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시간과 상응

성경의
시간과 상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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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약자표

창 창세기 이 이사야 학 학개 마 마태복음
출 출애굽기 예 예레미야 슥 스가랴 막 마가복음
레 레위기 겔 에스겔 말 말라기 눅 누가복음
민 민수기 단 다니엘 요 요한복음
신 신명기 호 호세아 계 요한계시록
여 여호수아 욜 요엘
사 사사기 암 아모스
삼상 사무엘상 옵 오바댜
삼하 사무엘하 욘 요나
왕상 열왕기상 미 미가
왕하 열왕기하 나 나흠
욥 욥기 합 하박국
시 시편 습 스바냐

차례

가을 (autumn)-고대 (antiquity, ancient)-극점에 달하다 (consummate), 종말 (consummation)-끝 (end)
나이 (age), 햇수 (age), 시대, 시절 (age)-날 (day)-날마다 (daily)-낮 (day)-낮 동안 (by day)-…년 (year)-노년 (old age)-느린 (slow), 미루다 (delay)-늙다 (to grow old)
, 늙은 (old), 노년 (old age)
달 (month)-때 (time), 때가 참(fulness)
마지막 (last)-맨 마지막 (last), 최후 (last), 최말단 (ultimate), 궁극 (ultimate)
밤 (night)-밤을 보냄 (to pass night)

가을 (autumn)

* 주님의 교회는 하루 속의 때들, 일 년 속의 계절들, 금속들에 비교되어 말해진다. 그 중 계절의 경우, 이 교회의 첫 시기는 모든 것들이 꽃피우는 봄에, 그리고 이 교회의 마지막에 앞서 있는 시기는 모든 것들이 비활동적인 시기, 가을에 비교된다. (창15:2의 ‘해가 저물자…’ 도 참조)
* 선 안에서 살았던 이가 자기의 자아(proprium) 쪽으로, 뒤로 가는 것을 내버려둘 때, 이는 마치 침수되어진 듯 나타난다. 이런 상태가 영들의 세계에서 저녁, 또는 가을이다.
* (가을과 저녁에 관한 생각들이 천사들과 더불어서는 그들이 셋째 상태 안에 있능 때, 사랑과 지혜에 관한 생각들로 바뀌어진다.)
예48:32-제거되어져왔었던 선, 이것 때문에 애곡함이 있는바, 이것이 ‘가을의 열매들’에 의해 뜻해진다.
예48:32-‘가을의 열매들’에 의해 교회의 선들이 의미되어진다.

고대 (antiquity, ancient)

겔36:11-‘고대’ [옛 계급]=태고(최 고대) 교회(the Most Ancient Church).
이37:36-‘고대 시절’=노아의 홍수 이전.
말3:4-‘고대의 햇수들’=고대 교회.
창26:18-‘이삭은 되돌아와서 그들이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의 시절에 팟었던 우물들을 다시 팟다’=주님께서는 고대인들이 소유했던 진리들을 여실 것이다는 것.
창34:2-‘히위족 하몰의 아들’=고대 사람으로부터.
창34:4-‘세겜의 아버지 하몰’은 고대인들의 진리를 표현하고 있다.
창34:13-‘세겜’=고대인들 사이에 있는 진리, 또는 고대의 신성한 지주로부터의 진리.
이19:11-고대 교회의 진리들이 ‘고대의 왕들’에 의해 의미되어지고 있다.
왕상4:34-희미하게 이해함 같은 경우는 고대인들에게 결코 없었다. 그들의 지혜는 내면의 것들에 몰입되어 있었다. 고로 그들의 지적 능력과 자발적 능력은 함께 완전하였다…고대인의 관심사가 이러했다는 것은 오늘까지 존재하는 그들의 저술 흔적이나 솔로몬의 지혜를 듣는 것이 많은 이의 바램이었다는 구절로부터도 미루어 알 수 있다.
창47:30-‘내가 나의 조상들과 더불어 누울 것이다’=고대인들이 가졌던 삶.
창50:24-‘그분께서는 너희를 이 토지로부터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약속하신 그 토지로 올라가게 만드실 것이다’=그들은 고대인들 사이에 있었던 교회의 상태에 이르러야 할 것이다는 것.
단7:9-‘날들 가운데의 고대인’은 천적 선에 관련한 주님, 마찬가지로 태고 교회에 계셨던 주님이시다. 이 교회가 천적 교회이었고, 말씀에서는 ‘고대’라 불리워진다.
미5:2, 단7:9, 이9:6-‘날들 가운데의 고대인’이 영원으로부터의 주님이시다는 것은 미가서로부터 분명해진다.
이23:18-‘The merchandise of Tyre shall be for them that dwell before Jehovah, to eat to satiety and for a covering with what is ancient, 두로의 상품은 여호와 앞에서 거주하는 그들을 배불리 먹이기 위하여, 고대의 것으로 된 덮개를 위하여 있을 것이다.’ ‘고대’가 진짜인 것이라 말해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고대인들 사이에 진짜 진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계12:9-‘옛 뱀’이라 불리는 이유는 옛날에 있었기 때문이다.

극점에 달하다 (consummate)
종말 (consummation)

창15:16-‘아모리족의 불법이 아직은 극점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마지막 때, 즉 선이 더 이상 없는 때…
창18:21-‘나는 내게 도달한 함성 같이 극점에 도달함을 만들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나는 알 것이다’=악이 그것의 높이에 도착했는지 여부.
마24:3-‘시대의 종말’=교회의 마지막 때, 고로 그것의 끝장, 선행이 없기에 신앙도 없는 때. ‘시대’=시작부터 끝장 까지의 교회의 기간.
계10:7-‘하느님의 신비는 극점에 달할 것이다’=그때에 두 성경에서 미리 말해진 것이 나타날 것이다…‘극점에 도달해지는 것’=끝장을 가지기 위해 채워지는 것, 그다음 나타나는 것.
계15:1-‘그들 안에서 하느님의 분노가 극점에 도달되었기 때문에’=교회의 황폐함, 그리고 그다음 그것의 끝장.
계15:8-‘일곱 천사들의 일곱 재앙들이 극점에 도달할 때 까지’=황폐됨 후, 교회의 끝장이 있다.
계17:7-‘하느님의 말씀이 극점에 도달할 때까지’=그들에 관한 미리 말해진 모든 것들이 완성하기 까지. ‘극점에 도달하는 것’=가득 차는 것, 완성되는 것.
마28:20-‘시대의 종말 까지 나는 너와 함께 있겠다’=교회의 끝장 까지. 그때에 만일 그들이 주님께로 접근 않고, 그분의 명령에 따라 살지도 않는다면 그들은 주님에 의해 남겨지고, 주님에 의해 남겨지면 그들은 종교가 없는 이교도 같이 되어간다. 그때에 주님은 그분의 새 교회 속에 있을 이들과 더불어서만 계실 것이다. 이런 사항들이 ‘하느님의 말들이 완성될 때까지’, 그리고 ‘시대의 종말에서 조차’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계20:3-‘천 년이 다 채워질 때까지’=얼마 동안을 위하여.
이24:13-‘포도 수확이 완결될 때 남겨진 떨기 송이들’에 비교되어진다.
이28:22-이 나라와 더불은 교회는 깡그리 파괴되었다는 것이 ‘나는 온 땅 위에 있는 종말과 작정된 것을 군대들의 주 여호와로부터 들었다’에 의해 뜻해져 있다. ‘종말과 작정됨’=완전한 파멸.
단9:24-교회에 있는 모든 이가 교리에서는 거짓에, 생활은 악에 있을 때.
단12:7-‘극점에 달함’=가득하기 까지 채움.
계15:8-‘극점에 도달되어지는 것’=끝내지는 것, 여기서는 거절되는 것.
요19:30-이스라엘 교회와 유대 교회의 종말이 십자가 위에서 ‘다 완성되어졌다, It is consummated’라고 주님께서 외치셨을 때 완성되었다.

끝 (end)

* intend, purpose, church, consummate, evening, extreme도 참조.
창6:13-‘모든 육체의 끝이 내 앞에 왔다’=인류는 멸해질 수밖에 없다.
이54:12-‘경계(선)’=과학적이고 감각적인 것.
예25:33-‘땅의 끝으로부터 땅의 끝까지’=교회와 교회에 속하는 모든 것.
이41:5-교회의 마지막 경계(선)들이 ‘땅의 끝들’이라 불린다.
마24:13-‘끝까지 보존하는 자는 구원될 것이다’=선행 안에 있는 이들의 구원. ‘끝까지 보존하는 자’=꾀임 당하는 고통에 자신을 시달리게 하지 않은 자, 유혹을 아예 쳐다보지도, 안중에 없던 자, 고로 시험들을 산출하지 않은 자.
마24:14-교회가 이 상태에 있을 때, ‘그러면 끝이 올 것이다.’
출13:20-‘광야의 끝에서’=시험들의 첫 상태…이 상태가 광야의 끝에서 개시되었는바, ‘광야의 끝’에 의해 첫 상태가 의미된다.
신33:17-‘땅의 끝들’=교회가 있는 모든 방면에서.
계2:26-‘끝까지 간직하는 것’=죽음에 이르기 까지 (사랑과 신앙 안에서) 보존하는 것.
겔7:2-‘끝이 땅의 네 방위에서 오고 있다’=끝을 맞이한 교회의 마지막 때와 상태.
이54:12-‘끝’과 ‘기초’는 같은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자연적 인간이다, 그 이유는 거기에서 영적 인간의 선들과 진리들이 종결되기 때문이다.
단11:40-‘끝의 때’=교회의 마지막 때, 선이 없기에 진리도 없는 때.
겔7:6-‘끝이 온다, 끝이 온다.’ 여기서 ‘끝’은 교회의 끝을 의미한다.
예25:33-‘땅의 끝으로부터 그것의 끝까지’=교회의 최초되는 것으로부터 최말단까지, 고로 갖가지 종류의 거짓들.

나이 (age)
햇수 (age)
시대, 시절 (age)

* period도 참조
창21:2-‘그의 노령에’…나이=상태
마25:17-‘두 달란트를 받았던 자’=신앙을 선행에 인접되게 하는 단계, 즉 발전된 신앙의 수준까지 끌어올린 사람들.
* ‘햇수’는 10년이다(창4:24, A433항 참조 바람).
창9:12-‘대대(손손)’=영구한 것.
창15:9-교회의 마지막 때가 ‘세째 날’, ‘세째 주’, ‘세번째 달’, ‘제 삼년에’, 그리고 ‘세 살, third age’로 의미되고 있다.
말3:4-‘시절의 날들’=태고 교회.
창49:26-‘시대의 언덕들의 바램과 동등하게’=천적인 상호 사랑 쪽으로, ‘시대의 언덕들’=상호 사랑으로부터 인 것.
합3:6-‘영원의 산들’=태고 교회의 사랑으로부터의 선, ‘시대의 언덕들’=이 교회의 상호 사랑으로부터의 선. 전자는 이 교회의 내적인 것, 후자는 외적인 것.
출14:13-‘너는 영원히 더 이상 다시는 보지 않을 것이다’=한번 중단된 거짓들은 영원히 중단되어진다.
출27:21-‘영원히’=영원한 것.
출30:21-‘영원히, for ever’=영원인 것, what is eternal인 이유는 시대, age에 의해 마지막까지 포함되는 기간이 뜻해지기 때문이다. 원어의 경우에도 ‘시대’라는 표현을 수단으로 영원을 의미하기도 한다.

날 (day)

* 낮도 참조
* 말씀에서 때 자체를 말하기 위해 ‘날’을 사용하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 여섯 날들 또는 기간은 아주 많이 연속되는 인간 거듭남의 상태
* 가장 오래된 때를…예언서들에서는 ‘옛적’이라 부르고 있다. 또한 ‘영원의 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슥14:7-‘여호와께 알려진 어떤 날이 있을 것이다; 낮도, 밤도 아니다; 저녁 때에 빛이 있을 것이다’= 거듭나아져 가는 인간에 관련된 것.
막13:19-‘고뇌의 날들’=저 세상 삶에 있는 그의 비참한 상태.
창1:14-광명체들이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위해 있을 것’이라고 말해지고 있다. 보편적으로, 개별적으로도 영적인 것과 천적인 것에는 바뀜이 있다. 이 변화들이 ‘날들과 해들’의 바뀜이다; 날들의 바뀜은 아침으로부터 정오, 그리하여 저녁까지, 그리고 밤으로부터 아침 까지이다.
창3:17-‘네 생명의 모든 날들 (=네 평생)’=교회의 마지막까지 조차.
창4:3-‘날들의 끝 (=세월)’=때가 (발전하여) 나아감.
말3:4-‘영원의 날들’=태고 교회; ‘고대의 해(year)들’=고대 교회.
창5:4-‘날들’=일반적인 시간들과 상태들. 말씀에서 모든 때(time)를 날들로 부르는 경우는 아주 흔하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때의 상태는 ‘낮’에 의해 의미된다; 그리고 ‘해’가 추가될 경우, 해들의 때는 상태의 품질, 고로 특수한 측면에서의 품질을 의미한다.
창8:6-‘40일의 끝에 오게 되었다’=이전 상태의 기간, 그리고 뒤이어지는 상태의 시작…시험 이후 상태가 여기서 취급되고 있는바, 사십 밤들이 아닌 사십 낮들이라 말해지고 있다. 그 이유가 지금 선행(charity)이 나타나기 시작하기 때문, 이를 두고 말씀에서 낮에 비교되고, ‘낮’이라 불리워진다; 앞서 있는 믿음, 아직은 선행과 밀접하게 결합되지 않고 있는 바 밤에 비교되고 ‘밤’이라 불리운다.
창8:22-‘아직 땅의 모든 날들에’=모든 때; 그이유가 ‘날’=때…이기 때문.
신32:7-태고 교회와 고대 교회가 ‘영원의 날들’, 그리고 ‘세대와 세대의 해들’이다.
습1:14-‘여호와의 날’=교회의 마지막 때와 상태.
창17:23-‘똑같은 날에’=그때 당시. ‘날’=때와 상태.
창18:11-‘날들 안으로 들어가는 것’=때가 임박한 것. 말씀에서 ‘날’은 ‘해’와 일반적인 것은 비슷하다. 즉 때=상태; 그러므로 여기서 ‘날들로 들어감’=그분이 인간을 벗는 상태 안으로 들어감; 고로 때가 임박한 것.
호6:2-‘삼일 째 날’=심판, 또는 주님의 강림.
창21:8-‘그가 이삭에게서 젖을 떼이던 그 날에’=완성인 것, 그리고 성결함의 시작. ‘날’=말씀에서 상태.
이23:15-‘칠십 년들’=전체 시기, 교회 존재의 시작으로부터 교회가 종료할 때 까지, 이는 또한 한 왕의 ‘날들’이다.
시77:5-‘옛 날들’ 그리고 ‘시대들의 햇수들’=(태고와 고대) 교회들.
창24:1-‘늙은 아브라함은 날들에 왔다’=주님의 인성이 신성이 되는 상태가 임박했다…‘날’=상태.
창24:55-‘하루 또는 열 이후에 당신은 갈 것이다’=그들에게 나타나는 떠남의 상태는 충만해 있다. ‘날’=상태
창25:7-‘이것들은 아브라함이 살았던 그의 생애의 햇수의 날들이다’=신성의 본질 측면에 관련하여 표현한 주님의 상태. ‘날들과 햇수들’=상태들.
창25:24-‘그녀의 날들은 출산하도록 가득 찼다’=결과의 첫 상태. ‘날들’=상태들.
출22:30-제 어미와 칠일 동안 있어야 하는 이유는 ‘칠일 째 날’이 천적 인간을 의미하기 때문; 여덟째 날에 그것이 여호와께 드려졌던 이유는 ‘팔일 째 날=새로운 시작으로부터 계속인 것, 즉 사랑의 연속인 것을 의미하기 때문.
창26:8-‘..이었던 이유는 거기서 날들이 그에게 길어졌기 때문이다’=수용함의 상태, ‘날들’=상태들.
창26:18-‘아브라함 그의 아버지 시절’=진리 측면에 관하여 앞서는 때와 상태…‘날들’=때와 상태.
창26:32-‘그 날이 되었다’=(교리에 관한) 상태.
창26:33-‘이 날 까지 조차’=상태의 영존.
창27:2-‘나는 내 죽음의 날을 모른다’=자연계에서의 삶. ‘날’=상태…고로 ‘죽음의 날’은 생명으로 소생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창27:41-‘슬픔의 날들’=역으로 된 상태.
창27:44-‘그와 며칠을 머무르라’=연속인 것…‘날들’=때들과 상태들.
출20:12-‘토지 위에서 날들’=그때부터 주님의 왕국에 있는 선의 상태들.
마24:19-‘이들의 날들’=그 당시 교회가 있어질 상태들.
마24:22-‘날들이 짧아져 갈 것’=제거되는 상태
창29:7-‘보라 아직은 낮이 한창이다’=지금 상태는 발전하고 있다는 것.
창29:14-‘그는 날들의 한 달을 그와 더불어 거주했다’=삶의 새로운 상태…‘날들의 한 달’=새로운 상태…해, 달, 날이 단수로 언급될 경우, 그것=전체 상태, 고로 이전 상태의 끝과 이후 상태의 시작.
창29:20-‘그것들(칠 년)은 그가 그녀를 사랑하는 며칠로서 그의 눈 안에 있었다’=사랑의 상태…‘날들’= 상태들.
창29:21-‘내 날 수가 찼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갈 것이다’=지금은 새로운 상태이다. ‘날들’=상태들.
창30:14-‘르우벤은 수확하는 날들에 갔다’=사랑과 선행의 상태에 관련되는 믿음. ‘날들’=상태들.
창30:16-‘그는 자신과 야곱 사이에 삼일의 길을 놓았다’=그들의 상태는 아주 분리되었다…‘날들’=상태들.
마24:29-‘이러한 날들의 고뇌 후에 즉각적으로’=믿음 속에 있는 교회의 진리에 관련된 상태..‘날들’=상태들.
창31:22-‘삼일 째 날에 라반에게 말해졌다’=결합의 끝장. ‘삼일 째 날’=마지막인 것, 그리고 또한 완성되는 것, 고로 마지막, 그러나 시작이기도 한데 그 이유가 결합의 상태가 끝남은 새로운 상태의 시작이기 때문, 이는 분리됨의 하나이고, 이 상태가 여기서 ‘삼일 째 날’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마24:36-‘그 날과 시간에 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그 때에 있는 교회의 상태는 땅이든 천국이든 아무에게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이 구절의 ‘날과 시간’은 날과 시간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선과 진리에 관한 상태를 뜻한다.
창33:16-‘에서는 시날 쪽 그의 길로 해서 그 날 되돌아 갔다’=그때 당시 신성한 자연적 선의 상태, 이 상태에서 선과 진리가 결합되어졌다. ‘날’=상태.
창34:25-‘삼일 째가 되었다’=마지막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 것. ‘삼일 째 날’=시작부터 끝까지 완성인 것, 고로 계속인 것 역시 의미한다.
창35:3-‘내 환난의 날에 나에게 답하셨던…’=선 보다 진리를 우선시했던 상태에서. ‘날’=상태.
창35:28-‘그리고 이삭의 날들…이였다’=신성한 합리성의 지금의 상태. ‘날들’=상태들.
창35:29-‘늙고 날들이 찼다’=삶의 새로운 것…‘날들이 찼음’=충만한 상태.
창37:34-‘그는 그의 아들 때문에 많은 날들을 슬퍼했다’=파괴된 선과 진리 때문에 슬퍼하는 상태…‘날들’=상태들; 여기서 큰 슬픔의 상태…그 이유는 ‘많은 날’이라고 말해졌기 때문.
창38:12-‘날들이 곱해졌다’=상태의 변화… 그 이유가 ‘날’, ‘때’는 내적 의미에서 상태이기 때문.
암9:11-‘영원의 날들에 따라 짓는 것’=고대 시대에 교회의 상태에 따라서; 이 상태, 이 때는 말씀에서 ‘영원의 날들’, 그리고 ‘시대의 날들’, 그리고 ‘세대와 세대의 날들’이라 부르고 있다.
창39:10-‘그녀는 요셉에게 날마다 말했다’=…인 것에 관한 생각…‘날마다’ 또는 매일 마다=집요하게.
창40:4-‘그들은 감옥에 날들 동안 있었다’=그들은 거절된 상태에서 오랫동안 있었다는 것. ‘날들’=상태들; 여기서 ‘날들 동안’=오랜 시간 동안의 상태.
창40:12-‘세 어린 가지는 삼 일이다’=마지막에 까지 조차 계속되는 갈래들…‘날들’=상태들.
창40:13-‘삼일 내에’=그 당시 새로운 것…‘날들’= 상태들…이로부터 분명한 바, ‘삼일’=완성된 상태; 그런 결과 ‘삼일 내에’ 또는 ‘삼일 후에’=새로운 상태; 그 이유가 상태가 마무리된 이후 새 것이 개시되기 때문이다.
창40:18-‘삼일이다’=마지막 까지 조차.
창40:19-‘삼일 내에’=마지막 안에 있는 것.
창40:20-‘삼일째 되는 날이 왔다’=마지막 안에. ‘삼일 째 날’=마지막 상태; 그 이유가 ‘날’=상태.
창42:18-‘요셉은 삼일 째 날에 그들에게 말했다’=완성됨이 마무리지어 졌을 때, 그 자체로부터 분리된 일련의 진리들에 관하여 영적 인간 속의 천적인 것이 지각함….‘삼일 째 날’=새로운 것이 올 때의 마지막 상태.
창43:9-‘나는 모든 날들에서 당신에게 죄있을 것이다’=교회는 더 이상 어떤 선도 소유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날들에서’=영구히, 그러므로 더 이상.
요9:4-‘낮’=선으로부터의 진리; ‘밤’=악으로부터의 거짓. 교회의 처음 때가 ‘낮’에 의해 의미된다. 이때는 그들이 선 안에 있어서 진리가 받아들여졌다. ‘밤’에 의해 의미된 교회의 마지막 때가 있다. 이때 그들은 선 안에 있지 않아서 진리의 어떤 것도 받아지지 않는다.
창47:8-‘네 생애의 햇수의 날들은 얼마인가?’=영적인 것으로부터 있는 자연적 삶의 상태에 관하여. ‘날들’, 그리고 ‘햇수들’=상태들.
창47:9-‘내 머무름들의 햇수들의 날들’=삶의 연속적인 것들에 관하여. ‘날들’ 그리고 ‘햇수들’=상태들.
창47:26-‘오늘에 조차도’=영원 까지.
창47:28-‘야곱의 날들, 그의 삶의 햇수들, 칠년 그리고 일백 사십 년이었다.’=일반적 상태와 그것의 품질.
창47:29-‘이스라엘의 날은 죽어감 쪽으로 더 가까이 당겨졌다’= 거듭나기 앞서 즉각적으로 있는 상태…‘날들’=상태들.
창48:15-‘그때로부터 이 날 까지’=계속적으로. ‘오늘’ 또는 ‘이 날’=영속적이고 영원인 것.
창48:20-‘그는 이 날에 그들에게 복을 빌어주었다’= 영원히 있을 것에 대한 예견과 섭리.
창49:1-‘나는 날들의 끝에서 발생할 것을 너에게 말할 것이다’=그 당시 그들이 있었던 그 질서 안에 있는 교회의 상태의 품질…‘날들의 끝’=상태의 마지막, 이 안에 그것들은 함께 있다; 그 이유가 ‘날들’=상태들이기 때문.
창50:1,3-‘사십 일이 그에게 채워졌다’=시험들을 통하여 준비되는 상태…‘날들’=상태들.
창50:20-‘이 날에 따라 행하기 위하여’=그것은 영원으로부터의 질서에 따라 있다는 것…‘이 날에 따라서’=영원으로부터.
출2:11-‘그것들의 날들 안에서 (세월이)지났고 모세는 성장했다’=이런 상태들이 지속되었을 때, 그리고 과학적 진리들이 불어남. ‘날들’=상태들.
예12:3-‘죽일 날’=선행이 없기에 더 이상 어떤 신앙도 없어 교회가 황폐되는 때.
출2:23-‘그것들의 날들 안에서 지나왔다’=상태의 많은 변화 후에. ‘날들’=상태들.
출5:6-‘바로는 그 날 명령했다’‘=저 상태 동안 교회 속의 진리들에 침입하려는 탐욕.
출5:13-‘하루(에 마치기로) 약속된 너희 일들을 그 날에 마무리하라’=그들은 모든 상태에서 거짓들을 섬겨야 한다는 것…‘하루 안에서 하루의 할당량’=모든 상태에서.
출6:28-‘여호와께서 이집트의 땅에서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던 그 날이 왔다’=아직 지옥에 있는 이들의 근처에 있는 한편, 주님의 영적 왕국 속에 있던 이들에게 명령이 신성으로부터의 법에 의해 주어졌던 때의 교회의 상태. ‘날’=상태.
출10:22-‘삼일 동안’=충만된 상태.
출12:15-‘첫 날에서 조차 너희는 너희 집으로부터 누룩이 중지되게 만들 것이다’=선 안에는 어떤 거짓이든 없어야 한다. ‘첫 날’=그 상태의 시작.
출12:15-‘첫 날로부터 칠일 째 날 까지 조차’=거룩한 충만된 상태. ‘칠일’=거룩한 상태, 충만된 상태.
출12:16-‘일곱째 날에 너희를 위해 거룩한 집회가 있을 것이다’=고로 상태의 마지막에서. ‘일곱째 날’, 이 날은 축제의 마지막 것이었다=그로부터 마지막.
출12:19-‘칠일 동안’=이 상태의 전체 기간. ‘일곱 날’=거룩한 상태, 그리고 또한 시작부터 끝까지의 전체 기간, 또는 충분한 상태; ‘한 주간’의 의미도 같다.
출12:51-‘이 똑같은 날에 실현되었다’=주님께서 현존하시는 상태. ‘날’=때와 상태.
출13:6-‘칠일 째 날 여호와께 축제를 드려라’=주님께 대한 거룩한 예배. ‘칠일 째 날’=거룩한 상태.
출16:1-‘둘째 달 제 15일 째에’=상대적 측면에서의 상태… ‘달’=이전 상태의 끝과 뒤잇는 것, 즉 새로운 상태의 시작; ‘날’=일반적 측면에서의 상태.
출16:4-‘그들은 하루(a day)의 필요량(word)을 당일(its own day)에 수집할 것이다’=필요성은 요지부동하게.
출16:5-‘여섯째 날에 있을 것이다’=각 상태의 끝에서. ‘날’=상태.
출16:26-‘육일 동안 너희는 그것을 수집할 것이다’= 진리가 선과 결합하기 앞서 진리를 받음. ‘6일’=전투와 노동의 상태; 여기서 진리를 받는 상태, 또는 선이 진리를 통하여 획득되어지는 상태, 이런 이유가 이 상태에서 전투와 수고함이 있기 때문…
출19:1-‘이 날에’=그 때에…‘날’=상태; 그러므로, ‘이 날에’=상태가 충만해지는 그 때에.
출20:12-‘네 날들이 토지 위에서 길어질 것이다’=그 결과로서 있는 천국에서의 생명의 상태…‘네 날들’= 생명의 상태.
이13:9-‘여호와의 잔인한 날’=교회의 마지막 때. 어떤 신앙과 선행도 더 이상 있지 않는 때.
욜2:1-‘여호와의 날‘=마지막 상태, 또는 교회의 마지막 때, 즉 더 이상 어떤 진리도 있지 않고, 진리 대신에 거짓이 있을 때.
출21:21-‘만일 그가 하루 또는 이틀 계속할 것이다면’=충만함에서 조차 남아 있는 생명의 상태. ‘날’=생명의 상태; ‘이틀’=계승되고 있는 상태, 고로 충만한 상태.
눅4:25-‘엘리야(Elias)의 날들에’=그때에 말씀으로부터 있는 신성으로부터의 진리를 받는 상태…‘날들’=상태들.
출22:30-‘칠일 동안 그것은 제 어미와 있을 것이다’=진리들과 더불은 첫 상태. ‘칠일’=거듭나아지는 이들의 첫 상태; 그 이유가 ‘날들’=상태들이기 때문.
* ‘팔일 째에 너는 그것을 나에게 줄 것이다’=뒤잇는 상태의 시작, 즉 생활이 선으로부터 있을 때…‘팔일 째 날’=뒤를 잇는 상태의 시작.
출23:26-‘네 날들의 숫자를 나는 채울 것이다’= 충만된 상태에 까지. ‘날들’=생명의 상태들.
출24:16-‘육일’=진리의 상태에 있는 동안.
출29:36-‘매일’ 또는 ‘날마다’=계속적으로.
출29:37-‘칠일 동안 너는 제단 위에 화해시킬 것이다’=천국과 교회 안으로의 유입에 관련하여 충만하다는 것. ‘칠일’=충만하다는 것.
출29:38-‘매일’=모두 각각의 상태에서; 그 이유가 ‘날’은 상태를 의미하고, 날의 아침과 저녁에 어린 양의 번제가 있는바 모두 각각의 상태가 의미되어진다.
시90:12-‘우리의 날들을 세는 것’=삶의 상태들을 정리 정돈 하는 것. 그들이 정리 정돈 될 때, 즉 그들이 마감되어졌을 때 날들이 세어진다 라고 말해지는 바, 마치 이사야서 38:10의 구절 같다.
욜1:15-여기서는 주님의 강림이 취급되고 있다. 그 이유가 그것이 ‘여호와의 날’에 의해 의미되기 때문이다.
이24:21, 욜2;1, 3:14-‘여호와의 날’은 주님의 강림을 뜻하고 있다. 이 강림은 교회에 선과 진리의 어떤 잔여도 없는 곳, 그리고 주님에 관한 어떤 지식도 남지 않은 곳에서 거행되었다.
마24:22-‘이것들의 날들이 짧아지지 않으면, 구원될 어뗜 육체도 없다, 그러나 뽑힌 자 때문에 이것들의 날들은 짧아질 것이다’=교회가 그것의 때 앞서 마무리되지 않으면 그것은 깡그리 멸해질 것이다.
계2:10-‘너희들은 열흘 동안 고뇌를 가질 것이다’= 이것은 충만된 시기를 지속하는 것, 즉 그들이 거짓들 안에 남기를 계속 원하는 것…‘열흘’=충만까지의 이 상태의 기간. 그 이유가 ‘날들’=상태들이기 때문이다.
계9:15-‘한 시간, 하루, 한 달, 그리고 한 해’=계속적으로 그리고 영구적으로. 모든 시기가 똑같음.
계18:8-‘하루에’=마지막 심판의 때에, 이 심판은 ‘심판의 날’이라고도 불리우고 있다.
이19:23,24-‘날’이 두 번 언급되었는바, 이는 주님의 처음과 둘째 강림을 뜻한다.
창1장-‘저녁과 아침이 하루’에 의해 뜻해진 것…‘날’= 일반적인 때이다는 것은 성경으로부터 아주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그 이유가 이 단어가 때(time)를 뜻하기 때문이다.
눅17:22-‘그 날이 온다, 그때 너희는 사람의 아들의 날들의 하나를 보기를 갈망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그것을 보지 못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의 날들의 하나를 갈망함’=어떤 점에서 일 경우 진짜인 신성으로부터의 진리를 갈망하는 것.
계2:13-‘내 순교자이었던 안디바가 너희 사이에서 죽임을 당했던 날에’=주님의 신성한 인간을 고백하는 모두가 미움을 받은 그 때와 그 상태. ‘날’=때와 상태.
시139:16-‘당신의 책에 내 모든 날들이 씌여졌습니다, 그 안에서 내 모든 날들은 형성되어졌읍니다; 그리고 그것들 중의 하나도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생애의 모든 상태들…
시110;5-‘분노의 날’=전투의 상태.
이13:9-‘여호와의 날’=심판이 도래하는 때, 곧 교회의 마지막 끝.
시44:22-‘우리는 날마다 죽여졌다’=우리 자신 속의 것으로 해서 우리는 거짓 안으로 빠져들고 있고, 그것들로 해서 엉뚱한 쪽으로 인도된다.
이30:25-‘큰 살육의 날’=사악한 자가 정죄되고 멸해지는 마지막 심판.
이63:4-폭동을 일으킨 자들을 지옥으로 내던짐이 ‘원수 갚는 날이 내 심정 안에 있다’에서 의미되고 있다.
시137:18-‘완전한 자의 날들’=선 안에 있고, 이 선으로부터 진리 안에도 있는 이들, 또는 선행 안에 있는 이들, 이 선행으로부터 신앙 안에 있는 이들의 상태들.
이19:18-‘그 날에’=주님의 강림, 그리고 그때 주님으로부터의 과학적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의 상태들.
이13:9-‘분개함과 성냄의 분노의 잔인한 여호와의 날’=마지막 심판의 날.
이2:12-‘만군의 여호와의 날’=마지막 심판…
계6:17-‘그분의 진노의 큰 날이 오기 때문이다’=악한 자 위에 마지막 심판이…악한 자 위에 있는 마지막 심판이 ‘분개의 날’, ‘분노의 날’, ‘성남의 날’. 그리고 ‘원수 갚는 날’ 등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그러나 선한 자 위에 있는 심판은 ‘주님의 오심의 때’ 등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이34:8, 61:2-‘여호와의 원수 갚는 날’, 마찬가지로’ 그분의 성내심의 날’, 그리고 ‘그분의 분노의 날’은 마지막 심판을 의미한다.
슥14:8-‘그 날에’=그분의 강림.
요11:9-‘날’=선으로부터의 진리들 안에서 계발됨; 그리고 ‘낮의 열두 시간들’=선으로부터의 진리 속의 모든 것들.
예31:27-‘날들이 오고 있다’=주님의 강림.
신33:25-‘말씀이 영원 까지 영속될 것이다는 것이 ‘네 날들 같이 네 명성도 있을 것이다’에서 의미되고 있다.
이27:13-‘그날에 큰 나팔이 소리낼 것이다’…이러한 것들이 주님의 강림에 관하여 말해지는 것이다.
호6:2-‘세째 날에’=충분한 재구성과 회복.
말4:1-‘보라, 가마 같이 태우는 날이 온다’; 이러한 것들은 교회의 마지막 때, 즉 그때의 마지막 심판의 때에 관해 말해지는 것들이다.
계9:6-‘이런 날들’=그 당시
이17:7-‘그 날에 사람은 자기를 지은 자를 뒤돌아 쳐다 볼 것이다’…이런 사항들은 주님의 강림 그리고 그럴 당시 새로운 교회에 관해 말해졌다.
욜2:2, 습1:15-이로부터 악의 거짓들 안에 있는 자들이 멸해지는 때인 마지막 심판이 ‘구름과 어슴프레한 날’이라 불리운다.
계10:7-‘일곱 번 째 천사의 목소리의 날’=교회의 마지막 상태.
계11:3-‘일천 이백 육십 일 동안’=옛 교회의 끝 그리고 새 교회의 시작에서 조차.
계11:6-교회의 끝에서 이 계시 그리고 계시로부터 전도함이 ‘두 증인의 예언의 날’에서 뜻해지고 있다.
이27:12-‘그 날에’=주님의 강림.
겔30:3-‘구름의 날’=이해되지 않은 진리들의 결과, 즉 거짓들 위에 있는 교회의 상태.
계119-‘삼일 그리고 절반’=완전인 것, 여기서는 완전한 소멸.
계11:11-‘삼일 반 후에’=그것이 완성되었을 때; 고로 옛 교회의 끝 그리고 새 교회의 시작…’삼일 반’이라고 말해진 이유는 말씀에서 ‘날’=상태들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교회의 마지막 상태.
시89:29-‘하늘들의 날들’=그분의 신성으로부터 있는 온 천국의 상태들.
예17:11-‘생명 속에 있도록 만들어지지 않은 이런 지식들은 멸해진다는 것이 ‘그의 날들의 한가운데에서 그는 그것들을 저버린다’에서 의미되고 있다.
예30:7-‘큰 날’=주님의 강림, 그리고 그 당시 그분에 의한 심판.
호2:15-‘청년기의 날들’=고대 교회의 시대들.
암5:18-‘여호와의 날’=주님의 강림, 그들이 내내 기다렸던 메시아이신 분…그러나 주님은 지상의 어떤 왕국을 위하여 오시지 않았다, 그리고 유대 국가는 악의 거짓들 안에 있었다, 이런 것이 그 당시 명백했다, 그래서 말해진바, ‘여호와의 날을 갈망하는 이들에게 슬픔이 있다; 네게 여호와의 날이 무엇이냐? 그것은 어둠의 하나요 빛의 하나는 아니다’
예48:47-‘날들의 맨 끝’=주님의 강림.
호2:18-‘그 날에’= 주님의 강림

날마다 (daily)

* 천사들의 경우 그들이 더 내면적으로 더욱 완전해져 갈수록 더욱 덜 그들은 과거의 것, 미래의 것으로 근심하고 곰곰이 생각하지 않는다…그런고로 그들은 근심 걱정들로부터 자유하다. 이것이 하늘로부터 날마다 받은 만나로, 그리고 주님의 기도에서 날마다 필요한 분량의 빵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 ‘날마다’ 그리고 ‘오늘’=영구적인 것이다는 것은 모두 각각의 날에 실시되고 있는 제물로부터 명백하다. ‘날’, ‘날마다’, 그리고 ‘오늘’이 지닌 의미 때문에 그것들은 ‘계속적’ 또는 영구적 제물이라고 불리웠다.
* 주님의 기도에서 ‘날마다’는 매 순간들을 뜻한다. 그러므로 ‘날마다’= 연속적인 것들 안의 매 순간들이라는 공식도 도출 될런지 모른다. (천사들의) 동시에 있는 것들에서 이것은 하느님 메시아의 영광으로 바뀌는바 순간들은 어떤 깨짐이나 구분됨 없이 계속적이다. 이로부터 천사들의 지각이나 행복이 있다.

낮 (day)

* 주님에 속한 모든 것들은 ‘낮’에 비교된다, 그 이유는 이것들은 빛에 속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어울리는 모든 것들은 ‘밤’에 비교된다. 그 이유는 그것들은 ‘어둠’이기 때문이다.
창1:16-사랑은 ‘낮 동안’을 다스리는 큰 광명체이다; 사랑으로부터의 신앙은 ‘밤 동안’을 다스리는 작은 광명체이다.
창1:18-‘낮을 다스리고, 밤을 다스리고…’; ‘낮’은 선을 뜻한다; ‘밤’은 악을 뜻한다; 그러므로 선들은 낮의 일, 악들은 밤의 일이라 불리운다.
창3:8-‘낮의 숨(breath, 미묘한 분위기 aura, 공기, air)’=조금이긴 하지만 교회 안에 지각이 남아 있을 때…태고 때의 사람들은 교회의 상태들을 낮과 밤에 비교했었다; 빛 가운데 있는 동안을 낮 시간이라 불렀다…요한복음 9:4에서 주님께서는 신앙 있음의 상태를 ‘낮’이라, 신앙 없음의 상태를 밤이라 부르신다. ‘나는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낮 동안 해야만 한다; 밤이 올 때 아무도 일할 수 없다.’ 인간 거듭남의 상태들이 창세기 1장에서 ‘날들’로 불리우고 있다.
* ‘온 그 낮, 그리고 온 그 밤’=희미하던, 희미하지 않던, 해치는 이들에게 있는 지각의 모든 것이 파괴되어졌다. ‘낮’= 희미하지 않은 지각의 상태; ‘밤’= 희미한 지각의 상태; 그 이유가 낮 시간대는…총명과 지혜 속에 있는 계발과 상응하기 때문. 고로 지각과도 상응한다.
요9:4-‘나는 나를 보낸 분의 일을 낮 동안 해야만 한다’…‘낮’=선과 진리가 있는 때와 상태; ‘밤’=악과 거짓이 있는 때와 상태.
창31:40-‘낮에는 뜨거움이, 밤에는 추위가 나를 집어 삼켰다’=시험들…‘낮’=그때 당시 그들 수준에서 있는 믿음 또는 진리의 상태; 그리고 ‘밤’=믿음 또는 진리가 없는 상태.
계8:12-‘낮 삼분의 일이 비추지 않았고 밤도 마찬가지였다’=교리와 생활을 섬길 수 있는 말씀으로부터의 어떤 영적 진리, 또는 자연적 진리도 그들에게 더 이상 없게 되었다. ‘낮이 비추지 않음’은 해로부터 비침이 없다는 말이고, ‘밤도 그러하다’란 달이나 별의 비침이 없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빛은 신성한 진리를 의미해준다…말씀의 영적 의미에 있는 신성한 진리는 낮에 비추는 태양의 빛 같다; 그리고 말씀의 자연적 의미에 있는 신성한 진리는 밤을 비추는 달과 별의 빛 같다….이런 것들이 이어지는 문단에서 ‘낮’과 ‘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계14:11-‘그들은 낮과 밤 쉼이 없을 것이다’=사후 불유쾌한 것들 안에 영구히 있을 그들의 상태…‘낮과 밤’은 모든 시기를 의미한다, 그리고 영적 의미에서 모든 상태, 고로 영구적으로; 그 이유가 이 의미에서 ‘낮과 밤’=삶의 상태들이기 때문.
계20:10-‘낮과 밤 괴롭혀지는 것’=꾸준히 내면적으로 해치는 것.
계4:8-‘그들은 낮과 밤 쉬지 않고, 말하기를 거룩, 거룩, 거룩’=주님으로부터 진행되는 최고의 거룩.
미3:6-그들은 선도 진리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 ‘해가 예언자들 위에서 저물 것이다, 그리고 낮이 그들 넘어에서 캄캄해질 것이다’; ‘태양’=사랑의 선; 그리고 ‘날’=믿음 속의 진리…
시136:8-태양이 낮을 통치하게 만들어진 이유는 ‘낮’=영적 인간의 빛이기 때문, 그 이유가 이 빛은 사랑의 선으로부터 계발과 지각을 지니기 때문이다.
예33:20-‘낮의 언약’=사랑을 통한 결합; ‘밤의 언약’= 신앙을 통한 결합.
계14:11-‘그들은 낮과 밤 쉬지 않을 것이다’=악들과 악들로부터의 거짓들에 의한 해침이 계속된다…’낮과 밤’=계속적으로…’낮’은 그들의 거짓의 상태를 의미 한다; 그리고 밤은 그들의 악의 상태를 의미 한다; 그 이유가 인간은 그의 생각들에 관련하여서는 빛 안에, 고로 낮 안에 있다, 그리고 그의 애착에 관련해서는 희미함 안에, 고로 밤에 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해서 낮에는 구름이, 밤에는 불이 성막 위에 있었다…
마12:40-‘세 낮과 세 밤’=가득함.
예15:9-‘아직 낮인 동안’=말씀이 아직 인정되는 동안.
계12:10-‘낮과 밤으로 하느님 앞에서 그들을 참소하던 것’=말씀으로부터의 그것들을 가지고 말다툼질하고 쨍쨍거림을 계속하는 것…’낮들과 밤들’=계속적으로 그리고 중간의 쉼도 없는 것; ‘낮들과 밤들’=삶의 모든 상태들; ‘낮’은 마음이 명료한 생각에 있을 때의 삶의 상태; 그리고 ‘밤’은 마음 속의 생각이 흐릿할 때의 삶의 모든 상태들.

낮 동안 (by day)

출3:21-‘낮 동안은 구름 기둥 안에’=계발의 상태에 있을 때, 진리의 희미한 것에 의해 고무되었다. ‘낮 동안’, 또는 ‘낮 안에’=계발의 상태…‘낮’=명료한 지각의 상태, 또는 계발의 상태.
시91:5-‘낮 동안 날아 다니는 화살’=노골적으로 가르쳐진 거짓.
계21:25-‘그것의 문들은 낮 동안 닫히지 않을 것이다’=주님으로부터 사랑의 선으로부터의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은 새 예루살렘 안으로 꾸준히 받아들여질 것이다. ‘낮 동안’=계속적으로, 그이유는 거기에는 빛이 언제나 있기 때문.
이4:5- 너무나 많은 빛으로 상함을 당함에서 보호함이 ‘낮 동안 구름’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년 (year)
* 연(year)을 보라.

노년 (old age)

* 늙은 (old)을 보라.

느린 (slow)
미루다 (delay)

창33:14-‘나는 천천히 나아갈 것이다’=준비함을 계속하는 상태.
* ‘조금씩 조금씩’=등차적으로, 고로 느리게.
창34:18-‘그는 말을 행동하기를 지체하지 않았다’=수용하기를 갈망함.
창43:10-‘우리가 지체하지 아니했다면’=의심의 상태에서 지체함.
출22:29-‘첫 열매들…너는 지체하지마라’=선들과 진리들은 자아가 아닌 주님에 속한 것이다는 것. ‘지체 않는 것’=애착으로부터 기인하는 것.
출32:1-‘모세는 내려오는 것이 지체되었다’=천국으로부터 신성한 진리의 흐름이 없는 것.

늙다 (to grow old)
늙은 (old)
노년 (old age)

창15:15-‘너는 충분한 노년기(장수하다가)에 묻힐 것이다’=주님의 것들을 수단으로 모든 선들이 결실을 맺음.
창18:11-‘아브라함과 사라는 늙었다’=주님과 더불은 인간, 이는 중단되어야 할 것이다.
창18:12-‘늙는 것’=인간을 벗는 것. 고로 상태가 바뀌는 것.
창19:4-‘소년으로부터 노인에 까지’=최근의 거짓들과 악들로부터 확증된 거짓들과 악들 까지.
슥8:4-‘노인들’=확증된 진리들. ‘여자 노인들’=확증된 선들.
창19:31-‘우리의 아버지는 늙다’=선이 무엇인지는 더 이상 알려지지 않는다.
창21:2-‘그의 노령에’=날이 다차서 인간을 벗어야 하는 것. (그이유가) ‘노령’=인간이 벗어지고 신성이 입혀지는 때의 상태.
창24:1-‘아브라함은 나이 먹었다…’=주님의 인간이 신성으로 만들어질 때가 가까워진 상태이다는 것. (그이유가) ‘늙은’, 또는 ‘노령’=인간인 것을 벗는 것, 그리고 천국의 것을 입는 것. 그리고 주님을 서술할 경우, 신성을 입는 것(이기 때문). 그 이유는 천사들에게는 나이먹는다는 개념이 없기 때문, 그러나 그들이 자기들이 지니는 생명의 상태에 대한 생각만 있다. 그러므로 ‘노령’이 말씀에서 언급될 때, 인간과 더불어 있는 천사들은 그 인간이 자기들의 나이를 통과해 갈 때, 마지막까지 조차 그들이 지니는 생명에 관한 그들의 상태만을 생각한다, 즉 그들은 계속적으로 인간인 것을 벗고 천국의 것을 입는 것을 생각한다.
창25:8-‘충분한 노령(good old age)에, 늙고, 가득차고’=표현의 새로운 상태. ‘노령’=옛 것을 벗고, 새 것을 입는 것. 그이유는 천사들과 더불어서는 시간에 대한 생각이 없기 때문, 그러나 그 대신 그들은 상태들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즉 노령 대신 지혜의 상태에 대한 생각. 인간은 시간 속의 것들로부터 시간 없는 삶의 것들로 건너갈 때, 이른바 그는 새로운 상태를 입는다. ‘노령’에 의해 새로운 것이 의미되는데, 여기서는 새로운 표현을 의미한다.
창27:1-‘이삭은 늙었다’=새로운 상태가 다가왔다. ‘늙게 되는 것’=새로운 상태의 현존. 그이유가 말씀에서 ‘노령’=이전 상태를 벗고 새 상태를 입는 것이기 때문. 이런 이유로 ‘노령’은 마지막 나이, 즉 육체적인 것들이 중단되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그것들과 더불은 앞서 있는 나이의 사랑들이 드러나고, 내면의 것들이 설명되기 시작하는 때. 그리고 또한 천사들은 노령이라는 시간 개념에 대한 생각은 없고, 대신 새 생명에 관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의 경우 이 상태가 가까웠다는 생각.
창35:29-‘늙고 날들이 가득찬’=생명의 새로운 것.
창37:3-‘그가 노령에 얻은 아들이었기 때문에’=자기 안에 있는 자기 자신의 생명. (그이유가) ‘노령’, 내적 의미에서=노령을 뜻하지 않는다, 그이유는 내적 인간, 또는 영적 인간은 노령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육체, 또는 외적 인간이 늙을 때, 그는 생명의 새로운 것으로 건너간다. 고로 ‘노령’은 내적의미에서 생명이 의미된다.
욜2:28-‘노인들’=슬기로운 자.
이46:4-‘노령 쪽으로 그리고 회색 머리털 쪽으로’=교회가 마지막 쪽으로.
욜2:16-‘노인들’=슬기로운 자.
창44:20-‘그의 노령의 아이, 가장 어린 자’=새로이 있는 파생된 진리. ‘노령’=생명의 새로운 것.
창48:10-‘노령을 통과하여’=표현의 마지막에서 때문에. (그이유가) ‘노령’=표현의 새로운 것. 고로 이전 것의 끝.
출10:9-‘노인들’=슬기로운 자.
요21:18-베드로가 ‘늙었을’ 때=마지막에 있는 교회의 신앙
이9:15-‘머리’=악, 이와 마찬가지가 ‘늙은 자와 존귀받는 자.
요21:18-그때에 악과 거짓이 인도할 것이다는 것이 ‘네가 늙게 될 때’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애5:12-‘노인들’=선으로부터 있는 지혜. ‘장로들’=선으로부터 있는 진리들. ‘젊은 이’=총명.
겔9:6-‘노인’=선으로부터 있는 지혜.
이3:2-‘점쟁이와 노인을 제거하는 것’=모든 총명과 지혜를 제거하는 것.
이20:4-‘노인들’=지혜.
슥8:4-‘늙은 남성들과 늙은 여인들’=총명한 자와 슬기있는 자.
창49:9-‘사자 같이, 그리고 늙은 사자 같이’=사랑의 선과 그들의 힘에서 파생되는 진리. ‘늙은 사자’=선을 통하여 능력을 가진 자. 그이유가 천적 선에 있는 이들은 결코 싸우지 않는다, 그러나 선을 통하여 안전하다. 이들이 ‘늙은 사자’에 의해 의미된 이들이다.
마9:17-‘늙은(묵은) 포도주’=옛 것 속의 진리, 또는 유대 교회. ‘헌 병들’=유대 교회의 규례와 판례들.
예38:12-‘낡은 줄과 부패한 넝마’를 가지고 그들은 예레미야를 끌어 올렸다=지각되지도 아니해왔고 이해되지도 아니해왔던, 그래서 소홀시되고 거절되어왔던 글자 의미로부터의 선들과 진리들을 수단으로 변호하고 회복함. 이것들이 ‘옛 것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이51:6-‘낡아진 옷’=악의 거짓들을 통하여 파괴된 진리.
신8:4-‘네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했다’=자연적 인간이 이런 고난들을 통하여 상함을 입지 아니했다.

달 (month)

* 영적 인간 역시 ‘일곱째’ (인간)이 되어간다. 이는 천적 인간과 같은 방법으로 되는 것, 즉 ‘일곱 째 날’이 아닌 ‘일곱 째 달’이다.
창8:5-‘열 째 달’=아껴두신 것(remains) 속에 있는 진리들.
창8:13-‘달의 첫 번째에서, 시작에서’=첫 번째 끝냄.
창8:14-‘두번째 달’=거듭나기 이전 모두 각각의 상태.
* 교회의 마지막 때가 셋 째 날, ‘세 번째 달’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창29:14-‘그는 그와 함께 날들의 한 달을 거주했다’=생활의 새로운 상태.
계22:2-‘매 달 그것의 열매를 산출한다’=선을 받아들임에 관련하여 언제나 새로운 상태, 그리고 그것의 결과로 실천함.
민3:15,40-이전 상태의 끝, 그리고 뒤잇는 상태의 시작, 또는 새로운 상태가 ‘달’에 의미되어 있는 바, (레위지파의 아들들과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첫 출생의) 수를 세되 ‘한 달, 그리고 그 이상된 아들로부터’라고 명령되어졌다.
신21:11,13-‘날들의 한 달’, 여기서 명백하게=이전 상태의 끝과 새로운 것, 또는 뒤잇는 것의 시작.
창38:24-‘그후 약 석 달’=새로운 상태. (그이유가) ‘3’=완성인 것. 그리고 ‘한 달’=한 가지 상태.
출2:2-‘그녀는 석 달 동안 그를 숨겼다’=나타나지 않았던 시간이 다 찼음. ‘달’=시간과 상태.
출12:1-‘이 달이 너에게 달들의 머리로 있다’=이 상태는 모든 상태들의 근본이다. ‘달’=이전 상태의 끝과 새로운 것의 시작. 고로 새로운 상태.
출12:3-‘이 달의 십일 째에’=내면들이 개시함으로부터의 상태. ‘달’은 시작으로부터 끝까지. 고로 유월절에 의해 의미되는 해방의 전체 상태.
출13:4-‘아빕달에’=새로운 상태의 시작. ‘달’=이전 상태의 끝과 뒤잇는 것의 시작. 고로 또한 새로운 상태. ‘아빕달’=뒤잇는 모든 상태들로부터의 시작이다는 것은 진행되는 대목에서 이 달에 관한 것들로부터 명백하다. 즉 ‘이 달은 너에게 달들의 머리이다. 이는 햇수의 달들에서 너에게 첫째이다.’
출13:5-‘너는 이 달에 이 예식을 지킬 것이다’=해방됨 때문에 주님에 대한 끊이지 않는 예식. ‘달’=이전 상태의 끝과 새로운 것의 시작. 그로부터 또한 ‘달’에 의해 끊어지지 않는 것도 의미된다.
출16:1-‘둘째 달 15일에’=상대적인 상태. ‘달’은 이전 상태의 끝과 뒤잇는 것의 시작이 의미된다. 고로 새로운 상태.
출19:1-‘셋째 달에’=상태의 충만함. ‘달’=상태.
계9:5-‘다섯 달 동안 그들을 괴롭힘’=짧은 시간 동안 마비 상태를 일으키는 것. 그이유는 이것이 ‘다섯’에 의해 의미되고, 시간은 그것이 달이든 날이든 시간이 아닌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
계9:15-‘시간, 날, 달, 그리고 해’는 계속적으로 그리고 항구적으로, 또한 언제나 까지도 의미한다.
계11:2-‘42개월’에 의해 어떤 것도 남은 것이 없는 때인 마지막에 까지 조차를 의미한다.
* ‘매 달 그것의 열매를 산출한다’=주님은 인간 당사자와 더불은 진리의 모든 상태에 따라 그 사람과 더불어 선들을 생산하신다는 것. ‘달’은 진리에 관련한 인간의 생명의 상태를 의미한다.
신33:14-‘달들의 생산물들’은 주님의 영적 왕국으로부터 진행하는 모든 것들이 의미된다. 여기서 ‘달, month’=달, moon과 같다. 즉 선으로부터의 진리들. 그이유가 원어에서 둘을 위해 같은 단어를 사용하기 때문.
계13:5-‘42달’=완전히 황폐함과 극점. 고로 남아 있는 진리와 선이 아무 것도 없을 때까지 파괴함.

때 (time)
* 시간(time)을 보라. 낮도 참조

때가 참(fulness)
*가득한(full)을 보라

마지막 (last)
* 맨 마지막(last)을 보라.

맨 마지막 (last)
마지막 (last)
최후 (last)
최말단 (ultimate)
궁극 (ultimate)

* boundary, extreme, first, hair, nazarite도 참조.
창2:14-‘유브라데’=지식, 이는 최말단, 종점(terminus)이다.
창14:22-‘신바닥(발바닥)’, ‘뒤꿈치’=궁극의 자연 평면.
암5:18,20, 습1:14,15-‘여호와의 날’=교회의 마지막 때와 상태.
창19:2-‘저녁’=맨 마지막 앞의 교회의 상태, 교회에서 신앙 없음이 시작하는 때.
창19:5-‘밤에’=(신성과 거룩한 진행(proceeding)이) 더 이상 인정되지 않는 때, 마지막 때.
창23:2-‘죽는 것’, ‘죽은’, ‘죽음’, 교회를 서술할 경우,=그것의 마지막 때, 모든 신앙, 즉 선행이 만료될 때, 이때가 말씀에서 ‘밤’이라 불리운다.
창25:25-‘털’=자연 평면, 그이유는 털은 인간의 최말단들에서 바깥쪽으로 자라나기 때문.
창28:17-‘이곳은 정녕 하느님의 집이다’=질서의 최말단에 있는 주님의 왕국.
이19:13-‘이집트’에 의해 교회의 과학물, 고로 질서의 마지막인 자연적 진리가 의미되어진다.
창40:16-19-‘3일이다’=최후로.
창40:16-19-‘3일 내에’=최후에서 있는 것.
눅17:34-‘한밤중’=옛교회의 마지막 때, 이는 선행이 전혀 없는바 신앙도 전혀 없는 때이다. 또한 새로은 교회의 첫 때이기도 하다.
마26:31,34-‘밤’=옛 교회의 마지막 때, 그리고 새로운 것의 처음.
출3:16-‘방문하심’=주님의 강림, 이는 교회의 마지막 때에 앞서 있다, 이 때는 말씀에서 ‘최후 심판’이라 불린다.
출4:4-‘그것을 꼬리를 수단으로 잡아라’=감각 평면의 궁극으로부터 승강하는 힘. 그이유가 ‘뱀’=감각 평면. 고로 뱀의 꼬리=그 평면에서 가장 낮은 것, 최말단. (고로)‘뱀의 꼬리’에 의해 거짓 자체가 의미되어진다. 그이유가 이것이 최후, 또는 최고 낮은 것이기 때문.
출17:12-‘그들을 돌을 가져왔다’=질서의 최후에 있는 신성으로부터의 진리. 그이유는 이 돌이 (모세) 아래 놓여졌기 때문.
마11:7-‘갈대’=최말단에 있는 진리, 마치 글자로 있는 말씀과 같다.
마3:1,4-‘메뚜기’=궁극, 또는 가장 일반적인 진리들.
창49:1-‘나는 날들의 맨 마지막에서 발생할 것을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상태의 최말단에서 교회의 상태의 품질. 즉 일반적인 진리들과 선들이 그것들의 질서 안에 있을 때, 함께 있는 것에서 교회 상태의 품질.
시37:37-‘그이유가 인간에게 궁극은 평화이기 때문.’ ‘궁극’=평화가 있는 끝말(end).

밤 (night)

* 인간에게 어울리는 모든 것들은 ‘밤’에 비교된다, 그이유는 그들이 짙은 어둠 속에 있기 때문이다.
* 사랑으로부터의 신앙이 ‘보다 작은 발광체’이다, 이것이 밤을 지배한다.
창1:18-‘밤을 지배하는 것’…‘밤’에 의해 악이 의미되고 있다. ..악들은 밤의 일이라 불리고 있다.
요9:4-주님 역시…믿음 없음의 상태를 ‘밤’이라 부르시고 있다… 즉 ‘밤이 온다, 그때 인간은 일할 수 없다.’
창7:4-‘40일 낮과 밤’=시험의 기간, 이 안에서 ‘밤’은 근심 걱정들이다.
눅17:34-‘그 밤에 한 침대에 둘이 있을 것인데…’ 여기서 마지막 때가 ‘밤’이라 불리고 있다. 그이유는 신앙이 없기 때문, 즉 선행이 없기 때문.
창14:15-‘밤’=그늘의 상태. 즉 외관적 선과 진리인지 또는 순수하게 선과 진리인지 알지 못할 때를 말한다.
창19:5-‘밤에’=마지막 때, 즉 (주님의 신성한 인간과 거룩한 조치)가 더 이상 인정되지 않을 때; (그이유가) ‘밤’=어둠의 때, 즉 빛에 속한 것들이 더 이상 보여지지 않을 때. 천사들은 ‘밤에’ 오지 않았다, 그들은 ‘저녁에’ 왔다. 그러나 롯과 이야기한 소돔 사람은 ‘밤에’ 왔다. 말씀에서 ‘밤’=진리의 빛이 더 이상 있지 않고 거짓과 악 만이 있을 때와 상태; 고로 마지막 때와 상태, 즉 심판이 있는 때.
요11:10-‘만일 누군가가 밤에 걷는다면, 그는 걸려 넘어진다’ ‘밤’=악으로부터의 거짓…그이유가 진리의 모든 빛이 선으로부터 있듯, 거짓의 모든 밤은 악으로부터 있기 때문이다.
출11:4-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이집트를 빠져나갈 때, 그들은 ‘한밤에’ 나가도록 명령받았는데, 그이유는 그 시각이 선과 진리가 황폐된 교회, 악과 거짓밖에 지배하는 것이 없는 교회를 의미하기 때문.
출12:12,29,30,42-‘한밤에 이집트의 첫 출생들이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선과 진리 안에 있는 이들이…거짓들과 악들 사이에서 방위되었는바 말해지기를, 이 밤은 이집트인들과는 달리 ‘여호와께서 지키시는 밤’이라 불려졌다.
창19:33-‘그 밤에’ 모든 것들이 이렇게 큰 희미함 안에 있을 때.
창26:24-‘여호와께서 그 밤에 그에게 나타나셨다’= 이 희미함에 관한 주님의 지각…‘밤’=그늘의 상태, 또는 희미한 것. 이 희미함에 의해 말씀의 글자 의미가 의미되었다.
시104:20-‘당신은 어둠을 배치하시고 그것이 밤이 되고 있다’=희미함의 상태가 완화되는 것; 그이유가 천사들은 상태의 변화들을 가지기 때문…
창31:24-‘하느님께서 밤에…꿈에서 라반에게 오셨다’=자체로만 남겨져 있을 경우 이 선이 지니는 희미한 지각…‘밤에 꿈에서’=희미한 것.
창31:40-‘추위가 밤에 (나를 엄습했다)’=시험들…‘밤’=믿음 또는 진리가 없는 상태.
마25:6-‘한밤에 소리가 만들어졌다’=옛 교회의 마지막과 새로운 교회의 처음의 때. 말씀에서 교회의 상태를 취급할 때, 이 때를 ‘밤’이라 부르고 있다.
창40:5-‘각자 밤에 꿈을 꾸었다’=희미함 안에서 그들에게 있었던 사건에 관하여… ‘밤’=희미한 것. 영적 의미에서 ‘밤’=악으로부터의 거짓이 야기시킨 그늘의 상태; 고로 마음의 희미한 것 역시 의미한다. 세상에서의 밤에 있는 희미함은 자연적인 희미함이나, 다른 삶에서 밤 속에 있는 희미함은 영적인 희미함이고 이는 천국의 태양이 없는 탓에 생긴다.
창46:2-‘하느님께서 밤의 환상들에서 이스라엘에게 이야기하셨다’=희미한 계시…그이유가 ‘밤’=희미한 것; 그리고 영적 의미에서의 희미함은 진리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또한 말씀에서 ‘밤’=악으로부터의 거짓; 그이유가 악으로부터 거짓 안에 있는 이들은 밤의 희미함에 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지옥에 있는 모든 이들은 밤에 있다 라고 말해진다.
이21:11,12-‘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밤이 어찌되었느냐?…아침이 온다, 밤 또한 온다’ ‘아침’=주님의 강림, 이는 땅 위에 어떤 영적 진리도 남아 있지 않았을 때, 즉 밤이였을 때였다.
슥14:7-‘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시각이 주님이 태어나신 때이다; 그이유가 그때 당시 저녁이었기 때문이다. 즉 교회 표현의 마지막 때였다.
이15:1-황폐됨이 ‘밤에’ 거행된다 라고 말해지고 있다, 그 이유는 그 당시 진리가 희미함 안에 있어 거짓이 들어 가기 때문이다.
애1:2-여기서는 진리의 황폐를 다루고 있다; ‘밤’=거짓
시101:5-‘밤의 공포’=지옥으로부터 있는 악의 거짓들.
계21:25, 22:5-‘거기에 밤이 없다’=거짓이 없다.
단7:2,7, 슥1:9-‘밤의 환상들’=희미한 계시.
출10:13-‘온 이 밤’=희미한 지각의 상태.
출11:4-‘밤의 중간쯤에서’=완전 황폐함 이였을 때. ‘밤의 중간’=가장 짙은 어둠이 있을 때, 즉 단지 거짓만이 있을 때; 그이유가 ‘밤’=거짓의 상태; 그리고 그것의 ‘중간’=그것의 높이.
출12:8-‘그 밤에’=악한 자가 지옥에 떨어짐이 있을 때; (그이유가) ‘밤’=선과 진리가 황폐해짐의 상태; 고로 지옥에 떨어짐…
출12:12-‘그 밤에’=그들의 악한 상태; (그이유가) ‘밤’=악과 거짓밖에 더 다른 것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로부터 ‘밤’은 교회의 마지막 때 역시 의미한다…또한 ‘밤’은 완전 황폐함, 마찬가지로 지옥에 떨어짐도 의미한다. 이런 것들로부터 명백한바, 지옥에 있는 이들의 상태는 ‘밤’이라 불려진다는 것이다. 이들의 어둠은 짙은 어둠은 아니다, 그이유가 그들은 서로를 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천국들 안에 있는 진리와 선의 상태가 ‘낮’이라 불리운데 반해 악과 거짓의 상태가 ‘밤’이라 불리울 때, 그로부터 천국으로부터의 어떤 빛도 스며듬이 없을 때 거기는 짙은 어둠이 있다.
출12:29-‘밤의 중간이 되었다’=악으로부터의 거짓만 있는 상태; (그이유가) ‘밤의 중간’=완전 황폐; 즉 모든 선과 진리의 상실, 그러므로 악으로부터의 거짓만 있는 상태.
출12:30-‘바로는 그 밤에 일어났다’=그들이 악으로부터의 거짓 안으로 놓여졌을 때 지옥에 떨어진 자들은 영적 교회의 것들에 혐오와 반감을 통각할 것이다는 것; (그이유가) ‘밤’=악으로부터의 거짓만 있는 상태, 고로 저주된 상태.
출12;42-‘이 밤은 여호와에게 경계의 밤’=진리와 선 안에 있는 이들과 더불은 주님의 현존, 그리고 악 안에, 이로부터 거짓 안에 있는 이들과 더불은 주님의 현존…이 뒤를 이어 있는 주님의 현존이…‘밤에는 불, 낮에는 구름 기둥’에서 묘사되고 있다.
출13:21-‘그리고 밤에는 그들을 비추기 위해 불기둥’=희미함의 상태 일 때, 선으로부터의 예증에 의해 격려함이 있다.
출14:20-‘밤을 비추었다’=저 세계에서 선으로부터 진리의 예증.
이21장-‘밤’=단지 악으로부터의 거짓에 있는 그 당시 인간과 교회의 상태.
예6:5-여기서 ‘저녁’과 ‘밤’=교회의 마지막 때들, 즉 사랑과 믿음의 모든 것들이 파괴되어졌었을 때.
계7:15-‘그들은 낮과 밤으로 그분을 섬긴다’=그들은 자기들이 그분으로부터 받는…진리들에 따라 꾸준히, 성심있게 산다는 것.
계8:12-‘낮은 그것의 삼분의 일을 비추지 않을 것, 밤도 이와 마찬가지이다’=그들과 더불어 말씀으로부터 교리와 생활을 위해 소용될 수 있는 진리는 영적 진리이든 자연적 진리이든 더 이상 없다는 것….‘밤이 비추지 않는다’란 달이나 별로부터 빛이 없다는 말인바…말씀의 자연적 의미에 있는 신성한 진리는 밤에 있는 달이나 별과 같다…
계20:10-‘낮과 밤으로 괴로워함’이란 줄곳 내면적으로 침해당함을 의미한다.
계21:25-‘거기에 밤이 없을 것이다’=믿음 속에 거짓이 없음; 그이유가 ‘밤’은 빛에 반대인 것을 뜻하는바…이로부터 ‘밤’은 주님으로부터의 사랑의 선으로부터 있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고로 이것이 믿음의 거짓이다.
시16:7-‘밤에는 내 고삐들이 나를 징계한다’. ‘밤’=거짓이 솟구처 오를 때의 인간의 상태.
마25장-‘한밤, 소리가 일어났을 때’=마지막 심판; 그리고 일반적 측면에서 인간 삶의 마지막, 즉 그가 천국이든 지옥이든 어느 쪽으로 가게 판결될 때.
계4:8-‘낮과 밤 쉬지 않고 있다’ 신성한 섭리와 주님의 안내에 관해서 말해질 때,…=보편적으로 그리고 영구적으로…
요21:3-그들은 온 밤을 노동했다, 그리고 얻은 것은 없었다‘=자아로부터 결과되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 오로지 주님으로부터서만.
시139:12-자연적 빛이 ‘어둠’과 ‘밤’에 의해 의미된다.
미3:6-‘너에게 환상을 위해서는 밤이다…’=진리를 이해함 대신 거짓을 이해함만이 있을 것이다.
시104:20-‘어둠’과 ‘밤’이 자연적 인간의 루멘(광도, lumen)을 의미하고 있다, 이는 영적 인간의 빛에 관계적으로 볼 때 밤 같다….이는 ‘당신이 밤을 배치하고 그것은 밤일런지 모른다’의 의미에서 명백하다.
예6:5-비밀리에 진리들을 파괴하려 애씀이 ‘일어나라, 밤에 올라가자’에서 의미되고 있다.
이26:9-‘내 혼을 가지고 나는 밤에 당신을 원했다’=진리의 빛 안에 아직 있지 않은 생활.

밤을 보냄 (to pass night)

창19:2-‘우리는 거리에서 밤을 보낼 것’=말하자면 그분은 진리로부터 기꺼이 심판하시겠다는 것…여기서의 ‘밤을 보냄’=심판하는 것.
창24:23-‘우리가 밤을 보낼 …방이 있는가?’=남아 있음의 상태.
창24:54-‘그들은 밤을 보냈다’=거기서의 평화; (그이유가 ‘밤을 보내는 것’은 쉼이기 때문; 그리고 내적 의미에서 평화를 가지는 것.
이21:13-‘숲에서 밤을 보내는 것’=선에 관련하여 황폐되는 것.
창28:11-‘그들은 거기서 밤을 보냈다, 그이유는 태양이 저물었기 때문’=희미한 것 안에서의 생활; (그이유가) ‘밤’=그늘의 상태; 고로 ‘밤을 보내는 것’= 그 상태에서 사는 것.
창31:54-‘그들은 산에서 밤을 보냈다’=고요함…계약을 맺은 이들이 한 장소에서 밤을 보낸다는 것은 의식적이었다, 그이유는 한 장소에서 밤을 보냄은 서로에게 더 이상 적대감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 내적 의미에서, 고요와 평화.
창32:13-‘그는 그 밤에 거기서 밤을 보냈다’=그 희미한 상태에서…
신21:23-그가 ‘나무 위에서 밤을 보내게 하지 말라’는 것=영구적인 거절; 그이유가 저녁에 날이 새로이 시작되기 때문.
출23:18-‘내 축제 속의 지방(fat)은 아침에 이르도록 밤을 보내게 하지 말 것’=예배의 선은 자아로부터가 아니다는 것, 그러나 언제나 주님으로부터 새로이 있다는 것; (그이유가) ‘밤을 보내게 하는 것’=자아로부터 있는 것; 그이유가 말씀에서 ‘밤’에 의해 악과 거짓이 의미되기 때문; 고로 자아 역시 의미한다.
출34:25-‘유월절 축제의 희생 제물은 아침에 이르도록 밤을 보내게 하지 말 것’=예배의 선은 자아로부터가 아니고 오직 주님으로부터 새로이 있다는 것.
이1:21-‘심판이 충만하고, 정의가 밤을 지나갔다’=교리 속의 진리와 사랑의 선이 풍부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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