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든볽,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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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든볽, 그는 누구인가?

한스 안데르센(Hans Andersen)의 아름다운 이야기 중 하나이다. 어느 동산에서 자기들을 위해서는 너무나 작았던 화분을 결국 벗어나 자란 우람한 나무에 관한 묘사에서 이런 대목이 있다. 그들의 뿌리는 그 화분 안에서 잔인하게 옥죄어 엉켜있었다; 그럼에도 그 나무는 태양쪽으로 자신들을 용감하게 쳐들고, 가지들을 내뻗어, 그들의 꽃들을 만발하게 한 결과, 답답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은 자기들의 황금빛 열매와 더불어 새로와졌다. 그들의 붙임성 있는 팔들에는 노래하는 많은 새들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나무의 가슴 깊은 곳에는 언제나 기쁨의 노래가, 재생의 즐거움이 그치지 않았다. 마침내 그 나무는 자기들을 감금했던 단단하고 차거운 쇠고랑을 부수고, 자기들의 힘있는 뿌리들은 자유의 달콤함을 만끽하며 동산으로 뻗어나갔다.
나의 생각에서 이 이상한 동산은 타이탄의 천재 이매뉴얼 스위든볽을 자라게 한 18세기를 상징한다고 여겨졌다. 어떤 이는 이 18세기를 이성의 시대라 부른다, 그리고 이 시대의 특성을 매우 냉혹한 시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의기소침한 때로 특정지우고 있다. 사실인즉, 진보는 사방 각처에서 놀라울만큼 있어졌다. 위대한 철학자들, 그리고 정치가들, 그리고 두려움 없는 탐구가 과학에 있었다. 정부의 조직은 더 향상되었고, 봉건제도는 저지되었으며, 큰 도로들은 여느 이전 보다 훨신 안전해졌다. 중세 사상에 대한 불길 같은 열정은 엄한 예법과 이성의 쇠지휘봉에 의해 억제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시대 앞의 암흑 시대에서 같이 이 시대에서도, 사악하고 압제하는 슬픔의 분위기와 찌무룩한 권력이양도 있었다. 테인(Taine) 같은 유능한 작가들은 그의 문학에 관한 역사 안에 어떻게 쓴맛의 신학이 인간을 마치 혐오스러운 죄의 후손으로 간주했고, 이 세상을 하느님의 분노에 내던졌는지를 적어두고 있다. 옛날 성인들이 중요시했었던 온화한 천사인 선행(Charity)이 대수롭지 않은 차원으로 격하되어 내밀렸다; 그리고 믿음 만(faith alone)을 추켜세웠다. 엄밀히 보면 신앙은 선행으로부터 출현해야 진짜 신앙일진대 그들이 내세운 신앙은 신앙이 아니고. 오히려 믿음 만이 천국 입장의 필수요건이라 억지부리는 자아 중심적 가설이라 말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 신학은 사람들로 하여금 유용한 모든 일은 무익한듯, 신체적 모든 불행들은 벌받아서 그렇게 된듯 간주하게 만들어버렸다. 결국 여느 밤중들 보다 가장 깜깜한 밤, 무식함과 무감각함이 사랑에 굶주린 가슴을 지닌 세계를 덮어 씌웠다.
위와 같은 거친 사회적 분위기로부터 떠나 스위든볽의 천재성은 자랐고, 이 천재성은 사회에 족쇄를 채운 이 신학의 궤변을 부수도록 운명지어져 있었다. 마치 동화 속의 우람한 나무가 자기들을 옥죄었던 화분을 파열한 것과 대등하다.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 “옥죄인 세상을 풀어”주는 경우가 많을진대, 스위든볽의 시대 주위에 있던 몇 명의 인물들과 역사적 사건들 몇 개 정도는 다시 짚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겨진다.
스위든볽이 태어난 것은 오랫동안 옛 세계를 주름잡았던 거인이라 할 수 있는 스콜라 철학에 처음으로 효과적인 펀치를 날린 영웅적 챔피언 쟌 아모스 코메니우스(John Amos Comeius)가 죽고 얼마되지 않아서였다. 스위든볽이 출생했던 1688년은 비록 무혈 혁명이다해도 영국의 운명을 가름하는 해였다. 그는 루이(Louis) 14세의 통치 기간 중에서도 가장 세력을 과시한 시기 동안 살았다. 그리고 그는 라 로쉘(La Rochelle)에 관한 기억이 아직도 모든 신교도들의 마음에 생생하게, 쓰라림 그대로 있었던 시기에 살았다. 그는 스위든의 광적인 왕, 챨스(Chales)의 놀랄만한 원정을 목격하였다. 그는 스웨덴의 식물학자 린네(Linnaeus)와 동시대 사람이었다. 그의 마지막 여러 년도에 프랑스에서는 루소(Rousseau)가 자연에 의거한 교육 원리를 부르짖었고, 디데롯(Diderot)은 감각들에 관한 자기 철학을 발전시켜 맹인도 가르쳐질 수 있다고 선포하였다. 기존의 전통적 사회 관습이 무너져내리고, 앞을 향하고 있는 그의 마음이 그리워한 시대가 갑작스럽게 돌진하는 시대를 인생으로 맞이한 스위든볽 같은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이다. 그가 처했던 주변 여건을 더 고려할 수록 그가 어떻게 그의 교회, 또는 그의 시대의 표준들과 공통되는 것이 아주 적었다는 상반된 결론에 이르게하는 바, 이런 스위든볽의 성장 배경은 기적으로 처리할 수 밖에 없는 듯하다. 나는 그로하여금 가장 독립적인 종교적 생각을 출발하게 한 것을 설명해줄 것같이 보이는 어떤 것도 그의 출생 환경과 어릴적 훈련에서는 발견하지 못해왔다. 여타 수많은 사람들이 경건한 부모로부터 태어나 스위든볽이 그러했듯 내노라하는 교육을 받았지만, 그들은 새로운 생각 내지 인류의 행복을 증진되게 하는데 이바지한 경우가 극히 적은 것이 아닌가! 이와달리 천사가 우리들로 하여금 눈치채지 않게 하면서 환대한 저 천재의 경우는 위 사람들과는 너무나 판이했다.
스위든볽의 고향은 스위든의 스톡호름(Stockholm)에 있었다. 그의 부모는 성실한 사람들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루터교파의 감독이면서 신학교의 교수였고, 영적 통찰력이 있었다. 알려진 바, 마틴 루터가 수도 생활 때에 영들을 보았고 영들의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의 많은 추종자들이 자기들도 또다른 세계의 무엇인가를 한웅큼 쥐어 보겠다하여 격렬한 단식과 밤샘을 시도하기도 했다. 소년 이매뉴얼도 위와 비슷한 경험들을 가졌다고 전해지고 있기도하다. 그의 후반기 인생에서 그가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 “네 살부터 열 살까지 나는 하느님에 관한 생각, 구원과 인간의 영적 경험들에 관련된 것에 몰두했었다; 그리고 몇 번의 경우 나는 나의 부모가 기이히 여긴 것들에 관한 사항들을 밝히 알아냈는 바, 내 부모는 이를 두고 필시 천사가 너를 통하여 말했음이 확실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비록 그의 아버지가 그의 경험을 잘 헤아렸다 할지라도 그의 어머니는 단호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그래서 그녀는 남편에게 그가 “천국을 여행하는 것은 반드시 멈추어지게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 뒤 이매뉴얼은 그가 56세 될 때까지 영계로부터 어떤 빛도 보지 않았고, 어떤 소리도 듣지 않았다. 그의 종교적 저술을 참고해보면 위와 같은 영적 체험은 어린아이나 부적당한 남자나 여자에게 쓸모 없다는 것, 이런 환상들을 보려 애쓰는 것, 등은 매우 유해하다고 그의 독자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그의 어린 시절은 그의 불가사이한 삶을 위해 바람직한 아름다운 시작에 해당되었다. 그와 그의 아버지는 꾸준한 동료 관계였다. 그들 둘은 스톡호름 주위의 언덕들을 올라갔다. 그리고 협만(fjord)을 탐사했고, 이끼나 꽃, 그리고 빛을 내는 색깔 있는 돌들을 수집하기도 했다. 그들이 집에 돌아왔을 때, 이 어린아이는 옥외 경험들에 관하여 긴 보고서들을 쓰곤 했다. 그런 이유가 그는 어린 시절부터 학자였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은 언제나 자기 신체의 한계점을 넘어 내달렸다. 그렇다해도 여느 조숙한 젊은 이 같지 않게 그는 강하고 건강하게 성장했고, 그의 고상하고 남자다운 태도는 호평을 받았다.
그는 그 시대 그 나라에서 가능할 수 있는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 그는 웁살라(Upsala) 대학에 출석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의 초기 작품들은 그의 시적 재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집중한 학문은 수학과 기계학이었다. 그는 미적분학의 아주 곤란한 풀이 과정을 단순하게 처리하여 그의 지도 교사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그의 급우들은 학문의 미로를 꿰어 헤쳐나가는데 매우 빠른 그의 지성을 뒤쫓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고 말해진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그를 자기들과는 매우 다른 사람으로 간주하고 그에 관해 말할 때는 작은 어조로 했다 한다. 그는 엄격한 신조와 엄숙한 예법 속에서 양육되었는 바 이런 근엄함이 밖으로 노출되었지만 그런 자신을 본인은 의식하지 못한 듯 보여진다. 그의 얼굴은 준엄한 것으로 묘사되었는데 실상은 누구의 접근을 제지하고자 하는 의도는 그의 심중에 전혀 없다. 그의 얼굴형은 조각상 타입이었지만 그의 인물됨에서는 잘생기고 위풍당당하였다. 그는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스포츠나 어떤 오락 같은 것에 빠져 있는 때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런 탓에서인지는 모르나 그에게 유일하게 열정을 느끼게 했던 수줍은 소녀와의 관계를 한참 뒤 이성간의 사랑으로 진전시킬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는 그녀 대신 그녀의 아버지, 저명한 폴헤임(Polheim)에게 갔다. 그리하여 자기의 사랑을 도표들을 수단으로 입증했었을는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아버지는 소녀가 삼년 내에 돌아갈 수 있게 보증하겠노라고 이 젊은 이에게 약속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 소녀는 심히 놀랬고, 그녀의 오빠는 마지막으로 그녀를 포기하라고 스위든볽을 설득했다. 그녀에 대한 그의 사랑은 그 후에도 잊은 적이 없었다 한다.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웁살라 대학을 졸업했고, 1709년, 그의 나이 21세 때에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뒤 그는 외국 나라들을 여행했는데, 그 목적은 여가를 즐기기 위함이 아니라 배우기 위해서였다. 랍삼(Robsahm)은 자기 메모 수첩에서 스위든볽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배워 익힌 언어들에 더하여 잘 이해했던 외국 언어에는 프랑스, 영어, 네델란드어, 독일어, 이탈리아어가 있었는데, 그런 이유는 그가 이런 나라들을 여행했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외교 업무에 종사하기를 원했으나, 그 대신 그는 과학의 길을 선택했다. 그는 유럽 군주국에게 자기를 소개하는 편지도 지니고 있었지만 조용히 그것들을 무시해버리고 대신 그 시대 저명한 학자들을 찾아 나섰다. 간혹 그는 미리 통보함도 없이 학자들을 찾아가 면담을 요청하기도 했다. 어쨌든 그에게는 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것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그의 요청을 묵살한 적이 없었다. 그의 한가지 바램, 그의 사명은 배움, 즉 알아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에게 나누어 줄 새로운 사상들, 방법들, 또는 발달 과정을 가졌던 많은 사람에게서 공물을 거두어들이듯 흡수했다.
그의 심오한 학식은 그를 스위든의 찰스 12세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듯 보이는 크리스토퍼 폴헤임(Christoper Polheim)과 가까운 협력 관계를 맺어지게 했다. 이런 관계에서 스위든볽은 왕에게 소개되어졌고, 왕은 그를 스위든의 광산 대학의 분석관으로 임명했는데, 이 공직의 주 임무는 채광과 제련에 관한 최고의 방법을 연구하고 권면하는 것이었다. (이 당시 광산의 채굴은 왕권에 직속되어 있었다. 그 이유가 국가 재원 확보에 매우 중요한 부서로 어쩌면 요즈음 재무부나 한국 은행 수준에 걸맞을지 모른다) 이 임명과 더불어 스위든볽은 그의 활동 영역이 놀라울 정도로 커지고 다양해진 시기로 진입하였다. 그는 자기 직책을 성실함에 지혜를 추가해 마무리지어 갔다. 그뿐 아니라 그는 과학의 전 분야에서 연구를 진행했다. 독립적으로 깊이 생각하는 사람다웁게 그는 발견을 위한 강력하고 독창성이 풍부한 비범한 재능의 충동을 따라갔다. 그리하여 가능만하다면 자연의 가장 깊은 비밀들까지 밝혀보려 했다. 그는 아침의 새의 노래들과 별들과 친숙했던 만큼, 조선소나 작업장, 용광로, 채석장과도 친밀했다. 그가 어스레한 구석에서 활짝 핀 꽃들을 발견했을 때, 그 꽃들은 그의 발걸음이 묻었던 위엄있는 산들이 지닌 경이로움 만큼이나 큰 비밀들을 그에게 말해주었다. 그의 재능은 실용성과 아름다움, 수학과 시, 발명과 문필력 등이 함께 어우러진 매우 드문 특징을 지녔다.
1718년, 그는 프레디맄샬(Frederickshall)을 포위 공격함에서 직책을 수행하고자 그의 기계학적 기술을 참조했다. 이 때 그는 기계들을 만들어서 몇척의 군함을 언덕과 계곡을 가로질러 육지 이 끝에서 저 끝으로 14마일의 거리를 운반한 적도 있었다. 그는 기계를 이용한 탈 것들, 즉 내부가 복잡히 얽힌 탈 것들, 비행하는 도구, 바다 밑을 항해하는 배 같은 것을 도안했다. 따라서 그는 자동차나 비행기, 잠수함의 출현을 예고한 셈이었다. 그는 물을 이용해 공기를 응축하고 빼내는 새로운 기계들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음악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도 악보에 명기된 모든 종류의 곡조들을 연주하도록 해 줄 보편적인 음악 도구를 만들려 노력하기도 했다. 그는 인간의 욕구와 애착들을 분석을 수단으로 알아내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는 일 분에 수천 발을 발사할 수 있는 공기총을 고안했다. 그는 들어 올리는 다리들, 여타 기계학적인 도구들을 위한 계획들을 세웠다. 근대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던 과학과 예술이 서로 밀접하게 관계를 가지는 경이로운 시스템(system)의 모양들이 스위든볽의 머리 안에서는 이미 그려져 있었다. 그는 십진법이 실제에서 어떻게 이용되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수은 자력(mercurical magnetism), 고생물학(palaeontology), 생물학 분야 등에서도 1.5세기 이후에야 발달될 이론과 지식의 한웅큼을 이미 손에 쥐고 있었다; 그는 라플레이스(Laplace) 보다 앞서 성운설과 원자 이론을 약술하였다.
스위든볽은 자기의 재능이 가져다 줄 수 있는 당연한 큰 부유함이나 명성에 소경일리 만무했겠지만, 그는 자기 입술까지 들어 올렸던 행복의 잔을 거절했다. 인류의 슬픔들과 압제받는 것이 그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며 놓여 있었다. 겸허하고 부끄러워함을 지닌 그의 혼은 수천 만의 인간 존재들에 저주를 비가 쏟아내리듯 퍼붓는 신학의 잔인함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 당시 때맞추듯 영국에서 요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가 지옥불과 공포를 설교했고, 회개 없이 죽은 셀 수 없는 아기들은 영원히 고통을 받는다고도 설교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저주로 바꾸어 놓는 악의 교묘함, 근대인인 우리로서는 감히 상상조차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들의 신학 이론은 천국이란 괴상한 곳, 지옥은 말할 필요도 없는 지독한 곳, 인간 삶은 그저 기나긴 고난의 행렬일 뿐이라고 결론짓게 만들 뿐이었다. 그래서 스위든볽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 섬뜩한 그림자가 온 세상을 뒤덮고 있는 이 때 내가 애써 획득한 이 모든 지식들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는 자기가 이룩한 명성을 다 뒤로 밀치고, 자기 인생의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29년을 비교적 가난한 살림을 꾸렸지만, 자비로움으로 자기 주위 동료의 상처받은 혼들을 위로하면서 (그들에게) 신앙과 생활의 합리적 교리(를 전해주었다).
위와 같은 애씀 외에, 틈틈이 그는 자기에게 밀려들어오는 많은 생각들을 글로 썼다. 그리하여 종교 분야에서의 탐구를 시작하기 앞서 이미 60권이 넘는 책들과 팜플릿들을 제작했다. 이 시기에 있은 위대한 작품 사이에는 “자연적인 것들 속의 첫째 원리들”, “뇌”, “동물 왕국의 경제”, 그리고 “합리적 심리학” 등이 있다.
이러한 과학적 제작물에 관해 에머슨(Emerson)은 이렇게 말한다. “그는 19세기에나 있음직할 과학물들을 미리 내다본듯 여겨진다…그의 저술들은 고되게 독학하는 학생에게 만족스런 도서관이 되어줄 수 있을지 모른다; 이 도서관의 책들 중 하나로 ‘동물 왕국의 경제’가 있는데, 이 책은 생각함에 위엄을 받쳐주는 스타일에 의해 쓰여 인류를 명예롭게 하고 있다. 한마디로 ‘동물 왕국’은 경이로운 가치를 지닌 책이다. 이 책은 과학과 혼이 서로에게 오랫동안 뒤엉킨 상태였을 뿐인 것을 다시 하나로 놓는 아주 높은 목적을 지닌 책이다. 이 책은 해부학자가 인간 신체를 아주 수준 높은 시적 형태로 기록한 책이다. 통상 대단히 무미 건조하고 불쾌감을 줄 뿐인 주제가 대담하고 찬란히 빛나게 하는 방식으로 취급되었는 바 이런 측면에서 이를 능가할 책은 없을 것이다.”
알버트 후바드(Albert Hubbard)는 “자연적인 것들 속의 첫째 원리들”에 관련해 다윈(Dawin)은 이 책을 아주 꼼꼼히 읽었는듯 여겨진다 라고 말한다. 여하튼 그는 바위에 붙은 조그만 이끼에서 숲의 시작을 보았는 바, 진화의 어떤 것을 미리 예측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성경의 글자 뜻 그대로의 창조 사건이 과학적 사실들과 비추어 모순되는 바 한쪽으로 내밀치기도 했다. 창세기에 관한 그의 태도는 이 후 그의 어떤 종교 저술들에서도 바꾼 적이 없음을 이 대목에 첨부해두어야 독자들에게 보탬이 될 것 같다. 사실 그는 오랫동안 존경받아 온 글자 직역(해석)주의에 냉소를 보내고 뜯어내었다. 동시에 그가 성경에서 발견한 것은 이 창조 이야기는 물리적 창조와는 아무 연관이 없다는 것, 대신 인간 혼의 창조에 관한 비유인데, 이것은 인류에게 아주 오랜 세월 잊혀진채 있었던 대화체이다는 것, 소위 태고적 스타일(설화체)에 속한다는 것이다.
수학, 기계학, 광산학 등등 외에 스위든볽은 그의 작품들에서 화학, 해부학, 지질학에서도 깊은 지식이 있음을, 그리고 음악을 애호했음도 보여준다. 그의 철학적 주제들은 위와 대등하게 다각도에 걸처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사회에 유익할 모든 일에 자신을 내놓기 위해” 시간을 배정하고 있었는듯 하다. 여러 해 동안 그는 스위든의 국회 회원이었고, 국가에 대한 괄목할 만한 그의 봉사 정신 때문에 그는 아주 높은 영예를 받았다. 많은 명예직이 그에게 수여되었다. 한 예로 1724년 웁살라 대학 이사회는 그를 순수 수학 교수로 임용하고자 초대했다. 그러나 그는 사양했다. 그는 세인트 피러스버그, 웁살라, 스톡호름에 있는 여러 학회의 회원으로 초대되었다. 그의 초상화는 명예 회원의 일원으로서 스톡호름에 있는 왕실 과학 아카데미의 회관, 리내어스의 초상화 근처에 걸려있다.
스위든볽의 일생, 한마디로, 일, 일, 오로지 일 뿐인듯 보여진다. 그는 재정적으로 자립하였는데, 오히려 이것은 그로 하여금 더욱 일을 완성하도록 자극제 역활을 해주었을 뿐이다. 지위여하를 막론하고 모든 이 각자는 이기심 없는 헌신이나 자신의 고상한 인격에 대한 증거들을 낳기 마련이다. 그는 나이 많아짐에 따라 그의 상냥한 예절은 그와 절친한 모든 친구들에게 사랑받는 계기가 되었고 그의 젊은 시절 그의 얼굴에 나타난 엄중함도 눈녹듯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실감나는 우정 관계는 가져보질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된 이유가 그는 자기와 친숙했던 어떤 주제를 두고 그의 동료들과 대화할 때 조차도 그의 생각은 이미 사다리 높은 곳에 올라 앉은 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의 저서를 타인에게 추천은 하였으나 정작 자신들은 읽으려 시도하지 않았다. 이 거대한 발자국을 뒤쫓아 사색의 위쪽 영역 안으로 들어가려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고, 아마 들어갈 수도 없었을런지 모른다. 그는 소경에게는 눈이었고, 귀먹어리에게는 귀였고, 그들이 이해할 수 없었던 언어로 광야에서 외치는 목소리였다. 빛과 소리의 세계로부터 고립된 내 신체 조건은 그의 특이한 상황을 예리하게 느끼게한듯 여겨진다. 어쨌든 나는 그가 지상의 고독감 그 이상으로 외로워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세상은 그에게 생소한듯 비쳐졌을지 모른다. 그 이유는 그가 타인에 비해 과잉 성장해갔기 때문이다. 영혼의 급속한 성장에 비해 육체의 성장은 너무 느린 셈이어서 육체는 감옥의 가로장이 되어 영혼을 내려눌렀다. 아마 이를 견뎌낼 자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의 짐을 가볍게 해주도록 그와 비슷한 총명을 지녔다고 보증되는 자가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자기 인생을 배움에 내던졌었다. 그는 그의 거대한 지식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는 자신이 어려운 날들을 맞이했을 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더 많은 빛을 받게되어 오히려 그 곤경을 반겼을지도 모른다. 한 가지 나로서 의문된 것은 그가 영적 계발이 있은 이 후 집에서도 꾸준히 평온을 유지해 나갔을지 이다.
1744년도 쯤에서 큰 변화가 스위든볽에게 왔다. 자연계의 사실들을 예리하게 뚫어보는 관찰자, 마음 속의 것들을 분석하는 이 사람은 사물 속의 영적인 것을 관찰하는 높은 능력들을 받게 되었다; 그의 영의 감각들은 영적 세계에 있는 실제들을 인식하도록 생명이 주어졌다. 그와 동시대 사람인 랍삼(Robsahm)은 자기가 스위든볽에게 물어보았던 것, 즉 “어디서, 어떻게, 천국에서, 지옥에서, 영들의 세계에서 거행되는 것들을 보고 듣도록 당신에게 수여되었소?” 라는 질문을 기록해두고 있다. 이 질문의 대답인즉, 밤에 어떤 이가 나에게 와서 말했다는 것, “그분은 주 하느님, 세상의 창조자, 그리고 구속자이시다는 것, 그리고 그분은 인간에게 성경의 영적 의미를 설명하려고 나를 선택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이 주제에 관해 쓰게 될 때 그분 자신이 나에게 이 주제를 설명하시겠다는 것; 같은 날 밤에 내가 그것들의 실제, 즉 영들의 세계, 천국과 지옥을 통째로 나에게 열어주어 나로 확신하게 하셨다는 것, 그리고 그분은 내가 거기서 서로 다른 생활 조건에 있었던 내가 아는 사람들을 인식하게 하셨다는 것. 이 날로부터 나는 세상적인 모든 과학 연구를 포기했고, 주님께서 나에게 쓰라고 명령하신 것에 따라 영적인 것들에 온 힘을 모았다. 그 후 주님은 날마다 아주 자주, 내 눈을 열어 주셨는데, 때로는 한낮에도 나는 다른 세계를 볼 수 있었다, 더구나 완전히 깨어 있는 상태에서도 천사들과 영인들과 대화할 수 있었다.” 1766년 9월, 스위든볽은 시.에프. 오이팅거(C.F. Oetinger)에게 이렇게 적어 보냈다. “주님 자신께서 나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분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을 하시기 위해 나를 보냈다. 그리고 이 목적을 위해 그분은 내 마음의 내면들, 곧 내 영 속의 것들을 여셨다. 그리하여 나는 영계에 있는 것들을 보게 되었고, 거기 있는 이들의 소리를 듣는다. 나는 이 특전을 20년 동안 지녀왔었음을 엄숙히 증거한다.” 이 특별한 영들의 교제(intercourse)는 그가 런던에 일시 체류한 때인 1772년 3월 29일 그가 죽음을 맞는 날까지 계속되었다.
위와 같은 스위든볽의 경험을 숙지해보면서 나도 매우 작은 부분일지라도 위 그의 편지가 의도한 바가 무엇인지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특이하게 있는 것 같음을 나는 느끼고 있었다. 거의 6년 동안 나는 자연 또는 마음 또는 죽음 또는 하느님, 무엇에 관한 것이든 그에 대한 개념들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내 몸이 지시하는 그대로 생각했다.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그 때의 내 기억들은 촉감을 수단으로 한 것 뿐이었다. 30년 동안 나는 새 이론의 빛에서 있게 된 내 발달 국면을 검사했고 또 검사했는 바, 나는 내가 말하는 것에서 틀렸다고 여겨지는 것이 없음을 확신했다. 나는 내가 먹을 것이나 따뜻한 곳을 찾는데 있어 동물처럼 재촉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울었던 것을 기억하는데, 그 울음은 내가 눈물이 나서 야기된 슬픔이 아니었다; 나는 발로 찼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신체적으로 상기했기 때문에 그 행동은 내가 화났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나는 내 주변에 있는 것들을 흉내 냈었는데, 즉 내가 먹을 것을 윈했을 때를 위한 표시, 또는 내 어머니의 농장에서 달걀을 찾는 것을 도왔던 때를 기억해두기 위한 표시들을 만들어 두려 했었다. 오로지 육체적 기억들 뿐인 이 별난 행동에는 정서적이거나 합리적 생각 같은 것의 자잘한 한 조각도 있지 않았다. 나는 땅 속의 의식 없는 흙덩이 수준에 불과했다. 그 다음 갑작스러웠기 때문에 나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인지 알지 못했지만, 어쨌든 내 두뇌가 또 다른 마음과 충돌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언어에, 지식에, 사랑에, 자연에 관한 통상적 개념들에, 선과 악의 일반 개념에 대해 깨어나졌다. 나는 존재하지 않았음으로부터 인간의 삶으로 실제로 들리워졌다. 나는 스위든볽이 지상 경험과 동시에 신체 감각들의 인식 범위를 너머 있는 영역과 접촉하였듯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평면들을 경험한 셈이었다. 나는 텅 빈 여러 해 동안 나 자신 또는 자연으로부터 아주 수준 낮은 개념들조차 받지 않았기에 나는 비록 유한한 마음으로부터 이다 해도 내 경험을 일종의 계시로 간주하고 있었다. 스위든볽은 그의 가장 높은 개념들을 무한한 마음으로부터의 계시로 간주했다. 사실 그 자신의 말로부터서도 명확해지는 바, 자기가 영계에서 의식있는 채로 현존해 보는 것이 그의 목표가 아니라, 그것은 우리 안의 두 통치 기능인 의지와 이해성 중 이해 측면을 발달시키는 수단일 뿐이다는 것, 그리고 선과 악, 영과 물질에 대한 각기 다른 개념들을 더 납득력 있게 보려는 수단으로 삼으려해서인 것, 또한 말씀을 번역함에서 단지 단어나 어구 번역이 아닌 원리들로 번역해가는 것을 알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만이 이런 종류의 환상을 가지게 되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과는 거리가 먼 것, 그가 말하려했던 것은, 자기는 모든 사람들이 거주하는 땅에 자기도 거주하면서 동시에 지상을 떠난 모든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진짜 세계도 충분히 의식하면서 29년을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가 믿었던 바, 자기의 사명은 성경의 “영적 의미” 또는 거룩한 상징 측면을 찾아내고 해석하는 것, 그가 다른 세계에서 가진 경험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참되게 이해하려는 자신을 돕기 위함이었다는 것, 더불어 가장 경이롭고 인정 많은 진리들을 인류에게 날라다 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스위든볽은 혼의 영역에서의 법칙들과 사실들을 탐사하는데 모든 정력과 용기를 바쳤다. 그는 히브리어의 연구에 착수했다. 그 목적은 자신이 원어로 구약 성서를 읽고 종교의 형체들과 비유들 그리고 고대 시대 때의 “신비들”에 관한 직접적인 지식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여러 해 동안 의미가 불명확한 많은 성경 구절을 파헤치느라 무척 애를 많이 썼다. 허나 꾸준히 돌아오는 것은 좌절감 뿐이었다. 많은 것들이 그를 곤란하게 했는데, 특히 전통, 즉 거의 억누를 수 없는 종파별 성경 해석, 사랑이 기독교 신앙의 심장에 해당되는 것 같은데 이를 벗어난 시대의 냉냉함, 여느 예언자나 사도가 꿈도 꾸어보지 않은 교묘하고도 재기 넘치는 변호를 위한 신조로 포장된 교회 문학이 발휘하는 마법, 끝으로 감각들 속에 늘 붙어다니는 망상 등이다. 마침내 빛이 그의 마음을 깨트렸다. 다시 말해 참 진리가 그를 자유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의 훌륭한 모든 능력들을 세상을 석방시키는데 바치게 되었다.
1747년, 스위든볽은 그의 새로운 일이 방해받지 않도록 하려고 과세 평가관 직책으로부터 물러나고저 스위든의 프레드릭(Fredric) 왕에게 요청을 하여 허락을 얻었다. 동시에 아주 높은 작위가 그에게 제공되어졌으나 이를 거절했다. 그 이유는 자만심이 자신 속에 싹틀까 염려해서였다. 이렇게 해서 그는 자기를 주목하는 사회가 줄 수 있는 화려한 인생과 그의 머리에 씌워진 명예를 뒤로 하고 호젓한 그의 조그만 도서관으로 물러나 앉았다. 거기서 그는 27권의 책들을 썼고, 거기서의 단하나의 목적은 기독교 신앙을 지상에서 살아 움직이는 실체로 만드는 것이었다.
스위든볽의 책들을 읽는 각자의 의견이 무엇이든, 누구나 그의 독특한 인물됨에 의해서는 감명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친절하고 신중하게 처리하였다. 자신에 관련하여 흥분된 감정이나 우쭐댐 같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영적 영역을 더 멀리 여행할 수록 더욱 겸허해지고 침착해졌다. 그는 무지한 사람들의 약점인 쉽게 믿어버리려는 것에 호소하려 들지 않았다. 그는 어떤 개종자들을 만들려 시도도 하지 않았다; 즉 추종자들을 형성해 교파나 교단 같은 것을 설립해 교주가 되는 따위는 꿈속에도 없었다. 그는 주님께서 세상에 설립하시겠다는 새 교회에 자신의 이름이 연계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메시지가 자기 세대를 위하여서라기 보다는 후 세대를 위한 것임을 느꼈다; 그리고 그의 길고 고된 노동의 해들의 결과인 그의 작품들은 라틴 팔절 본 판으로 인쇄되었고, 이것을 그는 유럽의 성직자와 대학들에 무료로 나누어 주었다. 왈트 윗맨(Walt Whitman)은 우리는 현재 우리에게 있는 것을 수단으로 누군가를 확신시킬 뿐이지만, 거대한 업무를 소화해나간 스위든의 선견자의 것들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진리이다 라고 말한다. 스위든볽은 자기 서술의 많은 부분들이 당시의 교리와 맞지 않아 혐오하고 불신용 당할 것을 충분히 감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스위든볽도 그들의 입맛에 너무 거스르지 않도록 어느 서술의 부분을 삭제하거나 우물쭈물 적당히 돌려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허지만 그는 자기가 매우 중시하는 것들을 문장의 외곽으로 밀쳐내거나 꽁무니를 빼는 짓은 결단코 하지 않았다. 그가 높이 올라가는 마음에 심히 고통을 주는 육체를 벗어났을 때, 찬란해야 할 그의 이름 위에 욕설까지 퍼부어졌다; 그리하여 참 기독교 신앙이 알려진 이래 가장 고귀한 챔피언들 중의 하나인 그는 한참 동안 세상에서 잊혀져 있었다. 지상에서 외롭게 살았던 그가 내내 알았던 유일한 보람은 모든 사람들의 복지와 행복을 위해 자신의 역량을 다 바쳤다는 것을 의식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링컨(Lincoln)에 관한 쟌 드링크워러(John Drinkwater)의 몇 줄의 시가 아래에 있다. 이 시는 언제나 스위든볽을 내 앞에 생생하게 가져다 준다.

“깨달은 사람은 외롭다.
어떤 사람을 목장으로부터,
옥수수 고랑과 갈색의 건초 더미로부터
산 쪽으로,
그의 모든 모험들이
넓은 계곡들에 있는 파종자들과 경작자들 사이에 한 개의 융합된 경험이라고 깊게 생각하게 하는
높은 장소로
인도해가는 그의 선견은 외롭다.
이 선견이 그의 혼의 진로를 지배하고,
그의 손에 용기와 절제함을 주고 있다.”

“Lonely is the man who understands.
Lonely is vision that leads a man away
From the pasture-lands,
From the furrows of corn and the brown loads of hay
to the mountain-side,
To the high places where contemplation brings
All his adventurings
Among the sowers and the tillers in the wide
Valleys to one fused experience,
That shall control
The course of his soul,
And give his hand
Courage and continence.”

그렇다, 무엇과도 비교해 볼 필요 없는 불변함을 지닌채 이 선각자는 그의 혼을 고독함과 선견(vision) 안에서 소유했다.
그가 죽은지 150년이 흘렀다. 지금 천천히 그의 업적은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 그의 교리들에 반감을 표했던 사람들이 태도를 바꿔 이 교리를 더 알고저 문의하고 있다. 총명한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들을 문명의 중심지에서 변호했고, 우리가 꿈에서도 몰랐던 구석진 세상에까지 운반해 주었다. 그의 메시지는 빛 처럼 여행했다. 그리하여 그의 가르침은 인류의 삶에서 자신들을 실현해내려 투쟁하는 새로운 사회, 새로운 자유, 새로운 과학과 나란히 하고 있다. 나는 불구자나 절망에 빠져 있던 사람들이 이 위대한 메시지를 수단으로 자신의 인생을 풍요하고 빛을 내게 한 실예를 보아왔다. 나 역시 이 실예 속의 범주에 있다. 고로 이런 나의 간증을 통하여 누군가 한사람 만이라도 하느님이 자기와 현존함을 더 달콤하게 느껴본다거나 바깥쪽 환경의 난관을 지배하기 위한 더 예리한 묘미를 획득하게 해준다면 나는 더할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다.
나는 어둠에서 배회하고 난관과 마주 칠 때, 영의 영역으로부터 속삭여 오는 격려의 음성을 듣고 있다. 나는 무한(이신 분)의 샘으로부터 쏟아져 내려오는 거룩한 열정을 느끼고 있다. 나는 하느님의 맥박을 가지고 연주하는 음악에 짜릿함을 느끼고 있다. 나는 보이지 않는 법칙에 의해 서로 묶인 태양과 혹성 같이 내 혼에 묶여 있는 영원한 불꽃을 느껴내고 있다. 나는 여기 내가 매일 마시는 공기 한가운데에서 영의 비가 쏟아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나는 땅위의 모든 것은 천국의 모든 것과 얽매어 있다는 그 멋진 진리를 잘 알아채리고 있다. 비록 여기서 침묵과 어둠에 의해 감금된 나 이지만 죽음이 나를 자유하게 할 때 어두운 내 눈에 수천 배의 시력을 나에게 줄 빛을 지금 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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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켈러 의 신앙간증 역자의 글

역자의 글

이 간증서는 켈러 여사의 중반기 (47세)에 “나의 종교”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원문에 소제목을 추가한 것 외에는 다른 수정 없이 직역을 원칙으로 번역을 시도했다. 따라서 소제목과 일치하지 않거나 여러번 정독 한다면 내용상 뒤섞인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이 원고는 그녀가 오래전 자신의 신앙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조금씩 작성했던 것도 일부 포함된데다 그녀의 중반기 시절에는 많은 봉사활동 내지 강연 일정을 소화하느라 바쁘기도 했던 연유에서가 아닌가 싶다. 오히려 역자는 이 점이 더 마음에 흡족했다. 그 이유가 이 책은 신학 강의서가 아니라 간증서이기 때문이다.

아마 웬만한 미국인이라면 쟈니 애플 씨드(Johnny Appleseed)와 헬렌 켈러 만큼은 기억하고 있다. 앞 사람은 미 개척 초기의 전설적 인물로, 뒤 사람은 삼중고의 슬픔을 기쁨으로 승화한 인물로 칭송되고 있다. 칭송을 일궈낸 일을 한 것은 육체이지만 정작 그들의 육체를 움직인 것은 그들이 스위든볽을 통해 얻은 내적 세계이다.

이 책은 그녀의 내적 세계가 어떤 계기에서, 어떻게, 누구의 도움이 컷었는지, 그리하여 기쁨으로 영글어진 내적 생명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 즉 자신의 종교를 진정한 반석 위에 세운 구체적 내용을 열거하고 있다.

그녀는 스위든볽지언(Swedenborgian)임을 천명하고 있다. 역자가 번역을 시도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켈러 여사 내지 스위든볽지언을 신비주의자라 말하는 일이 많다. 최근 “나는 신비주의자 입니다”라는 제목을 붙여 출간한 그녀의 한국어판 신앙 자서전도 보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나는 신비주의자”라 공언해서가 아니라 아마 그녀가 내세를 상세히 말하기 때문에서가 아닌가 싶다. 신비주의의 공식 풀이를 국어 사전을 빌리면, “순수한 내면적 직관과 직접적 체험에 의해 최고 실재자를 인식하려는 종교 철학 문학상의 경향”이라 설명하고 있다. 역자 더러 간단히 말해보라 하면, “하늘로부터 오는 삶의 원리를 배워 깨달아 이를 지상에서 응용해가려 노력함” 이다.

스위든볽지언은 신비주의자라고 하기 보다는 합리주의자라 하는 편이 18세기가 아닌 20세기를 위해서는 더 합당할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에 관한 것, 저쪽 세계의 원리들을 스위든볽의 가르침을 참고하여 성경으로부터 합리적 사고를 수단으로 알아 내기 때문이다. 이 합리적 수단의 하나가 상응(correspondence) 해석이다.

다시 말해 기독 신앙에의 접근 방법을 합리성에 기초한다는 말이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회사는 회사의 모든 것을 알 때까지 투자를 유보하라.” 이는 몇 년전 유명한 투자가 워렌 버핏이 후배 투자가에게 실패 없는 투자를 위해 조언한 글 한토막이다. 소문에 따라 투자하지 말라는 경고이다. 이 경고는 영원한 삶의 품성을 지상에서 선택해야 하는 인간에게도 꼭 필요하다. 어마어마한 교인과 화려한 돈냄새가 물씬 풍기는 거대한 건물 안에서 울려 퍼지는 찬양과 설교 내용이라 해서 검증 없이, 내 합리성의 되새김 없이 무조건의 아멘…은 재고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스위든볽지언은 믿음의 신비를 지적으로 접근한다. 다시 말해 신앙심을 키우는 방식이 산기도나 철야기도, 내지 방언 은사에 의존하기 보다는 성경을 합리적으로 더욱 더 이해해 감에 있다는 말이다. 그 이유가 “사람의 아들은 큰 영광과 능력을 가지고 하늘의 구름들에 오신다…(the Son of Man coming on the clouds of heaven with power and great glory)”(마24:30) 라고 그분의 재림 수단을 주님께서 직접 말씀해두셨는데, 이 “하늘의 구름들”이 거룩한 말씀의 글자들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성경 안의 하느님의 말씀에 그분의 출현이 있고 동시에 능력과 영광(영적 의미)이 그 글자 안에 드리워 있기에 말씀의 합리적 이해 (계시록 22:2)는 대단히 중요하다는 말이다.

스위든볽지언이즘(swedenborgism)은 스위든볽의 사명을 뒤따르는 것이다. 그분의 사명(mission)은 성경의 영적 의미, 또는 거룩한 상징 측면을 찾아내고 해석하는 것, 그리하여 말씀 속의 사랑 가득한 많은 진리들을 인류에게 날라다 주시려는 주님의 재림 섭리에서 그분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었는 바, 우리 역시 작은 도구가 되어 일조하는 것이다.

스위든볽지언의 삶은 미래에 보게 되는 것을 지금 보며 사는 것이다. 이들은 내적 감각을 활발히 응용하는 사람이다. 내적 감각에 선견(vision)이 있다.

이 책의 번역에서 한글 표기는 평범한 영어 사전에 있는 어휘를 일차로 선정했다. 가능한 신학적 냄새가 풍기는 용어는 피하고 싶어서였다. 이 책을 접하고 그녀의 신앙을 이룬 밑거름에 관한 더 많은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 사이트를 검색하여 자유로이 다운받아 가기 바란다.
WWW.BAYSIDECHURCH.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