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레위기를 교정 발간하면서…

말씀은 인류가 저작해 왔던 여느 책들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책이다. 그 이유는 크게 나눌 수 있는 세 가지 의미 즉 천적, 영적, 자연적 의미들이 집합하여 완전한 시리즈로서의 내적, 영적 의미를 형성해 가는 방식으로 배열된 상응적 표현으로 빈틈없이 건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역자가 이 책을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설교 준비를 위해서 자료를 모으던 30 년 전쯤 일 것 같다. 이 책의 특징은 선각자 에마뉴엘 스웨덴볽의 여러 저서 중 가장 큰 시리즈인 12권의 천국의 비밀들에서 취급된 창세기 출애굽기의 해석 원리를 바탕으로 열왕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영적 해석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위 책들 중 하나인 레위기서는 25 여년 전쯤 역자가 레위기 전체를 설교로 다루기로 계획하여 그 준비로 번역을 해두었는데 최근 재 정리를 시도했다. 아마 레위기를 읽은 사람 치고 재미있게 읽었다고 말하는 분은 드물지 모른다. 오히려 이 책이 어찌하여 성서의 세 번째 책으로 자리매김되었을 까 의아해하는 편이 더 많을지 모른다.
어쨋든 레위기서의 진가를 헤아려보기를 갈망하는 분이 있다면 이 역서는 그 열망에 도움을 주리라 확신한다. 단지 대단히 느린 정독을 역자가 부탁한다는 것만을 염두하면 될 것이다. 또한 위 선각자의 성경 해석을 다른 성경에 실습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이 레위기 해석의 접근 방식은 그 열정에 힘을 보탤 것으로 확신한다.
또한 역자의 저서인 성경 상응 사전 역시 이 레위기서와 같이 상응에 의거한 영적 의미만을 간략히 게재했으므로 곁들이면 성경 연구에 보탬이 될 것이다.

2019. Easter Sunday. in New York. Je H, Bae

** (각 장의 세부적 영적 의미에 있는 숫자들은 각 구절의 의미 파악을 위해 참고한 선각자의 천국의 비밀들의 10837항 중에서의 어느 항을 참조했음을 말하는 것이므로 영적 의미 파악에 보다 더 관심있거나 보다 더 폭넓은 이해를 원하는 독자는 천국의 비밀들의 그 항목 까지 추적해 참고하면 될 것이다. 또한 약자 표기로 T.C.R이 있는데, 이는 선각자의 진정한 기독 종교 라는 책의 항을 말하고 있다. 천국의 비밀들의 경우, 영역서를 읽기가 힘든 분을 위해 역자의 한역본 천국의 비밀도 있다. 또한 영역서, 라틴 원서, 내지 더 많은 참고 자료는 아래 웝싸이트를 검색하기 바라고, 종이 책이 필요할 경우, 아래 전화나 주소로 연락하면 도움을 줄 것이다.)
baysidechurch.org
bible study notes blog.wordpress.com
도서출판 벽옥 (전화: 010-4738-1711)
차례

입문 5
1장 7 10장 165 19장 343
2장 24 11장 181 20장 364
3장 36 12장 206 21장 380
4장 46 13장 213 22장 395
5장 67 14장 244 23장 414
6장 82 15장 273 24장 440
7장 103 16장 290 25장 455
8장 126 17장 313 26장 484
9장 150 18장 325 27장 508

성경 약자표

창 창세기 이 이사야 마 마태복음
출 출애굽기 예 예레미야 막 마가복음
레 레위기 애 예레미야애가 눅 누가복음
민 민수기 겔 에스겔 요 요한복음
신 신명기 단 다니엘 계 요한계시록
여 여호수아 호 호세아 고전 고린도 전서
사 사사기 욜 요엘 고후 고린도 후서
삼상 사무엘상 암 아모스 행 사도행전
삼하 사무엘하 옵 오바댜
왕상 열왕기상 욘 요나
왕하 열왕기하 미 미가
대상 역대상 나 나흠
대하 역대하 합 하박국
스 에스라
욥 욥기 습 스바냐
시 시편 학 학개
잠 잠언 슥 스가랴
아 아가 말 말라기
레 위 기

입문

구 신약 성서 속의 영감된 책들이 씌어진 이래 한가지 확실하게 존재한 것은, 그 책들은 글자적, 문법적, 역사적 의미 외에 영적이고 영원한 실재들(realities)을 묘사하는 감추어진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요즈음 들어 창세기 앞부분의 경우는 역사물이 아니다는 것이 널리 인정받고 있다. 그러하다면 그 책은 필시 감추어 놓인 의미 같은 것을 포함하고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뒤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 말씀에 관한 책들, 특히 명백하게 역사적인 책들까지도 역사적인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어떤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줄 수 있는 많은 서술들을 포함하고 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그 외 형제들은 창세기와 출애굽기에 기록된 그대로 살았던 실지의 사람들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표현을 위한 인물들(representative characters)이기도 하다. 그들이 이와 같다는 것을 인정할 때만이 우리는 그들에 관해 말하고 있는 많은 사항들을 적절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창세기 15-18장에 기록된 바 같은 아브라함과 여호와의 영적 교통에는 기초적인 영적 가르침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나,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창세기 22장 등등에도 그와 비슷한 수준의 가르침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누가 눈치챌 수 없을까?
위의 사항 외에도 말씀에 관한 후기에 속하는 책도 전기에 속한 책에 담긴 같은 수준의 진리를 보여주거나 매우 다른 방법으로 각 책 나름대로 진리를 담고 있다. 이렇게 해서 말씀 그 자체는 스스로 확언하기를, 말씀은 한분의 신성과 영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편 78편 첫 절에서 이렇게 읽게 된다. “오 내 백성들아, 내 법에 귀를 주어라. 내 입의 말들에 너희 귀를 기울여라. 나는 비유 안에서 내 입을 열 것이다, 나는 옛 비밀한 말들을 발음할 것이다.” 이 구절 다음에서 이스라엘 후손들의 역사에 관해 간략하게 되풀이함으로서 말씀에 있는 이 후손들의 모든 역사는 비유(parable)로서 속뜻을 담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 모세의 법들은 영적 의미와 글자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암시하는 구절들도 있다. 예를 들면 사무엘상 15장 22절에서, “여호와께서, 당신의 말씀을 따르는 것보다 태워 바침이나 평화 제물 바치는 것을 더 기뻐하실 것 같소? 순종하는 것이 제사보다 낫고, 그분의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염소의 지방보다 낫소.” 이 구절은 이사야 1장 20절에서 말해진 사항과 연결되고 있다. 그래서 마태복음 23장 23절은 모세의 법, 뿐만 아니라 제물들은 비유적인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영감된 책들이 일반적으로나 개별적으로나 공히 내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은 복음서나 계시록에서도 더 특별하게 알 수 있다. 이로부터 우리가 말하는 것은, 예수의 증거는 예언의 영(spirit)일 뿐 아니라, 말씀 전체는 가장 깊은 뜻에서 그분을 취급하고 있다는 것, 이 가장 깊은 뜻은 제자들로 그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주님의 부활 때에 제자들에게 알려졌다. (계시록 19:10, 누가 24:27, 45) 그러므로 사도들 시대 뒤를 이어 수세기 동안 살았던 초기 기독교인들이 성경은 내적 의미를 함유하고 있다는 것을 믿었던 것은 과히 놀랄 일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사실에 관한 그들의 저서에서 그런 사항을 찾아 볼 수 있다. 이에 대한 한 두 개의 예를 들어본다면, 이그나티어스(Ignatius)는 말하기를 (시편 108편에 관해, 26항목), “하느님의 법은 영적이다. 하느님의 법을 영적으로 취하지 않는 자는 진정한 법을 가진 게 아니다.” 어거스틴(Augustine)은 선포하기를, “모세의 저서를 글자 의미대로 취하는 사람들은 하늘 나라에 대해 배우고 싶어하지 않는다.” (contra Faust, lib. 12. 4장) 오리겐(Origen)은 모세법의 성직 임명과 예복에 관해 말하는 도중, “이 규정들 모두가 글자 외에 또 다른 의미에서 취해지지 않는다면….그 규정들은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가 발전되고 교도되기 보다 오히려 전복되는 쪽으로 움직여질 것이다” (레위기에 관해, 7장). 같은 책인 레위기 주석의 또 다른 부분(3장)에서 말하기를, “이 책이 주고 있는 제물에 관한 법은 영적 의미들로 충만 되어 있다.”
이제 한 걸음 더 진전하는 관찰을 하면 총명한 마음들로 하여금 말씀의 모든 부분에는 내적 의미가 있을 뿐 아니라, 그 의미의 해설들이 스웨덴볽의 「천국의 비밀들, Arcana Coelestia」에 수록되어 있다는 것까지도 수긍하게 될 것이다. 스웨덴볽 스스로 선포하기를, 자신은 주님의 재림을 알리는 사람이라는 것, 새로운 기독교 처방에 관한 교리를 인류에게 가르치고자 임명되었다는 것, (T.C.R. 779항) 이 교리는 주님이 밝히 알게 해주셨다는 것, 이 계시는 영적 의미 속에 있는 진리를 역설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자연계와 영계 사이에 상응(correspondence)의 보편적 법칙이 있다고 했다. 이 법칙에 의거 말씀은 건축되어 왔고, 이는 주님 스스로만이 건축하실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더욱이 영감된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에 있는 모든 부분에 보편적인 법칙을 응용함으로 말씀에서 순수한 내적 의미를 끄집어 낼 수 있다는 것도 명백히 알 수 있다. 그러면 새로운 처방에 관해 선각자가 이룩한 임무는 참되고 진정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를 성실히 따르는 이들은 안전하고 확실한 반석 위에 자신들을 세울 수 있다는 것까지 확인하게 된다. 그 이유가 상응의 법칙을 통하여 주님은 모든 인간에게 말씀으로부터 영적 진리를 가르치시기 때문이다.(T.C.R. 780항)
이제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로 이어지는 계속적인 시리즈에서 주어지는 영적 가르침은 「천국의 비밀들」로부터 전적으로 입증된다. 그리고 이 입증은 그의 저서에서 설명되는 세세한 상응에 전적으로 의존 할 뿐 아니라, 그 책 속에서 예증하는 일반적이고 특수한 법칙과 원리들에 의존하여 이루어질 것이다.

레위기 1 장

성경: 레위기 1장

1. 그리고 주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셨다, 그리고 만남의 천막으로부터 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2.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야기하거라, 너희 중의 어떤 사람이 주님에게 봉헌물을 바칠 경우, 너희는 가축떼로부터 봉헌물을 바치되, 소떼나 양떼로부터 바쳐라.
3. 만일 그의 봉헌물(oblation)이 소떼로부터의 태워 바침이다면, 그는 그것을 흠이 없는 수컷으로 만남의 천막의 문에서 바쳐라, 그리하면 주님께서 받으실 것이다.
4. 그리고 그는 태워 바치는 제물의 머리 위에 자기 손을 놓아라. 그가 보상을 받도록 그를 위해 그것은 받아질 것이다.
5. 그리고 그는 주님 앞에서 수소를 죽여라. 그리고 성직자인 아론의 아들들은 피를 넘겨받아 만남의 천막의 문에 있는 제단 주위에 뿌려라.
6. 그리고 그는 태워 바치는 제물의 가죽을 벗겨라, 그리고 그것을 조각들로 자르라.
7. 그리고 성직자 아론의 아들들은 제단 위에 불을 놓아라, 그리고 불 위에 장작을 질서있게 놓아라.
8. 그리고 아론의 아들들, 성직자는 (고기)조각들, 머리, 그리고 지방을 제단 위, 불에 있는 장작 위에 질서 있게 놓아라.
9. 그러나 그는 그것의 내장들과 다리들을 물로 씻어라. 그리고 성직자가 제단에서 태워라, 그 이유가 태워 바침은 불로 만든 달콤한 향기를 주님에게 바침이기 때문이다.
10. 그리고 만일 그의 봉헌이 양떼로부터, 양으로부터, 또는 염소들로부터 태워 바침이다면, 그는 그것을 흠이 없는 수컷으로 바쳐라.
11. 그리고 그는 그것을 주님 앞의 북쪽 방향의 제단 측면에서 죽여라. 그리고 아론의 아들들, 성직자들은 그것의 피를 제단 빙둘러 뿌려라.
12. 그리고 그는 그것을 그것의 머리와 지방들과 더불어 조각되게 자를 것이다. 그리고 성직자는 그것들을 제단 위 장작에 질서있게 놓아라.
13. 그러나 그는 내장들과 다리들을 물로 씻어라. 그리고 성직자는 통째로 바쳐라, 그리고 그것을 제단 위에서 태워라. 이것은 불로 만든 달콤한 향기를 주님에게 바침이다.
14. 그리고 만일 주님에 대한 그의 제물이 가금류들로부터의 태워 바침이다면, 그 다음 그는 그의 제물을 호도애로부터, 또는 어린 비둘기로부터 바쳐라.
15. 그리고 성직자는 그것을 제단으로 가져오라, 그리고 그것의 목을 비틀고, 그리고 그것을 제단에서 태워라. 그리고 그것으로부터의 피는 제단 측면에서 흘려라.
16. 그리고 그는 오물을 가진 멀떠구니(crop)를 가지고 가라, 그리고 그것을 재들의 장소에 제단을 벗어나는 동쪽 부분에서 던져라.
17. 그리고 그는 그것을 날개들을 수단으로 찢어라, 그러나 그것을 따로따로가 되게 나누지 말라. 그리고 성직자는 제단 위, 불 위에 있는 장작 위에서 태워라. 이것은 불로 달콤한 향기를 만들어 주님께 바치는 태워 바침이다.

영적 의미 요약

* 주님은 자연적인 선과 영적인 선, 모두로부터 예배되어져야 한다(1-2절).
* 그러나 자연적인 선 또는 애착으로부터의 예배가 시간 차원에서는 먼저 있어진다. (3-9절)
* 둘째로, 예배는 영적 애착으로부터 있어진다. (10-13절)
* 셋째로, 위 두 애착으로부터 예배되어지되, 더 낮은 평면에서도 있어진다. (14-17절)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그리고 주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셨다, 그리고 만남의 천막으로부터 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이는 주님으로부터 있는 유입(influx)은 천국을 통하여, 신성한 진리(말씀)를 수단으로, 지각을 주심으로 있어진다를 의미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또는 히브리어의 경우 여호와)는 사랑 측면에서 신성한 존재(Divine Being)를 말하고;, 부름(calling)이란 유입(influx)을; 모세는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이야기하심(speaking) 역시 유입, 의지, 생각을; 만남의 천막은 세 천국을; 말함(saying)은 지각을 의미하고 있다. (A.C. 2001, 6840, 7010,6752, 2951, 3540-3, 1791,1822.)
이 시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글자에서 특별한 개인이나 장소가 말해질 경우, 내적 의미에서는 모든 인간들과 상태들로 이해되어 진다는 점이다. 생명은 주님으로부터 천국을 통하여 직, 간접적으로 모든 인간에게 흘러든다. 이 유입은 신성한 사랑으로부터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있어진다. 그러므로 이 유입은 인간의 애착과 생각 속에서 그 자체가 명백해진다. 그 다음 인간은 각기 다른 상태에 따라 다양한 수준에서 지각(perception)을 가진다. 이런 과정들이 우리의 언어에서도 얼마나 많은지 여러분은 곰곰이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주님은 우리들 각자에게 세 겹의 방법 즉 본문에서 표현된 부르시고(calling), 이야기하시고(speaking), 말하시고(saying) 등의 방법으로 계속적으로 우리에게 호소하시고 있다. 어떻게 가장 높고 최상의 지각으로부터 느끼고, 생각하며, 행동하여야 하는가에 대해서 주님이 그 방법을 가르쳐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제대로 되지 않는다. 다음 절을 살피기 전, 잠깐 멈추어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진행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여호와 또는 주님이라는 단어에 관해 납득되는 명백한 생각을 가지는 것이다. 우리를 위해 가능한 생각은 무엇일까?
히브리어에서 단어 여호와는 여러 갈래에서 근원되고 있다. 이 단어는 어떤 생각도 해볼 수 없는 무한한 완전으로 계신 스스로의 존재, 영원한 신성의 존재, 과거에도 존재하시고, 지금도 존재하시며 장차도 존재하시는 분을 뜻한다 (출애굽기 3:14). 그래서 간혹 어떤 이들이 그분은 “육체도, 또는 그런 어떤 부분도, 열정도 없다”고 말할런지 모른다. 어찌됐든 분명한 것은 말씀 자체도 그분에 관해 “일찍이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요한복음 1:18) 라고 선포하고 있다. 그렇다고 위의 사항들이 단어 여호와가 뜻하는 전부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사야 43장 10,11 절에서 “…손으로 빚은 신이 나보다 앞서 있을 수 없고 후에도 있을 수 없다. 나, 내가 곧 여호와이다. 나 아닌 다른 구세주는 없다”라고 읽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주시해야 할 것은, 첫째로 우리에게 언제나 가르쳐지는 것은 주님은 “하느님은 모양이 있었다, God formed” 라는 것, 그 이유는 스스로 존재하는 것, 생명 자체는 모든 존재들의 최고의 물질적(substantial)일 것임에 틀림없고 모양이나 속성(quality)이 없는 물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하나의 유일한 물체(substance)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다. 그것은 무한이요 신성이다. 둘째로, “하느님은 모양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 모양은 우리의 납득력을 초월함에도, 이와 똑같은 하느님이 후에 우리가 의식 가능한 낮은 수준의 생명에서 모양이 생기시어 구세주가 되고 있다. 말씀의 옛 예언들 모두가 서술하는 것은 여호와 자신이 시간이 차면 구속자, 구세주가 되실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한 증거는 아래 한, 두 구절으로 충분하리라고 본다.
“그날 이렇게들 말하리라. 이분이 여호와이시라. 구원해 주시리라 믿고 기다리던 우리 하느님이시다. 이 분이 여호와이시다. 우리가 믿고 기다리던 여호와이시다. 기뻐하고 노래하며 즐거워하자. 그가 우리를 구원하셨다.’”(이사야 25:9) “내가 다윗의 정통 왕족을 일으킨 그 날은 오고야 만다.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그는 현명한 왕으로서 세상에 올바른 정치를 펴리라. 그를 왕으로 모시고 유다와 이스라엘은 살 길이 열려 마음놓고 살게 되리라. ‘여호와 우리를 되살려 주시는 이’라는 이름으로 그를 부르리라”(예레미야 23:5-6). “너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것은 나 여호와 너희 하느님이다. 너희에게 나 이외에 어느 하느님이 있었느냐?”(호세야 13:4) 그리고 우리가 위의 말들이 확증 되도록 신약 성서에 있는 문단을 찾아 볼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주님이 이전에 계셨고, 지금도 계신 명백하게 드러내신 여호와이심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하느님에 관한 진정한 생각은 무한하게 영화로우신 신성한 인간(Divine Man), 즉 단 하나의 인격이 아버지, 아들, 성령으로 체현되어 있는 것, 또는 바울이 표현한 “그리스도의 인간 안에는 하느님의 완전한 신성이 깃들어 있다” (골고새 2:9)와 같은 신성한 삼위일체이다. 그 이유는 그분에 관해서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마태 1:21-23). 또한 그분은 “만민의 주이시다” (사도행전 10:36). “그분은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디모데전 4:16). “그분은 하느님의 본질을 그대로 간직하신 분” (히브리 1:3). 신성으로부터 그분은 인성 측면에서도 모든 권능을 가지고 계신다 (마태 28:18). 그분의 이름들은 아버지, 아들, 성령이다 (마태 28:19, 사도행전 19:5). 그분의 인간 본성은 신성이 나타나 보이신 것이다 (요한 14:9, 이사야 9:6,7). “만일 너희가 내가 그 분이라는 것을 믿지 않으면 그와 같이 죄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죽고 말 것이다”(요한 8:24). “지금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계시록1:8). 이상의 구절에서 그분이 말하신 것, 즉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몸소 하시는 일이다” (요한 14:10).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숨을 내쉬시며 말씀을 계속 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요한복음 20:22) 라는 구절들을 보태어 생각하면, 아버지, 또는 신성한 본성(Divine Nature)은 육체 안에 영혼이 들어 있는 것 같이 예수 안에 계신다는 것, 아들 또는 인간 본성은 신성이 되셨을 때 한 분 신성한 인격 안에서 아버지가 나타나 보이셨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성령은 그분으로부터만 진행된다는 것도 알 수 있으리라. 위에서 살핀 내용들은 우리가 납득할 수 없는 여호와에 관한 유일하게 진정한 생각들인 바, 만일 위의 생각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그분에 관한 사상은 뒤집혀지거나 기괴한 곳으로 빠지든지, 아니면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쪽에 해당될 것이라 본다. 위의 글을 좀 더 완성하기 위하여 한번 더 노력해본다면, 창세기 1장 26, 27절에 있는 바와 같이, 인간은 하느님의 모양을 따라 형상에서 창조되었다는 것, 이로부터 알 수 있는 첫째 원리는, 하느님 자신도 실지로 사람(Man)임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더 달리 그분은 계실 수 없었을 것이고, 시간이 차면서 마지막 또는 가장 낮은 수준에서의 한 인간(a Man)이 되셨을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입으신 그분의 인간 본성은 실재적으로나, 실체적으로나 그분의 신성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거기에는 추상적인 능력, 지혜, 사랑 같은 것은 유한이든 무한이든 존재할 수 없고, 그 결과 추상적인 전지전능, 무소부재 같은 것도 있을 수 없다. (마태 28:18-20 참조) 신성한 삼위일체에 있는 요소들은 전체라는 하나됨을 파괴치 않고는 셋 중 하나, 또는 둘, 혹은 셋 각각이 분리될 수 없다. 모든 생명과 물질 그 자체에 신성한 인간이 없으면, 우주의 영적이고 자연적인 모든 것은 창조되지 않았을 것이고, 더구나 계속 존재할 수도 없다.

2절.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야기하거라, 너희 중의 어떤 사람이 주님에게 봉헌물을 바칠 경우, 너희는 가축떼로부터 봉헌물을 바치되, 소떼나 양떼로부터 바쳐라.

영적 의미

위의 유입은 영적 교회 속의 사람들을 가르치시기 위함이고, 이 가르침으로 해서 예배라는 행동은 주님을 인정하고 그분에게 애착을 바치는 것임을 알게 되고, 이 사항들은 반드시 자연적인 것과 영적인 것에 함께 존재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야기하여라(speaking)는 유입이고, 말하라(saying)는 지각이나 가르침을; 이스라엘은 영적 (왕국의) 교회(the Spiritual Church)를; 봉헌물을 바침은 주님을 인정함과 예배를; 소떼나 양떼는 자연적인 애착과 영적인 애착을 각기 나타내고 있다. A.C 2951, 1791,1822, 3654, 349,922, 5913,6125
이 절에 있는 영적 의미의 중요한 세 가지 사항은, 유입과 유입의 결과인 계시(밝히 알게 함, revelation)은 간접적으로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도 존재한다는 것, 주님께 드리는 예배는 반드시 자유 안에 존재해야 할 것, 그리고 예배는 주님을 인정함이 필수로 있으면서 심정 속의 애착들을 그분께 바쳐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하시되 직접적으로 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만남의 천막으로부터 모세를 통해서 말하셨다. 어느 누구도 신성한 생명, 사랑, 또는 선을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하지 않고서는 받을 수 없다. 그 이유가 사랑은 진리가 아니면 품질(quality)을 가지지 못하고, 진리가 선으로부터 존재치 않으면 생명 없는 진리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내적 인간(internal man)에 의해 받아진 진리는 외적 인간(external man)이라는 상태 안에 머물러야만 한다. 다시 말해 예배가 강요된 상태에서 있어졌다면 그 예배는 어떤 가치가 있게 될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주님께 제물이나 태워 바침의 제물을 바치는데 어떤 강요도 있지 않았다. 다시 물어 보자. 사랑 자체는 자유이고, 예배가 자연적이든 영적이든, 모든 예배의 필수 요소는 자유이다는 것을 누가 알지 못할까? 진정으로 주님께 예배하는 것은 안쪽, 바깥쪽의 혼(soul) 모두를 가지고, 모든 심정을 다해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의문이 자연히 제기된다. 앞 절에서 있었던 간단한 소견에서 보여진 것은, 주님은 한 분 신성한 개인(a Divine Person)되신다는 것, 그런 이유는 추상적인 능력이나 지혜, 사랑 같은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서 인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주님을 사랑함은 그분의 본질과 관계없이 개인으로서의 사람이란 측면에서 최고로 높이 숭배하는 것이라고 상상해 볼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상상은 상당히 잘못된 것이다. 진정한 것은, 우리가 그분을 신성한 한 분의 인물 (a Divine Person)로서 그분을 생각지 않으면 하느님에 관해 올바르게 생각할 수 없다는 것. 이와 동등하게 진정한 것은 우리는 하느님을 한 분(한 개인)으로 막연히 단순하게(simply) 그분을 사랑하거나 예배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우리는 그분의 본질(essence)이란 측면에서, 이와 동시에 개인으로서의 사람이란 측면에서 그분을 사랑하고 예배해야 한다. 자연히 알 수 있는 바는, 주님을 사랑함은 간략히 말해서 그분을 구성하는 선과 진리를 사랑하는 것을 뜻하고, 따라서 우리가 지닌 선과 진리, 애착과 총명에 속한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으로부터 우리 안에 존재함을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의 사항은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데 우리의 자연적인 애착과 영적인 애착들을 어떻게 헌신해야 하는 가를 이해되게 해준다. 줄여서 말해 본다면, 우리는 주님을 사랑해야만 한다. 그 이유는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리고 그분은 먼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나누어 주셨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그분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보답은 그분으로부터 받은 능력과 애착들을 올바르게 사용함으로 가능해 진다.

3절. 만일 그의 봉헌물(oblation)이 소떼로부터의 태워 바침이다면, 그는 그것을 흠이 없는 수컷으로 만남의 천막의 문에서 바쳐라, 그리하면 주님께서 받으실 것이다.

영적 의미

그리고 만일 주님이 자연적 애착으로 예배되어진다면, 그 애착을 그분께 통째로 바치되, 진리들을 수단으로, 악과 거짓에서 순수해짐으로, 또는 순수한 진리들을 수단으로 하되 주님만이 천국을 통하여 있게 되는 유입을 수단으로 인간이 예배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신다는 것을 인정함과 더불어 있어져야 한다, 그 이유는 이런 예배만이 주님이 받으시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태워 바침은 특별히 사랑으로부터의 예배를; 제물은 신앙으로부터의 예배를; 소떼로부터 바치는 제물은 자연적인 선으로부터의 예배를; 태워 바침의 제물은 주님께 드리는 충만된 헌신, 또는 충분히 신성시됨(full sanctification)을; 수컷이란 진리를; 흠이 없음이란 악과 거짓으로부터 순수해짐을; 문(door)이란 주님이 인정하심을; 만남의 천막이란 천국들을; 주님께서 받으실 것 이란 순수하기 때문에 받으심을 뜻한다. (A.C 8680, 5913,6126, 2776, 725, 7837, 3540-3, 9506-1)
이 절에서 특별하게 정리해 보아야 할 요점은 이러하다: 말씀 속의 진리와 악으로부터 순수해짐을 수단으로 하지 않고는 주님께 드리는 진정한 예배는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만일 인간의 심정들이 한결같이 정상이라면 각 개인이 지닌 교리가 무엇이냐는 것은 하등 중요한 사항이 못될 것임은 어린아이도 수긍할 수 있는 이론일 것이다. 따라서 애착보다도 주님을 예배함에 더 요구되는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것은 순수한 진리, 또는 교리이다. 애착이 동기의 불순함이나 동기와 더불어 진행되는 어떤 행동이 자기가 옳다고 하는 생각, 짐짓 자기가 선하다고 하는 교리 속의 거짓으로 오염되고 있다면, 어떻게 그 애착이 주님께 바쳐질 수 있을까? 참으로 그것은 불가능이다. 자연적인 선으로부터 우리가 예배드리는 바, 이 선은 예배 이전에 받은 진리, 이 진리가 회개하는 삶에 응용된 뒤, 응용된 진리를 통해 주님으로부터 받게 된 선이어야만 한다. 우리의 제물은 “흠이 없는, 또는 온전한 수컷”이어야 한다. 이렇다면 다시 우리의 진정한 예배에는 뭔가 더 포함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즉 우리가 진리(Truth)의 영향으로 악과 거짓을 멀리하는 바깥쪽 행동만 가지고는 충분치 않다는 말이다. 우리는 주님이 문이심을 인정하여야 한다 (요한 10:7-9). 우리는 천국을 통해 오는 그분의 영향력, 즉 우리에게 흐르는 성령의 역사가 수단이 되어 직접적으로, 또는 우리들의 상태를 조절하여 우리로 예배할 힘을 가지게 해준다는 것을 자신에게 충분히 납득시켜야 한다. 그 이유는 간접적인 유입(influx)이 있는 곳이면 언제든지 직접적인 유입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수단으로 주님은 모든 것을 일반적으로나, 아주 세세한 부분들까지 서로 연결시켜 질서가운데 보존하신다. 참으로 그분은 모든 사람 각자가 드리는 예배를 변함없이 받으시기를 매우 기뻐하신다. 그러나 그 예배에 내적 순수함이 외적 순수함과 더불어 동시에 있지 않으면 주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되어질 수 없다.

4절. 그리고 그는 태워 바치는 제물의 머리 위에 자기 손을 놓아라. 그가 보상을 받도록 그를 위해 그것은 받아질 것이다.

영적 의미

더불어 위와 같은 예배는 의지와 이해함 속의 모든 힘으로, 내적인 것과 교통됨으로 있는데, 그 이유는 위의 사항들 때문에 악이 제거되고 내적인 것과 결합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손이란 힘(power)을;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는 것은 내적인 것으로부터 외적인 것까지에 이르러 힘이 교통됨을; 보상을 받도록 받아들여짐이란 감사히 생각하고 주님을 매우 기쁘시게 하는 것을, 그 이유는 그렇게 됨으로 해서 악이 제거되어져 내적(Internal) 부분과의 결합이 결과되기 때문이다. A.C 878, 10023, 10042-II. 3절
“보상, 죄를 벗음, atonement”으로 번역되는 히브리 단어의 뜻은 죄를 위한 덮개인데, 통상 세 가지 의미들이 있다고 말해지고 있다. 즉, “죄를 위해 벌금을 무는 것, 분노함을 달래는 것, 재난을 피하는 것”이다. 이런 뜻이 과연 무엇인지 올바르게 알고 싶어 자신에게 되묻겠다면, 이제 제대로 이해되어질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글자 의미로 말하면 태움이고, 영적 의미로는 태움으로 나타난 자연적인 선한 애착이다. 죄를 덮음, 또는 벌금을 문다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받게 된 다양한 품질이나 각기 다른 수준에서 있는 선 외에는 더 다른 게 없다는 것을 우리는 진리로 알 수 없을까? 이에 대한 심사숙고의 결과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바, 태워 바침이나 제물의 진정한 영적 의미에 관한 것이다. 이것들은 거룩한 삶의 모든 의무에서 주님을 섬기려는 우리의 선한 애착들을 신성하게 함을 나타낸다. 이렇게 헌신하려는 노력이 어떻게 죄를 덮으며, 분노를 달래고, 재난을 피하게 하는지 이제 알아야만 할 것이다. 지금까지 아주 흔하게 믿어온 것 중 하나는, 죄의 보상, 또는 죄를 덮는 것이 그리스도의 죽음, 또는 그리스도가 제물이 됨, 모든 인류의 죄를 위해 그분에게 가해진 벌로 생각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엉터리 주장은 새 시대의 빛 앞에서 빠르게 사라져 가고 있다. 죄인 자신이든, 그 죄인을 대신한 다른 대체물이든 간에, 단지 처벌을 수단으로 죄가 덮어지거나 제거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록 처벌이라는 것이 악이 뛰쳐나오는 것을 억누르게 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처벌이 악을 제거하지 못한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이해하는 사실이다. 회개에 관련된 진정한 작업만이 악의 제거를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어떤 인간의 죄를 위해 또 하나의 처벌, 그 다른 것이 주님의 인간 본성일 것이라 해도 위와 같이 결과될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한 일이다. 이사야서에서 말하기를, “그런데 실상 그는 우리가 앓을 병을 앓아 주었으며, 우리가 받을 고통을 겪어 주었는데, 우리는 그가 천벌을 받은 줄로만 알았고 하느님께 매를 맞아 학대받는 줄로만 여겼다. 그를 찌른 것은 우리의 반역죄요, 그를 으스러뜨린 것은 우리의 악행이었다. 그 몸에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를 성하게 해 주었고, 그 몸에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의 병을 고쳐주었다” (43:4,5). 인간을 구속해 주고자 주님께서 고통을 받으셨던 것은 진정한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고통이나 죽음이 악인이나 악령, 또는 아버지(Father)에 의해 그분에게 가해진 벌이라고 말하는 것은 진정한 것이 아니다. 거듭 말하건대, 참으로 그것은 아니다. 그 반대로 그것은 그분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셨기” (요한 3:16) 때문이었다. 그분은 어둠의 모든 권세와 맞서시고, 자연적인 것, 물질적인 것에 해당되는 고통을 견뎌내심으로 그분의 인간 본성 측면이 종속되어졌다. 이렇게 그분이 하신 것은 인간이 선과 악 사이에서 완전한 자유를 보존시키심을 수단으로 악의 절대적 우세함에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였다. 이러므로 가장 광대한 의미에서 신성한 사랑은 인간으로부터 악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인간을 위해 덮개, 또는 보상이 되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 이유가 인간에게 주어진 완전한 자유를 악이 강취하려드는데서 구속의 일을 수단으로 인간의 이 자유가 보존되는 바, 이런 견지에서 죄가 덮어진다던가, 제거된다는 것, 따라서 죄가 감추여 놓여 있거나 침묵 속에 들어가 있는 것뿐이다. 또 하나 각 개인의 측면에서 가장 광대한 의미에서 진정한 것은, 주님께서 인간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보존하시는 한편, 어머니 쪽에서 유전된 악에 빠지려는 경향성을 추방하시고, 그분의 인간이 신성이 되셨음에도 인간의 악은 인간과 더불어 영원히 남아 있고, 인간이 거듭 나아가면서 각자 속에 있는 선들의 세력이 우세함으로서 인간의 악은 단지 그 선들로 덮여 있거나 침묵의 상태에 있어 그 악이 그 인간을 곤란에 빠트리거나 돌출 하려드는 것이 중단되어 있을 뿐이다. 이상으로부터 4절에서 의미되는 것, 여타 말씀에서 언급되는 덮개 또는 보상, 보상이 보편적으로든, 특수 측면에서이든 공히 무엇을 의미할 것인지 알았으리라 본다 (고린도후 5:18,19 참조).
둘째로 살펴볼 것은, 어떻게 이 보상(atonement)이 분노를 가라앉히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주님 안에 분노가 있다라든가, 이 분노가 인간의 고통으로 인해 가라 앉혀질 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이다. 그 이유는 무한하게 완전한 주님이 분노하실 리 없는 것은 말라기 3장 6절을 읽어보면 알게 된다. 즉 “나는 여호와라, 나는 변하지 않는다. 너희를 여전히 야곱의 후손으로 대접하리라.” 그런데 신명기 32장 35절에서는, “복수는 나의 것, 대갚음한다.” 우리는 인간을 위해 설비된 주님의 자비, 설사 그 자비가 고통이나 처벌의 허용으로 나타날 경우까지 포함해서 주님의 자비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성냄, 분노, 그리고 복수 등등이 주님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 말씀 안에 있는 진리의 가상(appearance)까지 이해해두어야 한다. 말씀의 외관(appearance)에 나타난 언어들, 분노는 인간이 주님을 싫어하는 것, 또는 개인이라는 측면으로 보면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을 혐오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혐오가 분노라는 외관을 띄는 것이다. 그러므로 분노가 보상으로 달래지는 방법은 신성한 사랑과 조화를 이루는 쪽으로 인간이 다가서야 하고,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사랑의 원리로 악을 거절하고, 동시에 선을 보상으로 받아 선과 교통하는 방법 뿐이다.
셋째로 살펴볼 것은, 이 절이나 여타 말씀의 다른 문단에서 언급되는 보상을 수단으로 어떻게 재난이 피해질 수 있을까? 이다. 이 문제는 피해를 생산해내는 것이 악의 참 본성이고, 그 반대의 혜택을 주는 것이 선이라고 하는 간단한 생각만으로도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재난은 사악한 자를 덮칠 것이고, 선을 받음으로 피해질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소를 바치는 태워 바침이 명시하는 선의 종류에 이 원리를 응용한다면, 인간이 자연적 애착들을 바쳐 주님이 그들에게 주시게 된 능력들을 단지 이기적이고 세상적인 목적에 충당한다면, 그들은 그 행위에 반드시 재난이 수반됨을 예상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이 구절들의 내적 의미에 의거 주님에게 자신들의 애착을 헌신할 때, 외적인 것이 내적 인간과 결합함을 통해 이런 저런 재난들은 한 쪽으로 비켜지고, 동시에 주님과의 결합을 가지게 될 것이다. 다음 구절에서, 그리고 레위기서 다른 장에서도 이에 대한 예증은 풍부하게 있다.

5절. 그리고 그는 주님 앞에서 수소를 죽여라. 그리고 성직자인 아론의 아들들은 피를 넘겨받아 만남의 천막의 문에 있는 제단 주위에 뿌려라.

영적 의미

더욱이, 위와 같은 자연적 애착은 주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자아부정을 수단으로 준비되어야 한다, 그리고 선으로부터 파생되는 진리들과 그 선과 결합함이 있어야하며 선행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주님으로부터임을 인정해서 천국에 입장되는 허가를 얻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수소(bullock)를 죽임은 자아를 부정함으로 준비함을 표시하는데, 그 이유는 주님을 예배함은 자연적 인간 안에 있는 순진의 선으로부터 있어지기 때문이다; 성직자인 아론의 아들들이란 선으로부터 파생된 진리와 그것에 따른 결합을; 피를 넘겨 줌은 선행(charity)이 주님으로부터임을 인정하는 것을; 제단 주변에 피를 뿌림은 내적으로, 외적으로 진리와 선의 결합을; 만남의 천막의 문이란 천국에의 입장을 허가 받기 위하여를 표시하고 있다. (A.C 10024, 9990, 9946, 10027, 1001, 10047, 2356, 3540-3)
이 절에서는 제물로 바쳐지는 동물을 죽이는데 함유된 이중적인 의미들에 주목해 보면 흥미가 있게 될 것이다. 한 가지 의미는, 낡은 것, 또는 단지 자연적 삶 뿐인 것을 거절하는 것이다. 그 이유가 거듭나는 과정에서 우리는 “옛 생활을 청산하여 낡은 인간을 벗어 버려야 한다” (골로새 3:9). 그리고 “새 인간으로 갈아 입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물이 된 동물은 두 가지 면에서 상응을 가지고 있다. 우선적으로 이 동물은 새롭고 더 높은 삶을 표시한다. 그 이유는 더 높은 삶 만이 주님께 바쳐질 수 있는 삶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계되는 측면에서 볼 때, 이 동물은 완전한 삶이 수용되도록 준비하려면 반드시 낡고 낮은 삶이 거절되어야 하는 것도 의미한다. 즉 죄짓는 영혼은 선한 것을 날마다 계속적으로 거절함으로 죽게 될 것이고, 회개하는 영혼은 악한 것의 거절로 자기 속의 악한 것이 날마다 죽게 될 것이다 (에스겔 18:20, 고린도 전 15:21). 이것은 자아 부정을 꾸준히 연습하는 인간 자신의 협동을 빼놓고는 있어질 수 없는 일들이다. 더불어 생각해 볼 것은, 말씀의 필수인 진리가 어떻게 선으로부터 파생되는지가 아론의 아들들로 표현되고 있는데, 이는 거듭남의 일에서 있어진다. 즉 어떻게 이런 진리들이 선으로부터 능력을 가지며, 어떻게 선행이 인정되고 선과 진리는 천국 삶의 달성을 위해 꼭 결합되어야 할 것 등등이다.

6절. 그리고 그는 태워 바치는 제물의 가죽을 벗겨라, 그리고 그것을 조각들로 자르라.

영적 의미

위의 자연적 애착으로부터 모든 거짓은 분리되어야 한다, 그리고 애착에 관계된 진리들은 자기들의 선 아래 주님에 의해 순서대로 서로 구분되게 배열되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제물의 껍질을 벗김, 또는 가죽을 벗김은 최 말단에 있는 거짓이 분리됨을 표시한다; 그리고 동물을 여러 조각을 낸다는 것은 선 밑에 진리들을 순서대로 배열한다는 것, 또는 상급의 선 다음에 하급의 선을 차례대로 배열한다는 말이다. (A.C. 10036, 10048.)
여기서 특별히 관찰해 볼 것은, 인간의 거듭나는 일에 관해 언급하는데 불필요한 동물에 대해서는 어떤 방향 제시가 없다는 점이다. 이런 제시가 천국으로부터 밝히 알려줄 필요가 있을 거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도 않을 것이다. 언급되지 않는 동물은 예배의 바깥쪽 행동으로서만 그 중요성이 있을 뿐이다. 바깥쪽 행동으로 만의 예배는 주님께서 바래시지 않는다 (시편 40:6-8 참조). 주님이 바라신다면 아주 적은 양 일 뿐이다. 그럼에도 예배 행사 속의 각기 특별한 사항들은 진정한 영적 예배, 그리고 진정한 천국 삶의 불가피한 요소들을 의미하거나 표현하도록 의도해 놓으셨다. 거짓들을 확실히 제거하면서 선하고 참된 애착들을 질서 있게 배열하는 것이 작은 일이라고 생각되면 큰 착각이다. 이 일은 주님만의 일이다. 인간이 협력하는 동안 우리 속에서 실지로 주님만이 이것이든 저것이든 하실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이 해내 보려고 신실하게 노력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헛된 일인 듯 여겨지기만 한다. 우리들 중 누구도, “내 행동은 실수하고는 거리가 멀어, 나는 마음 속으로나, 밖으로나 완전해” 라고 말할 자는 없을 것이다. 자신이 잘못 투성이라는 것에 대해 자신 스스로 보증하면 풀이 꺾여 그 자리에 주저앉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록 불완전으로 점철된 우리의 노력이지만 결국 성공이라는 관을 쓰게 될 것이다. 각자의 하루 속의 일들이 거듭남이라는 목적을 위해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알 수 없다면 오히려 말씀으로부터 어떻게, 왜…등등을 알고 위로 받게 될 것이다. 즉 시련의 상태를 통과하는 동안 우리 속의 “밀”과 “가라지”는 함께 성장한다 (마태 13:30). 우리는 우리 속의 밀과 가라지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진실로 알 수 없다. 때로 그 성장은 우리가 느끼고 생각한 것 이상으로 더 나을는지 모르고, 때로 그 반대일 수도 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각자의 일상 생활, 매일의 업무를 조심과 근면을 가지고 처리해 가는 것이다. 그래서 만일 우리가 거듭남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잘 견뎌낸다면, 우리는 구원되어질 것이다. 적절한 때가 오면, “가라지”는 사라지고, “밀”은 곳간에 쌓아질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모든 상태는 질서 있게 배열될 것이다. 우리 자신과 근사한 이들과 연합하는 것도 정당하고 진정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온전하신 것같이 비록 각자 수준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각자 나름대로 온전해진 만큼에서 제자리를 차지하게 되리라.

7절. 그리고 성직자 아론의 아들들은 제단 위에 불을 놓아라, 그리고 불 위에 장작을 질서있게 놓아라.

영적 의미

또한 선과 결합되고, 선에서 파생된 진리를 수단으로 주님이 예배되어지되 사랑으로부터 있어야 한다. 동시에 그 예배는 본인으로부터 행해진 듯, 즉 예배를 드리게 된 공적이 자기에게 있는 듯 여겨져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의 아들들(후손들, 혈통)은 선에서 파생된 진리와 이 진리가 선과 결합함을 표현한다; 불은 사랑을 의미한다; 제단은 신성한 선, 또는 사랑(Love) 측면에서 주님을 예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장작은 공적(merit)에 있는 선들을 의미한다. A.C. 9946, 934, 9964, 2784.

8절. 그리고 아론의 아들들, 성직자는 (고기)조각들, 머리, 그리고 지방을 제단 위, 불에 있는 장작 위에 질서 있게 놓아라.

영적 의미

더불어 선에서 파생되고, 그 선과 결합한 진리들은 완전하게 배열되어야하고, 그 진리와 선은 서로 구분되어지게 하며, 주님을 예배함 속에서 공적(merit) 속에 든 선과 사랑 속에 든 선도 구분이 있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의 아들들, 성직자란 선으로부터 파생된 진리가 선과 결합하는 것을 표시해 놓고 있다. 조각낸 고기를 질서있게 놓는 것은 신성한 질서(순서)에 따라 선과 진리들을 따로 따로 구분하여 배열함을 표시해놓고 있다. 머리란 가장 깊은 것, 특별히 진리 측면에서 가장 깊은 것을; 지방(fat)은 선의 측면에서 가장 깊은 것을; 장작은 공적에 있는 선, 또는 공적을 요구하려드는 경향성이 내포된 인간의 행동을; 불이란 주님을 사랑함을; 제단은 예배를 나타내고 있다. A.C. 9946, 10048, 10033, 2784, 9964.

9절. 그러나 그는 그것의 내장들과 다리들을 물로 씻어라. 그리고 성직자가 제단에서 태워라, 그 이유가 태워 바침은 불로 만든 달콤한 향기를 주님에게 바침이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그러나 감각적인 느낌과 생각은 그것이 밖에 나타난 것(exterior)이든, 속에 들어 있는 것이든(interior), 회개라는 작업에서 진리를 응용함으로 깨끗해져야 한다, 그러면 자연적 인간 전체는 순수한 사랑으로, 또는 선으로부터 오는 예배에서 주님께 봉헌될 수 있다. 이 봉헌은 주님께서 받으실 수 있고, 당사자에게는 천국의 평화와 쉼이 생산되게 해준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내장(intestine)이란 영체에서 가장 낮은 것들, 즉 영적 인간의 외면에 해당되는 것인 감각적인 느낌들과 생각들을; 다리는 육체에서 낮은 것들 그러므로 자연적 인간에게는 내면에 해당되는 감각적인 느낌과 생각들을; 씻는다는 것은 순수해짐, 깨끗하게 함을; 제단 위에서 제물을 사른다는 것은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주님께 자연적 인간 전체를 바치는 것을; 불로 이루어지는 제물은 순수한 사랑으로 예배함을; 달콤한 향기를 주님에게 바침이란 기뻐하시어 받아 주시는 것, 천국적인 쉼과 평화가 생산됨을 각기 나타내고 있다. A.C. 10049, 10050, 3147, 10052, 10055, 10054.
이 절의 글자 의미로부터서도 분명한 것은, 각 절의 세부 사항들은 위에서 살핀 바대로의 증거들과 같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계발된 신앙이 방향을 정해주면서 사랑이 원동력이 되어 주님께 순종하는 완전한 삶만이 진실된 예배일 뿐, 그 외의 예배는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상기해보아야 할 것은, 말씀의 내적 의미(internal sense)는 거듭나는 인간과 관계가 있고, 가장 깊은 뜻(supreme sense)은 주님의 신성이 되심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 이에 대해서는 본 주석에서 명확히 보여주게 될 것이다. 위 두 가지를 좀 더 특별히 살펴보자. 주님의 신성이 되심이 인간(Human)과 신성(Divine)이 하나되는 것이듯, 인간의 거듭남은 외적인 것이 내적인 것과 결합하는 것을 말한다. 주님께 인간 전체를 바친다는 말은 수소(bullock)로 의미되는 자연적 인간 뿐만 아니라 수양(ram)으로 의미되는 영적 인간 모두를 헌신해야 한다.

10절. 그리고 만일 그의 봉헌이 양떼로부터, 양으로부터, 또는 염소들로부터 태워 바침이다면, 그는 그것을 흠이 없는 수컷으로 바쳐라.

영적 의미

다시, 만일 주님을 예배함이 영적 애착으로부터, 즉 선행으로부터 이든, 선행의 신앙으로부터이든, 영적 인간이 통째로 주님께 봉헌되어야하고, 이 봉헌은 악에서 순수해진 진리들을 수단으로 있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양떼에 속하는 동물은 영적 애착을 표현하는데, 그 중 양은 선행을; 염소는 선행으로부터의 신앙을; 태워 바침이란 충만된 헌신, 또는 주님께 거룩해지도록 바침을; 수컷은 진리를; 흠이 없음은 악으로부터 순수해짐을 나타내고 있다. A.C. 5913, 6126, 2776, 725, 7837.

11절. 그리고 그는 그것을 주님 앞의 북쪽 방향의 제단 측면에서 죽여라. 그리고 아론의 아들들, 성직자들은 그것의 피를 제단 빙둘러 뿌려라.

영적 의미

그리고 이와 같은 영적 애착은 그 용도를 위해 채택한 진리들로 예배가 준비되어져야 한다. 그런 다음 선에서 파생된 진리, 선과 결합된 진리에 의거 거룩한 선행은 주님으로부터 있게 되었음을 인정하여 그분과의 결합이 촉진되게 해야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것은 동물을 죽인다는 의미가 영적 예배를 위한 준비를 나타낸다는 것으로부터 보여지고 있다. 그리고 제단 북쪽이란 예배 준비를 위해 채택되는 진리를; 아론의 혈통을 이어 받은 성직자란 선으로부터 파생된 진리가 그 선과 결합하는 것을; 제단 주변에 피를 뿌린다는 것은 진리가 선과 결합됨, 그런고로 영적 선과 선행이 주님으로부터 있음을 인정함을 각각 말해주고 있다. A.C. 10024, 4169, 9499, 9648, 9946.

12절. 그리고 그는 그것을 그것의 머리와 지방들과 더불어 조각되게 자를 것이다. 그리고 성직자는 그것들을 제단 위 장작에 질서있게 놓아라.

영적 의미

또한 진리의 적절한 배열이 거행되어야 한다, 진리는 선으로부터 실지로 구별되어야 하고, 공적의 선도 주님을 순수하게 예배하는 가운데 사랑의 선과 구별되게 해야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고기를 여러 조각으로 만드는 것은 선 밑에 진리를 배열함, 또는 상급의 선 아래 하급의 선들을 배열시키는 것을; 머리란 진리 측면에서 가장 깊은 것을; 지방이란 선의 측면에서 가장 깊은 것을; 고기를 차려 놓는다는 것은 상급 아래에 하급들을 순서대로 실제 배열하는 것을; 그 반면 고기를 조각내는 것은 실제 배열을 위해 준비하는 것을; 장작은 공적의 선을; 불은 사랑을; 제단은 예배를 각각 말하고 있다. A.C. 10048, 10033, 10048, 2784, 9964.

13절. 그러나 그는 내장들과 다리들을 물로 씻어라. 그리고 성직자는 통째로 바쳐라, 그리고 그것을 제단 위에서 태워라. 이것은 불로 만든 달콤한 향기를 주님에게 바침이다.

영적 의미

그리고 감각적인 느낌들이나 생각들은 그것이 속에 든 것이든 밖에 나타난 것이든 회개라는 일에 진리를 응용해서 깨끗해져야 한다. 그런 다음 영적 인간을 통째로 주님께 바치되 순수한 사랑, 또는 선으로부터 있어져야 한다. 이 바침은 주님이 기뻐 받으실 수 있어 천국의 쉼과 평화를 생산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 절에서 다시, 내장들은 가장 낮은 것, 즉 영체의 외면에 해당되는 감각적 느낌들과 생각들을; 다리는 자연적 인간에 소속된 외면들을, 고로 육체에게는 내면이 되는 감각적 느낌들과 생각들을; 물에 씻는다는 것은 순수해짐을; 제단 위에서 제물을 사른다는 것은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온 예배로 주님께 영적 인간 전체를 바치는 것을; 불로 만든 제물(태워 바침)은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온 예배를; 주님에게 달콤한 향기를 풍긴다는 것은 즐거이 받으시는 것, 즉 천국적인 쉼과 평화가 생산됨을 각각 말해주고 있다. A.C. 10049, 10050, 3147, 10052, 10055, 10054.

14절. 그리고 만일 주님에 대한 그의 제물이 가금류들로부터의 태워 바침이다면, 그 다음 그는 그의 제물을 호도애로부터, 또는 어린 비둘기로부터 바쳐라.

영적 의미

그리고 셋째로, 만일 주님을 예배함이 이해함으로부터 있게 된다면 그 예배는 신앙의 진리나 선으로부터 있어야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위에 대한 사항들은 새가 신앙 또는 진리에 관계되는 영적인 것들, 고로 이해함에 관계되는 영적인 것들을; 호도애나 어린 비둘기는 외면에 있는 것과 내면에 있는 것에 관한 것들, 관계적으로 볼 때 선과 진리를; 두 비둘기로 표시되어지는 예배의 상태에는 순진이 포함되어져야 함도 의미하고 있다. A.C. 1826, 1827, 10132.

15절. 그리고 성직자는 그것을 제단으로 가져오라, 그리고 그것의 목을 비틀고, 그리고 그것을 제단에서 태워라. 그리고 그것으로부터의 피는 제단 측면에서 흘려라.

영적 의미

이런 경우 이 예배는 선 자체로부터가 아닌 선을 원리로 해서 있게 되지만, 이것도 신성한 사랑이 유입됨으로 성결되어지며, 그리고 선행 역시 주님으로부터 있게 됨을 인정하나 오로지 외적 방법에서만 인정할 뿐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위의 사항은 이어지는 15절에서 명확히 보여진다. 즉 성직자가 제단에 제물을 가져오는 것은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는 것을, 이 경우의 선으로부터라는 말은 실제의 선으로부터가 아닌 선, 즉 생활의 원리로서 채택된 이론상의 선을 말하는데, 그 이유가 새는 이해함 속에 있는 것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목을 비튼 이유는 이해함만으로, 또는 선 만으로의 원리로부터 예배하는 것은 주님과 항구적으로 결합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럼에도 새의 머리도 제단 위에서 사르라는 것은 신성한 사랑의 영향을 받으면 그 예배도 신성하게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제단 측면에서 피를 흘린다는 것은 선행이 주님으로부터 있어짐을 인정은 하되 외적인 방법으로만 인정함을 말한다. A.C. 9946, 1826, 8079, 10052, 1001, 10227, 9648, 9499.

16절. 그리고 그는 오물을 가진 멀떠구니(crop)를 가지고 가라, 그리고 그것을 제단 동쪽 부분에서 벗어나, 재가 있는 장소에 던져라.

영적 의미

또한 거짓과 악은 위와 같은 예배로부터 분리되어져야 하고, 그것들이 이기적인 사랑으로부터 발출되어 삶의 최말단까지도 더럽히게 되므로 단죄해야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오물을 가진 멀떠구니를 함께 떼어버리라는 것은 이해만으로 드리는 예배로부터서도 악과 거짓은 분리되어야 하는 것을 의미하고, 제단 동쪽에서 떨어져 있는 재들의 장소에 던져라는 것은 악과 거짓을 거절함을 의미한다. 그 이유가 버린다는 것은 거절함, 또는 끝장을 보는 것을 표시하기 때문이다. 제단을 벗어나는 쪽(beside the altar)이란 예배와의 어떤 연결로부터, 동쪽은 선을 말하나 이 구절의 경우, 반대 의미를 나타내므로 악을 말한다. 그래서 잿더미(the place of the ashes)란 거짓이 악과 손잡고 있는 상태를; 재는 거짓을; 동쪽은 악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는 자아 사랑과 최 말단의 더러움으로부터 온 저주의 상태이다. A.C. 4883, 5174, 2637, 9964, 7679, 7519, 9723.

17절. 그리고 그는 그것을 날개들을 수단으로 찢어라, 그러나 그것을 따로따로가 되게 나누지 말라. 그리고 성직자는 제단 위, 불 위에 있는 장작 위에서 태워라. 이것은 불로 달콤한 향기를 만들어 주님께 바치는 태워 바침이다.

영적 의미

위와 같은 예배에는 주님과의 상응이나 유사성이 없다. 오로지 주님을 인정함과 신앙의 힘을 통해 있게 되는 예배를 위한 준비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 예배 역시 주님이 받으시고, 그분께 바쳐져야 하는바, 공적의 선은 사랑의 선으로부터 구별되어야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위의 사항들은 이 절을 살피면서 알게 되리라 본다. 두 날개를 잡고 아주 떨어지지 않게 몸통을 찢어 놓는다는 것은 위와 같은 예배에는 주님과 상응되는 것도, 유사한 것도 없고, 오로지 준비하는 것으로 그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 이유는 동물을 죽이는 것처럼 새를 찢는다는 것도 새를 제물로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고통이나 시험은 진리를 뒤집는다거나, 잘못 이해하는 가운데 악을 탐닉하게 되어 야기되기도 한다는 것도 말해주고 있다. 이에 대하여는 아래에서 계속 살펴본다. 날개를 수단으로 새를 찢는다는 것은 신앙의 힘이 악에게 방법을 알려주므로서 그 힘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어지는 것, 그러나 주님을 인정하면서 악에 저항함을 통해 시험을 극복함으로 신앙의 힘은 강해진다는 것을 말한다. 선의 원리, 즉 선을 이해하는 것만 가지고는 주님께 대한 어떤 진정한 예배도 드릴 수 없는 바, 진실된 선, 즉 선 만을 진실로 사랑함 만이 주님과 상응관계를 가질 수 있고 외적 인간을 내적 인간과 조화를 이루게 한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불완전한 예배도 수락하시는데, 그 이유는 그 예배가 순수한 영적 헌신이 가능한 쪽으로 유도해 주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제물을 사른다는 것은 주님과의 결합, 신앙이 선행과 결합하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장작이란 주님을 사랑함이 인간 제 스스로에서 발상된 행동인 듯 여기는 것을 말하고, 주님께 향기를 풍긴다는 것은 예배를 수락하시는 것, 천국적인 휴식과 평화가 생산되는 것을 말한다. 이리하여 불완전한 예배도 당사자의 아주 깊숙이 존재하는 사랑 또는 선이 우세해지는 상태를 수단으로 거룩해지도록 바쳐질 수 있다. A.C. 1832, 4171, 8764, 1832, 10052, 934, 2784.

1장의 종합적 고찰

이제 제 1장을 간략히 정리해 보자. 본 장의 주제는 주님에 관한 예배이다. 이 예배는 자연적 애착과 영적 애착이 한데 묶여 있어야만 한다. 시간적으로 볼 때, 자연적 애착으로부터 예배가 있게 되고, 둘째로 영적 애착으로부터, 셋째로는 똑같은 애착들이 더 낮은 평면에서도 있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내적 의미가 먼저 서술하는 것은, 자연적 예배와 영적 예배는 한데 묶여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거듭남 속에서의 주님의 작용은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영적 수준을 통하여 자연적 수준으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 다음 내적 의미가 서술하는 것은, 자연적 예배와 영적 예배는 연속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의 경험이 쌓여감에 따라, 그는 삶의 자연적 수준에서 시작하여 후에 영적 수준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적 인간 (또는 영적 인간)은 내적 인간과 외적 인간으로 되어 있는 고로 외적 인간, 즉 의식되는 자연적 수준에서 먼저 예배가 있게 되고 후에 영적 예배가 있어진다.
그 다음 우리는 주님을 진정으로 예배하는데 따른 요구 사항들을 배운다. 이를 넓은 측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각각 다른 수준에서 같은 것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첫 필수요건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은 진리가 있어야만 하고 순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진리들은 인간의 불순함을 자연스럽게 폭로시켜준다. 그러면 회개라는 일을 수단으로 순수해짐이 오게 된다. 그러나 이 두 단계는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반드시 주님과 주님이 천국을 통하여 역사 하신다는 것을 신실하게 인정함으로 주님과의 결합이 있어져야만 한다. 이 과정 후 뒤따라오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외적 인간에 내적 인간이 강하게 작용토록 주님이 역사하시어 두 인간은 서로 동의하여 재회하게 된다. 재회한 인간을 주님이 기뻐 받으신다고 본문에서 말해지고 있다. 그 이유는 내적 인간에게서 분리되어 있는 외적 인간만의 예배는 진정한 상태가 못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인간 상태가 동시에 예배되기 위해서는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이것은 썩은 옛 생활을 거절함으로 가능해지고, 이 거절함은 선과 진리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도록 반사 작용까지 해준다. 이 준비 작업에는 주목해야 할 독특한 것이 있다. 그것은 영적 예배를 위한 준비와 자연적 예배를 위한 준비는 서로가 구별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1절에 있는 “제단 북쪽”이라는 서술이 5절에서는 각 목적을 위해 응용된 진리로 있어진다고 말해짐으로 요구되는 사항이 아닐까라는 생각은 사려 깊게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필시 떠오르고야 만다. 이 말이 왜 11절에서 나타나는지를 우리는 고려해 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우리의 예배가 더 내면에서 존재하면 할수록 그 예배는 계발된 마음으로부터, 또는 사랑 있는 심정으로부터 있어지기 때문이다. 영적 인간은 자연적 인간보다 더 명확하게 진리를 본다. 그렇다해도 예배를 위한 준비는 예배 자체만으로 비교해볼 때 희미함 그 이상으로는 결코 존재할 수는 없다. 그런고로 해서 희미함(북쪽)이 거론되는 것이다. 예배를 표현한 동물이 제단 “북쪽”에서 죽여졌는데, “북쪽”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진리 측면에서의 희미함을 말한다.
우리는 진정한 예배를 위해 요구되는 세 가지를 배워야 할 것이다. 악과 거짓이 심정과 이해함, 그리고 생활에서 제거되어야 한다. 그 다음 주님을 섬기는데 주저함이 없이 자연적 인간이 통째로 헌신되도록 모든 감각적인 느낌이나 생각들을 완전히 순수해지게 함과 더불어 인간의 능력 모두가 주님에 의해 질서있게 따로 따로 정열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애착에 발생된 위의 것들은 본 장 마지막 문단에서 묘사된 바 같이 지적 능력에도 발생되어야만 한다. 각 문단마다 정확히 같게 음미되는 상징성이 반복되고 있지만, 각 수준에 있게되는 주된 진리는 의지에 이해함이 종속되어야 한다는 것, 또는 외적인 것들은 내적인 것에 종속되어 드러나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해만으로, 또는 신앙만을 통해서는 주님과의 결합은 불가능한 바, 이해함은 반드시 종속되어야 한다는 것, 더불어, 의를 행하고, 자비를 사랑하며 하느님과 더불어 겸손히 살아가는 진정한 삶과 예배가 완전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미가 6: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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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2장

성경: 레위기 1장

1.그리고 어떤 사람이 주님에게 식사 제물을 바칠 경우 그의 봉헌은 고운 곡식 가루 이다. 그리고 그는 그것 위에 기름을 부어라, 그리고 그 안에 유향을 놓아라.
2. 그리고 그는 그것을 성직자인 아론의 아들들에게 가져오너라. 그리고 그 즉시 그는 거기로부터 고운 곡식 가루 한웅큼을, 그리고 거기로부터 기름을, 거기로부터 모든 유향을 가져 가라. 그리고 성직자는 (그것을) 그것으로부터 기념물로 제단 위에서 태워라. 이는 주님께 달콤한 맛을 불로 만들어 바침이다.
3. 그리고 식사 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것이 된다. 이것은 불로 만든 주님에 대한 제물에서 가장 거룩한 것이다.
4. 그리고 네가 오븐에서 구워낸 식사 제물의 봉헌을 바칠 경우, 그것은 기름과 혼합한 고운 곡식 가루로부터의 누룩 없는 과자, 또는 기름을 바른 누룩 없는 속 빈 과자(wafer) 이다.
5. 그리고 만일 너희 봉헌이 굽기 위한 납작한 냄비(pan)로부터의 식사 제물이다면, 그것은 기름과 혼합한 누룩 없는 고운 가루로부터 이다.
6. 너는 그것을 조각들로 나누어라, 그리고 그 위에 기름을 부어라. 이것이 식사 제물이다.
7. 그리고 만일 너의 봉헌이 튀기기 위한 납작한 냄비로부터의 식사 제물이다면, 그것은 기름과 더불은 고운 곡식 가루로부터 만들어라.
8. 그리고 너는 이런 것들로 만들어진 식사 제물을 주님에게 가져 오너라. 그리고 이것은 성직자에게 넘겨져야 한다. 그리고 그가 그것을 제단으로 가져 오너라.
9. 그리고 성직자는 그것으로부터의 기념물이 되는 식사 제물을 가져올 것이다. 이것은 불로 만든 달콤한 향기를 주님께 바침이다.
10. 그리고 식사 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것이다. 이것은 불로 만들어 주님께 바침의 가장 거룩한 것이다.
11. 주님께 바칠 식사 제물은 누룩과 더불어 만들지 말라. 그 이유가 주님께 불로 만드는 바침에서 너희는 누룩, 어떤 꿀도 태워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12. 첫 열매들로부터의 봉헌으로서 너희는 그것들을 주님에게 바쳐라. 그러나 그들은 달콤한 향기를 위해 제단에 오르지 못한다.
13. 그리고 너는 너희의 식사 제물로부터의 모든 제물을 소금을 가지고 간을 맞추어라. 너는 네 식사 제물로부터 하느님의 언약의 소금이 빠지는 것을 내버려두지 말라. 모든 너희 제물과 더불어 너는 소금을 바쳐라.
14. 그리고 만일 첫 열매들로부터의 식사 제물을 주님에게 바친다면, 너는 식사 제물로서 불에 볶은 이삭에 있는 곡식, 새로운 이삭으로부터 두드려진 곡식을 바쳐라.
15. 그리고 너는 그것 위에 기름을 놓아라, 그리고 거기 위에 유향을 놓아라. 이것이 식사 제물이다.
16. 그리고 성직자는 그것으로부터의 기념물을 태우는데, 그것의 두드려진 곡식의 일부, 그리고 그것의 기름의 일부, 그것의 모든 유향과 더불어 태워라. 이것은 주님께 불로 만든 바침이다.

영적 의미 요약

* 가장 높은 수준인 천적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이 묘사되어있다. (1-3절)
* 그 다음, 내면의 천적 사랑 또는 이웃에 대한 선행으로부터의 예배가 묘사된다. 그리하여 가장 높은 천적인 선 즉 주님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것과 가장 낮은 것이 어떻게 연결을 이루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4절)
* 자연의 내적 부분(Internal of Natural)에 있는 천적인 선으로부터 예배에 관해 위와 비슷한 묘사가 이어지면서 가장 깊은 측면인 천적인 선의 유입에 관해서, 거기에 있는 진리들의 배열에 관한 서술이 동반되고 있다. (5-6절)
* 마지막으로, 자연으로부터의 외적 부분(External Natural)이 묘사되는데, 그것이 보다 높은 사랑으로부터 오는 예배와 비슷하지만, 그것은 보다 낮은 수준 속에 존재한다. (7절)
* 그런 다음, 모든 수준과 방법에 놓인 천적인 예배에는 다음과 같은 특별사항들을 포함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즉, 예배할 수 있는 힘은 주님만으로부터 기인된다; 이 힘은 그분으로부터 파생된 아주 깊은 부분인 천적인 선으로부터 있어짐을 인정해야 한다. 이 힘은 그분으로부터 오는 훈련(excercise)이라는 것; 더불어 예배자는 진리가 선과 결합하는 것이 마치 자신에게서 있어진 줄로 실감하게 된다는 것; 그는 주님을 섬기는데 자기 삶을 헌신할 수 있게 된다는 것; 그는 천국의 기쁨과 평화를 체험할 것이다는 것; 그는 선과 진리를 자기 것이 되게 할 수 있으리라는 것; 그래서 그는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게 될 것이다. (8-10절).
* 다시 주님에 대한 이 예배는 거짓으로부터 자유로워 있어야 한다는 것; 단지 자연적 기쁨만 가짐으로 해서 이 예배의 가치를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 자연적 기쁨만 있는 불완전한 예배는 예배를 준비하는 상태에 국한된 것이라는 것; 모든 예배에는 진리가 선을, 선이 진리를 바래는 상호적이어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해서 진리를 실지로 사랑하는 사람은 동시에 선해지기를 바래야 할 것이고, 선해지기를 진실로 바래는 사람은 동시에 진리도 갈망해야 한다. (11-13절)
* 또한 이와 같은 예배가 있는 동안, 또는 준비하는 상태들은 자연적인 선으로부터 있어져야 하고, 천적인 선으로 감화되어진 진리, 그리고 주님을 진실로 인정함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14-16절).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그리고 어떤 사람이 주님에게 식사 제물을 바칠 경우 그의 봉헌은 고운 곡식 가루 이다. 그리고 그는 그것 위에 기름을 부어라, 그리고 그 안에 유향을 놓아라.

영적 의미

주님이 천적인 사랑의 선으로부터 예배되어질 때, 그 예배는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순수한 진리로 있어져야 할 것, 그리고 진리를 지각한데 대해 감사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식사 제물은 천적인 선을; 고운 곡식 가루는 선으로부터의 진리 또는 사랑으로부터의 진리를; 기름은 천적인 선을; 유향은 그것의 향내로부터 깊이 감사하게 느끼는 지각을 말하고 있다. Arcana Coelestia 4581, 9995, 2177, 9993,
제1장에서는 세 천국의 순서에 따라, 자연적인 예배와 영적인 예배를 묘사해 주었는데, 본 장에서는 천적인 예배를 묘사하고 있다. 이 셋의 구별은 의무감에서 주님께 순종하는 것, 진리를 사랑해서 주님께 순종하는 것, 선을 사랑해서 주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구분될 때와 같다. 이를 대중적인 방법으로 표현해 본다면, 예배에 있는 자연적인 선, 이는 말씀이 명령하기 때문에 신성한 질서의 법칙에 순종하여 이루어진 선이고, 영적인 선, 이웃에 대한 선행으로부터 신성한 질서의 법칙에 순종하여 생산된 선이고, 천적인 선, 이는 주님을 사랑하는고로 신성한 질서의 법에 순종하여 맺어진 선이다.

2절. 그리고 그는 그것을 성직자인 아론의 아들들에게 가져오너라. 그리고 그 즉시 그는 거기로부터 고운 곡식 가루 한웅큼을, 그리고 거기로부터 기름을, 거기로부터 모든 유향을 가져 가라. 그리고 성직자는 (그것을) 그것으로부터 기념물로 제단 위에서 태워라. 이는 주님께 달콤한 맛을 불로 만들어 바침이다.

영적 의미

그래서 이 예배는 선으로부터 온 진리에 의거 있어짐을 인정해야 할 것이고, 진리 측면에서의 힘, 진리를 흐르게 한 선의 측면에서의 힘, 모든 힘이 충만한 상태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지각한데 대해 깊이 감사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즉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진리와 선이 결합됨으로 자신의 심정을 주님께 봉헌하고, 예배자에게는 기쁨과 평화가 있어지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의 아들들, 성직자란 선으로부터의 진리를; 성직자에게 가져옴이란 천적 예배는 선으로부터 온 진리로 되어진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된다는 것을 인정함을; 한 줌 가득 움켜쥔다는 것은 예배는 온 힘을 다해 있어져야 함을; 한 움큼을 제단에서 태운다는 것은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온 선에 진리가 결합함을 수단으로 주님께 심정을 봉헌함을; 기념물은 진리 측면에서의 예배의 품질, 또한 기억함을; 주님께 대한 달콤한 맛은 천적인 기쁨과 평화의 상태를 말하고 있다. Arcana Coelestia 9946, 10227, 7518, 10052, 6888, 10054.
위 두 절에 연결해서 특별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식사 제물에 관해 「천국의 신비, Arcana Coelestia」에서 말하는 사항들이다. 말해지는 곳은 제 4581항과 제 10079항이다. 앞 항에서는 식사 제물이 천적인 선을 의미함을 보여주고 있고, 뒤 항에서는 동물의 제물은 명령된 것이 아니라 허락하신 것, 그 이유가 동물의 제물은 주님이나 천국에서 기뻐하시는 제물이 아니기 때문이고 식사 제물이 기뻐하시는 제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 반면, 일반적으로 말해지는 것은, 두 제물 모두 천적인 선을 나타내고 있고, 또 한편 특별하게, 제물의 고기는 영적 선을 표시하면서, 식사 제물 속의 빵은 천적인 선을 표시하기도 한다. 이상으로 분명해지는 것은, 식사 제물은 희생 제물(sacrifices) 보다 상대적으로 더 높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천국의 신비」 제 2177항에서 다른 해석이 주어지고 있다; 희생 제물과 식사 제물은 비슷한 것을 표현하지만, 식사 제물의 경우는 등차가 더 낮은 듯 표현되고 있다. 그 결과 외적인 교회에 속해 있는 것과 영적 교회에 속해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사항들로부터 생각해보면, 식사 제물은 관계적으로 볼 때 희생 제물 보다 수준이 더 낮은 의미를 가졌다는 것이 된다.
위의 글은 다양하고 겉으로 보기에는 상반되는 설명들인 바, 이런 사항들은 깊이 생각해 보려는 마음을 지닌 사람에게 어떤 혼선을 일으킬는지 모른다. 2장의 내적 의미를 살피기 전, 우리가 생각해서 결정지을 것은, 식사 제물이 본 장에서 천적인 선, 또는 영적인 선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말씀 속에서 이런 경우는 이런 의미가 되고, 저런 경우에는 또 다른 의미를 표현해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본 장의 내적 의미에 있는 것들의 시리즈는 우리로 하여금 식사 제물이 천적인 선을 의미한다고 결정짓는 쪽으로 기울게 해준다. 1장의 경우, 자연적 선으로부터의 예배를 묘사함으로 시작해서 영적 선으로부터의 예배로 이어져 끝맺고 있는 바, 2장은 각 등차별로 있는 천적인 예배를 묘사하는데 할애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제2177항에서 식사 제물이 영적 예배를 묘사한다고 말해진 이유는 고운 곡식 가루가 그곳의 구절에서는 생각에 관한 주제를 특별히 다루기 때문으로 생각되어서 이다. 고운 곡식 가루는 빵이 천적인 것을 표시하는데 비해 특별하게는 영적인 것을 표시해주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위의 다음 구절(창세기 18:7)에서 언급되는 어린 수소가 자연적인 선을 의미한다고 말해져서, 그 순서는 천적인 것으로부터 영적인 것을 통해 자연적인 것으로 끝맺어지고 있다. 그러나 10279항에서는 식사 제물인 빵은 가장 높은 천적인 선을 표시하고, 희생 제물의 고기는 영적인 선을 표시한다고 하여 두 제물을 비교하는 바, 이곳에서는 주님에 대한 예배를 본질적 차원에서 볼 때, 빵과 같이 생각되는 식사 제물이 나타내는 예배 상태 보다 동물의 희생 제물로 나타낸 예배를 하급의 예배 상태로 나타냈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있다.

3절. 그리고 식사 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것이 된다. 이것은 불로 만든 주님에 대한 제물에서 가장 거룩한 것이다.

영적 의미

그리고 이 거룩한 예배로부터 천적 인간은 선과 진리를 음미한다; 이것은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는 가장 높은 형체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과 그의 아들이란 선 가운데 있는 이들, 그리고 선으로부터 파생된 진리 가운데 있는 이들을; 식사 제물의 남은 부분이 그들의 몫이라 함은 그 제물을 먹는다는 것인 바, 자기 것으로 삼음을; 여호와께 태워 바치는 거룩한 제물 가운데서도 가장 거룩한 제물이란 순수한 사랑으로 주님께 예배함이 가장 높은 형체이다는 것을 각각 말하고 있다. Arcana Coelestia 9946, 2177, 2187, 10055.
이 절에는 거듭나는 삶과 거듭나는 인간의 신비 전체가 포함되어 있다. 그 이유가 이 절은 인간이 한편으로는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으면서, 다른 편으로는 마치 주님이 주시는 생명이 자기 것인 냥 의식하면서 받기 때문이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유입은 감각적으로는 지각되지 않는다. 그 이유가 흐르는 자체는 마치 선천적으로 인간이 가진 듯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천국적인 선을 의식하여 받게 될 때, 그 선의 참 본성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것이 자신으로부터가 아니고 주님으로부터 매 순간 계속적으로 오고 있음을 지각하게 해준다. 이것은 식사 제물에서 누룩을 넣지 않은 것으로 표시된 순수함의 결과이다. 이 순수함은 누룩이 의미하는 악과 거짓된 모든 것과 비례 관계에 있다. 이 악하고 거짓된 것들은 회개라는 일, 시험에 승리함으로 제거되고, 그 결과 거룩한 사랑과 선행이 적절히 실감된다. 따라서 이 절에 함축된 가르침은 얼마나 실제적인지 모른다.

4절. 그리고 네가 오븐에서 구워낸 식사 제물의 봉헌을 바칠 경우, 그것은 기름과 혼합한 고운 곡식 가루로부터의 누룩 없는 과자, 또는 기름을 바른 누룩 없는 속 빈 과자(wafer) 이다.

영적 의미

더 나아가, 주님께 대한 예배가 내면의 천적인 선으로부터 일 때, 이는 가장 깊은 선을 포함하는 거짓 없는 순수한 선으로부터 온 예배이거나, 천적 품성으로된 천적인 선의 외면으로부터 있게 되는 예배일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오븐(가마, oven)에서 구워진 것은 천적인 선의 안쪽에 있는 것을 말한다. 이 선은 선행인데, 중간 천국(middle heaven)에서 두드러지는 선이다. 누룩 없이란 악과 거짓에서 순수한 것을 말하고, 과자란 선과 진리가 결합되는 것을 의미하고, 더불어 이웃을 향한 사랑의 선 역시 의미한다. 속 빈 과자(wafer)란 천적 선의 바깥쪽에 있는 것을 말한다. Arcana Coelestia 7356, 2177, 7978, 9994.
누군가가 주님을 영적 선, 또는 자연적 선으로부터 진실로 예배하고자 할 때, 이와 같은 예배에는 천적 선, 또는 천적 천국을 통한 주님의 역사하심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로 알게 해준다; 그 이유는 기름이 고운 곡식 가루에 혼합되었다는 것은 천적 부분이 영적 부분과 결합함(the conjunction of the Celestial with the Spiritual)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5절. 그리고 만일 너희 봉헌이 굽기 위한 납작한 냄비(pan)로부터의 식사 제물이다면, 그것은 기름과 혼합한 누룩 없는 고운 가루로부터 이다.

영적 의미

그리고 이와 같은 예배가 자연의 내적인 것으로부터일 때, 그 예배는 거짓에서 자유롭고, 가장 깊은 천적인 선을 포함하고 있는 선으로부터 파생된 진리로 있어져야 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튀김용 납작한 냄비(frying pan), 또는 굽기용 납작한 냄비에 구워낸 식사 제물은 자연의 내적 부분(the Internal of the Natural)으로부터 예배함을 말하는데, 그 이유는 영적(내면의) 선을 말하는 가마에 구운 식사 제물 뒤를 이어 언급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운 곡식 가루를 누룩 없이 기름으로 반죽했다는 것은 진리가 선으로부터 파생되고, 거짓에서 자유롭고, 가장 깊은 천적 선을 함유하고 있음을 말한다. A.C. 7356, 2177, 9995.

6절. 너는 그것을 조각들로 나누어라, 그리고 그 위에 기름을 부어라. 이것이 식사 제물이다.

영적 의미

이 예배 안에는 진리나 애착들이 정확히 배열되어 있어야 하며 또한 가장 깊은 부분의 선의 계속적인 유입도 있어야 한다. 그 이유가 그 예배는 천적인 예배이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위의 제물을 잘게 썬다는 것은 진리들과 선들을 빈틈없이 배열하는 것을; 그 위에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가장 깊은데 있는 선의 유입을; 식사 제물은 천적인 예배를; 각기 의미한다. Arcana Coelestia 10048, 3110, 3728, 9780, 4581.

7절. 그리고 만일 너의 봉헌이 튀기기 위한 납작한 냄비로부터의 식사 제물이다면, 그것은 기름과 더불은 고운 곡식 가루로부터 만들어라.

영적 의미

마지막으로 천적 예배가 자연의 외적 부분으로부터 일 때, 그 예배는 선과 결합된 순수한 진리로부터이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납작한 냄비(pot, frying pan)에 구운 식사 제물이란 자연의 외적 부분으로부터 예배함을 의미하는데, 그 이유는 시리즈로서 자연의 내적 부분으로부터 예배함의 뒤를 잇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운 곡식 가루를 기름과 혼합함이란 순수한 진리가 선과 결합하는 것을 말한다. Arcana Coelestia 7356, 2177, 9995.

8절. 그리고 너는 이런 것들로 만들어진 식사 제물을 주님에게 가져 오너라. 그리고 이것은 성직자에게 넘겨져야 한다. 그리고 그가 그것을 제단으로 가져 오너라.

영적 의미

위의 모든 방법으로 드리게 되는 예배의 힘은 그분에게서 기인되어진 것이다; 그것이 천적인 선 안에 계신 그분으로부터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분과 결합하는 훈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께 식사 제물을 가져온다는 것은 예배하는 힘이 그분으로부터 있어진다고 고백하는 것을 말하고, 그것을 성직자에게 넘김은 그것이 천적 사랑 또는 선 안에 계신 그분으로부터임을 인정하는 것을 말하고, 제단에 가져옴은 예배하는 힘을 갖도록 그분께서 숙달시켜 주심을 말한다. Arcana Coelestia 10227, 10242, 2342.

9절. 그리고 성직자는 그것으로부터의 기념물이 되는 식사 제물을 가져올 것이다. 이것은 불로 만든 달콤한 향기를 주님께 바침이다.

영적 의미

또한, 천적 인간은 그분과의 결합이 마치 자신이 해낸 듯 하게 실감해야 하는데, 이와 더불어 주님을 섬기는데 자기 삶을 헌신하는 힘을 가지고, 평화와 기쁨이라는 거룩한 상태를 받고 있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기념물(memorial)이란 진리 측면에서의 예배의 품질, 또한 애착 또는 선으로부터 활동이 가능함을 기억함을 말한다. 이 경우, 기념물을 성직자가 취한다는 것은 진리가 선과 결합하는 것을 말하는데, 그 이유가 성직자는 선을 뜻하기 때문이다. 제단 위에서 이 기념물을 사른다는 것은 결합, 그리고 결합으로 주님께 예배함을 말한다. 불로 만든 제물이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림이란 주님께 헌신함, 그리고 기쁨과 평화의 상태를 말한다. Arcana Coelestia 6888, 7518, 9946, 1728, 10052, 10055, 10054.

10절. 그리고 식사 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것이다. 이것은 불로 만들어 주님께 바침의 가장 거룩한 것이다.

영적 의미

이 거룩한 예배로부터 천적 인간은 선과 진리를 자기 것이 되게 한다. 그 이유가 그 예배는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더없이 거룩하게 주님께 드리는 예배이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식사 제물에서 남은 것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몫이라는 것은, 갖가지 수준에 있는 천적 인간은 거룩한 예배로부터 선과 진리를 자기 것을 삼는다는 말이다. 여호와께 살라 바치는 제물로서 더없이 거룩한 것이란 순수한 사랑으로 주님을 예배함이 가장 거룩하다는 뜻이다. 3절 참조.

11절. 주님께 바칠 식사 제물은 누룩과 더불어 만들지 말라. 그 이유가 주님께 불로 만드는 바침에서 너희는 누룩, 어떤 꿀도 태워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더욱이 천적인 사랑으로부터 드리는 주님에 관한 어떤 예배도 거짓으로 오염되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거짓이나 어떤 자연적 기쁨으로 이 예배에 진입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이 예배는 순수한 사랑으로 주님께 드리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식사 제물은 천적 사랑으로 주님께 예배함을, 누룩은 거짓을, 꿀은 자연적 기쁨(delight)을 말하나, 이 절에서는 반대적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여호와께 태워 바친 제물이란 순수한 사랑으로부터의 예배를 말한다. Arcana Coelestia 4581, 2177, 2342, 5260, 10137. 3절 참조

12절. 첫 열매들로부터의 봉헌으로서 너희는 그것들을 주님에게 바쳐라. 그러나 그들은 달콤한 향기를 위해 제단에 오르지 못한다.

영적 의미

위의 사항들이 천적 삶의 진보 초기 단계에는 허용되어지기는 하겠지만, 순수한 사랑으로부터의 예배로서 주님이 받으실 수는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 절은 앞 절에서 보여진 꿀과 누룩의 의미로부터 알 수 있을 것이다.

13절. 그리고 너는 너희의 식사 제물로부터의 모든 제물을 소금을 가지고 간을 맞추어라. 너는 네 식사 제물로부터 하느님의 언약의 소금이 빠지는 것을 내버려두지 말라. 모든 너희 제물과 더불어 너는 소금을 바쳐라.

영적 의미

더 나아가, 천적 사랑으로부터 드리는 모든 예배, 그 예배의 수준에 관계없이, 진리가 선과 결합하고 싶은 바램이, 선이 진리와 결합하려는 바램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 예배에는 부족된 측면이 발생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 이유는 주님으로부터 구원받으려는 인간의 바램,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주님의 바램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소금은 선과 진리가 결합하기를 바램, 그리고 진리와 선이 결합하기를 바램을 뜻한다. 소금이 결핍되거나 중단하지 않도록, 즉 반드시 소금을 치라는 것은 결합하고자 하는 바램이 부족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계약이 결합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모든 제물에 소금을 치라 함은, 모든 예배는 이 결합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 이유가 예배는 인간이 주님으로부터 구원받고자 하는 바램, 인간 구원을 위한 주님의 바램이 내포되어 쌍방에 상호성이 있기 때문이다. Arcana Coelestia 9207, 10137, 10300.

14절. 그리고 만일 첫 열매들로부터의 식사 제물을 주님에게 바친다면, 너는 식사 제물로서 불에 볶은 이삭에 있는 곡식, 새로운 이삭으로부터 두드려진 곡식을 바쳐라.

영적 의미

그리고 다시 거듭남의 초기 단계에서 주님이 예배되어질 때, 비록 의식 못한다해도, 천적인 사랑으로부터 아주 깊은 예배이어야 하는 바, 천적인 선의 영향을 받고, 선이나 진리 측면에서 시험에 의해 획득된 자연적인 선과 진리의 형체를 외적으로 갖추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햇곡식으로 된 제물은 거듭남의 준비 단계 중 하나를 말하는데 그 한 단계란, 선에 진리가 이식되는 단계이다. 이 단계 동안, 주님께 드리는 예배는 천적인 선과 대조한다면 상대적으로 불완전한 상태, 12절에서 기술된 누룩과 꿀, 즉 거짓과 자연적 기쁨으로 물들어 있는 상태에 있는 단계이다. 식사 제물은 가장 깊은데 존재하는 사랑, 즉 천적 사랑으로의 예배를 말한다. 이 상태에 있는 인간이라 해도 정작 그 사람은 천적 사랑을 실감하지 못한다. 불에 볶은 이삭이란 천적 선의 영향을 받은 자연적 선, 또는 자연적 인간 안에 있는 선행의 선을 말하고, 두드려져 만든 햇 곡식(bruised corn in the fresh ear)이란 진리의 선, 또는 시험을 통과하는 동안 진리를 수단으로 획득한 선을 말한다. Arcana Coelestia 9204-5, 4581, 9223, 9300, 9295.

15절. 그리고 너는 그것 위에 기름을 놓아라, 그리고 거기 위에 유향을 놓아라. 이것이 식사 제물이다.

영적 의미

이리하여, 천적인 사랑이 그 예배 안에 있어지고, 또한 영적인 사랑도 있게 되는데, 그 이유가 그 예배는 순수한 천적인 예배이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기름은 천적 사랑을, 유향은 영적 사랑을, 식사 제물은 순수한 천적 예배를 의미한다. A.C. 4581.

16절. 그리고 성직자는 그것으로부터의 기념물을 태우는데, 그것의 두드려진 곡식의 일부, 그리고 그것의 기름의 일부, 그것의 모든 유향과 더불어 태워라. 이것은 주님께 불로 만든 바침이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위의 예배에는 진리와 선의 결합이 있고, 시험에서 획득한 선을, 주님에 대한 얼마간의 사랑을, 선행 전부를, 그리고 그 사랑과 선행으로부터 주님을 진실로 인정함으로 주님께 대한 봉헌이 있는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기념물(memorial)을 제단 위에서 사른다는 것은,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진리가 선과 결합함을 수단으로 주님께 심정을 봉헌함을 말한다. 두드려진 곡식이란 시험 속에서 획득한 선을; 기름은 천적 사랑을; 향료는 영적 사랑(선행)을; 주님께 태워바치는 제물이란 위의 사랑과 선행으로부터 주님을 진실로 인정함을 말한다. A.C. 10052, 2177, 10303, 10055.

2장의 종합적 고찰

이상에서 살핀 갖가지 등차와 종류의 천적 선에 관한 구절에 담긴 영적 가르침을 실제 응용하는데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다면, 모든 개개인은 가장 작은 형체로서의 천국인 바, 각 사람은 넓은 측면에서 볼 때 각자 자기 위치에 따라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주님께 순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각자의 가장 깊은 사랑은 천적 사랑일는지 모르고, 그의 내면의 사랑은 영적 사랑일 수 있고, 그의 외면의 사랑은 자연적 사랑일는지 모른다. 어찌됐든 각자는 위의 넓은 측면의 세 천국 중 하나에 해당될는지 모른다. 그런고로, “나는 천적 상태를 가져 볼 수도 없을 거야…”라고 속단하는 말을 할 필요가 없으리라 본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면 선한 가운데 있을 수도 있고, 보편적 의미에서의 선이 천적 원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의 원리가 삶에 관련되는 실제적 진리이다면, 그것은 말씀을 이해함에 관련된 실제적 진리를 내포하게 된다. 그 이유는 본문을 온전히 그대로 생각한다면, 각 절은 각 등차에 있는 영적 사랑, 또는 자연적 사랑에 관련된 것을 설명할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레위기 1장이 태워 바침에 관한 것을 묘사해놓고 있다고 한정지으면, 그 장은 천적 예배에 관한 이야기가 되고, 2장도 식사 제물만을 묘사한다고 한정지으면, 영적 예배에 관한 이야기이고, 3장을 평화 제물로 한정지으면, 자연적 예배에 관한 이야기가 된다. 위와 같이 살펴보면, 1장들은 첫째로 거듭남이 안으로부터 밖으로 계속되는 시리즈일 뿐 아니라, 각 장 자체대로 거듭남의 전 과정을 기술하면서도, 각 과정의 등차와 특별한 관계도 기술하고 있다.
어찌됐든 2장은 첫째로 외적인 것에서 내적인 것으로, 둘째로 정점에 달하면서, 셋째로 인간의 충만되고 자유로운 예배를 기술하면서 동시에 거듭남이 완성될 때 있게되는 자연적 등차까지를 기술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위에서 살펴 본 두 가지 방법 모두를 어떤 혼동도 없이 충족시켜 줌을 보여 주어 우리로서는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식사 제물이 말씀 속에서 예배를 더 높은 등차도, 더 낮은 등차도 나타내거나 그럴런지도 모른다고 하는 눈에 보이는 역설까지 정당화 해주고 있는데, 오늘 본문의 경우가 이에 해당되는 특별한 예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식사 제물의 각기 다른 종류에 관한 것을 세세하게 주목해 보지 않고, 단지 그 제물과 관련되어 언급되는 두, 세 가지 사항들의 실용적인 특성만을 지적하는 것으로 마감 지어 보자. 첫째, 누룩 없이 사용되어졌는데, 왜? 그 이유는 누룩이 의미하는 거짓은 식사 제물이 의미하는 선과 합쳐져서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짓된 모든 교리로부터서 분리되어야 하는 것은 교인의 의무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바리사이파인의 누룩을 조심하라. 그들의 위선을 조심해야 한다”라고 가르치셨다 (누가 12:1). 이는 순수해지기 위한 아주 뛰어난 우리의 행동강령이다. 안식일에 성소에서 있는 예배에서 참석자가 겉만 번주그레하게 거룩한 체, 회개하는 표정만을 지어낼 경우 거기서의 외적 예배는 어디에 쓸모가 있을까? 차라리 일주일 내내 이어지는 생활 속에서 선을 만들어 내는 사람, 그 일상 생활이야말로 순수한 외적 예배가 될 수 있다. 예배에 거짓이 섞여 비참해지면, 꿀로 상응된 자연적 기쁨이 얼마나 더 돌발적으로 일어나는지 모른다. 부흥집회에 참석한 이들 중 어떤 이는 오로지 자연적 기쁨만으로 감격에 취하는 경우를 더러 찾아볼 수 있을는지 모른다. 세례자 요한에 관해, “그는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다” (마태 3:4) 라고 말해지고 있다. 그러나 식사 제물에 관한 모세의 법에서 금해지지 않은 외적 예배 안에 있는 진정한 자연적 기쁨은 언제나 한결같이 존재하고 있다. 즉 “이 백성은 내가 기름진 가루로 먹이고 바위에서 따낸 꿀로 배불리리라” (시편 81:16). 바위에서 따낸 꿀이란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말씀 속에서 기뻐함을 즐기는 것이다. 선한 생활로 인도하는 진정한 예배, 또한 그 예배가 선한 삶을 결과하게 해주는 데는 거짓이 없어야 하는 것, 단지 자연적 기쁨이 있어야 하는 것 외에 더 첨부된 사항이 있다. 그것은 진리가 선을 바래고, 선이 진리를 바래는 것이다. 이것이 소금으로 의미되고 있다. “너희가 드리는 식사 제물에는 반드시 소금을 쳐야 한다.” 그래서 이미 살핀 바와 같이 언약은 결합을 말한다. 그러므로 예배는 애착 깊고 순수하게 드려야 함과 더불어 반드시 선함이 진리와, 진리가 선함과 결합하는 상호적인 결합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이 결합은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의 상호적 결합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본문에는 햇곡식을 식사 제물로 하는 사항이 뒤따르고 있다. 이 구절은 어떤 측면에서 볼 때, 거듭남의 시작을 말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거듭남의 한 건이 완성되어 또 다른 거듭남의 건수가 시작할 때, 앞서 거듭난 삶의 한 부분은 천국 삶의 시작이 되고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삶의 위치가 레위기 1-3장의 시리즈 중, 자유로움으로 예배하는 곳, 평화 제물로 표현되는 제 3장의 원인이 되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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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3장

성경: 레위기 1장

1. 그리고 만일 그의 봉헌이 평화 제물로부터의 희생 제물이다면, 만일 그가 암컷이든 수컷이든 소떼로부터 바친다면, 그는 그것을 흠이 없는 것으로 주님께 바쳐라.
2. 그리고 그는 자기 손을 봉헌물의 머리에 놓아라, 그리고 만남의 천막의 문에서 그것을 죽여라. 그리고 아론의 아들들, 성직자들은 제단 주위에 피를 뿌려라.
3. 그리고 그는 평화 제물로부터의 희생 제물을 불로 만든 제물로 주님께 바쳐라. 즉 내장들을 덮은 지방과 내장들 위에 있는 지방이다.
4. 그리고 두 콩팥들, 그리고 그것들 위에 있는 지방, 이는 허리 근처이다, 그리고 간 위에 있는 대망(caul)을 콩팥과 더불어 가져 가라.
5. 그리고 아론의 아들들은 그것을 제단 위 태워 바치는 제물 위에서 태워라, 태워 바치는 제물은 불에 있는 장작 위에 있다. 이것은 달콤한 향기를 불로 만들어 주님께 바침이다.
6. 그리고 만일 주님에게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을 위한 그의 봉헌이 양떼로부터이다면, 그는 수컷 또는 암컷이든 흠이 없는 것을 바쳐라.
7. 만일 그가 자기 봉헌물로 어린 양을 바친다면, 그러면 그는 주님 앞에 그것을 바쳐라.
8. 그리고 그는 그의 손을 자기 봉헌물의 머리에 놓아라, 그리고 만남의 천막 앞에서 그것을 죽여라. 그리고 아론의 아들들은 그로부터의 피를 제단 주위에 뿌려라.
9. 그리고 그는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을 불로 만든 제물로 주님께 바쳐라. 즉 그로부터의 지방, 꼬리 지방 전부, 그는 이것을 등뼈 단단한 데로부터 가져 가라. 그리고 내장들을 덮은 지방, 그리고 내장들 위에 있는 모든 지방,
10. 그리고 두 콩팥들, 그리고 그것들 위에 있는 지방, 이것은 허리 근처이다, 그리고 간 위의 대망, 콩팥과 더불어 가져 가라.
11. 그리고 성직자는 그것을 제단 위에서 태울 것이다. 이것은 주님에게 불로 만든 식품(food)이다
12. 그리고 만일 그의 봉헌물이 염소이다면, 그러면 그는 그것을 주님께 바쳐라.
13. 그리고 그는 그의 손을 그것의 머리 위에 놓고, 그것을 만남의 천막 앞에서 죽여라. 그리고 아론의 아들들은 그것으로부터의 피를 제단 빙둘러 뿌려라.
14. 그리고 그는 그것으로부터 그의 봉헌물을 바칠 것인데, 불로 만들어 주님께 바침이다. 즉 내장들을 덮은 지방, 그리고 내장 위에 있는 지방 모두이다.
15. 그리고 두 콩팥들, 그리고 그것들 위에 있는 지방, 이것은 허리 근처이다, 그리고 간 위에 있는 대망, 콩팥과 더불어 그는 가져 가라.
16. 그리고 성직자는 그것들을 제단 위에서 태워라. 이것은 달콤한 향기를 위하여 불로 만든 제물로부터의 식품이다. 모든 지방은 주님의 것이다.
17. 이는 너희 모든 거주지들에서 대대로 영원한 법령이다, 즉 너희는 지방도 피도 먹지 말라.

영적 의미 요약

* 전체의 주제는 거듭남이 완성될 때, 그리고 거듭나는 동안 때때로 있게 되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주님을 예배함에 관한 것이다. 그 중, 자연적 애착으로부터의 예배가 1-5절에 기술되어 있다.
* 그 다음, 순진의 선으로부터의 예배가 6-11절에서 기술되는데, 이 예배에는 선행, 즉 이웃을 사랑함이 포함되어 있다.
* 마지막으로, 신앙의 선으로부터의 예배가 12-16절에서 기술되는데, 이 예배는 이해함을 통해 명백해진 선행이 포함되어 있다.
* 그러나 주님을 예배하는 위와 같은 각 상태에서, 어느 누구도 주님을 떠나서 진리이든, 선이든 독립된 자기 것인냥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음이 17절에서 기술되고 있다.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그리고 만일 그의 봉헌이 평화 제물로부터의 희생 제물이다면, 만일 그가 암컷이든 수컷이든 소떼로부터 바친다면, 그는 그것을 흠이 없는 것으로 주님께 바쳐라.

영적 의미

주님을 예배함이 자유 의지로부터 있게될 때, 즉 겉이 결합됨이 증진될 때, 다시 말해 예배가 진리측면에서이든 선의 측면에서이든 자연적 인간 속의 애착들로부터 있어질 때, 그 예배에는 악이나 거짓을 혼합해서는 안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본 장에 있는 평화 제물(peace offering)이란 자유로운 상태에서 주님을 예배함을 의미한다. 이 제물이야말로 “외적 부분(External)과 내적 부분(Internal)의 결합을 증진시켜 준다”라고 말해지고 있다. 그 이유는 인간이 마지막 장에서 기술되는 천적 상태에로 진입될 때, 그리하여 그 진입의 결과, 진리를 원리로 해서 행동하는 것을 그만두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사랑 또는 선으로부터 자유롭게 행동하기를 시작할 때, 이 행동은 자연스럽게 외적 인간 속의 애착이 내적 인간 속의 애착과 조화를 이루고 결합하는데 이르른다. 가축을 제물로 삼는다는 것은 자연적 인간의 애착으로 드리는 예배를 의미한다. 수컷이나 암컷이란 진리 측면이나 선의 측면에 관한 것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주님 앞에 흠이 없는 것이어야 함은 악과 거짓이 혼합되는데서 자유로워야 함을 의미한다. A.C. 10097, 3987, 93, 95, 5913, 6126, 7837.

2절. 그리고 그는 자기 손을 봉헌물의 머리에 놓아라, 그리고 만남의 천막의 문에서 그것을 죽여라. 그리고 아론의 아들들, 성직자들은 제단 주위에 피를 뿌려라.

영적 의미

그러면 속에 있는 모든 힘이 밖의 것과 교통되어서 밖의 것도 준비가 되어 주님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천국을 통해 그분으로부터 이 예배에 유입이 있게 된다. 이 예배 동안 진리와 선과의 결합이 있어지고, 이 결합은 주님과 결합되게 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런 사항이 제물의 머리에 예배자의 손을 얹는다는 것에서 나타내고 있다. 이는 내적인 것으로부터 외적인 것까지에 이르는 힘의 교통을 말한다. 제물을 만남의 천막 문에서 죽인다는 것은 주님을 인정함으로 외적인 것이 준비되어 천국을 통한 유입이 있어짐을 말한다. 그리고 제단의 주변에 피를 두루 뿌린다는 것은 진리와 선의 결합, 그리하여 주님과도 결합함을 말한다. A.C. 878, 10023, 10024, 2356, 3540-3, 9946, 10047.

3절. 그리고 그는 평화 제물로부터의 희생 제물을 불로 만든 제물로 주님께 바쳐라. 즉 내장들을 덮은 지방과 내장들 위에 있는 지방이다.

영적 의미

이와 같이 자유로운 사랑의 원리를 통해 이 예배가 주님으로부터 있음을 인정하게 될 것이고, 그 결과 가장 낮은 수준의 이해함이나 의지 측면에서 자연적 인간의 가장 낮은 수준에 있는 사랑의 선을 통해서 이 예배가 주님으로부터 이다를 인정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평화 제물이란 자유로부터의 예배를; 여호와께 태워 바친다는 것은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인정하는 것, 지방은 선을, 내장을 덮은 지방과 내장에 붙은 모든 지방이란 이해함과 의지 측면에서 가장 낮은 자연적인 선을 말하는데, 그 이유는 이해함은 인간에게 있어 의지의 바깥 형체 또는 의지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의지를 덮고 있기 때문이다. A.C. 10097, 10055, 10033, 353, 9632.

4절. 그리고 두 콩팥들, 그리고 그것들 위에 있는 지방, 이는 허리 근처이다, 그리고 간 위에 있는 대망(caul)을 콩팥과 더불어 가져 가라.

영적 의미

중간 수준, 즉 진리를 식별하고, 그 식별로부터 애착도 식별하는 수준에서, 이 식별을 수단으로 선과 진리의 결합이 결과되어진다, 그래서 내면의 수준에서도 선과 진리의 결합이 있어지는 바, 각 종류의 선들이 분리되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내장은 가장 낮은 수준의 선을 말하는데 비해, 두 콩팥과 거기에 붙어 있는 지방은 진리와 선의 측면에서 중간(middle) 수준을 말하고, 허리(loins)란 진리와 선의 결합을, 간에 붙은 지방이란 자연적 인간 속에 있는 내면의 선을 말한다. 지방을 콩팥에서 떼어낸다는 것은 각기 다른 선들을 주님을 섬기는데 봉헌한다는 것을 말하는데 다음 절에서 더 알게 된다. A.C. 10032, 10074, 353, 3915, 10031.

5절. 그리고 아론의 아들들은 그것을 제단 위 태워 바치는 제물 위에서 태워라, 태워 바치는 제물은 불에 있는 장작 위에 있다. 이것은 달콤한 향기를 불로 만들어 주님께 바침이다.

영적 의미

또한, 위의 것들은 주님께 봉헌되어야 할 것이고, 이것 모두가 주님으로부터 진행되었음을 인정하게 되지만, 처음에 예배자는 자신으로부터인 줄로 알고 봉헌하며, 다시 말해 그는 봉헌에 대한 공적이 자기에게 있다고 한다. 그 뒤 그는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봉헌하게 되는 바, 주님이 기뻐 받으실 수 있게 되어 천국의 삶과 평화가 생산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의 아들들이 모든 지방을 태워 바침의 제물에 얹어 제단에서 사른다는 것은 자연적 인간(외적인 것)을 온전히 주님께 봉헌한다는 말이다. 장작 위란 공적(merit)을 느끼면서 주님을 인정함이 우선 있게 된다는 것이데, 그 이유는 장작(wood)이 공적 의 선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불 위란 위의 인정 후에 오는 느낌이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있어짐을 말한다. 달콤한 향기를 불로 만들어 주님께 바침이란 순수한 사랑으로 예배함, 이 예배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열납하심, 그리하여 천국의 쉼과 평화가 생산된다는 뜻이다. A.C. 10052, 2784, 934, 10052, 10054.

6절. 그리고 만일 주님에게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을 위한 그의 봉헌이 양떼로부터이다면, 그는 수컷 또는 암컷이든 흠이 없는 것을 바쳐라.

영적 의미

다시, 안과 밖의 결합을 증진시켜주는 자유로부터의 예배가 진리나 선의 측면에서 영적 애착으로부터 있게 될 때, 이 예배 역시 악과 거짓에 오염되어 있어서는 안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양으로 드리는 평화 제물이란 영적 애착의 영향을 받으면서 자유로이 예배함을 의미한다. 수컷 또는 암컷이란 진리나 선의 측면을 의미하고, 흠이 없음이란 악과 거짓에서 오염되지 않아야 함을 의미한다. A.C. 5913, 6126, 10097, 725, 7837.

7절. 만일 그가 자기 봉헌물로 어린 양을 바친다면, 그러면 그는 주님 앞에 그것을 바쳐라.

영적 의미

만일 이 예배가 순진의 선으로부터이라면, 그 예배가 주님으로부터 있어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 절은 어린 양이 순진의 선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으로부터 파악된다. 이 절에서 언급되는 어린 양은 선행을 말할는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히브리어로 양 또는 어린 양을 뜻하기 때문이다. 주님께 제물을 바침은 예배에서 주님을 인정함을 말하고 있다. A.C. 3994, 4169, 10227, 9373.

8절. 그리고 그는 그의 손을 자기 봉헌물의 머리에 놓아라, 그리고 만남의 천막 앞에서 그것을 죽여라. 그리고 아론의 아들들은 그로부터의 피를 제단 주위에 뿌려라.

영적 의미

예배하는 힘이 그분으로부터 있게 된다는 것, 천국을 통한 유입에 의거 예배를 행하도록 자신을 준비시켜 주신다는 것, 그리하여 영적 인간과 주님의 결합이 결과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는 것은 영적(내적) 원리가 가장 깊은 원리들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오는 예배의 힘과 교통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동물을 죽임은 예배를 준비함, 그리고 천국을 통한 유입, 주님과의 결합을 말한다. 제단의 주변에 피를 뿌린다는 것은 영적 인간이 주님과 결합함을 말한다. 1장 4절. A.C. 10023, 10024, 2356, 3540-3, 10025, 10047.

9절. 그리고 그는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을 불로 만든 제물로 주님께 바쳐라. 즉 그로부터의 지방, 꼬리 지방 전부, 그는 이것을 등뼈 단단한 데로부터 가져 가라. 그리고 내장들을 덮은 지방, 그리고 내장들 위에 있는 모든 지방,

영적 의미

또한 예배 안에 있는 자유는 기쁨과 평화를 가져다주는데, 그 이유는 사랑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고, 그 예배는 안에 있는 천국인 선에 따라서, 그리고 최 말단에 있는 천적인 선에 따라 있어지는 바, 이 예배는 자연적 사랑 뿐이다에서 분리되고 온전해진다. 그 다음 이해함과 의지에서 자연적 인간의 가장 낮은 선에 따라서 예배가 있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호와께 제물을 살라 바친다는 것은 이 제물이 기쁨과 평화를 가져온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이 제물은 사랑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이다. 이 제물로부터의 지방이란 내면에 있는 천적인 선을; 꼬리에 붙은 지방 전부란 외면 또는 최말단에 있는 천적인 선 모두를 말하고; 등뼈(backbone)에서 꼬리를 뗀다는 것은 자연적 사랑 뿐이다에 분리시킴을, 내장을 덮은 지방과 내장에 붙은 모든 지방이란 이해함과 의지에 관한 자연적 인간의 가장 낮은 선을 말한다. A.C. 10055, 10033, 10070, 7837, 10071, 3절 참조.

10절. 그리고 두 콩팥들, 그리고 그것들 위에 있는 지방, 이것은 허리 근처이다, 그리고 간 위의 대망, 콩팥과 더불어 가져 가라.

영적 의미

중간 수준의 선에 의거함, 즉 진리를 식별하는 것, 그로부터 애착을 식별함에 따라서, 식별을 수단으로 진리와 선의 결합이 있게 된다. 그리하여 내면에 있는 선에 의거 선과 진리의 결합이 있게 된다. 그런 다음 각기 다양한 선이 분리되어 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내장이 가장 낮은 선을 말하듯, 지방이 붙어 있는 콩팥은 선과 진리의 중간 수준을; 허리의 지방은 선과 진리의 결합을; 간의 지방은 자연적(외적) 인간에 있는 내면의 선을; 각 부위에서 기름들을 떼어 낸다는 것은 각기 다른 선들을 주님을 섬기고자 하여 봉헌하는 것을 말한다. A.C. 10032, 10074, 353, 3915, 10031.

11절. 그리고 성직자는 그것을 제단 위에서 태울 것이다. 이것은 주님에게 불로 만든 식품(food)이다

영적 의미

그리고 위의 것이 통째로 주님께 봉헌되었다. 그 이유는 그것 모두는 주님으로부터 온 사랑의 천적 원리이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제단 위에서 제물을 사른다는 것은 주님께 봉헌함을; 불로 살라 주님께 바치는 식품 또는 빵은 주님으로부터 온 사랑의 천적 원리를 말한다. A.C. 10053, 276, 10055.

12절. 그리고 만일 그의 봉헌물이 염소이다면, 그러면 그는 그것을 주님께 바쳐라.

영적 의미

다시, 평화를 가져오는 자유스러운 예배가 신앙의 선으로부터 있게 된다면, 이 예배 역시 주님으로부터 있어진다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 절은 염소가 신앙의 선, 또는 진리의 선을 의미한다는 데서 알게 될는지 모른다. 그리고 염소를 여호와께 바침은 주님을 인정함을 명시하고 있다. A.C. 10227, 9373.

13절. 그리고 그는 그의 손을 그것의 머리 위에 놓고, 그것을 만남의 천막 앞에서 죽여라. 그리고 아론의 아들들은 그것으로부터의 피를 제단 빙둘러 뿌려라.

영적 의미

그리고 내적 인간이 이 선 안으로 힘을 가지고 흐르게 되어, 외적 인간도 천국을 통해 오는 영적 생명의 유입으로 준비된다. 그 다음 신성한 진리가 신성한 선과 결합되어지되 천적 선에서 파생된 거룩한 진리들을 수단으로 있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는 것은 내적인 것이 외적인 것을 가지고, 즉 신앙의 선이 힘을 가지고를 말한다. 만남의 천막 앞에서 제물을 죽인다는 것은 천국을 통한 유입으로 예배가 준비되는 것을, 그리고 아론의 아들들이 피를 제단 주변에 두루 뿌린다는 것은 신성한 진리가 천적인 선에서 파생되는 거룩한 진리를 수단으로 신성한 선과 결합되어짐을 말한다. A.C. 10047, 9946.

14절. 그리고 그는 그것으로부터 그의 봉헌물을 바칠 것인데, 불로 만들어 주님께 바침이다. 즉 내장들을 덮은 지방, 그리고 내장 위에 있는 지방 모두이다.

영적 의미

이리하여 주님이 예배에서 인정되어지되 천적 사랑으로부터 이해함과 의지에 관한 자연적 인간 속의 가장 낮은 선을 통해 있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평화 제물로 봉헌된 것은 자유로부터의 예배를; 제물을 주님께 살라 바침은 순수한 사랑으로 주님을 인정함을; 지방은 선을; 내장을 덮은 지방은 이해 측면에서의 가장 낮은 자연적 선을; 내장 위에 붙은 지방은 의지 측면에서의 가장 낮은 자연적 선을 각각 말한다. A.C. 10097, 10055, 10033, 353, 9632.

15절. 그리고 두 콩팥들, 그리고 그것들 위에 있는 지방, 이것은 허리 근처이다, 그리고 간 위에 있는 대망, 콩팥과 더불어 그는 가져 가라.

영적 의미

진리와 애착을 식별하는 선, 즉 중간 수준의 선을 통해서 진리와 선의 결합이 결과되어 진다. 그리고 내면의 선을 통하여 선과 진리의 결합이 결과 되어 각각의 선들이 분리되어 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내장이 가장 낮은 선을 말하고 있듯, 지방이 붙어 있는 두 콩팥은 선과 진리의 중간 수준을; 허리는 진리와 선의 결합을; 간에 붙은 지방은 자연적(외적) 인간 속에 있는 내면의 선을; 콩팥에서 지방을 떼어냄이란 각 종류의 선이 주님을 섬기고저 봉헌되어짐을 말해주기 때문인데, 이는 다음 절에서 나타난다. A.C. 10032, 10074, 353, 3915, 10031.

16절. 그리고 성직자는 그것들을 제단 위에서 태워라. 이것은 달콤한 향기를 위하여 불로 만든 제물로부터의 식품이다. 모든 지방은 주님의 것이다.

영적 의미

그리고 위의 선들이 예배에서 신앙의 선들로부터 봉헌될 것이다. 그 이유는 이런 선까지도 신성한 사랑에 의해 성별되어 있어 천국의 쉼과 평화를 생산해 주기 때문이다. 천적인 선이 역사하는 어디서든지 그 선은 주님으로부터 있게 되었음을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제단 위에 있는 제물은 주님께의 봉헌을; 주님께 태워 바치는 제물의 식품 또는 빵은 그분으로부터 온 사랑이라는 천적 원리를; 달콤한 향기, 또는 쉼의 냄새란 천국의 쉼과 평화를 생산하는 것을; 지방은 모두 여호와께 바침, 즉 모든 지방은 주님의 것이라는 것은 천적인 선 모두는 주님으로부터 존재함을 뜻한다. A.C. 10052, 276, 10055, 10054, 10033.

17절. 이는 너희 모든 거주지들에서 대대로 영원한 법령이다, 즉 너희는 지방도 피도 먹지 말라.

영적 의미

위의 모든 것은 선을 받아 가는 거듭남에 있는 신성한 질서의 항구적인 법칙이다. 어떤 천적인 선이나 진리도 자연적 인간이 원래 자기 것인 냥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위의 사항이 영원히 지킬 법령이라 함은, 이는 신성한 질서라는 항구적인 법이라는 것을; 대대로 지킬 규정이라 함은 선을 계속 받아감으로 해서 거듭 나아간다는 것을; 먹는다는 것은 내 것 삼음을; 지방은 천적인 선을; 피는 신성한 진리를 말해주고 있다. A.C. 7884, 7931, 1041, 2187, 10033, 10026.

3장의 종합적 고찰

이제 3장의 전체에 흐르는 일반적 특성 몇 가지를 살펴보는 기회를 갖기로 해보자. 인간이 영적 상태에서 천적 상태에로 건너갈 때,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의 원리에서 사랑이 우세해질 때, 가장 명확한 것은 그 사람에게 자유가 필수 요건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모든 자유는 통치하는 사랑(ruling love)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해서, 이 사람이 주님을 예배하는데 있어 이전에는 자유가 없었다고 가상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결론이 될 수밖에 없다. 단지 이전에는 그가 충분한 자유로 예배하지 않았다는 것일 뿐이다. 어떤 상태에서라도 주님을 진실로 예배하기 위해서 예배자는 진실로 예배드리려 하는 것을 자유로이 선택해야만 한다, 이는 그가 자기의 자연적 경향성을 정복하겠다고 결심이라도 한 듯 예배 드리는 쪽을 억지로 선택할 때 조차에서도 자유로운 선택은 있어져야만 한다. 이럴 경우마다, 본인이 자주 느끼게 되는 것은 자기는 자유롭지 않은 상태에서 예배하는 듯 여겨질는지 모른다는 것일 게다. 이런 상황은 자신에 대해 실망하고 있다 라고 말하기보다는 오히려 잘 버티고 있다고 표현해야 옳은 판단이 될 것이다. 선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인내 속에 참으로 본 장에서 제물이 뜻하는 가장 좋은 의미인 순수한 자유가 감추어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식사 제물처럼 평화 제물도 성경의 어떤 부분에서는 단지 자유를 넌지시 비추는 수준의 불완전한 자유의 상태를 말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 이유는, 우리가 영적 시련이나 시험들을 통과하는 많은 과정에서 기쁨과 평화의 시절이 우리 속에서 일어나되, 마지막으로 우리의 것이 될 천국적 자유, 즉 진정한 자유의 상태에 앞서서 미리 맛만 보는 순간들, 즉 걱정과 불안으로부터 온 자유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태 속에서 자유 의사에 따른 제물이 바쳐질 수 있게 애착과 감사라는 것을 수단으로 자신을 자극(고무)시키거나, 감사하는 마음과 기쁨의 내적 상태를 어떤 행동을 통해 표현해서 구체화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의 마지막 제물인 평화 제물은 각 사람의 수준에 맞추어 각각의 내적 인간과 외적 인간이 하모니를 증진시키는데 결코 실패하지 않게 된다. 이 하모니 없이 충만된 천국의 자유는 존재할 수 없고 영원할 수도 없는 것이다.
위의 생각은 즉각 또 다른 생각을 해보도록 우리를 인도하게 된다. 우리의 자연적 인간이 순수해지는 만큼에 똑같이 비례해서 진정한 자유도 우리 속에 건설된다는 것이다. 앞에서 살핀 바, 내장, 콩팥, 간에 관한 특별한 언급은 이 기관들이 여러 가지 수준에서의 영적 순수함과 정확히 상응하고 있는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상 모든 우리의 악들은 자연적 수준에 뿌리를 두고 있는 고로 우리가 깨끗해지는 수단 역시 자연적 수준에서 발견될 수밖에 없다.
또 하나 주목해 둘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우리가 자신의 몸을 건강한 상태로 유지하려고 기발한 수단을 동원해서 애쓴다해도 자신이 생각했던 목표에 꼭 맞게 있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어떤 행동들로 해서 자신이 동원한 건강 비결이 적절하게 체력이 증진되게 해주기도 하지만 오히려 더 상처를 입히는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수단을 동원한다 해도 결론적인 것은 우리가 건강을 완전히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주님만이 그것을 하실 수 있으시다. 신체 건강이라는 한 가지 측면만을 우리가 얼른 생각해 보아도 계속적인 신성한 현존과 그 능력의 보편성과 실존에 관한 경이롭고 확증되는 증거들을 볼 수 있다. 이와 같다는데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 영적 수준에서도 존재한다. 우리는 악과 거짓으로부터 자신을 순수해지게 할 수 없다. 순수해지게 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주님뿐이시고 그 방법 또한 짐작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다. 주님의 선함, 실재의 천적 원리는 우리의 영적 존재의 최말단에까지 현존한다. 그렇게해서 그분의 선함은 우리를 도우시고, 최말단에 있는 선함은 틀림없이 보존되어야 하고 주님께 성별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그 선함이 그분께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이것이 지방으로 나타나고 있고, 내장에 붙은 지방은 우리 삶의 최말단 부분에 있는 선함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선함만 가지고 순수해지지 않는다. 선함은 진리를 수단으로 작동된다. 진리와 거짓 사이를 선에 근거해서 식별해 내는 진리의 역할 부분이 본문에서 두 콩팥으로 표현되어져 있다. 이 식별은 아주 완전한 바, 과정의 방향이 어떠한지를 우리가 주창할 수 없음을 느끼게 하고 만다. 주님만이 방향을 설정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진리나 선함을 획득함에서 그분과 협동할 수 있는 능력은 가지고 있다.
본문에서 다음 사항들이 관찰되고 있다.
1) 인간이 순수해져 가는 모든 과정을 주님으로부터 오는 힘을 자발적으로 행사해 봄으로 완전하고 영원한 그분과의 결합을 낳고, 순수해지는 모든 과정은 세 겹의 방법, 본문에서 내장, 콩팥, 간으로 표현된 방법으로 자연적 인간 안에서 언제나 있게 되는데, 이는 그 주체가 영적 인간이든 자연적 인간이든 방법은 동일하다.
2) 주님으로부터 오는 진리나 선을 받았다고 해서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되어 대대로 물려 줄 수도 있는 선천성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바, 거듭나는 인간은 주님의 선과 진리를 담는 그릇일 뿐이어서 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선하고 완전한 영적 힘과 자연적 기쁨을 위해 우리의 창조자요, 구속자이시며, 거듭나게 해주시는 주님께 계속 의지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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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4장

성경: 레위기 1장

1.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2.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야기하여, 말하라, 만일 누군가가 주님께서 행하여져서는 안된다고 명령한 것의 어떤 것에서 부지불식간에 죄를 짓는다면, 그리고 그것들 중의 어떤 것을 행한다면,
3. 만일 기름부은 성직자가 백성 위에 죄있어지도록 하여 죄를 지었다면, 그러면 그가 죄진 것, 그의 죄를 위해 그로하여금 흠이 없는 거세한 어린 수소를 죄 바침을 위해 주님께 바치게 하라.
4.그리고 그는 주님 앞 만남의 문으로 수소를 가져 와라. 그리고 그는 자기 손을 수소의 머리에 놓아라, 그리고 주님 앞에서 수소를 죽여라.
5. 그리고 기름부워진 성직자가 수소의 피를 가져 와라, 그리고 그것을 만남의 천막으로 가져오너라.
6. 그리고 성직자는 자기 손가락을 피에 담그어라, 그리고 성소의 베일(veil) 앞, 주님 앞에 일곱 번 뿌려라.
7. 그리고 성직자는 주님 앞 달콤한 향의 제단의 뿔들에 피를 놓아라. 이 제단은 만남의 천막 안에 있다. 그리고 수소의 모든 피를 태워 바치는 제단의 받침에 부어라, 이 제단은 만남의 천막의 문에 있다.
8. 그리고 죄 바침(sin offering)으로부터의 수소의 모든 지방을 그는 그것으로부터 가져 가라. 즉 내장들을 덮은 지방, 그리고 내장들 위에 있는 모든 지방이다.
9. 그리고 두 콩팥들, 그리고 그것들 위에 있는 지방, 이것은 허리 근처이다, 그리고 간 위의 대망을 콩팥과 더불어 그는 가져가라.
10. 평화 제물의 희생제물로부터의 수소(ox)를 취급한 그대로와 같다. 그리고 성직자는 그것들을 태워 바치는 제단 위에서 태워라.
11. 그리고 수소의 가죽, 그리고 모든 그것의 고기, 그것의 머리와 더불어, 그리고 그것의 다리들, 그리고 그것의 내장들, 그리고 그것의 똥,
12. 수소 전부 조차 그는 진영 밖 깨끗한 장소, 재들을 쏟는 곳에 운반하라, 그리고 그것을 불과 더불어 장작 위에서 태울 것이다. 재들을 쏟는 거기서 그것은 태워져야 한다.
13. 그리고 만일 이스라엘의 전체 회중이 잘못을 한다면, 그리고 어떤 것이 집회의 눈으로부터 감추여 있다면, 그리고 그들이 주님이 하지 말라고 명령했던 것들의 어떤 것을 행동했다면, 그리고 죄 지음이 있다면,
14.그들이 죄지은 죄가 알려질 때, 그 다음, 집회는 죄 바침을 위해 어린 수소를 바쳐라, 그리고 그것을 만남의 천막 앞으로 가져 와라.
15. 그리고 회중의 장로들은 그들의 손을 주님 앞 수소의 머리에 놓아라. 그리고 그 수소는 주님 앞에서 죽여져야 한다.
16. 그리고 기름부워진 성직자가 만남의 천막으로 수소의 피를 가져 와라.
17. 그리고 성직자는 피에 자기 손가락을 담근다, 그리고 그것을 주님 앞, 베일 앞에 일곱 번 뿌려라.
18. 그리고 그는 만남의 천막 안에 있는 주님 앞에 있는 제단의 뿔들 위에 피를 놓아라, 그리고 모든 피는 태워 바침의 제단 받침에 쏟아라, 이 제단은 만남의 천막의 문에 있다.
19. 그리고 그로부터의 모든 지방은 그것으로부터 떼어 내라, 그리고 제단에서 그것을 태워라.
20. 그는 수소를 가지고 이렇게 하라. 그는 죄의 제물의 수소를 가지고 했던 것 같이 이것도 그렇게 하라. 그리고 성직자는 그들을 위하여 보상을 받게 하라, 그리고 그들은 용서된다.
21. 그리고 그는 수소를 진영 밖으로 운반 하라, 그리고 첫 번째의 수소를 태운 방식대로 그것을 태워라. 이것은 집회(assembly)를 위한 죄 바침이다.
22. 통치자가 죄지을 때, 그리고 그의 하느님 주님이 하지 말라고 명령했던 모든 것들 중의 어떤 하나를 부지불식간에 행할 때, 그리하여 죄가 있어 질때,
23. 만일 그의 죄가 그가 어떤 점에서 죄지었나를 그에게 알게 만들었다면, 그는 자기 제물로 흠이 없는 수컷 염소를 가져 와라.
24. 그리고 그는 자기 손을 염소의 머리 위에 놓아라, 그리고 그들은 주님 앞 태워 바치는 제물을 죽인 장소에서 그것을 죽여라. 이것은 죄 바침이다
25. 그리고 성직자는 자기 손가락으로 죄 바침의 제물의 피를 가져 와라, 그리고 그것을 태워 바치는 제단의 뿔들에 발라라, 그리고 그로부터의 피는 태워 바침의 제단의 받침에 쏟아라.
26. 그리고 그것으로부터의 모든 지방은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을 태우던 그대로 제단에서 태워라. 그리고 성직자가 그의 죄에 관하여 보상을 받게 하라, 그리고 그는 용서된다.
27. 그리고 만일 일반 백성 중의 누군가가 부지불식간에 죄지어 주님께서 하지 말라고 명령해두었던 것들 중의 어떤 것을 행하는 중이다면, 그리고 죄 있음에 있다면.
28. 만일 그의 죄가 그가 죄지었다는 것을 그에게 알게 만들었다면, 그러면 그는 자기가 죄지은 그의 죄를 위해 그의 봉헌물로 흠이 없는 암컷 염소를 가져와라.
29. 그리고 그는 자기 손을 죄 바침의 제물의 머리 위에 놓아라, 그리고 태워 바침의 장소에서 죄 바침의 제물을 죽여라.
30. 그리고 성직자는 그의 손가락으로 그것으로부터의 피를 가져 가라, 그리고 그것을 태워 바침의 제단의 뿔들에 바르라, 그리고 그것으로부터의 모든 피는 제단의 받침에 쏟아라.
31. 그리고 그것으로부터의 모든 지방은 그가 가져 가라, 마치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로부터 가져 감과 같다. 그리고 성직자는 주님에게 달콤한 향기를 위해 그것을 제단 위에서 태워라. 그리고 성직자는 그를 위하여 보상을 만들고, 그는 용서된다.
32. 그리고 만일 그가 죄 바침의 제물을 위한 자기 봉헌물로서 어린 양을 가져온다면, 그는 흠이 없는 암컷으로 그것을 가져 와라.
33. 그리고 그는 자기 손을 죄 바침의 제물의 머리에 놓아라, 그리고 그들이 태워 바치는 제물을 죽이던 장소에서 죄 바침의 제물을 위해 그것을 죽여라.
34. 그리고 성직자는 자기 손가락으로 죄 바침의 제물의 피를 가져 가라, 그리고 그것을 태워 바침의 제단의 뿔들에 놓아라, 그리고 그것으로부터의 모든 피는 제단의 받침에 쏟아라.
35. 그리고 그것으로부터의 모든 지방을 그가 가져 가라, 마치 어린 양의 지방을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로부터 가져간 것과 같다. 그리고 성직자는 그것들을 불로 만든 주님의 제물 위에, 제단 위에서 태워라. 그리고 성직자는 그가 죄지었던 것을 만짐 으로서 그를 위하여 보상을 받게 하라, 그리고 그는 용서된다.

영적 의미 요약

* 자연적 수준에서의 천적 인간이 순수해짐, 과오 없이 범한 잘못으로부터, 그 과정에는 주님을 예배함이 포함되어 있음이 1-12절에서 기술되고 있다.
* 영적 인간의 순수해짐, 그리고 주님의 예배가 그 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13-21절
* 자연적 인간의 순수해짐, 그들의 예배, 그들의 거듭남이 취급되는데, 첫째로 선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상태가 기술된다. 22-26.
* 둘째로, 진리의 선, 즉 생활의 원리로 채택된 선의 상태에 관하여. 27-31절
* 마지막으로, 가장 깊은 상태인 순수한 선의 상태에 관하여. 32-35절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지각을 주시는 주님으로부터 유입이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 또는 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speaking)이란 유입을; 모세란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말함(가라사대, saying)은 지각을 각각 명시하고 있다.
위의 구절 같은 서술은 본문 외에도 말씀 속에서 자주 있게 되는데, 그 이유를 살펴두는 것은 도움이 되리라 본다. 이 말들은 내적 의미에서 새로운 시작(a new beginning)을 의미한다. 시작이라 해도 최초의 시작이 아닌 이전 것에 계속되는 새로운 시작, 그래서 주제가 바뀌는 것, 다시 말해 이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옮겨가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각 시작 단계의 일반 주제는 다른 상태들에서 인간이 주님을 예배해온 것들이다. 본 장도 이 주제 가운데서 연속되는 것 중 하나이다. 앞의 장들이 다양한 애착들로부터 주님을 찬양하는데 비해 본 장은 죄와 잘못의 결과로 바쳐야 할 예배를 묘사하고 있다. 우리가 거듭나는 과정의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내적, 외적인 삶의 변화들은 새로운 생각 상태, 새로운 계시들을 가져다준다. 그러므로 말씀 자체는 여러 장소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빛을 비쳐 주는데, 그 이유는 악에 저항하려고 결심하여 계속해 간 결과인 우리의 모든 변화는 진리에 대한 우리의 지각을 더 명확하게 만들어, “심정이 순수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라”는 말씀에서 표현하는 법칙을 완성하게 한다. 심정이 순수해진다는 것은 애착이 순수해진다는 것이고, 하느님을 본다는 것은 순수해진 애착의 결과로 진리를 더 명백하게 식별한다는 말이다. A.C. 2001, 2951, 7010, 6752, 1791, 1822, 7191.

2절.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야기하여, 말하라, 만일 누군가가 주님께서 행하여져서는 안 된다고 명령한 것의 어떤 것에서 부지불식간에 죄를 짓는다면, 그리고 그것들 중의 어떤 것을 행한다면,

영적 의미

그리고 영적 교회의 사람에게 밝히 알게 하시는 것, 즉 그가 악을 금하는 신성한 진리에 관한 세부 사항들을 실수와 무지로 위반할 때, 그리고 위반할 의도는 없었지만 죄를 실지로 범하게 될 때에 관하여,

세부적 영적 의미

이야기하라(speaking)란 계시를; 이스라엘 백성은 영적 교회를; 실수로 죄를 짓는다는 것은 무지와 잘못으로 신성한 법을 위반하는 것을; 주님이 하지 말라고 명령한 것이란 명백히 피할 수도 있는 악들을; 그것을 하였다는 것은 죄를 범하는 것을 말한다. A.C. 3654, 9136, 10042, III

3절. 만일 기름부은 성직자가 백성 위에 죄있어지도록 하여 죄를 지었다면, 그러면 그가 죄진 것, 그의 죄를 위해 그로 하여금 흠이 없는 거세한 어린 수소를 죄 바침을 위해 주님께 바치게 하라.

영적 의미
예를 들면, 주님에게서 받음으로 천적 선 안에 내향적으로 있는 사람이 실수해서 선 가운데 있지는 않으나 진리 가운데 있는 더 낮은 상태에 있는 사람, 즉 자연적 인간에 소속되는 무지의 순진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피해를 줄 때, 그는 순진의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해야 할 것이다. 그 실수는 그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악의 면제가 거행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기름 부어 세운 성직자란 주님으로부터 받은 천적인 선 가운데 있는 이들을; 성직자가 죄를 짓는다는 것은 이 구절의 경우 잘못을; 죄있어지도록 함이란 잘못의 결과, 즉 피해를; 성직자와 관련된 백성이란 보다 낮은 상태에 있는 이들, 즉 진리 안에는 있으나 선 안에는 아직 있지 못하는 이들을; 이 절의 성직자란 무지의 순진 가운데 있는 성직자이고, 흠이 없는 수소란 자연적 인간 안에 있는 순진의 선을; 죄의 제물이란 잘못이 귀속되지 않고 용서가 거행될 것을 명시하고 있다. 1장 4절의 설명을 보면 보상(atonement)에 관한 주제가 다루어져 있다. 이에 더하여 한 가지 더 생각해 본다. 죄의 용서는 인간의 회개에, 회개하는 상태에서 주님을 예배함에, 그 결과 인간이 선의 상태에 오게 되는 것, 말을 바꾸어 본다면, 하느님과 인간을 사랑하는 상태로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보상, 실지의 보상, 화해이다 (로마서 5:11, 고린도후서 5:19). A.C. 9954-7, 2절, 6451, 1259, 3절, 5913, 6126, 7837, 3400, 10122, 1장 4절.

4절. 그리고 그는 주님 앞 만남의 문으로 수소를 가져 와라. 그리고 그는 자기 손을 수소의 머리에 놓아라, 그리고 주님 앞에서 수소를 죽여라.

영적 의미

그리고 이 예배는 주님의 인정과 천국을 통한 그분의 역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순진의 선으로 들어가는 내적 인간의 유입이 능력을 가지고 외적 부분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연적 인간은 자아를 부정함으로 이 예배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것들은 다음 사항을 생각해 보면 더 알게 된다. 만남의 천막 문간에 수소를 가지고 온다는 것은 주님을 인정하고, 그분의 역사하심이 천국을 통하여 임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 머리에 손을 얹는다는 것은 내적 인간이 힘 있게 외적 인간의 순진의 선 안으로 유입된다는 것을; 주님 앞에서 그것을 죽인다는 것은 자아를 부정함으로 이 예배는 준비된다는 것을 각각 명시하고 있다. A.C. 2356, 3540-3, 878, 10023, 10024, 9990.

5절. 그리고 기름부워진 성직자가 수소의 피를 가져 와라, 그리고 그것을 만남의 천막으로 가져오너라.

영적 의미

그리고 실수한 당사자는 자기의 본질적 선으로부터 자연적 인간에 있는 순진의 선에 관련된 신성한 진리를 분별하여 그것이 주님으로부터 천국을 통해 존재함을 인정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것은 진실이다, 그 이유는 기름 부어 세운 성직자가 진리와 결합된 위반자에게 속한 본질적인 선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수소의 피는 자연적 인간에 있는 순진의 선과 관련되는 신성한 진리를; 그 피를 만남의 천막으로 가지고 온다는 것은 주님을 인정하고 그분의 영향이 천국을 통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각각 명시한다. A.C. 9954-7, 10047, 2356, 3540-3.

6절. 그리고 성직자는 자기 손가락을 피에 담그어라, 그리고 성소의 베일(veil) 앞, 주님 앞에 일곱 번 뿌려라.

영적 의미

그리고 이 선은 비록 진리와 선의 가장 깊은 결합의 상태를 보지 못해도 진리는 자연 평면 안에서 선과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거룩한 상태에서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한 어떤 힘을 가진 신성한 선으로부터 작동되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기서 성직자가 손가락을 피에 담근다는 것은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어떤 능력을 가진 신성한 선의 역사를; 주님 앞에서 피를 일곱 번 뿌린다는 것은 자연 평면에 있는 선과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거룩한 상태를; 그 피가 수소의 피라는 것은 자연 평면에 있는 것을; 성소의 베일(휘장) 앞에 뿌린다는 것은 가장 깊게 결합하는 상태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A.C. 7430, 10047, 716, 5913, 6126, 9670, 3207.

7절. 그리고 성직자는 주님 앞 달콤한 향의 제단의 뿔들에 피를 놓아라. 이 제단은 만남의 천막 안에 있다. 그리고 수소의 모든 피를 태워 바치는 제단의 받침에 부어라, 이 제단은 만남의 천막의 문에 있다.

영적 의미

그럼에도 이 결합은 천적 수준과 영적 수준을 통하여 존재하되, 그에 관한 최 말단 진리들에서까지 존재한다, 그리고 거기서도 주님으로부터 있어졌음이 인정되어야 한다. 그 인정을 수단으로 완전함이 자연적 수준에서 결과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달콤한 향의 제단의 뿔들 위에 피를 붓는다는 것은 결합이 천적인 수준과 영적인 수준을 통하여 있게 된다는 것, 그리고 최말단 진리에서도 있게 된다는 것, 이 결합이 주님으로부터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만남의 천막 문에 있는 태워 바치는 제단 받침에 수소의 피를 붓는다는 것은 결합은 자연적 수준에서도 역시 결과되어야 하며 위와 같이 인정함으로 완성되어야 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A.C. 10176, 10208, 2832, 10642, 10047, 2356, 3540-3.

8절. 그리고 죄 바침(sin offering)으로부터의 수소의 모든 지방을 그는 그것으로부터 가져 가라. 즉 내장들을 덮은 지방, 그리고 내장들 위에 있는 모든 지방이다.

영적 의미

모든 천적 선은 자연적 선 뿐인 것에서 구별되고 분리되어야 하는데, 이는 이해함과 의지에 관한 가장 낮은 수준에서도 수행되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수소의 기름은 천적인 선을; 떼어 낸다는 것은 자연적 선 뿐인 데서 분리되어 구별시켜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3장 4, 5절에서 살핀바 있다. 그리고 내장을 덮은 지방, 내장에 붙어 있는 지방이란 가장 낮은 수준의 선, 또는 의지와 이해함의 자연적 수준을 명시한다. 3장 4, 5절 3장 3절 참조.

9절. 그리고 두 콩팥들, 그리고 그것들 위에 있는 지방, 이것은 허리 근처이다, 그리고 간 위의 대망을 콩팥과 더불어 그는 가져가라.

영적 의미

중간 수준인 진리와 애착의 식별함이 진리와 선의 결합을 결과하게 하고, 내면 수준에서는 선과 진리의 결합을 결과되게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두 콩팥과 거기에 붙어 있는 지방, 곧 허리 근처에 붙은 지방, 그리고 간에 붙은 지방 덩어리는 중간 수준, 즉 진리가 선과 결합하여 결과되는 것인 진리와 애착을 식별하는 것, 그리고 선이 진리와 결합함으로 결과되는 내면의 등차를 명시한다. 3장 4절 참조.

10절. 평화 제물의 희생제물로부터의 수소(ox)를 취급한 그대로와 같다. 그리고 성직자는 그것들을 태워 바치는 제단 위에서 태워라.

영적 의미

자유 의지에서 주님을 예배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모든 다양한 선들이 주님께 전부 봉헌되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기서, “평화 제물이 된 수소에서 떼어내는 경우처럼 떼어야 한다”는 것은 자유 의지로부터 주님을 예배할 때와 같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고; 그것을 성직자가 태워 바치는 제단 위에서 살라야 한다란 선에 속한 모든 다양한 것들은 주님께 모두 봉헌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시한다. 3장 5절 참조. A.C. 10097.

11절. 그리고 수소의 가죽, 그리고 모든 그것의 고기, 그것의 머리와 더불어, 그리고 그것의 다리들, 그리고 그것의 내장들, 그리고 그것의 똥,

영적 의미

자연적일 뿐인 모든 선과 진리, 가장 깊은 것, 중간 것, 가장 낮은 것, 이리하여 완전히 불순한 모든 것

세부적 영적 의미

수소 가죽은 자연적 진리 뿐인 모든 것; 그 고기란 자연적 선 뿐인 모든 것; 다리는 중간 수준에 속한 선; 머리는 가장 깊은 수준의 선; 내장은 가장 낮은 수준의 선; 똥은 완전히 불순한 모든 것을 각기 명시하고 있다. A.C. 3540, 10040, 10048, 10049, 10050, 10037.

12절. 수소 전부 조차 그는 진영 밖 깨끗한 장소, 재들을 쏟는 곳에 운반하라, 그리고 그것을 불과 더불어 장작 위에서 태울 것이다. 재들을 쏟는 거기서 그것은 태워져야 한다.

영적 의미

배설물에 속한 것 거듭나지 못한 자연적 인간에 속한 모든 것은 천국적 삶에서 분리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분리하는 행동 자체는 순수하다. 그리고 이러한 분리는 그 목적에 부합되어야 한다. 이리하여 공적을 주장하려드는 자연적 선은 사악한 자의 경우 자아 사랑으로 황폐될 것이고, 영적 인간의 경우에는 주님을 사랑함으로 거절될 것인 바, 그 이유는 그 배설물이 더 이상 선용의 수단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 수소 전부란 거듭나지 못한 자연적 인간 전체를; 진영 밖은 천국 삶에서의 분리를; 깨끗한 곳이란 분리하는 행동은 순수하다는 것; 재들의 장소란 그것들의 용도에 사용한 것들의 제거를; 장작이란 공적의 선을; 불이란 사랑을; 태운다는 것은 자아 사랑을 통해 황폐해짐, 또는 상황에 따라서 주님 사랑을 통해 거절함도 명시한다. A.C. 4236, 4545, 2625, 9723, 2784, 934, 2445, 2449.

13절. 그리고 만일 이스라엘의 전체 회중이 잘못을 한다면, 그리고 어떤 것이 집회의 눈으로부터 감추여 있다면, 그리고 그들이 주님이 하지 말라고 명령했던 것들의 어떤 것을 행동했다면, 그리고 죄 지음이 있다면,

영적 의미

영적 인간 뿐만 아니라 천적 인간이 잘못했는데도 아직 그에 관해 모르고 있는 도중 신성한 질서에 반대되는 실제의 죄가 범해져 결과적으로 죄가 있게 될 때,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온 회중이란 영적인 교회를; 명백하게 잘못함이란 실수로 죄를 짓는 것;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은 이해함이 진리에 무지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주님이 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 가운데 어떤 하나라도 어겼다는 것은 신성한 질서에 반대되는 죄를 범하는 것을; 죄 있다는 것은 잘못을 의식함을 각기 나타내고 있다. A.C. 3654, 9156, 6721, 4526, 5076, 3400.

14절. 그들이 죄지은 죄가 알려질 때, 그 다음, 집회는 죄 바침을 위해 어린 수소를 바쳐라, 그리고 그것을 만남의 천막 앞으로 가져 와라.

영적 의미

이와 같은 잘못과 죄를 영적 인간이 발견했을 때, 그 악이 제거되기 위해 순진 가운데 있는 선을 위한 자연적 애착으로 주님을 예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예배는 주님을 인정하고 그분으로부터 천국적 생명이 있음을 인정함으로 행해져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죄가 알려진다는 것은 진리의 지식으로부터 과오를 발견한다는 것을; 제물이 되는 어린 수소는 자연적 인간에 있는 순진의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한다는 것; 죄 바침이란 악의 제거를; 그 제물을 만남의 천막으로 가져온다는 것은 주님을 인정하면서 천국의 생명은 그분으로부터임을 인정하는 것을 나타낸다. A.C. 2230, 10122, 2356, 3540-3.

15절. 그리고 회중의 장로들은 그들의 손을 주님 앞 수소의 머리에 놓아라. 그리고 그 수소는 주님 앞에서 죽여져야 한다.

영적 의미

그래서 주님을 인정함과 더불어 자연적 애착 안으로 내적 인간으로부터의 힘있는 유입이 있어진다. 그리하여 자연적 인간은 자아를 부정함으로 예배를 준비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회중의 장로란 집합체라는 측면에서의 내적 인간을, 그 이유가 그들은 지혜의 중요 요점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수소의 머리 위에 손을 얹는다는 것은 자연적 애착 안으로의 힘 있는 유입을; 주님 앞에서란 주님을 인정하는 것을; 수소를 죽임은 이런 예배를 위해 자아를 부정함으로 준비하는 것을 말한다. A.C. 6524, 878, 10023, 10024, 9990.

16절. 그리고 기름부워진 성직자가 만남의 천막으로 수소의 피를 가져 와라.

영적 의미

자연적 인간에서 작동하는 천적 사랑의 선으로부터 온 신성한 진리는 순진의 선이 천국을 통하는 주님에게 있음을 인정하고 더불어 순진의 선에 관련된 것을 식별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기름 부어진 성직자란 위반자의 근본되는 선이 진리와 결합되어짐을; 수소의 피는 자연적 인간 안에 있는 순진의 선에 관련된 신성한 진리를; 그 피를 만남의 천막으로 가져옴이란 주님을 인정함과 그분의 영향이 천국을 통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A.C. 9954, 10047, 2356, 3540-3.

17절. 그리고 성직자는 피에 자기 손가락을 담근다, 그리고 그것을 주님 앞, 베일 앞에 일곱 번 뿌려라.

영적 의미

또한 능력을 지닌 신앙의 진리들에서 작동하는 천적 선으로부터 진리가 선과, 또는 신앙이 선행과 결합함이 비록 영적 인간 속의 천적 생명이 모호한 상태라 해도 거룩한 상태에서 천적 천국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있다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피에 손가락을 담근다는 것은 신성한 선이 신성한 진리에 의거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작업함을; 그 피를 주님 앞에 일곱 번 뿌린다는 것은 자연 평면에서 진리가 선과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거룩한 상태를; 그 피가 수소의 것이란 자연 평면에 속한 것이라는 것; 성소의 베일 앞에서 뿌린다는 것은 결합의 가장 깊은 상태는 눈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A.C. 7430, 10047, 716, 5913, 6126, 9670, 3207.

18절. 그리고 그는 만남의 천막 안에 있는 주님 앞에 있는 제단의 뿔들 위에 피를 놓아라, 그리고 모든 피는 태워 바침의 제단 받침에 쏟아라, 이 제단은 만남의 천막의 문에 있다.

영적 의미

역시 영적 수준에서의 진리가 선과 결합함은 예배에서 힘있게 인정되어야 하고, 자연 평면에서 충만하게 결과되어야 하되 주님을 인정함, 즉 천국을 통해 그분이 역사 하심을 인정함으로 되어져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만남의 천막 안 주님 앞인 제단의 뿔에 피를 붓는다는 것은 영적 수준에서 진리가 선과 결합하는 것은 예배에서 힘 있게 인정됨을; 만남의 천막 문에 있는 태워 바침의 제단 받침에 수소의 피를 붓는다는 것은 이 결합이 자연 평면 안에서도 역시 주님을 인정하고 천국을 통해 그분이 역사하심을 인정함으로 완전하게 결과되어야 함을 말한다. A.C. 10176, 10208, 2832, 10642, 10047, 2356, 3540-3.

19절. 그리고 그로부터의 모든 지방은 그것으로부터 떼어 내라, 그리고 제단에서 그것을 태워라.

영적 의미

그러나 영적 인간의 자연적 수준에 있는 천적 선에 속한 것은 무엇이든지 주님으로부터임을 인정해서 그분께 모두 봉헌되어야 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기름은 천적인 선을; 제단 위에서 태움은 인정함을 수단으로 예배에서 신앙과 사랑 모두가 주님께 봉헌되어야 함을 말한다. A.C. 10033, 10052.

20절. 그는 수소를 가지고 이렇게 하라. 그는 죄의 제물의 수소를 가지고 했던 것 같이 이것도 그렇게 하라. 그리고 성직자는 그들을 위하여 보상을 받게 하라, 그리고 그들은 용서된다.

영적 의미

이것은 자연 평면이 순수해지고 성별되는 법칙이다. 죄를 면제하는 경우에서와 같이 실수한 경우도 같은 바, 주님으로부터의 선에 관한 상태, 그 결과 순수해짐은 영적 인간과 주님과의 화해, 외적인 것이 내적인 것과 조화되게 해준다.

세부적 영적 의미

수소를 가지고 위와 같이 행하여지는 것은 자연 평면의 신성시 됨과 순수함을 위한 법칙이라는 것; 그가 죄 바침의 소를 가지고 했던 것 같이 행하라는 것은 죄를 사면하는 경우 같이 잘못한 것들도 마찬가지이다는 것을; 성직자가 보상을 받게 하면 용서된다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온 선에 관한 상태, 그에 따른 순수해짐은 영적 인간이 주님과, 외적 부분이 내적 부분과 조화(reconciliation)를 이루는 결과를 가져온다. A.C. 9391, 7837, 10042, III. 9506-1, 10023, 10042, II.

21절. 그리고 그는 수소를 진영 밖으로 운반 하라, 그리고 첫 번째의 수소를 태운 방식대로 그것을 태워라. 이것은 집회(assembly)를 위한 죄 바침이다.

영적 의미

그리고 모든 자연적 애착 뿐인 것은 그 생명이 천적 인간에 속하든, 영적 인간에 속하든 천국 생명에서 분리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그것들이 자아 사랑으로 살라지기 때문이고, 인간 전체에서 악과 잘못이 제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진지 밖으로 수소를 운반함이란 자연적 애착 뿐인 것은 천국적 삶에서 분리되어야 할 것을; 앞의 수소에게 했던 것 같이 이란 영적 인간을 위한 것도 천적 인간을 위한 것과 동일하다는 것, 그 이유는 성직자가 천적인 것, 그리고 집합체로서의 영적인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진지 밖에서 수소를 태운다는 것은 이기적 사랑에 의해 소멸됨을; 집회를 위한 죄의 제물이란 인간 전체로부터 온 잘못과 악을 제거함을, 그 이유는 집회가 외적 인간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A.C. 10040, 4236, 9954-7, 3654, 934, 2445, 2449, 3654, 10243.

22절. 통치자가 죄지을 때, 그리고 그의 하느님, 주님이 하지 말라고 명령했던 모든 것들 중의 어떤 하나를 부지불식간에 행할 때, 그리하여 죄가 있어 질 때,

영적 의미

신앙의 진리로 움직여지는 누군가가 악의는 없으나 무지해서 악을 죄로 알고 금하는 계명을 위반하여 죄가 있게 될 경우,

세부적 영적 의미

통치자(ruler, prince)란 제일 가는 진리들 중 하나 또는 신앙의 진리 중 어느 하나를; 하지 말라고 명령된 것을 부지불식 간에 했을 때란 무지를 통해 죄짓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이란 죄로서 금해야 하는 악과 거짓들을; 그래서 죄가 있음이란 유죄를 초래하는 것을 말한다. A.C. 2089, 8314, 9156, 19942, III.

23절. 만일 그의 죄가 그가 어떤 점에서 죄지었나를 그에게 알게 만들었다면, 그는 자기 제물로 흠이 없는 수컷 염소를 가져 와라.

영적 의미

이런 사람이 자기 과오를 지각하도록 계발될 때, 그는 잘못에서 자유로운 자기 신앙의 진리로부터 주님을 예배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자기의 잘못이 알게 만들어진다는 것은 그가 자기 과오를 지각하도록 진리(Truth)로 계발되는 것을; 제물을 가져옴이란 주님을 예배한다는 것을; 수염소란 신앙의 진리를; 그리고 흠이 없는 것이란 잘못으로부터 자유함을 말한다. A.C. 2230, 349, 922, 4169, 725, 7837.

24절. 그리고 그는 자기 손을 염소의 머리 위에 놓아라, 그리고 그들은 주님 앞 태워 바치는 제물을 죽인 장소에서 그것을 죽여라. 이것은 죄 바침이다

영적 의미

그 다음 내적 인간이 능력을 가지고 신앙의 진리에로 흘러들고, 그는 자아 부정으로 자신을 준비시켜 사랑으로부터의 주님을 예배하고, 악은 제거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염소 머리에 손을 얹는다는 것은 내적 인간이 능력을 가지고 외적 인간에 있는 신앙 속의 진리에로 흐르는 것을; 염소를 죽인다는 것은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려면 자아를 부정함으로 준비되어야 함을; 태워 바치는 제물을 죽이는 자리에서란 사랑으로부터 예배하는 상태를; 이것이 죄 바침이다는 것은 이와 같은 예배에 의해 악이 제거됨을 말한다. A.C. 878, 10023, 10024, 4169, 2625, 923, 3400, 10122.

25절. 그리고 성직자는 자기 손가락으로 죄 바침의 제물의 피를 가져 와라, 그리고 그것을 태워 바치는 제단의 뿔들에 발라라, 그리고 그로부터의 피는 태워 바침의 제단의 받침에 쏟아라.

영적 의미

그래서 선의 원리로부터 신앙의 진리는 어떤 능력으로 활기를 얻게 된다. 그래서 진리가 선과 결합함이 자연적 수준에서 거행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란 선의 원리를; 염소의 피는 신앙의 진리를; 그 피에 손가락을 담근다는 것은 선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진리 위에 작업함을; 제단의 뿔에 그 피를 바른다는 것은 진리가 선에 내적으로 결합하는 것을; 그리고 태워 바치는 제단 받침에 그 피를 붓는다는 것은 진리가 선에 자연적 수준에서 결합함을 말한다. A.C. 9946, 10047, 4169, 7430, 10047.

26절. 그리고 그것으로부터의 모든 지방은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을 태우던 그대로 제단에서 태워라. 그리고 성직자가 그의 죄에 관하여 보상을 받게 하라, 그리고 그는 용서된다.

영적 의미

자연적 인간에 속해 있는 천적인 것은 주님으로부터 임을 인정해서 자유 의지라는 원리로부터 그분께 봉헌되어야 한다. 이런 방법 속에서 악이 제거되고 용서가 뒤따른다.

세부적 영적 의미

제단에서 태우는 지방이란 자연적 인간에 속해 있는 천적인 선은 주님으로부터 있음을 인정하여 그분께 봉헌되어야 할 것을; 평화 제물의 지방 처럼 이란 자유 의지를 원리로 함을; 성직자가 보상을 받게 함은 악의 제거, 그 결과 용서받음을 말한다. A.C. 10033, 10052, 10097, 9506-1, 10042, II.

27절. 그리고 만일 일반 백성 중의 누군가가 부지불식간에 죄지어 주님께서 하지 말라고 명령해두었던 것들 중의 어떤 것을 행하는 중이다면, 그리고 죄 있음에 있다면.

영적 의미

내면에 있는 신앙의 선 안에 있는 누군가가 악한 의도 없이 무지로 인해 악을 죄로 알고 금하여 하지 말라는 명령을 위반해서 죄가 있게 될 경우,

세부적 영적 의미

일반 백성 중의 누군가(보다 엄밀히 말한다면 그 땅의 백성 중 누군가)란 내면에 있는 신앙의 선 중의 어느 하나를; 주님께서 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을 하나라도 실수로 죄짓는다는 것은 악한 의도 없이 무지로 죄 지음을 말한다. A.C. 2928, 2950, 5076, 3400.

28절. 만일 그의 죄가 그가 죄지었다는 것을 그에게 알게 만들었다면, 그러면 그는 자기가 죄지은 그의 죄를 위해 그의 봉헌물로 흠이 없는 암컷 염소를 가져와라.

영적 의미

자기의 잘못이 발견될 때, 그는 악이나 잘못을 혼합함이 없이 자기 신앙의 선으로 주님을 예배하면서 질서의 법에 반대되게 행동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자기에게 죄가 알려짐이란 그의 잘못이 말씀으로부터 온 진리를 수단으로 발견될 때를; 제물로 흠이 없는 염소를 가져온다는 것은 어떤 악이나 잘못을 혼합시켜 놓지 않은 신앙의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을; 그리고 그가 저지른 죄 때문이란 질서의 법칙에 반대되는 행동을 자신이 했다는 것을 인정함을 말한다. A.C. 2230, 349, 922, 4169, 725, 7837, 9506, 10023, 10042, II.

29절. 그리고 그는 자기 손을 죄 바침의 제물의 머리 위에 놓아라, 그리고 태워 바침의 장소에서 죄 바침의 제물을 죽여라.

영적 의미

그러면 내적 인간은 능력을 가지고 외적 인간으로 흐를 것이고, 내면의 인간은 사랑으로부터 주님에 대한 예배를 준비하게 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죄 바침의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는 것은 내적 인간이 힘있게 외적 인간에 있는 신앙의 선 안으로 흐른다는 것을; 그리고 태워 바침의 제물을 죽이는 자리에서 죽인다는 것은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기 위한 내적 인간의 준비를 말한다. A.C. 878, 10023, 10024, 4169, 2625, 923.

30절. 그리고 성직자는 그의 손가락으로 그것으로부터의 피를 가져 가라, 그리고 그것을 태워 바침의 제단의 뿔들에 바르라, 그리고 그것으로부터의 모든 피는 제단의 받침에 쏟아라.

영적 의미

그리고 천적 선으로부터 신앙의 선은 활성화되어, 진리는 내면에 있는 어떤 힘과 결합될 것이다. 더구나 진리와 선과 결합이 자연 평면에서 결과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그 피를 손가락에 찍어 태워 바침의 제단의 뿔들에 바른다는 것은 천적 선으로부터 신앙의 선은 활성화되고, 힘있게 내면에 있는 진리와 결합된다는 것; 그리고 나머지 피는 제단 밑바닥에 쏟는다는 것은 진리가 선과 결합함은 자연 평면에서도 역시 결과되어야 함을 말한다. A.C. 9946, 10047, 4169, 7430, 10047.

31절. 그리고 그것으로부터의 모든 지방은 그가 가져 가라, 마치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로부터 가져 감과 같다. 그리고 성직자는 주님에게 달콤한 향기를 위해 그것을 제단 위에서 태워라. 그리고 성직자는 그를 위하여 보상을 만들고, 그는 용서된다.

영적 의미

그 이유가 이와 같은 예배에 있는 모든 천적인 선은 악과 잘못에서 분리될 것인 바, 마치 자유 의지로 신실하게 숭배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분을 받아들여 감사함으로 주님께 봉헌되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악이 제거되고, 외적 인간은 내적인 것과 재 연합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지방은 천적 선을, 떼어 냄은 악과 잘못에서 분리시킬 것을(3장 4, 5절 참조); 평화 제물이란 자유 의지로부터 숭배함을; 제단 위에서 태움은 주님께 봉헌함을; 주님께 달콤한 향기를, 또는 쉼의 냄새란 깊이 감사하고 그분이 받으실 수 있다는 것을; 성직자가 보상을 받게 하여 용서됨은 악이 제거되어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재회하는 것을 말한다. A.C. 10003, 10097, 10052, 10054, 9506-1, 10023, 10042, II.

32절. 그리고 만일 그가 죄 바침의 제물을 위한 자기 봉헌물로서 어린 양을 가져온다면, 그는 흠이 없는 암컷으로 그것을 가져 와라.

영적 의미

그런데 어떤 사람이 가장 깊은 예배인 천적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한다면, 그것은 악과의 어떤 혼합도 있어서는 안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죄 바침의 제물로 바치는 양은 천적 사랑, 그리고 그 순진은 가장 깊다는 것을; 암컷이란 수컷이 진리를 명시함에 비해 선을 나타내고; 흠이 없다는 것은 악과의 어떤 혼합도 없어야 함을 말한다. A.C. 10132, 725, 7837.

33절. 그리고 그는 자기 손을 죄 바침의 제물의 머리에 놓아라, 그리고 그들이 태워 바치는 제물을 죽이던 장소에서 죄 바침의 제물을 위해 그것을 죽여라.

영적 의미

그러면 내적 인간은 능력을 가지고 외적 인간 안으로 흘러 들 것이다. 이리하여 그는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진정하게 예배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자기 손을 죄 바침의 제물의 머리에 얹는다는 것은 내적 인간이 힘있게 외적 인간에로 흐르는 것을; 태워 바침의 제물을 죽이는 자리에서 죄 바침의 제물을 죽인다는 것은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진정으로 예배하기 위해 준비함을 말한다. A.C. 878, 10023, 10024, 2625, 923.

34절. 그리고 성직자는 자기 손가락으로 죄 바침의 제물의 피를 가져 가라, 그리고 그것을 태워 바침의 제단의 뿔들에 놓아라, 그리고 그것으로부터의 모든 피는 제단의 받침에 쏟아라.

영적 의미

그러면 주님으로부터 천적인 선은 어떤 능력을 가져 살아 움직인다. 진리는 선과 결합된다. 또한 진리가 자연 평면에 있는 선과 완전히 결합하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손가락에 죄 바침의 제물의 피를 찍어 태워 바침의 제단의 뿔에 바른다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순진 속의 천적인 선은 어떤 능력을 가져 살아 있게 되고, 진리가 가장 깊은 부분에서 결합하게 된다는 것을; 피를 제단 기초에 붓는다는 것은 진리가 선과 자연 평면 속에서 완전히 결합함을 말한다. A.C. 9946, 7430, 10207, 10047.

35절. 그리고 그것으로부터의 모든 지방을 그가 가져 가라, 마치 어린 양의 지방을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로부터 가져간 것과 같다. 그리고 성직자는 그것들을 불로 만든 주님의 제물 위에, 제단 위에서 태워라. 그리고 성직자는 그가 죄지었던 것을 만짐 으로서 그를 위하여 보상을 받게 하라, 그리고 그는 용서된다.

영적 의미

이리하여 천적인 모든 선은 자유로운 예배 상태에서 순진의 선으로 비축되어진다.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인정되어지고 예배 동안 그분께 봉헌된다. 그 이유가 그것은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온 주님의 예배이기 때문이다. 예배자는 주님과 재회되고, 외적 인간은 내적 인간과 재회될 것이며, 악으로부터의 완전한 분리가 결과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기름의 의미가 천적 선을 나타내고; 떼어냄은 악과 잘못에서 분리됨을(3장 4, 5절 참조); 제단에서 태움은 주님께의 봉헌을; 불로 만든 제물이란 순수한 사랑으로부터의 예배를; 성직자가 그를 위해 보상을 받게 함, 그리고 그가 용서됨이란 주님으로부터 온 천적 사랑에 의해 악이 제거되어 주님과 재회하고,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도 재회하는 것, 그리하여 악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는 상태를 말한다. A.C. 10033, 10097, 10052, 934, 10055, 9506-1, 10023, 10042, II.

4장의 종합적 고찰

위에서 주어진 간략한 주석들을 가지고 본 장 전체에 관한 일반적인 재음미를 유익하게 끌어갈 수 있으리라 본다. 앞의 장에서 진행된 것은 순수함으로 주님을 예배하는 자연적, 영적, 천적 애착들을 기술한 진리의 연결된 시리즈들로서 모든 진정한 예배의 본질은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는데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주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진리가 실감되어 질 때, 자연스럽게 수반되는 것은 어느 누구도 주님을 알지 못하면서 주님을 예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상대방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데 하물며 상대방을 사랑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배에서 제일 가는 것은 예배의 대상에 관한 올바른 지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즉각 이런 질문이 발생되고 만다. “어떻게 그런 지식이 획득될 수 있을까?” “인간은 창조되어 있는 자기 주위의 눈에 보이는 것으로부터 하느님의 실존이나 그분이 누구신지까지도 알 수 있게 되어있지 않을까?” 확실한 것은 그렇지 않다는 대답 뿐이다. 그 이유는 그런 식의 관찰로 하느님의 존재, 또는 그분의 인격을 알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과학이나 철학에서 꽤 뭔가를 달성했다고 하는 이들이 오히려 더욱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해왔기 때문이다.
“누가 하느님의 신비를 파헤칠 수 있을까?” (욥기 11:7). 이상에서 살핀 바대로, 하느님에 관한 생각, 그분에 관한 수동적인 어떤 지식들은 계시(밝히 알게 해줌)에 의해 하느님 자신으로부터만 우선적으로 올 수 있을 뿐이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우리는 신성한 존재에 관한 실존을 거의 상상해 볼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신성한 존재가 인간에게 그분에 관해 생각하는 능력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믿되 그분으로부터의 어떤 계시가 없이 믿는다면 그 신앙은 올바르지 못하고 슬기롭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히 해두어야 할 한 가지는, 주님은 인간에게 그분 자신을 언제나 밝혀 주셔 왔다는 것이다. 이 밝히 알려주심(계시)을 우리는 말씀(the word), 또는 그분으로부터 진행된 신성한 진리, 그 진리가 대화 형체로 있었든지, 아니면 대대로 물리도록 작문 형태로 되었든지 모두 신성한 진리라 부른다. 이런 견해의 요점으로부터 지금 우리가 공부하는 말씀 역시 주님으로부터 모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존재란 말씀의 영과 생명, 그리고 바깥 형체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포함해서 하는 말이다. 말씀으로부터 우리는 주님에 관한 지식을 가지는 바, 말씀에 우리는 현재 소유하는 그분에 관한 지식보다 더 해박한 지식을 의뢰해야 한다.
말씀은 글자적 의미에서까지, 그리고 내적 의미의 세부 사항에 이르기까지에서, 우 리가 그분을 정확하게 예배할 수 있도록 주님의 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분은 본질적으로 스스로 실존하시는 분(Being), 사랑 자체와 지혜 자체가 하나된 분이시다. 인간이 향유하는 사랑과 총명 모든 것은 그분으로부터 진행된다. 그러므로 그분은 모든 선과 완전한 선물을 주시는 자요, 그분과 더불어서는 어떤 변덕도 바뀜도 없다. 우리가 그분을 예배한다면, 다시 말해 우리가 그분을 사랑한다면, 우리 역시 그분으로부터 받은 선함, 진리, 행복에 관한 것을 이웃 동료에게 주는 자이어야 할 것이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선하고 진정한 것을 사랑하고, 심정으로부터 그것들을 행하는 것이다” (천국과 지옥 16항). 그런고로 예배란 성소에서 의식이나 예식을 수단으로, 또는 기도나 찬양,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듣는 것만으로 주님을 숭배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런 각종 것들은 그분을 사랑함으로부터 주님을 진정으로 예배하게 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일 뿐이다. 또는 그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의 결과이다.
위에서 살핀 일반적인 소견은 진정한 예배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어떻게 진정한 예배가 항상 있어야 하는지 살핀 셈이다. 이와 더불어 본 장에서 주목해 볼 것은, 4장의 내적 의미는 무지와 실수로 질서의 법칙을 위반해서 죄가 있게 되는 사람과 더불어 존재하는 삶 속의 예배에 관해 특별히 언급하고 있다. 본 장의 서술에서 밝게 비추고 있는 한 가지 확실한 진리는 인간이 높은 지위의 계층이던, 낮은 계층이던, 집단적인 인간 사회이든, 개인이든 실수하기 쉽다는 것, 그 결과로부터 구원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사랑으로 주님을 실지 예배하는 것 뿐이다. 그 이유가 죄의 면죄, 또는 죄가 용서됨이라고 통상 우리가 말하는 그 용어는 신성한 질서 법칙에 따라 순수한 사랑을 통하여 악이나 잘못을 제거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우리가 주목해 볼 사항은, 실수로 위반한 네 가지 종류로부터 요구되는 제물은 외적 측면에서 일반적인 유사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 유사성을 간단히 줄여 말해 본다면, 각 사항 모두는 회개라는 작업, 비록 비의도적인 실수까지도 회개라는 일을 거쳐야만 한다는 것, 그리고 그 회개가 순진 안에 있다는 것이 주님으로부터 인지되어야 하되, 자신 고유의 선 때문에 순진한 게 아니라 자기 선을 통치하는 사랑에 의거 순진함을 주님께 입증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수소, 염소, 양들이 각기 종류와 수준은 다르지만 동등하게 순진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주님을 예배함에 일반적인 유사성이 있다면, 거기에는 역시 특별한 차이점을 들어 천적, 영적, 자연적 사람 사이에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본 장에서 이 세 가지 차이가 각각에 적절한 상징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사항에 주목해 보자. 비의도적으로 죄를 범한 성직자의 경우와 회중의 경우와를 비교해 보면,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후자는 위반 사항을 알지 못하고 있다가 나중에 그에 관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라고 말해지고 있는데, 전자의 경우는 그렇게 말해지고 있지 않는 바, 이는 성직자로 표시된 천적 인간과 집회(회중)으로 표시된 영적 인간에 있는 특성상의 한 가지 뾰족한 차이점을 암시해 주고 있다. 천적 인간은 선의 상태로부터 자기들의 잘못(error)들을 지각(perceive)한다. 그러나 영적 인간은 진리에 관한 자기들 지식으로부터 잘못들을 발견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도 상상해 보는 것 같다. 태고 교회가 하강을 개시하기 전, 천적 인간은 악이나 잘못이란 주제와는 관련될 게 하나도 있지 않을 것이라고, 그들의 거듭남은 아주 낮은 단순한 자연적 선으로부터 영적 선을 통과해서 천적 선이라는 완전한 상태로 결과되어 지도록 진보를 해왔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러나 창세기 첫 장에서 주어지는 바대로의 그들의 거듭남을 조심스럽게 살핀다면, 아주 초기의 천적 사람들, 마치 야생 동물같이 살았던 그들이라고 해도 그들이 악이나 잘못이라는 것과 전혀 관련이 없었던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그 이유는 깊음의 얼굴 위에 있었던 (짙은) 어둠은 욕망(lust)을 나타내는 것인 바, 이는 거듭나지 않은 자연적 인간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태고 교회 사람들, 즉 영적 부류와 구별되는 천적 부류에 속했던 사람들도 악이나 잘못을 하는 범주에 속해 있었다는 게 분명하고, 태고 교회가 하강하기 시작했을 때 자유를 남용함으로 타락한 이들도 똑 같은 것이다. 악의 근원, 그리고 악의 원인이 창세기 첫 장 앞에서 서술되어 있지는 않다 해도 확실한 것은 그것들이 이미 존재했을 것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말이다. 천적 인간에 속하는 가장 높은 질서는 완전한 상태에서 점차 하강했고, 가장 낮은 질서는 전혀 그렇게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어떻게 상상해 볼 수 있을까? 위에서 살핀 생각들, 그리고 본 장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천적 부류도 실수할 수 있고, 영적 부류나 마찬가지로 죄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천적 질서와 영적 질서 사이에 있게 되는 차이점 중 또 다른 뾰족한 점이 본 장 줄거리에서 암시되고 있다. 그 차이는 이해함 측면 뿐 아니라 의지 측면에서도 있다. 그 이유는 천적 인간의 의지가 성직자로, 영적 인간의 의지가 장로로 명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천적 인간의 의지는 사랑 또는 선인 반면, 영적 인간의 의지는 진리 또는 지혜인데, 장로는 지혜의 중심 요점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적 인간의 의지는 영적 인간의 의지보다 더 내면적이다. 그럼에도 양쪽 경우에서 내적 인간이 외적 인간에게 능력을 가지고 흘러들어 양쪽 인간이 조화를 이루게 한다.
세 번째로 주목할 수 있는 특별한 것은, 영적 수준의 경우에도 죄를 벗겨주는 자는 장로가 아니라, 성직자라는 점이다. 그 이유인즉, 영적 천국의 생명은 주님으로부터 천적 천국을 통해 파생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천적 인간에 특별한 것은 순수한 선만이 인간과 주님과의 완전한 재회, 그리고 외적인 것이 내적인 것과의 완전한 조화를 온전히 결과할 수 있게 한다.
이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의 경우, 그리고 일반 백성, 정확히 말해서 그 땅의 백성에 관한 경우를 살펴보자. 먼저 이미 위에서 살핀 것을 다시 확인해 본다면, 성직자가 죄지었을 때, 진리를 선에 결합시킨 이름을 표현하는 기름부어 세운 성직자가 죄지은 것까지 포함해서, 죄 지었을 경우, 성직자는 백성에게 죄가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가 죄를 벗었을 때 백성 역시 죄를 벗게 되어 양쪽 모두 죄가 제거되었다. 만일 누군가가 비의도적인 죄를 지었으면서도 자기에게 의지하고 있는 이들이 피해받지 않도록 할 수 있단 말인가? 더욱이 내면적으로, 애착들이 금지된 행로에서 방황하는데 그의 지성들이 손상을 입지 않은 채 남아 있을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어떤 개인이 실수했는데, 그의 실수가 그의 공동체에 아무 영향도 주지 않을 수 있을까? 내면적으로 본다면, 자연 평면에 있는 외적 측면의 지적인 원리들, 이것들이 애착을 인도해 주어야 하는데 잘못했을 경우 그 애착의 잘되고 못되는 상황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란 자연적 인간 속성 중에서 외적 인간에 정확히 상응한다는 것은 그에게 흠이 없는 수컷, 염소를 바치도록 요구되는데서 관찰되어 진다. 그의 제물이 수소가 아닌 염소인 이유는, 염소는 자연적 인간 중 외적 인간 부분에서 애착 측면보다는 지적 측면에 속한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 염소가 수컷이라는 것은 그를 통치하는 동기가 신앙에 있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흠이 없다는 것은 순진의 상태에 속하는 것은 순수하고 완전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삶의 진실된 원리를 지닌 신앙에 있는 것이라곤 진리밖에 없는 자연적 인간은 의도적으로 죄를 범하거나 잘못에 빠지지 않는다. 이런 경우 우리가 하나 더 주목할 것은, 성직자가 손가락에 염소의 피를 찍어 태워 바치는 제단의 뿔들에 바르도록 요구되었지 분향단의 뿔 위에 바르도록 요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제물을 바치는 사람이 자연 평면 중에서 외적인 것으로부터 온 예배를 나타내는 것임을 또다시 보여주고 있다.
이제 네 번째 항목을 살피는 차례이다. 여기서 관찰되는 것은, 세 번째 항목과 다르게 주목되는 세부 사항이 하나 내지 두개가 열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사람은 그 땅의 백성(일반 백성)중 한 사람이라는 것인데, 이 사람은 내면에 존재하는 것, 즉 진리로부터 파생된 선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표현한다. 그런고로 해서 그의 제물은 염소이되 암컷이었다. 암컷은 선과 상응된다. 이 외에 열거된 사항들은 인간이 종교적인 경험을 얻어 가는 초기, 그의 경험이 어느 정도 진전을 이룰 때까지 그 사람을 통치해야 하는 신앙 속에 있는 진리를 나타내 주는 세 번째 항목인 통치자 위치에 있는 사람의 경우와 똑같다. 그러나 이 신앙의 진리는 원리로서 선 가운데만 남아 있도록 해주기에는 너무 미흡하여 자연적 인간 수준에도 남아 있게 하지 못한다. 따라서 신앙의 진리는 각자의 수준에 맞추어 천적인 상태가 되어야 하고, 그럼으로서 선 자체를 사랑하는데 까지, 거기에 속해 있는 순진에까지 진보되어야 한다. 그래서 마지막 경우에서 양으로 바쳐지는 제물도 염소로 바쳐지는 제물과 같은 용어로 묘사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4장 전체를 망라해서 한 개의 시리즈로 내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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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5장

성경: 레위기 1장

1. 그리고 만일 누군가가 죄짓고, 그는 엄명(adjuration, 맹세 시킴)의 음성을 듣고, 그가 (그 죄를) 보았든지 알았든지 하는 것에 증인이 된 그가 (그것을) 발언하지 않으면, 그러면 그는 불법을 저지른 것이다.
2. 또는 만일 누군가가 어떤 깨끗지 않은 것, 즉 깨끗지 않은 짐승의 사체, 또는 깨끗지 않은 가축의 사체, 또는 깨끗지 않은 기는 것의 사체이든, 만졌다면, 그리고 만져진 것이 그 사람으로부터 감추여(모른채) 있다면, 그는 불결하다, 그러면 그는 죄가 있다.
3. 또는 만일 그가 사람의 불결함을 만진다면, 그 사람의 불결함이 무엇이든 그것 가지고 (만진) 그는 불결하다, 그리고 이 불결함이 그로부터 숨겨(모른채) 있다. 그가 그것에 관해 알 때, 그러면 그는 죄가 있다.
4. 또는 만일 누군가가 악을 행하는 것이든, 선을 행하는 것이든 자기 입술로 무모하게 맹세한다면, 그가 맹세와 더불어 무모하게 발언한 것이 무엇이든, 그리고 그것이 그 사람으로부터 숨겨(모른채)있다. 그가 그것에 관해 알 때, 그 다음 그는 그것들 중의 하나에 죄가 있다.
5. 그리고 필시 있을 것은, 그가 이런 것들 중의 하나에 죄가 있을 때 그는 그 중에서 자기가 죄 지었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6. 그리고 그는 자기가 죄지었던 자기의 죄를 위해 주님에게 죄가 있음의 제물(guilt offering)을 가져 와라. 이는 암컷으로 양떼, 어린 양, 또는 죄 바침 (sin offering)을 위한 염소이다. 그리고 성직자는 그의 죄에 관한 것대로 그를 위해 보상을 받게 하라.
7. 그리고 만일 그의 재산(means) (형편)이 어린 양을 (바치기에) 충분치 않다면, 그러면 그는 자기가 죄를 지었다는것을 위해 그의 죄가 있음의 제물을 가져오는데, 호도애(turtledove) 둘, 또는 어린 비둘기(young pigeon) 둘을 가져와라. 하나는 죄 바침을 위해, 다른 하나는 태워 바침을 위해서 이다.
8. 그리고 그는 그것들을 성직자에게 가져 와라, 그는 죄 바침을 위한 것을 먼저 바쳐라, 그리고 그것의 목으로부터 그것의 머리를 비틀어라, 그러나 그것을 쪼개어 나누지 말라.
9. 그리고 그는 제단의 측면에 죄 바침의 제물의 피를 뿌려라. 그리고 나머지 피는 제단의 받침에 흘릴 것이다. 이것이 죄 바침이다.
10. 그리고 그는 두 번째로 태워 바침을 위해 조례에 의거 바쳐라. 그리고 성직자는 그가 죄지었던 그의 죄에 관해서 그를 위해 보상을 받게 하라, 그리고 그는 용서된다.
11. 그러나 만일 그의 재산 (형편)이 호도애 둘이나 어린 비둘기 둘을 바칠 (여력이) 충분치 않다면, 그 다음 그는 자기가 죄지었던 것을 위한 자기 제물로 죄 바침을 위해 고운 곡식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가져오되 그는 어떤 유향도 그 위에 놓지 말 것이다. 그 이유는 이것이 죄 바침의 제물이기 때문이다.
12. 그리고 그는 그것을 성직자에게 가져 와라, 그리고 성직자는 그것으로부터 기념물로 그것의 한 웅큼을 가져 오라, 그리고 그것을 제단에서, 불로 만든 주님께의 제물 위에서 태워라. 이것이 죄 바침이다.
13. 그리고 성직자는 그가 이런 것들 중 어떤 것에 죄지었던 그의 죄를 만지듯 그를 위해 보상을 만들어라, 그리고 그는 용서된다. 그리고 남은 것은 식사 제물의 경우 같이 성직자의 것이다.
14.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15. 만일 누군가가 주님의 거룩한 것들에서 불법 침입하고, 부지불식간에 죄를 진다면, 그러면 그는 주님에게 그의 죄가 있음의 제물을 가져오되, 죄가 있음의 제물을 위해 성소의 세겔에 따라 몇 세겔인지를 은으로 네가 추정하여 양떼로부터 흠이 없는 수양을 가져오게 하라.
16. 그리고 그는 그가 거룩한 것들에 죄를 범한 것에 보상을 만들어라, 그리고 거기에 오분의 일을 추가하라, 그리고 그것을 성직자에게 주어라. 그리고 성직자는 죄가 있음의 제물의 수양을 가지고 그를 위해 보상을 받게 하라, 그리고 그는 용서된다.
17. 그리고 만일 누군가가 죄짓고, 그리고 주님께서 하지 말라고 명령했었던 것들의 어떤 것을 한다면, 비록 그가 그것을 몰랐다 해도, 아직 그는 죄가 있다, 그리고 그는 불법을 저지른 것이다.
18. 그리고 그는 죄가 있음을 위한 네 추정치에 따라 양떼로부터 흠이 없는 수양을 성직자에게 가져 와라. 그리고 성직자는 그가 부지불식 중에 잘못하고 그것을 몰랐던 것에 관하여 그를 위해 보상을 받게 하라, 그리고 그는 용서된다.
19. 이것이 죄가 있음의 제물이다. 그는 주님 앞에 확실하게 죄가 있다.

영적 의미 요약

* 진리의 확증에 관하여. 1절
* 불순한 애착을 통해 각각의 등차에 있어진 무지로부터의 죄에 관하여. 2-13절
* 의지에 관한 내적 예배에 있는 잘못에 관하여. 14-16절. 그리고 이해함에 관한 잘못 17-19절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그리고 만일 누군가가 죄짓고, 그는 엄명(adjuration, 맹세 시킴)의 음성을 듣고, 그가 (그 죄를) 보았든지 알았든지 하는 것에 증인이 된 그가 (그것을) 발언하지 않으면, 그러면 그는 불법을 저지른 것이다.

영적 의미

만일 영적 교회에 속한 누군가가 신성한 질서를 범한다면, – 즉 지각을 통해서였든지, 타인으로부터 받게 된 지식으로부터이든지 자기 이해함이 증명함으로 인해 진리를 확증한 후, – 그 진리에 따라 말하거나 행동함을 거절하면, 그에 따른 악은 자기 탓이 된다. 다시 말해서, 진리를 지각하는 사람, 진리에 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그 진리로부터 자신이 비켜나지 않도록 진리를 알아차리게 되었음에도 그 진리에 따라 말하거나 행동한다면 그에 따른 악은 자기 탓이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죄 짓는다는 것은 신성한 질서를 범하는 것을; 엄명(선서를 하게 함)의 소리를 듣는 것은 이해함의 증언으로 진리를 확증하는 것을 명시하는데, 그 이유는 들음은 지각을; 소리는 진리의 통첩인 바, 이해함에 호소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서 또는 맹세는 진리의 확증을 의미하고; 증인(witness)은 진리를 수단으로 선을 확증함; 본다는 것은 지각을; 만나는 것은 지식을; 똑바로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진리에 의거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게을리 함, 또는 거절함을 명시하는 바, 그 이유는 명백하게 말하지 않는 것은 말로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 그 결과 행동으로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문의 경우에는 죄를 지었다 함은 악에서 기인되는 것을 명시한다. 그러나 다른 견해에서 볼 때 맹세함은 선과 진리를 싫어함을 말한다. (A.C. 5076, 3163, 8361, 6971, 2842, 4197, 2150, 2230, 7550, 9937, 1423).

2절. 또는 만일 누군가가 어떤 깨끗지 않은 것, 즉 깨끗지 않은 짐승의 사체, 또는 깨끗지 않은 가축의 사체, 또는 깨끗지 않은 기는 것의 사체이든, 만졌다면, 그리고 만져진 것이 그 사람으로부터 감추여(모른채) 있다면, 그는 불결하다, 그러면 그는 죄가 있다.

영적 의미

또 누구든지 가벼운 수준에서 자연적 인간에 있는 불순한 애착들, 거기에 있는 악들에 따라 행동해서, 그가 그 악과 관련을 갖고, 가장 깊은 수준이든, 내면 또는 외부에 속하든지 간에 어떤 영적 생명이 없게 되면, 그리고 이것들이 무의식적으로 자기에게 발생했다해도, 그는 악 가운데 있는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뭔가를 만졌다(touch)란 애착에 속한 것, 즉 교통함(communication), 변형함(translation), 영접함(reception)을 말한다. 불결한 것은 불순함, 또는 악한 애착을; 사체란 영적 생명이 결여된 것을; 불결한 들짐승, 불결한 가축, 불결한 기는 것(creeping things)이란 내부, 내면, 외부의 불결한 것들을, 감추어 놓였다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그리고 죄있다 함은 악 가운데 있음을 말한다. A.C. 4404, 10199, 10130, 3900, 987, 46, 994, 6721, 3400.

3절. 또는 만일 그가 사람의 불결함을 만진다면, 그 사람의 불결함이 무엇이든 그것 가지고 (만진) 그는 불결하다, 그리고 이 불결함이 그로부터 숨겨(모른채) 있다. 그가 그것에 관해 알 때, 그러면 그는 죄가 있다.

영적 의미

또 가벼운 수준이지만 누군가가 불순함을 야기케 하는 자기 속의 악들이 무엇이었든지 그에 따라 행동한다면, 그 악 역시 이기적이고 세상적 생명에 바탕을 두기 때문에 그가 설사 무의식에서 잘못된 행동을 했다 해도, 그가 그 행동의 불순함을 보게 될 때, 그는 자기가 악하다는 것을 고백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만진다(touch)는 것은 2절에서 살핀 바와 같다. 불결함(uncleanness)은 영적 불순함을; 그리고 불결한 동물과 구별되는 사람의 불결함은 악과 거짓을 통해 있는 내면의 불순함을 말한다. A.C. 10130, 7424.

4절. 또는 만일 누군가가 악을 행하는 것이든, 선을 행하는 것이든 자기 입술로 무모하게 맹세한다면, 그가 맹세와 더불어 무모하게 발언한 것이 무엇이든, 그리고 그것이 그 사람으로부터 숨겨(모른채) 있다. 그가 그것에 관해 알 때, 그 다음 그는 그것들 중의 하나에 죄가 있다.

영적 의미

다시, 만일 누군가가 잘못된 열정을 통해 진리 가운데서 이든, 거짓 가운데에서 이든 자신을 확증한다면 그의 잘못이 무엇이든, 설사 그가 무지하다해도 그는 악 가운데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맹세함이란 진리 또는 거짓을 확증하는 것을; 무모하게 맹세함이란 히브리 원어에서 보여주는 바대로 잘못된 열정으로부터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을; 진리나 거짓을 행한다는 것은 그것에 따라 산다는 것을; 그러나 입술로 진리나 거짓을 말한다는 것은 이해함 속에서 진리나 거짓을 먼저 확증한다는 것을; 모르고 했음이란 무지한 상태를; 그것을 알게 됨이란 훈육을; 죄 있다는 것은 악 가운데 있다는 것을 말한다. A.C. 2842, 5755, 1285, 2230, 3400.

5절. 그리고 필시 있을 것은, 그가 이런 것들 중의 하나에 죄가 있을 때 그는 그 중에서 자기가 죄 지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영적 의미

위의 사항 중 어느 하나에 죄가 있게 될 때, 그 안에서 자기가 죄 있는 자였음을 고백하고;

세부적 영적 의미

이 절의 내적 의미는 다음 절의 내적 의미와 거의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 절에서 보다 더 주목되는 것은 죄에 관한 바깥쪽 고백은 그 고백이 있도록 한 구체적인 악에 관한 안쪽에서의 인정함이 바깥 것과 함께 있지 않으면 아무 가치가 없는 입술 뿐의 고백이라는 것이다. 그런고로 내향에서의 인정과 고백이 글자적 서술에 포함되어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A.C. 2320, 2880.

6절. 그리고 그는 자기가 죄지었던 자기의 죄를 위해 주님에게 죄가 있음의 제물(guilt offering)을 가져 와라. 이는 암컷으로 양떼, 어린 양, 또는 죄 바침 (sin offering)을 위한 염소이다. 그리고 성직자는 그의 죄에 관한 것대로 그를 위해 보상을 받게 하라.

영적 의미

그런 다음, 회개의 일을 행하는 가운데 순진의 외적 선으로부터 이든, 내적으로부터 이든 주님을 예배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그는 자기가 선 가운데 깊이 있기 때문에 그의 악은 면죄되고 그는 주님과 결합하게 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양이나 염소를 바치는 죄가 있음의 제물은 내적, 외적에서의 순진의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을 말한다. 암컷은 특별히 선을 명시하고 있고, 흠없음이란 악과 거짓에서 순수함을 나타내되 회개의 일이 포함되고 있다. 성직자란 가장 깊은 선을; 보상을 받게 함은 악의 제거와 주님과의 결합을 말한다. A.C. 10132, 4169, 725, 7837, 9946, 9506, 10023, 10042, II.

7절. 그리고 만일 그의 재산(means) (형편)이 어린 양을 (바치기에) 충분치 않다면, 그러면 그는 자기가 죄를 지었다는 것을 위해 그는 죄가 있음의 제물을 가져오는데, 호도애(turtledove) 둘, 또는 어린 비둘기(young pigeon) 둘을 가져와라. 하나는 죄 바침을 위해, 다른 하나는 태워 바침을 위해서 이다.

영적 의미

그런데 그가 순진의 천적 선이나 영적 선 가운데 있지 않다면, 그는 신실된 회개와 신실한 애착으로 내적 또는 외적인 신앙의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해야 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양이나 염소 하나라도 마련할 재산(means)이 없다는 것은 순진의 천적 또는 영적 선 어느 하나에 속한 것이 없는 탓에 나타나는 무능력을 말하고; 이 절에서의 죄가 있음(guilt)이란 무지로 저질러진 죄(sin)을 말하고; 호도애나 어린 비둘기란 내적, 외적 측면에 있는 신앙의 선을 말한다. 죄 바침이나 태워 바침의 제물은 죄의 용서, 그리고 주님과의 결합을 말한다. A.C. 10132, 4169, 1827, 10132, 870, 3400, 10122, 8680, 10053.

8절. 그리고 그는 그것들을 성직자에게 가져 와라, 그는 죄 바침을 위한 것을 먼저 바쳐라, 그리고 그것의 목으로부터 그것의 머리를 비틀어라, 그러나 그것을 쪼개어 나누지 말라.

영적 의미

이 예배는 선의 원리로부터 행해야 할 것이고, 회개로 충만된 예배를 진행해야 한다. 그 이유는 예배가 악으로 인해 내적인 것이 외적인 것과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고, 이와 같은 예배는 선보다는 오히려 진리로부터 있어 주님과 상응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 절에서 성직자에게 제물을 가져옴이란 예배는 선을 원리로 해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함을 말한다. 죄 바침의 제물로부터 바친다는 것은 회개는 예배에 앞서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목을 부러뜨림은 예배에서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을 분리함을 말하고; 새(bird)로 명시된 이해함으로부터의 예배는 주님과 항구적으로 결합되게 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말한다. 떨어지지 않게 함이란 주님과 부합됨이 없다는 뜻이다. (A.C. 9946, 10227, 3400, 10122, 8079, 1832).

9절. 그리고 그는 제단의 측면에 죄 바침의 제물의 피를 뿌려라. 그리고 나머지 피는 제단의 받침에 흘릴 것이다. 이것이 죄 바침이다.

영적 의미

게다가 각 상태에 따라 충만해지는 것이 자연적 수준에서 이든, 영적 수준에서 이든 선이 진리와 결합해야 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죄 바침의 제물의 피를 제단 측면에 뿌림은 각자의 상태에 따라 영적 수준에서 선과 진리의 결합을 의미한다. 나머지 피를 제단 받침에 흘린다는 것은 각자의 상태에 따라 자연적 수준에서 충만된 결합을 명시하는 것이고; “이것이 죄 바침이다”라 함은 그 예배에도 악의 제거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A.C. 9736, 10185, 10047, 3400.

10절. 그리고 그는 두 번째로 태워 바침을 위해 조례에 의거 바쳐라. 그리고 성직자는 그가 죄지었던 그의 죄에 관해서 그를 위해 보상을 받게 하라, 그리고 그는 용서된다.

영적 의미

그러나 진정한 예배는 회개함이 포함되어야 하는 바, 즉 사랑으로부터의 예배가 신성한 질서에 따라 있어야만 한다. 그러면 선을 사랑함이 함부로 놀려 범한 악을 제거 시켜 속죄가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법을 따라 두 번째 새를 태워 바침의 제물로 바친다는 것은 진정한 예배에는 반드시 회개가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태워 바침의 상응으로부터 알 수 있다 (1장 14-17절 참조). 성직자가 그를 위해 보상을 만들고 그는 용서받는다는 것은 선을 사랑함은 무모하게 범한 악을 제거해서 면죄가 될 것임을 말한다. A.C. 8680, 10053, 9506, 10042 II.

11절. 그러나 만일 그의 재산 (형편)이 호도애 둘이나 어린 비둘기 둘을 바칠 (여력이) 충분치 않다면, 그 다음 그는 자기가 죄지었던 것을 위한 자기 제물로 죄 바침을 위해 고운 곡식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가져오되 그는 어떤 유향도 그 위에 놓지 말 것이다. 그 이유는 이것이 죄 바침의 제물이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만일 어떤 이가 신앙의 선 가운데 있지 않고 진리 가운데 있다면, 회개와 순종을 통한 주님께의 헌신이 그 진리에 부응해서 있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그 헌신이 천적인 사랑과 영적인 진리로부터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이 첫 실례에서 악의 제거만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호도애나 어린 비둘기 두 마리도 마련 못한다는 것은 신앙의 선 가운데 있지 않다는 것을;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제물로 가져옴이란 신앙의 진리로부터 예배함을; 기름이나 유향을 그 위에 얹지 말라는 것은 이 예배는 천적 사랑과 영적 진리로 있어질 수 없다는 말인데 그 이유는 그 예배의 첫 실례에 악의 제거만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A.C. 870, 1827, 10132, 9995, 10136-7, 10137.

12절. 그리고 그는 그것을 성직자에게 가져 와라, 그리고 성직자는 그것으로부터 기념물로 그것의 한 웅큼을 가져 오라, 그리고 그것을 제단에서, 불로 만든 주님께의 제물 위에서 태워라. 이것이 죄 바침이다.

영적 의미

그러나 이것은 주님께의 진정한 예배를 표시하는 선을 기반으로 있어야 하는 바, 삶 속에 새겨져서, 악이 거절되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신성한 사랑은 악에 반대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에게 제물을 가져옴이란 위의 경우의 예배가 아직 선을 원리로 해서 있다는 것이다. 성직자가 기념물(표시)로 가루 한 움큼을 쥔다는 것은 진리로부터의 이 예배도 순수한 예배요, 힘도 있는 예배임을 나타내고; 제단에서 태운다는 것은 진리가 선과 결합함으로, 그 결과 생활 속에 새김으로 주님께 헌신함을 말한다. 이것이 죄 바침의 제물이라 함은 악이 거절되어 진다는 것, 그 이유가 불로 의미되는 신성한 사랑은 악과 반대되기 때문이다. A.C. 9946, 6888, 7518, 10052, 3400, 10055.

13절. 그리고 성직자는 그가 이런 것들 중 어떤 것에 죄지었던 그의 죄를 만지듯 그를 위해 보상을 만들어라, 그리고 그는 용서된다. 그리고 남은 것은 식사 제물의 경우 같이 성직자의 것이다.

영적 의미

그러면 선은 그 선이 어떤 형체이든 그 속에서 악을 제거해 주게 되어 죄의 면제가 따르고, 선이 음미되어 천적 사랑이나 영적 사랑으로부터 예배하는 경우같이 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그를 위해 보상을 만든다는 것은 모든 형체 속에서 선은 악을 제거한다는 말이다. 그가 용서받는다는 것은 악의 제거, 사면을 의미한다 (10절 참조). 나머지가 성직자의 몫이라는 것은 선이 음미되어짐을 뜻하는데, “식사 제물처럼”이란 이 예배도 천적, 영적 사랑으로부터의 예배와 동등하다는 말이다. A.C. 9506-1, 10023, 10042, II. 9946, 2177, 2187, 4581, 9995, 2장 1절 참조.

14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더욱이 지각을 주심으로,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주님께서 밝혀 주심이 있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말한다. 이야기하심(speaking)은 유입(influx)을; 모세는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표현하는 것이고; 말함(saying)은 지각을 명시하고 있다. A.C. 2001, 2951, 7010, 6752, 1791, 1822, 4장 1절 참조.

15절. 만일 누군가가 주님의 거룩한 것들에서 불법 침입하고, 부지불식간에 죄를 진다면, 그러면 그는 주님에게 그의 죄가 있음의 제물을 가져오되, 죄가 있음의 제물을 위해 성소의 세겔에 따라 몇 세겔인지를 은으로 네가 추정하여 양떼로부터 흠이 없는 수양을 가져오게 하라.

영적 의미

만일 누군가가 모르는 가운데 내적 예배 안에 있는 신성한 법칙, 외관상으로 볼 때 사랑 또는 선으로부터 있는 신성한 법칙을 위반하고 있음에도 아직 그가 내적 또는 영적 수준에 있는 순진의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고 주님을 인정하고 있고, 악에 물들지 않고 영적 진리에 거하고 있다면, 이것에 선이 결합되어 죄가 제거되게 해 줄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누군가가 여호와에게 거룩한 것을 바칠 때 성실치 못하게 실수해서 제대로 바치지 못했을 경우가 명시하는 바는, 만일 누군가가 내적 예배에서 신성한 법을 잘 몰라서 범할 경우를 말하는데, 이 의미는 실수 또는 잘 몰라서 죄를 짓는 것, 즉 무지로 인해 죄를 짓는데 대한 의미에서 알 수 있다. 주님의 거룩한 것은 14장 2절에서 언급하는 주님께서 하지 말라는 명령을 어겼을 경우와 구별되는 서술이다. 그래서 전자는 내적 예배에서 범해지는 잘못을; 후자는 외적 예배가 마치 선으로부터의 예배인 냥 보이는 예배를 말한다. 수양이란 내적 인간에게 있는 순진의 선을 명시하고; 흠이 없음이란 악에 오염되지 않았다는 것; 그 양이 몇 세겔의 은(silver)에 해당되는가 추산함은 당사자에 있는 영적 진리의 품질에 의거함을; 성소 세겔로 단다는 것은 진리가 선과 결합함을; “죄가 있음의 제물을 위하여”이란 죄가 있음이 제거될 것임을 말한다. A.C. 9156, 10042, III. 10149, 3400, 2001, 10042, 7837, 2959, 3400.

16절. 그리고 그는 그가 거룩한 것들에 죄를 범한 것에 보상을 만들어라, 그리고 거기에 오분의 일을 추가하라, 그리고 그것을 성직자에게 주어라. 그리고 성직자는 죄가 있음의 제물의 수양을 가지고 그를 위해 보상을 받게 하라, 그리고 그는 용서된다.

영적 의미

그리고 회개는 내적 예배에 있는 그의 잘못에 관해서도 있어져야 하는데, 더욱이 진리의 나머지 중 어떤 것은 선을 수단으로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다시 선은 악을 제거하여 죄의 용서가 따라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보상을 받게 한다는 것은 회개의 일을 행하는 것을; 거룩한 것을 제대로 바치지 못했다는 것은 내적 예배에 있는 잘못을 (15절 참조); 오분의 일을 더 보태라는 것은 얼마만큼 남아 있는 진리를; 그것을 성직자에게 낸다는 것은 선을 수단으로 자기 것 되게 함을 성직자가 보상을 받게 함은 선이 악을 제거함을; 그가 죄를 용서받았다는 것은 악이 실제로 제거됨을 각각 말한다. A.C. 9087, 9097, 9130, 649, 10227, 9946, 10042, 10절 참조.

17절. 그리고 만일 누군가가 죄짓고, 그리고 주님께서 하지 말라고 명령했었던 것들의 어떤 것을 한다면, 비록 그가 그것을 몰랐다 해도, 아직 그는 죄가 있다, 그리고 그는 불법을 저지른 것이다.

영적 의미

누군가가 악을 거절해야 하는 것과 같은 신성한 법칙을 위반한다면, 비록 그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해도 그는 죄 지은 것이고 악이 그에게 부착된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죄 진다는 것은 신성한 법을 위반했다는 것, 주님께서 하지 말라고 명령했던 어떤 것이란 거절해야 할 악들을 (4장 2절 참조); 죄가 있다란 악 가운데 있음을; 모르고 했다 함은 그 사실에 관해 무지함을; 그는 불법을 저지른 것이다란 이 경우에서는 악이 그에게 붙어 있을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A.C. 5076, 3400, 6721, 2230, 9937.

18절. 그리고 그는 죄가 있음을 위한 네 추정치에 따라 양떼로부터 흠이 없는 수양을 성직자에게 가져 와라. 그리고 성직자는 그가 부지불식 중에 잘못하고 그것을 몰랐던 것에 관하여 그를 위해 보상을 받게 하라, 그리고 그는 용서된다.

영적 의미

그런고로 그는 영적 선, 또는 내적 인간에 있는 순진의 선으로부터 자기 상태에 의거, 그리고 진리의 품질에 따라 주님을 예배해야만 한다. 그래서 선을 수단으로 악은 그가 필요로 하는 만큼, 즉 죄가 의지와 이해함에서 무지를 통해서 거행된 것 만큼에서 청산되어 면죄가 뒤따른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죄가 있음의 제물을 위한 성직자의 추정치에 따라 양떼 가운데서 흠이 없는 수양을 성직자에게 가져옴이란 악 가운데 있었던 정도만큼 진리의 품질이나 상태도 비례해서 내적 인간에 있는 순진의 선, 또는 영적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을 말한다 (15절 참조). 부지불식 중에 잘못한 것을 성직자가 보상을 받게 해서 용서받게 됨이란 선을 수단으로 악은 청산되어지되 죄가 의지와 이해함에서 무지로 거행되었던 만큼에서 청산되어 사면으로 이어질 것이다. A.C. 9946, 10042, 10절 참조.

19절. 이것이 죄가 있음의 제물이다. 그는 주님 앞에 확실하게 죄가 있다.

영적 의미

모든 예배는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악에서 잘못으로 얼룩 지워진다. 그래서 그 예배는 신성한 선의 정밀 검사를 피할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죄가 있음의 제물이란 악의 제거를 위한 예배를; 주님께 확실히 죄가 있음이란 악과 잘못이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하는 신성한 선의 정밀 조사를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A.C. 3406, 2001.

5장의 종합적 고찰

4장은 무지로 저질러진 죄들을 내적 의미에서 질서 있게 이야기하고, 그 죄가 자연적 또는 외적 인간에 있는 순진의 선으로부터의 예배로 감면되어지되, 천적인 것들에서 시작해서, 영적인 것들로 진행되어 자연적인 것들로 마감 짓고 있다. 이 진행 순서의 각각에 있는 제물은 자기 것이 되어진 순진의 선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5장에서도 같은 주제가 계속되고 있되, 앞 장처럼 천적, 영적, 자연적인 사항을 각각 언급하고 있으나, 교리에 관련되기보다는 오히려 자연적 애착에 관련된 잘못으로 인한 죄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되는 이유는, 4장의 각 경우에서 무의식적인 잘못은 주로 주님께서 하지 말라고 명령된 사항에 반대되어 야기된 잘못들이나, 본 장의 경우에서 있는 잘못은 불결한 어떤 것에 닿음, 함부로 맹세함, 또는 선을 행하든 악을 행하든 충동적인 것과 관계가 있다.
둘째로, 본 장의 첫 절은 세부적으로 배열되어 있어 뭔가 설명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렇게 배열되어 있는 것은 앞 부분의 영적 의미에서의 일반 주제에서 다루어진 모든 것의 결말을 형성해 주기 위해서이다. 동시에 뒤이어지는 부분에 관한 일반 주제를 시작하거나 소개도 겸하고 있다. 또한 진정한 교리에 무지해서 죄를 짓는 것이라든가, 선과 악을 구별치 못해서 죄를 짓는 것만을 함축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은 이해함에 획득된 진리가 확증되든지, 혹은 악과 거짓이 그 진리에 반대하고 있든지 하는 것에 관해 주저하는 상태를 묘사해 놓고 있다. 여기서 표현된 특성은 선서하는 소리, 맹세하는 소리를 듣는 것, 또는 영적으로 의지의 결정과 행동으로 인해 진리를 확증하는 소리를 듣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역시 그는 저주하는 소리, 또는 영적인 진리로부터 자신을 비키게 한데 대한 소리를 듣기도 한다. 이 소리들은 어디서부터 진행되고 있을까? 이 소리들은 천국 또는 지옥과 연락 관계를 가진 결과이다. 우리 모두는 이 소리들을 듣는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말이나 행동에서 진리를 체현하든지, 안하든지 결정해야만 한다. 부지중에 범해지는 죄는 우리에게 참으로 많다. 그리고 이 죄들 모두가 우리를 저주하는 것은 아닌데, 그 이유는 비록 우리 지성이 진리와 거짓 사이를 식별하는데 있어서 시련이라는 주위의 환경으로 인해 실패했다 해도 우리 심정은 올바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진리를 알게 되거나 보았을 때, 그러므로 해서 진리에 목격자가 되었을 때, 즉 우리가 애착을 가지고 진리를 받았을 때, 사랑의 기름이 진리 위에 부어졌을 때, 그러면 우리 자신이 그 진리를 비켜가지 않도록 조심하게 해준다. 그런데 죄짓거나 잘못할 경우, 우리의 나중 상태는 처음 상태보다 더 나쁜 쪽에 속하게 된다.
셋째로, 우리가 정착시켜야만 하는 진리 또는 거짓, 뿐만 아니라 선 또는 악 중의 하나에 관한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진리를 수단으로 않고서는 선을 확증할 수 없고, 거짓을 수단으로 하지 않고는 악도 확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만일 우리가 선으로부터 내향으로 진리를 확증한다면, 비록 우리가 불결한 것에 영적으로 닿는 경우가 있다 해도 악 가운데 남게 되거나 불결함을 낳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첫 절이 우연히 발생하는 불순함을 주제로 소개하고 그 불순함에 순수해지는 수단까지 소개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2, 3, 4, 5절의 순서로 공부를 진행해야 한다. 이 절들은 자연적 인간에 있는 악한 애착들에 오염되어 결과되는 불법의 시리즈를 기술해 놓고 있다. 이런 오염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것은 각자의 내적 삶을 주의 깊게 응시해보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먼저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단어 시체(carcase)가 악한 애착들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시체는 영적 생명에 속한 모든 것이 결핍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모양을 갖추지 않고 아무것도 생기지 않은 것(without form and void)” 또는 “헛되고 무익한(wasteful and void)” (창세기 1:2) 것들이다. 그 이유는 악한 애착들 속에는 어떤 진리도, 선도 없다. 그럼에도 그것들은 거듭나고 있는 사람의 생각 안에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 각 개인의 생명의 일부로서 실지로 나타난다. 이 나타남은 기뻐하는 것을 수단으로 자체를 명백히 보인다. 주님에 속한 것이 아니라 지옥에 속한 것이기에 실지로 죽어 있는 것들이 가장 즐거워한다. 우리 자신의 실제적인 악 때문에 우리 스스로 지옥적 기쁨에 비슷해지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악령은 우리 안으로 흘러들 수 있고 오래 전 이미 회개해서 죽어버린 것 같은 못된 것들이 우리 속에서 살아 있는 듯 믿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2, 3절의 내적 의미에서 읽게 되는 불결한 것들에 닿는다는 것에 대한 설명이다. 위와 같은 종류의 죽은 애착들이 언제, 어떻게 그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는지에 대하여 말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들은 우리의 거듭남이 상당한 진보를 했었을 때조차 에서도 우리를 선동하고 있다. 그래서 이것들이 뭔가 꿈틀거릴 때 우리로 잘 처신하는 방법은 5절에서 가르치는 바와 같이,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악밖에는 없나이다”라고 진실로 고백하는 것이다. 2절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채용되어진 상응에 의해 암시되는 불결한 애착들은 세 수준으로 외적 인간에 속하고 있다. 그러나 3절에서 짐승과 사람 사이의 영적인 구별로 내적 인간에 속하고 있다. 또한 이 절에서 등장하는 사람이라는 히브리 단어는 “ish”가 아닌 “adam”임도 주목해 보아야 한다. 그 이유가 전자는 진리, 총명에 상응되나 후자는 선, 애착에 상응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애착이 이 절의 주제가 되는 것을 알게 된다. 무슨 일이든지(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함부로 입술을 놀려 맹세를 말하는데 대해 4절이 묘사하는 것은, 이해함이 결부된 의지의 충동적인 결정으로 우리가 어떤 사건 자체 내지 그 내용의 품질을 충분히 생각해 봄도 없이, 또는 그 속에 악한 애착이 함유되어 있는 줄을 확인해 봄도 없이 무턱대고 결정하는 일에 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내적 의미에서 이 세 절(2,3,4절)이 기술하는 바는, 자연적 사랑의 선동으로부터 악을 확증하고, 그 다음 내향의 사랑인 세상과 자아 사랑으로부터 확증하고, 마지막으로 강력하게 충동적인 악의 세력으로부터 인간이 행동에 옮기되, 그가 바깥쪽 상태나 여건에 무지해서 그 행동의 결과가 선해지는지 악해지는지 조차 모른 상태에서도 마구잡이로 움직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교회 속의 사람들을 유혹하거나 만연시키는 악한 애착들의 시리즈를 살폈다. 다음에 생각해 볼 것은 예배를 통해 순수해지는 수단들이다. 이 수단들은 천적, 영적, 자연적 또는 감각적 인간에 의해 각기 따로 채용되고 있다. 이에 대한 줄거리가 6절부터 13절까지에 기술되고 있다. 6절에서는 천적, 영적 인간의 예배가 함께 기술되고 있고, 7절은 선과 진리에 관한 자연적 인간의 내적 부분을 구성하는 것에 관해서, 11절은 자연적 인간의 외적 부분을 구성하는 것에 관해 기술되고 있다. 이외에도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중요 사항이 더 있다. 각 경우마다 회개는 꼭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8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회개는 진정한 예배에 선행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악은 반드시 금해져야 하고 선은 의무로서 반드시 행해져야 한다. 더욱이 선이 기뻐하는 것으로 충분히 실감하기 전에 악이 먼저 완전히 제거되어야 한다. 불완전한 예배의 상태 동안, 외적 인간은 내적 인간에 상반된 채로 있게 된다. 따라서 주님과의 상응도 그 수준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9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자연적, 영적 수준 모두에서 진리가 선과 결합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가 이해해야 할 사항들은, 이 결합은 사랑 또는 선이나 6장에서 더 충분히 기술되는 바와 같은 예배의 의식이 있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쉽게 알 수 있는 바는, 사랑에 의해 주님과 우리가 결합하는 그 수준은 우리의 악이 제거되는 수준에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주님과 우리가 결합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악, 그리고 거짓, 또는 잘못들밖에는 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진리가 제 11절에서 잘 예증되어 있다. 즉 죄의 제물로 바쳐지는 곡식 가루에 기름이나 유향을 얹지 못하도록 명령되고 있다. 이 말은 우리의 보다 낮은 수준에서의 예배 상태가 천적 사랑과 영적 사랑에 의해 어떤 영향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예배가 천적 또는 영적 예배의 수준에 충분히 도달되지 못했다는 것 뿐이다. 순수한 모든 예배는 사랑의 어떤 것으로부터만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 가장 높고 깊은 예배는 사랑의 어떤 것으로부터만 있어져야 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 실지로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예배를 법으로서 준행해야 한다. 우리가 법을 알고 있다는 것만을 이유로 해서 우리는 그 사랑 안으로 들어 가지지 않는다. 또는 각자의 수준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각자의 능력으로 최선을 다해 법에 따라 행동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 사랑 안에 진입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반드시 기다려야 하고, 인내해서 그 목적을 잘 보전하고 있어야 한다. 결국 우리가 열망한 그 후에 그 사랑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이 사랑은 주님으로부터 이미 우리 속에 존재한다는 것, 이 사랑은 우리의 본질적 부분이라는 것, 우리가 충분히 거듭났다고 판단될 때조차 에서도 우리는 이 사랑 위에 서지 못한다는 것, 그 이유는 이 사랑은 우리의 순수한 개성(individuality)이기 때문이고, 보다 낮은 수준의 모든 우리의 사랑은 각기 적절한 순서로 이 사랑 아래 배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가끔 생각했었던 것은, 우리의 가장 높은 능력은 우리가 태어날 때 이미 주님께서 우리 속에 있게 해주셨다는 것, 그러나 그 능력의 실현은 우리의 이성과 자유가 사용하는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여하튼 확실한 것은 우리는 그 능력을 발휘함으로 삶을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우연히 그 능력이 발휘될 어떤 기회가 있었다 해도, 또는 그 능력에 대한 희미한 지각이라도 갖게 되었다 해도, 많은 우리의 주위의 환경 여건이 그 위에 구름같이 덮여있어 우리는 오로지 그 능력의 한 부분만을 알고, 한 부분만을 사랑할 뿐이다. 그럼에도 12, 13절의 영적 가르침으로부터 우리가 확신해야 하는 것은, 마지막 성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우리의 외적 인간뿐만 아니라 내적 인간도 우리를 다른 인간 존재(계시록 2:17)와 구별되게 하는 기쁨 또는 선을 자기 것이 되게 하거나 체현해 내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14절은 주제가 바뀌는 것을 보여주는 바, 주제는 외적 인간에 관련을 갖는 잘못을 생각해 봄에서 내적 인간에 두드러지게 있는 잘못을 거론하고 있다. 이렇게 판단되는 이유는, 14절의 “여호와에게 거룩한 것”이라는 표현 때문이다. 또한 6장 7절까지 포함해서 있는 잘못이라는 것의 매 경우에서 내적 인간에 있는 순진의 선을 명시하는 수양이 제물로 바쳐지기 때문이다. 사실상 내적 의미에서의 일반 주제는 이 절과 더불어 다시 마감되고 있다. 그리고 이 절은 성서의 장과 절로 쪼개지는 구약 성서가 원본이나 번역이라는 양쪽 모두에서 내적 의미에 관한 어떤 지식이나 참고도 없이 명확하게 나뉘고 있다는 것에 우리로 주목하게 해주기도 한다. 오늘 우리가 살피는 본문의 경우 히브리 성경의 분류는 내적 의미의 시리즈와 일치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일치가 언제나 있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한 예로, 창세기 2장의 첫 세 절은 1장의 결론을 실지로 형성하고 있다. 더 설명하면, 어떻게 한 인간이 영적 상태를 벗어나 천적 상태로 건너가게 되는가, 그러므로 해서 거듭나는 과정을 완성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 다음 2장 4절은 새로운 주제를 시작하는데, 이는 영적 수준에서 거듭나는 질서와 구별되는 천적 수준에서 거듭나는 질서에 관해서이다.
다시 본문을 진행하면서 이제 주목해 볼 것은 내적 인간의 잘못들은 세 종류로 나뉘고 있다는 것인데, 의지 측면에 관해 언급되는 것이 15-16절에서, 이해함 측면에 관한 언급이 17-19절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행동 측면에 관하여는 6장 1-7절에까지 진전되어 언급되고 있다. 외적 인간의 잘못에 관한 줄거리에서 발생되지 않은 이유로 특별히 언급해 보아야 할 유일한 것은, 성소 세겔로 달아 몇 세겔 짜리가 되어야 하는가를 모세가 결정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미 살핀 바대로 이 구절이 뜻하는 것은, 내적 인간 속에 있는 순진의 선으로부터의 예배는 선이 결합될 진리의 품질에 있어서 외적 인간에 있는 예배와 더 특별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1장에서 이미 살핀 바와 같이 모든 예배는 진리를 수단으로 있어지고, 그 진리로부터 예배의 품질도 갖게 되나, 외적 예배의 품질은 내적 예배에 있는 품질만큼 명백하지는 않다. 그 이유가 예배는 더 내적으로 더 세세하게 존재하므로 이에 진리가 선과 결합하는 것도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에 추가해서 예배자의 순진의 수준과 품질은 더욱 강력해져 순수해진다. 이로부터 말씀 속의 내적 의미는 글자 의미 속의 일반 진리를 확증한다. 그리고 경험이 주는 증거들은 외적 예배가 무지의 순진 쪽에 더 기울어 있다는 것, 내적 예배는 지혜의 순진 쪽에 더 기울어 있음을 확실히 해준다.
마지막으로 관찰해 볼 것은, “여호와가 하지 말라고 명령한 것”은 이해함에 있는 잘못에 관한 줄거리이고, “여호와에게 거룩한 것”은 의지의 잘못에 관한 줄거리로 두 문단은 서로 구분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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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6장

성경: 레위기 1장

1.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2. 만일 누군가가 죄지은다, 그리고 주님에 대하여 죄를 범한다, 그리고 공탁금이나 매매 같은 문제에서 그의 이웃을 거짓되게 취급하거나, 또는 도둑질하거나 이웃을 압박한다면,
3. 또는 잃어졌던 것을 발견했었고, 그리고 그 점을 거짓으로 다루고, 그리고 거짓말로 맹세한다. 이 모든 것들의 어떤 것에서 사람이 행동한다, 그 점에 대해 죄짓고 있다.
4. 그러면 그는 죄지었다, 그리고 죄가 있음 일 것인즉, 그는 도둑질로 취한 것, 또는 압박하여 얻었던 것, 또는 그에게 위탁되었던 공탁금, 또는 그가 발견했던 잃었던 것을 원래대로 복구하라,
5. 또는 그가 거짓으로 맹세했었던 것에 관하여 어떤 것. 그는 그것을 충분하게 원래대로 해놓아라, 그리고 거기에 오분의 일을 더 보태라. 그는 그것과 관계있는 자에게 자기가 죄가 있음을 발견한 그 날에 그것을 주어라.
6. 그리고 그는 주님에게 죄가 있음의 제물을 양떼로부터의 흠이 없는 수양으로 죄가 있음의 제물에 대한 너의 추정치(estimation)에 따라 성직자에게 가져 와라.
7. 그리고 성직자는 주님 앞에서 그를 위해 보상을 받게 하라, 그리고 그는 용서된다. 이 용서는 그로 하여금 죄가 있어지게 행한 것은 무엇이든지에 관하여 이다.
8.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시어, 말하시기를,
9.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명령하여, 말하라, 이것은 태워 바치는 제물의 법이다. 태워 바치는 제물은 아침 까지 온 밤을 제단 위, 화덕(hearth)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제단의 불은 거기에서 계속 타고 있어야 한다.
10. 그리고 성직자는 그의 아마포 옷을 입어라, 그리고 그의 아마포 반바지(bleeches)를 그는 그의 살에 입어라. 그리고 그는 불이 제단에서 태워 바치는 제물을 태워버려 나온 재들을 가져다가 제단 측면에 그것들을 놓아라.
11. 그리고 그는 그의 옷들을 벗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옷들을 입을 것이다, 그리고 재들을 진영 밖 깨끗한 장소로 운반하라.
12. 그리고 제단 위의 불은 거기서 계속 타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꺼지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성직자는 매일 아침 그것에 장작을 태워라. 그리고 그는 그것 위에 태워 바치는 제물을 정돈하여 놓아라, 그리고 거기에서 평화 제물의 지방을 태워라.
13. 불은 제단 위에서 계속 타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꺼지지 않아야 한다.
14. 그리고 이것은 식사 제물의 법이다. 아론의 아들들이 제단 앞, 주님 앞에 그것을 바쳐라.
15. 그리고 그는 거기로부터 식사 제물의 고운 곡식 가루 한웅큼, 그것으로부터 기름, 그리고 식사 제물 위에 있는 모든 유향을 가져 가라, 그리고 그것을 주님께 달콤한 향기를 위해 그것으로부터의 기념물로 제단 위에서 태워라.
16. 그리고 그것으로부터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의 아들이 먹는다. 이것은 거룩한 장소에서 누룩 없이 먹어라. 만남의 천막의 뜰에서 그들은 그것을 먹어라.
17. 누룩과 더불어 구워져서는 안된다. 나는 불로 만든 내 제물로부터 그들의 몫으로 그것을 주었다. 이것은 가장 거룩하다, 마치 죄로 인해 바치는 제물 같이, 죄가 있음으로 해서 바치는 제물도 같다.
18. 아론의 자손들에서 모든 남성은 불로 만든 주님의 제물로부터 당연한 몫을 너의 자손 대대로 영원히 먹을 것이다. 그것들을 만지는 자는 누구든지 거룩해진다.
19. 그리고 주님께서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20. 이것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봉헌이다, 이것을 그들은 자기가 기름부워지는 그 날에 바쳐라. 즉 식사 제물을 위한 고운 곡식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항구적으로 아침에 그것의 절반을, 그리고 저녁에 그로부터의 절반을 (바쳐라).
21. 굽는 납작한 냄비에서 기름을 가지고 그것을 만들어라. 그것이 적셔질 때, 너는 가져올 것이다. 구워진 조각들 가지고 너는 주님에게 달콤한 향기를 위한 식사 제물을 바쳐라.
22. 그리고 아론의 아들들 사이로부터 아론 대신에 있을 기름부워진 성직자가 그것을 바쳐라. 영원한 법령에 의해 이것은 주님에게 온전히 태워져야 한다.
23. 그리고 성직자의 모든 식사 제물은 온전히 태워야 한다. 그것이 먹어져서는 안된다.
24.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25.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야기하거라, 말하시기를, 이것은 죄 바침의 제물의 법이다. 태워 바치는 제물이 죽여지는 장소에서 죄 바침의 제물을 주님 앞에서 죽여라. 이것은 최고로 거룩하다.
26. 죄를 위해 그것을 바친 성직자가 그것을 먹는다. 거룩한 장소에서, 만남의 천막의 뜰에서 그것을 먹어라.
27. 그것으로부터의 고기에 접촉하는 것은 무엇이든 거룩해 진다. 그리고 어떤 옷에 그것으로부터의 피가 뿌려짐이 있을 때, 너는 뿌려진 그 곳을 거룩한 장소에서 씻어라.
28. 그것(고기)이 끓여진 흙으로 만든 그릇은 깨트려라. 그리고 만일 그것이 놋쇠로 만든 그릇에서 끓여진다면, 그 그릇은 문질러 닦고, 물로 행굴 것이다.
29. 성직자들 사이에 모든 남성은 그것을 먹는다. 이것은 최고로 거룩하다.
30. 그리고 죄 바침의 제물은 그것의 피를 거룩한 장소에서 보상을 만들기 위해 만남의 천막 안으로 가지고 오면 먹지 못한다. 그것은 불로 태워라.

영적 의미 요약
(*본 장의 장과 절은 개역 성경을 따랐음)
* 신앙 속의 진리에 어긋나는 행위들이 묘사되고 있다. 그럼에도 그 행위에 대한 회개, 내적 인간 안에 있는 순진의 선으로 주님을 예배하여 그 결과 그분과 재회한다. 1-7절.
* 천적 인간의 예배, 또는 주님을 순수하게 사랑함으로 그분을 예배함에 관련되는 신성한 법칙들. 8-13절
* 영적 인간의 예배, 또는 이웃을 사랑함으로부터의 예배에 관련된 신성한 법칙들. 14-18절.
* 진리들이 선과 충분히 결합할 때, 또는 충분히 거듭나는 상태에서 주님을 예배함에 관련되는 법칙들. 19-23절.
* 실제의 악들을 제거하기 위해 주님을 예배하는데 관련된 법칙들. 24-30절.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영적 교회의 사람에게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지각을 주심으로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호와는 주님의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함(speak)은 유입을; 모세는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표현한다. 그리고 말함(saying)은 지각을 각기 뜻한다. A.C. 2001, 2951, 7010, 6752, 1791, 1822, 4장 1절 참조.

2절. 만일 누군가가 죄지은다, 그리고 주님에 대하여 죄를 범한다, 그리고 공탁금이나 매매 같은 문제에서 그의 이웃을 거짓되게 취급하거나, 또는 도둑질하거나 이웃을 압박한다면,

영적 의미

신앙 속의 진리에 어긋나는 행위로 질서의 법칙을 위반할 때, 그 행위는 언제든지 기억 속에서, 이해함 속에서, 의지 속에서 선행으로부터 신앙을 분리시킴으로 신앙을 왜곡하는데 이는 자신에게서 기인되거나 선행의 선을 위반할 경우,

세부적 영적 의미

죄 짓는 것은 신성한 질서를 위반하는 것; 주님께 죄를 범한다 또는 불성실함이란 신앙 속의 진리에 어긋나는 행위(offence)를; 이웃을 거짓되게 취급하는 것은 진리를 선행에서 떼어냄으로 왜곡하는 것이다. 그 이유가 이웃이란 선 가운데, 선행 가운데 있는 사람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웃을 거짓으로 대하는 것은 진리를 선행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다. 위탁물(deposit)은 “모든 사용을 위해 쌓아둔 것,” 따라서 기억 속에 있는 것을; 수중에 들어와 있는 것 또는 공탁금, 담보물(second deposit, fellowship, bargain, pledge)은 이해함 안에 있는 것을; 훔치는 것(robbery)은 자기 속의 진리가 자기가 잘나서 라고 우길 때 일어나는 의지의 행동을; 압박하는 것(oppressing)은 선행의 선을 위반하는 것을 말한다. A.C. 5076, 9156, 6711, 6712, 8087, 5299, 10062, 8906, 6711, 6712.

3절. 또는 잃어졌던 것을 발견했었고, 그리고 그 점을 거짓으로 다루고, 그리고 거짓말로 맹세한다. 이 모든 것들의 어떤 것에서 사람이 행동한다, 그 점에 대해 죄짓고 있다.

영적 의미

또는 진정한 교리를 지각했거나 발견했는데, 그것을 잃었다던가, 왜곡하든지, 특히 이런 잘못들을 행동 가운데 또는 말 가운데 표현했다면 이와 같은 왜곡을 자신 스스로 확증하는 바가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잃었던 물건을 발견하는 것은 진정한 교리를 발견하는 것을; 그 점을 거짓으로 다룬다란 진정한 교리를 왜곡하는 것을; 거짓말로 맹세한다란 거짓된 것을 확증하는 것을; 이런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죄란 대화나 행동으로 악과 거짓을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A.C. 9150, 8087, 2842, 5076, 9156.

4절. 그러면 그는 죄지었다, 그리고 죄가 있음 일 것인즉, 그는 도둑질로 취한 것, 또는 압박하여 얻었던 것, 또는 그에게 위탁되었던 공탁금, 또는 그가 발견했던 잃었던 것을 원래대로 복구하라,

영적 의미

그가 내적으로, 외적으로 죄를 지었다고 고백할 때, 그는 주님으로부터 온 것을 자기에게서 근원되었다고 주장한 것, 선의 원리를 모독하는 것, 삶에 진리를 응용하지도 않고 기억 속에만 처박아 둔 것, 교회를 회복시켜주는 참된 교리를 썩게 하는 등등의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만일 그가 죄지었고 죄 있다면이란 내적으로 외적으로 있게 되는 고백을; 도둑질로 취한 것을 되돌려줌이란 주님으로부터 자신 속에 있게 된 것들을 가지고 제 잘난체하던 것을 중단하는 것을; 압박해 (빼았었던) 것을 돌려줌이란 선과 선행에 관한 원리를 구박하던 행위를 중지하는 것을; 공탁금을 돌려줌이란 실제 사용도 않으면서 기억 속에서만 갖고 있던 진리를 더 이상 붙잡고 있지 않음을; 분실물을 돌려줌이란 교회를 회복시켜주는 진정한 교리를 더 이상 썩지 않게 한다는 말이다. A.C. 5076, 3400, 8906, 6711, 6712, 5299.

5절. 또는 그가 거짓으로 맹세했었던 것에 관하여 어떤 것. 그는 그것을 충분하게 원래대로 해놓아라, 그리고 거기에 오분의 일을 더 보태라. 그는 그것과 관계있는 자에게 자기가 죄가 있음을 발견한 그 날에 그것을 주어라.

영적 의미

또는 거짓 교리를 스스로 확증했을 경우, 그는 충분하게 회개해야 할 것이다. 악을 금하는 것 뿐 아니라, 진리를 실제 사용해서 자신에게 얼마간의 아껴둘 것이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진실로 옳다고 여길 것은 자기에게 있는 선과 진리 모두는 주님의 것임을, 자기 속은 악한 것뿐임을 겸손히 인정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거짓으로 맹세했었던 어떤 것을 원래대로 복구하는 것이란 거짓 교리를 확증하는 것을 중단한다는 것을; 그 물건의 모든 것을 갚는다는 것은 회개를 하는 것뿐 아니라 악을 금하고 대신 진리를 실천한다는 것을; 오분의 일을 더 보태어 갚는다는 것은 주님이 아껴두시는 것들을 심는 것, 임자에게 갚는다는 것은 선과 진리를 주님의 것으로 돌린다는 것을; 죄가 있음을 발견한 날 갚는다는 것은 자신 안의 악이 악으로 실감되어지는 상태를 뜻한다. A.C. 8087, 2842, 9087, 9097, 9130, 649, 5291, 487, 3400, 9133.

6절. 그리고 그는 주님에게 죄가 있음의 제물을 양떼로부터의 흠이 없는 수양으로 죄가 있음의 제물에 대한 너의 추정치(estimation)에 따라 성직자에게 가져 와라.

영적 의미

위와 같은 상황에 이어 그는 거짓과 결별하고 내적인 것 속의 순진의 선으로 주님을 진실로 예배할 것이다. 그의 선의 품질은 외적 인간에서 진리가 명백히 드러난 만큼에서 결정되는 바, 신앙 속의 진리가 주님으로부터임을 인정하면서 그 진리에 어긋났었던 행위를 위해서 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죄가 있음의 제물로 수양이란 내적 인간에 있는 순진의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는 것을; 흠이 없음이란 악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양떼 가운데에서란 영적인 것에서; 값을 추산한다는 것은 외적 인간에서 진리로 명백해진 선의 품질에 따른다는 것을; 죄가 있음의 제물을 성직자에게란 신앙 속의 진리에 어긋난 행위 때문임을; 제물을 성직자에게 가져온다는 것은 신앙의 진리는 주님으로부터 있어짐을 인정하는 것을 뜻한다. A.C. 3400, 2001, 10042, 7837, 5913, 6126, 2959, 9156, 3670.

7절. 그리고 성직자는 주님 앞에서 그를 위해 보상을 받게 하라, 그리고 그는 용서된다. 이 용서는 그로 하여금 죄가 있어지게 행한 것은 무엇이든지에 관하여 이다.

영적 의미

선에 관한 그의 상태가 악을 제거하고 주님과 재회하게 해주는데, 그의 악이 과거 어떤 본성이었든지, 어떤 품질이었든지 면제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그의 죄를 벗겨주는 것이란 주님으로부터 온 선이 악을 제거해 줄 것이고 주님과의 재회를 만들어 준다는 것을; 그가 용서 받는다는 것은 면죄를; 그가 죄있어지도록 행한 것은 무엇이든 이란 악의 본성이나 품질이 무엇이든을 뜻한다. A.C. 9946, 10042, 8393, 9506, 3400.
** 위 1-7절에 관한 추가 설명.
위 1-7절은 내적 의미에서 실수로 범해진 죄에 관해 일반 주제를 마감짓고 있는 고로, 마지막에 있는 몇 절을 재음미해 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제 5장에 있는 주제가 계속되어 7절에서 결론짓고 있다. 허지만 6장 첫 절이 새 주제를 암시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왜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일반 주제에는 세 개의 작은 분과로 나뉘어 있다. 첫 분과는 내적 인간의 의지에 관련된 것을 묘사하고, 둘째 분과는 이해함에 관련된 것을, 셋째 분과는 행동에 관련된 것을 묘사하고 있다. 이어서 2절과 3절에서는 인간이 받아들여 행동이라는 것으로 체현해 내는데 까지에 걸쳐서 있게 되는 것, 즉 진리가 기억 안으로 들어오고, 이해함 안으로, 외적 측면의 의지 안으로, 내적 측면의 의지 안으로, 진리를 모독하는 것, 내적으로 진리를 모독하는 것에 따른 심각히 생각해 보아야 할 여섯 가지 잘못들에 관한 시리즈가 있게 된다. 그중 마지막 것은 악과 거짓을 확증해 주는 잘못인데, 이 죄는 그 앞에서 다섯 개의 연속적 경고에도 불구하고 있어지는 죄의 항목이다. 교회에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이런 거듭남의 질서인데, 그것은 인간이 가르침을 받고 총명해지는 상태를 거쳐 순종함으로부터 사랑 또는 선의 상태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명백한 것은 위의 세 단계의 진보를 거치는 가운데 인간은 무수하게 많은 실수들이 있게 된다는 것, 각자가 진행하는 거듭남의 질서 중 자신에게 특히 효과가 있게 되는 상태나 수준에 따라 각자의 거듭나는 품질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본문의 여섯 가지 잘못들에 관한 용어가 왜 그렇게 나열되어 있는가이다. 그리고 이 용어들이 4, 5절에서 회개의 일을 묘사하기 위해 다시 언급될 때 이 용어들의 순서가 바뀌어 있는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원인은 각자와 더불은 진리의 배열은 주님으로부터 선을 받되 자기에게 효과있는 상태가 어떤 것인지에 따라 결정되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회개하는 상태에 오게 될 때 내면에 있는 것들이 우선적으로 회개를 진행하고, 외면의 것은 두 번째 중요한 일에 해당된다. 따라서 본문에서 훔치거나 빼앗음으로 취득한 것들이 먼저 거론되고, 영적으로 기억에 관련되는 것들이 그 뒤를 이어 언급되고 있다. 이 사항 속에는 중요한 가르침이 함유되어 있다. 진정한 회개는 견해(opinion)의 변화나 행동만의 변화보다는 동기(motive)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회개하는 상태는 과도기에 불과한 상태이다. 따라서 선을 실감하기 위해서는 완성을 이루어야만 한다.
위의 논지는 우리가 조금 더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또 다른 문제를 가져다준다. 그것은 오분의 일을 더 보태라는 것으로 표현된 아껴두어야 할 것(remains)이 심어짐(implantation)이다. 아껴둘 것이란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한 애착과 참된 생각들이다. 우리가 그것들을 의식치 못하는 시기(유아 시절이 가장 대표되는 시기임)에서 주님은 인간에게 그것을 저장해 놓으신다. 이렇게 주님은 내적 인간에 저장하셔서 거듭날 때가 차면 인간이 사용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 놓으신다. 인간이 이것들을 사용할 시기가 도래하면 주님이 아껴두신 것들은 외적 인간 안에 이식되어 뿌리를 내린다. 외적 측면에서 이것들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생산한다. 이것이 아껴두셨던 것들이 이식되는 것이요, 이를 수단으로 인간의 거듭남이 성취되어 주님과의 결합이, 내적 인간과 외적 인간의 결합이 성사를 이룬다. 물론 이런 일들은 각자가 자기의 악과 잘못들을 회개하는 정도에 비례해서 가늠되며, 동시에 죄의 용서가 있고 그 결과 모든 선과 진리가 내향으로는 지각되고 외향으로는 그것들이 주님으로부터 임을 인정하게 된다. 이제 5절에 있는 영적 가르침에 관해 합리적으로 실용적으로 그 가치를 찾았을 줄로 생각된다. 더불어 5절이 어떻게 앞 절과 뒷 절에 연결되는가도 가늠했으리라 본다. 6절과 7절의 상세한 설명은 앞의 장들에서 누차 있어졌으므로 참조하기 바란다. A.C. 6156, 1616, 5897-11, 1737, 2284.

8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시어,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더불어 지각이 있게 하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주님으로부터의 계시가 있는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speaking)이란 유입을; 모세란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표현하고; 말함(saying)은 지각을 뜻한다. A.C. 6156, 1616, 5897-11, 1737, 2284.

9절.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명령하여, 말하라, 이것은 태워 바치는 제물의 법이다. 태워 바치는 제물은 아침 까지 온 밤을 제단 위, 화덕(hearth)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제단의 불은 거기에서 계속 타고 있어야 한다.

영적 의미

선 가운데 있는 이들, 그리고 선으로부터의 진리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유입을 통해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에 관해, 자기 상태가 희미할 경우 이 사랑은 지배력이 있게 되고, 자기 상태가 밝은 경우 자신 스스로 결정해서 이루어진 듯 되어 진다. 그 이유가 사랑은 꾸준하고 결코 소멸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지시함은 선과 그로부터 파생된 진리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있는 유입을; 말함은 지각을; 태워 바침을 드리는 법이란 순수한 사랑으로 주님께 예배드림에 관한 것을; 제단에서 타는 그 불 위의 태워 바침의 제물이란 사랑이 주권을 가져야 할 것임을 뜻하는데, 그 이유는 불이 타고 있다는 것이 사랑이 활성화되어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밤새도록 이란 희미한 모든 상태를; 아침이란 밝게 빛남의 상태를; 제물이 불 위에 타고 있어야 함은 사랑은 항상 존재해야 한다는 것, 결코 소멸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마치 스스로 결정한 듯 한 인간의 결심을 말한다. A.C. 5486, 9946, 1791, 1822, 8680, 9723, 6832-3, 9787, 2784.

10절. 그리고 성직자는 그의 아마포 옷을 입어라, 그리고 그의 아마포 반바지(bleeches)를 그는 그의 살에 입어라. 그리고 그는 불이 제단에서 태워 바치는 제물을 태워버려 나온 재들을 가져다가 제단 측면에 그것들을 놓아라.

영적 의미

그래서 천적 선은 신앙 속의 진리로 모습을 드러내며 진리가 선과 결합함으로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유지 존속될 것이다. 그래서 예배의 이전 상태가 어떠하든 그 상태의 선용에 충당되며 그럼으로 해서 승강된다. 그러나 이전 상태는 종속된 위치에 있어야 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아마포 옷을 입음이란 천적인 선은 신앙의 진리들에서 명백해질 것임을; 아마포 반바지를 자기 살에 입는 것은 진리가 선과 결합하는 것은 내적으로 뿐만 아니라 외적으로도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을; 성직자가 재를 취한다는 것은 이전의 상태가 어떠했든지 그 상태는 승강될 것임을; 재를 제단 옆에 둔다는 것은 이전 상태가 승강을 이루어도 그것은 따로 따로 종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A.C. 9946, 9814, 9959, 160, 161, 9723, 9736, 10185.

11절. 그리고 그는 그의 옷들을 벗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옷들을 입을 것이다, 그리고 재들을 진영 밖 깨끗한 장소로 운반하라.

영적 의미

진리의 상태가 변하면 선의 상태도 그에 따라 언제나 변화된다. 그리고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진리와 선의 지식은 천국 삶에서 분리되어 조용한 곳인 외적 기억 안에 있게 되고, 그곳은 악에 오염되지 않는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 옷을 벗고 다른 옷으로 갈아 입는다는 것은 진리에 관한 상태의 변화는 언제나 선에 관한 상태의 변화를 동반할 것이다는 것을, 그 이유는 옷(garment)이 진리들을 의미하고; 성직자는 선을; 벗고 입는다는 것은 상태의 변화를 말하기 때문이다. 진지 밖 깨끗한 곳에 그 재를 내다버림은 더 이상 사용이 요구되지 않는 지식들은 악에 오염 안되어 정지 상태인 외적인 기억에 머물러 천국 생명과 분리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데, 그 이유는 진영 밖이란 천국 생명에서의 분리를, 깨끗한 곳이란 분리라는 행동은 순수하다는 것, 또는 정지 상태인 외적 기억을 뜻하기 때문이다. A.C. 9814, 9946, 3405, 4236, 4545, 2625, 9723.

12절. 그리고 제단 위의 불은 거기서 계속 타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꺼지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성직자는 매일 아침 그것에서 장작을 태워라. 그리고 그는 그것 위에 태워 바치는 제물을 정돈하여 놓아라, 그리고 거기에서 평화 제물의 지방을 태워라.

영적 의미

그러나 순수한 사랑, 가장 깊은 예배는 계속 활동하여 소멸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 사랑은 각자의 매 새로운 상태에서 자기가 노력해서 선한 듯 하게 결과될 것이다. 애착과 생각의 완전한 배열이 유지되어야 하고 특히 자유와 평화의 원리에서 천적 선을 주님께 돌려야 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 절에 대한 윤곽은 불의 의미에서 명확해진다. 이 불은 순수한 사랑인 예배의 가장 깊은 것을; 불이 탄다함은 이와 같은 예배가 활동되고 있음을; 타고 있는 불이 꺼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사랑이 꺼져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을; 성직자는 아침마다 장작을 지피라는 것은 위와 같은 예배는 선 가운데 있는 이들에 의해 결과되되 각자의 매 새로운 상태에서 마치 자신이 선해서 그렇게 하는 듯 이루어진다는 것을; 태워 바침의 제물을 장작 위에 차려놓는다 함은 애착과 생각들이 완전하게 정리정돈 됨을; 평화 제물의 지방을 그 위에서 사른다함은 자유의 원리로부터 온 천적 선은 주님에게 돌려야함을, 그 이유는 지방이 천적 선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평화 제물이란 자유로부터 온 예배를 말한다. A.C. 9723, 6832-3, 9946, 2784, 7844, 5288, 10033, 353, 10097, 2776.

13절. 불은 제단 위에서 계속 타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꺼지지 않아야 한다.

영적 의미

그 이유는 심정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할 경우 신성한 사랑과 자비는 인간과 더불어 항존하고 결코 중단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기서 불은 신성한 사랑과 자비를 말한다. 그 불이 계속 타고 있음이란 신성한 사랑과 자비는 인간과 더불어 꾸준히 존재함을; 꺼지지 않는다 함은 신성한 사랑과 자비는 결코 중단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데,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이 절이 앞 절에서 이미 언급되었다는 것이다. 같은 서술이 반복된 것은 글자 의미에서는 강조를 위한 것이겠지만, 영적 의미의 경우, 내적 의미의 시리즈를 탐사할 수 있기 위해서이며 신성한 사랑과 자비는 바뀔 수 없다는 진리를 알게 해준다. A.C. 1528, 10133.

14절. 그리고 이것은 식사 제물의 법이다. 아론의 아들들이 제단 앞, 주님 앞에 그것을 바쳐라.

영적 의미

영적 수준에서 천적 사랑으로 주님을 예배함 또는 선행으로부터 예배함에 관한 질서의 법칙은 이러하다. 이 예배는 신성한 선으로부터 파생된 신성한 진리들로 진행되는데 이것이 영적인 예배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법이란 태워 바침으로 의미된 주님을 사랑함과 관련되는 진리들을 말하고, 이웃을 사랑함은 식사 제물로 의미되고 있다. 그러므로 본 장의 시리즈에서의 식사 제물은 영적 수준에 있는 천적인 사랑 다시 말해 선행으로부터의 예배를 말해주게 된다(2장 1-2절 참조). 아론의 아들들이란 영적인 예배는 신성한 선으로부터 파생된 신성한 진리로부터 진행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제물을 제단 앞 주님께 바침이란 영적 예배는 천적인 수준과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이 예배는 주님으로부터임을 말하고; 제단은 주님, 그리고 주님께 대한 예배를 명시하기 때문이다. A.C. 1121, 2177, 9946, 10024, 9714.

15절. 그리고 그는 거기로부터 식사 제물의 고운 곡식 가루 한웅큼, 그것으로부터 기름, 그리고 식사 제물 위에 있는 모든 유향을 가져 가라, 그리고 그것을 주님께 달콤한 향기를 위해 그것으로부터의 기념물로 제단 위에서 태워라.

영적 의미

또한 이 예배는 선에서 파생되는 순수한 진리 안에 있는 영적 인간과 더불은 충만된 능력으로 있게 된다. 이에 더하여 진정한 예배는 천적, 영적 선과 진리를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이 예배 속의 사람은 내적 기억 안에 새겨진 거룩한 평화와 쉼의 상태에서 모든 선이 주님으로부터임을 인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한웅큼 집는다는 것은 충분한 능력이 행사된다는 것을; 고운 곡식가루는 선에서 파생된 순수한 진리를; 기름과 유향은 천적이고 영적인 선과 진리를; 식사 제물 위에란 진정한 예배를(위 14절 참조), 한웅큼 집어 낸 것을 제단에서 태운다 함은 주님께 성별되게 드림을 다시 말해 모든 선과 모든 진리는 그분께로부터 임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달콤한 항기, 또는 쉼의 냄새란 거룩한 평화와 쉼의 상태를; 기념물이란 내면의 기억에 새겨지는 것을 말한다. A.C. 7518, 9995, 2177, 10177, 10052, 10055, 10054, 6888.

16절. 그리고 그것으로부터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의 아들이 먹는다. 이것은 거룩한 장소에서 누룩 없이 먹어라. 만남의 천막의 뜰에서 그들은 그것을 먹어라.

영적 의미

선 가운데 있는 이들, 이 선으로부터 진리 가운데 있는 이들, 즉 천적, 영적 인간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선은 거짓으로부터 분리된 상태라야만이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다. 그리고 거룩한 상태에서, 마음의 자연적 수준에서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게 되는 바, 모든 수준에서 충만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거기에 남은 것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만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온 선은 천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수단으로 자기 것이 됨을; 누룩이 없다는 것은 거짓된 상태와 분리되어있음을; 거룩한 장소에서 먹는다 함은 거룩함의 상태 즉 사랑과 신앙의 상태가 자기 것이 됨을; 만남의 천막의 뜰에서란 마음의 자연적 수준에서, 그런고로 모든 수준에 있게 되는 상태를 말하는데, 그 이유는 뜰(court)이란 가장 바깥 천국 즉 자연적 천국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 바깥 수준에서 “모든 내면에 있는 것들이 질서 있게 집합되어 각기 형체를 이루며 연결된다.” 이러므로 해서 각 수준에 있는 것들이 충만되어 있게 된다. A.C. 9946, 2177, 2187, 2342, 3652, 9741, 9825, 9824.

17절. 누룩과 더불어 구워져서는 안 된다. 나는 불로 만든 내 제물로부터 그들의 몫으로 그것을 주었다. 이것은 가장 거룩하다, 마치 죄로 인해 바치는 제물 같이, 죄가 있음으로 해서 바치는 제물도 같다.

영적 의미

위의 자기 것으로 삼는 상태의 준비에서까지도 거짓의 혼합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주님께서 신성한 사랑과 자비에 의거 천적, 영적 인간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이것은 마음의 각 수준에 채택되는 가장 깊은 선이다. 그리고 이것은 악과 잘못에서 해방되는 이전의 상태 중 가장 깊은 수준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누룩을 넣어 굽지 말라는 것은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온 선을 자기 것 삼기 전 준비할 때부터서도 거짓과 혼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주님께 살라 바친 제물에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몫이란 식사 제물로 표현된 선은 천적 인간과 영적 인간에게 주님이 내리신 선물이라는 뜻이다. 더 없이 거룩하다 함은 위의 선은 마음의 각 수준에 채택되는 가장 깊은 선임을 명시하고 있다. A.C. 8496, 7906, 4397, 9946, 10055, 10042, 9156.

18절. 아론의 자손들에서 모든 남성은 불로 만든 주님의 제물로부터 당연한 몫을 너의 자손 대대로 영원히 먹을 것이다. 그것들을 만지는 자는 누구든지 거룩해진다.

영적 의미

그래서 이 천적, 영적인 선은 의지 안에 있는 선으로부터 이해함 안에 있는 진리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에 의해 자기 것으로 삼아질 것이다. 이는 상태가 변화하는 가운데서도 마치 자기 것인 듯 영원히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신성한 사랑으로부터 존재하여 인간이 받는 것이고 그 사람에 의해 인정된다. 정녕 모든 사람은 각자가 생산하는 거룩함이 어떠하든, 설사 아주 경미하다 해도 이와 같은 선과 접촉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식사 제물은 천적이고 영적인 선을; 아론의 후손 가운데 남자란 선으로부터 온 진리를; 먹는다함은 자기 것 삼음을; 자손대대로 영원한 법 또는 규정이란 상태의 매 변화 때마다 자신의 것인 듯 여기며 선을 받는다는 것을 말하는데, 그 이유는 이것이 천국 질서이기 때문이다. 주님께 불로 태워 바침이란 신성으로부터 인간에 의해 받아짐을; 제물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 거룩해진다는 것은 이와 같은 선에 접촉되는 모든 것은 그 접촉이 아무리 경미하다 해도 거룩함의 상태임을 말한다. A.C. 4581, 2177, 725, 9946, 2187, 7884, 7931, 9845, 1712, 10055, 10023.

19절. 그리고 주님께서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더구나 지각을 주시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신성한 선이 밝혀주시는 사항이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speak)이란 유입을; 모세는 신성한 진리 또는 진리를; 말함(saying)은 지각을 각각 뜻한다. A.C. 2951, 7010, 6752, 1791, 1822, 4장 1절 참조.

20절. 이것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봉헌이다, 이것을 그들은 자기가 기름부워지는 그 날에 바쳐라. 즉 식사 제물을 위한 고운 곡식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항구적으로 아침에 그것의 절반을, 그리고 저녁에 그로부터의 절반을 (바쳐라).

영적 의미

진리가 선과 밀접하게 결합할 때, 천적 선 그리고 그 선으로부터 진리 안에 있게 되는 이들은 예배에서 주님을 인정한다는 것, 그런 예배, 그런 사람들에게 신성한 선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는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요, 예배에 기쁨과 평화를 가져오므로 이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임을 인정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과 그의 아들이란 선 가운데 있어 그 선으로부터 파생된 진리 안에 거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봉헌(oblation)이란 예배에서 주님을 인정하는 것을; 기름 부을 때란 진리가 선과 친밀하게 결합되는 상태를; 정기적으로 바치는 고운 곡식 가루 십분의 일 에바란 신성한 선으로부터 신성한 진리에서 아껴두신 것들(remains)은 항구적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아침에 절반, 저녁에 절반이란 밝은 상태와 희미한 상태 모든 상태에서라는 뜻이다. A.C. 9946, 349, 922, 9954-7, 576, 10136, 10133, 10255, 6000, 9787.

21절. 굽는 납작한 냄비에서 기름을 가지고 그것을 만들어라. 그것이 적셔질 때, 너는 가져올 것이다. 구워진 조각들 가지고 너는 주님에게 달콤한 향기를 위한 식사 제물을 바쳐라.

영적 의미

그리고 위와 같은 상태의 준비는 외면의 진리들을 수단으로 천적인 선에 의해 작동될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진리가 선 아래 질서있게 배열된다. 그리하여 그것이 주님으로부터임을 인정하고 예배는 평화와 기쁨을 가져온다.

세부적 영적 의미

기름을 반죽하여 굽는 납작한 냄비에서 구운 식사 제물이란 위와 같은 상태를 위한 준비는 천적 선에 의해 작동되는 외면의 진리를 수단으로 한다는 것을; 적신 채로 가져온다는 것은 진행(processing) 중에 있음을; 여러 조각을 낸다는 것은 선 밑에 진리를 질서 있게 배열함을;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림이란 평화와 환희를 주시는 분이 주님이심을 인정하는 상태를 말한다. A.C. 8496, 7356, 2177, 9993, 10048, 3110, 10054.

22절. 그리고 아론의 아들들 사이로부터 아론 대신에 있을 기름부워진 성직자가 그것을 바쳐라. 영원한 법령에 의해 이것은 주님에게 온전히 태워져야 한다.

영적 의미

그리고 진리와 결합된 외적인 선은 충분한 결합을 결과하면서 본질이 되는 선을 섬길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이 내적인 것으로부터 오는 외적 예배는 영원히 있게 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의 뒤를 이어 기름 부어지는 성직자란 외적 선이 진리와 결합되어 본질되는 선을 보살펴주는 것을; 식사 제물이란 결합을 결과되게 하는 것을(20절 참조); 영원히 지킬 규정으로 이 제물을 주님께 온전히 태운다는 것은 내적인 것에서 근원되는 외적 예배는 영원히 있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A.C. 9954-7, 10017, 18절 참조.

23절. 그리고 성직자의 모든 식사 제물은 온전히 태워야 한다. 그것이 먹어져서는 안 된다.

영적 의미

선으로부터 온 가장 깊은 모든 예배는 주님께 그 원인을 돌려야 한다. 그 이유가 인간은 자신 스스로부터서는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바치는 식사 제물을 온전히 살라야 함은 선으로부터 드리는 가장 깊은 예배는 온전히 주님께 돌려드려야 함을; 먹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인간은 자신 스스로 선을 자기 것 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A.C. 9946, 10055, 2187.

24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더 나아가, 지각을 주시는 신성한 진리에 의해 신성한 선으로부터 계시가 있는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존재를; 이야기하심(speaking)은 유입을; 모세는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말함(saying)은 지각을 말한다. A.C. 2951, 7010, 6732, 1791, 1822.

25절.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야기하거라, 말하시기를, 이것은 죄 바침의 제물의 법이다. 태워 바치는 제물이 죽여지는 장소에서 죄 바침의 제물을 주님 앞에서 죽여라. 이것은 최고로 거룩하다.

영적 의미

유입을 수단으로 선 가운데, 그 선으로부터 진리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악에서 해방되는 동안의 예배에 관해서이다. 이 예배의 가장 깊은 것은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오는 주님의 예배인 것으로 판명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예배를 준비함도 신성한 사랑으로부터이라는 것은 똑같다. 한 마디로 이 예배도 가장 깊은 예배의 결과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야기하거라, 말하시기를”란 선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는 유입(influx)이; 진리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는 지각(perception)이 주어진다는 말이다. 죄 바침의 제물의 법이란 악에서 해방되는 동안에 있게 되는 예배에 관해서라는 뜻이고; 죄 바침의 제물이 태워 바침의 제물을 죽이는 자리에서 죽여야 함은 악에서 해방되는 동안의 예배는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는 태워 바침의 제물에 관한 의미와 똑 같이 위 예배는 순수한 사랑으로부터임을; 최고로 거룩함은 위 예배가 가장 깊은 예배의 결과이라는 뜻이다. A.C. 9946, 2951, 1791, 1822, 3400, 10053, 2625, 10024, 10129.

26절. 죄를 위해 그것을 바친 성직자가 그것을 먹는다. 거룩한 장소에서, 만남의 천막의 뜰에서 그것을 먹어라.

영적 의미

선 가운데 깊이 있는 사람은 외적으로 있는 선을 자기 것으로 삼게 될 것이다. 이것은 예배의 거룩한 상태이다. 이것은 영적, 천적 인간으로부터 파생되는 자연적 인간 안에서 자기 것으로 삼게 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죄를 위해 그것을 바치는 성직자가 그것을 먹는다함은 선 가운데 아주 깊이 있는 사람은 외적으로 선을 자기 것 되게 하리라는 것을; 그 제물을 거룩한 장소에서 먹는다함은 위 예배의 거룩한 상태를; 만남의 천막의 뜰 이란 자연적 인간 안에서의 자기 것 삼음을 말한다. A.C. 9946, 2187, 9741, 9825.

27절. 그것으로부터의 고기에 접촉하는 것은 무엇이든 거룩해 진다. 그리고 어떤 옷에 그것으로부터의 피가 뿌려짐이 있을 때, 너는 뿌려진 그 곳을 거룩한 장소에서 씻어라.

영적 의미

그러므로 외적 예배는 내적인 것으로부터 거룩하게 될 것이다. 선행의 거룩한 상태가 이와 같은 예배에 있는 진리와 결합될 때, 죄로부터 깨끗해짐이 이 거룩한 상태에서 거행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 고기에 닿는 것은 다 거룩하다함은 외적인 것도 내적인 것으로 인해 거룩해진다는 것을 뜻한다. 접촉한다(touch)는 것은 영적인 접촉(contact)을 말한다. 죄 바침의 제물의 고기란 외적 예배를; 거룩함이란 내적 예배와 연결되는 결과임을; 죄 바침의 제물의 피가 옷에 뿌려졌음이란 위의 예배 안에서 진리와 결합한 선행의 거룩한 상태인데, 그 이유가 본문에서의 피는 선행을; 옷은 진리를 명시하기 때문이다. 피가 뿌려지는 동안은 결합하는 동안을 말하고; 뿌려진 피를 씻는다는 것은 순수해짐을; 거룩한 장소란 거룩한 상태를 각기 말한다. A.C. 4404, 10199, 8682, 10040, 1001, 1073, 10047, 3147, 2625, 25-26절 참조.

28절. 그것(고기)이 끓여진 흙으로 만든 그릇은 깨트려라. 그리고 만일 그것이 놋쇠로 만든 그릇에서 끓여진다면, 그 그릇은 문질러 닦고, 물로 행굴 것이다.

영적 의미

그러나 이와 같은 예배에 도구가 되었을 뿐인 자연적 애착은 분리되어야 할 것이다. 만일 이런 자연적 애착이 주님으로부터 와서 선한 것이라면 모든 악과 거짓으로부터 필히 깨끗해 있어야 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흙으로 만든 그릇은 자연적 애착만을 뜻하나, 본문의 경우 사용 도구인 진리에 관한 애착을 말한다. 깨트린다는 것은 분리됨 또는 제거함을; 놋그릇에 넣고 끓였다함은 선으로부터 파생된 진리를 수단으로 준비됨을; 문질러 닦고, 물로 행군다는 것은 악과 거짓 모두로부터 순수해짐을 말한다. A.C. 10105, 5948, 9163, 10105, 10105.

29절. 성직자들 사이에 모든 남성은 그것을 먹는다. 이것은 최고로 거룩하다.

영적 의미

선으로부터 오는 모든 진리는 그것 자체에 있는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내적인 것과 결합된 외적 예배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남자로서 성직자인 사람이 먹는다는 것은 선으로부터 온 모든 진리는 그 사람 자신의 선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최고로 거룩하다 함은 외적 예배가 내적 예배와 결합되었다는 것을 말하는데, 그 이유는 이 예배가 죄에서 순수해짐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가장 거룩함은 가장 깊은 상태, 내적인 것을 말한다. A.C. 725, 9946, 2187, 3400, 10129.

30절. 그리고 죄 바침의 제물은 그것의 피를 거룩한 장소에서 보상을 만들기 위해 만남의 천막 안으로 가지고 오면 먹지 못한다. 그것은 불로 태워라.

영적 의미

내면이 깨끗해지기 위해 주님을 예배함, 이는 천국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진행되는 선행의 본질되는 원리로부터 있게 된다. 그리고 이는 죄로부터 깨끗해지게 하여 외적인 것이 내적인 것과 재회하게 한다. 그러나 인간에 의해 본래 자기 것이라고 우겨서는 안 된다. 이는 주님으로부터 모두 있어진 것임을 인정해야 하며 그분께 모두 바쳐져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죄 바침의 제물의 피를 만남의 천막 안으로 가져 옴이란 내면이 순수해짐을 포함하는 신실한 예배를; 피는 선행을; 천막으로 가져옴은 내면이 순수해질 수 있는 것, 천국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있어짐을 인정하는 상태를 말한다. 성소에서 죄를 벗겨줌이란 거룩한 상태에 있는 내적 인간과 외적 인간이 재회하는 것을; 먹지 말라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것으로 삼지 말라는 것을; 불로 태움은 주님께 모두를 헌납함을 말한다. A.C. 3400, 1001, 2356, 3540-3, 10042, 2625, 2187, 10052.

6장의 종합적 고찰

첫 장부터 살펴온 다양한 상태, 다양한 조건에서 주님을 예배하는 모습들을 표현하는 태워 바침과 제물에 관한 신성한 법의 세부 사항들을 이제 조심스럽게 다시 새겨 보아야 한다. 먼저, 가장 높은 수준에 속하는 예배에 관한 점, 다시 말해서 주님 또는 그분으로부터 오는 선함과 진리에 대한 가장 순수한 사랑, 선함과 진리 자체를 위해서 일 경우의 예배이다. 이 예배의 법칙은 무엇일까? 이미 읽은 구절들에서 알 수 있는 바, 위의 예배는 인간 안으로 생명이 신성하게 유입되면서 한편으로 유입 받는 당사자가 주님과 협동할 때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태워 바침의 제물은 아침이 될 때까지 밤새도록 장작 위에 있도록 명령되어 있었다. 거듭나는 모든 과정에서 신성한 사랑이 인간 안으로 흘러드는 역사가 중단되는 일이 결코 없다. 그리고 각 사람 안에서 예배라는 처방을 생산하면서 이 사랑은 예배자의 각기 특별한 개성 안에서 드러나진다. 모든 사람은 주님을 예배하되 각자 자기가 예배하는 듯 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각자가 신중히 생각해서 자발적으로 예배하지 않으면 진정한 예배는 존재될 수 없다는 말이다. 이것이 태워 바침의 제물이 장작(firewood) 위에 있도록 명령하신 구절의 의미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자연계에서의 열을 주목해 보자. 우리는 이 열을 태양으로부터 획득하되 대기를 통해서 얻게 된다. 이를 영적으로 보면, 신성한 사랑은 언제나 인간과 더불어 현존하시되 그 수단은 각 인간에게 있는 적절한 매개체를 통해 현존하신다. 이 매개체가 성경에서 성령 또는 위로자라 불리는 신성한 진리이다. “내가 시대 끝날 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니…” (마태 28:20). “아침이 될 때까지 온 밤을…” 신성한 사랑은 결코 주무시지 않는다. 열에 대해 또 한가지 생각해 볼 것은, 열을 얻을 수 있게 하는 장작, 즉 의식적으로 눈에 보이는 물질이 없으면 열을 획득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것이 창조의 법칙이요 영적으로 거듭남의 법칙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기의 의지와 이해함을 주님으로부터 취해서 마치 자기 것인 냥 사용한다. 그리하여 최말단 속에서 거듭남을 구성하는 천국적 결혼인 교회와 주님과의 결합을 이룬다. 이런 결합은 인간의 고유한 것(proprium), 다시 말해서 자기가 실감하는 삶에 결과되므로 마치 자신의 것인 듯 여긴다. 이것은 인간 삶의 광대한 법칙이라 부를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이것이 삶의 기초요 이 기초 가장 높은 곳에 주님 자신이 존재하시기 때문이다.
주님에 대한 가장 높은 사랑, 탁월한 천적 상태라 부를 수 있는 주님을 사랑함에 관련되는 또 다른 법이 있다. 아름다운 옷은 그 옷을 입은 자를 알맞게 장식해서 그 사람을 표현해 주듯이 주님을 사랑함이 진리 안에서 나열되는 것이다. 그것들은 선으로부터 파생되는 진리들, 선을 표현하는 진리들, 선과 결합된 진리들이다. 본문에서 선으로부터 파생된 진리가 성직자의 옷으로 의미되고, 선을 표현하는 진리란 상황에 따라 옷을 바꿔 입는 모습으로, 선과 결합된 진리는 맨살에 옷을 걸치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천적 예배에 관련된 세 번째 법은 재를 내다버리는 행동으로 표현되고 있다. 가장 높은 선으로 인도하는 각 사람의 상태들이 그 선에 비해 하급으로 우선 간주하여 이미 행해진 것들을 한쪽으로 젖혀놓지 않으면 그는 가장 높은 선을 실감하는데 이를 수 없다. 이러면서도 그는 자기가 하급이라고 여긴 것들을 아주 귀하게 여겨 그것에 신뢰를 두고 있어야 한다. 종교 생활에서 어느 정도 진전을 가진 사람이라면 현재의 순수한 경험과 비교해 볼 때 어린 시절 종교 생활 속의 거룩한 상태들이 비록 재와 같이 여겨지겠지만 그 상태들이 선한 삶을 불러일으키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되고 느껴질 때 어느 누구가 자기의 어린 시절 종교 생활을 마음에서 회상해 볼 수 없다 할까? 확실한 것은 어느 누구도 그것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 거룩한 상태들은 정말로 “진지 밖”에 있다. 그래서 그것들은 천국 질서의 한 부분을 형성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것들은 “깨끗한 곳”에 있다. 다시 말해 그것들은 악하고 거짓된 것의 한 부분이 되어질 수 없다는 말이다. 달콤함은 우리의 초기 상태들에 존재한다. 그럼에도 하나의 법칙으로 그 달콤함은 완전이라는 우리 상태 안에서 활동하지 않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천적 예배의 네 번째 법이 있다. 천적 예배는 가장 깊은 것(inmost)으로부터 꾸준히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 이는 애착들이 질서있게 배열되어야 한다는 것, 가장 깊은 사랑은 평화와 힘이라는 상태로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 위 사항은 반드시 인간에 의해 성취되어야 한다는 것, 그 이유가 주님의 사랑과 자비는 결코 실패하지도 않으며 결코 꺼지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덧붙여 알 수 있는 것은 주님의 사랑과 자비는 선한 자 뿐 아니라 악한 자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주님의 사랑과 자비는 극을 이루는 두 계층 모두가 생명을 잃지 않게 배려하시기 때문이라는 것과 양측 모두 자기들 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 그들이 영원히 연계될 자신의 존재에서 더욱 더 질서있게 배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알 수 있는 바는, 천적 예배의 법칙은 신성한 사랑으로부터 즉각 진행된다는 것, 이 역사는 환희와 평화로 천국들을 채우고, 각자가 획득한 품성에 따른 인간 존재의 상태와 조건이 최상이 되도록 영원히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천적 예배에 관한 위와 같은 특별한 언급에 이어 따라 오는 것은 영적 예배의 법칙인데, 이 법칙은 선행 또는 이웃을 사랑함에 특별한 관계를 가지게 된다. 바꿔 말해서 천적 예배는 신성한 선에 관계되는 반면, 영적 예배는 신성한 진리에 관계된다. 그 이유가 선행의 선은 진리를 매개체로 해서 획득되기 때문이다. 아론의 아들들로 식사 제물을 바치도록 하는 의무 규정이 위에 대한 표현이라는 것을 우리는 관찰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구절에는 주님을 사랑함과 이웃을 사랑함 둘 다가 포함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주님께” 와 “제단 앞”이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한 가지가 더 있다. 이웃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말씀으로부터 진리를 받으면서 주님을 인정하지 않고는 존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 15절은 영적 예배가 천적 예배와 어떻게 연결되는 가를 보여 준다. 즉 두 예배 모두 예배라는 행동 속에서 능력을 구체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동기로서 선행을 가지는 진리를 원리로 하여 이웃에 선을 행하는 것은 진실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마태 25:40). 이것이 기름 먹은 곡식 가루를 한웅큼 집어내 유향 전부와 함께 제단에서 태우는 것이다. 이 속에 선한 행동, 선으로부터의 진리, 주님께 대한 사랑, 신성한 진리를 듣되 감사히 여기며 지각함, 신성한 사랑의 힘있는 영향력, 이 모두가 하나로 응집되어 있다. 그러나 법에 순종해야 한다는 단순한 행동 속에 있는 영적 인간은 그 행동 안에 포함되어 있는 위와 같은 모든 것들을 보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한다. 그런고로 그는 자기가 행하는데 충만된 힘은 실감하지도 못한다. 다음 세 절은 이를 보여준다. 이 법칙은 선을 행함을 수단으로 선을 자기 것 삼게 한다는 것이다. 이 선은 자기 생명의 일부가 된다. 마치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가 자기 고유의 것이나 된 듯 여겨질 정도로 사유화되지 않으면 영적 생명을 가지지 못한다 (요한 6:53). 이제 두 단어 사유(자기 것이 되게 함, appropriation)와 인간 고유(자아, proprium) 사이에 연결이 있음을 주목해 보자. 그러면 다음 세 절에 있는 세부 지시 사항에 대한 근거를 알게 된다. 식사 제물은 누룩 없이, 거룩한 장소에서, 만남의 천막의 뜰 안에서 먹도록 지시하고 있다. 이는 선을 사유하기 위한 조건들이다. 늘 악과 거짓을 거절해야 하고, 진리를 사랑함으로 거룩해야 하고, 자연적 차원에서는 종교 생활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유를 위한 준비 과정에서부터 주님이 주시는 선물이요 영혼을 살찌우는 선과 진리를 위해 악과 거짓을 멀리해야만 한다. 이러면 선이 작동되고 인간이 협동하는 곳, 그곳이 비록 저지른 악이나 부주의로 인한 잘못을 회개하는 때이라 하더라도 거기에는 거룩함의 상태가 존재된다. 이런 거룩함의 상태는 거듭나는 과정에서 선함의 수준이 어떠하든 진리 가운데 있는 모든 이에게 관련된다. 이 상태는 외적 인간과 결합하는 수단도 되는 고로 18절에서 규정(statue)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또한 영적 차원에서 내적 인간이 함께 하는 바 아론의 아들로 표현되고 있다. 인간이 선한 삶이라는 진정한 예배에서 주님을 인정할 때 있어지는 신성한 사랑의 결과가 위와 같다. 선과 진리는 주님으로부터이기 때문에 인간의 이기심과 다르다는 것은 그가 선과 진리의 거룩함을 의식하지 않고는 제아무리 작은 선과 진리도 의식 속에서 감화 받을 수 없다.
이제 넓은 주제 안에 있는 작은 주제가 등장하는데 19절에서부터 나타난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위한 특별한 식사 제물이 있다. 이는 거듭나는 과정에서 선 가운데 내향적으로 있는 모든 이를 위한 제물이고, 기름부어질 때란 선이 천국적 삶을 실감하는 진리와 마지막으로 결합할 때의 제물이기도 하다.
선과 진리를 자기 것 삼는 최고의 과정이 위와 같은데 이 단계가 식사 제물로 표현되는 영적 삶의 법을 마무리 짓는다. 이 경우에서 짚어보아야 할 것은 아껴둔 것(remains)들은 충만해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선의 상태에서 온 진리의 아껴둔 것들인데, 이는 진리의 이해도가 밝든, 희미하든 두 상태 모두에서 (충만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이에 관련하여 다음 절에서 관찰되는 바, 이 완전한 천적 상태는 적절한 준비 과정에 의해 달성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빵굽는 것, 빵굽는 방법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는 선 밑에 진리들을 질서있게 배열함으로 천적인 것을 준비해 가는 인간의 영적 체험인데 사실 이는 주님의 일로서 우리에게 비밀스러운 것이지만 마치 당사자가 진행하는 듯 보인다. 거듭남에서 각자는 자기가 자유로이 그 일을 해가기 때문에 자기가 일구어낸 듯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주님 자신이 가장 많은 부분을 해주시고 있다. 사실 어떤 측면에서 볼 때 그분만이 일하신다고 해야 옳은 것이다 (이사야 44:24). 그러므로 성직자의 식사 제물에 관한 세 가지 중요한 법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즉 성직자만이 제물을 바칠 수 있고 바친 제물은 주님께 온전히 살라 바칠 것, 성직자가 바치는 모든 식사 제물은 온전히 사를 것, 아무도 그것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외적인 선은 결합을 도모하기 위해 내적인 것을 섬겨야 한다는 것, 이 상태에서의 예배는 선을 주님께 모두 돌려야 한다는 것, 위 사항은 가장 낮은 천국 또는 가장 수준 낮은 예배에서도 그대로 이행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어떤 천사, 어떤 사람도 선과 진리의 결합을 완전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그들은 선이 자기 것인 듯 사유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이 장은 죄 바침의 제물에 관련된 법을 서술함으로 마감짓고 있다. 죄 바침의 제물은 회개하는 동안 실지의 악들을 제거하는 예배이다. 먼저 이 예배는 가장 깊은 선으로부터 진행된다. 비록 이와 같은 선이 아주 깊은 차원인지라 아직 실감 안되고 있다 해도 어찌됐든 가장 깊은 데에서부터 진행되어진다. 그래서 죄 바침의 제물은 “최고로 거룩한 것”이라고 서술되고 있다. 둘째로 선은 예배의 위 같은 상태에서 자기 것이 되어진다. 자기 것이 된 상태 역시 거룩하다. 그리고 이 상태는 자연적 수준 안에 존재한다. 셋째로 “닿는 것”이란 모든 자연적 애착들이고, 이 애착에 속한 생각들이 옷으로 의미되는데, 이것 모두 거룩해지고 순수해진다. 넷째로 단지 도구로 사용된 자연적 애착은 주님으로부터 온 선이 순수해지는 동안 분리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모든 진리는 선을 자기 것으로 삼는데, 이러는 가운데 선행에 속한 모든 선은 주님께 돌려야 하고 자기 고유에 속한 것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해서 온전한 재회가 주님과 인간 사이에 형성되고, 순수한 사랑으로 주님께 온전히 봉헌된다.
이상으로부터 우리는 어떻게 거듭나는 과정의 세부 사항들이 말씀에서 묘사되는 가를 살펴보았다. 이 거듭남에 대한 묘사가 이스라엘 교회와 유대 교회라는 처방 속의 다양한 제사를 수단으로 각기 다른 방법에서 묘사되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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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7장

성경: 레위기 1장

1. 그리고 이것은 죄가 있음의 제물(guilt offering)의 법이다
2. 그들은 태워 바치는 제물을 죽이는 장소에서 죄가 있음의 제물을 죽여라. 그리고 그로부터의 피를 그는 제단 빙둘러 뿌려라.
3. 그리고 그는 그것으로부터의 모든 지방을 바쳐라. 즉 꼬리에 있는 지방, 그리고 내장들을 덮은 지방.
4. 그리고 두 콩팥들, 그리고 그것들에 있는 지방, 이것은 허리 근처이다, 그리고 간 위에 있는 대망을 콩팥과 더불어 가져 가라.
5. 그리고 성직자는 주님에게 불로 만든 제물을 위해 제단에서 그것들을 태워라. 이것이 죄가 있음의 제물 (바침)이다.
6. 성직자들 사이에 모든 남성은 그것으로부터의 (것을) 먹는다. 이것은 거룩한 장소에서 먹을 것이다. 이것은 최고로 거룩하다.
7. 죄의 제물 (바침) 같이 죄가 있음의 제물 (바침)도 그러하다. 그것들을 위한 법은 하나이다. 그것과 함께 보상을 받게 하는 성직자, 그가 그것을 가진다.
8. 어떤 사람의 태워 바치는 제물을 바친 성직자, 바로 그 성직자가 자기가 바친 태워 바치는 제물의 가죽을 자신의 것으로 한다.
9. 오븐(oven)에서 구워진 모두 각각의 식사제물, 그리고 튀기는 납작한 냄비에서 옷을 입힌 모든 것, 그리고 구워내는 납작한 냄비 위에서 (구운 모든 것)은 그것을 바치는 성직자의 것이다.
10. 그리고 기름과 섞이거나 마른 식사 제물 모두 각각은 아론의 아들들이 균등하게 가진다.
11. 그리고 이것은 누군가가 주님에게 바치는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의 법이다.
12. 만일 그가 감사함(thanksgiving)을 위해 그것을 바칠 경우, 그러면 기름을 섞은 누룩 없는 과자들, 그리고 기름을 바른 누룩 없는 웨이퍼들, 그리고 고운 곡식 가루에 기름을 섞은 과자들을 바쳐라.
13. 누룩 있는 빵을 가지고 그는 감사함을 위한 자기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과 더불어 자기 봉헌물을 바쳐라.
14. 그것으로부터 그는 들어 올리는 제물을 위해 각 봉헌물로부터 한 개를 바칠 것이다. 그것은 평화 제물의 피를 뿌리는 성직자의 몫이 된다.
15. 그리고 감사함을 위한 그의 평화 제물의 희생제물의 고기는 봉헌한 날에 먹어라. 그는 아침까지 그것의 어떤 것도 남겨두어서는 안된다.
16. 그러나 만일 그의 봉헌의 희생 제물이 서약, 또는 자유 의지의 바침이다면, 그것은 그의 희생 제물을 바친 그 날에 먹을 것이다. 그리고 내일 그것의 남은 것을 먹을 것이다
17. 그러나 셋째 날에 희생 제물의 고기의 남은 것은 불로 태울 것이다.
18. 그리고 만일 그의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의 고기의 어떤 것이 셋째 날에 먹게 된다면, 그것(제물)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고, 그것(제물)을 바친 자에게 귀속시켜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역겨운 것이다. 그것을 먹은 혼은 자기 불법을 낳는다.
19. 그리고 불결한 어떤 것에 접촉한 고기는 먹지 말라. 그것은 불로 태워야 한다. 그리고 고기에 관하여, 깨끗한 모든 이는 그것으로부터 (것을) 먹어라.
20. 자기의 불결함을 가진 채 주님께 속한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의 고기를 먹는 혼은 그의 백성들로부터 잘리울 것이다.
21. 그리고 누군가가 어떤 불결한 것, 사람의 불결함, 또는 불결한 짐승, 또는 어떤 불결한 역겨운 것에 접촉되었을 때, 그리고 주님에 속한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의 고기를 먹을 때, 그 혼은 자기 백성으로부터 잘리울 것이다.
22.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23.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야기하라, 말하기를, 너는 소, 또는 양, 또는 염소로부터의 지방을 먹지 말라.
24. 스스로 죽은 것으로부터의 지방, 그리고 짐승에 찢겨진 것으로부터의 지방은 여느 다른 섬김에 사용되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너희는 그것을 절대로 먹지 말라.
25. 짐승의 지방, 사람들이 주님께 불로 만든 제물을 바친 것으로부터의 지방을 먹는 자는 누구든지, 정녕 그 혼은 자기 백성으로부터 잘리울 것이다.
26. 그리고 너희는 너희 거주지들의 어떤 곳에서도 가금류로부터 이든, 짐승으로부터 이든 어떤 종류의 피도 먹지 말라.
27. 어떤 피 이든 먹는 자는 누구든지, 그 혼은 그의 백성으로부터 잘리울 것이다.
28.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 하셨다, 말하시기를,
29.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야기하라, 말하시기를, 주님께 자기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을 바치는 자는 그의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로부터 그의 봉헌물을 가져올 것이다.
30. 자기 자신의 손들이 불에 의해 주님께 (바치는) 제물을 가져와라. 가슴과 더불어 지방을 가져 와라, 가슴은 주님 앞에 흔들어 바치기 위해 흔들어라.
31. 그리고 성직자는 제단에서 지방을 태워라. 그러나 가슴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것이다.
32. 그리고 오른쪽 넓적다리를 너희는 너의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로부터 들어올려 바침을 위해 성직자에게 주어라.
33. 아론의 아들들 중에서 평화 제물의 피, 그리고 지방을 바친 자는 그의 몫으로 오른쪽 넓적 다리를 가져라.
34. 나는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로부터의 흔들어진 가슴과 들어올린 넓적 다리를 이스라엘의 후손들로부터 가져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스라엘의 자손으로부터 영원히 당연한 것으로서 성직자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줄 것이다.
35. 이것은 불로 만든 주님의 제물로부터, 아론의 기름부워진 몫, 그리고 그의 아들들의 기름부워진 몫인데, 그분이 성직자의 직무에서 주님을 섬기도록 그들을 내놓은 날,
36. 즉, 주님께서 그들을 기름부웠던 날에, 그것들을 주도록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명령하셨다. 이것은 그들 대대로 영원히 당연하다.
37. 이것은 태워 바침의 법, 식사 바침의 법, 죄를 바침의 법, 죄가 있음을 바침의 법, 신성하게 함(consecration)의 법, 그리고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의 법이다
38. 이것을 주님께서는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명령하셨는데, 이 날에 그분은 시내의 광야에서 주님에게 그들의 봉헌들을 바치라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셨다.

영적 의미 요약

* 신앙 속의 진리로 주님을 예배하는데 따른 신성한 질서의 법칙. 1-7절
* 인간이 선을 마치 자기 것인 냥 삼을 수 있는 일반 법칙 8-10절.
* 자유로이 주님을 예배하는데 따른 법칙. 11-21절
* 인간이 선과 진리를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없는 일반 법칙. 22-27절
* 영적 선과 천적 선이 주님으로부터라고 인정되고, 주님에 의해 생명이 주어질 때, 주님에게서 온 능력들을 실습함으로 이 두 선은 자기 것이 된다. 28-36절.
* 예배에 관한 신성한 질서의 일반 요약. 37-38절.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그리고 이것은 죄가 있음의 제물(guilt offering)의 법이다

영적 의미

신앙의 진리로 주님을 예배함에 관한 신성한 질서의 법칙, 동시에 외면의 악들로부터 해방됨에 관한 것은 다음과 같다: 위와 같은 예배, 해방은 선의 측면에서의 가장 깊은 상태로부터 파생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죄가 있음의 제물이란 신앙의 진리로 예배함을, 더불어 외면의 악들에서 해방됨을; 더 없이 거룩한 제물이란 위와 같은 예배와 해방은 선에 관한 측면의 가장 깊은 상태에서 기인되었음을 의미한다. A.C. 9156, 3400, 10129.

2절. 그들은 태워 바치는 제물을 죽이는 장소에서 죄가 있음의 제물을 죽여라. 그리고 그로부터의 피를 그는 제단 빙둘러 뿌려라.

영적 의미

위와 같은 예배나 해방을 위한 준비는 순수한 사랑에서 주님을 예배함과 비슷하거나 같은 것에 기초를 둔다: 그리고 이 예배와 해방을 수단으로 진리와 선의 결합이 모든 형식과 수준에서 결과되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바쳐진 동물을 죽임이란 위와 같은 예배를 준비함을; 그 동물을 태워 바침의 제물을 죽이는 자리에서란 위와 같은 예배는 순수한 사랑에서 주님을 예배함과 비슷하여 그것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을; 제단을 빙둘러 피를 뿌린다는 것은 이런 예배와 해방됨으로 해서 진리가 선과 결합함이 모든 형식과 등차에서 결과된다는 것을 뜻한다. A.C. 10024, 10053, 2623, 10047.

3절. 그리고 그는 그것으로부터의 모든 지방을 바쳐라. 즉 꼬리에 있는 지방, 그리고 내장들을 덮은 지방.

영적 의미

위의 결합에서 비롯되는 모든 선은 모두 주님의 것으로 돌려야 하는데, 이에는 모든 외면의 것, 자연적 선까지 포함해서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지방을 모두 바친다는 것은 위와 같은 예배 속의 모든 선은 주님께 돌려야 한다는 것을; 꼬리의 지방은 외면에 속한 자연적 선을; 내장을 덮은 지방은 외적 측면에 있는 자연적 선을 나타내고 있다. A.C. 10033, 10071, 10029, 10030, 9632.

4절. 그리고 두 콩팥들, 그리고 그것들에 있는 지방, 이것은 허리 근처이다, 그리고 간 위에 있는 대망을 콩팥과 더불어 가져 가라.

영적 의미

또한 진리의 순수함 또는 식별, 그리고 천국적 결혼으로 이끌어 주는 선, 진리의 식별을 증진케 해주는 내면의 자연적 선과 더불어 이상의 모든 것은 이기적인 선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두 콩팥과 거기에 붙어 있는 지방이란 진리를 깨끗하게 함과 식별함을, 그로 인해 선까지 깨끗하게 하고 식별되게 함을; 허리란 진리와 선의 결합을; 간과 콩팥에 붙은 지방이란 진리의 식별을 증진시키는 내면 속에 있는 자연적 선을; 지방을 떼어냄이란 이기적인 선으로부터 분리함, 멀리함, 그 결과 주님을 섬기도록 성별되게 하는 것을 뜻한다. A.C. 10032, 10074, 3915, 10031.

5절. 그리고 성직자는 주님에게 불로 만든 제물을 위해 제단에서 그것들을 태워라. 이것이 죄가 있음의 제물 (바침)이다.

영적 의미

그리고 위의 모든 것은 주님의 덕분으로 돌려야 하고, 그리고 순수한 사랑으로 예배하는 가운데 그분께 바쳐야 한다. 이것이 외면에 있는 악에서 해방되는 예배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그것들을 받아 제단에서 여호와께 태우는 제물로 바친다는 것은 선에 속한 모든 다양한 것들은 주님께 돌려야 하고 순수한 사랑으로 예배함으로 그분께 바쳐져야 한다는 것을, 이것이 죄가 있음의 제물이다 함은 이것이 외면에 있는 악으로부터 해방되게 하는 예배이다는 것을 명시한다. A.C. 10052, 10055, 3400, 10042.

6절. 성직자들 사이에 모든 남성은 그것으로부터의 (것을) 먹는다. 이것은 거룩한 장소에서 먹을 것이다. 이것은 최고로 거룩하다.

영적 의미

그리고 선행의 선에서 비롯되는 신앙 속의 진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위 예배 가운데서 선을 자기 것으로 삼게 될 것이다. 이것은 거룩한 상태에서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이고, 가장 깊은 선이 바깥쪽에서 표현된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것을 먹을 수 있는 성직자가 된 모든 남자란 선행의 선에서 생겨나는 신앙의 진리 안에 있는 이들은 이 예배 속에 있게 되는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을; 거룩한 장소란 거룩한 상태를; 더 없이 거룩함이란 가장 깊은 선이 바깥쪽에서 표현됨을 나타내고 있다. A.C. 725, 9946, 2187, 2625, 10129.

7절. 죄의 제물 (바침) 같이 죄가 있음의 제물 (바침)도 그러하다. 그것들을 위한 법은 하나이다. 그것과 함께 보상을 받게 하는 성직자, 그가 그것을 가진다.

영적 의미

그리고 이 예배는 신앙의 선으로 주님께 예배함으로 하나되고, 그로부터 인간은 내면의 악으로부터 해방된다; 넓은 측면에서의 악에서 해방됨과 똑같다; 그리고 악으로부터 해방되고 주님과 재회함으로 선 가운데 있게 되는 사람들은 위 예배 속에 있는 선을 자기 것으로 삼게 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죄 바침의 제물과 죄가 있음의 제물의 규정이 같다는 것은 이 예배는 신앙의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는 것은 한 가지이고, 그로 인해 내면의 악에서 인간이 해방되는 것도 마찬가지임을 명시한다. 위 두 제물에 한 가지 법이 있다는 것은 넓은 측면에서 해방됨은 똑같은 규정임을 말한다. 그리고 보상을 받게 하는 성직자란 선 가운데 있는 이들은 악에서 해방됨과 주님과의 재회를 수단으로 이 예배 속의 선을 자기 것으로 삼게 될 것임을 명시하고 있다. A.C. 9156, 10042, 9946, 10042, 2187.

8절. 어떤 사람의 태워 바치는 제물을 바친 성직자, 바로 그 성직자가 자기가 바친 태워 바치는 제물의 가죽을 자신의 것으로 한다.

영적 의미

주님에게 전적으로 바친 사람으로부터 온 선은 예배자에 의해 자기 것으로 삼게 되되, 오로지 외적인 것만, 또는 마치 자기가 선의 주인인 듯 여기는 한도에서 자기 것으로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란 예배함으로부터 오는 선을 명시하고, 태워 바침의 제물은 주님께 온전히 바침을, 가죽이란 외적인 것을, 성직자가 가죽을 차지함이란 외적 측면에 한해서만 자기 것으로 삼는 것, 또는 마치 자기 것인 듯 여기는 것을 말한다. A.C. 9946, 8680, 3540, 2187.

9절. 오븐(oven)에서 구워진 모두 각각의 식사 제물, 그리고 튀기는 납작한 냄비에서 옷을 입힌 모든 것, 그리고 구워내는 납작한 냄비 위에서 (구운 모든 것)은 그것을 바치는 성직자의 것이다.

영적 의미

이런 자기 것을 삼는 범위는 진리가 선과 결합하는 장소인 자연적 인간에 있는 세 등차의 모든 상태에서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태워 바침의 제물이 천적 예배의 상태를 의미하고 식사 제물이 영적 예배의 상태를 의미하는 바, 이 구절에서의 식사 제물은 위 두 상태 중 중간 상태를 명시한다. 오븐, 튀기는 납작한 냄비, 굽는 납작한 냄비란 자연에 있는 선의 다양함 또는 외적 인간에 있는 선의 다양함을; 구워냄이란 준비됨이 자연적 인간 안에서 진리가 선과 결합함으로 거기서 거행됨을; 고운 곡식 가루는 진리를; 뜨거움은 선을 명시하고 있다. A.C. 2177, 7356, 8496, 2177, 934.

10절. 그리고 기름과 섞이거나 마른 식사 제물 모두 각각은 아론의 아들들이 균등하게 가진다.

영적 의미

그리고 예배 속의 모든 신실한 행동은 그것이 애착으로부터 의식해서 이든, 애착 없이 가상적인 신앙의 진리로부터 이든, 인간에게 소속되는 것은 외적으로만 또는 마치 자기 것인 냥 여기는 것뿐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식사 제물은 천적, 영적으로 있는 예배의 신실한 행동을, 기름에 반죽함은 의식적으로 선 또는 애착으로부터 임을, 반죽하지 않은 것(마른 것)은 애착 없는 외견상인 것을, 아론의 모든 아들이란 외적에서만 자기 것이 됨을 말하는데, 그 이유는 서로의 관계 측면에서 볼 때 아들은 외적 측면에 있는 진리를, 대 성직자로서의 아론은 내적 측면에 있는 선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A.C. 4581, 2177, 8185, 9946.

11절. 그리고 이것은 누군가가 주님에게 바치는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의 법이다.

영적 의미

모든 개개인의 경우에서 자유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는데 관련된 신성한 질서의 법칙이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평화 제물에 관한 규정이란 각 개인의 경우에서 자유로이 주님을 예배함에 관련된 신성한 질서의 법을 말한다. A.C. 3880, 10097, 10137.

12절. 만일 그가 감사함(thanksgiving)을 위해 그것을 바칠 경우, 그러면 기름을 섞은 누룩 없는 과자들, 그리고 기름을 바른 누룩 없는 웨이퍼들, 그리고 고운 곡식 가루에 기름을 섞은 과자들을 바쳐라.

영적 의미

예배에 감사의 표시가 있다 하면, 그 예배는 거짓에 오염 안 된 천적 선과 결합된 진리로부터 있어야 할 것이고, 세 등차에서도 위의 진리는 선에서 비롯되어야 하며 선으로 인도해야 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 구절에서 누룩 없이 기름으로 반죽하여 만든 과자, 누룩 없이 기름만 발라 만든 웨이퍼(wafer, 속빈 과자), 고운 곡식 가루를 기름에 개어 과자 모양으로 만든 것이란 각 세 등차에서 진리가 선과 결합한 것, 거짓에 오염 안된 것, 위와 같은 진리는 선에서 기인되고, 선으로 인도함을 명시하고 있다. A.C. 3880, 7906, 9993, 9994, 9995.

13절. 누룩 있는 빵을 가지고 그는 감사함을 위한 자기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과 더불어 자기 봉헌물을 바쳐라.

영적 의미

그리고 감사함으로부터 주님을 자유롭게 예배하는 사람은 천적 사랑에 예배의 바탕이 있어야 하고, 더불어 자신 속에는 악뿐임을 겸손히 인정하며 시험을 통하여 주님에 의해 순수해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감사함을 위한 평화 제물과 더불어 바치는 누룩 넣은 과자란 은택을 느껴서 자유로이 주님을 예배하는 사람은 자신 속에 든 것은 악뿐이다는 것, 시험들을 통해 주님에 의해 이 악들이 깨끗해졌음을 인정하는 바, 천적 사랑에 예배의 바탕을 둔다. A.C. 7906.

14절. 그것으로부터 그는 들어 올리는 제물을 위해 각 봉헌물로부터 한 개를 바칠 것이다. 그것은 평화 제물의 피를 뿌리는 성직자의 몫이 된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이 천적 상태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고백되어야 하며, 그 결과가 자기 것으로 삼은 순수한 천적 상태이고, 그는 위와 같은 예배에서 진리를 선에 결합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들어 올려 바치기 위한 제물 중 하나란 주님만으로부터 선을 받았다는 것을; 그것이 성직자의 것이라 함은 순수한 천적 선은 위와 같은 예배에서 진리를 선에 결합하는 사람에 의해 자기 것이 된다는 것을 명시한다. A.C. 10097, 9946, 10047.

15절. 그리고 감사함을 위한 그의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의 고기는 봉헌한 날에 먹어라. 그는 아침까지 그것의 어떤 것도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영적 의미

받은 축복의 고마움으로 있게 되는 예배 속에 있는 세부적인 선은 천적 사랑의 상태에서만 자기 것으로 삼아진다. 그리고 이와 같은 선은 만일 이기적인 사랑으로 한 쪽이라도 오염되어 있거나, 거듭남의 새로운 상태에서 분리되어 있다면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바치는 그 날 고기를 먹는다 함은 은택에서 비롯된 예배 속의 특별한 선은 준비의 상태에서만 자기 것이 된다는 것을,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라는 것은 만일 이기적 사랑에 한편으로는 오염되었거나 또는 거듭남의 새로운 상태에서 분리된다면 절대로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다는 말이다. A.C. 2187, 487, 10114-17, 7860, 8480-3.

16절. 그러나 만일 그의 봉헌의 희생 제물이 서약, 또는 자유 의지의 바침이다면, 그것은 그의 희생 제물을 바친 그 날에 먹을 것이다. 그리고 내일 그것의 남은 것을 먹을 것이다

영적 의미

그러나 주님이 설비해줄는지 모른다는 바램에서, 또는 자연적 사랑으로부터 영적 사랑 또는 선행에서 기인되는 자유로운 예배에서 선은 각 경우 즉 특별한 상태뿐만 아니라 아껴두신 것들을 통해 항구적으로 자기 것으로 삼아질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서약이란 영적 사랑으로부터의 예배와 주님이 설비하시도록 하는 자발적인 행위를 의미하는 바, 마음에 우러나서 드린 제물은 자유로운 가운데서의 예배를, 먹는다는 것은 자기 것으로 되는 것을, 날이란 상태를, 다음 날이란 이후 항구적으로 있게 됨을 명시하고 있다. A.C. 3880, 10097, 2187, 487, 3998, 8788.

17절. 그러나 셋째 날에 희생 제물의 고기의 남은 것은 불로 태울 것이다.

영적 의미

그럼에도 심판이 진행됨, 선의 상태가 완성되었을 때 이기적 선에 속한 모든 것은 마지막 시험들에서 승리를 통해 사라져 버릴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사흘째 되는 날까지 남은 고기를 불에 태운다는 것은 심판의 과정에서 선의 상태가 완성될 때 단지 이기적일 뿐인 선은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A.C. 8480-3, 10115, 900.

18절. 그리고 만일 그의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의 고기의 어떤 것이 셋째 날에 먹게 된다면, 그것(제물)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고, 그것(제물)을 바친 자에게 귀속시켜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역겨운 것이다. 그것을 먹은 혼은 자기 불법을 낳는다.

영적 의미

그러나 만일 위의 과정 중에서 이기적인 선을 자기 것으로 만들면 그 선은 주님과 결합하지 못하며, 천국적 선으로 돌리지도 못한다. 그 이유는 그것은 천적 선에 정반대 되기 때문인 바, 이기적 선 안에 있는 사람은 그의 악이 거짓과 결합된 채 남아 있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제물의 고기는 천적 선을 말하나 이 절에서는 반대 의미로 사용되는 바, 이기적 선을 말하는데 그 이유는 선이 남용되었음을 명시하기 때문이다. 여호와께 못마땅하게 보여짐이란 주님과 절대로 결합되지 못함을, 귀속됨도 없게 된다는 것은 이기적 선은 천국적 선으로 그에게 귀속될 수 없다는 것, 오히려 불결하게 있는 사람은 거짓과 결합되는 악 속에 남아야만 한다는 말이다. A.C. 10114, 9713, 1813, 6052, 7454, 9937.

19절. 그리고 불결한 어떤 것에 접촉한 고기는 먹지 말라. 그것은 불로 태워야 한다. 그리고 고기에 관하여, 깨끗한 모든 이는 그것으로부터 (것을) 먹어라.

영적 의미

악에 오염된 선은 어떤 선이든지 자기 것으로 삼지 않는 게 합법적이다. 이런 선은 시험에 의해 순수해지게 하거나 또는 천국 사랑에 의해 극복되어야 한다. 그러나 선은 악에서 순수해진 모든 사람에 의해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 구절에서의 고기는 선을 명시했다. 접촉한다는 것은 영적으로 접촉됨을; 불결한 것이란 악한 애착을; 먹지 못함이란 시험에 의해 깨끗하게 됨, 또는 천국적 사랑의 힘으로 극복함을; 깨끗하게 된 사람이 먹는다 함은 선은 악에서 깨끗해진 사람에 의해 그의 것이 된다는 말이다. A.C. 10114, 4404, 10130, 7816, 934, 2187, 10130.

20절. 자기의 불결함을 가진 채 주님께 속한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의 고기를 먹는 혼은 그의 백성들로부터 잘리울 것이다.

영적 의미

외적 자유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는 가운데 선을 자기 것으로 삼으면서도 내적으로 자신을 순수하게 하는 회개의 일을 하지 않을 때 그는 진리와 선으로부터 통째로 분리되어 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불결한 몸으로 여호와께 바친 평화 제물의 고기를 먹는 사람은 그 백성으로부터 추방시킨다 함은 외적 자유에서 주님을 예배하는 가운데 선을 자기 것으로 삼으면서도 내적으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회개의 일을 행하지 않는 사람은 진리와 선에서 전적으로 분리될 것임을 명시하고 있다. A.C. 2187, 3880, 10097, 10130, 5302, 3294-5.

21절. 그리고 누군가가 어떤 불결한 것, 사람의 불결함, 또는 불결한 짐승, 또는 어떤 불결한 역겨운 것에 접촉되었을 때, 그리고 주님에 속한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의 고기를 먹을 때, 그 혼은 자기 백성으로부터 잘리울 것이다.

영적 의미

악에 접촉함으로 오염되도록 자신을 허용한 사람, 그 허용이 내적으로 이든, 외적으로 이든 모두 해당된다. 그리고 외적 예배만으로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은 체하는 사람은 선과 진리로부터 분리되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불결한 것과 접촉한다는 것은 악과 접촉한다는 것을, 사람, 짐승, 더러운 것이란 서로간의 관계측면에서 볼 때 내적으로, 내면에서, 외적으로라는 말이다. 여호와께 바친 평화 제물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외적으로 선을 자기 것 삼았다고 추정하는 것을; 백성으로부터 추방함이란 진리와 선에서 분리됨을 말한다. A.C. 10139, 10130, 7523, 6052, 2187, 5302, 3294-5.

22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지각을 주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하여 주님으로부터의 계시가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호와는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은 유입(influx)을; 모세는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그리고 말함은 지각을 명시했다. A.C. 2951, 7010, 6752, 1791, 1822.

23절.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야기하라, 말하기를, 너는 소, 또는 양, 또는 염소로부터의 지방을 먹지 말라.

영적 의미

영적 교회에 소속된 사람에 대한 가르침, 그는 자연적 상태 이든 영적 상태에서 이든, 선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상태에 있다 해도 자신으로부터서는 천적 선을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각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러라란 지각하는 영적 교회 속의 사람에 대한 가르침을, 먹는다는 것은 자기 것으로 삼는다는 것을, 지방이란 천적 선을, 소, 양, 염소란 서로의 관계적 측면에서 볼 때 자연적 선과 영적 선, 그리고 선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상태를 말한다. A.C. 7063, 3654, 1791, 2187, 10033, 5913, 6126, 4169.

24절. 스스로 죽은 것으로부터의 지방, 그리고 짐승에 찢겨진 것으로부터의 지방은 여느 다른 섬김에 사용되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너희는 그것을 절대로 먹지 말라.

영적 의미

더불어 영적 생명이 없는 애착들, 탐욕으로 상해받는 애착들은 수단으로서는 사용이 가능하나, 그렇다고 영적 인간에 의해 자기 것으로 삼아질 수는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죽은 짐승의 지방이란 영적 생명이 없는 애착을; 찢긴 짐승의 지방이란 탐욕으로 인한 상처를; 다른 일에 사용한다는 것은 위의 애착들은 수단으로서는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먹지 못함이란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음을 말한다. A.C. 4171, 2541, 5148, 2187.

25절. 짐승의 지방, 사람들이 주님께 불로 만든 제물을 바친 것으로부터의 지방을 먹는 자는 누구든지, 정녕 그 혼은 자기 백성으로부터 잘리울 것이다.

영적 의미

그리고 만일 어떤 사람이 예배에서 주님께로부터 온 선을 자기 것으로 삼되 그것이 절대로 자기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그는 그것으로 인해 교회로부터 분리되어 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호와께 태워 바치는 가축의 지방을 먹는 사람(soul)은 백성으로부터 추방시켜야 한다는 것은 만일 누군가가 주님이 자기 것 삼으라고 한 선을 가지고 원래 자기 것이라고 우겨대려 한다면 그는 교회에서 분리되어 진다는 말이다. A.C. 2187, 10055, 3294-5.

26절. 그리고 너희는 너희 거주지들의 어떤 곳에서도 가금류로부터 이든, 짐승으로부터 이든 어떤 종류의 피도 먹지 말라.

영적 의미

더욱이 영적 인간이 지적 측면 또는 의지 측면에서이든지 간에 자기가 주님에게서 받는 선이 절대적인 자기 소유라고 주장하는 것은 불법적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어디에서 살든지 모든 새와 짐승의 피를 먹지 말라는 것은 주님께로부터 선은 지적 측면에서 이든 의지측면에서 이든 본래 자기 것이라고 영적 인간이 주장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말이다. A.C. 2187, 10033, 40, 46.

27절. 어떤 피 이든 먹는 자는 누구든지, 그 혼은 그의 백성으로부터 잘리울 것이다.

영적 의미

외적 예배에서 위의 사항을 위선적으로 행한다면, 누구든지 간에 그는 그것 때문에 교회로부터 분리되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어떤 피든지 그것을 먹는 사람(soul)은 겨레로부터 추방하라는 것은 외적 예배에서 위선적으로 선을 자기 것 삼는 사람은 그것 때문에 교회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 A.C. 10033, 2187, 5302, 3294-5.

28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 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지각을 주는 신성한 진리로 주님이 이렇게 밝히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호와란 사랑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말하심이란 유입을; 모세는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말함은 지각을 명시하고 있다. A.C. 2001, 2951, 7010, 6752, 1791, 1822.

29절.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야기하라, 말하시기를, 주님께 자기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을 바치는 자는 그의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로부터 그의 봉헌물을 가져올 것이다.

영적 의미

영적 교회의 사람에 대한 가르침이다. 자유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는 상태에서 그는 내향적으로 순수한 선 안에 있어야 하고 그 선으로부터 행하되 마치 자신이 그렇게 하는 듯 행해야 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러라는 것은 지각을 주시는 영적 (왕국의) 교회 속의 사람에 대한 가르침이다는 것을; 평화 제물이란 자유로이 주님을 예배함을; 주님께 봉헌을 가져옴이란 당사자가 내향적으로 순수한 선 가운데 있음을; 그의 평화 제물로부터의 희생 제물이란 이 선으로부터 행동하되 마치 자신의 선인 듯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A.C. 7063, 3634, 1791, 10097, 2001.

30절. 자기 자신의 손들이 불에 의해 주님께 (바치는) 제물을 가져와라. 가슴과 더불어 지방을 가져 와라, 가슴은 주님 앞에 흔들어 바치기 위해 흔들어라.

영적 의미

자신의 의지와 이해함을 훈련시킴으로 그는 자신을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내향적으로 바칠 것이다. 그리고 영적 선 안의 천적 사랑으로 그는 예배해서 영적 선이 생명이 있게 해서 완전해지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자기 손으로 불로 만드는 주님께 대한 제물을 가져옴은 자신의 의지와 이해함을 훈련함으로 그는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주님께 자신을 내향적으로 바치게 될 것임을; 가슴과 더불어 지방이란 그가 천적인 것으로부터 영적 선 안에서 예배할 것임을; 흔듦은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얻는 것을 말한다. A.C. 10062, 10055, 10033, 10087, 10083, 10093.

31절. 그리고 성직자는 제단에서 지방을 태워라. 그러나 가슴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것이다.

영적 의미

그리고 천적 선을 수단으로 그는 예배에서 즉각 주님과 결합되고, 의식되는 삶의 천적 등차에 있는 영적 선을 수단으로 그는 선행의 거룩한 원리를 깨닫는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제단에서 지방을 사른다함은 예배에서 천적 선에 의해 주님과 결합함을; 갈비는 아론과 그의 후손의 몫이라 함은 선행으로 주님과 결합함을 명시한다. A.C. 10033, 10052, 10087.

32절. 그리고 오른쪽 넓적다리를 너희는 너의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로부터 들어올려 바침을 위해 성직자에게 주어라.

영적 의미

천적 결혼에서 결합된 가장 깊은 천적 선과 진리는 자유로운 상태로부터의 예배에서 주님께 모두 돌려 드려야 하고 그렇게 되면 선을 받을 수 있고 그 선이 활성적이 되어 외적으로 선용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오른쪽 넙적다리는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로부터 들어올린 성직자에게 주라는 것은 천적 결혼에서 결합을 이루는 가장 깊은 천적 선과 진리는 반드시 자유로운 상태의 예배에서 주님께 모두 돌려야 한다는 것, 받게 되는 선이 사용될 때는 외적으로 활성적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A.C. 10092-3, 10097.

33. 아론의 아들들 중에서 평화 제물의 피, 그리고 지방을 바친 자는 그의 몫으로 오른쪽 넓적 다리를 가져라.

영적 의미

선으로부터 오는 가장 깊은 천적 진리, 이를 수단으로 진리가 선과, 선이 진리와 결합함이 예배 안에서 결과되고, 이는 외적으로 불완전한 점이 없지 않으나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을 생활로서 즉각 자기 것으로 만든다.

세부적 영적 의미

평화 제물의 피와 지방을 바친 아론의 후손이 오른쪽 넓적다리를 가지라는 것은 상대적으로 불완전한 외적 예배에서 진리와 선, 선과 진리의 결합함이 결과된 선으로부터의 가장 깊은 천적 진리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의 생명을 즉각 자기 것 삼는다는 것이다. A.C. 9946, 10047, 10033, 10092-3, 2187.

34절. 나는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로부터의 흔들어진 가슴과 들어올린 넓적 다리를 이스라엘의 후손들로부터 가져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스라엘의 자손으로부터 영원히 당연한 것으로서 성직자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줄 것이다.

영적 의미

모든 활동의 근원인 영적 선과 천적 선은 악에서 해방되었기에 향유하는 기쁨과 자유로움에서 있는 예배에서 영적 인간에 의해 주님께 모두 돌려야 한다. 그럼에도 이 선은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에 의해 자기 것으로 삼아지는데 마치 영원히 자기 것인 냥 되고 이는 타고난 본능적 능력을 훈련함에서 기인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흔들어 바친 가슴과 들어 올려 바친 넓적다리는 영적 선과 천적 선을; 이스라엘 후손에게 평화 제물을 받음이란 위의 두 선이 활성화되는 근원이 주님으로부터 이다는 것을; 그 중에서 (평화 제물의 제물 중에서)란 예배가 자유로부터 있을 때를; 아론과 그의 후손에게 준다는 것은 위의 두 선을 신성한 선과 진리이신 주님께 돌려야 함을;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길이 길이 지켜야할 규정이란 위의 두 선은 천적, 영적 인간에 의해 자기 것이 되되, 마치 영원히 자기 것인 듯, 자기의 본래 능력을 실시함에서 기인된 듯 삼을 것이라는 말이다. A.C. 10087, 10092-3, 10097, 10277, 9946, 10093, 9946, 7884, 7931, 1712.

35절. 이것은 불로 만든 주님의 제물로부터, 아론의 기름부워진 몫, 그리고 그의 아들들의 기름부워진 몫인데, 그분이 성직자의 직무에서 주님을 섬기도록 그들을 내놓은 날,

영적 의미

신성한 생명과의 결합은 가장 깊은 수준인 천적 등차에서, 그리고 의지와 이해함에 결과되어지는데 결과되는 때란 사랑으로부터의 예배가 비록 불완전하다해도 신실하게 할 때, 그리고 그분에 대한 순수한 예배에서 모든 생명이 주님으로부터임을 아주 깊게 인정할 때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기름 부어진 몫이란 신성한 생명과 결합을 주는 것을; 아론과 그의 후손들이란 신성한 선과 신성한 진리를; 그런고로 의지와 이해함 측면에서는 가장 깊은 천적 등차를; 여호와께 살라 바침이란 사랑으로부터가 비록 불완전하지만 신실하게 주님을 예배함을; 아론과 그의 후손들이 여호와의 성직자로 임명되는 날이란 모든 생명은 그분을 순수하게 예배하는 가운데 그분으로부터 있게 됨을 인간이 내향적으로 인정할 때를 말한다. A.C. 9954, 9946, 10055, 10097.

36절. 즉, 주님께서 그들을 기름부웠던 날에, 그것들을 주도록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명령하셨다. 이것은 그들 대대로 영원히 당연하다.

영적 의미

그리고 주님의 유입을 수단으로 하는 영적 교회 속의 모든 사람들은 가장 깊은 생명이 그분으로부터 존재함을 그분과 결합함을 수단으로 예배에서 인정함이 가능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들을 기름 부어 세우신 날 이것을 그들에게 주라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심이란 영적 교회의 모든 사람은 주님으로부터의 유입을 수단으로 하고 가장 깊은 생명이 그분과 결합하는 예배가 그분으로부터임을 인정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대대로 지켜야 할 규정이란 영적 인간은 천국에서 거듭나는 삶의 모든 상태에서 항구적으로 주님을 인정해야 함을 말한다. A.C. 5486, 10227, 3654, 10097, 7884, 7931, 9845, 1712.

37절. 이것은 태워 바침의 법, 식사 바침의 법, 죄를 바침의 법, 죄가 있음을 바침의 법, 신성하게 함(consecration)의 법, 그리고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의 법이다

영적 의미

위 사항들은 주님을 인정하고 그분을 예배하는데 관련된 신성한 질서의 법칙들인데, 이는 천적, 영적 선을 받는 모든 등차에서, 악으로부터 해방되되 외, 내적 측면 모두에서, 주님과의 결합에 관한 것에서, 비록 불완전하지만 자유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는 모든 수준에 적용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태워 바침의 제물과 식사 제물과 죄 바침의 제물과 죄가 있음의 제물과 신성하게 함과 평화 제물에 관한 법들이라 함은 신성한 질서의 법칙인 것, 즉 주님을 인정함에 관련하여, 천적 선과 영적 선을 받는 모든 등차에서의 그분의 예배, 즉 내적, 외적으로 악에서 해방되는 측면과 주님과 결합하는 측면 그리고 불완전한 상태지만 자유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는 측면에 관련된 것들을 말한다. 위의 내용은 지금까지 살펴온 여러 구절의 설명을 참조하면 이해될 것이다.

38절. 이것을 주님께서는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명령하셨는데, 이 날에 그분은 시내의 광야에서 주님에게 그들의 봉헌들을 바치라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셨다.

영적 의미

그래서 참으로 위의 사항들은 선의 원리로부터 신성한 진리에 있는 가르침의 상태에서 시작되는데, 이 때 신성한 생명은 가르침의 아주 희미한 상태에 있는 최 말단까지 흘러 내려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이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명령하심이란 선의 원리로부터 신성한 진리로 가르침이 시작되는 것을, 주님이 모세에게 명령함이란 최말단까지에 주님의 유입이 있다는 것을, 시내 광야에서 여호와께 제물을 바칠 것이라 함은 가르침의 상태가 희미해 있으면서 주님을 예배하는 것을 말한다. A.C. 7010, 6752, 8753, 5486, 349, 922, 8753.

7장의 종합적 고찰

위와 같이 본 장의 각 절에 대한 증거들을 완성하면서 우리는 앞에 계속 전개되는 예배에 관한 신성한 질서의 다양한 법을 설명하는데 유용한 내용들을 나열해 가고 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우주의 외적인 것들은 법칙에 의해 규율되어지고 있다고 기꺼이 믿고 있다. 그리고 어떤 것은 이해가 되고 설명도 가능하지만 어떤 것은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것도 기꺼이 인정하기도 한다. 어찌됐든 인간은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는 능력을 부여받고 있고 자신이 자연과 조화를 가져옴으로 물질적 편안함과 행복을 설비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위의 경우가 우주의 외적 측면에 한정된 사항인 바, 그 외적 측면의 원인에 해당되는 우주의 내적 측면 역시 법칙에 의해 규율되고 있을 것이라고 우리로 곰곰이 생각해 보게끔 만든다. 인간이 자연계와 조화를 이루고 살 듯 자연계의 원인이 되는 것과도 친숙해져 그것에 따라 살아가는 것도 동등하게 필요하리라 본다. 자연의 법칙에 잘 순응함으로 자연적 인간이 큰 혜택을 보듯 영적 인간은 영의 법칙에 순종함으로 큰 혜택을 입을 수 있게 된다. 영의 법칙을 잘 알고 그것을 실습해 감이 없이 자연적 법칙 만에서의 순종은 인간이 바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성취하게 해주지 못한다. 더욱이 복음서의 경우 주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하늘나라와 그분의 의를 먼저 구하라고 충고하고 있지 않는가?
우주의 내적인 것을 규율하는 법칙들은 어떻게 발견해서 이해할 수 있을까? 이 탐사는 자연적 과정만으로는 안되고 계시(밝히 알려 주심)에 의해 가능하다. 자연적 인간은 자기 능력을 넘어있는 영적 법칙을 발견할 수도 없고 더욱이 그 법칙을 살아 있게 할 수도 없다. 또 한 가지 영적 인간이 비록 계시로 영적 법칙을 이해할 수 있다 해도 자기 단독으로는 그것들을 발견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영적 법칙은 무한이신 주님께 근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무한을 납득할 수 없고 오로지 무한에서 기인되는 것이 계속 존재하고 그 무한이 숙박할 수 있는 적절한 조건만이 가능하다. (요한복음 1:18). 그러므로 계시는 말씀에서 계속 주어져왔고 사실 언제나 우리로 그 무한을 밝히 알게 해주고 있다 (요한복음 1:1). 이런 연유로 말씀 안에는 영적 법칙이 함유되어 있으면서 상응을 수단으로 그 자태를 드러내는 바, 이를 수단으로 인간은 말씀 속의 영적 진리를 탐사할 수 있지만 그 외 어떤 방법으로도 탐사는 불가능하다(마태 13:34, 시편 78:2). 위를 참고로 해서 본문에 놓인 법칙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자.
신앙 속의 진리 안에 있는 사람들의 예배를 규율하는 첫 법칙이 서술되고 있다. 이 예배는 선의 측면에서 가장 깊은 상태에서 발생된다. 어찌됐든 예배자는 이 법칙이 작동되는 것을 의식적으로 눈치채지 못한다. 그 이유는 이 예배자는 선의 가장 깊은 상태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고, 주님이 그 상태를 통해 자신에게 역사한다는 것을 지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예배에는 위의 법칙이 존재한다(AC1555항). 두 번째 법칙은 이 예배를 준비하는 것은 순수한 사랑에서 예배를 준비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무엇이 준비하는 것일까? 그것은 자아를 부정하고, 악을 죄로 알고 금하며, 주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옛 생활은 거절되어야 하고, 옛 생활에서 있었던 기쁨을 단념해야 하며, 진리에 의거 행동할 결심이 실습되어야만 한다. 마지막 단계에는 주님을 인정하고 그분께 책임을 갖는 상태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위 사항들은 신앙 속의 진리로 예배하는 가운데 결과되는 것들이다. 비록 진리에의 순종은 주님이 명령하신 사항인지라 이해하든 못하든 우선 순종하고 보겠다는 원칙 하에서 이루어졌다 해도 그는 위의 결과들을 의식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세 번째 법칙은 이러하다. 진리는 반드시 선과 결합해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해 신앙은 그 신앙의 수준에 맞는 사랑과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배자가 위 사항에 관심을 계속 두고 있는 한, 위의 사항은 순종하는 삶을 수단으로 결과되어진다. 그러나 주님의 경우 관심을 두는 사항은 선의 상태 밑에 진리가 배열되는 것인 바 이 단계에서도 실현된다. 다시 말해서 순종함은 예배자로 결합을 확증하게 하고 동시에 주님의 은밀한 역사로 예배의 더 높은 등차를 위한 준비가 되게 상태가 승강된다. 네 번째 법, 이 법이 3-5절에 기술되고 있다. 기름으로 명시된 이 예배 속의 모든 선, 콩팥으로 명시된 모든 진리, 그리고 그 선과 진리의 외적, 내적 측면에서의 모두는 주님께 돌려야 하고 그분을 섬기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선으로부터 기인되는 진리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선을 자기 것 삼게 되는데 단지 외적 측면에서 다시 말해서 마치 자아로부터 선이 있는 듯 삼게 된다. 그 이유는 기름과 피에 관련되는 고기는 외적인 것을 명시하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법은 신앙 속의 진리, 신앙 속의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이 둘은 모두 악을 제거하는 것과 관련되고 예배자의 두 계층들은 8-10절에 기술된 법에 의거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예배의 각기 다른 상태들에서 자기 것이 되는데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로서 알게 되는 일반적인 법이란 아주 높은 천국의 천사나 가장 미미한 천사에 이르기까지 모두는 생명 또는 사랑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주님만이 스스로 존재하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매 순간마다 생명의 근원에 의존해야 한다. 생명이 자기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자신의 자유로운 결정을 남용함에서 모든 악은 비롯된다. 그러나 여섯 번째 법, 즉 자기 것 삼음에 대한 일반적 법은 조금 더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6절에서 제물의 고기에 관해 말해지기를 “남자로서 성직자가 된 사람은 먹을 수 있다”라 했는데, 이는 아직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선에서 기인되는 진리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선을 자기 것 삼게 될 것임을 영적으로 뜻한다. 그러나 8절에서 성직자에 관해 말해지기를 그는 태워 바침의 제물의 가죽을 차지할 것이라고 했는 바 이를 영적으로 보면 선은 그 선의 말단에 있는 진리를 자기 것 삼게 될 것과 뿐만 아니라 선은 천적 예배에서조차 외적으로 사람에 의해 자기 것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 상응적 서술의 또 다른 국면이 있는데, 인간이 내적으로 선 가운데 충분히 있을 때 그는 선을 외적으로 자기 것이 되게 할 수 있는데 이것이 고기를 먹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고, 뿐만 아니라 그는 가죽을 차지한다는 것으로 표현된 말단적 진리까지 자기 것이 된다는 말이다. 이제 모세법 속의 내적 의미에 따른 세 개의 양상들은 서로가 부합되어 합리적인 해석을 갖게 해준다.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의 완성에는 세 가지 사항이 있다; 첫째 우리는 선과 진리를 계속해서 받는 그릇임을 자각할 것, 둘째 내적인 것이 외적인 것을 자기 것 삼는다는 것, 세째 우리가 주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내적으로 더 채우면 채울수록 말단적인 것들도 더욱 완성되고 충만해져 외적 삶의 즐거움까지 누린다는 것이다. 이제 하나 더 보여주는 사항이 있다. 어떻게 9-10절의 영적 의미가 영적, 자연적, 뿐 아니라 천적 인간과 더불어 완성되도록 이 법 속에서 일하는 가에 대해서다. 이 구절에서의 “아론의 아들들”에는 자연적 선 뿐만 아니라 영적 선으로부터 진리 안에 있는 이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아론의 모든(one as well as another) 아들들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우리가 유념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해설에 필요한 통상적인 언어로 영적 의미를 서술할 경우, 우리는 시리즈가 쓰여질 때 포함되는 진리의 한 가지 양상 그 이상의 것은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 21절까지의 내적 의미에서 몇 가지를 주목해서 살펴보자. 세부적 영적 의미에서 보여준 바대로 평화 제물에 관한 여러 가지 법들은 각 개인의 경우에서 자유로이 주님을 예배하는데 관련되는 신성한 질서의 법들을 명시하고 있다. 서술된 내용을 글자대로 거듭 읽기만 해도 이 서술은 표면에서 나타나는 것 이상을 포함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누구나 대강 짐작하리라 본다. 예를 들면, 받은 축복이 고마워서 드리는 희생 제물의 고기는 바치는 그 날 먹도록 규정되었지만 서약한 대로 드린 제물이나 마음에 우러나서 드린 제물은 다음 날에 먹어도 된다고 왜 명령하고 있는지를 글자만 가지고 누가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내적 의미는 우리에게 그 이유를 보여 준다. 인간 삶의 어떤 수준에서든 진정한 예배를 실지로 구성하는 한 가지 것이 있다. 그것은 자기를 위해 예배의 대상을 사랑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내면의 동기나 이유가 조금 약한 상태와는 품질 면에서 다른 사랑이다. 주님의 속성 때문에 그분을 사랑하고 예배하는 것은 주님이 자신에게 증여한 혜택(복받음) 때문에 그분을 사랑하고 예배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위치에 있다. 따라서 받은 축복이 고마워서 드리는 예배는 우리 삶의 어떤 수준에서도 순수한 사랑에서 예배하는 것보다 하급이다. 물론 우리는 누군가를 수단으로 각자에게 수여된 축복에 감사해야 하는 것은 지당한 것이다.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은 일종의 범죄 같아서 그런 사람은 자신 스스로 배은망덕함도 죄이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다. 주님은 그분의 친절하심이 우리를 강요하기 때문보다는 그분 자신의 이름을 위해 그분을 사랑하기를 원하시지 않을까? 그분의 친절을 사랑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분 자체를 사랑하는 것 즉 그분의 친절을 모방하는 것이 더 나은 것이다. 이로부터 알 수 있는 바, 왜 받은 축복이 고마워서 드리는 제물은 사랑으로부터(마음에 우러나서) 드리는 제물보다 하급인지, 왜 전자와 후자는 구별되어야 하고, 왜 후자 속에 진정한 감사가 있는지, 이를 본문의 글자대로 말한다면, 왜 우리는 받은 축복이 고마워서 드리는 제물의 고기는 바친 그 날 먹어야 하는지, 이를 영적으로 말한다면 우리의 감사함(gratitude)이 주님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분리되어야 하는지 알게 해준다. 이것이 11-15절의 내적 의미에 있는 실질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평화 제물에는 받은 축복(gratitude)에 고마워서 드리는 제물 외에도 서약한 대로 드리는 제물도 포함되어 있다. 스웨덴볽의 「천국의 신비」 3880항을 참조해 보면 전자는 주님을 사랑함과 구별되는 이웃을 향한 선행으로부터 드리는 예배 또는 천적 예배와 구별되는 영적 예배를 표현한다는데 대한 다양한 성경 인용 구절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서약한 대로 마음에 우러나서 드리는 제물(free-will offering)은 자유로부터 온 자연적 예배를 명시하고 있다. 자유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는 것이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모든 평화 제물에 관해 말해지는 바, 평화 제물은 “깨끗하게 되고 성별되기 위함보다는 평안함에 속하는 바 그 제물은 거룩한 장소에서 먹도록 되어있고, 신성한 예배로부터 심정 속의 기쁨을 입증하게 된다” (AC 10114항). 이로부터 분명한 한 가지는 평화 제물은 시험에서 승리한 후 사랑의 자유로부터 드리는 예배나 충분히 거듭난 상태에서 드리는 예배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런 조건하에 선을 자기 것 삼는 것이 제물을 먹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고 이와 같이 자기 것 삼음은 계속적으로 있었고 현재에서도 존재한다는 것이 첫째 날 먹고 남은 것을 “다음 날” 먹는 것으로 명시되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천적 선을 자양분으로 언제나 삼아야 하며, 거듭나는 동안일 경우 그는 시험 후 평화와 쉼의 상태에서 계속적으로 선을 자기 것 삼음으로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12절에서 기술된 바와 같은 천적 상태에 도달한 까닭에 그는 이를 넘어 갈 수 없다. 이것이 셋째 날 또는 마지막 새로운 상태이므로 그날 가운데서 선을 자기 것 삼을 수 있을 뿐이다. 그 반면 영적 인간은 선을 자기 것 삼는 상태 즉 선을 실감하는 상태에서 “다음 날”이라는 천적 상태를 기대하게 된다. 그리고 자연적 인간은 영적, 천적 상태를 즐거이 기대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핀 바에서 알게 되는 것 하나는 자기 것으로 삼는 법이 15절과 16절에서 다르게 기술되었는지에 대한 이유이다. 선을 자기 것 삼는 데에 관한 또 다른 법이 이제 우리로 시선을 모으게 하고 있다.
그 중 첫 번째 사항이 17절에 표현되어 있는데, 그것은 심판의 과정에서 단지 이기적일 뿐인 선은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세부적 영적 의미에서 보여준 바대로 이다. 이 구절은 순수한 선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18절의 경우는 사악한 자에 관해서이다. 이기적인 선이 심판의 과정에서 자기 것이 될는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주님과 천국 삶에서 자신을 떼어내는 원인이 되고 만다. 게다가 악의 확증과 더불어 항구적으로 악 속에 있게 된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 각자에 해당되는 마지막 심판은 자연계에서 떠난 직후 곧바로 있기 때문이다. 그런 뒤 인간은 더 이상 선과 악의 선택의 자유를 누릴 수 없다 (천국과 지옥 480항). 그리고 그는 가르쳐질 여지를 남기지도 않을 것인 바, 악 속에 영원히 거해야만 한다. 이 말에 한 가지 더 첨부해 본다면, 아마 그 사람은 그런 상황에 있는 것이 자신을 위해 더 나은 처지일 것이다. 그 이유는 그것이 자기로 선과 진리로부터 완전히 분리해 주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분리는 그 사람에게 고통의 원인이 된다. 다음 두 절에 포함되어 있는 세 번째 법은 선을 자기 것 삼는 것은 악으로부터 깨끗해짐으로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 반면 네 번째 법은 이 시리즈를 끝내는 바, 바깥쪽으로는 정의로우면서 내향으로는 불순해서 위선과 모독에 묶여 있을 경우, 이것 역시 선과 진리로부터의 분리는 필수적으로 있게 된다는 것을 선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모든 이런 법이 보여주는 것은, 선은 가르쳐지고 있는 상태나 싸우는 상태 동안에서는 인간에 의해 실감되지도 않고 자기 것 삼아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훈육과 투쟁 이후 주님이 자유와 기쁨으로 진정으로 예배되어질 때 가능해진다.
이제 자유로부터 예배하는 가운데 선을 자기 것 삼는 일반 주제에 관한 두 개의 중요한 작은 분과가 등장한다. 전자는 아무도 선과 진리를 절대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다는 것, 그럼에도 후자에서 인간은 모든 것이 자신에게 달려 있는 듯 행동하면서 동시에 그렇게 행동하게 한 힘이 주님으로부터 왔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을 이식할 목적으로 진리로 훈육되는 인간의 어린 시절 상태로부터 시작해서 있게 되는 모든 경우에 있는 예배의 법에 관한 일반 요약으로 본 장은 결말을 짓고 있다. 이에 관한 것은 3장에서도 발견될 것이다. 그러나 본 장의 경우는 좀 더 특별한 것이 있다. 그 이유가 여기서 말하는 바는, 인간이 어떤 선이나 진리를 자신으로부터라고 하면서 자기 것 삼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단지 자연적일 뿐인 애착, 따라서 영적 생명이 없는 애착들은 수단으로는 사용할 수 있지만 자기 것으로 삼아질 수는 없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인간이 거듭나기 전에 있는 이기적이고 뒤집혀있는 삶이 어떻게 적절히 사용되어야 하는 가를 보게 되고 어떻게 신성한 섭리가 그런 삶을 수단으로 더 높은 삶에로 인간을 인도해 가는 가를 보게 해준다. 이 경우가 그렇게 안 된다면, 어떻게 인간이 자기의 옛 부패된 삶에서 천국적인 삶 안으로 가져다 놓는지를 알기 힘들다. 더구나 그것은 자연적 삶이 진행되고 영적 삶이 그 뒤를 따르는 모든 인간 경험에 의거 존재한다. 비록 이것이 모순적인 일같이 보일는지 몰라도 거듭남의 경우에서도 거듭남이 진행되고 깨끗해짐이 그 뒤를 잇는 것은 마찬가지 순서이다. 세상 안에서의 인간은 변화무쌍한 삶을 살아가고 있고, 비록 그가 의를 행한다고 하는 결정을 내렸다 해도 실지 자기가 천국에 기울고 있는지 지옥에 기울고 있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을 신뢰하면서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 땅에 거하게 되고 먹여지리라”는 말씀에 순종해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29-36절에 있는 내적 의미는 주제를 또 다른 국면에서 더 첨가하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능력으로부터 해내는 듯 전력을 다해 주님을 예배하지 않고는 구원되어질 수 없다는 법이다. 제물을 손수 가져온다는 것은 자신의 능력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명시한다. 가슴(갈비) 부위와 더불은 지방은 영적 선 안에 있는 천적 선을 명시하는 것이고, 그것을 흔든다함은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얻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자신들 속에서 있어지는 내면의 역사를 보거나 느낄 수는 없다. 알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해본다면 그것은 아마 자기 의무를 행한 결과일 뿐이다. 이와 연결해서 한 걸음 더 전진되는 바, 31절의 영적 가르침에서 승강이 있게 된다. 이 구절이 보여주는 바, 가슴 고기(갈비)가 명시하는 것인 선행을 실감함 또는 선을 자기 것 삼는 것은 기름으로 명시되는 가장 깊은 선은 모두 주님으로부터이고 선행의 생활에서 섬김으로 성별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진실로 인정하는데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 진리는 그 다음 구절에서 강조되고 있다. 오른쪽 넓적다리를 들어 올림이란 주님을 인정함과 동시에 그분과의 결합을 명시하는 반면, 아론과 그의 후손의 몫이 된다는 것은 자기 것이 된다는 것, 그 결과 삶 속에서 사용됨을 명시하고 있다. 그 이유가 선은 말이나 행위로 표현되지 않으면 실지 자기 것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33-34절의 내적 의미 중 두 가지 점은 설명이 필요하리라 본다. 가장 깊은 천적 진리로부터의 예배는 외적인 것 안에 존재하는 바 상대적으로 불완전하다고 앞서 살핀 바 있다. 이는 모든 외적 예배에 관해 진정한 것이고 이것이 내적인 예배와 구별되는 점이다. 스웨덴볽의 「천국의 신비」 9946 끝항과 10047항을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주님이 그분의 인간을 신성이 되게 하실 때와 같이 그분은 인간을 거듭나게 한다. 그 이유는 인간과 함께 하는 주님은 내적 경로를 통해 선을 가지고 영혼 안으로 흘러드시고, 진리는 외적 경로 즉 듣고 보는 경로를 통해 흘러 들게 하신다. 그래서 인간이 악에 저항하는 만큼에서 주님은 선이 진리와 결합되게 하시어 그 사람의 선이 이웃을 향한 선행과 하느님을 사랑하는 선이 되게 하신다.” 또한 34절에 관해 말해지는 바, 영적 선과 천적 선은 “인간에게 내재하는 능력은 훈련(실습)함에서 기인된다.” 내재하는 힘(innate powers)이란 주님으로부터 받은 힘, 즉 새로운 의지와 이해함을 사용하는 힘을 의미한다. 이 힘은 마치 자신 본래에 속한 힘 같이 행동에서는 나타난다. 이러므로 35절에서 말하는 바, “주님에 대한 예배가 비록 불완전하다 해도 사랑으로부터 신실하게 예배되어져야 할 것”이라 하고 36절의 경우, 인간은 자기의 가장 깊은 생명이 주님으로부터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줄여 말해서 아론과 그의 후손들의 기름부어진 몫이란 가장 높은 선은 주님께로부터 이며 그분과 결합함으로, 그 결합으로 인해 그 선을 자기 것 삼게 되는 것을 인정하도록 인간에게 능력이 부여되었다는 것 외의 더 다른 의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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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8장

성경: 레위기 1장

1.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2.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데려와라, 그리고 옷들, 기름붓는 기름, 그리고 죄 바침의 제물로부터의 수소, 수양 두 마리, 그리고 누룩 없는 빵 바구니,
3. 그리고 너는 만남의 천막의 문에 회중이 모이게 하라.
4. 그리고 모세는 주님께서 자기에게 명령했던 대로 실시했다. 그리고 회중은 만남의 문에 모여졌다.
5. 그리고 모세는 회중에게 말했다, 이것은 주님께서 행해져야한다고 명령하셨던 것이다.
6. 그리고 모세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데려왔다, 그리고 물로 그들을 씻었다.
7. 그리고 그는 그(아론)에게 상의(coat)를 입히고, 그를 띠(girdle)로 둘렀다, 그리고 길고 품이 큰 겉옷(robe)으로 그를 옷입혔다, 그리고 그(him) 위에 에봇을 입혔다, 그리고 그는 그를 에봇의 기묘하게 짜진 끈(band)으로 둘렀다, 그리고 그것과 함께 그에게 그것을 묶었다.
8. 그리고 그는 그(아론) 위에 가슴받이를 두었다. 그리고 가슴받이에 그는 우림과 둠밈을 놓았다.
9. 그리고 그는 그의 머리에 관(miter)을 씌웠다. 그리고 그는 관 위, 앞에 금판을 붙여 거룩한 왕관(crown)(이 되게 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였다.
10. 그리고 모세는 기름붓는 기름을 가져왔다, 그리고 성막에 발랐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도 발랐다, 그리하여 그것들을 신성하게 했다.
11. 그리고 그는 제단 위에 그것을 일곱 번 뿌렸다, 그리고 제단과 그것의 모든 기구들, 그리고 물두멍과 그것의 받침에 발라서 그것들이 신성해지게 했다.
12. 그리고 그는 아론의 머리 위에 기름을 부었다, 그리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신성해지게 했다.
13. 그리고 모세는 아론의 아들들을 데려왔다, 그리고 그들에게 상의를 입히고, 그들을 띠로 매고, 그들 위에 머리띠를 맸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대로 였다.
14. 그리고 그는 죄 바침의 수소를 끌어왔다. 그리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자기들의 손을 죄 바침의 수소의 머리 위에 놓았다.
15. 그리고 그는 그것을 죽였다. 그리고 모세는 피를 가져갔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 손가락을 가지고 빙둘러 있는 제단의 뿔들에 발랐다. 그리고 제단을 순수해지게 했다, 그리고 피를 제단 받침에 부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보상을 받게 하여 그것이 신성해지게 했다
16. 그리고 그는 내장 위에 있는 모든 지방, 그리고 간의 대망, 그리고 두 콩팥들, 그리고 그것들의 지방을 가져갔다, 그리고 모세는 그것을 제단에서 태웠다.
17. 그러나 수소, 그리고 그것의 가죽, 그것의 고기, 그리고 그것의 똥을 그는 진영 밖에서 불로 태웠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였다.
18. 그리고 그는 태워 바침의 수양을 증정했다. 그리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수양의 머리 위에 그들의 손을 놓았다.
19. 그리고 그는 그것을 죽였다. 그리고 모세는 제단 빙둘러 피를 뿌렸다
20. 그리고 그는 수양을 조각들로 잘랐다. 그리고 모세는 머리, 그리고 조각들, 그리고 지방을 태웠다.
21. 그리고 그는 물로 내장과 다리들을 씻었다. 그리고 모세는 제단 위에서 수양 전체를 태웠다. 이것은 달콤한 향기를 위한 태워 바침이었다. 이것은 주님께 불로 만든 제물이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였다.
22. 그는 다른 수양, 성직 수임의 수양을 바쳤다. 그리고 아론과 그의 아들은 수양의 머리 위에 자기들의 손을 놓았다
23. 그리고 그는 그것을 죽였다. 그리고 모세는 그것으로부터의 피를 가져갔다, 그리고 아론의 오른쪽 귀의 끝 위에, 그의 오른손의 엄지손가락 위에, 그리고 그의 오른발의 엄지발가락 위에 그것을 발랐다
24. 그리고 그는 아론의 아들들을 데려왔다, 그리고 모세는 그들의 오른쪽 귀의 끝에, 그리고 그들의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에, 그리고 그들의 오른 발의 엄지발가락에 피를 발랐다
25. 그리고 그는 지방, 그리고 꼬리 지방, 그리고 내장 위에 있는 모든 지방, 그리고 간의 대망, 그리고 두 콩팥들, 그리고 오른쪽 넓적다리를 가져왔다.
26. 그리고 주님 앞에 있었던 누룩 없는 빵의 바구니로부터, 그는 한 개의 누룩 없는 과자, 그리고 한 개의 기름 들어간 빵, 그리고 한 개의 속 빈 과자를 가져갔다, 그리고 그것들을 지방 위에, 그리고 오른쪽 넓적다리 위에 놓았다.
27. 그리고 그는 전부를 아론의 손 위에, 그리고 그의 아들들의 손 위에 놓았다, 그리고 주님 앞에서 흔드는 바침을 위해 흔들었다.
28. 그리고 모세는 그들의 손으로부터 그것들을 가져갔다, 그리고 그것들을 태워 바치는 제물 위 제단에서 태웠다. 그것들은 달콤한 향기를 위한 성직 수임이었다. 이것은 주님께 불로 만든 바침이었다.
29. 그리고 모세는 가슴을 가져왔다, 그리고 주님 앞에 흔드는 바침을 위해 그것을 흔들었다. 이것은 성직 수임의 수양으로부터의 모세의 몫이었다.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였다).
30. 그리고 모세는 기름붓는 기름을, 그리고 제단 위에 있었던 피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것을 아론 위에, 그의 옷들에, 그리고 그의 아들들 위에, 그리고 그와 더불은 그의 아들들의 옷들에 그것을 뿌렸다. 그리고 아론, 그의 옷들, 그리고 그의 아들들, 그리고 그와 더불은 그의 아들들의 옷들을 신성하게 했다.
31. 그리고 모세는 아론에게 그리고 그의 아들들에게 말했다, 만남의 천막의 문에서 고기를 끓이라. 그리고 거기서 그것과 성직 수임의 바구니에 있는 빵을 먹어라, 내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그것을 먹을 것이다고 명령하여 말한 대로 이다.
32. 그리고 고기와 빵의 남는 것을 너희는 불로 태울 것이다.
33. 그리고 너희는 성직 수임의 날들이 충만되어질 때 까지, 칠일 동안 만남의 천막의 문으로부터 나가지 말 것이다, 그 이유가 그는 너를 칠일 동안 신성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34. 이 날 행하여졌던 것 같이 그렇게 주님은 너를 위하여 보상을 만들라고 명령하셨다.
35. 그리고 만남의 천막의 문에서 너희는 낮과 밤 칠 일 동안 거주할 것이다, 그리고 주님으로부터의 책무를 준행할 것이다, 그래야 너희는 죽지 않는다. 그 이유는 내가 그렇게 명령했기 때문이다.
36. 그리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주님께서 모세의 손을 수단으로 명령하셨던 모든 것들을 행했다.

영적 의미 요약

* 본 장의 일반 주제는 주님의 영화하심, 동시에 인간의 거듭남에 관해서이다. 1-5절
* 먼저 주님에 관련된 사항이다. 어머니로부터 온 인성을 벗으시는 것, 그리고 인간에 관련된 사항은 회개함으로 실지의 악에서 깨끗해지는 것. 6절.
* 그런 다음 계속되는 순서로서 신성한 진리들을 받는다. 그리고 진리가 선과 결합함에서 지혜를 받아 계발된다. 7-13절.
* 또한 자연적 애착들도 반드시 깨끗해져서 더 높은 애착들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14-17절.
* 한 걸음 더 나아가 영적 애착들 모두는 주님께 바쳐져야 한다. 그러면 순진의 선은 내적으로 뿐만 아니라 외적으로도 실감되어 진다. 18-21절.
* 그리하여 거듭나는 인간은 선을 실감하기 시작하고, 진리를 수단으로 선이 삶 속에서 실지 행동한다. 그 결과 진리와 선이 상호 결합함으로 해서 선행의 능동적인 삶이 있어진다. 22-30절.
* 위의 결과 어떤 악과도 혼합되지 않고 선을 충분히, 항구적으로 자기 것 삼을 수 있어진다. 이리하여 주님의 영화하심과 인간의 거듭남이 성취되어 진다. 첫 째 모든 악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될 것, 둘 째 모든 선과 진리를 완전한 순종 속에서 받아들일 것, 이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유입 즉 신성한 질서의 법칙에 의거하되 주님의 일에 인간이 협동함으로 된다. 31-36절.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신성한 진리가 지각을 줌으로서 주님이 밝히 알게 해주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speaking)이란 유입(influx)을; 모세란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말함(saying)은 지각(perception)을 각각 뜻한다. A.C. 2001, 2951, 7010, 6752, 1791, 1822.

2절.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데려와라, 그리고 옷들, 기름붓는 기름, 그리고 죄 바침의 제물로부터의 수소, 수양 두 마리, 그리고 누룩 없는 빵 바구니,

영적 의미

천적 선과 그로부터 나온 진리에 관하여; 천적 선과 결합된 영적 진리에 관하여; 자연적 선과 영적 선이 악으로부터 깨끗해지는 것에 관하여, 또는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이 깨끗해지는 것에 관하여; 모든 등차에서 천적 선이 거짓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에 관하여, 그리고 그릇인 감각적인 것에 관하여;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천적 선과 그 선으로부터의 진리들을; 옷들이란 천적 선과 결합될 영적 진리들을; 기름붓는 기름이란 천적 선을; 수소는 외적 인간에 있는 자연적 선을; 수양은 내적 인간에 있는 영적 선을; 그리고 태워 바침과 제물이란 악으로부터 깨끗해짐을; 그리고 누룩 넣지 않은 바구니는 그릇에 해당되는 감각 측면의 모든 등차에 있는 거짓으로부터 자유로운 천적 선을 각각 뜻한다. A.C. 9946, 9814, 9954, 10011, 9990, 9991, 9996, 10080.

3절. 그리고 너는 만남의 천막의 문에 회중이 모이게 하라.

영적 의미

주님의 인간이 신성이 되심에 관하여, 각자의 힘이 미치는 한도에서 거듭나게 하시는 것은 각 사람으로 천국적 삶을 즐길 수 있도록 해주시기 위함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모이게 하라(assembling)의 의미는 주님의 보편적 유입의 결과인 질서대로의 배열을 명시하는 바, 주님의 인간이 신성이 되심과 인간의 거듭남을, 온 회중이란 인간의 모든 애착과 힘(power)들을 말하는데 그 이유는 인간과 더불어 교회를 구성하는 모든 것 또는 모든 영적인 것, 즉 진리와 선에 속한 모든 것, 신앙과 선행에 속한 모든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남의 천막의 문이란 위의 사항들이 인간으로 천국적 삶을 소개해 주거나 그 삶에 들어가게 하는 수단이 된다는 뜻이다. A.C. 6338, 7843, 2356, 3540-3.

4절. 그리고 모세는 주님께서 자기에게 명령했던 대로 실시했다. 그리고 회중은 만남의 문에 모여졌다.

영적 의미

위 사항은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결과되는데, 이 진리에 신성한 선의 유입이 있음으로 주님의 인간은 최 말단까지 신성이 되시고, 인간은 각자의 능력 내에서 거듭날 수 있게 된다. 이는 천국적 삶을 위한 준비요, 주님을 인정하는 시작이기도 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모세는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명령은 유입을; 주님 또는 여호와(여호와)는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회중은 주님의 인성 그리고 인간의 다양한 힘들을; 모인다(being assembled)는 여기서는 천국적 삶을 위해 준비함을; 그리고 문은 주님을 인정함을 각각 뜻한다. A.C. 7010, 6752, 5846, 2001m 7830, 7843, 6338, 2356, 3540-3.

5절. 그리고 모세는 회중에게 말했다, 이것은 주님께서 행해져야한다고 명령하셨던 것이다.

영적 의미

또한 교인이라는 세부사항에도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수단으로 주님의 인간이 신성이 되심과 인간의 거듭남에 관한 지각을 주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모세는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말함(saying)은 지각을, 회중은 교회 속의 사람을, 그리고 주님께서 이렇게 하라고 분부하셨다함은 주님의 인간이 신성이 되심과 인간의 거듭남을 말하는데 이는 앞에서 언급하였다. A.C. 7010, 6752, 1791, 1822, 7830, 7843.

6절. 그리고 모세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데려왔다, 그리고 물로 그들을 씻었다.

영적 의미

주님의 경우, 어머니 쪽에서 온 인간을 벗으시는 것, 인간의 경우, 회개를 수단으로 실제의 악에서 깨끗해지는 것에 관한 사항이 첫 번째 일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신성한 선과 진리 측면에서의 주님, 인간이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받는 것을; 그리고 물로 씻음은 주님의 경우 어머니 쪽에서 온 인간 본성을 벗으심을; 인간의 경우 회개의 일 또는 악에서 깨끗해짐을 각기 뜻한다. A.C. 9946, 10239, 3147, 10002.

7절. 그리고 그는 그(아론)에게 상의(coat)를 입히고, 그를 띠(girdle)로 둘렀다, 그리고 길고 품이 큰 겉옷(robe)으로 그를 옷입혔다, 그리고 그(him) 위에 에봇을 입혔다, 그리고 그는 그를 에봇의 기묘하게 짜진 끈(band)으로 둘렀다, 그리고 그것과 함께 그에게 그것을 묶었다.

영적 의미

천적 천국과 영적 천국의 매체를 하나로 해주는 가장 깊은 진리들을 받아들임이 있다; 진리들을 하나로 해주면서 각각을 식별하는 사랑의 공통된 끈에 대해서; 영적 왕국의 내면의 진리에 관해서; 내면의 진리로부터 온 최 말단 진리에 관해서; 이 진리들을 서로 접하게 하는 공통되는 끈에 대해서.

세부적 영적 의미

상의(속옷, coat)은 천적 천국과 영적 천국을 하나로 해주는 매개인 가장 깊은 진리(천적 진리)를; 띠(girdle)는 이러한 진리들을 하나로 하면서 진리들을 식별하게 하는 사랑의 공통된 묶음을; 길고 품이 큰 옷(겉옷, robe)은 영적 왕국의 내면에 있는 진리들을; 에봇(ephod)은 내면에 있는 진리들로부터 있게 되는 최말단의 진리를; 관대(the band of the ephod)는 내면의 진리와 최말단의 진리가 결합되게 하는 공통되는 묶음을 각각 뜻한다. A.C. 10004, 9828, 10014, 10005, 9824, 10006, 9837.

8절. 그리고 그는 그(아론) 위에 가슴받이를 두었다. 그리고 가슴받이에 그는 우림과 둠밈을 놓았다.

영적 의미

신성한 선으로부터 빛을 내는 신성한 진리의 계시가 있는데, 이것은 선과 진리의 명백한 지각을 가지고 최 말단까지에 이르게 교인들의 마음을 채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가슴받이(breastplate)는 신성한 진리가 선으로부터 빛을 발하는 것을; 그리고 우림과 둠밈(Urim and Thummim)은 선과 진리를 명백하게 지각함으로 최말단까지 채우는 교인의 마음을 각각 말한다. A.C. 10007, 9905.

9절. 그리고 그는 그의 머리에 관(miter)을 씌웠다. 그리고 그는 관 위, 앞에 금판을 붙여 거룩한 왕관(crown)(이 되게 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였다.

영적 의미

위의 사항 외에도 가장 깊은 곳에 주님으로부터 온 지혜가 있고, 이 깊은 데로부터 최 말단까지 그 지혜로부터, 또는 신성한 인간으로부터 계발이 되는데, 이는 신성한 진리 안에로 신성한 선의 유입에 의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의 머리 위에 놓인 관(mitre)은 가장 깊은 측면에 있는 주님으로부터 온 지혜를, 그리고 금판(golden plate), 거룩한 왕관(crown)은 신성한 선이 신성한 진리에로 유입됨에 따라 신성한 인성으로부터의 계발 또는 최 말단에서의 계발을 각각 명시한다. A.C. 9827, 10008, 9930, 9932, 10009, 2001, 5486, 7010.

10절. 그리고 모세는 기름붓는 기름을 가져왔다, 그리고 성막에 발랐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도 발랐다, 그리하여 그것들을 신성하게 했다.

영적 의미

더 나아가, 가장 깊은 부분에 있는 신성한 진리는 신성한 선과 결합한다. 그로부터 중간 천국에 있는 이들의 내용물이 성별된다. 게다가 그 천국에 있는 이들과 상응되게 거듭나는 인간 마음 속의 내용물도 성별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모세는 신성한 진리를, 그가 기름을 가져옴이란 신성한 선과의 결합을, 성막과 그 안의 모든 것에 기름을 부음이란 중간 천국에 있는 이들의 내용물과의 결합, 또는 그 천국과 상응되는 거듭나는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내용물과의 결합을, 그리고 그것을 성별함이란 그 결과, 즉 거룩한 상태를 각각 명시한다. A.C. 7010, 10010-11, 9504, 9820, 9956.

11절. 그리고 그는 제단 위에 그것을 일곱 번 뿌렸다, 그리고 제단과 그것의 모든 기구들, 그리고 물두멍과 그것의 받침에 발라서 그것들이 신성해지게 했다.

영적 의미

또한 충만되고 거룩함의 모든 상태에 있는 사랑으로 주님께 예배하는 가운데 선은 진리와 결합되어진다. 이는 결합을 수단으로 주님께 바쳐지는 영혼 뿐만 아니라, 이를 받는 그릇인 진리의 내면과 외면까지 다 바쳐진다. 이리하여 순수하고 거룩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기름을 제단 주위에 뿌린다는 것은 사랑으로부터 주님께 예배하는 가운데 선이 진리와 결합하는 것을; 일곱 번이란 모든 충만과 거룩함에서를; 그리고 제단과 거기에 딸린 모든 기구, 물두멍과 그 받침을 기름으로 성별한다는 것은 결합을 수단으로 주님께 영혼을 바칠 뿐만 아니라 그릇에 해당되는 진리를; 그 진리가 내면에 속하든, 외면에 속하든 모두 봉헌하는 것, 그래서 외부에 있는 진리 역시 순수하고 거룩함을 입게 된다는 것을 각각 말한다. A.C. 9954, 10127, 716, 9954, 10274.

12절. 그리고 그는 아론의 머리 위에 기름을 부었다, 그리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신성해지게 했다.

영적 의미

그러나 특별히 신성한 선 자체가 주님의 인간으로 흘러 생명있게 해야 하고, 인간 영혼은 선이 진리와 결합함으로 해서 가장 높은 등차부터 낮은 부분까지 생명 있게 되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을 성별하기 위해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신성한 선 자체가 주님의 인간으로 흘러 생명 있고, 인간의 영혼은 선과 진리가 결합하면서 가장 높은 등차에서부터 가장 낮은 등차에 이르기까지 생명 있게 된다는 말이다. A.C. 10010, 10011.

13절. 그리고 모세는 아론의 아들들을 데려왔다, 그리고 그들에게 상의를 입히고, 그들을 띠로 매고, 그들 위에 머리띠를 맸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대로 였다.

영적 의미

다시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의 도움(도구)으로 영적 인간, 뿐만 아니라 천적 인간은 진리로 훈육되어야만 하고, 애착의 공통되는 끈으로 매어져야 한다. 그리고 천적인 지혜가 부여되어야만 하되, 그것은 신성한 질서, 즉 신성한 진리 안에 신성한 선이 유입함에 의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기서 모세는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아론의 아들들은 천적 인간과 구별되는 영적 인간을; 속옷을 입힌다는 것은 진리로 훈육되는 것을; 띠란 애착의 공통되는 묶음을; 머리띠를 매어주었다는 것은 지혜로부터 온 총명이 부여되는 것을;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대로란 신성한 선이 신성한 진리에로 유입됨 또는 신성한 질서에 의거함이라는 뜻이다. A.C. 7010, 9946, 9814, 10014, 9949, 10016, 5486, 911.

14절. 그리고 그는 죄 바침의 수소를 끌어왔다. 그리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자기들의 손을 죄 바침의 수소의 머리 위에 놓았다.

영적 의미

자연적 인간이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 주님과 결합하기 위해서는 깨끗해져야 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신성한 선과 진리를 받아들임이 있어야 하는데 자연적인 것은 전폭적으로 천적, 영적 차원으로부터 있어져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죄 바침의 제물이 될 수소란 자연적 인간과 그 인간의 깨끗해짐을, 그리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수소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는 것은 능력이 받아지고 교통되고 전환되는 것, 그리하여 더 높은 능력들이 더 낮은 힘과 결합하는 것을 각기 말한다. A.C. 10021, 10023.

15절. 그리고 그는 그것을 죽였다. 그리고 모세는 피를 가져갔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 손가락을 가지고 빙둘러 있는 제단의 뿔들에 발랐다. 그리고 제단을 순수해지게 했다, 그리고 피를 제단 받침에 부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보상을 받게 하여 그것이 신성해지게 했다

영적 의미

이에는 준비가 되어야만 하는 바, 자연적 인간 안에 숙박하는 신성한 진리는 각자의 상태에 따라 주님을 예배하는 가운데 효력있게 작용되어야 한다. 그러면 자연적 인간은 깨끗해질 것이고, 이 순수함이 감각적 삶에까지 퍼져야 영적 인간과 하모니를 이룰 수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수소를 죽인다는 것은 준비함을; 모세는 신성한 진리를; 자연적 인간에 숙박함이 수소의 피로; 제단 뿔들에 피를 바른다는 것은 주님을 예배함에서 능력있게 역사함을; 손가락이란 힘을; 죄 바침의 제물인 수소란 자연적 인간이 깨끗해짐을; 제단 뿔에 있는 피란 감각적 삶 또는 최말단까지 깨끗해짐을; 제단 밑바닥에 피를 쏟는 것은 자연적 인간은 반드시 영적 인간과 하모니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A.C. 10024, 7010, 10026, 10027, 9964, 7430, 10024, 10186, 10028.

16절. 그리고 그는 내장 위에 있는 모든 지방, 그리고 간의 대망, 그리고 두 콩팥들, 그리고 그것들의 지방을 가져갔다, 그리고 모세는 그것을 제단에서 태웠다.

영적 의미

또한 가장 낮은 등차의 모든 선; 내면에 속하는 자연적 선, 진리를 식별해 주는 자연적 능력, 이것이 선과 결합하는 것, 이 모두는 주님께 되돌려 바쳐져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기서 내장에 붙은 기름이란 가장 낮은 등차에 있는 선을; 간에 붙어 있는 대망(기름덩어리)이란 자연적 선의 내면을; 두 콩팥과 거기에 붙어 있는 기름이란 선을 가진 식별하는 진리들의 자연적 힘을; 그리고 제단 위에서 사름은 주님이 힘의 원인되심을 알고 그분께 바치는 것을 각기 말한다. A.C. 10033, 353, 9632, 10031, 10032, 10074, 10052.

17절. 그러나 수소, 그리고 그것의 가죽, 그것의 고기, 그리고 그것의 똥을 그는 진영 밖에서 불로 태웠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였다.

영적 의미

그러나 자연적 인간 뿐인 것, 거짓이나 이기적 애착, 선과 식별되어야 하는 각종 악과 더불어 있는 자연적인 것들은 천국 삶에서 거절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것들은 이기적 사랑으로 불살라져야 하는데 그 이유는 신성한 진리 안에 있는 이들 안으로 신성한 선이 유입되는 것과 상반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 경우 수소는 단지 자연적 인간; 그리고 고기는 그 인간 속의 악을; 가죽은 거짓을; 똥은 악한 모든 것; 이것들은 식별되어 선과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불에 태운다는 것은 자아 사랑을 통해 천국적 삶에서 거절됨을; 그리고 진지 밖에서란 지옥을; 주님이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란 신성한 선이 신성한 진리에로 유입됨을 각각 말한다. A.C. 10035, 10036, 10037, 10038, 2001, 5486, 5486, 7010.

18절. 그리고 그는 태워 바침의 수양을 증정했다. 그리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수양의 머리 위에 그들의 손을 놓았다.

영적 의미

더 나아가, 자연적 인간에 있는 순진의 선 또는 선행인 영적 선은 깨끗하게 해서 주님께 바쳐야 한다. 이를 위해 천적 선과 이 선으로부터의 진리들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오는 능력의 교통이 있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수양은 내적 인간에 있는 순진의 선 또는 선행인 영적 선을; 태워 바침으로 드림이란 주님께 완전하게 바침 또는 완전한 거듭남 그리하여 깨끗해짐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수양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는 것은 천적 선과 그 선에 속한 진리들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오는 능력과 교통됨을 각각 말한다. A.C. 10042, 10053, 9946, 10023.

19절. 그리고 그는 그것을 죽였다. 그리고 모세는 제단 빙둘러 피를 뿌렸다

영적 의미

이를 위해 준비가 있어야 한다. 신성한 선이 신성한 진리와 결합함은 내적 인간 안에서 결과되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수양을 죽임은 준비함을; 그리고 그 피를 제단 주변에 뿌림은 신성한 선과 신성한 진리의 결합은 내적 인간에서 결과된다는 것을 말한다. A.C. 10024, 10047.

20절. 그리고 그는 수양을 조각들로 잘랐다. 그리고 모세는 머리, 그리고 조각들, 그리고 지방을 태웠다.

영적 의미

더불어 거듭나는 인간과 더불어서도 선과 진리의 적절한 배열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들은 주님께 속한다고 생각하여 그분께 바쳐야하되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가장 깊은 것들에 관해, 외면에 속한 것들, 모든 천적인 선까지 모두 바쳐야 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수양을 조각낸다는 것은 거듭나는 사람에게서 선과 진리가 적당히 배열되는 것을; 그리고 모세가 머리와 조각으로 만든 고기와 지방을 사르는 것은 선과 진리는 반드시 주님의 것인 바 그것의 가장 깊은 것도, 외면에 있는 것도, 사실상 천적 선 모든 것이 순수한 사랑으로 그분께 바쳐져야 한다는 말이다. A.C. 10048, 10052, 10051, 10033.

21절. 그리고 그는 물로 내장과 다리들을 씻었다. 그리고 모세는 제단 위에서 수양 전체를 태웠다. 이것은 달콤한 향기를 위한 태워 바침이었다. 이것은 주님께 불로 만든 제물이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이었다.

영적 의미

더욱이 감각적 애착과 자연적 애착들 모두는 말씀 속의 진리를 적용함으로 깨끗해져야 한다; 그리고 내적 인간 전체는 주님께 봉헌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이런 봉헌으로 천국적 평화와 쉼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그분으로부터 오는 유입과 말씀 속의 진리에 순종하는 인간과의 협동을 수단으로 주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내장과 다리를 물로 씻음은 감각적인 것과 자연적 애착을 말씀 속의 진리를 적용함으로 깨끗해져야 한다는 것을; 수양을 온통 제단에서 태움이란 내적 인간 전체를 주님께 봉헌함을; 달콤한 향기(sweet savor), 쉼의 냄새(odor of rest)란 천국적인 쉼과 평화가 실감되는 것을; 불로 태워 바치는 제사란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예배함을; 그리고 주님이 모세에게 명하신대로란 말씀 속의 진리에 순종함을 통해 그분과 협동하는 것과 그분으로부터 유입이 있음을 각각 말한다. A.C. 10049, 10050, 2702, 10052, 10054, 10055, 2001, 5486, 7010.

22절. 그는 다른 수양, 성직 수임의 수양을 바쳤다. 그리고 아론과 그의 아들은 수양의 머리 위에 자기들의 손을 놓았다

영적 의미

그러나 이제 두 번째로, 신성한 진리와 천국 안에서 신성한 선으로부터 진행되어야 한다. 이는 선이 진리를 수단으로 행동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 진리 안에로 신성한 선의 유입이 있어 신성한 진리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두 번째 수양이란 천국에서 신성한 진리가 신성한 선으로부터 진행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는데, 진리가 선으로부터 행동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수양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는 것은 신성한 선의 유입 그리하여 신성한 진리가 능력을 가짐을 나타내고 있다. A.C. 10057, 10058.

23절. 그리고 그는 그것을 죽였다. 그리고 모세는 그것으로부터의 피를 가져갔다, 그리고 아론의 오른쪽 귀의 끝 위에, 그의 오른손의 엄지손가락 위에, 그리고 그의 오른발의 엄지발가락 위에 그것을 발랐다

영적 의미

이에 대해 준비사항이 이루어지되, 선용이 수행되기 위해서요, 이 준비는 성별된 영혼으로부터, 또는 주님에게서 내려오는 능력을 지닌 신성한 진리의 충만으로부터 천적 등차에서 지각을 주시고, 거듭나는 과정에 있는 사람, 또는 천적 천국에 있는 이들의 자연적, 영적 등차에 총명을 주시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수양을 죽임은 준비함을 명시하는데 이 구절의 경우 봉헌된 영혼으로부터 또는 신성한 진리의 충만함으로부터 사용함이 있게 되는 것을 말하는데, 그 이유는 두 번째 수양은 성직 수임에 쓸 수양(the ram of consecration, or of the falling of the hand)이라 불리기 때문이다. 피란 천국에서 주님의 신성한 선으로부터 진행되는 신성한 진리를; 아론의 오른쪽 귓바퀴에 피를 바름은 천적 등차에서 선으로부터 오는 진리를 충분히 지각함을; 오른 엄지손가락에 피를 바름은 영적 등차에 있는 총명을; 그리고 오른 엄지발가락에 피를 바름은 천적 천국이나 거듭나는 과정에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 자연적 등차 또는 최말단에 있는 총명을 각각 말한다. A.C. 10059, 10060, 10061, 10062, 10063.

24절. 그리고 그는 아론의 아들들을 데려왔다, 그리고 모세는 그들의 오른쪽 귀의 끝에, 그리고 그들의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에, 그리고 그들의 오른 발의 엄지발가락에 피를 발랐다

영적 의미

또한 낮은 천국을 위해 준비되고 있는 이들에게도 위와 같은 질서에서 지각과 총명을 주신다; 두 경우 모두 제 나름대로의 형태나 등차에서 예배가 있다해도 선과 진리의 결합은 꼭 있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의 아들들은 하급에 속하는 천국에 있는 이들을; 제단 주변에 피를 뿌림은 갖가지 형태나 등차의 예배에 있는 선과 진리의 결합을 각각 명시한다. A.C. 9946, 10099, 10047.

25절. 그리고 그는 지방, 그리고 꼬리 지방, 그리고 내장 위에 있는 모든 지방, 그리고 간의 대망, 그리고 두 콩팥들, 그리고 오른쪽 넓적다리를 가져왔다.

영적 의미

그러나 모든 천적-영적 선, 외면, 외부, 내면; 식별함 또는 깨끗케 하는데 사용되는 모든 영적 진리, 그리고 이 진리가 선과 결합함, 그리고 천국적 결혼에서 내면의 모든 진리가 선과 결합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기름은 천적인 모든 것과 영적 선을; 꼬리에 붙어 있는 지방이란 진리의 선 또는 외면의 선을; 내장에 붙은 지방은 외부의 선을; 간에 붙어 있는 대망은 내면에 있는 선을; 두 콩팥과 거기에 붙어 있는 지방은 식별하게 해주고 깨끗하게 하는 모든 영적 진리, 그리하여 선과 결합하는 진리들을; 그리고 오른쪽 넓적다리는 천국적 결혼으로 선과 결합된 내면의 진리를 각각 말한다. A.C. 10033, 10071, 10030, 10031, 10032, 10075.

26절. 그리고 주님 앞에 있었던 누룩 없는 빵의 바구니로부터, 그는 한 개의 누룩 없는 과자, 그리고 한 개의 기름 들어간 빵, 그리고 한 개의 속 빈 과자를 가져갔다, 그리고 그것들을 지방 위에, 그리고 오른쪽 넓적다리 위에 놓았다.

영적 의미

가장 깊은 천적 선 모두; 내면의 천적 선 모두; 그릇의 역할을 하는 감각 측면에 있는 최 말단의 천적 선 모두는 그 근원이 천국적 결혼을 통하는 신성한 선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바구니는 그릇 역할을 하는 감각적인 것들을; 누룩 넣지 않은 떡이란 악과 거짓으로부터 순수해진 것을; 누룩 없는 과자 한 개란 가장 깊은 천적 선을; 기름 넣어 만든 과자 한 개란 천적 선의 모든 내용물을; 속빈 과자 한 개란 천적 선의 최말단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고 이것들을 지방과 오른쪽 넓적다리에 얹음이란 위의 모든 것은 천적 결혼을 통해 신성한 선으로부터 존재함을 각각 말한다. A.C. 9996, 10080, 9992, 10077, 10078, 10079, 10033, 10075.

27절. 그리고 그는 전부를 아론의 손 위에, 그리고 그의 아들들의 손 위에 놓았다, 그리고 주님 앞에서 흔드는 바침을 위해 흔들었다.

영적 의미

이리하여 천적 천국과 영적 천국에 있는 모든 것과 교통되고, 그리고 생명있게 되고, 또는 주님으로부터 활력이 있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것을 모든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의 손에 얹음이란 이것들이 주님께 속한 천국에 있는 것들임을 인정하고, 그것들 모두는 주님과 교통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함을, 그리고 흔들어 바치는 제물로서 주님 앞에서 흔든다는 것은 생명은 주님으로부터 얻는다는 것을 각각 말한다. A.C. 10082, 10083.

28절. 그리고 모세는 그들의 손으로부터 그것들을 가져갔다, 그리고 그것들을 태워 바치는 제물 위 제단에서 태웠다. 그것들은 달콤한 향기를 위한 성직 수임이었다. 이것은 주님께 불로 만든 바침이었다.

영적 의미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도구로 해서 이상의 모든 능력들은 기쁨과 평화를 가져다주는 선한 생활의 예배로 주님께 봉헌되어야 한다. 이 예배는 순수한 사랑으로 주님께 드리는 예배이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기서 모세는 신성한 진리를; 태워 바치는 제단 위에서 태운다는 것은 선한 생활이라는 예배로 주님께 봉헌함을; 달콤한 향기, 또는 쉼의 냄새를 위해 주님께 봉헌함이란 환희와 평화의 상태를; 그리고 주님께 불로 만들어 바침이란 순수한 사랑으로 주님을 예배함을 각각 말한다. A.C. 7010, 10052, 10054, 10055.

29절. 그리고 모세는 가슴을 가져왔다, 그리고 주님 앞에 흔드는 바침을 위해 그것을 흔들었다. 이것은 성직 수임의 수양으로부터의 모세의 몫이었다.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였다).

영적 의미

그런고로 영적 천국에 있는 신성한 진리 속의 모든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온 선행의 능동적 삶을 영위한다. 그 이유가 선행은 영적 인간, 영적 천국의 필수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은 주님으로부터 유입되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모세가 가슴(breast)을 가져가서 주님 앞에서 흔들어 바침을 위해 그것을 흔든다는 것은 영적 천국에서 신성한 진리들에 있는 모든 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행의 능동적인 삶을 영위한다는 것을; 성직 수임의 제물로 바친 수양 고기 중에서 모세의 몫이란 선행은 영적 인간의 필수요, 영적 천국의 근본이다는 것; 그 이유가 모세는 신성한 진리들 가운데 있는 천국의 사람을 말하기 때문이다. 가슴은 선행을 말한다. 성직 수임(채움)의 수양(the ram of filling)은 영적 인간이 활동면이나 능력에서 충분히 거듭난 상태를,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지시하신 대로란 주님으로부터 유입되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함을 각각 말한다. A.C. 10087, 10089, 10090, 10087, 10057, 7010, 5486, 2001.

30절. 그리고 모세는 기름붓는 기름을, 그리고 제단 위에 있었던 피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것을 아론 위에, 그의 옷들에, 그리고 그의 아들들 위에, 그리고 그와 더불은 그의 아들들의 옷들에 그것을 뿌렸다. 그리고 아론, 그의 옷들, 그리고 그의 아들들, 그리고 그와 더불은 그의 아들들의 옷들을 신성하게 했다.

영적 의미

더욱이 신성한 진리를 도구로 해서 높은 천국과 낮은 천국에서 진리와 선의 상호적인 결합이 거행되어 인간 통째로 천적 선과 진리 차원에서, 영적 선과 진리 차원에서 성별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모세는 신성한 진리를; 아론과 그의 옷(garment)들은 상급의 천국에 있는 신성한 선과 신성한 진리를; 그의 아들과 그들의 옷들은 하급에 천국에 있는 신성한 선과 신성한 진리를; 뿌림이란 결합을; 기름과 피 모두를 사용했다함은 하나는 신성한 진리를, 다른 하나는 신성한 선을 표현하도록 해서 상호간의 결합을 말하고 있다. 이리하여 천적 선과 진리, 영적 선과 진리는 측면에서의 거룩함을 뜻하고 있다. A.C. 7010, 10067, 10068, 10065, 10066, 10069.

31절. 그리고 모세는 아론에게 그리고 그의 아들들에게 말했다, 만남의 천막의 문에서 고기를 끓이라. 그리고 거기서 그것과 성직 수임의 바구니에 있는 빵을 먹어라, 내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그것을 먹을 것이다고 명령하여 말한 대로 이다.

영적 의미

더불어 천적 인간과 영적 인간에게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지각이 있어진다. 그러므로 준비가 있어야 하는 바, 이는 주님을 인정함과 천국을 통해 그분의 유입이 있다는 것을 인정함으로 해서 선을 자기 것 삼아야 하는 것이다. 이에는 신성한 질서에 따라 거듭나는 사람이라는 그릇 안에 있는 천적, 영적 선 모두까지 포함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기서 말함(saying)은 지각을; 모세는 신성한 진리를;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천적, 영적 인간을; 그 이유는 그들이 관계적으로 선과 진리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남의 천막의 문에서 고기를 끓인다는 것은 주님을 인정하고 그분의 영향이 천국을 통해 있음을 인정함으로 해서 선을 자기 것 삼는 준비를; 먹는 것은 자기 것 삼는다는 것을; 고기는 영적 선을; 빵은 천적 선을; 바구니는 그릇 또는 외적 측면의 감각들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것을 먹는다는 것은 천적, 영적 인간이 자기 것으로 삼는다는 것을; 모세에게 지시하셨다는 것은 신성한 질서에 의거함을 말한다. A.C. 1791, 1822, 7010, 9946, 10105, 2356, 3540-3, 2187, 10106, 10107, 5486, 10119.

32절. 그리고 고기와 빵의 남는 것을 너희는 불로 태울 것이다.

영적 의미

주님으로부터 와서 자기 것으로 삼지 않은 모든 선은 자아 사랑에 속한 것인 바 반드시 거절해야 하고 일소시켜야 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남은 고기와 빵을 불에 태운다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온 자기 것이 되지 않은 모든 선은 자아 사랑인 바 반드시 거절되고 일소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A.C. 10114, 10115.

33절. 그리고 너희는 성직 수임의 날들이 충만되어질 때 까지, 칠 일 동안 만남의 천막의 문으로부터 나가지 말 것이다, 그 이유가 그는 너를 칠 일 동안 신성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주님의 인간이 신성이 되심 같이 인간의 거듭남도 모든 국면에서 충만되고 완전해야 한다. 그러하면 거듭난 사람은 천국적 삶을 영원히 즐기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 수임이 진행되는 칠 일 동안 만남의 천막의 문을 나서지 말라는 것은 주님의 인간이 신성이 되심과 인간의 거듭남은 모든 국면에서 반드시 충만되고 완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의식이 칠 일 간 계속 된다는 것은 거듭나는 사람은 천국 상태를 영원히 즐기게 된다는 뜻이다. A.C. 2356, 3540-3, 10102, 10103, 10460.

34절. 이 날 행하여졌던 것 같이 그렇게 주님은 너를 위하여 보상을 만들라고 명령하셨다.

영적 의미

거듭남의 모든 상태는 모든 악에서 해방되고 주님과 재회하는 모든 과정과 그분의 형상을 표현하는 것이고, 이 과정들은 그분을 섬기려고 전력을 다하는 천적인 헌신을 수단으로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보상을 만드는 의식을 오늘 한 것을 본 따 그대로 하라고 주님이 명령하셨다는 것은 거듭남의 모든 상태, 그 형상 면에서 전 과정을 표현하는 것임을 말하는데 그 이유는 성직 수임(식)은 칠 일 간 매일 거행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고, 숫자 일곱은 “규모가 크든 작든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기간”을 말하기 때문이다. A.C. 10127, 10407.

35절. 그리고 만남의 천막의 문에서 너희는 낮과 밤 칠 일 동안 거주할 것이다, 그리고 주님으로부터의 책무를 준행할 것이다, 그래야 너희는 죽지 않는다. 그 이유는 내가 그렇게 명령했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더욱이 거듭나는 사람은 주님을 인정하는 것과 그분께서는 신성이 되심을 수단으로 인간 구원을 위해 천국을 통해 역사 하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 결코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 이 일은 마음이 밝은 상태일 때이든 희미한 상태일 때이든 모든 상태에서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해서 그는 주님의 법도를 충실히 이행하게 되고 그분과의 협동으로 영적 죽음에서 구원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만남의 천막의 문이란 주님을 인정하고 그분의 역사하심이 천국을 통해 있어짐을 인정하는 것을, 문 앞에서 밤, 낮으로 칠 일 간 머무른다는 것은 충만되고 완전하게 인정하는 것인 바 항구적으로 인정함을, 밤과 낮이란 밝은 모든 상태와 희미한 모든 상태를, 주님의 분부를 지킨다는 것은 주님의 법도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을, 죽지 않음이란 영적 죽음에서 해방됨을, “이것이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이란 주님과의 협동을 말하는데, 그 이유는 유입에 의거한 행동이 강압에 의해서가 아닌 각자가 흡족한 가운데 행해지는 것, 진실로 주님의 명령 또는 분부를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A.C. 2356, 3540-3, 10102, 10103, 936, 9149, 81, 6105.

36절. 그리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주님께서 모세의 손을 수단으로 명령하셨던 모든 것들을 행했다.

영적 의미

이와 같이 해서 주님의 인간은 신성이 되시고, 인간은 통째로 거듭나는데 이 거듭남은 신성한 말씀에서 기술하는 바대로의 상응과 유입에 의해 이루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주님께서 모세를 시켜 지시하신 대로 행한다는 것은 주님의 인간이 신성이 되심, 인간의 거듭남, 모두는 유입과 상응을 통한 협동을 수단으로 함을 명시하고 있다. A.C. 5486, 6105.

8장의 종합적 고찰

이 장 전체는 일반적으로 볼 때 내적 의미에서 출애굽기 29장과 거의 비슷하다. 물론 그 해석 역시 같아서 두 장 모두는 주님의 인간이 신성이 되심과 인간의 거듭남에 관해 서술해 주고 있다. 그러나 세부 사항에서 상이한 점이 있는 바 이에 주목해서 살펴볼까 한다.
그러므로 관찰하게 될 첫 사항은 각 장이 소개 또는 서문으로 시작된다는 점에 대해서이다. 출애굽기는 첫 세 절이 서문에 해당되고 본 장의 경우는 첫 다섯 절 까지이다. 양 책의 서문 안에 있는 일반 진리는 주님의 인간이 신성이 되신 것, 그리고 주님께서 인간의 내면에 속한 것을 통하여 역사하시고 인간은 외부 사항에서 협동함으로 거듭난다는 것이다. 전자는 수소, 두 수양, 누룩 넣지 않은 빵으로, 후자는 바구니로 표현되고 있다. 셋째로 우리가 보게 되는 점은, 양 책의 경우에서 희생 제물에서 바친 것들은 인간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보다 높은 애착들을 명시한다는 것, 그래서 거듭남의 질서에 따라 명명되고 있는 바, 인간에게는 외적 측면에 속한 것들로부터 내적 측면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온 회중이 만남의 천막의 문에 모인다는 것은 주님을 인정함으로 하나가 되는 인간의 보다 낮은 애착들을 표현하고 이 애착이 천국 삶의 길을 가는 시작임을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주목해 볼 만한 것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계속 두 가지 측면에서의 표현을 계속해 가고 있다는 것, 즉 주님으로부터 즉각 진행되는 신성한 선과 신성한 진리 측면과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에 관한 원리들을 받는 그릇인 교회 속의 사람들 측면을 이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편 양 책 서문에서 강조하는 것은 주님의 뜻은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보다 낮은 삶에서 보다 높은 삶으로의 승강으로, 보다 높은 삶을 보다 낮은 삶 안에서 표현하는 장엄한 수단은 순종인 바, 이 순종이 출애굽기에서는 첫 절에, 레위기에서는 마지막 절에 언급되고 있다. 순종이 언급되는 구절이 배열상 차이가 있는 것은 사랑이 우리를 인도하는 수단이 될 때는 첫 번째 되지만 사랑의 상태에 대한 결과를 나타낼 경우 마지막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 세부 사항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양 책의 각각으로부터 배우게 되는 것은, 악이나 잘못들로부터 순수해지는 것이 주님의 인간이 신성이 되심과 인간의 거듭남 모두에서 첫 번째 일이라는 것인데, 이것이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물로 씻기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주님에게는 깨끗하게 해야 할 그분 자신에 관한 어떤 악도 없다. 오로지 어머니 쪽 생명으로부터 온 악에 대한 경향성만을 지녔을 뿐이다. 그런고로 그분의 경우에서 씻는다는 것은 악에 대한 경향성들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 어머니 쪽의 생명을 제거하는 것을 말하게 되고 이 제거의 결과란, 참으로 신성한 생명 자체가 몸(Body)이라는 최말단 평면에로 내려오는 것이요, 이 몸은 인간의 몸처럼 “썩은 것이 보이는” 상태일 수 없다. 그 이유는 신성에 근원되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맨 먼저 신성한 존재에 의해 물체가 생산되고, 두 번째로 그분의 생명에 의해 그 물체는 형태를 갖추고 조직화된다. 이런 점에서 이 물체는 불멸이다. 이런 생각이 우리로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물질적인 것과 구별되는 신성한 실체인 것에 관한 속성이다. 그 반면 인간은 부모로부터 오는 악에 대한 유전적 경향성들, 뿐만 아니라 실제의 악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천국적 삶을 충분히 받기 전, 물과 상응되는 말씀의 외부 측면에 속하는 진리들을 자기 삶에 적용해감으로 계속해서 깨끗해져야 한다. 참으로 모든 사람은 “선행을 배우기” 전에 “악행을 중단하는” 것을 먼저 이룩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주목해둘 것은, 인간의 경우 저질러진 악과 잘못들이 실지로 철폐되는 것은 아니고 당사자와 더불어 영원히 남아 있는다. 다시 말해 진실된 회개의 효과는 악을 절대적으로 파괴시켜 버리는 것은 아니고 오로지 더 이상 눈에 나타나지 않게 제거된다는 말이다.
회개로 악이 제거되는 효과가 이제 등장한다. 이 효과는 말씀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오는 천국적 진리들을 인정하여 수용하며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항들이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옷들로 표현되어지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 좀 더 주목해보아야 하리라 생각된다. 위 사항에 대해서 레위기의 줄거리는 출애굽기의 것보다 조금 더 다양하다. 그리고 말씀의 글자는 내적 의미에 관한 명확한 목적 없이는 어떤 서술로도 존재하지 않는 바, 레위기가 출애굽기보다 옷에 관해 더 서술된 것에 관한 의미도 살펴두는 것이 타당하리라 생각된다. 위 문단 초두에서 말한 대로 출애굽기는 주님의 인간이 신성이 되심, 그리고 교훈을 받고 있는 이들, 다시 말해서 선 쪽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상태 안에 있는 이들과 관련된 인간의 거듭남을 묘사하고 있다. 레위기 역시 대체로 비슷하나 특별한 것은 선의 상태 안으로 진입된 행동을 하는 이들의 거듭남을 더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를 우리는 옷들을 명명하는데서 발견하게 된다. 이를 영적으로 보면, 진리가 배열되는 점에 관한 것이다. 레위기의 경우는 출애굽기보다 옷을 명명하는데 있어 보다 더 세밀하고 충만되어 있다. 예를 들면 레위기의 경우, 정규적 순서로 되어 있는 바, 그 순서는 띠를 가진 상의(속옷), 길고 품이 큰 옷(겉옷), 에봇, 에봇의 띠, 이 뒤를 이어 가슴받이, 우림과 둠밈, 관, 금판이다. 출애굽기의 순서는, 상의(속옷), 길고 품이 큰 옷(겉옷), 에봇, 가슴받이, 에봇의 띠, 이 뒤를 이어 관과 거룩한 왕관이다. 출애굽기의 경우 왜 상의의 띠는 생략되었을까? 그리고 왜 에봇의 띠 앞에서 가슴받이가 명명되었을까? 또는 왜 에봇의 띠 뒤에 가슴받이가 명명되지 않았을까? 영적 왕국에서 상의의 띠는 가장 깊은 사랑의 끈을 말한다. 그리고 에봇의 띠는 사랑의 바깥 끈을 말한다. 그러므로 상의의 띠는 생략된 반면 에봇의 띠는 언급되는 바, 그것은 영적 인간의 초기 경험에서는 내적인 것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외적인 것 보다 덜 받는 바 외적 애착들의 영향 하에 더 있어진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그리고 레위기서의 경우 두 띠의 배열이 적합하게 명명되고 있음을 암시하는 바, 인간의 거듭남이 더 진전된 상태에서는 외적 끈 보다 내적 끈에 의해 더 인도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내적인 것들이 더 완전하기 때문이다. 가슴받이에 관련해보면, 가슴받이는 신성한 선으로부터 빛이 나는 신성한 진리를 말한다, 그러므로 띠는 사랑에 속하는 공통된 끈을 뜻한다. 두 번째로 명명되는 레위기의 경우, 거듭나는 후기 단계에서는 사랑이 통치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진실로 통치하는 힘은 사랑이다. 특히 최말단 사항들 즉 행동으로 표현되는 사랑, 이 사랑은 가장 낮은 등차로부터 가장 높은 등차까지에 이르는 모든 선과 진리를 하나로 묶어 준다. 사랑이 통치할 때 또 다른 결과가 뒤따라오는데 그것은 진리를 밝히 알게 하는 것(계시)이 더욱 눈부시게 빛난다는 것이다. 이 사항은 왜 우림과 둠밈이 출애굽기에서는 생략되고 레위기에서는 언급되는지 까지 설명해준다. 관과 금판이 두 책 모두 마지막 순서에서 언급이 있게 되는데, 이는 각기 신성한 지혜와 총명, 그리고 신성한 인간으로부터 오는 계발을 말한다. 이렇게 설명된다. “신성한 선이 신성한 진리 안으로 유입됨에 따른다”는 말이다. 그 이유가 레위기에서는 금판이 거룩한 왕관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이에 비해 출애굽기에서는 거룩한 왕관만 언급하고 있다. 이런 사항이 보여주는 바는, 거듭남에 있는 계발의 차원에서 진리가 선으로 인도하는 것은 선을 직접 실행하는 상태에 비해 크지 않다는 점이다.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히브리 어순에서, 그리고 각 단어의 상응에 의거해 보면, “금으로 된 판(plate of gold)”은 선에서 나오는 진리를, “거룩함의 왕관(crown of holiness)”은 진리로부터 나오는 선을 뜻하는 바, 전자는 선이 더 완전한 상태를, 후자는 훈육되는 상태인 바 전자보다 덜 완전한 선의 상태이다. 본문의 경우 위 두 표현이 동시에 표현되었는데, 이는 진리와 선의 결합, 충만함을 암시해 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주목되는 한 가지란, 스웨덴볽이 출애굽기의 이 부분에 대해 시리즈별로 내적 의미를 살피는데 한 가지 생략된 부분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자기 방식대로 올바르게 29장의 4-9절을 인용한 후 그는 각 문장의 영적 의미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제 5절의 마지막 부분, 즉 “에봇의 띠로 그를 매어 주어라”에 대한 의미를 주지 않고 있다. 이는 그의 저서 천국의 신비 9837항에 의거 생각하면, “일반적인 끈, 이를 수단으로 내적인 것들을 서로 연결을 지으면서 하나로 묶여짐”을 의미한다. 그리고 “바깥쪽 끈, 에봇은 영적 왕국의 외적 측면을 의미한다.” 제 9999항에 있는 시리즈에서의 내적 의미와 제 10006, 10007항에서 각 용어에 대한 의미가 증거되고 설명되고 있고, 더욱이 제 5절 끝은 글자적 의미로 보아도 고려해야 할 문장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해설이 생략된 끝 부분 역시 영적 의미에서도 그 절과 부합되는 의미들이 뒤따라야 하는데 왜 끝 부분에 대한 영적 의미가 생략되었을까? 말씀의 글자에는 어떤 글자 하나도 불필요한 게 없고 첨가해야 할 필요가 대두되는 곳도 있을 수 없다. 그러면 그 끝 부분에 대한 설명은 무엇일까? 10006항에서 에봇에 관해 말하는 내용에는 에봇의 띠에 관한 것도 분명히 포함되고 있다. 참고로 주어진 9824항을 숙독해 보면 나타나기도 한다. 이 외에도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띠에 관한 언급이 9절에 있는 바, 이 구절의 주석은 제 5절의 생략된 주석을 보충해 줄 것으로 여겨진다. 더욱이 스웨덴볽은 10006항에서 9824항을 참고토록 언급하고도 있다. 따라서 생략된 것은 부주의로 있어졌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레위기 8장 7절은 에봇이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에워쌈”이라는 의미인데 이 의미가 그 단어의 어원에서 유래됨을 보여주고도 있다. 그러므로 띠는 에봇의 한 부품으로 생각해야 하는 바, 그 띠에 관한 내적 의미 역시 에봇에 관해 말해진 것에 포함되고 있다.
두 책에서 차이가 있는 항목들을 비교하면서 생각하는 가운데 옷 다음에 관찰되는 것은 기름 붓는 것에 관해서다. 이것 역시 출애굽기 보다 레위기가 더 충분히 기술해놓고 있다. 그 이유는 선의 직접적 실행은 삶의 모든 등차, 가장 높은 것에서 낮은 것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성별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아론의 머리에 기름을 붓는 출애굽기의 의미는 가장 높은 의미인 위대한 진리를 표현하는 것인 바, 즉 주님의 인간은 그분이 임신되고 출생함으로부터 본래 있었다는 것, 그 인간의 모든 등차 안에 신성이 전적으로 존재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레위기에 기술된 바대로 살피면, 신성이 되시는 과정을 수단으로 주님의 인간은 실제적으로, 더 충분히 신성이 되셨다는 것, 계속되는 질서 속에서 선과 진리의 결합이 있어왔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이 계속적인 질서 속에서의 결합이 성막과 그 안의 모든 것, 제단과 거기에 딸린 모든 기구, 물두멍과 그 받침들에 기름 붓는 것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 뒤를 계속 이어 아론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그를 성별하고 있다.
아론 자신의 옷과 그의 아들들의 옷은 천적 측면에서 진행되어 나오는 신성의 영적 측면과 제각기 보다 낮은 등차에 있는 영적 진리들을 의미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제 제물에 관한 사항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자연적 인간의 깨끗해짐이 수소와 그 수소 주변에 깔린 줄거리로 묘사되고 있는데, 두 책 모두 같은 순서로 되어 있다. 그리고 내적 인간의 깨끗해짐이 태워 바침의 제물로 바쳐지는 첫 수양으로 나타내고 있는 바, 이에 대해서는 두 책 모두 비슷하므로 세부사항에 대한 설명은 건너뛰기로 한다. 그러나 두 번째 수양의 바침은 살펴야 할 것으로 본다. 수양 두 마리가 제물이 되는 것이 먼저 우리로 이상하게 여기게 할는지 모른다. 그 이유는 첫 수양이나 둘째 수양이나 같은 상응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수양이 두 번 반복되는 이유는 인간의 서로 다른 두 상태들이 표현되기 때문인데, 첫 수양은 선 쪽으로 인도하는 진리를, 둘 째 수양은 선으로부터 진행되는 진리를 표현한다. 이를 바꿔 말해보면, 전자는 거듭나는 과정에 있는 인간의 삶을, 후자는 진리를 수단으로 삼아 선을 행동하기 시작할 때인 거듭난 이후의 인간의 삶을 말한다. 그런고로 해서 두 번째 수양은 성직 수임의 수양(the ram of consecration, the ram of fillings, the ram of the filling of the hand)이라 불러지고 있다. 이런고로 꼭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생각이 있게 된다. 현재 우리는 말씀의 영적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해서 해석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고, 단순히 글자 의미에 있는 각각의 용어들에 대한 의미와 상응을 알아보는 수준일 따름이다. 다시 말해서 넓은 측면에서의 영적 사항들을 어느 정도까지만 파악할 뿐이다. 그 이유가 어떤 세부사항의 경우에서는 높은 영감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이 사항은 오늘 본문의 경우에도 예외없이 적용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스웨덴볽의 저서가 우리가 살피는 대목들을 분명하게 구분해주지 않을 경우, 주님의 계속적 계발의 도움이 없을 경우 어떤 대목의 경우는 감추어 놓인 의미를 발견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의 경우, 실토하는 것은 주님이 특별히 임명한 사람, 즉 스웨덴볽과 같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런 난이한 대목에 대해 지각할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렇긴 해도 경건하고 조심스럽게 말씀을 연구하는 보통의 사람이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께 의지하고 있다면 어려운 대목에 대한 이해가 불가능해야 할 특별한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찌됐든 의심치 않는 것은 취급되는 본문의 시리즈와 비슷한 대목의 구분을 알게 될 때, 어떻게 그 안의 각 세부사항들이 그 안의 진리들을 확증할 수 있게 병합되는가 까지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23절은 선으로부터 행동한 일반적인 결과, 즉 진리들을 지각하는데 따른 일반적인 결과를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사용함(uses)이 있기 위해 최말단 사항들에 진리가 더 강하게 작용하는 것도 묘사해놓고 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거듭나는 과정에 있는 사람, 그리고 천적, 영적 천국에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도 타당할 것으로 본다. 그 이유는 거듭나는 과정에 있는 사람의 경우도 선으로부터 행동하는 것, 다시 말해 이기적 동기가 전혀 혼합되지 않은 선행으로부터의 기쁨을 잠깐이나마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29절까지에 이른 구절들을 살펴보자. 이 부분에서는 선으로부터의 기쁨을 어떻게 충분히 실감하느냐가 기술되고 있다. 그리고 천적 인간에 의해서는 그런 실감이 주님으로부터임을 충분히 인정하여 수용한다는 것, 그리고 그 실감이 영적 인간에 의해서는 더욱 활성화되어 증가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항들이 흔들어 바치는 넓적다리와 가슴(갈비), 그리고 그에 수반된 각종 제물로 나타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통째로 주님께 봉헌되어야 하는 것들이다.
이제 특별히 흥미를 갖게 하는 구절에 다가서고 있다. 본문 30절은 최고 높은 천국에서 있어지는 것, 신성한 인간 안에서 신성한 진리가 신성한 선과 상호적으로 하나되는 것, 그리고 더 낮은 천국에서도 이와 같은 하나됨이 있다는 것을 기술해 주고 있다. 그 결과 이 절은 인간 각 개인이 어느 천국에 속하든 간에 거듭나는 사람에게는 각자 속에서 선과 진리의 상호적인 결합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기술해놓고 있다. 주님의 측면에서 신성이 인간에, 인간이 신성에 상호적으로 하나를 이루는 사항은 그분이 세상에 계셨을 때 그분 스스로의 능력에 따라 결과되었다. 그 이유는 신성이 그분 안에 계셨고, 그 신성이 주님의 참 영혼, 생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항을 인간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위의 상호적인 하나됨(reciprocal union)을 주님 측면의 하나됨과 구별하기 위해 우리는 결합(conjunction)이라 부른다. 그 이유는 인간은 자기 스스로 생명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주님에게 자신을 결합한다 라고 말해질 때, 그것 역시 바깥쪽 나타남에 불과하다. 이로부터 우리가 반드시 짚어보고 넘어가야 할 점이란, 주님께서 과학물, 지식, 진리들을 수단으로 하시어 그분 자신에 인간이 결합되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선 자체가 진리와 결합하도록, 그리고 진리가 선과 결합되도록 하는 역사가 거듭나고 있는 사람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 신비함에 관한 지식이 우리에게 어찌됐든 필요하다. 그 이유가 어느 누구도 하느님이 다 알아서 해주겠지라고 읊으면서 만사를 무익하게 처리하거나 자기 손을 내려놓는 태도에 대한 답변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악을 금하고 진리를 수용하는데 있어서 마치 자신 스스로 해내는 듯 행동해야만 한다. 그 이유가 이런 조건에서만 주님께서 각 사람 안에서 진리가 선과 상호 결합하는 결과가 있도록 역사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내용이 30절에서 모세가 기름과 피를 가져다가 아론과 그의 옷에, 아론의 아들과 그의 옷에 뿌리는 묘사에 담겨 있다. 그러나 이런 질문이 있을는지 모른다. “언제 이런 상호적인 결합이 인간과 더불어 개시되는가?” 이 결합은 인간이 자신의 의식하는 상태에서 보편적인 진리를 확언하자마자 시작된다. 그리고 이 확언으로부터 세부적인 사항에 관련되는 진리들을 스스로 결정한다. 이 결정으로부터 그는 새로운 생활로 인도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본문의 내용을 출애굽기의 내용과 비교해가면서 연구해 가면 각 책의 상호적인 결합이 서로 다른 위치를 점유하는 데에 대해 놀랠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그 이유는 이런 상황이 거듭나는 사람에게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듭남이 진행되는 정도에 따라 그 품성은 다양해질 것이다. 이런 이유로 출애굽기에서는 레위기의 8장 30절이 두 번째 수양 제물 앞에 높여져 있고 레위기의 경우는 수양 뒤에 놓여 있기도 하다. 여하튼 위 사항에도 내적 의미에 바탕을 둔다면 이유는 존재한다. 이에 대해서는 10067항에 충분한 설명이 있다. 이 항을 참조하면 이 상호적인 결합은 인간과 더불어 항구적이라고 선포되고 있고, 인간이 자기 스스로 악과 잘못들을 끊어버리는 정도만큼에서 정확하게 진리가 선과 결합되도록 주님이 역사해주신다는 생각까지 우리로 강하게 확증하도록 해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 다음 출애굽기 29장 21절에서 묘사된 바와 같은 상호적인 결합은 레위기 8장 30절에서 묘사되는 것에 비해 보다 하급에 속한다는 것까지 입증해주는 경향이 있다.
31절부터 끝 절까지는 위에서 살핀 바 있는 상호적인 결합의 당연한 결과인 인간이 선을 자기 것으로 삼는 것에 관해 말하고 있는 바 이에 대해서는 더 자세한 설명은 굳이 요구되지 않을 것이라 본다. 한 가지 주목해 둘 것은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은 거듭나는 삶에서 관을 쓰게 되는 행동이요, 천사들에게 있어서 이런 행동은 계속적인 체험에 속한다. 이것이 성직 수임식은 칠 일간 거행된다는 말로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35절의 “죽지 않도록 주님의 분부를 지키라”는 권고는 출애굽기 29장 36절의 권고와 같은 일반적 진리, 화해의 칠 일 동안 매일 죄 바침의 제물로 수소를 바치라는 것, 즉 인간의 깨끗해짐은 천국에서 이든, 지상에서 이든 계속적으로 있어야 한다는 것, 아마 깨끗해지는 노력은 영원히 있어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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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9장

성경: 레위기 1장

1. 그리고 팔 일째 날에, 모세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 그리고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불렀다.
2. 그리고 그가 아론에게 말했다, 당신에게 죄 바침을 위해 수송아지, 그리고 태워 바침을 위해 흠이 없는 수양을 가져오라, 그리고 주님 앞에 그것들을 바치라.
3.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너는 이야기하라, 말하기를, 너희는 죄 바침을 위해 수염소를, 그리고 태워 바침을 위해 일 년된 흠이 없는 송아지와 어린 양을 가져오라.
4. 주님 앞에 희생 제물로 바치기 위해 평화 제물을 위한 황소와 수양. 그리고 기름 섞은 식사 제물. 오늘 주님께서 너희에게 나타나시기 때문이다.
5. 그리고 그들은 모세가 명령한 것을 만남의 천막 앞에 가져왔다. 그리고 모든 회중은 나아와 주님 앞에 섰다.
6. 그리고 모세는 말했다, 이것은 주님께서 너희가 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영광이 너에게 나타날 것이다.
7. 그리고 모세는 아론에게 말했다, 제단 가까이 나아오라, 그리고 당신의 죄 바침과 당신의 태워 바침을 바치라, 그리고 당신 자신을 위하여, 그리고 백성을 위하여 보상을 받게 하라. 그리고 백성의 봉헌을 바치라. 주님께서 명령하신대로이다.
8. 그리하여 아론은 제단으로 가까이 나아갔다, 그리고 죄 바침의 송아지를 죽였다. 이것은 자신을 위해 있었다.
9. 그리고 아론의 아들들은 그에게 피를 제출했다. 그리고 그는 피 안에 자기 손가락을 담궜다, 그리고 그것을 제단의 뿔들에 놓았다, 그리고 제단의 받침에 피를 부었다.
10. 그러나 죄 바침의 지방, 그리고 콩팥들, 그리고 간으로부터의 대망을 그는 제단 위에서 태웠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대로이다.
11. 그리고 고기와 가죽을 그는 진영 밖에서 불로 태웠다
12. 그리고 그는 태워 바치는 제물을 죽였다. 그리고 아론의 아들들은 그에게 피를 전달했다, 그리고 그는 제단 빙둘러 그것을 뿌렸다.
13. 그리고 그들은 그에게 태위 바치는 제물, 조각 조각 된 (고기), 머리를 전달했다. 그리고 그는 제단 위에서 그것들을 태웠다
14. 그리고 그는 내장과 다리들을 씻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제단 위 태워바치는 제물 위에서 태웠다.
15. 그리고 그는 백성들의 봉헌을 제출했다, 그리고 백성을 위해 있었던 죄 바침의 염소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것을 죽였다, 그리고 죄를 위해 그것을 바쳤다, 처음 같이 이다.
16. 그리고 그는 태워 바침의 제물을 제출했다, 그리고 그것을 규정대로 바쳤다.
17. 그리고 그는 식사 제물을 바쳤다, 그리고 거기로부터 그의 손을 채웠다, 그리고 그것을 아침의 태워 바침의 제물에 더하여 , 제단 위에서 태웠다.
18. 그는 또한 평화 제물로부터의 희생 제물, 황소와 수양을 죽였다, 이것은 백성을 위해서 였다. 그리고 아론의 아들들은 그에게 피를 전달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제단 빙둘러 뿌렸다.
19. 그리고 황소의 지방. 그리고 수양의 지방, 꼬리 지방, 그리고 내장을 덮은 지방, 콩팥들, 그리고 간의 대망.
20. 그리고 그들은 가슴들 위에 지방을 놓았다, 그리고 그는 제단에서 지방을 태웠다.
21. 그리고 가슴들과 오른쪽 넓적다리를 아론은 주님 앞에서 흔들어 바침을 위해 흔들었다. 모세가 명령했던 대로 이다.
22. 그리고 아론은 백성을 향하여 그의 손들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들을 축복했다. 그리고 그는 죄 바침의 제물로부터, 태워 바침의 제물로부터, 그리고 평화 제물들로부터 내려왔다.
23. 그리고 모세와 아론은 만남의 천막으로 갔다, 그리고 나왔다, 그리고 백성에게 축복했다.
24. 그리고 주님 앞으로부터 불이 나왔다, 그리고 제단 위에 있는 태워 바치는 제물과 지방을 태웠다. 그리고 모든 백성들이 이것을 보았을 때, 그들은 소리쳤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을 아래로 떨구었다.

영적 의미 요약

* 다양한 애착들 즉 자연적, 영적, 천적 애착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할 사람들이 준비해야 하는 새로운 선의 상태에 관한 가르침, 이는 신성한 인성 안에서 명백해지기 위해서이다. 1-4절.
* 위 목적을 위해 순종하게 되면 그의 이해성과 의지, 그리고 행동에는 더 많은 지각이 있게 된다. 5-6절.
* 전 후 순서에 따른 예배. 7-21절.
* 그 결과 즉 주님과 더 가까운 결합; 인간 부분에서 충분한 상호 결합; 신성한 사랑이 최말단까지 충만되어 우리에게 명백해진다. 그 결과 완전하게 밝히 알게 되면서 심오한 겸손의 상태를 생산한다. 22-24절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그리고 팔 일째 날에, 모세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 그리고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불렀다.

영적 의미

인간이 선 가운데 있을 때 새로운 상태가 발생하는데, 주님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가 그 사람의 천적, 영적, 자연적 등차에 작용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되는 날이란 주제가 바뀜을 명시한다. 팔 일째란 새로운 상태를, 모세란 주님으로부터 오는 신성한 진리를, 부름이란 유입과 주님의 역사(일)하심을, 아론과 그의 아들이란 천적 상태와 영적 상태를, 이스라엘의 장로들이란 자연적 상태를 각각 명시한다. A.C. 4978, 9227, 7010, 6752, 6840, 9946, 9421, 9422.

2절. 그리고 그가 아론에게 말했다, 당신에게 죄 바침을 위해 수송아지, 그리고 태워 바침을 위해 흠이 없는 수양을 가져오라, 그리고 주님 앞에 그것들을 바치라.

영적 의미

그리하여 천적 선으로부터 지각이 있게 된다. 이는 자신 스스로 가진 것은 악밖에 없음을 인정하면서 자연적 인간 안에 있는 순진의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고 진리와 결합되는 것이다. 그 다음 영적 인간 또는 내적 인간 안에 있는 순수한 순진의 선으로 모든 선은 주님으로부터만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말함(saying)이란 지각을; 아론은 천적 선을; 수송아지는 자연적 인간 안에 있는 순진의 선을; 수컷은 진리를; 죄 바침의 제물은 자신 스스로부터는 악밖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인정함을; 태워 바침의 수양은 내적 인간 안에 있는 순진의 선을; 흠이 없음이란 순수한 것을; 주님 앞에 그것을 바침이란 모든 선은 주님으로부터임을 인정하는 것을 각각 명시한다. A.C. 1791, 1822, 9946, 2830, 9391, 725, 3400, 10042, 7837, 9293.

3절.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너는 이야기하라, 말하기를, 너희는 죄 바침을 위해 수염소를, 그리고 태워 바침을 위해 일 년 된 흠 없는 송아지와 어린 양을 가져오라.

영적 의미

위에 이어지는 가르침이 영적 인간에게 그가 지각한 것을 통해 주어지는 바, 주님을 예배함은 선과 결합된 신앙의 진리로부터, 인간 스스로는 악밖에 없음을 인정하면서, 모든 선은 주님으로부터만 존재함을 인정하되 그 인정함은 외적, 내적 인간 양 측면에서 충만되고 순수한 순진의 선으로부터 있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야기하여 말함(speak and say)이란 영적-자연적 인간에게 지시하심을; 죄 바침의 제물인 수염소란 선과 결합된 신앙의 진리를; 죄 바침의 제물은 인간 스스로는 악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함을; 송아지는 외적 측면에 있는 순진의 선을; 그리고 어린 양은 내적 측면에 있는 순진의 선을; 일 년 된 흠이 없는 것이란 모든 충만과 순수함 안에 있는 것을; 태워 바침이란 모든 선은 주님으로부터 있다는 것을 예배 안에서 인정하는 것을 각각 말한다. A.C. 2951, 7304, 4286, 4169, 725, 3400, 10042, 2830, 9391, 10132, 7839, 7837.

4절. 주님 앞에 희생 제물로 바치기 위해 평화 제물을 위한 수소와 수양. 그리고 기름 섞은 식사 제물. 오늘 주님께서 너희에게 나타나시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또한 주님께 드리는 예배는 자연적 선, 영적 선의 측면에서 외부가 평화로운 상태에서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예배는 영적 선이 천적 선과 결합함을 통해야 하는 바, 그 이유는 새로운 상태 안에서 주님은 밝히 알려지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평화 제물인 수소(ox)와 수양이란 자연적 선과 영적 선에 관련하여 외적 평화의 상태에서 주님을 예배하는 것을, 주님에게 제물로 삼음이란 인정함과 그에 따른 예배를, 기름에 반죽하여 만든 식사 제물이란 영적 선이 천적 선과 결합함을, 오늘 주님께서 나타나신다란 새로운 상태에서 주님이 자신을 드러내 보여 주신다는 것을 각각 뜻한다. A.C. 2180, 10042, 10097, 9293, 2177, 9227.

5절. 그리고 그들은 모세가 명령한 것을 만남의 천막 앞에 가져왔다. 그리고 모든 회중은 나아와 주님 앞에 섰다.

영적 의미

인간이 주님을 인정하고 그분의 역사가 천국을 통해 신성이 유입되어짐에 의거 있어짐을 인정할 때 실지로 위 구절의 사항은 거행된다. 그리하여 거듭나는 인간 속의 모든 능력들은 하나가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지시함은 유입을; 만남의 천막이란 천국들을; 주님 앞에 모든 회중이 서 있음이란 그분 앞에서 거듭나는 인간에 종속되는 모든 능력들이 하나가 되어 있음을 각각 뜻한다. A.C. 5486, 3540-3, 7830, 7843, 3136, 9293.

6절. 그리고 모세는 말했다, 이것은 주님께서 너희가 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영광이 너에게 나타날 것이다.

영적 의미

한 가지 더 있게 되는 것, 뚜렷한 지각이 신성한 진리를 통하여 주어지는 바, 이와 같은 예배는 주님께서 받으신다는 것, 이 예배를 통해 주님은 자신을 드러내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모세가 말함이란 신성한 진리를 통해 오는 뚜렷한 지각을; 주님께서 지시하신 일들이란 주님으로부터 유입됨으로 해서 그분에게 열납될 수 있다는 것을; 주님의 영광이 나타남이란 주님이 그분 자신을 분명하게 밝혀 주심을 각각 명시한다. A.C. 1791, 7010, 5486, 5922.

7절. 그리고 모세는 아론에게 말했다, 제단 가까이 나아오라, 그리고 당신의 죄 바침과 당신의 태워 바침을 바치라, 그리고 당신 자신을 위하여, 그리고 백성을 위하여 보상을 받게 하라. 그리고 백성의 봉헌을 바치라. 주님께서 명령하신대로 이다.

영적 의미

이로부터 지각이 천적 선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있게 되는 바, 주님께 접근하고 있다는 것, 이와 동시에 인간은 악밖에 가진 게 없으므로 무가치하다는 것, 모든 선은 주님으로부터만 있어진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 순서는 이러하다. 주님에 관련되는 사항은 인간은 신성과 하나임을, 인간에 관련되는 사항이란 우리는 악의 청산을 의지와 이해함 또는 내적 측면과 외적 측면에서 신성의 유입에 의거 실시함으로 주님과의 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모세가 아론에게 말함이란 신성한 진리로부터 천적 선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있게 되는 지각을; 제단으로 가까이 감이란 주님께 접근함을; 죄 바침의 제물을 바침이란 인간은 무가치하다는 것, 그 이유는 자신 스스로일 경우 악밖에 없기 때문이다는 것을; 태워 바침을 드림이란 모든 선은 주님에 속한다는 것을; 아론이 자신과 백성을 위해 보상을 만드는 것이란 주님에 관련될 경우 인간은 신성과 하나이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게 되고, 인간의 경우 주님과의 재회가 이해함과 의지 측면에서 건립될 수 있다는 것을; “너 자신과 백성”이란 의지와 이해함에 관한 사항임을; 그 이유는 아론은 선을, 백성은 진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백성이 드리는 제물이란 주님을 예배함과 외적 인간 뿐만 아니라 내적 인간에서도 재회함을; “주님께서 지시하신 대로”이란 신성의 유입에 의거함을 각각 명시하고 있다. A.C 1791, 7010, 9946, 921, 6843, 3400, 10042, 10053, 10055, 259, 6451, 5486.

8절. 그리하여 아론은 제단으로 가까이 나아갔다, 그리고 죄 바침의 송아지를 죽였다. 이것은 자신을 위해 있었다.

영적 의미

천적 선 가운데 있는 이들은 자연적 인간 안에 있는 순진의 선으로부터 예배를 준비하고 자기 속에는 악밖에 없음을 인정함으로 해서 주님께 가까워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 구절에서 아론은 천적 선 가운데 있는 이들을; 가까이 나아감이란 주님께 접근함을; 죄 바침의 송아지를 잡음이란 자연적 인간 안에 있는 순진의 선으로부터 주님께 대한 예배를 준비하는 것을; 죄 바침이란 인간 스스로부터는 악밖에 없음을 인정함을 각각 뜻한다. A.C. 9946, 921, 6843, 10024, 2830, 3400, 10042.

9절. 그리고 아론의 아들들은 그에게 피를 제출했다. 그리고 그는 피 안에 자기 손가락을 담궜다, 그리고 그것을 제단의 뿔들에 놓았다, 그리고 제단의 받침에 피를 부었다.

영적 의미

선행 가운데 있는 이들은 신성한 진리가 천적 사랑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선으로부터 있는 진리에 능력이 존재함을 인정하는 동안, 진리가 선과 결합함이 예배에서 확증되어진다. 그리고 자연적 인간 역시 선으로부터 있는 진리의 유입을 최말단에까지 받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의 아들들이란 선행 가운데 있는 이들을 명시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천국에서 신성한 선으로부터 오는 신성한 진리”를 통해 주님으로부터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을; 아론이 손가락에 피를 찍음이란 선으로부터 온 진리의 능력을; 그 피를 제단 뿔들에 바름이란 진리가 선과 결합된 것을 예배에서 확증함을; 피를 제단 밑바닥에 쏟음이란 자연적 인간 역시 최말단에서 선으로부터 온 진리의 유입을 받는다는 것을 각각 명시한다. A.C. 9946, 9293, 10047, 7430, 10208.

10절. 그러나 죄 바침의 지방, 그리고 콩팥들, 그리고 간으로부터의 대망을 그는 제단 위에서 태웠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대로이다.

영적 의미

이 모든 선, 이 선과 결합된 진리, 내적 측면과 외적 측면 모두에서 이것들이 주님으로부터 있어진 것임을 충분히 인정하여 그분을 섬기는데 헌납된다. 이 헌납은 예배에서 진리에 선이 유입됨에 의해 이루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지방은 천적 선을; 두 콩팥은 진리를; 간에 붙은 대망(기름덩어리)이란 외적 인간 또는 내적 인간에 있는 내면의 선을; 제단에서 사름이란 모든 선이 주님으로부터임을 충분히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분을 섬기는데 헌신되는 것을; 주님이 모세에게 명령하셨다는 것은 예배에서 선이 진리에 유입됨에 의거한다는 것을 각각 명시한다. A.C. 10033, 10032, 10031, 10053, 10055, 2001, 5486, 7010.

11절. 그리고 고기와 가죽을 그는 진영 밖에서 불로 태웠다

영적 의미

자연적 애착들과 그 능력 안에 있는 악하고 거짓된 모든 것은 분리되어 자아 사랑과 결합되어야 하고 천국 삶의 실현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진지 밖에서 고기와 가죽을 불로 태워버림은 자연적 애착들, 그로부터의 능력들에 있는 악하고 거짓된 모든 것은 분리시켜 자아 사랑과 결합되어야 하고, 천국적 삶을 실현하는 이들과 함께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각각 명시한다. A.C. 10035, 10036, 10038.

12절. 그리고 그는 태워 바치는 제물을 죽였다. 그리고 아론의 아들들은 그에게 피를 전달했다, 그리고 그는 제단 빙둘러 그것을 뿌렸다.

영적 의미

모든 선이 주님으로부터만 존재함을 인정하는 천적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할 준비가 된 사람들; 영적 진리는 그분으로부터 천적 사랑을 통해 있어짐을 인정하는 선행 가운데 있는 이들; 이들에게는 진리가 선과 결합함이 모든 방식과 수준에서 확증되고 건설되어 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은 천적 선 가운데 있는 이들을; 태워 바침의 제물을 죽임은 천적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기 위해 준비함을; 태워 바침이란 모든 선이 주님으로부터임을 인정하는 것을; 아론의 아들들이 아론에게 피를 가져옴이란 선행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영적 진리는 천적 사랑을 통해 주님으로부터임을 인정하는 것을; 제단 주변에 뿌림이란 진리가 선과 결합하는 것은 모든 방법과 수준에서 존재한다고 확증하는 것을 각각 명시한다. A.C. 9946, 10024, 10053, 10055, 10047.

13절. 그리고 그들은 그에게 태위 바치는 제물, 조각 조각 된 (고기), 머리를 전달했다. 그리고 그는 제단 위에서 그것들을 태웠다

영적 의미

그리고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선과 진리들은 따로 따로 구분되어 배열되는데 이것이 최말단 사항으로부터 가장 깊은 부분에 이르러 결과되어진다. 그리고 모든 선은 그분으로부터 존재함을 인정함으로 모든 것이 주님께 헌납되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태워 바침의 제물을 조각내어 머리와 함께 아론에게 드림이란 선과 진리는 따로 따로 구분되어 최말단으로부터 가장 깊은 데에 이르기까지 결과된다는 것, 그 이유는 아론의 아들들은 신성한 진리를; 머리가 포함되는 조각조각 냄은 최말단부터 가장 깊은 것에 속한 것을; 그리고 조각조각 냄이란 따로 따로 배열함을; 제단 위에서 태움이란 모든 선은 그분으로부터 있어진다는 것을 인정하여 모든 것을 그분께 헌신하는 것을 각각 명시한다. A.C. 9946, 10049-51, 10048, 10053, 10055.

14절. 그리고 그는 내장과 다리들을 씻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제단 위 태워바치는 제물 위에서 태웠다.

영적 의미

그러나 감각적이고 육적인 가장 낮은 선 그리고 자연적인 외면의 선은 그 선들 모두가 주님으로부터 임을 심정에서 인정함으로 해서 깨끗해진다. 그리하여 그 선들 모두의 근원도 주님께 돌리면서 그분을 섬기는데 헌납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내장과 다리를 씻고 그것들을 태워 바침의 제물에 얹어 놓고 제단에서 태움이란 감각적이고 육적인 가장 낮은 수준의 선, 그리고 자연적 수준에 있는 외면의 선도 주님으로부터 임을 심정으로부터 인정하여 깨끗해지게 하고, 따라서 그것들 모두도 주님의 것임으로 그분을 섬기는데 바쳐져야 한다는 것을 각각 명시한다. A.C. 10049-51, 10055.

15절. 그리고 그는 백성들의 봉헌을 제출했다, 그리고 백성을 위해 있었던 죄 바침의 염소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것을 죽였다, 그리고 죄를 위해 그것을 바쳤다, 처음 같이 이다.

영적 의미

또한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천적 선을 통해 자기들에 속해 있는 순진의 선으로부터 신앙의 진리 가운데 있는 이들은 자기들에 소속된 순진의 선으로부터 예배하되, 앞 절에서와 같이 자신들 스스로로부터는 악밖에 없음을 인정하여 자신을 스스로 준비되게 해서 예배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은 가장 깊은데 있는 천적인 선을, 백성의 제물인 수염소는 신앙의 진리 가운데 있는 이들을, 수염소를 죽임은 준비함을, 죄를 벗기 위해 그것을 바친다는 것은 자신들 스스로는 악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 예배를, 먼저처럼 이란 이전의 경우에서와 같다라는 뜻임을 각각 나타내고 있다. A.C. 9946, 4169, 725, 10024, 3400, 10042.

16절. 그리고 그는 태워 바침의 제물을 제출했다, 그리고 그것을 규정대로 바쳤다.

영적 의미

모든 선이 주님으로부터 신성한 질서에 따라 존재함을 인정함으로 그 선들 모두는 주님께 헌납되어 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태워 바침의 제물을 끌어다가 규정대로 바친다는 것은 신앙의 선 가운데 있는 이들은 모든 선이 신성한 질서에 의거 그분으로부터 있게 됨을 인정함으로 주님께 모두 헌신한다는 것을 명시한다. A.C. 10055, 7995.

17절. 그리고 그는 식사 제물을 바쳤다, 그리고 거기로부터 그의 손을 채웠다, 그리고 그것을 아침의 태워 바침의 제물에 더하여, 제단 위에서 태웠다.

영적 의미

또한 천적 선을 통해 주님이 예배되어지되, 이는 영적 선이 천적 선과 결합함으로부터이다. 그리고 이 결합은 모든 충만과 능력과 함께 이루어진다. 이와 같은 결합이 주님으로부터 있다고 예배에서 인정하는 것이요, 이 예배는 새로운 천국적 상태 안에서 영적 선으로부터, 천적 선으로부터 따로 따로 구분되어 있는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은 천적 선을; 식사 제물은 영적 선이 천적 선과 결합함으로부터 있게 되는 예배를; 한 움큼 가득이란 모든 충만과 능력으로부터임을; 그것을 제단에서 태운다 함은 이와 같은 결합이 예배에서 주님으로부터 있게 됨을 인정하는 것을; 아침의 태워 바침의 제물에 보탠다는 것은 새로운 천국적 상태에서 영적 선과 천적 선으로 주님을 예배하는 것을 따로 따로 더하는 것을 각각 명시한다. A.C. 9936, 2177, 10019, 10053, 10055, 10134, 10136, 9299.

18절. 그는 또한 평화 제물로부터의 희생 제물, 수소와 수양을 죽였다, 이것은 백성을 위해서 였다. 그리고 아론의 아들들은 그에게 피를 전달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제단 빙둘러 뿌렸다.

영적 의미

또한 천적 사랑을 통해 자연적, 영적 수준에 있는 평화로운 자유의 상태에서 주님이 예배되어진다. 영적 진리는 천적 선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임을 인정하는 이들의 예배는 진리가 선과 결합함이 결과되어 건설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은 천적 사랑을; 수소와 수양을 죽임은 자연적, 영적 수준에서 예배를 준비함을; 평화 제물이란 자유로부터 오는 예배를; 아론의 아들들이란 영적 진리 가운데 있는 이들을; 아론에게 피를 바친다는 것은 천적 선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있게 됨을 인정하는 것을; 피를 제단 주변에 뿌린다는 것은 이 예배에서 진리가 선과 결합하는 것이 결과되어 건설됨을 각각 명시하고 있다. A.C. 9946, 10024, 2180, 10042, 10097, 10047, 9293.

19절. 그리고 수소의 지방. 그리고 수양의 지방, 꼬리 지방, 그리고 내장을 덮은 지방, 콩팥들, 그리고 간의 대망.

영적 의미

그래서 자연적 인간과 영적 인간 속의 모든 선; 자연적 선의 모든 외면과 외적인 선; 그리고 자연적 진리의 모든 내면, 자연적 선의 모든 내면;

세부적 영적 의미

수소와 수양의 지방이란 자연적 인간과 영적 인간에 속하는 모든 선을; 꼬리와 내장을 덮은 지방이란 모든 외면과 외부에 있는 자연적 선을; 콩팥은 모든 내면의 자연적 진리들을; 간에 붙은 대망이란 내면에 있는 자연적인 선 모두를 각기 명시하고 있다. A.C. 10033, 2180, 10042, 10071, 10029, 10030, 10032, 10031.

20절. 그리고 그들은 가슴들 위에 지방을 놓았다, 그리고 그는 제단에서 지방을 태웠다.

영적 의미

거룩한 선행 속의 선까지 모두 합하여 이것들 모두는 순수한 사랑으로 주님께 헌납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지방이 가슴 위에 놓임이란 천적 선이 선행의 선과 결합하는 것을; 제단에서 태움은 순수한 사랑으로 주님께 헌신함을 각각 명시한다. A.C. 10033, 10087, 10053, 10055.

21절. 그리고 가슴들과 오른쪽 넓적다리를 아론은 주님 앞에서 흔들어 바침을 위해 흔들었다. 모세가 명령했던 대로 이다.

영적 의미

그런데 모든 거룩한 선행, 천국적 결혼에 관련되는 모든 것들, 그러므로 모든 선이 주님으로부터 존재하고 협동과 유입에 의거 그분에 의해 생명있게 됨을 천적 인간을 수단으로 인정되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 구절에서 가슴(갈비)은 모든 거룩한 선행을; 뒷다리(넓적다리)란 천국적 결혼에 관련되는 모든 것, 그런고로 모든 선을 합친 것을; 아론이 그것들을 흔듦이란 모든 선이 주님으로부터 존재함을 천적 인간을 수단으로 인정하는 것을; 그것들을 흔들어 바침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생명이 있게 되었음을 각기 명시한다. A.C. 10087, 10073, 9946, 10089.

22절. 그리고 아론은 백성을 향하여 그의 손들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들을 축복했다. 그리고 그는 죄 바침의 제물로부터, 태워 바침의 제물로부터, 그리고 평화 제물들로부터 내려왔다.

영적 의미

이러므로 신성한 능력은 내적 인간이 외적 인간과 결합되는 데에 함께 결과된다. 더욱이 후자는 천국에서 삶을 즐기는데 그 즐김이 마치 자기 것인 듯하고 그 삶은 모든 악으로부터 영원히 보존되고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는 능력까지 보존되면서 완전한 평화와 쉼의 상태까지 즐기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이 백성을 향하여 손을 들고 복을 빈다는 것은 신성한 권능을 가지고 내적 인간과 외적 인간의 결합이 결과되는 것을; 그가 죄 바침과 태워 바침과 평화 제물을 모두 드리고 내려옴이란 생명이 마치 자기 것인 듯 외적 인간이 천국에서도 즐긴다는 것을; 그 반면 죄 바침, 태워 바침, 평화 제물은 모든 악에서 영원히 보존해 주심과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는 능력을, 완전한 평화와 쉼의 상태를 각기 관계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A.C. 5328, 3514, 6451, 4964, 4969, 3400, 10053, 10097, 10054.

23절. 그리고 모세와 아론은 만남의 천막으로 갔다, 그리고 나왔다, 그리고 백성에게 축복했다.

영적 의미

그리하여 신성한 진리와 선이 천국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진행된다. 이리하여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의 상호 결합이 있으면서 주님이 그분 자신을 드러내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모세와 아론이 만남의 천막에 갔다가 나오면서란 신성한 진리가 주님으로부터 천국을 통해 진행되는 것을; 그들이 백성에게 복을 빌어줌이란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이 상호 결합하는 것을 명시하는데 이는 둘이라는 의미로부터 분명해진다. 주님의 영광이 나타남이란 주님이 그분을 밝히 들어내심을 명시하고 있다. A.C. 7010, 9946, 3540-3, 9927, 3514, 8427.

24절. 그리고 주님 앞으로부터 불이 나왔다, 그리고 제단 위에 있는 태워 바치는 제물과 지방을 태웠다. 그리고 모든 백성들이 이것을 보았을 때, 그들은 소리쳤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을 아래로 떨구었다.

영적 의미

이로부터 신성한 사랑이 거듭나는 사람의 심정과 지성으로 내려와 천국의 기쁨으로 채워지고, 그 결과 주님께서 우리로 밝히 알게 해주시어 심오하게 겸허한 상태에 이르른다.

세부적 영적 의미

불이 주님으로부터 나옴이란 신성한 사랑의 하강을; 태워버림 또는 삼켜버림이란 충분히 결합함을; 그리고 유입을 수단으로 결합이 행해질 경우 어떤 상해도 있지 않음을; 태워 바침의 제물과 지방이란 거듭나는 사람의 심정과 지성이 이 선의 기쁨으로 채워짐을; 백성이 그것을 봄이란 주님으로부터 오는 명백한 계시(밝히 암)를; 환성을 올리며 얼굴을 아래로 떨구었다는 것은 심오한 겸허의 상태를 각각 명시한다. A.C. 934, 6499, 6834, 10533, 2187, 5149, 10053, 10055, 10033, 2150, 8815, 1999-1.

9장의 종합적 고찰

본 장 첫 절의 “팔 일째 되는 날”이란 천적 상태의 시작을 의미하는 바, 우리의 흥미를 자연스레 끌게 하는 묘사이다. 이 구절을 이해하려면 천적 상태를 구성하게 하는 조건 즉 선을 사실(fact)로서 깨닫는 처음의 상태를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러나 자신이 결코 경험하지 못한 상태를 두고 이럴 것이라고 이해하면서 거듭남을 통과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있지도 않은 것을 생각해냄으로 해서 개념 형성을 가져보려고 할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더 이상 분단된 마음을 갖지 않을 경우 더 이상 시험으로 고생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씀에서 배워진 모든 것에서 확증받게 된다. 그 이유가 그의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에 종속되어 그 둘이 하모니를 이루기 때문이다. 거기에 쉼과 평화가 있게 되는데 이것이 평화 제물로 명시되고 있다.
다시, 우리가 말씀으로부터 받는 가르침 중 하나는 천국에는 밤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거기에도 아침으로부터 저녁까지라는 하루의 변화와 상응되는 상태의 변화는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밤이 없고 어떤 겨울도 없다. 그 반대로 영적 빛과 열의 증가는 있는데 그 이유가 본문이 가르치는 바대로 주님께서 그분 자신을 드러내시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는 실재하는 악이나 잘못들에서 자유로워진 결과에서만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우리는 그 안으로 들어 갈 때가 오기를 얼마나 갈망하고 있을지!
위에 대한 것을 순서대로 간추려 보게 되면 더불어 그 외 다른 중요 사항도 명백히 알게 될 것이다. 태워 바침과 희생 제물로 나타낸 주님에 대한 예배가 천국에 있다는 것은 별로 의아하게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항구적인 선의 상태란 선용의 삶에서 그분을 항구적으로 예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예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특별한 것은 진행 순서에서 죄 바침이 먼저 있어진다는 것이다. 천국에 있는 사람들은 죄를 짓지 않을 텐데 왜 보상받게 함이라는 예배가 순서상 먼저 있어야 한단 말인가? 라는 반문이 있어질 것이라 본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비록 그들이 죄를 짓지 않는다 해도 자신들 스스로는 악밖에 가진 게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천국에서는 이와 같은 인정함 없이는 어느 누구도 거기에 있을 수 없다 (AC868항). 그러므로 천국에서도 조차 죄 바침으로 나타낸 예배는 먼저 있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으로부터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진실로 예배드릴 수 없다. 오로지 순진이 진리와 결합된 자라야 하는 바, 이것을 송아지로 나타내고 있다. 그 이유가 송아지는 자연적 수준에 있는 순진의 선이기 때문이고, 이제 그것이 보다 높은 수준과 하모니를 이룬다. 이 외에 관찰되는 것이 있다. 이 예배의 본질은 선이라는 것인데, 그 이유는 지방만이 제단에서 태워졌기 때문이고, 그 반면 고기와 가죽은 진지 밖에서 태워졌는데 이는 모든 악과 거짓은 천국 예배에서 거절되어야 함을 명시하는 것이다.
천국에서 충분히 거듭난 천적 인간은 천적 사랑 자체로부터 주님을 예배한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은 모든 선이 그분으로부터라고 이 예배에서 인정하고 동시에 주님만을 위해 예배드린다. 그러므로 이 문단에서 알 수 있는 것 또 하나는, 위 사항이 천적 인간으로 구성되는 천국이라는 것, 이를 다른 관점으로 옮겨 보면 이는 내적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라는 것이다. 주님을 사랑함이 아론의 태워 바침과 죄 바침으로 의미되는 바, 이는 내적, 외적으로 있는 순진의 선을 뜻한다. 이 순진의 선은 무지로부터의 순진이 아니라 지혜로부터의 순진이다.
위의 영감된 묘사를 되새겨 보는 가운데 생각해 볼 또 하나는 영적-자연적 인간의 상태, 뿐만 아니라 천적 인간의 상태에 대해서이다. 이 상태들의 상응이 바쳐지는 동물들에서 명확한 차이가 보여져 잘 규명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가 죄 바침의 제물이 수염소, 태워 바침의 제물이 송아지와 어린 양이기 때문이다. 이제 주목해보아야 하는 것은, 천적 인간의 경우 순진의 외적 선은 영적-자연적 인간의 내면과 동일하다는 점, 두 수준들이 서로 겹치는 방식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천적 인간이 태워 바침의 제물로 수양을 가짐에 반하여 영적 인간은 송아지가 아니라 어린 양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어린 양은 천적 인간의 순진과 상응되고, 수양은 영적 인간과 상응되고 있어야 우리에게 수긍이 갈는지 모른다. 이와 같이 눈에 나타나 보이는 불일치가 어떻게 일치할 수 있게 될까? 이렇게 식별해 봄으로 가능할 수 있다. 천적 인간의 가장 깊은 선은 천적 인간의 영적 수준 안에 포함되어져 표현된다. 그러므로 “수양”은 “어린 양”을 포함하면서 그 어린 양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적-자연적 인간의 선은 천적 인간의 선을 함유는 하지만 표현하지 못한다. 이런 경우가 본문에서 언급되고 있다. 즉 “송아지”는 “어린 양”을 포함은 하나 어린 양에 합당한 외적인 것은 못된다. 그 이유는 “수양”이 이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천적 인간과 영적-자연적 인간 사이의 또 다른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즉 전자의 경우 식사 제물이나 평화 제물이 생략된다는 점인데 그 이유는 영적-자연적 인간에 의해 바쳐지는 것들의 의미에는 온 천국과 거듭나는 온 인간을 하나로 묶어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첫 문단의 지시 사항에서는 식사 제물이 평화 제물 뒤에서 언급되고 있는데도 정작 예식이 거행되는 데에서는 태워 바침의 제물 뒤를 잇고 있다. 그 이유는 지시 받는 상태에서는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사이를 하나로 되게 하는 매개체가 아직 적용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험이 오게 될 때 그것들은 각기 적절한 위치를 갖는다. 그래서 식사 제물에 의해 의미되는 것들이 주님께서 신성시하실 경우 하나로 묶는 매개가 되는데 이는 곡식과 기름의 관계적인 의미들로부터 나타난다. 그리고 인간이 거듭나는 경우 결합하는 매개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말씀의 글자적 의미들은 그 안의 내적 의미의 요구에 부응되도록 특별하고도 정확하게 배열되고 있다는 점을 어설프게나마 더듬어 볼 수 있다. 보다 더 세심하게 연구하는 사람은 자신 스스로 위의 사항 외에 더 많은 의미들을 발견해 가리라 믿는다. 이제 마지막 문단에 있는 아론의 축복 그리고 모세와 아론이 만남의 천막에 들어갔다가 함께 나오면서 복을 비는 것에 대해 조금이나마 언급해야 할 것으로 본다.
이제 아론이 그의 손을 들고 백성에게 복을 빌어 주는 것은 주님이 진실로 예배될 때 주님 스스로 교회와 그 교회의 각 사람들과 결합하시는 것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모세와 아론이 만남의 천막에 들어갔다가 함께 나와 다시 백성에게 복을 빌어 준 것은 인간과 주님의 상호 결합에 대한 것을 상징하고 있다. 그 이유는 지도자로서 법률 제정가와 대 성직자는 신성한 진리와 신성한 선의 측면에서 온 교회를 명시하고, 두 번의 축복은 주고받는(상호) 결합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마지막 절은 본 장을 마무리해 주기에 아주 적절한 내용이 될 것이라 본다. 우선 우리가 깊이 상기해 보아야 할 대목은 가르멜산에서 엘리야가 쌓아 바친 제물에 대한 것이다. “…그러자 여호와의 불길이 내려와 제물과 함께 나무와 돌과 흙을 모두 태웠고 도랑에 괴어 있던 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말려 버렸다” (열왕기상 18:38). 신성한 사랑은 언제나 주님으로부터 나와 우주 안의 모든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 이유는 신성한 사랑은 그분으로부터 계속적으로 존재하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인간 존재도 영원히 썩어 없어지지 않는다. 신성한 생명은 영적 죽음의 원인일 수 없다. 그리고 어떤 존재가 인간이라면 그는 신성한 생명은 썩어 없어질 수 없다는 것을 자기 상태의 구성 요소에 따라 단순히 받을 수 있다 (천국과 지옥 39항). 이 사실을 곰곰이 생각한다면, 설사 그 사람이 최악의 악령이라 해도 결국 모든 인간 존재는 자기 생명의 평면을 질서 안으로 가져다 놓을 수밖에는 도리가 없다. 동시에 그 평면에서 영원히 머무르게 된다 (마태 25:46, 천국과 지옥 480항). 이런 상태가 각자에게 있어서 질서에 놓인 것이고 질서있는 상태에 머무르는 것이다. 그 이유는 비록 그가 자신이 받는 주님의 사랑을 되갚을(reciprocate) 수 없다 해도 그 사람 안에는 주님으로부터 온 생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에 보답(reciprocate)하는 천사들, 이로 인해 주님께서 흡족해 하시는 제물을 바치는 천사들의 경우를 우리는 어떻게 말해보아야 할까? 이 제물은 최고로 좋은 의미, 즉 파괴라는 의미에서가 아닌 “태워 버림”이다. 이 “태워짐(consumed)”은 주님께서 기뻐 흠양하시는 것과 같은 등차에서의 의미이다. 그 이유는 이 제물이야말로 상호적인 사랑(reciprocal love)에 대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온 백성이 그것을 보고 소리치고, 그들의 얼굴을 아래로 떨어드렸다.” 이 모습은 천국에서는 언제나 있는 모습이다. 거기에서는 주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요, 겸허함으로 심정을 채우지 않는 게 불가능하다. “심정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마태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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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0장

성경: 레위기 1장

1. 아론의 아들들, 나답과 아비후는 그들 각기 자기의 향로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 안에 불을 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 향을 놓았다, 그리고 주님 앞에 이상한 불을 바쳤다, 이것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명령하시지 않았다.
2. 그리고 주님 앞으로부터 불이 나왔다, 그리고 그들을 삼켰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 앞에서 죽었다.
3. 그 다음 모세가 아론에게 말했다, 이는 주님께서 이야기하셨던 것이다, 말하시기를, 나는 나에게 가까이 오는 그들 안에서 신성하여질 것이다, 그리고 내 백성 앞에서 나는 영광되어질 것이다. 그리고 아론은 자기 평화를 붙잡았다.
4. 그리고 모세는 아론의 삼촌 웃시엘의 아들들, 미사엘과 엘사반을 불렀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했다, 가까이 오너라, 성소 앞으로부터 진영 밖으로 너의 형제들을 운반하라.
5. 그리하여 그들은 가까이 왔다, 그리고 진영 밖으로 그들을 그들의 상의(coat) 안에서 운반했다. 모세가 말했던대로 이다.
6. 그리고 모세가 아론에게, 그리고 그의 아들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말했다. 당신들의 머리의 털을 풀지 말라, 너희의 옷들을 찢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가 죽지 않도록, 그분이 회중에게 분노하시지 않도록 하라. 그러나 너희의 형제, 이스라엘의 전체 집(가문)은 주님께서 지피신 태움에 통탄하게 하라.
7. 그리고 너희는 죽지 않도록 만남의 문으로부터 나가지 말라. 그 이유가 주님으로부터 부어진 기름이 네 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세의 말들에 따라 했다.
8. 그리고 주님은 아론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9. 네가 만남의 천막으로 갈 때, 너희가 죽지 않도록 너와 네 아들들은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말라. 이것은 너의 자손들 대대로 영원히 법령일 것이다.
10. 그리고 너희는 거룩한 것과 보통의 것에, 불결한 것과 깨끗한 것을 구분해 두어라.
11. 그리고 너희는 주님께서 모세의 손을 수단으로 그들에게 이야기했었던 모든 법령을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가르쳐라.
12. 그리고 모세는 아론, 그리고 남은 두 아들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이야기했다, 불로 만들어 주님께 바친 제물의 남은 식사 제물은 제단 옆에서 누룩 없이 그것을 먹어라. 그 이유는 이것은 최고로 거룩하기 때문이다.
13. 그리고 너희는 그것을 거룩한 장소에서 먹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이것은 불로 만들어 주님께 바친 제물로부터의 네 몫, 그리고 네 아들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명령받았다.
14. 그리고 흔든 가슴과 들어 올린 넓적 다리를 너희는 깨끗한 장소에서 먹을 것이다. 당신과 당신의 아들들, 그리고 당신과 더불은 당신들의 딸들이 (먹을 것이다). 그 이유가 그것들은 당신의 당연한 몫으로, 그리고 당신의 아들들의 당연한 몫으로 이스라엘의 자손들로부터의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로부터 주어졌기 때문이다.
15. 들어올린 넓적다리와 흔든 가슴을 그들은 주님 앞에서 그것을 흔들어 바침의 흔들기를 위해 불로 만드는 제물의 지방과 더불어 가져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히 당연한 몫으로 당신과 더불은 당신의 아들들의 것일 것이다.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였다.
16. 그리고 모세는 죄 바침의 염소를 부지런히 찾았다, 그리고 보라, 그것은 태워져 버렸다. 그리고 그는 남은 아론의 아들들, 엘르아잘과 이다말에게 화를 냈다, 말하기를,
17. 어찌하여 너희는 성소의 장소에서 죄 바침의 제물을 먹지 않았느냐? 이것이 최고로 거룩함을 알지 않느냐? 그리고 그는 주님 앞에서 백성들을 위해 보상을 받기 위해 회중의 불법을 짊어지라고 너에게 그것을 준 것이다.
18. 보라, 그것의 피가 성소 안으로 가져와지지 아니했다. 너희는 성소에서 그것을 확실히 먹었어야 했다, 내가 명령한대로 이다.
19. 그리고 아론이 모세에게 이야기했다, 보라, 오늘 그들은 자기들의 죄 바침과 태워 바침을 주님 앞에 바쳤다. 그리고 이런 일이 나에게 떨어졌다. 그리고 만일 내가 오늘 죄 바침의 제물을 먹었다면, 그것이 주님의 시야에서 흡족하게 기뻐하셨을까?
20. 그리고 모세가 이를 들었을 때, 그의 시야에서 아주 좋아 보였다

영적 의미의 요약

* 교리는 있되 선한 삶이 없는 이들은 이기적 사랑에 의해 예배를 모독한다. 그 결과 황폐된다. 그러나 선한 사람은 자기들 예배가 외적으로뿐 아니라 내적으로도 충실하도록 훈육받는다. 단지 외적 예배일 경우 그 예배는 제거되어져야 한다. 선한 이들과 더불어서도 두 가지 예배는 분리되어서는 안되는데 그 이유는 모독이 발생되기 때문이다. 1-7절
* 이렇게 천적 인간은 훈육된다. 그들의 예배는 진리로부터가 아닌 선으로부터 있어야 한다는 것, 진정한 예배와 거짓 사이에 분명한 구분이 있어야 한다는 것, 천적인 것은 영적인 것과 함께 흘러든다는 것, 그 이유는 후자가 신성한 진리로 훈육을 받을 수 있기 위해서이다. 8-11절.
* 천적 인간과 영적 인간이 선을 자기 것으로 삼는 것에 관하여, 전자의 경우 모든 생명이 주님으로부터 존재함을 어떻게 지각하는가, 후자의 경우 위의 사항을 어떻게 인정하는가에 관하여. 12-15절.
* 더 나아가 모독하는 예배에서 선을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하는 데에 관한 가르침, 결과적으로 볼 때 순진의 선을 수단으로 주님과 결합하지 못한다는 것, 그러므로 악으로부터의 해방도 없다는 것에 관하여. 16-20절.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아론의 아들들, 나답과 아비후는 그들 각기 자기의 향로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 안에 불을 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 향을 놓았다, 그리고 주님 앞에 이상한 불을 바쳤다, 이것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명령하시지 않았다.

영적 의미

말씀으로부터 선과 진리에 관한 교리를 가졌으나 그에 따른 삶이 없는 이들은 비록 진리인 그들의 교리가 천적인 선으로부터 이라 해도 그 교리는 악한 욕망과 거짓 추구로 주님의 예배를 오염시킨다. 따라서 그들은 신성의 유입과 정반대 되는 자아 사랑으로부터 예배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내적, 외적 두 측면에서의 말씀 속의 교리들, 이 구절의 경우 문맥에서 보여주듯 생명이 없는 선과 진리에 관한 교리를 말한다. 나답이라는 이름은 “자유”와 “자발적인 선물” 또는 “왕자”라는 뜻인 바, 상응에 의하면 말씀의 내적인 것에서 파생되는 선과 진리를 말하고, 아비후는 “나의 아버지는 그 사람”이라는 뜻인 바, 말씀의 외적인 것에 속한 선과 진리임을 암시하고 있다. 아론의 아들은 일반적으로 선으로부터의 진리들을; 이상한 불이란 악의 욕망을; 이 구절에 있는 향로는 거짓의 추구를; 불은 이기적 사랑을; 주님이 명령하시지 않은 것이란 신성한 유입에 반대되는 것임을 각각 나타내고 있다. A.C. 9375, 9670-2, 1482, 3703-3, 9965, 934, 5486.

2절. 그리고 주님 앞으로부터 불이 나왔다, 그리고 그들을 삼켰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 앞에서 죽었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자아 사랑의 욕망, 사악한 자들이 주님의 탓이라고 하는 고통이 그들을 통째로 삼킨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든 선과 진리에서 황폐해지고 만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 앞에서 나온 불과 그 불이 나답과 아비후를 삼킴이란 이기적 사랑 속의 탐욕, 사악한 자들이 주님께 탓을 돌리는 고통이 그들을 전적으로 사른다는 것을; 주님 앞에서 그들이 죽는다는 것은 사악한 자는 선과 진리 모두가 완전히 황폐해진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A.C. 934, 2447, 5149, 7699.

3절. 그 다음 모세가 아론에게 말했다, 이는 주님께서 이야기하셨던 것이다, 말하시기를, 나는 나에게 가까이 오는 그들 안에서 신성하여질 것이다, 그리고 내 백성 앞에서 나는 영광되어질 것이다. 그리고 아론은 자기 평화를 붙잡았다.

영적 의미

그리고 지각이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선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바, 발생되는 것은 사악한 자와 선한 자에 관한 질서의 법칙에 의거한다는 것, 예배로 주님께 접근할 경우 반드시 외적으로 뿐 아니라 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 진리 뿐 아니라 선으로 접근해야 할 것, 외적 교회의 사람 뿐 아니라 내적 교회의 사람에 의거 접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순수한 선 가운데 있는 이들은 묵묵히 따를 뿐 왜곡된 예배를 막을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모세가 아론에게 말함이란 지각이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선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란 신성한 질서에 의거한 것을; 주님이 그분께 가까이 오도록 그들을 성별하셨다는 것은 예배에서 주님께 접근하는 이들은 내적, 외적으로 접근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분이 온 백성 앞에서 영광되어진다는 것은 표면상 진리 가운데 있는 이들 뿐 아니라 표면상 선 가운데 있는 이들에 관해서도 그렇게 하신다는 것, 또는 외적 교회에 속한 이들과 관계해서도, 내적 교회에 속한 이들과 관계해서도 그렇게 하신다는 것; 아론이 자기 평화를 붙잡고 있다(hold the peace)는 것은 순수한 선 가운데 있는 이들은 묵묵히 따를 뿐 예배가 뒤집히는 것을 방어할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다. A.C. 1791, 7010, 9946, 1728, 9820, 1259, 3295, 6864, 8176.

4절. 그리고 모세는 아론의 삼촌 웃시엘의 아들들, 미사엘과 엘사반을 불렀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했다, 가까이 오너라, 성소 앞으로부터 진영 밖으로 너의 형제들을 운반하라.

영적 의미

선한 생활로 있는 순수한 예배의 한계를 벗어나는 위선적인 모든 예배에 반대하는 것은 가장 외적인 형태에 있는 선행으로부터 파생된 최말단의 진리와 애착들의 직무인바, 이것이 신성한 진리에 따르는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모세는 신성한 진리를 표현하고; 부름은 유입(influx, afflux) 또는 현존을; 미사엘과 엘사반은 관계적으로 볼 때 “청구하는 사람,” “하느님이 보호하는 사람”이라는 뜻인 바 최말단의 진리들과 애착을 말한다. 웃시엘이란 “하느님의 강함”을 뜻하는 바 진리를 수단으로 하는 선의 힘을 말한다. 또한 “하느님의 아이”라고도 뜻하는 바, 이럴 경우는 순진 안에 있는 선으로부터 온 진리의 힘을 나타내준다. 아론의 삼촌은 천적인 선, 또는 가장 외적 형태에 있는 선행, 다시 말해 2차적인(collateral) 천적 선인데 이는 이기적 사랑이 먼저 주도권을 쥠으로 해서 부패되든지, 이기적 사랑에 의해 일시적으로 영향을 받든지 하는 어느 한쪽에 해당된다. 이 구절의 경우 후자는 모세로 표현되는 신성한 진리의 영향 밑에서 있어진 사실로부터 나타나는 바대로 최말단 진리들에 있는 이들이 그렇게 행동했음을 명시한다. 그들이 말함이란 최말단에 있는 이들의 부분에서 선과 진리를 지각함을; 불러놓고(draw near)란 거기에도 하모니가 된 상태가 있을 것임을; 형제(조카)들을 성소에서 진지 밖으로 끌어냄이란 선한 생활로 있게 되는 순수한 예배의 한계를 넘는 위선적인 모든 예배의 제거를, 이로부터 우리가 배우는 바, 아론에 의해 표현되는 천적인 선 또는 주님을 사랑함은 그 사랑이 명백해지는 마음의 수준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말씀의 글자 의미에 있는 순수한 최말단적인 선과 진리들에 있는 것들이 거짓 예배를 제거하는데 기여함으로 해서 더 높은 선을 섬기게 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A.C. 7010, 6840, 7955, 8960, 8964, 6443, 3519, 7840, 3796, 3803, 9946, 3129, 3796, 3803, 9946, 1822, 9378, 4236.

5절. 그리하여 그들은 가까이 왔다, 그리고 진영 밖으로 그들을 그들의 상의(coat) 안에서 운반했다. 모세가 말했던 그대로 이다.

영적 의미

그러면 이렇게 실지로 있게 된다. 모든 불순한 예배는 그 안에서 썩어진 진리와 더불어 제거되는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들이 모세가 시키는 그대로 들어감은 신성한 진리의 지시에 의거 실제로 발생하는 것을; 그들이 그들의 상의 안에서 진지 밖으로 끌어냄이란 썩어진 진리들을 지닌 모든 불순한 예배가 제거됨을 각기 말한다. A.C. 9378, 7010, 4236, 99, 429.

6절. 그리고 모세가 아론에게, 그리고 그의 아들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말했다. 당신들의 머리의 털을 풀지 말라, 너희의 옷들을 찢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가 죽지 않도록, 그분이 회중에게 분노하시지 않도록 하라. 그러나 너희의 형제, 이스라엘의 전체 집(가문)은 주님께서 지피신 태움에 통탄하게 하라.

영적 의미

또한 교회 안에 있는 천적이고 영적인 선과 진리 가운데 있는 이들은 이렇게 지각한다. 바깥쪽으로만 거룩한 듯 나타나는 모독된 예배가 제거됨, 또는 단지 표현적일 뿐인 예배가 제거되는 것에 대해 설사 그 제거가 내적인 것으로부터 외적인 것이 분리되는 일이 거행되지 않도록, 그리고 주님이 혐오하시는 것이 수반되지 않기 위해서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슬퍼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적 교회에 있는 이들에게는 진정한 예배의 손실 때문에 가상적으로라도 슬퍼하도록 허용되어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일렀다 함은 지각을, 아론과 그의 아들 엘르아잘과 이다말은 천국 가운데 그리고 영적인 선과 진리 가운데 있는 교인들을 말하는데, 그 이유는 아론의 아들이 자연적 선을 의미하도록 보여지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나답과 아비후는 본래의 모습대로라면 그들은 영적 선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두 형이 죽어 그들이 표현한 영적 선이 중단되자 동생들이 그 자리를 승계 받아 영적 선을 표현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온 가문은 외적 또는 자연적 선을, 머리를 풀지 말고 옷을 찢지 말라는 것은 내적으로, 외적으로 슬퍼하지 말라는 것을; 죽음이란 외적인 것이 내적인 것으로부터 분리되는 것, 이렇게 해서 영적으로 죽은 것을; 주님께서 온 회중에 분노하신 게 아님이란 주님에게는 혐오하심이 없음을; 태워죽은 자들을 위해 이스라엘 온 가문이 슬퍼하도록 허용되었다는 것은 외적 교회에 있는 이들은 진정한 예배의 손실에 대해 가상적으로 슬퍼하도록 허용하심을 말하고 있다. A.C. 1822, 9812, 9810, 9811, 10244, 4286, 9960, 4763, 272, 9965, 5798, 4286.

7절. 그리고 너희는 죽지 않도록 만남의 문으로부터 나가지 말라. 그 이유가 주님으로부터 부어진 기름이 네 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세의 말들에 따라 했다.

영적 의미

그러나 내적 예배 가운데 있는 이들은 그 예배에서 결코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그 이유가 그 분리는 영적 수준이요, 그들은 진리를 사랑했고 그 진리와 선이 결합되었던 상태였으므로 더 심한 모독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모독이 질서의 법칙을 따라 발생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신성한 섭리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과 그의 두 아들은 내적 예배에 있는 이들을, 만남의 천막 문을 나서지 말라는 것은 내적 예배로부터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죽는다란 외적인 것이 내적인 것에서 분리됨 그리고 인간이 주님으로부터 분리됨을, 그들 위에 기름부어 세움이란 표현이 시작되는 것, 진리가 선과 결합함, 따라서 주님과의 결합을, 이를 위반하면 모독이 있게 된다. 모세의 말에 따라 행동함은 신성한 진리의 법칙에 순종함을, 이 순종을 수단으로 주님께서는 모독에서 인간을 보존하신다. A.C. 2356, 3540-3, 10244, 9954, 3398, 7010.

8절. 그리고 주님은 아론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더 나아가 계시가 있는 바 천적 인간에게 지각이 있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호와는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말씀하심(speaking)은 유입을; 아론은 신성한 선을; 말함(saying)은 지각을 나타낸다. A.C. 2001, 2951, 9946, 1791, 1822.

9절. 네가 만남의 천막으로 갈 때, 너희가 죽지 않도록 너와 네 아들들은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말라. 이것은 너의 자손들 대대로 영원히 법령일 것이다.

영적 의미

주님을 예배함은 영적이든 천적이든 진리로부터 있어서는 안되고 오직 선으로부터 있어야 한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 영적 죽음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적 예배에 관한 이 법칙은 영원히 준수되어야 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만남의 천막으로 들어감이란 사랑(선행, 순종)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을;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함은 영적이든 천적이든 진리로부터 주님을 예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 대목에서 주목해둘 것은 술을 두 겹으로 표현한 것인데 포도주는 영적인 것에 관련되고 독주(strong drink)는 천적인 것에 관련되고 있다. 이 의미가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에 관련되는 사항을 알아보려면 이 구절과 더불어 이사야 5장 22절을 읽어보면 된다. 아론과 그의 아들이란 천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죽지 않음이란 분리되지 않음을; 대대로 영원히 지킬 규정이란 신성한 질서의 외적인 법칙임을 말하고 있다. A.C. 2356, 3540-3, 9812, 1072, 683, 9946, 10244, 7884, 7931, 1041.

10절. 그리고 너희는 거룩한 것과 보통의 것에, 불결한 것과 깨끗한 것을 구분해 두어라.

영적 의미

내적인 것과 결합된 거룩한 외적 예배와 분리된 상태의 예배, 천적 천국과 영적 천국 사이를 진정으로 구분할 것, 후자는 전자에 비해 보다 불완전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분간함이란 따로따로의 분별이 만들어져야 할 것을; 거룩한 것과 보통의 것 사이란 거룩한 외적인 예배가 내적인 것과 결합된 것 사이를; 이것이 분리되는 것이 시리즈로부터 나타난다. 또한 이 분리의 의미는 거룩한 것과 보통의 것의 의미로부터, 또는 보통의 것(common)이라는 말의 히브리 어원을 참조하면 거룩한 것과 모독되어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라 본다. 깨끗한 것과 불결한 것이란 예배 안에 이기적 사랑으로 진리를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이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고, 이것은 “천적 천국과 영적 천국 사이에” 위치한다. 그 이유가 천적 인간이 영적 인간과의 특별한 차이가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 것”으로 구별되는데 다시 말해 진리가 선으로부터 분리 안된 상태에 있는 것이 천적 인간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A.C. 2146, 2434, 2190, 3899, 10307, 10309, 10310, 987, 994, 10130, 1072, 2187.

11절. 그리고 너희는 주님께서 모세의 손을 수단으로 그들에게 이야기했었던 모든 법령을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가르쳐라.

영적 의미

또한 천적 천국은 상대적으로 불완전한 영적 천국, 즉 신앙을 수단으로 선행에 근거하는 천국의 상태에 적절한 선과 진리로 흘러들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백성을 가르치는 것이 천적 인간에 관해 말해질 경우 이는 외적 경로로 해서 이해함 안으로 받게 된 것을 배우고 기억하도록 해주시는 것을 말한다. 이와 관련된 사항은 T.C.R. 8항에서도 더 얻을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란 영적 인간을, 규정이란 천국의 질서로부터 흐르는 진리들과 외적 규범들을, 주님께서 모세를 시켜 말씀하신 것이란 신앙을 수단으로 선행으로부터 온 예배에 관련된 것을, 그 이유는 주님 또는 여호와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말하기 때문이다. 이 신성한 존재는 영적 인간에게서는 선행의 형체를 갖는다. 그리고 모세가 신성한 진리를 표현하는 바 더 낮은 수준인 신앙의 형체를 취한다. A.C. 7007, 3654, 7884, 2001, 9812, 7010, 4448.

12절. 그리고 모세는 아론, 그리고 남은 두 아들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이야기했다, 불로 만들어 주님께 바친 제물의 남은 식사 제물은 제단 옆에서 누룩 없이 그것을 먹어라. 그 이유는 이것은 최고로 거룩하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신성한 질서의 법칙에 따라 천적 인간은 자기 생명의 모든 수준에서 주님에게서 오는 선을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한다. 이는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한 결과인데, 그 이유는 이와 같은 예배와 선은 가장 깊은 예배요 선이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모세가 신성한 진리를 표현하는 바, 아론, 엘르아잘과 이다말은 계속적인 등차로 있는 천적인 선을; 모세가 이들 세 명에게 말함이란 신성한 질서의 법칙에 의하는 것 또는 상응과 유입에 의한 것임을; 남겨져 있는 것 그리고 남겨진 식사 제물이란 교회 안에 있는 것들 중에서 남아있는 것, 그리고 교회 속의 것들이 부패되어지고 난 후 남아있는 선들을 말하는데 이는 본 장의 연속되는 시리즈가 보여주고 있다. 식사 제물을 먹음이란 선을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을; 주님께 살라 바친 제물이란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온 예배의 결과를; 누룩 없이란 거짓에서 자유로움을; 제단 옆이란 선으로부터 온 예배의 상태 안에서를; 최고로 거룩함이란 가장 깊은 예배와 가장 깊은 선을 각기 말한다. A.C. 9812, 1728, 2951, 1831, 1832, 468, 2187, 10055, 2342, 9964, 3210.

13절. 그리고 너희는 그것을 거룩한 장소에서 먹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이것은 불로 만들어 주님께 바친 제물로부터의 네 몫, 그리고 네 아들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명령받았다.

영적 의미

그래서 선은 천적, 영적 교회 또는 천국을 수단으로 하는 거룩한 상태에서 자기 것으로 삼아져야 한다. 그 이유는 진리가 아닌 선으로부터 예배하는 것은 천적, 영적 천국에 속하기 때문이요, 이는 신성한 유입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거룩한 장소에서 먹는다란 거룩한 상태에서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을; 식사 제물이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몫이란 진리로부터가 아닌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는 천적, 영적 교회들에 선이 소속된다는 것을; 주님께 태워 바친 제물이란 순수한 사랑 또는 선으로부터의 예배를; 이렇게 해야 한다는 지시란 신성한 유입의 결과를 각각 말하고 있다. A.C. 2187, 3652, 4581, 2177, 9946, 7884, 7931, 10055, 5486.

14절. 그리고 흔든 가슴과 들어 올린 넓적다리를 너희는 깨끗한 장소에서 먹을 것이다. 당신과 당신의 아들들, 그리고 당신과 더불은 당신들의 딸들이 (먹을 것이다). 그 이유가 그것들은 당신의 당연한 몫으로, 그리고 당신의 아들들의 당연한 몫으로 이스라엘의 자손들로부터의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로부터 주어졌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이와 같이 유입을 수단으로 천적 인간의 지적 원리와 자발적인 원리들은 생기 있게 되고, 외적 측면에 있는 생각과 애착도 거짓이나 불완전함이 없는 가운데 선이 자기 것으로 삼아지게 된다. 그리고 평화와 자유로부터의 외적 예배가 설사 불완전하게 남아 있다 해도 이것들은 내적으로는 순수한 원리로 있는다. 이상은 영적 인간의 경우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흔들어 바친 가슴과 들어 올린 넓적다리란 천적 교회 (의 수준)에 속한 사람의 지적인 원리들과 자발적인 원리들을 말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지적인 원리(intellectual principle)는 선행이고 자발적인 원리(voluntary principle)는 주님을 사랑함이기 때문이다. 흔든다(waving)란 인정함으로 생명있게 됨을; 들어 올림(heaving)이란 활동하는 가운데 천적 사랑으로부터 지각하는 것을; 깨끗한 장소에서 먹는다는 것은 거짓이나 불완전함이 없는 상태에서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을; 아들들은 생각들을; 딸들은 외적으로 있는 애착들을; 그 반면 당신(thou, 형)은 내적인 것을; 성직자로서의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란 내적으로 있는 인간의 순수한 원리를; 받아야 할 몫 또는 규정이란 신성한 질서에 따른 것을; 이스라엘 백성의 평화 제물의 제물로부터이란 평화와 자유의 상태로부터 오는 외적인 예배가 상대적으로 불완전한 상태까지도 임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관련시켜 생각할 경우 이스라엘 백성은 영적 교회의 외적인 것을; 이 외적인 것은 영적 인간의 예배가 천적 인간의 예배와 비교해 볼 때 보다 덜 완전한 상태이다. A.C. 10087, 10090, 10092, 10093, 2187, 4545, 2625, 489, 9946, 5912, 7884, 7931, 10097.

15절. 들어올린 넓적다리와 흔든 가슴을 그들은 주님 앞에서 그것을 흔들어 바침의 흔들기를 위해 불로 만드는 제물의 지방과 더불어 가져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히 당연한 몫으로 당신과 더불은 당신의 아들들의 것일 것이다.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였다.

영적 의미

영적 인간의 거룩한 예배가 생명있게 되는 것은 선행을 수단으로 할 때이고 영적인 것과 천적인 것의 결합은 순수한 사랑과 천적인 선으로부터 있어진다. 그리고 이와 같은 예배는 천적 천국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선과 진리 모두는 영원히 신성한 질서에 따라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백성의 제물은 영적 인간의 거룩한 예배를, 흔든다란 생명있게 됨을, 가슴은 선행을, 넓적다리는 선과 진리의 결합 또는 천적 결혼, 그러므로 영적 천국과 천적 천국 사이의 결합을, 살라바치는 제물이란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예배함을, 지방이란 천적인 선을, 그것이 아론과 그의 아들의 것이다란 이와 같은 예배는 천적, 영적 천국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임을 인정하는 것을, 주님께서 지시하신 영원히 지킬 규정이란 신성한 질서에 의거한다는 것을 각각 말한다. A.C. 922, 3654, 10093, 10087, 10075, 10033, 10055, 7884, 2951.

16절. 그리고 모세는 죄 바침의 염소를 부지런히 찾았다, 그리고 보라, 그것은 태워져 버렸다. 그리고 그는 남은 아론의 아들들, 엘르아잘과 이다말에게 화를 냈다, 말하기를,

영적 의미

인간이 자아 사랑으로 예배를 더럽힐 때 자연적 인간 안에 있는 순진의 선은 그 자아를 통해 사멸되어 진다. 이 결과로 진리와 선에 관한 외적 인간은 신성한 진리로부터 비켜지는 바, 이런 지각이 있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모세가 그들이 죄의 제물로 바친 수염소가 어찌 되었는가를 조사해 본다와 그것이 불에 태워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란 신성한 질서에 의거한 것, 인간이 이기적 사랑으로 예배를 모독할 때 자연적 인간 안에 든 순진의 선은 이 이기적 사랑을 통해 멸해지고 만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 이유는 모세는 신성한 진리를 표현하고, 신성한 진리는 신성한 질서를, 열심히 추구함(조사해봄)이 신성한 진리에 관해 말해질 경우 이는 예견하심과 전능하심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염소는 자연적 인간에 있는 순진의 선을 명시하는데, 그 이유가 염소는 선과 결합된 신앙 속의 진리이기 때문인데 선이 없는 예배는 존재할 수 없고 모든 선 안에는 순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염소가 태워졌음이란 순진의 선이 이런 이기적 사랑으로 해서 멸해짐을 말한다. 그리고 모세가 엘르아잘과 이다말에게 화를 냄이란 신성한 진리가 외적 인간을 싫어함을 말하는데 그렇게 되는 때는 교회가 부패해졌을 때, 다시 말해 나답과 아비후로 명시되는 것, 이기적 사랑에 있는 것들로 예배가 모독되어졌을 때이다. 그러면 외적 교회에 있는 단순한 선은 내적 교회들에 의해 일시적으로 반감을 사게 되고 고통을 당한다. 그런고로 “살아남은” 두 아들이라고 말해지고 있다. 이 “살아남은”이란 외적 인간 안에 남겨져 있는 것들을 뜻한다. 추궁함(saying)은 지각을 말한다. A.C. 7010, 1728, 4718, 4719, 4169, 725, 2526, 7840, 9955, 5798, 468, 1791, 1822.

17절. 어찌하여 너희는 성소의 장소에서 죄 바침의 제물을 먹지 않았느냐? 이것이 최고로 거룩함을 알지 않느냐? 그리고 그는 주님 앞에서 백성들을 위해 보상을 받기 위해 회중의 불법을 짊어지라고 너에게 그것을 준 것이다.

영적 의미

악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예배 속의 선은 그 선에서 결과되는 거룩한 상태에서 자기 것이 되어야 한다. 그 이유가 이 선은 가장 거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적 진리와 선을 통해 주님은 인간이 악과 싸우도록 하시어 인간이 그분과 재회할 수 있게, 다시 말해 외적 인간이 순수한 회개로 내적 인간과 하모니를 이루도록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거룩한 자리에서 죄 바침의 제물을 먹는 것은 악에서 해방되게 하는 예배 속의 선은 거룩한 상태에서 자기 것으로 삼아져야 한다는 것을, 최고로 거룩함이란 이와 같은 예배는 가장 깊은 선으로부터 존재한다는 것을, 아론의 아들에게 준 것이란 모든 선은 주님으로부터 천적인 선과 진리를 통해 존재한다는 것을, 회중의 불법을 짊어지어 주님 앞에서 보상을 받게 한다는 것은 주님께서 인간을 위해 악과 싸우신다는 것, 그리하여 인간이 그분과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또는 외적 인간이 이 순수한 회개로 내적 인간과 조화를 가지는 것을 말한다. A.C. 3400, 2187, 3652, 3210, 5619, 9937, 10042.

18절. 보라, 그것의 피가 성소 안으로 가져와지지 아니했다. 너희는 성소에서 그것을 확실히 먹었어야 했다, 내가 명령한대로 이다.

영적 의미

그러나 예배가 모독되는 경우 거기에서 신성한 진리와 신성한 선의 결합이 없고,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의 결합도 없다. 그렇다해도 거기에는 신성한 질서에 따라 있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소 안으로 피를 가지고 들어가지 않았음이란 모독된 예배의 경우 거기에는 신성한 진리가 신성한 선과 결합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제 4장 5-10절 참조). 수염소는 성소 안에서 먹지 말고 성막 뜰 안에서 먹는다(6장 26절 참조)는 것은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 사이에는 조화가 없다는 것; “내가 하라는 대로”란 신성한 질서에 따라서 있어야 할 것을 말한다. A.C. 9741, 1010, 1728, 2951.

19절. 그리고 아론이 모세에게 이야기했다, 보라, 오늘 그들은 자기들의 죄 바침과 태워 바침을 주님 앞에 바쳤다. 그리고 이런 일이 나에게 떨어졌다. 그리고 만일 내가 오늘 죄 바침의 제물을 먹었다면, 그것이 주님의 시야에서 흡족하게 기뻐하셨을까?

영적 의미

그러므로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하는 신성한 선으로부터 지각이 이렇게 있게 된다. 악에서 해방되고 선과 교통하려는 표현적 예배는 제공되어져 왔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주님과의 어떤 외적 결합도 없다. 설사 외적인 것이 내적인 것에서 분리되었을 때도 없다. 그 이유는 모독된 예배에서의 경우 외적 결합조차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을 외적으로 자기 것 만드는 것조차도 모독되는 상태에서는 불가능할 뿐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 구절의 이야기함(speak, 변명)은 말함(saying)처럼 지각을 말한다. 아론은 신성한 선을; 모세는 신성한 진리를; 죄 바침과 태워 바침은 악에서 해방되기 위한 표현적 예배를, 더불어 선과 교통하기 위한 표현적 예배도 말한다. 그런데 이 제물의 바침은 명령에 의거 아론이 바친 게 아니었다. 오늘이란 그와 같은 상태를, “나에게 이런 일이 닥쳤다”는 것은 모독된 예배로는 결합이 불가능하다는(2절 참조)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런 경우에 죄의 제물을 먹는다는 것은 선과 진리 대신 악을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을 표현한다. 그런고로 주님께 기뻐하시지 않는 것, 주님이 보시기에 선하지 않는 것이다. A.C. 1791, 1822, 9946, 7010, 3400, 8680, 665, 487, 2187, 2572.

20절. 그리고 모세가 이를 들었을 때, 그의 시야에서 아주 좋아 보였다

영적 의미

신성한 진리로 해서 신성한 선에서 오는 이런 지각은 모독된 예배의 실지 상태에 따라 정확히 존재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모세가 듣는다는 것은 신성한 선으로부터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지각함을; 모세가 생각하기에 아주 좋아보였다는 것이란 모독된 예배에서 각 경우의 실제 상태에 따라 정확히 있어진다는 것을, 그런 이유로 모독된 예배도 신성한 선이 신성한 진리와 하나됨에 따라 정확하게, 전능하심에 따라 정확히 존재함을 명시하고 있다. A.C. 3163, 7010, 9946, 2572.

10장의 종합적 고찰

내적 의미로 볼 때 본 장의 첫 절은 인간 사이에 너무나 공통되는 하나의 사실을 우리에게 놓아주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기적인 원리로 주님을 예배한다. 그 이유가 여기서 언급되는 “다른 불(strange fire)”이란 이기적인 사랑을 말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의 경우 비슷한 것은 야곱 즉 그가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해 시리아로 달아났었을 때 서원했던 모습이다. “만일 제가 이 길을 가는 동안 하느님께서 저와 함께 하여 주시고 저를 지켜 주시어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마련해 주시고 무사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만 하여 주신다면, 저는 여호와님을 제 하느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이와 같은 예배는 위 야곱이 표현하는 인간인 자연적 인간에만 국한되어있다. 자연적 인간은 하느님을 잠정적(일시적)으로만 받아들인다. 이 예배가 비록 잠정적이고 가상적이지만 점차 진짜(실지) 기독교적인 예배에로 인도해준다. 하느님에 관한 어떤 확증이 없는 상태가 위의 상태인데 이것이 나답과 아비후로 상징화된 거짓 예배자들 임을 본문이 뜻하고 있다. 그러므로 “야곱”이 “이스라엘” 또는 거듭남에 의해 진실로 영적 인간이 되지 않으면 자연적 인간 자체는 통째로 이기적인 것만에 골몰하여 자신 속에 가득 찬 이기적 원리들만에 의해 완전히 조절되어가고야 만다. 이것이 본문 첫 절의 시리즈, 즉 주님으로부터 불이 나오고, 나답과 아비후가 타버리고, 주님 앞에서 죽고 마는 것으로서 표현되어져 있다.
이에 이어지는 모세의 말들과 아론의 침묵을 곰곰이 생각해 보자. 모세로 표현된 신성한 진리는 사악한 자들이야말로 황폐해져야 한다는 법을 확인하고 있고 신성한 선으로서의 아론은, 그 법을 묵묵히 따르고 있다. 다시 말해 질서의 요구에 따라 정확하게 발생하는 것은 신성한 자비심에 반대될 리가 없다는 말이다. 어떤 인간 존재라 해도 절대로 돌이켜질 수 없는 고통에 처해질 수 있다고 우리가 상상하지 말라는 것, 그 이유가 주님은 지옥도 규율하시기 때문이다.
이제 다음 과정 즉 사악한 자가 선한 자들로부터 분리되는 과정인 둘째 문단을 찬찬히 생각해 보자. 황폐해짐(vastation)이란 어떤 사람이 파괴됨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거기에는 모든 사람이 영원히 보존된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더 설명하면 전체적 측면에서 우주의 보존, 시험을 치르는 상태에서 모든 인간으로 선과 악이 균형(equilibrium)을 이루도록, 그리하여 선택의 자유가 100% 보장 되도록 보존하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 의미가 규정을 위반한 성직자를 진지 밖으로 끌어내는 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이 문단에서 고용되는 사람들의 이름이 지닌 의미나 상응은 매우 암시적이다. 심판 때에 선한 자가 분리되고 그 뒤에 악한 자도 떨어져나가는 것은 마지막 결과로 이끄는 과정인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는 진리이다. 이것이 웃시엘과 그의 아들로 명시되어지고 있다. 시체를 그들의 상의(속옷)과 더불어 제거하는 것은 황폐됨 속에서 부패된 진리 또는 거짓이 그에 대응하는 악들과 결합한다는 말이다. 악한 자는 거짓을, 선한 자는 진리를 사랑한다. 천국에 있는 이들, 지옥에 있는 이들이든 거기서는 누구도 분단된 마음을 가질 수 없어 어느 누구도 선을 뜻하면서 거짓을 생각한다던가, 악을 행하면서 진리를 생각할 수 없다. 선함을 가진 천국에 있는 이들에게는 그 선함에 적합한 진리가 주어지고, 그 반면 지옥에 있는 선함을 가지지 못한 이들로부터는 그들이 선을 해칠 수밖에 없는 고로 진리가 제거된다 (마태 25:39 참조).
위와 같은 것이 사악한 자들에게 있었고 선한 자들의 경우 다음과 같은 사항을 보여준다. 인간의 완전한 상태에서 악은 선으로부터 분리될 뿐 아니라, 선 역시 각기 다른 종류와 등차로 정밀하게 구분되어진다. 다시 말해 천적 인간의 선이 영적 인간의 선으로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이 문단에서 인간 삶의 등차들에 대한 정의가 잘 내려지고 있다. 더욱이 내적 인간과 외적 인간의 구별 역시 잘 나타내주고 있다. 천국에 있는 이들의 행복은 정밀한 구분에 상당히 의존되어 있다. 따라서 복잡하고 뒤섞여 있는 상태로 있는 지상 위 인간의 경우는 천국에 있는 행복을 실감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잃은 형제를 위해 내적 인간은 슬퍼하는 것이 금하여져 있는 반면 외적 인간은 슬퍼해야 한다고 하는 내용에 이상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 주님을 모독하는 예배의 결과로 고통당하는 악한 자에 대해서 내적 인간은 어떤 동정도 하지 않되 외적 인간은 슬퍼해도 좋다는 것은 어쩌면 불평등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되지 않을까? 결코 그렇게 생각하거나 느껴서도 안될 것이다. 그 이유는 선함이 진보되는 수준에 비례해서 인간의 진정한 동정심은 더 순수하고 더 진해질 뿐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가장 높으신 분, 가장 거룩한 주님만이 동정심 그 자체이시다 (요한복음 11:33-39 참조). 죽은 자를 슬퍼하는데 있어서 아론과 그의 남은 아들들에게는 금지 명령이 떨어지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허락 명령이 있게 된 것이 외적, 천적 인간에게는 동점심이 없기 때문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훨씬 더 깊은 동점심을 가진 탓이다. 이들은 바깥쪽 눈에 보이게 표시를 내는 데에는 부족하지만 죽은 자를 두고 슬퍼하는 상징성에 대한 순수한 지식은 충분히 지각하고 있다. 더구나 순수한 사랑과 동정심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아론과 그의 아들로 의미된 이들의 상태는 주님을 가장 내적으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이스라엘 가문으로서 슬퍼하지 말라는데 대한 의미는 더 높은 선과 진리의 상태가 더 낮은 상태의 선과 진리로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것은 머리털과 겉옷의 상응에서 찾아진다. 그들이 만남의 천막 문간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것은 의지 측면에서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이는 만남의 천막 문간이 천적 인간의 자발적인 삶 또는 넓은 측면에서 내적 인간의 한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뒤를 잇는 문단들은 일반적인 진리에 관심을 두고 또 다른 국면에서 보다 더 내면적 상태에 관련하여 일반적 진리를 전시해 놓고 있다. 특별히 천적, 영적 천국에서의 예배 또는 천적, 영적 인간의 예배가 이 문단의 주제가 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이미 살핀 바 있는 자연적 인간의 예배를 포함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 이유가 모든 예배는 선 또는 사랑과 떨어져서는 존재하지 못하기 때문이요, 진리로부터서는 어떤 예배도 존재할 수 없고 진리는 수단으로서만 가능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스웨덴볽의 출애굽기 20장 22절(A.C. 8940항)의 설명과 불일치되는 듯 여겨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다. 그 부분에서도 진리의 선을 함축하고 있고 지적 예배 뿐인 경우가 정죄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영적 인간은 진리를 원리로 해서 예배한다고 말해질 때, 다시 말해서 주님의 명령 사항인지라 예배 의식을 지키는 것 즉 진리에 순종하기 위해서 주님을 예배한다고 말해질 때 원리(principle)라는 단어는 애착을 포함하여 넌지시 비추는 말이 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움직이게 하는 힘은 어느 때나 애착이기 때문이다. 천적 인간과 영적 인간은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 것” 즉 진리로부터의 예배를 갖지 않는 것이 동등한 수준에 결코 있을 수는 없다. 이 뒤의 구절이 이와 연결되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영적 인간에 관련되는 인간의 기능은 매우 흥미있는데, 그 이유는 진리 안에서의 훈육이라 해도 선으로부터 어떻게 있어야 하는지를 보여주지 않을 경우 성공적인 가르침이 될 수 없는 까닭에서 이다. 이는 가르쳐지는 사람이든 가르치는 사람이든 모두 해당된다. 성공적인 선생은 가르치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살아남은 아론의 아들, 그리고 태워 바치고 남은 식사 제물을 잘 생각해보면 전자는 교회가 부패되어졌을 때 그 교회 안에 남아 있는 선 가운데 있는 이들을, 후자는 그들이 자기들 것으로 삼았던 선들을 각각 의미함을 알게 된다. 더불어 그들이 자기 것으로 삼은 선은 주님으로부터 천적, 영적 사랑을 통해 존재했다는 것까지 알 수 있는데 이 사항은 “흔든 가슴과 들어올린 넓적다리”로 명시되고 있다. 그런데 다음 절에는 “들어올린 넓적다리와 흔든 가슴”이라고 하여 앞 절과 뒷 절에서 서로 자리가 바뀌어 묘사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순서가 바뀌고 번복되는 듯한 언급은 거듭남의 첫 단계가 외적인 상태로부터 내적인 상태로 가고, 둘째 단계로 내적 상태로부터 외적 상태로 가는 번복되는 과정을 암시하는 묘사이다. 완성된 상태에서 선이 활동하는 것은 내적인 것에서 외적인 것으로 이어지는 단계이다. 이 두 단계(과정)는 거듭남에서 동시적으로 발생될 뿐만 아니라 연속적이기도 하다. 인간은 외적 측면으로부터 내적 측면에로 향하는 바깥쪽에서의 진보를 해 가는 한편, 주님께서는 천국을 통해 내적 측면에서 외적 측면에로 역사하신다. 또한 각 사람에게 각기 다른 평면이 주님에 의해 인간 안에서 형성된다.
이 장 전체와 관련시켜 죄 바침의 제물의 손실을 생각해 본다면 두 가지 요점이 우리의 시선을 집중하게 한다. 부패된 교회 안에서 사악한 자는 염소로 명시되고 있는 자연적 인간의 순진의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선은 부패라는 일반적 상태 때문에 그 선의 활동이 방해되어 진다. 그 이유는 모독된 예배나 이기적인 예배 속의 거짓들은 주님으로부터 온 선을 수단으로 하여 악에서 해방되게 해주려는 진리나 회개를 촉구하는 진리가 잘못을 저지르도록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이것이 수염소가 불에 태워진 것과 모세가 엘르아잘과 이다말에게 화를 내는 것으로 의미되고 있다. 이제 우리가 주목해 볼 것이 있다. 신성한 진리를 그 자체로만 생각해 본다면 신성한 진리는 회개가 이기적 동기로부터와 거짓 원리에서 악을 금하기만 했을 뿐 선을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한 것을 똑바로 추궁한다. 그 반면 신성한 선은 진리 자체의 본성을 인식하면서 외적 교회에서도 선 가운데 실제로 있는 이들은 내향적으로 회개를 한다는 것, 그들이 거짓 원리로 잘못 예배하고 있다 해도 그런 이유가 교회가 부패되어 거짓 원리가 우세한 까닭에서 임을 인정한다. 그래서 이들이 외향적으로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었다는 것도 인정한다. 이런 사항은 거짓이 거짓으로 확실히 보여져 거절이 가능한 때, 심판 때에는 해결될 문제라는 것까지 인정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가지 대비되는 사항 즉 나답과 아비후가 표현한 것, 즉 악한 심정이 거짓 교리와 병합되는 고로 해서 회개하지 못하는 것과 엘르아잘과 이다말이 표현한 것, 진리인 줄로 알았던 거짓 교리로 해서 길을 잃고 타락되었던 것, 이 둘의 차이점에 주목해두어야 할 것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악은 하느님과 선과 진리에 반대되는 죄로서 알고 금하는 것을 옷을 입고 다니듯 우리의 습관이 되게 하면 그것이 선을 순수하게 자기 것으로 삼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 신성한 진리와 신성한 선은 교회의 모든 상태에서도 인간의 구원이라는 목적을 위해 얼마나 협력하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가늠해 볼 기회를 본 장은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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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1장

성경: 레위기 1장

1.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야기하셨다, 그들에게 말하시기를,
2.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야기하라, 말하기를, 이것들은 너희가 땅 위 모든 짐승들 사이에서 먹을 살아있는 것들이다.
3. 짐승들 사이에서 굽이 나누어 있고, 그리고 발굽이 갈라져 있고, 그리고 되새김을 하는 것은 무엇이든 너희는 먹어라.
4. 그럼에도 너희는 굽이 나누이고 되새김하는 그것들로부터의 이것들은 먹지 못한다. 즉, 낙타, 이것은 되새김은 하나 굽이 나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너희에게 불결하다.
5. 바위너구리(coney), 이것은 되새김질은 하나 굽이 나누어있지 않은 바, 그것은 너희에게 불결하다.
6. 그리고 토끼, 이것은 되새김은 하나 굽이 나뉘지 않은 바, 이것은 너희에게 불결하다.
7. 그리고 돼지, 이것은 굽이 나뉘고 발굽이 갈라져 있으나 되새김을 하지 않기에 이것은 너희에게 불결하다.
8. 너희는 이것들의 고기를 먹지 말라, 그리고 이것들의 시체를 너희는 만지지 말라. 그것들은 너희에게 불결하다.
9. 너희는 물들에 있는 모두로부터의 이것들을 먹어라. 즉, 물들 안에서, 바다들 안에서, 강들 안에서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것, 그것들을 너희는 먹어라.
10. 그리고 물들에서 움직이는 모두로부터의, 그리고 물들에서 있는 살아있는 모든 생물로부터의, 바다 안에서, 그리고 강들 안에서 비늘과 지느러미를 가지지 않은 모두, 그것들은 너희에게 지긋지긋함 이다.
11. 그리고 그것들은 너희에게 지긋지긋함 이다. 너희는 그것들의 고기를 먹지 말라, 그리고 그것들의 시체를 너희는 지긋지긋해 하라.
12. 물들에서 비늘이나 지느러미가 없는 것은 무엇이든, 이것은 너희에게 역겨움이다.
13. 그리고 너희는 가금류 사이에서 이것들을 역겨워 하라. 그것들은 먹어져서는 안된다, 그것들은 역겨웁다. 즉 독수리(eagle), 그리고 수염수리(gier eagle), 그리고 물수리(ostray).
14. 솔개(kite), 그리고 각 종류의 송골매(falcon)
15. 각종 까마귀(raven) 모두 각각.
16. 타조(ostrich), 그리고 부엉이(night hawk), 갈매기(sea mew), 각종 매(hawk).
17. 올빼미(little owl) 가마우지(cormorant), 부엉이(great owl).
18. 그리고 부엉이(horned owl), 그리고 사다새(pelican), 그리고 독수리(vulture).
19. 황새(stork) 각종 왜가리(heron)와 후투티(hoopoe)와 박쥐(bat)이다
20. (발) 넷 모두 위에서 가는 날개달린 기는 모든 것들은 너희에게 역겨웁다.
21. 그럼에도 너희는 발 넷 모두 로 가는 날개 달리고 기는 모든 것들로부터서는 먹어도 된다. 이것들은 땅 위로 동시에 뛰도록 발들 넘어 다리들을 가지고 있다.
22. 그것들에서 이런 것들 까지 너희는 먹어도 된다. 즉 각종 메뚜기(locust), 그리고 각종 베짱이(bald locust), 각종 귀뚜라미(cricket), 각종 팟종이(grass-hopper)
23. 그러나 발 넷을 가진 날개달린 기는 모든 것들은 너희에게 역겨웁다.
24. 그리고 이것들에 의해 너희는 불결해질 것이다. 즉, 그것들의 시체에 접촉하는 자는 누구든지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25. 그리고 그것들의 시체를 조금이라도 나르는 자는 누구든지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26. 굽이 나뉜 짐승 모두 각각, 그리고 발굽이 갈라지지 않은 것, 새김질 않는 것은 너희에게 불결하다. 그것들을 만지는 모든 이는 불결하다.
27. (발) 넷 모두를 사용하여 가는 모든 짐승들 사이에, 그것의 (발톱 있는) 발 위에서 가는 짐승은 무엇이든, 그것들은 너희에게 불결하다. 그것들의 시체를 만지는 자는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28. 그리고 그것들의 시체를 나르는 자는 자기 옷을 빨아라,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그것들은 너희에게 불결하다.
29. 그리고 이것들은 땅 위에서 기는 것들 사이에서 너희에게 불결한 것들이다. 즉 쪽제비(weasel), 쥐, 각종 큰 도마뱀(great lizard).
30. 도마뱀붙이(gecko), 육지 악어(land-crocodile), 도마뱀(lizard), 사막 도마뱀(sand-lizard) 카멜레온(chameleon).
31. 이것들은 기는 모든 것 사이에서 너희에게 불결한 것들이다. 그것들이 죽을 때 그것들에 닿는 자는 누구든지 저녁 때까지 불결 하다.
32. 그리고 그것들 중의 어떤 것, 그것들이 죽을 때 그 위에 떨어지는 것은 무엇이든, 그것은 불결할 것이다. 그것이 나무 그릇이든, 의복이든, 가죽이든, 자루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 가지고 어떤 일이 행해지면, 그것은 물 안에 놓여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은 저녁까지 불결하다. 그런 다음 그것은 깨끗할 것이다.
33. 그리고 질그릇 모두 각각, 이 안으로 그것들 중의 어떤 것이 떨어지면, 무엇이 그것 안에 있든 불결하다. 그리고 그것을 너희는 깨트려라.
34. 먹을런지 모를 (거기 안의) 모든 식품, 그것 위에 물이 오면, 불결하다. 그리고 이런 그릇으로 마셔지는 모든 마실 것은 불결하 다.
35. 시체의 (어떤 부분이) 떨어진 모든 것, 각각은 불결하다. 즉 오븐이든, 납작한 냄비들을 위한 레인지(range)이든, 그것은 불결하다, 그리고 너에게 불결할 것이다.
36. 그럼에도 샘, 또는 물의 모아짐이 있는 구덩이는 깨끗하다. 그러나 그것들의 시체에 닿는 것은 불결하다.
37. 만일 그것들의 시체의 어떤 것이 파종되려 하는 어떤 뿌려지고 있는 씨에 떨어진다면, 그것은 깨끗하다.
38. 그러나 만일 물이 씨 위에 놓인다면, 그리고 그것들의 시체의 (어떤 것이) 거기 위에 떨어진다면, 그것은 너희에게 불결하다.
39. 그리고 만일 너희가 먹을지도 모르는 어떤 짐승이 죽는다면, 시체를 만진 그는 그것 때문에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40. 그리고 그것의 시체를 먹는 자는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저녁까지 불결하다. 그것의 시체를 나르는 자는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41. 그리고 땅 위를 기는 모두 각각의 기는 것은 역겨움이다. 그것은 먹지 말라.
42. 배로 가는 것은 무엇이든, (발)넷 모두 위에서 가는 것은 무엇이든, 많은 발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 땅 위에서 기는 모든 기는 것 까지, 그것들을 너희는 먹지 말라. 그 이유가 그것들은 역겨운 것이기 때문이다.
43. 너희는 기는 어떤 기는 것 가지고 네 자신을 역겨워지게 만들지 말라, 너희를 더러워지게 할 것인, 그것들과 더불어 네 자신을 불결하게 만들지 말라.
44.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 그러므로 너희 자신을 신성해 있게 하라, 나는 거룩하다, 고로 너희도 거룩히 있으라. 너희는 땅위에서 움직이는 기는 것들의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더럽혀지게 하지 말라.
45. 나는 너희 하느님이기 위해 이집트의 토지로부터 너희를 데려온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희는 거룩해야 한다, 내가 거룩하기 때문이다.
46. 이것이 짐승의 법, 가금류의 법, 그리고 물들에서 움직이는 살아있는 생물 모두 각각의 법, 그리고 땅 위에서 기는 생물 모두 각각의 법이다.
47. 불결한 것과 깨끗한 것 사이에, 그리고 먹어도 되는 살아있는 것과 먹지 말아야 하는 살아있는 것 사이를 구별하기 위한 (법들) 이다.

영적 의미의 요약

* 교인이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는 선한 애착, 불순하므로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는 악한 애착에 관한 가르침. 1-8절.
* 자기 것이 될 수 있는 기억 속에 든 말씀의 진리들, 그리고 그렇지 않은 것에 관하여. 9-12절.
* 자기 것이 되어서는 안되는 악한 생각들에 관한 세부 항목. 13-19절.
* 감각적이고 육적인 것을 자기 것으로 삼는데 대하여. 20-23절.
* 피해야 하는 영적 불순함을 일으키는 몇 가지 원인들이 특별히 열거된다. 24-28절.
* 가장 저급에 속하는 감각적이고 육적인 것들, 이것들이 불순해지게 하는 원인인 바, 자기 것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29-38 그리고 41-43절.
* 올바른 질서 상태에서 자기 것으로 삼아진 모든 애착들도 선과 진리가 황폐해지면 불순해지고, 이 불순과 접촉된 애착도 불순한 애착이 되므로 상태의 변화로 제거되어야 한다. 39-40절.
* 주님은 순수함 자체시오 거룩 자체이시기 때문에 인간 구원을 위해 각자가 거룩해지고 순수해지기를 선택한다면 가능하게 해두셨다. 44-45절.
* 위의 사항들은 느낌과 생각 안에 있는 순수한 것과 불순한 것에 관련되는 사항이요, 선과 악에 관해 자기 것이 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관한 신성한 질서의 법칙이다. 46-47절.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야기하셨다, 그들에게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지각을 주심으로 주님으로부터 오는 신성한 진리와 선에 관한 유입이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speaking)은 유입을; 모세는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아론은 신성한 선을; 말함(saying)은 지각을 각각 명시해준다. A.C. 2001, 2951, 7010, 9946, 1791, 1822.

2절.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야기하라, 말하기를, 이것들은 너희가 땅 위 모든 짐승들 사이에서 먹을 살아있는 것들이다.

영적 의미

외적 측면에서 영적 교회인이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하는 선에 관해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심은 영적 교회인으로 밝히 알게 하심을, 먹을 수 있는 짐승과 동물이란 자기 것이 될 수 있는 선한 애착을, 땅이란 외적 인간을 명시하고 있다. A.C. 10355, 3654, 2187, 27, 913.

3절. 짐승들 사이에서 굽이 나누어 있고, 그리고 발굽이 갈라져 있고, 그리고 되새김을 하는 것은 무엇이든 너희는 먹어라.

영적 의미

영적 애착의 내적 측면이나 외적 측면에 상응되는 모든 자연적 애착, 합당한 반성으로 획득되는 진리에 관한 모든 자연적 애착들은 자기 것으로 삼아도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굽이 갈라진 짐승이란 영적 애착과 상응되는 애착들, 그 이유는 동물이 애착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굽(hoof)이란 가장 저급에서의 진리에 관한 애착을 뜻하는 바, 갈라짐, 나누어짐(part, divide)이란 더 높은 애착과의 상응을; 발굽이 갈라진 짐승이란 영적 애착과 상응을 가지는 자연적 애착을; 갈라져 있다(cloven)는 것은 나뉨(division)을 뜻한다. 가장 낮은 것 또는 감각적인 것 그리고 자연적인 것은 각기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에 관련을 가진다. 새김질(반추)하는 것이란 응당 치러져야 할 반성으로 자기 것이 되는 진리에 관한 모든 자연적 애착을 말한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반추작용(chewing the cud)에는 세 가지 사항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먼저 먹은 음식을 토해 올리는 작용(bring up the cud)인데 이는 지식의 승강 또는 진리가 외적인 기억으로부터 이해함 안으로 들어옴으로, 들어온 진리가 곰곰이 되새겨 보는 상태는 음식물을 잘게 씹어 곤죽으로 만드는 작용으로 나타나고, 되새겨진 진리를 자기 것 삼는 상태가 잘 씹은 음식을 다시 삼키는 작용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A.C. 44, 7729, 1832, 2162, 1832, 4171, 제 1장 17절, 3171, 7607-2, 6183, 6844, 3661, 5508, 2187.

4절. 그럼에도 너희는 굽이 나누이고 되새김하는 그것들로부터의 이것들은 먹지 못한다. 즉, 낙타, 이것은 되새김은 하나 굽이 나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너희에게 불결하다.

영적 의미

그러나 비록 합당한 반성으로 진리와 연합되어 있거나 영적 애착과 상응된다 해도 어떤 애착의 경우는 자기 것으로 삼아질 수 없다. 예를 들면 심사숙고함으로 얻어진 진리와 연결된 애착이라 해도 그것이 영적 사랑에 상응되지 않으면 불순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새김질하는 짐승이나 굽이 갈라진 짐승이라도 먹지 못함이란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는 어떤 애착들, 그것들이 되새겨봄에서 진리와 연결되지 않는 경우나 영적 애착과 상응되지 않는 경우의 애착들은 자기 것이 되지 못한다. 낙타란 지식을 단지 이기적으로 사랑함 또는 보상을 기대하여 지식을 사랑함을; 불결하다(unclean) 함은 영적 애착과 상응 않는 결과로 있어지는 불순함을 말한다. 제3절, A.C. 3048, 3816, 3956, 10130.

5절. 바위너구리(coney), 이것은 되새김질은 하나 굽이 나누어있지 않은 바, 그것은 너희에게 불결하다.

영적 의미

지적으로만 지식을 사랑함, 이것이 참으로 반성되어 나왔다해도 영적 사랑과의 상응이 결핍되어 있으면 불순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사반(Shaphan, 바위너구리, coney, Hyrax Syriacus)이란 지식을 지적으로만 사랑함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 이유는 지식을 이기적으로만 사랑함에 이어 순서대로 뒤따르기 때문이다. 새김질은 하나 굽이 갈라지지 않았다는 것은 곰곰이 되새겨 보고 있는 데도 영적 차원과의 상응이 결핍된 것을; 그것이 부정하다는 것은 지식을 지적으로만 사랑함은 불순하다는 것을 말한다. A.C. 10130, 제 3절.

6절. 그리고 토끼, 이것은 되새김은 하나 굽이 나뉘지 않은 바, 이것은 너희에게 불결하다.

영적 의미

지식을 감각적으로만 사랑함 역시 위와 같이 불순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토끼(hare)란 지식을 감각적으로만 사랑함을 말하는데 그 이유는 토끼가 시리즈의 세 번째에 있기 때문이다. 토끼가 새김질은 하나 굽이 갈라지지 않았다 함은 지식에 대한 이 사랑이 참으로 되새겨보기는 하지만 영적 사랑과 상응되고 있지는 않다는 말이다. 이것이 불결하다란 그것이 불순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구절에는 한 가지 의문이 되는 것이 있다. 토끼류(rock-badger, hare)는 낙타처럼 반추 동물은 아니다. 그럼에도 위 두 가지 동물이 새김질을 한다고 말해지고 있다. 이에 대한 설명을 붙여 본다면 이러하다. 잘 새김질한다(bring up the cud)는 용어는 낙타 뿐 아니라 토끼 같은 동물에도 응용되고 있다. 그 이유가 이 동물도 뺨 부분의 텅빈 아구에 보존된 음식물이 적긴 하지만 잘 분쇄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휴식을 할 때 앞니가 서로 서로 일하고 있는데 이렇게 해서 물어 뜯는 용도에 적합하도록 앞니가 보존된다. 그런고로 해서 거룩한 저자에 의해서는 이런 동물도 실지로 새김질하는 것으로 계산되고 있다. 이렇게 추측해본다고 해서 말씀의 글자 의미가 매우 빈약해서 보충해야 할 게 있다는 식으로 말씀에 대해 오판해서는 안 된다. 이미 살핀 바 있지만 말씀의 최말단 의미는 진리의 외관을 포함하고 있다. 더불어 표현과 상응되는 값어치는 글자적 서술이 역사적으로 옳지 않다 해서 그 가치가 덜한 곳은 한군데도 없다. 예를 들면 해가 멈추어 서 있다 라는 구절(여호수아 10:13)이나, 주님께서 시험받으실 때 아주 높은 산꼭대기에서 한 순간에 온 세상 나라를 보셨다(마태 4:8)라는 구절 등등이 있다. 따라서 우리가 본문에 관한 더 많은 세부 사항을 알려면 사반이나 토끼 항목에 관해 백과사전까지 참조하면 더 충분한 이해를 갖게 된다. A.C. 10130, 제3절.

7절. 그리고 돼지, 이것은 굽이 나뉘고 발굽이 갈라져 있으나 되새김을 하지 않기에 이것은 너희에게 불결하다.

영적 의미

부를 획득하는데 게걸스런 사랑, 이것은 탐욕 또는 단순히 육적인 것을 욕심 내는 것인 바, 설사 그것이 영적 사랑과 상응된다 해도 만일 그 목적을 위해 진리를 반영하지 않는다면 불순한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돼지는 부를 획득하려는 게걸스런 사랑, 이른 바 탐욕 또는 단순히 육적 수준에서 욕심내는 것을 말한다. 굽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는 것은 영적 사랑에 상응되도록 할 수 있는 능력을; 새김질을 않는다란 진리를 되새겨보지 않는다는 것을; 불결하다란 영적인 불순을 말한다. A.C. 1742, 10130, 제 3절.

8절. 너희는 이것들의 고기를 먹지 말라, 그리고 이것들의 시체를 너희는 만지지 말라. 그것들은 너희에게 불결하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위의 애착들 어느 것도 영적 인간에 의해 자기 것 삼아질 수 없다. 제 아무리 적은 것이라 해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불순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런 동물의 고기는 먹지 말라 함은 영적 인간은 이와 같은 애착들을 자기 것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 시체에 닿아도 안 된다는 것은 그 애착의 아주 작은 것도 탐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불결하다는 것은 영적인 불순함을 말한다. A.C. 2187, 4404, 10199, 3900, 10130.

9절. 너희는 물들에 있는 모두로부터의 이것들을 먹어라. 즉, 물들 안에서, 바다들 안에서, 강들 안에서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것, 그것들을 너희는 먹어라.

영적 의미

영적 인간이 영적 삶을 진보되게 할 목적에서 계발되는 신성한 말씀으로부터의 진리는 자기 것이 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최말단의 삶이나 선한 일에서 그 진리가 체현되고 표현되어야 한다. 이 사항은 진리의 외적, 내적, 가장 깊은 측면 모두에서 진실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물에 사는 것들이란 말씀 속의 진리를; 먹는다란 자기 것 만듦을; 고기란 과학물들을; 지느러미란 동물이나 인간의 발과 다리처럼 자연적 수준의 힘, 이를 수단으로 영적 삶의 진보가 만들어진다. 비늘이란 완전히 외적인 부분에 속한 것들을, 본문의 경우 선한 일 가운데서 표현되는 최말단 진리를, 그리고 이 진리에 관계되어 따로 있는 가장 깊은 진리도 명시하고 있다. A.C. 2702, 2187, 40, 991, 4381, 4382, 4383, 6693.

10절. 그리고 물들에서 움직이는 모두로부터의, 그리고 물들에서 있는 살아있는 모든 생물로부터의, 바다 안에서, 그리고 강들 안에서 비늘과 지느러미를 가지지 않은 모두, 그것들은 너희에게 지긋지긋함 이다.

영적 의미

그러나 영적 진보를 내다보고 계발되지 않는 진리, 진보를 목적으로 최말단에서 체현 안되는 것들, 그 용도가 내적이든, 가장 깊은 내면이든, 외적이든, 또는 감각적이고 육적일 뿐인 것은 지옥적인 것이 되고 더럽힐 뿐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비늘과 지느러미가 없는 고기란 영적 진보를 위해 발달되지 않는 진리를, 이 목적을 위해 최말단에서 체현되지 않는 진리를 말한다. 바다, 강, 개울이란 내면과 가장 깊은 내면, 그리고 외면을; 물에서 우글거리는 것들, 물 안에 있는 생물이란 감각적이고 육적인 것들을; 그것들이 지긋지긋함이다란 그것들은 지옥적이고 모독하는 것들이라는 말이다. 제 9절, A.C. 40, 41, 6052, 7454.

11절. 그리고 그것들은 너희에게 지긋지긋함 이다. 너희는 그것들의 고기를 먹지 말라, 그리고 그것들의 시체를 너희는 지긋지긋해 하라.

영적 의미

참으로 위의 사항은 영원하다. 자기 것이 되게 할 수 없다. 위의 사항이 아주 미미한 수준의 것이라 해도 영적 인간은 절대 허용해서는 안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것들이 지긋지긋하다고 반복된 이유는 이와 같은 사항들은 영원히 지옥적이고 모독하는 것들이라는 말이다. 그 고기를 먹지 말라는 것은 자기 것으로 삼지 말라는 것을; 그 시체를 지긋지긋한 것으로 여겨라란 아무리 미미한 것이라 해도 절대 방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한다. A.C. 618, 5253, 2187, 3900, 6052.

12절. 물들에서 비늘이나 지느러미가 없는 것은 무엇이든, 이것은 너희에게 역겨움이다.

영적 의미

외적 기억에서 획득되어지는 것은 무엇이든, 그것이 거짓이든 진실한 것이든 영적 진보에 관한 것이 없고, 삶에 선용되기 위해 습득되지 않는다면 어느 것이든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비늘이나 지느러미가 없다는 것은 영적 삶의 진보나 삶의 선용을 위한 게 없다는 것을; 역겨운 것이란 위의 것은 지옥적이고 모독하는 것들임을, 그러므로 자기 것이 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것에 대해 “외적 기억에서 획득되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그 이유는 11, 12절이 각각 영적 의미를 갖는 바, 하나는 내면에 속한 것, 또 하나는 내부에 있는 것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제 9절, A.C. 6052.

13절. 그리고 너희는 가금류 사이에서 이것들을 역겨워 하라. 그것들은 먹어져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역겨웁다. 즉 독수리(eagle), 그리고 수염수리(gier eagle), 그리고 물수리(ostray).

영적 의미

아래의 사항들은 지옥적인 것이요 생각 속에서 순결을 빼앗는 바 깊이 사려해야 한다. 그것들, 즉 합리적 능력인 의지와 이해함 그리고 행동에서 올라오는 가장 깊은 거짓들은 자기 것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새나 가금류는 합리적이고 지적인 것, 그러므로 생각과 관계되는 것을 말한다. 먹지 말라란 자기 것으로 삼아서는 안 됨을; 독수리는 의지 측면에 있는 합리적 능력을 남용함으로 발생되는 가장 깊은 측면의 거짓들; 수염수리(the gier-eagle)란 이해함 측면에서 있는 합리적 능력의 남용으로 발생되는 가장 깊은 측면의 거짓들을 말한다. 물수리(흰꼬리수리, ospray)는 삶 또는 행동 측면에서 위와 유사한 거짓을 말한다. A.C. 40, 6052, 2187, 3901, kitto, art. “ozniyah” 참조.

14절. 솔개(kite), 그리고 각 종류의 송골매(falcon)

영적 의미

의지와 똑같은 종류에 속한 내면의 거짓들, 그들 본성에 따른 이해함과 똑같은 종류의 내면의 거짓들

세부적 영적 의미

솔개(검은소리개, kite)도 위의 독수리와 같은 종류에 있는 내면의 거짓을 말하는데, 그 이유는 솔개 역시 독수리와 비슷하게 먹이를 포획하기 때문이다. 각종 송골매(붉은소리개, falcon)에도 위와 같은 설명이 주어진다. 전자는 의지에 속한 내면의 거짓, 후자는 이해함에 속한 내면의 거짓을 말한다. A.C. 778, 866, 988, 욥기 28:7.

15절. 각종 까마귀(raven) 모두 각각.

영적 의미

각 본성에 의거한 같은 종류의 최말단에 있는 거짓들

세부적 영적 의미

각종 까마귀란 마음의 내면 등차에 있는 최말단 거짓들을; “각종, after its kind”이란 이 절과 다음 절에서 영적으로 “본성에 의거해서,” 즉 동물과 새들에 다양한 종류가 있듯이 애착과 생각의 다양한 종류를 말한다. 창세기 1:11, 12, A.C. 775.

16절. 타조(ostrich), 그리고 부엉이(night hawk), 갈매기(sea mew), 각종 매(hawk).

영적 의미

자연적 수준의 능력을 남용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즉 악으로부터 온 가장 깊은 거짓들, 악으로부터 온 내면의 거짓들, 악으로부터 온 첫 등차의 외면에 있는 거짓들, 그들 본성에 따른 같은 종류의 악에서 온 가장 깊은 거짓들.

세부적 영적 의미

앞 세 절은 합리적 능력을 남용하는 것과 관련되고, 이 절과 다음 절은 자연적 능력을 남용하는 것에, 18-19절은 감각적 능력을 남용하는 것에 관련되어 묘사되는데 이는 시리즈로부터 명백해진다. 거론되는 새들은 크게 세 분과로 나뉘고 있는데 각 분과는 7개로 구성된다. 이는 본문과 신명기 14장 12-18절에서도 같다. 그러나 이 시리즈 즉 14절의 경우는 신명기의 같은 문단에서 세 마리가 명명된데 비해 두 마리만 거론되어 예외를 이루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조금 더 설명해야 할 것으로 본다. 숫자 3×7 또는 21은 좋은 의미일 경우 완전함 또는 거룩함을, 나쁜 의미일 경우 황폐함 또는 모독함과 상응된다. 그런고로 타조는 자연적 마음에 있는 악으로부터 온 가장 깊은 거짓들을; 올빼미는 악으로부터 온 내면의 거짓들을; 갈매기는 악으로부터 온 외적인 거짓들을; 매는 악으로부터 온 가장 깊은 거짓들을 말한다. 이상은 시리즈에서 첫 등차에 해당된다. A.C. 2788, 433, 5268, 예레미야 애가 4:3, 욥기 39:26.

17절. 올빼미(little owl) 가마우지(cormorant), 부엉이(great owl).

영적 의미

악에서 온 내면의 거짓들, 그리고 둘째 등차의 악에서 온 외면에 있는 거짓들, 또한 세째 등차의 최말단 즉 가장 수준 낮은 거짓들,

세부적 영적 의미

올빼미(little owl)는 악으로부터 온 내면의 거짓들을 말하고, 가마우지는 악으로부터 온 외적인 거짓들, 이는 시리즈에서 둘째 등차에 속한다. 부엉이(great owl)는 최말단 또는 가장 낮은 수준의 거짓들을 말하는데 이는 시리즈에서 셋째 등차에 속한다. A.C. 866, 4967, 이사야 34:11).

18절. 그리고 부엉이(horned owl), 그리고 사다새(pelican), 그리고 독수리(vulture).

영적 의미

감각적 애착을 남용함에 관련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즉 가장 깊은 거짓, 내면의 거짓, 첫 등차인 외면의 거짓들.

세부적 영적 의미

부엉이(horned owl, 백조), 펠리컨(사다새), 독수리(vulture, 흰물오리)는 시리즈에 따라서 감각적 애착의 첫 등차에서 제각기 가장 깊은 거짓, 내면의 거짓, 외면의 거짓들을 말한다. 시편 102:6, A.C. 866, 4967.

19절. 황새(stork) 각종 왜가리(heron)와 후투티(hoopoe)와 박쥐(bat)이다

영적 의미

본성에 따른 가장 깊은 거짓과 내면의 거짓들, 그리고 거기서 둘째 등차인 외적인 것, 그리고 거기에 셋째 등차인 가장 낮은 종류의 거짓들.

세부적 영적 의미

황새(stork,고니), 왜가리(heron, 푸른 해오라기), 후투티(hoopoe, 오디새)는 시리즈에 의거 둘째 등차에서 각각 가장 깊은 거짓, 내면의 거짓, 외면의 거짓을 말한다. 박쥐는 시리즈에 의거 셋째 등차에서 가장 저급의 거짓을 말한다. 스가랴 5:9, 이사야 2:20, A.C. 8932, 10582.

20절. (발) 넷 모두 위에서 가는 날개달린 기는 모든 것들은 너희에게 역겨웁다.

영적 의미

영적 생명의 겉모습은 가지고 있으나 거듭 안 난 의지 속에 있는 모든 생각과 느낌, 이것들이 아직 타락된 채 있어 악과 더블은 거짓의 결합으로부터 활동 중일 경우 지옥적이요 불순한 바 자기 것으로 삼아질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기어다니면서도 날개가 달렸다 함은 거듭나지 않은 의지 속의 생각과 느낌, 그러나 영적 삶의 외관을 지닌 것을 말한다. 네 발로 걷는다란 타락되고 모독된 것을; 역겨웁다(abomination)란 타락되고 모독된 것이 확증된 상태를 말한다. A.C. 9331, 8764, 247, 248, 6052.

21절. 그럼에도 너희는 발 넷 모두로 가는 날개 달리고 기는 모든 것들로부터서는 먹어도 된다. 이것들은 땅 위로 동시에 뛰도록 발들 넘어 다리들을 가지고 있다.

영적 의미

위의 것 중 자연적 인간의 감각적이고 육적인 수준 위로 승강될 수 있는 애착과 생각이라면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네 발로 기어다니되 날개 있는 것이란 이 구절의 경우 감각적이고 육체적인 수준 이상으로 승강될 수 있는 보다 낮은 수준의 애착들을 말한다. 발 위에 다리가 있다함은 단지 자연적 수준에서 보다 높은 선과 진리와 교통을 가지는 것을 뜻한다. 걷는 것 같이 땅위로 뛰어 오른다는 것은 영적 삶의 진보나 활동을; 먹는다란 자기 것으로 삼는다는 것을 말한다. A.C. 994, 10050, 8420, 2187.

22절. 그것들에서 이런 것들 까지 너희는 먹어도 된다. 즉 각종 메뚜기(locust), 그리고 각종 베짱이(bald locust), 각종 귀뚜라미(cricket), 각종 팟종이(grass-hopper)

영적 의미

그리고 이와 같은 것, 예를 들면, 의지와 이해함의 가장 낮은 선한 애착들을 그 속성에 따라 내면이나 외면에 속해 있는 것들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 구절에서 명명되는 여러 가지 곤충(locust)들은 각각의 본성에 따라 내면과 외면의 가장 낮은 수준의 애착들을 말한다. A.C. 7643, 775, see kitto, Encyclopadia, art, “chagab.”

23절. 그러나 발 넷을 가진 날개달린 기는 모든 것들은 너희에게 역겨웁다.

영적 의미

영적 삶에 종속되지 않은 감각적이고 육적인 모든 쾌락이나 기쁨들, 이것들은 악과 거짓에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지옥적인 것으로, 지독하게 혐오스러운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네 발을 가지고 기어다니는 날개 돋친 모든 것이란 영적 삶에 종속되지 않은 감각적이고 육체적인 기쁨과 쾌락을 말한다. 그 이유는 그것들에는 악과 더불은 거짓과의 결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역겨웁다란 지옥적이고 모독된 것을 말한다. A.C. 9331, 1686, 6052.

24절. 그리고 이것들에 의해 너희는 불결해질 것이다. 즉, 그것들의 시체에 접촉하는 자는 누구든지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영적 의미

위 사항을 실제 응용하면 불결해진다. 그것의 아주 작은 사항이라도 탐낸다면 불순함의 원인이 된다. 이런 것들은 상태를 바꿈으로만 제거될 수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런 것들이 너희를 지긋지긋해지게 한다”란 불순한 어떤 것을 실행함을 말한다. 건드림은 영적으로 접촉 또는 탐닉을; 저녁때까지란 상태의 마지막, 또 다른 상태의 시작을 말한다. A.C. 10130, 7844.

25절. 그리고 그것들의 시체를 조금이라도 나르는 자는 누구든지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영적 의미

더구나 이와 같은 악을 생각만 한다 해도 외적 부분을 깨끗하게 할 필요성을 요구한다. 그 필요성이 없어질 때까지 불순한 채 있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시체를 나른다란 영적 생명이 결핍된 것 즉 악으로부터 생각하는 것을; 옷을 빤다란 외적 부분을 깨끗케 함을; 저녁 때까지 불결(unclean)하다란 상태가 변화할 때까지 불순하다는 것을 말한다. A.C. 8764, 3900, 3147, 1073, 10130, 7844.

26절. 굽이 나뉜 짐승 모두 각각, 그리고 발굽이 갈라지지 않은 것, 새김질 않는 것은 너희에게 불결하다. 그것들을 만지는 모든 이는 불결하다.

영적 의미

영적 사항과 상응을 가지되 외적일 뿐 내적으로가 아닌 모든 애착은 불순한데, 그 이유가 그 애착들은 선을 위해 신성한 진리를 가지고 되새겨 보지 않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굽이 나뉜 짐승이란 영적 애착과 외적으로 상응되는 애착들을; 굽이 갈라지지 않은 것이란 영적 애착과 내적으로 상응되지 않는 것을; 새김질 않음이란 선을 목적으로 해서 진리를 되새겨보는 데로 인도하지 않는 것을; 불결한 것이란 영적으로 불순한 것을; 닿음이란 영적으로 접촉함을 말한다. A.C. 44, 7729, 1832, 2162, 1832, 4171, 제 3절, 10130.

27절. (발) 넷 모두를 사용하여 가는 모든 짐승들 사이에, 그것의 (발톱 있는) 발 위에서 가는 짐승은 무엇이든, 그것들은 너희에게 불결하다. 그것들의 시체를 만지는 자는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영적 의미

삶의 과정에서 영적 애착과 결합하지 않으려 하여 오직 자연적 수준에 머무는 모든 애착들 역시 불순하다. 이런 애착들의 지극히 작은 것도 영적 애착이 결여돼 있는 바 불순하게 하는 원인이므로 오로지 상태를 바꿈으로써만 제거될 수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발톱있는) 발(paws)로 걸어다니는 것이란 통째로 자연적인 모든 애착을; 네 발로 걷는 동물이란 악이 거짓과 결합된 고로 삶의 과정에서 영적 애착과의 결합을 승인하지 않는 애착을; 불결한 것이란 영적 불순함을; 시체에 닿는다란 영적 생명이 결여된 애착에 접촉함을;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란 상태가 변할 때까지 불순함을 말한다. A.C. 2162, 4403, 9331, 1686, 8420, 10130, 3900, 7844.

28절. 그리고 그것들의 시체를 나르는 자는 자기 옷을 빨아라,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그것들은 너희에게 불결하다.

영적 의미

위의 사항 외에 일상 생활에서 생각되는 모든 악한 애착들도 외면의 측면에서 순수함이 필요하다. 이것 또한 불순해짐을 피할 수 없는 바 상태의 변화로 제거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시체를 나름, 또는 운반함이란 삶의 보통 생활에서 이런 악을 생각했을 경우를; 옷을 빨라란 외적 인간을 깨끗하게 함을;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란 상태가 변할 때 까지 불순함을; “이런 것들은 너희에게 불결하다”란 자연 평면의 내, 외부 측면에서, 그리고 의지와 이해함 측면에서 불순한 것들에 관하여 진리가 확증함을 말한다. A.C. 8764, 3900, 3147, 1073, 10130, 7844, 3388, 6663.

29절. 그리고 이것들은 땅 위에서 기는 것들 사이에서 너희에게 불결한 것들이다. 즉 쪽제비(weasel), 쥐, 각종 큰 도마뱀(great lizard).

영적 의미

감각적이고 육적인 애착들 중 다음의 것도 불순하다. 감각적 사랑을 통해 진리에 억지로 무식해지려는 것, 탐욕, 본래부터 육적 애착일 뿐인 것들.

세부적 영적 의미

땅을 기어다니는 기는 것(creeping thing)이란 감각적이고 육체적인 애착들을; 쪽재비 또는 두더지는 감각적 사랑을 통해 고집스럽게 진리에 무지한 것을; 쥐는 탐욕(avarice)을; 큰 도마뱀은 본성에 의거 육적일 뿐인 애착의 기쁨을 말한다. A.C. 9231, kitto, art. “choled weasel,” 1994, 938, 954, 994, 775, kitto, art. “Isab” 참조.

30절. 도마뱀붙이(gecko), 육지 악어(land-crocodile), 도마뱀(lizard), 사막 도마뱀(sand-lizard) 카멜레온(chameleon).

영적 의미

위 사항으로부터 파생되는 갖가지 악과 거짓들과 함께 내면적으로 거짓이 선을 뒤집음, 내면적으로 악이 진리를 부패시킴, 외면적으로 선이 뒤집힘, 외면적으로 진리가 썩어짐, 불합리한 겉모습에서 일어나는 감각의 유혹.

세부적 영적 의미

여기서 명명되는 동물들은 육체적 애착에서 파생되는 각종 악과 거짓들을 말한다. 그 이유는 그것들 중 넷은 도마뱀과 비슷한 종류이고, 카멜레온은 도마뱀의 한 종류이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해석이 주어지는 바, 거짓에 의해 내면적으로 선이 뒤집힘, 외면적으로 선이 뒤집힘, 외면적으로 진리가 썩어짐, 거짓된 외관으로부터 나오는 감각적 기만을 말한다. A.C. 994, kitto, arts, “anakah, coach, letaah, chomet, tinshemeth, chameleon 참조.

31절. 이것들은 기는 모든 것 사이에서 너희에게 불결한 것들이다. 그것들이 죽을 때 그것들에 닿는 자는 누구든지 저녁 때까지 불결 하다.

영적 의미

위의 것들은 가장 낮은 품성의 불순한 애착들인바, 그것들과 경미하게 접촉되어도 상태를 불순하게 만든다. 이것들은 상태의 변화로 제거될 수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불결한 기는 것이란 가장 낮은 품성의 불순한 애착들을; 닿음이란 영적 접촉을; 시체 또는 죽은 것이란 영적 생명이 없는 것을; 저녁 때까지 불결함은 상태가 변할 때까지 불순함을 말한다. A.C. 994, 10130, 3900, 7844.

32절. 그리고 그것들 중의 어떤 것, 그것들이 죽을 때 그 위에 떨어지는 것은 무엇이든, 그것은 불결할 것이다. 그것이 나무 그릇이든, 의복이든, 가죽이든, 자루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 가지고 어떤 일이 행해지면, 그것은 물 안에 놓여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은 저녁까지 불결하다. 그런 다음 그것은 깨끗할 것이다.

영적 의미

완전하게 황폐된 위의 것들의 상태 안에서는 제 아무리 우연히 그것에 대해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 해도 불순함의 원인이 된다. 이 방자함은 선 또는 진리를 내면적 또는 외면적으로 그릇이 되는 의지 또는 이해함에 영향을 끼친다. 이런 그릇이 사용되어지려면 반드시 진리의 영향 밑에 있어야 하는데 상태가 변화할 때까지는 불순한 채 남아 있는다. 상태가 변화되면 지정된 목적에 충당될 수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앞 절과 이 절에서 죽은 것이란 완전히 황폐함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 시체 위에 떨어지는 것이란 악을 우연히 탐닉하는 것(악을 관대히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그 이유가 이 접촉은 고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부정함은 영적 불순을 말한다. 나무 그릇이란 저장소로서의 의지를; 옷은 저장소로서의 이해함을; 가죽(skin)은 의복(clothing)같이 저장소로서의 진리를; 자루(sack) 역시 옷과 같은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전자는 이해함에, 후자는 의지에 관련된다. 앞의 한 쌍은 각각 외적인 것을, 그 뒤의 한 쌍은 각각 내적인 것과 관계된다. 사람이 쓰는 물건은 무엇이든 간에란 어떤 용도에 충당될 수 있는 저장소를 말한다. 그것을 물에 담근다란 진리로 깨끗하게 함을; 저녁까지 불결하다는 것은 상태가 변할 때 까지 불순함을; 그 뒤에는 깨끗하다란 그릇(vessel)으로 의미되는 외적 자질의 상태는 지정된 목적을 섬길 수 있다는 것, 그 이유는 그것이 내적 상태와 조화를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A.C. 6119, 10130, 643, 2189, 9215, 5489, 683, 9215, 1472, 3147, 7844, 1487.

33절. 그리고 질그릇 모두 각각, 이 안으로 그것들 중의 어떤 것이 떨어지면, 무엇이 그것 안에 있든 불결하다. 그리고 그것을 너희는 깨트려라.

영적 의미

선에 밀착되어 있는 모든 그릇들이 거짓으로 더렵혀지면 가장 저급의 악들로 오염된 것인 바 그 그릇 속의 선은 불순하다. 따라서 그릇 자체가 분리되어야 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기서 오지 그릇(an earthen vessel)이란 선과 일치 않고 거짓으로 더럽혀진 자연적일 뿐인 저장소를, “그 속에 빠진 것”이란 감각적 애착으로 오염된 것을, 불결하다란 영적 불순함을, 그 이유는 이 저장소가 선용되는 측면, 또는 선의 측면이 손상을 입기 때문이다. 그릇을 깨트려 버림이란 이 저장소는 분리되어져야 함을 말한다. A.C. 10105, 제 29, 30절 참조. A.C. 10130, 9163.

34절. 먹을런지 모를 (거기 안의) 모든 식품, 그것 위에 물이 오면, 불결하다. 그리고 이런 그릇으로 마셔지는 모든 마실 것은 불결하다.

영적 의미

자기 것으로 삼을 수도 있는 그릇 속의 선, 그러나 악의 거짓으로 오염되어 있는 바, 불순하다. 따라서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었던 그 선으로부터의 모든 진리 역시 불순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릇 안에 있는 먹을 수 있는 양식이란 자기 것 삼아도 될 용기 속의 선을; 이 절에서의 물이란 거짓을; 마심이란 진리를; 불결한 것이란 영적 불순함을 말한다. A.C. 7480, 2187, 3168, 10130.

35절. 시체의 (어떤 부분이) 떨어진 모든 것, 각각은 불결하다. 즉 오븐이든, 납작한 냄비들을 위한 레인지(range)이든, 그것은 불결하다, 그리고 너에게 불결할 것이다.

영적 의미

위와 같은 악들로 아주 경미하게 외적으로만 오염되었어도 그 모든 것은 불순하다. 선이 준비되도록 하는 데에나, 그리고 진리를 자기 것 삼는데 있어서 준비 사항으로 충당되는 그것은 불순한 바 분리되어야 하며 계속 분리가 진행되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모든 것”이란 외적인 것을 말하는데 이는 뒤따르는 사항에서 명백하다. 주검은 영적 생명이 결여된 것을; 불결한 것이란 불순함을; 오븐이란 자연적 또는 외적 기쁨 또는 사랑,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부숨이란 분리함을; “불결해진다”란 불순함의 계속을 말한다. A.C. 3900, 10130, 7356, 9163.

36절. 그럼에도 샘, 또는 물의 모아짐이 있는 구덩이는 깨끗하다. 그러나 그것들의 시체에 닿는 것은 불결하다.

영적 의미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 또는 진리에 관한 넓은 측면에서의 그릇, 예를 들면 내면적 또는 외면적인 기억, 또는 글자 의미에서의 말씀의 내, 외면적 사항들은 위와 같은 오염에서 순수하다. 어찌됐든 영적 생명이 결여된 것과는 아주 가벼운 접촉을 가졌어도 그 진리는 불순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샘 또는 웅덩이, 그 안에 물이 모여 있을 경우 이는 선 또는 진리에 관한 넓은 측면에서의 저장소(receptacle), 즉 기억 또는 말씀을; 부정하지 않음이란 순수함을; 물에 시체가 닿을 경우 그것은 진리가 영적 생명이 결여된 것과 접촉 또는 오염되는 것, 그러므로 불결하다. A.C. 3424, 679, 2702, 3900.

37절. 만일 그것들의 시체의 어떤 것이 파종되려 하는 어떤 뿌려지고 있는 씨에 떨어진다면, 그것은 깨끗하다.

영적 의미

만일 교인이 가르침을 받는 상태에서 위의 악들이 그의 생각을 오염시키고 있다 해도 이미 심어진 진리들은 순수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파종할 씨란 진리로 훈육되는 상태를; 시체 또는 시체의 일부가 씨에 떨어짐은 생각 안에서 악으로 인해 진리가 오염되는 것을; 깨끗하다(clean)란 불순함에서 자유로워짐을 말한다. A.C. 932, 3900, 제 32절, 10130.

38절. 그러나 만일 물이 씨 위에 놓인다면, 그리고 그것들의 시체의 (어떤 것이) 거기 위에 떨어진다면, 그것은 너희에게 불결하다.

영적 의미

그러나 가르침을 받는 상태라 해도 거짓이 진리와 혼합되고 있다면, 또는 이런 악으로부터 인간이 거짓을 좋아하도록 처리한다면 거기에는 불순이 존재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낟알이 물에 젖었다란 거짓이 진리와 유유하게 혼합됨을; 시체란 악이 진리를 모독함을; 불결함은 불순함을 말한다. A.C. 10130, 제 34절, 932, 3900.

39절. 그리고 만일 너희가 먹을지도 모르는 어떤 짐승이 죽는다면, 시체를 만진 그는 그것 때문에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영적 의미

또한 자기 것으로 삼아질 수 있는 어떤 애착이라도 선과 진리에 관해 황폐해진다면 그 죽은 애착에 대해서는 제 아무리 경미한 관대함도 상태의 변화가 거행될 때까지는 불순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먹어도 되는 짐승이란 자기 것으로 삼아도 되는 애착을; 죽는다란 영적 죽음 또는 황폐함을; 시체에 닿는다란 그 죽은 애착을 방치함을; 불결해짐이란 불순함을; 저녁 때까지란 상태가 변할 때까지를 말한다. A.C. 644, 2187, 10130, 3900, 7844, 제 28절 참조.

40절. 그리고 그것의 시체를 먹는 자는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저녁까지 불결하다. 그것의 시체를 나르는 자는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영적 의미

죽은 애착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은 상태의 변화가 거행될 때까지 불순하다. 그리고 그의 외적 인간은 반드시 깨끗해져야 한다. 설사 그가 이 죽은 상태를 좋아하는 쪽으로 생각하는 것을 허용할 때도 그는 상태가 변화될 때까지 불순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죽은 고기를 먹는다란 죽은 상태에 있는 그 애착을 자기 것 삼는 것을; 저녁때까지 불결하다란 상태가 변할 때까지 불순함을; 옷을 빤다란 외적 인간을 깨끗하게 함을; 시체를 가져다 치움이란 그 죽은 상태를 좋아하여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A.C. 2187, 3900, 7844, 3147, 1073, 8764, 3900.

41절. 그리고 땅 위를 기는 모두 각각의 기는 것은 역겨움이다. 그것을 먹지 말라.

영적 의미

그러므로 넓은 측면에서 감각적이고 육적일 뿐인 애착들은 불순하므로 자기 것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땅위를 기어다니는 기는 것이란 감각적이고 육적인 애착을; 역겨운 것(abomination)이란 지옥적이고 모독한 것을, 그런 고로 불순한 것을; 먹지 말라란 자기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한다. A.C. 9331, 6052, 2187.

42절. 배로 가는 것은 무엇이든, (발)넷 모두 위에서 가는 것은 무엇이든, 많은 발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 땅 위에서 기는 모든 기는 것 까지, 그것들을 너희는 먹지 말라. 그 이유가 그것들은 역겨운 것이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거짓과 악이 결합되도록 하는 감각적일 뿐인 모든 애착, 삶의 진보 과정에서 감각적이 되도록 처리한 모든 애착, 오로지 감각적 애착뿐인 것들, 그래서 더 높은 삶에서 분리되어야만 하는 애착들은 더럽고 지옥적인 바 자기 것으로 삼아질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배로 가는 것이란 오로지 감각적일 뿐인 애착을; 발이 넷이란 삶의 과정에서 거짓이 악과 결합하도록 처리한 것을; 많은 발을 가졌다란 더 심하게 자연적이거나 감각적인 것을; 먹지 않음이란 절대 자기 것으로 삼지 않음을; 역겨웁다란 지옥적이고 모독된 것을 말한다. A.C. 247, 248, 1686, 2162, 2187, 6052.

43절. 너희는 기는 어떤 기는 것 가지고 네 자신을 역겨워지게 만들지 말라, 너희를 더러워지게 할 것인 그것들과 더불어 네 자신을 불결하게 만들지 말라.

영적 의미

영적 인간은 감각적일 뿐인 애착을 탐닉함으로 자신을 썩게 해서는 안 된다. 그는 그것들로 자신을 불순하게 해서 더럽혀지게 해서는 안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기어다니는 기는 것으로 자신을 더럽게 하지 않는다란 단지 감각적일 뿐인 애착들을 심하게 탐닉하지 않음을; 자신을 역겨워지게 하지 않음이란 불순하고 모독하지 않도록 심사숙고함을 말한다. A.C. 6052, 9331, 10130.

44절.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 그러므로 너희 자신을 신성해 있게 하라, 나는 거룩하다, 고로 너희도 거룩히 있으라. 너희는 땅위에서 움직이는 기는 것들의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더럽혀지게 하지 말라.

영적 의미

주님은 선 자체와 진리 자체가 하나되어 계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인간은 선과 진리를 결합되게 함으로 거룩해져야 한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위의 하나됨으로 해서 거룩 자체가 되어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적 인간은 더 높은 삶에서 분리된 어떤 감각적 애착으로도 자신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란 주님은 선 자체와 진리 자체가 하나되신 분임을; 거룩하게 행동하여 거룩하게 됨이란 교인은 스스로 선과 진리가 결합되게 함으로 거룩해져야 한다는 것, 그 이유가 주님께서는 하나됨을 수단으로 거룩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땅 위를 기어다니는 기는 것에 닿아 불결하게 되지 않는다란 영적 인간은 더 높은 생명과 분리된 어떤 감각적 애착으로 자신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한다. A.C. 2001, 4211, 8887, 9331, 10130.

45절. 나는 너희 하느님이기 위해 이집트의 토지로부터 너희를 데려온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희는 거룩해야 한다, 내가 거룩하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더욱이 주님은 구속의 역사로 자연적 인간의 굴레로부터 영적 인간을 해방시키시어 그 영적 인간이 그분을 섬기도록 힘을 주신다. 이런 연유로 사람은 각자의 수준에서 거룩해질 수 있다. 아마 주님이 거룩함 자체이시듯 그도 거룩해질 수도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 하느님이 이집트의 속박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데려옴이란 자연적 인간일 수밖에 없는 굴레로부터 영적 인간을 해방시키심을; 이스라엘족의 바깥쪽 거룩함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순수한 거룩함을 말한다. A.C. 8866, 8788.

46절. 이것이 짐승의 법, 가금류의 법, 그리고 물들에서 움직이는 살아있는 생물 모두 각각의 법, 그리고 땅 위에서 기는 생물 모두 각각의 법이다.

영적 의미

이상 살핀 사항은 의지와 이해함 속의 자연적 애착에 관한 신성한 질서의 법칙이다. 그리고 감각적이고 육적인 애착에 관한 신성한 질서의 법칙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것이 짐승과 새와 물에서 움직이는 모든 동물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동물에 관한 법(law)이다란 의지와 이해함 속의 자연적 애착들; 감각적이고 육적인 애착들에 관한 신성한 질서의 법칙임을 말한다. A.C. 44, 40, 991, 9331.

47절. 불결한 것과 깨끗한 것 사이에, 그리고 먹어도 되는 살아있는 것과 먹지 말아야 하는 살아있는 것 사이를 구별하기 위한 (법들) 이다.

영적 의미

위 사항들은 의지와 이해함 속의 자연적 애착들; 감각적이고 육적인 애착들에 관한 신성한 질서의 법칙인데, 이 법칙들은 불순함과 순수함, 자기 것으로 삼아질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 사이의 구별을 만드는데 그 목적이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불결한 것과 깨끗한 것 사이를 구별함이란 인간의 애착과 생각 안에서 순수한 것과 불순한 것을 구별한다는 것을; 먹을 수 있는 동물과 먹을 수 없는 동물을 구별함이란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는 주님에게서 온 선한 애착과 자기 것 삼을 수 없는 인간 또는 지옥에서 온 악한 애착을 분별하는 것을 말한다. A.C. 10130, 2187.

11장의 종합적 고찰

이 장을 통째로 놓고 생각해 본다면 흥미 있는 부분이 될 것이다. 그 이유는 거듭나는 과정에서 악과 거짓으로부터 깨끗해져야 하되 세부적으로, 그리고 계속적으로 깨끗해져야 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다고 명백하게 증명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보여주는 또 한 가지는 선과 진리는 주님으로부터 내적 인간을 통해 충만된 상태에서 자연적 인간 안에 흘러드는 바, 위와 같은 깨끗해짐 없이는 각자의 것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영적 인간이라면 이렇게 큰 소리로 다음 구절을 외쳐야 하리라. “하느님, 나를 살펴보시고 내 마음 알아주소서, 나를 파헤쳐 보시고 내 근심 알아주소서. 죽음의 길 걷는지 살피시고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시편 139:23, 24).
사실 주님께서는 특별히 파헤치시지 않으셔도 각 인간의 세세한 상태까지 다 헤아리고 있으시다. 말씀으로부터 온 진리의 빛으로 날마다 파헤쳐 깨끗해지는 과정에서 주님과 협동하도록 우리의 생각과 애착을 수색하도록 요구되는 것은 정녕 우리 자신이다. 얼마나 조금도 틀림없게 우리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방금 인용한 위의 구절 외에도 말씀의 오늘 부분에 있는 내적 의미의 모든 세부 사항으로부터서도 아주 명백해질 것이다.
이 말씀 부분을 재조명하면서 아마 우리는 자신을 검사하는 기회를 동시에 갖게 되리라 본다. 우선 주목할 것은 우리가 자기 것 삼아도 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묘사에 대해서인데 이것은 앞 장이 마감되는 부분에서 이 주제에 관해 말해지고 있다. 즉 자연적 인간 안에 있는 순진의 선이 손실됨으로 부패된 예배, 이 순진의 선에서 오는 예배의 손실로 부패된 예배가 말해지고 있다는 말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란, 본 장에서 기술되는 세부적인 방법 안에서 우리가 깨끗해지지 않는다면 작은 어린이와 같이 하늘 나라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모든 충만됨에서 순진의 선을 우리 것이 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 것이 되게 한다는 것(to appropriate, 사유함)은 자기 외의 다른 근원으로부터 온 것을 자기 생명 속에 합병시키는(incorporate)것이다. 마치 우리가 먹고 마시면 자연계의 법칙에 의해 공급되는 것을 신체의 한 부분이 되게 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우리가 음식이라고 여겨질 수 없는 것을 먹고 마실 수 없듯이 영적 인간은 불일치 하는 애착들을 자기 것으로 되게 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영적 인간은 이를 행할 수 없다. 우리가 본문의 시리즈로부터 알게 되는 것은 위와 같은 점에서 우리를 위해 필요한 두 가지 사항이 있다는 점이다. 애착이 우리 자신을 만든다는 점에서 그것들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과 반드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합당한 반성의 결과로 있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천성적으로 친절한 기질도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데 일치되는 것의 하나이다. 그러나 그 기질이 단순히 자연적인 수준일 뿐 그에 따른 심사숙고함과 식별력도 없이 무작정 친절이라는 행동이 나간다면 그 행동은 삶의 실질 부분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이와 대비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매우 조심스런 생각들로 애착을 신장시킬 경우이다. 그럼에도 그 애착이 우리에게 꼭 좋을 수만은 없다. 그 이유는 그 애착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순수한 애착에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맺어지는 결론은 우리의 영적 양식을 취함에 있어 선이 순수한 진리와, 또는 진리가 순수한 선과 병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이다. 분별 없는 선행은 우리에게 매우 나쁘다. 심사숙고된 이기심은 더욱 크게 나쁘다. 그 이유는 전자는 영적으로 “새김질하지 않는” 것이고, 후자는 “굽이 나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시리즈가 보여 주는 바와 같이, 지식을 이기적으로 사랑하는 것, 지식을 지적으로만 사랑하는 것, 지식을 감각적으로 사랑하는 것, 이 모두는 인간에게 자양분을 공급하지 못한다. 게다가 하늘 아버지로부터 오는 선한 생명에 모두 다 반대되는 탐욕만에 직결될 뿐이다.
위와 같은 상황이 말씀에서 획득된 진리가 선을 붙잡는 데에도 적용되고 있다. 말씀은 영적 진리로 가득 찬 큰 대양(ocean)이다. 한 마디로 이 대양은 신성에 근원을 두는 바 한계가 없는 대양이다. 그래서 그 안에는 살아 있는 진리의 원리들이 우글거리는데 그것이 고기들이다. 그러나 그 고기들도 영적 진보를 위해 포획되어져야 한다. 다시 말해 유용함(usefulness)을 위해 즉 선함과 진리만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이 사항 외에는 어떤 이유이든, 어떤 조건에서이든 말씀의 공부 내지 연구는 불순함을 결과되게 할 뿐이다.
또한 살아있는 원리들이 말씀 안에서 단지 자연적 지식이라는 큰 대양과 함께 존재하듯이 공중의 새들과 상응하는 것들과도 비슷하게 존재한다. 사실 레위기의 본문(13절)의 경우에서는 깨끗한 새(clean bird)들은 먹을 수 있다고 말해지고 있지 않으나 신명기 14장 11절의 경우 이를 기술하고 있다. 즉 말씀 속의 순수한 진리들은 자유로이 자기 것이 되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왜곡된 온갖 종류의 진리, 융화될 수 없는 거짓들은 불순하기 때문에 자기 것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다음 문단(20절 이하)은 더욱 중요한데 그 이유는 감각적 애착들에 관련된 것들을 실제 삶에서 준수될 수 있게 아주 조심스럽게 구분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잘못되게 생각해버리는 것이 있다. 즉 감각적이고 육체적(sensual and corpoeal)이라 부르는 인간의 가장 수준 낮은 애착들은 진실로 더 높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모두 거절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점이다. 이 문제를 올바르게 생각하려면 다음 사항이 중요하다. 즉 인간은 악 그 자체로 된 생명의 그릇이라 할 수 있는 어떤 자질 또는 기능은 실지로 부여되어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로지 남용(abuse)에 의해서 악이 될 뿐이다. 그 이유가 인간이 천사같이 영원하기 위해서 완전한 인간 생명을 구성하는데 필요한 최말단의 애착과 기쁨이 없이는 영원히 존재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발 넷을 가짐 또는 발 넷으로 기어다니는 기는 것에 관한 세부적인 구분이 있게 된다. 감각적인 기쁨들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악이 거짓과 결합한 채로 있어 불순함이 존재한다. 그러나 반대로 완전한 종속이 있을 경우, 즉 감각적이고 육체적인 기쁨이 천적이고 영적인 기쁨과 하모니를 이룬다면, 인간으로 충만되고 완전하게 해주는 최말단의 진리와 선을 진정으로 자기 것이 되게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다음 구절이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마태 6:33).
이제 위 문단 뒤를 잇는 구절로부터 배우는 바, 외적인 것들이 내적인 것도 없이, 합당하게 되새겨 봄도 없이 상응하는 것, 내적인 선과 진리도 없이 바깥쪽으로만 선같이 보일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위선이요 사기이다. 그런고로 이런 사악함에 접촉됨에서 오는 아주 경미한 불순함까지 피하기 위해서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 이것이 시체에 접촉하는 것으로 의미되고 있다. 이와 같은 접촉이 우연히 있어졌다 해도 불순함은 여전히 수반된다. 이 상태는 저녁 때까지, 즉 상태의 변화가 있기 전에는 제거되지 않는다. 이 구절과 연결해서 이제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어떻게 우리 안에서 악령에 의해 악한 생각이 휘저어 일어나느냐? 그렇게 휘저어 일어난 것이 거듭남에서 우리 삶의 한 부분을 이루지 않도록, 즉 더 큰 악과 더 큰 불순함이 결과되는 쪽으로 휘저어진 것이 일치되지 않도록 즉각 그런 생각을 거절하는 것이 얼마나 절실히 요구되느냐 이다. 그 이유는 비록 우리가 어떤 악한 생각을 가지는데 책임이 없다 해도 그것 자체는 마치 과거의 악한 상태들이라는 죽은 시체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가 과거의 악한 상태에 대한 태도에는 책임이 있다. 이 외에도 우리가 아는 바, 우리 안에서 가라지와 밀은 우리가 보호 감찰되는 상태가 실현되는 때 즉 추수 때까지 함께 자란다는 것이다. 그 다음 악한 생각들은 자유와 평화의 천국적 삶이 열리는 영광의 새벽 이전에 사라지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매우 조심스럽게 되새겨 볼 점이 있다. 우리의 영원한 영적 삶에 합류시킬 것과 합류시켜서는 안되는 것에 대해서인데 이것이 마지막 문단에서 영적 의미로 멋진 구분을 서술하고 있다. 참으로 순수한 선과 진리는 오염되어 질 수 없고 실지로 사악하고 신성을 더럽힌 것이 거룩하고 순수한 것으로 전환될 수도 없다. 그런데도 예외되는 경우가 각 개인들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우리로 천사들의 삶을 실감해 볼 기회를 갖도록 배려하심에서 이다. 이런 주님의 배려에 우리는 깊은 감사를 드리고 그에 대한 것을 늘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런 감사함, 경외함이 없다면 “심판 날에 자기가 지껄인 터무니없는 말을 낱낱이 해명해야 되리라” (마태 12:36). 또 하나 기억해 둘 일은 영원까지, 천국 자체까지도 우리의 상태를 개선하도록 어떤 방이 남겨져 있는다는 것, 그러므로 비록 우리가 한 분 웅대한 사람(the Grand Man) 안에서 미세한 어떤 부분의 직능을 수행하는데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기는 해도 우리의 유용함(usefulness)이 더 넓혀져 갈 수 있게 배려해 주시는 것도 그분은 잊지 않고 계신다 (AC1276, 1277항 참조).

레위기 12장

성경: 레위기 1장
1.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2.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야기하라, 말하기를, 만일 여인이 씨를 잉태하여 남자 아이를 낳았다면, 그녀는 칠일 동안 불결하다. 그녀의 월경으로부터의 불순함 같이 그녀는 불결하다.
3. 그리고 팔 일째 날에 그의 표피의 살을 할례하라.
4. 그리고 그녀는 삼십 삼 일 동안 자기 피가 순수해지게 함을 계속해야 한다. 그녀는 거룩히 여겨진 것을 만지지 말 것, 성소 안으로 오지 말라. 이는 그녀의 순수해짐이 완성될 때까지이다.
5. 그러나 만일 그녀가 소녀 아이를 낳는다면, 그녀는 2주 동안 그녀의 불순함(월경) 같이 불결하다. 그리고 그녀는 육십 육일(threescore and six)동안 자기 피의 순수해짐을 계속해야 한다.
6. 그리고 그녀의 순수해짐의 날들이 충만될 때, 아들을 위하여, 또는 딸을 위하여, 그녀는 태워 바침을 위해 일 년 된 어린 양, 그리고 죄 바침을 위해 어린 비둘기(young pigeon), 또는 호도애(tultledove)를 만남의 문으로, 성직자에게로 가져 오라.
7. 그리고 그는 주님 앞에 그것을 바쳐라, 그리고 그녀를 위해 보상을 받게 하라. 그리고 그녀는 그녀의 피의 원천으로부터 깨끗해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낳은 아이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그녀를 위한 법이다.
8. 그리고 만일 그녀의 재력이 어린 양을 바치기에 충분치 못하다면, 그러면 그녀는 호도애 두 마리, 또는 어린 비둘기 두 마리를 가져와라. 한 마리는 태워 바침을 위해, 그리고 다른 것은 죄 바침을 위해서 이다. 그리고 성직자는 그녀를 위해 보상을 받게 하라, 그리고 그녀는 깨끗해 진다.

영적 의미 요약

* 이 가르침은 교회 속의 사람에게 주어지는 바, 그 사람과 더불어 진리가 수정되고 임신되어 출생할 때 거기에도 인간 고유(proprium, 자아, man’s own)는 불순하다. 그리고 내적으로는 순수하다. 이는 거듭나는 과정에서 조차도 마찬가지이다. 1-2절.
* 그러나 거듭남의 상태가 완성될 때 최말단까지 이르러 순수함이 있게 된다. 이 순수한 상태는 질서의 법칙에 따라 성취되어진다. 3-4절.
* 또한 선을 인정하고 받아들임에서의 순수한 상태는 선이 진리와 결합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리고 질서의 법칙에 따라 있는다. 5절.
* 그리고 순수한 상태와 거듭남이 완성될 때 순진의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게 된다. 여기에 주님의 재회 또는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과의 재회가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천적 인간과 영적 인간과 더불어 거행된다. 6-8절.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1.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지각을 주시는 주님으로부터의 계시가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speaking)이란 유입을 명시하고; 모세란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표현하고 있고; 말함(saying)이란 지각을 뜻한다. A.C. 2001, 2951, 7010, 6752, 1791, 1822.

2절.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야기하라, 말하기를, 만일 여인이 씨를 잉태하여 남자 아이를 낳았다면, 그녀는 칠일 동안 불결하다. 그녀의 월경으로부터의 불순함 같이 그녀는 불결하다.

영적 의미

영적 교회의 사람에게 가르치시는 바, 교회에서 보편적, 일반적, 또는 세부적으로 주님으로부터 온 진리가 수정되고 임신되어 출생할 때 인간 고유 또는 외적 인간에게는 불순한 상태가 있다. 그리고 내적 인간 안에, 마찬가지로 거듭나는 과정 중에 주님으로부터 온 거룩함 속에서도 선이 진리와 아직 분리되어 있으면 불순함이 존재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야기하여 말함은 영적 교회 속의 사람에게 가르치심을, 아기를 가짐(seed)이란 주님으로부터 수정되는 진리를 명시한다. 자연적인 임신과 출생은 영적 임신과 출생에 상응된다. 남자 아이란 진리를, 불결하다란 영적 불순함을, 여자란 인간 고유(proprium) 또는 외적 인간(External)을, 그리고 남편은 주님 또는 내적 인간(Internal)을 명시한다. 칠 일이란 거듭나는 전체 과정을, “월경하는 동안의 불순함”이란 선과 진리가 분리됨으로부터 일어나는 영적 불순함을 명시한다. A.C. 7304, 3654, 255, 256, 880, 2586, 725, 10130, 253, 4434, 2044, 4161.

3절. 그리고 팔 일째 날에 그의 표피의 살을 할례하라.

영적 의미

그러나 거듭남의 상태가 완성되어질 때, 그래서 영적 삶의 새로운 상태가 개시될 때, 모든 불순함은 자연적 수준에 속하는 최말단까지, 또는 자연적 수준에서까지 제거되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팔 일째 되는 날 포경을 잘라 할례를 베푼다는 것이란 거듭나는 상태가 완성되고 새로운 상태가 개시되면 모든 불순함은 제거되는데 그 제거는 자연적 수준의 최 말단 까지에서 이루어짐을 명시한다. A.C. 9227, 9269-5, 2039, 2041.

4절. 그리고 그녀는 삼십 삼 일 동안 자기 피가 순수해지게 함을 계속해야 한다. 그녀는 거룩히 여겨진 것을 만지지 말 것, 성소 안으로 오지 말라. 이는 그녀의 순수해짐이 완성될 때까지이다.

영적 의미

진리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그 뒤를 잇는 순수해지는 상태는 질서에 의거 완성되어야만 한다. 악으로부터 순수해짐이 완전할 때까지 진리는 충분히 실감될 수 없고 선을 충분히 고용할 수도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인이 삼십 일 하고 삼 일간 계속 피를 순수하게 함이란 진리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그 뒤를 잇는 순수해짐의 상태는 질서에 의거 완성되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3, 그리고 3에 곱하여져 있어지는 30이라는 숫자의 의미로부터 나타난다. 즉 30은 전체라는 측면에서 선과 진리에 속한 모든 것, 다시 말해 진리와 선의 완전함을 말한다. 기간이 차서 깨끗해지기 까지 거룩한 것에 닿지 말고 성소에 들어가지 말라란 악으로부터 순수해짐이 완전할 때까지 진리를 충분히 실감할 수 없고, 선을 충분히 즐길 수도 없다는 말이다. 거룩한 것에 닿음은 진리를 실감함을 뜻한다. 성소에 들어감은 선을 즐긴다는 말이다. 날수가 찬다란 순수함의 완성을 명시한다. A.C. 4495, 10262, 6024, 10130, 4575, 9903, 10129.

5절. 그러나 만일 그녀가 소녀 아이를 낳는다면, 그녀는 2주 동안 그녀의 불순함(월경) 같이 불결하다. 그리고 그녀는 육십 육일(threescore and six)동안 자기 피의 순수해짐을 계속해야 한다.

영적 의미

그러나 선을 받아들여 인정할 경우 순수한 상태에는 선이 진리와 결합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순수함의 과정 뒤에 오는 것도 질서에 의거 완성되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소녀 아이를 낳는다란 선을 인정하여 수용함을, 2주간 불결하다란 순수해지는 과정은 선이 진리와 결합하는 게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육십 육 일(three score and sixty days)이란 33과 똑같은 방법의 질서에 의거 완전하게 순수해짐을 말한다. A.C. 6677, 10130, 5194, 4177, 4495, 10262, 6024.

6절. 그리고 그녀의 순수해짐의 날들이 충만될 때, 아들을 위하여, 또는 딸을 위하여, 그녀는 태워 바침을 위해 일 년 된 어린 양, 그리고 죄 바침을 위해 어린 비둘기(young pigeon), 또는 호도애(tultledove)를 만남의 문으로, 성직자에게로 가져 오라.

영적 의미

악에서 순수해짐이 진리 또는 선을 받아들이고 인정하여 완성되어 질 때 순진의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은 완전해지고 항구적이 될 것이다. 또는 주님을 예배함이 순진의 선으로부터 내적 외적으로 있어지는데 예배의 수단은 순진의 상태로부터 그분을 인정함과 천국을 통한 그분의 역사하심에 의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들을 낳았든지 딸을 낳았든지 기간이 차서 몸이 깨끗해짐이란 진리든지 선이든지 수용해서 인정하여 깨끗해짐이 완성될 때를, 태워 바침으로 일 년된 어린 양 한 마리를 가져옴이란 순진의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은 완전하고 영구적이다는 것을; 호도애나 어린 비둘기를 죄 바침의 제물로 가져옴이란 순진의 상태에 부응되게 악이 용서됨을; 만남의 천막 문으로란 주님과 천국을 통해 오는 그분의 역사를 인정함을; 성직자란 선의 상태를 말한다. A.C. 4495, 10262, 6024, 725, 10132, 7839, 2356, 254-3, 9946.

7절. 그리고 그는 주님 앞에 그것을 바쳐라, 그리고 그녀를 위해 보상을 받게 하라. 그리고 그녀는 그녀의 피의 원천으로부터 깨끗해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낳은 아이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그녀를 위한 법이다.

영적 의미

예배하는 가운데 주님에게 일치함 또는 재회함, 또는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재회함이 결과될 것인데, 그 이유는 모든 불순함이 제거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리나 선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실감함에 관련된 거듭남의 법칙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께 제물을 바쳐 깨끗하게 함이란 예배의 이 상태에서 인간이 주님에게 동의함, 인간이 주님과 재회함, 또는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재회함이 결과될 것임을; 그 여인이 피의 샘을 깨끗이 함이란 영적 불순함이 제거됨을; 산모가 사내아이를 낳았거나 계집아이를 낳은 다음 지킬 법이라 함은 진리와 선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실감함에 관련된 거듭남의 법칙임을 말한다. 제 1장 3절, A.C. 10042 II, 4545, 2586, 725.

8절. 그리고 만일 그녀의 재력이 어린 양을 바치기에 충분치 못하다면, 그러면 그녀는 호도애 두 마리, 또는 어린 비둘기 두 마리를 가져와라. 한 마리는 태워 바침을 위해, 그리고 다른 것은 죄 바침을 위해서 이다. 그리고 성직자는 그녀를 위해 보상을 받게 하라, 그리고 그녀는 깨끗해 진다.

영적 의미

그런데 거듭나고 있는 교인이 천적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는 상태 즉 삼층 천국의 천사가 되는 삶의 일을 완성할 수 없다면 영적 선으로 그 일을 해내서 이층 천국의 천사 또는 최말단 천국의 천사라도 되어야 하는데 그 수단은 선행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함과 그 상태에 부응되는 악을 제거함으로 가능하다. 이렇게 해도 그는 완전하게 깨끗해질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새끼 양 한 마리도 바칠 힘이 없다란 천적 사랑으로 주님을 예배할 수 없음을; 호도애 두 마리나 어린 비둘기 두 마리를 구해서 한 마리는 태워 바침으로; 한 마리는 죄 바침으로 드린다란 영적 선인 선행(charity)으로 주님을 예배함을; 성직자가 그녀를 위해 보상을 받게 한다란 인간이 주님과 재회함, 또는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재회함을; 그 여인은 깨끗해진다란 순수해짐의 완성된 상태를 뜻한다. A.C. 10132, 1826, 1827, 10053, 3900, 제 1장 3절, 10042 II, 4545.

12장의 종합적 고찰

오늘의 짧은 본문을 주의 깊게 검토해 보면 요한복음 3장 1-5절에 걸쳐 있는 말씀, 우리에게 흥미를 주는 말투로 말씀하신 거듭남, 다시 태어남의 과정, 즉 “누구든지 새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라는 구절이 본문에 포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위 구절에는 특유한 차이점을 가지고 어조가 강한 반복이 들어있다. 이 말들이 영적으로 무엇을 함축하고 있는지는 기독계에 널리 이해되어 있다. “육(the flesh)에서 나온 것은 육이며 영(the spirit)에서 나온 것은 영이다”라는 구절이 의미하는 것을 모든 이가 분명하게 식별할 수 있다. 즉 “육”과 “영”은 서로 완전히 구분되고 서로 용납될 수 없는 것들이라고 까지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이 있어져서는 안될 것이다. 서로가 상반되고야마는 상태는 인간이 “옛” 삶을 선택하고 “새” 삶을 거절함으로서 야기되는 바 인간 자신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다. 그 반면 인간이 “새” 삶을 선택한다 해도 그 새 삶은 사실 옛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 이유가 교회는 인간에게 적당한 삶, 인간 자아(proprium) 안에서 형성될 뿐 그 외 달리는 가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을 본 장은 첫 마디에서 말하고 있다. “아기(seed)를 밴” 여인이라는 말이 그것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여인, 인간 자아 안에 있는 교회로서의 여인은 애착을 말한다. 그러므로 교회가 우리 안에서 형성되어 지기 위해서는 진리를 사랑하는 것, 아마 제 자신을 위해서 진리를 사랑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어찌됐든 진리를 사랑해야만 한다. 우리가 거듭 나아지겠다면 진리를 사랑해야만 한다. 이렇게 사랑하는 주체인 인간 자아의 품성을 잘 생각해 보면 이런 결론을 얻게 된다. 즉 교회가 우리 안에서 형성되게 하는 애착은 어찌됐든 처음에는 순수한 애착 또는 진리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거듭남을 전체로서 관찰해 보면 그것이 완성될 때까지는 많든 적든 거기에는 불순함이 상존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말씀이 가르치는 것이고 그것은 거듭나고 있는 당사자의 경험에 따라 존재한다. 신성이 되어 가시는 주님의 인간의 경우에서조차 부활하실 때까지 어머니 쪽에서 받은 유전적인 생명의 영향을 계속 받아 가셔야 했다. 이런 점까지 생각하면서 우리가 지닌 불순함을 생각하면 아니 슬퍼질 수 없다. 그 반면 불순한 우리 상태는 결국에 가서는 중단되어야 한다는 것, 그럼에도 천국 자체 안에는 절대적인 순수함이 존재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까지 더해보면 우리는 어떤 위로를 받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순수 자체가 될 수 없는 바 더 큰 순수함은 가능하지 않다는 말도 된다.
이제 다른 주제에 주목해 보자. 즉 아들을 임신하는 것과 딸을 임신하는 것 사이의 다른 점에 관해서 이다. 거듭남에서 먼저 있게 되는 것은 진리를 실감하는 것인데 (깨닫는 것, realization), 그 뒤에 선이 실감되어 진다. 그런데 표면상으로만 본다면 여기서 암시되는 합법적으로만 불순한 상태에 두 가지 다른 상태가 있다는 것은 약간 이상한 듯 여겨질 수도 있다. 즉 계집아이를 낳았을 경우, 왜 그 여인의 불결한 기간은 사내아이를 낳았을 때 보다 두 배가 되어야만 한다는 걸까? 두 배(double)라는 말, 두 주간 또는 두 칠 일 간 등등에서와 같이 이 단어는 상응적 차원에서 볼 때 중요한 과정이라는 뜻을 암시하고 있다. 이미 살핀 바 있지만 선이 임신되어진다 함에는 선이 진리와 결합함이 있음이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인간은 진리 한쪽만으로는 주님과 결합되지 않는다. 단지 진리로 주님과 교통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해도 진리를 사랑함은 주님과 결합할 수 있는 길을 준비해준다. 본문에서 두 배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실제에서 사용된 진리(practical truth)인데 이는 완전한 거듭남이다. 즉 완전한 거듭남은 선과 진리의 결합을 통해 주님과도 결합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담당할 몫은 무엇일까? 선과 진리의 결합이 결과될 수 있도록 진리에 꾸준히 순종하고 진리에 따라 계속 살아가는 것이다. 진리와 선은 우리가 진리를 사랑함을 통하여 잠정적(potentially)으로는 결합되어 있다. 그러나 선과 진리는 순종을 수단으로 하지 않고서는 실제로는 결합되지 않는다. 주님게서는 “만일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라고 말하시고, “내 계명을 지켜라”라고도 말하셨다. 지금까지 살핀 내용에서 어떻게 인간 자아(proprium) 안에서 교회가 실지로 그리고 충만되게 형성되는가를 알게 되었으리라 본다. 또 하나 여기서 말해지는 결합(conjunction)은 선과 진리가 내적으로 결혼해야 할 뿐만 아니라 외적으로도 결혼되어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해서 내적 또는 영적 인간이 외적 또는 자연적 인간과 결합해야 한다는 것, 이렇게 결합하려면 진리를 실습함을 통해 불순함을 제거함으로서 이루어진다는 사실까지 언급하고 있다.
이제 거듭남의 결과를 곰곰이 생각해 보기로 하자. 거듭남이 선행되고 순수해짐이 그 뒤를 이어 있게 된다는 것이 신성한 질서들의 법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의 경우 순수해짐이 선행되고 그 뒤에 거듭남이 있는 듯 나타난다. 그 이유는 거듭남이 있기 전 반드시 인간의 바깥 측면이 개혁(reform)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바 인간은 새로 태어남이 먼저 있지 않으면 영적 생명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적으로 죽어있는 사람이 어떻게 순수해질 수 있다는 말일까? 외적 순수함이 완전한 거듭남에 선행된다 해도 거듭남이 먼저 오고 그 뒤를 바로 이어 순수해짐이 있게 됨은 삶 전체를 통해 내내 흐르는 것이 진정한 사실이다. 이 순수해짐이 본문에서 여덟째 날에 할례 받는 것, 그리고 죄 바침으로 표현되어져 있다. 그러나 이즈음해서 다시 우리가 주목해 볼 것이 있다. 주님에 대한 순수한 예배를 표현하는 제물이 차례대로 언급되고 있다는 것, 그 이유는 태워 바침의 제물이 죄 바침의 제물에 선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듭남의 결과는 내적, 외적으로 순진에 바탕을 둔 천국적 선의 상태로부터 주님을 순수하게 예배하는 것이다. 이 뒤를 이어 완전히 순수해짐이 있게 된다. 즉 천국에서 순수해져 가는 상태는 더 많은 시험들을 미리 배제한다는 말이다. 비록 천국에 있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영원까지 순수해져 간다 해도 천국에 있는 이상 어느 누구도 시험되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지상 시간으로 이 천 여 년이 지나간 천국에서의 우리의 완전한 상태는 어떠한 것일까? 확실한 한 가지가 있다면 우리는 웅대한 사람(the Grand Man, 주님) 안에서 천국의 직능 중의 극히 작은 부분을 열심히 담당하면서 그 일에 기뻐하는 모습, 우리가 어떤 착상도 만들 수 없는 사랑과 지혜가 더 증가되고 더 강도가 높은 상태가 되어 있는 모습일 것이다. 우리가 죽어 계곡 저 아래 있는 동안이나, 자기 심판을 기다리는 동안이나, 현재까지 포함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를 갖는 것, 인내를 가지고 달리는 것, 우리 앞에 놓인 경주에 불굴의 인내력을 발휘하는 것이리라.

레위기 13장

성경: 레위기 1장

1.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그리고 아론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2. 사람이 자기 살의 피부에 도두라짐, 딱지, 선명한 반점을 가질 때, 그것은 자기 살의 피부에서 나병(leprosy)의 역병(plague)이 되어 간다, 그러면 그는 성직자 아론에게, 또는 성직자 그의 아들들 중 한 명에게 데려와져야 한다.
3. 그리고 성직자는 살의 피부에 있는 역병을 관찰하라. 그리고 만일 역병에 있는 털이 희게 변했다면, 그리고 역병의 외관이 그의 살의 피부 보다 더 깊다면, 그것은 나병이라는 역병이다. 그리고 성직자는 그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그는 불결하다고 발표한다.
4. 그리고 만일 선명한 반점이 그의 살의 피부에서 희고, 그것의 나타남이 피부보다 더 깊지 않다면, 그리고 그로부터의 털이 희게 변하지 않았다면, 성직자는 역병을 가진 그를 칠일 동안 격리해두라.
5. 그리고 성직자는 칠 일째 날에 그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보라, 만일 그의 눈에서 역병이 머물고 있고, 역병이 그의 피부에서 퍼지지 않았으면, 성직자는 칠 일간 그를 격리해두라.
6. 그리고 성직자는 칠 일째 그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보라, 만일 역병이 어둑하다, 그리고 재앙이 피부에 퍼지지 않았다면, 그다음 성직자는 그가 깨끗하다고 발표하라. 그것은 딱지(scab)이다. 그리고 그는 그의 옷들을 빨으라, 그리고 깨끗하다
7. 그러나 그가 자기의 깨끗해짐을 위해 자신을 성직자에게 보인 후, 만일 딱지가 피부에서 번져 갔다면, 그는 다시 성직자에게 자신을 보여야 한다.
8. 그리고 성직자가 살펴 보라, 그리고, 보라, 만일 딱지가 피부에서 퍼지고 있다면, 그다음 성직자는 그가 불결하다고 발표하라. 이것은 나병이다.
9. 나병이라는 역병이 인간에게 있을 때, 그러면 그는 성직자에게 데려와져아 한다.
10. 그리고 성직자는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보라, 만일 피부에서 흰 도두라짐이 있다면, 그리고 털이 희게 변했다면, 그리고 도두라짐에 빨간 생살이 빠르게 있다면,
11. 이것은 그의 살의 피부에 있는 오래된 나병이다, 그리고 성직자는 그가 불결하다고 발표하라. 그는 그를 격리하지 말라. 그이유가 그가 불결하기 때문에서이다.
12. 그리고 만일 나병이 피부에서 퍼져가서, 그리고 나병이 나병을 가진 그의 모든 피부, 즉 머리부터 발까지를 덮고 있다면, 그렇게 성직자에게 나타난다면,
13. 그다음 성직자는 살펴 보라. 그리고 보라, 만일 나병이 그의 모든 살을 덮었다면 그는 역병을 (가진) 그를 깨끗하다고 발표하라. 그것은 모두 희게 변했다. 그는 깨끗하다.
14. 그러나 빨간 생살이 그 사람과 더불어 나타나는 때는 언제이든지, 그는 불결하다
15. 그리고 성직자는 빨간 생살을 살펴 보라, 그리고 그를 불결하다고 발표한다. 빨간 생살은 불결하다. 그것은 나병이다.
16. 또는, 만일 빨간 생살이 다시 변한다면, 그리고 희게 바뀌어진다면, 그러면 그는 성직자에게 가라.
17. 그리고 성직자는 그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보라, 만일 역병이 희게 변했으면, 성직자는 역병(을 가진) 그를 깨끗하다 발표하라. 그는 깨끗하다.
18. 그리고 살이 그것의 피부에서 종기를 가질 때, 그리고 나을 때,
19. 그리고 종기 있는 자리가 희게 도두라지거나, 선명한 반점, 빨간 흰 반점이 있다, 그러면 성직자에게 보여라.
20. 그리고 성직자는 살펴 보라, 그리고 보라, 만일 그것의 나타남이 피부보다 더 낮다면, 그리고 그것의 털이 희게 변했다면, 그다음 성직자는 그가 불결하다고 발표하라. 이것은 나병의 역병이다, 그것이 종기에서 나타났다.
21. 그러나 만일 성직자가 그것을 살펴 보고, 보라, 거기 안에 흰 털이 없고, 그리고 피부보다 더 낮지 않고, 단지 어슴프레하다면, 성직자는 그를 칠 일간 격리해 두라.
22. 그리고 만일 이것이 피부에 퍼지고 있다면, 그다음 성직자는 그가 불결하다고 발표하라. 그것은 역병이다.
23. 그러나 만일 선명한 반점이 그 위치에서 머문다면, 그리고 퍼지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종기의 상처 자국이다. 그리고 성직자는 그가 깨끗하다고 발표하라.
24. 또는 살이 그것의 피부에서 불로 데어짐을 가질 때, 그리고 데짐의 살이 바르게 선명한 반점, 빨간 흰, 또는 흰 반점이 될 때,
25. 그 다음 성직자는 그것을 살펴 보라. 그리고 보라, 만일 선명한 반점에 있는 털이 희게 변하여지고, 그것의 나타남이 피부 보다 더 깊다면, 그것은 나병이다, 나병이 데어짐에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성직자는 그가 불결하다고 발표하라. 이것은 나병의 역병이다.
26. 그러나 만일 성직자가 그것을 살펴보고, 보라, 선명한 반점에 흰 털이 없고, 피부보다 더 낮지 않으나 어슴프레하다면, 그 다음 성직자는 그를 칠 일간 격리 해두라.
27. 그리고 성직자는 그를 칠 일째 날 살펴 보라. 만일 이것이 피부로 퍼졌다면, 그다음 성직자는 그가 불결하다고 발표할 것이다. 그것은 나병의 역병이다.
28. 그리고 만일 선명한 반점이 제자리에 머물고, 피부에 번지지 않고, 어슴프레하다면, 성직자는 그가 깨끗하다고 발표할 것이다. 그 이유가 그것은 데어짐으로부터의 상처자국이다.
29. 그리고 남자, 또는 여자가 머리에, 또는 수염에 역병을 가질 때,
30. 그러면 성직자는 역병을 살펴 볼 것이다. 그리고 보라, 만일 그것의 나타남이 피부보다 더 깊다면, 그리고 황색의 가는 털이 그것 안에 있다면, 그다음 성직자는 그가 불결하다고 발표한다. 그것은 두창(scall)이다, 그것은 머리나 수염의 나병이다
31. 그리고 만일, 성직자가 두창의 역병을 살펴보고, 보라, 그것의 나타남이 피부보다 더 깊지 않고, 그것 안에 검은 털이 없다면, 그러면 성직자는 두창의 역병을 (가진) 그를 칠 일간 격리해두라.
32. 그리고 칠 일째 날 성직자는 역병을 살펴 보라. 그리고 보라, 만일 두창이 퍼지지 않고, 황색 털이 그 안에 없고, 그리고 두창의 나타남이 피부 보다 더 깊지 않다면,
33. 그러면 그는 면도하라, 그러나 두창은 면도하지 말라. 그리고 성직자는 두창(을 가진) 그를 칠 일간 더 격리하라.
34. 그리고 칠 일째 날 성직자는 두창을 살펴 보라. 그리고, 보라, 만일 두창이 피부에 퍼지지 않았고, 그것의 나타남이 피부 보다 더 깊지 않다면, 그러면 성직자는 그가 깨끗하다고 발표한다. 그리고 그는 자기 옷들을 빨아라 , 그리고 깨끗하다.
35. 그러나 만일 두창이 자기 옷을 깨끗이 한 후 피부에서 퍼지고 있다면.
36. 그 다음 성직자는 그를 살펴 보라. 그리고 보라, 만일 두창이 피부에 퍼졌다면, 성직자는 황색 털을 수색하려 들지 말라. 그는 불결하다.
37. 그러나 만일 그의 눈에서 두창이 머물고 있고, 그리고 검은 털이 거기 안에서 자랐다면. 두창이 치료되어지고 있다, 그는 깨끗하다. 그리고 성직자는 그가 깨끗하다고 선포한다.
38. 그리고 남자 또는 여자가 자기 살의 피부에 선명한 반점들, 희고 선명한 반점들 조차 가질 때,
39. 그다음 성직자는 살펴 보라. 그리고 보라, 만일 그들의 살의 피부에 있는 선명한 반점들이 투미한 흰색일 때, 이것은 피진(tetter)이다, 이것이 피부에 나타난 것이다. 그는 깨끗하다.
40. 그리고 만일 사람의 털이 그의 머리로부터 떨어진다면(빠진다면), 그가 대머리이다면, (아직) 그는 깨끗하다.
41. 그리고 만일 그의 털이 그의 머리의 앞부분으로부터 빠진다면, 그는 앞이마 대머리이다. (아직) 그는 깨끗하다.
42. 그러나 만일 대머리, 또는 앞이마 대머리 안에 빨간 흰 역병이 있다면, 그것은 그의 대머리, 또는 그의 앞이마 대머리에서 나타난 나병이다.
43. 그다음 성직자는 그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보라, 만일 역병으로부터의 도두라짐이 그의 대머리에서, 또는 그의 앞이마 대머리에서, 마치 살의 피부에서의 나병 같이 빨간 흰색이다면,
44. 그는 나병 있는 사람이다, 그는 불결하다. 성직자는 그가 불결하다고 확실히 발표할 것이다. 그의 역병이 그의 머리에 있다.
45. 그리고 역병이 있는 나환자, 그의 옷들을 찢으라, 그리고 그의 머리의 털은 풀어 놓아라, 그리고 그는 자기 윗입술을 덮을 것이다, 그리고 외칠 것이다, 나는 불결하다, 불결하다.
46. 역병이 자기 안에 있는 모든 날들 동안 그는 불결하다. 그는 불결하다. 그는 홀로 거주하라. 진영 밖이 그의 거주지 이다.
47. 나병의 역병이 안에 있는 옷 또한 그것이 양털 옷이든, 아마포 옷이든.
48. 그것이 날줄, 또는 씨줄이든, 아마포로 이든, 양털로 이든. 가죽에서이든, 또는 가죽 제품 어떤 것에서 이든.
49. 만일 역병이 옷에서, 또는 가죽이든, 또는 날줄(warp)이든, 또는 씨줄(woof)이든, 또는 가죽 제품의 어떤 것에서 이든 푸루퉁하거나 빨간색이다면, 성직자에게 보여야 한다.
50. 그리고 성직자는 역병을 살펴 보라, 그리고 칠 일 동안 역병을 가진 것을 격리해둔다.
51. 그리고 그는 칠 일째 날 역병을 살펴라. 만일 역병이 옷에서, 날줄이든, 씨줄이든, 또는 가죽이든, 가죽이 어떤 섬김에 사용되었든 퍼졌다면, 역병은 악성 나병이다. 그것은 불결하다.
52. 그리고 그는 옷을, 날줄이든, 씨줄이든, 양털로 되었든, 아마포로 되었든, 가죽으로 된 어떤 것이든 역병이 있는 것을 태울 것이다. 그 이유가 그것은 악성 나병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불에서 태워져야 한다.
53. 그리고 만일 성직자가 살피고, 그리고 보라, 역병이 옷에서, 날줄에서, 씨줄에서, 또는 가죽의 어떤 것에서 퍼지지 않았다면.
54. 그러면 성직자는 역병이 있는 것을 씻으라고 그들에게 명령하라, 그리고 그는 그것을 칠 일 동안 격리하라.
55. 그리고 역병이 씻어진 후 성직자는 살피라. 그리고 보라, 만일 역병이 색이 바뀌지 않았다면, 그리고 역병이 퍼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불결하다. 너는 그것을 불에서 태워라. 그것의 드러냄이 안쪽이든 바깥쪽이든 그것은 악성이다.
56. 그리고 만일 성직자가 살핀다, 그리고, 보라, 역병이 씻긴 후 어슴프레하다면, 그 다음 그는 그것을 찢을 것인데, 옷이든, 가죽으로부터이든, 날실로부터이든, 씨줄로부터이든 찢으라.
57. 그리고 만일 그것이 여전히 옷에서, 그것이 날실에서이든, 씨줄에서이든, 또는 가죽의 어떤 것에서이든 나타난다면, 그것이 나타나고 있다. 너는 역병이 있는 것을 불로 태워라.
58. 그리고 옷, 날실이든, 씨줄이든, 또는 가죽의 어떤 것으로 이든, 너는 그것을 빨아라, 만일 역병이 그것들로부터 떠나진다면, 그다음 그것을 두 번째 빨아라, 그리고 깨끗하다.
59. 이것은 양털 옷 또는 아마포 옷, 날실이든, 씨줄이든, 또는 가죽의 어떤 것이든, 옷이 깨끗함을 발표하기 위하여, 또는 그것이 불결함을 발표하기 위한 법이다.

영적 의미 요약

* 진리의 모독을 발견하는 순서에 관한 일반 법칙, 즉 만일 인간이 외적으로 불순하면서 동시에 내적으로는 진리를 인정하는 신앙이 있다면 거기에 모독만이 있을 뿐이다, 1-8절.
* 확인된 모독의 상태에 관하여, 9-11절
* 불순함과 모독에 관한 것이 감각적 사랑으로부터, 18-23절; 세상적 사랑으로부터, 24-28절; 이기적 사랑으로부터, 29-37절.
* 불순함과 모독에 관한 몇 가지 다른 경우를 생각하고 있다, 38-44절.
* 모독자가 슬퍼할 수 있는 상태가 그려져 있다, 45-46절.
* 선이든 진리이든, 그것이 내적, 내면, 외적이든 교리에 관한 법칙, 이는 모독을 일으키는 원인인 거짓에서 순수해져야 한다, 47-59절.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그리고 아론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주님께서 지각을 주심으로 진리 가운데 있는 이들과 선 가운데 있는 이들을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이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speaking)은 유입을; 모세는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아론은 신성한 선을; 말하심(saying)은 지각을 각각 뜻한다. (2001, 2951, 7010, 9946, 1791, 1822)

2절. 사람이 자기 살의 피부에 도두라짐, 딱지, 선명한 반점을 가질 때, 그것은 자기 살의 피부에서 나병(leprosy)의 역병(plague)이 되어 간다, 그러면 그는 성직자 아론에게, 또는 성직자 그의 아들들 중 한 명에게 데려와져야 한다.

영적 의미

내적 인간에게서 파생된 외적 인간 안에 있는 악한 애착, 감각이나 세상 또는 이기적 사랑에서 온 욕망들이 적극성을 띄울 때 진리를 모독하는 원인이 된다. 이런 모독 상태에 있는 사람은 신성한 선 또는 이 선으로 진행되는 신성한 진리의 영향 밑에 들어가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살의 피부(살갗)이란 내적 인간으로부터 파생되는 외적 인간을, 도두라짐, 딱지, 선명한 반점이란 각각 감각적, 세상적, 이기적 사랑에서 오는 악한 애착을 명시하고 있다. “각각 세상적, 이기적 사랑”을 뜻하는 이유는 히브리 단어들이 내적 의미로 볼 때 하강하는 시리즈 즉 악이 더욱 더 악해지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나병이란 주님께서 아껴두신 것들(remains)을 파괴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진리의 모독을 말한다. 아론 성직자나 그의 아들 성직자 중 누구에게든지 데려 옴이란 신성한 선의 영향 밑에 가져옴 또는 신성한 선에서 진행되는 신성한 진리에로 가져옴을 뜻한다. (9215, 780, 7524, 2240, 7408, 9394, 6963, 10219, 9946)

3절. 그리고 성직자는 살의 피부에 있는 역병을 관찰하라. 그리고 만일 역병에 있는 털이 희게 변했다면, 그리고 역병의 외관이 그의 살의 피부 보다 더 깊다면, 그것은 나병이라는 역병이다. 그리고 성직자는 그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그는 불결하다고 발표한다.

영적 의미

그리고 신성한 선으로부터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내적 인간에게서 온 외적 인간의 상태를 검증하여 모독 여부를 가려야 한다. 만일 거기서 거짓이 진리를 썩게 하고 있다면, 동시에 그 썩음이 주님을 인정하고 믿는다고 하는 내적 인간으로부터 일 경우 모독이 존재한다. 이 사항이 불순하다는 것은 신성한 선으로부터 지각되어 밝혀져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피부에 생긴 병을 살펴봄이란 신성한 선으로부터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내적 인간에서 파생되는 외적 인간의 상태가 모독되었는지 검사함을; 병든 자리에 난 털이 희어짐이란 거짓으로 부패된 최말단의 진리를; 병든 자리가 우묵하게 들어갔다는 것은 부패함이 내적 인간 즉 주님을 인정하고 그분을 믿는 마음으로부터 있다는 것을 말하는데 그 이유가 피부(skin)가 외적인 것을, 살(flesh)은 내적인 것을 명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함축해서 포함하고 있는 살아있는 살(flesh)은 인정함과 신앙을 뜻하고 있다. 나병이란 진리의 모독을; 성직자가 이 사람을 들여다봄이란 신성한 선으로부터 오는 지각과 계시를; 불결함이란 영적 불순함을 말한다. (2245, 2246, 9215, 780, 3301, 8459, 4007, 6963, 9946, 10130)

4절. 그리고 만일 선명한 반점이 그의 살의 피부에서 희고, 그것의 나타남이 피부보다 더 깊지 않다면, 그리고 그로부터의 털이 희게 변하지 않았다면, 성직자는 역병을 가진 그를 칠 일 동안 격리해두라.

영적 의미

만일 이기적 사랑의 욕망이 내적 인간에서 온 외적 인간 속의 진리를 부패 시켰다면, 그리고 이 부패가 외적일 뿐이라면, 그리고 이 욕망으로부터 온 거짓들이 진리를 뒤집지 않았다면, 위 진리 안에서 작용하는 선의 영향으로 억제함이라는 거룩한 상태가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선명한 반점(어루러기, bright spot)이란 이기적 사랑의 욕망을, 살갗에 있는 것이 희다란 거짓으로 진리가 부패함을, 피부보다 더 깊게(우묵하게) 들어가지는 않았음이란 외적으로만 부패했음을, 털이 희어지지 않았음이란 이기적 사랑으로부터 오는 거짓으로 진리가 부패하되 내적으로는 부패하지 않았음을, 성직자란 선이 작용함을, 칠 일간 격리함이란 자아를 억제하는 거룩한 상태를 말한다. (제 2, 3절 참조, 9215, 9946, 784, 6854-3, 716)

5절. 그리고 성직자는 칠 일째 날에 그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보라, 만일 그의 눈에서 역병이 머물고 있고, 역병이 그의 피부에서 퍼지지 않았으면, 성직자는 칠 일간 그를 격리해두라.

영적 의미

선의 영향이 더 강하게 느껴져 완성될 때에 악이 조절되고, 외적 인간의 진리들이 더 이상 썩지 않고 있다면, 선의 영향 밑에서 두 번째 억제함이 발생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칠 일째 되는 날 성직자가 살펴봄이란 선의 영향이 억제하는 상태의 완성을 더 강하게 느꼈음을; “성직자의 눈으로 보아서”란 선으로부터 오는 진리의 지각을; 병이 더하지는 않고 있음이란 악이 조절되고 있다는 것을; 살갗으로 더욱 번져 나가지 않았다란 악이 외적 인간 속의 진리를 더 부패시키지 않았다는 것을; 성직자가 그를 칠 일간 더 격리시킴이란 선의 영향 하에 억제함의 두 번째 상태가 발생하는 것을 뜻한다. (2245, 2246, 9946, 5304, 10219, 10219, 9215, 4035, 784, 6854-5, 716, 9946)

6절. 그리고 성직자는 칠 일째 그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보라, 만일 역병이 어둑하다, 그리고 재앙이 피부에 퍼지지 않았다면, 그 다음 성직자는 그가 깨끗하다고 발표하라. 그것은 딱지(scab)이다. 그리고 그는 그의 옷들을 빨으라, 그리고 깨끗하다

영적 의미

선의 영향이 더욱 강해져 썩으려는 경향성이 더 약해지고, 외적 인간의 진리가 더럽혀지지 않고 있다면 비록 세상적 사랑을 통해 부패했을지라도 모독은 없다. 그러나 그 진리들도 깨끗해져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다시 칠 일째 되는 날 성직자가 살펴봄이란 선의 영향이 억제하는 상태의 완성을 더 강하게 느꼈음을; “성직자의 눈에서, if in his eyes”란 선으로부터 오는 진리의 지각을, 병이 조금 나아졌다란 부패되려는 경향이 조금 더 약해졌음을; 살갗에 더 번지지 않았음이란 외적 인간 속의 진리가 손상되지 않았음을; 성직자가 그를 깨끗한 사람이라고 선언함이란 내적으로 불순함이 없다는 것을; 단순한 피부병(scrab)이란 외적으로 불순함을; 옷을 빨아 입으면 깨끗해진다란 진리를 따름으로 깨끗해짐을 말한다. (2245, 2246, 9946, 2044, 10219, 9215, 4035, 4545, 7524, 2240, 3147, 4545)

7절. 그러나 그가 자기의 깨끗해짐을 위해 자신을 성직자에게 보인 후, 만일 딱지가 피부에서 번져 갔다면, 그는 다시 성직자에게 자신을 보여야 한다.

영적 의미

그러나 완성되어 가는 모든 상태의 계속적 단계에서 깨끗해짐을 위해 선에서 오는 억제함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세상적 사랑이 계속 된다면 위 영향은 다시 재개되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살갗에 딱지가 퍼져감이란 세상적 사랑으로부터 오는 부패함이 계속되는 것을; 성직자가 진단해 보고 깨끗하다고 선언한 후란 완성되어 가는 계속적인 상태 안에 있는 깨끗해지기 위한 선으로부터 오는 억제함의 영향에도 불구하고를; 또 다시 성직자에게 자신을 진단 받음이란 선의 영향이 다시 발휘됨을 각각 뜻한다. (2245, 2246, 9946, 9215, 780)

8절. 그리고 성직자가 살펴 보라, 그리고 보라, 만일 딱지가 피부에서 퍼지고 있다면, 그다음 성직자는 그가 불결하다고 발표하라. 이것은 나병이다.

영적 의미

검증해 본 가운데 부패가 계속되고 그 결과 모독함이 있다면 불순함이 있게 된다. 그 이유는 거듭나는 과정에 있는 선의 영향에 충분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살펴봄이란 선으로부터의 검사가 더 있음을; 딱지가 살갗에 번져 나갔다란 부패가 계속되어 팽창되고, 동시에 인정함과 신뢰함의 상태가 거기에 포함되어 있고 억제하는 상태 안에 있음을 함축한다. 성직자가 그를 불결한 자라고 선언함이란 거듭나는 과정에서 선에 반대하여 일어나는 불순함을 각각 뜻한다. (2245, 2246, 9946, 7524, 2240, 4035, 6963, 10130)

9절. 나병이라는 역병이 인간에게 있을 때, 그러면 그는 성직자에게 데려와져아 한다.

영적 의미

그래서 다시 인간이 모독함에 있게 될 때에도 그는 신성한 선의 영향 밑에 있는다.

세부적 영적 의미

사람에게 나병이 생겼을 경우에 그를 성직자에게 데려옴이란 누군가가 모독하는 상태에 있을 때 그는 신성한 선의 영향 밑에 더 있게 됨을 말한다. (6963, 9946)

10절. 그리고 성직자는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보라, 만일 피부에서 흰 도두라짐이 있다면, 그리고 털이 희게 변했다면, 그리고 도두라짐에 빨간 생살이 빠르게 있다면,

영적 의미

그 다음 선으로부터의 진리로 검증이 있게 되고, 만일 외적 인간 속의 진리가 감각적 욕망으로 부패되고 있고 이 욕망의 거짓이 진리를 뒤집었다면, 그런데도 주님을 인정하고 그분을 믿노라고 한다면,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살펴봄이란 선으로부터 진리가 검사함을; 살갗에 흰 도두라짐이 생긴다란 감각적 욕망으로 외적 인간 속의 진리가 부패함을; 털이 희어짐이란 더 내면적으로 거짓에 의해 진리가 부패함을; 그 도두라짐에서 빨간 생살이 났다란 주님의 인정과 그분을 신뢰하는 것을 말한다. (9946, 2245, 2246, 제 2절 참조, 제 3절 참조, 6963)

11절. 이것은 그의 살의 피부에 있는 오래된 나병이다, 그리고 성직자는 그가 불결하다고 발표하라. 그는 그를 격리하지 말라. 그 이유가 그가 불결하기 때문에서 이다.

영적 의미

그것은 내적 인간으로부터 오는 외적 인간에 있는 진리의 모독을 확증한 상태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거기가 불순하다는 것에 대해 선으로부터 온 진리가 증거 한다. 이와 같은 상태에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억제 될 리도 없다. 그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불순해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살갗에 생긴 병이 오래 된 나병이라 함은 내적 인간에서 파생되는 외적 인간에 있는 진리의 모독이 확증된 상태를, 그를 불결한 자라고 성직자가 선언함이란 불순한 상태를 선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가 증언함을, 격리하지 않는다란 이런 상태에 있는 것은 더 억제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불결하다”란 내적, 외적으로 있는 진리의 모독으로 불순함을 각각 뜻한다. (2348, 9946, 10130, 784, 6854-5)

12절. 그리고 만일 나병이 피부에서 퍼져가서, 그리고 나병이 나병을 가진 그의 모든 피부, 즉 머리부터 발까지를 덮고 있다면, 그렇게 성직자에게 나타난다면,

영적 의미

만일 어떤 이가 깊은 측면에서는 자아 사랑으로, 최말단 측면에서는 감각적인 사랑으로 외적 인간 안의 진리를 완전히 모독했다면,

세부적 영적 의미

나병이 살갗에 온통 번짐이란 외적 인간에서의 완전한 모독을; 성직자가 본 바 머리로부터 발끝까지란 선으로부터 온 진리의 증언에 의거 가장 깊은 내면에 있는 자아 사랑으로부터 최말단에 있는 감각적 사랑까지를 말한다. (6963, 9215, 9632, 7442, 2245, 2246, 9946)

13절. 그다음 성직자는 살펴 보라. 그리고 보라, 만일 나병이 그의 모든 살을 덮었다면 그는 역병을 (가진) 그를 깨끗하다고 발표하라. 그것은 모두 희게 변했다. 그는 깨끗하다.

영적 의미

선으로부터 온 진리의 증거에 따라 검사가 거행된다. 만일 모독이 다 되어있으나 진리의 지식으로부터만 발생되고 내적으로 인정함이나 신앙으로부터 발생되지 않았다면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하는 신성은 이와 같은 인물은 내향적 모독으로부터는 순수하다고 지각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살펴봄이란 신성한 선이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검사함을; 나병이 온 몸(all the flesh)에 덮였다란 모독이 전체적임을; 몸이 온통 희게 되었을 뿐이다란 진리의 지식으로 생기는 것일 뿐 내적인 인정이나 신뢰로부터가 아님을; 성직자가 그를 깨끗한 자라고 발표함이란 신성한 선이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이와 같은 인물의 모독은 내향적으로부터가 아님을 지각함을; 온통 희다란 악으로부터 온 거짓이 외적 측면에서 우세해져 있음을; 그럼에도 그가 깨끗한 자이다란 내향적으로는 모독이 없음을 각각 말한다. (9946, 2245, 2246, 6963, 9632, 9946, 4545)

14절. 그러나 빨간 생살이 그 사람과 더불어 나타나는 때는 언제이든지, 그는 불결하다

영적 의미

그러나 만일 내적으로 인정함과 신앙이 있을 경우 거기에는 불순함이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의 몸 어딘가에 빨간 생살(성난 살)이 나타남이란 내적으로 인정함과 신뢰함을, 부정하다란 모독 때문에 불순함을 말한다. (780, 6963, 10130)

15절. 그리고 성직자는 빨간 생살을 살펴 보라, 그리고 그를 불결하다고 발표한다. 빨간 생살은 불결하다. 그것은 나병이다.

영적 의미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신성한 선은 위 불순함이 있다고 지각하고 선포하는데, 그 이유가 인정함과 신앙이 있을 때 진리가 썩는 것은 그것이 진짜로 내적 모독이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성난 살을 보고 불결하다고 발표함이란 신성한 선이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불순함을 지각하는 것을, 성난 살이 불결하고 거기에 나병이 있다란 진리가 부패하되 거기에 인정함과 신뢰함까지 있게 되면 진정한 내적 모독이다는 뜻이다. (9946, 2245, 2246, 10130, 6963)

16절. 또는, 만일 빨간 생살이 다시 변한다면, 그리고 희게 바뀌어진다면, 그러면 그는 성직자에게 가라.

영적 의미

모독중인 사람이 주님을 인정하는 것과 그분에 대한 신앙을 가지기를 중단한다면 모독은 외적인 측면에서만 있게 되는 바 그는 신성한 선의 영향 하에 다시 와야만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빨간 생살(성난 살, raw flesh)이 다시 희어지면이란 모독하는 어떤 사람이 주님을 인정함과 그분에 대한 신뢰를 중단하는 것을, 모두 희어짐이란 외적으로만 모독함을, 성직자에게 다시 옴이란 신성한 선의 영향 밑에 다시 오는 것을 뜻한다. (6963, 13절 참조, 9946)

17절. 그리고 성직자는 그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보라, 만일 역병이 희게 변했으면, 성직자는 역병(을 가진) 그를 깨끗하다 발표하라. 그는 깨끗하다.

영적 의미

만일 거기에 더 이상 인정함과 신앙이 없다고 신성한 진리가 지각한다면, 그 다음 신성한 선으로부터 이와 같은 사람은 내적 모독에서 순수하다고 선포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살펴봄이란 신성한 선으로부터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지각함을; 병든 자리가 모두 희어짐이란 인정함과 신뢰함이 더 이상 없는 것을; 성직자가 깨끗하다고 선언함이란 이와 같은 사람은 내적 모독에서는 깨끗하다고 선으로부터 선포가 있음을 말한다. (2245, 2246, 9946, 6963, 9632, 4545)

18절. 그리고 살이 그것의 피부에서 종기를 가질 때, 그리고 나을 때,

영적 의미

영적 인간의 생명 중 기억 안의 진리가 있는 곳, 외적 측면이 감각적 사랑의 불순함과 추악함으로 더렵혀졌을 경우 이는 진리의 영향으로 바깥쪽으로는 치료가 되는데,

세부적 영적 의미

살갗이 곪았다가 나았다란 영적 인간의 생명이 외적 측면 즉 기억 안의 진리가 있는 곳이 감각적 사랑의 불순함과 추잡함으로 손상되었다는 것, 그럼에도 바깥쪽의 것은 진리의 영향으로 치료된다는 것을 말한다. (7524, 9245, 780, 8365)

19절. 그리고 종기 있는 자리가 희게 도두라지거나, 선명한 반점, 빨간 흰 반점이 있다, 그러면 성직자에게 보여라.

영적 의미

영적 생명이 내향적으로 남아 있는 동안 진리가 감각적 사랑 또는 이기적 사랑으로 썩어져 선이 거짓과 합병된 듯 나타나지도록 된다면 신성한 선은 그런 상태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곪았던 자리가 다시 희게 도드라지거나 불그스름한 선명한 반점이 생긴다는 것은 손상된 생명이 내향적으로 남아 있다는 것, 그 이유는 희게 부어 오름이 감각적 사랑으로 부패된 진리를; 선명한 반점(어루러기, bright spot)는 이기적 사랑으로 부패된 진리를; 빨간 흰색(불그스름하게 희다, reddish white)란 선이 거짓과 합병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성직자에게 보인다란 신성한 선이 그런 상태에 영향을 미칠 것임을 말한다. (제 2절, 6402, 3300, 8459, 4007, 2245, 9946, 제 3절)

20절. 그리고 성직자는 살펴 보라, 그리고 보라, 만일 그것의 나타남이 피부보다 더 낮다면, 그리고 그것의 털이 희게 변했다면, 그 다음 성직자는 그가 불결하다고 발표하라. 이것은 나병의 역병이다, 그것이 종기에서 나타났다.

영적 의미

그리고 선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가 정밀 탐사한 바, 얼마간의 인정함과 신앙이 실지 있고, 더하여 거짓으로 인한 진리의 모독까지 있다는 것이 보여지면 거기에는 불순함이 있다. 그리고 이 진리의 모독은 감각적 사랑이 널리 퍼진 데에 기인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살펴봄이란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하는 선으로부터의 탐사를; 피부 보다 더 낮다(우묵하게 들어감)이란 거기에 어떤 인정함과 신뢰가 있다는 것을; 털이 희어짐이란 거기에 거짓에 의한 진리의 부패가 있음을; 성직자가 불결하다고 선언함이란 거기에 불순함이 있음을; 나병이란 아껴두신 것들을 파괴하려는 경향이 있는 진리의 모독을; 종기에서 나타남(곪아터짐)이란 감각적 사랑이 득세함에서 발생된다는 것을 뜻한다. (2245, 2246, 9215, 780, 6963, 제 3절 참조, 10130, 6963, 10219, 7524)

21절. 그러나 만일 성직자가 그것을 살펴 보고, 보라, 거기 안에 흰 털이 없고, 그리고 피부보다 더 낮지 않고, 단지 어슴프레하다면, 성직자는 그를 칠 일간 격리해 두라.

영적 의미

그러나 선으로부터 검사한 바, 감각적 사랑의 악에서 온 거짓이 진리를 부패시키지 않았고 인정함과 신앙이 없는 바 외향적으로만 불순할 뿐이라면 영적 인간은 거듭나는 과정에서 외적 거룩함의 상태를 수단으로 제한 받아지고 있는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살펴봄이란 선으로부터의 검사를, 거기에 흰털이 없음이란 감각적 사랑의 악으로부터 온 거짓들이 진리를 썩게 하지는 아니했음을, 우묵 들어가지 않았음이란 인정함도 신뢰함도 없다는 것을, 병세가 완화되고 있음(the plague being dim or weak)이란 외적으로만 불순하고 있음을, “어슴프레함, 완화, dim”이란 악이 상대적으로 약화됨을, 성직자가 칠 일간 그를 격리시킴이란 자아 억제가 외적으로 있는 거룩한 상태를 뜻하고 있다. (9946, 2245, 2246, 제 3절, 9215, 780, 6963, 10219, 3493, 784, 6854-5, 716, 9946)

22절. 그리고 만일 이것이 피부에 퍼지고 있다면, 그다음 성직자는 그가 불결하다고 발표하라. 그것은 역병이다.

영적 의미

그리고 억지를 부려 썩어짐이 팽창되고 있다면 진리에 의한 선으로부터 아껴두실 것을 파괴시키려는 강한 경향성을 가지고 진리를 모독하고 있음이 입증되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살갗에 도두라짐이나 선명한 반점이 더 퍼졌다란 부패가 고집스럽게 팽창함을, 성직자가 그를 불결한 자라고 선언함은 모독이 있다는 것이 선으로부터 진리를 수단으로 증명됨을, “그것은 역병이다(병 증세이다)”란 아껴두신 것들을 파괴하려는 경향이 강한 것을 말한다. (10219, 9215, 4035, 9946)

23절. 그러나 만일 선명한 반점이 그 위치에서 머문다면, 그리고 퍼지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종기의 상처 자국이다. 그리고 성직자는 그가 깨끗하다고 발표하라.

영적 의미

그러나 이기적 사랑에 의한 썩게 하는 영향력이 점검되어 거기에 감각적 사랑의 불순함만 있다면, 선으로부터 이것은 불순함이 아니다고 선포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선명한 반점이 제자리에서 더 번져 나가지 않았다란 부패의 영향이 점검되었음을, 퍼지지 않음이란 악의 증가 또는 팽창이 없음을, 종기의 상처자국(곪았던 흔적)에 불과함이란 감각적 사랑의 불순함이 남아 있음을, 성직자가 그를 깨끗한 자라고 선언함이란 선으로부터 불순함이 없다고 선포하는 것을 뜻한다. (제 2절, 4926, 시편 106:23, 4033, 7519-5, 868, 4545)

24절. 또는 살이 그것의 피부에서 불로 데어짐을 가질 때, 그리고 데짐의 살이 바르게 선명한 반점, 빨간 흰, 또는 흰 반점이 될 때,

영적 의미

그리고 다시, 진리가 기억 안에 있는 곳, 외적 측면에서 영적 인간의 생명이 이기적 사랑에서 오는 세상적 사랑의 열정으로 손상을 입는다면, 그리하여 마치 선이 위 두 사랑 중 어느 쪽에서 오는 거짓과 합병된 듯 외관에 보여진다면,

세부적 영적 의미

불에 덴 살갗이란 기억 안에 있는 진리가 있는 곳인 외적 측면에 관한 영적 인간의 생명이 세상적 사랑의 열정으로 손상을 입었음을, 데인 자리가 부어 올라 불그스름하고 희끗희끗한 선명한 반점이 돋는다란 마치 선이 위 사랑의 어느 것으로부터 오는 거짓과 합병된 듯 보이는 것을 말한다. (9955, 6963, 19절, 9215, 6402, 3300, 8459, 4007)

25절. 그 다음 성직자는 그것을 살펴 보라. 그리고 보라, 만일 선명한 반점에 있는 털이 희게 변하여지고, 그것의 나타남이 피부 보다 더 깊다면, 그것은 나병이다, 나병이 데어짐에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성직자는 그가 불결하다고 발표하라. 이것은 나병의 역병이다.

영적 의미

그러면 신성한 선으로부터의 검사가 더 있게 된다. 만일 이기적이고 세상적 사랑으로부터 온 거짓이 진리를 부패시켰고 거기에 어떤 인정함과 신앙이 있다면 세상적 사랑의 열정으로부터 진리가 모독된 것이 확실하다. 그것은 불순하다. 그리고 그것은 아껴두신 것(remains)을 파괴하기까지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살펴봄이란 신성한 선으로부터 검사함을; 선명한 반점에 있는 털이 희어짐이란 이기적이고 세상적인 사랑으로부터 온 거짓이 진리를 썩게 했음을; 우묵하게 들어갔음이란 인정함과 신앙이 있음을; 나병이란 진리의 모독을; 데인 자리에서 터졌다란 진리의 모독은 세상적 사랑이 득세함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성직자가 그를 불결한 자라고 선언함이란 불순함이 있다는 것을; 나병의 역병이란 아껴두신 것들을 파괴하려는 경향이 있는 모독을 말한다. (2245, 2246, 9946, 3절, 9215, 780, 6963, 9955, 9946, 10130, 10219)

26절. 그러나 만일 성직자가 그것을 살펴보고, 보라, 선명한 반점에 흰 털이 없고, 피부보다 더 낮지 않으나 어슴프레하다면, 그 다음 성직자는 그를 칠 일간 격리 해두라.

영적 의미

그러나 신성한 선이 신성한 진리로 검사했는데 거짓이 진리를 썩게 하지 않았고 거기에 인정함과 신뢰함이 없고 오직 불순함이 바깥쪽에서만 있다면 영적 인간은 거듭나는 과정에서 바깥쪽을 거룩하게 함으로 제지되고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살펴봄이란 신성한 선이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검사함을, 선명한 반점이 돋은 자리에 난 털이 희어지지 않았음이란 거짓으로 인한 진리의 부패가 없다는 것을, 우묵하게 들어가지 않고 병이 완화된 듯 함이란 인정함과 신앙이 없고 오직 바깥쪽이 불순함을, 성직자가 그를 칠 일간 격리함이란 거듭나는 과정에 있는 바깥쪽 거룩한 상태로 억제함을 말한다. (9946, 2245, 2246, 3절, 9215, 780, 6963, 3493, 21절, 784, 6854-5, 716)

27절. 그리고 성직자는 그를 칠 일째 날 살펴 보라. 만일 이것이 피부로 퍼졌다면, 그다음 성직자는 그가 불결하다고 발표할 것이다. 그것은 나병의 역병이다.

영적 의미

이 상태의 결말에서 검사가 더 있게 되는데 거기에 고집 불통으로 부패함이 팽창되고 있다면 불순함이 있는 바, 진리가 모독되고 있는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칠 일째에 성직자가 살펴봄이란 상태의 마무리에서 한번 더 검사가 있음을, 그것이 피부에 퍼졌음이란 부패의 팽창이 고집스럽게 있음을, 성직자가 그를 불결한 자라고 선언함이란 불순함을, 나병의 역병(나병 증세)이란 아껴두신 것들을 파괴하려 드는 진리의 모독을 말한다. (2245, 2246, 9946, 2044, 10219, 9215, 4035, 9946, 10130, 6963, 10219)

28절. 그리고 만일 선명한 반점이 제자리에 머물고, 피부에 번지지 않고, 어슴프레하다면, 성직자는 그가 깨끗하다고 발표할 것이다. 그 이유가 그것은 데어짐으로부터의 상처자국이다.

영적 의미

그러나 이기적이고 세상적인 사랑이 점검되어져 부패함의 억지 팽창이 없고 단지 바깥쪽이 불순한 채로 있다면, 비록 세상적 사랑이 활동적이라 해도 거기에는 내적 불순함이 없고 단지 이기적이고 세상적인 사랑의 상태가 남아 있는 정도라고 신성한 선은 선포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선명한 반점이 제자리에서 더 번져나가지 않았다란 이기적이고 세상적인 사랑이 점검되어졌음을, 번지지 않고 완화되고 있다란 부패가 고집스럽게 팽창은 않고 단지 바깥쪽으로 불순할 뿐임을, 덴 자리가 부어 오름이란 세상적 사랑으로부터 감각적 사랑이 적극성을 가짐을, 성직자가 그를 깨끗한 자라고 선언함은 모독으로부터 오는 불순함이 없음을, “그것은 데인 흔적”이라 함은 이기적이고 세상적 상태의 남은 것들을 뜻한다. (2절, 4926, 시편 106:23, 4035, 3493, 21절, 2절, 9055, 9946, 4545, 868, 7519-5)

29절. 그리고 남자, 또는 여자가 머리에, 또는 수염에 역병을 가질 때,

영적 의미

강렬한 이기적 사랑과 거짓으로 영적 인간 안에 있는 진리와 선에 관해 남은 것을 파괴하려는 경향성을 띄울 때,

세부적 영적 의미

29. 남자든지 여자든지 머리나 수염(턱)에 역병(피부병)이 생겼다란 영적 인간이 열성적인 이기적 사랑과 그 거짓으로부터 자신 안에 있는 선과 진리에 관해 아껴두신 것을 파괴하려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명시한다. (257, 3301-7, 10219, 718, 725)

30절. 그러면 성직자는 역병을 살펴 볼 것이다. 그리고 보라, 만일 그것의 나타남이 피부보다 더 깊다면, 그리고 황색의 가는 털이 그것 안에 있다면, 그 다음 성직자는 그가 불결하다고 발표한다. 그것은 두창(scall)이다, 그것은 머리나 수염의 나병이다

영적 의미

그러면 신성한 선으로부터 검사가 있게 되는데, 이 경우에서 얼마간의 인정함과 신뢰함이 있고, 지옥적인 이기적 사랑에서 오는 거짓이 진리를 집요하게 부패시키고 있다면 거기에 불순함이 확실히 있고, 이 사랑과 거짓으로부터 생기는 부패 행위로 진리의 모독이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병을 살펴 봄이란 위 경향성에 관한 검사가 신성한 선으로부터 만들어짐을, 그 자리가 우묵하게 들어감이란 어느 정도의 인정함과 신뢰함을, 거기에 난 털이 누렇고 가늘어졌다란 지옥적인 이기적 사랑으로부터 오는 거짓을, 털은 좋은 의미에서 진리를 말하고 금같이 누렇다 함은 선을 말하지만 이 구절에서는 반대 의미로 되었는 바 거짓과 악을 뜻한다. 성직자가 그를 불결하다고 발표함이란 분명히 불순함을, 머리나 턱에 생기는 나병 또는 두창이란 이기적인 사랑과 거짓으로부터 발생하는 부패 행위로부터 진리가 모독됨을 말한다. (9946, 2245, 2246, 10219, 6963, 9215, 780, 3301, 8458, 5204, 10130, 7524, 257, 3310-7)

31절. 그리고 만일, 성직자가 두창의 역병을 살펴보고, 보라, 그것의 나타남이 피부보다 더 깊지 않고, 그것 안에 검은 털이 없다면, 그러면 성직자는 두창의 역병을 (가진) 그를 칠 일간 격리해두라.

영적 의미

그러나 신성한 선이 신성한 진리로 검사한 바, 거기에 인정함과 신뢰함이 없고 진리가 가혹하게 황폐되지 않았다고 보여지면 신성한 선으로부터 거듭나는 과정에서 억제함과 거룩함의 상태가 있는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두창의 역병을 살펴봄이란 신성한 선으로부터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검사가 있음을; 우묵하게 들어가지 않았음이란 인정함과 신뢰함이 없다는 것을; 검은 털도 나지 않았음이란 혹독하게 황폐되지 않았음을; 성직자가 환자를 격리시킴이란 신성한 선으로부터 거듭나는 과정에서 억제와 거룩함의 상태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2245, 2246, 9946, 9215, 780, 6963, 3993, 3994, 784, 6854-5, 716)

32절. 그리고 칠 일째 날 성직자는 역병을 살펴 보라. 그리고 보라, 만일 두창이 퍼지지 않고, 황색 털이 그 안에 없고, 그리고 두창의 나타남이 피부 보다 더 깊지 않다면,

영적 의미

이 상태가 끝날 때쯤 신성한 선으로부터의 검사가 있어진다. 부패하는 상태가 억지 팽창이 없고 자아 사랑에서 온 열정적인 거짓이 진리를 부패시키지 않았고, 거기에 인정함과 신뢰함도 없다면,

세부적 영적 의미

칠 일째에 성직자가 살펴봄이란 상태의 마무리에서 있는 검사를; 두창이 번지지 않았다란 부패함이 고집스럽게 팽창하지 않았다는 것을; 누런 털이 없다란 강렬한 거짓으로 진리가 부패하지 않았음을; 두창이 난 자리가 우묵하게 들어가지 않았다란 인정함과 신뢰함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2245, 2246, 9946, 2044, 257, 3310-7, 4035, 3301, 8458, 5204, 9215, 780, 6963)

33절. 그러면 그는 면도하라, 그러나 두창은 면도하지 말라. 그리고 성직자는 두창(을 가진) 그를 칠 일간 더 격리하라.

영적 의미

그 다음 자아 사랑으로부터 온 거짓들이 거절되고 있으나 아직 자아 사랑 자체는 완전하게 물러가지 않고 있다면 거듭나는 과정에서 억제함과 거룩함이 더 많이 요구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털을 깎음이란 이기적 사랑으로부터 거짓들을 거절함을; 두창이 난 자리의 털을 깍지 않음이란 이기적 사랑 자체가 완전히 폐지된 것은 아님을; 칠 일간 더 격리시킴이란 거듭나는 상태에 있는 억제와 거룩함의 상태가 더 있음을 말한다. (3301, 7524, 6963, 275, 784, 6854-5, 716)

34절. 그리고 칠 일째 날 성직자는 두창을 살펴 보라. 그리고 보라, 만일 두창이 피부에 퍼지지 않았고, 그것의 나타남이 피부 보다 더 깊지 않다면, 그러면 성직자는 그가 깨끗하다고 발표한다. 그리고 그는 자기 옷들을 빨아라 , 그리고 깨끗하다.

영적 의미

다시 이 상태의 마무리에서 검사가 있게 된다. 그래서 이기적 사랑으로부터 온 부패가 외적 인간 안에 있는 진리들에 퍼져 가지 않았다면, 동시에 인정함과 신뢰함도 없다면 신성한 선으로부터 거기에 내적 모독이 없다고 선포되고 깨끗해짐이 외적으로 거행되고 거기에 불순함이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다시 칠 일째 되는 날 성직자가 두창을 살펴봄이란 상태의 마지막에서 다시 검사함을; 두창이 살갗에 번지지 않았음이란 이기적 사랑으로부터의 부패가 외적 측면에 있는 진리에까지 퍼지지 않았음을; 그 자리가 우묵하게 들어가지도 않았다란 인정함이나 신뢰함이 없다는 것을; 성직자가 그를 깨끗한 사람이라고 발표함이란 내적 모독이 없음을; 옷을 빨아 입으면 깨끗하다란 외적으로 순수하고 불순함이 없음을 말한다. (2245, 2246, 9946, 2044, 257, 3301-7, 4035, 9215, 780, 6963, 994-6, 4545, 3147)

35절. 그러나 만일 두창이 자기 옷을 깨끗이 한 후 피부에서 퍼지고 있다면.

영적 의미

그러나 거기에 순수함이 어느 정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부패함이 고집스럽게 팽창되고 있다면,

세부적 영적 의미

깨끗하다고 선언한 후 두창이 살갗에 번짐이란 깨끗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부패가 고집스럽게 팽창됨을 말한다. (257, 3301-7, 4035, 3147, 4545)

36절. 그 다음 성직자는 그를 살펴 보라. 그리고 보라, 만일 두창이 피부에 퍼졌다면, 성직자는 황색 털을 수색하려 들지 말라. 그는 불결하다.

영적 의미

그러면 진리에 의거 선으로부터의 검사가 더 실시된다. 만일 부패가 억지스럽게 팽창되고 있다면, 자아 사랑으로부터 오는 거짓이 열성을 내는데도 묵과하고 있다면 거기에는 악이 거짓과 결합함으로 불순함이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그를 살펴봄이란 진리를 수단으로 선이 더 검사함을; 두창이 살갗에 번졌다란 부패가 고집스럽게 팽창되었음을; 성직자가 털이 누렇게 되었는지 조사할 것도 없다란 이기적 사랑으로부터 강렬한 거짓의 현존이 등한시되고 있음을; 그가 부정하다란 영적으로 불순함을 말한다. (9946, 2245, 2246, 257, 3301-7, 4035, 8458, 5204, 10130)

37절. 그러나 만일 그의 눈에서 두창이 머물고 있고, 그리고 검은 털이 거기 안에서 자랐다면. 두창이 치료되어지고 있다, 그는 깨끗하다. 그리고 성직자는 그가 깨끗하다고 선포한다.

영적 의미

그 다음 부패가 두려움으로부터 강제로 제지되고 있음이 신성한 진리로부터 명백해진다면, 그 이유는 모든 진리의 황폐함이 진행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면 바깥쪽으로 불순함의 제거가 있다. 그리고 신성한 진리로 신성한 선은 이와 같은 황폐함이 있음을 보지만 거기에 진리의 모독은 없다고 선포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의 눈에 두창이 더하지 않게 보이면이란 부패가 두려움으로 인해 강제적으로 억제되고 있다는 것이 신성한 진리로부터 명백해짐을; 거기서 검은 털이 나옴이란 이제 모든 진리의 황폐가 거행되었음을; 두창이 나았다란 모독이 없음을; 성직자가 그를 깨끗한 자라고 선언함이란 신성한 선이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이를 선포함, 더불어 모독으로 인한 불순함이 없음을 뜻한다. (9946, 5304, 4926, 시편 106:23, 3994, 8365, 4545)

38절. 그리고 남자 또는 여자가 자기 살의 피부에 선명한 반점들, 희고 선명한 반점들 조차 가질 때,

영적 의미

교인의 의지나 이해함 안에서 이기적 사랑이 영향력을 미쳐 진리가 부패하고 있다면,

세부적 영적 의미

남자든지 여자든지 살갗에 선명한 반점이 생겼을 경우 또는 그 반점이 희어도란 교인의 의지와 이해함 안에서 악한 의도 없이 이기적 사랑의 영향이 있는 것을 말한다. (7524, 9215, 4035, 2, 3절)

39절. 그다음 성직자는 살펴 보라. 그리고 보라, 만일 그들의 살의 피부에 있는 선명한 반점들이 투미한 흰색일 때, 이것은 피진(tetter)이다, 이것이 피부에 나타난 것이다. 그는 깨끗하다.

영적 의미

거기에도 역시 진리에 의한 선의 영향력이 미치게 되고, 이와 같은 부패함이 외적일 뿐이고 악한 의도 없이 자연적 사랑의 충동으로부터 이라면 거기에는 근본적인 불순함은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살펴봄이란 진리를 수단으로 선이 영향을 줌을; 살갗에 생긴 어루러기가 희끄무레 하다란 부패함이 외적 부분에만 있음을; 살갗에 피진이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란 악한 의도 없이 자연적 사랑이 활동적임을; 정하다란 심각할 정도의 불순함은 없다는 것을 말한다. (9946, 2245, 2246, 10219, 3493, 7525, 9215, 4035, 4545)

40절. 그리고 만일 사람의 털이 그의 머리로부터 떨어진다면(빠진다면), 그가 대머리이다면, (아직) 그는 깨끗하다.

영적 의미

또한 악한 의도 없이, 알지도 못한 채 부패된 애착에서 생긴 것이 진리를 이해할 능력을 없게 했다면 거기에는 불순함이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사람의 머리털이 빠진 것 즉 대머리인데도 깨끗하다란 애착이 모르는 사이에 부패된 상태, 그 결과 불순함은 없음을 뜻한다. (3301-5, 257, 3301-8, 4545)

41절. 그리고 만일 그의 털이 그의 머리의 앞부분으로부터 빠진다면, 그는 앞이마 대머리이다. (아직) 그는 깨끗하다.

영적 의미

또한 위 사항이 서로 비슷한 결점으로부터 더 내면에서 발생했다 해도 거기에 불순함은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앞머리의 털이 빠져 대머리인데도 깨끗하다란 더 내면의 애착이 알지 못하게 부패된 상태인 바 위 구절과 같은 결점이므로 불순함은 없다는 뜻이다. (9936, 3301-5, 3301-9, 4545)

42절. 그러나 만일 대머리, 또는 앞이마 대머리 안에 빨간 흰 역병이 있다면, 그것은 그의 대머리, 또는 그의 앞이마 대머리에서 나타난 나병이다.

영적 의미

또 다른 측면, 즉 누군가가 내면 또는 가장 깊은 애착 측면에서 진리에 부족해 있다면, 부패되고 있다면, 더불어 그의 생활이 선이 거짓과 결합한 상태로 이는 아껴두신 것들(remains)을 파괴하는 경향이 있고, 또한 그는 자기와 더불어 남아 있는 적은 양의 진리를 모독하는 가운데 있는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 구절에서의 대머리, 앞이마가 대머리인 것은 진리가 없는 내면의 애착과 더 깊은 내면의 애착을 명시한다. 불그스레하고 희끗희끗한(reddish-white) 병증세란 선과 거짓이 합병된 것 그리고 주님이 아껴두신 것들(remains)을 파괴하려 드는 것을; 나병이 생겼다란 알지 못했던 부패된 상태가 알게 되면 진리를 더욱 강하게 모독하려는 기질이 있음을 뜻한다. (257, 9936, 3301-9, 19절, 10219, 6963)

43절. 그다음 성직자는 그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보라, 만일 역병으로부터의 도두라짐이 그의 대머리에서, 또는 그의 앞이마 대머리에서, 마치 살의 피부에서의 나병 같이 빨간 흰색이다면,

영적 의미

그러면 이런 인물은 자기도 모르게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신성한 선의 영향 밑에 들어와진다. 그리고 그의 상태가 내면 또는 가장 깊은 내면의 애착 측면에서 선이 거짓과 합병됨으로 야기되고 있다면 거기에는 바깥쪽에서 진리가 모독된 것이 나타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그를 살펴봄이란 위와 같은 인물도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하는 신성한 선의 영향 밑에 무의식중에 데려와짐을, 대머리나 앞이마 대머리에 희끗희끗하면서 불그스레한 병 증세가 있다란 내면의 애착 또는 더 깊은 내면의 애착 측면에서 선이 거짓과 합병된 것을, 이 증세가 나병 같은 것이란 진리가 모독되어 바깥쪽에 나타남을 뜻한다. (9946, 2245-6, 19절, 10219, 257, 9936, 3301-6, 6963, 9215, 780)

44절. 그는 나병 있는 사람이다, 그는 불결하다. 성직자는 그가 불결하다고 확실히 발표할 것이다. 그의 역병이 그의 머리에 있다.

영적 의미

그는 진실로 진리를 모독했다. 그리고 불순하다. 따라서 신성한 진리로 신성한 선은 그의 상태가 이기적 사랑이 우세해진 탓이라고 지각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나환자 그리고 불결하다란 진리를 실지로 모독함과 불순함을; 성직자가 그를 불결하다고 선언함이란 신성한 선이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불순함을 지각하는 것을; 병 증세가 머리에 있다란 이런 상태는 이기적 사랑이 득세함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6963, 10130, 9946, 2245, 2246, 10219, 257)

45절. 그리고 역병이 있는 나환자, 그의 옷들을 찢으라, 그리고 그의 머리의 털은 풀어 놓아라, 그리고 그는 자기 윗입술을 덮을 것이다, 그리고 외칠 것이다, 나는 불결하다, 불결하다.

영적 의미

모독죄를 범한 사람은 반드시 그 죄 탓으로 진리를 잃은 것에 슬퍼해야 한다. 그 이유는 기억 안에 있는 진리가 선 밑에 질서 있게 배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언어로 진리를 체현할 능력이 없다. 그리고 그는 의지와 이해함 양 측면에서 불순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나병이 있는 사람이란 아껴두신 것들을 파괴하려는 쪽으로 모독을 범하는 사람을; ;을 찢음이란 잃은 진리 때문에 통곡함을, 머리를 풀음이란 진리가 선 밑에서 질서 있는 방법으로 배열되지 않았다는 것을; 윗입술을 가리움이란 대화로 진리를 체현할 능력이 없음을; “불결하다” “불결하다” 라고 외침이란 의지와 이해함 양면에서 불순함을 말한다. (6963, 10219, 4763, 9960-5, 1286, 9632, 10130, 683)

46절. 역병이 자기 안에 있는 모든 날들 동안 그는 불결하다. 그는 불결하다. 그는 홀로 거주하라. 진영 밖이 그의 거주지 이다.

영적 의미

그렇다. 모독의 상태가 지속하는 한 그는 계속 불순하다. 그는 내적으로 외적으로 불순하다. 그는 선과 함께 하는 천국과 연합될 수 없다. 그는 지옥의 사악한 것들과 연합해야 하는 것을 피할 수 없으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병증세가 있는 만큼 불결하다란 모독함이 지속되고 있는 한 불순함도 계속된다는 것을; 그가 불결하다란 내적 뿐만 아니라 외적으로 불순함을; 홀로 살아감이란 선과 더불은 천국과의 연합이 없음을, 여기서 적용되는 홀로 삶은 반대적 의미이다. 그가 진지 밖에서 자리잡고 산다란 지옥에 있는 사악한 자들과 연계됨을 뜻한다. (487, 683, 139, 3580, 10038)

47절. 나병의 역병이 안에 있는 옷 또한 그것이 양털 옷이든, 아마포 옷이든.

영적 의미

진리가 거짓과 혼합되어 있는 교리 역시 모독이다. 이 모독은 선이든 진리에 관련되었든 모두 모독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옷(garment)이 나병 증세를 가지고 있음이란 진리가 거짓과 혼합되어 담겨 있는 교리를, 양털 옷과 아마포옷이란 선에 관련된 것과 진리에 관련된 것을 말한다. (5006, 6963, 10219, 9470)

48절. 그것이 날줄, 또는 씨줄이든, 아마포로 이든, 양털로 이든. 가죽에서이든, 또는 가죽 제품 어떤 것에서 이든.

영적 의미

내면의 진리 또는 선, 외면의 진리 또는 선, 혹은 최말단의 진리, 또는 그 선에 관계되든,

세부적 영적 의미

날줄 또는 씨줄이란 내면의 진리 또는 선을; 아마포 또는 양털이란 외면의 진리 또는 선을; 가죽 또는 가죽으로 만든 어떤 것이란 최말단의 진리와 선을 말한다. (5006, 6963, 10219, 9470)

49절. 만일 역병이 옷에서, 또는 가죽이든, 또는 날줄(warp)이든, 또는 씨줄(woof)이든, 또는 가죽 제품의 어떤 것에서 이든 푸루퉁하거나 빨간색이다면, 성직자에게 보여야 한다.

영적 의미

더욱이 교리가 이해함 또는 의지 속의 거짓으로 부패되었다면, 다시 말해 이기적 사랑으로부터, 세상을 사랑함으로부터 부패되었다면, 그것이 가장 깊은 내면, 내면, 최말단이든 그것은 모독된 교리이다. 그래서 그것은 신성한 선의 영향 밑에 가져다 놓아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옷이든 가죽이든 푸루퉁하거나 빨간색 자국이 있음이란 이해함 또는 의지 속의 거짓들, 즉 세상적 사랑 또는 이기적 사랑으로부터 온 거짓들을 수단으로 부패된 교리를; 날실, 또는 씨줄이나 가죽으로 만든 어떤 물건이란 내면, 가장 깊은 내면, 또는 최말단인 것을; 나병 증세란 모독하여 아껴두신 것들을 파괴하려는 것을; 성직자에게 보임이란 신성한 선의 영향 밑에 가져옴을 말한다. (996, 3300, 5006, 9215, 9915, 6963, 10219, 9946)

50절. 그리고 성직자는 역병을 살펴 보라, 그리고 칠 일 동안 역병을 가진 것을 격리해둔다.

영적 의미

그리고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하는 신성한 선에 의해 그것은 테스트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사람은 거듭남의 과정에서 그로부터 제지되는 거룩한 상태에로 놓여져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역병을 살펴봄이란 신성한 선으로부터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테스트함을, 칠 일간 따로 둠이란 신성한 선으로부터 오는 억제와 거룩함을 말한다. (2245, 2246, 9946, 784, 6854-5, 716, 9946)

51절. 그리고 그는 칠 일째 날 역병을 살펴라. 만일 역병이 옷에서, 날줄이든, 씨줄이든, 또는 가죽이든, 가죽이 어떤 섬김에 사용되었든 퍼졌다면, 역병은 악성 나병이다. 그것은 불결하다.

영적 의미

이 상태가 완성될 때, 부패함이 선이든 진리이든 내적으로 이든 외적으로 이든 팽창되었다면 그 품질 또는 그 사용이 무엇이었든 간에 그것은 모독된 교리이고 확실하게 불순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칠 일째 그 물건을 살펴봄이란 상태가 완성될 때 검사가 더 있어짐을; 옷이나 날실이나 씨줄이나 가죽이든 살펴봄이란 진리나 선 그것이 내적으로, 외적으로 부패가 팽창되었음을; 가죽으로 만든 어떤 것이든 병이 더 번졌으면 악성 나병이요 불결하다란 그 품질이 무엇이든 그 사용처가 어떤 것이든 그것은 모독된 교리이고 확실하게 불순함을 말한다. (2245, 2246, 9946, 2044, 4035, 9915, 9215, 5148, 10219, 6963, 10130)

52절. 그리고 그는 옷을, 날줄이든, 씨줄이든, 양털로 되었든, 아마포로 되었든, 가죽으로 된 어떤 것이든 역병이 있는 것을 태울 것이다. 그 이유가 그것은 악성 나병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불에서 태워져야 한다.

영적 의미

이와 같은 교리, 그것이 선에 관계되든 진리에 관계되든 내면이든, 가장 깊은 내면이든 또는 외적이든 모두 거절되어야 한다. 그것은 진리가 모독된 상태이다. 이것은 의지와 이해함 양쪽 모두에서 거절되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옷을 태움이란 이기적 사랑으로 오염되었으므로 위와 같은 교리는 거절함을; 날실이든, 씨줄이든, 양털로 이든, 아마포로 이든, 가죽으로 만든 어떤 것이든 이란 가장 깊은 내면이든, 내면이든, 외면이든 임을; 병이 생겼음이란 아껴두신 것을 파괴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악성 나병(a fretting leprosy)이란 진리의 모독을, 불에 태움이란 의지뿐만 아니라 이해함 측면에서 거절함을 말한다. (934, 9915, 9215, 10219, 6963, 934, 683)

53절. 그리고 만일 성직자가 살피고, 그리고 보라, 역병이 옷에서, 날줄에서, 씨줄에서, 또는 가죽의 어떤 것에서 퍼지지 않았다면.

영적 의미

그러나 선으로부터 오는 진리의 빛을 수단으로 하면 어느 누구라 해도 그가 지닌 교리는 그것이 선에 관계되든 진리에 관계되든, 그것이 내적이든 외적이든 부패가 계속되지 않는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살펴봄이란 신성한 선이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검사함을; 병이 더 번지지 않았음이란 교리가 계속 부패되고 있지 않음을; 천이나 이불이나 어떤 가죽으로 만든 물건이든 이란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선 또는 진리에 관련됨을 말한다(2245, 2246, 9946, 4035, 9915, 9215)

54절. 그러면 성직자는 역병이 있는 것을 씻으라고 그들에게 명령하라, 그리고 그는 그것을 칠 일 동안 격리하라.

영적 의미

그 다음 주님으로부터 온 선의 영향 밑에서 그것은 깨끗해진다. 그리고 거기에 억제함이라는 두 번째 상태가 있게 되고 거듭나는 과정의 거룩한 상태가 있을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명령함이란 주님으로부터 온 선의 영향 밑에 임을, 빤다란 깨끗케 함을, 칠 일간 따로 둔다란 거듭나는 과정에 있는 거룩함, 억제의 두 번째 상태를 말한다. (9946, 5486, 784, 6854-5, 716)

55절. 그리고 역병이 씻어진 후 성직자는 살피라. 그리고 보라, 만일 역병이 색이 바뀌지 않았다면, 그리고 역병이 퍼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불결하다. 너는 그것을 불에서 태워라. 그것의 드러냄이 안쪽이든 바깥쪽이든 그것은 악성이다.

영적 의미

깨끗해짐이 거행될 때 다시 선으로부터의 검사가 만들어진다. 만일 아껴 두신 것들을 파괴하려는 경향을 지닌 부패의 속성이 외관으로나 본질에서나 아직도 있다면 그것은 불순하므로 거절되어야 한다. 그것은 자연적 인간 외면에서이든 내면에서이든 진리를 모독하고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병이 생긴 물건을 빤 다음에 성직자가 살펴봄이란 깨끗해짐이 거행될 때 다시 검사가 있게 됨을; 그 병이 그대로 남아 있음이란 아껴두신 것들을 파괴하려는 경향이 있는 부패의 품질이 아직도 그것의 본질과 같다는 것을; 번지지 않았음이란 아직도 외관상 똑같다는 것을; 그것이 불결하다란 불순함을; 태움이란 거절을; 악성이다란 진리가 모독된 상태임을 말한다. 그리고 대머리 또는 앞이마 대머리가 외면 측면과 내면 측면을 말하는데, 히브리어의 표현들이 옷 또는 가죽으로 만든 어떤 것에 응용될 경우 이는 특별히 자연 평면의 외면 또는 내면을 암시한다. (2245, 2246, 9946, 3147, 996, 3300, 9215, 4035, 934, 6963, 257, 9936)

56절. 그리고 만일 성직자가 살핀다, 그리고, 보라, 역병이 씻긴 후 어슴프레하다면, 그 다음 그는 그것을 찢을 것인데, 옷이든, 가죽으로부터이든, 날실로부터 이든, 씨줄로부터 이든 찢으라.

영적 의미

위와 반대로 깨끗해진 후에 부패됨이 바깥쪽에만 있다면 그것의 품질 수준이 어떠하든 그것으로 인해 슬퍼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살펴봄이란 신성한 선이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검사함을; 빤 다음이란 깨끗해진 후에 임을; 병자국이 줄었다란 부패함이 바깥 측면일 뿐임을; 옷이나 가죽에서 또는 날줄이나 씨줄에서 병자국을 떼어냄이란 부패된 품질이 어떠하든 슬퍼함을 뜻한다. (9946, 2245, 2246, 3147, 10219, 3493, 21절, 4763, 9915, 9215)

57절. 그리고 만일 그것이 여전히 옷에서, 그것이 날실에서이든, 씨줄에서이든, 또는 가죽의 어떤 것에서이든 나타난다면, 그것이 나타나고 있다. 너는 역병이 있는 것을 불로 태워라.

영적 의미

아직도 불순함과 부패함이 가장 깊은 내면에서, 내면에서, 외면에서 항존하고 있다면, 그것은 내적인데서 오는 외적 부패함이다. 따라서 그것은 이기적 사랑의 결과로 알고 통째로 거절되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 후에 옷에서, 날줄이든 씨줄이든 가죽으로 만든 어떤 물건이든 병이 다시 나타남이란 불순함과 부패가 가장 깊은 내면에서, 내면에서, 외적으로 항존 함을; 병이 재발함(breaking out)이란 내적 측면으로부터 오는 외적인 부패를; 병이 생긴 물건을 불에 태움이란 이기적 사랑의 결과들은 모두 거절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5006, 10219, 9915, 9215, 3708, 934)

58절. 그리고 옷, 날실이든, 씨줄이든, 또는 가죽의 어떤 것으로 이든, 너는 그것을 빨아라, 만일 역병이 그것들로부터 떠나진다면, 그 다음 그것을 두 번째 빨아라, 그리고 깨끗하다.

영적 의미

순수해진 교리가 어떤 품질이든, 어느 수준에 있든 그것이 지적으로 순수하다면 그것은 동기로부터 순수해 있는 바, 전체적으로도 순수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옷이나 날줄이나 씨줄이나 가죽으로 만든 어떤 물건이든지란 품질이나 수준이 어떠하든지 임을, 빤다란 악과 거짓으로부터 순수해짐을, 병자국이 없어졌다란 지적으로 순수함을, 다시 빤다란 병자국의 동기 측면에서 깨끗하게 됨을, 깨끗하다란 전체적으로 순수함을 뜻한다. (47, 48절, 3147, 10219, 2841, 4545)

59절. 이것은 양털 옷 또는 아마포 옷, 날실이든, 씨줄이든, 또는 가죽의 어떤 것이든, 옷이 깨끗함을 발표하기 위하여, 또는 그것이 불결함을 발표하기 위한 법이다.

영적 의미

이것은 교리가 모독을 일으키는 거짓으로부터 순수해지는 것, 교리가 선에 관계되든, 진리에 관계되든, 내적이든, 내면이든, 외적이든 교리에 관한 신성한 질서의 법칙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나병 증세에 관한 규정이란 교리에 관한 모독으로부터 깨끗하게 됨에 관련되는 신성한 질서의 법칙임을; 양털이나 모시로 만든 날줄이나 씨줄이나 가죽으로 만든 어떤 물건이란 내적, 내면, 외적 측면에서의 선 또는 진리에 관한 것임을; 그것이 깨끗하거나 불결하다고 발표함이란 깨끗케 됨 또는 그 반대에 관한 결정을 뜻한다. (6963, 3147, 5006, 47, 48절, 4545, 10130)

13장의 종합적 고찰

진리의 모독에 관련된 본 장의 내용들을 영적 의미에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면 이 악이 얼마나 보편화 되었는지 우선 생각하는 쪽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게 된다. 그 이유는 거듭나는 체험을 하나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의 경우 그가 많든 적든 진리를 모독한 적이 없다고 고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진리를 모독한 적이 있다. 다시 말해 우리 모두는 이기적 용도로 진리를 일부러 응용한 적이 있을 것이다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우리는 주님을 인정하고 진리가 그분으로부터 계속 진행된다는 사실까지도 인정한다. 어떤 견지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런 모독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듯 나타난다. 그 이유가 우리는 진리를 마치 자기 것인 듯 하여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고,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도 진리를 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위와 달리 진리를 사용하는 방도는 없다고 생각될까? 만일 진리가 우리에게 무익하다면 우리는 진리에 대하여 전혀 고민될 게 없을까?
그러면 이로부터 우리가 모독 가운데 있는지 있지 않은지를 결정하는데 따른 어려움을 즉시 보게 된다. 어찌됐든 한 가지 같은 사항은 위 사항에 관해 우리가 자신을 아는 것 보다 주님이 더 잘 알고 계신다는 것, 주님만이 눈에 나타날 뿐인 모독과 진짜 모독 사이를 구별하도록 우리를 가르칠 수 있으시고 그 고민에서 건져 주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주제에 있는 여러 가지 분과들을 잘 생각해 보자. 그러면 우리는 먼저 일반 법칙을 잡게 되리라.
이기적인 사랑, 세상적인 사랑, 또는 감각적인 사랑이 자기를 이끄는 동기가 되지 않도록 할 때 우리가 진리를 이기적 목적에 사용하지 않는 듯 나타난다. 이것이 첫 단원(1-8절)에서 설명되고 있다. 이와 연결되어 오는 첫 교훈은 겸손 중의 하나와 두 번째로는 최고 의미에서 본문에서 검사하는 성직자로 표현된 분 즉 주님을 신뢰함 중의 하나에 해당된다. 요컨대 악이 우리의 살갗보다 더 깊지 않다면 주님이 보시기에 우리는 깨끗한 자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검사되는 과정에 관해서이다. 이 과정은 자아 억제(self-restraint)에 관한 두 가지 상태를 포함하고 있다. 즉, 우리의 자연적 수준의 이해함과 의지는 주님께 바쳐져야 하거나 성별 되어야 한다. 이것이 두 번씩 칠 일간 격리하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여기서 또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거듭남의 전체가 묘사되어 있다는 것, 게다가 긴 거듭남 중 한 부분까지도 묘사되고 있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숫자 7이 이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또한 심판의 과정이 성직자가 세 번째 들여다보는 묘사에 포함되어 있는데, 증세가 열거되는 각 경우에서 있고, 이 증세는 악의 확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결과적으로 선으로부터의 완전한 분리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그 이유는 세 번째 검사가 이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판 때에 선한 자는 완전해지고 사악한 자는 혹독하게 황폐해진다. 따라서 심판 후에는 모독이 더 이상 가능치 않다(누가 13:32절 참조). 사실 사악한 자는 섞인 상태인 어정쩡한 상태에 머무르는 것 보다 선과 진리로부터 완전히 분리되는 게 더 낮다.
몇 가지 세부 사항들, 우리가 조심스럽게 정리해 보아야 할 것들이 둘째, 셋째 단원에 있다. 본문은 오래된 나병(old leprosy)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악이 확증된 상태를 암시한다. 이 상태로 고통받는 사람은 밀폐되지 않을 것인데 그 이유는 이와 같이 확증된 상태는 거듭남으로 제거할 수 없고 황폐됨(vastation)으로 제거되기 때문이다. 선과 진리가 황폐화되고만 사람은 모독을 저지를 수 없다. 여기서 묘사되는 위의 상태를 마태복음 7장 31-33절의 해석과 비교하면 유익할 줄로 본다. 본문 16-17절로부터 배울 수 있는 바와 같이 인간이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가운데 있는 한, 순수한 회개로 제거되지 않는 모독의 상태는 없다. 그러나 나쁜 것(badness)을 확증한 상태는 이에서 제외되고 있다. 따라서 확증하는 상태를 결정짓는 것은 주님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다. 그러므로 선과 진리에 반대되는 위선을 수단으로 자신 스스로 확증하는 정도까지 진리를 모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귀담아 두어야 할 것이다.
위 단원에서 특별한 점 또 한가지는, 피부병(leprous)이 완전히 퍼진 사람이 깨끗하다고 선언되는 것인데 그 이유가 이와 같은 경우는 내적으로의 어떤 인정함과 신뢰함이 없이 오로지 외적으로 모독한 것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모독의 상태는 치료 즉 제거될 수 있는 바 그 이유가 그 병은 오로지 바깥쪽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서도 위선이 있는 곳에는 악을 확증하는 상태가 있는 바 치료될 수 없다(열왕기하 5:27 참조). 이쯤해서 설명이 요구되는 요점이 있다. 어째서 인정함과 신뢰함이 없는 이들에게는 깨끗하다고 또는 영적으로 깨끗하다고 말해질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다. 이 질문의 답은 이러하다. 그가 내적으로 모독하지 않았기 때문에 깨끗하다는 말이고 거듭남으로 만 깨끗해질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인정함과 신뢰함을 획득하면서 동시에 회개의 일을 수행하게 된다. 또 하나 주목해둘 게 있다. 인정함과 신뢰함이 없을 경우 내적 모독은 있을 수 없다 해도, 그리고 진리에 관한 지식이 없는 외적인 것도, 인정함과 신뢰함이 없는 외적인 것은 모독의 원인이 안 된다는 것, 그러나 인간의 이기심에서 우러나는 세상욕이나 감각적인 것이 모독의 진짜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다음 단원에서 보여지고 있다.
18절로부터 37절에 이르기까지에는 위 세 가지 사랑(감각적, 세상적, 이기적)으로부터 오는 진리의 모독이 종기(곪은 것, boil)로부터의 증상으로, 데인 것(burning)으로부터의 증상으로, 그리고 머리와 턱수염에 관한 사항에 있는 나병의 모습들로 표시되고 있다. 이에 대한 세부 설명을 간단히 말해 본다면, 여러 종류의 진리의 모독 안에 굳게 자리잡고 있는 것은 각종 거짓들과 악한 애착들이라는 것, 이것들이 시리즈로 언급되는 흰털, 누르스름한 털, 검은 털로 그려지고 있다. 또한 악한 사랑들의 세부 속성이 말해지는데, 이는 영적 투쟁의 체험을 가진 교인들에게는 이미 알려져 있는 속성들이다. 이것들 모두는 아주 보편적이고 음험하며 쉽사리 인간을 썩게 만드는 것들인 바 자칫하면 우리로 진리를 모독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들이라는 정도의 언급으로도 충분한 설명이 되리라 생각된다. 따라서 악이나 잘못들, 그리고 모독의 죄들은 계명 안에 이미 포함되어 있고 우리 삶 전체를 통해 열심히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경고와 쌍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지당할 수밖에 없으리라.
위 사항에 더 첨가되는 교훈이 머리 부분에 있는 나병 증세에서 거론되고 있다. 이로부터 우리가 배우는 바, 우리 안에는 실현 안 된 진리의 모독에 관한 바깥쪽 나타남이 의지와 이해함이라는 양 측면에서 있다는 것, 이것은 이기적 사랑의 영향 아래에서까지 있게 된다는 것, 이와 같이 여겨지지 않는 것 중에도 진짜 모독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자신은 위 사항에 관해 단언할 수 없다. 그 반면 여기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주님만이 우리의 진짜 상태를 아신다는 것, 또한 그분께서 우리에게 이 사항을 밝히 알게 해 주실 것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자신이 주님과 협동하지 않고는 우리 속의 악한 상태는 우리들로부터 제거되거나 삭제될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하게 된다. 어찌됐든 우리가 쉽게 빠질 수 있는 악 중 감추어 놓여 있는 독한 악들은 쉽사리 공개되어 명백해지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가 그 악을 기꺼이 제거하겠노라고 확고한 의지를 지켜나가는 것만으로도 인간 측면에서는 충분할는지 모른다. 그러므로 이런 사항들에 관해 우리를 계발해 주시도록 기꺼이 바래면서 주님을 따르는 것, 자칫하면 우리가 품게 되는 타락된 생명 속에 있는 독한 악을 내포하는 것 중 어느 일부가 우리에게 명백해질 때 회개하면서 우리가 아직 감지 못한 결점으로부터서도 깨끗해질 수 있게 간구하는 것만이 우리의 의무이다. (시편 19:12 참조)
우리가 나병자의 모습, 가엾고 의지할 데 없는 상황을 생각하면서 그 병이 뜻하는 진리를 알도록 하시는 바, 본문은 더욱 인상깊어지고야 만다. 모독자는 지성과 심정이라는 양 측면 모두에서 죄를 범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는 자기 삶이 무 질서적임을 직시해야만 한다. 그는 진리를 놓고 말은 옳게 잘 하면서도 자기 삶으로 진리를 입증하는데 얼마나 무능력한 인간인가를 알아야만 한다. 그 이유가 자기 속에 든 이기적인 사랑이 진리를 오염시켰기 때문이다는 것도 알아야만 한다. 그는 내적으로만 수용할 수 있는 천국적 삶에서 한 때라도 분리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자신 스스로는 깨끗해질 수 없음을 느껴야 한다. 그러면서도 깨끗해지려면 신성한 법칙에 순종해야만 한다는 것, 시리아 장군 나아만이 예언자의 명령에 순종해서 요르단 강에 일곱 번 자신을 스스로 씻어 깨끗해지듯 해야만 한다(열왕기하 5:10-14).
본문의 뒷 단원은 내적 의미로 볼 때 흥미를 더 해주고 있다. 나병이 살갗뿐만 아니라 옷에도 있을 수 있다는 대목이다. 즉 모독은 진리 자체뿐만 아니라 교리에도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현재 어떤 이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 즉 교리는 삶을 순수하게 하도록 설비된 것 중 과히 중요한 위치는 못되는 듯 여길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벼운 추측은 큰 오류가 되고 만다. 그 이유는 거짓과 혼합 안된 진정한 교리, 악에 오염되지 않은 진정한 교리만이 실지로 우리를 깨끗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말씀이 이 사항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은 과히 놀랄 일은 아니 될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이야말로 진실된 말씀, 흙도가니에 일곱 번 녹여 거른 순 은입니다”(시편 12:6). 말씀 안에 거짓 교리들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진리는 이기적이고 세상적 사랑의 영향을 받아 잘못 해석됨으로 왜곡되어진다. 이로부터 교리 안에 모독이 스며든다. 이것이 푸루퉁하고 빨간 자국이다. 이제 검사 과정을 주목해서 보자. 어떻게 앞의 묘사와 유사한가를 살펴보자. 그 이유는 결국 순수해져야 하는 것은 인간이지 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인간이 순수해진다면 그는 거짓을 거절할 것이나 그가 악에 기울어 있다면 그는 자기의 악한 상태를 확증하려 들 것이다. 따라서 이것들은 영적인 불로 태워져야 한다. 우리가 거짓 교리를 제거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심정 또는 애착이 순수해 있도록 하는 것밖에 없을 것 같다. 이는 참으로 심판의 방법이기도 하다. 사후 만일 어떤 이가 선함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그 선에 맞는 진리가 주어질 것이나 선함을 가지지 않은 사람으로부터서는 그가 가진 듯 나타나는 진리도 거둬간다. 따라서 옷감 이전의 천을 짜는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해준다. 베를 짜는 작업(weaver) 또는 천으로 명시되는 게 천국의 원리, 즉 선의 원리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진리 위에 선이 지나가고 선이 지나간 그 위에 진리가 지나가는 작용, 이해함 위에 의지가…, 외적 인간 위에 내적 인간이…, 이와 같이 할 때만이 악과 거짓에서 자유로운 천국적인 예루살렘이라는 아름다운 옷을 생산할 수 있다. 그리하면 주님과 결혼하는 때 우리는 그 옷을 입고 내적으로 외적으로 온전한 상태로 주님과 영원하게 결합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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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4장

성경: 레위기 1장

1.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2. 이것은 나환자가 깨끗해지는 날 그에 관한 법이다. 그는 성직자에게 데려와져야 한다.
3. 그리고 성직자는 진영에서 나가라. 그리고 성직자는 살펴 보라, 그리고 보라, 만일 나병이라는 역병이 나환자에서 치료되었다면,
4. 그러면 성직자는 깨끗해지려 하는 그를 위하여 살아있는 깨끗한 새 두 마리, 삼목(cedar), 그리고 주홍색 (실), 그리고 우슬초를 가져오라고 명령하라.
5. 그리고 성직자는 흐르는 물 위 질그릇에서 새 중의 한 마리를 죽이라고 명령하라.
6. 살아있는 새의 경우, 그는 그대로 가져갈 것이다, 그리고 삼목, 그리고 주홍색(실), 그리고 우슬초를 가져갈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과 살아있는 새를 흐르는 물 위에서 죽여진 새의 피에 담글 것이다.
7. 그리고 그는 나병으로부터 깨끗해지는 그 사람 위에 일곱 번 뿌릴 것이다, 그리고 그는 깨끗하다고 발표하라. 그리고 살아있는 새는 열린 들판으로 가게 하라.
8. 그리고 깨끗해지게 되는 그 사람은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그의 모든 털을 면도하라. 그리고 물로 자신을 목욕하라, 그는 깨끗하다. 그 후 그는 진영 안으로 오라, 그러나 자기 천막 밖에서 칠 일간 거주하라.
9. 그리고 칠 일째 날에 그는 그의 머리와 턱수염과 눈썹의 모든 그의 털을 면도하고, 모든 그의 털 까지조차 면도하라. 그리고 그는 그의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그는 물에서 자기 살을 목욕하라, 그리고 그는 깨끗하다.
10. 그리고 팔 일째 날에 그는 흠이 없는 수컷 어린 양 두 마리를 가져 오라, 그리고 일 년 된 흠이 없는 암컷 어린 양 한 마리, 그리고 식사 바침을 위해 기름을 섞은 고운 곡식가루 (에바, ephah의) 십분의 삼, 그리고 기름 한 록(log)을 가져 오라.
11. 그리고 그를 깨끗하게 하는 성직자는 이런 것들과 깨끗해지는 사람을 만남의 천막 문에서 주님 앞에 서게 하라.
12. 그리고 성직자는 수컷 어린 양 한 마리를 가져 와라, 그리고 죄 바침을 위해, 그것과 기름 한 록을 바치라, 그리고 그것들을 주님 앞에서 흔드는 바침을 위해 흔들라.
13. 그리고 그는 그들이 성소의 장소에서, 죄 바침과 태워 바침의 제물을 죽인 장소에서 수컷 어린 양을 죽여라. 죄 바침의 제물이 성직자의 것이듯, 죄가 있음의 제물도 그러하다. 이것은 최고로 거룩하다.
14. 그리고 성직자는 죄가 있음의 제물의 피를 가져 오라, 그리고 성직자는 깨끗해지게 되는 그 사람의 오른쪽 귀에, 그리고 그의 오른 손의 엄지손가락 위에, 그리고 그의 오른 발의 엄지발가락 위에 그것을 바르라.
15. 그리고 성직자는 기름 한 록을 가져 오라, 그리고 그것을 그의 자신의 왼쪽 손바닥에 붓는다.
16. 그리고 성직자는 그의 왼손에 있는 기름에 그의 오른 손가락을 담글 것이다, 그리고 주님 앞에서 자기 손가락으로 기름을 일곱 번 뿌려라.
17. 그리고 그의 손에 있는 기름의 나머지를 성직자는 깨끗해지려는 사람의 오른쪽 귀의 끝에, 그리고 그의 오른손의 엄지 손가락 위에, 그리고 그의 오른 발의 엄지발가락 위에, 죄가 있음의 제물의 피 위에 바르라.
18. 그리고 성직자의 손에 있는 기름의 나머지를 그는 깨끗해지려는 그 사람의 머리 위에 부으라. 그리고 성직자는 주님 앞에 그를 위하여 보상을 받게 하라.
19. 그리고 성직자가 죄 바침의 제물을 바쳐라, 그리고 자기의 불결함 때문에 깨끗해지려 하는 그를 위해 보상 받게 하라. 그 후 그는 태워 바침의 제물을 죽여라.
20. 그리고 성직자는 제단 위에 태워바치는 제물과 식사 제물을 바칠 것이다. 그리고 성직자는 그를 위하여 보상(atonement)을 받게 하라. 그리고 그는 깨끗하다.
21. 그리고 만일 그가 가난하여 그만큼을 얻을 수 없다면, 그러면 그는 흔들어지기 위해 죄가 있음의 제물로 수컷 어린 양 한 마리를 가져와서 그를 위하여 보상(atonement)을 받게 할 것이다, 그리고 식사 제물을 위하여 기름을 섞은 고운 곡식 가루 (에바의) 십분의 일, 그리고 기름 한 록(log) (을 가져올 것이다).
22. 그리고 호도애 두 마리, 또는 어린 비둘기 두 마리, 그가 얻을 수 있는 한도에서. 그리고 하나는 죄 바침의 제물, 다른 하나는 태워 바치는 제물이다.
23. 그리고 팔 일째 날에 그는 성직자에게, 주님 앞, 만남의 천막의 문으로 자기의 깨끗해짐을 위해 그것들을 가져 오라.
24. 그리고 성직자는 죄가 있음의 제물의 어린 양, 그리고 기름 한 록을 가져 오라, 그리고 성직자는 주님 앞에서 흔들어 바침을 위해 그것들을 흔들어라.
25. 그리고 그는 죄가 있음의 제물의 어린 양을 죽일 것이다, 그리고 성직자는 죄가 있음의 제물의 피를 가져오라, 그리고 그것을 깨끗해지려는 그 사람의 오른쪽 귀의 끝에, 그리고 그의 오른손의 엄지에, 그의 오른발의 엄지에 바르라.
26. 그리고 성직자는 자기 왼손의 손바닥에 기름을 부어라.
27. 그리고 성직자는 자기 왼손에 있는 기름 얼마를 자기 오른손가락으로 주님 앞에서 일곱 번 뿌려라.
28. 그리고 성직자는 그의 오른손에 있는 기름을 깨끗해지게 하는 그 사람의 오른쪽 귀의 끝에, 그리고 그의 오른손의 엄지에, 그리고 그의 오른발의 엄지에 바르고, 죄가 있음의 제물의 피가 있는 곳에 덧바르라.
29. 성직자의 손에 있는 남은 기름을 그는 깨끗해지는 그 사람의 머리 위에 부을 것이다, 하여, 주님 앞에서 그를 위해 보상을 받게 할 것이다.
30. 그리고 그는 호도애 한 마리, 또는 어린 비둘기 한 마리를 그가 얻을 수 있는 한도에서 바쳐라.
31. 그가 얻을 수 있는 한도 조차에서, 하나는 죄 바침을 위해, 그리고 다른 하나는 태워 바침을 위해, 식사 제물과 함께 (바칠 것이다). 그리고 성직자는 깨끗해지려는 그를 위해 주님 앞에서 보상을 받게 할 것이다.
32. 이것은 나병환자가 자기의 깨끗해짐에 속하는 것을 얻을 수 없을 경우, 그 사람에 관한 법이다.
33.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그리고 아론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34.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소유하라고 준 것, 가나안의 토지 안으로 올 때, 그리고 나는 너희의 소유의 토지의 집에 나병의 역병을 놓는다.
35. 그 다음 집을 소유한 그 사람은 가서 성직자에게 말하여, 내가 보기에 집에 역병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할 것이다.
36. 그리고 성직자는 명령하라, 즉 그들은 성직자가 역병을 보려고 그 집에 가기 전에 그 집을 비울 것, 하여 집에 있는 모든 것은 불결해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 후 성직자는 집을 보러 가라.
37. 그리고 그가 역병을 살펴 보라, 그리고 보라, 만일 역병이 집의 벽에서 녹색을 띄거나 빨간 색을 띄면서 속이 빈 바퀴쇠 (형태)로 있고, 그리고 그것의 나타남이 벽보다 더 낮다면.
38. 그다음 성직자는 집에서 나가 집의 문에 가라, 그리고 칠 일간 그 집을 잠구어라.
39. 그리고 성직자는 칠 일째 날 다시 올 것이다, 그리고 살펴라. 그리고, 보라, 만일 역병이 집의 벽에 퍼졌다면.
40. 그다음 성직자는 그들이 역병이 있는 돌을 가져가서 성읍 밖 불결한 장소에 그것들을 던지도록 명령하라.
41. 그리고 그는 그 집 내부를 빙둘러 긁어내게 하라, 그리고 그들은 성읍 밖 불결한 장소에 그들이 긁어낸 회반죽(mortar)을 쏟아라.
42. 그리고 그들은 다른 돌들을 가져와라, 그리고 그것들을 이 돌들 대신에 놓아라. 그리고 그는 다른 회반죽을 가져와라, 그리고 집에 회반죽을 바르라.
43. 그리고 그가 돌들을 빼내어 간 후, 그가 집을 긁어낸 후, 집에 회반죽을 바른 후, 만일 역병이 다시 오고, 집에 나타났다면.
44. 그 다음 성직자는 안으로 와서 살펴라, 그리고, 보라, 만일 역병이 집에 퍼져 있다면, 이것은 집에 있는 악성 나병이다. 그것은 불결하다.
45. 그리고 그는 집을, 집의 돌들을, 그것의 목재를, 집의 회반죽을 부수어라. 그리고 그는 성읍으로부터 불결한 장소로 그것들을 운반하라.
46. 더욱이 집이 잠궈져 있는 동안 집안으로 가는 사람은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47. 그리고 집에 눕는 자는 자기 옷을 빨아라. 그리고 집에서 먹은 자는 그의 옷들을 빨아라.
48. 그리고 집에 회반죽을 바른 후, 만일 성직자가 들어가서 살피고, 보라, 역병이 집에 퍼지지 않았다면. 그다음 성직자는 집이 깨끗하다고 발표하라, 그 이유는 역병이 치료되었기 때문이다.
49. 그리고 그는 집을 깨끗이 하기 위해 새 두 마리, 삼목, 주홍색(실), 그리고 우슬초를 가져 가라.
50. 그리고 그는 새 한 마리를 흐르는 물 위 질그릇에서 죽여라.
51. 그리고 그는 삼목, 그리고 우슬초, 그리고 주홍색(실), 그리고 살아있는 새를 가져 와라, 그리고 죽인 새의 피에 그것들을 담그되, 흐르는 물에서이다, 그리고 일곱 번 집에 뿌려라.
52. 그리고 그는 새의 피를 가지고, 그리고 흐르는 물을 가지고, 그리고 살아있는 새를 가지고, 그리고 삼목을 가지고, 그리고 우슬초를 가지고, 그리고 주홍색 (실)을 가지고 집을 깨끗하라.
53. 그러나 그는 살아있는 새를 성읍으로부터 열린 들판으로 가게 하라. 이리하여 그는 집을 위해 보상 받게 하라. 그러면 그것은 깨끗하다.
54. 이것은 나병의 역병의 모든 방법을 위하여, 그리고 두창을 위한 법이다,
55. 그리고 옷의 나병을 위하여, 그리고 집을 위하여.
56. 그리고 도두라짐을 위하여, 그리고 딱지를 위하여, 그리고 선명한 반점을 위하여.
57. 그것이 불결할 때, 그리고 그것이 깨끗할 때를 가르치려는 것. 이것은 나병의 법이다.

영적 의미 요약

* 진리를 모독한 사람을 깨끗하게 하는 신성한 질서의 법칙, 먼저 선과 진리에 관한 그의 애착이 말씀을 통해 내적으로 깨끗해진다. 1-7절
* 그 다음 외적으로, 그리고 자신 스스로 깨끗해지는 듯 있게 된다.8-9절
* 셋째로, 천적, 영적 선과 진리로 주님을 예배해서 죄와 죄의식을 제거하고, 동시에 주님께 심정을 바친다. 10-20절
* 더불어 외적 교회의 사람들에게도 위와 비슷한 상태의 예배가 있게 된다. 21-32절
* 거듭나는 사람이 선을 최말단에서 받는 가운데 모독할 수 있는 경향성에 관한 가르침, 더불어 깨끗하게 되는 수단에 관한 가르침. 33-53절
* 다양한 방법에서 모독에 관계되는 신성한 법칙에 관한 일반적 요약. 54-57절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주님께서 신성한 진리로 지각을 주시어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여호와)이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speaking)이란 유입을; 모세란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말함(saying)이란 지각을 뜻한다.(2001, 2951, 7010, 1791, 1822)

2절. 이것은 나환자가 깨끗해지는 날 그에 관한 법이다. 그는 성직자에게 데려와져야 한다.

영적 의미

진리를 모독한 상태로부터 개인 또는 교회를 깨끗하게 하는 질서의 법칙에 관하여 그는 신성한 선의 영향 밑에 직접 데려와져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나환자가 깨끗해지는 날의 법이란 진리를 모독한 상태로부터 각 개인 또는 교회를 깨끗하게 하는 점에 관한 질서의 법칙임을; 그를 성직자에게 데려와야 함이란 모독자는 신성한 선의 영향 밑에 직접 와져야 함을 말한다.(6963, 487, 2634, 4545, 9946)

3절. 그리고 성직자는 진영에서 나가라. 그리고 성직자는 살펴 보라, 그리고 보라, 만일 나병이라는 역병이 나환자에서 치료되었다면,

영적 의미

그리고 신성한 선은 천국을 통하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작용한다. 만일 모독이 거듭남으로 제거되었다면,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진영 밖으로 나감이란 신성함은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천국을 통해 역사 하심을; 치료된 나병자란 거듭남으로 모독이 제거됨을 말한다.(9946, 10038, 2245, 2246, 10219, 6963, 8363)

4절. 그러면 성직자는 깨끗해지려 하는 그를 위하여 살아있는 깨끗한 새 두 마리, 삼목(cedar), 그리고 주홍색 (실), 그리고 우슬초를 가져오라고 명령하라.

영적 의미

그 다음 거듭나는 사람의 영혼에 주님으로부터의 유입이 있게 되는 바, 진리의 애착이 선과 결합되고, 그럼으로 움직여지는 바 거짓으로부터 깨끗해진다. 또한 그는 말씀으로부터 선과 결합된 내면의 진리, 선과 결합된 외면의 진리를 획득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 스스로 깨끗해지듯 여기게 하는 외적 진리도 획득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지시를 내림이란 거듭나는 사람의 영혼 안으로 주님이 유입해 주시는 것이 있음을; 살아있는 깨끗한 새 두 마리란 선과 결합한 진리의 애착을; 삼목이란 선과 결합한 내면의 진리를; 주홍색 (실)이란 선과 결합한 외면의 진리를; 우슬초란 깨끗해지는데 사용되는 외적 진리를; 각각 뜻한다. 그리고 위 사항들은 자진해서 이루어지는데, 이 말이 깨끗게 하는 사람을 위해 가져옴에 함축되어 있다.(776, 9182-6, 3938-8, 4545, 5194, 7918, 9468-9, 7918, 6744)

5절. 그리고 성직자는 흐르는 물 위 질그릇에서 새 중의 한 마리를 죽이라고 명령하라.

영적 의미

선으로부터 지각은 있어지는 바, 이는 선으로부터 활성화된 말씀 또는 말씀 속의 진리를 수단으로 있게 된다. 그러나 선을 사랑함에서 분리된 채 진리를 사랑할 경우, 필요한 준비를 제공하는 그릇인 자연적 마음은 영적 생명이 없다는 것을 인정한자.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명령함이란 그 안에로 흘러든 선으로부터 지각됨을; 흐르는 물(생수, 생명 있는 물)이란 선으로부터 활성화된 말씀 속의 진리를; 새 한 마리를 죽임이란 진리의 애착이 선의 애착으로부터 분리될 경우 거기에는 영적 생명이 없음을 인정함으로 준비된다는 것을; 질그릇이란 자연적 마음에 있는 저장소를 말한다.(9946, 5486, 5732, 3424, 10024, 6767, 10105, 3079, 5948)

6절. 살아있는 새의 경우, 그는 그대로 가져갈 것이다, 그리고 삼목, 그리고 주홍색(실), 그리고 우슬초를 가져갈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과 살아있는 새를 흐르는 물 위에서 죽여진 새의 피에 담글 것이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주님으로부터 흐르는 선에 대한 애착 덕택에 선이 진리와 결합함이 있는 바, 선에 근거를 둔 내면의 진리, 선에 근거를 둔 외면의 진리, 그리고 말씀으로부터 온 외적 진리와도 결합이 있고, 이 진리가 자연적 인간 안에 있는 선과도 상호 결합함이 있는데, 이때 말씀 속의 진리의 영향을 받아 자아 부정이 존재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살아있는 새란 선을 사모함을, 삼목(송백나무,백향목), 주홍색 (실), 우슬초는 선에 속한 내면의 진리, 선에 속한 외면의 진리, 말씀으로부터 순수해지기 위한 진리를; 살아 있는 새와 위 세 가지를 모두 가져온다란 주님으로부터 온 선이 말씀 속의 진리와 결합함을; 흐르는 물 위에서 죽여진 새의 피에 위 네 가지를 담근다란 주님으로부터 거듭남을 수단으로 해서 자연적 인간 속의 생명이 살아 있게 되는 것, 이리하여 진리와 선이 상호 결합하는데 이것은 진리의 영향으로 자아 부정이 있었을 때 이루어진다.(9182-6, 7918, 9468-9, 9229-4, 10024, 6767, 제 5절)

7절. 그리고 그는 나병으로부터 깨끗해지는 그 사람 위에 일곱 번 뿌릴 것이다, 그리고 그는 깨끗하다고 발표하라. 그리고 살아있는 새는 열린 들판으로 가게 하라.

영적 의미

모독에서 깨끗해지는 사람 안에 위 결합은 거듭나는 상태에 있는 신성한 선으로부터 확인 되어진다. 그 다음 완전한 순수함이 있고 동시에 선을 사랑하는 천국적 삶을 즐기는 가운데 완전한 자유도 누린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나병에서 정하게 될 사람 위에 일곱 번 뿌림이란 위 결합은 신성한 선을 수단으로 모독에서 깨끗해지려는 사람 안에서 확인되어진다는 것을; 그가 깨끗하다고 발표함이란 완전히 깨끗해졌음을; 살아있는 새를 열린 들판으로 가게 함이란 선을 사랑하는 천국적 삶을 즐기는 완전한 자유를 뜻한다.(10047, 716, 4545, 6963, 9946, 4545, 7439, 3310, 99, 1869)

8절. 그리고 깨끗해지게 되는 그 사람은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그의 모든 털을 면도하라. 그리고 물로 자신을 목욕하라, 그는 깨끗하다. 그 후 그는 진영 안으로 오라, 그러나 자기 천막 밖에서 칠 일간 거주하라.

영적 의미

위에 더하여 외적 인간은 독립적으로 또는 자신 스스로 하는 듯이 모든 등차, 내적, 내면, 최말단 속에 든 거짓으로부터 깨끗해져야 한다. 그가 깨끗해진다면 그는 천국적 삶을 받게 되는데, 이 삶은 이기적 사랑을 완전하게 금함으로 거듭남 속의 거룩한 상태를 입도록 설비되어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옷을 빤다란 외적 인간의 최말단이 깨끗해짐을; 털을 깎음이란 내면에 관한 사항이 깨끗해짐을; 목욕함이란 내적 사항이 깨끗해짐을; 깨끗함이란 순수한 상태를; 진영으로 들어옴이란 천국 삶을 받게 됨을; 자기 천막 밖에서 칠 일간 거주함이란 이기적 사랑을 완전히 자제함으로 거듭나는 상태가 거룩해짐을 말한다.(3147, 3301-5, 3147, 4545, 1293, 1566, 2044, 10038)

9절. 그리고 칠 일째 날에 그는 그의 머리와 턱수염과 눈썹의 모든 그의 털을 면도하고, 모든 그의 털 까지조차 면도하라. 그리고 그는 그의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그는 물에서 자기 살을 목욕하라, 그리고 그는 깨끗하다.

영적 의미

그 다음 위 첫 상태가 끝나고 두 번 째 상태가 이어진다. 이 상태에서 모든 수준 속에 있는 외면의 거짓들이 제거된다. 그렇다, 아주 완전하게 제거된다. 그리하여 순수해짐이 모든 수준에서 완성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칠 일째란 위 첫 상태의 완성을, 머리털과 수염과 눈썹까지 몸의 털을 깎음이란 모든 수준에 있는 거짓의 제거를, 이렇게 온 몸의 털을 깎음이란 의지와 이해함에 있는 거짓을 완전히 제거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고, 옷을 빨고, 물로 목욕하여 깨끗해짐이란 순수해짐이 모든 수준에서, 내적, 외적으로 충만해짐을 말한다.(2044, 3301-8, 683, 3147, 4545)

10절. 그리고 팔 일째 날에 그는 흠이 없는 수컷 어린 양 두 마리를 가져 오라, 그리고 일 년 된 흠이 없는 암컷 어린 양 한 마리, 그리고 식사 바침을 위해 기름을 섞은 고운 곡식가루 (에바, ephah) 십분의 삼, 그리고 기름 한 록(log)을 가져 오라.

영적 의미

그런 뒤 천국 삶의 새로운 상태 속에서 선과 결합된 순진 속의 진리와 천국 수준에 있는 거짓에서 자유로워 있음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으로 두 개의 보증이 계속되어진다. 그래서 천국 선과 결합된 선의 진리로부터 충만함, 그리고 천적 선과 결합된 선의 진리로부터 충만함, 그리고 천적 선 자체로부터 영적 수준에 적합해지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덟 째 날이란 천국 삶의 새로운 상태를 말하는데, 두 주기(칠 일째, 팔일 째)에서 깨끗하게 됨이 반복된 것은 이중으로 보증되는 것을 말한다. 흠이 없는 수양 두 마리, 흠이 없는 일년 된 암양 한마리란 선과 결합된 순진 속의 진리로 예배함, 그리고 거기에 모든 충만 됨이 있는 바, 천적 수준에 있는 거짓에서의 자유도 있음을; 식사 제물로 기름과 혼합된 고운 가루 에바의 십 분의 삼과 기름 한 록이란 천적 선과 결합한 진리의 선으로부터 오는 모든 충만함 그리고 영적 수준에서 적용되는 바와 같은 천적 선 그 자체로부터를 말한다. 이 구절의 경우 어린 양을 바침은 천적 예배를; 식사 제물은 영적 예배를 말하고 있다.(9227, 683, 2966, 7837-9, 5194, 2177, 10136-7, 2788, 2177-2, 4581-4)

11절. 그리고 그를 깨끗하게 하는 성직자는 이런 것들과 깨끗해지는 사람을 만남의 천막 문에서 주님 앞에 서게 하라.

영적 의미

신성한 선의 영향 하에 교회 속의 사람은 주님을 순수하게 예배함으로 깨끗해진다. 무엇보다 먼저 그분을 인정하고 그분께서는 우리의 거듭남과 구원을 위해 천국을 통해 역사하심을 인정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란 신성한 선을; 깨끗하게 함이란 영적으로 깨끗해짐을; 제물이란 주님을 진정으로 예배함을; 만남의 천막 문, 주님 앞에 선다란 주님을 인정함, 그리고 그분께서는 인간의 거듭남과 구원을 위해 천국을 통해 역사 하신다는 것을 말한다.(9946, 4545, 922, 2356, 3540-3)

12절. 그리고 성직자는 수컷 어린 양 한 마리를 가져 와라, 그리고 죄 바침을 위해, 그것과 기름 한 록을 바치라, 그리고 그것들을 주님 앞에서 흔드는 바침을 위해 흔들라.

영적 의미

위 결과 주님은 내적 인간 속에 있는 순진의 진리로부터 예배되어지고, 그럼으로해서 악의 면죄가 있고, 천적 사랑으로부터 인정하는 바, 모든 애착이 활성화됨이 그분으로부터 임을 인정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어린 수양 한 마리를 기름 한 록과 함께 죄가 있음의 제물로 주님께 흔들어 바침이란 결과적으로 주님이 내적 인간 안에 있는 순진 속의 진리로 예배되어지고, 그럼으로 해서 악의 사면이 있고, 더불어 이런 애착들이 모두 활성화되는 것은 주님 때문임을 천적사랑으로부터 인정되어질 때를 말한다.(7837, 7838, 3400, 2177, 10083)

13절. 그리고 그는 그들이 성소의 장소에서, 죄 바침과 태워 바침의 제물을 죽인 장소에서 수컷 어린 양을 죽여라. 죄 바침의 제물이 성직자의 것이듯, 죄가 있음의 제물도 그러하다. 이것은 최고로 거룩하다.

영적 의미

순진의 선으로부터 이 예배를 위한 준비는 악을 제거함이다. 그리고 내적으로 천적 선을 받는다. 그렇다. 마음의 가장 깊은 수준 안에까지 받는다. 그이유가 실제의 악이 제거되는 것도 주님으로부터이다. 무지의 선의 상태에서 범해진 악의 제거도 주님으로부터이다. 악이 제거되기를 기대하는 예배는 본질적으로 거룩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수양을 죽임이란 순진 속의 진리로 이 예배를 준비한다는 것을; 죄 바침의 제물과 태워 바침의 제물을 죽이는 자리에서란 악의 제거를 위해, 그리고 내적으로 천적 선을 받기 위해 예배하는 상태를; 성소(거룩한 자리)란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서 까지를, 죄 바침의 제물처럼 죄가 있음의 제물도 성직자의 것이란 실제의 악이 제거되는 것도 주님으로부터이고, 무지로 순진해 있는 상태에서 악이 범해진 경우까지도 그러하다는 것을; 그것은 최고로 거룩하다란 이와 같은 악을 제거하려는 이 예배는 본질적으로 거룩하다는 것을 말한다.(10024, 7837, 7838, 2625, 3400, 10053, 3652-3, 3210, 10042, 3210, 10129)

14절. 그리고 성직자는 죄가 있음의 제물의 피를 가져 오라, 그리고 성직자는 깨끗해지게 되는 그 사람의 오른쪽 귀에, 그리고 그의 오른 손의 엄지손가락 위에, 그리고 그의 오른 발의 엄지발가락 위에 그것을 바르라.

영적 의미

그리고 이와 같은 예배에 포함된 거룩한 진리는 순진의 선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진행되는데 진리의 원리를 내면부터, 모든 행동인 외적으로부터 순종함으로 악을 금하는 능력과 교통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죄가 있음의 제물의 피를 가져옴이란 이와 같은 예배 안에 포함된 거룩한 진리는 순진의 선을 통해 주님께로부터 진행된다는 것을; 그 피를 오른쪽 귓바퀴에 바른다란 내적으로 있는 진리의 원리로부터 온 순종을 수단으로 악을 금하게 하는 능력과 교통됨을; 오른쪽 엄지손가락이란 위와 같되 내적으로, 오른쪽 엄지발가락이란 위와 같되 외적으로 모든 행동 안에서 능력이 교통됨을 말한다.(제 12절, 10060, 9946, 10061, 10062, 10063)

15절. 그리고 성직자는 기름 한 록을 가져 오라, 그리고 그것을 그의 자신의 왼쪽 손바닥에 붓는다.

영적 의미

의지를 통하여 작용하는 신성한 선이 힘있게 이해함 안으로 흐른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기름 한 록을 가져다가 자기의 왼손 바닥에 쏟는다란 의지를 통해 역사 하는 신성한 선이 힘있게 이해함으로 흐른다는 것을 말한다.(9946, 2177, 10062)

16절. 그리고 성직자는 그의 왼손에 있는 기름에 그의 오른 손가락을 담글 것이다, 그리고 주님 앞에서 자기 손가락으로 기름을 일곱 번 뿌려라.

영적 의미

이것은 일반적일 뿐만 아니라 세부적이기도 하다. 이로부터 교회 속의 사람에게 진리를 수단으로 능력 있게 선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기 속에서 선과 결합하게 된 것이 전적으로 주님으로부터임을 모든 충만과 거룩함 속에서 인정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왼손에 있는 기름에 오른 손가락을 담근다는 것은 교통하는 능력은 일반적 측면 뿐만 아니라 세부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말하는데, 첨부해둘 것은 손의 각 부분은 손 전체와 같은 힘을 나타내 준다는 것, 오른손과 왼손을 사용함은 선이 진리를 수단으로 역사하는 것을 뜻한다. 기름은 선을, 주님 앞에서 성직자가 손가락으로 기름을 일곱 번 뿌림은 당사자 안에서 진리가 선과 결합하게 된 것은 오로지 주님 때문이다는 것을 모든 충만함과 거룩함 속에서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7430, 10062, 2177, 10047, 2044, 716)

17절. 그리고 그의 손에 있는 기름의 나머지를 성직자는 깨끗해지려는 사람의 오른쪽 귀의 끝에, 그리고 그의 오른손의 엄지 손가락 위에, 그리고 그의 오른 발의 엄지발가락 위에, 죄가 있음의 제물의 피 위에 바르라.

영적 의미

이에 수반되는 것은 진리가 주님으로부터 교통하는 힘을 받을 뿐 아니라 선 역시 받는데 이때 인간은 모독으로부터 깨끗해지고, 필수적인 힘이 선을 원리로 함으로부터 의지 안에, 진리와 선이 내면에서 결합함으로부터 이해함안에, 매 행동에서 진리가 선과 결합함으로 삶 안에 놓여진다. 이런 사항은 무지의 순진으로부터 예배하는 것에서까지도 동등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기름은 선을; 피는 진리를; 죄가 있음의 제물의 피 위에 기름을 놓음이란 진리를 수단으로 선으로부터 능력이 있다는 것을; 나병에서 깨끗하게 되는 사람에게 그것을 바름이란 진리를 모독한데서 깨끗해지는 사람들과 더불어서 임을; 오른쪽 귓바퀴에란 선으로부터 순종을 수단으로 의지 안에서를; 오른 엄지손가락 위에란 내면적으로 진리가 선과 결합함으로 이해함안에서를; 오른 엄지 발가락 위에란 모든 행동 안에서, 무지의 순진으로 예배함에서 조차까지 포함되는 모든 행동 안에서 진리가 선과 결합함을 수단으로 하는 삶 속에서를 뜻한다.(2177, 6963, 4545, 10061, 10063, 3400, 2542)

18절. 그리고 성직자의 손에 있는 기름의 나머지를 그는 깨끗해지려는 그 사람의 머리 위에 부으라. 그리고 성직자는 주님 앞에 그를 위하여 보상을 받게 하라.

영적 의미

그 뿐만이 아니다. 위와 같은 예배의 결과로 선은 가장 깊은 내면에 건설되면서 결국 전체 인간에 건설되어 모독으로부터 깨끗해진다. 이러므로 해서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재회하고 주님에 의해 악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이 결과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남은 기름을 정하게 될 사람의 머리에 붓는다는 것은 가장 깊은 내면에 설립되는 선을; 여기서의 머리는 그 사람 전체를 말한다. 주님 앞에서 성직자가 보상 받게 만듦이란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재회함, 그리고 주님에 의해 악에서 완전히 해방됨을 말한다.(257, 7859, 제 1장 3절, 10042II)

19절. 그리고 성직자가 죄 바침의 제물을 바쳐라, 그리고 자기의 불결함 때문에 깨끗해지려 하는 그를 위해 보상 받게 하라. 그 후 그는 태워 바침의 제물을 죽여라.

영적 의미

이 모든 사항은 주님과 재회한 사람에 의하여 겸손히 인정되어진다. 그는 자기의 불순함을 고백하고, 이제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도록 준비되어 지고,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죄 바침의 제물을 바쳐 깨끗하게 될 사람을 위해 보상 받게 만듦이란 위 모든 사항들이 주님과 재회한 사람에 의해 겸손히 인정됨을, 그리고 나서 태워 바침의 제물을 죽인다란 순수한 사랑으로 주님을 예배하는 결과 안에서 준비됨을 말한다.(9939, 10042, 10024, 10053)

20절. 그리고 성직자는 제단 위에 태워바치는 제물과 식사 제물을 바칠 것이다. 그리고 성직자는 그를 위하여 보상(atonement)을 받게 하라. 그리고 그는 깨끗하다.

영적 의미

위에 수반되는 사항이 따른다. 모든 천적 선, 모든 영적 선이 주님으로부터 임을 심정으로부터 인정하면서 그분을 섬기는데 헌신되어진다. 더불어 악이 삭제되면서 완전하게 순수해짐이 있는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태워 바침의 제물을 제단 위에 바쳐 보상 받게 만듦이란 모든 천적, 영적 선은 주님으로부터라는 것, 악의 사면과 더불어 완전한 순수함이 있으면서 그분을 전적으로 섬겨야 함을 인정하게 됨을 뜻한다.(10042, 2177, 4545)

21절. 그리고 만일 그가 가난하여 그만큼을 얻을 수 없다면, 그러면 그는 흔들어지기 위해 죄가 있음의 제물로 수컷 어린 양 한 마리를 가져와서 그를 위하여 보상(atonement)을 받게 할 것이다, 그리고 식사 제물을 위하여 기름을 섞은 고운 곡식 가루 (에바의) 십분의 일, 그리고 기름 한 록(log) (을 가져올 것이다).

영적 의미

그러나 만일 진리를 모독한 사람이 내적 교회 속에 있지 않고 외적 교회에 있다면, 그리하여 심오한 수준에서 선과 진리를 받을 수 없다면, 그렇다해도 그는 보다 낮은 평면에서 무지 안에 있는 순진의 선으로라도 주님을 예배할 수 있다. 이렇게 해도 그는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을 수 있고 악의 제거로 주님과 재회할 수 있다. 또한 자기 수준에서 진리가 선과 결합됨으로부터 예배할 수 있다. 이 선은 가장 깊은 내면에 있는 천적 선으로부터 있는 선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사람이 너무 가난해서란 어떤 사람이 내적 교회 속에 있지 않고 외적 교회 속에만 있는 경우를, 이런 것을 바칠 힘이 없다면 이란 큰 규모의 수준으로 선과 진리를 받지 못하고 있음을, 죄가 있음의 제물로 수양 한 마리를 가져옴이란 보다 낮은 평면에서 무지의 순진의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는 것을, 흔든다란 주님으로부터 온 생명을, 보상 받게 만듦이란 악의 제거를 수단으로 주님과 재회함을, 식사 제물로 기름에 섞은 고운 곡식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가져옴이란 자기 수준에서 주님을 예배하되 가장 깊은 속에 있는 천적 선으로부터 온 선과 결합된 진리로부터 예배함을 말한다.(9209, 4372, 7837-9, 3400, 10083, 제 1장 3절, 10042II, 2177, 10136-7)

22절. 그리고 호도애 두 마리, 또는 어린 비둘기 두 마리, 그가 얻을 수 있는 한도에서. 그리고 하나는 죄 바침의 제물, 다른 하나는 태워 바치는 제물이다.

영적 의미

또한 그는 악을 제거함과 선을 영접하는 양 측면에 있는 자기 상태에 따라 신앙 속의 선과 진리로라도 주님을 예배할 수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힘이 자라는 대로 호도애 두 마리 또는 어린 비둘기 두 마리를 가져옴이란 악을 제거하고 선을 받는 자기 상태에 따라 신앙 속의 선과 진리로 주님을 예배하는 것을 말한다.(1826, 1827, 3400, 10053)

23절. 그리고 팔 일째 날에 그는 성직자에게, 주님 앞, 만남의 천막의 문으로 자기의 깨끗해짐을 위해 그것들을 가져 오라.

영적 의미

깨끗해지기 위한 자기 삶의 새로운 상태에서 그는 새 삶이 주님으로부터이라는 것, 그것이 천국을 통해 주님으로부터임을 인정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덟 째 날이란 새로운 상태를, 깨끗하게 되려고 주님 앞, 만남의 천막 문, 성직자에게 제물을 가지고 감이란 순수해진 후 자기의 생명은 천국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임을 인정함으로 모든 생명을 그분께 돌리는 것을 말한다.(10042, 2356, 3540-3)

24절. 그리고 성직자는 죄가 있음의 제물의 어린 양, 그리고 기름 한 록을 가져 오라, 그리고 성직자는 주님 앞에서 흔들어 바침을 위해 그것들을 흔들어라.

영적 의미

또한 그는 자기와 함께 있는 무지의 순진 속의 모든 선, 가장 깊은 천적 사랑의 모든 선이 생명이 있게 된 것은 그의 예배 안에 계신 주님으로부터임을 인정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죄가 있음의 제물로 바치는 어린 양과 기름 한 록을 가져가서 주님 앞에서 흔들어 바침이란 무지의 순진 속에 있는 모든 선, 가장 깊은 천적 사랑 속의 모든 선은 그가 예배하는 동안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7837, 7838, 3400, 2177, 10083)

25절. 그리고 그는 죄가 있음의 제물의 어린 양을 죽일 것이다, 그리고 성직자는 죄가 있음의 제물의 피를 가져오라, 그리고 그것을 깨끗해지려는 그 사람의 오른쪽 귀의 끝에, 그리고 그의 오른손의 엄지에, 그의 오른발의 엄지에 바르라.

영적 의미

그 다음 그는 무지 안에 있는 순진의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도록 자신을 준비시킬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예배에 포함된 거룩한 진리는 주님으로부터 진행되고 있음을 인정할 것이고, 내면적으로 있는 진리의 원리로부터, 그리고 외적으로 있는 모든 행동에서 순종함을 수단으로 악을 금하는 능력과 교통하게 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죄가 있음의 제물인 어린 양을 죽임이란 무지 속에 있는 순진의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고자 준비하는 것을; 성직자가 피를 가져옴이란 이와 같은 예배에 포함된 거룩한 진리는 주님으로부터 진행된다는 것을 인정함을; 그 피를 오른 엄지손가락, 오른 엄지발가락에 바름은 내적으로, 내면적으로, 그리고 행동에서 외적으로 진리를 원리로 하는 순종을 수단으로 악을 금하는 능력과 교통함을 말한다.(9946, 제 12절, 10060, 10061-3)

26절. 그리고 성직자는 자기 왼손의 손바닥에 기름을 부어라.

영적 의미

다시 주님으로부터 작동되는 신성한 선이 능력을 가지고 이해함안으로 흘러들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자기 왼손 바닥에 기름을 부음이란 주님으로부터 역사되어 신성한 능력이 이해함안으로 흐를 것임을 말한다.(9946, 2177, 10062)

27절. 그리고 성직자는 자기 왼손에 있는 기름 얼마를 자기 오른손가락으로 주님 앞에서 일곱 번 뿌려라.

영적 의미

이 사항은 일반적일 뿐 아니라 세부적으로도 있는다. 이로부터 교회 속의 사람은 진리를 수단으로 능력을 가진 선을 받게 되고, 자기 안에서 있는 선과 진리의 결합이 주님으로부터 전적으로 있어짐을 모든 충만과 거룩함 안에서 인정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왼쪽 손에 있는 기름 얼마를 오른 손가락으로 그에게 주님 앞에서 일곱 번 뿌림이란 이 사항은 일반적일 뿐만 아니라 세부적으로도 같다는 것, 이로부터 교회인은 진리를 수단으로 능력 있게 선을 받는다는 것, 교인 안에서 선이 진리와 결합하는 것은 전적으로 주님으로부터 이다는 것을 모든 충만과 거룩함 속에서 인정함을 말한다.(제 16절)

28절. 그리고 성직자는 그의 오른손에 있는 기름을 깨끗해지게 하는 그 사람의 오른쪽 귀의 끝에, 그리고 그의 오른손의 엄지에, 그리고 그의 오른발의 엄지에 바르고, 죄가 있음의 제물의 피가 있는 곳에 덧바르라.

영적 의미

위 사항에 수반되는 것이 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진리, 그리고 선에 능력이 전달된다. 이때 인간은 모독으로부터 깨끗해지고, 이 능력의 필수적인 것들은 의지 안에서는 선이 원리로부터 순종함으로, 이해함안에서는 진리와 선이 내면적으로 결합함으로부터 순종함으로, 생활 안에서는 진리가 선과 결합함이 매 행동마다에 있어짐으로 존재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자기 손에 있는 기름을 깨끗하게 될 사람의 오른 쪽 귓바퀴, 오른 엄지발가락에 바르고, 죄가 있음의 제물의 피에 덧바른다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진리가 능력과 교통할 뿐만 아니라, 모독에서 순수해질 때 선 역시 능력을 가지는 바, 선을 원리로 한 순종을 수단으로 의지 안에서, 진리가 선과 내면적으로 결합함으로 이해함안에서, 매 행동에서 진리가 선과 결합함으로 삶 속에서 그 선은 능력의 본질이 됨을 뜻한다.(제 17절)

29절. 성직자의 손에 있는 남은 기름을 그는 깨끗해지는 그 사람의 머리 위에 부을 것이다, 하여, 주님 앞에서 그를 위해 보상을 받게 할 것이다.

영적 의미

그 뿐만이 아니다. 이와 같은 예배의 결과로 선은 가장 깊은 속에서, 그런고로 전체 인간에서 건설된다. 이때 그는 모독에서 깨끗해진다. 이리하여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재회되고, 주님에 의해 악에서 완전히 해방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의 손에 남아 있는 기름을 깨끗하게 될 사람의 머리에 부어 주님 앞에서 보상 받게 만듦이란 위와 같은 예배의 결과로 선은 가장 깊은 내면에서 설립되는바, 그가 모독에서 순수해질 때 전체 인간에서도 설립된다는 것, 이리하여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재회하는 결과를 갖게 되고, 주님에 의해 악에서 완전히 해방된다는 것을 말한다.(제 18절)

30절. 그리고 그는 호도애 한 마리, 또는 어린 비둘기 한 마리를 그가 얻을 수 있는 한도에서 바쳐라.

영적 의미

다음으로 힘이 미치지 못하여 겨우 바친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가운데서 한 마리를,

세부적 영적 의미

힘이 미치지 못해 겨우 바친 호도애나 어린 비둘기 한 마리란 신앙의 선 또는 신앙의 진리로도 자기 상태에 따라서 주님께 예배할 수 있다는 말이다.(1826-7)

31절. 그가 얻을 수 있는 한도 조차에서, 하나는 죄 바침을 위해, 그리고 다른 하나는 태워 바침을 위해, 식사 제물과 함께 (바칠 것이다). 그리고 성직자는 깨끗해지려는 그를 위해 주님 앞에서 보상을 받게 할 것이다.

영적 의미

악의 제거를 위해 또는 선을 내, 외적으로 받기 위해, 그리하여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이 재회하기 위해 주님을 자기 상태에 따라 예배하는 것조차도 깨끗해지려는 사람과 함께 하시는 주님에 의해 결과되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한 마리는 죄 바침의 제물로, 한 마리는 태워 바침의 제물로 바침이란 주님을 예배하는 자기 상태에 맞게 악이 제거되고 선을 받게 됨을, 식사 제물과 함께란 외적으로, 내적으로 임을, 성직자가 주님 앞에서 그의 부정을 벗김이란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 사이의 재회는 깨끗해지게 되는 사람과 더불어 주님에 의해 결과된다는 뜻이다.(3400, 10053, 10절, 10042, 4545)

32절. 이것은 나병환자가 자기의 깨끗해짐에 속하는 것을 얻을 수 없을 경우, 그 사람에 관한 법이다.

영적 의미

이상은 모독으로부터 깨끗해지겠다는 사람, 내적 교회 속에 있지는 않으나 외적 교회 속에 있는 사람, 그러므로 해서 천국 생명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신성한 질서의 법칙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정하게 되는 제물을 넉넉히 바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규정이란 내적 교회 속에 있지 않고 외적 교회 속에만 있어 천국 생명을 넉넉히 받을 수 없는 사람이 모독에서 깨끗해지려 할 때 그를 위한 법임을 뜻한다.(2634)

33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그리고 아론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진리 안에 있는 이들과 선 안에 있는 이들에게 지각을 주심으로 주님께서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speaking)이란 유입을; 모세는 신성한 진리를; 아론은 신성한 선을; 말함(saying)이란 지각을 뜻한다.(2001, 2951, 7010, 9946, 1791, 1822)

34절.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소유하라고 준 것, 가나안의 토지 안으로 올 때, 그리고 나는 너희의 소유의 토지의 집에 나병의 역병을 놓는다.

영적 의미

주님께서 주시는 가나안 토지에 들어감이란 여기서의 경우 “인간이 내적 인간 속에, 그리고 외적 인간 속에 생명을 받음으로 천국적 상태를 실감하는 것, 즉 주님께서 그분의 의지를 나누어주신 것” 이라는 뜻이다. 너희가 소유한 땅에 있는 집에 나병이 생김이란 “그들 영혼의 최말단 저장소에 아주 경미한 모독이라도 있을 경우”를, 이렇게 의미되는 이유는 그 나병은 외관상으로만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발생 여부를 측정하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1413, 2658, 10219, 6963, 1488, 696)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께서 나누어 주신 그분의 의지인 생명을 내적 인간과 외적 인간에서 받아 천국 상태를 실감하고 있는 때 조차에서도 영혼의 최말단 저장소(receptacle)에 모독이 아주 경미하지만 얼마라도 있다면

35절. 그 다음 집을 소유한 그 사람은 가서 성직자에게 말하여, 내가 보기에 집에 역병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할 것이다.

영적 의미

그러면 영적 생명을 받는 사람은 그 생명을 파괴하려드는 자신 스스로의 경향성을 선이 우세한 상태에서 지각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 집 임자란 영적 생명을 받은 상태에 있는 사람을, 성직자에게 와서 말함이란 선이 우세해 있는 상태에서 지각함을, “나병 같은 것이 집에 보입니다” 란 자기 속 영적 생명을 파괴시키려는 쪽으로 자신이 기울고 있음을 지각함을 말한다.(6690, 3209, 9946, 10219, 6963, 1488)

36절. 그리고 성직자는 명령하라, 즉 그들은 성직자가 역병을 보려고 그 집에 가기 전에 그 집을 비울 것, 하여 집에 있는 모든 것은 불결해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 후 성직자는 집을 보러 가라.

영적 의미

그리고 그는 자신의 것으로 되어 있는 어떤 선이나 진리가 결여되어 있음을 고백하도록 인도 될 것이다. 그렇게 인도되는 이유는 자기 상태가 계발되기 위해서, 그 계발을 통하여 모독의 불순함에서 주님으로부터 가지게 된 선과 진리가 자기 안에 보존되기 위함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명령함이란 지각을 주는 선으로부터 온 유입, 그런고로 주님에 의해 인도됨을; 그 집을 비움이란 자기는 자신 스스로 어떤 선이나 진리도 없다고 고백함을; 성직자가 병을 검사하러 감이란 진리를 수단으로 선으로부터 자기 상태에 관한 계발이 있음을; 집안에 있는 모든 것이 불결해지지 않게 함이란 그가 주님으로부터 가진 선과 진리는 그 사람 안에서 모독이 불순으로부터 보전됨을 말한다.(2951, 17, 9946, 2150, 10219, 10219, 6963, 10130)

37절. 그리고 그가 역병을 살펴 보라, 그리고 보라, 만일 역병이 집의 벽에서 녹색을 띄거나 빨간 색을 띄면서 속이 빈 바퀴쇠 (형태)로 있고, 그리고 그것의 나타남이 벽보다 더 낮다면.

영적 의미

그런 다음 신성한 선으로부터의 검증이 있어질 것이다. 그래서 만일 선을 받는 외적 저장소에서 모독하려는 경향이 있고 최말단의 거짓들을 진리로 적용함으로 거룩한 진리를 모독하려는 경향, 이 경향성이 주님 안에서 신앙을 충분히 즐기고 있는데 우쭐댐의 충동으로부터 오는 생각이 있는 이유로 선이 결핍되어 있다면,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병을 검사함이란 신성한 선으로부터의 검증이 있을 것임을; 나병이 집 벽에 생기어 녹색을 띄거나 빨간색을 띄고 속이 빈 바퀴쇠(hollow srtakes)형태이면 이란 선에 관한 외부 저장소 안에 모독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거기에 진리같이 나타나는 거짓으로 최말단의 진리가 모독되는 것, 게다가 자아 찬양의 자극으로 유발된 생각이 들어 있어 선이 없음을; 벽보다 더 낮게(lower) 보임이란 주님에 대한 신앙을 충분히 즐기고 있을 때 조차까지를, 이 구절에서의 벽은 피부(skin)와 같은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9946, 2245, 2246, 10219, 6963, 6419, 2233, 996, 3300, 17, 9215, 780)

38절. 그다음 성직자는 집에서 나가 집의 문에 가라, 그리고 칠 일간 그 집을 잠구어라.

영적 의미

그러면 신성한 선은 받아들이는 곳에서 철수하는바 억제된 상태가 수반되는데, 이는 거듭남의 거룩한 상태를 수단으로 깨끗해짐이 유발되도록 하기 위해서 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그 집 문 밖으로 나감이란 신성한 선이 그 저장소로부터 철수한 것처럼 있음을, 칠 일간 그 집을 잠가 둠이란 거듭나는 거룩한 상태가 깨끗해짐으로 유인 될 수 있기 위해 자제하는 상태를 말한다.(2356, 784, 6854-5, 716)

39절. 그리고 성직자는 칠 일째 날 다시 올 것이다, 그리고 살펴라. 그리고, 보라, 만일 역병이 집의 벽에 퍼졌다면.

영적 의미

위 상태 후 검증이 더 거행된다. 만일 그 저장소에 진리를 모독하려는 경향이 더 팽창되어 있다면,

세부적 영적 의미

칠 일째 성직자가 다시 와서 봄이란 위 상태 후 검증이 더 거행됨을, 그 집 벽에 병이 더 번졌으면 이란 그 저장소에 모독하려는 경향이 더 확장되었음을 말한다.(2044, 2245, 2246, 10219, 4035)

40절. 그 다음 성직자는 그들이 역병이 있는 돌을 가져가서 성읍 밖 불결한 장소에 그것들을 던지도록 명령하라.

영적 의미

그러면 그에게 유입된 신성한 선이 신성한 진리를 통하여 불순한 거짓들은 이 저장소로부터 거절되어야 한다는 것, 모든 불순물은 지옥으로부터 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그런고로 신앙의 교리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밝힌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명령함이란 신성한 진리를 통해 밝히 알게 해주는 신성한 선으로부터 유입되는 게 있다는 것을, 병이 있는 돌을 빼냄이란 불순한 거짓들은 그 저장소로부터 거절되어야함을; 성읍 밖 더러운 곳에 내다 버림이란 이런 거짓들은 모든 불순함의 근원지인 지옥으로부터 임이 인정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2951, 643, 10219, 10130, 4744-3, 402)

41절. 그리고 그는 그 집 내부를 빙둘러 긁어내게 하라, 그리고 그들은 성읍 밖 불결한 장소에 그들이 긁어낸 회반죽(mortar)을 쏟아라.

영적 의미

더불어 그 저장소는 선의 영향을 수단으로 자기 자신 또는 이기적 사랑으로부터 온 거짓과 혼합된 모든 것에서 순수해지게 하되 완전하게 되기까지 이다. 그리고 악한 애착도 위의 거짓과 부합되는바 거절되게 하여 모든 불순함이 있는 지옥에로 던져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 집안 벽을 돌아가며 다 긁어냄이란 선의 영향을 받아 그 저장소는 이기적 사랑으로부터 완전하게, 또는 인간 자아로부터 온 거짓과의 모든 혼합에서 깨끗해져야 할 것 임을, 긁어낸 그 흙을 마을 밖 불결한 장소에 쏟아버림이란 이런 거짓과 부합되는 악한 애착 자체도 모든 불순함의 근원지인 지옥으로부터인 바 거절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9946, 1488, 6669, 6669, 4744-3, 402)

42절. 그리고 그들은 다른 돌들을 가져와라, 그리고 그것들을 이 돌들 대신에 놓아라. 그리고 그는 다른 회반죽을 가져와라, 그리고 집에 회반죽을 바르라.

영적 의미

더불어 이 저장소 안에 말씀으로부터 온 순수한 진리들을 삽입해야 한다. 이것들은 진리를 위한 순수한 애착에 부합되는 바, 선이 진리들 안에서 형성되듯 나타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다른 돌들을 주어다가 그 돌들 대신 끼우고, 다른 회반죽을 가져다가 그 집을 바름이란 이 저장소는 말씀에서 오는 순수한 진리로 채워져야 한다는 것, 이것들은 진리를 위한 순수한 애착과 일치하는 원인이 되는바, 선이 진리 안에서 형성된 듯 나타남을 말한다.(643, 6669)

43절. 그리고 그가 돌들을 빼내어 간 후, 그가 집을 긁어낸 후, 집에 회반죽을 바른 후, 만일 역병이 다시 오고, 집에 나타났다면.

영적 의미

비록 거짓이 적절히 제거되었고 진리가 선과 부합되게 만들어졌는데에도 모독의 악이 재발한다면,

세부적 영적 의미

병이 다시 번짐이란 모독의 악이 재발됨을, 돌들을 치워 낸 후, 그 집 벽을 긁어 낸 후, 벽을 바른 후 란 “거짓들이 훈련에 의해 상당히 제거되어 진리가 선과 부합되었을 때 조차에서도”를 말한다. 이 구절에서 주목할 점은, 그 집 벽을 긁어내되 집 안벽, 따라서 옛 벽을 제거했다는 것인데, 이는 바쳐지는 동물의 경우 살에 붙은 가죽을 제거하는 것과 상응적인 가치가 동일하다. 물론 이는 최말단의 악과 거짓을 거절함, 게다가 이 거절함에는 훈련(discipline)이 당연히 포함된다.(10219, 6963, 643, 6669, 10036)

44절. 그 다음 성직자는 안으로 와서 살펴라, 그리고, 보라, 만일 역병이 집에 퍼져 있다면, 이것은 집에 있는 악성 나병이다. 그것은 불결하다.

영적 의미

그러면 신성한 선은 더 강하게 그 저장소에로 흘러들 것이다. 그리고 만일 진리를 모독하려는 경향성, 또는 아주 경미한 수준이라 해도 실지로 모독함이 있다면, 그것은 선이 규율하는 곳에 흥분을 일으키는 바 불순함이 있는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보러 옴이란 신성한 선이 이 저장소에 더 강하게 유입 됨, 따라서 검증을; 병이 그 집에 퍼졌음이란 모독하려는 경향의 팽창 또는 경미하지만 실제로 모독했음을; 이 구절에서의 나병이란 선이 규율해야 하는 곳을 성나게 함을; 불결하다란 영적 불순함을 말한다.(9946, 2245, 2246, 10219, 6963, 4035, 6963, 10130)

45절. 그리고 그는 집을, 집의 돌들을, 그것의 목재를, 집의 회반죽을 부수어라. 그리고 그는 성읍으로부터 불결한 장소로 그것들을 운반하라.

영적 의미

이런 경우 선의 저장소는 그 속의 거짓과 악에 관한 것을 거절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과 결합함으로 밀착된 것들까지 거절되어야 한다. 정녕 그렇다 거절되어 지옥으로 던져서 진정한 교리로부터 분리시켜야 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집을 헐되 돌과 재목을 헐어 내림은 그 저장소에 있는 악과 거짓을 거절함을; 회반죽을 헐어냄은 악과 거짓에 부착된 모든 것을 거절함을; 성읍 밖 더러운 곳에 내다버림은 진짜 교리로부터 분리해서 지옥으로 버림을 말한다.(10643, 1488, 643, 6669, 4744-3, 402)

46절. 더욱이 집이 잠궈져 있는 동안 집안으로 가는 사람은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영적 의미

더구나 자기 삶이 이와 같은 불순한 저장소가 되도록 허용한 모든 사람은 그의 그런 상태에 변화가 있을 때까지 불순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집을 잠가 둔 사이 그 집에 들어간 사람은 그날 저녁때까지 불결하다란 생명을 이와 같은 불순, 불순한 저장소가 되도록 허용한 사람은 상태가 변화할 때까지 불순하다는 것을 뜻한다. (1488, 6854-5, 10130, 7844)

47절. 그리고 집에 눕는 자는 자기 옷을 빨아라. 그리고 집에서 먹은 자는 그의 옷들을 빨아라.

영적 의미

이와 같은 불순함에서 편안함을 취한 모든 이, 그 편안함을 잠깐 취했다해도 그는 말씀 속의 진리로 깨끗해져야만 한다. 그리고 이런 상태에서 선을 자기 것으로 삼으려고 시도한 모든 이도 위와 같은 방법으로 깨끗해져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 집에 들어가 누워있었던 사람은 옷을 빨아 입어야 한다란 이와 같은 불순함에 기대어 쉰 모든 사람은 말씀의 진리로 깨끗해져야만 할 것 임을, 그 집에 들어가 음식을 먹었어도 옷을 빨아 입어야 한다란 그 상태에서 선을 자기 것으로 삼겠다고 하는 모든 사람도 위와 같은 방법으로 깨끗해져야 함을 뜻한다. (3696, 3147, 1073, 2187, 3147, 1073, 1488)

48절. 그리고 집에 회반죽을 바른 후, 만일 성직자가 들어가서 살피고, 보라, 역병이 집에 퍼지지 않았다면. 그다음 성직자는 집이 깨끗하다고 발표하라, 그 이유는 역병이 치료되었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만일 신성한 선이 흘러들고 신성한 진리로 검증함이 있고, 진리가 선에 밀착되어진 후 그 저장소에 모독이 더 팽창 안 되었다면 선은 진리를 수단으로 순수해진다는 것을 밝힌다. 그 이유는 깨끗함이 훈육(discipline)에 의해 결과되었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다시 들어가 검사함이란 신성한 선으로부터 유입되는 것을; 신성한 진리로 검증함을; 병이 더 번지지 않았다란 모독이 더 팽창 안되었음을; 그가 집을 회반죽으로 바른 후 란 진리가 선과 부합된 이후를; 병이 물러갔으므로 성직자가 그 집을 깨끗하다고 선언함이란 선은 저장고가 훈련에 의해 깨끗해졌다는 것을 진리를 수단으로 밝히 알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9946, 2245, 2246, 4035, 10219, 6963, 643, 6669, 9946, 1488, 4545, 10219, 8365)

49절. 그리고 그는 집을 깨끗이 하기 위해 새 두 마리, 삼목, 주홍색(실), 그리고 우슬초를 가져 가라.

영적 의미

그러므로 깨끗해지는 수단은 선에 대한 애착, 선으로 활성화 된 진리, 내면의 진리, 선과 결합된 외면의 진리들을 응용하는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집을 깨끗하게 하는데 새 두 마리, 삼목, 주홍색(실), 우슬초를 가져옴이란 깨끗해지게 하는 수단들, 즉 선의 애착, 선으로부터 활성화된 진리, 내면의 진리, 외면의 진리, 이것이 응용되어 진다.(4545, 1488, 776, 9182-6, 3938-8, 5194)

50절. 그리고 그는 새 한 마리를 흐르는 물 위 질그릇에서 죽여라.

영적 의미

선을 사랑함에서 떨어져 있는 진리의 사랑에는 영적 생명이 없다는 것, 고로 선을 받기 위해 자연적 마음 안에서 그 저장소를 준비해야만 한다는 것을 선으로부터 온 말씀 또는 선으로부터 활성화된 진리를 수단으로 지각해야 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흐르는 물 위 질그릇에서 새 한 마리를 죽임이란 진리의 애착이 선의 애착에서 분리되면 영적 생명이 없다는 것이 선으로부터 말씀을 수단으로 또는 선으로부터 활성화 된 진리를 수단으로 지각된다는 것, 선을 받으려면 자연적 마음에 있는 저장소가 준비되어야 함을 말한다.(3424, 10024, 6767, 5948, 10105, 3079, 제 5절)

51절. 그리고 그는 삼목, 그리고 우슬초, 그리고 주홍색(실), 그리고 살아있는 새를 가져 와라, 그리고 죽인 새의 피에 그것들을 담그되, 흐르는 물에서이다, 그리고 일곱 번 집에 뿌려라.

영적 의미

위의 결과, 주님으로부터 흘러드는 선한 애착을 통해 선이 진리와 결합함, 즉 선이 내면과 외면에 있는 진리와 말씀으로부터 온 진리와의 결합이 있다. 그리고 깨끗해지려는 사람 안에 있는 이 결합은 거듭나는 거룩한 상태 안에서 신성한 선으로부터 확인되어 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삼목, 주홍색(실), 우슬초, 살아있는 새를 가져다가 흐르는 물과 죽인 새의 피에 담그고 그 피를 일곱 번 그 집에 뿌린다란 주님으로부터 흐르는 선에 대한 애착을 통해 선이 진리와 결합함이 선에 근거한 내면의 진리와도 결합하고, 말씀으로부터 온 외면의 진리와 선과도 결합이 있어지는 바, 깨끗해지게 되는 사람 안에서의 이 결합은 거듭나는 거룩한 상태에서 신성한 선으로부터 확증이 되어진다는 뜻이다. (9182-6, 7918, 9468-9, 7846, 9229-4, 10024, 6767, 6절, 10047, 716, 4545, 6963, 9946, 제 7절)

52절. 그리고 그는 새의 피를 가지고, 그리고 흐르는 물을 가지고, 그리고 살아있는 새를 가지고, 그리고 삼목을 가지고, 그리고 우슬초를 가지고, 그리고 주홍색 (실)을 가지고 집을 깨끗하라.

영적 의미

그리하여 선의 저장소는 외적 진리의 거룩한 애착, 말씀으로부터 온 거룩한 진리, 선에 대한 애착, 특별하게 말씀에서 온 내면, 외면에 있는 진리가 선과 결합됨을 수단으로 깨끗해지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 집을 새의 피와 흐르는 물로 깨끗하게 함이란 선의 저장소는 외적 진리에 대한 거룩한 애착과 말씀으로부터 온 거룩한 진리를 수단으로 깨끗해지게 됨을; 그리고 살아있는 새, 삼목, 우슬초, 주홍색(실)로 그 집을 깨끗하게 함이란 선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말씀으로부터 온 내면, 외면의 진리를 수단으로, 그 다음 선과 결합하는 것을 말한다. (7846, 3424, 9182-6, 제 51절)

53절. 그러나 그는 살아있는 새를 성읍으로부터 열린 들판으로 가게 하라. 이리하여 그는 집을 위해 보상 받게 하라. 그러면 그것은 깨끗하다.

영적 의미

마지막으로 선에 대한 애착은 천국 삶과 행복을 내, 외적으로 충분히 즐기는 가운데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 놓여진다. 그리하여 외적인 선은 내적인 선과 재회하고 완전한 순수함이 우세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살아 있는 새를 성읍 밖, 열린 들판으로 보냄이란 선에 관한 애착이 천국 삶을 충분히 즐기고 내, 외적으로 행복하고, 자유를 완전하게 누림을; 그 집을 위해 보상 받게 만듦이란 외적 선이 내적 선과 재회함, 순수해짐이 확실히 우세해짐을 말한다. (7439, 3310, 99, 1869, 9182-6, 10042ii,1488, 4545)

54절. 이것은 나병의 역병의 모든 방법을 위하여, 그리고 두창을 위한 법이다,

영적 의미

이상은 진리를 모독하는 것과 거듭나는 과정에서 활성화되어 진리를 모독하려는 경향이 있는 악한 애착들에 관한 신성한 질서의 법칙들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것이 각종 나병과 두창에 관한 법이란 이것은 진리를 모독함에 관하여, 거듭남에서 활성화되어 모독하려드는 악한 애착들에 관한 신성한 질서의 법칙이라는 뜻이다.(10219, 6963, 7524)

55절. 그리고 옷의 나병을 위하여, 그리고 집을 위하여.

영적 의미

위의 악한 애착들이 진정한 교리를 모독하고, 외적 인간 안에 있는 선의 저장소를 모독시키는 바, 이 악한 애착에 관하여,

세부적 영적 의미

옷이나 집에 생기는 나병에 관하여란 진정한 교리를 모독하는 악한 애착, 외적 인간에 있는 선의 저장소가 모독되는 것에 관하여(5006, 6963, 1488)

56절. 그리고 도두라짐을 위하여, 그리고 딱지를 위하여, 그리고 선명한 반점을 위하여.

영적 의미

감각적 사랑, 세상의 사랑, 자아의 사랑으로부터 모독하려 드는 악한 애착들의 제거에 관하여,

세부적 영적 의미

도두라짐, 딱지, 선명한 반점에 관한 법이란 감각적 사랑으로부터, 세상을 사랑함으로부터, 이기적 사랑으로부터 모독하려는 악한 애착을 제거함에 관하여(7524, 2240, 제 2절)

57절. 그것이 불결할 때, 그리고 그것이 깨끗할 때를 가르치려는 것. 이것은 나병의 법이다.

영적 의미

이상은 신성한 질서에 의거 진리를 모독함에 관하여, 의지와 이해함의 양 측면에서 순수한 것과 불순한 것 사이를 식별하는 방법을 교인들이 알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불결한 경우와 깨끗한 경우를 가르치기 위해서요 이것이 나병에 관한 법이라 함은 이로부터 교회의 사람은 어떻게 불순함과 순수함의 구별이 의지와 이해함의 양 측면에서 식별이 가능한가를 알게 된다를 명시한다.(7007, 10130, 4545, 683, 2634)

14장의 종합적 고찰

본 장의 글자 의미로부터 알 수 있는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이 글들에는 감춰진 어떤 의미들을 포함해야만 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본 장 전체에 걸쳐 언급되는 각 의식들을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하기가 곤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건하게 상응의 법칙이 주는 빛을 따라 살펴서 주님의 말씀에 무엇이 쓰여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시작에서 우선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진영 밖으로 나가는 성직자가 발견하는 사람은 다 나은 나병 환자라는 점이다. 병이 낳는다는 것은 나병이 제거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인바, 이 사람은 깨끗하게 하는 의식 이전에 이미 깨끗해진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되는 걸까? 이는 주님만이 진리를 모독하는 죄로부터 인간을 구원해 주실 수 있다는 것, 눈에 보이는 예식들 즉 어떤 형태의 예배도 구원을 결과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모독자가 깨끗해지는 데는 의식들이나 제물로 표현되고 있는 각종 사항을 이행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이행함은 마치 본인이 스스로 하듯 있어져야 한다. 이런 착각들, 즉 주님께서 치료하시는 동안 인간에게 위와 같은 행동이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우리가 치료된 뒤 자기 몫을 하면 된다고 하는 식의 추론은 금물이다.
그러면 내적 모독에서 해방되는 수단은 무엇일까? 그 수단은 외면과 내면에 대한 애착, 다른 말로 바꾸면 주님에 의해 인간에게 주어진 진리와 선에 대한 애착들이다. 이 애착들이 새들로 표현되어져 있는데, 그 이유는 영적 인간의 새로운 삶은 그의 이해함 안에서는 형성될 수 있지만 부패된 그의 의지를 통하여서는 거듭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새들은 살아있는 깨끗한 새 이어야 했다. 그 이유는 모든 생명은 주님으로부터, 순수한 것은 주님 만으로부터 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 한 마리는 흐르는 물 또는 생명 있는 물 위 질그릇 안에서 죽이도록 된 것은 자연적 인간의 저장소(그릇)안에서는 자아부정을 수단으로 준비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그 이유가 순수해지게 만듦은 말씀 속의 진리가 선과 결합됨, 또는 신앙 속의 진리가 선행과 결합됨을 수단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살아있는 물(생수)로 나타내지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영적으로 깨끗해지는 사람의 의무는 넓은 측면에서 있는 말씀으로부터의 진리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식별력을 동원한 경험 즉 세부적인 진리들을 자기 애착의 생명이 순수해지는데 채택해감으로 배워가야 한다. 이리하여 다양한 진리들이 삼목, 주홍색(실), 우슬초로 의미되고 있다. 이제 조심스럽게 관찰해 볼 것은, 자신의 깨끗해짐을 위한 인간의 노력이 주님의 보이지 않는 역사에 의해 어떻게 도움을 받는가에 대해서 이다. 살아 있는 새와 그 외 열거된 것들을 죽은 새의 피에 담근다는 것은 신성한 역사를 상징해 놓은 표현이다. 육(flesh)에 관한 것이 죽게 될 때 영에 관한 것이 살아난다. 그 외 다른 방도는 없다. 물론 이것은 사랑을 수단으로 주님과 결합하는 데로 이끈다. 마지막으로 매우 미묘하게 자유로운 상태로 까지 인도되는데 이것이 살아있는 새를 열린 들판으로 가게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순수해지는 우리 과정의 첫 부분에 해당된다. 이 과정은 전 인생에 걸쳐서 까지 계속 되는 바, 이것이 나병에서 깨끗해지려고 하는 사람에게 일곱 번 뿌리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제 두 번째 부분을 생각해 보자.
자연적 또는 외적 인간에 관련된 순수해짐이 여기서 영적으로 고려되고 있다. 그래서 이것이 빨고, 목욕하고, 깎는 것으로 상징화되고 있다. 이에 대한 것은 매우 잘 알려져 있으므로 별도의 예증이 필요 없으리라 본다. 그리고 그것들은 세 겹(three fold)이다. 그 이유가 인간 삶 자체의 각 수준(degree)은 따로 따로 된 수준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이 수준은 창조된 만물의 가장 큰 것부터 지극히 작은 것 안에까지 존재한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옷, 털, 몸으로 명명되고 있는데, 거듭나는 과정의 이 부분은 내면 밖으로부터 진행되고 있다는 것, 외면의 범위에 있는 신성한 역사와 상응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거듭나는 법칙, 즉 인간은 물로 다시 나야 하지만 영으로도 다시 나야 한다는 법칙과 일치를 이루고 있다. 이제 주목이 요구되는 것이 있다. 외적 인간 안에서 순수해진 결과는 비록 특별 사항에서는 아닐지라도 일반적으로 천국 상태 안으로 당사자를 소개한다는 것이다. 깨끗하게 된 나병자는 진영 안으로 들어갈 수는 있지만 그의 집에 입장하는 것은 허락 안되고 있다. 진영(camp)이란 선 밑에 진리들이 배열되는 질서로 된 천국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집(house), 최상의 의미에서 생각할 때, 선에 관련된 특별한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칠 일간 이라는 말로 의미되는 것, 거듭남을 수단으로 하지 않고서는 특별한 선의 상태는 실감할 수 없다. 칠 일 동안 그는 자신의 이기적 삶을 모두 거절하게 되면서 진리 뿐만이 아닌 선에 관련된 것까지 깨끗해지는 것이다. 그런 다음 두 번째로 옷을 빠는 것, 털을 깎는 것, 목욕하는 것, 이중에서도 털을 깎는 행위의 표현이 보여주듯 거짓들을 한 건 한 건, 세부적으로 더 거절해간다. 이리하여 의식의 둘째 단원은 마감된다. 그러나 아직 셋째 단원에서 더 곰곰이 생각 할 것이 있다.
여기서 팔 일째란 천국 삶의 새로워지고 충만된 상태를 말한다. 이 상태에서 주님은 제 각각 수준의 선으로부터 진실로 예배되어지는 바, 이것이 여러 가지 제물로, 더 특별하게는 피와 기름의 적용에서 보여진다. 이 적용은 신성한 진리와 선이 인간이나 천사에게 스며들되 얼마나 충만되고 완전한가를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최상의 표현 방법에 해당된다. 이에 대하여는 앞장들에서 충분히 설명된 바 있으므로 여기서 반복하여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한 가지 상념해야 할 것은 있다. 천국 안에서 조차도 죄가 있음의 제물과 죄 바침의 제물이 있다는 것, 즉 인간은 자신 스스로는 언제나 잘못을 저지르기 쉽다는 것, 인간에겐 악밖에 없다는 것, 따라서 계속적으로 주님에 의해 선 가운데 보존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인정함은 천국에도 있다는 말이다. 수양 두 마리란 순진의 진리인데 이를 수단으로 인정함이 만들어지고, 암양 한 마리란 순진의 선인데, 영적인 태워 바침의 제물 즉 주님께 전적으로 봉헌함(consecration)을 각각 의미하고 있다. 그러므로 본 장 앞에서 살펴 본 것과 같다. 그러나 본 장의 경우 보다 더 놀랄만한 방법으로 보상을 받게 하는 것이 진실로 선 또는 사랑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동시에 그 선 또는 사랑은 진리를 수단으로 결과를 보고 있다. 그러므로 일상 생활 속에서 사랑을 원리로 더 선호할 경우라 해도 그 수단으로 진리가 필요함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에 근거한 이 진리(truth from good)가 우리 행동 안으로 오도록 해서 우리가 주님과 재회하여야 한다. 따라서 오른쪽 귀, 오른쪽 손, 오른쪽 발에 피를 뿌리고 기름을 바르는 것, 그 뿐만이 아니라 귀의 끝, 손의 엄지손가락, 발의 엄지발가락에 뿌리고 바른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는 선함은 우리의 진리와 결합해야 한다는 것, 이 진리는 우리의 행동 안에서 나타나야 한다는 것, 최말단 사항들 역시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주님을 신뢰하고 선을 행하는데 적절한 방법이다. 진행에 앞서 이에 대한 준비가 15-16절에 있는 바 이를 정리해 보자. 이해함에 의거하여 의지라는 내면에 일하심(operation)이 있다. 의지는 주님으로부터 선을 받는다. 이것이 성직자가 기름 한 록을 취하여 자기 왼손 바닥에 붓는 모습이다. 붓는다(pouring)이란 유입(influx)을 말한다(열왕기하 4:4). 그리고 왼손은 이해함을, 그 다음 왼손바닥에 있는 기름은 선이 진리 안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뜻한다. 그 다음 왼손에 있는 기름에 오른 손가락을 담그는(dipping)것은 이 뒤의 구절에 있는 바와 같이 인간이 최말단 사항들 안으로 선과 진리를 가져다 놓을 수 있기 전, 의지와 이해함이 상호작용 하여 결합함을 수단으로 어떻게 능력이 인간에게 오는 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 이유가 인간은 외적 경로를 수단으로 그의 이해함에 진리를 받는다. 다시 말해 그가 말씀을 읽는다거나 성경 공부에 참석하는 등등을 수단으로 가르침을 받음으로 진리를 받는다. 이리하여 그가 진리를 실제에 놓기 전 인정함이라는 수단으로 준비와 결합을 가질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 속의 사람은 천국 삶으로 인도되어지도록 곰곰이 생각하는 노력이 교회 밖의 사람보다 더 있어야 한다. 이 노력에 관련되는 유용한 사항들이 본 장의 나머지에서 아직 더 언급되고 있다.
어떤 사람의 경우, 설사 이 사람이 천국에 있는 사람이라 해도 그가 너무 영적으로 가난해서 순진의 내적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해도 그는 보다 낮은 평면에서 예배할 수는 있다. 그 이유는 세 천국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최말단 천국(첫 번째 천국)에 알맞게 거듭나진 사람은 그보다 더 높은 천국, 영적 천국이나 천적 천국으로 올라가거나 그 천국의 일원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참으로 그곳에서는 그렇게 되어 보겠다는 바램조차도 불가능하다. 모든 사람은 각기 자신의 천국에 영원히 머무르는 것에 결국에는 만족해야 한다. 그렇다해도 영원히 발전해 가는 기회(scope)는 거기에도 역시 존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예배가 두 번째의 수양과 암양 대신 호도애나 어린 비둘기 두 마리로 대체되는 것, 그리고 보다 덜 비싼 식사 제물로 대체되는 것이 의미하는 바다. 본 장에서 이 예배는 제물보다 수준이 낮은 예배를 표현하고 있다. 식사 제물에 관한 사항은 앞 장들에서 설명된 바 있어 생략해도 되리라 본다. 그 이유가 이에 대한 묘사가 앞 장들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덧 붙이고 싶은 것은, 어떤 관점에서 모든 인간의 거듭남은 비슷하다고 하는가를 배우고 넘어가자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이유가 모든 인간 존재들은 주님의 형상과 모양에 따라 창조되었다는 것, 그런 이유로 거듭남으로 해서 그분의 모양과 형상이 될 수 있다는 원리 때문이다. 우리가 계속 살피는 말씀의 내적 의미(internal sense)에서 끌어올린 지식의 진짜 값어치는 우리 각자가 주님과 협동함을 수단으로 자신의 소질(capabilities)들이 발달되도록 노력해 가는 것, 동시에 자신이 남보다 위에 있는 줄로 착각하려는 환상에 빠지지 말아야 하는 것에 있다. 따라서 자신의 가능성을 넘어서는 것을 열망하려 들기보다는, 또는 위대해지기(greatness)보다는 선해지려고(goodness) 어린 아이 같은 겸손함으로 하늘나라를 받으려고 배워야 하리라.
그런데 우리 집에 있는 나병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병이 우리의 신체나 마음에 영향을 주는 질병이라고 생각해 보는 것은 과히 어렵지는 않다. 그러나 이 주제를 다루어야 할 저자의 경우에서도 나병이 집에 감염되었다라고 생각하지 않는 견해 쪽에 있는 바 본문의 글자 표현 그대로 집에 나병이 생겼다 라고 생각하기에는 힘들다. 그러나 영적으로 생각할 경우는 다르다. 집이란 마음에 있는 선의 저장소로서는 최말단에 속한다. 그러기에 이 집은 내면이 불순한 경우 쉽게 그 영향을 받는다. 그 이유는 내적 인간이 외적 인간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는 자기의 영적인 집을 지으라고 요구되고 있다. 우리를 위해 좋은 영적인 집은 모래 위가 아닌 반석 위에 지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영적으로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것, 감각적이고 육적인 애착까지도 깨끗하게 해야 함이 중요한 사항이고, 이런 측면에서 집이나 옷이나 다를 게 없으리라.
바로 위에서 까지 우리는 각자 앞에 큰 작업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일반적 측면의 모독에서 해방되는 것과 동일하게 바깥쪽에서도 깨끗해지는 과정을 주목해 본다는 것은 흥미 있게 된다. 우리가 말하는 갖가지 종류의 단어들, 우리가 행하는 선한 행동들이 최상의 동기로, 계발된 판단으로부터 튀어나와 일하고 있음에도 아직 우리는 자아로 초점을 돌리고야 마는 생각들로 얼마나 얼룩져 있는가? 순수한 애착들, 생명 있는 진리들, 주님과 더 가까운 결합 말고 무엇이 있을까? 지상 위 우리의 육체가 살아 있으려면 계속적인 운동과 힘을 내고 있어야한다. 천국에서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거기서 우리는 계속적인 깨끗해짐이 있어야 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사랑하는 진리, 우리가 사랑하는 선을 모독하지 않기 위해서 이다. 따라서 우리의 머리, 손, 발, 그리고 입는 옷이 모독하는 것을 완전하게 피할 수는 없다 해도 그것들 모두의 적절한 선용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 사항이 본문 뒷부분의 서술에서 보여주고 있다.

레위기 15장

성경: 레위기 1장

1. 주님께서 모세에게 그리고 아론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2.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야기하라,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라, 어떤 사람이 그의 살로부터 유출(issue)을 가질 때, 그의 유출 때문에 그는 불결하다.
3. 그리고 이것은 그의 유출에서 그의 불결함이다, 즉 그의 살이 그의 유출을 계속하든, 또는 그의 살이 그의 유출을 멈추었든, 이것은 그의 불결함이다.
4. 유출을 가진 자가 누운 침대 모두는 불결하다. 그리고 그가 앉은 모든 것도 불결하다.
5. 그리고 그의 침대에 접촉하는 자는 누구이든 그의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자신을 물로 목욕하라,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6. 유출을 가진 자가 앉았던 어떤 것에 앉은 자는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물로 자신을 목욕하라,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7. 그리고 유출을 가진 자의 살에 접촉한 자는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자신을 물에서 목욕하라,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8. 그리고 만일 유출을 가진 그가 깨끗한 사람에게 침을 뱉는다면. 그다음 그는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물로 자신을 목욕할 것이다,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9. 그리고 유출을 가진 자가 (짐승 위에) 타려고 (사용한) 안장은 어떤 것이든 불결하다.
10. 그리고 유출하는 자 아래 있었던 어떤 것에 접촉하는 자는 누구든지 저녁 때까지 불결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을 나르는 자는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자신을 물로 목욕하라,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11. 그리고 유출을 가진 자가 자기 손들을 물로 행구어냄(rinse)도 없이 누군가를 만진다면, 그는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자신을 물로 목욕하라,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12. 그리고 유출을 가진 자가 만진 질그릇은 깨뜨려라. 그리고 모든 나무 그릇은 물에서 행구라.
13. 그리고 유출을 가진 자가 자기의 유출을 깨끗이 했을 때, 그러면 그는 자기의 깨끗해짐을 위하여 칠 일을 자신에게 셀 것이다. 그리고 자기 옷들을 빨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 살을 흐르는 물에서 목욕하라, 그러면 깨끗하다.
14. 그리고 팔 일째 날 그는 자기에게 호도애 두 마리, 또는 어린 비둘기 두 마리를 가져 와라, 그리고 주님 앞, 만남의 천막으로 올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성직자에게 주어라.
15. 그리고 성직자는 그것들을 바칠 것인데, 하나는 죄 바침을 위해, 또하나는 태워 바침을 위해서이다. 그리고 성직자는 그의 유출됨을 위해 주님 앞에서 그가 보상 받게 할 것이다.
16. 그리고 만일 어떤 사람의 성교(copulation)의 씨가 그 사람으로부터 나갔다면, 그 다음 그는 물에서 온 몸을 목욕할 것이다,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17. 그리고 성교의 씨 위에 있는 모든 옷, 모든 가죽은 물로 빨아라,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18. 여인이 남자와 성교의 씨와 더불어 누울 것이다면, 그들 모두 물에서 자신들을 목욕하라,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19. 그리고 만일 여인이 유출을 가진다면, (그리고) 그녀의 살에서 그녀의 유출이 피이다면, 그녀는 칠 일 동안 불순해 있다. 그리고 그녀를 만지는 자는 누구든지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20. 그녀가 그녀의 불순함에서 누운 모든 것은 불결하다. 그녀가 앉은 모든 것 역시 불결하다.
21. 그리고 그녀의 침대를 만지는 자는 누구든지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물에서 자신을 목욕할 것이다, 그리고 저녁까지 불결하다.
22. 그리고 그녀가 앉는 어떤 것을 만진 자는 누구든지 자기 옷들을 빨 아라, 그리고 물로 자신을 목욕하라,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23. 그리고 만일 그것이 침대 위에, 또는 그녀가 앉는 어떤 것 위에 있는데, 그가 그것을 만진다면, 그는 저녁까지 불결하다.
24. 그리고 만일 어떤 사람이 그녀와 눕는다면, 그리고 그녀의 불순함이 그 사람 위에 있다면, 그는 칠 일 동안 불결하다. 그리고 그가 누운 모든 침대는 불결하다.
25. 그리고 만일 여인이 그녀의 불순함의 기간 동안이 아닌 많은 날 동안 그녀의 피의 유출을 가진다면, 또는 만일 그녀가 그녀의 불순함의 때를 넘어 유출을 가진다면. 그녀의 불결함의 유출의 모든 날들을 그녀는 그녀의 불순함의 날들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불결하다.
26. 그녀가 자기의 유출이 있는 모든 날들에 누운 모든 침대는 그녀의 불순함으로부터의 침대이다. 그리고 그녀가 앉은 모든 것은 그녀의 불순함으로부터의 불결함 같이 불결하다.
27. 그리고 이런 것들을 만지는 자는 누구든지 불결하다, 그리고 그의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물에 자신을 목욕하라,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28. 그러나 만일 그녀가 자기의 유출로부터 깨끗해진다면, 그러면 그녀는 칠 일을 자신에게 셀 것이다, 그리고 그 후 그녀는 깨끗하다.
29. 그리고 팔 일째 날 그녀는 자기에게 호도애 두 마리, 또는 어린 비둘기 두 마리를 가져 와라, 그리고 그것들을 성직자에게, 만남의 천막의 문으로 가져 가라.
30. 그리고 성직자는 하나는 죄 바침을 위해, 또 하나는 태워 바침을 위해 바쳐라, 그리고 성직자는 그녀의 불결함으로부터의 유출을 위해 주님 앞에서 그녀를 위한 보상을 받게 할 것이다.
31. 고로 너희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자기들의 불결함으로부터 분리되게 할 것이다, 하여, 그들이 자기들 가운데 있는 내 성소를 더럽힐 때, 그들이 자기들의 불결함에서 죽지 않게 하라.
32. 이것은 유출을 가진 사람에 관한 법, 그리고 성교의 씨를 자기로부터 나가게 하여 그것으로해서 불결해 있는 사람에 관한 법이다.
33. 그리고 자기의 불순함으로 아프고 있는 그녀에 관해서, 그리고 유출을 가진 사람, 남자와 여자, 그리고 불결해 있는 그녀와 눕는 자에 관해서.

영적 의미 요약

* 감각적, 세상적, 또는 이기적 사랑으로부터 흐르는 거짓의 결과인 영적 불순함의 상태에 관하여, 1-15절.
* 자신의 선에 진리가 결합하지 않음으로 발생하는 불순함에 관해서, 이와 같은 불순함을 수단으로 진리들이 손상되는데 대해서, 거듭나는 동안 선과 진리의 결합과 연결되는 양쪽 모두 순수해져야 한다는 것, 16-18절.
* 거듭나는 동안 악의 거짓으로부터 발생하는 자연적 애착의 불순함에 관해서, 19-24절.
* 거듭나는 과정에 있지 않은 자연적 애착이 악의 거짓으로 불순해짐에 관해서, 25-30절.
* 이와 같은 거짓으로 인해 선이 오염되어 영적으로 죽지 않기 위해 악의 거짓에서 순수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에 관해서, 31절.
* 본 장의 가르침에 관한 일반 요약. 32-33절.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주님께서 모세에게 그리고 아론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주님께서 진리와 선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지각을 주심으로 밝히 알게 해주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여호와)이란 그분의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speaking)이란 유입을; 모세란 신성한 질서 또는 말씀을; 아론은 신성한 선을; 말함(saying)은 지각을 말한다. (2001, 2951, 7010, 9946, 1791, 1822)

2절.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야기하라,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라, 어떤 사람이 그의 살로부터 유출(issue)을 가질 때, 그의 유출 때문에 그는 불결하다.

영적 의미

영적 교회 속의 사람에 대한 가르침이다. 누가 감각적으로부터, 세상적 사랑으로부터, 또는 이기적 사랑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악으로부터 온 거짓인 바, 불순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러줌이란 영적 교회의 사랑에 대한 가르침임을; 어떤 사람이 자기 살로부터 유출을 가짐, 그리고 그것 때문에 불결하다란 누군가가 감각으로부터, 세상적 사랑으로부터, 이기적인 사랑으로부터 생각하므로 해서 악과 불순함으로부터의 거짓이 있게 된다는 것을 말하는데 이에 관해 더 첨가해 둘 말이 있다. “인간 안에는 고유 의지와 지성이 있다. 그 의지는 악이고 그 지성은 그 악에서 파생된 거짓이다. 전자 즉 인간 고유의 의지가 인간의 살로 지성은 그 살 속의 피로 의미된다.” 이로부터 관찰해 본다면 본문에서 언급하는 유출(issue, flux)은 악한 애착으로부터 흐르는 악한 생각들을 말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3절. 그리고 이것은 그의 유출에서 그의 불결함이다, 즉 그의 살이 그의 유출을 계속하든, 또는 그의 살이 그의 유출을 멈추었든, 이것은 그의 불결함이다.

영적 의미

그리고 이것이 생각 안에 있는 거짓 또는 불순함의 근원인 바, 악이 거짓과 결합되어 있든 또는 마치 그것들이 분리된 듯 보여도 그것은 거짓의 근원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의 유출함은 불결하다란 생각 속에 있는 불순함의 근원이 악이라는 것, 바꾸어 말하면 거짓의 불순함을, 유출이 계속 이든지 그렇지 않든지란 악이 거짓과 결합되어 있든지 또는 악과 거짓이 분리되어 있는 듯 보이든지를 말하는데 이 경우의 흐른다(running)란 사상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멈추었다(stop)란 흐름이 억제되어 있음을 말한다. (10130, 843)

4절. 유출을 가진 자가 누운 침대 모두는 불결하다. 그리고 그가 앉은 모든 것도 불결하다.

영적 의미

모든 자연적 애착 또는 교리가 타락된 사랑으로부터 온 생각에 의해 오염이 되면 불순하다. 또한 타락된 사랑으로부터 온 이런 생각에 의해 확인되면 불순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유출을 가진 사람이 누웠던 자리(bed)가 불결하다란 타락된 사랑으로부터 온 생각에 의해 오염된 자연적 애착 또는 교리는 불순함을; 앉았던 곳도 불순하다란 위와 같은 생각으로 굳혀진 사랑으로부터의 모든 애착들은 순수하지 못함을 뜻한다.(6188, 10360, 10130, 9422, 10130)

5절. 그리고 그의 침대에 접촉하는 자는 누구이든 그의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자신을 물로 목욕하라,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영적 의미

위와 같은 자연적 수준의 생각 또는 애착과 아주 경미하게 접촉되었다해도 그것들은 내적, 외적으로 깨끗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 상태에 변화가 있을 때까지 불순의 원인이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 사람의 침대에 닿은 사람은 옷을 빨아 입고 물로 목욕을 해야 하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란 위와 같은 자연적일 뿐인 애착 또는 생각에 아주 경미하게 접촉만 해도 내적, 외적으로 깨끗해짐이 요구되는 바, 상태의 변화가 거행될 때까지 불순함의 원인이 된다. (10130, 6188, 10360, 3147, 5006, 7844)

6절. 유출을 가진 자가 앉았던 어떤 것에 앉은 자는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물로 자신을 목욕하라,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영적 의미

또한 악한 실제 또는 교리로 자신이 확인되도록 조처한 모든 사람, 넓게는 부패된 교회, 각 개인이 그렇게 했었던 바 내적, 외적으로 깨끗해져야 하거나, 또는 생각과 애착이 깨끗해져야 하는 바, 상태 변화가 발생 할 때까지 그는 순수해질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유출을 가진 자가 앉았던 어떤 것에 앉은 사람도 옷을 빨아 입고 물로 목욕을 해야 하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란 넓은 의미에서의 부패된 교회, 또는 어떤 개인이 그렇게 한다고 해서 자신도 그와 같이 악한 행동으로 확증하려는 사람도 내적, 외적으로, 또는 생각과 애착에 관한 것에서 깨끗해져야 하는바, 상태의 변화가 발생할 때까지 순수해질 수 없다. (6188, 제 2절, 3147, 10130, 7844)

7절. 그리고 유출을 가진 자의 살에 접촉한 자는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자신을 물에서 목욕하라,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영적 의미

만일 어떤 사람이 감각적, 세상적, 또는 이기적 사랑에서 일어나는 거짓된 교리 가운데 있는 다른 이와 애착을 수단으로 자신을 접촉하게 했다면 그는 외적. 내적으로 깨끗해져야 한다. 이런 깨끗해짐을 통하여 상태의 변화가 발생할 때까지 불순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유출을 가진 사람의 살에 닿은 사람이란 감각적, 세상적, 이기적 사랑들로 발생하는 교리의 거짓 안에 있는 어떤 사람의 애착을 수단으로 자신을 결합시키는 사람을; 옷을 빨아 입고 물로 목욕을 한다란 외적, 내적으로 깨끗해짐을; 저녁때까지 불결하다란 상태가 변할 때까지 불순함을 말한다.(10130, 780, 10283, 10130, 3147, 5006, 10130, 7844)

8절. 그리고 만일 유출을 가진 그가 깨끗한 사람에게 침을 뱉는다면. 그다음 그는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물로 자신을 목욕할 것이다,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영적 의미
한 가지 더 있다. 만일 악으로부터 온 이와 같은 거짓 안에 있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기어이 부패되게 했다면, 당한 그 사람은 외적. 내적으로 깨끗해져야 한다. 그도 상태의 변화가 없이는 순수해 질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유출을 가진 사람이 뱉은 침이 깨끗한 사람에게 튀었을 경우란 진리의 왜곡을 수단으로 왜곡하지 않고 있는 사람을 고집스럽게 부패시키는 악으로부터 온 거짓 가운데 있을 경우를 말한다. 그 이유는 좋은 의미에서 침 뱉음(spitting), 그리고 침을 뱉어 흙을 갬은 진리가 선과 결합함, 그리하여 신앙의 선을 생산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 의미일 경우, 타인에게 침이 튀어 가게 함은 타인의 생명을 썩게 하는 것, 거짓을 가진 교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옷을 빨고 물로 목욕함은 내적, 외적으로 순수해짐을, 저녁때까지 불결하다란 상태가 변할 때까지 불순함을 말한다. (6660-6, 4835-4, 3147, 5006, 683, 10130, 7844)

9절. 그리고 유출을 가진 자가 (짐승 위에) 타려고 (사용한) 안장은 어떤 것이든 불결하다.

영적 의미

악으로부터 온 위의 거짓과 접촉됨으로 오염된 지성 안에 있는 진리의 모든 저장고도 불순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유출을 가진 사람이 타고 다니던 안장(saddle)이 불결하다란 위와 같은 거짓과 접촉됨으로 오염된 지성 안에 있는 진리의 모든 저장소도 불결함을 말한다.(5531, 2761, 2762, 10283, 10130)

10절. 그리고 유출하는 자 아래 있었던 어떤 것에 접촉하는 자는 누구든지 저녁 때까지 불결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을 나르는 자는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자신을 물로 목욕하라,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영적 의미

위와 같은 방법으로 오염된 의지 속에 있는 선의 모든 저장고도 상태가 변할 때까지 불순하다. 그리고 이런 오염에 관해 단순히 생각만 해도 필시 요구되는 사항은 상태의 변화요 이 변화로 내, 외적으로 깨끗해져야 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그가 깔고 앉았던 것에 닿은 사람, 그것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란 전자의 경우는 의지 안에 있는 저장고가 오염된 것, 후자는 불결한 것을 생각만 함으로 해서 오염되는 것을; 옷을 빨고 물로 목욕을 함이란 내적으로, 외적으로 깨끗해져야 함을; 저녁때까지 부정하다란 상태가 변할 때까지 불순함을 말한다.(10130, 3079, 5948, 8764, 3147, 5006, 10130, 7844)

11절. 그리고 유출을 가진 자가 자기 손들을 물로 행구어냄(rinse)도 없이 누군가를 만진다면, 그는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자신을 물로 목욕하라,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영적 의미

또한 만일 악으로부터 온 거짓 안에 있는 사람이 자기와 순수한 사람 양쪽에 공통되는 어떤 애착을 수단으로 영적 접촉을 했다면, 순수했던 그 사람은 바깥쪽의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이런 접촉도 외적, 내적으로 순수해져야 할 필요성을 만드는바 상태의 변화가 있어야 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유출을 가진 사람이 물로 행구지 않은 손으로 누군가를 건드린다란 영적으로 악으로부터 오는 거짓 가운데 있는 사람, 또는 진리를 왜곡하는 사람이 외적으로 깨끗해짐도 없이 서로 간에 공통되는 어떤 애착을 수단으로 접촉을 가질 경우를; 접촉 당한 사람도 옷을 빨아 입고 물로 목욕해야 하며 저녁때까지 불결하다란 상태가 변할 때까지 내적, 외적으로 깨끗해져야 함을 말한다. 여기서 한가지 주목해둘 것이 있다. 그것은 닿는다(touching)와 손만을 씻는다(washing the hands only)에 관한 것이다. 첫 단어는 “상대방의 의지가 동의해서 하나를 만드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 단어의 경우, 발과 손을 씻음은 자연적 인간 측면을 깨끗하게 함과 관계되고, 머리를 씻음은 영적 인간 측면을 깨끗하게 함과 관계를 가진다.(10283, 10130, 3147, 7844, 7442-3)

12절. 그리고 유출을 가진 자가 만진 질그릇은 깨뜨려라. 그리고 모든 나무 그릇은 물에서 행구라.

영적 의미

가장 수준 낮은 진리의 저장고라 해도, 설사 그것이 악에서 온 위의 거짓에 매우 가볍게 오염되었다 해도 거절되어야 한다. 그리고 선의 가장 수준 낮은 저장고 역시 위와 같은 처지인바 진리를 통해 깨끗해져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유출을 가진 사람이 만진 질그릇이란 악에서 나온 거짓에 오염된 선이 없는 진리의 가장 수준 낮은 저장소를; 나무그릇이란 선의 저장소를; 깨뜨림 또는 물로 씻음은 진리를 통하여 거절하거나 깨끗해지는 것을 뜻한다.(10105, 10130, 10283, 643, 9163, 3147)

13절. 그리고 유출을 가진 자가 자기의 유출을 깨끗이 했을 때, 그러면 그는 자기의 깨끗해짐을 위하여 칠 일을 자신에게 셀 것이다. 그리고 자기 옷들을 빨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 살을 흐르는 물에서 목욕하라, 그러면 깨끗하다.

영적 의미

악의 거짓으로부터 순수해지겠다는 사람은 거듭나는 과정을 통과해야만 하는 바, 선으로부터 활성화된 진리를 수단으로 내, 외적으로 깨끗해진다. 그러면 그는 순수하게 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유출을 가진 사람이 그 병이 나아 깨끗하게 되는 경우란 악한 사랑으로부터 진리를 왜곡하는 사람이 깨끗해짐을, 깨끗하게 되기까지 칠 일간을 센다는 것이란 그가 거듭나는 과정을 통과해야만 한다는 것을(창세기 1장 참조), 옷을 빨고 흐르는 물에 목욕을 함이란 내적, 외적으로 깨끗해짐을, 깨끗하게 됨이란 영적으로 깨끗해짐을 말한다. (4545, 3147, 5006, 3424, 4545)

14절. 그리고 팔 일째 날 그는 자기에게 호도애 두 마리, 또는 어린 비둘기 두 마리를 가져 와라, 그리고 주님 앞, 만남의 천막으로 올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성직자에게 주어라.

영적 의미

그리고 그의 새로운 상태에서 선 또는 신앙 속의 진리로부터 주님을 예배 할 것이고, 천국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선을 받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선에 관한 자기 상태도 이로부터 임을 인정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덟 째날 이란 새로운 상태를, 호도애 또는 어린 비둘기 두 마리란 신앙 속의 선 또는 진리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을; 만남의 천막 문간, 주님 앞으로 나감이란 천국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신앙 속의 선과 진리를 받고 있음을 인정함을; 성직자에게 제물을 줌이란 선에 관한 측면의 자기 상태로부터임을 각각 말한다.(9227, 1826, 1827, 2356, 3540-3, 9946)

15절. 그리고 성직자는 그것들을 바칠 것인데, 하나는 죄 바침을 위해, 또 하나는 태워 바침을 위해서이다. 그리고 성직자는 그의 유출됨을 위해 주님 앞에서 그가 보상 받게 할 것이다.

영적 의미

그리고 이러한 선의 상태로부터 그는 진실로 예배 드릴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악이 제거 되기 위하여, 둘째로 그가 주님께 헌신되기 위해서 이다. 이런 과정에서 신성한 선은 악에서 온 거짓이 제거되게 해주시고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의 재회가 결과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제물을 바침이란 선의 상태로부터 예배드려야 진실된 예배가 됨을, 한 마리는 죄 바침의 제물로, 또 한 마리는 태워 바침의 제물로란 악은 제거될런지 모르고, 그리고 주님께 자신을 바치기 위해서 임을, 성직자가 주님 앞에서 그의 유출을 위해, 그를 위하여 보상 받게 함이란 위 방법에서 신성한 선으로부터 악에서 온 거짓이 제거되고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 사이의 재회가 결과될 것임을 말한다. (9946, 3400, 10053, 10283, 10042II)

16절. 그리고 만일 어떤 사람의 성교(copulation)의 씨가 그 사람으로부터 나갔다면, 그 다음 그는 물에서 온 몸을 목욕할 것이다,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영적 의미

다시, 거듭나는 과정에서 어떤 이에게 있는 신성한 진리의 씨가 자체 속의 선과 결합되지 못함으로 해서 진리를 무효화시키고 있다면 그의 진리의 상태가 선에로 완전히 인도될 때까지 선을 원리로 하는 생활 속에서 진리를 응용함으로 완전하게 깨끗해져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교 속의 어떤 남자의 씨가 그로부터 나갔다(going out) 함은 거듭나는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있는 신성한 진리의 씨가 그 진리에 적합한 선과 결합되지 못함으로 그 씨가 무효화되고 마는 것을; 물로 온 몸을 씻는다란 선을 원리로 생활에 진리를 응용함을; 저녁때까지 불결하다란 선 쪽으로 인도되고 있는 진리의 상태가 결말을 볼 때까지 불순할 것임을 말한다. (880, 1798, 4837, 3147, 1798, 780, 7844, 9274)

17절. 그리고 성교의 씨 위에 있는 모든 옷, 모든 가죽은 물로 빨아라,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영적 의미

인간과 더불은 진리의 모든 상태, 그것이 외적이든 내적이든, 그 안에 진리가 선과 결합된 애착이 있는데 뒤집혀 있다면 순수해져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진리의 상태가 선으로 인도되는 결말이 날 때까지 온전치 못해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교의 씨가 묻은 옷과 피부는 물로 씻어야하고 저녁때까지 불결하다란 인간과 함께 하는 진리에 관한 모든 상태, 그것이 외적이든 내적이든 그 안에서 진리가 그 자체의 선과 결합하려는 애착이 뒤집혀 있을 경우 반드시 깨끗해져야 하는데, 이는 진리가 선 쪽으로 인도되는 상태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완전하게는 깨끗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9215, 880, 1798, 4837, 3147, 7844, 9274)

18절. 여인이 남자와 성교의 씨와 더불어 누울 것이다면, 그들 모두 물에서 자신들을 목욕하라,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영적 의미

결합을 위해 진리의 씨를 받는 중인 선에 관한 자연적 모든 애착, 이 애착이 영적 애착과 상응되고는 있지만 받는 중일 경우 상대적으로 불순하다. 따라서 위 두 애착 모두는 진리와 선이 충만 되게 결합함으로 해서 상태에 변화가 있기까지 진리로 깨끗해지도록 요구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 구절에서의 여인은 선에 관한 자연적 애착을; 남자는 진리에 관한 영적 애착을 말하는데, 그 이유는 여기서 남자(man)라는 단어로 사용된 히브리어가 “ish”이기 때문이다. 씨(seed)란 선과 결합하려는 진리를; 여인은 자연적 애착을; 남자는 영적 애착을 뜻한다. 두 사람 다 물로 씻어야 하고 저녁때까지 불결하다란 진리가 선과 충분히 결합함으로 있어지는 상태의 변화가 결과되어야 깨끗해짐을 말한다. (915, 880, 1798, 3969-2, 155, 7884, 9274, 3147)

19절. 그리고 만일 여인이 유출을 가진다면, (그리고) 그녀의 살에서 그녀의 유출이 피이다면, 그녀는 칠 일 동안 불순해 있다. 그리고 그녀를 만지는 자는 누구든지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영적 의미

또한 어떤 자연적 애착이 거듭남을 수행하는 상태에서 이기적 사랑의 악으로부터 온 거짓으로 부패되었다면, 그 자연적 애착은 거듭나야 한다. 그것이 아무리 경미하게 탐닉했다 해도 진리의 상태가 선으로 인도 될 때까지 불순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인이 피를 흘림이란 자연적 애착이 이기적 사랑 속의 악에서 나오는 거짓으로 부패됨을; 그녀의 살에서 그녀의 유출이 피이다(월경)란 거듭남을 수행하고 있는 상태를; 칠 일간 불결하다란 자연적 애착은 거듭나지게 될 것임을(창세기 1장 참조); 그 여인에게 닿은 사람은 저녁때까지 불결하다란 진리의 상태가 선으로 인도되는 때까지 경미한 탐닉도 불순함을 말한다. (3969, 155, 10283, 4161, 716, 10130, 7844, 9274)

20절. 그녀가 그녀의 불순함에서 누운 모든 것은 불결하다. 그녀가 앉은 모든 것 역시 불결하다.

영적 의미

이 자연적 애착으로 오염된 모든 교리는 불순하다. 그리고 거짓으로 이 애착을 확인한 모든 상태도 불순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불결한 기간 중 그 여인이 누웠던 모든 것이 불결하다란 위 자연적 애착으로 오염된 모든 교리가 불순함을; 앉았던 자리가 불결하다란 거짓으로 위 애착을 확증한 모든 상태가 불순함을 말한다. (6188, 10360, 10130, 9422)

21절. 그리고 그녀의 침대를 만지는 자는 누구든지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물에서 자신을 목욕할 것이다, 그리고 저녁까지 불결하다.

영적 의미

이런 교리에 아주 경미한 접촉으로 영향을 입은 모든 사람도 상태가 바뀔 때까지 외적, 내적으로 깨끗해져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 여인의 침대에 닿은 사람이란 매우 경미한 수준이지만 거짓 교리에 영향을 받은 모든 사람은 불순함을; 옷을 빨아 입고 물로 목욕해야 함이란 내적, 외적으로 깨끗해져야 함을; 저녁때까지 불결하다란 위 상태가 끝나기까지 불순함을 말한다.(10130, 6188, 3147, 5006, 7844)

22절. 그리고 그녀가 앉는 어떤 것을 만진 자는 누구든지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물로 자신을 목욕하라,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영적 의미

악의 실제, 그로부터 파생된 거짓이 확인 되는 데에 자신을 동참시킨 모든 사람도 상태가 종결될 때까지 외, 내적으로 깨끗해져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 여인이 앉았던 자리에 닿은 사람이란 악을 실습함으로 자신을 확증하게 하려 한 어떤 사람들을; 옷을 빨아 입고 물로 목욕함이란 내적, 외적으로 순수해짐을; 저녁때까지 불결하다란 상태가 종결 될 때까지 불순함을 말한다.(10130, 9422, 3147, 5006, 7844)

23절. 그리고 만일 그것이 침대 위에, 또는 그녀가 앉는 어떤 것 위에 있는데, 그가 그것을 만진다면, 그는 저녁까지 불결하다.

영적 의미

만일 악에서 온 이 거짓이 진리 속의 교리 또는 선의 교리가 오염되었는데 그 영향을 받고 있는 자연적 애착을 가진 사람일 경우도 상태의 변화가 거행될 때까지 불순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 여인이 누웠던 자리와 앉았던 어떤 것 위에 있는 물건이란 악에서 나온 거짓이 진리 또는 교리를 오염시킨 경우를; 닿는다란 영향 하에 있게 됨을; 저녁때까지 불결함이란 상태가 변할 때까지 불순함을 말한다.(3969-2, 155, 10283, 10360, 9422, 3522, 10130, 7844)

24절. 그리고 만일 어떤 사람이 그녀와 눕는다면, 그리고 그녀의 불순함이 그 사람 위에 있다면, 그는 칠 일 동안 불결하다. 그리고 그가 누운 모든 침대는 불결하다.

영적 의미

만일 진리 안에 있는 사람이 이 애착과 자신이 결합되고 있어 그 거짓이 그를 오염되게 하고 있다면, 그도 거듭나는 거룩한 상태를 통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그의 교리는 불순해 있을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 여자와 한 자리에 든 남자란 진리 안에 있는 어떤 사람이 위 애착과 그로부터의 거짓을 자신과 결합시킬 경우를; 그 여인의 불결이 그 남자에게 묻었다란 위 애착과 그 거짓으로 해서 오염됨을; 칠 일간 불결하다란 거듭나는 거룩한 상태를 통하여 감을; 그 남자가 누웠던 모든 침대가 불결하다란 그 교리도 이로 인해 불순해짐을 말한다. (10283, 10130, 제 2절, 716, 10130, 10360, 10130)

25절. 그리고 만일 여인이 그녀의 불순함의 기간 동안이 아닌 많은 날 동안 그녀의 피의 유출을 가진다면, 또는 만일 그녀가 그녀의 불순함의 때를 넘어 유출을 가진다면. 그녀의 불결함의 유출의 모든 날들을 그녀는 그녀의 불순함의 날들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불결하다.

영적 의미

그리고 만일 어떤 자연적 애착이 악에서 온 거짓으로 오염되고 있는데, 이때의 상태가 거듭남으로 인도되지 않는 중이거나 거듭나는 상태를 통과하는데 실패한 때이라면, 이 상태가 지속되는 한 그것은 불순하다. 거듭남을 수행하는 상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상태는 더 심하게 불순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인이 월경 때가 아닌데도 오랫동안 하혈함이란 어떤 자연적 애착이 거듭나도록 하는 상태로 인도되지 않고 악에서 나오는 거짓에 오염될 경우를; 월경이 더 오래 계속됨이란 거듭나는 상태를 통과하는데 실패함으로부터를(창세기 1장 참조); 하혈하는 동안이 월경하는 때처럼 이란 위 실패의 상태가 계속되는 한 거듭남을 수행하는 동안에 불순하듯이 불순하다. 그 여자가 불결하다란 더 심하게 불순함을 말한다. (4161, 10283, 716, 487, 10130, 4161)

26절. 그녀가 자기의 유출이 있는 모든 날들에 누운 모든 침대는 그녀의 불순함으로부터의 침대이다. 그리고 그녀가 앉은 모든 것은 그녀의 불순함으로부터의 불결함 같이 불결하다.

영적 의미

거짓에 있는 위의 자연적 애착으로 오염된 모든 교리는 불순하다. 그리고 거짓으로 확인하는 이 자연적 애착의 모든 상태도 불순하다. 이것이 거듭남을 수행하는 상태라 해도 동등하게 불순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 여인이 하혈하는 동안 누웠던 모든 침대는 월경 때 누웠던 잠자리와 마찬가지로 불결하다란 속에 거짓이 든 자연적 애착으로 오염된 모든 교리는 불순하다는 것을; 그 여인이 앉았던 곳도 월경 때 불결하듯이 불결하다란 자연적 애착을 거짓으로 확증한 모든 상태는 거듭나는 동안 불순하듯이 불순함을 말한다.(10360, 10283, 10130, 9422, 10130, 10283, 4161)

27절. 그리고 이런 것들을 만지는 자는 누구든지 불결하다, 그리고 그의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물에 자신을 목욕하라,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영적 의미

이런 왜곡된 상태에 영향을 매우 적게 받았다고 하는 사람도 불순하다. 따라서 상태가 끝날 때까지 외적, 내적으로 깨끗해져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런 것들을 만지는 사람은 불결하다란 이런 왜곡된 상태로 영향을 매우 적게 받았다 해도 불순함을; 옷을 빨아 입고 물로 목욕함이란 말씀을 통해 내적, 외적으로 깨끗해짐을; 저녁때까지 불결하다란 상태가 변하기까지 불순함이 계속된다는 것을 말한다.(10130, 10283, 3147, 5006, 2702, 10130, 7844)

28절. 그러나 만일 그녀가 자기의 유출로부터 깨끗해진다면, 그러면 그녀는 칠 일을 자신에게 셀 것이다, 그리고 그 후 그녀는 깨끗하다.

영적 의미

그러나 만일 이 자연적 애착이 거짓에서 벗어나 깨끗해진다면 깨끗해짐이 거듭나는 결과임을 인정하게 된다. 그 이유는 깨끗해짐은 거듭남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 여자가 깨끗하게 되려면 칠 일을 세어야 된다란 만일 이 자연적 애착이 거짓에서 깨끗해지려면 깨끗해짐은 거듭남의 결과로 된다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 그 이유는 깨끗해짐은 거듭남에 따라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4545, 창세기 1장, 716, 10239)

29절. 그리고 팔 일째 날 그녀는 자기에게 호도애 두 마리, 또는 어린 비둘기 두 마리를 가져 와라, 그리고 그것들을 성직자에게, 만남의 천막의 문으로 가져 가라.

영적 의미

위 깨끗해진 자연적 애착의 새로운 상태 또는 이 상태가 활성화되고 있는 사람 속의 자연적 애착 속에서 그 사람은 신앙의 진리와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할 것이고 그분의 영향이 천국을 통해 온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팔 일째란 위 자연적 애착의 새로운 상태를, 호도애 또는 어린 비둘기 두 마리란 신앙의 선 또는 진리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을, 그것들을 만남의 천막 문, 주님께 가져옴이란 주님과 천국을 통해 그분의 영향력이 오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9227, 1826, 1827, 9946, 2356, 3540-3)

30절. 그리고 성직자는 하나는 죄 바침을 위해, 또 하나는 태워 바침을 위해 바쳐라, 그리고 성직자는 그녀의 불결함으로부터의 유출을 위해 주님 앞에서 그녀를 위한 보상을 받게 할 것이다.

영적 의미

또한 신성한 선으로부터 악이 제거 될 것이고 주님을 사랑함을 실감할 것이다. 그리고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의 재회가 악으로부터 오는 거짓, 그로 인한 불순함을 제거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한 마리는 죄의 제물로, 또 한 마리는 태워 바침의 제물로 바친다란 신성한 선으로부터 악의 제거와 주님을 사랑함을 실감하게 될 것임을; 성직자가 주님 앞에서 그 여인의 불결함의 유출을 위해 그 여인을 위해 보상을 받게 함이란 악으로부터 온 거짓의 제거와 불순함이 제거됨으로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이 재회함을 말한다. (9946, 3400, 10053, 10042II, 10130, 10283)

31절. 고로 너희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자기들의 불결함으로부터 분리되게 할 것이다, 하여, 그들이 자기들 가운데 있는 내 성소를 더럽힐 때, 그들이 자기들의 불결함에서 죽지 않게 하라.

영적 의미

이렇게 하여 영적 교회 속의 모든 사람은 깨끗하게 만들어져 그 속의 악이 영적 죽음을 일으키지 않게 된다. 한편 그들은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의 하모니를 원해야 하는바, 이 하모니에 주님으로부터 온 천적 원리들이 건설되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불결함에서 분리되어야 할 것이란 영적 교회의 모든 멤버는 순수해져야 할 것임을; 불결함 때문에 죽지 않는다란 악이 영적 죽음의 원인은 아님을; 그들 가운데 있는 나의 성소를 더럽힐 때란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 주님에게서 오는 천국 원리가 설립된 장소인데 이것이 결핍되는 경우를 말한다. (3654, 10130, 10283, 129, 3210, 6028)

32절. 이것은 유출을 가진 사람에 관한 법, 그리고 성교의 씨를 자기로부터 나가게 하여 그것으로 해서 불결해 있는 사람에 관한 법이다.

영적 의미

이것은 이기적 사랑에서 오는 거짓을 제거하는 신성한 질서의 법칙이요, 이는 진리와 선의 천국적 결혼의 성결됨을 위반하여 불순함이 생산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유출을 가진 자에 관한 법, 그리고 성교의 씨를 자기로부터 나가게 하여 불결한 자에 관한 법이란 이기적인 사람에게서 파생되는 거짓을 제거하기 위한 신성한 질서의 법칙이고, 불순함을 생산하는 원인, 즉 진리와 선의 천국 결혼이라는 성스러움을 위반하지 않게 하기 위한 법이라는 말이다.(10283, 880, 1798, 4837, 2634, 10130)

33절. 그리고 자기의 불순함으로 아프고 있는 그녀에 관해서, 그리고 유출을 가진 사람, 남자와 여자, 그리고 불결해 있는 그녀와 눕는 자에 관해서.

영적 의미

이는 천국 결혼을 준비하는 사람에게서 악이 제거되기 위해서, 영적 그리고 자연적 애착들로부터 악에서 나온 거짓의 제거를 위해서, 그리고 영적 애착이 자연적 애착과 불순하게 결합함을 제거하기 위해서 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자기의 불순함으로 아프고 있는(월경하고 있는) 여인에 관해서 이란 거듭나는 과정 안에 있는 이들로부터 거짓을 제거해 주는 법 임을; 유출을 가진 자, 남녀란 영적, 자연적 애착으로부터 일반적으로 오게 되는 악에서 나온 거짓의 제거를 위해서 임을; 불결한 여인과 한 자리에 든 남자란 영적 애착과 자연적 애착의 불순한 결합의 제거를 위해서 임을 말한다. (2634, 10283, 4161, 915, 10283, 4433, 10130)

15장의 종합적 고찰

우리 앞에 전개되는 신성한 진리를 곰곰이 생각하기 전 우선 우리에게 두 가지를 먼저 생각해보도록 암시되는 사항이 있다. 첫째 주님께서는 유입(influx)해 주심과 가르치심(훈육, instruction)을 수단으로 교회 속의 각 개인을 가르치신다(teach)는 것, 둘째 유출을 가진 본문의 사람은 각각의 사람의 상태에 종속되어 있는 어떤 모형(type)이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 차이는 있을지언정 신성한 진리로부터 오는 얼마의 빛을 가지고 있다. 즉 내면적으로 계발을, 외면적으로 가르침이라는 빛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유입과 계발을 생각해 볼 때 후자는 전자 없이는 거의 사용되지 못한다는 것을 식별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모든 살아 있는 창조물 중 인간 만에 주어진 축복 받은 능력이라면 그것은 영적인 빛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일 게다. 마찬가지로 큰 축복이란, 영적 빛을 수단으로 말씀에서 오는 진리를 알 수 있고, 이러므로 해서 자기 살(flesh)로부터의 유출로 명시된 것, 즉 자기의 자연적 이기심으로부터 오는 거짓된 것을 생각해 보는 정도만큼에서 진리를 발견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기적 심정으로부터 악한 생각들이 나온다(마가 7:21). 그러나 이런 악한 생각들을 기어이 연출하고 싶다거나 탐닉하는 것만 마음 속에서 나올 수 밖에 없게 되어 있는 게 인간 자체라면 그것을 책임지어야 하는 쪽이 인간이라고 잘라 말할 수는 없다. 이에 대해서는 더 곰곰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어찌됐든 이런 나쁜 생각들은 사악한 영들로부터 우리 안으로 흘러든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우리 속에는 사악한 영들이 매력을 갖는 악의 뿌리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악의 뿌리를 우리가 보아야 한다고 요구되는 것이요, 주님께서 말씀을 수단으로 볼 수 있게 장치해두셔서 우리는 각자의 영적인 유출들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주목해 볼 사항은 유출이 계속되는 것과 되지 않은 것 사이의 차이점이다. 주목하고자 하는 이유는 전자는 의지의 작용을, 후자는 의지에 찬성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주목해 둘 것은 비록 후자의 경우가 양심이 저지하려는 영향을 포함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둘 다 모두 영적으로 불순한 상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악한 생각의 두 가지 상태들이 “누웠던 자리”와 “앉았던 곳”으로 나타내고 있다. 물론 하나는 이해함에, 다른 하나는 의지에 관계되는 말이다.
위를 이어 몇 가지 케이스가 보여주는 것은, 우리 안으로 계속 흘러드는 것을 확증해 주는 악한 생각들 때문에 다른 사람이 불순해져 고통을 당하는 경우들이다. 어찌됐든 우리가 위와 같은 생각들을 입으로 뱉었기 때문에서 만은 아니고, 타인이 우리 주위를 싸고 있는 영적 분위기에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기운은 설사 우리가 아무 말하지 않고 있는 경우에도 타인과 교통을 이루는 일이 허다하다. 위에 대해 한번 더 조명을 비추어 생각해 본다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되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어떤 의도도 없이 무의식적으로 타인에게 해를 주게 되는 경우까지도 없도록 하는 게 더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경우들을 잘 생각해보자. 거짓 교리는 사실 사람을 죽어가게 하는 것들인데, 만일 거듭나고 있는 사람이 이 교리를 마신다 해도 그 교리는 죽게 할 정도로 상해는 입히지 못한다. 그러나 거기에 영적 접촉이 있게 된다면 불순함을 생산하게 만든다. 이보다 더 심한 위험도 있을 수 있다. 만일 어떤 이가 자기에게 영향을 준 교리를 수단으로 거짓을 확증하는 쪽으로 처신했다면 확실한 것은 그가 자신 속에서 불순함을 생산하는 정도보다 더 심한 것, 즉 자신을 상하게 한다. 이 사람은 자기에게 영향을 준 사람 속에 든 애착이 자신과 결합되게 한다. 이보다 더 심한 상해는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이 신중한 태도로 불순함이 초래되게 했을 경우에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는 일반적으로 애착 측면에서 있어진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결과를 지성 측면에서도 발견하는데, 지성 측면의 생각들이든, 생각과 더불은 느낌들이든 다 해당된다. 이것들이 본문에 타고 다니던 것(saddle, 안장)들과 그 뒤에 언급되는 것들로 명시되고 있다. 이에 대한 해석은 시리즈가 보여주고 있다. 즉 깨끗해짐은 진리를 수단으로 해야만 가능하다는 것, 그 다음 저녁때라 불리고 팔 일째로 표현되는 상태의 결말인 주님을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핀 사항들은 거듭나는 사람에게 있게 되는 진짜 경험들에 해당된다. 따라서 상응의 언어로 기술된 말씀을 곰곰이 되새겨 보게 되면 각자의 영적 진보를 한 층 더 증진시키는 기회가 된다. 더불어 악한 모든 생각들은 더욱 경계해야 하겠다는 각오도 서리라. 잊어서는 안될 사항은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가 자동으로 더욱 있어져야 할 것이다.
이제 선함과 진리의 천국적인 결혼을 생각해 볼 차례이다. 이는 거듭남의 극점(완성)일뿐 아니라 거듭나는 과정을 총망라한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 천국 결혼보다 더 거룩한 것, 더 순수하다는 것, 더 깨끗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해서 주님이 그분의 교회와 결합되는 것이 결혼에 비유되고 있다.(계시록 21:2) 참으로 주님이 장치해두신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진정한 결혼은 이 천국적인 결혼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마태 19:4-6). 그러므로 일남일녀의 결혼도 천국 결혼처럼 동등하게 거룩하고, 순수하며 깨끗하다. 그럼에도 이제 관찰해 보아야 하는 것은 거듭나는 동안에 두 가지 의미에 있는 결혼과 연결되는 것 조차에서도 불순함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앞에 전개되는 영적 시리즈는 이것이 주제가 된다.
어떻게 신성한 진리의 씨가 그 진리에 맞는 선과 결합하지 못함으로 해서 더럽혀지고 말까? 주님에게서 나오는 신성한 진리가 순수하듯 우리 안에 있는 선에서 나오는 진리도 순수하다. 단지 그것이 우리의 거듭나는 인품을 구성하는 한도만큼에서 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 존재는 타락된 개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래서 위 두 가지 개성은 인간 속의 나 자신(proprium) 또는 주님과 구별되는 인간의 복합 생명을 구성한다. 인간이 태어날 때 가지고 있는 게 악밖에 없고 따라서 잘못된 것밖에 없는 고로 어떻게 악으로부터 온 거짓이 우리 안에 있는 선으로부터 온 진리를 오염시킬까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모든 불순함의 근원이 되고 있다는 것까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결혼에 관련하여 천사들이 순수하듯 우리도 순수해지길 원한다면 우리는 내적, 외적으로 거듭나야만 한다는 것, 즉 이해함과 의지 양면이 거듭나야 한다. 이것이 우리 앞에 있는 가르침의 실체요 총 합산이다. 여기에 덧 붙여져야 하는 게 있다. 이 전체적 측면에서의 순수해짐은 마치 우리 자신 스스로 이룩해낸 듯 모두 함께 결과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어느 누구도 거듭나지 않으면 진정한 천국적인 결혼 수준의 사랑 안에 있을 수 없고, 그가 자신을 위해 주시는 주님의 위대한 사랑을 받았으되 다시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거듭날 수도 없고 그분과의 결합이 영원까지 이어질 수도 없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그분을 사랑한다. 그 이유는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본 장의 나머지 구절들에 있는 세부 사항에 대해서 일일이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 이유는 대부분 이미 상술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필요한 것은 월경이 있는 동안(the time of her impurity or separation) 하혈(issue)이 있는 것과 월경 때가 아니거나 월경 기간을 넘었는데도 하혈이 있는 것 사이의 차이점이다. 이로부터 배우는 바, 혹간 어떤 이들은 전혀 거듭나지 못할는지도 모른다는 것, 혹 어떤 다른 이들의 경우 거듭나는 과정이 실패될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에 첨가해서 상기해둘 서술은, “천국에 있는 모든 사회에 대칭되는 사회가 지옥에 있다. 또한 양쪽 사회는 무수할 정도로 많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다각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천국을 그저 구한다(seek)고 해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천국은 악과 싸워 승리하는 사람만이 가는 곳이다. 주님의 이 말씀을 상기해 보라. “사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있는 힘을 다하여라” (누가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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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6장

성경: 레위기 1장
1. 아론의 두 아들들이 주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 죽었을 때, 그들이 죽은 후,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2.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하셨다, 아론 네 형제에게 이야기하라, 즉 그는 궤 위에 있는 자비석(mercy-seat) 앞, 베일(veil) 안쪽 거룩한 장소 안으로 어느 때이든 오지 말라. 그 이유는 내가 자비석 위 구름 안에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3. 아론은 거룩한 장소 안으로 오너라. 즉 죄 바침을 위해 어린 수소, 그리고 태워 바침을 위한 수양.
4. 그는 거룩한 아마포 상의를 입어라, 그리고 그는 아마포 반바지를 그의 살에 걸쳐라, 그리고 아마포 띠를 가지고 띠를 맬 것이다, 그리고 아마포 관을 가지고 그는 차려입어라. 이것들은 거룩한 옷들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 살을 물로 목욕하라, 그리고 그것들을 입어라.
5.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으로부터 죄 바침을 위해 수염소 두 마리, 그리고 태워 바침을 위한 수양 한 마리를 가져 오라.
6. 그리고 아론은 죄 바침의 수소를 증정하라, 이것은 자신을 위해서이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그리고 그의 가문을 위해 보상 받게 한다.
7. 그리고 그는 염소 두 마리를 가져 오라, 그리고 그것들을 만남의 천막의 문에서 주님 앞에 두어라.
8. 그리고 아론은 염소 두 마리 위에 제비를 던져라. 하나는 주님을 위해,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사셀(Azazel)을 위해.
9. 그리고 아론은 제비가 주님을 위해 떨어진 염소를 증정하라, 그리고 그것을 죄 바침을 위해 바쳐라.
10. 그러나 아사셀을 위해 제비가 떨어진 염소는 주님 앞에 산채로 놓아두어 그것을 위한 보상 을 받게 하고, 아사셀을 위해 광야로 그것을 떠나 보내라.
11. 그리고 아론은 죄 바침의 수소를 증정하라, 이는 자신을 위해서이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자기 가문을 위해 보상 받게 하라, 그리고 자신을 위해 있는 죄 바침의 수소를 죽여라.
12. 그리고 그는 주님 앞으로부터 불 붙은 숯을 가득 채운 향로를 가져 오라, 그리고 그의 손에 두드려 작아진 달콤한 향을 가득 채우고, 그리고 그것을 베일 안쪽으로 가져 가라.
13. 그리고 그는 주님 앞 불 위에 향을 놓아라, 하여, 향의 구름이 그가 죽지 않게 증거(궤) 위에 있는 자비석을 덮을 것이다.
14. 그리고 그는 수소의 피를 가져 와라, 그리고 그것을 동쪽 자비석 위에 그의 손가락으로 뿌려라. 그리고 자비석 앞에서 그는 자기 손가락으로 피를 일곱 번 뿌려라.
15. 그 다음 그는 죄 바침의 염소를 죽여라, 이는 백성을 위해서이다, 그리고 그것의 피를 베일 안쪽으로 가져 와라, 그리고 그가 수소의 피를 가지고 실시한 그대로 그것의 피를 가지고 실시한다, 그리고 그것을 자비석 위에, 그리고 자비석 앞에 뿌릴 것이다.
16. 그리고 그는 거룩한 장소를 위하여 보상(atonement)을 받게 하라,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의 불결함 때문, 그리고 그들의 범칙들, 모든 그들의 죄들을 아울러서이기 까지 때문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는 그들의 불결함 한가운데에서 그들과 함께 거주하는 만남의 천막을 위해서도 그렇게 실시하라.
17. 그리고 그가 거룩한 장소에서 보상을 받게 하려고 들어가고, 그가 나올 때까지 만남의 천막 안에 사람이 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그의 집안 식구들을 위해,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회중을 위해 보상을 받게 하라.
18. 그리고 그는 주님 앞에 있는 제단으로 나가라, 그리고 그것을 위해 보상을 받게 하라, 즉 수소의 피를 가져 와라, 그리고 염소의 피를 가져 와라, 그리고 그것을 빙둘러 있는 제단의 뿔들 위에 발라라.
19. 그리고 그는 자기 손가락을 가지고 일곱 번 그것 위에 피를 뿌려라, 그리고 그것이 이스라엘의 자손들의 불결함으로부터 깨끗해지게(hallow) 하라.
20. 그리고 그가 거룩한 장소, 그리고 만남의 천막, 그리고 제단을 위해 보상 받게 함을 끝냈을 때, 그는 살아있는 염소를 제출한다.
21. 그리고 아론은 그의 손 모두를 살아있는 염소의 머리에 놓아라, 그리고 그것 위에 이스라엘의 모든 불법들, 그리고 그들의 모든 범칙들, 그들의 죄들까지 고백하라. 그리고 그는 그것들을 염소의 머리 위에 놓아라, 그리고 준비가 된 사람의 손에 의해 광야 안으로 그것을 떠나보내라.
22. 그리고 염소는 고독한 토지 쪽으로 자기 위에서 그들의 모든 불법들을 나를 것이다.
23. 그리고 아론은 만남의 천막 안으로 가라, 그리고 그가 거룩한 장소 안으로 갔을 때, 그가 입은 것, 즉 아마포 옷들을 벗어라, 그리고 거기에 그것들을 남기고 가라.
24. 그리고 그는 거룩한 장소에서 물로 자기 살을 목욕하라, 그리고 그의 옷들을 입어라, 그리고 나간다, 그리고 자기의 태워 바침의 제물과 백성들의 태워 바침의 제물을 바쳐라, 그리고 자신과 백성을 위해 보상을 받게 할 것이다.
25. 그리고 죄 바침의 제물의 지방을 그는 제단 위에서 태울 것이다.
26. 그리고 염소를 아사셀에게 보낸 사람은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물로 자기 살을 목욕하라, 그리고 후에 그는 진영 안으로 올 것이다.
27. 그리고 죄 바침의 제물의 수소, 그리고 죄 바침의 제물의 염소, 이것들의 피는 거룩한 장소에서 보상을 받기 위해 가져와지고, 진영 밖으로 운반하라. 그리고 그들은 그것들의 가죽들, 그리고 그것들의 고기, 그리고 그것들의 똥을 불에서 태워라.
28. 그리고 그것들을 태운 사람은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자기 살을 물로 목욕하라, 그리고 그 후에 그는 진영으로 와라.
29. 그리고 이것은 너희에게 영원한 법령이다. 즉 일곱 째 달에, 그 달의 열 번째 날에, 너희는 너희 혼들을 괴롭게 하라, 그리고 본토박이이든, 너희 사이에 체류하는 외국인이든 아무 일도 하지 말라.
30. 이 날에 너희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 너희를 위해 보상을 받게 할 것이다. 모든 너희의 죄들로부터 너희는 주님 앞에서 깨끗해질 것이다.
31. 이것은 너희에게 엄숙한 쉼의 안식일이다, 그리고 너희는 너희 혼들을 괴롭혀라. 이것은 영원히 법령이다.
32. 그리고 기름부워지고, 자기 아버지 대신에 성직자이도록 성직에 임명되는 성직자가 보상을 받게 하라, 그리고 아마포 옷을 입어라, 거룩한 옷들 까지 입어라.
33. 그리고 그는 거룩한 성소를 위하여 보상을 받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만남의 천막을 위하여, 제단을 위하여 보상을 받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성직자들을 위하여 그리고 집회의 모든 백성을 위하여 보상을 받게 할 것이다.
34. 그리고 일 년에 한번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위해 보상을 받게 하는 것은 너희에게 끝없는 법령이다. 그리고 그는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셨던 대로 실시했다.

영적 의미 요약

* 외적일 뿐인 예배가 인간에 의해 거절될 때 가장 깊은 내면의 선이 명백히 나타남에 관하여, 즉 이 선은 외적, 내적으로 악의 제거를 수단으로, 주님께 헌신함으로, 진리의 힘을 빌려서 명백히 나타남에 관하여 주님께서 밝히 알게 해주심이 있다, 1-4절.
* 또한 거기에는 악의 제거가 외적으로 뿐만 아니라 내적으로 있되 주님을 인정함을 수단으로, 선택의 자유를 수단으로, 예배를 수단으로, 악의 거절을 수단으로 있어진다, 5-10절.
* 이 깨끗해짐의 전 과정이 더 세밀하게 기술되고 있다, 11-22절.
* 그럼 다음 모든 진리가 주님으로부터 있음을 진실로 인정함이,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예배하는 상태가, 인간의 가장 높은 선은 주님으로부터 임을 고백함이, 그리고 계속 깨끗해져 감은 천국적 상태를 실감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이 뒤따르고 있다, 23-28절.
* 마지막으로 거듭나는 과정과 깨끗해짐의 거룩한 과정의 결과로 천국적 평화와 쉼의 충만된 즐거움이 있게 되는데 영원까지 있게 된다, 29-34절.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아론의 두 아들들이 주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 죽었을 때, 그들이 죽은 후,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영적 의미

내적 예배가 없고 세상과 자아로부터 온 외적 예배는 위선적이요 모독된 예배인 고로 폐지될 때 주님으로부터 밝히 알게 하시는 사항이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이란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밝히 알게 하심(계시)을; 아론의 두 아들이 죽었음이란 내적 예배가 없는 자아와 세상 사랑으로부터 온 외적 예배의 폐지를; 이기적 사랑만으로 주님 앞에 가까이 감이란 위선적이고 모독하는 예배를 드리는 것, 10장의 경우 이상한 불을 바치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2001, 2951, 7010, 7699, 7738, 934, 2447, 5149, 10장 2절, 3934-3, 10287)

2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하셨다, 아론 네 형제에게 이야기하라, 즉 그는 궤 위에 있는 자비석(mercy-seat) 앞, 베일(veil) 안쪽 거룩한 장소 안으로 어느 때이든 오지 말라. 그 이유는 내가 자비석 위 구름 안에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이 밝히 알게 하심(계시)은 외적일 뿐만이 아닌 내적인 삶이기도 한 바 이렇게 가르치신다. 즉 신성한 선으로부터의 주님을 예배할 때 인간은 교회의 모든 상태에서 천적인 가장 깊은 선을 지각하거나 실감할 수 없다는 것, 이 선은 중간 수준의 선에 의해 영적 선과 구별되어진다는 것, 이 선 안에서 주님은 나타나시어 모든 예배를 듣고 받으신다는 것, 그리고 각 심정이 신성한 법칙을 받는 것을 수단으로 인간에게서 악을 제거하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위와 같이 하시지 않으면 인간이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희미한 상태에도 그분은 자신을 밝히 보여 주시는데 이는 신성한 자비 덕분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심이란 진리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계시함을; 모세가 아론에게 말함은 선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계시함을; 이 둘을 관계적 측면에서 볼 경우, 전자는 외적 계시를, 후자는 내적 계시를 말한다. 너의 형 아론이란 진리에 대한 선의 관계를, 보통 때는 성소 베일 안쪽 궤 위에 있는 자비석 앞으로 나가지 말라란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에서 인간은 교회의 어느 상태에서도 천적인 가장 깊은 선을 지각 할 수도 없고 실감 할 수도 없다는 것, 이는 중간 매체의 선을 수단으로 영적 선과 구별된다는 것을; 자비석 앞이란 주님께서 모든 예배를 듣고 받으시기 위해 계신 장소요, 거기서 주님은 인간의 악을 제거하신다는 것을; 궤 위란 신성한 법을 심정에서 받는 것을, 죽지 않도록이란 가까이 오는 그가 멸해지기 때문임을; 자비석 위에서 구름 가운데 나타나실 것이란 주님께서는 그분 자신을 인간의 희미한 상태에서도 밝히시는데 이는 신성한 자비로부터 발생함을 말한다.(7010, 9946, 6998, 5121, 4267, 6998, 6901, 2212, 9670, 9506, 10269, 9485, 9818, 7699, 7738, 8106, 9506)

3절. 아론은 거룩한 장소 안으로 오너라. 즉 죄 바침을 위해 어린 수소, 그리고 태워 바침을 위한 수양.

영적 의미

다음 방법들은 선 가운데 있는 인간, 그리고 신성이 되심 가운데 계신 주님을 가장 깊은 삶에로 인도 해준다. 즉 인간은 외적 인간 또는 자연적 수준 안에 있는 악을, 더불어 내적 인간 또는 영적 수준에 있는 악을 순진의 선을 수단으로 깨끗해지게 해야만 한다. 그리고 영적 수준에서 그는 사랑의 선으로부터 완전히 헌신함으로 주님을 예배해야만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의 성소에 들어감이란 다음 방법들로 해서 인간은 선 가운데, 주님 자신은 신성이 되심 가운데서 가장 깊은 삶에로 인도된다는 것을; 어린 수소는 죄 바침의 제물로, 수양 한 마리는 태워 바침의 제물로란 외적 인간 또는 자연적 수준 안에 있는 악을 깨끗하게 함과 순진의 선을 수단으로 영적 수준 또는 내적 인간 안에 있는 악을 깨끗하게 함을; 태워 바침의 제물로 수양을 바침이란 사랑의 선으로 완전히 헌신함도 뜻한다.(9946, 9670, 9670-6, 9990, 9991, 10053)

4절. 그는 거룩한 아마포 상의를 입어라, 그리고 그는 아마포 반바지를 그의 살에 걸쳐라, 그리고 아마포 띠를 가지고 띠를 맬 것이다, 그리고 아마포 관을 가지고 그는 차려입어라. 이것들은 거룩한 옷들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 살을 물로 목욕하라, 그리고 그것들을 입어라.

영적 의미

또한 위와 같이 깨끗해짐은 선으로부터의 진리로도 결과되는데, 즉 외면에 있는 자연 평면 속의 진리들을 수단으로, 진리와 선이 외적으로 결합하는 교리에 의해, 진리와 선이 내적으로 결합하여 서로에게 공통되는 묶임에 의해, 가장 깊은 진리의 총명에 의해, 결과된다. 그 이유는 인간이 생활에 외적 진리들을 적용함으로 회개의 일을 행할 때 위 사항을 수단으로 인간은 순수해지고 거룩해지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명명되는 옷들은 위와 같이 깨끗해짐이 선으로부터의 진리로 결과됨을 나타내고 있다. 거룩한 아마포 상의(coat)는 자연적 인간 외면에 있는 진리를; 맨살에 아마포 잠방이를 걸침이란 진리가 선과 외적으로 결합함에 관한 교리를; 아마포로 만든 관대를 띰이란 진리가 선과 내적으로 결합하도록 해주는 서로 공통되는 묶음을; 아마포로 만든 사모란 아주 깊은 진리의 총명함을; 이것이 거룩한 옷이다 함은 선과 결합된 진리들 또는 선을 위해 잡고 있는 진리들을; 물로 살을 씻고 이 옷을 입으라 함은 생활에 외적 진리를 응용함으로 회개의 일을 행함을 말한다. (9670-6, 7601-5, 9960-18, 9961, 9828, 9827, 2146, 3147, 8914)

5절.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으로부터 죄 바침을 위해 수염소 두 마리, 그리고 태워 바침을 위한 수양 한 마리를 가져 오라.

영적 의미

더구나 외적 인간은 악이 제거되게 하는 신앙의 진리를 적용함으로, 그리고 선행으로부터 주님께 헌신함으로 거짓에서 깨끗해져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백성에게 죄 바침의 제물로 수염소 두 마리와 태워 바침의 제물로 수양 한 마리를 가져오라 함이란 외적 인간은 신앙의 진리들을 응용함으로 거짓에서 깨끗해져 이를 통해 악이 제거되고 선행으로부터 주님께 헌신해야 함을 말한다. (9670-6, 4169, 725, 10042, 10053)

6절. 그리고 아론은 죄 바침의 수소를 증정하라, 이것은 자신을 위해서이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그리고 그의 가문을 위해 보상 받게 한다.

영적 의미

그리고 자연적 수준 속의 내면도 주님을 인정함을 통해 악이 제거됨으로 해서 깨끗해져야 하고, 그러므로 해서 자연적 인간과 영적 인간의 재회가 선과 진리 양면에서 결과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회중에 관련시켜 비교해 볼 때 아론은 외적 인간에 관련되기 보다는 내적 인간에 속한 것을, 그 이유가 아론은 선을, 회중은 진리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수소란 자연적 인간 안에 있는 순진의 선을; 죄 바침의 제물이란 순진이 이 선을 통해 악이 제거되도록 예배함을; 아론이 자신과 가문을 위해 보상을 받게 함이란 선과 진리 양쪽에 관련되는 바 자연적 인간이 영적 인간과 재회함을, 그 이유는 아론 자신은 선을, 그의 아들들은 가문을 구성하는 바 진리를 말하기 때문이다. (9946, 4547-21, 9990, 3400, 9946)

7절. 그리고 그는 염소 두 마리를 가져 오라, 그리고 그것들을 만남의 천막의 문에서 주님 앞에 두어라.

영적 의미

이러면 신앙의 진리가 주님으로부터 있다는 것과 그분께서는 천국을 통해 역사하신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이 염소 두 마리를 가져다가 만남의 천막 문간 주님 앞에 세워놓음이란 신앙의 진리들이 주님으로부터 임을 인정하고 그분의 역사가 천국을 통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9670-6, 4169, 725, 2456, 3540-3)

8절. 그리고 아론은 염소 두 마리 위에 제비를 던져라. 하나는 주님을 위해,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사셀(Azazel)을 위해.

영적 의미

신성한 섭리에 의해 인간은 선과 악, 진리와 거짓 중 하나를 자신을 위해 선택해야만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제비뽑음이 아론에 의해 말해질 경우, 이는 신성한 섭리에 의존함을; 제비 하나는 주님께란 인간이 선을 자유롭게 선택함을; 제비 하나를 아사셀에게란 아사셀이 “추방, dismissal”이란 뜻인 바, 이는 인간이 악을 제 스스로 거절함을 뜻한다. “인간은 선과 악 중 하나, 또는 진리와 거짓 중 하나를 자신을 위해 선택해야만 한다”라고 말해진다. 즉 선택을 자유롭게 행사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모세의 지시에 아론의 순종이 포함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신성한 섭리에 의존함이 제비를 뽑는데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삶의 모든 행동 속에서 선을 원리로 해서 움직일 경우 그는 신성한 섭리에 의존하는 것이 된다 (시편 37:3참조). (9946, 3239, 9093-5, 2001, 10023)

9절. 그리고 아론은 제비가 주님을 위해 떨어진 염소를 증정하라, 그리고 그것을 죄 바침을 위해 바쳐라.

영적 의미

그런 다음 그는 선을 원리로 해서 악이 제거되고 거절될 수 있도록 주님을 예배해야만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이 주님의 몫으로 떨어진 염소를 끌어다가 죄 바침의 제물로 바침이란 악이 거절되고 제거되기 위해 인간은 선을 원리로 해서 주님을 예배해야만 한다는 것을 말한다. (9946, 9670-6, 4169, 725, 3400)

10절. 그러나 아사셀을 위해 제비가 떨어진 염소는 주님 앞에 산채로 놓아두어 그것을 위한 보상을 받게 하고, 아사셀을 위해 광야로 그것을 떠나 보내라.

영적 의미

그리고 반드시 인정해야 할 것이 있다. 인간은 자신만으로는 악에서 온 거짓 안에 실지로 있다는 것,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이 재회하려면 위의 거짓을 완전히 거절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사셀의 몫으로 뽑힌 수염소는 산채로 여호와 앞에 세워 두었다가 죄 바침의 제물로 삼아 광야에 있는 아사셀에게 보내라 함은 인간 스스로부터는 악에서 나오는 거짓 안에 실지로 있는 바, 이런 거짓을 완전히 거절함으로 인간이 내적 인간과 재회할 수 있으려면 주님 앞에서 자신의 참 모습이 어떠한지 인정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9670-6, 10042II)

11절. 그리고 아론은 죄 바침의 수소를 증정하라, 이는 자신을 위해서이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자기 가문을 위해 보상 받게 하라, 그리고 자신을 위해 있는 죄 바침의 수소를 죽여라.

영적 의미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선 가운데 있는 그는 자기 속의 선이 주님으로부터임을, 그래서 악이 제거되고 자연적 인간과의 재회도 있어 자기 속의 선이 내, 외적으로도 결과된다는 것, 이러므로 해서 주님을 예배할 준비도 갖추어진다는 것을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이 자신을 위한 죄 바침의 제물로 수소를 증정함이란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선 가운데 있는 사람은 자신의 선이 주님으로부터임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을; 수소란 자연적 인간 안에 있는 순진의 선을; 죄 바침의 제물이란 이 순진의 선을 통해 악의 제거가 있도록 예배함을; 아론이 자신과 자기 집안을 위해 보상을 만듦이란 자연적 인간이 영적 인간과 재회하되 선과 진리가 내, 외적으로 있게 됨을 말하는데 그 이유가 아론은 선을, 그의 집안을 구성하는 실지 인물이 그의 아들이므로 진리를 의미해서이다. 자신을 위해 죄 바침의 제물인 수소를 죽임이란 주님에 대한 예배를 준비함을 말한다. 세심한 독자의 경우 6절의 구절이 11절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게 될 줄로 본다. 더불어 본 장의 10절까지는 전체에 대한 서론이자 요약이다는 것도 짐작할 것이다. 그 이유는 전체의 주제가 악과 거짓을 항구적으로 제거함에 관하여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적 의미에서의 요약은 위 사항이 주님에 의해 설비되어 있다는 것, 내적 인간, 이를 보다 엄격히 말한다면 자연적 인간의 내적 부분은 거듭남이 개시될 때 악에서의 해방이 잠재적으로 있다는 것, 그렇게 해서 인간에게 위 사항이 보존 될 경우 그는 악으로부터의 시험이 함축하는 만큼에서 충분히 구원될 것임을, 이 때 사람에게는 선이 우세해지는 상태에로 진입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염두해 둘 사항은 깨끗해짐은 천국 자체 안에서도 역시 항구적으로 존재한다는 것, 따라서 계속되는 천국 삶에서도 거듭남의 진보는 영구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에 관해서이다. (5619, 9990, 3400, 9946, 4574-4, 10024, 10211)

12절. 그리고 그는 주님 앞으로부터 불 붙은 숯을 가득 채운 향로를 가져 오라, 그리고 그의 손에 두드려 작아진 달콤한 향을 가득 채우고, 그리고 그것을 베일 안쪽으로 가져 가라.

영적 의미

주님으로부터 선을, 말씀으로부터 진리를 받는 것, 이것이 예배에서 감사를 나타냄이요 그가 받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이것은 선 밑에 조심스럽게 구분시켜 배열된다. 그러면 그는 가장 깊은 선에 대한 지각을 가지게 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 앞 제단에서 숯불을 향로에 담는다란 순수한 예배에서 주님으로부터 선을 받는 것, 이 선이 진리 안에서 체현되고 진리라는 저장소에 담겨 있다는 것을; 향이란 선으로부터 예배하는 가운데 감사히 받게 되는 말씀으로부터 온 진리를; 향기 좋은 향가루란 선 밑에 진리를 조심스럽게 구별하여 배열함을; 베일 안으로 향가루를 가져감이란 이로부터 가장 깊은 내면의 선을 지각함을 말한다. (5531, 934, 9714, 9475, 5620, 10303, 9670-6)

13절. 그리고 그는 주님 앞 불 위에 향을 놓아라, 하여, 향의 구름이 그가 죽지 않게 증거(궤) 위에 있는 자비석을 덮을 것이다.

영적 의미
그 다음 역시 신성한 선으로부터 진리와 선의 결합이 거행될 것인 바, 신성한 사랑과 자비가 예배자의 상태에 따라 외관에 희미하게 드러나는데, 이는 신성한 사랑의 명백함이 너무 강할 경우 영적 죽음이 있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서 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은 신성한 선을, 불 위에 있는 향이란 진리가 선과 결합함을; 향의 연기(cloud)로 자비석을 덮음이란 신성한 사랑과 자비가 예배자의 상태에 따라 외관상 희미하게 드러냄을; 증거(궤) 위에 있는 자비석이란 신성한 사랑이 말씀 속의 진리로 흐름을; 죽지 않도록 이란 신성한 사랑이 너무 많이 모습을 나타냄으로 영적 죽음이 초래되지 않도록 이란 뜻이다. (9946, 9475, 934, 9670-6, 9506, 9503, 7699, 7738)

14절. 그리고 그는 수소의 피를 가져 와라, 그리고 그것을 동쪽 자비석 위에 그의 손가락으로 뿌려라. 그리고 자비석 앞에서 그는 자기 손가락으로 피를 일곱 번 뿌려라.

영적 의미

그러면 깨끗해진 자연적 선으로부터 온 진리가 신성한 선으로부터 나오는 신성한 진리와 결합될 것이다. 이것은 거듭남에서 주님으로부터 획득한 거룩한 상태로부터 자연적 인간 안에서 능력을 가지고 이루어질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수소의 피란 깨끗해진 자연적 선으로부터의 진리를, 동쪽에 있는 자비석 위란 신성한 선으로부터 진행되는 신성한 진리와 더불어를, 손가락이란 힘을, 이것은 자연적 인간 안에서 말해지는 사항인데, 그 이유는 수소의 피와 관련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비석 앞에 일곱 번 뿌림이란 거룩한 상태가 주님에게서 오는 거듭남으로 획득됨을 말한다.(창세기 1장 참조), (10047, 10026, 9506, 9503, 1250, 1430, 716)

15절. 그 다음 그는 죄 바침의 염소를 죽여라, 이는 백성을 위해서이다, 그리고 그것의 피를 베일 안쪽으로 가져 와라, 그리고 그가 수소의 피를 가지고 실시한 그대로 그것의 피를 가지고 실시한다, 그리고 그것을 자비석 위에, 그리고 자비석 앞에 뿌릴 것이다.

영적 의미

또한 자연적 인간의 바깥부분, 또는 신앙의 선 안에 있는 이들도 똑같은 방식으로 준비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이 선 속의 진리도 천적 선같이 주님으로부터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서도 내적, 외적인 결합이 있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가 백성을 위한 죄 바침의 제물인 수염소를 죽임은 자연적 인간의 외적인 것 또는 신앙의 선 가운데 있는 사람은 위와 같은 방법으로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 베일 안으로 피를 가져감이란 이 선의 진리도 천국 선을 수단으로 주님으로부터 있게 되어 인간의 상태에 적응됨을; 자비석 위와 자비석 앞에 피를 뿌림은 위와 같되 내적, 외적으로 결합되어야 함을 말한다.(10024, 9670-6, 4169, 725, 4574-4, 10047, 9506)

16절. 그리고 그는 거룩한 장소를 위하여 보상(atonement)을 받게 하라,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의 불결함 때문, 그리고 그들의 범칙들, 모든 그들의 죄들을 아울러서 이기까지 때문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는 그들의 불결함 한 가운데에서 그들과 함께 거주하는 만남의 천막을 위해서도 그렇게 실시하라.

영적 의미

참으로, 천적 선이라 해도, 또는 이 선 안에 있는 이들이라 해도 반드시 신성한 선과 재회를 이루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인간 그 스스로는 내면 이든 외면 이든 모두 불순하고, 악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영적 선, 또는 그 선 안에 있는 이들, 자연적 선 또는 그 선 안에 있는 이들도 재회해야 한다. 이는 악뿐인 자신을 스스로 인정함을 수단으로 주님께서 가장 깊은 것들로부터 가장 표면의 것들에까지 이르러 인간과 현존하실 수 있게 하시기 위해서 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소를 위해 보상을 만듦이란 참으로 천적 선 또는 천적 선 안에 있는 이들 조차도 신성한 선과 재회하여야 함을; 이스라엘 백성의 불결함과 잘못들 그리고 지은 죄 때문이란 인간 자체로서는 외면이나 내면 모두에서 불순하고 악밖에 없기 때문임을; 불결해 있는 만남의 천막을 위해 이를 행해야 한다란 인간에게는 악밖에 없다는 자기 몫을 인정함으로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의 것에서 가장 표면의 것에 이르러 주님이 함께 하시도록 하기 위해 영적 선 안에 있는 이들, 또는 자연적 선 안에 있는 이들도 위의 천적 선에 있는 사람들 같이 행해져야 한다는 뜻이다. (3210, 10042ii, 10130. 9156, 3530-3, 10153, 10130)

17절. 그리고 그가 거룩한 장소에서 보상을 받게 하려고 들어가고, 그가 나올 때까지 만남의 천막 안에 사람이 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그의 집안 식구들을 위해,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회중을 위해 보상을 받게 하라.

영적 의미

그럼에도 진실로 자기의 생명이 재회하기 위해 가장 깊은 선으로부터 인간의 예배도 마치 자기 스스로 예배드리는 것 같이 전적으로 있어지되 거기에는 악이나 거짓이 가장 깊은 선과, 내면의 선과, 가장 바깥쪽의 선과의 어떤 혼합도 있어져서는 안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이 지성소에 들어갈 때 아무도 만남의 천막 안에 있지 말라란 가장 깊은 선으로부터 오는 인간에 의한 주님의 예배는 어떤 악과 거짓의 섞임 없이 자신 스스로 예배드리듯 있어져야 한다는 것을; 자기와 자기 집안과 이스라엘에 온 회중을 위해 보상을 만듦이란 가장 안쪽의 선, 내면의 선, 가장 바깥의 선에 관하여 인간의 생명과 주님의 생명이 재회함을 말한다.(9946, 3210, 7424, 10042ii,9946, 4574-4)

18절. 그리고 그는 주님 앞에 있는 제단으로 나가라, 그리고 그것을 위해 보상을 받게 하라, 즉 수소의 피를 가져 와라, 그리고 염소의 피를 가져 와라, 그리고 그것을 빙둘러 있는 제단의 뿔들 위에 발라라.

영적 의미
위 결과로 해서 신성한 선으로부터 온 천적 선이 인간의 최말단에까지 흐를 것이고, 거룩한 예배에서 진리와 선의 결합이 서로 간에 그리고 상호적으로 있으면서 말씀의 글자적 의미 속의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충만되어 능력을 가지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이 주님 앞에 있는 제단으로 나감이란 신성한 선으로부터 온 천적 선이 인간의 최말단에까지 흐르게 될 것임을, 보상을 만듦이란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재회함을, 수소의 피, 염소의 피를 가져오고 제단 뿔들 위에 두루 바름이란 거룩한 예배에서 진리가 상호 간에 그리고 쌍방 간에 결과될 것을 말한다. 위에서 “말씀의 글자 의미에 있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충만함과 능력…”이라고 말한 이유는 제단의 네 귀퉁이에 각각 뿔이 있기 때문인데 이는 완성을 의미하고 신성한 진리는 말씀의 글자 의미 안에서 완성과 충만을 이루기 때문이다. (9946, 5337, 10001, 10242, 10042ii, 제 14,15절, 10027, 9720, 6943, 9349)

19절. 그리고 그는 자기 손가락을 가지고 일곱 번 그것 위에 피를 뿌려라, 그리고 그것이 이스라엘의 자손들의 불결함으로부터 깨끗해지게(hallow) 하라.

영적 의미

이 사항들은 거듭남의 거룩한 상태에서 인간 각자의 상태에 의해, 깨끗해짐과 예배함에 의해 인간의 타락한 상태에 있는 모든 불순함에서 교인을 해방되도록 하는 능력의 실시가 성취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손가락으로 제단에 피를 일곱 번 뿌려 이스라엘 백성의 불결함을 벗겨 깨끗하게 함이란, 이는 거듭나는 거룩한 상태 안에서 깨끗해짐과 예배를 수단으로 각자 상태에 따라 능력을 발휘함을 통해 성취되어야 할 것인 바, 이로부터 교회 속의 사람은 타락하려드는 상태에 기우는 것까지 포함된 불순함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말이다. (10047, 제14,15절, 10027, 716, 창세기 1장, 4545, 10130)

20절. 그리고 그가 거룩한 장소, 그리고 만남의 천막, 그리고 제단을 위해 보상 받게 함을 끝냈을 때, 그는 살아있는 염소를 제출한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이제 거듭남의 상태가 내적 인간, 내면의 것들, 그리고 외적 인간이 주님과 재회함으로 충분히 완성될 때, 자신의 자연적 인간 안에는 지옥에서 온 악의 거짓으로 인해 얼마나 악으로 가득 차 있었던 가를 주님 앞에서 인정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소와 만남의 천막과 제단을 깨끗하게 하는 예식을 끝내고 살려둔 염소를 끌고 옴이란 거듭나는 상태가 그 사람의 내적 인간, 내면의 것, 외적 인간의 모든 것이 주님과 재회함으로 충분히 완성되어질 때, 그 사람은 주님 앞에서 자기 속에 악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지옥으로부터 와서 자연적 인간 안에 든 악에서 온 거짓의 유입에 의한 것임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10042ii, 3210, 3540-3, 10001, 9670-6)

21절. 그리고 아론은 그의 손 모두를 살아있는 염소의 머리에 놓아라, 그리고 그것 위에 이스라엘의 모든 불법들, 그리고 그들의 모든 범칙들, 그들의 죄들까지 고백하라. 그리고 그는 그것들을 염소의 머리 위에 놓아라, 그리고 준비가 된 사람의 손에 의해 광야 안으로 그것을 떠나보내라.

영적 의미

그리고 가장 깊은 선의 상태로부터, 의지와 이해함이 모든 능력을 다해서, 그는 이렇게 지각하여 고백한다. 전체적으로나 모든 각 부분들에서 신앙의 선에 어긋나던 점을, 신앙의 진리에 어긋났던 점을, 거룩한 선행 자체에 어긋났던 점이 있어 자기는 죄를 범했다는 것, 그렇지만 주님에 의해서라면 악을 거절 할 수 있다는 것, 그 악을 신성한 인간의 능력을 통해 자신에게서 분리되게 해서 그 악의 근원인 지옥에로 던질 수 있다 라고 고백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이 살려둔 염소 머리 위에 두 손을 얹는다란 인간이 자기 속 가장 깊은 내면에 있는 선으로부터 의지와 이해함에 있는 모든 능력을 동원해 행동할 것임을; 이스라엘 백성이 저지른 온갖 잘못과 일부러 거역한 온갖 죄악을 아론이 고백함이란 전체 그리고 세부 사항에 관하여, 신앙 속의 선을 위반한 점들에 관하여, 신앙 속의 진리에 위반한 것들, 거룩한 선행 자체에 위반한 것 등등에 관해서 자신이 죄가 있음을 지각하고 고백하는 것을; 그 모든 죄를 염소 머리에 씌움이란 고백된 그 악들을 거절할 수 있는 힘과 자신이 그것들에서 분리될 수 있게 되는 것은 오로지 주님으로부터 온 능력만에 의해서 임을; 염소를 광야로 내어 보냄이란 지옥을 거절함을; 준비가 된 사람의 손으로란 신성한 인간의 능력에 의해서 임을, 그 이유가 손은 능력을 뜻하고, 그가 악과 잘못들을 거절할 수 있게 하는 모든 능력은 신성한 인간으로부터 진행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님은 인간을 구원하실 준비가 언제나 되어 계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10023, 9946, 8066, 10061-2, 9156, 878, 6280-i)

22절. 그리고 염소는 고독한 토지 쪽으로 자기 위에서 그들의 모든 불법들을 나를 것이다.

영적 의미

거짓과 악이 분리되는 일은 주님께서 구속의 일을 통해 행하실 것이다. 그리고 거짓과 악은 선과 진리가 없는 이들과 더불어서만 남아 있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염소가 그들의 죄를 모두 짊어짐이란 위 사항은 주님께서 구속의 역사를 통해 이루어질 것임을; 염소가 고독한 토지(황무지)로 가게 놓아둠이란 악과 함께 있는 거짓의 제거를; 이 구절에 있는 고독한 토지(solitary land)는 악을, 황무지(wilderness)란 거짓을 말한다. 그 반면 땅(land) 또는 황무지가 고독한 땅이라 불릴 경우, 이는 악과 거짓이 선과 진리로부터 분리된 채 남아있는 상태를 말한다. (9937-8, 683)

23절. 그리고 아론은 만남의 천막 안으로 가라, 그리고 그가 거룩한 장소 안으로 갔을 때, 그가 입은 것, 즉 아마포 옷들을 벗어라, 그리고 거기에 그것들을 남기고 가라.

영적 의미

그런 다음 선 가운데 있는 이들은 천국 삶의 즐거움에 거하게 되고, 거듭남으로 결과되는 모든 진리는 주님으로부터 왔을 뿐 자신으로부터 온 게 아니라는 것, 비록 자신 스스로 가지고 있어 행한 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이 만남의 천막으로 들어옴이란 선 가운데 있는 사람은 천국 사람의 즐거움 안으로 들어갈 것임을, 고운 아마포 옷을 벗어 거기에 놓아둠이란 거듭남에서 결과된 모든 거룩한 진리들은 비록 자신 스스로 그 진리를 찾아 사용했다 할지라도 자신으로부터가 아닌 주님으로부터 임을 철저히 인정함을 말한다. (3540-3, 9670-6, 제 4절)

24절. 그리고 그는 거룩한 장소에서 물로 자기 살을 목욕하라, 그리고 그의 옷들을 입어라, 그리고 나간다, 그리고 자기의 태워 바침의 제물과 백성들의 태워 바침의 제물을 바쳐라, 그리고 자신과 백성을 위해 보상을 받게 할 것이다.

영적 의미

이런 거룩한 상태에서 그는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드리는 예배를 통해, 게다가 주님과 재회된 내적, 외적 인간 모두에서 깨끗해지는 것을 계속해 갈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소에서 아론이 목욕함이란 위 거룩한 상태에서도 깨끗함은 계속 있어야 한다는 것을; 옷을 입음이란 진리로 입히는 것을; 나옴(coming forth)이란 이 구절의 경우 새 삶이 작동하는 것을; 자기의 태워 바침의 제물과 백성의 태워 바침의 제물을 바침이란 내적, 외적 인간 모두에서 순수한 사랑으로 예배함을; 자신과 백성의 보상을 만듦이란 주님과의 재회, 그리고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재회함을 말한다. (3147, 3210, 1853, 10053, 제 4,5절, 10042ii)

25절. 그리고 죄 바침의 제물의 지방을 그는 제단 위에서 태울 것이다.

영적 의미

그리고 심정으로부터 자기의 천적 선 모두가 주님의 은혜 때문으로 돌릴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제단에서 죄 바침의 제물의 지방을 태운다란 모든 천적인 것을 주님께 진심을 다해 돌려드림을 말한다. (10033)

26절. 그리고 염소를 아사셀에게 보낸 사람은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물로 자기 살을 목욕하라, 그리고 후에 그는 진영 안으로 올 것이다.

영적 의미

신성한 인간으로부터의 유입을 통하여 이루어지되 자신이 해낸 듯 악에서 온 거짓을 거절한 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인정하게 될 것이다. 즉 자기가 천국적 상태에 들어가 계속 머무르기 위해서는 외적, 내적으로 계속 깨끗해져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사셀에게 염소를 가게 한 사람이란 높은 의미에서는 주님을 나타내고 있으나, 낮은 의미에서는 신성한 인간으로부터 온 유입을 통해 악과 거짓을 거절하되 그것이 자신 스스로 행하듯 거절한 사람을 말한다. 자기 옷을 빨고 물로 목욕함이란 내적, 외적으로 깨끗해짐을, 진영으로 옴이란 위 사람이 천국 상태에로 들어와 거기에 남기 위해서를 말한다. (99378, 3147, 5006, 9215, 4236)

27절. 그리고 죄 바침의 제물의 수소, 그리고 죄 바침의 제물의 염소, 이것들의 피는 거룩한 장소에서 보상을 받기 위해 가져와지고, 진영 밖으로 운반하라. 그리고 그들은 그것들의 가죽들, 그리고 그것들의 고기, 그리고 그것들의 똥을 불에서 태워라.

영적 의미

순종이라는 자연적 인간의 선, 그리고 그로부터 있게 되는 신앙 속의 진리는 거듭나는 동안 즉 깨끗해지는 동안에도 영적 인간은 이렇게 실감한다. 이는 천국적 상태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거듭나는 과정에 연결되어 있는 모든 악과 거짓, 선과 진리인 듯 보여지는 것까지 순수한 천국 사랑의 힘으로 전부 거절되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죄 바침의 제물의 수소와 염소란 거듭나는 동안 실감된 신앙 속의 진리, 순종이라는 자연적 인간의 선을; 그 제물의 피를 성소에 가져옴이란 진리가 선과 결합한 결과 깨끗해짐을; 진지 밖으로 내어감이란 천국 상태에서 분리함을; 불로 태움이란 순수한 천국 사랑의 힘을 수단으로 거절함을; 또는 이기적 사랑에 오염된 이유로 정죄함을; 제물의 가죽, 살고기, 똥이란 불순한 것과 섞여 있는 진리와 선같이 보여지는 것들 모두를 말한다. (9990, 4169, 725, 10047, 10042ii, 4236, 934, 10055, 10035-7)

28절. 그리고 그것들을 태운 사람은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자기 살을 물로 목욕하라, 그리고 그 후에 그는 진영으로 와라.

영적 의미

거절의 과정 이후 즉 갖가지 종류의 악과 거짓을 가진 가상들을 거절함이 자신 스스로 해결한 듯 해치운 사람이라 해도 천국 상태를 충분히 실감하기에 앞서 더욱 외적으로 순수해져가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위 제물을 태운 사람도 옷을 빨아 입고 자신을 물로 목욕한 후에야 진영으로 들어 올 수 있다란 거절이라는 과정이 끝난 후 조차에서도 갖가지 종류의 악과 거짓들로 나타나는 것들을 자신 스스로 하듯 거절하는 사람이라야 더욱 외적으로 깨끗해져서 천국 상태를 더욱 더 실감하게 된다는 말이다. (934, 10055, 3147, 4236)

29절. 그리고 이것은 너희에게 영원한 법령이다. 즉 일곱 째 달에, 그 달의 열 번째 날에, 너희는 너희 혼들을 괴롭게 하라, 그리고 본토박이 이든, 너희 사이에 체류하는 외국인 이든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영적 의미

이것은 거듭나는 과정 즉 신앙과 선행의 거룩한 상태에 있는 외적 인간을 깨끗하게 하는데 관련되는 신성한 질서의 영원한 법칙이다. 이때 선과 진리에 관한 아껴두실 것들이 시험에 승리함을 통해 그 속에 충분히 이식된다. 이로부터 천국적 평화와 쉼을 실감하게 된다. 이 법칙은 내적 교회의 사람 이든 외적 교회의 사람 이든 똑같이 적용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대대로 지킬 규정이란 신성한 질서의 영원한 법칙 임을, 일곱째 달의 십 일에 너희는 너희 영혼(으로 인해) 괴로워 해야 할 것이다(ye shall afflict your souls)란 선과 진리에 관해 아껴두신 것들이 충분히 이식되어진 거듭나는 과정에서 신앙과 선행의 거룩한 상태에 있는 외적 인간의 깨끗함에 관하여를, 아무 일도 하지 않음 또는 안식일이란 시험에서 승리한 상태, 그로부터 천국 상태를 실감함과 휴식을, 본토인, 체류하는 외국인이란 위의 규정은 내적 교회에 속하든 외적 교회에 속하든 똑같이 응용될 수 있음을 말한다.(7884, 851, 570, 1947, 8889-90, 7908)

30절. 이 날에 너희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 너희를 위해 보상을 받게 할 것이다. 모든 너희의 죄들로부터 너희는 주님 앞에서 깨끗해질 것이다.

영적 의미

위 법칙에 의거해서 주님의 인간이 신성이 되심에서는 신성한 인간이 신성 자체와, 그리고 거듭나는 과정에서는 인간이 주님과, 또는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의 재회가 성취되어질 수 있다. 위 모든 과정의 결과는 인간을 충분히 구원시켜 주는바, 그가 천국 상태에 있도록, 모든 실제의 악과 거짓, 불순함으로부터도 해방되게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 날은 너희가 깨끗해지도록 너희에게 보상을 받게 할 것이다”란 주님의 인간이 신성이 되심 측면에서는 인간과 신성이 재회하는 것, 거듭남의 측면에서는 인간이 주님과 재회하는 것, 그리고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재회함으로만 성취될 수 있을 것임을 말한다. “모든 너희의 죄가 주님 앞에서 깨끗해질 것이라”란 천국 상태에 있는 사람이 모든 실지의 악과 거짓 그리고 불순함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것이 거듭남의 모든 과정의 결과임을 말한다.(10042ii, 4545)

31절. 이것은 너희에게 엄숙한 쉼의 안식일이다, 그리고 너희는 너희 혼들을 괴롭혀라. 이것은 영원히 법령이다.

영적 의미

정녕 위 천국적 상태는 시험에 승리함에서 파생되는 쉼과 평화의 상태이다. 더구나 이 상태는 영원한 상태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철저하게 쉬어야 하는 안식일이요 너희 영혼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날이요 대대로 지킬 규정이다 함은 이 천국 상태는 시험에 승리함에서 오는 평화와 쉼의 상태요, 영원한 상태 임을 말한다. (8889, 8890, 7884)

32절. 그리고 기름부워지고, 자기 아버지 대신에 성직자이도록 성직에 임명되는 성직자가 보상을 받게 하라, 그리고 아마포 옷을 입어라, 거룩한 옷들 까지 입어라.

영적 의미

이것은 계속적인 교회 상태 안에서 진리와 결합함을 수단으로 하는 천국 선에서 모두 결과된다. 그리고 주님과의 재회는 자연적 인간에 있는 외면의 진리들을 도구로 삼아 결과된 것인 바 이도 거룩함의 상태이다. 그 이유는 이런 진리들도 선으로부터인바 거룩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대를 이어가며 성직자 직분을 맡도록 예식을 갖추어 기름 부어 세운 그가 아마포로 만든 제복, 곧 거룩한 옷을 입고 있다란 위 상태는 교회의 계속되는 상태 속에서 진리와 결합함을 수단으로 하는 천국 선으로부터 모두 결과될 것이요, 그리고 주님과의 재회는 자연적 인간의 외면에 있는 진리를 도구로 해서 결과 될 것이요, 거룩함이라는 상태는 위 진리들이 선으로부터 거룩하기 때문이다. (9946, 9954, 10076, 5912, 10042ii, 7601, 2146)

33절. 그리고 그는 거룩한 성소를 위하여 보상을 받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만남의 천막을 위하여, 제단을 위하여 보상을 받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성직자들을 위하여 그리고 집회의 모든 백성을 위하여 보상을 받게 할 것이다.

영적 의미

그렇다. 이런 수단들까지도 인간은 모든 천국들, 즉 천적, 영적, 자연적 천국과 조화되도록 해야 한다. 이 조화는 선에 관해서도, 진리에 관해서도 모두에서 있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거룩한 장소와 만남의 천막과 제단, 성직자와 집회의 백성을 위해 깨끗하게 함이란 위의 수단으로 해서 인간은 천적, 영적, 자연적 천국 모두와 그리고 선에 관하여, 진리에 관하여 모두에서 하모니가 있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10042ii, 3540-3, 994-6, 1259)

34절. 그리고 일 년에 한번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위해 보상을 받게 하는 것은 너희에게 끝이 없는 법령이다. 그리고 그는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셨던 대로 실시했다.

영적 의미

이것은 악에 관한 인간의 상태 때문에 있어지는 주님과의 재회에 관한 영원한 법칙이다. 이 법칙은 모든 교인과 더불어 영구적이다. 이 속에서 선은 주님으로부터 온 진리에 의거 언제나 행동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것은 끝이 없는 법령이라 함은 이것은 신성한 질서의 영원한 법칙이라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 년에 한 번씩 보상을 받게 함이란 악에 관한 인간의 상태 때문에 있게되는 주님과의 재회를, 또 이것은 항구적임을; 주님이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함이란 위의 일 속에서 선은 주님으로부터 온 진리에 따라 언제나 행동한다는 것을 말한다. (7884, 10042ii, 10211, 9946, 7010, 20001)

16장의 종합적 고찰

본 장은 보상(Atonement)에 관한 장이라 불리워도 괜찮을 정도로 보상에 관한 많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실제의 응용에 적절하기도 하다. 본 장의 시작부터 우리를 위한 교훈이 놓여져 있다. 교회 속의 사람에 대한 계시는 계속 있지만, 그 계시는 인간의 상태에 상당히 좌우된다. 우리는 우리 한 가운데에 말씀을 언제나 가지고 있다는 것은 빼거나 더 할 필요도 없는 진실이다. 그러나 우리 속에서 이미 친숙해진 진리들을 언제나 똑같은 빛에서 보지 않는 것도 언제나 있는 진실이기도 하다.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은 외적일 뿐인 예배는 철저히 거절된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살핀 바 있다. 한 가지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위의 나답과 아비후의 사건이 지닌 의미가 각 자의 경우에서 있게 될 때마다 영적 분위기는 더 명백해진다는 것, 즉 천국의 태양이 우리 위에 내리비칠 것이고, 우리는 진리를 알게 되는데 과거 새로운 빛으로 충분히 알았다고 생각하고 있던 과거 속의 진리까지 포함해서 다시 알게 된다. 우리는 각자의 마음에 아주 풍부하게 진리를 저장하려고 지적 수단을 동원해 애를 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매우 유익한 일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제 아무리 많은 진리의 지식이 저장되었다 해도 형식주의(externalism)를 탈피해 들리워질 때 만이, 들어 올려진 것만큼에서만 진리의 참 맛, 그 영광을 실감할 수 있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 이유가 우리는 주님을 예배하면서 잘못된 것을 거절하기도 하고 올바른 것은 소중히 하는 노력을 때때로 실행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계시(밝히 알게 해주심)를 가지게 된다.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자. 오늘 본문에서 아론은 선의 상태를 표현한다. 그러나 보다 정밀하게 말한다면, 표현하는 선의 상태보다 더 높은 신성한 진리로 계발된 외적인 선을 표현하고 있다. 이상스럽게 말하는 듯 여겨지기도 하겠지만, 진리는 이 외적인 선을 무엇보다 먼저 가르친다는 것, 그렇다해도 이 선은 아주 깊은 사항들 안으로 들어가게 해줄 수는 없다. 그리고 모든 것은 한 때라도, 또는 모든 상태에서 이 외적인 선에 머무른다. 이 얼마나 장엄한 진리인가? 그 이유가 우리의 영적인 집의 기초와 낮은 층은 반드시 잘 놓여져야 하기 때문이다. 자연적 삶을 선하게 꾸릴 수 없는 사람은 영적인 삶 역시 선하게 꾸릴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자연적 진리들을 배워야만 한다. 이것이 구름인 바, 우리가 영적 진리의 영광을 납득 할 수 있기 전, 꼭 거쳐가야 할 일이다. 그러면 어떻게 인간은 거룩한 진리로 명시되고 있는 이 거룩한 삶에로 진입할 수 있을까? 확실한 방법은 회개의 일을 수단으로, 주님을 섬기는데 모든 애착을 바침으로, 질서를 따르기 위해 말씀 속의 귀중한 모든 진리를 적절히 사용함으로, 계발된 총명과 병합된 사랑이라는 쌍방에 공통되는 끈(bond)을 수단으로 질서를 따름으로 가능해진다. 이는 먼저 내적 측면의 선으로부터, 그 다음 외적 측면의 진리로부터 행해져야 한다. 이것이 본 장의 서문의 절반에 해당된다. 더불어 이런 상태를 수단으로 그 삶을 실감하기를 갈망하는 상태에 있다면 주님께서 그 삶의 맛을 보게 해준다.
한 걸음 더 전진된 상태가 서문 후반에 기술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의 시선을 모아 보아야 할 것은 두 마리의 염소, 그리고 왜 두 마리이어야 하는지, 성직자의 경우 한 마리만 필요했었는 바 궁금한 대목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백성을 위해서는 두 마리 염소가, 성직자를 위해서는 수소 한 마리가 죄 바침의 제물로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태워 바침의 제물로서는 각기 수양 한 마리가 요구되고 있다. 이쯤해서 본문을 곰곰히 생각하는 것을 잠시 중지하고 과거 심각하게 가르쳐온 사항, 즉 “그리스도, 천국의 어린 양이 우리 죄를 짊어지셨다”라는 대목을 기억에서 끄집어내어 보자. 위 말은 그분께서 모든 인류를 위해 보상(속죄, atonement)를 만드셨다는 것, 즉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처벌을 인간 대신 실제로 짊어지셨다는 말이다. 우리가 궁금히 여기게 하는 것은 왜 그분이 세상의 죄를 짊어 나르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라 불리셨는가, 그럼에도 보상(속죄)에 관한 본문의 경우 죄를 짊어나르는 모습을 어린 양이 아니라 왜 두 염소가 확실하게 그려주고 있는가에 대해서이다.
이외에 또 하나 궁금한 것은, 주님을 위해 제비 뽑힌 염소는 죄 바침의 제물로 바쳐지고, 아사셀을 위해 뽑힌 염소는 산채로 광야에 내보냈는가 이다. 더 주목해 볼 것은, 보상은 죽여진 수소와 염소의 피를 뿌리는 등 세세하게 예식이 진행되도록 지시되고 있는 반면 아사셀을 위한 염소에 관하여는 그 염소가 그들의 모든 죄를 나른다 라고 간단히 언급하고 말았는가 이다. 이 사항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하자. 너무나 흔하게 알려진 견해에 의하면, 제물로 바쳐진 동물은 인류를 위해 벌과 대체 되는 것으로서 십자가 위에서 제물이 된 주님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신경을 기우려 생각한다면 위의 말은 본문의 경우에는 해당이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줄 것이다. 그 이유는 태워 바침의 제물들은 주님에게 달콤한 향기(a sweet savor unto the Lord)라 불리고, 제물은 그분의 식사(His meat)라고 불리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죄 바침의 제물은 최고로 거룩하다고 까지 말하고 있다. 이런 생각들로부터 명백해지는 사항이 있다. 그것들이 죄에 대한 처벌을 표현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유월절 양으로서 희생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월절을 지킵시다(Christ our passover is sacrificed for us; therefore let us keep the feast)” (고린도전 5:7-8) 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태워 바침의 제물이나 제물들은 인간이 지닌 애착들 중 최고의 애착들을 주님께 바치는 것으로 간주해야 하는데 이에 대해서 얼마나 더 추론해야 납득이 갈까? 하느님의 어린 양은 주님의 인간 부분이 신성이 되시어 그분 안의 신성과 하나를 이루는 것을 뜻한다. 실상, 어린 양이란 순진 안에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천적 선, 그리고 주님 안에서 신성한 선, 또는 신성한 인간을 명시하는 용어이다. 이 사항들이 악의 절대적 권세로부터 모든 인류를 구속해 주셨고, 이것이 악을 제거하는 바, 그분을 믿고 그분을 사랑함으로 거듭남을 통해 자기의 악이 제거되기를 소원하는 각 개인에게 있는 악도 제거 해준다. 결코 다른 방법에서가 아닌 위와 같은 방법에서 주 예수는 세상의 죄를 짊어 나르는 진정한 하느님의 어린 양이시다.
그렇다면 왜 오늘 본문에서 주님이 수소나 염소가 아닌 어린 양으로 표현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신성한 진리의 몇 가지 세부 사항이 어린 양이 등장될 경우 잘 표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소와 염소가 등장한 것은 주님에 관련된 사항, 즉 자연적 측면의 신성이 되심이 내적 측면과 외적 측면에서 인간성이 전적으로 거절되었다는 것까지 의미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그런 반면 태워 바침의 제물인 수양은 영적 측면을 명시해 주고 있다. 제물로 바쳐지는 어린 양, 수양, 수소, 염소에 대한 뜻을 우리가 헤아린다면, 신성이 되신 인성을 가장 높은 수준에서 가장 낮은 수준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말씀 속에서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 것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더불어 충분히 거듭난 사람의 선한 애착들이 두 염소가 지닌 의미에서 아주 확실한 방식이 동원되어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제물로 바쳐진 동물들, 죄 바침의 제물까지 포함해서 이것들이 처벌로 고통 당하는 희생자(victim)를 표현하거나 의미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이제 위 사항들은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는 주님의 피에 관한 공부 쪽으로 우리를 옮겨가게 한다. 그리고 만남의 천막과 성막의 여러 부분에 연속적으로 피가 뿌려지는 사항에 관한 공부가 이어진다. 우선 후자를 먼저 거론해 보자. 예비 행위가 우리로 먼저 주목하게 한다. 제단에서 불을 취하고 향기로운 향가루를 들고 베일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이다. 이는 인간이 자기가 가장 깊은 선을 지각할 수 있기 전, 거듭나는 과정에서 선과 진리를 미리 영접함으로 준비되어야만 한다는 뜻이다. 그 다음 그가 이 지각을 가졌을 때, 이 지각 자체는 관계적으로 선함과 진리의 외적 측면과 희미한 결합을 구성한다. 그 뒤 모든 국면에서 충만된 결합이 있게 될 것이다. 이런 준비과정, 그 과정에서 간혹 체험을 허락하시는 주님께 먼저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준비 과정에서 조금 밖에 안되는 것을 음미했다 해도 우리 기억에 남아 꾸준히 우리를 자극하여 준비 완료라는 미래 상태를 향해 기쁘게 도전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이와 연결된 가르침을 상기해 보도록 하자. 즉, 우리는 천국적 삶을 실감하되 수준별로 실감하도록 소개되어야만 한다. 그 이유는 우리의 현재 수준에 걸맞지 않을 경우 영적인 상해를 받거나 죽음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해도 왜라는 질문을 다시 던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선과 진리 또는 주님이 우리를 파괴되게 하거나 상함을 입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당치 않은 것이고 단지 우리 자신이 알아 차리지도 못하는 악이나 실수가 우리로 잘못된 행위를 저지르게 하므로 해서 영혼에 상함을 입히고 때로는 죽게 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피는 그분으로부터 오는 신성한 진리를, 그분의 살은 신성한 선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를 하나로 묶어 말하면 주님의 생명을 명시하는 말이다. 이러므로 그분이 말하시기를,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너희 안에 생명을 가지지 못한다” (요한 6:53), 그리고 “사실은 사람의 아들이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 (마태 20:28). 이 두 절을 한데 묶어 보면, 인간은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받음으로 영적 자양분을 얻게 되고 뿐만 아니라 악에서 해방된다는 것, 같은 말로서 죄에서 깨끗해진다는 것이다 (계시록 1:5). 그러므로 그분이 신체적으로 당하신 고통이나 실제의 죽음, 지옥의 모든 권세와 치른 영적 싸움인 그분의 시험들이 각 개인을 죄로부터 깨끗하게 할 수 있다 라는 생각을 품는 사람은 누구든지 누군가에게 사기 당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시험과 시험에서의 승리를 하나의 수단으로 해서 집합적 측면에서의 인류를 악의 절대적 권세로부터 영원히 해방되게 하셨다. 이것이 구속의 일(the work of Redemption)이다. 그 반면 이 위대한 일의 결과로 모든 사람은 말씀 속의 진리, 특별한 용어로는 “사람의 아들”을 수단으로 바깥쪽 자기 삶이 우선 깨끗해진다. 이로 인해 우리는 선함과 진리라는 주님의 생명을 받는데 이것이 살과 피로, 또는 성만찬의 빵과 포도주로 의미되고 있다. 이로부터 우리는 주님과 결합을 가진다. 이 결합은 각자 삶의 모든 수준을 망라해서 있어진다. 그런 이유는 각자에게 선과 진리의 결합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제물로 바쳐진 동물의 피를 뿌리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보상(Atonement)이라는 위대한 일을 구성한다. 이 보상은 가장 높은 의미에서는 주님 안에서 인간이 신성과, 신성이 인간과 결합하는 것을 의미하고, 낮은 의미에서는 주님이 인간과 결합한다는 것, 그리고 인간이 주님과 결합하는 상호적 결합을 말한다. 이에는 주님께서 신성이 되심을 수단으로 인성을 신성으로 만드셨듯이 거듭남으로 천사가 된 사람 속의 내적 인간과 외적 인간의 결합이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이상으로부터 만남의 천막 각 부분에 제물로 바쳐진 동물의 피를 뿌림으로 죄를 벗게 하는 예식에 관한 의미를 충분히 보았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아직 더 생각해 보아야 할 요점이 있는데, 이 예식 후에 아사셀을 위한 염소로 보상을 왜 만들었는가? 왜 예식 자체는 매 해 어떤 날에 한 번 거행되는 것인가? 진짜 보상 또는 재회에 관한 사항은 악에서 해방됨과 주님으로부터 선을 받는 것으로 구성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살핀 바 있다. 그러면 추방이라는 예식에 무엇이 포함되고 있을까? 그것이 뜻하는 바, 인간이 거듭난 후, 그러므로 천국 자체까지 일괄해서 주님께서는 계속 거듭난 사람으로부터 악이 제지되고 선 안에 그가 거주하도록 배려하신다는 것, 이는 신성한 인간으로 존재하는 고정된 선, 세력이 강한 선을 통해 전력을 쏟는 영향력을 수단으로 이루어 주시고 있다는 것, 이 일은 악이 제자리에 머물도록 지금, 그리고 영원까지 큰 힘으로 작용되고 있다는 것, 악이 아주 경미한 수준의 차이를 두고 우세해지는 것까지도 막으신다는 것, 각 사람이 제 나름대로의 선용의 삶을 누리도록 영원히 배려하신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최상의 의미에서 언제나 준비를 갖춘 사람, 천국에서는 천사 자신이다. 그리고 거듭나고 있는 사람의 경우, 이것은 그가 지닌 선과 진리의 강하고 고정된 원리로서 드러내진다. 이상에서 살핀 내용은 염소를 추방함에 뒤를 잇는 반복된 씻음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나마 설명이 되어준다. 다시 말해서, 천국에서 주님은 천사들을 계속적으로 더욱 더 깨끗해지게 하신다. 그리고 지상의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섭리하신다. 사랑하는 심정으로부터 자기의 영적 태워 바침의 제물을 바치는 신실한 예배자를 그분께서는 안팎으로 깨끗하게 해 주신다.
마지막으로 보상의 날이 매 해 한 번, 일곱 째 달, 그 달의 십 일에 있어지는 이유, 그 날이 안식일이라고 하는 이유에 대해서이다. 인간은 영원히 깨끗해지고 있다. 그것은 신앙과 선행이라는 거룩한 상태에서 결과된다. 이것이 쉼과 평화라는 영원한 안식일을 생산한다. 그 이유는 천국에서는 모든 영적 전투가 중지되고 각 천사들이 자신으로부터 스스로 하듯 자유롭게 계속 행동할 수 있는데 그들에게 필요한 계속적인 깨끗해짐 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상의 저녁과 아침, 봄과 여름에 상응되는 상태의 다양함 만을 통과해 가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런 변화를 수단으로 그 천사는 유한함의 상태에서는 분리될 수 없는 경미한 불완전함으로부터서도 더욱 더 자유로워져 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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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7장

성경: 레위기 1장

1.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2. 아론에게, 그리고 그의 아들들에게,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후손에게 이야기하라,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라, 즉 이것은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이다, 말하기를,
3. 이스라엘의 집으로부터 있는 자는 사람은 누구든지, 진영 안에서이든, 진영 밖에서이든 소, 또는 어린 양, 또는 염소를 죽일 경우,
4. 그리고 그것을 만남의 문으로 가져와 주님에게 봉헌물로 그것을 바치지 않을 경우이다, 즉 피는 그 사람에게 귀속되어질 것이다. 그는 피를 흘렸다. 그리고 그는 자기 백성 사이로부터 잘리울 것이다.
5. 그런즉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열린 들판에서 희생시키는 것, 곧 그들의 희생 제물을 가져 와라, 그들은 그것들을 주님에게, 만남의 천막의 문으로, 성직자에게 가져 오라, 그리고 그것들을 주님에게 평화 제물들의 희생 제물로 바쳐라.
6. 그리고 성직자는 만남의 천막의 문에서 주님의 제단 위에 피를 뿌려라, 그리고 주님에게 달콤한 향기를 위해 지방을 태워라.
7.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이 그것들을 따라 음행하며 숭배한 수염소에게 자기들의 희생 제물을 더 이상 바치지 말라. 이것은 그들의 세대를 통털어 그들에게 영원한 법령이다.
8. 그리고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이스라엘의 집안에 속한 자이든지, 또는 그들 사이에 체류하는 낯선 사람의 집안에 속하는 자이든, 누구든지 태워 바침, 또는 희생 제물을 바칠 경우,
9. 그리고 그것을 주님에게 바치려고 만남의 천막으로 가져오지 않을 경우, 이런 사람도 자기 백성으로부터 잘리울 것이다.
10. 그리고 이스라엘의 가문에 속한 이들이든, 또는 그들 사이에 체류하는 낯선 사람들의 집에 속한 사람이든 어떤 방법으로이든 피를 먹는 자에 대하여, 나는 피를 먹은 그 혼에 맞서 내 얼굴을 놓을 것이다, 그리고 그를 자기 백성 사이로부터 자를 것이다.
11. 육(flesh)의 생명은 피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너희 혼들을 위한 보상을 받게 하려고 제단 위에서 너희에게 그것을 주었었다. 그 이유가 생명을 이유로 보상을 받게 하는 것은 피이기 때문이다.
12. 그러므로 나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말했다, 너희의 혼은 피를 먹지 말라, 너희 사이에 체류하는 어떤 낯선 사람도 피를 먹지 말라.
13. 그리고 이스라엘의 자손들로부터의 사람이든, 그들 사이에 체류하는 낯선 사람이든, 사냥하여 먹으려 하여 어떤 짐승 또는 가금류를 가졌을 경우, 그는 그것으로부터의 피를 쏟아라, 그리고 그것을 먼지(흙, dust)로 덮을 것이다.
14. 모든 육의 생명에 관하여, 그것의 피는 그것의 생명과 모두 하나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육의 피는 여하튼 먹지 말 것이다. 그 이유가 모든 육의 생명은 그것의 피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먹는 자는 누구든지 잘리울 것이다.
15. 그리고 저절로 죽은 것, 또는 짐승으로부터 찢기워 죽은 것을 먹는 모든 혼 각각, 그가 본토박이이든, 또는 낯선 사람이든, 그는 물로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물로 자신을 목욕하라,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그 다음 그는 깨끗하다.
16. 그러나 만일 그가 그것들을 빨지 않는다, 자기 살을 목욕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는 자기 불법을 낳는다.

영적 의미 요약

* 선과 진리의 모든 수준에 있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밝히 알게 하시는 사항이 있다. 만일 예배할 수 있는 그들의 힘이 천국을 통해 그분께로부터 오고 있음을 그들이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거룩한 선과 진리의 법칙을 위반한다는 것, 그 이유는 모든 진정한 예배는 내적 인간과 외적 인간이 조화를 이루도록 선으로부터 진실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1-5절.
* 이런 예배만이 진리가 선과 결합하게 해주고, 선행 없는 신앙을 제거해주는 바, 그것만이 항구적이고 영원하다, 6-7절.
* 그러므로 이런 예배를 갖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주님께서는 신성한 진리들로부터, 교회로부터 분리시키신다, 8-9절.
* 악과 거짓을 혼합시킴으로 거룩한 선행을 위반하는 사람은 자신을 주님에게서 돌리게 하고 진리로부터 자신을 분리한다. 그 이유가 선행은 교회의 생명인바 외적 예배는 반드시 내적 예배인 교회의 생명과 조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10-12절.
* 설득(persuasion)을 원리로 선 또는 진리를 자기 것으로 삼으려는데 대하여, 단지 자연적으로부터의 설득일 경우, 악에 오염된 선으로부터의 설득일 경우, 13-16절.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주님께서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지각을 주시어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여호와)란 그분의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speaking)이란 유입을; 모세는 말씀 또는 신성한 진리를; 말하심(saying)이란 지각을 각각 뜻한다. (2001, 2951, 7010, 1791, 1822)

2절. 아론에게, 그리고 그의 아들들에게,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후손에게 이야기하라,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라, 즉 이것은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이다, 말하기를,

영적 의미

가르침이 유입과 계몽을 수단으로 천적수준의 선과 진리 안에 있는 이들에게, 그리고 영적 수준의 선과 진리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바, 이로부터 다음 사항이 보여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모세가 말함이란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하는 훈육을; 아론에게란 선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를; 그의 아들들이란 진리가운데 있는 이들에게를; 이스라엘 백성이란 영적인 선과 진리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시다”라고 말함(saying)은 유입과 보여진 것으로부터의 예증을 말한다. (7010, 10355, 9946, 3654, 5486, 5732, 1791, 1822)

3절. 이스라엘의 집으로부터 있는 자는 사람은 누구든지, 진영 안에서 이든, 진영 밖에서 이든 소, 또는 어린 양, 또는 염소를 죽일 경우,

영적 의미

자연적 선으로부터 또는 천적 선으로부터 또는 영적 선으로부터 이든지, 교회 내에서 이든지 교회 밖에서 이든지 주님을 예배하고자 준비하는 사람은 누구나

세부적 영적 의미

제물로 하려고 동물을 죽이는 어떤 사람이란 누군가가 예배를 준비 할 경우를; 소(ox)나 어린 양이나 염소란 자연적, 천적, 영적 선을 관계적 측면에서 뜻한다. 진영 안에서 이든 진영 밖에서 이든 이란 교회 안에서이든 밖에서 이든을 뜻하는데, 그 이유는 진영(camp)은 천국을 뜻하는 바, 그로부터 오는 교회도 의미하기 때문이다. (10024, 10132, 10038)

4절. 그리고 그것을 만남의 문으로 가져와 주님에게 봉헌물로 그것을 바치지 않을 경우이다, 즉 피는 그 사람에게 귀속되어질 것이다. 그는 피를 흘렸다. 그리고 그는 자기 백성 사이로부터 잘리울 것이다.

영적 의미

자연적 선으로부터 또는 천적 선으로부터 또는 영적 선으로부터 이든지, 교회 내에서 이든지 교회 밖에서 이든지 주님을 예배하고자 준비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는 거룩한 선과 거룩한 진리에 위반되고, 그럼으로 해서 그는 자신을 천국과 교회로부터 분리시킨다.

세부적 영적 의미

만남의 천막 문에 제물을 가져오지 않음이란 천국을 통해 주님과 결합함을 수단으로 예배할 능력을 받게 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음을, 주님의 성막 앞에서 그분께 대한 제물이란 모든 선을 가장 깊은 내면의 원리를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있다는 것을, 흘려진 피가 당사자에게 귀속된다는 것, 그리고 피를 흘리는 것이란 거룩한 선과 거룩한 진리에 위반함을, 백성으로부터 잘라져 나감이란 천국과 교회로부터 분리됨을 말한다. (2356, 3540-3, 349, 922, 9481, 374, 683, 5302, 3294-5)

5절. 그런즉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열린 들판에서 희생시키는 것, 곧 그들의 희생 제물을 가져 와라, 그들은 그것들을 주님에게, 만남의 천막의 문으로, 성직자에게 가져 오라, 그리고 그것들을 주님에게 평화 제물들의 희생 제물로 바쳐라.

영적 의미

영적 인간이 알고 계속 존속시켜가야 할 것은, 예배에 있는 모든 선한 애착 속의 기쁨과 즐거움, 그것이 신성한 선에서 분리된 듯 나타나더라도 그것은 진실로 천국을 통해 주님과 결합함으로 주님으로부터 있게 된다는 것, 그리고 이는 선을 원리로 하는 수단으로 완전한 자유 속에 있는 예배에서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백성이란 영적 인간을, 열린 들판에서 죽이려던 짐승들을 만남의 천막 문간의 주님께 가져옴이란 예배 안에 있는 모든 선한 애착 속의 기쁨과 즐거움은 마치 신성한 선으로부터 분리된 듯 나타나도 실지로는 천국을 통해 그분과 결합함을 수단으로 주님으로부터 임을 인정하는 것을, 성직자에게 가져옴이란 선을 원리로 하는 수단을, 평화 제물로 주님께 바침이란 외적 인간이 완전하게 자유로운 예배에서 내적 인간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3654, 349, 368, 369, 2356, 3540-3, 10097)

6절. 그리고 성직자는 만남의 천막의 문에서 주님의 제단 위에 피를 뿌려라, 그리고 주님에게 달콤한 향기를 위해 지방을 태워라.

영적 의미

그러므로 선으로부터의 진리와 선의 결합이 천적 선임을 인정함을 통해 결과 될 것인데, 그 이유가 주님께 깊이 감사하며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모든 시험으로부터 계속적인 힘을 생산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만남의 천막 문 앞 주님의 제단에 피를 뿌림이란 선과 진리의 결합이 결과됨이 선으로부터 임을; 지방을 태워 주님에게 향기를 풍기는 것이란 “이는 깊은 감사를 나타내는 것, 주님이 열납하시는 것, 그리고 모든 시험들로부터 계속적인 쉼을 생산하기 때문에” 천적 선의 근거를 주님께 돌리는 것을 말한다. (9946, 10047, 2356, 3540-3, 10054, 10033)

7절.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이 그것들을 따라 음행하며 숭배한 수염소에게 자기들의 희생 제물을 더 이상 바치지 말라. 이것은 그들의 세대를 통털어 그들에게 영원한 법령이다.

영적 의미

거듭나는 영적 인간은 진리를 계속 왜곡되게 하는 수단인 선행 없는 신앙의 거짓들로부터 주님을 예배하지 않을 것인 바, 그들의 외적 예배도 천국 삶의 과정에서 내적 예배와 완전한 조화를 이룰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더 이상 제물을 수염소들에게 바치지 못한다란 거듭나는 사람은 더 이상 선행 없는 신앙 속의 거짓들로부터 주님을 예배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그것들을 따라 음행을 저지른다란 위의 거짓을 수단으로 진리가 계속 왜곡되는 것을, 대대로 길이 지킬 법령이란 천국 삶의 과정에서 외적 예배는 내적 예배와 완전한 조화를 영원히 이룰 것임을 말한다. (349, 922, 4169, 2466, 7884, 9789)

8절. 그리고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이스라엘의 집안에 속한 자 이든지, 또는 그들 사이에 체류하는 낯선 사람의 집안에 속하는 자 이든, 누구든지 태워 바침, 또는 희생 제물을 바칠 경우,

영적 의미

더 나아가 천적이든 영적이든 표면적으로 주님을 예배하는데 종사하게 되는 내적 이든, 외적 이든, 영적 교회의 모든 사람에게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지각함이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들에게 말하다란 신성한 진리로부터 더 많은 지각이 있음을; 이스라엘 가문에 속한 사람이란 내적 교회에 속한 사람을; 그들 가운데 체류하는 낯선 사람이란 외적 교회에 속한 사람을; 태워 바침의 제물이나 희생 제물이란 천적이든 영적이든 주님을 예배하는데 표면에서 종사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1791, 1822, 7010, 3654, 7908, 923)

9절. 그리고 그것을 주님에게 바치려고 만남의 천막으로 가져오지 않을 경우, 이런 사람도 자기 백성으로부터 잘리울 것이다.

영적 의미

그런데 예배 할 수 있는 힘은 천적 사랑의 원리를 통해 인간이 주님과 결합함에서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그는 교회에서 분리되어지고 신성한 진리에 무지해버리고 말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만남의 천막 문으로 그것을 가져오지 않음이란 예배하는 힘은 인간이 천국을 통하여 주님과의 결합을 수단으로 있게 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을; 그 사람이 백성 사이로부터 잘리움이란 교회로부터 분리되고 신성한 진리에 무지해 있게 된다는 것을; 그 반면 주님 앞에 제물을 바침이란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을 말한다. (2356, 3540-3, 5302, 3294-5, 2001)

10절. 그리고 이스라엘의 가문에 속한 이들 이든, 또는 그들 사이에 체류하는 낯선 사람들의 집에 속한 사람 이든 어떤 방법으로 이든 피를 먹는 자에 대하여, 나는 피를 먹은 그 혼에 맞서 내 얼굴을 놓을 것이다, 그리고 그를 자기 백성 사이로부터 자를 것이다.

영적 의미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영적 교회에 속한 모든 사람이 자연적일 뿐인 사람 속의 악과 거짓을 혼합시킴으로 거룩한 선행을 위반할 경우, 주님에게 등을 돌리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진리를 모독하여 결과적으로 모든 진리에서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가문에 속한 사람이든, 그들 가운데 체류하는 낯선 사람이든 이란 영적 교회에 있는 사람이 내적으로 이든 외적으로 이든을, 어떤 방법으로든 피를 먹으면 이란 단지 자연적 일 뿐인 삶 속에 있는 악과 거짓을 혼합시킴으로 거룩한 선행을 위반 할 경우를, 주님께서 그 혼에 맞서 그분의 얼굴을 놓으시고 그를 백성 사이로부터 자른다란 그 사람이 진리를 모독한 바 주님으로부터 돌아서는 것, 그 결과 모든 진리로부터 서도 분리됨을 말한다. (3654, 7908, 1001-1003, 7599, 5302, 3294-5)

11절. 육(flesh)의 생명은 피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너희 혼들을 위한 보상을 받게 하려고 제단 위에서 너희에게 그것을 주었었다. 그 이유가 생명을 이유로 보상을 받게 하는 것은 피이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외적예배는 내적 예배와 진실로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인 바 천국적 예배가 그렇게 되어있다. 그 이유가 그 예배 속에는 신성한 진리와 신성한 선의 결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외적 인간은 내적 인간과 조화를 이루게 되는데, 그 이유는 신성한 진리가 인간을 악에서 깨끗하게 하기 때문이고, 이 깨끗해짐은 생명 자체인 신성한 선으로부터 있어지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육의 생명은 그 피에 있다란 외적 예배는 내적 예배와 진실로 하모니를 이루어야만 한다는 것을, 주님께서 제단에서 피를 주심이란 천국의 예배 역시 위와 같다는 것, 그 이유는 거기서도 신성한 진리가 신성한 선과 결합함이 있기 때문이다. 보상을 받게 함이란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이 피가 생명 또는 혼인 이유로 해서 보상을 받게 함이란 이것 역시 위와 같은데 그 이유도 신성한 진리가 악으로부터 인간을 깨끗하게 해주기 때문이고, 신성한 진리는 생명 자체인 신성한 선으로부터이기 때문이다. (156, 870, 1001, 10047, 10042ii, 3704, 4180)
위 마지막 부분을 조심스럽게 공부한다면 어떻게 해서 어떤 때는 피가 선행 또는 선을 나타내고, 어떤 때는 신앙 또는 진리를 나타내는지에 관해 이해 할 수 있게 된다. 위 모두는 주님으로부터 진행되고 있고, 한 가지 표현으로서 신성한 진리라고 불리고 있기도 하지만 인간의 생명인 선과 진리 모두는 신성한 진리 안에 존재한다.

12절. 그러므로 나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말했다, 너희의 혼은 피를 먹지 말라, 너희 사이에 체류하는 어떤 낯선 사람도 피를 먹지 말라.

영적 의미

위의 이유로 해서 주님이 영적 인간에게 가르치시는 바, 내적 인간 또는 외적 인간 안에서 거룩한 것을 모독된 것과 혼합하는 것은 불법적이라는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해줌(saying)이란 위의 이유로 인간은 주님으로부터 가르쳐진다는 것을; 너희, 너희가운데 체류하는 낯선 사람도 피를 먹지 말라란 거룩한 것을 모독된 것과 섞는 것은 내적 인간에서 이든, 외적 인간 또는 교회 이든 모두 불법이라는 뜻이다. (3654, 7304, 1001-1003, 7908)

13절. 그리고 이스라엘의 자손들로부터의 사람 이든, 그들 사이에 체류하는 낯선 사람이든, 사냥하여 먹으려 하여 어떤 짐승 또는 가금류를 가졌을 경우, 그는 그것으로부터의 피를 쏟아라, 그리고 그것을 먼지(흙, dust)로 덮을 것이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영적 교회의 모든 인간, 내적으로 이든 외적으로 이든, 설득을 원리로 해서 선에 속한 어떤 애착이나 진리에 속한 어떤 애착이든 자기 것으로 삼으려 할 때 그는 악밖에는 아무것도 없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스스로 진실되게 인정함으로 거룩한 것에서 모독된 것을 분리시켜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백성 또는 그들 사이에 체류하는 낯선 사람이란 영적 교회의 모든 사람이 내적으로 이든 외적으로 이든을; 사냥함이란 설득의 원리로 획득함을; 먹어도 좋은 짐승이나 새 란 자기 것으로 삼을는지도 모를 선이나 진리를; 피를 흘려내고 흙으로 덮는다란 자기에게는 악밖에 없어 정녕 죽을 수밖에 없음을 스스로 진실되게 인정함으로서 거룩한 것과 모독된 것을 분리시킨다는 것을 뜻한다. (3654, 7908, 3309, 40, 44, 2187, 1001-3, 9127, 249)

14절. 모든 육의 생명에 관하여, 그것의 피는 그것의 생명과 모두 하나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육의 피는 여하튼 먹지 말 것이다. 그 이유가 모든 육의 생명은 그것의 피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먹는 자는 누구든지 잘리울 것이다.

영적 의미

외적 인간 속의 모든 진정한 생명도 내적 인간 안에 있는 주님의 신성한 생명으로부터이다. 이로부터 인간에게 가르쳐지는 바 그 생명을 자기 것으로 삼음으로 해서 모독하지 말라. 그 이유는 진리 안에서 명백해지는 선이 주님으로부터 온 인간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 생명을 자신의 소유인 냥 여기는 사람은 모든 선과 진리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모든 육의 생명이 피이다란 외적 인간의 모든 순수한 생명은 내적 인간 안에 있는 주님의 신성한 생명으로부터 임을; “내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했다”란 위의 이유로 인간은 가르쳐진다는 것을; 어떤 육의 피도 먹지 말라란 생명을 자기 것으로 삼음으로 해서 모독하지 말라를; 피는 곧 모든 육(flesh)의 생명이다란 진리로 명백히 드러나지는 선은 주님으로부터 온 인간의 생명이다를; 피를 먹는 사람은 내가 백성 가운데서 자를 것이다란 생명이 자기 고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모든 선과 진리로부터 그 자신이 분리된다는 것을 말한다. (A.C 1001-1003, 3704, 4180, 3654, 7304, 1001-1003, 2187, 3704, 4180, 5302, 3294-5)

15절. 그리고 저절로 죽은 것, 또는 짐승으로부터 찢기워 죽은 것을 먹는 모든 혼 각각, 그가 본토박이 이든, 또는 낯선 사람 이든, 그는 물로 자기 옷들을 빨아라, 그리고 물로 자신을 목욕하라, 그리고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그 다음 그는 깨끗하다.

영적 의미

그리고 영적 교회의 모든 사람, 또는 자연적이고 영적 생명이 없는 것들을 자기 것으로 삼을 경우, 또는 부주의해서 악에 의해 피해를 당한 것을 자기 것으로 삼을 경우, 그 사람은 설사 그가 본질적으로 선해서 내적 교회나, 외적 교회 속에 있는 사람이라 해도 말씀을 수단으로 내, 외적으로 깨끗해져야 한다. 그 사람도 이런 깨끗해짐이 있도록 상태가 변할 때까지는 불순한 채 남아 있으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자연사한 짐승을 먹는 혼(soul)이란 영적 생명이 없고 단지 자연적일 뿐인 것을 자기 것으로 삼는 모든 사람을, 짐승에게 찢겨 죽은 것을 먹는 사람이란 악에 의해 피해 당한 것을 부주의해서 자기 것으로 삼는 모든 사람을, 본토박이든지 체류하는 낯선 사람이든지란 그가 내적 교회 속에 있든지 외적 교회 속에 있든지를, 옷을 빨고 물로 목욕하라, 그리고 저녁때가 되어야 불결함을 벗고 깨끗하게 된다란 말씀을 수단으로 외적, 내적으로 깨끗해짐을, 상태가 변할 때까지란 불순한 채 남아 있으나 깨끗해짐으로 변화된다는 것을 말한다. (2187, 4171, 3654, 7908, 3147, 5006, 10130, 7844, 4545)

16절. 그러나 만일 그가 그것들을 빨지 않는다, 자기 살을 목욕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는 자기 불법을 낳는다.

영적 의미

그러나 만일 그가 위 방법으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악은 여전히 그와 더불어 남아 있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옷을 빨지도 않고 목욕도 하지 않음이란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데 게으르다는 것을, 자기 불법을 낳을 것이다란 악이 그와 함께 남아 있음을 뜻한다.(3147, 5006, 9937)

레위기 17장의 종합적 고찰

이 장의 시작 부분을 사려 깊게 읽는 사람이라면 거기에 감추어 놓인 의미, 즉 영적 의미가 있다는 것을 단 번에 눈치채리라 본다. 주님을 예배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가 어느 장소에서 이건, 어느 시간 이었든 상관없이 가능해야 할 터인데 본문의 경우 진실된 예배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언급된 듯 여겨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만남의 천막 문 외의 어떤 장소에서 제물을 바치려고 시도하는 이들에게는 매우 심각한 처벌이 있을 것이라고 지시되고 있다. 그러면 여기에 포함된 내적 의미를 우리는 어떻게 알아야 한다는 말일까? 이는 말씀이 쓰여진 수단인 상응을 가지고 이해해 봄으로써만 가능할 수 있다. 그 외 어떤 안내도 받을 수가 없다. 만일 우리가 역사적 측면에서의 의미로부터 자신의 결말을 축출해 보겠다고 시도하면 혼동되어 잘못된 해석만이 그 결과가 되고야 만다. 상응의 지식을 오늘날의 우리에게 허락하신 주님께 우선 감사드리고 시작해 보자. 말씀 자체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제물의 넓은 의미는 다음 구절이 잘 나타내고 있다. “당신은 제물을 즐기지 아니하시며, 태워 바침을 드려도 받지 아니하십니다. 하느님, 내 제물은 찢어진 마음 뿐, 찢어지고 터진 마음을 당신께서 얕보지 아니하십니다” (시편 51:16, 17). 이 구절이 말하는 바, 진짜 제물에는 주님께 바치는 애착이 포함되어야 하고 이것이 여러 가지 동물들로 명시되는데, 이 동물 각각은 어떤 특별한 애착을 말하고, 어떤 사람에 의해 선택된 애착(동물)은 때나 장소에 관계 없이 주님을 섬기는데 봉헌할 수 있다.
그러나 다시 언급해야만 하는 것은, 위와 같은 것이 제물에 관한 감추어진 의미라는 것을 알 때, 왜 그 제물들이 만남의 천막 문에서가 아니면 바쳐질 수 없다 라고 말한 본문의 진짜 의미에 매우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제물을 바치는 과정에는 동물 뿐만 아니라 장소와도 상응 관계가 있고, 이에 더해서 건축물의 각 부분과의 상응까지 관계되고 있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장소들은 각기 다른 상태들을 표현한다. 게다가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이동하는 것은 상태의 변화를 말한다. 이는 아주 명확하다. 이를 본문과 연결해서 생각해 볼 경우, 비록 인간이 어느 장소에서 주님을 진실로 예배한다 해도 그들은 어느 상태에서 이든 진실되게 주님을 예배할 수 없다는 것을 즉각 인식할 수 있다. 그러면 이것은 한계 또는 금지에 속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자기의 심정과 지성이 이기적인 것들, 세상적인 것들, 또는 쾌락(pleasure)에 관한 것들로 차 있는 경우 같이 자연적일 뿐인 상태에서는 주님은 예배할 수 없다. 이 사항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 다시 말해 우리가 주님의 집에 들어 갈 때 위와 같은 생각들을 벗어 던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보편화 될 정도로 모두 알고 있다. 이로부터 수소 또는 어린 양 또는 염소를 진영 내에서 또는 진영 밖에서 또는 들판에서 죽이는데 대한 의미를 납득할 수 있다. 주님으로부터 온 우리의 선한 애착들은 교회 내에서 또는 교회 밖에서 실감해 보지도 않은 예배의 외관만에 의해서도 오염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허울 좋은 예배에 부착되어 있는 처벌을 생각해보자. “피는 그 사람에게 귀속되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 백성으로부터 잘리울 것이다.” 왜곡된 예배를 갖는 사람은 자기가 고백한 거룩한 원리에 어긋나는 바, 어긋난 만큼 그는 그 원리에서 분리된다는 것이다. 이럼에도 외적 예배가 내적 예배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것은 얼마나 흔한지 모른다. 사실 이런 점에 있어서 죄 없다 할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너는 살아 있다고 말하지만 실상 죽어있다” 라고 평가받은 사르디스 교회인 같이 우리도 지내왔기 때문이다. (계시록3:1) 그러면 치료 약은 무엇일까? 본문이 우리에게 말하는 바, 만남의 천막 문에로 제물을 가져다가 거기서 바쳐야 하는 것이다. 실제의 문제로 생각 할 때 우리가 주님을 진실로 인정하고 그분을 예배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한 장소 즉 한 가지 상태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지식을 통해, 신앙을 통해, 사랑을 통해, 그리고 그 자체를 나열하는 순수한 선의 상태이다.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해보면 그것은 우리를 선 쪽으로 소개하는 진리의 상태, 즉 문은 우리가 신실성과 진리 안에서 주님을 예배하겠다고 말할 때 지상의 성전 안으로 입장할 수 있게 해주는 것과 같다. 이 진정한 예배가 성직자가 피를 흘리고 지방을 살라 향기를 풍겨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 데에 의미되어 있다. 그 반면 이전의 거짓 예배는 폐지되어지는데 이것이 이름을 거론해서 언급된 우상에서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교회 속의 사람들은 자기의 습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직접 수반되는 예배에 관한 신성한 법을 적절한 가치에서 생각해 보아야 하리라 본다. 이렇게 할 경우 자신이 주님의 법을 제대로 이행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지의 경우 그는 자기가 시정해야 할 사항에 자기도 모르게 친숙해진다. 선해지기를 바래면서 그분의 계명을 원리로 삼아 정직하고 근면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주님을 진실로 예배할 수 없다는 것을 누가 잘 알지 못하고 있는다고 버젓이 말할 수 있을까 말이다.
이제 다음 단원을 살펴보자. 비록 지금까지 취급해온 말씀의 부분에 부주의한 예배라 해도 또는 모독자라고 까지 아직은 말할 수 없다 해도 그가 잘못된 과정을 계속 고집해 간다면 모독했다고 까지 간주 할 수 없는 경우까지도 실지 모독하는 쪽으로 기울고야 만다. 피채 고기를 먹는 것에 이런 사항이 함축되어 있는데 이는 거룩한 것에 모독된 것을 섞는 것이다. 선과 진리를 인정하고 믿고 사랑하는데도 그에 반대되는 생활을 영위할 경우에 발생된다. 이 경우의 악의 종류는 수없이 많이 있는데 일부의 경우는 이미 거론했던 적이 있다. 인간이 모독을 경미하게 저지를 수도 있고 심하게 저지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는 치료될 수 있고 때로는 치료될 수 없을는지도 모른다. 잘 짜여진 각본으로 실시된 위선의 경우가 아마 아주 심한 경우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위선의 초기 징조와 그 때를 미리 감지하여 방비하는 것이 상책이 될 것이다. 정죄되어야 마땅한 게 악이므로 그것을 금하는 행동 습관을 꾸준히 배양해 가고 선을 표현해 내는데 근면해야 하리라 생각된다. 파멸로 끌어들이는 이기심, 세상적 관심, 감각적 측면에 몰입되어 우리 자신은 늘 오염되기 일쑤지만 신성한 법을 단지 고백만 하는 수준에서 그 법에 다가가서 나의 삶이 조화를 이루도록 갖가지 배려를 해 가는 것이 최상의 삶의 방향인 것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수긍되는 말일 것이다.
위에 관련되어 아직 더 생각해 볼 측면들이 본문에 남아 있다. 오히려 잘 경청해둘 주제라 생각된다. 선과 진리의 원리를 소홀히 함 또는 그 실행에 게을렀던 것, 또는 선과 진리의 원리를 교묘히 위반하는 사항에 첨가되는 것은 그 위반을 더 강도있게 만드는 설득(persuasion)이라는 논리이다. 이것이 본문과 말씀의 다른 부분에서 사냥함(hunting)으로 표현되고 있다. “니므롯은 여호와께서도 알아주시는 힘센 사냥꾼” (창세기 10:9)이라고 말해지고 있는데 이에 관한 주석을 보면, “그것은 그가 많은 것을 설득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구변이 센 양상은 선행에서 분리된 신앙의 본성이나 말씀에 있는 사냥이라는 말의 의미로부터도 잘 보여진다. 선행에서 분리된 신앙은 쉽게 설득된다. 인류 속의 대다수는 내적으로 무엇이 있는지, 외적으로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게다가 삶의 더 많은 부분이 감각적 쾌락들, 탐욕들에 푹 담겨있다. 그러므로 인류의 대다수가 선행에서 분리된 신앙을 원리로 하는 종교에 너무나 쉽게 포착되고 만다… ‘너희가 새를 사냥하듯 영혼들을 사냥하는 그 방석을 내가 너희 팔에서 떼어버리고 너희가 새처럼 사냥한 그 영혼들을 놓으며 또 너희 수건을 찢고 내 백성을 너희 손에서 건지고 다시는 너희 손에 사냥물이 되지 않게 하리라…’(에스겔 13:20,21) 이 구절은 사냥이 의미하는 것을 설명해준다. 즉 설득을 수단으로, 인지(cognition)라는 작용을 수단으로 해서 상대방을 기만하는 것이 사냥이다. 그리하여 자기들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타인들의 경향성이 자진해서 따라가도록 유인하여 뒤집는다.” 위로부터 본문이 말하는 설득이라는 본성까지도 알 수 있다. 여기에 덧붙여 니므롯의 뜻이 반역적인, 고집적인(rebellious), 또는 하강이 정지됨(sleep of descent), 규율력이 마비됨(sleep of him that rules)이다는 것까지 생각하면 더욱 확실히 알게 해줄 것이다. 우리 자신의 불의한 심적 태도를 더 악화되게 하는 것, 또는 영적 진보에 누구에게 필수 요건인 귀중한 자유를 타인에게서 약화되게 하는 행위 같은 것을 가능한 피할 수 있도록 노력을 다 해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위에 덧붙여 주지해둘 사실이 끝 부분에 있다. 완전한 상태에 있게 되는 외적 인간의 삶은 내적 인간의 완전한 삶에서 파생된다는 것, 따라서 인생을 수련 중인 상태에서 자기의 불순함을 깨끗하게 하지 못할 경우 그 상태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본문을 통해 말씀의 내적 의미를 찾아 보겠다는 노력, 더 높은 삶을 영위해야겠다는 성의가 우리에게 더욱 있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그 이유는 신성한 진리 안에 포함된 세부 사항들까지 세심하게 검사해 자신에게 더욱 반영시켜 갈수록 우리는 저 세상 삶에 있을 마지막 목표를 향해 인내를 가지고 달려 갈 수 있는 더 많은 용기를 얻게 되고 더욱 더 계발되어 정확한 목표 지점을 보면서 달리므로 더 행복하고 더 침착한 여유도 있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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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8장

성경: 레위기 1장
1.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기를,
2.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야기하라,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희의 하느님 주님이다.
3. 너희가 거주했던 이집트의 토지로부터의 행실들을 따라 너희는 행동하지 말라. 그리고 내가 너희를 데려갈 가나안의 토지의 행실들을 따라 행동하지 말라. 너희는 그들의 법령들에서 걷지 말라.
4. 내 판단들을 너희는 실시하라. 그리고 내 법령들에서 걷기 위해 그것을 너희는 지켜라. 나는 너희의 하느님 주님이시다.
5. 너희는 그러므로 내 법령들을, 그리고 내 판단들을 준수할 것이다. 사람이 이것을 실시하면, 그는 그것들 안에서 살 것이다. 나는 주님이다.
6. 너희는 (그들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려고 자기와 가까운 친척의 누구에게도 접근하지 말 것이다. 나는 주님이시다.
7. 네 아버지의 벌거벗음, 네 어머니의 벌거벗음 조차도, 너희는 덮개가 벗겨있게 말라. 그녀는 너의 어머니이다. 너는 그녀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
8. 네 아버지의 아내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너는 벗기지 말라. 이것은 네 아버지의 벌거벗음이다.
9. 네 아버지의 딸, 또는 네 어머니의 딸, 집에서 출생했든, 밖에서 출생했든, 네 누이의 벌거벗음, 그들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너는 벗기지 말라.
10. 네 아들의 딸, 또는 네 딸의 딸의 벌거벗음이라해도, 그들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너는 벗기지 말라. 그 이유가 그들의 것은 네 자신의 벌거벗음이기 때문이다.
11. 네 아버지의 아내의 딸의 벌거벗음, 네 아버지로부터의 출생인바, 그녀는 네 누이이다, 너는 그녀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
12. 너는 네 아버지의 누이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 그녀는 네 아버지의 가까운 친척되는 여인이다.
13. 너는 네 어머니의 자매들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 그 이유가 그녀는 네 어머니의 가까운 친척 여인이기 때문이다.
14. 너는 네 아버지의 형제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 너는 그의 아내에게 접근하지 말라. 그녀는 너의 아주머니(aunt)이다.
15. 너는 네 며느리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 그녀는 네 아들의 아내이다. 너는 그녀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
16. 너는 네 형제의 아내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 이것은 네 형제들의 벌거벗음이다.
17. 너는 여인과 그녀의 딸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 너는 그녀의 아들의 딸을, 또는 그녀의 딸의 딸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려고 데려가지 말라. 그들은 가까운 친척되는 여자들이다. 이것은 사악하다.
18. 그리고 너는 그녀의 일생 동안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그녀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겨서 그녀와 경쟁자가 되도록 그녀의 자매를 여인으로 데려오지 말라.
19. 너는 그녀의 불결함으로 인해 그녀가 불순해 있는 한,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
20. 그리고 너는 네 자신이 그녀와 더불어 더럽혀지도록 네 이웃의 아내와 육체적으로 눕지 말라.
21. 너는 네 씨의 어떤 것이 몰렉에게 불을 통과하게 만들려하여 그들을 주어서는 안될 것이다. 너는 네 하느님의 이름을 모독 말 것이다. 나는 주님이시다.
22. 너는 여자(womankind)와 눕듯이 남자(mankind)와 눕지 말 라. 이것은 역겨웁다.
23. 그리고 너는 그것과 더불어 네 자신이 더럽혀지게 어떤 짐승과도 눕지 말라. 어떤 여인도 그것과 누우려고 짐승 앞에 서지 말라, 이것은 혼동이다.
24. 너희는 이런 것들의 어떤 것에서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 그 이유는 내가 너희 앞에서 내쫓는 나라들이 이런 것들로 더럽혀 있기 때문이다.
25. 그리고 토지는 더럽혀 있다. 그러므로 나는 그것 위에 있는 그것으로부터의 불법을 방문할 것이다, 그리고 토지는 그녀의 주민들을 토해낼 것이다.
26. 너희는 그러므로 내 법령들과 내 판단들을 준수하라, 그리고 이런 역겨운 것의 어떤 것도 실시하지 말라. 본토박이이든, 너희 사이에 체류하는 낯선 사람이든 실행하지 말라.
27. (모든 이런 역겨운 짓들을 토지의 사람들이 했었다, 이것이 너희 앞에 있었던 짓들이다, 그리고 토지는 더럽혀져 있다.)
28. 토지가 너희 앞에 있었던 나라를 토해내듯, 너희가 토지를 더럽혀 토지가 너희 역시 토해내지 않게 하라.
29. 이런 역겨운 짓의 어떤 것이라도 실시한 자는 누구든지, 그것들을 행한 혼은 정녕 자기 백성 사이로부터 잘리운다.
30. 그러므로 너희는 내 명령(charge)을 지켜라, 하여, 너희는 이런 역겨운 관습들을 행치 말라, 이것이 너희 앞에 있었다, 그리고 너희는 자신을 그것으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 하느님 주님이시다.

영적 의미의 요약

* 교회인은 자연적 인간 수준 또는 교회 속의 악과 거짓에 따라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 선과 진리이신 주님과 결합하여 그분만을 예배해야 한다, 1-5절.
*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인간은 악과 거짓에 결합함으로 선과 진리를 모독하는 것이 금하여진다, 6절.
* 세부적으로도 사생아가 출생하는 식의 결합들을 수단으로 선과 진리를 모독해서도 안 된다. 이것이 시리즈로 기술되고 있다. 이를 수단으로 부패된 교회가 더 더러워지면서 어느 것이 선과 악인지 실감할 수 없게 한다, 7-25절.
* 반대로 영적 교회인은 순수한 선과 진리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않도록, 그분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의 천국 결혼을 결과하는 주님께의 순종이 될 수 없게 하는 것들, 즉 역겨운 행위를 피해서 자신이 너무 썩지 않도록 신성한 진리에 따라 살아야만 한다, 26-30절.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기를,

영적 의미

주님께서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지각을 주시어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speak)이란 유입을; 모세는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말함(say)은 지각을 말한다. (2001, 2951, 7010, 1791, 1822)

2절.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야기하라,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희의 하느님 주님이다.

영적 의미

영적 교회인에 대한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으로부터 그는 주님이 유일한 하느님이시고, 그분으로부터 모든 선과 진리가 결합된다는 것을 배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라란 영적 교회인에 대한 가르침, 이로부터 그는 배우게 된다는 것을;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란 주님이 유일한 하느님이시고 그분으로부터 모든 선과 진리가 결합된다는 것을 말한다. (7010, 3654, 10355, 1791, 1822, 2001)

3절. 너희가 거주했던 이집트의 토지로부터의 행실들을 따라 너희는 행동하지 말라. 그리고 내가 너희를 데려갈 가나안의 토지의 행실들을 따라 행동하지 말라. 너희는 그들의 법령들에서 걷지 말라.

영적 의미

그러므로 그는 자기가 태어난 자연적일 뿐인 상태 속의 악과 거짓에 따라서 살지 말 것이며, 영적 교회인에 의해 계승되어 온 부패된 교회 속의 악과 거짓에 따라서도 살지 말 것, 더 이상 어떤 외적인 예배도, 우상을 숭배하는 것도 안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너희는 너희가 살던 이집트 토지의 행실들을 따라 하지 말라란 우리가 태어난 상태인 자연적일 뿐인 상태 속의 거짓과 악들에 따라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내가 너희를 이끌고 들어갈 가나안 토지의 행실들을 따라 하지 말라란 부패된 교회의 악과 거짓에 따르지 말 것, 이것들이 영적 교회에 계승된다는 것을, 그들의 규정을 따르지 말라란 더 이상 외적이고 우상 숭배적으로 예배하지 말라는 것을 뜻한다. (5755, 5276, 1293, 1868, 8420, 7884, 8357)

4절. 내 판단들을 너희는 실시하라. 그리고 내 법령들에서 걷기 위해 그것을 너희는 지켜라. 나는 너희의 하느님 주님이시다.

영적 의미

위와 반대로 주님은 말씀으로부터 오는 내적, 외적 진리를 수단으로, 이 진리를 일상 생활에서 순종함으로 예배되어진다. 그 이유는 그분은 선과 진리가 결합한 것으로, 선으로부터 파생된 진리로서,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신 분으로 명백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의 판단을 따르는 것, 그분의 법령을 지켜 걷는다는 것은 말씀을 수단으로 또는 내적, 외적 진리를 수단으로 또는 일상 생활에서 순종함을 수단으로 그분께 예배하는 것을;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라고 말하신 이유는 주님께서 그분 자신을 선과 진리가 결합되어 계신 분으로, 선에서 파생되는 진리이신 분으로,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하모니를 이루신 분으로 나타내 보여주시기 위해서이다. (5755, 8357, 2001)

5절. 너희는 그러므로 내 법령들을, 그리고 내 판단들을 준수할 것이다. 사람이 이것을 실시하면, 그는 그것들 안에서 살 것이다. 나는 주님이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인간은 처음에 외적 예배에서 시작하되 내적 인간이 되어 가는 법칙에 따라 내적 인간 쪽으로 인도되어간다. 그리하여 그는 주님을 특별히 신성한 선이 되시는 분으로 인정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의 규정과 판단을 지킨다는 것은 인간은 내적 예배를 인도하는 외적 예배에 먼저 종사한다는 것을, 그것을 행하고 그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내적 인간이 되게 해주는 법칙에 순종함을, “나는 주이시다”란 그가 주님을 신성한 선으로 특별히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8357, 5755, 2001)

6절. 너희는 (그들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려고 자기와 가까운 친척의 누구에게도 접근하지 말 것이다. 나는 주님이시다.

영적 의미

그런고로 영적 인간은 결합을 통해 유전적, 실제적인 악과 거짓들을 수단으로 거룩한 진리를 모독하는 것이 금하여진다. 그 이유가 신성한 선이 요구하시는 바, 선은 진리와 결합하는 것만이 합법적이라고 하시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자기와 가까운 친척의 누구에게도 접근하지 말라란 결과적으로 영적 인간은 결합을 수단으로 유전적 또는 실제적인 악과 거짓으로 오염시켜 거룩한 진리를 모독하는 것이 금하여져 있다는 것을, “나는 주이시다”란 신성한 선이 요구하시는 바, 선은 진리와 더불어서만 합법적으로 결합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이런 결합을 확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6348, 4434, 9960, 2001, 7192)

7절. 네 아버지의 벌거벗음, 네 어머니의 벌거벗음 조차도, 너희는 덮개가 벗겨있게 말라. 그녀는 너의 어머니이다. 너는 그녀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

영적 의미

그러므로 선을 유전적 악으로 직접 오염시켜 모독하던가 그 악을 본질적인 거짓과 결합시킴으로 모독하는 것은 신성한 질서에 반대된다. 이 거짓은 새로운 악의 형체의 외적 근원이 되고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네 아버지의 벌거벗음, 네 어머니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란 본질적인 악과 결합됨을 통해 유전적 악으로 직접 오염시켜 선을 모독하는 것은 신성한 질서에 반대된다는 것을, 그 이유는 이런 간음으로 선이 모독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유전적인 악을, 어머니는 그 악과 결합된 거짓을 뜻하고 있다. “그 여자가 네 어미라”란 이 거짓은 악의 새로운 형체의 외적 근원이라는 것을; 그 여자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 것이란 오염과 폭로를 말한다. (6348, 3703-20, 1815, 1895, 9960-10)

8절. 네 아버지의 아내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너는 벗기지 말라. 이것은 네 아버지의 벌거벗음이다.

영적 의미

또한 외적 인간 안에 있는 유전적인 악과 결합되어 있는 거짓으로 오염시켜 선을 모독하는 것도 불법적이다. 그 이유는 이와 같은 거짓도 유전적 악의 또 다른 형체일 뿐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네 아버지의 아내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란 외적 인간 안에 있는 유전적인 악과 결합되어 있는 거짓으로 오염시켜 선을 모독하는 것은 불법이다는 뜻이다. 아버지란 유전적 악을, 아비의 아내란 외적 인간 안에서 유전적 악과 결합된 거짓을, 그것은 곧 네 아버지의 벌거벗음이다란 이런 거짓도 유전적 악의 또 다른 형체일 뿐이다를 말하는데 그 이유는 진리가 선의 형체이듯 거짓은 악의 형체이기 때문이다. (6348, 3703-20, 409, 1369, 9637)

9절. 네 아버지의 딸, 또는 네 어머니의 딸, 집에서 출생했든, 밖에서 출생했든, 네 누이의 벌거벗음, 그들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너는 벗기지 말라.

영적 의미

이해함 안에 있는 거짓으로 오염시켜 진리를 모독하는 것, 그것이 내면의 유전적 애착으로부터이든, 외면으로부터이든, 이 거짓은 내적 또는 외적 인간 안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바 불법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누이란 이해함 안에 있는 거짓을 말하는데 그 이유는 좋은 의미에서 누이는 지적인 진리를 뜻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딸 또는 어머니의 딸이란 내면의 유전적 악 또는 외면의 유전적 악에서 진행됨을; 집에서 출생했든 밖에서 출생했든 이란 내적 인간 또는 외적 인간 또는 교회 안에서 활성화되어 있음을 말하는데 이 경우는 본토박이와 체류하는 사람의 의미에서와 비슷하다. 그들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면 안 된다란 진리의 왜곡과 위와 같은 품성을 모독함은 불법이라는 뜻이다. (1475, 568, 1815, 1895)

10절. 네 아들의 딸, 또는 네 딸의 딸의 벌거벗음이라 해도, 그들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너는 벗기지 말라. 그 이유가 그들의 것은 네 자신의 벌거벗음이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실제의 악 또는 거짓으로부터 튀어나오는 악한 애착으로 오염시켜 진리를 모독하는 것도 불법이다. 그 이유는 이런 애착은 실제의 악이 더 증강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들의 딸, 딸의 딸이란 실제의 거짓과 악에서 튀어나오는 악한 애착을 뜻한다. 아들은 거짓을, 딸은 악을 의미한다. 이 구절에서 실제의 거짓과 악이다고 해석할 수 있는 이유는 본문의 아들, 딸은 인간 고유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버지의 자녀 또는 어머니의 자녀라는 의미와 구별된다. 그들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란 이런 오염으로 진리를 모독하고 왜곡하는 것은 불법이다는 것을; 그것은 곧 너 자신의 벌거벗음이다란 이런 종류의 악한 애착은 실제의 악이 강도가 더 높아진 것임을 말한다. (568, 6348, 313, 494)

11절. 네 아버지의 아내의 딸의 벌거벗음, 네 아버지로부터의 출생인 바, 그녀는 네 누이이다, 너는 그녀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

영적 의미

외적 인간에 있는 거짓과 결합된 악에서 튀어나오는 유전적 악의 애착으로 오염시켜 진리를 모독하는 것도 불법이다. 그 이유는 이해함 안에서 진리가 합법적으로 결합되어질 수 없게 한 실제의 거짓이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의 아내의 경우 밀접한 관계는 못되는 바, 친어머니의 경우 외적 인간 안에 있는 유전적 악과 결합된 거짓을 말하고(8절 참조), 아버지의 아내의 딸은 유전적 악과 거짓의 결합에서 발생하는 외적 인간 안에 있는 유전적인 악한 애착을 말한다. “그녀는 네 누이이다”란 이 애착은 이해함 안에 있는 실제의 거짓을 말한다 (9절 참조). 그녀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란 진리를 이런 악으로 오염시켜 모독하고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568, 1475, 6348)

12절. 너는 네 아버지의 누이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 그녀는 네 아버지의 가까운 친척되는 여인이다.

영적 의미

내적 인간과는 직접 결합되지는 않았어도 이해함 안에 있는 거짓으로 오염시켜 진리를 모독하는 것도 불법이다. 그 이유는 이것도 유전적 악과 같은 평면에 있는 악이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버지의 누이(고모)란 직접적인 결합은 없지만 내적 인간에서 유전적 악과 합병되어 있는 이해함 안의 거짓을 뜻한다. 네 아비의 가까운 친척되는 여인이다란 이것도 유전적 악과 같은 평면에 있는 거짓임을,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란 진리를 위의 거짓에 대한 애착으로 오염시켜 모독하고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3703-20, 1475, 6348)

13절. 너는 네 어머니의 자매들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 그 이유가 그녀는 네 어머니의 가까운 친척 여인이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외적 인간과 직접 결합되지는 않았어도 유전적 악과 결연 관계인 이해함 속의 거짓으로 오염시켜 진리를 모독하는 것도 불법이다. 그 이유는 위와 같다.

세부적 영적 의미

어머니의 자매(이모)란 외적 인간 안에서 직접적인 결합은 아니지만 유전적 악과 병합되어 있는 이해함 안의 거짓을 말한다. 네 어미와 가까운 친척 여인이다란 외적 평면에 있는 유전적 악과 같은 평면에 있는 거짓을;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겨서는 안 된다란 진리가 위의 거짓을 사랑함으로 오염되어 왜곡되거나 모독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1815, 1895, 1475, 3160, 6348)

14절. 너는 네 아버지의 형제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 너는 그의 아내에게 접근하지 말라. 그녀는 너의 아주머니(aunt)이다.

영적 의미

영적 인간이 유전적 악에서 분가한 악과 결합된 거짓을 통해 이 악으로 오염시켜 선을 모독하는 것도 불법이다. 그 이유는 유전적 생명에서 더 멀리 떨어진 바깥쪽 형체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버지의 형제(삼촌)이란 방계적인 유전적 악들을, 삼촌의 아내란 유전적 악과 결합된 거짓을, 그녀는 네 아주머니이다란 이 거짓은 더 멀리 떨어진 유전적 삶의 바깥 형체라는 것을, 그녀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란 이런 거짓으로 선을 오염시켜 모독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뜻이다. (3612, 1369, 3612, 4145, 6348)

15절. 너는 네 며느리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 그녀는 네 아들의 아내이다. 너는 그녀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

영적 의미

그가 자신의 악과 결합된 거짓으로 오염시켜 선을 모독하는 것도 불법이다. 그 이유는 이것이 위와 같이 악의 바깥 형체이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며느리란 실제의 악과 결합된 거짓을; 그녀가 네 아들의 아내이다란 이 악의 바깥쪽 형체임을;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란 이런 거짓으로 오염시켜 선을 모독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뜻이다. (4843, 10490, 3049, 5337, 9474-3, 6348)

16절. 너는 네 형제의 아내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 이것은 네 형제들의 벌거벗음이다.

영적 의미

방계에 속하는 악과 결합된 거짓으로 오염시켜 선을 모독하는 것도 불법이다. 그 이유는 이것이 위와 같이 악의 바깥 형체이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형제란 2차적인 악을; 아내란 이 악과 결합된 거짓을; 형제의 벌거벗음이란 이 악의 바깥 형체를;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란 이런 거짓으로 오염시켜 선을 모독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뜻이다. (3612, 1369, 9960-18, 3049, 5337, 9474, 6348)

17절. 너는 여인과 그녀의 딸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 너는 그녀의 아들의 딸을, 또는 그녀의 딸의 딸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려고 데려가지 말라. 그들은 가까운 친척되는 여자들이다. 이것은 사악하다.

영적 의미

실제의 악으로부터, 이 악이 거짓으로부터 이든, 악으로부터 온 악 이든 이 악으로 오염시켜 진리를 모독하는 것은 불법이다. 위 악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 오염은 악이 매우 강도 높게 된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인과 그녀의 딸이란 거짓과 거짓에서 파생된 악을; 그녀의 아들의 딸(손녀)이란 거짓으로부터 오는 악, 그 악으로부터 오는 악을; 이 악들이 연합되어 있다는 것이 그들은 한 핏줄이라는 것으로 나타내고 있고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겨서는 안 됨은 이런 악들로 오염시켜 진리를 모독하고 왜곡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사악하다란 이 악들이 매우 강하다는 뜻이다. (1369, 568, 3160, 6348)

18절. 그리고 너는 그녀의 일생 동안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그녀의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겨서 그녀와 경쟁자가 되도록 그녀의 자매를 여인으로 데려오지 말라.

영적 의미

이해함 안에 있는 상충되는 거짓들이 동시에 다툼으로 오염시켜 진리를 모독하는 것도 불법이다. 왜냐면 이것은 거짓의 충돌을 야기시키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자매란 이해함 안에 있는 거짓들; 두 자매란 애착으로 서로 상층 되는 거짓들을; 경쟁자가 됨이란 거짓들의 싸움을;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란 이런 거짓들로 오염시켜 진리를 모독하고 왜곡하는 것을; 그녀가 살아있는 동안이란 거듭나는 동안 느낌과 생각들이 싸우는 상태가 활동함을 말한다. (3160, 6420, 9308, 6348, 4366-2)

19절. 너는 그녀의 불결함으로 인해 그녀가 불순해 있는 한,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

영적 의미

자연적 애착일 뿐인 것이 너무 많아 야기되는 왜곡된 진리로 오염시켜 진리를 모독하는 것도 불법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월경으로 불결한 것, 그로 인해 분리되어 있는 것이란 거듭나는 동안 자연적 애착만이 너무 풍부한 탓에 야기되는 왜곡된 진리를, 벌거벗음의 덮개를 벗기지 말라란 이런 왜곡으로 오염시켜 진리를 모독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뜻이다. (10130, 4161, 6348)

20절. 그리고 너는 네 자신이 그녀와 더불어 더럽혀지도록 네 이웃의 아내와 육체적으로 눕지 말라.

영적 의미

교회의 선을 간음하여 모독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것은 가장 크게 불순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웃의 아내와 육체적으로 눕지 말라란 가장 큰 불순함인 교회 속의 선을 간음질 함으로 모독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말이다. (6348)

21절. 너는 네 씨의 어떤 것이 몰렉에게 불을 통과하게 만들려하여 그들을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너는 네 하느님의 이름을 모독 말 것이다. 나는 주님이시다.

영적 의미

이기적 사랑을 통해 교회의 발단이 되는 진리를 왜곡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 이유는 진리는 신성한 선의 형체인 바 언제나 경건되게 붙잡고 있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네 씨의 어떤 것(자식)이 불을 통과하도록 몰렉에게 바치지 말라란 이기적 사랑을 통해 교회의 발단이 된 진리를 왜곡시켜 모독하는 것은 불법임을; 네 하느님의 이름을 모독하지 말라란 진리는 언제나 경외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데, 특별히 첨가해 말해둘 것은, 주님 안에서 인간이 신성과 결합하는 것 또는 신성한 인간을 뜻한다는 것, “나는 주님(여호와)이다”란 신성한 진리는 신성한 선의 형체임을 말한다. (1610, 934, 2468-16, 6280, 2001)

22절. 너는 여자(womankind)와 눕듯이 남자(mankind)와 눕지 말라. 이것은 역겨웁다.

영적 의미

감각적 사랑으로부터 거짓을 가지고 진리를 오염시키는 것은 불법이다. 이는 가장 타락되고 혐오되는 오염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인과 자듯 남자와 자지 말라 그것은 망측한 짓이다란 감각적 사랑으로부터 온 거짓을 가지고 진리를 오염시키는 것은 불법이요 가장 타락된 것, 혐오해야 할 것이란 뜻이다. (725, 2056, 6052, 6348)

23절. 그리고 너는 그것과 더불어 네 자신이 더럽혀지게 어떤 짐승과도 눕지 말라. 어떤 여인도 그것과 누우려고 짐승 앞에 서지 말라, 이것은 혼동이다.

영적 의미

악을 가지고 진리를 오염시키는 것, 뿐만 아니라 거짓을 가지고 선을 오염시키는 것은 일반적으로 불법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어떤 짐승하고 교접을 해서 더럽혀지지 말라, 여인도 짐승과 교접을 해서 추잡해지지 말라란 악을 가지고 진리가 오염되는 것, 뿐만 아니라 거짓을 가지고 선이 오염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모독 행위이다. (46, 1326, 6348)

24절. 너희는 이런 것들의 어떤 것에서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 그 이유는 내가 너희 앞에서 내쫓는 나라들이 이런 것들로 더럽혀 있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참으로 영적 인간은 위의 온갖 종류의 모독으로 자신이 불순해지게 해선 안 된다. 그 이유는 이것이 악을 확증하고 있는 부패된 교회인의 실지 모습이요, 신성한 진리의 능력에 의해 거절되어야만 하는 썩은 교회인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런 행위 중 어느 하나라도 저질러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란 영적 인간은 모독의 어떤 것 가지고도 자신을 불순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래서 쫓아낼 나라들이란 이상의 것들은 악으로 확증한 부패된 교회의 실제요, 신성한 진리의 힘으로 거절되어진다는 것을 말한다. (10130, 6348, 1205, 2657)

25절. 그리고 토지는 더럽혀 있다. 그러므로 나는 그것 위에 있는 그것으로부터의 불법을 방문할 것이다, 그리고 토지는 그녀의 주민들을 토해낼 것이다.

영적 의미

교회가 지독하게 썩어지면 그 썩은 결과인 고통을 감수해야 하고 더 이상 선인지 악인지를 구별하여 실감할 수 없어 완전히 모독되어 있는다.

세부적 영적 의미

토지는 더럽혀 있다란 거절된 교회는 심각하게 썩어진다는 것을; 불법을 방문함이란 썩어진 결과로 고통받을 것을; 그 땅이 거주민을 토해 내리라란 이 교회는 선이든 악이든 적절히 실감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10130, 696, 9937, 9527, 3705)

26절. 너희는 그러므로 내 법령들과 내 판단들을 준수하라, 그리고 이런 역겨운 것의 어떤 것도 실시하지 말라. 본토박이 이든, 너희 사이에 체류하는 낯선 사람 이든 실행하지 말라.

영적 의미

그러나 진실로 영적 인간은 내적, 외적으로 신성한 법에 순종적이다. 그래서 모든 모독, 그것이 내적 교회에 속하든 외적 교회에 속하든 모두 혐오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의 법령과 판단들을 준수하고 역겨운 짓을 하지 않음이란 진실로 영적 인간은 내, 외적으로 신성한 법에 순종하고, 모든 모독하는 것을 역겨워한다는 것을, 본토박이 이든 너희 가운데 체류하는 낯선 사람 이든 이란 그가 내적 교회에 속하든지 외적 교회에 속하든지를 뜻한다. (8387, 6052, 8013)

27절. (모든 이런 역겨운 짓들을 토지의 사람들이 했었다, 이것이 너희 앞에 있었던 짓들이다, 그리고 토지는 더럽혀져 있다.)

영적 의미

위 같은 부패는 이기적 사랑과 세상적 사랑에 있는 이들에게 공통된 것, 이 두 사랑은 유전적 사랑인데, 인간이 실제의 악을 심사숙고해서 탐닉하여 선택할 때 이 사랑은 처음으로 활동을 개시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런 온갖 역겨운 짓은 너희에 앞서 살던 사람들이 했던 것이다”란 이런 부패된 것들은 이기적이고 세상적 사랑 안에 있는 이들에게 공통된 짓이라는 뜻, 너희에 앞서 있었던 것들이란 공동체로서, 개인적으로서도 교회에 앞서 있었던 영적인 것들, 그런고로 유전적 속성으로부터 오는 상태들이라는 뜻임을; 그 땅이 더럽혀졌다란 이기적이고 세상에 속한 뒤집힌 사람들로부터 파생된 실제의 악들이라는 뜻이다. (1205, 693, 8551, 10130)

28절. 토지가 너희 앞에 있었던 나라를 토해내 듯, 너희가 토지를 더럽혀 토지가 너희 역시 토해내지 않게 하라.

영적 의미

과거 뒤집혀진 교회가 그러했듯이 그도 역시 진리를 고집하여 썩게 하여 모독해 간다.

세부적 영적 의미

“너희 보다 앞서 거기에 살던 민족을 토해 냈듯이 너희도 그 땅을 더럽히면 그 땅이 너희를 토해 내리라”란 뒤집혀진 옛 교회가 그러했듯이 영적 인간도 진리를 고집 부려 부패시키면 모독하여 더러워진다 라는 뜻이다. (9527, 10130)

29절. 이런 역겨운 짓의 어떤 것이라도 실시한 자는 누구든지, 그것들을 행한 혼은 정녕 자기 백성 사이로부터 잘리운다.

영적 의미

이런 망측한 짓들 가운데 어느 한 가지라도 저지른 사람은 그가 누구든지 간에 겨레로부터 추방당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런 역겨운 짓을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란 본 장에서 묘사된 바 같이 선하고 참된 것을 모독하는 모든 사람을; 백성으로부터 잘리움이란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로부터 철저히 분리됨을 말한다. (6052, 5302, 1259)

30절. 그러므로 너희는 내 명령(charge)을 지켜라, 하여, 너희는 이런 역겨운 관습들을 행치 말라, 이것이 너희 앞에 있었다, 그리고 너희는 자신을 그것으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 하느님 주님이시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영적 인간은 잘 순종해서 옛 부패된 교회처럼 극도로 모독함으로 불순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선과 진리가 하나되어 계신 주님만을 예배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께서 지키라고 한 것을 잘 지킴이란 순종해야 함을, 어떤 역겨운 관습을 따라 하지 말라란 옛 썩어진 교회들처럼 극도로 모독하지 않도록을, 스스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는다란 불순해지지 않음을,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란 주님만이 선과 진리가 하나되어 계신 분으로 예배되어야 함을 뜻한다. (8830, 8513, 6052, 8550, 8551, 10130, 2001)

18장의 종합적 고찰

이 장의 주제와 관련되는 서문은 매우 의미심장한데 그 이유는 신성한 분께서 계속적으로 세 번씩 그분을 선포하시기 때문이다. 우선 그분께서는 사랑과 지혜가 하나된 한 분 신성한 존재로서의 자연적 인간을 그분 스스로 명백히 나타내고 있으신다. 이로 인해 우리는 그분이 무한하게 영광스러우신 신성한 사람이신 분으로 자연스럽게 생각되게 되어있고 그러므로 해서 사랑과 지혜, 선과 진리 또는 애착과 총명이 유한한 인간을 구성하게 됨을 이해하게 해준다. 이는 깊이 숙고해 보지 않고 단순하게만 생각하는 자연적 인간 뿐 아니라 식별해내는 영적 인간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이렇게 말한 이유는 제 4절의 내적 의미가 “선에서 파생된 진리,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신 분으로서” 두 번째 그분을 선포하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선포하신 이유가 더 있다. 자연적 수준에서 영적 수준으로 옮겨갈 때 그 사람이 선의 상태로 진행되는 것은 진리를 수단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연적 수준이 영적 수준과 결합함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세 번째 선포(21절)에서는 “나는 여호와이다”라고만 언급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영적 수준에서 천적 수준으로 되는 것은 순종을 수단으로, 진리와 선이 결합함으로, 진리를 수단으로 하되 선에 근거해 살아가기 때문이다. 거듭나고 있는 모든 이는 위 과정을 통과해야만 하고 그렇게 해 감으로서만 그는 본문에 언급되는 여러 가지 특별한 방법으로 선함이나 진리를 모독하려는 자신 속의 경향성을 극복해 갈 수 있다.
주제 전체가 몇 마디 말로 우선 표현되고 있고 이 표현에 이어 “나는 주님(여호와)이다”가 다시 반복되면서 넓은 측면에서 금하는 것을 확실히 해 두시는데 이에 덧붙여 주님은 거듭나는 사람과 더불어서만, 마치 선과 진리가 신성한 존재 안에서 하나되어 있듯, 합법적으로 결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 차례로 넘어가 생각해 보자. 충분히 거듭난 사람은 벗겨진 자신의 영적인 벌거벗음이 영원히 주님에 의해 보존된다는 사실 속에 심오한 진리 하나가 포함되어 있다. 그 벌거벗음이란 그의 생명에 있는 유전적으로 받은 악과 자신이 실제로 만들어낸 악들이요, 사실 이것은 폐지되어질 수 없고 영원히 남게 되지만 활동하지 않는 상태로 머물고 노출되지도 않는다. 본문에 나열된 금지된 것을 준행할 때에야 어떤 상황에서도 선과 진리를 모독할 가능성을 배제하고 모든 불순함에서 자유로워져 극도로 완전하고 순수한 천사들 같은 삶을 영위한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이와 동시에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떨어져서는 지상 위 교회 안의 누구도, 천국 안의 어느 천사라도 악밖에 가진 게 없고 주님으로부터 온 사랑과 선행으로 덮여 있던 이미 획득한 악한 상태와 감추어 놓였던 유전적 악까지 벌거벗겨지고 말아서 선과 진리를 모독하는 데로 노출된다는 것, 우리는 지상 생활동안 모든 악과 거짓을 거부해야 할 것, 동시에 모든 선함과 진리를 사랑해서 실습하여 그 둘을 진정으로 결혼시켜야 죄를 벗는다는 것들이다.
위와 같은 사항은 본문에 포함된 또 다른 요점을 생각하게 하고 있다. 본문에 게재된 불법적인 연결들, 통상적으로도 허용되지 않는 결혼들이 우리로 되새겨 보게 하는 것이 있다. 즉 천국적인 결혼, 주님과 그분의 교회와의 결혼, 일반 측면에서인 선함과 진리의 결혼은 세부적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로 간주되어야 하리라는 것이다. 모든 선은 그에 반대되는 악이 있고, 모든 진리도 그와 반대되는 거짓이 있는데 교인들은 이렇게 천국적인 것에 반대되는 것을 가지고 자신을 더럽히고 모독을 범하지 않아야 할 뿐 아니라 모든 선은 반드시 그에 어울리는 진리와, 모든 진리는 그에 어울리는 선과 결합되어야 하는 바 그 외 여느 다른 것은 안 된다. 그 이유는 그것들이 진정한 결혼이 아닌 것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남자이든 여자이든 각 개인의 생명은 서로 구분되는 바 이는 되풀이 될 수 없고 선 또는 진리가 지니는 구분된 형체 역시 되풀이 되어 서로 바뀔 수도 없는 바, 남녀는 각기 선 또는 진리와 상응되는 진정되고 영원한 결혼이 존재할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상응되는 이 결혼이 이 세상에서 결과되지 않는다면 천국에서도 그렇게 결과되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결혼에 관한 같은 성질의 두 마음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은 마태복음에 있는 말씀, “하느님께서 짝 지워 놓은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 로부터 알 수 있다(19:4-6). 이 구절로부터 알 수 있는 바, 진정한 결혼은 거듭남과 서로 손을 맞잡고 나아간다는 것, 지상의 결혼은 진정한 천국의 결혼을 옷입고 있는 듯 표현한다는 것, 사랑이 어떠하다 해도 거룩하다는 것이다.
위의 선함과 진리의 결혼에 관한 위반들이 어떤 모독을 구성하게 되는가를 첨가해서 우리 앞에 있는 주제를 취급하는 가운데 내적 의미들로부터 그 이유를 이제 관찰해 보게 된다. 이 모든 것들은 한 가지 일반적 서술 즉 인간의 유전적 생명에는 악밖에 없다는 서술에 포함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아이들의 좋은 기질이나 나쁜 기질은 부모로부터 유전된다는 것, 그런고로 진리 또는 거짓을 획득하는 좋은 능력 역시 유전된다고 귀결 짓는다. 이런 기질이나 능력이 우리에게 확인되는 사항임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렇다해도 인간은 출생시 악밖에 없다고 말해야 하는데 어째서 그럴까? 유한한 인간 존재인 이상 어느 누구도 선함을 상속해 줄 수 없다. 선함의 유일한 근원은 주님 뿐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함은 부모로부터 아이들에게 유전될리 만무이다. 오로지 거듭남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받을 수밖에 없다. 소위 사람들이 유전적으로 받았다고 불리는 선은 유전적으로 받아진 악에 의해 오염되어진다. 다음 성경 구절을 참고로 더 생각해 보기 바란다. 마태복음 19:17; 요한 3:5,6; 열왕기상 8:46.
위에서 살핀 바를 본문과 연결 지어볼 때 명백해지는 하나는, 용어 아버지, 어머니, 형제, 자매 등등이 상응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단어들은 좋은 의미일 경우 주님으로부터 오는 다양한 애착과 총명의 형체를 명시하지만 본문의 경우 나쁜 의미인 바 다양한 악과 거짓들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지 않는 바리사이파인을 두고 이렇게 말하셨다. “너희는 악마의 자식들이다. 그래서 너희는 그 아비의 욕망대로 하려고 한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고 진리 쪽에 서 본 적이 없다. 그에게는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거짓말을 할 때마다 제 본성을 드러낸다. 그는 정녕 거짓말쟁이이며 거짓말의 아비이기 때문이다”(요한 8:44). 여기서 “네 아비가 악마”라 말한 것은 어떤 개인적 악마를 지칭하는 게 아니라 집합체로서의 모든 지옥, 지옥을 만들어 주는 이기적 사랑이라는 원리이다. 따라서 용어 아버지란 모든 악과 거짓은 이기적 사랑에서 나온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요한복음 8장 44절은 본 장에 있는 아버지라는 용어에 주어진 의미와 아버지와 관련되는 모든 친척 관계되는 것들의 의미에 대해서까지 충분한 근거를 제시해 주고 있다. 주님의 교회인으로서 우리는 자신 스스로 본문에 상징화되어 있는 모든 악과 거짓에 열심히 대적해야 한다. 그것들과 단호하게 싸워야 한다. 본문에 게재된 자연적, 영적 차원에서의 결합들로 해서 천국적인 것들, 결혼에 관계된 진정한 사랑의 순수함과 거룩함을 모독하도록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되리라. 이 각오를 더 확고히 해주는 구절 중 하나를 읽어보자.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나는 아들은 아버지와 맞서고 딸은 어머니와, 며느리는 시어머니와 서로 맞서게 하려고 왔다. 집안 식구가 바로 자기 원수다”(마태 10:34-36).
이제 본문을 살피는 결론 부분으로서 마지막 몇 절에서 사용되는 말씀, “이 모든 역겨운 짓들”이 대표하는 의미인 실지의 악과 유전적 악과를 구별해 보자. 그 이유가 이에 대하여는 주의를 기울여 기억해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부모나 선조로부터 자연적인 선을 물려받았다고 해도 그 선은 그 사람의 천국적 생명의 어떤 부분이 되어 그를 구원해 주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유전적으로 받은 어떤 악한 상태도 그 사람을 지옥 가도록 정죄하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왜 그렇게 되는 걸까? 그 이유는 어느 누구도 어떤 아이 속에 있는 유전적으로 받은 특이한 조건이 무엇이다 라고 말할 수 없고, 그가 이런 조건을 벗어날 수 없다 라고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린이들은 이 문제에 관한 책임에서 자유로워 있다. 오로지 모든 사람은 유전적 경향성들로 해서 스스로 악을 채용해서 생산할 경우, 다시 말해 질서의 법칙을 자신 스스로 위반한 결과인 새로운 악의 형체에만 책임이 있다 (에스겔 18:20). 이와 연결되는 다음 서술은 매우 유익하리라 본다. “유아로 죽은 뒤 성인이 된 어떤 사람이 천국에 있었는데 그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자기가 지닌 선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게 아니라 원래 자기 속에 있었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해서 그는 자신에게 선천적으로 지녔었던 악한 삶으로 되돌려 보내졌다. 그 다음 이 상황이 나로 하여금 지각하게 한 것은 그가 남을 통치하고 싶어하는 바램을 가졌다는 것, 그가 음탕한 빛을 만들었다는 것, 이것은 그의 부모로부터 온 유전적으로 파생된 악으로부터 초래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위와 같을 뿐이라는 것을 인정하자 마자 그는 전과 같이 천사들에게 다시 받아들여졌다. 어느 누구도 유전적으로 받은 악 때문에 저 세상에서 고통받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 악은 그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그에 대해 책임이 없다. 오로지 그는 자신이 저지른 악 때문에 오는 벌로 고통받는다. 이것은 그 사람 자신의 것인 바, 위에서 말한 바 같이 유전적인 악을 자기 것으로 삼은 실제적인 삶에 비례된다”(A.C. 2307, 966). 거듭나는 과정에서 단지 자연적일 뿐인 선한 기질이 사용되는 것에 대하여는 아래 인용문에서 알 수 있을는지 모른다. “진리에 관한 자연적인 선은 개혁되기 전에는 영적인 선 즉 신앙의 선, 선행의 선이 아니다. 그러므로 영적 선을 받기 위해서 인간은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 거듭남이 결과되는 사이에 그에게 우선 붙어 있는 것은 순수한 진리 그 자체로부터 라기 보다는 또 다른 근원으로부터 온 진리인데 이 진리는 위로 부합되지는 못하고 단지 순수한 진리들을 소개하는 역할을 한다. 소개가 끝나면 순수하지 않은 진리들은 분리되어 진다… 이는 마치 과일이 열리는 과정 즉 열린 열매의 처음 단계는 맛없는 쥬스로 꽉 차 있는데 이렇게 순수하지 않은 쥬스는 달콤한 쥬스를 위한 수단이 되는 바, 후자가 진행되어 가면서 전자는 사라지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자연적 수준의 인간은 거듭난다. 인간의 자연적 선 그 자체만 볼 경우 그 선은 주인과 종의 관계 같이 합리적으로 선을 기쁘게 섬기거나 순종하려 들지 않고 오로지 명령으로 간주할 뿐이다. 그러므로 질서 있게 진행되는 바, 고분고분해지고 기꺼이 섬기는 상태로 가려면 그것이 지닌 강한 욕망(현세에의 욕망)이 약해질 때까지 시험이나 황폐해지는 상황을 수단으로 쉴새 없이 고뇌를 감수해야 한다. 그 다음 주님으로부터 내적 인간을 통해 선행과 신앙의 선이 유입됨으로 해서 그것은 부드러워지고 유전적으로 받은 선은 근절되어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선이 이식된다. 이식된 선 안에 신앙의 진리들이 우리도 모르게 박혀진다. 이는 마치 인간의 심정에 삽입된 기질(fibre)같은데, 이 기질을 통해 새로운 쥬스가 산출되어져서 새로운 심정이 점차 자라 오른다”(A.C. 3470). 그러므로 우리는 마지막 구절, 영적 의미에서나 글자 그대로에서나 모두에게 정직 성실하게 직시해 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에게 유익한 것, 진정한 천국 상태인 선함과 진리 그리고 선용의 순수한 상태를 위해 노력한 댓가로 수확하기를 바래고 이는 오로지 거듭남을 수단으로, 거듭남에 수반되는 깨끗해짐으로, 더욱이 오직 주님으로부터서 만 달성될 수 있다.

레위기 19장

성경: 레위기 1장

1. 그리고 주님이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2. 이스라엘의 자손의 모든 회중에게 이야기 하라,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라, 너희는 거룩할 것이다. 그 이유는 나 주 너희의 하느님은 거룩하기 때문이다.
3. 너희 모두 각 사람은 자기 아버지, 그리고 자기 어머니를 경외하라. 그리고 너희는 내 안식일을 지켜라.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
4. 너희는 우상들로 돌아서지 마라, 네 자신을 위하여 부어 만든 신들을 만들지 말라.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
5. 그리고 너희가 주님에게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을 바칠 때, 너희는 그것이 받아질 수 있도록 바칠 것이다
6. 그것은 너희가 그것을 바친 같은 날 먹어라, 그리고 내일에도 먹어라. 그리고 만일 셋째 날까지 남아있는 것은 무엇이든, 그것은 불로 태워라.
7. 그리고 만일 셋째 날에 조금이라도 먹게 된다면, 이것은 역겨운 짓이다. 이것은 받아지지 않을 것이다.
8. 그것을 먹는 모든 이는 자기 불법을 낳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주님의 거룩한 것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혼은 자기 백성으로부터 잘리울 것이다.
9. 그리고 너희는 너희의 토지의 수확물을 베어들일 때, 너는 네 들판의 모퉁이들을 몽땅 베어들이지 말라, 너는 네 수확물의 이삭을 그러모으지 말라.
10. 그리고 너는 네 포도원의 이삭을 줍지 말라, 너는 네 포도원의 떨어진 열매를 그러모으지 마라. 너는 그것들을 가난한 자와 낯선 자를 위해 남겨라.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
11. 너희는 훔치지 말라. 너는 거짓되게 장사하지 말라, 서로에게 거짓말하지 마라.
1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을 수단으로 거짓되게 맹세하지 말라, 그럴 경우 너는 네 하느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이다. 나는 주님이다.
13. 너는 네 이웃을 압제하지 말라, 그로부터 강탈하지 말라. 고용된 종의 임금을 밤새 아침까지 너와 함께 머무르게 말라.
14.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 것이고, 소경 앞에 장애물을 두지 말라, 그러나 너는 네 하느님을 경외하라. 나는 주이다
15. 너희는 재판에서 공정하지 않게 실시하지 마라. 너는 가난한 자라 해서 편애하지 말고, 힘있는 자라 해서 존경하지 말라. 그러나 너는 공정하게 네 이웃을 판결하라.
16. 너는 네 백성 사이에서 나쁜 소문을 퍼트리려고 오르고 내려가고 하지 말라. 너는 네 이웃의 피를 (보려고) 맞서지 말라. 나는 주이다.
17. 너는 네 심정에서 네 형제를 미워하지 말라. 너는 네 이웃을 확실하게 꾸짖어라, 그리고 그 사람 때문에 죄를 낳지 말라.
18. 너는 네 백성의 후손들에 맞서 원한을 품거나 복수하려 들지 말라, 그러나 너는 네 자신 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 나는 주이다.
19. 너희는 내 법령들을 지킬 것이다. 너는 종류가 다른 것이 생겨나게 네 가축을 놔두지 말라. 너는 두 종류의 씨를 네 들판에 뿌리지 말라. 두 종류의 직물을 뒤섞은 옷을 네 위에 걸치지 말 라.
20. 그리고 여인과 육체적으로 눕는 자가 있을 경우이다, 그녀가 여종이고, 남편과 약혼되어 있다, 그리고 전혀 몸값을 치루지 않았고, 자유가 그녀에게 주어지지 않고 있을 경우, 그들은 처벌되어진다. 그들은 죽음에 놓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녀가 자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1. 그리고 그는 주님에게, 만남의 천막 문으로, 자기의 죄가 있음의 제물을 가져올 것이다, 죄가 있음의 제물은 수양이다.
22. 그리고 성직자는 그가 죄지은 그의 죄를 위하여 주님 앞에서 죄가 있음의 제물의 수양을 가지고 그를 위하여 보상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지었던 자기 죄를 용서받는다.
23. 그리고 너희가 토지에 들어가서, 그리고 식품을 위해 온갖 나무들을 심을 때, 너희는 그것의 열매를 할례받지 못한 것 같이 간주할 것이다. 그것들은 삼 년을 할례받지 아니한 것으로 너희에게 있을 것이다. 그것을 먹어서는 안된다.
24. 그러나 사 년째 해에 그것의 모든 열매는 거룩할 것인즉, 주님에게 드려 찬양할 것이다.
25. 그리고 다섯 째 해에 너희는 그것의 열매를 먹을 것인데, 너희 에게 소출이 증가되리라.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
26. 너희는 피와 더불어 어떤 것도 먹지 말라. 너희는 마술을 사용하지 말라, 점을 치지 말라.
27. 너희는 너희 머리의 모퉁이를 둥글게 하지 말라, 너는 네 수염의 모퉁이를 손상되게 말라.
28. 너희는 너희 몸에 죽은 자를 위하여 어떤 베임도 만들지 마라. 너는 네 위에 표 자국을 내지 마라. 나는 주이다.
29. 네 딸을 창녀로 만들어 그녀를 더럽히지 마라. 하여, 토지가 매춘으로 타락되어 사악함이 가득차지 않게 하라.
30. 너희는 내 안식일을 지킬 것이다, 그리고 내 성소를 소중히 하라. 나는 주이다.
31. 너희는 영들과 친밀하다는 그들에게 돌아서지 말고, 마법사에게 돌아서지 말라. 그들을 추종하여 그것들로 말미암아 더럽혀지지 않게 하라.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
32. 너는 백발의 머리 앞에서 일어설 것이다, 그리고 노인의 얼굴을 존경하라, 그리고 너는 네 하느님을 경외하라. 나는 주이다.
33. 그리고 만일 낯선 자가 너의 토지에서 너와 함께 체류한다면, 너희는 그에게 나쁘게 대하지 말라.
34. 너와 더불어 체류하는 낯선 자는 너희 사이에 있는 본토박이 같이 너에게 있어야 한다, 그리고 너는 그를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그 이유는 너희가 이집트의 토지에서 낯선 자들이였기 때문이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
35. 너희는 재판에서, 계량에서, 무게를 담에서, 치수를 잼에서 부당함이 없게 실시하라.
36. 올바른 저울, 올바른 추, 올바른 에바(ephah), 그리고 올바른 힌(hin)을 너희는 가져라.
37. 그리고 너희는 모든 나의 법령들을 준수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나의 판결들, 그리고 그것들을 실시할 것이다. 나는 주이다.

영적 의미 요약

*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주어진다; 인간은 자신 안에서 선과 진리가 결합되게 해야 한다. 그 결합을 존경하고 사랑할 것. 진정한 예배에서 자신을 확증되게 하라. 우상숭배인 이기적인 사랑과 세상적인 사랑을 금해야 한다. 진리가 명백히 보여준 그대로 선을 사랑하라. 자유 속에서 예배하라. 선을 자기 것이 되게 하라. 심판 과정에서 악을 거절하라. 특별히 모독을 피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악 속에 있음을 스스로 확증하기 때문이다, 1-8절.
* 심판 시기에 선과 진리는 어떤 이기적인 동기도 없는 선행의 일을 하는 가운데 주님께 바쳐야 한다, 9-10절.
* 영적 책임이 포함되는 여러 가지 금지사항, 11-18절.
* 잘 꾸며 저지른 사악함이 아닌 거듭남의 과정에서 있게 되는 선한 애착과 악의 불법적인 결합에 관하여, 그리고 그 치료와 결과에 관하여, 19-22절.
* 완전한 상태에서 선을 자기 것으로 삼는데 대하여, 상대적으로 불완전한 상태에서, 충만되게 실감함, 아껴두시는 것들의 이식을 수단으로 풍부하게 증가됨, 23-25절.
* 영적 인간이 게을리 해서는 결코 안 되는 여러 가지 금지 조항과 의무 조항에 관하여, 26-37절.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그리고 주님이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지각을 주시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주님께서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이란 유입을; 모세란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말하심이란 지각을 각각 명시한다. A.C. 2001, 2951, 7010, 1791, 1822.

2절. 이스라엘의 자손의 모든 회중에게 이야기 하라,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라, 너희는 거룩할 것이다. 그 이유는 나 주 너희의 하느님은 거룩하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영적 교회 속의 모든 사람이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각자 안에서 진리가 선과 결합해야만 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인데 그런 이유는 주님 안에서 그 둘은 하나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나 여호와가 너희 하느님이다”라고 일러 말하심이란 영적 교회 속의 모든 사람은 가르쳐져야 하는 바 그렇게 해서 그가 이해하고 그는 자신 안에서 선과 진리를 결합시켜야 하는데 그 이유는 그 둘은 주님 안에서 하나되어 있기 때문이다. A.C. 7010, 3654, 10355, 1791, 2146, 2001.

3절. 너희 모두 각 사람은 자기 아버지, 그리고 자기 어머니를 경외하라. 그리고 너희는 내 안식일을 지켜라.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영적 인간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신성한 진리와 선을 존경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거듭남으로 그 둘이 결합되게 해야 한다. 이런 방법으로만 주님에 관한 진정한 예배가 건립되고 확증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각자 자기 부모를 경외해야 함이란 영적 인간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신성한 진리와 선을 존경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안식일을 지킴이란 거듭남으로 선과 진리가 결합되게 함을; “나 여호와 너희 하느님”이란 위 방법만이 참된 주님의 예배를 건설하고 확증함을 말한다. A.C. 8897, 8889, 7192.

4절. 너희는 우상들로 돌아서지 마라, 네 자신을 위하여 부어 만든 신들을 만들지 말라.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영적 인간은 이기적인 사랑에서 뛰쳐나오는 거짓과 악들에 자신이 빠져들고 동시에 주님에게 등을 돌리는 것을 금해야 한다. 반드시 진리 안에서 명백해진 그대로 선을 사랑함으로 주님만을 예배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우상에로 돌아서는 것이란 주님으로부터 뒤돌아서 세상적 사랑에서 튀어나오는 악과 거짓에 전념하는 것을; 신을 부어 만듦이란 이기적 사랑에서 위와 같이 되는 것을, “나 여호와 너희 하느님”이란 진리로 명백해지는 선을 사랑함으로 주님을 예배함을 말한다. A.C. 1205, 8869, 2001.

5절. 그리고 너희가 주님에게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을 바칠 때, 너희는 그것이 받아질 수 있도록 바칠 것이다

영적 의미

그래서 이 예배는 완전한 자유로움에서 있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이런 예배만 주님께서 응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분의 마음에 들도록 평화 제물을 바침이란 신성한 선에 관해 이기적 선으로부터가 아닌 자유로부터 예배함을 말한다. A.C. 10097, 2001, 9506.

6절. 그것은 너희가 그것을 바친 같은 날 먹어라, 그리고 내일에도 먹어라. 그리고 만일 셋째 날까지 남아있는 것은 무엇이든, 그것은 불로 태워라.

영적 의미

또한 위와 같은 예배 속의 선은 교인에 의해 계속적으로 우선적으로 자기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예배 안에 이기적이고 세상적인 사랑이 가담한 애착은 자기 것을 삼아서는 안 되고 시험에서 승리함을 통해 반드시 거절되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제물은 바치는 날과 그 다음 날까지 먹어야 함이란 위의 예배 속의 선은 우선적으로, 계속적으로 자기 것으로 삼아진다는 것을; 사흘째 되는 날 남은 것을 불에 사름이란 위의 예배에서 이기적이고 세상적 사랑이 가담된 애착은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는 바 시험에 승리함을 통해 심판의 과정에서 거절되어야 한다. A.C. 2187, 7887, 3998, 8788, 8480-3, 10115, 900.

7절. 그리고 만일 셋째 날에 조금이라도 먹게 된다면, 이것은 역겨운 짓이다. 이것은 받아지지 않을 것이다.

영적 의미

그런데 위 과정에서 누군가가 선 뿐만 아니라 악까지 자기 것을 삼는다면 그는 선을 모독하는 것이다. 이런 모독은 용납될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사흘째 날 먹는다란 심판 동안에 자기 것으로 삼음을; 역겨운 짓이란 예배가 모독됨을, 받지 않으심이란 모독된 이 예배는 열납될 수 없다는 뜻이다. A.C. 2187, 900, 6052, 9506.

8절. 그것을 먹는 모든 이는 자기 불법을 낳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주님의 거룩한 것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혼은 자기 백성으로부터 잘리울 것이다.

영적 의미

위와 같은 행위를 저지르는 모든 이는 자신이 악 가운데 있음을 확증하고 건립한 것이다. 악과 선을 섞을 경우 모독이라는 것을 피할 도리가 없다. 이런 사람의 모든 진리는 황폐되어 질 수밖에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것을 먹는 자는 불법을 낳을 것이다란 모독된 예배를 가지는 자는 자신을 악 가운데 있게 하는 것임을; 주님의 거룩한 것을 모독함이란 악에 선을 혼합시키는 것임을; 백성으로부터 잘리움이란 그들의 모든 진리들이 황폐하게 된다는 뜻이다. A.C. 9965-3, 2187, 6052, 5302, 1259.

9절. 그리고 너희는 너희의 토지의 수확물을 베어들일 때, 너는 네 들판의 모퉁이들을 몽땅 베어들이지 말라, 너는 네 수확물의 이삭을 그러모으지 말라.

영적 의미

심판에서 선이 실감 될 때 내적으로부터의 힘을 가지고 표현된 최말단의 선을 더 이상 이기적인 목적으로 자기 것을 삼아서는 안 된다. 또한 외적으로 이기적 동기를 가지고 그 선을 오염시켜서도 안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수확물이란 심판에서 선을 실감함을; 들판의 구석구석까지 거두어들이지 않음이란 내적으로 충만되고 힘있게 되어 최말단에 표현되는 가운데 이기적 목적에 실감된 선을 자기 것을 삼지 않음을; 거두고 남은 이삭을 줍지 않음이란 실감된 선은 외적으로 이기적 동기를 수단으로 오염되어서는 안 됨을 뜻한다. A.C. 9295, 10669, 3310, 6188, 9494, 9273, 9146.

10절. 그리고 너는 네 포도원의 이삭을 줍지 말라, 너는 네 포도원의 떨어진 열매를 그러모으지 마라. 너는 그것들을 가난한 자와 낯선 자를 위해 남겨라.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

영적 의미

더 나아가 위의 영적 선처럼 영적 진리의 경우도 자신에게서 근원된 듯 여기지 말고, 그 진리로 결과된 선도 자아로부터인 듯 여기지 말라. 이는 거룩한 선행인 바 이것이 외적으로 충분히 실감될 때 오염된다. 반대로 이 사항들은 선행의 일 가운데서, 그리고 어떤 이기적 동기가 없는 선행으로부터의 신앙 속에서 주님께 바쳐져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포도원을 속속들이 훑트지 않음이란 영적 선처럼 영적 진리도 취급된다는 것 즉 그것이 자아에서 비롯된 줄 여기지 말라는 것을; 포도원의 떨어진 포도를 줍지 말라란 거룩한 선행을 결과되게 하는 선이 외적으로 충분히 실감될 때 위와 같이 오염되어서는 안 됨을; 가난한 자와 외국인이 줍도록 그것을 남겨둠이란 위의 경우와 반대로 위의 사항들은 이기적인 어떤 동기가 없는 선행으로부터 오는 신앙과 선행의 일 속에서 주님께 바쳐져야 함을;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란 인간은 선과 진리, 그 둘의 결합 속에서 건설되고 확증되어야 함을 뜻한다. A.C. 9139, 10669, 9273, 1071, 10669, 4955, 10669, 2146, 2001, 7192.

11절. 너희는 훔치지 말라. 너는 거짓되게 장사하지 말라, 서로에게 거짓말하지 마라.

영적 의미

주님께 속한 것을 자신의 것으로 돌리는 것은 신성한 질서에 위배된다. 즉 거짓 가운데 있으면서 동시에 진리 가운데 있다거나 악 가운데 있으면서 동시에 선 가운데 있어서는 안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훔치지 말라란 주님에 속하는 것을 자아로부터 라고 하는 것은 신성한 질서에 위배됨을, 사기치지 말라란 거짓 가운데 있지 말고 진리 가운데 있으라는 것을, 이 사람이 저 사람을 속이지 말라란 악 가운데 있지 말고 선 가운데 있으라는 것을 뜻한다. A.C. 8906, 683, 8908.

12절.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을 수단으로 거짓되게 맹세하지 말라, 그럴 경우 너는 네 하느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이다. 나는 주님이다.

영적 의미

위선으로 진리에 어긋나게 자신을 확증하는 것은 영적 인간을 위해 합법적인 게 아니다. 이는 본질적으로 주님이 신성한 선이심을 가르치는 진리를 모독하는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의 이름으로 거짓되게 맹세해서 하느님의 이름을 모독한다는 것은 진리를 알고 이해하는 영적 인간이 위선으로 자신이 확증되게 하려는 것은 불법인데, 그 이유는 이 짓은 본질적으로 신성한 선이신 주님을 가르치는 진리를 모독하기 때문이다. “나는 주”란 취소할 수 없는 확증이란 뜻이다. A.C. 8882, 2001, 2842, 7192.

13절. 너는 네 이웃을 압제하지 말라, 그로부터 강탈하지 말라. 고용된 종의 품삯을 밤새 아침까지 너와 함께 머무르게 말라.

영적 의미

영적 인간은 선행에 위반되는 짓을 해서는 안 되는 바 자기 형제의 신앙 속에 있는 진리를 형제에게서 박탈되게 해서는 안 된다. 보상을 목적으로 자연적 인간 수준에서 선을 행하는 사람은 그 상태에 자신이 있음을 확증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비록 그 선행이 거듭나기 이전의 선용이라 해도, 자연적 수준의 삶이라는 희미함에서 있어졌다 해도 이는 천국적 선이 실감될 때 반드시 거절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웃을 억압함이란 선행을 위반함을; 그 사람으로부터 강탈함이란 그가 지닌 신앙 속의 진리를 강탈함을; 품삯을 받는 종이란 보상을 목적으로 선을 행하는 사람을, 아침까지 삯을 미루지 말라란 위의 상태가 자신 속에 있음을 확증해서는 안 됨을, 그 이유는 비록 위의 상태가 거듭나기 전의 선용이고 자연적 삶이라는 희미한 상태에서였다 해도 위 상태는 천국적 선이 실감될 때 거절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삯을 지니고 있지 말라란 계속되기 위해 예비 상태를 허용함을, 보상을 목적으로 선을 행하는 상태는 단지 자연적인 상태일 뿐이다. 밤은 이런 상태의 희미함을, 아침은 천국적 선이 실감될 때 있어지는 상태를 말한다. A.C. 9196, 8906, 8002, 3816, 9787, 9787.

14절.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 것이고, 소경 앞에 장애물을 두지 말라, 그러나 너는 네 하느님을 경외하라. 나는 주이다

영적 의미

누군가가 선을 지각하는데 부족하다거나 또는 진리를 이해함이 부족하다 해도 영적 인간은 그를 따돌려서는 안 된다. 그와 반대로 그는 이런 사람을 향해 사랑과 선행을 실행해서 자신이 선 가운데 더 굳게 서 있도록 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귀머거리에게 저주하지 말라란 선을 지각하는데 부족한 이들을 따돌리지 말라는 것을; 소경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라란 진리를 이해하는데 부족한 이들이라고 따돌리지 말라는 것을; 네 하느님을 두려워함이란 위와 같은 사람을 향해 선행과 사랑을 실시하라는 것을; “나는 너의 주”라 함은 위와 같은 과정을 수단으로 영적 인간은 자신을 선 가운데 더욱 강하게 건설해야 함을 뜻한다. A.C. 9397-3, 2383, 2836, 2001, 7192.

15절. 너희는 재판에서 공정하지 않게 실시하지 마라. 너는 가난한 자라 해서 편애하지 말고, 힘있는 자라 해서 존경하지 말라. 그러나 너는 공정하게 네 이웃을 판결하라.

영적 의미

참으로 영적 인간은 모든 부정(불공평)을 피해야 하는 바 신중함 없이 선을 행해서도 안 되고 지적인 힘만으로 진리를 증진시키려 해서도 안 된다. 그는 모든 선이 지탱되도록 선행과 진리를 결합시켜 행동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공정하지 못한 재판을 하지 말라란 참으로 영적 인간은 진리를 수단으로 선에 의거 행동함으로 모든 불공정을 피하라는 것을; 가난한 자(영세민)을 두둔하지 않음이란 식별력 없이는 선을 행하지 말라를; 힘(세력) 있는 자를 봐주지 말라란 지적 능력만을 총동원함으로 진리를 증진시키려 들지 말라를; 이웃을 정의롭게 재판함이란 모든 선을 지지함에 있어 선행에 진리를 결속시켜 행하라는 뜻이다. A.C. 2258, 8315, 2258.

16절. 너는 네 백성 사이에서 나쁜 소문을 퍼트리려고 오르고 내려가고 하지 말라. 너는 네 이웃의 피를 (보려고) 맞서지 말라. 나는 주이다.

영적 의미

그는 타인에게 친구인 체하여 선행을 위반해서도 안 되고 타인이 선 쪽으로 인도해주는 진리의 상태에 아직 있다면 그의 잘못들을 꼬집어내는 비열한 수준으로 내려와서도 안 된다. 타인이 주님으로부터 가지게 된 것 즉 선과 결합하는데 필요한 내면의 진리를 받는 것을 방해함으로 선 가운데 있는 이들의 영적 삶을 부패시키면 안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나쁜 소문을 퍼트림이란 타인에게 친절을 먼저 옷입힘으로 선행과 진리를 위반하여 타인의 잘못을 노출시키는 야비함으로 인격이 처지는 것을 말하는데 그 이유는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것(tale-beareing or slandering)은 악한 동기로부터 타인에 관해 지닌 지식을 상품화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 히브리 단어는 나쁜 소문을 퍼뜨림이라는 뜻만 아니라 동사로 사용될 경우 상인처럼 여행하는 뜻도 지니기 때문이다. 겨레 가운데 선 쪽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상태에 있는 사람을; 네 이웃을 죽을 죄인으로(피를 보려고) 고발함이란 자기들 속의 선과 결합하는데 필요한 내면의 진리를 영접하려는 것을 뒤집음으로 선 가운데 있는 이들의 영적 삶을 부패시킴을; “나는 주”란 그들의 선이 주님으로부터임을 확증함을 뜻한다. A.C. 4815, 2967, 5312, 2425, 9127, 4926, 7192.

17절. 너는 네 심정에서 네 형제를 미워하지 말라. 너는 네 이웃을 확실하게 꾸짖어라, 그리고 그 사람 때문에 죄를 낳지 말라.

영적 의미

그렇다. 그는 선에서 내향적으로 비켜서서는 안 된다. 오히려 외향으로 선을 실습해야 한다. 즉 참된 것을 사랑함으로부터 잘못된 것을 질책하는데 주저해서는 안 되며 형제 안에 악이 있을 경우 자연적 친절함 때문에 그 악을 너그러이 봐주면 안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심정으로 형제를 미워말라란 선으로부터 내향적으로 비켜서지 말라를, 이웃의 잘못을 타일러 줌이란 참된 것을 사랑함으로부터 잘못된 것을 질책하는데 주저하지 말라를, 그래야 그 죄에 대한 책임을 벗는다란 형제 안에서 악이 인식될 때 자연적 친절 때문에 악을 너그러이 봐주어 넘어가지 말라는 뜻인데 그 이유는 “죄에 대한 책임”이란 이 절의 경우 견책하지 않음으로 잘못을 행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 때문, because of him”이란 진리와 관계 없는 선행 또는 자연적 친절에서 오는 느낌을 뜻하기 때문이다. A.C. 3488, 2360, 7542, 4700, 2425, 9937, 2425.

18절. 너는 네 백성의 후손들에 맞서 원한을 품거나 복수하려 들지 말라, 그러나 너는 네 자신 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 나는 주이다.

영적 의미

영적 인간은 악에 악으로 되돌리거나, 이기적 충동으로부터서는 진리이든 거짓이든 타인의 견해에 반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는 선행으로부터 만사를 해결해야 한다. 그 이유는 주님이 선행의 본질되시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원수를 갚지 말라란 악을 악으로 되돌리지 않음을, 네 백성의 후손(동족)에게 앙심을 품지 말라란 다른 이의 견해가 진리이든 설사 거짓이든 이기적 충동으로부터서는 그 사람의 견해에 반대하지 말라를,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함이란 선행으로부터 만사를 처리하는 것을, “나는 주”란 주님은 본질적으로 사랑과 선행이심을 뜻한다. A.C. 1259, 489, 8223, 2425, 2001.

19절. 너희는 내 법령들을 지킬 것이다. 너는 종류가 다른 것이 생겨나게 네 가축을 놔두지 말라. 너는 두 종류의 씨를 네 들판에 뿌리지 말라. 두 종류의 직물을 뒤섞은 옷을 네 위에 걸치지 말 라.

영적 의미

영적 인간은 외적 사항들에 있는 신성한 질서의 법칙을 모두 준수해야 한다. 즉 선행의 선에 악을 섞는 것 그것이 자연적 수준이든 영적 수준이든 섞음질로 선을 모독해서는 안 되고, 거짓을 진리에 첨가함으로 진리를 모독해서도 안 되며, 참된 교리와 거짓을 동시에 고백함으로 이중적인 품성을 바깥쪽에서도 지니면 안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내 법령을 지킴이란 외적 사랑 속에 있는 신성한 질서의 법칙을 모두 준수함을; 종류가 다른 것과 교미시키지 않음이란 선행의 선이 자연적 수준이든 영적이든 그 선에 악을 혼합시켜 모독하지 말라는 것, 다시 말해 불법적인 결합으로 선을 모독하지 말라는 것을; 서로 다른 종자를 들판에 섞어 뿌리지 말라란 진리에 거짓을 혼합함으로 모독하지 말라는 것 또는 선의 상태에 있음으로 모독하지 말라는 것, 동시에 선 쪽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상태에 있음으로 모독하지 말라는 것을; 종류가 다른 실을 섞어 짠 옷을 걸치지 말라란 참된 교리와 거짓을 동시에 고백함으로 바깥쪽으로 이중 품성에 있지 말라는 것을 뜻한다. A.C. 8357, 5913,6126, 9182, 9274, 2576-15, 9274.

20절. 그리고 여인과 육체적으로 눕는 자가 있을 경우이다, 그녀가 여종이고, 남편과 약혼되어 있다, 그리고 전혀 몸값을 치루지 않았고, 자유가 그녀에게 주어지지 않고 있을 경우, 그들은 처벌되어진다. 그들은 죽음에 놓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녀가 자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거듭나는 과정 중에 자연적 인간의 불완전한 애착을 영적 인간의 선한 애착과 결합시킬 경우, 그가 아직은 악에서 충분히 해방되지 않았거나 전적으로 자유함에서 행동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해도 그는 자기 잘못의 탓으로 비록 단죄되지 않겠지만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충동의 영향 밑에 있었고 영적 자유에서 심사숙고된 선택으로부터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종인 여인과 잠자리에 든다는 것은 영적 인간 속의 선한 애착이 자연적 인간 속의 불완전한 애착과 결합하는 것을; 남자와 약혼함이란 거듭나는 과정에 있음을; 아직 몸값을 치루지 않았음이란 아직 악에서 구원되지 않았음을; 아직 자유를 얻지 못했음이란 아직 전적으로 자유로부터 행동할 수 없음을; 처벌됨 또는 “문책함”이란 위와 같은 잘못들로 인한 결과로 고통받음을; 죽이지는 말라란 절대적으로는 단죄되지 않음을; 그 여자가 자유인이 아니기 때문이란 충동의 영향 밑에 있어왔다는 것, 영적 자유에서 심사숙고된 선택으로 행동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A.C. 6348, 3654, 8890, 8996, 6279, 696, 2242, 5605, 892.

21절. 그리고 그는 주님에게, 만남의 천막 문으로, 자기의 죄가 있음의 제물을 가져올 것이다, 죄가 있음의 제물은 수양이다.

영적 의미

이 사람은 자기 악과 잘못을 제거하기 위해 주님을 예배해야 하되 그 예배에서 모든 선은 천국을 통해 주님으로부터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때 내적 인간 안에 있는 순진의 선을 수단으로 주님과의 결합이 있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수양을 죄가 있음의 제물로 만남의 천막 문으로 가져와 주님께 바침이란 위와 같은 사람은 자기 악과 잘못을 제거하기 위해 주님을 예배하되 모든 선은 천국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존재함을 인정함으로 예배해야 한다. 이때 내적 인간 안에 있는 순진의 선을 수단으로 그분과의 결합이 있어진다. A.C. 3400, 2356, 3540-3, 10042.

22절. 그리고 성직자는 그가 죄지은 그의 죄를 위하여 주님 앞에서 죄가 있음의 제물의 수양을 가지고 그를 위하여 보상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지었던 자기 죄를 용서받는다.

영적 의미

그러면 선 때문에 외적 인간은 내적 인간과 재회하는데 이때 그는 자기의 약함 때문에 죄를 지었는 바 주님을 신실하게 인정하는 회개를 통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그의 악은 주님에 의해 삭제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죄가 있음의 제물로 수양을 가지고 그를 위해 보상을 만들어 그가 용서됨이란 위의 선 때문에 외적 인간은 회개를 통해 내적 인간과 재회하게 된다는 것, 그가 자기 약함으로 죄를 지었지만 아직 주님을 진실로 인정하고 있다면 회개를 통해 그 악은 주님에 의해 삭제된다는 것을 뜻한다. A.C. 9946, 10042, 868.

23절. 그리고 너희가 토지에 들어가서, 그리고 식품을 위해 온갖 나무들을 심을 때, 너희는 그것의 열매를 할례받지 못한 것 같이 간주할 것이다. 그것들은 삼 년을 할례받지 아니한 것으로 너희에게 있을 것이다. 그것을 먹어서는 안 된다.

영적 의미

회개를 통해 선이라는 천국적 삶 속에 있게 되면 선용을 위해 진리가 선으로부터 실습되는데 이 때 인정해야 하는 것이 있다. 즉 제 아무리 완벽한 인간의 행동에도 상대적으로 불순함이 있다는 것, 이는 거듭나는 기간 뿐 아니라 천국 자체도 그러하다는 것, 이기적 사랑으로부터 파생될 경우 인간도 천사도 선을 자기 것으로 결코 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 토지에 들어감이란 회개를 통해 선이라는 천국적 삶을 실감함을; 거기서 식품을 위해 온갖 나무를 심는다란 삶에 충당하기 위해 다각도로 진리가 선으로부터 실시됨을; 그 열매를 할례받지 못한 것 같이 여김이란 인간이 제아무리 완벽한 행동을 했다해도 상대적으로 불순함이 있음을 인정함을; 삼 년 동안의 열매를 할례받지 않은 것으로 여김이란 거듭나는 동안, 그리고 천국 그 자체에서까지도 선은 주님으로부터만 계속 존재함을; 먹지 말라란 이기적 사랑으로부터 선은 자기 것으로 삼아질 수 없음을 말한다. A.C. 3705, 8326, 2039-6, 2788, 2187.

24절. 그러나 사 년째 해에 그것의 모든 열매는 거룩할 것인 즉, 주님에게 드려 찬양할 것이다.

영적 의미

선과 진리가 충만되게 결합된 상태에 있고, 이기적 삶이 사그러져 있을 경우 선은 진실로 실감되겠지만 심정으로부터 그 선의 근원을 주님께 돌려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넷째 해에 열리는 열매는 거룩하므로 주님을 찬양하는데 바쳐져야 함이란 선과 진리의 결합이 충만된 상태에 있고 이기적 삶이 수그러들었을 경우 선은 진실로 실감되어 심정으로부터 주님께 선의 근원을 돌린다는 뜻이다. A.C. 10136, 2146, 8042, 3880-4.

25절. 그리고 다섯 째 해에 너희는 그것의 열매를 먹을 것인데, 너희에게 소출이 증가되리라.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

영적 의미

그 다음 따라 오는 사항은 주님이 아껴두신 것이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음을 수단으로 외적 인간 안에 이식될 것인데 이는 선과 진리가 더 풍부히 증가되기 위해서 이고, 그럼으로 주님을 더욱 충만되게 인정하고, 그 결과 그분을 사랑함에 대해 더욱 강하게 확증받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다섯 째 해에 열리는 열매를 먹는다란 선을 자기 것 삼음으로 아껴두신 것들이 외적 인간 안에 충분히 이식됨을, 소출이 증가됨이란 선이 풍부하게 증가되는 질서 안에 있음을, “나는 주”라 함은 그분에 대한 사랑을 더욱 강하게 확증함을 뜻한다. A.C. 5291, 6156, 2187, 8326, 4481, 2001, 7192.

26절. 너희는 피와 더불어 어떤 것도 먹지 말라. 너희는 마술을 사용하지 말라, 점을 치지 말라.

영적 의미

영적 인간은 선에 악을 섞음으로 선을 모독하거나 거짓을 만들어내 내적, 외적 인간 속의 진리와 섞음으로 거짓이 진리처럼, 악이 선인 듯 나타나게 해서는 안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피가 든 채로는 어떤 것도 먹지 말라란 영적 인간은 선에 악을 섞음으로 선을 모독하지 말라를, 마술을 쓰거나 점을 치지 말라란 거짓이 진리인 듯, 악이 선인 듯 나타나게 만들므로해서 내적, 외적으로 있는 진리를 모독하지 말라는 것을 뜻한다.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