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22장 해석

레위기 22장

영적 의미 요약

* 선 가운데, 그리고 그 선에서 파생된 진리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 대한 가르침, 여러 가지 불순함들로 해서 더럽혀질 때 그들은 주님을 인정할 수 없고 예배할 수도 없다. 따라서 모독하는 죄를 범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1-9절.
* 선을 자기 것이 되게 할 수 있는 품질을 갖추지 못한 이들에 관하여, 모독이 있지 않도록 해야 하리라, 10-16절.
* 선으로부터의 모든 예배는 진리를 수단으로 완전해져야 한다. 어떤 악이나 거짓 때문에 불완전한 예배는 열납될 수 없다, 17-25절.
* 주님을 예배하는데 모독을 피하기 위한 세부 사항들이 더 추가된다, 26-33절.

각 절의 영적 의미

1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 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지각을 주시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주님께서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은 유입을; 모세는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말하심은 지각을 말한다. (2001, 2951, 7010, 1791, 1822)

2절.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야기하라, 그들은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나를 거룩히 받드는 것, 즉 그들의 거룩한 것들로부터 그들 자신들을 분리하여, 그들이 내 거룩한 이름을 모독하지 않게 하라. 나는 주이다.

영적 의미

천적이거나 영적인 선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가르침이 주어진다. 불순할 경우 그들은 주님을 예배함과 영적 교회 사람의 성직 임무에서 분리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모독이 있지 않도록 하라. 그 이유는 천적, 영적 선과 진리는 신성한 선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야기하심이란 천적, 영적 선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가르치심을; 이스라엘의 자손들의 거룩한 것들로부터 그들 자신들을 분리함이란 그들은 주님을 예배함에서 분리될 수밖에 없음을; 또한 주님을 예배하는 성직 임무에서 분리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 이유는 모든 진정한 예배는 선을 수단으로 결과되고, 아론과 그의 아들은 성직자들로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를 거룩히 받드는 것”란 위의 예배, 성직 임무는 거룩하다는 것을; “나의 거룩한 이름을 모독하지 않게 하라”란 신성한 선과 진리는 자신들 안에 있는 천적, 영적인 선과 진리를 더럽힘으로 모독된다는 것을; “나는 주”란 천적, 영적인 선과 진리는 신성한 선으로부터 존재함을 뜻한다. (2951, 7010, 9946, 9903, 2776, 9946, 8882, 2001)

3절. 그들에게 말하라, 자손 대대로 너의 씨로부터 있는 자는 누구든지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주님에게 바친 것, 즉 거룩한 것들에 접근하는데, 그의 불결함을 가지고 있으면, 그 혼은 내 앞에서 잘리운다. 나는 주이다.

영적 의미

그런고로 천적 인간과 영적 인간이 지각하는 바, 누구든지 모든 선과 진리, 거룩함이 그분으로부터라고 인정함으로 해서 순수한 예배 안에서 주님께 접근 될 것인데, 그럼에도 이기적 동기로부터 주님께 접근을 한다면 선과 진리에서 분리되는데, 그 이유는 그 근원이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들에게 말하라란 그러므로 천적 인간과 영적 인간은 지각함을; 너희 후손 대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께 바치는 거룩한 제물을 가까이 하는 자란 순수한 예배 안에서 주님께 접근하는 사람은 누구든지를; 이 예배는 제물을 바침으로 표현되고 있고 “주님의 거룩한 것들”이란 모든 선과 진리, 거룩함은 그분으로부터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불결함이 있는 자란 이기적 동기가 혼합되어 모독함을, 주님 앞에서 잘리움이란 선과 진리에서 분리되고, 따라서 주님에게서도 분리됨을; “나는 주”란 주님이 모든 선의 근원임을 뜻한다. (9946, 10249, 2776, 9903, 349, 5619, 868, 8882, 10130, 5302, 223, 2001)

4절. 아론의 씨로부터 있는 자가 나병이나 유출을 가지고 있을 경우, 그가 깨끗해질 때까지 그는 거룩한 것들을 먹지 못한다. 그리고 죽은 자로 인해 불결한 어떤 것에 닿은 자, 또는 자기의 씨가 자기로부터 나간 사람.

영적 의미

선으로부터의 애착을 지녔는데, 외적 이든, 내적 이든 진리를 모독하는 사람은 그가 예배에서 이기적 동기로부터 행동하기를 멈출 때까지 선을 자기 것이 되게 할 수 없다. 이는 아래에 열거되는 것에 아주 경미하게 접촉해도 마찬가지인 바, 즉 영적 생명이 없는 표면적 행사에 불과한 예배, 또는 선에서 분리된 진리의 애착으로 드리는 예배,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의 후손은 누구를 막론하고 나병자든 유출을 가진 자든 이란 진리를 외적, 내적으로 모독하는 사람을, 그 이유는 그가 선으로부터 나오는 애착 안에 있기 때문이다. 깨끗해지게 되기 전에는 거룩한 음식을 먹지 말라란 예배에서 이기적 동기로 행동하는 것을 중단할 때까지 선을 자기 것을 삼을 수 없다는 것을; 죽은 자로 해서 어떤 불결한 것에 닿은 사람이란 영적 생명이 없는 오로지 예식뿐인 예배에 아주 경미하게 접촉함을; 씨가 나간 자(정액을 흘린 사람)이란 선에서 분리된 진리의 애착으로 예배함을 뜻한다. (6963, 10283, 10130, 10249, 9946, 2187, 4545, 10130, 5407, 880, 1798, 4837)

5절. 또는 자기를 불결하게 만들런지 모르는 어떤 기는 것을 만진 자는 누구든지, 또는 지니고 있는 불결함이 무엇이든 불결함을 가지고 있을런지 모르는 사람과 접촉한 자,

영적 의미

또는 불순함의 원인인 감각적일 뿐인 기쁨, 또는 종류가 어떠하든 불순해지게 되는 여하한 악들,

세부적 영적 의미

기는 것을 만진 자란 단지 감각적 기쁨 뿐인 불순한 것과 접촉함을, 어떤 종류의 불결 이든 불결한 사람과 접촉한 자란 종류 여하를 막론하고 불순해지려는 어떤 악들을 뜻한다. (10130, 746, 7424, 10130)

6절. 이렇게 접촉한 혼은 저녁까지 불결하다, 그리고 그가 물로 자기 살을 목욕하지 않으면 거룩한 것을 먹지 못한다.

영적 의미

위와 같은 행동은 상태의 변화가 있을 때까지 불순해 있게 한다. 그래서 그는 회개함에서 진리로 깨끗해질 때까지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불결한 것에 닿은 사람은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란 위 같은 행동은 인간의 상태가 변할 때까지 불순하게 한다는 것을, 목욕을 할 때까지는 거룩한 음식을 먹지 못함이란 회개 함 속에서 진리로 깨끗해질 때까지 선을 자기 것 삼을 수 없음을 뜻한다. (10130, 7844, 2187, 2776, 3147)

7절. 그리고 태양이 질 때, 그는 깨끗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그는 거룩한 것들을 먹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이것이 그의 빵이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그러나 이기적 사랑을 거절함으로 위 상태가 죽어질 때 그 사람은 깨끗하다. 그러면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것이 그의 통치하는 기쁨이요 그의 영적 삶을 지탱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해가 질 때 깨끗하게 된다란 이기적 사랑을 거절함으로 상태가 지나갈 때 그 사람은 깨끗해진다는 것을, 그 다음에야 자기 양식인 거룩한 음식을 먹는다란 그의 통치하는 기쁨이 선이기 때문에 선을 자기 것으로 삼게 될 것이고, 그 선만이 그의 영적 생명을 받쳐 줄 수 있다는 뜻이다. (8615, 8487, 4545, 2187, 2776, 2105)

8절. 저절로 죽은 것, 또는 짐승들로부터 찢기운 것은 그것과 함께 자신을 더럽게 하는 바, 그는 먹지 말라. 나는 주이다.

영적 의미

그러나 자연적일 뿐인 선, 다시 말해 무의식중에 악과 혼합된 선은 자기 것이 되게 못한다. 그 이유는 그것이 그를 불순하게 하기 때문인 바 그의 선은 주님으로부터서만 있어야 하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자연사한 짐승이나 찢겨 죽은 짐승은 불결하게 하는 바 먹지 말라란 그는 단지 자연적일 뿐인 선은 자기 것 삼지 않아야 한다는 것, 또는 무의식적으로 악과 혼합되어지는 자연적인 선을 자기 것 삼지 않아야 하는데 그 이유는 그 선이 그를 불순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나는 주”란 그의 선은 오로지 주님으로부터만 있다는 것을 뜻한다. (2187, 4171, 10130, 2001)

9절. 그러므로 그들은 내 명령을 지켜서, 그들이 그것 때문에 죄짓지 않도록 하라, 그리고 만일 그들이 그것을 모독하면 그 때문에 죽을 것이다. 나는 그들을 정화하는 주이다.

영적 의미

그러므로 교인들은 내적 선과 진리가 외적인 것과 결합해 있음으로 예배하되 자신이 악 속으로 붕괴되지 않도록 하라. 모독은 그를 황폐케 하고야 만다. 그 이유는 주님으로부터 온 선만이 인간을 거룩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의 명령을 지킴이란 교인은 외적인 것과 결합된 내적 선과 진리로 예배해야 함을; 그대로 지켜 죄를 낳지 않도록이란 그가 악 쪽으로 붕괴되지 않기 위해서임을; 죽으리라란 황폐됨 또는 모든 선과 진리가 박탈됨을; 그들이 그것을 모독한다면이란 모독 때문임을; “나는 그들을 정화하는 주”란 주님 만으로부터 오는 선만이 인간을 깨끗하게 함을 뜻한다. (3382, 9156, 9937, 2908, 2001, 8042)

10절. 낯선 자는 거룩한 것을 먹지 못한다. 성직자의 체류자나 고용된 종도 거룩한 것을 먹지 못한다.

영적 의미

교회 밖의 사람은 거룩한 선을 자기 것으로 삼는 것, 단지 자연적 수준일 뿐인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교회 내라도 자연적 수준의 지식 속에 있는 사람, 또는 뭔가를 얻고자 올바른 것을 행하는 사람도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낯선 자는 거룩한 음식을 먹지 못한다란 교회 밖의 사람은 거룩한 선을 자기 것 삼지 못함을;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연적일 뿐인 사람은 거룩한 선을 자기 것 삼지 못함을; 성직자를 찾아온 사람(체류자)이나 그의 고용된 종도 거룩한 음식을 먹지 못함이란 자연적 지식으로 교회 내에 있는 사람과 이득을 위해 의를 행하는 사람은 거룩한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다는 뜻이다. (4544, 8002)

11절. 그러나 만일 성직자가 어떤 혼을 산다면, 자기 돈으로 구매하면, 그는 그것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성직자의 집에서 출생된 자도 그러한 바, 그들은 그의 빵을 먹을 것이다.

영적 의미

그러나 진리에 순종하는 선한 생활을 수단으로 죄로부터 구속되어진다면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다. 내적으로 선 가운데 있는 사람은 외적으로 있는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으리라.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가 사들인 혼, 성직자의 집에서 태어난 혼이란 진리에 순종함으로 선한 생활을 하여 죄에서 구속되는 사람과 내적으로 선 가운데 있는 사람을, 그들이 빵을 먹을 수 있다란 자기 것으로 삼음을 뜻한다. (5374, 9946, 1708, 2187, 2165)

12절. 그리고 만일 성직자의 딸이 낯선 자에게 시집간다면, 그녀는 거룩한 것에서 들어올린 제물을 먹지 못한다.

영적 의미

만일 누가 내적으로 주님으로부터 파생된 선에 대한 애착 가운데 있는 데도 이기적 사랑 속의 악을 그 애착에 결합시켜 모독한다면 그 애착이 주님으로부터 임을 지각하는 선을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낯선 자와 결혼한 성직자의 딸은 거룩한 양식으로 들어 올린 제물을 먹지 못한다란 만일 누가 내적으로 주님에게서 오는 선의 애착 안에 있으면서도 이기적 사랑의 악을 그 애착과 결합시킴으로 그 애착을 모독한다면, 주님으로부터 있게 됨이 지각되는 천적 선을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은 불가능하다. (3703-15, 9946, 2173, 4544, 2187, 10093)

13절. 그러나 만일 성직자의 딸이 과부이다면, 또는 이혼했다면, 그리고 아이가 없다면, 그리고 자기 아버지의 집으로 되돌아와 어린 시절 같이 있다면,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의 빵을 먹을 것이다. 그러나 낯선 자는 그것으로부터의 것을 먹지 못한다.

영적 의미

누가 선한 애착을 가지고 있되 진리 또는 선이 없이 비생산적인데도 선과 내적 연관을 지니고 있어 마치 거듭나는 초기 같다면 그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자연적일 뿐인 애착은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성직자의 딸이란 선의 애착 가운데 있는 사람을, 과부 또는 이혼함이란 진리 또는 선이 없음을; 자식이 없다란 진리 또는 선이 생산되지 않음을; 아버지의 집으로 되돌아옴이란 서로가 내적으로 연합됨을; 어렸을 때와 같이란 거듭나는 시작 때와 같이를; 제 아버지의 빵을 먹는다란 아직 선이 자기 것 될 수 있음을; 낯선 자는 먹지 못함이란 자연적일 뿐인 애착은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음을 뜻한다. (3703-15, 4844-16, 489, 3703-15, 3183, 4544, 2187)

14절. 그리고 만일 사람이 모르고 거룩한 것을 먹었다면, 그 다음 그는 그것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놓을 것이다, 그리고 성직자에게 거룩한 것을 주어라.

영적 의미

누가 무지해 가지고, 또는 부주의해서 거룩한 선을 모독했다면 그는 제 스스로 자기에게 선이 남아 있는 게 없다는 것, 주님으로부터 받아야 함을 인정함으로 원상 회복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사람이 모르고 거룩한 것을 먹을 경우란 누가 몰라 가지고 또는 부주의해서 거룩한 선을 모독하는 경우를; 거룩한 음식의 오 분의 일을 더 보탠다란 제 스스로는 남아 있을 선이 없음을 인정함으로 원상 복귀해야만 함을; 성직자에게 거룩한 음식을 줌이란 그가 주님으로부터 선을 받음을 뜻한다. (9156, 10042 II, 2187, 2776, 9946, 10227, 2776)

15절. 그리고 그들은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주님에게 바친 거룩한 것들을 모독하지 말라.

영적 의미

선 가운데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자기 속의 선이 모두 주님의 것인데 자기 것이라고 우겨 그 선을 모독해서는 안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께 바친 거룩한 것들을 모독하지 말라란 선 가운데 있는 사람은 누구나 주님께 모두 되돌려야 할 것들을 자기 공적인냥 치부하여 모독해서는 안 됨을 뜻한다. (8882, 2776, 9946)

16절. 그들이 자기들의 거룩한 것들을 먹을 때, 죄가 있음을 가져오는 불법을 그들로 하여금 낳게 하는 원인이 된다. 나는 그들을 정화하는 주이다.

영적 의미

그렇게 행하면 그는 책임져야 할 악한 상태에 자신을 가져다 놓게 된다. 그러면 그가 선을 받는데 손상을 입는다. 그러므로 진실로 인정해야 하는 것은 자신을 거룩하게 하는 모든 선은 주님으로부터 이다는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그들로 해서 죄를 가져오는 불법을 낳게 한다는 것은 그렇게 행함으로 책임져야 하는 악한 상태에 자신이 있게 한다는 것을; 그들이 거룩한 음식을 먹을 경우란 위 경우에 선이 손상을 입음을; “나는 그들을 정화하는 주이다”란 인간을 거룩하게 하는 모든 선은 주님으로부터임을 진정으로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을 뜻한다. (9937, 2187, 2776, 2001, 8042)

17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더 나아가 지각을 주시는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주님께서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여호와란 사랑 측면에서의 신성한 존재를; 말씀하심이란 유입을; 모세란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말하심이란 지각을 뜻한다. (2001, 2951, 1791, 1822)

18절. 아론에게, 그리고 그의 아들들에게,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들에게 이야기하라,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가문으로부터 이든, 이스라엘에 있는 낯선 자 이든 누구든지, 자기 봉헌물을 바칠 경우, 그것이 자기들의 서원들로부터의 어떤 것 이든지, 또는 자발적인 바침 이든지, 이것을 그들이 태워 바침으로 주님께 바칠 경우,

영적 의미

천적, 영적, 자연적 선 가운데 있는 이들, 그가 내적, 외적 교회 어디에 속해 있든 모든 이 각자가 자유 가운데 주님을 예배하되 그 목적이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 은택의 느낌을 가져서, 주님께 전적으로 자신을 헌신하고 싶은 바램을 내향으로 가지고 있다면,

세부적 영적 의미

아론과 그의 아들,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이야기하심이란 천적, 영적, 자연적 선 가운데 있는 이들에 대한 가르침 임을; 이스라엘 가문에 속한 사람과 그들에게 붙어 사는 낯선 자란 내적 교회와 외적 교회에 속한 이들을; 봉헌물을 바침이란 주님을 예배함을; 마음에 우러나서 드리거나 서약을 위해서란 은택에 감사해서든지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이든지 자유로움으로부터 예배함을; 태워 바침으로 드림이란 주님께 완전히 헌신함을 뜻한다. (9946, 4286, 3654, 7908, 923, 3880, 10053)

19절. 너희는 받아지도록 소들(beeves)이나 양들이나 염소들로부터 흠이 없는 수컷을 바쳐라.

영적 의미

그의 예배를 주님이 받으실 수 있게 하려면 이기적이거나 세상적 동기가 전혀 없어야 한다. 이는 자연적 선의 수준 이든, 영적 선의 수준 이든, 신앙의 선 이든 모두 해당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흠 없는 수컷이란 진리를 수단으로 선으로부터 예배함, 그리고 이기적, 세상적 동기가 없이 예배함을, 소나 양이나 염소 가운데서란 자연적 선으로부터, 영적 선으로부터, 신앙의 선으로부터를; “그분이 받으신다”란 주님이 받을 수 있는 것을 뜻한다. (725, 7837, 2180, 2088, 4169, 9506)

20절. 그러나 흠이 있는 것은 무엇이든, 너희는 바치지 말라, 그것은 너를 위해 받아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

따라서 그 예배가 이기심 또는 세상욕으로 오염되어 있다면 받으실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흠 있는 것을 바치지 말라, 그리고 그것은 받아지지 않음이란 예배가 이기심과 세상 욕으로 더러워진다면 받아질 수 없음을 뜻한다. (7837, 9506)

21절. 그리고 누구든지 서약을 성취하기 위해, 또는 자발적으로 바치고 싶어서 이든, 주님에게 평화 제물의 희생 제물을 바칠 경우, 그것은 소떼나 양떼로부터 이다. 그것이 받아지기 위해서는 온전해야 할 것이다. 거기에 흠이 없어야 한다.

영적 의미

그리고 그가 자유함에서 주님을 예배하여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의지와 이해함 양쪽에서 하모니를 이루거나, 또는 사랑과 신성한 섭리에의 복종이 자연적 애착 수준이나 영적 애착 수준에서 있어져 예배한다면 이 예배는 완전할 것이다. 그리고 이기적이거나 세상적 동기가 혼합되어서는 안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께 평화 제물을 바친다는 것은 자유로부터 예배함을; 서약을 성취하기 위해서든가 마음에 우러나서 바치든지란 의지와 이해함의 양 측면에서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과 조화를 이루도록, 또는 자연적 애착 측면과 영적 측면에 관한 신성한 섭리에 복종함으로부터 또는 사랑으로부터임을; 흠이 없음이란 이 예배는 완전해야 하는 것, 그리고 이기적이고 세상적 동기가 어떤 혼합도 없어야 함을 뜻한다. (10097, 3880, 5913, 6126, 7837, 9506)

22절. 눈먼 것, 부러진 것, 또는 절뚝거리는 것, 또는 혹(wen)달린 것, 또는 비듬투성이(scurvy), 또는 딱지(scabbed) 있는 것, 이런 것들을 너희는 주님에게 바치지 말 것, 그것들을 주님에게 제단 위에서 불로 바치지 말라.

영적 의미

주님을 예배함은 무지로부터, 이해함이나 의지 속의 불완전한 애착으로부터, 또는 감각적, 세상적, 이기적인 결함들로 부패된 자연적 애착으로부터 있어져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이런 것들이 주님께 봉헌될 수 없는 인간을 섬기는데 만 소용이 닿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눈먼 것이나 뼈가 부러진 것, 절뚝거리는 것이나 혹 달린 것, 비듬투성이, 딱지 있는 것이란 의지 속의 불완전한 애착으로부터, 세상적, 이기적, 감각적인 것으로 부패된 자연적 애착으로부터의 예배를; 이것들을 주님께 바치지 못하고 주님께 바치려고 제단에서 태워 바치지도 못한다란 이런 애착들은 주님께 전적으로 봉헌되어질 수 없고, 인간을 섬기는데 만 바칠 수 있을 뿐임을 뜻한다. (2383, 9163, 210, 4302, 7524, 제 21장 18-20절, 923, 10053, 10055)

23절. 너무 길거나 너무 짧은 몸 부위를 가진 수소나 어린 양은 너희 자발적 바침을 위해서는 바쳐도 좋다. 그러나 서약을 위해서는 그것은 받아지지 않는다.

영적 의미

그러나 비록 불완전하다 해도 순진에 바탕을 둔 외적, 또는 내적 애착은 자유로이 예배될 때 주님께 바칠 수 있다. 그러나 의지와 이해함 모두를 수단으로 확증되었다면 위의 예배는 받아질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수소나 어린 양 가운데 한 다리는 길고 한 다리는 오그라진 것을 마음에 우러나 바치는 제물로 삼을 수 있다란 순진에 바탕을 둔 외적 또는 내적 애착들은 비록 불완전해도 그의 예배 드림이 마음에 우러난 경우라면 주님께 바칠 수도 있다는 것을; 서약을 위해서는 위의 짐승을 바칠 수 없다란 불완전함이 이해함과 의지 모두에서 확증되어 있다면 위의 예배는 받아질 수 없음을 뜻한다. (10021, 10132, 10109, 581, 583, 673-3, 21장 18절, 10097, 3880, 9506)

24절. 불알이 타박상을 입은 것, 으스러진 것, 또는 깨진 것, 또는 잘라진 것의 경우, 너희는 주님께 바치지 못한다. (고로) 너희는 너희 토지에서 (이것을) 행치 말라.

영적 의미

사랑과 지혜, 선함과 진리, 선행과 신앙, 또는 애착과 총명의 천국적 결혼을 위반함을 통해 내적, 외적으로 거룩치 못하다거나 불순해 있는 애착은 내적이든 외적이든 주님을 예배함에 봉헌될 수 없다.

세부적 영적 의미

불알이 타박상을 입은 것, 으스러진 것, 깨진 것, 잘라진 짐승이란 사랑과 지혜, 선함과 진리, 선행과 신앙, 또는 애착과 총명이라는 천국 결혼을 위반하여 내적, 외적으로 불순하여 거룩치 않은 것을; 너희 땅에서 그런 것을 바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란 위의 애착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주님을 예배하는데 봉헌될 수 없다는 뜻이다. (10303, 431, 2173, 5053, 5060, 9163, 9056, 2799-23, 923, 683)

25절. 낯선 자의 손으로부터 이런 것들 중의 어떤 것을 너희는 너희 하느님의 빵으로 바치지 말라. 그 이유는 그들의 부패함이 그것 안에 있기 때문, 그것들에 흠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너희를 위하여 받아지지 않을 것이다.

영적 의미

어떤 종류이든 자연적일 뿐인 사랑의 힘으로 주님의 진정한 예배를 증진시키려 들지 말라. 그것들은 느낌과 생각에서 불순하기 때문이요 주님과 결합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위의 불구나 병신을 낯선 자의 손에서 받아 너희 하느님의 빵으로 바치지 말라란 주님을 진정으로 예배함을 증진시키는데 어떤 종류의 자연적 사랑 만에서 나오는 힘을 사용하지 말라를; 부패함이 그들 안에, 흠이 그들 안에 있어 열납되지 않는다란 그것들을 주님께 드릴 수 없고 결합되게 할 수도 없다는 뜻이다. (4544, 878, 2165, 923, 10420, 7837, 6832, 9506)

26절.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 말하시기를,

영적 의미

지각을 주시는 신성한 진리로 주님께서 더 밝히 알게 하신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여호와)란 사랑 측면의 신성한 존재를; 이야기하심은 유입을; 모세는 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을; 말하심은 지각을 말한다. (2001, 2951, 7010, 1791, 1822)

27절. 수소, 또는 양, 또는 염소가 산출될 때, 그 다음 그것은 칠 일 동안 어미 아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팔 일째로부터 그리고 그 이후 그것은 주님에게 불로 만드는 제물의 봉헌물로 받아질 것이다.

영적 의미

시초가 되는 자연적 애착, 영적 애착, 또는 진리의 애착들은 교회 안에서 선을 원리로 작동됨을 통하여 깨끗해져야 한다. 그러면 그 뒤에 오는 새 상태에서 순수한 영적 예배로 주님을 섬기는 가운데 바쳐지게 될 것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수소나 양이나 염소가 산출됨이란 초기에 해당되는 자연적 애착 또는 영적 애착 또는 진리의 애착을; 제 어미 품에 칠 일 동안 있음이란 교회 안에서 선을 원리로 작동되어 깨끗해지는 것을; 팔 일 째 되는 날로부터 주님께 태워 바치면 받아진다란 뒤이어 오는 새로운 상태에서 순수하고 영적인 예배로 주님을 섬기는데 바쳐짐을 뜻한다. (2180, 2088, 4169, 264, 창세기 1장, 716, 289, 290, 2044, 923, 10055)

28절. 그리고 그것이 암소나 암양이든지 너희는 그것과 그것의 새끼를 같은 날에 죽이지 말라.

영적 의미

자연적 인간 또는 영적 인간 안에 있는 선은 이전의 선과 이후의 선이 뒤섞이게 해서는 안 된다. 새 영적 삶의 상태가 이전의 상태를 계승해가기만 해야 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같은 날에 암소나 암양(ewe)을 새끼와 함께 죽이지 말라란 자연적 인간 안에 선이 있든, 영적 인간 안에 선이 있든 전자의 선이 후자의 선과 혼합되어서는 안 됨을, 오직 영적 삶의 상태는 이전 상태를 계승해야만 함을 뜻한다. (2180, 2088, 10024, 487, 2866)

29절. 그리고 너희가 주님에게 감사함의 희생제물을 바칠 때, 너희는 받으실 수 있는 것을 바쳐야 한다.

영적 의미

은택의 영으로부터 주님을 자유로이 예배하면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의 결합이 있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감사함의 희생제물을 바치되 그분이 받으실 수 있는 것을 바치라란 은택의 고마움으로 마음에 우러나 주님을 예배하는 가운데 내적 인간과 외적 인간의 결합이 있을 것임을 말한다. (3880, 9506, 10042 II, 제 1장 3,4절)

30절. 같은 날에 그것은 먹어질 것이다. 너희는 아침까지 그것의 어떤 것도 남겨두지 말라. 나는 주이다

영적 의미

그 결합에서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음은 준비되는 상태 안에만 있게 되는 바, 어떤 이기적인 동기, 세상적 동기가 그것을 썩게 하지 말라. 그 이유는 순수한 애착들을 주님의 것으로 돌려야 하는데 그것들은 주님으로부터 근원 되었기 때문이다.

세부적 영적 의미

같은 날 먹는다란 선을 자기 것 삼음은 위 준비하는 상태에만 있을 수 있음을; 아침까지 남겨두지 못함이란 이기적 동기는 자기 것 삼은 선을 부패시킬 것임을; “나는 주”란 순수한 애착만이 주님께 돌려 드릴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그분으로부터 왔기 때문을 뜻한다. (2187, 487, 10114-7, 7860, 8480-3, 2001)

31절. 그러므로 너희는 내 명령들을 지켜라, 그리고 그것들을 행하라. 나는 주이다.

영적 의미

참으로 진정한 예배는 주님의 도움을 수단으로 신성한 계명들을 내적, 외적으로 순종함에서 있어진다.

세부적 영적 의미

주님의 명령을 지켜 행함이란 참으로 진정한 예배는 주님의 계명을 내적, 외적으로 순종함으로 있게 됨을, “나는 주”란 주님의 도우심으로 라는 뜻이다. (3382, 5755, 2001)

32절. 그리고 너희는 내 거룩한 이름을 모독하지 말라. 그러나 나는 이스라엘의 자손들 사이에서 거룩하다고 존대를 받아야 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주이다.

영적 의미

주님으로부터 오는 신성한 진리를 자기 것으로 돌리지 말라. 그럴 경우 모독이 있게 된다. 따라서 진정한 영적 인간은 내향으로, 외향으로도 거룩해야만 한다. 모든 거룩함은 주님으로부터 내적 인간을 통해 존재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내 거룩한 이름을 모독하지 말라”란 주님에게서 오는 신성한 진리를 자아의 것으로 삼지 말라를; “나는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서 거룩하다고 존대를 받아야 할 것이다”란 진정한 영적 인간은 내향과 외향의 양쪽에서 거룩해져야만 함을; “너희를 거룩하게 한 이는 나다”란 모든 거룩함은 주님으로부터 내적 인간을 통하여 있게 된다는 뜻이다. (8882, 2001, 3654, 4286, 2001, 1557)

33절. 너희 하느님이 되기 위해 너를 이집트의 토지로부터 데려 왔다. 나는 주이다.

영적 의미

신성한 진리를 받고 이 진리로 시험과 싸워감을 통해서 각자 속에 있는 특이한 악에서 실제 구원해 주시는 구속의 역사를 통해 신성한 진리는 인간과 교통된다. 그리하여 주님이 신성한 사랑이심을 분명히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세부적 영적 의미

“너희의 하느님이 되기 위해 이집트 땅에서 너희를 이끌어 냈다”란 거룩함이 인간에게 교통되는 것은 악으로부터 실지 구원되는 구속의 일을 통해서인데, 이는 각 사람의 세부 측면에서 신성한 진리를 받고 이를 통해 시험과의 싸움에서 있어짐을; “나는 주”란 위와 같은 과정으로 해서 자신에게 드러나 명백해진 신성한 사랑이신 주님을 인정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8866, 2001)

22장의 종합적 고찰

본 장을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는데 필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치는 거룩한 제물”이 영적으로 의미하는 것을 명백하게 알아두는 것이다. 이는 주님을 예배함, 그리고 이 예배의 성직 임무 수행을 뜻한다고 앞에서 살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족에 의해 주님께 바쳐지는 것은 예배드리는 사람이 주님을 섬기는데 헌신하는 선한 애착, 그리고 이 애착이 주님으로부터 임을 인정하는 것을 실지로 표현한다. 그 이유가 모든 진정한 예배는 이런 헌신과 인정함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그 다음 이런 예배를 집전하는 것은 진정으로 예배하는 외적 형체에 해당된다. 따라서 이런 선한 애착들이 수행하려 뜻하는 선용의 수행 속에서, 성소에서 주님을 예배하고 인정하는 가운데에서도 모두에 해당된다. 그런고로 성직자가 거룩한 제물을 함부로 다루면 안 된다는 말씀이 지닌 의미는 엄밀히 보면, 선용을 수행할 때 이든 공적 예배에 참석할 때 이든 이기적 동기 그 자체가 표현되는 것은 어떤 것이든 매우 조심스럽게 분리되고 거절되어야 한다는 것, 이는 성직 임무 수행에만 국한 되는 게 아니라 교인 전체에 해당된다. 따라서 이 가르침은 아주 무게 있는 가르침이다. 따라서 아주 심각하게 생각해 두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수행하는 선용이나 예배에 이기적 동기를 혼합시킬 때 우리는 “불결해지게” 된다. 우리 모두 경험에서 알고 있는 바, 우리는 걸핏하면 이기적 생각이 말함이나 행동 속에 있어 곤경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 더 경험으로 인정하는 바, 우리가 이기적인 생각과 느낌을 탐익하여 허용할 때 우리는 진실로 신성한 현존으로부터 분리됨 또는 “추방된다”는 것이다.
예배 중인 사람이 그 예배로부터 거룩한 음식을 먹는 것, 즉 선과 진리를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을 방해하는 불순함에 관해 몇 가지 사항의 언급이 주어지고 있다. 나병자란 예배를 외적으로 이기적 용도에 응용하여 진리를 모독함을, 유출(고름)은 악한 애착에서 흘러나오는 악한 생각인데 본문과 연결해 말할 경우 선으로부터의 예배를 내적으로 모독함을, 죽은 시체에 닿아 불결함은 영적 생명이 결여된 애착, 사랑이 없음을, 그 사람으로부터 정액이 분출됨은 진리가 선에서 분리된 것을, 기는 짐승이란 단지 감각적이기만 한 것을, 감각적일 뿐인 것은 그 자체 죽어 있는 것인 바, 선과 진리를 거절하는 자연적일 뿐인 애착을, 찢겨 죽은 것이란 무의식적으로 악과 혼합되는 것을 각기 표현한다. 이상의 여러 가지 것들은 영적 인간이 선과 진리라는 주님의 생명을 받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으리라 본다. 우리는 위와 같은 것들에 의식적으로 오염되면서 동시에 주님을 예배할 수 없고 선을 자기 것이 되게 할 수 없다. 만일 이것들이 무의식적으로 행해졌다면 물로 씻는 것 즉 진솔한 회개를 통해 깨끗해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여기서 두 가지 사항은 조심스럽게 주목해 보아야 하리라 본다. 회개 후라 해도 저녁 때까지, 즉 그의 심판이 거행되어 가라지가 밀에서 분리되는 때까지 그 회개자는 전체적으로는 깨끗하지 않다. 이런 이유는 한꺼번에 깨끗해지는 것 즉 잘못들이나 악을 한꺼번에 제거하려 들면 선 자체까지 피해를 입거나 파괴까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태 13:29). 둘째로, 거듭나는 동안, 그리고 마지막으로 심판에서 태양으로 명시되는 이기적 사랑의 거절이 끝나게 된다. 사실 해가 진다는 것은 주님에 대한 사랑이 하강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때로 이는 이기적 사랑이 끝나는 것도 의미한다. 이런 질문이 즉각 있을 수 있다. “인간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 또는 자기에게 타당한 삶으로부터 행동하는 것이 어떻게 중단될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응답해야만 하는 것은, 위와 같은 중단은 필수적인 것이 아니고 유해하다는 것인데 그 이유가 교회도 인간 자아에 생명을 불어넣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를 위해 주님의 사랑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 스스로부터인 듯 행동해야 한다. 그러나 자기가 수행하는 온갖 것이 이기적이 되는 것을 중단함으로서만 이 가치 부여도 유효하다. 그러므로 자아를 타당하게 사랑함은 모든 악의 원인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뒤집히면 이기심이라 불리게 된다. 이런 문제에 관한 진리는 “그들은 내가 지키라고 한 것을 그대로 지켜야 죄벌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어기면 죽으리라”는 구절이 글자 의미에서, 영적 의미에서도 매우 강하게 보여 준다. 따라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을 타당하게 사용하는지에 우리에게 책임이 있음을 스스로 계속 느끼고 있어야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리라 생각된다.
위 구절에 이어지는 10절의 영적 의미들을 반복해 읽게 되면 상응으로부터 있게 되는 가르침들을 저절로 알 수 있으리라 본다. 교회 밖의 사람도 거듭날 수 있고 선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더 진보할 수 없고, 그의 자연적 선이 영적 선이 될 수도 없다. 그리고 교회 안에 있다 해도 가르침을 받고만 있는 수준에 머무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두 부류의 사람 모두 필수 조항인 인간과 주님과의 협동 작전이라 말할 수 있는 선에 대한 새 의지가 적절히 실시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11절의 경우는 10절과 매우 다르다. 이에 관한 진리를 보는 데는 실패할 수 없으리라. 그 다음 구절의 경우는 심각한 품성에 해당된다. 그 이유는 확증된 모독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거듭나는 삶을 어느 정도 진보시킨 교인의 경우 이 구절 같은 모독을 범하지 않기 위해 이 구절을 그대로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선 또는 진리에 관한 지식이 아직 없는데도 선에 관한 애착 속에 있는 사람의 경우는 위와 다른데 그 이유는 명백하다. 우리가 흔히 범하는 잘못들이 주님께서 우리 속에 아껴 두신 것들을 통하는 선의 상태로부터 주님을 인정하여 어떻게 치료되는가는 쉽게 이해해 볼 수 있다. 이에 관해 주어진 예가 이 문단의 마지막(16절)에 묘사되어 있다. 여하튼 어떤 때에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거룩한 양식을 자기 것으로 삼을까? 우리는 매일 생활 속에서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그야말로 섭리적으로 천국적 영향을 받는 때가 자주 있다. 한 예만 들어보자. 우리가 어떤 책을 단지 흥미만을 위해 읽을 때가 있다. 그렇다해도 그 안에 있는 뭔가가 우리로 선한 느낌과 생각들을 가지도록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느낌들은 우리 속에 남아 있도록 저장되는데 이후 우리의 상태에 적절한 시기를 갖게 되면 이런 느낌과 생각들은 거듭나는 자연적 인간 안에 이식되어진다. 게다가 일상 생활 속에서 꾸준히 노력해야 할 때, 또는 심각한 영적 싸움이 있게 될 때 위와 같이 저장된 느낌과 생각들을 회상함으로 더 강한 힘을 얻는데 이는 대다수의 사람의 체험에 다분히 들어 있을 것이라 본다.
다음 시리즈를 조심스럽게 공부해 보면 두 개의 일반적이고 실용적인 진리들이 더욱 확증될 기회를 가지리라 본다. 첫째로 주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려면 예배는 선으로부터 또는 애착이 있어야 하되 반드시 진리를 수단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수컷을 바쳐야 한다로 의미되고 있다. 둘째로 예배는 악과 거짓에 오염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흠이 없어야 함으로 의미되고 있다. 더 나아가 위 일반 원칙은 주님께 내적 인간을 충분히 봉헌해야 한다는 것도 언급하고 있다. 이것이 태워 바침으로 나타내고 있고 의지와 이해함에 관한 외적 인간을 바침은 서약과 마음에서 우러난 제물로 명시되고 있다. 이제 흠이 있는 것, 또는 악과 거짓에 속하는 특별한 종류들이 열거되는데 이를 살펴보자. 첫 세 가지는 마음의 영적 수준과 관계되고 나머지 세 가지는 자연적 수준과 관계된다. 그 이유는 눈이 멀고, 부러진 것, 불구인 것은 혹이나 비듬투성이, 딱지 있는 것에 비해 더 심한 몸의 고통을 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부류 모두 나쁜 것은 마찬가지지만 전자는 후자보다 더 심한 영적 결함을 의미한다. 이 정도의 상응은 말씀의 다른 부분에서도 언급이 많으므로 누구나 쉽게 지각하리라 본다. 확실하게 무지한 사람, 눈이 먼 짐승 같고, 애착이 불완전한 사람은 부러진 짐승 같고, 눈이 멀지도 않고 부러지지도 않았는데도 영적 삶을 진보시키지 못하는 사람, 자기 행동에 자기의 지식과 애착을 담아 표현 못하는 사람은 불구인 짐승 같은 바 주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드릴 수 없다. 그리고 내적으로 계발되어 있고 마음도 호의적인데 활력이 없는 채, 그의 자연적 애착만을 허용할 때 혹 달린 상태(score, wen)에 비유되고, 그가 감각적 능력만을 발휘할 때의 경우는 비듬(옴)증세(scurvy)에, 그가 육적 기쁨만을 허용할 때의 경우는 딱지(종기)(scab) 증세와 비슷하다.
이에 이어지는 구절 역시 방관하지 않아야 할 품질들이다. 심정으로부터 진행되고 마음에 우러나 드리는 결함 있는 예배가 외적 또는 내적 순진을 동반하는 경우 소나 양으로 명시되는데 이 예배는 마치 완전한 예배인 듯 취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예배가 이해함에 의해 확증될 경우는 주님이 받을 수 없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서약(vow), 물론 좋은 의미에서는 의지로부터 이해함이 결정하는 것, 또는 주님이 설비해 주신 그대로를 수용하는데 기뻐함을 뜻한다. 그러나 이 본문 이 문단의 경우 불완전한 예배와 연결을 이루고 있는 바, 예배가 이해함을 수단으로 확증됨을 의미한다. 진정한 고백은 의지와 관계되고 본문 같은 경우는 불완전한 예배라는 계산적인 서약인 바, 이해함에 관계된다. 24, 25절은 천국 결혼에 관련되지만 여기서는 흠 있는 예배와 관련되어 예증해 주고 있다.
나머지 문단을 글자대로 읽으면서 생각해 보라. 그러면 왜 어떤 동물이 태어난 후 정확히 칠일 간 어미 품에 두어야 하는지, 왜 팔 일째 되어야 바칠 수 있는지, 왜 감사 제물은 그 날로 다 먹고 다음 날까지 남겨두지 못하는지, 왜 신성한 존재는 이집트의 속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에 마땅히 존대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쉽게 머리에 착상되지 않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상응의 도움을 수단으로, 주님께서 해주시는 계발을 힘입어 내적 의미 안으로 들어갈 때, 위와 같은 주님의 세부 지시 사항이 왜 그러한지 이해할 수 있다. 말씀은 표현적인 교회를 계승하게 될 미래 세대의 영적 교회에 도움을 주시고자 쓰여져 있다. 그 이유는 칠 일간 이란 거듭나는 거룩한 상태를, 팔 일 째란 거듭남을 이어받는 새로운 상태를 명시하기 때문이다. 어미와 그 새끼를 같은 날 죽이지 말라란 인간 삶의 계속되는 상태들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감사 제물은 바친 그 날로 먹고 다음 날까지 남겨두지 말라란 은택으로 우러나서 드리는 예배는 이기적 사랑으로 오염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주님의 계명을 지키라는 것, 그분의 이름을 모독하지 말고 오로지 거룩히 여겨야 할 것, 이집트의 속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이다란 거룩한 상태가 주님을 순종함에 포함되어야 하는 바, 그 이유는 단지 자연적일 뿐인 삶의 속박에서 해방되게 해주시고 사랑으로 주님과 영원히 결합되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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