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기후와 상응

성경의
기후와 상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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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약자표

창 창세기 이 이사야 학 학개 마 마태복음
출 출애굽기 예 예레미야 슥 스가랴 막 마가복음
레 레위기 겔 에스겔 말 말라기 눅 누가복음
민 민수기 단 다니엘 요 요한복음
신 신명기 호 호세아 계 요한계시록
여 여호수아 욜 요엘
사 사사기 암 아모스
삼상 사무엘상 옵 오바댜
삼하 사무엘하 욘 요나
왕상 열왕기상 미 미가
왕하 열왕기하 나 나흠
욥 욥기 합 하박국
시 시편 습 스바냐

차례

눈 (snow)
더위 (heat), 열 (heat)
동풍 (east wind)-따뜻한 (warm)-뜨거운 (hot)
마른 (dry, dryness, dry up, withering)-물방울 (drop)
바람 (wind)-번개 (lighting)-번쩍이다 (flash)-비 (rain, pluvial)
서리 (hoar-frost)-소나기 (shower)
안개 (mist)-우박 (hail)-우레 (thunder)-이슬 (dew)
증기 (vapour)-지진 (earthquake)
찬 (cold)-추운 (cold)
폭풍 (storm), 광풍 (storm), 허리케인 (hurricane)-홍수 (flood)-활 (bow)

눈 (snow)

애4:7-‘눈보다 더 희고 젖 보다 더 곱다’=천적 진리 안에서.
시2:7-‘씻는 것, 그리고 눈보다 더 희게 만드는 것’=주님의 정의를 받고 그분의 정의를 옷입음에 의해 죄들로부터 순수해지는 것.
단7:9-‘그분의 의복은 눈 만큼 희다’=그것의 외적 진리.
계1:14-‘양털 같이, 눈 같이’라고 말해졌는데, 그이유는 ‘눈’=최말단들에 있는 진리, 그리고 눈은 물로부터이고, 물=신앙의 진리이기 때문.
예18:13-‘레바논의 눈’=거기로부터 교회의 진리들. ‘눈’, 여기서=물과 같은 의미, 즉 진리들. 그러나 ‘눈’=찬 진리들, 그이유가 그와 같은 교회가 취급되기 때문.
시148:8-‘눈과 증기들’=자연적 인간의 과학물들과 지식들. 이것들은 인간이 영적으로 되기 전에서는 ‘눈과 증기’일 뿐이다.
욥9:30-‘눈의 물들’=진자인 진리들, 또는 진짜로 나타나는 진리들.
이55:10-‘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눈’=(인간에게 잘 어울리는) 자연적 진리, 이것은 기억 안에만 있을 때 눈과 같다. 마치 눈이 열에 의해 비의 물이 되는 것과 같다.

더위 (heat)
열 (heat)

이25:4-의지 측면의 시험, 이것이 열이라 불리워진다.
창8:22-‘추위와 더위’=거듭나아지고 있는 인간의 상태; ‘추위’=신앙과 선행이 없음; 그리고 ‘더위’=선행.
계16:9-‘자아를 사랑함 그리고 그것의 탐욕들이 ’사람들은 불로 태워졌다, 그리고 큰 열로 뜨거워졌다‘에 의해 뜻해진다.
마24:20-너무 차거나 뜨겁거나 한 상태에서 곤두박질하게 행해지지 않는 것. ‘안식일에 도망함’=너무나 뜨거운 상태에서 그들로부터 제거함.
창31:40-‘낮에는 더위가 나를 삼켰고, 밤에는 추위가…,’=시험들. ‘더위와 추위’=사랑이 너무 많은 것, 그리고 사랑이 없는 것; 고로 두 극대적 상태…’더위’=너무 많은 사랑인 이유는 영적인 불과 열기는 사랑이기 때문.
예17:6-‘그는 매우 뜨거운 장소에서, 소금 토지에서 거주할 것이다’, 즉 교회의 선과 진리를 파괴한 더러운 사랑들과 그들의 바램 안에.
계7:16-‘태양이 그들 위에 떨어지지 않을 것, 어떤 열도 있지 않을 것’=이후 그들은 악 쪽으로의 욕망을 가지지 않을 것, 악으로부터의 거짓 쪽으로 욕망도 갖지 않을 것이다.
계16:8-‘불로 사람들을 그을리도록 그에게 주어졌다’=주님을 사랑함이 그들을 괴롭혔다, 그이유는 그들이 그들 사랑의 즐거움으로부터 악들의 탐욕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16:9-‘사람들은 큰 불로 그을려졌다, 그리고 그들은 이 재앙들을 제압하는 힘을 가진 하느님의 이름을 모독하였다’=악들의 비통한 욕망으로부터 근원하는 자아 사랑의 즐거움 때문에 그들은 주님의 인간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로부터 사랑의 모든 선과 신앙의 진리가 흘러든다. ‘열’에 의해 자아 사랑과 그것의 즐거움에 있는 악들에 대한 욕망이 의미된다. 이로부터 ‘큰 열로 그을려지는 것’에 의해 비통한 욕망 안에 있는 것, 고로 그 사랑의 즐거움에 있는 것이 의미된다.
이49:10-‘열’과 ‘태양’=거짓의 원리와 악을 사랑함으로부터 온 따뜻함. 그이유가 이것들이 모든 영적 배고픔과 목마름을 거두어 가기 때문.
예17:8-‘그는 열이 올 때 보지 않을 것이다’=그는 거짓의 욕망에 의해 영향받지 않을 것이다.
이25:4-악들과 거짓들이 일어나 자아로부터 흐를 때, ‘홍수와 열’이라 불려진다. 그리고 또한 악 안에 있는 다른 사람으로부터…‘그는 구름의 그늘을 수단으로 열을 누를 것이다’=그분은 거짓의 욕망으로부터 보호 하실 것이다. ‘열’=거짓의 욕망.
예51:39-‘그들이 뜨거웠을 때’=진리들을 왜곡하고 선들에 섞음질 함으로부터의 욕망과 따뜻함.
호7:7-‘가마 같이 뜨거워지는 것’=그것에 대한 사랑으로부터의 거짓을 위해 욕망을 느끼는 것.
눅12:55-‘열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해진다=그때에 신성한 선의 유입이 있다는 것. 이 구절의 말들은 또한 선으로부터의 진리가 악으로부터의 거짓들과 다툼, 또는 전투함도 의미한다. 그이유가 ‘소나기’ 그리고 ‘열’ 역시=다툼과 전투이기 때문.
창18:1-‘날이 따뜻함으로 자랐을 때’=사랑으로부터. ‘열’, 내적 의미에서,=사랑. 그리고 열이 날로부터이든, 해로부터이든 사랑은 언급되어지는 것들에 따라서 날의 열을 수단으로, 해의 열을 수단으로 표현되어진다. 열=사랑이다는 것은 일상 대화에서 사랑이 영적 열이라 불리는 것으로부터, 그리고 모든 애착은 따뜻함이라 불리는 것으로부터도 분명해진다. 더나아가 사랑과 애착은 인간의 내면들, 또한 외면들 속의 열의 어떤 종류, 그의 육체적인 것들 속의 열 까지를 명백해지게 표현한다는 사실로부터도 더 분명해진다. 그뿐아니라 그것이 그의 내면들로부터 흘러나갈 때, 그것의 근원에 다른 원천은 없다. 사랑이 이러하듯 열도 그러하다. 천적인 사랑과 영적인 사랑은 순수한 열로 표현된다. 모든 다른 열, 즉 자아를 사랑함과 세상을 사랑함으로부터인 것, 또한 더러운 사랑들로부터 인 것은 불결하다, 그래서 다른 삶에서는 이것들은 배설물로 여겨 밖에 내다버린다.
이34:2-‘나라들에 대한 여호와의 열’=악에 반대하심.
예21:5-‘격노함, 노염, 큰 열’=선과 진리에 반대하고 거스르기 때문에 처벌되는 악들.

동풍 (east wind)

창41:23-‘동풍으로 말리워진’=탐욕이 가득함. 순수 의미에서, ‘동풍’, 그리고 ‘동쪽’=주님을 사랑함과 이웃을 사랑함. 이로부터 반대 의미의 경우, 자아를 사랑함과 세상을 사랑함, 그러므로 현세에의 욕망과 탐욕들.
호12:1-‘동풍을 따라가는 것’=황폐해짐을 늘리는 것.
이27:8-황폐와 시험의 상태 또한 ‘동풍의 날’이라 불리워진다.
호12장-‘바람’=거짓. 그리고 ‘동풍’=거짓이 진리들을 말라지게 하고 사라지게 함.
호13:15-‘광야로부터 동풍’=외적 감각적인 것들로부터 있는 오류들로부터 파괴됨.
호13:15-‘동풍, 여호와의 바람’=진리들을 파괴함에 있는 자만과 사랑으로부터의 탐욕의 열의.
출10:13-‘여호와께서 동풍을 가져오셨다’=파괴의 수단들. ‘동풍’이 이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그것이 말림과 사나운 비바람이였기 때문. 그리고 그것이 그 토지의 생산물을 말리웠기 때문. 그리고 그것의 광폭함에 의해 나무들이 부들부들 떨고 바다에서는 배들이 부서진다. 그러므로 그것에 의해 신성한 권능이 묘사되고 있다. 더욱이, ‘동쪽’=사랑의 선과 선행의 선. 이는 그것의 근원상 가장 상냥하다. 그러나 그것이 지옥들로 내려올 때, 그것은 냉혹하고 폭풍 같이 되어간다. 이로부터 동쪽으로부터의 바람, 동풍=파괴의 수단.
출10:13-‘그리고 동풍이 메뚜기를 가져왔다’=짙은 거짓을 통하여 감염되고 있는 이들에게 있는 파괴의 수단인 짙은 거짓.
출14:21-‘여호와께서는 강한 동풍을 수단으로 바다가 떠나가게 하셨다’=거짓들을 흩뜨리는 수단. ‘동풍’=파괴의 수단. 여기서의 경우, 거짓을 파괴하는 수단. 고로 그것의 흩뜨림의 수단.
욘4:8-‘건조시키는 동풍’=거기로부터의 거짓.
시48:7-‘동풍’=황폐와 황량함.
겔27:26-‘동풍’=천국으로부터의 유입.
겔19:12-‘동풍이 그녀의 과일을 말렸다’=그것의 선이 파괴됨. ‘동풍’=파괴.

따뜻한 (warm)

창18:1-‘날이 따뜻하게 자랐을 때’=사랑으로부터.
이57:5-‘흥분하는 것’=악을 서술하고 있다.
창30:39-‘양떼들이 막대기에서 흥분했다’=그분 힘으로부터의 결과. 그 이유가 ‘흥분하는 것’=애정의 결과.
창30:41-‘흥분되는 것’=그들이 결합되는 것.
이57:5-‘신들과 흥분하는 것’=거짓인 것으로부터의 색욕.
출16:21-‘해가 따뜻하게 자라오르자, 그것은 녹았다’(진리로부터의 선은) 현세에의 욕망이 증가함에 따라 사라진다는 것.
이57:5-‘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신들과 더불어 자신의 자아에 불을 붙이는 것’=발생하는 모든 거짓으로부터 하느님을 예배하는 것. ‘신들과 더불어 자신의 자아에 불을 붙이는 것’=열렬한(ardent) 예배.
예51:39-이것을 행함에서 하나로 되는 이들의 열정. 이것이 ‘그들이 뜨거워질 때, 나는 그들의 잔치들을 놓겠다’에서 의미된다.

뜨거운 (hot)

계3:5-‘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말씀은 신성하고 거룩하다는 것을 지금 부정하고, 그것을 인정하는 이들.
계3:16-‘그러므로 너는 미적지근하다, 그리고 차지도 뜨겁지도 않기 때문에, 나는 너를 내 입으로부터 토할 것이다’=모독함, 그 결과 주님으로부터 분리함.

마른 (dry, dryness, dry up, withering)

창8:13-‘물들이 땅 위로부터 말리워졌다’=그때에 거짓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창8:13-‘보니, 지면의 얼굴들이 말라 있었다’=거듭남…거짓들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때, 지면의 얼굴들이 ‘말라’ 있었다 라고 말해진다.
마12:43-‘마른 장소’, 또는 물들이 없는 장소,=진리들이 없는 곳.
호9:14-‘마른 (젖)가슴’=진리와 선에 애착들이 없음.
겔19:12-‘동풍이 그녀의 열매를 말리웠다’=그것의 선이 파괴됨.
창1:9-‘마른 것 (마른 토지, the dry land)이 나타나라’
* 외적 인간 자신이 ‘마른 것(토지)’이라 불리우고 있다. 이후 ‘토지’ 라 불린다.
창1:10-‘하느님께서 마른 것(토지)을 땅(earth)이라 부르셨다.’
학2:6-‘나는 하늘들과 땅, 그리고 바다와 마른 것(토지)을 흔들 것이다.’ 여기서 새로운 교회가 취급되고 있다.
창7:22, 겔30:12, 예44:22-‘마른 것(토지) 안에 있었던 모든 것’=더 이상 생명이라 여겨질 것이 하나도 없는 이들… 물이 없는 곳이 ‘마른 것’, 즉 더 이상 어떤 영적인 것이 없는 것, 천적인 것은 더 더욱 없는 것이다. 거짓의 설득은 영적, 천적인 모든 것을 질식시키고 소멸해버린다….한때 의견 정도의 수준에 그쳤었던 거짓이었는데 이것이 그들 속에서 끈질기게 존재하여 이제는 진리인 듯 굳혀져 자기들 것에 반대되는 그 어떤 것에 대하여는 들어보는 것 자체도 윈치 않는다; 고로 자신들 눈 앞에 진리가 놓여져도 더 이상 자신들로 진리의 가르침을 받게 허용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들이 어떤 종류의 신성함으로부터 왜곡된 견해를 더욱 다듬질을 할 경우 더욱 거세져서 자기들이 뒤집은 것만을 인정해가서 결국 몽상적인 것만을 고취하게 된다. 이들이 물도 없고 풀도 없는 ‘마른 것(토지)’에 의해 의미되는바, 에스겔서에서 ‘나는 강들을 마르게 만들 것이다…’ ‘강들을 마르게 만드는 것’= 어떤 영적인 것도 더 이상 있지 않는 것. 그리고 예레미야서에서 ‘너의 토지는 마르게 되어간다.’ ‘마름’= 진리와 선의 어떤 것도 있지 않아서 황폐해진 토지.
출4:9-‘너는 마른 것(토지)위에 쏟을 것이다’=자연 안으로 파견됨…‘마른 것(토지)’=자연. 여기서 ‘마른 것’은 마른 장소, 또는 토지를 표현하려고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집트의 토지=자연적 마음, 거짓 안에 있는 마음, 고로 자연; 보다 더 구체적 표현은 ‘마른 것(토지)’.
출14:16-‘이스라엘의 아들들은 마른 것에서 바다 한가운데를 지날 것이다’=영적(왕국)의 교회 속에 있는 이들은 거짓이 유입되는 일 없이 안전하게 통과할 것이다…‘마른 것에서’=안전하게 그리고 거짓의 유입됨 없이; 그이유가 이 바다의 물들=악으로부터의 거짓들이기 때문; 이로부터 ‘마른’= 거짓이 전혀 없음.
민11:6-상태들의 이런 바뀜 없이, 천적 사랑의 선은 마치 말라있는 듯 되어간다…이것이 메추라기가 더 이상 주어지지 않을 때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만나를 마른 양식, 변변찮은 양식으로 부른 것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즉 ‘우리의 혼이 말라 있어 우리의 눈은 만나 외에는 (보이는) 어떤 것도 있지 않다’
이35:1-여기서는 이방인들의 계몽에 관해 취급되고 있다. 선과 진리에 관한 그들의 무지가 ‘광야와 마른 장소’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겔26:14-모든 진리가 황량함이 ‘나는 너희에게 바위를 바싹 말려 줄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바위’=진리; 그리고 ‘마름’=이 진리의 황량함.
학2:6-‘바다와 마른 것(토지)’=교회에 관한 외면의 모든 것들.
겔37장-‘마른 뼈들’=어떤 영적 생명도 있지 않은 이들.
겔19:13-‘마른 토지’=선이 없는 교회; 그리고 ‘목마른 토지’=진리가 없는 곳.
이44:3-‘마른 것(토지) 위에 홍수들을 쏟는 것’=선으로부터, 진리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총명을 주는 것.
겔30:12-‘나는 강들을 마른 (토지)로 만들 것이다’= 어떤 지식과 진리로부터의 통각함이 더 이상 있지 않는 것.
이35:7-주님에 의한 교회의 설립이 취급되고 있다; 그다음 이전에 어떤 것도 있지 않았던 이들에게 신성한 진리를 통하여 영적 총명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 ‘마른 장소가 웅덩이를 위해 있을 것’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호2:3-선이 결핍된 교회가 ‘광야’와 ‘가믐의 토지’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가믐’은 선의 부족에 관해 말해지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태워짐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5:13-‘목마름으로 마른 군중’=영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이 빈궁함.
학1:11-‘나는 토지 위에 가믐을 불러왔다’; 여기서 ‘가믐’=이슬과 비가 없음, 고로 진리가 어느 선으로부터라도 있지 않음; ‘낟알 위에 가믐’= 선의 결핍; 그리고 ‘새 포도주 위에 가믐’=진리의 결핍.
호2:3=‘마른 토지 같이 놓이는 것’=모든 진리가 꺼지는 것.
예50:38-‘그들이 말리워지게 물들 위에 가믐’=왜곡함으로부터, 진리들 안에 생명이 없는 것.
출14:21-‘그분은 바다를 마른 것으로 만드셨다’= 거짓이 흩어짐.
이41:18-교회가 그들에게 설립되리라는 것이 ‘나는 광야를 물 있는 웅덩이로 만들 것이다, 그리고 마른 토지를 물들이 있는 샘으로 만들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아직 어떤 진리도 있지 않기에 어떤 선도 아직 있지 않을 때 ‘광야’라 불리운다; 이로부터 토지 역시 ‘말라있다’고 불리운다.
예17:8-‘가믐의 해’=진리가 손실되고, 진리가 박탈되는 상태.
이41장-‘마른 토지’=진리가 없는 곳, 이로부터 선이 없는 곳.
예2:6-‘쓸쓸하고 가믐 있는 토지’=선을 지각함이 없는 상태.
습2:13,14-‘광야 같은 마른 장소’=교리 속의 거짓들…‘문지방에 가믐’=진리가 깡그리 황량함.
시107:33-‘그분은 물들의 출구들을 말라지게 하신다’…‘물들’=진리들; ‘말라짐’=빛도 애착도 없기에 그것들이 박탈됨.
예2:6-‘가믐과 음침한 그늘의 토지’=선을 지각함과 진리를 이해함이 어슴프레해짐.
호13:5-‘가믐들의 토지’=진리들의 결핍.
이35:7-‘마른 (토지)가 물들의 샘들을 위해 있을 것이다.’
마21:19-‘무화과나무가 말라졌다.’… ‘말라지는 것’=어떤 선과 진리도 더 이상 있지 않는 것.
이42:15-‘나는 모든 그들의 풀잎을 말릴 것이다’= 이들의 선들로부터 있는 진리들이 멸해지리라는 것. ‘나는 강들을 섬들로 만들 것이다, 그리고 나는 웅덩이들을 말리울 것이다’=총명과 진리에 관한 지식은 멸해질 것이다.
애4:8-그다음 모든 진리가 뼈에 들러붙은 가죽이 되어간다; 이것이 ‘바싹 말리워져서 막대기 같이 되어간다.’
이19:5-‘강이 마를 것이다, 그리고 바싹 말리울 것이다’=진리로부터의 교리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총명도 없을 것이다.
마13:6-그들은 뿌리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말리워졌다…‘태워지는 것과 바싹 말리워지는 것’=섞음질되는 것, 그리고 멸해지는 것.
이27:11-‘추수가 말라죽게 될 때’=선으로부터의 진리들이 악한 사랑들을 통해 파괴되었다.
마9:18-‘그는 수척해졌다’
예12:4-‘슬퍼하는 것 그리고 말라 죽는 것’=멸망하는 것, 그리고 탐욕들을 통하여 흩어지는 것.
호13:5-‘그의 샘이 마를 것이고 그의 원천이 말리울 것이다’=이 열정과 자만으로부터 교리 속의 모든 것과 말씀 속의 모든 것은 파괴되어진다.
창8:7-‘물들이 땅 위에서 마르기 까지’=거짓들이 외관상 흩뜨러짐.
창8:14-‘땅이 말려졌다’=그는 거듭나졌다는 것.
계16:12-‘(유프라테스의) 물이 말려졌다’…‘물이 말려졌다’=이런 거짓들이 주님에 의해 제거되었다.
이50:2-‘바다를 마르게 하는 것’=과학적 사실 속의 선과 진리를 감추는 것.
예1:42-‘바벨론의 바다를 말리시고 그녀의 샘들을 말리시는 것’=그 교회의 진리를 제일 중요한 것부터 최말단에 까지 소멸하는 것.
욜1:12-‘들판의 모든 나무가 말라졌다’=악들과 거짓들로부터 다 소멸되어진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
이42:15-‘강들을 섬들로 만드는 것, 그리고 웅덩이를 말리는 것’=진리에 대한 지각과 모든 이해함을 전멸시키는 것.
이50:2-‘바다를 말리는 것’=자연적 인간으로부터 과학적 진리들을 박탈하는 것, 그런고로 자연적 영적 생명을 박탈하는 것.
이44:27-지옥들로부터 있는 악들과 거짓들의 흩뜨러짐, 그리고 그것들로부터의 보호가 ‘깊음을 말리는 것,’ 그리고 ‘강들을 말리는 것’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슥10:11-‘강의 모든 깊음들이 마르는 것’=악으로부터의 모든 거짓들, 아주 깊은 것까지 조차 흩뜨려짐.
이19:6-‘말라지는 것’=사라지고 멸해짐
욜1:20-‘시내의 물이 마름’=교리 속의 진리들이 자연적 사랑들을 통하여 흩뜨려졌다.

물방울 (drop)

미5:7-‘풀잎 위의 물방울‘=자연적 진리.

바람 (wind)

요3:8-이로부터 그들은 주님께서 요한복음에서 말씀하셨듯이 영 또는 생명을 바람에 비기고 있다.
예14:6-‘바람을 코로 들이쉬는 것’=진짜인 것인 진리들 대신 텅빈 것을 취하는 것.
마24:31-‘네 바람들로부터 뽑힌 자가 거두워질 것이다’=선과 진리의 모든 상태들.
호12:1-‘바람을 먹이는 것’=거짓말을 늘려가는 것. (=즉 진리들을 왜곡하는 것)
출10:19-‘여호와께서는 바다의 힘센 바람을 돌리셨다’=천국을 통한 신성한 유입이 중지됨…그 이유가 바다의 바람, 즉 서풍은 동풍에 반대되기 때문,=유입의 중지.
출15:8-‘당신의 콧바람’=천국…그 이유는 이 바람은 생명의 숨을 뜻하기 때문…그런 이유로 해서 원어의 경우 단어 하나가 ‘바람’과 ‘영’ 모두를 뜻한다.
출15:10-‘당신은 당신의 바람으로 숨쉬셨다’=주님께서 천사들과 현존하심.
호8:7-‘그들이 씨뿌린 바람’=텅빈 것들.
마11:7-말씀을 자기가 원하고 싶은 쪽으로 설명할 경우 이 말씀은 ‘바람으로 흔든 갈대’에 비교되고 있다.
계6:13-큰 바람에 의해 흔들렸을 때‘=자연적 인간의 추론들…
계7:1-‘바람이 불지 않도록 땅의 네 바람들을 붙잡고 있다’=더 낮은 것들 안으로 더 가까이, 고로 더 강한 유입이…이 유입은 주님에 의해 억제되었다. (=유입을 누그러뜨림, 선한 자가 상해받지 않도록, 그리고 악한 자는 그날 전에 내던질 것이다.
시18:10, 104:3-‘바람의 날개들’=유입하는 신성한 진리들 (=영적인 것으로부터 자연적인 것들이 있다)
막4:39-‘예수께서 바람을 꾸짖으셨다’=지옥으로부터 있는 유입.
요3:8-영이 ‘바람’에 비겨지고 있다…그리고 영인들은 내 얼굴을 때리듯 하는 바람, 촛불과 내 필기장을 움직일 정도의 바람을 가지고 종종 자주 나에게 왔었다. 바람은 차거웠다, 그리고 내가 오른팔을 들어 올렸을 때 더 자주 (왔다.)
시104:4-말씀에서 ‘여호와의 바람’=신성한 진리; ‘여호와께서는 바람들을 그분의 천사들로 만드신다’에서도 같은 의미이다.
다8:8-‘하늘들의 네 바람들’=모든 거짓들과 악들.
슥6:5-‘하늘들의 네 바람들’=모든 신성한 진리들. (=모든 신성한 것, 진행하고 있으심)
겔37:9-‘네 바람들로부터 오는구나, 오, 영’=천국에 있는 주님의 신성으로부터; 그 이유가 ‘네 바람들’은 네 방위(동서남북)이기 때문이다.
예49:36-‘하늘들의 네 끝으로부터 온 네 바람들’=악과 결합된 거짓들.
다7:2-‘네 바람들’=거짓들이 악들과 결합되었다.
요3:8-이 구절은 인간이 거듭남에 의해 가지는 그의 영의 생명을 기술하고 있다; ‘바람’=신성한 진리, 이 진리를 통하여 그는 그 생명을 가진다.
시135:17-‘그들의 입 안에는 어떤 숨도 있지 않다’= 그들의 생각 안에 어떤 진리도 없었다.
시148:8-‘폭풍의 바람’=신성한 진리를 받을 때 있게 되는 신성한 진리(의 모습).
시107:25-‘폭풍의 바람’=시험.
시11:6-‘폭풍들의 바람’=모든 진리의 파멸.
시135:7-‘그분은 그분의 보물 창고들로부터 바람을 가져오신다’=천국으로부터 말씀에 있는 영적인 것들.
마7:27-집을 강타한 ‘바람’=이런저런 시험에서 불거지는 생각들.
이26:18-‘바람을 가져오는 것’=진리들이 없는 공허를 흡수하는 것.
예22:22-‘목자들에게 음식물을 줄’ ‘바람’=교리의 텅빔과 공허함.

번개 (lighting)
번쩍이다 (flash)

* thunder도 참조.
마24:27-‘번개가 동쪽에서 나가서 서쪽에서 나타남 같이 사람의 아들의 강림도 그러할 것이다’=주님을 내적으로 예배함과 더불어 있었던 것들은 마치 번개의 나타남(번쩍거림) 같다는 것, 즉 그 안에서 이 예배로부터 있는 것들은 즉시 사라진다는 것 ‘번개’에 의해 천국의 빛으로부터 있는 것이 의미된다. 고로 사랑과 신앙으로 단언되는 것들. ‘동쪽’=주님…그리고 ‘서쪽’=저무는 것, 또는 중단되는 것…고로 ‘번개가…동쪽으로부터…서쪽으로’=사라짐.
단10:6-‘그분의 얼굴은 번개의 모습 같다’…=사랑의 선.
신32:41-‘번개’=지적 평면에서 번득이는 신성한 진리의 눈부심,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진리를 보는 능력을 빼앗는다.
출20:18-‘횃불들’ 또는 번개들=진리가 사랑의 선으로부터 가지는 눈부심.
계4:5-‘왕좌로부터…번개들…’=예증. 눈들을 눈부시게 하는 불꽃으로부터 ‘번개들’=예증.
계11:19-‘번개들, 음성들, 그리고 천둥들’=추론함들..
계16:18-‘음성들, 번개들, 그리고 천둥들’=추론들, 진리를 왜곡함, 그리고 거짓들로부터 논쟁함들.
삼하22:15-‘번개’=신성한 진리들로부터의 빛. 이 빛은 선의 경우 이를 예증하고 생기를 주나, 악의 경우 눈멀게 하고 공포에 떨게 한다.
슥9:14-‘그분의 활이 번개 같이 나갈 것이다’=진리가 실례를 들어 설명함, 고로 사랑의 선으로부터의 진리.
예10:13, 51:16-‘그분은 비를 위해 번개들을 만드신다’=그들과 더불어 신성한 진리의 유입으로부터 실례를 들어 설명함.

비 (rain, pluvial)

* hail shower 참조
창2:5-‘여호와 하느님이 (아직) 비를 만들지 않으셨다’…‘비’, 다음 절에서는 안개라 불리는데=평화의 고요함, 전투가 중단될 때이다.
창7:4-‘비가 내림’=시험.
창19:24-‘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 위에 불과 유황으로 비가 내리게 만드셨다’…‘비가 내림’=지옥에 떨어짐.
* ‘비’, 순수한 의미에서,=축복, 그리고 구원, 그러나 반대 의미일 경우, 저주, 그리고 지옥에 떨어짐.
출9:18-‘나는 아주 비통한 우박을 비로 내리게 하겠다’ =교회의 모든 것들을 파괴하는 거짓들. ‘우박 비’=파괴하는 악으로부터의 거짓.
출16:4-‘나는 하늘로부터 빵을 비가 내리듯 하겠다’=천적 선이 유입될 것이다는 것. ‘비가 옴’=축복; 그이유는 비가 하늘로부터 내리기 때문, 그리고 토지를 비옥하게 만들기 때문, 마치 신성한 선과 진리가 천국으로부터 인간과 더불어 있어 축복이 있는 것과 같다. (고로) ‘비가 내림’의 아주 가까운 의미라면,=유입; 그 이유가 모든 선은 신성으로부터 유입되기 때문이다.
시135:7-‘비를 위한 번개’=천국으로부터 내려오는 진리의 찬연함.
예14:4-‘비가 토지 위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여기서는 진리의 결핍(defect)이 취급된다…’비’=천국으로부터의 유입.
마5:45-‘그분은 비를 의로운 자에게, 불의한 자에게 보내신다’…‘비’=신성한 지혜로부터의 신성한 진리; 이것은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주어진다; 그이유가 (이와 달리해서는) 그들이 생각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
계11:6-‘그들이 예언하는 날에 비가 오지 않게…’=천국으로부터 어떤 진리도 받을 수 없다. ‘비’=천국으로부터 있는 교회 속의 진리.
예10:13-‘그분께서는 비를 위하여 번개를 만드신다’…‘하늘들에서 물들이…’=영적 진리들; ‘비’=영적 진리들이 내려와서 자연적 진리가 됨.
겔34:26-‘내가 때맞추어 비를 보낼 것이다; 거기에 축복의 비가 있을 것이다’….영적 축복이 의미되어진다…그이유가 ‘비’에 의해 주님으로부터 천국의 안으로부터 인간에게 흐르는 신성의 모든 것이 의미되기 때문이다.
욜2:23-‘그분은 너희에게 이른 비를 적당하게 주실 것이다’=신성한 진리가 선 안으로 흐른다, 이로부터 그것들의 결합, 열매맺음, 번성함이 있다.
신11:14-‘나는 적기에 너희 토지에 비를 줄 것이다; 이른 비, 늦은 비’…천국의 축복이…‘이른 비와 늦은 비’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그 이유가 특별히 ‘비’에 의해 천국 안으로부터 흐르는 신성한 진리가 의미되기 때문, 이로부터 교회의 모든 것, 인간과 더불은 천국의 모든 것들이 태어나고, 자라고, 산출되어진다.
시68:9-‘당신께서는 자비심의 비가 떨어지게 만드신다’=신성한 선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
삼하23:4-신성한 진리는 순수하고, 그분의 신성한 사랑으로부터 진행되기에, ‘비 온 뒤 맑게 빛나는 구름들 없는 아침’이 첨가되고 있다…‘비 온 후’=소통과 영접함 후에.
시147:8-‘그분은 땅을 위하여 비를 준비하신다’= 교회를 위한 가르침을 받는 교인 안으로 진리의 유입이 있다.
이5:6-‘나는 구름들에게 내 포도원에 비를 내리지 말라고 명령할 것이다’=천국으로부터 말씀을 통하여 그들에게 더 이상 어떤 선과 진리의 영접함도 있지 않다는 것. (=말씀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에 이해가 없다)
이4:6-‘홍수와 비’=거짓들 속에 뛰어듬.
신32:2-‘내 교리는 비 같이 아래로 흐를 것이다’. 여기서의 경우 교리가 ‘비’에 비교되고 있다, 그 이유는 ‘비’는 진행되는 신성한 진리를 의미하기 때문, 이로부터 교리의 모든 것이 있기 때문.
신11:11,14-신성한 진리의 유입을 받음이 ‘하늘의 비에서 물들을 마신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신성한 진리가 영적 상태와 자연적 상태 모두에서 교인에게 흐른다는 것이 ‘이르든, 늦든, 제때에 주어지는 비’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그 이유가 …영적 상태 안에서의 신성한 진리의 유입과 영접이 ‘이른 비, 또는 아침 비’에 의해 의미되고; 자연적 상태 안에서의 경우, ‘나중의 비, 또는 저녁 비’에 의해 의미되기 때문.
레26:3,4-‘그들이 규례 안에서 걸을’ 때…‘그들’은 적기에 비를 받았다…‘비’=신성이 흘러듬.
왕상17장-그러나 비가 아합 (통치)아래에서…보류되었는데, 이는 악으로부터의 거짓 때문에 천국으로부터 흐르는 신성한 진리 어느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 표현되었다.
예14:4-‘비가 없다’=신성한 진리의 유입이 없다.
이30:23-‘비’=신성의 유입.
이55:10-‘비’=인간에게 어울리는 영적 진리; 그리고 ‘눈’=자연적 진리.
겔34;26-‘제 때에 있는 비’=받고 싶어하는 애착심의 정도에 따라 신성한 진리가 유입됨.
슥10:1-‘비’=주님으로부터 신성한 진리가 유입됨, 이로부터 인간은 영적 총명을 가진다. ‘소나기 비’‘=신성한 진리가 풍부히 흘러듬.
호6:3-천사와 인간들을 위한 생명과 구원이 있게 하는 모든 신성한 진리가 주님으로부터 진행되는바, ‘그분은 비 같이 늦은 비가 땅을 적심 같이 우리에게 오실 것이다’라고 말해지고 있다.
이30:23-‘너희 씨를 위한 비’=진리가 불어남.

서리 (hoar-frost)

출16:14-‘땅 위에 서리 만큼이나 작은 것’=시종일관되고, 흐르는 (상태)에서 선의 형체로 있는 진리. ‘서리’=선의 형체에서. 진리로부터의 선이 서리가 눈으로 계속된다는 관계 측면으로부터 ‘서리’에 비교되어진다. ‘눈’은 작고 흰색 인 바, 진리라고 단정되고, ‘서리’는 계속되고 있는 바, 선을 만든 진리라 단언된다, 이것은 진리로부터의 선이다.

소나기 (shower)

겔13:11-‘범람시키는 소나기’=거짓에 의해 황무해짐.
창7:12-‘비’=시험.

안개 (mist)

* 증기를 참조

우박 (hail)

출9:18-‘나는 그것을 매우 비통한 우박으로 비내리게 만들 것이다’=그들과 더불은 교회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거짓.
겔38:22-‘우박 돌들’=악으로부터의 거짓들.
출9:19-‘우박이 그들 위에 내려올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죽을 것이다’=거짓에 의해 교회 속의 것들이 지독하게 파괴되어지리라는 것. ‘우박’=악으로부터의 거짓.
출9:22-‘이집트의 모든 토지에 우박이 있을 것이다’=자연적 마음 안에서 파괴하는 거짓.
출9:23-‘그리고 우박’=이런 파괴하는 거짓들.
출19:23-‘그분은 우박이 이집트의 토지 위에 비내리게 만드셨다’=악의 거짓들에 의해 소유당한 자연적 마음.
출9:24-‘우박이 있었다. 그와 동시에 우박 한가운데에서 불이 걷고 있었다. 매우 비통했다’=악의 탐욕들과 더불어 거짓의 설득이 있다.
출9:25-‘그리고 우박은 이집트의 모든 토지를 강타했다’=거짓이 자연적 마음에 있는 것들을 파괴했다는 것.
출9:25-‘그리고 우박은 들판의 모든 풀잎을 강타했다’=이런 거짓들은 교회의 모든 진리를 파괴했다는 것.
출9:26-‘고센의 토지 만이 거기에 우박이 없었다’=영적 교회인이 있는 곳은 아니다는 것.
출9:28-‘우박의 충분함이…있었다’=만일 이런 거짓들이 중단된다면.
출10:5-‘우박으로부터 남겨진 것, 피신된 잔여물’=‘우박’에 의해 의미된 이전의 거짓에 의해 소진되지 않은 진리.
계8:7-‘거기서 피와 뒤범벅된 우박과 불이 되었다’=선과 진리를 파괴하고, 말씀을 왜곡하는 지옥의 사랑으로부터의 거짓.
계11:19-‘큰 우박’=진리와 선을 거짓화함.
계16:20-‘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천국으로부터 사람들 위에 내려왔다’=끔직하고 흉악한 거짓들, 이를 통하여 말씀 속의 모든 진리들, 고로 교회 속의 모든 진리들이 파괴되었다.
시147:17-개혁되기 이전 인간과 더불어 있는 과학물과 지식들이 ‘(빵)부수러기 같이 있는 우박, 누가 그분의 추위 앞에 서있겠는가?’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겔13:11-악의 거짓들 안에 있는 이들이 ‘우박의 돌’이라 불리워진다.

우레 (thunder)

시29:3-‘물들 위에 여호와의 음성이, 영광의 하느님이 우레친다’… ‘여호와의 음성’, 여기서 이는 ‘우레’이다. ‘우레’=신성한 진리, 또는 권능에서의 말씀.
계4:5-‘왕좌로부터…우레들’=주님으로부터 지각.
막3:17-야고보와 요한은 선행과 선행으로부터의 일을 표현했고, 이로부터 진리와 선에 대한 모든 지각이 오는바, 그들은 ‘보아너게’, 즉 ‘우레의 아들들’이라 불리었다.
계6:1-‘우레의 음성으로’=신성한 진리를 지각함.
계8:5-‘우레들’=지각들.
계10:3-‘일곱 우레들이 자기들의 음성을 발음했다’=주님께서 만인의(보편적인) 천국을 통하여 작은 책 안에 있었던 것을 드러내셨다.
계14:2-‘큰 우레의 음성으로’=주님께서 신성한 사랑으로부터 새 천국을 통하여 이야기하심.
계19:6-‘대단한 우레들의 음성’=가장 높은 천국의 천사들의 환희(joy). 그들의 음성, 또는 대화가 우레로서 들려졌다. (=사랑의 선으로부터 영광을 기림)
시104:7-‘당신의 우레의 음성에 그들은 허겁지겁 갔다’=악들이 천국으로부터의 선들을 통하여 흩어졌다는 것.
계16:18-‘음성들과 번개들과 우레들이 있었다’=추론들, 어두워져가는 이해성들, 그리고 악들의 거짓들로부터의 결말들.

이슬 (dew)

창27:28-‘하느님께서 너에게…하늘의 이슬을 주신다’=신성한 진리로부터…‘하늘의 이슬’=진리.
시110:3-‘출생의 이슬’=사랑의 천적 평면.
신32:2-‘이슬’, 여기서,=선으로부터 진리가 번창함, 그리고 진리를 통하여 선을 열매 맺음.
출16:13-‘진영 주위에 이슬이 쌓여 있었다’=그자체 인접하고 있는 평화의 진리.
출16:14-‘쌓였던 이슬이 가버렸다’=진리가 은근히 심어짐.
미5:7-‘여호와로부터의 이슬’=영적 진리.
시133편-선과 진리의 결혼, 그리고 그것들의 열매 맺음과 번성함이 ‘시온의 산들 위에 내려오는 헤르몬의 이슬’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 ‘헤르몬의 이슬’=신성한 진리.
신33:28-‘그분의 하늘들이 이슬을 떨어뜨릴 것이다’=천국으로부터의 유입.
신33:13-‘이슬’=영적인 것들이 왕래함.
이18:4-‘이슬의 구름’=선으로부터의 진리가 열매맺고 있음.
호14:5-‘이슬 같이 그에게 있는 것’=그의 영적 차원이 나오고 재탄생함.
신32:2-‘이슬’=선, 이것이 말(word)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는 바, ‘내 말은 이슬 같이 방울져 떨어질 것이다’라고 말해진다.
슥8:12-‘하늘들이 이슬을 줄 것이다’=이런 것들은 주님으로부터의 유입 덕택이다.
증기 (vapour)
창2:6-‘그분은 안개가 땅으로부터 올라오게 하셨다, 그리고 지면의 온 얼굴을 적셨다’…‘비’, 이 구절에서는 ‘안개’라 불리고 있는데=전투가 중단될 때 있는 평화의 고요함.
예10:13, 51:16-‘그분은 땅의 끝으로부터 증기들이 오르게 만드신다’=교회의 최말단 진리들; ‘증기들’=이런 진리들; 그리고 ‘땅의 끝’=교회의 최말단에 속하는 것 (최말단 진리들, 이는 글자 의미로부터 있는 지식들인데, 이 진리들이 ‘땅의 끝으로부터의 증기들’에서 의미되고 있다.)
시148:8-‘불과 우박, 눈과 증기’=자연적 인간의 사랑들로부터의 기쁨들, 그리고 그것의 과학적 사실과 지식들; 그 이유가 인간이 재형성되고 영적으로 만들어지기 전의 인간은 ‘불과 우박, 눈과 증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명의 활동이 그것들로부터 흘러나와질 때, 영계 안에서도 똑같은 것들이 상연된다; 그리고 이런 것들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는 것이 그들의 ‘여호와를 찬양하라’에서 의미되고 있다.

지진 (earthquake)

계6:12-‘큰 지진이 있었다’=그들과 더불은 교회의 상태는 완전하게 바뀌었다, 그리고 공포.
계16:18-‘큰 지진이 있었다, 이런 지진은 인간이 땅위에 있던 이래 있지 않았다, 이런 지진, 아주 크다’=말하자면, 흔듬, 경련, 전복, 그리고 교회 속의 모든 것들을 천국으로부터 끌어내림.
마24장-‘지진’=교회가 뒤집힘.
이9:4-‘지진’=진리를 왜곡함으로해서 교회가 뒤집힘.

찬 (cold)

* 추운(cold)을 보라.

추운 (cold)
찬 (cold)

창8:22-‘추위와 더위’=거듭나지고 있는 때, 신앙과 선행을 받는 인간의 상태가 이와 같다는 것. ‘춥다’=신앙과 선행이 없다.
* ‘차다’=사랑이 없다, 또는 선행과 신앙이 없다.
창31:40-‘낮에는 더위가 나를 삼키고, 밤에는 추위가 나를 삼키려 했다’=시험들. ‘더위와 추위’=너무 많은 사랑, 그리고 너무 없는 사랑, 고로 양 극단들(extremes)….영적 추위는 사랑 없음이다….어쨋든 추위는 모든 사랑의 결핍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영적 사랑과 천적 사랑의 결핍을 의미한다…인간에게 이 사랑이 결핍될 때, 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이 불켜진다; 이 사랑은 상대적으로 차겁고, 또한 차거워져 가는데, 이는 그가 육체에서 사는 동안, 뿐아니라 그가 다른 삶에 왔을 때도 그러하다. 만일 그가 육체 안에서 사는 동안 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이 그로부터 거두어간다면, 그는 점점 차거워져 결국 어떤 생명도 남아있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의 경우는 만일 그가 천국의 것, 신성의 것들에 관하여 거룩하게 생각해보려 작정할 때이다. 다른 삶에서, 만일 그가 천국에 접근한다면, 그의 불과 열은 차거움으로 변하는데, 그가 천국에 더 가까울수록 더 심해진다. 이 차거움이 ‘이를 갊’에 의해 뜻해진다.
계3:15-‘차지도 뜨겁지도 않다’=말씀이 신성이고 거룩함을 어떤 때는 인정하고 어떤 때는 부정하는 이들.
예18:14-‘낯선 차거운 물들이 흐름’=안에 선이 없는 거짓들; ‘낯선 물들’=거짓들; 그리고 ‘차거운’=안에 선이 없음. 그이유가 사랑의 선으로부터 진리의 열은 파생될 수 있기 때문.
시147:17-‘누가 그분의 추위 앞에 설 수 있는가?’=개혁 이전 인간의 상태.
시147:17-개혁 이전 사람들과 더불은 과학물과 지식이 ‘공(ball) 같은 우박, 누가 그분의 추위 앞에 설 수 있는 가?’에 의해 의미되어져있다. 그이유가 개혁이전의 인간은 완전하게 차서 천국으로부터 신성이 흘러들 때 차거움을 명백하게 느낀다. 그러나 이런 추위들은 신성의 선과 진리를 받음을 통하여, 고로 개혁됨을 통하여 사라진다. 하여 이어져 말해진다. ‘그분은 그분의 말씀을 보내신다, 그리고 그들을 녹이신다; 그분은 그의 바람을 불게 하신다, 그리고 물들이 흐른다.’
예36:30-진리들을 싫어함이 ‘밤에는 추위’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그이유가 본질이 신성의 진리인 천국의 빛이 흘러들 때, 악으로부터 거짓 안에 있는 그들은 추위에 휩싸이는데, 악으로부터의 거짓이 따뜻해져감에 따라 더 심해진다.
나3:17-‘추위의 날’=악을 사랑하는 상태.

폭풍 (storm)
광풍 (storm)
허리케인 (hurricane)

이41:16-분산됨이 ‘폭풍’에 비교되고 있다. 이는 악에 관련해 말해지고 있다.
예25:32-‘큰 폭풍’=지배하는 거짓.
호8:7-‘그들이 거두어들일 허리케인’=결과되는 교회의 혼란.
나1:3-‘여호와의 길은 허리케인과 사나운 비바람에 있다’=글자 의미에 있는 말씀
이28:2-‘살륙’, 그리고 ‘그것의 폭풍’=교회의 선들을 파괴하는 악들.
예4:13-‘허리케인 같은 병거’=거짓으로부터의 교리물들.
슥9:14-‘주 여호비께서 남쪽의 폭풍에서 행군하셨다’=진리를 명백히 이해함에서.
애5:10-‘우리의 피부는 불가마 같이 검다, 가믐의 폭풍 때문이다’=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터에 자연적 인간은 그 자신의 악한 사랑 안에 있다는 것.
이41:16-‘당신은 그들을 흩트리실 것이다, 바람이 그들을 운반해 갈 것이고 허리케인이 그들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그들은 하등 가치가 없다는 것. ‘바람’과 ‘허리케인’이 함께 언급되고 있다. 그이유는 악들과 거짓들을 뜻하기 때문, ‘바람’은 진리를, 반대 의미로는 거짓을, ‘허리케인’은 반대 의미에서 거짓으로부터의 악들에 관해 말해진다.
시148:8-‘폭풍들의 바람’=받음 측면에서의 신성의 진리; 그리고 그러므로 ‘폭풍들의 바람이 그분의 말씀을 행함’이라고 말해진다.
시107:29-‘그분은 폭풍을 중지하게 만드셨다, 그것의 파도들이 잠잠해진다’=영적 시험들로부터 해방됨.
눅8:23-‘바람의 폭풍이 호수 위에 내려왔다…’=이 기적은 영적 시험들을 포함한다. 그이유가 영적 시험들은 거짓들의 침입이기 때문.
시11:6-‘…폭풍들의 바람은 그들 잔의 몫일 것이다’=모든 진리의 파멸.
이54:11-‘사나운 비바람으로 뒤흔들리고 고통받는 것’은 이방인들 사이에 있는 교회가 거짓의 침투로부터 여기저기로 끌려다님에 관해 말하고 있다.

홍수 (flood)

창7:6-‘물들의 홍수’=시험의 시작, 그 이유는 여기서 지적인 것들에 관련한 시험을 취급하기 때문, 그러므로 단순히 홍수라 말하지 않고 물들의 홍수라 말하고 있다.
창7:17-‘홍수’=교회를 침수시킨 거짓들; 그 이유가 거짓속의 것 외에는 홍수, 또는 범람은 없기 때문. ‘물들의 홍수’=시험, 이는 그 당시 인간과 더불어 있던 악령들에 의해 흥분된 거짓의 범람이다. 이 구절도 앞의 7:6의 경우와 의미는 같지만 여기서는 시험이 없는 경우, 그러므로 ‘물들의 홍수’가 아닌 단순히 ‘홍수’라 말하고 있다.
창9:11-‘모든 육은 홍수의 물들로 해서 더 이상 절단내지 않을 것이다’=그들은 태고 교회의 후손 같이 멸하지 않을 것이다.
창9:11-‘그리고 더 이상 홍수가 땅을 멸하지 않을 것이다’=죽일 정도로, 숨막히게 하는 설득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창10:1-‘홍수 후에’=이 새로운 교회가 존재 안으로 왔을 때로부터…그 이유가 태고 교회의 끝이 홍수로 서술되고, 또한 고대 교회의 시작을 서술하기 때문.
창11:10-‘홍수 후 2년’=홍수 후의 두 번째 교회.
마24:38-‘그들이 홍수 이전의 날들에 있었을 때…’=교회 속에 있는 이들의 황폐한 상태, 이 황폐함이 태고 교회의 상태와 비교되고 있다, 즉 홍수에 의해 말씀에서 묘사한 시대의 종말, 또는 마지막 심판이다. 홍수에 의해 악들과 거짓들의 범람이 의미된다는 것, 그 결과는 시대의 종말이다.
마24:39-‘그리고 홍수가 왔을 때까지 알지 못하였고, 그들은 모두 침수 당했다’=교회인들은 자기들이 악들과 거짓들로 침수당해진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자기들이 지닌 악들과 거짓들의 결과로 그들은 주님 사랑으로부터의 선,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부터의 선, 신앙으로부터의 진리가 무엇인지에 무식해 있기 때문이다….

활 (bow)

* 선행을 받을 수 있는 인간의 상태가 ‘구름에 있는 활’로 묘사되고 있다.
창9:13-‘나는 구름에 활을 놓을 것이다’=거듭나는 영적 인간의 상태, 이 상태는 무지개의 활 같다.
창9:14-‘활이 구름에서 보여질 것이다’=인간이 아직은 거듭나질 수 있는 상태일 경우. ‘구름에 있는 활’=거듭남의 표시…활을 수단으로 자신이 거듭남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고 주님이 기뻐하신다.
예46:9-‘활을 다루고 당기는 것’=추론하는 것.
창21:16-‘(하갈은) 활이 미치는 거리…=진리의 교리가 없는 상태와 수준….’활’은 영적 인간을 서술하고 있다.
예50:14,29, 51:2,3-‘활을 구부리고 쏘는 그들’=진리의 교리를 말하고 가르치는 이들.
* 활은 반대적 의미에서는 거짓의 교리
창21:20-(이스마엘)은 ‘활을 가지고 활쏘는 자’…=영적 교회인…’활’=교리. 영적 교회인은 이전에는 활쏘는 자라 불리웠는데, 그 이유는 그가 진리들을 수단으로 자신을 방어하기 때문.
호2:18-‘활을 꺽어버리고, 검들…’=사랑과 선행의 교리를 가르치는 것.
창49:24-‘그는 자기 활의 강함에 앉을 것이다’=그는 교리 속의 진리로 전투함으로 안전하다는 것…’활’=교리.
이5:28-‘모든 그들의 활이 당겨졌다’=거짓의 교리.
계6:2-‘그 위에 앉으신 분은 활을 가졌다’=그들은 말씀으로부터 진리와 선에 관한 교리를 가졌다는 것, 이를 수단으로 그들은 지옥으로부터의 악들과 거짓들, 고로 지옥에 맞서 싸웠다는 것…’활’=악들과 거짓들에 맞서 싸우는 말씀으로부터의 진리와 선들에 관한 교리.
시37:14-‘악인이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내치려 활을 당긴다.’ ‘활’=진리의 교리에 맞서 싸우는 거짓의 교리.
슥10:4-‘전쟁의 활’=교리로부터 싸우는 진리.
시18:34-‘놋활’=생활의 선으로부터의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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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전쟁, 무기와 상응

성경의
전쟁,무기와 상응

Dictionary
of
war,weapon
in
Bible
by
Correspondence

성경 약자표

창 창세기 이 이사야 학 학개 마 마태복음
출 출애굽기 예 예레미야 슥 스가랴 막 마가복음
레 레위기 겔 에스겔 말 말라기 눅 누가복음
민 민수기 단 다니엘 요 요한복음
신 신명기 호 호세아 계 요한계시록
여 여호수아 욜 요엘
사 사사기 암 아모스
삼상 사무엘상 옵 오바댜
삼하 사무엘하 욘 요나
왕상 열왕기상 미 미가
왕하 열왕기하 나 나흠
욥 욥기 합 하박국
시 시편 습 스바냐

차례

가슴 받이(chest, breastplate)-검 (sword)-공격하다 (attack)-군단 (legion)-군대 (army, host)-군인 (soldier), 싸우다 (fight)-기 (군기, banner, ensign)-기병 (horseman, cavalry)
무기 (weapons)
(작은) 방패 (bucker)-(큰) 방패 (shield)-병거 (chariot)
사정거리 (shot)
적 (enemy), 원수 (enemy)-전리품 (spoil)-전쟁 (war)-전투 (warfare)-전투 (battle), 전투하다 (combat)-싸우다 (fight)
진(영) (camp)
창 (spear)
투구 (helmet)
포로 (captive), 포로 신세가 됨 (captivity), 포로로 끌고가다 (take captive)-포위 공격 (siege)-표창 (dart), 던지다 (dart), 쏘다 (shoot)
화살 (arrow)-화살통 (quiver)-활 (bow)

가슴 받이(chest, breastplate)

계9:9-‘철로 된 가슴받이’=진리의 나타남을 생산하는 외적인 것들.
계9:17-‘불과 풍신자석과 유황으로 된 가슴받이들’=악마적인 사랑들의 악들로부터 있는 거짓들을 방어함.

검 (sword)

창3:24-‘그 자체 회전하는 불 검’=발광하는 탐욕들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설득력을 지닌 인간 고유의 사랑, 이것들은 믿음의 신비들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하나, 이것들로부터서는 지상적이고 육체적인 것 만이 쟁취될 뿐이다. (=최말단에 있는 신성한 진리, 이는 글자의 의미에 있는 말씀 같아서, 이 진리는 (다른 목적, 용도에) 충당되어질 수도 있다.) (=거짓들에 있는 모든 것을 대단하게 거절함과 몰아냄) (=천적 사랑의 선으로부터의 진리가 방어함)
이66:16-‘검’=거짓들을 처벌함.
예5:12-‘검과 기근’=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을 빼앗기는 것…‘검’=영적인 것들에 관하여 황폐해짐.
여5:2-‘돌들의 검들’=그들과 더불어 있는 육욕적인 사랑들을 응징하고 몰아내도록 그들에게 불어 넣어진 진리들.
창27:40-‘네 검을 수단으로 너는 살 것이다…’=진리가 선과 결합되어 있는 한, 선은 겉보기로는 진리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듯 하리라는 것; ‘검’=전투하는 진리…그리고 결합은 전투를 수단으로, 즉 시험을 수단으로 결과되어진다.
겔26:11-‘검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거짓을 수단으로 진리들을 파괴하는 것.
예12:12-‘여호와의 검이 삼킨다’=진리의 황폐.
창34:25-여기서 ‘검’=또한 악도 의미하는 이유는 이 검은 레위의 검이었기 때문…
마10:34-‘내가 평화를 보내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기 위해서 왔다)…’=시험들; 그 이유가 ‘검’=전투하는 진리, 그리고 반대 의미에서, 전투하는 거짓.
출5:3-‘그분이 우리를 악성 유행병이나 검으로 치시지 않도록’=악과 거짓의 저주를 피하도록.
출5:21-‘우리를 죽이도록 그들의 손에 검을 놓는 것’=이로부터 그들은 거짓들을 수단으로 교회 속의 진리들을 파괴하려는데 골몰한다는 것. ‘검’=전투하고 황폐시키는 거짓.
출15:9-‘나는 내 검을 뺄 것이다’=악으로부터의 거짓이 계속적으로 전투함.
삼상15:33-‘네 검이 여인을 사별하게 했다’=그들의 거짓은 선에 애착함에 폭력을 가했다는 것.
여5:13-‘검을 빼어 손에 들고’=전투에서 힘을 과시하는 신성으로부터의 진리; 그 이유가 ‘검’=전투하는 진리; 그리고 ‘빼어든 검’, 거짓들과 악들에 맞서 계속 전투함.
출18:4-‘그분이 나를 바로의 검에서 구원하셨다’=침투하는 이들의 거짓으로부터 구원함. ‘검’=반대적 의미에서 전투하고 황폐하게 하는 거짓.
신13:15-‘검의 입’=진리가 악으로부터 있는 거짓과 전투하여 파괴함.
출22:24-‘나는 너를 검으로 살해할 것이다’=그들은 자신들로부터 거짓을 통하여 선과 진리를 빼앗긴다는 것.
출32:27-‘너희 모든 사람 각각은 자기 넓적 다리에 자기 검을 놓아라’=선으로부터의 진리가 악으로부터의 거짓에 맞서 전투함.
이1:20-‘검에 의해 삼켜지는 것’=악의 거짓에 의해 멸해지는 것.
슥11:17-‘검이 그의 오른쪽 눈에 …있을 것이다’=이해함에 있는 모든 진리가 거짓을 통하여 멸해질 것이다.
겔16:40-‘그들이 너를 검으로 조각나게 할 것이다’=교회는 진리를 왜곡시킴을 통하여 깡그리 죽어질 것이다.
시45:3-‘네 검을 네 넓적다리에 차라’=신성한 진리가 신성한 선으로부터 전투하고 있음.
예12:12-‘여호와의 검이 삼킨다’=진리를 파괴하는 거짓.
레26:6-‘검이 너희 토지를 통과하지 않을 것이다’=거짓이 진리를 몰아내지 않을 것이다.
삼하1:22-‘사울의 검’=선으로부터의 진리.
이41:2-‘그분은 나라들을 …그분의 검의 먼지 같게 주신다’=주님께서는 그분의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마치 그들이 아무 것도 아닌 듯하게 …악들을 흐트신다.
시7:12-‘하느님께서는 그분의 검을 날카롭게 하셨다’…사실 악인이 스스로 검을 날카롭게 한다…‘그가 검을 날카롭게 한다’=그는 자신을 위해 거짓을 획득한다. 이를 수단으로 그는 진리에 맞서 전투한다.
이51:19-‘검’=더 이상 진리가 없기 까지 조차 진리에 관한 지식이 박탈됨.
예9:16-‘나는 그들 뒤를 따라 검을 보낼 것이다’=악의 거짓들로 해서 파괴되는 것.
시55:21-‘그의 말들은 기름 보다 더 부드럽다마는 그들은 검을 빼어 들었다’=그들이 거짓들을 말하는 동안 선한 애착들을 자극하는데, 이를 수단으로 그들은 꾀어낸다…‘뽑아든 검’=파괴하는 거짓.
나3:15-‘검이 너를 자를 것이다’=그들은 거짓들을 통하여 멸해질 것이다.
시57:4-‘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검이다’=거짓들로부터의 교활한 추론들. 이것들이 ‘날카로운 검’이라 불리우는데, 그 이유는 ‘검’=진리를 파괴하는 거짓.
겔21:15-진리를 파괴하는 거짓의 무시무시함과 흉악함이 ‘검이 번개를 만들었고 살육을 위해 날카로워졌다’로 묘사되고 있다.
슥11:17-‘검이 그의 팔에 있을 것이다’=거짓이 의지 속의 모든 선을 파괴함.
눅21:24-‘그들은 검의 입에 떨어질 것이다’=그들은 거짓들을 통하여 멸망할 것이다. (=거짓들을 통하여 진리의 파멸)
예46:10-‘검이 삼킬 것이고 배터지게 먹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피를 마실 것이다’=거짓들을 통하여, 그리고 진리의 거짓화를 통하여 자연적 인간이 완전 파멸됨.
슥11:13-‘용사의 검’=진리가 강력하게 거짓을 파괴함.
이2:4,미4:3-모든 사람이 만족함으로 전투들이 중지 될 것이다는 것이 ‘그들은 검을 쳐서(녹여서) 보습으로 만들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검’ 그리고 ‘창’=선으로부터의 진리들에 맞서 전투하는 악으로부터의 거짓들, 그리고 그 반대 의미도 있다.
예43:11-‘검을 위해 있는 그들은 검으로 칠 것이다’=파생되는 거짓들을 통하여 파멸됨.
단11:33-‘검에 의해 쇠하는 것’=거짓들을 통하여 멸해지는 것.
신32:42-‘내 검이 살을 삼킬 것이다’=거짓들이 선으로부터의 모든 것들을 파괴할 것이다.
마26:52-‘검을 취하는 그들 모두는 검으로 망할 것이다’=믿음 속의 거짓을 받는 것, 그리고 그것에 의해 멸망하는 것.
눅22:36-‘검이 없는 그는 자기 옷을 팔아 그것을 살 것이다’=진리들을 가지지 않은 이들은 그들 자신인 것들을 반드시 거절해야만 한다, 그리고 자신들을 위해 거짓들에 맞서 싸우기 위해 진리들을 포획해야 한다. ‘검’=거짓에 맞서는 진리의 전투, 그리고 거짓의 파멸.
애2:21-‘내 처녀들과 소년들이 검에 의해 쓰러졌었다’=진리에 대한 모든 애착과 진리를 이해함이 거짓들을 통하여 멸해졌었다.
시78:64-‘그녀의 성직자들이 검에 쓰러졌었다’=교회의 선들, 이는 일들로부터의 선들, 선행으로부터의 선들, 그리고 생활로부터의 선들인데, 이것이 거짓들을 통하여 파괴되어 왔었다.
예5:17-‘검으로 가난해지게 하는 것’=악의 거짓들을 통하여 파괴되어지는 것.
창49:5-‘폭력의 도구들이 그들의 검들이다’=거짓들과 악들이 진리들과 선들에 폭력을 휘둘렀다. (=교리적인 것들이 선행의 일들을 파괴하는데 쓰인다…‘검들’=교리적인 것들; 그 이유가 ‘검들’=믿음 속의 진리들, 이를 수단으로 악들과 거짓들에 맞서는 전투가 수행되어지기 때문; 고로 ‘검들’=교리적인 것들.)
계6:4-‘큰 검’=진리에 맞서 전투하는 거짓. (=악의 거짓들을 통한 진리의 파멸)
계13:10-‘만일 누구가 검으로 죽인다면, 그도 반드시 검으로 죽을 것이다’=거짓들을 수단으로 또 다른 사람의 혼을 파괴하는 그는 거짓들을 수단으로 파괴되고 멸해질 것이다.
계13:14-‘검의 타격을 받았는데 살았다…’=자연적인 것들 속의 품질을 수단으로 말씀의 자연적 의미로부터 취해진 것들이 결합되어졌다. ‘검’=진리에 맞선 거짓의 전투, 그리고 거짓들을 통한 진리의 파멸.
계1:16-‘그분의 입으로부터 날카로운 양날의 검이 나온다’=주님에 의해 말씀과 이로부터 파생된 교리를 수단으로 거짓들이 흩어짐.
계19장-‘그분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의해 거짓들과 악들에 맞서 전투하는 말씀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가 의미된다. (=주님에 의해 파생되는 교리를 수단으로 거짓들이 흩어짐.)
계6:8-‘검에 의해’, 등등=교리의 거짓들, 등등에 의해. ‘검’=악들과 거짓들에 맞서 전투하고 파괴하는 진리; 반대 의미에서, 선들과 진리들에 맞서 전투하는 거짓.
계19:21-‘그리고 나머지는 말 위에 타신 그분의 입으로부터 진행되는 검에 죽임을 당했다’=개혁 교회 가운데 있는 다양한 교회 집단들 모두는 자기들에게 이미 친숙해져 있는 말씀 속의 주님의 교훈에 따라 살지 않았는 바, 말씀이 그들을 판결했다, 그리고 멸해졌다…‘그분의 입으로부터 진행되는 말 위에 탄 그분의 검’은 악의 거짓들에 맞서 전투하는 말씀으로부터의 진리들이 의미된다..
계2:12-이런 것들을 날카로운 양날을 지닌 검을 가지신 그분이 말하신다‘=주님, 그분만이 시험들에서 전투하신다.
계2:15-‘나는 내 입의 검을 가지고 그들에 맞서 싸울 것이다’=(이와같이) 흩어질 것.
려움=악들로부터 오는 아주 많은 종류의 거짓들.

공격하다 (attack)

출17:8-‘(아말렉이) 르비딤에서 이스라엘과 싸웠다’=그들은 그들(이스라엘)이 격심한 시험을 견디는 동안 공격했다는 것…’싸우는 것’=내면의 악으로부터의 거짓들을 수단으로 공격하는 것…’아말렉’에 의해 표현된 그들은 저세상 삶에서 그들이 기진맥진하여 항복의 시점에 이른 시험에 있는 이들을 공격한다.
출5:9-‘용역이 사람들에게 더 무거워지게 만들어라’=공격이 더 강력해지는 것.
계2:10-‘네게 고통을 주는 것을 두려워 말라’=네가 악들의 침입을 받고 거짓의 공격을 당할 때 자포자기 말 것.
계11:7-‘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 짐승이 그들과 전쟁을 만들 것이다’=지옥의 사랑으로부터 공격함.
출5:8-‘그들은 게으르다’=그들이 충분하게 공격받지 않았기 때문에.
출13:17-‘만일 백성들이 전쟁을 볼 때, 후회한다면’=공격을 통해 그들은 진리로부터 외면하려 들 것이다.
출32:17-‘진영에 전쟁의 소리가 있다’=지옥으로부터의 악들과 거짓들을 수단으로 천국과 교회로부터 있는 진리와 선을 공격함.
신20:10-네가 성읍을 공격하려 그 성에 가까이 올 때…’
군단 (legion)
마26:53-‘천사들의 열두 군단’=보편적인 천국.

군대 (army, host)

창2:1-‘하늘들과 땅이 마무리되어졌다, 그리고 그것들의 모든 군대.’…‘그것들의 모든 군대’는 사랑, 신앙, 그리고 그것에 관하여 지식들, 이는 앞 장에서 ‘큰 발광체들’과 ‘별들’에 의해 의미되어진 것들이다.
단8장-‘(숫양에 의해 짓밟힌) 하늘들의 군대와 별들은 선들과 진리들이다.
계19:14-‘백마 위에서 그분을 뒤따른 천국들에 있는 군대들’=내면적 측면에서 말씀을 이해하는 이들.
창26:26-‘그의 군대 장군 비골’…‘군대’=교리적인 것들 자체…반대 의미일 경우, 거짓, 이교적인 것들.
습1:4,5-‘하늘들의 군대’=진리들.
단8장-‘군대’ 좋은 의미에서 진리인바, ‘그는 땅으로 군대를 내던졌다’, 그다음 ‘그는 땅으로 진리를 내던졌다’고 말해지고 있다.
계19장-‘천국에서 그분을 뒤따른 그분의 군대’=거기로부터의 진리들, 고로 진리들 안에 있는 천국에 있는 이들.
시33:6-‘여호와의 말씀에 의하여 하늘들이 만들어졌고 그분의 입의 숨에 의하여 그것들의 모든 군대’. ‘그것들의 군대’, 또는 하늘의 군대=진리들.
눅2:13-‘군대’에 의해 진리들이 의미되는바, 왕국의 아들들, 그리고 천사들은 그들이 있는 진리들로부터 ‘천국들의 군대’라고 불리워진다. 즉 ‘갑자기 천국의 수많은 군대가 천사들과 함께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다.’ 이 문단에서 ‘천국들의 군대’=진리들. 고로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이 천사들이다.
슥9:8-‘나는 군대에 관련하여 내 집에 진영을 놓을 것이다’…’주님의 군대’=신성한 진리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리고 주님 만이 지옥들에 맞서 싸우시기 때문에…주님은 말씀에서 ‘여호와 체바옫’이라 여러 곳에서 불리우시고 있다. 즉 군대들의 여호와.
출7:4, 12:17,41,51-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들이 주님의 천국 왕국을 표현했는바, 그리고 ‘지파들’, 또한 ’12’는 한 복합체 안에 있는 신앙으로부터의 모든 것들을 의미했다. 즉 왕국의 모든 진리들. 그들은 ‘여호와의 군대들’이라 불린다.
겔27:10,11-‘군대’에 의해 진리들이 의미되고 있다.
이24:21-‘군대들’, 반대 의미에서 거짓들이다…
이34:2-‘하늘들의 군대’라 불리워지는 별들은 지식들, 고로 진리들이다. 그리고 반대 의미에서 거짓들이다.
예44:17-19-‘하늘들의 군대들’, 순수 의미에서 진리들이다. 그러나 반대 의미에서 거짓들.
단8장-‘하늘들의 군대들, 그리고 별들’은 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들.
창50:9-‘군대는 심히 많았다’=진리들과 선들이 결합되었다…’군대’=진리들과 선들.
출6:26-‘그들의 군대들에 의해’=진리 안에 있는 선의 자질과 종류에 따라…’군대’=신앙 속에 있는 진리들. 그러나 영적 교회의 선들은 그것들의 본질 측면에서 진리들 밖에 더 아니다…이로부터 ‘군대’에 의해, 영적 왕국의 교회 내에 거듭나는 이들에 관해 말해질 때, 진리로부터의 선들, 또는 진리 안에 있는 선들이 의미되어진다.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그들의 군대들에 따라’ 인도해내라고 말해짐은 그들이 이집트를 나갈 때의 그들에 관련해 말해진 것이다. 내향적 의미에서 그들이 거짓들과의 전투들에서 벗어나는 때이다. 고로 그들이 영적 전투 임무를 실행한 이후이다. ‘그들의 군대들에 따라’ 이끌어냄의 적절한 뜻이란, 그들은 진리들 안에 있는 선들에 관련하여 식별되어져야 한다는 것, 고로 선의 품질에 따라 분류되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질서 안에서 그들이 천국들에 있는 주님의 왕국을 표현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출7:4-‘나는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아들들을 인도해낼 것이다’=진리들과 선들 안에 있는 이들은 구원되어져야 한다는 것…’군대’=진리들 안에 있는 갖가지 종류의 선들.
출12:17-‘그이유는 이 동일한 날에 나는 이집트의 토지로부터 네 군대들을 데려올 것이기 때문’=선행과 신앙의 상태였기 때문에, 그들을 악들과 거짓들 안에 있는 이들로부터 분리함이 거행될 것이다…’군대들’=선행과 신앙 속에 있는 일련의 것들.
출12:41-‘여호와의 모든 군대들은 이집트의 토지로부터 나아갔다’=선으로부터 진리 안에 있는 이들이 꺼내졌다…’여호와의 군대들’=영적 왕국의 교회 속에 있는 진리들과 선들, 고로 진리와 선 안에 있는 이들.
출12:51-‘그들의 군대들에 의거해서’=이들은 진리로부터의 선의 품질에 따라 구별되었다….’군대들’=선들과 진리들. ‘군대들에 의거하여’는 이스라엘의 아들들에 의해 표현되어진 이들은 진리로부터의 선의 품질에 따라 구별되어졌다를 의미한다…그 이유가 모든 선은 진리로부터 선의 품질을 지니기 때문.
출14:4-‘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 때문에’=악으로부터 거짓들 안에 있는 이들은 지옥에 침수된다…’바로의 군대’에 의해 거짓들 자체가 의미되어진다. ‘군대들’은 선으로부터의 진리들이다.
출15:4-‘바로의 병거들과 그의 군대를 그분은 바다 안으로 내던지셨다’=악으로부터의 거짓들, 특수적으로나 일반적으로나 모두에서 악으로부터의 거짓들에 있는 교회인들, 거기 악한 생활 안에 있는 이들은 자신들을 그분의 현존 앞에서 지옥으로 던질 것이다…’군대’=일반적 측면에서 거짓들.
단8장-‘천국들의 군대에게’=천국의 모든 선들과 진리들에 맞서.
시33:6-‘그들의 모든 군대’는 천사들이다, 그들이 신성한 진리를 받아들이는 정도 만큼에서.
이13:4, 40:26, 시147:4-‘군대’는 교회와 천국 속의 진리들과 선들이다.
민1:2,3,18 등등-‘군대’에 의해 그들이 잘 배열된 진리 안에 있어 만일 악들과 거짓들이 공격해온다면 겁내지 않고 물리치는 것을 의미한다.
계9:16-‘기병 군대들의 수는 이만 만이었다’=믿음 만으로 추론함, 이와 더불어 그들의 마음들의 내면들은 악의 거짓들로부터 가득해졌다. ‘군대들’에 의해 선들과 진리들이 의미되어진다, 그리고 반대 의미에서, 악들과 거짓들, 악의 거짓들.
계9:16, 시148:2,3-말씀에서 ‘군대들’에 의해 천국과 교회 속의 선들과 진리들이 의미된다는 것, 반대 의미에서는 악들과 거짓들이 의미된다는 것은 태양, 달, 별이 ‘군대’라 불리는 장소로부터 명백해진다, 그리고 ‘태양’에 의해서는 사랑의 선이, ‘달’에 의해서는 신앙의 진리가, ‘별’에 의해서는 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들이 의미된다. 그리고 반대 의미에서는 그 대칭되는 것들이다.
계19:14-‘백마 위의 그분을 뒤따르는 천국의 군대들’=말씀을 내면적으로 이해하여 주님과 결합한 새 기독 천국에 있는 천사들…’천국에 있는 군대들’에 의해 신성한 진리들과 선들 안에 있는 천사가 뜻해지고 있다.
계19:19-‘나는 짐승과 땅의 왕들, 그들의 군대들이 말 위에 앉으신 그분과 그분의 군대와 전쟁을 일으키려고 함께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내향적인 모든 악, 믿음만으로 고백했던 자들, 그들의 지도자들과 그들의 부하들 모두는 주님의 말씀에 있는 그분의 신성한 진리들에 폭행을 자행할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새 교회 속에 있을 이들에게 침투하려 들 것이다…‘그들의 군대들’에 의해 거짓들에 있는 자와 마찬가지로 있는 모든 이들이 의미된다.
계19:19-‘군대’에 의해 신성한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이 의미된다. 고로 추상적으로는 신성한 진리들, 고로 주님의 새 천국과 새 교회 속에 있는 이들.
시103:21-‘여호와의 군대’는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에 대하여 말했다.
시33:6,7-‘천국들의 군대’=사랑과 신앙으로부터의 모든 것들(=천국과 교회로부터의 모든 진리들과 선들).
이24:21,23-‘군대’=모든 악들.
시148:2-4-‘그분의 모든 군대여 그분을 찬양하라’=전체 복합체 안에 있는 선들과 진리들.
이34:4-‘천국들의 군대들’(즉 태양, 달, 별들)=사랑과 신앙으로부터 있는 모든 선들과 진리들.
예33:22-‘하늘들의 군대’=영적 인간에 있는 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들. ‘바다의 모래’=자연적 인간에 있는 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들.
계9:16-말씀에서 ‘군대들’에 의해 악으로부터의 거짓들에 맞서 싸우는 선으로부터의 진리들이 의미된다. 그러나 반대 의미에서 선으로부터의 진리에 맞서 싸우는 악으로부터의 거짓이 의미된다.
계9:16-그들이 선으로부터의 모든 진리들을 의미한다는 것은 태양, 달, 별들, 그리고 또한 천사들이 ‘여호와의 군대’라 불리우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분명해진다. 그이유는 그들이 복합체에 있는 선으로부터의 모든 진리들을 의미하기 때문. 그리고 이스라엘의 아들들, 그들에 의해 교회의 진리들과 선들이 의미되기 때문에 ‘군대’라 불리운다.
단8:10-14-‘하늘들의 군대, 그가 땅으로 내던졌다’에 의해 천국 속의 진리들과 선들이 의미되고 있다.
계9:16, 욜2:11, 슥9:8, 시103:21, 왕상22:19,20, 계19:14, 19:19-천사들이 함께 모인 것, 그들의 연계함이 군대들이라 불리는 것은 ‘천사’에 의해, 마찬가지로 ‘군대들’에 의해 신성한 진리들과 선들이 의미되기 때문, 그 이유가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그것들을 이미 받아들였기 때문.
민1:3, 2:3,9,16,24, 4:3,23,30,39 계9:16, 출6:26, 7:4, 12;17, 12:41,-이스라엘의 아들들이 ‘군대들’인 복수로 불려지는 이유는 각 지파가 ‘군대’이기 때문…지파들이 ‘군대들’이라 불리워진 이유는 다함께 취해진 12 지파는 교회의 모든 진리들과 선들을 표현했기 때문, 그리고 각 지파는 그것 속의 일부 보편적 본질을 표현했기 때문.
계9:16, 예19:13, 8:2 습1:5, 신4:19, 17:3-‘천국들의 군대들’에 의해 여기서 태양, 달, 별이 의미되는데, 그이유는 이들에 의해 복합체에 있는 모든 선들과 진리들이 의미되기 때문. 그러나 여기서는 복합체에 있는 모든 거짓들과 악들.
계9:16, 눅22:20-‘네가 군대들로 에워싸인 예루살렘을 볼 때’…=거짓들이 교회를 점령했음.
계9:16, 시44:9-‘당신은 우리 군대들과 함께 나가시지 않는다’=그분은 그들을 방어해주시지 아니했다는 것, 그 이유는 그들이 악의 거짓들 안에 있기 때문.
계9:16, 욜2:25-‘내가 너희 사이에 보낸 군대, 즉 메뚜기(locust), 굼벵이(grub), 날개 없는 메뚜기(unwinged locust) 모충(caterpillar)’. 갖가지 종류의 거짓들과 악들이 ‘군대’에 의해 의미됨은 분명하다.
예8:2-‘하늘들의 군대’=모든 종류의 거짓들과 악들.
군인 (soldier
싸우다 (fight)
이31:4- 사랑의 선이 있는 곳, 주님은 그것을 위하여, 즉 그것 안에 있는 이들을 위하여 ‘싸우신다.’
출14:14-‘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싸울 것이다’=주님 만이 시험들의 전투를 견뎌내신다.
요19:24-‘군인들이 이것을 했다’는 것=이것은 진리를 위하여 싸울 이들에 의해 행해졌다는 것.
요19:34-또한 주님을 다함께 부인한 그들이 그분의 옆구리를 찌른 군인에 의해 뜻해지고 있다. 군인에 의해, 또는 거기에 있는 군인들에 의해 교회 속에 있는 이들, 주님을 위해 싸워야 하는 이들, 특별하게는 유대 교회 속에 있는 이들, 일반적으로는 거짓들과 악들에 있는 교회 속에 있는 이들이 의미된다. 고로 그들은 그분의 옷을 나눠가졌다.
요19:34-‘군인들’=교회 속의 진리들과 선들을 위해 싸워야 할 이들.
이31:8-악의 거짓들이 교회의 선들과 싸움이 ‘시온 산에 맞서 싸우는 모든 나라들의 군중’에 의해 뜻해지고 있다.
이31:4-‘시온산에서 싸우는 것, 그것의 언덕에서 싸우는 것’=신성한 진리로부터 심판을 행하는 것.

기 (군기, banner, ensign)

출17:15-‘그는 그것을 여호와 닛씨라고 불렀다’=내면의 거짓에 있는 이들에 맞서는 전쟁은 꾸준함, 그리고 주님의 보호가 있음…‘여호와 닛씨’, 원어에서 ‘여호와, 나의 군기(군대 깃발)’을 뜻한다. 그리고 기 또는 표장(ensign)은 말씀에서 전쟁에 [함께] 부름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전쟁이 ‘여호와의 전쟁’이라 불리울 때, 이것이 함께 부름을 의미한다는 것은 이런 사실, 즉, 화합이 거행될 때, 그것이 여행을 위해서이든, 축제를 위해서이든, 전쟁을 위해서 이든 그들은 나팔을 불고, 그다음 산(높은 곳)에서 기를 들어올리는 관습으로부터 알 수 있다.
이31:9-‘그의 군주들은 기로 인해 오싹해질 것이다.’ 자신의 총명으로부터도 신성한 것들에 슬기로워진다고 자신을 믿는 이들에 대한 심판이 여기서 취급되어진.다…‘기로 오싹해질 군주들’=제1의 거짓들. ‘기를 수단으로’라고 말해지는 이유는 그것들이 진리들과의 전투에서 흩어지지 않으려하기 때문,…

기병 (horseman, cavalry)
(짐승을) 타다 (ride)
기수 (승마자, rider, horseman)

시45:4-‘진리의 말(word) 위에 타는 것’=진리의 교리를 가르치는 것. (=진리의 총명).
예17:25, 22:4-‘병거를 타고 말을 타는 것’=지적인 것들이 풍부함.
창49:17-‘(뒤쪽으로 떨어지는) 그의 승마자’=가르치는 자.
시68:4-‘구름들을 타는 것’=말씀의 내면들 측면에 관련하여 말씀을 이해함.
시18:10-‘그룹을 타시는 여호와’=인간이 말씀 안에 있는 신앙의 신비들 안으로 자신으로부터 들어가지 않도록 하시는 주님의 섭리.
예17장-‘병거 위에 타는 것’, ‘말 위에 타는 것’=내적 이해와 더불어 말씀으로부터 진리의 교리 안에서 훈육되는 것.
이58:14-‘땅의 높은 곳 위에서 타는 것’=총명.
슥12:4-‘내가 광기로 그의 기수를 강타할 것이다’=총명있는 자가 광기로 쳤다.
창24:61-‘그들은 낙타들 위에 탔다’=지적 평면이 자연적 과학물 위쪽으로 승강했다.
창50:9-‘기수’=지적인 것들.
출4:20-‘그는 그들을 나귀 위에 태웠다’=새로운 총명을 섬기는 것들. ‘타는 것’=이해함으로부터 있는 것들.
겔26:10-‘네 벽들은 기수들의 씨끄러움에 흔들릴 것이다.’…‘기수’=뒤집힌 지적 평면의 것들.
출15:21-‘말과 기병을 그분은 바다로 던지셨다’=그분의 현존하심에서 신앙으로부터의 거짓들과 생활로부터의 악들은 그 자체 지옥에 내던진다. ‘말과 기병’=악으로부터의 거짓들.
욜2:4-‘달린 기병들’=추론자들.
왕하8:14-엘리야와 엘리사는 ‘이스라엘의 기병’이라 불리웠는데, 그이유는 그들은 말씀 측면에서의 주님을 표현 했기 때문; 그리고 ‘기병’에 의해서는 총명이 의미되어져 있다.
계9:16-‘기수들’에 의해 신앙 만에 관하여 추론함들, 그이유는 ‘말’이 파괴된 말씀의 이해를 의미하기 때문.
창49장-‘그의 승마자’=그것들로부터 진리의 결핍, 이로인해 진리들이 뒤집힘.
예6:23-‘말 위에 타는 것’=감각의 오류로부터, 그로부터의 추론들을 통하여 설득하는 것.
합3:8-‘말 위에 타는 것’=주님은 영적 의미 안에서 그분의 말씀을 이해함 안에 계시다는 것.

무기 (weapons)

* bow, shield, spear, sword도 참조.
창27:3-‘지금 네 무기들, 화살통과 활을 가져가라’=자연 평면(‘에서’)에 의해 소유되어져 있는 선으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
겔39:9-‘그들은 무기들을 태울 것이다, 큰 방패, shield와 작은(둥근) 방패, buckler 모두, 활과 화살도, 몽둥이, handstaff와 창, spear도’=선과 진리의 소모됨과 황폐됨. 이런 무기들=악의 거짓을 방어할 여유가 있는 말씀으로부터 교리의 진리들.

(작은) 방패 (bucker)

시91:4-‘방패와 과녁(target)’=거짓들에 맞서 보호함.
시18:2-‘방패’ 등등은 진리의 힘을 의미한다.
* ‘작은 방패’, ‘큰 방패’, ‘화살’=말씀으로부터 있는 교리의 진리, 이를 수단으로 악의 거짓들로부터의 보호가 있다.
시18:2-‘나의 방패, 내 구원의 뿔’=거기서부터의 구원. ‘방패’는 신성한 선을 서술한다.
겔39:9-‘방패’=선을 파괴하는 거짓. ‘큰 방패’=진리를 파괴하는 거짓.
시35:2-‘작은 방패’, 그것이 머리를 보호하기 때문에=진리에 대한 이해를 파괴하는 거짓들에 맞선 보호.. ‘큰 방패’, 그것이 가슴을 방어하기 때문에 선을 뜻하는(will)것인 선행을 파괴하는 거짓에 맞서 보호함.

(큰) 방패 (shield)

창15:1-‘나는 네 방패이다’=악들과 거짓들에 맞서 보호하심.
시91:4-‘그분의 진리는 큰 방패와 작은 방패이다’=진리를 수단으로 안내하심.
시5:12-‘그분은 방패가 하듯 그들을 에워싸신다’=사랑으로부터 있는 그분의 보호..
겔39:9-‘방패’=진리를 파괴하는 거짓.

병거 (chariot)

* ride도 참조
겔27:20-‘병거를 위한 자유의 의복’=외면의 선들, 또는 예식들 속의 것들.
예22:4-‘병거와 말을 타고’=지적인 것이 풍부함.
나2:4-‘병거들’=진리의 교리. 진리 대신 거짓이 있을 때 ‘병거들이 거리에서 사납게 날뛸 것이다’라고 말해진다.
삼상8:11-‘(왕이) 자신을 위해, 병거를 위해, 마병을 위해 임명할 아들들’=거짓의 원리들을 섬길 교리 속의 진리들. 이것이 ‘병거들과 마병들’이다.
합3:8-‘당신은 당신의 말, 구원의 병거를 타신다.’ 여기서 ‘말들’=말씀에 있는 신성한 진리들. ‘병거들’=거기로부터 파생된 교리.
왕하2:12, 13:14-‘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 엘리야와 엘리사는 말씀 측면의 주님을 표현했다. 사랑과 선행으로부터의 교리가 ‘불길에 휩싸인 병거’에 의해 표현되어졌다. 그리고 이로부터 파생된 신앙의 교리가 ‘불말’에 의해 표현되어져 있다.
이21:7-‘나귀 병거’=세부적인 과학물이 많음, ‘낙타 병거’=일반적 과학물이 많음. 이 둘 모두 자연적 인간에 있다. 이것은 이 대목에서 기술되는 바벨에 의해 의미되는 이들에게 유행한 텅빈 추론들이다.
시68:17-‘하느님의 병거들’=말씀 속에 있는 것들, 이로부터 파생된 교리 속에 있는 것들. ‘천천이요 만만이다’=그 안에 있는 무한한 것들.
슥6:1-‘(4)병거들이 두 놋쇠 산 사이에서 나갔다’=선으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 ‘병거들’=교리적인 것들.
왕하6:14-시리아왕이 (엘리사를 데려가려고) 보낸 ‘병거들과 마병과 큰 군대’는 교리 속의 거짓들이 의미되고 있다. ‘엘리사 주위에 불병거와 불말들로 가득한 산’, 이것이 엘리사의 사환에 의해 보여졌는데, 이는 말씀으로부터의 교리 속의 선들과 진리들을 의미하고 있다.
예17:25-‘병거를 타고 말을 타는 것’=교회의 영적인 지적 측면.
예50:37-‘검이 (갈대아인들과 바벨의 주민들의) 말들에 맞서, 병거들에 맞서 있다’…‘말들’=교회의 지적 측면, ‘병거들’, 그것의 교리물, 이것의 황폐됨이 ‘말들과 병거들에 맞선 검’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창41:43-‘그는 (요셉을) 둘째가는 병거에 타도록 했다’=그분으로부터 선과 진리의 모든 교리가 있음을 표시한다. ‘병거’=선과 진리의 교리. 그러므로 ‘그를 병거에 타게 한다’란 교리가 그분으로부터 있음을 표시한다.
겔39:20, 계19:18-‘너희는 내 식탁에서 말과 병거로 배를 채울 것이다.’ 이는 그들이 말과 병거로 의미되는 것, 즉 선과 진리의 지적인 것과 교리적인 것으로 채워질 것을 뜻한다.
예17:25-‘병거와 말을 타는 것’=지적인 것들과 이로부터 파생되는 교리적인 것들.
출14:6,7,9,17,23,25,26, 그리고 15:4,19-이집트의 군대가 이스라엘 후손을 추격하여 홍해 안으로까지 진입하고 그 안에서 바퀴가 뒤엉켜버리고 만 말과 병거에 의해, 그리고 이 대목의 가장 큰 부분을 구성하는 말들과 병거들에 관한 많은 것들에 의해 거짓으로부터의 지성적, 교리적, 그리고 과학적인 것들, 그리고 이것에서 파생된 추론들이 의미되어진다. 이것들은 교회의 진리들을 뒤집고 소멸시킨다. 이와 같은 것의 파멸과 죽음이 거기서 기술되어 있다.
슥9:10-‘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는 것’=교회의 지적인 모든 것…‘병거’=교리적인 것.
예47:3-‘병거들의 떠들썩함’=거기서 파생된 교리적인 거짓, ‘바퀴 소리’=감각적인 것과 이것을 발전시키는 오류들.
창46:20-‘요셉은 그의 병거에 견인줄을 채웠다’=내적인 것으로부터의 교리…‘병거’=교리.
창50:9-‘그와 함께 병거들이 올라갔다’=교리적인 것들.
나3:2-‘울어대는 말, 점프하는 병거들’=같은 속성으로부터 뒤집힌 지적인 것과 교리적인 것을 수단으로 (왜곡된 것을 방어함).
미5:10-‘나는 너희 한가운데로부터 네 말들을 끊고 네 병거들을 파괴할 것이다’. ‘끊어질 말들’에 의해 지적인 것들이 의미되어진다. ‘파괴되어질 병거들’은 진리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이다.
예47:3-‘병거’=거짓으로부터의 교리. ‘병거’=진리로부터 그리고 거짓으로부터, 양쪽으로부터의 교리.
출14:6-‘(바로)는 그의 병거에 견인줄을 채웠다’=일반적으로 분리된 신앙에 속하는 거짓으로부터의 교리. ‘병거’=교리, 이 구절의 경우, 거짓으로부터의 교리, 그 이유는 분리된 신앙으로부터의 것이기 때문, 그 이유가 이 병거는 바로의 병거이기 때문, 그리고 ‘바로’에 의해 분리된 신앙으로부터 있는 거짓들이 표현되어져 있기 때문.
출14:7-‘그리고 그는 육백 병거들을 선발해 데려갔다’=그것들의 질서에서 분리된 신앙에 속하는 거짓으로부터의 각각 그리고 모두의 교리적인 것들.
출14:9-‘바로의 병거의 모든 말들, 그의 마병, 그리고 그의 군대’=뒤집힌 지적인 것으로부터 있는 거짓 속의 모든 것들…‘병거’=교리적인 것들.
출14:17-‘나는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 그의 마병 가지고 내 영광을 드러낼 것이다’=그들은 주님의 신성한 인간으로부터의 신성한 선을 수단으로 거짓된 것과 추론이 사라지는 결과를 볼 것이다…‘그의 병거들’=거짓으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
출14:23-‘바로의 모든 말들, 그의 병거들, 그리고 그의 마병들이 바다 한가운데로 추격해왔다’=왜곡된 지적인 것으로부터의 과학물들, 거짓된 교리적인 것들, 그리고 지옥을 채우는 추론들…‘바로의 병거들’=거짓의 교리적인 것들.
출14:25-‘그분은 그들의 병거 바퀴들을 벗겼다’=앞으로 나아가는 거짓들의 힘을 제거하는 권능…‘바로의 병거들’=거짓으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병거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상품을 운반하는 병거이고, 또하나는 전쟁에서 사용되는 병거이다. 상품을 운반하는 병거는 진리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 반대 의미로는 거짓으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 전투에서 사용하는 병거 역시 양쪽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전투하는 것들인 진리 자체, 거짓 자체는 싸우기 위해 준비되어진다. 이로부터 분명한 바, ‘병거의 바퀴’에 의해 뜻해진 것, 즉 전진하는 힘, 여기서의 경우, 거짓들을 앞쪽으로 가져다 놓는 힘, 하여 진리에 맞서 싸우는 힘이다. 이 힘은 인간의 지적 부분에 속한다, ‘바퀴’ 역시 교리로부터 있는 이런 것들 측면에서의 지적인 것이 의미되어진다.
출15:4-‘바로의 병거들과 그의 군대를 그분은 바다 안으로 내던지셨다’=교회 속에 있는 이들에게 속한 일반적 특수적인 악으로부터의 거짓들, 그리고 악한 생활에 있다…‘병거들’=거짓들, 여기서, 특수적인 거짓들, 그 이유는 ‘군대’ 또한 언급되고 있기 때문, 이를 수단으로 일반적 측면에서의 거짓들이 의미되어진다.
출15:19-‘바로의 말이 그의 병거와 그의 마병과 함께 왔기 때문에’=악한 생활 안에 그리고 분리된 신앙에 있는 이들과 더불은 뒤집힌 지적인 것으로부터의 모든 거짓들. 이 의미 파악은 ‘바로의 말’, 또한 ‘병거’, 그리고 그의 ‘마병’의 의미로부터 분명해진다. 이것들은 모두 뒤집힌 지적인 것으로부터의 거짓들이다.
욜2:5-‘병거들’=거짓으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
겔39:20-그들은 ‘말, 병거, 용사’로 배불러질 것이다…‘말’=진리의 지적인 것, ‘병거’=교리, 그리고 ‘용사’=거짓에 대항하는 진리.
슥9:10-‘나는 에브라임으로부터 병거를 끊을 것이다’…‘병거’=교회의 교리…(이 구절에서) 이해함 측면에서 교회 속의 신성으로부터의 진리가 황폐해짐이 의미되어진다.
시68:17-‘하느님의 병거가 천천이요 만만이다. 주님이 그것들 안에 있으시다’…‘병거’=교리, 그러므로 ‘하느님의 병거’들‘=신성한 교리적인 것들, 또는 천국들에 있는 것과 같은 진리들.
시104:3-‘그분은 그분의 병거로 구름을 배치하신다.’…그분이 병거로 배치한 구름들은 교리를 오게하는 진리들이다.
예50:37-‘그의 말에 맞선, 그리고 그의 병거에 맞선 검’…‘검’은 진리들과 싸우고 파괴하는 거짓이다. ‘말들’은 계발되어진 지적인 것이다. ‘병거들’은 교리적인 것들이다.
계9:9-‘(메뚜기들의) 날개 소리는 전쟁으로 돌진하는 병거들의 소리 같았다.’=마치 말씀으로부터의 교리로부터의 진리들로부터인 것 처럼 추론함, 그이유가 그것들이 전투에 임하기 때문.
이30:1-‘도움을 구하려 이집트로 내려가는 자에게 슬픔이 있다, 그리고 말들에 머물고 병거를 신뢰한다, 그이유는 그것들이 많기 때문…’ 이렇게 인간 고유의 총명이 묘사되어있다…‘병거’=거기로부터 파생된 교리.
삼상6:7-그들이 궤를 되돌려 보낸 ‘새 마차, new cart’는 새 교리를 의미했다, 그러나 자연적 교리이다, 그이유가 ‘병거’는 말씀에서=거기로부터 파생되는 교리이기 때문.
시104:3-‘여호와께서는 물들에 그분의 침실의 들보들을 내려 놓으신다, 그분은 그분의 병거로 구름을 배치하신다.’ ‘물들’=진리들, ‘침실’=교리적인 것들, ‘병거’=교리, 이것 모두는 말씀의 글자 의미로부터 있는바, 이는 ‘구름들’이라 불려진다.
왕하3:12, 13:14, 6;17-‘병거’=말씀으로부터의 교리.

사정거리 (shot)

창9:23-‘활 사정거리’=진리와 소원해진 때의 상태…‘사정거리’=가능한한 먼 것.

적 (enemy)
원수 (enemy)

* hostile도 참조.
시72:9-‘야만인들과 적들’=지상적인 것, 세상적인 것만을 쳐다보는 이들.
창14:14-‘적들을 뒤쫒는 것’=선들과 진리들과 더불어 있던 악들과 거짓들을 몰아내는 것.
창14:20-‘당신의 적들을 당신의 손에 넘겼다’=승리.
창22:17-‘네 씨가 네 적들의 문을 상속받을 것이다’=선행과 신앙이 악과 거짓들이 있기 전 그 장소에서 계속될 것이다…‘적들’=악들과 거짓들, 또는 악과 거짓 안에 있는 이들. 이것들이 말씀의 내적 의미에서 ‘적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애4:5-‘머리가 되어가는 적들’=악들이 통치함.
시127:5-‘문에서 적들과 이야기하는 것’=악들과 거짓들을 전혀 두려워 않는 것, 고로 지옥을 두려워 않는 것.
창49:8-‘네 손이 네 원수들의 목에’=지옥적이고 악마적인 패거리는 그의 현존에서 혼비백산할 것이다. ‘원수들’=지옥적이고 악마적인 패거리.
출15:6-‘당신의 오론손을 가지고 여호와 당신께서는 원수들을 조각나게 부수십니다’=전능하심이 악들과 거짓들 위에 있는 결과, 그것들의 권세가 멸절되었다. ‘원수들’=악들과 거짓들.
출15:9-‘적들이 말했다’=주님의 강림 전, 악들과 거짓들 안에 있었던 이들의 생각.
시44:5-‘뿔로 적들을 내치는 것’=거기서 신앙으로부터의 진리와 선의 힘에 의해 거짓들을 파괴하는 것.
출23:22-‘나는 네 적들에게 (내) 적으로 여겨 행동할 것이다’=그분은 거짓들을 있게 하는 모든 악들로부터 피하게 하신다는 것.
시110:1,2-‘내가 네 적들을 네 발의 발판으로 놓을 때까지’=지옥 안에 있는 악들, 지옥들로부터 있는 악들이 굴복할 때, 그리고 그분의 신성한 힘의 영향 아래 놓여질 때…‘네 적들 한가운데에서 지배하는 것’=선이 악을 넘어 지배하는 것.
미2:8-‘의복 때문에 적으로 간주하는 것’=그들이 생각하는 진리 때문에 그들에게 악을 행하는 것.
눅10:19-지옥들이 ‘그들이 힘을 발휘할 적’에 의해 뜻해진다.
삼하24:13-‘적들 앞에서 도망함’에 의해 악들과 거짓들에 의한 박해가 뜻해진다.
예46:5,10-‘용사들’, 그리고 ‘적들’=지옥들. 그이유가 지옥의 모든 자들은 주님을 미워하기 때문.
호8:3-‘적’=악으로부터의 거짓, 그리고 거짓으로부터의 악.
시132:18-‘수치로 옷입은 적들’이 악들과 거짓들이다.
미5:9-‘적들’=악들.
애2:17-‘적’=악
시127:5-‘적들’=악들.
애2:4-‘적’=악.
이62:8-‘적들’=악들.
애2:7-‘적’=악과 거짓.
예15:9-‘적들’=악들.
시71:9-‘적들’=악들.
신32:31-‘우리의 적들’=악들.
애2:22-‘그들을 살라버린 적’=악과 거짓.
창49:8-‘적들’=지옥으로부터 있는 이들.
시37:20-‘적들’=악들 안에 있는 이들.
시44:10-‘적’=지옥으로부터 있는 악.
시74:3,4-‘적’=지옥으로부터의 악.
이63:18-‘적들’에 의해 생활 속의 악들이 의미되어져 있다.
시7:5-‘적’=악, 일반적으로 악마, 즉 지옥으로부터 있는 악.
시74:18-‘여호와를 비난한 적’=지옥과 거기로부터 있는 악.
시45:5-‘왕의 적들’=진리들에 맞서 있는 이들, 고로 지옥들.
시132:18-‘그의 적들을 나는 수치로 옷입힐 것이다’=지옥들을 복종케 함, 그리고 거기로부터의 악들이 사라짐.
슥8:10-‘적’=악들과 거짓들이 있는 지옥.
예31:16-‘적의 토지로부터 되돌아가는 것’=지옥으로부터 이끌려 밖으로 내지는 것.
시74:3,4-‘성소에서 모든 것들을 파괴한 적’=악들이 교회의 거룩한 것들을 파괴했다는 것…‘적들이 네 잔치의 한가운데에서 으르렁댔다’=거짓들이 예배의 모든 것들을 파괴했다.
예44:30-그들이 악들과 거짓들을 수단으로 파괴되어졌다는 것이 ‘나는 이집트의 왕을 그의 적들의 손에 줄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예6:25-‘적’=지옥.
시127:5-‘문에 있는 적’=지옥으로부터 있는 악의 거짓들.
애1:16-‘적’=악의 거짓, 그리고 그것의 근원인 지옥.
암9:4-‘비록 그들이 적들 앞에서 포로가 되어 간다해도’=만일 그들이 자기들을 소유하도록 악들을 내버려둔다면.
신32:42-‘적의 보복의 담즙으로부터’=지옥들의 사악함과 광포한 행동.
시110:1-‘내가 네 적들을 네 발의 발판으로 놓을 때까지.’ ‘발을 위한 발판’=자연적인 것들, 감각적, 과학적 모두, 그리고 그로부터 인간의 합리적인 것들, 이것이 예배를 뒤집을 때 ‘적들’이라 불리운다, 그리고 이것은 말씀의 글자 의미로부터 이다…
출1:10-‘그가 우리의 적들과 연합해서 우리에 맞서지 않도록’=악을 야기시키는 그들의 동료들이 더 힘세어질 것이다는 것.
눅6:35-‘우리의 원수를 사랑하는 것’=선에 애착함. 그러나 원수들이 사랑되어지는 것은 그들이 가르침받을 때, 그리고 적절한 수단에 의해 그들이 수정될 때.
출23:4-‘네 적의 수소를 만날 때, 또는 길잃은 그의 나귀를 만날 때’=교회 밖에 있는 이들과 더불어 있는 진짜이지 않은 선과 진리.
출23:22-‘나는 네 적들에게 (내) 적으로서 행동할 것이다’=주님께서는 악으로부터의 모든 거짓들을 비켜지게 하실 것이다.
출23:27-‘나는 너에게 네 적들의 목을 줄 것이다’=거짓들의 도망함과 지옥 떨어짐.
시110:1,2-지옥들과 악들과 거짓들이 ‘그의 발판으로 놓여질 적들. 그분이 그들 한가운데에서 통치할 적들’.
계11:12-‘그들의 적들이 그들을 보았다’=선행으로부터 분리된 신앙 안에 있는 이들이 그것을 들었다, 그럼에도 자기들 고유의 거짓들 안에 남아 있다….‘그들의 적들’에 의해 영적으로 소돔과 이집트라 불리는 큰 성 안에 있는 이들이 뜻해진다.
눅1:71-‘…그분은 적들로부터 구해내실 것이다…’ ‘적’=거짓들. 주님을 영접하는 이들을 그분은 거짓들로부터 구해내신다.
시69:18-‘적들’=거짓들.
* (가라지를 뿌린) 원수=지옥.
눅10:19-‘적’=지옥의 패거리.
눅6:35-‘원수를 사랑하고 그들에게 선을 행하는 것’, 대략적인 의미에서일 경우, 이방인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선을 행하는 것, 이것은 그들에게 진리를 가르침을 수단으로, 그리하여 그들을 선쪽으로 인도함을 수단으로 이루어진다. 그이유가 유대국가는 이방인들을 적이라 불렀기 때문.
민10:35-‘원수들’, ‘미워하는 자들’=지옥으로부터 있는 거짓들과 악들.

전리품 (spoil)

나3:1-‘약탈이 가득함’=거짓으로부터의 악 (=거짓을 수단으로 가해진 폭력).
민23:24-거짓들과 악들의 흩어짐이 ‘움킨 먹이를 먹는 것’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이31:4-‘움킨 먹이 위에서 사자가 표효하고 있다’=지옥으로부터의 악들로부터 구해냄.
겔19:3-‘먹이를 잡는 것’=교회의 진리와 선을 파괴함.
예21:12-‘압제자의 손으로부터 망쳐진 그를 잡아채는 것’=선행의 선을 행하는 것.
창49:27-‘약탈품을 게걸스럽게 먹는 것’=그분이 구해낸 이들을 그분 자신에게 충당하는 것(appropriate).
출15:9-‘나는 약탈품을 나눌 것이다’=노예. ‘약탈품을 나누는 것’=노예로 환원된 이들을 자신들에게 배분하는 것.

전쟁 (war)

* army, battle, victory, weapon도 보라.
마24:6-‘전쟁과 전쟁 소문’=진리들에 관한 토론과 논쟁.
눅14:31-‘전쟁을 만드는 것’=진리들로부터 싸우는 것.
출1:10-‘전쟁들’=진리들과 거짓들 사이에 있는 전투들, 영적 전투들.
출13:17-‘그들이 전쟁을 보고 후회하는 것’=그들이 맹렬한 공격을 받으면 진리로부터 얼굴을 돌리는 것.
출15:3-‘여호와는 전쟁의 사람이시다’=주님께서는 지옥들로부터 있는 모든 악들과 거짓들로부터 보호하실 것이다.
예6:23-‘전쟁을 위한 사람으로 준비하는 것’=진리를 맹습하려는 욕망.
시68:30-‘그분은 전쟁을 갈망하는 백성들을 흩으셨다’…교회의 진리들과 더불어 교회를 공격하고 파괴하려는 바램이 ‘전쟁을 갈망함’에서 뜻해져 있다.
겔39:20-‘전쟁의 사람’=거짓에 맞서 싸우는 진리.
출32:17-‘진영에서 전쟁의 소리가 있다’=지옥으로부터 있는 악들과 거짓들을 수단으로 교회 속에 있는 진리와 선을 공격하는 것.
이3:25-‘전쟁에서 강함이 없다’=악과 거짓에 맞서 어떤 저항도 없다.
이42:15-주님 만이 여느 천사의 조력 없이 지옥들을 정복하셨는바, 그분이 ‘영웅’, 그리고 ‘전쟁의 사람’이라 불리운다…‘전쟁의 영웅’.
계9:7-‘전쟁을 위해 준비된 말 같이’=그들이 추론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진리를 이해함으로부터 싸우는 듯 자신들에게 나타났다는 것…‘전쟁’=영적인 전쟁, 이는 추론함과 논쟁들을 수단으로 수행되어진다.
계9:9-‘전쟁으로 달려가는 것’=(영적 전투에서) 싸우겠다는 열의.
계11:7-‘짐승은 그들과 전쟁을 만들 것이다’=(이것들은) 새 교회의 두 본질을 공격하고 반대하는 쪽에 자신들을 놓았다는 것.
계12:7-‘천국 안에서 전쟁이 있었다…’=새 교회의 진리들에 맞서는 이전 교회의 거짓들.
계13:7-‘거룩한 사람들과 전쟁을 만드는 것이 그에게 수여되었다’=그들은 말씀 속의 신성한 진리들을 맹습했다는 것.
계19:19-‘짐승과 땅의 왕들이 말 위에 앉으신 그분과 전쟁을 만들려고 함께 모였다…’=모든 (이런 것들이) 주님의 신성한 진리들을 공격할 것이다…
계20:8-‘곡과 마곡, 전쟁에 그들을 함께 모은다’=단지 외적일 뿐인 예배에 있는 이들이 주님을 예배한 이들에 맞서 흥분했다.
예18:21-‘그들의 젊은 이들은 전쟁에서 검에 죽임을 당했다’=거짓들의 기습으로 파괴된 진리들.
겔39:20-‘너는 전쟁의 모든 사람을 배불릴 것이다’=거짓을 파괴하는 선으로부터의 진리와 더불어.
슥10:3-‘전쟁에서 영광의 말 같이’=신성한 진리의 이해함이 악들과 거짓들에 맞서 싸움, 그것은 파괴될 것이다.
시18:34-‘하느님은 내 손에 전쟁을 가르치신다.’ 여기서의 ‘전쟁’은 영적 의미에서의 전쟁이 의미되어진다. 이는 악들과 거짓들에 맞서는 전쟁이다. 이것이 하느님이 가르치시는 전쟁이다.
이21:15-‘전쟁의 슬픔’=강습(assault).
시46:9-‘여호와께서는 땅끝까지 조차 전쟁이 중지되게 만드신다’=[그분은] 교회의 제일가는 진리와 최말단에 속하는 진리에 까지에서 모든 의견 차이와 전투를 [중지되게 하신다는 것.]
호2:18-‘나는 활, 검, 전쟁을 땅으로부터 부술 것이다’=주님과의 결합 때문에 진리에 맞서는 거짓의 전투가 존재 않을 것이다는 것.
욥5:20-‘전쟁에서 검의 손들’=진리를 이해함 측면에서의 시험들. ‘전쟁’=시험, 또는 거짓들에 맞선 전투.
미2:8-‘전쟁으로부터 되돌아오는 사람들’=거짓들을 뒤흔든 이들.
미4:3-‘나라가 나라에 맞서 검을 치켜세우지 않을 것이고, 그들은 더 이상 전쟁을 배우지 않을 것이다’=(천적) 왕국 안에서 진리들에 관한 토론이 있지 않을 것이다.
이3:2-‘강한 자와 전쟁의 사람을 거두어 가는 것’=악들과 거짓들에 맞선 모든 저항을 거두어버리는 것.
겔27:27-‘전쟁의 사람’=방어하는 이들.
예49:26, 50:30-‘전쟁의 사람’=거짓들에 맞서 싸우는 진리들. 그리고 거짓에 맞서 진리를 방어함이 없다는 것이 ‘전쟁의 모든 사람들이 끊길 것이다’에 의미되어 있다.
예42:14-‘우리가 전쟁을 보지 않는 곳’=거짓들과 악들의 침투가 있지 않을 것, 그리고 시험들도 없을 것.
단9:26-‘전쟁의 끝에 까지 조차 황무함은 작정되어 있다’=진리와 거짓 사이에 전투가 없을 때까자 조차.
계12:17-‘그는 그녀의 씨의 남은 자와 전쟁을 만들려고 나아갔다’=생활의 악으로부터 새 교회의 교리 속의 진리들을 강습하려 몸부림침.

전투 (warfare)

* 군인(soldier)도 참조.
민26:2-‘전투를 위해 나아가는 것’=지옥으로부터 있는 악들과 거짓들에 맞서려고 싸우러 나가는 것.
이40:2-‘그녀의 전투는 충족되었다’=악들에 맞선 싸움

전투 (battle)

창14:8-‘대열을 갖추어 전투에 임하는 것’=강력하게 공격함.
계16:14-‘전투’=진리들과 선들에 관한 불일치, 그리고 영적 전투.

전투하다 (combat)
싸우다 (fight)

* sword, tempt도 참조.
* 여섯째 상태에서…인간의 자연적 삶은 몸과 감각들에의해 떠받혀지고 즐거움도 얻는다. 그러나 이로부터 전투가 있게 되는데, 이 전투는 사랑이 통치할 때까지, 하여 인간이 천적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된다.
창1:28-인간이 영적인 동안, 그가 영적으로 되어가는 동안, 그는 전투 안에 있는다. 그러므로 ‘땅을 정복하라, 그리고 지배하라’ 하고 말해지는 것이다.
창1:30-인간이 거듭나지는 동안, 그리고 영적으로 되어가는 동안, 그는 전투 안에 계속적으로 있다. 그러므로 주님의 교회는 싸우는 가운데 있음(miliant)이라 일컬어진다. 전투의 시기에서 악령들은 ‘푸른 풀잎’에 비교되는 것 외에는 어떤 음식도 인간에게 남겨두지 않는다.
창2:5,6-이 구절에서 ‘안개(mist)’라 불리는 ‘비’=전투의 중지로 있는 평화의 고요함.
창3:6-‘슬픔을 많이 불리는 것’=전투함, 그리고 전투함으로부터 있는 걱정.
예49:26-‘전쟁의 사람들’=싸우는 이들.
창14:14-3백 18명은 숫자 3과 3×6으로 구성되고 있다. 그 중 숫자 ‘6’=전투.
창16:12-‘그의 손은 모든 이에 맞선다’=참되지 않은 것들에 맞서 싸우는 것. ‘모든 이의 손이 그에게 맞선다’=거짓들이 다시 되돌아 싸울 것이다는 것.
창18:30-‘30’=얼마정도의 전투, 고로 약간의 전투.
호2:18-‘활과 검, 그리고 전쟁을 부수는 것’=교리와 진리에 관하여 거기에서는 전투가 없을 것이다는 것.
창25:22-‘아들들이 그녀의 한가운데에서 서로 다투고 있다’=전투하고 있다.
창25:29-‘그는 지쳐있었다’=전투의 상태. ‘지쳐있음’=전투 후의 상태. 여기서는 전투의 상태.
창30:7-지배함에 관심의 중심에 있을 때, 전투는 거행된다. 여기서 이것이 ‘다투고 있음’이다.
출2:13-‘두 히브리 사람들이 다투고 있었다’=그들은 교회 안에서 싸웠다.
출6:5-‘신음함’=전투로부터 있는 슬픔과 고통. ‘이스라엘의 아들들’=영적 (왕국의) 교회 속의 이들, 이들이 거짓들에 의해 판쳐짐을 당하고 있다. 이로부터 전투 안에 있다.
출14:14-‘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전쟁을 수행하실 것이다’=주님 만이 시험들의 전투들을 지원하신다는 것.
출15:3-‘전쟁의 사람’=거짓들과 악들에, 즉 지옥들에 맞서 싸우시는 그분, 그리고 그들을 정복하신다. 주님만이 인간을 위해 싸우신다. 그리고 계속적으로, 특히 시험들 안에서 싸우시는데, 이것이 영적 전투들이다.
출15:9-‘나는 검을 빼들 것이다’=악으로부터의 거짓의 계속적인 전투.
출16:26-‘6일’=전투와 노동의 상태, 여기서는 진리를 받음의 상태, 또는 선이 진리를 통하여 획득되어지는 때의 상태, 그이유가 이 상태에서 노동과 전투가 있기 때문. 이 상태에서 인간은 시험들 안으로 놓여진다. 이것은 인간과 더불어 있는 악들과 거짓들과의 전투들이다. 이때 주님께서는 인간을 위해, 그와 함께 싸우신다. 이 상태 이후 선과 진리가 결합하는 상태가 있다. 이 상태가 안식일에 쉼에 의해 표현되어져 있다. 이때 인간은 주님 안에 있다. 그리고 노동과 전투 없이 그분에 의해 인도되어진다.
출17:8-‘그리고 르비딤에서 이스라엘과 싸웠다’=이스라엘들이 비통한 시험을 견디는 동안 그들이 습격했다는 것. ‘싸우는 것’=내면의 악으로부터의 거짓들을 통하여 습격하는 것.
이63장-지옥들과의 그분의 전투들이 ‘그분의 의복에 튀어 묻었다’에 의해, ‘그분의 의복이 붉다’에 의해, ‘그분의 의복은 포도즙틀을 밟는 그분의 의복 같다’에 의해 묘사되고 있다.
슥14:3,4-보편적 의미에서, 여호와께서 출동하시어 나라들과 싸우심, 그리고 그분의 발은 예루살렘의 얼굴들 앞에 있는 올리브 산 위에 서계심에 의해 주님은 신성한 사랑으로부터 지옥들과 싸우실 것임이 뜻해지고 있다.
시110:1-7-이 구절들은 주님이 세상에 계신 동안 있은 그분의 전투들에 관한 신비를 포함하고 있다. ‘너는 내 오른편에 앉으라’=신성의 진리를 통하여있는 신성의 선의 전능하심. 이는 그당시 주님이 있으셨던 것, 즉 이로부터 그분은 싸우시고 정복하셨다. ‘네가 용감하던 날에 네 백성은 민첩함의 하나이다’=그때 신성한 진리가 싸우고 있다. ‘멜기세덱’은 ‘정의의 왕’을 뜻한다. 고로=여호와께서는 전투함과 승리함을 통하여 정의를 만드셨다. ‘노염의 날’은 주님이 악들에 맞서 싸우시고 그것들을 파괴하셨던 때였다.
민26:2-‘전투하러 나가는 것’=지옥으로부터 있는 거짓들과 악들에 맞서 전투에 임하는 것.
계12:7-‘천국에서 전쟁이 있었다.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과 싸웠다. 그리고 용과 그의 천사는 싸웠다’=이전 교회 속의 거짓들이 새 교회(the New Church) 속의 진리들과 싸우는 것.
계13:4-‘누가 짐승과 같을까? 누가 그와 싸울 수 있을까?’=모든 다른 것들을 넘어 특출하다. 그이유는 누구에 의해서도 이 교리는 반박되지 않기 때문.
계17:4-‘이들은 어린 양과 싸울 것이다, 그리고 어린 양은 그들을 이기실 것이다’=주님의 신성한 인간에 관련하여 그들과 그분 사이에 전투가 있다.
계19:11-‘정의 안에서 그분은 판결하신다, 그리고 싸우신다’=주님은 선을 악으로부터 분리하신다.

진(영) (camp)

계20:9-‘거룩한 사람들의 진영’=사랑의 선들과 선행의 선들.
창26:17-‘진영을 치는 것’=질서 안으로 배치하는 것.
창32:2-‘야곱은 말했다, 이것은 하느님의 진영이다’=천국.
창32:2-원어에서 ‘마하나임’은 ‘두 진영’을 뜻한다. ‘두 진영’=두 천국들, 또는 주님의 두 왕국들, 즉 천적 왕국과 영적 왕국; 그리고 최고 의미에서, 주님의 신성한 천적 측면과 신성한 영적 측면.
창32:7-‘(야곱은) 자기와 함께 있는 사람들, 가축떼, 낙타들을 두 진영으로 갈랐다’=에서에 의해 표현된 선을 받기 위하여 자연 평면에 있는 진리들과 선들을 배열하고 준비함…‘진영들’=질서.
창33:8-‘내가 만난 이 진영들은 무엇이냐?’=거기로부터 있는 특별한 것들. ‘진영’=특별한 것들.
창33:18-‘(야곱은) 성의 얼굴에 진영을 차렸다’=이 진리의 선에 적용함. ‘진영을 차리는 것’=질서에 따라 배열함. 그러나 여기서는 적용함. 그이유가 ‘진영을 차리는 것’이 여기서는 그의 양떼와 가축떼가 정착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
출14:2-‘진영을 차리는 것’=진리와 선을 질서있게 배열하는 것. 여기서는 시험들을 겪는 것.
출14:19-‘이스라엘의 진영 앞에서 행군함’=교회의 진리와 선들 주위에 있는 것. ‘진영’=진리들과 선들. 그이유가 ‘진영’에 의해 이스라엘의 전체 회중이 뜻해지기 때문.
출14:20-‘그리고 이집트인의 진영과 이스라엘의 진영 사이에 왔다’=이쪽으로는 악의 거짓들과 저쪽으로는 진리의 선들 사이에. ‘진영’=복합체에 있는 선들과 진리들, 반대 의미에서는 복합체에 있는 악들과 거짓들.
출15:27-‘그들은 물들 옆쪽 거기에 진영을 차렸다’=시험 후에 신앙의 진리들이 사랑의 선을 통하여 질서 안으로 배열되어졌다. ‘진영을 차라는 것’=진리와 선의 질서적인 배열.
출16:13-‘(메추라기들이) 진영을 덮었다’=그것이 인간의 자연 평면을 채웠다. ‘진영’=선들과 진리들; 여기서는 자연 평면, 이 평면이 용기(containant)이다.
출17:1-‘그들은 르비딤에 진영을 차렸다’=진리 측면에서 시험을 겪기 위해 내면들을 질서 있게 배열함…‘진영을 차리는 것’=시험들을 겪기 위해 진리와 선을 질서있게 배열함.
출18:5-‘그가 하느님의 산에 진영을 차린 곳’=선으로부터의 진리 가까이. ‘진영을 차리는 것’=인간과 더불은 교회 속에 있는 진리와 선을 질서있게 배열함.
출19:2-‘그들은 광야에 진영을 차렸다’=이 상태로 정규적으로 배치함. ‘진영을 차림’=생활 속에 있는 진리와 선을 질서있게 배열함., 또한 정규적 배치.
출19:2-‘그리고 이스라엘은 산 근처에 진영을 차렸다’=신성의 천적 선을 수단으로 영적 교회 속에 있는 이들과 더불은 정규적인 배치.
레16:21-‘광야’=지옥인 이유는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있던 진영=천국이기 때문.
욜2:11-‘여호와의 진영’=천국.
출29:14-‘너는 진영 밖에서 불로 (그것들을) 태울 것이다’=그들은 지옥에 건네주어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자아 사랑의 악들을 수단으로 소모되어져야 한다는 것…‘진영’=천국과 교회, 반대 의미에서 천국과 교회가 있지 않은 곳, 고로 지옥.
출32:17-‘진영에서 전쟁의 목소리가 있다’=지옥으로부터 있는 거짓들과 악들을 수단으로 천국과 교회 속에 있는 진리와 선을 공격함. ‘진영’=천국과 교회, 여기서의 ‘진영’의 경우, 금송아지가 예배되어진 곳인바=지옥.
출33:7-‘(모세는) 진영 밖, 진영에서 멀리 떨어져 (천막을) 펼쳤다’=이 나라가 있었던 외적인 것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출33:11-‘그는 진영으로 되돌아 왔다’=이 나라이었던 외적인 것 쪽으로. ‘진영’=말씀, 교회, 예배의 외적인 것, 이 안에 이스라엘 국가가 있었다.
계20:9-‘그들은 거룩한 사람들의 진영을 에워쌌다’=용의 원리주의자에 의해 선동되었을 때, 그들은 새 교회의 모든 것들을 파괴하려 무진 애를 썼다.
레10:4-그들이 ‘진영 밖으로 운반됨’=그들의 예배는 천국으로부터 있지 않았다는 것. 그이유가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진영이 천국과 교회를 표현했기 때문.
창 (spear)
이2:4-‘그들의 창을 두드려 낫으로’..‘창’=이와 같은 [영적] 전쟁 속의 것들.
예6:23-‘그들은 활과 창을 붙잡고 있다’=그들은 거짓 원리로부터 싸운다는 것.
겔39:9-‘창’=선으로부터 있는 진리의 내면의 힘.
시46:9-악의 어떤 거짓으로부터도 전투가 있지 않을 것임이 ‘그분은 창을 부러뜨릴 것이다’에서 의미되어져 있다.
합3:11-‘당신의 창의 천둥번개’=그자체 거짓의 악들인 실체없는 선들.
시35:3-‘창’. 이것이 몸의 모든 것을 방어하기 때문에=일반적 측면에서는 방어함.
여8:18,26-유대인들은 권능이 여호수아의 창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창=주님의 전능하심.

투구 (helmet)

예46:4-‘투구들’=이성에 관한 것들.
이59:17-‘구원의 투구’=신성의 선으로부터의 신성의 진리, 이를 통하여 구원이 있다; 그이유가 ‘투구’는 머리와 비슷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

포로 (captive)
포로 신세가 됨 (captivity)
포로로 끌고가다 (take captive)

예32:9-숫자 ‘17’=그들의 바빌론 포로 신세가 됨, 이를 수단으로 신실한 자의 시험, 비신실한 자의 황폐해짐이 표현되어졌다, 그리고 시험의 시작, 동시에 시험들의 끝, 또는 시험에서 해방됨도 표현되고 있다.
창31:26-‘칼에 붙잡힌 포로 같이’=그들이 그것들을 가져가버렸음.
창34:29-‘그들은 …포로로, 전리품으로 가져갔다’=그들은 그것들을 홀랑 벗겼고 악용했다.
암9:14-‘백성의 포로 신세를 되돌려 놓는 것’=거짓들로부터 해방하는 것.
신21:14-‘포로된 여인으로부터 아내를’=진짜 지주로부터가 아닌 낯선 진리, 이 진리도 어쨌든 얼마 정도는 자기와 더불은 교회의 선과 결합될 수 있다.
츨12:29-‘구덩이의 집에 있는 포로들’=마지막 장소(서열)에 있는 이들, 이들은 첫 서열에 있는 왜곡된 신앙의 진리를 의미하는 ‘왕좌에 앉은 바로의 첫 출생’에 반대되는 위치이기 때문. 대략적인 영적 의미에서, ‘구덩이의 포로’는 육체의 감각인 것 안에 있는 이들, 고로 진리들과 선들에 관련하여 짙은 어둠에 묻혀 있는 이들이 뜻해진다. 그들은 자기들 내면의 감각들 안에 있는 것 조차 지각하는 능력이 없다. 하여 이들은 마지막 장소, 마지막 위치에 있다고 풀이된다.
출12:42-‘그들을 이집트의 토지로부터 데려오는 것’=영적 포로 신세로부터 해방되는 것.
출20:2-‘종들의 집’=영적 포로 신세임.
출22:9(10)-‘포로로 끌려감’=옮겨짐.
예30:18-‘야곱의 천막들이 포로 신세 되어 있음에서 되돌려 가져다놓는 것’=파괴되어있어 왔던 외적 교회 속의 선들과 진리들을 회복하는 것.
암4:10-‘포로 신세 됨’=진리가 박탈됨.
계13:10-‘만일 누군가를 포로 신세가 되게 한다면, 그도 포로 신세가 될 것이다’=이 이설(heresy)을 수단으로 잘 믿고 잘 사는 누군가를 이끄는 자는 그 자신의 악들과 거짓들로 해서 지옥 안으로 인도 당할 것이다.
눅21:24-‘모든 나라들에 포로로 끌려가는 것’=갖가지 종류의 악들로 수단으로 소유당하는 것.
애1:18-‘포로 신세가 되어 가버린 처녀들’=영적 진리에 애착함. ‘젊은 이들’=총명. ‘포로 신세가 됨’=그들로부터 제거됨.
암9:14-‘백성 이스라엘의 포로 신세 됨을 되돌려 놓을 것’에 의해 이방인들 사이에서 교회가 회복됨이 의미된다.
예22:22-‘포로 신세가 됨’=지옥 안에 붙들림.
신21:11-‘외모가 아름다운 포로 신세의 여인’=진리에 애착, 또는 진리를 갈망함을 지닌 이방인들 사이에 있는 종교적인 것; ‘그녀를 집 한가운데로 데려오고 , 그녀의 머리를 깍고, 그녀의 손톱을 만들고, 그후에 포로 신세 됨의 의복을 제거하는 것’=그것은 교회의 내면, 또는 영적인 것 안으로 인도될 것, 그리고 그들의 수단들인 자연적이고 감각적인 인간의 악들과 거짓들을 제거한다…‘포로 신세 됨의 의복’=진리를 갈망하는 자가 마치 포로인듯 붙잡혀 있는 종교의 거짓.
눅21장-‘그들은 모든 나라들 사이에 포로되어 데려가질 것이다’=악들은 교회속의 선들과 진리들을 먹잇감으로 만들 것이다.
이45:13-‘그는 내 성을 건축하고, 나의 포로된 자를 가게 할 것이다’=그는 진리의 교리를 회복 할 것이다, 그리고 무지로부터 거짓들에 있는 이들을 구원할 것이다; ‘성’=진리의 교리, 그리고 ‘포로된 자’=이방인들에 있는 무지로부터의 거짓들, 그리고 이로 인해 그들은 영적 포로 신세가 되어 있었다.
예30:18-‘그들의 포로 신세 됨’=영적 포로 신세 됨, 이는 그들이 자기들을 통치하는 거짓 때문에 교회의 선들과 진리들을 지각할 수 없을 때 존재한다.
애1:18-진리에 대한 모든 애착이 파괴되었다는 것이 ‘내 처녀들은 포로 신세 되어 가버렸다’에서 의미되고 있다.
암9:4-‘만일 그들이 적들 앞에서 포로 신세가 되었다면’=만일 그들이 악들로 자기들을 점유하게 내버려둔다면; ‘적들’=악들; 그리고 ‘포로 신세가 되는 것’=그것들에 의해 점유당하는 것.
시78:61-‘그분이 준 강함이 포로 신세 됨 쪽으로’=천적 선으로부터 있는 영적 진리; 그리고 ‘포로 신세 됨 쪽으로 주는 것’=그것을 이해함을 닫히게 하는 것, 그리고 고로 거짓들을 통하여 파멸하는 것.
합1:9-그들이 거짓들을 수단으로 모든 진리들을 파괴하리라는 것이 ‘그들은 포로 신세 된 자를 모래 같이 그러모을 것이다’에서 의미되어 있다.
예43:11,12-‘포로 신세가 될 자는 포로 신세가 되게 하고’=닫아 잠금에 의해 파멸과 진리의 파멸…‘그들을 포로로 잡아갈 것’=거기로부터 파생된 거짓들을 수단으로 그들을 파괴하는 것.
이20:4-‘이집트로부터 포로된 자를 끌고 가는 아시리아 왕=거짓들로부터 추론함은 자연적 인간에 있는 모든 진리들, 말씀의 글자 의미로부터 있는 진리들을 파괴할 것이다.
단11:8,33-‘그들의 신들, 그리고 그들의 제 1 인자들, 값나가는 집기들, 그리고 금과 은, 이것들이 이집트로 포로로 끌려갈 것이다’=방어하는 진리가 교회의 모든 진리들과 선들을 거짓들에 있는 이들로부터 거두어갈 것이다…그것들을 거두어감과 방어함이 ‘이집트로 포로로 끌려가는 것’에 의미되어 있다…‘포로되고 약탈 당함’=진리와 선의 모든 것들을 박탈함.
예22:22-‘네 사랑하는 자가 포로가 되어 갈 것이다’=모든 진리들로부터, 그리고 이 진리들을 이해함으로부터 닫아 걸음.
신32:42-‘죽임을 당한 자와 포로된 자의 피와 더불어’=모든 진리를 끄고 차단함… ‘포로된 자’=거짓들을 수단으로 진리를 차단함.
옵1:11-‘자기의 강함을 포로로 끌고 간 낯선 자’=교회의 진리들을 파괴하는 교회 속의 거짓들.
이48:46-‘네 아들들이 포로로, 네 딸들이 포로로 끌려갔다’=그들의 교회의 진리들과 선들이 거짓들과 악들에 의해 차단되었다…‘나는 날들의 맨끝에서 모압의 포로 신세 된 자를 도로 데려오겠다’=진리들은 ‘모압’에 의해 뜻해진 이들을 위해 열려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극서들 안에서 가르쳐질 것이다. 말씀에서 ‘포로들을 되돌려 데려온다’고 자주 말해진디. 그리고 ‘포로된 자’에 의해 이방인들이 뜻해진다. 이들이 ‘포로된 자’라 불리는 이유는 그들이 진리들로부터 차단되어 있었기 때문; 그러나 이것들은 주님에 의해 그들을 위해 열릴 것이다.
이61:1-‘포로들에게 그분은 자유를 전파하실 것이다’=진리들로부터, 선들로부터 차단된 이들에게 진리들이 열려지고 선들이 스며들 것이다.
시68:18-‘포로를 포로신세로 이끄시고’=그들을 포로로 붙잡은 거짓들로부터 해방하는 것.

포위 공격 (siege)

나3:14-‘포위 공격에 대비하여 물을 길으는 것’=진리들에 맞서 다양한 것들을 수단으로 거짓들을 견고케하는 것.

표창 (dart)
던지다 (dart)
쏘다 (shoot)

창21:16-‘활 사정거리(bow-shot)만큼 물러감’=진리의 교리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만큼에서의 상태.
창21:20-‘그는 활 쏘는 자(사냥꾼)가 되었다’=영적 교회의 사람; 이는 ‘표창’, ‘화살(shaft, arrow)’의 의미가 진리인바, 이로부터 분명하다.
시64:4-‘은밀히 곧바른 자를 쏜다; 갑자기 그들은 그를 쏜다.’
* 말씀의 많은 곳에서 표창, 화살, 활, 사냥꾼 등의 단어가 반대 의미를 가진다=거짓들, 거짓으로부터의 교리, 거짓 안에 있는 이들.
창49:23-‘그들은 쏜다’=그들은 (거짓들)로부터 전투한다는 것. ‘쏘는 것’=거짓들로부터 전투하는 것.
시11:2-‘쏘는 것’=현혹하는 것.

화살 (arrow)

* 표창(dart), 활(bow)도 보라
창21:20-표창, 창, 화살=진리…교리 속의 진리들, 오히려 교리적인 것들이 ‘창’, ‘표창’, 그리고 ‘화살’이라 불리운다.
이49:2-‘깨끗이 한 화살 (광을 낸 화살)’=교리 속의 진리
계6:2, 슥9:10,13-‘화살’, ‘표창’, 그리고 ‘창’=전투하는 교리 속의 진리들.
계6:1, 시11:2-반대 의미에서 ‘활’=진리들과 선들에 맞서 싸우고 파괴한 거짓인 것의 교리, 그리고 ‘창’ 그리고 ‘화살’은 그것의 거짓들 자체.
계6:1, 신32:23-‘그들에게 다 써버릴 화살’에 의해 그들은 모든 악들과 거짓들 가지고 불어넣어질 것이다가 의미되어 있다.
이5:28-‘여호와의 화살들은 날카롭다, 그리고 그분의 모든 활들은 구부려 있다’…‘활들’=영적 진리들.
겔39:9-‘화살을 가진 활’=교리와 그것의 진리들; 다른 삶에서의 경우, 선들로부터 분리될 때 진리 자체.
시91:5-‘낮에 날아다니는 화살’=공개적으로 가르쳐지는 거짓, 이를 수단으로 선이 파괴되어진다.
슥9:14-‘번개 같이 나아가는 화살’=꾸짖고 통찰하는 신성으로부터의 진리.
겔39:9-‘화살들’, 등등=교리에 속하는 모든 것들. ‘그것들을 가지고 칠 년 동안 불을 지피는 것’=악한 수단으로 그것들을 완전하게 소진하는 것.
시77:17-‘외국으로 간 화살’은 번개를 뜻한다. 이것들에 의해 신성한 진리들이 의미된다.
이49:2-‘순수한 살(pure shaft)’=악을 사라지게 하는 진리.
시11:2-‘그들은 화살을 시위에 준비되게 만든다’=그들은 진리들 같이 나타나는 교리 안으로 거짓들을 꼭맞춘다는 것.
시64:4,5-‘그들은 모진 말과 더불어 자기들의 화살을 당기는데, 이는 곧바른 자를 은밀히 쏘기 위함이다.’…‘화살’=교리의 거짓.
예50:9-‘그의 화살은 강한 자의 것 같이 헛되이 되돌아 오지 않는다’=그들은 거짓들 만으로 감화되어질 것이다.
시7:13-‘그는 죽음의 집기들을 준비한다. 그는 그의 화살을 타게 만든다’=그는 자신을 위해 지옥의 사랑으로부터 거짓의 원리들을 마든다, 이를 수단으로 그는 선과 그것의 진리들을 파괴한다.
겔39:9-‘화살을 가진 활’=그것의 거짓들을 지닌 교리.
합3:11-진짜 진리들과 선들이 그들에게 나타나지 않고, 그대신 그자체 거짓들과 악들인 가짜 진리들과 선들이 나타난다는 것이 ‘당신 화살의 날아감의 빛 때문에, 당신 창의 번득거림의 광휘 때문에’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화살’, 또는 번개=그자체 거짓들인 가짜 진리들.
시77:17-‘당신 화살이 날아갔다’=거기로부터 신성한 진리들이 파생되었다.
시45:5-‘화살들’=전투하는 진리들.
시127:4-‘용사의 손에 있는 화살 같은 젊은 이의 아들들’=고대 교회의 진리들, 이것은 영적 평면으로부터 있는 자연적 진리들이었다; 이 교회가 ‘젊은 이’에 의해 뜻해진다; 그리고 이 진리들이 거짓들과 악들에 맞서 모든 힘을 장악할 때, ‘용사의 손에 있는 화살’이라 말해진다. ‘화살들’=거짓들을 파괴하는 진리들.

화살통 (quiver)

시127:5-‘화살통’=선과 진리에 관한 교리.
* 사냥을 위한 무기들, 즉 화살통, 활, 화살=진리에 관한 교리적인 것들.
창27:3-‘네 화살통과 네 활을 가져가라’=(에서가) 가졌던 선에 관한 교리적인 것들.
이49:2-‘그분의 화살통에 그분은 나를 숨겼다’=말씀.
시127:5-이 진리들이 이와같은 힘을 가지는바, 말해지기를, ‘그것들을 가지고 화살통을 채운 자는 복있다.’ 여기서 ‘화살통’은 ‘화살’과 비슷한 의미, 즉 말씀으로부터의 교리를 지니고 있다.

활 (bow)

* 선행을 받을 수 있는 인간의 상태가 ‘구름에 있는 활’로 묘사되고 있다.
창9:13-‘나는 구름에 활을 놓을 것이다’=거듭나는 영적 인간의 상태, 이 상태는 무지개의 활 같다.
창9:14-‘활이 구름에서 보여질 것이다’=인간이 아직은 거듭나질 수 있는 상태일 경우. ‘구름에 있는 활’=거듭남의 표시…활을 수단으로 자신이 거듭남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고 주님이 기뻐하신다.
예46:9-‘활을 다루고 당기는 것’=추론하는 것.
창21:16-‘(하갈은) 활이 미치는 거리…=진리의 교리가 없는 상태와 수준….’활’은 영적 인간을 서술하고 있다.
예50:14,29, 51:2,3-‘활을 구부리고 쏘는 그들’=진리의 교리를 말하고 가르치는 이들.
* 활은 반대적 의미에서는 거짓의 교리
창21:20-(이스마엘)은 ‘활을 가지고 활쏘는 자’…=영적 교회인…’활’=교리. 영적 교회인은 이전에는 활쏘는 자라 불리웠는데, 그 이유는 그가 진리들을 수단으로 자신을 방어하기 때문.
호2:18-‘활을 꺽어버리고, 검들…’=사랑과 선행의 교리를 가르치는 것.
창49:24-‘그는 자기 활의 강함에 앉을 것이다’=그는 교리 속의 진리로 전투함으로 안전하다는 것…’활’=교리.
이5:28-‘모든 그들의 활이 당겨졌다’=거짓의 교리.
계6:2-‘그 위에 앉으신 분은 활을 가졌다’=그들은 말씀으로부터 진리와 선에 관한 교리를 가졌다는 것, 이를 수단으로 그들은 지옥으로부터의 악들과 거짓들, 고로 지옥에 맞서 싸웠다는 것…’활’=악들과 거짓들에 맞서 싸우는 말씀으로부터의 진리와 선들에 관한 교리.
시37:14-‘악인이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내치려 활을 당긴다.’ ‘활’=진리의 교리에 맞서 싸우는 거짓의 교리.
슥10:4-‘전쟁의 활’=교리로부터 싸우는 진리.
시18:34-‘놋활’=생활의 선으로부터의 교리.

성경의 시간과 상응

성경의
시간과 상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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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약자표

창 창세기 이 이사야 학 학개 마 마태복음
출 출애굽기 예 예레미야 슥 스가랴 막 마가복음
레 레위기 겔 에스겔 말 말라기 눅 누가복음
민 민수기 단 다니엘 요 요한복음
신 신명기 호 호세아 계 요한계시록
여 여호수아 욜 요엘
사 사사기 암 아모스
삼상 사무엘상 옵 오바댜
삼하 사무엘하 욘 요나
왕상 열왕기상 미 미가
왕하 열왕기하 나 나흠
욥 욥기 합 하박국
시 시편 습 스바냐

차례

가을 (autumn)-고대 (antiquity, ancient)-극점에 달하다 (consummate), 종말 (consummation)-끝 (end)
나이 (age), 햇수 (age), 시대, 시절 (age)-날 (day)-날마다 (daily)-낮 (day)-낮 동안 (by day)-…년 (year)-노년 (old age)-느린 (slow), 미루다 (delay)-늙다 (to grow old)
, 늙은 (old), 노년 (old age)
달 (month)-때 (time), 때가 참(fulness)
마지막 (last)-맨 마지막 (last), 최후 (last), 최말단 (ultimate), 궁극 (ultimate)
밤 (night)-밤을 보냄 (to pass night)

가을 (autumn)

* 주님의 교회는 하루 속의 때들, 일 년 속의 계절들, 금속들에 비교되어 말해진다. 그 중 계절의 경우, 이 교회의 첫 시기는 모든 것들이 꽃피우는 봄에, 그리고 이 교회의 마지막에 앞서 있는 시기는 모든 것들이 비활동적인 시기, 가을에 비교된다. (창15:2의 ‘해가 저물자…’ 도 참조)
* 선 안에서 살았던 이가 자기의 자아(proprium) 쪽으로, 뒤로 가는 것을 내버려둘 때, 이는 마치 침수되어진 듯 나타난다. 이런 상태가 영들의 세계에서 저녁, 또는 가을이다.
* (가을과 저녁에 관한 생각들이 천사들과 더불어서는 그들이 셋째 상태 안에 있능 때, 사랑과 지혜에 관한 생각들로 바뀌어진다.)
예48:32-제거되어져왔었던 선, 이것 때문에 애곡함이 있는바, 이것이 ‘가을의 열매들’에 의해 뜻해진다.
예48:32-‘가을의 열매들’에 의해 교회의 선들이 의미되어진다.

고대 (antiquity, ancient)

겔36:11-‘고대’ [옛 계급]=태고(최 고대) 교회(the Most Ancient Church).
이37:36-‘고대 시절’=노아의 홍수 이전.
말3:4-‘고대의 햇수들’=고대 교회.
창26:18-‘이삭은 되돌아와서 그들이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의 시절에 팟었던 우물들을 다시 팟다’=주님께서는 고대인들이 소유했던 진리들을 여실 것이다는 것.
창34:2-‘히위족 하몰의 아들’=고대 사람으로부터.
창34:4-‘세겜의 아버지 하몰’은 고대인들의 진리를 표현하고 있다.
창34:13-‘세겜’=고대인들 사이에 있는 진리, 또는 고대의 신성한 지주로부터의 진리.
이19:11-고대 교회의 진리들이 ‘고대의 왕들’에 의해 의미되어지고 있다.
왕상4:34-희미하게 이해함 같은 경우는 고대인들에게 결코 없었다. 그들의 지혜는 내면의 것들에 몰입되어 있었다. 고로 그들의 지적 능력과 자발적 능력은 함께 완전하였다…고대인의 관심사가 이러했다는 것은 오늘까지 존재하는 그들의 저술 흔적이나 솔로몬의 지혜를 듣는 것이 많은 이의 바램이었다는 구절로부터도 미루어 알 수 있다.
창47:30-‘내가 나의 조상들과 더불어 누울 것이다’=고대인들이 가졌던 삶.
창50:24-‘그분께서는 너희를 이 토지로부터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약속하신 그 토지로 올라가게 만드실 것이다’=그들은 고대인들 사이에 있었던 교회의 상태에 이르러야 할 것이다는 것.
단7:9-‘날들 가운데의 고대인’은 천적 선에 관련한 주님, 마찬가지로 태고 교회에 계셨던 주님이시다. 이 교회가 천적 교회이었고, 말씀에서는 ‘고대’라 불리워진다.
미5:2, 단7:9, 이9:6-‘날들 가운데의 고대인’이 영원으로부터의 주님이시다는 것은 미가서로부터 분명해진다.
이23:18-‘The merchandise of Tyre shall be for them that dwell before Jehovah, to eat to satiety and for a covering with what is ancient, 두로의 상품은 여호와 앞에서 거주하는 그들을 배불리 먹이기 위하여, 고대의 것으로 된 덮개를 위하여 있을 것이다.’ ‘고대’가 진짜인 것이라 말해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고대인들 사이에 진짜 진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계12:9-‘옛 뱀’이라 불리는 이유는 옛날에 있었기 때문이다.

극점에 달하다 (consummate)
종말 (consummation)

창15:16-‘아모리족의 불법이 아직은 극점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마지막 때, 즉 선이 더 이상 없는 때…
창18:21-‘나는 내게 도달한 함성 같이 극점에 도달함을 만들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나는 알 것이다’=악이 그것의 높이에 도착했는지 여부.
마24:3-‘시대의 종말’=교회의 마지막 때, 고로 그것의 끝장, 선행이 없기에 신앙도 없는 때. ‘시대’=시작부터 끝장 까지의 교회의 기간.
계10:7-‘하느님의 신비는 극점에 달할 것이다’=그때에 두 성경에서 미리 말해진 것이 나타날 것이다…‘극점에 도달해지는 것’=끝장을 가지기 위해 채워지는 것, 그다음 나타나는 것.
계15:1-‘그들 안에서 하느님의 분노가 극점에 도달되었기 때문에’=교회의 황폐함, 그리고 그다음 그것의 끝장.
계15:8-‘일곱 천사들의 일곱 재앙들이 극점에 도달할 때 까지’=황폐됨 후, 교회의 끝장이 있다.
계17:7-‘하느님의 말씀이 극점에 도달할 때까지’=그들에 관한 미리 말해진 모든 것들이 완성하기 까지. ‘극점에 도달하는 것’=가득 차는 것, 완성되는 것.
마28:20-‘시대의 종말 까지 나는 너와 함께 있겠다’=교회의 끝장 까지. 그때에 만일 그들이 주님께로 접근 않고, 그분의 명령에 따라 살지도 않는다면 그들은 주님에 의해 남겨지고, 주님에 의해 남겨지면 그들은 종교가 없는 이교도 같이 되어간다. 그때에 주님은 그분의 새 교회 속에 있을 이들과 더불어서만 계실 것이다. 이런 사항들이 ‘하느님의 말들이 완성될 때까지’, 그리고 ‘시대의 종말에서 조차’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계20:3-‘천 년이 다 채워질 때까지’=얼마 동안을 위하여.
이24:13-‘포도 수확이 완결될 때 남겨진 떨기 송이들’에 비교되어진다.
이28:22-이 나라와 더불은 교회는 깡그리 파괴되었다는 것이 ‘나는 온 땅 위에 있는 종말과 작정된 것을 군대들의 주 여호와로부터 들었다’에 의해 뜻해져 있다. ‘종말과 작정됨’=완전한 파멸.
단9:24-교회에 있는 모든 이가 교리에서는 거짓에, 생활은 악에 있을 때.
단12:7-‘극점에 달함’=가득하기 까지 채움.
계15:8-‘극점에 도달되어지는 것’=끝내지는 것, 여기서는 거절되는 것.
요19:30-이스라엘 교회와 유대 교회의 종말이 십자가 위에서 ‘다 완성되어졌다, It is consummated’라고 주님께서 외치셨을 때 완성되었다.

끝 (end)

* intend, purpose, church, consummate, evening, extreme도 참조.
창6:13-‘모든 육체의 끝이 내 앞에 왔다’=인류는 멸해질 수밖에 없다.
이54:12-‘경계(선)’=과학적이고 감각적인 것.
예25:33-‘땅의 끝으로부터 땅의 끝까지’=교회와 교회에 속하는 모든 것.
이41:5-교회의 마지막 경계(선)들이 ‘땅의 끝들’이라 불린다.
마24:13-‘끝까지 보존하는 자는 구원될 것이다’=선행 안에 있는 이들의 구원. ‘끝까지 보존하는 자’=꾀임 당하는 고통에 자신을 시달리게 하지 않은 자, 유혹을 아예 쳐다보지도, 안중에 없던 자, 고로 시험들을 산출하지 않은 자.
마24:14-교회가 이 상태에 있을 때, ‘그러면 끝이 올 것이다.’
출13:20-‘광야의 끝에서’=시험들의 첫 상태…이 상태가 광야의 끝에서 개시되었는바, ‘광야의 끝’에 의해 첫 상태가 의미된다.
신33:17-‘땅의 끝들’=교회가 있는 모든 방면에서.
계2:26-‘끝까지 간직하는 것’=죽음에 이르기 까지 (사랑과 신앙 안에서) 보존하는 것.
겔7:2-‘끝이 땅의 네 방위에서 오고 있다’=끝을 맞이한 교회의 마지막 때와 상태.
이54:12-‘끝’과 ‘기초’는 같은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자연적 인간이다, 그 이유는 거기에서 영적 인간의 선들과 진리들이 종결되기 때문이다.
단11:40-‘끝의 때’=교회의 마지막 때, 선이 없기에 진리도 없는 때.
겔7:6-‘끝이 온다, 끝이 온다.’ 여기서 ‘끝’은 교회의 끝을 의미한다.
예25:33-‘땅의 끝으로부터 그것의 끝까지’=교회의 최초되는 것으로부터 최말단까지, 고로 갖가지 종류의 거짓들.

나이 (age)
햇수 (age)
시대, 시절 (age)

* period도 참조
창21:2-‘그의 노령에’…나이=상태
마25:17-‘두 달란트를 받았던 자’=신앙을 선행에 인접되게 하는 단계, 즉 발전된 신앙의 수준까지 끌어올린 사람들.
* ‘햇수’는 10년이다(창4:24, A433항 참조 바람).
창9:12-‘대대(손손)’=영구한 것.
창15:9-교회의 마지막 때가 ‘세째 날’, ‘세째 주’, ‘세번째 달’, ‘제 삼년에’, 그리고 ‘세 살, third age’로 의미되고 있다.
말3:4-‘시절의 날들’=태고 교회.
창49:26-‘시대의 언덕들의 바램과 동등하게’=천적인 상호 사랑 쪽으로, ‘시대의 언덕들’=상호 사랑으로부터 인 것.
합3:6-‘영원의 산들’=태고 교회의 사랑으로부터의 선, ‘시대의 언덕들’=이 교회의 상호 사랑으로부터의 선. 전자는 이 교회의 내적인 것, 후자는 외적인 것.
출14:13-‘너는 영원히 더 이상 다시는 보지 않을 것이다’=한번 중단된 거짓들은 영원히 중단되어진다.
출27:21-‘영원히’=영원한 것.
출30:21-‘영원히, for ever’=영원인 것, what is eternal인 이유는 시대, age에 의해 마지막까지 포함되는 기간이 뜻해지기 때문이다. 원어의 경우에도 ‘시대’라는 표현을 수단으로 영원을 의미하기도 한다.

날 (day)

* 낮도 참조
* 말씀에서 때 자체를 말하기 위해 ‘날’을 사용하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 여섯 날들 또는 기간은 아주 많이 연속되는 인간 거듭남의 상태
* 가장 오래된 때를…예언서들에서는 ‘옛적’이라 부르고 있다. 또한 ‘영원의 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슥14:7-‘여호와께 알려진 어떤 날이 있을 것이다; 낮도, 밤도 아니다; 저녁 때에 빛이 있을 것이다’= 거듭나아져 가는 인간에 관련된 것.
막13:19-‘고뇌의 날들’=저 세상 삶에 있는 그의 비참한 상태.
창1:14-광명체들이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위해 있을 것’이라고 말해지고 있다. 보편적으로, 개별적으로도 영적인 것과 천적인 것에는 바뀜이 있다. 이 변화들이 ‘날들과 해들’의 바뀜이다; 날들의 바뀜은 아침으로부터 정오, 그리하여 저녁까지, 그리고 밤으로부터 아침 까지이다.
창3:17-‘네 생명의 모든 날들 (=네 평생)’=교회의 마지막까지 조차.
창4:3-‘날들의 끝 (=세월)’=때가 (발전하여) 나아감.
말3:4-‘영원의 날들’=태고 교회; ‘고대의 해(year)들’=고대 교회.
창5:4-‘날들’=일반적인 시간들과 상태들. 말씀에서 모든 때(time)를 날들로 부르는 경우는 아주 흔하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때의 상태는 ‘낮’에 의해 의미된다; 그리고 ‘해’가 추가될 경우, 해들의 때는 상태의 품질, 고로 특수한 측면에서의 품질을 의미한다.
창8:6-‘40일의 끝에 오게 되었다’=이전 상태의 기간, 그리고 뒤이어지는 상태의 시작…시험 이후 상태가 여기서 취급되고 있는바, 사십 밤들이 아닌 사십 낮들이라 말해지고 있다. 그 이유가 지금 선행(charity)이 나타나기 시작하기 때문, 이를 두고 말씀에서 낮에 비교되고, ‘낮’이라 불리워진다; 앞서 있는 믿음, 아직은 선행과 밀접하게 결합되지 않고 있는 바 밤에 비교되고 ‘밤’이라 불리운다.
창8:22-‘아직 땅의 모든 날들에’=모든 때; 그이유가 ‘날’=때…이기 때문.
신32:7-태고 교회와 고대 교회가 ‘영원의 날들’, 그리고 ‘세대와 세대의 해들’이다.
습1:14-‘여호와의 날’=교회의 마지막 때와 상태.
창17:23-‘똑같은 날에’=그때 당시. ‘날’=때와 상태.
창18:11-‘날들 안으로 들어가는 것’=때가 임박한 것. 말씀에서 ‘날’은 ‘해’와 일반적인 것은 비슷하다. 즉 때=상태; 그러므로 여기서 ‘날들로 들어감’=그분이 인간을 벗는 상태 안으로 들어감; 고로 때가 임박한 것.
호6:2-‘삼일 째 날’=심판, 또는 주님의 강림.
창21:8-‘그가 이삭에게서 젖을 떼이던 그 날에’=완성인 것, 그리고 성결함의 시작. ‘날’=말씀에서 상태.
이23:15-‘칠십 년들’=전체 시기, 교회 존재의 시작으로부터 교회가 종료할 때 까지, 이는 또한 한 왕의 ‘날들’이다.
시77:5-‘옛 날들’ 그리고 ‘시대들의 햇수들’=(태고와 고대) 교회들.
창24:1-‘늙은 아브라함은 날들에 왔다’=주님의 인성이 신성이 되는 상태가 임박했다…‘날’=상태.
창24:55-‘하루 또는 열 이후에 당신은 갈 것이다’=그들에게 나타나는 떠남의 상태는 충만해 있다. ‘날’=상태
창25:7-‘이것들은 아브라함이 살았던 그의 생애의 햇수의 날들이다’=신성의 본질 측면에 관련하여 표현한 주님의 상태. ‘날들과 햇수들’=상태들.
창25:24-‘그녀의 날들은 출산하도록 가득 찼다’=결과의 첫 상태. ‘날들’=상태들.
출22:30-제 어미와 칠일 동안 있어야 하는 이유는 ‘칠일 째 날’이 천적 인간을 의미하기 때문; 여덟째 날에 그것이 여호와께 드려졌던 이유는 ‘팔일 째 날=새로운 시작으로부터 계속인 것, 즉 사랑의 연속인 것을 의미하기 때문.
창26:8-‘..이었던 이유는 거기서 날들이 그에게 길어졌기 때문이다’=수용함의 상태, ‘날들’=상태들.
창26:18-‘아브라함 그의 아버지 시절’=진리 측면에 관하여 앞서는 때와 상태…‘날들’=때와 상태.
창26:32-‘그 날이 되었다’=(교리에 관한) 상태.
창26:33-‘이 날 까지 조차’=상태의 영존.
창27:2-‘나는 내 죽음의 날을 모른다’=자연계에서의 삶. ‘날’=상태…고로 ‘죽음의 날’은 생명으로 소생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창27:41-‘슬픔의 날들’=역으로 된 상태.
창27:44-‘그와 며칠을 머무르라’=연속인 것…‘날들’=때들과 상태들.
출20:12-‘토지 위에서 날들’=그때부터 주님의 왕국에 있는 선의 상태들.
마24:19-‘이들의 날들’=그 당시 교회가 있어질 상태들.
마24:22-‘날들이 짧아져 갈 것’=제거되는 상태
창29:7-‘보라 아직은 낮이 한창이다’=지금 상태는 발전하고 있다는 것.
창29:14-‘그는 날들의 한 달을 그와 더불어 거주했다’=삶의 새로운 상태…‘날들의 한 달’=새로운 상태…해, 달, 날이 단수로 언급될 경우, 그것=전체 상태, 고로 이전 상태의 끝과 이후 상태의 시작.
창29:20-‘그것들(칠 년)은 그가 그녀를 사랑하는 며칠로서 그의 눈 안에 있었다’=사랑의 상태…‘날들’= 상태들.
창29:21-‘내 날 수가 찼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갈 것이다’=지금은 새로운 상태이다. ‘날들’=상태들.
창30:14-‘르우벤은 수확하는 날들에 갔다’=사랑과 선행의 상태에 관련되는 믿음. ‘날들’=상태들.
창30:16-‘그는 자신과 야곱 사이에 삼일의 길을 놓았다’=그들의 상태는 아주 분리되었다…‘날들’=상태들.
마24:29-‘이러한 날들의 고뇌 후에 즉각적으로’=믿음 속에 있는 교회의 진리에 관련된 상태..‘날들’=상태들.
창31:22-‘삼일 째 날에 라반에게 말해졌다’=결합의 끝장. ‘삼일 째 날’=마지막인 것, 그리고 또한 완성되는 것, 고로 마지막, 그러나 시작이기도 한데 그 이유가 결합의 상태가 끝남은 새로운 상태의 시작이기 때문, 이는 분리됨의 하나이고, 이 상태가 여기서 ‘삼일 째 날’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마24:36-‘그 날과 시간에 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그 때에 있는 교회의 상태는 땅이든 천국이든 아무에게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이 구절의 ‘날과 시간’은 날과 시간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선과 진리에 관한 상태를 뜻한다.
창33:16-‘에서는 시날 쪽 그의 길로 해서 그 날 되돌아 갔다’=그때 당시 신성한 자연적 선의 상태, 이 상태에서 선과 진리가 결합되어졌다. ‘날’=상태.
창34:25-‘삼일 째가 되었다’=마지막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 것. ‘삼일 째 날’=시작부터 끝까지 완성인 것, 고로 계속인 것 역시 의미한다.
창35:3-‘내 환난의 날에 나에게 답하셨던…’=선 보다 진리를 우선시했던 상태에서. ‘날’=상태.
창35:28-‘그리고 이삭의 날들…이였다’=신성한 합리성의 지금의 상태. ‘날들’=상태들.
창35:29-‘늙고 날들이 찼다’=삶의 새로운 것…‘날들이 찼음’=충만한 상태.
창37:34-‘그는 그의 아들 때문에 많은 날들을 슬퍼했다’=파괴된 선과 진리 때문에 슬퍼하는 상태…‘날들’=상태들; 여기서 큰 슬픔의 상태…그 이유는 ‘많은 날’이라고 말해졌기 때문.
창38:12-‘날들이 곱해졌다’=상태의 변화… 그 이유가 ‘날’, ‘때’는 내적 의미에서 상태이기 때문.
암9:11-‘영원의 날들에 따라 짓는 것’=고대 시대에 교회의 상태에 따라서; 이 상태, 이 때는 말씀에서 ‘영원의 날들’, 그리고 ‘시대의 날들’, 그리고 ‘세대와 세대의 날들’이라 부르고 있다.
창39:10-‘그녀는 요셉에게 날마다 말했다’=…인 것에 관한 생각…‘날마다’ 또는 매일 마다=집요하게.
창40:4-‘그들은 감옥에 날들 동안 있었다’=그들은 거절된 상태에서 오랫동안 있었다는 것. ‘날들’=상태들; 여기서 ‘날들 동안’=오랜 시간 동안의 상태.
창40:12-‘세 어린 가지는 삼 일이다’=마지막에 까지 조차 계속되는 갈래들…‘날들’=상태들.
창40:13-‘삼일 내에’=그 당시 새로운 것…‘날들’= 상태들…이로부터 분명한 바, ‘삼일’=완성된 상태; 그런 결과 ‘삼일 내에’ 또는 ‘삼일 후에’=새로운 상태; 그 이유가 상태가 마무리된 이후 새 것이 개시되기 때문이다.
창40:18-‘삼일이다’=마지막 까지 조차.
창40:19-‘삼일 내에’=마지막 안에 있는 것.
창40:20-‘삼일째 되는 날이 왔다’=마지막 안에. ‘삼일 째 날’=마지막 상태; 그 이유가 ‘날’=상태.
창42:18-‘요셉은 삼일 째 날에 그들에게 말했다’=완성됨이 마무리지어 졌을 때, 그 자체로부터 분리된 일련의 진리들에 관하여 영적 인간 속의 천적인 것이 지각함….‘삼일 째 날’=새로운 것이 올 때의 마지막 상태.
창43:9-‘나는 모든 날들에서 당신에게 죄있을 것이다’=교회는 더 이상 어떤 선도 소유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날들에서’=영구히, 그러므로 더 이상.
요9:4-‘낮’=선으로부터의 진리; ‘밤’=악으로부터의 거짓. 교회의 처음 때가 ‘낮’에 의해 의미된다. 이때는 그들이 선 안에 있어서 진리가 받아들여졌다. ‘밤’에 의해 의미된 교회의 마지막 때가 있다. 이때 그들은 선 안에 있지 않아서 진리의 어떤 것도 받아지지 않는다.
창47:8-‘네 생애의 햇수의 날들은 얼마인가?’=영적인 것으로부터 있는 자연적 삶의 상태에 관하여. ‘날들’, 그리고 ‘햇수들’=상태들.
창47:9-‘내 머무름들의 햇수들의 날들’=삶의 연속적인 것들에 관하여. ‘날들’ 그리고 ‘햇수들’=상태들.
창47:26-‘오늘에 조차도’=영원 까지.
창47:28-‘야곱의 날들, 그의 삶의 햇수들, 칠년 그리고 일백 사십 년이었다.’=일반적 상태와 그것의 품질.
창47:29-‘이스라엘의 날은 죽어감 쪽으로 더 가까이 당겨졌다’= 거듭나기 앞서 즉각적으로 있는 상태…‘날들’=상태들.
창48:15-‘그때로부터 이 날 까지’=계속적으로. ‘오늘’ 또는 ‘이 날’=영속적이고 영원인 것.
창48:20-‘그는 이 날에 그들에게 복을 빌어주었다’= 영원히 있을 것에 대한 예견과 섭리.
창49:1-‘나는 날들의 끝에서 발생할 것을 너에게 말할 것이다’=그 당시 그들이 있었던 그 질서 안에 있는 교회의 상태의 품질…‘날들의 끝’=상태의 마지막, 이 안에 그것들은 함께 있다; 그 이유가 ‘날들’=상태들이기 때문.
창50:1,3-‘사십 일이 그에게 채워졌다’=시험들을 통하여 준비되는 상태…‘날들’=상태들.
창50:20-‘이 날에 따라 행하기 위하여’=그것은 영원으로부터의 질서에 따라 있다는 것…‘이 날에 따라서’=영원으로부터.
출2:11-‘그것들의 날들 안에서 (세월이)지났고 모세는 성장했다’=이런 상태들이 지속되었을 때, 그리고 과학적 진리들이 불어남. ‘날들’=상태들.
예12:3-‘죽일 날’=선행이 없기에 더 이상 어떤 신앙도 없어 교회가 황폐되는 때.
출2:23-‘그것들의 날들 안에서 지나왔다’=상태의 많은 변화 후에. ‘날들’=상태들.
출5:6-‘바로는 그 날 명령했다’‘=저 상태 동안 교회 속의 진리들에 침입하려는 탐욕.
출5:13-‘하루(에 마치기로) 약속된 너희 일들을 그 날에 마무리하라’=그들은 모든 상태에서 거짓들을 섬겨야 한다는 것…‘하루 안에서 하루의 할당량’=모든 상태에서.
출6:28-‘여호와께서 이집트의 땅에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던 그 날이 왔다’=아직 지옥에 있는 이들의 근처에 있는 한편, 주님의 영적 왕국 속에 있던 이들에게 명령이 신성으로부터의 법에 의해 주어졌던 때의 교회의 상태. ‘날’=상태.
출10:22-‘삼일 동안’=충만된 상태.
출12:15-‘첫 날에서 조차 너희는 너희 집으로부터 누룩이 중지되게 만들 것이다’=선 안에는 어떤 거짓이든 없어야 한다. ‘첫 날’=그 상태의 시작.
출12:15-‘첫 날로부터 칠일 째 날 까지 조차’=거룩한 충만된 상태. ‘칠일’=거룩한 상태, 충만된 상태.
출12:16-‘일곱째 날에 너희를 위해 거룩한 집회가 있을 것이다’=고로 상태의 마지막에서. ‘일곱째 날’, 이 날은 축제의 마지막 것이었다=그로부터 마지막.
출12:19-‘칠일 동안’=이 상태의 전체 기간. ‘일곱 날’=거룩한 상태, 그리고 또한 시작부터 끝까지의 전체 기간, 또는 충분한 상태; ‘한 주간’의 의미도 같다.
출12:51-‘이 똑같은 날에 실현되었다’=주님께서 현존하시는 상태. ‘날’=때와 상태.
출13:6-‘칠일 째 날 여호와께 축제를 드려라’=주님께 대한 거룩한 예배. ‘칠일 째 날’=거룩한 상태.
출16:1-‘둘째 달 제 15일 째에’=상대적 측면에서의 상태… ‘달’=이전 상태의 끝과 뒤잇는 것, 즉 새로운 상태의 시작; ‘날’=일반적 측면에서의 상태.
출16:4-‘그들은 하루(a day)의 필요량(word)을 당일(its own day)에 수집할 것이다’=필요성은 요지부동하게.
출16:5-‘여섯째 날에 있을 것이다’=각 상태의 끝에서. ‘날’=상태.
출16:26-‘육일 동안 너희는 그것을 수집할 것이다’= 진리가 선과 결합하기 앞서 진리를 받음. ‘6일’=전투와 노동의 상태; 여기서 진리를 받는 상태, 또는 선이 진리를 통하여 획득되어지는 상태, 이런 이유가 이 상태에서 전투와 수고함이 있기 때문…
출19:1-‘이 날에’=그 때에…‘날’=상태; 그러므로, ‘이 날에’=상태가 충만해지는 그 때에.
출20:12-‘네 날들이 토지 위에서 길어질 것이다’=그 결과로서 있는 천국에서의 생명의 상태…‘네 날들’= 생명의 상태.
이13:9-‘여호와의 잔인한 날’=교회의 마지막 때. 어떤 신앙과 선행도 더 이상 있지 않는 때.
욜2:1-‘여호와의 날‘=마지막 상태, 또는 교회의 마지막 때, 즉 더 이상 어떤 진리도 있지 않고, 진리 대신에 거짓이 있을 때.
출21:21-‘만일 그가 하루 또는 이틀 계속할 것이다면’=충만함에서 조차 남아 있는 생명의 상태. ‘날’=생명의 상태; ‘이틀’=계승되고 있는 상태, 고로 충만한 상태.
눅4:25-‘엘리야(Elias)의 날들에’=그때에 말씀으로부터 있는 신성으로부터의 진리를 받는 상태…‘날들’=상태들.
출22:30-‘칠일 동안 그것은 제 어미와 있을 것이다’=진리들과 더불은 첫 상태. ‘칠일’=거듭나아지는 이들의 첫 상태; 그 이유가 ‘날들’=상태들이기 때문.
* ‘팔일 째에 너는 그것을 나에게 줄 것이다’=뒤잇는 상태의 시작, 즉 생활이 선으로부터 있을 때…‘팔일 째 날’=뒤를 잇는 상태의 시작.
출23:26-‘네 날들의 숫자를 나는 채울 것이다’= 충만된 상태에 까지. ‘날들’=생명의 상태들.
출24:16-‘육일’=진리의 상태에 있는 동안.
출29:36-‘매일’ 또는 ‘날마다’=계속적으로.
출29:37-‘칠일 동안 너는 제단 위에 화해시킬 것이다’=천국과 교회 안으로의 유입에 관련하여 충만하다는 것. ‘칠일’=충만하다는 것.
출29:38-‘매일’=모두 각각의 상태에서; 그 이유가 ‘날’은 상태를 의미하고, 날의 아침과 저녁에 어린 양의 번제가 있는바 모두 각각의 상태가 의미되어진다.
시90:12-‘우리의 날들을 세는 것’=삶의 상태들을 정리 정돈 하는 것. 그들이 정리 정돈 될 때, 즉 그들이 마감되어졌을 때 날들이 세어진다 라고 말해지는 바, 마치 이사야서 38:10의 구절 같다.
욜1:15-여기서는 주님의 강림이 취급되고 있다. 그 이유가 그것이 ‘여호와의 날’에 의해 의미되기 때문이다.
이24:21, 욜2;1, 3:14-‘여호와의 날’은 주님의 강림을 뜻하고 있다. 이 강림은 교회에 선과 진리의 어떤 잔여도 없는 곳, 그리고 주님에 관한 어떤 지식도 남지 않은 곳에서 거행되었다.
마24:22-‘이것들의 날들이 짧아지지 않으면, 구원될 어뗜 육체도 없다, 그러나 뽑힌 자 때문에 이것들의 날들은 짧아질 것이다’=교회가 그것의 때 앞서 마무리되지 않으면 그것은 깡그리 멸해질 것이다.
계2:10-‘너희들은 열흘 동안 고뇌를 가질 것이다’= 이것은 충만된 시기를 지속하는 것, 즉 그들이 거짓들 안에 남기를 계속 원하는 것…‘열흘’=충만까지의 이 상태의 기간. 그 이유가 ‘날들’=상태들이기 때문이다.
계9:15-‘한 시간, 하루, 한 달, 그리고 한 해’=계속적으로 그리고 영구적으로. 모든 시기가 똑같음.
계18:8-‘하루에’=마지막 심판의 때에, 이 심판은 ‘심판의 날’이라고도 불리우고 있다.
이19:23,24-‘날’이 두 번 언급되었는바, 이는 주님의 처음과 둘째 강림을 뜻한다.
창1장-‘저녁과 아침이 하루’에 의해 뜻해진 것…‘날’= 일반적인 때이다는 것은 성경으로부터 아주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그 이유가 이 단어가 때(time)를 뜻하기 때문이다.
눅17:22-‘그 날이 온다, 그때 너희는 사람의 아들의 날들의 하나를 보기를 갈망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그것을 보지 못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의 날들의 하나를 갈망함’=어떤 점에서 일 경우 진짜인 신성으로부터의 진리를 갈망하는 것.
계2:13-‘내 순교자이었던 안디바가 너희 사이에서 죽임을 당했던 날에’=주님의 신성한 인간을 고백하는 모두가 미움을 받은 그 때와 그 상태. ‘날’=때와 상태.
시139:16-‘당신의 책에 내 모든 날들이 씌여졌습니다, 그 안에서 내 모든 날들은 형성되어졌읍니다; 그리고 그것들 중의 하나도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생애의 모든 상태들…
시110;5-‘분노의 날’=전투의 상태.
이13:9-‘여호와의 날’=심판이 도래하는 때, 곧 교회의 마지막 끝.
시44:22-‘우리는 날마다 죽여졌다’=우리 자신 속의 것으로 해서 우리는 거짓 안으로 빠져들고 있고, 그것들로 해서 엉뚱한 쪽으로 인도된다.
이30:25-‘큰 살육의 날’=사악한 자가 정죄되고 멸해지는 마지막 심판.
이63:4-폭동을 일으킨 자들을 지옥으로 내던짐이 ‘원수 갚는 날이 내 심정 안에 있다’에서 의미되고 있다.
시137:18-‘완전한 자의 날들’=선 안에 있고, 이 선으로부터 진리 안에도 있는 이들, 또는 선행 안에 있는 이들, 이 선행으로부터 신앙 안에 있는 이들의 상태들.
이19:18-‘그 날에’=주님의 강림, 그리고 그때 주님으로부터의 과학적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의 상태들.
이13:9-‘분개함과 성냄의 분노의 잔인한 여호와의 날’=마지막 심판의 날.
이2:12-‘만군의 여호와의 날’=마지막 심판…
계6:17-‘그분의 진노의 큰 날이 오기 때문이다’=악한 자 위에 마지막 심판이…악한 자 위에 있는 마지막 심판이 ‘분개의 날’, ‘분노의 날’, ‘성남의 날’. 그리고 ‘원수 갚는 날’ 등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그러나 선한 자 위에 있는 심판은 ‘주님의 오심의 때’ 등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이34:8, 61:2-‘여호와의 원수 갚는 날’, 마찬가지로’ 그분의 성내심의 날’, 그리고 ‘그분의 분노의 날’은 마지막 심판을 의미한다.
슥14:8-‘그 날에’=그분의 강림.
요11:9-‘날’=선으로부터의 진리들 안에서 계발됨; 그리고 ‘낮의 열두 시간들’=선으로부터의 진리 속의 모든 것들.
예31:27-‘날들이 오고 있다’=주님의 강림.
신33:25-‘말씀이 영원 까지 영속될 것이다는 것이 ‘네 날들 같이 네 명성도 있을 것이다’에서 의미되고 있다.
이27:13-‘그날에 큰 나팔이 소리낼 것이다’…이러한 것들이 주님의 강림에 관하여 말해지는 것이다.
호6:2-‘세째 날에’=충분한 재구성과 회복.
말4:1-‘보라, 가마 같이 태우는 날이 온다’; 이러한 것들은 교회의 마지막 때, 즉 그때의 마지막 심판의 때에 관해 말해지는 것들이다.
계9:6-‘이런 날들’=그 당시
이17:7-‘그 날에 사람은 자기를 지은 자를 뒤돌아 쳐다 볼 것이다’…이런 사항들은 주님의 강림 그리고 그럴 당시 새로운 교회에 관해 말해졌다.
욜2:2, 습1:15-이로부터 악의 거짓들 안에 있는 자들이 멸해지는 때인 마지막 심판이 ‘구름과 어슴프레한 날’이라 불리운다.
계10:7-‘일곱 번 째 천사의 목소리의 날’=교회의 마지막 상태.
계11:3-‘일천 이백 육십 일 동안’=옛 교회의 끝 그리고 새 교회의 시작에서 조차.
계11:6-교회의 끝에서 이 계시 그리고 계시로부터 전도함이 ‘두 증인의 예언의 날’에서 뜻해지고 있다.
이27:12-‘그 날에’=주님의 강림.
겔30:3-‘구름의 날’=이해되지 않은 진리들의 결과, 즉 거짓들 위에 있는 교회의 상태.
계119-‘삼일 그리고 절반’=완전인 것, 여기서는 완전한 소멸.
계11:11-‘삼일 반 후에’=그것이 완성되었을 때; 고로 옛 교회의 끝 그리고 새 교회의 시작…’삼일 반’이라고 말해진 이유는 말씀에서 ‘날’=상태들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교회의 마지막 상태.
시89:29-‘하늘들의 날들’=그분의 신성으로부터 있는 온 천국의 상태들.
예17:11-‘생명 속에 있도록 만들어지지 않은 이런 지식들은 멸해진다는 것이 ‘그의 날들의 한가운데에서 그는 그것들을 저버린다’에서 의미되고 있다.
예30:7-‘큰 날’=주님의 강림, 그리고 그 당시 그분에 의한 심판.
호2:15-‘청년기의 날들’=고대 교회의 시대들.
암5:18-‘여호와의 날’=주님의 강림, 그들이 내내 기다렸던 메시아이신 분…그러나 주님은 지상의 어떤 왕국을 위하여 오시지 않았다, 그리고 유대 국가는 악의 거짓들 안에 있었다, 이런 것이 그 당시 명백했다, 그래서 말해진바, ‘여호와의 날을 갈망하는 이들에게 슬픔이 있다; 네게 여호와의 날이 무엇이냐? 그것은 어둠의 하나요 빛의 하나는 아니다’
예48:47-‘날들의 맨 끝’=주님의 강림.
호2:18-‘그 날에’= 주님의 강림

날마다 (daily)

* 천사들의 경우 그들이 더 내면적으로 더욱 완전해져 갈수록 더욱 덜 그들은 과거의 것, 미래의 것으로 근심하고 곰곰이 생각하지 않는다…그런고로 그들은 근심 걱정들로부터 자유하다. 이것이 하늘로부터 날마다 받은 만나로, 그리고 주님의 기도에서 날마다 필요한 분량의 빵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 ‘날마다’ 그리고 ‘오늘’=영구적인 것이다는 것은 모두 각각의 날에 실시되고 있는 제물로부터 명백하다. ‘날’, ‘날마다’, 그리고 ‘오늘’이 지닌 의미 때문에 그것들은 ‘계속적’ 또는 영구적 제물이라고 불리웠다.
* 주님의 기도에서 ‘날마다’는 매 순간들을 뜻한다. 그러므로 ‘날마다’= 연속적인 것들 안의 매 순간들이라는 공식도 도출 될런지 모른다. (천사들의) 동시에 있는 것들에서 이것은 하느님 메시아의 영광으로 바뀌는바 순간들은 어떤 깨짐이나 구분됨 없이 계속적이다. 이로부터 천사들의 지각이나 행복이 있다.

낮 (day)

* 주님에 속한 모든 것들은 ‘낮’에 비교된다, 그 이유는 이것들은 빛에 속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어울리는 모든 것들은 ‘밤’에 비교된다. 그 이유는 그것들은 ‘어둠’이기 때문이다.
창1:16-사랑은 ‘낮 동안’을 다스리는 큰 광명체이다; 사랑으로부터의 신앙은 ‘밤 동안’을 다스리는 작은 광명체이다.
창1:18-‘낮을 다스리고, 밤을 다스리고…’; ‘낮’은 선을 뜻한다; ‘밤’은 악을 뜻한다; 그러므로 선들은 낮의 일, 악들은 밤의 일이라 불리운다.
창3:8-‘낮의 숨(breath, 미묘한 분위기 aura, 공기, air)’=조금이긴 하지만 교회 안에 지각이 남아 있을 때…태고 때의 사람들은 교회의 상태들을 낮과 밤에 비교했었다; 빛 가운데 있는 동안을 낮 시간이라 불렀다…요한복음 9:4에서 주님께서는 신앙 있음의 상태를 ‘낮’이라, 신앙 없음의 상태를 밤이라 부르신다. ‘나는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낮 동안 해야만 한다; 밤이 올 때 아무도 일할 수 없다.’ 인간 거듭남의 상태들이 창세기 1장에서 ‘날들’로 불리우고 있다.
* ‘온 그 낮, 그리고 온 그 밤’=희미하던, 희미하지 않던, 해치는 이들에게 있는 지각의 모든 것이 파괴되어졌다. ‘낮’= 희미하지 않은 지각의 상태; ‘밤’= 희미한 지각의 상태; 그 이유가 낮 시간대는…총명과 지혜 속에 있는 계발과 상응하기 때문. 고로 지각과도 상응한다.
요9:4-‘나는 나를 보낸 분의 일을 낮 동안 해야만 한다’…‘낮’=선과 진리가 있는 때와 상태; ‘밤’=악과 거짓이 있는 때와 상태.
창31:40-‘낮에는 뜨거움이, 밤에는 추위가 나를 집어 삼켰다’=시험들…‘낮’=그때 당시 그들 수준에서 있는 믿음 또는 진리의 상태; 그리고 ‘밤’=믿음 또는 진리가 없는 상태.
계8:12-‘낮 삼분의 일이 비추지 않았고 밤도 마찬가지였다’=교리와 생활을 섬길 수 있는 말씀으로부터의 어떤 영적 진리, 또는 자연적 진리도 그들에게 더 이상 없게 되었다. ‘낮이 비추지 않음’은 해로부터 비침이 없다는 말이고, ‘밤도 그러하다’란 달이나 별의 비침이 없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빛은 신성한 진리를 의미해준다…말씀의 영적 의미에 있는 신성한 진리는 낮에 비추는 태양의 빛 같다; 그리고 말씀의 자연적 의미에 있는 신성한 진리는 밤을 비추는 달과 별의 빛 같다….이런 것들이 이어지는 문단에서 ‘낮’과 ‘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계14:11-‘그들은 낮과 밤 쉼이 없을 것이다’=사후 불유쾌한 것들 안에 영구히 있을 그들의 상태…‘낮과 밤’은 모든 시기를 의미한다, 그리고 영적 의미에서 모든 상태, 고로 영구적으로; 그 이유가 이 의미에서 ‘낮과 밤’=삶의 상태들이기 때문.
계20:10-‘낮과 밤 괴롭혀지는 것’=꾸준히 내면적으로 해치는 것.
계4:8-‘그들은 낮과 밤 쉬지 않고, 말하기를 거룩, 거룩, 거룩’=주님으로부터 진행되는 최고의 거룩.
미3:6-그들은 선도 진리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 ‘해가 예언자들 위에서 저물 것이다, 그리고 낮이 그들 넘어에서 캄캄해질 것이다’; ‘태양’=사랑의 선; 그리고 ‘날’=믿음 속의 진리…
시136:8-태양이 낮을 통치하게 만들어진 이유는 ‘낮’=영적 인간의 빛이기 때문, 그 이유가 이 빛은 사랑의 선으로부터 계발과 지각을 지니기 때문이다.
예33:20-‘낮의 언약’=사랑을 통한 결합; ‘밤의 언약’= 신앙을 통한 결합.
계14:11-‘그들은 낮과 밤 쉬지 않을 것이다’=악들과 악들로부터의 거짓들에 의한 해침이 계속된다…’낮과 밤’=계속적으로…’낮’은 그들의 거짓의 상태를 의미 한다; 그리고 밤은 그들의 악의 상태를 의미 한다; 그 이유가 인간은 그의 생각들에 관련하여서는 빛 안에, 고로 낮 안에 있다, 그리고 그의 애착에 관련해서는 희미함 안에, 고로 밤에 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해서 낮에는 구름이, 밤에는 불이 성막 위에 있었다…
마12:40-‘세 낮과 세 밤’=가득함.
예15:9-‘아직 낮인 동안’=말씀이 아직 인정되는 동안.
계12:10-‘낮과 밤으로 하느님 앞에서 그들을 참소하던 것’=말씀으로부터의 그것들을 가지고 말다툼질하고 쨍쨍거림을 계속하는 것…’낮들과 밤들’=계속적으로 그리고 중간의 쉼도 없는 것; ‘낮들과 밤들’=삶의 모든 상태들; ‘낮’은 마음이 명료한 생각에 있을 때의 삶의 상태; 그리고 ‘밤’은 마음 속의 생각이 흐릿할 때의 삶의 모든 상태들.

낮 동안 (by day)

출3:21-‘낮 동안은 구름 기둥 안에’=계발의 상태에 있을 때, 진리의 희미한 것에 의해 고무되었다. ‘낮 동안’, 또는 ‘낮 안에’=계발의 상태…‘낮’=명료한 지각의 상태, 또는 계발의 상태.
시91:5-‘낮 동안 날아 다니는 화살’=노골적으로 가르쳐진 거짓.
계21:25-‘그것의 문들은 낮 동안 닫히지 않을 것이다’=주님으로부터 사랑의 선으로부터의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은 새 예루살렘 안으로 꾸준히 받아들여질 것이다. ‘낮 동안’=계속적으로, 그이유는 거기에는 빛이 언제나 있기 때문.
이4:5- 너무나 많은 빛으로 상함을 당함에서 보호함이 ‘낮 동안 구름’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년 (year)
* 연(year)을 보라.

노년 (old age)

* 늙은 (old)을 보라.

느린 (slow)
미루다 (delay)

창33:14-‘나는 천천히 나아갈 것이다’=준비함을 계속하는 상태.
* ‘조금씩 조금씩’=등차적으로, 고로 느리게.
창34:18-‘그는 말을 행동하기를 지체하지 않았다’=수용하기를 갈망함.
창43:10-‘우리가 지체하지 아니했다면’=의심의 상태에서 지체함.
출22:29-‘첫 열매들…너는 지체하지마라’=선들과 진리들은 자아가 아닌 주님에 속한 것이다는 것. ‘지체 않는 것’=애착으로부터 기인하는 것.
출32:1-‘모세는 내려오는 것이 지체되었다’=천국으로부터 신성한 진리의 흐름이 없는 것.

늙다 (to grow old)
늙은 (old)
노년 (old age)

창15:15-‘너는 충분한 노년기(장수하다가)에 묻힐 것이다’=주님의 것들을 수단으로 모든 선들이 결실을 맺음.
창18:11-‘아브라함과 사라는 늙었다’=주님과 더불은 인간, 이는 중단되어야 할 것이다.
창18:12-‘늙는 것’=인간을 벗는 것. 고로 상태가 바뀌는 것.
창19:4-‘소년으로부터 노인에 까지’=최근의 거짓들과 악들로부터 확증된 거짓들과 악들 까지.
슥8:4-‘노인들’=확증된 진리들. ‘여자 노인들’=확증된 선들.
창19:31-‘우리의 아버지는 늙다’=선이 무엇인지는 더 이상 알려지지 않는다.
창21:2-‘그의 노령에’=날이 다차서 인간을 벗어야 하는 것. (그이유가) ‘노령’=인간이 벗어지고 신성이 입혀지는 때의 상태.
창24:1-‘아브라함은 나이 먹었다…’=주님의 인간이 신성으로 만들어질 때가 가까워진 상태이다는 것. (그이유가) ‘늙은’, 또는 ‘노령’=인간인 것을 벗는 것, 그리고 천국의 것을 입는 것. 그리고 주님을 서술할 경우, 신성을 입는 것(이기 때문). 그 이유는 천사들에게는 나이먹는다는 개념이 없기 때문, 그러나 그들이 자기들이 지니는 생명의 상태에 대한 생각만 있다. 그러므로 ‘노령’이 말씀에서 언급될 때, 인간과 더불어 있는 천사들은 그 인간이 자기들의 나이를 통과해 갈 때, 마지막까지 조차 그들이 지니는 생명에 관한 그들의 상태만을 생각한다, 즉 그들은 계속적으로 인간인 것을 벗고 천국의 것을 입는 것을 생각한다.
창25:8-‘충분한 노령(good old age)에, 늙고, 가득차고’=표현의 새로운 상태. ‘노령’=옛 것을 벗고, 새 것을 입는 것. 그이유는 천사들과 더불어서는 시간에 대한 생각이 없기 때문, 그러나 그 대신 그들은 상태들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즉 노령 대신 지혜의 상태에 대한 생각. 인간은 시간 속의 것들로부터 시간 없는 삶의 것들로 건너갈 때, 이른바 그는 새로운 상태를 입는다. ‘노령’에 의해 새로운 것이 의미되는데, 여기서는 새로운 표현을 의미한다.
창27:1-‘이삭은 늙었다’=새로운 상태가 다가왔다. ‘늙게 되는 것’=새로운 상태의 현존. 그이유가 말씀에서 ‘노령’=이전 상태를 벗고 새 상태를 입는 것이기 때문. 이런 이유로 ‘노령’은 마지막 나이, 즉 육체적인 것들이 중단되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그것들과 더불은 앞서 있는 나이의 사랑들이 드러나고, 내면의 것들이 설명되기 시작하는 때. 그리고 또한 천사들은 노령이라는 시간 개념에 대한 생각은 없고, 대신 새 생명에 관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의 경우 이 상태가 가까웠다는 생각.
창35:29-‘늙고 날들이 가득찬’=생명의 새로운 것.
창37:3-‘그가 노령에 얻은 아들이었기 때문에’=자기 안에 있는 자기 자신의 생명. (그이유가) ‘노령’, 내적 의미에서=노령을 뜻하지 않는다, 그이유는 내적 인간, 또는 영적 인간은 노령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육체, 또는 외적 인간이 늙을 때, 그는 생명의 새로운 것으로 건너간다. 고로 ‘노령’은 내적의미에서 생명이 의미된다.
욜2:28-‘노인들’=슬기로운 자.
이46:4-‘노령 쪽으로 그리고 회색 머리털 쪽으로’=교회가 마지막 쪽으로.
욜2:16-‘노인들’=슬기로운 자.
창44:20-‘그의 노령의 아이, 가장 어린 자’=새로이 있는 파생된 진리. ‘노령’=생명의 새로운 것.
창48:10-‘노령을 통과하여’=표현의 마지막에서 때문에. (그이유가) ‘노령’=표현의 새로운 것. 고로 이전 것의 끝.
출10:9-‘노인들’=슬기로운 자.
요21:18-베드로가 ‘늙었을’ 때=마지막에 있는 교회의 신앙
이9:15-‘머리’=악, 이와 마찬가지가 ‘늙은 자와 존귀받는 자.
요21:18-그때에 악과 거짓이 인도할 것이다는 것이 ‘네가 늙게 될 때’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애5:12-‘노인들’=선으로부터 있는 지혜. ‘장로들’=선으로부터 있는 진리들. ‘젊은 이’=총명.
겔9:6-‘노인’=선으로부터 있는 지혜.
이3:2-‘점쟁이와 노인을 제거하는 것’=모든 총명과 지혜를 제거하는 것.
이20:4-‘노인들’=지혜.
슥8:4-‘늙은 남성들과 늙은 여인들’=총명한 자와 슬기있는 자.
창49:9-‘사자 같이, 그리고 늙은 사자 같이’=사랑의 선과 그들의 힘에서 파생되는 진리. ‘늙은 사자’=선을 통하여 능력을 가진 자. 그이유가 천적 선에 있는 이들은 결코 싸우지 않는다, 그러나 선을 통하여 안전하다. 이들이 ‘늙은 사자’에 의해 의미된 이들이다.
마9:17-‘늙은(묵은) 포도주’=옛 것 속의 진리, 또는 유대 교회. ‘헌 병들’=유대 교회의 규례와 판례들.
예38:12-‘낡은 줄과 부패한 넝마’를 가지고 그들은 예레미야를 끌어 올렸다=지각되지도 아니해왔고 이해되지도 아니해왔던, 그래서 소홀시되고 거절되어왔던 글자 의미로부터의 선들과 진리들을 수단으로 변호하고 회복함. 이것들이 ‘옛 것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이51:6-‘낡아진 옷’=악의 거짓들을 통하여 파괴된 진리.
신8:4-‘네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했다’=자연적 인간이 이런 고난들을 통하여 상함을 입지 아니했다.

달 (month)

* 영적 인간 역시 ‘일곱째’ (인간)이 되어간다. 이는 천적 인간과 같은 방법으로 되는 것, 즉 ‘일곱 째 날’이 아닌 ‘일곱 째 달’이다.
창8:5-‘열 째 달’=아껴두신 것(remains) 속에 있는 진리들.
창8:13-‘달의 첫 번째에서, 시작에서’=첫 번째 끝냄.
창8:14-‘두번째 달’=거듭나기 이전 모두 각각의 상태.
* 교회의 마지막 때가 셋 째 날, ‘세 번째 달’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창29:14-‘그는 그와 함께 날들의 한 달을 거주했다’=생활의 새로운 상태.
계22:2-‘매 달 그것의 열매를 산출한다’=선을 받아들임에 관련하여 언제나 새로운 상태, 그리고 그것의 결과로 실천함.
민3:15,40-이전 상태의 끝, 그리고 뒤잇는 상태의 시작, 또는 새로운 상태가 ‘달’에 의미되어 있는 바, (레위지파의 아들들과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첫 출생의) 수를 세되 ‘한 달, 그리고 그 이상된 아들로부터’라고 명령되어졌다.
신21:11,13-‘날들의 한 달’, 여기서 명백하게=이전 상태의 끝과 새로운 것, 또는 뒤잇는 것의 시작.
창38:24-‘그후 약 석 달’=새로운 상태. (그이유가) ‘3’=완성인 것. 그리고 ‘한 달’=한 가지 상태.
출2:2-‘그녀는 석 달 동안 그를 숨겼다’=나타나지 않았던 시간이 다 찼음. ‘달’=시간과 상태.
출12:1-‘이 달이 너에게 달들의 머리로 있다’=이 상태는 모든 상태들의 근본이다. ‘달’=이전 상태의 끝과 새로운 것의 시작. 고로 새로운 상태.
출12:3-‘이 달의 십일 째에’=내면들이 개시함으로부터의 상태. ‘달’은 시작으로부터 끝까지. 고로 유월절에 의해 의미되는 해방의 전체 상태.
출13:4-‘아빕달에’=새로운 상태의 시작. ‘달’=이전 상태의 끝과 뒤잇는 것의 시작. 고로 또한 새로운 상태. ‘아빕달’=뒤잇는 모든 상태들로부터의 시작이다는 것은 진행되는 대목에서 이 달에 관한 것들로부터 명백하다. 즉 ‘이 달은 너에게 달들의 머리이다. 이는 햇수의 달들에서 너에게 첫째이다.’
출13:5-‘너는 이 달에 이 예식을 지킬 것이다’=해방됨 때문에 주님에 대한 끊이지 않는 예식. ‘달’=이전 상태의 끝과 새로운 것의 시작. 그로부터 또한 ‘달’에 의해 끊어지지 않는 것도 의미된다.
출16:1-‘둘째 달 15일에’=상대적인 상태. ‘달’은 이전 상태의 끝과 뒤잇는 것의 시작이 의미된다. 고로 새로운 상태.
출19:1-‘셋째 달에’=상태의 충만함. ‘달’=상태.
계9:5-‘다섯 달 동안 그들을 괴롭힘’=짧은 시간 동안 마비 상태를 일으키는 것. 그이유는 이것이 ‘다섯’에 의해 의미되고, 시간은 그것이 달이든 날이든 시간이 아닌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
계9:15-‘시간, 날, 달, 그리고 해’는 계속적으로 그리고 항구적으로, 또한 언제나 까지도 의미한다.
계11:2-‘42개월’에 의해 어떤 것도 남은 것이 없는 때인 마지막에 까지 조차를 의미한다.
* ‘매 달 그것의 열매를 산출한다’=주님은 인간 당사자와 더불은 진리의 모든 상태에 따라 그 사람과 더불어 선들을 생산하신다는 것. ‘달’은 진리에 관련한 인간의 생명의 상태를 의미한다.
신33:14-‘달들의 생산물들’은 주님의 영적 왕국으로부터 진행하는 모든 것들이 의미된다. 여기서 ‘달, month’=달, moon과 같다. 즉 선으로부터의 진리들. 그이유가 원어에서 둘을 위해 같은 단어를 사용하기 때문.
계13:5-‘42달’=완전히 황폐함과 극점. 고로 남아 있는 진리와 선이 아무 것도 없을 때까지 파괴함.

때 (time)
* 시간(time)을 보라. 낮도 참조

때가 참(fulness)
*가득한(full)을 보라

마지막 (last)
* 맨 마지막(last)을 보라.

맨 마지막 (last)
마지막 (last)
최후 (last)
최말단 (ultimate)
궁극 (ultimate)

* boundary, extreme, first, hair, nazarite도 참조.
창2:14-‘유브라데’=지식, 이는 최말단, 종점(terminus)이다.
창14:22-‘신바닥(발바닥)’, ‘뒤꿈치’=궁극의 자연 평면.
암5:18,20, 습1:14,15-‘여호와의 날’=교회의 마지막 때와 상태.
창19:2-‘저녁’=맨 마지막 앞의 교회의 상태, 교회에서 신앙 없음이 시작하는 때.
창19:5-‘밤에’=(신성과 거룩한 진행(proceeding)이) 더 이상 인정되지 않는 때, 마지막 때.
창23:2-‘죽는 것’, ‘죽은’, ‘죽음’, 교회를 서술할 경우,=그것의 마지막 때, 모든 신앙, 즉 선행이 만료될 때, 이때가 말씀에서 ‘밤’이라 불리운다.
창25:25-‘털’=자연 평면, 그이유는 털은 인간의 최말단들에서 바깥쪽으로 자라나기 때문.
창28:17-‘이곳은 정녕 하느님의 집이다’=질서의 최말단에 있는 주님의 왕국.
이19:13-‘이집트’에 의해 교회의 과학물, 고로 질서의 마지막인 자연적 진리가 의미되어진다.
창40:16-19-‘3일이다’=최후로.
창40:16-19-‘3일 내에’=최후에서 있는 것.
눅17:34-‘한밤중’=옛교회의 마지막 때, 이는 선행이 전혀 없는바 신앙도 전혀 없는 때이다. 또한 새로은 교회의 첫 때이기도 하다.
마26:31,34-‘밤’=옛 교회의 마지막 때, 그리고 새로운 것의 처음.
출3:16-‘방문하심’=주님의 강림, 이는 교회의 마지막 때에 앞서 있다, 이 때는 말씀에서 ‘최후 심판’이라 불린다.
출4:4-‘그것을 꼬리를 수단으로 잡아라’=감각 평면의 궁극으로부터 승강하는 힘. 그이유가 ‘뱀’=감각 평면. 고로 뱀의 꼬리=그 평면에서 가장 낮은 것, 최말단. (고로)‘뱀의 꼬리’에 의해 거짓 자체가 의미되어진다. 그이유가 이것이 최후, 또는 최고 낮은 것이기 때문.
출17:12-‘그들을 돌을 가져왔다’=질서의 최후에 있는 신성으로부터의 진리. 그이유는 이 돌이 (모세) 아래 놓여졌기 때문.
마11:7-‘갈대’=최말단에 있는 진리, 마치 글자로 있는 말씀과 같다.
마3:1,4-‘메뚜기’=궁극, 또는 가장 일반적인 진리들.
창49:1-‘나는 날들의 맨 마지막에서 발생할 것을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상태의 최말단에서 교회의 상태의 품질. 즉 일반적인 진리들과 선들이 그것들의 질서 안에 있을 때, 함께 있는 것에서 교회 상태의 품질.
시37:37-‘그이유가 인간에게 궁극은 평화이기 때문.’ ‘궁극’=평화가 있는 끝말(end).

밤 (night)

* 인간에게 어울리는 모든 것들은 ‘밤’에 비교된다, 그이유는 그들이 짙은 어둠 속에 있기 때문이다.
* 사랑으로부터의 신앙이 ‘보다 작은 발광체’이다, 이것이 밤을 지배한다.
창1:18-‘밤을 지배하는 것’…‘밤’에 의해 악이 의미되고 있다. ..악들은 밤의 일이라 불리고 있다.
요9:4-주님 역시…믿음 없음의 상태를 ‘밤’이라 부르시고 있다… 즉 ‘밤이 온다, 그때 인간은 일할 수 없다.’
창7:4-‘40일 낮과 밤’=시험의 기간, 이 안에서 ‘밤’은 근심 걱정들이다.
눅17:34-‘그 밤에 한 침대에 둘이 있을 것인데…’ 여기서 마지막 때가 ‘밤’이라 불리고 있다. 그이유는 신앙이 없기 때문, 즉 선행이 없기 때문.
창14:15-‘밤’=그늘의 상태. 즉 외관적 선과 진리인지 또는 순수하게 선과 진리인지 알지 못할 때를 말한다.
창19:5-‘밤에’=마지막 때, 즉 (주님의 신성한 인간과 거룩한 조치)가 더 이상 인정되지 않을 때; (그이유가) ‘밤’=어둠의 때, 즉 빛에 속한 것들이 더 이상 보여지지 않을 때. 천사들은 ‘밤에’ 오지 않았다, 그들은 ‘저녁에’ 왔다. 그러나 롯과 이야기한 소돔 사람은 ‘밤에’ 왔다. 말씀에서 ‘밤’=진리의 빛이 더 이상 있지 않고 거짓과 악 만이 있을 때와 상태; 고로 마지막 때와 상태, 즉 심판이 있는 때.
요11:10-‘만일 누군가가 밤에 걷는다면, 그는 걸려 넘어진다’ ‘밤’=악으로부터의 거짓…그이유가 진리의 모든 빛이 선으로부터 있듯, 거짓의 모든 밤은 악으로부터 있기 때문이다.
출11:4-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이집트를 빠져나갈 때, 그들은 ‘한밤에’ 나가도록 명령받았는데, 그이유는 그 시각이 선과 진리가 황폐된 교회, 악과 거짓밖에 지배하는 것이 없는 교회를 의미하기 때문.
출12:12,29,30,42-‘한밤에 이집트의 첫 출생들이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선과 진리 안에 있는 이들이…거짓들과 악들 사이에서 방위되었는바 말해지기를, 이 밤은 이집트인들과는 달리 ‘여호와께서 지키시는 밤’이라 불려졌다.
창19:33-‘그 밤에’ 모든 것들이 이렇게 큰 희미함 안에 있을 때.
창26:24-‘여호와께서 그 밤에 그에게 나타나셨다’= 이 희미함에 관한 주님의 지각…‘밤’=그늘의 상태, 또는 희미한 것. 이 희미함에 의해 말씀의 글자 의미가 의미되었다.
시104:20-‘당신은 어둠을 배치하시고 그것이 밤이 되고 있다’=희미함의 상태가 완화되는 것; 그이유가 천사들은 상태의 변화들을 가지기 때문…
창31:24-‘하느님께서 밤에…꿈에서 라반에게 오셨다’=자체로만 남겨져 있을 경우 이 선이 지니는 희미한 지각…‘밤에 꿈에서’=희미한 것.
창31:40-‘추위가 밤에 (나를 엄습했다)’=시험들…‘밤’=믿음 또는 진리가 없는 상태.
마25:6-‘한밤에 소리가 만들어졌다’=옛 교회의 마지막과 새로운 교회의 처음의 때. 말씀에서 교회의 상태를 취급할 때, 이 때를 ‘밤’이라 부르고 있다.
창40:5-‘각자 밤에 꿈을 꾸었다’=희미함 안에서 그들에게 있었던 사건에 관하여… ‘밤’=희미한 것. 영적 의미에서 ‘밤’=악으로부터의 거짓이 야기시킨 그늘의 상태; 고로 마음의 희미한 것 역시 의미한다. 세상에서의 밤에 있는 희미함은 자연적인 희미함이나, 다른 삶에서 밤 속에 있는 희미함은 영적인 희미함이고 이는 천국의 태양이 없는 탓에 생긴다.
창46:2-‘하느님께서 밤의 환상들에서 이스라엘에게 이야기하셨다’=희미한 계시…그이유가 ‘밤’=희미한 것; 그리고 영적 의미에서의 희미함은 진리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또한 말씀에서 ‘밤’=악으로부터의 거짓; 그이유가 악으로부터 거짓 안에 있는 이들은 밤의 희미함에 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지옥에 있는 모든 이들은 밤에 있다 라고 말해진다.
이21:11,12-‘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밤이 어찌되었느냐?…아침이 온다, 밤 또한 온다’ ‘아침’=주님의 강림, 이는 땅 위에 어떤 영적 진리도 남아 있지 않았을 때, 즉 밤이였을 때였다.
슥14:7-‘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시각이 주님이 태어나신 때이다; 그이유가 그때 당시 저녁이었기 때문이다. 즉 교회 표현의 마지막 때였다.
이15:1-황폐됨이 ‘밤에’ 거행된다 라고 말해지고 있다, 그 이유는 그 당시 진리가 희미함 안에 있어 거짓이 들어 가기 때문이다.
애1:2-여기서는 진리의 황폐를 다루고 있다; ‘밤’=거짓
시101:5-‘밤의 공포’=지옥으로부터 있는 악의 거짓들.
계21:25, 22:5-‘거기에 밤이 없다’=거짓이 없다.
단7:2,7, 슥1:9-‘밤의 환상들’=희미한 계시.
출10:13-‘온 이 밤’=희미한 지각의 상태.
출11:4-‘밤의 중간쯤에서’=완전 황폐함 이였을 때. ‘밤의 중간’=가장 짙은 어둠이 있을 때, 즉 단지 거짓만이 있을 때; 그이유가 ‘밤’=거짓의 상태; 그리고 그것의 ‘중간’=그것의 높이.
출12:8-‘그 밤에’=악한 자가 지옥에 떨어짐이 있을 때; (그이유가) ‘밤’=선과 진리가 황폐해짐의 상태; 고로 지옥에 떨어짐…
출12:12-‘그 밤에’=그들의 악한 상태; (그이유가) ‘밤’=악과 거짓밖에 더 다른 것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로부터 ‘밤’은 교회의 마지막 때 역시 의미한다…또한 ‘밤’은 완전 황폐함, 마찬가지로 지옥에 떨어짐도 의미한다. 이런 것들로부터 명백한바, 지옥에 있는 이들의 상태는 ‘밤’이라 불려진다는 것이다. 이들의 어둠은 짙은 어둠은 아니다, 그이유가 그들은 서로를 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천국들 안에 있는 진리와 선의 상태가 ‘낮’이라 불리운데 반해 악과 거짓의 상태가 ‘밤’이라 불리울 때, 그로부터 천국으로부터의 어떤 빛도 스며듬이 없을 때 거기는 짙은 어둠이 있다.
출12:29-‘밤의 중간이 되었다’=악으로부터의 거짓만 있는 상태; (그이유가) ‘밤의 중간’=완전 황폐; 즉 모든 선과 진리의 상실, 그러므로 악으로부터의 거짓만 있는 상태.
출12:30-‘바로는 그 밤에 일어났다’=그들이 악으로부터의 거짓 안으로 놓여졌을 때 지옥에 떨어진 자들은 영적 교회의 것들에 혐오와 반감을 통각할 것이다는 것; (그이유가) ‘밤’=악으로부터의 거짓만 있는 상태, 고로 저주된 상태.
출12;42-‘이 밤은 여호와에게 경계의 밤’=진리와 선 안에 있는 이들과 더불은 주님의 현존, 그리고 악 안에, 이로부터 거짓 안에 있는 이들과 더불은 주님의 현존…이 뒤를 이어 있는 주님의 현존이…‘밤에는 불, 낮에는 구름 기둥’에서 묘사되고 있다.
출13:21-‘그리고 밤에는 그들을 비추기 위해 불기둥’=희미함의 상태 일 때, 선으로부터의 예증에 의해 격려함이 있다.
출14:20-‘밤을 비추었다’=저 세계에서 선으로부터 진리의 예증.
이21장-‘밤’=단지 악으로부터의 거짓에 있는 그 당시 인간과 교회의 상태.
예6:5-여기서 ‘저녁’과 ‘밤’=교회의 마지막 때들, 즉 사랑과 믿음의 모든 것들이 파괴되어졌었을 때.
계7:15-‘그들은 낮과 밤으로 그분을 섬긴다’=그들은 자기들이 그분으로부터 받는…진리들에 따라 꾸준히, 성심있게 산다는 것.
계8:12-‘낮은 그것의 삼분의 일을 비추지 않을 것, 밤도 이와 마찬가지이다’=그들과 더불어 말씀으로부터 교리와 생활을 위해 소용될 수 있는 진리는 영적 진리이든 자연적 진리이든 더 이상 없다는 것….‘밤이 비추지 않는다’란 달이나 별로부터 빛이 없다는 말인바…말씀의 자연적 의미에 있는 신성한 진리는 밤에 있는 달이나 별과 같다…
계20:10-‘낮과 밤으로 괴로워함’이란 줄곳 내면적으로 침해당함을 의미한다.
계21:25-‘거기에 밤이 없을 것이다’=믿음 속에 거짓이 없음; 그이유가 ‘밤’은 빛에 반대인 것을 뜻하는바…이로부터 ‘밤’은 주님으로부터의 사랑의 선으로부터 있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고로 이것이 믿음의 거짓이다.
시16:7-‘밤에는 내 고삐들이 나를 징계한다’. ‘밤’=거짓이 솟구처 오를 때의 인간의 상태.
마25장-‘한밤, 소리가 일어났을 때’=마지막 심판; 그리고 일반적 측면에서 인간 삶의 마지막, 즉 그가 천국이든 지옥이든 어느 쪽으로 가게 판결될 때.
계4:8-‘낮과 밤 쉬지 않고 있다’ 신성한 섭리와 주님의 안내에 관해서 말해질 때,…=보편적으로 그리고 영구적으로…
요21:3-그들은 온 밤을 노동했다, 그리고 얻은 것은 없었다‘=자아로부터 결과되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 오로지 주님으로부터서만.
시139:12-자연적 빛이 ‘어둠’과 ‘밤’에 의해 의미된다.
미3:6-‘너에게 환상을 위해서는 밤이다…’=진리를 이해함 대신 거짓을 이해함만이 있을 것이다.
시104:20-‘어둠’과 ‘밤’이 자연적 인간의 루멘(광도, lumen)을 의미하고 있다, 이는 영적 인간의 빛에 관계적으로 볼 때 밤 같다….이는 ‘당신이 밤을 배치하고 그것은 밤일런지 모른다’의 의미에서 명백하다.
예6:5-비밀리에 진리들을 파괴하려 애씀이 ‘일어나라, 밤에 올라가자’에서 의미되고 있다.
이26:9-‘내 혼을 가지고 나는 밤에 당신을 원했다’=진리의 빛 안에 아직 있지 않은 생활.

밤을 보냄 (to pass night)

창19:2-‘우리는 거리에서 밤을 보낼 것’=말하자면 그분은 진리로부터 기꺼이 심판하시겠다는 것…여기서의 ‘밤을 보냄’=심판하는 것.
창24:23-‘우리가 밤을 보낼 …방이 있는가?’=남아 있음의 상태.
창24:54-‘그들은 밤을 보냈다’=거기서의 평화; (그이유가 ‘밤을 보내는 것’은 쉼이기 때문; 그리고 내적 의미에서 평화를 가지는 것.
이21:13-‘숲에서 밤을 보내는 것’=선에 관련하여 황폐되는 것.
창28:11-‘그들은 거기서 밤을 보냈다, 그이유는 태양이 저물었기 때문’=희미한 것 안에서의 생활; (그이유가) ‘밤’=그늘의 상태; 고로 ‘밤을 보내는 것’= 그 상태에서 사는 것.
창31:54-‘그들은 산에서 밤을 보냈다’=고요함…계약을 맺은 이들이 한 장소에서 밤을 보낸다는 것은 의식적이었다, 그이유는 한 장소에서 밤을 보냄은 서로에게 더 이상 적대감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 내적 의미에서, 고요와 평화.
창32:13-‘그는 그 밤에 거기서 밤을 보냈다’=그 희미한 상태에서…
신21:23-그가 ‘나무 위에서 밤을 보내게 하지 말라’는 것=영구적인 거절; 그이유가 저녁에 날이 새로이 시작되기 때문.
출23:18-‘내 축제 속의 지방(fat)은 아침에 이르도록 밤을 보내게 하지 말 것’=예배의 선은 자아로부터가 아니다는 것, 그러나 언제나 주님으로부터 새로이 있다는 것; (그이유가) ‘밤을 보내게 하는 것’=자아로부터 있는 것; 그이유가 말씀에서 ‘밤’에 의해 악과 거짓이 의미되기 때문; 고로 자아 역시 의미한다.
출34:25-‘유월절 축제의 희생 제물은 아침에 이르도록 밤을 보내게 하지 말 것’=예배의 선은 자아로부터가 아니고 오직 주님으로부터 새로이 있다는 것.
이1:21-‘심판이 충만하고, 정의가 밤을 지나갔다’=교리 속의 진리와 사랑의 선이 풍부한 곳.

성경의 생활 용품과 상응

성경의
생활 용품과 상응

Dictionary
of
living stuff
in
Bible
by
Correspondence

성경 약자표

창 창세기 이 이사야 학 학개 마 마태복음
출 출애굽기 예 예레미야 슥 스가랴 막 마가복음
레 레위기 겔 에스겔 말 말라기 눅 누가복음
민 민수기 단 다니엘 요 요한복음
신 신명기 호 호세아 계 요한계시록
여 여호수아 욜 요엘
사 사사기 암 아모스
삼상 사무엘상 옵 오바댜
삼하 사무엘하 욘 요나
왕상 열왕기상 미 미가
왕하 열왕기하 나 나흠
욥 욥기 합 하박국
시 시편 습 스바냐

차례

가두리 (hem)-가방 (bag)-가위 (scissors)-가재도구 (household stuff)-궤 (언약의 궤, ark of Covenant)-그릇 (vessel)-그물 (net)-끈 (band, bandage)-끈 (cord)
난로 (fireplace, hearth)-납작한 냄비 (pan)-낫 (sickle)-너울 (veil)
단지 (urn)-대야 (laver)-대접 (vial)-덫 (snare)-덮개 (veil)-덮다 (cover)-덮개 (covering)-도구 (tool)-도끼 (axe)-도장 (signet)-두로 (Tyre)-두루마리 (roll)-둠밈 (thummin)-드라빔 (teraphim)-등불 (lamp)
막대 (rod), 지팡이 (staff)-말뚝 (peg)-망치 (hammer)-멍에 (yoke)-면도칼 (razor)-물동이 (basin)-물주전자 (cruse)-물통 (cistern)-물항아리 (water-pot)
바구니 (basket)-바늘 (needle)-반죽통 (kneading-trough)-방울 (bell)-베개 (pillow)-부젖가락 (tongs), 불집게-부채 (fan)-비누 (soap)
사슬 (chain)-상자 (box)-상자 (coffer)-성구함 (phylactery)-송곳 (awl)-수레 (cart)-수레바퀴 (wheel), 회전하다 (rotate)-실 (thread)-씻는 통 (wash-pot)
안장 (saddle)-여물통 (manger)-열쇠 (key)-우림 (Urim)
자루 (sack)-자리 (seat)-잔 (cup)-장대 (stave)-접시 (dish, platter)-조각칼 (graving tool)-지갑 (wallet)-지팡이 (staff)-질그릇(earthenware), 토기 (earthenware)
체 (sieve)-체로치다 (sift)-창살 (grating)-(양)초 (candle)-촛대 (candlestick)-침대 (bed)-침상 (couch)
칼 (knife)
탁자 (table), 상 (table)-토기 (earthenware)
표 (mark, characteristic)
항아리 (jar)-향로 (censer)-홀 (sceptre)-횃불 (torch)

가두리 (hem)

* 술(fringe)를 참조.

가방 (bag)

막6:8,9-‘그들은 금, 은, 놋쇠, 가방, 또는 빵’을 그들과 더불어 가져가지 말라‘는 것은, 이런 것들이 주님 만으로부터 있는 선들과 진리들이었기 때문.
마10:9,10-주님으로부터가 아닌, 자아로부터의 선들과 진리들이 ‘띠(girdle) 안에 있는 금, 은, 놋쇠’, 그리고 ‘가방’을 소유함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눅22:36-‘돈지갑을 가지고 있는 자, 그로 그것을 가지게 하라, 가방도 마찬가지이다…’…‘돈지갑’ 그리고 ‘가방’은 영적 지식들, 고로 진리들을 의미한다.
눅22:36-‘돈지갑과 가방을 가지고 있는 그는 자기로 그것들을 가지게 하라’=그리스도가 이런 것들을 겪는다고 미리 말해진 말씀을 소유한 이들, 그들은 그것들을 잃는다는 것을 조심하라. 그 이유가 ‘돈지갑’, ‘가방’은 그 안에 담긴 작은 돈(coin), 돈(money)과 같은 의미를 가지기 때문, 즉 말씀으로부터의 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을 잃는다는 것.

가위 (scissors)

* 시민적 생활의 진리.

가재도구 (household stuff)

창45:20-‘너희 눈이 너희의 가재도구를 아끼려 하게 말라’=수단이 되는 것들은 관심의 문제가 아니다. ‘가재도구’, 또는 그릇들=수단이 되는 것들.

갈고리 (hook)

출26:6-‘너는 금으로 갈고리 오십 개를 만들 것이다’=선으로부터 결합하는 충분한 능력…‘갈고리들’=결합하는 능력. 그 이유가 결합하는 능력은 그것들의 형체로부터, 즉 뒤로 구부려지거나 안으로 굽어진 형체로부터 그들 안에 있기 때문
출26:10-‘너는 놋쇠로 갈고리 오십 개를 만들 것이다’=외적 선과 결합하는 충분한 능력.
출26:33-‘너는 갈고리들 아래 베일을 줄 것이다’=능력, 이로부터 결합의 현실성..
겔19:4-‘이집트의 토지 안으로 그는 갈고리를 사용하여 데려가졌다’=거짓인 것을 통한 과학적인 것.
암4:2-‘고기를 갈고리로 끌어내는 것’=감각의 오류를 수단으로, 이로부터 감각적 인간은 추론한다.
이19:8-‘개천에서 갈고리를 던지는 모든 이가 슬플 것이다’=자연적 인간을 개혁하려고 진리들을 수단으로 가르치는 이들은 노동이 헛될 것이다.
겔29:4-‘나는 네 턱에 갈고리를 놓을 것이다’=그가 응징되어지기 때문에 거짓 말함.
이37:29-‘나는 네 코에 내 갈고리를 둘 것이다’=그는 우둔함과 어리석음을 가질 것이다. 그 이유가 ‘코’=지각, 그리고 ‘갈고리’=거기로부터 끄집어 냄. 육체의 감각으로 침수됨. 합리성으로부터 분리될 때 어리석어진다.

궤 (언약의 궤, ark of Covenant)

민10:35,36-광야에서의 궤의 여행은 전투들과 시험들을 의미한다; 궤의 휴식은 평화의 상태; 그러므로 궤가 여행했을 때, 모세는 말했다, ‘일어나소서, 여호와시여, 그리고 당신의 적들을 당신의 얼굴로부터 흩뜨리소서’; 그리고 궤가 휴식하자, 그는 말했다, ‘수많은 이스라엘족에게로 돌아오소서 여호와시여’…
창3:24-안에 증거(십계)가 있었던 궤는 ‘생명들의 나무’와도 꼭 같다; 즉 주님과 주님 속에 만 있는 천국적인 것들.
삼하6:6,7-궤는 주님, 고로 거룩하고 천국적인 모든 것을 표현했다; 우짜가 자기 손을 궤에 놓는 것은 인간 자신의 힘을 신뢰함을 표현했다.
삼상6:11,12-가장 안쪽에 안치된 궤는 주님 자신을 표현했다. 그 이유가 거기에 (십계의) 증거가 있었기 때문; 그러나 바깥쪽인 천막은 주님의 왕국을 표현했다.
* 궤와 더불은 성막…주님 자신이 궤 안에 있는 (십계의) 증거, 그리고 궤 위에 있는 자비석에 의해 표현되어졌다.
* 그들이 안쪽 예배 없이 바깥쪽 예배 안에 있었기 때문에…고로 그들이 산이나 숲 자체를 예배했다…그러므로 그들은 공통되는 것, 마지막으로 성전에 있는 궤 만에 예배하도록 제한이 가해졌다.
* 하느님의 궤가 불레셋족에게 빼앗겼을 때…’옷을 찢고’, ‘머리에 먼지를 뒤집어 씀’=신성한 진리와 신성한 선을 잃었음에 통곡함; 그 이유가 ‘궤’는 주님의 왕국, 최고 의미에서 주님 자신, 이로부터 교회의 거룩한 것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옷을 찢음’은 신성한 진리를 잃었음에 통곡함, 그리고 ‘머리 위에 먼지를 뒤집어 씀’은 신성한 선을 잃었음에 슬퍼함이 의미된다.
삼하6:8- 궤에 의해 천국이, 최고 의미에서는 주님 자신이, 고로 신성한 선이 표현되어졌다; ‘우짜’에 의해 섬기는 것, 즉 진리가 표현되었는데, 그 이유는 진리는 선을 섬기기 때문; 이 질서가 깨트려짐이 우짜의 법 위반에 의해 의미되었다.
창50:26-‘(요셉은) 이집트에서 궤 안에 놓여졌다’=교회의 과학적 지식 안에 감추임. ‘궤’는 어떤 것 안에 저장됨, 또는 감추임을 의미한다.
창50:26- ‘귀중품을 넣는 상자(돈궤, coffer)’. 또는 작은 궤(ark)=둘레에 있는 어떤 것, 또는 어떤 것이 두루 에워 쌈.
출2:2-모세는 신성으로부터의 법, 또는 말씀에 관련한 주님을, 특별하게는 역사적인 말씀에 관련한 말씀을 표현하도록 준비되었다. 그러므로, 때가 당도하자, 그는(신성으로부터의 법은) 유아였을 때, 작은 궤, 실지로는 흔하거나 조금 조잡한 수준의 상자 안에 놓여졌었다. 그 이유는 이 법의 첫 출생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그 후 이 법이(모세의 얼굴이) 시나이 산으로부터 빛을 내었을 때, ‘증거의 궤’라 불리는 궤 안에 안치되어졌다…이때부터 궤는 지극히 거룩했다, 그 이유는 이 궤가 신성한 법에 관련한 주님의 신성한 인간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 두 돌판이…궤안에 놓였기 때문에,,,그러므로 궤는 ‘언약의 궤’라 불리운다.
* 천막 한 가운데 궤 안에 있는 법에 의해 말씀에 관련한 주님이 표현되어졌다.
출25장-‘궤’에 의해 가장 깊은 천국이 표현되어졌다.
* 증거가 안에 있는 궤는 가장 깊은 천국, 그리고 이 천국에 계신 주님 자신을 표현했다.
출25:10-‘너는 궤를 만들 것이다’=가장 깊은 천국…그 이유가 궤 안에 있는 (십계의) 증거, 또는 법이 주님을 의미했기 때문, 그리고 (십계의) 증거는 신성한 진리, 그리고 신성한 진리는 천국 안에 계신 주님이시기 때문. 그러므로 궤는 지극히 거룩했고, 그래서 사람들에 의해 여호와로서 예배되어졌다. 그 이유가 여호와께서 거기서 거주하신다고, 그리고 거룹 사이에 계신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
예3:14,16,17-궤가 주님을 대표한다는 것…이 절로부터도 분명해진다…이전 교회를 대표함은 폐지된다는 것이 여기서 ‘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출25:14-‘궤의 양쪽에’=최말단에 있는 천국을 에워싼 신성한 영역력(Divine sphere).
출25:14-‘그것들 안에서 궤를 운반하는 것’=천국의 확고부동함과 생존.
출25:16-‘너는 증거(판)을 궤에게 줄 것이다’=신성한 진리, 이것이 천국에 계신 주님이시다. ‘궤’=천국.
* 궤=주님이 계신 천국.
출25:21-‘너는 궤에게 증거(판)을 줄 것이다’=천국에 계신 주님으로부터…’궤’=천국.
출25:22-‘증거의 궤 위에 있는..’=천국에 계신 주님과 더불어. ‘궤’=천국을 표현한다.
* 증거(판)이 있는 궤에 의해 가장 깊은 천국, 또는 셋째 천국이 표현되어졌다.
출26:33-‘베일 안쪽으로부터 저쪽에 증거의 궤를 가져올 것이다’=하나를 이루는 매체 안에서 가장 깊은 천국이 존재함…’증거의 궤’=가장 깊은 천국.
출26:34-‘너는 지극히 거룩함에 있는 증거의 궤 위에 자비석을 줄 것이다’=가장 깊은 천국 안에 있는 사랑의 선으로부터의 예배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주님께서 들으시고 받으심….’증거의 궤’=가장 깊은 천국, 여기에 주님이 계신다.
출30:6-‘너는 증거의 궤 넘어 있는 베일 앞에 그것을 줄 것이다’=내면의 천국, 여기는 가장 깊은 천국과의 결합이 있는 곳이다…’증거의 궤’=가장 깊은 천국.
출30:26-‘(너는) 증거의 궤에 (기름부을 것이다)=가장 깊은 천국 속에 있는 천적 수준의 선 안에서…증거의 궤에 의해 가장 깊은 천국의 선이 의미되어진다. 궤가 가장 깊은 천국이다는 것, 증거는 거기에 계신 주님이시다는 것, 그리고 이 천국을 통치하는 선은 주님을 사랑함이다는 것…그러므로 ‘증거의 궤에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가장 깊은 천국 속에 있는 천적 선에서 주님의 신성이 표현되게 하고 있다를 의미한다.
출31:7-‘만남의 천막, 그리고 증거와 더불은 궤’=일반적 측면에서 천국의 표현, 주님이 계신 곳…만남의 천막 베일 안쪽, 궤가 있는 곳은 가장 깊은 천국, 또는 셋째 천국을 표현했다…
계11:19-‘하느님의 성전이 천국에서 열려졌다, 그리고 그분의 언약의 궤가 성전에서 보여졌다’=새 천국, 그 안에서 주님은 그분의 신성한 인간 안에서 예배되어진다. 그리고 그들은 십계명의 가르침에 따라 살고 있다; 이것은 새 교회의 두 필수요소이다, 이를 수단으로 결합이 있다…’성전에 있는 궤’에 의해 십계명이 의미된다.
계11:19-‘그분의 언약의 궤가 성전에서 보여졌다’=신성한 진리, 이를 수단으로 주님과 더불은 결합이 있다. ‘언약의 궤’=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언약의 궤가 보여진 것은 성전이 나타났기 때문, 예루살렘 한 가운데 궤가 있었고, 이 궤 안에 법의 두 돌판이 안치되어져 있었다, 이를 수단으로 보편적 의미에서 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 고로 주님 자신, 이 분은 천국들 안에 있는 신성한 진리이시다…궤가 이를 의미한 것은 만남의 천막이 세 천국들; 즉 바깥뜰은 첫 번째 천국, 또는 최말단 천국; 베일 까지의 천막 자체는 중간 천국, 또는 두 번째 천국, 그리고 베일 안쪽, 궤, 이 위에 그룹들과 더불어 자비석은 가장 깊은 천국, 세 번째 천국; 그리고 율법 자체, 궤 안에 있는 것은 신성한 진리에 관련한 주님, 또는 말씀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씀을 수단으로 주님과의 결합이 있기에 궤는 ‘언약의 궤’라 불리운다.
시132편-‘당신 강하심의 궤’에 의해 그분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가 의미된다; 그 이유가 이를 수단으로 주님은 신성한 힘을 가지시기 때문.

그릇 (vessel)

단1:2-‘하느님의 집의 그릇들’=거룩한 것들 (모독했다).
눅17:31-‘집에 있는 그의 그릇들’=선 속에 있는 진리들. ‘그것들을 가지러 내려감’=선으로부터 진리 쪽으로 떠남.
겔16:17-‘금과 은으로 장식한 그릇들’=말씀으로부터의 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들.
예48:11,38-‘그릇들로부터 그릇들 까지 텅비는 것’=(개혁되지 않는 것…선 자체가 기쁨이 없는 그릇이라 불린다.
겔27:13-놋그릇=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는 자연적인 선들.
이66:20-‘깨끗한 그릇에 있는 제물’=내적 인간에 관계되고 있는 외적 인간에 대한 표현이다…그이유가 ‘깨끗한 그릇’=일치하는 외적인 것, 고로 외적인 것들에 있는 것들, 즉 과학물들, 지식들, 교리물들.
예14:3-‘텅빈 그릇들’=안에 진리가 없는 지식들, 또는 안에 선이 없는 진리들.
마25:4-‘슬기로운 처녀들은 자기들 그릇에 기름을 가져갔다’=진리들 안에 선이 있었음, 즉 신앙 안에 선행이 있었음.
창24:53-‘종은 은 그릇, 금 그릇, 의복들을 가져갔다’=진리와 선과 그것들을 장식하는 것들…‘그릇들’이 언급되는데, 그 이유는 그것들이 진리에 애착함을 서술하기 때문. 진리 자체로만 간주해보면 그것은 선을 담는 그릇 밖에 더 아니다. ‘은 그릇’=특별한 측면에서는 과학물들, 그이유가 이것들이 진리를 담고 있는 용기이기 때문. ‘금 그릇’=특별한 측면에서 진리들, 그 이유는 이것들이 선을 담는 용기 이기 때문.
창31:37-‘그의 집의 그릇들’=그의 자신의 진리들.
* (열 처녀의 비유에서) ‘그릇들’=신앙의 교리적인 것들.
예14:3-‘텅빈 그릇들’=선으로부터의 진리가 아닌 진리.
신23:24-‘그릇’=교회의 진리.
여7:11-‘그릇들’=거룩한 진리들.
민19:15-‘죽은 자의 집에 있는 열려 있는 그릇들은 불결하다.’
창42:25-그들은 곡식으로 자기들의 그릇들을 채웠다‘=과학물들이 진리로부터 있는 선에 수여되었다.
창43:11-‘너의 그릇들에 토지의 노래들을 가져가라’=신앙 속의 진리들에서 선택한 교회의 것들.
예18:4-‘옹기장이의 그릇’=신앙으로부터의 진리.
이18:2-‘골풀 줄기로 만든 그릇’=가장 낮은 진리들의 저장소.
계3:22-‘은 그릇’=진리의 과학물들. ‘금 그릇’=선의 과학물들. 과학물들(기억-지식들)이 ‘그릇들’이라 불리는데, 그 이유는 그것들은 일반적인 것이고 그것들 내에 무수한 진리들과 수많은 겹겹의 선들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
겔27:13-‘놋그릇’=선으로부터의 신앙 속의 외면의 진리. 그 이유가 ‘그릇들’=외면의 진리들이기 때문.
출22:7-‘사람이 그의 동료에게 보관하도록 은이나 그릇들을 줄 경우’=선으로부터의 진리들, 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기억에 있는 과학물들…‘그릇들’=이와 상응하는 과학물들인 이유는 모든 영적 진리들은 과학물들 안에 마치 그릇들에 담듯 저장되기 때문. 그리고 모든 과학물들은 그것들이 함유하는 진리들에 상응한다.
출25:9-(성막의) 모든 그릇들의 모양=주님으로부터 있는 모든 천적, 영적인 것에 대한 표현. ‘그릇들’=진리들. 여기서의 경우, 주님으로부터 있는 천적인 것과 영적인 것들. 그 이유가 ‘그릇들’에 의해 성막에 있는 모든 것들이 뜻해지기 때문.
출25:29-그릇들, 일반적 측면에서=과학물들, 또는 지식들. 그러므로 특별한 측면일 경우, ‘(탁자의) 그릇들’=천적 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들.
출27:19-‘모든 섬김에 있는 주택의 모든 집기들에 관하여’=외적 인간에 속해 있는 기억된 진리들과 선들.
레6:28-‘토기, 그것에서 삶아진다’=선과 부합되지 않는 거짓. ‘놋 그릇’=선이 있는 교리적인 것.
출30:27-‘촛대와 그것의 그릇들’=영적 진리…그리고 섬기는 진리들… 그 이유가 ‘그것의 그릇들’=기억의 진리들, 이것이 섬기는 것들이다.
출30:28-‘(태워 바치는 제단의) 모든 그릇들’=신성한 선들과 신성한 진리들. 그 이유가 ‘그릇들’=지식들과 과학물들. 그러나 주님의 신성한 인간을 서술할 때, 그들=섬기는 신성한 선들과 신성한 진리들.
출31:7-‘(그분의) 천막의 모든 그릇들’=모든 섬기는 선들과 진리들에 대한 표현인 것. 그 이유가 만남의 천막의 그릇들=천국들에 유용한 선들과 진리들, 고로 이것은 섬긴다. 그리고 섬기는 선들과 진리들은 지식들과 과학물들이다.
계2:27-‘옹기장이의 그릇들’=인간 고유의 총명 속의 것들, 이것들은 모두 거짓이다, 그 자체 아무 것도 아니다.
예14:3-‘그들은 텅빈 그릇들을 가지고 되돌아 왔다’=그들은 진리에 대하여 지식도, 이해함도 없다. 말씀에서 ‘그릇들’=진리를 담는 용기, 고로 기억과 이해함에 관한 것들.
겔16:17-‘주님의 금과 은으로부터 장식한 그릇들’=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들, 이것은 글자 의미로부터의 선들과 진리들이다…이것들이 ‘그릇들’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것들이 그것 안에 영적 진리들과 선들을 포함하기 때문. 그리고 그들이 ‘장식하는 그릇들’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들은 내면의 것들의 형체들이고 나타남들이기 때문.
겔12:7-‘어둠에서 벽을 통하여 옮기려는 그릇을 끄집어내는 것’=말씀으로부터의 모든 교리 속의 진리들을 내던지는 것.
단11:8-‘바램의 그들의 그릇들’=자연적 진리들.
계18:12-‘상아로 된 모든 그릇, 그리고 귀한 나무로 만든 그릇’=모독된 합리적 진리들과 선들.
이61:10-‘신부가 자신을 자기의 그릇들(보석들)로 단장하듯’=진리에 대한 지식들을 가지고.
그물 (net)
겔19:8-‘그 사람 위에 그물을 펼치는 것’=지상의 사랑들의 즐거움들을 수단으로 유혹하는 것, 그리고 그것들로부터 추론함들을 수단으로 꾀는 것.
출27:4-‘너는 그것을 위하여 창살의 그물 세공을 할 것이다’=감각적인 것, 이는 최말단 이다.
출27:4-‘그물’=생활의 가장 바깥쪽, 이는 이해함과 의지 속에 있는 내면의 생활과 상응한다.
출27:5-‘그물은 제단의 중간에 까지 있을 것이다’=감각적인 것의 확장. ‘그물’=감각적인 것.
합1:15-‘그의 그물 안으로 그러모으는 것’=악하고 거짓인 것 안으로.
요21:6-‘그물을 배의 오른쪽에 내려라’=그들은 생활의 선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는 것. 그렇게 하여 그들은 이방인들을 교회로 전향하게 하리라는 것이 끌어올리기도 벅찰만큼 물고기가 많이 발견됨으로 의미되고 있다.

끈 (band, bandage)

겔34:27-‘멍에의 끈들’=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으로부터의 악의 기쁨, 이 기쁨은 그들로 계속 억매여 있게 한다.
눅2:11,12,16-‘너희는 강보에 싸여 구유에 있는 아기를 발견할 것이다.’…‘강보로 쌌다’라고 말해지는데, 그 이유는 ‘강보’=첫번째의 진리들, 이 진리는 순진으로부터의 진리들, 또한 이 진리는 신성한 사랑으로부터의 진리들이기 때문. 유아에 관련되는 벌거벗음은 진리를 빼앗김을 의미한다. 이로부터 왜 천사가, ‘너희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발견할 것이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시일 것이다’라고 말했는지를 분명히 알 것이다.

끈 (cord)

예10:20-‘커튼들과 끈들’=천적인 것들로부터의 영적인 것들.
이44:2-‘긴 끈들’=진리들의 충분한 연결.
이33:20-‘끈들’=결합하는 것들.
출28:14-‘새끼 끈 꼬는 일로’=결합의 방법.
이5:18-‘덧없음의 끈들’=거짓들의 결합들, 이를 통하여 불법이 오고, 생활의 악이 온다.
출28:22-‘새끼 꼬는 일로’=분리시킬 수 없는 결합.
예10:20-‘끈들이 뜯겨져 나갔다’=더 이상 선과 진리의 결합이 없다, 또는 진리들 서로와 서로 사이에 더 이상 결합이 없다.
시18:5-‘끈들, 그리고 죽음의 올가미들’=시험들, 이는 지옥으로부터인 바, ‘지옥의 끈들’이라 불린다.
시118:27-‘끈들로 묶는 것’=결합하는 것.
이54:2-‘끈들을 길게 하는 것’=그것들의 확장.

난로 (fireplace, hearth)

겔24:5-‘뼈들의 난로’=진리에 애착함
요20:9-‘숯불’=선
이30:14-‘난로’=선 측면에서의 말씀.
이31:9-‘그분의 난로는 시온에 있고, 그리고 그분의 오븐(oven)은 예루살렘에 있다’…천적인 사랑은 관계적으로 ‘난로’이고, 교리로부터의 진리는 빵이 만들어지는 오븐과 같다.
요21:9-‘난로’, 또는 ‘불’=선…‘난로’ 또는 ‘불’=사랑의

납작한 냄비 (pan)

레2:4-7-오븐(oven)에서 구워진 식사 공물은 납작한 냄비(번철)에서 구워진 것, (뚜껑 있는) 납작한 냄비(솥)에서 구워진 것과 구별되었다. 이 세 가지 식사 공물에 의해 사랑의 선의 다양함이 의미되고 있다.
민11:8-‘그들은 (만나를) 납작한 냄비에서 끓였다’
출27:3-‘너는 재들을 거두어 갈 납작한 냄비를 만들 것이다’=사용 후 제거되는 것들.
겔4:3-이와같은 (왜곡되고 섞음질한) 진리가 ‘그가 자신과 도성 사이에 벽으로 삼고저 놓은 쇠로 만든 납작한 냄비(전철, 번철)’에 의해 의미되었다.

낫 (sickle)

이2:4-‘그들의 창들을 두드려 보습(prunning-hooks)으로’
계14:14-‘날카로운 낫’=악과 거짓의 흐트러짐. (=말씀의 신성한 진리)
계14:19-‘천사는 그의 낫을 땅으로 보냈다, 그리고 땅의 포도나무를 수확했다’=현 기독 교회의 끝.
* ‘낫을 놓는 것’=선한 자를 모으는 것, 그리고 그것들을 악한 자로부터 분리하는 것.

냅킨 (napkin)

눅19:20-‘땅에 그것들을 감추어두는 것’, 그리고 ‘냅킨 안에 감추어 두는 것’=그들은 자연적 인간의 기억에 만 있었다는 것.

너울 (veil)

창24:65-‘그녀는 너울을 취하여 자신을 덮었다’=진리의 외관.
창38:14-‘그녀는 너울로 자신을 덮었다’=진리가 애매모호함.
창38:19-‘그녀는 자기로부터 너울을 제거했다’=애매모호한 것이 사라졌다.

넝마 (rag)

예38:11-그들이 예레미야를 (구덩이에서) 끌어 올리는데 사용한 ‘낡은 천조각과 넝마’=지각되거나 이해되지 않았던바, 소홀시되고 거절되어왔던 글자 의미로부터의 선들과 진리들을 통하여 교리 속의 진리를 변론하고 회복되게 함.

단지 (urn)

출16:33-‘단지를 가져오라’=진리. 그이유가 여기서는 만나인 선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 모든 진리는 선을 위해 그릇으로 있다.

대야 (laver)

왕상7:30-33-열(10) 대야, 또는 받침들 (솔로몬의 성전 근처)에 의해 진리의 저장소(용기, 그릇)가 의미된다. 이를 수단으로 인간은 순수해지고 거듭나진다.
출30장-대야와 씻는 것에 의해 모든 예배에서 첫째인 악으로부터 순수해짐이 의미된다.
출30:18-‘너는 놋쇠로 대야를 만들라’=인간의 자연 평면의 선, 이 안에 순수해짐이 있다. (그이유가) ‘대야’, 이 안에는 씻기 위한 물이 있다=인간의 자연 평면.
출30:18-대야가 ‘회합의 천막과 제단 사이에’ 놓여진 이유, 그리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자기들의 손과 발을 거기서 씻은 이유는 심정의 순수해짐, 그리고 거듭남, 본질적 측면에서 선과 진리의 결합이 표현되도록 하려해서 였기 때문이다. 이 결합은 신앙으로부터의 진리들을 통하여 결과되어진다. 그리고 이것은 ‘물과 영에 의한’ 인간의 거듭남에 의해서도 뜻해진다.
창30:28-‘(너는 그것 가지고) 대야와 그것의 받침을 (기름바르라)=순수해짐과 거듭남의 표현. (그이유가) 씻는 것이 대야에 있는 물을 수단으로 하기 때문=순수해짐과 거듭남의 표현. 그리고 ’대야‘=인간의 자연 평면.

대접 (vial)

계5:8-‘향이 가득한 금대접들’=신앙으로부터의 선들. (=영적 선들로부터 주님의 신성한 인간을 고백함. ‘대접들’=그것들에 있는 향과 같다.) (=영적 선들로부터의 고백. 그이유가 ‘금대접들’, 또한 ‘향로들’, 그리고 향-상자들이라 불린다=선으로부터의 진리. 그이유가 모든 그릇들 같이 ‘대접들’=진리들. 그리고 이 그릇의 재료인 ‘금’=선.)
계15:7-‘일곱 대접들’=일곱 재앙들과 같다. 그이유가 재앙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 대접들이 천사들에게 주어진 이유는 취급되는 주제가 악과 거짓들이 드러내지게 하기 위하여 교회 안으로 진리와 선의 유입이 있기 때문. 그리고 발가벗은 선들과 진리들은 안으로 흐를 수 없다, 그이유는 그들이 받지 않기 때문, 그러나 옷입혀진 진리들, 즉 글자 의미로 입혀진 선들과 진리는 받아들여진다. 더구나 주님께서는 언제나 가장 안쪽으로부터 최말단쪽으로 운행하신다. 이것이 천사들에게 대접이 주어진 이유이다. 이를 수단으로 진리들과 선들을 담는 그릇이 글자 의미 같은 것임도 의미한다. 이를 통하여 거짓들과 악들은 드러내진다.
계15:7-‘대접들은 하느님의 노염으로 가득차 있다’라고 말해진다. 그이유는 그것들이 재앙들로 가득차 있기 때문, 이를 수단으로 교회의 악들과 거짓들이 의미된다. 그렇다고 그것들이 악들이나 거짓들, 노염들로 가득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교회의 악들과 거짓들을 드러내 보여줄 수단인 말씀으로부터의 순수하고 진짜인 진리들과 선들로 가득차 있다. 게다가 그것들은 실제로는 그것들 안에 진리들과 선들을 담은 대접도 아니다, 그러나 이 글자를 수단으로 천국으로부터 교회 안으로 유입됨이 의미된다.
계16:1-‘가서 땅 안으로 하느님의 노염의 대접들을 쏟아라’=교리에 관련해, 생활에 관련해 선행으로부터 분리된 신앙 안에 있는 이들이 있는 개혁(the Reformed)의 교회 안으로 유입됨, 그리하여 그들로부터 진리들과 선들을 거두어 가기 위해, 그리고 그들이 지닌 악들과 거짓들을 열어보이기 위하여, 그리하여 그들을 주님을 믿는 이들, 그분으로부터 선행과 선행으로부터의 신앙에 있는 이들을 분리하기 위하여서이다. 이것이 이 장에 포함된 것의 요약들이다. ‘대접을 쏟는 것’=유입. ‘일곱 마지막 재앙들로 가득한 일곱 대접들’=그들의 황폐해짐과 극점에 도달함.
계16장-‘하느님의 노염의 대접들이 땅으로 쏟아졌다’=교회에 범람하고 파괴한 거짓들.
계16:2-‘땅 위에 대접을 쏟는 것’=일반적 측면에서 교회의 상태가 명명백백해짐.
계17:1-‘일곱 대접들을 가졌던 일곱 천사들 중의 하나가 왔다’=교황 절대주의자와 더불은 교회의 상태.

덫 (snare)

출10:7-‘덫으로 있는 것’=자신의 악을 수단으로 취해지는 것, 고로 벌받도록 악 안으로 데려와지는 것.
출23:33-‘네게 덫으로 있을 것이다’=악들의 사기와 유혹.
출34:12-‘덫으로 있는 것’=자신의 악과 거짓에 의해 유혹되고 초래되는 것.
시18:5-‘죽음의 덫’=시험들.
시11:6-‘덫, 불, 유황’=거짓으로부터의 악, 그리고 악으로부터의 거짓들. (=유혹하는 악과 거짓들).

덮개 (veil)

* 휘장(veil)을 보라.

덮다 (cover)
덮개 (covering)

창9:23-‘그들은 아버지의 벌거벗음을 덮어드렸다’=그들은 이런 것들을 너그러이 봐주었다는 것.
이29:10-그들이 진리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할 때, 아무 것도 보지 못할 때 선견자들이 ‘덮혀’진다라고 말해진다.
창38:15-‘덮는(싸는) 것’=감추는 것.
출3:6-‘모세는 자기 얼굴을 덮었(가렸)다’=내면들이 보호되는 것.
출8:6-‘이집트의 토지를 덮었다.’ ‘덮는’ 것이 자연적 마음에 관련해 말해지는 바,=거짓들로 채워졌다는 것, 그로부터 추론했다는 것(개구리들).
출14:28-‘병거와 마병을 덮었다’=그들 자신의 거짓들이 그들을 감추었다.
출15:10-‘바다가 그들을 덮었다’=모든 거짓들이 그들에게로 모여들었다.
출16:13-‘진영을 덮었다’=모든 자연 평면을 메웠다.
겔1:11-‘날개들이 그들의 몸을 덮었다’=신성한 선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가 신성한 선을 덮었다.
출25:20-‘그들의 날개들로 자비석을 덮고 있다’=영적인 것들이 안에서 덮고 있다.
출26:13-‘덮는 것’=보호하는 것.
출28:42-‘벌거벗음의 살을 덮는 것’=사랑의 내면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이것은 더럽고 지옥적이다.
신23:13-그들이 ‘이것을 덮게’된 이유는 지옥에 있는 그와같은 모든 장소들이 덮혀지고 닫혀졌기 때문.
창7:19-‘모든 높은 산들이 덮혀졌다’=선행으로부터의 모든 선들이 소멸되었다.
창38:14-‘그녀는 자신을 덮었다’=고로 인정되지 않았다; 그이유가 ‘덮는 것’=감추는 것.
출26:36-‘천막의 문이 되는 걸어두는 가리개(hanging)’=선과 진리의 나타남들. 이것은 매개 역할을 하는 것들, 이 안에 둘째 천국의 천사들이 있다. 이 덮개를 위해 다섯 기둥과 기초가 세워졌는데, 이 숫자를 수단으로 상대적으로 적음(little)이 의미된다.
출27:16-‘뜰의 문이 되는 걸어 두는 가리개(hanging)’=선과 진리의 나타남들. 이는 가장 낮은 합리성으로부터 있다, 이 안에 첫째 천국의 천사들이 있다. 그것의 기둥들은 금으로 덮지 않고 은으로 에워쌌다. 그리고 그것들의 기초들은 놋쇠로 되었다.
출21:10-‘그녀의 덮개’, 또는 의복=외면의 생활을 지지함. 그이유가 영적 의미에서 ‘덮개’, 또는 의복=더 낮은 과학물들, 그리고 이것들은 인간의 외면의 생활을 영적으로 지지하는 것이다.
출22:27-‘이것은 그의 유일한 덮개이기 때문이다’=감각적인 것들이 내면의 것들 아래 놓여져 있기 때문에. ‘덮개’, 또는 옷=감각인 것.
이4:5-‘낮에는 구름, 밤에는 연기, 그리고 덮개’=신성한 진리로 베일을 씌움. 고로 납득하는 수준에 맞추어 (신성한 진리가) 숙박함.
출26:14-‘너는 천막을 위한 덮개를 만들 것이다’=범위, 영역(a compass). 그이유가 붉은 숫양의 가죽으로 만든 이 덮개는 천막을 주위와 위 쪽의 범위를 만들었기 때문.
출26:14-‘그 위에 오소리의 가죽들로 덮개를…’=그것의 바깥쪽. ‘덮개’=범위.
출26:36-‘너는 천막의 문이 되는 걸어 놓는 가리개(hanging)를 만들 것이다’=첫째 천국을 둘째 천국과 하나로 되게 하는 매체.
출27:16-‘뜰의 문으로 사용되는 걸어두는 가리개(hanging)=이 천국 안으로 소개함, 그리고 준비된 자 외에는 들어가지 않도록 지킴.
겔28:13-글자 의미에서 그러하듯 선으로부터 명백해진진리들이 이 귀한 돌들에 의해 의미되는 바, 그것들은 그의 ‘덮개’라 불리운다.
창20:16-‘이것은 너에게, 너와 더불어 있는 모든 이에게 눈들의 덮개이다’=합리적 진리들은 영적 진리들에 의복, 또는 덮개로서 있다는 것.
창49:11-‘포도의 피 안에 그의 덮개가…’=그분의 지적인 것은 그분의 신성한 사랑으로부터의 신성한 선이다는 것. ‘덮개’=지적인 것. 그이유가 덮는 것은 담는 그릇 같이 수용하는 것이기 때문.
출34:33-모세의 얼굴에 ‘덮개’를…=율법의 외부.
출34:34-‘그는 밖으로 나갈 때까지는 덮개를 제거했다’=그 당시 계발되는 상태.
이25:8-‘모든 나라들 위에 있는 덮개’

도구 (tool)

* graving tool을 참조하라.

도끼 (axe)

출20:22-‘연장, 정, chisel’=예술에 의해 변형시킨 진리, 고로 자아로부터 각색된 진리…’정’ 대신 말씀의 다른 곳에서는 ‘쇠’, ‘도끼’가 언급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연장들에 의해 인간 고유의 총명으로부터 있는 것들, 예술에 의해 변형된 것들이 의미되어진다.
신19:5-‘그가 그의 동료와 함께 나무를 자르러 숲에 올 때, 그리고 그의 손이 도끼를 가지고 나무를 자르려 내려침이 빗나갈 때, 그래서 죽은 그의 동료를 발견할 때’…연장(tool)=과학적인 것, ‘돌, stone’=신앙으로부터의 진리, 그리고 반대 의미에서 거짓. 도끼의 쇠 역시 마찬가지이다.
계20:4-‘예수의 증거와 하느님의 말씀 때문에 도끼로 처죽임을 당한 혼들’이란 한층 더 낮은 땅에 주님에 의해 숨겨져왔었던 사후 사람들을 말한다. 그들이 ‘도끼로 죽임을 당했다’고 말해지는 이유는 그들은 외형상으로는 신성한 예배 안에 있지만 실상 자기 고유의 총명으로부터, 자기의 기발난 착상으로부터의 거짓들에 파묻혀 사는 이들에 의해 거절당한 이들이기 때문.
예10:3, 46:22, 시74:5-7, 신20:9-‘도끼’에 의해 인간 고유의 총명이 의미되어지고 있다. 그이유는 ‘철’이 최말단들에 있는 진리, 즉 감각적 진리라 불리우는 진리를 의미하기 때문, 그리고 이 진리가 합리적 진리와 영적 진리로부터 분리될 때, 거짓으로 바뀌어진다. 이것=인간 고유의 총명으로부터의 거짓인 이유는 감각적인 것은 자아 안에 있기 때문.
삼하12:31-‘쇠 도끼’에 의해 지옥에서 몽상을 통하여 사용을 만드는 것 같은 도구들이 뜻해진다.
예10장-‘도끼’=선을 파괴하고 악을 확증하는 거짓.
신19장-‘도끼’=거짓…그러므로 이 명령이 의미하는바, 만일 누군가 자연적 선 안에 있는데, 그가 거짓인 줄 모른채 거짓 가지고 누군가의 혼을 피괴할 경우, 이것은 실수로 벌어진 일로 가늠될 것이다.

도장 (signet)

* 봉인(seal)을 보라.

두루마리 (roll)

겔2:9,10, 3:1-‘앞과 뒤에 씌어진 책의 두루마리’=그 당시 교회의 상태, 고로 교회 속의 이들의 생명의 품질.
예36장-‘여호야김이 태운 책의 두루마리’=말씀…
슥5:1-‘날고 있는 두루마리’.

둠밈 (thummin)

* 우림(urim)을 보라

드라빔 (teraphim)

창24:10, 31:19-34-라반은 형상들, 또는 드라빔을 예배했다, 이것을 라헬이 가져갔다.
창31:19-‘라헬이 드라빔을 훔쳤다’=진리들을 가져가버리는 것.
호3:4-‘에봇과 드라빔’=대답들을 수단으로 그들이 받았던 신성한 진리들.
슥10:2-‘드라빔’=대답들, 그러나 이 상태에서는 잘못된 대답들.
창31:34-‘라헬이 드라빔을 가져갔다’=신성으로부터 있는 내면의 자연적 진리들…‘드라빔’=신성으로부터 있는 진리들.
창31:35-‘그는 수색했다, 그리고 드라빔을 찾지 못했다’=이 진리들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

등불 (lamp)

계4:5-‘하느님의 보좌로부터 나오는 일곱 불(torch)은 일곱 등불이다.’
마25:1-(열 처녀들의) 등불들=사랑.
마25:1-‘자기들의 등불을 가지고…’=천적인 것이 안에 있는 영적인 것, 또는 선이 안에 있는 진리들. 또는 같은 것으로 달리 표현하면, 이웃을 향한 선행이 있는 신앙. 그리고 주님을 사랑함이 안에 있는 선행. 그러나 ‘기름이 없는 등불’=선이 안에 있지 않은 것.
마25장-‘등불들’=신앙으로부터의 진리.
계8:10-‘마치 횃불(torch)처럼 타는 큰 별이 천국으로부터 떨어졌다’=지옥의 사랑으로부터 근원되어 나오는 자만으로부터 자기 총명의 나타남. ‘별’과 ‘횃불’은 총명이 의미된다. 여기서의 경우, 자기의 총명, 그 이유는 이것이 타는 것이 보여졌기 때문. 그리고 모든 자기 총명은 자만으로부터 불탄다.
계4장-‘등불들’=신성한 진리들.
마25장-‘등불들’=신앙으로부터 있는 것들.
마25장-‘등불’=신앙.
마25장-‘등불들’=신앙으로부터의 진리들.
시18:28-‘나의 등불을 켜는 것’=신성한 진리를 통하여 이해성을 계발하는 것.
마25장-‘등불들’=진리와 선에 대한 지식들. 여기서의 경우, 말씀으로부터. 그리고 또한 교리로부터의 진리들과 신앙으로부터의 진리들.
출27:20-올리브의 기름이 등불을 위해 고용된 이유는 그것이 천적인 모든 것을 표현했기 때문.
슥4:2-‘등불들’=천적인 것들, 이로부터 영적인 것들이 있다. 마치 불꽃으로부터 빛이 있듯.
시132:17-‘등불’=진리의 빛.
계18:23-‘등불의 빛이 빛을 내지 않을 것이다’=진리의 총명이 없다.
계21:23-‘등불’=주님으로부터 있는 신성한 진리.
계18:23, 예25:10-여기서 신앙의 꺼짐, 그리고 영적인 것들에 있는 파생된 총명의 꺼짐이 취급된다. 즉, ‘더 이상 있지 않을 등불, 그리고 거두어져 갈 등불의 빛.’
시119:105-‘당신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다.’
마6:22-‘몸의 등불은 눈이다.’
왕상11:36, 15:4, 왕하8:19, 삼하21:17-신앙, 그리고 파생되는 총명과 지혜가 ‘등불’에 의해 의미되는바, 유다의 왕들은 ‘다윗의 등불들’이라 불린다. 그리고 다윗은 ‘이스라엘의 등불’이라 불린다. 사실, 유다의 왕도, 다윗도 등불은 아니지만 그렇게 불린 이유는 왕에 의해 주님으로부터 있는 신성한 진리가 의미되기 때문에서이다. 그리고 다윗에 의해 신성한 진리에 관련한 주님이 의미되어진다. 이 진리로부터 신앙이, 총명이, 지혜가 있다.
출25:37-‘너는 거기로부터 등 일곱을 만들 것이다’=그때부터 있는 거룩한 영적인 것들. ‘등’=신앙과 진리로부터의 총명, 이것은 주님으로부터 있는 진리이다. 고로 영적 평면. 신성한 진리는 주님으로부터 있고 이 진리를 통하여 신앙, 총명, 지혜가 있기에 영적 평면인 것이다. 등의 개수가 일곱인 이유는 신성한 진리로부터 신앙, 총명, 지혜가 있는바 거룩하다 불리우기 때문.
출27:20-‘등불이 계속적으로 밝히고 있게 할 것이다’=그때부터 신앙, 그리고 신앙을 통하여 진리의 총명과 주님으로부터의 선의 지혜가 있다. ‘등’=신앙인 이유는 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는 천국들에서 빛이기 때문. 거기서 천사들에 의해 받아지는 이 빛, 또는 인간에 의해 받아지는 이 빛은 등불과 같다. 이것은 마음 속의 모든 것들을 계발한다, 그리고 총명과 지혜를 준다. 받은 빛이 신앙이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신앙이 선행으로부터 있지 않으면, 신앙은 등불이 아니고, 마음을 계발해주지도 못한다.
시132:17-‘등불’=총명을 있게 하는 신성한 진리.
출27:20-‘등불’=신앙으로부터의 진리와 선.
출30:7-‘등불을 단장하면서…’=진리 역시 빛 안으로 올 때. ‘등불들’=신성한 진리, 그리고 파생되는 총명과 지혜. ‘등불을 단장, 또는 불을 붙이는 것’=이런저런 것들이 그것들의 빛에 올 때.
계18:23-‘등불의 빛이 더 이상 네 안에서 빛을 내지 않을 것이다’=이들과 더불어 주님으로부터의 어떤 계발도 없다, 그리고 영적 진리에 대한 파생되는 어떤 지각도 없다.
계22:5-그들은 등불이 필요 없다‘=새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은 자연적인 발광체로부터 하느님에 관한 지식들 안에 있지 않을 것이다.
시132편-‘등불’=신성한 총명을 있게 하는 신성한 진리.
시132:17-‘나는 내 기름부은 자를 위하여 등불을 배치할 것이다’=주님 안에서 신성과 인간의 합일로부터 신성한 진리가 계발됨. ‘등불’=계발에 관련한 신성한 진리.

막대 (rod)
지팡이 (staff)

겔29:6-‘갈대 지팡이’=그러한 힘(power).
시105:16-‘빵의 지팡이를 부러뜨리는 것’=천국적 양식이 결핍되는 것.
호4:12-‘그들의 지팡이가 그것을 암시할 것이다’=그들 자신의 이해성 속의 상상의 힘.
이3:1-‘빵의 지팡이, 물의 지팡이’, 이것이 ‘제거될’ 것이다=선과 진리.
민21:10-‘그들의 장대들’=그들이 가진 힘.
창20:37-‘야곱은 포플러의 싱싱한 막대를 가져왔다’=자연적 선에 어울리는 힘.
창32:10-‘지팡이’=힘, 그리고 진리를 서술하고 있다.
창38:18-‘네 손에 있는 지팡이’=이 진리의 힘을 수단으로.
시23:4-‘당신의 막대’, 그리고 ‘당신의 지팡이’=신성의 진리와 선, 이 안에 힘이 있다.
예1:11-‘막대’=힘.
출4:2-‘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는 말했다, 막대입니다’=주님의 신성한 인간의 힘.
출4:17-‘네 손에 이 막대를 가져가라’=그것들 안에 있는 신성의 힘.
출4:20-‘모세는 자기 손에 하느님의 막대를 가져갔다’=신성의 힘으로부터 있는 이것저것들.
출7:9-‘네 막대를 가져가라, 그리고 그것을 바로 앞에 던져라’=보여지는 힘.
출7:12-‘아론의 막대가 그들의 막대들을 삼켰다’=힘이 그것들로부터 거두어졌다는 것.
출7:15-‘뱀으로 변한 막대를 네 손 안에 가져가라’=전과 같은 힘.
출9:23-‘모세는 자기의 막대를 하늘을 향하여 뻗쳤다’=천국과 교통됨.
출10:13-‘모세는 자기 막대를 이집트의 토지 너머로 뻗쳤다’=신성으로부터의 진리의 힘이 통치함.
출12:11-‘네 손에 있는 네 지팡이’=매개하는 것들에 관련하여.
출14:16-‘네 막대를 들어올려라’=신성한 진리의 힘.
호4:12-‘그들의 지팡이가 그들에게 대답한다’=인간 자신의 총명으로부터 있는 상상의 힘.
삼하3:29-‘지팡이로 자신을 떠받치는 것’, 즉 절름발이=모든 선이 파괴된 이들.
출21:20-‘지팡이로 쳐죽이는 것’=자신의 힘으로부터 나쁘게 대우하는 것.
겔39:9-‘손-지팡이’=선으로부터 진리의 힘.
이30:32-‘기초(foundations)의 지팡이’=진리의 힘.
계11:1-‘지팡이를 닮은 갈대’=주님으로부터의 힘.
민17장-‘지파들’을 위한 히브리어에 있는 두 단어들=홀(sceptre)과 막대. 홀은 통치(권) 측면에서의 신성의 진리, 그리고 막대는 힘 측면에서의 신성의 진리가 의미되어지고 있다. 백성들이 불평을 늘어 놓자 명령이 떨어졌다. 즉 모든 지파들의 제 일 인자들은 성막에 자기들의 막대를 놓아두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 사이에 레위의 막대가…그 막대에는 아론의 이름이 씌여 있고, 그리고 이 막대에 아몬드가 열렸다. 막대는 지파와 비슷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레위의 막대’는 레위 지파로 의미되는 선행의 선, 그리고 사랑의 선이 의미된다.
이3:1-‘빵의 모든 지팡이, 그리고 물의 모든 지주(stay)’=사랑의 모든 선과 신앙의 진리…‘지팡이’, 그리고 ‘지주’=힘들, 그러므로 영적 생명의 모든 것들.
슥10:11-‘이집트의 지팡이가 떠날 것이다’=추론들에 근무하는 과학물들은 아무 쓸데 없을 것이다.
민21:18-‘그들의 장대를 가지고’=마음의 능력과 세력, 여기서는 말씀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이36:6-(이집트, 상한 갈대의) 지팡이=거기로부터 지각함의 힘, 또한 추론함의 힘, 진리들…‘이 지팡이에 기대는 것’=진리들을 지각함에서 자신의 힘을 신뢰하는 것, 그리고 자아로부터 그것들에 관하여 추론하는 것.
겔29:6-그들의 신뢰함이 ‘갈대 지팡이’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예48:17-‘어떻게 강함의 지팡이, 아름다움의 막대가 부러졌을까’=그들은 힘의 측면에서 신성의 진리를 더 이상 갖지 못했다는 것. ‘강함의 지팡이’=자연적 의미에서의 신성한 진리의 힘, 그리고 ‘아름다움의 막대’=영적 의미에서의 신성한 진리의 힘.
시110:2-‘네 강함의 막대’=힘 측면에서의 신성의 진리.
계12:5-‘쇠 막대’=주님의 말씀 속에 있는 (영적) 진리.
이10:24-신앙의 진리들에 맞서 과학물들로부터 추론하는 이들의 힘이 ‘막대를 가지고 앗수르를 쳐부술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시2:9-‘쇠 막대’=자연 안에서 영적 진리의 힘.
이11:4-‘그분의 입의 막대’, 그리고 ‘그분의 입술들의 숨’=신성의 진리로부터 심판이 있다.
계2:27-‘그분은 그들을 쇠 막대로 통치하실 것이다’=글자 의미로부터의 진리들을 통하여, 동시에 자연의 루멘(lumen, 빛)으로부터의 합리적인 것을 통하여 …
계12:5-‘쇠 막대로 만국을 돌보는 자’=위의 의미와 같다.
겔19:12-‘그녀의 가지들로부터의 막대’=안에 악이 있는 교리 속의 거짓.
겔19:11-‘강함의 막대들’=힘 측면에서의 신성의 진리.
미7:14-‘네 막대로 네 백성에게 풀을 먹임’=말씀으로부터의 신성의 진리들 안에서 교인들을 가르침. ‘막대’, 여기서는=말씀, 그이유는 말씀=신성의 진리이기 때문.
애3:1-‘그분의 격노하심의 막대‘=지옥의 거짓을 통치함.

말뚝 (peg)

* ‘말뚝’, 또는 ‘못’=첨부(affixion), 부가(adjunction).
출27:19-‘거기로부터의 모든 말뚝(peg)들, 그리고 뜰의 모든 말뚝(pins)들은 놋쇠로 만들 것이다’=선을 통하여 양쪽 천국들, 중간 천국과 최말단 천국을 튼튼히게 하고 결합하는 모든 것들. ‘말뚝(pins)’=함께 결합되게하여 견고해지게 하는 것들.

망치 (hammer)

* 도끼, axe도 참조.
예51:20-신성한 진리가 주님이시다…이로부터 …주님은 ‘망치’라고 불리신다.
이44:12-‘날카로운 망치들로 해서 그는 그것에 모양을 만든다’=거짓으로부터의 교묘한 추론들을 수단으로 그들은 조리가 선 듯 나타나도록 한다.
예23:29-말씀이 ‘불로서’, 그리고 ‘망치로서’ 이다고 말해진다, 그이유는 ‘불’=사랑의 선, ‘망치’=신앙의 진리. ‘망치’는 ‘철’과 비슷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철’=최말단에 있는 진리. 그리고 신앙으로부터의 진리.
예10:4-조리가 섬, 부합됨(coherence)이 자아로부터 확증함을 수단으로 만들어졌다가 ‘그는 그것들이 움직이지 않도록 못과 망치를 가지고 단단히 조인다’로 묘사되어 있다.

면도칼 (razor)

이7:20-영적 지혜와 총명이 박탈됨이 ‘삯을 내고 빌린 면도칼로… 깎음’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겔5:1-‘면도칼이 머리를 지나가게 하는 것’=진리에 관한 모든 총명이 박탈되는 것.

물동이 (basin)

이22:24-‘작은 그릇(종지, 사발)으로부터 큰 그릇(항아리)에 까지 조차’
출24:6-‘그리고 그것을 물동이들에 놓는다’=인간과 더불어, 그의 기억 속의 것들 안에. ‘물동이들’=기억 속의 것들…‘물동이들’, 여기서=그것들 내부에 신성한 진리들을 함유하는 기억 속의 것들, 일반적으로 ‘피’에 의해 신성한 진리들이 의미된다.
* 과학적인 것들이 그릇들이다, 그리고 말씀에서 갖가지 종류의 그릇, 즉 ‘물동이’, ‘잔’, ‘물항아리’ 등으로 의미되고 있다.
이22:24-천적 지주로부터의 과학적 진리들이 ‘사발 그릇들’이다. 그리고 영적 지주로부터의 과학적 진리들은 ‘항아리 그릇들’이다.
슥14:20-‘말 방울’=계발된 지적인 것으로부터의 과학적 진리들. 그리고 ‘제단 앞의 사발들’=과학적인 선들.
출27:3, 38:3-비슷한 것들이 제단의 물동이들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시60:8, 108:9-‘모압은 나의 씻는 물동이 이다’
* ‘씻는 물동이’=선한 것이 거짓들로 더럽혀졌다.
출12:22-‘큰 물동이에 있는 것’=자연의 선에 있는 것. ‘큰 물동이’=자연의 선. 일반적으로 그릇에 의해 자연 속에 있는 과학적인 것들이 의미되어진다…그러므로 그들 역시 자연을 의미한다…그이유가 자연은 일반적으로 그릇 역할을 하기 때문. 특별히 나무와 놋쇠 그릇은 자연 속의 선들이 의미된다…그런고로 ‘큰 물동이’=자연 속의 선 (자연적인 선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요13:5-‘물동이(대야)에 있는 물’에 의해 자연에 있는 신앙 속의 진리가 뜻해진다.

물주전자 (cruse)

왕하2:20-‘새 물주전자’, 또는 새 그릇=과학물과 선과 진리에 관한 (영적) 지식들.

물통 (cistern)

* pit도 참조
신6:11-‘파진(dug) 물통(우물)’=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으로 가득한 자연적 마음의 내면들.
신6:11-‘오려낸(cut out) 물통’=자연적 인간에 있는 총명의 모든 것들, 이는 영적 지식과 자연적 지식이다.

물항아리 (water-pot)

요2:6-‘유대인의 씻는 (관습)에 따라 거기에 돌로 만든 여섯 물 항아리가 있었다’=말씀에 있는 모든 이런 진리들, 그리고 거기서부터 유대 교회와 예배.

바구니 (basket)

신26:2,4-‘바구니’=지적 부분에 있는 새로운 자발적 속성
창40:16-‘보라 세 바구니’=연속으로 있는 자발적인 것들…‘바구니들’=자발적인 것들. ‘바구니=자발적인 것들인 이유는 그것들이 음식을 붙잡기 위한 그릇들이기 때문.
창40:16, 출29;3,32-‘바구니’, 히브리어의 경우 두 성경 모두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 그리고=자발적 속성, 이 안에는 ‘빵’, ‘과자’, ‘기름’ 등등에 의해 의미되는 선인 것들이 있다. 자발적 속성에 의해 담는 그릇이 의미된다.
창40:16, 민6:15,17,19-‘바구니’=담는 용기로서의 자발적 속성.
창40:16, 사6:19-이 때 비슷한 것들, 이는 예배를 위해 있던 것, 바구니로 운반되어졌다…그 이유는 바구니가 담는 용기를 표현했기 때문, 그리고 그들 안에 있었던 것들, 뭔가를 함유한 것을 표현했기 때문.
창40:16-‘내 머리 위에 구멍이 가득한 바구니들’에 의해 내면의 것들이 중간에서 어떤 종결됨도 없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창40:17-‘맨 위쪽 바구니 안에’=자발적 속성의 가장 안쪽. ‘바구니’=자발적 속성.
창40:17-‘새가 내 머리 위에 있는 바구니로부터 먹고 있다’=악으로부터의 거짓이 소비해버렸다…‘바구니’=자발적 속성, 여기서, 자발적 속성으로부터의 악인 것, 그이유는 바구니가 구멍이 뚫려 있었기 때문.
마14:20-‘먹고 남은 부수러기의 열 두 바구니’=진리와 선에 관한 (주님으로부터의) 지식들이 아주 풍부하고 가득하게 있음.
마14:20-‘그들은 먹고 남은 부스러기의 열 두 바구니를 거두었다’=충만인 것, 고로 충분한 가르침 그리고 충분한 복주심.
예24:1,2-‘바구니들’=좋은 것들이 거기에 있는 한도에서 자발적인 것들…여기서 ‘바구니’는 원어의 또다른 단어에 의해 표현되어져 있는데, 자연에 있는 자발적 속성이 의미되고 있다. 바구니 중의 하나에 있는 ‘좋은 무화과들’은 자연적 선들, 또 다른 바구니의 ‘불량한 무화과들’은 자연적 악들이다.
출29:3-‘너는 한 바구니에 그것들을 놓아라’=이런 것들이 있는 감각 평면. ‘바구니’=감각 평면인 이유는 감각 평면은 인간 삶의 최말단, 그리고 내면의 것들이 최말단에서 질서적으로 저장되고 있기 때문.
출29:3-감각적 즐거움, 이는 자발적 속성의 최말단인데, 말씀에서 ‘바구니’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그리고 최말단이 모든 내면적인 것들의 그릇이기에, 내면의 것들 역시 이 그릇에 의해 뜻해지기도 한다…‘바구니’에 의해 자발적인 선들, 반대 의미에서 악들…‘바구니들’은 복합체에 있는 자발적인 선들이다. 자발적인 선과 천적인 선은 같은 말이다….따라서 바구니 안에 놓여진 것들이 천적인 선들도 의미한다.
출29:23-‘누룩 넣지 않은 것들의 바구니로부터’=감각 평면에서 함께 있는 것. ‘바구니’=바깥쪽 감각 평면, 이 안에 이런 (선들이) 함께 있다.
출29:32-‘그리고 바구니에 있는 빵’=주님으로부터 있는 천적인 선을 자기 것되게 함…‘바구니’=바깥쪽 감각 평면.

바늘 (needle)

마19:24-‘바늘의 눈’은 영적 진리를 의미한다.

반죽통 (kneading-trough)

출8:3-‘반죽통’=자연 평면에 있는 탐욕들로부터의 즐거움들, 그러나 아직 더 외면적인 것들, 그 이유는 반죽통들은 빵을 위해 반죽을 준비하는 그릇이기 때문.
출12:34-‘그들의 반죽통들을 그들의 의복으로 묶었다’=애착들로부터의 즐거움, 이 즐거움은 진리들에 인접하고 있다. ‘반죽통’=애착으로부터의 즐거움

방울 (bell)

슥14:20-‘말들의 방울들’=거룩함인 말씀의 영적인 것들을 이해함.
출28:33-‘금 방울들’=계발된 지적 평면으로부터 있는 과학적인 진리들.
출28:33-‘금 방울들’=교회 속에 있는 이들에게 건너가는 선으로부터의 교리와 예배의 모든 것들.
출28:34-‘한개의 금 방울과 석류, 한 개의 금 방울과 석류, 빙둘러 도포의 자락에=모든 곳, 그리고 전체적으로.
출28:35-방울들의 소리, 또는 울림이 여기서 ‘목소리’라 불리우고 있다. 이밖의 말씀에서도 역시 천둥이나 나팔의 소리, 울림이 ‘목소리’라 불리운다. 이것에 의해서 신성의 진리들이 의미되어진다.
슥14:20-‘그 날에 말들의 방울들 위에 여호와께 거룩함이 있을 것이다.’ 주님의 강림, 그리고 모든 이를 교회에 초대함이 취급되고 있다. ‘말들의 방울들’에 의해 과학물들, 그리고 지식들과 진리를 이해함으로부터 있는 설교들이 의미되어진다. 그리고 진리에 대한 모든 이해는 주님으로부터 있고, 그 이해는 지식들과 설교들 자체이기도 한 바, ‘말들의 방울들 위에 여호와께 거룩함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해진다. ‘방울들’이 이런 것들을 의미하는바, 아론의 도포 자락을 빙둘러 금 방울이 있었다.

베개 (pillow)

창28:11-‘그는 그의 베개로 그것을 놓았다’=신성과의 가장 일반적인 왕래(communication).

부젖가락 (tongs)
불집게

출25:38-‘그것의 부젖가락과 불찌기 담는 접시’=자연 평면에서 정화 장치와 빼내는 장치.
이44:12-‘그는 부젖가락을 가지고 철을 제조한다’=그가 진리라 부르는 거짓.

부채 (fan)

마3:12-‘부채’=분리함

비누 (soap)

말3:2-‘빨랫집의 비누 같이’
욥9:30-‘만일 내가 내 손을 비누로 씻는다면’, ‘비누’=선, 이로부터 (그는 깨끗해진다).
예2:22-‘네가 많은 비누로 씻을지라도’

사슬 (chain)

이40:19-‘금속 장인이 그것을 금으로 덧씌우고 은으로 사슬을 주조한다’=추론을 수단으로 그는 교리의 거짓들이 진실로 나타내게 한다는 것.
이40:19-‘은으로 사슬을 주조한다’=그것들이 진리들과 연결된다는 것을 조리가 서게 만드는 것.
출28:14-‘순금의 두 사슬들’=전체 왕국의 선은 서로 일치함. ‘사슬들’=일치함. 사슬이 이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사슬은 서로를 함께 결합하는 수단이기 때문.
출28:14-‘너는 박아끼운 것 위에 꼬아만든 사슬을 놓을 것이다’=진리들이 오게하는 선을 가지고 결합함, 하여 영적 왕국은 모든 일과 힘을 수단으로 보존된다는 것.
출28:22-‘너는 가슴판 위 끝에서 사슬을 만들어라’=가장 바깥의 것에서 전체 천국이 결합함…‘사슬’=밀착함, 고로 결합.
계20:1-‘그의 손에 큰 사슬을 가지고’=노력함 그리고 묶고 푸는 행동.
나3:10-‘사슬을 가지고 묶는 것’=진리들이 생겨날 수 없게 거짓들을 수단으로 묶는 것.

상자 (box)

이60:13-‘상자’ 등등=자연적인 것 속의 천적인 것들 (=상응하는 자연적 선들과 진리들)
이41:9-‘상자’ 등등=자연 평면으로부터 있는 선과 진리.
이41:9-‘상자’=자연 평면에 있는 선과 진리를 이해함.

상자 (coffer)

출2:3-‘그녀는 골풀(rush)로 만든 상자를 가져왔다’=주변을 (에워싼) 하찮은 것…‘상자, 또는 작은 궤’=어떤 것을 에워싼 것.
* ‘골풀 상자’=하찮기는 하나 그럼에도 진리로부터 파생된 것.

성구함 (phylactery)

마23:5-‘그들이 넓게 만드는 성구함’=외적 형체에 있는 선들.

송곳 (awl)

출21:6, 신15:17-‘문설주에 대고 송곳으로 귀에 구멍을 내는 것’=영구히 섬기는 것, 또는 순종하는 것. 영적 의미에서=참된 것을 이해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 것, 그러나 순종으로부터 참된 것을 뜻하는 것, 이는 상대적으로 자유하지 못하다.
출21:6-‘귀’=순종, 그리고 ‘그것을 송곳으로 뚫는 것’은 그가 남아있어져야 하는 상태의 표현.
출21:6-‘문, 또는 문설주에서 송곳으로 뚫는 것’=첨부하는 것, 여기서, 순종이 다루어진다, 이것은 붙이는 것이다.

수레 (cart)

삼상6:7-그들이 궤를 되돌려보내는데 사용한 새 수레‘=새 교리, 또는 자연적 교리. 그이유가 ’병거(chariot)’는 영적 진리들로부터의 교리이기 때문. 수레와 더불어 암소들이 태워 바침을 위해 제공되었다=주님이 화해시켜지는 것.
삼상6장-‘수레’=자연적 진리로부터의 교리, 그리고 ‘새 수레’=손상되지 않은 교리, 그리고 악으로부터의 그들의 거짓들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은 교리.

수레바퀴 (wheel)
회전하다 (rotate)

이5:28-회오리 바람 같은 그분의 수레바퀴들‘=(자연적 진리들)로부터의 교리. (=뒤집고 파괴하는 진리들의 힘들), (=글자 의미에 있는 것과 같은 최말단 진리, 그리고 이 진리에 의한 확증들).
예47:3-‘그의 수레바퀴의 시끄러움에…’=(거짓 교리를) 촉진시키는 감각적인 것들과 오류들.
나3:2-‘수레바퀴 소리의 음성’=오류들을 수단으로 거짓을 방어함. (=악과 거짓들로부터 추론함).
출14:25-‘그분은 그들의 병거들의 수레바퀴들을 벗겼다’=거짓들을 주입하려는 힘이 제거되어졌다…‘수레바퀴’=전진하게 하는 힘. 이 힘은 인간의 지적 부분에 속하는바, (병거의) 수레바퀴=교리에 속하는 것들 측면에에 관련된 지적인 것.
겔1, 10장-‘수레바퀴들’=신성한 총명, 즉 예견. 그리고 그러므로 ‘수레바퀴들은 살아있는 생물과 함께 갔다’라고 말해지고, 그리고 ‘그것들의 날개들은 눈들로 가득했다’라고 말해지고, 또한 ‘살아있는 생물의 영이 그것들 안에 있었다’라고도 말해진다. 즉 지혜로부터의 진리.
단7:9-‘타고있는 불 같은 그분의 수레바퀴들’…‘그분의 수레바퀴’=지혜와 총명 속에 있는 것들, 고로 신성으로부터 있는 진리들(truths Divine). ‘타고 있는 불’=사랑과 선행 속에 있는 것. (=천적 사랑으로부터의 교리).
왕상7:33-‘수레바퀴들’=지적인 힘들, 이를 수단으로 발전이 있다.
겔1:16, 10:9-‘거룹들의 수레바퀴들’=인간의 경우 팔이나 다리 같은 것, 즉 전진과 발전을 하게 하는 선으로부터의 진리에 속하는 것들. 이로부터 ‘그들의 양상은 녹주석(beryl stone)의 것 같았다. ’녹주석‘=영적 선으로부터의 진리, 이 진리가 힘을 가지고 있다.

실 (thread)

출28:28-‘적등색(hyacinthine)의 실을 가지고’=진리의 천적 사랑을 통하여 (=천적 사랑으로부터의 진리).
민15:38-‘적등색의 실’=진리로부터 천적 사랑에 있는 이들에 의해 여호와의 가르침들이 재수집됨.
겔40:3-‘아마(flax) 실’=진리.
이19:9-‘비단(silk) 실’=영적 진리.

씻는 통 (wash-pot)

시108:9-‘모압은 나의 씻는 통’=선이 거짓들로 더럽혀졌다.

안장 (saddle)

창22:3-‘그는 나귀에 안장을 얹엇다’=그가 준비한 자연적 인간.

여물통 (manger)

눅2:12=말씀으로부터의 진리에 관한 교리. 이는 말(horse)이 말씀을 이해함을 의미한다는 사실로부터 알 수 있다….그러므로 ‘여물통’, 말 목장이 있는 곳은 말씀으로부터의 진리에 관한 교리가 의미된다.

열쇠 (key)

마16:19-‘나는 천국들의 왕국의 열쇠들을 네게 줄 것이다’…여기서 ‘바위’는 선행으로부터의 신앙을 의미한다. 고로 열고 닫는 열쇠들은 이 신앙에 주어져 있다.
계1:18-‘나는 지옥의 열쇠들과 죽음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다’=그분만이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 ‘지옥과 죽음의 열쇠들을 가진다’는 것이 누군가를 지옥에 던진다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는 권능을 가지시고 있다는 말이다.
계3:7-‘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 그리고 누구도 열면 닫지 못하고, 닫으면 열지 못한다’=그분만이 구원하는 전능하심을 가지시고 있다는 것. ‘다윗’에 의해 신성한 진리 측면에서의 주님이 뜻해진다. ‘열쇠’에 의해 천국과 지옥 넘어 군림하는 주님의 전능하심이 의미된다.
이22:22-엘리아김에게 준 ‘다윗의 열쇠’에 의해서도 계3:7의 다윗의 열쇠와 같은 뜻이다.
계9:1-‘무저갱의 열쇠를 그에게 주었다’=그들의 지옥이 열린다. ‘열쇠’에 의해 ‘여는 권능, 또한 여는 행동이 의미된다.
계20:1-‘끝없이 깊은 구렁의 열쇠를 가지는 것’=지옥을 열고 닫는 신성한 권능.
눅11:52-그러므로 그들은 ‘천국의 열쇠들을 운반한다’라고 말해진다. 즉 진리들을 수단으로 그들은 자기들이 가르칠 이들을 위해 천국과의 교통을 열 수 있다는 것.

우림 (Urim)

이24:15-‘우림 안에서 네 여호와를 경외하라’=사랑의 거룩한 것들로부터.
이24:15-‘우림’=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로부터 있는 빛.
출28:30-‘너는 판단의 가슴판에 우림과 둠밈을 놓을 것이다’=최말단에서 주님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가 빛을 발함. ‘우림과 둠밈’=빛(light), 그리고 빛이 발함(shining forth). 이런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가슴판의 돌들을 통하여 천국의 빛은 그것들을 통하여 주어져 온 응답들에 따라서 다양하게 빛을 발했기 때문. 이런 이유로 그것들은 다양한 색깔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24:15-교회가 자연적 선 안에 있던 나라들로부터 말해지는 바, ‘우림 안에서 네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이유가 ‘우림’은 ‘불’과 ‘난로(hearth)’을 뜻하고, 이를 수단으로 자연적 인간의 사랑의 선이 의미되어지기 때문.
신33:8-‘우림과 둠밈’=신성한 선으로부터 빛을 발하는 신성한 진리, 고로 말씀.

자루 (sack)

창42:25-‘(각 사람의 은이 되돌려지도록) 각 자루 안으로…’=자연 평면 안에 저장소가 어디에 있든지…‘자루’=저장소, 그릇 (receptacle)….여기서의 ‘자루’, 특별하게=과학적인 것. 그이유가 자루는 곡식의 저장소인데, 마찬가지로 선을 저장소가 과학적인 것이기 때문.

자리 (seat)

시89:36-‘그분의 자리’=그분의 왕국.
창41:40-‘자리’, 또는 왕좌=자연 평면. 그이유가 자리에 앉은 자가 영적 평면으로부터의 천적인 것을 뜻할 때 ‘자리’는 자연 평면을 뜻하게 되기 때문.

잔 (cup)

이51:17-황무함의 이 상태가 여기서 ‘여호와의 성냄과 분노의 잔’, 그리고 ‘전율하는 잔’이라 불리운다.
왕상7:26-가장자리(테두리)가 잔의 가장자리를 작업하는 방식으로 하여 만든 이유는 ‘잔’에 의해 인간의 자연적, 또는 감각적 평면으로부터 있는 과학적인 것이 의미되었기 때문.
겔26장:33-‘황폐와 황무의 잔을 가지고’=교회의 모든 선들과 진리들을 지독하게 황폐시키고 황무해지게 하는 악으로부터의 거짓들.
막9:41-‘내 이름 안에서 물잔을 주는 것’=조금의 선행으로부터 신앙의 진리들을 가르치는 것.
계14:10-‘그분의 분노의 잔’=선이 있게 하는 진리가 왜곡되었다.
계17:4-‘그녀의 손에 그녀의 매춘짓의 가증함과 불결함으로 가득한 금잔을 가지고 있다’=모독된 말씀 속의 거룩한 것들로부터 있는 광신적 신앙, 그리고 끔찍한 거짓들에 의해 더럽힌 선들과 진리들로부터 있는 광신적 신앙.
시23:5-‘내 잔이 그득합니다’=진리들로부터 있는 총명. 그이유가 ‘잔’은 포도주와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계18:6-‘그녀가 혼합한 잔 안에서 그녀에게 두 배로 혼합하라’=그들이 진리를 모독한 것에 비례한 응보.
창40:11-‘바로의 잔이 내 손에 있었다’=내면적 자연의 유입이 외면의 자연 안으로 있다, 그리고 받음이 시작된다…‘잔’=담고 있는 것, 동시에 담아지는 것.
창40:13-‘당신은 바로의 잔을 그의 손에 바칠 것이다’=그것들은 내면의 자연 평면을 섬길 것이다. ‘마시는 잔을 주는 것’=자기 것으로 삼는 것, 또한 섬기는 것.
창44:2-‘내 잔, 은잔을 너는 가장 어린 자의 자루 아구에 놓아라’=매체에게 주어진 내면의 진리. ‘은잔’=선행의 선으로부터 있는 신앙의 진리. 이 잔이 요셉의 잔인 바=내면의 진리.
출25:31-‘(등잔 촛대 등등의) 받침대(사발,bowl)’=자연인 것 안에 있는 영적인 것…그이유는 그것들이 촛대로부터의 생산물, 마치 손바닥이 몸체로부터 있는 것과 유사하다.
출25:33-‘세 사발들을 아몬드 같이 만들었다’=선으로부터 과학물 측면에서 가득한 것…‘사발들’=선행의 선으로부터 있는 과학적 진리들.
암6:6-‘그들은 포도주의 사발로부터 마신다’=외적인 진리들로부터 예배가 있다

장대 (stave)

욘2:6-‘땅의 장대들’
출25:13-‘너는 싯딤 목재로 장대를 만들어라’=거기로부터 있는 힘(power). ‘장대‘==선으로부터의 진리 속에 있는 힘.
출25:15-‘장대는 궤의 고리들 안에 있을 것이다’=힘은 선과 진리의 신성한 기운으로부터 꾸준히 남아있을 것이다.
출27:6-‘너는 제단을 위해 장대를 만들어라’=선의 상태 안에서 함께 붙잡는 힘.
출30:4-‘장대를 위한 용기’=거기 선으로부터의 진리의 힘. ‘장대’=선으로부터 있는 진리의 힘.
출30:5-‘너는 싯딤 목재로 장대를 만들어라’=주님을 사랑함의 선으로부터 있는 힘.
이43:14-‘그들의 막대기(bar)를 아래로 내던지는 것’=거짓으로부터의 그들의 원리들.
* 궤는 장대를 가지고 운반되어졌다‘=신성한 힘, ’팔‘도 같다.

접시 (dish, platter)

* ‘잔과 접시의 안을 먼저 깨끗이 해라’…‘접시’에 의해 음식이 뜻해진다. 음식에 의해 말씀으로부터의 선이 뜻해진다. 잔과 접시의 안쪽을 깨끗이 함에 의해 의지와 생각, 고로 사랑과 신앙 속에 있는 내면의 것들을 말씀을 수단으로 순수해지게 함이 뜻해진다.

조각칼 (graving tool)

출20:25-‘만일 네가 그것 위에서 너의 조각칼을 움직인다면’=만일 자아로부터이다면. ‘조각칼’=고안해낸 진리, 고로 자아로부터. 조각칼은 철이고, 이를 수단으로 자르고 어떤 형체로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이것은 인간의 자아이다. 인간의 자아가 종교의 것을 진리의 형체 안에서 나타나도록 하려고 개작(adaptation)한다. 이밖의 다른 구절에서는 조각칼 대신 ‘철’, ‘도끼’로 언급되고도 있다.
출32:4-‘그는 그것을 조각칼을 가지고 만들었다’=자신의 총명으로부터. ‘조각칼로 만드는 것’이 우상에 관련될 경우,=자신의 총명으로부터 거짓 교리를 어울리게 하는 것, 이것은 글자 의미를 이리저리 응용함으로 행해진다. 이것이 지배할 때, 인간은 천국으로부터서는 어떤 계발도 없다. 단지 그는 자기 총명으로부터 모든 것들을 가져다 놓고 그것들을 글자 의미로부터 확증한다.
왕상6:7-‘조각칼’, ‘망치’, ‘도끼’,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철’에 의해 최말단에 있는 진리가 의미된다. 이 진리가 인간의 자아로부터 주요하게 왜곡되었다. 그이유는 이 진리가 글자 의미 속의 진리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지갑 (wallet)

창42:27-‘그의 지갑의 입에서 있었다’=그것들은 자연 평면의 외면의 문지방에 비축되여져 있었다는 것.
창43:21-‘우리가 우리의 지갑을 열었을 때’=자연 평면의 외면 쪽으로 자기 반성(introspection)이 있음.
창44:1-‘식품으로 사람들의 지갑을 채워라’=진리의 선을 가지고 자연 평면 안으로 (유입됨).
창44:1-‘그리고 각 사람의 지갑의 입에 각 사람의 은을 놓아라’=자연 평면의 외면 넘어, 그리고 위에서 진리와 더불어 새롭게.
창44:11-‘그들은 각자 자기 지갑을 땅에 내려 놓았다’=그들은 자연 평면에 있던 것들을 감각적인 것들 쪽으로 아래로 가져왔다.

지팡이 (staff)

* 막대(rod)도 보라.
이3:1-‘주님께서는…예루살렘으로부터 막대기와 지팡이를 가져가신다’
출21:19, 시18:18, 이3:1-‘만일 그가 일어나서 지팡이에 의지해 걷는다면’=거기 안에 있는 생명의 힘. ‘지팡이’=힘(force). ‘막대기‘=진리에 속하는 힘(power), 고로 세력(foece). ’지팡이’도 막대기와 마찬가지이지만 지팡이는 건강치 못한 이들에 관련된다. ‘막대기와 지팡이’를 제거하는 것=진리와 선으로부터 있는 생명의 힘과 세력…원어에서 ‘지팡이’는 기댐과 받쳐줌으로부터 그렇게 불리운다. 영계에서는 이것이 진리와 선을 통하여 결과되어진다.
슥8:4-‘수많은 날들을 위해 자기 손에 지팡이를 가진 사람’=자신들을 전혀 신뢰하지 않고 주님만을 신뢰한 자.

질그릇(earthenware)
토기 (earthenware)

레6:28-‘질그릇, 그 안에서 삶는다’=선과 부합되지 못하는 거짓.

체 (sieve)
체로치다 (sift)
창살 (grating)

출27:4-‘창살, 그물 세공’=최말단인 감각 평면…이 (외적) 감각이 ‘창살’에 의해 표현되어졌다. 그이유는 그물 세공인 창살은 인간에게 들어오는 것들을 결정하는 첫 체질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
눅22:31-‘밀처럼 너를 체친다.’
이30:28-‘헛됨의 체로 나라들을 체치는 것’=악들에 있는 이들이 꾸며낸 이야기를 수단으로 말씀에 섞음질함.

(양)초 (candle)

* 등불(lamp)을 보라.
눅12:35-‘네 허리에 띠를 매고 초를 켜놓고 있으라’…‘그들이 켜놓아야 할 초’=사랑의 선으로부터 있는 신앙의 진리들.
눅15:8-‘불켜있는 초’=애착으로부터 자신에게 문의함.

촛대 (candlestick)

출25:31-33,37, 37:17-19, 민8:2,3, 슥4:2-‘일곱 등불을 가진 촛대’=주님; ‘등불들’=사랑으로부터의 거룩한 것들.
계11:4-‘촛대들’=이 선들로부터의 진리들.
계1:12-‘금촛대들’=선으로부터의 진리들.
슥4:11-‘촛대’=신성의 친리 측면에서의 주님.
출25:31-‘너는 촛대를 만들어라’=영적 천국. ‘촛대’=주님으로부터 천국에서와 교회에서 있는 신성의 영적 평면.
출26:35-‘촛대는 남쪽을 향한 주택의 측면에서 탁자의 맞은편에’=주님의 신성한 인간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의 진리를 수단으로 영적 왕국의 조명이 선 안에 있는 이들에게 있음.
계11:4-‘두 올리브-나무들’, 그리고 ‘두 촛대들’= 똑같은 선들(즉, 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의 선과 이웃을 향한 선행의 선).
출30:27-‘촛대와 그것의 집기들’=둘째 천국 속에 있는 영적 진리 안에, 그리고 섬기는 진리들 안에. ‘촛대’=영적 진리 측면에서 주님을 표현함, 이것은 둘째 천국 속에 있다.
출31:8-‘순수한 촛대와 그것의 모든 집기들’=이 선으로부터 진리를 표현, 그리고 섬기고 있는 것들. ‘등불과 가지들을 가진 촛대’=영적 천국을, 그리고 거기서 주님으로부터 있는 신앙과 총명을, 고로 선으로부터의 진리를 표현.
계1:12-‘돌아서니, 나는 일곱 금빛의 촛대를 보았다’=말씀의 안에서 밖으로 주님으로부터 계발됨에 있을 새 교회.
계1:20-‘네가 본 일곱 촛대들은 일곱 교회들이다’=땅 위 새 교회, 이 교회는 새 천국의 안에서 밖으로 주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이다…‘일곱 촛대들’은 일곱 교회들을 뜻하는게 아니라 전체 복합체에서 있는 교회를 뜻한다. 즉 그자체로서는 교회 하나이고, 받는 양상에 따라 다양해진다.
계2:1-‘일곱 금빛의 촛대들 한가운데에서 걷는 (분)’=이 분으로부터 그분의 교회 속에 있는 이들에게 계발이 온다. ‘사람의 아들이신 분이 일곱 촛대 한가운데 계신다’=주님으로부터 계발됨에 있는 새 교회.
계2:5-‘네가 회개하지 않으면, 나는 촛대의 장소로부터 그것을 옮기겠다’=이와 달리해서 그들은 진리들을 보도록 계발함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촛대’=계발됨 측면에서의 교회.
계11:4-‘그들은 땅의 하느님 앞에 서있는 두 올리브-나무들이고 두 촛대들이다’=사랑과 총명, 또는 선행과 신앙, 둘 다 주님으로부터 그들과 함께 있다…‘촛대들’=진리들에서 계발됨, 그러므로 총명과 신앙.

침대 (bed)

창49:4-‘네가 네 아버지의 침대들에 올라갔기 때문에’=선행 속에 있는 선으로부터 분리될 때, 신앙은 더러운 결합을 가지기 때문에.
레15:5-‘침대’가 교리를 의미하는바, ‘유출(병)을 가진 자가 누은 모두 각각의 침대는 불결하고, 그 침대와 접촉한 자는 자기 옷들을 빨고, 자신을 물들로 씻어야 한다’는 것이 이스라엘의 규례였다.
습2:15-‘어찌하여 이것이 황폐해져 들짐승의 침상 놓는 장소가 되었는가’=거기는 진리는 하나도 없고 거짓들로 꽉차 있다는 것.
이35:7-그들이 가지는 진리들과 선들이 전에 ‘용들’이 이 있던 곳, ‘드러누울 장소’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창47:31-‘이스라엘은 침대의 머리 위쪽으로 자신을 구부려 절하였다’=그는 자연 평면의 내면 속에 있는 것들 쪽으로 자신을 돌렸다…‘침대’=자연 평면.
창49:33-‘그리고 그는 자기 발을 침대 쪽으로 그러모았다’=내면의 것들을 안에 지닌 더 낮은 것 측면에 관하여; 더 낮은 자연 평면으로부터의 선과 진리 쪽으로…‘침대’=자연 평면, 고로 자연 평면으로부터의 선과 진리, 그이유는 이것들이 인간과 더불은 자연 평면을 구성하기 때문.
출7:27-‘네 침대 위에’=가장 안쪽의 것들…‘침대’=가장 안쪽 인 것; 그이유가 ‘침실’=내면의 것들, 침실 안에 있는 침대, 또는 침상(couch)=가장 안쪽 인 것.
출21:18-‘그리고 그가 침대에 눕는다’=자연 평면에서 분리되는 것…‘침대’=자연 평면.
암3:12-‘침대의 모퉁이와 침상의 맨끝’=가장 낮은 자연 평면, 이는 감각의 외적 부분들, 그리고 그것의 진리와 선.
요5:8-‘네 침대를 손에 쥐고 걸으라…’ ‘침대’=교리; 그리고 ‘걷다’=생활.
계2:22-‘보라, 내가 그녀를 침대로 던지겠다’=그들이 자기들 자신의 교리 안에 남아있게 할 것이다. ‘침대’=교리이다는 것은 상응으로부터 인 데, 그이유는 몸이 침대에 눕듯, 마음은 그것의 교리에 눕기 때문이다.
눅17:34-‘한 침대에 둘’은 한 교리 안에 둘, 그러나 이 둘이 한 교리 안에 있다해서 삶도 비슷한 것은 아닌 둘이다.
막2:9-‘침대를 손에 쥐고 걷는 것’=교리 안에서 묵상하는 것.
암3:12-‘침대의 모퉁이에서, 그리고 침상의 맨끝에서’=교리의 진리들과 선들로부터 더 멀리.
계2:22-‘보라, 나는 그녀를 침대에로 내던진다’=그들은 자연적 인간에, 그 속에 있는 거짓들로부터의 교리에 남아 있게 된다는 것. ‘침대’=자연적 인간, 또한 거짓들로부터의 교리.
암6:4-‘상아 침대들’=교리를 기초한 감각들로부터의 오류들.
눅17:34-‘한 침대 안에 있는 것’=교회의 한 교리 안에.
막2:11-‘일어나라, 네 침대를 손에 들고, 걸어라’=교리, 그리고 그것에 따른 생활. ‘침대’=교리.

침상 (couch)

암3:12-‘침대의 모퉁이, 침상의 맨끝’=가장 낮은 자연 평면, 이는 감각의 외적 부분, 그리고 그것의 진리와 선.
시132:3-‘내가 펼치는 침상’=교리.
창49:4-‘그는 내 침상에 올라갔다’=그는 자연 평면에 있는 영적 선을 오염시켰다.

칼 (knife)

* 검도 참조
창22:6-‘그는 불과 칼을 자기 손에 들었다’=사랑으로부터의 선과 믿음으로부터의 진리…희생제에서 사용되는 칼이 믿음으로부터의 진리를 의미한다는 것은 말씀에 있는 ‘검’, 또는 ‘작은 검’의 의미로부터 명백하다; ‘칼’ 대신 ‘작은 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둘 다 같은 의미를 가지나 이런 차이는 있다. 즉 희생 제물을 위해 사용된 칼은 믿음으로부터의 진리, 그러나 ‘검’= 전투하는 진리; 그리고 ‘칼’은 비밀스런 이유에서 말씀에서 드물게 언급되는바,…우리는 ‘검’이 의미하는 것만을 어느 정도라도 알 수 있다.
창22:10-‘그는 칼을 잡았다’=진리 측면에서의 시험. ‘칼’=믿음으로부터의 진리.
이2:4-‘그들은 자기들의 검을 쳐서 보습으로 만들 것이다’, ‘보습’=교리 속의 진리들, 이는 동산의 나무들=지각과 진리에 대한 지식이다는 사실로부터 알 수 있다.

탁자 (table)
상 (table)

시23:5-‘당신께서는 제 앞에 탁자를 준비하신다’=선행의 선을 수여하심.
이65:11-‘갓을 위하여 탁자를 준비하는 것’=일 만에 있는 것.
출25:23-‘너는 탁자를 만들어라’=천적인 것들을 (담는) 그릇(receptacle)
출25:28-‘탁자는 (장대들을) 가지고 운반된다’=(천적인 것들의 그릇으로부터의 선의 상태에서) 계속됨.
출26:35-‘너는 베일 바깥쪽에 탁자를 놓을 것이다’=사랑 속에 있는 천적인 것들을 통하여 유입됨.
출26:35-위에 얼굴들의 (빵) 덩어리(loaves)가 있는 ‘탁자’, 그리고 맞은 편에 촛대=천적 선 측면에서의 주님, 이 선 자체로부터, 이 선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영적 왕국 안으로 흘러드신다.
출26:35-‘너는 북쪽에 탁자를 놓아라’=희미함에 있는 선…그이유가 영적 왕국에서는 선이 진리를 통하여 나타나기 때문.
출30:27-‘그리고 탁자와 그것의 모든 집기들’=둘째 천국 속에 있는 천적인 것으로부터 있는 영적 선 안에; 그리고 섬기는 진리들과 선들 안에.
눅16:21-부자의 탁자에서 떨어지는 빵부수러기로 (배)채워지기를 바람=말씀으로부터의 얼마간의 진리들을 갈망함.
이28:8-‘모든 탁자들이 무익하여 토해낸 것으로 가득하다’…‘탁자’=영적 생명에 자양분을 주는 모든 것들; 그이유가 ‘탁자들’에 의해 그것들 위에 있는 음식이 뜻해지기 때문…그러므로 (위 구절에서는) 왜곡되고 섞음질된 모든 것들이 의미된다.
시127:3-‘탁자 빙둘러 아들들’=파생되는 선으로부터의 진리들. ‘탁자’=가르침. ‘탁자 빙둘러’=영적으로 자기 것 됨으로부터의 즐거움들과 자양분.
시23:5-‘당신께서는 내 적들의 현존에서 제 앞에 탁자를 놓으신다.’…‘탁자’=영적 자양분.
시69:22-‘그들 앞의 탁자가 덫이 되게 하신다’=…말씀으로부터 있는 교리 속의 모든 진리 측면에서 타락 쪽으로 가고 있다. ‘탁자’는 영적 음식을 위해 말해지고 있다.
겔39:20-주님의 식탁에서 말과 병거와 용사와 전쟁의 모든 사람과 함께 배부르게 먹을 것이다=말씀으로부터 충분히 가르침을 받는 것.
마21:12-‘환전상의 탁자’=거룩한 진리들로부터 (이익을) 만드는 자들.

토기 (earthenware)

레6:28-‘토기(질그릇)에서 삶아라’=선과 일치 않는 거짓.

표 (mark, characteristic)

* 가인에게 해준 표는 ‘표시’ 단어를 참조.
계14:9-표시(sign)가 ‘표’라 불리워지고 있다
계14:9-‘손과 이마에 (짐승의) 표를 가지는 것’=품질이 어떠하든 모두 인정하는 것.
계13:16-‘그들의 오른 손과 그들의 이마들에 있는 표를 그들에게 주는 것’=신앙과 사랑에서 이 교리(용과 짐승으로 의미된 교리)를 받지 않으면 누구도 개혁 기독교인이다고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계13:17-‘짐승의 표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아무도 사거나 팔지 못한다’란 인정되어진 것, 곧 자기들의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어떤 것도 배우거나 가르치거나 하는 것은 금지사항이다는 것.
계14:9-‘이마나 손에 그의 표를 받는 것’=믿음 만의 교리의 악들을 교회의 선들로서, 교회의 진리로서 인정함으로부터 수용하는 것.
계16:2-‘짐승의 표를 가졌던 이들 위에, 그리고 그것의 형상을 숭배했던 사람 위에’=믿음 만을 인정했던 이들, 그리고 그것의 교리를 인정했던 이들, 그리하여 그것에 따라 살았던 이들…‘그의 표’=인정함, 수용함, 그리고 그것을 증거해댐.

항아리 (jar)

창24:14-‘네 항아리를 내려 놓아다오’=과학물들의 복종. ‘항아리’=과학물. ‘물동이(waterpot)’, 또는 항아리=과학물인 이유는 물=진리이기 때문. 그리고 항아리는 물을 담는 그릇, 마치 과학 평면이 진리를 담는 그릇인 것과 같다.
창24:15-‘그녀의 어게 위에 그녀의 항아리’=진리를 받음들, 그리고 받으려는 노력. ‘항아리’=과학물, 고로 진리의 저장소(receptacle). 항아리, 물동이, 또한 일반적으로 그릇들, 내적 의미에서,=저장소의 장소에 있는 것들, 마치 과학물과 지식이 진리와 연관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진리들 자체가 선에 연관되는 것과 같다.
창24:16-‘그녀는 그녀의 항아리를 채웠다’=받음의 그릇들. ‘항아리’, 물을 받기 위한 그릇인바,=진리의 지식들을 받는 것, 그리고 또한 진리 자체.
창24:17-‘내가 네 항아리로부터 물을 조금 마시게 해다오’=어떤 진리이든 거기서 결합되어질 수 있다는 것.
창24:18-‘그리고 그녀는 서둘러 그녀의 손 위에 항아리를 내려 놓았다’=권능으로부터 수용자가 복종함. ‘항아리’=받는 것.
창24:20-‘그리고 그녀는 서둘러구유에 물을 비웠다’=신성으로부터의 선에서 시작되어지는 진리에 애착함이 분리됨. ‘항아리를 비우는 것’=진리를 분리하는 것. 그이유가 담고 있는 그릇이 이 구절에서의 항아리인바, 이는 진리를 담은 과학물, 뿐아니라 안에 선을 담은 진리도 의미하고 있기 때문. 여기서 이것이 시작되는 것을 취급하는바, 항아리=신성으로부터의 선에서 개시되어지는 진리. 그리고 진리 자체는 진리의 애착을 통하지 않고서는 결코 결합되어지지 않는바, 여기서 항아리는 진리에 애착함이다.
왕상17장-‘거친 곡식 가루 항아리’=선으로부터의 진리.

향로 (censer)

레10:1-‘향로들에 낯선 불을 놓는 것’=천국의 사랑 외 다른 사랑으로부터 예배하는 것.
계8:3-‘또다른 천사가 금향로를 가지고 와서 제단에 섰다’=영적 예배, 이 예배는 신앙 속의 진리들을 수단으로 선행의 선으로부터 실행되어진다…그의 선에 가진 ‘금향로’=영적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함.
계8:5-‘그리고 천사는 향로를 가져갔다, 그리고 그것을 제단의 불로 채웠다, 그리고 땅으로 던졌다’=천적 사랑이 있는 영적 예배, 그리고 선행으로부터 분리된 신앙 안에 있던 이들이 있는 더 낮은 부분들 안으로 이 예배의 유입이 있음. ‘향로’도 ‘향’과 동일하게 영적 사랑으로부터의 예배가 의미된다.
계8:3-‘금향로를 가졌다’=(천적) 선이 영적 선과 결합함, 그리고 고로 더 높은 천국들에서 함께 결합함. ‘향로’=영적 선으로부터 예배함…그리고 ‘금향로’=천적 선으로부터 있는 영적 선.

홀 (sceptre)

민24:17-그분의 인간 실체가 ‘야곱의 별’, 그리고 ‘이스라엘로부터의 홀’이라 불리운다.
창49:10-‘홀이 유다로부터 옮겨지지 않을 것이다’=권능이 천적 왕국으로부터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홀’=권능. 사실상 선으로부터의 진리의 힘.
시2:9-‘너는 쇠 홀로 나라들을 부술 것이다’=자연적 인간 안에 있는 악들을 응징하고 지배하는 것. 여기서의 ‘홀’=‘막대(rod)’와 같은 의미이다.
사5:14-‘서기관의 홀’=총명.
시45:6-‘정직(rectitude)의 홀이 네 왕국의 홀이다’=…힘과 왕국을 가진 신성의 진리.
겔19:14-‘그녀에게 강한 막대, 지배하는 이들의 홀이 없다’=힘과 통치 측면에서 신성한 진리가 황무해짐.
시110:2-‘시온으로부터 강력한 홀’=전능을 가진 신성한 진리…

횃불 (torch)

* lamp도 참조..
창15:17-‘불의 횃불’=탐욕들의 열(heat).
출20:18-‘모든 백성은 음성들과 횃불들을 보았다’=선으로부터 있는 신성한 진리들을 지각함.
슥12:6-이 교회에 의해 흩어질 악들이 ‘나무 사이에 있는 불가마 같이, 그리고 묶은 것에 있는 횃불 같이’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성경의 구조물과 상응

성경의
구조물과 상응

Dictionary
of
structural thing
in
Bible
by
Correspondence

성경 약자표

창 창세기 이 이사야 학 학개 마 마태복음
출 출애굽기 예 예레미야 슥 스가랴 막 마가복음
레 레위기 겔 에스겔 말 말라기 눅 누가복음
민 민수기 단 다니엘 요 요한복음
신 신명기 호 호세아 계 요한계시록
여 여호수아 욜 요엘
사 사사기 암 아모스
삼상 사무엘상 옵 오바댜
삼하 사무엘하 욘 요나
왕상 열왕기상 미 미가
왕하 열왕기하 나 나흠
욥 욥기 합 하박국
시 시편 습 스바냐

차례

건조물 (structure), 구조물-건축하다 (build)-고리 (ring)-골방 (inner room, inner chamber)-곳간 (barn, garner)-궁전 (palace)-궤 (노아의 궤, ark of Noah)-기둥 (column, pillar)-기초 (fountation), 기초의 (foundamental)-기초 (base)-꽂는 구멍 (socket)
대저택 (mansion)-두꺼운 판자 (plank)-들보 (beam)
마구간 (stable)-모퉁이 (corner)-모퉁이돌 (cornerstone)-모퉁이돌 (cornerstone)-목재 (wood), 나무 (wood)-못 (nail)-문 (door)-문 (gate)-문기둥 (post), 문설주-문지방(threshold)-문턱
방 (chamber)-방주 (ark)-노아의 방주(궤) (ark of Noah)-배 (ship, vessel)-벽 (wall)-벽걸이 천 (hangings)-벽돌 (brick)-보루 (bulwark)
사닥다리 (ladder)-상 (statue)-상인방 (lintel)-새 예루살렘 (new jerusalem)-성 (city)-성막 (tabernacle)-성소(sanctuary)-성전 (temple)-수로 (channel)
역청 (bitumen)-역청 (송진, pitch)-오두막 (hut)-오븐 (oven)-왕좌 (throne)-요벨 (jobel)-요새 (fortification)-요새화하다 (fortify)-용광로 (furance)-우물 (well)-울타리 (fence, hedge)
작은 뾰족탑 (pinnacle)-장 (curtain)-장막 (tabernacle)-제단 (altar)-지붕 (roof)-집 (house)
창고 (store house)-창문 (window)-창살 (grating)-천막 (tent)-침실 (bedchamber)
커튼 (curtain), 앙장 (curtain)
피륙 (curtain)
탈 것 (carriage)-탑 (tower)-테두리 (border)
판금 (plate)-판 (table), 널판 (board)
휘장 (veil), 덮개 (veil), 베일 (veil)

건조물 (structure)
구조뮬

계21:18-‘성벽의 건조물’…‘성벽’=글자 의미에서의 말씀. 그것의 건조물=그것의 모든 것. 그이유가 성벽 전체가 건조물이기 때문.

건축하다 (build)

창2:22-‘건축하는 것’=땅에 떨어져 있는 것, 무너진 것, 타락한 것을 일으켜 세움, 끌어 올림이다.
* 말씀에서, ‘건축하는 것, 세우는 것, to build’은 악들을, ‘건립하는 것, 꼿꼿이 세우는 것, to erect’은 거짓들을, 그리고 ‘새로이 함, 갱신하는 것, to renew’은 악들과 거짓들 양쪽에 관련하여 서술될 때 사용된다.
창10:11-‘그는 니느웨를 건축했다’=그는 신앙 속의 교리적인 것들을 자신을 위해 (골격을) 만들었다 (formed)는 것.
창11:4-‘우리가 성과 탑을 건축하자’=그들은 교리와 예배에 모양을 지었다 (변화 시켰다, fashioned).
창11:8-‘그들은 성을 건축하는 것을 중지했다’=이와 같은 교리는 받아지지 않았다는 것.
창16:2-‘어쩌면 나는 그녀를 수단으로 가문을 건축할 수 있을지 모른다’=이리하여 합리성이 태어나질 수 있다는 것.
창22:9-‘제단을 건축하는 것’=신성한 인간을 준비하는 것.
예22:13-‘정의 없이 집을 건축하고 심판 없이 깊은 방을 건축하는 것’=선이 아니고 진리가 아닌 것으로부터 종교적인 것을 함께 놓는 것.
창30:3-‘나는 그녀를 수단으로 건축할 것이다’=그리하여 그것은 생명을 가질 것이다는 것. ‘건축되는 것’=죽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것, 또는 사는 것.
창33:17-‘(야곱은) 자신에게 집을 건축했다’=그 상태에서 진리로부터 선이 증가함. ‘집을 건축하는 것’=총명과 지혜에서 외적 인간을 가르치는 것. 그리고 총명은 진리 속에, 그리고 선으로부터의 지혜 속에 있는바, 여기서의 경우, ‘집을 건축하는 것’=진리로부터 선이 증가하는 것.
눅14:28-‘탑을 건축하는 것’=자신을 위해 내면의 진리들을 포획하는 것.
암9:14-‘황폐된 도성을 건축하는 것’=왜곡된 진리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을 바로 잡는 것.
마21:42-‘건축자들’=교회 속에 있는 이들.
단9:25-‘예루살렘을 건축하는 것’=교회를 새로이 하는 것.
슥6:15-‘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할 멀리 있는 이들’=이전에는 교회의 선들과 진리들로부터 옮겨 있던 이들이 교회에 앉을 것이다.
시51:18-‘예루살렘의 성벽을 건축하는 것’=사랑의 선 쪽으로 인도함으로, 그리고 교리 속의 진리들을 가르침으로 해서 교회를 회복하는 것.
이44:26-교회와 교리를 회복함이 ‘사람이 거주함’과 ‘건축됨’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이45:13-‘그는 내 도성을 건축할 것이다’=그는 진리로부터의 교리를 회복할 것이다.

고리 (ring)
반지 (ring)

이3:21-‘반지들과 코보석들’=선과 그것의 표지.
창41:42-‘그리고 바로는 자기 손으로부터 반지를 옮겼다’=그가 이전에 가졌던 권력에 관하여 확증하는 것…‘반지’=확증하는 것…이로부터 ‘그가 반지를 옮겼다’란 이전에 그가 가졌던 권력을 양위하는 것.
창41:42-‘반지를 다른 자의 손에 놓는 것’=그의 것이었던 권능을 타인에게 양도했다고 확증하는 것.
출25:12-‘너는 금 고리 네 개를 그것(궤)을 위하여 주조할 것이다’=신성한 진리가 신성한 선과 결합했다, 이는 어느 곳이든지 빙둘러 있다. ‘고리들’=선과 진리의 결합.
출25:12-‘그것의 이쪽에 두 고리, 그것의 다른 쪽에 두 고리’=진리가 선과, 선이 진리와 결혼함…‘고리들’=결합 또는 선과 진리의 결혼.
* ‘고리들’=결합 그 자체…‘장대’는 사람의 팔과 관련된다. 고리는 팔이 가슴과 연결되는 곳에 있는 볼(ball)과 이 볼을 받는 구멍으로 접합되는 관절과 같다.
출25:14-‘너는 고리들 안으로 장대를 놓을 것이다’=신성한 영역의 힘…‘고리들’=신성한 진리가 신성한 선에 결합되었음, 이는 모든 측면에 빙둘러 있다. 고로 일반적 측면에서 천국을 아우르고 마감하는 신성의 활동 범위. 그리고 세부적 측면에서는 천국의 사회들과 천사들.
출25:15-‘장대는 궤의 고리 안에 있어야만 한다’=힘은 선과 진리의 신성한 영역으로부터 꾸준히 있다.
출25:26-‘너는 금 고리 네 개를 그것(탁자)을 위하여 만들 것이다’=천국적 결혼의 최말단 저장소(그릇), 이는 신성한 진리와 더불은 신성한 선의 그릇이다. ‘금 고리 네 개’=신성한 진리가 신성한 선과 결합함, 이는 어느 곳에도 빙둘러 있다. 고로 천국적 결혼의 최말단 그릇, 이는 신성한 선이 신성한 진리와 더불은 것이다.
출25:26-‘너는 그것의 네 모퉁이에 고리들을 놓을 것이다’=신성한 진리가 최말단들에서 신성한 선과 결합함으로부터 있는 안전함…
출26:24-널판들은 ‘한 고리’ 아래에서 쌍을 이루어 있을 것이다.=고로 일관성과 견실함. ‘고리’=결합. 여기서 결합을 통하여 견실함.
출27:4-‘너는 놋쇠로 고리 네 개를 그물 위에 만들 것이다’=선의 영역을 통하여 결합이 있다…‘고리들’=신성한 선의 영역과 신성한 진리의 영역, 이를 통하여 결합이 있다.
출28:23-‘너는 금 고리 두 개를 가슴받이에 만들 것이다’=신성한 선의 영역을 통하여 더 높은 천국 측면에 결합이 있다,,,‘금 고리 두 개’=신성한 선의 영역을 통하여 결합이 있다.
출28:23-‘두 고리들은 가슴받이 맨 끝에 놓을 것이다’=천국의 맨 바깥에서 신성한 선의 영역의 결합.
출28:28-‘너는 가슴받이를 그것의 고리들로부터 에봇의 고리와 묶어라’=영적 왕국의 외부에서 신성한 선의 영역을 통하여 천국의 모든 것들을 보존하고 결합함.
출30:4-‘너는 그것(향제단)을 위하여 경계선 아래에 금고리 두 개를 만들 것이다’=신성한 선의 영역을 통하여 결합과 보존이 있다.
눅15:22,23-방탕한 아들의 손에 끼워준 ‘반지’=내적 인간 안에서 선과 진리의 결합

골방 (inner room, inner chamber)

* 방, chamber를 보라.

곳간 (barn, garner)

시144:13-‘곡창(곳간)을 가득채운 식품’=영적인 선, 즉 진리와 선.
시144편-‘곡창’에 의해, 그리고 ‘식품’에 의해 교회의 선들과 진리들이 의미된다. 그이유가 영적 식품이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이기 때문, 이를 통하여 총명이 있다.
학2:19-‘종자들이 아직 곳간에 있느냐?’… ‘곳간’=이런 것들이 있는 곳. 그것이 교회이든, 교인이든, 사람의 마음이든. 주체인 것.
마13:30-‘곳간으로 거두어 들이는 것’=천국과 결합하는 것.

궁전 (palace)

예9:21-‘궁전’, 또는 집=자발적인 것(voluntary thing).
이32:14-‘궁전은 사막일 것이다’=선들이 거주하는 곳.
애2:7-‘궁전들’=교리 속의 것들.
시48:3-진리들이 천적 선에 있는 이들에게 새겨진다는 것이 ‘하느님은 그녀의 궁전에 알려져 있다’에서 의미되어 있다.
이32:14-‘궁전’=선으로부터의 진리에 관련되는 교회의 전체.
시48:13-‘그녀의 궁전들을 구별하는 것’=진리로부터의 선들을 지각하는 것. 그 이유가 ‘집들’=선들, 그리고 ‘궁전들’=진리로부터의 더 고상한 선들.
예9:21-‘궁전들’=생각과 애착의 모든 것들.
예9:21-‘궁전들’=인간 마음의 더 내면적인 것들, 고로 더 고상한 것들.
암6:8-‘궁전들’=거짓들 자체. 이것이 ‘궁전들’이라 불리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자랑하기 때문. 그리고 그것이 더 화려하게 나타나게 하려고 그들의 거짓들이 외적 형체에 장식되어 있기 때문.
이34:13-그들을 방어하는 궤변들이 ‘궁전들’과 ‘방비시설’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시144:12-진리에 애착함이 ‘궁전의 모양새에 맞추어 자른 모퉁이 돌’에 비교되고 있다. 그 이유는 ‘궁전’은 이해함을 표현하고, 이 안에서 (주님의) 진리들이 아름다운 형체들로 있기 때문, 그리고 그들이 진리에 애착함에 있을 때, 그들은 아름다운 형체에 있는다.
예30:18-‘궁전은 그것의 방식에 따라 거주될 것이다’=고대인들이 진리를 이해하는 식과 같이 주님의 진리들에 대한 영적인 이해. 그이유가 이해성 안에 그들의 형체들에 있는 영적 진리들이 있기 때문. 이것이 눈 앞에 표현될 때, 궁전 같이 나타난다.
예6:5-진리를 이해함을 파괴하려 진력함이 ‘그녀의 궁전들을 파괴하자’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시45:15-‘상아로 된 궁전들’=합리적 인간으로부터의 진리들, 고로 합리적 진리들.

궤 (노아의 궤, ark of Noah)

* 방주를 보라

기둥 (column, pillar)

* 상 (statue)도 참조
욜2:30-‘연기 기둥들’=거짓들.
출13:21-‘낮에는 구름 기둥에서’=계발의 상태에 있을 때, 진리의 희미함을 수단으로 부드럽게 되었다.
출13:21, 계10:1-‘구름 기둥과 불 기둥에서’라고 말해지는데…그 이유는 ‘기둥’이 받쳐주는 것, 그리고 받쳐주는 것이란 자연 평면을 서술하기 때문…이로부터 천국으로부터 내려오는 천사들의 발은 ‘불 기둥 같이’ 나타났다.
출13:22-‘낮에는 구름 기둥이,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않았다’=주님의 현존, 이 현존은 영구적이었다는 것. 그 이유가 천사들의 한가운데 주님이 계신 천사들이 백성 앞에 나타나셨기 때문.
출14:19-‘구름 기둥이 그들 앞으로부터 갔다, 그리고 그들 뒤에 섰다’=이전에 지적인 것을 보호하듯 자발적인 것을 보호하는 주님의 현존…이것은 안에 주님이 계신 천사의 합창이다.
출14:24-‘불과 구름의 기둥에서’=거기 신성한 선과 진리의 현존.
시99:7-‘그분은 구름 기둥에서 그들에게 이야기하셨다’…‘구름’=글자로 있는 말씀, 또는 최말단들에 있는 신성한 진리.
출26:32-‘너는 싯딤 목재의 네 기둥들에 그것을 놓을 것이다’=주님 한분에게만 있는 공적의 선이 결합하고 받쳐줌…‘기둥들’=받쳐줌…‘기둥=받침인 이유는 그것들이 베일을 칠 수 있게 해주기 때문.
출26:37-‘너는 (덮개를) 걸기 위한 기둥 다섯을 싯딤 목재로 만들 것이다’=주님의 신성한 인간 속에 있는 공적의 선을 통하여, 충분히 있는 하나되게 하는 매체의 받쳐줌.
출27:10-‘그것의 기둥 스무 개’=충분히 받쳐주는 진리로부터의 선. ‘기둥들’=천국의 선들과 지지하는 교회.
출27:17-‘빙둘러 있는 바깥뜰의 모든 기둥들’=천국을 받치는 모든 선…‘기둥들’=받치는 선들.
출33:9-‘모세가 천막 안으로 들어갔을 때, 구름 기둥이 내려와서, 천막의 문에 섰다, 그리고 그분은 모세와 이야기 하신다’=말씀이 그들의 납득력으로부터 사라진 이후, 농도 짙은 불명료함이 그들의 밖을 점유했다는 것, 그럼에도 내부로부터는 명료한 지각이 있었다는 것…‘구름 기둥’=이 나라에 비교되는 매우 짙은 불명료함.
계3:12-‘나는 그를 내 하느님의 성전에서 기둥으로 만들 것이다’=주님으로부터의 선으로부터의 진리들, 이것들과 더불어 있는 이들이 천국에서 주님의 교회를 받칠 것이다…‘기둥’=교회를 받쳐주고 강하게 하는 것. 그리고 이것은 말씀의 신성한 진리들이다.
계10:1-‘불 기둥 같은 그의 발’=신성한 사랑에 관련한 주님의 신성한 자연 평면. 이것이 모든 것을 받친다…‘기둥’=지지.
예1:18-‘철 기둥을 위하여’=그것을 받치는 진리.
예31:21-‘표지들을 지정하는 것, 기둥들을 놓는 것’=근본되는 교회의 것들을 가르침, 이것들이 ‘기둥들’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것들이 교회를 받치고 있기 때문.
시75:3-‘땅의 기둥들을 튼튼해지게 하는 것’=교회가 기초한 진리들을 지지하는 것.
왕상7:15-22-‘성전의 현관은 최말단 천국 속에 있는 여러 가지 것을 의미했다. 이 천국이 두 개의 높은 천국들을 받치고 있기 때문에 이 두 기둥들은 성전의 현관에 놓여졌다.’

기초 (fountation)
기초의 (foundamental)

이58:12-‘대대손손의 기초들’=신앙의 영적 측면에 속하는 것들, 이것들은 고대 시대 이래 타락해왔다.
이40:21-‘땅의 기초들’=교회의 기초들.
신32:22-‘산들의 기초들’=지옥들…그들이 ‘산들의 기초들’이라 불리는 이유는 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이 지옥을 통치하고 거기로부터 존재하기 때문.
합3:13-‘기초로부터 목에 이르기까지 조차 발가벗겨 놓였다’=도중에서 가로채진 결합.
출9:18-‘기초된 날로부터 지금까지’=다른 사람(것)들과는 이와같은 파괴는 없었다. ‘날’=상태, 그리고 ‘기초’=그것의 품질.
계21장-기초들인 귀한 돌들=질서의 최말단에 있는 신성으로부터의 진리들.
시104:5-‘땅이 기초를 놓은 기초들(bases)’=최말단들에 있는 진리들.
이40:21-‘땅의 기초들’=신앙 속의 진리들. 그이유가 이런 진리들이 기초들로서 교회를 섬기기 때문.
이54:11-사파이어로 놓여진 기초들=이 왕국의 외적인 것들. 그이유가 기초들은 아래에 놓인 것이기 때문.
출29:12-‘제단의 기초’=감각 평면, 이는 인간 생명의 최말단이다. ‘제단의 기초’가 이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제단이 주님의 신성한 인간을 표현하기 때문, 그러므로 그것의 ‘기초’=인간에 있는 생명의 최말단인 것, 이것은 외적 감각 평면이라 불리운다.
계21장-‘성벽의 기초들’=그 교리에 기초를 주게 되는 지식들.
계13:8-‘세상의 창설 때에서부터 죽임을 당한’=주님의 신성한 인간은 교회의 설립 때로부터 인정되지 않았다.
계17:8-‘그들의 이름들은 세상의 창설 때부터 생명의 책에 씌어있지 않았다’=교회의 설립 때부터, 여기서의 경우 이 광신적 신앙의 설립 때부터 말씀으로부터의 교리 안에 있지 않는 이들, 그리고 주님을 믿지 않는 이들.
계21:14-‘열 두 기초들을 가진 도성의 벽’=새 교회 교리의 모든 것들을 포함하고 있는 글자 의미로 있는 말씀. ‘기초들’은 교리적인 것들을 의미한다. ‘열 둘’은 모든 것을 의미한다. 더나아가 교회는 교리 위에 기초되는바, 교리의 모든 것들은 ‘새 예루살렘 성벽의 열두 기초들’에 의해 의미된다. 그리고 교회는 교리로부터 교회인바, 그것의 기초들이 세세하게 취급된다. 말씀에서 ‘땅의 기초들’이란 교회의 기초들을 뜻한다. 그리고 교회의 기초들은 말씀으로부터 밖에 더 없고, 교리적인 것들이라 불리운다. 그 이유는 말씀 자체가 교회의 기초들을 형성하기 때문.
계21:19-‘도성의 벽의 기초들은 모든 귀중한 돌로 장식되어져 있었다’=말씀의 글자 의미로부터 취해진 새 예루살렘의 교리의 모든 것들은 거기 안에 있는 이들과 더불어 받음의 정도에 따라 빛 안에서 나타날 것이다.
시18:7-‘산들’=사랑의 선들. 그리고 그것들의 ‘기초들’=신앙의 진리들.
신32:22-‘불 위에 놓은 산들의 기초들’=교회가 기초된 진리들, 이 진리는 선으로부터의 진리들이다.
눅11:50-‘세상의 창설’=교회의 설립.
미6:2-‘땅’=교회 그리고 그것의 ‘기초들’=여타의 모든 것이 기초된 원리들.
미1:6-‘기초들’=교회가 기초된 자연적 진리들.
이30:32-말씀의 글자적 의미 속의 진리들이 ‘기초의 막대기’에 의해 뜻해지는 이유는 이 의미는 그것의 영적 의미 속의 진리들에 기초이기 때문이다.
시18:15-진리 측면에 관련하여, 선 측면에 관련하여 교회의 모든 것들이 기초로부터 전복되어왔다는 것이 ‘물들의 바닥이 나타났고, 세상의 기초들이 밝히 알려졌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이14:32-‘여호와께서 시온에 기초를 두셨다’=교회는 이런 것들에 의해 설립되어질 것이다.

기초 (base)

* 받침, ultimate도 참조
시104:5-‘땅’=교회. ‘그것이 세워진 기초들’=최말단들에 있는 진리들, 말씀 속의 것들이 글자 의미 안에 있는 것과 같다. 이로부터 말해지는바, ‘그것은 영원히 움직여지지 않을 것이다.’
욥38:6-‘기초들’=지탱하는 진리들 자체.
출26:19-‘널판 아래에 받침을…’, 이는 ‘받침’에 의해 의미되는 진리는 이 선으로부터 진행한다는 것이 의미되어 있다.
시104:5-‘여호와께서는 그것의 기초를 땅에 세우시어 그것이 영원히 제거되지 않도록 하셨다’…여호와께서 그것이 영원히 제거되지 않도록 세우시기 위해 사용한 ‘기초’란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이다.
욥38장-‘기초들’ 등등=자연적 인간에 있는 이런저런 것들 위에 인간과 더불은 교회의 창설(토대)가 있다.
삼상2:8-‘땅의 기초들’=외면의 진리들, 예를 들면, 말씀의 글자 의미 등등, 그이유가 내면의 진리들은 외면의 진리들을 토대로 하여 있기 때문.

꽂는 구멍 (socket)

출28:11-‘꽂는 구멍을 금으로 에워싸라, enclosed in ouches of gold’=선으로부터 계속되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존재를 파생시키는 것.
출28:14-‘꽂는 구멍(ouches)을 금으로 (들씌워 박으라)’=선과 진리로부터의 존재와 생존.
출28:25-어깨 위에 있는 ‘꽂는 구멍(ouches)’=선으로부터의 진리의 존재와 생존.

대저택 (mansion)

창6:14-방주에 있는 ‘대저택’=인간의 두 부분, 즉 의지와 이해성(이해함)이다.
* 천국의 사회들은 주님에 의해 ‘대저택들’이라고 불리운다.

두꺼운 판자 (plank)

* beam, table를 보라

들보 (beam)

겔27:6-‘깃딤 섬으로부터 배의 가로 들보를…’=예배의 바깥쪽 것들, 즉 천적 계급에 속하는 의식들.
출26:15-‘너는 주택을 위해 들보들을 만들 것이다’=이 천국을 떠받치는 선. ‘들보, 두꺼운 널판’=떠받치는 선. ‘들보들’=떠받치고 지탱하게 해주는 선인 이유는 그것들의 재질이 나무이고, 주택과 천막의 모두에 있는 커튼들, 또한 그것들 위에 있는 두 덮개들을 떠받치기 때문. 이로부터 들보는 받쳐주는 것들을 의미하고, 그것들이 나무인바, 나무는 선인 것을 의미하기 때문. 자연에 있는 모든 표현물들은 인간 형체와 관계를 가지고 있고 그 관계에 따라 그것들의 의미도 지니게 되듯, 주택의 들보들은 인간의 근육, 또는 살 부분에 상응한다. 이는 둘러싸는 얇은 막, 그리고 피부들을 떠받친다. 들보들의 재료가 싯딤목이었는바, 이 나무를 수단으로 천국을 떠받치는 선이 의미된다. 또한 그것들을 금으로 덮어씌웠는바, 이 또한 선을 의미하고 있다.
출26:22-‘너는 여섯 들보들을 만들 것이다’=주님의 신성한 인간으로 모든 종류의 선이 있는 곳. ‘주택의 들보들’=천국을 떠받치는 주님의 신성한 인간으로부터의 선.
겔27:6-‘그들이 상아로 만든 너의 가로 들보’…’가로 들보’=인도해주는 수단인 이해함 속의 것, 즉 합리성인 것.
창19:8-‘내 지붕의 그림자(들보) 안으로’=선행의 선 안에. ‘집’, 여기서는 ‘지붕의 그림자’라 부르는데=선.
창19:8-‘지붕의 그림자’=일반적인 희미함 안에.
마7:3,4,5=’네 눈에 있는 들보’=악으로부터의 거대한 거짓. 그 이유가 나무(wood), 내향의 의미에서=선. 그리고 반대 의미에서 악이기 때문. 다른 삶에서, 선은 들보에 의해 표현되어진다, 그러므로 자신을 위해 선을 고안해낸 이들은 들보를 운반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그들은 안전을 따라 걸음을 떼고 있다.
마7:3-5-나무(wood)에 의해 선이 의미되어지는바, 이로부터 ‘들보’에 의해 선으로부터의 진리가 의미되어진다. 반대 의미에서는 악으로부터의 거짓이 의미되어진다.
창19:8, 왕하6:2,5,6, 합2:11, 아1:17-‘들보’에 의해 악으로부터의 거짓이 의미되어진다.

마구간 (stable)

* 여물통(manger)도 참조.
* 육체의 현세에의 욕망이 나귀들, 숫염소 들, 돼지들이 있는 마구간에 비교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애착들은 순수 혈통(thoroughbred)의 말들, 또한 양과 어린 양들이 있는 마구간에 비교된다.

모퉁이 (corner)
모퉁이돌 (cornerstone)

이19:13-‘그들은 지파들의 모퉁이돌 이집트를 유혹했다.’ 신앙 속에 있는 것들을 받쳐주는 역할을 하는바 ‘모퉁이돌’이라 불려지고 있다.
암3:12-‘침대의 모퉁이에서’=자연 평면의 가장 낮은 것에서.
출25:12, 시118:22, 마21:42, 슥10:4, 이28:16-‘너는 (궤의) 네 모퉁이에 놓을 것이다’=견고함. ‘모퉁이들’=강함과 견고함…그 이유는 전체를 연결하는 중요한 기초이고 가장 큰 저항이 요구되기 때문. ‘모퉁이’=강함과 견고함, 이는 신성한 선으로부터 신성한 진리의 것과 같은바, 주님은 다윗의 시에서 ‘모퉁이돌’이라 불리우신다. 즉 ‘건축자들이 거절해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리들이 되었다.’ 그리고 스가랴에서, ‘유다로부터 모퉁이돌이 있을 것이다.’ …이사야에서, ‘여호와는 시온에 증거의 돌을 세울 것이다, 이는 기초가 되는 귀중한 모퉁이이다.’
출26:18-‘남쪽을 향하는 남쪽의 모퉁이를 위한 널판’=진리가 빛에 있는 내면과 가장 안쪽 것들에 까지..‘모퉁이’, 이것이 세상의 방위를 말할 때,=방위에 의해 의미되고 가리키는 상태가 있는 곳.
* 사랑의 선과 신앙의 진리에 관한 모든 상태들이 ‘땅의 4모퉁이’에 의해 의미되어지고 있다. 사랑의 선의 상태는 ‘동쪽의 모퉁이’와 ‘서쪽의 모퉁이’에 의해, 신앙의 진리의 상태는 ‘남쪽의 모퉁이’와 ‘북쪽의 모퉁이’에 의해 의미된다. 계7:1, 20:8, 마24:31, 겔37:9 참조
출27:12-‘바다쪽(서쪽)의 모퉁이를 향하여 뜰의 넓이’=과학적 진리들 측면에서의 이 천국의 상태…
암3:12-‘침대의 모퉁이 그리고 침상의 맨끝’=가장 낮은 자연 평면, 이는 외적 감각 평면이다, 그리고 그것의 진리와 선.
계7:1-‘나는 땅의 4모퉁이 위에 서있는 4천사들을 보았다.’ ‘땅의 4모퉁이들’=보편적인 영들의 세계.
계7:1-‘땅의 4모퉁이들과 하늘의 4바람들’=복합체 안에 있는 교회로부터의 모든 진리들과 선들.
습3:6-‘황폐해지게 될 모퉁이들’=전체 복합체에 있는 교회로부터의 진리들과 선들.

모퉁이돌 (cornerstone)
* 모퉁이, corner를 보라.

목재 (wood)
나무 (wood)

이60:17-‘목재를 위해 놋쇠를’=육체적 선을 위해 자연적 선을.
창6:14-‘고페르(gopher) 목재들’=현세에의 욕망들(concupiscences).
겔26:12-‘너의 목재들’=의지로부터의 것들.
합2:11-‘목재로부터 있는 들보가 대답한다.’…‘목재’=의지로부터의 가장 수준 낮은 것, 이것이 감각적인 과학물로부터 어떤 것이 산출될 때 응답한다.
합2:19-‘깨어나라 하고 목재에게 말하는 자는 슬퍼할지어다.’ 여기서, ‘목재’=탐욕.
애5:4-‘우리의 목재(장작)들은 값을 내고 온다’… ‘목재들’=의지로부터의 것들. (=단지 악들의 근원인 자신들로부터서만 가르침이 있다) (=선에 관한 지식들이 결핍되고 있다).
예2:27-‘나무 조각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 아버지이다.’ 여기서 ‘목재’=탐욕, 이는 의지로부터, 의지 속에 임신된다.
레14장-‘목재’, 일반적으로,=의지로부터 있는 가장 수준 낮은 것들. 귀중한 목재들, 예를 들면, 삼목들, 성전에 있는 삼목(cedar), 문둥병을 깨끗하게 하는데 사용된 삼목 그리고 나무가 마라에서 쓴 물들 안으로 던져졌다…=선이 있는 의지로부터의 가장 수준 낮은 것들.
여9:23,27-정의와 공적을 선한 일들 안에 놓았던 이들은 (저 세상에서) 자신들이 나무를 자르는 것처럼 보인다…그들이 나무를 자르고 있을 때, 나무 아래 주님의 어떤 것이 있는 것처럼 나타난다. 고로 마치 나무가 공적(merit)이었던 것처럼 이다… 이런 이들이 유대 교회 안에 있는 이들이고 ‘땔나무를 패는 자’에 의해 표현되어져 있다.
예3:9-‘돌과 나무로 간음을 범하는 것’=외적 예배의 진리들과 선들을 뒤집는 것.
호4:12-‘내 백성이 자기들의 나무 조각에 문의한다’=어떤 탐욕의 즐거움의 선으로부터. (=악들과 상담하는 것)=그들이 자신의 사랑과 상담하는 것
창27:3-‘그는 번제를 위해 나무를 쪼갰다’=정의의 공적…‘나무’=일들로부터 있는 선들, 그리고 정의로부터 있는 것들. 그리고 ‘나무’를 쪼개는 것=일들로부터 있는 선 안에 공적을 놓는 것.
겔37:16-‘목재’=선, 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의 선,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부터의 선, 모두, 그리고 그러므로 ‘유다’와 ‘요셉’은 ‘목재 조각’ 위에 적어져야 할 것, 그리고 이는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이다고 명령되었다.
슥5:4-‘목재들’=(자연적 마음에 있는 ) 선들.
창40:19-‘(바로가) 나무에 당신을 매달 것이다’=거절과 정죄됨.
출7:19-‘나무로 된 것, 돌로 된 것 모두’=선행으로부터 있는 선, 신앙으로부터 있는 진리가 모두 왜곡됨.
출15:25-‘여호와께서 나무 조각을 보여주셨다’=주님이 선을 불어 넣으셨다는 것.
출15:25-‘그리고 그는 물들 안으로 그것을 던졌다’=그분이 진리들을 감동시킴과 더불어. ‘물들 안으로 나무 조각을 던지는 것’…=진리들을 선을 가지고 감동되게 하는 것.
신19:5-‘숲에서 목재를 자르는 것’=종교적인 것으로부터 선에 관하여 논쟁함. ‘목재’=선…그리고 ‘숲’=종교적인 것.
겔39:10-‘그들은 들판으로부터 목재들을 가져오지 못할 것이다’=…교회로부터의 내면의 선이 없다. (그 반면) ‘숲으로부터 목재들’=그것의 외면의 선들.
출25:5-‘그리고 싯딤 목재들’=주님으로부터 있는 공적(merit)의 선, 고로 주님 만으로부터 있는 것. ‘목재들’=공적의 선.
이41:19-‘기름의 목재’=천적인 선.
출25:10-‘싯딤 목재들로 (궤를 만들어라)=정의…이는 공적의 선이다.
출30:1-‘싯딤 목재들로부터 너는 (향 제단을) 만들 것이다’=신성한 사랑으로부터. ‘싯딤 목재들’=공적의 선과 정의. 이는 주님 만으로부터 있다.
계9:20-‘나무로 만든 우상들’=선한 일들에 관련한 거짓들. (=단지 글자 의미만으로 확증한 거짓된 교리적인 것들.)
계18:12-‘모든 향나무(thyine wood)’=자연적 선들 (=자연적 인간 안에서 진리와 결합한 모든 선).
계18:12-‘귀중한 목재로 만든 모든 그릇’=합리적 선과 진리로부터 있는 과학물.
예10:3-5-‘숲으로부터 자른 목재, 인부의 손이 도끼를 가지고 (작업한 것)…’ 이 말은 영적인 것으로부터 분리된 자연적 선을 묘사하고 있다, 이 선은 자아로부터 이다…‘목재’=선, 여기서는 이런 선. (=예배 속의 악).
예7:17-‘아들들이 나무를 그러모은다, 그리고 아버지들이 불을 지핀다…’=거짓들에 있는 이들이 자신들을 위해 악들로부터 거짓들을 획득한다. ‘나무를 그러모으는 것’=악들로부터 거짓들을 획득하는 것.
신21:22-‘만일 사람이 범죄를 하여 죽음의 판결이 있다면, 너는 나무에 그를 매달 것이다’=만일 사람이 말씀의 선에 맞서고, 교회의 선에 맞서 악을 행하였다면, 그는 나무 위에 매달려졌다…그 이유는 ‘나무’, 말씀에서=선. 그리고 반대 의미로는 악이기 때문.
애5:13-‘소년들이 나무 아래에서 헛딛어 곱드러진다’=초기의 선들은 악들을 통하여 멸해지고 있다 (=선을 뜻할 수 있는 이들이 선들을 간음하도록 강요당한다).
겔26:12-‘목재들’=자연적 인간의 선들.
이40:20-‘목재’=선 같이 숭배되는 악.
예46:22-‘나무 패는 자 같이’=마치 그들이 악을 근절하기를 원하는 듯 보이게 하고 실지는 선을 근절하고 있다.
합2:11-‘목재’=거짓을 확증하는 악, 그리고 그것에 동의한다.

못 (nail)

* ‘나무못(peg)’ 또는 ‘못’=첨부(affixion), 부가(adjunction).
이54:2-‘긴 줄’, 그리고 ‘못’=(영적) 진리들의 충분한 연결과 확증.
이33:20-‘못’, ‘끈’=확증하고 결합하는 것들.
이41:7, 예10:4-‘못’=고정함, 그리고 결합함.
이22:23,24, 겔15:3-어떤 것이 매달려지게 하는 ‘못’에 의해 첨부함(affixion)이 의미된다.
이33:20-‘못’, ‘끈’=천국의 진리들과 선들을 결합하게하는 것들.
신23:13-냄새나는 추잡한 사랑에 관한 상응 때문에, 이스라엘 후손들은 ‘자기 똥을 덮는 넓적한 도구(작은삽, paddle)를 운반하도록 명령되어졌다.
슥10:4-‘유다로부터 있는 못’=강화시켜주는 진리.
예10:4-자아로부터의 확증들을 수단으로 결과되어지는 시종일관함이 ‘그는 그것을 못으로, 망치를 가지고 고정하여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에 의해 묘사되어 있다.
이54:2-‘못으로 단단해지게 하는 것’은 말씀으로부터 확증함이 의미된다.
이54:2-‘못’에 의해 (선과 진리의) 형성이 의미된다.

문 (door)
문지기 (doorkeeper)

* 이 문은 통상 작은 문에 해당됨(방의 문 등등)
마24:33-‘문들에서’라고 말해지고 있다. 그 이유는 자연적 평면의 선 그리고 그 평면의 진리들이 인간이 거듭나지고 교회를 만들 때 첫 번째로 서서히 주입시켜지기 때문이다.
왕상6:32-‘문들에 그룹들이 있었다’=천국과 교회로의 접근.
창4:7-‘죄가 문에 누워 있다’…‘죄가 문에 누워있다’=바로 가까이에 악이 있고, 그리고 들어가기를 원하고 있다…문에 있는 악마와 그의 패거리들과 싸움을 있게 하는 유일한 것은 주님을 사랑함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다.
* (노아의 방주의) 문=들음(hearing)
창18:1-‘천막의 문에 앉아 있다‘=…거룩한 것으로의 입구에서…
창19:6-‘롯은 문으로 그들에게로 밖으로 나갔다’= 그는 자신을 신중하게 대처했다…‘문’, 말씀에서=진리이든, 선이든, 또는 주님이시든 들어가게 하는 것, 또는 소개하는 것. 그런고로 ‘문’=진리 자체, 또는 선 자체, 그리고 주님 자신; 그 이유가 진리는 선 쪽으로 인도하고, 선은 주님 쪽으로 인도하기 때문. 성막의 문들과 휘장들은 이와 같은 것을 표현했는데, 성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요10장-‘문으로 양우리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이다; 그러나 문을 통하여 들어가는 자는 양의 목자이다. 나는 양의 목자이다. 나를 수단으로 누군가가 들어갈 것이다면 그는 구원될 것이다.’ 여기서 ‘문’=진리와 선, 고로 주님, 이 분은 진리 자체이고 선 자체이다. 이로부터 문을 수단으로 천국 안으로 들어감에 의해 의미되는 것이 명백해진다.
창19:11-‘집의 문에 있던 남자들’=합리성 그리고 이로부터의 교리적인 것을 통하여 폭력이 선행의 선에 가해진다….‘문’=소개, 접근, 이것이 진리 쪽이든, 선 쪽이든 어느 쪽으로 인도한다; 고로 그것=교리인 것.
마25:10-‘그리고 문이 닫혔다’=다른 사람들은 천국으로 입장할 수 없었다는 것.
출21:6-‘그는 그를 문이나 문설주에 데려갈 것이다’=진리가 확증되고 이식되어 영적 선과 더불은 상태. ‘문’=진리를 선에 소개함, 여기서는 진리가 확증되고 이식되었음을 소개함…그리고 ‘문’=소개함, 입문함인바, 그것 또한=소통함, 그 이유가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가려면 문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
이26:20-‘분노가 통과되기 까지 네 뒤에서 네 문을 닫으라’=악과의 소통은 없음.
슥11:1-‘문을 열라, 오 레바논아’=접근 또는 소통함을 주는 것.
시84:10-‘나는 내 하느님의 집에 있는 문에 서있기를 선택했다’=선과 더불은 것 없이 소통하는 것.
계3:20-‘보라, 나는 문에 서있다, 그리고 두드린다’=주님은 말씀 안에서 모든 사람과 현존하신다는 것, 그리고 말씀 안에서 주님을 영접하라고 재촉하시고, 어떻게를 가르치신다…‘문’=승인과 입장.
이45:1-‘그에게 문들이 열리고, 성문은 닫혀지지 않을 것이다’=전지하심으로부터 그분에게는 모든 것이 명백해져 있다는 것, 전능하심으로부터 그분은 구원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시다는 것.
창19:6-‘그는 그 사람 뒤에서 문을 잠궜다’=그들의 선행의 선에 폭력을 행사하지 않도록, 그리고 신성한 인간과 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거룩함을 부정하지 않도록.
창19:9-‘그들은 문을 부수려고 접근했다’=그들은 둘 모두를 깨부수려고 왔다. (그 이유가) ‘문’=선에, 주님에 소개하는 것; 또한 선 자체, 그리고 주님 자체.
겔8:3-‘북쪽을 바라보고 있는 안쪽 (성)문으로부터의 문’=내면의 거짓들이 있는 장소; ‘북향의 여호와의 집의 큰 문으로부터의 문=내면의 악들이 있는 곳.
창38:14-‘(다말은) 딤나로 가는 길에 있는 샘들의 문에 앉았다’=교회의 진리들에 그리고 교회의 거짓들에 매개물…‘그들의 문’=그들에게 입장함에서; 그리고 말씀의 글자 의미 속에 있는 외적 진리들에는 들어갈 수 있는 빈틈이 있는 바, 이 진리들은 ‘문’이다.
창43:19-‘그들은 집의 문에서 그에게 말했다’=소개함에 관하여 교리적인 것들로부터 상담함…‘그것들의 문에서’=소개함; 여기서는 외적 인간으로부터 내적 인간까지 …이런 의미가 있기에 원어의 경우, ‘집의 문에서’라고 말하지 않고, ‘집의 문’이라 말해지고 있다.
출12:22-‘집의 문으로부터 나가는 것’=선으로부터 진리 쪽으로 나가는 것; 그 이유가 선은 안쪽에 있고, 진리는 바깥쪽에 있기 때문.
시 24:7-‘네 머리들을 들어 올려라, 오 너희 큰 문들이여; 너희는 들어올려진다, 세상의 너희 문들아’ ‘세상의 문들을 들어 올리는 것’=주님에게 심정을 열고 그분에게로 끌어 올리는 것…그리고 소통하는 것, 즉 그분이 선행의 선과 믿음 속의 진리와 더불어 안으로 흘러드시도록 하는 것.
출26:36-‘너는 성막의 문을 위하여 늘어뜨릴 것을 만들어라’=두 번째 천국이 첫 천국과 연합되게 하는 매체…여기로부터 저기로 가는 입구에 늘어뜨린 것이 있는 문에 의해 의미되어졌다.
출29:4-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회합의 성막의 문으로 데려오라‘=천국 안에서 둘의 결합…’문‘=소개함…그 이유가 회합의 성막의 문이 있는 장소는 신성한 선이 신성한 진리와 결혼함을 표현했기 때문.
출29:32-‘회합의 성막의 문에서’=천국 안으로 입장하기 위하여. ‘문’=입장, 그리고 소개함.
출33:8-‘모든 백성이 일어났다, 그리고 성막의 문에 섰다’=이 나라는 말씀, 교회 그리고 예배의 외부에도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의 밖에 있었다…그 이유가 ‘문’=입구, 소개함, 그리고 소통함; 이로부터 문 앞에 서는 것=들어가지 않은 것, 소개되어지는 것, 그리고 소통되는 것.
마25장-‘문’=천국 안으로 입장.
계3:8-‘잘 보라, 나는 너희 앞에 열린 문을 장치한다’=천국은 주님으로부터 있는 선으로부터의 진리들에 있는 이들에게는 열려있다는 것. ‘열린 문’=입장 허가.
계4:1-‘보라 천국에 열린 문…’=주님에 의한 마지막 심판을 위한 천국들의 서품식에 관하여 명명백백해짐.
겔10:19-‘집의 큰 문으로부터의 동쪽 문’=(천국과 교회에) 접근.

문 (gate)

* 이 문은 주로 큰 문 (성의 문, 등등)
이54:12-그렇기 때문에 합리적인 것들.
창28:17-사람이 ‘벧엘’이다…그리고 또한 그가 지식들로부터의 천적인 것들 안에 있을 때가 ‘하늘의 문’이다.
창19:1-‘롯은 소돔의 문에 앉아 있었다’=선행의 선 안에 있는 이들, 그러나 외적 예배에 있는 이들…이들은 악 사이에 있으나 악한 자들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이것이 ‘소돔의 문에 앉아 있는 것’이다.
창22:17-‘네 씨가 네 원수들의 문을 상속할 것이다’=선행과 믿음이 악과 거짓이었던 자리를 계승할 것이다.
이14:31-‘문’=내면들, 또는 합리적 마음에 접근함; ‘도성’=그 마음…
이24:12-‘문’이 ‘황폐한채 방치되어 있다’라고 말해질 때, 이는 악과 거짓만이 지배하고 있을 때이다.
애1:4-‘(시온의) 모든 문들이 황폐하다’=모든 입구가 거짓에 소유당해 있다.
애2:9-‘그녀의 문들이 땅으로 가라앉았다’=자연적 마음이 악과 거짓에 소유당했다.
신28:52-‘모든 (성)문들이 제한(포위)되었다’=선과 진리로의 입구가 차단되었다.
나3:13-‘토지의 문들이 적에게 열리어 있다’=선들이 있어야 할 장소를 악들이 소유했다.
사5:8-‘문들을 습격하는 것’=선과 진리를 습격하는 것.
시69:12-‘문의 주민들’=악들과 거짓들; 또한 지옥들
겔8:3-‘북향을 보고 있는 안쪽 (성)문으로부터의 문’=내면의 거짓들이 있는 장소.
겔8:14-‘북을 향한 여호와의 집의 큰 문의 문’=내면의 악들이 있는 장소.
시127:5-‘문에서 적들과 이야기하는 것’=악들과 거짓들, 고로 지옥의 어느 것도 겁내지 않는 것.
미1:9, 옵13절-이로부터 예루살렘이 ‘백성의 문’이라 불리워진다.
창23:10-‘그의 성문으로 들어오는 모두에게 말하기를’=교리적인 것들에 관하여, 이를 통하여 신앙이 있다. 그 이유가 ‘문’=입구, 고로 소개하는 것…’문’과 같은 의미이다.
창24:60-‘네 씨가 네 미워하는 자의 문을 상속하게 하라’=신성한 인간 안에서 선과 진리의 결혼으로부터 있는 주님의 영적 왕국, 이 왕국은 악과 거짓이 있는 거기 앞에서 선행과 신앙을 가진다.
창34:20-‘성의 문’=진리의 교리.
창34:24-‘그의 성문을 나가는 모든 자’=그들은 고대인들 사이에 교회의 교리로부터 퇴조했다는 것…성의 문=교리…
출27:16-‘바깥뜰의 문을 위한 덮개’=이 천국을 소개함, 그리고 준비되지 않은 이들 외에는 누구도 들어가지 않도록 감시함. (그 이유가) ‘문’=소통함과 소개함.
출27:26-‘모세가 진영의 문에 섰다’=지옥으로 열림이 있는 곳…‘문에서’=열림이 있는 곳…모세가 진영의 문에 선 이유는 … 내적인 것이 지옥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표현되기 위하여서였다.
마16:18-‘지옥의 문들이 득세하지 못할 것이다’=지옥들은 감히 밖으로 나가 신앙 속의 진리들을 파괴하지 못할 것이다.
창22:17, 24:60-‘원수의 문을 상속받는 것’=지옥으로부터 있는 악들과 거짓들을 파괴하는 것.
시14:7,9-‘문들’ 좋은 의미에서라면,=천국으로 열림.
출32:27-‘너희를 건너 진영에서 문으로부터 문 까지 돌아오라’=내적인 것으로부터 외적인 것으로 열린 어떤 것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그 이유가) ‘문’=열림; 고로 ‘문으로부터 문 까지’=열린 어떤 것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계21:12-‘열 두 문들을 가지고 있는…’=거기 있는 선과 진리에 관한 모든 지식들, 이를 통하여 인간은 교회 안으로 소개받는다. ‘문들’에 의해 말씀으로부터의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이 의미된다, 그 이유는 이를 수단으로 인간은 교회에 소개 되기 때문; 그 이유가 문들이 있는 성벽=말씀이기 때문.
계21:13-‘동쪽에 세 문들이, 북쪽에 세 문들이, 남쪽에 세 문들이, 그리고 서쪽에 세 문들이’=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 이 지식 안에 주님으로부터 천국으로부터 영적 생명이 있다, 그리고 이 지식을 수단으로 새 교회가 소개된다. 이 교회는 다소 차이는 있다 해도 대체로 사랑에 있는 이들, 또는 선에 애착함을 지닌 이들을 위한 교회이다. 그리고 다소 차이는 있어도 대체로 진리에 애착함, 또는 지혜에 있는 이들을 위한 교회이기도 하다.
계21:15-‘나와 대화했던 그 사람은 도성과 그 문들을 측량하려고 금갈대를 가지고 있었다’=사랑의 선에 있는 이들에게, 주님께서는 주님의 새 교회의 교리와 이 교회를 소개하는 진리들에 관하여 알고 이해하는 능력을 주신다는 것.
계21:19-‘그리고 열 두 문들은 열 두 진주들이었다, 그리고 문들의 각각은 한 개의 진주 였다’=주님을 인정함과 주님에 관한 지식은 말씀으로부터 있는 모든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을 하나로 결합한다, 그리고 주님의 교회를 소개한다.
계21:25-‘그리고 그것의 문들은 낮에 닫히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거기에는 밤이 있지 않기 때문’=주님으로부터 사랑의 선으로부터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은 새 예루살렘 안으로 받아들임은 꾸준할 것, 그 이유는 거기에 믿음으로부터의 어떤 거짓도 있지 않기 때문. 낮에 닫혀 있지 않은 문들이란 들어가기를 원하는 이들이 승인되었음을 의미한다…
계22:14-‘그분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복있다, 그들의 힘은 생명의 나무에 있을 것, 그들은 성 안으로 문들을 통해 입장한다는 것’=주님의 교훈에 따라 사는 이들은 영원한 행복을 가진다, 그 이유는 그들이 지닌 목적은 그들이 주님 안에 있고, 사랑을 통하여 주님이 그들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 그리고 그분에 관한 지식들을 통하여 그분의 새 교회 안에 있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기 때문.
이26:2-‘문들’=허락.
이45:1-‘(성)문이 닫히지 않게 문들을 여는 것’=영구히 허락함.
예1:15-‘예루살렘의 (성)문들의 문에 와서 보좌를 놓는 것’=교회를 소개하는 진리들을 거짓을 통하여 파괴하는 것.
애5:14-‘원로들이 문으로부터 중지되었다’=선으로부터 진리들에 있는 이들, 또는 추상적으로 선으로부터의 진리를 통하여 교회로의 입장 허가가 더 이상 없다.
시127:5-‘그들이 적들과 문에서 이야기 할 때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그들은 지옥으로부터의 악들에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문’=지옥.
예14:2-‘문들’에 의해 이런 것들에 접근함이 의미된다.
이54:12-‘네 문들’=입장 허가를 받는 진리들; 특별히 선으로부터 있는 교리적인 것들; 그 이유가 순수한 교리 속의 모든 진리들은 선으로부터 진행되고, 그리고 선 속에 있기 때문.
겔43:1,4-‘문’에 의해 소개됨과 입장함이 의미된다.
겔44:1,2-‘동쪽을 쳐다보는 문’에 의해 그분으로부터 진행하는 사랑의 선을 통하여 주님에 의해 천국 안으로 그리고 교회 안으로 소개됨이 의미된다. 그리고 이것이 주님으로부터 이다는 것이 ‘여호와께서… 이 문을 통하여 들어가셨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소개됨은 이 선으로부터 주님에 대한 예배를 통하여 결과된다는 것이 ‘문은 안식일에 열려질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그리고 이 선으로부터 예배가 있지 않을 경우 소개함은 거행되지 않는다는 것이 ‘일하는 육일 동안 이 문은 닫힌다’에 의해 의미된다.
겔47:1-여기서는 ‘집’에 의해 교회가 의미되고, ‘문’은 입장과 소개함이 의미된다.
겔48:34-‘문들’에 의해 소개하는 진리들이 의미된다. 이 진리들은 교리적인 것들이다.
이14:31-‘문’에 의해 교회로 소개하는 진리가 의미된다…이로부터 ‘울부짖어라 성문아’…진리에 관련한 교회의 황폐함이 의미된다.
이28:6-‘성문에서 전쟁을 물리치는 이들에게 여호와는 힘이 되신다’=주님께서는 말씀과 말씀으로부터의 교리를 방어하는 이들에게 힘을 주신다, 그리고 그들에게 폭력을 행사함에서 방패가 되신다. ‘도성’=교리; 그리고 ‘성문’=자연적 진리들. 그런고로 원로들이 판결하기 위해 도성의 문에 앉아 있다.
옵11절-‘문들로 입장한 외국인들’이란 내면의 진리들 안으로 입장함을 통하여 진리들을 파괴하는 교리 속의 거짓들을 의미한다.
마16:18-‘지옥의 문들이 득세 못 할 것이다’=지옥으로부터 있는 악들로부터의 거짓들은 주님으로부터 선으로부터 진리들에 있는 교회인들에 맞서 감히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지옥의 문들’이란 지옥의 모든 것들, 이것들에 있는 문들을 통하여 악으로부터의 거짓들이 봉기한다.
애1:4-‘그녀의 모든 문들이 황폐되었다’=진리들로의 입장은 없다는 것.

문기둥 (post)
문설주

출12:7-‘그것을 두 문기둥과 인방에 놓으라’=자연 평면으로부터의 선들과 진리들. 문의 ‘기둥들’=자연 평면으로부터의 진리들.
출21:6-‘그는 문으로 이든, 문기둥으로 이든 어느 쪽으로 그를 데려올 것이다’=영적 선으로 해서 심어지고 확증된 진리의 상태. 그이유가 문기둥은 두 방들 사이에 있고 그것들을 결합하게 하기 때문.

문지방(threshold)
문턱

습2:14-‘문지방에 가믐’=진리의 완전 파멸.

방 (chamber)

* 침실, bedchamber도 보라
마24:26-황폐된 진리가 ‘광야, desert’에 의해 의미된다. 그리고 황폐된 선은 ‘은밀한 방(골방)’에 의해 의미된다.
겔8:12-‘자기 형상의 방들에 있는 모든 사람’=자신 안에, 자기 생각들에 내향적으로 있는 것. 그들의 생각과 애착의 내면들이 ‘방들’에 의해 표현되어지고, 이 구절에서 ‘형상의 방들’이라 불리우고 있다.
신32:25-‘방으로부터는 공포’=인간의 내면의 것들.
시104:13-‘그분의 방들로부터’=천국의 내면적인 것들로부터.
시105:30-‘왕들의 방들’=내면의 진리들, 그리고 반대 의미에서, 내면의 거짓들.
출8:3-‘침실’=마음의 내면들…그이유는 침실은 집의 안쪽 부분이기 때문. ‘방들’=내면의 것들, 그리고 ‘침실’=한층 더 내면의 것들.
시104:13-‘그분은 그분의 방들로부터 산들에 물을 주신다’=모든 선들은 천국으로부터 진리들을 통하여 온다…‘방들’=이런 것들이 와지는 천국들.
신32:25-‘문들로부터는 검이 빼앗고, 방들로부터는 공포가’=지옥으로부터 있는 거짓과 악이 자연적 인간과 합리적 인간 모두를 황폐하게 할 것이다.
시105:30-‘방들’=내면의 것들.
시104:3-‘그는 물들에 들보들을 가지고 그분의 방들을 함께 연결하신다.’…그분이 물들에서 들보들과 함께 연결하는 ‘방들’=천국의 사회들.
시104:3-‘방들’=교리적인 것들.
시104:3-‘물들에서 들보를 가지고 그분의 방들을 연결하는 것’=최말단 천국에 있는 이들과 교회에 있는 이들을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채우는 것.
시104:3-‘그분은 물에서 들보들을 가지고 그분의 방들을 함께 연결하신다’=주님께서는 신성한 진리들을 수단으로 천국들과 교회를 만드신다…‘여호의 방들’=천국들과 교회.

방주 (ark)
노아의 방주(궤) (ark of Noah)

* 노아라 불리는 교회인은 ‘방주’에 의해 풀이된다.
* (노아라 불리는 새 교회의) 형성이 ‘방주’에 의해 서술되는데, 이 방주 안으로 모든 생명있는 창조물이 받아졌다.
* ‘홍수’, ‘방주’, 그리고 이것들에 관련되어 묘사되는 것들은 거듭남, 그리고 거듭남에 앞서 진행하는 시험들을 의미한다.
* ‘방주(ark)’에 의해 …신비가 의미되는데…마찬가지가 모세가 감추어졌던(아기 모세를 담았던) 작은 상자(ark)도 신비를 지니고…어쩌면 이 두 가지보다 더 높게 신비를 내포한 것은 광야에서의 언약을 담은 궤(ark)일 것이다.
* ‘그가 방주로 들어갔다’=그는 구원되어졌다.
창7:1-‘너와 모든 네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의지 속에 있는 것들
* ‘방주로 들어가는 것’=준비되어지는 것.
창7:7-‘노아는 홍수의 물들에 앞서 방주로 들어갔다’=그는 안전해졌다.
창9:10-‘방주로부터 나온 모든 것’=교회인…또는 거듭나는 자.
마24:38-‘노아가 방주로 들어가는 날 까지’=이전 교회의 끝, 그리고 새로운 교회의 시작.

배 (ship, vessel)

이43:14-‘배들’=부패된 진리에 관한 지식들.
이60:9-‘다르싯의 배들’=지식들 (=말씀으로부터의 진들과 교리물들).
창49:13-‘배들의 피난처에서’=말씀으로부터의 교리물이 있는 곳.
시107:23-‘배들’=지식들과 교리물들. 말해지기를, ‘배들을 가지고 바다로 내려 간 그들, 이들은 여호와의 일들을 보았었다…’
계8:9-‘배들의 삼분의 일이 부셔졌다’=교리물로부터의 진리들과 선들이 왜곡되었다.
시104:26-‘배들’=지식들과 말씀으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
요21:6-‘배의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는 것’=사랑의 선과 선행의 선으로부터 [행해지는] 모든 것들.
이33:21-‘노질하는 배’=자아로부터의 총명, 그이유는 인간 동력으로 배가 움직이기 때문. ‘웅대한 배’=자아로부터의 지혜. 바다를 가로질러 재물을 운반할 때의 배=총명과 지혜.
민24:24-‘깃딤 해안으로부터의 배’=고대 교회에 의해 소유된 진리와 선에 대한 지식들.
사5:17-‘왜 단은 배들을 두려워하는가?’=왜 그는 거짓들과 거짓으로부터의 교리들을 쫒아버리지 못할까?
계18:17-‘배들에 고용된 이들’=총명에 있는 이들.
계18:19-‘바다에서 배들을 가지는 것’=자연적 인간으로부터의 추론들을 수단으로 이런 것들을 확증하는 것.

벽 (wall)

창49:22-‘그녀가 벽 위에서 행진한다’=거짓에 맞서 싸우는 것.
출14:22-‘물들이 그들의 오른쪽과 왼쪽에서 벽이 되었다’=그들은 사방으로부터 있는 거짓들로부터의 간섭이 억제되었다.
여6장-‘여리고의 성벽들’=악들을 방어한 거짓들.
욜2:9-‘그들이 벽에서 달린다’=본질적 거짓.
계21:12-‘크고 높은 성벽을 가졌다’=새 교회의 교리가 있는 글자 의미에 있는 말씀. ‘거룩한 성 예루살렘’=교리 측면에서의 주님의 새 교회, 그것의 ‘성벽’=교리가 있는 글자 의미에서의 말씀. 그 이유가 이 의미는 영적 의미를 보호한다…성벽이 성과 성의 주민을 보호하는 것과 같다.
계21:13-‘성의 벽은 열 두 기초들을 가졌다’=글자 의미에 있는 말씀은 새 교회의 교리의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
예1:15-‘사방 모든 벽들에 대하여’=방어하는 모든 진리들을 파괴하는 것.
예1:18-‘놋 성벽’=선이 보호함.
이26:1-‘성벽들과 성채들’=보호하는 진리들.
계21:18-거룩한 예루살렘의 성벽은 ‘벽옥’으로 되었다고 말해지는데, 그이유는 ‘성벽’=신성한 진리가 보호함이기 때문.
겔26:10-‘흔들려지는 성벽…’=보호해주는 진리들, 이 진리들은 일반적으로 하느님은 계시다, 말씀은 신성하다, 그리고 영원한 삶이 있다 등등이다.
애2:7-‘그녀의 궁전의 벽들’=모든 보호하는 진리들. ‘궁전’=교리 속의 것들.
이2:15-‘탑’, ‘성벽’=교리 속의 거짓들이 확증했다.
이22:10-‘벽’=방어하는 교리 속의 진리, 여기서는 왜곡된 진리, 그 이유는 선이 없기 때문.
슥2:5-‘불 성벽’=신성한 사랑에 의해 보호됨. 그 이유가 여기에 지옥들이 접근할 수 없기 때문.
이2:15-‘드높은 망대와 견고한 성벽’=거짓으로 확증한 원리들.
겔26:12-그들이 ‘파괴’할 ‘벽들’=교리적인 것들.
겔13:14-누그러지지 않은 것 가지고 회칠한 담벽=진리 같이 나타나는 허구적인 것.
출30:3-‘그것의 벽들’=내면들. 그이유가 ‘벽들’, 또는 ‘측면들’=내면의 것들이기 때문. ‘지붕’=가장 깊은 것일 때, ‘벽들’, 지붕 아래 인 바=내면(중간)의 것들.
왕상6:29-‘벽들’ 위에 거룹이 조각되었다=천국과 교회의 최말단들.
겔8:10-‘벽 빙둘러’ 그 위에 그들이 그린 것이 보였다=자연적 인간 어디에나 있는 내면들. 그이유가 …‘벽들’=내면의 것들 (이는 가장 깊은 것과 최말단 것과는 구분된다)
암5:19-‘벽에 자기 손을 기댔다가 뱀이 그를 무는 자’=…이런 사람은 글자 의미의 말씀과 상담한다…그는 악들이 그 의미들을 뒤집고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
겔12:5,6-‘어둠에서…옮길 집기들을 벽을 통하여 가져가거라…’=말씀으로부터의 교리의 모든 진리들이 내던져졌다는 것…‘벽’=진리들을 에워싸고 보호하는 최말단. 그리고 교리의 최말단은 글자 의미이다…이것이 ‘벽’이라 불려진다. 그 이유는 글자 의미는 영적 의미를 함유하고 에워싸고 있기 때문.
겔23:14-‘사람들이 벽에 그렸다’=(내향적으로는 모독하고 있는데 외향적으로 진리들인듯 나타나는 교리물들)=외적인 것들에 있는 교리적인 것들의 나타남.
합2:11-‘담벽으로부터 돌들이 소리친다’=진리들이 결여된 사람, 그 결과 왜곡된 것으로부터 가르침 받기를 원하는 사람.

벽걸이 천 (hangings)

출27:9-‘뜰을 위한 벽걸이 천’=최말단 천국의 진리. ‘커튼, curtains’=진리들. 고로 또한 벽걸이 천.

벽돌 (brick)

창11:3-‘우리가 벽돌을 만들자’=그들이 자신들을 위해 모양지은 거짓들. ‘돌’=진리. 그러므로 ‘벽돌’,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거짓, 그이유가 벽돌은 돌 같이 가공했기 때문.
창11:3-‘그들은 돌을 위해 벽돌을 가졌다’=그들은 진리 대신 거짓을 가졌다.
출1:14-‘진흙과 벽돌’=그들이 찾아낸 악들과 그들이 모양지은 거짓들 때문에.
출5:7-‘벽돌들을 만드는 것’=주입될 꾸며지고 왜곡된 사항들.
출5:14-‘벽돌들을 만드는 것’=허구적이고 거짓인 것을 받아들이는 것.
이65:3-‘동산에서 희생제를 지내고 벽돌 위에서 향을 태운다’=그들 자신의 총명으로부터 있는 교리의 거짓들로부터 예배함.

보루 (bulwark)

이26:1-‘성벽들’과 ‘보루’=방어하는 진리들.
시122:7-‘네 성벽 안쪽에 평화가 있고, 네 궁전에 쉼이 있다’=외면의 인간에서 그리고 내면의 인간에서. 그 이유가 외면의 인간은 그 안에 있는 것들과 더불어 내면의 인간을 위한 보루, 또는 요새 같기 때문….그러므로 인간의 외면들은 ‘보루’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그리고 그의 내면들은 ‘궁전’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시48:13-‘보루에 심정을 두는 것’=거짓들에 맞서 이 교회를 방어하는 외면의 진리들을 사랑하는 것.

사닥다리 (ladder)

창28:12-‘보라 사닥다리가 땅에 놓여졌다’=가장 낮은 진리와 그로부터 파생된 선이 교통함. ‘사닥다리’=서로 왕래함, 교통함…
*‘그것의 머리는 하늘에 닿고 있었다’=신성과 교통함이 있었다는 것.

상 (statue)

단2장, 3장-느브갓네살에 의해 보여진 ‘상’=진정한 예배로부터 결국은 ‘바벨’이라 불리는 예배로 타락하는 것…느브갓네살이 세운 금 신상 역시 같은 부류이다.
이19:19-‘기둥’. (=자연 평면에서 질서의 최말단인 진리)
단2장-‘상’=교회의 연속적인 시대(단계), 즉 금-은-동-철 시대.
단2장-‘상의 머리’=천적인 것들. ‘가슴’=영적, 또는 합리적인 것들, 등등.
예43:13-‘태양의 집의 상들’=자아를 예배함.
창19:26-이 구절에서 ‘상’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히브리 단어는 잠자코 있음, a standing still을 뜻하는 단어인바, 이는 예배를 위해 세워둔 상을 뜻하지 않고, 어떤 표시를 위해 세운 상도 아니고, 증거로 삼으려 세운 상도 아니다. 하여 ‘소금 상’은 여기서 롯의 아내에 의해 의미된 진리가 황폐되어 서있다가 의미된다.
창28:18-‘그는 기둥을 위해 그것을 놓았다’=거룩한 경계(영역). 고로 질서의 최말단.
출24:4-‘열 두 기둥들’=예배에서 선으로부터 있는 진리.
신16:22-진리의 표징이 제단의 돌들에 의해 설립되어졌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기둥들을 수단으로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금하여졌다, 진리가 선으로부터 분리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창31:13-‘네가 기둥에 기름부었던 곳’=진리의 선이 있는 곳, 그리고 그것의 경계. ‘기둥’=거룩한 경계, 고로 질서의 최말단. 결과적으로 진리.
창31:45-‘야곱은 돌을 가져왔다, 그리고 그것을 기둥으로 세웠다’=이와같은 진리, 그리고 파생되는 예배…‘기둥’=진리로부터 예배함.
창31:52-‘기둥’=진리. 증거로서, 표시로서 (돌)더미, 기둥 이 사용되었는데, 여기서는 한계(limit)를 표시함.
창33:15-‘너와 더불어 있게(set) 하는 것’=결합하는 것.
창35:14-‘야곱은 그분이 자기와 이야기했던 장소에 기둥, 돌 기둥을 세웠다’=이 신성한 상태에서 진리가 거룩한 것.
창35:20-‘야곱은 그녀의 무덤 위에 기둥을 세웠다’=거기서 일어나질 영적 진리가 거룩한 것. ‘기둥’=진리의 거룩한 것.
창47:2-‘전에 놓은 것’=은근히 심어짐.
출23:24-‘너는 그들의 상들을 조각낼 것이다’=예배 속의 거짓들은 따로 제쳐두어져야 한다는 것.
출24:4-‘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들을 위한 열 두 기둥들’=주님의 신성한 인간의 전체 복합체에서 그분으로부터 있는 신성한 진리 측면에서의 그분의 신성한 인간을 표현함. ‘기둥’=진리 측면에서 주님의 신성한 인간을 표현함, ‘제단’은 선 측면에서 주님의 신성한 인간을 표현함. ‘기둥’, 표현적 의미에서,=주님으로부터 있는 진리의 거룩함.
단2장-‘상의 머리’=교회의 처음 상태, ‘가슴과 팔’, 두 번 째 상태.
출34:13-‘너는 그들의 상들을 부술 것이다’=악으로부터의 거짓은 사라져야 한다는 것. ‘상들’=진리들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을 표현하나 여기서는 반대 의미인 바, 거짓들로부터의 우상 숭배.
이19:19-‘변경에 여호와께 기둥이…’=신앙의 진리들로부터 주님을 예배함. ‘기둥’=신앙의 진리들로부터 예배함.
이27:9-‘태양-상들’=자연적 진리들로부터 예배함.
겔6:6-‘태양-상들’=교리의 거짓들로부터 있는 우상 예배.
단2장-‘상의 머리’=태고 교회.
출24:4-‘제단과 열 두 기둥들’=교회가 존재하는 수단인 선으로부터의 모든 진리들.
겔26:11-‘그는 강건한 기둥을 땅으로 끌어내릴 것이다’=진리들로부터의 모든 예배는 파괴되어질 것이다. 그이유가 ‘기둥들’=진리들로부터 있는 거룩한 예배. 그리고 모든 힘은 선으로부터의 진리 속에 있는 바, 그들은 강건한 기둥들‘이라 불린다.
단2장-‘상’은 바빌론으로 되어가는 교회의 상태를 그것의 시작으로부터 마지막 까지를 묘사하고 있다…그것의 머리=지혜, 그리고 금=주님을 사랑함. 그것의 발의 발가락은 일부는 쇠로, 일부는 진흙으로 되었다는 것=이 교회의 마지막 상태는 사랑으로부터의 모든 선과 지혜로부터의 모든 선이 결여될 것….그런다음 새로운 교회가 건설될 것임이 44절에서 묘사되고 있다.
단2장-교회의 창설로부터 그것의 마지막까지 교회의 종말이 ‘상’에 의해 묘사되고 있다… 첫 교회, 홍수 전에 있었는데, ‘금’에 의해 표현되고, 두 번째 교회는 홍수 후에 있었고 ‘은’에 의

상인방 (lintel)

출12:7-‘그들은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피를 바를 것이다’=자연 평면의 진리들과 선들…‘상인방’=자연 평면의 선들.

새 예루살렘 (new jerusalem)

* 요한과 에스겔에서 ‘새 예루살렘’=천국들과 땅에서 주님의 왕국.
* ‘거룩한 성’, 또는 ‘새 예루살렘’은 선행으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과 신앙으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이 의미된다.
계3:12-‘내 하느님의 도성의 이름, 새 예루살렘’=새 교회의 교리가 그들의 심정들에 새겨질 것이다. ‘새 예루살렘’에 의해 새 교회가 의미된다. 그리고 새 예루살렘이 ‘도성’이라 불릴 때, 교리 측면에서의 새 교회가 의미된다.

성 (city)

* ‘거룩한 성’, 이는 또한 ‘거룩한 예루살렘’이라 불리는데=보편적 측면에서의 주님의 왕국, 또는 각 개인 측면에서의 주님의 왕국. 마찬가지로 ‘성’, 또는 ‘시온의 산’; 후자=신앙의 천적인 것, 전자=신앙의 영적인 것. 천적이고 영적인 것 자체는 ‘성들’로 묘사되고도 있다.
예17:25-‘영원히 거주해질 성’은 예루살렘이 아니고 예루살렘으로 의미된 주님의 교회이다.
* 천국으로부터 하느님으로부터 내려오는 도성 예루살렘=주님에 의해 밝혀주신 천국의 교리.
* ‘거룩한 성’=주님으로부터 있는 신성한 진리의 교리
창4:17-‘가인에 의해 건설된 성’=그 때로부터의 교리적이고 이교도적인 모든 것. 어느 성의 이름이 말씀 어느 곳에서 거론되든, 그것은 성이 아닌 교리적 어떤 것, 이교적인 것을 의미한다; 그이유가 천사들은 성이 무엇인지, 성의 이름도 결코 모르기 때문; 오직 그것들이 의미하는 것만을 지각한다.
창10:12-‘이 성은 큰 성이다’=교리적인 것들, 그것들이 우세해졌다는 것…‘큰 성’이라 불리는 이유는 교리의 모든 거짓, 예배의 모든 거짓이 셍활의 거짓 안으로 파생되기 때문.
창11:4-‘우리에게 성과 탑을 짓기로 하자’=그들이 교리와 예배를 창안했다는 것.
창11:8-‘그들은 성 짓기를 중단했다’=이런 교리는 받아지지 않았다는 것. ‘성’=교리.
창13:12-‘롯은 평야의 성들에 거주했다’=외적 인간은 과학물들 안에 있었다. ‘성’ 또는 ‘성들’=교리적인 것들, 이것은 내적 인간으로부터 분리된 외적 인간이라 단언할 경우, 그자체로서는 과학물들밖에 더 아니다. ‘성들, cities’=교리적인 것들, 참이든 거짓이든 양쪽 모두에서.
예49:25-‘찬양과 환희의 성’=교회 속에 있는 것들.
창18:24-‘성 한가운데 의인 오십 명이 있다면…’=진리들이 선들로 가득차 있다면…‘성’=진리.
창19:4-‘성의 사람들’=거짓들에 있는 이들…‘성’=진리들, 또는 거짓들, 또는 진리에 반대하는 것들.
창19:12-‘성 안에 있는 모든 이 각각’=진리로부터 파생되는 것은 무엇이든. ‘성’=교리인 것, 고로 복합체에 있는 진리.
창19:15-‘너는 성의 불법 안에서 살라지지 않도록’=그들이 거짓의 악들 안에서 멸하지 않도록. ‘성’=교리인 것, 그것이 참된 것 뿐아니라 거짓된 것까지.
창19:16-‘그들은 그를 성 밖에 내놓았다’=거짓으로부터 떨어짐.
창19:17-‘네 뒤를 쳐다보지 마라’=그는 교리적인 것들을 쳐다보아서는 안된다는 것.
예33:13-선행의 교리적인 것들이 ‘산의 성들’, 그리고 신앙의 교리적인 것들이 ‘평야의 성들’이라 불리운다.
창19:20-‘이 성은 도망하기에 가깝다’=신앙의 진리로부터라면은 허용할 수 있음. ‘성’=교리인 것, 고로 신앙의 진리.
창19:25-‘그분은 이 성들을 뒤엎으셨다’=그들로부터 분리된 모든 진리들, 하여 그들은 오로지 거짓들만을 가졌다. ‘성들’=교리적인 것들, 고로 진리들, 거기에 진리들 대신 거짓들이 있을 때, ‘뒤엎어져 있다’라고 말해진다.
창19:29-‘하느님께서 평야의 성들을 파괴하셨을 때’=그들이 악의 거짓들을 통하여 멸망했을 때.
예48:9,28-그들이 거짓에 물들어지도록 자신들을 내버려둘 때, 이렇게 말해진다, 즉 ‘모압의 성들은 황무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성들을 떠나 바위들에서 거주할 것이다.’
이19:2-‘성이 성에 맞서는 것.’ ‘성’=교리인 것, 여기서는 이교(heretical)인 것.
이24:10-‘텅빔의 성이 깨질 것이다’=진리가 박탈된 인간 마음.
이23:10-‘그의 성의 문으로 들어가는 모든 이에게’=신앙이 있도록 한 교리적인 것에 관련하여…‘성’=신앙 속에 있는 진리.
창24:10-‘나홀의 성에’=같은 기원의 교리적인 것들. ‘성’=교리인 것.
창24:11-‘성 밖’=교리적인 것들로부터 옮겨짐.
창24:13-‘성의 사람들’=진리들.
창24:15-‘리브가가 나왔다’=교리적인 것들로부터 있는 진리에 애착함 …
창26:33-‘성의 이름은 브엘세바’=거기로부터 있는 교리의 품질…‘성’=교리.
시107:4-선과 진리 모두에서 무지해 있는 이들에 관해 말해지는 바, ‘그들은 거주할 성을 발견 못했다.’
마10:5-‘사마리아 사람들의 성들’=거짓들에 있는 이들.
창33:18-‘그는 성의 얼굴에서 진을 쳤다’=이 진리의 선들에 적용함. ‘성’=진리.
창34:20-‘성의 남자들’=교리의 진리들에 있는 이들.
창34:25-‘그들은 대담하게 성으로 왔다, 그리고 모든 남성을 죽였다’=그들은 고대인들과 더불은 교회의 교리 속의 진리들을 절멸시켰다는 것. ‘성’=교회 속에 있는 교리.
창34:28-‘그들은 성 안에 있었던 것은 무엇이든, 들판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가져갔다’=교회의 모든 진리와 선. ‘성’=교리인 것, 고로 교회의 진리.
창35:5-‘하느님의 공포가 그들 주위에 있었던 성들 위에 있었다’=거짓들과 악들이 접근할 수 없었다는 것…‘그들 주위의 성들’=거짓들과 악들. 그이유가 순수한 의미에서, ‘성들’=교리의 진리들. 그리고 반대 의미에서, 교리의 거짓들. ‘성’이 여기서 악들을 의미하는 이유는 성 안의 거주민들로도 이해될 수 있기 때문.
예32:29-‘성을 태우는 것’=교리의 거짓인 것들 안에 있는 이들을 황폐케하고 파괴하는 것.
이22:9-‘다윗성의 터진 곳들’=교리의 거짓들.
암9:14-‘황폐된 성들을 세우는 것’=왜곡된 진리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을 고치는 것.
욜2:9-‘그들은 성을 이리저리로 달려다녔다고 말한다’=진리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
창41:35-‘성들에 있는 식품’=자연적 마음의 내면에 있는 이런저런 것들. 보편적 의미에서, ‘성들’=교회의 교리적인 것들, 그러나 단수적인 의미에서, 그들=인간의 내면들, 거기에 교리들이 있다, 또는 오히려 거기는 진리가 선과 결합되는 곳이다. 인간과 더불은 진리들과 선들은 말하자면 성을 형성한다.
창41:48-‘그는 성들에 식품을 쌓았다’=내면들 안에, 즉 진리들이 선에 인접했다. ‘성들’=자연적 마음의 내면들.
창44:13-‘그들은 각 사람(의 것)을 그의 나귀에 싣고 성으로 되돌아왔다’=감각적인 것들로부터 진리들이 과학물들에로 되가져와졌다.
예47:2-‘성, 그리고 거기 거주하는 자들’=성의 진리, 그리고 거기로부터의 선.
창47:21-‘그는 이 백성들을 성들에 옯겼다’=과학적 진리들이 교리적인 것들에 참고가 되어졌다는 것…‘성들’=교리적인 것들.
출1:11-‘그는 바로를 위해 창고형 성들을 지었다’=과학물에서 소외되어져 있는 자연의 왜곡된 진리들로부터의 교리들. ‘성들’=양쪽 감각들에 있는 교리들.
예46:8-‘성을 파괴하는 것’=교회의 교리를 파괴하는 것.
나3:1-‘피들의 성’=거짓으로부터의 교리.
미5:11-‘잘라내져야 할 토지의 성들’=교회의 진리들.
출9:29-‘내가 성으로부터 나가자 마자’=분리됨…‘성’, 여기서는 바로가 있는 성=침입하는 이들이 있는 거짓. 그이유가 ‘성’=교리적인 것, 그리고 그것=교리적인 바, 그것=진리, 그리고 반대 의미에서 거짓.
미5:11-‘토지의 성들’=그들의 교회 속의 왜곡된 교리적인 것들.
신13:15,16-‘저주받아져야 하는 ’성들‘=왜곡된 교리들.
신21:2-죽은 사람에서 가장 가까운 ‘성’=선이 소멸되어진 교회의 교리 속의 진리.
시87:3-‘하느님의 성’=말씀으로부터 신앙의 진리로부터의 교리.
호11:6-‘성들’=교리적인 것들.
예30:18-그것 자신의 더미 위에 세워지기로 되었던 성=진리로부터의 교리.
겔24:6-‘피들의 성’=교리의 진리 그 자체에 비교해볼 경우의 유대 국가. 고로 추상적으로 선을 파괴하는 교리.
겔17:4-‘향품 판매자들의 성’=내면의 진리로부터의 교리가 있는 곳.
계3:12-‘내 하느님의 성의 이름, 새 예루살렘’=새 교회(the New Church)의 교리는 심정들에 씌여질 것이다.
눅19:17-‘열 성들 위에 네 권위가 있다’. 여기서 ‘성들’은 교리적인 것들, 또는 교리 속의 진리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들 위에 있음’은 총명하고 슬기롭게 있음을 의미한다. 고로 ‘그것들 위에 권위를 가지는 것’=총명과 지혜를 주는 것.
계11:8-‘큰 성의 거리’=신앙 만으로도 정의로워진다는 교리의 허위. ‘성’=교리. 이것이 ‘큰 성’이라 불리는 이유는 이 교리가 개혁 기독교 세계에서 성직자들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
계11:13-성의 십분의 일이 무너졌다‘=그들이 천국으로부터 분리되어 지옥으로 하강함.
계20:9-그다음 그들이 말했다…이 성을 에워싸자…이는 계시록에서 이 구절에 의해 뜻해진 것이다. 즉 ‘그들은 성인들의 진영과 사랑되어진 성을 둘러쌌다.’
계16:19-‘큰 성이 세 부분들로 나뉘었다, 그리고 나라들의 성들이 무너졌다’=이 교회는 그것의 교리 측면에서 깡그리 파괴되어진다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퍼져간 모든 이교들도 마찬가지이다. ‘성’=교회의 교리, 또는 같은 것으로 교리 측면에서의 교회. 그러므로 ‘나라들의 성들’=이교적인 교리들, 또는 이교들, 이는 그것들로부터 퍼져나왔다, 그리고 이것들이 많은 바, 이 큰 성은 11:8에서 말해진 큰 성을 뜻한다. 이것이 거기서 ‘소돔’과 ‘이집트’라 불리운다.
계17:18-‘네가 본 이 여인은 땅의 왕들을 지배하는 왕국을 가진 이 큰 성이다’=교리 측면에서의 로마 카토릭 종교가 기독교계를 지배할 것이다는 것,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개혁 교회와 더불어 지배할 것이다.
계18:10-‘화있다, 화있다, 이 큰 성 바빌론아, 네 힘 있는 성이여, 한 시간 안에 네 심판이 오기 때문이다’=이 광신적 신앙은 아주 튼튼하게 요새화했는데 그렇게 갑자기, 그렇게 깡그리 전복됨에 비통해하는 탄식. ‘이 큰 성 바빌론’=이 광신적 신앙. ‘이 힘 있는 성’=아주 잘 요새화한 이 광신적 신앙.
계18:16-‘이 큰 성’=로마 카토릭의 광신적 신앙.
계18:18-‘어느 성이 이 큰 성에 비길 수 있을까?’=그들은 자기들의 광신적 신앙이 세상 어느 종교 보다 탁월하다고 믿었다는 것.
계20:9-‘그들은 성인들의 진영 주위를, 그리고 사랑된 성을 에워쌌다’=그들은 새 교회(the New Church)의 모든 것들, 그리고 주님에 관한 그 교회의 참 교리, 그리고 삶에 관한 그 교회의 참 교리를 파괴하려 무진 애를 썼다.
계21:2-‘나, 요한은 천국의 안으로부터 밖으로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보았다’=이전 교회의 끝남에서 주님에 의해 건립되어질 새 교회. 이 교회는 교리와 생활 측면 모두에서 신성한 진리들 안에 있는 새 천국과 연게된다. 이것이 ‘성’이라 불리우고, ‘성’으로 묘사되는 이유는 그것이 교리로부터, 그리고 교리에 의거한 생활로부터이기 때문.
계21:10-‘그분은 나에게 천국의 안에서 밖으로 하느님으로부터 내려가는 이 큰 성, 거룩한 예루살렘을 보여주었다’=성의 형체로 있는 교리 측면의 주님의 새 교회를 요한에게 명명백백하게 해주었다.
계21:14-‘성의 벽’=글자 의미에 있는 말씀.
계21:16-‘성은 정4각으로 놓여있다’=그것 안에 있는 정의.
계21:18-‘성’ 또는 예루살렘,=내면적으로 생각되는, 벽 안쪽 그것에 속해 있는 모든 것에 관련되는 주님의 새 교회.
계21:21-‘성의 거리’=교회의 교리 속의 진리.
계21:23-‘성은 태양이 필요 없다’=이 교회의 사람들은 자아 사랑 안에 있지 않다.
계22:14-‘문을 통하여 성 안으로 들어우는 것’=그분에 관한 지식들을 통하여 주님의 새 교회 안에 있는 것…‘성’ 또는 예루살렘은 새 교회의 교리와 더불은 새 교회(the New Church)를 의미한다.
계22:19-‘거룩한 성으로부터 그의 몫을 거두는 것‘=새 교회의 안에서 밖으로, 이 성은 거룩한 예루살렘이다.
예14:18-‘성 안에 기근이…’=교리 안에 모든 진리가 결핍.
예1:18-‘견고한 성’=진리로부터의 교리.
이66:6-‘성’=진리로부터의 교리.
예1:18-‘나는 너에게 견고한 성을 주었다’=거짓들로부터 보호하는 진리로부터의 교리.
예13:19-‘남쪽의 성들은 닫혀졌다’=교리의 모든 진리들이 딴 방법으로 빛 안에 있을 것이다.
이25:2,3-교회가 교리 측면에서 황폐함이 ‘너는 성을 (돌)더미로, 견고한 성을 폐허(된 성으)로, 낯선 자의 궁전을 성으로 만드셨다.’ 그리고 새 교회가 교리 측면에서 건설됨이 ‘강한 백성이 너를 존경하고 힘있는 나라들의 성이 너를 경외할 것이다’에 의해 뜻해진다.
이26:1-‘강한 성’=순수한 진리로부터의 교리, 이것은 거짓들이 파괴할 수 없다.
이14:17-‘루시퍼…세상을 광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 속의 성들을 파괴했다’=그는 교회와 교회 속의 교리적인 것들을 파괴했다.
계16:19-‘바빌론’의 거짓들로부터의 교리가 ‘세 조각으로 깨진 성’에서 뜻해진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악들로부터의 교리가 ‘함락한 나라들의 성들’에서 뜻해진다.
시107:4-‘거주할 성을 찾지 못하는 것’=그들을 살아가게 하는 지표되는 진리들이 없다.
이6:11-‘성들’=교리 속의 진리들.
이24:10,12-‘성’=교리 속의 진리.
습3:6-‘성들을 황폐하게 하는 것’=교리들을 황폐하게 하는 것.
예4:7-‘성들’=교리 속의 진리.
예17:24,25-‘성’, 이는 여기서 예루살렘이다=교리 측면에서의 교회.
슥8:3-‘예루살렘’=진리로부터의 교리 측면에서의 천적 교회. 그런고로 ‘진리의 성’이라 불려진다.
예7:17-‘유다의 성들, 그리고 예루살렘의 거리들’=교리 속의 진리들.
이19:2-‘성에는 성으로, 그리고 왕국에는 왕국으로’=교리는 교리에 맞서, 교회는 교회에 맞서 싸울 것이다.
예19:18-‘가나안의 입술로 이야기하는 이집트 토지의 다섯 성들’=교회의 순수한 진리들인 교리 속의 진리들이 풍부함.
이33:8-‘성들을 몹시 싫어하는 것’=교리의 진리들을 몹시 싫어하는 것.
이54:3-‘거주할 성들’=선들로부터 파생된 교리들.
예32:44, 33:4-‘유다의 성들’, 그리고 ‘산의 성들’=주님의 천적 왕국 속에 있는 이들과 더불어 있는 교리 속의 진리. ‘평지의 성들’, 그리고 ‘남쪽의 성들’=주님의 영적 왕국에 있는 이들과 더불어 있는 교리 속의 진리.
마5;14-‘산에 놓인 성’=사랑의 선으로부터 있는 교리 속의 진리.
마12:25-‘그 자체에 맞서 나뉜 모든 왕국은 황무해짐에 놓여진다, 그리고 그 자체에 맞서 나뉜 모든 성과 집은 서있지 못할 것이다.’ ‘왕국’=교회, ‘성’과 ‘집’=교리로부터의 교회의 진리, 만일 그들이 만장일치로 동의하지 않으면 서있지 못하고 조각나질 것이다.
마10:5-‘그들이 들어가지 않은 사마리아인들의 성’=주님을 거절한 이들의 왜곡된 교리.
마10:23-‘그들이 이 성에서 너희를 박해하면, 다른 성으로 도망하라.’ 여기서의 ‘성’ 또한 악으로부터의 거짓 속의 교리. 이것이 있는 곳에서 진리의 교리가 승인되지 않는 것이 위 구절에 뜻해있다.
눅14:21-‘성의 거리들과 좁은 길로 가는 것’=그들은 교리의 진리들을 받는 사람이 있는지를 문의하라는 것.
나3:1-‘피들의 성’=선행의 선에 폭력을 행사하는 거짓으로부터의 교리.
이6:11-‘성들이 황폐해져 놓일 때까지’=교리 속의 진리들.
이32:14-‘성의 군중들이 떠날 것이다’=진리들이 있는 곳. 그 이유가 ‘성’=진리로부터의 교리이기 때문.
겔19:7-‘그가 황폐해지게 하는 성들’=그것의 진리들과 더불은 교리.
예11:13-‘성들’=거짓으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
이25:3-이 선으로부터의 진리가 ‘힘있는 나라들의 성’에 의해 뜻해진다. 그이유가 ‘성’=진리로부터의 교리, 또는 교리 속의 진리.
시69:35-‘그가 지을 유다의 성들’, 천적 교회와 이 교회의 교리를 뜻한다.
예4:27,29-교회의 모든 것, 그리고 교회의 교리 속의 모든 것이 멸해진다는 것이 ‘말 탄 자와 활쏘는 자의 음성 때문에 온 토지가 황폐해 있고, 온 성은 도망할 것이다’에서 의미되고 있다.
이24:10-거짓으로부터의 교리는 파괴될 것이다는 것이 ‘텅빔의 성은 깨질 것이다’에서 의미되어 있다.
시107:36-‘그들은 주거할수 있는 성을 건립한다는 것’=자신들을 위해 생활의 교리를 만드는 것. ‘성’=교리. 그리고 ‘거주함’=생활.
습2:15-‘이 성은 거주함에 아무 염려 없다, 하여 심중에 말하기를, 나 외에 아무도 없다’=이런 총명은 스스로 신뢰한다, 그리고 자아로부터 수행한다. ‘성’=이런 총명으로부터의 교리.
시122:3-‘서로 밀착한 성 같이’=모든 것이 질서대로 있는 교리.
이32:14-‘성의 군중’=교리 속의 모든 진리.
습1:16-‘견고한 성들’=그들이 확증한 거짓된 교리적인 것들.
예17:26-‘유다의 성들’=선으로부터의 진리들.
시46:4-‘하느님의 성‘=교리 측면에서의 교회.
이44:26-‘유다의 성들’=교리 속의 선들과 진리들. 교회와 교리의 회복이 그들이 거주하고 세움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암4:6-‘성들 안에 이(teeth)가 텅빔’=교리들 안에 있는 진리의 가난.
이54:3-‘나라들이 거주하게 하려는 황폐된 성들’=생활의 선들로부터 있는 진리들. ‘황폐한 성들’=진리들이 없기 이전의 교리 속의 진리.
예2:15-‘그의 성들은 거주하지 못하게 태워졌다’=교회 선이 남아있지 않을 때까지, 악들에 의해 교회의 교리적인 것들이 파괴됨.
이40:9-‘유다의 성들에 말해지기를, 너의 하느님을 보라! 주 여호와께서 강함 안에서 오신다’=말씀으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 ‘성들’=교리적인 것들. 그리고 ‘유다’=말씀.
신6:10-그들에게 주어질 ‘크고 좋은 성들’=순수한 선들과 진리들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
합2:17-‘토지에, 성에, 성 안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에 대한 폭력’=교회 속의 진리들과 선들에, 그리고 말씀으로부터 있는 교회의 교리에 거짓에 의해 무력이 행사되었다.
계:11:8-‘그들의 몸들이 큰 성의 거리에 놓일 것이다’=교리 속의 악들과 거짓들에 의해 소멸됨…‘성’=교리.
이24:10-‘텅빔의 성’=진리는 없고 거짓만 있는 교리.
예49:25-‘영광의 성’=신성한 진리로부터의 교리. ‘환희의 성’=선과 진리에 애착함으로부터의 기쁨.
겔11:6-‘성’=진리로부터의 교리.
습3:6-황폐되어져 사람도 없고, 거주하지도 못할 성들=교리적인 것들.
예11:13-‘성들의 숫자에 따라 너희 신들이 있었다, 오 유다여’=교리적인 것들 만큼 많은 거짓들.
단9:24-‘성’=진리로부터의 교리. 그리고 ‘거룩함의 성’=말씀인 신성한 진리.
이45:13-‘그가 내 성을 지을 것이다’=그는 진리로부터의 교리를 회복되게 할 것이다.
예30:18-‘성이 더미 위에 세워질 것이다’=거짓들을 통하여 붕괴되었던 진리들로부터의 교리.
시107편-‘그들이 찾지 못한 거주할 성’=생활에 관한 교리, 이 교리가 사람과 더불어 교회를 만든다. 그리고 교리에 따른 생활을 통해 교회가 인간과 더불어 형성될 때, 시험을 통과했었을 때인 바, 말해지기를,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올바른 길에서 인도하시어 거주할 성으로 그들을 이끄신다.’
계14:20-‘성 밖’=지옥으로부터. 그이유가 ‘성’=말씀으로부터 있는 진리로부터의 교리. 그러나 ‘성 밖’=왜곡된 말씀으로부터 있는 거짓의 교리.

성막 (tabernacle)

* 장막 (tabernacle)을 보라

성소(sanctuary)

겔47:12-‘성소로부터 물’=주님으로부터의 생명과 자비, 주님이 ‘성소’이시다.
겔37:26-사랑이 그들 한가운데 있는 그분의 ‘성소’에 의해 뜻해진다.
겔47장-‘성소’=천적인 사랑. 최고 의미에서 주님의 신성한 인간, 이로부터 천적인 사랑이 있다.
겔37장-‘그분의 성소’=안에 신성한 선이 있는 신성한 진리가 있는 곳(=주님의 신성한 인간)
출15:17-‘오 주여 당신의 손이 성소를 준비하셨다’=주님으로부터 신앙의 진리에 있는 이들이 있는 천국. ‘성소’=신앙으로부터의 진리가 있는 천국.
이60:13-‘내 성소의 장소’=천국과 교회, 그리고 또한 말씀.
출25:8-‘그들은 나를 위하여 성소를 만들 것이다’=주님에 대한 표징, 고로 천국에 대한 표징…이것은 장막이었기 때문에, 표징함을 통하지 않고는 성소일 수 없었다. 그이유가 성소는 거룩 자체, 그리고 신성인 것을 제외하고는 거룩한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천국이 성소인 이유는 천국은 거기 신성으로부터 천국이기 때문에서이다.
겔21:2-‘성소들’=교회 속에 있는 것들.
애2:7-‘성소’=진리 측면에서의 교회의 모든 것.
겔9:6-그들이 ‘시작’해야 할 성소=사랑의 선과 신앙의 진리 측면에서의 교회.
시96:6-‘강함과 아름다움이 그분의 성소 안에 있다’=교회(안에 있는 신성한 선과 신성한 진리).
단8:11-‘그의 성소의 주거지가 앞으로 내던져졌다’=교회의 황폐함.
시68:17-‘성소에서’=신성한 진리가 있는 천국과 교회.
시114:2-‘그분의 성소’=천국과 교회 속의 거룩 자체.
시74:3-‘성소’=교회.
이63:18-‘성소를 짓밟는 것’=말씀으로부터 있는 교리 속의 진리들을 파괴하는 것.
단9:26-‘성소’=교회.
겔37:26-천국과 교회는 사랑의 선으로부터 ‘성소’라 불려진다. 그리고 ‘주거지’는 이 선으로부터의 진리들로부터 ‘성소’라 불려진다.
시74:3-‘적이 성소에 있는 모든 것들을 파괴했다’=악이 교회의 거룩한 것들을 파괴했다.
겔24:21-그분이 ‘모독할’ ‘성소’=교회를 있게 하는 말씀. 그이유가 말씀은 성소 자체이기 때문, 말씀은 신성한 진리이기 때문.
레20:3-‘나의 성소’=천국과 교회 속의 진리.
시68:24-그분의 강림이 ‘성소에서 그분의 보행’에 의해 뜻해져 있다.

성전 (temple)

겔-‘새 성전’=일반적으로, 새로운 교회, 그리고 교회의 사람, 또는 거듭나는 자, 그이유가 거듭나는 모든 이 각각이 주님의 성전이기 때문.
요2:21-‘주님의 몸의 성전’=신성한 선으로부터 신성한 진리. 그 이유가 ‘성전’=신성한 진리 측면에서의 주님, 그리고 ‘몸’=신성한 선…
왕상6:7-예루살렘에서 성전은 완전한(whole) 돌들로 건축되어졌다. 그 이유가 ‘주님의 성전’에 의해 신성한 진리 측면에서의 주님이 표현되었기 때문. 주님이 ‘성전’에 의해 표현되었다는 것은 그분 자신이 요2장에서 가르치신다. 그리고 그것이 신성한 진리이었다는 것은 거기서 가르치셨기 때문. 돌로 지은 것=신성한 진리.
마23:17-‘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 ‘성전’은 주님 자신을 표현했다, 그리고 ‘금’은 그분으로부터 있는 선.
말3:1-‘주님은 그분의 성전에 갑자기 오신다.’ ‘주님의 성전에’=그분의 인간에.
계11:1-‘하느님의 성전, 그리고 제단’=천국과 교회. ‘성전’=영적 (왕국의) 교회. 그리고 ‘제단’=천적 (왕국의) 교회.
시29:9-‘그분의 성전에서 모든 이가 영광이라 말한다’=말씀의 모든 세부적인 것 안에 신성한 진리들이 있다는 것. 그 이유가 ‘성전’=주님, 그리고 거기서부터 말씀, 또한 천국과 교회, 그리고 ‘영광’=신성한 진리.
계3:12-‘나는 그를 내 하느님의 성전에 있는 기둥으로 만들 것이다’=선으로부터의 진리들이 천국에서 주님의 교회를 받친다. ‘성전’=교회, 그리고 ‘내 하느님의 성전’=천국에 있는 주님의 교회.
마24장-‘성전’=현재의 교회. 그리고 ‘돌 위에 어떤 돌 하나도 남아있지 않게 붕괴됨’=이 교회의 마지막에서 거기에는 어떤 진리도 남은 것이 없다는 것.
계7:15-‘그들은 그분의 성전에서 낮과 밤 그분을 섬긴다’=그들은 그분의 교회에서 진리들에 따라 산다는 것.
계11:1-‘일어나라, 그리고 하느님의 성전을 측량하라’=새 천국에 있는 교회의 상태를 보고 아는 것… ‘성전’=교리의 진리 측면에서의 교회.
계11:19-‘하느님의 성전이 천국에서 열려졌다’=새 천국에서 신성한 인간으로 계신 주님이 예배되어진다…‘하느님의 성전’, 여기서=천국에서 신성한 인간이신 주님.
계14:17-‘또다른 천사가 천국 안에 있는 성전으로부터 나갔다’=주님의 영적 왕국의 천사들.
계15:6-‘성전’=말씀과 십계명이 있는 천국의 가장 깊은 곳.
계15:8-‘성전은 하느님의 영광으로부터, 그리고 그분의 권능으로부터 연기로 채워졌다’=천국의 가장 깊은 것은 주님으로부터의 영적, 천적인 신성한 진리로 채워져 있다.
계16:1-‘나는 성전의 안에서 밖으로 있는 큰 음성을 들었다’=천국의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주님으로부터의 유입.
계16:17-‘큰 음성이 천국의 성전의 안에서 밖으로 왔다’=천국의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주님에 의해 명명백백해짐.
계21:19-‘나는 그것 안에서 성전을 보지 못했다. 그 이유는 전능이신 주 하느님이 그것의 성전이요 어린 양이시기 때문’=이 교회에서는 내적인 것에서 분리된 외적인 것은 없다. 그 이유는 주님 자신이 그분의 신성한 인간 안에 계시고, 이 분으로부터 교회의 모든 것이 있기 때문, 이 분 만에게 가까이 나아가고, 예배하고, 경배드린다. ‘나는 그것에서 성전을 보지 못했다’는 새 교회에서는 예배하는 장소가 없을 것이다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욜3:5-‘그들의 성전들 안으로 운반하는 것’=모독된 예배로 돌아서는 것.
시79:1-‘거룩함의 성전을 더럽히는 것’=예배를 모독하는 것.
합2:20-‘여호와께서 그분의 거룩함의 성전 안에 계신다’=천국, 여기에 신성한 진리가 있고, 여기로부터 신성한 진리가 나온다.
시65:4-‘우리는 당신의 성전의 거룩함으로 만족해 할 것입니다’=신성한 진리로부터 총명 안에 있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천국의 환희를 즐기는 것.
이13:22-‘용이 있는 성전들’=말씀의 선들과 진리들, 그리고 교회의 선들과 진리들, 이것들이 섞음질되었고, 모독되었다.

수로 (channel)

겔6:3-‘수로와 골짜기’=외면, 또는 자연적인 것들.
시18:15-교회의 모든 것들, 즉 교회의 진리 측면, 선 측면 모두가 기초로부터 뒤엎어졌다는 것이 ‘물들의 수로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세상의 기초들이 밝히 드러내졌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물들의 수로’=진리들.
아이 (Ai)
여7,8장-‘아이성’=자연적 지식들

역청 (bitumen)

창6:14-‘그것을 역청을 가지고 안팍으로 역청으로 처리하라’=탐욕들이 침수시키려듬으로부터 보존함…원문에서는 그것이 역청을 가지고 역청으로 처리되어져야 한다라고 읽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보호를 나타내는 단어가 사용되어져 있다. 그리고 이 단어는 보상, 속죄(expiate), 또는 달램, 속죄(propitiate)로부터 파생되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같은 것을 포함한다. 그이유가 주님의 보상, 또는 달램은 악이 침수하려듬으로부터 보호함이기 때문.
창11:3-‘그들은 진흙을 위하여 역청을 가졌다’=선을 위하여 탐욕으로부터의 악
창14:10-‘싯딤의 골짜기는 역청의 샘들, 역청이 가득한 샘들이었다.’ 이를 수단으로 탐욕들로부터의 불결하고 깨끗치 않은 것들이 의미된다.
출2:3-‘그녀는 그것을 역청과 송진으로 발랐다’=선인 것이 악들과 거짓들과 혼합되었음. ‘역청’=악들과 혼합된 선, 그리고 ‘송진(pitch)’=거짓들과 혼합된 선. 역청과 송진은 불이 잘붙는 성분인 유황을 함유하고, 또한 색깔도 검정쪽인바, 이는 반대적 의미에서는 악과 거짓이 의미된다.
나3:14-‘역청’=결합하는 악으로부터의 거짓.

역청 (송진, pitch)

창6:14-‘역청’=끔찍한 몽상들.
* ‘역청과 유황’=탐욕들으로부터의 거짓들과 악들.
이34:9-‘불타는 역청’=끔찍한 탐욕들.

오두막 (hut)

이24:20-‘땅이 오두막 같이 이리저리로 움직일 것이다’
창33:17-‘그는 그의 습득물들을 위해 우릿간(booth)을 만들었다’…‘오두막(booth), 또는 텐트들을 만드는 것’=집을 짓는 것과 같다. 즉 진리로부터 선의 증가를 받는 것. 그러나 차이는 있다. 집을 짓는 것은 덜 일반적, 고로 더 내면적이고, 오두막, 텐트는 더 일반적, 고로 더 외면적이다. 전자는 사람 자신들을 위해, 후자는 양떼나 가축떼를 위해서이다.
* ‘오두막’, 또는 텐트, 말씀에서=진리로부터의 거룩함. 그리고 성막과 구별된다. 성막=선으로부터의 거룩함. 원어에서 전자는 ‘숙곳(Succoth)’이라 불리운다…진리로부터의 거룩함은 진리로부터 있는 선이다.
이4:6-‘오두막(hut)’=내면의 것들이 숨겨 있는 신성으로부터의 진리의 최말단.

오븐 (oven)

출8:3-‘너희 오븐들 안으로’=탐욕들의 즐거움. ‘오븐들’, 빵이 그 안에서 준비되어지기 때문에,=외면의 선들. (고로) 즐거움들…이것들이 좋은 의미에서 ‘오븐들’에 의해 의미되어지나, 나쁜 의미에서 탐욕들로부터의 즐거움이 의미된다. 즉 지옥의 사랑들로부터의 즐거움들, 이런 사랑들은 자아를 사랑함과 세상을 사랑함들이다.
애5:10-‘오븐 같이 검어지는 것’=거짓들로부터 자기들의 악 안에 있는 것.
호7:7-‘오븐 같이 뜨거워지는 것’=그것을 사랑함으로부터 왜곡된 것을 바라는 것.
이31:9-‘예루살렘에 있는 그의 오븐’이라 말해지는데, 그 이유는 ‘예루살렘’에 의해 교리로부터의 진리가 있는 교회가 의미되기 때문…그리고 교리의 진리는 빵이 준비되어지는 오븐(불가마, fire-hearth) 같기 때문.
말4:1-‘오븐’에 의해 거짓들 안에서 자신들을 확증하고, 지상적이고 육체적인 사랑들로부터 악들 안에서 생활한 이들이 있는 지옥이 뜻해진다.
호7:4,6,7-그들의 사랑들로부터 그들은 선들과 진리들을 타락되게 했다는 것이 ‘그들은 제빵자에 의해 달구워진 오븐 같이 모두 간음자들이다’에 의해 뜻해지고 있다…이렇게 뜻해진 이유는 그들은 자기들 사랑들을 옹호해주는 거짓들로 마치 빵반죽 덩어리 같이 굳어져 있기 때문…고로 거짓들이 호의를 보이는 이런 사랑들의 악들 밖에 없다는 것이 ‘그들의 제빵자가 온 밤을 자고, 아침에 불의 불꽃 같이 지핀다. 그들 모두 오븐 같이 뜨겁다. 그들이 오븐이나 제빵자에 비교되는데, 그이유는 그들이 거짓들로부터의 교리로 굳어져 있기 때문, 마치 제빵자가 오븐에서 빵과 과자를 만드는 것과 같기 때문.
예5:10-‘우리의 피부들이 오븐 같이 검어진다’=자연적 인간은 진리의 빛 바깥쪽에 있다는 것, 고로 거짓의 어둠에 있다는 것. ‘오븐’=진리들이 아닌 거짓들로부터 교리를 만드는 것.
이31:9-‘오븐’에 의해 이 선으로부터의 진리가 의미된다. 고로 교리 속의 진리.

왕좌 (throne)

* seat도 참조
겔1장-‘왕좌’=천국
이66:1-‘하늘들이 내 왕좌이다.’ ‘하늘들’=천적인 것들과 영적인 것들. 고로 내적 예배 속에 있는 모든 것들, 그리고 내적 의미 속에 있는 모든 것들. 이것들이 ‘주님의 왕좌’라 불리운다.
마25:31-‘그런다음 그분은 그분의 영광의 왕좌에 앉으실 것이다’=심판. 그이유가 ‘왕좌’는 주님의 왕권이라 단언되기 때문, 이 왕권은 신성한 진리, 이로부터, 이에 따라 심판이 있다.
예17:25-‘다윗의 왕좌’=주님으로부터의 천국.
계4:4-‘왕좌들’=지혜의 선으로부터 있는 총명의 진리들.
출11:5-‘바로의 왕좌에 앉는 그의 장자’=중요 순위에서 첫째에 있는 신앙 속의 왜곡된 진리들.
단7:9-‘왕좌들이 내던져졌다’=거짓들. ‘그분의 왕좌’=천국과 교회.
출17:16-‘그의 손이 야훼의 왕좌에 맞서고 있다’=그들은 주님의 영적 왕국에 폭력을 휘두르고 싶어한다는 것.
마5:34-하늘이 신성한 진리 측면에서의 주님이신바, 말해진다, ‘너는 하늘을 두고 맹세하지 마라, 그이유는 하늘은 하느님의 왕좌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왕좌’=주님으로부터 진행되는 신성한 진리.
겔1:26, 10:1-‘왕좌 위에 사람의 외관이 있었다’=주님의 신성한 선으로부터 있는 신성한 진리. (‘왕좌’=천국. 그리고 그것 위의 ‘사람’=주님 자신)
마25장-‘영광의 왕좌에 앉는 것’=그분으로부터 있는 신성한 진리로부터 심판함.
겔43:7-‘이것은 나의 왕좌가 있는 곳…’ 여기서 뜰과 더불은 성전이 여호와의 왕좌가 있는 곳이라 불리운다. 그이유는 뜰을 지닌 성전이 천국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왕좌’=영적 천국 (the Spiritual Heaven).
이16:5-‘그분은 진리 안에서 왕좌에 앉으실 것이다’=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 이로부터 영적 왕국 (the Spiritual Kingdom)이 있다.
이6:1-‘나는 주님께서 높고 드높이 들린 왕좌 위에 앉으신 것을 보았다’=천국, 특별하게(구체적으로) 말하면 영적 천국 (the Spiritual Heaven).
계1:4-‘그분의 왕좌 앞에 있는 일곱 영들’=주님이 그분의 신성한 진리 안에서 계시는 모든 사람에 해당되는(보편적) 천국으로부터. ‘주님의 왕좌’=천국.
계3:21-‘나는 내 왕좌에 나와 더불어 앉게 하겠다’=천국 안에. 특별히 그분의 신성한 진리가 통치하는 천국 안에.
계2:13-‘사탄의 왕좌가 있는 곳’=짙은 어둠에서의 그들의 삶.
계3:21-‘내가 내 아버지의 왕좌에 앉아 있는 것 같이’=그분과 아버지는 하나이다는 것, 그리고 천국이다는 것.
계4:2-‘오 왕좌가 놓여있다’==표징적 형체에서의 심판. ‘그리고 왕좌 위에 어떤 분이 앉아있는데’=주님.
계4:6-‘왕좌의 한가운데에, 그리고 왕좌를 빙둘러, 네 동물들이’=최말단에서 있는 제일가는 위치에 있어 최말단을 지휘 안내하는 주님의 말씀.
계5:6-‘왕좌의 한가운데에’=천국의 가장 깊은데로부터, 그리하여 천국의 모든 것들 안에.
계5:11-‘왕좌를 빙둘러 있는 천사들의 음성’=보다 낮은 천국들의 천사들에 의해 주님이 고백되고 주님의 영광을 기림.
계7:15-‘그러므로 그들은 하느님의 왕좌 앞에 있다’=그들은 주님의 현존하심 안에서 있다는 것.
계7:17-‘왕좌의 한가운데에 어린 양’=가장 깊은 천국안에서, 고로 천국의 모든 것 안에서 그분의 신성한 인간 측면에서의 주님.
계12:5-‘그는 하느님과 그분의 왕좌에로 붙들려 올려졌다’=주님에 의한 신성의 보호하심…그리고 천국의 천사들에 의해 지켜 보호됨. ‘왕좌’=천사들의 천국.
계13:2-‘용이 그에게 그의 왕좌를 주었다’=이런 이설(heresy)을 평신도가 받은 이상 그 이설은 세력을 떨치고 그들 위에 군림한다는 것.
계14:3-‘그들은 왕좌 앞에서 말하자면 새로운 노래를 불렀다’=주님 앞에서 그분을 경축함.
계14:5-‘그들은 하느님의 왕좌 앞에서 흠 없이 있다’=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선으로부터의 진리들 안에 있다는 것. ‘하느님의 왕좌’=주님과 천국.
계16:10-‘짐승의 왕좌 위에 그의 대접을 쏟았다’=그들의 신앙 안으로 유입이 있음…‘왕좌’=왕국…여기서의 ‘왕좌’는 악과 거짓의 정부가 말해진다.
계20:4-‘나는 왕좌를 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그것 위에 앉았다, 그리고 심판이 그들에게 주어졌다’=말씀 속의 진리들에 따라서 모든 자가 심판되는데, 이 말씀이 열려졌다는 것.
계20:11-‘나는 희고 큰 왕좌, 그리고 그 위에 앉으신 그분을 보았다’=주님에 의해 신성한 진리들과 신성한 선으로부터 결과된 만인을 위한(보편적) 심판.
계22:1-‘하느님의 왕좌와 어린 양의 왕좌로부터 나감’=주님으로부터 천국의 안에서 밖으로. 그이유가 ‘왕좌’=심판, 통치함, 천국의 측면에서의 주님이기 때문.
계22:3-‘하느님의 왕좌와 어린 양의 왕좌가 그것 안에 있을 것이다’=주님 자신이 새 교회(the New Church)를 통치하실 것이다. 그이유가 여기서의 ‘왕좌’=왕국. 그리고 주님의 왕국은 그분만이 예배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계1:4-‘그분의 왕좌 앞에’=현존과 섭리…‘하느님의 왕좌’=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 고로 이 진리를 받는 천국.
예1:15-‘모든 자들이 와서 예루살렘의 문들의 문에서 자기 왕좌를 놓을 것이다’=교회 안으로 도입된 진리가 거짓에 의해 파괴되는 것.
계4장-천국의 한가운데 있는 ‘왕좌’=심판.
시89:36-‘그의 왕좌는 태양같이 내 앞에’=천적 선 안에 있는 주님의 천국과 교회. ‘왕좌는 달 같이 영원히 확고부동할 것이다’=신성한 진리인 영적 선 안에 있는 천국과 교회.
왕상10:18-20-솔로몬은 여섯 계단과 그 계단에 열 두 사자들을 가진 왕좌를 상아로 만들었다. 솔로몬의 ‘왕좌’=심판, 이는 선으로부터의 진리들에 의해 결과되어진다, 그리고 이것은 신성한 선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를 표현했다. ‘열 두 사자들’=힘 측면에서 천국과 교회의 모든 진리들.
예33:17-‘이스라엘의 집(가문)의 왕좌’=신성한 진리가 통치하는 교회.
계7:11-‘왕좌 주위에 서있는 것’=주님과 결합함.
계8:3-‘왕좌 앞에’=천국과 결합함.
시89:4-‘왕좌’=천국과 교회.
계11:16-‘왕좌들 위에 앉는 것’=심판하는 작업 안에 있는 것. 그 이유가 ‘왕좌들’=천국들. 그리고 ‘왕좌들 위에 앉는 것’=심판하는 것. 그리고 천사들이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심판은 주님 만이 하시는바, 이 말들=보다 높은 천국들은 악한 자를 선한 자로 분리하시기 위해 주님으로부터 힘과 빛 안에 있다는 것.
겔26:16-‘바다의 모든 제 일 인 자(prince)가 자기들의 왕좌로부터 내려 올 것이다’=진리에 관한 지식들은 이 교회를 더 이상 통치하지 않을 것이다. 그이유가 모든 왕국은 신성한 진리에 속해 있기 때문. ‘왕좌로부터 내려감’=통치함(government)으로부터. ‘왕좌’ 위에 앉는 것=천국의 진리 안에 있는 것.
시132:11-‘그가 가질 왕좌’=천국.
시93:2-‘왕좌’=신성한 진리를 받음 측면에서 천국과 교회.
계16:17-‘왕좌’=주님이 심판 측면에 관련하여 계신 곳.
계19:4-‘그들은 왕좌 위에 앉으신 하느님을 숭배했다’=주님을 숭배함, 이분이 천국들과 땅에서 모든 권능을 가지신다. ‘왕좌’, 주님을 서술하는 경우=만인에 대한(보편적) 천국, 그리고 거기서 있는 모든 권능. 그리고 땅위에서 있는 권능은 분리되어질 수 없다.
계19:5-‘음성이 왕좌로부터 나왔다’=보편적 천국으로부터 있는 만장 일치. 그이유가 ‘왕좌’=주님이 왕좌 위에 있으신 사실로부터 전체 천국. 그리고 주님이 천국 자체이시다는 것.

요벨 (jobel)

출19:13-‘요벨을 꺼냄에서’=천적인 선으로부터 일반적인 지각을 가지는 이들. 그이유가 ‘요벨을 꺼냄’, 같은 것으로 ‘나팔 소리를 들음’=천적 선으로부터의 일반적인 지각…‘요벨’, 또는 ‘나팔 소리’에 의해 천적 선이 의미된다…그러므로 이로부터 ‘희년(Jubilee, 요벨의 해, 또는 안식의 해)가 명명되어졌다.

요새 (fortification)
요새화하다 (fortify)

겔33;27-‘요새와 동굴 안에 있는 이들은 유행병으로 죽을 것이다’=거짓을 수단으로 자체를 요새화한 악은 지옥에 떨어뜨려진다.
나3:14-‘포위공격을 대비해 물을 길어오는 것, 요새를 튼튼히 하는 것’=진리들에 맞서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거짓들을 요새화하는 것.
예1:18-이런 사항들이 예언자를 수단으로 의미되었는바, 그 중 한 구절에서 이렇게 말해진다. ‘나는 너를 요새화된 도성으로 주었다’. 이 구절은 거짓들에 맞서 보호하는 진리의 교리가 의미한다.
애2:2-교회가 완전히 황폐됨이 ‘그분은 유다의 딸의 견고한 성을 파괴하셨다’에서 묘사되어 있다.
겔33:27-‘요새들’=말씀으로부터의 확증들. ‘동굴들’=과학물로부터 확증들.
습1:10-‘울타리쳐진 성읍들’=그들이 확증한 거짓 교리물들.
이23:14-‘너의 요새’에 의해 방어하는 말씀으로부터의 교리가 의미된다.
이2:15-‘높은 탑, 단단히 두른 (성)벽’은 거짓으로부터 확증한 원리들, 고로 그것들 안에 있는 이들이 의미된다.
이34:13-(거짓들과 악들을) 방어하는 궤변이 ‘궁전들’과 ‘요새들’로 의미되어 있다.
단11:38,39-‘위치(station) 위의 요새’, 그리고 ‘요새들 중의 요새’에 의해 말씀의 글자 의미를 수단으로 확증한 자아 총명으로부터 있는 것들이 의미되고 있다.
예48:18-‘그분은 요새(strong hold)들을 파괴하셨다’=방어를 거두어 가심. ‘요새’=거짓들과 악들로부터 보호함. 그리고 말씀의 글자 의미가 이 보호이다.
이23:4-‘바다’, 그리고 ‘바다의 요새’에 의해 이런 지식들이 있는 곳인 자연 평면이 뜻해지고 있다.
예5:17-‘네가 신뢰하는 요새화된 성읍들’에 의해 자아 총명으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이 의미되어 있다.

용광로 (furance)

* 가마, 아궁이
나3:14-‘벽돌 가마를 수리하는 것’=거기로부터 예배함.
창19:28-‘용광로의 연기 같이 토지의 연기가…’ ‘연기’=거짓의 상태, ‘용광로’= 악의 상태로부터, ‘토지’=교회 내에서.
출9:8-‘아궁이의 재’=감염시키고 있는 이들의 탐욕들로부터의 거짓들이 흥분하는 것…’아궁이의 재’=탐욕들로부터의 거짓들.
말4:1-‘용광로 같이 타는 것’=악으로부터의 탐욕들.
창19:28-‘용광로의 연기’=탐욕들의 악들로부터의 거짓들.
계9:2-‘용광로의 연기’=탐욕들의 악들로부터의 거짓들.
나3:14-‘벽돌 가마’=그들이 창안한 거짓들, 그리고 이것은 악에 의해 주입되었다.
예43:9-‘벽돌 가마’=악으로부터의 거짓의 탐욕.
출19:18-‘그것의 연기는 용광로의 연기 같이 올라갔다’=탐욕들로부터 있는 희미함 같은 희미함…’용광로’=탐욕.
계9:2-‘그는 무저갱을 열었다. 그리고 거기 무저갱의 연기가 큰 용광로의 연기 같이 올라왔다’=자연적 인간의 악한 사랑들로부터 튀어나오는 현세에의 욕망으로부터의 거짓들.
나3장-지옥의 사랑은 거짓화한 것들을 수단으로 견고해진다는 사실로부터 거기로부터의 교리는 ‘벽돌 가마’라 불리워진다.
예43:9-‘벽돌 가마 안에 숨겨진 큰 돌들’에 의해 자기 총명으로부터 꾸며낸 이야기들을 수단으로 말씀 속의 진리들을 거짓되게 만듬…’벽돌 가마’=허구적인 것들 가지고 치밀하게 꽉짜인 교리.
슥12:6-이 교회에 의해 흩어질 악들이 ‘장작들 사이에 있는 가마, 곡식단에 있는 횃불 같다’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창15:17-‘보라, 연기 나는 용광로’=아주 치밀한 거짓…’연기나는 용광로 라고 말해진 이유는 인간, 특히 교인, 즉 진리에 관한 지식들을 지니고 있지만 아직 인정 않고, 심정에서는 그것을 부정하고 진리에 반대되는 생활을 꾸릴 때 이런 사람은 용광로의 연기로 밖에 달리 말할 방법이 없다; 당사자=용광로, 연기=미워함으로부터의 거짓. 거짓을 오게 하는 탐욕들은 이와 같은 용광로로부터의 불꽃이다.
레26:26-‘열 명의 여인이 한 가마에서 빵을 굴 것이다’=인간과 더불은 교회의 모든 것 안에 선과 진리가 너무나 조금 있어 얼핏보기에는 아무 것도 없는 듯 나타나 보인다…’가마’에 의해 영적 음식이 준비되는 곳, 고로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이 의미되어진다.

우물 (well)

* beer, beersheba, esek, fountain, pit 등도 참조.
창14:10-‘싯딤 계곡은 역청 수렁(pit)이 가득했다’=거짓들의 불결한 것, 그리고 탐욕들.
창21:19-‘(하갈은) 물 있는 우물을 보았다’=진리들이 있게 하는 주님의 말씀. ‘물 있는 우물’, 또는 ‘수원(fountain)’=말씀, 그리고 또한 말씀으로부터의 교리, 결과적으로 진리 자체.
민21:16-18-‘그들은 브엘 쪽으로 여행했다. 이곳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백성들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물을 줄 것이다고 말하신 곳이다. 그때에 이스라엘은 이러 노래를 불렀다. 오 우물아, 솟아나라, 그것으로부터 네게 대답한다. 율법자 안에서, 그들의 장대를 가지고, 제 일 인 자가 팟고, 백성의 의지가 그것을 판 우물…’ 이 구절에서 ‘우물’=말씀, 또는 교리. (=고대 교회의 말씀.)
창21:25-‘아비멜렉의 종들이 강취한 물 있는 우물 때문에’=과학물들은 신앙 속의 교리가 자신들로부터 비롯된 것이기를 원했던 (것 때문에 주님이 분노하심).
창21:30-‘내가 이 우물을 팟다는 것’=교리는 신성으로부터 이다는 것.
창24;11-‘물들이 있는 우물 근처’=신앙으로부터의 진리들을 받기 위하여.
창24;20-‘그녀는 물을 길으려고 우물로 다시 달려갔다’=진리에 대한 보다 낮은 수준의 애착. ‘우물’=진리, 그러나 보다 하위에 속하는 진리…보다 더 순수하고 보다 높은 진리가 취급될 경우, ‘수원(fountain)’이란 단어가 언급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덜 순수할 때, 그리고 보다 낮은 수준일 경우, 우물이란 단어가 언급된다. 창24장의 경우, 때로는 수원, 때로는 우물이 언급되고 있다. 자연적 진리가 보다 낮은 수준의 진리이다.
창26:15-‘자기 아버지의 종들이 파놓은 모든 우물들…블레셋인들이 그것들을 막았다’=영적 지식들을 단지 지식 수준으로만 간주한 이들은 신성으로부터 있는 내면의 진리들을 알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 하여 그것들을 말살했다. 여기서 ‘우물’=신성으로부터 있는 내면의 진리, 그이유가 그 우물은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의 시절에’ 팟었던 것이라고 말해지기 때문. 그리고 ‘아브라함’=주님의 신성 자체.
창26:15-‘그리고 그것들을 먼지(dust)로 채웠다’=지상적인 것들, 즉 자아 사랑과 이득을 수단으로.
창26:18-‘이삭의 종들이 계곡에서 팟다. 그리고 거기서 살아있는 물들의 우물을 발견했다’=내적 의미를 안에 지닌 글자 의미 측면에서의 말씀.
창26:21-‘그들은 또다른 우물을 팟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다투었다’=말씀의 내적 의미-이와 같은 것이 있는지 아닌지.
창26:22-‘그는 또다른 우물을 팟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다투지 않았다’=말씀의 글자적 의미.
창26:25-‘이삭의 종들이 거기서 우물을 팟다’=거기로부터 교리.
창26:32-‘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이 팟었던 우물의 원인들(the causes)에 관하여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말했다, 우리가 물들을 발견했습니다’=그에 관한 내면의 진리들. 그이유가 ‘우물’=말씀. 그리고 ‘물들’=말씀으로부터의 진리들…말씀의 글자 의미로부터 끌어낸 모든 교리적인 것들 안에는 내면의 진리들이 있다. 그이유는 (이는) 물이 있는 우물의 경우와 같기 때문, 말씀의 모든 것 안에는 내적 의미가 있다.
창29:2-‘보라, 우물’=말씀…여기서 말씀이 ‘우물’이라 불리우는데, 그이유는 자연 평면이 취급되기 때문. 자연 평면은 그 자체에 국한해 보면 그것은 말씀을 글자 의미에서만 파악하는 것이다.
창29:2-‘이 우물로부터 그들은 가축떼에 물을 마시우게 했다’=지식이 말씀으로부터 있는 것.
창29:2-‘우물의 입(mouth)에는 큰 돌이 있었다’=말씀이 닫혀져 있었다는 것.
창29:3-‘그들은 우물의 입으로부터 돌을 굴렸다’=그들은 말씀을 닫히지 않았다는 것.
창29:10-‘야곱은 우물의 입으로부터 돌을 굴렸다’=주님은 자연적 선으로부터 말씀의 내면들이 노출되어 있게 하신다.
출2:15-‘(모세는) 우물 근처에서 거주했다’=말씀 안에서 주의깊게 응용함.
눅14:5-‘우물에 빠진 나귀나 수소’…여기서는 ‘우물’=구덩이(pit)와 같이 거짓이 의미된다.
계9:1-‘끝이 없는 구덩이의 열쇠’=그들의 지옥이 열렸다.
계9:2-‘구덩이의 안에서 밖으로 연기가 올라왔다’=말씀을 왜곡했었던 이들이 있는 지옥으로부터의 지독한 거짓들.

울타리 (fence, hedge)

이5:5-‘울타리를 제거하는 것’=왜곡하여 교회를 방어하는 진리들을 파괴하는 것. 포도원을 빙두른 울타리와 예루살렘을 빙두른 성벽은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겔13:5-그것의 ‘울타리’=거짓의 부숨으로부터 방어하는 것, 고로 개정함.
마21:33-‘울타리’=지옥으로부터 있는 악의 거짓들로부터 보호함.

작은 뾰족탑 (pinnacle)

* 주님께서는 악마에 의해 높은 산 위에로, 그리고 성전의 작은 뾰족탑 위에로 이끌리셨다‘=가장 극심한 시험과의 전투 안으로.

장 (curtain)

* 커튼(curtain)을 보라.

장막 (tabernacle)

* dwell, tent도 참조.
레23:39-44, 신16:13, 호12:9-태고 교회가 주님에 의해 더 사랑되었기에…그리고 또한 그들은 자신들에 의해 홀로 살았기 때문에,,,그리고 자기들의 천막 안에서 아주 거룩한 예배를 거행했었다, 그러므로 천막은 모독되어져 왔었던 성전 보다 더 거룩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래서 이를 기억하고자 장막의 절기가 제정되었다. 그들이 토지의 소출을 그러모을 때, 태고인들 같이 그들은 천막에서 거주했다.
시27:5-‘그분의 장막의 은밀한 곳에 그분은 나를 숨길 것이다’=신성한 선 안에서 간직되는 것, 그리고 악들로부터 보호되는 것.
시15:1-‘누가 당신의 장막에 거할 것입니까?’ ‘장막’에 의해 사랑의 선 측면에서의 교회가 의미된다. 고로 사랑의 선도 의미된다.
시61:4-‘나는 당신의 장막에서 영원히 거할 것입니다’=사랑의 신성한 선 안에 있는 것.
이33:20-사랑의 선 그리고 교리 속의 진리 측면에서의 천국과 교회가 ‘조용한 주거지, 그리고 무너져 내리지 않을 장막’이다. ‘결코 제거되지 않을 말뚝’=신성의 진리들을 수단으로 강화됨. 그리고 ‘끊어지지 않는 끈’=신성의 선을 통하여 결합.
예10:20-‘내 장막은 황폐되어 있다’=더 이상 어떤 선도 있지 않은 교회.
예6:3-‘그들이 그녀에 맞서 장막을 칠 것이다’=교회를 황폐하게 하는 악들과 거짓들.
호9:6-거짓으로부터의 악들이 모든 그들의 선을 파괴할 것임이 ‘가시가 그들의 장막 안에 있을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호12:9-‘그럼에도 나는 네가 장막 안에 거주하게 만들 것이다’=그럼에도 그들은 선이 있는 교회 안에 있을 것이다.
호12:7-‘유다의 장막들’=말씀으로부터의 선들, 그리고 교회로부터의 선들.
시19:4-‘하늘들에 그분은 태양을 위해 장막을 세우신다’=사랑의 선으로부터 주님의 천국 안에.
시91:9,10-‘주택’에 의해 진리들 측면에서의 천국과 교회, 그리고 ‘장막’에 의해 선들 측면에서의 천국과 교회가 의미되어진다.
시52:5-그는 교회의 모든 선으로부터 추방되어짐에 틀림 없다는 것이 ‘그는 너를 장막으로부터 잡아 뗄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마17:4-‘나는 여기에 세 장막들을 짓겠습니다’…‘장막들’에 의해 사랑의 선으로부터, 그리고 이 선에서 파생되는 진리들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이 의미되고 있다.

제단 (altar)

호10:8-‘제단에 가시와 엉컹퀴’=모독
창8:20-‘노아는 여호와께 제단을 쌓았다’=주님의 표현…고대 교회의 모든 의식들은 주님을 표현했는데, 그중 제일 중요한 것은 제단, 그리고 번제 였다.
신33;10-‘제단’=주님을 표징, 그리고 그때부터 번제로 주님을 예배함.
창12:7-아브람은 ‘거기서 자기에게 보여졌던 분, 여호와께 제단을 세웠다’=주님께서 사랑의 천적인 것으로부터 그분의 아버지께 처음 예배드림.
창12:8-아브람은 ‘여호와께 제단을 건립했다’=이 상태로부터 그분의 아버지에 대한 바깥쪽 예배.
창13:18-아브람은 ‘거기에 여호와께 제단을 세웠다’=이 상태로부터 예배함…’제단’=일반적인 모든 예배에 대한 표징.
창22:9-‘그리고 아브라함은 거기에 제단을 세웠다’=주님의 신성한 인간에 대한 준비. 제단들은 모든 예배를 일반적으로 의미한다. 제단은 예배를 표현하는데 있어 제일가는 표현물들이고, 예배를 일반적으로 의미하기 때문에 제단은 주님의 신성한 인간을 의미했다. 그이유가 주님의 신성한 인간은 모든 예배와 모든 교리, 마찬가지로 그것은 예배 자체와 교리 자체도 의미한다. 이는 제단, 번제, 제물을 계승한 성만찬으로부터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창22:9-‘제단’=주님의 신성한 인간.
창26:25-이삭은 ‘거기에 여호와께 제단을 세웠다’=주님을 표시하고 의미함. ‘제단’=주님을 표현하는 제일의 표현물.
이19:19-‘그 날에 이집트의 한가운데에서 여호와께 대한 제단이 있을 것이다’…’제단’=일반적 측면에서 신성한 예배. 제단은 에벨로부터 시작을 가졌던 두 번째 고대 교회의 예배를 표현하는 제일 가는 표현물이 되어왔다.
출24:4-‘모세는…시내산 근처에 제단을 건립했다.’ 여기서도 제단은 모든 예배를 표현하고 있다. 참으로 예배 안의 선인 것을 표현하고 있다.
출34:13, 신7:15, 12:3-이방인들 역시 전통을 통하여 예배의 거룩한 것이 제단과 기둥 같은 것에 의해 표현되어진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간직했지만, 그들은 악과 거짓 안에 있었는 바, 이방인들과 더불은 ‘제단’은 예배의 악, 기둥은 예배의 거짓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파괴되어야 한다고 명령되었다.
출31:45,46-‘쌓아올린 것, heap’=선, 그 이유는 그들이 제단을 세우기 앞서 그들은 돌더미를 만들고 자기들이 사랑 안에서 결합했다는 증거로 돌더미 위에서 먹었기 때문. 그러나 후에, 그들이 고대인들의 표현물을 신성시하게 되었을 때, 돌더미 대신 그들은 돌로도 제단을 세웠는데, 이 때의 경우는 보다 정교한 건축 기술을 발휘해서 돌을 쌓았다. 이로부터 ‘쌓아올린 것’은 제단과 비슷한 의미, 즉 사랑의 선, 그것의 재료인 돌은 신앙으로부터의 진리를 의미하고 있다.
여22:28,34-‘제단’=사랑으로부터의 선, 그리고 최고 높은 의미에서는 주님 자신.
창33:20-야곱은 ‘거기에 제단을 세웠다’=내면의 예배. ‘제단을 세우는 것’=예배. 그이유가 제단은 주님에 대한 제일가는 표현물, 이로 인해 예배에 대한 제일의 표현물이기도 했다.
창35:1-‘너에게 보여졌던 하느님에게 제단을 만들라’=거기는 거룩인 것. ‘제단’=주님에 대한 제1의 표현물, 이 구절의 경우, 예배의 거룩인 것이 ‘하느님에게 제단을 만드는 것’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창35:7-‘그는 거기에 제단을 건립했다’=신성화함(sanctification)을 통하여. ‘제단’=주님에 대한 제1의 표시, 그리고 이 경우 예배의 거룩인 것, 그리고 주님에 관해 서술할 경우, 그분의 신성한 인간 그리고 그로부터 진행하는 거룩함.
출17:15-‘모세는 제단을 건립했다’=예배 속의 거룩한 것과 기억 속의 거룩한 것을 위하여. ‘제단’=주님의 제1의 표현물, 이로부터 예배의 거룩인 것. 또한 기억을 위한 것이기도 한 이유는 고대 시대 때 그들은 증거로 삼고 뭔가를 기억해두려 할 때 쌓아놓은 것(돌더미 등등)을 똑바로 세웠다…후에 제단.
출20:21-‘흙의 제단을 너는 나에게 만들 것이다’=선으로부터 일반적인 예배를 표현함.
출20:22-‘그리고 만일 너희가 나에게 돌의 제단을 만든다면’=진리들로부터 일반적인 예배를 표현함.
출21:14-‘너는 그가 죽도록 나의 제단으로부터 그를 데려갈 것이다’=비록 그가 주님에게로 도망하고, 용서를 빌고, 회개를 약속한다 해도 정죄됨. 여호와의 제단=주님에 대한 예배의 제1의 표현. 이렇게 예배의 표현이기 때문에 ‘제단으로 도망함’은 주님에게로 도망함, 용서를 간청함, 회개를 약속함이다.
마23:17,19-‘어느 것이 더 크냐? 예물이냐? 아니면 예물을 성화하는 제단이냐?’ ‘제단’에 의해 주님 자신이 표현되어졌다, 그리고 ‘예물’, ‘제물’에 의해 주님으로부터의 신앙과 선행인 것이 표현되어져 있다.
출24:4-모세는 ‘산 아래 제단을 세웠다’=그분으로부터의 신성한 선에 관련하여 주님의 신성한 인간을 표징. 제단=주님의 신성한 인간을 표현, 그리고 그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의 제1의 표현.
출24:6-‘그는 피의 절반을 제단 위에 뿌렸다’=주님의 신성한 인간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
출27:1-‘너는…제단을 만들 것이다’=주님을 표현, 그리고 주님에 대한 예배를 표현. 번제와 제물을 위해 있었던 제단=주님을 표현. 그리고 번제와 제물에 의해 주님에 대한 예배의 모든 것이 의미되기에 제단은 그분에 대한 예배를 표현했다.
애2:7-‘주님은 그분의 제단을 버리셨다’=사랑의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의 표징을 폐지함.
겔6:4,5,6-‘너의 제단들은 파괴될 것이다. 나는 너의 뼈들을 네 제단들 주위에 뿌릴 것이다. 네 제단들은 황폐되고 삭막해지고 부셔질 것이다’=표현적 예배가 파멸, 황폐, 삭막해짐.
이17:7,8-‘그 날에…사람들은 제단을, 자기 손의 작품을, 자기들의 손가락이 만들었던 것을 쳐다보지 않을 것이다’=그들 자신의 총명으로부터 예배하는 것.
호8:11-‘에브라임은 죄를 범하려 제단들을 불렸다(많이 건축했다)’=예배를 헛되고 텅빈 것으로 꾸미는 것.
이19:19-‘그 날에 이집트 한가운데에 여호와를 향한 제단이 있을 것이다’=주님을 예배함.
출28:43-‘그들이 거룩함(거룩한 장소)에서 섬기기 위해 제단으로 접근할 때’=주님 자신을 표현하는 예배에서. 제단은 신성한 선의 측면에서 주님을 표현하는 제 1의 표현물이었다…주님이 표현된 예배의 제일 가는 것은 제단에 바쳐진 번제와 제물이었다….신성한 측면의 주님이 표현된 예배의 표현물은 제단이, 신성한 진리 측면의 주님이 표현된 예배의 표현물은 회중의 천막이다.
출29:12-‘너는 제단의 기초에 모든 피를 쏟을 것이다’=신성한 진리의 전부는 인간 생명의 최말단인 감각 부분에 있다…제단은 주님의 신성한 인간의 표현물이었다. 그러므로 제단의 기초=인간에 있는 생명의 최말단인 것…이것은 외적 감각이라 불리운다.
출29:13-‘너는 제단(에서) 태울 것이다’=주님의 신성한 사랑으로부터…제단은 사랑으로부터의 신성한 선에 관련한 주님의 표현물이다.
출29:16-‘너는 제단을 빙둘러 뿌릴 것이다’=신성한 선과 결합함…제단은 신성한 선에 관련되는 주님의 표현물이다.
출29:18-‘너는 숫양 전부를 제단에서 태울 것이다’=주님의 신성한 인간의 내적 부분이 그분 자신이었던 그분의 신성한 사랑으로부터의 신성한 선에 결합되었다…제단은 주님의 신성한 선에 관련하여 그분의 신성한 인간을 표현하는 제일가는 것이었다.
출29:20-‘너는 빙둘러 제단에 피를 뿌릴 것이다’=신성한 진리가 신성한 선에 결합함…’제단’=신성한 선에 관련한 주님의 표현물.
출29:36-‘너는 제단에서 죄로부터 깨끗하게 할 것이다’=천국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악들로부터 깨끗해짐…’제단’=신성한 선에 관련한 주님의 표현물, 그분을 예배함에 대한 표현물. 여기서의 경우, 천국과 교회에서 신성한 선에 관련한 주님의 표현물. 주님의 현존, 영접, 유입이라는 주제가 아직 계속되고 있는 동안, ‘제단’은 거기서 주님으로부터 신성한 선을 받음에 관련한 천국과 교회 또한 의미했다. 그 이유가 주님께서 인간의 자아 안에서가 아닌 그분 자신의 것 안에 거주하신 이래, 주님의 신성이 천국과 교회를 만들기 때문. 이로부터 또한 ‘제단’은 천국이 존재하는 인간 자신, 교회가 존재하는 인간 자신, 고로 주님이 존재하시는 인간 자신이 의미되었다. 그리고 추상적으로 인물로부터, ‘제단’은 교회의 사람과 천국의 천사와 더불어 있는 주님으로부터의 선 자체이다.
계11:1-‘그리고 나에게 지팡이를 닮은 갈대가 주어졌다. 그리고 천사가 가까이 서서, 말하기를, 일어나라, 그리고 하느님의 성전과 제단, 그 안에서 숭배하는 그들을 측량해보라.’ 여기서 ‘하느님의 성전’과 ‘제단’은 천국과 교회이다, ‘성전’은 영적 교회를, ‘제단’은 천적 교회이다.
계16:7-‘다시 나는 제단으로부터 또다른 천사가 , 오 주 하느님 전능하신 분, 진실과 정의가 당신의 심판들입니다 하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제단으로부터’란 천적인 선으로 지배되는 곳, 가장 깊은 천국으로부터 이다.
애2:7-‘주님은 그분의 제단을 버리셨고, 그분은 그분의 성소를 몹시 싫어하셨다.’ ‘제단과 성소를 버리심’이란 교회의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다. ‘제단’은 선의 측면에서 교회의 모든 것을, ‘성소’는 진리 측면에서 교회의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다.
출29:37-‘제단은 거룩들 중의 거룩일 것이다’=천적 왕국, 거기서 주님은 사랑의 선 안에서 현존하신다…’제단’=신성한 선에 관련한 주님을 표현하는 표현물, 여기서는 천국과 교회에 있는 신성한 선에 관련한 주님을 표현하는 표현물.
출29:38-‘이것은 네가 제단 위에 바쳐야 하는 것들이다’=천국과 교회에서 주님을 영접함에 일반적으로 관심되는 것들…’제단’에 의해 천국들에 있는 주님의 신성이 의미되고, 또한 그분을 영접함도 의미한다.
출29:44-‘나는…제단을 신성하게 할 것이다’=보다 높은 천국들에서 주님으로부터 신성인 것을 받음…’제단’=신성한 선에 관련한 주님의 표현물. 여기서는 천국들에서 그분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한 선에 관련한 주님의 표현물. 신성한 선이 받아지는 곳은 보다 높은 천국들에서이다.
출30:1-‘너는 향을 태우는 제단을 만들 것이다’=예배의 모든 것을 사랑과 선행으로부터 예배의 모든 것을 주님을 수단으로 감사히 받고 청종함을 표현함…..’분향단’=주님께로 승강하는 예배 속의 것들에 대한 표현물…제단은 제단 위에 놓이는 것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 그 이유가 제단은 그릇 역할을 하고 그것 위의 것은 내용물이기 때문, 따라서 그릇과 내용물은 하나를 만든다.
암3:14-‘벧엘의 제단들’과 제단의 ‘뿔’에 의해 ‘그들이 잘라내야 할 것’이라고 말해지는 것들인 교회의 선과 진리를 파괴하는 악들과 거짓들이 의미되고 있다.
출30:9-‘분향단 위에서 승강하도록 태워 바침과 식사 바침을 만들지 않는 것’에 의해 신앙으로부터, 그리고 사랑으로부터 선들과 진리들을 통하여 있는 거듭남의 표현은 거기에 있지 않다는 것, 그러나 거기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의 표현은 있다는 것…그러므로 분향단을 수단으로 예배가 표현되는바 마지막에서 서술되고 있다.
출30:20-‘섬기기 위해 제단 가까이 오는 것’=사랑의 선에 관련하여 주님이 표현되는 것.
출30:27-‘향의 제단’=주님으로부터 사랑과 선행으로부터 있는 예배의 모든 것의 표현물.
출30:28-‘태워 바침은 주님의 신성한 인간을 표현하는 것들 중 가장 중요한 표현물이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그분을 예배함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표현물이었다.
출31:9-‘태워 바침의 제단과 그것에 딸리는 집기들’=사랑과 사랑으로부터의 진리들로부터 있는 예배의 표현물…’태워 바침의 제단’=주님을 표현하는 표현물, 그리고 사랑의 선으로부터 그분을 예배하는 것에 대한 표현물.
출32:5-‘아론은 그것(금송아지) 앞에 제단을 지었다’=예배…’제단’=신성한 예배를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표현물. 그러나 여기서는 악마적인 예배.
출34:13-‘그러므로 너는 그들의 제단들을 헐어야 할 것이다’=이 광신적 신앙의 악과 그로부터의 예배는 파괴되어야 할 것이다…’제단’=주님 그리고 선으로부터 그분을 예배함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표현물. 그러나 그 반대 의미는 악으로부터의 우상적 예배의 표현물.
출34:13-이 절에는 ‘제단들’, ‘기둥들’, ‘숲’이 언급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것들은 우상적 예배의 모든 것들을 의미하고 있다. ‘제단’은 악으로부터의 예배, ‘기둥’은 악의 거짓으로부터의 예배, ‘숲’은 그것들의 교리적인 것들이 의미된다.
계6:9-‘나는 제단 아래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위하여, 그리고 그들이 붙들고 있었던 증거를 위해 죽임을 당한 이들의 혼을 보았다’=주님의 신성한 인간을 인정하고 말씀 속의 진리들에 의거한 삶 때문에 악한 자들에 의해 거절되고 학대당하고 미움을 받았던 이들, 그리고 잘못된 쪽으로 가지 않게 주님에 의해 보호 안내를 받은 이들. ‘제단 아래’= (영계의) 보다 더 낮은 땅, 거기는 그들이 주님에 의해 보호 안내되어진 곳. ‘제단’=사랑의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함.
계8:3-‘금향로를 가진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에 서있었다.’=영적 예배, 이 예배는 신앙으로부터의 진리들을 통하여 선행의 선으로부터 거행된다. 천사가 서있던 제단, 그가 그의 손에 들고 있었던 금향로는 영적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을 의미한다. 이 예배는 신앙 속의 진리들을 통하여 선행의 선으로부터 이다.
계8:5-‘천사는 향로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것을 제단의 불로 채웠다, 그리고 그것을 땅으로 내던졌다’=천적 사랑이 있는 영적 사랑, 그리고 선행으로부터 분리된 신앙 안에 있는 이들이 있는 더 낮은 영역들 안으로 그것이 유입됨…태워 바침의 제단의 불에 의해 신성한 천적 사랑이 의미되었다…그리고 가장 높은 의미에서 ‘불’은 신성한 사랑이 의미된다.
계9:13-‘나는 하느님 앞에 있는 금빛의 제단의 네 뿔로부터 음성을 들었는데, 트럼펫을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고 있었다’=점검하고 명명백백하게 만드는 이들에게 영적 천국(둘째 천국)의 안으로부터 밖으로 나오는 주님에 의한 명령…’금빛의 제단’, 또는 그들이 향을 바치는 제단은 영적 천국을 의미한다. 제단의 ‘네 뿔’은 제단의 힘을 의미한다…
계11:1-‘천사가 가까이 서서 말하기를, 일어나라, 그리고 하느님의 성전과 제단, 그리고 그 안에서 숭배하는 그들을 측량하라’=주님의 현존, 그리고 그는 새 천국에 있는 교회의 상태를 알고 보아야 할 것이라는 그분의 명령…’성전, 제단, 그 안에서 숭배하는 이들’에 의해 새 천국에 있는 교회의 상태가 의미된다. ‘성전’은 교리 속의 진리에 관련된 교회, ‘제단’은 사랑의 선에 관련한 교회를, ‘그 안에서 숭배하는 이들’은 이 둘로부터 예배함에 관련한 교회를 의미한다.
계14:18-‘또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갔는데, 불을 다스리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주님으로부터 사랑의 선 안에 있는 왕국, 즉 주님의 천적 왕국 속의 천국들. 여기서 ‘또 다른 천사’에 의해 주님의 천적 왕국의 천국들이 의미된다. 그 이유는 그가 제단으로부터 나갔기 때문. ‘제단’에 의해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이 의미된다…그리고 ‘제단 위 불’에 의해 신성한 사랑이 의미된다.
이19:2,18,19-‘이집트 한가운데에서 여호와를 향한 제단.’ ‘여호와를 향한 제단’=사랑의 선으로부터 예배함.
계9:13-‘향의 제단’, 역시 ‘금빛의 제단’이라 불리고 있는데, 이는 주님으로부터, 사랑과 선행으로부터 있는 예배의 모든 것을 듣고 받음에 대한 표현물, 고로 주님에 의해 승강되는 예배 속의 것들을 받음에 대한 표현물.
마23:30,34,35, 눅11:50,51-‘그들은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죽였다’=갖가지 방법에서 주님을 거절함. ‘성전’=신성한 진리 측면에서의 주님, ‘제단’은 신성한 선 측면에서의 주님, 그리고 ‘그것들 사이에서’=둘 모두에서를 각기 의미한다.
계6:9-‘나는 제단 아래를 보았다’=천국 아래에 보존되어 왔던 이들…’제단’, 개략적 의미에서=주님 사랑으로부터의 선으로 예배함. 보다 더 내면적 의미에서 이 사랑에 있는 천국과 교회. 그리고 가장 깊은 의미에서 신성한 사랑으로부터의 신성한 선에 관련한 주님의 신성한 인간.
계6:9-‘제단 아래’=천국 아래 인 이유는 ‘제단’, 가장 높은 의미에서=주님이기 때문, 관계적 의미에서, 천국과 교회, 그 이유는 주님이 천국과 교회이기 때문…일반적 의미에서 ‘제단’=주님에 대한 모든 예배. 특별하게는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예배에 관련해서는 표현적 예배, ‘제단’=모든 예배인 이유는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예배는 번제와 제물을 바침이었기 때문…
시43:3,4-‘제단’, 가장 높은 의미에서=신성한 사랑의 신성한 선 측면에서의 주님의 신성한 인간, 관계적 의미에서 천국과 교회, 일반적으로 모든 예배, 그리고 특별한 측면에서 표현적 예배.
시43:3,4-‘당신의 빛과 진리를 보내주소서….제가 하느님의 제단으로 나아가리이다.’ 여기서 ‘하느님의 제단’에 의해 신성한 인간에 관련한 주님으로 이해된다…’하느님의 제단’은 주님이 사랑의 선 안에 계신 곳으로 이해된다.
마23:16-22-‘성전은 그 안에 있는 금을 신성해지게 한다, 그리고 제단은 그 위에 있는 공물을 신성해지게 한다’ 고 말해진다. 고로 성전과 제단으로부터 모든 신성해짐이 있는바 이는 가장 거룩한 것들이었다. 그러므로 ‘성전’과 ‘제단’에 의해 신성한 인간 측면의 주님이 의미된다. 그 이유가 이로부터 천국과 교회의 거룩한 모든 것이 진행되기 때문…
출29:37-이것이 제단에 의해 의미되기 때문에, 그러므로 그것에 접촉한 모든 것은 신성해지었다….주님 자신이 제단에 의해 의미된다. 그 이유는 거룩해지는 근원은 주님 외 없기 때문…’제단’에 의해 신성 자체가 의미되고, 이 신성은 주님의 신성한 인간이다.
이60:7-‘그것들은 내 제단 위에 올라와서 열납될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내 영광의 집을 영광되게 할 것이다’=그들은 주님의 신성한 인간 안에서 있어야 할 것이다. ‘제단’=신성한 선 측면에서의 그분의 신성한 인간, 그리고 ‘영광의 집’=신성한 진리 측면에서의 그분의 신성한 인간.
이60:7-‘제단’, 최고의 의미에서 주님의 신성한 인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제단’에 의해 천국과 교회가 의미된다, 그 이유가 그 자체로 간주하면, 천사들의 천국은 주님의 신성한 인간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으로부터 있기 때문….이로부터 또한 ‘제단’은 사랑의 선으로부터 진행하는 모든 예배를 일반적으로 의미한다.
시84:3-‘새가 집을 발견했고 제비는 자신을 위한 둥지를 틀었습니다, 당신의 제단들(에서), 만군의 여호와여.’ 여기서 ‘제단들’은 천국들로 이해되어진다.
시26:6-‘여호와 당신의 제단을 일주하는 것’=사랑의 선으로부터 예배함을 통하여 주님과 결합함.
이19:18,19-‘그 날에 이집트의 한가운데에 여호와를 향한 제단이 있을 것이다’=그 때에 자연적 인간에 있는 과학적인 진리들을 통하여 사랑의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이 있을 것이다.
이27:9-예배의 진리 측면에서의 교회의 파멸이 ‘제단의 돌이 분필 가루 같이 되어 흩어짐 같이 놓일 것’에 의해 의미되었다.
애2:7-모든 선들 측면에서 교회의 황폐해짐이 ‘주님께서 그분의 제단을 버리셨다’로 의미되었다.
이56:7-‘그들의 번제와 그들의 제물은 내 제단에서 매우 기뻐하는 것으로 있을 것이다’=영적인 진리들을 통하여 사랑의 선으로부터 있어 응낙할 수 있는 예배…’제단 위에’=천국과 교회에서.
시51:19-선행의 선으로부터의 예배가 ‘그 때에 그들은 당신의 제단에 올라가 수소를 바칠 것’에 의해 의미되었다.
마5:23,24-‘만일 네가 제단에 네 예물을 가져온다면’=하느님을 예배하는 것…=모든 예배에서.
이17:8-반대적 의미에서 ‘제단’=우상적, 또는 지옥의 예배,
이17:8-‘자기 손으로 만든 제단들’=자기 고유의 사랑에 걸맞는 예배, 이로부터 생활의 악이 온다.
출24:4-‘모세는 시내산 아래 제단을 건립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위해 열 두 기둥을 세웠다.’ ‘제단’=교회의 선, 그리고 ‘기둥들’=교회의 진리들, 이로부터 ‘제단’과 ‘열 두 기둥’ 다함께=선으로부터의 모든 진리들, 이를 통하여 교회는 존재한다.
왕상18:31-‘엘리야는 열 두 돌을 가져왔다, 그리고 제단을 세웠다.’ ‘제단’=교회의 선, 그리고 ‘돌’=교회의 진리들.
여22:9-끝절-외적 교회와 내적 교회의 결합, 이는 자연적 인간과 영적 인간의 결합과 비슷한데, 이것이 르우벤, 갓, 므낫세의 아들들이 요단 근처에 세운 ‘제단’에 의해 표현되어졌다. 이 제단을 두고 세 지파와 그 나머지 지파들 사이에 언쟁이 있었다. 그러나 비록 그들이 요단 건너 거주한다 해도 자기들은 여전히 그 나머지 지파와 더불어 계속 여호와를 섬길 것이라는 증거를 위한 것이라고 말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제단을 ‘우리 사이에서 여호와가 하느님이시다’의 증거라고 불렀다…제단=양쪽 교회의 공통되는 예배, 고로 결합.
계8:3-‘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에 섰다’=천적인 선을 통하여 주님과 더불어 천국이 결합됨…’제단’=주님 사랑으로부터의 선.
* 계9:13-‘나는 하느님 앞에 있는 제단의 네 뿔로부터 음성을 들었다’=영적 천국(둘째 천국)의 안으로부터 밖으로 나오는 주님으로부터의 계시…’하느님 앞에 있는 금빛의 제단’=영적 왕국으로부터 있는 신성(the Divine Spiritual).
예11:13-‘창피하게도 너희는 예루살렘 도로의 숫자에 따라 제단들을 놓았다’=교리의 거짓들 만큼 많은 예배들…여기서 이것이 거짓들로부터의 예배라고 이해되는 이유는 ‘제단들’이 분향단들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이19:18-‘여호와를 향한 제단’=선행의 선으로부터 예배함.
계14:18-‘또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갔다’=사랑과 선행의 선 측면에서 교회의 황폐해짐에 관하여 주님께서 분명히 하심…’제단’, 가장 높은 의미에서=신성한 사랑의 신성한 선, 그리고 관계적 의미에서 주님 사랑의 선과 이웃을 향한 선행의 선.
계16:7-‘나는 제단으로부터 또 다른 (소리)를 들었는데, 말하기를’=주님의 천적 왕국으로부터 주님의 정의가 설교됨…’제단으로부터의 천사’=주님의 천적 왕국, 그 이유가 ‘제단’에 의해 신성한 선 측면의 주님이 의미되기 때문, 고로 또한 신성한 선 안에 있는 천국도 의미. 이 천국, 또는 이런 천국들이 주님의 천적 왕국을 구성한다.

지붕 (roof)

창8:13-‘노아는 방주의 덮개를 제거했다’=거짓들을 제거함…‘덮개’=인간이 하늘을 보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 또는 빛을 차단하는 것들; 이것은 거짓이다.
마24:17-인간이 선으로부터, 또는 의지로부터 행동하는 상태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전의 상태에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자기 집으로부터 어떤 것을 가져오려고 자신을 내려가게 하지 마라’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이 말들=교회 내에서 인간의 두 번째 등급-이웃을 향해 선행 안에 있는 이들.)
출30:3-‘(제단의) 지붕’=가장 안쪽의 것. 지붕=가장 안쪽인 이유는 지붕=집의 가장 높은 것이기 때문. 또한 지븡=인간의 머리 위치와 비슷하기 때문.
마24장-‘집의 지붕’=진짜 진리들로부터 있는 총명.

집 (house)

창7:1-‘너와 네 모든 집은 방주 안으로 들어가라’=의지 속에 있는 이런저런 것들…‘집’=의지, 그리고 의지 속의 것들.
창12:1-‘네 아버지의 집으로부터’=내면의 육체적이고 세상적인 것들, 이는 애착들과 과학물들이다.
창12:15-‘여인은 바로의 집으로 데려가졌다’=그들은 더 낮은 마음을 현혹시겼다.
창12:17-‘그리고 그의 집’=그가 그러모았던 것들. ‘집’, 여기서는,=그러모아진 과학물들. 과학물들을 그러모으는 것, 이것들을 수단으로 외적 인간을 짓는 것은 집을 짓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65:21-‘집들’=지혜와 총명이 있는 곳, 고로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이 있는 곳.
암6:11-‘집들’=거짓들과 이로부터 파생된 악들.
창14:14-‘그의 집에서 태어난 이들’=같은 선들과 진리들이 그분 자신의 힘에 의해 획득되어왔다.
창15:3-‘내 집의 아들이 내 상속자이다’=주님의 왕국 안에 외적인 것만 있으리라는 것.
창17:12-‘집 안에서 태어난 자’=천적 평면…집 안에서 태어난 이들=집 안쪽에 있는 이들. ‘집’, 말씀에서,=천적인 것, 그이유는 이것이 가장 안쪽이기 때문. 그러므로 ‘하느님의 집’은 보편적 의미에서는 주님의 왕국, 덜 보편적일 경우, 교회, 특별한 의미에서는 주님의 왕국, 또는 교회가 있는 인간 자신이 의미된다. 인간이 ‘집’이라 불릴 때, 그와 더불은 신앙의 천적인 것이 의미된다. ‘성전’일 경우, 그와 더불은 신앙의 진리가 의미된다.
창18:19-‘집’=선들 안에 있는 모든 이.
창19:2-‘네 종의 집으로’=선행의 선 안에. ‘집’=천적인 선, 이는 오로지 사랑과 선행으로부터서만 있다.
창19:3-‘그들이 그의 집에 왔다’=선 안에서 확증함. ‘집’=천적인 선.
창19:4-‘그들이 집을 에워쌌다’=그들이 선행의 선에 맞서 있는 것.
창19:10-‘그들은 롯을 집 안으로 자신들에게로 데려왔다’=주님께서는 선행의 선 안에 있는 이들을 보호하신다…‘집 안으로 데려와지는 것’=선 안으로…그리고 선 안으로 데려와진 이들이 천국 안으로 데려와진다…하여 혼(soul) 측면의 모든 악의 감염으로부터 안전하다.
창19:11-‘집의 문에서 있는 사람들’=합리적인 것들과 이로부터 파생하는 교리적인 것들, 이를 수단으로 폭력이 선행의 선에 가해진다. ‘집’=선행의 선.
눅17:31-‘집 위에 있는 것’=선 안에 있는 것…‘집에 있는 집기들’=선으로부터 있는 진리들.
창20:13-‘집’=선. 여기서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것의 외관으로부터 있는 즐거움의 선. 그이유가 모든 즐거움은 선 같이 나타나기 때문.
창20:18-‘아비멜렉의 집’=신앙의 교리로부터의 선.
이24:10-‘모든 집이 닫힐 것이다’=선이 결핍된 인간의 마음.
창24:7-‘내 아버지의 집’=주님께서 (세상에서) 싸우시고 정복하신 어머니쪽으로부터 유전받은 악.
창24:23-‘우리가 이 밤을 지날 수 있는 장소가 당신 아버지의 집 안에 있는지?’=선행의 선에 관하여 조사함. ‘집’=선.
창24:27-‘여호와께서 저를 내 주인의 형제의 집으로 인도했습니다’=진리의 선 쪽으로. ‘형제의 집’, 이로부터 리브가가 있었던바,=진리가 있게 한 선.
창24:28-‘그녀는 이 말들에 따라 자기 어머니의 집에 말했다’=계발이 가능한 자연적 선이면 무엇이든지에. ‘어머니의 집’=외적 인간의 선, 즉 자연적 선.
창24:31-‘나는 집을 청소했다’=모든 것들은 준비되어 선들로 가득찼다…‘집’=선; 그리고 인간 자체는 안에 있는 선으로부터 ‘집’이라 불려진다.
창24:32-‘사람이 집에 왔다’=거기서 선 안으로 유입됨이 있다. ‘집’=선.
창24:40-‘내 가족으로부터, 그리고 내 아버지의 집으로부터’=거기 신성으로부터 있는 선과 진리로부터.
시23:6, 27:4-‘여호와의 집에서 거주하는 것’=사랑의 선 안에 있는 것, 그리고 사랑의 선 안에서 사는 것. 그이유가 이것이 ‘여호와의 집’이기 때문.
욜2:9-‘집안으로 올라가는 것’=의지 속에 있는 선들을 파괴하는 것.
예22:13-‘정의 없이 집을 짓는 것, 공정 없이 침실들을 짓는 것’=비-선과 비-진리로부터 신앙심을 건축하는 것.
창27:15-‘집에서 그녀와 함께 있던 것’=신성의 합리성의 신성한 진리를 통하여 신성한 선으로부터 있는 것.
합3:13-‘불경한 자의 집으로부터 머리를 쳐부수는 것’=거짓의 원리들을 파괴하는 것.
창28:17-‘이것이 과연 하느님의 집이다’=질서의 최말단에 있는 주님의 왕국.
창28:21-‘나는 내 아버지의 집으로 평화로이 되돌아 갈 것이다’=완전한 합일(union)에 이르기까지. ‘내 아버지의 집’, 주님에 관해 서술할 경우,=신성 자체, 이 안에 주님께서는 임신 때부터 계셨다; 그리고 집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버지’라 불리는 신성의 선으로 되돌아가는 것.
창29:13-‘그는 그를 집으로 데려왔다’=결합함 쪽으로.
겔12:2-‘반역의 집’ 인 악들.
이14:1-‘야곱의 집으로 자신들을 연합하는 것’=선행의 선 안에 있는 것.
창30:30-‘언제 나는 내 집을 위하여 할 수 있을까?’=지금 그의 자신의 선은 거기로부터 열매맺을 것임. ‘집’=선; 여기서, ‘내 집’=야곱에 의해 의미된 선.
창31:14-‘우리는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더 이상 몫도 상속분도 없지 않는가?’=라반에 의해 의미된 선으로부터 분리되는 첫 상태. ‘우리 아버지의 집’=라반에 의해 표현된 선.
창31:30-‘너는 네 아버지의 집을 무척 그리워했다’=직접적으로 흐르는 신성의 선과 결합하기를 갈망함. 여기서의 ‘아버지의 집’=아브라함, 이삭의 집=직접적으로 흘러드는 선.
창33:17-‘(야곱은) 자신에게 집을 지었다’=이 상태에서 진리로부터 선이 증가함. ‘집을 짓는 것’=총명과 지혜 안에서 외적 인간을 가르치는 것; 그리고 총명은 진리로부터, 지혜는 선으로부터 있는바, 여기서는 진리로부터 선이 증가함.
창34:26-‘그들은 세겜의 집으로부터 디나를 데리고 나갔다’=그들이 진리에 애착함을 거두어갔다는 것. ‘세겜의 집’은 또다른 교회의 진리의 선이 의미된다.
겔9:7-‘집을 오염시키는 것, 그리고 살해된 자로 뜰을 채우는 것’=선들과 진리들을 모독하는 것.
창34:29-‘집 안에 있는 모든 것’=교회의 모든 것. ‘집’=선 측면에서의 교회, 고로 교회의 모든 것.
창34:30-‘나와 내 집’=진리와 선 측면에서…‘집’=선 측면에서의 교회.
예6:1-‘예루살렘’=영적 교회; 그리고 ‘포도원의 집’, 또는 ‘벳학게렘’
마12:44-‘텅빈 집’=인간의 내면들이 다시 불결함으로, 즉 악으로부터의 거짓들로 가득참.
신25:9,10-‘자기 형제의 집을 세우기를 하지 않는 자에게 그와같이 그에게 해줘라; 그러므로 그의 이름은 이스라엘에서 신을 벗기운 자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자식 없이 있는 것은 선과 진리의 결핖이 의미되는바, 그 집에서는 교회의 표현이 더 이상 없다는 것.
창39:2-‘(요셉은) 자기 주인 이집트인의 집 안에 있었다’=그는 자연적 선 안에서 개시될런지 모른다는 것…‘집 안에 있는 것’=개시되는 것인 이유는 ‘집’=선이 있는 마음, 여기서는 자연적 마음, 더구나 ‘집’은 선을 서술하기 때문.
창39:5-‘여호와께서는 요셉 때문에 이집트인의 집을 축복하셨다’=신성으로부터 자연적 평면에 천적인 것을 가졌다는 것…‘이집트인의 집’=자연적 마음의 선.
창39:16-‘그녀의 주인이 집에 올 때까지’=그것은 자연적 선과 교통될런지 모른다는 것. ‘집’, 내적 의미에서,=자연적 마음; 자연적 마음, 또는 합리적 마음은 집과 비슷하다; 집안의 남편은 선, 아내는 진리, 딸과 아들은 선과 진리에 애착함, 남종과 여종은 섬기고 확인하는 과학물과 쾌락이다.
눅11:24-‘집’=자연적 마음, 이 집이 텅비고 청소되었다고 말해진다. 이는 남편과 아내인 선들과 진리들이 없을 때, 딸들과 아들들인 선과 진리에 애착함들이 없을 때, 남종, 여종들인 확증하는 것들이 없을 때이다. 인간 자신이 ‘집’인 이유는 합리적, 자연적 마음이 인간을 만들기 때문.
눅11:17, 막3:25,27-인간의 마음이 ‘집’에 의해 뜻해진다…‘집’=고명해지려 있는 선.
창40:14-‘이 집으로부터 나를 데려가주오’=악들로부터의 해방…‘집’=선, 반대 의미는 악.
욜2:9-‘그들이 승강할 집’=그들이 파괴하는 선.
창41:40-‘너는 내 집을 다스려라’=자연적 마음은 그 속으로 복종되고 종속될 것이다. ‘집’=마음, 여기서는 자연적 마음, 그이유는 ‘내 집’이 바로에 의해 말해지기 때문.
창41:51-‘(하느님께서는 나로 ) 모든 내 아버지의 집을 (잊게 해주셨다)’=유전적 악들의 제거…‘집’=인간; 그리고 사실상, 합리적 마음, 또는 자연적 마음; 그러나 특별한 측면에서, 거기 있는 자발성; 결과적으로 선, 또는 악…그러므로 ‘아버지의 집’=유전적 악들.
창42:19-‘너희 집의 기근을 위해 농산물을 가지고 올라가라’=한동안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의견을 구하도록 자유했다는 것…‘너의 집’=특별한 측면에서의 각각의 진리들이 거주하는 곳, 고로 자연적 마음.
이46:3-‘야곱의 집’=외적 교회; ‘이스라엘의 집’=내적 교회.
창43:16-‘그는 자기 집을 다스리는 자에게 말했다’=외적 교회 속에 있는 것에.
창43:16-‘사람들을 집으로 데려와라’=자연 평면에 있는 진리들이 저쪽에 소개되어짐.
창43:17-‘그리고 사람은 요셉의 집으로 사람들을 데려왔다’=천적 평면으로부터의 영적인 것으로부터 있는 선 안으로 처음 소개됨…‘집’=선; 그러므로 또한 ‘집’=교회, 그 이유는 교회는 선으로부터 교회이기 때문.
창43:18-‘(사람들은) 자기들이 요셉의 집으로 데려와졌기 때문에 (두려웠다)’=자연 평면의 진리들이 내적인 것에 인접되고 종속 되었기 때문에 (주춤함…‘집’에 의해 인간의 내적, 외적 모두가 의미되는데, 여기서는 요셉의 집인고로 내적 측면이 의미된다.
창44:14-‘(그들은) 요셉의 집으로 (들어갔다)’=내적 평면과 교통함…‘집으로 들어가는 것’=교통하는 것인 이유는 ‘집’에 의해 인간 자신, 고로 인간을 만드는 것, 즉 진리와 선과 더불은 인간 마음이 의미되기 때문. 그러므로 ‘집으로 들어간다’고 말해질 때, =그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것, 고로 교통을 가지는 것.
창45:18-‘네 아버지와 네 집들을 데려오라, 그리고 나에게 오라’=자연 평면의 과학물에 영적 선의 접근, 그리고 교회의 진리들의 접근…이스라엘의 아들들=자연 평면에 있는 교회의 진리들, 그 속의 모든 것들이 ‘그들의 집들’이다.
창46:31-‘(요셉은) 그의 아버지의 집에게 말했다’=거기서 선들을 지각함이 있음. ‘집’=선.
창47:12-‘요셉은 빵을 가지고 모든 그의 아버지의 집을 떠받쳤다’=천적 평면의 내적인 것으로부터 자연 평면에 있는 교회의 진리들과 영적 선 안으로 선의 유입이 계속 있었다는 것…‘모든 그의 아버지의 집’=한 개의 복합체 안에서 영적 선 속에 있는 모든 것, 그리고 영적 선으로부터 있는 모든 것.
창47:24-‘네 식품을 위하여, 그리고 네 집에 있는 이들을 위하여’=그러므로해서 진리의 선이 각각에, 모든 것 안에 있음…‘집에 있는 이들’=진리로부터 선의 각각 그리고 모든 것들.
창50:4-‘요셉은 바로의 집에 이야기했다’=내적인 것이 자연적 마음 안으로 유입됨. ‘집’=마음.
창50:7-‘그의 집의 원로들’=선과 일치한 것들…‘집’=선.
창50:8-‘요셉의 모든 집’=영적 평면 속의 천적인 것들.
창50:8-‘그리고 그의 아버지의 집’=영적 선. ‘이스라엘’=영적 선; 그러므로 그의 ‘집’=이 선으로부터 있는 복합체 안의 모든 것들.
창50:22-‘그와 그의 [아버지의] 집’=내적 측면으로부터와 그것의 선…‘집’=선.
출1:1-‘남자와 그의 집이 왔다’=진리 측면에 관련하여, 그리고 선 측면에 관련하여…‘집’=선.
출1:21-‘그분께서는 그들을 집으로 만드셨다’=그들은 천국적 형체로 배치되어졌다.
출2:1-‘레위의 집의 사람이 갔다’=선으로부터 진리의 근원…‘집으로부터 있는 것’=근원.
출7:23-‘바로는 뒤를 돌아 보았다. 그리고 자기 집에 왔다’=거짓들로부터 생각함과 되새겨 봄….‘바로의 집’=거짓.
출7:28-‘그것들은 올라와서 네 집으로, 네 침실로 갈 것이다’=그것들은 마음을 채울 것인데 그것의 내면들 까지 채울 것이다. ‘집’=인간의 마음.
출7:28-‘네 종들과 네 백성의 집 안으로’=자연 평면 안에 있는 모든 것들.
출8:9-‘집들’=자연적 마음 속에 있는 것들. ‘집’=자연적 마음; 그리고 ‘집들’, 복수일 경우,=그 안에 있는 것들.
출8:17-‘집들 안에’=자연적 마음의 내면들 안에도.
출8:17-‘이집트인들의 집들에’=자연적 마음의 내면들.
출8:20-‘바로의 집, 그의 종들의 집, 그리고 모든 토지’=자연 평면에 있는 각각 그리고 모든 것들; 여기서, 각각 그리고 모든 것들로부터, 또는 모든 측면들로부터.
출9:19-‘집으로 모아들이지 않은 것’=보존되지 않은 것…‘집’=내면의 자연적 마음, 여기서 선은 진리와 함께 있다; 합리적 마음 역시 그러한바, 인간 자신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집으로 모아들이는 것’=안쪽에 모아들이는 것, 그리고 비축되는 것.
출9:20-‘그는 그의 종들과 그의 가축들을 집으로 피신하게 했다’=그것들은 내면들 안에 비축되고 보존되었다…‘집들’=인간 내에 있는 것들, 거기에 선과 진리가 주님에 의해 비축되고 보존되었다.
출10:6-‘네 집들, 모든 너희 종들의 집들, 그리고 이집트인들의 집들을 채울 것이다’=거짓이 자연 평면에서 각각 그리고 모든 것을 내면으로부터 그것의 맨끝 까지 지배할 것이다.
출12:3-‘그의 아버지들의 집을 위하여, 집을 위하여 작은 가축’=각각의 특수한 선에 따라서. ‘그의 아버지들의 집’=다른 가족의 선과 구분되는 이쪽 가족의 선. ‘그의 아버지의 집’에 의해 내적 선 측면에서의 사람이 의미되어져 있다.
출12:4-‘만일 집이 작은 가축인데도 너무 작다면’=만일 특별한 선이 순진을 위해 충분치 않다면. ‘집’=특별한 선.
출12:7-‘집들 위에’=선으로부터의 의지 속에 있는 것들.
출12:13-‘네가 있는 집들이라는 표시’=그것은 선으로부터의 의지에 관한 증거이다는 것. ‘집들’=선으로부터의 의지 속에 있는 것들.
출12:15-‘첫째 날에 너희는 네 집들로부터 누룩이 중지되게 만들어라’=선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거짓은 하나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 ‘집’=선.
출12:22-‘너희는 집의 문으로부터 누구도 나가지 말 것이다’=그들은 선 안에 꾸준히 머물러야 한다는 것, 진리로부터 응시되어져서는 안될 것. ‘집’=선…‘집 안에 남는 것’은 성 안에 남는 것이다. 그러나 ‘집의 문으로부터 나가는 것’은 선으로부터 진리쪽으로 가는 것이다. 그이유가 선은 안쪽에 있으나 진리는 바깥쪽에 있기 때문.
출12:23-‘그분은 파괴자에게 네 집들에 오는 것을 주지 않을 것이다’=지옥들로부터 있는 거짓과 악은 의지에는 조금도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출12:27-‘그분은 이스라엘의 집은 지나치셨다’=저주함이 주님을 수단으로 그들이 붙잡고 있는 선들로부터서는 도망쳤다…‘집들’=선들.
출12:29-‘구덩이의 집 안에 있는 포로된 자’=마지막 장소 안에 있는 이들…
출12:30-‘죽은 자가 한명도 없는 집은 하나도 없었다’=지옥에 떨어지지 않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
출12:46-‘한 집안에서 그것이 먹어져야 할 것이다’=하나의 선을 만들기 위해서 서로 일치하는 선이 제휴함. (그이유가)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각 집은 천국의 사회를 세부적 측면에서 표현했기 (때문).
출12:46-‘너희는 집으로부터 바깥으로 고기를 가져가지 마라’=이 선은 또 다른 한 개의 선과 섞지 마라.
출20:2-‘나는 너희를 이집트의 토지로부터, 종들의 집으로부터 데려왔다’=지옥으로부터 그분에 의해 해방됨…‘종들의 집’=영적 포로됨.
시69:9-‘여호와의 집의 열정’=선과 진리를 받는 이들을 향한 사랑. 그이유가 이들이 ‘여호와의 집’이기 때문.
욥24:16-‘집을 관통하여 파는 것’=또다른 사람의 선을 은밀하게 가져가버리는 것.
출22:7-‘도둑에 의해 그것이 사람의 집으로부터 가져가버림을 당했을 때’=기억으로부터 이런 것들의 손실이 있음.
출22:8-‘집의 주인을 하느님에게 데려와야 한다’=선으로부터 면밀하게 조사함…선이 ‘집’이라 불리운다. 그이유는 진리들과 과학물들이 그것들의 집 안에 있듯 선 안에 있기 때문.
이22:9-‘다윗의 집’=주님의 교회
이23:1-‘집이 없다, 하여 들어가지 못한다’=진리가 심어질 수 있는 선이 더 이상 없다는 것.
출23:19-‘하느님의 집 안으로 가져오는 것’=주님에게 가져오는 것, 하여 그것들은 거룩해질런지 모른다. ‘하느님의 집’=주님.
마11:8-‘왕들의 집’=천사들이 있는 대저택들; 보편적 의미에서 천국; 그이유가 ‘집’들이 선으로부터 라고 말해지기 때문.
출25:27-‘장대들을 위한 집을 위해’…‘집을 위해’라고 말해지는 이유는 이것이 천적 선을 취급하기 때문, 그리고 그것의 용기(그릇)으로부터의 힘을 취급하기 때문…또한 ‘집’에 의해 최말단들에 있는 선이 의미되어진다. ‘집’=선.
겔40장-여기서 새 집이 취급되는데, 이를 수단으로 주님의 새 교회가 의미되어져 있다.
겔46장-거기서 ‘성전’ 또는 집에 의해 천국과 교회가 의미되어져 있다.
* ‘왕의 집’=신성의 진리 측면에서의 교회 (이22:21,22, 계3:7 참조).
요19:27-‘자기의 집(home)으로 그녀를 데려가는 것’=교회는 선행의 선이 있는 곳에 거주할 것이다.
예5:7-교리 측면에서 이런 교회가 ‘간음녀의 집’이다.
겔7:24-‘그들의 집들을 차지하는 것’=그들의 마음들을 차지하는 것.
마12:25-‘서로 맞서 갈라진 모든 성이나 집은 서있지 못한다.’ ‘성’과 ‘집’=교리로부터의 진리와 선, 이것들은 만장일치로 동의하지 않으면 서있지 못한다.
예31:27-‘이스라엘의 집’, 그리고 ‘유다의 집’=진리 측면에서의 교회와 선 측면에서의 교회.
학2:9-‘하느님의 집’=교회; ‘이전의 집’=주님의 강림 이전에 있던 교회; 그리고 ‘이후의 집’=그분의 강림 후에 있었던 교회.
이60:7-‘우아한 집’=신성의 진리 측면에서의 신성의 인간.
예6:1-‘포도원의 집’=그 교회 자체.
이22:10-‘예루살렘의 집들을 세는 것’=진리의 선들을 왜곡하는 것.
암6:11-‘큰 집’=학식 있는 사람. ‘작은 집’=학식 없는 사람.
호11:11-‘나는 그들이 자기들의 집에서 거주하게 만들 것이다’=진리를 이해하고, 선한 의지로부터 사는 것. 인간의 마음은 이 두 가지 것들에서 존재하는바 ‘집’에 의해 뜻해진다.
예2:14-‘집으로부터 태어난 자’=선들 안에 있는 이들.
신6:11-‘갖가지 좋은 것이 가득한 집들’=사랑과 지혜로 가득한 마음의 내면들.
애5:2-‘우리의 집이 외국인들에게’=교회의 선들이 악들에게 돌아갔다.
이5:9-‘황폐를 위해 있을 많은 집들’=특별히 선으로부터의 진리들 측면에서의 교인들.
겔26:12-원하고 바라는 집들을 그들은 무너뜨릴 것이다‘=마음 속의 것들, 즉 이해성과 의지 속의 것들; 그이유는 거기에 인간이 거주하기 때문.
왕상22:39-마음 속의 것들 측면에서의 인간이 ‘집’에 의해 의미되는바, 그러므로 아합에 관련해 읽는바, 그들은 이전에는 집들을 상아로 지었다. 상아 집을 수단으로 합리성 측면에서의 인간이 의미되어져 있다.

창고 (store house)

출1:11-‘그들은 바로를 위해 창고의 성읍을 건설했다’=자연 평면에서 왜곡된 진리들로부터의 교리들. ‘창고’=왜곡된 진리들.

창문 (window)

창6:16-(방주의) ‘창문’=지적 평면
이54:12-‘태양들’, 또는 창문들=선행으로부터의 지적인 것들.
왕상6:4-성전의 모든 창문들은 같은 것을 표현했다; 가장 높은 창문은 지적인 것들, 중간 창문은 합리적인 것들, 아래쪽 창문은 과학물들과 감각적인 것들을 표현하였다.
예9:21-중간 층의 창문이 뜻하여진다=합리적인 것들.
창8:6-‘노아는 방주의 창문을 열었다’=두번째 상태, 즉 신앙으로부터의 진리가 그에게 나타났을 때이다…‘창문’=지적인 것, 그러므로 신앙으로부터의 진리들.
창26:8-‘아비멜렉은…창문을 통하여 쳐다보았다’=(영적) 지식들 안에서 합리적인 것을 찾는 신앙 속의 교리…’창문을 통하여 쳐다보는 것’=내적 시야를 수단으로 나타나는 것들을 지각하는 것. 이는 일반적으로 외적 인간 속에 있는 영적 지식들이다.
욜2:9-‘도둑 같이 창문을 수단으로 들어오는 것’=진리들과 진리들에 관한 지식들을 파괴하는 것.
습2:14-‘목소리가 창문들에서 노래할 것이다’=진리의 황무함, 고로 진리 측면에서의 지적 자질이 황폐함.
사5:28-‘창문을 통하여 밖을 보는 것’=진리를 부정하는 이들의 추론들을 수단으로…
이60:8-‘비둘기 같이 창문 쪽으로 나는 것’=진리의 탐구를 통하여…‘창문들’=빛 안에 있는 진리.
예9:21-‘죽음이 창문들을 통하여 왔다’=지옥의 거짓이 이해성 안으로 들어왔다.
말3:10-‘하늘의 창문들을 여는 것, 그리고 축복을 쏟는 것’=신성이 유입(inflowing)됨, 이로부터 총명과 영원한 생명이 온다.

창살 (grating)

* 체로치다(sift)를 보라.

천막 (tent)

창4:20-‘천막 안에 거주하는 것’=사랑은 거룩하다.
* 천막=천적인 것.
시78:51-‘함의 천막들’=거기로부터 예배.
창9:21-‘천막 한가운데’=신앙 속의 제1순위; 그이유가 ‘천막’=선행, 또는 선행으로부터의 예배. 선행은 신앙과 예배의 가장 깊은 것; 그리고 이것은 ‘천막의 한가운데’ 이다. ‘천막’=사랑으로부터의 거룩한 것, 또는 선행.
창9:27-‘그는 셈의 천막들에 거주할 것이다’=예배의 내적 부분들은 외적 부분들 안에 있을런지 모른다.
창12:8-‘그는 그의 천막을 펼쳤다’=신앙으로부터의 거룩한 것들; 그이유가 ‘천막’=사랑으로부터의 거룩한 것, 결과적으로 사랑으로부터 신앙의 거룩한 것. 그의 천막을 거기에 펼침=이것이 지금 시작되고 있다는 것.
창13:3-‘그의 천막이 전에 있었던 장소로까지 조차’=전에 있었던 거룩한 것들 쪽으로…‘천막’=신앙의 거룩한 것들…고로 주님이 가자셨던 천적인 것들…
창13:5-‘(롯은) 양떼, 그리고 가축떼, 그리고 천막들을 가졌다’=외적 인간에게 풍부히 있는 것들.
창13:12-‘그는 소돔 가까이 천막을 쳤다’=탐욕들에로 뻗쳐감.
창13:18-‘아브람은 천막을 쳤다…’…‘천막을 치는 것’, 즉 천막을 움직이고 고정하는 것=결합되는 것; 그이유가 ‘천막’=예배의 거룩한 것, 이를 수단으로 외적 인간은 내적 인간과 결합된다.
창18:1-‘그는 천막의 문에서 앉아 있었다’=주님이 그당시 있으셨던 사랑의 거룩한 상태.
창18:9-‘보라 천막 안에’=거룩이었인 것 안에.
창18:10-‘사라는 천막의 문에서 들었다’=합리적 진리가 거룩이었인 것 근처에 있었다.
창24:67-‘그의 어머니 사라의 천막’=신성한 인간 안에서 진리의 거룩한 장소. ‘천막’=거룩인 것, 고로 거룩한 장소.
창25:27-‘천막들 안에서 거주함’=거기로부터 예배함.
암9:11-‘다윗의 천막’=교회와 주님을 예배함.
창26:25-‘이삭은 거기에 자기 천막을 펼쳤다’=거기 거룩이었인 것.
창31:25-‘야곱은 산에 자기 천막을 고정시켰다’=이 사랑의 상태.
창31:33-‘라반은 야곱의 천막 안으로, 그리고 레아의 천막 안으로, 그리고 두 몸종의 천막 안으로’=그들의 거룩한 것들 안에 이런 진리들은 있지 않았다.
출16:16-‘천막’ 여기서=선 측면에서의 공동체; 그이유가 여기서의 천막은 집(house)과 비슷한 의미를 지녔기 때문.
출18:7-‘그들은 천막 안으로 왔다’=합일의 거룩함…그이유는 사랑이 합일이기 때문. 그러므로 ‘천막 안으로 가는 것’=거룩한 사랑으로부터 하나로 되는 것.
이54:2-‘네 천막의 장소를 확장함’=사랑의 선으로부터 있는 예배의 거룩함.
예4:20-‘내 천막들이 황폐된채 있다’=사랑의 선으로부터 있는 거룩한 예배.
출27:21-‘만남의 천막에서’=주님의 현존하심; 그 이유가 천막은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 또한 이스라엘의 아들들을 거기서 만나려 만들어졌기 때문; 이 때문에 예배의 거룩함이 거기서 조직되어졌다.
출28:43-‘그들이 만남의 천막 안으로 갈 때’=천국과 교회의 모든 것들을 표현하는 예배에서…그이유가 천막은 주님이 계신 천국을 표현했기 때문…더 나아가 그 당시 모든 예배가 천막에서 거행되었다.
출29:10-‘만남의 천막 앞에’=순수해짐을 위해, 천국으로부터 진리를 받기 위해, 그리고 받은 진리가 선과 결합하기 위해; 그이유가 ‘만남의 천막’=주님이 계시는 천국이기 때문.
출29:44-‘나는 만남의 천막을 신성해지게 할 것이다’=보다 낮은 천국들에서 주님을 받는 것. ‘만남의 천막’=더 낮은 천국들인 이유는 ‘제단’=더 높은 천국들이기 때문.
출30:16-‘너는 그것을 만남의 천막의 일을 위해 주어라’=모든 진리들과 선들은 주님으로부터 있음을 인정함을 통하여 천국과 결합함.
출30:20-그들이 만남의 천막 안으로 들어감에서=신앙의 선으로부터 예배함.
출30:26-너는 그것 가지고 만남의 천막에 기름 부을 것이다=천국들 안에서 주님의 신성을 표현하기 위하여…‘만남의 천막’=전체 복합체에서의 천국.
출30:36-‘너는 그것을 증거의 궤 앞에 놓을 것이다’=천국과 교회 안에서 주님을 예배함.
출31:7-‘만남의 천막과 증거를 위한 궤’=주님이 계신 천국을 일반적 측면에서 표현함.
출33:7-‘모세는 천막을 가져갔다’=예배의 거룩함, 교회의 거룩함, 그리고 말씀의 거룩함; 그이유가 ‘천막’=최고 의미에서 주님, 또한 천국과 교회이기 때문; 관계적 의미에서 천국과 교회의 모든 거룩함, 그러므로 또한 예배의 거룩함과 말씀의 거룩함.
예4:20-‘천막들’=교회의 선들; ‘커튼들’=교회의 진리들.
출33:7-‘천막을 펼치는 것’=교회와 예배 속의 것들을 설비하고, 배치하고, 배열하는 것.
출33:7-‘그는 이 천막을 만남의 천막이라 불렀다’=안에 내적인 것들이 있는 예배와 교회와 말씀의 외적인 것들.
슥12:7-‘유다의 천막들’=천적 왕국.
이32:18-‘안전한 천막들’=악들과 거짓들의 출몰함 없이 파생되는 사랑의 선들과 예배의 선들.
시21:20-‘네 천막에 숨는 것’=신성의 진리 안에.
시132:3-‘확실하게 나는 내 집의 천막 내부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그는 교회의 거룩한 것들 안으로 들어가 알려하지 않을 것이다.
예30:18-‘야곱의 천막들’=교회의 모든 것들…‘천막들’=교회의 선들; ‘주택들’=교회의 진리들.
시78:60-‘천막’=교리의 진리들 안에 있는 교회.

침실 (bedchamber)

창43:30-‘그는 침실 안으로 와서 거기서 울었다’=가상적이 아닌 본래대로에서.
눅12:3-‘너희가 침실에서 귀에 말했던 것을 지붕들 위에서 전파할 것이다.’ ‘침실’=인간의 내면의 것들, 즉 그가 생각한 것, 의도한 것, 그리고 시도한 것.
마6:6-‘침실로 들어가는 것, 그리고 기도함’=가상적으로 (그것을 행하는 것이) 아닌.

커튼 (curtain)
앙장 (curtain)
장 (curtain)
피륙 (curtain)

출26:7-암염소의 털(wool)로 만들어지는 천막 주택의 ‘커튼들’, 이는 그 안에서 표현되는 거룩한 모든 것들은 그것의 본질 측면에서 순진으로부터 파생되고 있다는 표시를 위해서이다. 암염소의 털=순진의 최말단, 또는 가장 바깥쪽, 이는 무지 안에 있는 순진, 즉 이방인들이 지닌 순진과 같은 것, 이 이방인들이 내적 의미에서 성막의 커튼들이다.
출26:1-‘열 커튼들’=이 천국을 존재하게 하는 모든 진리들.
출26:3-‘다섯 커튼들이 거기서 함께, 각각이 다른 것과 결합된다, 그리고 다섯 커튼들은 함께 각각이 다른 것과 결합된다’=진리가 선과, 선이 진리와 끈임없는 교통이 있다.
출26:7-‘너는 주택 위 천막을 위하여 염소들로부터 커튼을 만들어라’=천적 선의 외적 부분으로부터 있는 진리들로부터 있는 천국의 외적 부분.
이19:9-‘커튼들’=영적 근원으로부터의 자연적 진리들; 그리고 ‘그것들을 만들고 짜깁는 것’=가르치는 것.
예10;20-‘커튼들과 실’=거기로부터 파생된 영적인 것들.
합3:7-‘미디안 토지의 커튼들’=거짓으로 있는 광신적인(religiosity) 신앙.
예49:29-‘커튼들’과 ‘집기들’=(영적 왕국의 교회의) 진리들.
이54:2-‘주택의 커튼들을 펼치는 것’=신앙의 진리들로부터 있는 예배의 거룩함.
예10:20-‘커튼들’=이 선으로부터 진행하는 진리들, 그리고 그것을 덮음.

탈 것 (carriage)

이66:20-‘말, 병거, 마차’=지적, 교리적인 것들.
계18:13-‘말들, 그리고 탈 것들’=말씀을 이해함에 따른 이런 모든 것들. 그리고 거기로부터 파생되는 교리.
이66장-‘마차들’=진리에 관한 지식들.
계18장-‘탈 것들’=합리적 근원으로부터의 선들, 그 이유는 그것들이 말들에 의해 견인되기 때문, 이를 수단으로 그 근원으로부터 진리들이 의미된다.
이66장-‘마차들’=선으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

탑 (tower)

* 경비원도 참조.
창9:4-‘도성과 탑을 건설하자’=그들은 어떤 교리와 어떤 예배를 창안했다는 것.
* 탑=자아를 예배함.
* 망루(감시탑)=몽상들
* 산들과 탑들=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주님은 악마에 의해 높은 산과 성전 꼭대기로 이끌려졌다.
창35:21-‘에델 망대를 넘어’=그것의 내면 안으로.
이30:25-‘탑들’=거짓의 교리. (=악들과 악으로부터의 거짓들 안에 있는 이들, 특히 교회의 거룩한 것들을 수단으로 지배욕 안에 있는 이들). (=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으로부터 있는 교리 속의 거짓들…그 이유가 영계에서 교회 속의 것들을 수단으로 지배하려드는 이들은 자신들을 위해 높은 장소에 탑을 건설하고 있기 때문.
이2:15-‘탑’ 그리고 ‘벽’=교리 속의 확증된 거짓들.
시48:12-‘그 탑들을 세어보는 것’=이 교회의 더 높은 진리인 내면의 진리들을 생각해보는 것.
이33:18-‘탑들’=내면의 진리들.
겔29:10-‘스웨네의 탑으로부터 구스의 경계까지’=첫 순위로부터 최말단에 까지.
이5:2-‘그들은 그것의 한가운데에 탑을 지었다’=내면의 것들 안으로 유입이 있다, 이를 통하여 천국과 소통함이 있다.
마21:33-‘그리고 탑을 건축했다’=이 선으로부터의 내면의 진리들, 이 진리가 천국을 찾는다.

테두리 (border)

출25:11-‘(궤 위에서 금으로) 테두리’=그들이 접근하여 악들에 의해 상처받지 않도록 선으로부터 종결함. ‘테두리’=종결함, 마무리함.
출25:24-‘너는 (탁자)를 위해 금으로 테두리를 빙둘러 만들어라’=주님의 신성한 선으로부터 선의 영역을 마무리함.
출28:32-‘입술’, 또는 ‘테두리’, ‘도포의 위쪽을 둥글게 염(open)’=모든 측면에서 종결되고 마감된 것.

판금 (plate)

출28:36-‘너는 순금으로 판금을 만들어라’=주님의 신성한 선으로부터의 예증. ‘판금’=예증함.

판 table
널판 (board)

겔27:5-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이 ‘널판(plank) 같은 배(ship)’에 속하는 것에 의해 묘사되어 있다.
출24:12-‘나는 네게 돌판을 줄 것이다’=전체 복합체에서 있는 법의 책, 또는 말씀.
신9:9,11,15-판이 하나가 아니고 둘인 이유는 주님이 말씀을 통하여 교회와, 그리고 교회를 통하여 인류와 결합함을 표현하기 때문. 그러므로 그것들은 ‘언약의 판’이라 불리운다.
출27:8-‘속이 비게, 널판으로, 너는 그것을 만들어라’…‘속이 빈, 널판으로,’ 이는 제단을 두고 말해졌는바…=적용함.
출31:18-‘그분은 모세에게…증거의 두 판들을 주었다’=말씀을 통하여 주님과 인간은 결합함…‘두 판들’=전체 복합체에서의 법, 고로 말씀…결과적으로 인간과 더불은 결합이 판들이 둘임에 의해 의미되고, 그리고 언약을 기억함에서 함께 결합함도 의미되어 있다.
출31:18-‘하느님의 손가락으로 쓰인 돌판들’=주님 자신으로부터 있는 신성의 진리.
출32:15-‘그리고 그의 손에는 증거의 두 판들이…’=특별한 측면에서와 일반적 측면에서 주님의 말씀….=전체 복합체에서의 말씀.
출32:15-‘판들은 그것들 양쪽을 횡단함에 의해 씌여졌다 (직역하면 그것들의 두 횡단들로부터, from their two passingovers), 이것으로부터와 이것으로부터 그것들은 쓰여졌다’=이를 수단으로 주님이 인류와의 결합, 또는 천국이 세상과의 결합이 있다는 것.
출32:16-‘이 판들은 하느님의 일이었다, 그리고 이 필체는 하느님의 필체였다, 돌들에 새겼다’=신성으로부터 있는 말씀의 외적, 내적 의미, 그리고 신성한 진리.
출34:28-‘그분은 언약의 말들을 판 위에 쓰셨다’=말씀, 이를 통하여 천국이 인간과 결합한다는 것.
예17:1-내부에 뿌리박은 악이 ‘그들의 심정의 판에 새겨 있다’에 의해 뜻해진다.

휘장 (veil)
덮개 (veil)
베일 (veil)
출26:31-34, 36:35,36- 성막에는 세 개의 휘장이 있다. 첫째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가르기 위해. 두 번째 휘장은 성막의 문으로 사용되는 걸이용 휘장, 셋째는 성막뜰의 문으로 사용되는 걸이용 휘장이다. 첫 번째 휘장은 합리적 평면의 가장 (주님에게) 가깝고 가장 안쪽에서의 나타남들을 표현했는데, 이 안에 셋째 천국의 천사들이 있다. 이 나타남들이 ‘푸른색, 심홍색, 두 번 물들인 심홍색, 꼬아만든 고운 아마포’에 의해 묘사되어 있다. 이 묘사 안에서 빨간 색은 사랑의 선을, 흰색은 그것의 진리들을 표현했다.
마27:51, 막15:38, 눅23:45-‘성전의 휘장이 두 폭으로 찢어짐’이란 주님께서 신성 자체 안으로 들어가셨다는 것, 모든 나타남들이 사라졌다는 것; 그리고 동시에 그분은 그분의 인간을 신성으로 만드심을 통하여 신성 자체에 접근함을 여셨다는 것이 의미되어 있다.
출26:36,37, 36:37,38-두번째 휘장은 첫 번째 휘장의 선과 진리 보다 더 낮고 더 외적인 선과 진리의 나타남을 표현했다. 즉 합리적 평면의 중간에서의 나타남들, 이 안에 둘째 천국의 천사들이 있다…
출27:16,17, 38:18,19-세 번째 휘장이 묘사되어 있다. 이 걸이용 휘장은 한층 더 낮고 한층 더 외적인 합리적 평면의 나타남들을 표현했다, 이 안에 첫 번째 천국의 천사들이 있다…
겔12:12-‘얼굴을 덮는 것’=진리가 전혀 보여지지 않는 것.
출26:31-‘너는 휘장을 만들어라’=(두 천국들을) 하나로 묶는 매체, 고로 천적 선과 더불은 영적 선.
레16장-신성의 선으로까지 주님의 인간을 신성화 하심이 아론이 휘장 안쪽 지성소 안으로 들어갈 때 속죄의 과정에 의해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같은 과정에 의해 천적 선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거듭남도 묘사하고 있다.
출26:35-‘너는 휘장 바깥쪽에 탁자를 놓아라’=사랑의 천적인 것들을 통하여 유입이 있음.
출27:21-‘증거궤 넘어 있는 휘장 밖으로부터’=교통함이 있는 곳, 그리고 하나로 묶는 매체를 통하여 가장 안쪽의 천국에서 주님과 결합함.
출30:6-‘너는 휘장 앞에 (향 제단을) 놓아라’=가장 안쪽의 천국과 결합되어지는 내면의 천국 안에.
출34:28-‘모세는 백성들과 대화할 때, 자기 얼굴을 덮개로 가렸다’=말씀의 내적 의미는 이 백성에게서는 덮어졌다는 것, 하여 그 의미는 이 백성에게 불명료해진 것.

성경의 상태와 상응

성경의
상태와 상응

Dictionary
of
state
in
Bible
by
Correspondence

성경 약자표

창 창세기 이 이사야 학 학개 마 마태복음
출 출애굽기 예 예레미야 슥 스가랴 막 마가복음
레 레위기 겔 에스겔 말 말라기 눅 누가복음
민 민수기 단 다니엘 요 요한복음
신 신명기 호 호세아 계 요한계시록
여 여호수아 욜 요엘
사 사사기 암 아모스
삼상 사무엘상 옵 오바댜
삼하 사무엘하 욘 요나
왕상 열왕기상 미 미가
왕하 열왕기하 나 나흠
욥 욥기 합 하박국
시 시편 습 스바냐

차례

가장 좋은 (best)-가짜의 (spurious)-강력한 (mighty)-…같이(같은) (as)-거룩한 (holy)-
경이 (prodigy)-계속되는 (continual)-고난 (tribulation)-고귀한 (noble)-고뇌 (anguish)-
고독한 (solitary)-고생 (trouble)-고약한 냄새가 나다 (stink)-고집 센 (refractory)-고통 (affliction)-고함치다 (roar)-공적 (merit)-공포 (terror), 겁나게 하다 (terrify)-관대함 (clemency)-구원 (salvation, saving)-굳건한 (firm)-귀중한 (precious)-그렇게 (so)-그루터기 (stock, stump)-그리고 (and)-극점에 달하다 (consummate), 종말 (consummation)-
근심 (anxiety)-기념의 (memorial)-기억 (memory)-기억하고 있다 (remember)-기울다 (incline)-기적 (miracle)-기품있는 (elegant)-기회 (chance)-깨끗함 (cleanness)-께느른한 (languid)-꼬부라진 (crooked)-꾸며낸 일 (figment)-꾸밈 (ornament)-꿈 (dream)
날랜 (swift)-날카로운 (sharp, acute)-날마다 (daily)-낮 동안 (by day)-낯선 (strange)
다발 (bundle)-다시 태어남 (born again), 재출생 (rebirth), 재생 (rebirth)-단단한 (hard)-
단순한 (simple)-달콤한 (sweet)-더껑이 (scum), 찌끼 (froth), 거품 (foam)-더럼 안 탄 (unspot, immaculate)-(…와)더불어 (with)-드문 (rare)
라가 (raca)
매끄러운 (smooth)-모든 (all)-무거운 (heavy)-무딘 (dull)-물을 대줌 (watered)-물의 흐름 (watercourse)-미적지근한 (lukewarm)
바라다 (desire)-바람직한 (desirable)-반점 (spot)-반점이 있는 (spotted) -반점있는(speckled)-번갈음 (alteration)-부끄러이 여김 (ashamed, shame)-부드러움 (tenderness)-부활 (resurrection), 다시 일어남 (rise again)-불결한 (unclean)-불모 (barren, 열매를 못맺음)-불성실하게 (perfidously)-불성실한 (unfaithful)-불쌍히 여김 (cpmpassion, pity)-불행 (misery)-비참한 (misery)-비스듬한 (obliquity)-비슷함 (likeness)-비어 있음(emptiness)-비열한 (vile)-비참함 (calamity, wretched)
사랑하는 (beloved)-사악함 (wickedness)-새기다 (grave)-새긴 (graven)-새로운 (new)-
새로(이) (anew)-생동하게하다 (vivify)-생생한 (vivid)-섬뜩 놀람 (consternation)-
속이 비지 않은 (solid)-속이 빈 (hollow)-순수한 (pure), 순수해지게 하다 (purify)-신중한 (prudent)-쌓인 것 (pile)-쓴 (bitter), 쓴맛 (bitterness)
(…이) 아니다 (not, nay)-아름다운 (beautiful)-아름다움 (beauty)-아이가 없는 (childless)
아이를 못 낳음 (barren)-아픈 (pain), 슬픔 (grief)-(…에)앞서다 (percede)-야생 (wild)-야윈 (thin), 엷은 (thin)-야윈 (lean)-양쪽의 (both)-어두운 (obscure),불명료한 (obscure)-어리석은 (foolish)–여분의 (superfluous)-연하쪽의 (younger)-열정적인 (zealous)-완전한 (perfect)-완화되지 않는 (untempered)
-우세하다 (prevail)-우수함 (excellence)-원시의 (primitive)-인내 (patience)-있다 (be, being)
자디 잔 (minute)-자만 (pride), 거만한 (proud)-자비 (mercy)-불쌍히 여김 (compassion)
-자유 (free), 자유로이 (freely)-잔인한 (cruel)-정사각 (foursqure)-정사각형 (square)-좁은 (strait), 좁은 (narrow), 괴롭히다 (straiten)-주조된 (molten)-지옥 (hell)-충실한 (faithful)-치명적인 (mortal)-치욕 (reproach), 불명예 (ignominy)-침묵 (silence)-침수 (submersion)
큰 (great), 위대한 (great)
태양의 (solar)
평화 (peace), 평안 (peace), 평강 (peace), 화평 (peace)-피난 (refuge)
허약함 (infirmity)-헛된 (vain), 헛됨 (vanity)-호의 (good-will)-혼 (soul)-홀로 (alone)
-화해 (reconciliation)-환상 (vision)-황폐 (desolation)-황폐 시킴(desolation), 황폐한 (desolate)-황폐함 (laying waste)-흠이 없음 (blamelessness)-희게 반짝거리다 (glitter white)

가장 좋은 (best)

창47:6-‘토지의 가장 좋은 곳에서 네 아버지와 형제들이 살게 하라’=그들은 과학물 한가운데에서 살리라는 것. ‘가장 좋은 토지’=자연적 마음의 가장 안쪽, 거기에 과학물이 있다….‘가장 좋은=가장 안쪽인 이유, 시야 아래 직접적으로 간직되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그이유가 눈은 가장 기뻐하고 애착이 가는 것에 방향을 잡고 있기 때문. 이것이 가장 안쪽인 이유는 그것은 마음의 중심에 있기 때문, 고로 눈 앞에서 이것은 가장 큰 빛에 있는다.
출22:4-‘그는 자기 소유 들판의 가장 좋은 것, 자기 소유 포도원의 가장 좋은 것으로 갚을 것이다’=되돌림은 아직 온전해 있는 선들과 진리들로부터…’가장 좋은’이라 불리는 것, 이는 소실된 후 여전히 온전해 있다.

가짜의 (spurious)

신23:2-‘사생아는 회중에 들어오지 못한다’
사9:7-15-‘가시나무, the thorn’=가짜 선

강력한 (mighty)

* prevail, force, strength, strong 도 참조.
창49:24-‘그는 자기 활의 강력함 아래 앉을 것이다’=그는 교리 속의 싸우는 진리에 의해 안전해 있다. 교리의 강력함은 진리이다.
겔30:23-‘강력한(the mighty) 것과 부러진 것’=상해를 받지 않아 저항하는 것들, 그리고 상해를 당해 저항하지 못하는 것들.
이25:3-‘강한 나라들의 성읍들’=교리의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 그리고 그것들을 통하여 사랑의 선들에 있는 이들. 그리고 모든 영적 힘이 거기로부터 있기 때문에, 그들은 ‘강력한 나라들’이라 불린다.

…같이(같은) (as)

* 주님은…또 다른 사람 같이 태어나셨다…
* 주님은 평범한 여느 한 사람으로서 가르쳐졌다…
창25:31-‘오늘 같이 네 생득권을 나에게 팔라’=진리 측면인 교리가 시간 차원에서는 우선 순위인 듯 비쳐진다는 것. ‘오늘로서, as today’=시간 차원에서, as to time…그리고 ‘오늘’=영속적인 것, 영원한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오늘’이 지닌 이 의미가 표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오늘 같이’라고 말해지고 있다. 따라서 이 구절이 사용한 ;…로서, as’의 뜻은 시간 차원에서는 (생득권이 에서로부터 야곱에게 팔렸으므로 생득권이 야곱의 것으로) 영원히 있는 듯하나, (겉으로만) 그럴 뿐이다는 것.
*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 like of God.’이 되는 수단은 자신에게 있는 이런 것들이 마치 자신으로부터인 것 같이 여기는 느낌이다. 그가 이렇게 느끼는 것은 그가 지식을 지니고 태어나지 않고 그것을 받기 때문, 그리고 그가 받은 것은 마치 자신으로부터인 것 같이 그에게 나타나서 이다. 고로 느끼는 것, 역시 주님에 의해 인간에게 주어져 있는데, 이는 인간 당사자로 하여금 뜻하고 생각하고 알고, 이해하고, 그리고 그런 것이 자신으로부터인 것 같이 있게 함으로 그는 짐승이 아닌 사람인바, 그는 지식을 받고, 그 지식을 총명으로 한 단계 높이고, 지혜로까지 드높이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리하여 주님은 인간을 그분 자신에게 결합되게, 그리고 인간은 자신을 주님에게 결합되게 할 수 있다.
계9:7-‘그들의 얼굴들은 사람들의 얼굴 같이 있었다’=그것들은 진리에 애착함들 같이 자신들에게 나타났다는 것…’얼굴’은 진리에 애착함을 의미하나, 여기서는 메뚜기에 관련해 말해지므로 그것들은 자신들에게 ‘사람의 얼굴 같이’ 즉 진리에 애착함 같이 나타났다고 씌여지고 있다.

거룩한 (holy)

마24:15-‘거룩한 장소에 서있다’=선과 진리에 관한 모든 것이 황폐해짐. ‘거룩한 장소’=사랑과 신앙의 상태…이 상태의 거룩한 것은 사랑의 선과 이 선에서 파생되는 신앙으로부터의 진리이다. 말씀에서 이외의 것은 뜻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것들이 거룩 그 자체, 신성하심이신 주님으로부터 있기 때문.
출3:5-‘거룩함으로부터의 지면’=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거룩한 것. 고로 그것=그분의 신성한 인간으로부터 진행하는 거룩의 상태.
출15:11-‘거룩함에서 누가 당신 같으리이까?’=그분으로부터 거룩한 모든 것이 있다는 것.
출15:13-‘당신의 거룩함의 거주지’=신성이 있는 천국. 그 이유가 ‘거룩함’은 신성한 진리를 서술하기 때문…(이것이) 천국을 만든다.
신33:8-‘거룩한 인간’=주님…
출19:6-‘거룩한 나라’=영적 왕국…‘거룩한’은 선으로부터의 진리를 서술하고 있다. 이로부터 ‘거룩한 나라’=진리가 선으로부터 있음.
출22:31-‘너는 나에게 거룩함으로부터의 사람들일 것이다’=그 당시 선으로부터 있는 생명의 상태…‘거룩함으로부터의 사람들’=주님에 의해 인도어지는 이들. 그 이유가 그분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이 거룩 자체이기 때문, 이로부터 그것을 신앙 안에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받는 그들이 거룩한 사람들, 성인들, saints로 불리워진다.
출26:33-‘베일로 너를 위하여 거룩한 것과 거룩한 것들로부터의 거룩한 것 사이를 구별하게 하라’=영적인 선 사이를…그리고 천적인 선…‘거룩한 것’=중간 천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선. ‘거룩한 것들로부터의 거룩한 것’=가장 깊은 천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선.
출26:34-‘거룩함들로부터의 거룩함’=주님으로부터 사랑의 선이 있는 곳.
출28:29-‘그가 거룩함 안으로 들어감에서’=모든 예배에서…제단에서 있는 그의 모든 행정, 그리고 성막에서는 ‘거룩함’이라 불렀다
출28:36-‘여호와에게 거룩함’=주님의 신성한 인간, 그리고 그로부터 있는 천적, 영적 모든 선. ‘거룩함’=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 고로 신성한 인간에 관련한 주님, 이 신성한 인간으로부터 천국들에 신성한 모든 것이 있는다. 이로부터 천적인 선, 영적인 선은 거룩하다. 그 이유가 주님만이 거룩하시기 때문. 그리고 그분으로부터 진행하는 것이 천국들과 땅에 있는 유일한 거룩이다.
출28:36-‘여호와께 거룩함’이 금판에 새겨진 이유는 이렇게 함으로 해서 그것이 전체 백성의 시야에 있어지기 때문. 그리하여 예배에서 그들의 마음에 거룩인 것이 있었다. 이 거룩은 보편적 천국에 있는 거룩과 상응한다. 이는 신성한 인간이다. 그 이유가 이것이 천국을 만들기 때문…그러므로 이 가장 거룩한 것이 그들의 마음에서 보편적으로 군림할 때, 예배의 모든 것이 성스러워지게 된다.
출29:21-‘그와 그의 의복은 거룩하다, 그리고 그의 아들과 그의 아들의 의복도 거룩하다’=천국들 안에 있는 신성한 모든 것들. ‘거룩’=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것, 그 이유는 그분만이 유일한 거룩이기 때문. 고로 그것=신성한 것.
출29:31-‘너는 거룩한 장소에서 고기를 삶을 것이다’=주님으로부터 예증 안에서 교리의 진리들을 통하여 생활의 사용들을 위해 선을 준비함….‘거룩한 장소에서’=신성한 예증으로부터. 그 이유가 ‘거룩한 장소’=주님의 신성이 현존하는 곳.
출29:37-‘제단은 거룩함으로부터의 거룩일 것이다’=천적 왕국, 거기서 주님은 사랑의 선에서 현존하신다.
출30:10-‘이것은 여호와께 거룩들로부터의 거룩일 것이다’=신성한 천적 평면으로부터이기 때문…
출30:37-‘여호와께 거룩한 그것이 너에게 있을 것이다’=예배는 신성을 사랑함에 응용되어져야 한다는 것.
출31:11-‘거룩인 것을 위해’=표현 교회를 위해.
출31:14-‘이는 너에게 거룩이기 때문에’=그러므로 천국을 만드는 모든 선과 진리. ‘거룩’=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모든 것. 고로 사랑의 선과 믿음의 진리.
출31:15-‘여호와께 거룩한’=신성인 것=그분의 신성한 인간, 그리고 그분으로부터 진행하는 모든 것.
계3:7-‘거룩이신 그분, 참이신 그분’=신성한 진리에 관한 주님…그 이유는 주님은 그분의 신성한 진리로부터 ‘거룩’이라 불리시기 때문…그러므로 이는 그분의 진행하는 신성, 이는 신성한 진리, ‘거룩한 영, 성령’이라 불리워진다.
계5:8-‘거룩한 사람들’=영적인 선들과 진리들에 있는 이들.
계8:3-‘거룩한 사람들’=영적 왕국에 있는 이들.
계11:18-‘거룩한 사람들’=이런 것들에 따라 생활하는 이들.
계13:7-‘거룩한 사람들’=말씀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신성한 진리들에 있는 이들, 그러므로 추상적으로 인물들로부터, 신성한 진리들. (=선으로부터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
계8:10-‘여기 거룩한 사람들의 신앙과 인내가 있다’=주님의 새 교회의 사람은 그의 생명과 신앙에 관련하여 그것들로부터의 시험들을 수단으로 탐구되어진다는 것…‘거룩한 사람들’=주님의 새 교회 속에 있는 이들. 특별히 신성한 진리 안에 있는 이들 (=그분으로부터 영적으로 되어간 이들의 시험들).
계15:3-‘거룩한 사람들의 왕’=그분으로부터 천국과 교회에 있는 신성한 진리. 그이유가 ‘거룩한 사람들’에 의해 주님으로부터 신성한 진리들에 있는 이들이 의미되기 때문.
계15:4-‘당신 만이 거룩하시다’=그분은 말씀, 진리, 계몽해주심이시다 (=선 자체, 진리 자체).
계16:6-‘그들은 거룩한 사람들과 예언자들의 피를 뿌렸다’=말씀으로부터의 모든 교리적인 진리들을 곡해한 믿음 만으로의 교리…‘거룩한 사람들’=말씀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신성한 진리들에 있는 교회 속의 사람들.
계17:6-‘여인은 거룩한 사람들의 피로 술취했다’=주님과 말씀과 교회 속의 선과 진리에 섞음질하고 모독함으로부터 발광하는 광신적 신앙….‘거룩한 사람들’=말씀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신성한 진리들에 있는 이들, 그리고 추상적으로, 주님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 말씀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 그러므로 교회로부터의 신성한 진리.
계18:20-‘네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아’=말씀으로부터 선들과 진리들에 있는 교인들.
계19:8-‘고운 모시옷은 거룩한 사람들의 정의이다’=말씀으로부터의 진리들을 수단으로 주님의 교회 속에 있는 이들은 생활의 선을 가지고 있다. ‘거룩한 사람들’=주님의 교회 속에 있는 이들.
계20:6-‘..그는 거룩하고 복되다’=주님과의 결합을 수단으로 신성한 진리들에 예증을 가진 그는 ‘거룩’이라고 말해진다.
계20:9-‘거룩한 사람들의 진영을 에워싸는 것’=들러붙어 새 교회의 모든 것들을 파괴하기를 원하는 것.
계21:2-새 예루살렘이 주님으로부터 ‘거룩’이라고 말해진다. 그분 만이 거룩이시다. 그리고 말씀으로부터 주님으로부터 그것 안에 있는 신성한 진리들로부터.
계22:11-‘거룩한 그는 계속 거룩히 있으라’=진리들에 있는 그는 진리들 안에 더욱 더 있을 것이다.
계5:8-‘거룩한 사람들의 기도’=영적 선으로부터의 예배. ‘거룩한 사람들’=영적인 것들. 그 이유는 그들이 영적 왕국에 있는 ‘거룩한 사람들’이라 불리기 때문…그러나 내적 의미에서 ‘거룩한 사람들’은 거룩한 사람이 아니라 거룩한 것을 뜻한다. 그리고 ‘거룩한’에 의해 그분의 영적 왕국을 구성하는 신성한 진리를 뜻한다. 그러므로 거룩한 것들은 영적인 것들을 뜻한다.
시85:8-‘여호와께서는 그분의 거룩한 사람들에게 평화를 말하실 것이다’=그분은 그들을 가르치시고 그들에 있는 선과 진리의 결합을 통하여 그분 자신과의 결합을 주실 것이다…‘거룩한 사람들’=진리들을 통하여 선 안에 있는 이들.
단9:24-‘거룩한 것들로부터의 거룩한 것을 기름붓는 것’=주님의 신성한 인간은 여호와, 또는 신성한 사랑의 신성한 선이시다. (=신성 자체와의 합일을 수단으로 그분의 인간이 신성화하심. 또한 그분을 사랑함으로부터 있는 모든 예배)
계6:10-‘거룩하고 참되다’=정의이신 분.
계8:3-‘모든 거룩한 사람들’=진리들을 통하여 선에 있는 이들, 고로 영적 선에 있는 이들. (그리고 악으로부터 분리되어져 구원된 이들)
이64:11-‘거룩함의 집’=천적 교회.
단7:25-‘가장 높은 자들로부터의 거룩한 사람들’=신성한 진리들.
단12:7-‘거룩함의 백성’=신성한 진리들에 있는 교회의 사람들, 그리고 추상적으로 신성한 진리들.
시65:4-‘성전의 거룩함으로 만족하는 것’=신성한 진리로부터 총명에 있는 것…‘거룩’은 영적 선을 서술한다. 이는 진리이다.
이27:13-‘거룩함의 산’=생활의 선에 관련한 교회.
시132:9-‘너희 거룩한 사람들로 환호하게 하라’=영적 선에 있는 이들과 더불은 선행으로부터의 예배. 그이유가 그들은 영적 왕국에 있는 거룩한 사람들이라 불리기 때문. (=진리들에 있는 이들, 고로 추상적으로 천국과 교회의 선들과 진리들)
시15:1-‘거룩함의 산’, 이를 수단으로 예루살렘이 뜻해진다=이 선으로부터의 교리 속의 진리들에 관련한 교회.
마27:53-시온에 의해, 여기서는 ‘거룩한 성’에 의해 뜻해지고, 천국을 표현했다, 거기는 주님이 그분의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지배하신다.
계16:5-‘그리고 거룩이다’=신성한 진리에 관하여.
시15:1-‘그분의 거룩함의 장소’는 성전이 있었던 예루살렘을 뜻한다, 이 성을 수단으로 교리에 관한 교회가 의미된다.

경이 (prodigy)

* 불가사의한 조짐
욜3:3-‘나는 하늘들에서 경이들을 줄 것이다.
마24:24-‘나는 큰 표시들과 경이들을 줄 것이다’=외적인 나타남과 오류들로부터 확증하게 하고 설득 당하게 하는 것들. 이를 수단으로 유혹 당해지게 자신들을 단순히 괴롭힌다.
출7:3-‘나는 내 표시와 내 경이들을 배가할 것이다’=여러 종류의 훈계들…‘표시들과 경이들’=진리의 확증들. 그리고 신성한 힘의 매체, 여기서는 훈계.
출7:9-‘경이를 주는 것’=확증하기를 원하는 것. ‘경이들과 표시들’=진리들의 확증들.

계속되는 (continual)

출28:29-‘여호와 앞에서 계속적으로 기억함을 위해’=자비로부터 영원으로.
출28:30-‘여호와 앞에서 그의 가슴에 계속적으로’=선으로부터 영구히 빛을 발하는 것….‘계속적으로’=영구적으로.
출29:38-‘아론의 이마에 계속적으로 있을 것이다’=주님의 사랑은 영원하다를 표현…‘계속적으로’=영원히.

고난 (tribulation)

마24:9-‘그 때에 그들은 너를 고난 안으로 넘기고 너를 죽일 것이다’=선과 진리는 멸해질 것이다. 첫째로, ‘고난’을 수단으로, 즉 곡해, 악용을 수단으로.
계7:14-‘이들은 큰 고뇌함으로부터 온 이들’=그들은 시험들에 있어왔던 이들이다.

고귀한 (noble)

예2:21-‘고귀한 포도나무’=영적 교회의 사람.
창49:11-‘고귀한 포도나무’=천적 교회 속에 있는 지적 평면.
눅19:12-‘고귀한 사람’은 주님을 뜻한다.

고뇌 (anguish)

이30:6-‘험악하고 고뇌의 토지’=선행으로부터의 선과 신앙으로부터의 진리가 있지 않을 교회.

고독한 (solitary)

신33:28-‘고독한’=악들과 거짓들에 의해 감염되지 않은 이들.

고생 (trouble)

출18:8-길을 가면서 그들 위에 떨어진 모든 고생=시험들에 있는 수고함. 그이유가 ‘고생’=수고함이기 때문, 이것은 시험들을 서술한다.
계16:10-‘그들은 고생 때문에 자기들의 혀를 깨물었다’=그들은 진리들을 견뎌낼 수 없었다. 여기서 고생은 거짓들부터의 고생을 뜻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거짓들은 그들에게 어떤 고생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서이다. 그들의 고생은 진리들로부터이다.
계16:10-‘그리고 그들의 고생과 종기 때문에 천국의 하느님을 모독하였다’=그들은 자기들의 내면의 저항 때문에 주님 만이 천국과 땅의 하느님이심을 인정할 수 없었다…‘고생들’에 의해 이것을 인정함으로부터의 고생이 의미되어진다. 고로 내면의 거짓들로부터의 저항. 이 저항은 골치 아픈 것이기 때문. ‘고생들’은 거짓들을 서술한다.

고약한 냄새가 나다 (stink)

창34:30-‘너희는 토지의 주민들에게 악취를 풍겨서 나를 괴롭혔다’=고대 교회의 사람들은 그들을 혐오할 것이다는 것.
암4:10-‘나는 너의 진영에서 네 코에까지 오도록 고약한 냄새가 나게 만들었다.’…‘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역겨운 것, 이는 지옥으로부터 발산된다.
출7:18-‘강은 고약한 냄새를 낼 것이다’=기억 속의 지식이 진리를 혐오함.
출8:14-‘토지는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악취나서 결과적으로 불쾌한 것.
마7:17, 12:33-‘부패한 나무는 악한 열매들을 만든다.’
이34:3-악들을 통하여 멸해질 이들의 지옥에 떨어짐이 ‘그 시체의 악취가 올라 옴’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악취를 풍김’=그들이 지옥에 떨어짐.

고집 센 (refractory)

슥7:11-‘고집 센 어깨를 주는 것’=저항하는 것.
겔2:6-그러므로, 그들은 ‘고집 세다’, 그리고 ‘가시 있다’라 불려진다.
이30:9-‘고집 샌 아들들에게 화있다’=자신을 돌아서게 한 이들의 지옥에 떨어짐 때문에 통곡함.

고통 (affliction)

막13:18,19-‘고통의 날’=다른 삶에서 그의 비참한 상태.
창15:13-‘그들은 그들을 괴롭힐 것이다’=비통한 그들의 시험.
마6:13-‘우리를 시험 쪽으로 인도하지 마옵시고…’….시험에 관한 생각 그리고 악에 관한 생각이 선 만이 남아있을 때까지 선한 영들에 의해 거절되어졌다…이 속에서 선은 무수한 생각들을 형성했다….어떻게 선이 인간의 고뇌로부터 오는지, 그리고 여전히 고뇌는 인간과 그의 악으로부터 있다.
창16:9-‘네 자신을 겸손하게 하는 것’=어원적으로보면 이 단어는 자신을 괴롭게 하는 것을 의미하려고 표현되었다. 자신을 괴롭게 하는 것=자신을 강요하는 것임은 말씀의 많은 곳에서 명백하다.
창16:11-‘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기 때문에’=그녀가 자신을 복종되게 했을 때. 겸손하는 것 그리고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내향의 인간의 힘에 자신을 복종하게 하는 것이다.
마24:21-‘그 다음 세상의 시작으로부터 지금까지 조차도 있지 않았던 큰 환란이 있을 것이다’=선과 진리에 관련하여 교회의 극도의 악용과 황폐함, 이것은 모독이다.
창29:32-‘여호와께서 내 고통을 보셨다’=선에 도착하는 상태. ‘고통’=시험, 이것은 선에 도착하는 수단인바, ‘내 고통’은 바깥쪽인 진리로부터, 안쪽인 선에 도착하는 상태이다.
마24:29-‘이 날들의 환난이후 즉각’=신앙 속에 있는 진리에 관련하여 교회의 상태. 진리의 황폐함. 말씀의 여러 곳에서 ‘고통, 고난, 환난’이라 불린다.
창41:52-‘내 고통의 토지에서’=그가 시험들을 견뎌낸 곳.
출1:11-‘짐들로 해서 고통을 주자’=노예 상태를 통해 더욱 압제하는 것.
출1:12-‘그들은 고통을 더 받은 만큼 더 그들은 증가했다’=진리는 떼지어 엄습한 (거짓)에 따라 더 성장했다. ‘고통을 주는 것’=떼지어 엄습하는 것.
출3:7-‘여호와께서 말하셨다. 나는 내 백성의 고통을 보아왔다’=거짓이 떼지어 엄습한 이후 영적 왕국의 교회 속에 있는 이들을 향한 자비.
출3:17-‘나는 너희를 이집트의 고통으로부터 (가나안으로) 올라가게 만들 것이다’=거짓 과학적인 것들에 의한 떼지은 엄습으로부터의 해방과 승강.
출4:31-‘그분은 그들의 고통을 보셨다’=이런 큰 시험들 후에.
출22:20-‘너희는 체류자를 압제하지 말 것과 괴롭히지 말 것이다’=신앙으로부터 진리들과 선들에 관해 훈육받은 이들은 신앙의 거짓들과 생활의 악들로부터 엄습당해서는 안될 것이다.
출22:22-‘괴롭히는 것’. 진리로 훈육받고 선으로 인도되어지는 이들에 관련해 말해질 경우,=사기치는 것.
계1:9-‘환란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과 (그것을) 강한 인내심으로 예상함에서’=악들과 거짓들에 의해 교회 안에 떼지어 엄습한 이런 것들, 그러나 이것들은 그분의 오심에서 주님에 의해 제거될 것이다. ‘환란’=선행의 어떤 선도, 신앙의 진리도 더 이상 없고, 그 대신 악들과 거짓들만이 있는 교회의 상태.
계2:9-‘나는 네 고뇌함과 궁핍을 알았었다’=그들은 거짓들 안에 있다, 고로 선들 안에 있지 않다는 것…’고뇌함’=거짓들.
계2:10-‘너는 열흘 동안 고난을 가질 것이다’=그들이 거짓들 안에 머물고저 하는 한, 충분한 시간을 견뎌낼 것이다. ‘고난’, 여기서 떼지어 엄습함, 고로 시험.
계2:22-‘보라, 나는 그녀를 침상으로 내던질 것이다, 그리고 간음을 범한 그들은 그녀와 더불어 큰 고난으로 내던져질 것이다’=그리하여 그들은 자기들의 교리 안에 왜곡된 것과 더불어 남아 있을 것, 그리고 그들은 거짓들에 의해 비통하게 떼지은 엄습을 당할 것이다.
계7:14-‘이들은 큰 고뇌함으로부터 온 이들이다’=시험들 가운데 있어왔던 이들, 그리고 악들과 거짓들에 맞서 싸웠던 이들.
이54:11-‘너 고통받는 (자)’=이방인과 더불어 주님에 의해 건설될 교회.
마24장에서-‘환난’=악들과 거짓들에 의해 습격당할 때 교회의 상태.
마24장에서-기독 교회에서 거짓들의 떼지은 엄습, 이로 인해 모든 진리의 소멸, 황폐해짐이 ‘큰 환난’에 의해 뜻해지고 있다.
마24, 막13, 눅21장에서-‘큰 환난’=거짓화되지 않거나 절멸하지 않은 어떤 진리도 남아있지 않는 때까지 거짓에 의해 진리는 공격당할 것.
요16:33-‘세상에서 너희는 고난을 가질 것이다.’ 여기서 ‘평화’는 ‘고난’에 반대되어진다, 그 이유는 ‘고난’이 악들과 거짓들의 떼지은 엄습을 의미하기 때문. 이것은 신성한 평화 안에 있는 이들이 세상에서 있는 한, 그들과 더불어 있다. 그이유가 이들을 에워싼 육체가 세상 속에 있는 것들을 갈망하기 때문, 고로 고난이 있다.
이54:6-‘영이 고통받는 것’=진리들을 바라고 진리들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슬픔 안에 있을 때의 교회에 관해 말해진다.
이54:11-‘사나운 비바람에 뒤흔들려지고 고통받은 자’=거짓들의 떼지은 엄습과 여기저기로 운반된 것은 거짓들 때문이라고 말해진다.
이58:10-‘배고픈 자’=선을 바라는 이들. ‘고통받는 자’=진리를 바라는 이들.

고함치다 (roar)

이59:11-‘우리는 곰들 같이 고함친다’=자연적 인간의 슬픔.

공적 (merit)

창22:3-‘장작들을 쪼개는 것’=일들로부터 있는 선들에 공적을 놓는 것.
창30:31-33-‘흰’(것)=진리. 더 적절하게 말하면 주님의 공적과 정의. 이로부터 인간과 더불은 주님의 공적과 정의. 이 흰것은 빛남이라 불리운다. 그러나 흰것의 반대 의미에서는,=자신의 정의, 또는 자신의 공적. 그이유가 선이 없는 진리는 자아 공적을 받들기 때문. 누군가가 진리의 선으로부터 선인 것을 행할 경우, 그는 언제나 보상되기를 원한다.
창30:31-33-‘어린 양에서 흰 것’=선들에 놓여진 공적. 그이유가 선들에 공적을 놓는 자는 모든 선이 자신으로부터 있다고 인정하고 믿는다. 그리고 이로부터 그는 공적에 대해 보상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자신과 비교해 타인을 경멸한다. 더나아가 정죄하기까지 한다.
창31:49-‘훔침…’=공적으로부터의 악. 이 악은 인간이 선을 자신의 공로로 돌릴 때이다. 그러므로 구원을 공적으로 받기를 원한다. 이 악이 내적 의미에서 ‘도둑’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마25:9-‘오히려 너희는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사라’=공적으로부터의 선. 공적을 떠벌리는 이들이 ‘파는 자들’이다.
요10:1-‘도둑’=공적으로부터의 악.
창49:14-‘짐들 사이에 앉는 것’=공적으로 치부하려는 악 사이에 있는 것.
창49:15-‘짐을 지는 것’=공적을 내세우려 일을 하는 것.
창49:15-‘공물에 종이 되는 것’=일들에 의해 공적을 원하는 이들. 이들은 가장 낮은 섬김들이다.
출12:45-‘고용된 자’, 더 내면의 의미에서=다른 삶에서 보상을 목적으로 선인 것을 행하는 이들. 고로 일들을 통하여 공적있음을 인정받기를 원하는 이들.
출25:5-‘그리고 싯딤 목재들’=주님으로부터 있는 공적으로부터의 선들. 고로 주님 만으로부터의 선들. ‘목재들’=공적으로부터의 선. 공적의 선은 주님의 신성한 인간으로부터 진행되는 선, 이 선은 인간과 더불은 기독교인의 선, 또는 영적 선이다. 이 선을 통하여 인간은 구원되어진다. 여느 다른 근원으로부터 진행되는 선은 선이 아니다.
출25:10-‘싯딤 목재’=정의, 이는 공적의 선이다. 그 이유인즉, 주님은 그분 자신의 힘으로부터 보편적 천국을 질서 안으로 환원하고 지옥을 복종시키셨다. 동시에 자신 안에서 인간을 신성으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공적과 정의는 그분의 것이다. 이러기 때문에 천국을 만들고, 천국을 지배하는 한 개의 유일한 선은 공적의 선과 주님의 정의이다. 고로 그분의 신성한 인간이다. 그이유는 이 인간이 공적과 정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계2:6-‘니골라당의 일들’=공적을 주장하는 일들.

공포 (terror)
겁나게 하다 (terrify)

* dread, fear도 참조
창9:2-‘너에 대한 두려움(fear)과 너에 대한 공포가…’=내적 인간의 지배. ‘두려움’=악들에 관련되고, ‘공포’는 거짓에 관련되어 언급하고 있다. 내적 인간이 지배할 때, 인간은 악들 때문에 두려움에 있는다, 그리고 거짓들 때문에 공포에 있는다. 그러나 공포에 있는 것은 오직 외적 인간 뿐이다.
창15:12-‘큰 어둠의 공포’=어둠이 굉장했다는 것…
창35:5-‘하느님의 공포가 성읍들에 있었다’=거짓들과 악들은 가까이 올 수 없었다. ‘하느님의 공포’=보호.
출15:15-‘공포가 그들을 붙잡았다’=그들은 감히 어떤 것도 시도할 수 없었다…공포에 있는 자의 경우, 그의 피는 차지고, 정맥들로 돌진하고, 순환이 멈추고, 이로부터 신경은 흐늘흐늘거린다, 그리고 힘은 빠지고, 따라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출23:27-‘나는 네 앞에 내 공포를 보낼 것이다’=선의 진리들 때문에 거짓의 악들에 있는 이들의 공포.
계11:13-‘그 나머지는 겁에 질려 있었다’=그들이 다른 사람의 파멸을 보았을 때, 두려움으로부터
이33:18-‘네 심정은 공포를 묵상할 것이다’=교회의 상태를 기억함.
예4:25-‘각 처에 공포가’=영적 죽음.
이17:14-‘공포’=파멸.

관대함 (clemency)

이63:9-‘그분의 사랑과 그분의 관대하심(pity)에서 그분은 그들을 되찾으셨다’
창19:16-‘롯 위에 (내린) 여호와의 관대하심에서’=은총과 자비.
출4:14-‘여호와의 노염이 모세에게 지펴졌다’=관대함. ‘여호와의 노염’은 노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인 자비를 뜻한다. 여기서는 관대하심…그이유는 이것이 모세에 관계되기 때문이다. 여기의 모세는 그분이 세상에 계셨을 때 신성한 진리에 관련되는 주님을 표현했다.
욘4:10,11-‘너는 호리병박 식물을 불쌍히 여겼다…그런데 어찌 내가 니느웨를 불쌍히 여기지 않겠느냐’

구원 (salvation, saving)

이49:6-‘내 구원을 땅의 맨 끝 까지’.
출14:13-‘잠잠히 서있으라,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자신들에 의해서는 전혀 아니고 오직 주님 만에 의한 구원.
출15:2-‘그분은 내 구원이 되셨다’=거기로부터 구원이 있다는 것.
이63:5-‘나 자신의 팔이 나에게 구원을 가져왔다’=…주님은 이런 것들을 그분 자신의 힘으로부터 하셨다는 것…거기로부터 구원이 있다는 것이 ‘그분은 구원하는데 위대한 분’, ‘그분은 그들의 구세주가 되었다’로 묘사되어 있다.
계7:10-‘구원은 하느님에게…’=주님은 구원 그자체이시다는 것, 모든 구원은 그분으로부터이다는 것, 그분은 구세주이시다는 것.
계12:10-‘이제 구원과 힘이 오고 있다’=지금 그들은 주님의 신성한 힘에 의해 구원되어진다.
계9:1-‘구원과 영광과 영예와 힘이 주 우리의 하느님에게’=이제 주님으로부터 구원이 있다는 것, 그 이유는 이제 그분의 신성한 권능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와 신성한 선의 받아들임이 있기 때문이다. ‘구원은 주 우리의 하느님에게’=구원이 주님으로부터 이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함.
마18:11, 눅19:10-주님은 모든 사람 각각과 더불어 이런 저런 구원들(개혁, 거듭남 등등)을 계속적으로 작업하신다. 그 이유가 이것들이 천국으로의 계단들이기 때문.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구원됨은 그분의 목표이다. 그분은 이 목적을 뜻하시고 수단들을 동원하신다. 그분의 강림, 구속, 수난 등등은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있었다. 구원이 그분의 목적이었고, 영원까지 그분의 목적일진대, 위의 언급된 작업들은 중간에 해당되는 목적들이고, 구원은 최말단 목적이다.
눅2:30,31-주님이 세상에 오셨던 당시 그분을 영접한 이는 구원되었기에, (시므온은) 주님을 이렇게 불렀다, ‘내 눈이 구원을 보았다, 이것을 그분은 모든 백성을 위하여 준비하신다.’
시68:26-‘구원의 샘 (또는 이스라엘의 샘)’=영적 선, 그 이유는 이를 통하여 구원이 있기 때문.
시96:2-‘이름’은 진리에 관련해 말해지고, ‘구원’은 선에 관해 말해진다.
시119:166-‘구원’=영원한 생명.
이52:7-‘구원을 듣도록 만드는 것’=진리들을 통하여, 이 진리에 따른 생활을 통하여 그분과 결합함, 그 이유는 이를 통하여 구원이 있기 때문.
이51:5-‘내 정의가 가까이 있다, 내 구원이 앞으로 나갔다’=심판, 사랑의 선에 있는 이들, 이 선으로부터의 진리들에 있는 이들이 구원되는 때이다. ‘정의’는 선에 있는 이들의 구원, ‘구원들’은 진리들에 있는 이들.
시18:46-‘내 구원의 하느님을 드높여라’=그분은 선으로부터의 진리들을 통하여 예배되어질 것이다, 그 이유는 거기로부터 구원이 있기 때문.
시42:11, 43:5-‘내 얼굴들의 구원들’=내부에 있는 모든 것들, 고로 마음과 애착들 속에 있는 것들, 결과적으로 사랑과 신앙 속에 있는 것들, 그것들이 구원하기 때문에, 그것들은 ‘구원들’이라 불린다.
시80:2-그들이 구원되리라는 것이 ‘구원이 우리에게 오소서’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계7:10-‘구원이 우리의 하느님에게…’=영원한 생명은 주님 만으로부터 있다는 것…‘구원’=영원한 생명. 그 이유가 ‘영원한 생명’에 의해 영원한 구원이 뜻해지기 때문.
이59:11-‘우리는 우리로부터 먼 구원을 기다리고 있다’=구원의 희망, 그러나 헛되다.
마7:1,2, 창18:32-그들은 자기들이 행한대로 믿지 않으면 구원되어질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을 주님은 금하셨다. 많은 경험으로부터 내가 아는바, 사람들은 만일 그가 선행의 생활을 통하여 주님께서 아껴두신 선을 받고, 생활에서 진리의 나타남이 있었다면 모든 종교로부터 구원되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나는 열을 위하여 멸하지 않을 것이다’에 의해 뜻해져 있다. 즉 인간 자신에게 열(주님이 아껴두신 것, remains)이 있다면 그는 이를 수단으로 구원된다는 말이다.

굳건한 (firm)

출17:12-‘그의 손들은 굳건했다’=힘의 세기.
시51:10-‘굳건한(steadfast) 영’=진리를 이해함과 진리로부터의 신앙.
시75:3-‘그것의 기둥들을 굳건하게 만드는 것’=교회가 기초되어야 할 진리를 지지하는 것.
시51:10-‘내 한가운데에서 굳건한 영을 새로이 하는 것’=신앙의 진리에 관련하여 개혁하는 것.
이54:2-‘말뚝을 강화하는 것’=말씀으로부터 확증함.

귀중한 (precious)

예20:5-‘모든 귀중한 것’=신앙에 대한 지식들.
창24:53-‘그는 그녀의 형제에게 귀한 것들을 주었다’=자연적 선을 위한 영적인 것들. ‘귀한 것’=영적인 것.
신33:13-‘천국의 귀한 것들’=영적인 것들, 이것이 ‘이슬’이다.
계21장-‘귀한 돌’=사랑의 선으로부터 있는 신앙의 진리.
신33장-이 ‘귀한 것들’=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들, 이로부터 교리가 있다.
계18:19-‘그녀의 호화스러움 때문에 부자로 만들어졌다’=이 광신적 신앙의 거룩한 것들에 의해 하느님에게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지는 것.
시45:9-‘왕의 딸들이 귀중한 자들 사이에 있다’=진리에 애착함들 자체.
신33:13,14,15,16-‘땅의 귀중한 것들’=교회 속에 있는 영적 선과 이로부터 파생되는 진리들. ‘하늘의 귀한 것들, 이슬, 그리고 땅 아래 누워있는 심해’=내적, 외적 인간에 있는 영적, 천적인 것들. ‘태양의 생산물의 귀한 것들, 달들의 생산물의 귀한 것들’=천적 왕국과 영적 왕국으로부터 진행하는 모든 것들. 선행의 선들이 진짜일 때, 그들은 ‘영원한 언덕들의 귀한 것들’이라 불리운다.
계18:12-‘귀한 나무’=우수한 나무, 고로 합리적 선.

그렇게 (so)

* 천적 왕국의 천사들은 그것이 그렇다 또는 그렇지 않다 하고 말한다.
마5:37-영적 왕국의 천사들은 그것이 그런지 아닌지를 논쟁한다. 그러나 천적 왕국의 천사들은 그것이 그렇다를 알고 지각한다. 이로부터 주님은 말하시기를, ‘너희의 대화에는 예, 예가 있게 하라…’
* 천적인 천사들은 예, 또는 아니오 만을 말한다.
* 천적인 천사들은 그것이 그렇다, 그렇지 않다 라고만 하여 결코 토론 않는다.

그루터기 (stock, stump)

창34:11-‘세겜’=고대 신성의 그루터기로부터의 진리.
계22:16-다윗이 신성의 진리 측면을 표현한다는 것, 하여 주님께서는 기꺼이 다읫의 가문으로부터 태어나셨고, ‘그의 뿌리(그루터기)와 후손’이라 불리우셨다.
단4:15-땅에서 남아있을 ‘뿌리들의 그루터기’=말씀, 글자만으로부터 이해됨의 말씀, 그리고 이것은 단지 알아진 어떤 것, 단지 기억안에 자리하고 있고, 이로부터 언어를 통해 밖으로 나갈 뿐이다. (=말씀, 이를 통하여 교회는 소생할 것이다.)

그리고 (and)

창30:6-이 하나의 것이 양쪽 모두의 표현들에 의해 의미되어질 때, 그것들은 ‘그리고 또한’에 의해 함께 결합되어진다.
창39:7-상태의 덜 중요한 변화들은 ‘그리고’를 수단으로 암시되어진다, 그러므로 이것은 아주 많이 발생하고 있다.
창43:2-고대 때의 최초 언어에서는 구두점(stop)을 찍는 것을 수단으로 의미가 구별되지 아니한채, 천국의 말을 모방하여 본문이 계속되어졌다. 그리고 구두점 대신에 ‘그리고’가 있었다, 그리고 또한 ‘…있었다, there was’, 또는 ‘…하였다, …하게 되었다, came to pass’가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고 라는 단어는 자주 등장한다..
* 천적인 천사들(셋째 천국, 가장 높은, 또는 가장 깊은 천국의 천사들)의 말에는 딱딱한 자음이 빠져 있다, 그리고 모음으로 시작하는 단어의 중재를 수단으로 드물지만 자음 하나로부터 또다른 자음으로 건너간다. 그러므로해서 불변화사인 ‘그리고’가 말씀 안에서 자주 삽입되어진다. 히브리 본래 단어로 말씀을 읽을 경우, 이 불변화사는 부드럽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단어는 모음으로 시작하고 끝난다.

극점에 달하다 (consummate)
종말 (consummation)

창15:16-‘아모리족의 불법이 아직은 극점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마지막 때, 즉 선이 더 이상 없는 때…
창18:21-‘나는 내게 도달한 함성 같이 극점에 도달함을 만들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나는 알 것이다’=악이 그것의 높이에 도착했는지 여부.
마24:3-‘시대의 종말’=교회의 마지막 때, 고로 그것의 끝장, 선행이 없기에 신앙도 없는 때. ‘시대’=시작부터 끝장 까지의 교회의 기간.
계10:7-‘하느님의 신비는 극점에 달할 것이다’=그때에 두 성경에서 미리 말해진 것이 나타날 것이다…‘극점에 도달해지는 것’=끝장을 가지기 위해 채워지는 것, 그다음 나타나는 것.
계15:1-‘그들 안에서 하느님의 분노가 극점에 도달되었기 때문에’=교회의 황폐함, 그리고 그다음 그것의 끝장.
계15:8-‘일곱 천사들의 일곱 재앙들이 극점에 도달할 때 까지’=황폐됨 후, 교회의 끝장이 있다.
계17:7-‘하느님의 말씀이 극점에 도달할 때까지’=그들에 관한 미리 말해진 모든 것들이 완성하기 까지. ‘극점에 도달하는 것’=가득 차는 것, 완성되는 것.
마28:20-‘시대의 종말 까지 나는 너와 함께 있겠다’=교회의 끝장 까지. 그때에 만일 그들이 주님께로 접근 않고, 그분의 명령에 따라 살지도 않는다면 그들은 주님에 의해 남겨지고, 주님에 의해 남겨지면 그들은 종교가 없는 이교도 같이 되어간다. 그때에 주님은 그분의 새 교회 속에 있을 이들과 더불어서만 계실 것이다. 이런 사항들이 ‘하느님의 말들이 완성될 때까지’, 그리고 ‘시대의 종말에서 조차’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계20:3-‘천 년이 다 채워질 때까지’=얼마 동안을 위하여.
이24:13-‘포도 수확이 완결될 때 남겨진 떨기 송이들’에 비교되어진다.
이28:22-이 나라와 더불은 교회는 깡그리 파괴되었다는 것이 ‘나는 온 땅 위에 있는 종말과 작정된 것을 군대들의 주 여호와로부터 들었다’에 의해 뜻해져 있다. ‘종말과 작정됨’=완전한 파멸.
단9:24-교회에 있는 모든 이가 교리에서는 거짓에, 생활은 악에 있을 때.
단12:7-‘극점에 달함’=가득하기 까지 채움.
계15:8-‘극점에 도달되어지는 것’=끝내지는 것, 여기서는 거절되는 것.
요19:30-이스라엘 교회와 유대 교회의 종말이 십자가 위에서 ‘다 완성되어졌다, It is consummated’라고 주님께서 외치셨을 때 완성되었다.

근심 (anxiety)

창3:16-‘나는 네 슬픔을 크게 늘리겠다’=전투, 그리고 전투로부터의 근심.
계2:9-‘그리고 고뇌’=진리들을 갈망함으로부터의 근심.
이5:30-‘근심’=악.

기념의 (memorial)

출3:15-‘이것은 대대 손손 나의 기념물이다’=(신성한 인간은) 영구히 예배되어야 한다는 것. ‘기념물’=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것. 그리고 신성을 서술할 경우, 예배에서의 품질…‘기념물’은 예배에서 진리에 관련한 신성의 품질을 서술한다. ‘기념물’=예배에서 신성의 품질.
시30:4-‘거룩한’은 진리를 서술하고, 이로부터의 예배는 ‘그의 거룩함에 대한 기념식’에 의해 의미된다.
출12:14-‘이 날은 너희에게 기념일로 있을 것이다’=예배에서 이 상태의 품질.
출13:9-‘네 눈들 사이에서 기념물로 있을 것이다’=이것은 이해성에서 항구적으로 있을 것이다는 것. ‘기념물’=항구적으로 기억하고 있음, ‘기념물’이라 말해지는데, 그 이유는 말씀에서 기념물은 지적 측면을 서술하기 때문.
출17:14-‘책 안에 이 기념물을 적어라’=영구히 기억하기 위하여. ‘기억’=기억되어 있어야 하는 것, 또는 기억 안에 있는 것.
레24:7-‘이것은 기념물로서의 빵일 것’=주님이 들으시고 받으시는 것.

기억 (memory)

창40:14-‘당신과 더불어 나를 기억해주시오’=신앙을 받아들임…그이유가 주님을 기억하고 회상함은 신앙 외 다른 근원은 없기 때문.
창40:14-‘바로에게 나를 생각해내게 만드시오’=자연의 내면과 교통함.
출13:3-‘회상하다’=그것은 회상되어야 한다는 것.
계3:3-‘그러므로 생각해내라’=그것은 생각 안으로 오리라는 것.

기억하고 있다 (remember)

창8:1-‘하느님이 기억하셨다’=…특별한 측면에서, 그분은 자비를 가지셨다는 것; 그분의 기억하심은 자비이다. 이는 특히 시험 후에 서술되어진다….’하느님이 기억하신다’=시험의 끝, 그리고 갱신의 시작.
창9:15-‘나는 내 언약을 기억할 것이다’=거듭나는 자를 향한 주님의 자비…그 이유가 ‘기억하신다’는 단어는 주님에 관련해 사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창30:22-‘하느님은 라헬을 기억하셨다’=예견.
창40:23-‘그는 요셉을 기억하지 않았다’=모든 방법에서 아직 까지는 결합이 없음.
창41:9-‘저는 오늘에야 내 죄를 기억합니다’=분열의 상태에 관하여…(그 이유가) ‘기억함’=결합…그이유는 다른 삶에서 누군가를 기억할 경우 결합이 있기 때문.
창42:19-‘요셉은 꿈들을 기억했다’=그는 있어질 것들을 미리 보았다. (그 이유가) ‘기억하는 것’=현존함. 그 이유는 기억함 안에서 진행될 어떤 것이 상연되기도 하기 때문.
출6:5-‘나는 내 언약을 기억했다’=감염됨으로부터 면제함.
출13장-이 장은 주님에 의해 해방됨을 영구히 기억함을 다룬다.
출20:8-‘기억하고 있다’=생각에서 영구적인 것.
출28:12-‘이스라엘의 아들들을 위한 기억함의 돌들’=영구히 자비로부터.
출30:16-‘여호와 앞에서 기억함을 위해 있을 것이다’=고로 주님에 의한 교회의 보존.
눅22:19-‘나를 기억하면서 이것을 행하라’
겔23:27-‘더 이상 이집트를 기억 못한다’=더 이상 진리에 대한 어떤 지식도 없다.

기울다 (incline)

창39:21-‘그는 자비를 그에게 기울였다’=각각의 것에 있는 신성한 사랑.
시144:5-‘하늘들을 굽혀 절하게 하고(bow) 내려오는 것’=방문하고 심판하는 것.
시45:10-‘귀를 기울이는 것’=순종.

기적 (miracle)

출3:20-‘나는 내 모든 경이로움들을 가지고 이집트를 치 것이다’=거짓들에 신성의 힘이 맞섬. ‘경로움들’=신성한 힘의 수단들. 이 수단들에 의해 거짓들에 있는 이들이 복종된다는 것이 이집트에 행해진 경이로음들, 또는 기적들로부터 분명해진다.
* 주님에 의해 행해진 모든 기적들=인류의 상태와 교회의 상태가 주님이 세상 안으로 강림에 의해 구원되었음. 즉 선행의 신앙을 받은 이들을 지옥으로부터 해방하셨다는 것. 주님의 기적드은 이런 것들을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구약 성서에서 취급된 모든 기적들=교회의 상태와 주님의 왕국의 상태. 이 안에서 신성의 기적들은 비록 외적 형체에서는 엇비슷할 수 있는 마술적 기적들과는 구별된다.
계12:1, 출7:3, 신6:22-‘표시(sign)들’은 진리로부터의 것에 관련된다. ‘기적들’은 선으로부터의 것들에 관련된다.

기품있는 (elegant)

창49:21-‘기품있는 강연을 주고 있다’=마음의 기쁨. 그 이유가 모든 강연은 마음으로부터 진행하기 때문. 마음이 기쁘고 유쾌할 때, 기품을 가지고 말하게 된다.

기회 (chance)

출21:13-‘그리고 하느님이 그것으로 그의 손으로 오도록 하셨다면’=기회로서 나타남, 이는 고대인들의 생각함으로부터 분명하다. 이는 하느님으로부터 발생했다는 것, 그러므로 그들은 ‘하느님이 자기 손에 오도록 하셨다’라고 말하여 기회를 표현했다.

깨끗함 (cleanness)

창7:2-‘모든 깨끗한 짐승’=선한 애착들.
* 근원적 언어에서 ‘흠없음’이 깨끗함과 순수함을 뜻하는 단어에 의해 표현되어지고 있다.
계19:14-‘희고 깨끗한 모시로 옷입고’=사랑 안에 그리고 그로부터 신앙 안에서.
시19:9-‘여호와를 경외함은 깨끗하다’=사랑.
겔36:25-‘깨끗한 물들을 뿌리는 것’=심정의 순수함. 고로 ‘깨끗해지는 것’=신성하게 하는 것.
겔39:12-‘일곱 달 동안 토지를 깨끗하게 하는 것’=교회에 있는 선과 진리의 충분한 회복.
출24:10-‘깨끗함에 관하여는 천국의 실체인듯’=천사의 천국의 반투명함.
시51:10-‘깨끗한 심정’=깨끗치 않은 악을 혐오하는 의지.
출29:36-‘너는 제단 위 죄로부터 깨끗하게 할 것이다’=천국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악들로부터 순수해 있음. ‘깨끗해짐’=순수해짐.
마23:26-‘바깥쪽 역시 깨끗해질 것이다’=고로 외면들이 순수해질 것이다.
계19:14-‘깨끗하고 눈부신 고운 아마포’=선으로부터 빛나고 진리들로부터 순수해짐. ‘깨끗함’=악으로부터 자유해 있는 것, 고로 선으로부터 빛나는 것.
겔39:12-‘그들을 매장하고, 토지를 깨끗하게 하는 것’=그것들 모두를 파괴하고, 그것들로부터의 교회를 완전히 깨끗이 함.
시51:10-‘깨끗한 심정을 창조하는 것’=사랑의 선에 관련하여 개혁하는 것.
시24:4-‘깨끗한 손들을 가진 그 사람’=신앙으로부터 진리들에 있는 이들. 그리고 ‘심정에서 순수함’=사랑으로부터 선 안에 있는 이들.
요2:6-‘유대인들의 정결케함’=죄들로부터 순수해짐, 고로 유대 교회의 모든 것들, 그 이유가 교회는 죄들로부터 순수해짐을 교회의 모든 것이나 마찬가지로 중시하기 때문.
요13:10-‘씻은 자’=내면적으로 깨끗한 자. ‘자기 발을 씻는 것 말고는 씻을 필요가 없다’=그 당시 그는 외면적으로 깨끗해 있다는 것. 그러나 전부는 아니다.
계15:6-신성한 진리는 그것이 진짜이다는 사실로부터 ‘깨끗함’이라 불리운다.
눅11:25-‘집을 쓸었다’=진리들에 반대되는 생활
마23:26-‘잔과 접시의 안쪽을 깨끗하게 하는 것’=내면들, 즉 의지와 생각 속에, 고로 사랑과 신앙 속에 있는 것들을 말씀을 통하여 순수하게 하는 것.
이4:4-‘깨끗해짐으로부터의 영’=영적 진리에 애착함 .
시80:8,9-‘그것을 심는 것, 그것 앞에서 깨끗하게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의 뿌리를 깊게 하는 것’=질서에 따른 훈육, 이러하다: 첫째, 지식들을 불어넣는다. 다음, 광야에서 그리고 시험받는다. 그리고 그 후에 가나안의 토지로 입장함, 즉 교회 안으로 입문됨. 이 세 단계가 위 구절에 의미되어 있다.

께느른한 (languid)

신7:15-‘여호와께서는 너희로부터 이집트의 모든 악한 께느름함을 제거하실 것이다’
애5:17-‘께느른한 심정’=더이상 선에 대한 의지가 없음.
이33:9-‘토지’=교회, 이것이 ‘통곡하고 께느른하다’고 말해진다. 이는 거짓들이 진리로서 인정되어질 때이다.
이24:7-‘통곡하고 무기력(께느른해)지는 것’=(교회의 진리들이) 박탈됨.
예15:9-‘일곱을 낳은 그녀는 께느른해진다’=그 교회는 멸해질 것이다.
겔31:15-교회 속에 있는 진리에 대한 지식이 하나도 있지 않을 것임이 ‘들판의 나무들이 그녀 위에서 께느른할 것이다’로 의미되어 있다.
이19:8-‘슬퍼지는 것’ 그리고 ‘께느른해지는 것’=노동하는 것.
이33:9-말씀의 자연적 감각으로부터 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들이 황폐됨이 ‘통곡하는 것, 께느른해지는 것’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이24:4-교회의 황폐함이 ‘통곡하는 것’, ‘지겨워지는 것’, ‘께느른해지는 것’에 의해 묘사되고 있다.

꼬부라진 (crooked)

사5:6-신앙으로부터의 진리들이 악용되어진 것이 ‘꼬부라진 길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이27:1-‘리워야단, 꼬부라진 뱀’=교묘한.
사5:6-‘꼬부라진 길에서 가는 것’=진리들로부터 떠나 배회하는 것.

꾸며낸 일 (figment)

창6:5-‘심정의 생각들이 꾸며낸 일’=선과 진리를 지각함이 없다…죽이고야 말 설득함들이 여기서 ‘심정의 생각들이 꾸며낸 일’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그러나 생각들이라는 표현을 뺏을 경우, 즉 ‘심정이 꾸며낸 일’=자아 사랑, 또는 탐욕들로부터의 악.
창8:22-‘인간의 심정이 꾸며낸 일은 그의 어린 시절로부터도 악하다’=인간의 자발성은 모두 악이다.

꾸밈 (ornament)

단8:9-‘영광’=진리의 상태.
예48:17-‘아름다운 막대기’=진리로부터의 힘.
이52:1-‘아름다운 의복’=선으로부터의 진리들.
이63:15-‘영광스러운 처소’=영적 천국 속의 이들이 있는 천국.
단8:9-‘영광을 향하여’=교회에 맞서.
출28:2-‘영광을 위해, 그리고 아름다움을 위해’=내적 그리고 외적 형체에서 천적 왕국에 결합한 영적 왕국에 서 있는 것과 같은 신성한 진리를 표현하는 것. ‘아름다움’=외적 형체에서의 신성한 진리. 그이유가 외적인 것들에서 나타나는 신성한 진리의 아름다움과 광휘가 ‘아름다움’에 의해 의미된다. 이로부터 내적 의미에 있는 말씀은 ‘영광’이라 불린다. 그러나 내적 의미에서 파생된 광휘와 아름다움에 상대적으로 말할 때 ‘아름다움’이라 불린다.
애2:2-‘이스라엘의 아름다움’=영적 교회, 이 교회가 진리의 광휘와 아름다움으로부터 ‘아름다움(또는 영광)’이라 불린다.
단11:16-영광의 토지=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이 있는 주님의 교회.
이28:5-‘꾸민 왕관(crown)’, 그리고 아름다운 왕관(diadem). ‘꾸민 왕관’=선 속에 있는 지혜. ‘아름다운 왕관’=진리 속에 있는 총명.
이62:3-‘여호와의 손에 있는 아름다운 왕관, 그리고 네 하느님의 손에 있는 왕국의 왕관.’ ‘아름다운 왕관’=선 속에 있는 지혜, 그리고 ‘왕국의 왕관’=진리 속에 있는 총명.
예13:18-‘네 아름다운 왕관’=신성한 진리로부터 선 속에 있는 지혜. 그 이유가 ‘아름다움’=교회의 신성한 진리.
출28:40-‘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아름다움을 위하여’=영적 교회의 진리.
겔16:12-‘아름다운 왕관’=영적 선, 이는 진리의 선이다. ‘왕관’=선, ‘아름다운’=영적인 것.
시45:3-‘네 영광과 영예에서 네 넓적 다리에 네 검을 차라’…‘영광’에 의해 신성한 진리가, ‘영예’에 의해 신성한 선이 의미된다.
시89:17-‘당신은 그들의 힘의 광휘이시기 때문’…말씀에서 ‘광휘(영광)’은 교회에 관련된 것, 그리고 거기 있는 진리로부터의 교리에 관련된 것을 서술한다.
단8:9-‘동쪽’, 그리고 ‘영광’=선이 진리를 통하여 그것의 명료함에 있는 곳.
이60:7-‘나는 내 영광의 집을 영광스럽게 할 것이다’=주님의 신성한 인간 안에 그들은 있을 것이다…‘영광의 집’=신성한 진리에 관련한 그분의 신성한 인간.
이64:11-‘우리의 아름다움’=영적 교회.
이4:2-‘여호와의 어린 가지가 아름다움과 영광을 위해 있을 것이다’=진리가 교회에서 새로이 출생될 것이다…모든 아름다움은 진리에 대한 영적 애착과 그 결과인 결합으로부터 존재하고 그와 달리는 아름다움이 없는바 ‘우리의 수치를 거두어다오’라고 말해진다. (이4:1)
예48:17-‘힘의 막대기’=자연적 의미에 있는 신성한 진리. ‘아름다움의 막대기’=영적 의미에 있는 신성한 진리.
시78:61-‘그분은 그분의 영광을 적들의 손에 주었다’=영적인 것으로부터의 자연적 진리. 이것이 ‘영광’에 의해 의미된다. 그리고 악들에 의한 그것의 파멸이 ‘적의 손에 주어지는 것’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겔7:20-그의 장식품의 ‘아름다움’=교회 그리고 그것의 교리.

꿈 (dream)

창20:3-‘밤에 꿈에서’=희미한 (지각). 지각이 취급되어질 때, ‘꿈’=깨어있음에 비교해 상대적으로 희미한 어떤 것, 게다가 ‘밤에 꿈에서’라고 말해질 경우, 더 한층 희미한 어떤 것을 뜻한다.
창28:12-‘(야곱은) 꿈을 꾸었다’=미리 봄. ‘꿈꾸는 것’=미래의 것을 미리 말하는 것. 그 이유가 예언적인 꿈, 이는 신성이었는바 미래의 것들을 예언함이었다…이런 것들이 ‘꿈’과 ‘꿈을 꾸는 것’에 의해 내적 의미에서 의미되는바, 꿈이 주님을 취급할 경우, 이는 최고 의미에서 예견이 의미된다. 그 이유가 예견들은 주님의 신성한 예견으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창31:10-‘나는 내 눈을 들어올렸고 꿈에서 보았다’=불명료한 것에서 자연적 선이 지각함. ‘꿈에서’=불명료한 것에서.
창31:11-‘그리고 하느님의 천사가 꿈에서 나에게 말했다’=신성으로부터의 지각, 그리고 희미한 것에서 현존함.
창31:24-‘하느님께서 밤중에 시리아 사람 라반에게 오셨다’=그자체로만 남아있을 때 이 선의 희미한 지각…‘밤중에 꿈’=희미한 것.
창37:5-‘요셉은 꿈을 꾸었다’=그분 자신에 관하여 설교함. ‘꿈을 꾸는 것’=설교하는 것. 그리고 이 꿈이 요셉을 취급하는바, 이것=주님의 신성한 인간에 관하여 설교하는 것. 여기서 ‘꿈’=설교인 이유는 요셉의 두 번의 꿈에서 요셉에 관하여 모든 것이 미리 보여지고 설비되어졌기 때문. 고대 시대 때에, 신성한 진리들은 언어, 환상, 때로는 꿈에서 명백해졌다. 이로부터 신성한 진리가 말이나 환상들, 꿈들을 수단으로 예언자들에게 명백해졌는바, ‘예언자’=진리들을 가르치는 자, 또는 추상적 의미에서 교리 속의 진리들을 의미하고 있다.
창37:19-‘꿈들의 이 주인이 온다’=이런 것들이 헛되다는 것. ‘꿈들’=설교들. 여기서, 신성한 진리를 설교함, 그이유는 이것이 요셉을 두고 말해졌기 때문. 그러나 신성한 진리가 믿음만으로 구원됨이라는 교리에 있는 이들에 의해 그것의 본질 측면에서 거절될 경우, 여기서와 같이 ‘꿈들’=헛된 것들. 그리고 ‘꿈들의 주인’=그들의 설교자.
창40:5-‘그들은 모두 꿈을 꾸었다’=이런저런 것들에 관한 예견…‘꿈’, 최고 의미에서=예견인 이유는 주님으로부터 천국을 통하여 직접 흘러드는 꿈들은 미래의 것들을 말하기 때문, 마치 이 대목의 술 담당 신하와 빵 담당 신하의 꿈, 그리고 바로의 꿈들, 느부갓네살의 꿈, 그리고 일반적으로 예언적인 꿈들이 이 경우에 해당된다.
창41:1-‘바로가 꿈을 꾸는데’=자연 평면에 관련하여 설비되는 것. ‘꿈꾸는 것’=미래의 것들에 대한 예견. 고로 최고 의미에서 예견. 따라서 그것=예견, 미리보는 것인바, 그것은 또한=섭리, 설비되는 것, 그이유가 이것은 저것 없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
창41:11-‘우리는 한 밤에 꿈을 꾸었다’=희미한 상태에서 예견된 것.
창43:9-‘요셉은 자기가 그들에 관해 꾸었던 꿈을 기억해냈다’=영적 평면 속의 천적인 것이 자연 평면에 있는 교회의 일반적 진리들에 관련해 무엇이 발생할 것인지를 미리 보았다는 것. ‘꿈들’=예견, 예언, 사건.
신13:1-‘만일 너희들 중에서 예언자, 또는 꿈꾸는 자가 일어난다면…’ ‘꿈꾸는 자’=뭔가를 하도록 부추키는 자. 추상적 의미에서 행해지게 하는 원인인 선동함, 자극함…예언자들은 주님으로부터 살아있는 음성을 수단으로 가르쳐졌다, 그리고 꿈장이들은 행동 쪽으로 자극하는 표징들을 수단으로 했다. 이것들이 꿈장이의 애착 안으로 흘러들고 이로부터 생각의 시야로도 흘러들었다. 그 이유가 인간이 꿈을 꿀 때, 그의 자연적 이해성은 잠잠해지고 애착으로부터 모든 것을 끌어내는 그의 영적 시야가 열리어지기 때문.
이29:8-배고픈 자가 꿈에서 먹는다‘=선에 관하여 오류적인 견해와 신앙.

날랜 (swift)

* 악을 거절함에 대한 생각은 신속함이 그 생각을 시중들어야 한다.
삼하1:23-‘사울과 요나단은 독수리들 보다 더 날랬다.’ ‘날램’, 말씀에서, 총명이라 단정할 때=진리에 애착함 .
예4:13-‘그의 말들은 독수리들 보다 더 날래다’=진리들에 맞서 추론함, 그리고 그것들을 파괴함. 그이유가 말씀에서 ‘날램’, 그리고 ‘성급함’, 말씀에서 애착과 바램에 의해 휘저어짐이 의미된다.
이30:16-‘너는 말했다…우리는 날램 위에 탈 것이다. 그러므로 너를 추격하는 그들은 날램을 만들 것이다.’ ‘날램을 타는 것’=자신의 이해성, 이로부터의 생각과 추론으로부터 있는 것들을 사랑하고 몹시 탐하는 것. 그러면 거짓들이 깨부수고 소유함을 가진다는 것이 ‘그러므로 너를 추격하는 그들은 날램을 만들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날램’, 그리고 ‘성급함’=탐욕으로부터, 또는 사랑으로부터 행해지는 것.
이32:4-‘어눌한 자의 혀가 말하는데 날랠 것이다’=교회의 진리들을 거의 납득할 수 없는 이들이 애착으로부터 그것들을 인정할 것이다. ‘날램’은 애착으로 풀이된다.

날카로운 (sharp, acute)

계14:17-‘날카로운 낫’=말씀의 신성한 진리.
합1:8-‘저녁 이리들을 초월하여 날카롭다’=오류들을 수단으로 사기쳐 꾀어냄
계14장-‘날카로운’=정밀한, 절묘한, 완전한.

날마다 (daily)

* 천사들의 경우 그들이 더 내면적으로 더욱 완전해져 갈수록 더욱 덜 그들은 과거의 것, 미래의 것으로 근심하고 곰곰이 생각하지 않는다…그런고로 그들은 근심 걱정들로부터 자유하다. 이것이 하늘로부터 날마다 받은 만나로, 그리고 주님의 기도에서 날마다 필요한 분량의 빵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 ‘날마다’ 그리고 ‘오늘’=영구적인 것이다는 것은 모두 각각의 날에 실시되고 있는 제물로부터 명백하다. ‘날’, ‘날마다’, 그리고 ‘오늘’이 지닌 의미 때문에 그것들은 ‘계속적’ 또는 영구적 제물이라고 불리웠다.
* 주님의 기도에서 ‘날마다’는 매 순간들을 뜻한다. 그러므로 ‘날마다’= 연속적인 것들 안의 매 순간들이라는 공식도 도출 될런지 모른다. (천사들의) 동시에 있는 것들에서 이것은 하느님 메시아의 영광으로 바뀌는바 순간들은 어떤 깨짐이나 구분됨 없이 계속적이다. 이로부터 천사들의 지각이나 행복이 있다.

낮 동안 (by day)

출3:21-‘낮 동안은 구름 기둥 안에’=계발의 상태에 있을 때, 진리의 희미한 것에 의해 고무되었다. ‘낮 동안’, 또는 ‘낮 안에’=계발의 상태…‘낮’=명료한 지각의 상태, 또는 계발의 상태.
시91:5-‘낮 동안 날아 다니는 화살’=노골적으로 가르쳐진 거짓.
계21:25-‘그것의 문들은 낮 동안 닫히지 않을 것이다’=주님으로부터 사랑의 선으로부터의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은 새 예루살렘 안으로 꾸준히 받아들여질 것이다. ‘낮 동안’=계속적으로, 그이유는 거기에는 빛이 언제나 있기 때문.
이4:5- 너무나 많은 빛으로 상함을 당함에서 보호함이 ‘낮 동안 구름’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낯선 (strange)

* 체류하다(sojourn))을 보라.

다발 (bundle)

출12:21-‘너는 우슬초 다발을 가져올 것이다’ ‘다발’=진리들과 진리들의 배열이라 단정된다.

다시 태어남 (born again)
재출생 (rebirth)
재생 (rebirth)

* 인간은 신앙 속의 진리들을 통하여 다시 태어나진다.
* 지옥으로부터 구해지기 위하여 인간은 주님에 의해 전체적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 이것이 거듭남이라 불리는 재생이다. 그러므로 이 다시 태어남을 위하여 인간은 먼저 진리들을 배워야 한다.
* 거듭남은 영적 인간 측면에 관련한 재출생이다.

단단한 (hard)

마13:4-‘단단한 길’=거짓.
창35:16-‘라헬은 그녀의 출산에서 참기 어려운(단단한) 것들을 겪었다’=내면의 진리에 대한 시험들.
창42:7-‘그는 그들에게 단단한 것들을 말했다=그로부터, 또한 비-상응.
창42:30-‘우리에게 단단한 것들’=비-상응 때문에 비-결합. 그이유가 만일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사이에 상응이 없다면, 그러면 내적이다는 모든 것은 외적이다는 것에 단단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이유는 결합이 없기 때문이다.
창49:7-‘그리고 그들의 분노, 그것은 단단했기 때문’=진리로부터 돌아서버림, 그것은 확정적이었기 때문에…‘ 단단한’=확정된 것. 그이유가 설득당할 정도로까지 확정해버린 거짓은 단단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단단하다는 것은 경험으로부터 알도록 나에게 주어졌었다. 그이유가 영들과 천사들에게 있는 선으로부터의 진리는 부드러운 것으로 나타나고 표출되어지는데 반해, 악으로부터의 거짓은 단단한 것으로 나타나고 표출되어지기 때문. 그리고 단단해지는 정도 만큼, 악으로부터의 거짓은 더 확정되어갔다. 설득이 많은 것들을 수단으로 확증을 통하여 거행되었을 때, 그 단단함은 뼈의 단단함 같이 나타났다. 이와같은 단단함은 세상에서 단단함 같다, 거기서 빛의 광선들을 되튀기고 있다. 고로 주님으로부터 천국의 빛이 악으로부터의 거짓으로부터 단단한 것 안으로 떨어질 때, 그것은 되튀겨진다. 그러나 선으로부터의 진리로부터 부드러운 것 안으로 떨어질 때, 그것은 받아들여진다.
출6:9-‘그리고 힘든 용역 때문에’=거짓들만으로부터 감염되게 함을 수단으로.
출7:3-‘나는 바로의 심정을 단단해지게 할 것이다’=거짓으로부터의 악으로부터 완고함. ‘단단해지게 함’=완고함.
이27:1-‘단단하고, 크고, 강한 검’=모든 진리가 사멸함.
단8:23-‘얼굴이 단단한 왕’=그들의 내면에는 진리가 없고 거짓만…‘얼굴들이 단단한’=선이 없는 내면들. 그이유가 선이 없는 곳은 진리가 단단하기 때문…그리고 이 진리는 내면들에 있는 거짓이다.
겔2:4-‘얼굴이 단단한 아들’=선 없이 진리 안에 있는 이들. 그리고 추상적으로 선이 없는 진리들, 그 자체 거짓들이다.
겔2:4-자신을 납득시키는 이들, 타인들을 거짓으로 강력하게 납득시키는 이들, 그리고 어떤 진리도 용인 안하는 이들이 의미되고 있다. 이들이 ‘얼굴이 단단하고 심정이 단단해진’ 이들이라 불려진다. 그들은 오로지 최말단의 감각적인 으로부터 생각하고 말한다. 이 감각적인 것이 자아 사랑의 불로 점화될 때, 단단하고 굳혀져간다.
이19:4-‘단단한 주인’=거짓의 악.

단순한 (simple)

* 심정에서 단순한 사람은 영이 있다는 것을 자기는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이유는 자기들은 사후 살게 된다 라고 주님이 말하셨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기들의 합리성을 꺼지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님의 말씀을 수단으로 더욱 살아있게 만든다.
* ‘너는 비둘기 같이 단순하라…’
* ‘미디안’=단순한 선으로부터의 진리에 있는 이들, 고로 자신들이 쉽게 설득 당하게 허용하고 만다.
* ‘이스마엘’=영적 교회 속의 이들, 생활에 관련해 단순한 선에 있는 이들, 그러므로 교리에 관련해서는 자연적 진리에 있다.
* ‘금 귀걸이’=단순한 선으로부터 있는 것들.

달콤한 (sweet)

출15:25-‘물들이 달게 만들어졌다’=그리하여 진리들이 기뻐하는 것들로 만들어졌다는 것. ‘달콤한’=기뻐함. 그이유가 ‘달콤한’, 영적 의미에서 생명의 달콤한 것, 즐거움을 가진 것이기 때문.
계10:9-‘입에서는 꿀 같이 달게 있다는 것’=받아들임의 첫 번째에서는 감사함과 기뻐함이 있다는 것.
이25:6-‘달고 정제된 포도주’=이런 선들로부터의 진리들.
레3:5-여호와께 바치는 예물로서=사랑의 선과 신앙의 선, ‘여호와께 달콤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해진다.
시27:4-‘여호와 달콤함을 보는 것’.

더껑이 (scum)
찌끼 (froth)
거품 (foam)

겔24:11-‘숯불에 텅빈 솥을 놓아라…그로부터 더껑이가 소멸될런지 모른다.’ ‘텅빈 솥’=불결함과 더껑이인 것, 즉 악과 거짓.
겔24:6-‘피흘리고, 솥 안에 더껑이가 있는 도성은 슬플지어다. 그리고 이들의 더껑이가 없어지지 아니한 자들이여.’ 여기서 ‘솥’=선을 모독함으로부터의 악이 있는 도성, 또는 백성들. 악은 그것으로부터의 더껑이이다. 선을 모독함이 남아 있는 ‘더껑이’이다.
호10:7-‘그녀의 왕은 물들 위에 있는 거품(foam)같다.’ ‘물 위의 거품’=진리들로부터 분리되고 텅빈 것.
욜1:12-‘그는 …내 무화과나무를 찌기가 되게 했다.’ ‘찌끼’=안에 진리가 없는 것.
* ‘무화과나무를 찌끼로 되돌리는 것’=자연적 진리들의 파멸.

더럼 안 탄 (unspot, immaculate)

계14:5-‘그들은 하느님의 보좌 앞에서 더럼 안 탄 이들이다’=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선으로부터의 진리들에 있었기 때문에. ‘더럼 안 탄’에 의해 거짓들에 있지 않은 이들이 의미된다. 그 결과 진리에 있는 이들. 그이유가 ‘더럼’=거짓들, 적절하게, 악으로부터의 거짓.

(…와)더불어 (with)

* 내적 생명은 인간 안에 있지 않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있다. 그이유는 주님의 생명은 선행이다, 이는 인간 안에 있지 않기 때문, 그이유는 인간은 추잡하기 때문, 따라서 인간과 더불어 있다.
요1:1-‘하느님과 더불어’=하느님 안에.
요17:5-‘너와 더불어’=네 자신 안에.
창31:3-‘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필시 신성일 것이다는 것.
창39:21-‘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계셨다’=신성은 주님 안에 있으셨다는 것. 글자 의미에서 요셉을 취급하는 바, 그와 ‘더불어’라고 말해진다, 그러나 내적 의미에서는 주님을 취급하는 바, 그분 안에 있으시다.
창48:21-‘하느님이 너와 더불어 있을 것이다’=주님의 신성한 섭리. 그이유가 주님이 누군가와 더불어 계실 때, 그분은 그를 인도하신다.

드문 (rare)

이13:12-‘나는 사람을 순금이 드물듯 드물게 만들 것이다’. ‘드물게 있는 사람’=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
이24:6-영적 진리에 애착함과 파생되는 지혜가 중단 될 것임이 ‘사람이 드물게 남아있을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예18:21-‘그들의 사람들이 학살되어 남은 자가 드물어지게 하자…‘=진리에 애착함과 파생되는 지혜가 무디게 될 것이다.

라가 (raca)

마5:22-‘라가를 말하는 것’=오만무례함으로 이웃을 대하려는 타락한 생각으로부터. 고로 선행의 선을 무가치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 그이유가 라가를 말하는 것은 텅빈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기 때문, 고로 무가치한 것으로. 그리고 ‘형제’=선행의 선.

매끄러운 (smooth)

창27:11-‘나는 매끄러운 사람이다’=자연적 진리의 품질.
창27:16-‘그의 목의 매끄러움 위에’=분리하는 진리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는 것. ‘매끄러움’은 진리를 서술한다.

모든 (all)

창19:4-‘외곽 지역으로부터 온 모든 사람’=그것들의 각각과 모두.
창20:7-‘모든 것’=내향의 의미에서 모든 것.
창33:9-‘나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그의 영적인 재물.
창42:32-‘우리는 열 두 형제인데…’=한 복합체 안에 있는 모든 진리들.
창47:24-‘네 집에 있는 이들’=진리로부터 선에 있는 각각의 것과 모든 것. 고로 ‘네 집에 있는 이들의 양식을 위해’=각각 그리고 모든 것들에 있는 진리로부터의 선.
출25:36-‘속이 비지 않은 순금 하나’=전체의 양, 고로 선으로부터의 모두…선으로부터 있는 전부에 의해 선은 모든 것에서 모두…이는 진리들에서 뿐 아니라 과학물에서 까지 모두를 뜻한다…선은 생산물 그리고 파생적인 것에서도 모두이다.
출26:17-‘모두’가 천국에 관련해 말해질 때=모든 곳.
출29:46-‘그들의 한가운데에 나 자신 거주하는 것’=주님의 신성, 이것은 천국과 교회의 모든 것 안에 전부이다는 것.

무거운 (heavy)

창13:2-‘아브람은 가축과 더불어 극도로 무거웠다(불어났다).’
창48:10-‘이스라엘의 눈들은 무거웠다’=그의 통각함이 희미함.
출4:10-‘저는 입이 무겁습니다, 그리고 저는 혀가 무겁습니다’=신성으로부터의 음성과 연설이 들려지지 않고 지각되지도 않았다.
출14:25-‘그리고 그것을 무거워진 상태에서 끌어당겼다’=저항과 무기력함.
출17:12-‘모세의 손들이 무거웠다’=위쪽으로 주님을 보는 힘이 결핍되었다.
출18:18-‘말이 너를 위하여 너무 무겁다’=그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이유는 질서로부터가 아니기 때문.
출19:16-‘무거운 구름이 산 위에 있었다’=막 받으려는 이들에게 있는 신성의 상태.
출19:16-‘무거운 나팔 소리’=주위에 있었던 천적인 상태.
출7:14-‘바로의 심정은 무거웠다’=그들은 자신들을 완고하게 만들었다.

무딘 (dull)

예32:29-‘아버지들이 들포도를 먹어왔다, 그리고 아들들의 이가 무뎌진다.’ ‘무디어지는 이’=거기로부터 악의 거짓 안에 있는 것…‘무디어지는 것’=악으로부터 거짓을 자기 것 만드는 것.

물을 대줌 (watered)

창2:10-‘동산에 물을 댐’=총명을 주는 것.
창13:10-‘물이 잘 공급됨’=선과 진리가 거기서 자랄 수 있다.
시104:13-주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 안에 있는 이들을 복 있게 함.
예31:12,25-‘그들의 혼은 물을 공급받은 동산 같을 것이다…나는 지친 혼에 물을 공급하고, 그리고 슬픔에 찬 모든 혼 그 각각에 물을 줄 것이다’…‘물이 공급되는 것’=가르쳐지는 것. (=이 근원으로부터 총명과 지혜를 가진다는 것.
시104:13-‘그분은 그분의 방들로부터 산에 물을 대신다’=모든 선들은 천국으로부터 진리들을 통하여 (온다)
욜3:18-‘샘이 여호와의 집으로부터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싯딤의 시내에 물을 공급할 것이다’=주님으로부터 천국에서 지식들 안에 있는 이들을 계발할 교리 속의 진리가 있을 것이다.
이5;10-‘땅에 물을 대고, 대준 물은 싹과 열매를 맺는다’=교회를 생기 있게 하는 것은 교리 속의 진리와 믿음 속의 진리, 그리고 사랑과 선행으로부터의 선 등등이 열매 맺을 때이다는 것.
시65:10-‘그것의 고랑들에 물을 댐’=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으로 채우는 것.
호6:3-‘땅에 물을 대는 것’=교회를 비옥하게 하는 것, 진리들이 번성할 때, 이는 총명이 증가하는 원인이 되고, 선들이 열매 맺을 때, 천국적 사랑의 증가의 원인이 되는 바, 이것을 두고 비옥해진다 라고 말해지고 있다.

물의 흐름 (watercourse)

이30:25-‘강들과 물들의 개울들’=신앙으로부터의 진리들.
겔31:4-‘그녀는 들판의 나무들에로 그녀의 물의 흐름을 보냈다’=진리에 관한 지식이 불어남.

미적지근한 (lukewarm)

계3:16-‘그러므로 네가 미적지근하기 때문에, 그리고 차지도 뜨겁지도 않기에, 나는 너를 내 입으로부터 토해낼 것이다’=모독, 그 결과 주님으로부터 분리함.
계3:16-‘그러므로 네가 미적지근하기 때문에’=믿음 만 가지고도 의로워진다 하는 교리로부터 사는 이들. ‘미적지근함’=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는 이들, 이로부터 두 주인들을 섬기는 이들. 믿음 만에 관해 생각하고 믿고 사는 이들…그리고 그것은 명명백백해질 것이다.

바라다 (desire)
바람직한 (desirable)

창3:6-‘눈에 대하여 바람직한…’=망상
* ‘눈에 대하여 바람직함-총명을 줄 것 같은’=이와같은 것들이 그들의 본성에 적용할 수 있을 듯한…특히 그것은 의지 측면이다.
계9:6-‘그들은 죽기를 바란다’=그들은 선을 지각하는 능력이 파괴되기를 원했다.
이58:13-‘너는 내 거룩함의 날에 네 바라는 것을 하지 않도록…네 바램을 찾지 않도록’…천적 인간은 자신의 바램으로부터 행동하지 않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으로부터 행한다. 이것이 그의 바램이다.
창2:9-‘생김새에서 바람직한 나무’=진리에 대한 지각.
창3:6-‘총명을 주기에 바람직한’=쾌락(pleasure).
이32:12-‘바램의 들판들’
창4:7-‘너에게 그의 바램이 있다, 그리고 너는 그를 지배할 것이다’=선행은 신앙과 함께 있기를 바란다.
욜3:5-‘너는 나의 바람직한 것들을 너의 성전들로 운반했다’=이런 것들에 대한 (영적)지식들.
말3:1-‘너희가 바래왔었던 언약의 천사…’
호13:15-‘그는 탐낼만한 모든 그릇들의 보물이 망쳐질 것이다.’
창27:15-‘바라는 옷들’=진짜 진리들. ‘바라는’=진짜.
창31:30-‘너는 네 아버지의 집을 심히 바래왔기 때문에’=직접적으로 흐르는 신성한 선과 결합을 바람.
창34:8-‘그의 혼이 당신의 딸을 갈망한다’=이 새로운 교회와 결합하기를 열망함.
창49:26-‘시대의 언덕들의 바램에까지’=상호적인 천적 (왕국의) 사랑.
이44:9-이것에 관해서 말해지는바, ‘그들의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들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58:13-‘자기가 바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자기들의 사랑에 따라 사는 것.
계18:14-‘혼이 바라던 열매들’=천국의 행복과 복됨. 이는 죽어갈 때 인간의 바램들, 그리고 영계에 새로이 도착할 때 거기서 그들의 바램들.
눅17:22-‘너는 사람의 아들의 날의 하나를 보기를 바랄 것이다.’
욜3:5-‘상품의 바람직한 것들’=파생된 진리들과 선들, 이는 글자 의미로부터의 (영적) 지식들이다.
애2:4-‘눈들에게 바람직한 것들’=총명과 지혜로부터 있는 모든 것들.
시84:2-‘내 혼이…여호와의 뜰을 향하여…갈망한다.’
시68:30-‘그분은 백성들을 흐트셨다, 그들은 전쟁들을 갈망한다’=지옥들을 복종케함.
이64:11-‘바람직한 모든 것들이 쓸모없게 되었다.’ 말씀에서 ‘바람직한 것들’=교회의 진리들.
시19:10-‘금보다 더 바람직한 그들이다.’…‘바람직한 것’=애착으로부터, 사랑으로부터 있는 것.
마13:17-‘의로운 많은 이들과 예언자들이 너희가 보았던 것을 보기를 바랬다.’
시103:14-‘당신의 종들은 그녀의 돌들을 바랬다,’
창2:9-‘모양에서 바람직한’=이해함이 바랬던 것.
요8:44-‘네 아버지의 바람들을 너는 행할 것이다’=그들은 자기들의 탐욕들로부터의 악들에 있기를 원했다는 것.
암5:18-‘여호와의 날을 바라는 이들에게 슬픔이 있다.’ 그분이 자기들의 지상의 적들로부터 그들을 구해내리라고 믿었을 때, 그리고 자기들을 영광 안으로 운반해줄거라고 믿었을 때, 그들은 그분을 바랬다.
시132:13-‘그분은 이것을 바라셨다…여기 나는 거주할 것이다, 내가 그것을 바랬기 때문이다.’
미7:1-‘내 혼이 가장 이른 것을 바랬다.’
이58:2-‘그들은 하느님의 접근을 바랜다.’
시63:1-‘내 육체가 당신을 갈망합니다’=의지의 선 측면에서의 인간.

반점 (spot)
반점이 있는 (spotted)

예13:23-‘표범이 자기 반점들을 바뀌게 할 수 있느냐?’= (=왜곡된 진리들).
창30:32-‘반점이 있는’=거짓과 혼합된.
레21:17-23, 22:19-35-‘반점들’=거짓들 인바, 흠이 있는 아론의 자손 누구도 제단에 접근하는 것이 금하여졌다. 그리고 또한 흠이 있는 동물을 제물로 바치는 것도 금하였다.

반점 있는(speckled)

창30:32-‘반점 있는’=악과 혼합되었다.
창30:32-‘반점 있고 얼룩진’은 검다와 희다로부터이다. 검다=악,…특별한 측면에서는 인간 고유의 것,,,희다=진리,…반대 의미에서는 인간 자신의 정의 또는 공적…고로 ‘반점 있다’=선에 악이 혼합되어짐.

번갈음 (alteration)

창27:33-‘이삭은 극도로 심한 공포로 떨었다’=상태가 반대로 됨에 따른 큰 번갈음(교차됨)…’공포’=번갈음.
창28:17-‘그는 두려웠다’=거룩한 번갈음.

부끄러이 여김 (ashamed, shame)

* 벌거벗음도 참조
* ‘자신들에게 벨트를 만드는’ 것=부끄러운 마음이 일어났다…자연적 선에 있는 동안 그들은 부끄럼의 마음 안에 들어왔다.
시127:5-‘그들은 성문에서 적들과 말할 때 수치스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지옥들로부터의 악들에 대한 두려움은 하나도 있지 않을것이다

부드러움 (tenderness)

창18:7-‘부드럽고 좋은 품질의 황소의 아들’=…이것은 영적인 것으로부터의 천적인 것, 또는 선의 진리로부터 부드럽다 라고 불리워진다.
창33:13-‘어린 아이들은 유약하니…’=신성한 생명을 아직은 획득하지 못한 진리들…’유약함’=최근인 것, 그리고 고로 어떤 생명을 획득했으나 아직 순수하지 않은 것.

부활 (resurrection)
다시 일어남 (rise again)

* bury, resuscitate도 참조
*그분의 부활 이후 그들은 그분을 주님이라 불렀다.
*주님이 셋째 날에 다시 일어나신 이유. 주님의 부활 자체는 모든 거룩함, 그리고 모든 이의 부활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이 숫자는 표현적 숫자가 되었다…천국에서는 ‘3’과 ‘7’ 대신 그들은 주님의 부활과 강림에 관한 일반적 생각을 가진다.
* 요나…셋째 날에 있은 주님의 부활을 표현했다.
호6:2-‘셋째 날’=주님의 강림과 부활.
눅14:14-‘의로운 자의 부활에서 보답이 있다’=보상받음 없이 잘 행동함으로부터 있는 내적 행복.
계20:5-‘이것은 첫 번째 부활이다’=구원과 영원한 삶이 있다는 것, 우선적으로 주님을 예배하는 것, 그리고 말씀에서 그분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것.
계20:6-‘첫 번째 부활에서 부분(몫)을 가진 자는 복되고 거룩하다’=천국으로 오는 이들은 영원한 생명의 행복을 가진다, 그리고 주님과의 결합을 통하여 예증 받는다….’첫 번째 부활’은 주님에 의해 천국으로 승강됨이 의미된다, 고로 구원이다.
눅20:36-이들이 ‘부활의 아들들’…이라 불리운다.
겔37장-거듭남, 이는 또한 죽은 자로부터의 부활이다, 하여 뼈들에 생명이 불어넣어짐에 의해 표현되어져 있다.

불결한 (unclean)

레22:6-불결한 것을 만진 혼은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호9:3-‘그들은 아시리아에서 불결한 것을 먹을 것이다’=추론함으로부터 있는 모독적이고 불순한 것들.
겔24:11-‘불결함’과 ‘더껑이’=악과 거짓.
마12:43-‘불결한 영’=인간과 더불은 생명의 불결함, 또한 그 사람과 더불어 있는 불결한 영들. 그이유가 불결한 영들은 인간의 생명의 불결함에 거주하기 때문.
마15:17-19-고로 인간의 의지가 아니고 생각으로 들어가는 것들은 그를 불결해지게 하지 않는다…의지 안으로 들어간 것들이 그를 불결해지게 하는 이유는 그것들을 그가 자기 것되게 했기 때문.
애1:9-(옷의) 술에 불결함이…=행위들과 말함들에, 고로 극단(extremes)에.
레7:18-21-…그이유가 모든 이런 외적인 불결함은 인간과 더불은 악들인 내적 불결함을 표현했기 때문, 즉 이런 악들은 그의 의지 속에 있고, 이는 실제의 생활에 의해 자기 것 되고 만다.
레11:37,38-이런 불결한 것들에 의해 다양한 종류의 악들과 이 악에서 파생되는 거짓들이 의미되어진다. 이것은 지옥으로부터 있다. 불결한 것들의 각각 특수한 어떤 악. 그이유가 악들은 인간을 불결해지게 하기 때문, 그것들이 그의 혼으로 주입되기 때문. 그리고 더욱이 그들 심정들로부터의 악들은 악령들과 악귀로부터 쏟아져나온다. 그리고 악의 설득에 응하는 이들에게 주입된다. 이런 접촉 전염이 불결한 것들을 만짐에 의해 의미된 것이다.
계17:4-‘그녀의 매춘의 불결함’=말씀의 선과 진리를 더럽힘
계21:27-‘불결한 어떤 것도 그것 안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불결한 것’에 의해 영적 매춘이 의미되어진다. 이는 선에 섞음질함, 말씀 속의 진리를 왜곡함이다.
이52:1-‘할례받지 않은 자와 불결한 자는 더 이상 네게로 오지 않을 것이다’=악들과 거짓들에 있는 이들.
마12:45-‘일곱 불결한 영들’=악으로부터의 모든 거짓들. 고로 선과 진리의 완전한 파괴.
슥13:2-‘불결한 영’=교리의 거짓들로부터 튀어나오는 악들.
겔36:25-‘나는 네 위에 깨끗한 물들을 뿌릴 것이다, 하여 너는 모든 너의 불결함으로부터 깨끗해질 것이다’ ‘깨끗한 물들’=순수한 진리들. 거짓들은 불결함이라 불린다. 그 이유는 그것들이 악으로부터 있기 때문, 그리고 악을 생산하기 때문.
계16:13-‘개구리 같은 세 불결한 영들’=신성한 진리에 맞서는 단지 거짓들로부터의 추론들. ‘불결한 영들’=지옥으로부터 있는 악의 거짓들. 그 이유가 지옥에 있는 모든 것은 악의 거짓으로부터 불결하기 때문. 불결한 모든 것들은 악으로부터 있는 거짓들로부터 생겨나기 때문. 깨끗한 모든 것은 선으로부터 있는 진리들로부터 있기 때문.
계18:2-‘불결한 모든 영이 소유하고 있다’=거기에는 말씀의 왜곡된 진리들로부터의 거짓들 밖에 더 없다는 것…‘불결한’=추악한 사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 특히 지배욕으로부터. 그 이유가 이것이 지옥에서 불결함을 만들기 때문.

불모 (barren, 열매를 못맺음)

* 아이를 못 낳음도 참조
* ‘불모’=진리들과 선들이 결핍인 것.
왕하2:19-‘불모의 토지’=교회의 선이 살아있지 않음.

불성실하게 (perfidously)

출21:8-‘불성실하게 행동하는 것’=신성으로부터의 진리에 반대되는 것, 또는 신성한 질서의 법칙에 반대되는 것…‘불성실하게 하게 행동하는 것’이라는 표현은 말씀에서 판에 박힌 문어체인데, 이는 내적 의미에서 천국에 있는 진리와 선에 반대되게 행동하는 것이다.
예9:2-‘불성실한 무리들’=선에 관한 지식들을 왜곡하는 이들.
이48:8-‘불성실하게 행동하는 것’=계시된 진리들에 반대되는 것.

불성실한 (unfaithful)

계21:8-‘불성실한 자’=이웃을 향해 선행이 없는 이들.

불쌍히 여김 (cpmpassion, pity)

* 자비(mercy) 참조.
호2:19-‘자비함과 불쌍히 여김에서’
창43:30-‘그의 불쌍히 여김이 움직여졌다’=사랑으로부터의 자비…원어에서, ‘불쌍히 여김’은 가장 깊고 가장 부드러움을 뜻하는 단어에 의해 표현되어져 있다.
출2:6-‘그녀는 그를 불쌍이 여겼다’=신성으로부터의 권고. ‘불쌍이 여김을 가지는 것’=주님으로부터 선행이 유입됨. 그이유가 사람은 선행으로부터 비참한 신세에 있는 누군가를 볼 때, 불쌍히 여김이 일어나기 때문, 그리고 본문의 경우 이것이 주님으로부터 인 바, 이것은 권고이다. 지각에 있는 이들은 자기들이 불쌍히 여김을 느낄 때, 도움을 주도록 주님께서 자기들에게 권고하시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63:15-‘내부의 동요’는 선을 서술하고, ‘불쌍히 여김’은 진리를 서술하고 있다.
민6:25-거짓들로부터의 보호가 ‘네게 불쌍히 여김을 가지는 것’에 의해 뜻해지고 있다.
호1:7-‘불쌍히 여기시고 여호와 그들의 하느님이 구해주심’=주님에 의한 구원.

불행 (misery)
비참한 (misery)

겔16:49-자비 없음이 ‘그들은 비참한 신세이고 궁핍한 자의 손을 강하게 해주지 않는다’에 의해 묘사되고 있다.
창31:42-‘나의 비참함’=시험들.
계3:17-‘불행함’=생활 안에 심어진 진리 없음. 고로 선이 없음.
출32:18-‘불행한 외침의 소리를 나는 듣는다’=탄식하는 그들의 내면의 상태.
계3:17-‘그리고 불행하고 가난한’ 그들이 진리들과 선들 없이 있는 것. ‘불행하고 가난한’은 말씀의 영적 의미에서는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 없이 있는 이들이 뜻해진다. 그이유가 이들이 영적으로 불행하고 가난하기 때문.
시37:11-‘불행한 자’가 이 구절에서는 세상에서 시험들에 있는 이들을 뜻한다.
시74:19-‘불행한 자’란 거짓들이 창궐하는 이들, 이를 걱정하고 이로부터 해방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뜻해진다.
시74:19-‘불행한 자의 생명’은 악들과 거짓들에 짓눌린 영적 생명이 뜻해진다.
이14;32-‘그녀 안에서 백성의 불행한 자가 희망이 있을 것이다’=자신들로부터는 지혜가 없다는 이들, 그리고 이런 거짓들에 맞서 시험을 극복하는 이들과 더불어 총명과 구원이 있을 것이다.

비스듬한 (obliquity)

눅3:5-‘꼬부라진 것이 곧아지는’=무지로부터의 악이 선으로.

비슷함 (likeness)

* 모습(likeness)를 보라

비어 있음(emptiness)

* 먼저 진행되어 있는 첫 상태, 이는 유아로부터인 것, 또한 직접적으로는 거듭나기 이전의 것 모두가 해당된다; 그리고 이 첫 상태가 공허(vacuity), 텅빔(emptiness), 짙은 어둠 (thick darkness)이라 일컬어진다.
창1:2 예4:23-‘땅은 공허(void, vacuity)하며 비어있었다(emptiness)’….거듭남 이전의 인간이 ‘땅은 공허하고 텅비었다’라고 불리워진다, 그리고 또한 그는 선과 진리에 관한 어떤 것도 뿌려지지 않은 지면이라 불리워진다; ‘공허’는 선에 관한 것, ‘텅빔’은 진리에 관한 것이다…예레미야서에서 인간이…‘나는 땅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공허이었고 텅빔이었다’라고 묘사되고 있다.
이24:10-‘부서지게 될 텅빈 도성’=진리가 결여된 인간의 마음.
이34:11-진리의 황량함과 황폐함이 ‘텅빔의 줄과 황폐의 추’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예4장-‘공허하고 빈’=선과 진리가 없는 교회 안에.
이45:18-‘그분은 그것을 텅비게 창조하시지 않았다’=재구성되어가는 이들에게 선과 진리가 결핖되는 일이 없게 하신다. 이것들의 결핖이 ‘텅빔’이다.
눅1:53-후자가 박탈될 것임이 ‘하느님께서는 부자를 빈채로 내보냈다’에서 의미된다.
이41:29-‘바람과 비어 있음’=악으로부터의 거짓들과 거짓으로부터의 악들; ‘바람’=악으로부터의 거짓들; 그리고 ‘비어 있음’=거짓으로부터의 악들; 그 이유가 텅빔과 공허한 것이 있는 곳=선과 진리가 결여된 것, 악과 거짓이 있는 것.
이30:7-‘공허(vanity)와 텅빔이 있는 이집트’=감각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 모두, 이것은 그 자체로만 고려한다면 선이 결여되어 있고 진리들이 결핖되어 있다.
예22:22-‘목자들을 먹일 바람’=교리의 공허와 비어 있음.창1장- 땅이 공허(waste)하다, 비어 있다 라고 불린다
창42:35-‘그들은 자기들의 자루를 비웠다’=자연에서 진리들이 사용됨. ‘비우는 것’, 즉 그들이 이집트로부터 가져온 양식=진리들로부터 선용을 수행하는 것.
출15:9, 레 6:33-‘나는 검을(으로) 모조리 비울 것이다(털어 낼 것이다)’=악으로부터의 거짓들의 계속된 전투; 의미가 이러함은 ‘모조리 비움’, 또는 ‘알몸으로 만듦’의 의미가 적이 드러누워질 때 까지 계속되는 전투 이다 에서 알 수 있다. 계속적인 전투가 ‘검을 뽑아 듬, 또는 검으로 모조리 비워버림’에서도 의미된다.
이24:3-‘토지를 모조리 비우고 못쓰게 만듦’=교리 속의 진리와 신앙 속의 진리에 관련하여 교회가 황폐함.
예14:3-‘빈 그릇들’=진리가 없는 지식들; 또한 선이 없는 진리들.
창31:42-‘당신은 나를 빈(손)으로 떠나보냈을 것이다’=그는 자신을 위해서 모든 것들을 주장하리라는 것. ‘빈 채로 떠나보냄’=그로부터 모든 것을 가져감, 고로 자신을 위해 모든 것들을 요구함.
창37:24-‘구덩이는 비었었고, 그 안에 물은 없었다’= 그 당시 참된 것은 없었다는 것…‘비어 있음’=선이 없기에 진리도 없는 것.
예14:3-‘빈 그릇’=선으로부터의 진리가 아닌 진리들.
예51:34-‘빈 그릇’=진리가 있지 않은 것.
이34:11-‘그들은 그것 위에 공허의 수평 줄과 텅 빔의 수직 추를 뻗칠 것이다.’
이24:10-‘공허의 성읍은 부셔진다…’ 여기서 비어있음이 원어에서 공허라는 말로 표현되는데 의미는 같다. ‘빔’= 선이 없기 때문에 진리가 없는 것, 여기서 내적 의미에 있는 몇 사항들로부터 명백하다.
겔24:11-‘텅빈 가마를 숯불 위에 놓는 것’…텅빈 가마는 그 안에 불결한 것과 찌끼가 있는, 즉 거짓과 악이 있는 가마이다.
마12:44-‘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준비되었다’…그들은 이것들을 아는데 그것을 행하지 않는 ‘부자’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이런 사람들과 더불은 진리는 진리들이 아니다, 그 이유는 선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눅1:53-‘그분이 빈 채로 내보낸 부자’…그들은 이런 것들을 아는데 행하지 않는 ‘텅빈 부자’라 불린다; 그이유는 이런 사람들과 있는 진리들은 선이 결핍되어 있어 진리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12:44-신앙과 선행이 결여되어 있고 악들과 거짓들로 차있는 내적인 것이 주님께서 ‘텅빔’이라고 부르신다…이로부터 이것은 내적인 것 없는 외적인 것이라 불린다.
암4:6-‘이(teeth)를 비움=진리가 빈궁함.
출23:15-‘너는 공허하게 내 얼굴들을 보지 않을 것이다. Ye shall not see My faces emptily’=자비와 감사로부터 선을 받는 것… ‘헛되이 보지 말라’ 또는 선물 없이는 안된다=선을 받음 때문에 있는 증명, 그리고 감사함…

비열한 (vile)

창16:4-‘그녀의 여주인은 그녀의 눈에 비열했다’=이 합리성, 그것의 임신에서 선에 인접한 진리 자체를 멸시했다는 것.

비참함 (calamity, wretched)

계3:17-‘비참한(wretched)’=교회의 것들에 관하여 시종일관성 없이 생각하는 자.
계3:17-‘그리고 네가 비참하다(wretched)는 것을 모르고 있다’=그들은 자기들의 거짓들이 진리에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 ‘비참함(calamity)’=거짓들을 수단으로 진리들이 부셔짐, 또한 일치함이 없다…
이47:11-‘해악이 네 위에 떨어질 것이다’란 진리에 대한 모든 이해함의 손실이 있다를 뜻한다.
겔7:26-‘비참함 위에 비참함이…’=거짓으로부터 거짓이…
시5:9-‘그들의 내향의 부분은 비참하다’. 여기서 ‘비참함’=어떤 진리와도 부합하지 않는 거짓들.

사랑하는 (beloved)

신33:12-‘여호와께서 사랑하는 자’=천적인 선으로부터 있는 영적 진리.
호9:1-‘매춘짓을 하고 매춘 삯을 사랑하는 것’=진리들을 왜곡하고 왜곡된 것들을 사랑하는 것.
출21:5-‘나는 내 주인, (내) 여인을 사랑한다’=영적 선들을 회상함으로부터의 즐거움. ‘사랑하는 것’=회상함으로부터의 즐거움.
겔23:5-‘아시리아인들을 사랑하는 것’=추론함을 사랑하는 것.
계3:9-‘내가 너를 사랑했다는 것’=그들은 주님에 의해 사랑되고 천국 안으로 받아졌다는 것.
계12:11-‘그들은 죽기까지 자신들의 혼을 사랑하지 않았다’=주님 보다 더 자신들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
계20:9-‘사랑하는 성’=새 교회의 교리.
요14:21,23-‘사랑하는 것’, 주님에 관련해 말해질 때,=그분이 현재 계신 것…그이유는 사랑은 결합, 또는 현존을 결과하기 때문. 그리고 주님은 사랑하는 자에게로 들어간다…또한 그분을 사랑하는 자, 즉 그분의 계명을 행하는 자에게 들어가신다.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내 가르침을 간직하여 행하는 자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를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를 사랑하리라…’에서도 가르치신다.
눅20:13-‘사랑하는 아들’에 의해 신성의 진리 측면에서의 주님이 뜻해진다.
이5:1-‘내 사랑하는 자’=주님, 그이유는 그분이 교회들을 복구하시기 때문.
요15:9,10-‘내 사랑 안에 거하라. 만일 네가 내 명령들을 지킨다면, 너는 내 사랑 안에 거할 것이다.’
호4:8-‘그들이 사랑했다’=거짓을 사랑함.

사악함 (wickedness)

* 악의(malice)도 보라.
출2:13-‘그는 사악한 짓을 한 그에게 말했다’=…신앙으로부터의 진리 안에 있지 않는데도 교회 안에 있는 이에게…
출9:27-‘여호와가 올바르시다. 나와 내 백성이 사악했다’=신성한 선은 침입자의 악의를 참아줄 수 없었다는 것…‘그들의 사악함’=악의.
시109:6-지옥의 악과 거짓이 그들에게 널리 퍼졌는바, ‘당신은 제 위에 사악한 자를 놓으시고, 사탄이 제 오른쪽에 서있게 하소서’라고 말해진다.

새기다 (grave)
새긴 (graven)

* ‘새긴 것’=거짓, ‘주조한 것’=악, 이것은 자아 속에 있다.
합2:18-‘새긴 것’=자아에 의해 부화되고 임신된 원리들로부터 있는 거짓된 설득들.
* ‘나무에 새긴 것’=탐욕들.
왕상6:29,32-이 새긴 것들을 수단으로 천국의 상태가 표현되어졌다.
출20:4-‘너는 네 자신에게 새긴 것을 만들지 말라’=자신의 총명으로부터는 아니다. ‘새긴 것’=주님으로부터 있지 않고 인간의 자아로부터인 것, 인간의 지적 측면의 자아가 ‘새긴 것’에 의해, 인간의 자발적 측면의 자아가 ‘주조한 것’에 의해 각각 의미되고 있다.
출28:9-‘너는 이스라엘의 후손들의 이름을 그것들 위에 새겨라’=그 위에 영적 왕국의 선들과 진리들을 각기 모든 품질 측면에서 인상지우는 것. ‘돌에 새기는 것’=기억에 인상지우는 것.
출28:11-‘너는 도장에 새기는 방식으로 이스라엘 자손의 이름들에 의거, 두 돌들에 새겨라’=모든 진리들이 그것들의 질서에서, 기억에서 있는 그 진리들의 천국의 형체. ‘돌에 새기는 것’=기억에 인상지우는 것.
이40:19-‘새긴 것’=자신의 총명으로부터 있는 거짓된 교리, 고로 신성으로부터의 생명이 결여되었다.
* 도장을 새김=천국적인 형체.
출28:36-‘너는 그것 위에 도장을 새기는 방식으로 새길 것이다’=천국적 영역(sphere)에 따라 심정들에 인상지워 영구적인 것. ‘새기는 것’=기억에 인상지우는 것, 또한 명심하는 것.
출31:5-‘채움을 위해 돌을 조각함에서’=사랑의 선에 봉사하는 신앙 속의 모든 것들. ‘돌을 조각함(engrave)’=사랑으로부터 신앙 속의 모든 것들에 대한 표현.
출31:5-‘모든 작업을 함 중에서 나무를 새김’=어떤 선이든 모든 선을 표현하는 것.
이40:20-‘새긴 것’=예배 속의 악

새로운 (new)
새로(이) (anew)

이62:2-‘새 이름으로 부름’=새로이 창조됨, 또는 거듭남.
마26:29-‘내가 너희와 그것을 새로이 마시는 그 날 까지…’
겔18:31,36:26-‘새 심정’=새 의지. 그리고 ‘새 영’=새로이 이해함.
계21장-‘나는 모든 것들이 새로워지게 한다’=지금 주님에 의해 복구되어질 교회 안에는 새로운 교리가 있을 것이다.
계3:12-‘그리고 내 새로운 이름’=이전 교회 안에 있어오지 않았던 새로운 것들과 더불어 주님 만을 예배함.
계5:9-‘그리고 그들은 새로운 노래를 불렀다’=주님을 인정함과 영광을 기림. 그리고 그분만이 심판자, 구속자요 구세주, 고로 천국과 땅의 하느님이시다는 것.
계14:3-‘그들은 말하자면 새로운 노래를 불렀다’= 새 기독교인의 천국에서 주님을 경축하고 영광을 기림. 이 천국에서, 그분은 고대의 천국들에서 인정되어진 바 같이 천국과 땅의 하느님으로 인정되어지고 있다. 이 구절에 삽입된 표현 ‘말하자면, as if’가 이 노래는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이유가 이 노래는 고대 천국들에서도 불렀었기 때문이다.
계21:5-‘잘보라 나는 모든 것을 새로이 만든다’=주님은 마지막 심판을 집행하셨다는 것, 그 다음 새 천국과 새 땅, 그리고 새 교회를 그것들 안의 각각 그리고 모든 것과 함께 창조하실 것이다는 것,
막16:17-‘새 혀들’=새 교회를 위한 교리적인 것들.

생동하게하다 (vivify)
생생한 (vivid)

창2:23-‘뼈’=생동함이 그리 많지 않은 자아. ‘살’=생동함이 있는 자아.
창7:3-‘씨를 살아 있게 만드는 것’=신앙 속의 진리들.
창12:12-‘그들은 나를 죽일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살려둘 것이다’=그들은 천적인 것들에 관심이 없고 오로지 지식들만에 관심이 있다는 것.
창14:5-‘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살아있게 만들기 앞서 나를 보냈다’=섭리에 의해 그들 안에 영적 생명이 있다.
창47:25-‘당신은 우리를 살아있게 만들었다’=영적 생명, 그외 달리는 없다…
창50:20-‘많은 사람들을 살아 있게 만드셨다’=선으로부터 진리들에 있는 이들을 위한 생명이 이것으로부터 있다.
출1:17-‘그들은 소년들을 살아있게 간수했다’=진리들, 선으로부터인바, 보존되어졌다.
요6:63-‘활기 띠게 하는 것이 영이다’
출22:18-‘너는 마법사가 살아 있게 내버려두지마라’=영적 생명의 박탈.
겔13:19-‘살아있지 않아야 할 혼들을 살아있게 만드는 것’=영원한 생명이 거짓들로부터 있다고 그들을 설득해대는 것.
시33:19-‘기근에서 그들이 살아있도록 간수하는 것’=바램에 따라 영적 생명을 주는 것.

섬뜩 놀람 (consternation)

창45:3-‘그들은 요셉 앞에서 너무나 당황했다(terrify)’=그들 사이에 있는 동요(흔들림).
출15:15-‘에돔의 족장들은 깜짝 놀랐다(affright)’=자아 사랑으로부터 악한 생활을 하는 이들과 비슷함.
레26:16-‘나는 그들의 심정에 섬뜩 놀람을 놓을 것이다.’

속이 비지 않은 (solid)

출25:31-‘속이 비지 않은’=전부(whollly).

속이 빈 (hollow)

출27:8-‘너는 그것을 판자로 속이 비게 만들어라’=적용(application)

순수한 (pure)
순수해지게 하다 (purify)

창35:2-‘너희 자신을 순수해지게 하라, 그리고 너의 옷을 갈아입어라’=거룩함이 입어지게 하는 것. (그이유가) ‘순수해지게 하는 것’, 또는 ‘깨끗하게 하는 것’=신성해지게 하는 것.
민19:2-11-‘물’은 순수하게 하는 매체를 표현하였다.
출12:7-11-‘누룩 넣지 않은 것’=모든 거짓으로부터 순수해지게 하는 것.
출12:21-24-‘우슬초 한 다발을 가져오라’=순수해지게 함이 있게 하는 외적 매체.
말3:3-‘레위의 아들들을 순수해지게 하는 것’=선과 진리를 순수해지게 함.
출28:14-‘순수한 금’=신성으로부터의 선.
출29:2-‘누룩 없는 빵’=가장 깊은 인간 안에서 천적 평면이 순수해짐.
출29:2-‘누룩 없는 과자’=중간 천적 평면의 순수해짐.
출29:36-‘속죄하는 것’=악들과 악에서 파생하는 거짓들로부터 순수해지게 함. 또는 제거함.
* ‘비둘기’=신성한 진리를 통하여 순수해짐.

신중한 (prudent)

마10:16-‘너희는 뱀 같이 신중하라.’
마25:2-‘다섯 신중한 처녀들’=선이 있는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
마7:24-선 안에 있는 자, 즉 가르침들에 따라 행하는 이들이 ‘나는 그를 신중한 사람과 같다’에서 ‘신중한 (자)’이다고 불려지고 있다.
출1:10-‘우리는 그들을 두고 신중히 대처하자’=교활함. (그이유가) ‘신중함’이 악한 자에 의해 말해질 경우, 교활함을 뜻하기 때문. 악이 교활함이나 사기침을 행동할 때, 그들은 이것을 신중하다 부르기 때문.
* ‘지식의 나무’ (창2:9)=자신으로부터의 신중함 측면에서의 인간.
* ‘뱀 같이 너희는 신중하라.’ 선에 있는 이들이 ‘신중한’ 이들이라 불리운다. 그리고 악에 있는 이들은 교활하다 불린다.
눅16:8-‘이 시대의 아들들은 빛의 아들들 보다 더 신중하다.

쌓인 것 (pile)

이30:33-‘그것의 쌓인 것’=(교회의 모든 선들과 진리들을 파괴하는 끔찍하고 맹렬한 사랑으로부터의) 악들.

쓴 (bitter)
쓴맛 (bitterness)

창26:35-‘이삭과 리브가에게는 영의 쓴맛이었다’=거기로부터 먼저 있는 것은 슬픔이었다.
계10:10-‘내 배가 쓰게 만들어졌다.’ 말씀 측면에서의 신성한 진리는 글자 의미의 바깥쪽 형체에서는 즐겁게 한다, 그이유는 모든 이 각각의 취향에 맞추도록 하는 것이 허용되기 때문. 그러나 ‘쓴’맛에 의해 의미된 것, 즉 내적 의미에서는 그렇지 않은데, 그이유는 내적 의미는 내면의 인간을 드러나게 하기 때문.
출1:14-‘이집트인들은 비참한 노예 신세를 가지고 이스라엘 후손들의 삶을 쓰게 만들었다’=복종시키려는 의도가 적개심에 불타고 고통을 유발하게 했다.
출12:8-‘쓴맛 위에’=시험들 속의 불유쾌한 것을 수단으로.
출15:23-‘그들이 쓴맛 때문에 물들을 마실 수 없었다, 그이유는 그것들이 쓴맛이었기 때문’=그들이 선에 애착함이 결핍되었기 때문에 진리들이 그들에게는 불유쾌하게 나타났다…‘쓴’=불유쾌함.
* ‘마라’는 ‘쓰다’를 뜻한다.
계8:11-‘많은 사람들이 물들 때문에 죽었다, 그이유는 그들이 쓰게 만들었기 때문’=말씀의 왜곡된 진리들 때문에 많은 사람의 영적 생명이 소멸되었다. ‘쓴’=왜곡됨인 이유는 쑥의 쓴맛이 이해되기 때문. 그리고 ‘쑥’=지옥의 거짓.
애3:15-주님께서는 (유대) 교회에서 거짓과 왜곡된 진리 외에는 아무 것도 발견하시지 못했다는 것이 ‘그들은 그를 쓴 것 가지고 배불리게 하고, 쑥으로 취하게 했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계8:11-‘그들이 쓰게 만들었기 때문에’=말씀 속의 진리들이 왜곡되었기 때문에…‘쓴’ 그리고 ‘쓴맛’=진리들에 악의 거짓들을 혼합함으로 왜곡된 것.
이5:20-‘선인 것을 악이라고, 악인 것을 선이라 말하고, 빛을 위해 어둠을, 어둠을 위해 빛을 놓고, 단것을 위해 쓴 것을, 쓴 것을 위해 단 것을 놓는 이들에게 슬픔이 있을 것이다.’ 섞음질된 선과 진리가 여기서 ‘쓴 것’에 의해 의미되는 것은 분명하다.
이24:9-‘독주를 마시는 자에게 독주는 쓸 것이다’=진리의 왜곡되게 함과 섞음질함으로부터 불유쾌한 선으로부터의 진리.
신32:32-‘그 송이는 쓴맛’=섞음질된 신앙 속의 선들.
민5:27-‘간음’=거짓과 악의 결합. 만일 그녀가 죄지었다면, ‘물들은 쓴맛이 되었을 것이다.’ 이를 수단으로 섞음질된 신앙의 선들.
호12:14-‘쓴맛’=불유쾌함이 있게 하는 곡해함과 그로부터의 거짓들.
* ‘(마라의) 쓴 물들’=외관적으로 진리로 나타나나, 그것의 존재가 거짓들로부터 파생된 것.
(…이) 아니다 (not, nay)
창19:2-‘그들은 말했다, 아니다’=시험 속에 있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
창23:11-‘아닙니다, 나의 주여, 나에게서 들으소서’=그들이 신앙의 희미함에 있었다는 것…
창30:31-‘어떤 것도 주지 않는 것’=가져와 지지 않는 것.
창41:16-‘말하기를, 제가 아닙니다’=그것은 인간 만으로부터가 아니었다.
창42:10-‘그에게 말하기를, 아닙니다, 나의 주여’=그들은 이득을 추구하지 아니했다는 것.
창42:10-‘한 명은 있지 않다’=신성한 영적 평면은 나타나지 않는다.
마5:36,37-…이들이 이 구절, 즉 ‘너희는 대화할 때, 예, 예, 아니오, 아니오라고 해라, 이외의 것은 악으로부터이다’에서 뜻해진 이들이다. 그이유가 그것이 그렇다 여부에 관련하여 진리들로부터 추론하는 것은 선으로부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이유는 이때의 진리는 지각된 것이 아니기 때문, 따라서 권위로부터, 그 결과 자아에 의한 확증으로부터 만 믿어지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그래도 목사의 설교인데, 신학 박사의 강연인데…설마 거짓이 섞여 있겠는가 하여 믿는 따위 말이다.

아름다운 (beautiful)
아름다움 (beauty)

창12:11-‘나는 당신이 쳐다보기에 아름다운 여인이다는 것을 안다‘=천적 근원으로부터의 진리는 즐거웁다는 것.
창12:14-‘이집트인들은 그녀를 보았는데, 그녀는 매우 아름다웠다’=영적 지식에 관한 지식은 그 자체 매우 즐거워하고 있다.
겔28:12,13-‘지혜로 가득함, 아름다움에서 완전함으로, 너는 하느님의 동산, 에덴에서 있어왔다…’ 합리성으로부터 낙원을 바라보는 것이 선물되어졌다. 이것은 장엄함과 아름다움에서 인간 상상으로부터의 모든 생각을 능가한다. 이것은 주님으로부터 천적, 영적 빛의 유입의 결과이다. [천사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낙원적인 즐거움과 아름다움이 아니라, 천사들 안에서 살고 있는 천적. 영적인 것들이다.
창13:10-이것은 바깥쪽 사람이 주님에게 나타난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내향의 인간과 결합했을 때에 나타나는 아름다움이다. 이 아름다움은 주님 만을 제외하고는 어떤 사람과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묘사해볼 수 없다. 세 천국들은 주님의 바깥쪽 인간의 형상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의 아름다움은 서술되어질 수 없다.
창24:16-‘소녀는 보기에 매우 아름다웠다(good)’=진리에 애착함의 아름다움. 모든 아름다움은 순진이 있는 선으로부터 있다. 선이 내향으로부터 바깥쪽 인간 안으로 흐를 때 이것이 아름다움의 원인이 된다. 이것은 모든 인간의 아름다움의 근원이다.
창29:17-‘라헬은 모습이 아름다웠고, 바라보기애도 아름다웠다’=영적인 것에 관련하여 내면의 진리에 애착함 …‘모습(form)’에 의해 본질이 의미되고, ‘바라보는 것(look)’에 의해서는 본질로부터 파생되는 아름다움이 의미된다.
이33:17-‘그의 아름다움에서 왕을 보는 것’=주님으로부터 있는 신앙으로부터의 진리들. 선으로부터 ‘아름답다’라 불리우는 신앙으로부터의 진리들…이 아름다움은 선이라 단언된다.
창39:6-‘요셉은 모습에서 아름다웠다’=거기로부터 파생된 생활의 선. 그리고 ‘바라보기에 아름다운 것’=거기로부터 파생된 신앙의 진리.
창41:2-‘바라보기에 아름답다’=신앙으로부터 인 것
겔28:12-그러므로 두로의 왕에 대해 말하기를, ‘그는 지혜가 가득하고, 아름다움이 완전하다.’ ‘지혜’는 선을, 그리고 ‘아름다움’은 진리라고 단언된다. 그이유가 천국들에서 모든 지혜는 선으로부터 있고, 모든 아름다움은 거기로부터 파생된 진리들로부터 있기 때문.
겔16:13-‘아름다움’=선으로부터 있는 진리의 형체.
이3:24-‘아름다움’=교회에 있는 선으로부터의 진리의 형체, 고로 교회의 완전함.
겔16:15-‘너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신뢰하고 있다’=매료되게 하는 자아로부터의 총명.
이33:17-‘그의 아름다움에서 왕을 보는 것’=주님만으로부터 있는 진짜 진리를 보는 것.
겔16:13-‘너는 극도로 아름답게 되었다’=총명.
시48:2-거기로부터 혼이 기뻐함이 ‘장소가 아름답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이33:17-‘그는 그의 아름다움에서 왕을 볼 것이다’=그들은 지혜를 획득할 것이다는 것. 그이유가 ‘왕’=선으로부터의 진리. ‘아름다움’=그것으로부터의 지혜, 그이유가 이것 안에 그것 고유의 형체에서 있는 신성한 진리가 있기 때문.
이44:13-‘인간의 아름다움’에 의해 거기서부터 파생된 총명의 나타남이 의미된다.
겔16:13-‘아름다움’=총명.
이3:24-‘아름다움 대신 태움’에 의해 총명 대신 어리석음이 의미되어진다.
겔31:3-‘가지는 아름답고, 그늘을 주는 나무’=과학물들을 수단으로 합리적인 진리들을 통하여 있는 총명.
겔31:7-‘…큼에서 아름다운…’=총명.
단4:12-‘거기로부터의 잎은 아름답고, 꽃은 많다’에 의해 지식들과 진리와 선에 애착함들, 거기로부터 파생된 총명이 의미되어진다.
겔16:25-‘아름다움’에 의해 진리, 그리고 거기로부터 파생된 총명이 뜻해진다. 그 이유가 영계에서 모든 이는 선으로부터 있는 진리, 그로부터 파생되는 총명에 따라서 아름답기 때문.
겔31:3-‘아름다움’에 의해 진리에 애착함, 그리고 거기로부터 파생된 총명이 의미되어진다.
이5:9-‘아름다움’은 진리, 그리고 그것의 총명이라고 단언된다.
시45:2-그분이 신성한 지혜를 가지고 있으시다는 것이 ‘당신은 인간의 아들들을 초월해 아름답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아름다운’=슬기로운.
겔28:12-이것이 지혜와 총명의 사람의 근원인 바, 말해진다, ‘두로의 왕, 너는 지혜로 가득하고, 아름다움에서 완전하다.’ ‘아름다움’=총명, 그이유는 천국들에서는 총명에 따라서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
암8:13-진리에 애착함, 진리를 이해함이 결핍 때문에 중지되리라는 것이 ‘그날에 아름다운 아가씨와 젊은 이들이 목말라 기운을 잃을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아이가 없는 (childless)

창15:2-‘나는 아이가 없이 걷고 있습니다’=내적 교회가 없었다는 것.

아이를 못 낳음 (barren)

* 불모도 참조
창11:30-‘사래는 임신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자손이 없었다’=악과 거짓인 것은 더 이상 스스로 생산하지 못하는 것.
창11:30-아들과 딸이 진리와 선을 의미하는데, 그 반대 의미일 경우, 악과 거짓을 의미한다. 이로부터 ‘불모’=우상적 예배로부터의 악과 거짓은 더 이상 생산하지 못했다는 것.
창25:21-(리브가가) ‘잉태하지 못함’=자연으로부터의 신성은 아직 없었다는 것.
창29:31-‘라헬은 아이를 낳지 못했다’=내면의 진리가 받아지지 아니했다는 것…‘불모’=그렇기 때문에 교리는 없었다, 고로 교회 역시 없었다는 것.
신7:14-‘열매를 못맺거나 임신 못하는 일이 있지 않을 것이다’=진리와 선으로부터의 생활이 결핍되지 않을 것이다, 고로 그들은 영적으로 살아있을 것이다. ‘불모, 임신 못함’이 이런 의미를 가지기에 고대 교회에서 여인은 자기가 아이를 낳지 못할 경우 자신을 살아있지 않은 것으로 간주했다. 이런 실예로 창30:1에서 라헬이 야곱에게 말하기를, ‘나에게 아들들을 주시오, 그리고 그렇지 않다면 나는 죽어있다’라는 구절을 들 수 있다.
이54:1-진리들 안에 있지 않기에 선 안에도 있지 않은 이들 또한 ‘불모’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그러나 선 안에 있기 위하여 진리들을 진지하게 바라는 이들, 마치 직바른 이방인들 같은바, 즉 이사야서에서 ‘노래하라, 출생하지 않은 아이 못 낳는 자, 산고가 없었던 여자여, 기쁨을 위해 노래를 시작하고 외쳐라, 그이유가 홀로된 자의 아들들이 짝으로 있는 이들보다 많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아이 못 낳는 자들’은 교회에로 소환되어지는 나라들이 의미되어지고 있다. 옛것이 중단될 때, 교회는 이들에게 전승되어진다.
이54:1-3-여기서 취급되는 주제는 이방인들 사이에 교회가 건설된다는 것, 이것이 말씀으로부터의 진리들 없이 있음으로부터 ‘태어나지 않은 잉태 못한 자’라 불리우고 있다.
이54:1,2-‘아이 못 낳는 자’=이전에 교회의 진리들과 선들 안에 있지 않았던 자.
삼상2:5-‘아이 못 낳은 자가 일곱을 낳기 까지’…‘아이 못 낳는 자’=말씀을 가지지 않았던 이방인들로부터의 교회.
삼상2:5-‘아이 못 낳은 여자가 일곱을 낳고 있다’=말씀을 가지지 않았기에 진리들을 모르는 교회 밖에 있는 이들, 고로 이방인들, 이들에게 모든 것들이 주어질 것이다.
눅23:29-‘아이를 못 낳는 자’, 그리고 ‘출생을 가지지 않은 자궁들’이란 진짜 진리들, 즉 사랑의 선으로부터 있는 진리들을 받지 못했던 이들을 의미한다.
시113:9-‘아이를 못 낳는 집’=진리와 선의 결혼이 없는 곳.
이54:1-(이방인들이) ‘아이 못 낳은 자’라 불리우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주님을 몰랐고, 진리들이 있는 말씀을 가지지도 않았기에 거듭나질 수도 없었기 때문.

아픈 (pain)
슬픔 (grief)

* grieve도 보라
창3:16-‘나는 네 슬픔을 크게 불리겠다…슬픔 안에서 너는 아들들을 낳을 것이다’=전투, 그리고 전투로부터 있는 불안…그리고 교회가 생산하는 진리들.
창5:29-‘여호와께서 저주하신 지면으로부터 우리 손의 아픔(ache)’=그들은 선에 관한 것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인간이 자신으로부터 (이것을 행해야만) 할 때 ‘우리 손의 수고함’이 있다.
창34:7-‘사람들은 슬펐다, 그리고 대단히 분노했다’=그들은 고대인들과 더불어 있는 교회의 진리에 맞서 악 안에 있었다.
창34:25-‘그들이 아퍼하고 있을 때’=탐욕들.
창45:5-‘그것이 너에게 슬픔으로 있지 않게 하라’=심정 또는 의지의 근심.
출3:7-‘나는 그들의 슬픔들을 안다’=얼마나 많이 그들이 거짓들 안에 침수되었었는지에 관하여 예견하심.
출15:14-‘아픔이 불레셋 주민들을 붙잡았다’=확장하는 지배욕을 자포자기 함.
호13:13-개혁을 받지 않으리라는 것이 ‘산고하는 여인의 아픔이 그 사람 위에 있을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애1:18-교회에 있는 모든 진리의 황폐해짐으로부터 애도함이 ‘들어라, 모든 네 백성들아, 그리고 나의 슬픔을 보라’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에)앞서다 (percede)

* ‘판결’이 앞설 때=신앙을 통하여 있는 사랑. 그러나 ‘정의’가 앞설 때=사랑으로부터 있는 신앙

야생 (wild)

마3:4-‘들(야생) 꿀’=선 측면에서 글자적 의미로부터의 즐거움.

야윈 (thin)
엷은 (thin)

창41:3-‘야윈’=선행으로부터 있지 않는 것.
창41:6-‘야윈 일곱 이삭’=유용함이 없는 과학물.
이40:22-‘그분은 하늘들을 얇은 어떤 것 같이 펼치셨다’=마음내키는대로 천국들을 확장하는 전능하심.

야윈 (lean)

창41:19-‘살이 야윈’=선행(charity) 없음으로부터의.

양쪽의 (both)

출22:11-‘양쪽’=각각 그리고 모든 것들에서. 그이유가 내향의 의미에서 ‘양쪽 사이에’는 둘 사이를 뜻하지 않고, 각각 그리고 모든 것들이 의미되기 때문. 그이유가 ‘둘, two’=하나로 결합.

어두운 (obscure)
불명료한 (obscure)

마24:29-‘태양이 어두워질(darken) 것이다’=주님을 사랑함이 사라질 것이다.
이9:19-‘토지가 어두워질 것이다’=교회의 것들이 짙은 어둠에, 또는 거짓들에 있을 것이다.
이9:19-거짓에 의해 교회가 악용됨이 ‘토지가 여호와 체바옫의 분노하심에 어두워질(darken) 것이다.’

어리석은 (foolish)
바보 (fool)
어리석음 (folly)

마7:24,26, 25:2-신중한 처녀들과 어리석은 처녀들=사랑으로부터 신앙 안에 있는 이들, 그리고 사랑 없이 신앙 안에 있는 이들. 신중하고 어리석은 건축자 역시 이와 같다.
창34:7-‘그는 이스라엘에게 어리석음을 저질렀다’=그들의 눈에서 불법적인 것.
마23:19-‘너희는 바보요 소경이다…’
이32:6-‘바보는 어리석음을 말한다…’ 자아 사랑으로부터, 고로 자기의 총명으로부터 거짓들과 악들에 있는 자가 ‘바보’라 불리운다.
시74:18-‘그분의 이름을 모욕한 어리석은 백성’=교리의 진리들에 반대되는 거짓들. 거짓들에 있는 이들이 ‘어리석은 백성’이다.
예17:11-결국 그들은 거짓된 것 외에는 진리에 대한 지식은 가진 것이 없을 것임이 ‘필경 그는 어리석은 자 일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여분의 (superfluous)

출16:18-‘여분의 것을 위하여는 아무 것도 아니다’
출16:23-‘여분의 모든 것은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직하여라’=마치 자아로부터인 것처럼 모든 선과 진리를 향유함.
출26:12-‘천막 커튼의 남아도는 여분의 것’=진행하는 것…

연하쪽의 (younger)

요21:18-‘네가 연하쪽에 있었을 때, 네쓰스로 허리띠를 매고 가고 싶은 어디든지 걷는다’=교회의 처음 때에서 인간들은 선행의 선으로부터 진리들을 받아들였고, 자유로이 행동하였다.
창25:23-‘연상자(형)가 연하자(아우)를 섬길 것이다’=진리의 선이 한동안 진리보다 더 하위에 있을 것이다.
창29:26-‘첫출생(언니)에 앞서 연하자(동생)를 주지 않는 것’=내면의 진리에 애착함은 외면의 진리에 애착함에 앞서 있지 못한다.
창32:10-‘저는 당신이 당신의 종에게 하신 모든 자비들에 훨씬 못미칩니다’=이 상태에서 있는 뿌끄러움(굴종).
창48:14-‘그는 연하쪽이었다’=두 번째 위치에 있는 (진리, 에브라임).
출12:4-‘만일 양떼의 한 마리에 비해 집이 너무 작다면’=만일 특별한 선이 순진을 위해 충분치 않다면.

열정적인 (zealous)
열의 (zeal)

창30:1-‘라헬은 자기 언니에 맞서 열정적이었다’=분노함.
출20:5-‘열정적인 하느님’=거짓과 악이 거기서부터 있다는 것. 그이유가 ‘열정적인 하느님’, 순수 의미에서=신성한 선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 이때 ‘하느님’은 진리를, ‘열정적인’은 선을 서술한다. 그러나 신성한 선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를 받지 않는 이들에 관련될 경우, ‘열정적인 하느님’=거짓과 악이기 때문. 모든 이는 각자의 품질로부터 본다. 이는 그자체 사랑과 열정(passion)이신 주님이 분노하신듯 인간에게 나타나시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이9:7-만군의 여호와의 열의가 이를 수행하신다‘=인류를 구하시려는 열렬한 사랑으로부터 일 것이다.
출34:14-‘그이유가 여호와 그분의 이름은 열정적이심이기 때문, 그리고 열정적인 하느님이 그분이시기 때문’=만일 어떤 다른 것이 예배되어진다면, 신성한 선과 신성한 진리는 물러날 것이다. 그이유 ‘열정적임’은 사랑받고 예배받으려 누구도 고통당함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
계3:19-‘열심을 내라, 그리고 회개하라’=이것은 거짓을 혐오하고 진리에 애착함으로 행해져야 한다는 것.

완전한 (perfect)

요17:23, 마5:48-고로 주님이 그들 안에 있을 때 그들은 ‘완전하다.’ 이들은 천국들 안에서 우리의 아버지가 계시듯 ‘완전한’ 자라 불리는 그들이다.

완화되지 않는 (untempered)

겔13:14-‘완화되지 않은 것 가지고 회칠한 (담)벽’=진리 처럼 나타나게 가공한 것.
겔13:10-‘그들은 완화되지 않은 것 가지고 그것을 회칠했다’=그들은 거짓들을 고안해내고, 그것들을 진리 인냥 만든다.
겔13:10,11-‘그들이 담벽을 지을 때, 그들은 완화되지 않은 것 가지고 회칠한다. 그들에게 말하라. 완화되지 않은 것으로 그것을 회칠한 담벽을 허물 것이다.’=말씀을 글자의미 측면에서 적용하여 원리인냥 진리로서 둔갑한 거짓. ‘완화되지 않은 것’=왜곡되어진 것.

우세하다 (prevail)

창25:23-‘(이)백성이 (저)백성보다 우세할 것이다.’ ‘우세함’=더 높이 있는 것.
창26:16-‘너는 우리들보다 더 우세해졌다’=그들에 있는 신성 때문에.
창30:8-‘나는 이겨냈다’=극복하는 것.
창32:25-‘그는 그를 이기지 못했다’=그는 시험들에서 극복해냈다.
출17:11-‘이스라엘이 우세했다’=전투하는 진리가 이겼다.
출17:11-‘아말렉이 우세했다’=그다음 거짓이 이겼다.
계12:8-‘그리고 이기지 못했다’=그들은 거짓들과 악들에 있음을 알아채렸다, 그리고 아직도 그것들 안에 남아 있었다.

우수함 (excellence))

창49:4-‘너는 우수하지 않을 것이다’=그것은 영광과 능력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출15:7-‘수많은 우수함’=신성에 반대되는 쪽에 그것 자체를 놓는 이런 것들을 제압하는 권능 측면에서의 신성.

원시의 (primitive)

미7:1, 호9:10-‘무화과 나무에 있는 원시인 것(무화과)’. …‘내 혼이 원시의 (열매)를 바라고 있다’…‘원시인 것’=신앙, 또는 옳은 것.
호9:10-무화과 나무의 원시인 것(처음 익은 과일)=유아 안에 있는 영적 선으로부터의 자연적 선.

인내 (patience)

계1:9-‘예수 그리스도를 강한 인내력으로 예상함’=주님의 강림.
계3:10-영적 전투, 이는 시험인데, 주님의 ‘인내함의 단어’라 불리운다. 그이유는 시험 안에서 주님은 인간을 위해 싸우시기 때문.
계13:10-‘여기에 거룩한 사람들의 인내와 신앙이 있다’=주님의 새 교회 사람은 그의 삶과 신앙의 품질 측면을 시험에 의해 조사되어진다는 것. 여기서 ‘인내’에 의해 시험들에서 있는 인내, 그리고 그분의 가르침에 따르는 생활, 그리고 주님을 믿는 신앙에 관련하여 인간의 품질이 조사받음이 의미되어져 있다. 그러므로 말해지는바, ‘여기에 인내와 신앙이 있다’
눅21:16-19-교회의 마지막 때가 취급된다. 그때에 신실한 자가 진리들 때문에 겪을 시험들. ‘네 인내함 안에서 너는 네 혼들을 소유한다’에는 진리의 생명은 거짓들 사이에서도 보존된다가 의미되어져 있다.
눅8:15-‘인내함 안에서 열매를 맺는 것’=비록 거짓들과 악들 사이에서 살고 있다해도 진리들과 선들을 행하는 것. 즉 자신들 안에 거짓들과 악들이 있어 그것들 사이에 사는 셈이지만 그렇다해도 주저앉지 않고 인내하며 진리들과 선들을 행하는 것.
이53:7-시험들 안에서 주님이 인내하심이 ‘그분의 입을 열지 않으심’에서 묘사되어 있다.
계14:12-‘여기에 거룩한 사람들의 인내가 있다’=이 신앙 안에 있지 않고 선행 안에 있는 이들의 박해와 시험들. ‘인내’=시험들, 또한 박해.

있다 (be, being)

창6:13-‘하느님께서 말하셨다’=이것이 그렇게 있었다는 것. 이는 거기서 여호와와 더불어서는 있음 밖에 더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로 분명하다.
* 있음은 있다가 중단되는 것들을 놓고서는 서술될 수 없고, 오로지 결코 있다가 중지 않는 것들로만 서술할 수 있다. 고로 생명 있음과 현재 있음은 주님 속에 있는 것들 뿐이다. 그 이유는 영원한 모든 있음과 생명 있음은 그분 속에 있기 때문.
* 다른 삶에서, 선행(charity)이 참 있음이요 인간의 생명이다. 참 있음과 생명은 여호와이시다. 그러므로 인간이 있고 살아 있기 전에서는 여호와라는 단어는 이 사람과 더불어서는 사용되지 않고 하느님이 사용된다.
* 사랑 자체가 여호와이시다. 나는 있다, 또는 있다는 사랑 외 다른 것으로는 단언되어질 수 없다. 모든 생명의 있음, 즉 생명 자체는 이 사랑으로부터이다, 그 이유는 생명은 사랑 안에, 사랑 자체 속에 있기 때문. 그리고 여호와만이 생명의 있음, 또는 생명 자체이기에, 그분으로부터 각각 그리고 모든 것은 자기들의 있음과 자기들의 생명을 가진다…천사들은 자신들 스스로부터서는 살지 못한다는 것, 오로지 주님으로부터서만 살 수 있다는 것을 명료하게 지각한다, 그 이유는 자기들이 주님의 생명의 있음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분의 사랑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창17:3-사랑, 또는 선이 취급되는 곳에서는 ‘여호와’가 언급되고, 진리, 또는 신앙이 취급되는 대목에서는 ‘하느님’이 언급되는데, 이런 이유는 주님의 있음 자체는 사랑 속에 있고, 이로부터 파생된 있음은 신앙 속에 있기 때문에서 이다.
* 이름 여호와에 있는 철자 H는 신성인 것을 포함하는 유일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있다, 또는 있음을 뜻한다.
* 있음 자체, 또는 여호와는 자비 외 더 다른 것은 없다…
창20:15-‘거주하는 것’=사는 것, 여기서의 경우 있는 것, 그 이유가 이 대목이 주님에 관련된 것을 내포하기 때문.
* 주님은 선 자체, 그리고 사랑 자체, 고로 선의 있음 자체, 그리고 천사들에 있는 사랑의 있음 자체, 그리고 그들의 지혜와 총명의 있음 자체이시다.
창21:1-‘여호와’=신성의 천적 평면, 즉 신성한 선, 또는 사랑과 자비의 있음, 선 자체이다.
창21:2-‘(사라는) 임신하여 낳았다’=(신성한 합리성이)있었고 명백히 나타나졌다는 것.
* 있음과 명백히 나타냄(Being and Manifesting)은 주님을 설명하는데 있어 주요한 단어이다. 그 이유가 그분만이 있으시고 명백히 나타내실 수 있으시기 때문에서이다. 있음과 명백히 나타냄은 얼핏 생각하기에는 같은 것으로 여길 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다. 각각 그리고 모든 인물은 자기 있음을 임신으로부터 가진다, 그리고 그의 명백히 나타냄은 출생으로부터이다. 그러므로 임신이 출생에 앞서 있듯, 있음은 명백히 나타냄에 앞서 있다. 혼은 인간의 참 있음이다, 그리고 감각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은 그의 명백히 나타남이다, 그 이유가 전자는 후자 안에서 명백히 나타나기 때문. 천적인 사랑과 영적인 사랑은 거듭나지고 있는 사람의 참 존재이다, 그리고 합리성과 감각적인 것에 천적, 영적 사랑이 불어넣어질 때, 이것은 거듭나는 자의 명백히 나타남이다. 우주에 있는 각각 그리고 모든 것은 이와 같은바, 있기 위하여 임신을, 명백히 나타냄을 위하여 출생을 거치지 않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있을 수 없고 있지도 않다…모든 결과는 그것의 원인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모든 원인은 그것 고유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목적은 원인의 있음이다, 그리고 원인은 목적의 명백히 나타냄이다. 원인이 결과의 있음이고, 결과는 원인의 명백히 나타남이다.
창21:3-‘(아이를) 낳는 것’=명백히 나타내는 것, 그리고 출생이 임신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출생, 또는 명백히 나타냄은 신성의 영적 평면이다, 그리고 임신, 또는 있음은 신성의 천적 평면이다, 이 구절에서 합일인 것, ‘낳는 것’=있음과 명백히 나타남 둘 모두이다.
창24:22-‘그들이 마시기를 다했을 때 (마시기를 그만두었을 때)가 되자’, 이 구절에서의 두 표현 방법, 다했을 때(had done) 또는 그만두었을 때(they left off), 그리고 …가 되자(it came to pass)는 연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앞서 있는 행동의 목적을 포함하고, 뒤를 잇는 행동의 시작을 포함한다. 고로 여기서는 인정함이다.
창24:31-주님의 참 있음 자체는 여호와이셨다, 또는 신성한 선 자체이셨다. 그리고 이로부터 파생된 주님의 참있음 자체는 여호와로부터이였다, 또는 신성한 진리 자체이였다.
창28:13-‘여호와’=주님의 신성한 있음 자체.
요1:1-4,14-‘말씀’=신성한 진리, 이는 본질에서 무한한 있음으로부터 있는 무한히 명백하게 나타냄이다.
창39:10-누군가와 더불어 ‘있는 것’=더 가까웁게 결합하는 것, 또는 하나되는 것. ‘있는 것’=하나되는 것인 이유는 사물의 참 있음은 선이기 때문, 그리고 모든 선은 사랑으로부터 있기 때문, 이것은 영적 결합이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가장 높은 의미에서 주님은 있음, 또는 여호와라 불리우시는데, 그 이유는 사랑으로부터 있는 모든 선은 그분으로부터 있기 때문. 만일 사랑과 선행이 교회나 천국의 있음이었다면 이는 천국에서나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 이유가 결합이 없다면, 합일이 없다면, 있음도 없기 때문.
창42:15-‘하나는 있지 않다’=신성의 영적 평면은 나타나지 않는다…‘있지 않다’=나타나지 않는다는 것. 그 이유가 그가 그들과 함께 있었으나,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
창43:8, 행17:28-‘하느님 안에서 우리는 살고 움직이고 우리의 있음을 가진다’ ‘움직인다’에 의해 삶의 바깥쪽이, ‘산다’에 의해 삶의 안쪽인 것이. ‘우리의 있음을 가진다’에 의해 가장 깊은 것이 뜻해진다.
출3:14-‘나는 있는 나이다’=우주에 있는 만물에 관한 있음과 명백히 나타냄. ‘나는 있다’=있음, 그분만이 있음인바, 특정 이름을 갖도록 하고 있다. ‘나는 있다’가 두 번 언급된 이유는 한번의 언급은 있음을, 두 번의 언급은 명백히 나타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고로 두 언급 중 하나는 신성 자체, ‘아버지’라 불리는 신성을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아들’이라 불리는 신성한 인간을 의미한다. 그이유가 신성한 인간은 신성 자체로부터 명백히 나타냄이 있기 때문. 주님이 인간 측면 까지 신성한 있음, 여호와가 되셨을 때, 주님의 신성한 인간으로부터 진행되는 신성한 진리는 신성한 있음으로부터 있는 명백히 나타난 신성이다. 이로부터 분명한바, 신성한 있음은 명백히 나타냄을 통하지 않고는 누구와도 그 자체 교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출3:14-‘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냈다’=신성의 명백히 나타남은 교회 안에 있을 것이다. ‘있는 나’=신성 자체, 그리고 신성한 인간.
출8:18-‘나 여호와’에 의해 나 만이 있는 나, 나 만이 하느님이다를 의미하고 있다.
출15:2-‘야’는 여호와로부터이다, 그리고 ‘야’라 불리우는 이유는 있음이 아닌 있음으로부터의 명백히 나타남이기 때문. 그이유가 신성한 진리는 명백히 나타남, 그리고 신성한 선은 있음이기 때문.
출20:2-주님은 신성한 있음인 신성한 선으로부터 ‘여호와’라 불리우신다, 그리고 신성의 명백히 나타남인 신성한 진리로부터 ‘하느님’이라 불리우신다.
출20:21-그러므로 영원한 것은 있는다, 그 이유가 이것은 끝이 없기 때문, 이것은 신성으로부터 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일시적인 것은 있지 않는다, 그 이유는 유한한 있음이기 때문, 그것은 더 이상은 아니다. 이로부터 분명한바, 영적 의미에서 ‘복있음’은 신성으로부터 있음을 자체 안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 인간의 생명의 있음은 그의 의지이다.
출23:17-‘여호와’에 의해 신성한 있음이 의미되어진다, 그리고 ‘주’에 의해 있음으로부터의 신성의 명백한 나타남이 의미되어진다. 그 결과 인간과 더불은 있음은 선이고, 그 선으로부터의 명백히 나타남은 진리이다.
* 인간의 생명의 참 있음은 뜻하는 것, 이 뜻함으로부터 행동하는 것이다.
* 선은 진리의 있음이고, 진리는 선의 명백한 나타남이다. 그러므로 진리 없는 선은 명백한 나타남이 없고, 선 없는 진리는 있음이 없는 것이다.
계1:4-‘있으시고, 그리고 있으셨고, 그리고 오시는 그분으로부터’=영원하시고 무한하시며, 그리고 여호와이신 주님으로부터.
계1:4-이름 ‘여호와’는 있음을, 그리고 있으신 그분, 또는 있음 자체이신 그분을 뜻한다. 이것은 또한 있으셨고 오시는 그분이시다. 그이유가 과거와 미래의 것들이 그분의 현존 안에 있기 때문.
계16:5-‘계시고, 계셨던’=말씀 측면에서의 주님. 그분은 말씀이시고 말씀이셨다는 것은 요1:1,2,14을 보라.
계17:8-‘네가 본 짐승은 있었고, 그리고 있지 않다’=그들과 더불어 말씀은 거룩하다고 인정되었으나 그럼에도 실지로는 인정되지 않고 있다.
계17:9-‘있었고 있지 않은, 그럼에도 있는 짐승’에 의해 말씀은 거절되었으나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의미되어지고 있다.
계1:4-‘있으시고, 그리고 있으셨고, 그리고 오시는 그분으로부터’=영원으로부터 영원까지 천국과 교회의 모든 것의 모든 것이신 그분으로부터.
계16장-‘있으시고, 있으셨고, 그리고 오시는 그분으로부터’=무한하신 분과 영원하신 분, 그 이유가 ‘있으심’과 ‘있으셨음’은 동일하게 여호와이다. 있음, 주님을 서술할 경우, 자체 안에 있는 자체로부터의 있음이다. 그리고 명백히 나타남, 그분을 서술할 경우, 이 또한 자체 안에서 자체로부터의 명백히 나타남이다. 그리고 관계적 의미에서 명백히 나타남은 천국과 교회의 모든 것들에 있는 있음, 이는 신성한 진리를 통하여 결과되어진다.. 이 있음이 영원하신 분에 의해 뜻해진다. 있음 측면에서의 무한하신 분은 여호와에서의 있으심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명백히 나타남 측면에서의 무한하신 분은 여호와에서의 있으셨음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영원히 있음인 무한하게 명백히 나타남은 진행되는 신성, 이로부터 천국과 천국의 모든 것이 있는다. 신성의 명백한 나타남은 신성한 있음이기도 하다. 이것은 모든 것의 모든 것이신 천국에 관련되는 명백히 나타남이라 불리워진다.
계17:9-‘있었고, 있지 않은…짐승’=시작에서 말씀이 교회에서 받아졌고 읽혀졌다, 그리고 그 후에 사람들로부터 제거되고 읽혀지지 아니했다…
계17:8-‘그럼에도 있는’=여전히 존재한다, 그 이유는 그것은 신성이기 때문, 단지 모독자에 의해 거절되었을 뿐이기 때문.
* 있으신 그분, 그리고 명백히 나타내진 그분으로부터 외에 명백히 나타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분이 하느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있음과 명백히 나타남이라 불리신다. ‘야, Jah’는 있음으로부터, 그리고 ‘여호와’는 있음과 명백히 나타남 그 자체로부터이다.
* 분리되어질 수 없는 두 가지 것은 있음과 명백히 나타남이다. 있음은 명백히 나타나지 않으면 어떤 것도 아니다. 그리고 있음은 명백히 나타남을 수단으로 어떤 것이 되어간다.
* 주님 안에서 사랑은 있음이다. 그리고 지혜는 명백히 나타남이다.

자디 잔 (minute)

출16:14-‘자디 잔 동그란 것’=처음 형성됨에 있는 진리로부터의 선. ‘자다 잔’은 진리를 서술하고 있다.

자만 (pride)
거만한 (proud)

이2:11,12-‘인간의 교만한 눈들이 겸손해질 것…그이유가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거만과 으스대는 모든 것 위에 있기 때문….’은 자아를 사랑함을 취급하고 있다.
습2:10-‘자만’=자아 사랑.
겔16:49-‘자만’=자아를 사랑함.
슥10:11-‘앗수르의 자만이 내던져질 것이다’=그들은 자신의 지혜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출18:11-‘그들은 그들 위에서 거만해 있어왔다’=교인들 위에 군림하려 애쓰는 힘.
이28:1-총명을 자랑으로 여김, 또는 학식 많음을 자랑함(glory)이 ‘교만의 왕관’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겔33:28-그들이 진리들이라고 부르는 거짓들로부터 마음이 의기양양하게 떠벌림이 ‘강한 교만’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이2:17-자신의 총명과 지식으로부터 있는 교만의 파멸이 ‘인간의 자만은 파괴될 것이다’에 의해 뜻해진다
시124:5-‘자만의 물들’=자아 사랑을 지지하는 거짓들, 그리고 그것을 확증하는 거짓들, 자신의 총명으로부터 있는 교리로부터의 거짓들.

자비 (mercy)
불쌍히 여김 (compassion)

창19:19-‘당신께서는 큰 당신의 자비를 만드셨다’=선에 애착함으로부터의 창피해 함과 비슷한 것.
시147:11-‘그분의 자비를 기다리는 이들’=선을 사랑함으로부터 예배하는 이들.
창24:12-‘그리고 자비를 행하시기를’=사랑의 유입.
창24:14-‘이 안에서 나는 당신께서 제 주인에게 자비를 베푸셨음을 압니다’=신성으로부터의 사랑으로부터 결혼이 있다. ‘자비’=신성으로부터의 사랑.
창24:27-‘당신의 자비를 단념 않으시는 분’=사랑의 유입을 지각함. ‘자비’=사랑.
창24:49-‘지금 만일 당신께서 내 주에게 자비와 진리를 행하고 있으시다면’=두 자질, 즉 의지와 이해함으로부터 그들의 동의함을 조사함. ‘자비’=선, 또는 사랑 속에 있는 것, ‘진리’=진리, 또는 신앙 속에 있는 것.
창32:10-‘저는 당신이 당신의 종에게 베푼 모든 진리와 모든 자비들에 훨씬 못미침니다’=선 측면에서, 진리 측면에서, 이 상태에 있는 부끄러이 여김.
창39:21-‘그분께서는 자비를 그에게 기울어지게 하셨다’=각각의 것 안에 있는 신성으로부터의 사랑. ‘자비’, 최고 의미에서=신성의 사랑.
창40:14-‘청컨대 나에게 자비를 행하시기를’=선행을 받음. ‘자비’=사랑, 여기서는 이웃을 향한 사랑. 또는 선행.
창43:14-‘(전능하신 하느님이) 사람 앞에서 네게 자비를 주시어…’=영적 진리가 너를 자비로웁게 받을 런지 모른다는 것.
창47:29-‘그리고 나에게 자비와 진리를 행하라’=부끄러이 여김. ‘자비를 행하는 것’=사랑의 선.
출15:13-‘당신의 자비 안에서 당신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이끄셨다’=악들을 끊은 이들에게 신성의 유입이 있다, 하여 선을 받았다. ‘자비에서 이끄는 것’=신성을 받는 것.
출20:6-‘그리고 수많은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심’=그들과 더불은 선과 진리는 영원함. ‘자비’=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가 유입됨, 그리고 거듭남을 통하여 선물되어지는 파생되는 영적 생명. 그이유가 이와 같은 것들은 자비로부터 주님에 의해 주어진 영원한 생명과 행복 속에 있기 때문.
시112:5-‘자비와 빌려줌을 가지는 것’=진짜 선행 안에 있는 이들의 상태가 묘사되어 있다.
호2:19-‘자비와 불쌍히 여김 안에서 약혼시키는 것’=선 안에 있는 이들을 향한 사랑으로부터, 그리고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을 향한 사랑 안에서. 주님의 ‘자비’는 결함이 있는 이들, 그럼에도 선을 갈망하는 이들을 향하여, 그리고 주님의 ‘불쌍히 여김’은 무지함에 있는 이들, 그럼에도 진리를 갈망하는 이들을 향해 서술되고 있다.
출28:27-‘내가 자비하기 때문에’=그분으로부터 자비로부터의 모든 원조받음이 있다는 것.
출33:19-‘나는 내가 은총을 행한 자에게 은총을 행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자비를 행한 자에게 자비를 행할 것이다’=신성의 진리와 선은 받는 이들에게 밝히 알려질 것이다. ‘자비를 행하는 것’=천적인 선과 진리를 선물 받는 것. 여기서는 그것을 밝히 알려주시는 것.
출34:6-‘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신’=그분으로부터 모든 선이 있다는 것.
시69:13-들으심괴 사랑으로부터 도우심이 ‘당신의 자비의 위대함을 위하여’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민6:24,25-악들과 거짓들로부터 보호하심, 그렇지 않으면 유입을 제거하실 것임이 ‘여호와는 너를 지켜주고, 네 위에 자비를 베푸시기를 원하신다’에 뜻하여 있다.
민6:25-‘얼굴들을 비추기를, 그리고 자비를 가지기를’=신성의 진리로 예증하는 것, 그리고 총명과 지혜를 선물하는 것. ‘자비를 가지는 것’. 이것이 얼굴들을 비추는 것에 관하여 말해지는바, 진리를 서술하게 된다.
애4:10-‘자비한 여인들’에 의해 마치 진리에 애착하는듯 거짓에 애착함이 의미되어져 있다.
시89:28-‘나의 자비를 나는 그를 위하여 영원히 떼어 남겨둘 것이다’=그분으로부터의 신성의 선은 영원함.

자유 (free)
자유로이 (freely)

요8:32,36-인간이 거듭나질 때, 그는 주님에 의해 선물된 자유로부터 자신을 밀어부친다…그리하여 천국적인 자아를 받는다. 이 자아는 이후 주님에 의해 점차적으로 완전해진다. 그리고 더욱더 자유해진다. 그러므로해서 이 자유는 선에 애착함이 되어가고, 이 선으로부터 파생된 진리에 애착함이 되어가고 그것으로부터 기쁨을 가진다. 이 기쁨과 애착 안에서 그는 천사들의 행복을 누린다. 이것이 요한복음에서 주님 자신이 말하시는 자유함이다.
요8:34-이 자유가 무엇인지는 양심이 없는 이들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이유가 그들은 자유가 거짓된 것을 생각하고 말하고, 악한 것을 뜻하고 행동하는 면허장이나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이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정반대이다. 즉 ‘죄를 범하는 자는 누구든지 죄의 종이다.’ 그들은 이 노예적 자유를 자기들과 더불어 있는 지옥의 영들로부터 받는다; 그리고 그들이 이 영들의 삶에 있고, 또한 그들의 사랑들과 탐욕들 안에 빠져 있는 동안, 불순하고 배설물 같은 기쁨에 의해 부추켜지면서 이를 수단으로 연발적으로 그들을 끌고 가버리는데, 이들은 이것이 자유이다고 상상한다; 이것은 지옥의 자유이다. 이 자유와 천국의 자유 사이의 차이는 전자는 죽음 속에 있고 그들을 지옥 아래로 질질끌고 간다; 이에 반해 후자는 생명 속에 있고 그것들을 천국으로 승강되게 한다.
출21:2-‘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지불함 없이 그는 자유로이 나갈 것이다’=그의 일들 없이 확증한 진리의 상태.
출21:5-‘나는 자유로이 나가지 않을 것이다’=순종의 기쁨; (그 이유가) ‘자유로이 나감’=전투 후의 상태, 이는 진리가 확증되고 이식되었을 뿐의 상태이다.
출21:26-‘그는 그의 눈을 위하여 자유로이 가게 해야 할 것이다’=그는 더 이상 내적 측면을 섬길 수 없다. ‘가게 내버려두는 것’=섬김을 면제받는 것.
요8:31-36-속박됨은 그 반대 측면이 상대적으로 있지 않으면 속박되어 있다 말할 수 없다; 그 이유가 선을 사랑함 속에 있는 애착으로부터 어떤 것을 행하는 자는 자유로부터 행동한다; 그러나 악을 사랑함 속에 있는 애착으로부터 어떤 것을 행하는 자는 자유로부터 행동하는듯 자신에게 나타나나 실상 자유로부터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그가 지옥으로부터 있는 탐욕으로부터 행동하기 때문이다. 선에 애착함에 있는 자 만이 자유하다, 그 이유는 그가 주님에 의해 인도되기 때문. 이를 주님께서 이렇게 가르치신다. ‘만일 너희가 내 말씀 안에 머문다면, 너희는 참으로 내 제자일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참 진리를 알 것이고, 참 진리가 너를 자유하게 하리라. 죄를 범하는 모든 이는 죄의 종이다. 만일 아들이 너를 자유하게 만든다면, 너희는 참으로 자유해 있을 것이다.
요21:18-‘네가 원하는 데로 걷는 것’=자유한 가운데 사는 것. 그 이유가 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 이웃을 향한 선행으로부터 신앙 안에 있는 사람은 자유함 안에서 살고 자유함으로부터 행동하기 때문, 그들은 주님에 의해 인도되기 때문.
출25:2-‘자기 심정이 기꺼이 움직여진 모든 이 각각의…’=모든 것들은 사랑으로부터 이다는 것, 고로 자유함으로부터 이다는 것…이것이 사랑으로부터임을 명시하는 이유는 모든 자유함은 사랑 속에 있기 때문에서이다; 그이유가 인간이 사랑으로부터 행하는 것은 그가 자유로부터 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막4:26-28-어떤 외적 방해 요소가 없을 경우, 주님께서는 생각함에서, 행동함에서 인간을 자유함에 있게 관리해주신다. 그러면서 자유함을 통하여 그분은 인간으로 악에서 멀어지게, 선 쪽으로는 가까워지게 구부려주신다. 이 구부려주심은 너무나 부드럽고 침묵적이어서 당사자인 인간은 자신이 그렇게 하는듯 여겨질뿐 주님이 자기를 위해 하시는 것인줄은 미처 눈치채지도 못한다. 이리하여 주님은 인간의 참 생명 안으로 선을 씨뿌리시고 뿌리내리게 하신다.
출21:6, 신15:17-‘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종들’에 의해 진리 안에 있고 선 안에는 있지 않은 이들. 그리고 ‘자유한 자’에 의해 선 안에 있고, 이로부터 진리들 안에도 있는 자가 의미되고 있다.

잔인한 (cruel)

이13:9-‘여호와의 잔인한 날’=마지막 심판.
신32:33-‘그들의 포도주는 용들의 독, 독사의 잔인한 담즙(gall)이라 불리운다’=야곱의 후손들 사이에 있는 교회로부터의 진리는 내부에 악들과 거짓들을 포함하는 외적인 것 뿐이었다.
예6:23-그들에게는 진리를 사랑함은 조금도 없었고 거짓을 사랑함만이 있었다는 것 ‘이 백성은 ’잔인하다, 그리고 자비를 가지고 있지 않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

장대함 (mangnificence)

삼상4:8-‘누가 이런 장대한 신들로부터 우리를 구할 것인가?’
겔17:8-‘장대한 포도나무’=내적 교회.
겔17:23-‘장대한 삼목’=영적 교회.
시145:5-네 영광의 장대한 영예‘=신성의 선이 신성의 진리에 하나되었다.
이24:14-‘여호와의 장대함 때문에…’
이2:12-장대하고 높은 모든 이‘=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 안에 있는 이들.
이33:21-‘장대한 배(ship)’=자아로부터의 지혜, 그이유는 이로부터 인간이 영화로워지고 자랑해대기 때문.
시93:4-‘많은 장려한 물들의 음성들’=신성의 진리들.
슥11:3-‘잘려함’=교회의 선.
겔24:25-거짓들과 악들에 맞선 신성한 진리의 힘으로부터…‘여호와의 강함의 장대함’이라 불리운다.

정사각 (foursqure)

* (새 예루살렘)의 외적 선, 이것은 올바른 것인데, 이것이 ‘정사각’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 ‘정사각’ 또는 ‘사각’은 완전인 것을 의미하고 있다.
* (지혜의 성전) 정사각이였다.
계21:6-‘그 성은 정사각형으로 놓여 있다’=그것 안에 있는 정의. 도성이 정사각으로 보여진 이유, ‘정사각’ 또는 ‘사각’=올바른(just) 것; ‘3각’=곧은(right) 것; 이 모든 것은 자연적 수준인 최말단 등차에 있다. ‘정4각’, 또는 ‘4각’=올바른 것, 그이유는 그것이 4 측면들을 가지고 있고, 4측면들이 4방위를 응시하기 때문이다. 4방위를 균등하게 응시하는 것은 올바름으로부터 모든 것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도성이 그것의 길이와 넓이가 균등하도록 정4각으로 놓였다; 그리고 ‘길’에 의해 그 교회의 선이 의미되어지고, ‘넓이’에 의해서는 그 교회의 진리가 의미되어진다; 그리고 선과 진리가 동등할 때, 비로소 올바른 것이 존재한다. ‘4각’이 지닌 위와 같은 의미 때문에 우리는 어떤 이를 두고 공명정대한 사람, square man 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 사람은 때로 올바렀다가 때로 올바르지 아니했다 하지 않는다. ‘4각’=올바른 것, 태워바침의 제단…그리고 향 제단은 4각이었다…그리고 심판의 가슴받이 판은 이중으로 된 4각이었다.

정사각형 (square)

* fouesquare도 보라.
출27:1=‘제단은 정사각일 것이다’=정의인 것.
출27:1-다른 삶에서, 외적 인간의 선들은 정의라 불리고 정사각형으로 표현되어져 있다. 이로부터 ‘정사각인 것’은 의로운 것을 의미한다.
출28:16-‘그것은 정사각으로 두겹일 것이다’=완전인 것. 그이유가 ‘정사각’=의로운 것, 또한 완전인 것이기 때문.
출30:2-‘그것은 정사각일 것이다’=완전인 것. 그이유가 ‘정사각’=의로운 것, 또한 완전인 것.

좁은 (strait)
좁은 (narrow)
괴롭히다 (straiten)

신28:53-‘모든 문들 안에서 괴로워하는 것’=선과 진리로의 모든 접근이 절단되는 것.
창32:7-‘야곱은 극도로 두려웠다, 그리고 그는 괴로움을 가졌다’=변화가 있어질 때 야기되는 상태; (그이유가) 두려움과 괴로움은 시험을 당할 때의 첫 번째에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 그리고 그것은 상태가 바뀔 때 먼저 있는다.
창35:3-‘내 곤경의 날에 나에게 대답하셨던 분’=선 보다 진리를 선호했을 때의 상태.
창42:21-‘우리가 그의 혼의 괴로움을 보았을 때’=내적인 것이 외적인 것으로부터 떼어졌을 때의 상태.
출6:9-‘영의 괴로움 때문에’=자포자기에 가까운 상태 때문에.
슥10:11-‘괴로움의 바다를 통하여 가는 것’=시험들.
예6:24-‘괴로움이 우리를 붙잡고 있다‘=진리들이 침입을 당해 악과 거짓에 감염된 것 때문에 슬퍼함.
눅21:25-‘땅에서 나라들의 괴로움…’=영계에 있는 이들 위에.
이8:22-‘괴로움과 짙은 어둠을 보라’=(선들과 진리들이)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단지 거짓들만이 발견된다.
이30:20-시험들 자체가 ‘괴로움의 빵, 그리고 억압의 물’에 의해 의미된다. ‘괴로움의 빵’=사랑의 선 측면에서 있는 시험들. ‘괴로움’, ‘억압’=시험의 상태들.
이30:6-‘괴로움과 고통의 토지’=선행의 선도, 신앙의 진리도 없는 교회.
단9:25-‘그러나 시대의 괴로움 안에서’=가혹하게 그리고 곤경과 더불어, 그 이유는 영적 진리에 대한 지각이 거의 없는 나라들과 더불어 이기 때문.
눅21:23-그때에 교회 안에는 악이 득세하가 때문에 선이 거절됨이 ‘토지 위에 큰 괴로움이 있을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겔4:3-이런 진리, 철 같고, 닫아 걸고 어떤 진짜 진리도 용인하지 않기 때문에 말해진다, ‘그것은 포위 공격을 위해서 일지 모른다, 그리고 너는 그것을 괴롭힐 것이다’
이37:3-이것이 심정과 지성의 슬픔였다는 것이 ‘괴로움의 날’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주조된 (molten)

호13:2-‘은으로 주조한 것’=왜곡된 선. (=진리처럼 나타나는 거짓).
이30:22-‘은으로 새긴 것의 덮개와 금으로 주조한 것의 덮개’=진리들과 선들로서 인정되고 예배되는 악으로부터와 거짓으로부터의 과학물들.
이48:5-‘우상’, ‘새긴 것’, ‘주조한 것’=자신의 총명으로부터 있는 교리적인 것들.
예10:14,15-‘새긴 것’, ‘주조한 것’=자신의 총명으로부터의 교리적인 것, 이것은 말씀의 외적 의미, 또는 외적 형체인데, 진리 같이 나타난다. 그러나 내적 형체에서는 거짓들이다. 고로 인간은 ‘지식으로부터 어리석다’고 말해지고, 주조된 것은 ‘거짓말’이라고 말해지고, ‘그것들에는 숨이 없다’라고 말해진다.
출32:4-‘그는 그것을 주조하여 송아지로 만들었다’=이 나라의 사랑들로부터의 즐거움에 따라…‘주조한 것’=예배가 외적 사랑들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
이44:10-‘주조하여 만든 것’=자신의 사랑으로부터의 교리.
호13:2-거짓으로부터의 악과 악으로부터의 거짓이 들어 있는 자신의 총명으로부터 있는 교리적인 것들이 ‘은으로 주조한 것’, 그리고 ‘우상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그들의 은’=자신의 총명으로부터 있는 것. ‘장인의 일’=이 총명; 그러므로 그들의 총명 안에서 그들은 자신들에게 우상을 만들되 통째로 장인의 일로 만들었다’라고 말해진다. 이런 교리적인 것들은 거짓인바 사라진다는 것이 ‘그들은 굴뚝의 연기 같이 날아가버릴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예10:14-이 거짓이 ‘그의 주조한 것은 거짓이다’에 의해 뜻해져 있다.
이30:1-‘주조한 것, 그러나 내 영으로부터서가 아니다’=지옥적 거짓으로부터의 예배, 그리고 신성의 진리로부터가 아니다.
호13:2-‘주조한 것’, ‘우상’에 의해 자신의 총명으로부터 있는 교리에 따른 예배가 의미된다.

지옥 (hell)

요2:2-‘지옥’=더 낮은 땅.
민16:33-‘땅이 그들을 삼켰다’=저주됨과 지옥.
계1:18-‘나는 지옥의 열쇠와 죽음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그분 만이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
계20:13-‘죽음과 지옥이 그것들 안에 있던 죽은 자를 포기했다’=심정에서 불경한 교인들, 이들은 그 자체로 사탄들과 악마들이었는바 모두 심판으로 불리웠다.
계20:14-‘죽음과 지옥은 불 못 안으로 내던져졌다’=심정에서 불경한 자, 그 자체로 악마들과 사탄들인바 이들은 악을 사랑하고 이 악에 일치하는 거짓을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 있는 지옥 안으로 내던져졌다.
시149:8, 암9:2-하느님은 천국에서 같이 지옥에서도 전능하심이 ‘만일 내가 지옥에 내 침대를 만든다면, 보라 당신은 거기에 계신다’, ‘만일 그들이 지옥 안으로 파고든다면, 거기로부터 내 손이 그들을 받을 것이다’로부터도 분명해진다.

충실한 (faithful)

계2:10-‘너는 죽기 까지 충실하라’=거짓들이 제거될 때까지 참 진리들을 받고 인정함.
계19:11-‘충실하고 참된’=신성의 선과 신성의 진리. ‘충실한’, 인간이 취급될 때=세째 천국에 있는 자, 고로 천적 선 안에 있는 자.
계1:5-‘그분은 충실한 증인이다’=그분으로부터 천국 안에 모든 진리가 있다.
계17:14-‘충실한 자’=선행으로부터의 신앙 안에 있는 이들. 선행의 신앙 안에 있는 첫째 천국의 천사들이 ‘충실하다’고 불리운다.
계21:5-‘이 말들은 참되고 충실하다’=그것들은 믿어져야 한다는 것, 그 이유는 주님 자신이 그것을 증거하셨고 말하셨기 때문.

치명적인 (mortal)

이5:13-‘(그들의 영광은) 가믐으로 치명적이다’=천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이 궁핍하다.
창34:30-‘나는 숫자에서 치명적이다.’ ‘숫자에서 치명적이다’=매우 적다.

치욕 (reproach)
불명예 (ignominy)

창30:23-‘하느님께서 내 치욕을 거두어가셨다’=…라헬은 더 이상 불임이 아니었다, 그리고 고로 ‘죽지’ 않았다.
나3:5-‘나는 왕국들에게 네 치욕을 보일 것이다’=지옥의 사랑들…
이30:3-‘이집트의 그늘을 신뢰함이 치욕(disgrace)으로 있을 것이다’=악들에 저항하는 능력이 없다…‘수치(shame), 치욕(disgrace)’=악들 때문에 수치스러운 것으로 간주될 때 그들의 상태.
합2:16-‘불명예스러운 토해냄’이 왜곡된 진리를 서술하고 있다.
습2:10-‘여호와의 백성에 불명예한 것’=진리들 위에 악을 입히는 것.
창24:14-‘이것은 우리에게 치욕이다’=이것은 그들에게 반대되어 있다.
예42:18-‘너희는 저주, 놀람, 통렬한 비난, 치욕 등을 위해 있을 것이다’=지옥에 떨어져야 하는 모든 것들.

침묵 (silence)

계8:1-‘천국 안에 침묵이…’=자기들이 신앙 안에 있다고 말하는 이들을 보고 놀람.
시28:1-‘나로부터 침묵하지 마소서’라고 두 번 말해진다. 그이유는 하나는 신성의 선에, 다른 하나는 신성의 진리에 관계되고 있다.
이47:5-‘침묵 안에, 침묵 안쪽에 앉으라’=거짓들 안에, 그러므로 지옥에 떨어짐 안에.

침수 (submersion)

출15:4-‘수프 바다 안에 침수되는 것’=그들은 악으로부터의 거짓들을 가지고 자신들을 닫아걸었다.
이43:2-‘네가 강들을 통과할 때, 그것들이 너희를 압도하지 않을 것이다’=진리들에 맞서 거짓들로부터 추론함이 부패하게 못할 것이다.
시124:4-‘그다음 물들이 우리들을 덮쳤다’=거짓들, 인간이 진리들과 진리들에 따른 삶을 통하여 가지는 영적 생명의 파멸.
시69:14-‘내가 가라앉지 않도록 수렁으로부터 건져주소서’=내가 멸하지 않도록 거짓의 악으로부터…

큰 (great)
위대한 (great)

창12:2-‘나는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것이다’=영광.
창18:18-‘크고 수많은 나라’=선과 파생되는 진리. ‘큰’은 선을 서술한다.
창19:11-‘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에 까지’=세세한 것에서와 전체적인 것에서.
창21:8-(신성과 주님의 인간의) 합일이 취급되기 때문에, ‘큰 축제’라 불리운다.
창25:23-‘더 큰 것이 더 작은 것을 섬길 것이다’=이 선은 한동안 진리보다 더 낮은 위치에 있을 것이다.
창39:9-‘그는 이 집에서 내 위에 있지는 않다’=이 선은 시간에서 앞서나 상태에서는 아니다.
창41:40-‘나의 왕좌만이 네 위에 있을 것이다’=그것은 마치 자연 평면으로부터 이었던 것처럼 여전히 나타날 것이다.
창48:19-‘그는 위대해질 것이다’=그것은 불어날 것이다.
창50:20-여기서, 선으로부터의 진리(가 의미되어진다.) 그이유가 선으로부터 있는 진리는 진리로부터 있는 선 보다 위에 있기 때문.
출3:3-‘위대한 광경(vision)’이라 불리운다. 그이유는 최고 의미에서 떨기나무에 있는 불꽃에 의해 신성의 진리가 주님의 인간 안에서 신성의 선에 하나됨을 의미하기 때문.
출34:6-‘선함에서 위대하심과 진리’=그분은 선 자체요 진리 자체이시다는 것.
계11:18-‘작고 큰’에 의해 주님을 경외하는 수준에서 덜한 자와 더한 자들.
계12:3-용이 ‘크다’라고 불리는 이유는 개혁 교파의 모든 교회들이 하느님을 세 인물들(three Persons)로 구별하고, 구원해주는 것은 믿음 뿐(faith alone)…
계13:5-‘큰 것들과 성령 모독을 말하는 입이 주어졌다’=악들과 거짓들을 가르치는 것…‘큰’은 선을 서술하나 반대 의미에서는 악을 서술한다.
계13:16-‘작고 큰’은 여기서의 경우 각 사람의 칭호의 수준이 크든 작든, 고로 각 사람의 사회적 위치가 무엇이든을 뜻한다.
계15:1-‘크고 굉장한’=사랑과 신앙에 관하여…‘크고’는 애착과 사랑으로부터 있는 것들을 서술한다.
계19:5-‘작고 큰’=신앙의 진리들로부터와 사랑의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이 덜한 자와 더한 자들.
계19:17-‘큰 음성으로 소리치는 것’=신성의 열정으로부터.
계20:11-왕좌가 ‘크게’ 나타난 이유는 심판은 신성의 선으로부터 결괴되어진다는 것; 그이유가 ‘큰’이 선을 서술하기 때문.
계20:12-‘작고 큰’=무슨 조건과 품질로부터 이든.
계21:3-‘큰 음성’=사랑으로부터의 말(speech), 그이유가 ‘큰’이 사랑을 서술하기 때문.
계21:10-‘크고 높은 산 위에’=세째 천국 안으로, 이 천국은 주님을 사랑함 안에 있고, 그분으로부터의 진짜 진리로부터의 교리 안에 있는 이들이 있는 천국이다; 그이유가 ‘크고’는 사랑의 선을, ‘높다’는 진리들로부터의 선을 서술하기 때문..
계21:12-‘크고 높은 벽’이라 말해지는 이유는 이 성벽이 신성의 선과 신성의 진리 측면의 말씀을 뜻하기 때문; 그이유가 ‘크다’는 선을, ‘높다’는 진리를 서술하기 때문.
계11:1-‘큰’=놀랄만한 것.
계13:13-‘그는 큰 표시들을 행한다’=증거함들과 설득함들.

태양의 (solar)

이27:9-‘태양 (우)상’=자연적인 진리들로부터 예배함
겔6:4-‘태양 (우)상’=교리의 거짓들로부터 있는 우상적인 예배.

평화 (peace)
평안 (peace)
평강 (peace)
화평 (peace)

말2:6-‘평화와 정직’=신성의 사랑으로부터의 선과 그로부터의 진리.
창26:31-‘그들은 …평화로이 갔다’=그들은 만족했다는 것.
시85:10-‘정의와 평화가 키스함’=그들이 자신들을 결합함.
창29:6-‘그는 평화한가?’=이 선은 주님의 왕국으로부터 인가?
이9:6,7-‘평화의 제 1인자’는 주님을 뜻함이 분명하다; 그리고 ‘통치와 평화가 불어남’은 그분의 왕국에 있는 이들을 뜻한다. 고로 그분의 왕국 자체.
이32:18-‘평화의 주택’=천국.
이33:7-‘평화의 천사들’=주님의 왕국에 있는 이들; 고로 왕국 자체; 그리고 최고 의미에서 주님.
이52:7-‘복음을 전함’, 그리고 ‘평화를 듣게 만듬’=주님의 왕국.
예12:12-‘평화가 없다’=선을 애착함이 없다.
창37:4-‘그들은 평화로이 그에게 말할 수 없었다’=그들은 신성의 진리로부터 자신들을 돌아서게 했다는 것.
창37:14-‘가라, 네 형제들이 평화로운지 보라’=주님의 모두 각각의 강림…‘평화’=구원.
슥8:12-‘평화의 씨’=내면의 인간에 있는 선.
창41:16-‘하느님께서 바로에게 평화를 답하실 것이다’=결합을 통하여 신성의 인간으로부터…
창43:23-‘그는 말했다, 네게 평화가 있기를, 두려워말라’=잘되고 있으니 자포자기 말라.
창43:27-‘그는 그들에게 평화를 물었다’=잘있는지 어떤지를 지각함.
출4:18-‘이드로가 모세에게 말했다, 평화로이 가라’=동의함과 경건히 소원함.
출18:7-‘그들은 그의 동료 사람이 평화한지를 물었다’=상호적인 신성의 천적 상태.
출18:23-‘모든 이 백성들은 평화로이 각자의 장소에 가있을 것이다’=영적 교회 속에 있는 그들은 선 안에 있을 것다, 그리고 고로 선으로부터 인도될 것이다.
출29:28-‘평화를 만드는 그들의 희생 제물로부터’=그것은 주님만으로부터 있음을 인정함.
계1:4-‘당신에게 은총이 있으라, 그리고 평화’=신성의 인사.
계6:4-그 위에 앉은 그에게 평화를 가져가는 것이 주어졌다‘=선행, 영적 안전, 내적 휴식을 거두어 감.
계14:13, 요16:33, 14:27-‘그들이 쉬도록’=그들이 주님 안에서 평화를 가진다는 것. 평화에 의해 지옥을 수단으로 악들과 거짓들이 판치지 않음으로부터 있는 영혼의 쉼이 뜻해진다…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들의 노동들로부터 쉴 것이다’에 의해 주님을 봐서,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세상에서 자기들의 혼이 고뇌하고 자기들의 육을 십자가에 못박은 이들이 주님 안에서 평화를 가질 것임이 의미되어져 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말하신다; ‘내 안에서 너희는 평화를 가진다; 세상에서 너희는 고난을 받을 것이다.’; ‘내 평화를 나는 너희에게 남겨둔다, 내 평화를 나는 네게 준다; 내가 네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르다.’
요14:27-순진과 평화, 이 둘은 천국의 맨 안쪽에 있는 것들이다. 이것들이 맨 안쪽에 있다고 일컬어지는 이유는 그것들이 주님으로부터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이유가 주님이 순진 자체시오 평화 자체이시기 때문이다…평화로부터, 그분은 말하신다, ‘평화를 나는 너희에게 남겨둔다; 내 평화를 나는 너희에게 준다.’ 그리고 또한 그들은 평화를 가지고 성읍이나 집에 (들어갈 때) 인사하라는 눅10:5에 의해서도 마찬가지 뜻이 있다. 순진과 평화가 천국의 가장 안쪽에 있는 것인 이유의 또하나는 순진이 모든 선의 본질(esse)이고, 평화는 선으로부터 있는 모든 즐거움의 행복(bliss)이기 때문이다.
민6:26-천국과 영원한 행복(happiness), 이것을 주님은 그분의 신성한 진리와 그분의 신성한 선을 통하여 주신다는 것이 ‘그리고 네게 평화를 준다’에 의해 뜻해져 있다.
시128:6-‘이스라엘 위에 평화’=교회 (위에) 있는 일반적, 특수적 측면에서의 모든 영적 선.
슥9:10-이방인들과 더불은 교회의 부흥이 ‘그분은 나라들에 평화를 말하실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평화’=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의 선, 그러므로해서 있는 교회의 모든 것들.
눅10:5-그들의 말, ‘이 집에 평화가 있으라’=그들은 거기 있는 이들이 주님을 영접했는지, 주님에 관한 복음이 전파되었는지, 천국, 천국적 환희와 영원한 생명에 관하여 복음이 전파되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는 것; 그이유가 이 모든 것들이 ‘평화’에 의해 의미되고, 받았던 이들이 ‘평화의 아들’에 의해 뜻해지고 이들 위에 평화가 놓여 있기 때문. 그러나 만일 거기 있는 이들이 주님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하여 주님의 것에 속한 것, 또는 평화 속에 있는 것들을 받지 않았다면, 그것은 이들로부터 거두어질 것임이 만일 성읍이나 집이 가치가 없다면 이들의 평화는 그들에게 되돌아 온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눅19:42-만일 네가 네 평화에 속하는 것들, 즉 주님 만으로부터 있는 영원한 생명과 행복에 속하는 것들을 알았었다면; 그이유가 ‘평화’에 의해 주님과의 결합을 통해 있는 천국과 영원한 행복이 뜻해지기 때문.
눅1:79-주님을 영접함과 그분과의 결합을 통하여 신성한 진리들에서 그것들이 예증됨이 천국과 영원한 행복이다가 ‘평화의 길’에 의해 뜻해진다.
눅19:38-‘천국에서 평화와 가장 높은 것들에서 영광’=‘평화’에 의해 의미되는 이런 것들이 신성 자체와 신성한 인간의 합일로부터 있고, 그리고 주님과 결합함으로부터 천사들과 인간들 안에 있음이 의미되어져 있다; 그이유가 지옥들이 주님에 의해 복종당해졌을 때, 평화는 천국 안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거기 있는 이들은 주님으로부터 신성한 진리를 가졌는바, 이것이 ‘가장 높은 것들에서 영광’이다.
눅24:36, 요20:19-‘평화’, 말씀의 내적 의미에서,=주님, 그리고 그로부터 천국과 영원한 생명, 특별한 의미에서, 주님과 결합함으로부터 근원하는 천국의 즐거움, 그러므로 주님이 부활하신 후, 그분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들에게 말하셨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민6:26-그것을 악들로부터 보호함, 그리고 그로부터 천국과 영원한 행복이 ‘그리고 너에게 평화를 준다’에 의해 뜻해져 있다; 그이유가 악들과 거짓들이 제거되어 더 이상 그것들의 활개침이 없을 때, 주님은 평화와 더불어 흘러드신다. 이 안에, 이로부터 천국이 있고, 마음의 내면들을 복된 것으로 채워지는 즐거움이, 고로 천국의 환희(joy)가 있다.
시4:6-8-이 구절에는 주님으로부터 있는 신성한 선과 신성한 진리를 받음을 통하여 주님과 결합하고 있는 이들이 가지는 평화가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이 평화 안에, 이 평화로부터 천국의 환희가 있다는 것…평화가 그들 안에, 그들로부터 있을 때, ‘평화 안에서 나는 눕고 잔다’고 말해진다; 그이유가 ‘여호와 당신께서 나로 안전히 거주하게 만드시기 때문이다.’ ‘평화’에 의해 천국의 내적 즐거움이, ‘안전한’에 의해 외적 즐거움이 의미되어져 있다.
레26:3,4,6-평화가 어디서 있는지, 즉 천국과 천국의 환희가 어디로부터 있는지가 이 구절들에서 묘사되어 있다. 평화, 그 자체로만 간주한다면, 천국과 천국의 환희가 아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평화 안에, 평화로부터 있다. 평화는 세상의 새벽, 또는 봄철과 같아서 눈 앞에 나타나는 대상으로부터 즐거움들과 유쾌함들을 심정 안에 받을 수 있게 인간의 마음을 처리해준다. 천국의 모든 것, 천국의 환희의 모든 것은 신성의 평화로부터 인바, 이것 또한 평화에 의해 뜻해진다…인간이 가르침에 따른 삶으로부터 천국을 가질 때, 말해지는바, ‘만일 너희가 내 가르침들을 준수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행한다면, 나는 토지에 평화를 줄 것이다.’
시37:11,37-‘그들은 수많은 평화로 즐거워질 것이다’에 의해 시험들에 이어지는 즐거움들이 의미되어져 있다…선과 진리의 결합으로부터 평화의 즐거움을 가진다는 것이 ‘완전한 자에 주목하라, 그리고 올바른 자를 바라보라; 그이유가 이 사람에게 끝은 평화이기 때문이다.’
시72:3-‘산들이 백성들에게 평화를 가져올 것이다.’ ‘평화’에 의해 사랑을 수단으로 주님과 결합함으로부터 있는 천국의 환희가 뜻해진다…‘그의 날들에 올바른 자는 번영할 것이다’=사랑의 선 안에 있는 이들; 그러므로 말해진다, ‘그리고 많은 평화.’ 그이유가 평화는 주님 외 다른 근원으로부터서는 없기 때문, 그리고 사랑의 선 안에 있는 이들이 그분과 결합함 안에서만 있기 때문.
시34:14-‘평화를 얻으려하고 그것을 따라가라.’; ‘평화’=천국과 교회 속에 있는 모든 것들, 여기로부터 영원한 생명의 행복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선 안에 있는 이들에게만 있는바, ‘악을 떠나 선을 행하라’라고 말해진다.
시119:165-‘당신의 법을 사랑하는 이들은 많은 평화를 가진다…’ ‘평화’=천국의 복(bliss), 행복(happiness), 그리고 즐거움.
이26:12-평화는 여호와 만으로부터 있는바, 즉 주님 만으로부터 있는바, 그리고 그분으로부터 선을 행하고 있는 이들 안에만 있는바, 말해진다. ‘여호와여, 우리를 위해 평화를 베푸소서; 그 이유는 당신께서는 우리를 위해 모든 우리의 일들을 작업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33:7-평화는 주님으로부터 있고, 그분으로부터 천국 안에도 있는 바, 천사들은 ‘평화의 천사들’이라 불려진다. 악들과 거짓들에 있는 지상의 사람들에게 평화는 없는바, ‘그들은 지독하게 슬퍼한다’고 말해진다.
이48:18,22-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이들에게 평화가 있고, 그렇게 살지 않는 이들에게 평화는 없는바, ‘너는 내 가르침들에 귀기울였다면 네 평화는 강 같았을 것이다; 사악한 자에게는 평화가 없다.’ ‘강 같은 평화’=풍부함.
이54;10,13-‘평화의 언약’=주님과 결합함으로부터의 천국의 환희. ‘여호와의 가르침을 받을 아들들, 그리고 큰 평화를 가질 아들들’=주님으로부터 있는 선으로부터의 진리들 안에 있는 새 천국과 새 교회에 있는 이들; 이들은 영원한 복(bliss)과 행복(happy)을 가진다.
겔37:26-‘그들과 더불어 평화의 언약을 만드는 것’=주님과 결합되어왔었던 이들을 위한 영원한 생명과 천국의 환희.
말2:5-‘생명의 언약과 평화의 언약’=신성 자체가 주님의 신성한 인간과 합일함, 이로부터 모든 생명과 평화가 있다…세상에서 결과되어진 이 하나됨 자체가 ‘정직과 평화 안에서 나와 걷는 자’에서 뜻해지고 있다.
슥8:12,16,19-선과 진리의 결합이 있는 이들이 ‘평화의 씨들’이라 불린다…진리와 선의 결합이 더 묘사되고 있다, 즉 ‘너는 네 동료 사람에게 진실을 말하라; 네 문에서 평화의 판결과 진리로 판결하라; 오직 진실과 평화를 사랑하라.’ ‘진실’에 의해 진리가, ‘평화의 판결’, ‘평화’에 의해 선과 그것의 결합이 의미되어져 있다.
시85:8,10-‘여호와께서는 그분의 백성에게, 그리고 그분의 거룩한 사람들에게 말하실 것이다’=그분은 그들과 더불어 있는 선과 진리의 결합을 통하여 가르치고 그분 자신과도 결합함을 주신다는 것. ‘평화’에 의해 이 결합 둘 다가 의미되어져 있다. 양쪽 모두의 이런 결합들이 더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자비와 진리가 만날 것이다; 정의와 평화가 서로 키스할 것이다.’
이52:7-‘평화를 듣게 하는 그의 발이 있는 산 위에서 얼마나 즐거운지!’…여기서 ‘평화’에 의해 주님 자신이, 또한 그분과 결합한 이들을 위한 천국도 의미되어져 있다…주님과 결합함으로부터 선과 진리의 결합함이 ‘평화’에 의해 의미되는바, ‘평화를 듣게 하는 그 사람…’라고 말해진다.
이53:5-‘우리의 평화를 위한 응징이 그분 위에 있었다.’…그분의 소름끼치는 시험들…그러므로 ‘여기서 ’평화‘에 의해 주님과 결합한 이들을 위한 천국과 영원한 생명이 의미되어져 있다.
예33:6-영적으로 치료되는 것이 악들과 거짓들로부터 치료되는 것, 그리고 이것이 진리들을 통하여 주님에 의해 결과되는 바, ‘나는 그들에게 풍부한 평화와 진리를 밝히 알릴 것이다’라고 말해진다.
시55:18-‘그분은 내 혼을 평화 안에서 되찾으셨다’=주님과의 결합을 통하여 구원함.
시122:6-‘너희는 예루살렘의 평화를 얻으려 하라.’…‘평화’에 의해 교리와 예배의 모든 것이 뜻해진다; 그이유가 그들이 천국적 근원으로부터 있을 때, 그들은 천국 안에, 천국으로부터 있기 때문.
시147:14-네 경계에 평화가 있게 하는 분=천국과 교회의 모든 것들.
시128:6-모든 이런 것들이 주님으로부터 있는 평화를 통하여 있는바, ‘너는 이스라엘에서 평화를 볼지 모른다’고 말해진다.
시76:2-예루살렘이 여기서 ‘살렘(Salem)’이라 불리운다, 그이유는 ‘살렘’에 의해 평화가 뜻해지기 때문.
이66:12-모든 것들이 주님과의 결합으로부터 풍부해 있을 것임이 ‘보라, 나는 그녀에게 평화를 강 같이 펼쳐 놓는다’에서 의미되어져 있다.
이32:17,18-평화가 ‘여호와의 일’이라 불리운다. 그이유는 그것이 주님 만으로부터 있기 때문이다. ‘평화의 주택’=주님이 계신 천국.
이60:17-주님이 사랑의 선을 통하여 통치하실 것임이 ‘나는 네 정부(goverment)를 평화로 만들고, 네 강제 징수자(exactor)는 정의로 만든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시72:7-‘평화’가 사랑의 선에 관해 말해진다.
겔34:25-‘평화의 언약’=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한 것들에 의해 주님과 결합함. 신성한 것들이란 말씀으로부터 사랑의 선과 교리 속의 진리들이다. 고로 대체적으로 말씀을 통하여 있는 것들이다.
레26:6-‘토지에 평화…’=교회 안에서 거짓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함.
슥8:10-‘평화가 없다’=악들과 그로부터의 거짓들이 창궐함.
슥8:12-‘평화의 씨’=주님으로부터 있는 천국과 교회의 진리. 이것이 ‘평화의 씨’라 불리는 이유는 이것이 지옥들에 맞서 보호하여 안전을 주기 때문.
신20:10,12,13-‘네가 어떤 성읍으로 다가가서 싸우려할 때, 먼저 너는 그 성에 평화를 선언하라…만일 평화를 받지 않겠다면…너는 칼끝으로 그 성읍의 모든 남자를 처죽일 것이다…’…‘평화를 받지 않는 것’=교회의 진리들과 선들에 일치하지 않는 것.

피난 (refuge)

이4:6-‘범람과 비에 대비한 피난’=인간이 상처받음으로부터 안전해 있는 것.

허약함 (infirmity)

이53:10-‘여호와께서는… 그분을 허약하게 …만드셨다.’ 이 장 전체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주님의 굴욕적인 상태, 그분은 허약한 인간 안에 계셨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취급한다.
겔34:21-‘허약한 양을 자기들의 뿔로 밀치는 것…’=선으로부터의 진리들을 갈망하지만 아직은 그런 상태 안에 있지 못한 곧바른 자들을 거짓들을 가지고 파괴하는 것.

헛된 (vain)
헛됨 (vanity)

출20:7-‘너는 헛된 것 안으로 네 하느님의 이름을 가져가지 말라’=하느님의 예배에 속하는 각각 그리고 모든 것들은 경멸되어져서는 안된다는 것, 더 나아가 모독하거나 더러운 것들로 오염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출23:1-‘너는 헛됨의 보고를 채택하지 말라’=거짓들에 귀울이지 마라…‘헛됨’=종교와 교리의 거짓.
시144:8-‘헛됨’=교리의 거짓; ‘거짓말’=생활의 거짓.
이66:3-‘유향을 바치고, 헛됨에게 은혜를 베푼다’=영적 선 같은 것으로 하느님을 예배한다, 그럼에도 악과 거짓을 사랑하고 그것들을 빨아들인다…‘헛됨’=악, 그리고 악으로부터의 거짓.
예10:8-‘헛됨들’=거짓들.
예8:19-‘낯선 자들의 헛됨들’=종교의 거짓들.
이30:7-‘이집트, 헛됨과 텅빔’=감각적 평면과 자연적 평면, 그 자체로만 본다면, 선이 결여되어 있고, 진리 또한 결여되어 있다.

호의 (good-will)

시68:9-‘하느님께서 떨어지게 한 은택(benovolences)의 비’=신성한 선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

혼 (soul)

* 내적 인간이 혼이다.
창1:20-주님으로부터 오는 것들은 그들 안에서 생명을 가진다, 그 이유는 그들이 그분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 이것이 ‘생 혼, living soul’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창1:24-의지 속의 것들이 땅이 낳는 ‘생 혼’에 의해 의미 되고 있다.
* (거듭남의 여섯째 상태에서) 인간이 생산하는 것들이 ‘생 혼’ 과 ‘짐승’이라 불리워진다.
창2:7-천적 인간의 생명이 ‘그에게 생명들의 숨을 불어넣으심’에 의해 묘사되어져 있다.
창2:7-‘사람은 생 혼이 되었다’=외적 인간 역시 살아 있게 되었다.
창6:19-‘생 혼’=이해성 속의 것…말씀에서 ‘생 혼’에 의해 일반적인 모든 동물이 의미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의 경우, ‘모든 육체(flesh)’라는 단어가 인접하고 있기 때문에 이해성의 것들이 의미되어진다; 그이유가 이 교회의 사람들의 거듭남은 지적인 것이 먼저 마무리되어야 하기 때문.
창9:4-‘혼’=생명이다는 것…‘혼’ 말씀에서=일반적 측면에서 모든 생명, 즉 내적 인간과 외적 인간 모두. 이 구절의 혼은 거듭나는 사람의 생명을 서술하는데, 여기의 거듭남은 인간의 의지 부분과 분리되어 있다. (즉 이해성이 거듭나고 그다음 의지의 거듭남이 있는다는 말이다)…그러므로 ‘혼을 가진 고기(flesh)’, 이것을 그들은 먹지 않아야 한다는 것=그들은 이 새로운 생명을…악 즉 자아와 혼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창9:5-‘나는 사람의 혼을 요구할 것이다’=모독을 위해 복수하는 것.
창9:10-‘너와 함께 있는 생 혼과 더불어’=거듭나아가고 있는 인간과 더불어 일반적으로 있는 모든 것.
창9:15-‘모든 고기의 모두 각각의 생 혼’=보편적인 측면에서의 인류…모든 사람 그 각각은 자기와 더불은 살아있는 것으로부터 ‘생 혼’이라 불리운다….즉 순진의 어떤 것, 선행, 그리고 자비. 인간의 구원을 위해 남아 있어야 하는 것들(remains)
창12:5-‘그들이 하란에서 얻은 혼’=그 희미한 상태에서 주어질 수 있는 생명되는 모든 필수 요소
* ‘혼’, 적절한 의미에서=살아있는 인간과 더불은 것, 고로 그의 참 생명인 것. 살아 있는 인간에 있는 것은 몸이 아니라 혼이다, 그리고 혼을 통하여 몸이 살아 있는다. 인간의 생명 자체는 천적…사랑으로부터 이다…그러므로 여기서 ‘혼’에 의해 의미되는 것은 천적 사랑으로부터 살아있는 선이다, 이 선은 살아있게 하는 생명 자체이다.
이58:10-‘혼을 주린 자와 고뇌하는 혼에게 꺼내드는 것’=일반적으로 선행으로부터의 선들.
창14:21-‘혼을 나에게 주고…’=그분이 생명을 그것들에 주실 것이다는 것.
창17:14-‘혼이 그의 백성으로부터 잘라낼 것이다’=영원한 죽음; ‘혼’=생명.
창19:17-‘너희 혼을 위해 도망하라’=그는 영원까지 자기 생명을 돌보아야 하리라는 것.
창19:19-‘내 혼을 살아 있게 만드는 것’=그를 구원하는 것.
창19:20-‘내 혼이 살 것이다’=아마 그는 구원될 것이다.
겔47:9-‘기어다니는 생명 있는 모든 혼’=그들의 기쁨들.
창23:8-‘만일 네 혼과 더불어 이다면’=만일 심정으로부터의 진리에 애착함으로부터이다면…
창32:30-‘내 혼은 보전되었다’=그는 지탱되었다는 것.
창44:31-‘아버지의의 혼이 아들의 혼에 매여져 있다’=결합이 마감되어 있다; 그이유가 ‘혼’=생명.
창49:6-‘그들의 비밀 안으로 내 혼이 오게 하지 않으리’…‘내 혼’이라 말해지는데, 그이유는 여기서 혼의 의미가 선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이 선은 영적 선이다.
계8:9-‘혼을 가진 바다에 있는 창조물들’=선들과 더불은 과학적 진리들.
출1:5-‘모든 혼들’=모든 것들. 일반적 의미에서 ‘혼’= 인간, 영적 왕국의 교회의 인간. 그러나 내적 의미에서 ‘혼’=진리와 선, 그이유는 이로부터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
이19:10-‘혼들의 웅덩이들’=지식들로부터 총명 속에 있는 것들.
출15:9-‘내 혼이 채워질 것이다’=기쁨.
출16:16-‘너희 혼들의 숫자’=사회 안에 있는 모두를 위해 충분한 양.
출21:23-‘혼을 위한 혼’=질서의 법칙…
신6:5-‘네 모든 혼으로’=신앙 속의 진리가 있는 이해성으로부터, 고로 신앙으로부터.
눅14:26-인간에게 어울리는 것들이…악들과 거짓들이기에…‘그는 자기 고유의 혼을 미워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계8:9-‘생명들을 가지는 것’=재구성되어지는 것, 그리고 생명을 받는 것.
계12:11-‘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사랑하지 않았다’=주님 보다 더 자신들을 사랑하지 않았다. ‘자기들의 생명을 사랑하는 것’=자아와 세상을 사랑하는 것; 그이유가 여기서의 ‘생명’이 의미하는 것은 인간이 출생 때부터 가지는 인간의 생명이기 때문. 이 생명은 무엇보다 자아와 세상을 사랑하는 것.
계16:3-‘살아 있는 모든 혼이 바다에서 죽었다’=말씀 속의 모든 진리, 이로부터 교회 속의 모든 진리, 신앙 속의 모든 진리가 소멸되었다. 그이유가 ‘살아있는 혼’=신앙 속의 진리.
계18:13-‘인간들의 몸들과 혼들’=글자 의미 속의 선들과 진리들.
계20:4-‘이들의 혼들은 도끼로 찍어 죽여졌다’=악들(악한 자들)로부터 거절받아 왔었던 사후 인간들…
예44:30-‘그의 혼을 찾은 그들’=거짓들에 있는 이들.
예15:9-‘혼의 숨을 끊는 것’=모든 진리들에 관련하여 멸해지는 것.
요10:17-‘나는 내 생명을 내려 놓는다.’

홀로 (alone)

창2:18-‘사람이 홀로 있다는 것은 좋지 않다.’ 주님에 의해 이끌려지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과 세상에 의해 이끌리기를 원했다.
창32:24-‘야곱 홀로 남았다’=진리로부터의 선이 포획했다.
창39:11-‘이 집에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어떤 누구의 도움 없이.
출18:14-‘어찌하여 자네 홀로 앉아 있는가?’=어떤 다른 근원으로부터의 선으로부터의 진리의 유입 없이. ‘홀로 앉는 것’=주님으로부터 직접 진행하는 신성으로부터의 진리에 관해 말해질 경우, 그리고 이것이 모세에 의해 표현 될 경우=그분 만으로부터의 유입, 동시에 어떤 다른 근원에서가 아님.

화해 (reconciliation)

마5:24-‘네 형제와 화해하는 것’=이웃을 향한 선행 (=적개심, 미움, 복수를 금하는 것) (=선행으로부터 예배함).

환상 (vision)

창15:1-‘환상’=가장 안쪽의 계시(밝히 앎), 이는 지각으로부터 있다.
* (스웨덴볽에 의해) 일상적으로 보여진 것들은 환상들이 아니고 최고 높은 수준에서의 몸의 깨어 있음에서 보여진 것들이다.
슥13:4-‘환상’=진리들; 여기서는 거짓들.
이22:1-‘환상의 골짜기’=영적인 것들에 관하여 감각적인 것으로부터의 몽상들.
창46:2-‘하느님께서 밤의 환상에서 이스라엘에게 말하셨다’=희미한 계시.
츨3:3-‘나는 얼굴을 돌려 이 위대한 광경(vision)을 보아야겠다’=이 계시를 되새겨 봄…‘광경’=계시. ‘위대한 광경’이라 부른 이유는 최고 의미에서 ‘떨기나무에 있는 불꽃’에 의해 주님의 인간 안에서 신성의 선과 하나가 된 신성의 진리가 의미되어져 있기 때문.
겔12:24-‘헛됨의 환상’=거짓 계시.
계9:17-‘나는 환상에서 말을 보았다’=추론들은 가상적이고 몽상적이었다는 것. (=말씀을 이해함이 거짓화함.
겔7:26-‘예언자로부터 환상’=교리; 여기서, 거짓인 것에 관한 교리.
미3:6-(이들이) 악들을 볼 것이고, 거짓들을 점칠 것이다는 것이 ‘환상을 위해 밤이, 점침을 위해 어둠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단9:24-‘환상과 예언을 봉인하는 것’=주님에 관하여 말씀에서 말해진 것들을 닫아두고 성취하는 것. (=외적 (표현) 교회의 끝, 그리고 내적, 영적 교회의 시작. ‘환상과 예언’=교리로부터의 거짓들.) (=또한 주님은 말씀에서 그분에 관해 미리 말해진 것들을 완성하시리라는 것.)
욜2:28-‘환상들을 보는 것’=계시를 지각하는 것.
미3:6-‘환상을 위해 너에게 밤을‘=참된 것의 이해 대신 거짓인 것을 이해함.
시89:19-‘당신은 당신의 거룩한 분에게 환상 안에서 이야기했습니다’=주님에 관한 예언적 신비.
이28:15-‘지옥과 더불어 환상을 만드는 것’=마치 예언적인 듯, 지옥으로부터 점을 침.

황폐 (desolation)
황폐 시킴(desolation)
황폐한 (desolate)

이61:4-‘그들은 영원으로부터 쓸모없는 것들을 건축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옛날의 황폐된 것들을 건립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대대로 황폐시킨 것들, 쓸모 없는 성읍들을 새롭게 할 것이다.’ ‘쓸모없는 것들’=악들. ‘황폐시킨 것들’=거짓들.
겔12:19-‘그들이 황폐시킴 안에서 마실 물들’=그들이 폭력을 행사한 영적인 것들, 또는 그들이 모독해버린 영적인 것들.
마24:15-‘황폐시킴으로부터의 흉측한 것’=사랑과 선행이 없을 때 교회의 상태. 이런 것들이 황폐시켜질 때, 흉측한 것들이 통치한다.
습2:9-황폐시킴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이유는 ‘영원히 황폐시킴 때문
창21:15-‘(하갈의) 물이 다 마셔졌다’=(영적 평면과 더불은) 진리가 황폐됨.
예31:8-‘북쪽의 토지’=무지함 또는 진리의 황폐됨. ‘우는 것’과 ‘기도함(간구함)’은 탄식과 자포자기하는 그들의 상태. ‘물들의 원천으로 데려와지는 것’은 휴양과 진리 안에서 가르침.
이35:1-7-‘광야’=진리의 황폐함. ‘물들’ 등등=황폐됨에 있어온 이들과 더불은 휴양과 환희.
이24:11,12-‘황폐되어진 즐거움‘=진리를 서술하고 있다. 이로부터 ’도성에 남겨진 것은 황폐함이다‘에 의해 의미된 것도 명백해질 것이다.
애1:4-‘(시온의) 모든 문들이 황폐되어졌다’=모든 접근함들이 거짓들에 의해 봉쇄되었다.
겔12:20-‘거주하던 성읍들이 쓸모없게 놓여질 것이다, 그리고 토지는 황폐될 것이다.’ ‘토지’=교회 자체, 이것이 선 측면에서 ‘쓸모없이 놓인다’, 진리 측면에서 ‘황폐된다’고 말해진다.
예25:18-‘그들을 황폐시키는 것’…여기서는 영적 (왕국의) 교회의 황폐시킴이 취급되어지고 있다.
출22:4-‘사람이 들판 또는 포도원을 황폐케 할 때’=탐욕들을 통하여 교회의 선과 진리가 박탈됨.
출23:29-‘토지가 황폐되고…’=이럴 경우에 있는 불충분함, 그리고 영적 생명은 거의 없음
겔19:7-‘땅과 땅의 가득함이 황폐되는 것’=교회의 모든 것들을 파괴하는 것.
이7:19-주님의 강림과 그당시 교회의 상태를 취급한다. 즉 영적 진리와 선의 모든 것들이 황폐되어져 있을 것임. ‘황폐시킴의 강들’=교리 속의 진리가 혹독하게 황폐됨.
계17:16-‘그들은 그녀를 황폐시키고 벌거벗게 만들 것이다’=그들은 자신들로부터 그녀의 거짓들과 악들을 벗길 것이다. 말씀에서 ‘황폐됨’은 진리와 거짓을 서술하고, ‘벗음’은 선과 악을 서술한다.
겔33:28-‘나는 토지를 황폐와 쓸모없음에 줄 것이다.’…‘이것의 황폐와 황무함’=영적 교회의 마지막 상태, 이 마지막 상태는 교회 내에 선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진리도 있지 않을 때, 또는 선행이 없기 때문에 신앙도 있지 않을 때 이다. ‘황폐함’은 신앙으로부터 있는 진리에 관해, ‘황무함’은 선행으로부터 있는 선에 관해 말해지고 있다.
습3:6-교회의 모든 선들의 파멸이 ‘나는 나라들을 절단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모퉁이들을 황폐케 할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교리 속의 진리들의 파멸이 ‘나는 그들의 거리들을 황폐케 할 것이다’에 의해, 그리고 ‘그들의 성읍들이 황폐케 될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계10장-이 장의 이어지는 것들에서 교회 안에 있는 신성한 진리의 황폐해짐을 취급하고 있다.
겔4:17-‘사람과 그의 형제가 황폐케 될 것이다’=신앙과 선행(charity)…‘황폐되어짐’=둘 모두가 충분히 소멸됨.
욜1:18-‘작은 가축의 양떼가 황폐시켜질 것이다’=신앙과 선행으로부터 있는 영적 진리와 선의 결핍.
겔30:7-교회의 모든 것들, 그리고 교회의 교리 속의 모든 것들이 멸해진다는 것이 ‘그들은 황폐된 토지들의 한가운데에서 황폐되어질 것이고, 그녀들을 성읍들은 황무해진 성읍들의 한가운데에서 황폐될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단9:26-‘전쟁의 끝 쪽에서 황폐함이 결정되어 있다’=진리와 거짓 사이에 더 이상 어떤 전투도 있지 않을 때 까지 진리의 왜곡이 있다는 것..‘황폐함’=교회의 마지막 때, 그 때는 어떤 진리도 남아 있지 않고 오로지 거짓만 있다.
이54:1-‘결혼한 자의 아들들 보다 황폐된 자의 아들들이 더 많다.’ 여기서는 이방인들과 더불어 세워질 새로운 교회를 취급한다. 후자가 ‘…많은 아들들을 가질 황폐한 자’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예4:26-‘황폐되는 성읍들’=진리 없는 교리적인 것들.
이54:3-‘황폐된 성읍들이 거주되게 만드는 것’=지금까지 파괴되어 왔던 이런 것들 속의 신성한 진리들에 따른 생활…‘황폐된 성읍들’=지금까자 파괴된 이런 진리들, 즉 유대 국가와 더불은 진리들.
애3:8,9,10,11-교회에서 진리를 황폐시킴에 관하여 하느님에 의한 탄식.
예4:26-‘황폐된 성읍들’=진리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이 더 이상 있지 않는 것.

황폐함 (laying waste)

* 파괴(revenge)를 보라.

흠이 없음 (blamelessness)

창20:5-‘이 일을 한 제 손은 흠이 없다’=진리에 애착함으로부터, 그리고 고로 모든 능력으로부터…원어에서 ‘흠이 없음’은 깨끗함, 순수함을 뜻하는 단어를 가지고 표현하였다. ‘흠 없는 손’, 깨끗한 손‘, ’순수한 손‘, 이는 진리들을 서술하는데, 선이 진리들 안에 있지 않으면, 즉 진리에 애착함이 없으면 존재 할 수 없다

희게 반짝거리다 (glitter white)
밝히 빛나다 (bright)

애4:7-‘눈 보다 더 희다, 우유 보다 더 희다’=천적인 진리에서…‘순백, whiteness’은 진리를 서술한다.
계1:14-‘그분의 머리와 털은 희었다’=첫째 원리들과 최말단 원리에 신성이 있다…‘희다’=순수하다.
계1:14-‘눈, snow 같이 양털, wool 같이 희다’=거기 선과 진리에 관하여…‘눈’=근원이 물로부터, 그리고 그것의 순백과 밝히 빛남으로부터 최말단에서의 진리…순백과 밝히 빛남은 빛의 투명성으로부터이다.
애4:7-‘흰, white’은 진리를 서술하고 있다. ‘눈’도 마찬가지. 그리고 ‘밝히 빛남’은 진리의 선을 서술하고 우유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의 향신료와 상응

성경의
향신료와 상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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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약자표

창 창세기 이 이사야 학 학개 마 마태복음
출 출애굽기 예 예레미야 슥 스가랴 막 마가복음
레 레위기 겔 에스겔 말 말라기 눅 누가복음
민 민수기 단 다니엘 요 요한복음
신 신명기 호 호세아 계 요한계시록
여 여호수아 욜 요엘
사 사사기 암 아모스
삼상 사무엘상 옵 오바댜
삼하 사무엘하 욘 요나
왕상 열왕기상 미 미가
왕하 열왕기하 나 나흠
욥 욥기 합 하박국
시 시편 습 스바냐

차례

계피 (cassia, kessia)-계피 (cinnamon)
나감향 (onycha)-냄새 (odour)
몰약 (myrrh)-밀초 (wax)
베델리엄 (bdellium)
소합향 (stacte)-소회향(fitches, black cummin)-수지 (resin)
유향 (resin), 향유 (resin)-유향 (frankincense)-유향 (resin)
침향 (aloe)
풍지향 (galbaum)
향 (incense)-향기 (fragrance)-향신료 (spice), 양념 (spice)-향유 (balm, balsam)-
향유 (resin)

계피 (cassia, kessia)

겔27:19-‘계피와 창포’=자연적 진리, 그러나 이로부터 선이 온다.
출30:24-‘계피’=선으로부터의 내면의 진리. ‘계피’=내적 인간의 내면의 진리…계피는 가장 안쪽의 진리를 의미한다. 그 이유는 이것이 순서상 네 번째에 있기 때문이다. ‘계피’=선으로부터의 진리인 이유는 가장 깊은 진리는 선으로부터 직접 진행되기 때문, 그리고 더 낮은 것들 안에서 선과 결합을 행한다.. 이는 지적 측면이 의지 측면과 하나로 행동할 때 거행된다.
시45편-‘계피’=세째 등급의 선.

계피 (cinnamon)

출30:23-‘향기 높은 계피(육계)’=자연적 진리에 애착함과 지각.
계18:23-‘계피’=천적 사랑으로부터의 선.

나감향 (onycha)

출30:34-‘나감향’=내면의 자연적 진리에 애착함 . (그 이유가) ‘냄새가 좋은 나감향’=자연적 진리에 애착함. ‘나감향’은 진리를 의미한다. 그리고 ‘냄새가 좋은’은 감사히여기는 것을 지각함을 의미한다. 이는 진리에 애착함으로부터 이다. 고로 애착 자체…이것이 ‘나감향’을 수단으로 의미되어진 자연에 있는 진리에 애착함이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것이 두 번째 장소에서 명명되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나감향은 자연적 진리에 애착함이 의미된다. 이는 자연적 인간에 있는 내면의 진리이다. 향신료를 수단으로 의미되어진 진리는 영적 등급에 속한다.
을 양위하는 것.

냄새 (odour)

호14:6-‘레바논의 것 같은 그녀의 냄새’=신앙 속의 진리에 애착함 .
창8:21-‘여호와께서는 쉼의 냄새를 맡으셨다’=거기로부터의 예배는 주님에 대한 감사였다.
* ‘냄새’=감사하고 있는 것 그리고 받아들이는 것; 고로 유대 교회에서 냄새는 감사하고 있는 것을 표현해주었다…그 이유가 선행의 선과 선행으로부터의 신앙 속의 진리는 달콤하고 즐겁게 해주는 냄새들과 상응하기 때문이다.
창27:27-‘그는 그의 옷들의 냄새를 냄새 맡았다’=그가 지각했던 선의 진리로부터 감사하는 것. ‘냄새’=감사하는 것. ‘냄새맡는 것’=감사한 것을 지각함.
출5:21-‘너는 우리의 냄새를 악취가 풍기게 만들었다’=그들은 우리가 응낙하는 것과는 정반대이다는 것. ‘냄새’=감사인 것을 지각함. ‘냄새’=이것인바, 이것=신앙과 선행을 지각함. 그이유가 이것들이 감사이기 때문. 이것들이 감사인바, 응낙함은 최고로 감사히 여김이다. 이로부터 ‘냄새’에 의해 응낙함이 의미된다.
출29:18-‘쉼의 냄새’=평화를 지각함. ‘냄새’=지각.
출30:38-‘냄새를 만드는 것’=기꺼워하는 것. 이것은 선과 진리에 애착함을 통하여 결과되는바, 이것은 기꺼워함에 의해 의미된다. 그이유가 ‘냄새’는 감사히 여기는 것을 지각하는 것, 고로 기꺼워하는 것이기 때문.
호14:6-‘냄새’=지각.

몰약 (myrrh)

* spice도 참조
출30:23-‘최상의 몰약’=감각적 진리를 지각함. 냄새좋은 몰약=감각적 진리를 지각함. 그것의 냄새=지각하는 것. 그리고 ‘몰약’=감각적 진리…기름부음의 기름의 품질이 냄새가 좋은 것들에 의해 기술된다. 즉 최상의 몰약, 향기 높은 육계, 향기 높은 창포, 계피, 그리고 올리브의 기름이다. 이것들에 의해 천적인 진리들과 선들이 그것들의 순서대로, 최말단으로부터 제일에 까지, 가장 바깥 것들로부터 가장 안쪽 것 까지가 의미되어진다. 최말단, 또는 가장 바깥 것이 몰약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천적 선, 또는 가장 깊은 천국의 선은 몰약에 의해 의미된 진리들을 수단으로 존재하고 출현한다.
시45:8-주님의 옷들에 의해 자연 평면에 있는 그분의 신성한 선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가 의미되는데, 이 옷이 몰약, 침향과 계피로 기름부어졌다라고 말해진다. 고로 ‘몰약’에 의해 감각 평면에 있는 신성한 진리가 의미된다. 그이유는 이것이 첫 장소에서 언급되기 때문이다.
마2:11-‘금’=선, ‘유향’=내적 진리, ‘몰약’=외적 진리. 이 두 진리는 모두 선으로부터 있다…‘몰약’은 셋째, 또는 마지막에서 언급되는데, 그이유는 그것=선으로부터의 외적 진리이기 때문.
시45편-이로부터, ‘몰약, 침향, 계피’에 의해 주님 안에 있는 신성한 선으로부터 진행하는 그것들의 순서에 있는 신성한 진리가 의미되어진다.
마2:11-‘금’=천적 선, ‘유향’=영적 선, ‘몰약’=자연적 선. 그리고 모든 예배는 이 세 선들로부터 결과되어진다.
마2:11-‘금’=천적 선, ‘유향’=영적 선, ‘몰약’=파생되는 자연적 선. 고로 세 선들이 천국들의 선이다.
시45편-‘몰약’=최말단 등급의 선. ‘침향’=두 번째 등급의 선, 그리고 ‘계피’=세 번째 등급의 선.

밀초 (wax)

창37:25-‘낙타들이 밀초, 수지(resin), 소합향(stacte)을 운반하고 있다’=이런저런 종류의 내면의 선들.
창43:11-‘밀초, 소합향’=내면적 자연 평면의 선으로부터의 진리들. ‘밀초’, 여기서의 경우, 방향성 있는 밀초=선으로부터의 진리. 여기서의 밀초는 흔한 밀초가 아니고 방향성 있는 풍미 좋은 밀초, 즉 소합향(storax)같은 종류이다. 여기서 사용된 (히브리) 단어는 위 같은 뜻에서 사용되었는데, 양념도 뜻하기도 한다. 이로부터 방향성 있는 밀초=선으로부터의 진리임이 분명하다. 모든 양념들, 달콤한 향기=선으로부터 있는 진리들.
미1:4-이들 악들로부터…‘그들은 불 앞에 밀초 같이 녹았다’라고 말해진다.

베델리엄 (bdellium)

창 2:12-‘베델리엄’=사랑으로부터의 진리

소합향 (stacte)

창37:25-‘낙타들이 소합향을 운반한다’=내면의 선들.
창43:11-‘밀납과 소합향’=자연 평면의 내면으로부터의 선의 진리들…‘소합향’=선으로부터의 진리. 소합향=자연 평면의 내면 속에 있는 것인 이유는 이 향신료는 ‘수지(resin)’나 ‘꿀’보다 더 순수하기 때문.
출30:34-‘소합향’=감각적 진리에 애착함. ‘소합향’=감각적 진리. 소합향=이 진리에 애착함 인 이유는 그 향신료의 향기 때문.
창37장, 43장-‘소합향’=감각적 진리에 애착함이다는 것은 말씀의 다른 구절로부터 확증되어질 수 없다, 그이유는 이것이 그밖의 구절에서 언급되지 않기 때문. 그러나 또다른 종류의 소합향, 이는 다른 히브리 단어에 의해 표현되어졌는데, 이것이 창37, 43에 있다.

소회향(fitches, black cummin)

이28:25-‘소회향과 대회향’=과학물들. 그이유는 이것들은 인간이 총명을 받기 위하여 배워지는 첫 번째 것이기 때문.
이28:25-땅의 얼굴을 평평히 하는 것, 그리고 소회향을 흩뿌리는 것‘=말씀을 수단으로 준비하는 것.

수지 (resin)
유향 (resin)
향유 (resin)

창37:25-‘양념(spices), 수지(gum), 소합향(stacte)’=거기 선과 결합된 내면의 자연적 진리들.
겔27:17-‘수지’=선으로부터의 진리.
창43:11-‘수지 조금, 그리고 꿀 조금’=외면의 자연적 선의 진리들, 그리고 그것의 즐거움. ‘수지’=선으로부터의 진리, 또는 선의 진리. 수지가 이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이것이 연고, 그리고 또한 향신료 에 속하는 물질이기 때문. 이 수지가 방향성이 있다는 것은 창27:25을 보라. 이런 이유 때문에 원어에서는 이 수지라는 단어로 향유(balsam)도 뜻한다. 이 수지가 연고, 내지 진한 기름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로부터 ‘수지’=자연 평면에 있는 선으로부터의 진리이다. 이 구절의 경우, 외면의 자연 평면, 그 이유는 이 단어가 처음 자리에 있기 때문.

유향 (frankincense)

마2:11, 이60:6-‘그들은 그분에게 금, 유향, 몰약을 선물했다’; ‘금’=선; ‘유향과 몰약’=감사하고 있는 것들, 그 이유는 사랑과 신앙으로부터 때문; 그리고 이는 ‘여호의 찬양들’이라 불린다.
이60:6-천적으로부터인 것들과 파생된 영적인 것들이 ‘금과 유향’에 의해 뜻해진다.
예6:20-‘시바’=지식들과 존경함들, 이것이 ‘유향과 향품들’이다.
레6:15-‘기름과 유향과 더불은 고운 가루’=선행의 모든 것들을 표현했다; ‘고운 가루’=영적인 것; ‘기름’=천적인 것; ‘유향’=감사하는 것.
이60장-‘금과 유향’=선들과 진리들, 이것은 ‘여호와의 찬양들’이다.
마2장-‘금’=천적 사랑; ‘유향’=영적 사랑; ‘몰약’=자연에 있는 천적 사랑과 영적 사랑.
계18:13-‘계피와 향신료, 그리고 향유와 유향’은 금으로부터 있는 영적 진리들이 의미된다; 그러나 그들과 더불어 뒤집어진 진리들, 악들으로부터의 거짓들.
레24:7-케잌들 위에 놓여지는 ‘순수한 유향’=천적 선으로부터의 진리, 이는 천적 왕국의 최말단, 또는 가장 외곽.
마2장-‘금’=선; ‘유향’=내적 진리; 그리고 ‘몰약’=천적, 영적 선으로부터의 외적 진리…’유향’은 두 번째 장소에서 언급된다. 그 이유는 유향=선으로부터 있는 내적 진리.
출30:34-‘순수한 유향’=가장 깊은 진리, 이는 영적 선이다; (그이유가) ‘유향’=악의 거짓으로부터 순수해진 것…영적 왕국에 있는 이들과 더불은 선은 진리 밖에 없다. 인간이 양심과 애착으로부터 그것을 뜻하고 행동할 때, 이 진리는 선이라 불리운다.
계18:13-‘그리고 계피, 그리고 향신료, 그리고 향유, 그리고 유향’=그들은 더 이상 영적 선들과 진리들로부터 예배하지 않는다는 것, 그 이유는 그들은 그들의 예배에서 여기에서 상응으로 명명되는 것이 내적으로 전무하기 때문.
이60:6-‘그들이 운반하는 금과 유향’은 선들과 선들로부터의 진리들, 이것들은 감사하고 있는 것들로부터임이 뜻해진다.
이66:3-‘유향을 바치고 덧없음을 복주는 것’=영적 선을 표현하는 것들로 하느님을 예배하는 것, 그런데 아직도 악과 거짓을 사랑하고 있다.
예17:26-‘태워 바침, 희생 제물, 음식 바침, 그리고 유향을 가져오는 것’=자연적 인간에 있는 천적 선과 영적 선으로부터 예배함; ‘태워 바침’=천적 선으로부터의 예배; ‘희생 제물’=영적 선으로부터의 예배; ‘음식 바침’과 ‘유향’=자연적 인간에 있는 선과 진리.
이43:22-‘나는 음식 바침으로 나를 섬기게 하려고 너를 만들지 않았고 유향으로 너희를 피곤하게 하지 않았다.’ ‘음식 바침’과 ‘유향’이 언급되었는데, 그 이유는 ‘음식 바침’은 고운 가루로부터, 고로 빵이었는 바, 천적 선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유향’은 영적 선을 의미했다.

유향 (resin)

* 수지(resin)를 보라.

침향 (aloe)

시45:8-‘침향’=두번째 등급의 선.

풍지향 (galbaum)

출30:34-‘풍지향’=내면의 진리에 한층 더 애착함. 이 진리는 영적 인간, 또는 내적 인간 안에 있는 내면의 진리이다.

향 (incense)

이65:3-‘벽돌 위에서 향을 바치는 것’=거짓들로부터 예배하는 것.
시66:15-‘숫양들로부터의 향(연기)’=신앙으로부터 있는 영적인 것들.
예32:29-‘집의 지붕 위에서 바알에게 향을 바치는 것’=악을 예배함.
호4:13-거짓으로부터의 예배가 ‘언덕들 위에서 향을 바치는 것’에 의미되어 있다.
레10:1-‘불’=사랑의 선; 그리고 ‘향’=거기로부터의 신앙의 진리.
겔8:11-이런 것들에 따른 예배가 ‘향의 자욱한 구름’에 의해 의미되어지고 있다.
출25:6-‘향신료의 향과 함께’=감사하고 있는 지각 쪽으로.
레16:12-‘아론이 베일 안으로 가져가는 향’=적합되게 함(adaptation).
출30:36-‘향’, 그것의 얼마를 증거궤 앞에 놓였는데…‘거룩들로부터의 거룩’이라 불리운다, 그 이유는 이것이 최말단들에 있는 천적인 선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이 선으로부터 진행하는 것들도 의미한다.
출30:7-‘그리고 아론은 그것 위에 향을 바칠 것이다’=사랑과 선행으로부터 있는 예배를 주님께서 들어올리심.
출30:7-‘향신료의 향’=감사하고 있는 들음과 받음. ‘향’=사랑과 선행으로부터 있는 예배의 모든 것들로부터 주님에 의해 들으심과 받으심.
출30:9-‘너는 낯선 향이 그것 위에서 올라오게 해서는 안된다’=주님을 사랑함 외의 여느 사랑으로부터의 예배는 없다. ‘향’=사랑으로부터 예배함.
출30:35-‘너는 이 향을 만들 것이다’=이런 것들로부터 예배함. ‘향’=고백들, 숭배함들, 기도들, 그리고 심정으로부터 생각과 말 안으로 가는 예배 속의 이런저런 것들; 향의 연기에 의해 승강됨이, 향의 냄새에 의해 감사하고 있는 지각함과 받음이 의미된다.
출30:37-‘네가 만드는 향과 같은 품질의 향을 너를 위해 만들지 마라’=교회의 거룩한 진리들로부터의 예배는 인간의 사랑들을 옹호하는 쪽에 응용되어서는 안된다.
출30:37-‘여호와께 거룩함이 네게 있을 것이다’=예배는 반드시 신성한 사랑을 옹호하는 쪽에서만 있어야 한다는 것.
출31:11-‘그리고 향신료의 향’=진리들로부터의 예배를 표현하는 것. ‘향’=예배의 표현인 것.
계5:8-‘그리고 향으로 가득한 금대접’=영적 선들로부터 주님의 신성한 인간을 고백함.
계8:3-‘금빛의 제단 위에 거룩한 모든 사람들의 기도와 함께 주어진 많은 향들’=(영적 왕국의 천사들이) 사탄 같은 왕국의 영들에 의해 다치지 않도록 달램(propitiations).
계8:4-‘그리고 향의 연기가 올라갔다…’=주님에 의해 그들이 보호됨.
겔16:18-‘그것들 앞에 나의 기름과 향을 놓는 것’=천적 사랑의 선과 영적 사랑의 선 모두 섞음질되는 것. 말씀이 세상 사랑과 자아 사랑에 응용될 때 섞음질이 된다.
시141:2-‘향’=영적 선, 이는 선행의 선이다.
계8장-‘기도들’과 ‘향’=영적 선으로부터의 예배.
예18:15-거짓들로부터 예배가 있는 것이 ‘그들은 덧없음에 향을 바쳤다’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향을 바치는 것’=예배.
계18:13-‘그리고 계피와 향들’=천적 사랑으로부터의 예배가 모독되었다. ‘향’ 또는 ‘향기(perfume)’=천적 사랑으로부터의 진리, 이 진리는 지혜의 선이다.

향기 (fragrance)

출30:34-‘너에게 향신료를 가져오게 하라’=신성한 예배 안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선으로의 진리에 애착함 들.
출30:24-‘향기나는 나감향’=자연적 진리에 애착함 : ‘나감향’에 의해 자연적 진리가, ‘향기 나는’에 의해서는 감사할 것에 대한 지각력이 의미된다.
출30:24-‘…이것들은 향기 있다’=영적 선으로부터의 애착들. ‘향신료’=선으로부터의 진리에 애착함.

향신료 (spice)
양념 (spice)

창37:25-‘향신료를 실어나르는 낙타들’…‘양념’, 등등=선과 결합된 내면의 자연적 진리들.
출25:6-‘기름부음의 기름을 위한 향신료들’=취임하는(inaugurating) 선으로부터 있는 내적 진리들. ‘향신료 ’=내면의 진리들, 이는 내적 선으로부터의 진리들이다.
출25:6-‘향을 위한 향신료’=감사하는 지각을 위하여. ‘향신료’=선으로부터 때문에 감사하고 있는 신앙으로부터의 진리들.
이57:9-‘향수를 불리는 것’=향을 불리는 것, 이를 수단으로 우상숭배가 의미된다.
겔17:4-‘향수 제조인의 성’=내면의 진리로부터의 교리가 있는 곳.
겔27:22-‘제일의 향신료’=내면의 진리들로부터 감사하고 있는 것.
출30:23-‘최고의 향신료를 네자신에게 가져오라’=말씀으로부터 선들과 더불은 진리들, 이것들은 깊이 감사함으로부터 지각되어진다. 그이유가 ‘향신료’=선들과 결합한 진리들, 이것은 감사하고 있음이다.
출30:23-‘향기 높은 육계’=자연적 진리에 대한 지각과 애착… 그이유는 ‘향기 높은’에 의해 감사함으로부터 있는 지각이 의미된다. (그리고 이것은) 애착으로부터 있다.
출30:23-‘향기 높은 창포’=내면의 진리에 대한 지각과 애착. (그이유가) ‘향기 높은’=지각과 그것에 대한 애착.
출30:34-‘냄새 좋은 향신료들을 네자신에게 가져오라’=신성한 예배에서 반드시 있어야 할 선으로부터의 진리에 애착함. 그이유가 ‘향신료’=선과 진리에 대한 지각들과 애착들.
출31:11-‘향신료의 향’=진리들로부터 예배함의 표현물…‘향신료들’=진리들과 그들의 애착들.

향유 (balm, balsam)

겔27:17-사랑과 선행으로부터의 선들, 그리고 그것들의 행복한 느낌이 ‘민닛 밀과 구운 과자, pannag, 꿀, 향유’이다.
창43:11-‘수지, resin’=선의 진리, 또는 선으로부터의 진리…이 수지는 향기로웠다…그러므로 원어에서는 발삼(향유)을 뜻한다. 이 물질은 연고, 또는 매우 진한 기름임은 분명하다.
예8:22-‘길르앗에는 향유가 있지 않던가?’
마26:7,12-‘그분이 가만히 계셨을, reclined 때, 여인이 예수의 머리에 향유 한 옥합을 쏟았다…예수께서 말하셨다, 그녀는 내 장례를 위하여 내 몸에 이 향유를 쏟았다’
겔 27:17-‘향유’에 의해 감사히 여김이 있는 진리들, 그리고 선으로부터 기뻐함이 있는 진리들이 의미되어진다. 그 이유가 천국에서 선으로부터 있는 모든 진리들은 향내음이 달콤한 것으로 지각되고, 이로부터 고마워하고 기뻐한다.
예46:11-‘오 이집트의 딸이여, 길르앗으로 올라가라, 그리고 향유를 가져오라’=말씀의 글자 의미로부터의 진리들, 그다음 그로부터 추론하고 지킴. ‘길르앗’에 의해 말씀의 글자 의미로부터 추론함이 의미된다. 이를 수단으로 거짓들이 확증되어진다, 그이유가 길르앗은 유브라데로부터 멀지 않기 때문,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밀납(wax), 유향(opobalsam), 그리고 소합향(stacte)이 왔다…’향유’에 의해 거짓인 것에 적용함, 그리고 이로부터 확증함이 의미된다.

향유 (resin)

* 수지(resin)를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