는 것’=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을 주는 것, 그리고 이전에 그들이 있지 않던 파생되는 총명을 주는 것.
이19:10-‘혼의 못들’=지식들로부터 총명 속에 있는 것들.
출8:5-‘시내 위에, 강들 위에, 못들 위에’=거짓들에 맞서.
계19:20-‘유황이 타는 불의 호수’=이 거짓으로부터의 사랑들 안에, 동시에 악으로부터의 탐욕들 안에 있는 자들이 있는 지옥. ‘호수’에 의해 거짓이 풍부함이 의미된다.
계20:10-‘불의 호수 안으로 그는 던져졌다’에 의해 거짓으로부터의 사랑들과 악으로부터의 탐욕들이 있는 지옥이 의미된다.
계20:14-‘그리고 죽음과 지옥이 불의 호수 안으로 내던져졌다’=심정에서 불신앙이 악을 사랑하고 이 악에 일치하는 거짓을 사랑함에 있는 이들의 지옥 안으로 내던져졌다.
계21:8-‘그들의 몫은 유황으로 타고 있는 호수 안에 있다’=거짓으로부터의 사랑들, 악으로부터의 탐욕들이 있는 지옥.
이41:18-‘물들의 못’, 그리고 ‘물들의 원천(spring)’=선, 그 이유는 진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모든 영적인 선은 진리들을 통하여 포획되어진다.
시107:35-‘물들의 못’=진리의 풍부함.
시114:8-‘물들의 못’=진리에 관한 지식들. ‘물들의 수원(fountain)’=그것들이 있게 한 말씀.
이42:15-‘나는 못들을 말리겠다.’…‘못들’=진리를 지각함. 진리를 이해함은 진리의 빛으로부터 있다. 그러나 진리를 지각함은 심정으로부터, 또는 진리를 사랑함으로부터 있다.
이41:18-‘물들의 못’=진리에 대한 지식이 풍부함.
이35:7-과거 어떤 것도 지니지 않았던 이들에게 신성한 영적 진리를 통하여 총명이 있을 것임이 ‘마른 장소에 못이 있는다’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이41:18-영적 인간 안에 진리가 풍부함이 ‘물들의 못’에 의해, 그리고 자연적 인간 안에 진리가 풍부함이 ‘물들의 원천’에 의해 뜻해져 있다.

홍해 (Red Sea)
수프 바다 (Sea Suph)

출10:19-‘(메뚜기들이) 수프 바다로 던져졌다’=지옥 안으로.
출14:2-인간이 시험받고 있을 때, 그는 특별하게 ‘수프 바다’에 의해 의미된 이 지옥 가까이 있는다; 그이유가 이 지옥에 진리에 관한 지식을 지녔던 이들, 그러나 악한 생활 안에 있었던 이들, 그렇기 때문에 악으로부터 거짓들에 있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옥으로부터 시험이 유입됨이 ‘너희는 수프 바다 근처…진영을 차려라’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출14:9-‘그들은 바다 근처 진을 친 그들을 따라잡았다’=악들로부터 거짓들인 지옥 영역 주위와 교통함. 바다, 여기서는 수프 바다=선행으로부터 분리된 신앙 안에 있고, 생활이 악한 이들의 악으로부터 거짓들이 있는 지옥.
출14:16-‘바다를 가르는 것’=수프 바다로 표현된 지옥의 거짓들이 사라짐.
출15:4-‘수프 바다 안에 침수되었다’=그들은 자신들을 악으로부터의 거짓들로 포진하게 했다.
출15:22-‘모세는 이스라엘을 수프 바다로부터 여행하게 했다’=그들이 지옥의 영역을 통과한 후, 신성의 진리에 따라 계속 있는 것.
출23:31-‘나는 수프 바다로부터 너희 경계를 둘 것이다’=과학적 진리들로부터 확장함…‘수프 바다’=감각적, 과학적인 것으로부터의 진리들, 이것은 인간과 더불은 마지막(최말단) 진리들이다; 그이유가 수프 바다는 이집트 최말단 경계였기 때문.
예49:21-‘수프 바다’=저주(지옥에 떨어짐, damnation).
시114:3-악들이 분산됨이 수프 바다를 통과함에 의해 의미되어지고 있다, 이에 관해 말해지는바, 그것이 ‘도망쳤다.’
왕상9:26-‘에돔의 토지 안에서 수프 바다의 해안가 쪽으로’=자연적 인간의 지식…그이유가 수프 바다는 가나안 토지의 최말단 경계였다. 이것에 의해 교회의 최말단들이 의미된다. 이 최말단은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들을 납득하는 지식들이다.
출23:31-수프 바다로부터 유프라테스 강까지 토지를 소유하는 것=교회의 모든 확장과 더불은 교회, 이 교회는 신성의 진리를 통하여 그분과 결합되는 이들과 더불어 주님으로부터 있다.

(유대교) 회당 (synagogue)

계2:9-‘그러나 사탄의 회당이다’=그들이 교리 측면에서 거짓들 안에 있기 때문. 유대인들이 있기 때문에 ‘회당’이 언급된다. 그리고 그들이 회당에서 가르쳤던바, ‘회당’에 의해 교리가 의미되어진다.
계3:9-‘나는 사탄의 회당으로부터 줄 것이다’=믿음만으로의 교리 안에, 그리고 선행 없음 안에 있는 이들.

힛데겔 (Hiddekel)
창2:14-‘힛데겔 강’=이성, 또는 명료하게 보는 이성.

성경의 인물(고유 명사)과 상응

성경의
인물과 상응
(고유 명사 편)

Dictionary
of
Person
in
Bible
by
Correspondence

성경 약자표

창 창세기 이 이사야 학 학개 마 마태복음
출 출애굽기 예 예레미야 슥 스가랴 막 마가복음
레 레위기 겔 에스겔 말 말라기 눅 누가복음
민 민수기 단 다니엘 요 요한복음
신 신명기 호 호세아 계 요한계시록
여 여호수아 욜 요엘
사 사사기 암 아모스
삼상 사무엘상 옵 오바댜
삼하 사무엘하 욘 요나
왕상 열왕기상 미 미가
왕하 열왕기하 나 나흠
욥 욥기 합 하박국
시 시편 습 스바냐

차례

가나안 (함의 아들, Canaan)-가나안족 (Canaanite)-가브리엘 (Gabriel)-가인 (Cain, Cainite, Cainan)-갈렙 (Caleb)-감맛 사람들 (Gammadim)-갑도림 (Caphtorim)-갑돌 (Caphtor)-갓 (Gad)-갓 후손 (Gadites)-게난 (Kenan)-게달 (Kedar)-게달족 (Kedarites)-게르솜 (Gershom)-게바 (Kephas)-겐족 (Kenite)-고라 (Korah)-고레스 (cyrus)-고멜 (Gomer)-곡 (Gog)-골리앗 (Goliath)-그다랴 (Gedaliah)-그돌라오멜 (Chedorlamer)-그두라 (keturah)-그리스도 (Christ)-그모스 (Chemosh)-그발 (Gebal)-기르가스족 (Girgashite)-기브온 (Gibeon)-기브온족 (Gibenite)-깃딤 (Chittim, Kittim)
나단 (Nathan)-나답 (Nadab)-나사로 (Lazarus)-나아마 (Naamah)-나아만 (Naaman)-나홀 (Nahor, 데라의 아버지)-나홀 (Nahor, 데라의 아들)-납달리 (Naphtali)-납두힘 (Naphtuhim)-네필림 (Nephilim)-노 (No)-노아 (Noah)-노아의 홍수 이전의 (사람, 생물, antediluvian)-놋 (Nod)-느바욧 (Nebaioth)-느보 (Nebo)-느브갓네살 (Nebuchadnezzar)-
니고데모 (Nicodemus)-니골라당 (Nicolaitans)-니므롯 (Nimrod)-니씨 (Nissi)
다곤 (dagon)-다니엘 (Daniel)-다말 (Tamar)-다윗 (David)-단 (Dan)-데라 (Terah)-데마 (Tema)-데바 (Tebah)-도갈마 (Togarmah)-독생자 (Only-begotten)-두마 (Dumah)-두발-가인 (Tubal-cain)-드보라 (Deborah)-드보라 (Deborah) (리브가의 유모)-디나 (Dinah)-디달 (Tidal)-디라스 (Tiras)-디본 (Dibon)
라멕 (Lamech)-라반 (Laban)-라아마 (Raamah)-라헬 (Rachel)-레아 (Leah)-레위 (Levi)-레위 사람 (Livite)-롯 (Lot)-루딤 (Ludim)-룯 (Lud)-르바임 (Rephaim)-르신 (Rezin)-르우 (Reu)-르우마 (Rumah)-르우벤 (Reuben)-르우벤 지파 (Reubenites)-르우엘 (Reuel)-리밧 (Rephath)-리브가 (Rebekah)
마곡 (Magog)-마길 (Machir)-마대 (Madai)-마리아 (Mary)-마므레 (Mamre)-마스 (Mash)-마하랄렐 (Mahalalel)-마할렛 (Mahalath)-메섹 (Meshech)-메시아 (Messiah)-멜기세덱 (Melchizedak)-모세 (Moses)-모압 (Moab)-모압족 (Moabite)-몰록 (Molech)-므낫세 (Manasseh)-므두사엘 (Methusael)-므두셀라 (Methuselah)-므후야엘 (Mehujael)-미가엘 (Michael)-미디안 (Midian)-미디안족 (Midianite)-미리암 (Miriam)-미스라임 (Mizraim)-밀가 (Milcah)
바두루심 (Pathrusim)-바락 (Barak)-발락 (Balak)-발람 (Balaam)-베냐민 (Benjamin)-베노니 (Benoni)-베드로 (Peter)-베도갈마 (Bethogarma)-베레스 (Perez)-벨렉 (Peleg)-벨사살 (Belshazzar)-보디발 (Potiphar)-블레셋 사람(Philistine)-
비골 (Phicol)-비느하스 (Phinehas)-빌라도 (Pilate)-빌하 (Bilhah)
사가랴 (Zachariah) 사라 (Sarah)-사래 (Sarai)-사람의 아들 (Son of Man)-사무엘 (Samuel)-사울 (Shaul)-사울 (Saul)-산헤립 (Sennacherib)-삼손 (Samson)-삽다 (Sabtah)-삽드가 (Sabteca)-세라 (Zarah)-세례 요한 (John the Baptist)-셀라 (Shelah)-셀라 (Shelah, 유다의 아들)-셈 (Shem)-셋 (Seth)-솔로몬 (Solomon)-솨다이 (Shaddai)-수스 (Zuzim)-수아 (Shuah)-스랍 (Seraph)-스룩 (Serug)-스룹바벨 (Zerubbabel)-스말족 (Zemarie)-스바 (Sheba)-스발 (Sephar)-스보임 (Zeboim)-스불론 (Zebulon)-시돈 (Sidon)-시므온 (Simeon)-시몬 (Simon)-시바 (Seba)-시스라 (Sisera)-십보라 (Zipporah)-씰라 (Zillah)
아나민(Anamim)-아나킴 (Anakim)-아넬 (Aner)-아다 (Adah)-아담 (Adam)-아닷 (Adad)-아람 (Aram)-아론 (Aaron)-아르 (Ar)-아르박삿 (Arphaxad)-아르왓족 (Arvadite)-아마샤 (Amaziah)-아말렉족 (Amalekite)-아모리족 (Amorite)-아므람 (Amram)-아바돈 (Abaddon)-아벨 (Abel)-아브라함 (Abraham)-아브람 (Abram)-아블루온(Apollyon)-아비멜렉 (Abimelech)-아비후 (Abihu)-아셀 (Asher)-아셀 (Azal)-아스그나스 (Ashkenaz)-안드레 (Andrew)-안디바 (Antipas)-알가 (Arkite)-알파 (alpha)-암몬족 (Ammonite)-압살롬 (Absalom)-야 (Jah)-야고보 (James)-야곱 (Jacob)-야렙 (Jareb)-야렛 (Jared)-야발 (Jabal)-야벳 (Japheth)-야살 (Jasher)-야셀 (Jazer)-야엘 (Jael)-야완 (Javan)-에노스 (Enosh)-에녹 (Enoch)-에돔 (Edom)-에돔족 (Edomite)-에렉(Erech)-에르 (Er)-에바 (Ephah)-에벨 (Eber)-에브라임 (Ephraim)-에브론 (Ephron)-에서 (Esau)-에섹 (Esek)-에스겔 (Ezekiel)-엘로힘 (Elohim)-엘람 (Elam)-엘르아살 (Eleazar)-엘르알레 (Elealeh)-엘리사 (Elisha)-엘리사아 (Elishah)-엘리아스 (Elias)-엘리야 (Elijah)-엘리에셀 (Eliezer)-엘리에셀 (Eliezer, 모세의 둘째 아들)-엘리 (Eli)-엠 (Emin)-여부스 족 (Jebusite)-여호비 (Jehovih)-여호사밧 (Jehoshaphat)-여호수아 (Joshua)-여호수아 (대 성직자, Joshua)-여호와 (Jehovah)-여호와 니씨 (Jehovah Nissi)-여호와의 천사 (Angel of Jehovah)-여호와 체바옫 (Jehovah Zebaoth)-여호위 (Jehovih)-예수 (Jesus)-오난 (Onan)-오홀리바(Aholibah)-오홀리압(Aholiab)-요나 (Jona)-요나 (Jonah)-요나단(Jonathan)-요나답 (Jonadab)-요셉 (Joseph)-요압 (Joab)-요한 (John)-욕단 (Joktan)-욕산 (Jokshan)-욥 (Job)-우리 (Uri)-우리아 (Uriah)-우즈 (Uz)-웃사 (Uzzah)-유다 (Judah)-유발 (Jubal)-이다말 (Ithamar)-이드로 (Jethro)-이랏 (Irad)-이브 (Eve)-이사벨 (Jezebel)-이삭 (Isaac)-이새 (Jesse)-이스라엘 (Israel)-이스라엘 자손 (Israelite)-이스라엘의 (Israelitish)-이스르엘 (Jezreel)-이스마엘 (Ishmael)-이스마엘 (Ishmael, 느다냐의 아들)-이스마엘 사람들 (Ishmaelite)-임마누엘 (Immauel)-입다 (Jephthah)-잇사갈 (Issachar)
주님 (Lord)-주 예수 그리스도 (Lord Jesus Christ)
창조자 (Creator)
하갈 (Hagar)-하갈 사람 (Hagarene)-하나님 (God)-하느님 (God)-하느님의 아들 (Son of God)-하다손다말 (Hazezon-tamar)-하란 (Haran, 사람)-하맛족 (Hamathite)-하몰 (Hamor)-하솔 (Hazor)-하윌라 (구스의 아들) (Havilah)-하윌라 (욕단의 아들) (Havilah)-
함 (Ham)-헷 (Heth)-헷족 (Hittite)-호리족 (Horite)-후르 (Hur)-히라 (Hirah)-히람 (Hiram)-히브리 사람 (Hebrew)-히위족 (Hivite)-힌놈 (Hinnon)

가나안 (함의 아들, Canaan)

창9:18-‘함, 그는 가나안의 아버지이다’=내적인 것들 없이 외적인 것들에 있는 부패된 교회로부터의 예배.
창9:25-‘가나안은 저주 있으라’=내적인 것에서 분리된 외적인 예배가 그 자체 주님으로부터 돌아서 가버렸다.
창9:26-‘가나안은 그의 하인일 것이다’=예배가 단지 외적인 것들에서만 있게 만드는 것이 교인을 위해 예배 의식을 수행할 수 있는 이들 사이에 있다.
창10:6-‘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은 여러 많은 나라들이었다, 이를 수단으로 내향의 의미에서 (영적)지식들, 지식들, 그리고 의식들이 의미되어지는데, 이것들은 선행에서 분리된 신앙 속에 있다…’가나안’ 또는 ‘가나안족’에 의해 내적인 것으로부터 분리된 예배의 외적인 것들, 또는 의식들이 의미되어진다.

가나안족 (Canaanite)

* 아모리족도 참조
창10:18-‘가나안족들’=우상 숭배들 중의 남아있는 것들.
창10:19-‘가나안의 경계는 시돈으로부터 그랄을 지나 가사에 이르기까지’=내적인 것 없이 외적 예배를 가지는 이들과 더불어 지식들이 확장됨.
창11:6-‘가나안족이 토지에 있었다’=그분의 외적 인간 안에 있는 어머니로부터의 유전적 악.
민13:29-가나안족은 해변과 요단 강둑 근처에 거주한 이들이었다’=외적 인간에 있는 악, 이는 어머니로부터의 유전적인 것과 같은 악이다.
창13:7-‘그리고 가나안족과 브리스족이 그 토지에 그당시 거주하고 있었다’=외적 인간에 있는 악들과 거짓들. ‘가나안족들’=외적 인간에 있는 어머니로부터의 유전적 악.
민13:29-신앙 속의 교리적인 것들을 발달시킨 이들이 ‘가나안족들’이라 불러졌다, 그리고 그 토지의 다른 거주자와 분리되어 있었다.
창24:3-‘너는 내 아들(이삭)을 위한 여인을 가나안족의 딸들로부터 데려오지 마라’=신성한 합리성은 진리에 불일치되는 어떤 애착들과도 결합해서는 안된다는 것….’가나안족’=악; 이로부터 ‘가나안족의 딸’=진리에 불일치하는 애착들.
창34:30-선과 진리 안에 있는 이들. 여기서의 ‘가나안족’=교회의 선 안에 있는 이들; 그리고 ‘브리스족’=교회의 진리에 있는 이들. 이들이 이런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고대 교회가 아직 그들 사이에 있었기 때문…그들 사이에 교회의 어떤 것이 남아있는 한, ‘가나안족’=교회의 선, 그리고 ‘브리스족’=교회의 진리; 그러나 교회의 모든 것이 그들 사이에서 절멸되었을 때, ‘가나안족’=악, ‘브리스족’=거짓.
창38:2-‘유다는 거기서 가나안족 사람의 딸을 보았다’=악의 거짓으로부터 악에 대한 애착….’가나안족’=악.
창46:10-‘가나안족의 아들 사울’=순수한 근원으로부터가 아닌 교리적인 것.
창50:11-‘토지의 거주민, 가나안족’=교회의 선.
출3:8-‘가나안족과 헷족 대신에’=악들과 거짓들에 의해 점유된 지역. ‘가나안족들’=악들과 악으로부터의 거짓들. 그리고 ‘헷족들’=거짓들로부터 악들이 있다.
출6:15-‘가나안족의 아들 사울’=교회 밖 행동에 있는 진리에 관한 것들.
출23:28-‘가나안족’=더 슬픈 악으로부터의 거짓.

가브리엘 (Gabriel)

* ‘미가엘‘, ’가브리엘‘, ’라파엘‘은 천사들의 사회를 일컫는 것일 뿐 천사 누구 한사람의 이름은 아니다. 이것은 그들의 기능으로부터 그렇게 불리워진다.
눅1:19, 26-35-‘가브리엘’은 여호와께서 세상에 오셨다는 것, 그분이 입으신 인간이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신성이시다는 것을 말씀으로부터 가르치는 이들과 더불은 봉사함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것을 마리아에게 공표한 천사가 ‘가브리엘’로 불리워진다. 더나아가 이 섬김들에 있는 그들이 천국에서 ‘미가엘’, 그리고 ‘가브리엘’로 불리운다.

가인 (Cain, Cainite, Cainan)

* 사랑으로부터 분리된 신앙으로부터의 교리가 ‘가인’이라 불리워진다.
* (사랑으로부터) 분리된 신앙으로부터의 예배가 ‘가인의 공물(offering)’로 묘사되어 있다.
* 분리된 신앙 속에 있던 이들의 상태가 악으로 바뀌어갔다는 것이 ‘분노가 지펴짐’, 그리고 가인이 지닌 ‘얼굴이 땅으로 떨구어짐’에 의해 묘사되어져 있다.
* 신앙이 다침을 당하지 않게 만듦이 ‘가인에게 놓인 표시’이다.
* 이교들과 종파들이 ‘가인’과 그의 후손들의 이름 아래 취급되어진다.
* 고로 교리를 거짓화시키는 이들, 사랑으로부터 신앙을 분리하는 이들, 또는 믿음 만을 고백하는 이들이 ‘가인’이라 불려졌다.
* (태고 교회의) 첫 자식, 또는 첫 출생이 신앙이다, 여기서 이것이 ‘가인’이라 불리워진다.
창4:1-‘나는 남자, 여호와를 얻었었다’=‘가인’이라 불리웠던 이들과 더불어 알려진 신앙은 단독적인 것인듯 인정되어졌다는 것.
창4:5-‘분노가 가인 안에서 지펴졌다’=선행이 분리되었다.
창4:8-‘가인이 아벨에게 말했다’=시간의 간격; ‘가인’=사랑으로부터 분리된 신앙.
창4:8-‘가인이 아우 아벨을 향해 일어나 그를 죽였다’=분리된 신앙이 선행을 소멸했다.
* (가인과 아벨, 야곱과 에서, 베레스와 세라, 에브라임과 므낫세, 이들로부터의 의미들은 평행적으로 끌어내진다)
창4:15-‘가인을 죽이는 모든 사람 각각은 일곱 배의 (벌을) 받을 것이다’=고로 분리된 신앙은 범할 수 없게 붙잡아지게 되었다. ‘여호와께서는 가인에게 표시를 놓아 누구도 그를 쳐죽이지 않도록 하셨다’=주님께서는 분리된 신앙이 보존되게 하시는데 있어 특별한 방법을 동원하시어 구별해 놓으셨다는 것.

갈렙 (Caleb)

여21:12-다시 새로운 교회가 있을 것임이 ‘상속분으로 갈렙에게 들판들과 마을들이 수여됨’에 의해 표현되어져 있다.
민14:24-‘갈렙’은 교회 안으로 삽입되어지는 이들을 표현했다. 그의 ‘씨’=교회의 교리로부터의 진리.

감맛 사람들 (Gammadim)

겔27:11-‘네 망대들에 감맛 사람들이’=내면적 진리에 관한 지식.

갑도림 (Caphtorim)
갑돌 (Caphtor)

창10:13-‘미스라임이 갑도림을 낳았다’, 등등=여러 많은 나라들, 이를 수단으로 여러 가지 의식들이 의미되어진다.
암9:7-‘갑돌로부터 블레셋들을’=외면의 진리들을 수단으로 내면의 진리들을 개시한 이들, 그러나 그것을 곡해한 이들, 그리고 곡해한 것 가지고 거짓들과 악들을 확증하는데 응용한 이들.
예47:4-신앙으로부터의 내면적 진리들이 ‘블레셋’이다. 그리고 외면의 진리들이 ‘갑돌의 섬의 남은 자’이다.

갓 (Gad)
갓 후손 (Gadites)

* 군대, troop도 참조
창30:11-‘그녀는 그의 이름을 갓이라 불렀다’=그것에 관련한 품질, 즉 신앙으로부터의 선, 그리고 일들(works).
* ‘갓’에 의해 반대적인 의미, 즉 신앙으로부터의 선 안에 있지 않은 이들, 일들 안에 있지 않은 이들도 문맥에 따라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 신앙으로부터의 선, 이는 내적 인간 속에 있다, 그리고 선한 일들, 이는 외적 인간 속에 있다. 이는 인간이 거듭남을 수단으로 교회가 되기 전, 신앙과 행동 안에서 인정되어져 가야 하는 세 번째 일반적 매체이다.
계7:5-‘유다’가 첫 번째, ‘르우벤’이 두 번째, ‘갓’이 세 번째로 언급되고 있다. 이 세 지파는 첫째 등급을 구성한다. 주님의 왕국을 취급할 때, ‘유다’=천적인 선, 이는 세 번째 천국에 있는 것과 같은 품질, ‘르우벤’=영적 선, 이는 신앙의 선, 두 번째 천국에 있는 품질과 같다, 그리고 ‘갓’=자연적 선, 이는 첫 번째 천국에 있는 품질이다.
창35:26-‘그리고 레아의 몸종 실바의 아들들, 갓과 아셀’=외면의 것들에 이바지하는 것들…그녀의 아들들=이런 매체들, 필수적인 것들이 갓과 아셀에 의해 표현되어져 있다. ‘갓’은 최고 의미에서 전능과 전지, 내적 의미에서 신앙의 선, 외적 의미에서 일들이다.
창46:16-‘갓의 아들들; 시본, 그리고 학기, 수니, 그리고 에스본, 에리, 그리고 아로디, 아렐’=신앙의 선, 그리고 파생되는 일들, 그리고 그것들의 교리적인 것들.
창49:19-‘갓’=선으로부터는 아직은 아닌 진리로부터의 일들…‘갓’=일들. 여기서의 경우, 진리로부터의 일들, 그리고 선으로부터는 아직 아니다. 이는 그에 대한 묘사를 내적 의미에서 살피면 분명해진다.
이65:11-자기들로서는 진리라고 여기는 비진리로부터 외적인 일들을 하는 이들이 이 구절에서 ‘갓’에 의해 표현되어져 있다. ‘여호와를 돌보지 않는 자들, 내 거룩함의 산을 잊는 이들, 갓을 위해 식탁을 차리는 이들, 므니에게 제주를 가득 붓는 이들.’ ‘갓에게 식탁을 차리는 것’=일들 만에 있는 것.
예49:1-‘암몬의 아들들에 대하여: 고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그는 상속자가 없느냐?하고 말하신다. 무엇 때문에 그의 왕이 갓을 상속하며 그의 백성들이 그의 성읍들에 거주하느냐?’ ‘갓을 상속하는 것’=비진리로부터 일들 안에서 사는 것. ‘암몬의 아들들’은 진리들을 왜곡하고 그것에 따라 사는 자들.
창49:19-‘그는 뒤꿈치를 파괴할 것이다’=결과적으로 자연 평면에서 무질서…선으로부터는 아직 아니고 진리로부터 일하는 이들은 그들의 자연 평면에서는 무질서를 도출할 수밖에 없다. 그이유가 일들이 자연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영향을 미친 정도 만큼 자신들의 내면의 것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이유는 내면의 것이 종결되는 곳이 자연 평면이기 때문. 이렇게 무질서이다면 내면으로부터 흐르는 것 역시 무질서해지고, 무질서한 것은 어둡고 불투명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진리가 무엇인지 볼 수 없다. 불투명 상태에서 결국 그들은 진리 아닌 것을 진리라고 붙잡는바, 비진리로부터 그들은 일을 수행한다.
민2:10-15-‘남쪽’=빛에 있는 진리인바, ‘르우벤, 시므온, 갓 지파는 남쪽에 진영을 펼쳤다. 갓 지파에 의해 (믿음의) 진리들로부터의 일들이 의미된다….그리고 진리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은 남쪽 방면에 있는데, 빛에 속하기 때문이다.
계7:5, 창30:11, 49:9, 신33:20,21, 민32:1-끝절, 34:14, 신3:16,17, 33:20,21, 이65:11, 예49:1-3-‘각 지파 일만 이천 명이 날인되어졌다’=생활에서의 사용(use), 이는 (천적) 사랑으로부터 지혜 속에 있다…이는 주님의 새 교회와 새 천국 안에 있게 될 이들과 더불어 있다. ‘갓’은 최고 의미에서 전능을 의미한다. 영적 의미에서 생활의 선, 이것 또한 선용이다. 자연적 의미에서는 일함이다. 여기서는 생활에서의 선용들, 그이유가 그는 르우벤과 유다에 뒤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혜를 통하여 있는 천적 사랑이 선용들을 생산한다… ‘갓’은 생활의 선을 의미하기에 열매들이라 또한 불리우는데, 이는 그가 군대(troop), 더미(heap)라 불리우는 것으로부터 분명해진다. 또한 그의 아버지에 의한 축복으로부터, 모세에 의한 축복으로부터, 그의 상속분으로부터, 그가 지닌 반대적 의미로부터도 분명하다.
신33:20-모든 힘은 신성한 진리를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있기에, 이것이 ‘사자’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모세가 말했다. ‘갓에게 나비(넓이, breadth)를 주는 자에게 복 있다. 그는 사자 같이 거주한다…’갓‘에 의해 최고 의미에서 전능이 의미된다. 이로부터 표현 의미에서 진리 속에 있는 힘…이로부터 ’갓에게 넓이를 주는 자는 복있다‘고 말해지는데, 그이유가 ’넓이‘는 진리를 의미하기 때문.
예49장-여기서 ‘갓’에 의해 교리의 진리들에 따른 생활의 선이 의미된다.
이16:9-‘야셀’, ‘십마의 포도나무’, ‘헤스본과 엘르알레’에 의해 외적 교회의 사람, 즉 세상 사랑을 옹호하는 가운데 말씀을 설명하는 사람이다. 그이유가 위 네 장소들은 르우벤과 갓 후손에게 주어진 상속지 안에 있었기 때문, 르우벤, 갓 후손은 요단 밖에 거주했기 때문에, 외적 교회를 표현했기 때문.

게난 (Kenan)

창5:9-‘에노스는…게난을 낳았다’…’게난’에 의해 이전의 교회를 계승한 넷째 교회가 의미되고 있다.

게달 (Kedar)
게달족 (Kedarites)

겔27:12-‘게달의 군주들’=그들의 총명.
이60:7-‘게달의 양떼’=신성한 천적인 것들.
창25:14-‘나비욧, 게달’, 등등 (이스마엘의 아들들)=영적 교회 속의 모든 것들, 특히 이방인들과 더불은 영적 교회 속에 있는 것들.
이21:16,17-‘게달’=단순한 진리에 있는 이들.

게르솜 (Gershom)

출2:22-‘그는 그의 이름을 게르솜이라 불렀다’=이런 진리들의 품질…즉 그들은 자신의 것에서가 아닌 교회에서 가르침을 받아온 이들이다.
출18:3-‘그들 중 하나의 이름은 게르솜이었다’, 그 이유는 그가 ‘나는 외국의 토지에서 방랑자가 되어 있었다’라고 말했기 때문=교회 밖의 사람들의 진리로부터의 선

게바 (Kephas)

요1:42-‘너는 게바라 불릴 것이다, 이는 번역하면 바위이다.’ 게바는 시리아어에서 바위를 뜻한다, 그리고 이 대목의 베드로도 ‘게바’라 불린다. 게바는 히브리어에서도 ‘바위’이다. 이는 예4:29, 욥30:6에서도 분명해진다. 거기서 바위가 복수로 ‘바위들’로 언급되고 있다.
* 선으로부터의 진리가 교회의 첫째인 바, 베드로가 처음 부름받았고, 사도들의 첫째이었다. 또한 주님에 의해 ‘게바’라 불리웠다. 이는 ‘바위’이다. 그러나 그가 한 인물로서 불리도록 하기 위하여 ‘베드로’ 라고 불리었다. ‘바위’는 최고 의미에서 신성한 진리 측면에서의 주님이 의미된다. 이로부터 관계적 의미에서 ‘바위’는 주님으로부터 있는 선으로부터의 진리를 의미한다. ‘베드로’의 의미 파악 역시 같은 방법 아래 있다.

겐족 (Kenite)

창15:19-‘겐족과 그니스족과 갓몬족’=거짓들, 이것들은 주님의 왕국에서 추방되어져 있다.

고라 (Korah)

민16장-고라, 다단, 아비람과 그들에 속한 자들이 비록 그들이 제단으로부터 불을 가져와 향을 피웠다 해도 땅에 의해 삼킴을 당한 이유는 모세와 아론에 대한 그들의 불평이 천적 사랑의 선을 모독함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이유가 모세와 아론에 의해 주님이 표현되었기 때문; 그래서 불평하는 것, 즉 주님에게 반역하는 것, 그런데 거룩한 것들을 수행하는 것은 모독이다.

고레스 (cyrus)

이45:1-여기서 ‘고레스’에 의해 표현적 의미에서 인성에 관련되는 주님이 취급되고 있다

고멜 (Gomer)

창10:2-‘고멜, 마곳, 마대, 야완, 두발, 메섹, 디라스’는 여러 나라들을 말하는데, 이 나라와 더불어 내적인 것에 상응하는 외적 예배가 있었다. 그리고 내적 의미에서 그들을 수단으로 그들이 신성하게 준수했던 예식과 동일한 아주 많은 교리들이 의미되고 있다.

곡 (Gog)

겔39장-‘곡’=내적 예배를 파괴하는 외적인 것으로부터 교리적인 것을 납득하는 이들.
겔38:2-‘곡, 그리고 마곡의 토지’=외적인 것들에서 예배함.
겔39장-이 장에서 취급되는 주제는 내적 예배로부터 분리되고 우상을 만든 외적 예배이다. 이것이 ‘곡, 메섹, 두발’로 의미되고, 이들을 수단으로 그들이 세워놓고 말씀의 글자 의미로부터 확증한 교리적인 것들, 고로 진리들을 왜곡하고, 내적 예배를 파괴한 이들.
계20:8-‘곡과 마곡’=내적 영적 예배로부터 분리된 외적 자연적 예배에 있는 이들.

골리앗 (Goliath)

* ‘골리앗‘=자기 총명으로부터의 교만.
* ‘골리앗’, 그는 블레셋 출신이었다, 그러므로 ‘할례받지 않은 자’였는바, 그는 선 없는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을 의미했다. 선 없는 진리들은 왜곡한 진리들이다, 이는 그 자체 거짓들이다. 이로부터 골리앗을 쳐부순 다윗의 승리가 무엇을 표현하는지 설명될 것이다.

그다랴 (Gedaliah)

예41:3-바벨의 왕이 그 토지에 통치자로 만든 ‘그다랴’는 모독한 것들, 추상적으로는 갖가지 종류의 모독들이 의미된다.

그돌라오멜 (Chedorlamer)

창14:4-주님이 싸우셨던 여러 악들과 거짓들이 어린 시절에는 그다지 나타나지 아니했는데, 그 다음 그것들이 폭발적으로 튀어나왔다는 것이 그돌라오멜을 섬기던 왕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창14:1-‘그돌라오멜’ 등등=아주 많은 종류의 외관상의 선들과 진리들, 이것은 그 자체로는 주님의 외적 인간에서 선들과 진리들은 아니다.
창14:4-‘12년 동안 그들은 그돌라오멜을 섬겼다’=악들과 거짓들은 어린 시절 동안에서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 그러나 그것들은 외관상의 선과 진리를 섬겼다는 것.
창14:5-‘그돌라오멜이 왔다’=외적 인간에 있는 외관상의 선…여기서 ‘그돌라오멜’=오직 선, 그 이유는 ‘그리고 그와 더불어 있는 왕들’이 첨가되었기 때문.
창14:17-‘그가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온 후’=외관상의 선들과 진리들에 대한 변론과 해방.

그두라 (keturah)

* 아브라함도 참조
* ‘아브라함과 그두라’=신성의 영적 평면에서의 주님.
* 아브라함의 여자(그두라)는 신성한 영적 선에 인접한 신성한 진리에 관련한 주님을 표현한다.
창25:1-‘그녀의 이름은 그두라였다’=이 신성한 진리의 본질.
창25:4-‘이 모두는 그두라의 아들들이었다’=교리적인 것들, 그로부터의 예배들에 관하여…‘그두라’는 신성한 영적 선과 결합한 신성한 영적 진리를 표현한다. 고로 주님의 영적 왕국 속에 있는 것들, 교리적인 것들에 따라 있는 예배.

그리스도 (Christ)

눅2:11-‘그리스도이신 구세주 주님’. ‘그리스도’는 메시아, 기름부워진 자, 왕을 대표한다. ‘주님’은 여호와를 대리한다. 전자는 진리 측면, 후자는 선의 측면에서 이다.
마24:5,23,24=신성이 아닌 진리들, 그러나 거짓들.
마23:10-‘너의 스승은 한분, 그리스도이다’=신성으로부터의 진리.
마24장-자신을 기독인이라 부르고 그리스도를 예배한다고 말하는 이들, 그런데 그분의 명령들에 따라 살지 않는 이들, 이들은 그분을 우상적으로 예배한다. 그이유는 그들이 그분의 이름 만을 예배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거짓 그리스도를 예배한다.
마24:23-‘그때에 누가 너에게 보라 여기 그리스도가 있다, 또는 저기 있다 말한다면, 믿지 마라’=그들의 교리에 대하여 주의하라는 권면. ‘그리스도’=신성한 진리에 관련한 주님, 이로부터 말씀에 관련한 주님. 그러나 여기서는 반대 의미인바, 왜곡된 신성한 진리, 또는 거짓으로부터의 교리.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날 것이다’=그 교리의 거짓들. ‘거짓 그리스도들’=왜곡된 말씀들, 또는 신성이지 않은 진리들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
눅2:26-‘주님의 그리스도’=신성한 선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 그 이유가 ‘그리스도’는 메시아와 같다, 그리고 메시아는 기름부워진 자, 또는 왕이다.
계11:15-‘세상의 왕국들은 우리의 주님과 그분의 그리스도의 것이 되고 있다’=천국과 교회는 그것들이 시작으로부터 그러했듯 주님의 것이 되어갔다는 것, 그리고 지금 또한 그들은 그분의 신성한 인간의 것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그리스도’에 의해 그분의 신성한 인간이 뜻해진다. 이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계12:10-‘우리의 하느님의 왕국과 그분의 그리스도의 힘’=주님 만이 천국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통치하시기 때문. ‘하느님’에 의해 신성 자체가 뜻해진다…그리고 ‘그리스도’에 의해 그분의 신성한 인간이 뜻해지는데, 이는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린다.
계20:4-‘그들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통치할 것이다’=주님과 결합되고 그분의 왕국에 얼마 동안 있어왔었던 이들.
마16:16-‘당신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그분은 신성한 진리이시다는 것.
계11:5-주님은 신성한 선으로부터 ‘주님’이라 불리고 신성한 진리로부터 ‘그리스도’라 불리신다.
마23:8-‘선생 그리스도’=신성한 진리.
막9:41- ‘내 이름에서 물 한잔을 주는 것, 네가 그리스도에 속해있기 때문에’=진리를 사랑함으로부터 진리를 가르치는 것, 고로 주님으로부터 진리를 가르치는 것. 마찬가지로 그것을 행하는 것…‘그리스도’=신성한 진리에 관련한 주님.

그모스 (Chemosh)

예48장-그들에게 불어 넣은 거짓들이 ‘그모스’로 의미되고 있다.
* 모압의 신이 그모스 였다.
예48:46-‘그모스의 백성’에 의해 자연적 진리에 있는 이들이 뜻해진다.

그발 (Gebal)

시83:7-‘그발과 암몬’=교리의 외적인 것들에 있는 이들.

기르가스족 (Girgashite)

창10:16-‘…기르가스족’ 등등은 아주 많은 나라였고 , 이를 수단으로 아주 많은 우상숭배자들을 의미했다…마치 지구에서 온난 지대에 있는 겨울 같다.

기브온 (Gibeon)
기브온족 (Gibenite)

* ‘기브온족’은 교회에서 섬겨야 할 이들의 어떤 것을 표현했다.
여9장-물을 길어오는 것은 진리들을 알기를 계속적으로 바램을 표현했다, 그러나 알려는 바램이 아는 것 이상의 다른 목적이 없는 것, 안 것을 가지고 어떤 선용에 충당해야겠다는 것에 관심이 없는 것, 이와같은 상태의 사람들은 가장 낮은 자로 평가된다.
여9:7, 11:19-히위족은 보다 직바른 나라들에 사이에 있어서 그들과 더불은 불법은 완전히 극점에 달할 정도는 아니었다…주님의 섭리 속에서 기브온 주민 히위 사람은 보존되어졌다.

깃딤 (Chittim, Kittim)

창10:4-‘야완의 아들들’=’야완’ 나라에 널리 퍼졌던 예배로부터 파생된 외적 예배를 아직 지녔던 다른 나리들; ‘엘리사, 달시스, 깃딤, 도다님’은 위와 같은 예배가 있었던 민족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을 수단으로 많은 교리들, 예식들이 의미되었는데, 이는 ‘야완’과 더불은 외적 예배로부터 파생되었다.
예2:9, 이23:12-‘깃딤’=의식들(rituals)
겔27:6-‘깃딤의 섬들으로부터의 배의 들보’=예배의 외적인 것들, 고로 천적 등급에 관련있는 의식들.
예2:10-‘깃딤의 섬들’=예배로부터 더 멀리 있는 이들, 즉 단순한 선에 있는 이들, 고로 자연적 진리에 있는 이방인들.
이23:1-‘깃딤의 섬들’=우상적인 것이 의미되어진다.
이23:1,2,4-6, 예2:10,11-‘깃딤의 섬들’=진리들에서 자연적으로 사는 그들이 있는 곳.

나단 (Nathan)

슥7:12-‘나단’=진리로부터의 교리.

나답 (Nadab)

출24:1-‘나답과 아비후’=내,외적 의미들로부터의 교리. (그 이유가) 그들은 아론의 아들들이기 때문. 아론에 의해 말씀이 의미될 때, 그의 아들들에 의해서는 교리가 의미되어진다. 큰 아들에 의해서는 내적 의미로부터의 교리가, 작은 아들에 의해서는 외적 의미로부터의 교리가 의미된다. (이 두 교리들은 하나의 교리이다).
레10:1-3-‘나답과 아비후’는 말씀으로부터의 교리를 표현했는바, 그들이 말씀으로부터인 교리 외 어떤 다른 교리로 예배했을 때, 그들은 죽임을 당했다. 다른 근원으로부터 향로에 있는 불=말씀 외 다른 근원으로부터의 교리.
출28:1-‘나답과 아비후’=파생된 신성한 영적 평면. (그이유가) 아론의 아들들은 신성한 선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를 표현한다. 신성한 영적 평면은 신성한 천적 평면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이다. 고로 주님의 신성은 두 번째 천국에서 받아졌다. 이것이 아론의 첫, 둘째 아들의 출생에 의해 표현되어졌는데, 그이유는 마치 가장 깊은 천국 안에 있는 천적 선으로부터 태어난듯 진행되기 때문이다.

나사로 (Lazarus)

* 주님께서 나사로를 죽은 자로부터 산 자로 일으키심은 이방인들로부터 새로운 교회의 소생을 포함하고 있다.
눅16:19-21-여기서 ‘가난한 사람’이란 교회 내에 있으나 진리에 무지함 때문에 선 안에 거의 있지 못하는 사람, 그래서 진리로 훈육되기를 갈망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런 사람이 나사로로 불리운 이유는 주님에 의해 일으켜진 자가 나사로였기 때문이다. 말해지는바, 주님은 그를 사랑하셨다, 그리고 그는 그분의 친구였다, 그는 식탁에서 주님에게 기대고 있었다. 그가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수러기로 배를 채우길 원했다란 진리들을 풍부히 지닌 교회 사람으로부터 몇가지 진리만이라도 배우고 싶은 그의 열망을 의미한다.
요11:3,5,11,36-가난한 사람 ‘나사로’에 의해 말씀을 지니지 못한 이방인들이 뜻해진다. 이들은 유대인들에 의해 경멸되고 거절 당했다는 것이 종기가 가득한채 부자의 현관에 내쳐져 있는 나사로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이방인들이 나사로에 의해 뜻해진 이유는 이방인들이 주님에 의해 사랑되어졌기 때문. 그들은 죽은 자로부터 소생한 나사로 같이 주님에 의해 사랑되었다. 그리고 그의 친구라 불리웠다. 그리고 주님과 더불어 식탁에서 있었다.

나아마 (Naamah)
창4:22-두발-가인의 누이, 나아마=똑같은 교회, 또는 이 교회 밖에 있는 자연적 선과 진리에 관한 교리.

나아만 (Naaman)

왕하5장-시리아로부터의 나병환자 나아만은 말씀으로부터 있는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을 왜곡하는 이들을 표현하고 의미하고 있다.

나홀 (Nahor, 데라의 아버지)

창11:22-‘스룩은 나홀을 낳았다’=거기로부터 파생됨. 나홀은 그것의 아버지(조상)으로서 그로부터 그의 이름으로 명명된 나라였다, 이를 수단으로 우상숭배 쪽으로 바짝 다가간 예배를 의미했다.

나홀 (Nahor, 데라의 아들)

창11:26-‘데라는 아브람, 나홀, 하란을 낳았다’=거기로부터 파생됨. 아브람, 나홀, 하란은 실존 인물들이다, 이들로부터도 역시 나라들이 명명되었는데, 우상숭배자들이었다.
* 우상숭배에 세 종류가 있는데, 그중 둘째가 세상 사랑으로부터인데, 이것이 (‘나홀’)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창24:10-‘나홀 성읍 쪽으로’=관련된 교리적인 것들. ‘나홀’은 관계된 것을 표현한다. 그 이유가 나홀은 아브람의 형제였다. 나홀로부터 브두엘이 있었고, 브두엘로부터 리브가가 있었다.
창29:5-‘당신은 나홀의 아들 라반을 아느냐?’=그들은 그의 지주(stock)로부터의 선을 가졌다는 것. ‘나홀’은 ‘라반’이라는 선을 있게 한 공통의 지주를 표현한다. 나홀의 아버지 데라는 교회들을 있게 한 공통의 지주를 표현한다. 그 중에서 아브람은 진짜 교회의 표현을 입는다. 나홀, 진짜 교회 비슷한 교회로부터의 것이 말씀을 가지지 않은 나라들과 더불어 있다. 이로부터 나홀, 브드엘, 라반에 의해 공통의 지주로부터의 방계적 선이 표현되었다. 그들이 있는 이 선 안에 주님의 교회로부터 있는 이들이 이방인과 더불어 있다.
창31:53-‘아브람의 하느님과 나홀의 하느님이 우리 사이에서 판결하신다’=교회 내에 있는 이들의 선 안으로 신성(이 유입됨), 그리고 교회 밖 이들의 선 안으로 신성(이 유입됨). ‘나홀의 하느님’=교회 밖에 있는 이들에 관련한 주님의 신성인 이유는 나홀은 이방인들의 교회를 표현하기 때문. 그리고 그의 아들들, 거기서 형제애 안에 있는 이들이기 때문.

납달리 (Naphtali)

창30:8-‘그리고 그녀는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 불렀다’=인간이 극복하는 시험의 품질, 또한 자연적 인간에 의한 저항의 품질. 품질 자체가 ‘납달리’에 의해 의미된다. 그이유가 ‘납달리’는 ‘고투함’으로부터 명명되었기 때문. 이로부터 또한 ‘납달리’에 의해 교회의 두 번째 일반적 진리가 표현되어졌다. 그이유가 시험은 내적 인간이 외적 인간과의 결합에서 매체 역할을 하기 때문.
창35:25-‘빌하의 아들들…단과 납달리’=내적인 것들을 뒤따르며 섬기는 것들. 이런 것들의 본질이 ‘단과 납달리’에 의해 표현되고 있다. ‘납달리’, 최고 의미에서=(그분) 자신의 힘, 내적의미에서 (인간이) 정복하는 시험, 외적 의미에서 자연적 인간에 의한 저항.
창46:24-‘납달리의 아들, 야스엘, 구니, 예셀과 실렘’=승리가 있는 시험, 그리고 그것들에 관한 교리적인 것들.
창49:21-‘납달리는 풀어놓은 암사슴, 세련된 강연을 한다.’ ‘납달리’=시험 이후 상태. ‘풀어놓은 암사슴’=자연적 애착의 자유. ‘세련된 강연’=마음의 즐거움.
계7:6-‘납달리 지파로부터 일만 이천이 날인되어졌다’=주님의 새 천국과 새 교회 속에 있을 이들과 더불어 있는, 쓸모 있는 것(use)을 지각함, 그리고 어떤 쓸모 있음이 있는지를 지각함. ‘납달리’에 의해 최고 의미에서 주님의 신성한 인간의 고유의 힘이 의미된다. 영적 의미에서 시험과 승리. 자연적 의미에서 자연적 인간에 의한 고투. 그 이유가 그는 ‘고투함’으로부터 명명되었기 때문. 그러나 여기서 ‘납달리’에 의해 쓸모 있는 것을 지각함, 그리고 어떤 쓸모 있음이 있는지를 지각함이 의미되는 이유는 그가 시리즈에서 ‘아셀’ 뒤를 잇기 때문, 아셀은 쓸모 있음들을 사랑함을 의미하고 있다. 더욱이 시험들을 정복한 이들은 쓸모 있음의 내면적 지각을 가진다. 그 이유가 마음의 내면들은 시험들을 수단으로 열려지기 때문이다. ‘납달리의 지파’=이 지각에 관련한 천사나 사람.
신33:23-‘고투함들’로부터 그렇게 불리운 ‘납달리’=시험들, 위로함, (그리고 이것들 이후 신성한 사랑으로부터 복받음. 이것이 ‘선한 즐거움과 여호와의 복주심으로 만족해 한다’에 의해 뜻해지고 있다.
계7:6-‘아셀’, ‘납달리’, ‘므낫세’의 세 지파=영적 선을 충분하게 구성하는 것들.
* 이웃을 향한 선행(charity)이 이 세 지파, ‘아셀, 납달리, 므낫세’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 (세부적으로 볼 때) ‘납달리’에 의해서는 (이웃을 향한 선행 안에 있는) 이들의 거듭남이 의미된다.
사5장-납달리와 스불론 지파가 선으로부터 있는 진리로부터의 전투를 의미하는바, 납달리 지파는 전투를, 스불론 지파는 선과 진리의 결합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두 지파만이 전투에 참가했다.
이9:1,2, 마4:13-17-‘스불론과 납달리’에 의해 진리와 선의 결합이 의미되고, 거짓들과 악들에 맞서 싸움, 그 결과 개혁됨이 의미된다.
시68:27-‘스불론과 납달리’에 의해 최고 의미에서는 (지상의) 그분 자신에게 시험을 허용하시고, 그분 고유의 힘으로 승리하심을 수단으로 주님의 신성한 인간이 신성 자체와 합일됨이 의미되어 있다.

납두힘 (Naphtuhim)

창10:13-‘미스라임이…납두힘을 낳았다’=여러 많은 나라들, 이들을 수단으로 아주 많아진 의식들이 의미되고 있다. 이 의식들은 단지 과학적인 것일 뿐이다.

네필림 (Nephilim)

* antedilunian, flood도 참조
창6:4-탐욕 안에 신앙의 교리적인 것들을 익사시킨 이들, 그 때부터 또한 다른 사람들 보다 위에 있다는 자기들의 위대함에 관하여 무서운 설득들을 자아 사랑으로부터 기획한 이들이 ‘네필림’이다.
민13:23- 네필림이 가나안의 토지에 있었다는 것은 아낙이 네필림 속에 있었다는 것으로부터 명백해진다.
창6:4-‘네필림’=설득함으로부터 자신이 드높은 자요 특출한 자로, 거룩하고 참된 모든 것은 별것 아닌 것으로 만든 자들.
창6:4-‘르바족’, ‘수스족’, ‘엠족’은 네필림과 비슷한 부류 속에 있었다(창14:5)…이들에 의해 거짓의 설득들, 자신의 높음과 똑똑함을 설득을 통해 만들어 거룩하고 참된 것들을 아무것도 아니게 만든 이들이 의미되고 있다. 이들은 (저 세계에서) 탐욕들 안에 거짓들을 주입한 자들이다.

노 (No)

겔30:15-‘노’=거짓으로부터 있는 악.
겔30:15-‘이집트’, ‘신’, ‘노’는 과학물과 자연적 인간으로부터 있는 오류들, 이것들이 말씀으로부터의 진리들을 통한 인간의 개혁을 방해 한다.

노아 (Noah)

* 천사들은 ‘노아’라는 이름을 수단으로 태고 교회의 후손들과 더불어 남아 있는 교회, 그리고 아브라함의 때까지 계속된 교회를 지각한다.
* 태고 교회로부터 이 교회의 잔류가 홍수까지 조차 남아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홍수 후에 포함되었는데, 이 교회가 ‘노아’라 불리운다.
* 홍수 후 세 교회들의 부모 되는 열 번째 교회가 ‘노아’이다; 이 교회는 고대 교회라 불리운다.
창5:29-노아가 서술되는데, 그는 새로운 교회.
창5:29-‘그는 여호와께서 저주하셨던 지면으로부터 우리 손들의 고생을 위해, 그리고 우리 일을 위하여 우리를 위로할 것이다’=뒤집혀져 왔었던 것이 교리를 수단으로 회복될 것이다…’위로하는 것’=(라멕의) 아들 또는 노아와 관계되고, 그를 수단으로 새로운 거듭남, 고로 새로운 교회, 이 교회는 고대인의 교회가 의미된다; 그러므로 고대인의 교회, 또는 노아 또한 휴식, 또는 휴식함으로부터의 위로를 의미한다.
* ‘노아’라 불린 교회가 홍수 이전 있었던 이들 사이에서 계수되지 않는 것은 이 절로부터 분명해진다. ‘위로’는 살아남는 것, 견뎌내는 것이었다.
창6:8-‘노아는 여호와의 눈에서 은총을 발견하였다’=새로운 교회를 통하여 주님은 인류가 구원될 것임을 미리 보셨다.
* ‘노아’에 의해 새로운 교회 뿐만 아니라 이 교회의 신앙, 즉 선행으로부터의 신앙도 의미하였다.
* ‘노아’라 불려지는 새로운 교회는 천적 수준이 아닌 영적 수준인바, 이 교회는 여호와의 눈에서 자비가 아닌 ‘은총’을 발견하였다라고 말해진다.
* 창6장은 ‘노아’라 불리웠던 교회의 상태에 관한 것을 다룬다.
창6:9-‘이들은 노아로부터의 출생들이다’=새로운 교회의 개혁 또는 거듭남의 서술이다.
창6:9-‘노아는 그의 세대에서 의롭고 완전한 사람이였다’=그는 선행을 수여받아질 수 있었다는 것.
창6:10-‘노아는 세 아들들을 낳았다’=세 종류의 교리가 거기로부터 발생했다는 것.
창6:22-‘노아는 하느님이 자기에게 명령했던 모든 것을 실시했다’=고로 이것이 일어났다는 것.
창7:6-‘노아는 600년의 아들이었다’=시험의 첫 상태
창7:7-‘노아는 홍수의 물 앞서 방주 안으로 들어갔다’=그는 보호되어졌다는 것.
창7:13-시험의 끝은 교회의 사람, 또는 새로운 교회가 재 출생하는 것…이 교회…영적 교회, 이는 신앙에 관한 교리적인 것들을 통하여 다시 태어나는 것, 양심이 그에게 은근히 주입되고…고로 그에게 선행이 선물되어졌다…교회가 지금 취급된다는 것은 반복된 다음 절로부터 명백하다: ‘바로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들, 셈과 함, 그리고 야벳, 노아의 아내와 그의 아들들의 아내가 방주로 들어갔다.’ 교회가 취급되는바, 아들들이 그들의 이름에 의해 명명되는데, 이름=교회의 사람; 그러나 이름 없이 아들들이라고만 말할 경우, 그들=신앙 속의 진리들.
창7:13-‘그들은 방주로 들어갔다’=그들은 구원되어졌다, 즉 교회의 사람, 곧 노아 그리고 노아로부터 갈라져 내려 오는 교회들의 나머지가 구원되었다.
창8장-이제 새로운 교회인에 관련된 것이 뒤따른다; 사실상 시험 후 그의 상태에 관련해, 그의 거듭남까지 조차, 그리고 더 많은 것들이 취급된다.
창8:1-‘하느님께서는 노아를 기억하셨다.’ ‘노아’에 의해 의미된 것은 앞의 경우 같이 고대 교회인을 의미한다…
창8:6-‘노아는 그가 만들었던 방주의 창문을 열었다’=두 번째 상태, 이 때란 신앙 속의 진리들이 그에게 나타났던 때이다.
창8:7-‘그는 까마귀를 내보냈다…’=아직도 거짓들이 혼동을 만들었다는 것.
창8:8-‘그는 비둘기를 내보냈다’=신앙으로부터 진리들과 선들을 받는 상태…이 뒤를 이어 시험 후 이 교회 사람의 세 상태들이 취급되는데, 이것이 세 번 비둘기를 내보냄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창8:13-‘노아는 방주의 덮개를 제거했다, 그리고 보았다’=거짓들이 제거되어졌을 때, 신앙으로부터의 진리들의 빛이 있었고, 이 진리들을 그는 인정했고, 그 진리 안에서 신앙을 가졌다.
창8:13-‘땅은 말라 있었다’=그는 거듭나졌다는 것.
창8:15-‘그리고 하느님이 노아에게 말하셨다’=이 교회인과 더불어 주님이 현존하심.
창8:16-‘방주에서 나가라’=자유…(그 이유가) 노아가 방주 안에 있는 한, 즉 홍수로 포위된 상태에 있는 한, 그는 포로 된 상태, 즉 그가 거짓들과 악들에 의해 들썩거려지는 상태였기 때문.
창8:16-‘너와 네 아내’=교회
창8:18-‘노아와 그의 아들들’에 의해 고대 교회의 사람이 의미된다.
창9:1-‘하느님께서는 노아와 그의 아들들을 축복하셨다’=고대 교회와 더불은 주님의 현존과 은총.
창9:8-영적 교회에 관하여 뒤 따르는 이런 것들의 진리가 ‘노아와 그와 더불은 그의 아들들’에 의해 의미된다.
창9:17-여기서의 ‘노아’=일반적 측면에서의 영적 교회, 그 이유는 노아 만이 명명되었기 때문.
창9:18-‘방주로부터 나간 노아의 아들들’=고대 교회를 구성한 이들, 거듭나졌음.
창9:19-‘이 셋은 노아의 아들들이었다’=교리의 이런 세 종류들, 이는 일반적 측면에서의 교회들 속의 것들이다.
창9:20-‘노아는 토양의 사람이 되기 시작했다’=일반적으로 인간은 신앙의 교리적인 것들로부터 훈육되었다.
창9:20-‘그는 포도원을 창설했다’=거기로부터의 교회.
창9:21-‘그는 포도주를 마셨다’=그는 신앙 속에 있는 것을 조사해보기를 원했다.
창9:21-‘그는 술취했다’=그것을 조사함으로해서 그는 오류에 빠졌다.
창9:21-‘그는 천막 한가운데에서 덮혀지지 않은 채 있었다’=그럼으로 말미암아 뒤집혀졌다.
창9:24-‘노아는 그의 포도주로부터 깨어났다’=그가 더 나은 훈육을 받았다.
창9:28,29-‘노아는 350년을 살았다. 그리고 노아의 모든 날들은 950년이었다; 그리고 그는 죽었다’=첫 고대 교회의 기간과 그 교회의 상태.
창10:1-‘이들은 노아의 아들들의 출생들이다’=고대 교회의 예배들과 교리물들의 갈래들.
창10:32-‘이들은 노아의 아들들의 가족들이다’=세부적 측면에서 고대 교회의 예배들.
마24:38-‘노아가 방주로 들어가는 날까지’=이전 교회의 끝, 그리고 새로운 교회의 시작; 그 이유가 ‘노아’에 의해 일반적 측면의 고대 교회가 의미된다…그리고 ‘방주’에 의해 교회 자체가 의미된다.

노아의 홍수 이전의 (사람, 생물, antediluvian)

이37:26,27-‘멀리로부터‘, ’고대의 날들‘’이 노아의 홍수 이전의 때로 이해된다.
창6:11-‘폭력’은 그것이 거룩한 것들을 모독함으로 행사되었는데, 이것은 홍수 이전에 있었다, 즉 그들을 온갖 종류의 탐욕들 안에 신앙 속의 교리적인 것들을 침수되게 했다.
창7:5-‘내가 만들었던 모든 물질을 파괴하는…’=선과 진리…를 멸하게 했던 이들은 멸해진 홍수 이전 사람과 더불어 가라지들을 수단으로 절멸되었다.
겔26:20-‘구덩이로 내려가는 이들과 더불어 옛적의 사람에게로…’=홍수 이전 직접적으로 태고 교회로부터 지옥에 있었던 이들. 그들이 ‘옛적의 사람들’이라 불리운다. 그들이 아주 오랜 시간 속에 있었기 때문, 그리고 그 누구보다 더 끔찍한 거짓들 안에 있던 자들이다.

놋 (Nod)

창4:16-‘놋의 토지에’=진리와 선의 바깥쪽; (그 이유가) 단어 ‘놋’은 배회하는 자, 방랑자이기 때문; 그리고 배회하고 방랑한다는 것=진리와 선이 박탈되어 있는 것.

느바욧 (Nebaioth)

이60:7-‘느바욧의 숫양 들’=신성의 영적인 것들.
창25:13-‘이스마엘의 첫 출생, 느바욧, 등등’=영적 교회 속에 있는 모든 것들, 특히 이방인과 더불어.
창28:9-‘느바욧의 누이…’=천적 진리에 애착함 …‘느바욧’=영적 교회 속에 있는 선.
이60:7-‘느바욧의 숫양 들’=거기 순진으로부터의 선과 선행으로부터의 선…‘느바욧’=거기 그것 안에 있는 이들.
이60:7-‘섬길 느바욧의 숫양들’=영적 애착으로부터 삶을 이끄는 진리들.

느보 (Nebo)

예48장-그들에게 침투한 거짓들이 ‘느보, 등등’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느브갓네살 (Nebuchadnezzar)

겔26:7-‘바벨의 왕 느브갓네살’=황폐하게 하는 모독인 것.
예43:10-‘바벨의 느부갓네살 왕’=진리와 선을 황폐하게 하는 자.
겔30:10,11-자아 사랑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거짓들로부터의 탐욕들이 황폐되게 할 것이다는 것이 ‘바벨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의해 그와 그의 백성…’에서 의미되고 있다.
예46:2-‘바벨의 왕 느부갓네살이 처부순…’=자아 총명의 자만에 의한 그것의 파멸.
예51장-‘바벨’, 그리고 ‘느부갓네살’, 여기서=섞음질과 진리와 선의 모독.
예43:11,12-‘느부갓네살’, 또는 ‘바벨의 왕’, 말씀에서 악들을 수단으로 교회의 모든 것들을 파괴하는 이들이 뜻해진다…그리고 추상적 의미에서, 파괴하는 악한 자들. ‘느부갓네살이 와서 이집트의 토지를 처부술 것이다’는 것=모든 선들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말씀으로부터의 진리들에 관련한 자연적 인간의 파멸.

니고데모 (Nicodemus)

요3:4-6-니고데모는 주님께서 이야기하셨던 것으로부터 영적 세대 대신 자연적 세대를 이해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거듭남, 재탄생에 관해 그를 가르치신다. 이는 말씀으로부터의 진리들을 수단으로, 그 진리들에 따른 생활로 결과된다는 것.

니골라당 (Nicolaitans)

계2:6-‘너는 니골라당의 일들을 미워하고 있다, 이것을 나 역시 미워한다’=자기들의 진리들로부터 그들은 알고 있고 자기들의 일들을 공적으로 내놓기를 기꺼워하지 않는다는 것, 그이유는 이것이 주님의 공적과 정의에 반대되기 때문이다. ‘니골라당의 일들’이 공적을 내세우기 위해 하는 일들이다는 것은 계시로부터 알도록 나에게 주어졌다.
계2:15-‘그렇게 너는 니골라당의 교리를 붙들고 있는 이들을 봐주고 있다, 이것을 나는 미워한다’=자기 일들을 공적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이들이 그들 사이에 있다는 것.
계2:6. 행6:5-기독 교회가 이 교회의 유아기 때부터 짜증나게 하고 찢기웠다는 것은 니골라스로부터, 그리고 이들로부터 니골라당이 명명되어졌다는 것으로부터 명백하다.
* ‘니골라당’=진리로부터 선을, 또는 신앙으로부터 선행을 분리한 이들.
* 신앙으로부터 선행을 분리한 이들이 ‘니골라당’이라 불리운 것은 천국에서 이 단어의 소리로부터 쉽게 (알아진다). 그이유가 그것의 소리는 진리로부터, 신앙으로부터 이지, 선이나 선행으로부터가 아니기 때문.

니므롯 (Nimrod)

창10:8-‘니므롯’에 의해 내적 예배를 외적 예배로 만든 이들이 의미되고 있다; 즉 내적 예배보다 외적 예배를 더 중시하고 필수라고 하여 있게 된 외적 예배가 ‘니므롯’에 의해 의미된다…이런 예배는 선행으로부터 신앙을 분리한 이들의 종교에 있다…그들은 신앙이 생활 속에 있는 것 보다 지식 속에 있는 것을 더 좋아한다; 고로 후자를 필수라고 여긴다.
* 이와 같은 예배가 ‘니므롯’이라 불리운다. 그리고 이것은 ‘구스’인 지식들로부터의 출생이다. 이것들은 신앙으로부터 선행을 분리된 것들인 바, 이 신앙이 ‘함’이다.
창10:8-‘구스는 니므롯을 낳았다’=내면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들을 가졌던 이들이 이런 예배를 조직했다는 것…내면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들이 그들이 교리들이라 부르는 것들이다…이들은 단지 지식만을 두고 신앙이라 부른다. 이들이 이런 예배를 낳고 조직했다…
창10:8-‘그는 땅에서 힘센 자였다’=이런 종교가 교회 안에서 우세하여 널리 퍼졌다는 것.
창10:9-‘그는 여호와 앞에서 사냥함에서 힘셌다’=그것은 수많은 사람을 설득했다는 것. (그이유가) 선행으로부터 분리된 신앙도 이러했기 때문.
창10:9-‘그러므로 말해졌는바, (아무개는) 여호와 앞에서 사냥함에서 니므롯 같이 힘셌다’=너무나도 많은 이들이 설득되었기에 언어의 이런 형체는 속담 인듯 되어버렸다. 고대 시대 때에 사람들은 어떤 대상에 이름들을 주어왔는데, 그들은 이 이름을 이 예배에 주었다. 즉 니므롯-즉, 이 예배는 사냥에서 힘셌다-즉 마음들을 포로화하는데 대단한 실력을 발휘했다.
창10:10-‘그리고 그의 왕국의 시작은 시날의 토지에 있는 바벨, 그리고 에렉, 그리고 악갓, 그리고 갈레이였다=이런 예배들, 즉 외적으로는 거룩하게 나타나나 내적으로는 모독되어 있는 예배가 있었다.
* 이와 같은 예배가 영적이고 천적인 것들에 관하여 추론한다는 것이 ‘니므롯은 이 토지로부터 나아가서 앗수르, 또는 앗시리아로 갔다’(에 의해 의미되었다.)
미5:6-‘니므롯의 토지’=내면이 악들과 거짓들인 예배, 니므롯에 의해 의미된 것과 같은 예배.

니씨 (Nissi)

출17:15-‘그는 거기로부터 이름을 여호와 니씨라고 불렀다’=내면의 악으로부터의 거짓에 맞서 계속되는 전쟁, 주님에 의해 보호됨…‘여호와 니씨’, 원어에서, ‘여호와 내 군기(standard)’, 또는 ‘(군) 깃발(banner)’을 뜻한다. 그리고 군기는 전쟁으로 소집함이 의미된다. 여호와의 전쟁이 말해지는바, 그분에 의한 보호 또한 의미된다.

다곤 (dagon)

삼상5장- 아스돗에서 불레셋인들의 신은 다곤이었다, 이 신은 위쪽은 사람이고 아래쪽은 물고기 였다; 이 형상이 고안된 이유는 사람=총명, 그리고 물고기=지식, 이 둘을 하나로 만든 때문이다.
* 다곤, 그들의 우상은 위는 사람, 아래는 물고기 였다. 이를 수단으로 그들의 종교가 표현되어졌다. 즉 신앙으로부터 영적이였으나 선행을 동반하지 않는바 단지 자연적일 뿐인 종교이다.

다니엘 (Daniel)

마24:15-‘예언자 다니엘에 의해 말해진…’=예언들; 그이유가 어떤 예언자가 말씀에서 그의 이름에 의해 언급될 때, 그것은 그 예언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예언적 말씀 자체를 뜻한다… 이 구절의 ‘다니엘’은 교회의 마지막 상태, 그리고 주님의 강림에 관한 예언적 모든 것이 의미되고 있다.

다말 (Tamar)

* 진짜 교회가 ‘다말’에 의해 묘사되어 있다.
* 다말의 아들들=교회의 두 필수 요소들, 즉 신앙과 사랑.
창38:6-‘그녀의 이름은 다말이었다’=교회의 품질. 이것은 영적인 것과 천적인 것을 표현하는 교회였다는 것. 이 교회가 유다의 후손들 사이에서 조직되었다는 것.
* 교회의 내적인 것이 여기서 ‘다말’이다.
창38:11-‘[다말은 갔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 집에 머물렀다’=격리됨.
창38:13-‘그것이 다말에게 말해졌다’=영적이고 천적인 것들을 표현하는 교회와 소통하는 어떤 것.
창38:14-‘그녀는 과부의 옷을 벗었다’=선으로부터의 진리를 자극함.
창38:14-‘베일로 자신을 가리웠다’=진리가 불명료해졌다. 그 이유는 그녀는 자신의 남편으로 셀라를 간주했으나 자기가 그에게 주어지지 않자, 그녀는 남편의 형제 되는 의무를 수행할 사람으로 그의 시아버지를 간주했다. 그러므로 그녀는 신부 같이 베일로 자신을 덮었다. 비록 유다가 매춘녀로 간주했다 해도, 이는 매춘은 아니다. 그이유가 유대 국가는 표현 교회의 내적 진리들을 매춘녀로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다는 매춘녀로서의 그녀와 결합되어졌다. 그러나 그와 결합한 다말은 매춘이 아니다. 이 나라에서 내적 진리들은 이와달리 나타날 방법이 없었기 때문, 그러므로 애매모호한 진리가 다말이 베일로 자신을 덮음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창38:16-‘그의 며느리’=표현 교회의 진리. 그이유가 ‘다말’, 여기서 며느리=영적이고 천적인 것들을 표현하는 교회.
창38:24-‘다말 당신의 며느리가 창녀로 놀아났다’=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결혼의 어떤 것은 거짓이다는 것을 지각함. ‘다말’=표현 교회의 내적인 것.
창38:24-‘그녀를 불태우라’=교회의 내적인 것은 근절되어야 한다는 것.
창38:27-‘그녀의 산고’=내적 진리의 부분에서 인정함. (그이유가) ‘다말’=표현 교회의 내적인 것. 그러므로 내적 진리.

다윗 (David)

* 시편에서, 왕으로서의 다윗의 특성 아래, 내적 의미에서 주님이 취급된다.
시89:3-‘다윗’=주님.
이55:3-‘다윗’=주님.
겔34:24-‘다윗’=주님.
예33:22-‘다윗’=주님.
예23:5-‘다윗’=주님.
이37:35-‘다윗’=주님, 오시기로 되었던 분, 인간에 관련하여 종이라 불리우신다.
마22:43-‘그러므로 어떻게, 영에 있는 다윗이 그를 주라 부르느냐?’ 고로 육체에 관련하여서는 그분은 더 이상 다윗의 후손이 아니었다.
예17:25-‘다윗’=주님.
시132:17-‘다윗’=주님.
시132:11-‘다윗’=주님.
암9:11-‘다윗의 천막’=교회와 주님을 예배함.
겔37:24-‘내 종 다윗’=신성한 인간에 관련한 주님, 그리고 이것이 신성한 진리로부터, 이는 ‘왕’, 여기서 다윗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슥12:7-진리가 ‘다윗의 집’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암9:11-‘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세우는 것’=진리의 거룩함이 사멸된 후 그것을 회복하는 것. ‘다윗’=신성한 진리에 관련한 주님.
눅1:32-‘다윗의 보좌’는 다윗의 왕국이 아니고 천국의 왕국이다. 그러므로 ‘다윗’에 의해 다윗이 의미되는게 아니라, 주님의 신성한 왕권. 그리고 ‘보좌’는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 그리고 이것이 주님의 왕국을 구성한다.
삼하5:4-다윗이 왕권에 관련한 주님을 표현하기 위해 있었는바, (서른 살이 되기 까지) 그의 통치는 시작되지 않았다.
예17:25-‘다윗의 보좌에 앉는 것’=이런 것들이 주님으로부터 이다는 것.
삼하21:17-다윗이 ‘이스라엘의 등불’이라 불리는데, 그이유는 ‘왕’=주님으로부터 있는 신성한 진리. 그리고 ‘다윗’=신성한 진리에 관련한 주님, 이로부터 신앙, 총명, 그리고 지혜가 온다.
시89:20-‘다윗’=주님.
시132:10-이로부터 분명한바, 신성한 인간에 관련한 주님이 여기서 ‘다윗’, ‘여호와의 기름부은 자’에 의해 뜻해진다.
시88:4-‘다윗의 씨’는 조상으로서의 다윗의 후손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밖의 곳에서 신성한 진리에 관련한 주님이 의미된다. 고로 그의 ‘씨’는 주님에 의해 거듭나는 이들, 추상적 의미일 경우, 거듭나는 이들과 더불은 주님으로부터 있는 것들이 뜻해진다.
계3:7, 이23:21,22-‘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그분, 열면 닫을 자 아무도 없고, 닫으면 열 자 아무도 없다’=구원하는데 전능하심을 유일하게 가지신 분. ‘다윗의 열쇠’는 베드로의 열쇠와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엘리아김에게 주어진 다윗의 열쇠도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
계5:5-‘유다의 지파로부터인 것, 다윗의 뿌리’=그분의 인간 안에서 신성한 선이 신성한 진리와 하나됨을 통하여 (주님께서 지옥들을 복종케 하셨다는 것). ‘다윗’은 신성한 지혜로부터의 신성한 진리에 관련한 주님을 뜻한다.
계22:16, 예23:5, 33:5-‘나는 다윗의 뿌리이고 후손이다’=그분은 세상에서 태어나신 주님이시다는 것, 그리하여 주님은 신성한 인간 안에 계신다는 것. 이로부터 그분은 ‘다윗의 뿌리요 후손이다’, 또한 ‘다윗의 가지’라 불리신다.
겔37:24,25, 호3:5-‘다윗’=영적 왕국에 있는 신성한 진리, 이는 주님의 왕권이라 불린다, 그러므로 최고 의미에서, 다윗=그 왕국에 관련한, 그리고 그 진리에 관련한 주님. 이런 이유 때문에 다윗에 관해 말해지는바, ‘그가 와서 이스라엘의 아들들을 통치할 것이다.’
계3:7-‘다윗의 열쇠를 가진 그분’=신성한 진리를 통하여 힘을 가지신 분. ‘다윗’=신성한 진리에 관련한 주님. 말씀에서 ‘다윗’이 주님을 뜻하는 이유는 말씀에서 ‘왕’이 신성한 진리에 관련한 주님을 뜻하기 때문. 그리고 왕 다윗 특별하게 그는 교회 속의 것들에 큰 관심을 가졌었기 때문에, 시편 역시 썼다. ‘다윗의 열쇠를 가진 그분’라고 말해진 이유는 ‘다윗’이 신성한 진리에 관련한 주님을 표현했고, 천국들과 땅 위의 모든 권능을 신성한 진리를 통하여 신성한 선으로부터 주님과 더불어 주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3:5-‘그들은 자기들의 하느님 여호와, 그리고 그들의 왕 다윗을 찾을 것이다.’ 그이유는 ‘여호와’=신성한 선에 관련한 주님, 이는 신성의 있음이다. 그리고 ‘왕 다윗’=신성한 진리에 관련한 주님, 이는 신성이 나타남이다.
슥12:7-‘다윗의 집, 예루살렘의 주민’=영적 왕국, 이 왕국은 신성한 진리 안에 있는 천국과 땅에 있는 이들로 조직되어 있다.
시89:4,5-‘나는 나의 종 다윗에게 맹세했었다, 네 씨를 나는 영원히 세울 것이다, 그리고 세세토록 네 보좌는 건설될 것이다.’ 이는 다윗의 씨와 보좌를 두고 말해지는게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선으로부터의 진리들에 있는 이들, 추상적 의미에서일 경우, 선으로부터 있는 진리 자체를 뜻한다. 이것이 신성한 진리에 관련한 주님이다는 것, 또는 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이다는 것, 이것이 ‘다윗’에 의해 뜻해짐은 분명한데, 그이유는 말해지기를, ‘천국들에서 당신은 당신의 진리를 확인하실 것이다. 그리고 천국들은 거룩한 사람들의 회합에서 당신의 진리를 고백할 것이다.’
마22장-다윗이 신성한 진리에 관련한 주님을 표현했는바, 주님은 다윗의 집으로부터 태어나도록 의도하셨다, 또한 ‘다윗의 아들, 뿌리, 후손’이라 불리시게 하셨다. 그러나 주님이 어머니로부터의 인간(human)을 벗으셨을 때, 그리고 아버지로부터의 인간(Human)을 입으셨을 때, 그분은 더 이상 ‘아들, Son’이 아니었다, 이것이 바리새인에게 하신 그분의 말들에서 뜻해져 있다.
시89:20-‘다윗’=신성한 진리에 관련된 주님. ‘다윗’이 신성한 인간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에 관련한 주님을 뜻하는바, ‘다윗 나의 종’이라 말해진다. 그이유는 ‘종’은 진리를 서술하기 때문.
시132:17-‘다윗’, 여기서도 역시=신성한 진리에 관련한 주님. ‘그의 뿔이 싹트게 만드는 것’=천국들과 땅에서 신성한 진리가 불어남. 그러므로 말해지는바, ‘나는 나의 기름부은 자를 위해 등불을 준비하였다.’
시132:17-이로부터 분명한바, 신성한 인간에 관련한 주님이 여기서 ‘다윗 여호와의 기름부은 자’에 의해 의미된다는 것이다.
예13:13-‘다윗의 보좌에 앉은 왕들’=신성한 진리들 안에서 다른 방법으로 있는 이들.
시132:11-이런 것들이 다윗에 관해 말해진다, 그러나 여기서 ‘다윗’은 주님을 뜻한다.
시89:25-이런 것들이 주님, 천국, 교회에 관해 말해지고 있다. 그이유가 ‘다윗’, 여기서는 글자 의미에서 취급되는데, 주님이 뜻해진다.
예33:17,21,22-‘이스라엘 집의 보좌에 앉을 사람이 다윗으로부터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그당시 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가 교회를 영구적으로 통치할 것이다…‘그때에 내 언약은 내 종 다윗에게 효력이 없을 것인바, 그는 통치할 아들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그때에 그들은 신성한 진리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그렇게 나는 내 종 다윗의 씨를 늘이겠다’=신성한 진리의 증가…주님과 결합한 이들과 더불어.
슥12:12-‘다윗’=신성한 진리.
겔34:23,24-‘목자, 내 종 다윗, 여호와께서 휘저을 사람’은 주님을 뜻한다.
시132:17-‘종’으로서의 ‘다윗’=신성한 진리에 관련한 주님의 인간. 그리고 ‘기름부음’=신성한 선에 하나됨…‘시온에서 나는 다윗의 뿔이 싹틔우게 만들 것이다’=천국과 교회에서 그분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의 힘.
삼하6:14-다윗이 춤을 춤은 궤에 의해 의미된 것, 즉 신성한 진리의 유입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에 애착함으로부터 결과하는 즐거움을 표현했다…다윗의 춤은 영적, 천적 선에 애착함으로부터 있는 심정의 환희(joy)를 표현했다.
시89:3,28-‘다윗’에 의해 여기서 왕권에 관련한 주님, 선으로부터 ‘선택된’이라 불리는 분, 진리로부터 ‘종’이라 불리는 분이 뜻해진다. ‘언약을 만들고 그와 맹세하는 것’=그분의 인간과 그분의 신성이 하나됨…‘나는 네 씨를 영원 까지 조차 건설할 것이다’=그분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는 영원함. ‘자비를 나는 그를 위하여 영원히 간직할 것이다’=그분으로부터의 신성한 선은 영원함. 이것들이 뜻인바, 다윗 대신 신성한 인간과 왕권에 관련한 주님으로 이해된다.
겔34:23-‘그들을 먹일 다윗, 그들 한가운데에서 군주로 있을 다윗’에 의해 신성한 진리에 관련한 주님이 뜻해진다. 이 진리는 그것의 섬김으로부터 ‘종’이라 불리운다.
예22:30-이 (지옥의 거짓)이 신성한 영적, 천적 진리가 있는 주님의 교회에서 지배하지 못할 것임이 ‘그의 씨 중 누구도 다윗의 보좌에 앉지 못할 것, 더 이상 유다에서 통치하지 못할 것’에 의미되어 있다.
삼상17:34-양떼에서 작은 놈을 물어가는 곰이나 사자를 처죽이는 힘이 다윗에게 주어진 이유는 ‘다윗’에 의해 신성한 진리에 관련한 주님이 표현되었기 때문, 이 진리를 수단으로 그분의 교회에 있는 이들이 가르쳐졌기 때문…여기서 ‘사자’=신성한 진리에 맞서는 지옥적인 거짓의 힘. 그리고 ‘곰’=자연에 있는 신성한 진리에 맞서는 거짓의 힘, ‘양떼의 작은 놈’=주님의 교회 속에 있는 이들. 이렇게 표현되어진바, 사자나 곰을 처죽이는 힘이 다윗에게 주어졌다는 것은 지옥으로부터 있는 악의 거짓들로부터 그분의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교회에서 그분 자신을 보호하는 주님의 힘이 의미되어 있다. 블레셋 족이었던 ‘골리앗’에 의해 선 없이 진리에 있는 이들, 그리고 ‘할례받지 않음’=육욕적인 육적 사랑에 있는 이들이 의미되어진다. 이로부터 골리앗을 이긴 다윗의 승리가 표현하는 것도 알 것이다.
이16:5-주님이 신성한 선으로부터 신성한 진리를 통하여 (천국과 교회에서) 통치할 것임이 ‘그는 다윗의 장막에서 진리에서 그 위에 앉을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지고 있다. ‘다윗’에 의해 왕권에 관련한 주님이 뜻해진다, 이는 신성한 진리이다. 그리고 ‘그의 장막’은 신성한 선이 의미된다.
이9:7-주님의 영적 왕국이 ‘다윗의 보좌’에 의해 의미된다.

단 (Dan)

창49:17-가장 수준 낮은 추론에 속한 것들, 또는 과학적 사실들이 야곱이 단에 관하여 예언했던 것에서 의미되고 있다.
창14:14-‘그는 단까지 추격했다’=깨끗해짐의 상태…’단까지’=가나안 토지의 가장 먼 경계에…단=가장 먼 경계들, 또는 가나안의 가장 바깥 경계들.
창30:6-‘그러므로 그녀는 그의 이름을 단이라 불렀다’=그것의 품질…이 품질은 이름 단 안에 있다, 그이유가 그는 ‘판단함’으로부터 그렇게 불리웠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 이름은 라헬이 했던 말, 즉 ‘하느님께서 나를 판단하셨다, 그리고 또한 내 음성을 들으셨다’에 의해 의미되는 것들, 즉 생활의 선과 신앙으로부터의 거룩한 것, 또한 최고 의미인 주님의 자비와 정의 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교회의 일반적 원리가 ‘단’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인정됨과 확인됨이라는 이 일반적 원리는 인간이 거듭나질 수 있기 전, 또는 교회가 되어갈 수 있기 전 첫 번째 사항이다. 인정되고 확인되지 않으면 신앙과 생활 속의 다른 모든 것들이 전혀 받아들여질 수 없다….확인과 인정은 거듭나아질 사람에게는 첫 번째 원리이다. 그러나 이것은 거듭나아 왔었던 인간에게는 마지막 째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단’은 거듭나지려는 이에게 첫째이나 ‘요셉’은 마지막 째이다. 그이유가 ‘요셉’은 영적 인간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듭나는 당사자와 더불어 요셉은 첫째이고 단은 마지막 째이다. 그이유가 거듭나려는 당사자는 그것이 그렇구나 하는 확인으로부터, 즉 신앙의 거룩한 것과 생활의 선으로부터 개시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하여 영적 인간, 즉 거듭난 인간은 영적 선 자체 안에 있는바 그에게 이것이 그러하구나 하는 확인은 마지막일 뿐이다.
창49장-‘단’ 여기서의 경우 진리를 확인함. 이 확인함에 관해 말해지는바, ‘그는 길 위에 있는 뱀, 작은 길 위에 있는 독사일 것이다’. 이는 감각적인 것들로부터 진리에 관하여 추론할 때를 뜻한다.
신33:22-열 두 지파에 관한 모세의 예언에서, ‘단에게 그는 말했다 단은 사자의 새끼이다, 그는 바산으로부터 뛰어나온다’. ‘사자’=교회의 진리…이로부터 ‘사자의 새끼’=진리의 첫 번째, 이는 인정과 확인이다. 이것이 ‘바산으로부터’인 이유는 이것이 자연(계)의 선으로부터 이기 때문이다.
예4:15-‘단으로부터’=확인되어질 진리.
예8:16-‘그의 말들의 콧김소리가 단으로부터 들려진다’=비확인으로부터 진리에 관하여 추리함.
겔27:19-‘단’=확인되어진 첫 번째 진리들.
암8:14-‘하느님이 살아 있다. 단아, 그리고 브엘세바의 길이 살아 있다’=그는 믿음과 그 교리 속의 모든 것들에 부정적인 가운데 있다. 그것=믿음의 모든 것들에 부정적인 이유는 단이 가나안의 마지막 경계, 그리고 브엘세바는 첫 번째, 또는 토지의 가장 안쪽 이였기 때문이다…그러므로 모든 것이 한 복합체 안에 있을 때, ‘단으로부터 브엘세바에 까지’라고 말해지는 것이다.
여19:40-‘단’=첫 경계, 또한 마지막 경계인 이유는 진리와 선을 확인함은 믿음과 선행이 인간과 더불어 시작할 때의 경우에서는 만사 중에서 첫째에 해당되기 때문, 또한 인간이 믿음 안에, 동시에 선행 안에 있는 경우 마지막 째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가나안의 토지가 유업으로 할당되어졌을 때 마지막 지분이 단에게 돌아갔던 것이다.
사18:1, 계7:5~8-나머지 지파들의 상속분 중에서 단 지파에게 돌아간 지분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지분은 그들의 경계를 넘어 있는 토지가 할당된 셈이 되었다. 그리하여 각 지파를 열거하는 계시록 7장에서 이 지파는 생략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진리와 선을 확인만 할 뿐 더 진전되는 것, 생활 속에 그것이 없는 이들은 주님의 왕국, 봉인된 이들 사이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창14:14-‘단’은 경계로서 언급되어진다….그리고 거기서 ‘단’은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19:47, 사18:29-단으로 불리운 도성은 그 당시 단의 후손들에 의해 실지로 건설되지 않았다. 그러나 관계적 측면으로 볼 때, 단은 가나안으로의 입구 역할일 경우 가나안의 첫째 경계가 되고, 출구 역할일 경우 마지막 경계가 된다. 이는 그 당시에도 그렇게 불리웠다.
창35:25-‘빌하의 아들들…단과 납달리’=내면의 것들에 뒤이어 있고 그것들을 섬기는 것들…최고 의미에서 ‘단’=정의와 자비; 내적 의미에서 믿음의 거룩한 것, 외적 의미에서 생활의 선.
창46:23-‘단의 아들 후심’=믿음의 거룩한 것, 그리고 생활의 선, 그리고 이것들에 속하는 교리적인 것들.
창49장-‘단’=진리 안에 있는 이들, 그러나 선 안에는 아직 있지 않은 이들. 그 이유가 ‘단’=생활의 선, 그러나 여기서는 진리로부터 생활의 어떤 선 안에 있는 이들, 그러나 선으로부터는 아직 아닌 이들: 그들과 더불은 선은 아직 깊숙이 저장된 것 같이 진리 안에 감추여 놓여 있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에게 진리에 애착함 을 주고, 그들로 진리에 따라 살도록 자극한다. 이런 부류의 인간들이 주님의 왕국 안에 있는데…그들은 사랑으로부터 행동 않고 오직 순종으로부터 이다…그들은 주님의 왕국 중에서 첫 번째 천국 안에 있다. 주님의 왕국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이 일반적으로 그의 열 두 아들에 의해 묘사되는 이스라엘의 예언적인 말을 하는 가운데서 위 부류의 인간들이 ‘단’에 의해 표현되어지고 있다. ‘단’에 의해 의미되어진 이들이 최말단 천국에 있다는 것…그 이유는 그들이 진리 안에는 있되 아직 선 안에는 있지 않아서 인데 이것이 마지막 지분이 단에게 돌아감에 의해 …그리고 그들의 유업은 가나안 토지의 맨 끝에 있었다는 것에 의해 표현되어져 있다…그러므로 ‘단’은 주님의 왕국의 경계 근처에 있는 이들을 표현했다: 그이유가 진리가 선과 합쳐지기 전일 경우 그것은 최말단에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만일 진리가 선으로부터 온전히 분리되어진다면 그것은 주님의 왕국 경계 근처가 아닌 그 밖에 있게 된다. 단의 상속분이 가나안의 토지 마지막, 또는 최말단이었다는 사실은 토지의 전체 크기를 두고 말씀에서 말할 때 ‘브엘 세바로부터 단까지’라고 언급되는 것으로부터 명백하다.
사18장-진리 안에 있되 아직 선 안에 있지 않은 이들의 품질이 그들이 거주하는 토지를 탐색한 단 후손에 의해서도 표현되어져 있다: 즉 그들은 미가의 집으로부터 레위인과, 에봇, 드라빔, 새긴 우상을 들고 갔다. 이런 사건들에 의해 진리 안에는 있되 선 안에는 아직 있지 않은 이들의 예배, 그리고 내적인 것들에 관심 없는 이들이 의미되고 있다.
예8:16,17-‘단’=위에 묘사된 것 같은 교회 내의 사람들, 그러므로해서 주님의 왕국 맨 가장자리에 있는 이들이듯, 또한 ‘단’에 의해 의미되는 또하나는 오류로부터 거짓들을 작당하고 퍼뜨리는 이들이다. 이런 인물들의 거짓들이 ‘말들(horses)’이다, 그들의 진리와 선에 대한 추론은 ‘뱀들’이라 불리고 있다.
겔27:19-‘단’과 ‘야완’=천적인 것들의 지식에 있는 이들.
출31:6-‘단 지파’=믿음으로부터의 진리와 선 안에 있는 이들.
계7장-‘단’이 지파를 열거함에서 에브라임과 함께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단은 지파들 중 마지막 번째이고 그 지파는 가나안의 토지 가장 먼 끝에서 거주했기 때문, 그래서 그 지파는 천적, 영적인 것들 만이 있게 될 새 천국과 새 교회 안에 있는 어떤 것도 의미할 수 없었기에 누락되었다. 그러므로 단 대신 ‘므낫세’가 있다.
* 단 지파에 관한 이스라엘의 예언적 발언에서 단은 교회의 최말단을 의미했다. 즉 진리와 선의 최말단에 있는 이들, 이것은 감각적 수준이라 말해지는데…즉 그들의 생각을 글자 의미 너머로 들어올리지 않는 이들이다.
예8:16-‘단’=최말단에 있는 진리. 교회 안에서 이 진리는 글자 의미 안에 포함되어 있다…이 의미에만 안주하는 이들은…여러 종류의 오류들 안으로 끌려들어갈런지 모르는데 이 구절에서 ‘단’에 의해 표현되어 있다.
사5:17-단 지파가 드보라와 바락이 적들과 싸우는 가운데에서 현존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말해진다, ‘단, 왜 그는 배(ships)들을 두려워하는가’. 이 표현을 수단으로 왜 그는 거짓들과 거짓된 것 속의 교리적인 것들을 몰아내지 않았는가?가 의미되고 있다.

데라 (Terah)

* ‘데라’는 그것의 조상인 데라로부터 명명된 나라였다. 이 나라를 수단으로 우상 숭배가 의미되어진다.
창11:27-‘이들은 데라의 출생들이다’=표현 교회에 내려와진 우상 숭배의 기원과 갈래들…여기서 홍수 후 셋째 교회가 취급되고 있다, 이 교회는 둘째 교회가 데라에서 우상 숭배 나라로 되어 갔을 때 그 뒤를 따랐다. 데라, 아브람, 나홀, 하란은 우상숭배자들이다…
창11:31-‘데라는 그의 아들 아브람, 하란의 아들 롯…그리고 사래를 데리고…갈대아의 우르로부터 가나안의 토지로 가기 위해 나아갔다’=우상 예배 안에 있던 그들이 그들로부터 표현 교회가 생겨나도록 하기 위해 천적이고 영적인 것들에 관해 훈육되어졌다는 것.
창11:32-‘그리고 데라의 날들은 205년이었다. 그리고 데라는 하란에서 죽었다’=우상 예배의 기간과 상태. 이 우상 숭배의 끝. 그리고 아브람을 통한 표현 교회의 시작.

데마 (Tema)

창25:15-‘데마’ 등등 (이스마엘의 아들)=영적 교회와 더불어 있는 모든 것들, 특히 이방인들과 더불어.
이21:14-‘데마의 토지의 거주민들’=단순한 선에 있는 이들, 마치 마음씨 고운 이방인들과 같다.
예25:23-‘데마’에 의해, ‘아라비아’에 의해서와 같이 영적 교회 속에 있는 이들이 의미된다.

데바 (Tebah)

창22:24-‘그녀는 데바, 가합, 다하스, 마아가를 낳았다’=(우상적인 예배와 선 안에 있는 이방인들의) 다양한 광신적 신앙들, 그리고 파생되는 예배들..

도갈마 (Togarmah)

창10:3-‘고멜의 아들들: 아스그나스, 리밧, 도갈마’=외적 예배를 가졌던 이들, 그러나 이 예배는 ‘고멜’ 나라에 존재했던 예배로부터 파생되었다. 아스그나스, 리밧, 도갈마는 외적 예배가 있었던 아주 많은 나라들이었는 바, 이 나라를 수단으로 아주 많은 교리물들, 의식들이 의미되었다. 이것은 고멜과 더불은 외적 예배로부터 파생되었다.
겔27:14-‘도갈마의 집’은 (천적인 것들로부터 구별되는) 영적인 것에 관한 의식(rite)들을 가졌다.
겔38:6-‘도갈마의 집’, 반대 의미에서 =악용된 교리물들.

독생자 (Only-begotten)

* 신성한 인간에 관련한 주님이 ‘독생자’라 불리우신다.
요1:18-‘독생자 아들’은 신성한 진리에 관련한 주님을 뜻한다.
* 시간 안에서 처녀 마리아를 통하여 하느님으로부터 탄생하신 아들이 하느님의 유일한 아들, 그리고 독생자이시다.
예6:26-‘독생자의 슬픔을 네게 만드는 것.’

두마 (Dumah)

창25:14-‘두마’(이스마엘 아들 중의 하나).

두발-가인 (Tubal-cain)

* 유발 참조
*(이 새로운 교회의) 자연적인 것이 ‘두발-가인’에 의해 묘사되었다
창4:22-‘씰라가 두발-가인을 낳았다. 그는 놋쇠와 쇠를 다루는 모든 기술공의 선생이었다; 그리고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다.’ ‘씰라’=이 새로운 교회의 자연적인 것들의 어머니; 선생인 두발-가인…자연적 선과 진리의 교리…; ‘두발-가인의 누이’=똑같은 교회, 또는 이 교회 밖 자연적 선과 진리의 교리.
* 왜 두발-가인은 ‘조상’이라 불리지 않고 선생이라 불리웠을까?

드보라 (Deborah)

사 5:7-‘나 드보라가 일어날 때까지, 내가 이스라엘에서 어머니로 일어날 때까지’…드보라와 바락의 예언적 노래는 교회 속의 진리가 뒤집힌 것, 그리고 그것의 회복을 취급하고 있다.

드보라 (Deborah) (리브가의 유모)

창35:8-‘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었다’=유전적 악이 몰아내졌다는 것…리브가의 유모로서의 ‘드보라’=유전적 악….여기서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어머니로부터 받고 유아기에 자양분이 된 것: 이것은 주님께서 맞서 싸우셨던 어머니로부터의 유전적 악이었다…이 악을 그분은 몰아내셨다.

디나 (Dinah)

창30:21-‘그리고 그녀의 이름을 디나라고 불렀다’=품질…선이 있는 신앙으로부터의 교회의 모든 것을 디나가 표현하고 의미한다. ‘디나’는 원어에서 판결을 뜻한다.
창34:1-‘디나는 밖으로 나갔다’=신앙 속의 모든 것에 대한 애착, 그리고 거기로부터의 교회. (그이유가) ‘디나’=모든 진리들에 대한 애착, 그리고 거기로부터의 교회이기 때문.
창34:5-‘야곱은 자기 딸 디나를 그가 더럽혔다는 것을 들었다’=합법적이지 않은 진리에 애착함과의 결합, 이것이 여기서 야곱에 의해 표현된 외적 교회로부터 있다…‘디나’=신앙의 모든 것들에 대한 애착, 거기로부터의 교회.
창34:25-‘디나의 형제’=이 교회의 선들과 진리들…‘디나’=진리에 애착함, 고로 교회.
창34:26-‘그들은 디나를 세겜의 집으로부터 데려갔다’=그들은 태고 교회의 잔류로부터 있었던 이들로부터 진리에 애착함을 가져갔다.

디달 (Tidal)

창14:1-‘고임왕 디달’, 등등=눈에 나타나는 아주 많은 종류의 선들과 진리들.

디라스 (Tiras)

* 고멜(gomer)을 보라.

디본 (Dibon)

예48:18-‘디본의 딸’=교회의 외적인 것, 그리고 이로부터 말씀의 외적 부분, 즉 말씀의 글자 의미.

라멕 (Lamech)

*이 이교들의 마지막 째가 라멕이라 불리우고 있는데 이때로부터 신앙에 관한 그 어떤 것도 잔존하지 않았다.
창4:19-24-…이후 선행으로부터의 모든 선이 멸해졌다는 것이 ‘라멕’에 관한 기록으로부터 명백해진다.
* ‘라멕’에 의해 황폐함, 또는 신앙이 있지 않다는 것이 의미되었는데, 이는 23,24절, 즉 ‘그는 자기의 부상 (wound)때문에 사람을 죽였고, 자기의 상처(hurt) 때문에 소년을 죽였다’로부터 명백하다. 거기서 ‘사람’에 의해 신앙이, ‘소년’, ‘어린 것’에 의해 선행이 의미되고 있다.
* 이런 것들로부터…명백하게 분명한 것은 ‘라멕’에 의해 황폐됨이 의미되어 있다는 것; 그이유가 그는 ‘나는 사람, 그리고 어린 것을 죽였다’, 게다가 ‘가인을 위해서는 일곱 배의 앙갚음이 있으나 라멕을 위해서는 칠십 칠 배일 것이다’고 말해지기 때문.
* 교회가 ‘가인’, 그리고 마지막으로 ‘라멕’이라 불리운 이들에 의해 소멸되어진 후…
* 아홉 번 째 교회가 ‘라멕’이라 불리었다.
* 다른 교리들로부터의 교회가 똑같은 이름에 의해 불리웠다는 것은 4장에서 ‘에녹’과 ‘라멕’이라 불린 이들과 5장의 ‘에녹’과 ‘라멕’이라 불린 이들은 다르다는 것에서 분명하다.
* ‘라멕’에 의해 의미되는 것은 앞장과 거의 같이 이 장에서도 황폐함이다….‘라멕’은 파괴인 것이다는 뜻이다.

라반 (Laban)

창24장에서-‘라반’=자연적 인간에 있는 선에 애착함 .
창24:29-‘그의 이름은 라반이였다’=(자연적 인간에 있는 선에 애착함의) 품질(quality).
창24:29-‘라반은 문에서 나와 샘 쪽으로 이 사람에게 달려갔다’=진리를 향한 선에 애착함으로부터의 마음. ‘라반’=선에 애착함.
창24:50-‘라반이 답했다’=그것은 주님 만으로부터 있었다는 것을 인정함. 형제로서의 라반은 자연적 인간에 있는 선에 애착함을 표현하고 있다. 자연적 인간에 있는 선에 애착함과 진리에 애착함은 형제, 자매 와 비슷하다.
창27:43-‘너는 내 형제 라반에게로, 하란으로 도망하라’=외적 또는 육체적 선 쪽으로. ‘라반’=자연적 인간에 있는 선에 애착함. 그러나 여기서의 ‘라반’, ‘하란’에 의한 적절한 의미는 뒤를 잇는 것으로부터 분명해지는데, 그것은 공동의 지주(common stock)로부터의 방계적 선(collateral good)이다는 것.
창30:36-‘그리고 야곱은 나머지 라반의 양떼를 먹였다’=남겨져 있었던 것으로부터 그는 결합되어질런지 모를 이런저런 선들과 진리들을 가져왔다.
창30:40-‘라반의 양떼에서’=라반에 의해 의미된 선에서. ‘라반’=선, 즉, 중간 선(middle good),
창30:40-‘그리고 그는 라반의 양떼와 섞이지 않게 두었다’=라반에 의해 의미된 선으로부터 절대적으로 분리함. 그이유가 신성의 선들과 진리들은 인간의 것으로부터의 어떤 것을 파생하는 이런 저런 선들과 진리들로부터 완전하게 분리되기 때문.
창30:42-‘그 다음(next) 교접하는 무리는 라반의 것이였다’=강제적인 것들은 남겨졌다는 것.
창31:1-‘그는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라반에 의해 의미된 선으로부터의 진리들, 그것들의 품질에 관련하여 보면 주님에 의해 자연 평면에서 획득한 선에 비교된다. ‘라반’=공동의 지주로부터의 방계적 선, 고로 순수한 선들과 진리들을 소개하는 일을 섬긴다. 여기서, 섬겼던 것. 그이유가 그것이 분리를 취급하기 때문.
창31:2-‘야곱은 라반의 얼굴을 보았다’=야곱에 의해 의미된 선이 주춤할 때, 이 선과 더불은 상태의 변화. ‘라반’=중간의 선.
창31:12-‘나는 라반이 당신에게 하는 모든 것을 보아왔었기 때문에’=라반에 의해 의미된 선의 자아, 이것은 그 자체로부터 (행동하는 것이) 있지 않다는 것. (그이유가) ‘라반’=중간의 선. (그리고) 이런 중간의 선에 있는 사회들은 자신스스로로부터, 또는 자아로부터 행동하는 일이 많지가 않다. 그들은 타인들에 의해 이끌려지도록 자신들을 내버려둔다, 그래서 천사들에 의해서는 선 쪽으로, 악령에 의해서는 악 쪽으로 이끌리고 만다. 또한 라반에 관련한 역사물로부터, 특별하게는 이 뒤를 잇는 것들로부터 빛을 발할 뿐이다.
창31:19-‘라반은 그의 양떼의 털을 깍으러 가버렸다’=사용(use)의 상태, 그리고 선의 목적의 상태, 이것이 ‘라반의 양떼’이다.
창31:20-‘야곱은 아람 사람 라반의 심정을 훔쳤다.’=선에 관련하여 라반에 의해 의미된 상태의 변화. ‘라반’=중간의 선, 이것이 지금 분리되고 있다. 이것이 분리되기 때문에, 지금 그가 ‘아람 사람’이라 불리워진다. 그이유는 ‘아람 사람 라반’=이전 같이 선 안에 신성한 선과 진리를 가지지 않은 선.
창31:23-‘(라반은) 그와 더불어 자기 형제들을 챙겼다’=그가 잃어버린 선들 대신 있는 선들. ‘그리고 그를 뒤쫒아 추격했다’=계속 결합해 있겠다는 열의.
창31:24-‘그리고 하느님이 밤에 꿈에서 아람 사람 라반에게 오셨다’=이 선이 그 자체로만 남아 있게 될 때 있는 희미한 지각. ‘라반’=중간의 선.
창31:24-‘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너는 야곱에게 선으로부터 악에 이르기까지 말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거기에 더 이상 결합은 없을 것이다는 것.
창31:25-‘그리고 라반은 야곱을 따라잡았다’=결합의 어떤 것.
창31:25-‘그리고 라반은 그의 형제들과 더불어 길르앗 산에 (천막을) 고정했다’=이 결합의 어떤 것에 있는 선의 상태. ‘라반’=야곱에 의해 의미된 선으로부터 분리된 선.
창31:26-‘라반이 야곱에게 말했다’=야곱에 의해 지금 표현되는 선과 라반에 의해 지금 표현되는 선이 교통되는 상태.
창31:55-‘라반은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주님의 신성의 자연 평면을 수단으로 이 선이 계발됨. ‘라반’=이방인들의 것 같은 선.
창31:55-‘그리고 라반은 갔다 그리고 자기 장소로 되돌아 갔다’=라반에 의한 표현은 끝났다.
창32:4-‘나는 라반에게 몸붙여 머물렀습니다’=그는 라반에 의해 의미된 선에 물들었다는 것. (그이유가) ‘라반’=중간의 선, 즉 진짜이지 않은 선, 그러나 이 선은 진짜의 진리들과 선들을 소개하는 일을 담당한다.

라아마 (Raamah)

* 천적인 것들을 숭배한 이들이 ‘라아마의 아들들’이다.
창10:7-‘구스의 아들들, 라아마…’ 이들은 수많은 나라들인데, 내적 예배가 없었다; 그러나 신앙에 관한 지식을 가졌다. 그들은 소유물에 종교를 두었다. 내적 의미에서 지식 자체를 의미한다. ‘라아마의 아들들’ 역시 비슷한 의미를 가지나 내적 의미에서, 그들=천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
겔27:22-‘스바와 라아마’=천적인 것들과 영적인 것에 관한 지식 안에 있는 이들.

라헬 (Rachel)

* 레아도 참조
창29:6-‘보라, 라헬 그의 딸…’=내면의 진리에 애착함.
창29:9-‘라헬이 양떼와 더불어 왔다’=교회 속과 교리 속에 있는 내면의 진리에 애착함.
창29:9-‘그녀는 여목자였다…’=내면의 진리에 애착함 은 말씀에 있는 것을 가르친다는 것…이것이 말씀으로부터인 이유는 라헬이 그녀의 양떼와 더불어 우물에 왔기 때문. 더구나 이것은 가르치는 내면의 진리에 애착함이다.
창29:10-‘야곱이 자기 어머니의 형제 라반의 딸 라헬을 보았을 때’=내면의 진리가 있었던 어떤 근원으로부터 이 진리에 애착함을 인정함.
창29:11-‘야곱이 라헬에게 키쓰했다’=내면의 진리들을 향하여 사랑함.
창29:12-‘야곱이 자기는 그녀의 아버지의 형제의 (아들)이다고 라헬에게 말했다’=(두 선들의) 친척 관계; 그리고 라헬, 그녀에게 이것이 알려졌다=내면의 진리에 애착함.
창29:12-‘그녀는 달려갔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에게 말했다’=내면의 진리들을 통하여 인정함…이것이 내면의 진리들을 통하여이다는 것은 라헬에 의해 내면의 진리에 애착함이 의미되기 때문.
창29:16-‘동생의 이름이 라헬이었다’=내면의 진리의 품질과 더불어 이 진리에 애착함.
창29:17-일반적 생각들이 개별적으로 예증될 경우, 그것들은 굳혀져 고정된다; 그이유가 그것들은 본질과 형식에 걸맞기 때문, 이 구절의 경우, ‘라헬은 아름다운 형태를 지녔고 바라보아도 아름다웠다.’ 이런 그녀를 수단으로 내면의 진리에 애착함들이 표현되어져 있다.
창29:18-‘야곱은 라헬을 사랑했다’=내적 진리를 향하여 선을 사랑함; (그이유가) ‘라헬’=내적 진리에 애착함; 여기서 자연 속의 선과 결합되어지려는 내면의 진리.
창29:18-‘그는 말했다, 나는 (당신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칠년을 봉사하리이다’=끊임없는 노력, 그다음 내면의 진리와 결합할런지 모를 거룩한 상태.
창29:19-‘라반이 말했다, 내가 그녀를 너에게 주는 것이 더 낫다…’=이 선과 더불어 내면의 진리를 통하여 있는 결합의 매체. ‘라헬’=내면의 진리.
창20:20-‘그는 그녀에 대한 사랑 때문에 …(칠년이) 며칠 같았다’=사랑의 상태.
창29:21-‘나에게 나의 여인을 주시오’=…이제 내면의 진리와 결합함…
창29:25-‘나는 라헬을 위하여 당신에게 봉사하지 않았읍니까?’=끊임없는 노력은 내면의 진리에 애착함을 위해 있어 왔다는 것.
창29:26-‘첫 출생에 앞서 동생을 주는 것은 (여기서 행해지지 않는다)’=내면의 진리에 애착함이 외면의 진리 보다 앞서는 상태는 없다는 것.
창29:28-‘그는 그에게 여인으로 그의 딸 라헬을 주었다’=내면의 진리에 애착함에 선의 결합이 그 당시 있었음.
창29:30-‘그는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했다’=외적 진리보다 내적 진리를 더 사랑함.
창29:31-‘라헬은 불임이었다’=내면의 진리들이 받아지지 아니했다.
창30:1-‘라헬은 자기가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내면의 진리가 아직까지는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 ‘라헬’=내면의 진리에 애착함, 또는 내면의 진리.
창30:1-‘라헬은 그녀의 언니를 향해 질투가 일었다’= 외면의 진리가 인정받고 있는데 내면의 진리는 인정받지 못해 분노함.
창30:1-‘그녀가 야곱에게 말했다, 나에게 아들들을 주시오’=그녀는 자연적 선의 진리로부터 내면의 진리들을 가지기를 원했다는 것.
창30:2-‘야곱의 성냄이 라헬을 향해 지펴졌다’=라헬에 의해 표현된 내면의 진리는 아직 신앙과 행동에서 자연의 선에 의해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
창30:3-‘그녀가 내 무릎 위에 아이를 낳을 것이다’=라헬로 표현되는 내면의 진리의 인정.
창30:6-‘라헬이 말했다, 하느님이 나를 판단하셨다, 그리고 또한 내 음성을 들으셨다’=공정과 자비; 신앙의 거룩함; 그리고 생활의 선.
창30:8-‘라헬이 말했다, 하느님의 씨름함들을 가지고 나는 내 언니와 씨름했고, 나는 이겼다’=자기 고유의 힘; 시험 안에서 사람은 극복한다; 그리고 자연적 인간에 의한 저항.
창30:14-‘라헬이 레아에게 말했다’=내면의 진리에 애착함의 지각, 그리고 그것을 갈망함.
창30:22-‘하느님께서 라헬을 기억하셨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녀에게 귀를 기울이셨다’=예견과 섭리.
창30:22-‘그리고 그녀의 자궁을 여셨다’=받고 인정하는 자질…진리로부터의 선들, 그리고 선으로부터의 진리들.
창30:23-‘하느님께서 내 불명예를 거두어들이셨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이름을 요셉이라 불렀고,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나에게 또 하나의 아들을 더하소서’=신성의 영적 측면에 관련한 주님; 영적 왕국, 또는 신앙으로부터의 선; 그리고 열매 맺고 번성함을 지닌 구원…그이유가 (위의 말들)=라헬은 더 이상 불임이 아니다는 것, ‘죽은 상태’도 아니다는 것이기 때문; 그 이유가 라헬에 의해 내면의 진리에 애착함, 또는 진리 측면에서의 내적 인간이 표현되기 때문; 그리고 내적 인간은 만일 외면의 인간이 선들과 진리들에 관련하여 상응하지 않으면 마치 죽은 듯 하여 있다.
창30:25-‘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내면의 진리를 통하여 영적인 것이 인정됨.
창31:4-‘야곱은…라헬과 레아를 그의 양떼가 있는 들판으로 불렀다’=자연의 선에 의해 진리에 애착함 들의 접합…’라헬’=내면의 진리에 애착함… ‘양떼’=지금 획득한 선들과 진리들 자체, 여기에 라헬과 레아로 의미된 진리에 애착함들이 응용되었다.
창31:14-‘라헬과 레아가 대답했다…’=진리에 애착함 들의 상호성…’라헬’=내면의 진리에 애착함 …여기서 취급된 주제는 어떻게 자연의 선이 라헬과 레아로 의미된 진리에 애착함 들을 자체에 접합하느냐인바, 진리에 대한 이 애착들이 선에 상호 응용하고 있다.
창31:31-‘당신이 무력으로 당신의 딸들을 데려가지 않도록…’=이 선이 진리에 애착함들에 관련하여 상해 받게 하리라는 것…그이유가 ‘딸’, 여기서, 레아와 라헬이고 진리에 애착함이 의미된다.
창33:2-‘그는 …라헬과 요셉을 맨 뒤쪽에 두었다’=…아직도 훨씬 내면인 내면의 진리에 애착함.
창35:16-‘라헬이 아이를 낳았는데, 산고가 심했다…’=내면의 진리의 시험들.
창35:19-‘라헬은 죽었다, 그리고 에브랏으로 가는 길에서 매장되었다’=내면의 진리에 대한 이전의 애착은 종료됨…그리고 그것의 새로운 상태가 소생함.
창35:24-‘라헬의 아들들: 요셉과 베냐민’=내면의 선들과 진리들; (그 이유가) ‘라헬’=내면의 진리에 애착함; 고로 라헬의 아들들=내면의 선들과 진리들.
창46:19-‘야곱의 아내 라헬의 아들들’=천적 애착으로부터 있는 것들.
창46:25-‘라반이 그의 딸 라헬에게 주었던…’=내적 선에 애착함으로부터.
예31:15-‘그녀의 아들들을 위해 우는 라헬, 어떤 것이(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아들들로 해서 위로받기를 거절한다.’…여기서의 ‘라헬’은 영적 진리가 남아있지 않은 영적 (왕국의) 교회의 내적 측면을 표현했다.

레아 (Leah)

* 야곱의 두 아내 중에서, 레아는 외적 교회를, 라헬은 내적 교회를 표현했다…
* 외적 (유대 교회)가 레아에 의해 표현되었다. 야곱, 또는 그의 후손들은 외적인 것들 밖에 원했던 것이 더 없었는바,…레아가 라헬에 앞서 야곱에게 주어졌다. 약한 시력을 지닌 레아에 의해 유대 교회가 표현되어졌다; 라헬에 의해서는 이방인들의 새 교회가 표현되어졌다.
창29:16-‘언니의 이름은 레아였다’=외적 진리의 품질과 더불은 그 진리에 애착함.
창29:17-‘레아의 눈들은 약했다’=외적 진리의 애착 측면에서 보면 그 애착이 이러한바…
창29:23-‘그리고 그는 자기 딸 레아를 취해서 그녀를 야곱에게 데려갔다, 그리고 야곱은 그녀에게 갔다’=결합이 아직까지는 외적 진리에 애착함에 만 있었다는 것.
창29:30-‘그는 레아보다 라헬을 사랑했다’=외적 진리보다 내적 진리를 사랑함…‘레아’=외적 진리.
창29:31-‘레아는 미움받았다’=외적 진리에 애착함이 예뻐함을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신성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창29:21-‘레아가 임신했고, 아들을 낳았다’=외적 인 것으로부터 내적인 것으로 까지 영적 임신과 출생.
창30:9-‘레아는 자기의 출산이 멈추는 것을 알았다’= 다른 외적 진리들은 인정되지 않았다. ‘레아’=외적 진리.
창30:14-‘그는 그의 어머니 레아에게 그것들(합환채)를 가져왔다’=외적 진리에 애착함에 응용함.
창31:4-‘레아’=외적 진리에 애착함.
창33:1-‘그는 자기 자식들을 나누고…레아에게…라헬에게…’=외적 진리들을 각기 고유의 애착 아래 배치함. ‘레아’=외적 진리에 애착함.
출34:1-레아가 야곱에게 낳아준 그녀의 딸‘=외적인 것들 안에 있는 (믿음 속의 모든 것들, 이로부터 교회 속의 모든 것들에 대한 애착); (그이유가) ’레아‘=외적 진리에 애착함이기 때문.
창35:23-‘레아의 아들들’=각기 순서대로 있는 외적 신성한 선들과 진리들. ‘레아’=외적 진리에 애착함.
창46:15-‘이들은 레아가 밧단아람에서 야곱에게 낳아준 그녀의 아들들이다’=이(교리들)은 영적 애착으로부터 선과 진리에 애착함을 통하여 자연 안에 있었다는 것.

레위 (Levi)

* Livite도 보라.
* ‘레위’=선행(charity). 그리고 그러므로 레위 지파가 성직 직분을 받았다, 그리고 ‘양떼의 목자’를 표현했다.
민3:40-46, 8:14-20-(이로부터) 레위 지파는 내적 의미에서 =사랑인바 모든 첫 출생 대신 받아졌다, 그리고 성직자로 만들었다
말2:4,5-‘레위’, 최고 의미에서=주님, 그리고 이로부터 사랑과 선행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리고 그러므로 ‘레위인과 더불은 생명들의 언약과 평화의 언약’=사랑과 선행에 있는 것.
말3:3-영적 사랑에 있는 이들이 ‘레위의 아들들’이라 불린다.
말2:4-9-최고 의미에서 주님은 영적 사랑에 있는 이들을 향한 그분의 신성한 사랑으로부터 ‘레위인’이다. 그러므로 레위 지파에서 성직자를 만들었다.
창29:34-‘그녀는 그의 이름을 레위라 불렀다’=그것의 품질…이 품질은 ‘레위’에 의해 의미된 품질, 그리고 또한 레위로부터 명명된 지파를 수단으로 의미된 품질이다. 그리고 이것이 교회의 이 세 번째의 보편적 품질이다. 또한 인간이 거듭나질 때 맞이하는 세 번째 보편적 품질(단계)이다…그리고 이것은 선행이다.
창34:25-‘시므온과 레위’=신앙과 사랑…‘레위’=영적인 사랑, 또는 선행. 진짜 의미에서 이런 것들이 시므온과 레위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그리고 레위 지파와 시므온 지파에 의해서도 의미된다. 그러나 반대 의미에서 거짓과 악…유대 국가에 비교하여진다…시므온과 레위가 하몰과 세겜, 성읍 주민을 죽인 구절에서 반대 의미가 표현되고 있다. 이 죽인 사건은 (유대 국가에서) 신앙의 진리와 선행의 선이 거짓과 악이 되어갔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창46:11-‘레위의 아들들, 게르손과 그핫과 므라리’=영적 사랑, 그리고 일반적 측면에서의 그것들의 교리물들.
창49:5-‘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이다’=의지에 있는 신앙, 그리고 선행. 여기서는 반대적인 것, 그이유는 선행으로부터 분리된 신앙이기 때문.
출2:1-‘레위의 집의 사람에게 (장가를) 갔다’=선으로부터의 진리의 근원…‘레위’는 선을 표현한다. 최고 의미에서 ‘레위’는 신성한 사랑을 표현한다. 그리고 내적 의미에서 영적 사랑, 그리고 그가 사랑을 표현하는바, 그는 선을 표현한다. 그이유가 모든 선은 사랑으로부터 있기 때문.
출2:1-‘그리고 레위의 딸을 데려왔다’=선과 결합함.
출6:19-‘이들은 그들의 출생들에 따른 레위의 가족들이다’=이런 것들은 선행으로부터의 선들과 진리들이다.
말3장-‘레위의 아들들’=영적 (왕국의) 교회로부터 있는 이들. 그이유가 ‘레위’는 선행, 또는 영적 선을 의미하기 때문.
출32:26-‘레위의 아들들’, 이들이 모세에게 모여들었다=선으로부터 진리들에 있는 이들.
계7:7-‘레위 지파로부터 12000명이 날인되어졌다’=주님의 새 천국과 새 교회로부터 있는 이들과 더불은 총명의 선으로부터의 진리에 애착함. ‘레위’에 의해 최고 의미에서 사랑과 자비가 의미되어진다. 영적 의미에서 행동에 있는 선행, 이는 생활의 선이다. 그리고 자연적 의미에서 연합과 결합. 그이유가 그는 ‘둘러붙는 것’으로부터 그렇게 불리웠기 때문, 이를 수단으로 사랑을 통하여 결합함이 의미되어진다. 그러나 여기서, ‘레위’에 의해 사랑 또는 진리에 애착함, 파생되는 총명이 의미된다. 그가 시므온의 뒤를 잇고 이 시리즈에서 중간 것에 해당된다. 레위가 이런 것을 표현했는바, 이 지파가 성직자를 만들었다. 레위 지파=진리로부터의 사랑(the love of truth), 이는 참 사랑, 이로부터 교회는 교회이고, 총명이 파생된다.
민17:1-11-‘레위의 아들들을 깨끗하게 하는 것’=진리에 애착함에 있는 이들을 깨끗하게 하는 것. 이 애착은 총명으로부터 꽃피는바, 아론의 이름이 씌어진 레위의 막대기가 아몬드와 더불어 꽃피웠다.
신10:8, 21:5-레위의 아들들은 신성한 예배 위에 놓였고, 모든 신성한 예배는 영적 선으로부터, 그리고 이로부터의 진리들로부터 거행되기에, 말해진다. ‘여호와께서는 그분을 섬기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도록 그들을 뽑으셨다.
말2장-‘레위’=이웃을 향한 선행의 선에 있는 모든 사람. 그리고 최고 의미에서 주님 자신, 그 이유는 이 선이 그분으로부터 있기 때문, 여기서는 주님 자신.
민35장, 여21장-선행의 선은 교회의 모든 것들에 있어야만 하는바…그리고 선과 진리에 애착함 자체가 이해함을 주고, 모든 것을 훈육하기 때문에, 레위 지파가 성직자를 만들었고, 뿐아니라 레위 지파에 주어진 상속분이 없었다.
신21:5-‘레위의 아들들’=선과 진리에 애착함, 이것이 선행(charity)이다.
말3장-‘레위의 아들들’=선행의 선, 그리고 이로부터 신앙의 선에 있는 모든 이들.
신33:8-12-‘레위’에 의해 영적 진리에 애착함이 뜻해진다.
말2장-‘레위’, 최고 의미에서,=사랑과 자비 측면에서의 주님. 여기서 ‘레위’, 최고 의미에서 신성한 인간에 관련한 주님이 뜻해진다, 그리고 그러므로 ‘레위에 대한 언약’에 의해 사랑과 선행을 통하여 주님과 결합함이 뜻해진다.
신33장-‘레위의 아들들’=영적 선의 진리들에 있는 이들.
슥12:13-‘레위’=선행의 선.

레위 사람 (Livite)

* 레위도 보라
출4:14-‘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않느냐?’=선과 진리에 관한 교리…아론이 ‘레위 사람’이라 불린다. 그이유는 ‘레위 사람’에 의해 교회의 선과 진리에 관한 교리가 의미되기 때문. 이 교리가 성직 직무를 섬기고 실행한다.
민3:12-끝절, 8:16-18-레위 사람이 첫 출생을 대신하여 받아진 이유는 레위에 의해 신앙으로부터의 선, 또는 선행을 표현했기 때문. 신앙으로부터의 선은 주님에게서 기인 된 것이다.
겔44:15-‘성직자 레위 사람’=선으로부터 진리 안에 있는 이들.
민3장-자연적 선 안에 있는 이들의 구원의 일이 레위 사람의 성직 직무에 의해 표현되어져 있다…그러므로 레위 사람에 관하여 그들은 ‘아론에게 주어졌다’고 말해지고 있다.
민8장 11-21-레위 사람은 선을 섬기는 진리들을 표현 했다. 그리고 아론은 그들이 섬긴 선을 표현했다. 그러므로 레위 사람은 ‘심하게 움직임, agitated이었다, 즉 ’생명을 줌, vivified’이었다. 그러므로 또한 그들은 ‘순수해짐’이라 말해진다.
예33:18,21,22-‘레위 사람들’=(사랑의 선으로부터와 선행의 선으로부터, 그리고 신앙의 진리로부터) 예배 안에 있는 이들…‘레위 사람들, 성직자들, 내 성직자들’=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의 선과 여기서 파생된 예배 안에 있는 이들…고로 ‘나는 나의 성직자, 레위 사람을 번성하게 할 것이다’=주님과 결합을 가진 이들과 더불어 신성의 선이 열매 맺음. 그밖의 구절에서, ‘성직자, 레위 사람’에 의해 사랑의 선과 선행의 선 안에 있는 이들, 추상적 의미에서 이 선 안에 있는 이들이 의미된다.
눅10:32-이 비유에서는 반대적 의미에서 ‘레위인’이 의미되고 있다…‘레위인’=그때 당시 예루살렘의 모습이었던 것, 즉 이웃을 향한 사랑이 없는 이들.

롯 (Lot)

창11:27-‘이것들은 데라의 태생들이다; 데라는 하란을…낳았다; 그리고 하란은 롯을 낳았다’=우상 숭배의 근원과 갈래들, 이로부터 표현 교회가 있게 되었다…롯으로부터 두 우상 숭배 국가가 있었다.
창12:4-‘그리고 롯은 그와 더불어 갔다’=감각적인 것. ‘롯’에 의해 그분의 감각적이고 육체적인 인간에 관련한 그분이 표현되어졌다; 이는 롯이 표현하는 아래 사항들로부터도 분명해질 것이다…즉 그는 아브람과 분리되었다는 것, 그는 천사의 도움으로 구조되었다는 것. 그 후 롯이 분가했을 때, 그는 또 다른 표현성을 입었다…주님의 감각적, 육체적 그 자체가 롯에 의해 표현되어졌다. 또는 그분의 감각적, 육적 인간이 표현되었다. 이것은 그분의 어린 시절의 상태 안에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그분이 신성과 하나가 되셨을 때 신성으로 만들지 않았다.
창12:5-‘그리고 그의 형제의 아들, 롯’=감각적 진리, 고로 주님이 어린아이이셨을 때 그분에게 은근히 심어졌었던 첫 번째의 것. ‘롯’=감각적인 것; 그리고 ‘아들’=진리.
창13장-이 장은 주님과 더불은 외적 인간이 그분의 내적 인간과 결합되어감을 취급한다. 외적 인간은 그분의 인간 실체이다…이것이 여기서 롯에 의해 표현되어졌다.
창13:1-‘그와 더불어 롯’=감각적인 것…
창13:5-‘그리고 롯 역시 아브람과 함께 가고 있었는데, 양떼와 목축, 그리고 천막들을 가졌다’=주님에게 있는 외적 인간, 그리고 외적 인간과 더불어 풍부한 것들. ‘롯’=감각적 인간; 또는 외적 인간.
창13:7-‘아브람의 목부와 롯의 목부 사이에 다툼이 있었다’=내적 인간과 외적 인간은 일치하지 않았다는 것.
창13:7-‘롯의 목부’=예배에 있는 감각적인 것들, 그리고 외적 인간 속에 있는 것들.
창13:8-‘아브람이 롯에게 말했다’=고로 내적 인간이 외적 인간에게 말했다…‘롯’=분리되어져야 하는 외적 인간…외적 인간 안에는 일치하는 것도 있고, 불일치하는 것도 있다. 이 구절의 경우 후자가 ‘롯’이다.
창13:10-‘롯이 그의 눈을 들었다’=외적 인간이 내적인 것에 의해 계몽되어졌다…외적 인간은 내적인 것과 결합할 때 자기의 품질을 지각한다…즉 내적인 것으로 인해 눈이 떠진다는 말이다. 그 당시 신성한 시력(vision) 안에 있었다…주님이 어린 시절 동안 신성한 시각(sight) 안에서 외적 인간에 관련한 많은 경험을 지나오셨을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그분 만이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결합했기 때문이다.
창13:11-‘롯은 자신을 위해 요르단의 평지를 선택했다’=이와 같은 것이 외적 인간이었다.
창13:11-‘그리고 롯은 동쪽으로부터 여행했다’=천적인 사랑으로부터 물러나는 외적 인간과 더불은 것들.
창13:12-‘롯은 평야의 성읍들에 거주했다’=외적 인간은 과학적 지식 안에 있었다는 것.
창13:14-‘롯이 그로부터 분리된 후’=외적 인간의 탐욕들이 제거되었을 때, 그것들에는 방해물이 없었다.
창14:12-‘그들은 아브람 형제의 아들, 롯과 그의 소유물을 취하고 끌고 갔다’=그 자체로는 선들과 진리가 아닌 것, 즉 외관상의 선들과 진리들이 외적 인간과 그 인간에 속한 모든 것들의 소유이었다는 것…‘롯’=주님과 더불은 감각적 또는 외적 인간…그리고 사실상 여기서는 외관상의 선들과 진리들에 관련한 외적 인간. 이것이 ‘롯의 소유물’이다.
창14:14-‘그리고 아브람은 자기 형제가 포로가 되었음을 들었다’=내면의 인간이 외적 인간의 상태가 어떤지 지각했다는 것…‘롯’=외적 인간; 그리고 그가 ‘포로됨’=…외관상의 선들과 진리들이 그것의 소유를 취했다는 것.
창14:16-‘그는 자기 형제 롯과 그의 소유물을 되돌려 놓았다’=(그분은) 외적 인간, 그리고 그것에 속하는 모든 것들을 (그것들에 적절한 상태로 되돌려 놓으셨다는 것).
창19장-‘롯’에 의해 영적 왕국의 교회, 즉 선행으로부터의 선 안에 있으나 외적 예배 안에 있는 교회, 그리고 이 교회가 어떻게 축소되어가는지가 묘사되는데, 다음과 같다. 교회의 첫 번째 상태, 그들이 선행의 선 안에 있고 주님을 인정하는 상태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분에 의해 선 안에서 확증되고 있다 (1-3절). 그리고 구원되어진다 (12절). 두 번째 상태, 그들과 더불어 악이 선들에 맞서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에 의해 악들로부터 강력하게 물러나 있고 선들 안에서 보존된다 (14-16절). 그들의 약함이 묘사된다 (17절). 세 번째 상태, 그들은 더 이상 선을 애착함으로부터 생각지 않고 행동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진리에 애착함으로부터이다(18-20절). 그리고 그들은 구원되어진다 (23절). 네 번째 상태, 롯의 아내인 진리에 애착함이 멸해지는데, 소금 조각상(기둥)을 만들었다 (26절). 다섯째 상태, 불순한 선, 거짓으로부터의 선이 뒤를 잇는데, 이는 산의 동굴에 있는 롯이다 (30절). 여섯째 상태, 이 선 까지도 간음질되고 거짓화 되었다 (31-33절). 마찬가지로 진리 역시 그렇게 되었다 (34,35절). 이로부터 교회로 착각하게 하는 어떤 것이 임신되고 출생되었는데, 이것 속의 선이 ‘모압’, 진리는 ‘암몬이라 불리워진다.
창19:1-‘롯이 소돔의 문에 앉아 있었다’=선행의 선 안에 있기는 하나 외적 예배에 있는 이들; 그는 여기서 ‘롯’인데, 그는 악한 자 사이에 있었다, 그러나 그들과는 분리된 상태에 있었는바, 이것이 ‘소돔의 문에 앉은’으로 묘사되었다.
창19:1-‘그리고 롯은 보았다’=외적 예배에 있으나 선행의 선 안에도 있는 이들의 양심.
창19:1-‘그리고 그는 그들을 맞기 위하여 일어났다’=인정함, 그리고 또한 선행에 대한 애착; 이는 그들이 롯에게 왔을 때, 롯은 즉시 그들이 천사들이였음을 인정했다는 사실로부터 분명해질 것이다…똑같은 단어가 선행에 대한 애착이다는 것은…롯을 수단으로 선행의 선 안에 있는 이들이 표현되어졌다는 사실로 미루어, 더욱이 어쩌면 선행 자체의 선이 그들을 집으로 초대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명백할 것이다.
창19:2-‘그리고 그는 말했다, 보라, 간구하옵기는 내 주들이시여’=주님의 신성한 인간과 진행되고 있는 거룩함을 내면으로 인정하고 고백함
창19:5-‘그들이 롯에게 외쳤다’=선에 맞서는 성나 있는 악으로부터의 거짓.
창19:6-‘롯은 문에서 그들에게 밖으로 나갔다’=신중하게 그 자체 대처했다는 것.
창19:10-‘그들은 롯을 자신들에게 집 안으로 이끌어 들였다’=주님은 선행의 선 안에 있는 이들을 보호하신다는 것.
창19:14-‘롯이 나갔다’=선행의 선 안에 있는 이들, 또한 선행 자체의 선 안에 있는 이들.
창19:16-‘그리고 그는 지체했다’=악의 본성으로부터 나오는 강한 반감. 그 이유가 인간 안에 있는 악은 주님으로부터 있는 선에 맞서 계속적으로 반작용하기 때문…그리고 롯이 지금 표현하는 교회인의 상태에서는 이전 상태 때보다 더욱 더 반작용한다. 이 상태란 그가 선으로부터가 아닌 진리로부터 생각하고 행동하기 시작하는 상태이다; 고로 선으로부터서는 어떤 거리 간격이 생긴 것이다.
창19:16-‘사람은 롯의 손을, 그의 아내의 손을, 그의 두 딸의 손을 붙잡았다’=주님은 악들로부터 강력히 물러나 있게 하신다는 것, 그리고 롯, 그의 아내, 그의 딸들에 의해 의미된 선들과 진리들을 강화시켜주신다는 것…’롯’=선행의 선.
창19:18-‘롯이 그들에게 말했다, 내 주들이시여 그렇게 못할 것 같습니다’=할 수 없다는 연약함.
창19:19-‘나는 산으로 피신할 수 없읍니다’=그는 선행의 선을 가질 수 있을지 의심함; 즉 이 선으로부터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을지 의심함.
창19:23-‘롯은 소알에 왔다’=진리에 애착함 안에 있는 이들은 구원된다는 것…신앙 안에 있는 이들, 그 신앙 안에 선이 있다면 구원되어진다는 것; 즉 선으로부터 애착된 선을 위하여 신앙의 진리에 애착한 이들은 구원된다는 것.
창19:26-‘그리고 그의 아내는 자기 뒤를 쳐다보았다’=진리가 그 자체를 선으로부터 돌려 교리적인 것들을 쳐다보았다는 것,
창19:29-‘그분은 뒤엎는 한가운데로부터 롯을 내보셨다’=주님은 선 안에 있는 이들을 구원하신다, 그리고 선이 있는 진리에 있는 이들도, 그것에 딸린 모든 것도 구원하신다.
창19:30-‘롯이 소알로부터 나갔다’=그들이 더 이상 진리에 애착함 안에 있지 않을 때. 여기서는 지금 롯에 의해 표현된 교회의 다섯 번째 교회의 상태가 묘사되었다; 이는 진리에 애착함도 더 이상 없고, 어떤 불순한 선, 또는 거짓의 선, 그 자체가 주입되고 있다.
창19:30-‘그리고 그는 산에 거주했다’=그들이 그 당시 어떤 선에 자신들을 의지했다는 것.

루딤 (Ludim)

창10:13-‘미스라임이 루딤을 낳았다’=수많은 나라들, 이들에 의해 수많은 종류의 의식들이 의미되어진다…이것들은 단지 과학적인 것에 불과하다.

룯 (Lud)

창10:22-‘셈의 아들들…룯’ 등등=지혜에 관련되는 것들…’룯’ 등등은 수많은 나라들이었다, 이것들에 의해 지혜속의 것들이 의미된다…’룯’에 의해서는 진리에 대한 지식.

르바임 (Rephaim)

이26:14-‘르바임’=자아 사랑으로 부풀어 오른 이들.
신3:11-‘르바임’=타인 위에서 자아 사랑에 빠져있는 이들, 이로부터 극도로 자연적인 이들, 그리고 자신은 타인 보다 월등 빼어나다는 것을 설득함으로부터 갖가지 거짓 속에 파묻친 이들.
이14:9-‘지옥이 휘저은 르바임’=거짓으로부터 끔찍하게 설득해대는 이들.

르신 (Rezin)

이7:4-‘시리아의 왕 르신’=악에 대한 지식들 (=악용된 합리성.)

르우 (Reu)

창11:18-‘그가 조상이 되어 명명된 나라들, 이것에 의해 아주 더 외적인 예배가 의미되었다.

르우마 (Rumah)

창22:24-‘그의 첩, 그리고 그녀의 이름은 르우마였다’=우상 예배 안에, 그리고 선 안에 있었던 이방인들.

르우벤 (Reuben)
르우벤 지파 (Reubenites)

* ‘르우벤’은 ‘여호와께서 내 비참한 신세를 보셨다’를 뜻한다.
* ‘르우벤’=신앙.
* ‘르우벤’, ‘보는 것’으로부터 그렇게 부른 것인바,=신앙.
* ‘르우벤’, 야곱의 첫 출생인바,=신앙, 그리고 ‘힘(strength)의 시작’이라 불리워진다.
역상5:1-르우벤은 자기 아버지의 침상을 오염시켰다, 그리고 그러므로…장자 권리가 요셉에게 주어졌다.
창29:32-‘그녀는 그의 이름을 르우벤이라 불렀다’=그것의 품질, (이는 최고 의미에서 예견, foresight, 내적 의미에서 신앙, 내면 의미에서 이해함, 외적 의미에서 봄, sight. 여기서는 주님으로부터의 신앙.
창30:14-‘르우벤은 밀 수확의 날에 나갔다’=믿음이 사랑과 선행에 주목함. 그이유가 ‘르우벤’=거듭남에서 첫 번 째인 신앙이기 때문..
창35:22-‘르우벤이 갔다, 그리고 빌하와 누웠다’=분리된 신앙을 통하여 선을 모독함…‘르우벤’=교리에서 그리고 이해함에서 있는 신앙, 이것이 교회의 첫 번째 이다. 여기서의 경우, 이 신앙이 선행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창35:23-‘야곱의 첫 출생, 르우벤’=신앙의 선…‘르우벤’=신앙의 품질. 그이유가 ‘르우벤’, 진짜 의미에서 =신앙의 진리이기 때문, 그러나 신앙의 진리가 선을 만든 후, 르우벤=신앙의 선,
계7:5-‘르우벤’=영적 선, 이는 신앙의 선과 같고, 두 번째 천국에 있는 선과 같다.
사5:16-‘르우벤 부류는 심정의 큰 규례이었다’…여기서 ‘르우벤’=신앙
창37:21-‘르우벤이 들었다’=일반적으로 교회의 신앙을 고백함. 그이유가 ‘르우벤’=이해함에 있는 신앙, 또는 교리에 있는 신앙, 이는 거듭남의 첫 번째이다. 복합체에서, 교리 속의 진리, 이를 통하여 우리는 생활의 선에 도달 할 수 있다.
창42:22-‘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했다, 말하기를’=교리와 이해함에 있는 신앙으로부터 지각함.
창42:27-‘르우벤이 그의 아버지에게 말했다’=이해함에서 신앙으로부터 있는 것들이 진리의 선을 수단으로 통각했다.
창46:9-‘르우벤의 아들들’=일반적으로 신앙의 교리물들.
창48:5-‘르우벤과 시므온 같이 그들은 나의 것이다’=진리와 진리로부터의 선 같이. ‘르우벤’=이해함에서의 신앙, 그리고 교리 속의 진리, 이를 통하여 우리는 생활의 선에 도달할 수 있다. 고로 일반적으로 지성으로부터 있는 진리.
창49장-선행으로부터 분리된 신앙이 취급된다, 이는 혹독하게 거절된다. 이것이 르우벤, 시므온, 레위이다.
창49:3-‘르우벤, 나의 첫 출생’=신앙, 이는 외견적으로는 첫째 자리에 있다. 그이유가 ‘르우벤’=이해함에 있는 신앙. 그리고 일반적으로 교회의 신앙으로부터의 고백.
출6장-신앙에 관련한 주님의 영적 왕국을 기술하고 있다…르우벤, 시므온,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은 신앙으로부터 있는 것들을 표현한다.
계7:5-‘르우벤 지파로부터 12000명이 날인되어졌다’=새 천국과 새 교회에 있는 이들과 더불은 천적 사랑으로부터의 지혜.
창49:3,4-이것이 르우벤에 의해 의미되었는바, 장자권이 그로부터 거두어지고, 요셉과 그의 아들에게 주어졌다.

르우엘 (Reuel)

출2장-성직자인 ‘르우엘’=단순한 선에 있는 이들이 있는 이 교회의 선.

리밧 (Rephath)

* 아스그나스를 참조

리브가 (Rebekah)

창22:23-‘브두엘이 리브가를 낳았다’=선으로부터 있는 진리에 애착함.
창24:15-‘리브가가 나왔다’=교리적인 것들로부터 있는 진리에 애착함 ; 그 이유가 리브가는 합리성의 신성한 선과 결합되어질 신성으로부터의 진리를 표현하기 때문; 그러나 여기서는 그녀가 약혼되기 전이어서, 그녀는 교리물들로부터 있는 진리에 애착함의 표현성을 입고 있다; 이러므로 진리이다…리브가는 합리성 안에서 그녀의 남편과 더불어 아내로서 결합되어지는 것을 표현하는바, 이것은 신성한 진리이다.
창24:59-‘그들은 그들의 누이 리브가를 떠나보냈다’=신성으로부터 있는 진리에 애착함으로부터의 분리.
창24:61-‘리브가는 일어났다’=승강됨, 그 결과 진리에 애착함과 분리됨.
창24:64-‘리브가는 자기 눈을 들었다 그리고 이삭을 보았다’=진리에 애착함의 호혜적인 의향.
창25:20-‘그가 리브가를 받아들임에서’=신성한 진리의 결합.
창25:21-‘그의 여인은 임신못했다’=아직까지는 신성한 자연적 측면은 없다; (그이유가) ‘여인’(리브가)=합리성의 선과 결합한 신성한 진리.
창25:21-‘리브가 그의 여인이 임신했다’=어머니로서의 신성한 진리로부터 (신성한 자연성이 근원됨); 그이유가 ‘리브가’=합리성 속의 신성한 진리.
창25:28-‘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다’=신성한 합리성 속의 신성한 진리는 진리로부터의 교리를 사랑했다.
창26:7-‘그는 내 여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 곳의 사람들이 리브가 때문에 나를 죽일지 모르기 때문’=신성한 진리는 그 자체 열려질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이 경우에서 신성한 선은 받아질 수 없었기 때문…‘리브가’=신성한 진리 측면에서의 주님의 신성한 합리성.
창26:8-‘이삭이 그의 여인 리브가와 웃고 있었다’=신성한 선이 신성한 진리 안에서 표출되었다…‘리브가’=주님의 합리성 속의 신성한 진리.
창26:35-‘이삭과 리브가’=신성한 선과 신성한 진리에 관련된 신성한 합리성.
창27:5-‘리브가는 이삭이 에서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진리에 애착함, 그리고 그것으로부터의 생활. ‘리브가’=거기서 신성한 선과 결합된 신성한 진리 측면에서의 주님의 신성한 합리성; 고로 진리에 대한 참 애착.
창27:6-‘리브가는 그의 아들 야곱에게 말했다’=자연적 진리에 관하여 주님께서 신성한 진리로부터 지각함.
창27:8-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리브가’인 바,=신성한 합리성 속의 신성한 진리.
창27:11-‘야곱이 그의 어머니 리브가에게 말했다’=자연적 진리에 관하여 주님께서 신성한 진리로부터 지각하심.
창27:14-‘어머니’, 리브가=진리 측면에서의 신성한 합리성.
창27:15-여기서 ‘그녀’인 리브가=신성한 합리성 속의 신성한 진리.
창27:42-‘그녀의 큰 아들 에서의 말이 리브가에게 전해졌다’=그 당시 자연적 선으로부터의 마음에 관하여 주님께서 신성한 진리로부터 지각하심.
창27:42-‘(리브가는) 그녀의 작은 아들 야곱을 불렀다’=신성한 진리를 통하여 유입으로부터 진리에 애착함 을 통각함.
창27:46-‘리브가가 이삭에게 말했다’=신성한 진리로부터 주님이 지각하심.

마곡 (Magog)

창10:2-‘고멜, 마곡’=내적 예배에 상응하는 외적 예배와 더불은 여러 나라들. 이들을 통해 그들이 신성하게 준수했던 의식들과 똑같은 여러 다른 교리물들이 의미된다.

마길 (Machir)

창50:23, 사5:14-‘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자발적(Voluntary) 측면과 그것의 갈래들(derivatives)…‘마길의 아들들’에 의해 의미되어지는 교회의 자발적 측면은 진리들과 결합한 선들이다. 고로 선으로부터의 진리들이다. 그이유가 선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진리들은 선의 형체들이기 때문. ‘마길의 아들들’=진리들과 결합한 선이다는 것은 그 아들들이 요셉의 무릎에서 태어났다는 것에 의미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선으로부터의 진리인 것은 사사기에서 의미되어 있다. 즉 ‘마길로부터 입법자들이 내려올 것이다.’ ‘입법자’=선으로부터의 진리.
사5:14-‘마길로부터 입법자들이 내려갈 것이다’=선으로부터의 진리들은 생활의 선으로부터 흘러나간다는 것. 그이유가 마길은 므낫세의 아들이고, 므낫세와 비슷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

마대 (Madai)

창10:2, 이21:2-‘마대’=외적 교회, 또는 내적인 것이 있는 외적 예배. 이것은 마대가 야벳의 아들이라 불리는 것으로부터도 분명해진다.

마리아 (Mary)

* 그분과 더불은 외면의 것들은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로부터의 인간(human)이었다.
창3:15-‘여인’을 교황주의자들은 마리아로 이해하고 그녀를 숭배한다.
* 마리아에게 왔던 성령=신성한 진리. 그리고 그녀에게 드리워진 가장 높은 자의 힘=신성한 선…

마므레 (Mamre)

창13:18-‘아브람은…헤브론에 있는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숲에서 거주했다’=주님께서는 더 내면적으로 지각하는 수준에 도착하셨다는 것…이 지각이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라 불리우고 있다.
창14:13-‘그는 아모리족의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숲에서 거주하고 있었다’=합리적 인간으로부터의 지각의 상태.
창14:13-‘마므레, 에스골, 아넬’에 의해 표현된 것은 주님께서 그분의 첫 어린 시절에 싸우셨을 때, 그분과 더불어 있었던 천사들인데, 이들은 그때 당시 주님과 더불어 있는 선들과 진리들에 잘 어울리는 천사들이었다.
* ‘마므레. 에스골, 그리고 아넬’은 주님의 외적 측면에 관련되는 합리적 인간의 상태, 그리고 그것의 선들과 진리들의 품질이 의미되었다. 고로 그것들을 수단으로 그분이 싸우셨을 때 주님과 더불어 있었던 천사도 의미되었다.
창18:1-그분의 인간 안에서 주님이 지각하시던 때의 상태가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숲’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창23:17-‘마므레 앞 막벨라’=거듭남. (‘막벨라’=거듭남; 그리고 ‘마므레’=거듭남의 질과 양)
창23:19-‘헤브론인 마므레’, 그리고 창13:18의 ‘헤브론에서’=질과 양을 말하는데, 여기서와 같이 막벨라와 접합될 경우 거듭남의 질과 양; 그리고 ‘헤브론’과 접합될 경우, 교회의 질과 양; 그리고 ‘상수리나무 숲’과 접합될 경우, 지각의 질과 양. 고로 ‘마므레’는 어떤 것의 상태에 대한 결정일 뿐이다; 그 이유가 이곳은 아브라함이 거주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삭이 거주했고, 이곳으로 야곱이 왔다.
창25:9-‘마므레의 얼굴에’=선에 관련하여…
창35:27-‘키럇-아르바의 마므레’=그것의 상태; (그이유가) ‘마므레’=접합되어진 것에 관련되는 질과 양.

마스 (Mash)

창10:23-‘마스’ (그리고 아람의 다른 아들들), = 아주 많은 종류의 이런 지식들, 그것들에 따른 다양한 행위들.

마하랄렐 (Mahalalel)

창5:12-다섯째 교회가 ‘마하랄렐’이라 불린다.

마할렛 (Mahalath)

창28:9-‘에서는 이스마엘에게 갔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을 데려왔다’=이 선이 신성한 근원으로부터의 진리와 결합함.

메섹 (Meshech)

* 고멜 참조
겔32:26-‘메섹과 두발’=의식들인 교리물들; 그리고 이것이 사랑이 없을 때 ‘할례받지 않은’이라 불리운다; 이로부터 ‘검으로 찔러진’, 그리고 ‘살아있는 것의 토지에서 공포’라 불리운다.

메시아 (Messiah)

* ‘그리스도’가 ‘메시아’, ‘기름부은 자’, ‘왕’ (=신성한 진리).
단9:25-‘메시아 군주’=신성한 인간 측면의 주님.
* 신성한 인간 측면의 주님을 기름부음은 신성한 사랑의 신성한 선 자체를 통하여 결과되었다…이로부터 주님은 ‘메시아’라 불리우셨다…이는 히브리어에서 ‘기름부어진 자’를 뜻한다.

멜기세덱 (Melchizedak)

창14:18-‘살렘 왕 멜기세덱이 빵과 포도주를 가져왔다. 그는 지극히 높은 하느님에게 성직자였다.’ ‘멜기세덱‘=주님과 더불은 내적 인간의 천적인 것들. ‘살렘의 왕’=내면, 또는 합리적인 것들 측면에서의 평화의 상태. ‘빵을 가져왔다’=천적인 것들, 그리고 거기로부터의 원기회복 (재 창조, the recreation). ‘포도주’=영적인 것들, 거기로부터 원기 회복. ‘그리고 그는 성직자’=사랑의 거룩함(the Holy). ‘지극히 높은 하느님에게’=내적 인간, 여호와이시다.
시110:1-5-시험들에서의 주님의 전투들이 다루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에서 천적인 것들에 관련된 측면에서 그분의 내면의 인간이 멜기세덱이라 불리워진다.
시110:4-‘내 말에 따라 멜기세덱’=그분의 신성한 인간은 [신성한 사랑으로부터의 신성한 선과] 같다. ‘멜기세덱’은 ‘정의의 왕’이디, 고로 여호와께서는 전투들과 승리하심들을 통하여 정의를 만드셨다.
창14장-‘멜기세덱’에 의해 신성한 선 측면에서의 주님과 신성한 진리 측면에서의 주님이 표현되어졌다. 성직자로서의 멜기세덱은 신성한 선, 왕으로서의 멜기세덱은 신성한 진리이다. 그러므로 그는 빵과 포도주를 가져왔다, 그이유는 빵에 의해 신성한 선, 포도주에 의해 신성한 진리가 의미되기 때문.,

모세 (Moses)

눅9:31-주님과 더불어 이야기하고 있는 ‘모세와 엘리야’에 의해 구약 성서의 말씀이 표현되어지고 있다, 구약 성서는 또한 ‘모세와 예언자들’이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모세는 그의 책들, 또한 역사 부분의 책들을 말한다.
눅16:31-‘모세와 예언자에게 듣는 것’=말씀 안에 있는 것을 아는 것, 그리고 그것 안에서 신앙을 가지는 것, 고로 또한 그것들을 뜻하는 것…
시106:23-‘모세’=말씀.
출2장에서-최고 의미에서 ‘모세’는 신성으로부터의 법(the Law Divine), 즉 말씀(the Word) 측면에서의 주님을 표현한다. 그리고 관계적 의미에서, 교인과 더불은 신성으로부터의 진리(truth Divine).
출2:2-‘그녀가 아들을 낳았다’=근원적 측면에서의 신성으로부터의 법…그 이유는 ‘그녀의 아들’은 모세를 말하고, 모세는 신성으로부터의 법, 또는 말씀 측면의 주님을 표현했기 때문.
출2:9-‘나를 위하여 그에게 젖을 물리게 하라’=광신적 신앙에 일치하여 선이 그것 안으로 은근히 심어지리라는 것.
출2:11-‘모세는 자랐다’=…과학적 진리들에서 증가함.
출2:12-‘그는 이집트인을 처죽였다’=멀어진 과학물을 파괴했다는 것.
출2:13-‘그는 두 번째 날 밖에 나갔다’=교회와 다시 결합함.
출2:14-‘누가 너를 사람을 위한 왕자로 앉히고 우리를 재판하는가?’=교회내의 불일치를 조정할 만큼 신앙의 진리들 안으로 아직은 전진하지 못했다는 것…최고 의미에서 주님의 인간 안에서 신성으로부터의 법의 시작에 관한 것을 취급한다. 지금의 경우, 이 법의 전진(progress)에 관한 것을 취급한다. 그리고 내적 의미에서 거듭나고 있는 인간과 더불은 신성한 진리의 발전에 관한 것을 취급한다. 이 발전에서, 첫 단계는 인간이 거짓과 진리 사이를 식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자기 안에 있는 진리로부터 거짓인 것을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반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첫 단계에서 그는 교회 내에 있는 신앙의 진리 사이에 불일치를 중재할 수 없다. 이를 행하기 위하여서, 그는 반드시 더 발전 하여야 한다. 그이유가 인간은 계속적으로 예증되어지기 때문.
출2:14-‘그리고 모세는 두려웠다, 그리고 말했다, 정녕 이 말은 알려졌다’=그는 멀어진 과학물 사이에 있었다, 그러나 안전해지기 위해서 진리 안에 있는 것은 아직 아니다는 것.
출2:15-‘그리고 바로는 이 말을 들었다, 그리고 모세를 죽이려고 찾았다’=거짓 과학물이 이를 지각했을 때, 그것은 신성으로부터 법 속에 있는 진리를 파괴하길 원했다는 것…‘모세’=신성으로부터의 법, 그리고 신성으로부터의 진리, 고로 신성한 법으로부터 있는 진리. 여기서 법이 아니고 진리라고 말해지는 이유는 주님의 인간 안에서 신성으로부터의 법의 발전에 관하여 아직도 취급되고 있기 때문.
출2:17-‘모세는 일어나서 그들을 도왔다’=신성으로부터의 법으로부터 있는 진리들로부터 원조함이 있음.
출2:19-‘이집트 사람이 목자들의 손으로부터 우리를 구해주었다’=교회에 인접된 과학적 진리가 악으로부터의 거짓의 교리의 힘을 압도했기 때문에…모세가 여기서 ‘이집트 사람’이라 불린 이유는 여기서 ‘모세’에 의해 단순한 선의 진리에 있는 이들과 더불은 진리를 표현했기 때문.
출2:20-‘그리고 그는 어디 있느냐? 어찌하여 너는 이 사람을 남겨놓았느냐?’=어떻게, 이 진리 없이, 그들이 교회의 선들과 결합할 수 있는가.
출2:21-‘모세는 이 사람과 함께 살기로 마음먹었다’=그들은 함께 동의했다는 것. ‘모세’, 여기서=과학적 진리.
출2:21-‘그가 나는 낯선 토지의 체류자이다 라고 말했기 때문’=그것 자신 아닌 교회에서의 진리들로 훈육되어졌다는 것.
출3:1-‘모세는 미디안의 성직자, 그의 장인, 이드로의 양떼에게 풀을 뜯기고 있었다’=신성으로부터의 법이 단순한 선의 진리 안에 있는 이들을 훈육하고 있다는 것…‘모세’=신성으로부터의 법 측면에서의 주님. 그러나 시작에서, 신성으로부터 법 속에 있는 진리 측면, 그러나 여기서의 경우, 신성으로부터의 법 측면. 고로 인간 측면에서 그분이 만들었기 이전, 주님 안에서 발전함의 등차가 신성 자체로부터의 법으로 명명될 수 있을런지 모른다.
출3:3-‘모세가 말했다’=신성으로부터 법으로부터 지각함.
출3:4-‘그리고 그분은 말했다, 모세야, 모세야, 그리고 그는 말했다, 나는 바라보고 있나이다’=내적 권면과 들음.
출3:5-‘네 발에서 네 신을 벗으라’=감각적인 것들은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
출3:6-‘그리고 모세는 그의 얼굴을 덮었다’=내면들은 보호되었다는 것.
출3:10-‘그리고 지금 가라, 나는 너를 바로에게 보낼 것이다’=주님의 인간으로부터 진행하는 거룩함, 이를 수단으로 감염시키는 거짓들이 사라질 것이다. 가기로 된 ‘모세’=신성으로부터의 법 측면에서의 주님. 고로 인간 측면에서의 주님. 그이유가 주님이 세상에 있으셨을 때, 그분은 먼저 그분의 인간을 신성한 진리로 만드셨기 때문, 이는 신성으로부터의 법과 같다.
출3:11-‘그리고 모세는 하느님에게 말했다’=신성으로부터 지각함, 그리고 굴종(humiliation)…‘모세’=신성으로부터의 법 측면의 주님.
출3:12-‘그리고 그분은 말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신성이 (주님의) 인간 안에 있으리라는 것. ‘모세’=신성으로부터의 법 측면에서의 주님. 고로 인간 측면에서의 주님.
출3:13-‘그리고 모세가 하느님에게 말했다’=신성으로부터 지각함(perception).
출3:14-‘그리고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말하셨다’=첫 가르침. ‘모세’에 의해 신성한 진리 측면에서의 주님. 그리고 모세에 의해 백성에게 말함은 주님의 신성한 인간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에 의해 영적 (왕국의) 교회 속에 있는 이들에게.
출3:18-‘그리고 너는 들어가서…이집트의 왕에게 (갈 것이다)’=거짓 안에 있는 이들과 교통함…‘모세’=신성으로부터의 법.
출4장에서-신성으로부터의 법에 관한 것을 취급한다. 진리가 그것의 선에 인접되어졌다는 것. 그리고 고로 이 선은 구원할 힘을 가졌다는 것, 그리고 희망과 신앙을 은근히 심어주었다는 것. 모세는 선 측면에서의 신성으로부터의 법, 아론은 진리 측면에서의 신성으로부터의 법을 표현한다.
출4:1-‘모세가 대답하여 말했다’=신성의 법으로부터 생각함…모세는 신성의 법 측면에 관한 주님을 표현한다. 신성의 법으로부터의 생각은 신성으로부터의 진리로부터 [생각함]이다.
출4:3-‘모세는 그것 앞으로부터 달아났다‘=분리된 감각적 평면에서 소름끼침.
출4:4-‘그리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하셨다’=신성으로부터의 섭리…모세는 신성으로부터의 진리 측면에서의 주님을 표현한다. 고로 신성으로부터의 섭리는 주님이 세상에 계셨을 때 인간 측면의 주님을 서술한다.
출4:5-‘여호와께서 너에게 나타났다는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한다’=그들이 주님의 신성한 인간에 관한 신앙을 가질런지 모른다는 것.
출4:9-‘(만일 그들이) 너의 음성을 듣지 않을 것이다면’=만일 그들이 순종의 어떤 것도 보여주지 않는다면…그들이 들어야 할 모세의 음성은 신성한 법 측면의 주님을 표현한다. 즉 신성한 진리 측면, 고로 말씀 측면, 그이유가 신성한 진리가 말씀에 있기 때문.
출4:10-‘그리고 모세는 여호와께 말했다’=신성으로부터의 지각…모세는 그분이 세상 계셨을 때 인간 안에 있는 신성한 법 측면의 주님을 표현한다.
출4:12-‘나는 네 입과 더불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네가 이야기 할 것을 네게 가르칠 것이다’=신성한 인간으로부터 진행하는 각각 그리고 모든 것들에 있는 신성…이런 사항들이 모세에게 말해지는바, 모세에 의해 신성한 인간에 있는 신성으로부터의 법 측면의 주님이 표현된다.
출4:13-‘부디 보내도 될 성 싶은 자를 보내소서’=신성한 인간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는 간접적으로 발음되어야만 한다는 것. 이런 것들을 말하는 모세는 말씀 측면의 주님, 즉 신성한 진리 측면의 주님을 표현한다.
출4:14-‘그리고 여호와의 노염이 모세에게 지펴졌다’=관대하심…그이유는 이것이 모세에게 말해졌기 때문, 모세에 의해 그분이 세상에 계셨을 때, 신성한 진리 측면의 주님이 표현되어진다.
출4:15-‘너는 그에게 말할 것이다’=유입.
출4:18-‘그리고 모세는 갔고 되돌아 갔다’=이전 생활이 계속되는 것. 모세는 신성으로부터의 진리, 또는 법 측면의 주님을 표현한다.
출4:19-‘그리고 여호아께서 미디안에 있는 모세에게 말했다’=그 상태에서 신성에 의한 예증과 확증.
출4:20-‘그리고 모세는 그의 아내를 데려갔다’=선이 인접되었다. ‘모세’는 신성으로부터의 법, 또는 진리 측면의 주님을 표현한다.
출4:21-‘그리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하셨다’=신성으로부터 지각함…(여기서) 새로운 지각.
출4:24-‘그리고 그는 길을 가는 중에 여관에 있었다’=야곱으로부터의 후손, 그들은 내적인 것 없는 외적인 것들에 있었다…이 3절에서 영적 (왕국의) 교회를 취급한다. 이 교회는 야곱의 자손들과 더불어 설립되어져 왔으나 그것은 그들과 설립될 수가 없었다, 그이유는 그들이 내적인 것 없이 외적인 것에 있었기 때문. 이런 이유로 모세는 여기서 법 또는 말씀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이 국가, 또는 그가 이끌게 될 야곱의 후손을 표현한다, 고로 그는 이 국가의 예배 또한 표현한다…이로부터 이 구절에서 모세라는 이름이 명명되지 않고 그(he)라고 말해지고 있다. 즉 ‘그는 길을 가면서 여관에 있었다 그리고…여호와께서 그를 만났다. 그리고 그를 죽이려고 했다.’ 그가 가서 이집트로 되돌아 가야한다고 아주 명백히 말하셨던 이전의 그 때를 아직도 그분은 가지고 있으셨다.
출4:25-‘그녀는 말했다, 당신은 나에게 피들의 신랑이다’=그것은 진리와 선을 향하여 모든 증오와 적개심으로 꽉차 있었다는 것. 이 3절(24,25,26)에서 모세는 이 국가를 표현하고, 이 국가와 더불은 교회도 표현한다. 그리고 십보라는 표현 교회를 표현한다. 십보라가 이 교회를, 모세는 그것의 외적인 것을 표현하는바, 그녀는 그를 자기의 남편, 또는 사람이라 부르지 않고, ‘자기의 신랑’이라 부른다. 그이유가 신부는 여러 가지 것을 표현할 수 있으나 아내는 그렇지 않다.
출4:26-‘그리고 그분은 그(모세)로부터 단념했다’=그들이 표현하는 것이 허락되어졌다는 것.
출4:27-(여호와께서 아론에게 말하셨다) ‘모세를 만나러 가라’=(교리의 진리는) 신성으로부터 직접 진행하는 진리와 결합되어야 할 것이다.
출4:28-‘그리고 모세는 아론에게 여호와의 모든 말들을 이야기했다’=직접 주님의 신성으로부터 진행하는 진리가 간접적으로 진행하는 진리 안으로 유입됨, 그리고 교리의 각각의 것에 가르침이 있음.
출4:29-‘그리고 모세는 갔다, 그리고 아론’=양쪽이 결합된 삶. 즉 주님의 신성으로부터 직접 진행하는 것과 간접으로 진행하는 것이 결합된 삶.
출5:1-‘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왔다’=신성한 법과 파생된 교리…모세가 표현하는 신성한 법에 의해, 내적 의미로 있는 말씀, 또는 천국에 있는 말씀이 표현되어진다.
출5:4-‘어찌하여 너희, 모세와 아론은 백성을 자기들의 일로부터 몰아내려드느냐?’=그들의 신성한 법과 교리가 그들을 슬퍼하게 하는 것들로부터 면제되게 하지 못할 것이다는 것. 모세는 신성한 법 측면의 주님을 표현한다.
출5:20-‘그들이 모세와 아론을 만났다’=신성한 법과 파생된 교리에 관한 생각.
출5:22-‘그리고 모세는 여호와에게 되돌아 와서 말했다’=신성으로부터의 법으로부터 불평함.
출6장에서-‘모세’는 신성으로부터의 법 속에 있는 것들을 표현한다.
출6:1-‘그리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하셨다’=신성으로부터의 법에 관한 가르침.
출6:2-‘그리고 하느님이 모세에게 이야기 하셨다’=새로운 것, 그러나 이전에 진행하던 것의 계속이기도 한 것.
출6:9-‘그리고 모세는 이스라엘의 아들들에게 그렇게 이야기했다’=주님의 영적 왕국 속에 있는 이들에게 신성으로부터의 법으로부터 권면함(exhortation)
출6:10-‘그리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시어, 말하기를’=계속됨.
출6:12-‘그리고 모세가 여호와께 이야기하여 말하기를’=신성으로부터 법, 그리고 파생되는 생각.
출6:13-‘그리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그리고 아론에게 이야기하셨다’=신성으로부터의 법으로부터, 동시에 교리로부터 새로이 가르침(instruction).
출6:20-‘그녀가 아론과 모세를 낳았다’=그때부터 그들은 교회의 교리와 신성으로부터 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
출6:26-‘이것은 아론과 모세이다’=(선행과 신앙)으로부터 그들과 더불은 교리와 신성으로부터의 법이 있었다는 것…이것들, 즉 신성으로부터의 법과 교리는 영적 (왕국의) 교회 속에 있는 이들과 더불어 말씀으로부터 주로 출현했다는 것, 그러나 설립자들과 더불어 존재했었던 신앙과 선행은 적용하는 수준에 아직도 있다는 것.
출6:28-‘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집트의 토지에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아직도 지옥들에 있는 이들과 친근해 있는 동안인데, 명령이 주님의 영적 왕국 속에 있는 이들에게 신성으로부터 법을 통하여 주어졌을 때 교회의 상태.
출6:30-‘그리고 모세가 여호와 앞에서 말했다’=거짓들에 있는 이들이 신성으로부터의 법에 관해 하는 생각.
출7:1-‘그리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하셨다’=가르침. 여기서 어떻게 거짓들에 있는 이들과 더불어 진행되는지, 그리고 감염시키는지(에 관하여 가르침).
출7:2-‘너는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이야기 할 것이다’=신성한 유입을 받아들임…이야기해야 하는 모세=신성한 진리…‘이야기하는 것’=교리 안으로 신성한 진리의 간접적 유입…
출7:7-‘그리고 모세는 80년의 아들(80세)이었다’=신성으로부터 법의 품질과 상태.
출7:8-‘그리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그리고 아론에게 말하셨다’=가르침.
출7:9-‘그리고 너는 아론에게 말할 것이다’=유입과 교통. 즉 모세가 표현하는 신성으로부터의 법이 아론이 표현하는 교리와 교통하고 유입이 있는 것. 이렇게 되는 이유는 신성으로부터의 법은 내적 진리이고, 교리는 외적 진리이기 때문.
출7:19-‘그리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하셨다’=집행.
출7:26(8:1)-‘그리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하셨다’=새로운 가르침.
출8:1(8:5)-‘그리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하셨다’=가르침…모세는 신성으로부터의 법을 표현한다, 이를 수단으로 여호와로부터의 가르침이 결과된다.
출8:5(8:8)-‘그리고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렀다’=신성으로부터의 법이 현존함(presence)…모세는 내적인 법, 아론은 외적인 법을 표현한다.
출8:5(8:9)-‘그리고 모세가 바로에게 말했다’=대답.
출8:8(8:12)-‘그리고 모세와 아론은 바로 앞으로부터 나갔다’=거짓들로만 추론하는 이들로부터 분리함…모세와 아론은 신성으로부터의 법, 모세는 내적인 법, 아론은 외적인 법을 표현한다.
출8:9(8:13)-‘그리고 여호와께서는 모세의 말에 따라 행하셨다’=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렇게 행동되었다는 것. 모세가 탄원한 것은 참으로 모세의 입으로부터 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는 주님으로부터 였다.
출8:16(8:20)-‘그리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하셨다’=다시 가르침.
출8:25(8:29)-‘그리고 모세는 말했다, 보라 나는 당신으로부터 나간다’=그들과 더불은 신성으로부터의 진리의 나타남을 제거함. 모세는 신성으로부터의 법, 고로 신성으로부터의 진리 역시 표현한다.
출9:1-‘그리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하셨다’=새로운 가르침.
출9:8-‘모세는 하늘을 향하여 그것들을 뿌려라’=이런 거짓들이 천국에 있는 이들에게 보여졌다는 것.
출9:13-‘그리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하셨다’=행동되어야만 하는 것에 관하여 다시 가르침.
출9:22-‘그리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하셨다’=명령.
출9:23-‘그리고 모세가 하늘로 자기 막대기를 뻩쳤다’=천국과 교통함.
출9:35-‘모세의 손에 의해’=신성으로부터의 법을 수단으로.
출10:1-‘그리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하셨다’=명령, 즉 바로에게 가져다주어야만 하는 것들.
출10:3-‘그리고 모세와 아론은 바로에게 왔다’=신성으로부터의 진리가 현존함…모세와 아론=신성으로부터의 진리. 모세는 내적인 것, 아론은 외적인 것.
출10:6-‘그리고 그는 뒤를 보았다, 그리고 바로로부터 나갔다‘=통각(apperception)을 상실함, 그리고 분리함…이를 말한 모세는 신성으로부터의 진리를 표현한다.
출10:11-‘쫒겨내진 모세와 아론’=신성으로부터의 진리를 표현한다.
출10:12-‘그리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하셨다’=가르침.
출10:13-‘그리고 모세는 그의 막대기를 이집트의 토지 넘어 뻗쳤다’=감염시키는 이들의 자연 평면 넘어에서 신성으로부터의 진리의 힘이 지배함.
출10:16-‘그리고 바로는 성급히 모세와 아론을 불렀다’=신성으로부터의 진리를 두려워함…모세는 내적인 것, 아론은 외적인 것.
출10:22-‘그리고 모세는 그의 손을 하늘로 뻗쳤다’=천국에서 신성으로부터의 진리가 지배함.
출10:24-‘그리고 바로는 모세를 불렀다‘=신성으로부터의 법의 현존함…감염시키는 이들과 더불어 신성으로부터의 법의 현존에 의해 그들은 재앙들이 오고 있음을 지각했다가 뜻해진다.
출11:3-‘더 나아가 인간 모세는 이집트의 토지에서 극도로 위대해졌다’=이제 신성으로부터의 진리가 감염시키는 이들의 마음에서 존경받고 있다는 것.
출11:8-‘이후 나는 나갈 것이다’=신성으로부터의 진리는 떠날 것이다…(이를 말하는) 모세=신성으로부터의 진리. 이런 사항들은 곧바른 자들을 감염시킨 이들이 정죄되었음을 의미한다. 모든 진리가 그들로부터 떠나고 있다…
출11:9-‘그리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하셨다’=통지함.
출11:10-‘그리고 모세와 아론은 바로 앞에서 이런 모든 경이로운 일을 행했다’=결과적으로 그들이 악 안에 있었다는 확증을 그들에게 주게 된 이런 황폐해짐들은 신성으로부터의 진리들을 수단으로 결과되어졌다. (그이유가) 모세는 직접 신성으로부터 진행하는 진리를 표현하고, 아론은 간접으로 흐르는 것을 표현하기 때문. 이 경이로운 일들은 모세와 아론에 의해 행해진게 아니라 신성으로부터이다. 그런데도 모세와 아론이 한 것 같이 말해지는 이유는 그들에 의해 신성으로부터의 진리가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이로운 일들은 그분으로부터 진행하는 진리를 수단으로 신성에 의해 행해졌다. 그이유가 신성 자체에 의해 행해지는 모든 것들은 그분으로부터 진행하는 진리를 수단으로 행해지기 때문.
출12:1-‘그리고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하셨다’=신성으로부터의 진리를 수단으로 통보함…모세=직접 진행하는 진리.
출12:21-‘그리고 모세는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불렀다’=신성으로부터의 진리의 현존과 유입에 의해 영적 (왕국의) 교회 속에 있는 이들의 이해성에 예증함…모세는 신성으로부터의 법, 고로 말씀, 그리고 신성으로부터의 진리를 표현한다.
출12:31-‘(바로가) 밤에 모세와 아론을 불렀다’=이 상태 안에 신성으로부터 진리가 흘러듦…신성으로부터의 진리(truth Divine)라고 말하지 않고 신성으로부터 있는 진리(truth from Divine)라 말해진 이유는 지옥에 떨어질 이들에 관해 서술하기 때문.
출13:1-‘그리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야기 하셨다, 말하시기를’=신성으로부터의 진리를 수단으로 신성으로부터 통보함.
출13:3-‘그리고 모세는 백성에게 말했다’=신성으로부터의 진리를 수단으로 가르침.
이63:11-‘모세’는 주님을 뜻하고 있다.
출14:13-‘그리고 모세가 백성에게 말했다’=신성으로부터의 진리를 수단으로 자포자기 상태로부터 승강함…그이유가 시험 상태에서의 모든 승강은 신성으로부터의 진리를 수단으로 결과되어진다, 이것이 ‘모세’에 의해 뜻해진다.
출14:15-‘그리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하셨다’=권면하심.
출14:21-‘그리고 모세는 자기 손을 바다 위로 뻗쳤다’=지옥 위에서 신성으로부터의 진리의 힘이 지배함.
출14:26-‘그리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하셨다’=유입.
출14:31-‘(그들은) 여호와를, 그분의 종 모세를 (믿었다)’=신성한 선 측면의 주님, 그리고 그분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와 섬김 측면에서의 주님.
출15:1-‘그다음 모세와 이스라엘의 아들들은 노래했다’=해방됨 때문에 영적 (왕국의) 교회 속에 있는 이들이 영광을 기림. 백성들과 더불은 모세는 이 교회를 표현한다. 이 백성의 머리가 모세인데, 그 이유는 그는 또한 신성한 진리를 표현하기 때문.
출15:22-‘그리고 모세는 수프 바다로부터 이스라엘 자손이 여행하게 했다’=그들이 지옥의 영역을 통하여 간 이후 신성으로부터의 진리의 명령에 따라 계속되는 것.
출15:24-‘그리고 백성들은 모세를 향하여 불평했다’=시험의 쓰라림으로부터의 고통…‘모세를 향하여’라고 말해지는데, 그 이유는 신성을 향해서 였기 때문. 그 이유가 모세에 의해 신성한 진리가 표현되었기 때문.
출16:9-‘그리고 모세가 아론에게 말했다’=간접적으로 진행하는 신성으로부터의 진리를 통하여 직접 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으로부터의 진리가 유입됨.
출16:11-‘그리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주님의 신성으로부터 진행하는 진리, 이 안에 주님의 현존(임재하심, presence)이 있다.
출16:15-‘그리고 모세가 그들에게 말했다’=신성으로부터 진리를 수단으로 통보함…모세는 신성으로부터 법 속에 있는 진리를 표현한다.
출16:20-‘그리고 모세는 그들에게 성을 냈다’=그들은 자신들로부터 신성으로부터의 진리를 막았다.
출16:28-‘그리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하셨다’=신성이 희미하게 나타남.
출16:33-‘그리고 모세가 아론에게 말했다’=유입…그 이유가 신성의 유입은 간접으로 진행하는 진리 안으로 직접 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진리를 통하여 거행되기 때문.
출17:4-‘그리고 모세는 여호와께 외쳤다’=내면의 탄식, 그리고 모세에 의해 표현된 신성한 진리에 의한 중재(intercession)…
출17:9-‘그리고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말했다’=전투하는 진리 안으로 신성의 유입…그 이유는 모세에 의해 신성한 진리가 표현되기 때문. 즉 직접 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진리. 순수하게 신성인 이 진리는 신앙의 모든 진리 안으로 흘러 그것들로 진리가 되게 해준다.
출17:10-‘그리고 모세, 아론, 그리고 후르’=계속적인 순서로 있는 신성한 진리들. 모세는 직접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를 표현한다.
출17:11-‘모세가 자기 손을 들고 있을 때’=영적 (왕국의) 교회인들의 신앙이 주님을 바라보고 있을 때. 모세는 신성으로부터의 진리를 표현한다.
출18장에서-제일로부터 최말단 까지 계속적 순서에 있는 진리들, 그것들은 신성한 선에 의해 임명되었다. 첫 등차에 있는 진리가 모세에 의해 표현되어진다.
출18:1-‘모세의 장인’=신성으로부터의 진리와 결합된 선인 것으로부터.
출18:2-‘그리고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모세의 아내 십보라를 데려왔다’=신성으로부터의 진리와 결합한 신성으로부터 선…신성으로부터의 진리가 모세에 의해, 신성으로부터의 선이 모세의 아내 십보라에 의해 표현되고 있다.
출18:5-‘광야로 모세에게로’=거듭나기 전, 시험들이 있는 상태에서 결합함. (그이유가) ‘모세에게 오는 것’=모세에 의해 표현된 신성한 진리와 이드로에 의해 표현된 신성한 선의 결합이기 때문.
출18:7-‘그리고 모세는 그의 장인을 만나러 나갔다’=신성한 선 쪽으로 신성한 진리의 적용(application)이 있음.
출18:8-‘모세는 장인에게 말했다’=그때 신성으로부터의 진리로부터 지각함.
출8:13-‘모세는 백성들을 판결하려고 앉았다’=선으로부터 있기 이전 상태에 있는 영적 (왕국의) 교회 사람을 신성으로부터의 진리가 결말을 냄. 모세는 직접 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으로부터의 진리를 표현한다.
출8:14-‘어찌하여 너 홀로 앉아 있는가?’=여느 다른 근원으로부터 있는 선으로부터의 진리의 유입 없이 있었다는 것. (그이유는) 직접 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으로부터의 진리에 관해 말해지기 (때문), 이것이 모세에 의해 표현되어지고 있다.
출18:15-‘그리고 모세가 그의 장인에게 말했다’=응답하는 상호적인 것…그 이유는 모세에 의해 신성한 선에 하나되었거나 결합한 신성한 진리가 표현되기 때문.
출18:16-‘그들은 나에게 온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과 그의 동료 사이에서 판결한다’=그들은 밝히 알려진 진리로부터 결말되어진다.
출18:17-‘네가 하는 이 말은 좋지 않다’=변화가 반드시 있어져야 한다.
출18:18-‘너와 너와 더불은 백성 둘 다 닳아 없어질 것이다’=이식되어진 진리는 멸해질 것이다는 것…모세에 의해 신성으로부터 있는 진리가, 백성에 의해 그것을 받는 이들이 뜻해진다.
출18:19-‘나는 너를 위해 조언할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이 너와 함께 계실 것이다’=그것은 신성으로부터 이다는 것.
출18:20-‘그리고 너는 그들에게 규례와 법을 가르칠 것이다’=주님으로부터 직접적인 진리가 교회의 내적, 외적 선들과 진리들이다는 것.
출18:21-‘그리고 너는 모든 백성으로부터 찾으라’=복종하는 진리를 선택함…여기서는 모세에 의해 표현된 신성으로부터 직접 진행하는 신성으로부터의 진리에 복종하는 진리들이다.
출18:22-‘그들은 중대한 말을 네게로 가져올 것이다’=모든 것은 신성으로부터 직접적인 진리로부터 이다는 것.
출18:24-‘그리고 모세는 그의 장인의 음성에 귀기울였다’=결과…모세에 의해 신성한 선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가 표현되어졌다. 이 진리는 그자체로는 어떤 것도 행동 안되고 신성한 선으로부터서만 가능하다.
출18:27-‘모세는 그의 장인을 떠나보냈다’=신성으로부터의 진리가 잘 조절됨.
출19:3-‘그리고 모세는 하느님께로 올라갔다’=천국 아래 있는 신성으로부터 있는 진리가 천국 안에 있는 신성한 진리와 그 자체를 결합함. 모세, 여기서, 천국 아래 있는 신성으로부터 있는 진리를 표현한다. 그 이유가 지금 그는 이스라엘의 우두머리를 표현하기 때문. 고로 영적 (왕국의) 교회의 사람들, 즉 이들은 아직 천국 안에 있지 않다, 그이유는 진리들에 의해 형태를 갖춘 선 안에 아작 있지 않기 때문.
출19:8-‘모세’는 천국 안에 있는 신성으로부터의 진리와 결합한 신성으로부터 있는 진리를 표현한다, 이것이 중재한다(mediate).
출19:9-‘그리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하셨다’=계시에 관하여 신성으로부터 있는 진리를 수단으로 신성이 유입됨.
출19:14-‘그리고 모세는 산으로부터 백성에게로 내려왔다’=선 안에 있는 진리를 받기 위해 신성으로부터 있는 진리를 수단으로 준비되고 적용함.
출19:17-‘그리고 모세는 백성들로 하느님을 만나러 나가게 했다’=신성으로부터 있는 진리의 힘이 그들이 신성을 받기 위해 준비를 해줌.
출19:19-‘모세는 이야기했다, 그리고 하느님은 음성으로 그에게 대답하셨다’=신성으로부터 있는 유입을 수단으로, 이 안에 신성 자체가 있었다.
출19:20-‘그리고 여호와께서는 산의 머리로 모세를 부르셨다, 그리고 모세는 올라갔다’=거기서 신성으로부터 있는 진리가 결합함.
출19:23-‘그리고 모세는 여호와에게 말했다’=신성으로부터 있는 진리의 생각…그이유는 이것은 생각하는 인간과 더불은 진리이기 때문.
출19:24-‘그리고 올라오라, 너와 아론’=내적, 외적 신성으로부터 있는 진리와 결합.
출19:25-‘그리고 모세는 백성에게 내려갔다’=신성으로부터 있는 진리를 통하여 신성이 유입됨.
출20:19-‘당신이 우리에게 이야기하시오‘=적용 가능한 상태에 있는 진리를 받음, 이 진리에 그들은 순종할 것이다는 것…이야기를 하는 모세는 천국 안에 계신 신성과 결합한 천국 아래 신성으로부터 있는 진리를 표현한다. 고로 주님과 백성 사이를 중재한다. 이로부터 여기서의 모세=적용(accomodated) 가능한 형태에 있는 진리.
출20:21-‘그리고 모세는 하느님이 계셨던 짙은 구름 으로 가까이 왔다’=신성으로부터의 진리와 영적 선의 진리가 여전히 결합함. 모세는 천국에 있는 신성으로부터의 진리와 결합한 천국 아래 신성으로부터의 진리를 표현한다. 결과적으로 중재한다. 고로 영적 선의 진리이다. 그이유가 이것이 천국 아래 신성으로부터의 진리이기 때문, 이 안에 영적 (왕국의)) 교회가 있다…이 진리를 모세가 이 교회의 우두머리로서 표현하고 있다.
출24:1-‘그리고 그는 모세에게 말했다’=일반적 측면의 말씀에 관한 것. 모세는 말씀을 표현한다.
출24:2-‘그리고 모세, 그 사람 만이 여호와께로 가까이 올 것이다’=일반적 측면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이 현존하시고 결합하심…모세는 일반적 측면의 말씀을 표현한다.
출24:3-‘그리고 모세는 백성에게 와서 발표했다’=그분 자신으로부터 있는 신성한 진리를 통하여 주님에 의한 예증과 통보.
출24:4-‘그리고 모세는 여호와의 모든 말들을 적었다’=그 당시 생명에 강한 인상(impression)을 남김. 모세는 말씀 측면의 주님을 표현한다.
출24:9-‘거기 모세와 아론, 나답과 아비후가 올라갔다’=내적, 외적으로 있는 말씀, 그리고 내,외 측면 모두로부터 있는 교리.
출24:12-‘그리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하셨다’=외적 의미 안에 있는 이들을 위한 주님의 가르침…모세는 주님과 백성 사이를 중재하는 것. 고로 외적 거룩함 측면의 말씀. 그 이유가 이것이 중재하는 것이기 때문. 이것을 지금 모세가 표현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뒤를 잇는 시리즈로부터 분명하다…이 백성들은 중재를 통하지 않고는 주님과 어떤 소통도 가능할 수 없다.
출24:13-‘그리고 모세는 일어났다, 그리고 그의 심복 여호수아’=말씀과 표현. 모세는 내적 의미로부터 분리된 말씀의 외적 의미에 있는 백성과 주님 사이를 중재하는 것을 표현한다. 고로 말씀 또한 표현한다
출24:18-‘그리고 모세는 구름 한가운데로 들어갔다’=외적 의미에서의 말씀. 모세는 말씀을 표현한다. 여기서는 외적 의미에 있는 말씀, 그 이유는 그가 구름 한가운데로 들어갔기 때문….모세는 6일을 산의 가장 바깥쪽에 머물렀다, 그리고 7일째에 불리어져 구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산으로 승강했다. 이는 그가 백성과 주님 사이의 중재자 임이 표현되게 하려는 때문에 거행되었다.
출28:1-‘너는 네 형제 아론을 너에게로 접근하게 하라’=주님의 신성한 인간 안에서 신성한 선과 신성한 진리의 결합. 모세는 신성한 진리 측면의 주님을 표현한다.
출30:11-‘그리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기를’=주님에 의해 말씀을 통하여 예증함…모세에 의해 말씀이 표현되어진다.
출31:18-‘그리고 그분은 모세와 이야기하심을 끝내면서 증거의 두 (돌)판을 모세에게 주었다’=말씀을 통하여 주님은 인간과 결합함. 모세는 말씀을 표현한다.
출32:1-‘그리고 백성은 모세가 산으로부터 내려오는 것이 지체되는 것을 보았다’=이스라엘 국가가 천국으로부터 어떤 것을 말씀으로부터 통각하지 못했을 때의 그들의 상태…모세는 말씀을 표현한다.
출32:1-‘이 모세, 이 사람이 우리를 이집트의 토지로부터 올라오게 만들었는데, 우리는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인간을 외적인 것으로부터 내적인 것으로 승강하게 하는 신성한 진리 외 다른 진리가 말씀에 있다는 것은 통째로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
출32:10-‘그리고 나는 너를 큰 국가로 만들 것이다’=말씀은 그밖의 곳에서도 선이고 특출하다는 것. 모세는 말씀을 표현한다.
출32:11-‘그리고 모세는 여호와의 얼굴에 애원하였다’=주님은 자비로부터 기억하셨다는 것. 모세는 말씀을 표현한다.
출32:15-‘그리고 모세는 뒤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산으로부터 내려왔다’=말씀이 천국으로부터 아래쪽으로 허락됨.
출32:19-‘그리고 모세의 노염이 지펴졌다’=이 국가가 말씀의 내적인 것으로부터, 교회로부터, 예배로부터 돌아섬…그 이유는 모세가 주님으로부터 있는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표현했기 때문. 또는 똑같은 것으로 신성한 진리 측면의 주님을 표현했기 때문.
출32:21-‘그리고 모세가 아론에게 말했다’=이와같은 외적인 것에 관하여 내적인 것으로부터 지각함…모세는 말씀을 표현한다. 여기서는 말씀의 내적 측면…이런 이유는 모세가 아론에게 이야기하기 때문.
출32:26-‘그리고 모세는 진영의 문에 섰다’=지옥쪽으로 열린 곳. 모세는 내적인 것을 표현한다…이것은 지옥으로 들어갈 수 없다.
출32:32-‘그리고 만일 아니라면, 당신이 쓰신 당신의 책으로부터 부디 저를 삭제하십시오’=말씀, 교회, 예배의 내적인 것은 멸해지지 않을 것이다는 것.
출33:8-‘모세가 진영으로 나갔을 때…’ 여기서 모세는 말씀을 표현한다.
출33:12-‘그리고 모세가 여호와께 말했다’=신성이 그들과 더불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분노함.
출33:14-‘그리고 그분은 말하셨다, 내 얼굴은 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너로 쉬게 할 것이다’=교회, 예배, 말씀의 신성은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국가와 더불어서는 신성 없이 외적인 것이 있을 것이다…‘모세를 쉬게 만드는 것’=교회와 예배와 말씀의 외적인 것 안에 신성한 내적인 것들은 중단된다는 것.
출33:17-‘그리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하셨다, 내가 너에게 이야기했던 이 말을 나는 행할 것이다’=신성이 교회의 외적인 것, 예배의 외적인 것, 말씀의 외적인 것 안에 있을 것이고, 이것이 그들과 더불어 있을 것이다. 이 국가의 머리로서의 모세는 내적인 것으로부터 분리되지 않은 외적인 것을 표현하는데, 이는 국가 자체와 더불은 그들의 외적인 것이었다.
출33:18-‘그리고 그는 말했다, 바라기는 부디 저로 하여금 당신의 영광을 보게 해주십시오’=외적인 것 안에 있는 내적 신성한 진리를 통각함(apperception). 모세는 여기서 그렇게 분리되지 않은 외적인 것을 표현한다.
출33:20-‘그리고 그는 말했다, 너는 내 얼굴을 볼 수 없다’=교회의 신성한 내면의 것들, 등등은 이스라엘 국가에게 나타날 수 없다…이것이 모세에게 말해졌기 때문, 그리고 모세는 여기서 이스라엘 국가의 머리를 표현한다.
출33:22-(고로) ‘모세를 바위의 틈에 놓아두는 것’=신앙이 희미하고 왜곡되어 있는 것, 이는 내적인 것 없이 외적인 것에 있는 이들과 같다. 여기서 ‘모세’에 의해 이 백성이 뜻해진다.
출34장에서-모세에 의해 신성한 진리를 받는 교회, 예배, 말씀의 외적인 것이 표현되어진다…이는 이 장의 세부사항들로부터 분명하다. 즉 모세가 시내 산에 오르는 것…백성은 그 산으로부터 옮겨있는 것, 그리고 여호와께서 백성이 아닌 모세와 이야기 하신 것 등이다.
출34:4-‘그리고 모세는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그리고 시내 산으로 올라갔다’=신성한 진리의 계시가 새로이 일어남(rise).
출34:8-‘그리고 모세는 급해졌다, 그리고 땅으로 자신을 구부려 경배했다’=외적인 것 안으로 유입으로부터 받아들임, 그리고 굴종함으로부터 예배함…모세는 내적인 것을 받는 교회의 외적인 것을 표현한다.
출34:9-모세는 말씀을 표현한다. 이로부터 ‘백성들 사이에 그가 있음’에 의해 말씀이 있는 교회가 의미되어진다.
출34:29-‘시내 산으로부터 모세가 내려감에서’=말씀, 교회, 예배의 외적인 것 안으로 내적인 것이 유입됨. 모세에 의해 내적인 것이 안에 있는 외적인 것을 표현한다.
출34:29-‘그리고 모세는 자기 피부가 빛났다는 것을 몰랐다’=말씀의 외적 측면이 빛나는 것을 지각함 없이 말씀의 내적 측면이 말씀의 외적 측면에서 빛을 냄.
출34:33-‘그리고 그는 자기 얼굴에 베일을 놓았다’=교회와 예배와 말씀의 내적 측면은 이스라엘 국가에게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적인 것 없이 외적인 것만 나타날 것이다.
출34:34-‘그리고 모세가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안으로 들어감에서’=주님이 안으로 흘러들 때 외적인 것의 상태, 그리고 그것이 통보를 받는 상태. 모세는 내적인 것이 안에 있는 외적인 것을 표현한다.
출34:34-‘그는 베일을 제거했다’=그때 예증의 상태.
계15:3-‘그리고 그들은 하느님의 종, 모세의 노래를 노래했다’=선행(charity)으로부터 고백함. 고로 십계명인 법의 가르침에 따른 생활…‘모세’에 의해 폭넓은 의미에서 그의 다섯 책 안에 쓰인 모든 법이 뜻해진다. 그리고 좁은 의미에서 십계명이라 불리는 법이 뜻해진다. 그리고 이 법이 삶에서 인간을 도웁는바, ‘하느님의 종, 모세의 노래’라고 말해진다. 그이유가 말씀에서 ‘종, servant’는 돕는 것이 뜻해지기 때문, 여기서는 생활, 삶, life이 뜻해진다.

모압 (Moab)
모압족 (Moabite)

창19:37-‘그녀는 그의 이름을 모압이라 불렀다’=선 측면에서의 이 교회의 광신적인 신앙(신앙이 깊은 체함, religiosity)의 품질. ‘그는 이 날까지 모압의 아버지이다’=그때부터 이러했다는 것.
시60, 108편-‘모압, 나의 씻는 항아리’=거짓들로 더럽힌 선.
출15:15-‘모압의 힘센 자들’=자아의 이런 사랑으로부터 거짓의 생활에 있는 이들…‘모압’은 자연적 선에 있는 이들, 그리고 자신이 쉽게 꼬임을 당해지도록 하는 이들을 표현한다. 고로 거짓으로부터 파생되는 생활 안에 있는 이들. 그이유가 자연적 선에 있는 이들, 그리고 신앙의 진리로부터 선 안에 있지 않는 이들, 고로 영적 선에 있지 않는 이들은 어떤 거짓이든 자신들이 믿어지도록 해버린다. 게다가 그것들에 따라 산다. 특히 그들은 자기들의 사랑들을 부추켜주는 식의 수단에 의해 쉽게 진리들로부터 거짓들 쪽으로 유도당해지고 만다. 이들이 ‘모압‘에 의해 뜻해진 자들이다.
이16:6-‘모압’=자아 사랑의 악 안에 있는 이들, 그리고 그러므로 진리들을 왜곡하는 이들.
민24:17-‘모압, 그들의 힘은 파괴되어질 것이다’=교회의 선들에 섞음질을 한 이들.
민25장-이 모독이 백성들이 모압의 딸들과 음행함(scortation)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민24:17, 예48:45-‘모압’에 의해 말씀, 교회, 예배의 최말단에 있는 이들이 의미되어지고 있다. 그리고 반대적 의미에서, 이것을 수단으로 이런 것들을 간음질(섞음질)하는 이들, 그리고 그러므로 ‘모압의 모퉁이들(corners)’=말씀에 섞음질함들, 그리고 파생적으로, 교회와 예배에 섞음질함.
예48:37,38-‘모압’에 의해 자연적 선에 있는 이들, 그리고 교회의 선들에 섞음질하는 이들이 의미되고 있다. 그들과 더불어 진리를 이해함은 무효하다, 또한 진리에 대한 지식은 ‘모압의 모든 머리들은 대머리로, 모든 수염은 면도질 된다’에서 의미되어지고 있다…
예48:18-‘모압의 낭비자(waster)’=(교회의 외적인 것과 말씀의 외적인 것, 즉 말씀의 글자 의미에) 섞음질.
예48:47-‘나는 날들의 맨끝에서 모압의 포로들을 되돌려 데려올 것이다’=‘모압’에 의해 뜻해진 이들과 더불어 진리들이 열려질 것이다는 것, 그리고 그들은 주님의 강림에서 그들 안에 가르침이 있어질 것이다는 것.

몰록 (Molech)

레20:2,3, 18:21, 왕상11:7, 왕하23:10-‘자기 후손을 몰록에게 주는 것’=육체의 더러운 사랑들, 즉 살인, 미움, 복수, 간음을 실행함으로 교리와 말씀으로부터의 진리를 파괴하는 것, 그리고 신성한 것들 대신, 지옥의 거짓들이 받아들여진다. 이런 거짓들이 ‘몰록에게 주어진 후손(자식, seed)’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몰록은 암몬의 아들들의 신이었다. 그리고 힌놈 계곡에 놓여졌다, 이곳을 도벳(Tophet)이라 불렀는데, 거기서 그들은 자기들의 아들들과 딸들을 태웠다. 이 태운 불이 위에 언급된 사랑들을 의미하고 있다. ‘자식을 몰록에게 주는 것’이 지옥의 거짓을 의미한다. 그리고 돌로 침은 말씀의 진리와 교리의 진리에 상처를 입히고 파괴한데 대한 죽음의 벌이었던바, 말해지기를, ‘제 자식을 몰록에게 주는 사람은 정녕 죽을 것이다, 그리고 토지의 백성이 그를 돌로 칠 것이다.’

므낫세 (Manasseh)

창41:51-‘요셉은 첫 출생의 이름을 므낫세라 불렀다’=자연 평면에 있는 새 자발성(Voluntary), 그리고 그것의 품질. ‘므낫세’는 말씀에서 자연 평면에 있는 영적 선을 표현한다. 고로 새로운 자발적인 품성. 이 이름은 이 선의 참 품질을 포함하고 있다, 또는 이 새로운 자발적 품성의 참 특질을 내포한다. 이는 요셉의 말, ‘하느님께서 나로 내 모든 수고함, 그리고 모든 내 아버지의 집을 잊게 만드셨기 때문…’에서 분명하다. 여기로부터 ‘므낫세’에 의해 의미된 품질이 묘사되어 있다.
* 므낫세라 이름된 첫 출생=자연 평면에 있는 영적 선, 또는 거기 있는 새로운 자발성인 이유는 선은 교회가 되어가는 인간과 더불어, 또는 교회에서 첫 출생이기 때문.
* ‘므낫세’=자연 평면에 있는 새로운 자발성, 똑같은 말로 자연 평면에 있는 영적 선이다는 것은 이외의 말씀으로부터 쉽게 확인되지 않으나, 에브라임으로부터 있는 므낫세에 관한 것을 미루어 결론낼 수 있다.
* ‘므낫세’는 잊게 함(forgetfulness)을 뜻한다. 고로 내적 의미에서 제거함, 즉 악들을 제거함, 실제적인 악과 유전적인 악 모두를 제거함. 그이유가 이것들이 제거되어갔을 때, 비로소 새로운 (주님으로부터 수여되는) 자발성이 일어나기 때문.
창48:5-‘에브라임은 르우벤 대신에, 므낫세는 시므온 대신에 받아들여졌다.
* ‘므낫세’에 의해 표현되어지는 교회의 선은 선행(charity)이다, 이 선은 신앙으로부터의 진리들을 수단으로 교회의 사람 안으로 주님에 의해 은근히 심어진다.
창48:14-‘그의 왼손은 므낫세의 머리 위에’=그는 두 번째 자리에 선이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므낫세’=자발성. 고로 선행으로부터의 선.
창48:14-‘므낫세가 첫 출생이였기 때문에’=선이 제일의 위치에 있으므로. ‘므낫세’=자발성으로부터 있는 선.
* 에브라임과 므낫세, 여기서 ‘요셉’이다=내적인 것으로부터 출생한 자연 평면의 지적 부분의 진리와 자발적 부분의 선.
* ‘므낫세’=자발성으로부터의 선, 그러므로 므낫세에 의해 천적 인간이 표현되어진다. 그러나 그 인간은 외적인 천적 인간, 또는 외적인 천적 교회의 사람이다. ‘므낫세’=자연 평면에서 있는 자발성으로부터의 선, 고로 외적 인간에 있는 자발성으로부터의 선.
계7:6-‘므낫세 지파에서 12000명이 날인되어졌다’=섬김과 행동하는 의지가 주님의 새 천국과 새 교회 속에 있을 이들과 더불어 있을 것이다…행동과 더불은 섬김의 의지는 결과이다, 고로 최말단, 이 안에 (상호 사랑함, 이해함이) 있고 공존한다. ‘므낫세’가 이를 의미하는 이유는 요셉=교회의 영적 평면, 그리고 교회의 영적 평면은 의지로부터의 선, 동시에 이해함으로부터의 진리이기 때문. 그런고로 ‘므낫세’=교회의 자발성, 이런 이유는 ‘에브라임’=교회의 지적 부분, 므낫세=교회의 자발적 부분이기 때문, 또한 므낫세=행동. 그 이유는 의지는 모든 행동의 시도함(endeavor)이기 때문. 그리고 시도함이 있는 곳, 기회가 주어질 때 행동도 자동으로 있기 마련이다.
이9:21-‘므낫세는 에브라임을, 에브라임은 므낫세를 (삼킬 것이다)’=악으로부터의 의지가 진리를 이해함을 살라버릴 것이고, 거짓으로부터의 이해함은 선으로부터의 의지를 사를 것이다.

므두사엘 (Methusael)

창4:18-‘므후야엘이 므두사엘을 낳았다, 그리고 므두사엘은 라멕을 낳았다.’ 이 모든 이름들은 ‘가인’이라 불린 첫째 이교로부터 파생된 이교이다.

므두셀라 (Methuselah)

창5:21-여덟째 교회가 ‘므두셀라’로 불리운다.

므후야엘 (Mehujael)

창4:18-‘이랏이 므후야엘을 낳았다, 그리고 므후야엘은 므두사엘을 낳았다.’ 이 모든 이름들은 ‘가인’이라 불린 첫째 이교로부터 파생된 이교이다.

미가엘 (Michael)

계12:7-‘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은 용과 싸웠다, 그리고 용은 싸웠다 그리고 그의 천사들’=이전 교회로부터의 거짓들이 새 교회의 진리에 맞서 싸우는 것.
* ‘미가엘’, ‘라파엘’, ‘가브리엘’은 어떤 대천사(Archangel)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천국에서 섬김들이다. ‘미가엘’이라는 섬김(ministry)은 주님이 천국과 땅의 하느님이시다는 것, 영혼과 몸이 하나이듯 하느님 아버지와 그분은 하나이시다는 것을 말씀으로부터 확증하는 이들, 그리고 우리는 십계명의 교훈들에 따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하여 선행과 신앙을 동시에 가진다. 단10:13,21에서도 미가엘이 언급되는데, 위와같은 뜻의 섬김이다. 이는 단9-11장, 그리고 12장의 마지막 절로부터 명백하다. 이런 섬김에 있는 이들이 천국에서 미가엘과 가브리엘이라 불린다.
* 다니엘서에서 미가엘은 ‘왕자(제 일 인자)’라 불린다. 그리고 말씀에서 ‘왕자’는 제일의 진리를 뜻한다.

미디안 (Midian)
미디안족 (Midianite)

창25:2-‘그두라가 …아브라함에게… 미디안을 낳았다’=주님의 영적 왕국의 일반적 몫(lot)들.
창25:4-‘미디안의 아들들은 에바, 에벨, 하녹, 아비다, 엘다아였다’=세번째 몫으로부터의 갈래들. ‘미디안’=신앙으로부터의 진리에 있는 이들. ‘그의 아들들’=거기로부터 갈래들. 신앙으로부터의 진리에 있는 이들, 즉 신앙을 고백하고, 자기들에게 가르쳐진 신앙이 필수적 신앙이라 부르면서, 생활로부터의 선 안에 있는 이들은 주님의 영적 왕국 안에 있다.
이60:6-‘미디안과 에바의 단봉 낙타‘=교리적인 것들.
민22:4,7-미디안에 의해 거짓에 있는 이들이 의미된다, 그들이 생활의 선에 있지 않기 때문. 좋은 의미에서 ‘미디안’=단순한 선으로부터의 진리에 있는 이들, 따라서 자신들을 설득당하도록 쉽게 내어주는 이들. 여기서의 경우, 반대 의미인바 진리들을 왜곡하는 이들.
민25장-이스라엘의 아들들이 미디안족의 딸과 음행함도 같은 의미이다.
합3:7-‘미디안의 휘장’=거짓으로부터의 광신적 신앙.
사6:3-‘미디안’=거짓에 있는 이들, 생활의 선 안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창36:35-‘모압의 들판에서 미디안을 쳐부순…’=거짓으로부터 순수해짐.
창37:28-‘거기를 사람들, 미디안 사람들, 상인들이 지나갔다’=단순한 선에 있는 이들, (그리고 )진리의 지식들을 (가진 이들).
창37:36-‘미디안족들이 그를 이집트로 팔았다’=단순한 선으로부터의 어떤 진리에 있는 이들이 과학물과 상담했다.
사7장-‘미디안’은 생활의 선에 있지 않기 때문에 진리가 아닌 진리를 표현했다.
출2:15-‘(모세는) 미디안의 토지에 거주했다’=단순한 선에 있는 이들 사이에서 생활함. ‘미디안’=단순한 선으로부터의 진리에 있는 이들.
출2:16-‘그리고 미디안의 성직자는 일곱 딸을 두었다’=이 교회의 거룩한 것들…‘미디안’=단순한 선의 진리들에 있는 이들…교회의 외적 측면에 있는 이들, 그리고 말씀을 단순하게 믿는 이들, 즉 글자대로 자기의 납득력에 의거 쉽게 믿는 이들, 그리고 그들이 믿는 이런저런 것들에 따라 사는 이들이 단순한 선에 있는 이들이라고 말해진다…교회의 내적인 것은 선을 통하여 그들에게 흘러든다, 그러나 그들이 내면적 진리들에 있지 않을 때, 그들에게 흘러든 선은 일반적인 것이 된다. 고로 불명확하다….미디안의 적절한 의미는 교회 밖에 있는 이들, 그러나 자기들의 광신적 신앙에 따라 선 안에서 사는 이들일 것이다.
출3:1-‘그리고 모세는 미디안의 성직자 그의 장인 이드로의 양떼에게 풀을 뜯기고 있었다’=신성으로부터의 법이 단순한 선으로부터의 진리에 있는 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미디안의 성직자’=이들이 있는 교회의 선.
출4:19-‘여호와께서 미디안에 있는 모세에게 말하셨다’=그 상태에서 신성으로부터의 예증과 확증…‘미디안’=단순한 선으로부터의 진리.
사7:13-‘미디안’에 의해 단순한 선으로부터의 진리에 있는 이들이 의미되어진다. 그리고 반대 의미에서 생활의 선에 있지 않은 이들…그 당시 미디안족들이 표현했던 상태가 여기서 묘사되어 있다.
출18:1-‘이드로, 미디안의 성직자’=단순한 선으로부터의 진리에 있는 교회의 선.
사7장-‘미디안, 아말렉, 동쪽의 아들들’, (이들 진영 주위에서 기드온의 300명이 자기들의 나팔을 불었다)=악들과 이 악들로부터 파생한 거짓들에 있는 이들.
민1장-‘미디안’에 의해 진리의 지식들에 있는 이들이 의미된다. 그러나 여전히 그것들에 따른 생활은 없다.
사7장-여기서 ‘미디안’은 진리를 돌보지 않는 이들이 뜻해진다, 그 이유는 그들이 단지 자연적이고 외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개 같이 손에서 물을 튕겨먹은 혀를 가진 이들에 의해 쳐죽여졌다. 이같이 물을 먹은 이들은 진리 탐구에 열심인 이들을 뜻한다.
사7장-‘미디안족’에 의해 악으로부터의 거짓들에 있는 이들이 의미된다.
민31장,25장-‘미디안족은 선으로부터가 아니기에 진리가 아닌 진리, 고로 거짓을 표현했고 의미했다. 이로부터 남자를 알아버린 여자는 죽여졌고, 알지 않은 여인은 생명을 부지했다. 미디안족 여인=거짓들을 통하여 선을 더럽힘, 그리고 이로부터 선을 간음질하고 모독함,

미리암 (Miriam)

출15:20-‘그리고 여예언자, 아론의 누이 미리암은 그녀의 손에 소구(timbrel)를 집어 들었다’=신앙의 선으로부터 주님을 찬미함. ‘미리암’=신앙으로부터의 선…이 선은 주님으로부터 간접적으로 진행된다…미리암, 다른 여인들과 더불어 외적인 선을 표현했다, 그래서 미리암에 추가되어 말해진 것은 모세의 누이가 아닌 ‘아론의 누이’였다.

미스라임 (Mizraim)

창10:6-‘함의 아들들…미스라임’=…여러 나라들, 이를 수단으로, 내적 의미에서 (영적) 지식들, (자연적) 지식들, 그리고 선행에서 분리된 신앙으로부터의 예배들이 의미되어 진다.
창10:13-‘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힘과 르하빔과 납두힘. 그리고 바드루심과 가슬루힘, 이들로부터 블레셋과 갑도림이 나왔다’=여러 많은 국가들, 이를 수단으로 아주 많은 종류의 의식들이 의미된다.

밀가 (Milcah)

창11:29-‘나홀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였다’=우상 예배에서 악이 거짓과 결혼함. 아내들=거짓들.
창22:20-‘보라, 밀가, 그 여자 역시 당신의 형제 나홀에게 아들들을 낳았다’=선으로부터 형제 관계에 있는 교회 밖 사람들. 데라는 세 아들들, 아브람, 나홀, 하란을 가졌는데, 이들은 다른 신들을 예배했다. 그리고 밀가는 하란의 딸이였다. 이 여자가 나홀의 아내였다. 이로부터 나홀과 밀가에 의해 의미되는 것이 분명해질런지 모른다. 즉 ‘밀가’는 이 국가들의 진리, ‘나홀’은 선.

바두루심 (Pathrusim)

창10:14-‘바두루심과 가슬루심’은 소위 나라들이다. 이를 수단으로 오로지 과학적일 뿐인 같은 근원으로부터 있는 의식들의 교리적인 것이 의미된다.

바락 (Barak)

사4,5장-‘드보라와 바락’=선으로부터의 진리.

발락 (Balak)

* 발람을 보라

발람 (Balaam)

민31:8-여호와의 천사가 칼을 빼들고 길을 가는 발람 앞에 서있음이란 발람이 지녔던 거짓에 잘 견뎌내었던 진리가 의미된다. 그러므로 발람은 칼에 맞아 죽었다.
민24:2,9-발람이 이스라엘 지파들이 그들 질서에 따라 거주하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말했다, ‘그는 구부려 누움이 마치 사자 같고, 늙은 사자 같다, 누가 그를 일으킬 것인가?’ 여기서 묘사된 것은 천적인 것이다, 그 이유는 이것이 천적인 질서이기 때문, 이 질서가 지파별로 자기 진영을 꾸린 것에 의해 표현되었는데, 이것을 발람이 그 모습을 볼 때, 영 안에서 본 것이다.
계2:17, 민22:7, 24:1 여13:22-‘거기 발람의 교리를 붙들고 있는 자들이 있다. 발람은 이스라엘의 아들들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고 매춘을 범하도록 발락을 가르쳤던 자다’=그들 사이에 위선적인 일들을 행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 이로 인해 교회에서 하느님을 예배함은 더럽혀졌고 섞음질했다는 것…그이유가 발람은 위선자요 마법사이기 때문, 그이유가 그는 여호와로부터 이스라엘에 관하여는 좋게 말했으나 그의 심정은 그들을 파괴하려는데 불타고 있었는바, 그가 발락에게 준 귀띰을 통하여 그들에게 피해를 입혔다. 이로부터도 그가 위선자임은 분명하다.
계2:17-‘너는 발람의 교리를 붙들고 있는 이들을 거기에 가지고 있다, 발람은 이스라엘의 아들들 앞에 올무를 놓도록 발락을 가르친 자이다’=이해함에서 계발된 이들, 그래서 진리들을 가르치는 이들, 그런데 교활함을 수단으로 교회 속에 있는 것들을 파괴하기를 사랑하는 이들…메소포타미아의 브올로부터의 발람은 마법사였다…

베냐민 (Benjamin)

창35:18-‘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다’=천적인 것으로부터 있는 영적인 것의 품질…천적인 것으로부터의 영적인 것은 영적 왕국과 천적 왕국 사이에 중간(intermediate)이다. 원어에서 ‘베냐민’은 ‘오른손의 아들’을 뜻한다, 이를 수단으로 천적 선으로부터 있는 영적 진리, 그로부터의 능력이 의미되어진다. 그이유가 선의 능력은 진리로부터 있기 때문이다. ‘아들’=진리, 그리고 ‘손’=능력(power). 그러므로 ‘오른손’=완전한 능력.
신33:12-말씀의 다른 장소, 특히 예언서에서 ‘베냐민’에 의해 주님의 교회 속에 있는 영적 진리가 의미되어진다. 이스라엘의 아들들에 관한 모세의 예언적 말함에서, ‘그가 베냐민을 두고 말하기를, 여호와의 사랑받는 자, 그에게 여호와께서는 확실히 거주하시며, 모든 날 동안 베냐민을 덮어 주고 계신다, 그리고 그분은 그의 어깨들 사이에 거주하실 것이다.’ ‘여호와의 사랑받는 자’=천적 선으로부터 있는 영적 진리. 이 선은 ‘모든 날 동안 이 진리를 덮기 위해’ 이 진리와 ‘대담하게 거주한다’, 그리고 그것의 어깨들 사이에 거주한다. 그이유가 ‘어깨들’=모든 힘, 그리고 선은 진리를 통하여 그 선의 모든 힘을 가진다.
예6:1-‘베냐민의 아들들, 너희는 예루살렘의 한가운데로부터 도망하라, 그리고 나팔을 크게 소리내거라, 그리고 포도원의 집 위에서 예언적 말함을 크게 소리내어라, 그이유는 악이 북쪽으로부터 내다보는 바, 큰 파멸이 있기 때문이다’. ‘베냐민의 아들들’=천적인 것으로부터의 영적 진리. ‘예루살렘’=영적 교회, 그리고 ‘포도원의 집’, 또는 ‘벧학게럼’도 영적 교회. ‘북으로부터 악’=감각적인 것, 하여 인간의 과학물.
예33:13-‘베냐민의 토지’=주님의 교회 속에 있는 영적 진리. 그이유가 주님의 교회 속에 있는 모든 것들, 첫 수준으로부터 마지막 수준까지가 ‘유다의 성읍들’, ‘예루살렘의 주변’, ‘베냐민의 토지’, ‘평야’, ‘산’, 그리고 ‘남쪽’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호5:8,9-‘기브아에서 너는 나팔을 가지고 소리를 내라, 라마에서 나팔을 가져라, 벧아웬에서 크게 소리질러라, 베냐민아 네 뒤를 쫒는다, (하여)에브라임은 견책의 날에 황무해질 것이다’. ‘기브아’, ‘라마’, ‘벧아웬’=베냐민인 천적인 것으로부터의 영적 진리 속에 있는 일련의 것들. ‘나팔을 가지고 소리내는 것’, ‘나팔을 가지는 것’, 그리고 ‘크게 소리지르는 것’=에브라임으로 표현되는 것인 교회의 지적 측면이 황량해짐을 선포하는 것.
옵19절-‘베냐민’=천적인 것으로부터의 영적인 것.
계7장-여기서 이스라엘의 지파들은 네 계층으로 분류되어진다. 이 중에서 마지막 계층이 ‘스불른’, ‘요셉’, ‘베냐민’으로부터 각 12000씩 날인되어졌다. 그이유는 ‘스불른 지파’에 의해 천국적인 결혼이 의미되어지고, 이 결혼에 천국이 있다, 고로 이 안에 모든 것들이 있다. 거기서 ‘요셉’=영적인 것 속의 천적인 것, 또는 진리로부터의 선. 그리고 ‘베냐민’=이 선으로부터의 진리, 또는 천적인 것 속의 영적인 것. 이것이 천국에서 결혼의 원리이다. 그리므로 이것이 마지막에서 명명되어지고 있다.
여18:28, 사1:21-베냐민에 의해 교회의 천적인 것으로부터의 영적인 것을 표현했는 바, 예루살렘은 베냐민의 후손에게 상속분이 되었다. 그이유는 시온이 거기에 건설되기 이전, 일반적 측면에서의 교회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창35:24-‘라헬의 아들들, 요셉과 베냐민’=내면의 선들과 진리들…‘베냐민’에 의해 천적인 것 속의 신성한 영적인 것이 표현되어졌다. 이런 것들이 내면의 선들과 진리들 안에 있다.
창42:4-‘요셉의 형제, 베냐민’=매체인 천적인 것 속의 영적인 것…‘요셉’인 신성으로부터의 진리는 ‘베냐민’인 매체 없이 ‘야곱의 아들들’인 자연에 있는 일반적 측면에서의 진리들과 교류할 수 없다.
창42:36-‘그리고 너희는 베냐민을 데려가려 한다’=중매자 또한 거둬가버린다면…
창42:38-‘그리고 그 애 만이 남겨 있다’=그는 지금 내적인 것의 자리에 있다는 것…‘요셉과 베냐민’ 각각은 내적인 것을 표현한다.
창43:14-‘그리고 베냐민’=내면의 진리.
창43:16-‘요셉은 그들과 더불어 있는 베냐민을 보았다’=영적인 것 속의 천적인 것을 수단으로 영적 매체가 진리들과 있음을 지각함…이것이 영적 매체라 불리워지는 이유는 야곱의 열 아들들에 의해 표현되는 진리들이 지금 ‘요셉’인 신성으로부터의 진리와 결합되려하고 있는데, 이 결합은 영적인 매체를 통하지 않고는 결과되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창43:16-그들이 ‘베냐민’인 영적 매체와 더불어 있을 때, ‘정오에, mid-day’라고 말해지고 있다.
창43:34-‘그는 베냐민의 몫을 다른 사람의 몫 보다 (다섯배) 더 많게 했다’=매체를 위한 선은 자연에 있는 선들 넘어 있다…이런 이유는 매체는 더 내면적이기 때문에서이다….
창44:20-‘그의 어머니에게는 그 애 만이 남았습니다’=이것은 교회 속의 유일한 진리이다는 것. ‘베냐민’=새 진리…‘베냐민’에 의해 여기서 표현되는 이 진리가 교회의 유일한 진리이다는 환경 여건을 주목해보면, 이 진리는 이스라엘이 표현한 영적 선으로부터 있는 진리이다, 그리고 ‘베냐민’이 그의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 보다 그가 요셉과 더불어 있을 때 한층 더 내면적 진리이다. ‘베냐민’이 자기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 표현하는 진리는 새 진리라 불리운다. 이 진리가 사람을 교회로 만들기 때문, 이 진리에서 선으로부터의 생명이 있기 때문, 즉 선으로부터 신앙의 진리들에 있는 사람이 교회이기 때문.
창44:23-‘베냐민’, 여기서 ‘가장 작은 형제’이다=결합하게 해주는 매체. 이를 주목해서 보자. 즉, ‘베냐민’은 요셉이 표현하는 영적인 것 속의 천적인 것, 또는 영적 선과 야곱의 열 아들들인 자연에 있는 진리들 사이에서 매체를 표현한다. 그리고 그는 또한 새 진리도 표현한다. 매체가 어떤 결합시켜주는 역할을 하기 위하여 매체는 양쪽 즉 내적, 외적 측면에 참가해야 한다. ‘베냐민’이 표현하는 매체가 외적 측면 또는 자연에 참가할 경우 그 매체 안에 새 진리를 담게 된다. 그이유가 그가 표현하는 새 진리가 자연 안에서의 경우 ‘이스라엘’로서의 그의 아버지가 표현하는 영적 선으로부터 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매체는 요셉으로 표현되는 내적 측면에도 유입을 통하여 참가한다. 고로 양쪽에 참가하고 있다. 이것이 ‘베냐민’이 결합시켜주는 매체를 표현하고, 동시에 새 진리도 표현하는 이유이다. 즉 그의 아버지와 더불어서는 새 진리를, 형인 요셉과 더불어서는 결합하게 하는 매체이다.
창45:12-‘그리고 내 형제 베냐민의 눈’=특별히 매체의 지각을 수단으로… ‘베냐민’이 매체를 표현하는 바, 그리고 이 매체는 요셉인 내적 선에 직접적으로 의존하는 내적 진리인 바, 이 매체는 아래 여느 진리 보다 더 명백하고 예리한 지각을 가졌다…
창45:14-‘그는 베냐민의 목을 끌어 안았다’=매체와의 가장 깊은 결합…고로 ‘베냐민’인 천적인 것으로부터의 영적인 것과 요셉인 천적인 내적인 것의 결합이다.
창45:22-‘그는 은 삼백 (조각)을 베냐민에게 주었다’=매체가 충만해지도록 선으로부터 진리가 옴…그이유가 ‘베냐민’인 매체는 천적인 적인 것으로부터 유입을 통하여 있는 내면의 진리이기 때문.
창46:19-‘요셉과 베냐민’=교회의 내적인 것. ‘요셉’은 교회의 내적 선. ‘베냐민’은 이 선으로부터 파생된 진리.
창46:21-‘베냐민의 아들들’…=영적인 것의 내적인 것과 그것의 교리적인 것.
창49:27-‘베냐민’=‘요셉’인 영적 교회의 선으로부터의 진리. ‘베냐민’=천적인 것 속의 영적인 것, 이는 선으로부터의 진리이다. 여기서의 경우, ‘요셉’에 의해 표현된 영적 교회로부터 있는 이 선의 진리.
옵19절-‘베냐민’=교회의 영적 천적 진리.
계7:8-‘베냐민 지파로부터 일 만 이 천이 날인되어졌다’=주님의 새 천국과 새 교회에 있을 이들과 더불은 교리에 따라 선으로부터의 진리로 사는 것. ‘스불론’은 선과 진리의 결혼적 사랑, ‘요셉’은 선과 진리에 관한 교리, 이 시리즈의 세 번째인 ‘베냐민’은 선으로부터의 진리로 살아감이 의미되고 있다. ‘베냐민’이 이런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그가 마지막 출생자였기 때문, 그리고 그의 이름은 그의 아버지 야곱에 의해 ‘오른손의 아들’이라 명명하였기 때문이다…이를 수단으로 선으로부터의 진리가 의미되어진다, 그러므로 또한 그의 지파는 유다 지파가 있는 예루살렘 주위에 거주했다, 그리고 예루살렘 도성은 교리 측면에서의 교회를 의미했다, 그리고 교리를 둘러싸는 여러 가지 것들까지 의미했다.
시68:27-주님의 순진, 이로부터 그분은 모든 것들을 하셨는데, 이 순진이 ‘작은 베냐민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다’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시80:2-진리의 빛은 자연적 진리와 선에 있는 이들 조차 관통해가고, 교회에서 아주 멀리 있는 이들 조차 꿰뚫는다는 것이 ‘에브라임, 베냐민, 므낫세 앞에서 당신의 힘을 휘저어주소서’에 의해 의미되어지고 있다…‘베냐민’에 의해 진리와 선의 결합, 또는 자연에서 합쳐지게 만드는 매체가 뜻해지고 있다.
여18:11-28-‘베냐민’과 그의 지파=자연적 인간에서 선과 합쳐진 진리, 그러므로 가나안 토지에서 그들의 토지 구획은 유다 후손과 요셉 후손 사이에 있었다, 그리고 여부스족이 거주했던 예루살렘이었다. 하여 베냐민 후손은 거기서 유대인들과 거주했고, 후에 유대인이 이 성의 소유자가 되었다. 유다와 요셉 사이에 있는 이 토지 구획이 이 지파에게 돌아간 이유는 이 구획 부지가 선과 진리의 결합을 표현했기 때문. 즉 ‘유다’=교회의 선, ‘요셉’=교회의 진리이다. 예루살렘이 이 지파의 몫이 된 이유는 ‘예루살렘’=교리 측면에서의 교회와 예배 측면에서의 교회이기 때문, 그리고 교회의 모든 교리는 선과 합쳐지는 진리의 교리이기 때문, 그리고 교리에 따른 모든 예배는 자연적 인간을 통하여 거행되기 때문…
예17:26-‘베냐민의 토지’=자연적 인간에서 (선과 진리의) 결합 측면에서의 교회.
예32:8,44, 33:13-‘베냐민’=자연적 인간에서 진리와 선의 결합, 고로 최말단 천국에 있는 이들과 더불은 진리와 선의 결합.
예6:1-‘베냐민의 후손들’=선과 진리의 결합.
시80;2-‘에브라임, 베냐민, 그리고 므낫세’=자연적 진리와 선에 있는 이들, 그리고 이들과 더불어 그것들의 결합이 있다.
시68:27-‘작은 베냐민’=자연적 인간의 순진….이는 거기서 선과 진리의 결합이다.
신3:2-‘베냐민’=자연 수준인 최말단 의미에 있는 말씀…그리고 최말단 의미에서…선과 진리의 결혼이 있는 바…여호와의 사랑받는 자라 말해지고 있다.
창49:27-자기 아들들에 관한 이스라엘의 예언에서, ‘베냐민’은 마지막에서 취급되어진다, 그이유는 교회와 천국의 마지막 것이 베냐민에 의해 의미되어지기 때문. 마지막 것, 또는 최말단 것은 자연 평면에서 진리가 선과 합쳐지는 것이다.
민2:18-24-이런 것들이 ‘베냐민’에 의해 의미되는 바,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지파는 광야에서 서쪽에 진영을 배치받고 있었다. 그리고 이 세 지파들에 의해 자연적 진리와 선에 있는 모든 것들, 그리고 그것들이 결합하여 있는 것들이 의미되어진다. 그들이 서쪽에 진을 친 이유는 천국의 서쪽과 북쪽에 선과 진리의 불명료함에 있는 이들, 고로 자연적 선과 진리에 있는 이들이 거주하기 때문.
예6장-‘베냐민의 후손’=가장 낮은 천국에서 주님과 결합을 가진 이들.

베노니 (Benoni)

창35:18-‘그녀는 그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다’=이 상태의 품질…원어에서 ‘베노니’는 ‘내 고통으로부터의 아들’, 또는 ‘내 슬픔으로부터의 아들’을 뜻한다.

베드로 (Peter)

* 요한 시몬도 참조
* ‘베드로, 야고보, 요한’=신앙, 선행, 그리고 선행으로부터의 선.
요21장-‘베드로’=신앙, 그리고 신앙은 선행으로부터, 그리고 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 있지 아니하면 신앙이 아닌 바, 주님께서 그에게 첫 번째 물으신 것은 네가 나를 사랑하는지 였다. 즉 신앙 안에 사랑이 있는지 여부를 물으신 것이다…
마16:15-19-‘교회가 세워지게 될 바위’=선행으로부터의 신앙. 이 신앙에 천국을 열고 닫는 열쇠들이 주어졌다.
마26:31,34-‘베드로가 이 밤에 주님을 세 번씩 부정한 것은 교회의 마지막 때를 표현했다. 이 마지막 때에는 신앙으로부터의 진리가 참으로 가르쳐지나 믿어지지 않는다.
요21:18-베드로, 아이일 때=교회의 시작에서 있는 것과 같은 교회의 신앙. 그리고 늙었을 때=교회의 마지막에 있는 것과 같은 교회의 신앙.
막3:16-주님께서는 시몬에 이름 ‘베드로’를 더하셨다…그이유는 ‘바위’같이 ‘베드로’=선으로부터 진리 측면에서의 주님, 또는 선행으로부터의 신앙.
요21:15-17-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 물으신 것, 그리고 베드로가 세 번 말하기를,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런다음 예수께서 말하셨다, ‘내 어린 양들을 먹이라,’ ‘내 양을 먹이는 것=사랑으로부터 신앙에 있는 이들은 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 선에 있는 이들과 이웃을 향한 선행에 있는 이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
마16장-‘베드로’, ‘다윗’과 마찬가지로=최고 의미에서, 주님의 신성한 선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 그리고 내적 의미에서 주님으로부터 있는 선으로부터의 모든 진리…주님의 열두 제자는 복합체에 있는 교회의 모든 진리들과 선들을 표현했다. 베드로=진리, 또는 신앙.
마16장-‘베드로’=주님으로부터 있는 선으로부터의 진리. 고로 선행으로부터의 신앙. 그리고 그에게 주어진 ‘열쇠들’은 악들과 거짓들을 압도하는 힘. 이런 것들은 그가 주님의 인간 안에 그분의 신성이 있음을 인정했을 때 베드로에게 말해졌다. 이를 수단으로 이들은 주님의 인간에 계신 그분의 신성을 인정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이 뜻해진다. 그리고 그분으로부터, 선행의 선 안에, 그런고로 신앙의 진리들 안에 있음도 뜻해진다.
* 베드로는 르우벤과 같은 것을 표현했는 바, 그는 사도들 중의 첫 번째 였다…‘베드로’=빛에 있는 진리, 그리고 신앙.
* 순종하는 신앙이 베드로가 시므온이라 불릴때 의미되어진다. 그리고 진리에 애착하는 신앙은 그가 ‘요나의 아들 시몬’이라 불릴 때 의미되어진다.
* 베드로가 ‘시몬’이라 불릴 때, 그는 ‘시므온’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즉 순종, 선행의 신앙, 진리에 애착함 , 그리고 일반적으로 선으로부터의 진리.
* ‘베드로’=이해성에 있는 진리, ‘야고보’=의지에 있는 진리, ‘요한’=행동에 있는 진리.
마16:23-‘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하셨다, 너는 내 뒤로 물러가라, 사탄아. 너는 악평(자)이다. 너의 관심사는 하느님의 것이 아닌 사람의 것이다.’ 이런 것들이 베드로에게 말해졌는데, 그이유는 ‘베드로’, 표현적 의미에서=신앙. 그리고 신앙이 진리로부터 인 바, 그리고 또한 거짓으로부터이기도 한 바, 위 구절 같이 베드로는 ‘사탄’이라 불리어진다…베드로는 양쪽 의미에서 신앙을 표현했다. 즉 선행으로부터의 신앙, 그리고 선행 없는 신앙. 그리고 선행 없는 신앙은 거짓으로부터의 신앙이다.
요21:15-17-이 대목으로부터 명백해지는 것은 베드로가 주님을 사랑함의 선으로부터의 진리를 표현했음 이다. 그러므로 그는 여기서 ‘요나의 시몬’이라 불리는데, 이는 선행으로부터의 신앙이다…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 진리의 교리에 있는 이들은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에 의해 뜻해지는 이들, 즉 주님의 교회 속에 있을 이들을 가르치야 한다.
요21:18-23-이런 것들이 뜻하는 것을 베드로에 의해 선행으로부터의 신앙, 또한 선행 없는 신앙이 의미되어져 있다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아무도 알지 못한다. 교회의 시작에서 교회에는 선행으로부터의 신앙이 있었다는 것, 교회가 중단되는 때에는 선행 없는 신앙이 있게 된다.
* ‘베드로’, 표현적 의미에서=주님으로부터 있는 선으로부터의 진리, 또한 선행으로부터의 신앙. 그리고 반대적 의미에서, 선에서 분리된 진리, 이는 그자체 거짓이다. 그리고 또한 선행으로부터 분리된 신앙, 이는 그자체 신앙이 아니다.
요21장-‘베드로’=믿음으로 만(faith alone)이라는 교리에 있는 이들…베드로에게 하신 말들로부터 믿음 만으로 라는 교리에 있는 이들은 주님의 신성한 인간을 인정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해진다.

베도갈마 (Bethogarma)

겔27:14-‘베도갈마로부터의 이들’=내향의 예배에 있는 이들.

베레스 (Perez)

창38:29-‘그녀는 그의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다’=품질, 즉 외관적으로 선으로부터 진리의 분리…그이유가 원어에서 ‘베레스’는 ‘깨뜨림, breach’이기 때문.
창46:12-‘유다의 아들, 곧 엘과 오난과 셀라와 베레스와 세라…’=천적인 사랑, 그리고 그것의 교리적인 것들…‘베레스의 아들, 헤스론과 하물’=이 선으로부터의 진리들, 이는 선행으로부터의 선들이다.

벨렉 (Peleg)

창10:25-(둘째 고대 교회의) 내적 예배가 ‘벨렉’이다.
창11:16-‘그리고 벨렉을 낳았다’=(교회 에벨로부터)의 갈래. 벨렉은 그의 조상 처럼 자기로부터 이름지어진 나라이다. 이를 수단으로 외적 예배가 의미된다. ‘벨렉’이 여기서 외적 예배인 이유는 시리즈로부터…고로 그의 갈래로부터 생겨나기 때문. 앞장에서 이 이름의 또 다른 의미가 있는데, 그 이유는 그의 형제 욕단과 더불어 그 교회를 표현했기 때문.

벨사살 (Belshazzar)

단5장-성전과 제단의 집기들이 이 의미를 가졌고 그러므로 거룩했다…그러므로 벨사살이 그것들로 마시고…금으로 만든 신들을 찬양했을 때…글씨가 그의 궁전의 벽에 나타났다. ‘금과 은으로 만든 집기들’=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 이것이 모독되었다, 그 이유는 갈대아인들=영적 지식들을 지닌 이들, 그러나 이것이 그것에 있는 거짓들을 통하여 모독되었다. 그들은 이 지식들로 금과 은으로 된 신들을 예배하는데 사용했던 것이다. 벨사살은 갈대아 왕이라 불리우고 있다.(30절)

보디발 (Potiphar)

창37:36-‘보디발, 바로의 경호 대장’=과학물의 내면의 것들.
* 보디발의 아내‘=영적이지 않은 자연적인 것으로부터의 진리.

붓 (Put)

창10:6-‘붓’ 등등=많은 나라들, 이를 수단으로 영적 지식들, 지식들, 그리고 선행으로부터 분리된 신앙 속에 있는 예배들.
예46:8-‘붓’=감각의 외관에 의거 있는 글자 의미로부터의 영적 지식들.
겔27:10-‘룻과 붓’=추론의 도움과 더불어 진리들을 방어하는데 도움이 되는 영적 지식들. ‘붓’=말씀의 외면의 영적 지식들.

블레셋 사람(Philistine)

* 아비멜렉도 참조.
* ‘블레셋 사람’에 의해 표현되는 것은 거짓 원리들을 채택하여 영적인 것들을 추론하는 이들이다. 이것은 과거 대홍수 시절 인간이 그러했듯, 인간을 ‘침수’하게 만든다.
창10:14-‘이들로부터 블레셋족이 생겨났다’=그 때부터 있는 나라, 이를 수단으로 신앙과 선행의 지식들에 관한 기억적 지식이 의미되어지고 있다.
예47장-‘불레셋 사람들’=신앙과 선행의 지식으로부터의 기억적 지식들.
이11:14-‘블레셋 사람’=선행 없이 진리에 관한 지식이 기억에만 머물고 있는 이들.
창21:34-‘아브라함은 많은 날 동안 불레셋 사람의 토지에서 체류했다’=주님은 인간의 지식으로부터의 기억적 지식들로부터 있는 아주 많은 것들을 신앙의 교리에 인접되게 하셨다는 것.
이14:31-‘불레셋 사람’=신앙의 지식들에 관한 기억 속의 지식. 또는 같은 것으로, 같은 것의 기억 속의 지식에 있는 이들, 그러나 신앙의 선들에는 있지 않은 이들.
창26:1-‘불레셋 사람의 왕’=교리적인 것들…(그이유가) ‘불레셋’=지식들에 관한 기억 속의 지식, 이는 또한 교리적인 것들로부터의 것들이다.
창26:14-‘불레셋 사람은 그를 시기했다’=지식들에 관하여 기억 속의 지식으로만 있는 이들은 납득 못했다.
창26:15-‘모든 우물들을 불레셋 사람은 막아버렸다’=지식들을 기억에만 머물게 하는 이들은 신성으로부터 있는 내면의 진리들을 알기를 원치 않는다, 고로 그것들을 말살한다는 것.
출13:17-‘하느님께서는 그들이 불레셋 사람의 토지를 경유하도록 인도하시지 않았다’=그들이 선으로부터 있지 않은 신앙의 진리로 건너가지 않도록 신성에 의해 설비되어졌다는 것.
출15:14-‘고통이 불레셋의 거주민들을 붙잡았다’=선으로부터 분리된 신앙에 있는 이들과 더불은 확장되려는 지배욕이 포기됨.
출23:31-‘불레셋 사람의 바다 쪽으로’=신앙의 내면의 진리들 쪽으로 확장…,,,그이유가 불레셋의 토지는 신앙의 내면의 것들에 관한 지식을 의미했기 때문, 그 이유는 고대 교회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
이14:29-‘불레셋’=선행으로부터 분리된 신앙.
겔25:16-‘불레셋 사람’=믿음 만으로의 교리에 있는 이들.
이11:14-‘바다 쪽을 향하여 있는 불레셋 사람’=선행으로부터 신앙이 분리된 이들, 또는 선한 생활과 신앙이 분리된 이들.
욜3:4-‘불레셋 사람’=말씀의 진리들과 선들을 왜곡한 이들.

비골 (Phicol)

* 아비멜렉을 참조.

비느하스 (Phinehas)

민25:12,13-‘비느하스’는 표현성을 지닌 성직 직분이 뜻해진다, 이것=사랑과 사랑으로부터의 것들.
출6:25-‘그녀는 그에게 비느하스를 낳았다’=거기로부터의 갈래.

빌라도 (Pilate)

* 빌라도의 질문, ‘진리가 무엇인가?’

빌하 (Bilhah)

창29:29-‘라반은 라헬에게 그의 하녀 빌하를 그녀의 하녀로 주었다’=더 외면적인 애착들, 이것은 묶는 것들이고 수단들을 돕는다…하녀 ‘빌하’=더 외면적인 애착들, 그리고 ‘질바’, 레아의 하녀=외적 애착들이 되는 이유는 ‘라헬’=내적 진리에 애착함, ‘레아’=외적 진리에 애착함 이기 때문. 더 외적인 애착들은 내적 애착들에 도움이 되는 자연적 애착들이다.
창30:3-‘보라, 나의 하녀 빌하’=자연적 진리와 내면의 진리 사이에 있은 확언하는 매개체…‘빌하’=이 매개체의 품질.
창30:5-‘빌하가 임신했다, 그리고 야곱에게 아들을 낳았다’=받아들임과 인정함.
창46:25-‘이들은 빌하의 아들들이다’=이들은 내향의 교회 속에 있다는 것.

사가랴 (Zachariah)

마23:35-‘바가랴의 아들 사가랴의 피.’ ‘사가랴’=교리의 진리들에 있는 이들. 추상적 측면에서, 교리 자체로부터의 진리. 그리고 ‘피’=그것의 사멸.
눅11:51-‘아벨의 피로부터 사가랴의 피까지’=모든 선이 섞음질됨.

사라 (Sarah)
사래 (Sarai)

* 아브라함 참조
창11:30-‘사래는 임신이 안되었기에 그녀에게는 자손이 없었다’=악과 거짓이 더 이상은 그자체 생산되지 않았다는 것.
* ‘아내’로서의 ‘사래’=천적 왕국에 인접해 있는 진리; ‘누이’로서의 ‘사래’=지적인 진리.
창12:5-‘사래’=진리.
* ‘아내 사래‘=주님과 더불어 있는 천적인 것들에 인접한 진리.
창16:1-‘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그에게 (아이를) 낳아주지 못했다’=아직까지는 합리적 인간은 없었다는 것.
* ‘사래’=선에 인접한 진리.
창16:3-‘아브람의 아내, 사래가…데려왔다’=진리에 애착함, 이것은 순수한 의미에서 ‘아내 사래’이다; 그이유가 ‘사래’=선에 인접된 진리; 그리고 ‘아내’=애착.
창17:15-‘네 아내 사래’=선과 결합된 진리. ‘사래’=지적인 진리; 그리고 ‘아내’가 여기서 추가될 때, 그 여자=선과 결합된 지적 진리.
창17:15-‘너는 그녀의 이름을 사래라 부르지 말라, 그 이유가 사라가 그녀의 이름이기 때문이다’=그분은 인간성을 벗고 신성을 입으실 것이다는 것…그 이유가 이름 사라에 추가된 철자 ‘H’는 이름 ‘여호와’에서 가져온 것으로, 이는 그녀도 아브라함 같이 주님의 신성을 표현해야 했기 때문이다; 즉 주님 안에서 선과 진리의 신성한 결혼을 표현해주기 위하여서이다; 아브라함, 신성한 선, 그리고 사라=신성한 진리, 이로부터 신성한 합리성이 태어난다.
창17:17-’90세 된 딸인 사라가 아이를 낳을까?’=선과 결합한 진리는 이를 실행한다는 것; 그 이유가 ‘사라’=선과 결합한 진리, 또는 신성으로부터의 진리.
창18:9-‘네 아내 사라는 어디 있느냐?’=그 당시 나타나지 않았던 합리적 진리, 그런 이유는 그것이 합리적 선 안에 있었기 때문.
창18:10-‘네 아내 사라를 위한 아들’…‘사라’=합리적 진리.
창18:10-‘사라는 천막의 문에서 들었다’=합리적 진리가 그 당시 거룩한 것 근처에 있었다.
창18:11-‘사라와 더불어서는 여인의 길(생리)이 중단되어 있었다’=고로 이것은 더 이상 남아 있을 수 없었다.
창18:12-‘사라는 속으로 웃었다’=그렇게 행동되어진다는 점에서 이 합리적 진리에 애착함 .
창20:2-‘사라 그의 아내’=천적인 것과 결합한 영적 진리; 그 이유가 ‘아내 사라’=신성한 선과 결합한 지적인 진리; 또는 천적인 것과 결합한 영적 진리.
창21:1-‘여호와께서 사라를 방문하셨다’=신성한 영적인 것 안에 신성한 천적인 것이 현존함.
창21:3-‘사라가 그에게 낳은…’=신성한 천적인 것에 하나된 신성한 영적인 것으로부터의 실재와 실체.
창21:12-‘사라가 네게 말한 모든 것, 그녀의 음성에 귀기울여야 한다는 것’=그분은 영적 진리에 따라 행동하실 것이다는 것.
창23장-여기서의 ‘사라’=기한이 만료된 신성으로부터의 진리.
창23:1-‘사라의 삶들은…이었다’=앞서 진행되었었던 신성으로부터의 진리들에 관련한 교회의 때들과 상태들.
창23:1-‘사라의 삶의 햇수들’=신성으로부터의 어떤 진리가 잔존했었던 동안…‘사라의 삶들’=신성으로부터의 진리들에 관련한 상태들.
창23:2-‘사라는 죽었다’=신앙으로부터의 진리들에 관련한 밤…‘사라’=신성으로부터의 진리.
창23:19-‘아브라함은 자기 아내 사라를 매장했다’=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선과 결합한 진리를 주님으로부터 받았다는 것…아내로서의 사라=선과 결합한 진리.
* (이삭의 어머니로서의) 사라=신성한 진리.
창24:67-‘이삭은 자기 어머니 사라의 천막 안으로 그녀를 들였다’=신성한 인간 안에 있는 진리의 성소…‘사라, 어머니’=신성으로부터의 진리, 이로부터 신성한 인간이 출생되고, 이 인간 속의 합리성이 그녀의 아들 이삭에 의해 표현되었다.

사람의 아들 (Son of Man)

신32:8-주님을 믿는 신앙 안에 있어 온 이들은 ‘사람의 아들들’이라 불린다. (=신앙 속의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
창11:5-‘사람의 아들들이 짓고 있는 것’=교회의 아들들이 창안하고 있는 것.
마24:30-‘그런다음 천국에서 사람의 아들의 표시가 나타날 것이다’=그런다음 신성으로부터의 진리가 나타남 (=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으로부터의 진리).
마24:39-‘사람의 아들의 옴이 그러할 것이다’=그들은 신성한 진리를 받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아들의 오심’은 그당시 계시되어질 신성한 진리이다.
마25:31-‘사람의 아들이 그분의 영광 안에서 올 때’=신성한 진리가 그것의 빛 안에서 나타날 때, 이것은 인간이 죽을 때 모든 사람에게 발생한다. 그이유가 그때에 그는 천국의 빛 안으로 오는 바, 그 안에서 그는 진리와 선이 무엇인지 지각하기 때문, 그리고 자기 자신의 품질을 지각하기 때문. ‘사람의 아들’, 내적 의미에서 신성한 진리 측면에서의 주님이시다. 고로 주님으로부터 있는 신성한 진리이다.
계1장-‘사람의 아들’=신성한 진리.
계13:9-‘사람의 아들’=선으로부터의 진리. 최고 의미에서 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
마13:37-‘좋은 씨를 뿌리는 분은 사람의 아들이다’. ‘사람의 아들’=교회의 진리들 측면에서의 주님.
마17:12-그들이 신성으로부터의 진리 자체에도 마찬가지로 행할 것이다는 것이 ‘그렇게 사람의 아들도 그들로부터 고통 받을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사람의 아들’=신성으로부터의 진리 측면에서의 주님.
눅17:22-‘사람의 아들의 날 중의 하나라도 보기를 바라는 것’=진짜인 신성으로부터의 진리의 상태들 중의 하나.
눅18:8-‘사람의 아들이 올 때, 그가 땅에서 믿음을 발견할까?’=신성으로부터의 진리가 천국으로부터 계시될 때, 그것은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아들’=신성으로부터의 진리 측면에서의 주님, 또는 주님으로부터 진행되는 신성으로부터의 진리.
마26:64-‘이후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의 오른편에 앉은 것과 하늘의 구름에 오는 것을 볼 것이다.’ ‘사람의 아들’=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
요3:13-‘하늘로부터 내려온 자, 즉 하늘들에 계신 사람의 아들 외에는 하늘로 올라간 자는 없다.’ 이로부터 ‘사람의 아들’은 천국들에 있는 신성한 진리임이 분명하다. 그이유가 자기 안에 있는 신성한 진리가 천국으로부터 내려오지 않으면 아무도 천국으로 올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님이 이 진리이신바, 그분은 자신을 ‘하늘들에 있는 사람의 아들’이라 부르신다.
마8:20-‘사람의 아들은 자기 머리를 놓을 곳을 가지고 있지 않다.’ ‘사람의 아들’=신성한 진리, 이는 그 당시 어느 장소에도 놓일 곳이 없었다, 또는 어느 사람에게도 없었다.
마12:32-‘사람의 아들에 맞서 말을 하는 것’=아직 심어지지 않은 신성으로부터의 진리에 맞서. ‘사람의 아들’=신성한 진리.
마24:30-‘하늘에서 사람의 아들의 표시’=신성한 진리의 나타남.
계1:13-일곱 촛대 사이에서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말씀 측면에서의 주님, 이분으로부터 새 교회가 있다.
계14:14-‘구름에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앉아 있다’=말씀 측면에서의 주님.
요1:52-‘사람의 아들 위에서 하느님의 천사가 오르고 내려가고 있다’=신성한 진리들이 그분 안에, 그리고 그분으로부터 있었다는 것.
이51:12-‘사람’=지혜 측면에서의 인간. ‘사람의 아들’=총명 측면에서의 인간.
시49:2-‘사람의 아들들’=말씀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있는 영적 진리들. ‘사람의 아들들’=이해함으로부터 있는 합리적이고 자연적인 진리들. 고로 말씀을 이해함.
마12:32-‘사람의 아들’=땅에 있는 신성한 진리. 고로 자연적 의미에서 있는 말씀. ‘사람의 아들에 맞서 말을 말하는 것’=말씀의 자연적 의미를 해석하는 것, 이는 외관에 의거한 말씀의 글자의 의미이다.

사무엘 (Samuel)

예15:1-‘모세와 사무엘’=말씀

사울 (Shaul)

출6:15-‘사울’=교회 밖에서 행동하는 진리로부터의 것들.

사울 (Saul)

삼하1:23-왕으로서의 사울은 교회를 보호하는 진리를 뜻한다. (=교회의 진리) (=선으로부터의 진리) (=교회의 신성한 진리)
* 사울 (악령이 그를 덮치고 있을 때)=영적 진리들에 반대하는 거짓들. 이것은 하프 소리에 의해 흐트러졌다, 그 이유는 ‘하프’=영적 진리에 애착함 이기 때문.
삼하1:22-‘사울의 검’=선으로부터의 진리.

산헤립 (Sennacherib)

* ‘앗시리아 왕 산헤립’=모든 지식과 진리를 통각함을 파괴하는 타락한 합리성.

삼손 (Samson)

* 삼손은 성별된 나지르인은 아니었다. 즉 진리 대신 선을 입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머리털로 인한 그의 힘은 주로 그가 주님, 즉 진리 측면의 자연적 인간으로부터 지옥과 싸우시고 그것들을 복종하게 하신 주님을 표현한 것으로부터 였다
* 자기의 자발적 부분으로부터의 인간의 생각이 신체의 모든 강함을 만든다. 만일 이것이 주님의 신성한 진리를 통하여 그분에 의해 영감되어진다면, 인간은 삼손의 힘을 가질 것이다.
* 최말단의 진리로부터 있는 주님의 힘이 나지르인에 의해 표현되어졌다…그리고 삼손에 의해서도 표현되어졌다. 삼손의 경우, 그는 모태로부터 나지르인이었고, 그의 힘은 그의 머리털에 있었다고 말해진다.
* 최말단에 있는 이 힘이 삼손과 더불은 그의 머리털에 의해 표현되어졌다. 그이유가 머리털은 신성한 진리의 최말단에 상응하기 때문.

삽다 (Sabtah)

* 스바를 참조

삽드가 (Sabteca)

* 스바를 참조.

세라 (Zarah)

창38:30-‘세라’=사랑.
창38:30-‘그의 형제가(그의 형이) 그 후에 나왔다’=실제로 앞서는 것은(실지로 보다 중요한 것은) 선이다. 그이유가 여기서 ‘형제’라 불리는 ‘세라’=선이기 때문. 또한 자궁을 먼저 열었던 자는 세라인 바, 그가 첫 출생이기 때문이다.
* ‘세라’, 원어에서, ‘일어남, the rising’을 뜻하고, 태양의 속성, 즉 (이른 아침) 햇빛의 처음 나타남이 이 단어의 근원이다. 이것이 그가 세라라고 이름붙여진 이유인데, 거듭나아가는 사람 안의 선과 더불은 경우도 이와 같다. 즉 이 선이 처음 일어난다. 그리고 빛을 준다, 이를 수단으로 자연적 인간에 있는 것들이 계발되어져서, 그들은 볼 수 있고 인정할 수 있고, 마지막으로 믿을 수 있다.

세례 요한 (John the Baptist)

* 마지막 예언자인 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었다.
마3:4-예언자들은 가르치는 이들, 말씀으로부터의 선과 진리에 관한 교리를 표현했다. 그리고 엘리야는 말씀 자체, 요한 역시 마찬가지인데, 그는 ‘장차 올 엘리야’라고 불리웠다. 그들이 글자로 있는 말씀을 표현하도록 하기 위하여 ‘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끈을 매었다.’
마11:9,11-말씀은 세상의 여느 교리 보다 더 위대하다는 것, 세상의 어떤 진리보다 더 위대하는 것이 ‘너희는 무엇을 보려고 나갔느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네게 말한다, 그리고 예언자 보다 더 위대한 것이 있다’에 의해 의미되어 있고, 그리고 ‘여인들로부터서 태어난 이들 중에서 세례 요한 보다 더 위대한 자는 일어나지 않았다’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말3:1, 눅7:27-‘나는 네 앞서 천사를 보낼 것이다’=주님의 신성, 이로부터 교회가 있고 예배가 있다…이로부터 세례 요한은 ‘천사’라 불리운다…‘그에 관해 씌어있는 바, 보라 내가 내 천사를 네 얼굴 이전에 보낼 것이다, 그는 네 길을 준비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천사’는 세례 요한과 더불은 주님의 신성이다. 이런 이유는 세례 요한이 말씀 측면에서의 주님을 표현했기 때문, 그리고 말씀은 주님으로부터 있는 신성한 진리이기 때문.
눅3:16, 요1:33-요한은 말하기를,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주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신다고 했다. 이를 수단으로 요한은 주님에 관련한 말씀으로부터의 지식들이 그들에게 시작되었을 뿐임을, 고로 그들이 그분을 받도록 준비한 것뿐임을 뜻한다. 이에 비해 주님 자신은 그분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와 선에 의해 인간을 거듭나게 한다. 그이유가 요한은 엘리야와 같이 말씀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요한에게 세례주는 수단이 된 물은 소개하는 진리들, 이는 말씀으로부터 주님에 관한 지식들이다.

셀라 (Shelah)

창10:24-‘아르박삿은 셀라를 낳았고, 셀라는 에벨을 낳았다.’
* ‘셀라’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나라였다, 이를 수단으로 그때부터 있는 지식을 의미했다.

셀라 (Shelah, 유다의 아들)

창38:5-‘그녀는 그의 이름을 셀라라고 불렀다’=우상적인 것의 품질.
* (유다의) 아들, 셀라=우상적인 것, 고로 유대 종교.,

셈 (Shem)

창6:10-‘노아는 세 아들들, 셈, 함, 야벳을 낳았다’-세 종류의 교리들.
* ‘셈, 함, 야벳’. 이름이 명명될 때=교회 속의 사람; 그러나 ‘아들들’이 거론될 때=신앙 속의 진리들, (또는 교리물들).
* (고대 교회에서) ‘셈’=내적 예배.

셋 (Seth)

창4:25-‘셋’=선행이 이식됨을 통하여 주님에 의해 주어진 새 신앙.
창5:2,3-태고 교회 만큼 천적 수준은 못되는 두 번째 교회가 ‘셋’이라 불리우고 있다.
창5:3-여기서의 교회 ‘셋’은 창4:25의 ‘셋’에 의해 묘사된 것과는 다른 것이다.

솔로몬 (Solomon)

왕상10:1,2-스바의 여왕이 솔로몬에게 왔다…여기서 솔로몬은 주님이다.
* 다윗은 세상 안으로 오시려하는 주님을, 솔로몬은 그분의 오심 이후 주님을 표현하였다.
왕상4:20-솔로몬에 의해 천적 왕국과 영적 왕국에 관련되는 주님이 표현되어졌다.

솨다이 (Shaddai)

창17:1-‘나는 하느님 솨다이 이다.’ 글자 의미에서 이는 아브라함의 하느님의 이름이다. 이 이름을 수단으로 주님께서는 그들 앞에 처음 표현되어졌다.
출6:3-그들은 이름 ‘여호와’, 그리고 솨다이를 예배하는 것을 잃었다…‘나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솨다이 신으로서 나타났다.’
창28:3-‘하느님 솨다이께서 너에게 복주실 것이다’=이 진리와 선의 시험들을 통하여 결합이 있다. ‘하느님 솨다이’=시험들.
창35:11-‘나는 하느님 솨다이 이다’=지나간 시험의 상태, 지금은 신성의 위로하심.
이13:6-‘솨다이로부터 황폐됨’=시험 안에서 황폐해짐.
창43:14-‘그리고 하느님 솨다이’=고된 것들 이후 위로받음.
창49:25-‘그리고 솨다이와 더불어’=시험들 이후 주님 은택을 주시는 분.
출6:3-‘나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 야곱에게 하느님 솨다아로 나타났다’=인간 측면에서 주님의 시험들, 그리고 신실한 자의 시험들, 그후 위로받음.
겔1:24-천국에서 신성한 진리의 품질이 ‘그의 음성은 솨다이의 음성 같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그이유는 ‘하느님 솨다이’=시험에서 진리가 꾸짖음, 그후 위로하심.
시68:14-‘솨다이’=시험의 상태.
욥5:17-시험들이 ‘솨다이로부터의 훈련’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수스 (Zuzim)

창14:5-‘수스’ 등등=거짓으로부터 설득하는 것들.
* 수스는 네필림과 유사하다.

수아 (Shuah)

창38:2-‘그녀의 이름 수아’=악의 거짓으로부터의 악의 품질.
창38:12-‘수아의 딸이 죽었다’=거짓으로부터의 악이 그것이 이전에 있었던 것 같이 있기를 중지했다.

스랍 (Seraph)

이6:2-‘네 동물들’이 스랍, 또는 그룹이다는 것…
이6:2-‘스랍’=말씀, 좁혀 말하면 말씀으로부터의 진리.
이6:2-‘스랍’=그룹들, cherubim과 같다, 즉 보호하심 측면에서의 신성한 섭리.

스룩 (Serug)

창11:20-‘스룩’은 그의 조상 같이 자기 이름으로 명명된 나라였다. 이를 수단으로 외적인 것들에서의 예배가 의미되고 있다.

스룹바벨 (Zerubbabel)

슥4:2,3-여기서 스룹바벨이 취급된다. 그는 하느님의 집을 기초하고 완성하였다. 이에 의해 오시어 영적 천국과 교회를 회복하시는 주님이 표현되어졌다.

스말족 (Zemarie)

창10:18-‘스말족’ 등등=여러 많은 나라들, 이를 수단으로 여러 많은 우상숭배들이 의미된다.

스바 (Sheba)

* ‘에디오피아’=스바와 비슷한 것들.
이60:6-‘스바’=거기로부터 있는 천적, 영적인 것들, 이것은 ‘금과 유향’이다.
이60-‘스바로부터’=사랑과 신앙의 천적인 것들로부터.
시72:10-‘스바와 시바의 왕들’=자연적 인간의 내, 외면의 선들’ ‘스바’=내면의 선들; ‘시바’=외면의 선들.

스발 (Sephar)

창10:30-‘스발’=선.

스보임 (Zeboim)

창14:2-‘스보임왕 세메벨’, 등등=악의 아주 많은 종류의 탐욕들, 그리고 거짓의 설득들, 이것들에 맞서 주님은 싸우셨다…이것은 가장 일반적인, 가장 보편적인 악들과 거짓들이 여기서 의미되고 있다.

스불론 (Zebulon)

* ‘잇사갈과 스불론’은 결혼 사랑, 고로 천국의 결혼을 의미하고 표현하였다.
창30:20-‘레아가 말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신부 지참금을 기부하셨다. 이제는 내 남편이 나와 함께 살 것이다, 그이유는 내가 여섯 아들을 그에게 낳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이름을 스불론이라 불렀다’=최고 의미에서 주님의 신성 자체, 그리고 그분의 신성한 인간, 내적 의미에서 천국의 결혼, 외적 의미에서 결혼 사랑.
창46:14-‘스불론의 아들’=천국의 결혼, 그리고 그것의 교리적인 것들.
창49:13-‘스불론은 바다들의 정박소에서 거주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배들의 정박소를 위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측면은 시돈 쪽에 있을 것이다.’ ‘스불론’=선과 진리가 함께 거주함. ‘그는 바다들의 정박소에서 거주할 것이다’=과학물로부터 진리의 결말을 내는 삶. ‘그는 배들의 정박소를 위해 있을 것이다’=말씀으로부터 교리적인 것들이 있는 곳. ‘그리고 그의 측면은 시돈 쪽에 있을 것이다’=한쪽 측면에서는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 쪽으로 확장됨이 있음.
계7:8-‘스불론 지파로부터 12,000명이 날인되었다’=주님의 새 천국과 새 교회 속에 있게 될 이들과 더불은 선과 진리의 결혼적 사랑…스불론은 ‘함께 거주함’으로부터 명명되어졌고, 이는 마음들이 하나로 결합하는 것에 관해 말해졌다…‘스불론’에 의해 여기서 의미되는 선과 진리의 결혼 사랑은 주님과 교회의 결혼 사랑이다. 그이유가 주님은 사랑 자체의 선이고, 그분은 이 선으로부터 진리가 있도록 교회에 주시기 때문…(=세째 천국에 있는 이들의 주님과의 결합)
민2:7-(동쪽에 진을 친) ‘스불론 지파’는 선과 진리의 결혼, 즉 천국의 결혼을 의미했다.
사5:18-‘스불론, 자기들의 목숨을 죽음에 바치기까지 각오한 백성, 그리고 납달리…’ 이 두 지파는 시스라와 맞서 싸운 지파들이었다…그러므로 이들에 의해 교회에 침투하는 악들에 맞서는 영적 전투가 표현되어졌다…이 두 지파만이 전투에 가담한 이유, ‘스불론’에 의해 교회를 구성하는 선과 진리의 결합이 의미되었기 때문. 그리고 ‘납달리’는 전투를 의미하고,…‘스불론과 납달리’ 다함께 시험을 통하여 개혁과 거듭남이 의미되었다.
신33:18-‘스불론에 대하여 그는 말했다, 스불론아, 네 나감에 기뻐하라.’ 이런 것들이 선과 진리의 결혼에 있는 이들에 대하여 말해지고 있다. 즉 이해함과 생각 측면에 관련해서는 진리들 안에 있고, 의지와 애착 측면에 관련해서는 선 안에 있는 이들에 대하여 말해진다. ‘스불론’=이 결혼.
마4:13,15, 이9:1,2-‘스불론과 납달리’에 의해 악과 거짓에 맞서 싸운 전투를 통하여 있는 선과 진리의 결합, 그 결과 개혁됨이 의미되고 있다. ‘예수께서는 가버나움에 오셔서 거기 거주하셨다…이 곳은 스불론과 납달리의 경계 지역이다’…이는 스불론의 땅…하신 말씀이 완성되도록 하려하심…

시돈 (Sidon)

이33:4-‘시돈’=신앙의 지식 안에 있어왔던 이들.
창10:15-‘가나안이 시돈을 낳았다’=단지 외적이기만 한 예배가 영적인 것들의 외면의 지식을 (낳았다). 이 지식은 외적 예배의 첫 번째 것들이다, 하여 시돈은 가나안의 첫 번째 출생으로 말해지고 있다.
겔32:30-‘시돈 사람’=내적인 것이 없는 외면의 지식들, 고로 과학물외 더 없다, 그러므로 그는 ‘바로’와 더불어 언급되어진다.
눅4:26-사렙다가 ‘시돈’ 출신이라 불려진다. ‘시돈’=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들.
왕상17:9-‘시돈에 있는 여인’=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 안에 있는 교회.
욜3:4-‘두로와 시돈’=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 안에 있는 교회 내의 사람들, 그러나 이 구절의 경우, 그 지식들을 남용하여 거짓과 거짓으로부터의 악에 응용한 이들.
이24:2-‘시돈 상인’=말씀으로부터 진리 안에 있는 이들.

시므온 (Simeon)

* ‘시므온’은 (그의 어머니가) 덜 귀여움을 받았음을 뜻한다.
* ‘시므온’=행동에 있는 신앙.
* 시므온은 ‘그분이 들으셨다’로부터 명명되었다.
* ‘시므온’=주님으로부터 있는 의지의 신앙.
창49:3,4-선행에 반대되는 의지와 애착이 ‘시므온과 레위’에 의해 묘사되고 있다.
창29:33-‘그녀는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불렀다’=(순종, 또는 의지에 있는 신앙의) 품질. 이 품질이 ‘시므온’에 의해, 또한 그로부터 명명된 지파에 의해 의미된다. 그리고 이 품질은 교회의 두 번째 보편적인 것, 또는 인간이 거듭나아갈 때 있는 두 번째 보편적인 것, 즉 순종, 또는 진리를 행동하게 하는 의지, 이 안으로 선행(레위)이 심어진다.
창34:30-‘시므온’=신앙. 반대 의미에서, 거짓…여기서 영적인 것들의 표현인 것.
창42:19-‘너희 형제 중 하나(시므온)을 가두어 두게 하라’=의지에 있는 신앙은 분리되어지리라는 것. (그이유가) 의지에 있는 신앙, 또는 신앙의 진리를 행동하는 의지는 교회의 진리들에 있는 이들로부터 분리될 때, 신성과의 연결은 (극도로) 경시된다.
창43:13,14-‘시므온’=의지에 있는 신앙, 고로 선행으로부터의 선. 그이유가 신앙의 진리가 의지 안으로 건너갈 때, 그 진리는 선행의 선이 되어진다. 그 이유가 진리가 인간의 삶 안으로 건너갈 때, 그리고 그것이 거기에 있을 때, 그것은 알고만 있는 진리가 아니라 행동되는 진리로서 간주되기 때문, 이로부터 그것은 본질이 바뀌어 더 이상 진리라 부르지 않고 선이라 불려진다.
창43:23-‘그는 시므온을 그들에게 데려왔다’=그가 진리들을 향하고 있는 의지(뜻함)에 인접했다. 그이유가 ‘시므온’=의지에 있는 신앙, 또는 신앙 속에 있는 진리를 행하려는 의지이기 때문.
창48:5-‘르우벤과 시므온 같이 그들은 나의 것이다’=그들은 진리이고 진리로부터의 선이다는 것…‘시므온’=의지에 있는 신앙, 고로 행동에 있는 진리, 이는 신앙으로부터의 선, 또는 진리로부터의 선이다. 고로 일반적으로, 새 자발성(Voluntary) 속에 있는 선.
창49:5-‘시므온’=의지에 있는 거짓.
출6장-‘르우벤’, ‘시므온’,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은 신성속의 것들을 표현한다.
계7:7-‘시므온 지파로부터 12,000명이 날인되어졌다’=주님의 새 천국과 새 교회 속에 있을 이들과 더불은 영적인 사랑, 이는 이웃을 향한 사랑, 또는 선행(charity)이다. (=순종, 그리고 순종 안에 있는 모든 이는 천국 안에 있다는 것)
슥12:13-‘시므온’=지각과 순종에 관련하여 있는 진리와 선.

시몬 (Simon)

* ‘요나의 아들 시몬’=선으로부터의 진리, 또는 선행으로부터의 신앙.
* ‘시몬’, 히브리에서, 들음, 경청함을 뜻하는바, 이로부터 순종을 뜻한다.
눅5장-‘시몬의 배’=신앙의 교리적인 것들.
요21:15-17-‘요나의 아들 시몬’=선행으로부터의 신앙. ‘시몬’=경청함과 순종, 그리고 ‘요나’=비둘기, 고로 선행.

시바 (Seba)

창10:7-‘스바, 하윌라, 삽다, 라아마, 삽드가’=여러 많은 나라들, 이들과 더불어 신앙에 관한 지식이 있었다; 그리고 이를 수단으로 그 지식들 자체가 의미되었다.
시72:10-‘스바와 시바’=예배의 내적인 것들; ‘스바’=예배의 천적인 것들; 그리고 ‘시바’=영적인 것들.
이43:3-‘구스와 시바’=신앙의 영적인 것들..

시스라 (Sisera)

사5:20-‘별들이 그들의 진로들(ways)에 관련하여 시스라와 싸웠다’=진리에 관한 지식들, 그리고 악의 거짓들에 맞서 그것들로부터 전투함.
* ‘시스라’=교회를 파괴하는 악으로부터의 거짓.

십보라 (Zipporah)

출2:21-‘그는 모세에게 자기 딸 십보라를 주었다’=그는 자기 교회의 선이 그에게 인접되게 했다는 것…‘십보라’=이 교회 속의 선의 품질.
출4:25-‘십보라는 바위 조각을 가져왔다’=진리를 통하여 표현 교회에 보여진 품질. ‘십보라’=표현 교회.
출18:2-‘이드로는…모세의 아내 십보라를 데려왔다’=신성으로부터의 진리와 결합한 신성으로부터의 선…‘모세의 아내 십보라’=신성으로부터의 선. (=신성한 선(이드로)으로부터 파생된 선, 그리고 신성으로부터의 진리(모세)와 결합된 선).

씰라 (Zillah)

* Adah를 참조

아나민(Anamim)

창10:13-‘미스라임은 루딤, 그리고 아나밈을 낳았다’, 등등=여러 나라들, 이를 수단으로 여러 의식들이 의미된다.

아나킴 (Anakim)

신2:11,20-‘에밈, 르바임, 아나킴, 삼숨민’=악과 거짓의 설득으로 악과 거짓에 물든 이들.

아넬 (Aner)

창14:13-‘마므레, 에스골, 아넬’은 주님이 그분의 첫 어린 시절에서 (악과) 싸우셨을 때, 주님과 함께 있었던 천사들을 의미하고 표현한다…
창14:24-이름 ‘에스골, 아넬, 그리고 마므레.’ 이 이름들은 전투를 수행한 선들과 진리들을 의미한다.
창14:24-‘아넬, 에스골, 그리고 마므레’는 천사들을 표현한다, 그리고 그러므로 천사들이 가지고 있는 이런저런 것도 의미한다.

아다 (Adah)

* ‘아다’와 ‘씰라’=그 당시 일어난 새로운 교회
* ‘아다’=이 새로운 교회의 천적, 영적인 것들의 어머니; ‘씰라’=이 새로운 교회의 자연적인 것들의 어머니.

아담 (Adam)

* man-homo도 보라.
창5:2-히브리 단어 아담은 사람(man-homo)를 뜻한다, 그리고 이 교회가 아담이라 부르는 것은 올바르지 않고, 사람이라 불러야 정확할 것이다.
창5:2-‘아담’=‘지면(ground)’이다.
창9:6- ‘아담’, 또는 ‘사람’=태고 교회.
출5:9- 사람을 뜻하는 두 히브리 단어들이 있다. 아담과 에노스(Enosh)이다. ‘아담’이라 불리는 사람에 의해서는 천적 교회의 사람, ‘에노스’에 의해서는 영적 교회의 사람으로 이해되어진다. 이 구절에서는 후자이다.
계6:4-아담과 에돔 모두 빨강(색)으로부터 파생되어졌다.

아닷 (Adad)

창50:10-‘그들은 아닷의 타작 마당에 왔다’=첫 상태….’아닷’=이 상태의 품질.

아람 (Aram)

* 시리아도 참조
창10:22-‘셈의 아들들…아람’. ‘셈’=내향의 교회; ‘셈의 아들들’=지혜 속에 있는 일련의 것들. ‘아람’ 등은 많은 나라들이었다, 이들을 수단으로 지혜 속에 있는 일련의 것들이 의미되었는데…’아람’에 의해 선에 관한 지식들이 의미된다.
* ‘아람’ 또는 시리아는 반대 의미에서 오용된 선에 대한 지식을 의미한다.
창10:23-‘아람’=선에 대한 지식. ‘아람의 아들들’=선에 대한 지식으로부터의 지식, 그리고 지식으로부터 있는 것…그러므로 이 지식은 자연적 진리들이다. 그리고 지식으로부터 있는 것들은 그것들에 따라 행동된 것들이다.
창22:21-‘아람의 아버지 그므엘’=다양한 좀 광신적인 신앙 그리고 이로부터의 예배.
창24:10-‘그는 아람 나하라임에 갔다’=거기로부터의 진리에 관한 지식…‘아람’, 또는 시리아=선에 대한 지식. 그리고 ‘아람 나하라임’, 또는 강들의 시리아=나하라임, 또는 강들로부터 진리에 대한 지식.
창25:6-‘동쪽 방향인 동쪽의 토지’는 아람, 또는 시리아였다…이는 선에 대한 지식.
창28:5-‘아람 사람 브드엘의 아들 라반’=방계의 선…브드엘이 여기서 ‘아람 사람’이라 불리운다. 그이유는 ‘아람’, 또는 시리아에 의해 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들이 의미되기 때문.
창31:20-‘야곱은 아람 사람 라반의 심정을 훔쳤다’=상태의 변화가 선의 측면에 관련하여 라반에 의해 의미되어지고 있다…‘라반’은 증간의(중재하는) 선을 표현한다. 이것이 지금 분리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분리되기 때문에 라반은 지금 ‘아람 사람’이라 불리우고 있다. 그이유가 ‘아람 사람 라반’이 이와 같은 선이기 때문, 이 안에는 이전에 있던 신성한 선과 진리는 없다. 이런 의미가 있기에 아람, 또는 시리아는 강, 즉 유브라데에 의해 가나안의 토지와 분리되어 있다. 고로 이것은 가나안의 토지 밖이다.
* ‘아람’, 또는 시리아에 의해 진리에 대한 지식과 선에 대한 지식이 특별히 의미되어진다, 그리고 이것은 고대 교회가 거기 있었기 때문, 그리고 이 교회가 오랫동안 잔존했었기 때문, 이는 발람의 기록으로부터 분명하다…이후 우상숭배가 번창했는데, 그때로부터 아브람이 부름받았다, 그리하여 표현 뿐인 교회가 가나안의 토지에 설립되어졌다. 그다음 아람, 또는 시리아는 교회 밖 지역, 또는 교회와 분리된 지역, 즉 주님의 왕국 속에 있는 이들에서 더 멀리 있는 이들, 그럼에도 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의 의미를 보유한 이들을 표현하였다.

아론 (Aaron)

시115:12,13-‘아론의 집’=사랑의 선.
출4:14-‘레위인 아론 네 형이 있지 않느냐?’=선과 진리인 것에 관한 교리. 그 이유가 아론은 신성한 선 또는 성직 직분에 관련하여 주님을 표현한다. 이 구절의 경우는 그가 성직 임무를 시작하기 전에 해당하는 바, 그는 선과 진리인 것에 관한 교리이다. 그러므로 그는 모세에게 ‘입을 위하여’ 있었다, 그리고 모세는 그에게 ‘하느님이 되어’ 있었다. 모세는 그분으로부터 직접 진행되는 신성한 진리 측면에서 주님을 표현했다. 이에 비해 아론은 주님으로부터 간접적으로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를 표현했다. 이 진리가 선과 진리인 것에 관한 교리이다. 다시 말해 여기서 모세가 표현하는 진리는 인간에 의해 들려지고 지각될 수 있는 진리가 아니고, 아론에 의해 표현된 진리만이 인간이 듣고 지각한다는 말이다. 그런고로 아론은 ‘입’이라 불리고, 모세는 그의 ‘하느님’이라 불린다. 또한 아론이 ‘레위족’이라 불리우고 있다. 그 이유는 ‘레위’=선과 진리인 것에 관한 교리이기 때문, 이것이 성직 직분을 섬기고 그 임무를 위해 일해준다.
출4:27-‘여호와께서 아론에게 말하셨다’=교리로부터의 진리, 이 진리를 신성으로부터 지각함.
출4:28-‘그리고 모세는 아론에게 이야기 했다’=간접적으로 진행하는 진리 안으로 주님의 신성으로부터 직접 진행하는 진리가 유입됨.
출4:30-‘아론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하셨던 모든 말들을 이야기했다’=그 때부터 신성으로부터의 교리.
출5:1-‘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갔다’=그 때부터 신성한 법과 교리…모세가 표현하는 신성한 법은 내향의 의미에서의 신성한 법, 마찬가지로 천국들에 있는 것과 같은 신성한 법으로 이해되고, 교리에 의한 신성한 법은 지상에 있는 신성한 법, 즉 글자 의미에 있는 신성한 법으로 이해된다.
출5:4-‘모세와 아론, 너희는 어찌하여 백성들을 그들의 일로부터 몰아내려하느냐?’=그들의 신성한 법과 교리가 그들을 곤경으로부터 헤어나게 못할 것이다. ‘모세’=신성한 법 측면에서의 주님, ‘아론’=그 때부터 교리 측면에서의 주님.
출6:13-‘그리고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야기하셨다’=신성으로부터의 법으로부터, 그리고 그로부터 있는 교리로부터 새로이 가르치심.
출6:23-‘아론은 여인으로 엘레세바를 자신에게 데려왔다’=교회의 교리, 그리고 그 안에서 선과 진리가 결합하는 방법.
출6:25-‘아론’=영적 교회의 바깥쪽인 것, 그리고 ‘모세’는 안쪽인 것.
출6:26-‘…이들은 모세와 아론이다’=이는 법으로부터, 즉 신성으로부터, 그로부터인 교리로부터 였다는 것.
출7:1-‘네 형 아론은 너의 예언자 일 것이다’=(신성으로부터의 법으로부터의) 교리.
출7:7-‘아론은 83년의 아들이었다’=교리와 상태의 품질.
출8:1-‘아론에게 말하거라’=내향의 법이 외향의 법 안으로 유입됨. 아론이 표현한 선과 진리인 것에 관한 교리는 내향의 법으로부터, 즉 신성으로부터 내향의 법을 통해 존재하는 바깥쪽 법일 뿐이다.
* 모세가 표현하는 내향의 법은 천사들이 수용하는 법이고, 아론이 표현하는 법은 인간이 수용하는 법이다.
출8:4-‘그리고 바로는 모세와 아론을 불렀다’=신성으로부터의 법의 현존…모세는 내향의 법, 아론은 외향의 법.
출9:8-‘그리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그리고 아론에게 말하셨다‘=새로운 가르침…여호와로부터 진행하는 진리가 모세와 아론에 의해 표현되어진다. 모세에 의해 내향의 진리가, 아론에 의해 외향의 진리가.
출10:8-‘그리고 모세와 아론은 바로에게 데려와졌다’=그때부터 있는 신성의 현존.
출12:1-‘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하셨다’=신성으로부터의 진리를 통하여 있는 알림…모세는 신성으로부터 직접 진행하는 진리, 아론은 간접적으로.
출16:2-(그들은) 모세에게 그리고 아론에게 (불평했다)=신성으로부터의 진리(에 맞서). 모세는 직접 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으로부터의 진리, 그리고 아론은 간접적으로 진행하는 신성으로부터의 진리, 고로 바깥쪽으로 진행하는 신성으로부터의 진리.
출16:9-‘그리고 모세는 아론에게 말했다’=간접적으로 진행하는 신성으로부터의 진리를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진행하는 신성으로부터의 진리의 유입.
출16:10-‘아론이 이스라엘의 모든 회중에게 이야기했다’=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진리가 신성의 유입을 통하여 간접적인 가르침으로 있다.
출17:10-‘모세, 아론, 후르’=계속적인 질서에 있는 신성한 진리들. ‘모세’=직접적으로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 ‘아론’=간접으로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 ‘후르’=다시 이 진리들을 통하여 간접으로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
출18:12-‘그리고 아론이 왔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제일 가는 교회 속의 것들. 아론은 교회 속의 교리를 표현한다.
출19:24-‘너와 아론은 올라오라’=내향과 외향의 신성으로부터의 법.
출24:1-‘너와 아론’=내향과 외향의 의미에 있는 말씀. 그리고 그의 형인 아론이 그에게 연합했을 때, 그 때 모세는 내향의 의미에서의 말씀, 아론은 외향의 의미에서의 말씀.
출24:9-‘그리고 모세와 아론, 나답과 아비후가 올라갔다’=내향과 외향의 의미에서의 말씀, 그리고 이 두 의미 모두로부터의 교리.
출24:14-‘보라 너희(장로들)와 더불어 아론과 후르’=이와 같은 말씀으로부터 진리에 관한 교리. 여기서 아론은 말씀의 바깥쪽 의미 만으로부터의 진리에 관한 교리, 그 이유는 장로에 의해, 장로의 우두머리로 산 아래 있기 때문, 이것은 말씀의 바깥쪽 의미에 있는 이들이 의미된다.
출27:21-‘아론과 그의 아들들은…배열할 것이다’=주님으로부터 항구적으로 유입이 있다…아론에 의해 신성한 선의 측면에서의 주님, 그의 아들들은 신성한 진리 측면에서의 주님을 표현하고 있다.
출28:1-‘그리고 너, 네 형 아론을 가까이 이끌어내라’=주님의 신성한 인간 안에서 신성한 선과 신성한 진리의 결합. 모세는 신성한 진리, 아론은 신성한 선을 표현한다.
출28:1-‘아론’=신성한 천적 왕국에 관련된 주님을 표현. 이는 가장 깊은 천국에 계신 주님의 신성이다.
출28:1-‘아론의 아들들’=신성한 천적 왕국으로부터 진행하는 것들.
출28:30-‘아론은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이름들을 운반할 것이다’=선과 진리는 품질 여하에 관계없이 모두 주님에 의해 보존된다…아론은 신성한 선에 관련한 주님을 표현한다.
출28:35-‘그리고 그것은 아론 위에 있을 것이다’=주님을 표현함. 여기서 아론은 복음 전도와 예배에 관계되는 이런저런 것들을 표현한다.
출28:38-‘그것은 아론의 이마에 있을 것이다’=주님의 신성한 사랑으로부터. 아론은 신성한 사랑의 선에 관련한 주님을 표현한다.
출28:38-‘그리고 아론은 거룩한 것들에 관련되는 불법을 짊어질 것이다’=주님으로부터 선 안에 있는 이들과 더불어 있는 거짓들과 악들이 신성한 사랑에 의해 제거됨. 아론은 사랑의 선에 관련한 주님을 표현한다.
출28:38-‘그것은 계속적으로 아론의 이마에 있을 것이다’=영원히 주님의 사랑을 표현함. 아론은 주님을 표현한다.
출28:40-‘아론의 아들들을 위하여’=천국들에서 신성한 진리들은 주님의 신성한 선으로부터 진행된다. 천국들 안에서라고 말해지는 이유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성직 직분에 의해 표현된 것이 천국들에 있는 주님의 신성이기 때문. 아론의 성직 직분은 천국들에 있는 신성한 선, 그의 아들들의 성직 직분은 신성한 선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가 각각 표현된다.
출28:41-‘그리고 너는 그것들을 네 형 아론의 위에 놓을 것이다’=영적 왕국에 있는 신성한 선의 상태. 아론에 의해 신성한 선에 관련한 주님, 또는 주님으로부터 있는 신성한 선이 표현된다. 그리고 그의 의복은 주님의 영적 왕국이 그분의 천적 왕국과 결합되었음이다.
출29:21-‘그리고 너는 아론 위에, 그리고 아론의 의복에 뿌릴 것이다’=보다 더 높은 천국들에서 신성한 선과 신성한 진리가 상호 합일됨. 아론은 신성한 선에 관련한 주님을 표현한다. 이 선은 천적 왕국 (보다 더 높은 왕국)에 있는 주님의 신성한 선이다. 그리고 아론의 의복은 그분의 천적 왕국에 합병한 주님의 영적 왕국을 표현한다.
출29:24-‘그리고 너는 아론의 손바닥 위에, 그리고 그의 아들들의 손바닥 위에 모든 것들을 놓을 것이다’=이런 것들이 주님 속에 있고 주님으로부터 있다는 것이 천국들에서 인정됨.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신성한 선과 이 선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를 표현한다.
출29:35-‘그리고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행할 것이다’=주님의 신성화하심의 표현, 그리고 천국들과 교회 안으로 그분의 유입이 있음. 아론은 신성한 선에 관련한 주님, 그의 아들들은 영적인 것 속의 신성한 선에 관련한 주님을 표현한다.
출30:7-‘그리고 아론은 그것 위에서 향신료를 태울 것이다’=사랑과 선행으로부터 있는 예배로부터 주님에 의해 승강됨. 대 성직자로서의 아론은 신성한 선에 관련한 주님, 그리고 구원의 일에 관련한 주님을 표현한다.
출30:19-‘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그것에서 씻을 것이다’=주님에 의해 인간이 순수해지고 거듭나짐을 표현. 아론은 천적 등급에서의 신성한 선, 그의 아들들은 영적 등급에서의 신성한 선을 표현한다.
출30:30-‘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기름부을 것이다’=즉위식은 주님의 두 왕국을 표현.
출32:1-‘그리고 백성들은 아론에게 함께 모여들었다’=안쪽의 것들과 분리된채로 말씀의 바깥쪽, 교회의 바깥쪽 것들으로 그 자체 향하게 하는 것. 여기서 이것이 아론에 의해 표현된 이유는 그는 모세가 부재할 시에는 그가 백성의 우두머리였기 때문.
출32:21-‘그리고 모세는 아론에게 말했다’=이런 외적인 것에 관하여 내적인 것으로부터 지각함.
출32:25-‘아론이 백성들을 방종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이것은 그들이 사랑할 바깥쪽 것들에 의해 행해질 것이다는 것. 아론은 바깥쪽 것을 표현한다.
출34:30-‘아론과 이스라엘의 모든 아들들은 모세를 보았다’=내향의 것들 없이 말씀의, 예배의, 교회의 바깥쪽에 있는 이들로부터의 지각.
출34:31-‘그리고 아론과 회중의 모든 제1인자들이 그에게 되돌아왔다’=바깥쪽 것들에 있는 제일되는 것들, 그럼에도 아직 내향의 것들을 표현할지 모르는 것들.
아르 (Ar)
신2:9,19-‘아르’=이와같은 (일반적) 선, ‘모압과 암몬의 아들들’=이와 같은 선 안에 있는 이들.
이15:1-모압의 토지에 있는 ‘아르’ 성읍=자연적 평면으로부터의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의 교리.

아르박삿 (Arphaxad)

* ‘셈의 아들들, 엘람, 앗수르, 아르박삿’ 등등…(이들은) 여러 많은 나라들이었다. 이를 수단으로 지혜 속에 있는 일련의 것들이 의미된다. ‘엘람’은 선행으로부터의 신앙, ‘앗수르’는 그로부터의 추론, ‘아르박삿’은 그로부터의 과학.

아르왓족 (Arvadite)

* 여부스족을 참조

아마샤 (Amaziah)

암7:14-‘아마샤’=악용된 교회.

아말렉족 (Amalekite)

창14:7-‘그들은 아말렉족의 모든 들판을 짓부셨다’=여러 종류의 거짓들.
사6:3-‘이스라엘이 파종했을 때, 미디안족과 아말렉과 동쪽의 아들들이 그를 치러 올라왔다.’ ‘미디안’=생활의 선에 있지 않기 때문에 거짓 안에 있는 이들. ‘아말렉’=진리들을 공격하는 거짓들에 있는 이들.
* ‘아말렉’, 말씀에서=진리들을 공격하는 거짓들.
출17:8, 민14:43,45-‘그리고 아말렉이 왔다’=내면의 악으로부터의 거짓. 악귀라 불리는 악 안에 있는 이들…이 악귀는 인간들을 공개적으로 공격하는 일은 결코 없다. 그러나 인간이 시험 등으로 허덕거리는듯 하면 갑자기 달려들어 그를 충동질해 타락 쪽으로 빠지게 한다. 이것이 지금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아말렉에 의해 표현되어져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여호와께 등을 돌려대고, 가나안의 토지에 있는 나라들 때문에 두려워 떨었을 그 때, 아말렉족이 가나안족과 더불어 산으로부터 내려와 호르마까지 이들을 쫒으면서 쳐부수었다.
출17:10-13-‘아말렉이 우세했다’=그 때에 거짓이 정복했다…’아말렉’=내면의 악으로부터의 거짓. 지금 이스라엘이 정복했다, 그리고 지금 아말렉이 우세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