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상태와 상응

성경의
상태와 상응

Dictionary
of
state
in
Bible
by
Correspondence

성경 약자표

창 창세기 이 이사야 학 학개 마 마태복음
출 출애굽기 예 예레미야 슥 스가랴 막 마가복음
레 레위기 겔 에스겔 말 말라기 눅 누가복음
민 민수기 단 다니엘 요 요한복음
신 신명기 호 호세아 계 요한계시록
여 여호수아 욜 요엘
사 사사기 암 아모스
삼상 사무엘상 옵 오바댜
삼하 사무엘하 욘 요나
왕상 열왕기상 미 미가
왕하 열왕기하 나 나흠
욥 욥기 합 하박국
시 시편 습 스바냐

차례

가장 좋은 (best)-가짜의 (spurious)-강력한 (mighty)-…같이(같은) (as)-거룩한 (holy)-
경이 (prodigy)-계속되는 (continual)-고난 (tribulation)-고귀한 (noble)-고뇌 (anguish)-
고독한 (solitary)-고생 (trouble)-고약한 냄새가 나다 (stink)-고집 센 (refractory)-고통 (affliction)-고함치다 (roar)-공적 (merit)-공포 (terror), 겁나게 하다 (terrify)-관대함 (clemency)-구원 (salvation, saving)-굳건한 (firm)-귀중한 (precious)-그렇게 (so)-그루터기 (stock, stump)-그리고 (and)-극점에 달하다 (consummate), 종말 (consummation)-
근심 (anxiety)-기념의 (memorial)-기억 (memory)-기억하고 있다 (remember)-기울다 (incline)-기적 (miracle)-기품있는 (elegant)-기회 (chance)-깨끗함 (cleanness)-께느른한 (languid)-꼬부라진 (crooked)-꾸며낸 일 (figment)-꾸밈 (ornament)-꿈 (dream)
날랜 (swift)-날카로운 (sharp, acute)-날마다 (daily)-낮 동안 (by day)-낯선 (strange)
다발 (bundle)-다시 태어남 (born again), 재출생 (rebirth), 재생 (rebirth)-단단한 (hard)-
단순한 (simple)-달콤한 (sweet)-더껑이 (scum), 찌끼 (froth), 거품 (foam)-더럼 안 탄 (unspot, immaculate)-(…와)더불어 (with)-드문 (rare)
라가 (raca)
매끄러운 (smooth)-모든 (all)-무거운 (heavy)-무딘 (dull)-물을 대줌 (watered)-물의 흐름 (watercourse)-미적지근한 (lukewarm)
바라다 (desire)-바람직한 (desirable)-반점 (spot)-반점이 있는 (spotted) -반점있는(speckled)-번갈음 (alteration)-부끄러이 여김 (ashamed, shame)-부드러움 (tenderness)-부활 (resurrection), 다시 일어남 (rise again)-불결한 (unclean)-불모 (barren, 열매를 못맺음)-불성실하게 (perfidously)-불성실한 (unfaithful)-불쌍히 여김 (cpmpassion, pity)-불행 (misery)-비참한 (misery)-비스듬한 (obliquity)-비슷함 (likeness)-비어 있음(emptiness)-비열한 (vile)-비참함 (calamity, wretched)
사랑하는 (beloved)-사악함 (wickedness)-새기다 (grave)-새긴 (graven)-새로운 (new)-
새로(이) (anew)-생동하게하다 (vivify)-생생한 (vivid)-섬뜩 놀람 (consternation)-
속이 비지 않은 (solid)-속이 빈 (hollow)-순수한 (pure), 순수해지게 하다 (purify)-신중한 (prudent)-쌓인 것 (pile)-쓴 (bitter), 쓴맛 (bitterness)
(…이) 아니다 (not, nay)-아름다운 (beautiful)-아름다움 (beauty)-아이가 없는 (childless)
아이를 못 낳음 (barren)-아픈 (pain), 슬픔 (grief)-(…에)앞서다 (percede)-야생 (wild)-야윈 (thin), 엷은 (thin)-야윈 (lean)-양쪽의 (both)-어두운 (obscure),불명료한 (obscure)-어리석은 (foolish)–여분의 (superfluous)-연하쪽의 (younger)-열정적인 (zealous)-완전한 (perfect)-완화되지 않는 (untempered)
-우세하다 (prevail)-우수함 (excellence)-원시의 (primitive)-인내 (patience)-있다 (be, being)
자디 잔 (minute)-자만 (pride), 거만한 (proud)-자비 (mercy)-불쌍히 여김 (compassion)
-자유 (free), 자유로이 (freely)-잔인한 (cruel)-정사각 (foursqure)-정사각형 (square)-좁은 (strait), 좁은 (narrow), 괴롭히다 (straiten)-주조된 (molten)-지옥 (hell)-충실한 (faithful)-치명적인 (mortal)-치욕 (reproach), 불명예 (ignominy)-침묵 (silence)-침수 (submersion)
큰 (great), 위대한 (great)
태양의 (solar)
평화 (peace), 평안 (peace), 평강 (peace), 화평 (peace)-피난 (refuge)
허약함 (infirmity)-헛된 (vain), 헛됨 (vanity)-호의 (good-will)-혼 (soul)-홀로 (alone)
-화해 (reconciliation)-환상 (vision)-황폐 (desolation)-황폐 시킴(desolation), 황폐한 (desolate)-황폐함 (laying waste)-흠이 없음 (blamelessness)-희게 반짝거리다 (glitter white)

가장 좋은 (best)

창47:6-‘토지의 가장 좋은 곳에서 네 아버지와 형제들이 살게 하라’=그들은 과학물 한가운데에서 살리라는 것. ‘가장 좋은 토지’=자연적 마음의 가장 안쪽, 거기에 과학물이 있다….‘가장 좋은=가장 안쪽인 이유, 시야 아래 직접적으로 간직되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그이유가 눈은 가장 기뻐하고 애착이 가는 것에 방향을 잡고 있기 때문. 이것이 가장 안쪽인 이유는 그것은 마음의 중심에 있기 때문, 고로 눈 앞에서 이것은 가장 큰 빛에 있는다.
출22:4-‘그는 자기 소유 들판의 가장 좋은 것, 자기 소유 포도원의 가장 좋은 것으로 갚을 것이다’=되돌림은 아직 온전해 있는 선들과 진리들로부터…’가장 좋은’이라 불리는 것, 이는 소실된 후 여전히 온전해 있다.

가짜의 (spurious)

신23:2-‘사생아는 회중에 들어오지 못한다’
사9:7-15-‘가시나무, the thorn’=가짜 선

강력한 (mighty)

* prevail, force, strength, strong 도 참조.
창49:24-‘그는 자기 활의 강력함 아래 앉을 것이다’=그는 교리 속의 싸우는 진리에 의해 안전해 있다. 교리의 강력함은 진리이다.
겔30:23-‘강력한(the mighty) 것과 부러진 것’=상해를 받지 않아 저항하는 것들, 그리고 상해를 당해 저항하지 못하는 것들.
이25:3-‘강한 나라들의 성읍들’=교리의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 그리고 그것들을 통하여 사랑의 선들에 있는 이들. 그리고 모든 영적 힘이 거기로부터 있기 때문에, 그들은 ‘강력한 나라들’이라 불린다.

…같이(같은) (as)

* 주님은…또 다른 사람 같이 태어나셨다…
* 주님은 평범한 여느 한 사람으로서 가르쳐졌다…
창25:31-‘오늘 같이 네 생득권을 나에게 팔라’=진리 측면인 교리가 시간 차원에서는 우선 순위인 듯 비쳐진다는 것. ‘오늘로서, as today’=시간 차원에서, as to time…그리고 ‘오늘’=영속적인 것, 영원한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오늘’이 지닌 이 의미가 표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오늘 같이’라고 말해지고 있다. 따라서 이 구절이 사용한 ;…로서, as’의 뜻은 시간 차원에서는 (생득권이 에서로부터 야곱에게 팔렸으므로 생득권이 야곱의 것으로) 영원히 있는 듯하나, (겉으로만) 그럴 뿐이다는 것.
*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 like of God.’이 되는 수단은 자신에게 있는 이런 것들이 마치 자신으로부터인 것 같이 여기는 느낌이다. 그가 이렇게 느끼는 것은 그가 지식을 지니고 태어나지 않고 그것을 받기 때문, 그리고 그가 받은 것은 마치 자신으로부터인 것 같이 그에게 나타나서 이다. 고로 느끼는 것, 역시 주님에 의해 인간에게 주어져 있는데, 이는 인간 당사자로 하여금 뜻하고 생각하고 알고, 이해하고, 그리고 그런 것이 자신으로부터인 것 같이 있게 함으로 그는 짐승이 아닌 사람인바, 그는 지식을 받고, 그 지식을 총명으로 한 단계 높이고, 지혜로까지 드높이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리하여 주님은 인간을 그분 자신에게 결합되게, 그리고 인간은 자신을 주님에게 결합되게 할 수 있다.
계9:7-‘그들의 얼굴들은 사람들의 얼굴 같이 있었다’=그것들은 진리에 애착함들 같이 자신들에게 나타났다는 것…’얼굴’은 진리에 애착함을 의미하나, 여기서는 메뚜기에 관련해 말해지므로 그것들은 자신들에게 ‘사람의 얼굴 같이’ 즉 진리에 애착함 같이 나타났다고 씌여지고 있다.

거룩한 (holy)

마24:15-‘거룩한 장소에 서있다’=선과 진리에 관한 모든 것이 황폐해짐. ‘거룩한 장소’=사랑과 신앙의 상태…이 상태의 거룩한 것은 사랑의 선과 이 선에서 파생되는 신앙으로부터의 진리이다. 말씀에서 이외의 것은 뜻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것들이 거룩 그 자체, 신성하심이신 주님으로부터 있기 때문.
출3:5-‘거룩함으로부터의 지면’=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거룩한 것. 고로 그것=그분의 신성한 인간으로부터 진행하는 거룩의 상태.
출15:11-‘거룩함에서 누가 당신 같으리이까?’=그분으로부터 거룩한 모든 것이 있다는 것.
출15:13-‘당신의 거룩함의 거주지’=신성이 있는 천국. 그 이유가 ‘거룩함’은 신성한 진리를 서술하기 때문…(이것이) 천국을 만든다.
신33:8-‘거룩한 인간’=주님…
출19:6-‘거룩한 나라’=영적 왕국…‘거룩한’은 선으로부터의 진리를 서술하고 있다. 이로부터 ‘거룩한 나라’=진리가 선으로부터 있음.
출22:31-‘너는 나에게 거룩함으로부터의 사람들일 것이다’=그 당시 선으로부터 있는 생명의 상태…‘거룩함으로부터의 사람들’=주님에 의해 인도어지는 이들. 그 이유가 그분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이 거룩 자체이기 때문, 이로부터 그것을 신앙 안에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받는 그들이 거룩한 사람들, 성인들, saints로 불리워진다.
출26:33-‘베일로 너를 위하여 거룩한 것과 거룩한 것들로부터의 거룩한 것 사이를 구별하게 하라’=영적인 선 사이를…그리고 천적인 선…‘거룩한 것’=중간 천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선. ‘거룩한 것들로부터의 거룩한 것’=가장 깊은 천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선.
출26:34-‘거룩함들로부터의 거룩함’=주님으로부터 사랑의 선이 있는 곳.
출28:29-‘그가 거룩함 안으로 들어감에서’=모든 예배에서…제단에서 있는 그의 모든 행정, 그리고 성막에서는 ‘거룩함’이라 불렀다
출28:36-‘여호와에게 거룩함’=주님의 신성한 인간, 그리고 그로부터 있는 천적, 영적 모든 선. ‘거룩함’=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 고로 신성한 인간에 관련한 주님, 이 신성한 인간으로부터 천국들에 신성한 모든 것이 있는다. 이로부터 천적인 선, 영적인 선은 거룩하다. 그 이유가 주님만이 거룩하시기 때문. 그리고 그분으로부터 진행하는 것이 천국들과 땅에 있는 유일한 거룩이다.
출28:36-‘여호와께 거룩함’이 금판에 새겨진 이유는 이렇게 함으로 해서 그것이 전체 백성의 시야에 있어지기 때문. 그리하여 예배에서 그들의 마음에 거룩인 것이 있었다. 이 거룩은 보편적 천국에 있는 거룩과 상응한다. 이는 신성한 인간이다. 그 이유가 이것이 천국을 만들기 때문…그러므로 이 가장 거룩한 것이 그들의 마음에서 보편적으로 군림할 때, 예배의 모든 것이 성스러워지게 된다.
출29:21-‘그와 그의 의복은 거룩하다, 그리고 그의 아들과 그의 아들의 의복도 거룩하다’=천국들 안에 있는 신성한 모든 것들. ‘거룩’=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것, 그 이유는 그분만이 유일한 거룩이기 때문. 고로 그것=신성한 것.
출29:31-‘너는 거룩한 장소에서 고기를 삶을 것이다’=주님으로부터 예증 안에서 교리의 진리들을 통하여 생활의 사용들을 위해 선을 준비함….‘거룩한 장소에서’=신성한 예증으로부터. 그 이유가 ‘거룩한 장소’=주님의 신성이 현존하는 곳.
출29:37-‘제단은 거룩함으로부터의 거룩일 것이다’=천적 왕국, 거기서 주님은 사랑의 선에서 현존하신다.
출30:10-‘이것은 여호와께 거룩들로부터의 거룩일 것이다’=신성한 천적 평면으로부터이기 때문…
출30:37-‘여호와께 거룩한 그것이 너에게 있을 것이다’=예배는 신성을 사랑함에 응용되어져야 한다는 것.
출31:11-‘거룩인 것을 위해’=표현 교회를 위해.
출31:14-‘이는 너에게 거룩이기 때문에’=그러므로 천국을 만드는 모든 선과 진리. ‘거룩’=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모든 것. 고로 사랑의 선과 믿음의 진리.
출31:15-‘여호와께 거룩한’=신성인 것=그분의 신성한 인간, 그리고 그분으로부터 진행하는 모든 것.
계3:7-‘거룩이신 그분, 참이신 그분’=신성한 진리에 관한 주님…그 이유는 주님은 그분의 신성한 진리로부터 ‘거룩’이라 불리시기 때문…그러므로 이는 그분의 진행하는 신성, 이는 신성한 진리, ‘거룩한 영, 성령’이라 불리워진다.
계5:8-‘거룩한 사람들’=영적인 선들과 진리들에 있는 이들.
계8:3-‘거룩한 사람들’=영적 왕국에 있는 이들.
계11:18-‘거룩한 사람들’=이런 것들에 따라 생활하는 이들.
계13:7-‘거룩한 사람들’=말씀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신성한 진리들에 있는 이들, 그러므로 추상적으로 인물들로부터, 신성한 진리들. (=선으로부터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
계8:10-‘여기 거룩한 사람들의 신앙과 인내가 있다’=주님의 새 교회의 사람은 그의 생명과 신앙에 관련하여 그것들로부터의 시험들을 수단으로 탐구되어진다는 것…‘거룩한 사람들’=주님의 새 교회 속에 있는 이들. 특별히 신성한 진리 안에 있는 이들 (=그분으로부터 영적으로 되어간 이들의 시험들).
계15:3-‘거룩한 사람들의 왕’=그분으로부터 천국과 교회에 있는 신성한 진리. 그이유가 ‘거룩한 사람들’에 의해 주님으로부터 신성한 진리들에 있는 이들이 의미되기 때문.
계15:4-‘당신 만이 거룩하시다’=그분은 말씀, 진리, 계몽해주심이시다 (=선 자체, 진리 자체).
계16:6-‘그들은 거룩한 사람들과 예언자들의 피를 뿌렸다’=말씀으로부터의 모든 교리적인 진리들을 곡해한 믿음 만으로의 교리…‘거룩한 사람들’=말씀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신성한 진리들에 있는 교회 속의 사람들.
계17:6-‘여인은 거룩한 사람들의 피로 술취했다’=주님과 말씀과 교회 속의 선과 진리에 섞음질하고 모독함으로부터 발광하는 광신적 신앙….‘거룩한 사람들’=말씀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신성한 진리들에 있는 이들, 그리고 추상적으로, 주님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 말씀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 그러므로 교회로부터의 신성한 진리.
계18:20-‘네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아’=말씀으로부터 선들과 진리들에 있는 교인들.
계19:8-‘고운 모시옷은 거룩한 사람들의 정의이다’=말씀으로부터의 진리들을 수단으로 주님의 교회 속에 있는 이들은 생활의 선을 가지고 있다. ‘거룩한 사람들’=주님의 교회 속에 있는 이들.
계20:6-‘..그는 거룩하고 복되다’=주님과의 결합을 수단으로 신성한 진리들에 예증을 가진 그는 ‘거룩’이라고 말해진다.
계20:9-‘거룩한 사람들의 진영을 에워싸는 것’=들러붙어 새 교회의 모든 것들을 파괴하기를 원하는 것.
계21:2-새 예루살렘이 주님으로부터 ‘거룩’이라고 말해진다. 그분 만이 거룩이시다. 그리고 말씀으로부터 주님으로부터 그것 안에 있는 신성한 진리들로부터.
계22:11-‘거룩한 그는 계속 거룩히 있으라’=진리들에 있는 그는 진리들 안에 더욱 더 있을 것이다.
계5:8-‘거룩한 사람들의 기도’=영적 선으로부터의 예배. ‘거룩한 사람들’=영적인 것들. 그 이유는 그들이 영적 왕국에 있는 ‘거룩한 사람들’이라 불리기 때문…그러나 내적 의미에서 ‘거룩한 사람들’은 거룩한 사람이 아니라 거룩한 것을 뜻한다. 그리고 ‘거룩한’에 의해 그분의 영적 왕국을 구성하는 신성한 진리를 뜻한다. 그러므로 거룩한 것들은 영적인 것들을 뜻한다.
시85:8-‘여호와께서는 그분의 거룩한 사람들에게 평화를 말하실 것이다’=그분은 그들을 가르치시고 그들에 있는 선과 진리의 결합을 통하여 그분 자신과의 결합을 주실 것이다…‘거룩한 사람들’=진리들을 통하여 선 안에 있는 이들.
단9:24-‘거룩한 것들로부터의 거룩한 것을 기름붓는 것’=주님의 신성한 인간은 여호와, 또는 신성한 사랑의 신성한 선이시다. (=신성 자체와의 합일을 수단으로 그분의 인간이 신성화하심. 또한 그분을 사랑함으로부터 있는 모든 예배)
계6:10-‘거룩하고 참되다’=정의이신 분.
계8:3-‘모든 거룩한 사람들’=진리들을 통하여 선에 있는 이들, 고로 영적 선에 있는 이들. (그리고 악으로부터 분리되어져 구원된 이들)
이64:11-‘거룩함의 집’=천적 교회.
단7:25-‘가장 높은 자들로부터의 거룩한 사람들’=신성한 진리들.
단12:7-‘거룩함의 백성’=신성한 진리들에 있는 교회의 사람들, 그리고 추상적으로 신성한 진리들.
시65:4-‘성전의 거룩함으로 만족하는 것’=신성한 진리로부터 총명에 있는 것…‘거룩’은 영적 선을 서술한다. 이는 진리이다.
이27:13-‘거룩함의 산’=생활의 선에 관련한 교회.
시132:9-‘너희 거룩한 사람들로 환호하게 하라’=영적 선에 있는 이들과 더불은 선행으로부터의 예배. 그이유가 그들은 영적 왕국에 있는 거룩한 사람들이라 불리기 때문. (=진리들에 있는 이들, 고로 추상적으로 천국과 교회의 선들과 진리들)
시15:1-‘거룩함의 산’, 이를 수단으로 예루살렘이 뜻해진다=이 선으로부터의 교리 속의 진리들에 관련한 교회.
마27:53-시온에 의해, 여기서는 ‘거룩한 성’에 의해 뜻해지고, 천국을 표현했다, 거기는 주님이 그분의 신성한 진리를 수단으로 지배하신다.
계16:5-‘그리고 거룩이다’=신성한 진리에 관하여.
시15:1-‘그분의 거룩함의 장소’는 성전이 있었던 예루살렘을 뜻한다, 이 성을 수단으로 교리에 관한 교회가 의미된다.

경이 (prodigy)

* 불가사의한 조짐
욜3:3-‘나는 하늘들에서 경이들을 줄 것이다.
마24:24-‘나는 큰 표시들과 경이들을 줄 것이다’=외적인 나타남과 오류들로부터 확증하게 하고 설득 당하게 하는 것들. 이를 수단으로 유혹 당해지게 자신들을 단순히 괴롭힌다.
출7:3-‘나는 내 표시와 내 경이들을 배가할 것이다’=여러 종류의 훈계들…‘표시들과 경이들’=진리의 확증들. 그리고 신성한 힘의 매체, 여기서는 훈계.
출7:9-‘경이를 주는 것’=확증하기를 원하는 것. ‘경이들과 표시들’=진리들의 확증들.

계속되는 (continual)

출28:29-‘여호와 앞에서 계속적으로 기억함을 위해’=자비로부터 영원으로.
출28:30-‘여호와 앞에서 그의 가슴에 계속적으로’=선으로부터 영구히 빛을 발하는 것….‘계속적으로’=영구적으로.
출29:38-‘아론의 이마에 계속적으로 있을 것이다’=주님의 사랑은 영원하다를 표현…‘계속적으로’=영원히.

고난 (tribulation)

마24:9-‘그 때에 그들은 너를 고난 안으로 넘기고 너를 죽일 것이다’=선과 진리는 멸해질 것이다. 첫째로, ‘고난’을 수단으로, 즉 곡해, 악용을 수단으로.
계7:14-‘이들은 큰 고뇌함으로부터 온 이들’=그들은 시험들에 있어왔던 이들이다.

고귀한 (noble)

예2:21-‘고귀한 포도나무’=영적 교회의 사람.
창49:11-‘고귀한 포도나무’=천적 교회 속에 있는 지적 평면.
눅19:12-‘고귀한 사람’은 주님을 뜻한다.

고뇌 (anguish)

이30:6-‘험악하고 고뇌의 토지’=선행으로부터의 선과 신앙으로부터의 진리가 있지 않을 교회.

고독한 (solitary)

신33:28-‘고독한’=악들과 거짓들에 의해 감염되지 않은 이들.

고생 (trouble)

출18:8-길을 가면서 그들 위에 떨어진 모든 고생=시험들에 있는 수고함. 그이유가 ‘고생’=수고함이기 때문, 이것은 시험들을 서술한다.
계16:10-‘그들은 고생 때문에 자기들의 혀를 깨물었다’=그들은 진리들을 견뎌낼 수 없었다. 여기서 고생은 거짓들부터의 고생을 뜻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거짓들은 그들에게 어떤 고생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서이다. 그들의 고생은 진리들로부터이다.
계16:10-‘그리고 그들의 고생과 종기 때문에 천국의 하느님을 모독하였다’=그들은 자기들의 내면의 저항 때문에 주님 만이 천국과 땅의 하느님이심을 인정할 수 없었다…‘고생들’에 의해 이것을 인정함으로부터의 고생이 의미되어진다. 고로 내면의 거짓들로부터의 저항. 이 저항은 골치 아픈 것이기 때문. ‘고생들’은 거짓들을 서술한다.

고약한 냄새가 나다 (stink)

창34:30-‘너희는 토지의 주민들에게 악취를 풍겨서 나를 괴롭혔다’=고대 교회의 사람들은 그들을 혐오할 것이다는 것.
암4:10-‘나는 너의 진영에서 네 코에까지 오도록 고약한 냄새가 나게 만들었다.’…‘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역겨운 것, 이는 지옥으로부터 발산된다.
출7:18-‘강은 고약한 냄새를 낼 것이다’=기억 속의 지식이 진리를 혐오함.
출8:14-‘토지는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악취나서 결과적으로 불쾌한 것.
마7:17, 12:33-‘부패한 나무는 악한 열매들을 만든다.’
이34:3-악들을 통하여 멸해질 이들의 지옥에 떨어짐이 ‘그 시체의 악취가 올라 옴’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악취를 풍김’=그들이 지옥에 떨어짐.

고집 센 (refractory)

슥7:11-‘고집 센 어깨를 주는 것’=저항하는 것.
겔2:6-그러므로, 그들은 ‘고집 세다’, 그리고 ‘가시 있다’라 불려진다.
이30:9-‘고집 샌 아들들에게 화있다’=자신을 돌아서게 한 이들의 지옥에 떨어짐 때문에 통곡함.

고통 (affliction)

막13:18,19-‘고통의 날’=다른 삶에서 그의 비참한 상태.
창15:13-‘그들은 그들을 괴롭힐 것이다’=비통한 그들의 시험.
마6:13-‘우리를 시험 쪽으로 인도하지 마옵시고…’….시험에 관한 생각 그리고 악에 관한 생각이 선 만이 남아있을 때까지 선한 영들에 의해 거절되어졌다…이 속에서 선은 무수한 생각들을 형성했다….어떻게 선이 인간의 고뇌로부터 오는지, 그리고 여전히 고뇌는 인간과 그의 악으로부터 있다.
창16:9-‘네 자신을 겸손하게 하는 것’=어원적으로보면 이 단어는 자신을 괴롭게 하는 것을 의미하려고 표현되었다. 자신을 괴롭게 하는 것=자신을 강요하는 것임은 말씀의 많은 곳에서 명백하다.
창16:11-‘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기 때문에’=그녀가 자신을 복종되게 했을 때. 겸손하는 것 그리고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내향의 인간의 힘에 자신을 복종하게 하는 것이다.
마24:21-‘그 다음 세상의 시작으로부터 지금까지 조차도 있지 않았던 큰 환란이 있을 것이다’=선과 진리에 관련하여 교회의 극도의 악용과 황폐함, 이것은 모독이다.
창29:32-‘여호와께서 내 고통을 보셨다’=선에 도착하는 상태. ‘고통’=시험, 이것은 선에 도착하는 수단인바, ‘내 고통’은 바깥쪽인 진리로부터, 안쪽인 선에 도착하는 상태이다.
마24:29-‘이 날들의 환난이후 즉각’=신앙 속에 있는 진리에 관련하여 교회의 상태. 진리의 황폐함. 말씀의 여러 곳에서 ‘고통, 고난, 환난’이라 불린다.
창41:52-‘내 고통의 토지에서’=그가 시험들을 견뎌낸 곳.
출1:11-‘짐들로 해서 고통을 주자’=노예 상태를 통해 더욱 압제하는 것.
출1:12-‘그들은 고통을 더 받은 만큼 더 그들은 증가했다’=진리는 떼지어 엄습한 (거짓)에 따라 더 성장했다. ‘고통을 주는 것’=떼지어 엄습하는 것.
출3:7-‘여호와께서 말하셨다. 나는 내 백성의 고통을 보아왔다’=거짓이 떼지어 엄습한 이후 영적 왕국의 교회 속에 있는 이들을 향한 자비.
출3:17-‘나는 너희를 이집트의 고통으로부터 (가나안으로) 올라가게 만들 것이다’=거짓 과학적인 것들에 의한 떼지은 엄습으로부터의 해방과 승강.
출4:31-‘그분은 그들의 고통을 보셨다’=이런 큰 시험들 후에.
출22:20-‘너희는 체류자를 압제하지 말 것과 괴롭히지 말 것이다’=신앙으로부터 진리들과 선들에 관해 훈육받은 이들은 신앙의 거짓들과 생활의 악들로부터 엄습당해서는 안될 것이다.
출22:22-‘괴롭히는 것’. 진리로 훈육받고 선으로 인도되어지는 이들에 관련해 말해질 경우,=사기치는 것.
계1:9-‘환란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과 (그것을) 강한 인내심으로 예상함에서’=악들과 거짓들에 의해 교회 안에 떼지어 엄습한 이런 것들, 그러나 이것들은 그분의 오심에서 주님에 의해 제거될 것이다. ‘환란’=선행의 어떤 선도, 신앙의 진리도 더 이상 없고, 그 대신 악들과 거짓들만이 있는 교회의 상태.
계2:9-‘나는 네 고뇌함과 궁핍을 알았었다’=그들은 거짓들 안에 있다, 고로 선들 안에 있지 않다는 것…’고뇌함’=거짓들.
계2:10-‘너는 열흘 동안 고난을 가질 것이다’=그들이 거짓들 안에 머물고저 하는 한, 충분한 시간을 견뎌낼 것이다. ‘고난’, 여기서 떼지어 엄습함, 고로 시험.
계2:22-‘보라, 나는 그녀를 침상으로 내던질 것이다, 그리고 간음을 범한 그들은 그녀와 더불어 큰 고난으로 내던져질 것이다’=그리하여 그들은 자기들의 교리 안에 왜곡된 것과 더불어 남아 있을 것, 그리고 그들은 거짓들에 의해 비통하게 떼지은 엄습을 당할 것이다.
계7:14-‘이들은 큰 고뇌함으로부터 온 이들이다’=시험들 가운데 있어왔던 이들, 그리고 악들과 거짓들에 맞서 싸웠던 이들.
이54:11-‘너 고통받는 (자)’=이방인과 더불어 주님에 의해 건설될 교회.
마24장에서-‘환난’=악들과 거짓들에 의해 습격당할 때 교회의 상태.
마24장에서-기독 교회에서 거짓들의 떼지은 엄습, 이로 인해 모든 진리의 소멸, 황폐해짐이 ‘큰 환난’에 의해 뜻해지고 있다.
마24, 막13, 눅21장에서-‘큰 환난’=거짓화되지 않거나 절멸하지 않은 어떤 진리도 남아있지 않는 때까지 거짓에 의해 진리는 공격당할 것.
요16:33-‘세상에서 너희는 고난을 가질 것이다.’ 여기서 ‘평화’는 ‘고난’에 반대되어진다, 그 이유는 ‘고난’이 악들과 거짓들의 떼지은 엄습을 의미하기 때문. 이것은 신성한 평화 안에 있는 이들이 세상에서 있는 한, 그들과 더불어 있다. 그이유가 이들을 에워싼 육체가 세상 속에 있는 것들을 갈망하기 때문, 고로 고난이 있다.
이54:6-‘영이 고통받는 것’=진리들을 바라고 진리들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슬픔 안에 있을 때의 교회에 관해 말해진다.
이54:11-‘사나운 비바람에 뒤흔들려지고 고통받은 자’=거짓들의 떼지은 엄습과 여기저기로 운반된 것은 거짓들 때문이라고 말해진다.
이58:10-‘배고픈 자’=선을 바라는 이들. ‘고통받는 자’=진리를 바라는 이들.

고함치다 (roar)

이59:11-‘우리는 곰들 같이 고함친다’=자연적 인간의 슬픔.

공적 (merit)

창22:3-‘장작들을 쪼개는 것’=일들로부터 있는 선들에 공적을 놓는 것.
창30:31-33-‘흰’(것)=진리. 더 적절하게 말하면 주님의 공적과 정의. 이로부터 인간과 더불은 주님의 공적과 정의. 이 흰것은 빛남이라 불리운다. 그러나 흰것의 반대 의미에서는,=자신의 정의, 또는 자신의 공적. 그이유가 선이 없는 진리는 자아 공적을 받들기 때문. 누군가가 진리의 선으로부터 선인 것을 행할 경우, 그는 언제나 보상되기를 원한다.
창30:31-33-‘어린 양에서 흰 것’=선들에 놓여진 공적. 그이유가 선들에 공적을 놓는 자는 모든 선이 자신으로부터 있다고 인정하고 믿는다. 그리고 이로부터 그는 공적에 대해 보상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자신과 비교해 타인을 경멸한다. 더나아가 정죄하기까지 한다.
창31:49-‘훔침…’=공적으로부터의 악. 이 악은 인간이 선을 자신의 공로로 돌릴 때이다. 그러므로 구원을 공적으로 받기를 원한다. 이 악이 내적 의미에서 ‘도둑’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마25:9-‘오히려 너희는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사라’=공적으로부터의 선. 공적을 떠벌리는 이들이 ‘파는 자들’이다.
요10:1-‘도둑’=공적으로부터의 악.
창49:14-‘짐들 사이에 앉는 것’=공적으로 치부하려는 악 사이에 있는 것.
창49:15-‘짐을 지는 것’=공적을 내세우려 일을 하는 것.
창49:15-‘공물에 종이 되는 것’=일들에 의해 공적을 원하는 이들. 이들은 가장 낮은 섬김들이다.
출12:45-‘고용된 자’, 더 내면의 의미에서=다른 삶에서 보상을 목적으로 선인 것을 행하는 이들. 고로 일들을 통하여 공적있음을 인정받기를 원하는 이들.
출25:5-‘그리고 싯딤 목재들’=주님으로부터 있는 공적으로부터의 선들. 고로 주님 만으로부터의 선들. ‘목재들’=공적으로부터의 선. 공적의 선은 주님의 신성한 인간으로부터 진행되는 선, 이 선은 인간과 더불은 기독교인의 선, 또는 영적 선이다. 이 선을 통하여 인간은 구원되어진다. 여느 다른 근원으로부터 진행되는 선은 선이 아니다.
출25:10-‘싯딤 목재’=정의, 이는 공적의 선이다. 그 이유인즉, 주님은 그분 자신의 힘으로부터 보편적 천국을 질서 안으로 환원하고 지옥을 복종시키셨다. 동시에 자신 안에서 인간을 신성으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공적과 정의는 그분의 것이다. 이러기 때문에 천국을 만들고, 천국을 지배하는 한 개의 유일한 선은 공적의 선과 주님의 정의이다. 고로 그분의 신성한 인간이다. 그이유는 이 인간이 공적과 정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계2:6-‘니골라당의 일들’=공적을 주장하는 일들.

공포 (terror)
겁나게 하다 (terrify)

* dread, fear도 참조
창9:2-‘너에 대한 두려움(fear)과 너에 대한 공포가…’=내적 인간의 지배. ‘두려움’=악들에 관련되고, ‘공포’는 거짓에 관련되어 언급하고 있다. 내적 인간이 지배할 때, 인간은 악들 때문에 두려움에 있는다, 그리고 거짓들 때문에 공포에 있는다. 그러나 공포에 있는 것은 오직 외적 인간 뿐이다.
창15:12-‘큰 어둠의 공포’=어둠이 굉장했다는 것…
창35:5-‘하느님의 공포가 성읍들에 있었다’=거짓들과 악들은 가까이 올 수 없었다. ‘하느님의 공포’=보호.
출15:15-‘공포가 그들을 붙잡았다’=그들은 감히 어떤 것도 시도할 수 없었다…공포에 있는 자의 경우, 그의 피는 차지고, 정맥들로 돌진하고, 순환이 멈추고, 이로부터 신경은 흐늘흐늘거린다, 그리고 힘은 빠지고, 따라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출23:27-‘나는 네 앞에 내 공포를 보낼 것이다’=선의 진리들 때문에 거짓의 악들에 있는 이들의 공포.
계11:13-‘그 나머지는 겁에 질려 있었다’=그들이 다른 사람의 파멸을 보았을 때, 두려움으로부터
이33:18-‘네 심정은 공포를 묵상할 것이다’=교회의 상태를 기억함.
예4:25-‘각 처에 공포가’=영적 죽음.
이17:14-‘공포’=파멸.

관대함 (clemency)

이63:9-‘그분의 사랑과 그분의 관대하심(pity)에서 그분은 그들을 되찾으셨다’
창19:16-‘롯 위에 (내린) 여호와의 관대하심에서’=은총과 자비.
출4:14-‘여호와의 노염이 모세에게 지펴졌다’=관대함. ‘여호와의 노염’은 노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인 자비를 뜻한다. 여기서는 관대하심…그이유는 이것이 모세에 관계되기 때문이다. 여기의 모세는 그분이 세상에 계셨을 때 신성한 진리에 관련되는 주님을 표현했다.
욘4:10,11-‘너는 호리병박 식물을 불쌍히 여겼다…그런데 어찌 내가 니느웨를 불쌍히 여기지 않겠느냐’

구원 (salvation, saving)

이49:6-‘내 구원을 땅의 맨 끝 까지’.
출14:13-‘잠잠히 서있으라,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자신들에 의해서는 전혀 아니고 오직 주님 만에 의한 구원.
출15:2-‘그분은 내 구원이 되셨다’=거기로부터 구원이 있다는 것.
이63:5-‘나 자신의 팔이 나에게 구원을 가져왔다’=…주님은 이런 것들을 그분 자신의 힘으로부터 하셨다는 것…거기로부터 구원이 있다는 것이 ‘그분은 구원하는데 위대한 분’, ‘그분은 그들의 구세주가 되었다’로 묘사되어 있다.
계7:10-‘구원은 하느님에게…’=주님은 구원 그자체이시다는 것, 모든 구원은 그분으로부터이다는 것, 그분은 구세주이시다는 것.
계12:10-‘이제 구원과 힘이 오고 있다’=지금 그들은 주님의 신성한 힘에 의해 구원되어진다.
계9:1-‘구원과 영광과 영예와 힘이 주 우리의 하느님에게’=이제 주님으로부터 구원이 있다는 것, 그 이유는 이제 그분의 신성한 권능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와 신성한 선의 받아들임이 있기 때문이다. ‘구원은 주 우리의 하느님에게’=구원이 주님으로부터 이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함.
마18:11, 눅19:10-주님은 모든 사람 각각과 더불어 이런 저런 구원들(개혁, 거듭남 등등)을 계속적으로 작업하신다. 그 이유가 이것들이 천국으로의 계단들이기 때문.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구원됨은 그분의 목표이다. 그분은 이 목적을 뜻하시고 수단들을 동원하신다. 그분의 강림, 구속, 수난 등등은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있었다. 구원이 그분의 목적이었고, 영원까지 그분의 목적일진대, 위의 언급된 작업들은 중간에 해당되는 목적들이고, 구원은 최말단 목적이다.
눅2:30,31-주님이 세상에 오셨던 당시 그분을 영접한 이는 구원되었기에, (시므온은) 주님을 이렇게 불렀다, ‘내 눈이 구원을 보았다, 이것을 그분은 모든 백성을 위하여 준비하신다.’
시68:26-‘구원의 샘 (또는 이스라엘의 샘)’=영적 선, 그 이유는 이를 통하여 구원이 있기 때문.
시96:2-‘이름’은 진리에 관련해 말해지고, ‘구원’은 선에 관해 말해진다.
시119:166-‘구원’=영원한 생명.
이52:7-‘구원을 듣도록 만드는 것’=진리들을 통하여, 이 진리에 따른 생활을 통하여 그분과 결합함, 그 이유는 이를 통하여 구원이 있기 때문.
이51:5-‘내 정의가 가까이 있다, 내 구원이 앞으로 나갔다’=심판, 사랑의 선에 있는 이들, 이 선으로부터의 진리들에 있는 이들이 구원되는 때이다. ‘정의’는 선에 있는 이들의 구원, ‘구원들’은 진리들에 있는 이들.
시18:46-‘내 구원의 하느님을 드높여라’=그분은 선으로부터의 진리들을 통하여 예배되어질 것이다, 그 이유는 거기로부터 구원이 있기 때문.
시42:11, 43:5-‘내 얼굴들의 구원들’=내부에 있는 모든 것들, 고로 마음과 애착들 속에 있는 것들, 결과적으로 사랑과 신앙 속에 있는 것들, 그것들이 구원하기 때문에, 그것들은 ‘구원들’이라 불린다.
시80:2-그들이 구원되리라는 것이 ‘구원이 우리에게 오소서’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계7:10-‘구원이 우리의 하느님에게…’=영원한 생명은 주님 만으로부터 있다는 것…‘구원’=영원한 생명. 그 이유가 ‘영원한 생명’에 의해 영원한 구원이 뜻해지기 때문.
이59:11-‘우리는 우리로부터 먼 구원을 기다리고 있다’=구원의 희망, 그러나 헛되다.
마7:1,2, 창18:32-그들은 자기들이 행한대로 믿지 않으면 구원되어질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을 주님은 금하셨다. 많은 경험으로부터 내가 아는바, 사람들은 만일 그가 선행의 생활을 통하여 주님께서 아껴두신 선을 받고, 생활에서 진리의 나타남이 있었다면 모든 종교로부터 구원되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나는 열을 위하여 멸하지 않을 것이다’에 의해 뜻해져 있다. 즉 인간 자신에게 열(주님이 아껴두신 것, remains)이 있다면 그는 이를 수단으로 구원된다는 말이다.

굳건한 (firm)

출17:12-‘그의 손들은 굳건했다’=힘의 세기.
시51:10-‘굳건한(steadfast) 영’=진리를 이해함과 진리로부터의 신앙.
시75:3-‘그것의 기둥들을 굳건하게 만드는 것’=교회가 기초되어야 할 진리를 지지하는 것.
시51:10-‘내 한가운데에서 굳건한 영을 새로이 하는 것’=신앙의 진리에 관련하여 개혁하는 것.
이54:2-‘말뚝을 강화하는 것’=말씀으로부터 확증함.

귀중한 (precious)

예20:5-‘모든 귀중한 것’=신앙에 대한 지식들.
창24:53-‘그는 그녀의 형제에게 귀한 것들을 주었다’=자연적 선을 위한 영적인 것들. ‘귀한 것’=영적인 것.
신33:13-‘천국의 귀한 것들’=영적인 것들, 이것이 ‘이슬’이다.
계21장-‘귀한 돌’=사랑의 선으로부터 있는 신앙의 진리.
신33장-이 ‘귀한 것들’=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들, 이로부터 교리가 있다.
계18:19-‘그녀의 호화스러움 때문에 부자로 만들어졌다’=이 광신적 신앙의 거룩한 것들에 의해 하느님에게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지는 것.
시45:9-‘왕의 딸들이 귀중한 자들 사이에 있다’=진리에 애착함들 자체.
신33:13,14,15,16-‘땅의 귀중한 것들’=교회 속에 있는 영적 선과 이로부터 파생되는 진리들. ‘하늘의 귀한 것들, 이슬, 그리고 땅 아래 누워있는 심해’=내적, 외적 인간에 있는 영적, 천적인 것들. ‘태양의 생산물의 귀한 것들, 달들의 생산물의 귀한 것들’=천적 왕국과 영적 왕국으로부터 진행하는 모든 것들. 선행의 선들이 진짜일 때, 그들은 ‘영원한 언덕들의 귀한 것들’이라 불리운다.
계18:12-‘귀한 나무’=우수한 나무, 고로 합리적 선.

그렇게 (so)

* 천적 왕국의 천사들은 그것이 그렇다 또는 그렇지 않다 하고 말한다.
마5:37-영적 왕국의 천사들은 그것이 그런지 아닌지를 논쟁한다. 그러나 천적 왕국의 천사들은 그것이 그렇다를 알고 지각한다. 이로부터 주님은 말하시기를, ‘너희의 대화에는 예, 예가 있게 하라…’
* 천적인 천사들은 예, 또는 아니오 만을 말한다.
* 천적인 천사들은 그것이 그렇다, 그렇지 않다 라고만 하여 결코 토론 않는다.

그루터기 (stock, stump)

창34:11-‘세겜’=고대 신성의 그루터기로부터의 진리.
계22:16-다윗이 신성의 진리 측면을 표현한다는 것, 하여 주님께서는 기꺼이 다읫의 가문으로부터 태어나셨고, ‘그의 뿌리(그루터기)와 후손’이라 불리우셨다.
단4:15-땅에서 남아있을 ‘뿌리들의 그루터기’=말씀, 글자만으로부터 이해됨의 말씀, 그리고 이것은 단지 알아진 어떤 것, 단지 기억안에 자리하고 있고, 이로부터 언어를 통해 밖으로 나갈 뿐이다. (=말씀, 이를 통하여 교회는 소생할 것이다.)

그리고 (and)

창30:6-이 하나의 것이 양쪽 모두의 표현들에 의해 의미되어질 때, 그것들은 ‘그리고 또한’에 의해 함께 결합되어진다.
창39:7-상태의 덜 중요한 변화들은 ‘그리고’를 수단으로 암시되어진다, 그러므로 이것은 아주 많이 발생하고 있다.
창43:2-고대 때의 최초 언어에서는 구두점(stop)을 찍는 것을 수단으로 의미가 구별되지 아니한채, 천국의 말을 모방하여 본문이 계속되어졌다. 그리고 구두점 대신에 ‘그리고’가 있었다, 그리고 또한 ‘…있었다, there was’, 또는 ‘…하였다, …하게 되었다, came to pass’가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고 라는 단어는 자주 등장한다..
* 천적인 천사들(셋째 천국, 가장 높은, 또는 가장 깊은 천국의 천사들)의 말에는 딱딱한 자음이 빠져 있다, 그리고 모음으로 시작하는 단어의 중재를 수단으로 드물지만 자음 하나로부터 또다른 자음으로 건너간다. 그러므로해서 불변화사인 ‘그리고’가 말씀 안에서 자주 삽입되어진다. 히브리 본래 단어로 말씀을 읽을 경우, 이 불변화사는 부드럽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단어는 모음으로 시작하고 끝난다.

극점에 달하다 (consummate)
종말 (consummation)

창15:16-‘아모리족의 불법이 아직은 극점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마지막 때, 즉 선이 더 이상 없는 때…
창18:21-‘나는 내게 도달한 함성 같이 극점에 도달함을 만들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나는 알 것이다’=악이 그것의 높이에 도착했는지 여부.
마24:3-‘시대의 종말’=교회의 마지막 때, 고로 그것의 끝장, 선행이 없기에 신앙도 없는 때. ‘시대’=시작부터 끝장 까지의 교회의 기간.
계10:7-‘하느님의 신비는 극점에 달할 것이다’=그때에 두 성경에서 미리 말해진 것이 나타날 것이다…‘극점에 도달해지는 것’=끝장을 가지기 위해 채워지는 것, 그다음 나타나는 것.
계15:1-‘그들 안에서 하느님의 분노가 극점에 도달되었기 때문에’=교회의 황폐함, 그리고 그다음 그것의 끝장.
계15:8-‘일곱 천사들의 일곱 재앙들이 극점에 도달할 때 까지’=황폐됨 후, 교회의 끝장이 있다.
계17:7-‘하느님의 말씀이 극점에 도달할 때까지’=그들에 관한 미리 말해진 모든 것들이 완성하기 까지. ‘극점에 도달하는 것’=가득 차는 것, 완성되는 것.
마28:20-‘시대의 종말 까지 나는 너와 함께 있겠다’=교회의 끝장 까지. 그때에 만일 그들이 주님께로 접근 않고, 그분의 명령에 따라 살지도 않는다면 그들은 주님에 의해 남겨지고, 주님에 의해 남겨지면 그들은 종교가 없는 이교도 같이 되어간다. 그때에 주님은 그분의 새 교회 속에 있을 이들과 더불어서만 계실 것이다. 이런 사항들이 ‘하느님의 말들이 완성될 때까지’, 그리고 ‘시대의 종말에서 조차’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계20:3-‘천 년이 다 채워질 때까지’=얼마 동안을 위하여.
이24:13-‘포도 수확이 완결될 때 남겨진 떨기 송이들’에 비교되어진다.
이28:22-이 나라와 더불은 교회는 깡그리 파괴되었다는 것이 ‘나는 온 땅 위에 있는 종말과 작정된 것을 군대들의 주 여호와로부터 들었다’에 의해 뜻해져 있다. ‘종말과 작정됨’=완전한 파멸.
단9:24-교회에 있는 모든 이가 교리에서는 거짓에, 생활은 악에 있을 때.
단12:7-‘극점에 달함’=가득하기 까지 채움.
계15:8-‘극점에 도달되어지는 것’=끝내지는 것, 여기서는 거절되는 것.
요19:30-이스라엘 교회와 유대 교회의 종말이 십자가 위에서 ‘다 완성되어졌다, It is consummated’라고 주님께서 외치셨을 때 완성되었다.

근심 (anxiety)

창3:16-‘나는 네 슬픔을 크게 늘리겠다’=전투, 그리고 전투로부터의 근심.
계2:9-‘그리고 고뇌’=진리들을 갈망함으로부터의 근심.
이5:30-‘근심’=악.

기념의 (memorial)

출3:15-‘이것은 대대 손손 나의 기념물이다’=(신성한 인간은) 영구히 예배되어야 한다는 것. ‘기념물’=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것. 그리고 신성을 서술할 경우, 예배에서의 품질…‘기념물’은 예배에서 진리에 관련한 신성의 품질을 서술한다. ‘기념물’=예배에서 신성의 품질.
시30:4-‘거룩한’은 진리를 서술하고, 이로부터의 예배는 ‘그의 거룩함에 대한 기념식’에 의해 의미된다.
출12:14-‘이 날은 너희에게 기념일로 있을 것이다’=예배에서 이 상태의 품질.
출13:9-‘네 눈들 사이에서 기념물로 있을 것이다’=이것은 이해성에서 항구적으로 있을 것이다는 것. ‘기념물’=항구적으로 기억하고 있음, ‘기념물’이라 말해지는데, 그 이유는 말씀에서 기념물은 지적 측면을 서술하기 때문.
출17:14-‘책 안에 이 기념물을 적어라’=영구히 기억하기 위하여. ‘기억’=기억되어 있어야 하는 것, 또는 기억 안에 있는 것.
레24:7-‘이것은 기념물로서의 빵일 것’=주님이 들으시고 받으시는 것.

기억 (memory)

창40:14-‘당신과 더불어 나를 기억해주시오’=신앙을 받아들임…그이유가 주님을 기억하고 회상함은 신앙 외 다른 근원은 없기 때문.
창40:14-‘바로에게 나를 생각해내게 만드시오’=자연의 내면과 교통함.
출13:3-‘회상하다’=그것은 회상되어야 한다는 것.
계3:3-‘그러므로 생각해내라’=그것은 생각 안으로 오리라는 것.

기억하고 있다 (remember)

창8:1-‘하느님이 기억하셨다’=…특별한 측면에서, 그분은 자비를 가지셨다는 것; 그분의 기억하심은 자비이다. 이는 특히 시험 후에 서술되어진다….’하느님이 기억하신다’=시험의 끝, 그리고 갱신의 시작.
창9:15-‘나는 내 언약을 기억할 것이다’=거듭나는 자를 향한 주님의 자비…그 이유가 ‘기억하신다’는 단어는 주님에 관련해 사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창30:22-‘하느님은 라헬을 기억하셨다’=예견.
창40:23-‘그는 요셉을 기억하지 않았다’=모든 방법에서 아직 까지는 결합이 없음.
창41:9-‘저는 오늘에야 내 죄를 기억합니다’=분열의 상태에 관하여…(그 이유가) ‘기억함’=결합…그이유는 다른 삶에서 누군가를 기억할 경우 결합이 있기 때문.
창42:19-‘요셉은 꿈들을 기억했다’=그는 있어질 것들을 미리 보았다. (그 이유가) ‘기억하는 것’=현존함. 그 이유는 기억함 안에서 진행될 어떤 것이 상연되기도 하기 때문.
출6:5-‘나는 내 언약을 기억했다’=감염됨으로부터 면제함.
출13장-이 장은 주님에 의해 해방됨을 영구히 기억함을 다룬다.
출20:8-‘기억하고 있다’=생각에서 영구적인 것.
출28:12-‘이스라엘의 아들들을 위한 기억함의 돌들’=영구히 자비로부터.
출30:16-‘여호와 앞에서 기억함을 위해 있을 것이다’=고로 주님에 의한 교회의 보존.
눅22:19-‘나를 기억하면서 이것을 행하라’
겔23:27-‘더 이상 이집트를 기억 못한다’=더 이상 진리에 대한 어떤 지식도 없다.

기울다 (incline)

창39:21-‘그는 자비를 그에게 기울였다’=각각의 것에 있는 신성한 사랑.
시144:5-‘하늘들을 굽혀 절하게 하고(bow) 내려오는 것’=방문하고 심판하는 것.
시45:10-‘귀를 기울이는 것’=순종.

기적 (miracle)

출3:20-‘나는 내 모든 경이로움들을 가지고 이집트를 치 것이다’=거짓들에 신성의 힘이 맞섬. ‘경로움들’=신성한 힘의 수단들. 이 수단들에 의해 거짓들에 있는 이들이 복종된다는 것이 이집트에 행해진 경이로음들, 또는 기적들로부터 분명해진다.
* 주님에 의해 행해진 모든 기적들=인류의 상태와 교회의 상태가 주님이 세상 안으로 강림에 의해 구원되었음. 즉 선행의 신앙을 받은 이들을 지옥으로부터 해방하셨다는 것. 주님의 기적드은 이런 것들을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구약 성서에서 취급된 모든 기적들=교회의 상태와 주님의 왕국의 상태. 이 안에서 신성의 기적들은 비록 외적 형체에서는 엇비슷할 수 있는 마술적 기적들과는 구별된다.
계12:1, 출7:3, 신6:22-‘표시(sign)들’은 진리로부터의 것에 관련된다. ‘기적들’은 선으로부터의 것들에 관련된다.

기품있는 (elegant)

창49:21-‘기품있는 강연을 주고 있다’=마음의 기쁨. 그 이유가 모든 강연은 마음으로부터 진행하기 때문. 마음이 기쁘고 유쾌할 때, 기품을 가지고 말하게 된다.

기회 (chance)

출21:13-‘그리고 하느님이 그것으로 그의 손으로 오도록 하셨다면’=기회로서 나타남, 이는 고대인들의 생각함으로부터 분명하다. 이는 하느님으로부터 발생했다는 것, 그러므로 그들은 ‘하느님이 자기 손에 오도록 하셨다’라고 말하여 기회를 표현했다.

깨끗함 (cleanness)

창7:2-‘모든 깨끗한 짐승’=선한 애착들.
* 근원적 언어에서 ‘흠없음’이 깨끗함과 순수함을 뜻하는 단어에 의해 표현되어지고 있다.
계19:14-‘희고 깨끗한 모시로 옷입고’=사랑 안에 그리고 그로부터 신앙 안에서.
시19:9-‘여호와를 경외함은 깨끗하다’=사랑.
겔36:25-‘깨끗한 물들을 뿌리는 것’=심정의 순수함. 고로 ‘깨끗해지는 것’=신성하게 하는 것.
겔39:12-‘일곱 달 동안 토지를 깨끗하게 하는 것’=교회에 있는 선과 진리의 충분한 회복.
출24:10-‘깨끗함에 관하여는 천국의 실체인듯’=천사의 천국의 반투명함.
시51:10-‘깨끗한 심정’=깨끗치 않은 악을 혐오하는 의지.
출29:36-‘너는 제단 위 죄로부터 깨끗하게 할 것이다’=천국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악들로부터 순수해 있음. ‘깨끗해짐’=순수해짐.
마23:26-‘바깥쪽 역시 깨끗해질 것이다’=고로 외면들이 순수해질 것이다.
계19:14-‘깨끗하고 눈부신 고운 아마포’=선으로부터 빛나고 진리들로부터 순수해짐. ‘깨끗함’=악으로부터 자유해 있는 것, 고로 선으로부터 빛나는 것.
겔39:12-‘그들을 매장하고, 토지를 깨끗하게 하는 것’=그것들 모두를 파괴하고, 그것들로부터의 교회를 완전히 깨끗이 함.
시51:10-‘깨끗한 심정을 창조하는 것’=사랑의 선에 관련하여 개혁하는 것.
시24:4-‘깨끗한 손들을 가진 그 사람’=신앙으로부터 진리들에 있는 이들. 그리고 ‘심정에서 순수함’=사랑으로부터 선 안에 있는 이들.
요2:6-‘유대인들의 정결케함’=죄들로부터 순수해짐, 고로 유대 교회의 모든 것들, 그 이유가 교회는 죄들로부터 순수해짐을 교회의 모든 것이나 마찬가지로 중시하기 때문.
요13:10-‘씻은 자’=내면적으로 깨끗한 자. ‘자기 발을 씻는 것 말고는 씻을 필요가 없다’=그 당시 그는 외면적으로 깨끗해 있다는 것. 그러나 전부는 아니다.
계15:6-신성한 진리는 그것이 진짜이다는 사실로부터 ‘깨끗함’이라 불리운다.
눅11:25-‘집을 쓸었다’=진리들에 반대되는 생활
마23:26-‘잔과 접시의 안쪽을 깨끗하게 하는 것’=내면들, 즉 의지와 생각 속에, 고로 사랑과 신앙 속에 있는 것들을 말씀을 통하여 순수하게 하는 것.
이4:4-‘깨끗해짐으로부터의 영’=영적 진리에 애착함 .
시80:8,9-‘그것을 심는 것, 그것 앞에서 깨끗하게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의 뿌리를 깊게 하는 것’=질서에 따른 훈육, 이러하다: 첫째, 지식들을 불어넣는다. 다음, 광야에서 그리고 시험받는다. 그리고 그 후에 가나안의 토지로 입장함, 즉 교회 안으로 입문됨. 이 세 단계가 위 구절에 의미되어 있다.

께느른한 (languid)

신7:15-‘여호와께서는 너희로부터 이집트의 모든 악한 께느름함을 제거하실 것이다’
애5:17-‘께느른한 심정’=더이상 선에 대한 의지가 없음.
이33:9-‘토지’=교회, 이것이 ‘통곡하고 께느른하다’고 말해진다. 이는 거짓들이 진리로서 인정되어질 때이다.
이24:7-‘통곡하고 무기력(께느른해)지는 것’=(교회의 진리들이) 박탈됨.
예15:9-‘일곱을 낳은 그녀는 께느른해진다’=그 교회는 멸해질 것이다.
겔31:15-교회 속에 있는 진리에 대한 지식이 하나도 있지 않을 것임이 ‘들판의 나무들이 그녀 위에서 께느른할 것이다’로 의미되어 있다.
이19:8-‘슬퍼지는 것’ 그리고 ‘께느른해지는 것’=노동하는 것.
이33:9-말씀의 자연적 감각으로부터 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들이 황폐됨이 ‘통곡하는 것, 께느른해지는 것’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이24:4-교회의 황폐함이 ‘통곡하는 것’, ‘지겨워지는 것’, ‘께느른해지는 것’에 의해 묘사되고 있다.

꼬부라진 (crooked)

사5:6-신앙으로부터의 진리들이 악용되어진 것이 ‘꼬부라진 길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이27:1-‘리워야단, 꼬부라진 뱀’=교묘한.
사5:6-‘꼬부라진 길에서 가는 것’=진리들로부터 떠나 배회하는 것.

꾸며낸 일 (figment)

창6:5-‘심정의 생각들이 꾸며낸 일’=선과 진리를 지각함이 없다…죽이고야 말 설득함들이 여기서 ‘심정의 생각들이 꾸며낸 일’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그러나 생각들이라는 표현을 뺏을 경우, 즉 ‘심정이 꾸며낸 일’=자아 사랑, 또는 탐욕들로부터의 악.
창8:22-‘인간의 심정이 꾸며낸 일은 그의 어린 시절로부터도 악하다’=인간의 자발성은 모두 악이다.

꾸밈 (ornament)

단8:9-‘영광’=진리의 상태.
예48:17-‘아름다운 막대기’=진리로부터의 힘.
이52:1-‘아름다운 의복’=선으로부터의 진리들.
이63:15-‘영광스러운 처소’=영적 천국 속의 이들이 있는 천국.
단8:9-‘영광을 향하여’=교회에 맞서.
출28:2-‘영광을 위해, 그리고 아름다움을 위해’=내적 그리고 외적 형체에서 천적 왕국에 결합한 영적 왕국에 서 있는 것과 같은 신성한 진리를 표현하는 것. ‘아름다움’=외적 형체에서의 신성한 진리. 그이유가 외적인 것들에서 나타나는 신성한 진리의 아름다움과 광휘가 ‘아름다움’에 의해 의미된다. 이로부터 내적 의미에 있는 말씀은 ‘영광’이라 불린다. 그러나 내적 의미에서 파생된 광휘와 아름다움에 상대적으로 말할 때 ‘아름다움’이라 불린다.
애2:2-‘이스라엘의 아름다움’=영적 교회, 이 교회가 진리의 광휘와 아름다움으로부터 ‘아름다움(또는 영광)’이라 불린다.
단11:16-영광의 토지=신성한 진리, 또는 말씀이 있는 주님의 교회.
이28:5-‘꾸민 왕관(crown)’, 그리고 아름다운 왕관(diadem). ‘꾸민 왕관’=선 속에 있는 지혜. ‘아름다운 왕관’=진리 속에 있는 총명.
이62:3-‘여호와의 손에 있는 아름다운 왕관, 그리고 네 하느님의 손에 있는 왕국의 왕관.’ ‘아름다운 왕관’=선 속에 있는 지혜, 그리고 ‘왕국의 왕관’=진리 속에 있는 총명.
예13:18-‘네 아름다운 왕관’=신성한 진리로부터 선 속에 있는 지혜. 그 이유가 ‘아름다움’=교회의 신성한 진리.
출28:40-‘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아름다움을 위하여’=영적 교회의 진리.
겔16:12-‘아름다운 왕관’=영적 선, 이는 진리의 선이다. ‘왕관’=선, ‘아름다운’=영적인 것.
시45:3-‘네 영광과 영예에서 네 넓적 다리에 네 검을 차라’…‘영광’에 의해 신성한 진리가, ‘영예’에 의해 신성한 선이 의미된다.
시89:17-‘당신은 그들의 힘의 광휘이시기 때문’…말씀에서 ‘광휘(영광)’은 교회에 관련된 것, 그리고 거기 있는 진리로부터의 교리에 관련된 것을 서술한다.
단8:9-‘동쪽’, 그리고 ‘영광’=선이 진리를 통하여 그것의 명료함에 있는 곳.
이60:7-‘나는 내 영광의 집을 영광스럽게 할 것이다’=주님의 신성한 인간 안에 그들은 있을 것이다…‘영광의 집’=신성한 진리에 관련한 그분의 신성한 인간.
이64:11-‘우리의 아름다움’=영적 교회.
이4:2-‘여호와의 어린 가지가 아름다움과 영광을 위해 있을 것이다’=진리가 교회에서 새로이 출생될 것이다…모든 아름다움은 진리에 대한 영적 애착과 그 결과인 결합으로부터 존재하고 그와 달리는 아름다움이 없는바 ‘우리의 수치를 거두어다오’라고 말해진다. (이4:1)
예48:17-‘힘의 막대기’=자연적 의미에 있는 신성한 진리. ‘아름다움의 막대기’=영적 의미에 있는 신성한 진리.
시78:61-‘그분은 그분의 영광을 적들의 손에 주었다’=영적인 것으로부터의 자연적 진리. 이것이 ‘영광’에 의해 의미된다. 그리고 악들에 의한 그것의 파멸이 ‘적의 손에 주어지는 것’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겔7:20-그의 장식품의 ‘아름다움’=교회 그리고 그것의 교리.

꿈 (dream)

창20:3-‘밤에 꿈에서’=희미한 (지각). 지각이 취급되어질 때, ‘꿈’=깨어있음에 비교해 상대적으로 희미한 어떤 것, 게다가 ‘밤에 꿈에서’라고 말해질 경우, 더 한층 희미한 어떤 것을 뜻한다.
창28:12-‘(야곱은) 꿈을 꾸었다’=미리 봄. ‘꿈꾸는 것’=미래의 것을 미리 말하는 것. 그 이유가 예언적인 꿈, 이는 신성이었는바 미래의 것들을 예언함이었다…이런 것들이 ‘꿈’과 ‘꿈을 꾸는 것’에 의해 내적 의미에서 의미되는바, 꿈이 주님을 취급할 경우, 이는 최고 의미에서 예견이 의미된다. 그 이유가 예견들은 주님의 신성한 예견으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창31:10-‘나는 내 눈을 들어올렸고 꿈에서 보았다’=불명료한 것에서 자연적 선이 지각함. ‘꿈에서’=불명료한 것에서.
창31:11-‘그리고 하느님의 천사가 꿈에서 나에게 말했다’=신성으로부터의 지각, 그리고 희미한 것에서 현존함.
창31:24-‘하느님께서 밤중에 시리아 사람 라반에게 오셨다’=그자체로만 남아있을 때 이 선의 희미한 지각…‘밤중에 꿈’=희미한 것.
창37:5-‘요셉은 꿈을 꾸었다’=그분 자신에 관하여 설교함. ‘꿈을 꾸는 것’=설교하는 것. 그리고 이 꿈이 요셉을 취급하는바, 이것=주님의 신성한 인간에 관하여 설교하는 것. 여기서 ‘꿈’=설교인 이유는 요셉의 두 번의 꿈에서 요셉에 관하여 모든 것이 미리 보여지고 설비되어졌기 때문. 고대 시대 때에, 신성한 진리들은 언어, 환상, 때로는 꿈에서 명백해졌다. 이로부터 신성한 진리가 말이나 환상들, 꿈들을 수단으로 예언자들에게 명백해졌는바, ‘예언자’=진리들을 가르치는 자, 또는 추상적 의미에서 교리 속의 진리들을 의미하고 있다.
창37:19-‘꿈들의 이 주인이 온다’=이런 것들이 헛되다는 것. ‘꿈들’=설교들. 여기서, 신성한 진리를 설교함, 그이유는 이것이 요셉을 두고 말해졌기 때문. 그러나 신성한 진리가 믿음만으로 구원됨이라는 교리에 있는 이들에 의해 그것의 본질 측면에서 거절될 경우, 여기서와 같이 ‘꿈들’=헛된 것들. 그리고 ‘꿈들의 주인’=그들의 설교자.
창40:5-‘그들은 모두 꿈을 꾸었다’=이런저런 것들에 관한 예견…‘꿈’, 최고 의미에서=예견인 이유는 주님으로부터 천국을 통하여 직접 흘러드는 꿈들은 미래의 것들을 말하기 때문, 마치 이 대목의 술 담당 신하와 빵 담당 신하의 꿈, 그리고 바로의 꿈들, 느부갓네살의 꿈, 그리고 일반적으로 예언적인 꿈들이 이 경우에 해당된다.
창41:1-‘바로가 꿈을 꾸는데’=자연 평면에 관련하여 설비되는 것. ‘꿈꾸는 것’=미래의 것들에 대한 예견. 고로 최고 의미에서 예견. 따라서 그것=예견, 미리보는 것인바, 그것은 또한=섭리, 설비되는 것, 그이유가 이것은 저것 없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
창41:11-‘우리는 한 밤에 꿈을 꾸었다’=희미한 상태에서 예견된 것.
창43:9-‘요셉은 자기가 그들에 관해 꾸었던 꿈을 기억해냈다’=영적 평면 속의 천적인 것이 자연 평면에 있는 교회의 일반적 진리들에 관련해 무엇이 발생할 것인지를 미리 보았다는 것. ‘꿈들’=예견, 예언, 사건.
신13:1-‘만일 너희들 중에서 예언자, 또는 꿈꾸는 자가 일어난다면…’ ‘꿈꾸는 자’=뭔가를 하도록 부추키는 자. 추상적 의미에서 행해지게 하는 원인인 선동함, 자극함…예언자들은 주님으로부터 살아있는 음성을 수단으로 가르쳐졌다, 그리고 꿈장이들은 행동 쪽으로 자극하는 표징들을 수단으로 했다. 이것들이 꿈장이의 애착 안으로 흘러들고 이로부터 생각의 시야로도 흘러들었다. 그 이유가 인간이 꿈을 꿀 때, 그의 자연적 이해성은 잠잠해지고 애착으로부터 모든 것을 끌어내는 그의 영적 시야가 열리어지기 때문.
이29:8-배고픈 자가 꿈에서 먹는다‘=선에 관하여 오류적인 견해와 신앙.

날랜 (swift)

* 악을 거절함에 대한 생각은 신속함이 그 생각을 시중들어야 한다.
삼하1:23-‘사울과 요나단은 독수리들 보다 더 날랬다.’ ‘날램’, 말씀에서, 총명이라 단정할 때=진리에 애착함 .
예4:13-‘그의 말들은 독수리들 보다 더 날래다’=진리들에 맞서 추론함, 그리고 그것들을 파괴함. 그이유가 말씀에서 ‘날램’, 그리고 ‘성급함’, 말씀에서 애착과 바램에 의해 휘저어짐이 의미된다.
이30:16-‘너는 말했다…우리는 날램 위에 탈 것이다. 그러므로 너를 추격하는 그들은 날램을 만들 것이다.’ ‘날램을 타는 것’=자신의 이해성, 이로부터의 생각과 추론으로부터 있는 것들을 사랑하고 몹시 탐하는 것. 그러면 거짓들이 깨부수고 소유함을 가진다는 것이 ‘그러므로 너를 추격하는 그들은 날램을 만들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날램’, 그리고 ‘성급함’=탐욕으로부터, 또는 사랑으로부터 행해지는 것.
이32:4-‘어눌한 자의 혀가 말하는데 날랠 것이다’=교회의 진리들을 거의 납득할 수 없는 이들이 애착으로부터 그것들을 인정할 것이다. ‘날램’은 애착으로 풀이된다.

날카로운 (sharp, acute)

계14:17-‘날카로운 낫’=말씀의 신성한 진리.
합1:8-‘저녁 이리들을 초월하여 날카롭다’=오류들을 수단으로 사기쳐 꾀어냄
계14장-‘날카로운’=정밀한, 절묘한, 완전한.

날마다 (daily)

* 천사들의 경우 그들이 더 내면적으로 더욱 완전해져 갈수록 더욱 덜 그들은 과거의 것, 미래의 것으로 근심하고 곰곰이 생각하지 않는다…그런고로 그들은 근심 걱정들로부터 자유하다. 이것이 하늘로부터 날마다 받은 만나로, 그리고 주님의 기도에서 날마다 필요한 분량의 빵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 ‘날마다’ 그리고 ‘오늘’=영구적인 것이다는 것은 모두 각각의 날에 실시되고 있는 제물로부터 명백하다. ‘날’, ‘날마다’, 그리고 ‘오늘’이 지닌 의미 때문에 그것들은 ‘계속적’ 또는 영구적 제물이라고 불리웠다.
* 주님의 기도에서 ‘날마다’는 매 순간들을 뜻한다. 그러므로 ‘날마다’= 연속적인 것들 안의 매 순간들이라는 공식도 도출 될런지 모른다. (천사들의) 동시에 있는 것들에서 이것은 하느님 메시아의 영광으로 바뀌는바 순간들은 어떤 깨짐이나 구분됨 없이 계속적이다. 이로부터 천사들의 지각이나 행복이 있다.

낮 동안 (by day)

출3:21-‘낮 동안은 구름 기둥 안에’=계발의 상태에 있을 때, 진리의 희미한 것에 의해 고무되었다. ‘낮 동안’, 또는 ‘낮 안에’=계발의 상태…‘낮’=명료한 지각의 상태, 또는 계발의 상태.
시91:5-‘낮 동안 날아 다니는 화살’=노골적으로 가르쳐진 거짓.
계21:25-‘그것의 문들은 낮 동안 닫히지 않을 것이다’=주님으로부터 사랑의 선으로부터의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은 새 예루살렘 안으로 꾸준히 받아들여질 것이다. ‘낮 동안’=계속적으로, 그이유는 거기에는 빛이 언제나 있기 때문.
이4:5- 너무나 많은 빛으로 상함을 당함에서 보호함이 ‘낮 동안 구름’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낯선 (strange)

* 체류하다(sojourn))을 보라.

다발 (bundle)

출12:21-‘너는 우슬초 다발을 가져올 것이다’ ‘다발’=진리들과 진리들의 배열이라 단정된다.

다시 태어남 (born again)
재출생 (rebirth)
재생 (rebirth)

* 인간은 신앙 속의 진리들을 통하여 다시 태어나진다.
* 지옥으로부터 구해지기 위하여 인간은 주님에 의해 전체적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 이것이 거듭남이라 불리는 재생이다. 그러므로 이 다시 태어남을 위하여 인간은 먼저 진리들을 배워야 한다.
* 거듭남은 영적 인간 측면에 관련한 재출생이다.

단단한 (hard)

마13:4-‘단단한 길’=거짓.
창35:16-‘라헬은 그녀의 출산에서 참기 어려운(단단한) 것들을 겪었다’=내면의 진리에 대한 시험들.
창42:7-‘그는 그들에게 단단한 것들을 말했다=그로부터, 또한 비-상응.
창42:30-‘우리에게 단단한 것들’=비-상응 때문에 비-결합. 그이유가 만일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사이에 상응이 없다면, 그러면 내적이다는 모든 것은 외적이다는 것에 단단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이유는 결합이 없기 때문이다.
창49:7-‘그리고 그들의 분노, 그것은 단단했기 때문’=진리로부터 돌아서버림, 그것은 확정적이었기 때문에…‘ 단단한’=확정된 것. 그이유가 설득당할 정도로까지 확정해버린 거짓은 단단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단단하다는 것은 경험으로부터 알도록 나에게 주어졌었다. 그이유가 영들과 천사들에게 있는 선으로부터의 진리는 부드러운 것으로 나타나고 표출되어지는데 반해, 악으로부터의 거짓은 단단한 것으로 나타나고 표출되어지기 때문. 그리고 단단해지는 정도 만큼, 악으로부터의 거짓은 더 확정되어갔다. 설득이 많은 것들을 수단으로 확증을 통하여 거행되었을 때, 그 단단함은 뼈의 단단함 같이 나타났다. 이와같은 단단함은 세상에서 단단함 같다, 거기서 빛의 광선들을 되튀기고 있다. 고로 주님으로부터 천국의 빛이 악으로부터의 거짓으로부터 단단한 것 안으로 떨어질 때, 그것은 되튀겨진다. 그러나 선으로부터의 진리로부터 부드러운 것 안으로 떨어질 때, 그것은 받아들여진다.
출6:9-‘그리고 힘든 용역 때문에’=거짓들만으로부터 감염되게 함을 수단으로.
출7:3-‘나는 바로의 심정을 단단해지게 할 것이다’=거짓으로부터의 악으로부터 완고함. ‘단단해지게 함’=완고함.
이27:1-‘단단하고, 크고, 강한 검’=모든 진리가 사멸함.
단8:23-‘얼굴이 단단한 왕’=그들의 내면에는 진리가 없고 거짓만…‘얼굴들이 단단한’=선이 없는 내면들. 그이유가 선이 없는 곳은 진리가 단단하기 때문…그리고 이 진리는 내면들에 있는 거짓이다.
겔2:4-‘얼굴이 단단한 아들’=선 없이 진리 안에 있는 이들. 그리고 추상적으로 선이 없는 진리들, 그 자체 거짓들이다.
겔2:4-자신을 납득시키는 이들, 타인들을 거짓으로 강력하게 납득시키는 이들, 그리고 어떤 진리도 용인 안하는 이들이 의미되고 있다. 이들이 ‘얼굴이 단단하고 심정이 단단해진’ 이들이라 불려진다. 그들은 오로지 최말단의 감각적인 으로부터 생각하고 말한다. 이 감각적인 것이 자아 사랑의 불로 점화될 때, 단단하고 굳혀져간다.
이19:4-‘단단한 주인’=거짓의 악.

단순한 (simple)

* 심정에서 단순한 사람은 영이 있다는 것을 자기는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이유는 자기들은 사후 살게 된다 라고 주님이 말하셨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기들의 합리성을 꺼지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님의 말씀을 수단으로 더욱 살아있게 만든다.
* ‘너는 비둘기 같이 단순하라…’
* ‘미디안’=단순한 선으로부터의 진리에 있는 이들, 고로 자신들이 쉽게 설득 당하게 허용하고 만다.
* ‘이스마엘’=영적 교회 속의 이들, 생활에 관련해 단순한 선에 있는 이들, 그러므로 교리에 관련해서는 자연적 진리에 있다.
* ‘금 귀걸이’=단순한 선으로부터 있는 것들.

달콤한 (sweet)

출15:25-‘물들이 달게 만들어졌다’=그리하여 진리들이 기뻐하는 것들로 만들어졌다는 것. ‘달콤한’=기뻐함. 그이유가 ‘달콤한’, 영적 의미에서 생명의 달콤한 것, 즐거움을 가진 것이기 때문.
계10:9-‘입에서는 꿀 같이 달게 있다는 것’=받아들임의 첫 번째에서는 감사함과 기뻐함이 있다는 것.
이25:6-‘달고 정제된 포도주’=이런 선들로부터의 진리들.
레3:5-여호와께 바치는 예물로서=사랑의 선과 신앙의 선, ‘여호와께 달콤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해진다.
시27:4-‘여호와 달콤함을 보는 것’.

더껑이 (scum)
찌끼 (froth)
거품 (foam)

겔24:11-‘숯불에 텅빈 솥을 놓아라…그로부터 더껑이가 소멸될런지 모른다.’ ‘텅빈 솥’=불결함과 더껑이인 것, 즉 악과 거짓.
겔24:6-‘피흘리고, 솥 안에 더껑이가 있는 도성은 슬플지어다. 그리고 이들의 더껑이가 없어지지 아니한 자들이여.’ 여기서 ‘솥’=선을 모독함으로부터의 악이 있는 도성, 또는 백성들. 악은 그것으로부터의 더껑이이다. 선을 모독함이 남아 있는 ‘더껑이’이다.
호10:7-‘그녀의 왕은 물들 위에 있는 거품(foam)같다.’ ‘물 위의 거품’=진리들로부터 분리되고 텅빈 것.
욜1:12-‘그는 …내 무화과나무를 찌기가 되게 했다.’ ‘찌끼’=안에 진리가 없는 것.
* ‘무화과나무를 찌끼로 되돌리는 것’=자연적 진리들의 파멸.

더럼 안 탄 (unspot, immaculate)

계14:5-‘그들은 하느님의 보좌 앞에서 더럼 안 탄 이들이다’=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선으로부터의 진리들에 있었기 때문에. ‘더럼 안 탄’에 의해 거짓들에 있지 않은 이들이 의미된다. 그 결과 진리에 있는 이들. 그이유가 ‘더럼’=거짓들, 적절하게, 악으로부터의 거짓.

(…와)더불어 (with)

* 내적 생명은 인간 안에 있지 않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있다. 그이유는 주님의 생명은 선행이다, 이는 인간 안에 있지 않기 때문, 그이유는 인간은 추잡하기 때문, 따라서 인간과 더불어 있다.
요1:1-‘하느님과 더불어’=하느님 안에.
요17:5-‘너와 더불어’=네 자신 안에.
창31:3-‘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필시 신성일 것이다는 것.
창39:21-‘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계셨다’=신성은 주님 안에 있으셨다는 것. 글자 의미에서 요셉을 취급하는 바, 그와 ‘더불어’라고 말해진다, 그러나 내적 의미에서는 주님을 취급하는 바, 그분 안에 있으시다.
창48:21-‘하느님이 너와 더불어 있을 것이다’=주님의 신성한 섭리. 그이유가 주님이 누군가와 더불어 계실 때, 그분은 그를 인도하신다.

드문 (rare)

이13:12-‘나는 사람을 순금이 드물듯 드물게 만들 것이다’. ‘드물게 있는 사람’=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
이24:6-영적 진리에 애착함과 파생되는 지혜가 중단 될 것임이 ‘사람이 드물게 남아있을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예18:21-‘그들의 사람들이 학살되어 남은 자가 드물어지게 하자…‘=진리에 애착함과 파생되는 지혜가 무디게 될 것이다.

라가 (raca)

마5:22-‘라가를 말하는 것’=오만무례함으로 이웃을 대하려는 타락한 생각으로부터. 고로 선행의 선을 무가치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 그이유가 라가를 말하는 것은 텅빈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기 때문, 고로 무가치한 것으로. 그리고 ‘형제’=선행의 선.

매끄러운 (smooth)

창27:11-‘나는 매끄러운 사람이다’=자연적 진리의 품질.
창27:16-‘그의 목의 매끄러움 위에’=분리하는 진리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는 것. ‘매끄러움’은 진리를 서술한다.

모든 (all)

창19:4-‘외곽 지역으로부터 온 모든 사람’=그것들의 각각과 모두.
창20:7-‘모든 것’=내향의 의미에서 모든 것.
창33:9-‘나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그의 영적인 재물.
창42:32-‘우리는 열 두 형제인데…’=한 복합체 안에 있는 모든 진리들.
창47:24-‘네 집에 있는 이들’=진리로부터 선에 있는 각각의 것과 모든 것. 고로 ‘네 집에 있는 이들의 양식을 위해’=각각 그리고 모든 것들에 있는 진리로부터의 선.
출25:36-‘속이 비지 않은 순금 하나’=전체의 양, 고로 선으로부터의 모두…선으로부터 있는 전부에 의해 선은 모든 것에서 모두…이는 진리들에서 뿐 아니라 과학물에서 까지 모두를 뜻한다…선은 생산물 그리고 파생적인 것에서도 모두이다.
출26:17-‘모두’가 천국에 관련해 말해질 때=모든 곳.
출29:46-‘그들의 한가운데에 나 자신 거주하는 것’=주님의 신성, 이것은 천국과 교회의 모든 것 안에 전부이다는 것.

무거운 (heavy)

창13:2-‘아브람은 가축과 더불어 극도로 무거웠다(불어났다).’
창48:10-‘이스라엘의 눈들은 무거웠다’=그의 통각함이 희미함.
출4:10-‘저는 입이 무겁습니다, 그리고 저는 혀가 무겁습니다’=신성으로부터의 음성과 연설이 들려지지 않고 지각되지도 않았다.
출14:25-‘그리고 그것을 무거워진 상태에서 끌어당겼다’=저항과 무기력함.
출17:12-‘모세의 손들이 무거웠다’=위쪽으로 주님을 보는 힘이 결핍되었다.
출18:18-‘말이 너를 위하여 너무 무겁다’=그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이유는 질서로부터가 아니기 때문.
출19:16-‘무거운 구름이 산 위에 있었다’=막 받으려는 이들에게 있는 신성의 상태.
출19:16-‘무거운 나팔 소리’=주위에 있었던 천적인 상태.
출7:14-‘바로의 심정은 무거웠다’=그들은 자신들을 완고하게 만들었다.

무딘 (dull)

예32:29-‘아버지들이 들포도를 먹어왔다, 그리고 아들들의 이가 무뎌진다.’ ‘무디어지는 이’=거기로부터 악의 거짓 안에 있는 것…‘무디어지는 것’=악으로부터 거짓을 자기 것 만드는 것.

물을 대줌 (watered)

창2:10-‘동산에 물을 댐’=총명을 주는 것.
창13:10-‘물이 잘 공급됨’=선과 진리가 거기서 자랄 수 있다.
시104:13-주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 안에 있는 이들을 복 있게 함.
예31:12,25-‘그들의 혼은 물을 공급받은 동산 같을 것이다…나는 지친 혼에 물을 공급하고, 그리고 슬픔에 찬 모든 혼 그 각각에 물을 줄 것이다’…‘물이 공급되는 것’=가르쳐지는 것. (=이 근원으로부터 총명과 지혜를 가진다는 것.
시104:13-‘그분은 그분의 방들로부터 산에 물을 대신다’=모든 선들은 천국으로부터 진리들을 통하여 (온다)
욜3:18-‘샘이 여호와의 집으로부터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싯딤의 시내에 물을 공급할 것이다’=주님으로부터 천국에서 지식들 안에 있는 이들을 계발할 교리 속의 진리가 있을 것이다.
이5;10-‘땅에 물을 대고, 대준 물은 싹과 열매를 맺는다’=교회를 생기 있게 하는 것은 교리 속의 진리와 믿음 속의 진리, 그리고 사랑과 선행으로부터의 선 등등이 열매 맺을 때이다는 것.
시65:10-‘그것의 고랑들에 물을 댐’=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으로 채우는 것.
호6:3-‘땅에 물을 대는 것’=교회를 비옥하게 하는 것, 진리들이 번성할 때, 이는 총명이 증가하는 원인이 되고, 선들이 열매 맺을 때, 천국적 사랑의 증가의 원인이 되는 바, 이것을 두고 비옥해진다 라고 말해지고 있다.

물의 흐름 (watercourse)

이30:25-‘강들과 물들의 개울들’=신앙으로부터의 진리들.
겔31:4-‘그녀는 들판의 나무들에로 그녀의 물의 흐름을 보냈다’=진리에 관한 지식이 불어남.

미적지근한 (lukewarm)

계3:16-‘그러므로 네가 미적지근하기 때문에, 그리고 차지도 뜨겁지도 않기에, 나는 너를 내 입으로부터 토해낼 것이다’=모독, 그 결과 주님으로부터 분리함.
계3:16-‘그러므로 네가 미적지근하기 때문에’=믿음 만 가지고도 의로워진다 하는 교리로부터 사는 이들. ‘미적지근함’=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는 이들, 이로부터 두 주인들을 섬기는 이들. 믿음 만에 관해 생각하고 믿고 사는 이들…그리고 그것은 명명백백해질 것이다.

바라다 (desire)
바람직한 (desirable)

창3:6-‘눈에 대하여 바람직한…’=망상
* ‘눈에 대하여 바람직함-총명을 줄 것 같은’=이와같은 것들이 그들의 본성에 적용할 수 있을 듯한…특히 그것은 의지 측면이다.
계9:6-‘그들은 죽기를 바란다’=그들은 선을 지각하는 능력이 파괴되기를 원했다.
이58:13-‘너는 내 거룩함의 날에 네 바라는 것을 하지 않도록…네 바램을 찾지 않도록’…천적 인간은 자신의 바램으로부터 행동하지 않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으로부터 행한다. 이것이 그의 바램이다.
창2:9-‘생김새에서 바람직한 나무’=진리에 대한 지각.
창3:6-‘총명을 주기에 바람직한’=쾌락(pleasure).
이32:12-‘바램의 들판들’
창4:7-‘너에게 그의 바램이 있다, 그리고 너는 그를 지배할 것이다’=선행은 신앙과 함께 있기를 바란다.
욜3:5-‘너는 나의 바람직한 것들을 너의 성전들로 운반했다’=이런 것들에 대한 (영적)지식들.
말3:1-‘너희가 바래왔었던 언약의 천사…’
호13:15-‘그는 탐낼만한 모든 그릇들의 보물이 망쳐질 것이다.’
창27:15-‘바라는 옷들’=진짜 진리들. ‘바라는’=진짜.
창31:30-‘너는 네 아버지의 집을 심히 바래왔기 때문에’=직접적으로 흐르는 신성한 선과 결합을 바람.
창34:8-‘그의 혼이 당신의 딸을 갈망한다’=이 새로운 교회와 결합하기를 열망함.
창49:26-‘시대의 언덕들의 바램에까지’=상호적인 천적 (왕국의) 사랑.
이44:9-이것에 관해서 말해지는바, ‘그들의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들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58:13-‘자기가 바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자기들의 사랑에 따라 사는 것.
계18:14-‘혼이 바라던 열매들’=천국의 행복과 복됨. 이는 죽어갈 때 인간의 바램들, 그리고 영계에 새로이 도착할 때 거기서 그들의 바램들.
눅17:22-‘너는 사람의 아들의 날의 하나를 보기를 바랄 것이다.’
욜3:5-‘상품의 바람직한 것들’=파생된 진리들과 선들, 이는 글자 의미로부터의 (영적) 지식들이다.
애2:4-‘눈들에게 바람직한 것들’=총명과 지혜로부터 있는 모든 것들.
시84:2-‘내 혼이…여호와의 뜰을 향하여…갈망한다.’
시68:30-‘그분은 백성들을 흐트셨다, 그들은 전쟁들을 갈망한다’=지옥들을 복종케함.
이64:11-‘바람직한 모든 것들이 쓸모없게 되었다.’ 말씀에서 ‘바람직한 것들’=교회의 진리들.
시19:10-‘금보다 더 바람직한 그들이다.’…‘바람직한 것’=애착으로부터, 사랑으로부터 있는 것.
마13:17-‘의로운 많은 이들과 예언자들이 너희가 보았던 것을 보기를 바랬다.’
시103:14-‘당신의 종들은 그녀의 돌들을 바랬다,’
창2:9-‘모양에서 바람직한’=이해함이 바랬던 것.
요8:44-‘네 아버지의 바람들을 너는 행할 것이다’=그들은 자기들의 탐욕들로부터의 악들에 있기를 원했다는 것.
암5:18-‘여호와의 날을 바라는 이들에게 슬픔이 있다.’ 그분이 자기들의 지상의 적들로부터 그들을 구해내리라고 믿었을 때, 그리고 자기들을 영광 안으로 운반해줄거라고 믿었을 때, 그들은 그분을 바랬다.
시132:13-‘그분은 이것을 바라셨다…여기 나는 거주할 것이다, 내가 그것을 바랬기 때문이다.’
미7:1-‘내 혼이 가장 이른 것을 바랬다.’
이58:2-‘그들은 하느님의 접근을 바랜다.’
시63:1-‘내 육체가 당신을 갈망합니다’=의지의 선 측면에서의 인간.

반점 (spot)
반점이 있는 (spotted)

예13:23-‘표범이 자기 반점들을 바뀌게 할 수 있느냐?’= (=왜곡된 진리들).
창30:32-‘반점이 있는’=거짓과 혼합된.
레21:17-23, 22:19-35-‘반점들’=거짓들 인바, 흠이 있는 아론의 자손 누구도 제단에 접근하는 것이 금하여졌다. 그리고 또한 흠이 있는 동물을 제물로 바치는 것도 금하였다.

반점 있는(speckled)

창30:32-‘반점 있는’=악과 혼합되었다.
창30:32-‘반점 있고 얼룩진’은 검다와 희다로부터이다. 검다=악,…특별한 측면에서는 인간 고유의 것,,,희다=진리,…반대 의미에서는 인간 자신의 정의 또는 공적…고로 ‘반점 있다’=선에 악이 혼합되어짐.

번갈음 (alteration)

창27:33-‘이삭은 극도로 심한 공포로 떨었다’=상태가 반대로 됨에 따른 큰 번갈음(교차됨)…’공포’=번갈음.
창28:17-‘그는 두려웠다’=거룩한 번갈음.

부끄러이 여김 (ashamed, shame)

* 벌거벗음도 참조
* ‘자신들에게 벨트를 만드는’ 것=부끄러운 마음이 일어났다…자연적 선에 있는 동안 그들은 부끄럼의 마음 안에 들어왔다.
시127:5-‘그들은 성문에서 적들과 말할 때 수치스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지옥들로부터의 악들에 대한 두려움은 하나도 있지 않을것이다

부드러움 (tenderness)

창18:7-‘부드럽고 좋은 품질의 황소의 아들’=…이것은 영적인 것으로부터의 천적인 것, 또는 선의 진리로부터 부드럽다 라고 불리워진다.
창33:13-‘어린 아이들은 유약하니…’=신성한 생명을 아직은 획득하지 못한 진리들…’유약함’=최근인 것, 그리고 고로 어떤 생명을 획득했으나 아직 순수하지 않은 것.

부활 (resurrection)
다시 일어남 (rise again)

* bury, resuscitate도 참조
*그분의 부활 이후 그들은 그분을 주님이라 불렀다.
*주님이 셋째 날에 다시 일어나신 이유. 주님의 부활 자체는 모든 거룩함, 그리고 모든 이의 부활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이 숫자는 표현적 숫자가 되었다…천국에서는 ‘3’과 ‘7’ 대신 그들은 주님의 부활과 강림에 관한 일반적 생각을 가진다.
* 요나…셋째 날에 있은 주님의 부활을 표현했다.
호6:2-‘셋째 날’=주님의 강림과 부활.
눅14:14-‘의로운 자의 부활에서 보답이 있다’=보상받음 없이 잘 행동함으로부터 있는 내적 행복.
계20:5-‘이것은 첫 번째 부활이다’=구원과 영원한 삶이 있다는 것, 우선적으로 주님을 예배하는 것, 그리고 말씀에서 그분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것.
계20:6-‘첫 번째 부활에서 부분(몫)을 가진 자는 복되고 거룩하다’=천국으로 오는 이들은 영원한 생명의 행복을 가진다, 그리고 주님과의 결합을 통하여 예증 받는다….’첫 번째 부활’은 주님에 의해 천국으로 승강됨이 의미된다, 고로 구원이다.
눅20:36-이들이 ‘부활의 아들들’…이라 불리운다.
겔37장-거듭남, 이는 또한 죽은 자로부터의 부활이다, 하여 뼈들에 생명이 불어넣어짐에 의해 표현되어져 있다.

불결한 (unclean)

레22:6-불결한 것을 만진 혼은 저녁 때까지 불결하다.
호9:3-‘그들은 아시리아에서 불결한 것을 먹을 것이다’=추론함으로부터 있는 모독적이고 불순한 것들.
겔24:11-‘불결함’과 ‘더껑이’=악과 거짓.
마12:43-‘불결한 영’=인간과 더불은 생명의 불결함, 또한 그 사람과 더불어 있는 불결한 영들. 그이유가 불결한 영들은 인간의 생명의 불결함에 거주하기 때문.
마15:17-19-고로 인간의 의지가 아니고 생각으로 들어가는 것들은 그를 불결해지게 하지 않는다…의지 안으로 들어간 것들이 그를 불결해지게 하는 이유는 그것들을 그가 자기 것되게 했기 때문.
애1:9-(옷의) 술에 불결함이…=행위들과 말함들에, 고로 극단(extremes)에.
레7:18-21-…그이유가 모든 이런 외적인 불결함은 인간과 더불은 악들인 내적 불결함을 표현했기 때문, 즉 이런 악들은 그의 의지 속에 있고, 이는 실제의 생활에 의해 자기 것 되고 만다.
레11:37,38-이런 불결한 것들에 의해 다양한 종류의 악들과 이 악에서 파생되는 거짓들이 의미되어진다. 이것은 지옥으로부터 있다. 불결한 것들의 각각 특수한 어떤 악. 그이유가 악들은 인간을 불결해지게 하기 때문, 그것들이 그의 혼으로 주입되기 때문. 그리고 더욱이 그들 심정들로부터의 악들은 악령들과 악귀로부터 쏟아져나온다. 그리고 악의 설득에 응하는 이들에게 주입된다. 이런 접촉 전염이 불결한 것들을 만짐에 의해 의미된 것이다.
계17:4-‘그녀의 매춘의 불결함’=말씀의 선과 진리를 더럽힘
계21:27-‘불결한 어떤 것도 그것 안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불결한 것’에 의해 영적 매춘이 의미되어진다. 이는 선에 섞음질함, 말씀 속의 진리를 왜곡함이다.
이52:1-‘할례받지 않은 자와 불결한 자는 더 이상 네게로 오지 않을 것이다’=악들과 거짓들에 있는 이들.
마12:45-‘일곱 불결한 영들’=악으로부터의 모든 거짓들. 고로 선과 진리의 완전한 파괴.
슥13:2-‘불결한 영’=교리의 거짓들로부터 튀어나오는 악들.
겔36:25-‘나는 네 위에 깨끗한 물들을 뿌릴 것이다, 하여 너는 모든 너의 불결함으로부터 깨끗해질 것이다’ ‘깨끗한 물들’=순수한 진리들. 거짓들은 불결함이라 불린다. 그 이유는 그것들이 악으로부터 있기 때문, 그리고 악을 생산하기 때문.
계16:13-‘개구리 같은 세 불결한 영들’=신성한 진리에 맞서는 단지 거짓들로부터의 추론들. ‘불결한 영들’=지옥으로부터 있는 악의 거짓들. 그 이유가 지옥에 있는 모든 것은 악의 거짓으로부터 불결하기 때문. 불결한 모든 것들은 악으로부터 있는 거짓들로부터 생겨나기 때문. 깨끗한 모든 것은 선으로부터 있는 진리들로부터 있기 때문.
계18:2-‘불결한 모든 영이 소유하고 있다’=거기에는 말씀의 왜곡된 진리들로부터의 거짓들 밖에 더 없다는 것…‘불결한’=추악한 사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 특히 지배욕으로부터. 그 이유가 이것이 지옥에서 불결함을 만들기 때문.

불모 (barren, 열매를 못맺음)

* 아이를 못 낳음도 참조
* ‘불모’=진리들과 선들이 결핍인 것.
왕하2:19-‘불모의 토지’=교회의 선이 살아있지 않음.

불성실하게 (perfidously)

출21:8-‘불성실하게 행동하는 것’=신성으로부터의 진리에 반대되는 것, 또는 신성한 질서의 법칙에 반대되는 것…‘불성실하게 하게 행동하는 것’이라는 표현은 말씀에서 판에 박힌 문어체인데, 이는 내적 의미에서 천국에 있는 진리와 선에 반대되게 행동하는 것이다.
예9:2-‘불성실한 무리들’=선에 관한 지식들을 왜곡하는 이들.
이48:8-‘불성실하게 행동하는 것’=계시된 진리들에 반대되는 것.

불성실한 (unfaithful)

계21:8-‘불성실한 자’=이웃을 향해 선행이 없는 이들.

불쌍히 여김 (cpmpassion, pity)

* 자비(mercy) 참조.
호2:19-‘자비함과 불쌍히 여김에서’
창43:30-‘그의 불쌍히 여김이 움직여졌다’=사랑으로부터의 자비…원어에서, ‘불쌍히 여김’은 가장 깊고 가장 부드러움을 뜻하는 단어에 의해 표현되어져 있다.
출2:6-‘그녀는 그를 불쌍이 여겼다’=신성으로부터의 권고. ‘불쌍이 여김을 가지는 것’=주님으로부터 선행이 유입됨. 그이유가 사람은 선행으로부터 비참한 신세에 있는 누군가를 볼 때, 불쌍히 여김이 일어나기 때문, 그리고 본문의 경우 이것이 주님으로부터 인 바, 이것은 권고이다. 지각에 있는 이들은 자기들이 불쌍히 여김을 느낄 때, 도움을 주도록 주님께서 자기들에게 권고하시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63:15-‘내부의 동요’는 선을 서술하고, ‘불쌍히 여김’은 진리를 서술하고 있다.
민6:25-거짓들로부터의 보호가 ‘네게 불쌍히 여김을 가지는 것’에 의해 뜻해지고 있다.
호1:7-‘불쌍히 여기시고 여호와 그들의 하느님이 구해주심’=주님에 의한 구원.

불행 (misery)
비참한 (misery)

겔16:49-자비 없음이 ‘그들은 비참한 신세이고 궁핍한 자의 손을 강하게 해주지 않는다’에 의해 묘사되고 있다.
창31:42-‘나의 비참함’=시험들.
계3:17-‘불행함’=생활 안에 심어진 진리 없음. 고로 선이 없음.
출32:18-‘불행한 외침의 소리를 나는 듣는다’=탄식하는 그들의 내면의 상태.
계3:17-‘그리고 불행하고 가난한’ 그들이 진리들과 선들 없이 있는 것. ‘불행하고 가난한’은 말씀의 영적 의미에서는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 없이 있는 이들이 뜻해진다. 그이유가 이들이 영적으로 불행하고 가난하기 때문.
시37:11-‘불행한 자’가 이 구절에서는 세상에서 시험들에 있는 이들을 뜻한다.
시74:19-‘불행한 자’란 거짓들이 창궐하는 이들, 이를 걱정하고 이로부터 해방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뜻해진다.
시74:19-‘불행한 자의 생명’은 악들과 거짓들에 짓눌린 영적 생명이 뜻해진다.
이14;32-‘그녀 안에서 백성의 불행한 자가 희망이 있을 것이다’=자신들로부터는 지혜가 없다는 이들, 그리고 이런 거짓들에 맞서 시험을 극복하는 이들과 더불어 총명과 구원이 있을 것이다.

비스듬한 (obliquity)

눅3:5-‘꼬부라진 것이 곧아지는’=무지로부터의 악이 선으로.

비슷함 (likeness)

* 모습(likeness)를 보라

비어 있음(emptiness)

* 먼저 진행되어 있는 첫 상태, 이는 유아로부터인 것, 또한 직접적으로는 거듭나기 이전의 것 모두가 해당된다; 그리고 이 첫 상태가 공허(vacuity), 텅빔(emptiness), 짙은 어둠 (thick darkness)이라 일컬어진다.
창1:2 예4:23-‘땅은 공허(void, vacuity)하며 비어있었다(emptiness)’….거듭남 이전의 인간이 ‘땅은 공허하고 텅비었다’라고 불리워진다, 그리고 또한 그는 선과 진리에 관한 어떤 것도 뿌려지지 않은 지면이라 불리워진다; ‘공허’는 선에 관한 것, ‘텅빔’은 진리에 관한 것이다…예레미야서에서 인간이…‘나는 땅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공허이었고 텅빔이었다’라고 묘사되고 있다.
이24:10-‘부서지게 될 텅빈 도성’=진리가 결여된 인간의 마음.
이34:11-진리의 황량함과 황폐함이 ‘텅빔의 줄과 황폐의 추’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예4장-‘공허하고 빈’=선과 진리가 없는 교회 안에.
이45:18-‘그분은 그것을 텅비게 창조하시지 않았다’=재구성되어가는 이들에게 선과 진리가 결핖되는 일이 없게 하신다. 이것들의 결핖이 ‘텅빔’이다.
눅1:53-후자가 박탈될 것임이 ‘하느님께서는 부자를 빈채로 내보냈다’에서 의미된다.
이41:29-‘바람과 비어 있음’=악으로부터의 거짓들과 거짓으로부터의 악들; ‘바람’=악으로부터의 거짓들; 그리고 ‘비어 있음’=거짓으로부터의 악들; 그 이유가 텅빔과 공허한 것이 있는 곳=선과 진리가 결여된 것, 악과 거짓이 있는 것.
이30:7-‘공허(vanity)와 텅빔이 있는 이집트’=감각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 모두, 이것은 그 자체로만 고려한다면 선이 결여되어 있고 진리들이 결핖되어 있다.
예22:22-‘목자들을 먹일 바람’=교리의 공허와 비어 있음.창1장- 땅이 공허(waste)하다, 비어 있다 라고 불린다
창42:35-‘그들은 자기들의 자루를 비웠다’=자연에서 진리들이 사용됨. ‘비우는 것’, 즉 그들이 이집트로부터 가져온 양식=진리들로부터 선용을 수행하는 것.
출15:9, 레 6:33-‘나는 검을(으로) 모조리 비울 것이다(털어 낼 것이다)’=악으로부터의 거짓들의 계속된 전투; 의미가 이러함은 ‘모조리 비움’, 또는 ‘알몸으로 만듦’의 의미가 적이 드러누워질 때 까지 계속되는 전투 이다 에서 알 수 있다. 계속적인 전투가 ‘검을 뽑아 듬, 또는 검으로 모조리 비워버림’에서도 의미된다.
이24:3-‘토지를 모조리 비우고 못쓰게 만듦’=교리 속의 진리와 신앙 속의 진리에 관련하여 교회가 황폐함.
예14:3-‘빈 그릇들’=진리가 없는 지식들; 또한 선이 없는 진리들.
창31:42-‘당신은 나를 빈(손)으로 떠나보냈을 것이다’=그는 자신을 위해서 모든 것들을 주장하리라는 것. ‘빈 채로 떠나보냄’=그로부터 모든 것을 가져감, 고로 자신을 위해 모든 것들을 요구함.
창37:24-‘구덩이는 비었었고, 그 안에 물은 없었다’= 그 당시 참된 것은 없었다는 것…‘비어 있음’=선이 없기에 진리도 없는 것.
예14:3-‘빈 그릇’=선으로부터의 진리가 아닌 진리들.
예51:34-‘빈 그릇’=진리가 있지 않은 것.
이34:11-‘그들은 그것 위에 공허의 수평 줄과 텅 빔의 수직 추를 뻗칠 것이다.’
이24:10-‘공허의 성읍은 부셔진다…’ 여기서 비어있음이 원어에서 공허라는 말로 표현되는데 의미는 같다. ‘빔’= 선이 없기 때문에 진리가 없는 것, 여기서 내적 의미에 있는 몇 사항들로부터 명백하다.
겔24:11-‘텅빈 가마를 숯불 위에 놓는 것’…텅빈 가마는 그 안에 불결한 것과 찌끼가 있는, 즉 거짓과 악이 있는 가마이다.
마12:44-‘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준비되었다’…그들은 이것들을 아는데 그것을 행하지 않는 ‘부자’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이런 사람들과 더불은 진리는 진리들이 아니다, 그 이유는 선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눅1:53-‘그분이 빈 채로 내보낸 부자’…그들은 이런 것들을 아는데 행하지 않는 ‘텅빈 부자’라 불린다; 그이유는 이런 사람들과 있는 진리들은 선이 결핍되어 있어 진리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12:44-신앙과 선행이 결여되어 있고 악들과 거짓들로 차있는 내적인 것이 주님께서 ‘텅빔’이라고 부르신다…이로부터 이것은 내적인 것 없는 외적인 것이라 불린다.
암4:6-‘이(teeth)를 비움=진리가 빈궁함.
출23:15-‘너는 공허하게 내 얼굴들을 보지 않을 것이다. Ye shall not see My faces emptily’=자비와 감사로부터 선을 받는 것… ‘헛되이 보지 말라’ 또는 선물 없이는 안된다=선을 받음 때문에 있는 증명, 그리고 감사함…

비열한 (vile)

창16:4-‘그녀의 여주인은 그녀의 눈에 비열했다’=이 합리성, 그것의 임신에서 선에 인접한 진리 자체를 멸시했다는 것.

비참함 (calamity, wretched)

계3:17-‘비참한(wretched)’=교회의 것들에 관하여 시종일관성 없이 생각하는 자.
계3:17-‘그리고 네가 비참하다(wretched)는 것을 모르고 있다’=그들은 자기들의 거짓들이 진리에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 ‘비참함(calamity)’=거짓들을 수단으로 진리들이 부셔짐, 또한 일치함이 없다…
이47:11-‘해악이 네 위에 떨어질 것이다’란 진리에 대한 모든 이해함의 손실이 있다를 뜻한다.
겔7:26-‘비참함 위에 비참함이…’=거짓으로부터 거짓이…
시5:9-‘그들의 내향의 부분은 비참하다’. 여기서 ‘비참함’=어떤 진리와도 부합하지 않는 거짓들.

사랑하는 (beloved)

신33:12-‘여호와께서 사랑하는 자’=천적인 선으로부터 있는 영적 진리.
호9:1-‘매춘짓을 하고 매춘 삯을 사랑하는 것’=진리들을 왜곡하고 왜곡된 것들을 사랑하는 것.
출21:5-‘나는 내 주인, (내) 여인을 사랑한다’=영적 선들을 회상함으로부터의 즐거움. ‘사랑하는 것’=회상함으로부터의 즐거움.
겔23:5-‘아시리아인들을 사랑하는 것’=추론함을 사랑하는 것.
계3:9-‘내가 너를 사랑했다는 것’=그들은 주님에 의해 사랑되고 천국 안으로 받아졌다는 것.
계12:11-‘그들은 죽기까지 자신들의 혼을 사랑하지 않았다’=주님 보다 더 자신들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
계20:9-‘사랑하는 성’=새 교회의 교리.
요14:21,23-‘사랑하는 것’, 주님에 관련해 말해질 때,=그분이 현재 계신 것…그이유는 사랑은 결합, 또는 현존을 결과하기 때문. 그리고 주님은 사랑하는 자에게로 들어간다…또한 그분을 사랑하는 자, 즉 그분의 계명을 행하는 자에게 들어가신다.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내 가르침을 간직하여 행하는 자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를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를 사랑하리라…’에서도 가르치신다.
눅20:13-‘사랑하는 아들’에 의해 신성의 진리 측면에서의 주님이 뜻해진다.
이5:1-‘내 사랑하는 자’=주님, 그이유는 그분이 교회들을 복구하시기 때문.
요15:9,10-‘내 사랑 안에 거하라. 만일 네가 내 명령들을 지킨다면, 너는 내 사랑 안에 거할 것이다.’
호4:8-‘그들이 사랑했다’=거짓을 사랑함.

사악함 (wickedness)

* 악의(malice)도 보라.
출2:13-‘그는 사악한 짓을 한 그에게 말했다’=…신앙으로부터의 진리 안에 있지 않는데도 교회 안에 있는 이에게…
출9:27-‘여호와가 올바르시다. 나와 내 백성이 사악했다’=신성한 선은 침입자의 악의를 참아줄 수 없었다는 것…‘그들의 사악함’=악의.
시109:6-지옥의 악과 거짓이 그들에게 널리 퍼졌는바, ‘당신은 제 위에 사악한 자를 놓으시고, 사탄이 제 오른쪽에 서있게 하소서’라고 말해진다.

새기다 (grave)
새긴 (graven)

* ‘새긴 것’=거짓, ‘주조한 것’=악, 이것은 자아 속에 있다.
합2:18-‘새긴 것’=자아에 의해 부화되고 임신된 원리들로부터 있는 거짓된 설득들.
* ‘나무에 새긴 것’=탐욕들.
왕상6:29,32-이 새긴 것들을 수단으로 천국의 상태가 표현되어졌다.
출20:4-‘너는 네 자신에게 새긴 것을 만들지 말라’=자신의 총명으로부터는 아니다. ‘새긴 것’=주님으로부터 있지 않고 인간의 자아로부터인 것, 인간의 지적 측면의 자아가 ‘새긴 것’에 의해, 인간의 자발적 측면의 자아가 ‘주조한 것’에 의해 각각 의미되고 있다.
출28:9-‘너는 이스라엘의 후손들의 이름을 그것들 위에 새겨라’=그 위에 영적 왕국의 선들과 진리들을 각기 모든 품질 측면에서 인상지우는 것. ‘돌에 새기는 것’=기억에 인상지우는 것.
출28:11-‘너는 도장에 새기는 방식으로 이스라엘 자손의 이름들에 의거, 두 돌들에 새겨라’=모든 진리들이 그것들의 질서에서, 기억에서 있는 그 진리들의 천국의 형체. ‘돌에 새기는 것’=기억에 인상지우는 것.
이40:19-‘새긴 것’=자신의 총명으로부터 있는 거짓된 교리, 고로 신성으로부터의 생명이 결여되었다.
* 도장을 새김=천국적인 형체.
출28:36-‘너는 그것 위에 도장을 새기는 방식으로 새길 것이다’=천국적 영역(sphere)에 따라 심정들에 인상지워 영구적인 것. ‘새기는 것’=기억에 인상지우는 것, 또한 명심하는 것.
출31:5-‘채움을 위해 돌을 조각함에서’=사랑의 선에 봉사하는 신앙 속의 모든 것들. ‘돌을 조각함(engrave)’=사랑으로부터 신앙 속의 모든 것들에 대한 표현.
출31:5-‘모든 작업을 함 중에서 나무를 새김’=어떤 선이든 모든 선을 표현하는 것.
이40:20-‘새긴 것’=예배 속의 악

새로운 (new)
새로(이) (anew)

이62:2-‘새 이름으로 부름’=새로이 창조됨, 또는 거듭남.
마26:29-‘내가 너희와 그것을 새로이 마시는 그 날 까지…’
겔18:31,36:26-‘새 심정’=새 의지. 그리고 ‘새 영’=새로이 이해함.
계21장-‘나는 모든 것들이 새로워지게 한다’=지금 주님에 의해 복구되어질 교회 안에는 새로운 교리가 있을 것이다.
계3:12-‘그리고 내 새로운 이름’=이전 교회 안에 있어오지 않았던 새로운 것들과 더불어 주님 만을 예배함.
계5:9-‘그리고 그들은 새로운 노래를 불렀다’=주님을 인정함과 영광을 기림. 그리고 그분만이 심판자, 구속자요 구세주, 고로 천국과 땅의 하느님이시다는 것.
계14:3-‘그들은 말하자면 새로운 노래를 불렀다’= 새 기독교인의 천국에서 주님을 경축하고 영광을 기림. 이 천국에서, 그분은 고대의 천국들에서 인정되어진 바 같이 천국과 땅의 하느님으로 인정되어지고 있다. 이 구절에 삽입된 표현 ‘말하자면, as if’가 이 노래는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이유가 이 노래는 고대 천국들에서도 불렀었기 때문이다.
계21:5-‘잘보라 나는 모든 것을 새로이 만든다’=주님은 마지막 심판을 집행하셨다는 것, 그 다음 새 천국과 새 땅, 그리고 새 교회를 그것들 안의 각각 그리고 모든 것과 함께 창조하실 것이다는 것,
막16:17-‘새 혀들’=새 교회를 위한 교리적인 것들.

생동하게하다 (vivify)
생생한 (vivid)

창2:23-‘뼈’=생동함이 그리 많지 않은 자아. ‘살’=생동함이 있는 자아.
창7:3-‘씨를 살아 있게 만드는 것’=신앙 속의 진리들.
창12:12-‘그들은 나를 죽일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살려둘 것이다’=그들은 천적인 것들에 관심이 없고 오로지 지식들만에 관심이 있다는 것.
창14:5-‘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살아있게 만들기 앞서 나를 보냈다’=섭리에 의해 그들 안에 영적 생명이 있다.
창47:25-‘당신은 우리를 살아있게 만들었다’=영적 생명, 그외 달리는 없다…
창50:20-‘많은 사람들을 살아 있게 만드셨다’=선으로부터 진리들에 있는 이들을 위한 생명이 이것으로부터 있다.
출1:17-‘그들은 소년들을 살아있게 간수했다’=진리들, 선으로부터인바, 보존되어졌다.
요6:63-‘활기 띠게 하는 것이 영이다’
출22:18-‘너는 마법사가 살아 있게 내버려두지마라’=영적 생명의 박탈.
겔13:19-‘살아있지 않아야 할 혼들을 살아있게 만드는 것’=영원한 생명이 거짓들로부터 있다고 그들을 설득해대는 것.
시33:19-‘기근에서 그들이 살아있도록 간수하는 것’=바램에 따라 영적 생명을 주는 것.

섬뜩 놀람 (consternation)

창45:3-‘그들은 요셉 앞에서 너무나 당황했다(terrify)’=그들 사이에 있는 동요(흔들림).
출15:15-‘에돔의 족장들은 깜짝 놀랐다(affright)’=자아 사랑으로부터 악한 생활을 하는 이들과 비슷함.
레26:16-‘나는 그들의 심정에 섬뜩 놀람을 놓을 것이다.’

속이 비지 않은 (solid)

출25:31-‘속이 비지 않은’=전부(whollly).

속이 빈 (hollow)

출27:8-‘너는 그것을 판자로 속이 비게 만들어라’=적용(application)

순수한 (pure)
순수해지게 하다 (purify)

창35:2-‘너희 자신을 순수해지게 하라, 그리고 너의 옷을 갈아입어라’=거룩함이 입어지게 하는 것. (그이유가) ‘순수해지게 하는 것’, 또는 ‘깨끗하게 하는 것’=신성해지게 하는 것.
민19:2-11-‘물’은 순수하게 하는 매체를 표현하였다.
출12:7-11-‘누룩 넣지 않은 것’=모든 거짓으로부터 순수해지게 하는 것.
출12:21-24-‘우슬초 한 다발을 가져오라’=순수해지게 함이 있게 하는 외적 매체.
말3:3-‘레위의 아들들을 순수해지게 하는 것’=선과 진리를 순수해지게 함.
출28:14-‘순수한 금’=신성으로부터의 선.
출29:2-‘누룩 없는 빵’=가장 깊은 인간 안에서 천적 평면이 순수해짐.
출29:2-‘누룩 없는 과자’=중간 천적 평면의 순수해짐.
출29:36-‘속죄하는 것’=악들과 악에서 파생하는 거짓들로부터 순수해지게 함. 또는 제거함.
* ‘비둘기’=신성한 진리를 통하여 순수해짐.

신중한 (prudent)

마10:16-‘너희는 뱀 같이 신중하라.’
마25:2-‘다섯 신중한 처녀들’=선이 있는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
마7:24-선 안에 있는 자, 즉 가르침들에 따라 행하는 이들이 ‘나는 그를 신중한 사람과 같다’에서 ‘신중한 (자)’이다고 불려지고 있다.
출1:10-‘우리는 그들을 두고 신중히 대처하자’=교활함. (그이유가) ‘신중함’이 악한 자에 의해 말해질 경우, 교활함을 뜻하기 때문. 악이 교활함이나 사기침을 행동할 때, 그들은 이것을 신중하다 부르기 때문.
* ‘지식의 나무’ (창2:9)=자신으로부터의 신중함 측면에서의 인간.
* ‘뱀 같이 너희는 신중하라.’ 선에 있는 이들이 ‘신중한’ 이들이라 불리운다. 그리고 악에 있는 이들은 교활하다 불린다.
눅16:8-‘이 시대의 아들들은 빛의 아들들 보다 더 신중하다.

쌓인 것 (pile)

이30:33-‘그것의 쌓인 것’=(교회의 모든 선들과 진리들을 파괴하는 끔찍하고 맹렬한 사랑으로부터의) 악들.

쓴 (bitter)
쓴맛 (bitterness)

창26:35-‘이삭과 리브가에게는 영의 쓴맛이었다’=거기로부터 먼저 있는 것은 슬픔이었다.
계10:10-‘내 배가 쓰게 만들어졌다.’ 말씀 측면에서의 신성한 진리는 글자 의미의 바깥쪽 형체에서는 즐겁게 한다, 그이유는 모든 이 각각의 취향에 맞추도록 하는 것이 허용되기 때문. 그러나 ‘쓴’맛에 의해 의미된 것, 즉 내적 의미에서는 그렇지 않은데, 그이유는 내적 의미는 내면의 인간을 드러나게 하기 때문.
출1:14-‘이집트인들은 비참한 노예 신세를 가지고 이스라엘 후손들의 삶을 쓰게 만들었다’=복종시키려는 의도가 적개심에 불타고 고통을 유발하게 했다.
출12:8-‘쓴맛 위에’=시험들 속의 불유쾌한 것을 수단으로.
출15:23-‘그들이 쓴맛 때문에 물들을 마실 수 없었다, 그이유는 그것들이 쓴맛이었기 때문’=그들이 선에 애착함이 결핍되었기 때문에 진리들이 그들에게는 불유쾌하게 나타났다…‘쓴’=불유쾌함.
* ‘마라’는 ‘쓰다’를 뜻한다.
계8:11-‘많은 사람들이 물들 때문에 죽었다, 그이유는 그들이 쓰게 만들었기 때문’=말씀의 왜곡된 진리들 때문에 많은 사람의 영적 생명이 소멸되었다. ‘쓴’=왜곡됨인 이유는 쑥의 쓴맛이 이해되기 때문. 그리고 ‘쑥’=지옥의 거짓.
애3:15-주님께서는 (유대) 교회에서 거짓과 왜곡된 진리 외에는 아무 것도 발견하시지 못했다는 것이 ‘그들은 그를 쓴 것 가지고 배불리게 하고, 쑥으로 취하게 했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계8:11-‘그들이 쓰게 만들었기 때문에’=말씀 속의 진리들이 왜곡되었기 때문에…‘쓴’ 그리고 ‘쓴맛’=진리들에 악의 거짓들을 혼합함으로 왜곡된 것.
이5:20-‘선인 것을 악이라고, 악인 것을 선이라 말하고, 빛을 위해 어둠을, 어둠을 위해 빛을 놓고, 단것을 위해 쓴 것을, 쓴 것을 위해 단 것을 놓는 이들에게 슬픔이 있을 것이다.’ 섞음질된 선과 진리가 여기서 ‘쓴 것’에 의해 의미되는 것은 분명하다.
이24:9-‘독주를 마시는 자에게 독주는 쓸 것이다’=진리의 왜곡되게 함과 섞음질함으로부터 불유쾌한 선으로부터의 진리.
신32:32-‘그 송이는 쓴맛’=섞음질된 신앙 속의 선들.
민5:27-‘간음’=거짓과 악의 결합. 만일 그녀가 죄지었다면, ‘물들은 쓴맛이 되었을 것이다.’ 이를 수단으로 섞음질된 신앙의 선들.
호12:14-‘쓴맛’=불유쾌함이 있게 하는 곡해함과 그로부터의 거짓들.
* ‘(마라의) 쓴 물들’=외관적으로 진리로 나타나나, 그것의 존재가 거짓들로부터 파생된 것.
(…이) 아니다 (not, nay)
창19:2-‘그들은 말했다, 아니다’=시험 속에 있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
창23:11-‘아닙니다, 나의 주여, 나에게서 들으소서’=그들이 신앙의 희미함에 있었다는 것…
창30:31-‘어떤 것도 주지 않는 것’=가져와 지지 않는 것.
창41:16-‘말하기를, 제가 아닙니다’=그것은 인간 만으로부터가 아니었다.
창42:10-‘그에게 말하기를, 아닙니다, 나의 주여’=그들은 이득을 추구하지 아니했다는 것.
창42:10-‘한 명은 있지 않다’=신성한 영적 평면은 나타나지 않는다.
마5:36,37-…이들이 이 구절, 즉 ‘너희는 대화할 때, 예, 예, 아니오, 아니오라고 해라, 이외의 것은 악으로부터이다’에서 뜻해진 이들이다. 그이유가 그것이 그렇다 여부에 관련하여 진리들로부터 추론하는 것은 선으로부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이유는 이때의 진리는 지각된 것이 아니기 때문, 따라서 권위로부터, 그 결과 자아에 의한 확증으로부터 만 믿어지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그래도 목사의 설교인데, 신학 박사의 강연인데…설마 거짓이 섞여 있겠는가 하여 믿는 따위 말이다.

아름다운 (beautiful)
아름다움 (beauty)

창12:11-‘나는 당신이 쳐다보기에 아름다운 여인이다는 것을 안다‘=천적 근원으로부터의 진리는 즐거웁다는 것.
창12:14-‘이집트인들은 그녀를 보았는데, 그녀는 매우 아름다웠다’=영적 지식에 관한 지식은 그 자체 매우 즐거워하고 있다.
겔28:12,13-‘지혜로 가득함, 아름다움에서 완전함으로, 너는 하느님의 동산, 에덴에서 있어왔다…’ 합리성으로부터 낙원을 바라보는 것이 선물되어졌다. 이것은 장엄함과 아름다움에서 인간 상상으로부터의 모든 생각을 능가한다. 이것은 주님으로부터 천적, 영적 빛의 유입의 결과이다. [천사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낙원적인 즐거움과 아름다움이 아니라, 천사들 안에서 살고 있는 천적. 영적인 것들이다.
창13:10-이것은 바깥쪽 사람이 주님에게 나타난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내향의 인간과 결합했을 때에 나타나는 아름다움이다. 이 아름다움은 주님 만을 제외하고는 어떤 사람과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묘사해볼 수 없다. 세 천국들은 주님의 바깥쪽 인간의 형상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의 아름다움은 서술되어질 수 없다.
창24:16-‘소녀는 보기에 매우 아름다웠다(good)’=진리에 애착함의 아름다움. 모든 아름다움은 순진이 있는 선으로부터 있다. 선이 내향으로부터 바깥쪽 인간 안으로 흐를 때 이것이 아름다움의 원인이 된다. 이것은 모든 인간의 아름다움의 근원이다.
창29:17-‘라헬은 모습이 아름다웠고, 바라보기애도 아름다웠다’=영적인 것에 관련하여 내면의 진리에 애착함 …‘모습(form)’에 의해 본질이 의미되고, ‘바라보는 것(look)’에 의해서는 본질로부터 파생되는 아름다움이 의미된다.
이33:17-‘그의 아름다움에서 왕을 보는 것’=주님으로부터 있는 신앙으로부터의 진리들. 선으로부터 ‘아름답다’라 불리우는 신앙으로부터의 진리들…이 아름다움은 선이라 단언된다.
창39:6-‘요셉은 모습에서 아름다웠다’=거기로부터 파생된 생활의 선. 그리고 ‘바라보기에 아름다운 것’=거기로부터 파생된 신앙의 진리.
창41:2-‘바라보기에 아름답다’=신앙으로부터 인 것
겔28:12-그러므로 두로의 왕에 대해 말하기를, ‘그는 지혜가 가득하고, 아름다움이 완전하다.’ ‘지혜’는 선을, 그리고 ‘아름다움’은 진리라고 단언된다. 그이유가 천국들에서 모든 지혜는 선으로부터 있고, 모든 아름다움은 거기로부터 파생된 진리들로부터 있기 때문.
겔16:13-‘아름다움’=선으로부터 있는 진리의 형체.
이3:24-‘아름다움’=교회에 있는 선으로부터의 진리의 형체, 고로 교회의 완전함.
겔16:15-‘너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신뢰하고 있다’=매료되게 하는 자아로부터의 총명.
이33:17-‘그의 아름다움에서 왕을 보는 것’=주님만으로부터 있는 진짜 진리를 보는 것.
겔16:13-‘너는 극도로 아름답게 되었다’=총명.
시48:2-거기로부터 혼이 기뻐함이 ‘장소가 아름답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이33:17-‘그는 그의 아름다움에서 왕을 볼 것이다’=그들은 지혜를 획득할 것이다는 것. 그이유가 ‘왕’=선으로부터의 진리. ‘아름다움’=그것으로부터의 지혜, 그이유가 이것 안에 그것 고유의 형체에서 있는 신성한 진리가 있기 때문.
이44:13-‘인간의 아름다움’에 의해 거기서부터 파생된 총명의 나타남이 의미된다.
겔16:13-‘아름다움’=총명.
이3:24-‘아름다움 대신 태움’에 의해 총명 대신 어리석음이 의미되어진다.
겔31:3-‘가지는 아름답고, 그늘을 주는 나무’=과학물들을 수단으로 합리적인 진리들을 통하여 있는 총명.
겔31:7-‘…큼에서 아름다운…’=총명.
단4:12-‘거기로부터의 잎은 아름답고, 꽃은 많다’에 의해 지식들과 진리와 선에 애착함들, 거기로부터 파생된 총명이 의미되어진다.
겔16:25-‘아름다움’에 의해 진리, 그리고 거기로부터 파생된 총명이 뜻해진다. 그 이유가 영계에서 모든 이는 선으로부터 있는 진리, 그로부터 파생되는 총명에 따라서 아름답기 때문.
겔31:3-‘아름다움’에 의해 진리에 애착함, 그리고 거기로부터 파생된 총명이 의미되어진다.
이5:9-‘아름다움’은 진리, 그리고 그것의 총명이라고 단언된다.
시45:2-그분이 신성한 지혜를 가지고 있으시다는 것이 ‘당신은 인간의 아들들을 초월해 아름답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아름다운’=슬기로운.
겔28:12-이것이 지혜와 총명의 사람의 근원인 바, 말해진다, ‘두로의 왕, 너는 지혜로 가득하고, 아름다움에서 완전하다.’ ‘아름다움’=총명, 그이유는 천국들에서는 총명에 따라서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
암8:13-진리에 애착함, 진리를 이해함이 결핍 때문에 중지되리라는 것이 ‘그날에 아름다운 아가씨와 젊은 이들이 목말라 기운을 잃을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아이가 없는 (childless)

창15:2-‘나는 아이가 없이 걷고 있습니다’=내적 교회가 없었다는 것.

아이를 못 낳음 (barren)

* 불모도 참조
창11:30-‘사래는 임신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자손이 없었다’=악과 거짓인 것은 더 이상 스스로 생산하지 못하는 것.
창11:30-아들과 딸이 진리와 선을 의미하는데, 그 반대 의미일 경우, 악과 거짓을 의미한다. 이로부터 ‘불모’=우상적 예배로부터의 악과 거짓은 더 이상 생산하지 못했다는 것.
창25:21-(리브가가) ‘잉태하지 못함’=자연으로부터의 신성은 아직 없었다는 것.
창29:31-‘라헬은 아이를 낳지 못했다’=내면의 진리가 받아지지 아니했다는 것…‘불모’=그렇기 때문에 교리는 없었다, 고로 교회 역시 없었다는 것.
신7:14-‘열매를 못맺거나 임신 못하는 일이 있지 않을 것이다’=진리와 선으로부터의 생활이 결핍되지 않을 것이다, 고로 그들은 영적으로 살아있을 것이다. ‘불모, 임신 못함’이 이런 의미를 가지기에 고대 교회에서 여인은 자기가 아이를 낳지 못할 경우 자신을 살아있지 않은 것으로 간주했다. 이런 실예로 창30:1에서 라헬이 야곱에게 말하기를, ‘나에게 아들들을 주시오, 그리고 그렇지 않다면 나는 죽어있다’라는 구절을 들 수 있다.
이54:1-진리들 안에 있지 않기에 선 안에도 있지 않은 이들 또한 ‘불모’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그러나 선 안에 있기 위하여 진리들을 진지하게 바라는 이들, 마치 직바른 이방인들 같은바, 즉 이사야서에서 ‘노래하라, 출생하지 않은 아이 못 낳는 자, 산고가 없었던 여자여, 기쁨을 위해 노래를 시작하고 외쳐라, 그이유가 홀로된 자의 아들들이 짝으로 있는 이들보다 많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아이 못 낳는 자들’은 교회에로 소환되어지는 나라들이 의미되어지고 있다. 옛것이 중단될 때, 교회는 이들에게 전승되어진다.
이54:1-3-여기서 취급되는 주제는 이방인들 사이에 교회가 건설된다는 것, 이것이 말씀으로부터의 진리들 없이 있음으로부터 ‘태어나지 않은 잉태 못한 자’라 불리우고 있다.
이54:1,2-‘아이 못 낳는 자’=이전에 교회의 진리들과 선들 안에 있지 않았던 자.
삼상2:5-‘아이 못 낳은 자가 일곱을 낳기 까지’…‘아이 못 낳는 자’=말씀을 가지지 않았던 이방인들로부터의 교회.
삼상2:5-‘아이 못 낳은 여자가 일곱을 낳고 있다’=말씀을 가지지 않았기에 진리들을 모르는 교회 밖에 있는 이들, 고로 이방인들, 이들에게 모든 것들이 주어질 것이다.
눅23:29-‘아이를 못 낳는 자’, 그리고 ‘출생을 가지지 않은 자궁들’이란 진짜 진리들, 즉 사랑의 선으로부터 있는 진리들을 받지 못했던 이들을 의미한다.
시113:9-‘아이를 못 낳는 집’=진리와 선의 결혼이 없는 곳.
이54:1-(이방인들이) ‘아이 못 낳은 자’라 불리우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주님을 몰랐고, 진리들이 있는 말씀을 가지지도 않았기에 거듭나질 수도 없었기 때문.

아픈 (pain)
슬픔 (grief)

* grieve도 보라
창3:16-‘나는 네 슬픔을 크게 불리겠다…슬픔 안에서 너는 아들들을 낳을 것이다’=전투, 그리고 전투로부터 있는 불안…그리고 교회가 생산하는 진리들.
창5:29-‘여호와께서 저주하신 지면으로부터 우리 손의 아픔(ache)’=그들은 선에 관한 것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인간이 자신으로부터 (이것을 행해야만) 할 때 ‘우리 손의 수고함’이 있다.
창34:7-‘사람들은 슬펐다, 그리고 대단히 분노했다’=그들은 고대인들과 더불어 있는 교회의 진리에 맞서 악 안에 있었다.
창34:25-‘그들이 아퍼하고 있을 때’=탐욕들.
창45:5-‘그것이 너에게 슬픔으로 있지 않게 하라’=심정 또는 의지의 근심.
출3:7-‘나는 그들의 슬픔들을 안다’=얼마나 많이 그들이 거짓들 안에 침수되었었는지에 관하여 예견하심.
출15:14-‘아픔이 불레셋 주민들을 붙잡았다’=확장하는 지배욕을 자포자기 함.
호13:13-개혁을 받지 않으리라는 것이 ‘산고하는 여인의 아픔이 그 사람 위에 있을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애1:18-교회에 있는 모든 진리의 황폐해짐으로부터 애도함이 ‘들어라, 모든 네 백성들아, 그리고 나의 슬픔을 보라’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에)앞서다 (percede)

* ‘판결’이 앞설 때=신앙을 통하여 있는 사랑. 그러나 ‘정의’가 앞설 때=사랑으로부터 있는 신앙

야생 (wild)

마3:4-‘들(야생) 꿀’=선 측면에서 글자적 의미로부터의 즐거움.

야윈 (thin)
엷은 (thin)

창41:3-‘야윈’=선행으로부터 있지 않는 것.
창41:6-‘야윈 일곱 이삭’=유용함이 없는 과학물.
이40:22-‘그분은 하늘들을 얇은 어떤 것 같이 펼치셨다’=마음내키는대로 천국들을 확장하는 전능하심.

야윈 (lean)

창41:19-‘살이 야윈’=선행(charity) 없음으로부터의.

양쪽의 (both)

출22:11-‘양쪽’=각각 그리고 모든 것들에서. 그이유가 내향의 의미에서 ‘양쪽 사이에’는 둘 사이를 뜻하지 않고, 각각 그리고 모든 것들이 의미되기 때문. 그이유가 ‘둘, two’=하나로 결합.

어두운 (obscure)
불명료한 (obscure)

마24:29-‘태양이 어두워질(darken) 것이다’=주님을 사랑함이 사라질 것이다.
이9:19-‘토지가 어두워질 것이다’=교회의 것들이 짙은 어둠에, 또는 거짓들에 있을 것이다.
이9:19-거짓에 의해 교회가 악용됨이 ‘토지가 여호와 체바옫의 분노하심에 어두워질(darken) 것이다.’

어리석은 (foolish)
바보 (fool)
어리석음 (folly)

마7:24,26, 25:2-신중한 처녀들과 어리석은 처녀들=사랑으로부터 신앙 안에 있는 이들, 그리고 사랑 없이 신앙 안에 있는 이들. 신중하고 어리석은 건축자 역시 이와 같다.
창34:7-‘그는 이스라엘에게 어리석음을 저질렀다’=그들의 눈에서 불법적인 것.
마23:19-‘너희는 바보요 소경이다…’
이32:6-‘바보는 어리석음을 말한다…’ 자아 사랑으로부터, 고로 자기의 총명으로부터 거짓들과 악들에 있는 자가 ‘바보’라 불리운다.
시74:18-‘그분의 이름을 모욕한 어리석은 백성’=교리의 진리들에 반대되는 거짓들. 거짓들에 있는 이들이 ‘어리석은 백성’이다.
예17:11-결국 그들은 거짓된 것 외에는 진리에 대한 지식은 가진 것이 없을 것임이 ‘필경 그는 어리석은 자 일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여분의 (superfluous)

출16:18-‘여분의 것을 위하여는 아무 것도 아니다’
출16:23-‘여분의 모든 것은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직하여라’=마치 자아로부터인 것처럼 모든 선과 진리를 향유함.
출26:12-‘천막 커튼의 남아도는 여분의 것’=진행하는 것…

연하쪽의 (younger)

요21:18-‘네가 연하쪽에 있었을 때, 네쓰스로 허리띠를 매고 가고 싶은 어디든지 걷는다’=교회의 처음 때에서 인간들은 선행의 선으로부터 진리들을 받아들였고, 자유로이 행동하였다.
창25:23-‘연상자(형)가 연하자(아우)를 섬길 것이다’=진리의 선이 한동안 진리보다 더 하위에 있을 것이다.
창29:26-‘첫출생(언니)에 앞서 연하자(동생)를 주지 않는 것’=내면의 진리에 애착함은 외면의 진리에 애착함에 앞서 있지 못한다.
창32:10-‘저는 당신이 당신의 종에게 하신 모든 자비들에 훨씬 못미칩니다’=이 상태에서 있는 뿌끄러움(굴종).
창48:14-‘그는 연하쪽이었다’=두 번째 위치에 있는 (진리, 에브라임).
출12:4-‘만일 양떼의 한 마리에 비해 집이 너무 작다면’=만일 특별한 선이 순진을 위해 충분치 않다면.

열정적인 (zealous)
열의 (zeal)

창30:1-‘라헬은 자기 언니에 맞서 열정적이었다’=분노함.
출20:5-‘열정적인 하느님’=거짓과 악이 거기서부터 있다는 것. 그이유가 ‘열정적인 하느님’, 순수 의미에서=신성한 선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 이때 ‘하느님’은 진리를, ‘열정적인’은 선을 서술한다. 그러나 신성한 선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를 받지 않는 이들에 관련될 경우, ‘열정적인 하느님’=거짓과 악이기 때문. 모든 이는 각자의 품질로부터 본다. 이는 그자체 사랑과 열정(passion)이신 주님이 분노하신듯 인간에게 나타나시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이9:7-만군의 여호와의 열의가 이를 수행하신다‘=인류를 구하시려는 열렬한 사랑으로부터 일 것이다.
출34:14-‘그이유가 여호와 그분의 이름은 열정적이심이기 때문, 그리고 열정적인 하느님이 그분이시기 때문’=만일 어떤 다른 것이 예배되어진다면, 신성한 선과 신성한 진리는 물러날 것이다. 그이유 ‘열정적임’은 사랑받고 예배받으려 누구도 고통당함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
계3:19-‘열심을 내라, 그리고 회개하라’=이것은 거짓을 혐오하고 진리에 애착함으로 행해져야 한다는 것.

완전한 (perfect)

요17:23, 마5:48-고로 주님이 그들 안에 있을 때 그들은 ‘완전하다.’ 이들은 천국들 안에서 우리의 아버지가 계시듯 ‘완전한’ 자라 불리는 그들이다.

완화되지 않는 (untempered)

겔13:14-‘완화되지 않은 것 가지고 회칠한 (담)벽’=진리 처럼 나타나게 가공한 것.
겔13:10-‘그들은 완화되지 않은 것 가지고 그것을 회칠했다’=그들은 거짓들을 고안해내고, 그것들을 진리 인냥 만든다.
겔13:10,11-‘그들이 담벽을 지을 때, 그들은 완화되지 않은 것 가지고 회칠한다. 그들에게 말하라. 완화되지 않은 것으로 그것을 회칠한 담벽을 허물 것이다.’=말씀을 글자의미 측면에서 적용하여 원리인냥 진리로서 둔갑한 거짓. ‘완화되지 않은 것’=왜곡되어진 것.

우세하다 (prevail)

창25:23-‘(이)백성이 (저)백성보다 우세할 것이다.’ ‘우세함’=더 높이 있는 것.
창26:16-‘너는 우리들보다 더 우세해졌다’=그들에 있는 신성 때문에.
창30:8-‘나는 이겨냈다’=극복하는 것.
창32:25-‘그는 그를 이기지 못했다’=그는 시험들에서 극복해냈다.
출17:11-‘이스라엘이 우세했다’=전투하는 진리가 이겼다.
출17:11-‘아말렉이 우세했다’=그다음 거짓이 이겼다.
계12:8-‘그리고 이기지 못했다’=그들은 거짓들과 악들에 있음을 알아채렸다, 그리고 아직도 그것들 안에 남아 있었다.

우수함 (excellence))

창49:4-‘너는 우수하지 않을 것이다’=그것은 영광과 능력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출15:7-‘수많은 우수함’=신성에 반대되는 쪽에 그것 자체를 놓는 이런 것들을 제압하는 권능 측면에서의 신성.

원시의 (primitive)

미7:1, 호9:10-‘무화과 나무에 있는 원시인 것(무화과)’. …‘내 혼이 원시의 (열매)를 바라고 있다’…‘원시인 것’=신앙, 또는 옳은 것.
호9:10-무화과 나무의 원시인 것(처음 익은 과일)=유아 안에 있는 영적 선으로부터의 자연적 선.

인내 (patience)

계1:9-‘예수 그리스도를 강한 인내력으로 예상함’=주님의 강림.
계3:10-영적 전투, 이는 시험인데, 주님의 ‘인내함의 단어’라 불리운다. 그이유는 시험 안에서 주님은 인간을 위해 싸우시기 때문.
계13:10-‘여기에 거룩한 사람들의 인내와 신앙이 있다’=주님의 새 교회 사람은 그의 삶과 신앙의 품질 측면을 시험에 의해 조사되어진다는 것. 여기서 ‘인내’에 의해 시험들에서 있는 인내, 그리고 그분의 가르침에 따르는 생활, 그리고 주님을 믿는 신앙에 관련하여 인간의 품질이 조사받음이 의미되어져 있다. 그러므로 말해지는바, ‘여기에 인내와 신앙이 있다’
눅21:16-19-교회의 마지막 때가 취급된다. 그때에 신실한 자가 진리들 때문에 겪을 시험들. ‘네 인내함 안에서 너는 네 혼들을 소유한다’에는 진리의 생명은 거짓들 사이에서도 보존된다가 의미되어져 있다.
눅8:15-‘인내함 안에서 열매를 맺는 것’=비록 거짓들과 악들 사이에서 살고 있다해도 진리들과 선들을 행하는 것. 즉 자신들 안에 거짓들과 악들이 있어 그것들 사이에 사는 셈이지만 그렇다해도 주저앉지 않고 인내하며 진리들과 선들을 행하는 것.
이53:7-시험들 안에서 주님이 인내하심이 ‘그분의 입을 열지 않으심’에서 묘사되어 있다.
계14:12-‘여기에 거룩한 사람들의 인내가 있다’=이 신앙 안에 있지 않고 선행 안에 있는 이들의 박해와 시험들. ‘인내’=시험들, 또한 박해.

있다 (be, being)

창6:13-‘하느님께서 말하셨다’=이것이 그렇게 있었다는 것. 이는 거기서 여호와와 더불어서는 있음 밖에 더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로 분명하다.
* 있음은 있다가 중단되는 것들을 놓고서는 서술될 수 없고, 오로지 결코 있다가 중지 않는 것들로만 서술할 수 있다. 고로 생명 있음과 현재 있음은 주님 속에 있는 것들 뿐이다. 그 이유는 영원한 모든 있음과 생명 있음은 그분 속에 있기 때문.
* 다른 삶에서, 선행(charity)이 참 있음이요 인간의 생명이다. 참 있음과 생명은 여호와이시다. 그러므로 인간이 있고 살아 있기 전에서는 여호와라는 단어는 이 사람과 더불어서는 사용되지 않고 하느님이 사용된다.
* 사랑 자체가 여호와이시다. 나는 있다, 또는 있다는 사랑 외 다른 것으로는 단언되어질 수 없다. 모든 생명의 있음, 즉 생명 자체는 이 사랑으로부터이다, 그 이유는 생명은 사랑 안에, 사랑 자체 속에 있기 때문. 그리고 여호와만이 생명의 있음, 또는 생명 자체이기에, 그분으로부터 각각 그리고 모든 것은 자기들의 있음과 자기들의 생명을 가진다…천사들은 자신들 스스로부터서는 살지 못한다는 것, 오로지 주님으로부터서만 살 수 있다는 것을 명료하게 지각한다, 그 이유는 자기들이 주님의 생명의 있음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분의 사랑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창17:3-사랑, 또는 선이 취급되는 곳에서는 ‘여호와’가 언급되고, 진리, 또는 신앙이 취급되는 대목에서는 ‘하느님’이 언급되는데, 이런 이유는 주님의 있음 자체는 사랑 속에 있고, 이로부터 파생된 있음은 신앙 속에 있기 때문에서 이다.
* 이름 여호와에 있는 철자 H는 신성인 것을 포함하는 유일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있다, 또는 있음을 뜻한다.
* 있음 자체, 또는 여호와는 자비 외 더 다른 것은 없다…
창20:15-‘거주하는 것’=사는 것, 여기서의 경우 있는 것, 그 이유가 이 대목이 주님에 관련된 것을 내포하기 때문.
* 주님은 선 자체, 그리고 사랑 자체, 고로 선의 있음 자체, 그리고 천사들에 있는 사랑의 있음 자체, 그리고 그들의 지혜와 총명의 있음 자체이시다.
창21:1-‘여호와’=신성의 천적 평면, 즉 신성한 선, 또는 사랑과 자비의 있음, 선 자체이다.
창21:2-‘(사라는) 임신하여 낳았다’=(신성한 합리성이)있었고 명백히 나타나졌다는 것.
* 있음과 명백히 나타냄(Being and Manifesting)은 주님을 설명하는데 있어 주요한 단어이다. 그 이유가 그분만이 있으시고 명백히 나타내실 수 있으시기 때문에서이다. 있음과 명백히 나타냄은 얼핏 생각하기에는 같은 것으로 여길 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다. 각각 그리고 모든 인물은 자기 있음을 임신으로부터 가진다, 그리고 그의 명백히 나타냄은 출생으로부터이다. 그러므로 임신이 출생에 앞서 있듯, 있음은 명백히 나타냄에 앞서 있다. 혼은 인간의 참 있음이다, 그리고 감각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은 그의 명백히 나타남이다, 그 이유가 전자는 후자 안에서 명백히 나타나기 때문. 천적인 사랑과 영적인 사랑은 거듭나지고 있는 사람의 참 존재이다, 그리고 합리성과 감각적인 것에 천적, 영적 사랑이 불어넣어질 때, 이것은 거듭나는 자의 명백히 나타남이다. 우주에 있는 각각 그리고 모든 것은 이와 같은바, 있기 위하여 임신을, 명백히 나타냄을 위하여 출생을 거치지 않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있을 수 없고 있지도 않다…모든 결과는 그것의 원인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모든 원인은 그것 고유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목적은 원인의 있음이다, 그리고 원인은 목적의 명백히 나타냄이다. 원인이 결과의 있음이고, 결과는 원인의 명백히 나타남이다.
창21:3-‘(아이를) 낳는 것’=명백히 나타내는 것, 그리고 출생이 임신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출생, 또는 명백히 나타냄은 신성의 영적 평면이다, 그리고 임신, 또는 있음은 신성의 천적 평면이다, 이 구절에서 합일인 것, ‘낳는 것’=있음과 명백히 나타남 둘 모두이다.
창24:22-‘그들이 마시기를 다했을 때 (마시기를 그만두었을 때)가 되자’, 이 구절에서의 두 표현 방법, 다했을 때(had done) 또는 그만두었을 때(they left off), 그리고 …가 되자(it came to pass)는 연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앞서 있는 행동의 목적을 포함하고, 뒤를 잇는 행동의 시작을 포함한다. 고로 여기서는 인정함이다.
창24:31-주님의 참 있음 자체는 여호와이셨다, 또는 신성한 선 자체이셨다. 그리고 이로부터 파생된 주님의 참있음 자체는 여호와로부터이였다, 또는 신성한 진리 자체이였다.
창28:13-‘여호와’=주님의 신성한 있음 자체.
요1:1-4,14-‘말씀’=신성한 진리, 이는 본질에서 무한한 있음으로부터 있는 무한히 명백하게 나타냄이다.
창39:10-누군가와 더불어 ‘있는 것’=더 가까웁게 결합하는 것, 또는 하나되는 것. ‘있는 것’=하나되는 것인 이유는 사물의 참 있음은 선이기 때문, 그리고 모든 선은 사랑으로부터 있기 때문, 이것은 영적 결합이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가장 높은 의미에서 주님은 있음, 또는 여호와라 불리우시는데, 그 이유는 사랑으로부터 있는 모든 선은 그분으로부터 있기 때문. 만일 사랑과 선행이 교회나 천국의 있음이었다면 이는 천국에서나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 이유가 결합이 없다면, 합일이 없다면, 있음도 없기 때문.
창42:15-‘하나는 있지 않다’=신성의 영적 평면은 나타나지 않는다…‘있지 않다’=나타나지 않는다는 것. 그 이유가 그가 그들과 함께 있었으나,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
창43:8, 행17:28-‘하느님 안에서 우리는 살고 움직이고 우리의 있음을 가진다’ ‘움직인다’에 의해 삶의 바깥쪽이, ‘산다’에 의해 삶의 안쪽인 것이. ‘우리의 있음을 가진다’에 의해 가장 깊은 것이 뜻해진다.
출3:14-‘나는 있는 나이다’=우주에 있는 만물에 관한 있음과 명백히 나타냄. ‘나는 있다’=있음, 그분만이 있음인바, 특정 이름을 갖도록 하고 있다. ‘나는 있다’가 두 번 언급된 이유는 한번의 언급은 있음을, 두 번의 언급은 명백히 나타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고로 두 언급 중 하나는 신성 자체, ‘아버지’라 불리는 신성을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아들’이라 불리는 신성한 인간을 의미한다. 그이유가 신성한 인간은 신성 자체로부터 명백히 나타냄이 있기 때문. 주님이 인간 측면 까지 신성한 있음, 여호와가 되셨을 때, 주님의 신성한 인간으로부터 진행되는 신성한 진리는 신성한 있음으로부터 있는 명백히 나타난 신성이다. 이로부터 분명한바, 신성한 있음은 명백히 나타냄을 통하지 않고는 누구와도 그 자체 교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출3:14-‘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냈다’=신성의 명백히 나타남은 교회 안에 있을 것이다. ‘있는 나’=신성 자체, 그리고 신성한 인간.
출8:18-‘나 여호와’에 의해 나 만이 있는 나, 나 만이 하느님이다를 의미하고 있다.
출15:2-‘야’는 여호와로부터이다, 그리고 ‘야’라 불리우는 이유는 있음이 아닌 있음으로부터의 명백히 나타남이기 때문. 그이유가 신성한 진리는 명백히 나타남, 그리고 신성한 선은 있음이기 때문.
출20:2-주님은 신성한 있음인 신성한 선으로부터 ‘여호와’라 불리우신다, 그리고 신성의 명백히 나타남인 신성한 진리로부터 ‘하느님’이라 불리우신다.
출20:21-그러므로 영원한 것은 있는다, 그 이유가 이것은 끝이 없기 때문, 이것은 신성으로부터 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일시적인 것은 있지 않는다, 그 이유는 유한한 있음이기 때문, 그것은 더 이상은 아니다. 이로부터 분명한바, 영적 의미에서 ‘복있음’은 신성으로부터 있음을 자체 안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 인간의 생명의 있음은 그의 의지이다.
출23:17-‘여호와’에 의해 신성한 있음이 의미되어진다, 그리고 ‘주’에 의해 있음으로부터의 신성의 명백한 나타남이 의미되어진다. 그 결과 인간과 더불은 있음은 선이고, 그 선으로부터의 명백히 나타남은 진리이다.
* 인간의 생명의 참 있음은 뜻하는 것, 이 뜻함으로부터 행동하는 것이다.
* 선은 진리의 있음이고, 진리는 선의 명백한 나타남이다. 그러므로 진리 없는 선은 명백한 나타남이 없고, 선 없는 진리는 있음이 없는 것이다.
계1:4-‘있으시고, 그리고 있으셨고, 그리고 오시는 그분으로부터’=영원하시고 무한하시며, 그리고 여호와이신 주님으로부터.
계1:4-이름 ‘여호와’는 있음을, 그리고 있으신 그분, 또는 있음 자체이신 그분을 뜻한다. 이것은 또한 있으셨고 오시는 그분이시다. 그이유가 과거와 미래의 것들이 그분의 현존 안에 있기 때문.
계16:5-‘계시고, 계셨던’=말씀 측면에서의 주님. 그분은 말씀이시고 말씀이셨다는 것은 요1:1,2,14을 보라.
계17:8-‘네가 본 짐승은 있었고, 그리고 있지 않다’=그들과 더불어 말씀은 거룩하다고 인정되었으나 그럼에도 실지로는 인정되지 않고 있다.
계17:9-‘있었고 있지 않은, 그럼에도 있는 짐승’에 의해 말씀은 거절되었으나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의미되어지고 있다.
계1:4-‘있으시고, 그리고 있으셨고, 그리고 오시는 그분으로부터’=영원으로부터 영원까지 천국과 교회의 모든 것의 모든 것이신 그분으로부터.
계16장-‘있으시고, 있으셨고, 그리고 오시는 그분으로부터’=무한하신 분과 영원하신 분, 그 이유가 ‘있으심’과 ‘있으셨음’은 동일하게 여호와이다. 있음, 주님을 서술할 경우, 자체 안에 있는 자체로부터의 있음이다. 그리고 명백히 나타남, 그분을 서술할 경우, 이 또한 자체 안에서 자체로부터의 명백히 나타남이다. 그리고 관계적 의미에서 명백히 나타남은 천국과 교회의 모든 것들에 있는 있음, 이는 신성한 진리를 통하여 결과되어진다.. 이 있음이 영원하신 분에 의해 뜻해진다. 있음 측면에서의 무한하신 분은 여호와에서의 있으심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명백히 나타남 측면에서의 무한하신 분은 여호와에서의 있으셨음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영원히 있음인 무한하게 명백히 나타남은 진행되는 신성, 이로부터 천국과 천국의 모든 것이 있는다. 신성의 명백한 나타남은 신성한 있음이기도 하다. 이것은 모든 것의 모든 것이신 천국에 관련되는 명백히 나타남이라 불리워진다.
계17:9-‘있었고, 있지 않은…짐승’=시작에서 말씀이 교회에서 받아졌고 읽혀졌다, 그리고 그 후에 사람들로부터 제거되고 읽혀지지 아니했다…
계17:8-‘그럼에도 있는’=여전히 존재한다, 그 이유는 그것은 신성이기 때문, 단지 모독자에 의해 거절되었을 뿐이기 때문.
* 있으신 그분, 그리고 명백히 나타내진 그분으로부터 외에 명백히 나타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분이 하느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있음과 명백히 나타남이라 불리신다. ‘야, Jah’는 있음으로부터, 그리고 ‘여호와’는 있음과 명백히 나타남 그 자체로부터이다.
* 분리되어질 수 없는 두 가지 것은 있음과 명백히 나타남이다. 있음은 명백히 나타나지 않으면 어떤 것도 아니다. 그리고 있음은 명백히 나타남을 수단으로 어떤 것이 되어간다.
* 주님 안에서 사랑은 있음이다. 그리고 지혜는 명백히 나타남이다.

자디 잔 (minute)

출16:14-‘자디 잔 동그란 것’=처음 형성됨에 있는 진리로부터의 선. ‘자다 잔’은 진리를 서술하고 있다.

자만 (pride)
거만한 (proud)

이2:11,12-‘인간의 교만한 눈들이 겸손해질 것…그이유가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거만과 으스대는 모든 것 위에 있기 때문….’은 자아를 사랑함을 취급하고 있다.
습2:10-‘자만’=자아 사랑.
겔16:49-‘자만’=자아를 사랑함.
슥10:11-‘앗수르의 자만이 내던져질 것이다’=그들은 자신의 지혜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출18:11-‘그들은 그들 위에서 거만해 있어왔다’=교인들 위에 군림하려 애쓰는 힘.
이28:1-총명을 자랑으로 여김, 또는 학식 많음을 자랑함(glory)이 ‘교만의 왕관’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겔33:28-그들이 진리들이라고 부르는 거짓들로부터 마음이 의기양양하게 떠벌림이 ‘강한 교만’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이2:17-자신의 총명과 지식으로부터 있는 교만의 파멸이 ‘인간의 자만은 파괴될 것이다’에 의해 뜻해진다
시124:5-‘자만의 물들’=자아 사랑을 지지하는 거짓들, 그리고 그것을 확증하는 거짓들, 자신의 총명으로부터 있는 교리로부터의 거짓들.

자비 (mercy)
불쌍히 여김 (compassion)

창19:19-‘당신께서는 큰 당신의 자비를 만드셨다’=선에 애착함으로부터의 창피해 함과 비슷한 것.
시147:11-‘그분의 자비를 기다리는 이들’=선을 사랑함으로부터 예배하는 이들.
창24:12-‘그리고 자비를 행하시기를’=사랑의 유입.
창24:14-‘이 안에서 나는 당신께서 제 주인에게 자비를 베푸셨음을 압니다’=신성으로부터의 사랑으로부터 결혼이 있다. ‘자비’=신성으로부터의 사랑.
창24:27-‘당신의 자비를 단념 않으시는 분’=사랑의 유입을 지각함. ‘자비’=사랑.
창24:49-‘지금 만일 당신께서 내 주에게 자비와 진리를 행하고 있으시다면’=두 자질, 즉 의지와 이해함으로부터 그들의 동의함을 조사함. ‘자비’=선, 또는 사랑 속에 있는 것, ‘진리’=진리, 또는 신앙 속에 있는 것.
창32:10-‘저는 당신이 당신의 종에게 베푼 모든 진리와 모든 자비들에 훨씬 못미침니다’=선 측면에서, 진리 측면에서, 이 상태에 있는 부끄러이 여김.
창39:21-‘그분께서는 자비를 그에게 기울어지게 하셨다’=각각의 것 안에 있는 신성으로부터의 사랑. ‘자비’, 최고 의미에서=신성의 사랑.
창40:14-‘청컨대 나에게 자비를 행하시기를’=선행을 받음. ‘자비’=사랑, 여기서는 이웃을 향한 사랑. 또는 선행.
창43:14-‘(전능하신 하느님이) 사람 앞에서 네게 자비를 주시어…’=영적 진리가 너를 자비로웁게 받을 런지 모른다는 것.
창47:29-‘그리고 나에게 자비와 진리를 행하라’=부끄러이 여김. ‘자비를 행하는 것’=사랑의 선.
출15:13-‘당신의 자비 안에서 당신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이끄셨다’=악들을 끊은 이들에게 신성의 유입이 있다, 하여 선을 받았다. ‘자비에서 이끄는 것’=신성을 받는 것.
출20:6-‘그리고 수많은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심’=그들과 더불은 선과 진리는 영원함. ‘자비’=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가 유입됨, 그리고 거듭남을 통하여 선물되어지는 파생되는 영적 생명. 그이유가 이와 같은 것들은 자비로부터 주님에 의해 주어진 영원한 생명과 행복 속에 있기 때문.
시112:5-‘자비와 빌려줌을 가지는 것’=진짜 선행 안에 있는 이들의 상태가 묘사되어 있다.
호2:19-‘자비와 불쌍히 여김 안에서 약혼시키는 것’=선 안에 있는 이들을 향한 사랑으로부터, 그리고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을 향한 사랑 안에서. 주님의 ‘자비’는 결함이 있는 이들, 그럼에도 선을 갈망하는 이들을 향하여, 그리고 주님의 ‘불쌍히 여김’은 무지함에 있는 이들, 그럼에도 진리를 갈망하는 이들을 향해 서술되고 있다.
출28:27-‘내가 자비하기 때문에’=그분으로부터 자비로부터의 모든 원조받음이 있다는 것.
출33:19-‘나는 내가 은총을 행한 자에게 은총을 행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자비를 행한 자에게 자비를 행할 것이다’=신성의 진리와 선은 받는 이들에게 밝히 알려질 것이다. ‘자비를 행하는 것’=천적인 선과 진리를 선물 받는 것. 여기서는 그것을 밝히 알려주시는 것.
출34:6-‘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신’=그분으로부터 모든 선이 있다는 것.
시69:13-들으심괴 사랑으로부터 도우심이 ‘당신의 자비의 위대함을 위하여’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민6:24,25-악들과 거짓들로부터 보호하심, 그렇지 않으면 유입을 제거하실 것임이 ‘여호와는 너를 지켜주고, 네 위에 자비를 베푸시기를 원하신다’에 뜻하여 있다.
민6:25-‘얼굴들을 비추기를, 그리고 자비를 가지기를’=신성의 진리로 예증하는 것, 그리고 총명과 지혜를 선물하는 것. ‘자비를 가지는 것’. 이것이 얼굴들을 비추는 것에 관하여 말해지는바, 진리를 서술하게 된다.
애4:10-‘자비한 여인들’에 의해 마치 진리에 애착하는듯 거짓에 애착함이 의미되어져 있다.
시89:28-‘나의 자비를 나는 그를 위하여 영원히 떼어 남겨둘 것이다’=그분으로부터의 신성의 선은 영원함.

자유 (free)
자유로이 (freely)

요8:32,36-인간이 거듭나질 때, 그는 주님에 의해 선물된 자유로부터 자신을 밀어부친다…그리하여 천국적인 자아를 받는다. 이 자아는 이후 주님에 의해 점차적으로 완전해진다. 그리고 더욱더 자유해진다. 그러므로해서 이 자유는 선에 애착함이 되어가고, 이 선으로부터 파생된 진리에 애착함이 되어가고 그것으로부터 기쁨을 가진다. 이 기쁨과 애착 안에서 그는 천사들의 행복을 누린다. 이것이 요한복음에서 주님 자신이 말하시는 자유함이다.
요8:34-이 자유가 무엇인지는 양심이 없는 이들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이유가 그들은 자유가 거짓된 것을 생각하고 말하고, 악한 것을 뜻하고 행동하는 면허장이나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이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정반대이다. 즉 ‘죄를 범하는 자는 누구든지 죄의 종이다.’ 그들은 이 노예적 자유를 자기들과 더불어 있는 지옥의 영들로부터 받는다; 그리고 그들이 이 영들의 삶에 있고, 또한 그들의 사랑들과 탐욕들 안에 빠져 있는 동안, 불순하고 배설물 같은 기쁨에 의해 부추켜지면서 이를 수단으로 연발적으로 그들을 끌고 가버리는데, 이들은 이것이 자유이다고 상상한다; 이것은 지옥의 자유이다. 이 자유와 천국의 자유 사이의 차이는 전자는 죽음 속에 있고 그들을 지옥 아래로 질질끌고 간다; 이에 반해 후자는 생명 속에 있고 그것들을 천국으로 승강되게 한다.
출21:2-‘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지불함 없이 그는 자유로이 나갈 것이다’=그의 일들 없이 확증한 진리의 상태.
출21:5-‘나는 자유로이 나가지 않을 것이다’=순종의 기쁨; (그 이유가) ‘자유로이 나감’=전투 후의 상태, 이는 진리가 확증되고 이식되었을 뿐의 상태이다.
출21:26-‘그는 그의 눈을 위하여 자유로이 가게 해야 할 것이다’=그는 더 이상 내적 측면을 섬길 수 없다. ‘가게 내버려두는 것’=섬김을 면제받는 것.
요8:31-36-속박됨은 그 반대 측면이 상대적으로 있지 않으면 속박되어 있다 말할 수 없다; 그 이유가 선을 사랑함 속에 있는 애착으로부터 어떤 것을 행하는 자는 자유로부터 행동한다; 그러나 악을 사랑함 속에 있는 애착으로부터 어떤 것을 행하는 자는 자유로부터 행동하는듯 자신에게 나타나나 실상 자유로부터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그가 지옥으로부터 있는 탐욕으로부터 행동하기 때문이다. 선에 애착함에 있는 자 만이 자유하다, 그 이유는 그가 주님에 의해 인도되기 때문. 이를 주님께서 이렇게 가르치신다. ‘만일 너희가 내 말씀 안에 머문다면, 너희는 참으로 내 제자일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참 진리를 알 것이고, 참 진리가 너를 자유하게 하리라. 죄를 범하는 모든 이는 죄의 종이다. 만일 아들이 너를 자유하게 만든다면, 너희는 참으로 자유해 있을 것이다.
요21:18-‘네가 원하는 데로 걷는 것’=자유한 가운데 사는 것. 그 이유가 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 이웃을 향한 선행으로부터 신앙 안에 있는 사람은 자유함 안에서 살고 자유함으로부터 행동하기 때문, 그들은 주님에 의해 인도되기 때문.
출25:2-‘자기 심정이 기꺼이 움직여진 모든 이 각각의…’=모든 것들은 사랑으로부터 이다는 것, 고로 자유함으로부터 이다는 것…이것이 사랑으로부터임을 명시하는 이유는 모든 자유함은 사랑 속에 있기 때문에서이다; 그이유가 인간이 사랑으로부터 행하는 것은 그가 자유로부터 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막4:26-28-어떤 외적 방해 요소가 없을 경우, 주님께서는 생각함에서, 행동함에서 인간을 자유함에 있게 관리해주신다. 그러면서 자유함을 통하여 그분은 인간으로 악에서 멀어지게, 선 쪽으로는 가까워지게 구부려주신다. 이 구부려주심은 너무나 부드럽고 침묵적이어서 당사자인 인간은 자신이 그렇게 하는듯 여겨질뿐 주님이 자기를 위해 하시는 것인줄은 미처 눈치채지도 못한다. 이리하여 주님은 인간의 참 생명 안으로 선을 씨뿌리시고 뿌리내리게 하신다.
출21:6, 신15:17-‘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종들’에 의해 진리 안에 있고 선 안에는 있지 않은 이들. 그리고 ‘자유한 자’에 의해 선 안에 있고, 이로부터 진리들 안에도 있는 자가 의미되고 있다.

잔인한 (cruel)

이13:9-‘여호와의 잔인한 날’=마지막 심판.
신32:33-‘그들의 포도주는 용들의 독, 독사의 잔인한 담즙(gall)이라 불리운다’=야곱의 후손들 사이에 있는 교회로부터의 진리는 내부에 악들과 거짓들을 포함하는 외적인 것 뿐이었다.
예6:23-그들에게는 진리를 사랑함은 조금도 없었고 거짓을 사랑함만이 있었다는 것 ‘이 백성은 ’잔인하다, 그리고 자비를 가지고 있지 않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

장대함 (mangnificence)

삼상4:8-‘누가 이런 장대한 신들로부터 우리를 구할 것인가?’
겔17:8-‘장대한 포도나무’=내적 교회.
겔17:23-‘장대한 삼목’=영적 교회.
시145:5-네 영광의 장대한 영예‘=신성의 선이 신성의 진리에 하나되었다.
이24:14-‘여호와의 장대함 때문에…’
이2:12-장대하고 높은 모든 이‘=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 안에 있는 이들.
이33:21-‘장대한 배(ship)’=자아로부터의 지혜, 그이유는 이로부터 인간이 영화로워지고 자랑해대기 때문.
시93:4-‘많은 장려한 물들의 음성들’=신성의 진리들.
슥11:3-‘잘려함’=교회의 선.
겔24:25-거짓들과 악들에 맞선 신성한 진리의 힘으로부터…‘여호와의 강함의 장대함’이라 불리운다.

정사각 (foursqure)

* (새 예루살렘)의 외적 선, 이것은 올바른 것인데, 이것이 ‘정사각’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 ‘정사각’ 또는 ‘사각’은 완전인 것을 의미하고 있다.
* (지혜의 성전) 정사각이였다.
계21:6-‘그 성은 정사각형으로 놓여 있다’=그것 안에 있는 정의. 도성이 정사각으로 보여진 이유, ‘정사각’ 또는 ‘사각’=올바른(just) 것; ‘3각’=곧은(right) 것; 이 모든 것은 자연적 수준인 최말단 등차에 있다. ‘정4각’, 또는 ‘4각’=올바른 것, 그이유는 그것이 4 측면들을 가지고 있고, 4측면들이 4방위를 응시하기 때문이다. 4방위를 균등하게 응시하는 것은 올바름으로부터 모든 것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도성이 그것의 길이와 넓이가 균등하도록 정4각으로 놓였다; 그리고 ‘길’에 의해 그 교회의 선이 의미되어지고, ‘넓이’에 의해서는 그 교회의 진리가 의미되어진다; 그리고 선과 진리가 동등할 때, 비로소 올바른 것이 존재한다. ‘4각’이 지닌 위와 같은 의미 때문에 우리는 어떤 이를 두고 공명정대한 사람, square man 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 사람은 때로 올바렀다가 때로 올바르지 아니했다 하지 않는다. ‘4각’=올바른 것, 태워바침의 제단…그리고 향 제단은 4각이었다…그리고 심판의 가슴받이 판은 이중으로 된 4각이었다.

정사각형 (square)

* fouesquare도 보라.
출27:1=‘제단은 정사각일 것이다’=정의인 것.
출27:1-다른 삶에서, 외적 인간의 선들은 정의라 불리고 정사각형으로 표현되어져 있다. 이로부터 ‘정사각인 것’은 의로운 것을 의미한다.
출28:16-‘그것은 정사각으로 두겹일 것이다’=완전인 것. 그이유가 ‘정사각’=의로운 것, 또한 완전인 것이기 때문.
출30:2-‘그것은 정사각일 것이다’=완전인 것. 그이유가 ‘정사각’=의로운 것, 또한 완전인 것.

좁은 (strait)
좁은 (narrow)
괴롭히다 (straiten)

신28:53-‘모든 문들 안에서 괴로워하는 것’=선과 진리로의 모든 접근이 절단되는 것.
창32:7-‘야곱은 극도로 두려웠다, 그리고 그는 괴로움을 가졌다’=변화가 있어질 때 야기되는 상태; (그이유가) 두려움과 괴로움은 시험을 당할 때의 첫 번째에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 그리고 그것은 상태가 바뀔 때 먼저 있는다.
창35:3-‘내 곤경의 날에 나에게 대답하셨던 분’=선 보다 진리를 선호했을 때의 상태.
창42:21-‘우리가 그의 혼의 괴로움을 보았을 때’=내적인 것이 외적인 것으로부터 떼어졌을 때의 상태.
출6:9-‘영의 괴로움 때문에’=자포자기에 가까운 상태 때문에.
슥10:11-‘괴로움의 바다를 통하여 가는 것’=시험들.
예6:24-‘괴로움이 우리를 붙잡고 있다‘=진리들이 침입을 당해 악과 거짓에 감염된 것 때문에 슬퍼함.
눅21:25-‘땅에서 나라들의 괴로움…’=영계에 있는 이들 위에.
이8:22-‘괴로움과 짙은 어둠을 보라’=(선들과 진리들이)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단지 거짓들만이 발견된다.
이30:20-시험들 자체가 ‘괴로움의 빵, 그리고 억압의 물’에 의해 의미된다. ‘괴로움의 빵’=사랑의 선 측면에서 있는 시험들. ‘괴로움’, ‘억압’=시험의 상태들.
이30:6-‘괴로움과 고통의 토지’=선행의 선도, 신앙의 진리도 없는 교회.
단9:25-‘그러나 시대의 괴로움 안에서’=가혹하게 그리고 곤경과 더불어, 그 이유는 영적 진리에 대한 지각이 거의 없는 나라들과 더불어 이기 때문.
눅21:23-그때에 교회 안에는 악이 득세하가 때문에 선이 거절됨이 ‘토지 위에 큰 괴로움이 있을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겔4:3-이런 진리, 철 같고, 닫아 걸고 어떤 진짜 진리도 용인하지 않기 때문에 말해진다, ‘그것은 포위 공격을 위해서 일지 모른다, 그리고 너는 그것을 괴롭힐 것이다’
이37:3-이것이 심정과 지성의 슬픔였다는 것이 ‘괴로움의 날’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주조된 (molten)

호13:2-‘은으로 주조한 것’=왜곡된 선. (=진리처럼 나타나는 거짓).
이30:22-‘은으로 새긴 것의 덮개와 금으로 주조한 것의 덮개’=진리들과 선들로서 인정되고 예배되는 악으로부터와 거짓으로부터의 과학물들.
이48:5-‘우상’, ‘새긴 것’, ‘주조한 것’=자신의 총명으로부터 있는 교리적인 것들.
예10:14,15-‘새긴 것’, ‘주조한 것’=자신의 총명으로부터의 교리적인 것, 이것은 말씀의 외적 의미, 또는 외적 형체인데, 진리 같이 나타난다. 그러나 내적 형체에서는 거짓들이다. 고로 인간은 ‘지식으로부터 어리석다’고 말해지고, 주조된 것은 ‘거짓말’이라고 말해지고, ‘그것들에는 숨이 없다’라고 말해진다.
출32:4-‘그는 그것을 주조하여 송아지로 만들었다’=이 나라의 사랑들로부터의 즐거움에 따라…‘주조한 것’=예배가 외적 사랑들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
이44:10-‘주조하여 만든 것’=자신의 사랑으로부터의 교리.
호13:2-거짓으로부터의 악과 악으로부터의 거짓이 들어 있는 자신의 총명으로부터 있는 교리적인 것들이 ‘은으로 주조한 것’, 그리고 ‘우상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그들의 은’=자신의 총명으로부터 있는 것. ‘장인의 일’=이 총명; 그러므로 그들의 총명 안에서 그들은 자신들에게 우상을 만들되 통째로 장인의 일로 만들었다’라고 말해진다. 이런 교리적인 것들은 거짓인바 사라진다는 것이 ‘그들은 굴뚝의 연기 같이 날아가버릴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예10:14-이 거짓이 ‘그의 주조한 것은 거짓이다’에 의해 뜻해져 있다.
이30:1-‘주조한 것, 그러나 내 영으로부터서가 아니다’=지옥적 거짓으로부터의 예배, 그리고 신성의 진리로부터가 아니다.
호13:2-‘주조한 것’, ‘우상’에 의해 자신의 총명으로부터 있는 교리에 따른 예배가 의미된다.

지옥 (hell)

요2:2-‘지옥’=더 낮은 땅.
민16:33-‘땅이 그들을 삼켰다’=저주됨과 지옥.
계1:18-‘나는 지옥의 열쇠와 죽음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그분 만이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
계20:13-‘죽음과 지옥이 그것들 안에 있던 죽은 자를 포기했다’=심정에서 불경한 교인들, 이들은 그 자체로 사탄들과 악마들이었는바 모두 심판으로 불리웠다.
계20:14-‘죽음과 지옥은 불 못 안으로 내던져졌다’=심정에서 불경한 자, 그 자체로 악마들과 사탄들인바 이들은 악을 사랑하고 이 악에 일치하는 거짓을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 있는 지옥 안으로 내던져졌다.
시149:8, 암9:2-하느님은 천국에서 같이 지옥에서도 전능하심이 ‘만일 내가 지옥에 내 침대를 만든다면, 보라 당신은 거기에 계신다’, ‘만일 그들이 지옥 안으로 파고든다면, 거기로부터 내 손이 그들을 받을 것이다’로부터도 분명해진다.

충실한 (faithful)

계2:10-‘너는 죽기 까지 충실하라’=거짓들이 제거될 때까지 참 진리들을 받고 인정함.
계19:11-‘충실하고 참된’=신성의 선과 신성의 진리. ‘충실한’, 인간이 취급될 때=세째 천국에 있는 자, 고로 천적 선 안에 있는 자.
계1:5-‘그분은 충실한 증인이다’=그분으로부터 천국 안에 모든 진리가 있다.
계17:14-‘충실한 자’=선행으로부터의 신앙 안에 있는 이들. 선행의 신앙 안에 있는 첫째 천국의 천사들이 ‘충실하다’고 불리운다.
계21:5-‘이 말들은 참되고 충실하다’=그것들은 믿어져야 한다는 것, 그 이유는 주님 자신이 그것을 증거하셨고 말하셨기 때문.

치명적인 (mortal)

이5:13-‘(그들의 영광은) 가믐으로 치명적이다’=천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이 궁핍하다.
창34:30-‘나는 숫자에서 치명적이다.’ ‘숫자에서 치명적이다’=매우 적다.

치욕 (reproach)
불명예 (ignominy)

창30:23-‘하느님께서 내 치욕을 거두어가셨다’=…라헬은 더 이상 불임이 아니었다, 그리고 고로 ‘죽지’ 않았다.
나3:5-‘나는 왕국들에게 네 치욕을 보일 것이다’=지옥의 사랑들…
이30:3-‘이집트의 그늘을 신뢰함이 치욕(disgrace)으로 있을 것이다’=악들에 저항하는 능력이 없다…‘수치(shame), 치욕(disgrace)’=악들 때문에 수치스러운 것으로 간주될 때 그들의 상태.
합2:16-‘불명예스러운 토해냄’이 왜곡된 진리를 서술하고 있다.
습2:10-‘여호와의 백성에 불명예한 것’=진리들 위에 악을 입히는 것.
창24:14-‘이것은 우리에게 치욕이다’=이것은 그들에게 반대되어 있다.
예42:18-‘너희는 저주, 놀람, 통렬한 비난, 치욕 등을 위해 있을 것이다’=지옥에 떨어져야 하는 모든 것들.

침묵 (silence)

계8:1-‘천국 안에 침묵이…’=자기들이 신앙 안에 있다고 말하는 이들을 보고 놀람.
시28:1-‘나로부터 침묵하지 마소서’라고 두 번 말해진다. 그이유는 하나는 신성의 선에, 다른 하나는 신성의 진리에 관계되고 있다.
이47:5-‘침묵 안에, 침묵 안쪽에 앉으라’=거짓들 안에, 그러므로 지옥에 떨어짐 안에.

침수 (submersion)

출15:4-‘수프 바다 안에 침수되는 것’=그들은 악으로부터의 거짓들을 가지고 자신들을 닫아걸었다.
이43:2-‘네가 강들을 통과할 때, 그것들이 너희를 압도하지 않을 것이다’=진리들에 맞서 거짓들로부터 추론함이 부패하게 못할 것이다.
시124:4-‘그다음 물들이 우리들을 덮쳤다’=거짓들, 인간이 진리들과 진리들에 따른 삶을 통하여 가지는 영적 생명의 파멸.
시69:14-‘내가 가라앉지 않도록 수렁으로부터 건져주소서’=내가 멸하지 않도록 거짓의 악으로부터…

큰 (great)
위대한 (great)

창12:2-‘나는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것이다’=영광.
창18:18-‘크고 수많은 나라’=선과 파생되는 진리. ‘큰’은 선을 서술한다.
창19:11-‘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에 까지’=세세한 것에서와 전체적인 것에서.
창21:8-(신성과 주님의 인간의) 합일이 취급되기 때문에, ‘큰 축제’라 불리운다.
창25:23-‘더 큰 것이 더 작은 것을 섬길 것이다’=이 선은 한동안 진리보다 더 낮은 위치에 있을 것이다.
창39:9-‘그는 이 집에서 내 위에 있지는 않다’=이 선은 시간에서 앞서나 상태에서는 아니다.
창41:40-‘나의 왕좌만이 네 위에 있을 것이다’=그것은 마치 자연 평면으로부터 이었던 것처럼 여전히 나타날 것이다.
창48:19-‘그는 위대해질 것이다’=그것은 불어날 것이다.
창50:20-여기서, 선으로부터의 진리(가 의미되어진다.) 그이유가 선으로부터 있는 진리는 진리로부터 있는 선 보다 위에 있기 때문.
출3:3-‘위대한 광경(vision)’이라 불리운다. 그이유는 최고 의미에서 떨기나무에 있는 불꽃에 의해 신성의 진리가 주님의 인간 안에서 신성의 선에 하나됨을 의미하기 때문.
출34:6-‘선함에서 위대하심과 진리’=그분은 선 자체요 진리 자체이시다는 것.
계11:18-‘작고 큰’에 의해 주님을 경외하는 수준에서 덜한 자와 더한 자들.
계12:3-용이 ‘크다’라고 불리는 이유는 개혁 교파의 모든 교회들이 하느님을 세 인물들(three Persons)로 구별하고, 구원해주는 것은 믿음 뿐(faith alone)…
계13:5-‘큰 것들과 성령 모독을 말하는 입이 주어졌다’=악들과 거짓들을 가르치는 것…‘큰’은 선을 서술하나 반대 의미에서는 악을 서술한다.
계13:16-‘작고 큰’은 여기서의 경우 각 사람의 칭호의 수준이 크든 작든, 고로 각 사람의 사회적 위치가 무엇이든을 뜻한다.
계15:1-‘크고 굉장한’=사랑과 신앙에 관하여…‘크고’는 애착과 사랑으로부터 있는 것들을 서술한다.
계19:5-‘작고 큰’=신앙의 진리들로부터와 사랑의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이 덜한 자와 더한 자들.
계19:17-‘큰 음성으로 소리치는 것’=신성의 열정으로부터.
계20:11-왕좌가 ‘크게’ 나타난 이유는 심판은 신성의 선으로부터 결괴되어진다는 것; 그이유가 ‘큰’이 선을 서술하기 때문.
계20:12-‘작고 큰’=무슨 조건과 품질로부터 이든.
계21:3-‘큰 음성’=사랑으로부터의 말(speech), 그이유가 ‘큰’이 사랑을 서술하기 때문.
계21:10-‘크고 높은 산 위에’=세째 천국 안으로, 이 천국은 주님을 사랑함 안에 있고, 그분으로부터의 진짜 진리로부터의 교리 안에 있는 이들이 있는 천국이다; 그이유가 ‘크고’는 사랑의 선을, ‘높다’는 진리들로부터의 선을 서술하기 때문..
계21:12-‘크고 높은 벽’이라 말해지는 이유는 이 성벽이 신성의 선과 신성의 진리 측면의 말씀을 뜻하기 때문; 그이유가 ‘크다’는 선을, ‘높다’는 진리를 서술하기 때문.
계11:1-‘큰’=놀랄만한 것.
계13:13-‘그는 큰 표시들을 행한다’=증거함들과 설득함들.

태양의 (solar)

이27:9-‘태양 (우)상’=자연적인 진리들로부터 예배함
겔6:4-‘태양 (우)상’=교리의 거짓들로부터 있는 우상적인 예배.

평화 (peace)
평안 (peace)
평강 (peace)
화평 (peace)

말2:6-‘평화와 정직’=신성의 사랑으로부터의 선과 그로부터의 진리.
창26:31-‘그들은 …평화로이 갔다’=그들은 만족했다는 것.
시85:10-‘정의와 평화가 키스함’=그들이 자신들을 결합함.
창29:6-‘그는 평화한가?’=이 선은 주님의 왕국으로부터 인가?
이9:6,7-‘평화의 제 1인자’는 주님을 뜻함이 분명하다; 그리고 ‘통치와 평화가 불어남’은 그분의 왕국에 있는 이들을 뜻한다. 고로 그분의 왕국 자체.
이32:18-‘평화의 주택’=천국.
이33:7-‘평화의 천사들’=주님의 왕국에 있는 이들; 고로 왕국 자체; 그리고 최고 의미에서 주님.
이52:7-‘복음을 전함’, 그리고 ‘평화를 듣게 만듬’=주님의 왕국.
예12:12-‘평화가 없다’=선을 애착함이 없다.
창37:4-‘그들은 평화로이 그에게 말할 수 없었다’=그들은 신성의 진리로부터 자신들을 돌아서게 했다는 것.
창37:14-‘가라, 네 형제들이 평화로운지 보라’=주님의 모두 각각의 강림…‘평화’=구원.
슥8:12-‘평화의 씨’=내면의 인간에 있는 선.
창41:16-‘하느님께서 바로에게 평화를 답하실 것이다’=결합을 통하여 신성의 인간으로부터…
창43:23-‘그는 말했다, 네게 평화가 있기를, 두려워말라’=잘되고 있으니 자포자기 말라.
창43:27-‘그는 그들에게 평화를 물었다’=잘있는지 어떤지를 지각함.
출4:18-‘이드로가 모세에게 말했다, 평화로이 가라’=동의함과 경건히 소원함.
출18:7-‘그들은 그의 동료 사람이 평화한지를 물었다’=상호적인 신성의 천적 상태.
출18:23-‘모든 이 백성들은 평화로이 각자의 장소에 가있을 것이다’=영적 교회 속에 있는 그들은 선 안에 있을 것다, 그리고 고로 선으로부터 인도될 것이다.
출29:28-‘평화를 만드는 그들의 희생 제물로부터’=그것은 주님만으로부터 있음을 인정함.
계1:4-‘당신에게 은총이 있으라, 그리고 평화’=신성의 인사.
계6:4-그 위에 앉은 그에게 평화를 가져가는 것이 주어졌다‘=선행, 영적 안전, 내적 휴식을 거두어 감.
계14:13, 요16:33, 14:27-‘그들이 쉬도록’=그들이 주님 안에서 평화를 가진다는 것. 평화에 의해 지옥을 수단으로 악들과 거짓들이 판치지 않음으로부터 있는 영혼의 쉼이 뜻해진다…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들의 노동들로부터 쉴 것이다’에 의해 주님을 봐서,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세상에서 자기들의 혼이 고뇌하고 자기들의 육을 십자가에 못박은 이들이 주님 안에서 평화를 가질 것임이 의미되어져 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말하신다; ‘내 안에서 너희는 평화를 가진다; 세상에서 너희는 고난을 받을 것이다.’; ‘내 평화를 나는 너희에게 남겨둔다, 내 평화를 나는 네게 준다; 내가 네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르다.’
요14:27-순진과 평화, 이 둘은 천국의 맨 안쪽에 있는 것들이다. 이것들이 맨 안쪽에 있다고 일컬어지는 이유는 그것들이 주님으로부터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이유가 주님이 순진 자체시오 평화 자체이시기 때문이다…평화로부터, 그분은 말하신다, ‘평화를 나는 너희에게 남겨둔다; 내 평화를 나는 너희에게 준다.’ 그리고 또한 그들은 평화를 가지고 성읍이나 집에 (들어갈 때) 인사하라는 눅10:5에 의해서도 마찬가지 뜻이 있다. 순진과 평화가 천국의 가장 안쪽에 있는 것인 이유의 또하나는 순진이 모든 선의 본질(esse)이고, 평화는 선으로부터 있는 모든 즐거움의 행복(bliss)이기 때문이다.
민6:26-천국과 영원한 행복(happiness), 이것을 주님은 그분의 신성한 진리와 그분의 신성한 선을 통하여 주신다는 것이 ‘그리고 네게 평화를 준다’에 의해 뜻해져 있다.
시128:6-‘이스라엘 위에 평화’=교회 (위에) 있는 일반적, 특수적 측면에서의 모든 영적 선.
슥9:10-이방인들과 더불은 교회의 부흥이 ‘그분은 나라들에 평화를 말하실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평화’=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의 선, 그러므로해서 있는 교회의 모든 것들.
눅10:5-그들의 말, ‘이 집에 평화가 있으라’=그들은 거기 있는 이들이 주님을 영접했는지, 주님에 관한 복음이 전파되었는지, 천국, 천국적 환희와 영원한 생명에 관하여 복음이 전파되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는 것; 그이유가 이 모든 것들이 ‘평화’에 의해 의미되고, 받았던 이들이 ‘평화의 아들’에 의해 뜻해지고 이들 위에 평화가 놓여 있기 때문. 그러나 만일 거기 있는 이들이 주님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하여 주님의 것에 속한 것, 또는 평화 속에 있는 것들을 받지 않았다면, 그것은 이들로부터 거두어질 것임이 만일 성읍이나 집이 가치가 없다면 이들의 평화는 그들에게 되돌아 온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눅19:42-만일 네가 네 평화에 속하는 것들, 즉 주님 만으로부터 있는 영원한 생명과 행복에 속하는 것들을 알았었다면; 그이유가 ‘평화’에 의해 주님과의 결합을 통해 있는 천국과 영원한 행복이 뜻해지기 때문.
눅1:79-주님을 영접함과 그분과의 결합을 통하여 신성한 진리들에서 그것들이 예증됨이 천국과 영원한 행복이다가 ‘평화의 길’에 의해 뜻해진다.
눅19:38-‘천국에서 평화와 가장 높은 것들에서 영광’=‘평화’에 의해 의미되는 이런 것들이 신성 자체와 신성한 인간의 합일로부터 있고, 그리고 주님과 결합함으로부터 천사들과 인간들 안에 있음이 의미되어져 있다; 그이유가 지옥들이 주님에 의해 복종당해졌을 때, 평화는 천국 안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거기 있는 이들은 주님으로부터 신성한 진리를 가졌는바, 이것이 ‘가장 높은 것들에서 영광’이다.
눅24:36, 요20:19-‘평화’, 말씀의 내적 의미에서,=주님, 그리고 그로부터 천국과 영원한 생명, 특별한 의미에서, 주님과 결합함으로부터 근원하는 천국의 즐거움, 그러므로 주님이 부활하신 후, 그분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들에게 말하셨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민6:26-그것을 악들로부터 보호함, 그리고 그로부터 천국과 영원한 행복이 ‘그리고 너에게 평화를 준다’에 의해 뜻해져 있다; 그이유가 악들과 거짓들이 제거되어 더 이상 그것들의 활개침이 없을 때, 주님은 평화와 더불어 흘러드신다. 이 안에, 이로부터 천국이 있고, 마음의 내면들을 복된 것으로 채워지는 즐거움이, 고로 천국의 환희(joy)가 있다.
시4:6-8-이 구절에는 주님으로부터 있는 신성한 선과 신성한 진리를 받음을 통하여 주님과 결합하고 있는 이들이 가지는 평화가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이 평화 안에, 이 평화로부터 천국의 환희가 있다는 것…평화가 그들 안에, 그들로부터 있을 때, ‘평화 안에서 나는 눕고 잔다’고 말해진다; 그이유가 ‘여호와 당신께서 나로 안전히 거주하게 만드시기 때문이다.’ ‘평화’에 의해 천국의 내적 즐거움이, ‘안전한’에 의해 외적 즐거움이 의미되어져 있다.
레26:3,4,6-평화가 어디서 있는지, 즉 천국과 천국의 환희가 어디로부터 있는지가 이 구절들에서 묘사되어 있다. 평화, 그 자체로만 간주한다면, 천국과 천국의 환희가 아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평화 안에, 평화로부터 있다. 평화는 세상의 새벽, 또는 봄철과 같아서 눈 앞에 나타나는 대상으로부터 즐거움들과 유쾌함들을 심정 안에 받을 수 있게 인간의 마음을 처리해준다. 천국의 모든 것, 천국의 환희의 모든 것은 신성의 평화로부터 인바, 이것 또한 평화에 의해 뜻해진다…인간이 가르침에 따른 삶으로부터 천국을 가질 때, 말해지는바, ‘만일 너희가 내 가르침들을 준수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행한다면, 나는 토지에 평화를 줄 것이다.’
시37:11,37-‘그들은 수많은 평화로 즐거워질 것이다’에 의해 시험들에 이어지는 즐거움들이 의미되어져 있다…선과 진리의 결합으로부터 평화의 즐거움을 가진다는 것이 ‘완전한 자에 주목하라, 그리고 올바른 자를 바라보라; 그이유가 이 사람에게 끝은 평화이기 때문이다.’
시72:3-‘산들이 백성들에게 평화를 가져올 것이다.’ ‘평화’에 의해 사랑을 수단으로 주님과 결합함으로부터 있는 천국의 환희가 뜻해진다…‘그의 날들에 올바른 자는 번영할 것이다’=사랑의 선 안에 있는 이들; 그러므로 말해진다, ‘그리고 많은 평화.’ 그이유가 평화는 주님 외 다른 근원으로부터서는 없기 때문, 그리고 사랑의 선 안에 있는 이들이 그분과 결합함 안에서만 있기 때문.
시34:14-‘평화를 얻으려하고 그것을 따라가라.’; ‘평화’=천국과 교회 속에 있는 모든 것들, 여기로부터 영원한 생명의 행복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선 안에 있는 이들에게만 있는바, ‘악을 떠나 선을 행하라’라고 말해진다.
시119:165-‘당신의 법을 사랑하는 이들은 많은 평화를 가진다…’ ‘평화’=천국의 복(bliss), 행복(happiness), 그리고 즐거움.
이26:12-평화는 여호와 만으로부터 있는바, 즉 주님 만으로부터 있는바, 그리고 그분으로부터 선을 행하고 있는 이들 안에만 있는바, 말해진다. ‘여호와여, 우리를 위해 평화를 베푸소서; 그 이유는 당신께서는 우리를 위해 모든 우리의 일들을 작업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33:7-평화는 주님으로부터 있고, 그분으로부터 천국 안에도 있는 바, 천사들은 ‘평화의 천사들’이라 불려진다. 악들과 거짓들에 있는 지상의 사람들에게 평화는 없는바, ‘그들은 지독하게 슬퍼한다’고 말해진다.
이48:18,22-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이들에게 평화가 있고, 그렇게 살지 않는 이들에게 평화는 없는바, ‘너는 내 가르침들에 귀기울였다면 네 평화는 강 같았을 것이다; 사악한 자에게는 평화가 없다.’ ‘강 같은 평화’=풍부함.
이54;10,13-‘평화의 언약’=주님과 결합함으로부터의 천국의 환희. ‘여호와의 가르침을 받을 아들들, 그리고 큰 평화를 가질 아들들’=주님으로부터 있는 선으로부터의 진리들 안에 있는 새 천국과 새 교회에 있는 이들; 이들은 영원한 복(bliss)과 행복(happy)을 가진다.
겔37:26-‘그들과 더불어 평화의 언약을 만드는 것’=주님과 결합되어왔었던 이들을 위한 영원한 생명과 천국의 환희.
말2:5-‘생명의 언약과 평화의 언약’=신성 자체가 주님의 신성한 인간과 합일함, 이로부터 모든 생명과 평화가 있다…세상에서 결과되어진 이 하나됨 자체가 ‘정직과 평화 안에서 나와 걷는 자’에서 뜻해지고 있다.
슥8:12,16,19-선과 진리의 결합이 있는 이들이 ‘평화의 씨들’이라 불린다…진리와 선의 결합이 더 묘사되고 있다, 즉 ‘너는 네 동료 사람에게 진실을 말하라; 네 문에서 평화의 판결과 진리로 판결하라; 오직 진실과 평화를 사랑하라.’ ‘진실’에 의해 진리가, ‘평화의 판결’, ‘평화’에 의해 선과 그것의 결합이 의미되어져 있다.
시85:8,10-‘여호와께서는 그분의 백성에게, 그리고 그분의 거룩한 사람들에게 말하실 것이다’=그분은 그들과 더불어 있는 선과 진리의 결합을 통하여 가르치고 그분 자신과도 결합함을 주신다는 것. ‘평화’에 의해 이 결합 둘 다가 의미되어져 있다. 양쪽 모두의 이런 결합들이 더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자비와 진리가 만날 것이다; 정의와 평화가 서로 키스할 것이다.’
이52:7-‘평화를 듣게 하는 그의 발이 있는 산 위에서 얼마나 즐거운지!’…여기서 ‘평화’에 의해 주님 자신이, 또한 그분과 결합한 이들을 위한 천국도 의미되어져 있다…주님과 결합함으로부터 선과 진리의 결합함이 ‘평화’에 의해 의미되는바, ‘평화를 듣게 하는 그 사람…’라고 말해진다.
이53:5-‘우리의 평화를 위한 응징이 그분 위에 있었다.’…그분의 소름끼치는 시험들…그러므로 ‘여기서 ’평화‘에 의해 주님과 결합한 이들을 위한 천국과 영원한 생명이 의미되어져 있다.
예33:6-영적으로 치료되는 것이 악들과 거짓들로부터 치료되는 것, 그리고 이것이 진리들을 통하여 주님에 의해 결과되는 바, ‘나는 그들에게 풍부한 평화와 진리를 밝히 알릴 것이다’라고 말해진다.
시55:18-‘그분은 내 혼을 평화 안에서 되찾으셨다’=주님과의 결합을 통하여 구원함.
시122:6-‘너희는 예루살렘의 평화를 얻으려 하라.’…‘평화’에 의해 교리와 예배의 모든 것이 뜻해진다; 그이유가 그들이 천국적 근원으로부터 있을 때, 그들은 천국 안에, 천국으로부터 있기 때문.
시147:14-네 경계에 평화가 있게 하는 분=천국과 교회의 모든 것들.
시128:6-모든 이런 것들이 주님으로부터 있는 평화를 통하여 있는바, ‘너는 이스라엘에서 평화를 볼지 모른다’고 말해진다.
시76:2-예루살렘이 여기서 ‘살렘(Salem)’이라 불리운다, 그이유는 ‘살렘’에 의해 평화가 뜻해지기 때문.
이66:12-모든 것들이 주님과의 결합으로부터 풍부해 있을 것임이 ‘보라, 나는 그녀에게 평화를 강 같이 펼쳐 놓는다’에서 의미되어져 있다.
이32:17,18-평화가 ‘여호와의 일’이라 불리운다. 그이유는 그것이 주님 만으로부터 있기 때문이다. ‘평화의 주택’=주님이 계신 천국.
이60:17-주님이 사랑의 선을 통하여 통치하실 것임이 ‘나는 네 정부(goverment)를 평화로 만들고, 네 강제 징수자(exactor)는 정의로 만든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시72:7-‘평화’가 사랑의 선에 관해 말해진다.
겔34:25-‘평화의 언약’=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한 것들에 의해 주님과 결합함. 신성한 것들이란 말씀으로부터 사랑의 선과 교리 속의 진리들이다. 고로 대체적으로 말씀을 통하여 있는 것들이다.
레26:6-‘토지에 평화…’=교회 안에서 거짓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함.
슥8:10-‘평화가 없다’=악들과 그로부터의 거짓들이 창궐함.
슥8:12-‘평화의 씨’=주님으로부터 있는 천국과 교회의 진리. 이것이 ‘평화의 씨’라 불리는 이유는 이것이 지옥들에 맞서 보호하여 안전을 주기 때문.
신20:10,12,13-‘네가 어떤 성읍으로 다가가서 싸우려할 때, 먼저 너는 그 성에 평화를 선언하라…만일 평화를 받지 않겠다면…너는 칼끝으로 그 성읍의 모든 남자를 처죽일 것이다…’…‘평화를 받지 않는 것’=교회의 진리들과 선들에 일치하지 않는 것.

피난 (refuge)

이4:6-‘범람과 비에 대비한 피난’=인간이 상처받음으로부터 안전해 있는 것.

허약함 (infirmity)

이53:10-‘여호와께서는… 그분을 허약하게 …만드셨다.’ 이 장 전체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주님의 굴욕적인 상태, 그분은 허약한 인간 안에 계셨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취급한다.
겔34:21-‘허약한 양을 자기들의 뿔로 밀치는 것…’=선으로부터의 진리들을 갈망하지만 아직은 그런 상태 안에 있지 못한 곧바른 자들을 거짓들을 가지고 파괴하는 것.

헛된 (vain)
헛됨 (vanity)

출20:7-‘너는 헛된 것 안으로 네 하느님의 이름을 가져가지 말라’=하느님의 예배에 속하는 각각 그리고 모든 것들은 경멸되어져서는 안된다는 것, 더 나아가 모독하거나 더러운 것들로 오염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출23:1-‘너는 헛됨의 보고를 채택하지 말라’=거짓들에 귀울이지 마라…‘헛됨’=종교와 교리의 거짓.
시144:8-‘헛됨’=교리의 거짓; ‘거짓말’=생활의 거짓.
이66:3-‘유향을 바치고, 헛됨에게 은혜를 베푼다’=영적 선 같은 것으로 하느님을 예배한다, 그럼에도 악과 거짓을 사랑하고 그것들을 빨아들인다…‘헛됨’=악, 그리고 악으로부터의 거짓.
예10:8-‘헛됨들’=거짓들.
예8:19-‘낯선 자들의 헛됨들’=종교의 거짓들.
이30:7-‘이집트, 헛됨과 텅빔’=감각적 평면과 자연적 평면, 그 자체로만 본다면, 선이 결여되어 있고, 진리 또한 결여되어 있다.

호의 (good-will)

시68:9-‘하느님께서 떨어지게 한 은택(benovolences)의 비’=신성한 선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

혼 (soul)

* 내적 인간이 혼이다.
창1:20-주님으로부터 오는 것들은 그들 안에서 생명을 가진다, 그 이유는 그들이 그분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 이것이 ‘생 혼, living soul’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창1:24-의지 속의 것들이 땅이 낳는 ‘생 혼’에 의해 의미 되고 있다.
* (거듭남의 여섯째 상태에서) 인간이 생산하는 것들이 ‘생 혼’ 과 ‘짐승’이라 불리워진다.
창2:7-천적 인간의 생명이 ‘그에게 생명들의 숨을 불어넣으심’에 의해 묘사되어져 있다.
창2:7-‘사람은 생 혼이 되었다’=외적 인간 역시 살아 있게 되었다.
창6:19-‘생 혼’=이해성 속의 것…말씀에서 ‘생 혼’에 의해 일반적인 모든 동물이 의미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의 경우, ‘모든 육체(flesh)’라는 단어가 인접하고 있기 때문에 이해성의 것들이 의미되어진다; 그이유가 이 교회의 사람들의 거듭남은 지적인 것이 먼저 마무리되어야 하기 때문.
창9:4-‘혼’=생명이다는 것…‘혼’ 말씀에서=일반적 측면에서 모든 생명, 즉 내적 인간과 외적 인간 모두. 이 구절의 혼은 거듭나는 사람의 생명을 서술하는데, 여기의 거듭남은 인간의 의지 부분과 분리되어 있다. (즉 이해성이 거듭나고 그다음 의지의 거듭남이 있는다는 말이다)…그러므로 ‘혼을 가진 고기(flesh)’, 이것을 그들은 먹지 않아야 한다는 것=그들은 이 새로운 생명을…악 즉 자아와 혼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창9:5-‘나는 사람의 혼을 요구할 것이다’=모독을 위해 복수하는 것.
창9:10-‘너와 함께 있는 생 혼과 더불어’=거듭나아가고 있는 인간과 더불어 일반적으로 있는 모든 것.
창9:15-‘모든 고기의 모두 각각의 생 혼’=보편적인 측면에서의 인류…모든 사람 그 각각은 자기와 더불은 살아있는 것으로부터 ‘생 혼’이라 불리운다….즉 순진의 어떤 것, 선행, 그리고 자비. 인간의 구원을 위해 남아 있어야 하는 것들(remains)
창12:5-‘그들이 하란에서 얻은 혼’=그 희미한 상태에서 주어질 수 있는 생명되는 모든 필수 요소
* ‘혼’, 적절한 의미에서=살아있는 인간과 더불은 것, 고로 그의 참 생명인 것. 살아 있는 인간에 있는 것은 몸이 아니라 혼이다, 그리고 혼을 통하여 몸이 살아 있는다. 인간의 생명 자체는 천적…사랑으로부터 이다…그러므로 여기서 ‘혼’에 의해 의미되는 것은 천적 사랑으로부터 살아있는 선이다, 이 선은 살아있게 하는 생명 자체이다.
이58:10-‘혼을 주린 자와 고뇌하는 혼에게 꺼내드는 것’=일반적으로 선행으로부터의 선들.
창14:21-‘혼을 나에게 주고…’=그분이 생명을 그것들에 주실 것이다는 것.
창17:14-‘혼이 그의 백성으로부터 잘라낼 것이다’=영원한 죽음; ‘혼’=생명.
창19:17-‘너희 혼을 위해 도망하라’=그는 영원까지 자기 생명을 돌보아야 하리라는 것.
창19:19-‘내 혼을 살아 있게 만드는 것’=그를 구원하는 것.
창19:20-‘내 혼이 살 것이다’=아마 그는 구원될 것이다.
겔47:9-‘기어다니는 생명 있는 모든 혼’=그들의 기쁨들.
창23:8-‘만일 네 혼과 더불어 이다면’=만일 심정으로부터의 진리에 애착함으로부터이다면…
창32:30-‘내 혼은 보전되었다’=그는 지탱되었다는 것.
창44:31-‘아버지의의 혼이 아들의 혼에 매여져 있다’=결합이 마감되어 있다; 그이유가 ‘혼’=생명.
창49:6-‘그들의 비밀 안으로 내 혼이 오게 하지 않으리’…‘내 혼’이라 말해지는데, 그이유는 여기서 혼의 의미가 선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이 선은 영적 선이다.
계8:9-‘혼을 가진 바다에 있는 창조물들’=선들과 더불은 과학적 진리들.
출1:5-‘모든 혼들’=모든 것들. 일반적 의미에서 ‘혼’= 인간, 영적 왕국의 교회의 인간. 그러나 내적 의미에서 ‘혼’=진리와 선, 그이유는 이로부터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
이19:10-‘혼들의 웅덩이들’=지식들로부터 총명 속에 있는 것들.
출15:9-‘내 혼이 채워질 것이다’=기쁨.
출16:16-‘너희 혼들의 숫자’=사회 안에 있는 모두를 위해 충분한 양.
출21:23-‘혼을 위한 혼’=질서의 법칙…
신6:5-‘네 모든 혼으로’=신앙 속의 진리가 있는 이해성으로부터, 고로 신앙으로부터.
눅14:26-인간에게 어울리는 것들이…악들과 거짓들이기에…‘그는 자기 고유의 혼을 미워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계8:9-‘생명들을 가지는 것’=재구성되어지는 것, 그리고 생명을 받는 것.
계12:11-‘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사랑하지 않았다’=주님 보다 더 자신들을 사랑하지 않았다. ‘자기들의 생명을 사랑하는 것’=자아와 세상을 사랑하는 것; 그이유가 여기서의 ‘생명’이 의미하는 것은 인간이 출생 때부터 가지는 인간의 생명이기 때문. 이 생명은 무엇보다 자아와 세상을 사랑하는 것.
계16:3-‘살아 있는 모든 혼이 바다에서 죽었다’=말씀 속의 모든 진리, 이로부터 교회 속의 모든 진리, 신앙 속의 모든 진리가 소멸되었다. 그이유가 ‘살아있는 혼’=신앙 속의 진리.
계18:13-‘인간들의 몸들과 혼들’=글자 의미 속의 선들과 진리들.
계20:4-‘이들의 혼들은 도끼로 찍어 죽여졌다’=악들(악한 자들)로부터 거절받아 왔었던 사후 인간들…
예44:30-‘그의 혼을 찾은 그들’=거짓들에 있는 이들.
예15:9-‘혼의 숨을 끊는 것’=모든 진리들에 관련하여 멸해지는 것.
요10:17-‘나는 내 생명을 내려 놓는다.’

홀로 (alone)

창2:18-‘사람이 홀로 있다는 것은 좋지 않다.’ 주님에 의해 이끌려지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과 세상에 의해 이끌리기를 원했다.
창32:24-‘야곱 홀로 남았다’=진리로부터의 선이 포획했다.
창39:11-‘이 집에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어떤 누구의 도움 없이.
출18:14-‘어찌하여 자네 홀로 앉아 있는가?’=어떤 다른 근원으로부터의 선으로부터의 진리의 유입 없이. ‘홀로 앉는 것’=주님으로부터 직접 진행하는 신성으로부터의 진리에 관해 말해질 경우, 그리고 이것이 모세에 의해 표현 될 경우=그분 만으로부터의 유입, 동시에 어떤 다른 근원에서가 아님.

화해 (reconciliation)

마5:24-‘네 형제와 화해하는 것’=이웃을 향한 선행 (=적개심, 미움, 복수를 금하는 것) (=선행으로부터 예배함).

환상 (vision)

창15:1-‘환상’=가장 안쪽의 계시(밝히 앎), 이는 지각으로부터 있다.
* (스웨덴볽에 의해) 일상적으로 보여진 것들은 환상들이 아니고 최고 높은 수준에서의 몸의 깨어 있음에서 보여진 것들이다.
슥13:4-‘환상’=진리들; 여기서는 거짓들.
이22:1-‘환상의 골짜기’=영적인 것들에 관하여 감각적인 것으로부터의 몽상들.
창46:2-‘하느님께서 밤의 환상에서 이스라엘에게 말하셨다’=희미한 계시.
츨3:3-‘나는 얼굴을 돌려 이 위대한 광경(vision)을 보아야겠다’=이 계시를 되새겨 봄…‘광경’=계시. ‘위대한 광경’이라 부른 이유는 최고 의미에서 ‘떨기나무에 있는 불꽃’에 의해 주님의 인간 안에서 신성의 선과 하나가 된 신성의 진리가 의미되어져 있기 때문.
겔12:24-‘헛됨의 환상’=거짓 계시.
계9:17-‘나는 환상에서 말을 보았다’=추론들은 가상적이고 몽상적이었다는 것. (=말씀을 이해함이 거짓화함.
겔7:26-‘예언자로부터 환상’=교리; 여기서, 거짓인 것에 관한 교리.
미3:6-(이들이) 악들을 볼 것이고, 거짓들을 점칠 것이다는 것이 ‘환상을 위해 밤이, 점침을 위해 어둠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단9:24-‘환상과 예언을 봉인하는 것’=주님에 관하여 말씀에서 말해진 것들을 닫아두고 성취하는 것. (=외적 (표현) 교회의 끝, 그리고 내적, 영적 교회의 시작. ‘환상과 예언’=교리로부터의 거짓들.) (=또한 주님은 말씀에서 그분에 관해 미리 말해진 것들을 완성하시리라는 것.)
욜2:28-‘환상들을 보는 것’=계시를 지각하는 것.
미3:6-‘환상을 위해 너에게 밤을‘=참된 것의 이해 대신 거짓인 것을 이해함.
시89:19-‘당신은 당신의 거룩한 분에게 환상 안에서 이야기했습니다’=주님에 관한 예언적 신비.
이28:15-‘지옥과 더불어 환상을 만드는 것’=마치 예언적인 듯, 지옥으로부터 점을 침.

황폐 (desolation)
황폐 시킴(desolation)
황폐한 (desolate)

이61:4-‘그들은 영원으로부터 쓸모없는 것들을 건축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옛날의 황폐된 것들을 건립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대대로 황폐시킨 것들, 쓸모 없는 성읍들을 새롭게 할 것이다.’ ‘쓸모없는 것들’=악들. ‘황폐시킨 것들’=거짓들.
겔12:19-‘그들이 황폐시킴 안에서 마실 물들’=그들이 폭력을 행사한 영적인 것들, 또는 그들이 모독해버린 영적인 것들.
마24:15-‘황폐시킴으로부터의 흉측한 것’=사랑과 선행이 없을 때 교회의 상태. 이런 것들이 황폐시켜질 때, 흉측한 것들이 통치한다.
습2:9-황폐시킴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이유는 ‘영원히 황폐시킴 때문
창21:15-‘(하갈의) 물이 다 마셔졌다’=(영적 평면과 더불은) 진리가 황폐됨.
예31:8-‘북쪽의 토지’=무지함 또는 진리의 황폐됨. ‘우는 것’과 ‘기도함(간구함)’은 탄식과 자포자기하는 그들의 상태. ‘물들의 원천으로 데려와지는 것’은 휴양과 진리 안에서 가르침.
이35:1-7-‘광야’=진리의 황폐함. ‘물들’ 등등=황폐됨에 있어온 이들과 더불은 휴양과 환희.
이24:11,12-‘황폐되어진 즐거움‘=진리를 서술하고 있다. 이로부터 ’도성에 남겨진 것은 황폐함이다‘에 의해 의미된 것도 명백해질 것이다.
애1:4-‘(시온의) 모든 문들이 황폐되어졌다’=모든 접근함들이 거짓들에 의해 봉쇄되었다.
겔12:20-‘거주하던 성읍들이 쓸모없게 놓여질 것이다, 그리고 토지는 황폐될 것이다.’ ‘토지’=교회 자체, 이것이 선 측면에서 ‘쓸모없이 놓인다’, 진리 측면에서 ‘황폐된다’고 말해진다.
예25:18-‘그들을 황폐시키는 것’…여기서는 영적 (왕국의) 교회의 황폐시킴이 취급되어지고 있다.
출22:4-‘사람이 들판 또는 포도원을 황폐케 할 때’=탐욕들을 통하여 교회의 선과 진리가 박탈됨.
출23:29-‘토지가 황폐되고…’=이럴 경우에 있는 불충분함, 그리고 영적 생명은 거의 없음
겔19:7-‘땅과 땅의 가득함이 황폐되는 것’=교회의 모든 것들을 파괴하는 것.
이7:19-주님의 강림과 그당시 교회의 상태를 취급한다. 즉 영적 진리와 선의 모든 것들이 황폐되어져 있을 것임. ‘황폐시킴의 강들’=교리 속의 진리가 혹독하게 황폐됨.
계17:16-‘그들은 그녀를 황폐시키고 벌거벗게 만들 것이다’=그들은 자신들로부터 그녀의 거짓들과 악들을 벗길 것이다. 말씀에서 ‘황폐됨’은 진리와 거짓을 서술하고, ‘벗음’은 선과 악을 서술한다.
겔33:28-‘나는 토지를 황폐와 쓸모없음에 줄 것이다.’…‘이것의 황폐와 황무함’=영적 교회의 마지막 상태, 이 마지막 상태는 교회 내에 선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진리도 있지 않을 때, 또는 선행이 없기 때문에 신앙도 있지 않을 때 이다. ‘황폐함’은 신앙으로부터 있는 진리에 관해, ‘황무함’은 선행으로부터 있는 선에 관해 말해지고 있다.
습3:6-교회의 모든 선들의 파멸이 ‘나는 나라들을 절단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모퉁이들을 황폐케 할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교리 속의 진리들의 파멸이 ‘나는 그들의 거리들을 황폐케 할 것이다’에 의해, 그리고 ‘그들의 성읍들이 황폐케 될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계10장-이 장의 이어지는 것들에서 교회 안에 있는 신성한 진리의 황폐해짐을 취급하고 있다.
겔4:17-‘사람과 그의 형제가 황폐케 될 것이다’=신앙과 선행(charity)…‘황폐되어짐’=둘 모두가 충분히 소멸됨.
욜1:18-‘작은 가축의 양떼가 황폐시켜질 것이다’=신앙과 선행으로부터 있는 영적 진리와 선의 결핍.
겔30:7-교회의 모든 것들, 그리고 교회의 교리 속의 모든 것들이 멸해진다는 것이 ‘그들은 황폐된 토지들의 한가운데에서 황폐되어질 것이고, 그녀들을 성읍들은 황무해진 성읍들의 한가운데에서 황폐될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단9:26-‘전쟁의 끝 쪽에서 황폐함이 결정되어 있다’=진리와 거짓 사이에 더 이상 어떤 전투도 있지 않을 때 까지 진리의 왜곡이 있다는 것..‘황폐함’=교회의 마지막 때, 그 때는 어떤 진리도 남아 있지 않고 오로지 거짓만 있다.
이54:1-‘결혼한 자의 아들들 보다 황폐된 자의 아들들이 더 많다.’ 여기서는 이방인들과 더불어 세워질 새로운 교회를 취급한다. 후자가 ‘…많은 아들들을 가질 황폐한 자’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예4:26-‘황폐되는 성읍들’=진리 없는 교리적인 것들.
이54:3-‘황폐된 성읍들이 거주되게 만드는 것’=지금까지 파괴되어 왔던 이런 것들 속의 신성한 진리들에 따른 생활…‘황폐된 성읍들’=지금까자 파괴된 이런 진리들, 즉 유대 국가와 더불은 진리들.
애3:8,9,10,11-교회에서 진리를 황폐시킴에 관하여 하느님에 의한 탄식.
예4:26-‘황폐된 성읍들’=진리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이 더 이상 있지 않는 것.

황폐함 (laying waste)

* 파괴(revenge)를 보라.

흠이 없음 (blamelessness)

창20:5-‘이 일을 한 제 손은 흠이 없다’=진리에 애착함으로부터, 그리고 고로 모든 능력으로부터…원어에서 ‘흠이 없음’은 깨끗함, 순수함을 뜻하는 단어를 가지고 표현하였다. ‘흠 없는 손’, 깨끗한 손‘, ’순수한 손‘, 이는 진리들을 서술하는데, 선이 진리들 안에 있지 않으면, 즉 진리에 애착함이 없으면 존재 할 수 없다

희게 반짝거리다 (glitter white)
밝히 빛나다 (bright)

애4:7-‘눈 보다 더 희다, 우유 보다 더 희다’=천적인 진리에서…‘순백, whiteness’은 진리를 서술한다.
계1:14-‘그분의 머리와 털은 희었다’=첫째 원리들과 최말단 원리에 신성이 있다…‘희다’=순수하다.
계1:14-‘눈, snow 같이 양털, wool 같이 희다’=거기 선과 진리에 관하여…‘눈’=근원이 물로부터, 그리고 그것의 순백과 밝히 빛남으로부터 최말단에서의 진리…순백과 밝히 빛남은 빛의 투명성으로부터이다.
애4:7-‘흰, white’은 진리를 서술하고 있다. ‘눈’도 마찬가지. 그리고 ‘밝히 빛남’은 진리의 선을 서술하고 우유도 마찬가지이다.

Advertisements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