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27장 해석

레위기 27장

영적 의미 요약

* 의지와 이해함이 함께 심사숙고 하는 가운데 주님을 모시는 모든 이는 주님으로부터 온 진리의 선을 받는 상태 또는 품질에 의거 평가되어진다, 1-8절.
* 주님을 섬기되 내면에 있는 애착을 바침, 그리고 그 품질의 평가에 관하여, 9-13절.
* 위와 같되 외면에 있는 자연적 애착들에 관하여, 14-15절.
* 주님을 섬기되 진리 측면에서의 외면에 있는 자연적 인간을 바침, 그리고 차이가 있는 환경에서의 평가들에 의하여, 16-25절.
* 특히, 어느 누구도 선함을 자기 탓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선함은 주님으로부터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불순한 자연적인 선, 이는 주님으로부터가 아닌 바, 순수한 선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은 소외될 수 없고 이기적 용도에 충당되어서도 안 된다. 아껴두신 모든 것은 주님으로부터 임을 인정해야 한다. 인간에게 있는 모든 선과 진리는 자기 속에 주님께서 아껴두신 것들을 수단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어느 누구도 자신에서 비롯되는 총명으로 자신의 품질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26-33절.
* 위 모든 사항은 신성한 선의 유입으로부터 신성한 진리로 된 신성한 질서의 법칙들이다. 이 모든 것은 영적 인간의 유익을 위해 주님의 순수한 사랑과 자비에서 비롯되어 있다, 34절.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지각을 주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주님께서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은 유입을, 모세는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말하심은 지각을 뜻한다. (2001, 2951, 7010, 1791, 1822)

2절. 이스라엘의 자손에게 이야기 하라,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라, 사람이 서약을 이루려 할 때, 그 인물은 네 평가에 의해 주님을 위해 있을 것이다.

영적 의미

영적 인간은 반드시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것, 자신의 의지와 이해함이 동의함으로 신중하게 자신을 주님께 바치는 모든 이는 주님으로부터 온 진리의 선을 받는 상태 또는 품질에 의거 평가가 있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야기함이란 영적 인간은 가르쳐져야만 함을; 사람이 서약을 성취함이란 의지와 이해함이 동의하는 가운데 심사숙고 해서 주님께 자신을 바치는 사람을; 그 사람이 주님을 위해 “평가, (값을 매김)”이란 주님으로부터 온 진리의 선을 받는 상태나 품질에 의거 평가되어짐을 뜻한다. (3654, 7304, 3732, 3880, 2001, 7010)
이 구절에서 이해하고 넘어갈 것이 있다. 가장 높은 측면에서 신성한 진리만이 예배하는 모든 이의 진짜 품질을 식별할 수 있다. 낮은 측면에서 선은 거듭나는 모든 사람의 본질인 반면, 진리는 그 생명의 형체이다. 그러므로 형체로부터 품질을 밝히 알게 된다.

3절. 그리고 네 추정가는 이십 세부터 육십 세까지의 남성일 경우, 성소의 세겔로 은 오십 세겔이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진리와 선에 총명한 이들은 그 총명을 통해 신성한 진리에 의거 진리를 충만 되게 받음으로 시험에 견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오히려 시험을 수단으로 그 진리는 선과 결합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십 세 된 남자의 값이란 진리와 선에 총명한 이들을, 육십 세 까지란 총명을 통해 시험에 견딜 능력이 있음을; 값을 매김이란 신성한 진리에 따라서임을; 은 오십 세겔이란 진리를 충분히 받는 상태를; 성소 세겔에 따라서 란 “시험을 수단으로 선과 결합되어짐을” 뜻한다. (725, 2280, 10225, 3306, 8888, 7010, 2959. 3210)

4절. 만일 여성이면 그다음 네 추정가는 삼십 세겔이다

영적 의미

그러나 지식 없이 애착으로부터서 진리에 총명한 이들은 시험에 견딜 능력을 덜 갖게 되는 바 주님을 온전하게 예배 할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자이면 삼십 세겔이다 란 지식 없이 애착으로부터 진리에 총명한 이들은 시험에 견딜 능력이 덜 한 바 주님을 완전히 예배할 수 없다는 뜻이다. (725, 2276)

5절. 그리고 만일 오 세로부터 이십 세까지이다면 네 추정가는 남성은 이십 세겔, 여성은 십 세겔이다.

영적 의미

다시, 진리와 선에 무지한 상태에서 주님을 예배하고 자신을 그분께 바치고자 하는 이들은 선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구원된다. 그러나 진리들이 결핍되어서 악과 싸우지 못한다. 그러나 선을 사랑함에 있을 경우의 그들의 품질은 그들 속에 리메인스(remans, 아껴두신 것) 덕택에 구원을 위한 능력을 가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오 세로부터 이십 세까지란 진리와 선에 무지한 상태에서 주님을 예배하는 이들 또는 그분께 자신을 바치고자 하는 이들을;, 값을 매김이란 신성한 진리에 의거함을; 남자는 이십 세겔이란 어떤 진리를 가진 선 때문에 구원은 되나 전투를 위해서는 충분치 못함을; 여자는 십 세겔이다 란 선에 대한 애착뿐이라면 그 품질은 리메인스(remans, 아껴두신 것) 덕택에 구원받을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2280, 7010, 725)

6절. 그리고 만일 한 달로부터 오 세 까지이다면, 그 다음 네 추정가는 남성은 은 다섯 세겔, 여성은 은 삼 세겔이다.

영적 의미

그러나 유아의 선 속에 있는 이들, 그들의 신앙이 싹틀 조짐만 있고 선행은 아주 조금만 있을 경우, 그들은 영적 생명을 지니되 매우 조금 뿐인데 그 이유는 소량의 진리가 애착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작아질 경우 거기에는 진리는 없고 애착만 있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한 달 된 나이로부터 오 세까지란 유아의 선 가운데 있는 바 그 신앙이 싹틀 가능성만 있을 뿐이고 선행은 매우 적은 양을 지닌 이들을, 값을 매김이란 신성한 진리에 의거함을, 사내아이는 은 오 세겔이다란 영적 생명의 품질이 작다는 것을, 그 이유는 애착에 결합된 진리가 적기 때문이다. 여자아이는 은 삼 세겔이란 애착만 있고 진리가 없어 더욱 적음을 뜻한다. (2280, 10225, 7010, 725, 4495-3, 10225)

7절. 그리고 만일 육십 세 그 이상이다면, 네 추정가는 남성은 은 십오 세겔, 그리고 여성은 은 십 세겔이다

영적 의미

지혜의 선 속에 있는 이들, 그들은 시험을 충분히 거친 상태인 바, 그 생명의 품질은 진리가 풍부하면서도 선과 결합되어 있어 새로운 상태, 즉 그들은 진리를 수단으로 사랑으로부터 행동한다. 그러나 조금밖에 안 되는 진리가 선과 결합할 경우 그들의 품질은 리메인스(remans, 아껴두신 것)가 충만된 상태로부터 존재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육십 세 이상이란 시험의 과정을 충분히 거처 지혜의 선 가운데 있는 이들을, 값을 매김이란 신성한 진리에 의거함을, 남자는 십 오 세겔이다 란 진리가 풍부하고 새 상태에서 선과 결합된 생명의 품질이요 이 품질에서 그들은 진리를 수단으로 사랑으로부터 행동함을, 여자는 십 세겔이란 적은 진리가 애착과 결합될 때 그 품질은 리메인스(remans, 아껴두신 것)가 충만됨으로부터 있게 됨을 뜻한다. (7010, 10225, 8400, 9296-5, 10225, 576)

8절. 그러나 만일 그가 네 추정가 보다 더 가난하다면, 그다음 그는 성직자 앞에 놓여질 것이다, 그리고 성직자가 그를 평가한다.

영적 의미

그러나 진리에서 파생되는 품질이 없는 이들은 그들이 지닌 선의 상태로부터서 가늠해 보아야한다. 그 이유는 선은 선의 품질을 표현하는 진리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님께 헌신하려는 그 사람이 지닌 선으로부터의 진리에 의거 위 사람은 평가되어지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매긴 값보다 더 가난한 사람이 성직자 앞에 선다란 진리로부터 파생된 품질을 가지지 않은 이들은 선에 관한 그들의 상태를 가지고 검토됨을, 성직자가 그 사람의 값을 매김이란 선은 그 선의 품질을 표현하는 진리들을 생산함을, 서약하는 자의 능력에 따라 성직자가 값을 매김이란 주님께 자신을 바치려는 사람에게 있는 선으로부터 오는 진리에 의거 위의 사람은 평가되어짐을 뜻한다. (7010, 4459-4, 9946, 4985, 8304, 3732, 3880, 9946)

9절. 그리고 만일 어떤 사람이 주님에게 봉헌물을 바치는 것이 짐승이다면, 이런 것의 모두가 주님에게 거룩하다.

영적 의미

자기는 주님으로부터 있게 되었다고 인정함을 수단으로 내면에 있는 자연적 애착들을 주님을 섬기는데 바치고자 하는 이들은 그것으로 인해 거룩한 상태로 들어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짐승이란 사람 또는 “혼, soul”에 관련된 것을 명시하는데 내면에 있는 자연적 애착을, 봉헌물로 바침이란 그것이 주님으로부터 이다는 것을, 이런 사람이 드리는 모든 것은 거룩하다란 거룩함의 상태가 예배에서 진실로 인정함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1823, 349, 5619, 8402)

10절. 그는 그것을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좋은 것을 나쁜 것으로 변경하지 못한다. 그리고 만일 짐승을 짐승으로만 바꿀 것이다면, 그다음 그것과 그것과 바꾸어지려는 이것 모두가 거룩하다.

영적 의미

위에 속하는 사람이 선 또는 진리가 우세해 있는 상태에서 다른 데로 건너가는 것, 혹은 악 또는 거짓이 우세해지는 상태는 허용될 수 없다. 내면에 있는 통치하는 애착으로 예배하는 사람이 외면에 있는 애착으로 내려가 예배할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에 반대되는 시험의 과정에서 선과 악 사이에서 오르내리고 있다면, 승리를 수단으로 선이 확증되고 악이 거절되는데 확증과 거절 모두 거룩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것은 변경하지 못하고, 바꾸지도 못한다란 위의 사람이 선 또는 진리가 우세해 있는 상태에서 악 또는 거짓이 우세해지는 상태로 건너가는 것을 허용할 수 없음을, 좋은 것을 나쁜 것과 나쁜 것을 좋은 것과 바꾸지 못함이란 내면에서 통치해주는 애착으로부터 예배하는 사람은 외면에로 내려 갈 수 없고 그 반대도 될 수 없음을, 짐승끼리 맞바꾸려고 하면 그 바꾸려던 둘 다 거룩해진다란 인간이 자기 의지에 반대되는 시험의 과정 중 선과 악 사이에서 흔들거리고 있다면 승리를 수단으로 선이 확증되고 악이 거절되는 바, 확증과 거절 모두가 거룩함을 뜻한다. (1463, 683, 1276, 1377, 1823, 8042, 847)

11절. 그리고 만일 이것이 불결한 짐승이다면, 이것으로부터 그들은 주님에게 봉헌물을 바치지 못할 것이다. 그 다음 그는 성직자 앞에 그 짐승을 놓아야 한다.

영적 의미

누가 자기의 내면에 있는 자연적 애착을 주님께 바치고자 하는데 그 애착이 불순하다면 그는 자기 속에서 우세해 있는 선의 상태로부터 주님께 자기의 불순함을 인정해야 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그것이 주님께 제물로 바칠 수 없는 불결한 짐승일 경우 성직자 앞에 세워 둔다란 누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자연적 애착을 주님께 바치고 싶은데 그것이 불순할 경우 그는 자기 속에서 우세해 있는 선이 통치하는 상태로부터 자기의 불순함을 주님 앞에서 인정해야 할 것을 뜻한다. (10130, 9946)

12절. 그리고 성직자가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를 평가하라, 네 성직자가 그것을 평가하는 그대로, 그것은 그렇게 있을 것이다.

영적 의미

이로부터 그는 불순한 자연적 애착들의 품질을 알게 되고 동시에 자기 예배의 신실한 상태를 평가할 수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 평가함이란 그런고로 그는 불순한 자연적 애착들의 품질을 알게 될 것임을, 다시 말해 선에 관한 자기 상태로부터 알게 됨을, 성직자가 평가한 그대로 그 값이 결정됨이란 위와 동시에 그는 자기 예배의 신실성을 평가하게 될 것이다를 뜻한다. (9946, 10217)

13절. 그러나 만일 그가 참으로 그것을 되찾겠다면, 그러면 그는 네 추정값에 오분의 일을 보태라.

영적 의미

그래서 그가 자기 예배의 상태에 따라 회개의 일을 진실로 행한다면 자기 속에 아껴 저장된 선한 어떤 것들로부터의 인정도 있게 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그것을 되찾고 싶을 경우 그는 그 값에 오분의 일을 더해야 함이란 만일 그가 예배의 자기 상태에 따라 회개의 일을 진실로 행한다면 그는 리메인스(remans, 아껴두신 것) 속에 있는 선으로부터서도 인정함이 있을 것임을 뜻한다. (2996, 6156)

14절. 그리고 사람이 자기 집을 주님에게 거룩해 있도록 신성하게 할 때, 그러면 성직자는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 그것을 추정하라. 성직자가 그것을 추정하는 대로 그렇게 그것은 서있을 것이다.

영적 의미

누가 선의 저장소인 외면에 있는 자연적 애착을 예배에서 주님께 바치겠다면 이런 애착의 품질도 선에 관해 우세해 있는 상태에 따라 있게 된다. 그 이유는 이 선이 예배의 품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자기 집을 주님께 바쳐 신성해지게 함이란 선의 저장소인 외면에 있는 자연적 애착들을 예배에서 주님께 바침을, 좋은지 나쁜지를 성직자가 평가함이란 이 애착들의 품질은 선에 관해 우세해 있는 그의 상태에 따라 아직은 있다는 것을, 성직자가 평가한 대로 되어짐이란 이것이 예배에 있는 품질에 관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임을 뜻한다. (1488, 8042, 7724, 10217)

15절. 그리고 만일 그것을 신성하게 한 그가 자기 집을 되찾을 것이다면, 그 다음 그는 그것에 대한 네 추정값의 오분의 일의 돈을 더하라, 그리고 그것은 그의 것이다.

영적 의미

예배자가 주님으로부터 회개의 일을 기쁘게 행하고자 한다면 그는 자신에게 남아 있는 선의 상태로부터 오는 어떤 인정함을 수단으로 행해야 하고 이에 더하여 자신 속에 악이 있음을 인정해야한다. 그러면 그는 선을 자기 것 같이 삼게 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신성하게 한 자기 집을 되찾을 경우 매겨진 값의 오분의 일에 해당하는 돈을 더해야 그의 것이 됨이란 만일 예배자가 회개의 일을 주님으로부터 기꺼이 할 경우 그는 선에 관해 아껴두신 자기 상태로부터 어떤 인정함을 수단으로 회개가 있게 되는데 이에 더 보태야 하는 것은 자기가 악 속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의 것이다란 그는 자신으로부터 인 듯 선을 자기 것 삼게 될 것을 뜻한다. (2966, 6156, 1488)

16절. 그리고 만일 사람이 주님에게 자기 소유지의 일부를 신성하게 할 것이다면, 그다음 네 추정값은 그것의 씨뿌림에 따라 있다. 보리 한 호멜의 씨뿌림은 은 오십 세겔(로 평가될 것)이다

영적 의미

누가 진리에 관한 외면에 있는 자연적 인간을 그분을 섬기는데 바침으로 주님을 예배하겠다면 이 예배의 품질은 선 안에서 진리를 받는 정도에 따라, 다시 말해 진리의 선에 따라 정해진다. 그리고 그 상태는 그 선에 의거 충만 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누가 자기 소유의 들판 일부를 주님께 바쳐 신성해지게 함이란 누가 진리에 관한 측면에서의 자연적 인간을 주님을 섬기는데 바침으로 주님을 예배할 경우를; 값을 매김이란 신성한 진리에 의거함을; 거기에 뿌리는 씨앗에 따라서란 위의 예배의 품질은 선 안에 있는 진리를 받는 측면에서 있게 됨을; 보리 한 호멜 뿌리는 양의 값이 은 오십 세겔이다란 진리의 선에 의거해서, 그 선에 따라 충만된 상태가 있을 것임을 뜻한다. (9272, 10262, 7602, 2261, 425, 2959)

17절. 만일 그가 희년의 해로부터 자기 들판을 신성하게 한다면, 네 추정에 따라 그것은 서있을 것이다.

영적 의미

그래서 예배의 이 상태가 자기 생명의 가장 깊은 곳에서 선과 진리의 결혼으로부터 파생되고 있다면 그것은 확증되어 선의 그 상태는 영구적이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희년의 해로부터 자기 들판을 신성하게 한다면 네 추정에 따라 그것은 서있는다 란 예배의 상태들이 자기 생명의 가장 깊음에서 선과 진리가 결혼함에서 파생되어진다면 그 상태는 확증되어지고 선의 상태는 영구적일 것이 된다. (4982, 8042, 8802, 7010, 4926)

18절. 그러나 만일 그가 희년 이후 자기 들판을 신성하게 한다면, 그 다음 성직자는 그에게 희년의 해까지 남은 년수에 따라 돈을 계산하라, 그리고 감해지는 액수는 네 추정값으로부터 만들어 질 것이다.

영적 의미

그러나 예배의 이 상태가 위와 같은 가장 깊은 결합에서 파생되지 않고 단지 선으로부터 기대 할 수 있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면 그 품질은 거듭나는 과정에서 획득된 진리에 따라 있어진다. 그런고로 시작에서도 덜 완전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희년이 지나서 자기 들판을 신성해지게 함이란 예배의 상태가 위와 같이 가장 깊은 결합으로부터 파생되지 않고 기대만 될 뿐이다 면을, 성직자가 희년까지 남은 년수를 세어 그 값을 그에게 세어 줌이란 선으로부터의 품질은 거듭나는 동안 선 안에 이식된 진리를 획득한 정도에 따라 있게 될 것임을 뜻한다. (8802, 9946, 10217, 725, 2966)

19절. 그리고 만일 들판을 신성하게 한 그가 참으로 그것을 되찾을 것이다면, 그 다음 그는 그것에 네 추정값의 오분의 일을 더하라, 그리고 그것이 그에게 보증을 설 것이다.

영적 의미

만일 예배자가 선한 자기 상태로부터 회개의 일을 수행하는 것을 참고 견디지만 회개의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지 못 할 경우, 그런데 아껴두신 선한 어떤 것으로부터 주님을 인정하고 있다면 그는 주님으로부터 새 생명을 계속 받을 것이고 선한 그의 상태도 확증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신성해지게 바친 들판을 되찾을 경우, 매겨진 값에 오분의 일을 더 하면 자기 것이 된다란 예배자가 회개의 일을 하는 동안은 선에 관한 자기 상태로부터 버텨내는데도 그가 회개의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지 못하고 있고, 그러나 자기는 주님으로부터 새 생명을 계속 받고 있다는 것을 아껴두신 선의 상태로부터 인정하고 있다면 선에 관한 그의 상태는 확증된다는 것을 뜻한다. (4982, 8042, 2966, 6156, 4926)

20절. 그리고 만일 그가 들판을 되찾지 않을 것이다면, 또는 만일 그가 또 다른 사람에게 들판을 팔았다면, 그것은 더 이상 되찾지 못한다.

영적 의미

그러나 이와 같은 예배가 일시적일 뿐이고 회개가 따르지 않으면, 다시 말해서 악을 확증함을 통해 그의 선이 소외되고 있다면 그의 구속은 불가능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들판을 되찾지 않음이란 위와 같은 예배는 일시적일 뿐 회개가 수반되지 않음을, 남에게 그 들판을 팜이란 악을 확증한 결과로 선이 소외됨을, 더 이상 그 들판은 물러내지 못함이란 악이 확증되었으나 아직도 되찾음(구속)은 가능할 수 있다는 뜻이다. (2966, 4758, 4747)

21절. 그러나 들판이 희년에서 나갈 때, 그것은 마치 들판이 헌납된 것 같이 주님에게 거룩하다. 그것의 소유는 성직자이다.

영적 의미

그러나 심판에서 그 사람과 함께 있는 진리의 선으로 예배하는 모든 상태는 가능한 한 그에게 이로운 쪽으로 있어질 것이다. 그 이유는 그것이 진리와 선에 괸한 양면에서 거룩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모든 상태는 주님으로부터 이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희년이 될 때 그 들판은 주님에게 거룩하다란 심판에서 진리의 선으로부터 예배한 모든 상태는 예배자에게 이익이 되는 한도에서 있게 된다는 것을, “바쳐진 들판 같이…”란 반대 의미 일경우, 이는 악과 거짓으로 확증되어 완전히 정죄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좋은 의미일 경우, 이는 진리와 선으로부터 예배되어져 거룩해진 것을 뜻한다. 그 소유가 성직자에게 있다란 위와 같은 모든 상태도 주님으로부터 임을 뜻한다. (4982, 8042, 8802, 9193, 8042, 9946)

22절. 그리고 만일 그가 자기 소유지가 아닌, 자기가 샀던 들판을 주님에게 신성하게 한다면,

영적 의미

더구나 예배의 이런 상태가 단지 외적 동기들로부터 획득되어 옷을 입듯 하고 있을 뿐 순수한 선으로부터가 아니라면,

세부적 영적 의미

자기 소유였던 들판은 아니지만 사들인 들판을 주님께 바쳐 거룩하게 함이란 위와 같은 예배의 상태가 단지 외적인 동기들로부터 획득되고 입혀져 있을 뿐 순수한 선으로부터가 아니면을 뜻한다. (8042, 4982, 2967, 4397)

23절. 그다음 성직자는 그에게 희년의 해까지 네 추정값의 가치를 계산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주님께 거룩한 것으로 그 날에 네 추정값을 매길 것이다

영적 의미

그러면 이와 같은 예배의 품질은 선으로부터 신성한 진리에 의거 예배자의 가장 깊은 상태가 무엇인지에 관해서, 심판에서 있어질 것이 식별된다. 그래서 순수한 선을 원하도록 그는 강요 당할 것이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네 추정값의 가치를 계산함이란 이와 같은 예배의 품질은 선으로부터 신성한 진리에 의거 식별될 것임을; 희년까지란 예배자가 어떨 것인지 또는 예배자가 심판에서 그의 가장 깊은 상태에 관해 어떨 것인지를, 주님께 거룩한 것으로 당일에 값을 매겨줌이란 그는 이 상태에서 순수한 선을 원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도록 강요될 것임을 뜻한다. (9946, 10217, 7010, 8802, 2966, 8802, 7010, 2119)

24절. 희년의 해에 들판은 그것을 팔았던 자에게, 토지의 소유가 속해 있었던 자에게 되돌아 간다.

영적 의미

심판에서 모든 선은 주님으로부터 있고 그 선은 거듭남을 수단으로 획득된다는 것이 보여질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희년이 되면 들판을 팔았다 해도 토지의 상속권을 가진 임자에게 그 들판이 돌아간다란 심판에서 순수한 선은 주님으로부터 임을 알게 될 것이고 거듭남을 수단으로 획득된 모든 선도 주님으로부터 임을 알게 되리라. (8802, 4982, 2028-9, 7833, 3239)

25절. 그리고 모든 네 추정값은 성소의 세겔에 따라서 이다. 즉 이십 게라가 한 세겔이다.

영적 의미

인간의 상태에 괸해 신성한 진리가 평가함은 선에서 파생된 진리에 따라 있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값을 매기는 모든 것은 성소의 세겔에 의거함이란 인간의 상태에 관한 신성한 진리의 평가는 선으로부터 파생되는 진리에 의거 있게 됨을, 이십 게라가 한 세겔이다란 선에 관해 아껴두신 모든 것을 뜻한다. (10221, 2959, 10222)

26절. 짐승 사이에 첫배 새끼 만이 주님에게 첫배 새끼로 만들어지는 바, 아무도 그것을 신성하게 하지 못한다. 그것이 수소이든 양이든 그것은 주님의 것이다.

영적 의미

진리에 앞서서 존재한 선은 주님으로부터 있어진 선인 바, 어느 누구도 선의 존재가 자기 탓이라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이 선의 수준이 영적 선이든 자연적 선이든 모두 주님으로부터 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짐승 중 맏배란 진리에 앞서 존재하는 선을, 맏배는 주님에게 첫배 새끼로 돌려야 한다란 주님께로부터 기인된다고 생각해야 함을; 어느 인간도 그것을 신성하게 하지 못함이란 어느 인간도 그 선이 자기 것이라고 해서는 안 됨을; 뿐만아니라 지식만으로 존재하는 진리는 거룩한 상태를 생산하지 않음을, 소든 양이든 그것은 주님의 것이다란 선이 자연적 선이었든 영적 선이었든 모두 주님으로부터 존재함을 뜻한다. (3325-8, 5619, 5913, 6126)

27절. 그리고 만일 그것이 불결한 짐승으로부터 이다면, 그 다음 그는 너의 것 추정값에 따라 그것의 값을 치루라, 그리고 그것에 그것의 오분의 일을 보태라. 또는 만일 그것이 되찾아지지 않는다면, 그 다음 그것은 너의 추정값에 따라 팔리운다.

영적 의미

그러나 주님으로부터가 아닌 불순한 자연적 선은 신성한 진리를 통해 순수한 선으로 대체되어진다. 이리하여 주님께서 각 사람 안에 아껴 두신 것들로해서 인정하는 어떤 것을 수단으로 자연적 인간은 위의 선을 획득한다. 만일 회개가 수행되지 않으면 자연적일 뿐인 선은 거절되는데, 그 이유는 그 선은 신성한 진리와 하모니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불결한 짐승이란 불순한 자연적 선을, 매겨진 값에 따라 그 값을 치르고 되찾음이란 불순한 자연적 애착도 신성한 진리를 통해 순수한 선으로 대체될 수 있음을; 그 값에 오분의 일을 더 함이란 위 방법 속에서 자연적 인간도 아껴두신 것들로부터 오는 인정함을 수단으로 선을 획득함을; 되찾지 않겠다란 회개의 일이 수행되지 않으면을; 매겨진 값에 판다란 자연적일뿐인 선은 거절되어져야 한다는 것, 그 이유는 신성한 진리와 조화를 이루지 않기 때문이다. (46, 10130, 8078, 7010, 2966, 4758)

28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쳐진 것, 즉 그가 가진 모든 것, 그것이 사람이든, 짐승이든, 또는 자기 소유의 들판이든 사람이 주님에게 바친 것은 팔려지거나 되찾지 못한다. 바쳐진 모든 것은 주님에게 최고로 거룩하다.

영적 의미

더구나 자신의 것으로 여겨지는 삶으로부터, 또는 자신의 재량으로 주님께 바치는 애착이나 힘, 그것은 내적이든, 내면이든, 외적이든 소외되어진다거나 또는 이기적이고 세상적인 용도에 충당되지 못한다. 그것도 주님께 모두 돌려드려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가진 것 중에서 주님께 바치기로 결심해서 바쳐진 것은 그것이 사람이든 짐승이든, 소유한 들판이든, 팔거나 물러 내지 못한다란 자기 것처럼 보이는 그 삶으로부터, 또는 자기 재량으로 주님께 바치는 애착이나 능력, 그것이 내적이든, 내면에 있든, 외적이든 소외되어져서는 안 되고, 이기적이고 세상적인 용도에 응용되어서는 안 된다. 바쳐진 것은 모두 주님께 더 없이 거룩하다란 위 사항은 주님으로부터 완전히 비롯된다는 뜻이다. (9193, 8042, 2001, 7424, 4982, 4758, 2966, 8078, 8042)

29절. 바쳐짐이 사람일 경우, 아무도 몸값을 치루고 되찾지 못한다. 그는 정년 죽음에 놓여야 한다.

영적 의미

한마디로 내적으로 인정함으로부터 주님께 헌신하는 것은 이기적 사랑을 수단으로 소외될 수 없다. 모두는 진리가 선과 결합함을 수단으로 주님께 모두 그 원인을 돌려야 한다. 그러므로 옛 생명은 거절되어야 하고 새 생명은 영원해야만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완전히 바치기로 해서 바쳐진 사람은 되찾을 수 없고 반드시 죽여야 한다란 내적으로 인정해서 주님께 바치는 것은 어떤 것이든 이기적 사랑으로 소외되어질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진리가 선과 결합함으로 주님께 온전히 돌려드려야 한다는 것, 그런고로 옛 삶은 거절되어야만 한다는 것, 새로운 삶은 확실히 영원하다는 뜻이다. (9193, 683, 2966, 4758, 1408, 1854)

30절. 그리고 토지의 모든 십분의 일, 토지의 씨뿌림으로부터 이든 나무의 열매로부터 이든, 주님의 것이다. 그것은 주님에게 거룩하다.

영적 의미

진리에 관해 아껴두신 것이든, 선에 괸해 아껴두신 것이든 인간과 함께 있는 모든 아껴두신 것은 주님으로부터 이다. 그것들은 신성한 자비로부터 인간 안에 저장되어 있을 뿐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씨뿌림에서 나는 곡식이든 나무에 열리는 열매이든 토지에서 난 것의 십분의 일은 주님의 것이다란 사실 인간에게 있는 아껴두신 모든 것, 그것이 진리에 속하든 선에 속하든 모두 주님으로부터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신성한 자비로부터 인간 안에 저장된 것임을 뜻한다. (576, 57, 8042)

31절. 그리고 만일 사람이 십분의 일의 뭔가를 되찾겠다면, 그는 그것에 그것의 오분의 일을 추가할 것이다.

영적 의미

회개의 일을 수단으로 선을 마치 자기 것처럼 삼기 위해서 그 선이 주님으로부터 전적으로 있다는 것을 자기 속에 아껴두신 것 속의 선들로부터 인정해야만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자기의 십분의 일 중 어떤 것을 되찾고 싶다면 오분의 일을 더 해야 한다란 인간이 선을 자기 것이 되게 하기 위하여, 회개의 일로 마치 자기 것이듯 되게 하려면 아껴두신 것의 어떤 선으로부터 인정함이 있어야 하고, 더 나아가 모든 선이 주님으로부터 임을 확실히 인정해야 한다. (2966, 6156)

32절. 목축이나 양떼의 모든 십분의 일, 막대기 아래를 지나가는 열 번째는 주님에게 거룩하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자연적이고 영적인 모든 선은 진리의 힘으로 획득되는데, 자신 스스로 행동하듯 움직이는 사람을 수단으로 하되 위의 선 모두가 아껴주신 것들을 수단으로 주님으로부터 임을 인정해야 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목축이든 양떼이든 지팡이 밑에서 오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 십분의 일은 주님께 거룩하다란 자연적이고 영적인 모든 선, 이 선이 진리의 힘으로, 마치 자신 스스로 인 듯 행동함으로 해서 획득되는데 이것 모두는 주님께서 아껴두신 것을 수단으로 있어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576, 5913, 6126, 4876, 2001)

33절. 그는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를 헤아리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바꾸지 못한다. 그리고 정녕 그가 그것을 바꾸겠다면, 그러면 그것과 바꾸려는 그것 둘 다 거룩할 것이다. 그것은 되찾아지지 못한다.

영적 의미

인간이 자기 총명으로 선이든 악이든 자기 품질을 평가하려 들어서는 안되고, 선에서 악으로 되돌아가도록 허용할 수 없고, 시험의 흔들림에서 악에 빠지지 않는다면 악에서 저항하고 선 쪽으로 결정함을 수단으로 주님께 예배해야 한다. 이럴 경우, 두 상태는 거룩해 진다. 인간은 선과 진리의 상태로부터 악과 거짓의 상태로 건너 갈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좋고 나쁜 것을 헤아리지 못하고 바꾸지도 못한다란 인간은 자기 품질이 선한지 악한지를 자기로부터 파생된 총명으로부터서 평가하지 못하며 또한 선으로부터 악으로 되돌아 가는 것도 허용되지 못함을; 기어이 바꾼다면 바꾸려는 것 모두 거룩하다란 시험이 요동칠 때에 악에 빠진다면 그는 악에 저항하고 선 쪽에서 결심함을 수단으로 주님을 예배해야만 한다는 것을; 되찾지 못함이란 인간은 선과 진리의 상태로부터 악과 거짓의 상태에로 건너 갈 수 없음을;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인간은 구속의 일을 수단으로 주님으로부터 전적으로 있는 아껴두신 것 속의 선과 진리를 자신의 것으로 주장할 수 없다는 뜻이다. (4162, 1276, 1377, 847, 8042, 2966)

34절. 이것들은 명령들이다, 이것을 주님께서는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모세에게 명령하셨다.

영적 의미

모든 위의 사항은 신성한 질서의 법칙이요, 이는 신성한 선이 신성한 진리에 유입되어서 비롯되고, 이는 주님의 순수한 사랑과 자비로 영적 인간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것들은 명령이요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명령 하셨다란 모든 위의 사항들은 신성한 질서의 법칙이요, 이는 신성한 선의 유입이 신성한 진리 안에 있게 되어서 이고, 이는 주님의 사랑과 자비로부터 영적 인간의 유익을 위해서 이다. (2634, 2951, 2001, 7010, 3654, 8753)

27장의 종합적 고찰

우선 주목해 보아야 할 주제는 어떤 사람이나 물건을 평가함(값을 매김)이 모세나 성직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에 관해서이다. 글자대로 일 경우 평가란 제한된 의미 즉 값을 매김 그대로 이다. 그러나 영적일 경우는 그렇지 않다. 그 이유가 내적 의미는 보편적 의미 이어서 대체로 인류에 관계되는 바, 특정한 어떤 국가나 개인에 국한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세의 평가는 신성한 진리로 모든 이에 대한 주님의 평가이다. 누군가에 대해 주님이 하시는 평가에는 미미한 실수조차 결코 없다. 더구나 모든 각 개인은 주님의 평가에 의거 영원까지 자기에게 할당된 위치를 가지게 된다. 이는 너무나 확실한 바, 우리 삶이 건설되는 기초인 이 세상에서 태어나 이루어진 삶에 따라 지옥 이든 천국 이든 우리의 위치는 결정되어 고정되어진다. 이런 생각은 이제 공부하는 본문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비록 값을 매김이 주님의 권한에 절대적으로 속한다 해서 인간이 그것을 이해 못하도록 장치해두신 게 아니라 그 반대이다. 몇 세겔로 값을 매김, 특히 인간 존재를 몇 세겔의 가치가 있다고 하는 것은 매우 이상한 느낌을 줄런지 모른다. 그러나 수를 세고 물건을 달고, 재는 측량은 내적 의미에서는 사랑과 총명에 관한 우리의 품질을 발견하는 것과 관계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주님으로부터 오는 능력을 수단으로 자신을 평가하든 타인을 평가하든 지극히 올바르게 평가하는 것은 모두 가장 가치가 있는 완성(accomplishment)임을 보게 된다. 비록 모든 평가가 주님으로부터, 또는 그분의 말씀으로부터 거행되는 것이 확실하다 해도 자신의 운명을 고정시켜주는 삶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다. 지상 마지막 순간에서 우리가 어떤 인격이 되어있든 그 인격이 자신과 꼭 맞고 거기에 자신이 언제나 만족해 있는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날수를 제대로 헤아릴 수 있도록 가르치시어 지혜의 심정을 얻게 하소서” (90:12). 이제 우리 모두는 위 구절을 이해하고 있으리라 본다. 설사 상응이라 불리는 지식이 없다 해도 우리가 해야만 하는 것이 어떤 것들인지 그것들의 광대함과 중량감을 느끼리라. 사실 자연계에 사는 동안에도 주님으로부터 오는 힘으로 누구를, 또는 어떤 사물의 값을 매길 수 있다는 것은 아마 최고도로 가치있는 일 임은 틀림없다. 이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은 가장 성공적으로 자기 지식을 응용했다고 보아야 하는 바, 최고의 사람이라 생각된다. 이를 행할 수 없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값이 덜 나가는 사람이 된다. 그러나 어떤 환경 조건에서도 한 인간 존재의 가치는 너무나 커서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바, 본문의 값을 매김(estimation)이 지닌 의미의 절대적 측면에서는 어느 누구라도 그 값을 잃는 경우를 주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신다. 천사와 악마는 대단히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이 반대되기 때문이다. 이는 악과 선, 거짓과 진리 사이에 놓인 반대됨과 같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 가장 나쁜 악령 조차도 주님의 견지에서는 돌보아 줄 가치가 있으시다. 물론 어느 누구도 자기가 선택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악령이 되도록 강요당하지 않는다. 게다가 무한하신 분이 보시는 수준에서 어떤 대상을 우리는 볼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자신이 자유로이 선택해서 자신이 흡족해 하는 것도 없이, 그 만족이 피할 수 없는 제한을 포함함도 없이 영원한 존재로 살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실히 해두는 것은 유한한 우리의 능력을 가지고 주님으로부터서 100%가능하다.
주제와 연결되는 일반적인 진리들을 위와 같이 생각해보게 되면 이제 흥미를 주는 본문에 묘사된 목차들의 일반 요점을 살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첫 문항에 기술된 네 가지 사항들은 「천국의 비밀들 10225항」에서 모두 설명되어 있다. 따라서 한, 두가지 정도의 실용적인 측면 외에 더 확대 해 볼 필요는 없으리라 본다. 첫째로, 거듭남에 있게 되는 발전은 점진적이다는 것, 그래서 인간의 자연계 삶의 각기 다른 시기들로 묘사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이동하는 여행 또는 토지를 경작하는 과정과도 비슷하다. 성경의 어떤 부분에서는 이를 두고 창조의 일이라 부르고, 다른 곳에서는 새로운 탄생이라고도 일컫고 있다. 이와 같이 여러가지 다른 묘사들을 수단으로 거듭남에 관한 다양한 진리들이 말씀의 영적 의미에서 명백하게 그 모습을 나타내 주고 있다. 그리고 모든 각 경우마다 그것은 점진적이다. 우리는 잎이 돋을 때, 이삭이 패일 때, 그리하여 그 이삭 안에 알곡이 가득찰 때까지를 맞이한다. 한 단계 한 단계를 거쳐서 하늘 나라에 도달해야 하는 것이 우리 인간임을 실감하면 이 세상 삶에 적지 않은 위로를 받게 된다. 본문의 첫 문단에서 꼭 주목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모든 이가 유아로부터 노령에로 전진해가는 것과 똑같게 거듭난다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도 있지 않느냐고 혹 어떤 이는 반문 할 런지 모른다. 그러나 여러 인간의 삶을 관찰해 본 사람이라면 실질적인 과정은 삶의 초기 또는 후기에도 개시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극단적인 경우 어떤 이에게는 전혀 개시조차 되지 않는 경우도 발생한다. 어떤 이의 경우 실제 40살을 먹고 있는데도 그의 거듭남은 유아로부터 다섯 살 또는 십대까지로 본문에서 상징화 된 초보적인 상태에 머물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유아라 불리는 자연계의 것과 거듭나는 상태와의 상응 차원에서는 아직 선을 붙들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다. 어찌됐든 우리는 위의 사항들을 유념해두면 매우 유익하리라 생각된다.
둘째로, 본문에서 삶의 각기 다른 시기가 정규적인 순서로 언급되고 있지 않다는 것에 관해서이다. 인생의 셋째 시기에 해당되는 나이(이십세)가 시리즈들의 문을 열고 둘째 시기, 첫째 시기 그리고 넷째 시기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문단은 모세가 아닌 성직자가 가난한 자의 값을 매김으로 마감되고 있다. 왜 이렇게 되는 걸까? 본 장의 전체 주제가 영적 교회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적 사항에 관련되는 것, 즉 영적 교회의 내적 상태에 관한 묘사가 선행된 다음, 셋째 시기와 둘째 시기인 영적 교회의 외적 상태가 기술된다. 그 다음 천적 사항에 관련되는 것 즉 무지의 순진에 관해 먼저 기술되고 지혜의 순진이 뒤따르는데 이것이 인생의 첫째 시기와 넷째 시기로 각각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은 각 층의 사람들, 즉 그들의 상태가 선의 측면에서, 선으로부터 진행된 진리 측면에서 값을 매길 수 있을 뿐인 사람들을 의미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순서대로 뒤따르는 내용은 자연적 애착들, 그것의 내면과 외면에 있는 것들, 그리고 자연적 수준의 지적 능력들 또는 지식에 대한 애착, 뿐만 아니라 자연적 수준의 기쁨들이 열거되고 있다. 넷째 문단에서 주어지는 세부 사항들을 숙고하게 되면 우리가 상기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주님의 말씀이 헤아리는 속성에 관한 것이다. 이 품성을 수단으로 모든 이는 그의 삶에 따라 평가되어 판단되어 진다. 따라서 우리가 회개를 하되 가장 좋은 동기, 가장 높은 동기로 이루어지는 순수한 회개가 절대 필요하다는 것을 자연히 느끼게 만든다. 따라서 시편의 말씀을 응용하면 더욱 유익하리라. “하느님, 나를 헤쳐 보시어 내 심정을 알게 해주소서 나를 파헤쳐 내 생각을 알게 하소서, 사악한 길 걷는지 보게 하시고 영원한 길로 나를 인도해 주소서” (시편 139:23-24).
마지막 문단에 포함된 영적 진리를 호기심의 눈초리로 흘겨보기만 해도 그 속에 얼마나 실용적 중요성이 훌륭하게 담겨 있는지 누가 알 수 없을까? 우리 모두가 대단히 성품이 호의적이라 가정해보아도, 흔들거리는 삶의 상태 동안 자신의 총명과 신중성을 한껏 발휘해 얻은 선함들이라 해도 그 선이 주님으로부터 이요 그분이 소유자이심을 망각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진짜 선함을 행하는데 있어 친절과 관대함이 단지 자연적 수준의 충동에 멈추어 있어 거듭남에서는 실수가 얼마나 연발되는지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이다. 이런 것들을 식별하고 응용해가기 위해 말씀의 가르침에서 꾸준히 배워 간다면 우리 거듭남은 더욱 정진되어 자연적일 뿐인 애착들의 품질이 과연 무엇인지 지각할 능력을 갖추게 되고 수준 낮고 천한 애착들을 거절하면서 진정한 선함의 공적을 자신에게 돌리지 않으면서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더구나 이런 능력이 확실히 있게 되는 조건은 주님을 인정함이 심정으로부터 더욱더 있게 됨에 비례한다는 것, 이에 신성한 진리를 계발된 이해함으로 받아 결합시켜야 한다는 것, 심정과 이해함이 하나되어 결론지은 원리들이 일상 생활에서 적절히 응용되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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