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24장 해석

레위기 24장

영적 의미 요약

* 영적 인간의 상태에 적합한 천적 사랑의 선은 모든 영적 진리의 근원이며 영적 왕국에서 항구적으로 빛이 되어 있다, 1-4절.
* 천적, 영적 선이 명백해짐 다시 말해 주님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에 관하여, 이 두 선은 정밀하게 구별된다는 것, 이 두 선은 영적 투쟁으로 획득된다는 것, 이 두 선은 인간의 저장소 안에 존재한다는 것, 이 두 선은 주님으로부터 존재함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이 두 선은 각각에 상응하는 진리를 동반한다는 것, 이 두 선은 인간에 의해 자기 것으로 삼아지게 된다는 것에 관하여, 5-9절.
* 교회에 만연되고 진리를 더럽히는 악에서 나온 거짓들에 관하여, 특히 신성한 인간에 관한 교리를 모독함에 관하여, 이런 악한 품성을 지닌 자들은 한동안 외적인 속박으로 억류되었다가 심판을 맞게 되어 단죄된다는 것에 관하여, 10-14절.
* 모독에 관하여, 진리와 선에 가해진 피해에 대하여, 악과 거짓들이 스스로 심판을 하게 되는 응보에 관하여, 15-23절.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지각을 주시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주님께서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말씀하심은 유입을; 말하심은 지각을; 모세는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각기 명시한다. (2001, 2951, 7010, 1791, 1822)

2절.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명령하여, 그들이 너에게 빛을 내기 위해 찧어 만든 순수한 올리브 기름을 가져오게 하여, 등불이 계속적으로 타도록 하라.

영적 의미

주님으로부터 영적 교인에게 유입되는 것 때문에 영적 교인은 자기 상태에 걸맞는 천적 사랑의 선을 영적 진리의 근원이 되는 빛으로 인정하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함이란 영적 교회인에게 주님으로부터의 유입이 있음을, 빛을 내기 위해 순 올리브 기름을 모세에게 가져옴이란 영적 교회 상태에 적합한 천적 사랑의 선은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주님으로부터 있게 됨을 인정함을, 빛을 내기 위한 기름이란 선이 진리의 근원이라는 것을, 계속 불을 밝힘이란 항구적으로 영적 왕국에 빛이 있도록 하기 위함을 뜻한다. (5486, 3654, 886, 10303, 7010, 9296-5, 9667, 9549, 9550, 10200-02)

3절. 증거(궤)의 베일 밖, 만남의 천막에서, 아론은 등불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주님 앞에서 계속적으로 (빛을 내게) 정돈하라. 이것은 너의 세대를 통틀어 영원한 법령이다.

영적 의미

그 이유가 위 빛은 인간의 천적 수준으로부터 영적 수준으로 흐르면서 희미한 상태와 밝은 상태 안에 있는데 이는 천적 선의 작용을 통하여서이다. 이 빛은 거듭나는 과정동안, 그 후 영원하게 내적 인간과 외적 인간 모두에게 빛이 되어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이 등불을 켜서 만남의 천막 안 증거궤 앞 베일 밖에 두어 저녁부터 아침까지 계속 주님 앞을 비추게 함이란 이 빛은 천적 선이 작동함으로 해서 희미한 상태에서 밝은 상태에 이르는 모든 상태 안에 있는 인간 마음의 영적 수준에 천적 수준으로부터 흘러감을 뜻한다. 이것은 너의 세대를 통틀어 영원한 법령이다란 이는 내적, 외적 인간 모두에, 거듭나는 기간 그리고 그 후의 기간에 걸쳐 있는 영원한 규정이라는 뜻이다. (9946, 10200-02, 9670, 3540-2, 10133, 7884, 7931)

4절. 그는 계속적으로 주님 앞 순수한 등잔대 위에 등불을 배열하라.

영적 의미

그 이유가 영적 수준은 계속 주님에게서 오는 거짓과 혼합 안 된 신성한 진리의 특별한 저장소이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는 계속적으로 주님 앞 순수한 등잔대 위에 등불을 배열하라란 영적 수준은 주님으로부터 계속 오는 거짓과 혼합 안 된 신성한 진리를 저장하는 특별한 곳이다는 뜻이다. (9548-50, 10133)

5절. 그리고 너는 고운 곡식 가루를 가져와, 그리고 그것으로 열 두 과자(cake)들을 구워라. 십분의 이 에바가 과자 하나이다.

영적 의미

또한 순수한 천적 진리 안에 천적 선이 있어 명백해진다. 그리하여 영적 선이 영적 인간에 의해 획득된다. 위 순서를 통해 천적 천국과 영적 천국이 결합되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고운 곡식 가루를 가져다가 열 두 과자들을 구워라란 천적 진리, 그 안에서 천적 선이 명백해진다. 그런고로 해서 영적 선이 영적 왕국에 파생된다. 과자 한 개는 십 분의 이 에바이다란 천적, 영적 천국이 결합됨을 통하여를 뜻한다. (9995, 2177, 2280, 3272, 2177, 2280)

6절. 그리고 너는 그것들을 두 줄로, 각 줄에 여섯 개씩, 주님 앞 순수한 탁자 위에 차려놓아라.

영적 의미

위와 같이 결합된다 해도 영적 선은 천적 선에서 구별되어 진다. 그리고 위 두 선 모두 충만된 시험에서의 승리를 통해 획득된다. 위 두 선은 영적 교회인의 저장소 안에 있게 되고 이 선이 주님으로부터 임을 인정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섯 개씩 두 줄로 주님 앞 순수한 탁자 위에 차려 놓아라란 위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영적 선은 천적 선과 구분된다는 것, 둘 다 시험에 완전히 승리함으로 획득된다는 것, 둘 다 영적 교회인의 저장소 안에 있다는 것, 그리고 둘 다 주님으로부터 임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5194, 9864, 8888, 9545, 2001, 3272)

7절. 그리고 너는 각 줄 위에 순수한 유향을 놓아라, 하여, 이것은 기념물을 위한 빵(bread), 주님에게 불로 만든 제물이다.

영적 의미

위 선은 각각에 상응하는 진리를 동반하는데 이 진리는 일반적으로 볼 때 신앙의 진리이다. 그 이유가 진리는 선의 형체, 선을 표현해 주기 때문이다. 이 진리를 통해 선은 항구적으로 기억 안에 있는다. 그리하여 주님이 인정되어져 사랑으로부터, 이 사랑과 결합된 신앙을 수단으로 예배되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께 태워 바치는 제물이요 기념을 위한 빵이 되도록 각 열 위에 순수한 향을 올려 놓아라란 위의 선들은 그 선에 상응되는 진리를 동반한다는 뜻인데, 그 이유는 진리가 선을 표현하고 그 선의 형체이고, 이 진리를 통해 선은 기억 속에 항구적으로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사랑으로부터 그 사랑과 결합된 신앙을 수단으로 인정되어진다. (2177, 10177, 6888, 10055)

8절. 안식일 마다 그는 계속적으로 주님 앞에 그것을 차려 놓아라. 이것은 이스라엘의 후손들을 위하여서이고, 영원히 지속되는 언약이다.

영적 의미

천적, 영적 선 모두 주님으로부터 인간에게 파생되나, 주님께서는 그분의 인간이 신성이 되심을 수단으로 하시는 바, 위 선들은 인간과 함께 신성한 인간으로부터 존재한다. 따라서 천적, 영적 선을 수단으로 교회 속의 사람은 주님과 영원한 결합을 이룬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안식일 마다 계속적으로 주님 앞에 그것을 차려 놓아라란 천적 선이든 영적 선이든 모두 주님으로부터 인간에게 파생된 것임을, 이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영원히 지속되는 언약이다란 주님의 인간이 신성이 되신 덕택에 위의 선들은 신성한 인간으로부터 인간과 더불어 있게 되었음을, 이를 수단으로 교인은 주님과 영원히 결합할 수 있다는 뜻이다. (2177, 8886, 8889, 8886, 8889, 665, 666)

9절. 그리고 이것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위해 있다. 그리고 그들은 거룩한 장소에서 그것을 먹어라. 그 이유가 이것은 영구적인 법령을 수단으로 불로 만든 제물인 바, 그에게 최고로 거룩하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이리하여 천적, 영적 인간 모두는 거룩한 상태에서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을 자기 것으로 가능하게 된다. 그런 이유는 선은 천적 인간의 참 생명으로 진리 안에서 직접 명백해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위 인간으로 주님을 인정할 수 있게 해서 탁월한 수준의 사랑 속에서 주님을 예배할 수 있게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것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위함이란 천적, 영적 인간을 위한 선임을, 그들은 그것을 거룩한 장소에서 먹어야 한다란 위 선들은 거룩한 상태에서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음을, 여호와께 태워 바치는 음식 가운데서도 더 없이 거룩한 바, 영구적인 법령이다란 선은 천적 인간의 참 생명이요, 진리 안에서 직접적으로 명백해진다는 것을, 이 인간은 빼어난 수준의 사랑으로 주님을 인정하고 예배할 수 있음을 뜻한다. (9946, 2187, 3210, 10055, 7884, 7931)

10절. 그리고 자기 아버지가 이집트인인 이스라엘의 여인의 아들이 이스라엘의 자손들 사이에서 밖에 나갔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여인의 아들과 이스라엘의 사람이 진영에서 서로 승강이했다.

영적 의미

위와 다른 면이 있다. 자연적 사랑 뿐인 데에 있는 악에서 파생되는 거짓이 영적 교회를 뒤집으려는 이기심인데, 계속 이 교회에 만연되고 이 결과 다툼이 발생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버지가 이집트 출신인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란 자연적 사랑 뿐인 악으로부터 파생된 거짓을; 이 악은 거꾸로 된 영적 교회에 있는 이기심에 근원된다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빠져나갔다란 교인에게 악에서 나온 거짓이 유입됨을;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과 이스라엘 사람이 진영에서 다툼이란 거짓이 만연되고 그것과 싸우는 것을 뜻한다. (1147, 3654, 3703-20, 9391-10, 3703, 7488, 7124, 1571)

11절. 그리고 이스라엘의 여인의 아들이 (주님의) 이름을 모독하였다, 그리고 저주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를 모세에게 데려왔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슬로밋인데, 단 지파 디브리의 딸이다.

영적 의미

이리하여 교회 안에 있는 거짓 즉 악에서 나오는 거짓 속에 있는 모든 이들은 교회의 진리를 더럽히는데, 특히 신성한 인간에 관한 교리를 더럽힌다. 그렇게 해서 이들은 스스로 주님께 등을 돌려 자신들이 악 가운데 있음을 확증한다. 그러므로 이런 상태에 있는 이들은 신성한 진리의 심판에 놓여지면 이들의 교회는 끝장을 본다. 이런 상태의 외적 근원은 감각적이고 육적 기쁨인데, 이 기쁨은 감각적 오류로부터, 바깥쪽인 외관으로부터 사물을 판단하는 오로지 자연적 수준뿐인 인간의 착상으로부터 온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 주님의 이름을 모독함이란 교회 안에 있는 거짓 또는 악에서 나오는 거짓 속에 있는 이들은 교회의 진리들을 모독하는데 특히 신성한 인간에 관한 교리를 모독한다. 그러므로 해서 그들 스스로 주님께 등을 돌리고 자신들이 악에 있음을 확증하게 된다는 것을; 모세에게 데려옴이란 교회의 말기에 신성한 진리의 심판에 서게 됨을; 그 어미의 이름은 슬로밋인데 단 지파에 속한 디브리의 딸이었다란 위 상태의 외적인 근원지는 감각에 관한 오류들로부터, 그리고 오로지 외관으로만 판단하는 자연적일 뿐인 인간의 상상으로부터 오는 감각적이고 육적일 뿐인 기쁨이다. 그 이유가 어머니는 외적 근원을; 이름은 품질 또는 상태를; 슬로밋이란 “나의 평화, 나의 행복, 나의 보상”이라는 뜻을 지녔기 때문이다. 사실 슬로밋이 지닌 뜻은 좋은 의미에서는 천국의 평화, 행복, 그리고 보상이지만 본문의 경우 반대 의미인 바 오로지 감각적이고 육에 속한 행복 또는 기쁨을 뜻한다. 딸은 좋은 의미에서는 애착 또는 선을 뜻하나 이 구절의 경우 그 반대인 악한 애착을 뜻하고 있다. 디브리는 “설득력이 있는, 능변이 있는”(Gesenius 참조), “들로부터의 어떤 것”(Früst 참조)을 뜻한다. 그러므로 본문의 경우 감각적인 것에 바탕을 둔 생각들 또는 감각 속의 오류들을 뜻할 것이라 생각된다. 단은 판결하는 자, 그리고 좋은 의미에서 거듭나지는 처음 사항에 있게 되는 진리의 확언, 그리고 거듭난 이들에게 있는 마지막 사항들이다. 본문의 경우 반대 의미인 바, 바깥쪽인 외관으로부터 사물을 판단하기만 하는 자연적 인간이 상상하여 추론함을 뜻한다. (1147, 8882, 6887, 379, 7010, 931, 1815, 8897, 144, 145, 4681, 995, 489, 568, 9987, 4440, 3923, 6397-6401)

12절. 그리고 그들은 그를 안쪽에 가두었다, 하여, 주님의 입에서 그들에게 선포가 있을지 몰라서였다.

영적 의미

이런 품성을 지닌 이들은 그들 악이 극점에 달하는 상태가 올 때까지 한동안 외적 속박으로 억류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의 입에서 선포가 있을 때까지 그를 가두어 놓음이란 위 품성을 지닌 사람들은 그의 악이 극에 달할 때까지 한동안 외적 속박으로 억류되어진다는 뜻이다. (5037, 5096, 4217, 9096)

13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그 다음 지각을 주시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주님께서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은 유입을; 모세는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말하심은 지각을 뜻한다. (2001, 2951, 7010, 1791, 1822)

14절. 진영 밖으로 저주했던 그를 끌어내라. 그리고 그의 저주하는 말을 들었던 모든 이는 그들의 손을 그의 머리 위에 놓게 하라, 그리고 모든 회중이 그를 돌로 치게 하라.

영적 의미

악과 거짓으로 확증한 이들의 진짜 품성은 심판 과정에서 밝히 드러나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불순종을 통해 스스로 확증했다는 것이 신성한 진리의 증언으로 입증될 때, 자기들 삶의 결과는 단죄되고 영적 인간에 의해 거절되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저주한 자를 진영 밖으로 끌어냄이란 악과 거짓이 확증된 진짜 품성은 심판 과정에서 명백해져야만 함을; 그가 저주하는 것을 들은 모든 사람이 그 사람 머리에 손을 얹는다란 신성한 진리의 증언으로 입증함을; 온 회중이 그를 돌로 친다란 그 삶의 결과에 대한 단죄, 영적 인간에 의한 거절을 뜻한다. (379, 10038, 10023, 9311, 4197, 10023, 6338, 8799, 7456)

15절. 그리고 너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야기하라, 말하기를, 자기 하느님을 저주하는 자는 누구든지 자기 죄를 낳는다.

영적 의미

사악한 삶으로 주님에게 등을 돌리는 자는 자신의 선택에 의해 황폐되고 만다는 것이 신성한 진리의 증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러 말함이란 이것은 신성한 진리의 증언이다를; 저주함이란 사악한 생활로 주님께 등을 돌리는 것을; 죄를 낳음이란 자신이 선택해서 황폐해짐을 뜻한다. (7010, 10355, 1822, 379, 8882, 9937)

16절. 그리고 주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자, 그는 확실히 죽음에 놓인다. 모든 회중이 그를 반드시 돌로 칠 것이다. 낯선 자 이든 본토박이 이든 (주님의) 이름을 모독할 경우, 죽음에 놓이게 하라.

영적 의미

특히 진리를 모독한 이들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그 결과 그들에게서는 모든 진리가 박탈된다. 그가 교회의 내적 상태 이든, 외적 상태 이든 모두 해당된다. 그 이유는 이런 모독은 내적 이든 외적 이든 계속될 수 없고 오로지 제거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의 이름을 모독한 자는 반드시 사형 시켜라란 특별히 진리를 모독하는 이들, 그들은 모든 진리를 박탈당하는 결과를 맞이하고야 만다는 것을; 온 회중이 그를 돌로 치라란 거짓은 처벌되고 교회에 의해 거절된다는 것을; 낯선 자 이든 본국인 이든 이란 그들이 교회의 외적 측면에 속하든, 내적 측면에 속하든 임을; 내 이름을 모독한 자는 정녕 죽으리라란 이런 모독은 내적으로 이든 외적으로 이든 계속 될 수 없는 바 오로지 제거되어야만 한다는 뜻이다. (8882, 6887, 2908, 6338, 8799, 7456, 7908, 8882, 6887, 2908)

17절. 어떤 사람을 세게 때려 죽게 만드는 자는 정녕 죽음에 놓인다.

영적 의미

시련(수습) 받는 상태에서 악한 생활로 진리를 거절하는 이는 반드시 황폐됨을 겪게 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남의 목숨을 끊은 자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란 수련 상태에서 악한 생활로 진리를 거절한다면 황폐됨을 겪어야 한다는 뜻이다. (8902, 4251, 2908)

18절. 그리고 짐승을 세게 쳐서 죽게 만든 자는 그것을 변제할 것이다. 즉 목숨을 위해서(인바) 목숨으로 (변제하라).

영적 의미

그러나 누가 자연적 인간 안에 있는 선한 생활만을 파괴했다면 그는 이기적 삶을 거절함으로 거듭날 수 있어 천국 생명을 받을 수도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짐승의 목숨을 끊은 자는 변제하라(산 짐승으로 보상하라)란 누가 자연적 인간 안에 있는 선한 생활만을 파괴한다면 그는 이기적 삶을 거절함으로 거듭날 수 있고 천국 삶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4251, 7424, 9097, 9048, 9049)

19절. 그리고 만일 사람이 자기 이웃을 흠집나게 했다면, 그가 했던 대로 그것을 그에게 해줄 것이다.

영적 의미

반대로 만일 그가 다른 사람 안에 있는 선행을 파괴한다면 그 사람 안에 있는 선행 역시 파괴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누구든지 동족에게 상처를 입힌 자에게는 같은 상처를 입혀라란 누가 타인의 선행을 파괴한다면 자신에게 있는 선행도 자신에 의해 파괴됨을 뜻한다. (7837, 10490, 9048, 9049)

20절. 파괴(breach)에는 파괴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되갚으라). 즉 그가 사람에게 손상을 입게 하였으면, 그렇게 그도 손상을 입게 하라.

영적 의미

위 경우는 이해함, 의지, 바깥쪽 생활 측면에서이다. 그 이유는 악은 그 악 위에 피할 수 없는 처벌을 가져오고, 거짓으로부터 행동하는 이는 거짓의 결과로 고통 당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파괴함에는 파괴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란 19절의 경우가 의지, 이해함, 바깥쪽 생활에 관한 것임을; “남에게 상처를 입힌 만큼 자신도 상처를 입는다”란 악은 피할 수 없는 처벌을 제 스스로 가져온다는 것, 거짓으로부터 행동하는 사람은 거짓의 결과로 고통받는다를 뜻한다. (9163, 2148, 6380, 9048, 9049)

21절. 그리고 짐승을 죽인 자는 그것을 변제하라. 그리고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음에 놓인다.

영적 의미

외적 인간 안에 있는 선만 파괴한 사람은 회개로 거듭날 수 있다. 그 반면 내적 인간 안에 있는 선을 파괴한다면 황폐되고야 만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남의 짐승을 죽인 자는 물어주어야 하고 살인한 자는 사형에 처해야 함이란 외적 인간 안에 있는 선만을 파괴한 사람은 회개로 거듭날 수 있으나, 내적 인간 안에 있는 선을 파괴한다면 황폐되어질 수밖에 없다. (8902, 9097, 7424, 2908)

22절. 낯선 자 이든, 본토박이 이든 너희는 한 가지 법을 가진다. 그 이유가 내가 주 너의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위 같은 응보의 법칙은 교회 내에 있는 사람 이든 밖에 있는 사람 이든 공히 적용된다. 그 이유는 신성한 선은 신성한 진리에 의거 불변하게 행동되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외국인 이든, 본국인 이든 한 가지 법만 있을 따름이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란 응보의 법칙은 교회 내에 있든, 밖에 있든 공히 적용되는데, 그 이유는 신성한 선은 신성한 진리에 의거 불변하게 행해지기 때문이다. (9048, 9049, 6887, 2001)

23절. 그리고 모세가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들은 진영으로부터 그를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그를 돌로 쳐죽였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한 대로 실시했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신성한 진리는 악이 거짓과 결합하도록 내버려 두어 악 가운데 있는 자들을 거절하는 도리 외에 심판에서 달리 행할 수 없다. 그리하여 지옥적 삶 가운데 있는 이들은 신성한 선으로부터 나온 신성한 진리에 순종하는 천국적 삶 속에 있는 이들로부터 분리되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야기함이란 신성한 진리는 심판에서 악 가운데 있는 이들을 거절할 도리밖에 없음을; 저주한 자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 돌로 쳤다란 악은 악 속의 거짓과 결합되도록 내버려둠을; 주님이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했다란 지옥적인 삶 속에 있는 이들은 신성한 선으로부터 신성한 진리에 순종하는 천국적 삶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서 분리되어짐을 뜻한다. (7010, 2951, 3654, 379, 10023, 10038, 6338, 8799, 7456, 3654, 7010, 2001, 5486)

24장의 종합적 고찰

만물이 존재하게 되는 보편적 원리들을 알고 있다면 거기서 파생되는 모든 세세한 사항들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모르고 있는 사람보다 더 나은 위치에 있게 된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는 보편적 원리이다. 이런 연유로 교회에 관한 저술 속에서 위 원리는 대단히 많게 사용되고 있다. 선과 진리의 형체가 아닌 창조물에 관한 착상은 창조물 안에는 아무 것도 없다. 무엇 보다 먼저, 선은 작동 중인 사랑 외에 더 다른 게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들이 사랑하는 것을 놓고 선한 것이라고 말하고, 자기 사랑에 일치하는 것들, 제 사랑을 체현해 주고 표현하는 것들을 두고 참된 것이라고 말한다.
어찌됐든 사랑은 보편적인 것이라 불리는 것이 합당할는지 모른다. 그 이유는 사랑은 사랑이기 때문이고 사랑은 주님, 지존하신 분, 만물은 그분으로부터이기 때문이다. 신성한 사랑이 모든 것의 근원이라고 알게 되면 넓은 측면에서의 사랑은 인간 존재들 안에서 아주 다양하게 사랑 자체를 전시한다는 것에도 주목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신성한 사랑에 관한 뭔가 다른 구분된 정의가 무엇일까라고 묻지 않을 수도 없다. 이렇게 간단히 말해볼 수 있다. 생명과 행복, 기쁨과 즐거움을 이기적인 어떠한 동기 없이 나누어 주는 게 사랑이라는 것, 또는 인류로부터 천국을 형성하는 게 사랑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성한 선은 위 사랑이 명백해진 상태이다. 이를 본문에서 순수한 올리브 기름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런 기름이 언급된 말씀 몇 군데를 살펴보자. 즉 레위기 8장 10-12절, 열왕기상 1장 39절, 열왕기하 4장 2-7절, 누가복음 10장 34절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위 기름을 가져온다는 것은 자기가 받고 있는 선함이 주님으로부터 임을 인정하는 것이 인간에게 할당된 부분임을 명시하는 말이다. 찧어서 짰다는 것은 위 상태에 순응한다는 뜻이고, 그 기름은 불을 밝히기 위함이라는 것은 선이 진리의 근원이라는 뜻이다. 이 등불을 늘 켜둔다는 말은 영적인 빛은 선의 상태로부터 언제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위와 같이 본문의 첫 단원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들이 함축되어 있다. 이런 사항이 뒤로 이어지는 구절들에서 세부적으로 명백해지고 있다. 왜 위 등불이 베일 밖에 위치하고 있을까? 영적 인간은 선과 진리를 자기가 사용하는 위치에 계속 놓고, 그 선과 진리를 자기의 모든 상태 속에서 제 자신으로부터인 듯 변장하여 나타나야만 한다는 것, 동시에 이 인간이 알아야 하는 것은 작동하는 힘은 등불 뒤 베일 안에 존재한다는 것, 다시 말해 그가 현명하다면 자신의 납득을 초월해 존재하는 신성한 신비를 꿰뚫어 보려고 시도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각각에 걸맞는 천국을 지니고 즐긴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얼마나 기쁜 일인가! 게다가 자신이 결코 도달하지도 못할 어떤 드높은 위치를 포부적으로 갈망해대거나 바래지 않으면서 자신의 위치에서 더 나은 상태로만, 최소한 더 이상 뒤로 미끄러질 염려는 없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편하게 기쁨을 즐길 수 있는가 말이다. 이 문단을 맺는 말, “이것은 너희가 대대로 길이 지킬 법령이다”는 특별히 주목해 두어야 한다. 그 이유는 법령이란 내적 삶의 상태로 결과되는 외적 삶에 관한 상태임을 이 부분에서 특별히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완전히 거듭나기 전 내적 인간과 외적 인간 사이에는 계속되는 다툼이 있다. 이를 두고 시험(temptation)이라 부른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위 같은 종류의 다툼은 없고 평화로운 상태, 언제나 하모니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고로 이 세상 삶이라는 여정 동안 시험이나 위의 다툼 같은 것을 거쳐 가는 게 꽤 가치 있는 고통이라고 반문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말씀의 글자 속에 있는 내적 의미를 자세히 관찰함으로 수습기간인 이 세상 삶에 필요한 힘과 용기를 수집해야 하리라. 이제 두 번째 문단을 살펴보자.
먼저 주목해 볼 것이 있다. 빵은 천적 선을 의미하고 선은 진리에 앞서 존재한다. 그럼에도 등불을 밝히는데 대한 지시 사항이 빵을 거론한 이 문단 앞에 전개되어 있다. 왜 그렇게 되어 있을까? 그 이유는 본문의 일반 주제가 영적 천국과 영적 교회이기 때문이다. 또한 주님으로부터 진행되는 신성한 진리는 비록 천적 천국까지도 그들 상태에 적합하기 때문이고 신성한 선 역시 신성한 진리 안에 거처를 두기 때문이다. 그 외 달리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 또는 사랑이 그분에 의해 받아질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경우가 천적 인간에 해당되는 바 진리를 수단으로 선의 상태에로 인도되는 영적 인간의 경우 더더욱 해당되는 바, 천적 인간은 주님을 사랑하는 그들의 사랑으로 구별되고, 영적 인간은 선행 또는 이웃을 사랑하는 그들의 사랑으로 구분되어지는 것이다.
위에서 살핀 내용들이 어떻게 그러한지를 보여주게 된다. 베일 밖에 있는 모든 것은 영적 인간에 관련되는 것이다. 그리고 천적 인간을 통해 간접적으로 오는 신성한 사항에 관한 지각이 영적 인간에게는 천적 인간을 통해 간접적으로 온다. 이를 다시 생각해 보면 의미심장한 실용적인 열매를 얻게 된다. 즉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이상 진정한 선행(이웃 사랑)이 있을 수 없다는 것, 순수한 신앙과 선행이 없으면 진정한 자연적 친절 또는 선도 없다는 것, 보다 낮은 천국의 기쁨은 보다 높은 기쁨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것, 그 반면 악은 위의 사항들을 남용함으로서 생산된다는 것이다.
완전한 삶은 정밀한 구분을 만들면서 동시에 각각의 적절한 관계를 앎으로서만 획득될 수 있다. 숫자 여섯이 나타낸 것, 즉 다툼이 없음, 또는 기꺼이 잘 해내는 상태에 인간이 도달했다 해도 인간은 역시 자연적인 상태에 필연코 남아 있어야 한다. 순수한 탁자로 의미된 것, 즉 더러움에서 자유로워진 자연적 삶으로부터서 영적, 천적 삶은 분리되어질 수 없는 바 우리가 선을 지닌다 해도 그 선에 상응하는 진리 없이는 불가능하고, 우리의 예배와 기도가 주님이 기뻐하시어 받을 수 있기 위해서는 향을 피워 올리는 것, 즉 진정한 예배자는 불로 명시되는 천국적 사랑의 열렬함이 진리와 결합되어 있어야만 한다. 이제 이런 사람은 자신이 진실로 사랑하는 것이 최상의 것임을 기억하고 있다. 이런 상태는 안식일로 의미되는 싸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에서만 존재한다. 그리고 이 사람은 어느 정도지만 더 높은 삶, 그 삶의 천국적 질서를 실감한다. 이 실감함은 계약으로 상징되는 것, 즉 주님과 결합할 수 있게 한다. 그리하여 이 사람은 순종을 사랑하는 거룩한 상태에서 먹는 것으로 명시된 것, 자기 삶 속의 선을 자기 것으로 삼는다. 선을 자기 것이 되게 하는 것이야말로 타인과 구별되게 하는 선용의 삶으로, 언어나 행동으로 표현되는 사랑으로부터 오는 충만한 내적 예배인 것이다.
천국적 선과 진리의 근원, 그 결과들을 생각해 보는 위 문단을 떠나 이제 우리는 악과 거짓의 근원, 그 결과를 응시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이렇게 갑자기 방향이 바뀌는 게 불합리한 듯 여겨질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나 필수적이다. 그 이유는 두 품질을 대비해 보게 될 때 얼마나 반대되는지 밝히 알게 해 주기 때문이다. 또 하나 이유는 선한 품질로부터 악의 품질이 어떤지를 볼 수 있지만 악의 품질로부터서는 선의 품질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한 자가 개혁이라든가 거듭나는 길을 걸을 때 악한 자의 이해함도 선과 진리를 지각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인간 존재로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거듭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악 이든 선 이든 선택하도록 강요당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악이나 지옥의 근원은 주님이 아니고 자연적 수준의 능력을 남용한 인간으로부터 이다. 이런 사실이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의 아버지가 이집트 출신이라는 이야기로 묘사되고 있다.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은 아버지 쪽의 근원이 악 인 바 악에서 파생된 거짓을 뜻한다. 그런고로 주님께서 이렇게 말하신다. “너희는 악마의 자식들이다. 그래서 너희는 그 아비의 욕망대로 하려고 한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고 진리 쪽에 서 본 적이 없다. 그에게는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거짓말을 할 때마다 제 본성을 드러낸다. 그는 정녕 거짓말쟁이며 거짓말의 아비이기 때문이다”(요한 8:44). 거짓의 근원을 알려주는 어떤 견해도 위 말씀보다 더 명백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본문을 통해 좀 더 들여다보는 것은 유익하리라 생각된다. 좋은 의미에서 이스라엘 여인은 진리에 대한 애착이고 그녀의 아들은 그 진리 자체이다. 이를 염두에 두면 그 뒤에 따라오는 모독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그 이유는 누가 진리를 조금이라도 인정하지 않는 상태에 있다면 그는 진리를 모독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시비가 진영 즉 교회 내에서 벌어졌다는 대목이 기술되는 것이다. 진영이란 천국을 의미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계시록 12장 7절에 기술된 것과 같은 하늘에서의 전쟁이라고도 생각될지 모른다. 그러나 계시록의 전쟁이란 사라져버린 이전 천국에서의 싸움, 즉 사라져 버리는 부패된 교회에서의 싸움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사항이 본 장에서 두 사람 사이에 있는 싸움이다. 어찌됐든 천국 자체 안에서는 싸움이 있을 수 없다. 그 이유는 거기서 누구든 주님의 도움으로 모든 시험을 극복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문단의 세부 사항들은 앞 장들에서 살핀 바 있으므로 특별히 재고할 필요가 없으리라 생각된다. 이 문단의 일반적 시리즈 역시 앞의 세부적 영적 의미들과 연결해 생각하면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짚어두고 끝내야 하리라 생각된다. 신성과 영적 법칙을 위반했어도 회개로 구원되어 깨끗해질 수 있는 반면, 악한 상태를 확증했을 경우 천국적 삶에서 영원히 분리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의 내적 의미가 주는 사항들을 심각하게 되새겨 보아야 한다. 우리는 정의 속에 자신이 있음을 확증하게 하는 일관된 삶, 다시 말해 하느님의 법을 지켜 가는 삶에 어떤 예외도 두지 않는 삶 속에서 성실하게 삶의 문제를 해결해 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강행할 때만이 더 없는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이렇게 쓰여 있다. “나는 승리하는 자들에게 하느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겠다” (계시록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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