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23장 해석

레위기 23장

영적 의미 요약

* 넓은 측면에서 거듭나는 삶의 계속적인 상태들에 관하여, 이에는 악과의 싸움 그리고 쉼의 상태가 포함되어 있다, 1-3절.
* 거듭나는 삶에 종속될 첫 번째 상태는 악에서의 해방 중 하나인데 이에는 선과 결합하는 진리를 내면으로 받는 것과 깨끗해짐 그리고 선 밑에 진리들이 배열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4-8절.
* 거듭나는 삶에 종속될 두 번째 상태는 선 안에 진리가 이식되는 것이다, 9-22절.
* 그 결과 밝히 알게 됨에 관한 것, 23-25절.
* 그 결과 모든 악이 제거됨에 관하여, 26-32절.
* 거듭나는 삶에 종속될 세 번째 상태는 선이 이식되는 것, 이에는 모든 완전함과 거룩함에 있는 심정의 기쁨과 즐거움을, 가장 낮은 원리에서 가장 높은 원리에 이르기까지 쉼과 평화의 상태를 가지게 되고 이 상태는 계속 갱신되어진다, 33-34절.
(* 성경 구절은 44절까지 인데 요약 부분에서는 34절로 끝나고 있음. 역자주)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그리고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주님께서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지각을 주시어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speaking)이란 유입을; 모세란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말함(saying)이란 지각을 뜻한다. (2951, 7010, 1791, 1822)

2절.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야기 하라, 주님의 절기들, 이것을 너희는 거룩한 모임이다고 선포할 것이다, 이것들이 나의 절기들이다.

영적 의미

영적 교회인에 대한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으로부터 그는 거듭나는 삶에 관한 일반적 상태를 분별하며, 이 삶에 있는 세부적 상태들을 신성한 질서로 배열하고 규율해 가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러둠이란 영적 교회인이 식별할 수 있게 가르치심을; 주님의 절기(축절)들이란 거듭나는 삶의 계속되는 상태들을; 거룩한 모임이도록 이 절기들을 선포함이란 모든 진리들은 선에 의거 질서대로 배열되어야 함을; “이것들이 나의 절기들이다”란 신성한 질서에 따름을 각각 말한다. (10355, 3654, 1791, 1822, 9294, 7891, 5288, 37, 10133)

3절. 육 일 동안 일을 할 것이다. 그러나 칠 일째 날은 엄숙한 쉼의 안식일, 거룩한 모임이 있다. 너희는 어떤 일도 하지 말라. 그것은 너희의 모든 거주지에서 주님에게 안식일이다.

영적 의미

그러나 악과 싸우는 상태들이 먼저 선행되고 그 뒤를 이어 일반적인 쉼과 평화의 상태가 있게 된다. 이 가운데 진리들이 선으로부터 질서 있게 배열된다. 그러면 이기적 동기로부터 행동될 리 없고 시험에 견디어낼 필요도 없는 바, 주님으로부터 온 선이 그의 모든 세부 상태에 이르기까지 자유롭게 그리고 기쁘게 받아지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육 일 동안 일을 함이란 악과 싸우는 상태가 선행됨을; 칠 일째 되는 날은 엄숙한 쉼의 안식일이다란 위 전투에 수반되는 넓은 측면에서의 쉼과 평화의 상태를; 거룩한 모임이란 모든 진리들은 선으로부터 오는 질서에 따라 배열될 것임을; 어떤 일도 하지 말라란 인간은 이기적 동기로부터 행동하지 않는 것 또는 시험을 견디어 내는 것이 없어야 함을; “이 날은 주님에게(여호와에게 바치는) 안식일이다”란 자유롭게, 기쁘게 주님에게서 선을 받음을, “너희의 모든 거주지에서”란 세부적인 특별한 상태에 관하여를 각각 뜻한다. (84, 8889, 7891, 8890, 8888, 8889, 2001, 471)

4절. 이것들은 주님의 절기들, 거룩한 모임들이다, 이것을 너희는 그것들의 지정된 계절에서 선포하라.

영적 의미

일반적 상태는 그 안에 종속된 상태들을 포함한다. 또한 이 안에는 선 밑에 진리들의 배열이 있고 이 배열이 질서 있게 계속됨을 인간은 실감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것들은 주님의 절기들, 거룩한 모임들이다, 이것을 너희는 그것들의 지정된 계절에서 선포하라란 넓은 측면에서의 거듭나는 상태에는 종속되는 상태들이 포함된다는 것, 그 안에는 선 밑에 진리들이 배열되는데 이것이 질서적으로 이어져감을 인간이 실감하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9294, 5288, 37, 10133)

5절. 첫째 달에서, 그 달의 십 사일 저녁은 주님의 유월절이다.

영적 의미

그래서 종속된 첫 상태는 주님이 악에서 해방해 주신 상태이다. 이 상태 중 사랑으로부터 온 신앙의 상태가 가장 우세해져 있는다. 그리고 의지와 이해함 모두가 신성한 진리에 복종함으로 해서 거룩한 상태가 동반되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정월 십 사일 저녁은 주님의 유월절이란 종속된 첫 상태는 주님께서 악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시는 것 중 어떤 것 한 가지를, 정월 십 사일이란 사랑으로부터 오는 신앙의 상태가 우세해져 거룩함의 상태가 동반된다는 것을, 해거름 또는 저녁 동안이란 의지와 이해함 양면에서 신성한 진리에 복종함을 통하여를 뜻하는데, 그 이유는 위 상태는 이기적 사랑만이 우세했던 상태가 끝나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상태가 시작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며, 그리고 순종이란 의지로부터 진행되고 이해함에 의해 인도 받아감을 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7867, 859, 7900, 7844, 8750-3)

6절. 같은 달의 십 오일은 주님에게 누룩 넣지 않은 빵의 절기(무교절)이다. 칠 일 동안 너희는 누룩 넣지 않은 빵을 먹어라.

영적 의미

그 다음 즉각 새로운 상태, 즉 거짓에서 깨끗해지는 것, 더 나아가 선을 자기 것으로 삼게 되는 거룩한 상태가 뒤를 잇는다.

세부적 영적 의미

정월 십 오일이란 위 새로운 상태 안에 있음을; 누룩 없는 빵의 절기(무교절)이란 거짓에서 깨끗해짐을; 누룩 없는 빵을 칠 일간 먹음이란 위의 상태에서 거룩함이 더 진전된 상태를; 먹는다란 선을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8400, 9296-5, 9287, 9294, 716, 2187)

7절. 첫째 날에 너희는 거룩한 모임을 가져라. 너희는 노예 근성의 일을 하지 말라.

영적 의미

그 안에 진리에 관한 지식들이 선 밑에 우선 배열되는데 이 동안에는 시험이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첫째 날에 거룩한 모임을 열고 모든 노예 근성의 일(생업)에서 손을 뗌이란 위 상태 안에 먼저 진리에 관한 지식들이 선 밑에 배열되고, 배열되는 동안에는 시험이 없음을 말한다. (7891, 8888, 8890)

8절. 그러나 너희는 칠 일 동안 주님에게 불로 만든 제물을 바쳐라. 칠 일째 날에 거룩한 모임이 있다. 너희는 노예 근성의 일을 하지 말라.

영적 의미

그런 다음 선으로부터 제 스스로 주님을 인정함이 있어진다. 그리고 계속해서 진리들이 더 완전하게 배열되면서 시험으로부터의 더 큰 해방이 있는다.

세부적 영적 의미

칠 일간 주님께 제물을 태워 바침이란 주님이 선으로부터 자유롭게 인정됨을; 칠 일째 되는 날 거룩한 모임을 가진다란 진리들이 더 완전하게 배열됨을; 노예 근성의 일(생업)을 하지 않음이란 시험에서 더 많이 자유로워짐을; 계속성이 칠 일 동안 제물을 바침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그 이유가 칠이라는 숫자는 거룩함과 쉼 그리고 평화, 뿐만 아니라 충만함과 완성됨까지 뜻하기 때문이다. (10055, 716, 923, 7891, 10127)

9절. 그리고 주님은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다시 주님께서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지각을 주시어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speaking)이란 유입을; 모세란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말함(saying)이란 지각을 말한다. (2001, 2951, 7010, 1791, 1822)

10절.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야기하라,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준 토지 안으로 들어올 때, 그리고 거기로부터 수확물을 거둘 때, 그러면 너희는 성직자에게 너의 수확물의 첫 열매들의 곡식단을 가져 와라.

영적 의미

영적 교회인은 유입과 가르침을 통하는 바, 거듭나는 삶에 종속되는 두 번째 상태 안에서 진리들이 선 안에 이식되기 시작한다. 그 다음 이식된 진리들은 기쁘게 순종함을 원리로 해서 질서 안에 모두 집합되며 이 모든 것이 주님께서 해 주신 것임을 인정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야기하라란 영적 교회인에 대한 가르침임을; 주님께서 주시는 땅으로 들어가서 추수를 할 때란 거듭나는 삶의 두 번째 종속되는 상태에서 진리들이 선 안에 이식되기 시작할 때를; 수확물의 첫 곡식단을 성직자에게 가져옴이란 위의 진리들이 주님께로부터 임을 인정함으로서 기쁘게 순종함이라는 원리로부터 그 진리들이 한데 모아지는 것을 말한다. (10355, 3654, 1791, 1822, 9294, 3705, 995, 10083)

11절. 그리고 그는 주님 앞에서 곡식단을 흔들어라, 너를 위하여 받아질 것이다. 안식일 다음 날, 성직자는 그것을 흔들어라.

영적 의미

이 선으로부터 영적 인간은 생명 있게 되고 그의 예배는 주님께 깊은 감사를 나타내는 바 주님께서 받으실 수 있다. 이 예배에는 항구적으로 있게 되는 거룩한 쉼과 평화의 상태가 포함되어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께서 받으시도록 곡식단을 흔듦이란 선으로부터 오는 인간의 영적 생명은 주님에 의해 생명이 있어지고 그분으로 인해 활동하게 됨을, 받으심이란 그분께 드리는 위의 예배는 주님에 대한 깊은 감사의 표시인 바 그분께서 열납하신다는 것을, 안식일 다음 날 곡식단을 흔들어 바친다란 선으로 말미암아 진리가 생명 있게 됨은 영원히 존재할 쉼과 평화의 상태 안에 포함되어져 있음을 말한다. (84, 8889, 3998, 요한 14장 27절, 16장 33절)

12절. 그리고 네가 곡식단을 흔든 날에, 너는 주님에게 태워 바침을 위해 첫 번째 해의 흠이 없는 수양을 바쳐라.

영적 의미

이러한 초보적인 선의 상태에서 주님은 순진의 상태로부터 예배된다. 이 예배에서 진리는 선의 저장소임을 인정함이 있고, 모든 거짓과 악들이 제거되는 바, 주님을 섬기는데 완전히 봉헌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곡식단을 흔든 날에 일 년된 흠이 없는 어린 수양을 바치라란 초기에 해당되는 위와 같은 선의 상태에서는 순진의 상태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을, 동시에 진리들은 선을 저장하는 곳임을 인정하고 모든 악과 거짓이 제거되면서 주님을 섬기려는 충만된 헌신이 있게 된다. (3994, 725, 7837, 7839, 349, 923)

13절. 그리고 그것의 식사 제물은 기름을 섞은 고운 곡식 가루 십분의 이 (에바), 달콤한 향기를 위해 불로 만든 제물이다. 그리고 그것의 음료 제물은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이다

영적 의미

위 상태에는 아껴두신 것들을 통해 충만됨 속에서 진리와 결합된 선을 내면으로 받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주님으로부터 온 순수한 사랑을 수단으로 결과된 것이고, 쉼과 평화의 기운이 바깥으로 흘러나와 그 자체를 드러낸다. 또한 이해함 안에 선과 결합된 내면의 진리가 있고, 이를 수단으로 해서 교리가 승강 되면서 영적으로 되는 시작이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식사 제물은 기름을 섞은 고운 곡식 가루 십 분의 이 에바란 위 상태 안에는 주님께서 아껴두신 것들을 통하여 선이 진리와 충만되게 결합됨이 포함되어 있음을; 달콤한 향기를 위해 불로 만든 제물이란 위 상태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순수한 사랑의 작용으로 결과되어 거기에 쉼과 평화의 기운이 흘러들면서 외적으로도 그 자체가 명백해 진다는 것을; 음료 제물로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이란 진리의 외적 상태가 이해함 안에서 선과 결합됨이 있는데 이러므로 해서 교리들이 승강 되어 영적 수준이 되어지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2177, 5194, 576, 10137, 10262, 4581-5, 요한 2장 1-11절)

14절. 그리고 너희는 이 동일한 날 까지, 너희가 너희 하느님에게의 봉헌물을 가져올 때까지, 빵을, 볶음 곡식도, 생이삭도 먹지 말라. 이것은 모든 너의 거주지들에서 대대로 영원한 법령이다.

영적 의미

우선 주님을 진실로 인정하게 되는 상태 즉 선의 상태가 개시되기 전에는 어떤 선도 내적으로 자기 것이 되게 할 수 없고 선과 진리에 관한 애착도 외적으로 자기 것이 되게 할 수 없다. 이는 세부적인 거듭남이 계속 진보하기 위해, 그리고 영적 생명을 받기 위한 외적 기초가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제물을 바치는 날 이전에는 빵도, 볶은 곡식도, 생 이삭도 먹지 못한다란 선의 상태가 개시될 때까지는 어떤 선도 내적으로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고, 외적으로 있는 선과 진리에 대한 애착도 자기 것이 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너희의 하느님에게 바치라란 자기 것으로 삼기 전 반드시 주님이 진실로 먼저 인정되어야 함을; 대대로 길이 지킬 법령이다란 주님을 인정함은 계속되는 거듭나는 과정의 외적 기초가 된다는 것, 그리고 거듭남의 세세한 과정에서 영적 생명을 받는 영원한 외적 기초가 된다는 것을 말한다. (5212, 9295, 7884, 9845, 471)

15절. 그리고 너희는 안식일 다음 날로부터, 너희가 흔들어 바침의 곡식단을 가져온 날로부터 너는 (날수를) 세라. 일곱 안식일들이 거기에서 (셈을) 완성할 것이다

영적 의미

선 안에 진리가 이식되는 상태가 진보되는 것은 쉼과 평화를 결과하게 하는 악과 잘못들에서 승리하는 거룩한 순종을 수단으로 생명을 얻었던 초기 상태에 이어 영원히 계속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날 수를) 셈이란 상태들의 품질을 알아낸다는 것을; 곡식단을 가져옴이란 선 안에 진리가 이식되는 상태가 더 진전됨을; 다음 날이란 항구적이고 계속적임을; 곡식단을 흔듦이란 생기 있게 됨을; 만 일곱 주간이란 악과 잘못들에서 승리하여 쉼과 평화의 거룩한 상태가 옴을 각각 말한다. (10217, 9204, 9295, 3998, 10083, 716, 8889, 8890)

16절. 일곱째 안식일 이후 다음 날이면 오십 일이 세어질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주님에게 새로운 식사 제물을 바쳐라.

영적 의미

항구적으로 발전해감 속에는 내적으로 선에 관한 것 뿐만 아니라 이식된 진리가 충만해지는 상태까지 포함된다. 그리고 이식된 진리와 결합한 내면의 선까지 충만된다. 그러므로 주님은 새로운 예배 상태에서 더욱 충분히 인정되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일곱째 안식일 다음 날까지 해서 오십 일을 셈이란 항구적으로 진보해 가는 것들, 이에는 내적으로 선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외적으로 이식되기 위해 진리가 충만 하는 상태까지 포함됨을; 새로운 식사 제물을 주님께 바침이란 내면에 있는 선이 이식되는 진리와 결합함으로 해서 새로운 예배 상태에서 주님이 더욱 인정되어짐을 뜻한다. (2252, 3998, 2177, 349)

17절. 너희는 너희 거처로부터 십분의 이 에바로 만든 빵덩어리를 가져와라. 이것은 주님에게 첫 열매를 위해 누룩을 넣어 구워라.

영적 의미

그리하여 인간이 지각하는 바, 제 스스로 행동하는 것 같지만 자기는 자기 속에 주님이 아껴 두신 것들을 통해 주님께서 생기를 넣은 진리와 결합한 선으로부터 행동하고, 이해함 안에는 선에서 오는 순수한 진리가 있게 되었다는 것, 이는 시험에 승리함으로 획득된다는 것, 진리를 사랑함으로 선이 더욱 진보된다는 것을 지각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너희는 너희 거처로부터 십분의 이 에바로 만든 빵덩어리를 가져온다란 인간이 지각하는 바, 자기는 진리와 결합된 진리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행동하는 것이 자신 스스로 그렇게 하는 듯 여기고 있다는 것, 이 행동은 우리 속에 아껴 두신 것들을 통해 주님께서 생명 있게 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고운 곡식 가루였다 함은 이해함 안에 있는 선에서 온 진리의 순수한 상태를; 이 가루에 누룩을 넣고 굽는다란 시험에서 승리함을 통해 획득되어졌음을; 이것이 주님께 드리는 첫 열매(맏물)이란 진리를 사랑함을 통해 선을 실감하는 쪽으로 발전됨을 뜻한다. (9205, 5194, 576, 2177, 8496, 7906, 9295, 10083)

18절. 그리고 너희는 빵과 더불어 한 살 된 흠 없는 어린 양 일곱과 어린 수소 하나, 그리고 수양 둘을 빵과 더불어 제출하라, 그것들은 그것의 식사 제물과, 그리고 그것의 음료 제물과 더불어 주님에게 태워 바쳐라. (이는) 주님에게 달콤한 향기의 불로 만든 제물이다.

영적 의미

이제 주님은 가장 깊은 천적 선이 작동되어 인정되어지는데 이에는 거짓에서 자유로워진 순진이라는 충만된 거룩함이 포함되어 있고, 또한 주님과 협동하는 결합으로 해서 외적, 내적 인간 안에 순진의 선이 있게 된다. 이 결합을 수단으로 선과 진리에 관한 측면에서, 외적 진리와 선에 관한 측면에서 충분히 정화되는데 이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한 그분의 순수한 사랑을 통해 주님이 해주셨음을 인정한다. 그 결과 쉼과 평화를 더욱 많이 결과하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빵과 더불어 일곱 어린 양이란 이제 가장 깊은 천적 선의 작용으로 주님이 인정되어짐을; 흠이 없음이란 거짓에서 자유로움을; 어린 수소 한 마리와 수양 두 마리란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 안에 있는 순진의 선을; 둘이란 결합을, 그러므로 주님에 관한 내적 인간 부분일 경우 협동을 말한다. 태워 바침의 제물이란 위 결합을 수단으로 충분히 성별 됨을; 식사 제물과 음료 제물이란 내면에 있는 선과 진리, 외면에 있는 진리와 선에 관한 것임을; 불로 태워 바침이란 이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한 그분의 순수한 사랑을 통해 주님으로부터임을 인정하는 것을; 주님께 달콤한 향기를 풍김이란 쉼과 평화의 상태로 한걸음 더 진전되었음을 말한다. (349, 10132, 7839, 716, 7837, 9591, 10042, 5194, 10053, 2177, 10137, 10054, 10855)

19절. 그리고 너희는 죄 바침을 위해 수염소 하나, 그리고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로 일 년된 수양 둘을 바쳐라.

영적 의미

위 사항 외에 인정함이 더 있다. 즉 모든 악과 거짓은 주님이 제거해 주신다는 것, 모든 순진의 선은 외적, 내적 인간이 진리로 충만된 가운데 주님으로부터 받게 된다는 것, 이렇게 주님이 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완전한 자유 속에서 예배드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죄 바침을 위해 수염소 한 마리란 위 상태에 하나 더 인정하는 상태가 있는데 이는 모든 악과 거짓은 진리 또는 신앙을 수단으로 주님께서 제거해 주신다는 것이다. 평화 제물로 그 해 태어난 수양 두 마리란 순진의 모든 선은 내적, 외적 인간에 있는 진리가 충만해진 가운데 주님으로부터 받아지고, 그러므로 해서 완전한 자유 속에서 주님이 예배된다는 뜻이다. (4169, 725, 3400, 349, 10132, 5194, 725, 7839, 10097)

20절. 그리고 성직자는 주님 앞에서 흔들어 바침을 위한 첫 열매로부터의 빵과 더불어, 두 어린 양과 더불어 그것들을 흔들어라. 그것들은 성직자를 위한 주님에게 거룩하다.

영적 의미

이리하여 인간의 모든 삶, 내적으로 있는 선의 측면, 외적으로 있는 선의 측면 모두 그리고 선 안에 진리가 처음 이식된 때로부터 그것이 완성되기까지 모든 측면이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살아있게 된다. 그리고 모든 선의 근원이 주님이심을 진실로 인정하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위의 제물을 흔든다란 인간의 생명, 그것이 내적으로 있는 선 이든, 외적으로 있는 선 이든 모두 주님에 의해 생명 있게 된다는 것을; 곡식단을 흔듦은 선 안에 진리가 이식되기 시작함을; 첫 열매로서 드리는 빵을 흔듦은 위의 이식 작업이 충만해졌음을; 이것은 성직자의 몫이고 주님에게 거룩하다란 인간이 자기 것으로 삼는 모든 선의 근원이 주님이심을 진실로 인정함을 뜻한다. (9295, 10083, 10079, 제 11, 20절, 9223, 8042, 2187, 6148-7)

21절. 그리고 너희는 바로 같은 날에 선포하라. 거기서 너에게 거룩한 모임이 있을 것이다. 너희는 노예 근성의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너희 대대로 영원히 너의 거주지들에서 법령이다.

영적 의미

위 결과로 있는 상태에서 주님께서는 매우 밝히 알게 해 주신다. 즉 선 아래 진리가 완전하게 배열되고, 주님을 예배함 안에서 이기적이고 세상적인 동기들로부터 행동하려드는 모든 기질로 야기되는 시험도 정지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같은 날 (모임을) 선포함이란 위의 결과 그 상태에 주님으로부터 충분히 밝히 알게 하심이 있다는 것을; 이것이 거룩한 모임이다란 선 밑에 진리가 완전히 배열됨을; 어떤 노예 근성의 일(생업)에 종사하지 말라란 시험이 정지되었음을; 어디서 살든 대대로 길이 지킬 규정이다란 주님을 예배하는 가운데 이기적이고 세상적인 동기로부터 행동하려던 모든 기질이 사라짐을 뜻한다. (8802, 8815, 7891, 8890, 7884, 471, 9845, 8888)
주목해둘 게 있다. 14절의 끝 부분에서 “대대로, generations”라는 말이 “거하는 곳들, dwellings” 앞에 오고 있는데 이는 일반적 상태들로부터 세부적인 상태로 발전함을 명시해 주고 있고, 본 절의 경우 14절과 반대 순서인 바 이는 진리가 선 안에 충분히 이식될 때, 선 밑에 진리가 질서 있게 배열되는 상태가 세부적으로도 있게 됨을 명시해 놓고 있다.

22절. 그리고 너희가 너의 토지의 수확물을 거둘 때, 들판의 모퉁이까지 싹슬어 거두지 마라, 너는 네 수확물의 이삭을 모아들이지 마라. 너는 그것들을 가난한 자와 낯선 자를 위해 남겨두라.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이제는 진리가 선 안에 이식된다 해도 그 진리가 능력 있게 최말단에서 표현될지라도 이기적 용도에 충당하려고 더 이상 자기 것으로 삼지 않고, 선은 외적으로 있는 이기적인 동기로 더 이상 오염이 안 된다. 오히려 이 모든 선과 진리를 선행과 선행으로부터 오는 신앙의 일들로 해서 주님께 돌리는 바, 거기에는 어떤 이기적, 세상적인 동기가 없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추수할 때 곡식을 모조리 거두지 말고, 거두다 남은 이삭도 줍지 말라란 진리가 선 안에 이식되는 때 내적으로 있는 능력들이 최말단에서 표현된다 해도 더 이상 이기적 용도를 위해 자기 것으로 삼지 않으며, 외적으로도 그러한 것임을; 그것을 가난한 자와 외국인이 줍도록 하라, 나는 너희 하느님이시다란 이기적이고 세상적 동기가 없는 선행과 그 선행으로부터 온 신앙으로 일하게 된 것을 주님께 돌려 드림을 뜻한다. (4955, 10669, 2146, 2001, 7192, 제 19장 10절)

23절.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더 나아가, 주님께서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지각을 주시어 밝히 알게 해 주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호와란 그분의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speaking)이란 유입을; 모세란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표현하고; 말하심이란 지각을 뜻한다. (2951, 7010, 1791, 1822)

24절.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야기 하라, 말하기를, 일곱째 달에서, 그 달의 첫째 날에, 너희에게 엄숙한 쉼이 있는다, 나팔을 불어 기념하는 (날), 거룩한 모임(이 있다).

영적 의미

영적 교회인에 대한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으로부터 그가 지각하는 바, 선 쪽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상태 또는 신앙의 상태가 선 안에 진리가 이식됨으로 마감 지어질 때 거룩한 평화의 상태가 수반되고 거기에 주님께서 밝히 알게 해 주심도, 선 밑에 진리가 재배열된다는 것까지 지각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둠이란 영적 교회인에 대한 가르침, 이로부터 그가 지각한다는 것을; 일곱째 달 첫 날 반드시 쉬어야 한다란 신앙의 상태 또는 진리의 상태가 발전함은 선 쪽으로 인도해 가는 진리가 이식됨으로 마감 짓게 됨을; 엄숙한 쉼 또는 안식일이란 위의 발전에 따라 오는 거룩한 평화의 상태를; 나팔을 불어 기념함이란 주님께서 밝히 알게 하심을; 거룩한 모임이란 선 밑에 진리들이 재배열됨을 말한다. (10355, 3654, 1791, 1822, 851, 893, 894, 851, 8802, 7891, 8815, 6888, 8620)

25절. 너희는 노예 근성의 일을 하지 말라. 그리고 너희는 주님에게 불로 만든 제물을 바쳐라.

영적 의미

위 결과 영적 싸움, 그리고 이기적이고 세상적 사랑까지 중지된다. 동시에 순수한 천적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어떤 노예 근성의 일(생업)에도 종사하지 말라란 영적 싸움 그리고 이기적, 세상적 사랑으로 행동함이 정지됨을; 주님께 태워 바침이란 정지됨과 동시에 순수한 천국적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한다는 것을 말한다. (8888, 8890, 10055)

26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다시 주님께서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지각을 주시어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speaking)이란 유입을; 모세란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표현하고; 말함이란 지각을 뜻한다. (2001, 7010, 1791, 1822)

27절. 이 일곱째 달의 십 일은 보상의 날이다. 너에게 거룩한 모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너희 혼들을 괴롭힐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주님에게 불로 만든 제물을 바쳐라.

영적 의미

진리가 선 안에 이식될 때 거기에는 악의 충분한 제거가 있고, 선 밑에 진리가 재배열되며, 인간 스스로에는 악밖에 가진 게 없는 바, 주님으로부터 순수한 사랑을 받아야만 그분을 예배할 수 있다고 고백하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칠월 십일은 보상(죄 벗음)의 날이다란 진리가 선 안에 이식될 때 거기에는 악이 완전히 제거됨도 있다는 것을; 이 날 거룩한 모임을 열라란 선 밑에 진리가 재배열됨을, 혼을 괴롭힘(단식함, afflicting the soul)이란 인간 스스로서는 악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것을, 주님께 태워바친다란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예배할 수 있게 됨을 말한다. (2075, 10042-III, 7891, 1937, 1947, 10055)
주목해둘 게 있다. 위 구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단식(영혼을 괴롭게 함)이 스스로의 강박 충동(self-compulsion)을 뜻하는 듯 보여진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자아 강박 충동과 함께 예비 사항으로 붙어 다니는 것은 인간 스스로는 악밖에 없어 자신 스스로 계명을 지킴으로 주님으로부터서만 선을 행할 수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너는 네 영혼을 괴롭게 하리라”라는 표현도 내적 의미로 볼 때 거기에는 진실된 겸허함이 이미 포함되어 있다. 이 겸허 없이 인간은 합당한 고백을 할 수 없다. (1937-1항)

28절. 그리고 너희는 동일한 이 날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가 이것은 보상의 날이어서, 너의 하느님 주님 앞에 너를 위해 보상을 받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위 상태에서는 견뎌내어야 할 어떤 시험도 없는데 그 이유는 선과 진리 양 측면에서 주님으로부터 오는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과의 재회가 있기 때문에서 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 날에 어떤 일도 하지 못함이란 위 상태에서는 견뎌 내어야 할 어떤 시험도 없다는 것을, 너희 하느님 주 앞에서 보상의 날이라 함은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재회함, 이는 주님으로부터 이고 선과 진리 양면 모두에서 재회가 있다. (8888, 8890, 10042-III, 683, 2001)

29절. 같은 이 날 괴로움 받지 않는 혼은 누구든지 그의 백성들로부터 잘리운다.

영적 의미

만일 위 상태에서 인간 스스로는 악밖에 가진 게 없음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면 그는 그 이유로 해서 교회로부터 분리되어야만 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이 날 괴로움 받지(단식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의 백성들로부터 잘리운다(겨레로부터 추방시켜야 한다)란 위의 상태에서 누군가가 자신 스스로부터서는 악밖에 없음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면 그는 그 이유로 해서 그 즉시 교회로부터 분리된다. (1937, 1947, 10042-III, 5302, 1259)

30절. 그리고 같은 이 날에 어떤 일이든지 하는 혼은 누구이든 나는 그의 백성들 사이로부터 그 혼을 파괴할 것이다.

영적 의미

또한 넓은 의미의 교회의 위 상태 안에 있는 누군가가 영적 싸움에 종사하고 있거나 또는 이기적, 세상적 동기로 행동하고 있다면 그는 반드시 교회에서 분리될 필요가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 날 일을 하는 사람은 그의 백성 사이로부터 그 혼을 파괴함(겨레로부터 추방함)이란 위와 같은 교회의 일반적인 상태에 있는 누군가가 영적 싸움에 종사하고 있거나 세상적, 이기적 동기로부터 행동한다면 그는 반드시 분리될 필요가 있게 된다. (8888, 8890, 5302, 1259)

31절. 너희는 여하튼 일을 하지 말 것이다. 이것은 너의 모든 거주지들에서 대대로 영원히 법령이다.

영적 의미

그 이유가 거듭남을 진전시키고 있는 사람은 이기적, 세상적 동기로부터 행동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내적, 외적 인간 모두에 해당되고, 거듭남의 모든 세부적인 상태에도 해당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어떤 일도 하지 않는 것, 이것은 대대로 길이 지킬 법령이다란 거듭나는 과정에 있는 사람은 이기적, 세상적 동기로부터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이는 내적, 외적 인간에, 그리고 세세한 모든 상태에서도 해당됨을 뜻한다. (8888, 8890, 7884, 471, 9845)

32절. 너에게 엄숙한 싐의 안식일이 있다. 그리고 너희는 너희 혼을 괴롭게 하라. 달의 아홉째 날 저녁, 저녁으로부터 저녁까지 너희는 너의 안식일을 지켜라.

영적 의미

이 상태에서는 천국적인 쉼과 평화를 미리 맛봄이 있고, 인간 스스로는 악밖에 없음을 진실로 인정함도 있는데 이는 신앙과 선행의 결합이 이전 상태에서 새로운 상태로 바뀔 때 있게 되는 희미함 속에서 거행될 때이다. 그 이유가 희미한 상태는 주님 안에서의 쉼과 평화의 상태에 앞서 있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엄숙히 쉬는 안식일이다란 위의 상태에서는 천국적인 쉼과 평화를 미리 맛볼 수 있음을; 단식함이란 인간 스스로는 악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것을; 그 달 구일 저녁부터 안식일을 지킴이란 신앙이 선행과 결합함은 이전 상태에서 새 상태로 변화함에서 발생하는 희미함에서 거행된다는 것, 그 이유는 희미한 상태는 주님 안에서 있게 되는 쉼과 평화의 상태 앞에 있기 때문이다. (851, 1937, 1947, 제 27절, 2075, 7844, 851)

33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기를,

영적 의미

더 나아가 주님께서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지각을 주시어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speaking)은 유입을; 모세는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표현하고; 말하심(saying)은 지각을 뜻한다. (2001, 2951, 7010, 1791, 1822)

34절. 이스라엘의 자손에게 이야기하라, 말하기를, 이 일곱째 달의 십오 일은 주님에게 칠 일 동안 장막(tabernacle)의 절기이다.

영적 의미

영적 교회인에게 가르침이 있다. 이로부터 지각하는 바, 새로운 상태는 선 안에 진리가 이식되는 그 뒤를 이어야만 한다는 것, 이 새로운 상태란 진리 안에 선이 이식되는 것이요 이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거듭나는 작업의 정점이라는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러둠이란 영적 교회인에 대한 가르침, 이로부터 그는 지각함을; 일곱째 달 십오 일부터 장막절(초막절, feast of tabernacles)이다란 새로운 상태는 선 안에 진리가 이식됨에 이어 오게 된다는 것, 이 새로운 상태란 진리 안에 선이 이식되는 것이요, 이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거듭나는 작업의 최정점이라는 뜻이다. (10355, 3654, 1791, 1822, 9294, 9295, 9296-5, 716)

35절. 첫째 날에 거룩한 모임이 있을 것이다. 너희는 노예 근성의 일을 하지 말라.

영적 의미

그런고로 선 밑에 진리가 새롭게 배열된다. 그리하여 이기적이고 세상적인 모든 동기를 마지막으로 거절해 버리면서 시험이 끝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첫 날 거룩한 모임을 열고 노예 근성의 일(생업)에 종사하지 말라란 위로부터 선 밑에 진리가 새롭게 배열되어서 이기적으로 세상적인 모든 동기의 마지막 거절과 더불어 시험도 끝나게 됨을 뜻한다. (7891, 8888, 8890)

36절. 칠 일 동안 너희는 주님에게 불로 만든 제물을 바쳐라. 팔 일째에 너에게 거룩한 모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주님에게 불로 만든 제물을 바쳐라. 이것은 엄숙한 집회이다. 너희는 노예 근성의 일을 하지 말라.

영적 의미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상태에 포함되는 것들, 즉 이 새로운 상태 안에는 선 밑에 진리가 재배열됨이 있고, 의지뿐만 아니라 이해함 측면에서 거룩한 예배의 재배열이 있고, 또한 세상적, 이기적 동기를 거절함과 더불어 외적 인간 안에도 선 밑에 진리가 질서 있게 배열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칠 일간 주님께 제물을 태워 바침이란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상태를, 팔일 째 거룩한 모임을 연다란 이 새로운 상태에서 선 밑에 진리가 재배열됨을, 다시 주님께 제물을 태워 바침이란 의지 뿐만 아니라 이해함 측면까지에서 있는 거룩한 예배, 그러므로 이는 상호적이다. “이 날은 축제일(엄숙한 집회)이다”란 외적 인간 안에서 선 밑에 진리들이 질서 있게 배열됨을, 노예 근성의 일(생업)을 하지 말라란 이 역시 이기적이고 세상적 동기를 거절해야 함을 뜻한다. (716, 10055, 9296-5, 7891, 9296-5, 8888, 8890)

37절. 이것들은 주님의 절기이다, 너희는 거룩한 모임이 있기 위해, 주님께 불로 만든 제물, 태워 바침, 그리고 식사 제물, 희생 제물, 음료 제물을 각기 그것 (바치는) 날에 바치도록 (절기를) 선포하라.

영적 의미

가장 보편적인 거듭남 안에 있는 선을 자기 것을 삼는 데에 종속되는 상태들, 이 상태는 모든 이에게 질서에 따라 발생된다. 즉 진리의 새 배열이 거행되는 것, 이는 완전히 봉헌함을 수단으로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주님을 인정함으로 내면의 선을 자기 것으로 삼기 위해서, 영적 진리를 자기 것으로 삼기 위해서 거행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것들은 주님의 절기이다란 거듭남 가운데는 선을 자기 것으로 삼는 데에 종속되는 일반적인 상태들이 있다는 것을; 거룩한 모임을 선포함이란 위 상태에서 진리들의 새로운 배열이 거행된다는 것을; 제물을 주님께 불로 태워 바침이란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을; 태워 바침은 충만된 봉헌, 식사 제물과 제물은 주님을 인정함으로 내면에 있는 선을 자기 것 삼는 것, 음료 제물(제주)을 그날그날 절차를 따라 바침이란 각 상태에 따라 영적 진리를 자기 것으로 삼아 감을 뜻한다. (9294, 7891, 10055, 10053, 2177, 4581, 10079, 10137, 10262, 4581-5, 487)

38절. 주님의 안식일 외에, 그리고 너의 선물들 외에, 그리고 모든 너의 서원물 외에 그리고 모든 자유의 바침 외에, 이것을 너희는 주님에게 드리라.

영적 의미

가장 일반적인 상태 외에도 더 있다. 즉 선은 주님으로부터만 있다는 것, 인간은 진리로 더 다져져야 한다는 것, 주님을 예배함은 자기 스스로 그분께 모든 선을 돌려야만 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 외 주님의 안식일이란 가장 일반적인 또는 보편적인 상태를; 선물이란 선이 주님으로부터임을 인정함; 서약함이란 인간은 진리들로 확증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마음에 우러나서(자유 의지로) 바침이란 주님을 예배함은 자유로운 상태로부터 있어야 함을; 주님께 바치는 것들이란 모든 선은 그분으로부터임을 인정함을 뜻한다. (84, 8889, 5619, 3880, 10097, 5619)

39절. 너희가 토지의 열매들을 거두어 들일 때, 일곱 째 달의 십 오 일에 너희는 칠일 동안 주님의 절기를 지킨다. 첫째 날은 엄숙한 쉼이다. 그리고 팔 일째 날은 엄숙한 쉼의 날이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선행과 결합된 신앙으로 충만된 마지막 새로운 상태가 있다. 이 상태들이 선한 일로 결실을 맺을 때 거기에 가장 높은 원리로부터 가장 낮은 원리에 이르기까지 쉼과 평화, 이와 더불어 완전하고 충만된 심정 속의 기쁨과 즐거움이 있게 된다. 이 상태는 항구적으로 갱신되어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칠월 십 오일이란 신앙이 선행과 결합해서 충만해지는 상태 중 마지막 새로운 상태를; 거둔 땅의 소출이란 신앙과 선행이 선한 일들 안에서 열매를 맺을 때를; 칠 일간 주님의 절기를 지킴이란 모든 완성함과 거룩함 속에서 심정이 기뻐하고 즐거워함을; 첫 날 엄숙하게 쉬고 팔일 째에도 엄숙하게 쉬어라란 항구적으로 갱신되어지는 쉼과 평화의 상태가 가장 수준 낮은 원리에서 높은 수준에 이르기까지 모두 되어져 이를 통해 진리와 선, 선과 진리의 상호결합이 있게 됨을 뜻한다. (9294, 9295, 9296-5, 2044, 851, 7690, 9286, 9287, 2044, 716, 84, 8889, 9296-5)

40절. 그리고 너희는 첫째 날에 훌륭한 나무들의 열매, 종려나무의 가지들, 무성한 나무들의 큰 가지, 그리고 개울의 버드나무를 가져와라. 그리고 너희는 칠 일 동안 주 너의 하느님 앞에서 즐거워하라.

영적 의미

그러므로 이 상태에는 진리들로부터 오는 온갖 종류의 즐거움, 즉 영적, 합리적, 자연적, 감각적 진리들로부터 오는 즐거움이 있다. 또한 심정과 이와 병합된 이해함으로부터 주님 가운데서 즐거워하는 충만된 상태, 거룩한 상태도 있다.

세부적 영적 의미

첫 날 훌륭한 나무의 과일, 종려나무 가지, 무성한 나무의 큰 가지, 개울의 버드나무를 가져옴이란 위의 상태에서는 진리들 즉 영적, 합리적, 자연적, 감각적 진리들로부터 오는 온갖 종류의 선을 즐기게 된다는 것을; 칠 일간 주 너의 하느님 앞에서 즐거워 하라란 심정과 이해함이 병합되어 주님 안에서 기뻐하는 거룩한 상태를 뜻한다. (9296-6, 2001, 2044, 716)

41절. 그리고 너희는 해마다 칠 일을 주님에게 절기로 그것을 지킬 것이다. 이것은 너의 대대로 영원한 법령이다. 너희는 일곱 째 달에 그것을 지켜라.

영적 의미

그리고 위 상태는 거듭나는 사람 즉 외적, 내적 인간의 양 측면 모두에서 항구적으로 거룩한 상태이다. 이는 신앙을 수단으로 인정하는 데서 시작되어 사랑으로부터 즐거워하는 끝에까지 이르는 거듭나는 상태의 최정점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해마다 칠 일간 주님에게 바치는 축제일로 지킴이란 위의 상태는 항구적으로 거룩한 상태가 될 것임을; 대대로 길이 지킬 규정이란 외적으로도 항구적임을; 일곱째 달이란 거듭나는 상태는 신앙을 수단으로 주님을 인정함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부터 즐거워하여 끝맺는다는 것을 뜻한다. (2044, 716, 7884, 851)

42절. 너희는 칠 일 동안 초막(오두막, booth)에서 거주하라. 이스라엘(족)에 속하는 본토박이인 모든 이는 초막에서 거주한다.

영적 의미

참으로 위 상태는 선 가운데 건설되는 내적 교회인, 외적 교회인에 속하는 갖가지 수준의 교회인에 대한 천적 상태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칠 일간 초막에서 거하되 이스라엘 국민은 누구나 초막에서 살아야 한다란 위 사항들을 갖가지 수준에 있는 교인들의 천적 상태, 즉 선 안에서 건설되는 내적, 외적으로 있는 교회에 속하는 사람들의 상태라는 뜻이다. (9296-6)

43절. 내가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이집트의 토지로부터 데려올 때, 내가 그들을 초막에 거주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너의 자손 대대로 알게 하려 해서 이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모든 이가 알아야 하는 바, 자연적일 뿐인 인간 수준의 굴레를 주님께서 벗겨주실 때,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의 거룩한 상태는 영적 교회인에 소속된다는 것, 이리하여 그는 선과 진리가 영원히 결합함으로 심정과 이해함 안에서 그분을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렇게 하는 것은 내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 초막에서 살게 했던 일을 후손 대대로 상기시켜 주려는 것이다. 나 여호와가 너희 하느님이다”이란 모든 이가 알아야 할 것이 있는 바,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의 거룩한 상태는 영적 교회인이 주님에 의해 자연적일 뿐인 인간의 굴레에서 해방될 때에 그들에게 귀속되고, 그렇게 해방시켜 주신다는 것을 영적 교회인으로 하여금 선과 진리가 영원히 결합함을 수단으로 심정과 이해함에서 인정하게 하려는데 있다는 뜻이다. (9296-6, 8866, 2001, 9845)

44절. 그리고 모세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주님의 절기들을 선언하였다.

영적 의미

말씀 안에 있는 기쁨과 즐거움과 더불어 선을 자기것이 되게 하는 거듭남의 위 거룩한 과정에 관해 밝히 알게 하시는 것은 신성한 섭리에 속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모세가 주님의 절기들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선포함이란 선이 말씀 안에 있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더불어 자기 것이 되는 거듭나는 이 거룩한 과정을 밝히 알게 하시는 것은 신성한 섭리에 속한다 라는 뜻이다. (7010, 3654, 10355, 9294, 2187)

23장의 종합적 고찰

본 장의 주제들을 살펴보기에 앞서 생각해 보아야 할 네 가지 것이 있다. 즉 글자적 의미 측면에서의 말씀, 글자적 의미에 있는 상응, 상응을 수단으로 글자적 의미가 함유하고 있는 내적 의미, 내적 의미에 묘사되어 있는 인간을 실지 체험하는 상태들이다. 말씀은 인류가 저작해 왔던 여느 책들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책이다. 그 이유는 크게 나눌 수 있는 세 가지 의미 즉 천적, 영적, 자연적 의미들이 집합하여 완전한 시리즈로서의 내적, 영적 의미를 형성해 가는 방식으로 배열된 상응적 표현으로 빈틈없이 건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말씀을 얼핏 본다면 마치 글자적 의미가 영적 의미를 생산하고 있는 듯 여겨질는지 모른다. 따라서 말씀의 외관인 글자적 의미를 가지고 확증하는 것은 잘못된 방식이다. 사실 말씀의 글자적 의미 또는 외관을 생산하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말씀 속의 내적 의미이다. 마치 주님께서 신성한 사랑으로부터 그분의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영계의 모든 것, 자연계의 모든 것을 생산하시는 것과 같다. 따라서 자연계는 영계의 상응물일 뿐이다. 이 방식으로 말씀을 생각하게 되면 이른바 창조물들은 인간의 생산물이 아니라 신성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연계의 모든 것에는 최말단 형체로서의 신성한 진리 또는 신성한 지혜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말씀은 최말단 형체 안에 있는 신성한 인간이요, 바꿔 말해 본질인 신성한 생명 또는 사랑이 최말단 형체 안에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유한한 인간 생명은 무한하신 분 즉 신성한 인간의 생명으로부터인 바, 말씀은 인간 존재가 거듭나아가는데 따르는 모든 상태들을 기술하고 있다는 것까지도 자연히 납득된다. 그러므로 여느 인간 생명 그리고 그 생명의 상태 변화를 묘사해 주는데 있어 이 세상 어떤 것도 말씀보다 더 완전하게 그려내 주지 못한다. 본 장에 묘사된 것으로부터 배우는 바, 인간은 거듭나는 동안 그 사람과 더불어서 싸움과 쉼이 번복되어 가는 상태들을 체험해 간다는 것이다. 한가지 유의할 사항이 있다. 싸움의 상태가 여섯 번 반복된다고 해서 거기에 꼭 맞게 여섯 번의 쉼의 상태가 있으리라는 수학공식 같은 생각을 글자 의미로부터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육 일 간 또는 여섯 번이라는 숫자 여섯은 영적으로는 양을 말하는게 아니라 상태들의 품질을 명시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6은 전투 상태를, 7은 휴식 상태를 의미한다. 이미 살핀바 있지만 말씀 안에서 위 두 숫자 모두는 각기 다른 국면에 있는 충만과 완성을 명시한다. 본 장에서 6은 싸움에 관련되는 모든 상태를, 7은 쉼에 관련되는 모든 상태들을 명시하고 있고 이로부터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인간의 일반적인 상태는 세부적인 상태와 구별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주목해 두어야 한다. 그 이유는 글자적 의미 만에서 생각을 끌어낼 경우 내적 의미에 관한 우리의 지각함이 혼동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제 주목해 볼 것은, 안식일이 거룩한 모임이라 불리는 것, 글자적 의미로 이렇게 불리는 것은 매우 적절한 표현이라는 것에 대해서이다. 어찌됐든 이런 생각은 영적일 경우 사라지게 되어있고 동시에 이는 주님에 의해 선 밑에 진리들이 질서 있게 배열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 이유는 선을 수단으로 진리들은 결합되고, 선으로부터 진리들은 생명과 활동력을 가진다. 그리고 진리들 안에 있는 선에 의거 인간은 각자의 품질을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해서 “너희는 어디에서 살든지 이 날은 주님에게 안식일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가 사람들이 집안에 거주하듯 선은 진리 안에 언제나 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특정한 개인 안에 있는 선은 여느 어떤 개인 안에 있는 선과 언제나 구별되고 진리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반적 상태에는 종속되는 세부적인 상태들이 언제나 포함되어 있다. 세부 상태 중 첫 번째 상태는 주님에 의해 악으로부터 해방되는 상태임은 두 말할 여지가 없다. 이는 인류라는 전체적 측면에서, 또는 개개인의 측면에 적용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모든 인간은 인간 측면에서의 주님에 관한 가설을 수단으로 구속되어 왔다. 이 가설 안에는 인간을 속박하는 지옥의 권세를 이겨내시는 것, 그러므로 해서 거의 잃어버릴 뻔 했던 자유, 즉 선과 악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자유가 각 개인들에게 보존되게 해 주셨던 사항이 포함되어 있다. “거의 잃어 버릴 뻔 했던”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악의 권세가 절대적으로 득세하기 시작했기 때문인데 만일 구속의 역사가 결과되지 않았다면 인류는 멸망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의 안전은 선과 악 또는 천국과 지옥 사이의 영적 균형(equilibrium)에 의존되기 때문이다. 이 균형으로 인해 인간은 선택의 자유 속에 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주님의 강림은 당연히 있어져야 했던 것이고 이 위대한 구속이 성취되는 한편 건전한 마음을 지닌 모든 사람은 계속 선택하는 자유를 가졌고 악을 선택하게 하는 강요가 없어졌던 것이다. 예를 들면 세례자 요한의 선교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 마태복음 7장 끝 절의 경우같이 주님의 가르침에 경청하게 된 것 모두가 이에 해당된다. 이후 인간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잃어버리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러하리라.
이제 악으로부터 해방되는 사항을 일반 측면 뿐만 아니라 개인 측면에서도 생각해 보자. 이는 주님이 하시는 일에 인간이 협동(co-operation)함을 통해 주님께서 결과되게 하신다. 그 이유는 협동하느냐 않느냐를 선택하는 자유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자유 의지 또는 자유로운 결정을 각 개인이 실시하는 사항이 유월절이 제정되는 사건으로 표현되어져 있는데 좀 더 집어내어 말한다면 어린 양 또는 염소를 선택하는 것으로 의미되고 있다 (출애굽 12:5). 그 이유가 이 짐승이 순진 측면의 주님으로부터 온 선을 나타내고, 이 선이 인간을 해방한다. 그리고 이 짐승의 고기를 먹는 것은 이 선을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다. 한편, 그 피는 집의 좌우 문설주와 문 상인방에 바르도록 지시되었는데 이는 자연적 수준의 인간 안에 있는 진리들이 앞서 받아들여지게 됨을 의미한다. 본 장을 다루는 이 지면을 통해 유월절의 사건 모두를 설명할 수는 없고 단지 그 사건이 개개인의 측면에서 있게 되는 구속의 방법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만을 강조하고 생략하기로 한다. 위와 같은 관점이 무교절, 누룩 없는 빵을 먹는 절기에 관한 사항에도 적용된다. 누룩이 안 들어간 빵을 먹는 것, 즉 무교절은 거듭나는 과정에서 개개인이 깨끗해지는 것을 나타내준다. 무교절에 관한 주제를 살피는 가운데 명확히 알게 되는 것은 보편적인 구속과 세부적인 구속 즉 인류라는 차원에서의 구속과 각 개인 차원에서의 구속이 어떻게 연결을 이루고 있는가에 대해서이다. 한 가지 상념해야 할 사항은, 위의 구속 또는 악에서의 해방, 그 결과 깨끗해짐은 언제나 인간과 더불어서라는 것, 그리고 이는 계속적인 경험 뿐만 아니라 한 가지 경험 안에서 동시에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악행을 계속 중단해가고 선행을 잘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다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위의 역사를 차츰 밝히 알게 해 주신다.
인간 거듭남에 종속된 두 번째 상태는 위의 사항보다 좀더 신경을 써야 하리라 본다. 이 두 번째 상태가 추수절(the feast of Pentecost)로 표현되고 있는데 선 안에 진리가 이식되는 상태이다. 이 표현은 악에서 해방됨이라는 앞 문단의 주제만큼 쉽게 이해될 수 없는 말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이런 질문이 있을는지 모른다. “어떻게 선 안에 진리가 이식될까?” 사실 대답은 단순하다. 인간이 진리를 원하고 사랑해서 실천할 때 그 진리는 선 안에 이식되어진다. 그러나 우리가 진리를 알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진리를 바래고 사랑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 이 질문으로부터 얻게 되는 명확한 것은, 가르침을 받는 상태가 먼저 있어야 할 것이라는 것, 이 가르침 안에 진리들이 있고, 이 진리가 땅(마음)에 뿌려져서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도록 장치되어 있다는 것일 게다. 추수절의 햇곡식(첫 열매)은 거듭나는 인간이 습득한 진리들에 의거 자기 생활을 만들어 가는 과정 중 첫 노력을 상징하기에 꼭 맞는 표현이다. 그래서 두 번째 절기와 연결을 이루게 하는 햇곡식에 관련된 사항이 매우 상세하게 언급되고 있다. 우리의 초년 시절에 단순한 자극 때문만이 아닌 원리로 삶을 꾸린다는 것은 대단히 큰 가치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리를 습득하지만 자신 스스로 그 진리에 언제나 순종되도록 준비되는 것은 아니다. 한가지 여기서 알게되는 것은 진리가 선 안에 이식되는 과정은 악으로부터의 해방에 이어 시작되어 항구적으로 있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순종의 각 행동은 올바른 방향으로의 한 단계이다. 이런 한 단계가 시작되기 전 먼저 주님을 인정함이 있게 되는데 이것이 곡식단을 흔듦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흔듦(waving)은 신성한 작용의 결과 또는 신성이 마음에 흘러듦으로 인해 있게 되는 마음의 활동이다. 유월절은 유대교의 달력으로 보아서 7월 14일이고, 안식일이 15일, 흔들어 바침은 16일에 있어진다. 이는 인간 삶에 있는 상태들에는 연속성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 우리는 거듭나는 과정 속에서 순종을 수단으로 진리를 선 안에 항구적으로 이식해 간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우리는 선과 진리에 관한 각자의 애착을 주님께 바침으로 그분을 예배하게 되어 있다. 이것이 어린 양을 바치는 것, 식사 제물, 음료 제물을 바치는 것으로 의미되어 있다. 그렇게 예배드렸다고 해서 진리가 선 안에 완전히 이식되는 정점인 마지막을 장식하는 절기에 도착된 것은 아니다. 영적으로 어떤 셈(count)을 해야 할 게 있다. (날 수를) 세어 본다는 것은 각자의 상태에 관한 품질을 알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날수를 제대로 헤아릴 줄 알게 하시어 우리의 심정이 지혜를 얻게 하소서.” 이는 시편 90편 12절의 말씀이다. 이는 주님만이 우리 속 모든 상태에 관한 품질을 아실 수 있어 각자 상태의 품질에 꼭맞는 납득을 해주실 수 있으시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분만이 우리의 모든 상태를, 아마 우리가 할 수 없는 것들까지 모두를 정리정돈 해 주신다. 또한 우리의 상태들은 선 안에 진리가 이식됨을 수단으로 결과되는 선의 발전에 달려 있다. 이로부터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것은 세부적으로 있는 사항들, 즉 흔들어 바침의 반복, 추가되는 세세한 제물들에 관한 비밀스런 원인들일 것이다. 그리하여 선 밑에 진리들이 완전히 배열되는 상태, 이른 바 “충분히 밝게 하심, 충만된 계시”라는 최정점에 도달되어 각종 시험들, 즉 주님을 예배하는데 이기적이고 세상적 동기로부터 행동하려는 모든 기질이 정지된다. 이 항목에서 특이한 것은 누룩을 넣어 만든 새 식사 제물이다. 그 이유가 일반적으로 제단에 바쳐지는 식사 제물에는 누룩을 넣어 굽지 않도록 명령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문의 경우 이에 반대되는데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진리가 선 안에 이식되는 동안 진리가 먼저 깨끗하기 위해 진리와 거짓의 싸움이 있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우리로 알도록 명시해 두시기 위해서이다.
이제 선의 이식을 의미하는 세 번째 절기를 살피기 전 먼저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나팔 부는 절기(새해맞이)와 보상(죄 벗음)의 날과 더불어 절기 세 가지 모두가 칠월에 거행된다는 것이다. 중간 중간에 있는 절기들이 정확히 지정된 날 칠월에 거행되어야 하는 이유가 글자적 의미에서는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영적 의미로는 충분한 설명이 가능하다. 일곱째 달은 진리가 선 안에 이식되는 작업이 계속되는 동안 거룩한 신앙의 상태가 최정점에 이르는 것을 명백히 표현한다. 그리고 칠월 첫째 날과 열 번째 날도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즉 특별한 계시(밝히 알게 해 주심, 첫째 날)는 진리가 선 안에 충분히 이식되게 하고, 이 이식된 진리는 숫자 열로 명시되는 주님께서 우리 속에 아껴두신 것들(remains)이 충만해지는 상태로 완성된다는 뜻이다. 이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사항은 악의 완전한 제거인데 이것이 보상받는 날로 의미된다. 이에 관해서는 제 16장에서 충분히 살폈으므로 생략한다. 엄밀히 말한다면 완전한 악의 제거나 계시는 인간의 실제 경험에 의거한 심판 과정에서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우리 속에 든 악이 충분히 제거되기 전에는 우리 속에 진리가 아무리 많아도 선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개개인에 관련된 거듭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는 본문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느낄 수밖에 없으리라.
한정된 지면 관계로 세 번째의 큰 절기에 관련하여 한 두 가지 것만을 살펴볼까 한다. 이 절기는 선이 진리 안에 이식되는 것을 의미한다. 먼저 상기해둘 사항이 있다. 우리 삶의 두 상태들이 두 번째, 세 번째 절기로 나타내지고 있다는 것, 비록 우리가 의식하는 상태에 따라 계속적으로 거행되고 있다 해도 우리는 전자의 상태에 있을 경우 자연적 삶 속에서 선을 충분히 실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연적 수준의 인간은 그 속에 있는 악과 잘못들 때문에 영적 수준의 인간과는 하나를 이루지 못한다. 더구나 주님으로부터 있어지는 선이 이식되는 것은 진리의 이식과 거의 동시적으로 발생한다. 한마디로 우리는 거의 동시에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진다. 인생이라는 여행에 위 사항을 첨가해 생각해 본다면 여행기간 동안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에 얽힌 심정 상태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큰 위로가 될 수도 있다. 여행의 종착지인 천국에서 실감하게 될 마지막 선의 상태는 아주 어린 삶의 시기에 주님께서 우리 안에 이식해 두신 선과 정확히 같을 것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선의 이식을 의미하는 절기들이 수확하는 절기(the feast of the ingathering)라 불릴 뿐 아니라 장막절(the feast of tabernacles)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장막(초막)절은 사람들이 칠 일간 자기 집처럼 거주하는 곳이 천막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텐트에 거주함은 선이 진리 안에 거주하는 것, 또는 내적 인간이 외적 인간 안에 거하는 것을 명시해준다. 이로부터 알 수 있는 장막절에 관한 게 있다. 즉 선이 이식될 때 외적 인간은 내적 인간과 하나를 이루고 선은 최말단에 존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절기라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이 세상, 저 세상 삶 모두에서 선에 관한 자기의 외적 상태가 내적 상태와 하모니를 이룩하도록 노력해 가는 과정은 계속된다. 계속되는 가운데 있게 되는 충만함의 모두 안에서 위 두 상태의 일치는 점점 더 쉽게, 더 빨리 이루어져 가게 된다.
마지막으로 주목해둘 것이 있다. 훌륭한 과일과 종려나무가지가 위 장막절의 의미와 어떻게 연결되는 가에 대해서이다. 이 구절은 우리가 완전한 상태 안에서 온갖 종류의 선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있는 모든 선들을 어떻게 즐기게 되는지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식물 형태로 볼 때 종려나무에는 가지가 없다. 그러나 그 나무에는 나뭇가지처럼 보이는 무성한 잎들을 가지고 있다. 형태가 이러하다고 해서 그 나무가 지니는 의미에 어떤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상응으로 살피면 알게 되므로 첨언했을 뿐이다. 본 장에 걸쳐 있는 각종 절기를 내적 의미로 살폈다. 이는 거듭나는 인간의 전 생애, 계속적인 체험과 더불어 동시에 일어나는 거듭남, 주님의 역사에 인간의 협동이 어우러져 거듭남은 작은 완성에 작은 완성이 겹쳐 물방울에 물방울이 합쳐져 시냇물과 강물이 되듯 어떻게 완성되는가를 우리로 발견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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