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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통치와 시민의 통치
(Ecclesiastical and Civil Government)
사람들 사이에서 질서 안에 있어야 하는 두 가지 것이 있다. 천국에 속한 것과 세상에 속한 것이다. 천국에 속하는 것은 교회에 속한 것이고 세상에 속한 것은 시민에 속한 것이다.
질서가 유지되려면, 권위를 지닌 인물이 있어, 질서에 따라 발생하는 모든 것들, 질서에 반대될 경우 초래되는 것들을 주지시키고, 질서에 따라 사는 이들에게는 보상을, 질서에 거스리는 삶을 사는 자에게는 형벌을 가해야 유지 존속된다. 이것이 실시되지 않으면 인류는 멸망할지 모른다. 그 이유가 유전성에 의해 타인을 지배하고 싶은 욕구, 타인의 좋은 것을 갈취해 내 것 삼고 싶은 욕망은 모든 이에게 대체로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다. 거기로부터 적개심, 시기, 미워함, 복수, 사기, 잔인함, 이 외 수많은 악들이 발생된다. 그러므로 인간은 법에 의해 제한된 상태에 놓이고, 각기 자기들의 사랑에 걸맞는 보상을 수단으로, 즉 선한 자에게는 영예와 이득을 보장하고, 악한 자에게는 형벌을 내리는 방식 속에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는 멸망을 자초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권위가 부여된 인물은 인간 집단을 질서 안에서 보존하는데 필요하게 된다. 이 인물은 법률에 노련해야 하고, 슬기 있으며 특히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면 최상일지 모른다. 질서는 권위가 부여된 이들 사이에도 물론 있어야 한다. 이들이 좋아해서 이든 무지함으로해서 이든 질서에 거스르는 악들을 허용하지 않도록, 그럼으로 질서가 파괴되지 않도록 함이 필수일 것이다. 이는 공직 지위가 더 높거나 더 낮거나 하는 계열을 수단으로 종속 관계에서 관리 감독됨으로 보호될 수도 있다.
천국에 속하는 사람들, 또는 교회 조직 사회에 속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권위를 갖도록 앉혀진 사람들을 성직자라 부른다. 그들의 직능은 성직이다. 그러나 세상에 속하는 사람들, 즉 시민들 사이에 앉혀져 권위가 부여된 사람들은 행정 장관, 그리고 그들의 최고직은 왕이라 부른다.
성직자의 경우, 그들은 사람들에게 천국 가는 방법을 가르치고 또한 그 길로 인도해가야 한다. 그들은 말씀으로부터 자기들의 교회의 교리에 의거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그 교리에 따라 살도록 그들을 인도해야 한다. 진리들을 가르치고, 진리들을 통하여 생활의 선으로, 고로 주님에게로 인도하는 성직자는 양떼의 선한 목자이다. 그러나 가르치기는 하나 생활의 선으로 인도하지 않는 성직자라면, 그는 나쁜 목자이다.
성직자는 인간의 혼을 지배하는 어떤 힘이 자기들에게 있다고 공언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은 인간의 내면들이 어떤 상태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들은 천국의 문을 열고 닫는 권능이 자기들에게 있다고 주창해서는 안된다. 그 이유는 이 권능은 주님 만에 속하기 때문이다.
위엄과 영예는 그들이 집행하는 거룩한 사항들 때문에 성직자들에게 일치되어야 한다. 그러나 슬기 있는 성직자는 거룩한 것들이 주님으로부터 인 바 주님께 영예를 돌린다. 한편 슬기롭지 못한 이들은 영예를 자기 탓으로 돌리고, 때로는 그것을 주님으로부터 갈취하기도 한다. 자기들이 집행하는 거룩한 것 때문에 자신에게 영예가 있다고 주장하는 성직자는 그들이 돌보아야 할 혼들의 구원보다는 영예나 이득을 더 좋아하고 있다. 그러나 영예를 자신들이 아닌 주님에게 돌리는 이들은 영예나 이득에 앞서 혼들의 구원을 돌보고 있다. 어떤 직능으로부터의 영예는 사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집행하는 공직의 위엄에 따라 사람에게 붙어져 있을 뿐이다. 고로 접합된 것은 그 사람 자신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역시 공직과 더불어 분리되어진다. 사람에게 천부적으로 있는 영예는 지혜의 영예, 그리고 주님을 경외함으로부터의 영예이다.
성직자는 사람들을 가르쳐야 하고 진리들을 통하여 사람들을 생활의 선으로 인도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그 누구도 강요하려 들어서는 안된다. 사람은 자기가 진리이다고 생각하여 자기 심정에 담아놓은 것에 거슬러 믿도록 강요될 수 없다. 성직자와 다르게 믿는 사람, 그런데 어떤 혼란함도 만들지 않는 사람은 평화로이 놓아두어야 한다. 그러나 혼란함들을 만드는 사람은 그 혼란에서 그가 분리되게 해주어야 할지 모른다. 그 이유는 이것 역시 성직 신분이 감당해야 하는 질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성직자는 신성한 법과 예배에 속하는 것들을 집행하는데 권위가 부여된 사람들이다. 이에 비해 왕이나 행정관들은 시민적 법들과 재판에 속하는 것들을 집행하는데 권위를 부여받은 사람들이다.
왕 한사람이 모든 것을 집행할 수 없는 바, 왕 아래 권위를 이양받은 사람들이 서열별로 내려가며 위치하고 있다. 이들은 왕으로서도 실시하기에는 능력이 부족한 업무를 왕 대신 처리한다. 이런 사람들이 모두 집합해 왕정의 구성 요소가 되고 있다. 그러나 왕 자신은 권위 측면에서 최고이다.
진짜 왕정은 사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붙어있을 뿐이다. 왕권이 자신 고유에 속한 것이라고 믿는 왕, 그리고 자기 직권의 위엄이 자기 고유의 것에 속한다고 착각하는 행정관은 슬기롭지 못하다.
왕정은 공정의 원리로부터 왕국의 법들에 따라 집행함에, 그리고 이 법들에 의거 재판함에 있다. 법을 자기보다 더 높은 위치에 두는 왕은 슬기롭다. 그러나 자신이 법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다. 법이 자신 위에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왕은 법 안에 왕정을 둔다. 그리고 법들이 그 자신마저 통치한다. 그 이유가 그는 법이 정의를 뜻하고 모든 정의는 신성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법 위에 있다고 간주하는 사람은 자신 안에 왕정을 놓고 있다. 그는 자신이 법이라고 믿거나 정의인 법이 자신으로부터 나왔다고 착각하고 있다. 신성 아래 자신을 두어야 할 그가 오히려 신성인 것 마저 자신에게로 가로챈다
정의인 법은 슬기롭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입법자에 의해 왕국 안에서 제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왕과 신하 모두 그 법에 따라 살아야 한다. 제정된 법에 따라 사는 왕은 그의 신하들에게 본을 보이는 바 진실로 왕이다.
자기에게 절대적 권력이 있다고 믿는 왕, 그리고 그의 신하는 자기의 노예나 다름 없는 바 그들의 소유물이나 삶을 좌지우지할 권리가 있다고 상상하는 왕은 만일 그가 이런 권리를 행사한다면 그는 왕이 아닌 폭군이다.
순종은 왕국의 법들에 따라 왕에게 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그리고 시민은 순종 때문에 말에 의해서 이든 행위에 의해서 이든 결단코 상처받아져서는 안된다. 그 이유가 이것 위에 공공의 안전이 의존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