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그 이후 영들의 세계 그리고 천국과 지옥

hand h001역자 서문

이 책은 원서 천국과 지옥을 1/6의 분량으로 줄인 책이다. 따라서 원저자 자신의 영적 체험 내지 대부분의 성경 구절, 혹 문장의 반복되는 듯한 대목은 많이 생략되어 있어 어쩌면 원서 보다 더 이해가 안될지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책의 분량이 적은 것은 장점이다.

역자가 스웨덴볽의 천국과 지옥이라는 책을 처음 접할 때가 1969년도 였고, 그 뒤 신학 강좌 형식으로 몇 차례 공부 과정을 거치기는 했지만 그 공부는 귀로 듣는 수준이었을 뿐, 나 스스로 생각을 거듭하며 독파해본 적은 없었다. 사실 역자의 관심사는 내세의 이모저모 보다는 수많은 교파와 사람들에 의해 찢겨진 성경 해석을 스웨덴볽을 통해 전달된 상응 지식으로 정립해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지금은 성서 상응 사전을 마무리하고 스웨덴볽 신학 사전에도 도전해보려 하고 있다.

그렇다해도 되돌아보면 스웨덴볽 신학의 기초서라 할 수 있고, 유럽 사회를 포함, 그리고 칸트나 궤테, 에머슨, 타골 등등 대단한 역사적 지성 인물들이 애독했던 이 책을 정독하고 죽어야 하는 것이 스위든볽기안(swedenborgian)으로서 축복이자, 동시에 의무 아닐까하는 생각이 최근 있어 이를 성취하고자 이 책의 번역을 시도했다.

따라서 번역상 부족한 부분이 많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게 판단되는 독자는 완역본인 정인보 목사 번역과 김은경 번역을 직접 읽는 것도 더 나은 방법일 줄 믿는다. 이 소책은 완역본의 입문서 정도로 생각하기 바란다.

헬렌 켈러의 신앙 간증

helen keller001역자의 글

이 간증서는 켈러 여사의 중반기 (47세)에 “나의 종교”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원문에 소제목을 추가한 것 외에는 다른 수정 없이 직역을 원칙으로 번역을 시도했다. 따라서 소제목과 일치하지 않거나 여러번 정독 한다면 내용상 뒤섞인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이 원고는 그녀가 오래전 자신의 신앙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조금씩 작성했던 것도 일부 포함된데다 그녀의 중반기 시절에는 많은 봉사활동 내지 강연 일정을 소화하느라 바쁘기도 했던 연유에서가 아닌가 싶다. 오히려 역자는 이 점이 더 마음에 흡족했다. 그 이유가 이 책은 신학 강의서가 아니라 간증서이기 때문이다.

아마 웬만한 미국인이라면 쟈니 애플 씨드(Johnny Appleseed)와 헬렌 켈러 만큼은 기억하고 있다. 앞 사람은 미 개척 초기의 전설적 인물로, 뒤 사람은 삼중고의 슬픔을 기쁨으로 승화한 인물로 칭송되고 있다. 칭송을 일궈낸 일을 한 것은 육체이지만 정작 그들의 육체를 움직인 것은 그들이 스위든볽을 통해 얻은 내적 세계이다.

이 책은 그녀의 내적 세계가 어떤 계기에서, 어떻게, 누구의 도움이 컷었는지, 그리하여 기쁨으로 영글어진 내적 생명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 즉 자신의 종교를 진정한 반석 위에 세운 구체적 내용을 열거하고 있다.

그녀는 스위든볽지언(Swedenborgian)임을 천명하고 있다. 역자가 번역을 시도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켈러 여사 내지 스위든볽지언을 신비주의자라 말하는 일이 많다. 최근 “나는 신비주의자 입니다”라는 제목을 붙여 출간한 그녀의 한국어판 신앙 자서전도 보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나는 신비주의자”라 공언해서가 아니라 아마 그녀가 내세를 상세히 말하기 때문에서가 아닌가 싶다. 신비주의의 공식 풀이를 국어 사전을 빌리면, “순수한 내면적 직관과 직접적 체험에 의해 최고 실재자를 인식하려는 종교 철학 문학상의 경향”이라 설명하고 있다. 역자 더러 간단히 말해보라 하면, “하늘로부터 오는 삶의 원리를 배워 깨달아 이를 지상에서 응용해가려 노력함” 이다.

스위든볽지언은 신비주의자라고 하기 보다는 합리주의자라 하는 편이 18세기가 아닌 20세기를 위해서는 더 합당할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에 관한 것, 저쪽 세계의 원리들을 스위든볽의 가르침을 참고하여 성경으로부터 합리적 사고를 수단으로 알아 내기 때문이다. 이 합리적 수단의 하나가 상응(correspondence) 해석이다.

다시 말해 기독 신앙에의 접근 방법을 합리성에 기초한다는 말이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회사는 회사의 모든 것을 알 때까지 투자를 유보하라.” 이는 몇 년전 유명한 투자가 워렌 버핏이 후배 투자가에게 실패 없는 투자를 위해 조언한 글 한토막이다. 소문에 따라 투자하지 말라는 경고이다. 이 경고는 영원한 삶의 품성을 지상에서 선택해야 하는 인간에게도 꼭 필요하다. 어마어마한 교인과 화려한 돈냄새가 물씬 풍기는 거대한 건물 안에서 울려 퍼지는 찬양과 설교 내용이라 해서 검증 없이, 내 합리성의 되새김 없이 무조건의 아멘…은 재고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스위든볽지언은 믿음의 신비를 지적으로 접근한다. 다시 말해 신앙심을 키우는 방식이 산기도나 철야기도, 내지 방언 은사에 의존하기 보다는 성경을 합리적으로 더욱 더 이해해 감에 있다는 말이다. 그 이유가 “사람의 아들은 큰 영광과 능력을 가지고 하늘의 구름들에 오신다…(the Son of Man coming on the clouds of heaven with power and great glory)”(마24:30) 라고 그분의 재림 수단을 주님께서 직접 말씀해두셨는데, 이 “하늘의 구름들”이 거룩한 말씀의 글자들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성경 안의 하느님의 말씀에 그분의 출현이 있고 동시에 능력과 영광(영적 의미)이 그 글자 안에 드리워 있기에 말씀의 합리적 이해 (계시록 22:2)는 대단히 중요하다는 말이다.

스위든볽지언이즘(swedenborgism)은 스위든볽의 사명을 뒤따르는 것이다. 그분의 사명(mission)은 성경의 영적 의미, 또는 거룩한 상징 측면을 찾아내고 해석하는 것, 그리하여 말씀 속의 사랑 가득한 많은 진리들을 인류에게 날라다 주시려는 주님의 재림 섭리에서 그분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었는 바, 우리 역시 작은 도구가 되어 일조하는 것이다.

스위든볽지언의 삶은 미래에 보게 되는 것을 지금 보며 사는 것이다. 이들은 내적 감각을 활발히 응용하는 사람이다. 내적 감각에 선견(vision)이 있다.

이 책의 번역에서 한글 표기는 평범한 영어 사전에 있는 어휘를 일차로 선정했다. 가능한 신학적 냄새가 풍기는 용어는 피하고 싶어서였다. 이 책을 접하고 그녀의 신앙을 이룬 밑거름에 관한 더 많은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 사이트를 검색하여 자유로이 다운받아 가기 바란다.

WWW.BAYSIDECHURCH.ORG

 

새 예루살렘 그리고 그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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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서문

어느 누군가가 ‘당신이 말하는 새교회는 무엇입니까?’…더 정확히 질문받아서 ‘스위든볽지언(Swedenborgian)이 갖고 있는 교리는 무엇입니까?’라고 질문 받는 스위든볽지언을 위한 준비물로서 이 책이 적절하지 않을까 하여 번역을 시도했다. 그 이유는 이 책이 선견자의 책 중에서 가장 간단하면서도 무게 있지 않나하는 생각 때문이다.

45년 전쯤 대학 시절에 이 책을 만나는 기회도 가져었지만 아마 그 시절의 만남은 어쩌면 책을 관광하는 수준이었다고 판단된다. 물론 지금도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버벅거리는 수준이라 말해야 정확한 내 수준의 칫수이라 생각된다.

어쨌든 이 책의 장점이라면 30여권이 훌쩍 넘는 방대한 선견자의 저술 중 정수리에 해당되는 내용이 아주 짧은 문단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간결하면서도 집약적인 이 교리를 반복해서 읽고 숙고해서 가슴에 꼭 새겨놓길 바랄뿐이다.

이 책의 내용에 대해 더 충분한 이해는 주님의 자비하신 허락의 범주인 바, 해맑은 심정으로 주님에게 간절히 간구하는 자세로 옷깃 여미고 좌정한다면 여러분을 늘 수호하는 두 천사의 도움으로부터 가능하리라 확신한다.

바이블 스터디 노트

  1. bsn2001
  2. 이 책, “바이블 스터디 노트”1-4권은 자기 영혼의 생명의 양식을 얻고자 성경을 꾸준히 읽는 분, 또는 이를 위해 몇 사람들이 매 주 모여 공부하는 그룹들 등등의 분들에게 자료를 제공하려 해서 편역 출판된 책이다.

역자가 출판한 여러 성경 해설서 중에서 본 권은 과거 1970년도 경에 북미 새교회들의 주일 학교를 위해 아니타 에스 돌 여사께서 매 주 한 공과씩 집필하신 주일 성경 공과(bible study notes)를 번역한 것이다.

현재 시판되는 원서(영문판)은 총 6권으로 성경 책의 순서에 따라 재 편집되어 있다. 하지만 역자는 이 책을 돌 여사가 처음 구상하여 실시하셨던 그대로 매 주 한 공과씩 공부하여 4년에 마치도록 각 권당 40 공과, 전 4권 도합 160 공과로 처음 그대로의 방식을 따라 책을 엮었다.

영문판은 성경 본문을 생략하고 있으나 성경 통독이 우선임을 감안해 책의 부피가 커지는 단점을 감수하고라도 본문을 추가하였다. 또한 처음 성경 읽기에 도전하는 초심자를 감안해 부드러운 성경 번역이라 판단되는 공동 번역을 본문 읽기로 선택했다. 물론 이 번역은 역자의 상응 해석을 위해 마땅치 않은 대목들이 많아 개역 한글판을 인용하는 때도 많이 있다. 어찌됐든 우선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을 분명하게 다 읽는 것, 더불어 기억에 많이 남게 읽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은 성경 본문에 이어 교리 요점, 가정 예배를 위해 부모에게, 이어서 1, 2, 3반, 기본 상응 공부, 4, 5반, 그리고 각 공과 해설에 도움을 준 이매누엘 스웨덴보리의 저서로부터의 인용문이 첨부되고 마지막으로 각 공과를 마무리하는 일종의 시험지에 해당하는 질문과 답으로 매 주의 공과 공부를 마무리 한다.

각 반은 영문판의 경우 primary(1반), junior(2반), intermediate(3반), senior(4반), adult(5반)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 분류는 교회 주일 학교 공과를 위해 나이에 따라 붙여진 것으로 한국식으로 말하면 대략 초등, 중등, 고등, 대학, 성인의 성경 공부에 응용하도록 되어 있다. 초등 이하인 유치원 수준의 경우는 공작, 그리기, 등등으로 공부하는데 이 자료는 아래 웹사이트의 books scan에서 발견할 수 있다.

“교리 요점”은 각 공과에 등장하는 공통 주제를 요약해 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가정 예배” 편은 개인 사정상 교회에서 예배를 보지 못하는 가정, 또는 목사와 같은 전문가 없이 한,두 가정이라도 뜻있는 이들이 모여 예배를 보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설교 자료를 제공하여 어디서나 예배를 이어가게 하고자 편찬된 공과이다.

“기본 상응 공부”는 몇 안 되는 낱말이지만 기억에 담아두면 본문외 성경의 의미파악에 적잖은 밑거름이 되어줄 것이다.

“1-5반”의 시작 머리에 있는 작은 글씨체의 글은 성경 교사에게 보내는 글이지만 읽어두면 본문 이해에 보탬이 될 것이다.

“참고 문헌”은 각 공과의 의미파악에 도움을 준 이매누엘 스웨덴보리의 저서 속의 문항을 발췌 인용하고 있어 때로 이해가 난감해질 수 있지만 차차 이해될 것이다.

“질문과 답”은 각 반에 해당하는 질문 몇 개씩을 모두 모아 놓고 있다. 성경을 많이 읽은 분들이라면 질문 첫 항부터 중간까지는 매우 쉽겠지만 끝 부분 2-3개의 문항은 흥미있을 것이다. 첫 질문이 너무 쉬워 유치한듯 여겨지더라도 거룩한 성경 공부라는 점에서 겸손히 답을 만들며 기억에 더 다진다면 유익할 것이다.

교회에서 이 책을 사용하는 경우는 위와같이 분류하여 사용하는 것이 도움이 되나 요즘 시대는 각종 자료 수집이 쉽고 활발하기도 한 바, 특정한 어떤 교회를 의지하지 않고 나홀로 성경을 공부하고 싶은 많은 이들이 있는 바, 역자는 그분들의 성경에 대한 합리적 사고를 위해 이 책이 좋은 자료를 제공해 주리라 확신하여 년령별 분류가 아닌 성경 지식 수준에 따른 분류를 채택하여 1-5반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물론 본 서의 각 반을 매 주 다 읽고 공부한다면 이는 역자의 더할나위없는 바램이다. 그러나 이러할 경우 이해되지 못해 난해해지거나 혼돈되는 것이 염려되어 각자의 성경 이해 수준에 적합한 반만을 골라 30분 내지 1시간 내에 한 공과 공부가 끝날 수 있도록 각 반을 떼어내 한 권의 작은 책으로 재편집해 들고 다니기 쉽고 책 구입 비용도 줄이고, 공부 부담도 덜되어 꾸준히 이어나가는 성경 공부의 시작 끈 역할을 역자는 기대하여 큰 책인 “바이블 스터디 노트”를 분해하여 각 반별 작은 책 “성경 공과”라는 책명을 붙여 4권x6반=24권으로도 출판해두었다. 이 작은 책은 큰 책으로부터이기 때문에 95% 정도가 완전히 같다.

성경에 내 영을 위한 양식이 들어 있다 확신하여 성경을 멀리하지 않는 이들이라면 성경 읽기와 읽은 대목의 의미 파악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과제라 역자는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읽되 처음부터 단번에 지식을 쓸어 담듯 하지 말고 매우 천천히 매일, 또는 매 주 한 단계씩 밟아 올라 지상의 삶 안에 영계의 것을 담아 나가 저세계로 가져가길 기도한다.

이 책 외에 더 많은 내용은 웹사이트 http://www.baysidechurch.org를 검색하면 되는데 거기에는 라틴 성경, 이매누엘 스웨덴보리의 초판 저술(라틴어)과 그의 저술 대부분(영문판), 여러 목사들의 성경 해설서 (영문판) 및 이 책을 포함하여 역자의 모든 번역서와 저서, 그리고 미국 보스톤 주변 여러 교수들의 논문집(영문판)을 다운받는 것도 가능하다. 이 책들의 구입은 도서출판 벽옥으로부터 가능하다.

레위기 해설

leviticus1001말씀은 인류가 저작해 왔던 여느 책들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책이다. 그 이유는 크게 나눌 수 있는 세 가지 의미 즉 천적, 영적, 자연적 의미들이 집합하여 완전한 시리즈로서의 내적, 영적 의미를 형성해 가는 방식으로 배열된 상응적 표현으로 빈틈없이 건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말씀을 얼핏 본다면 마치 글자적 의미가 영적 의미를 생산하고 있는 듯 여겨질는지 모른다. 따라서 말씀의 외관인 글자적 의미를 가지고 확증하는 것은 잘못된 방식이다. 사실 말씀의 글자적 의미 또는 외관을 생산하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말씀 속의 내적 의미이다….이는 제23장으로부터 일부 발췌하였다.

  이 책의 본문은 the revised version 영어 성경으로부터의 한역본인데 상응 해석을 위해 가능한 직역을 했다. 하여 다른 성경도 참조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의 전부는 WWW.BAYSIDECHURCH.ORG에서 다운, 카피가 가능하고 책 구입은 도서출판 벽옥에서 가능하다.

요한계시록 해설

revelation2001서문 (Introduction)

거룩한 성경의 책들 중에서 계시의 이 책은 염려스러워 하면서 탐구할 수 밖에 없게 하는 깊은 주제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해석을 세세하게 담은 저술도 흔치는 않은 것 같다. 이런 연유는 이 책 자체의 속성 때문이다. 예언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이 책의 글들은 인간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시키고 재간을 잘 부리는 인간의 능력에 폭 넓은 기회(scope)도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의 설명이 불확실한 채 다양해진 것은 한 가지 이런 원인으로부터 발생하고 있다. 모세가 유대인에게 베일로 가린 예언자였듯 요한은 기독인에게 그러했다. 고린도 후서 3장 13-15절을 읽어보자. “우리는 모세처럼 자기 얼굴에서 광채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너울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은 일은 하지 않습니다.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너울에 가리워져서 우둔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옛 계약의 글을 읽으면서도 그 뜻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 너울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비로소 벗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모세의 율법을 읽을 때마다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너울로 가리워져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끝까지 볼 수 없으면서 폐지되고 만 것은 이스라엘 교회라는 하늘의 처방이었다. 기독교인들이 끝까지 볼 수 없으면서 폐지되는 것은 기독교회라는 하늘의 처방이다. 지금 말한 기독교 처방(Christian dispensation)은 기독교 신앙(Christianity)을 뜻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기독교 신앙은 끝이 결코 없고 대대로 더욱 힘과 영예가 증가해 갈 것이다. 그러나 이 교회의 첫 처방은 사라지고 또 다르고 더 나은 처방을 수단으로 계승되어진다. 이스라엘 교회의 처방이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으로 폐지되었듯이, 기독교 처방은 그분의 두 번째 오심으로 폐지되어 진다. 이 대목에 기독교인 내지 기독교 해설자의 큰 착오가 놓여 있다. 그들은 주님의 오심이 세상의 파멸에 대한 신호로서 그것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 주님의 제자들이 문의했고, 그분께서 그들로 하여금 예상하도록 격려하신 시대의 끝(the end of the age, Alwv)이라는 용어는 그들의 후계자들로 인해서 세상의 끝(the end of the world)으로 바뀌고 말았다. 참으로, 시대 또는 처방의 끝 그리고 그분의 두 번째 오심에 관한 주님의 서술은 글자대로에서 그분을 이해하려는 직역주의자들로 하여금 이런 물질계의 종말을 예견하도록 인도했을는지 모른다. 즉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그 빛을 주지 않고 별들이 하늘로부터 떨어지고 하늘과 땅 자체가 사라지는 종말이다. 그러나 성경의 비유적 언어를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예견이 예비적으로 성취되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이런 것을 글자대로 이해했고 계속 그런 식으로 이해하려는 것은 어째서일까? 그들의 마음이 소경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신약성서를 읽는데 있어서 이 베일은 벗겨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이 베일은 그리스도 안에서-그분의 두 번째 오심에서 벗겨졌다. 이 사건이 계시록의 해석을 주었다. 이런 사항이 은폐되어 있었던 것은 주님의 허용하심의 법칙 때문이었다. 어떤 예언도 그분의 두 번째 오심이 성취되기 전 명백하게 이해될 수 없었다. 어떤 교회도 그 교회의 끝을 확고 부동하게 쳐다 볼 수 없다. 그렇다고 이것이 질책의 원인인 것은 아니다. 이것은 당연하리만큼 필수적 사항이다. 주님께서는 그분에게만 알려진 방법으로 그분의 슬기와 복주시는 목적을 작업해내신다. 이 작업을 우리는 지식을 수단으로 훼방하려 들 뿐이다. 이 책의 참된 해석이 지금 알려져 있다. 그 이유가 주님의 두 번째 오심이 이미 거행되었기 때문이다. 이 오심이 예언을 설명했다. 그리하여 그 신비를 밝히 알렸다. 이 책의 설명에서 보여주겠지만 주님의 두 번째 오심은 대기의 구름(the clouds of atmosphere)안에 개인적으로 나타나는 오심이 아니고 주님께서 그분 자신의 신성한 인성(His own Divine Humanity)의 큰 영광과 권능 안에서 인간의 마음에 그분 자신을 보일 수 있게 하는 영적인 사건, 즉 말씀의 영적 의미를 밝히 알게 함으로 결과된다. 그분은 지상에 그분의 왕국을 새로이 건설하시러 오신다. 첫 기독교회라는 처방은 옥좌에 앉으신 그분의 얼굴로부터 사라져 버린 땅과 하늘로 의미되고, 두 번째 기독교회라는 처방은 그 뒤에 요한이 바라본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의미되고 있다. 요한이 본 것, 즉 신랑을 맞을 신부가 단장한 것처럼 차리고 하느님께서 계시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은 진리와 사랑의 처방같이 새 교회(the New Church)에 관한 특유한 성경적 상징이다.

주석자들은 예언을 이끌어 가는 사건에 관해 오류 속에 있어 왔다. 그들은 각 사건에 종속되는 세부사항들의 본성에 관해 실수할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 이유가 계시록은 책의 시작으로부터 교회의 연속적인 역사를 말하고 있다고 일반적으로 상상해왔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계시록은 끝 시대에 있는 교회의 상태를 기술하고 있다. 더구나 계시록은 자연계에서가 아닌 영계에서 나타났던 교회의 상태를 기술하고 있다. 교회 상태의 표현(manifestation)이 거행되었던 영적 세계는 중간 영역 또는 영들의 세계(world of spirits), 즉 모든 영혼(soul)들이 들어가는 세계, 조금 짧던, 조금 더 오래 끌던 영들이 천국 또는 지옥에로 건너가기 전에 머무는 곳이다. 거기서 모든 심판은 거행된다. 자연계에서가 아닌 거기에 크고 흰 옥좌가 놓여 있다. 거기에서 죽은 자들은 인물의 대소를 막론하고 모두 그 옥좌 앞에 서있고 자기들의 행적을 따라 심판을 받는다. 참으로 일반적 심판은 각 처방에 그 종말을 가져온다. 그리고 그 처방이 폐지될 때 새 처방이 개시된다. 심판 이전에 관련되어지는 계시록의 모든 것은 심판을 위한 준비를 묘사하고 있다. 심판 이후에 관련된 모든 것은 이런 것들이 사라졌을 때 계승되는 것들의 새 질서를 묘사하고 있다. 이럴진대, 사도 요한의 환상에 관한 설명은 계시록이 취급하는 신성하고 영적인 주제를 이해하도록 정신적으로 계발된 자,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삶 안에 존재하는 것들을 바라보도록 영적 시야가 열리워진 한 사람에 의해 가능했다. 사도 요한의 환상이 포함하는 비밀을 밝히 알리도록 자격이 주어진 오직 한 사람만이 이 묵시록을 열리게 했다. 그 열림이 주의 종, 이매누엘 스웨덴보리의 저술 (the Writings of the Lord’s servant, Emanuel Swedenborg) 안에 있다.

참고..윗글은 윌리암 브루스 지음, 배제형 옮김 요한계시록 해설로부터이다. 이 책의 전부는 WWW.BAYSIDECHURCH.ORG에서 다운 또는 카피가 가능하고 책 구입은 도서출판 벽옥에서 구입할 수 있다.

요한복음 해설

john1001서 문 (PREFACE)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사도 요한의 복음서는 다른 세 복음서와 분리되어 취급될 정도로 그 자체에 특이함을 지니고 있다.

요한은 복음서를 쓰면서 두 가지 목적(object)을 지닌듯 여겨진다. 즉 다른 세 복음서 기자가 빠트린 주님의 생애와 가르침을 기록하는 것, 그리고 무한히 긴 시대(Aeon)라는 실제적이 아닌 체현(embodiment)을 영원한 말씀 (Eternal Word)이라는 실제적인 인간의 모습을 갖추는 것(incarnation)으로 대체하는 것, 그리하여 교회가 그노스시즘(gnosticism)의 신상에 감염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다. (참고 요한1서 4장2,3절. 요한2서 1장7절) 그리고 이 복음서도 일반적, 특수적으로 공히 사용되리라는 것, 이 복음서를 저술한 신성과 인간은 목적 측면에서 일치되리라는 것, 그 이유가 선한 모든 의도는 위로부터 있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의 영감을 성령의 지휘 감독하는 영향력 수준으로 격하하거나, 더한층 격하해서 복음서를 인간의 저술로 단정해버리는 한, 위의 견해에 대한 이의제기는 언제나 있어질 수 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인데, 본 주석서의 경우 성경은 신성하게 영감되어 있다는 원칙 아래 해설을 진행하는 바, 나는 이 책을 소개하는 첫 장에서 위 문제를 우선 다루고 있다.

여기서 나의 목적(object)은 요한의 복음이 주님과 교회, 그리고 영적 품성 측면에서의 인간에 관련하는 타 복음서와 가지게 되는 관계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 이를 연속적인 계시의 시리즈로서 생각해 본다면, 이는 계시들이 만들었던 (보편적) 교회의 몇개의 처방(the several dispensation of the church) 아래 살았고 행동했던 인간 종족에 관한 하나의 역사이면서 각 계시의 품성을 반영해놓고 있다. 인류의 역사와 개개인의 역사는 서로 유추(analogy)되듯, 인간의 영적 역사의 신기원(epoch)들을 점철한 교회 처방도 거듭남의 시작부터 완성까지 거듭나는 삶의 실제적인 개시에 선행되는 상태들, 또는 준비단계에 있는 상태들을 묘사하고 있다. 인간 종족의 역사로서 아담부터 그리스도에 이르는 기간은 거듭나는 인간의 첫 시기로부터 둘째 시기까지의 기간, 즉 살아있는 혼(a living soul)으로 만들어진 첫 아담의 형상으로 태어난 시기로부터 소생하는 영혼(a quickening Spirit)으로 만들어진 둘째 아담의 형상으로 태어나는 시기와 유추된다. 그러므로 탄생부터 승천까지의 주님의 역사를 포함하고 있는 복음서들, 즉 그분의 신성화하심의 전체 과정(the entire process of His Glorification)을 기술하는 복음서들은 주님의 일(Lord’ Work)의 형상과 결과인 인간 거듭남의 과정도 포함하여 기술해놓고 있다.

고로  신약 성경이 구약 성경과의 관계에서 구분되는 특성을 가지는 한편, 신약 성경 내에서 서로의 관계에서도  몇 부분들은 구분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주님의 역사를 포함하는 각 네 복음서의 존재는 인간에 속한 게 아니라 하느님께 속한다고 가정해본다면 우리는 네 복음서가 신성한 지혜의 목적적 가치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각 복음서들은 서로 빠트린 대목을 보충하고 있을 뿐이다 라든가, 우리를 당혹케 할 뿐인 어떤 다양성을 지니면서 반복된 책일 뿐이라고 간주할 수 없다. 물론 네 복음서가 신성하게 저술되었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이 복음서에서 발견되지 않는 사건이 저 복음서에서 발견되는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요한의 복음서는 이런 문제가 적지 않게 눈에 띄는 책이다. 이 복음서를 통해 우리는 새 출생에 관한 니고데모와의 대화, 생명의 빵에 대한 유대인들과의 대화, 부활에 관한 마르타와의 대화, 아버지와 합일함(ONENESS)에 관해 제자들에게 말하심, 재회하심 (Reconciliation)의 왕관에 해당되는 행동인 신성화하심 (Glorification)의 일을 자신 안에서 완전하게 이루시라고 아버지에게 드리는 장엄한 기도 등등이다. 또한 자비심이 넘치는 그분의 일들 중의 몇 가지 역시 이 복음서에서 찾을 수 있다. 즉 베짜타 못가에서 허약자를 치료하심, 태어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보게 하심, 라자로를 일으키심, 제자들의 발을 씻으심 등등이다. 더우기 요한의 복음서가 타 복음서와 위와같이 내용면에서뿐 아니라 특성면에서도 독특한 몇 가지 사항들이 있다. 타 복음서 기자들이 공적 측면에 더 치중하고 있는데 비해 요한은 사적 측면에 더 치중하여 주님의 생애와 가르침을 기록하고 있다. 요한의 복음서의 거의 절반은 제자들을 놓고 있어진 시담 (transaction)인데 거기에도 가장 심오한 본성과 가장 깊은 취지가 담겨있다. 요한의 복음서는 타 복음서보다 품성 측면에서 더 영적이다는 것, 우리의 시선이 주님 한 분에게 집중하도록 한다는 것, 그분의 역사 측면보다 교리 측면을 더 제시하고 있다는 등등은 대다수 주석자들이 인정하고있다.

주님의 사도들 중 저명한 두 제자의 구분되는 특성, 즉 요한은 예수께서 사랑한 제자이고,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사랑한 제자로 네 복음서가 주목하고 있다. 요한의 복음서는 예수의 역사를, 타 복음서는 그리스도의 역사를 더 조명하고 있다. 요한은 주님을 개인 측면에서, 타 복음서는 주님을 메시아적 측면에 더 할애하고 있다. 요한은 구세주 예수의 특성을, 타 복음서 기자들은 왕되신 그리스도의 특성을 더 표현하고 있다. 요한은 신성한 사랑의 특성을, 타 기자들은 신성한 진리의 특성을 더 표현하고 있다. 요한의 복음은 주님의 생애와 가르침을 지적 국면보다는 행동적 국면을 더 표출하고, 그분의 제자들에게도 믿음보다 사랑의 목적(object)이 되게 하는데 더 치중하고 있다. 아마 노블(Noble)이 그의 강연에서 말한 것 만큼 더 명백한 표현은 없을지 모를다. 즉 마태와 마가의 복음서는 외적 측면에, 누가와 요한의 복음서는 내적 측면에 더 관계된다는 것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요한의 복음서는 주님의 신성화하심과 인간의 거듭남을 더 진보적으로 향상시켜 기술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요한의 복음서가 네 복음서의 마지막 째에 놓여 있듯 거듭나는 인간의 마지막이요 가장 완전한 상태, 즉 보다 수준 낮은 품위(grace)들이 종교생활의 면류관적인 품위인 주님 사랑을 중심에 둔 상태들을 묘사하고 있다.

참고..위 글은 윌리람 브루스 저작 배제형 옮김의 요한복음 해설로부터 이다. 이 책의 전부는 http://www.baysidechurch.org 에서 다운, 카피가 가능하고 책 구입은 도서 출판 벽옥에서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