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24장 해석

레위기 24장

영적 의미 요약

* 영적 인간의 상태에 적합한 천적 사랑의 선은 모든 영적 진리의 근원이며 영적 왕국에서 항구적으로 빛이 되어 있다, 1-4절.
* 천적, 영적 선이 명백해짐 다시 말해 주님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에 관하여, 이 두 선은 정밀하게 구별된다는 것, 이 두 선은 영적 투쟁으로 획득된다는 것, 이 두 선은 인간의 저장소 안에 존재한다는 것, 이 두 선은 주님으로부터 존재함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이 두 선은 각각에 상응하는 진리를 동반한다는 것, 이 두 선은 인간에 의해 자기 것으로 삼아지게 된다는 것에 관하여, 5-9절.
* 교회에 만연되고 진리를 더럽히는 악에서 나온 거짓들에 관하여, 특히 신성한 인간에 관한 교리를 모독함에 관하여, 이런 악한 품성을 지닌 자들은 한동안 외적인 속박으로 억류되었다가 심판을 맞게 되어 단죄된다는 것에 관하여, 10-14절.
* 모독에 관하여, 진리와 선에 가해진 피해에 대하여, 악과 거짓들이 스스로 심판을 하게 되는 응보에 관하여, 15-23절.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지각을 주시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주님께서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말씀하심은 유입을; 말하심은 지각을; 모세는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각기 명시한다. (2001, 2951, 7010, 1791, 1822)

2절.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명령하여, 그들이 너에게 빛을 내기 위해 찧어 만든 순수한 올리브 기름을 가져오게 하여, 등불이 계속적으로 타도록 하라.

영적 의미

주님으로부터 영적 교인에게 유입되는 것 때문에 영적 교인은 자기 상태에 걸맞는 천적 사랑의 선을 영적 진리의 근원이 되는 빛으로 인정하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함이란 영적 교회인에게 주님으로부터의 유입이 있음을, 빛을 내기 위해 순 올리브 기름을 모세에게 가져옴이란 영적 교회 상태에 적합한 천적 사랑의 선은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주님으로부터 있게 됨을 인정함을, 빛을 내기 위한 기름이란 선이 진리의 근원이라는 것을, 계속 불을 밝힘이란 항구적으로 영적 왕국에 빛이 있도록 하기 위함을 뜻한다. (5486, 3654, 886, 10303, 7010, 9296-5, 9667, 9549, 9550, 10200-02)

3절. 증거(궤)의 베일 밖, 만남의 천막에서, 아론은 등불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주님 앞에서 계속적으로 (빛을 내게) 정돈하라. 이것은 너의 세대를 통틀어 영원한 법령이다.

영적 의미

그 이유가 위 빛은 인간의 천적 수준으로부터 영적 수준으로 흐르면서 희미한 상태와 밝은 상태 안에 있는데 이는 천적 선의 작용을 통하여서이다. 이 빛은 거듭나는 과정동안, 그 후 영원하게 내적 인간과 외적 인간 모두에게 빛이 되어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이 등불을 켜서 만남의 천막 안 증거궤 앞 베일 밖에 두어 저녁부터 아침까지 계속 주님 앞을 비추게 함이란 이 빛은 천적 선이 작동함으로 해서 희미한 상태에서 밝은 상태에 이르는 모든 상태 안에 있는 인간 마음의 영적 수준에 천적 수준으로부터 흘러감을 뜻한다. 이것은 너의 세대를 통틀어 영원한 법령이다란 이는 내적, 외적 인간 모두에, 거듭나는 기간 그리고 그 후의 기간에 걸쳐 있는 영원한 규정이라는 뜻이다. (9946, 10200-02, 9670, 3540-2, 10133, 7884, 7931)

4절. 그는 계속적으로 주님 앞 순수한 등잔대 위에 등불을 배열하라.

영적 의미

그 이유가 영적 수준은 계속 주님에게서 오는 거짓과 혼합 안 된 신성한 진리의 특별한 저장소이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는 계속적으로 주님 앞 순수한 등잔대 위에 등불을 배열하라란 영적 수준은 주님으로부터 계속 오는 거짓과 혼합 안 된 신성한 진리를 저장하는 특별한 곳이다는 뜻이다. (9548-50, 10133)

5절. 그리고 너는 고운 곡식 가루를 가져와, 그리고 그것으로 열 두 과자(cake)들을 구워라. 십분의 이 에바가 과자 하나이다.

영적 의미

또한 순수한 천적 진리 안에 천적 선이 있어 명백해진다. 그리하여 영적 선이 영적 인간에 의해 획득된다. 위 순서를 통해 천적 천국과 영적 천국이 결합되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고운 곡식 가루를 가져다가 열 두 과자들을 구워라란 천적 진리, 그 안에서 천적 선이 명백해진다. 그런고로 해서 영적 선이 영적 왕국에 파생된다. 과자 한 개는 십 분의 이 에바이다란 천적, 영적 천국이 결합됨을 통하여를 뜻한다. (9995, 2177, 2280, 3272, 2177, 2280)

6절. 그리고 너는 그것들을 두 줄로, 각 줄에 여섯 개씩, 주님 앞 순수한 탁자 위에 차려놓아라.

영적 의미

위와 같이 결합된다 해도 영적 선은 천적 선에서 구별되어 진다. 그리고 위 두 선 모두 충만된 시험에서의 승리를 통해 획득된다. 위 두 선은 영적 교회인의 저장소 안에 있게 되고 이 선이 주님으로부터 임을 인정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섯 개씩 두 줄로 주님 앞 순수한 탁자 위에 차려 놓아라란 위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영적 선은 천적 선과 구분된다는 것, 둘 다 시험에 완전히 승리함으로 획득된다는 것, 둘 다 영적 교회인의 저장소 안에 있다는 것, 그리고 둘 다 주님으로부터 임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5194, 9864, 8888, 9545, 2001, 3272)

7절. 그리고 너는 각 줄 위에 순수한 유향을 놓아라, 하여, 이것은 기념물을 위한 빵(bread), 주님에게 불로 만든 제물이다.

영적 의미

위 선은 각각에 상응하는 진리를 동반하는데 이 진리는 일반적으로 볼 때 신앙의 진리이다. 그 이유가 진리는 선의 형체, 선을 표현해 주기 때문이다. 이 진리를 통해 선은 항구적으로 기억 안에 있는다. 그리하여 주님이 인정되어져 사랑으로부터, 이 사랑과 결합된 신앙을 수단으로 예배되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께 태워 바치는 제물이요 기념을 위한 빵이 되도록 각 열 위에 순수한 향을 올려 놓아라란 위의 선들은 그 선에 상응되는 진리를 동반한다는 뜻인데, 그 이유는 진리가 선을 표현하고 그 선의 형체이고, 이 진리를 통해 선은 기억 속에 항구적으로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사랑으로부터 그 사랑과 결합된 신앙을 수단으로 인정되어진다. (2177, 10177, 6888, 10055)

8절. 안식일 마다 그는 계속적으로 주님 앞에 그것을 차려 놓아라. 이것은 이스라엘의 후손들을 위하여서이고, 영원히 지속되는 언약이다.

영적 의미

천적, 영적 선 모두 주님으로부터 인간에게 파생되나, 주님께서는 그분의 인간이 신성이 되심을 수단으로 하시는 바, 위 선들은 인간과 함께 신성한 인간으로부터 존재한다. 따라서 천적, 영적 선을 수단으로 교회 속의 사람은 주님과 영원한 결합을 이룬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안식일 마다 계속적으로 주님 앞에 그것을 차려 놓아라란 천적 선이든 영적 선이든 모두 주님으로부터 인간에게 파생된 것임을, 이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영원히 지속되는 언약이다란 주님의 인간이 신성이 되신 덕택에 위의 선들은 신성한 인간으로부터 인간과 더불어 있게 되었음을, 이를 수단으로 교인은 주님과 영원히 결합할 수 있다는 뜻이다. (2177, 8886, 8889, 8886, 8889, 665, 666)

9절. 그리고 이것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위해 있다. 그리고 그들은 거룩한 장소에서 그것을 먹어라. 그 이유가 이것은 영구적인 법령을 수단으로 불로 만든 제물인 바, 그에게 최고로 거룩하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이리하여 천적, 영적 인간 모두는 거룩한 상태에서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을 자기 것으로 가능하게 된다. 그런 이유는 선은 천적 인간의 참 생명으로 진리 안에서 직접 명백해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위 인간으로 주님을 인정할 수 있게 해서 탁월한 수준의 사랑 속에서 주님을 예배할 수 있게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것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위함이란 천적, 영적 인간을 위한 선임을, 그들은 그것을 거룩한 장소에서 먹어야 한다란 위 선들은 거룩한 상태에서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음을, 여호와께 태워 바치는 음식 가운데서도 더 없이 거룩한 바, 영구적인 법령이다란 선은 천적 인간의 참 생명이요, 진리 안에서 직접적으로 명백해진다는 것을, 이 인간은 빼어난 수준의 사랑으로 주님을 인정하고 예배할 수 있음을 뜻한다. (9946, 2187, 3210, 10055, 7884, 7931)

10절. 그리고 자기 아버지가 이집트인인 이스라엘의 여인의 아들이 이스라엘의 자손들 사이에서 밖에 나갔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여인의 아들과 이스라엘의 사람이 진영에서 서로 승강이했다.

영적 의미

위와 다른 면이 있다. 자연적 사랑 뿐인 데에 있는 악에서 파생되는 거짓이 영적 교회를 뒤집으려는 이기심인데, 계속 이 교회에 만연되고 이 결과 다툼이 발생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버지가 이집트 출신인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란 자연적 사랑 뿐인 악으로부터 파생된 거짓을; 이 악은 거꾸로 된 영적 교회에 있는 이기심에 근원된다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빠져나갔다란 교인에게 악에서 나온 거짓이 유입됨을;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과 이스라엘 사람이 진영에서 다툼이란 거짓이 만연되고 그것과 싸우는 것을 뜻한다. (1147, 3654, 3703-20, 9391-10, 3703, 7488, 7124, 1571)

11절. 그리고 이스라엘의 여인의 아들이 (주님의) 이름을 모독하였다, 그리고 저주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를 모세에게 데려왔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슬로밋인데, 단 지파 디브리의 딸이다.

영적 의미

이리하여 교회 안에 있는 거짓 즉 악에서 나오는 거짓 속에 있는 모든 이들은 교회의 진리를 더럽히는데, 특히 신성한 인간에 관한 교리를 더럽힌다. 그렇게 해서 이들은 스스로 주님께 등을 돌려 자신들이 악 가운데 있음을 확증한다. 그러므로 이런 상태에 있는 이들은 신성한 진리의 심판에 놓여지면 이들의 교회는 끝장을 본다. 이런 상태의 외적 근원은 감각적이고 육적 기쁨인데, 이 기쁨은 감각적 오류로부터, 바깥쪽인 외관으로부터 사물을 판단하는 오로지 자연적 수준뿐인 인간의 착상으로부터 온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 주님의 이름을 모독함이란 교회 안에 있는 거짓 또는 악에서 나오는 거짓 속에 있는 이들은 교회의 진리들을 모독하는데 특히 신성한 인간에 관한 교리를 모독한다. 그러므로 해서 그들 스스로 주님께 등을 돌리고 자신들이 악에 있음을 확증하게 된다는 것을; 모세에게 데려옴이란 교회의 말기에 신성한 진리의 심판에 서게 됨을; 그 어미의 이름은 슬로밋인데 단 지파에 속한 디브리의 딸이었다란 위 상태의 외적인 근원지는 감각에 관한 오류들로부터, 그리고 오로지 외관으로만 판단하는 자연적일 뿐인 인간의 상상으로부터 오는 감각적이고 육적일 뿐인 기쁨이다. 그 이유가 어머니는 외적 근원을; 이름은 품질 또는 상태를; 슬로밋이란 “나의 평화, 나의 행복, 나의 보상”이라는 뜻을 지녔기 때문이다. 사실 슬로밋이 지닌 뜻은 좋은 의미에서는 천국의 평화, 행복, 그리고 보상이지만 본문의 경우 반대 의미인 바 오로지 감각적이고 육에 속한 행복 또는 기쁨을 뜻한다. 딸은 좋은 의미에서는 애착 또는 선을 뜻하나 이 구절의 경우 그 반대인 악한 애착을 뜻하고 있다. 디브리는 “설득력이 있는, 능변이 있는”(Gesenius 참조), “들로부터의 어떤 것”(Früst 참조)을 뜻한다. 그러므로 본문의 경우 감각적인 것에 바탕을 둔 생각들 또는 감각 속의 오류들을 뜻할 것이라 생각된다. 단은 판결하는 자, 그리고 좋은 의미에서 거듭나지는 처음 사항에 있게 되는 진리의 확언, 그리고 거듭난 이들에게 있는 마지막 사항들이다. 본문의 경우 반대 의미인 바, 바깥쪽인 외관으로부터 사물을 판단하기만 하는 자연적 인간이 상상하여 추론함을 뜻한다. (1147, 8882, 6887, 379, 7010, 931, 1815, 8897, 144, 145, 4681, 995, 489, 568, 9987, 4440, 3923, 6397-6401)

12절. 그리고 그들은 그를 안쪽에 가두었다, 하여, 주님의 입에서 그들에게 선포가 있을지 몰라서였다.

영적 의미

이런 품성을 지닌 이들은 그들 악이 극점에 달하는 상태가 올 때까지 한동안 외적 속박으로 억류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의 입에서 선포가 있을 때까지 그를 가두어 놓음이란 위 품성을 지닌 사람들은 그의 악이 극에 달할 때까지 한동안 외적 속박으로 억류되어진다는 뜻이다. (5037, 5096, 4217, 9096)

13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그 다음 지각을 주시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주님께서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은 유입을; 모세는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말하심은 지각을 뜻한다. (2001, 2951, 7010, 1791, 1822)

14절. 진영 밖으로 저주했던 그를 끌어내라. 그리고 그의 저주하는 말을 들었던 모든 이는 그들의 손을 그의 머리 위에 놓게 하라, 그리고 모든 회중이 그를 돌로 치게 하라.

영적 의미

악과 거짓으로 확증한 이들의 진짜 품성은 심판 과정에서 밝히 드러나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불순종을 통해 스스로 확증했다는 것이 신성한 진리의 증언으로 입증될 때, 자기들 삶의 결과는 단죄되고 영적 인간에 의해 거절되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저주한 자를 진영 밖으로 끌어냄이란 악과 거짓이 확증된 진짜 품성은 심판 과정에서 명백해져야만 함을; 그가 저주하는 것을 들은 모든 사람이 그 사람 머리에 손을 얹는다란 신성한 진리의 증언으로 입증함을; 온 회중이 그를 돌로 친다란 그 삶의 결과에 대한 단죄, 영적 인간에 의한 거절을 뜻한다. (379, 10038, 10023, 9311, 4197, 10023, 6338, 8799, 7456)

15절. 그리고 너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야기하라, 말하기를, 자기 하느님을 저주하는 자는 누구든지 자기 죄를 낳는다.

영적 의미

사악한 삶으로 주님에게 등을 돌리는 자는 자신의 선택에 의해 황폐되고 만다는 것이 신성한 진리의 증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러 말함이란 이것은 신성한 진리의 증언이다를; 저주함이란 사악한 생활로 주님께 등을 돌리는 것을; 죄를 낳음이란 자신이 선택해서 황폐해짐을 뜻한다. (7010, 10355, 1822, 379, 8882, 9937)

16절. 그리고 주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자, 그는 확실히 죽음에 놓인다. 모든 회중이 그를 반드시 돌로 칠 것이다. 낯선 자 이든 본토박이 이든 (주님의) 이름을 모독할 경우, 죽음에 놓이게 하라.

영적 의미

특히 진리를 모독한 이들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그 결과 그들에게서는 모든 진리가 박탈된다. 그가 교회의 내적 상태 이든, 외적 상태 이든 모두 해당된다. 그 이유는 이런 모독은 내적 이든 외적 이든 계속될 수 없고 오로지 제거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의 이름을 모독한 자는 반드시 사형 시켜라란 특별히 진리를 모독하는 이들, 그들은 모든 진리를 박탈당하는 결과를 맞이하고야 만다는 것을; 온 회중이 그를 돌로 치라란 거짓은 처벌되고 교회에 의해 거절된다는 것을; 낯선 자 이든 본국인 이든 이란 그들이 교회의 외적 측면에 속하든, 내적 측면에 속하든 임을; 내 이름을 모독한 자는 정녕 죽으리라란 이런 모독은 내적으로 이든 외적으로 이든 계속 될 수 없는 바 오로지 제거되어야만 한다는 뜻이다. (8882, 6887, 2908, 6338, 8799, 7456, 7908, 8882, 6887, 2908)

17절. 어떤 사람을 세게 때려 죽게 만드는 자는 정녕 죽음에 놓인다.

영적 의미

시련(수습) 받는 상태에서 악한 생활로 진리를 거절하는 이는 반드시 황폐됨을 겪게 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남의 목숨을 끊은 자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란 수련 상태에서 악한 생활로 진리를 거절한다면 황폐됨을 겪어야 한다는 뜻이다. (8902, 4251, 2908)

18절. 그리고 짐승을 세게 쳐서 죽게 만든 자는 그것을 변제할 것이다. 즉 목숨을 위해서(인바) 목숨으로 (변제하라).

영적 의미

그러나 누가 자연적 인간 안에 있는 선한 생활만을 파괴했다면 그는 이기적 삶을 거절함으로 거듭날 수 있어 천국 생명을 받을 수도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짐승의 목숨을 끊은 자는 변제하라(산 짐승으로 보상하라)란 누가 자연적 인간 안에 있는 선한 생활만을 파괴한다면 그는 이기적 삶을 거절함으로 거듭날 수 있고 천국 삶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4251, 7424, 9097, 9048, 9049)

19절. 그리고 만일 사람이 자기 이웃을 흠집나게 했다면, 그가 했던 대로 그것을 그에게 해줄 것이다.

영적 의미

반대로 만일 그가 다른 사람 안에 있는 선행을 파괴한다면 그 사람 안에 있는 선행 역시 파괴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누구든지 동족에게 상처를 입힌 자에게는 같은 상처를 입혀라란 누가 타인의 선행을 파괴한다면 자신에게 있는 선행도 자신에 의해 파괴됨을 뜻한다. (7837, 10490, 9048, 9049)

20절. 파괴(breach)에는 파괴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되갚으라). 즉 그가 사람에게 손상을 입게 하였으면, 그렇게 그도 손상을 입게 하라.

영적 의미

위 경우는 이해함, 의지, 바깥쪽 생활 측면에서이다. 그 이유는 악은 그 악 위에 피할 수 없는 처벌을 가져오고, 거짓으로부터 행동하는 이는 거짓의 결과로 고통 당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파괴함에는 파괴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란 19절의 경우가 의지, 이해함, 바깥쪽 생활에 관한 것임을; “남에게 상처를 입힌 만큼 자신도 상처를 입는다”란 악은 피할 수 없는 처벌을 제 스스로 가져온다는 것, 거짓으로부터 행동하는 사람은 거짓의 결과로 고통받는다를 뜻한다. (9163, 2148, 6380, 9048, 9049)

21절. 그리고 짐승을 죽인 자는 그것을 변제하라. 그리고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음에 놓인다.

영적 의미

외적 인간 안에 있는 선만 파괴한 사람은 회개로 거듭날 수 있다. 그 반면 내적 인간 안에 있는 선을 파괴한다면 황폐되고야 만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남의 짐승을 죽인 자는 물어주어야 하고 살인한 자는 사형에 처해야 함이란 외적 인간 안에 있는 선만을 파괴한 사람은 회개로 거듭날 수 있으나, 내적 인간 안에 있는 선을 파괴한다면 황폐되어질 수밖에 없다. (8902, 9097, 7424, 2908)

22절. 낯선 자 이든, 본토박이 이든 너희는 한 가지 법을 가진다. 그 이유가 내가 주 너의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위 같은 응보의 법칙은 교회 내에 있는 사람 이든 밖에 있는 사람 이든 공히 적용된다. 그 이유는 신성한 선은 신성한 진리에 의거 불변하게 행동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외국인 이든, 본국인 이든 한 가지 법만 있을 따름이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란 응보의 법칙은 교회 내에 있든, 밖에 있든 공히 적용되는데, 그 이유는 신성한 선은 신성한 진리에 의거 불변하게 행해지기 때문이다. (9048, 9049, 6887, 2001)

23절. 그리고 모세가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들은 진영으로부터 그를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그를 돌로 쳐죽였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한 대로 실시했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신성한 진리는 악이 거짓과 결합하도록 내버려 두어 악 가운데 있는 자들을 거절하는 도리 외에 심판에서 달리 행할 수 없다. 그리하여 지옥적 삶 가운데 있는 이들은 신성한 선으로부터 나온 신성한 진리에 순종하는 천국적 삶 속에 있는 이들로부터 분리되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야기함이란 신성한 진리는 심판에서 악 가운데 있는 이들을 거절할 도리밖에 없음을; 저주한 자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 돌로 쳤다란 악은 악 속의 거짓과 결합되도록 내버려둠을; 주님이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했다란 지옥적인 삶 속에 있는 이들은 신성한 선으로부터 신성한 진리에 순종하는 천국적 삶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서 분리되어짐을 뜻한다. (7010, 2951, 3654, 379, 10023, 10038, 6338, 8799, 7456, 3654, 7010, 2001, 5486)

24장의 종합적 고찰

만물이 존재하게 되는 보편적 원리들을 알고 있다면 거기서 파생되는 모든 세세한 사항들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모르고 있는 사람보다 더 나은 위치에 있게 된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는 보편적 원리이다. 이런 연유로 교회에 관한 저술 속에서 위 원리는 대단히 많게 사용되고 있다. 선과 진리의 형체가 아닌 창조물에 관한 착상은 창조물 안에는 아무 것도 없다. 무엇 보다 먼저, 선은 작동 중인 사랑 외에 더 다른 게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들이 사랑하는 것을 놓고 선한 것이라고 말하고, 자기 사랑에 일치하는 것들, 제 사랑을 체현해 주고 표현하는 것들을 두고 참된 것이라고 말한다.
어찌됐든 사랑은 보편적인 것이라 불리는 것이 합당할는지 모른다. 그 이유는 사랑은 사랑이기 때문이고 사랑은 주님, 지존하신 분, 만물은 그분으로부터이기 때문이다. 신성한 사랑이 모든 것의 근원이라고 알게 되면 넓은 측면에서의 사랑은 인간 존재들 안에서 아주 다양하게 사랑 자체를 전시한다는 것에도 주목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신성한 사랑에 관한 뭔가 다른 구분된 정의가 무엇일까라고 묻지 않을 수도 없다. 이렇게 간단히 말해볼 수 있다. 생명과 행복, 기쁨과 즐거움을 이기적인 어떠한 동기 없이 나누어 주는 게 사랑이라는 것, 또는 인류로부터 천국을 형성하는 게 사랑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성한 선은 위 사랑이 명백해진 상태이다. 이를 본문에서 순수한 올리브 기름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런 기름이 언급된 말씀 몇 군데를 살펴보자. 즉 레위기 8장 10-12절, 열왕기상 1장 39절, 열왕기하 4장 2-7절, 누가복음 10장 34절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위 기름을 가져온다는 것은 자기가 받고 있는 선함이 주님으로부터 임을 인정하는 것이 인간에게 할당된 부분임을 명시하는 말이다. 찧어서 짰다는 것은 위 상태에 순응한다는 뜻이고, 그 기름은 불을 밝히기 위함이라는 것은 선이 진리의 근원이라는 뜻이다. 이 등불을 늘 켜둔다는 말은 영적인 빛은 선의 상태로부터 언제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위와 같이 본문의 첫 단원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들이 함축되어 있다. 이런 사항이 뒤로 이어지는 구절들에서 세부적으로 명백해지고 있다. 왜 위 등불이 베일 밖에 위치하고 있을까? 영적 인간은 선과 진리를 자기가 사용하는 위치에 계속 놓고, 그 선과 진리를 자기의 모든 상태 속에서 제 자신으로부터인 듯 변장하여 나타나야만 한다는 것, 동시에 이 인간이 알아야 하는 것은 작동하는 힘은 등불 뒤 베일 안에 존재한다는 것, 다시 말해 그가 현명하다면 자신의 납득을 초월해 존재하는 신성한 신비를 꿰뚫어 보려고 시도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각각에 걸맞는 천국을 지니고 즐긴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얼마나 기쁜 일인가! 게다가 자신이 결코 도달하지도 못할 어떤 드높은 위치를 포부적으로 갈망해대거나 바래지 않으면서 자신의 위치에서 더 나은 상태로만, 최소한 더 이상 뒤로 미끄러질 염려는 없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편하게 기쁨을 즐길 수 있는가 말이다. 이 문단을 맺는 말, “이것은 너희가 대대로 길이 지킬 법령이다”는 특별히 주목해 두어야 한다. 그 이유는 법령이란 내적 삶의 상태로 결과되는 외적 삶에 관한 상태임을 이 부분에서 특별히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완전히 거듭나기 전 내적 인간과 외적 인간 사이에는 계속되는 다툼이 있다. 이를 두고 시험(temptation)이라 부른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위 같은 종류의 다툼은 없고 평화로운 상태, 언제나 하모니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고로 이 세상 삶이라는 여정 동안 시험이나 위의 다툼 같은 것을 거쳐 가는 게 꽤 가치 있는 고통이라고 반문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말씀의 글자 속에 있는 내적 의미를 자세히 관찰함으로 수습기간인 이 세상 삶에 필요한 힘과 용기를 수집해야 하리라. 이제 두 번째 문단을 살펴보자.
먼저 주목해 볼 것이 있다. 빵은 천적 선을 의미하고 선은 진리에 앞서 존재한다. 그럼에도 등불을 밝히는데 대한 지시 사항이 빵을 거론한 이 문단 앞에 전개되어 있다. 왜 그렇게 되어 있을까? 그 이유는 본문의 일반 주제가 영적 천국과 영적 교회이기 때문이다. 또한 주님으로부터 진행되는 신성한 진리는 비록 천적 천국까지도 그들 상태에 적합하기 때문이고 신성한 선 역시 신성한 진리 안에 거처를 두기 때문이다. 그 외 달리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 또는 사랑이 그분에 의해 받아질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경우가 천적 인간에 해당되는 바 진리를 수단으로 선의 상태에로 인도되는 영적 인간의 경우 더더욱 해당되는 바, 천적 인간은 주님을 사랑하는 그들의 사랑으로 구별되고, 영적 인간은 선행 또는 이웃을 사랑하는 그들의 사랑으로 구분되어지는 것이다.
위에서 살핀 내용들이 어떻게 그러한지를 보여주게 된다. 베일 밖에 있는 모든 것은 영적 인간에 관련되는 것이다. 그리고 천적 인간을 통해 간접적으로 오는 신성한 사항에 관한 지각이 영적 인간에게는 천적 인간을 통해 간접적으로 온다. 이를 다시 생각해 보면 의미심장한 실용적인 열매를 얻게 된다. 즉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이상 진정한 선행(이웃 사랑)이 있을 수 없다는 것, 순수한 신앙과 선행이 없으면 진정한 자연적 친절 또는 선도 없다는 것, 보다 낮은 천국의 기쁨은 보다 높은 기쁨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것, 그 반면 악은 위의 사항들을 남용함으로서 생산된다는 것이다.
완전한 삶은 정밀한 구분을 만들면서 동시에 각각의 적절한 관계를 앎으로서만 획득될 수 있다. 숫자 여섯이 나타낸 것, 즉 다툼이 없음, 또는 기꺼이 잘 해내는 상태에 인간이 도달했다 해도 인간은 역시 자연적인 상태에 필연코 남아 있어야 한다. 순수한 탁자로 의미된 것, 즉 더러움에서 자유로워진 자연적 삶으로부터서 영적, 천적 삶은 분리되어질 수 없는 바 우리가 선을 지닌다 해도 그 선에 상응하는 진리 없이는 불가능하고, 우리의 예배와 기도가 주님이 기뻐하시어 받을 수 있기 위해서는 향을 피워 올리는 것, 즉 진정한 예배자는 불로 명시되는 천국적 사랑의 열렬함이 진리와 결합되어 있어야만 한다. 이제 이런 사람은 자신이 진실로 사랑하는 것이 최상의 것임을 기억하고 있다. 이런 상태는 안식일로 의미되는 싸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에서만 존재한다. 그리고 이 사람은 어느 정도지만 더 높은 삶, 그 삶의 천국적 질서를 실감한다. 이 실감함은 계약으로 상징되는 것, 즉 주님과 결합할 수 있게 한다. 그리하여 이 사람은 순종을 사랑하는 거룩한 상태에서 먹는 것으로 명시된 것, 자기 삶 속의 선을 자기 것으로 삼는다. 선을 자기 것이 되게 하는 것이야말로 타인과 구별되게 하는 선용의 삶으로, 언어나 행동으로 표현되는 사랑으로부터 오는 충만한 내적 예배인 것이다.
천국적 선과 진리의 근원, 그 결과들을 생각해 보는 위 문단을 떠나 이제 우리는 악과 거짓의 근원, 그 결과를 응시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이렇게 갑자기 방향이 바뀌는 게 불합리한 듯 여겨질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나 필수적이다. 그 이유는 두 품질을 대비해 보게 될 때 얼마나 반대되는지 밝히 알게 해 주기 때문이다. 또 하나 이유는 선한 품질로부터 악의 품질이 어떤지를 볼 수 있지만 악의 품질로부터서는 선의 품질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한 자가 개혁이라든가 거듭나는 길을 걸을 때 악한 자의 이해함도 선과 진리를 지각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인간 존재로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거듭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악 이든 선 이든 선택하도록 강요당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악이나 지옥의 근원은 주님이 아니고 자연적 수준의 능력을 남용한 인간으로부터 이다. 이런 사실이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의 아버지가 이집트 출신이라는 이야기로 묘사되고 있다.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은 아버지 쪽의 근원이 악 인 바 악에서 파생된 거짓을 뜻한다. 그런고로 주님께서 이렇게 말하신다. “너희는 악마의 자식들이다. 그래서 너희는 그 아비의 욕망대로 하려고 한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고 진리 쪽에 서 본 적이 없다. 그에게는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거짓말을 할 때마다 제 본성을 드러낸다. 그는 정녕 거짓말쟁이며 거짓말의 아비이기 때문이다”(요한 8:44). 거짓의 근원을 알려주는 어떤 견해도 위 말씀보다 더 명백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본문을 통해 좀 더 들여다보는 것은 유익하리라 생각된다. 좋은 의미에서 이스라엘 여인은 진리에 대한 애착이고 그녀의 아들은 그 진리 자체이다. 이를 염두에 두면 그 뒤에 따라오는 모독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그 이유는 누가 진리를 조금이라도 인정하지 않는 상태에 있다면 그는 진리를 모독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시비가 진영 즉 교회 내에서 벌어졌다는 대목이 기술되는 것이다. 진영이란 천국을 의미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계시록 12장 7절에 기술된 것과 같은 하늘에서의 전쟁이라고도 생각될지 모른다. 그러나 계시록의 전쟁이란 사라져버린 이전 천국에서의 싸움, 즉 사라져 버리는 부패된 교회에서의 싸움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사항이 본 장에서 두 사람 사이에 있는 싸움이다. 어찌됐든 천국 자체 안에서는 싸움이 있을 수 없다. 그 이유는 거기서 누구든 주님의 도움으로 모든 시험을 극복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문단의 세부 사항들은 앞 장들에서 살핀 바 있으므로 특별히 재고할 필요가 없으리라 생각된다. 이 문단의 일반적 시리즈 역시 앞의 세부적 영적 의미들과 연결해 생각하면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짚어두고 끝내야 하리라 생각된다. 신성과 영적 법칙을 위반했어도 회개로 구원되어 깨끗해질 수 있는 반면, 악한 상태를 확증했을 경우 천국적 삶에서 영원히 분리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의 내적 의미가 주는 사항들을 심각하게 되새겨 보아야 한다. 우리는 정의 속에 자신이 있음을 확증하게 하는 일관된 삶, 다시 말해 하느님의 법을 지켜 가는 삶에 어떤 예외도 두지 않는 삶 속에서 성실하게 삶의 문제를 해결해 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강행할 때만이 더 없는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이렇게 쓰여 있다. “나는 승리하는 자들에게 하느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겠다” (계시록 2:7).

레위기 23장 해석

레위기 23장

영적 의미 요약

* 넓은 측면에서 거듭나는 삶의 계속적인 상태들에 관하여, 이에는 악과의 싸움 그리고 쉼의 상태가 포함되어 있다, 1-3절.
* 거듭나는 삶에 종속될 첫 번째 상태는 악에서의 해방 중 하나인데 이에는 선과 결합하는 진리를 내면으로 받는 것과 깨끗해짐 그리고 선 밑에 진리들이 배열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4-8절.
* 거듭나는 삶에 종속될 두 번째 상태는 선 안에 진리가 이식되는 것이다, 9-22절.
* 그 결과 밝히 알게 됨에 관한 것, 23-25절.
* 그 결과 모든 악이 제거됨에 관하여, 26-32절.
* 거듭나는 삶에 종속될 세 번째 상태는 선이 이식되는 것, 이에는 모든 완전함과 거룩함에 있는 심정의 기쁨과 즐거움을, 가장 낮은 원리에서 가장 높은 원리에 이르기까지 쉼과 평화의 상태를 가지게 되고 이 상태는 계속 갱신되어진다, 33-34절.
(* 성경 구절은 44절까지 인데 요약 부분에서는 34절로 끝나고 있음. 역자주)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그리고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주님께서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지각을 주시어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speaking)이란 유입을; 모세란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말함(saying)이란 지각을 뜻한다. (2951, 7010, 1791, 1822)

2절.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야기 하라, 주님의 절기들, 이것을 너희는 거룩한 모임이다고 선포할 것이다, 이것들이 나의 절기들이다.

영적 의미

영적 교회인에 대한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으로부터 그는 거듭나는 삶에 관한 일반적 상태를 분별하며, 이 삶에 있는 세부적 상태들을 신성한 질서로 배열하고 규율해 가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러둠이란 영적 교회인이 식별할 수 있게 가르치심을; 주님의 절기(축절)들이란 거듭나는 삶의 계속되는 상태들을; 거룩한 모임이도록 이 절기들을 선포함이란 모든 진리들은 선에 의거 질서대로 배열되어야 함을; “이것들이 나의 절기들이다”란 신성한 질서에 따름을 각각 말한다. (10355, 3654, 1791, 1822, 9294, 7891, 5288, 37, 10133)

3절. 육 일 동안 일을 할 것이다. 그러나 칠 일째 날은 엄숙한 쉼의 안식일, 거룩한 모임이 있다. 너희는 어떤 일도 하지 말라. 그것은 너희의 모든 거주지에서 주님에게 안식일이다.

영적 의미

그러나 악과 싸우는 상태들이 먼저 선행되고 그 뒤를 이어 일반적인 쉼과 평화의 상태가 있게 된다. 이 가운데 진리들이 선으로부터 질서 있게 배열된다. 그러면 이기적 동기로부터 행동될 리 없고 시험에 견디어낼 필요도 없는 바, 주님으로부터 온 선이 그의 모든 세부 상태에 이르기까지 자유롭게 그리고 기쁘게 받아지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육 일 동안 일을 함이란 악과 싸우는 상태가 선행됨을; 칠 일째 되는 날은 엄숙한 쉼의 안식일이다란 위 전투에 수반되는 넓은 측면에서의 쉼과 평화의 상태를; 거룩한 모임이란 모든 진리들은 선으로부터 오는 질서에 따라 배열될 것임을; 어떤 일도 하지 말라란 인간은 이기적 동기로부터 행동하지 않는 것 또는 시험을 견디어 내는 것이 없어야 함을; “이 날은 주님에게(여호와에게 바치는) 안식일이다”란 자유롭게, 기쁘게 주님에게서 선을 받음을, “너희의 모든 거주지에서”란 세부적인 특별한 상태에 관하여를 각각 뜻한다. (84, 8889, 7891, 8890, 8888, 8889, 2001, 471)

4절. 이것들은 주님의 절기들, 거룩한 모임들이다, 이것을 너희는 그것들의 지정된 계절에서 선포하라.

영적 의미

일반적 상태는 그 안에 종속된 상태들을 포함한다. 또한 이 안에는 선 밑에 진리들의 배열이 있고 이 배열이 질서 있게 계속됨을 인간은 실감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것들은 주님의 절기들, 거룩한 모임들이다, 이것을 너희는 그것들의 지정된 계절에서 선포하라란 넓은 측면에서의 거듭나는 상태에는 종속되는 상태들이 포함된다는 것, 그 안에는 선 밑에 진리들이 배열되는데 이것이 질서적으로 이어져감을 인간이 실감하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9294, 5288, 37, 10133)

5절. 첫째 달에서, 그 달의 십 사일 저녁은 주님의 유월절이다.

영적 의미

그래서 종속된 첫 상태는 주님이 악에서 해방해 주신 상태이다. 이 상태 중 사랑으로부터 온 신앙의 상태가 가장 우세해져 있는다. 그리고 의지와 이해함 모두가 신성한 진리에 복종함으로 해서 거룩한 상태가 동반되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정월 십 사일 저녁은 주님의 유월절이란 종속된 첫 상태는 주님께서 악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시는 것 중 어떤 것 한 가지를, 정월 십 사일이란 사랑으로부터 오는 신앙의 상태가 우세해져 거룩함의 상태가 동반된다는 것을, 해거름 또는 저녁 동안이란 의지와 이해함 양면에서 신성한 진리에 복종함을 통하여를 뜻하는데, 그 이유는 위 상태는 이기적 사랑만이 우세했던 상태가 끝나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상태가 시작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며, 그리고 순종이란 의지로부터 진행되고 이해함에 의해 인도 받아감을 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7867, 859, 7900, 7844, 8750-3)

6절. 같은 달의 십 오일은 주님에게 누룩 넣지 않은 빵의 절기(무교절)이다. 칠 일 동안 너희는 누룩 넣지 않은 빵을 먹어라.

영적 의미

그 다음 즉각 새로운 상태, 즉 거짓에서 깨끗해지는 것, 더 나아가 선을 자기 것으로 삼게 되는 거룩한 상태가 뒤를 잇는다.

세부적 영적 의미

정월 십 오일이란 위 새로운 상태 안에 있음을; 누룩 없는 빵의 절기(무교절)이란 거짓에서 깨끗해짐을; 누룩 없는 빵을 칠 일간 먹음이란 위의 상태에서 거룩함이 더 진전된 상태를; 먹는다란 선을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8400, 9296-5, 9287, 9294, 716, 2187)

7절. 첫째 날에 너희는 거룩한 모임을 가져라. 너희는 노예 근성의 일을 하지 말라.

영적 의미

그 안에 진리에 관한 지식들이 선 밑에 우선 배열되는데 이 동안에는 시험이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첫째 날에 거룩한 모임을 열고 모든 노예 근성의 일(생업)에서 손을 뗌이란 위 상태 안에 먼저 진리에 관한 지식들이 선 밑에 배열되고, 배열되는 동안에는 시험이 없음을 말한다. (7891, 8888, 8890)

8절. 그러나 너희는 칠 일 동안 주님에게 불로 만든 제물을 바쳐라. 칠 일째 날에 거룩한 모임이 있다. 너희는 노예 근성의 일을 하지 말라.

영적 의미

그런 다음 선으로부터 제 스스로 주님을 인정함이 있어진다. 그리고 계속해서 진리들이 더 완전하게 배열되면서 시험으로부터의 더 큰 해방이 있는다.

세부적 영적 의미

칠 일간 주님께 제물을 태워 바침이란 주님이 선으로부터 자유롭게 인정됨을; 칠 일째 되는 날 거룩한 모임을 가진다란 진리들이 더 완전하게 배열됨을; 노예 근성의 일(생업)을 하지 않음이란 시험에서 더 많이 자유로워짐을; 계속성이 칠 일 동안 제물을 바침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그 이유가 칠이라는 숫자는 거룩함과 쉼 그리고 평화, 뿐만 아니라 충만함과 완성됨까지 뜻하기 때문이다. (10055, 716, 923, 7891, 10127)

9절. 그리고 주님은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다시 주님께서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지각을 주시어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speaking)이란 유입을; 모세란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말함(saying)이란 지각을 말한다. (2001, 2951, 7010, 1791, 1822)

10절.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야기하라,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준 토지 안으로 들어올 때, 그리고 거기로부터 수확물을 거둘 때, 그러면 너희는 성직자에게 너의 수확물의 첫 열매들의 곡식단을 가져 와라.

영적 의미

영적 교회인은 유입과 가르침을 통하는 바, 거듭나는 삶에 종속되는 두 번째 상태 안에서 진리들이 선 안에 이식되기 시작한다. 그 다음 이식된 진리들은 기쁘게 순종함을 원리로 해서 질서 안에 모두 집합되며 이 모든 것이 주님께서 해 주신 것임을 인정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야기하라란 영적 교회인에 대한 가르침임을; 주님께서 주시는 땅으로 들어가서 추수를 할 때란 거듭나는 삶의 두 번째 종속되는 상태에서 진리들이 선 안에 이식되기 시작할 때를; 수확물의 첫 곡식단을 성직자에게 가져옴이란 위의 진리들이 주님께로부터 임을 인정함으로서 기쁘게 순종함이라는 원리로부터 그 진리들이 한데 모아지는 것을 말한다. (10355, 3654, 1791, 1822, 9294, 3705, 995, 10083)

11절. 그리고 그는 주님 앞에서 곡식단을 흔들어라, 너를 위하여 받아질 것이다. 안식일 다음 날, 성직자는 그것을 흔들어라.

영적 의미

이 선으로부터 영적 인간은 생명 있게 되고 그의 예배는 주님께 깊은 감사를 나타내는 바 주님께서 받으실 수 있다. 이 예배에는 항구적으로 있게 되는 거룩한 쉼과 평화의 상태가 포함되어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께서 받으시도록 곡식단을 흔듦이란 선으로부터 오는 인간의 영적 생명은 주님에 의해 생명이 있어지고 그분으로 인해 활동하게 됨을, 받으심이란 그분께 드리는 위의 예배는 주님에 대한 깊은 감사의 표시인 바 그분께서 열납하신다는 것을, 안식일 다음 날 곡식단을 흔들어 바친다란 선으로 말미암아 진리가 생명 있게 됨은 영원히 존재할 쉼과 평화의 상태 안에 포함되어져 있음을 말한다. (84, 8889, 3998, 요한 14장 27절, 16장 33절)

12절. 그리고 네가 곡식단을 흔든 날에, 너는 주님에게 태워 바침을 위해 첫 번째 해의 흠이 없는 수양을 바쳐라.

영적 의미

이러한 초보적인 선의 상태에서 주님은 순진의 상태로부터 예배된다. 이 예배에서 진리는 선의 저장소임을 인정함이 있고, 모든 거짓과 악들이 제거되는 바, 주님을 섬기는데 완전히 봉헌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곡식단을 흔든 날에 일 년된 흠이 없는 어린 수양을 바치라란 초기에 해당되는 위와 같은 선의 상태에서는 순진의 상태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을, 동시에 진리들은 선을 저장하는 곳임을 인정하고 모든 악과 거짓이 제거되면서 주님을 섬기려는 충만된 헌신이 있게 된다. (3994, 725, 7837, 7839, 349, 923)

13절. 그리고 그것의 식사 제물은 기름을 섞은 고운 곡식 가루 십분의 이 (에바), 달콤한 향기를 위해 불로 만든 제물이다. 그리고 그것의 음료 제물은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이다

영적 의미

위 상태에는 아껴두신 것들을 통해 충만됨 속에서 진리와 결합된 선을 내면으로 받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주님으로부터 온 순수한 사랑을 수단으로 결과된 것이고, 쉼과 평화의 기운이 바깥으로 흘러나와 그 자체를 드러낸다. 또한 이해함 안에 선과 결합된 내면의 진리가 있고, 이를 수단으로 해서 교리가 승강 되면서 영적으로 되는 시작이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식사 제물은 기름을 섞은 고운 곡식 가루 십 분의 이 에바란 위 상태 안에는 주님께서 아껴두신 것들을 통하여 선이 진리와 충만되게 결합됨이 포함되어 있음을; 달콤한 향기를 위해 불로 만든 제물이란 위 상태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순수한 사랑의 작용으로 결과되어 거기에 쉼과 평화의 기운이 흘러들면서 외적으로도 그 자체가 명백해 진다는 것을; 음료 제물로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이란 진리의 외적 상태가 이해함 안에서 선과 결합됨이 있는데 이러므로 해서 교리들이 승강 되어 영적 수준이 되어지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2177, 5194, 576, 10137, 10262, 4581-5, 요한 2장 1-11절)

14절. 그리고 너희는 이 동일한 날 까지, 너희가 너희 하느님에게의 봉헌물을 가져올 때까지, 빵을, 볶음 곡식도, 생이삭도 먹지 말라. 이것은 모든 너의 거주지들에서 대대로 영원한 법령이다.

영적 의미

우선 주님을 진실로 인정하게 되는 상태 즉 선의 상태가 개시되기 전에는 어떤 선도 내적으로 자기 것이 되게 할 수 없고 선과 진리에 관한 애착도 외적으로 자기 것이 되게 할 수 없다. 이는 세부적인 거듭남이 계속 진보하기 위해, 그리고 영적 생명을 받기 위한 외적 기초가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제물을 바치는 날 이전에는 빵도, 볶은 곡식도, 생 이삭도 먹지 못한다란 선의 상태가 개시될 때까지는 어떤 선도 내적으로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고, 외적으로 있는 선과 진리에 대한 애착도 자기 것이 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너희의 하느님에게 바치라란 자기 것으로 삼기 전 반드시 주님이 진실로 먼저 인정되어야 함을; 대대로 길이 지킬 법령이다란 주님을 인정함은 계속되는 거듭나는 과정의 외적 기초가 된다는 것, 그리고 거듭남의 세세한 과정에서 영적 생명을 받는 영원한 외적 기초가 된다는 것을 말한다. (5212, 9295, 7884, 9845, 471)

15절. 그리고 너희는 안식일 다음 날로부터, 너희가 흔들어 바침의 곡식단을 가져온 날로부터 너는 (날수를) 세라. 일곱 안식일들이 거기에서 (셈을) 완성할 것이다

영적 의미

선 안에 진리가 이식되는 상태가 진보되는 것은 쉼과 평화를 결과하게 하는 악과 잘못들에서 승리하는 거룩한 순종을 수단으로 생명을 얻었던 초기 상태에 이어 영원히 계속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날 수를) 셈이란 상태들의 품질을 알아낸다는 것을; 곡식단을 가져옴이란 선 안에 진리가 이식되는 상태가 더 진전됨을; 다음 날이란 항구적이고 계속적임을; 곡식단을 흔듦이란 생기 있게 됨을; 만 일곱 주간이란 악과 잘못들에서 승리하여 쉼과 평화의 거룩한 상태가 옴을 각각 말한다. (10217, 9204, 9295, 3998, 10083, 716, 8889, 8890)

16절. 일곱째 안식일 이후 다음 날이면 오십 일이 세어질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주님에게 새로운 식사 제물을 바쳐라.

영적 의미

항구적으로 발전해감 속에는 내적으로 선에 관한 것 뿐만 아니라 이식된 진리가 충만해지는 상태까지 포함된다. 그리고 이식된 진리와 결합한 내면의 선까지 충만된다. 그러므로 주님은 새로운 예배 상태에서 더욱 충분히 인정되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일곱째 안식일 다음 날까지 해서 오십 일을 셈이란 항구적으로 진보해 가는 것들, 이에는 내적으로 선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외적으로 이식되기 위해 진리가 충만 하는 상태까지 포함됨을; 새로운 식사 제물을 주님께 바침이란 내면에 있는 선이 이식되는 진리와 결합함으로 해서 새로운 예배 상태에서 주님이 더욱 인정되어짐을 뜻한다. (2252, 3998, 2177, 349)

17절. 너희는 너희 거처로부터 십분의 이 에바로 만든 빵덩어리를 가져와라. 이것은 주님에게 첫 열매를 위해 누룩을 넣어 구워라.

영적 의미

그리하여 인간이 지각하는 바, 제 스스로 행동하는 것 같지만 자기는 자기 속에 주님이 아껴 두신 것들을 통해 주님께서 생기를 넣은 진리와 결합한 선으로부터 행동하고, 이해함 안에는 선에서 오는 순수한 진리가 있게 되었다는 것, 이는 시험에 승리함으로 획득된다는 것, 진리를 사랑함으로 선이 더욱 진보된다는 것을 지각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너희는 너희 거처로부터 십분의 이 에바로 만든 빵덩어리를 가져온다란 인간이 지각하는 바, 자기는 진리와 결합된 진리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행동하는 것이 자신 스스로 그렇게 하는 듯 여기고 있다는 것, 이 행동은 우리 속에 아껴 두신 것들을 통해 주님께서 생명 있게 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고운 곡식 가루였다 함은 이해함 안에 있는 선에서 온 진리의 순수한 상태를; 이 가루에 누룩을 넣고 굽는다란 시험에서 승리함을 통해 획득되어졌음을; 이것이 주님께 드리는 첫 열매(맏물)이란 진리를 사랑함을 통해 선을 실감하는 쪽으로 발전됨을 뜻한다. (9205, 5194, 576, 2177, 8496, 7906, 9295, 10083)

18절. 그리고 너희는 빵과 더불어 한 살 된 흠 없는 어린 양 일곱과 어린 수소 하나, 그리고 수양 둘을 빵과 더불어 제출하라, 그것들은 그것의 식사 제물과, 그리고 그것의 음료 제물과 더불어 주님에게 태워 바쳐라. (이는) 주님에게 달콤한 향기의 불로 만든 제물이다.

영적 의미

이제 주님은 가장 깊은 천적 선이 작동되어 인정되어지는데 이에는 거짓에서 자유로워진 순진이라는 충만된 거룩함이 포함되어 있고, 또한 주님과 협동하는 결합으로 해서 외적, 내적 인간 안에 순진의 선이 있게 된다. 이 결합을 수단으로 선과 진리에 관한 측면에서, 외적 진리와 선에 관한 측면에서 충분히 정화되는데 이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한 그분의 순수한 사랑을 통해 주님이 해주셨음을 인정한다. 그 결과 쉼과 평화를 더욱 많이 결과하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빵과 더불어 일곱 어린 양이란 이제 가장 깊은 천적 선의 작용으로 주님이 인정되어짐을; 흠이 없음이란 거짓에서 자유로움을; 어린 수소 한 마리와 수양 두 마리란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 안에 있는 순진의 선을; 둘이란 결합을, 그러므로 주님에 관한 내적 인간 부분일 경우 협동을 말한다. 태워 바침의 제물이란 위 결합을 수단으로 충분히 성별 됨을; 식사 제물과 음료 제물이란 내면에 있는 선과 진리, 외면에 있는 진리와 선에 관한 것임을; 불로 태워 바침이란 이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한 그분의 순수한 사랑을 통해 주님으로부터임을 인정하는 것을; 주님께 달콤한 향기를 풍김이란 쉼과 평화의 상태로 한걸음 더 진전되었음을 말한다. (349, 10132, 7839, 716, 7837, 9591, 10042, 5194, 10053, 2177, 10137, 10054, 10855)

19절. 그리고 너희는 죄 바침을 위해 수염소 하나, 그리고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로 일 년된 수양 둘을 바쳐라.

영적 의미

위 사항 외에 인정함이 더 있다. 즉 모든 악과 거짓은 주님이 제거해 주신다는 것, 모든 순진의 선은 외적, 내적 인간이 진리로 충만된 가운데 주님으로부터 받게 된다는 것, 이렇게 주님이 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완전한 자유 속에서 예배드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죄 바침을 위해 수염소 한 마리란 위 상태에 하나 더 인정하는 상태가 있는데 이는 모든 악과 거짓은 진리 또는 신앙을 수단으로 주님께서 제거해 주신다는 것이다. 평화 제물로 그 해 태어난 수양 두 마리란 순진의 모든 선은 내적, 외적 인간에 있는 진리가 충만해진 가운데 주님으로부터 받아지고, 그러므로 해서 완전한 자유 속에서 주님이 예배된다는 뜻이다. (4169, 725, 3400, 349, 10132, 5194, 725, 7839, 10097)

20절. 그리고 성직자는 주님 앞에서 흔들어 바침을 위한 첫 열매로부터의 빵과 더불어, 두 어린 양과 더불어 그것들을 흔들어라. 그것들은 성직자를 위한 주님에게 거룩하다.

영적 의미

이리하여 인간의 모든 삶, 내적으로 있는 선의 측면, 외적으로 있는 선의 측면 모두 그리고 선 안에 진리가 처음 이식된 때로부터 그것이 완성되기까지 모든 측면이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살아있게 된다. 그리고 모든 선의 근원이 주님이심을 진실로 인정하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위의 제물을 흔든다란 인간의 생명, 그것이 내적으로 있는 선 이든, 외적으로 있는 선 이든 모두 주님에 의해 생명 있게 된다는 것을; 곡식단을 흔듦은 선 안에 진리가 이식되기 시작함을; 첫 열매로서 드리는 빵을 흔듦은 위의 이식 작업이 충만해졌음을; 이것은 성직자의 몫이고 주님에게 거룩하다란 인간이 자기 것으로 삼는 모든 선의 근원이 주님이심을 진실로 인정함을 뜻한다. (9295, 10083, 10079, 제 11, 20절, 9223, 8042, 2187, 6148-7)

21절. 그리고 너희는 바로 같은 날에 선포하라. 거기서 너에게 거룩한 모임이 있을 것이다. 너희는 노예 근성의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너희 대대로 영원히 너의 거주지들에서 법령이다.

영적 의미

위 결과로 있는 상태에서 주님께서는 매우 밝히 알게 해 주신다. 즉 선 아래 진리가 완전하게 배열되고, 주님을 예배함 안에서 이기적이고 세상적인 동기들로부터 행동하려드는 모든 기질로 야기되는 시험도 정지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같은 날 (모임을) 선포함이란 위의 결과 그 상태에 주님으로부터 충분히 밝히 알게 하심이 있다는 것을; 이것이 거룩한 모임이다란 선 밑에 진리가 완전히 배열됨을; 어떤 노예 근성의 일(생업)에 종사하지 말라란 시험이 정지되었음을; 어디서 살든 대대로 길이 지킬 규정이다란 주님을 예배하는 가운데 이기적이고 세상적인 동기로부터 행동하려던 모든 기질이 사라짐을 뜻한다. (8802, 8815, 7891, 8890, 7884, 471, 9845, 8888)
주목해둘 게 있다. 14절의 끝 부분에서 “대대로, generations”라는 말이 “거하는 곳들, dwellings” 앞에 오고 있는데 이는 일반적 상태들로부터 세부적인 상태로 발전함을 명시해 주고 있고, 본 절의 경우 14절과 반대 순서인 바 이는 진리가 선 안에 충분히 이식될 때, 선 밑에 진리가 질서 있게 배열되는 상태가 세부적으로도 있게 됨을 명시해 놓고 있다.

22절. 그리고 너희가 너의 토지의 수확물을 거둘 때, 들판의 모퉁이까지 싹슬어 거두지 마라, 너는 네 수확물의 이삭을 모아들이지 마라. 너는 그것들을 가난한 자와 낯선 자를 위해 남겨두라.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이제는 진리가 선 안에 이식된다 해도 그 진리가 능력 있게 최말단에서 표현될지라도 이기적 용도에 충당하려고 더 이상 자기 것으로 삼지 않고, 선은 외적으로 있는 이기적인 동기로 더 이상 오염이 안 된다. 오히려 이 모든 선과 진리를 선행과 선행으로부터 오는 신앙의 일들로 해서 주님께 돌리는 바, 거기에는 어떤 이기적, 세상적인 동기가 없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추수할 때 곡식을 모조리 거두지 말고, 거두다 남은 이삭도 줍지 말라란 진리가 선 안에 이식되는 때 내적으로 있는 능력들이 최말단에서 표현된다 해도 더 이상 이기적 용도를 위해 자기 것으로 삼지 않으며, 외적으로도 그러한 것임을; 그것을 가난한 자와 외국인이 줍도록 하라, 나는 너희 하느님이시다란 이기적이고 세상적 동기가 없는 선행과 그 선행으로부터 온 신앙으로 일하게 된 것을 주님께 돌려 드림을 뜻한다. (4955, 10669, 2146, 2001, 7192, 제 19장 10절)

23절.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더 나아가, 주님께서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지각을 주시어 밝히 알게 해 주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호와란 그분의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speaking)이란 유입을; 모세란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표현하고; 말하심이란 지각을 뜻한다. (2951, 7010, 1791, 1822)

24절.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야기 하라, 말하기를, 일곱째 달에서, 그 달의 첫째 날에, 너희에게 엄숙한 쉼이 있는다, 나팔을 불어 기념하는 (날), 거룩한 모임(이 있다).

영적 의미

영적 교회인에 대한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으로부터 그가 지각하는 바, 선 쪽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상태 또는 신앙의 상태가 선 안에 진리가 이식됨으로 마감 지어질 때 거룩한 평화의 상태가 수반되고 거기에 주님께서 밝히 알게 해 주심도, 선 밑에 진리가 재배열된다는 것까지 지각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둠이란 영적 교회인에 대한 가르침, 이로부터 그가 지각한다는 것을; 일곱째 달 첫 날 반드시 쉬어야 한다란 신앙의 상태 또는 진리의 상태가 발전함은 선 쪽으로 인도해 가는 진리가 이식됨으로 마감 짓게 됨을; 엄숙한 쉼 또는 안식일이란 위의 발전에 따라 오는 거룩한 평화의 상태를; 나팔을 불어 기념함이란 주님께서 밝히 알게 하심을; 거룩한 모임이란 선 밑에 진리들이 재배열됨을 말한다. (10355, 3654, 1791, 1822, 851, 893, 894, 851, 8802, 7891, 8815, 6888, 8620)

25절. 너희는 노예 근성의 일을 하지 말라. 그리고 너희는 주님에게 불로 만든 제물을 바쳐라.

영적 의미

위 결과 영적 싸움, 그리고 이기적이고 세상적 사랑까지 중지된다. 동시에 순수한 천적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어떤 노예 근성의 일(생업)에도 종사하지 말라란 영적 싸움 그리고 이기적, 세상적 사랑으로 행동함이 정지됨을; 주님께 태워 바침이란 정지됨과 동시에 순수한 천국적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한다는 것을 말한다. (8888, 8890, 10055)

26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다시 주님께서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지각을 주시어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speaking)이란 유입을; 모세란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표현하고; 말함이란 지각을 뜻한다. (2001, 7010, 1791, 1822)

27절. 이 일곱째 달의 십 일은 보상의 날이다. 너에게 거룩한 모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너희 혼들을 괴롭힐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주님에게 불로 만든 제물을 바쳐라.

영적 의미

진리가 선 안에 이식될 때 거기에는 악의 충분한 제거가 있고, 선 밑에 진리가 재배열되며, 인간 스스로에는 악밖에 가진 게 없는 바, 주님으로부터 순수한 사랑을 받아야만 그분을 예배할 수 있다고 고백하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칠월 십일은 보상(죄 벗음)의 날이다란 진리가 선 안에 이식될 때 거기에는 악이 완전히 제거됨도 있다는 것을; 이 날 거룩한 모임을 열라란 선 밑에 진리가 재배열됨을, 혼을 괴롭힘(단식함, afflicting the soul)이란 인간 스스로서는 악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것을, 주님께 태워바친다란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예배할 수 있게 됨을 말한다. (2075, 10042-III, 7891, 1937, 1947, 10055)
주목해둘 게 있다. 위 구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단식(영혼을 괴롭게 함)이 스스로의 강박 충동(self-compulsion)을 뜻하는 듯 보여진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자아 강박 충동과 함께 예비 사항으로 붙어 다니는 것은 인간 스스로는 악밖에 없어 자신 스스로 계명을 지킴으로 주님으로부터서만 선을 행할 수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너는 네 영혼을 괴롭게 하리라”라는 표현도 내적 의미로 볼 때 거기에는 진실된 겸허함이 이미 포함되어 있다. 이 겸허 없이 인간은 합당한 고백을 할 수 없다. (1937-1항)

28절. 그리고 너희는 동일한 이 날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가 이것은 보상의 날이어서, 너의 하느님 주님 앞에 너를 위해 보상을 받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위 상태에서는 견뎌내어야 할 어떤 시험도 없는데 그 이유는 선과 진리 양 측면에서 주님으로부터 오는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과의 재회가 있기 때문에서 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 날에 어떤 일도 하지 못함이란 위 상태에서는 견뎌 내어야 할 어떤 시험도 없다는 것을, 너희 하느님 주 앞에서 보상의 날이라 함은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재회함, 이는 주님으로부터 이고 선과 진리 양면 모두에서 재회가 있다. (8888, 8890, 10042-III, 683, 2001)

29절. 같은 이 날 괴로움 받지 않는 혼은 누구든지 그의 백성들로부터 잘리운다.

영적 의미

만일 위 상태에서 인간 스스로는 악밖에 가진 게 없음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면 그는 그 이유로 해서 교회로부터 분리되어야만 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이 날 괴로움 받지(단식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의 백성들로부터 잘리운다(겨레로부터 추방시켜야 한다)란 위의 상태에서 누군가가 자신 스스로부터서는 악밖에 없음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면 그는 그 이유로 해서 그 즉시 교회로부터 분리된다. (1937, 1947, 10042-III, 5302, 1259)

30절. 그리고 같은 이 날에 어떤 일이든지 하는 혼은 누구이든 나는 그의 백성들 사이로부터 그 혼을 파괴할 것이다.

영적 의미

또한 넓은 의미의 교회의 위 상태 안에 있는 누군가가 영적 싸움에 종사하고 있거나 또는 이기적, 세상적 동기로 행동하고 있다면 그는 반드시 교회에서 분리될 필요가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 날 일을 하는 사람은 그의 백성 사이로부터 그 혼을 파괴함(겨레로부터 추방함)이란 위와 같은 교회의 일반적인 상태에 있는 누군가가 영적 싸움에 종사하고 있거나 세상적, 이기적 동기로부터 행동한다면 그는 반드시 분리될 필요가 있게 된다. (8888, 8890, 5302, 1259)

31절. 너희는 여하튼 일을 하지 말 것이다. 이것은 너의 모든 거주지들에서 대대로 영원히 법령이다.

영적 의미

그 이유가 거듭남을 진전시키고 있는 사람은 이기적, 세상적 동기로부터 행동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내적, 외적 인간 모두에 해당되고, 거듭남의 모든 세부적인 상태에도 해당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어떤 일도 하지 않는 것, 이것은 대대로 길이 지킬 법령이다란 거듭나는 과정에 있는 사람은 이기적, 세상적 동기로부터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이는 내적, 외적 인간에, 그리고 세세한 모든 상태에서도 해당됨을 뜻한다. (8888, 8890, 7884, 471, 9845)

32절. 너에게 엄숙한 싐의 안식일이 있다. 그리고 너희는 너희 혼을 괴롭게 하라. 달의 아홉째 날 저녁, 저녁으로부터 저녁까지 너희는 너의 안식일을 지켜라.

영적 의미

이 상태에서는 천국적인 쉼과 평화를 미리 맛봄이 있고, 인간 스스로는 악밖에 없음을 진실로 인정함도 있는데 이는 신앙과 선행의 결합이 이전 상태에서 새로운 상태로 바뀔 때 있게 되는 희미함 속에서 거행될 때이다. 그 이유가 희미한 상태는 주님 안에서의 쉼과 평화의 상태에 앞서 있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엄숙히 쉬는 안식일이다란 위의 상태에서는 천국적인 쉼과 평화를 미리 맛볼 수 있음을; 단식함이란 인간 스스로는 악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것을; 그 달 구일 저녁부터 안식일을 지킴이란 신앙이 선행과 결합함은 이전 상태에서 새 상태로 변화함에서 발생하는 희미함에서 거행된다는 것, 그 이유는 희미한 상태는 주님 안에서 있게 되는 쉼과 평화의 상태 앞에 있기 때문이다. (851, 1937, 1947, 제 27절, 2075, 7844, 851)

33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기를,

영적 의미

더 나아가 주님께서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지각을 주시어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speaking)은 유입을; 모세는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표현하고; 말하심(saying)은 지각을 뜻한다. (2001, 2951, 7010, 1791, 1822)

34절. 이스라엘의 자손에게 이야기하라, 말하기를, 이 일곱째 달의 십오 일은 주님에게 칠 일 동안 장막(tabernacle)의 절기이다.

영적 의미

영적 교회인에게 가르침이 있다. 이로부터 지각하는 바, 새로운 상태는 선 안에 진리가 이식되는 그 뒤를 이어야만 한다는 것, 이 새로운 상태란 진리 안에 선이 이식되는 것이요 이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거듭나는 작업의 정점이라는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러둠이란 영적 교회인에 대한 가르침, 이로부터 그는 지각함을; 일곱째 달 십오 일부터 장막절(초막절, feast of tabernacles)이다란 새로운 상태는 선 안에 진리가 이식됨에 이어 오게 된다는 것, 이 새로운 상태란 진리 안에 선이 이식되는 것이요, 이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거듭나는 작업의 최정점이라는 뜻이다. (10355, 3654, 1791, 1822, 9294, 9295, 9296-5, 716)

35절. 첫째 날에 거룩한 모임이 있을 것이다. 너희는 노예 근성의 일을 하지 말라.

영적 의미

그런고로 선 밑에 진리가 새롭게 배열된다. 그리하여 이기적이고 세상적인 모든 동기를 마지막으로 거절해 버리면서 시험이 끝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첫 날 거룩한 모임을 열고 노예 근성의 일(생업)에 종사하지 말라란 위로부터 선 밑에 진리가 새롭게 배열되어서 이기적으로 세상적인 모든 동기의 마지막 거절과 더불어 시험도 끝나게 됨을 뜻한다. (7891, 8888, 8890)

36절. 칠 일 동안 너희는 주님에게 불로 만든 제물을 바쳐라. 팔 일째에 너에게 거룩한 모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주님에게 불로 만든 제물을 바쳐라. 이것은 엄숙한 집회이다. 너희는 노예 근성의 일을 하지 말라.

영적 의미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상태에 포함되는 것들, 즉 이 새로운 상태 안에는 선 밑에 진리가 재배열됨이 있고, 의지뿐만 아니라 이해함 측면에서 거룩한 예배의 재배열이 있고, 또한 세상적, 이기적 동기를 거절함과 더불어 외적 인간 안에도 선 밑에 진리가 질서 있게 배열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칠 일간 주님께 제물을 태워 바침이란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상태를, 팔일 째 거룩한 모임을 연다란 이 새로운 상태에서 선 밑에 진리가 재배열됨을, 다시 주님께 제물을 태워 바침이란 의지 뿐만 아니라 이해함 측면까지에서 있는 거룩한 예배, 그러므로 이는 상호적이다. “이 날은 축제일(엄숙한 집회)이다”란 외적 인간 안에서 선 밑에 진리들이 질서 있게 배열됨을, 노예 근성의 일(생업)을 하지 말라란 이 역시 이기적이고 세상적 동기를 거절해야 함을 뜻한다. (716, 10055, 9296-5, 7891, 9296-5, 8888, 8890)

37절. 이것들은 주님의 절기이다, 너희는 거룩한 모임이 있기 위해, 주님께 불로 만든 제물, 태워 바침, 그리고 식사 제물, 희생 제물, 음료 제물을 각기 그것 (바치는) 날에 바치도록 (절기를) 선포하라.

영적 의미

가장 보편적인 거듭남 안에 있는 선을 자기 것을 삼는 데에 종속되는 상태들, 이 상태는 모든 이에게 질서에 따라 발생된다. 즉 진리의 새 배열이 거행되는 것, 이는 완전히 봉헌함을 수단으로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주님을 인정함으로 내면의 선을 자기 것으로 삼기 위해서, 영적 진리를 자기 것으로 삼기 위해서 거행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것들은 주님의 절기이다란 거듭남 가운데는 선을 자기 것으로 삼는 데에 종속되는 일반적인 상태들이 있다는 것을; 거룩한 모임을 선포함이란 위 상태에서 진리들의 새로운 배열이 거행된다는 것을; 제물을 주님께 불로 태워 바침이란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을; 태워 바침은 충만된 봉헌, 식사 제물과 제물은 주님을 인정함으로 내면에 있는 선을 자기 것 삼는 것, 음료 제물(제주)을 그날그날 절차를 따라 바침이란 각 상태에 따라 영적 진리를 자기 것으로 삼아 감을 뜻한다. (9294, 7891, 10055, 10053, 2177, 4581, 10079, 10137, 10262, 4581-5, 487)

38절. 주님의 안식일 외에, 그리고 너의 선물들 외에, 그리고 모든 너의 서원물 외에 그리고 모든 자유의 바침 외에, 이것을 너희는 주님에게 드리라.

영적 의미

가장 일반적인 상태 외에도 더 있다. 즉 선은 주님으로부터만 있다는 것, 인간은 진리로 더 다져져야 한다는 것, 주님을 예배함은 자기 스스로 그분께 모든 선을 돌려야만 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 외 주님의 안식일이란 가장 일반적인 또는 보편적인 상태를; 선물이란 선이 주님으로부터임을 인정함; 서약함이란 인간은 진리들로 확증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마음에 우러나서(자유 의지로) 바침이란 주님을 예배함은 자유로운 상태로부터 있어야 함을; 주님께 바치는 것들이란 모든 선은 그분으로부터임을 인정함을 뜻한다. (84, 8889, 5619, 3880, 10097, 5619)

39절. 너희가 토지의 열매들을 거두어 들일 때, 일곱 째 달의 십 오 일에 너희는 칠일 동안 주님의 절기를 지킨다. 첫째 날은 엄숙한 쉼이다. 그리고 팔 일째 날은 엄숙한 쉼의 날이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선행과 결합된 신앙으로 충만된 마지막 새로운 상태가 있다. 이 상태들이 선한 일로 결실을 맺을 때 거기에 가장 높은 원리로부터 가장 낮은 원리에 이르기까지 쉼과 평화, 이와 더불어 완전하고 충만된 심정 속의 기쁨과 즐거움이 있게 된다. 이 상태는 항구적으로 갱신되어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칠월 십 오일이란 신앙이 선행과 결합해서 충만해지는 상태 중 마지막 새로운 상태를; 거둔 땅의 소출이란 신앙과 선행이 선한 일들 안에서 열매를 맺을 때를; 칠 일간 주님의 절기를 지킴이란 모든 완성함과 거룩함 속에서 심정이 기뻐하고 즐거워함을; 첫 날 엄숙하게 쉬고 팔일 째에도 엄숙하게 쉬어라란 항구적으로 갱신되어지는 쉼과 평화의 상태가 가장 수준 낮은 원리에서 높은 수준에 이르기까지 모두 되어져 이를 통해 진리와 선, 선과 진리의 상호결합이 있게 됨을 뜻한다. (9294, 9295, 9296-5, 2044, 851, 7690, 9286, 9287, 2044, 716, 84, 8889, 9296-5)

40절. 그리고 너희는 첫째 날에 훌륭한 나무들의 열매, 종려나무의 가지들, 무성한 나무들의 큰 가지, 그리고 개울의 버드나무를 가져와라. 그리고 너희는 칠 일 동안 주 너의 하느님 앞에서 즐거워하라.

영적 의미

그러므로 이 상태에는 진리들로부터 오는 온갖 종류의 즐거움, 즉 영적, 합리적, 자연적, 감각적 진리들로부터 오는 즐거움이 있다. 또한 심정과 이와 병합된 이해함으로부터 주님 가운데서 즐거워하는 충만된 상태, 거룩한 상태도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첫 날 훌륭한 나무의 과일, 종려나무 가지, 무성한 나무의 큰 가지, 개울의 버드나무를 가져옴이란 위의 상태에서는 진리들 즉 영적, 합리적, 자연적, 감각적 진리들로부터 오는 온갖 종류의 선을 즐기게 된다는 것을; 칠 일간 주 너의 하느님 앞에서 즐거워 하라란 심정과 이해함이 병합되어 주님 안에서 기뻐하는 거룩한 상태를 뜻한다. (9296-6, 2001, 2044, 716)

41절. 그리고 너희는 해마다 칠 일을 주님에게 절기로 그것을 지킬 것이다. 이것은 너의 대대로 영원한 법령이다. 너희는 일곱 째 달에 그것을 지켜라.

영적 의미

그리고 위 상태는 거듭나는 사람 즉 외적, 내적 인간의 양 측면 모두에서 항구적으로 거룩한 상태이다. 이는 신앙을 수단으로 인정하는 데서 시작되어 사랑으로부터 즐거워하는 끝에까지 이르는 거듭나는 상태의 최정점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해마다 칠 일간 주님에게 바치는 축제일로 지킴이란 위의 상태는 항구적으로 거룩한 상태가 될 것임을; 대대로 길이 지킬 규정이란 외적으로도 항구적임을; 일곱째 달이란 거듭나는 상태는 신앙을 수단으로 주님을 인정함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부터 즐거워하여 끝맺는다는 것을 뜻한다. (2044, 716, 7884, 851)

42절. 너희는 칠 일 동안 초막(오두막, booth)에서 거주하라. 이스라엘(족)에 속하는 본토박이인 모든 이는 초막에서 거주한다.

영적 의미

참으로 위 상태는 선 가운데 건설되는 내적 교회인, 외적 교회인에 속하는 갖가지 수준의 교회인에 대한 천적 상태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칠 일간 초막에서 거하되 이스라엘 국민은 누구나 초막에서 살아야 한다란 위 사항들을 갖가지 수준에 있는 교인들의 천적 상태, 즉 선 안에서 건설되는 내적, 외적으로 있는 교회에 속하는 사람들의 상태라는 뜻이다. (9296-6)

43절. 내가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이집트의 토지로부터 데려올 때, 내가 그들을 초막에 거주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너의 자손 대대로 알게 하려 해서 이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모든 이가 알아야 하는 바, 자연적일 뿐인 인간 수준의 굴레를 주님께서 벗겨주실 때,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의 거룩한 상태는 영적 교회인에 소속된다는 것, 이리하여 그는 선과 진리가 영원히 결합함으로 심정과 이해함 안에서 그분을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렇게 하는 것은 내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 초막에서 살게 했던 일을 후손 대대로 상기시켜 주려는 것이다. 나 여호와가 너희 하느님이다”이란 모든 이가 알아야 할 것이 있는 바,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의 거룩한 상태는 영적 교회인이 주님에 의해 자연적일 뿐인 인간의 굴레에서 해방될 때에 그들에게 귀속되고, 그렇게 해방시켜 주신다는 것을 영적 교회인으로 하여금 선과 진리가 영원히 결합함을 수단으로 심정과 이해함에서 인정하게 하려는데 있다는 뜻이다. (9296-6, 8866, 2001, 9845)

44절. 그리고 모세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주님의 절기들을 선언하였다.

영적 의미

말씀 안에 있는 기쁨과 즐거움과 더불어 선을 자기것이 되게 하는 거듭남의 위 거룩한 과정에 관해 밝히 알게 하시는 것은 신성한 섭리에 속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모세가 주님의 절기들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선포함이란 선이 말씀 안에 있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더불어 자기 것이 되는 거듭나는 이 거룩한 과정을 밝히 알게 하시는 것은 신성한 섭리에 속한다 라는 뜻이다. (7010, 3654, 10355, 9294, 2187)

23장의 종합적 고찰

본 장의 주제들을 살펴보기에 앞서 생각해 보아야 할 네 가지 것이 있다. 즉 글자적 의미 측면에서의 말씀, 글자적 의미에 있는 상응, 상응을 수단으로 글자적 의미가 함유하고 있는 내적 의미, 내적 의미에 묘사되어 있는 인간을 실지 체험하는 상태들이다. 말씀은 인류가 저작해 왔던 여느 책들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책이다. 그 이유는 크게 나눌 수 있는 세 가지 의미 즉 천적, 영적, 자연적 의미들이 집합하여 완전한 시리즈로서의 내적, 영적 의미를 형성해 가는 방식으로 배열된 상응적 표현으로 빈틈없이 건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말씀을 얼핏 본다면 마치 글자적 의미가 영적 의미를 생산하고 있는 듯 여겨질는지 모른다. 따라서 말씀의 외관인 글자적 의미를 가지고 확증하는 것은 잘못된 방식이다. 사실 말씀의 글자적 의미 또는 외관을 생산하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말씀 속의 내적 의미이다. 마치 주님께서 신성한 사랑으로부터 그분의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영계의 모든 것, 자연계의 모든 것을 생산하시는 것과 같다. 따라서 자연계는 영계의 상응물일 뿐이다. 이 방식으로 말씀을 생각하게 되면 이른바 창조물들은 인간의 생산물이 아니라 신성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연계의 모든 것에는 최말단 형체로서의 신성한 진리 또는 신성한 지혜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말씀은 최말단 형체 안에 있는 신성한 인간이요, 바꿔 말해 본질인 신성한 생명 또는 사랑이 최말단 형체 안에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유한한 인간 생명은 무한하신 분 즉 신성한 인간의 생명으로부터인 바, 말씀은 인간 존재가 거듭나아가는데 따르는 모든 상태들을 기술하고 있다는 것까지도 자연히 납득된다. 그러므로 여느 인간 생명 그리고 그 생명의 상태 변화를 묘사해 주는데 있어 이 세상 어떤 것도 말씀보다 더 완전하게 그려내 주지 못한다. 본 장에 묘사된 것으로부터 배우는 바, 인간은 거듭나는 동안 그 사람과 더불어서 싸움과 쉼이 번복되어 가는 상태들을 체험해 간다는 것이다. 한가지 유의할 사항이 있다. 싸움의 상태가 여섯 번 반복된다고 해서 거기에 꼭 맞게 여섯 번의 쉼의 상태가 있으리라는 수학공식 같은 생각을 글자 의미로부터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육 일 간 또는 여섯 번이라는 숫자 여섯은 영적으로는 양을 말하는게 아니라 상태들의 품질을 명시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6은 전투 상태를, 7은 휴식 상태를 의미한다. 이미 살핀바 있지만 말씀 안에서 위 두 숫자 모두는 각기 다른 국면에 있는 충만과 완성을 명시한다. 본 장에서 6은 싸움에 관련되는 모든 상태를, 7은 쉼에 관련되는 모든 상태들을 명시하고 있고 이로부터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인간의 일반적인 상태는 세부적인 상태와 구별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주목해 두어야 한다. 그 이유는 글자적 의미 만에서 생각을 끌어낼 경우 내적 의미에 관한 우리의 지각함이 혼동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제 주목해 볼 것은, 안식일이 거룩한 모임이라 불리는 것, 글자적 의미로 이렇게 불리는 것은 매우 적절한 표현이라는 것에 대해서이다. 어찌됐든 이런 생각은 영적일 경우 사라지게 되어있고 동시에 이는 주님에 의해 선 밑에 진리들이 질서 있게 배열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 이유는 선을 수단으로 진리들은 결합되고, 선으로부터 진리들은 생명과 활동력을 가진다. 그리고 진리들 안에 있는 선에 의거 인간은 각자의 품질을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해서 “너희는 어디에서 살든지 이 날은 주님에게 안식일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가 사람들이 집안에 거주하듯 선은 진리 안에 언제나 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특정한 개인 안에 있는 선은 여느 어떤 개인 안에 있는 선과 언제나 구별되고 진리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반적 상태에는 종속되는 세부적인 상태들이 언제나 포함되어 있다. 세부 상태 중 첫 번째 상태는 주님에 의해 악으로부터 해방되는 상태임은 두 말할 여지가 없다. 이는 인류라는 전체적 측면에서, 또는 개개인의 측면에 적용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모든 인간은 인간 측면에서의 주님에 관한 가설을 수단으로 구속되어 왔다. 이 가설 안에는 인간을 속박하는 지옥의 권세를 이겨내시는 것, 그러므로 해서 거의 잃어버릴 뻔 했던 자유, 즉 선과 악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자유가 각 개인들에게 보존되게 해 주셨던 사항이 포함되어 있다. “거의 잃어 버릴 뻔 했던”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악의 권세가 절대적으로 득세하기 시작했기 때문인데 만일 구속의 역사가 결과되지 않았다면 인류는 멸망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의 안전은 선과 악 또는 천국과 지옥 사이의 영적 균형(equilibrium)에 의존되기 때문이다. 이 균형으로 인해 인간은 선택의 자유 속에 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주님의 강림은 당연히 있어져야 했던 것이고 이 위대한 구속이 성취되는 한편 건전한 마음을 지닌 모든 사람은 계속 선택하는 자유를 가졌고 악을 선택하게 하는 강요가 없어졌던 것이다. 예를 들면 세례자 요한의 선교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 마태복음 7장 끝 절의 경우같이 주님의 가르침에 경청하게 된 것 모두가 이에 해당된다. 이후 인간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잃어버리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러하리라.
이제 악으로부터 해방되는 사항을 일반 측면 뿐만 아니라 개인 측면에서도 생각해 보자. 이는 주님이 하시는 일에 인간이 협동(co-operation)함을 통해 주님께서 결과되게 하신다. 그 이유는 협동하느냐 않느냐를 선택하는 자유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자유 의지 또는 자유로운 결정을 각 개인이 실시하는 사항이 유월절이 제정되는 사건으로 표현되어져 있는데 좀 더 집어내어 말한다면 어린 양 또는 염소를 선택하는 것으로 의미되고 있다 (출애굽 12:5). 그 이유가 이 짐승이 순진 측면의 주님으로부터 온 선을 나타내고, 이 선이 인간을 해방한다. 그리고 이 짐승의 고기를 먹는 것은 이 선을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다. 한편, 그 피는 집의 좌우 문설주와 문 상인방에 바르도록 지시되었는데 이는 자연적 수준의 인간 안에 있는 진리들이 앞서 받아들여지게 됨을 의미한다. 본 장을 다루는 이 지면을 통해 유월절의 사건 모두를 설명할 수는 없고 단지 그 사건이 개개인의 측면에서 있게 되는 구속의 방법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만을 강조하고 생략하기로 한다. 위와 같은 관점이 무교절, 누룩 없는 빵을 먹는 절기에 관한 사항에도 적용된다. 누룩이 안 들어간 빵을 먹는 것, 즉 무교절은 거듭나는 과정에서 개개인이 깨끗해지는 것을 나타내준다. 무교절에 관한 주제를 살피는 가운데 명확히 알게 되는 것은 보편적인 구속과 세부적인 구속 즉 인류라는 차원에서의 구속과 각 개인 차원에서의 구속이 어떻게 연결을 이루고 있는가에 대해서이다. 한 가지 상념해야 할 사항은, 위의 구속 또는 악에서의 해방, 그 결과 깨끗해짐은 언제나 인간과 더불어서라는 것, 그리고 이는 계속적인 경험 뿐만 아니라 한 가지 경험 안에서 동시에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악행을 계속 중단해가고 선행을 잘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다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위의 역사를 차츰 밝히 알게 해 주신다.
인간 거듭남에 종속된 두 번째 상태는 위의 사항보다 좀더 신경을 써야 하리라 본다. 이 두 번째 상태가 추수절(the feast of Pentecost)로 표현되고 있는데 선 안에 진리가 이식되는 상태이다. 이 표현은 악에서 해방됨이라는 앞 문단의 주제만큼 쉽게 이해될 수 없는 말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이런 질문이 있을는지 모른다. “어떻게 선 안에 진리가 이식될까?” 사실 대답은 단순하다. 인간이 진리를 원하고 사랑해서 실천할 때 그 진리는 선 안에 이식되어진다. 그러나 우리가 진리를 알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진리를 바래고 사랑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 이 질문으로부터 얻게 되는 명확한 것은, 가르침을 받는 상태가 먼저 있어야 할 것이라는 것, 이 가르침 안에 진리들이 있고, 이 진리가 땅(마음)에 뿌려져서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도록 장치되어 있다는 것일 게다. 추수절의 햇곡식(첫 열매)은 거듭나는 인간이 습득한 진리들에 의거 자기 생활을 만들어 가는 과정 중 첫 노력을 상징하기에 꼭 맞는 표현이다. 그래서 두 번째 절기와 연결을 이루게 하는 햇곡식에 관련된 사항이 매우 상세하게 언급되고 있다. 우리의 초년 시절에 단순한 자극 때문만이 아닌 원리로 삶을 꾸린다는 것은 대단히 큰 가치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리를 습득하지만 자신 스스로 그 진리에 언제나 순종되도록 준비되는 것은 아니다. 한가지 여기서 알게되는 것은 진리가 선 안에 이식되는 과정은 악으로부터의 해방에 이어 시작되어 항구적으로 있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순종의 각 행동은 올바른 방향으로의 한 단계이다. 이런 한 단계가 시작되기 전 먼저 주님을 인정함이 있게 되는데 이것이 곡식단을 흔듦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흔듦(waving)은 신성한 작용의 결과 또는 신성이 마음에 흘러듦으로 인해 있게 되는 마음의 활동이다. 유월절은 유대교의 달력으로 보아서 7월 14일이고, 안식일이 15일, 흔들어 바침은 16일에 있어진다. 이는 인간 삶에 있는 상태들에는 연속성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 우리는 거듭나는 과정 속에서 순종을 수단으로 진리를 선 안에 항구적으로 이식해 간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우리는 선과 진리에 관한 각자의 애착을 주님께 바침으로 그분을 예배하게 되어 있다. 이것이 어린 양을 바치는 것, 식사 제물, 음료 제물을 바치는 것으로 의미되어 있다. 그렇게 예배드렸다고 해서 진리가 선 안에 완전히 이식되는 정점인 마지막을 장식하는 절기에 도착된 것은 아니다. 영적으로 어떤 셈(count)을 해야 할 게 있다. (날 수를) 세어 본다는 것은 각자의 상태에 관한 품질을 알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날수를 제대로 헤아릴 줄 알게 하시어 우리의 심정이 지혜를 얻게 하소서.” 이는 시편 90편 12절의 말씀이다. 이는 주님만이 우리 속 모든 상태에 관한 품질을 아실 수 있어 각자 상태의 품질에 꼭맞는 납득을 해주실 수 있으시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분만이 우리의 모든 상태를, 아마 우리가 할 수 없는 것들까지 모두를 정리정돈 해 주신다. 또한 우리의 상태들은 선 안에 진리가 이식됨을 수단으로 결과되는 선의 발전에 달려 있다. 이로부터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것은 세부적으로 있는 사항들, 즉 흔들어 바침의 반복, 추가되는 세세한 제물들에 관한 비밀스런 원인들일 것이다. 그리하여 선 밑에 진리들이 완전히 배열되는 상태, 이른 바 “충분히 밝게 하심, 충만된 계시”라는 최정점에 도달되어 각종 시험들, 즉 주님을 예배하는데 이기적이고 세상적 동기로부터 행동하려는 모든 기질이 정지된다. 이 항목에서 특이한 것은 누룩을 넣어 만든 새 식사 제물이다. 그 이유가 일반적으로 제단에 바쳐지는 식사 제물에는 누룩을 넣어 굽지 않도록 명령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문의 경우 이에 반대되는데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진리가 선 안에 이식되는 동안 진리가 먼저 깨끗하기 위해 진리와 거짓의 싸움이 있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우리로 알도록 명시해 두시기 위해서이다.
이제 선의 이식을 의미하는 세 번째 절기를 살피기 전 먼저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나팔 부는 절기(새해맞이)와 보상(죄 벗음)의 날과 더불어 절기 세 가지 모두가 칠월에 거행된다는 것이다. 중간 중간에 있는 절기들이 정확히 지정된 날 칠월에 거행되어야 하는 이유가 글자적 의미에서는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영적 의미로는 충분한 설명이 가능하다. 일곱째 달은 진리가 선 안에 이식되는 작업이 계속되는 동안 거룩한 신앙의 상태가 최정점에 이르는 것을 명백히 표현한다. 그리고 칠월 첫째 날과 열 번째 날도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즉 특별한 계시(밝히 알게 해 주심, 첫째 날)는 진리가 선 안에 충분히 이식되게 하고, 이 이식된 진리는 숫자 열로 명시되는 주님께서 우리 속에 아껴두신 것들(remains)이 충만해지는 상태로 완성된다는 뜻이다. 이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사항은 악의 완전한 제거인데 이것이 보상받는 날로 의미된다. 이에 관해서는 제 16장에서 충분히 살폈으므로 생략한다. 엄밀히 말한다면 완전한 악의 제거나 계시는 인간의 실제 경험에 의거한 심판 과정에서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우리 속에 든 악이 충분히 제거되기 전에는 우리 속에 진리가 아무리 많아도 선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개개인에 관련된 거듭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는 본문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느낄 수밖에 없으리라.
한정된 지면 관계로 세 번째의 큰 절기에 관련하여 한 두 가지 것만을 살펴볼까 한다. 이 절기는 선이 진리 안에 이식되는 것을 의미한다. 먼저 상기해둘 사항이 있다. 우리 삶의 두 상태들이 두 번째, 세 번째 절기로 나타내지고 있다는 것, 비록 우리가 의식하는 상태에 따라 계속적으로 거행되고 있다 해도 우리는 전자의 상태에 있을 경우 자연적 삶 속에서 선을 충분히 실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연적 수준의 인간은 그 속에 있는 악과 잘못들 때문에 영적 수준의 인간과는 하나를 이루지 못한다. 더구나 주님으로부터 있어지는 선이 이식되는 것은 진리의 이식과 거의 동시적으로 발생한다. 한마디로 우리는 거의 동시에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진다. 인생이라는 여행에 위 사항을 첨가해 생각해 본다면 여행기간 동안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에 얽힌 심정 상태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큰 위로가 될 수도 있다. 여행의 종착지인 천국에서 실감하게 될 마지막 선의 상태는 아주 어린 삶의 시기에 주님께서 우리 안에 이식해 두신 선과 정확히 같을 것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선의 이식을 의미하는 절기들이 수확하는 절기(the feast of the ingathering)라 불릴 뿐 아니라 장막절(the feast of tabernacles)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장막(초막)절은 사람들이 칠 일간 자기 집처럼 거주하는 곳이 천막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텐트에 거주함은 선이 진리 안에 거주하는 것, 또는 내적 인간이 외적 인간 안에 거하는 것을 명시해준다. 이로부터 알 수 있는 장막절에 관한 게 있다. 즉 선이 이식될 때 외적 인간은 내적 인간과 하나를 이루고 선은 최말단에 존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절기라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이 세상, 저 세상 삶 모두에서 선에 관한 자기의 외적 상태가 내적 상태와 하모니를 이룩하도록 노력해 가는 과정은 계속된다. 계속되는 가운데 있게 되는 충만함의 모두 안에서 위 두 상태의 일치는 점점 더 쉽게, 더 빨리 이루어져 가게 된다.
마지막으로 주목해둘 것이 있다. 훌륭한 과일과 종려나무가지가 위 장막절의 의미와 어떻게 연결되는 가에 대해서이다. 이 구절은 우리가 완전한 상태 안에서 온갖 종류의 선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있는 모든 선들을 어떻게 즐기게 되는지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식물 형태로 볼 때 종려나무에는 가지가 없다. 그러나 그 나무에는 나뭇가지처럼 보이는 무성한 잎들을 가지고 있다. 형태가 이러하다고 해서 그 나무가 지니는 의미에 어떤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상응으로 살피면 알게 되므로 첨언했을 뿐이다. 본 장에 걸쳐 있는 각종 절기를 내적 의미로 살폈다. 이는 거듭나는 인간의 전 생애, 계속적인 체험과 더불어 동시에 일어나는 거듭남, 주님의 역사에 인간의 협동이 어우러져 거듭남은 작은 완성에 작은 완성이 겹쳐 물방울에 물방울이 합쳐져 시냇물과 강물이 되듯 어떻게 완성되는가를 우리로 발견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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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22장 해석

레위기 22장

영적 의미 요약

* 선 가운데, 그리고 그 선에서 파생된 진리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 대한 가르침, 여러 가지 불순함들로 해서 더럽혀질 때 그들은 주님을 인정할 수 없고 예배할 수도 없다. 따라서 모독하는 죄를 범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1-9절.
* 선을 자기 것이 되게 할 수 있는 품질을 갖추지 못한 이들에 관하여, 모독이 있지 않도록 해야 하리라, 10-16절.
* 선으로부터의 모든 예배는 진리를 수단으로 완전해져야 한다. 어떤 악이나 거짓 때문에 불완전한 예배는 열납될 수 없다, 17-25절.
* 주님을 예배하는데 모독을 피하기 위한 세부 사항들이 더 추가된다, 26-33절.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 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지각을 주시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주님께서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은 유입을; 모세는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말하심은 지각을 말한다. (2001, 2951, 7010, 1791, 1822)

2절.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야기하라, 그들은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나를 거룩히 받드는 것, 즉 그들의 거룩한 것들로부터 그들 자신들을 분리하여, 그들이 내 거룩한 이름을 모독하지 않게 하라. 나는 주이다.

영적 의미

천적이거나 영적인 선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가르침이 주어진다. 불순할 경우 그들은 주님을 예배함과 영적 교회 사람의 성직 임무에서 분리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모독이 있지 않도록 하라. 그 이유는 천적, 영적 선과 진리는 신성한 선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야기하심이란 천적, 영적 선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가르치심을; 이스라엘의 자손들의 거룩한 것들로부터 그들 자신들을 분리함이란 그들은 주님을 예배함에서 분리될 수밖에 없음을; 또한 주님을 예배하는 성직 임무에서 분리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 이유는 모든 진정한 예배는 선을 수단으로 결과되고, 아론과 그의 아들은 성직자들로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를 거룩히 받드는 것”란 위의 예배, 성직 임무는 거룩하다는 것을; “나의 거룩한 이름을 모독하지 않게 하라”란 신성한 선과 진리는 자신들 안에 있는 천적, 영적인 선과 진리를 더럽힘으로 모독된다는 것을; “나는 주”란 천적, 영적인 선과 진리는 신성한 선으로부터 존재함을 뜻한다. (2951, 7010, 9946, 9903, 2776, 9946, 8882, 2001)

3절. 그들에게 말하라, 자손 대대로 너의 씨로부터 있는 자는 누구든지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주님에게 바친 것, 즉 거룩한 것들에 접근하는데, 그의 불결함을 가지고 있으면, 그 혼은 내 앞에서 잘리운다. 나는 주이다.

영적 의미

그런고로 천적 인간과 영적 인간이 지각하는 바, 누구든지 모든 선과 진리, 거룩함이 그분으로부터라고 인정함으로 해서 순수한 예배 안에서 주님께 접근 될 것인데, 그럼에도 이기적 동기로부터 주님께 접근을 한다면 선과 진리에서 분리되는데, 그 이유는 그 근원이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들에게 말하라란 그러므로 천적 인간과 영적 인간은 지각함을; 너희 후손 대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께 바치는 거룩한 제물을 가까이 하는 자란 순수한 예배 안에서 주님께 접근하는 사람은 누구든지를; 이 예배는 제물을 바침으로 표현되고 있고 “주님의 거룩한 것들”이란 모든 선과 진리, 거룩함은 그분으로부터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불결함이 있는 자란 이기적 동기가 혼합되어 모독함을, 주님 앞에서 잘리움이란 선과 진리에서 분리되고, 따라서 주님에게서도 분리됨을; “나는 주”란 주님이 모든 선의 근원임을 뜻한다. (9946, 10249, 2776, 9903, 349, 5619, 868, 8882, 10130, 5302, 223, 2001)

4절. 아론의 씨로부터 있는 자가 나병이나 유출을 가지고 있을 경우, 그가 깨끗해질 때까지 그는 거룩한 것들을 먹지 못한다. 그리고 죽은 자로 인해 불결한 어떤 것에 닿은 자, 또는 자기의 씨가 자기로부터 나간 사람.

영적 의미

선으로부터의 애착을 지녔는데, 외적 이든, 내적 이든 진리를 모독하는 사람은 그가 예배에서 이기적 동기로부터 행동하기를 멈출 때까지 선을 자기 것이 되게 할 수 없다. 이는 아래에 열거되는 것에 아주 경미하게 접촉해도 마찬가지인 바, 즉 영적 생명이 없는 표면적 행사에 불과한 예배, 또는 선에서 분리된 진리의 애착으로 드리는 예배,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의 후손은 누구를 막론하고 나병자든 유출을 가진 자든 이란 진리를 외적, 내적으로 모독하는 사람을, 그 이유는 그가 선으로부터 나오는 애착 안에 있기 때문이다. 깨끗해지게 되기 전에는 거룩한 음식을 먹지 말라란 예배에서 이기적 동기로 행동하는 것을 중단할 때까지 선을 자기 것을 삼을 수 없다는 것을; 죽은 자로 해서 어떤 불결한 것에 닿은 사람이란 영적 생명이 없는 오로지 예식뿐인 예배에 아주 경미하게 접촉함을; 씨가 나간 자(정액을 흘린 사람)이란 선에서 분리된 진리의 애착으로 예배함을 뜻한다. (6963, 10283, 10130, 10249, 9946, 2187, 4545, 10130, 5407, 880, 1798, 4837)

5절. 또는 자기를 불결하게 만들런지 모르는 어떤 기는 것을 만진 자는 누구든지, 또는 지니고 있는 불결함이 무엇이든 불결함을 가지고 있을런지 모르는 사람과 접촉한 자,

영적 의미

또는 불순함의 원인인 감각적일 뿐인 기쁨, 또는 종류가 어떠하든 불순해지게 되는 여하한 악들,

세부적 영적 의미

기는 것을 만진 자란 단지 감각적 기쁨 뿐인 불순한 것과 접촉함을, 어떤 종류의 불결 이든 불결한 사람과 접촉한 자란 종류 여하를 막론하고 불순해지려는 어떤 악들을 뜻한다. (10130, 746, 7424, 10130)

6절. 이렇게 접촉한 혼은 저녁까지 불결하다, 그리고 그가 물로 자기 살을 목욕하지 않으면 거룩한 것을 먹지 못한다.

영적 의미

위와 같은 행동은 상태의 변화가 있을 때까지 불순해 있게 한다. 그래서 그는 회개함에서 진리로 깨끗해질 때까지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불결한 것에 닿은 사람은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란 위 같은 행동은 인간의 상태가 변할 때까지 불순하게 한다는 것을, 목욕을 할 때까지는 거룩한 음식을 먹지 못함이란 회개 함 속에서 진리로 깨끗해질 때까지 선을 자기 것 삼을 수 없음을 뜻한다. (10130, 7844, 2187, 2776, 3147)

7절. 그리고 태양이 질 때, 그는 깨끗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그는 거룩한 것들을 먹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이것이 그의 빵이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그러나 이기적 사랑을 거절함으로 위 상태가 죽어질 때 그 사람은 깨끗하다. 그러면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것이 그의 통치하는 기쁨이요 그의 영적 삶을 지탱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해가 질 때 깨끗하게 된다란 이기적 사랑을 거절함으로 상태가 지나갈 때 그 사람은 깨끗해진다는 것을, 그 다음에야 자기 양식인 거룩한 음식을 먹는다란 그의 통치하는 기쁨이 선이기 때문에 선을 자기 것으로 삼게 될 것이고, 그 선만이 그의 영적 생명을 받쳐 줄 수 있다는 뜻이다. (8615, 8487, 4545, 2187, 2776, 2105)

8절. 저절로 죽은 것, 또는 짐승들로부터 찢기운 것은 그것과 함께 자신을 더럽게 하는 바, 그는 먹지 말라. 나는 주이다.

영적 의미

그러나 자연적일 뿐인 선, 다시 말해 무의식중에 악과 혼합된 선은 자기 것이 되게 못한다. 그 이유는 그것이 그를 불순하게 하기 때문인 바 그의 선은 주님으로부터서만 있어야 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자연사한 짐승이나 찢겨 죽은 짐승은 불결하게 하는 바 먹지 말라란 그는 단지 자연적일 뿐인 선은 자기 것 삼지 않아야 한다는 것, 또는 무의식적으로 악과 혼합되어지는 자연적인 선을 자기 것 삼지 않아야 하는데 그 이유는 그 선이 그를 불순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나는 주”란 그의 선은 오로지 주님으로부터만 있다는 것을 뜻한다. (2187, 4171, 10130, 2001)

9절. 그러므로 그들은 내 명령을 지켜서, 그들이 그것 때문에 죄짓지 않도록 하라, 그리고 만일 그들이 그것을 모독하면 그 때문에 죽을 것이다. 나는 그들을 정화하는 주이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교인들은 내적 선과 진리가 외적인 것과 결합해 있음으로 예배하되 자신이 악 속으로 붕괴되지 않도록 하라. 모독은 그를 황폐케 하고야 만다. 그 이유는 주님으로부터 온 선만이 인간을 거룩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의 명령을 지킴이란 교인은 외적인 것과 결합된 내적 선과 진리로 예배해야 함을; 그대로 지켜 죄를 낳지 않도록이란 그가 악 쪽으로 붕괴되지 않기 위해서임을; 죽으리라란 황폐됨 또는 모든 선과 진리가 박탈됨을; 그들이 그것을 모독한다면이란 모독 때문임을; “나는 그들을 정화하는 주”란 주님 만으로부터 오는 선만이 인간을 깨끗하게 함을 뜻한다. (3382, 9156, 9937, 2908, 2001, 8042)

10절. 낯선 자는 거룩한 것을 먹지 못한다. 성직자의 체류자나 고용된 종도 거룩한 것을 먹지 못한다.

영적 의미

교회 밖의 사람은 거룩한 선을 자기 것으로 삼는 것, 단지 자연적 수준일 뿐인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교회 내라도 자연적 수준의 지식 속에 있는 사람, 또는 뭔가를 얻고자 올바른 것을 행하는 사람도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낯선 자는 거룩한 음식을 먹지 못한다란 교회 밖의 사람은 거룩한 선을 자기 것 삼지 못함을;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연적일 뿐인 사람은 거룩한 선을 자기 것 삼지 못함을; 성직자를 찾아온 사람(체류자)이나 그의 고용된 종도 거룩한 음식을 먹지 못함이란 자연적 지식으로 교회 내에 있는 사람과 이득을 위해 의를 행하는 사람은 거룩한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다는 뜻이다. (4544, 8002)

11절. 그러나 만일 성직자가 어떤 혼을 산다면, 자기 돈으로 구매하면, 그는 그것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성직자의 집에서 출생된 자도 그러한 바, 그들은 그의 빵을 먹을 것이다.

영적 의미

그러나 진리에 순종하는 선한 생활을 수단으로 죄로부터 구속되어진다면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다. 내적으로 선 가운데 있는 사람은 외적으로 있는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으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사들인 혼, 성직자의 집에서 태어난 혼이란 진리에 순종함으로 선한 생활을 하여 죄에서 구속되는 사람과 내적으로 선 가운데 있는 사람을, 그들이 빵을 먹을 수 있다란 자기 것으로 삼음을 뜻한다. (5374, 9946, 1708, 2187, 2165)

12절. 그리고 만일 성직자의 딸이 낯선 자에게 시집간다면, 그녀는 거룩한 것에서 들어올린 제물을 먹지 못한다.

영적 의미

만일 누가 내적으로 주님으로부터 파생된 선에 대한 애착 가운데 있는 데도 이기적 사랑 속의 악을 그 애착에 결합시켜 모독한다면 그 애착이 주님으로부터 임을 지각하는 선을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낯선 자와 결혼한 성직자의 딸은 거룩한 양식으로 들어 올린 제물을 먹지 못한다란 만일 누가 내적으로 주님에게서 오는 선의 애착 안에 있으면서도 이기적 사랑의 악을 그 애착과 결합시킴으로 그 애착을 모독한다면, 주님으로부터 있게 됨이 지각되는 천적 선을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은 불가능하다. (3703-15, 9946, 2173, 4544, 2187, 10093)

13절. 그러나 만일 성직자의 딸이 과부이다면, 또는 이혼했다면, 그리고 아이가 없다면, 그리고 자기 아버지의 집으로 되돌아와 어린 시절 같이 있다면,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의 빵을 먹을 것이다. 그러나 낯선 자는 그것으로부터의 것을 먹지 못한다.

영적 의미

누가 선한 애착을 가지고 있되 진리 또는 선이 없이 비생산적인데도 선과 내적 연관을 지니고 있어 마치 거듭나는 초기 같다면 그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자연적일 뿐인 애착은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의 딸이란 선의 애착 가운데 있는 사람을, 과부 또는 이혼함이란 진리 또는 선이 없음을; 자식이 없다란 진리 또는 선이 생산되지 않음을; 아버지의 집으로 되돌아옴이란 서로가 내적으로 연합됨을; 어렸을 때와 같이란 거듭나는 시작 때와 같이를; 제 아버지의 빵을 먹는다란 아직 선이 자기 것 될 수 있음을; 낯선 자는 먹지 못함이란 자연적일 뿐인 애착은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음을 뜻한다. (3703-15, 4844-16, 489, 3703-15, 3183, 4544, 2187)

14절. 그리고 만일 사람이 모르고 거룩한 것을 먹었다면, 그 다음 그는 그것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놓을 것이다, 그리고 성직자에게 거룩한 것을 주어라.

영적 의미

누가 무지해 가지고, 또는 부주의해서 거룩한 선을 모독했다면 그는 제 스스로 자기에게 선이 남아 있는 게 없다는 것, 주님으로부터 받아야 함을 인정함으로 원상 회복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사람이 모르고 거룩한 것을 먹을 경우란 누가 몰라 가지고 또는 부주의해서 거룩한 선을 모독하는 경우를; 거룩한 음식의 오 분의 일을 더 보탠다란 제 스스로는 남아 있을 선이 없음을 인정함으로 원상 복귀해야만 함을; 성직자에게 거룩한 음식을 줌이란 그가 주님으로부터 선을 받음을 뜻한다. (9156, 10042 II, 2187, 2776, 9946, 10227, 2776)

15절. 그리고 그들은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주님에게 바친 거룩한 것들을 모독하지 말라.

영적 의미

선 가운데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자기 속의 선이 모두 주님의 것인데 자기 것이라고 우겨 그 선을 모독해서는 안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께 바친 거룩한 것들을 모독하지 말라란 선 가운데 있는 사람은 누구나 주님께 모두 되돌려야 할 것들을 자기 공적인냥 치부하여 모독해서는 안 됨을 뜻한다. (8882, 2776, 9946)

16절. 그들이 자기들의 거룩한 것들을 먹을 때, 죄가 있음을 가져오는 불법을 그들로 하여금 낳게 하는 원인이 된다. 나는 그들을 정화하는 주이다.

영적 의미

그렇게 행하면 그는 책임져야 할 악한 상태에 자신을 가져다 놓게 된다. 그러면 그가 선을 받는데 손상을 입는다. 그러므로 진실로 인정해야 하는 것은 자신을 거룩하게 하는 모든 선은 주님으로부터 이다는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들로 해서 죄를 가져오는 불법을 낳게 한다는 것은 그렇게 행함으로 책임져야 하는 악한 상태에 자신이 있게 한다는 것을; 그들이 거룩한 음식을 먹을 경우란 위 경우에 선이 손상을 입음을; “나는 그들을 정화하는 주이다”란 인간을 거룩하게 하는 모든 선은 주님으로부터임을 진정으로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을 뜻한다. (9937, 2187, 2776, 2001, 8042)

17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더 나아가 지각을 주시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주님께서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말씀하심이란 유입을; 모세란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말하심이란 지각을 뜻한다. (2001, 2951, 1791, 1822)

18절. 아론에게, 그리고 그의 아들들에게,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들에게 이야기하라,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가문으로부터 이든, 이스라엘에 있는 낯선 자 이든 누구든지, 자기 봉헌물을 바칠 경우, 그것이 자기들의 서원들로부터의 어떤 것 이든지, 또는 자발적인 바침 이든지, 이것을 그들이 태워 바침으로 주님께 바칠 경우,

영적 의미

천적, 영적, 자연적 선 가운데 있는 이들, 그가 내적, 외적 교회 어디에 속해 있든 모든 이 각자가 자유 가운데 주님을 예배하되 그 목적이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 은택의 느낌을 가져서, 주님께 전적으로 자신을 헌신하고 싶은 바램을 내향으로 가지고 있다면,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과 그의 아들,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이야기하심이란 천적, 영적, 자연적 선 가운데 있는 이들에 대한 가르침 임을; 이스라엘 가문에 속한 사람과 그들에게 붙어 사는 낯선 자란 내적 교회와 외적 교회에 속한 이들을; 봉헌물을 바침이란 주님을 예배함을; 마음에 우러나서 드리거나 서약을 위해서란 은택에 감사해서든지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이든지 자유로움으로부터 예배함을; 태워 바침으로 드림이란 주님께 완전히 헌신함을 뜻한다. (9946, 4286, 3654, 7908, 923, 3880, 10053)

19절. 너희는 받아지도록 소들(beeves)이나 양들이나 염소들로부터 흠이 없는 수컷을 바쳐라.

영적 의미

그의 예배를 주님이 받으실 수 있게 하려면 이기적이거나 세상적 동기가 전혀 없어야 한다. 이는 자연적 선의 수준 이든, 영적 선의 수준 이든, 신앙의 선 이든 모두 해당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흠 없는 수컷이란 진리를 수단으로 선으로부터 예배함, 그리고 이기적, 세상적 동기가 없이 예배함을, 소나 양이나 염소 가운데서란 자연적 선으로부터, 영적 선으로부터, 신앙의 선으로부터를; “그분이 받으신다”란 주님이 받을 수 있는 것을 뜻한다. (725, 7837, 2180, 2088, 4169, 9506)

20절. 그러나 흠이 있는 것은 무엇이든, 너희는 바치지 말라, 그것은 너를 위해 받아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따라서 그 예배가 이기심 또는 세상욕으로 오염되어 있다면 받으실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흠 있는 것을 바치지 말라, 그리고 그것은 받아지지 않음이란 예배가 이기심과 세상 욕으로 더러워진다면 받아질 수 없음을 뜻한다. (7837, 9506)

21절. 그리고 누구든지 서약을 성취하기 위해, 또는 자발적으로 바치고 싶어서 이든, 주님에게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을 바칠 경우, 그것은 소떼나 양떼로부터 이다. 그것이 받아지기 위해서는 온전해야 할 것이다. 거기에 흠이 없어야 한다.

영적 의미

그리고 그가 자유함에서 주님을 예배하여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의지와 이해함 양쪽에서 하모니를 이루거나, 또는 사랑과 신성한 섭리에의 복종이 자연적 애착 수준이나 영적 애착 수준에서 있어져 예배한다면 이 예배는 완전할 것이다. 그리고 이기적이거나 세상적 동기가 혼합되어서는 안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께 평화 제물을 바친다는 것은 자유로부터 예배함을; 서약을 성취하기 위해서든가 마음에 우러나서 바치든지란 의지와 이해함의 양 측면에서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조화를 이루도록, 또는 자연적 애착 측면과 영적 측면에 관한 신성한 섭리에 복종함으로부터 또는 사랑으로부터임을; 흠이 없음이란 이 예배는 완전해야 하는 것, 그리고 이기적이고 세상적 동기가 어떤 혼합도 없어야 함을 뜻한다. (10097, 3880, 5913, 6126, 7837, 9506)

22절. 눈먼 것, 부러진 것, 또는 절뚝거리는 것, 또는 혹(wen)달린 것, 또는 비듬투성이(scurvy), 또는 딱지(scabbed) 있는 것, 이런 것들을 너희는 주님에게 바치지 말 것, 그것들을 주님에게 제단 위에서 불로 바치지 말라.

영적 의미

주님을 예배함은 무지로부터, 이해함이나 의지 속의 불완전한 애착으로부터, 또는 감각적, 세상적, 이기적인 결함들로 부패된 자연적 애착으로부터 있어져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이런 것들이 주님께 봉헌될 수 없는 인간을 섬기는데 만 소용이 닿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눈먼 것이나 뼈가 부러진 것, 절뚝거리는 것이나 혹 달린 것, 비듬투성이, 딱지 있는 것이란 의지 속의 불완전한 애착으로부터, 세상적, 이기적, 감각적인 것으로 부패된 자연적 애착으로부터의 예배를; 이것들을 주님께 바치지 못하고 주님께 바치려고 제단에서 태워 바치지도 못한다란 이런 애착들은 주님께 전적으로 봉헌되어질 수 없고, 인간을 섬기는데 만 바칠 수 있을 뿐임을 뜻한다. (2383, 9163, 210, 4302, 7524, 제 21장 18-20절, 923, 10053, 10055)

23절. 너무 길거나 너무 짧은 몸 부위를 가진 수소나 어린 양은 너희 자발적 바침을 위해서는 바쳐도 좋다. 그러나 서약을 위해서는 그것은 받아지지 않는다.

영적 의미

그러나 비록 불완전하다 해도 순진에 바탕을 둔 외적, 또는 내적 애착은 자유로이 예배될 때 주님께 바칠 수 있다. 그러나 의지와 이해함 모두를 수단으로 확증되었다면 위의 예배는 받아질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수소나 어린 양 가운데 한 다리는 길고 한 다리는 오그라진 것을 마음에 우러나 바치는 제물로 삼을 수 있다란 순진에 바탕을 둔 외적 또는 내적 애착들은 비록 불완전해도 그의 예배 드림이 마음에 우러난 경우라면 주님께 바칠 수도 있다는 것을; 서약을 위해서는 위의 짐승을 바칠 수 없다란 불완전함이 이해함과 의지 모두에서 확증되어 있다면 위의 예배는 받아질 수 없음을 뜻한다. (10021, 10132, 10109, 581, 583, 673-3, 21장 18절, 10097, 3880, 9506)

24절. 불알이 타박상을 입은 것, 으스러진 것, 또는 깨진 것, 또는 잘라진 것의 경우, 너희는 주님께 바치지 못한다. (고로) 너희는 너희 토지에서 (이것을) 행치 말라.

영적 의미

사랑과 지혜, 선함과 진리, 선행과 신앙, 또는 애착과 총명의 천국적 결혼을 위반함을 통해 내적, 외적으로 거룩치 못하다거나 불순해 있는 애착은 내적이든 외적이든 주님을 예배함에 봉헌될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불알이 타박상을 입은 것, 으스러진 것, 깨진 것, 잘라진 짐승이란 사랑과 지혜, 선함과 진리, 선행과 신앙, 또는 애착과 총명이라는 천국 결혼을 위반하여 내적, 외적으로 불순하여 거룩치 않은 것을; 너희 땅에서 그런 것을 바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란 위의 애착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주님을 예배하는데 봉헌될 수 없다는 뜻이다. (10303, 431, 2173, 5053, 5060, 9163, 9056, 2799-23, 923, 683)

25절. 낯선 자의 손으로부터 이런 것들 중의 어떤 것을 너희는 너희 하느님의 빵으로 바치지 말라. 그 이유는 그들의 부패함이 그것 안에 있기 때문, 그것들에 흠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너희를 위하여 받아지지 않을 것이다.

영적 의미

어떤 종류이든 자연적일 뿐인 사랑의 힘으로 주님의 진정한 예배를 증진시키려 들지 말라. 그것들은 느낌과 생각에서 불순하기 때문이요 주님과 결합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위의 불구나 병신을 낯선 자의 손에서 받아 너희 하느님의 빵으로 바치지 말라란 주님을 진정으로 예배함을 증진시키는데 어떤 종류의 자연적 사랑 만에서 나오는 힘을 사용하지 말라를; 부패함이 그들 안에, 흠이 그들 안에 있어 열납되지 않는다란 그것들을 주님께 드릴 수 없고 결합되게 할 수도 없다는 뜻이다. (4544, 878, 2165, 923, 10420, 7837, 6832, 9506)

26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지각을 주시는 신성한 진리로 주님께서 더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여호와)란 사랑 측면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은 유입을; 모세는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말하심은 지각을 말한다. (2001, 2951, 7010, 1791, 1822)

27절. 수소, 또는 양, 또는 염소가 산출될 때, 그 다음 그것은 칠 일 동안 어미 아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팔 일째로부터 그리고 그 이후 그것은 주님에게 불로 만드는 제물의 봉헌물로 받아질 것이다.

영적 의미

시초가 되는 자연적 애착, 영적 애착, 또는 진리의 애착들은 교회 안에서 선을 원리로 작동됨을 통하여 깨끗해져야 한다. 그러면 그 뒤에 오는 새 상태에서 순수한 영적 예배로 주님을 섬기는 가운데 바쳐지게 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수소나 양이나 염소가 산출됨이란 초기에 해당되는 자연적 애착 또는 영적 애착 또는 진리의 애착을; 제 어미 품에 칠 일 동안 있음이란 교회 안에서 선을 원리로 작동되어 깨끗해지는 것을; 팔 일 째 되는 날로부터 주님께 태워 바치면 받아진다란 뒤이어 오는 새로운 상태에서 순수하고 영적인 예배로 주님을 섬기는데 바쳐짐을 뜻한다. (2180, 2088, 4169, 264, 창세기 1장, 716, 289, 290, 2044, 923, 10055)

28절. 그리고 그것이 암소나 암양이든지 너희는 그것과 그것의 새끼를 같은 날에 죽이지 말라.

영적 의미

자연적 인간 또는 영적 인간 안에 있는 선은 이전의 선과 이후의 선이 뒤섞이게 해서는 안 된다. 새 영적 삶의 상태가 이전의 상태를 계승해가기만 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같은 날에 암소나 암양(ewe)을 새끼와 함께 죽이지 말라란 자연적 인간 안에 선이 있든, 영적 인간 안에 선이 있든 전자의 선이 후자의 선과 혼합되어서는 안 됨을, 오직 영적 삶의 상태는 이전 상태를 계승해야만 함을 뜻한다. (2180, 2088, 10024, 487, 2866)

29절. 그리고 너희가 주님에게 감사함의 희생제물을 바칠 때, 너희는 받으실 수 있는 것을 바쳐야 한다.

영적 의미

은택의 영으로부터 주님을 자유로이 예배하면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의 결합이 있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감사함의 희생제물을 바치되 그분이 받으실 수 있는 것을 바치라란 은택의 고마움으로 마음에 우러나 주님을 예배하는 가운데 내적 인간과 외적 인간의 결합이 있을 것임을 말한다. (3880, 9506, 10042 II, 제 1장 3,4절)

30절. 같은 날에 그것은 먹어질 것이다. 너희는 아침까지 그것의 어떤 것도 남겨두지 말라. 나는 주이다

영적 의미

그 결합에서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음은 준비되는 상태 안에만 있게 되는 바, 어떤 이기적인 동기, 세상적 동기가 그것을 썩게 하지 말라. 그 이유는 순수한 애착들을 주님의 것으로 돌려야 하는데 그것들은 주님으로부터 근원 되었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같은 날 먹는다란 선을 자기 것 삼음은 위 준비하는 상태에만 있을 수 있음을; 아침까지 남겨두지 못함이란 이기적 동기는 자기 것 삼은 선을 부패시킬 것임을; “나는 주”란 순수한 애착만이 주님께 돌려 드릴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그분으로부터 왔기 때문을 뜻한다. (2187, 487, 10114-7, 7860, 8480-3, 2001)

31절. 그러므로 너희는 내 명령들을 지켜라, 그리고 그것들을 행하라. 나는 주이다.

영적 의미

참으로 진정한 예배는 주님의 도움을 수단으로 신성한 계명들을 내적, 외적으로 순종함에서 있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의 명령을 지켜 행함이란 참으로 진정한 예배는 주님의 계명을 내적, 외적으로 순종함으로 있게 됨을, “나는 주”란 주님의 도우심으로 라는 뜻이다. (3382, 5755, 2001)

32절. 그리고 너희는 내 거룩한 이름을 모독하지 말라. 그러나 나는 이스라엘의 자손들 사이에서 거룩하다고 존대를 받아야 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주이다.

영적 의미

주님으로부터 오는 신성한 진리를 자기 것으로 돌리지 말라. 그럴 경우 모독이 있게 된다. 따라서 진정한 영적 인간은 내향으로, 외향으로도 거룩해야만 한다. 모든 거룩함은 주님으로부터 내적 인간을 통해 존재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내 거룩한 이름을 모독하지 말라”란 주님에게서 오는 신성한 진리를 자아의 것으로 삼지 말라를; “나는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서 거룩하다고 존대를 받아야 할 것이다”란 진정한 영적 인간은 내향과 외향의 양쪽에서 거룩해져야만 함을; “너희를 거룩하게 한 이는 나다”란 모든 거룩함은 주님으로부터 내적 인간을 통하여 있게 된다는 뜻이다. (8882, 2001, 3654, 4286, 2001, 1557)

33절. 너희 하느님이 되기 위해 너를 이집트의 토지로부터 데려 왔다. 나는 주이다.

영적 의미

신성한 진리를 받고 이 진리로 시험과 싸워감을 통해서 각자 속에 있는 특이한 악에서 실제 구원해 주시는 구속의 역사를 통해 신성한 진리는 인간과 교통된다. 그리하여 주님이 신성한 사랑이심을 분명히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너희의 하느님이 되기 위해 이집트 땅에서 너희를 이끌어 냈다”란 거룩함이 인간에게 교통되는 것은 악으로부터 실지 구원되는 구속의 일을 통해서인데, 이는 각 사람의 세부 측면에서 신성한 진리를 받고 이를 통해 시험과의 싸움에서 있어짐을; “나는 주”란 위와 같은 과정으로 해서 자신에게 드러나 명백해진 신성한 사랑이신 주님을 인정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8866, 2001)

22장의 종합적 고찰

본 장을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는데 필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치는 거룩한 제물”이 영적으로 의미하는 것을 명백하게 알아두는 것이다. 이는 주님을 예배함, 그리고 이 예배의 성직 임무 수행을 뜻한다고 앞에서 살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족에 의해 주님께 바쳐지는 것은 예배드리는 사람이 주님을 섬기는데 헌신하는 선한 애착, 그리고 이 애착이 주님으로부터 임을 인정하는 것을 실지로 표현한다. 그 이유가 모든 진정한 예배는 이런 헌신과 인정함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그 다음 이런 예배를 집전하는 것은 진정으로 예배하는 외적 형체에 해당된다. 따라서 이런 선한 애착들이 수행하려 뜻하는 선용의 수행 속에서, 성소에서 주님을 예배하고 인정하는 가운데에서도 모두에 해당된다. 그런고로 성직자가 거룩한 제물을 함부로 다루면 안 된다는 말씀이 지닌 의미는 엄밀히 보면, 선용을 수행할 때 이든 공적 예배에 참석할 때 이든 이기적 동기 그 자체가 표현되는 것은 어떤 것이든 매우 조심스럽게 분리되고 거절되어야 한다는 것, 이는 성직 임무 수행에만 국한 되는 게 아니라 교인 전체에 해당된다. 따라서 이 가르침은 아주 무게 있는 가르침이다. 따라서 아주 심각하게 생각해 두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수행하는 선용이나 예배에 이기적 동기를 혼합시킬 때 우리는 “불결해지게” 된다. 우리 모두 경험에서 알고 있는 바, 우리는 걸핏하면 이기적 생각이 말함이나 행동 속에 있어 곤경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 더 경험으로 인정하는 바, 우리가 이기적인 생각과 느낌을 탐익하여 허용할 때 우리는 진실로 신성한 현존으로부터 분리됨 또는 “추방된다”는 것이다.
예배 중인 사람이 그 예배로부터 거룩한 음식을 먹는 것, 즉 선과 진리를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을 방해하는 불순함에 관해 몇 가지 사항의 언급이 주어지고 있다. 나병자란 예배를 외적으로 이기적 용도에 응용하여 진리를 모독함을, 유출(고름)은 악한 애착에서 흘러나오는 악한 생각인데 본문과 연결해 말할 경우 선으로부터의 예배를 내적으로 모독함을, 죽은 시체에 닿아 불결함은 영적 생명이 결여된 애착, 사랑이 없음을, 그 사람으로부터 정액이 분출됨은 진리가 선에서 분리된 것을, 기는 짐승이란 단지 감각적이기만 한 것을, 감각적일 뿐인 것은 그 자체 죽어 있는 것인 바, 선과 진리를 거절하는 자연적일 뿐인 애착을, 찢겨 죽은 것이란 무의식적으로 악과 혼합되는 것을 각기 표현한다. 이상의 여러 가지 것들은 영적 인간이 선과 진리라는 주님의 생명을 받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으리라 본다. 우리는 위와 같은 것들에 의식적으로 오염되면서 동시에 주님을 예배할 수 없고 선을 자기 것이 되게 할 수 없다. 만일 이것들이 무의식적으로 행해졌다면 물로 씻는 것 즉 진솔한 회개를 통해 깨끗해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여기서 두 가지 사항은 조심스럽게 주목해 보아야 하리라 본다. 회개 후라 해도 저녁 때까지, 즉 그의 심판이 거행되어 가라지가 밀에서 분리되는 때까지 그 회개자는 전체적으로는 깨끗하지 않다. 이런 이유는 한꺼번에 깨끗해지는 것 즉 잘못들이나 악을 한꺼번에 제거하려 들면 선 자체까지 피해를 입거나 파괴까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태 13:29). 둘째로, 거듭나는 동안, 그리고 마지막으로 심판에서 태양으로 명시되는 이기적 사랑의 거절이 끝나게 된다. 사실 해가 진다는 것은 주님에 대한 사랑이 하강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때로 이는 이기적 사랑이 끝나는 것도 의미한다. 이런 질문이 즉각 있을 수 있다. “인간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 또는 자기에게 타당한 삶으로부터 행동하는 것이 어떻게 중단될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응답해야만 하는 것은, 위와 같은 중단은 필수적인 것이 아니고 유해하다는 것인데 그 이유가 교회도 인간 자아에 생명을 불어넣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를 위해 주님의 사랑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 스스로부터인 듯 행동해야 한다. 그러나 자기가 수행하는 온갖 것이 이기적이 되는 것을 중단함으로서만 이 가치 부여도 유효하다. 그러므로 자아를 타당하게 사랑함은 모든 악의 원인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뒤집히면 이기심이라 불리게 된다. 이런 문제에 관한 진리는 “그들은 내가 지키라고 한 것을 그대로 지켜야 죄벌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어기면 죽으리라”는 구절이 글자 의미에서, 영적 의미에서도 매우 강하게 보여 준다. 따라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을 타당하게 사용하는지에 우리에게 책임이 있음을 스스로 계속 느끼고 있어야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리라 생각된다.
위 구절에 이어지는 10절의 영적 의미들을 반복해 읽게 되면 상응으로부터 있게 되는 가르침들을 저절로 알 수 있으리라 본다. 교회 밖의 사람도 거듭날 수 있고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더 진보할 수 없고, 그의 자연적 선이 영적 선이 될 수도 없다. 그리고 교회 안에 있다 해도 가르침을 받고만 있는 수준에 머무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두 부류의 사람 모두 필수 조항인 인간과 주님과의 협동 작전이라 말할 수 있는 선에 대한 새 의지가 적절히 실시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11절의 경우는 10절과 매우 다르다. 이에 관한 진리를 보는 데는 실패할 수 없으리라. 그 다음 구절의 경우는 심각한 품성에 해당된다. 그 이유는 확증된 모독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거듭나는 삶을 어느 정도 진보시킨 교인의 경우 이 구절 같은 모독을 범하지 않기 위해 이 구절을 그대로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선 또는 진리에 관한 지식이 아직 없는데도 선에 관한 애착 속에 있는 사람의 경우는 위와 다른데 그 이유는 명백하다. 우리가 흔히 범하는 잘못들이 주님께서 우리 속에 아껴 두신 것들을 통하는 선의 상태로부터 주님을 인정하여 어떻게 치료되는가는 쉽게 이해해 볼 수 있다. 이에 관해 주어진 예가 이 문단의 마지막(16절)에 묘사되어 있다. 여하튼 어떤 때에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거룩한 양식을 자기 것으로 삼을까? 우리는 매일 생활 속에서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그야말로 섭리적으로 천국적 영향을 받는 때가 자주 있다. 한 예만 들어보자. 우리가 어떤 책을 단지 흥미만을 위해 읽을 때가 있다. 그렇다해도 그 안에 있는 뭔가가 우리로 선한 느낌과 생각들을 가지도록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느낌들은 우리 속에 남아 있도록 저장되는데 이후 우리의 상태에 적절한 시기를 갖게 되면 이런 느낌과 생각들은 거듭나는 자연적 인간 안에 이식되어진다. 게다가 일상 생활 속에서 꾸준히 노력해야 할 때, 또는 심각한 영적 싸움이 있게 될 때 위와 같이 저장된 느낌과 생각들을 회상함으로 더 강한 힘을 얻는데 이는 대다수의 사람의 체험에 다분히 들어 있을 것이라 본다.
다음 시리즈를 조심스럽게 공부해 보면 두 개의 일반적이고 실용적인 진리들이 더욱 확증될 기회를 가지리라 본다. 첫째로 주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려면 예배는 선으로부터 또는 애착이 있어야 하되 반드시 진리를 수단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수컷을 바쳐야 한다로 의미되고 있다. 둘째로 예배는 악과 거짓에 오염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흠이 없어야 함으로 의미되고 있다. 더 나아가 위 일반 원칙은 주님께 내적 인간을 충분히 봉헌해야 한다는 것도 언급하고 있다. 이것이 태워 바침으로 나타내고 있고 의지와 이해함에 관한 외적 인간을 바침은 서약과 마음에서 우러난 제물로 명시되고 있다. 이제 흠이 있는 것, 또는 악과 거짓에 속하는 특별한 종류들이 열거되는데 이를 살펴보자. 첫 세 가지는 마음의 영적 수준과 관계되고 나머지 세 가지는 자연적 수준과 관계된다. 그 이유는 눈이 멀고, 부러진 것, 불구인 것은 혹이나 비듬투성이, 딱지 있는 것에 비해 더 심한 몸의 고통을 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부류 모두 나쁜 것은 마찬가지지만 전자는 후자보다 더 심한 영적 결함을 의미한다. 이 정도의 상응은 말씀의 다른 부분에서도 언급이 많으므로 누구나 쉽게 지각하리라 본다. 확실하게 무지한 사람, 눈이 먼 짐승 같고, 애착이 불완전한 사람은 부러진 짐승 같고, 눈이 멀지도 않고 부러지지도 않았는데도 영적 삶을 진보시키지 못하는 사람, 자기 행동에 자기의 지식과 애착을 담아 표현 못하는 사람은 불구인 짐승 같은 바 주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드릴 수 없다. 그리고 내적으로 계발되어 있고 마음도 호의적인데 활력이 없는 채, 그의 자연적 애착만을 허용할 때 혹 달린 상태(score, wen)에 비유되고, 그가 감각적 능력만을 발휘할 때의 경우는 비듬(옴)증세(scurvy)에, 그가 육적 기쁨만을 허용할 때의 경우는 딱지(종기)(scab) 증세와 비슷하다.
이에 이어지는 구절 역시 방관하지 않아야 할 품질들이다. 심정으로부터 진행되고 마음에 우러나 드리는 결함 있는 예배가 외적 또는 내적 순진을 동반하는 경우 소나 양으로 명시되는데 이 예배는 마치 완전한 예배인 듯 취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예배가 이해함에 의해 확증될 경우는 주님이 받을 수 없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서약(vow), 물론 좋은 의미에서는 의지로부터 이해함이 결정하는 것, 또는 주님이 설비해 주신 그대로를 수용하는데 기뻐함을 뜻한다. 그러나 이 본문 이 문단의 경우 불완전한 예배와 연결을 이루고 있는 바, 예배가 이해함을 수단으로 확증됨을 의미한다. 진정한 고백은 의지와 관계되고 본문 같은 경우는 불완전한 예배라는 계산적인 서약인 바, 이해함에 관계된다. 24, 25절은 천국 결혼에 관련되지만 여기서는 흠 있는 예배와 관련되어 예증해 주고 있다.
나머지 문단을 글자대로 읽으면서 생각해 보라. 그러면 왜 어떤 동물이 태어난 후 정확히 칠일 간 어미 품에 두어야 하는지, 왜 팔 일째 되어야 바칠 수 있는지, 왜 감사 제물은 그 날로 다 먹고 다음 날까지 남겨두지 못하는지, 왜 신성한 존재는 이집트의 속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에 마땅히 존대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쉽게 머리에 착상되지 않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상응의 도움을 수단으로, 주님께서 해주시는 계발을 힘입어 내적 의미 안으로 들어갈 때, 위와 같은 주님의 세부 지시 사항이 왜 그러한지 이해할 수 있다. 말씀은 표현적인 교회를 계승하게 될 미래 세대의 영적 교회에 도움을 주시고자 쓰여져 있다. 그 이유는 칠 일간 이란 거듭나는 거룩한 상태를, 팔 일 째란 거듭남을 이어받는 새로운 상태를 명시하기 때문이다. 어미와 그 새끼를 같은 날 죽이지 말라란 인간 삶의 계속되는 상태들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감사 제물은 바친 그 날로 먹고 다음 날까지 남겨두지 말라란 은택으로 우러나서 드리는 예배는 이기적 사랑으로 오염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주님의 계명을 지키라는 것, 그분의 이름을 모독하지 말고 오로지 거룩히 여겨야 할 것, 이집트의 속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이다란 거룩한 상태가 주님을 순종함에 포함되어야 하는 바, 그 이유는 단지 자연적일 뿐인 삶의 속박에서 해방되게 해주시고 사랑으로 주님과 영원히 결합되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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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21장 해석

레위기 21장

영적 의미 요약

* 선 가운데 있는 이들, 이로부터 진리 가운데 있는 이들이 금해야 할 여러 가지, 1-9절.
* 영화하시는 가운데 있는 주님, 천적 인간에 관한 위와 비슷한 금지조항과 지시들, 10-15절.
* 선 가운데 있는 이들, 이로부터 진리 가운데 있는 이들의 거듭나는 삶이 충분히 발달하는데 따른 장애물에 관하여, 16-23절.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하셨다, 아론의 아들들, 성직자에게 이야기하라,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라, 자기 백성 사이에 죽은 자로해서 자신을 더럽히는 자가 없게 하라.

영적 의미

주님께서 지각을 주시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선 가운데 있고 그로부터 진리 가운데 있는 영적 교회 속의 사람들이 영적 생명이 없는 거짓으로 오염되지 않도록 밝히 알게 하시는 사항이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하심은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신성한 선으로부터의 계시임을; 말함은 유입과 지각, 그리고 계시(밝히 알게 함)를; 아론의 아들 성직자들에게 이야기하라란 선 가운데 있고 그로부터 진리 가운데 있는 영적 교회 속의 사람이 가지는 지각을; 성직자는 자기 백성 사이에 죽은 자로 해서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란 위와 같은 품성을 지닌 사람은 영적 생명이 없는 거짓으로 오염되어서는 안 됨을 말한다. (2001, 7010, 5743, 10130, 3813, 5407)

2절. 그의 친척은 예외이다, 즉 자기와 가까운 친척, 자기 어머니, 아버지, 아들, 딸, 형제.

영적 의미

천사들, 즉 천적 진리와 천적 선에 있는 이들, 또는 영적 진리와 그 진리로부터의 애착에 있는 이들, 또는 영적 선에 있는 이들 조차도 피할 수 없는 것은 제외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의 친척은 예외이다란 천사들에게 조차 피할 수 없는 것은 제외한다는 뜻인데, 그 이유는 가까운 친척이란 이 구절에서 유전적인 악과 거짓을 말하고 동시에 비록 인간이 거듭났다해도 그에게 남아 있는 실제적인 악과 거짓을 뜻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진리 측면에서의 천적 인간을; 아버지는 선 측면에서의 천적 인간을 말하나 반대 의미로는 거짓과 악을 뜻한다. 아들은 진리 측면에서의 영적 인간을; 딸은 애착 측면 또는 선행의 선 측면에서의 영적 인간을 말하나 반대 의미로는 거짓과 악을 뜻한다. 형제는 영적 선을 의미하나 본문의 경우 자연적 수준에 있는 영적 선 또는 교회의 외적 측면 또는 최말단 천국에서의 선을 뜻하지만 반대 의미로 본문이 사용하는 바, 악을 뜻한다. (3703-2, 3703-20, 568, 9946, 9950, 5686, 10490)

3절. 그리고 자기와 가깝고, 남편이 없고, 처녀인 그의 누이 때문이라면 자신을 더럽힐 수 있다.

영적 의미

또는 순수하게 이해함 안에 영적 진리를 지닌 이들이라 해도 아직 선과 결합이 안되고 있을 경우 주님 보시기에는 순수하지 못하다. 이것을 영적 인간은 인정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누이는 자연적 인간의 이해함에 있는 영적 진리를 뜻하나 반대 의미로는 거짓을; 처녀는 순수한 것을; 자기에게 가까운 자란 가까운 친척과 동일한 뜻을; 남편이 없음이란 선과 결합 하지 않은 진리를;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란 악과 거짓을 함유한 것이 인간인 바, 천국도 주님 보시기에 깨끗하지는 않다는 것을 영적 인간은 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3160, 3703-22, 3081, 3703-20, 2728, 10130)

4절. 그는 백성들 사이에서 우두머리인즉 자신이 모독되도록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

영적 의미

그러나 선 가운데 있는 이들이라 해도 선은 모든 진리의 본체인 바, 영적 생명이 없는 거짓으로 자신이 오염되게 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이것이 모독이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란 어찌됐든 선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부주의해서 라든지 심사숙고해서 든지 악과 거짓으로 오염되어서는 안 됨을, 백성의 우두머리란 선이 진리의 본체인 바, 선은 진리 위에 있다는 것을,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란 이는 분명히 모독임을 뜻한다. (10130, 2148, 9667, 1259, 571, 582)

5절. 그들은 자기들의 머리 위에서 대머리를 만들지 말라, 그들은 자기들의 수염의 모퉁이를 면도하지 말 것과 자기들 살에 어떤 베임도 만들지 말라.

영적 의미

선 가운데 있는 이들은 자연적 인간 내면 또는 외면에 진리가 없는 채로 있어서는 안 되고, 그의 자연적인 선은 그릇된 관념의 원인인 외관을 중시함과 각종 오류에서 파생되는 거짓들로 해서 손상을 입게 해서는 안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대머리를 만들거나 수염의 모퉁이(구레나룻)을 만들지 말라란 내면 이든 외면 이든 자연적 인간에 진리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몸에 칼자국을 내지 말라란 그릇된 관념의 원인인 오류와 외관으로부터 나오는 거짓으로 그의 자연적 선이 손상을 입어서는 안 됨을 뜻한다. (5247-3, 9056, 2799-23)

6절. 그들은 자기들의 하느님에게 거룩히 있으라, 그리고 자기들의 하느님의 이름을 모독하지 말라. 그 이유는 불로 만든 주님에 대한 제물, 자기들 하느님의 빵을 그들은 바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거룩하게 있으라.

영적 의미

그러므로 선 가운데 있는 이들은 진리 가운데에도 온전히 있어야 한다. 신성한 인간을 부정함으로 그 진리를 모독하지 말라. 그 이유가 그들은 순수한 사랑으로 주님을 예배해야 하고 모든 선은 신성한 진리이신 그분으로부터 존재함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거룩한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하느님에게 거룩해 있음이란 선 가운데 있는 이들은 진리 가운데에도 역시 온전하게 있어야 함을; 하느님의 이름을 모독하지 말라란 신성한 인간을 부정함으로 진리를 모독 말라를; 불로 살라 주님께 바침이란 순수한 사랑으로 주님을 예배함을; 하느님의 빵을 그들이 바친다란 모든 선은 그분으로부터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있게 됨을 인정함을; 그러므로 거룩하리란 본문의 경우 선과 진리를 결합함을 통해 거룩해야 함을 뜻한다. (2001, 6887, 8882, 10055, 276, 9993, 2001, 9993, 2001, 2190)

7절. 그들은 창녀인 여인, 또는 모독된 여인을 데려오지 말라. 그들은 남편으로부터 포기당한 여인을 데려오지 말라. 그는 자기 하느님에게 거룩하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그런고로 선 가운데 있는 사람은 왜곡된 진리로 또는 모독하는 왜곡된 진리로 또는 선행과 분리된 신앙과 결합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 이유는 선과 진리만이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창녀나 모독된 여인(몸을 더럽힌 여자)를 얻지 말라란 왜곡된 진리, 그것이 확증되었든 아직 확증 안 되었든 자신에게 결합시키는 것은 선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불법임을; 남편에게 소박맞은 여자를 취하지 말라란 선행에서 분리된 신앙을 자신과 결합되게 말라는 것을; 하느님께 거룩해 있음이란 선과 진리만이 서로 일치함을 뜻한다. (6348, 4844-16, 2190)

8절. 그러므로 너는 그를 신성시해야 한다. 그 이유는 그가 너희의 하느님의 빵을 바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너를 정화하는 나 주가 거룩하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모든 이는 선과 진리가 결합되게 해야 하고 자신의 선이 진리 안에 계신 주님으로부터 있게 되었다는 것, 주님께서 자신으로 하여금 진리를 수단으로 선 가운데 있음이 확증되도록 힘을 주시어 가능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를 신성시함이란 선 가운데 있는 모든 이는 진리와 결합해야 함을; 하느님의 빵을 바침이란 선은 진리 안에 계신 주님으로부터 임을 인정함을; 그는 너희에게 거룩하다란 인간은 이를 행할 수 있다는 것, 즉 주님으로부터 선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을; “너희를 정화하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다”란 그는 진리를 수단으로 선 안에서 자신을 확증시킬 힘을 주님으로부터 가진다를 뜻한다. (276, 999-3, 9946, 2001, 2190, 9680)

9절. 그리고 어떤 성직자의 딸, 만일 그녀가 창녀짓을 하여 자신을 모독한다면,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를 모독하고 있다. 그녀는 불로 태워라.

영적 의미

선을 향한 애착, 만일 그것이 왜곡된 진리와 결합한다면 모독되어진다. 그로 인해 선 자체가 모독된다. 그러면 이기적 사랑으로 선에 관한 측면의 황폐함이 반드시 뒤따른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의 딸이란 선에 관한 애착을; 창녀로 놀아남이란 진리의 왜곡을; 이것이 모독인 바, 그 이유는 선에 관한 애착이 거짓으로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불로 태워라란 이기적 사랑을 통해 모든 선이 황폐해짐을 말한다. (6775, 6348, 4601-2, 934)

10절. 그의 형제들 사이에 대 성직자인 자는 자기 머리에 기름이 부어졌고, 성직 수임을 받아 옷들을 입었는바, 머리를 풀거나 자기 옷들을 찢지 못한다.

영적 의미

또한 주님은 신성한 인간 측면에서 볼 때 신성한 진리가 신성한 선에 하나되어 계신 것인 바, 이로부터 천적 인간 안에서도 신성한 선은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명백해진다. 그러므로 진리가 분산됨으로 선이 분산되지 못하는데 이는 내적 이든 외적 이든 모두 해당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형제 사이에서 대 성직자란 주님은 그분의 인간 부분에서 신성한 진리와 신성한 선이 하나되어 있음을, 이로부터 천적 인간 안에서 신성한 선은 그 선으로부터 진행되는 신성한 진리로 명백해진다는 것을; 자기 머리 위에 기름을 부었음이란 위 결합을; 성직 수임을 받아 옷들을 입었다는 것은 신성한 선은 신성한 진리 안에서 명백해짐을;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말라란 내적 으로든 외적 으로든 진리를 분산시켜 선까지 분산되게 말라를 뜻한다. (9946, 9806, 10010, 10011, 9999, 4247-3, 4763)

11절. 그는 어떤 죽은 몸에로 가지 못하고, 그의 아버지를 위해, 또는 자기 어머니를 위해 자신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

영적 의미

신성한 인간 측면의 주님은 인간 측면에 있는 유전적 악과 거짓으로 전혀 오염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천적 인간은 실제의 악과 거짓 속에 남겨진 것들로 해서 오염되지 않는다.

세부적 영적 의미

대 성직자는 어떤 죽은 몸에도 가지 못하고 자기 부모가 죽어도 가까이 가서 자신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란 신성한 인간 안에 계신 주님은 유전적인 악과 거짓으로 오염되지 않으며, 천적 인간은 그에게 남아있는 실제의 악과 거짓들로 해서 오염되지 않음을 뜻한다. (9946, 9806, 10130, 3813, 3703-20)

12절. 그는 성소를 떠나지 못한다, 자기 하느님의 성소를 모독해서도 안 된다. 그 이유는 자기 하느님의 기름부음의 기름의 왕관이 그 사람 위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주이다.

영적 의미

선 가운데 있는 사람은 거듭난 천적 인간 같이 되는데 있어서 중단은 없다. 그는 선을 진리에서 분리시킴으로 어떤 수준에 있는 선이라 해도 모독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삶의 투쟁에서 승리하였기 때문에, 그러므로 진리를 선과 결합시켰기 때문에, 그리하여 그 진리는 선을 완전히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소를 떠나거나 성소를 더럽히지 못한다란 선 안에 있는 사람은 거듭나는 천적 인간 같이 거듭남이 결코 중단되지 않는다. 그는 어떤 경우에서도, 아주 경미한 수준에서 일지라도 선에서 진리를 분리시킴으로 선을 모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하느님의 기름부음의 기름의 왕관이란 삶의 투쟁에서 승리함으로부터 선과 진리의 결합이 있음을, “나는 주”라 함은 위 진리는 선을 완전히 표현한다는 뜻이다. (4144, 3210, 8882, 9930, 9954, 2001)

13절. 그는 처녀 상태의 여인을 아내를 데려와라.

영적 의미

이러므로 그분의 인간을 신성이 되게 하신 주님은 모든 불순함 속에 있는 악을 제거함으로 그분의 교회와 영원히 결합된다. 그래서 거듭난 사람은 불순함 없이 선과 진리가 결합된 가운데 있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처녀만을 아내로 맞아라란 그분의 인간을 신성이 되게 하신 주님은 모든 불순함을 교회로부터 제거함으로 그분의 교회와 결합하게 됨을, 거듭나는 사람은 불순함 없이 선과 진리가 결합되어야 함을 뜻한다. (1468, 3081)

14절. 과부, 또는 이혼 당한 자, 또는 모독한 여인, 창녀, 이들을 데려오지 말라. 그러나 자기 자신의 백성으로부터의 처녀를 그는 아내로 데려와라.

영적 의미

거듭나는 사람이 진리 없는 선 가운데 또는 선이 없는 진리 가운데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구나 모독하는 왜곡된 진리가 자신과 결합되게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거듭나는 과정에서 모든 악에서 깨끗해져야 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과부란 진리 없는 선 또는 선이 없는 진리를; 모독한 여자도 선이 없는 진리를; 창녀란 왜곡된 진리를; 처녀란 모든 악에서 깨끗한 교회를; 아내란 선과 결합된 진리, 그러므로 천적인 결혼 상태임을 뜻한다. (9198, 4844-16, 3081, 1468)

15절. 그리고 그는 자기 백성 사이에서 자기 씨를 모독되게 하지 말라. 그 이유가 나는 그를 신성시 하는 주이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마지막으로 천적 인간은 진리를 모독 말아야 할 것이다. 이를 수단으로 낮은 수준에서도 교회가 증가되고 팽창된다. 그 이유는 그가 신성한 선으로부터 행동하기 때문이고 이를 수단으로 그는 순수하고 거룩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자기 백성 사이에서 자기 씨를 모독되게 하지 말라란 천적 인간은 진리를 모독해서는 안 되는데 이러므로 해서 그 교회는 낮은 수준에서까지 증가되고 팽창된다는 것을; “그를 신성시되게 하는 이는 나 주이다”란 천적 인간은 신성한 선으로부터 행동해야 한다는 것, 이를 수단으로 그는 순수해지고 거룩해짐을 뜻한다. (880, 1259, 2001, 8042)

16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더 나아가 지각을 주시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주님께서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여호와)이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speaking)이란 유입을; 모세란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말하심은 지각을 말한다. (2001, 2951, 7010, 1791, 1822)

17절. 아론에게 이야기하라, 말하기를, 자손대대로 네 씨로부터 있는 자가 흠을 가지고 있다면, 그가 자기 하느님의 빵을 바치려 접근하게 해서는 안 된다.

영적 의미

천적 인간 또는 선 가운데 있는 이들의 경우 그들이 거듭나는 모든 과정에서 진리를 수단으로 온전해지지 않을 경우 모든 선이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충분하게 인정할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은 선 가운데 있는 천적인 사람을; 이 사람에게 이야기하심이란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가르쳐 짐을; 아론의 후손이란 선으로부터의 진리 가운데 있는 이들을; 자손대대로란 거듭나는 모든 과정 동안을; 흠이 있음(몸이 온전하지 않음)이란 진리를 수단으로 아직 완전해지지 않았음을; 자기 하느님께 빵을 바치러 접근하지 못함이란 위와 같은 사람은 모든 선이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주님에게서 있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9946, 7304, 7010, 880, 1041, 7837, 10042 II, 2165, 2001, 5619)

18절. 흠을 가진 자는 누구이든 접근하지 못한다. 즉 소경, 절음발이, 또는 편평한 코를 가진 자, 또는 여분의 어떤 것을 가진 자.

영적 의미

선 또는 진리 측면에 어떤 결함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위와 같은 것을 인정하는데 방해받는다. 그 결함을 예를 들어 말한다면, 그가 자연적 인간 안에 있는 선 또는 진리에 무지할 경우, 그의 영적 성장이 훼방될 경우, 그의 지적 능력을 자연적 수준에서 자랑할 경우 등등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흠을 가진 자 누구든지 이란 선 이든 진리 이든 어떤 결함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를; 그는 접근하지 못한다란 위와 같은 진리를 인정하는데 그는 방해받게 됨을; 소경이란 진리에 무지한 사람을; 절음발이란 자연적 인간 안에 있는 선에 무지한 사람을; 편평한 코를 가진 자란 영적 성장이 훼방 놓여진 사람을; 여분의 어떤 것(너무 키가 큼, superfluous, too tall)이란 자기의 지적 능력을 자연적 수준에서 자랑하는 사람을 뜻한다. (7837, 제 17절, 2383, 210, 4302, 10109, 5658, 7984-3, 581, 583, 1673-3)

19절. 또는 망가진 발, 또는 망가진 손이 있는 자,

영적 의미

자기의 자연적 수준의 애착들이 거꾸로 된 상태인 사람, 영적 능력들이 심하게 훼손된 상태인 사람,

세부적 영적 의미

망가진 발이란 자연적 애착들이 거꾸로의 상태인 것을, 망가진 손이란 영적 힘이 훼손된 것을 뜻한다. (9163, 2162, 9163, 5328)

20절. 또는 곱추, 또는 난쟁이, 또는 자기 눈에 흠있는 자, 또는 괴혈병 있는 자, 또는 딱지투성이(scabbed)인 자, 또는 불알이 깨진 자.

영적 의미

영적 사항들을 승강 시키는데 힘이 약한 자, 진리를 삶에 응용하는데 결함이 있는 사람, 지성이 약한 사람, 악이나 거짓들로 해서 외향적으로 괴로움을 받고 있는 사람, 또는 진리를 선에 결합하는 능력에 상해를 받은 사람들,

세부적 영적 의미

곱추란 자신을 영적 수준으로 승강 시키는 힘이 약해진 것을 (눅. 13:11-13 참조); 난쟁이란 진리를 생활에 응용하는데 있어 흠이 있는 것을; 눈에 흠이 있는 것은 지성이 약한 것을; 딱지투성이(scabby, full of warts)이란 거짓들이나 악들로 해서 바깥쪽에서 괴로워하는 것을; 불알이 깨진 것은 진리가 선과 결합하는 힘이 상해를 입은 것을 뜻한다. (6952-1, 6952-6, 누가 13:11-13, 10550, 10303, 431, 7837, 2148, 7524, 10303, 431, 2173, 5053, 5060)

21절. 흠을 지닌 성직자, 아론의 씨로부터의 사람은 불로 만드는 주님의 제물을 바치러 가까이 오지 않을 것이다. 그는 흠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기 하느님의 빵을 바치려 가까이 오지 못한다.

영적 의미

선 가운데 있는 사람, 또는 내적인 선으로부터 진리 가운데 있는 사람, 그런데 외적으로는 결핍되어있다면 모든 선이 신성한 사랑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있게 됨을 충분히 인정할 수 없다. 그는 자기 결함 때문에 방해받는다. 이럴 경우 주님과 영원히 결합할 수는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 아론의 씨로부터의 사람이되…안 되는 자란 선 가운데 있지 않은 것 또는 내적 선의 진리 가운데 있지 않음을; 흠이 있음이란 외적으로 결핍된 것이 있음을; 주님께 불로 살라 바치는 제물을 드리러 가까이 나옴이란 모든 선은 신성한 사랑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임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을; “흠이 있는 사람”이란 자기 결함으로 방해받음을; 그는 하느님께 빵을 바치러 가까이 오지 못함이란 그는 위와 같이 인정을 수단으로 외적 측면에서 주님과 결합될 수 없음을 뜻한다. (9946, 7837, 10042 II, 10055, 7837, 10042 II, 2165)

22절. 그는 가장 거룩한 자기 하느님의 빵, 그리고 거룩한 자기 하느님의 빵 모두를 먹을 것이다.

영적 의미

참으로 그는 의지와 이해함 측면에서 내적으로 선을 자기 것이 되게 할 수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가장 거룩하거나 거룩한 하느님의 빵을 먹는다란 그는 의지와 이해함에서 내적으로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음을 뜻한다. (2187, 2165, 3210)

23절. 그는 베일 안으로, 제단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그는 내 성소를 모독하지 말 것이다. 그 이유가 나는 그들을 정화하는 주이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그러나 그는 외관에 속한 모든 것을 제거함으로 자신의 가장 깊은 선을 실감할 준비를 아직 갖추지 않고 있다. 자기 결함이 제거될 때까지 그는 주님을 진실로 예배할 수 없다. 그래서 만일 위선이 명백히 드러난다면 그는 그 선을 모독할 것이다. 그러나 신성한 선으로부터의 주님이 그의 장애물을 제거하실 것이다. 그 이유는 그분만이 인간을 최대 한도로 정화해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베일 안으로 가지 말라란 그가 가장 깊은 선을 실감하는데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음을; 베일은 외관(appearances)을; 흠이 있기 때문에 제단 가까이 오지 못함이란 그의 결함이 제거될 때까지 그는 주님을 진실로 예배할 수 없음을; “나의 성소를 모독하지 말라”란 만일 위 선이 그에게 명백해진다면 그는 그 선을 모독할 것임을; “나는 그들을 정화한다”란 신성한 선으로부터 주님은 이 장애물을 제거하실 것인데 그 이유는 그분만이 최대한도까지 인간을 정화해 주실 수 있기 때문임을 뜻한다. (9670, 2576, 4541, 7837, 3210, 9670, 2001, 9229)

24절. 모세는 이 말씀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일러주었다

영적 의미

이상 모든 것은 선 가운데 있는 사람, 천적, 영적 천국에 속한 사람 또는 최말단 천국들에 속한 사람들이 받아 적어야 할 신성한 진리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모세가 아론에게, 그의 아들들에게, 그리고 모든 이스라엘의 아들들에게 이야기를 함이란 천적 선 안에 있는 자에게, 영적 선 안에 있는 자에게, 최말단 천국들에 있는 자에게 신성한 진리를 받아적게 하심이다. (AC7010, 2951, 9946, 4286)

21장의 종합적 고찰

이 장의 영적 의미는 큰 흥미를 주고 있다. 그 이유는 말씀의 여러 부분들에 있는 가르침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선의 상태를 실감한 사람은 선 쪽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상태로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 더욱이 자연적인 것에 깔려 있는 악이나 잘못들로 인한 불완전한 상태에는 더욱 되돌아가지 말아야 한다 라든가, 이런 사항을 인간의 완전한 상태를 묘사하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완전한 상태에서는 인간이 되돌아 갈 수도 없을 것인데 그 이유는 그가 되돌아가는 것을 더 이상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한 가지 큰 이유는 인간이 선 가운데 건설될 때 그는 더 이상 시험에 고통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서술을 읽을 수 있다. “지옥과의 전투와 승리라는 점은 이러하다. 한 때 그것을 정복한 사람은 계속적으로 그렇게 해간다. 그 이유는 정복을 수단으로 그는 지옥을 누룰 힘을 획득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신앙 속에 있는 진리, 사랑 속에 있는 선을 자신 스스로 자기이 것 되게 해서 확증하게 되면 그 후 지옥은 그에게 어떤 시도도 감히 하기 힘들어진다.” 본문의 각 절에서의 설명이 보여주었듯이 성직자는 선, 또는 선 가운데 있는 이들을 말한다. 이는 주님께서 언급하신 대목, “지붕에 있는 사람은 집안에 있는 세간을 꺼내러 내려오지 말며 들판에 있는 사람은 겉옷을 가지러 집으로 돌아가지 말아라” (마태. 24:17,18)에 있는 사람과 같다. 이 말씀의 의미는, “선 가운데 있는 사람은 신앙의 교리들에 들어있는 여러 가지 것들로 되돌아가지 말라”는 뜻이다. 더 자세히 언급한다면, 선 가운데 있는 이들은 악과 잘못들, 본문에서 더럽혀지는 원인으로 언급된 여러 가지 사항의 의미이기도 한 각종 악과 잘못들 쪽으로 자신이 되돌아가지 않도록 하라는 뜻이다. 자신을 더럽게 하는 것들이 가까운 친척(일가 친척)으로 표현되고 있다. 천사들이 선 가운데 자신을 건설하듯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자기 스스로 자신 속에 있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악밖에 없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 특별한 측면에서는 비록 천사가 된 그들에게 더 이상 활동적이지 않은 유전적 악과 자신이 저질렀던 실제의 악으로 인해 자기 생명 속에 남아있는 악들을 고백하는 것도 있다. 이런 것들이 천사들에게 남아 있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인간 존재의 구성 성분이기 때문, 다시 말해 한 때라도 자신에게 알려져서 생각했고 말했던 것, 또는 행동된 것은 그의 기억으로부터 절대적으로 지워질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록 많은 이들이 각자 자기들 기억 안에 서로 똑같은 것을 가졌다고 가정해도 실제로 똑같은 두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는 말도 된다. 왜 그렇게 안 될까? 그 이유는 모든 이 각자 안에 있는 선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명의 똑같은 사람이 영원히 존재될 수 없다. 이 다양한 선을 수단으로 그와 함께 있는 진리가 질서 있게 배열된다. 또한 이런 과정으로부터 각자는 생명을 지닌다. 그러면 이 진리가 선의 품질을 결정 짓는다. 이렇게 선과 진리의 상호작용이 있다. 본문에서 예증되는 구절들 속의 진리를 수단으로 우리는 어떤 것이 참되고 거짓된 것인지 일반적인 지식을 이해하게 되고, 선을 수단으로 어떤 것이 선 또는 악인지 일반적인 애착을 이해하게 된다. 인간 체험은 이 세상까지 포함해서 체험 속에 나열되는 진리를 보여주는데 한 몫을 한다. 사실 우리는 오래 전에 있었던 일들이 잊어버린 듯 생각되어도 다시 기억에 떠올리는데 별 노력이 없어도 가능하다. 그 외에도 “심판의 날에 자기가 지껄인 터무니없는 말을 낱낱이 해명해야 한다” (마태. 12:36).
그러나 이런 물음도 있을는지 모른다. 만일 인간의 생명에 속한 것이 위와 같이 남아 있는다면 일가 친척인 아버지나 어머니, 아들, 딸, 형제, 자매 때문에 영적으로 자신을 더럽혀 있게 된 악밖에 없음을 천국에서조차 항구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면 그의 악이 수그러져 있는다는 데 대한 질서의 법칙은 무엇인가? 이는 보편적 법칙에 의해 있게 되는데 저 세상에서는 심판의 과정을 통해 악과 선이 분리되고 이 분리 때문에 시험 역시 더 이상 있지 않는다. 이를 잘 생각해 보면 선 가운데 있는 사람, 설사 천국에 있다 해도 자신을 더럽힐 수도 있을는지 모른다는 것, 어떤 측면에서 그는 2, 3, 4, 11절과 같이 행할 수 없다. 물론 본문의 첫 문단은 선 가운데 있는 영적 인간, 천국에 있는 영적 인간, 선을 원리로 하는 지상의 영적 인간에 관련된 사항들이다. 이런 점에서 이 문단이 주는 가르침이 있다. 영적 인간은 세 등차에서 유전적인 악과 실제의 악으로 해서 자신이 더러워져 있음을 항구적으로 인정해야 하는 한편, 그런 모독에 빠지는 시험에 한껏 저항해 가서 실제의 악을 탐닉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 문단은 특별한 흥미를 주는데 그 이유는 그분의 인간을 신성이 되게 하시는 주님, 이로부터 가장 깊은(높은) 삼층 천국의 천적 인간에 관련된 사항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도 두 가지 사항 즉 대 성직자로 표현되는 가장 깊은 천국의 천적 인간과 보통 성직자로 표현되는 보통의 천적 인간 사이의 차이점에 관해서 이다. 주님의 인간과 인간 사이의 본질적 차이는 주님의 인간은 임신과 출생부터 신성(무한)하였고 이에 반해 인간은 임신과 출생부터 유한하다. 그런고로 주님의 인간은 신성이 되심을 수단으로 외적 측면까지, 즉 모든 측면이 신성으로 충만 되셨다. 그 이유는 본질적으로 신성이었던 것만이 실지로도 신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한한 인간은 어떤 과정을 거쳐도 신성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 또 한 가지, 주님의 인성은 임신과 출생을 수단으로 신성이 되셨지만 그분에게는 유전적인 악이 내적으로는 없으셨고 게다가, 어떤 실제적인 악도 없으셨다. 그러나 유전적인 악을 외적으로 가지셨는데 이는 처녀인 그의 어머니로 부터이다. 반면 보통의 인간은 양 부모로부터서 유전적으로 악을 가지고, 이에 더해 실제 자기가 만든 악까지 가지고 있다. 이상의 관점은 본문에서 보통의 성직자는 그의 어머니, 아버지, 그 외 일가 친척으로 해서 더럽혀지는 것이 허용되는 가에 대한 이유를 알기 위해 미리 거론해 둔 것이다. 그래서 위 두 가지 차이점이 본문에 기록되었는 바, 보통의 모든 사람은 유전적 악과 실제의 악을 가지고 있고 이는 영원히 그와 함께 남아 있는 까닭에 각 인간은 거듭나는 동안, 거듭난 후라 해도 위 사실을 반드시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 이에 비해 주님은 그분의 인간을 신성이 되게 하심을 수단으로 유전적인 어머니 쪽의 생명은 사라졌는데, 그 이유는 그분에게 알맞은 인간 삶은 어떤 부분에서도 실지 없으셨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그분은 시험을 이기시고 악의 권세를 정복하셨으며 인간 삶의 최말단에 속하는 것까지도 신성이 되게 하셨다. 따라서 그분은 이 세상에서 가졌던 육체와 더불은 죽음으로부터서 일어나셨는 바, 이는 보통의 인간과 아주 다른 점이다. 그런고로 그분은 그분의 어머니나 아버지로 해서 자신을 더럽히지 않았다. 이를 영적으로 말할 경우 그분은 유전적인 거짓과 악이 전혀 남아 있지 않게 되셨다는 말이다.
다음으로 살필 것은 후자의 다른 점, 즉 삼층 천국의 천적 인간과 여느 천국 인간의 차이점인데, 이것 역시 대 성직자와 보통 성직자를 수단으로 표현되어 있다. 삼층 천국의 천사에게는 유전적인 악과 실제의 악이 남아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창조된 인간, 태어난 인간 모두는 거듭남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 역시 자신 스스로서는 악밖에 가진 게 없음을 인정하지 않고는 삼층 천국에 머무를 수 없다. 그 이유는 태고적 사람(the Most Ancient People)도 거듭남은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그들도 타락한 인간 속에 있는 욕망으로 괴로워했다. 그렇게 괴로워했던 그들이 최상의 상태에 속한 태고 교회를 구성했던 그들의 후손들에게 악과 거짓을 물려주었다. 이 교회의 모든 멤버 역시 그들이 지닌 유전적 악과 실제의 악 그리고 후손에 내려온 악들 모두 때문에 거듭남은 더욱 요구되었다. 이런 악은 구속하심이 대두될 때까지 계속 퇴적 되어왔다. 태고 교회의 천적 인간 또는 삼층 천국의 천적 인간은 자기들에게 유전적 악이 없어서 보통의 천적 인간과 다른 것이 아니라, 그들은 이해함을 통해서가 아닌 의지를 통해 거듭났다는데서 다르다. 다시 말해서 진리를 통하여서가 아닌 선을 통하여 거듭났다는 말이다. 그들은 선으로부터 진리를 분리시키지 않는 바, 본문 12절에서 그들은 성소로부터 나가지 말라고, 그들의 하느님의 성소를 모독하지 말라고 말해지고 있는 것이다. 자기 부모가 죽어도 가까이 가서 부정을 타면 안 된다고 그들에 관해 말해진 것은, 비록 천적 수준인 그들이 천적이나 자신 스스로서는 악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해도 그들에게 남아 있는 유전적 악 또는 거짓 이든, 실제의 악 또는 거짓 이든 그것들로 해서 더럽혀지지 않음을 명시해 주시려는 데 있다.
본 장의 마지막 문단에서는 영적 결함들이 일일이 열거되어 말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세 가지 사실만을 주목하기로 한다. 어느 누구도 진리를 수단으로 하지 않으면 자기 수준에 맞추어 천적 인간이 되는 것, 다시 말해 진리가 없으면 자기 수준에 맞추어 선을 충분히 실감할 수 없다. 어느 누구도 불완전한 자신 그대로에서 천적 인간이 되거나 선을 실감할 수 없다. 천사 같은 가장 깊은 수준의 삶을 충분히 실감할 수 있게 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주님 뿐이시다. 천적 인간, 그가 삼층 천국의 천사가 되려면 비록 그가 의지를 통하여 거듭나고 있다 해도 진리를 수단으로 완전해져야 한다. 영적 인간, 그가 이층 천국의 천사가 되려면 먼저 진리에 관한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자연적 인간, 그가 일층 천국 즉 최말단 천국의 천사가 되려면 그의 천국 삶을 구성하게 되는 단순한 순종의 상태에 도달될 수 있도록 진리에 관한 지식에 의존해야 한다. 따라서 위 세 천국의 천사들 모두 주님께 감사 드려야 하는 공통된 한 가지는 우리에게 말씀이라는 선물을 주신데 대하여서 일 것이다.
두 번째, 우리 품성 속에 있는 결함들은 우리가 발전하는데 장애물이다. 비록 그 결함들이 선을 우리 것이 되게 하는 점진적인 진보에 방해 안 되는 듯 여겨도 결국 장애물인 것은 부정 못한다. 우리는 갖가지 이유들로 해서 가장 깊고 높은 생명으로 충만된 예배를 드릴 수 없다. 그 이유는 우리 삶의 여행이 소경과 절름발이 같은 자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측면에서 빈약하다. 그렇다 해도 우리가 진리와 선을 원리로 채택하여 그 안에 굳게 서있는다면 우리 주님의 살을 먹고, 우리 주님의 피를 영적으로 언제나 마실 수 있다.
셋째로, 주님을 인내로 기다리는 우리 몫을 해나가노라면 우리 결함이 어떤 것이든 주님께서는 제거해 주시어 깨끗해져 거룩해질 수 있다. “악한 자는 망하게 마련이요, 여호와를 기다리는 자 땅을 물려받으리라” (시편 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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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20장 해석

레위기 20장

영적 의미 요약

* 이기적 사랑으로 진리를 모독함에 관하여, 그리고 모독 죄를 범한 이들의 결과에 대해서, 그 죄를 너그러이 봐주려는 이들에 관하여, 1-5절.
* 영들과의 불법 교통에 따른 위험, 6절.
* 내적, 외적으로 거룩한 삶이 필요함, 그리고 신성한 선과 진리를 싫어한 결과들, 7-9절.
* 여러 각도로 선과 진리를 모독한 결과들, 10-21절
* 신성한 질서의 영적 법칙에 순종할 필요성, 불순종의 위험, 22-24절.
* 또한 인간은 애착과 생각에서 순수한 것과 불순한 것을 조심스럽게 한다. 그는 반드시 거룩하고 순수해야 한다. 그 이유는 그가 악과 거짓들로부터 분리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적, 외적으로 질서의 법칙을 남용함으로 선과 진리를 뒤집은 이들은 스스로 완전하게 황폐되고 만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25-27절.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주님께서 지각을 주시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여호와)는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speaking)은 유입을; 모세는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말하심(saying)은 지각을 각각 뜻한다. (2001, 7010, 6752, 1791, 1822)

2절. 더욱이, 너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말할 것이다, 몰렉에게 자기 씨를 주는 자, 그가 이스라엘의 자손들로부터 이든, 이스라엘에 체류하는 낯선 자 이든, 누구든지 정녕 죽음에 놓인다. 토지의 백성이 돌로 그를 쳐죽여라.

영적 의미

이 가르침은 영적 교회 속의 사람 즉 내적 교회에 속하든, 외적 교회에 속하든 모든 이에 해당된다. 그가 이기적 사랑을 위해 진리를 사용함으로 진리를 모독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는 모든 진리들을 빼앗기게 되고 악과 거짓이 날라다 주는 처벌로 고통받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하심이란 영적 교회의 사람에게 주어지게 되는 가르침임을; 이스라엘 백성과 거기에 체류하는 자들이란 내적 교회와 외적 교회를; 몰렉에게 제 자식을 바치는 이들이란 이기적 사랑에 진리를 바침으로 진리를 모독하는 것을; 반드시 죽어야 함은 깡그리 황폐하게 됨을; 백성들이 돌로 침이란 모든 진리가 박탈되고 동시에 악과 거짓이 그에게 가져다주는 벌로 고통받음을 뜻한다. (7304, 3654, 7908, 1610, 934, 2468-16, 2908, 1259, 7456)

3절. 나 역시 내 얼굴을 그 사람에 맞서 두리라, 그리고 그를 겨레로부터 자를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자기 씨를 몰렉에게 주어 내 성소를 더럽혔고, 내 거룩한 이름을 모독했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또한 위의 사람은 자신으로부터 신성한 선과의 모든 결합과 신성한 진리에 관한 모든 지식을 빼앗긴다. 그 이유는 이기적 사랑을 통하여 교회의 진리를 모독함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거룩한 모든 선과 이 선을 표현하는 거룩한 모든 진리를 썩게 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이 그 사람에게 진노하심이란 이런 사람은 신성한 선과의 모든 결합이 자신에게서 박탈된다는 것을; 그를 겨레로부터 추방함이란 진리에 관한 모든 지식을 상실함을; 그 이유가 몰렉에게 자식을 바쳤기 때문이란 이기적 사랑을 통해 교회 속의 진리를 모독했기 때문임을; 주님의 성소를 더럽힘이란 주님으로부터 오는 거룩한 선을 썩게 함을; 주님의 거룩한 이름을 욕되게 함이란 선의 표현인 거룩한 진리를 썩게 함을 각각 뜻한다. (222, 223, 5302, 1259, 1610, 934, 2468-16, 10130, 3210, 8882)

4절. 그리고 만일 토지의 백성이 몰렉에게 자기 씨를 주는 이 사람으로부터 자기들의 눈을 감추이게 어떤 방법들을 실시한다면, 그리고 그 사람을 죽음에 놓이게 하지 않는다면.

영적 의미

교회 속의 사람이 여하튼간에 위와 같은 중대한 범죄를 너그러이 봐주고 이 모독을 완벽하게 거절 않는다면,

세부적 영적 의미

그 땅의 백성이란 교회 속의 사람을, 그 사람을 눈감아 주는 어떤 방법이란 이런 극악한 죄를 면하려는 어떤 방법, 의도를 뜻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눈을 가지고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몰렉에게 자식을 줌이란 이기적 사랑을 통해 교회 속의 진리를 모독함을, 그를 죽이지 않는다면 이란 위와 같은 모독을 완전히 거절하지 않는다면을 뜻한다. (2928, 2950, 2701-4, 1610, 934, 2468-16, 2908, 7456)

5절. 그러면 나는 내 얼굴을 그 사람에, 그리고 그의 가족에 맞서게 둘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 그리고 몰렉과 더불어 매춘을 범하려고 그 사람을 따라 우상을 숭배한 모든 자들을 겨레로부터 자를 것이다.

영적 의미

그 자신 역시 주님으로부터 오는 천국적 사랑에 대한 지각, 이는 일반 측면이든 세부측면 이든 모두 상실할 것이다. 그리고 이기적인 사랑을 통하여 진리를 왜곡하는 이들은 교회에서 분리되고 더 이상 어떤 진리도 지각할 수 없으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이 그 사람에게 진노하심이란 악을 변명해대는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천국 사랑을 지각하는 것을 스스로 잃게 될 것임을; 그와 그의 가족까지란 일반적 차원과 세부적 차원까지를; 자른다함은 교회로부터 분리되어짐을; 몰렉에게 자식을 바침이란 이기적 사랑을 통해 진리를 왜곡하고 모독함을, “겨레로부터 자름”란 위의 사람은 진리를 더 이상 지각할 수 없을 것임을 뜻한다. (222, 223, 9807, 1424, 5302, 1610, 934, 2468-16, 1259)

6절. 그리고 영들과 친밀하다는 자들에게, 그리고 마법을 부린다는 자들에게 돌아서 그들을 따라 우상을 숭배한 혼, 나는 내 얼굴을 그 혼에 맞서게 둘 것이다, 그리고 겨레로부터 그를 자를 것이다.

영적 의미

영계의 사악한 자들과 불법 교통하여 질서를 위반하고 헛된 노력을 함으로서 악이 선같이 보이게, 거짓이 진리처럼 나타나게 왜곡하는 이들은 선에 관한 모든 지각을 잃게 될 것이고 더 이상 진리를 이해할 수 없게 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영들과 친밀하다는 자(죽은 자의 혼백을 불러내는 사람)이나 마법을 부리다는 자(점쟁이)와 친하게 지내는 이들이란 불법인 질서의 남용으로 영계의 사악한 자들과 교통을 해서 악이 선 같이 보이게 만들고 거짓이 진리처럼 나타나게 만들려 애쓰는 이들을’ 그들을 따라 우상을 숭배함이란 진리의 왜곡을; 주님이 그 영혼에 진노하심이란 그는 선에 관한 지각 모두를 잃게 됨을; 겨레로부터 추방함이란 그는 더 이상 진리를 이해할 수 없을 것임을 뜻한다. (7297, 9188, 6348, 222, 223, 5302, 1259)

7절. 그러므로 네 자신을 정화하라, 그리고 거룩히 있으라.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영적 인간은 자기를 잘 간수해서 순수하고 거룩한 삶을 영위해야 한다. 이 길만이 진리와 결합하는 모든 선의 근원이신 주님과 결합할 수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네 자신을 정화하여 거룩히 있으라란 영적 인간은 자신을 잘 간직해 순수하고 거룩한 삶을 영위해야 함을;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란 거룩해 있어야 주님과 결합할 수 있는데, 그분은 진리와 결합하는 모든 선의 근원 되신다는 것을 뜻한다. (8042, 2001)

8절. 그리고 너희는 내 법령을 지켜라, 그리고 그것들을 행하라. 나는 너를 정화하는 주이다

영적 의미

그는 이를 내적으로, 뿐만 아니라 외적으로 의지와 이해함 모두에서 행해야 한다. 그 이유는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결합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향한 선행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의 규정을 지켜 그대로 행함이란 영적 인간은 이를 행하되 내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외적 측면, 의지와 이해함 모두에서 행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너희를 정화하는 주”란 외적 인간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을 수단으로 또는 주님 사랑과 이웃을 향한 선행을 수단으로만 내적 인간과 결합할 수 있음을 뜻한다. (8357, 683, 2001, 8042)

9절. 자기 아버지, 자기 어머니를 저주하는 모든 자는 확실히 죽음에 놓일 것이다. 그는 자기 아버지, 또는 자기 어머니를 저주했다. 그의 피가 그 사람 위에 있다.

영적 의미

신성한 선과 진리로부터 자신을 비껴가게 하려는 사람은 자신을 전체적으로 황폐케 한다. 그는 두 가지 모두를 신중하게 거절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거짓 속에 머물러야만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란 신성한 선과 신성한 진리를 비켜 가려는 것을, 죽어야 마땅함이란 송두리째 황폐됨을, 부모에게 저주함이 반복되는데 이 경우의 뜻은 선과 진리 모두를 신중히 거절하는 것을, 그가 피를 흘려야 함이란 그는 자신의 거짓에 머무르게 됨을 뜻한다. (379, 8897, 2908, 379, 8897, 683, 4735-12)

10절. 그리고 또다른 사람의 아내와 간음을 범하는 사람,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을 범한 그 사람까지, 간음자와 간음녀는 죽음에 확실히 죽어야 한다.

영적 의미

교회의 선을 섞음질 하는 자, 그 선이 외적 이든 내적 이든 그는 선에 관한 지식, 진리를 지각함이 모두 황폐해질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웃집 아내와 간통함이란 외적, 내적인 교회의 선을 간음질 하는 것을; 간음한 남자와 여자는 정녕 죽으리라란 선에 관한 지식, 진리에 대한 지각이 완전히 황폐해짐을 뜻한다. (6348, 2908, 제 18:20절)

11절. 그리고 자기 아버지의 아내와 눕는 자는 자기 아버지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겼다. 그들 둘 다 확실히 죽어야 한다. 그들의 피가 그들 위에 있다.

영적 의미

이기적 사랑으로 오염시켜 선을 모독하는 자는 자신 안에 있는 선과 진리를 더 격렬하게 파괴한다. 그가 자신 속에서 선과 악을 섞었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제 아비의 아내와 한자리에 든다 함은 이기적 사랑으로 선을 오염시켜 선을 모독함을; 아비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김이란 위와 같은 오염을; 두 사람은 반드시 사형을 당해야 함이란 선과 진리의 파멸이 자신 속에서 있는데 그 이유는 선과 악을 혼합시켰기 때문이다. 그들의 피가 그들 위에 있다란 그들은 거짓 속에서 머무를 것임을 뜻한다. (6348, 3703-20, 210, 제 18:7,8절 2908, 4735-12)

12절. 그리고 만일 사람이 자기 며느리와 눕는다면, 그들 둘 다 확실히 죽어야 한다. 그들은 혼동을 만들었다. 그들의 피가 그들 위에 있다.

영적 의미

거짓을 자신 속의 악에 결합함으로 선을 모독하는 교회 속의 사람, 이렇게 해서 선행의 거룩한 원리를 모독한다면 선과 진리의 황폐해짐이 그 결과인데 그 이유는 그가 또다시 선과 악을 섞었기 때문이요 이런 사람은 자신의 거짓 속에 거해야 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자기 며느리와 한자리에 드는 사람이란 자신의 악과 결합된 거짓을 가지고 오염시켜 선을 모독함을; 둘 모두 정녕 죽으리라란 선과 진리에 관한 황폐는 확실히 결과됨을; 그들이 추잡한(혼돈된) 짓을 했다란 다시 선과 악이 혼합되었음을; 그들이 피를 흘림이란 이런 사람은 거짓 속에서 머무를 것임을 뜻한다. (4843, 10490, 제 18:15절, 2908, 1326, 4735-12)

13절. 그리고 만일 사람이 남자와 눕는다면, 그들 둘 다 역겨운 짓을 범했다. 그들은 확실히 죽어야 한다. 그들의 피가 그들 위에 있다.

영적 의미

감각적 사랑으로 진리에 거짓을 결합시켜 진리를 모독하는 외적 교회 속의 사람이 있을 경우 이는 지옥의 역겨운 짓인 바, 이런 사람은 전체적으로 황폐되어 자신의 거짓 속에 거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자와 한자리에 들 듯 남자와 한자리에 드는 남자란 감각적 사랑으로부터 오는 거짓을 가지고 진리와 결부되게 함으로 진리를 모독하는 외적 교회인을; 망측한 짓이란 영적으로도 망측함을; 정녕 죽으리라란 완전히 황폐해짐을; 그들의 피가 그들 위에 있다란 그들은 거짓 속에서 머무를 것임을 뜻한다. (725, 6348, 2056, 제 18:22절, 6052, 4735-12)

14절. 그리고 만일 사람이 아내와 그녀의 어머니를 데려간다면, 그것은 사악하다. 그들을 불로 태워라, 그 사람과 그들 모두 이다. 하여 너희 사이에 사악함이 없게 하라.

영적 의미

누가 선에 인접해 있는 교회의 진리를 악에 인접되어 있는 거짓으로 오염시켜 모독한다면, 이는 심각한 모독이다. 이런 것은 이기적 사랑으로 살라져야 하고 교회로부터 반드시 분리되어야 순수하고 거룩해지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녀의 어머니와 인척 관계가 있는 아내(모녀)란 내적 교회에 관계되는 외적 교회를; 이 경우처럼 아내를 갖고 아내의 어머니를 아내로 더 갖는다란 악에 인접된 거짓으로 오염시켜 선에 인접된 교회의 진리를 간음질하여 모독함을; “그것은 더러운 짓”이란 매우 심한 모독임을; 그와 두 여인을 불로 태운다란 이런 사람은 이기적 사랑으로 태워질 것임을; “다시는 너희 사이에 이런 사악함이 없어야 한다”란 교회는 선에서 악을 분리함으로 순수하고 거룩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3703-2, 3703-20, 4843-4, 10490, 9264, 934, 6571)

15절. 그리고 만일 사람이 짐승과 눕는다면, 그는 확실히 죽어야 한다. 그리고 너희는 짐승을 죽여라.

영적 의미

누가 자연적 인간 속의 악한 애착을 진리에 합하려 한다면 그는 황폐해질 것이고 그것의 자연적 애착도 황폐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가축과 교접하는 사람이란 단지 자연적인 수준의 인간에 있는 악을 가지고 진리와 결합하는 것을; 정녕 죽으리라란 황폐함, 선과 진리에서의 완전한 분리를 말한다. (46, 725, 2908, 제 18:23절)

16절. 그리고 만일 여인이 어떤 짐승에 접근하고 함께 눕는다면, 너는 여인을 죽여라, 그리고 짐승도. 그것들은 확실히 죽어야 한다. 그들의 피가 그들 위에 있다.

영적 의미

자연적 인간의 선이 거짓으로 오염되어 모독되어진다면 위와 같은 황폐가 수반되는 바, 그들에게서 모든 선과 진리가 이탈되어 거짓 속에 머물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짐승을 가까이 하여 교접한 여자란 자연적 인간에 있는 선이 거짓으로 오염되어 모독된다면을; 여인과 짐승을 죽인다란 황폐함이 위와 같이 있게 됨을; 그들이 정녕 죽게 되리라란 의지와 이해함에서 황폐해짐 또는 내적, 외적 인간 측면이 황폐해짐을; 그들의 피가 그들 위에 있다란 그들은 거짓 속에 머무름을 뜻한다. (46, 725, 683, 4735-12, 제 18:23절)

17절. 그리고 만일 사람이 자기 누이, 자기 아버지의 딸, 또는 자기 어머니의 딸을 데려가고, 그리고 그녀의 벌거벗음을 보고, 그녀가 그의 벌거벗음을 본다면, 이것은 창피스러운 짓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스라엘의 자손들의 시야에서 잘리우게 하라. 그는 자기 누이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겼다. 그는 자기의 불법을 낳았다.

영적 의미

내적 교회 속의 사람이 의지로부터 이든 이해함으로부터 파생되었든 거짓을 수단으로 진리를 모독한다면 그는 진리와 거짓에 상호반감을 사는 원인이 되는 것이요 지긋지긋한 일인 바, 이 모독 때문에 교회로부터의 분리를 피할 수 없다. 그는 악을 확증하는 수밖에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제 아비의 딸이든지, 어미의 딸이든지, 제 누이를 데리고 살면서 그녀의 벌거벗음을 보고 여자는 그의 벌거벗음을 본다란 의지와 이해함에서 파생되는 거짓으로 오염시킴으로, 그리고 진리와 거짓을 상호 뒤집음으로 진리를 모독함을; 이것은 파렴치한 짓이다란 이런 모독은 구역질나는 모독임을; 겨레의 시야에서 잘리운다란 교회로부터의 분리는 피할 수 없음을; 제 누이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겼다란 진리의 모독을; 불법을 낳았다란 악 속에서 확증함을 뜻한다. (508, 1815, 1898, 6348, 6047, 5302, 1259, 제 18:9절, 9937-11)

18절. 그리고 만일 사람이 아픔을 가진 여인과 눕는다, 그리고 그녀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긴다면, 그는 그녀의 샘을 벗겨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의 샘의 덮개를 벗겼다. 그리고 그들 둘 다 겨레로부터 잘라라.

영적 의미

더욱이 교회 속의 사람이 왜곡된 진리로 선 또는 진리를 오염시켜 부패되게 한다면, 그는 내면적으로, 상호적으로 모독이라는 죄를 짓게 된다. 이런 모독은 교회로부터 완전히 분리되는 원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픔을 가진 여인(월경 중에 있는 여인)과 한자리에 들어 그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김이란 모독인 왜곡된 진리를 가지고 오염시켜 선이나 진리를 부패시킴을; 그녀의 샘을 벗김이란 내면의 왜곡과 모독을; 여자가 자기의 샘의 덮개를 벗어 (피나는 곳을 드러냄)이란 상호적임을; 겨레로부터 추방함이란 이런 모독은 교회로부터 완전히 분리되는 원인이 됨을 뜻한다. (6348, 제 18:19절, 4861, 5302, 1259)

19절. 그리고 너는 네 어머니의 자매, 네 아버지의 누이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 그는 자기의 가까운 친척을 벗기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불법을 저지른다.

영적 의미

이기적 사랑에 인접해 있는 이해함 안에 있는 거짓, 그것이 내적 측면 이든 외적 측면 이든 그것을 가지고 진리를 부패되게 하는 것은 정당치 못하다. 그 이유는 이것이 모독이요 거짓을 확증하는 일만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네 이모, 네 고모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란 외적이든 내적이든 이해함에 있는 거짓을 진리와 결합시켜 진리를 부패시키는 것은 합법적이지 못하다를; 가까운 친척이란 이기적인 사랑에 인접된 거짓을; 불법을 낳는다란 거짓으로 확증함을 뜻한다. (6348, 3703-20, 1475, 1815, 1895, 제 18:12-13절, 3703-2, 9937-11)

20절. 그리고 만일 사람이 자기 삼촌의 아내와 눕는다면, 그는 자기 삼촌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겼다. 그들은 아이 없이 죽는다.

영적 의미

교회 속의 사람이 방계적인 선 속에 있는 악을 선에 결합함으로 해서 선을 부패시킨다면 이는 모독이다. 이런 사람은 악 속에 자신이 있음을 확증하는 것이다. 그들과 함께 하는 교회는 선과 진리가 증가될 리 만무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숙모와 한자리에 든 사람, 그리고 삼촌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김이란 모독인 2차적인 선 속의 악을 교회의 선에 결합함으로 교회의 선을 부패시킴을; 죄를 낳음이란 악 가운데 확증을; 후손을 보지 못함이란 선과 진리의 증가가 없음을 뜻한다. (6348, 3612, 1369, 제 18:14절, 9937-11, 9156, 489, 2908)

21절. 그리고 만일 사람이 그의 형제의 아내를 데려갈 것이다면 이것은 불순함이다. 그는 자기 형제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겼다. 그들은 아이가 없이 있을 것이다.

영적 의미

그가 자연적 인간에 있는 악을 자연적 인간 안에 있는 선과 결합함으로 해서 그 선을 부패시킨다면 이는 모독이다. 결과적으로 선과 진리의 증가가 거기에는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제 형제의 아내를 데리고 산다란 자연적 인간 안에서 악의 거짓을 결합시킴으로 자연적 인간 속의 선이 부패되게 함을; 제 형제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김이란 이 악의 바깥쪽 형체가 밝히 드러남을; 후손을 보지 못함이란 선과 진리의 증가가 없을 것임을 뜻한다. (3612, 1369, 6348, 제 18:16절, 10130, 9960-18, 3049, 5387, 9474, 489)

22절. 너희는 그러므로 모든 나의 법령을, 그리고 모든 나의 판단을 지켜라, 그리고 그것들을 행할 것이다. 하여, 내가 너를 데려가는 그 토지가 너를 토해내지 않을 것이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영적 인간은 거룩해야만 하는데 이는 내적, 외적 모두에서 이다. 그래야 그 교회는 모독을 범하는 일이 없게 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의 법령과 판단을 지켜 행함이란 영적 인간은 바깥쪽, 안쪽 모두에서 거룩해야만 함을, “내가 너희를 이끌어 들여 살게 할 그 땅이 너희를 토해 버리지 아니함”이란 이 교회에 모독이 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임을 뜻한다. (8357, 5755, 3705, 9507, A.R. 205)

23절. 그리고 너희는 내가 네 앞에서 내쫓는 나라의 관습들에서 걷지 말라. 그들이 이 모든 짓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므로 나는 그들을 몹시 싫어했다.

영적 의미

위 인간은 부패된 교회 속의 악에 의거 살아서는 안 된다. 그 이유가 부패된 교회는 진리를 모독하여 주님에게서 제 스스로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네 앞에서 내쫒는 나라의 관습들에서 걷지 말라. 그들이 이 모든 짓을 했기 때문이다란 부패된 교회 속의 악에 따라 살지 말라를; 그 나라들을 싫어한다란 이 교회는 진리를 모독해서 주님으로부터 그 자체 분리되었음을 뜻한다. (1205, 2657, 1205, 693, 696)

24절. 그러나 나는 네게 말했다, 너희는 그들의 토지를 상속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젖과 꿀이 흐르는 토지, 그것이 너희의 소유가 되도록 그것을 네게 준다. 나는 너희를 이 백성들로부터 분리한 주 너희의 하느님이다,

영적 의미

신성한 선의 바램은 영적 인간이 천국 삶을 내적으로, 외적으로 모두 받아서 안전해지는 것이다. 이 삶 안에는 진리가 선과 결합하여 풍부하게 있고 자연적 기쁨도 풍부하다. 이를 통해 주님은 진실로 예배되고 이 교회 속의 사람들은 다른 이들과 구별되어지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나는 네게 말했다, 너희는 그들의 토지를 상속받을 것이다”란 영적 인간은 내적, 외적으로 천적 생명을 받음으로 안전하기를 신성한 선이 바래시고 있음을; 젖과 꿀이 흐르는 토지란 선에 결합된 진리가 풍부함과 자연적 기쁨을;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란 이를 통해 주님이 진실로 예배됨을; 너희를 이 백성으로부터 분리함이란 교회 속의 사람들은 타인과 구별됨을 뜻한다. (2001, 3705, 2658, 5602, 2001, 6653)

25절. 너희는 그러므로 깨끗한 짐승과 불결한 짐승, 그리고 불결한 가금류와 깨끗한 가금류를 분류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가 너희로부터 분리한 불결한 것, 즉 짐승에 의해, 또는 가금류에 의해, 또는 지면에 풍부한 어떤 것에 의해 네 혼이 지긋지긋해지게 만들지 말라.

영적 의미

그러므로 순수한 것과 불순한 것을 조심스럽게 구별해야 하는데 이 구별은 의지와 이해함 모두에서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교인은 어떤 악이나 거짓으로 자신을 썩게 해서는 안 된다. 또는 선과 진리와 구분되는 어떤 감각적인 기쁨, 이것 때문에 불순해지는 바 이것이 자신과 섞여지게 해서도 안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깨끗한 짐승과 불결한 짐승, 깨끗한 가금류와 불결한 가금류를 분리함이란 의지와 이해함의 측면에서 순수한 것과 불순한 것 사이의 구분을 조심스럽게 하라는 것을; 짐승이든, 가금류이든, 지면에 풍부한 어떤 것이든 너희에게 불결하다고 구분해 놓은 것으로 네 혼이 지긋지긋해지게 말라란 교인은 어떤 악이나 거짓 또는 선과 진리와 구분되는 감각적 기쁨과 불순함을 가지고 자신을 썩게 해서는 안 됨을 뜻한다. (46, 745, 4545, 10130, 40)

26절. 그리고 너희는 나에게 거룩히 있으라. 나 주가 거룩하고, 그리고 너희를 백성들로부터 분리했기 때문이다, 너희는 나의 것이다.

영적 의미

따라서 영적 인간은 순수하고 거룩해야만 하는데 그 이유는 주님이 순수함과 거룩함 그 자체되시기 때문이다. 주님만이 부패된 교회의 악과 거짓들로부터 구해내서 거듭나게 해주실 수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에게 거룩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그분이 거룩하고 그 백성을 그분의 것이 되도록 뭇 백성에게서 갈라 세웠기 때문이다란 영적 인간은 순수하고 거룩해야만 하는 바, 그 이유는 주님이 순수함, 거룩함, 그 자체이시요, 주님만이 부패된 교회 속의 악과 거짓들에서 구원해서 거듭나게 해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3654, 2190, 3210, 6653, 2405)

27절. 영과 친밀하다거나 마법을 쓰는 남자, 또는 여자는 죽음에 확실히 놓인다. 그들은 돌로 그들을 쳐죽여라. 그들의 피는 그들 위에 있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내적, 외적 모두에서 질서를 남용함으로 선과 진리를 뒤집는 이들은 자신을 황폐되게 한다. 그들에게서 모든 진리는 이탈된다. 그들은 자신의 거짓으로 포기된 채로 있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영과 친밀하다는 자(죽은 사람의 혼백을 불러내는 사람)이나 마법을 쓰는 남자나 여자(점쟁이)가 있으면 이란 내적, 외적으로 질서를 남용함으로 선과 진리를 뒤집는 이들을; 확실히 죽는다란 그들 스스로 완전히 황폐해짐을; 돌로 쳐죽여라란 모든 진리가 박탈됨을; 그들의 피는 그들 위에 있다란 자신의 거짓에 파묻힘을 뜻한다. (7297, 9188, 2908, 8799, 4735-12)

20장의 종합적 고찰

이 장에서 말해지는 모독에 관한 종류들은 가장 타락된 이기적인 사랑으로 선함과 진리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다른 모독의 종류와 다르다. 이렇게 읽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몰렉에게 자식을 바친다는 것은 육에 속한 사랑, 즉 지옥적인 거짓을 받는 쪽으로 인도할 뿐인 살인, 미움, 간음, 원수 갚음 같은 비열한 사랑을 애용함으로 교회 속의 교리, 말씀 속의 진리를 파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거짓들이 몰렉에게 바치는 자식들로 의미되고 있다. 몰렉은 암몬의 우상이었는데 그것들을 힌놈 골짜기에 있는 도벳에 세워 거기서 아들과 딸들을 태워 바쳤다” (열왕기상 21:7, 열왕기하 23:10). 몰렉은 왕이다는 뜻도 있다. 그러므로 불로 의미되는 이기적 사랑으로부터 통치하는 거짓을 뜻한다. 골짜기는 낮은 상태, 타락된 상태를 명시하고 힌놈(Hinnon)은 그들의 부유함을 뜻한다. 이 경우에는 거꾸로 된 진리의 지식을 의미한다. 도벳은 태우는 곳, 내뱉음, 혐오함 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이런 상응들로부터 사악한 자의 본성 즉 몰렉에게 자식을 바치는 모습으로 나타낸 그 본성이 더 잘 이해되리라 본다. 혼백을 불러내는 자와 상담하는 것과 연결해서 관찰해 보면 전자는 애착이 타락된 것, 후자는 이해함이 부패된 것을 말한다. 사실상 이것들은 이 뒤에 수반되는 모독에 관한 세부사항들을 대표하는 일반적 서술로 간주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단지 앞 장에서 채택된 것과는 순서가 다르다. 우리는 이 순서가 바뀐 이유나 바뀜의 본성을 알 수 없다 해도 어찌됐든 영적 진리의 어떤 것을 암시하기 위해 의도된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나 이 장의 내적 의미에서의 일반 주제는 모독에 관한 여러 종류들의 처벌, 바꾸어 말하면 모독을 탐닉한 결과들이다. 이런 것들은 돌로 쳐서, 태워 죽이는 처벌, 일반적으로 겨레로부터의 추방, 죄벌을 면치 못함, 죄를 낳음, 후손이 끊김 등등인데 이를 영적 의미로 이해하면 된다. 아마 이런 사항 하나 하나를 조금씩 되새겨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위와 같은 처벌이 이 세상에서 어떤 특수한 사회 환경 밑에서 임의대로 있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어찌됐든 인간의 영적 삶에 국한해 볼 경우 거기에는 질서라는 신성한 법칙을 위반한데 따른 자연적 수준의 결과로서의 처벌은 없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누구도 처벌하시지 않는다. 악 자체가 그에 상당하는 벌을 자초하는 것이다. 주님의 처벌이 있을 수 있는 경우를 억지로 생각해 보면 당사자에게 선하고 유용한 목적을 위할 경우 외에는 더 이상 생각해 볼 수 없다. 마태복음 25장 46절에서와 같은 “영원한 벌” 같은 것이 있다고 믿는 것은 필수 사항은 아니다. 오히려 악령에 관계가 있는데 이럴 경우 영원하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두어야 하리라 본다. 영원한 고통은 정녕 있을 수 없다. 주님께서 어떤 용도를 위해 허용하시는 것이 끝없는 고통, 괴로움이다 라고 어떻게 상상이라도 해볼 수 있을까? 예를 들면 어떤 생명 있는 존재가 영원한 불 속에 머물도록 단죄되었다면 그것은 무슨 용도에서 였을까? 이런 표현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는 상응의 법칙이 풀어줄 수 있다. 최상의 의미에서 불은 사랑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불이 사랑과 상응하기 때문이다. 이 사랑은 주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그러나 반대적 의미에서 불은 자신만을 위하는 것, 자아와 세상만을 사랑함도 뜻한다. 이 사랑이 악령을 구성하는 사랑이다. 더욱이 모든 사랑, 즉 선하든 악하든 그 사랑 안에 있는 이들은 그 사랑으로 기뻐한다. 그런고로 악령에게 조차 있는 통치하는 사랑은 비록 그 불이 꺼질 수 없을지라도 영원한 처벌이라 불리는 것으로서 당사자들에게 해당될 수는 없다. 그러면 영원히 벌받음이란 무슨 뜻일까? 이는 벌받음이라는 두려움에서 발생하는 영원한 억류이다. 벌(punishment)이라고 번역된 그리스 단어는 억류를 의미한다. 이를 통치하는 정부 형태로 보면 지옥이라는 항구적인 조건을 기술해 준다. 따라서 그들은 고통받을까 두려워함으로 영원히 억류되는 것이다. 이 두려움이 더욱 거세지면 그들 영역에서 법을 위반하지 못한다. 따라서 어떤 때든 어떤 상태 이든 그들이 이 두려움의 억류에 순종하는 한 그들은 어떤 처벌 속에 있다고는 볼 수 없다. 이상과 같은 넓은 측면에서의 관점을 먼저 지니고 본 장에서 언급되는 특수한 처벌을 이제 생각해 보자.
일반적으로 볼 때 사형에 처함이라는 말은 선함과 진리의 상태에서 분리되어 악과 거짓의 상태에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글을 읽어 알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천국, 특별하게는 영원한 행복이 생명이라 불리는 이유는 이러하다. 천국에서는 선의 지혜와 진리의 이해가 있다. 선의 지혜와 진리를 이해하는 가운데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으로부터 생명이 존재한다. 그러나 지옥의 경우 위와 반대인 바 선 대신 악, 진리 대신 거짓이 있어 영적 생명이 꺼져 있다. 그러므로 지옥은 상대적으로 죽음이다. 그 이유가 영적 죽음이 악과 거짓이고, 이로부터 인간은 악한 것을 뜻하고 거짓된 것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악귀(genii)나 악령은 그렇게 살지 말라고, 그들이 죽어 있다고 타이르는 말을 기꺼이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 이유가 자기들도 뜻하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기들도 생명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과 진리 안에 생명이 있는 바 악과 거짓에는 어떤 생명도 없다고 말해지지만 그들은 그 반대이다.” 돌로 쳐서 죽임이란 이미 살핀 바 같이 황폐되어짐, 모든 진리가 박탈됨을 의미한다. 태워 죽임은 황폐되어짐, 모든 선이 박탈됨, 같은 말로서 이기적 사랑으로 살라져 버림을 의미한다. 겨레에서 추방이란 교회로부터의 피할 수 없는 분리, 그런고로 진리에 관한 지식을 상실함을 뜻한다. 따라서 완전히 황폐됨이 이런 뜻에 함축되고 있지 않는다는 것도 더불어 알 수 있다. 누군가가 사악한 행동을 할 경우 분리는 피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그에게 진실된 회개가 있을 경우 구원이라는 기회는 남겨져 있다는 말이다. 다음 차례로서 주목해 볼 것은 면할 길 없는 죄의 벌과 죄의 벌을 받는 것 사이의 차이점인데 이는 각기 다른 경우에서 언급되고 있다. 전자는 거짓을 확증하는 것, 후자는 악을 확증하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후손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인데 이는 선과 진리의 증가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모든 예들로부터 우리가 확실히 배우는 바, 악과 거짓을 다각도로 탐닉한 결과는 그 결과 역시 다양하다는 것, 그런고로 갖가지 사악함은 그것에 어울리는 처벌을 받게 되는데 이 처벌을 피하는 길은 오직 그 악을 거절하는 행동밖에 없다. 이 행동은 내향이든 외향이든 그 행동을 초래하게 하는 악과 거짓의 세부적 측면에서부터 거절이 있어져야 한다.
마지막 우리가 주목해 보고 끝내야 할 한 가지가 더 있다. 자기 부모를 악담하는 사람에 관한 것이다. 그는 죽되 피를 흘리고 죽어야 한다고 말해지고 있다. 이를 글자 의미로만 보면 그는 자신이 그 악담한 것 때문에 처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일 게다. 다른 구절의 경우도 모두 마찬가지로 위와 비슷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영적 의미일 경우, 일반적으로 악은 그 자체 자기 벌을 가져온다는 것, 그 결과 자신의 거짓 속에 머물러 있게 된다. 그 이유는 그가 신성한 선과 진리를 거절하는 것이 부모를 악담하는 것에 대한 의미인 바, 그는 위와 같은 상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선과 진리의 결합은 거듭남이 존재하는 곳에는 언제나 상존하듯 그 반대인 악과 거짓의 결합은 거듭나지기를 허용치 않는 이들의 삶 속에 언제나 상존한다. 우리가 확실히 해두어야 하는 것은 모든 이는 거듭나아질 기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기회가 인간에게 없다면 구속이라는 주님의 역사는 헛될 뿐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의 경우 자기는 부당하게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정죄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기에게 주어져온 모든 경고를 흘려 버리기를 스스로 선택했었기 때문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자주 반복된 서술 “그의 피가 그 사람 위에 있다”라는 말씀은 글자 의미로나 영적 의미에서나 매우 강한 어조여서 우리로 하여금 멈칫하게 한다. 또한 위 말씀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겠다고 하는 아래 구절에 있는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의 격렬한 본성까지 실감 있게 한다.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지겠습니다.” 이는 신성한 진리 모두를 일시에 거절하는 것, 부패된 유대교를 수단으로 악에서 오는 거짓을 쌍손으로 환영하는 것을 동시에 의미한다(마태 2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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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9장 해석

레위기 19장

영적 의미 요약

*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주어진다; 인간은 자신 안에서 선과 진리가 결합되게 해야 한다. 그 결합을 존경하고 사랑할 것. 진정한 예배에서 자신을 확증되게 하라. 우상숭배인 이기적인 사랑과 세상적인 사랑을 금해야 한다. 진리가 명백히 보여준 그대로 선을 사랑하라. 자유 속에서 예배하라. 선을 자기 것이 되게 하라. 심판 과정에서 악을 거절하라. 특별히 모독을 피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악 속에 있음을 스스로 확증하기 때문이다, 1-8절.
* 심판 시기에 선과 진리는 어떤 이기적인 동기도 없는 선행의 일을 하는 가운데 주님께 바쳐야 한다, 9-10절.
* 영적 책임이 포함되는 여러 가지 금지사항, 11-18절.
* 잘 꾸며 저지른 사악함이 아닌 거듭남의 과정에서 있게 되는 선한 애착과 악의 불법적인 결합에 관하여, 그리고 그 치료와 결과에 관하여, 19-22절.
* 완전한 상태에서 선을 자기 것으로 삼는데 대하여, 상대적으로 불완전한 상태에서, 충만되게 실감함, 아껴두시는 것들의 이식을 수단으로 풍부하게 증가됨, 23-25절.
* 영적 인간이 게을리 해서는 결코 안 되는 여러 가지 금지 조항과 의무 조항에 관하여, 26-37절.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그리고 주님이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지각을 주시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주님께서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이란 유입을; 모세란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말하심이란 지각을 각각 명시한다. A.C. 2001, 2951, 7010, 1791, 1822.

2절. 이스라엘의 자손의 모든 회중에게 이야기 하라,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라, 너희는 거룩할 것이다. 그 이유는 나 주 너희의 하느님은 거룩하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영적 교회 속의 모든 사람이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각자 안에서 진리가 선과 결합해야만 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인데 그런 이유는 주님 안에서 그 둘은 하나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나 여호와가 너희 하느님이다”라고 일러 말하심이란 영적 교회 속의 모든 사람은 가르쳐져야 하는 바 그렇게 해서 그가 이해하고 그는 자신 안에서 선과 진리를 결합시켜야 하는데 그 이유는 그 둘은 주님 안에서 하나되어 있기 때문이다. A.C. 7010, 3654, 10355, 1791, 2146, 2001.

3절. 너희 모두 각 사람은 자기 아버지, 그리고 자기 어머니를 경외하라. 그리고 너희는 내 안식일을 지켜라.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영적 인간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신성한 진리와 선을 존경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거듭남으로 그 둘이 결합되게 해야 한다. 이런 방법으로만 주님에 관한 진정한 예배가 건립되고 확증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각자 자기 부모를 경외해야 함이란 영적 인간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신성한 진리와 선을 존경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안식일을 지킴이란 거듭남으로 선과 진리가 결합되게 함을; “나 여호와 너희 하느님”이란 위 방법만이 참된 주님의 예배를 건설하고 확증함을 말한다. A.C. 8897, 8889, 7192.

4절. 너희는 우상들로 돌아서지 마라, 네 자신을 위하여 부어 만든 신들을 만들지 말라.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영적 인간은 이기적인 사랑에서 뛰쳐나오는 거짓과 악들에 자신이 빠져들고 동시에 주님에게 등을 돌리는 것을 금해야 한다. 반드시 진리 안에서 명백해진 그대로 선을 사랑함으로 주님만을 예배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우상에로 돌아서는 것이란 주님으로부터 뒤돌아서 세상적 사랑에서 튀어나오는 악과 거짓에 전념하는 것을; 신을 부어 만듦이란 이기적 사랑에서 위와 같이 되는 것을, “나 여호와 너희 하느님”이란 진리로 명백해지는 선을 사랑함으로 주님을 예배함을 말한다. A.C. 1205, 8869, 2001.

5절. 그리고 너희가 주님에게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을 바칠 때, 너희는 그것이 받아질 수 있도록 바칠 것이다

영적 의미

그래서 이 예배는 완전한 자유로움에서 있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이런 예배만 주님께서 응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분의 마음에 들도록 평화 제물을 바침이란 신성한 선에 관해 이기적 선으로부터가 아닌 자유로부터 예배함을 말한다. A.C. 10097, 2001, 9506.

6절. 그것은 너희가 그것을 바친 같은 날 먹어라, 그리고 내일에도 먹어라. 그리고 만일 셋째 날까지 남아있는 것은 무엇이든, 그것은 불로 태워라.

영적 의미

또한 위와 같은 예배 속의 선은 교인에 의해 계속적으로 우선적으로 자기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예배 안에 이기적이고 세상적인 사랑이 가담한 애착은 자기 것을 삼아서는 안 되고 시험에서 승리함을 통해 반드시 거절되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제물은 바치는 날과 그 다음 날까지 먹어야 함이란 위의 예배 속의 선은 우선적으로, 계속적으로 자기 것으로 삼아진다는 것을; 사흘째 되는 날 남은 것을 불에 사름이란 위의 예배에서 이기적이고 세상적 사랑이 가담된 애착은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는 바 시험에 승리함을 통해 심판의 과정에서 거절되어야 한다. A.C. 2187, 7887, 3998, 8788, 8480-3, 10115, 900.

7절. 그리고 만일 셋째 날에 조금이라도 먹게 된다면, 이것은 역겨운 짓이다. 이것은 받아지지 않을 것이다.

영적 의미

그런데 위 과정에서 누군가가 선 뿐만 아니라 악까지 자기 것을 삼는다면 그는 선을 모독하는 것이다. 이런 모독은 용납될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사흘째 날 먹는다란 심판 동안에 자기 것으로 삼음을; 역겨운 짓이란 예배가 모독됨을, 받지 않으심이란 모독된 이 예배는 열납될 수 없다는 뜻이다. A.C. 2187, 900, 6052, 9506.

8절. 그것을 먹는 모든 이는 자기 불법을 낳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주님의 거룩한 것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혼은 자기 백성으로부터 잘리울 것이다.

영적 의미

위와 같은 행위를 저지르는 모든 이는 자신이 악 가운데 있음을 확증하고 건립한 것이다. 악과 선을 섞을 경우 모독이라는 것을 피할 도리가 없다. 이런 사람의 모든 진리는 황폐되어 질 수밖에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것을 먹는 자는 불법을 낳을 것이다란 모독된 예배를 가지는 자는 자신을 악 가운데 있게 하는 것임을; 주님의 거룩한 것을 모독함이란 악에 선을 혼합시키는 것임을; 백성으로부터 잘리움이란 그들의 모든 진리들이 황폐하게 된다는 뜻이다. A.C. 9965-3, 2187, 6052, 5302, 1259.

9절. 그리고 너희는 너희의 토지의 수확물을 베어들일 때, 너는 네 들판의 모퉁이들을 몽땅 베어들이지 말라, 너는 네 수확물의 이삭을 그러모으지 말라.

영적 의미

심판에서 선이 실감 될 때 내적으로부터의 힘을 가지고 표현된 최말단의 선을 더 이상 이기적인 목적으로 자기 것을 삼아서는 안 된다. 또한 외적으로 이기적 동기를 가지고 그 선을 오염시켜서도 안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수확물이란 심판에서 선을 실감함을; 들판의 구석구석까지 거두어들이지 않음이란 내적으로 충만되고 힘있게 되어 최말단에 표현되는 가운데 이기적 목적에 실감된 선을 자기 것을 삼지 않음을; 거두고 남은 이삭을 줍지 않음이란 실감된 선은 외적으로 이기적 동기를 수단으로 오염되어서는 안 됨을 뜻한다. A.C. 9295, 10669, 3310, 6188, 9494, 9273, 9146.

10절. 그리고 너는 네 포도원의 이삭을 줍지 말라, 너는 네 포도원의 떨어진 열매를 그러모으지 마라. 너는 그것들을 가난한 자와 낯선 자를 위해 남겨라.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

영적 의미

더 나아가 위의 영적 선처럼 영적 진리의 경우도 자신에게서 근원된 듯 여기지 말고, 그 진리로 결과된 선도 자아로부터인 듯 여기지 말라. 이는 거룩한 선행인 바 이것이 외적으로 충분히 실감될 때 오염된다. 반대로 이 사항들은 선행의 일 가운데서, 그리고 어떤 이기적 동기가 없는 선행으로부터의 신앙 속에서 주님께 바쳐져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포도원을 속속들이 훑트지 않음이란 영적 선처럼 영적 진리도 취급된다는 것 즉 그것이 자아에서 비롯된 줄 여기지 말라는 것을; 포도원의 떨어진 포도를 줍지 말라란 거룩한 선행을 결과되게 하는 선이 외적으로 충분히 실감될 때 위와 같이 오염되어서는 안 됨을; 가난한 자와 외국인이 줍도록 그것을 남겨둠이란 위의 경우와 반대로 위의 사항들은 이기적인 어떤 동기가 없는 선행으로부터 오는 신앙과 선행의 일 속에서 주님께 바쳐져야 함을;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란 인간은 선과 진리, 그 둘의 결합 속에서 건설되고 확증되어야 함을 뜻한다. A.C. 9139, 10669, 9273, 1071, 10669, 4955, 10669, 2146, 2001, 7192.

11절. 너희는 훔치지 말라. 너는 거짓되게 장사하지 말라, 서로에게 거짓말하지 마라.

영적 의미

주님께 속한 것을 자신의 것으로 돌리는 것은 신성한 질서에 위배된다. 즉 거짓 가운데 있으면서 동시에 진리 가운데 있다거나 악 가운데 있으면서 동시에 선 가운데 있어서는 안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훔치지 말라란 주님에 속하는 것을 자아로부터 라고 하는 것은 신성한 질서에 위배됨을, 사기치지 말라란 거짓 가운데 있지 말고 진리 가운데 있으라는 것을, 이 사람이 저 사람을 속이지 말라란 악 가운데 있지 말고 선 가운데 있으라는 것을 뜻한다. A.C. 8906, 683, 8908.

12절.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을 수단으로 거짓되게 맹세하지 말라, 그럴 경우 너는 네 하느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이다. 나는 주님이다.

영적 의미

위선으로 진리에 어긋나게 자신을 확증하는 것은 영적 인간을 위해 합법적인 게 아니다. 이는 본질적으로 주님이 신성한 선이심을 가르치는 진리를 모독하는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의 이름으로 거짓되게 맹세해서 하느님의 이름을 모독한다는 것은 진리를 알고 이해하는 영적 인간이 위선으로 자신이 확증되게 하려는 것은 불법인데, 그 이유는 이 짓은 본질적으로 신성한 선이신 주님을 가르치는 진리를 모독하기 때문이다. “나는 주”란 취소할 수 없는 확증이란 뜻이다. A.C. 8882, 2001, 2842, 7192.

13절. 너는 네 이웃을 압제하지 말라, 그로부터 강탈하지 말라. 고용된 종의 품삯을 밤새 아침까지 너와 함께 머무르게 말라.

영적 의미

영적 인간은 선행에 위반되는 짓을 해서는 안 되는 바 자기 형제의 신앙 속에 있는 진리를 형제에게서 박탈되게 해서는 안 된다. 보상을 목적으로 자연적 인간 수준에서 선을 행하는 사람은 그 상태에 자신이 있음을 확증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비록 그 선행이 거듭나기 이전의 선용이라 해도, 자연적 수준의 삶이라는 희미함에서 있어졌다 해도 이는 천국적 선이 실감될 때 반드시 거절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웃을 억압함이란 선행을 위반함을; 그 사람으로부터 강탈함이란 그가 지닌 신앙 속의 진리를 강탈함을; 품삯을 받는 종이란 보상을 목적으로 선을 행하는 사람을, 아침까지 삯을 미루지 말라란 위의 상태가 자신 속에 있음을 확증해서는 안 됨을, 그 이유는 비록 위의 상태가 거듭나기 전의 선용이고 자연적 삶이라는 희미한 상태에서였다 해도 위 상태는 천국적 선이 실감될 때 거절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삯을 지니고 있지 말라란 계속되기 위해 예비 상태를 허용함을, 보상을 목적으로 선을 행하는 상태는 단지 자연적인 상태일 뿐이다. 밤은 이런 상태의 희미함을, 아침은 천국적 선이 실감될 때 있어지는 상태를 말한다. A.C. 9196, 8906, 8002, 3816, 9787, 9787.

14절.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 것이고, 소경 앞에 장애물을 두지 말라, 그러나 너는 네 하느님을 경외하라. 나는 주이다

영적 의미

누군가가 선을 지각하는데 부족하다거나 또는 진리를 이해함이 부족하다 해도 영적 인간은 그를 따돌려서는 안 된다. 그와 반대로 그는 이런 사람을 향해 사랑과 선행을 실행해서 자신이 선 가운데 더 굳게 서 있도록 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귀머거리에게 저주하지 말라란 선을 지각하는데 부족한 이들을 따돌리지 말라는 것을; 소경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라란 진리를 이해하는데 부족한 이들이라고 따돌리지 말라는 것을; 네 하느님을 두려워함이란 위와 같은 사람을 향해 선행과 사랑을 실시하라는 것을; “나는 너의 주”라 함은 위와 같은 과정을 수단으로 영적 인간은 자신을 선 가운데 더욱 강하게 건설해야 함을 뜻한다. A.C. 9397-3, 2383, 2836, 2001, 7192.

15절. 너희는 재판에서 공정하지 않게 실시하지 마라. 너는 가난한 자라 해서 편애하지 말고, 힘있는 자라 해서 존경하지 말라. 그러나 너는 공정하게 네 이웃을 판결하라.

영적 의미

참으로 영적 인간은 모든 부정(불공평)을 피해야 하는 바 신중함 없이 선을 행해서도 안 되고 지적인 힘만으로 진리를 증진시키려 해서도 안 된다. 그는 모든 선이 지탱되도록 선행과 진리를 결합시켜 행동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공정하지 못한 재판을 하지 말라란 참으로 영적 인간은 진리를 수단으로 선에 의거 행동함으로 모든 불공정을 피하라는 것을; 가난한 자(영세민)을 두둔하지 않음이란 식별력 없이는 선을 행하지 말라를; 힘(세력) 있는 자를 봐주지 말라란 지적 능력만을 총동원함으로 진리를 증진시키려 들지 말라를; 이웃을 정의롭게 재판함이란 모든 선을 지지함에 있어 선행에 진리를 결속시켜 행하라는 뜻이다. A.C. 2258, 8315, 2258.

16절. 너는 네 백성 사이에서 나쁜 소문을 퍼트리려고 오르고 내려가고 하지 말라. 너는 네 이웃의 피를 (보려고) 맞서지 말라. 나는 주이다.

영적 의미

그는 타인에게 친구인 체하여 선행을 위반해서도 안 되고 타인이 선 쪽으로 인도해주는 진리의 상태에 아직 있다면 그의 잘못들을 꼬집어내는 비열한 수준으로 내려와서도 안 된다. 타인이 주님으로부터 가지게 된 것 즉 선과 결합하는데 필요한 내면의 진리를 받는 것을 방해함으로 선 가운데 있는 이들의 영적 삶을 부패시키면 안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나쁜 소문을 퍼트림이란 타인에게 친절을 먼저 옷입힘으로 선행과 진리를 위반하여 타인의 잘못을 노출시키는 야비함으로 인격이 처지는 것을 말하는데 그 이유는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것(tale-beareing or slandering)은 악한 동기로부터 타인에 관해 지닌 지식을 상품화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 히브리 단어는 나쁜 소문을 퍼뜨림이라는 뜻만 아니라 동사로 사용될 경우 상인처럼 여행하는 뜻도 지니기 때문이다. 겨레 가운데 선 쪽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상태에 있는 사람을; 네 이웃을 죽을 죄인으로(피를 보려고) 고발함이란 자기들 속의 선과 결합하는데 필요한 내면의 진리를 영접하려는 것을 뒤집음으로 선 가운데 있는 이들의 영적 삶을 부패시킴을; “나는 주”란 그들의 선이 주님으로부터임을 확증함을 뜻한다. A.C. 4815, 2967, 5312, 2425, 9127, 4926, 7192.

17절. 너는 네 심정에서 네 형제를 미워하지 말라. 너는 네 이웃을 확실하게 꾸짖어라, 그리고 그 사람 때문에 죄를 낳지 말라.

영적 의미

그렇다. 그는 선에서 내향적으로 비켜서서는 안 된다. 오히려 외향으로 선을 실습해야 한다. 즉 참된 것을 사랑함으로부터 잘못된 것을 질책하는데 주저해서는 안 되며 형제 안에 악이 있을 경우 자연적 친절함 때문에 그 악을 너그러이 봐주면 안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심정으로 형제를 미워말라란 선으로부터 내향적으로 비켜서지 말라를, 이웃의 잘못을 타일러 줌이란 참된 것을 사랑함으로부터 잘못된 것을 질책하는데 주저하지 말라를, 그래야 그 죄에 대한 책임을 벗는다란 형제 안에서 악이 인식될 때 자연적 친절 때문에 악을 너그러이 봐주어 넘어가지 말라는 뜻인데 그 이유는 “죄에 대한 책임”이란 이 절의 경우 견책하지 않음으로 잘못을 행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 때문, because of him”이란 진리와 관계 없는 선행 또는 자연적 친절에서 오는 느낌을 뜻하기 때문이다. A.C. 3488, 2360, 7542, 4700, 2425, 9937, 2425.

18절. 너는 네 백성의 후손들에 맞서 원한을 품거나 복수하려 들지 말라, 그러나 너는 네 자신 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 나는 주이다.

영적 의미

영적 인간은 악에 악으로 되돌리거나, 이기적 충동으로부터서는 진리이든 거짓이든 타인의 견해에 반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는 선행으로부터 만사를 해결해야 한다. 그 이유는 주님이 선행의 본질되시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원수를 갚지 말라란 악을 악으로 되돌리지 않음을, 네 백성의 후손(동족)에게 앙심을 품지 말라란 다른 이의 견해가 진리이든 설사 거짓이든 이기적 충동으로부터서는 그 사람의 견해에 반대하지 말라를,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함이란 선행으로부터 만사를 처리하는 것을, “나는 주”란 주님은 본질적으로 사랑과 선행이심을 뜻한다. A.C. 1259, 489, 8223, 2425, 2001.

19절. 너희는 내 법령들을 지킬 것이다. 너는 종류가 다른 것이 생겨나게 네 가축을 놔두지 말라. 너는 두 종류의 씨를 네 들판에 뿌리지 말라. 두 종류의 직물을 뒤섞은 옷을 네 위에 걸치지 말 라.

영적 의미

영적 인간은 외적 사항들에 있는 신성한 질서의 법칙을 모두 준수해야 한다. 즉 선행의 선에 악을 섞는 것 그것이 자연적 수준이든 영적 수준이든 섞음질로 선을 모독해서는 안 되고, 거짓을 진리에 첨가함으로 진리를 모독해서도 안 되며, 참된 교리와 거짓을 동시에 고백함으로 이중적인 품성을 바깥쪽에서도 지니면 안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내 법령을 지킴이란 외적 사랑 속에 있는 신성한 질서의 법칙을 모두 준수함을; 종류가 다른 것과 교미시키지 않음이란 선행의 선이 자연적 수준이든 영적이든 그 선에 악을 혼합시켜 모독하지 말라는 것, 다시 말해 불법적인 결합으로 선을 모독하지 말라는 것을; 서로 다른 종자를 들판에 섞어 뿌리지 말라란 진리에 거짓을 혼합함으로 모독하지 말라는 것 또는 선의 상태에 있음으로 모독하지 말라는 것, 동시에 선 쪽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상태에 있음으로 모독하지 말라는 것을; 종류가 다른 실을 섞어 짠 옷을 걸치지 말라란 참된 교리와 거짓을 동시에 고백함으로 바깥쪽으로 이중 품성에 있지 말라는 것을 뜻한다. A.C. 8357, 5913,6126, 9182, 9274, 2576-15, 9274.

20절. 그리고 여인과 육체적으로 눕는 자가 있을 경우이다, 그녀가 여종이고, 남편과 약혼되어 있다, 그리고 전혀 몸값을 치루지 않았고, 자유가 그녀에게 주어지지 않고 있을 경우, 그들은 처벌되어진다. 그들은 죽음에 놓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녀가 자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거듭나는 과정 중에 자연적 인간의 불완전한 애착을 영적 인간의 선한 애착과 결합시킬 경우, 그가 아직은 악에서 충분히 해방되지 않았거나 전적으로 자유함에서 행동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해도 그는 자기 잘못의 탓으로 비록 단죄되지 않겠지만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충동의 영향 밑에 있었고 영적 자유에서 심사숙고된 선택으로부터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종인 여인과 잠자리에 든다는 것은 영적 인간 속의 선한 애착이 자연적 인간 속의 불완전한 애착과 결합하는 것을; 남자와 약혼함이란 거듭나는 과정에 있음을; 아직 몸값을 치루지 않았음이란 아직 악에서 구원되지 않았음을; 아직 자유를 얻지 못했음이란 아직 전적으로 자유로부터 행동할 수 없음을; 처벌됨 또는 “문책함”이란 위와 같은 잘못들로 인한 결과로 고통받음을; 죽이지는 말라란 절대적으로는 단죄되지 않음을; 그 여자가 자유인이 아니기 때문이란 충동의 영향 밑에 있어왔다는 것, 영적 자유에서 심사숙고된 선택으로 행동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A.C. 6348, 3654, 8890, 8996, 6279, 696, 2242, 5605, 892.

21절. 그리고 그는 주님에게, 만남의 천막 문으로, 자기의 죄가 있음의 제물을 가져올 것이다, 죄가 있음의 제물은 수양이다.

영적 의미

이 사람은 자기 악과 잘못을 제거하기 위해 주님을 예배해야 하되 그 예배에서 모든 선은 천국을 통해 주님으로부터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때 내적 인간 안에 있는 순진의 선을 수단으로 주님과의 결합이 있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수양을 죄가 있음의 제물로 만남의 천막 문으로 가져와 주님께 바침이란 위와 같은 사람은 자기 악과 잘못을 제거하기 위해 주님을 예배하되 모든 선은 천국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존재함을 인정함으로 예배해야 한다. 이때 내적 인간 안에 있는 순진의 선을 수단으로 그분과의 결합이 있어진다. A.C. 3400, 2356, 3540-3, 10042.

22절. 그리고 성직자는 그가 죄지은 그의 죄를 위하여 주님 앞에서 죄가 있음의 제물의 수양을 가지고 그를 위하여 보상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지었던 자기 죄를 용서받는다.

영적 의미

그러면 선 때문에 외적 인간은 내적 인간과 재회하는데 이때 그는 자기의 약함 때문에 죄를 지었는 바 주님을 신실하게 인정하는 회개를 통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그의 악은 주님에 의해 삭제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죄가 있음의 제물로 수양을 가지고 그를 위해 보상을 만들어 그가 용서됨이란 위의 선 때문에 외적 인간은 회개를 통해 내적 인간과 재회하게 된다는 것, 그가 자기 약함으로 죄를 지었지만 아직 주님을 진실로 인정하고 있다면 회개를 통해 그 악은 주님에 의해 삭제된다는 것을 뜻한다. A.C. 9946, 10042, 868.

23절. 그리고 너희가 토지에 들어가서, 그리고 식품을 위해 온갖 나무들을 심을 때, 너희는 그것의 열매를 할례받지 못한 것 같이 간주할 것이다. 그것들은 삼 년을 할례받지 아니한 것으로 너희에게 있을 것이다. 그것을 먹어서는 안 된다.

영적 의미

회개를 통해 선이라는 천국적 삶 속에 있게 되면 선용을 위해 진리가 선으로부터 실습되는데 이 때 인정해야 하는 것이 있다. 즉 제 아무리 완벽한 인간의 행동에도 상대적으로 불순함이 있다는 것, 이는 거듭나는 기간 뿐 아니라 천국 자체도 그러하다는 것, 이기적 사랑으로부터 파생될 경우 인간도 천사도 선을 자기 것으로 결코 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 토지에 들어감이란 회개를 통해 선이라는 천국적 삶을 실감함을; 거기서 식품을 위해 온갖 나무를 심는다란 삶에 충당하기 위해 다각도로 진리가 선으로부터 실시됨을; 그 열매를 할례받지 못한 것 같이 여김이란 인간이 제아무리 완벽한 행동을 했다해도 상대적으로 불순함이 있음을 인정함을; 삼 년 동안의 열매를 할례받지 않은 것으로 여김이란 거듭나는 동안, 그리고 천국 그 자체에서까지도 선은 주님으로부터만 계속 존재함을; 먹지 말라란 이기적 사랑으로부터 선은 자기 것으로 삼아질 수 없음을 말한다. A.C. 3705, 8326, 2039-6, 2788, 2187.

24절. 그러나 사 년째 해에 그것의 모든 열매는 거룩할 것인 즉, 주님에게 드려 찬양할 것이다.

영적 의미

선과 진리가 충만되게 결합된 상태에 있고, 이기적 삶이 사그러져 있을 경우 선은 진실로 실감되겠지만 심정으로부터 그 선의 근원을 주님께 돌려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넷째 해에 열리는 열매는 거룩하므로 주님을 찬양하는데 바쳐져야 함이란 선과 진리의 결합이 충만된 상태에 있고 이기적 삶이 수그러들었을 경우 선은 진실로 실감되어 심정으로부터 주님께 선의 근원을 돌린다는 뜻이다. A.C. 10136, 2146, 8042, 3880-4.

25절. 그리고 다섯 째 해에 너희는 그것의 열매를 먹을 것인데, 너희에게 소출이 증가되리라.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

영적 의미

그 다음 따라 오는 사항은 주님이 아껴두신 것이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음을 수단으로 외적 인간 안에 이식될 것인데 이는 선과 진리가 더 풍부히 증가되기 위해서 이고, 그럼으로 주님을 더욱 충만되게 인정하고, 그 결과 그분을 사랑함에 대해 더욱 강하게 확증받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다섯 째 해에 열리는 열매를 먹는다란 선을 자기 것 삼음으로 아껴두신 것들이 외적 인간 안에 충분히 이식됨을, 소출이 증가됨이란 선이 풍부하게 증가되는 질서 안에 있음을, “나는 주”라 함은 그분에 대한 사랑을 더욱 강하게 확증함을 뜻한다. A.C. 5291, 6156, 2187, 8326, 4481, 2001, 7192.

26절. 너희는 피와 더불어 어떤 것도 먹지 말라. 너희는 마술을 사용하지 말라, 점을 치지 말라.

영적 의미

영적 인간은 선에 악을 섞음으로 선을 모독하거나 거짓을 만들어내 내적, 외적 인간 속의 진리와 섞음으로 거짓이 진리처럼, 악이 선인 듯 나타나게 해서는 안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피가 든 채로는 어떤 것도 먹지 말라란 영적 인간은 선에 악을 섞음으로 선을 모독하지 말라를, 마술을 쓰거나 점을 치지 말라란 거짓이 진리인 듯, 악이 선인 듯 나타나게 만들므로해서 내적, 외적으로 있는 진리를 모독하지 말라는 것을 뜻한다. A.C. 10033, 7297, 683.

27절. 너희는 너희 머리의 모퉁이를 둥글게 하지 말라, 너는 네 수염의 모퉁이를 손상되게 말라.

영적 의미

내적으로 악을 가지고 선을 썩게 하는 것, 외적으로 거짓을 가지고 진리를 썩게 하는 것은 불법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머리의 모퉁이(관자놀이)의 머리를 둥글게 깍지 말고, 수염의 모퉁이를 손상되게 말라(구레나룻을 밀지 말라)란 내적 측면에서는 악을 가지고 선을 부패시키고, 외적으로는 거짓을 가지고 진리를 부패시키는 것은 불법이다는 뜻이다. A.C. 3301, 5247-3.

28절. 너희는 너희 몸에 죽은 자를 위하여 어떤 베임도 만들지 마라. 너는 네 위에 표 자국을 내지 마라. 나는 주이다.

영적 의미

영적 인간은 자신이 외적 고행을 치루어 악을 제거할 수 있다고 착각하거나 외적 예배만으로도 항구적인 선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상상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모든 참된 예배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순수한 선을 수단으로 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너희 몸에 죽은 자를 위하여 어떤 베임도 만들지 말라란 영적 인간은 외적 고행을 한다고 자기 악이 제거될 수 있다고 상상하거나 외적 예배를 잘 지키면 선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상상해선 안 된다. 거기에는 내적으로 거룩함이 없다. “나는 주”란 모든 진정한 예배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순수한 선을 수단으로 존재한다를 뜻한다. A.C. 9056, 9386, 81, 272, 2001.

29절. 네 딸을 창녀로 만들어 그녀를 더럽히지 마라. 하여, 토지가 매춘으로 타락되어 사악함이 가득차지 않게 하라.

영적 의미

그러므로 진리에 관한 애착이 왜곡됨으로 모독되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왜곡시킴이 증가하고 번성하여 악까지 확증해버리는 일이 없기 위해서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네 딸을 창녀로 더럽히지 말라. 그래야 그 토지가 매춘으로 타락되어 사악함이 가득차지 않을 것이다란 진리를 위한 애착이 거짓으로 모독되지 않아야 이런 거짓들이 증가되어 넘실거리지 않으며 악 역시 확증되지 않을 것임을 뜻한다. A.C. 489, 6348, 2905.

30절. 너희는 내 안식일을 지킬 것이다, 그리고 내 성소를 소중히 하라. 나는 주이다.

영적 의미

그 반면 천국적 선의 상태는 항구적이어야 하고 천국적 진리의 상태는 언제나 거룩해 있어야 하는 바, 그 이유는 주님이 거룩함 자체이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안식을 지키고 성소를 소중히 여김이란 위와 반대로 천국적 선의 상태가 항구적이고 천국적 진리의 상태가 언제나 거룩해 있을 것임을, “나는 주”란 주님만이 거룩함 자체이시다는 뜻이다. A.C. 8887, 2001, 2190.

31절. 너희는 영들과 친밀하다는 그들에게 돌아서지 말고, 마법사에게 돌아서지 말라. 그들을 추종하여 그것들로 말미암아 더럽혀지지 않게 하라.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

영적 의미

영적 인간은 악이 선 같이 보이게, 거짓이 진리인 듯 여겨지게 하는 거꾸로 된 질서를 수단으로 선을 증진시키겠다고 시도하지 말라. 위와 같은 생각 속에 주입되는 악령은 반드시 퇴치해야 하는 바 불순함만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인간에 의해 확증되어질 것은 오로지 선과 진리의 결합 뿐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영들과 친밀한 자나 마법사(죽은 사람의 혼백을 불러내는 것이나 점쟁이와) 가까이하지 말라란 질서에 위배되는 일 즉 악을 선처럼 보이게, 거짓이 진리처럼 여기게 함으로 선을 증진시키려 시도하지 말라는 것을, 위의 일을 추구하거나 그것 가지고 불결해지지 말라란 위와 같은 생각들 안에 주입되는 악령은 불순함을 생산하는 바 그것에 저항해야 함을,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란 선과 진리의 결합만이 인간에 의해 확증되어야 함을 뜻한다. A.C. 7297, 9188, 2001, 7192.

32절. 너는 백발의 머리 앞에서 일어설 것이다, 그리고 노인의 얼굴을 존경하라, 그리고 너는 네 하느님을 경외하라. 나는 주이다.

영적 의미

거듭나는 삶을 진보시켜 간 사람들의 총명, 성숙한 이들에게 있는 신성한 지혜를 인정하고 존경해야 한다. 신성한 지혜 자체를 존경해서 그것이 신성한 선 안에서 건립되게 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백발의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존경하라란 지혜가 완숙된 이들에게 있는 신성한 지혜, 거듭나는 삶을 발전시킨 이들의 총명을 인정하여 존경하라는 것을; 하느님을 경외하라란 신성한 지혜 자체를 존경하라를; “나는 주”란 신성한 선 안에서의 건설을 뜻한다. 6524-5, 2001, 3718-9, 2001.

33절. 그리고 만일 낯선 자가 너의 토지에서 너와 함께 체류한다면, 너희는 그에게 나쁘게 대하지 말라.

영적 의미

영적 인간은 교회에 있는 가르침을 요구하는 이들에 세세한 관심을 가져서 그가 자기들의 선을 증진시키는데 게으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너희 땅에 함께 사는 외국인을 괴롭히지 말라란 가르침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세세한 관심을 두어 그들이 자기들 선을 배가하는데 게을러지지 않도록 하라는 뜻이다. A.C. 7908.

34절. 너와 더불어 체류하는 낯선 자는 너희 사이에 있는 본토박이 같이 너에게 있어야 한다, 그리고 너는 그를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그 이유는 너희가 이집트의 토지에서 낯선 자들이였기 때문이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

영적 의미

참으로, 가르침을 필요로 하는 이들도 선 가운데 있는 이들이나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그들을 향하여 선행이 실시되어져야 하리라. 그 이유는 애당초 모든 이는 자연적일 뿐인 인간 수준에 얽매여 있었는 바 가르침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어차피 인간이 완전해지려면 선과 진리 모두를 주님에게서 받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너와 더불어 체류하는 낯선 자를 본토박이처럼 대해줘라란 가르침을 필요로 하는 이들은 선 가운데 있는 이들처럼 평가하라는 것을, 체류자를 네 몸같이 사랑하라란 선행은 위의 사람들을 향해 실시되어야 함을, “너도 이집트 땅에서 낯선 자들 이었다”란 모든 이는 애당초 자연적 인간의 굴레 아래 있었는 바, 가르침이 필요하다는 것,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란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 모두는 인간이 완전해지기 위해 필요하다는 뜻이다. A.C. 7908, 3705,2425, 5406, 4749, 2001.

35절. 너희는 재판에서, 계량에서, 무게를 담에서, 치수를 잼에서 부당함이 없게 실시하라.

영적 의미

엄격한 정의는 내적이든, 내면에 속한 사항이든, 외적 사항이든, 진리에 의거, 진리를 수단으로 선행이 실시될 때 있어져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재판할 때, 물건을 재고 달고 되고 할 때 부정하게 하지 말라란 엄격한 정의는 선행이 실시되는 동안 진리에 의거 진리에 따라 있어야 하는데 이는 내적, 내면, 외적 사항 모두에 해당된다는 뜻이다. A.C. 5755, 8357, 3104.

36절. 올바른 저울, 올바른 추, 올바른 에바(ephah), 그리고 올바른 힌(hin)을 너희는 가져라.

영적 의미

그러므로 영적 인간은 내적으로 공평과 정의를, 외적으로 정의와 공평을 연습해야 한다. 그 이유는 이 목적을 위해 주님께서 인류를 구속하셨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바른 저울, 바른 추, 바른 에바, 바른 힌을 써야 한다“란 영적 인간은 내적으로 공평과 정의를; 외적으로 정의와 공평을 연습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란 위 목적을 위해 주님께서 인류를 구속하셨음을 뜻한다. A.C. 3116, 3104, 10136, 8864-6.

37절. 그리고 너희는 모든 나의 법령들을 준수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나의 판결들, 그리고 그것들을 실시할 것이다. 나는 주이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인간은 외향적으로나 내향적으로나 행동면에서나 거룩해져야 한다. 이는 주님의 본질이 신성한 선이심을 인정함으로서만 결과될 수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의 모든 법령, 모든 판결들을 준수해 그대로 살라란 인간은 바깥쪽, 안쪽, 모든 행동에서 온전히 거룩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주”란 위 사항은 주님의 본질이 신성한 선이심을 인정함으로써만 결과 될 수 있음을 뜻한다. A.C. 8357, 5755, 2001.

19장의 종합적 고찰

이 장의 요약을 정독해보면 알게 되는 바, 첫 8절까지에서 언급되는 것 즉 내적 의미의 시리즈 과정으로 자주 되돌아 가도록 하는 언급이 있다는 것, 그래서 이는 불필요한 반복인 듯 여겨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 안에서 이런 반복은 없다. 본문의 경우에서도 주목해야 할 중요한 것들이 새로운 연결, 새로운 빛에서 표현되고 있다. 예를 들면 아홉 개의 서로 다른 요점들이 8절까지에서 명명되고 있고 그 각각은 시리즈의 질서와 완전함이 영적 의미에서 보여지게 진행되고 있음을 주시해야 하리라.
이 문단에서 가장 흥미 있는 사항은 아마 평화 제물에 관해 말해지는 것이리라 생각된다. 이 구절을 있는 글자 그대로 추켜들어 생각한다면 주어진 방향을 위해 만족할 만한 근거를 발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마 어떤 깨끗한 상황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범죄자에게 발표될 파면장 같은 심각함은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는 정도는 쉽게 알 것이라 본다. 내적 의미에 의해서도 이런 사항은 보여지지만 이보다 더 많은 사항들이 있다. 첫째 날과 둘째 날은 인간이 자기 심판을 준비하는 상태들이고, 셋째 날은 그 심판의 상태를 명시하고 있고 평화 제물은 인간이 준비 중인 상태 동안 예배와 자기 것으로 삼음을 위해 있어지는 자유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심판 과정은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도록 가져다 놓는 것으로 구성되어진다. 이 때의 자유로운 상태는 앞의 자유 상태와 동일하지 않다. 후자의 경우 선과 악 사이의 자유로운 결정, 뿐만 아니라 애착 또는 사랑에 관한 자유로운 선택이다. 그러나 지금 그것은 건립된 통치하는 사랑만으로 있어지는 자유일 뿐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잘 숙고해 보아야 하는 것은 왜 셋째 날에 남아 있는 평화 제물은 불에 사르라고 하셨는가에 대해서이다. 그 이유는 선을 통치하는 사랑은 모든 이기적인 사랑을 거절하고, 악을 통치하는 사랑은 그 사랑을 채택하는 바 시리즈가 기술하는 그대로 그 결과가 있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는 불이란 위 두 가지 사랑과 상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말씀의 내적 의미가 천사들의 서술을 확증해 주는지 우리로 알게 해준다. 심판의 과정에서 결정되는 것이 통치하는 사랑인 바 우리 모두를 위한 교훈은 명확해진다. 즉 우리가 천국에 가고자 한다면 오늘이라 불리는 지금 일을 해야만 한다. 그 이유는 밤이 이내 오기 때문이고 낮에 구원을 위해 작업해 놓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밤에 그 일을 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선한 자는 천국에 그의 영원한 평화 제물이 있으나 사악한 자는 그렇지 못하다. 5절과 6절의 영적 가르침을 비교해보고 9절과 10절의 영적 가르침도 잘 주시해 보면 세부적으로 연결을 이루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들판과 포도원의 수확에 관한 언급 모두가 심판의 주제가 계속됨을 보여주는데, 이는 어떻게 선행과 신앙이 선한 자와 더불어 우세해지는 가와 어떻게 외적 인간의 의지와 이해함이 내적 인간의 것과 조화를 이루는지 예증해 주기 위한 것이다.
11절로부터 시작되는 도덕적 가르침은 글자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말씀의 내적 의미가 때로 수준을 낮출 때도 있는 듯 보일는지 모르지만 오히려 이런 방법으로 해서 내적 의미 자체가 더 명백해진다. 그러면서도 두 의미의 확실한 구분은 유지되고 있다. 예를 들면 훔치지 말라는 글자대로의 의미와 이의 영적 의미인 것 즉 주님에 속한 것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지 말라는 의미 사이에는 비슷한 게 없다. 그럼에도 명백한 바는 심사숙고해서 훔치는 사람, 그 행위를 저지르겠다고 고집부리는 사람은 자기 생명이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주님에 대한 자기 책무를 부정한다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주님을 진실로 인정하는 사람은 훔치지도, 거짓말하지도, 본문이 금지하는 어떤 것들도 심사숙고 하려들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식별하는 바, 계명을 지키는 것, 그것을 지키지 않아서 닥치는 결과를 두려워해서 이든, 순종하는 게 자신에게 이익이 되어서이든 계명을 지킴보다 선하고 참된 원리들로 자신을 건립하는 것이 선한 삶으로의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행함으로 우리는 잔과 접시의 안쪽을 먼저 깨끗하게 해서 그 다음 바깥쪽도 깨끗해지게 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마태 26:26). 그렇다해도 영적으로 뿐만 아니라 글자적으로 내적 깨끗함과 외적 깨끗함은 따로 따로 구분될 필요가 있다. 비록 내적 순수함이 외적 순수함의 원인이 되어준다 해도 서로는 구분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품값을 다음 날 아침까지 미루는 구절의 요점에 주목해 보게 된다. 사회적 측면에서 품값을 미루었다라고 해서 큰 피해를 입혔다고 말할 수는 없다. 때로 전혀 피해가 없을 수도 있다. 아예 어제 일한 것을 아침에 계산해 줄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영적으로 자신에게 고용된 종의 품삯을 지참하고 있도록 자신을 허용한다는 것은 유용한 것을 계속해가려는 것인데 그 목적이 선용 자체가 아닌 선용에 따른 보상을 기대하고 계속하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상태도 준비 상태인 바 허용은 가능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유용함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을 실감할 때 그런데도 보상을 어느 정도 기대하고 있다 해도 그것만을 위해 더 이상 일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선용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선용의 결과로 보상받기를 기대하는 것을 자기의 통치 원리로 삼을 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일 그가 선용을 사랑하는 가운데 있다면 그 사랑은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 같아서 그는 밤의 어두움과 비슷한 보상을 기대하는 사랑 가운데에는 계속 머무를 수 없다. 이 점에 관해 지면을 더 할애할 수 없어 생략하기로 하고 불법적인 결합에 관해 살피기로 하자.
거듭나는 동안의 인간은 보다 낮은 상태, 예비적인 상태에 있는 바 그 상태가 미치는 영향력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반면 한쪽에서는 보다 높은 상태가 점점 강세해지고 있다. 이런 상태가 불법적인 결합의 원인이 된다. 따라서 우리의 선한 애착들, 그것이 자연적 수준 이든 영적 수준 이든 악에 오염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종류가 다른 가축을 교미시키지 말라는 뜻에 함축된 의미이다. 애착 속의 참된 것은 내적, 외적인 지적 능력들에도 응용되어야 한다. 그래서 만일 우리가 진리를 원리로 채택했다면, 또는 정직한 심정, 선한 심정이라는 들판에 말씀이라는 씨를 뿌리겠다고 작정했다면 우리는 거짓을 경작하는 것 역시 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우리는 한쪽으로는 높은 상태를 실감하고 다른 쪽으로는 낮은 상태를 실감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진정한 교리와 거짓된 교리를 동시에 믿을 수 없다는 것, 또는 이미 잘 진보된 삶 속에 있는 순수한 진리에 피상적인 진리를 혼합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제 위 가르침의 큰 가치를 보고 느꼈으리라 생각된다. 따라서 그 가르침을 실제 사용해 가는 것이 얼마나 절실한 필수 사항인지까지 자연히 알게 되리라 본다. 더불어 우리가 얼마나 불완전한지, 삶의 여행을 하는 가운데 더 높은 느낌이나 더 나은 판단은 쉽사리 질책하고 마는 일도 얼마나 흔한지 되돌아보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는 사항이 이미 몸을 바친 여종과의 불법적인 결합에서 보여준다. 여종이란 여주인이 시키는 것 즉 영적 애착이 시키는 대로 할 경우 완전한 자연적 애착이겠지만 본문의 경우에서는 그와 반대인 바 불완전한 자연적 애착을 의미한다. 이 대목을 영적 차원에서 더 살피면 더욱 흥미있게 된다. 이 여자는 남편을 가졌다. 우리의 것인 자연적 애착은 권위나 힘만으로 계속 점검되고 종속된 상태에 있으면서 장차 천국적인 결혼을 향해 진보해 가는 상태에 있다. 그렇긴 해도 이 애착은 악에서 충분히 해방된 상태 또는 선이라는 순수하게 자유로운 상태에 도달되어 있지는 않다. 본문 구절의 경우 영적 인간이 불법적으로 자신을 오염시키는 것, 또는 영적 삶은 아직은 불완전한 자연적 삶과 결합시키는 결정적인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이것은 종교적인 생활 속에서 우리 모두가 자칫 저지르기 쉬운 행위에 대한 간단한 그림이다. 인간은 어느 순간 자신의 자태를 바꾸어 적과 뒷거래를 하기 일쑤이고 그러다 보면 자기에게 어떤 사항은 허용된다는 꾀임에 넌지시 넘어가 주는 바 악한 애착이 주는 쾌락에 포로가 된다 (민수기 25:1-3). 그런 와중에서도 더 나은 우리 본성은 이렇게 역설하고 있다. 우리가 타락된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더 높은 본성이 멸해진 것은 아니라는 것, 따라서 우리가 회개하여 주님을 예배하라고 타이른다. 이리하여 있게되는 사항들이 21절 이하의 제물을 바치는 모습에서 나타나는데 이에 대한 영적 의미는 앞 장들에서 설명된 바 있으므로 생략한다.
23절부터의 내용은 위 절에 있는 제물과의 어떤 연결이 글자에 나타나지도 않은 채 배열을 이루고 있다. 우리가 시험에 빠져 있었던 이후 우리의 상태는 승강되는데 이 때 우리는 자신의 천국적인 상태가 무엇일 것인지에 관해 더 올바르고 더 특별한 지각을 얻는다. 이 때 더 이상한 것은 애당초 예상했던 자신의 천국적 상태와 다르다는 것이다. 이 문단의 교훈에서 알게되는 것은 설사 우리가 천국에 들어갔다 해도 처음에는 자신들의 불완전함을 지니고 있고 얼마나 자신이 형성한 선이 부족한지 실감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 상태는 주님과 충분히 결합하기 위한 준비 상태이고 이후 넷째, 다섯째 해로 명시된 아껴두신 것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삼게 된다. 다시 주목해 볼 것은, 셋째, 넷째 사항에 관한 것인데 이는 글자에서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적 의미에서는 보여진다. 그나마 일반적 진리만이 보여지는데 천국에서는 어떤 종류의 악도 발생치 않는다는 것이다. 이 시리즈를 주목해 볼 경우 알게 되는 또 한 가지는 모독에 관한 세 가지 연속적인 수준들 즉 의지와 이해함, 그리고 심사숙고된 진리의 왜곡, 그렇게 해서 악을 확증하는 위험에 빠지는 사항에 관해서이다. 이것 또한 천국에서는 거행될 수는 없다. 오히려 이와 반대되는 영원한 안식만이 거기에 있고 거기서는 진리가 선과 결합하는 것, 주님만이 예배된다. 사실 이런 사항 모두는 인간 삶의 가장 깊은 수준에 관한 것이다. 이와 유사한 어떤 것, 중간 수준이 31-32절에서 말해지고 있다. 이 절에 뒤이어 마지막까지에는 최말단 수준에 이르는 아주 명백하게 해주는 언급이 주어지고 있다. 각 수준에 관한 언급들은 “나는 주”라는 엄한 확언과 확증으로 매듭짓고 있다.
천사들 삶의 모든 수준은 아주 정밀하게 구별되는데 이 구별은 일반 측면 뿐 아니라 세부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더구나 모든 이런 수준들은 최말단에서 까지 충만된 상태에 있는데 이를 36-37절이 강조해서 말하고 있다. 이제 간략히 상기해볼 사항은 이 세상에서의 우리 삶은 천국 삶을 준비하기 위해서라는 것, 결과적으로 이 시리즈는 지상의 진정한 교회 상태를 낮은 수준에서 묘사하도록 여러 가지를 채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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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8장 해석

레위기 18장

영적 의미의 요약

* 교회인은 자연적 인간 수준 또는 교회 속의 악과 거짓에 따라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 선과 진리이신 주님과 결합하여 그분만을 예배해야 한다, 1-5절.
*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인간은 악과 거짓에 결합함으로 선과 진리를 모독하는 것이 금하여진다, 6절.
* 세부적으로도 사생아가 출생하는 식의 결합들을 수단으로 선과 진리를 모독해서도 안 된다. 이것이 시리즈로 기술되고 있다. 이를 수단으로 부패된 교회가 더 더러워지면서 어느 것이 선과 악인지 실감할 수 없게 한다, 7-25절.
* 반대로 영적 교회인은 순수한 선과 진리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않도록, 그분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의 천국 결혼을 결과하는 주님께의 순종이 될 수 없게 하는 것들, 즉 역겨운 행위를 피해서 자신이 너무 썩지 않도록 신성한 진리에 따라 살아야만 한다, 26-30절.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기를,

영적 의미

주님께서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지각을 주시어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speak)이란 유입을; 모세는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말함(say)은 지각을 말한다. (2001, 2951, 7010, 1791, 1822)

2절.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야기하라,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희의 하느님 주님이다.

영적 의미

영적 교회인에 대한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으로부터 그는 주님이 유일한 하느님이시고, 그분으로부터 모든 선과 진리가 결합된다는 것을 배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라란 영적 교회인에 대한 가르침, 이로부터 그는 배우게 된다는 것을;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란 주님이 유일한 하느님이시고 그분으로부터 모든 선과 진리가 결합된다는 것을 말한다. (7010, 3654, 10355, 1791, 1822, 2001)

3절. 너희가 거주했던 이집트의 토지로부터의 행실들을 따라 너희는 행동하지 말라. 그리고 내가 너희를 데려갈 가나안의 토지의 행실들을 따라 행동하지 말라. 너희는 그들의 법령들에서 걷지 말라.

영적 의미

그러므로 그는 자기가 태어난 자연적일 뿐인 상태 속의 악과 거짓에 따라서 살지 말 것이며, 영적 교회인에 의해 계승되어 온 부패된 교회 속의 악과 거짓에 따라서도 살지 말 것, 더 이상 어떤 외적인 예배도, 우상을 숭배하는 것도 안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너희는 너희가 살던 이집트 토지의 행실들을 따라 하지 말라란 우리가 태어난 상태인 자연적일 뿐인 상태 속의 거짓과 악들에 따라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내가 너희를 이끌고 들어갈 가나안 토지의 행실들을 따라 하지 말라란 부패된 교회의 악과 거짓에 따르지 말 것, 이것들이 영적 교회에 계승된다는 것을, 그들의 규정을 따르지 말라란 더 이상 외적이고 우상 숭배적으로 예배하지 말라는 것을 뜻한다. (5755, 5276, 1293, 1868, 8420, 7884, 8357)

4절. 내 판단들을 너희는 실시하라. 그리고 내 법령들에서 걷기 위해 그것을 너희는 지켜라. 나는 너희의 하느님 주님이시다.

영적 의미

위와 반대로 주님은 말씀으로부터 오는 내적, 외적 진리를 수단으로, 이 진리를 일상 생활에서 순종함으로 예배되어진다. 그 이유는 그분은 선과 진리가 결합한 것으로, 선으로부터 파생된 진리로서,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신 분으로 명백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의 판단을 따르는 것, 그분의 법령을 지켜 걷는다는 것은 말씀을 수단으로 또는 내적, 외적 진리를 수단으로 또는 일상 생활에서 순종함을 수단으로 그분께 예배하는 것을;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라고 말하신 이유는 주님께서 그분 자신을 선과 진리가 결합되어 계신 분으로, 선에서 파생되는 진리이신 분으로,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하모니를 이루신 분으로 나타내 보여주시기 위해서이다. (5755, 8357, 2001)

5절. 너희는 그러므로 내 법령들을, 그리고 내 판단들을 준수할 것이다. 사람이 이것을 실시하면, 그는 그것들 안에서 살 것이다. 나는 주님이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인간은 처음에 외적 예배에서 시작하되 내적 인간이 되어 가는 법칙에 따라 내적 인간 쪽으로 인도되어간다. 그리하여 그는 주님을 특별히 신성한 선이 되시는 분으로 인정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의 규정과 판단을 지킨다는 것은 인간은 내적 예배를 인도하는 외적 예배에 먼저 종사한다는 것을, 그것을 행하고 그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내적 인간이 되게 해주는 법칙에 순종함을, “나는 주이시다”란 그가 주님을 신성한 선으로 특별히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8357, 5755, 2001)

6절. 너희는 (그들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려고 자기와 가까운 친척의 누구에게도 접근하지 말 것이다. 나는 주님이시다.

영적 의미

그런고로 영적 인간은 결합을 통해 유전적, 실제적인 악과 거짓들을 수단으로 거룩한 진리를 모독하는 것이 금하여진다. 그 이유가 신성한 선이 요구하시는 바, 선은 진리와 결합하는 것만이 합법적이라고 하시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자기와 가까운 친척의 누구에게도 접근하지 말라란 결과적으로 영적 인간은 결합을 수단으로 유전적 또는 실제적인 악과 거짓으로 오염시켜 거룩한 진리를 모독하는 것이 금하여져 있다는 것을, “나는 주이시다”란 신성한 선이 요구하시는 바, 선은 진리와 더불어서만 합법적으로 결합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이런 결합을 확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6348, 4434, 9960, 2001, 7192)

7절. 네 아버지의 벌거벗음, 네 어머니의 벌거벗음 조차도, 너희는 덮개가 벗겨있게 말라. 그녀는 너의 어머니이다. 너는 그녀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

영적 의미

그러므로 선을 유전적 악으로 직접 오염시켜 모독하던가 그 악을 본질적인 거짓과 결합시킴으로 모독하는 것은 신성한 질서에 반대된다. 이 거짓은 새로운 악의 형체의 외적 근원이 되고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네 아버지의 벌거벗음, 네 어머니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란 본질적인 악과 결합됨을 통해 유전적 악으로 직접 오염시켜 선을 모독하는 것은 신성한 질서에 반대된다는 것을, 그 이유는 이런 간음으로 선이 모독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유전적인 악을, 어머니는 그 악과 결합된 거짓을 뜻하고 있다. “그 여자가 네 어미라”란 이 거짓은 악의 새로운 형체의 외적 근원이라는 것을; 그 여자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 것이란 오염과 폭로를 말한다. (6348, 3703-20, 1815, 1895, 9960-10)

8절. 네 아버지의 아내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너는 벗기지 말라. 이것은 네 아버지의 벌거벗음이다.

영적 의미

또한 외적 인간 안에 있는 유전적인 악과 결합되어 있는 거짓으로 오염시켜 선을 모독하는 것도 불법적이다. 그 이유는 이와 같은 거짓도 유전적 악의 또 다른 형체일 뿐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네 아버지의 아내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란 외적 인간 안에 있는 유전적인 악과 결합되어 있는 거짓으로 오염시켜 선을 모독하는 것은 불법이다는 뜻이다. 아버지란 유전적 악을, 아비의 아내란 외적 인간 안에서 유전적 악과 결합된 거짓을, 그것은 곧 네 아버지의 벌거벗음이다란 이런 거짓도 유전적 악의 또 다른 형체일 뿐이다를 말하는데 그 이유는 진리가 선의 형체이듯 거짓은 악의 형체이기 때문이다. (6348, 3703-20, 409, 1369, 9637)

9절. 네 아버지의 딸, 또는 네 어머니의 딸, 집에서 출생했든, 밖에서 출생했든, 네 누이의 벌거벗음, 그들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너는 벗기지 말라.

영적 의미

이해함 안에 있는 거짓으로 오염시켜 진리를 모독하는 것, 그것이 내면의 유전적 애착으로부터이든, 외면으로부터이든, 이 거짓은 내적 또는 외적 인간 안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바 불법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누이란 이해함 안에 있는 거짓을 말하는데 그 이유는 좋은 의미에서 누이는 지적인 진리를 뜻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딸 또는 어머니의 딸이란 내면의 유전적 악 또는 외면의 유전적 악에서 진행됨을; 집에서 출생했든 밖에서 출생했든 이란 내적 인간 또는 외적 인간 또는 교회 안에서 활성화되어 있음을 말하는데 이 경우는 본토박이와 체류하는 사람의 의미에서와 비슷하다. 그들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면 안 된다란 진리의 왜곡과 위와 같은 품성을 모독함은 불법이라는 뜻이다. (1475, 568, 1815, 1895)

10절. 네 아들의 딸, 또는 네 딸의 딸의 벌거벗음이라 해도, 그들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너는 벗기지 말라. 그 이유가 그들의 것은 네 자신의 벌거벗음이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실제의 악 또는 거짓으로부터 튀어나오는 악한 애착으로 오염시켜 진리를 모독하는 것도 불법이다. 그 이유는 이런 애착은 실제의 악이 더 증강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들의 딸, 딸의 딸이란 실제의 거짓과 악에서 튀어나오는 악한 애착을 뜻한다. 아들은 거짓을, 딸은 악을 의미한다. 이 구절에서 실제의 거짓과 악이다고 해석할 수 있는 이유는 본문의 아들, 딸은 인간 고유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버지의 자녀 또는 어머니의 자녀라는 의미와 구별된다. 그들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란 이런 오염으로 진리를 모독하고 왜곡하는 것은 불법이다는 것을; 그것은 곧 너 자신의 벌거벗음이다란 이런 종류의 악한 애착은 실제의 악이 강도가 더 높아진 것임을 말한다. (568, 6348, 313, 494)

11절. 네 아버지의 아내의 딸의 벌거벗음, 네 아버지로부터의 출생인 바, 그녀는 네 누이이다, 너는 그녀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

영적 의미

외적 인간에 있는 거짓과 결합된 악에서 튀어나오는 유전적 악의 애착으로 오염시켜 진리를 모독하는 것도 불법이다. 그 이유는 이해함 안에서 진리가 합법적으로 결합되어질 수 없게 한 실제의 거짓이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의 아내의 경우 밀접한 관계는 못되는 바, 친어머니의 경우 외적 인간 안에 있는 유전적 악과 결합된 거짓을 말하고(8절 참조), 아버지의 아내의 딸은 유전적 악과 거짓의 결합에서 발생하는 외적 인간 안에 있는 유전적인 악한 애착을 말한다. “그녀는 네 누이이다”란 이 애착은 이해함 안에 있는 실제의 거짓을 말한다 (9절 참조). 그녀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란 진리를 이런 악으로 오염시켜 모독하고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568, 1475, 6348)

12절. 너는 네 아버지의 누이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 그녀는 네 아버지의 가까운 친척되는 여인이다.

영적 의미

내적 인간과는 직접 결합되지는 않았어도 이해함 안에 있는 거짓으로 오염시켜 진리를 모독하는 것도 불법이다. 그 이유는 이것도 유전적 악과 같은 평면에 있는 악이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버지의 누이(고모)란 직접적인 결합은 없지만 내적 인간에서 유전적 악과 합병되어 있는 이해함 안의 거짓을 뜻한다. 네 아비의 가까운 친척되는 여인이다란 이것도 유전적 악과 같은 평면에 있는 거짓임을,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란 진리를 위의 거짓에 대한 애착으로 오염시켜 모독하고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3703-20, 1475, 6348)

13절. 너는 네 어머니의 자매들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 그 이유가 그녀는 네 어머니의 가까운 친척 여인이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외적 인간과 직접 결합되지는 않았어도 유전적 악과 결연 관계인 이해함 속의 거짓으로 오염시켜 진리를 모독하는 것도 불법이다. 그 이유는 위와 같다.

세부적 영적 의미

어머니의 자매(이모)란 외적 인간 안에서 직접적인 결합은 아니지만 유전적 악과 병합되어 있는 이해함 안의 거짓을 말한다. 네 어미와 가까운 친척 여인이다란 외적 평면에 있는 유전적 악과 같은 평면에 있는 거짓을;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겨서는 안 된다란 진리가 위의 거짓을 사랑함으로 오염되어 왜곡되거나 모독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1815, 1895, 1475, 3160, 6348)

14절. 너는 네 아버지의 형제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 너는 그의 아내에게 접근하지 말라. 그녀는 너의 아주머니(aunt)이다.

영적 의미

영적 인간이 유전적 악에서 분가한 악과 결합된 거짓을 통해 이 악으로 오염시켜 선을 모독하는 것도 불법이다. 그 이유는 유전적 생명에서 더 멀리 떨어진 바깥쪽 형체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버지의 형제(삼촌)이란 방계적인 유전적 악들을, 삼촌의 아내란 유전적 악과 결합된 거짓을, 그녀는 네 아주머니이다란 이 거짓은 더 멀리 떨어진 유전적 삶의 바깥 형체라는 것을, 그녀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란 이런 거짓으로 선을 오염시켜 모독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뜻이다. (3612, 1369, 3612, 4145, 6348)

15절. 너는 네 며느리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 그녀는 네 아들의 아내이다. 너는 그녀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

영적 의미

그가 자신의 악과 결합된 거짓으로 오염시켜 선을 모독하는 것도 불법이다. 그 이유는 이것이 위와 같이 악의 바깥 형체이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며느리란 실제의 악과 결합된 거짓을; 그녀가 네 아들의 아내이다란 이 악의 바깥쪽 형체임을;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란 이런 거짓으로 오염시켜 선을 모독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뜻이다. (4843, 10490, 3049, 5337, 9474-3, 6348)

16절. 너는 네 형제의 아내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 이것은 네 형제들의 벌거벗음이다.

영적 의미

방계에 속하는 악과 결합된 거짓으로 오염시켜 선을 모독하는 것도 불법이다. 그 이유는 이것이 위와 같이 악의 바깥 형체이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형제란 2차적인 악을; 아내란 이 악과 결합된 거짓을; 형제의 벌거벗음이란 이 악의 바깥 형체를;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란 이런 거짓으로 오염시켜 선을 모독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뜻이다. (3612, 1369, 9960-18, 3049, 5337, 9474, 6348)

17절. 너는 여인과 그녀의 딸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 너는 그녀의 아들의 딸을, 또는 그녀의 딸의 딸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려고 데려가지 말라. 그들은 가까운 친척되는 여자들이다. 이것은 사악하다.

영적 의미

실제의 악으로부터, 이 악이 거짓으로부터 이든, 악으로부터 온 악 이든 이 악으로 오염시켜 진리를 모독하는 것은 불법이다. 위 악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 오염은 악이 매우 강도 높게 된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인과 그녀의 딸이란 거짓과 거짓에서 파생된 악을; 그녀의 아들의 딸(손녀)이란 거짓으로부터 오는 악, 그 악으로부터 오는 악을; 이 악들이 연합되어 있다는 것이 그들은 한 핏줄이라는 것으로 나타내고 있고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겨서는 안 됨은 이런 악들로 오염시켜 진리를 모독하고 왜곡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사악하다란 이 악들이 매우 강하다는 뜻이다. (1369, 568, 3160, 6348)

18절. 그리고 너는 그녀의 일생 동안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그녀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겨서 그녀와 경쟁자가 되도록 그녀의 자매를 여인으로 데려오지 말라.

영적 의미

이해함 안에 있는 상충되는 거짓들이 동시에 다툼으로 오염시켜 진리를 모독하는 것도 불법이다. 왜냐면 이것은 거짓의 충돌을 야기시키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자매란 이해함 안에 있는 거짓들; 두 자매란 애착으로 서로 상층 되는 거짓들을; 경쟁자가 됨이란 거짓들의 싸움을;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란 이런 거짓들로 오염시켜 진리를 모독하고 왜곡하는 것을; 그녀가 살아있는 동안이란 거듭나는 동안 느낌과 생각들이 싸우는 상태가 활동함을 말한다. (3160, 6420, 9308, 6348, 4366-2)

19절. 너는 그녀의 불결함으로 인해 그녀가 불순해 있는 한,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

영적 의미

자연적 애착일 뿐인 것이 너무 많아 야기되는 왜곡된 진리로 오염시켜 진리를 모독하는 것도 불법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월경으로 불결한 것, 그로 인해 분리되어 있는 것이란 거듭나는 동안 자연적 애착만이 너무 풍부한 탓에 야기되는 왜곡된 진리를,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란 이런 왜곡으로 오염시켜 진리를 모독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뜻이다. (10130, 4161, 6348)

20절. 그리고 너는 네 자신이 그녀와 더불어 더럽혀지도록 네 이웃의 아내와 육체적으로 눕지 말라.

영적 의미

교회의 선을 간음하여 모독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것은 가장 크게 불순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웃의 아내와 육체적으로 눕지 말라란 가장 큰 불순함인 교회 속의 선을 간음질 함으로 모독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말이다. (6348)

21절. 너는 네 씨의 어떤 것이 몰렉에게 불을 통과하게 만들려하여 그들을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너는 네 하느님의 이름을 모독 말 것이다. 나는 주님이시다.

영적 의미

이기적 사랑을 통해 교회의 발단이 되는 진리를 왜곡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 이유는 진리는 신성한 선의 형체인 바 언제나 경건되게 붙잡고 있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네 씨의 어떤 것(자식)이 불을 통과하도록 몰렉에게 바치지 말라란 이기적 사랑을 통해 교회의 발단이 된 진리를 왜곡시켜 모독하는 것은 불법임을; 네 하느님의 이름을 모독하지 말라란 진리는 언제나 경외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데, 특별히 첨가해 말해둘 것은, 주님 안에서 인간이 신성과 결합하는 것 또는 신성한 인간을 뜻한다는 것, “나는 주님(여호와)이다”란 신성한 진리는 신성한 선의 형체임을 말한다. (1610, 934, 2468-16, 6280, 2001)

22절. 너는 여자(womankind)와 눕듯이 남자(mankind)와 눕지 말라. 이것은 역겨웁다.

영적 의미

감각적 사랑으로부터 거짓을 가지고 진리를 오염시키는 것은 불법이다. 이는 가장 타락되고 혐오되는 오염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인과 자듯 남자와 자지 말라 그것은 망측한 짓이다란 감각적 사랑으로부터 온 거짓을 가지고 진리를 오염시키는 것은 불법이요 가장 타락된 것, 혐오해야 할 것이란 뜻이다. (725, 2056, 6052, 6348)

23절. 그리고 너는 그것과 더불어 네 자신이 더럽혀지게 어떤 짐승과도 눕지 말라. 어떤 여인도 그것과 누우려고 짐승 앞에 서지 말라, 이것은 혼동이다.

영적 의미

악을 가지고 진리를 오염시키는 것, 뿐만 아니라 거짓을 가지고 선을 오염시키는 것은 일반적으로 불법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어떤 짐승하고 교접을 해서 더럽혀지지 말라, 여인도 짐승과 교접을 해서 추잡해지지 말라란 악을 가지고 진리가 오염되는 것, 뿐만 아니라 거짓을 가지고 선이 오염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모독 행위이다. (46, 1326, 6348)

24절. 너희는 이런 것들의 어떤 것에서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 그 이유는 내가 너희 앞에서 내쫓는 나라들이 이런 것들로 더럽혀 있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참으로 영적 인간은 위의 온갖 종류의 모독으로 자신이 불순해지게 해선 안 된다. 그 이유는 이것이 악을 확증하고 있는 부패된 교회인의 실지 모습이요, 신성한 진리의 능력에 의해 거절되어야만 하는 썩은 교회인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런 행위 중 어느 하나라도 저질러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란 영적 인간은 모독의 어떤 것 가지고도 자신을 불순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래서 쫓아낼 나라들이란 이상의 것들은 악으로 확증한 부패된 교회의 실제요, 신성한 진리의 힘으로 거절되어진다는 것을 말한다. (10130, 6348, 1205, 2657)

25절. 그리고 토지는 더럽혀 있다. 그러므로 나는 그것 위에 있는 그것으로부터의 불법을 방문할 것이다, 그리고 토지는 그녀의 주민들을 토해낼 것이다.

영적 의미

교회가 지독하게 썩어지면 그 썩은 결과인 고통을 감수해야 하고 더 이상 선인지 악인지를 구별하여 실감할 수 없어 완전히 모독되어 있는다.

세부적 영적 의미

토지는 더럽혀 있다란 거절된 교회는 심각하게 썩어진다는 것을; 불법을 방문함이란 썩어진 결과로 고통받을 것을; 그 땅이 거주민을 토해 내리라란 이 교회는 선이든 악이든 적절히 실감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10130, 696, 9937, 9527, 3705)

26절. 너희는 그러므로 내 법령들과 내 판단들을 준수하라, 그리고 이런 역겨운 것의 어떤 것도 실시하지 말라. 본토박이 이든, 너희 사이에 체류하는 낯선 사람 이든 실행하지 말라.

영적 의미

그러나 진실로 영적 인간은 내적, 외적으로 신성한 법에 순종적이다. 그래서 모든 모독, 그것이 내적 교회에 속하든 외적 교회에 속하든 모두 혐오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의 법령과 판단들을 준수하고 역겨운 짓을 하지 않음이란 진실로 영적 인간은 내, 외적으로 신성한 법에 순종하고, 모든 모독하는 것을 역겨워한다는 것을, 본토박이 이든 너희 가운데 체류하는 낯선 사람 이든 이란 그가 내적 교회에 속하든지 외적 교회에 속하든지를 뜻한다. (8387, 6052, 8013)

27절. (모든 이런 역겨운 짓들을 토지의 사람들이 했었다, 이것이 너희 앞에 있었던 짓들이다, 그리고 토지는 더럽혀져 있다.)

영적 의미

위 같은 부패는 이기적 사랑과 세상적 사랑에 있는 이들에게 공통된 것, 이 두 사랑은 유전적 사랑인데, 인간이 실제의 악을 심사숙고해서 탐닉하여 선택할 때 이 사랑은 처음으로 활동을 개시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런 온갖 역겨운 짓은 너희에 앞서 살던 사람들이 했던 것이다”란 이런 부패된 것들은 이기적이고 세상적 사랑 안에 있는 이들에게 공통된 짓이라는 뜻, 너희에 앞서 있었던 것들이란 공동체로서, 개인적으로서도 교회에 앞서 있었던 영적인 것들, 그런고로 유전적 속성으로부터 오는 상태들이라는 뜻임을; 그 땅이 더럽혀졌다란 이기적이고 세상에 속한 뒤집힌 사람들로부터 파생된 실제의 악들이라는 뜻이다. (1205, 693, 8551, 10130)

28절. 토지가 너희 앞에 있었던 나라를 토해내 듯, 너희가 토지를 더럽혀 토지가 너희 역시 토해내지 않게 하라.

영적 의미

과거 뒤집혀진 교회가 그러했듯이 그도 역시 진리를 고집하여 썩게 하여 모독해 간다.

세부적 영적 의미

“너희 보다 앞서 거기에 살던 민족을 토해 냈듯이 너희도 그 땅을 더럽히면 그 땅이 너희를 토해 내리라”란 뒤집혀진 옛 교회가 그러했듯이 영적 인간도 진리를 고집 부려 부패시키면 모독하여 더러워진다 라는 뜻이다. (9527, 10130)

29절. 이런 역겨운 짓의 어떤 것이라도 실시한 자는 누구든지, 그것들을 행한 혼은 정녕 자기 백성 사이로부터 잘리운다.

영적 의미

이런 망측한 짓들 가운데 어느 한 가지라도 저지른 사람은 그가 누구든지 간에 겨레로부터 추방당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런 역겨운 짓을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란 본 장에서 묘사된 바 같이 선하고 참된 것을 모독하는 모든 사람을; 백성으로부터 잘리움이란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로부터 철저히 분리됨을 말한다. (6052, 5302, 1259)

30절. 그러므로 너희는 내 명령(charge)을 지켜라, 하여, 너희는 이런 역겨운 관습들을 행치 말라, 이것이 너희 앞에 있었다, 그리고 너희는 자신을 그것으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 하느님 주님이시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영적 인간은 잘 순종해서 옛 부패된 교회처럼 극도로 모독함으로 불순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선과 진리가 하나되어 계신 주님만을 예배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께서 지키라고 한 것을 잘 지킴이란 순종해야 함을, 어떤 역겨운 관습을 따라 하지 말라란 옛 썩어진 교회들처럼 극도로 모독하지 않도록을, 스스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는다란 불순해지지 않음을,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란 주님만이 선과 진리가 하나되어 계신 분으로 예배되어야 함을 뜻한다. (8830, 8513, 6052, 8550, 8551, 10130, 2001)

18장의 종합적 고찰

이 장의 주제와 관련되는 서문은 매우 의미심장한데 그 이유는 신성한 분께서 계속적으로 세 번씩 그분을 선포하시기 때문이다. 우선 그분께서는 사랑과 지혜가 하나된 한 분 신성한 존재로서의 자연적 인간을 그분 스스로 명백히 나타내고 있으신다. 이로 인해 우리는 그분이 무한하게 영광스러우신 신성한 사람이신 분으로 자연스럽게 생각되게 되어있고 그러므로 해서 사랑과 지혜, 선과 진리 또는 애착과 총명이 유한한 인간을 구성하게 됨을 이해하게 해준다. 이는 깊이 숙고해 보지 않고 단순하게만 생각하는 자연적 인간 뿐 아니라 식별해내는 영적 인간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이렇게 말한 이유는 제 4절의 내적 의미가 “선에서 파생된 진리,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신 분으로서” 두 번째 그분을 선포하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선포하신 이유가 더 있다. 자연적 수준에서 영적 수준으로 옮겨갈 때 그 사람이 선의 상태로 진행되는 것은 진리를 수단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연적 수준이 영적 수준과 결합함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세 번째 선포(21절)에서는 “나는 여호와이다”라고만 언급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영적 수준에서 천적 수준으로 되는 것은 순종을 수단으로, 진리와 선이 결합함으로, 진리를 수단으로 하되 선에 근거해 살아가기 때문이다. 거듭나고 있는 모든 이는 위 과정을 통과해야만 하고 그렇게 해 감으로서만 그는 본문에 언급되는 여러 가지 특별한 방법으로 선함이나 진리를 모독하려는 자신 속의 경향성을 극복해 갈 수 있다.
주제 전체가 몇 마디 말로 우선 표현되고 있고 이 표현에 이어 “나는 주님(여호와)이다”가 다시 반복되면서 넓은 측면에서 금하는 것을 확실히 해 두시는데 이에 덧붙여 주님은 거듭나는 사람과 더불어서만, 마치 선과 진리가 신성한 존재 안에서 하나되어 있듯, 합법적으로 결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 차례로 넘어가 생각해 보자. 충분히 거듭난 사람은 벗겨진 자신의 영적인 벌거벗음이 영원히 주님에 의해 보존된다는 사실 속에 심오한 진리 하나가 포함되어 있다. 그 벌거벗음이란 그의 생명에 있는 유전적으로 받은 악과 자신이 실제로 만들어낸 악들이요, 사실 이것은 폐지되어질 수 없고 영원히 남게 되지만 활동하지 않는 상태로 머물고 노출되지도 않는다. 본문에 나열된 금지된 것을 준행할 때에야 어떤 상황에서도 선과 진리를 모독할 가능성을 배제하고 모든 불순함에서 자유로워져 극도로 완전하고 순수한 천사들 같은 삶을 영위한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이와 동시에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떨어져서는 지상 위 교회 안의 누구도, 천국 안의 어느 천사라도 악밖에 가진 게 없고 주님으로부터 온 사랑과 선행으로 덮여 있던 이미 획득한 악한 상태와 감추어 놓였던 유전적 악까지 벌거벗겨지고 말아서 선과 진리를 모독하는 데로 노출된다는 것, 우리는 지상 생활동안 모든 악과 거짓을 거부해야 할 것, 동시에 모든 선함과 진리를 사랑해서 실습하여 그 둘을 진정으로 결혼시켜야 죄를 벗는다는 것들이다.
위와 같은 사항은 본문에 포함된 또 다른 요점을 생각하게 하고 있다. 본문에 게재된 불법적인 연결들, 통상적으로도 허용되지 않는 결혼들이 우리로 되새겨 보게 하는 것이 있다. 즉 천국적인 결혼, 주님과 그분의 교회와의 결혼, 일반 측면에서인 선함과 진리의 결혼은 세부적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로 간주되어야 하리라는 것이다. 모든 선은 그에 반대되는 악이 있고, 모든 진리도 그와 반대되는 거짓이 있는데 교인들은 이렇게 천국적인 것에 반대되는 것을 가지고 자신을 더럽히고 모독을 범하지 않아야 할 뿐 아니라 모든 선은 반드시 그에 어울리는 진리와, 모든 진리는 그에 어울리는 선과 결합되어야 하는 바 그 외 여느 다른 것은 안 된다. 그 이유는 그것들이 진정한 결혼이 아닌 것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남자이든 여자이든 각 개인의 생명은 서로 구분되는 바 이는 되풀이 될 수 없고 선 또는 진리가 지니는 구분된 형체 역시 되풀이 되어 서로 바뀔 수도 없는 바, 남녀는 각기 선 또는 진리와 상응되는 진정되고 영원한 결혼이 존재할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상응되는 이 결혼이 이 세상에서 결과되지 않는다면 천국에서도 그렇게 결과되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결혼에 관한 같은 성질의 두 마음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은 마태복음에 있는 말씀, “하느님께서 짝 지워 놓은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 로부터 알 수 있다(19:4-6). 이 구절로부터 알 수 있는 바, 진정한 결혼은 거듭남과 서로 손을 맞잡고 나아간다는 것, 지상의 결혼은 진정한 천국의 결혼을 옷입고 있는 듯 표현한다는 것, 사랑이 어떠하다 해도 거룩하다는 것이다.
위의 선함과 진리의 결혼에 관한 위반들이 어떤 모독을 구성하게 되는가를 첨가해서 우리 앞에 있는 주제를 취급하는 가운데 내적 의미들로부터 그 이유를 이제 관찰해 보게 된다. 이 모든 것들은 한 가지 일반적 서술 즉 인간의 유전적 생명에는 악밖에 없다는 서술에 포함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아이들의 좋은 기질이나 나쁜 기질은 부모로부터 유전된다는 것, 그런고로 진리 또는 거짓을 획득하는 좋은 능력 역시 유전된다고 귀결 짓는다. 이런 기질이나 능력이 우리에게 확인되는 사항임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렇다해도 인간은 출생시 악밖에 없다고 말해야 하는데 어째서 그럴까? 유한한 인간 존재인 이상 어느 누구도 선함을 상속해 줄 수 없다. 선함의 유일한 근원은 주님 뿐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함은 부모로부터 아이들에게 유전될리 만무이다. 오로지 거듭남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받을 수밖에 없다. 소위 사람들이 유전적으로 받았다고 불리는 선은 유전적으로 받아진 악에 의해 오염되어진다. 다음 성경 구절을 참고로 더 생각해 보기 바란다. 마태복음 19:17; 요한 3:5,6; 열왕기상 8:46.
위에서 살핀 바를 본문과 연결 지어볼 때 명백해지는 하나는, 용어 아버지, 어머니, 형제, 자매 등등이 상응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단어들은 좋은 의미일 경우 주님으로부터 오는 다양한 애착과 총명의 형체를 명시하지만 본문의 경우 나쁜 의미인 바 다양한 악과 거짓들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지 않는 바리사이파인을 두고 이렇게 말하셨다. “너희는 악마의 자식들이다. 그래서 너희는 그 아비의 욕망대로 하려고 한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고 진리 쪽에 서 본 적이 없다. 그에게는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거짓말을 할 때마다 제 본성을 드러낸다. 그는 정녕 거짓말쟁이이며 거짓말의 아비이기 때문이다”(요한 8:44). 여기서 “네 아비가 악마”라 말한 것은 어떤 개인적 악마를 지칭하는 게 아니라 집합체로서의 모든 지옥, 지옥을 만들어 주는 이기적 사랑이라는 원리이다. 따라서 용어 아버지란 모든 악과 거짓은 이기적 사랑에서 나온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요한복음 8장 44절은 본 장에 있는 아버지라는 용어에 주어진 의미와 아버지와 관련되는 모든 친척 관계되는 것들의 의미에 대해서까지 충분한 근거를 제시해 주고 있다. 주님의 교회인으로서 우리는 자신 스스로 본문에 상징화되어 있는 모든 악과 거짓에 열심히 대적해야 한다. 그것들과 단호하게 싸워야 한다. 본문에 게재된 자연적, 영적 차원에서의 결합들로 해서 천국적인 것들, 결혼에 관계된 진정한 사랑의 순수함과 거룩함을 모독하도록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되리라. 이 각오를 더 확고히 해주는 구절 중 하나를 읽어보자.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나는 아들은 아버지와 맞서고 딸은 어머니와, 며느리는 시어머니와 서로 맞서게 하려고 왔다. 집안 식구가 바로 자기 원수다”(마태 10:34-36).
이제 본문을 살피는 결론 부분으로서 마지막 몇 절에서 사용되는 말씀, “이 모든 역겨운 짓들”이 대표하는 의미인 실지의 악과 유전적 악과를 구별해 보자. 그 이유가 이에 대하여는 주의를 기울여 기억해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부모나 선조로부터 자연적인 선을 물려받았다고 해도 그 선은 그 사람의 천국적 생명의 어떤 부분이 되어 그를 구원해 주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유전적으로 받은 어떤 악한 상태도 그 사람을 지옥 가도록 정죄하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왜 그렇게 되는 걸까? 그 이유는 어느 누구도 어떤 아이 속에 있는 유전적으로 받은 특이한 조건이 무엇이다 라고 말할 수 없고, 그가 이런 조건을 벗어날 수 없다 라고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린이들은 이 문제에 관한 책임에서 자유로워 있다. 오로지 모든 사람은 유전적 경향성들로 해서 스스로 악을 채용해서 생산할 경우, 다시 말해 질서의 법칙을 자신 스스로 위반한 결과인 새로운 악의 형체에만 책임이 있다 (에스겔 18:20). 이와 연결되는 다음 서술은 매우 유익하리라 본다. “유아로 죽은 뒤 성인이 된 어떤 사람이 천국에 있었는데 그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자기가 지닌 선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게 아니라 원래 자기 속에 있었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해서 그는 자신에게 선천적으로 지녔었던 악한 삶으로 되돌려 보내졌다. 그 다음 이 상황이 나로 하여금 지각하게 한 것은 그가 남을 통치하고 싶어하는 바램을 가졌다는 것, 그가 음탕한 빛을 만들었다는 것, 이것은 그의 부모로부터 온 유전적으로 파생된 악으로부터 초래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위와 같을 뿐이라는 것을 인정하자 마자 그는 전과 같이 천사들에게 다시 받아들여졌다. 어느 누구도 유전적으로 받은 악 때문에 저 세상에서 고통받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 악은 그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그에 대해 책임이 없다. 오로지 그는 자신이 저지른 악 때문에 오는 벌로 고통받는다. 이것은 그 사람 자신의 것인 바, 위에서 말한 바 같이 유전적인 악을 자기 것으로 삼은 실제적인 삶에 비례된다”(A.C. 2307, 966). 거듭나는 과정에서 단지 자연적일 뿐인 선한 기질이 사용되는 것에 대하여는 아래 인용문에서 알 수 있을는지 모른다. “진리에 관한 자연적인 선은 개혁되기 전에는 영적인 선 즉 신앙의 선, 선행의 선이 아니다. 그러므로 영적 선을 받기 위해서 인간은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 거듭남이 결과되는 사이에 그에게 우선 붙어 있는 것은 순수한 진리 그 자체로부터 라기 보다는 또 다른 근원으로부터 온 진리인데 이 진리는 위로 부합되지는 못하고 단지 순수한 진리들을 소개하는 역할을 한다. 소개가 끝나면 순수하지 않은 진리들은 분리되어 진다… 이는 마치 과일이 열리는 과정 즉 열린 열매의 처음 단계는 맛없는 쥬스로 꽉 차 있는데 이렇게 순수하지 않은 쥬스는 달콤한 쥬스를 위한 수단이 되는 바, 후자가 진행되어 가면서 전자는 사라지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자연적 수준의 인간은 거듭난다. 인간의 자연적 선 그 자체만 볼 경우 그 선은 주인과 종의 관계 같이 합리적으로 선을 기쁘게 섬기거나 순종하려 들지 않고 오로지 명령으로 간주할 뿐이다. 그러므로 질서 있게 진행되는 바, 고분고분해지고 기꺼이 섬기는 상태로 가려면 그것이 지닌 강한 욕망(현세에의 욕망)이 약해질 때까지 시험이나 황폐해지는 상황을 수단으로 쉴새 없이 고뇌를 감수해야 한다. 그 다음 주님으로부터 내적 인간을 통해 선행과 신앙의 선이 유입됨으로 해서 그것은 부드러워지고 유전적으로 받은 선은 근절되어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선이 이식된다. 이식된 선 안에 신앙의 진리들이 우리도 모르게 박혀진다. 이는 마치 인간의 심정에 삽입된 기질(fibre)같은데, 이 기질을 통해 새로운 쥬스가 산출되어져서 새로운 심정이 점차 자라 오른다”(A.C. 3470). 그러므로 우리는 마지막 구절, 영적 의미에서나 글자 그대로에서나 모두에게 정직 성실하게 직시해 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에게 유익한 것, 진정한 천국 상태인 선함과 진리 그리고 선용의 순수한 상태를 위해 노력한 댓가로 수확하기를 바래고 이는 오로지 거듭남을 수단으로, 거듭남에 수반되는 깨끗해짐으로, 더욱이 오직 주님으로부터서 만 달성될 수 있다.

레위기 17장 해석

레위기 17장

영적 의미 요약

* 선과 진리의 모든 수준에 있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밝히 알게 하시는 사항이 있다. 만일 예배할 수 있는 그들의 힘이 천국을 통해 그분께로부터 오고 있음을 그들이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거룩한 선과 진리의 법칙을 위반한다는 것, 그 이유는 모든 진정한 예배는 내적 인간과 외적 인간이 조화를 이루도록 선으로부터 진실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1-5절.
* 이런 예배만이 진리가 선과 결합하게 해주고, 선행 없는 신앙을 제거해주는 바, 그것만이 항구적이고 영원하다, 6-7절.
* 그러므로 이런 예배를 갖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주님께서는 신성한 진리들로부터, 교회로부터 분리시키신다, 8-9절.
* 악과 거짓을 혼합시킴으로 거룩한 선행을 위반하는 사람은 자신을 주님에게서 돌리게 하고 진리로부터 자신을 분리한다. 그 이유가 선행은 교회의 생명인바 외적 예배는 반드시 내적 예배인 교회의 생명과 조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10-12절.
* 설득(persuasion)을 원리로 선 또는 진리를 자기 것으로 삼으려는데 대하여, 단지 자연적으로부터의 설득일 경우, 악에 오염된 선으로부터의 설득일 경우, 13-16절.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주님께서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지각을 주시어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여호와)란 그분의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speaking)이란 유입을; 모세는 말씀 또는 신성한 진리를; 말하심(saying)이란 지각을 각각 뜻한다. (2001, 2951, 7010, 1791, 1822)

2절. 아론에게, 그리고 그의 아들들에게,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후손에게 이야기하라,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라, 즉 이것은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이다, 말하기를,

영적 의미

가르침이 유입과 계몽을 수단으로 천적수준의 선과 진리 안에 있는 이들에게, 그리고 영적 수준의 선과 진리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바, 이로부터 다음 사항이 보여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모세가 말함이란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하는 훈육을; 아론에게란 선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를; 그의 아들들이란 진리가운데 있는 이들에게를; 이스라엘 백성이란 영적인 선과 진리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시다”라고 말함(saying)은 유입과 보여진 것으로부터의 예증을 말한다. (7010, 10355, 9946, 3654, 5486, 5732, 1791, 1822)

3절. 이스라엘의 집으로부터 있는 자는 사람은 누구든지, 진영 안에서 이든, 진영 밖에서 이든 소, 또는 어린 양, 또는 염소를 죽일 경우,

영적 의미

자연적 선으로부터 또는 천적 선으로부터 또는 영적 선으로부터 이든지, 교회 내에서 이든지 교회 밖에서 이든지 주님을 예배하고자 준비하는 사람은 누구나

세부적 영적 의미

제물로 하려고 동물을 죽이는 어떤 사람이란 누군가가 예배를 준비 할 경우를; 소(ox)나 어린 양이나 염소란 자연적, 천적, 영적 선을 관계적 측면에서 뜻한다. 진영 안에서 이든 진영 밖에서 이든 이란 교회 안에서이든 밖에서 이든을 뜻하는데, 그 이유는 진영(camp)은 천국을 뜻하는 바, 그로부터 오는 교회도 의미하기 때문이다. (10024, 10132, 10038)

4절. 그리고 그것을 만남의 문으로 가져와 주님에게 봉헌물로 그것을 바치지 않을 경우이다, 즉 피는 그 사람에게 귀속되어질 것이다. 그는 피를 흘렸다. 그리고 그는 자기 백성 사이로부터 잘리울 것이다.

영적 의미

자연적 선으로부터 또는 천적 선으로부터 또는 영적 선으로부터 이든지, 교회 내에서 이든지 교회 밖에서 이든지 주님을 예배하고자 준비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는 거룩한 선과 거룩한 진리에 위반되고, 그럼으로 해서 그는 자신을 천국과 교회로부터 분리시킨다.

세부적 영적 의미

만남의 천막 문에 제물을 가져오지 않음이란 천국을 통해 주님과 결합함을 수단으로 예배할 능력을 받게 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음을, 주님의 성막 앞에서 그분께 대한 제물이란 모든 선을 가장 깊은 내면의 원리를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있다는 것을, 흘려진 피가 당사자에게 귀속된다는 것, 그리고 피를 흘리는 것이란 거룩한 선과 거룩한 진리에 위반함을, 백성으로부터 잘라져 나감이란 천국과 교회로부터 분리됨을 말한다. (2356, 3540-3, 349, 922, 9481, 374, 683, 5302, 3294-5)

5절. 그런즉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열린 들판에서 희생시키는 것, 곧 그들의 희생 제물을 가져 와라, 그들은 그것들을 주님에게, 만남의 천막의 문으로, 성직자에게 가져 오라, 그리고 그것들을 주님에게 평화 제물들의 희생 제물로 바쳐라.

영적 의미

영적 인간이 알고 계속 존속시켜가야 할 것은, 예배에 있는 모든 선한 애착 속의 기쁨과 즐거움, 그것이 신성한 선에서 분리된 듯 나타나더라도 그것은 진실로 천국을 통해 주님과 결합함으로 주님으로부터 있게 된다는 것, 그리고 이는 선을 원리로 하는 수단으로 완전한 자유 속에 있는 예배에서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백성이란 영적 인간을, 열린 들판에서 죽이려던 짐승들을 만남의 천막 문간의 주님께 가져옴이란 예배 안에 있는 모든 선한 애착 속의 기쁨과 즐거움은 마치 신성한 선으로부터 분리된 듯 나타나도 실지로는 천국을 통해 그분과 결합함을 수단으로 주님으로부터 임을 인정하는 것을, 성직자에게 가져옴이란 선을 원리로 하는 수단을, 평화 제물로 주님께 바침이란 외적 인간이 완전하게 자유로운 예배에서 내적 인간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3654, 349, 368, 369, 2356, 3540-3, 10097)

6절. 그리고 성직자는 만남의 천막의 문에서 주님의 제단 위에 피를 뿌려라, 그리고 주님에게 달콤한 향기를 위해 지방을 태워라.

영적 의미

그러므로 선으로부터의 진리와 선의 결합이 천적 선임을 인정함을 통해 결과 될 것인데, 그 이유가 주님께 깊이 감사하며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모든 시험으로부터 계속적인 힘을 생산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만남의 천막 문 앞 주님의 제단에 피를 뿌림이란 선과 진리의 결합이 결과됨이 선으로부터 임을; 지방을 태워 주님에게 향기를 풍기는 것이란 “이는 깊은 감사를 나타내는 것, 주님이 열납하시는 것, 그리고 모든 시험들로부터 계속적인 쉼을 생산하기 때문에” 천적 선의 근거를 주님께 돌리는 것을 말한다. (9946, 10047, 2356, 3540-3, 10054, 10033)

7절.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이 그것들을 따라 음행하며 숭배한 수염소에게 자기들의 희생 제물을 더 이상 바치지 말라. 이것은 그들의 세대를 통털어 그들에게 영원한 법령이다.

영적 의미

거듭나는 영적 인간은 진리를 계속 왜곡되게 하는 수단인 선행 없는 신앙의 거짓들로부터 주님을 예배하지 않을 것인 바, 그들의 외적 예배도 천국 삶의 과정에서 내적 예배와 완전한 조화를 이룰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더 이상 제물을 수염소들에게 바치지 못한다란 거듭나는 사람은 더 이상 선행 없는 신앙 속의 거짓들로부터 주님을 예배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그것들을 따라 음행을 저지른다란 위의 거짓을 수단으로 진리가 계속 왜곡되는 것을, 대대로 길이 지킬 법령이란 천국 삶의 과정에서 외적 예배는 내적 예배와 완전한 조화를 영원히 이룰 것임을 말한다. (349, 922, 4169, 2466, 7884, 9789)

8절. 그리고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이스라엘의 집안에 속한 자 이든지, 또는 그들 사이에 체류하는 낯선 사람의 집안에 속하는 자 이든, 누구든지 태워 바침, 또는 희생 제물을 바칠 경우,

영적 의미

더 나아가 천적이든 영적이든 표면적으로 주님을 예배하는데 종사하게 되는 내적 이든, 외적 이든, 영적 교회의 모든 사람에게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지각함이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들에게 말하다란 신성한 진리로부터 더 많은 지각이 있음을; 이스라엘 가문에 속한 사람이란 내적 교회에 속한 사람을; 그들 가운데 체류하는 낯선 사람이란 외적 교회에 속한 사람을; 태워 바침의 제물이나 희생 제물이란 천적이든 영적이든 주님을 예배하는데 표면에서 종사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1791, 1822, 7010, 3654, 7908, 923)

9절. 그리고 그것을 주님에게 바치려고 만남의 천막으로 가져오지 않을 경우, 이런 사람도 자기 백성으로부터 잘리울 것이다.

영적 의미

그런데 예배 할 수 있는 힘은 천적 사랑의 원리를 통해 인간이 주님과 결합함에서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그는 교회에서 분리되어지고 신성한 진리에 무지해버리고 말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만남의 천막 문으로 그것을 가져오지 않음이란 예배하는 힘은 인간이 천국을 통하여 주님과의 결합을 수단으로 있게 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을; 그 사람이 백성 사이로부터 잘리움이란 교회로부터 분리되고 신성한 진리에 무지해 있게 된다는 것을; 그 반면 주님 앞에 제물을 바침이란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을 말한다. (2356, 3540-3, 5302, 3294-5, 2001)

10절. 그리고 이스라엘의 가문에 속한 이들 이든, 또는 그들 사이에 체류하는 낯선 사람들의 집에 속한 사람 이든 어떤 방법으로 이든 피를 먹는 자에 대하여, 나는 피를 먹은 그 혼에 맞서 내 얼굴을 놓을 것이다, 그리고 그를 자기 백성 사이로부터 자를 것이다.

영적 의미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영적 교회에 속한 모든 사람이 자연적일 뿐인 사람 속의 악과 거짓을 혼합시킴으로 거룩한 선행을 위반할 경우, 주님에게 등을 돌리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진리를 모독하여 결과적으로 모든 진리에서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가문에 속한 사람이든, 그들 가운데 체류하는 낯선 사람이든 이란 영적 교회에 있는 사람이 내적으로 이든 외적으로 이든을, 어떤 방법으로든 피를 먹으면 이란 단지 자연적 일 뿐인 삶 속에 있는 악과 거짓을 혼합시킴으로 거룩한 선행을 위반 할 경우를, 주님께서 그 혼에 맞서 그분의 얼굴을 놓으시고 그를 백성 사이로부터 자른다란 그 사람이 진리를 모독한 바 주님으로부터 돌아서는 것, 그 결과 모든 진리로부터 서도 분리됨을 말한다. (3654, 7908, 1001-1003, 7599, 5302, 3294-5)

11절. 육(flesh)의 생명은 피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너희 혼들을 위한 보상을 받게 하려고 제단 위에서 너희에게 그것을 주었었다. 그 이유가 생명을 이유로 보상을 받게 하는 것은 피이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외적예배는 내적 예배와 진실로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인 바 천국적 예배가 그렇게 되어있다. 그 이유가 그 예배 속에는 신성한 진리와 신성한 선의 결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외적 인간은 내적 인간과 조화를 이루게 되는데, 그 이유는 신성한 진리가 인간을 악에서 깨끗하게 하기 때문이고, 이 깨끗해짐은 생명 자체인 신성한 선으로부터 있어지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육의 생명은 그 피에 있다란 외적 예배는 내적 예배와 진실로 하모니를 이루어야만 한다는 것을, 주님께서 제단에서 피를 주심이란 천국의 예배 역시 위와 같다는 것, 그 이유는 거기서도 신성한 진리가 신성한 선과 결합함이 있기 때문이다. 보상을 받게 함이란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이 피가 생명 또는 혼인 이유로 해서 보상을 받게 함이란 이것 역시 위와 같은데 그 이유도 신성한 진리가 악으로부터 인간을 깨끗하게 해주기 때문이고, 신성한 진리는 생명 자체인 신성한 선으로부터이기 때문이다. (156, 870, 1001, 10047, 10042ii, 3704, 4180)
위 마지막 부분을 조심스럽게 공부한다면 어떻게 해서 어떤 때는 피가 선행 또는 선을 나타내고, 어떤 때는 신앙 또는 진리를 나타내는지에 관해 이해 할 수 있게 된다. 위 모두는 주님으로부터 진행되고 있고, 한 가지 표현으로서 신성한 진리라고 불리고 있기도 하지만 인간의 생명인 선과 진리 모두는 신성한 진리 안에 존재한다.

12절. 그러므로 나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말했다, 너희의 혼은 피를 먹지 말라, 너희 사이에 체류하는 어떤 낯선 사람도 피를 먹지 말라.

영적 의미

위의 이유로 해서 주님이 영적 인간에게 가르치시는 바, 내적 인간 또는 외적 인간 안에서 거룩한 것을 모독된 것과 혼합하는 것은 불법적이라는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해줌(saying)이란 위의 이유로 인간은 주님으로부터 가르쳐진다는 것을; 너희, 너희가운데 체류하는 낯선 사람도 피를 먹지 말라란 거룩한 것을 모독된 것과 섞는 것은 내적 인간에서 이든, 외적 인간 또는 교회 이든 모두 불법이라는 뜻이다. (3654, 7304, 1001-1003, 7908)

13절. 그리고 이스라엘의 자손들로부터의 사람 이든, 그들 사이에 체류하는 낯선 사람이든, 사냥하여 먹으려 하여 어떤 짐승 또는 가금류를 가졌을 경우, 그는 그것으로부터의 피를 쏟아라, 그리고 그것을 먼지(흙, dust)로 덮을 것이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영적 교회의 모든 인간, 내적으로 이든 외적으로 이든, 설득을 원리로 해서 선에 속한 어떤 애착이나 진리에 속한 어떤 애착이든 자기 것으로 삼으려 할 때 그는 악밖에는 아무것도 없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스스로 진실되게 인정함으로 거룩한 것에서 모독된 것을 분리시켜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백성 또는 그들 사이에 체류하는 낯선 사람이란 영적 교회의 모든 사람이 내적으로 이든 외적으로 이든을; 사냥함이란 설득의 원리로 획득함을; 먹어도 좋은 짐승이나 새 란 자기 것으로 삼을는지도 모를 선이나 진리를; 피를 흘려내고 흙으로 덮는다란 자기에게는 악밖에 없어 정녕 죽을 수밖에 없음을 스스로 진실되게 인정함으로서 거룩한 것과 모독된 것을 분리시킨다는 것을 뜻한다. (3654, 7908, 3309, 40, 44, 2187, 1001-3, 9127, 249)

14절. 모든 육의 생명에 관하여, 그것의 피는 그것의 생명과 모두 하나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육의 피는 여하튼 먹지 말 것이다. 그 이유가 모든 육의 생명은 그것의 피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먹는 자는 누구든지 잘리울 것이다.

영적 의미

외적 인간 속의 모든 진정한 생명도 내적 인간 안에 있는 주님의 신성한 생명으로부터이다. 이로부터 인간에게 가르쳐지는 바 그 생명을 자기 것으로 삼음으로 해서 모독하지 말라. 그 이유는 진리 안에서 명백해지는 선이 주님으로부터 온 인간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 생명을 자신의 소유인 냥 여기는 사람은 모든 선과 진리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모든 육의 생명이 피이다란 외적 인간의 모든 순수한 생명은 내적 인간 안에 있는 주님의 신성한 생명으로부터 임을; “내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했다”란 위의 이유로 인간은 가르쳐진다는 것을; 어떤 육의 피도 먹지 말라란 생명을 자기 것으로 삼음으로 해서 모독하지 말라를; 피는 곧 모든 육(flesh)의 생명이다란 진리로 명백히 드러나지는 선은 주님으로부터 온 인간의 생명이다를; 피를 먹는 사람은 내가 백성 가운데서 자를 것이다란 생명이 자기 고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모든 선과 진리로부터 그 자신이 분리된다는 것을 말한다. (A.C 1001-1003, 3704, 4180, 3654, 7304, 1001-1003, 2187, 3704, 4180, 5302, 3294-5)

15절. 그리고 저절로 죽은 것, 또는 짐승으로부터 찢기워 죽은 것을 먹는 모든 혼 각각, 그가 본토박이 이든, 또는 낯선 사람 이든, 그는 물로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물로 자신을 목욕하라,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그 다음 그는 깨끗하다.

영적 의미

그리고 영적 교회의 모든 사람, 또는 자연적이고 영적 생명이 없는 것들을 자기 것으로 삼을 경우, 또는 부주의해서 악에 의해 피해를 당한 것을 자기 것으로 삼을 경우, 그 사람은 설사 그가 본질적으로 선해서 내적 교회나, 외적 교회 속에 있는 사람이라 해도 말씀을 수단으로 내, 외적으로 깨끗해져야 한다. 그 사람도 이런 깨끗해짐이 있도록 상태가 변할 때까지는 불순한 채 남아 있으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자연사한 짐승을 먹는 혼(soul)이란 영적 생명이 없고 단지 자연적일 뿐인 것을 자기 것으로 삼는 모든 사람을, 짐승에게 찢겨 죽은 것을 먹는 사람이란 악에 의해 피해 당한 것을 부주의해서 자기 것으로 삼는 모든 사람을, 본토박이든지 체류하는 낯선 사람이든지란 그가 내적 교회 속에 있든지 외적 교회 속에 있든지를, 옷을 빨고 물로 목욕하라, 그리고 저녁때가 되어야 불결함을 벗고 깨끗하게 된다란 말씀을 수단으로 외적, 내적으로 깨끗해짐을, 상태가 변할 때까지란 불순한 채 남아 있으나 깨끗해짐으로 변화된다는 것을 말한다. (2187, 4171, 3654, 7908, 3147, 5006, 10130, 7844, 4545)

16절. 그러나 만일 그가 그것들을 빨지 않는다, 자기 살을 목욕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는 자기 불법을 낳는다.

영적 의미

그러나 만일 그가 위 방법으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악은 여전히 그와 더불어 남아 있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옷을 빨지도 않고 목욕도 하지 않음이란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데 게으르다는 것을, 자기 불법을 낳을 것이다란 악이 그와 함께 남아 있음을 뜻한다.(3147, 5006, 9937)

레위기 17장의 종합적 고찰

이 장의 시작 부분을 사려 깊게 읽는 사람이라면 거기에 감추어 놓인 의미, 즉 영적 의미가 있다는 것을 단 번에 눈치채리라 본다. 주님을 예배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가 어느 장소에서 이건, 어느 시간 이었든 상관없이 가능해야 할 터인데 본문의 경우 진실된 예배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언급된 듯 여겨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만남의 천막 문 외의 어떤 장소에서 제물을 바치려고 시도하는 이들에게는 매우 심각한 처벌이 있을 것이라고 지시되고 있다. 그러면 여기에 포함된 내적 의미를 우리는 어떻게 알아야 한다는 말일까? 이는 말씀이 쓰여진 수단인 상응을 가지고 이해해 봄으로써만 가능할 수 있다. 그 외 어떤 안내도 받을 수가 없다. 만일 우리가 역사적 측면에서의 의미로부터 자신의 결말을 축출해 보겠다고 시도하면 혼동되어 잘못된 해석만이 그 결과가 되고야 만다. 상응의 지식을 오늘날의 우리에게 허락하신 주님께 우선 감사드리고 시작해 보자. 말씀 자체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제물의 넓은 의미는 다음 구절이 잘 나타내고 있다. “당신은 제물을 즐기지 아니하시며, 태워 바침을 드려도 받지 아니하십니다. 하느님, 내 제물은 찢어진 마음 뿐, 찢어지고 터진 마음을 당신께서 얕보지 아니하십니다” (시편 51:16, 17). 이 구절이 말하는 바, 진짜 제물에는 주님께 바치는 애착이 포함되어야 하고 이것이 여러 가지 동물들로 명시되는데, 이 동물 각각은 어떤 특별한 애착을 말하고, 어떤 사람에 의해 선택된 애착(동물)은 때나 장소에 관계 없이 주님을 섬기는데 봉헌할 수 있다.
그러나 다시 언급해야만 하는 것은, 위와 같은 것이 제물에 관한 감추어진 의미라는 것을 알 때, 왜 그 제물들이 만남의 천막 문에서가 아니면 바쳐질 수 없다 라고 말한 본문의 진짜 의미에 매우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제물을 바치는 과정에는 동물 뿐만 아니라 장소와도 상응 관계가 있고, 이에 더해서 건축물의 각 부분과의 상응까지 관계되고 있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장소들은 각기 다른 상태들을 표현한다. 게다가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이동하는 것은 상태의 변화를 말한다. 이는 아주 명확하다. 이를 본문과 연결해서 생각해 볼 경우, 비록 인간이 어느 장소에서 주님을 진실로 예배한다 해도 그들은 어느 상태에서 이든 진실되게 주님을 예배할 수 없다는 것을 즉각 인식할 수 있다. 그러면 이것은 한계 또는 금지에 속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자기의 심정과 지성이 이기적인 것들, 세상적인 것들, 또는 쾌락(pleasure)에 관한 것들로 차 있는 경우 같이 자연적일 뿐인 상태에서는 주님은 예배할 수 없다. 이 사항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 다시 말해 우리가 주님의 집에 들어 갈 때 위와 같은 생각들을 벗어 던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보편화 될 정도로 모두 알고 있다. 이로부터 수소 또는 어린 양 또는 염소를 진영 내에서 또는 진영 밖에서 또는 들판에서 죽이는데 대한 의미를 납득할 수 있다. 주님으로부터 온 우리의 선한 애착들은 교회 내에서 또는 교회 밖에서 실감해 보지도 않은 예배의 외관만에 의해서도 오염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허울 좋은 예배에 부착되어 있는 처벌을 생각해보자. “피는 그 사람에게 귀속되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 백성으로부터 잘리울 것이다.” 왜곡된 예배를 갖는 사람은 자기가 고백한 거룩한 원리에 어긋나는 바, 어긋난 만큼 그는 그 원리에서 분리된다는 것이다. 이럼에도 외적 예배가 내적 예배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것은 얼마나 흔한지 모른다. 사실 이런 점에 있어서 죄 없다 할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너는 살아 있다고 말하지만 실상 죽어있다” 라고 평가받은 사르디스 교회인 같이 우리도 지내왔기 때문이다. (계시록3:1) 그러면 치료 약은 무엇일까? 본문이 우리에게 말하는 바, 만남의 천막 문에로 제물을 가져다가 거기서 바쳐야 하는 것이다. 실제의 문제로 생각 할 때 우리가 주님을 진실로 인정하고 그분을 예배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한 장소 즉 한 가지 상태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지식을 통해, 신앙을 통해, 사랑을 통해, 그리고 그 자체를 나열하는 순수한 선의 상태이다.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해보면 그것은 우리를 선 쪽으로 소개하는 진리의 상태, 즉 문은 우리가 신실성과 진리 안에서 주님을 예배하겠다고 말할 때 지상의 성전 안으로 입장할 수 있게 해주는 것과 같다. 이 진정한 예배가 성직자가 피를 흘리고 지방을 살라 향기를 풍겨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 데에 의미되어 있다. 그 반면 이전의 거짓 예배는 폐지되어지는데 이것이 이름을 거론해서 언급된 우상에서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교회 속의 사람들은 자기의 습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직접 수반되는 예배에 관한 신성한 법을 적절한 가치에서 생각해 보아야 하리라 본다. 이렇게 할 경우 자신이 주님의 법을 제대로 이행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지의 경우 그는 자기가 시정해야 할 사항에 자기도 모르게 친숙해진다. 선해지기를 바래면서 그분의 계명을 원리로 삼아 정직하고 근면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주님을 진실로 예배할 수 없다는 것을 누가 잘 알지 못하고 있는다고 버젓이 말할 수 있을까 말이다.
이제 다음 단원을 살펴보자. 비록 지금까지 취급해온 말씀의 부분에 부주의한 예배라 해도 또는 모독자라고 까지 아직은 말할 수 없다 해도 그가 잘못된 과정을 계속 고집해 간다면 모독했다고 까지 간주 할 수 없는 경우까지도 실지 모독하는 쪽으로 기울고야 만다. 피채 고기를 먹는 것에 이런 사항이 함축되어 있는데 이는 거룩한 것에 모독된 것을 섞는 것이다. 선과 진리를 인정하고 믿고 사랑하는데도 그에 반대되는 생활을 영위할 경우에 발생된다. 이 경우의 악의 종류는 수없이 많이 있는데 일부의 경우는 이미 거론했던 적이 있다. 인간이 모독을 경미하게 저지를 수도 있고 심하게 저지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는 치료될 수 있고 때로는 치료될 수 없을는지도 모른다. 잘 짜여진 각본으로 실시된 위선의 경우가 아마 아주 심한 경우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위선의 초기 징조와 그 때를 미리 감지하여 방비하는 것이 상책이 될 것이다. 정죄되어야 마땅한 게 악이므로 그것을 금하는 행동 습관을 꾸준히 배양해 가고 선을 표현해 내는데 근면해야 하리라 생각된다. 파멸로 끌어들이는 이기심, 세상적 관심, 감각적 측면에 몰입되어 우리 자신은 늘 오염되기 일쑤지만 신성한 법을 단지 고백만 하는 수준에서 그 법에 다가가서 나의 삶이 조화를 이루도록 갖가지 배려를 해 가는 것이 최상의 삶의 방향인 것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수긍되는 말일 것이다.
위에 관련되어 아직 더 생각해 볼 측면들이 본문에 남아 있다. 오히려 잘 경청해둘 주제라 생각된다. 선과 진리의 원리를 소홀히 함 또는 그 실행에 게을렀던 것, 또는 선과 진리의 원리를 교묘히 위반하는 사항에 첨가되는 것은 그 위반을 더 강도있게 만드는 설득(persuasion)이라는 논리이다. 이것이 본문과 말씀의 다른 부분에서 사냥함(hunting)으로 표현되고 있다. “니므롯은 여호와께서도 알아주시는 힘센 사냥꾼” (창세기 10:9)이라고 말해지고 있는데 이에 관한 주석을 보면, “그것은 그가 많은 것을 설득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구변이 센 양상은 선행에서 분리된 신앙의 본성이나 말씀에 있는 사냥이라는 말의 의미로부터도 잘 보여진다. 선행에서 분리된 신앙은 쉽게 설득된다. 인류 속의 대다수는 내적으로 무엇이 있는지, 외적으로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게다가 삶의 더 많은 부분이 감각적 쾌락들, 탐욕들에 푹 담겨있다. 그러므로 인류의 대다수가 선행에서 분리된 신앙을 원리로 하는 종교에 너무나 쉽게 포착되고 만다… ‘너희가 새를 사냥하듯 영혼들을 사냥하는 그 방석을 내가 너희 팔에서 떼어버리고 너희가 새처럼 사냥한 그 영혼들을 놓으며 또 너희 수건을 찢고 내 백성을 너희 손에서 건지고 다시는 너희 손에 사냥물이 되지 않게 하리라…’(에스겔 13:20,21) 이 구절은 사냥이 의미하는 것을 설명해준다. 즉 설득을 수단으로, 인지(cognition)라는 작용을 수단으로 해서 상대방을 기만하는 것이 사냥이다. 그리하여 자기들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타인들의 경향성이 자진해서 따라가도록 유인하여 뒤집는다.” 위로부터 본문이 말하는 설득이라는 본성까지도 알 수 있다. 여기에 덧붙여 니므롯의 뜻이 반역적인, 고집적인(rebellious), 또는 하강이 정지됨(sleep of descent), 규율력이 마비됨(sleep of him that rules)이다는 것까지 생각하면 더욱 확실히 알게 해줄 것이다. 우리 자신의 불의한 심적 태도를 더 악화되게 하는 것, 또는 영적 진보에 누구에게 필수 요건인 귀중한 자유를 타인에게서 약화되게 하는 행위 같은 것을 가능한 피할 수 있도록 노력을 다 해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위에 덧붙여 주지해둘 사실이 끝 부분에 있다. 완전한 상태에 있게 되는 외적 인간의 삶은 내적 인간의 완전한 삶에서 파생된다는 것, 따라서 인생을 수련 중인 상태에서 자기의 불순함을 깨끗하게 하지 못할 경우 그 상태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본문을 통해 말씀의 내적 의미를 찾아 보겠다는 노력, 더 높은 삶을 영위해야겠다는 성의가 우리에게 더욱 있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그 이유는 신성한 진리 안에 포함된 세부 사항들까지 세심하게 검사해 자신에게 더욱 반영시켜 갈수록 우리는 저 세상 삶에 있을 마지막 목표를 향해 인내를 가지고 달려 갈 수 있는 더 많은 용기를 얻게 되고 더욱 더 계발되어 정확한 목표 지점을 보면서 달리므로 더 행복하고 더 침착한 여유도 있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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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6장 해석

레위기 16장

영적 의미 요약

* 외적일 뿐인 예배가 인간에 의해 거절될 때 가장 깊은 내면의 선이 명백히 나타남에 관하여, 즉 이 선은 외적, 내적으로 악의 제거를 수단으로, 주님께 헌신함으로, 진리의 힘을 빌려서 명백히 나타남에 관하여 주님께서 밝히 알게 해주심이 있다, 1-4절.
* 또한 거기에는 악의 제거가 외적으로 뿐만 아니라 내적으로 있되 주님을 인정함을 수단으로, 선택의 자유를 수단으로, 예배를 수단으로, 악의 거절을 수단으로 있어진다, 5-10절.
* 이 깨끗해짐의 전 과정이 더 세밀하게 기술되고 있다, 11-22절.
* 그럼 다음 모든 진리가 주님으로부터 있음을 진실로 인정함이,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예배하는 상태가, 인간의 가장 높은 선은 주님으로부터 임을 고백함이, 그리고 계속 깨끗해져 감은 천국적 상태를 실감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이 뒤따르고 있다, 23-28절.
* 마지막으로 거듭나는 과정과 깨끗해짐의 거룩한 과정의 결과로 천국적 평화와 쉼의 충만된 즐거움이 있게 되는데 영원까지 있게 된다, 29-34절.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아론의 두 아들들이 주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 죽었을 때, 그들이 죽은 후,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영적 의미

내적 예배가 없고 세상과 자아로부터 온 외적 예배는 위선적이요 모독된 예배인 고로 폐지될 때 주님으로부터 밝히 알게 하시는 사항이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이란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밝히 알게 하심(계시)을; 아론의 두 아들이 죽었음이란 내적 예배가 없는 자아와 세상 사랑으로부터 온 외적 예배의 폐지를; 이기적 사랑만으로 주님 앞에 가까이 감이란 위선적이고 모독하는 예배를 드리는 것, 10장의 경우 이상한 불을 바치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2001, 2951, 7010, 7699, 7738, 934, 2447, 5149, 10장 2절, 3934-3, 10287)

2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하셨다, 아론 네 형제에게 이야기하라, 즉 그는 궤 위에 있는 자비석(mercy-seat) 앞, 베일(veil) 안쪽 거룩한 장소 안으로 어느 때이든 오지 말라. 그 이유는 내가 자비석 위 구름 안에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이 밝히 알게 하심(계시)은 외적일 뿐만이 아닌 내적인 삶이기도 한 바 이렇게 가르치신다. 즉 신성한 선으로부터의 주님을 예배할 때 인간은 교회의 모든 상태에서 천적인 가장 깊은 선을 지각하거나 실감할 수 없다는 것, 이 선은 중간 수준의 선에 의해 영적 선과 구별되어진다는 것, 이 선 안에서 주님은 나타나시어 모든 예배를 듣고 받으신다는 것, 그리고 각 심정이 신성한 법칙을 받는 것을 수단으로 인간에게서 악을 제거하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위와 같이 하시지 않으면 인간이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희미한 상태에도 그분은 자신을 밝히 보여 주시는데 이는 신성한 자비 덕분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심이란 진리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계시함을; 모세가 아론에게 말함은 선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계시함을; 이 둘을 관계적 측면에서 볼 경우, 전자는 외적 계시를, 후자는 내적 계시를 말한다. 너의 형 아론이란 진리에 대한 선의 관계를, 보통 때는 성소 베일 안쪽 궤 위에 있는 자비석 앞으로 나가지 말라란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에서 인간은 교회의 어느 상태에서도 천적인 가장 깊은 선을 지각 할 수도 없고 실감 할 수도 없다는 것, 이는 중간 매체의 선을 수단으로 영적 선과 구별된다는 것을; 자비석 앞이란 주님께서 모든 예배를 듣고 받으시기 위해 계신 장소요, 거기서 주님은 인간의 악을 제거하신다는 것을; 궤 위란 신성한 법을 심정에서 받는 것을, 죽지 않도록이란 가까이 오는 그가 멸해지기 때문임을; 자비석 위에서 구름 가운데 나타나실 것이란 주님께서는 그분 자신을 인간의 희미한 상태에서도 밝히시는데 이는 신성한 자비로부터 발생함을 말한다.(7010, 9946, 6998, 5121, 4267, 6998, 6901, 2212, 9670, 9506, 10269, 9485, 9818, 7699, 7738, 8106, 9506)

3절. 아론은 거룩한 장소 안으로 오너라. 즉 죄 바침을 위해 어린 수소, 그리고 태워 바침을 위한 수양.

영적 의미

다음 방법들은 선 가운데 있는 인간, 그리고 신성이 되심 가운데 계신 주님을 가장 깊은 삶에로 인도 해준다. 즉 인간은 외적 인간 또는 자연적 수준 안에 있는 악을, 더불어 내적 인간 또는 영적 수준에 있는 악을 순진의 선을 수단으로 깨끗해지게 해야만 한다. 그리고 영적 수준에서 그는 사랑의 선으로부터 완전히 헌신함으로 주님을 예배해야만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의 성소에 들어감이란 다음 방법들로 해서 인간은 선 가운데, 주님 자신은 신성이 되심 가운데서 가장 깊은 삶에로 인도된다는 것을; 어린 수소는 죄 바침의 제물로, 수양 한 마리는 태워 바침의 제물로란 외적 인간 또는 자연적 수준 안에 있는 악을 깨끗하게 함과 순진의 선을 수단으로 영적 수준 또는 내적 인간 안에 있는 악을 깨끗하게 함을; 태워 바침의 제물로 수양을 바침이란 사랑의 선으로 완전히 헌신함도 뜻한다.(9946, 9670, 9670-6, 9990, 9991, 10053)

4절. 그는 거룩한 아마포 상의를 입어라, 그리고 그는 아마포 반바지를 그의 살에 걸쳐라, 그리고 아마포 띠를 가지고 띠를 맬 것이다, 그리고 아마포 관을 가지고 그는 차려입어라. 이것들은 거룩한 옷들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 살을 물로 목욕하라, 그리고 그것들을 입어라.

영적 의미

또한 위와 같이 깨끗해짐은 선으로부터의 진리로도 결과되는데, 즉 외면에 있는 자연 평면 속의 진리들을 수단으로, 진리와 선이 외적으로 결합하는 교리에 의해, 진리와 선이 내적으로 결합하여 서로에게 공통되는 묶임에 의해, 가장 깊은 진리의 총명에 의해, 결과된다. 그 이유는 인간이 생활에 외적 진리들을 적용함으로 회개의 일을 행할 때 위 사항을 수단으로 인간은 순수해지고 거룩해지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명명되는 옷들은 위와 같이 깨끗해짐이 선으로부터의 진리로 결과됨을 나타내고 있다. 거룩한 아마포 상의(coat)는 자연적 인간 외면에 있는 진리를; 맨살에 아마포 잠방이를 걸침이란 진리가 선과 외적으로 결합함에 관한 교리를; 아마포로 만든 관대를 띰이란 진리가 선과 내적으로 결합하도록 해주는 서로 공통되는 묶음을; 아마포로 만든 사모란 아주 깊은 진리의 총명함을; 이것이 거룩한 옷이다 함은 선과 결합된 진리들 또는 선을 위해 잡고 있는 진리들을; 물로 살을 씻고 이 옷을 입으라 함은 생활에 외적 진리를 응용함으로 회개의 일을 행함을 말한다. (9670-6, 7601-5, 9960-18, 9961, 9828, 9827, 2146, 3147, 8914)

5절.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으로부터 죄 바침을 위해 수염소 두 마리, 그리고 태워 바침을 위한 수양 한 마리를 가져 오라.

영적 의미

더구나 외적 인간은 악이 제거되게 하는 신앙의 진리를 적용함으로, 그리고 선행으로부터 주님께 헌신함으로 거짓에서 깨끗해져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백성에게 죄 바침의 제물로 수염소 두 마리와 태워 바침의 제물로 수양 한 마리를 가져오라 함이란 외적 인간은 신앙의 진리들을 응용함으로 거짓에서 깨끗해져 이를 통해 악이 제거되고 선행으로부터 주님께 헌신해야 함을 말한다. (9670-6, 4169, 725, 10042, 10053)

6절. 그리고 아론은 죄 바침의 수소를 증정하라, 이것은 자신을 위해서이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그리고 그의 가문을 위해 보상 받게 한다.

영적 의미

그리고 자연적 수준 속의 내면도 주님을 인정함을 통해 악이 제거됨으로 해서 깨끗해져야 하고, 그러므로 해서 자연적 인간과 영적 인간의 재회가 선과 진리 양면에서 결과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회중에 관련시켜 비교해 볼 때 아론은 외적 인간에 관련되기 보다는 내적 인간에 속한 것을, 그 이유가 아론은 선을, 회중은 진리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수소란 자연적 인간 안에 있는 순진의 선을; 죄 바침의 제물이란 순진이 이 선을 통해 악이 제거되도록 예배함을; 아론이 자신과 가문을 위해 보상을 받게 함이란 선과 진리 양쪽에 관련되는 바 자연적 인간이 영적 인간과 재회함을, 그 이유는 아론 자신은 선을, 그의 아들들은 가문을 구성하는 바 진리를 말하기 때문이다. (9946, 4547-21, 9990, 3400, 9946)

7절. 그리고 그는 염소 두 마리를 가져 오라, 그리고 그것들을 만남의 천막의 문에서 주님 앞에 두어라.

영적 의미

이러면 신앙의 진리가 주님으로부터 있다는 것과 그분께서는 천국을 통해 역사하신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이 염소 두 마리를 가져다가 만남의 천막 문간 주님 앞에 세워놓음이란 신앙의 진리들이 주님으로부터 임을 인정하고 그분의 역사가 천국을 통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9670-6, 4169, 725, 2456, 3540-3)

8절. 그리고 아론은 염소 두 마리 위에 제비를 던져라. 하나는 주님을 위해,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사셀(Azazel)을 위해.

영적 의미

신성한 섭리에 의해 인간은 선과 악, 진리와 거짓 중 하나를 자신을 위해 선택해야만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제비뽑음이 아론에 의해 말해질 경우, 이는 신성한 섭리에 의존함을; 제비 하나는 주님께란 인간이 선을 자유롭게 선택함을; 제비 하나를 아사셀에게란 아사셀이 “추방, dismissal”이란 뜻인 바, 이는 인간이 악을 제 스스로 거절함을 뜻한다. “인간은 선과 악 중 하나, 또는 진리와 거짓 중 하나를 자신을 위해 선택해야만 한다”라고 말해진다. 즉 선택을 자유롭게 행사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모세의 지시에 아론의 순종이 포함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신성한 섭리에 의존함이 제비를 뽑는데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삶의 모든 행동 속에서 선을 원리로 해서 움직일 경우 그는 신성한 섭리에 의존하는 것이 된다 (시편 37:3참조). (9946, 3239, 9093-5, 2001, 10023)

9절. 그리고 아론은 제비가 주님을 위해 떨어진 염소를 증정하라, 그리고 그것을 죄 바침을 위해 바쳐라.

영적 의미

그런 다음 그는 선을 원리로 해서 악이 제거되고 거절될 수 있도록 주님을 예배해야만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이 주님의 몫으로 떨어진 염소를 끌어다가 죄 바침의 제물로 바침이란 악이 거절되고 제거되기 위해 인간은 선을 원리로 해서 주님을 예배해야만 한다는 것을 말한다. (9946, 9670-6, 4169, 725, 3400)

10절. 그러나 아사셀을 위해 제비가 떨어진 염소는 주님 앞에 산채로 놓아두어 그것을 위한 보상을 받게 하고, 아사셀을 위해 광야로 그것을 떠나 보내라.

영적 의미

그리고 반드시 인정해야 할 것이 있다. 인간은 자신만으로는 악에서 온 거짓 안에 실지로 있다는 것,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이 재회하려면 위의 거짓을 완전히 거절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사셀의 몫으로 뽑힌 수염소는 산채로 여호와 앞에 세워 두었다가 죄 바침의 제물로 삼아 광야에 있는 아사셀에게 보내라 함은 인간 스스로부터는 악에서 나오는 거짓 안에 실지로 있는 바, 이런 거짓을 완전히 거절함으로 인간이 내적 인간과 재회할 수 있으려면 주님 앞에서 자신의 참 모습이 어떠한지 인정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9670-6, 10042II)

11절. 그리고 아론은 죄 바침의 수소를 증정하라, 이는 자신을 위해서이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자기 가문을 위해 보상 받게 하라, 그리고 자신을 위해 있는 죄 바침의 수소를 죽여라.

영적 의미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선 가운데 있는 그는 자기 속의 선이 주님으로부터임을, 그래서 악이 제거되고 자연적 인간과의 재회도 있어 자기 속의 선이 내, 외적으로도 결과된다는 것, 이러므로 해서 주님을 예배할 준비도 갖추어진다는 것을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이 자신을 위한 죄 바침의 제물로 수소를 증정함이란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선 가운데 있는 사람은 자신의 선이 주님으로부터임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을; 수소란 자연적 인간 안에 있는 순진의 선을; 죄 바침의 제물이란 이 순진의 선을 통해 악의 제거가 있도록 예배함을; 아론이 자신과 자기 집안을 위해 보상을 만듦이란 자연적 인간이 영적 인간과 재회하되 선과 진리가 내, 외적으로 있게 됨을 말하는데 그 이유가 아론은 선을, 그의 집안을 구성하는 실지 인물이 그의 아들이므로 진리를 의미해서이다. 자신을 위해 죄 바침의 제물인 수소를 죽임이란 주님에 대한 예배를 준비함을 말한다. 세심한 독자의 경우 6절의 구절이 11절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게 될 줄로 본다. 더불어 본 장의 10절까지는 전체에 대한 서론이자 요약이다는 것도 짐작할 것이다. 그 이유는 전체의 주제가 악과 거짓을 항구적으로 제거함에 관하여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적 의미에서의 요약은 위 사항이 주님에 의해 설비되어 있다는 것, 내적 인간, 이를 보다 엄격히 말한다면 자연적 인간의 내적 부분은 거듭남이 개시될 때 악에서의 해방이 잠재적으로 있다는 것, 그렇게 해서 인간에게 위 사항이 보존 될 경우 그는 악으로부터의 시험이 함축하는 만큼에서 충분히 구원될 것임을, 이 때 사람에게는 선이 우세해지는 상태에로 진입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염두해 둘 사항은 깨끗해짐은 천국 자체 안에서도 역시 항구적으로 존재한다는 것, 따라서 계속되는 천국 삶에서도 거듭남의 진보는 영구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에 관해서이다. (5619, 9990, 3400, 9946, 4574-4, 10024, 10211)

12절. 그리고 그는 주님 앞으로부터 불 붙은 숯을 가득 채운 향로를 가져 오라, 그리고 그의 손에 두드려 작아진 달콤한 향을 가득 채우고, 그리고 그것을 베일 안쪽으로 가져 가라.

영적 의미

주님으로부터 선을, 말씀으로부터 진리를 받는 것, 이것이 예배에서 감사를 나타냄이요 그가 받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이것은 선 밑에 조심스럽게 구분시켜 배열된다. 그러면 그는 가장 깊은 선에 대한 지각을 가지게 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 앞 제단에서 숯불을 향로에 담는다란 순수한 예배에서 주님으로부터 선을 받는 것, 이 선이 진리 안에서 체현되고 진리라는 저장소에 담겨 있다는 것을; 향이란 선으로부터 예배하는 가운데 감사히 받게 되는 말씀으로부터 온 진리를; 향기 좋은 향가루란 선 밑에 진리를 조심스럽게 구별하여 배열함을; 베일 안으로 향가루를 가져감이란 이로부터 가장 깊은 내면의 선을 지각함을 말한다. (5531, 934, 9714, 9475, 5620, 10303, 9670-6)

13절. 그리고 그는 주님 앞 불 위에 향을 놓아라, 하여, 향의 구름이 그가 죽지 않게 증거(궤) 위에 있는 자비석을 덮을 것이다.

영적 의미
그 다음 역시 신성한 선으로부터 진리와 선의 결합이 거행될 것인 바, 신성한 사랑과 자비가 예배자의 상태에 따라 외관에 희미하게 드러나는데, 이는 신성한 사랑의 명백함이 너무 강할 경우 영적 죽음이 있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서 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은 신성한 선을, 불 위에 있는 향이란 진리가 선과 결합함을; 향의 연기(cloud)로 자비석을 덮음이란 신성한 사랑과 자비가 예배자의 상태에 따라 외관상 희미하게 드러냄을; 증거(궤) 위에 있는 자비석이란 신성한 사랑이 말씀 속의 진리로 흐름을; 죽지 않도록 이란 신성한 사랑이 너무 많이 모습을 나타냄으로 영적 죽음이 초래되지 않도록 이란 뜻이다. (9946, 9475, 934, 9670-6, 9506, 9503, 7699, 7738)

14절. 그리고 그는 수소의 피를 가져 와라, 그리고 그것을 동쪽 자비석 위에 그의 손가락으로 뿌려라. 그리고 자비석 앞에서 그는 자기 손가락으로 피를 일곱 번 뿌려라.

영적 의미

그러면 깨끗해진 자연적 선으로부터 온 진리가 신성한 선으로부터 나오는 신성한 진리와 결합될 것이다. 이것은 거듭남에서 주님으로부터 획득한 거룩한 상태로부터 자연적 인간 안에서 능력을 가지고 이루어질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수소의 피란 깨끗해진 자연적 선으로부터의 진리를, 동쪽에 있는 자비석 위란 신성한 선으로부터 진행되는 신성한 진리와 더불어를, 손가락이란 힘을, 이것은 자연적 인간 안에서 말해지는 사항인데, 그 이유는 수소의 피와 관련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비석 앞에 일곱 번 뿌림이란 거룩한 상태가 주님에게서 오는 거듭남으로 획득됨을 말한다.(창세기 1장 참조), (10047, 10026, 9506, 9503, 1250, 1430, 716)

15절. 그 다음 그는 죄 바침의 염소를 죽여라, 이는 백성을 위해서이다, 그리고 그것의 피를 베일 안쪽으로 가져 와라, 그리고 그가 수소의 피를 가지고 실시한 그대로 그것의 피를 가지고 실시한다, 그리고 그것을 자비석 위에, 그리고 자비석 앞에 뿌릴 것이다.

영적 의미

또한 자연적 인간의 바깥부분, 또는 신앙의 선 안에 있는 이들도 똑같은 방식으로 준비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이 선 속의 진리도 천적 선같이 주님으로부터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서도 내적, 외적인 결합이 있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가 백성을 위한 죄 바침의 제물인 수염소를 죽임은 자연적 인간의 외적인 것 또는 신앙의 선 가운데 있는 사람은 위와 같은 방법으로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 베일 안으로 피를 가져감이란 이 선의 진리도 천국 선을 수단으로 주님으로부터 있게 되어 인간의 상태에 적응됨을; 자비석 위와 자비석 앞에 피를 뿌림은 위와 같되 내적, 외적으로 결합되어야 함을 말한다.(10024, 9670-6, 4169, 725, 4574-4, 10047, 9506)

16절. 그리고 그는 거룩한 장소를 위하여 보상(atonement)을 받게 하라,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의 불결함 때문, 그리고 그들의 범칙들, 모든 그들의 죄들을 아울러서 이기까지 때문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는 그들의 불결함 한 가운데에서 그들과 함께 거주하는 만남의 천막을 위해서도 그렇게 실시하라.

영적 의미

참으로, 천적 선이라 해도, 또는 이 선 안에 있는 이들이라 해도 반드시 신성한 선과 재회를 이루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인간 그 스스로는 내면 이든 외면 이든 모두 불순하고, 악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영적 선, 또는 그 선 안에 있는 이들, 자연적 선 또는 그 선 안에 있는 이들도 재회해야 한다. 이는 악뿐인 자신을 스스로 인정함을 수단으로 주님께서 가장 깊은 것들로부터 가장 표면의 것들에까지 이르러 인간과 현존하실 수 있게 하시기 위해서 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소를 위해 보상을 만듦이란 참으로 천적 선 또는 천적 선 안에 있는 이들 조차도 신성한 선과 재회하여야 함을; 이스라엘 백성의 불결함과 잘못들 그리고 지은 죄 때문이란 인간 자체로서는 외면이나 내면 모두에서 불순하고 악밖에 없기 때문임을; 불결해 있는 만남의 천막을 위해 이를 행해야 한다란 인간에게는 악밖에 없다는 자기 몫을 인정함으로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의 것에서 가장 표면의 것에 이르러 주님이 함께 하시도록 하기 위해 영적 선 안에 있는 이들, 또는 자연적 선 안에 있는 이들도 위의 천적 선에 있는 사람들 같이 행해져야 한다는 뜻이다. (3210, 10042ii, 10130. 9156, 3530-3, 10153, 10130)

17절. 그리고 그가 거룩한 장소에서 보상을 받게 하려고 들어가고, 그가 나올 때까지 만남의 천막 안에 사람이 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그의 집안 식구들을 위해,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회중을 위해 보상을 받게 하라.

영적 의미

그럼에도 진실로 자기의 생명이 재회하기 위해 가장 깊은 선으로부터 인간의 예배도 마치 자기 스스로 예배드리는 것 같이 전적으로 있어지되 거기에는 악이나 거짓이 가장 깊은 선과, 내면의 선과, 가장 바깥쪽의 선과의 어떤 혼합도 있어져서는 안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이 지성소에 들어갈 때 아무도 만남의 천막 안에 있지 말라란 가장 깊은 선으로부터 오는 인간에 의한 주님의 예배는 어떤 악과 거짓의 섞임 없이 자신 스스로 예배드리듯 있어져야 한다는 것을; 자기와 자기 집안과 이스라엘에 온 회중을 위해 보상을 만듦이란 가장 안쪽의 선, 내면의 선, 가장 바깥의 선에 관하여 인간의 생명과 주님의 생명이 재회함을 말한다.(9946, 3210, 7424, 10042ii,9946, 4574-4)

18절. 그리고 그는 주님 앞에 있는 제단으로 나가라, 그리고 그것을 위해 보상을 받게 하라, 즉 수소의 피를 가져 와라, 그리고 염소의 피를 가져 와라, 그리고 그것을 빙둘러 있는 제단의 뿔들 위에 발라라.

영적 의미
위 결과로 해서 신성한 선으로부터 온 천적 선이 인간의 최말단에까지 흐를 것이고, 거룩한 예배에서 진리와 선의 결합이 서로 간에 그리고 상호적으로 있으면서 말씀의 글자적 의미 속의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충만되어 능력을 가지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이 주님 앞에 있는 제단으로 나감이란 신성한 선으로부터 온 천적 선이 인간의 최말단에까지 흐르게 될 것임을, 보상을 만듦이란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재회함을, 수소의 피, 염소의 피를 가져오고 제단 뿔들 위에 두루 바름이란 거룩한 예배에서 진리가 상호 간에 그리고 쌍방 간에 결과될 것을 말한다. 위에서 “말씀의 글자 의미에 있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충만함과 능력…”이라고 말한 이유는 제단의 네 귀퉁이에 각각 뿔이 있기 때문인데 이는 완성을 의미하고 신성한 진리는 말씀의 글자 의미 안에서 완성과 충만을 이루기 때문이다. (9946, 5337, 10001, 10242, 10042ii, 제 14,15절, 10027, 9720, 6943, 9349)

19절. 그리고 그는 자기 손가락을 가지고 일곱 번 그것 위에 피를 뿌려라, 그리고 그것이 이스라엘의 자손들의 불결함으로부터 깨끗해지게(hallow) 하라.

영적 의미

이 사항들은 거듭남의 거룩한 상태에서 인간 각자의 상태에 의해, 깨끗해짐과 예배함에 의해 인간의 타락한 상태에 있는 모든 불순함에서 교인을 해방되도록 하는 능력의 실시가 성취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손가락으로 제단에 피를 일곱 번 뿌려 이스라엘 백성의 불결함을 벗겨 깨끗하게 함이란, 이는 거듭나는 거룩한 상태 안에서 깨끗해짐과 예배를 수단으로 각자 상태에 따라 능력을 발휘함을 통해 성취되어야 할 것인 바, 이로부터 교회 속의 사람은 타락하려드는 상태에 기우는 것까지 포함된 불순함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말이다. (10047, 제14,15절, 10027, 716, 창세기 1장, 4545, 10130)

20절. 그리고 그가 거룩한 장소, 그리고 만남의 천막, 그리고 제단을 위해 보상 받게 함을 끝냈을 때, 그는 살아있는 염소를 제출한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이제 거듭남의 상태가 내적 인간, 내면의 것들, 그리고 외적 인간이 주님과 재회함으로 충분히 완성될 때, 자신의 자연적 인간 안에는 지옥에서 온 악의 거짓으로 인해 얼마나 악으로 가득 차 있었던 가를 주님 앞에서 인정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소와 만남의 천막과 제단을 깨끗하게 하는 예식을 끝내고 살려둔 염소를 끌고 옴이란 거듭나는 상태가 그 사람의 내적 인간, 내면의 것, 외적 인간의 모든 것이 주님과 재회함으로 충분히 완성되어질 때, 그 사람은 주님 앞에서 자기 속에 악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지옥으로부터 와서 자연적 인간 안에 든 악에서 온 거짓의 유입에 의한 것임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10042ii, 3210, 3540-3, 10001, 9670-6)

21절. 그리고 아론은 그의 손 모두를 살아있는 염소의 머리에 놓아라, 그리고 그것 위에 이스라엘의 모든 불법들, 그리고 그들의 모든 범칙들, 그들의 죄들까지 고백하라. 그리고 그는 그것들을 염소의 머리 위에 놓아라, 그리고 준비가 된 사람의 손에 의해 광야 안으로 그것을 떠나보내라.

영적 의미

그리고 가장 깊은 선의 상태로부터, 의지와 이해함이 모든 능력을 다해서, 그는 이렇게 지각하여 고백한다. 전체적으로나 모든 각 부분들에서 신앙의 선에 어긋나던 점을, 신앙의 진리에 어긋났던 점을, 거룩한 선행 자체에 어긋났던 점이 있어 자기는 죄를 범했다는 것, 그렇지만 주님에 의해서라면 악을 거절 할 수 있다는 것, 그 악을 신성한 인간의 능력을 통해 자신에게서 분리되게 해서 그 악의 근원인 지옥에로 던질 수 있다 라고 고백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이 살려둔 염소 머리 위에 두 손을 얹는다란 인간이 자기 속 가장 깊은 내면에 있는 선으로부터 의지와 이해함에 있는 모든 능력을 동원해 행동할 것임을; 이스라엘 백성이 저지른 온갖 잘못과 일부러 거역한 온갖 죄악을 아론이 고백함이란 전체 그리고 세부 사항에 관하여, 신앙 속의 선을 위반한 점들에 관하여, 신앙 속의 진리에 위반한 것들, 거룩한 선행 자체에 위반한 것 등등에 관해서 자신이 죄가 있음을 지각하고 고백하는 것을; 그 모든 죄를 염소 머리에 씌움이란 고백된 그 악들을 거절할 수 있는 힘과 자신이 그것들에서 분리될 수 있게 되는 것은 오로지 주님으로부터 온 능력만에 의해서 임을; 염소를 광야로 내어 보냄이란 지옥을 거절함을; 준비가 된 사람의 손으로란 신성한 인간의 능력에 의해서 임을, 그 이유가 손은 능력을 뜻하고, 그가 악과 잘못들을 거절할 수 있게 하는 모든 능력은 신성한 인간으로부터 진행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님은 인간을 구원하실 준비가 언제나 되어 계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10023, 9946, 8066, 10061-2, 9156, 878, 6280-i)

22절. 그리고 염소는 고독한 토지 쪽으로 자기 위에서 그들의 모든 불법들을 나를 것이다.

영적 의미

거짓과 악이 분리되는 일은 주님께서 구속의 일을 통해 행하실 것이다. 그리고 거짓과 악은 선과 진리가 없는 이들과 더불어서만 남아 있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염소가 그들의 죄를 모두 짊어짐이란 위 사항은 주님께서 구속의 역사를 통해 이루어질 것임을; 염소가 고독한 토지(황무지)로 가게 놓아둠이란 악과 함께 있는 거짓의 제거를; 이 구절에 있는 고독한 토지(solitary land)는 악을, 황무지(wilderness)란 거짓을 말한다. 그 반면 땅(land) 또는 황무지가 고독한 땅이라 불릴 경우, 이는 악과 거짓이 선과 진리로부터 분리된 채 남아있는 상태를 말한다. (9937-8, 683)

23절. 그리고 아론은 만남의 천막 안으로 가라, 그리고 그가 거룩한 장소 안으로 갔을 때, 그가 입은 것, 즉 아마포 옷들을 벗어라, 그리고 거기에 그것들을 남기고 가라.

영적 의미

그런 다음 선 가운데 있는 이들은 천국 삶의 즐거움에 거하게 되고, 거듭남으로 결과되는 모든 진리는 주님으로부터 왔을 뿐 자신으로부터 온 게 아니라는 것, 비록 자신 스스로 가지고 있어 행한 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이 만남의 천막으로 들어옴이란 선 가운데 있는 사람은 천국 사람의 즐거움 안으로 들어갈 것임을, 고운 아마포 옷을 벗어 거기에 놓아둠이란 거듭남에서 결과된 모든 거룩한 진리들은 비록 자신 스스로 그 진리를 찾아 사용했다 할지라도 자신으로부터가 아닌 주님으로부터 임을 철저히 인정함을 말한다. (3540-3, 9670-6, 제 4절)

24절. 그리고 그는 거룩한 장소에서 물로 자기 살을 목욕하라, 그리고 그의 옷들을 입어라, 그리고 나간다, 그리고 자기의 태워 바침의 제물과 백성들의 태워 바침의 제물을 바쳐라, 그리고 자신과 백성을 위해 보상을 받게 할 것이다.

영적 의미

이런 거룩한 상태에서 그는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드리는 예배를 통해, 게다가 주님과 재회된 내적, 외적 인간 모두에서 깨끗해지는 것을 계속해 갈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소에서 아론이 목욕함이란 위 거룩한 상태에서도 깨끗함은 계속 있어야 한다는 것을; 옷을 입음이란 진리로 입히는 것을; 나옴(coming forth)이란 이 구절의 경우 새 삶이 작동하는 것을; 자기의 태워 바침의 제물과 백성의 태워 바침의 제물을 바침이란 내적, 외적 인간 모두에서 순수한 사랑으로 예배함을; 자신과 백성의 보상을 만듦이란 주님과의 재회, 그리고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재회함을 말한다. (3147, 3210, 1853, 10053, 제 4,5절, 10042ii)

25절. 그리고 죄 바침의 제물의 지방을 그는 제단 위에서 태울 것이다.

영적 의미

그리고 심정으로부터 자기의 천적 선 모두가 주님의 은혜 때문으로 돌릴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제단에서 죄 바침의 제물의 지방을 태운다란 모든 천적인 것을 주님께 진심을 다해 돌려드림을 말한다. (10033)

26절. 그리고 염소를 아사셀에게 보낸 사람은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물로 자기 살을 목욕하라, 그리고 후에 그는 진영 안으로 올 것이다.

영적 의미

신성한 인간으로부터의 유입을 통하여 이루어지되 자신이 해낸 듯 악에서 온 거짓을 거절한 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인정하게 될 것이다. 즉 자기가 천국적 상태에 들어가 계속 머무르기 위해서는 외적, 내적으로 계속 깨끗해져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사셀에게 염소를 가게 한 사람이란 높은 의미에서는 주님을 나타내고 있으나, 낮은 의미에서는 신성한 인간으로부터 온 유입을 통해 악과 거짓을 거절하되 그것이 자신 스스로 행하듯 거절한 사람을 말한다. 자기 옷을 빨고 물로 목욕함이란 내적, 외적으로 깨끗해짐을, 진영으로 옴이란 위 사람이 천국 상태에로 들어와 거기에 남기 위해서를 말한다. (99378, 3147, 5006, 9215, 4236)

27절. 그리고 죄 바침의 제물의 수소, 그리고 죄 바침의 제물의 염소, 이것들의 피는 거룩한 장소에서 보상을 받기 위해 가져와지고, 진영 밖으로 운반하라. 그리고 그들은 그것들의 가죽들, 그리고 그것들의 고기, 그리고 그것들의 똥을 불에서 태워라.

영적 의미

순종이라는 자연적 인간의 선, 그리고 그로부터 있게 되는 신앙 속의 진리는 거듭나는 동안 즉 깨끗해지는 동안에도 영적 인간은 이렇게 실감한다. 이는 천국적 상태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거듭나는 과정에 연결되어 있는 모든 악과 거짓, 선과 진리인 듯 보여지는 것까지 순수한 천국 사랑의 힘으로 전부 거절되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죄 바침의 제물의 수소와 염소란 거듭나는 동안 실감된 신앙 속의 진리, 순종이라는 자연적 인간의 선을; 그 제물의 피를 성소에 가져옴이란 진리가 선과 결합한 결과 깨끗해짐을; 진지 밖으로 내어감이란 천국 상태에서 분리함을; 불로 태움이란 순수한 천국 사랑의 힘을 수단으로 거절함을; 또는 이기적 사랑에 오염된 이유로 정죄함을; 제물의 가죽, 살고기, 똥이란 불순한 것과 섞여 있는 진리와 선같이 보여지는 것들 모두를 말한다. (9990, 4169, 725, 10047, 10042ii, 4236, 934, 10055, 10035-7)

28절. 그리고 그것들을 태운 사람은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자기 살을 물로 목욕하라, 그리고 그 후에 그는 진영으로 와라.

영적 의미

거절의 과정 이후 즉 갖가지 종류의 악과 거짓을 가진 가상들을 거절함이 자신 스스로 해결한 듯 해치운 사람이라 해도 천국 상태를 충분히 실감하기에 앞서 더욱 외적으로 순수해져가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위 제물을 태운 사람도 옷을 빨아 입고 자신을 물로 목욕한 후에야 진영으로 들어 올 수 있다란 거절이라는 과정이 끝난 후 조차에서도 갖가지 종류의 악과 거짓들로 나타나는 것들을 자신 스스로 하듯 거절하는 사람이라야 더욱 외적으로 깨끗해져서 천국 상태를 더욱 더 실감하게 된다는 말이다. (934, 10055, 3147, 4236)

29절. 그리고 이것은 너희에게 영원한 법령이다. 즉 일곱 째 달에, 그 달의 열 번째 날에, 너희는 너희 혼들을 괴롭게 하라, 그리고 본토박이 이든, 너희 사이에 체류하는 외국인 이든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영적 의미

이것은 거듭나는 과정 즉 신앙과 선행의 거룩한 상태에 있는 외적 인간을 깨끗하게 하는데 관련되는 신성한 질서의 영원한 법칙이다. 이때 선과 진리에 관한 아껴두실 것들이 시험에 승리함을 통해 그 속에 충분히 이식된다. 이로부터 천국적 평화와 쉼을 실감하게 된다. 이 법칙은 내적 교회의 사람 이든 외적 교회의 사람 이든 똑같이 적용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대대로 지킬 규정이란 신성한 질서의 영원한 법칙 임을, 일곱째 달의 십 일에 너희는 너희 영혼(으로 인해) 괴로워 해야 할 것이다(ye shall afflict your souls)란 선과 진리에 관해 아껴두신 것들이 충분히 이식되어진 거듭나는 과정에서 신앙과 선행의 거룩한 상태에 있는 외적 인간의 깨끗함에 관하여를, 아무 일도 하지 않음 또는 안식일이란 시험에서 승리한 상태, 그로부터 천국 상태를 실감함과 휴식을, 본토인, 체류하는 외국인이란 위의 규정은 내적 교회에 속하든 외적 교회에 속하든 똑같이 응용될 수 있음을 말한다.(7884, 851, 570, 1947, 8889-90, 7908)

30절. 이 날에 너희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 너희를 위해 보상을 받게 할 것이다. 모든 너희의 죄들로부터 너희는 주님 앞에서 깨끗해질 것이다.

영적 의미

위 법칙에 의거해서 주님의 인간이 신성이 되심에서는 신성한 인간이 신성 자체와, 그리고 거듭나는 과정에서는 인간이 주님과, 또는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의 재회가 성취되어질 수 있다. 위 모든 과정의 결과는 인간을 충분히 구원시켜 주는바, 그가 천국 상태에 있도록, 모든 실제의 악과 거짓, 불순함으로부터도 해방되게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 날은 너희가 깨끗해지도록 너희에게 보상을 받게 할 것이다”란 주님의 인간이 신성이 되심 측면에서는 인간과 신성이 재회하는 것, 거듭남의 측면에서는 인간이 주님과 재회하는 것, 그리고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재회함으로만 성취될 수 있을 것임을 말한다. “모든 너희의 죄가 주님 앞에서 깨끗해질 것이라”란 천국 상태에 있는 사람이 모든 실지의 악과 거짓 그리고 불순함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것이 거듭남의 모든 과정의 결과임을 말한다.(10042ii, 4545)

31절. 이것은 너희에게 엄숙한 쉼의 안식일이다, 그리고 너희는 너희 혼들을 괴롭혀라. 이것은 영원히 법령이다.

영적 의미

정녕 위 천국적 상태는 시험에 승리함에서 파생되는 쉼과 평화의 상태이다. 더구나 이 상태는 영원한 상태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철저하게 쉬어야 하는 안식일이요 너희 영혼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날이요 대대로 지킬 규정이다 함은 이 천국 상태는 시험에 승리함에서 오는 평화와 쉼의 상태요, 영원한 상태 임을 말한다. (8889, 8890, 7884)

32절. 그리고 기름부워지고, 자기 아버지 대신에 성직자이도록 성직에 임명되는 성직자가 보상을 받게 하라, 그리고 아마포 옷을 입어라, 거룩한 옷들 까지 입어라.

영적 의미

이것은 계속적인 교회 상태 안에서 진리와 결합함을 수단으로 하는 천국 선에서 모두 결과된다. 그리고 주님과의 재회는 자연적 인간에 있는 외면의 진리들을 도구로 삼아 결과된 것인 바 이도 거룩함의 상태이다. 그 이유는 이런 진리들도 선으로부터인바 거룩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대를 이어가며 성직자 직분을 맡도록 예식을 갖추어 기름 부어 세운 그가 아마포로 만든 제복, 곧 거룩한 옷을 입고 있다란 위 상태는 교회의 계속되는 상태 속에서 진리와 결합함을 수단으로 하는 천국 선으로부터 모두 결과될 것이요, 그리고 주님과의 재회는 자연적 인간의 외면에 있는 진리를 도구로 해서 결과 될 것이요, 거룩함이라는 상태는 위 진리들이 선으로부터 거룩하기 때문이다. (9946, 9954, 10076, 5912, 10042ii, 7601, 2146)

33절. 그리고 그는 거룩한 성소를 위하여 보상을 받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만남의 천막을 위하여, 제단을 위하여 보상을 받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성직자들을 위하여 그리고 집회의 모든 백성을 위하여 보상을 받게 할 것이다.

영적 의미

그렇다. 이런 수단들까지도 인간은 모든 천국들, 즉 천적, 영적, 자연적 천국과 조화되도록 해야 한다. 이 조화는 선에 관해서도, 진리에 관해서도 모두에서 있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거룩한 장소와 만남의 천막과 제단, 성직자와 집회의 백성을 위해 깨끗하게 함이란 위의 수단으로 해서 인간은 천적, 영적, 자연적 천국 모두와 그리고 선에 관하여, 진리에 관하여 모두에서 하모니가 있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10042ii, 3540-3, 994-6, 1259)

34절. 그리고 일 년에 한번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위해 보상을 받게 하는 것은 너희에게 끝이 없는 법령이다. 그리고 그는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셨던 대로 실시했다.

영적 의미

이것은 악에 관한 인간의 상태 때문에 있어지는 주님과의 재회에 관한 영원한 법칙이다. 이 법칙은 모든 교인과 더불어 영구적이다. 이 속에서 선은 주님으로부터 온 진리에 의거 언제나 행동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것은 끝이 없는 법령이라 함은 이것은 신성한 질서의 영원한 법칙이라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 년에 한 번씩 보상을 받게 함이란 악에 관한 인간의 상태 때문에 있게되는 주님과의 재회를, 또 이것은 항구적임을; 주님이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함이란 위의 일 속에서 선은 주님으로부터 온 진리에 따라 언제나 행동한다는 것을 말한다. (7884, 10042ii, 10211, 9946, 7010, 20001)

16장의 종합적 고찰

본 장은 보상(Atonement)에 관한 장이라 불리워도 괜찮을 정도로 보상에 관한 많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실제의 응용에 적절하기도 하다. 본 장의 시작부터 우리를 위한 교훈이 놓여져 있다. 교회 속의 사람에 대한 계시는 계속 있지만, 그 계시는 인간의 상태에 상당히 좌우된다. 우리는 우리 한 가운데에 말씀을 언제나 가지고 있다는 것은 빼거나 더 할 필요도 없는 진실이다. 그러나 우리 속에서 이미 친숙해진 진리들을 언제나 똑같은 빛에서 보지 않는 것도 언제나 있는 진실이기도 하다.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은 외적일 뿐인 예배는 철저히 거절된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살핀 바 있다. 한 가지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위의 나답과 아비후의 사건이 지닌 의미가 각 자의 경우에서 있게 될 때마다 영적 분위기는 더 명백해진다는 것, 즉 천국의 태양이 우리 위에 내리비칠 것이고, 우리는 진리를 알게 되는데 과거 새로운 빛으로 충분히 알았다고 생각하고 있던 과거 속의 진리까지 포함해서 다시 알게 된다. 우리는 각자의 마음에 아주 풍부하게 진리를 저장하려고 지적 수단을 동원해 애를 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매우 유익한 일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제 아무리 많은 진리의 지식이 저장되었다 해도 형식주의(externalism)를 탈피해 들리워질 때 만이, 들어 올려진 것만큼에서만 진리의 참 맛, 그 영광을 실감할 수 있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 이유가 우리는 주님을 예배하면서 잘못된 것을 거절하기도 하고 올바른 것은 소중히 하는 노력을 때때로 실행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계시(밝히 알게 해주심)를 가지게 된다.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자. 오늘 본문에서 아론은 선의 상태를 표현한다. 그러나 보다 정밀하게 말한다면, 표현하는 선의 상태보다 더 높은 신성한 진리로 계발된 외적인 선을 표현하고 있다. 이상스럽게 말하는 듯 여겨지기도 하겠지만, 진리는 이 외적인 선을 무엇보다 먼저 가르친다는 것, 그렇다해도 이 선은 아주 깊은 사항들 안으로 들어가게 해줄 수는 없다. 그리고 모든 것은 한 때라도, 또는 모든 상태에서 이 외적인 선에 머무른다. 이 얼마나 장엄한 진리인가? 그 이유가 우리의 영적인 집의 기초와 낮은 층은 반드시 잘 놓여져야 하기 때문이다. 자연적 삶을 선하게 꾸릴 수 없는 사람은 영적인 삶 역시 선하게 꾸릴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자연적 진리들을 배워야만 한다. 이것이 구름인 바, 우리가 영적 진리의 영광을 납득 할 수 있기 전, 꼭 거쳐가야 할 일이다. 그러면 어떻게 인간은 거룩한 진리로 명시되고 있는 이 거룩한 삶에로 진입할 수 있을까? 확실한 방법은 회개의 일을 수단으로, 주님을 섬기는데 모든 애착을 바침으로, 질서를 따르기 위해 말씀 속의 귀중한 모든 진리를 적절히 사용함으로, 계발된 총명과 병합된 사랑이라는 쌍방에 공통되는 끈(bond)을 수단으로 질서를 따름으로 가능해진다. 이는 먼저 내적 측면의 선으로부터, 그 다음 외적 측면의 진리로부터 행해져야 한다. 이것이 본 장의 서문의 절반에 해당된다. 더불어 이런 상태를 수단으로 그 삶을 실감하기를 갈망하는 상태에 있다면 주님께서 그 삶의 맛을 보게 해준다.
한 걸음 더 전진된 상태가 서문 후반에 기술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의 시선을 모아 보아야 할 것은 두 마리의 염소, 그리고 왜 두 마리이어야 하는지, 성직자의 경우 한 마리만 필요했었는 바 궁금한 대목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백성을 위해서는 두 마리 염소가, 성직자를 위해서는 수소 한 마리가 죄 바침의 제물로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태워 바침의 제물로서는 각기 수양 한 마리가 요구되고 있다. 이쯤해서 본문을 곰곰히 생각하는 것을 잠시 중지하고 과거 심각하게 가르쳐온 사항, 즉 “그리스도, 천국의 어린 양이 우리 죄를 짊어지셨다”라는 대목을 기억에서 끄집어내어 보자. 위 말은 그분께서 모든 인류를 위해 보상(속죄, atonement)를 만드셨다는 것, 즉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처벌을 인간 대신 실제로 짊어지셨다는 말이다. 우리가 궁금히 여기게 하는 것은 왜 그분이 세상의 죄를 짊어 나르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라 불리셨는가, 그럼에도 보상(속죄)에 관한 본문의 경우 죄를 짊어나르는 모습을 어린 양이 아니라 왜 두 염소가 확실하게 그려주고 있는가에 대해서이다.
이외에 또 하나 궁금한 것은, 주님을 위해 제비 뽑힌 염소는 죄 바침의 제물로 바쳐지고, 아사셀을 위해 뽑힌 염소는 산채로 광야에 내보냈는가 이다. 더 주목해 볼 것은, 보상은 죽여진 수소와 염소의 피를 뿌리는 등 세세하게 예식이 진행되도록 지시되고 있는 반면 아사셀을 위한 염소에 관하여는 그 염소가 그들의 모든 죄를 나른다 라고 간단히 언급하고 말았는가 이다. 이 사항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하자. 너무나 흔하게 알려진 견해에 의하면, 제물로 바쳐진 동물은 인류를 위해 벌과 대체 되는 것으로서 십자가 위에서 제물이 된 주님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신경을 기우려 생각한다면 위의 말은 본문의 경우에는 해당이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줄 것이다. 그 이유는 태워 바침의 제물들은 주님에게 달콤한 향기(a sweet savor unto the Lord)라 불리고, 제물은 그분의 식사(His meat)라고 불리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죄 바침의 제물은 최고로 거룩하다고 까지 말하고 있다. 이런 생각들로부터 명백해지는 사항이 있다. 그것들이 죄에 대한 처벌을 표현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유월절 양으로서 희생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월절을 지킵시다(Christ our passover is sacrificed for us; therefore let us keep the feast)” (고린도전 5:7-8) 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태워 바침의 제물이나 제물들은 인간이 지닌 애착들 중 최고의 애착들을 주님께 바치는 것으로 간주해야 하는데 이에 대해서 얼마나 더 추론해야 납득이 갈까? 하느님의 어린 양은 주님의 인간 부분이 신성이 되시어 그분 안의 신성과 하나를 이루는 것을 뜻한다. 실상, 어린 양이란 순진 안에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천적 선, 그리고 주님 안에서 신성한 선, 또는 신성한 인간을 명시하는 용어이다. 이 사항들이 악의 절대적 권세로부터 모든 인류를 구속해 주셨고, 이것이 악을 제거하는 바, 그분을 믿고 그분을 사랑함으로 거듭남을 통해 자기의 악이 제거되기를 소원하는 각 개인에게 있는 악도 제거 해준다. 결코 다른 방법에서가 아닌 위와 같은 방법에서 주 예수는 세상의 죄를 짊어 나르는 진정한 하느님의 어린 양이시다.
그렇다면 왜 오늘 본문에서 주님이 수소나 염소가 아닌 어린 양으로 표현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신성한 진리의 몇 가지 세부 사항이 어린 양이 등장될 경우 잘 표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소와 염소가 등장한 것은 주님에 관련된 사항, 즉 자연적 측면의 신성이 되심이 내적 측면과 외적 측면에서 인간성이 전적으로 거절되었다는 것까지 의미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그런 반면 태워 바침의 제물인 수양은 영적 측면을 명시해 주고 있다. 제물로 바쳐지는 어린 양, 수양, 수소, 염소에 대한 뜻을 우리가 헤아린다면, 신성이 되신 인성을 가장 높은 수준에서 가장 낮은 수준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말씀 속에서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 것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더불어 충분히 거듭난 사람의 선한 애착들이 두 염소가 지닌 의미에서 아주 확실한 방식이 동원되어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제물로 바쳐진 동물들, 죄 바침의 제물까지 포함해서 이것들이 처벌로 고통 당하는 희생자(victim)를 표현하거나 의미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이제 위 사항들은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는 주님의 피에 관한 공부 쪽으로 우리를 옮겨가게 한다. 그리고 만남의 천막과 성막의 여러 부분에 연속적으로 피가 뿌려지는 사항에 관한 공부가 이어진다. 우선 후자를 먼저 거론해 보자. 예비 행위가 우리로 먼저 주목하게 한다. 제단에서 불을 취하고 향기로운 향가루를 들고 베일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이다. 이는 인간이 자기가 가장 깊은 선을 지각할 수 있기 전, 거듭나는 과정에서 선과 진리를 미리 영접함으로 준비되어야만 한다는 뜻이다. 그 다음 그가 이 지각을 가졌을 때, 이 지각 자체는 관계적으로 선함과 진리의 외적 측면과 희미한 결합을 구성한다. 그 뒤 모든 국면에서 충만된 결합이 있게 될 것이다. 이런 준비과정, 그 과정에서 간혹 체험을 허락하시는 주님께 먼저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준비 과정에서 조금 밖에 안되는 것을 음미했다 해도 우리 기억에 남아 꾸준히 우리를 자극하여 준비 완료라는 미래 상태를 향해 기쁘게 도전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이와 연결된 가르침을 상기해 보도록 하자. 즉, 우리는 천국적 삶을 실감하되 수준별로 실감하도록 소개되어야만 한다. 그 이유는 우리의 현재 수준에 걸맞지 않을 경우 영적인 상해를 받거나 죽음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해도 왜라는 질문을 다시 던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선과 진리 또는 주님이 우리를 파괴되게 하거나 상함을 입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당치 않은 것이고 단지 우리 자신이 알아 차리지도 못하는 악이나 실수가 우리로 잘못된 행위를 저지르게 하므로 해서 영혼에 상함을 입히고 때로는 죽게 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피는 그분으로부터 오는 신성한 진리를, 그분의 살은 신성한 선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를 하나로 묶어 말하면 주님의 생명을 명시하는 말이다. 이러므로 그분이 말하시기를,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너희 안에 생명을 가지지 못한다” (요한 6:53), 그리고 “사실은 사람의 아들이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 (마태 20:28). 이 두 절을 한데 묶어 보면, 인간은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받음으로 영적 자양분을 얻게 되고 뿐만 아니라 악에서 해방된다는 것, 같은 말로서 죄에서 깨끗해진다는 것이다 (계시록 1:5). 그러므로 그분이 신체적으로 당하신 고통이나 실제의 죽음, 지옥의 모든 권세와 치른 영적 싸움인 그분의 시험들이 각 개인을 죄로부터 깨끗하게 할 수 있다 라는 생각을 품는 사람은 누구든지 누군가에게 사기 당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시험과 시험에서의 승리를 하나의 수단으로 해서 집합적 측면에서의 인류를 악의 절대적 권세로부터 영원히 해방되게 하셨다. 이것이 구속의 일(the work of Redemption)이다. 그 반면 이 위대한 일의 결과로 모든 사람은 말씀 속의 진리, 특별한 용어로는 “사람의 아들”을 수단으로 바깥쪽 자기 삶이 우선 깨끗해진다. 이로 인해 우리는 선함과 진리라는 주님의 생명을 받는데 이것이 살과 피로, 또는 성만찬의 빵과 포도주로 의미되고 있다. 이로부터 우리는 주님과 결합을 가진다. 이 결합은 각자 삶의 모든 수준을 망라해서 있어진다. 그런 이유는 각자에게 선과 진리의 결합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제물로 바쳐진 동물의 피를 뿌리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보상(Atonement)이라는 위대한 일을 구성한다. 이 보상은 가장 높은 의미에서는 주님 안에서 인간이 신성과, 신성이 인간과 결합하는 것을 의미하고, 낮은 의미에서는 주님이 인간과 결합한다는 것, 그리고 인간이 주님과 결합하는 상호적 결합을 말한다. 이에는 주님께서 신성이 되심을 수단으로 인성을 신성으로 만드셨듯이 거듭남으로 천사가 된 사람 속의 내적 인간과 외적 인간의 결합이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이상으로부터 만남의 천막 각 부분에 제물로 바쳐진 동물의 피를 뿌림으로 죄를 벗게 하는 예식에 관한 의미를 충분히 보았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아직 더 생각해 보아야 할 요점이 있는데, 이 예식 후에 아사셀을 위한 염소로 보상을 왜 만들었는가? 왜 예식 자체는 매 해 어떤 날에 한 번 거행되는 것인가? 진짜 보상 또는 재회에 관한 사항은 악에서 해방됨과 주님으로부터 선을 받는 것으로 구성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살핀 바 있다. 그러면 추방이라는 예식에 무엇이 포함되고 있을까? 그것이 뜻하는 바, 인간이 거듭난 후, 그러므로 천국 자체까지 일괄해서 주님께서는 계속 거듭난 사람으로부터 악이 제지되고 선 안에 그가 거주하도록 배려하신다는 것, 이는 신성한 인간으로 존재하는 고정된 선, 세력이 강한 선을 통해 전력을 쏟는 영향력을 수단으로 이루어 주시고 있다는 것, 이 일은 악이 제자리에 머물도록 지금, 그리고 영원까지 큰 힘으로 작용되고 있다는 것, 악이 아주 경미한 수준의 차이를 두고 우세해지는 것까지도 막으신다는 것, 각 사람이 제 나름대로의 선용의 삶을 누리도록 영원히 배려하신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최상의 의미에서 언제나 준비를 갖춘 사람, 천국에서는 천사 자신이다. 그리고 거듭나고 있는 사람의 경우, 이것은 그가 지닌 선과 진리의 강하고 고정된 원리로서 드러내진다. 이상에서 살핀 내용은 염소를 추방함에 뒤를 잇는 반복된 씻음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나마 설명이 되어준다. 다시 말해서, 천국에서 주님은 천사들을 계속적으로 더욱 더 깨끗해지게 하신다. 그리고 지상의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섭리하신다. 사랑하는 심정으로부터 자기의 영적 태워 바침의 제물을 바치는 신실한 예배자를 그분께서는 안팎으로 깨끗하게 해 주신다.
마지막으로 보상의 날이 매 해 한 번, 일곱 째 달, 그 달의 십 일에 있어지는 이유, 그 날이 안식일이라고 하는 이유에 대해서이다. 인간은 영원히 깨끗해지고 있다. 그것은 신앙과 선행이라는 거룩한 상태에서 결과된다. 이것이 쉼과 평화라는 영원한 안식일을 생산한다. 그 이유는 천국에서는 모든 영적 전투가 중지되고 각 천사들이 자신으로부터 스스로 하듯 자유롭게 계속 행동할 수 있는데 그들에게 필요한 계속적인 깨끗해짐 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상의 저녁과 아침, 봄과 여름에 상응되는 상태의 다양함 만을 통과해 가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런 변화를 수단으로 그 천사는 유한함의 상태에서는 분리될 수 없는 경미한 불완전함으로부터서도 더욱 더 자유로워져 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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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5장 해석

레위기 15장

영적 의미 요약

* 감각적, 세상적, 또는 이기적 사랑으로부터 흐르는 거짓의 결과인 영적 불순함의 상태에 관하여, 1-15절.
* 자신의 선에 진리가 결합하지 않음으로 발생하는 불순함에 관해서, 이와 같은 불순함을 수단으로 진리들이 손상되는데 대해서, 거듭나는 동안 선과 진리의 결합과 연결되는 양쪽 모두 순수해져야 한다는 것, 16-18절.
* 거듭나는 동안 악의 거짓으로부터 발생하는 자연적 애착의 불순함에 관해서, 19-24절.
* 거듭나는 과정에 있지 않은 자연적 애착이 악의 거짓으로 불순해짐에 관해서, 25-30절.
* 이와 같은 거짓으로 인해 선이 오염되어 영적으로 죽지 않기 위해 악의 거짓에서 순수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에 관해서, 31절.
* 본 장의 가르침에 관한 일반 요약. 32-33절.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주님께서 모세에게 그리고 아론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주님께서 진리와 선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지각을 주심으로 밝히 알게 해주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여호와)이란 그분의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speaking)이란 유입을; 모세란 신성한 질서 또는 말씀을; 아론은 신성한 선을; 말함(saying)은 지각을 말한다. (2001, 2951, 7010, 9946, 1791, 1822)

2절.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야기하라,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라, 어떤 사람이 그의 살로부터 유출(issue)을 가질 때, 그의 유출 때문에 그는 불결하다.

영적 의미

영적 교회 속의 사람에 대한 가르침이다. 누가 감각적으로부터, 세상적 사랑으로부터, 또는 이기적 사랑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악으로부터 온 거짓인 바, 불순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러줌이란 영적 교회의 사랑에 대한 가르침임을; 어떤 사람이 자기 살로부터 유출을 가짐, 그리고 그것 때문에 불결하다란 누군가가 감각으로부터, 세상적 사랑으로부터, 이기적인 사랑으로부터 생각하므로 해서 악과 불순함으로부터의 거짓이 있게 된다는 것을 말하는데 이에 관해 더 첨가해 둘 말이 있다. “인간 안에는 고유 의지와 지성이 있다. 그 의지는 악이고 그 지성은 그 악에서 파생된 거짓이다. 전자 즉 인간 고유의 의지가 인간의 살로 지성은 그 살 속의 피로 의미된다.” 이로부터 관찰해 본다면 본문에서 언급하는 유출(issue, flux)은 악한 애착으로부터 흐르는 악한 생각들을 말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3절. 그리고 이것은 그의 유출에서 그의 불결함이다, 즉 그의 살이 그의 유출을 계속하든, 또는 그의 살이 그의 유출을 멈추었든, 이것은 그의 불결함이다.

영적 의미

그리고 이것이 생각 안에 있는 거짓 또는 불순함의 근원인 바, 악이 거짓과 결합되어 있든 또는 마치 그것들이 분리된 듯 보여도 그것은 거짓의 근원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의 유출함은 불결하다란 생각 속에 있는 불순함의 근원이 악이라는 것, 바꾸어 말하면 거짓의 불순함을, 유출이 계속 이든지 그렇지 않든지란 악이 거짓과 결합되어 있든지 또는 악과 거짓이 분리되어 있는 듯 보이든지를 말하는데 이 경우의 흐른다(running)란 사상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멈추었다(stop)란 흐름이 억제되어 있음을 말한다. (10130, 843)

4절. 유출을 가진 자가 누운 침대 모두는 불결하다. 그리고 그가 앉은 모든 것도 불결하다.

영적 의미

모든 자연적 애착 또는 교리가 타락된 사랑으로부터 온 생각에 의해 오염이 되면 불순하다. 또한 타락된 사랑으로부터 온 이런 생각에 의해 확인되면 불순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유출을 가진 사람이 누웠던 자리(bed)가 불결하다란 타락된 사랑으로부터 온 생각에 의해 오염된 자연적 애착 또는 교리는 불순함을; 앉았던 곳도 불순하다란 위와 같은 생각으로 굳혀진 사랑으로부터의 모든 애착들은 순수하지 못함을 뜻한다.(6188, 10360, 10130, 9422, 10130)

5절. 그리고 그의 침대에 접촉하는 자는 누구이든 그의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자신을 물로 목욕하라,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영적 의미

위와 같은 자연적 수준의 생각 또는 애착과 아주 경미하게 접촉되었다해도 그것들은 내적, 외적으로 깨끗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 상태에 변화가 있을 때까지 불순의 원인이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 사람의 침대에 닿은 사람은 옷을 빨아 입고 물로 목욕을 해야 하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란 위와 같은 자연적일 뿐인 애착 또는 생각에 아주 경미하게 접촉만 해도 내적, 외적으로 깨끗해짐이 요구되는 바, 상태의 변화가 거행될 때까지 불순함의 원인이 된다. (10130, 6188, 10360, 3147, 5006, 7844)

6절. 유출을 가진 자가 앉았던 어떤 것에 앉은 자는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물로 자신을 목욕하라,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영적 의미

또한 악한 실제 또는 교리로 자신이 확인되도록 조처한 모든 사람, 넓게는 부패된 교회, 각 개인이 그렇게 했었던 바 내적, 외적으로 깨끗해져야 하거나, 또는 생각과 애착이 깨끗해져야 하는 바, 상태 변화가 발생 할 때까지 그는 순수해질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유출을 가진 자가 앉았던 어떤 것에 앉은 사람도 옷을 빨아 입고 물로 목욕을 해야 하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란 넓은 의미에서의 부패된 교회, 또는 어떤 개인이 그렇게 한다고 해서 자신도 그와 같이 악한 행동으로 확증하려는 사람도 내적, 외적으로, 또는 생각과 애착에 관한 것에서 깨끗해져야 하는바, 상태의 변화가 발생할 때까지 순수해질 수 없다. (6188, 제 2절, 3147, 10130, 7844)

7절. 그리고 유출을 가진 자의 살에 접촉한 자는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자신을 물에서 목욕하라,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영적 의미

만일 어떤 사람이 감각적, 세상적, 또는 이기적 사랑에서 일어나는 거짓된 교리 가운데 있는 다른 이와 애착을 수단으로 자신을 접촉하게 했다면 그는 외적. 내적으로 깨끗해져야 한다. 이런 깨끗해짐을 통하여 상태의 변화가 발생할 때까지 불순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유출을 가진 사람의 살에 닿은 사람이란 감각적, 세상적, 이기적 사랑들로 발생하는 교리의 거짓 안에 있는 어떤 사람의 애착을 수단으로 자신을 결합시키는 사람을; 옷을 빨아 입고 물로 목욕을 한다란 외적, 내적으로 깨끗해짐을; 저녁때까지 불결하다란 상태가 변할 때까지 불순함을 말한다.(10130, 780, 10283, 10130, 3147, 5006, 10130, 7844)

8절. 그리고 만일 유출을 가진 그가 깨끗한 사람에게 침을 뱉는다면. 그다음 그는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물로 자신을 목욕할 것이다,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영적 의미
한 가지 더 있다. 만일 악으로부터 온 이와 같은 거짓 안에 있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기어이 부패되게 했다면, 당한 그 사람은 외적. 내적으로 깨끗해져야 한다. 그도 상태의 변화가 없이는 순수해 질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유출을 가진 사람이 뱉은 침이 깨끗한 사람에게 튀었을 경우란 진리의 왜곡을 수단으로 왜곡하지 않고 있는 사람을 고집스럽게 부패시키는 악으로부터 온 거짓 가운데 있을 경우를 말한다. 그 이유는 좋은 의미에서 침 뱉음(spitting), 그리고 침을 뱉어 흙을 갬은 진리가 선과 결합함, 그리하여 신앙의 선을 생산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 의미일 경우, 타인에게 침이 튀어 가게 함은 타인의 생명을 썩게 하는 것, 거짓을 가진 교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옷을 빨고 물로 목욕함은 내적, 외적으로 순수해짐을, 저녁때까지 불결하다란 상태가 변할 때까지 불순함을 말한다. (6660-6, 4835-4, 3147, 5006, 683, 10130, 7844)

9절. 그리고 유출을 가진 자가 (짐승 위에) 타려고 (사용한) 안장은 어떤 것이든 불결하다.

영적 의미

악으로부터 온 위의 거짓과 접촉됨으로 오염된 지성 안에 있는 진리의 모든 저장고도 불순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유출을 가진 사람이 타고 다니던 안장(saddle)이 불결하다란 위와 같은 거짓과 접촉됨으로 오염된 지성 안에 있는 진리의 모든 저장소도 불결함을 말한다.(5531, 2761, 2762, 10283, 10130)

10절. 그리고 유출하는 자 아래 있었던 어떤 것에 접촉하는 자는 누구든지 저녁 때까지 불결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을 나르는 자는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자신을 물로 목욕하라,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영적 의미

위와 같은 방법으로 오염된 의지 속에 있는 선의 모든 저장고도 상태가 변할 때까지 불순하다. 그리고 이런 오염에 관해 단순히 생각만 해도 필시 요구되는 사항은 상태의 변화요 이 변화로 내, 외적으로 깨끗해져야 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그가 깔고 앉았던 것에 닿은 사람, 그것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란 전자의 경우는 의지 안에 있는 저장고가 오염된 것, 후자는 불결한 것을 생각만 함으로 해서 오염되는 것을; 옷을 빨고 물로 목욕을 함이란 내적으로, 외적으로 깨끗해져야 함을; 저녁때까지 부정하다란 상태가 변할 때까지 불순함을 말한다.(10130, 3079, 5948, 8764, 3147, 5006, 10130, 7844)

11절. 그리고 유출을 가진 자가 자기 손들을 물로 행구어냄(rinse)도 없이 누군가를 만진다면, 그는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자신을 물로 목욕하라,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영적 의미

또한 만일 악으로부터 온 거짓 안에 있는 사람이 자기와 순수한 사람 양쪽에 공통되는 어떤 애착을 수단으로 영적 접촉을 했다면, 순수했던 그 사람은 바깥쪽의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이런 접촉도 외적, 내적으로 순수해져야 할 필요성을 만드는바 상태의 변화가 있어야 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유출을 가진 사람이 물로 행구지 않은 손으로 누군가를 건드린다란 영적으로 악으로부터 오는 거짓 가운데 있는 사람, 또는 진리를 왜곡하는 사람이 외적으로 깨끗해짐도 없이 서로 간에 공통되는 어떤 애착을 수단으로 접촉을 가질 경우를; 접촉 당한 사람도 옷을 빨아 입고 물로 목욕해야 하며 저녁때까지 불결하다란 상태가 변할 때까지 내적, 외적으로 깨끗해져야 함을 말한다. 여기서 한가지 주목해둘 것이 있다. 그것은 닿는다(touching)와 손만을 씻는다(washing the hands only)에 관한 것이다. 첫 단어는 “상대방의 의지가 동의해서 하나를 만드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 단어의 경우, 발과 손을 씻음은 자연적 인간 측면을 깨끗하게 함과 관계되고, 머리를 씻음은 영적 인간 측면을 깨끗하게 함과 관계를 가진다.(10283, 10130, 3147, 7844, 7442-3)

12절. 그리고 유출을 가진 자가 만진 질그릇은 깨뜨려라. 그리고 모든 나무 그릇은 물에서 행구라.

영적 의미

가장 수준 낮은 진리의 저장고라 해도, 설사 그것이 악에서 온 위의 거짓에 매우 가볍게 오염되었다 해도 거절되어야 한다. 그리고 선의 가장 수준 낮은 저장고 역시 위와 같은 처지인바 진리를 통해 깨끗해져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유출을 가진 사람이 만진 질그릇이란 악에서 나온 거짓에 오염된 선이 없는 진리의 가장 수준 낮은 저장소를; 나무그릇이란 선의 저장소를; 깨뜨림 또는 물로 씻음은 진리를 통하여 거절하거나 깨끗해지는 것을 뜻한다.(10105, 10130, 10283, 643, 9163, 3147)

13절. 그리고 유출을 가진 자가 자기의 유출을 깨끗이 했을 때, 그러면 그는 자기의 깨끗해짐을 위하여 칠 일을 자신에게 셀 것이다. 그리고 자기 옷들을 빨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 살을 흐르는 물에서 목욕하라, 그러면 깨끗하다.

영적 의미

악의 거짓으로부터 순수해지겠다는 사람은 거듭나는 과정을 통과해야만 하는 바, 선으로부터 활성화된 진리를 수단으로 내, 외적으로 깨끗해진다. 그러면 그는 순수하게 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유출을 가진 사람이 그 병이 나아 깨끗하게 되는 경우란 악한 사랑으로부터 진리를 왜곡하는 사람이 깨끗해짐을, 깨끗하게 되기까지 칠 일간을 센다는 것이란 그가 거듭나는 과정을 통과해야만 한다는 것을(창세기 1장 참조), 옷을 빨고 흐르는 물에 목욕을 함이란 내적, 외적으로 깨끗해짐을, 깨끗하게 됨이란 영적으로 깨끗해짐을 말한다. (4545, 3147, 5006, 3424, 4545)

14절. 그리고 팔 일째 날 그는 자기에게 호도애 두 마리, 또는 어린 비둘기 두 마리를 가져 와라, 그리고 주님 앞, 만남의 천막으로 올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성직자에게 주어라.

영적 의미

그리고 그의 새로운 상태에서 선 또는 신앙 속의 진리로부터 주님을 예배 할 것이고, 천국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선을 받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선에 관한 자기 상태도 이로부터 임을 인정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덟 째날 이란 새로운 상태를, 호도애 또는 어린 비둘기 두 마리란 신앙 속의 선 또는 진리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을; 만남의 천막 문간, 주님 앞으로 나감이란 천국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신앙 속의 선과 진리를 받고 있음을 인정함을; 성직자에게 제물을 줌이란 선에 관한 측면의 자기 상태로부터임을 각각 말한다.(9227, 1826, 1827, 2356, 3540-3, 9946)

15절. 그리고 성직자는 그것들을 바칠 것인데, 하나는 죄 바침을 위해, 또 하나는 태워 바침을 위해서이다. 그리고 성직자는 그의 유출됨을 위해 주님 앞에서 그가 보상 받게 할 것이다.

영적 의미

그리고 이러한 선의 상태로부터 그는 진실로 예배 드릴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악이 제거 되기 위하여, 둘째로 그가 주님께 헌신되기 위해서 이다. 이런 과정에서 신성한 선은 악에서 온 거짓이 제거되게 해주시고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의 재회가 결과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제물을 바침이란 선의 상태로부터 예배드려야 진실된 예배가 됨을, 한 마리는 죄 바침의 제물로, 또 한 마리는 태워 바침의 제물로란 악은 제거될런지 모르고, 그리고 주님께 자신을 바치기 위해서 임을, 성직자가 주님 앞에서 그의 유출을 위해, 그를 위하여 보상 받게 함이란 위 방법에서 신성한 선으로부터 악에서 온 거짓이 제거되고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 사이의 재회가 결과될 것임을 말한다. (9946, 3400, 10053, 10283, 10042II)

16절. 그리고 만일 어떤 사람의 성교(copulation)의 씨가 그 사람으로부터 나갔다면, 그 다음 그는 물에서 온 몸을 목욕할 것이다,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영적 의미

다시, 거듭나는 과정에서 어떤 이에게 있는 신성한 진리의 씨가 자체 속의 선과 결합되지 못함으로 해서 진리를 무효화시키고 있다면 그의 진리의 상태가 선에로 완전히 인도될 때까지 선을 원리로 하는 생활 속에서 진리를 응용함으로 완전하게 깨끗해져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교 속의 어떤 남자의 씨가 그로부터 나갔다(going out) 함은 거듭나는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있는 신성한 진리의 씨가 그 진리에 적합한 선과 결합되지 못함으로 그 씨가 무효화되고 마는 것을; 물로 온 몸을 씻는다란 선을 원리로 생활에 진리를 응용함을; 저녁때까지 불결하다란 선 쪽으로 인도되고 있는 진리의 상태가 결말을 볼 때까지 불순할 것임을 말한다. (880, 1798, 4837, 3147, 1798, 780, 7844, 9274)

17절. 그리고 성교의 씨 위에 있는 모든 옷, 모든 가죽은 물로 빨아라,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영적 의미

인간과 더불은 진리의 모든 상태, 그것이 외적이든 내적이든, 그 안에 진리가 선과 결합된 애착이 있는데 뒤집혀 있다면 순수해져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진리의 상태가 선으로 인도되는 결말이 날 때까지 온전치 못해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교의 씨가 묻은 옷과 피부는 물로 씻어야하고 저녁때까지 불결하다란 인간과 함께 하는 진리에 관한 모든 상태, 그것이 외적이든 내적이든 그 안에서 진리가 그 자체의 선과 결합하려는 애착이 뒤집혀 있을 경우 반드시 깨끗해져야 하는데, 이는 진리가 선 쪽으로 인도되는 상태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완전하게는 깨끗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9215, 880, 1798, 4837, 3147, 7844, 9274)

18절. 여인이 남자와 성교의 씨와 더불어 누울 것이다면, 그들 모두 물에서 자신들을 목욕하라,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영적 의미

결합을 위해 진리의 씨를 받는 중인 선에 관한 자연적 모든 애착, 이 애착이 영적 애착과 상응되고는 있지만 받는 중일 경우 상대적으로 불순하다. 따라서 위 두 애착 모두는 진리와 선이 충만 되게 결합함으로 해서 상태에 변화가 있기까지 진리로 깨끗해지도록 요구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 구절에서의 여인은 선에 관한 자연적 애착을; 남자는 진리에 관한 영적 애착을 말하는데, 그 이유는 여기서 남자(man)라는 단어로 사용된 히브리어가 “ish”이기 때문이다. 씨(seed)란 선과 결합하려는 진리를; 여인은 자연적 애착을; 남자는 영적 애착을 뜻한다. 두 사람 다 물로 씻어야 하고 저녁때까지 불결하다란 진리가 선과 충분히 결합함으로 있어지는 상태의 변화가 결과되어야 깨끗해짐을 말한다. (915, 880, 1798, 3969-2, 155, 7884, 9274, 3147)

19절. 그리고 만일 여인이 유출을 가진다면, (그리고) 그녀의 살에서 그녀의 유출이 피이다면, 그녀는 칠 일 동안 불순해 있다. 그리고 그녀를 만지는 자는 누구든지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영적 의미

또한 어떤 자연적 애착이 거듭남을 수행하는 상태에서 이기적 사랑의 악으로부터 온 거짓으로 부패되었다면, 그 자연적 애착은 거듭나야 한다. 그것이 아무리 경미하게 탐닉했다 해도 진리의 상태가 선으로 인도 될 때까지 불순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인이 피를 흘림이란 자연적 애착이 이기적 사랑 속의 악에서 나오는 거짓으로 부패됨을; 그녀의 살에서 그녀의 유출이 피이다(월경)란 거듭남을 수행하고 있는 상태를; 칠 일간 불결하다란 자연적 애착은 거듭나지게 될 것임을(창세기 1장 참조); 그 여인에게 닿은 사람은 저녁때까지 불결하다란 진리의 상태가 선으로 인도되는 때까지 경미한 탐닉도 불순함을 말한다. (3969, 155, 10283, 4161, 716, 10130, 7844, 9274)

20절. 그녀가 그녀의 불순함에서 누운 모든 것은 불결하다. 그녀가 앉은 모든 것 역시 불결하다.

영적 의미

이 자연적 애착으로 오염된 모든 교리는 불순하다. 그리고 거짓으로 이 애착을 확인한 모든 상태도 불순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불결한 기간 중 그 여인이 누웠던 모든 것이 불결하다란 위 자연적 애착으로 오염된 모든 교리가 불순함을; 앉았던 자리가 불결하다란 거짓으로 위 애착을 확증한 모든 상태가 불순함을 말한다. (6188, 10360, 10130, 9422)

21절. 그리고 그녀의 침대를 만지는 자는 누구든지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물에서 자신을 목욕할 것이다, 그리고 저녁까지 불결하다.

영적 의미

이런 교리에 아주 경미한 접촉으로 영향을 입은 모든 사람도 상태가 바뀔 때까지 외적, 내적으로 깨끗해져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 여인의 침대에 닿은 사람이란 매우 경미한 수준이지만 거짓 교리에 영향을 받은 모든 사람은 불순함을; 옷을 빨아 입고 물로 목욕해야 함이란 내적, 외적으로 깨끗해져야 함을; 저녁때까지 불결하다란 위 상태가 끝나기까지 불순함을 말한다.(10130, 6188, 3147, 5006, 7844)

22절. 그리고 그녀가 앉는 어떤 것을 만진 자는 누구든지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물로 자신을 목욕하라,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영적 의미

악의 실제, 그로부터 파생된 거짓이 확인 되는 데에 자신을 동참시킨 모든 사람도 상태가 종결될 때까지 외, 내적으로 깨끗해져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 여인이 앉았던 자리에 닿은 사람이란 악을 실습함으로 자신을 확증하게 하려 한 어떤 사람들을; 옷을 빨아 입고 물로 목욕함이란 내적, 외적으로 순수해짐을; 저녁때까지 불결하다란 상태가 종결 될 때까지 불순함을 말한다.(10130, 9422, 3147, 5006, 7844)

23절. 그리고 만일 그것이 침대 위에, 또는 그녀가 앉는 어떤 것 위에 있는데, 그가 그것을 만진다면, 그는 저녁까지 불결하다.

영적 의미

만일 악에서 온 이 거짓이 진리 속의 교리 또는 선의 교리가 오염되었는데 그 영향을 받고 있는 자연적 애착을 가진 사람일 경우도 상태의 변화가 거행될 때까지 불순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 여인이 누웠던 자리와 앉았던 어떤 것 위에 있는 물건이란 악에서 나온 거짓이 진리 또는 교리를 오염시킨 경우를; 닿는다란 영향 하에 있게 됨을; 저녁때까지 불결함이란 상태가 변할 때까지 불순함을 말한다.(3969-2, 155, 10283, 10360, 9422, 3522, 10130, 7844)

24절. 그리고 만일 어떤 사람이 그녀와 눕는다면, 그리고 그녀의 불순함이 그 사람 위에 있다면, 그는 칠 일 동안 불결하다. 그리고 그가 누운 모든 침대는 불결하다.

영적 의미

만일 진리 안에 있는 사람이 이 애착과 자신이 결합되고 있어 그 거짓이 그를 오염되게 하고 있다면, 그도 거듭나는 거룩한 상태를 통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그의 교리는 불순해 있을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 여자와 한 자리에 든 남자란 진리 안에 있는 어떤 사람이 위 애착과 그로부터의 거짓을 자신과 결합시킬 경우를; 그 여인의 불결이 그 남자에게 묻었다란 위 애착과 그 거짓으로 해서 오염됨을; 칠 일간 불결하다란 거듭나는 거룩한 상태를 통하여 감을; 그 남자가 누웠던 모든 침대가 불결하다란 그 교리도 이로 인해 불순해짐을 말한다. (10283, 10130, 제 2절, 716, 10130, 10360, 10130)

25절. 그리고 만일 여인이 그녀의 불순함의 기간 동안이 아닌 많은 날 동안 그녀의 피의 유출을 가진다면, 또는 만일 그녀가 그녀의 불순함의 때를 넘어 유출을 가진다면. 그녀의 불결함의 유출의 모든 날들을 그녀는 그녀의 불순함의 날들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불결하다.

영적 의미

그리고 만일 어떤 자연적 애착이 악에서 온 거짓으로 오염되고 있는데, 이때의 상태가 거듭남으로 인도되지 않는 중이거나 거듭나는 상태를 통과하는데 실패한 때이라면, 이 상태가 지속되는 한 그것은 불순하다. 거듭남을 수행하는 상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상태는 더 심하게 불순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인이 월경 때가 아닌데도 오랫동안 하혈함이란 어떤 자연적 애착이 거듭나도록 하는 상태로 인도되지 않고 악에서 나오는 거짓에 오염될 경우를; 월경이 더 오래 계속됨이란 거듭나는 상태를 통과하는데 실패함으로부터를(창세기 1장 참조); 하혈하는 동안이 월경하는 때처럼 이란 위 실패의 상태가 계속되는 한 거듭남을 수행하는 동안에 불순하듯이 불순하다. 그 여자가 불결하다란 더 심하게 불순함을 말한다. (4161, 10283, 716, 487, 10130, 4161)

26절. 그녀가 자기의 유출이 있는 모든 날들에 누운 모든 침대는 그녀의 불순함으로부터의 침대이다. 그리고 그녀가 앉은 모든 것은 그녀의 불순함으로부터의 불결함 같이 불결하다.

영적 의미

거짓에 있는 위의 자연적 애착으로 오염된 모든 교리는 불순하다. 그리고 거짓으로 확인하는 이 자연적 애착의 모든 상태도 불순하다. 이것이 거듭남을 수행하는 상태라 해도 동등하게 불순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 여인이 하혈하는 동안 누웠던 모든 침대는 월경 때 누웠던 잠자리와 마찬가지로 불결하다란 속에 거짓이 든 자연적 애착으로 오염된 모든 교리는 불순하다는 것을; 그 여인이 앉았던 곳도 월경 때 불결하듯이 불결하다란 자연적 애착을 거짓으로 확증한 모든 상태는 거듭나는 동안 불순하듯이 불순함을 말한다.(10360, 10283, 10130, 9422, 10130, 10283, 4161)

27절. 그리고 이런 것들을 만지는 자는 누구든지 불결하다, 그리고 그의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물에 자신을 목욕하라,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영적 의미

이런 왜곡된 상태에 영향을 매우 적게 받았다고 하는 사람도 불순하다. 따라서 상태가 끝날 때까지 외적, 내적으로 깨끗해져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런 것들을 만지는 사람은 불결하다란 이런 왜곡된 상태로 영향을 매우 적게 받았다 해도 불순함을; 옷을 빨아 입고 물로 목욕함이란 말씀을 통해 내적, 외적으로 깨끗해짐을; 저녁때까지 불결하다란 상태가 변하기까지 불순함이 계속된다는 것을 말한다.(10130, 10283, 3147, 5006, 2702, 10130, 7844)

28절. 그러나 만일 그녀가 자기의 유출로부터 깨끗해진다면, 그러면 그녀는 칠 일을 자신에게 셀 것이다, 그리고 그 후 그녀는 깨끗하다.

영적 의미

그러나 만일 이 자연적 애착이 거짓에서 벗어나 깨끗해진다면 깨끗해짐이 거듭나는 결과임을 인정하게 된다. 그 이유는 깨끗해짐은 거듭남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 여자가 깨끗하게 되려면 칠 일을 세어야 된다란 만일 이 자연적 애착이 거짓에서 깨끗해지려면 깨끗해짐은 거듭남의 결과로 된다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 그 이유는 깨끗해짐은 거듭남에 따라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4545, 창세기 1장, 716, 10239)

29절. 그리고 팔 일째 날 그녀는 자기에게 호도애 두 마리, 또는 어린 비둘기 두 마리를 가져 와라, 그리고 그것들을 성직자에게, 만남의 천막의 문으로 가져 가라.

영적 의미

위 깨끗해진 자연적 애착의 새로운 상태 또는 이 상태가 활성화되고 있는 사람 속의 자연적 애착 속에서 그 사람은 신앙의 진리와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할 것이고 그분의 영향이 천국을 통해 온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팔 일째란 위 자연적 애착의 새로운 상태를, 호도애 또는 어린 비둘기 두 마리란 신앙의 선 또는 진리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을, 그것들을 만남의 천막 문, 주님께 가져옴이란 주님과 천국을 통해 그분의 영향력이 오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9227, 1826, 1827, 9946, 2356, 3540-3)

30절. 그리고 성직자는 하나는 죄 바침을 위해, 또 하나는 태워 바침을 위해 바쳐라, 그리고 성직자는 그녀의 불결함으로부터의 유출을 위해 주님 앞에서 그녀를 위한 보상을 받게 할 것이다.

영적 의미

또한 신성한 선으로부터 악이 제거 될 것이고 주님을 사랑함을 실감할 것이다. 그리고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의 재회가 악으로부터 오는 거짓, 그로 인한 불순함을 제거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한 마리는 죄의 제물로, 또 한 마리는 태워 바침의 제물로 바친다란 신성한 선으로부터 악의 제거와 주님을 사랑함을 실감하게 될 것임을; 성직자가 주님 앞에서 그 여인의 불결함의 유출을 위해 그 여인을 위해 보상을 받게 함이란 악으로부터 온 거짓의 제거와 불순함이 제거됨으로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이 재회함을 말한다. (9946, 3400, 10053, 10042II, 10130, 10283)

31절. 고로 너희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자기들의 불결함으로부터 분리되게 할 것이다, 하여, 그들이 자기들 가운데 있는 내 성소를 더럽힐 때, 그들이 자기들의 불결함에서 죽지 않게 하라.

영적 의미

이렇게 하여 영적 교회 속의 모든 사람은 깨끗하게 만들어져 그 속의 악이 영적 죽음을 일으키지 않게 된다. 한편 그들은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의 하모니를 원해야 하는바, 이 하모니에 주님으로부터 온 천적 원리들이 건설되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불결함에서 분리되어야 할 것이란 영적 교회의 모든 멤버는 순수해져야 할 것임을; 불결함 때문에 죽지 않는다란 악이 영적 죽음의 원인은 아님을; 그들 가운데 있는 나의 성소를 더럽힐 때란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 주님에게서 오는 천국 원리가 설립된 장소인데 이것이 결핍되는 경우를 말한다. (3654, 10130, 10283, 129, 3210, 6028)

32절. 이것은 유출을 가진 사람에 관한 법, 그리고 성교의 씨를 자기로부터 나가게 하여 그것으로 해서 불결해 있는 사람에 관한 법이다.

영적 의미

이것은 이기적 사랑에서 오는 거짓을 제거하는 신성한 질서의 법칙이요, 이는 진리와 선의 천국적 결혼의 성결됨을 위반하여 불순함이 생산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유출을 가진 자에 관한 법, 그리고 성교의 씨를 자기로부터 나가게 하여 불결한 자에 관한 법이란 이기적인 사람에게서 파생되는 거짓을 제거하기 위한 신성한 질서의 법칙이고, 불순함을 생산하는 원인, 즉 진리와 선의 천국 결혼이라는 성스러움을 위반하지 않게 하기 위한 법이라는 말이다.(10283, 880, 1798, 4837, 2634, 10130)

33절. 그리고 자기의 불순함으로 아프고 있는 그녀에 관해서, 그리고 유출을 가진 사람, 남자와 여자, 그리고 불결해 있는 그녀와 눕는 자에 관해서.

영적 의미

이는 천국 결혼을 준비하는 사람에게서 악이 제거되기 위해서, 영적 그리고 자연적 애착들로부터 악에서 나온 거짓의 제거를 위해서, 그리고 영적 애착이 자연적 애착과 불순하게 결합함을 제거하기 위해서 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자기의 불순함으로 아프고 있는(월경하고 있는) 여인에 관해서 이란 거듭나는 과정 안에 있는 이들로부터 거짓을 제거해 주는 법 임을; 유출을 가진 자, 남녀란 영적, 자연적 애착으로부터 일반적으로 오게 되는 악에서 나온 거짓의 제거를 위해서 임을; 불결한 여인과 한 자리에 든 남자란 영적 애착과 자연적 애착의 불순한 결합의 제거를 위해서 임을 말한다. (2634, 10283, 4161, 915, 10283, 4433, 10130)

15장의 종합적 고찰

우리 앞에 전개되는 신성한 진리를 곰곰이 생각하기 전 우선 우리에게 두 가지를 먼저 생각해보도록 암시되는 사항이 있다. 첫째 주님께서는 유입(influx)해 주심과 가르치심(훈육, instruction)을 수단으로 교회 속의 각 개인을 가르치신다(teach)는 것, 둘째 유출을 가진 본문의 사람은 각각의 사람의 상태에 종속되어 있는 어떤 모형(type)이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 차이는 있을지언정 신성한 진리로부터 오는 얼마의 빛을 가지고 있다. 즉 내면적으로 계발을, 외면적으로 가르침이라는 빛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유입과 계발을 생각해 볼 때 후자는 전자 없이는 거의 사용되지 못한다는 것을 식별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모든 살아 있는 창조물 중 인간 만에 주어진 축복 받은 능력이라면 그것은 영적인 빛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일 게다. 마찬가지로 큰 축복이란, 영적 빛을 수단으로 말씀에서 오는 진리를 알 수 있고, 이러므로 해서 자기 살(flesh)로부터의 유출로 명시된 것, 즉 자기의 자연적 이기심으로부터 오는 거짓된 것을 생각해 보는 정도만큼에서 진리를 발견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기적 심정으로부터 악한 생각들이 나온다(마가 7:21). 그러나 이런 악한 생각들을 기어이 연출하고 싶다거나 탐닉하는 것만 마음 속에서 나올 수 밖에 없게 되어 있는 게 인간 자체라면 그것을 책임지어야 하는 쪽이 인간이라고 잘라 말할 수는 없다. 이에 대해서는 더 곰곰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어찌됐든 이런 나쁜 생각들은 사악한 영들로부터 우리 안으로 흘러든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우리 속에는 사악한 영들이 매력을 갖는 악의 뿌리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악의 뿌리를 우리가 보아야 한다고 요구되는 것이요, 주님께서 말씀을 수단으로 볼 수 있게 장치해두셔서 우리는 각자의 영적인 유출들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주목해 볼 사항은 유출이 계속되는 것과 되지 않은 것 사이의 차이점이다. 주목하고자 하는 이유는 전자는 의지의 작용을, 후자는 의지에 찬성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주목해 둘 것은 비록 후자의 경우가 양심이 저지하려는 영향을 포함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둘 다 모두 영적으로 불순한 상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악한 생각의 두 가지 상태들이 “누웠던 자리”와 “앉았던 곳”으로 나타내고 있다. 물론 하나는 이해함에, 다른 하나는 의지에 관계되는 말이다.
위를 이어 몇 가지 케이스가 보여주는 것은, 우리 안으로 계속 흘러드는 것을 확증해 주는 악한 생각들 때문에 다른 사람이 불순해져 고통을 당하는 경우들이다. 어찌됐든 우리가 위와 같은 생각들을 입으로 뱉었기 때문에서 만은 아니고, 타인이 우리 주위를 싸고 있는 영적 분위기에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기운은 설사 우리가 아무 말하지 않고 있는 경우에도 타인과 교통을 이루는 일이 허다하다. 위에 대해 한번 더 조명을 비추어 생각해 본다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되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어떤 의도도 없이 무의식적으로 타인에게 해를 주게 되는 경우까지도 없도록 하는 게 더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경우들을 잘 생각해보자. 거짓 교리는 사실 사람을 죽어가게 하는 것들인데, 만일 거듭나고 있는 사람이 이 교리를 마신다 해도 그 교리는 죽게 할 정도로 상해는 입히지 못한다. 그러나 거기에 영적 접촉이 있게 된다면 불순함을 생산하게 만든다. 이보다 더 심한 위험도 있을 수 있다. 만일 어떤 이가 자기에게 영향을 준 교리를 수단으로 거짓을 확증하는 쪽으로 처신했다면 확실한 것은 그가 자신 속에서 불순함을 생산하는 정도보다 더 심한 것, 즉 자신을 상하게 한다. 이 사람은 자기에게 영향을 준 사람 속에 든 애착이 자신과 결합되게 한다. 이보다 더 심한 상해는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이 신중한 태도로 불순함이 초래되게 했을 경우에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는 일반적으로 애착 측면에서 있어진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결과를 지성 측면에서도 발견하는데, 지성 측면의 생각들이든, 생각과 더불은 느낌들이든 다 해당된다. 이것들이 본문에 타고 다니던 것(saddle, 안장)들과 그 뒤에 언급되는 것들로 명시되고 있다. 이에 대한 해석은 시리즈가 보여주고 있다. 즉 깨끗해짐은 진리를 수단으로 해야만 가능하다는 것, 그 다음 저녁때라 불리고 팔 일째로 표현되는 상태의 결말인 주님을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핀 사항들은 거듭나는 사람에게 있게 되는 진짜 경험들에 해당된다. 따라서 상응의 언어로 기술된 말씀을 곰곰이 되새겨 보게 되면 각자의 영적 진보를 한 층 더 증진시키는 기회가 된다. 더불어 악한 모든 생각들은 더욱 경계해야 하겠다는 각오도 서리라. 잊어서는 안될 사항은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가 자동으로 더욱 있어져야 할 것이다.
이제 선함과 진리의 천국적인 결혼을 생각해 볼 차례이다. 이는 거듭남의 극점(완성)일뿐 아니라 거듭나는 과정을 총망라한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 천국 결혼보다 더 거룩한 것, 더 순수하다는 것, 더 깨끗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해서 주님이 그분의 교회와 결합되는 것이 결혼에 비유되고 있다.(계시록 21:2) 참으로 주님이 장치해두신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진정한 결혼은 이 천국적인 결혼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마태 19:4-6). 그러므로 일남일녀의 결혼도 천국 결혼처럼 동등하게 거룩하고, 순수하며 깨끗하다. 그럼에도 이제 관찰해 보아야 하는 것은 거듭나는 동안에 두 가지 의미에 있는 결혼과 연결되는 것 조차에서도 불순함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앞에 전개되는 영적 시리즈는 이것이 주제가 된다.
어떻게 신성한 진리의 씨가 그 진리에 맞는 선과 결합하지 못함으로 해서 더럽혀지고 말까? 주님에게서 나오는 신성한 진리가 순수하듯 우리 안에 있는 선에서 나오는 진리도 순수하다. 단지 그것이 우리의 거듭나는 인품을 구성하는 한도만큼에서 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 존재는 타락된 개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래서 위 두 가지 개성은 인간 속의 나 자신(proprium) 또는 주님과 구별되는 인간의 복합 생명을 구성한다. 인간이 태어날 때 가지고 있는 게 악밖에 없고 따라서 잘못된 것밖에 없는 고로 어떻게 악으로부터 온 거짓이 우리 안에 있는 선으로부터 온 진리를 오염시킬까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모든 불순함의 근원이 되고 있다는 것까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결혼에 관련하여 천사들이 순수하듯 우리도 순수해지길 원한다면 우리는 내적, 외적으로 거듭나야만 한다는 것, 즉 이해함과 의지 양면이 거듭나야 한다. 이것이 우리 앞에 있는 가르침의 실체요 총 합산이다. 여기에 덧 붙여져야 하는 게 있다. 이 전체적 측면에서의 순수해짐은 마치 우리 자신 스스로 이룩해낸 듯 모두 함께 결과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어느 누구도 거듭나지 않으면 진정한 천국적인 결혼 수준의 사랑 안에 있을 수 없고, 그가 자신을 위해 주시는 주님의 위대한 사랑을 받았으되 다시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거듭날 수도 없고 그분과의 결합이 영원까지 이어질 수도 없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그분을 사랑한다. 그 이유는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본 장의 나머지 구절들에 있는 세부 사항에 대해서 일일이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 이유는 대부분 이미 상술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필요한 것은 월경이 있는 동안(the time of her impurity or separation) 하혈(issue)이 있는 것과 월경 때가 아니거나 월경 기간을 넘었는데도 하혈이 있는 것 사이의 차이점이다. 이로부터 배우는 바, 혹간 어떤 이들은 전혀 거듭나지 못할는지도 모른다는 것, 혹 어떤 다른 이들의 경우 거듭나는 과정이 실패될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에 첨가해서 상기해둘 서술은, “천국에 있는 모든 사회에 대칭되는 사회가 지옥에 있다. 또한 양쪽 사회는 무수할 정도로 많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다각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천국을 그저 구한다(seek)고 해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천국은 악과 싸워 승리하는 사람만이 가는 곳이다. 주님의 이 말씀을 상기해 보라. “사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있는 힘을 다하여라” (누가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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