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구조물과 상응

성경의
구조물과 상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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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uctural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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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약자표

창 창세기 이 이사야 학 학개 마 마태복음
출 출애굽기 예 예레미야 슥 스가랴 막 마가복음
레 레위기 겔 에스겔 말 말라기 눅 누가복음
민 민수기 단 다니엘 요 요한복음
신 신명기 호 호세아 계 요한계시록
여 여호수아 욜 요엘
사 사사기 암 아모스
삼상 사무엘상 옵 오바댜
삼하 사무엘하 욘 요나
왕상 열왕기상 미 미가
왕하 열왕기하 나 나흠
욥 욥기 합 하박국
시 시편 습 스바냐

차례

건조물 (structure), 구조물-건축하다 (build)-고리 (ring)-골방 (inner room, inner chamber)-곳간 (barn, garner)-궁전 (palace)-궤 (노아의 궤, ark of Noah)-기둥 (column, pillar)-기초 (fountation), 기초의 (foundamental)-기초 (base)-꽂는 구멍 (socket)
대저택 (mansion)-두꺼운 판자 (plank)-들보 (beam)
마구간 (stable)-모퉁이 (corner)-모퉁이돌 (cornerstone)-모퉁이돌 (cornerstone)-목재 (wood), 나무 (wood)-못 (nail)-문 (door)-문 (gate)-문기둥 (post), 문설주-문지방(threshold)-문턱
방 (chamber)-방주 (ark)-노아의 방주(궤) (ark of Noah)-배 (ship, vessel)-벽 (wall)-벽걸이 천 (hangings)-벽돌 (brick)-보루 (bulwark)
사닥다리 (ladder)-상 (statue)-상인방 (lintel)-새 예루살렘 (new jerusalem)-성 (city)-성막 (tabernacle)-성소(sanctuary)-성전 (temple)-수로 (channel)
역청 (bitumen)-역청 (송진, pitch)-오두막 (hut)-오븐 (oven)-왕좌 (throne)-요벨 (jobel)-요새 (fortification)-요새화하다 (fortify)-용광로 (furance)-우물 (well)-울타리 (fence, hedge)
작은 뾰족탑 (pinnacle)-장 (curtain)-장막 (tabernacle)-제단 (altar)-지붕 (roof)-집 (house)
창고 (store house)-창문 (window)-창살 (grating)-천막 (tent)-침실 (bedchamber)
커튼 (curtain), 앙장 (curtain)
피륙 (curtain)
탈 것 (carriage)-탑 (tower)-테두리 (border)
판금 (plate)-판 (table), 널판 (board)
휘장 (veil), 덮개 (veil), 베일 (veil)

건조물 (structure)
구조뮬

계21:18-‘성벽의 건조물’…‘성벽’=글자 의미에서의 말씀. 그것의 건조물=그것의 모든 것. 그이유가 성벽 전체가 건조물이기 때문.

건축하다 (build)

창2:22-‘건축하는 것’=땅에 떨어져 있는 것, 무너진 것, 타락한 것을 일으켜 세움, 끌어 올림이다.
* 말씀에서, ‘건축하는 것, 세우는 것, to build’은 악들을, ‘건립하는 것, 꼿꼿이 세우는 것, to erect’은 거짓들을, 그리고 ‘새로이 함, 갱신하는 것, to renew’은 악들과 거짓들 양쪽에 관련하여 서술될 때 사용된다.
창10:11-‘그는 니느웨를 건축했다’=그는 신앙 속의 교리적인 것들을 자신을 위해 (골격을) 만들었다 (formed)는 것.
창11:4-‘우리가 성과 탑을 건축하자’=그들은 교리와 예배에 모양을 지었다 (변화 시켰다, fashioned).
창11:8-‘그들은 성을 건축하는 것을 중지했다’=이와 같은 교리는 받아지지 않았다는 것.
창16:2-‘어쩌면 나는 그녀를 수단으로 가문을 건축할 수 있을지 모른다’=이리하여 합리성이 태어나질 수 있다는 것.
창22:9-‘제단을 건축하는 것’=신성한 인간을 준비하는 것.
예22:13-‘정의 없이 집을 건축하고 심판 없이 깊은 방을 건축하는 것’=선이 아니고 진리가 아닌 것으로부터 종교적인 것을 함께 놓는 것.
창30:3-‘나는 그녀를 수단으로 건축할 것이다’=그리하여 그것은 생명을 가질 것이다는 것. ‘건축되는 것’=죽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것, 또는 사는 것.
창33:17-‘(야곱은) 자신에게 집을 건축했다’=그 상태에서 진리로부터 선이 증가함. ‘집을 건축하는 것’=총명과 지혜에서 외적 인간을 가르치는 것. 그리고 총명은 진리 속에, 그리고 선으로부터의 지혜 속에 있는바, 여기서의 경우, ‘집을 건축하는 것’=진리로부터 선이 증가하는 것.
눅14:28-‘탑을 건축하는 것’=자신을 위해 내면의 진리들을 포획하는 것.
암9:14-‘황폐된 도성을 건축하는 것’=왜곡된 진리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을 바로 잡는 것.
마21:42-‘건축자들’=교회 속에 있는 이들.
단9:25-‘예루살렘을 건축하는 것’=교회를 새로이 하는 것.
슥6:15-‘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할 멀리 있는 이들’=이전에는 교회의 선들과 진리들로부터 옮겨 있던 이들이 교회에 앉을 것이다.
시51:18-‘예루살렘의 성벽을 건축하는 것’=사랑의 선 쪽으로 인도함으로, 그리고 교리 속의 진리들을 가르침으로 해서 교회를 회복하는 것.
이44:26-교회와 교리를 회복함이 ‘사람이 거주함’과 ‘건축됨’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이45:13-‘그는 내 도성을 건축할 것이다’=그는 진리로부터의 교리를 회복할 것이다.

고리 (ring)
반지 (ring)

이3:21-‘반지들과 코보석들’=선과 그것의 표지.
창41:42-‘그리고 바로는 자기 손으로부터 반지를 옮겼다’=그가 이전에 가졌던 권력에 관하여 확증하는 것…‘반지’=확증하는 것…이로부터 ‘그가 반지를 옮겼다’란 이전에 그가 가졌던 권력을 양위하는 것.
창41:42-‘반지를 다른 자의 손에 놓는 것’=그의 것이었던 권능을 타인에게 양도했다고 확증하는 것.
출25:12-‘너는 금 고리 네 개를 그것(궤)을 위하여 주조할 것이다’=신성한 진리가 신성한 선과 결합했다, 이는 어느 곳이든지 빙둘러 있다. ‘고리들’=선과 진리의 결합.
출25:12-‘그것의 이쪽에 두 고리, 그것의 다른 쪽에 두 고리’=진리가 선과, 선이 진리와 결혼함…‘고리들’=결합 또는 선과 진리의 결혼.
* ‘고리들’=결합 그 자체…‘장대’는 사람의 팔과 관련된다. 고리는 팔이 가슴과 연결되는 곳에 있는 볼(ball)과 이 볼을 받는 구멍으로 접합되는 관절과 같다.
출25:14-‘너는 고리들 안으로 장대를 놓을 것이다’=신성한 영역의 힘…‘고리들’=신성한 진리가 신성한 선에 결합되었음, 이는 모든 측면에 빙둘러 있다. 고로 일반적 측면에서 천국을 아우르고 마감하는 신성의 활동 범위. 그리고 세부적 측면에서는 천국의 사회들과 천사들.
출25:15-‘장대는 궤의 고리 안에 있어야만 한다’=힘은 선과 진리의 신성한 영역으로부터 꾸준히 있다.
출25:26-‘너는 금 고리 네 개를 그것(탁자)을 위하여 만들 것이다’=천국적 결혼의 최말단 저장소(그릇), 이는 신성한 진리와 더불은 신성한 선의 그릇이다. ‘금 고리 네 개’=신성한 진리가 신성한 선과 결합함, 이는 어느 곳에도 빙둘러 있다. 고로 천국적 결혼의 최말단 그릇, 이는 신성한 선이 신성한 진리와 더불은 것이다.
출25:26-‘너는 그것의 네 모퉁이에 고리들을 놓을 것이다’=신성한 진리가 최말단들에서 신성한 선과 결합함으로부터 있는 안전함…
출26:24-널판들은 ‘한 고리’ 아래에서 쌍을 이루어 있을 것이다.=고로 일관성과 견실함. ‘고리’=결합. 여기서 결합을 통하여 견실함.
출27:4-‘너는 놋쇠로 고리 네 개를 그물 위에 만들 것이다’=선의 영역을 통하여 결합이 있다…‘고리들’=신성한 선의 영역과 신성한 진리의 영역, 이를 통하여 결합이 있다.
출28:23-‘너는 금 고리 두 개를 가슴받이에 만들 것이다’=신성한 선의 영역을 통하여 더 높은 천국 측면에 결합이 있다,,,‘금 고리 두 개’=신성한 선의 영역을 통하여 결합이 있다.
출28:23-‘두 고리들은 가슴받이 맨 끝에 놓을 것이다’=천국의 맨 바깥에서 신성한 선의 영역의 결합.
출28:28-‘너는 가슴받이를 그것의 고리들로부터 에봇의 고리와 묶어라’=영적 왕국의 외부에서 신성한 선의 영역을 통하여 천국의 모든 것들을 보존하고 결합함.
출30:4-‘너는 그것(향제단)을 위하여 경계선 아래에 금고리 두 개를 만들 것이다’=신성한 선의 영역을 통하여 결합과 보존이 있다.
눅15:22,23-방탕한 아들의 손에 끼워준 ‘반지’=내적 인간 안에서 선과 진리의 결합

골방 (inner room, inner chamber)

* 방, chamber를 보라.

곳간 (barn, garner)

시144:13-‘곡창(곳간)을 가득채운 식품’=영적인 선, 즉 진리와 선.
시144편-‘곡창’에 의해, 그리고 ‘식품’에 의해 교회의 선들과 진리들이 의미된다. 그이유가 영적 식품이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이기 때문, 이를 통하여 총명이 있다.
학2:19-‘종자들이 아직 곳간에 있느냐?’… ‘곳간’=이런 것들이 있는 곳. 그것이 교회이든, 교인이든, 사람의 마음이든. 주체인 것.
마13:30-‘곳간으로 거두어 들이는 것’=천국과 결합하는 것.

궁전 (palace)

예9:21-‘궁전’, 또는 집=자발적인 것(voluntary thing).
이32:14-‘궁전은 사막일 것이다’=선들이 거주하는 곳.
애2:7-‘궁전들’=교리 속의 것들.
시48:3-진리들이 천적 선에 있는 이들에게 새겨진다는 것이 ‘하느님은 그녀의 궁전에 알려져 있다’에서 의미되어 있다.
이32:14-‘궁전’=선으로부터의 진리에 관련되는 교회의 전체.
시48:13-‘그녀의 궁전들을 구별하는 것’=진리로부터의 선들을 지각하는 것. 그 이유가 ‘집들’=선들, 그리고 ‘궁전들’=진리로부터의 더 고상한 선들.
예9:21-‘궁전들’=생각과 애착의 모든 것들.
예9:21-‘궁전들’=인간 마음의 더 내면적인 것들, 고로 더 고상한 것들.
암6:8-‘궁전들’=거짓들 자체. 이것이 ‘궁전들’이라 불리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자랑하기 때문. 그리고 그것이 더 화려하게 나타나게 하려고 그들의 거짓들이 외적 형체에 장식되어 있기 때문.
이34:13-그들을 방어하는 궤변들이 ‘궁전들’과 ‘방비시설’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시144:12-진리에 애착함이 ‘궁전의 모양새에 맞추어 자른 모퉁이 돌’에 비교되고 있다. 그 이유는 ‘궁전’은 이해함을 표현하고, 이 안에서 (주님의) 진리들이 아름다운 형체들로 있기 때문, 그리고 그들이 진리에 애착함에 있을 때, 그들은 아름다운 형체에 있는다.
예30:18-‘궁전은 그것의 방식에 따라 거주될 것이다’=고대인들이 진리를 이해하는 식과 같이 주님의 진리들에 대한 영적인 이해. 그이유가 이해성 안에 그들의 형체들에 있는 영적 진리들이 있기 때문. 이것이 눈 앞에 표현될 때, 궁전 같이 나타난다.
예6:5-진리를 이해함을 파괴하려 진력함이 ‘그녀의 궁전들을 파괴하자’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시45:15-‘상아로 된 궁전들’=합리적 인간으로부터의 진리들, 고로 합리적 진리들.

궤 (노아의 궤, ark of Noah)

* 방주를 보라

기둥 (column, pillar)

* 상 (statue)도 참조
욜2:30-‘연기 기둥들’=거짓들.
출13:21-‘낮에는 구름 기둥에서’=계발의 상태에 있을 때, 진리의 희미함을 수단으로 부드럽게 되었다.
출13:21, 계10:1-‘구름 기둥과 불 기둥에서’라고 말해지는데…그 이유는 ‘기둥’이 받쳐주는 것, 그리고 받쳐주는 것이란 자연 평면을 서술하기 때문…이로부터 천국으로부터 내려오는 천사들의 발은 ‘불 기둥 같이’ 나타났다.
출13:22-‘낮에는 구름 기둥이,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않았다’=주님의 현존, 이 현존은 영구적이었다는 것. 그 이유가 천사들의 한가운데 주님이 계신 천사들이 백성 앞에 나타나셨기 때문.
출14:19-‘구름 기둥이 그들 앞으로부터 갔다, 그리고 그들 뒤에 섰다’=이전에 지적인 것을 보호하듯 자발적인 것을 보호하는 주님의 현존…이것은 안에 주님이 계신 천사의 합창이다.
출14:24-‘불과 구름의 기둥에서’=거기 신성한 선과 진리의 현존.
시99:7-‘그분은 구름 기둥에서 그들에게 이야기하셨다’…‘구름’=글자로 있는 말씀, 또는 최말단들에 있는 신성한 진리.
출26:32-‘너는 싯딤 목재의 네 기둥들에 그것을 놓을 것이다’=주님 한분에게만 있는 공적의 선이 결합하고 받쳐줌…‘기둥들’=받쳐줌…‘기둥=받침인 이유는 그것들이 베일을 칠 수 있게 해주기 때문.
출26:37-‘너는 (덮개를) 걸기 위한 기둥 다섯을 싯딤 목재로 만들 것이다’=주님의 신성한 인간 속에 있는 공적의 선을 통하여, 충분히 있는 하나되게 하는 매체의 받쳐줌.
출27:10-‘그것의 기둥 스무 개’=충분히 받쳐주는 진리로부터의 선. ‘기둥들’=천국의 선들과 지지하는 교회.
출27:17-‘빙둘러 있는 바깥뜰의 모든 기둥들’=천국을 받치는 모든 선…‘기둥들’=받치는 선들.
출33:9-‘모세가 천막 안으로 들어갔을 때, 구름 기둥이 내려와서, 천막의 문에 섰다, 그리고 그분은 모세와 이야기 하신다’=말씀이 그들의 납득력으로부터 사라진 이후, 농도 짙은 불명료함이 그들의 밖을 점유했다는 것, 그럼에도 내부로부터는 명료한 지각이 있었다는 것…‘구름 기둥’=이 나라에 비교되는 매우 짙은 불명료함.
계3:12-‘나는 그를 내 하느님의 성전에서 기둥으로 만들 것이다’=주님으로부터의 선으로부터의 진리들, 이것들과 더불어 있는 이들이 천국에서 주님의 교회를 받칠 것이다…‘기둥’=교회를 받쳐주고 강하게 하는 것. 그리고 이것은 말씀의 신성한 진리들이다.
계10:1-‘불 기둥 같은 그의 발’=신성한 사랑에 관련한 주님의 신성한 자연 평면. 이것이 모든 것을 받친다…‘기둥’=지지.
예1:18-‘철 기둥을 위하여’=그것을 받치는 진리.
예31:21-‘표지들을 지정하는 것, 기둥들을 놓는 것’=근본되는 교회의 것들을 가르침, 이것들이 ‘기둥들’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것들이 교회를 받치고 있기 때문.
시75:3-‘땅의 기둥들을 튼튼해지게 하는 것’=교회가 기초한 진리들을 지지하는 것.
왕상7:15-22-‘성전의 현관은 최말단 천국 속에 있는 여러 가지 것을 의미했다. 이 천국이 두 개의 높은 천국들을 받치고 있기 때문에 이 두 기둥들은 성전의 현관에 놓여졌다.’

기초 (fountation)
기초의 (foundamental)

이58:12-‘대대손손의 기초들’=신앙의 영적 측면에 속하는 것들, 이것들은 고대 시대 이래 타락해왔다.
이40:21-‘땅의 기초들’=교회의 기초들.
신32:22-‘산들의 기초들’=지옥들…그들이 ‘산들의 기초들’이라 불리는 이유는 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이 지옥을 통치하고 거기로부터 존재하기 때문.
합3:13-‘기초로부터 목에 이르기까지 조차 발가벗겨 놓였다’=도중에서 가로채진 결합.
출9:18-‘기초된 날로부터 지금까지’=다른 사람(것)들과는 이와같은 파괴는 없었다. ‘날’=상태, 그리고 ‘기초’=그것의 품질.
계21장-기초들인 귀한 돌들=질서의 최말단에 있는 신성으로부터의 진리들.
시104:5-‘땅이 기초를 놓은 기초들(bases)’=최말단들에 있는 진리들.
이40:21-‘땅의 기초들’=신앙 속의 진리들. 그이유가 이런 진리들이 기초들로서 교회를 섬기기 때문.
이54:11-사파이어로 놓여진 기초들=이 왕국의 외적인 것들. 그이유가 기초들은 아래에 놓인 것이기 때문.
출29:12-‘제단의 기초’=감각 평면, 이는 인간 생명의 최말단이다. ‘제단의 기초’가 이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제단이 주님의 신성한 인간을 표현하기 때문, 그러므로 그것의 ‘기초’=인간에 있는 생명의 최말단인 것, 이것은 외적 감각 평면이라 불리운다.
계21장-‘성벽의 기초들’=그 교리에 기초를 주게 되는 지식들.
계13:8-‘세상의 창설 때에서부터 죽임을 당한’=주님의 신성한 인간은 교회의 설립 때로부터 인정되지 않았다.
계17:8-‘그들의 이름들은 세상의 창설 때부터 생명의 책에 씌어있지 않았다’=교회의 설립 때부터, 여기서의 경우 이 광신적 신앙의 설립 때부터 말씀으로부터의 교리 안에 있지 않는 이들, 그리고 주님을 믿지 않는 이들.
계21:14-‘열 두 기초들을 가진 도성의 벽’=새 교회 교리의 모든 것들을 포함하고 있는 글자 의미로 있는 말씀. ‘기초들’은 교리적인 것들을 의미한다. ‘열 둘’은 모든 것을 의미한다. 더나아가 교회는 교리 위에 기초되는바, 교리의 모든 것들은 ‘새 예루살렘 성벽의 열두 기초들’에 의해 의미된다. 그리고 교회는 교리로부터 교회인바, 그것의 기초들이 세세하게 취급된다. 말씀에서 ‘땅의 기초들’이란 교회의 기초들을 뜻한다. 그리고 교회의 기초들은 말씀으로부터 밖에 더 없고, 교리적인 것들이라 불리운다. 그 이유는 말씀 자체가 교회의 기초들을 형성하기 때문.
계21:19-‘도성의 벽의 기초들은 모든 귀중한 돌로 장식되어져 있었다’=말씀의 글자 의미로부터 취해진 새 예루살렘의 교리의 모든 것들은 거기 안에 있는 이들과 더불어 받음의 정도에 따라 빛 안에서 나타날 것이다.
시18:7-‘산들’=사랑의 선들. 그리고 그것들의 ‘기초들’=신앙의 진리들.
신32:22-‘불 위에 놓은 산들의 기초들’=교회가 기초된 진리들, 이 진리는 선으로부터의 진리들이다.
눅11:50-‘세상의 창설’=교회의 설립.
미6:2-‘땅’=교회 그리고 그것의 ‘기초들’=여타의 모든 것이 기초된 원리들.
미1:6-‘기초들’=교회가 기초된 자연적 진리들.
이30:32-말씀의 글자적 의미 속의 진리들이 ‘기초의 막대기’에 의해 뜻해지는 이유는 이 의미는 그것의 영적 의미 속의 진리들에 기초이기 때문이다.
시18:15-진리 측면에 관련하여, 선 측면에 관련하여 교회의 모든 것들이 기초로부터 전복되어왔다는 것이 ‘물들의 바닥이 나타났고, 세상의 기초들이 밝히 알려졌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이14:32-‘여호와께서 시온에 기초를 두셨다’=교회는 이런 것들에 의해 설립되어질 것이다.

기초 (base)

* 받침, ultimate도 참조
시104:5-‘땅’=교회. ‘그것이 세워진 기초들’=최말단들에 있는 진리들, 말씀 속의 것들이 글자 의미 안에 있는 것과 같다. 이로부터 말해지는바, ‘그것은 영원히 움직여지지 않을 것이다.’
욥38:6-‘기초들’=지탱하는 진리들 자체.
출26:19-‘널판 아래에 받침을…’, 이는 ‘받침’에 의해 의미되는 진리는 이 선으로부터 진행한다는 것이 의미되어 있다.
시104:5-‘여호와께서는 그것의 기초를 땅에 세우시어 그것이 영원히 제거되지 않도록 하셨다’…여호와께서 그것이 영원히 제거되지 않도록 세우시기 위해 사용한 ‘기초’란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이다.
욥38장-‘기초들’ 등등=자연적 인간에 있는 이런저런 것들 위에 인간과 더불은 교회의 창설(토대)가 있다.
삼상2:8-‘땅의 기초들’=외면의 진리들, 예를 들면, 말씀의 글자 의미 등등, 그이유가 내면의 진리들은 외면의 진리들을 토대로 하여 있기 때문.

꽂는 구멍 (socket)

출28:11-‘꽂는 구멍을 금으로 에워싸라, enclosed in ouches of gold’=선으로부터 계속되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존재를 파생시키는 것.
출28:14-‘꽂는 구멍(ouches)을 금으로 (들씌워 박으라)’=선과 진리로부터의 존재와 생존.
출28:25-어깨 위에 있는 ‘꽂는 구멍(ouches)’=선으로부터의 진리의 존재와 생존.

대저택 (mansion)

창6:14-방주에 있는 ‘대저택’=인간의 두 부분, 즉 의지와 이해성(이해함)이다.
* 천국의 사회들은 주님에 의해 ‘대저택들’이라고 불리운다.

두꺼운 판자 (plank)

* beam, table를 보라

들보 (beam)

겔27:6-‘깃딤 섬으로부터 배의 가로 들보를…’=예배의 바깥쪽 것들, 즉 천적 계급에 속하는 의식들.
출26:15-‘너는 주택을 위해 들보들을 만들 것이다’=이 천국을 떠받치는 선. ‘들보, 두꺼운 널판’=떠받치는 선. ‘들보들’=떠받치고 지탱하게 해주는 선인 이유는 그것들의 재질이 나무이고, 주택과 천막의 모두에 있는 커튼들, 또한 그것들 위에 있는 두 덮개들을 떠받치기 때문. 이로부터 들보는 받쳐주는 것들을 의미하고, 그것들이 나무인바, 나무는 선인 것을 의미하기 때문. 자연에 있는 모든 표현물들은 인간 형체와 관계를 가지고 있고 그 관계에 따라 그것들의 의미도 지니게 되듯, 주택의 들보들은 인간의 근육, 또는 살 부분에 상응한다. 이는 둘러싸는 얇은 막, 그리고 피부들을 떠받친다. 들보들의 재료가 싯딤목이었는바, 이 나무를 수단으로 천국을 떠받치는 선이 의미된다. 또한 그것들을 금으로 덮어씌웠는바, 이 또한 선을 의미하고 있다.
출26:22-‘너는 여섯 들보들을 만들 것이다’=주님의 신성한 인간으로 모든 종류의 선이 있는 곳. ‘주택의 들보들’=천국을 떠받치는 주님의 신성한 인간으로부터의 선.
겔27:6-‘그들이 상아로 만든 너의 가로 들보’…’가로 들보’=인도해주는 수단인 이해함 속의 것, 즉 합리성인 것.
창19:8-‘내 지붕의 그림자(들보) 안으로’=선행의 선 안에. ‘집’, 여기서는 ‘지붕의 그림자’라 부르는데=선.
창19:8-‘지붕의 그림자’=일반적인 희미함 안에.
마7:3,4,5=’네 눈에 있는 들보’=악으로부터의 거대한 거짓. 그 이유가 나무(wood), 내향의 의미에서=선. 그리고 반대 의미에서 악이기 때문. 다른 삶에서, 선은 들보에 의해 표현되어진다, 그러므로 자신을 위해 선을 고안해낸 이들은 들보를 운반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그들은 안전을 따라 걸음을 떼고 있다.
마7:3-5-나무(wood)에 의해 선이 의미되어지는바, 이로부터 ‘들보’에 의해 선으로부터의 진리가 의미되어진다. 반대 의미에서는 악으로부터의 거짓이 의미되어진다.
창19:8, 왕하6:2,5,6, 합2:11, 아1:17-‘들보’에 의해 악으로부터의 거짓이 의미되어진다.

마구간 (stable)

* 여물통(manger)도 참조.
* 육체의 현세에의 욕망이 나귀들, 숫염소 들, 돼지들이 있는 마구간에 비교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애착들은 순수 혈통(thoroughbred)의 말들, 또한 양과 어린 양들이 있는 마구간에 비교된다.

모퉁이 (corner)
모퉁이돌 (cornerstone)

이19:13-‘그들은 지파들의 모퉁이돌 이집트를 유혹했다.’ 신앙 속에 있는 것들을 받쳐주는 역할을 하는바 ‘모퉁이돌’이라 불려지고 있다.
암3:12-‘침대의 모퉁이에서’=자연 평면의 가장 낮은 것에서.
출25:12, 시118:22, 마21:42, 슥10:4, 이28:16-‘너는 (궤의) 네 모퉁이에 놓을 것이다’=견고함. ‘모퉁이들’=강함과 견고함…그 이유는 전체를 연결하는 중요한 기초이고 가장 큰 저항이 요구되기 때문. ‘모퉁이’=강함과 견고함, 이는 신성한 선으로부터 신성한 진리의 것과 같은바, 주님은 다윗의 시에서 ‘모퉁이돌’이라 불리우신다. 즉 ‘건축자들이 거절해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리들이 되었다.’ 그리고 스가랴에서, ‘유다로부터 모퉁이돌이 있을 것이다.’ …이사야에서, ‘여호와는 시온에 증거의 돌을 세울 것이다, 이는 기초가 되는 귀중한 모퉁이이다.’
출26:18-‘남쪽을 향하는 남쪽의 모퉁이를 위한 널판’=진리가 빛에 있는 내면과 가장 안쪽 것들에 까지..‘모퉁이’, 이것이 세상의 방위를 말할 때,=방위에 의해 의미되고 가리키는 상태가 있는 곳.
* 사랑의 선과 신앙의 진리에 관한 모든 상태들이 ‘땅의 4모퉁이’에 의해 의미되어지고 있다. 사랑의 선의 상태는 ‘동쪽의 모퉁이’와 ‘서쪽의 모퉁이’에 의해, 신앙의 진리의 상태는 ‘남쪽의 모퉁이’와 ‘북쪽의 모퉁이’에 의해 의미된다. 계7:1, 20:8, 마24:31, 겔37:9 참조
출27:12-‘바다쪽(서쪽)의 모퉁이를 향하여 뜰의 넓이’=과학적 진리들 측면에서의 이 천국의 상태…
암3:12-‘침대의 모퉁이 그리고 침상의 맨끝’=가장 낮은 자연 평면, 이는 외적 감각 평면이다, 그리고 그것의 진리와 선.
계7:1-‘나는 땅의 4모퉁이 위에 서있는 4천사들을 보았다.’ ‘땅의 4모퉁이들’=보편적인 영들의 세계.
계7:1-‘땅의 4모퉁이들과 하늘의 4바람들’=복합체 안에 있는 교회로부터의 모든 진리들과 선들.
습3:6-‘황폐해지게 될 모퉁이들’=전체 복합체에 있는 교회로부터의 진리들과 선들.

모퉁이돌 (cornerstone)
* 모퉁이, corner를 보라.

목재 (wood)
나무 (wood)

이60:17-‘목재를 위해 놋쇠를’=육체적 선을 위해 자연적 선을.
창6:14-‘고페르(gopher) 목재들’=현세에의 욕망들(concupiscences).
겔26:12-‘너의 목재들’=의지로부터의 것들.
합2:11-‘목재로부터 있는 들보가 대답한다.’…‘목재’=의지로부터의 가장 수준 낮은 것, 이것이 감각적인 과학물로부터 어떤 것이 산출될 때 응답한다.
합2:19-‘깨어나라 하고 목재에게 말하는 자는 슬퍼할지어다.’ 여기서, ‘목재’=탐욕.
애5:4-‘우리의 목재(장작)들은 값을 내고 온다’… ‘목재들’=의지로부터의 것들. (=단지 악들의 근원인 자신들로부터서만 가르침이 있다) (=선에 관한 지식들이 결핍되고 있다).
예2:27-‘나무 조각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 아버지이다.’ 여기서 ‘목재’=탐욕, 이는 의지로부터, 의지 속에 임신된다.
레14장-‘목재’, 일반적으로,=의지로부터 있는 가장 수준 낮은 것들. 귀중한 목재들, 예를 들면, 삼목들, 성전에 있는 삼목(cedar), 문둥병을 깨끗하게 하는데 사용된 삼목 그리고 나무가 마라에서 쓴 물들 안으로 던져졌다…=선이 있는 의지로부터의 가장 수준 낮은 것들.
여9:23,27-정의와 공적을 선한 일들 안에 놓았던 이들은 (저 세상에서) 자신들이 나무를 자르는 것처럼 보인다…그들이 나무를 자르고 있을 때, 나무 아래 주님의 어떤 것이 있는 것처럼 나타난다. 고로 마치 나무가 공적(merit)이었던 것처럼 이다… 이런 이들이 유대 교회 안에 있는 이들이고 ‘땔나무를 패는 자’에 의해 표현되어져 있다.
예3:9-‘돌과 나무로 간음을 범하는 것’=외적 예배의 진리들과 선들을 뒤집는 것.
호4:12-‘내 백성이 자기들의 나무 조각에 문의한다’=어떤 탐욕의 즐거움의 선으로부터. (=악들과 상담하는 것)=그들이 자신의 사랑과 상담하는 것
창27:3-‘그는 번제를 위해 나무를 쪼갰다’=정의의 공적…‘나무’=일들로부터 있는 선들, 그리고 정의로부터 있는 것들. 그리고 ‘나무’를 쪼개는 것=일들로부터 있는 선 안에 공적을 놓는 것.
겔37:16-‘목재’=선, 주님을 사랑함으로부터의 선,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부터의 선, 모두, 그리고 그러므로 ‘유다’와 ‘요셉’은 ‘목재 조각’ 위에 적어져야 할 것, 그리고 이는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이다고 명령되었다.
슥5:4-‘목재들’=(자연적 마음에 있는 ) 선들.
창40:19-‘(바로가) 나무에 당신을 매달 것이다’=거절과 정죄됨.
출7:19-‘나무로 된 것, 돌로 된 것 모두’=선행으로부터 있는 선, 신앙으로부터 있는 진리가 모두 왜곡됨.
출15:25-‘여호와께서 나무 조각을 보여주셨다’=주님이 선을 불어 넣으셨다는 것.
출15:25-‘그리고 그는 물들 안으로 그것을 던졌다’=그분이 진리들을 감동시킴과 더불어. ‘물들 안으로 나무 조각을 던지는 것’…=진리들을 선을 가지고 감동되게 하는 것.
신19:5-‘숲에서 목재를 자르는 것’=종교적인 것으로부터 선에 관하여 논쟁함. ‘목재’=선…그리고 ‘숲’=종교적인 것.
겔39:10-‘그들은 들판으로부터 목재들을 가져오지 못할 것이다’=…교회로부터의 내면의 선이 없다. (그 반면) ‘숲으로부터 목재들’=그것의 외면의 선들.
출25:5-‘그리고 싯딤 목재들’=주님으로부터 있는 공적(merit)의 선, 고로 주님 만으로부터 있는 것. ‘목재들’=공적의 선.
이41:19-‘기름의 목재’=천적인 선.
출25:10-‘싯딤 목재들로 (궤를 만들어라)=정의…이는 공적의 선이다.
출30:1-‘싯딤 목재들로부터 너는 (향 제단을) 만들 것이다’=신성한 사랑으로부터. ‘싯딤 목재들’=공적의 선과 정의. 이는 주님 만으로부터 있다.
계9:20-‘나무로 만든 우상들’=선한 일들에 관련한 거짓들. (=단지 글자 의미만으로 확증한 거짓된 교리적인 것들.)
계18:12-‘모든 향나무(thyine wood)’=자연적 선들 (=자연적 인간 안에서 진리와 결합한 모든 선).
계18:12-‘귀중한 목재로 만든 모든 그릇’=합리적 선과 진리로부터 있는 과학물.
예10:3-5-‘숲으로부터 자른 목재, 인부의 손이 도끼를 가지고 (작업한 것)…’ 이 말은 영적인 것으로부터 분리된 자연적 선을 묘사하고 있다, 이 선은 자아로부터 이다…‘목재’=선, 여기서는 이런 선. (=예배 속의 악).
예7:17-‘아들들이 나무를 그러모은다, 그리고 아버지들이 불을 지핀다…’=거짓들에 있는 이들이 자신들을 위해 악들로부터 거짓들을 획득한다. ‘나무를 그러모으는 것’=악들로부터 거짓들을 획득하는 것.
신21:22-‘만일 사람이 범죄를 하여 죽음의 판결이 있다면, 너는 나무에 그를 매달 것이다’=만일 사람이 말씀의 선에 맞서고, 교회의 선에 맞서 악을 행하였다면, 그는 나무 위에 매달려졌다…그 이유는 ‘나무’, 말씀에서=선. 그리고 반대 의미로는 악이기 때문.
애5:13-‘소년들이 나무 아래에서 헛딛어 곱드러진다’=초기의 선들은 악들을 통하여 멸해지고 있다 (=선을 뜻할 수 있는 이들이 선들을 간음하도록 강요당한다).
겔26:12-‘목재들’=자연적 인간의 선들.
이40:20-‘목재’=선 같이 숭배되는 악.
예46:22-‘나무 패는 자 같이’=마치 그들이 악을 근절하기를 원하는 듯 보이게 하고 실지는 선을 근절하고 있다.
합2:11-‘목재’=거짓을 확증하는 악, 그리고 그것에 동의한다.

못 (nail)

* ‘나무못(peg)’ 또는 ‘못’=첨부(affixion), 부가(adjunction).
이54:2-‘긴 줄’, 그리고 ‘못’=(영적) 진리들의 충분한 연결과 확증.
이33:20-‘못’, ‘끈’=확증하고 결합하는 것들.
이41:7, 예10:4-‘못’=고정함, 그리고 결합함.
이22:23,24, 겔15:3-어떤 것이 매달려지게 하는 ‘못’에 의해 첨부함(affixion)이 의미된다.
이33:20-‘못’, ‘끈’=천국의 진리들과 선들을 결합하게하는 것들.
신23:13-냄새나는 추잡한 사랑에 관한 상응 때문에, 이스라엘 후손들은 ‘자기 똥을 덮는 넓적한 도구(작은삽, paddle)를 운반하도록 명령되어졌다.
슥10:4-‘유다로부터 있는 못’=강화시켜주는 진리.
예10:4-자아로부터의 확증들을 수단으로 결과되어지는 시종일관함이 ‘그는 그것을 못으로, 망치를 가지고 고정하여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에 의해 묘사되어 있다.
이54:2-‘못으로 단단해지게 하는 것’은 말씀으로부터 확증함이 의미된다.
이54:2-‘못’에 의해 (선과 진리의) 형성이 의미된다.

문 (door)
문지기 (doorkeeper)

* 이 문은 통상 작은 문에 해당됨(방의 문 등등)
마24:33-‘문들에서’라고 말해지고 있다. 그 이유는 자연적 평면의 선 그리고 그 평면의 진리들이 인간이 거듭나지고 교회를 만들 때 첫 번째로 서서히 주입시켜지기 때문이다.
왕상6:32-‘문들에 그룹들이 있었다’=천국과 교회로의 접근.
창4:7-‘죄가 문에 누워 있다’…‘죄가 문에 누워있다’=바로 가까이에 악이 있고, 그리고 들어가기를 원하고 있다…문에 있는 악마와 그의 패거리들과 싸움을 있게 하는 유일한 것은 주님을 사랑함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다.
* (노아의 방주의) 문=들음(hearing)
창18:1-‘천막의 문에 앉아 있다‘=…거룩한 것으로의 입구에서…
창19:6-‘롯은 문으로 그들에게로 밖으로 나갔다’= 그는 자신을 신중하게 대처했다…‘문’, 말씀에서=진리이든, 선이든, 또는 주님이시든 들어가게 하는 것, 또는 소개하는 것. 그런고로 ‘문’=진리 자체, 또는 선 자체, 그리고 주님 자신; 그 이유가 진리는 선 쪽으로 인도하고, 선은 주님 쪽으로 인도하기 때문. 성막의 문들과 휘장들은 이와 같은 것을 표현했는데, 성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요10장-‘문으로 양우리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이다; 그러나 문을 통하여 들어가는 자는 양의 목자이다. 나는 양의 목자이다. 나를 수단으로 누군가가 들어갈 것이다면 그는 구원될 것이다.’ 여기서 ‘문’=진리와 선, 고로 주님, 이 분은 진리 자체이고 선 자체이다. 이로부터 문을 수단으로 천국 안으로 들어감에 의해 의미되는 것이 명백해진다.
창19:11-‘집의 문에 있던 남자들’=합리성 그리고 이로부터의 교리적인 것을 통하여 폭력이 선행의 선에 가해진다….‘문’=소개, 접근, 이것이 진리 쪽이든, 선 쪽이든 어느 쪽으로 인도한다; 고로 그것=교리인 것.
마25:10-‘그리고 문이 닫혔다’=다른 사람들은 천국으로 입장할 수 없었다는 것.
출21:6-‘그는 그를 문이나 문설주에 데려갈 것이다’=진리가 확증되고 이식되어 영적 선과 더불은 상태. ‘문’=진리를 선에 소개함, 여기서는 진리가 확증되고 이식되었음을 소개함…그리고 ‘문’=소개함, 입문함인바, 그것 또한=소통함, 그 이유가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가려면 문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
이26:20-‘분노가 통과되기 까지 네 뒤에서 네 문을 닫으라’=악과의 소통은 없음.
슥11:1-‘문을 열라, 오 레바논아’=접근 또는 소통함을 주는 것.
시84:10-‘나는 내 하느님의 집에 있는 문에 서있기를 선택했다’=선과 더불은 것 없이 소통하는 것.
계3:20-‘보라, 나는 문에 서있다, 그리고 두드린다’=주님은 말씀 안에서 모든 사람과 현존하신다는 것, 그리고 말씀 안에서 주님을 영접하라고 재촉하시고, 어떻게를 가르치신다…‘문’=승인과 입장.
이45:1-‘그에게 문들이 열리고, 성문은 닫혀지지 않을 것이다’=전지하심으로부터 그분에게는 모든 것이 명백해져 있다는 것, 전능하심으로부터 그분은 구원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시다는 것.
창19:6-‘그는 그 사람 뒤에서 문을 잠궜다’=그들의 선행의 선에 폭력을 행사하지 않도록, 그리고 신성한 인간과 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거룩함을 부정하지 않도록.
창19:9-‘그들은 문을 부수려고 접근했다’=그들은 둘 모두를 깨부수려고 왔다. (그 이유가) ‘문’=선에, 주님에 소개하는 것; 또한 선 자체, 그리고 주님 자체.
겔8:3-‘북쪽을 바라보고 있는 안쪽 (성)문으로부터의 문’=내면의 거짓들이 있는 장소; ‘북향의 여호와의 집의 큰 문으로부터의 문=내면의 악들이 있는 곳.
창38:14-‘(다말은) 딤나로 가는 길에 있는 샘들의 문에 앉았다’=교회의 진리들에 그리고 교회의 거짓들에 매개물…‘그들의 문’=그들에게 입장함에서; 그리고 말씀의 글자 의미 속에 있는 외적 진리들에는 들어갈 수 있는 빈틈이 있는 바, 이 진리들은 ‘문’이다.
창43:19-‘그들은 집의 문에서 그에게 말했다’=소개함에 관하여 교리적인 것들로부터 상담함…‘그것들의 문에서’=소개함; 여기서는 외적 인간으로부터 내적 인간까지 …이런 의미가 있기에 원어의 경우, ‘집의 문에서’라고 말하지 않고, ‘집의 문’이라 말해지고 있다.
출12:22-‘집의 문으로부터 나가는 것’=선으로부터 진리 쪽으로 나가는 것; 그 이유가 선은 안쪽에 있고, 진리는 바깥쪽에 있기 때문.
시 24:7-‘네 머리들을 들어 올려라, 오 너희 큰 문들이여; 너희는 들어올려진다, 세상의 너희 문들아’ ‘세상의 문들을 들어 올리는 것’=주님에게 심정을 열고 그분에게로 끌어 올리는 것…그리고 소통하는 것, 즉 그분이 선행의 선과 믿음 속의 진리와 더불어 안으로 흘러드시도록 하는 것.
출26:36-‘너는 성막의 문을 위하여 늘어뜨릴 것을 만들어라’=두 번째 천국이 첫 천국과 연합되게 하는 매체…여기로부터 저기로 가는 입구에 늘어뜨린 것이 있는 문에 의해 의미되어졌다.
출29:4-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회합의 성막의 문으로 데려오라‘=천국 안에서 둘의 결합…’문‘=소개함…그 이유가 회합의 성막의 문이 있는 장소는 신성한 선이 신성한 진리와 결혼함을 표현했기 때문.
출29:32-‘회합의 성막의 문에서’=천국 안으로 입장하기 위하여. ‘문’=입장, 그리고 소개함.
출33:8-‘모든 백성이 일어났다, 그리고 성막의 문에 섰다’=이 나라는 말씀, 교회 그리고 예배의 외부에도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의 밖에 있었다…그 이유가 ‘문’=입구, 소개함, 그리고 소통함; 이로부터 문 앞에 서는 것=들어가지 않은 것, 소개되어지는 것, 그리고 소통되는 것.
마25장-‘문’=천국 안으로 입장.
계3:8-‘잘 보라, 나는 너희 앞에 열린 문을 장치한다’=천국은 주님으로부터 있는 선으로부터의 진리들에 있는 이들에게는 열려있다는 것. ‘열린 문’=입장 허가.
계4:1-‘보라 천국에 열린 문…’=주님에 의한 마지막 심판을 위한 천국들의 서품식에 관하여 명명백백해짐.
겔10:19-‘집의 큰 문으로부터의 동쪽 문’=(천국과 교회에) 접근.

문 (gate)

* 이 문은 주로 큰 문 (성의 문, 등등)
이54:12-그렇기 때문에 합리적인 것들.
창28:17-사람이 ‘벧엘’이다…그리고 또한 그가 지식들로부터의 천적인 것들 안에 있을 때가 ‘하늘의 문’이다.
창19:1-‘롯은 소돔의 문에 앉아 있었다’=선행의 선 안에 있는 이들, 그러나 외적 예배에 있는 이들…이들은 악 사이에 있으나 악한 자들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이것이 ‘소돔의 문에 앉아 있는 것’이다.
창22:17-‘네 씨가 네 원수들의 문을 상속할 것이다’=선행과 믿음이 악과 거짓이었던 자리를 계승할 것이다.
이14:31-‘문’=내면들, 또는 합리적 마음에 접근함; ‘도성’=그 마음…
이24:12-‘문’이 ‘황폐한채 방치되어 있다’라고 말해질 때, 이는 악과 거짓만이 지배하고 있을 때이다.
애1:4-‘(시온의) 모든 문들이 황폐하다’=모든 입구가 거짓에 소유당해 있다.
애2:9-‘그녀의 문들이 땅으로 가라앉았다’=자연적 마음이 악과 거짓에 소유당했다.
신28:52-‘모든 (성)문들이 제한(포위)되었다’=선과 진리로의 입구가 차단되었다.
나3:13-‘토지의 문들이 적에게 열리어 있다’=선들이 있어야 할 장소를 악들이 소유했다.
사5:8-‘문들을 습격하는 것’=선과 진리를 습격하는 것.
시69:12-‘문의 주민들’=악들과 거짓들; 또한 지옥들
겔8:3-‘북향을 보고 있는 안쪽 (성)문으로부터의 문’=내면의 거짓들이 있는 장소.
겔8:14-‘북을 향한 여호와의 집의 큰 문의 문’=내면의 악들이 있는 장소.
시127:5-‘문에서 적들과 이야기하는 것’=악들과 거짓들, 고로 지옥의 어느 것도 겁내지 않는 것.
미1:9, 옵13절-이로부터 예루살렘이 ‘백성의 문’이라 불리워진다.
창23:10-‘그의 성문으로 들어오는 모두에게 말하기를’=교리적인 것들에 관하여, 이를 통하여 신앙이 있다. 그 이유가 ‘문’=입구, 고로 소개하는 것…’문’과 같은 의미이다.
창24:60-‘네 씨가 네 미워하는 자의 문을 상속하게 하라’=신성한 인간 안에서 선과 진리의 결혼으로부터 있는 주님의 영적 왕국, 이 왕국은 악과 거짓이 있는 거기 앞에서 선행과 신앙을 가진다.
창34:20-‘성의 문’=진리의 교리.
창34:24-‘그의 성문을 나가는 모든 자’=그들은 고대인들 사이에 교회의 교리로부터 퇴조했다는 것…성의 문=교리…
출27:16-‘바깥뜰의 문을 위한 덮개’=이 천국을 소개함, 그리고 준비되지 않은 이들 외에는 누구도 들어가지 않도록 감시함. (그 이유가) ‘문’=소통함과 소개함.
출27:26-‘모세가 진영의 문에 섰다’=지옥으로 열림이 있는 곳…‘문에서’=열림이 있는 곳…모세가 진영의 문에 선 이유는 … 내적인 것이 지옥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표현되기 위하여서였다.
마16:18-‘지옥의 문들이 득세하지 못할 것이다’=지옥들은 감히 밖으로 나가 신앙 속의 진리들을 파괴하지 못할 것이다.
창22:17, 24:60-‘원수의 문을 상속받는 것’=지옥으로부터 있는 악들과 거짓들을 파괴하는 것.
시14:7,9-‘문들’ 좋은 의미에서라면,=천국으로 열림.
출32:27-‘너희를 건너 진영에서 문으로부터 문 까지 돌아오라’=내적인 것으로부터 외적인 것으로 열린 어떤 것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그 이유가) ‘문’=열림; 고로 ‘문으로부터 문 까지’=열린 어떤 것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계21:12-‘열 두 문들을 가지고 있는…’=거기 있는 선과 진리에 관한 모든 지식들, 이를 통하여 인간은 교회 안으로 소개받는다. ‘문들’에 의해 말씀으로부터의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이 의미된다, 그 이유는 이를 수단으로 인간은 교회에 소개 되기 때문; 그 이유가 문들이 있는 성벽=말씀이기 때문.
계21:13-‘동쪽에 세 문들이, 북쪽에 세 문들이, 남쪽에 세 문들이, 그리고 서쪽에 세 문들이’=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 이 지식 안에 주님으로부터 천국으로부터 영적 생명이 있다, 그리고 이 지식을 수단으로 새 교회가 소개된다. 이 교회는 다소 차이는 있다 해도 대체로 사랑에 있는 이들, 또는 선에 애착함을 지닌 이들을 위한 교회이다. 그리고 다소 차이는 있어도 대체로 진리에 애착함, 또는 지혜에 있는 이들을 위한 교회이기도 하다.
계21:15-‘나와 대화했던 그 사람은 도성과 그 문들을 측량하려고 금갈대를 가지고 있었다’=사랑의 선에 있는 이들에게, 주님께서는 주님의 새 교회의 교리와 이 교회를 소개하는 진리들에 관하여 알고 이해하는 능력을 주신다는 것.
계21:19-‘그리고 열 두 문들은 열 두 진주들이었다, 그리고 문들의 각각은 한 개의 진주 였다’=주님을 인정함과 주님에 관한 지식은 말씀으로부터 있는 모든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을 하나로 결합한다, 그리고 주님의 교회를 소개한다.
계21:25-‘그리고 그것의 문들은 낮에 닫히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거기에는 밤이 있지 않기 때문’=주님으로부터 사랑의 선으로부터 진리들 안에 있는 이들은 새 예루살렘 안으로 받아들임은 꾸준할 것, 그 이유는 거기에 믿음으로부터의 어떤 거짓도 있지 않기 때문. 낮에 닫혀 있지 않은 문들이란 들어가기를 원하는 이들이 승인되었음을 의미한다…
계22:14-‘그분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복있다, 그들의 힘은 생명의 나무에 있을 것, 그들은 성 안으로 문들을 통해 입장한다는 것’=주님의 교훈에 따라 사는 이들은 영원한 행복을 가진다, 그 이유는 그들이 지닌 목적은 그들이 주님 안에 있고, 사랑을 통하여 주님이 그들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 그리고 그분에 관한 지식들을 통하여 그분의 새 교회 안에 있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기 때문.
이26:2-‘문들’=허락.
이45:1-‘(성)문이 닫히지 않게 문들을 여는 것’=영구히 허락함.
예1:15-‘예루살렘의 (성)문들의 문에 와서 보좌를 놓는 것’=교회를 소개하는 진리들을 거짓을 통하여 파괴하는 것.
애5:14-‘원로들이 문으로부터 중지되었다’=선으로부터 진리들에 있는 이들, 또는 추상적으로 선으로부터의 진리를 통하여 교회로의 입장 허가가 더 이상 없다.
시127:5-‘그들이 적들과 문에서 이야기 할 때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그들은 지옥으로부터의 악들에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문’=지옥.
예14:2-‘문들’에 의해 이런 것들에 접근함이 의미된다.
이54:12-‘네 문들’=입장 허가를 받는 진리들; 특별히 선으로부터 있는 교리적인 것들; 그 이유가 순수한 교리 속의 모든 진리들은 선으로부터 진행되고, 그리고 선 속에 있기 때문.
겔43:1,4-‘문’에 의해 소개됨과 입장함이 의미된다.
겔44:1,2-‘동쪽을 쳐다보는 문’에 의해 그분으로부터 진행하는 사랑의 선을 통하여 주님에 의해 천국 안으로 그리고 교회 안으로 소개됨이 의미된다. 그리고 이것이 주님으로부터 이다는 것이 ‘여호와께서… 이 문을 통하여 들어가셨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소개됨은 이 선으로부터 주님에 대한 예배를 통하여 결과된다는 것이 ‘문은 안식일에 열려질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그리고 이 선으로부터 예배가 있지 않을 경우 소개함은 거행되지 않는다는 것이 ‘일하는 육일 동안 이 문은 닫힌다’에 의해 의미된다.
겔47:1-여기서는 ‘집’에 의해 교회가 의미되고, ‘문’은 입장과 소개함이 의미된다.
겔48:34-‘문들’에 의해 소개하는 진리들이 의미된다. 이 진리들은 교리적인 것들이다.
이14:31-‘문’에 의해 교회로 소개하는 진리가 의미된다…이로부터 ‘울부짖어라 성문아’…진리에 관련한 교회의 황폐함이 의미된다.
이28:6-‘성문에서 전쟁을 물리치는 이들에게 여호와는 힘이 되신다’=주님께서는 말씀과 말씀으로부터의 교리를 방어하는 이들에게 힘을 주신다, 그리고 그들에게 폭력을 행사함에서 방패가 되신다. ‘도성’=교리; 그리고 ‘성문’=자연적 진리들. 그런고로 원로들이 판결하기 위해 도성의 문에 앉아 있다.
옵11절-‘문들로 입장한 외국인들’이란 내면의 진리들 안으로 입장함을 통하여 진리들을 파괴하는 교리 속의 거짓들을 의미한다.
마16:18-‘지옥의 문들이 득세 못 할 것이다’=지옥으로부터 있는 악들로부터의 거짓들은 주님으로부터 선으로부터 진리들에 있는 교회인들에 맞서 감히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지옥의 문들’이란 지옥의 모든 것들, 이것들에 있는 문들을 통하여 악으로부터의 거짓들이 봉기한다.
애1:4-‘그녀의 모든 문들이 황폐되었다’=진리들로의 입장은 없다는 것.

문기둥 (post)
문설주

출12:7-‘그것을 두 문기둥과 인방에 놓으라’=자연 평면으로부터의 선들과 진리들. 문의 ‘기둥들’=자연 평면으로부터의 진리들.
출21:6-‘그는 문으로 이든, 문기둥으로 이든 어느 쪽으로 그를 데려올 것이다’=영적 선으로 해서 심어지고 확증된 진리의 상태. 그이유가 문기둥은 두 방들 사이에 있고 그것들을 결합하게 하기 때문.

문지방(threshold)
문턱

습2:14-‘문지방에 가믐’=진리의 완전 파멸.

방 (chamber)

* 침실, bedchamber도 보라
마24:26-황폐된 진리가 ‘광야, desert’에 의해 의미된다. 그리고 황폐된 선은 ‘은밀한 방(골방)’에 의해 의미된다.
겔8:12-‘자기 형상의 방들에 있는 모든 사람’=자신 안에, 자기 생각들에 내향적으로 있는 것. 그들의 생각과 애착의 내면들이 ‘방들’에 의해 표현되어지고, 이 구절에서 ‘형상의 방들’이라 불리우고 있다.
신32:25-‘방으로부터는 공포’=인간의 내면의 것들.
시104:13-‘그분의 방들로부터’=천국의 내면적인 것들로부터.
시105:30-‘왕들의 방들’=내면의 진리들, 그리고 반대 의미에서, 내면의 거짓들.
출8:3-‘침실’=마음의 내면들…그이유는 침실은 집의 안쪽 부분이기 때문. ‘방들’=내면의 것들, 그리고 ‘침실’=한층 더 내면의 것들.
시104:13-‘그분은 그분의 방들로부터 산들에 물을 주신다’=모든 선들은 천국으로부터 진리들을 통하여 온다…‘방들’=이런 것들이 와지는 천국들.
신32:25-‘문들로부터는 검이 빼앗고, 방들로부터는 공포가’=지옥으로부터 있는 거짓과 악이 자연적 인간과 합리적 인간 모두를 황폐하게 할 것이다.
시105:30-‘방들’=내면의 것들.
시104:3-‘그는 물들에 들보들을 가지고 그분의 방들을 함께 연결하신다.’…그분이 물들에서 들보들과 함께 연결하는 ‘방들’=천국의 사회들.
시104:3-‘방들’=교리적인 것들.
시104:3-‘물들에서 들보를 가지고 그분의 방들을 연결하는 것’=최말단 천국에 있는 이들과 교회에 있는 이들을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채우는 것.
시104:3-‘그분은 물에서 들보들을 가지고 그분의 방들을 함께 연결하신다’=주님께서는 신성한 진리들을 수단으로 천국들과 교회를 만드신다…‘여호의 방들’=천국들과 교회.

방주 (ark)
노아의 방주(궤) (ark of Noah)

* 노아라 불리는 교회인은 ‘방주’에 의해 풀이된다.
* (노아라 불리는 새 교회의) 형성이 ‘방주’에 의해 서술되는데, 이 방주 안으로 모든 생명있는 창조물이 받아졌다.
* ‘홍수’, ‘방주’, 그리고 이것들에 관련되어 묘사되는 것들은 거듭남, 그리고 거듭남에 앞서 진행하는 시험들을 의미한다.
* ‘방주(ark)’에 의해 …신비가 의미되는데…마찬가지가 모세가 감추어졌던(아기 모세를 담았던) 작은 상자(ark)도 신비를 지니고…어쩌면 이 두 가지보다 더 높게 신비를 내포한 것은 광야에서의 언약을 담은 궤(ark)일 것이다.
* ‘그가 방주로 들어갔다’=그는 구원되어졌다.
창7:1-‘너와 모든 네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의지 속에 있는 것들
* ‘방주로 들어가는 것’=준비되어지는 것.
창7:7-‘노아는 홍수의 물들에 앞서 방주로 들어갔다’=그는 안전해졌다.
창9:10-‘방주로부터 나온 모든 것’=교회인…또는 거듭나는 자.
마24:38-‘노아가 방주로 들어가는 날 까지’=이전 교회의 끝, 그리고 새로운 교회의 시작.

배 (ship, vessel)

이43:14-‘배들’=부패된 진리에 관한 지식들.
이60:9-‘다르싯의 배들’=지식들 (=말씀으로부터의 진들과 교리물들).
창49:13-‘배들의 피난처에서’=말씀으로부터의 교리물이 있는 곳.
시107:23-‘배들’=지식들과 교리물들. 말해지기를, ‘배들을 가지고 바다로 내려 간 그들, 이들은 여호와의 일들을 보았었다…’
계8:9-‘배들의 삼분의 일이 부셔졌다’=교리물로부터의 진리들과 선들이 왜곡되었다.
시104:26-‘배들’=지식들과 말씀으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
요21:6-‘배의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는 것’=사랑의 선과 선행의 선으로부터 [행해지는] 모든 것들.
이33:21-‘노질하는 배’=자아로부터의 총명, 그이유는 인간 동력으로 배가 움직이기 때문. ‘웅대한 배’=자아로부터의 지혜. 바다를 가로질러 재물을 운반할 때의 배=총명과 지혜.
민24:24-‘깃딤 해안으로부터의 배’=고대 교회에 의해 소유된 진리와 선에 대한 지식들.
사5:17-‘왜 단은 배들을 두려워하는가?’=왜 그는 거짓들과 거짓으로부터의 교리들을 쫒아버리지 못할까?
계18:17-‘배들에 고용된 이들’=총명에 있는 이들.
계18:19-‘바다에서 배들을 가지는 것’=자연적 인간으로부터의 추론들을 수단으로 이런 것들을 확증하는 것.

벽 (wall)

창49:22-‘그녀가 벽 위에서 행진한다’=거짓에 맞서 싸우는 것.
출14:22-‘물들이 그들의 오른쪽과 왼쪽에서 벽이 되었다’=그들은 사방으로부터 있는 거짓들로부터의 간섭이 억제되었다.
여6장-‘여리고의 성벽들’=악들을 방어한 거짓들.
욜2:9-‘그들이 벽에서 달린다’=본질적 거짓.
계21:12-‘크고 높은 성벽을 가졌다’=새 교회의 교리가 있는 글자 의미에 있는 말씀. ‘거룩한 성 예루살렘’=교리 측면에서의 주님의 새 교회, 그것의 ‘성벽’=교리가 있는 글자 의미에서의 말씀. 그 이유가 이 의미는 영적 의미를 보호한다…성벽이 성과 성의 주민을 보호하는 것과 같다.
계21:13-‘성의 벽은 열 두 기초들을 가졌다’=글자 의미에 있는 말씀은 새 교회의 교리의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
예1:15-‘사방 모든 벽들에 대하여’=방어하는 모든 진리들을 파괴하는 것.
예1:18-‘놋 성벽’=선이 보호함.
이26:1-‘성벽들과 성채들’=보호하는 진리들.
계21:18-거룩한 예루살렘의 성벽은 ‘벽옥’으로 되었다고 말해지는데, 그이유는 ‘성벽’=신성한 진리가 보호함이기 때문.
겔26:10-‘흔들려지는 성벽…’=보호해주는 진리들, 이 진리들은 일반적으로 하느님은 계시다, 말씀은 신성하다, 그리고 영원한 삶이 있다 등등이다.
애2:7-‘그녀의 궁전의 벽들’=모든 보호하는 진리들. ‘궁전’=교리 속의 것들.
이2:15-‘탑’, ‘성벽’=교리 속의 거짓들이 확증했다.
이22:10-‘벽’=방어하는 교리 속의 진리, 여기서는 왜곡된 진리, 그 이유는 선이 없기 때문.
슥2:5-‘불 성벽’=신성한 사랑에 의해 보호됨. 그 이유가 여기에 지옥들이 접근할 수 없기 때문.
이2:15-‘드높은 망대와 견고한 성벽’=거짓으로 확증한 원리들.
겔26:12-그들이 ‘파괴’할 ‘벽들’=교리적인 것들.
겔13:14-누그러지지 않은 것 가지고 회칠한 담벽=진리 같이 나타나는 허구적인 것.
출30:3-‘그것의 벽들’=내면들. 그이유가 ‘벽들’, 또는 ‘측면들’=내면의 것들이기 때문. ‘지붕’=가장 깊은 것일 때, ‘벽들’, 지붕 아래 인 바=내면(중간)의 것들.
왕상6:29-‘벽들’ 위에 거룹이 조각되었다=천국과 교회의 최말단들.
겔8:10-‘벽 빙둘러’ 그 위에 그들이 그린 것이 보였다=자연적 인간 어디에나 있는 내면들. 그이유가 …‘벽들’=내면의 것들 (이는 가장 깊은 것과 최말단 것과는 구분된다)
암5:19-‘벽에 자기 손을 기댔다가 뱀이 그를 무는 자’=…이런 사람은 글자 의미의 말씀과 상담한다…그는 악들이 그 의미들을 뒤집고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
겔12:5,6-‘어둠에서…옮길 집기들을 벽을 통하여 가져가거라…’=말씀으로부터의 교리의 모든 진리들이 내던져졌다는 것…‘벽’=진리들을 에워싸고 보호하는 최말단. 그리고 교리의 최말단은 글자 의미이다…이것이 ‘벽’이라 불려진다. 그 이유는 글자 의미는 영적 의미를 함유하고 에워싸고 있기 때문.
겔23:14-‘사람들이 벽에 그렸다’=(내향적으로는 모독하고 있는데 외향적으로 진리들인듯 나타나는 교리물들)=외적인 것들에 있는 교리적인 것들의 나타남.
합2:11-‘담벽으로부터 돌들이 소리친다’=진리들이 결여된 사람, 그 결과 왜곡된 것으로부터 가르침 받기를 원하는 사람.

벽걸이 천 (hangings)

출27:9-‘뜰을 위한 벽걸이 천’=최말단 천국의 진리. ‘커튼, curtains’=진리들. 고로 또한 벽걸이 천.

벽돌 (brick)

창11:3-‘우리가 벽돌을 만들자’=그들이 자신들을 위해 모양지은 거짓들. ‘돌’=진리. 그러므로 ‘벽돌’,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거짓, 그이유가 벽돌은 돌 같이 가공했기 때문.
창11:3-‘그들은 돌을 위해 벽돌을 가졌다’=그들은 진리 대신 거짓을 가졌다.
출1:14-‘진흙과 벽돌’=그들이 찾아낸 악들과 그들이 모양지은 거짓들 때문에.
출5:7-‘벽돌들을 만드는 것’=주입될 꾸며지고 왜곡된 사항들.
출5:14-‘벽돌들을 만드는 것’=허구적이고 거짓인 것을 받아들이는 것.
이65:3-‘동산에서 희생제를 지내고 벽돌 위에서 향을 태운다’=그들 자신의 총명으로부터 있는 교리의 거짓들로부터 예배함.

보루 (bulwark)

이26:1-‘성벽들’과 ‘보루’=방어하는 진리들.
시122:7-‘네 성벽 안쪽에 평화가 있고, 네 궁전에 쉼이 있다’=외면의 인간에서 그리고 내면의 인간에서. 그 이유가 외면의 인간은 그 안에 있는 것들과 더불어 내면의 인간을 위한 보루, 또는 요새 같기 때문….그러므로 인간의 외면들은 ‘보루’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그리고 그의 내면들은 ‘궁전’에 의해 의미되어진다.
시48:13-‘보루에 심정을 두는 것’=거짓들에 맞서 이 교회를 방어하는 외면의 진리들을 사랑하는 것.

사닥다리 (ladder)

창28:12-‘보라 사닥다리가 땅에 놓여졌다’=가장 낮은 진리와 그로부터 파생된 선이 교통함. ‘사닥다리’=서로 왕래함, 교통함…
*‘그것의 머리는 하늘에 닿고 있었다’=신성과 교통함이 있었다는 것.

상 (statue)

단2장, 3장-느브갓네살에 의해 보여진 ‘상’=진정한 예배로부터 결국은 ‘바벨’이라 불리는 예배로 타락하는 것…느브갓네살이 세운 금 신상 역시 같은 부류이다.
이19:19-‘기둥’. (=자연 평면에서 질서의 최말단인 진리)
단2장-‘상’=교회의 연속적인 시대(단계), 즉 금-은-동-철 시대.
단2장-‘상의 머리’=천적인 것들. ‘가슴’=영적, 또는 합리적인 것들, 등등.
예43:13-‘태양의 집의 상들’=자아를 예배함.
창19:26-이 구절에서 ‘상’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히브리 단어는 잠자코 있음, a standing still을 뜻하는 단어인바, 이는 예배를 위해 세워둔 상을 뜻하지 않고, 어떤 표시를 위해 세운 상도 아니고, 증거로 삼으려 세운 상도 아니다. 하여 ‘소금 상’은 여기서 롯의 아내에 의해 의미된 진리가 황폐되어 서있다가 의미된다.
창28:18-‘그는 기둥을 위해 그것을 놓았다’=거룩한 경계(영역). 고로 질서의 최말단.
출24:4-‘열 두 기둥들’=예배에서 선으로부터 있는 진리.
신16:22-진리의 표징이 제단의 돌들에 의해 설립되어졌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기둥들을 수단으로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금하여졌다, 진리가 선으로부터 분리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창31:13-‘네가 기둥에 기름부었던 곳’=진리의 선이 있는 곳, 그리고 그것의 경계. ‘기둥’=거룩한 경계, 고로 질서의 최말단. 결과적으로 진리.
창31:45-‘야곱은 돌을 가져왔다, 그리고 그것을 기둥으로 세웠다’=이와같은 진리, 그리고 파생되는 예배…‘기둥’=진리로부터 예배함.
창31:52-‘기둥’=진리. 증거로서, 표시로서 (돌)더미, 기둥 이 사용되었는데, 여기서는 한계(limit)를 표시함.
창33:15-‘너와 더불어 있게(set) 하는 것’=결합하는 것.
창35:14-‘야곱은 그분이 자기와 이야기했던 장소에 기둥, 돌 기둥을 세웠다’=이 신성한 상태에서 진리가 거룩한 것.
창35:20-‘야곱은 그녀의 무덤 위에 기둥을 세웠다’=거기서 일어나질 영적 진리가 거룩한 것. ‘기둥’=진리의 거룩한 것.
창47:2-‘전에 놓은 것’=은근히 심어짐.
출23:24-‘너는 그들의 상들을 조각낼 것이다’=예배 속의 거짓들은 따로 제쳐두어져야 한다는 것.
출24:4-‘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들을 위한 열 두 기둥들’=주님의 신성한 인간의 전체 복합체에서 그분으로부터 있는 신성한 진리 측면에서의 그분의 신성한 인간을 표현함. ‘기둥’=진리 측면에서 주님의 신성한 인간을 표현함, ‘제단’은 선 측면에서 주님의 신성한 인간을 표현함. ‘기둥’, 표현적 의미에서,=주님으로부터 있는 진리의 거룩함.
단2장-‘상의 머리’=교회의 처음 상태, ‘가슴과 팔’, 두 번 째 상태.
출34:13-‘너는 그들의 상들을 부술 것이다’=악으로부터의 거짓은 사라져야 한다는 것. ‘상들’=진리들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을 표현하나 여기서는 반대 의미인 바, 거짓들로부터의 우상 숭배.
이19:19-‘변경에 여호와께 기둥이…’=신앙의 진리들로부터 주님을 예배함. ‘기둥’=신앙의 진리들로부터 예배함.
이27:9-‘태양-상들’=자연적 진리들로부터 예배함.
겔6:6-‘태양-상들’=교리의 거짓들로부터 있는 우상 예배.
단2장-‘상의 머리’=태고 교회.
출24:4-‘제단과 열 두 기둥들’=교회가 존재하는 수단인 선으로부터의 모든 진리들.
겔26:11-‘그는 강건한 기둥을 땅으로 끌어내릴 것이다’=진리들로부터의 모든 예배는 파괴되어질 것이다. 그이유가 ‘기둥들’=진리들로부터 있는 거룩한 예배. 그리고 모든 힘은 선으로부터의 진리 속에 있는 바, 그들은 강건한 기둥들‘이라 불린다.
단2장-‘상’은 바빌론으로 되어가는 교회의 상태를 그것의 시작으로부터 마지막 까지를 묘사하고 있다…그것의 머리=지혜, 그리고 금=주님을 사랑함. 그것의 발의 발가락은 일부는 쇠로, 일부는 진흙으로 되었다는 것=이 교회의 마지막 상태는 사랑으로부터의 모든 선과 지혜로부터의 모든 선이 결여될 것….그런다음 새로운 교회가 건설될 것임이 44절에서 묘사되고 있다.
단2장-교회의 창설로부터 그것의 마지막까지 교회의 종말이 ‘상’에 의해 묘사되고 있다… 첫 교회, 홍수 전에 있었는데, ‘금’에 의해 표현되고, 두 번째 교회는 홍수 후에 있었고 ‘은’에 의

상인방 (lintel)

출12:7-‘그들은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피를 바를 것이다’=자연 평면의 진리들과 선들…‘상인방’=자연 평면의 선들.

새 예루살렘 (new jerusalem)

* 요한과 에스겔에서 ‘새 예루살렘’=천국들과 땅에서 주님의 왕국.
* ‘거룩한 성’, 또는 ‘새 예루살렘’은 선행으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과 신앙으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이 의미된다.
계3:12-‘내 하느님의 도성의 이름, 새 예루살렘’=새 교회의 교리가 그들의 심정들에 새겨질 것이다. ‘새 예루살렘’에 의해 새 교회가 의미된다. 그리고 새 예루살렘이 ‘도성’이라 불릴 때, 교리 측면에서의 새 교회가 의미된다.

성 (city)

* ‘거룩한 성’, 이는 또한 ‘거룩한 예루살렘’이라 불리는데=보편적 측면에서의 주님의 왕국, 또는 각 개인 측면에서의 주님의 왕국. 마찬가지로 ‘성’, 또는 ‘시온의 산’; 후자=신앙의 천적인 것, 전자=신앙의 영적인 것. 천적이고 영적인 것 자체는 ‘성들’로 묘사되고도 있다.
예17:25-‘영원히 거주해질 성’은 예루살렘이 아니고 예루살렘으로 의미된 주님의 교회이다.
* 천국으로부터 하느님으로부터 내려오는 도성 예루살렘=주님에 의해 밝혀주신 천국의 교리.
* ‘거룩한 성’=주님으로부터 있는 신성한 진리의 교리
창4:17-‘가인에 의해 건설된 성’=그 때로부터의 교리적이고 이교도적인 모든 것. 어느 성의 이름이 말씀 어느 곳에서 거론되든, 그것은 성이 아닌 교리적 어떤 것, 이교적인 것을 의미한다; 그이유가 천사들은 성이 무엇인지, 성의 이름도 결코 모르기 때문; 오직 그것들이 의미하는 것만을 지각한다.
창10:12-‘이 성은 큰 성이다’=교리적인 것들, 그것들이 우세해졌다는 것…‘큰 성’이라 불리는 이유는 교리의 모든 거짓, 예배의 모든 거짓이 셍활의 거짓 안으로 파생되기 때문.
창11:4-‘우리에게 성과 탑을 짓기로 하자’=그들이 교리와 예배를 창안했다는 것.
창11:8-‘그들은 성 짓기를 중단했다’=이런 교리는 받아지지 않았다는 것. ‘성’=교리.
창13:12-‘롯은 평야의 성들에 거주했다’=외적 인간은 과학물들 안에 있었다. ‘성’ 또는 ‘성들’=교리적인 것들, 이것은 내적 인간으로부터 분리된 외적 인간이라 단언할 경우, 그자체로서는 과학물들밖에 더 아니다. ‘성들, cities’=교리적인 것들, 참이든 거짓이든 양쪽 모두에서.
예49:25-‘찬양과 환희의 성’=교회 속에 있는 것들.
창18:24-‘성 한가운데 의인 오십 명이 있다면…’=진리들이 선들로 가득차 있다면…‘성’=진리.
창19:4-‘성의 사람들’=거짓들에 있는 이들…‘성’=진리들, 또는 거짓들, 또는 진리에 반대하는 것들.
창19:12-‘성 안에 있는 모든 이 각각’=진리로부터 파생되는 것은 무엇이든. ‘성’=교리인 것, 고로 복합체에 있는 진리.
창19:15-‘너는 성의 불법 안에서 살라지지 않도록’=그들이 거짓의 악들 안에서 멸하지 않도록. ‘성’=교리인 것, 그것이 참된 것 뿐아니라 거짓된 것까지.
창19:16-‘그들은 그를 성 밖에 내놓았다’=거짓으로부터 떨어짐.
창19:17-‘네 뒤를 쳐다보지 마라’=그는 교리적인 것들을 쳐다보아서는 안된다는 것.
예33:13-선행의 교리적인 것들이 ‘산의 성들’, 그리고 신앙의 교리적인 것들이 ‘평야의 성들’이라 불리운다.
창19:20-‘이 성은 도망하기에 가깝다’=신앙의 진리로부터라면은 허용할 수 있음. ‘성’=교리인 것, 고로 신앙의 진리.
창19:25-‘그분은 이 성들을 뒤엎으셨다’=그들로부터 분리된 모든 진리들, 하여 그들은 오로지 거짓들만을 가졌다. ‘성들’=교리적인 것들, 고로 진리들, 거기에 진리들 대신 거짓들이 있을 때, ‘뒤엎어져 있다’라고 말해진다.
창19:29-‘하느님께서 평야의 성들을 파괴하셨을 때’=그들이 악의 거짓들을 통하여 멸망했을 때.
예48:9,28-그들이 거짓에 물들어지도록 자신들을 내버려둘 때, 이렇게 말해진다, 즉 ‘모압의 성들은 황무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성들을 떠나 바위들에서 거주할 것이다.’
이19:2-‘성이 성에 맞서는 것.’ ‘성’=교리인 것, 여기서는 이교(heretical)인 것.
이24:10-‘텅빔의 성이 깨질 것이다’=진리가 박탈된 인간 마음.
이23:10-‘그의 성의 문으로 들어가는 모든 이에게’=신앙이 있도록 한 교리적인 것에 관련하여…‘성’=신앙 속에 있는 진리.
창24:10-‘나홀의 성에’=같은 기원의 교리적인 것들. ‘성’=교리인 것.
창24:11-‘성 밖’=교리적인 것들로부터 옮겨짐.
창24:13-‘성의 사람들’=진리들.
창24:15-‘리브가가 나왔다’=교리적인 것들로부터 있는 진리에 애착함 …
창26:33-‘성의 이름은 브엘세바’=거기로부터 있는 교리의 품질…‘성’=교리.
시107:4-선과 진리 모두에서 무지해 있는 이들에 관해 말해지는 바, ‘그들은 거주할 성을 발견 못했다.’
마10:5-‘사마리아 사람들의 성들’=거짓들에 있는 이들.
창33:18-‘그는 성의 얼굴에서 진을 쳤다’=이 진리의 선들에 적용함. ‘성’=진리.
창34:20-‘성의 남자들’=교리의 진리들에 있는 이들.
창34:25-‘그들은 대담하게 성으로 왔다, 그리고 모든 남성을 죽였다’=그들은 고대인들과 더불은 교회의 교리 속의 진리들을 절멸시켰다는 것. ‘성’=교회 속에 있는 교리.
창34:28-‘그들은 성 안에 있었던 것은 무엇이든, 들판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가져갔다’=교회의 모든 진리와 선. ‘성’=교리인 것, 고로 교회의 진리.
창35:5-‘하느님의 공포가 그들 주위에 있었던 성들 위에 있었다’=거짓들과 악들이 접근할 수 없었다는 것…‘그들 주위의 성들’=거짓들과 악들. 그이유가 순수한 의미에서, ‘성들’=교리의 진리들. 그리고 반대 의미에서, 교리의 거짓들. ‘성’이 여기서 악들을 의미하는 이유는 성 안의 거주민들로도 이해될 수 있기 때문.
예32:29-‘성을 태우는 것’=교리의 거짓인 것들 안에 있는 이들을 황폐케하고 파괴하는 것.
이22:9-‘다윗성의 터진 곳들’=교리의 거짓들.
암9:14-‘황폐된 성들을 세우는 것’=왜곡된 진리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을 고치는 것.
욜2:9-‘그들은 성을 이리저리로 달려다녔다고 말한다’=진리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
창41:35-‘성들에 있는 식품’=자연적 마음의 내면에 있는 이런저런 것들. 보편적 의미에서, ‘성들’=교회의 교리적인 것들, 그러나 단수적인 의미에서, 그들=인간의 내면들, 거기에 교리들이 있다, 또는 오히려 거기는 진리가 선과 결합되는 곳이다. 인간과 더불은 진리들과 선들은 말하자면 성을 형성한다.
창41:48-‘그는 성들에 식품을 쌓았다’=내면들 안에, 즉 진리들이 선에 인접했다. ‘성들’=자연적 마음의 내면들.
창44:13-‘그들은 각 사람(의 것)을 그의 나귀에 싣고 성으로 되돌아왔다’=감각적인 것들로부터 진리들이 과학물들에로 되가져와졌다.
예47:2-‘성, 그리고 거기 거주하는 자들’=성의 진리, 그리고 거기로부터의 선.
창47:21-‘그는 이 백성들을 성들에 옯겼다’=과학적 진리들이 교리적인 것들에 참고가 되어졌다는 것…‘성들’=교리적인 것들.
출1:11-‘그는 바로를 위해 창고형 성들을 지었다’=과학물에서 소외되어져 있는 자연의 왜곡된 진리들로부터의 교리들. ‘성들’=양쪽 감각들에 있는 교리들.
예46:8-‘성을 파괴하는 것’=교회의 교리를 파괴하는 것.
나3:1-‘피들의 성’=거짓으로부터의 교리.
미5:11-‘잘라내져야 할 토지의 성들’=교회의 진리들.
출9:29-‘내가 성으로부터 나가자 마자’=분리됨…‘성’, 여기서는 바로가 있는 성=침입하는 이들이 있는 거짓. 그이유가 ‘성’=교리적인 것, 그리고 그것=교리적인 바, 그것=진리, 그리고 반대 의미에서 거짓.
미5:11-‘토지의 성들’=그들의 교회 속의 왜곡된 교리적인 것들.
신13:15,16-‘저주받아져야 하는 ’성들‘=왜곡된 교리들.
신21:2-죽은 사람에서 가장 가까운 ‘성’=선이 소멸되어진 교회의 교리 속의 진리.
시87:3-‘하느님의 성’=말씀으로부터 신앙의 진리로부터의 교리.
호11:6-‘성들’=교리적인 것들.
예30:18-그것 자신의 더미 위에 세워지기로 되었던 성=진리로부터의 교리.
겔24:6-‘피들의 성’=교리의 진리 그 자체에 비교해볼 경우의 유대 국가. 고로 추상적으로 선을 파괴하는 교리.
겔17:4-‘향품 판매자들의 성’=내면의 진리로부터의 교리가 있는 곳.
계3:12-‘내 하느님의 성의 이름, 새 예루살렘’=새 교회(the New Church)의 교리는 심정들에 씌여질 것이다.
눅19:17-‘열 성들 위에 네 권위가 있다’. 여기서 ‘성들’은 교리적인 것들, 또는 교리 속의 진리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들 위에 있음’은 총명하고 슬기롭게 있음을 의미한다. 고로 ‘그것들 위에 권위를 가지는 것’=총명과 지혜를 주는 것.
계11:8-‘큰 성의 거리’=신앙 만으로도 정의로워진다는 교리의 허위. ‘성’=교리. 이것이 ‘큰 성’이라 불리는 이유는 이 교리가 개혁 기독교 세계에서 성직자들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
계11:13-성의 십분의 일이 무너졌다‘=그들이 천국으로부터 분리되어 지옥으로 하강함.
계20:9-그다음 그들이 말했다…이 성을 에워싸자…이는 계시록에서 이 구절에 의해 뜻해진 것이다. 즉 ‘그들은 성인들의 진영과 사랑되어진 성을 둘러쌌다.’
계16:19-‘큰 성이 세 부분들로 나뉘었다, 그리고 나라들의 성들이 무너졌다’=이 교회는 그것의 교리 측면에서 깡그리 파괴되어진다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퍼져간 모든 이교들도 마찬가지이다. ‘성’=교회의 교리, 또는 같은 것으로 교리 측면에서의 교회. 그러므로 ‘나라들의 성들’=이교적인 교리들, 또는 이교들, 이는 그것들로부터 퍼져나왔다, 그리고 이것들이 많은 바, 이 큰 성은 11:8에서 말해진 큰 성을 뜻한다. 이것이 거기서 ‘소돔’과 ‘이집트’라 불리운다.
계17:18-‘네가 본 이 여인은 땅의 왕들을 지배하는 왕국을 가진 이 큰 성이다’=교리 측면에서의 로마 카토릭 종교가 기독교계를 지배할 것이다는 것,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개혁 교회와 더불어 지배할 것이다.
계18:10-‘화있다, 화있다, 이 큰 성 바빌론아, 네 힘 있는 성이여, 한 시간 안에 네 심판이 오기 때문이다’=이 광신적 신앙은 아주 튼튼하게 요새화했는데 그렇게 갑자기, 그렇게 깡그리 전복됨에 비통해하는 탄식. ‘이 큰 성 바빌론’=이 광신적 신앙. ‘이 힘 있는 성’=아주 잘 요새화한 이 광신적 신앙.
계18:16-‘이 큰 성’=로마 카토릭의 광신적 신앙.
계18:18-‘어느 성이 이 큰 성에 비길 수 있을까?’=그들은 자기들의 광신적 신앙이 세상 어느 종교 보다 탁월하다고 믿었다는 것.
계20:9-‘그들은 성인들의 진영 주위를, 그리고 사랑된 성을 에워쌌다’=그들은 새 교회(the New Church)의 모든 것들, 그리고 주님에 관한 그 교회의 참 교리, 그리고 삶에 관한 그 교회의 참 교리를 파괴하려 무진 애를 썼다.
계21:2-‘나, 요한은 천국의 안으로부터 밖으로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보았다’=이전 교회의 끝남에서 주님에 의해 건립되어질 새 교회. 이 교회는 교리와 생활 측면 모두에서 신성한 진리들 안에 있는 새 천국과 연게된다. 이것이 ‘성’이라 불리우고, ‘성’으로 묘사되는 이유는 그것이 교리로부터, 그리고 교리에 의거한 생활로부터이기 때문.
계21:10-‘그분은 나에게 천국의 안에서 밖으로 하느님으로부터 내려가는 이 큰 성, 거룩한 예루살렘을 보여주었다’=성의 형체로 있는 교리 측면의 주님의 새 교회를 요한에게 명명백백하게 해주었다.
계21:14-‘성의 벽’=글자 의미에 있는 말씀.
계21:16-‘성은 정4각으로 놓여있다’=그것 안에 있는 정의.
계21:18-‘성’ 또는 예루살렘,=내면적으로 생각되는, 벽 안쪽 그것에 속해 있는 모든 것에 관련되는 주님의 새 교회.
계21:21-‘성의 거리’=교회의 교리 속의 진리.
계21:23-‘성은 태양이 필요 없다’=이 교회의 사람들은 자아 사랑 안에 있지 않다.
계22:14-‘문을 통하여 성 안으로 들어우는 것’=그분에 관한 지식들을 통하여 주님의 새 교회 안에 있는 것…‘성’ 또는 예루살렘은 새 교회의 교리와 더불은 새 교회(the New Church)를 의미한다.
계22:19-‘거룩한 성으로부터 그의 몫을 거두는 것‘=새 교회의 안에서 밖으로, 이 성은 거룩한 예루살렘이다.
예14:18-‘성 안에 기근이…’=교리 안에 모든 진리가 결핍.
예1:18-‘견고한 성’=진리로부터의 교리.
이66:6-‘성’=진리로부터의 교리.
예1:18-‘나는 너에게 견고한 성을 주었다’=거짓들로부터 보호하는 진리로부터의 교리.
예13:19-‘남쪽의 성들은 닫혀졌다’=교리의 모든 진리들이 딴 방법으로 빛 안에 있을 것이다.
이25:2,3-교회가 교리 측면에서 황폐함이 ‘너는 성을 (돌)더미로, 견고한 성을 폐허(된 성으)로, 낯선 자의 궁전을 성으로 만드셨다.’ 그리고 새 교회가 교리 측면에서 건설됨이 ‘강한 백성이 너를 존경하고 힘있는 나라들의 성이 너를 경외할 것이다’에 의해 뜻해진다.
이26:1-‘강한 성’=순수한 진리로부터의 교리, 이것은 거짓들이 파괴할 수 없다.
이14:17-‘루시퍼…세상을 광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 속의 성들을 파괴했다’=그는 교회와 교회 속의 교리적인 것들을 파괴했다.
계16:19-‘바빌론’의 거짓들로부터의 교리가 ‘세 조각으로 깨진 성’에서 뜻해진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악들로부터의 교리가 ‘함락한 나라들의 성들’에서 뜻해진다.
시107:4-‘거주할 성을 찾지 못하는 것’=그들을 살아가게 하는 지표되는 진리들이 없다.
이6:11-‘성들’=교리 속의 진리들.
이24:10,12-‘성’=교리 속의 진리.
습3:6-‘성들을 황폐하게 하는 것’=교리들을 황폐하게 하는 것.
예4:7-‘성들’=교리 속의 진리.
예17:24,25-‘성’, 이는 여기서 예루살렘이다=교리 측면에서의 교회.
슥8:3-‘예루살렘’=진리로부터의 교리 측면에서의 천적 교회. 그런고로 ‘진리의 성’이라 불려진다.
예7:17-‘유다의 성들, 그리고 예루살렘의 거리들’=교리 속의 진리들.
이19:2-‘성에는 성으로, 그리고 왕국에는 왕국으로’=교리는 교리에 맞서, 교회는 교회에 맞서 싸울 것이다.
예19:18-‘가나안의 입술로 이야기하는 이집트 토지의 다섯 성들’=교회의 순수한 진리들인 교리 속의 진리들이 풍부함.
이33:8-‘성들을 몹시 싫어하는 것’=교리의 진리들을 몹시 싫어하는 것.
이54:3-‘거주할 성들’=선들로부터 파생된 교리들.
예32:44, 33:4-‘유다의 성들’, 그리고 ‘산의 성들’=주님의 천적 왕국 속에 있는 이들과 더불어 있는 교리 속의 진리. ‘평지의 성들’, 그리고 ‘남쪽의 성들’=주님의 영적 왕국에 있는 이들과 더불어 있는 교리 속의 진리.
마5;14-‘산에 놓인 성’=사랑의 선으로부터 있는 교리 속의 진리.
마12:25-‘그 자체에 맞서 나뉜 모든 왕국은 황무해짐에 놓여진다, 그리고 그 자체에 맞서 나뉜 모든 성과 집은 서있지 못할 것이다.’ ‘왕국’=교회, ‘성’과 ‘집’=교리로부터의 교회의 진리, 만일 그들이 만장일치로 동의하지 않으면 서있지 못하고 조각나질 것이다.
마10:5-‘그들이 들어가지 않은 사마리아인들의 성’=주님을 거절한 이들의 왜곡된 교리.
마10:23-‘그들이 이 성에서 너희를 박해하면, 다른 성으로 도망하라.’ 여기서의 ‘성’ 또한 악으로부터의 거짓 속의 교리. 이것이 있는 곳에서 진리의 교리가 승인되지 않는 것이 위 구절에 뜻해있다.
눅14:21-‘성의 거리들과 좁은 길로 가는 것’=그들은 교리의 진리들을 받는 사람이 있는지를 문의하라는 것.
나3:1-‘피들의 성’=선행의 선에 폭력을 행사하는 거짓으로부터의 교리.
이6:11-‘성들이 황폐해져 놓일 때까지’=교리 속의 진리들.
이32:14-‘성의 군중들이 떠날 것이다’=진리들이 있는 곳. 그 이유가 ‘성’=진리로부터의 교리이기 때문.
겔19:7-‘그가 황폐해지게 하는 성들’=그것의 진리들과 더불은 교리.
예11:13-‘성들’=거짓으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
이25:3-이 선으로부터의 진리가 ‘힘있는 나라들의 성’에 의해 뜻해진다. 그이유가 ‘성’=진리로부터의 교리, 또는 교리 속의 진리.
시69:35-‘그가 지을 유다의 성들’, 천적 교회와 이 교회의 교리를 뜻한다.
예4:27,29-교회의 모든 것, 그리고 교회의 교리 속의 모든 것이 멸해진다는 것이 ‘말 탄 자와 활쏘는 자의 음성 때문에 온 토지가 황폐해 있고, 온 성은 도망할 것이다’에서 의미되고 있다.
이24:10-거짓으로부터의 교리는 파괴될 것이다는 것이 ‘텅빔의 성은 깨질 것이다’에서 의미되어 있다.
시107:36-‘그들은 주거할수 있는 성을 건립한다는 것’=자신들을 위해 생활의 교리를 만드는 것. ‘성’=교리. 그리고 ‘거주함’=생활.
습2:15-‘이 성은 거주함에 아무 염려 없다, 하여 심중에 말하기를, 나 외에 아무도 없다’=이런 총명은 스스로 신뢰한다, 그리고 자아로부터 수행한다. ‘성’=이런 총명으로부터의 교리.
시122:3-‘서로 밀착한 성 같이’=모든 것이 질서대로 있는 교리.
이32:14-‘성의 군중’=교리 속의 모든 진리.
습1:16-‘견고한 성들’=그들이 확증한 거짓된 교리적인 것들.
예17:26-‘유다의 성들’=선으로부터의 진리들.
시46:4-‘하느님의 성‘=교리 측면에서의 교회.
이44:26-‘유다의 성들’=교리 속의 선들과 진리들. 교회와 교리의 회복이 그들이 거주하고 세움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암4:6-‘성들 안에 이(teeth)가 텅빔’=교리들 안에 있는 진리의 가난.
이54:3-‘나라들이 거주하게 하려는 황폐된 성들’=생활의 선들로부터 있는 진리들. ‘황폐한 성들’=진리들이 없기 이전의 교리 속의 진리.
예2:15-‘그의 성들은 거주하지 못하게 태워졌다’=교회 선이 남아있지 않을 때까지, 악들에 의해 교회의 교리적인 것들이 파괴됨.
이40:9-‘유다의 성들에 말해지기를, 너의 하느님을 보라! 주 여호와께서 강함 안에서 오신다’=말씀으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 ‘성들’=교리적인 것들. 그리고 ‘유다’=말씀.
신6:10-그들에게 주어질 ‘크고 좋은 성들’=순수한 선들과 진리들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
합2:17-‘토지에, 성에, 성 안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에 대한 폭력’=교회 속의 진리들과 선들에, 그리고 말씀으로부터 있는 교회의 교리에 거짓에 의해 무력이 행사되었다.
계:11:8-‘그들의 몸들이 큰 성의 거리에 놓일 것이다’=교리 속의 악들과 거짓들에 의해 소멸됨…‘성’=교리.
이24:10-‘텅빔의 성’=진리는 없고 거짓만 있는 교리.
예49:25-‘영광의 성’=신성한 진리로부터의 교리. ‘환희의 성’=선과 진리에 애착함으로부터의 기쁨.
겔11:6-‘성’=진리로부터의 교리.
습3:6-황폐되어져 사람도 없고, 거주하지도 못할 성들=교리적인 것들.
예11:13-‘성들의 숫자에 따라 너희 신들이 있었다, 오 유다여’=교리적인 것들 만큼 많은 거짓들.
단9:24-‘성’=진리로부터의 교리. 그리고 ‘거룩함의 성’=말씀인 신성한 진리.
이45:13-‘그가 내 성을 지을 것이다’=그는 진리로부터의 교리를 회복되게 할 것이다.
예30:18-‘성이 더미 위에 세워질 것이다’=거짓들을 통하여 붕괴되었던 진리들로부터의 교리.
시107편-‘그들이 찾지 못한 거주할 성’=생활에 관한 교리, 이 교리가 사람과 더불어 교회를 만든다. 그리고 교리에 따른 생활을 통해 교회가 인간과 더불어 형성될 때, 시험을 통과했었을 때인 바, 말해지기를,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올바른 길에서 인도하시어 거주할 성으로 그들을 이끄신다.’
계14:20-‘성 밖’=지옥으로부터. 그이유가 ‘성’=말씀으로부터 있는 진리로부터의 교리. 그러나 ‘성 밖’=왜곡된 말씀으로부터 있는 거짓의 교리.

성막 (tabernacle)

* 장막 (tabernacle)을 보라

성소(sanctuary)

겔47:12-‘성소로부터 물’=주님으로부터의 생명과 자비, 주님이 ‘성소’이시다.
겔37:26-사랑이 그들 한가운데 있는 그분의 ‘성소’에 의해 뜻해진다.
겔47장-‘성소’=천적인 사랑. 최고 의미에서 주님의 신성한 인간, 이로부터 천적인 사랑이 있다.
겔37장-‘그분의 성소’=안에 신성한 선이 있는 신성한 진리가 있는 곳(=주님의 신성한 인간)
출15:17-‘오 주여 당신의 손이 성소를 준비하셨다’=주님으로부터 신앙의 진리에 있는 이들이 있는 천국. ‘성소’=신앙으로부터의 진리가 있는 천국.
이60:13-‘내 성소의 장소’=천국과 교회, 그리고 또한 말씀.
출25:8-‘그들은 나를 위하여 성소를 만들 것이다’=주님에 대한 표징, 고로 천국에 대한 표징…이것은 장막이었기 때문에, 표징함을 통하지 않고는 성소일 수 없었다. 그이유가 성소는 거룩 자체, 그리고 신성인 것을 제외하고는 거룩한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천국이 성소인 이유는 천국은 거기 신성으로부터 천국이기 때문에서이다.
겔21:2-‘성소들’=교회 속에 있는 것들.
애2:7-‘성소’=진리 측면에서의 교회의 모든 것.
겔9:6-그들이 ‘시작’해야 할 성소=사랑의 선과 신앙의 진리 측면에서의 교회.
시96:6-‘강함과 아름다움이 그분의 성소 안에 있다’=교회(안에 있는 신성한 선과 신성한 진리).
단8:11-‘그의 성소의 주거지가 앞으로 내던져졌다’=교회의 황폐함.
시68:17-‘성소에서’=신성한 진리가 있는 천국과 교회.
시114:2-‘그분의 성소’=천국과 교회 속의 거룩 자체.
시74:3-‘성소’=교회.
이63:18-‘성소를 짓밟는 것’=말씀으로부터 있는 교리 속의 진리들을 파괴하는 것.
단9:26-‘성소’=교회.
겔37:26-천국과 교회는 사랑의 선으로부터 ‘성소’라 불려진다. 그리고 ‘주거지’는 이 선으로부터의 진리들로부터 ‘성소’라 불려진다.
시74:3-‘적이 성소에 있는 모든 것들을 파괴했다’=악이 교회의 거룩한 것들을 파괴했다.
겔24:21-그분이 ‘모독할’ ‘성소’=교회를 있게 하는 말씀. 그이유가 말씀은 성소 자체이기 때문, 말씀은 신성한 진리이기 때문.
레20:3-‘나의 성소’=천국과 교회 속의 진리.
시68:24-그분의 강림이 ‘성소에서 그분의 보행’에 의해 뜻해져 있다.

성전 (temple)

겔-‘새 성전’=일반적으로, 새로운 교회, 그리고 교회의 사람, 또는 거듭나는 자, 그이유가 거듭나는 모든 이 각각이 주님의 성전이기 때문.
요2:21-‘주님의 몸의 성전’=신성한 선으로부터 신성한 진리. 그 이유가 ‘성전’=신성한 진리 측면에서의 주님, 그리고 ‘몸’=신성한 선…
왕상6:7-예루살렘에서 성전은 완전한(whole) 돌들로 건축되어졌다. 그 이유가 ‘주님의 성전’에 의해 신성한 진리 측면에서의 주님이 표현되었기 때문. 주님이 ‘성전’에 의해 표현되었다는 것은 그분 자신이 요2장에서 가르치신다. 그리고 그것이 신성한 진리이었다는 것은 거기서 가르치셨기 때문. 돌로 지은 것=신성한 진리.
마23:17-‘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 ‘성전’은 주님 자신을 표현했다, 그리고 ‘금’은 그분으로부터 있는 선.
말3:1-‘주님은 그분의 성전에 갑자기 오신다.’ ‘주님의 성전에’=그분의 인간에.
계11:1-‘하느님의 성전, 그리고 제단’=천국과 교회. ‘성전’=영적 (왕국의) 교회. 그리고 ‘제단’=천적 (왕국의) 교회.
시29:9-‘그분의 성전에서 모든 이가 영광이라 말한다’=말씀의 모든 세부적인 것 안에 신성한 진리들이 있다는 것. 그 이유가 ‘성전’=주님, 그리고 거기서부터 말씀, 또한 천국과 교회, 그리고 ‘영광’=신성한 진리.
계3:12-‘나는 그를 내 하느님의 성전에 있는 기둥으로 만들 것이다’=선으로부터의 진리들이 천국에서 주님의 교회를 받친다. ‘성전’=교회, 그리고 ‘내 하느님의 성전’=천국에 있는 주님의 교회.
마24장-‘성전’=현재의 교회. 그리고 ‘돌 위에 어떤 돌 하나도 남아있지 않게 붕괴됨’=이 교회의 마지막에서 거기에는 어떤 진리도 남은 것이 없다는 것.
계7:15-‘그들은 그분의 성전에서 낮과 밤 그분을 섬긴다’=그들은 그분의 교회에서 진리들에 따라 산다는 것.
계11:1-‘일어나라, 그리고 하느님의 성전을 측량하라’=새 천국에 있는 교회의 상태를 보고 아는 것… ‘성전’=교리의 진리 측면에서의 교회.
계11:19-‘하느님의 성전이 천국에서 열려졌다’=새 천국에서 신성한 인간으로 계신 주님이 예배되어진다…‘하느님의 성전’, 여기서=천국에서 신성한 인간이신 주님.
계14:17-‘또다른 천사가 천국 안에 있는 성전으로부터 나갔다’=주님의 영적 왕국의 천사들.
계15:6-‘성전’=말씀과 십계명이 있는 천국의 가장 깊은 곳.
계15:8-‘성전은 하느님의 영광으로부터, 그리고 그분의 권능으로부터 연기로 채워졌다’=천국의 가장 깊은 것은 주님으로부터의 영적, 천적인 신성한 진리로 채워져 있다.
계16:1-‘나는 성전의 안에서 밖으로 있는 큰 음성을 들었다’=천국의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주님으로부터의 유입.
계16:17-‘큰 음성이 천국의 성전의 안에서 밖으로 왔다’=천국의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주님에 의해 명명백백해짐.
계21:19-‘나는 그것 안에서 성전을 보지 못했다. 그 이유는 전능이신 주 하느님이 그것의 성전이요 어린 양이시기 때문’=이 교회에서는 내적인 것에서 분리된 외적인 것은 없다. 그 이유는 주님 자신이 그분의 신성한 인간 안에 계시고, 이 분으로부터 교회의 모든 것이 있기 때문, 이 분 만에게 가까이 나아가고, 예배하고, 경배드린다. ‘나는 그것에서 성전을 보지 못했다’는 새 교회에서는 예배하는 장소가 없을 것이다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욜3:5-‘그들의 성전들 안으로 운반하는 것’=모독된 예배로 돌아서는 것.
시79:1-‘거룩함의 성전을 더럽히는 것’=예배를 모독하는 것.
합2:20-‘여호와께서 그분의 거룩함의 성전 안에 계신다’=천국, 여기에 신성한 진리가 있고, 여기로부터 신성한 진리가 나온다.
시65:4-‘우리는 당신의 성전의 거룩함으로 만족해 할 것입니다’=신성한 진리로부터 총명 안에 있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천국의 환희를 즐기는 것.
이13:22-‘용이 있는 성전들’=말씀의 선들과 진리들, 그리고 교회의 선들과 진리들, 이것들이 섞음질되었고, 모독되었다.

수로 (channel)

겔6:3-‘수로와 골짜기’=외면, 또는 자연적인 것들.
시18:15-교회의 모든 것들, 즉 교회의 진리 측면, 선 측면 모두가 기초로부터 뒤엎어졌다는 것이 ‘물들의 수로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세상의 기초들이 밝히 드러내졌다’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물들의 수로’=진리들.
아이 (Ai)
여7,8장-‘아이성’=자연적 지식들

역청 (bitumen)

창6:14-‘그것을 역청을 가지고 안팍으로 역청으로 처리하라’=탐욕들이 침수시키려듬으로부터 보존함…원문에서는 그것이 역청을 가지고 역청으로 처리되어져야 한다라고 읽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보호를 나타내는 단어가 사용되어져 있다. 그리고 이 단어는 보상, 속죄(expiate), 또는 달램, 속죄(propitiate)로부터 파생되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같은 것을 포함한다. 그이유가 주님의 보상, 또는 달램은 악이 침수하려듬으로부터 보호함이기 때문.
창11:3-‘그들은 진흙을 위하여 역청을 가졌다’=선을 위하여 탐욕으로부터의 악
창14:10-‘싯딤의 골짜기는 역청의 샘들, 역청이 가득한 샘들이었다.’ 이를 수단으로 탐욕들로부터의 불결하고 깨끗치 않은 것들이 의미된다.
출2:3-‘그녀는 그것을 역청과 송진으로 발랐다’=선인 것이 악들과 거짓들과 혼합되었음. ‘역청’=악들과 혼합된 선, 그리고 ‘송진(pitch)’=거짓들과 혼합된 선. 역청과 송진은 불이 잘붙는 성분인 유황을 함유하고, 또한 색깔도 검정쪽인바, 이는 반대적 의미에서는 악과 거짓이 의미된다.
나3:14-‘역청’=결합하는 악으로부터의 거짓.

역청 (송진, pitch)

창6:14-‘역청’=끔찍한 몽상들.
* ‘역청과 유황’=탐욕들으로부터의 거짓들과 악들.
이34:9-‘불타는 역청’=끔찍한 탐욕들.

오두막 (hut)

이24:20-‘땅이 오두막 같이 이리저리로 움직일 것이다’
창33:17-‘그는 그의 습득물들을 위해 우릿간(booth)을 만들었다’…‘오두막(booth), 또는 텐트들을 만드는 것’=집을 짓는 것과 같다. 즉 진리로부터 선의 증가를 받는 것. 그러나 차이는 있다. 집을 짓는 것은 덜 일반적, 고로 더 내면적이고, 오두막, 텐트는 더 일반적, 고로 더 외면적이다. 전자는 사람 자신들을 위해, 후자는 양떼나 가축떼를 위해서이다.
* ‘오두막’, 또는 텐트, 말씀에서=진리로부터의 거룩함. 그리고 성막과 구별된다. 성막=선으로부터의 거룩함. 원어에서 전자는 ‘숙곳(Succoth)’이라 불리운다…진리로부터의 거룩함은 진리로부터 있는 선이다.
이4:6-‘오두막(hut)’=내면의 것들이 숨겨 있는 신성으로부터의 진리의 최말단.

오븐 (oven)

출8:3-‘너희 오븐들 안으로’=탐욕들의 즐거움. ‘오븐들’, 빵이 그 안에서 준비되어지기 때문에,=외면의 선들. (고로) 즐거움들…이것들이 좋은 의미에서 ‘오븐들’에 의해 의미되어지나, 나쁜 의미에서 탐욕들로부터의 즐거움이 의미된다. 즉 지옥의 사랑들로부터의 즐거움들, 이런 사랑들은 자아를 사랑함과 세상을 사랑함들이다.
애5:10-‘오븐 같이 검어지는 것’=거짓들로부터 자기들의 악 안에 있는 것.
호7:7-‘오븐 같이 뜨거워지는 것’=그것을 사랑함으로부터 왜곡된 것을 바라는 것.
이31:9-‘예루살렘에 있는 그의 오븐’이라 말해지는데, 그 이유는 ‘예루살렘’에 의해 교리로부터의 진리가 있는 교회가 의미되기 때문…그리고 교리의 진리는 빵이 준비되어지는 오븐(불가마, fire-hearth) 같기 때문.
말4:1-‘오븐’에 의해 거짓들 안에서 자신들을 확증하고, 지상적이고 육체적인 사랑들로부터 악들 안에서 생활한 이들이 있는 지옥이 뜻해진다.
호7:4,6,7-그들의 사랑들로부터 그들은 선들과 진리들을 타락되게 했다는 것이 ‘그들은 제빵자에 의해 달구워진 오븐 같이 모두 간음자들이다’에 의해 뜻해지고 있다…이렇게 뜻해진 이유는 그들은 자기들 사랑들을 옹호해주는 거짓들로 마치 빵반죽 덩어리 같이 굳어져 있기 때문…고로 거짓들이 호의를 보이는 이런 사랑들의 악들 밖에 없다는 것이 ‘그들의 제빵자가 온 밤을 자고, 아침에 불의 불꽃 같이 지핀다. 그들 모두 오븐 같이 뜨겁다. 그들이 오븐이나 제빵자에 비교되는데, 그이유는 그들이 거짓들로부터의 교리로 굳어져 있기 때문, 마치 제빵자가 오븐에서 빵과 과자를 만드는 것과 같기 때문.
예5:10-‘우리의 피부들이 오븐 같이 검어진다’=자연적 인간은 진리의 빛 바깥쪽에 있다는 것, 고로 거짓의 어둠에 있다는 것. ‘오븐’=진리들이 아닌 거짓들로부터 교리를 만드는 것.
이31:9-‘오븐’에 의해 이 선으로부터의 진리가 의미된다. 고로 교리 속의 진리.

왕좌 (throne)

* seat도 참조
겔1장-‘왕좌’=천국
이66:1-‘하늘들이 내 왕좌이다.’ ‘하늘들’=천적인 것들과 영적인 것들. 고로 내적 예배 속에 있는 모든 것들, 그리고 내적 의미 속에 있는 모든 것들. 이것들이 ‘주님의 왕좌’라 불리운다.
마25:31-‘그런다음 그분은 그분의 영광의 왕좌에 앉으실 것이다’=심판. 그이유가 ‘왕좌’는 주님의 왕권이라 단언되기 때문, 이 왕권은 신성한 진리, 이로부터, 이에 따라 심판이 있다.
예17:25-‘다윗의 왕좌’=주님으로부터의 천국.
계4:4-‘왕좌들’=지혜의 선으로부터 있는 총명의 진리들.
출11:5-‘바로의 왕좌에 앉는 그의 장자’=중요 순위에서 첫째에 있는 신앙 속의 왜곡된 진리들.
단7:9-‘왕좌들이 내던져졌다’=거짓들. ‘그분의 왕좌’=천국과 교회.
출17:16-‘그의 손이 야훼의 왕좌에 맞서고 있다’=그들은 주님의 영적 왕국에 폭력을 휘두르고 싶어한다는 것.
마5:34-하늘이 신성한 진리 측면에서의 주님이신바, 말해진다, ‘너는 하늘을 두고 맹세하지 마라, 그이유는 하늘은 하느님의 왕좌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왕좌’=주님으로부터 진행되는 신성한 진리.
겔1:26, 10:1-‘왕좌 위에 사람의 외관이 있었다’=주님의 신성한 선으로부터 있는 신성한 진리. (‘왕좌’=천국. 그리고 그것 위의 ‘사람’=주님 자신)
마25장-‘영광의 왕좌에 앉는 것’=그분으로부터 있는 신성한 진리로부터 심판함.
겔43:7-‘이것은 나의 왕좌가 있는 곳…’ 여기서 뜰과 더불은 성전이 여호와의 왕좌가 있는 곳이라 불리운다. 그이유는 뜰을 지닌 성전이 천국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왕좌’=영적 천국 (the Spiritual Heaven).
이16:5-‘그분은 진리 안에서 왕좌에 앉으실 것이다’=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 이로부터 영적 왕국 (the Spiritual Kingdom)이 있다.
이6:1-‘나는 주님께서 높고 드높이 들린 왕좌 위에 앉으신 것을 보았다’=천국, 특별하게(구체적으로) 말하면 영적 천국 (the Spiritual Heaven).
계1:4-‘그분의 왕좌 앞에 있는 일곱 영들’=주님이 그분의 신성한 진리 안에서 계시는 모든 사람에 해당되는(보편적) 천국으로부터. ‘주님의 왕좌’=천국.
계3:21-‘나는 내 왕좌에 나와 더불어 앉게 하겠다’=천국 안에. 특별히 그분의 신성한 진리가 통치하는 천국 안에.
계2:13-‘사탄의 왕좌가 있는 곳’=짙은 어둠에서의 그들의 삶.
계3:21-‘내가 내 아버지의 왕좌에 앉아 있는 것 같이’=그분과 아버지는 하나이다는 것, 그리고 천국이다는 것.
계4:2-‘오 왕좌가 놓여있다’==표징적 형체에서의 심판. ‘그리고 왕좌 위에 어떤 분이 앉아있는데’=주님.
계4:6-‘왕좌의 한가운데에, 그리고 왕좌를 빙둘러, 네 동물들이’=최말단에서 있는 제일가는 위치에 있어 최말단을 지휘 안내하는 주님의 말씀.
계5:6-‘왕좌의 한가운데에’=천국의 가장 깊은데로부터, 그리하여 천국의 모든 것들 안에.
계5:11-‘왕좌를 빙둘러 있는 천사들의 음성’=보다 낮은 천국들의 천사들에 의해 주님이 고백되고 주님의 영광을 기림.
계7:15-‘그러므로 그들은 하느님의 왕좌 앞에 있다’=그들은 주님의 현존하심 안에서 있다는 것.
계7:17-‘왕좌의 한가운데에 어린 양’=가장 깊은 천국안에서, 고로 천국의 모든 것 안에서 그분의 신성한 인간 측면에서의 주님.
계12:5-‘그는 하느님과 그분의 왕좌에로 붙들려 올려졌다’=주님에 의한 신성의 보호하심…그리고 천국의 천사들에 의해 지켜 보호됨. ‘왕좌’=천사들의 천국.
계13:2-‘용이 그에게 그의 왕좌를 주었다’=이런 이설(heresy)을 평신도가 받은 이상 그 이설은 세력을 떨치고 그들 위에 군림한다는 것.
계14:3-‘그들은 왕좌 앞에서 말하자면 새로운 노래를 불렀다’=주님 앞에서 그분을 경축함.
계14:5-‘그들은 하느님의 왕좌 앞에서 흠 없이 있다’=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선으로부터의 진리들 안에 있다는 것. ‘하느님의 왕좌’=주님과 천국.
계16:10-‘짐승의 왕좌 위에 그의 대접을 쏟았다’=그들의 신앙 안으로 유입이 있음…‘왕좌’=왕국…여기서의 ‘왕좌’는 악과 거짓의 정부가 말해진다.
계20:4-‘나는 왕좌를 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그것 위에 앉았다, 그리고 심판이 그들에게 주어졌다’=말씀 속의 진리들에 따라서 모든 자가 심판되는데, 이 말씀이 열려졌다는 것.
계20:11-‘나는 희고 큰 왕좌, 그리고 그 위에 앉으신 그분을 보았다’=주님에 의해 신성한 진리들과 신성한 선으로부터 결과된 만인을 위한(보편적) 심판.
계22:1-‘하느님의 왕좌와 어린 양의 왕좌로부터 나감’=주님으로부터 천국의 안에서 밖으로. 그이유가 ‘왕좌’=심판, 통치함, 천국의 측면에서의 주님이기 때문.
계22:3-‘하느님의 왕좌와 어린 양의 왕좌가 그것 안에 있을 것이다’=주님 자신이 새 교회(the New Church)를 통치하실 것이다. 그이유가 여기서의 ‘왕좌’=왕국. 그리고 주님의 왕국은 그분만이 예배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계1:4-‘그분의 왕좌 앞에’=현존과 섭리…‘하느님의 왕좌’=주님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한 진리. 고로 이 진리를 받는 천국.
예1:15-‘모든 자들이 와서 예루살렘의 문들의 문에서 자기 왕좌를 놓을 것이다’=교회 안으로 도입된 진리가 거짓에 의해 파괴되는 것.
계4장-천국의 한가운데 있는 ‘왕좌’=심판.
시89:36-‘그의 왕좌는 태양같이 내 앞에’=천적 선 안에 있는 주님의 천국과 교회. ‘왕좌는 달 같이 영원히 확고부동할 것이다’=신성한 진리인 영적 선 안에 있는 천국과 교회.
왕상10:18-20-솔로몬은 여섯 계단과 그 계단에 열 두 사자들을 가진 왕좌를 상아로 만들었다. 솔로몬의 ‘왕좌’=심판, 이는 선으로부터의 진리들에 의해 결과되어진다, 그리고 이것은 신성한 선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를 표현했다. ‘열 두 사자들’=힘 측면에서 천국과 교회의 모든 진리들.
예33:17-‘이스라엘의 집(가문)의 왕좌’=신성한 진리가 통치하는 교회.
계7:11-‘왕좌 주위에 서있는 것’=주님과 결합함.
계8:3-‘왕좌 앞에’=천국과 결합함.
시89:4-‘왕좌’=천국과 교회.
계11:16-‘왕좌들 위에 앉는 것’=심판하는 작업 안에 있는 것. 그 이유가 ‘왕좌들’=천국들. 그리고 ‘왕좌들 위에 앉는 것’=심판하는 것. 그리고 천사들이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심판은 주님 만이 하시는바, 이 말들=보다 높은 천국들은 악한 자를 선한 자로 분리하시기 위해 주님으로부터 힘과 빛 안에 있다는 것.
겔26:16-‘바다의 모든 제 일 인 자(prince)가 자기들의 왕좌로부터 내려 올 것이다’=진리에 관한 지식들은 이 교회를 더 이상 통치하지 않을 것이다. 그이유가 모든 왕국은 신성한 진리에 속해 있기 때문. ‘왕좌로부터 내려감’=통치함(government)으로부터. ‘왕좌’ 위에 앉는 것=천국의 진리 안에 있는 것.
시132:11-‘그가 가질 왕좌’=천국.
시93:2-‘왕좌’=신성한 진리를 받음 측면에서 천국과 교회.
계16:17-‘왕좌’=주님이 심판 측면에 관련하여 계신 곳.
계19:4-‘그들은 왕좌 위에 앉으신 하느님을 숭배했다’=주님을 숭배함, 이분이 천국들과 땅에서 모든 권능을 가지신다. ‘왕좌’, 주님을 서술하는 경우=만인에 대한(보편적) 천국, 그리고 거기서 있는 모든 권능. 그리고 땅위에서 있는 권능은 분리되어질 수 없다.
계19:5-‘음성이 왕좌로부터 나왔다’=보편적 천국으로부터 있는 만장 일치. 그이유가 ‘왕좌’=주님이 왕좌 위에 있으신 사실로부터 전체 천국. 그리고 주님이 천국 자체이시다는 것.

요벨 (jobel)

출19:13-‘요벨을 꺼냄에서’=천적인 선으로부터 일반적인 지각을 가지는 이들. 그이유가 ‘요벨을 꺼냄’, 같은 것으로 ‘나팔 소리를 들음’=천적 선으로부터의 일반적인 지각…‘요벨’, 또는 ‘나팔 소리’에 의해 천적 선이 의미된다…그러므로 이로부터 ‘희년(Jubilee, 요벨의 해, 또는 안식의 해)가 명명되어졌다.

요새 (fortification)
요새화하다 (fortify)

겔33;27-‘요새와 동굴 안에 있는 이들은 유행병으로 죽을 것이다’=거짓을 수단으로 자체를 요새화한 악은 지옥에 떨어뜨려진다.
나3:14-‘포위공격을 대비해 물을 길어오는 것, 요새를 튼튼히 하는 것’=진리들에 맞서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거짓들을 요새화하는 것.
예1:18-이런 사항들이 예언자를 수단으로 의미되었는바, 그 중 한 구절에서 이렇게 말해진다. ‘나는 너를 요새화된 도성으로 주었다’. 이 구절은 거짓들에 맞서 보호하는 진리의 교리가 의미한다.
애2:2-교회가 완전히 황폐됨이 ‘그분은 유다의 딸의 견고한 성을 파괴하셨다’에서 묘사되어 있다.
겔33:27-‘요새들’=말씀으로부터의 확증들. ‘동굴들’=과학물로부터 확증들.
습1:10-‘울타리쳐진 성읍들’=그들이 확증한 거짓 교리물들.
이23:14-‘너의 요새’에 의해 방어하는 말씀으로부터의 교리가 의미된다.
이2:15-‘높은 탑, 단단히 두른 (성)벽’은 거짓으로부터 확증한 원리들, 고로 그것들 안에 있는 이들이 의미된다.
이34:13-(거짓들과 악들을) 방어하는 궤변이 ‘궁전들’과 ‘요새들’로 의미되어 있다.
단11:38,39-‘위치(station) 위의 요새’, 그리고 ‘요새들 중의 요새’에 의해 말씀의 글자 의미를 수단으로 확증한 자아 총명으로부터 있는 것들이 의미되고 있다.
예48:18-‘그분은 요새(strong hold)들을 파괴하셨다’=방어를 거두어 가심. ‘요새’=거짓들과 악들로부터 보호함. 그리고 말씀의 글자 의미가 이 보호이다.
이23:4-‘바다’, 그리고 ‘바다의 요새’에 의해 이런 지식들이 있는 곳인 자연 평면이 뜻해지고 있다.
예5:17-‘네가 신뢰하는 요새화된 성읍들’에 의해 자아 총명으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이 의미되어 있다.

용광로 (furance)

* 가마, 아궁이
나3:14-‘벽돌 가마를 수리하는 것’=거기로부터 예배함.
창19:28-‘용광로의 연기 같이 토지의 연기가…’ ‘연기’=거짓의 상태, ‘용광로’= 악의 상태로부터, ‘토지’=교회 내에서.
출9:8-‘아궁이의 재’=감염시키고 있는 이들의 탐욕들로부터의 거짓들이 흥분하는 것…’아궁이의 재’=탐욕들로부터의 거짓들.
말4:1-‘용광로 같이 타는 것’=악으로부터의 탐욕들.
창19:28-‘용광로의 연기’=탐욕들의 악들로부터의 거짓들.
계9:2-‘용광로의 연기’=탐욕들의 악들로부터의 거짓들.
나3:14-‘벽돌 가마’=그들이 창안한 거짓들, 그리고 이것은 악에 의해 주입되었다.
예43:9-‘벽돌 가마’=악으로부터의 거짓의 탐욕.
출19:18-‘그것의 연기는 용광로의 연기 같이 올라갔다’=탐욕들로부터 있는 희미함 같은 희미함…’용광로’=탐욕.
계9:2-‘그는 무저갱을 열었다. 그리고 거기 무저갱의 연기가 큰 용광로의 연기 같이 올라왔다’=자연적 인간의 악한 사랑들로부터 튀어나오는 현세에의 욕망으로부터의 거짓들.
나3장-지옥의 사랑은 거짓화한 것들을 수단으로 견고해진다는 사실로부터 거기로부터의 교리는 ‘벽돌 가마’라 불리워진다.
예43:9-‘벽돌 가마 안에 숨겨진 큰 돌들’에 의해 자기 총명으로부터 꾸며낸 이야기들을 수단으로 말씀 속의 진리들을 거짓되게 만듬…’벽돌 가마’=허구적인 것들 가지고 치밀하게 꽉짜인 교리.
슥12:6-이 교회에 의해 흩어질 악들이 ‘장작들 사이에 있는 가마, 곡식단에 있는 횃불 같다’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창15:17-‘보라, 연기 나는 용광로’=아주 치밀한 거짓…’연기나는 용광로 라고 말해진 이유는 인간, 특히 교인, 즉 진리에 관한 지식들을 지니고 있지만 아직 인정 않고, 심정에서는 그것을 부정하고 진리에 반대되는 생활을 꾸릴 때 이런 사람은 용광로의 연기로 밖에 달리 말할 방법이 없다; 당사자=용광로, 연기=미워함으로부터의 거짓. 거짓을 오게 하는 탐욕들은 이와 같은 용광로로부터의 불꽃이다.
레26:26-‘열 명의 여인이 한 가마에서 빵을 굴 것이다’=인간과 더불은 교회의 모든 것 안에 선과 진리가 너무나 조금 있어 얼핏보기에는 아무 것도 없는 듯 나타나 보인다…’가마’에 의해 영적 음식이 준비되는 곳, 고로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이 의미되어진다.

우물 (well)

* beer, beersheba, esek, fountain, pit 등도 참조.
창14:10-‘싯딤 계곡은 역청 수렁(pit)이 가득했다’=거짓들의 불결한 것, 그리고 탐욕들.
창21:19-‘(하갈은) 물 있는 우물을 보았다’=진리들이 있게 하는 주님의 말씀. ‘물 있는 우물’, 또는 ‘수원(fountain)’=말씀, 그리고 또한 말씀으로부터의 교리, 결과적으로 진리 자체.
민21:16-18-‘그들은 브엘 쪽으로 여행했다. 이곳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백성들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물을 줄 것이다고 말하신 곳이다. 그때에 이스라엘은 이러 노래를 불렀다. 오 우물아, 솟아나라, 그것으로부터 네게 대답한다. 율법자 안에서, 그들의 장대를 가지고, 제 일 인 자가 팟고, 백성의 의지가 그것을 판 우물…’ 이 구절에서 ‘우물’=말씀, 또는 교리. (=고대 교회의 말씀.)
창21:25-‘아비멜렉의 종들이 강취한 물 있는 우물 때문에’=과학물들은 신앙 속의 교리가 자신들로부터 비롯된 것이기를 원했던 (것 때문에 주님이 분노하심).
창21:30-‘내가 이 우물을 팟다는 것’=교리는 신성으로부터 이다는 것.
창24;11-‘물들이 있는 우물 근처’=신앙으로부터의 진리들을 받기 위하여.
창24;20-‘그녀는 물을 길으려고 우물로 다시 달려갔다’=진리에 대한 보다 낮은 수준의 애착. ‘우물’=진리, 그러나 보다 하위에 속하는 진리…보다 더 순수하고 보다 높은 진리가 취급될 경우, ‘수원(fountain)’이란 단어가 언급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덜 순수할 때, 그리고 보다 낮은 수준일 경우, 우물이란 단어가 언급된다. 창24장의 경우, 때로는 수원, 때로는 우물이 언급되고 있다. 자연적 진리가 보다 낮은 수준의 진리이다.
창26:15-‘자기 아버지의 종들이 파놓은 모든 우물들…블레셋인들이 그것들을 막았다’=영적 지식들을 단지 지식 수준으로만 간주한 이들은 신성으로부터 있는 내면의 진리들을 알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 하여 그것들을 말살했다. 여기서 ‘우물’=신성으로부터 있는 내면의 진리, 그이유가 그 우물은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의 시절에’ 팟었던 것이라고 말해지기 때문. 그리고 ‘아브라함’=주님의 신성 자체.
창26:15-‘그리고 그것들을 먼지(dust)로 채웠다’=지상적인 것들, 즉 자아 사랑과 이득을 수단으로.
창26:18-‘이삭의 종들이 계곡에서 팟다. 그리고 거기서 살아있는 물들의 우물을 발견했다’=내적 의미를 안에 지닌 글자 의미 측면에서의 말씀.
창26:21-‘그들은 또다른 우물을 팟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다투었다’=말씀의 내적 의미-이와 같은 것이 있는지 아닌지.
창26:22-‘그는 또다른 우물을 팟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다투지 않았다’=말씀의 글자적 의미.
창26:25-‘이삭의 종들이 거기서 우물을 팟다’=거기로부터 교리.
창26:32-‘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이 팟었던 우물의 원인들(the causes)에 관하여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말했다, 우리가 물들을 발견했습니다’=그에 관한 내면의 진리들. 그이유가 ‘우물’=말씀. 그리고 ‘물들’=말씀으로부터의 진리들…말씀의 글자 의미로부터 끌어낸 모든 교리적인 것들 안에는 내면의 진리들이 있다. 그이유는 (이는) 물이 있는 우물의 경우와 같기 때문, 말씀의 모든 것 안에는 내적 의미가 있다.
창29:2-‘보라, 우물’=말씀…여기서 말씀이 ‘우물’이라 불리우는데, 그이유는 자연 평면이 취급되기 때문. 자연 평면은 그 자체에 국한해 보면 그것은 말씀을 글자 의미에서만 파악하는 것이다.
창29:2-‘이 우물로부터 그들은 가축떼에 물을 마시우게 했다’=지식이 말씀으로부터 있는 것.
창29:2-‘우물의 입(mouth)에는 큰 돌이 있었다’=말씀이 닫혀져 있었다는 것.
창29:3-‘그들은 우물의 입으로부터 돌을 굴렸다’=그들은 말씀을 닫히지 않았다는 것.
창29:10-‘야곱은 우물의 입으로부터 돌을 굴렸다’=주님은 자연적 선으로부터 말씀의 내면들이 노출되어 있게 하신다.
출2:15-‘(모세는) 우물 근처에서 거주했다’=말씀 안에서 주의깊게 응용함.
눅14:5-‘우물에 빠진 나귀나 수소’…여기서는 ‘우물’=구덩이(pit)와 같이 거짓이 의미된다.
계9:1-‘끝이 없는 구덩이의 열쇠’=그들의 지옥이 열렸다.
계9:2-‘구덩이의 안에서 밖으로 연기가 올라왔다’=말씀을 왜곡했었던 이들이 있는 지옥으로부터의 지독한 거짓들.

울타리 (fence, hedge)

이5:5-‘울타리를 제거하는 것’=왜곡하여 교회를 방어하는 진리들을 파괴하는 것. 포도원을 빙두른 울타리와 예루살렘을 빙두른 성벽은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겔13:5-그것의 ‘울타리’=거짓의 부숨으로부터 방어하는 것, 고로 개정함.
마21:33-‘울타리’=지옥으로부터 있는 악의 거짓들로부터 보호함.

작은 뾰족탑 (pinnacle)

* 주님께서는 악마에 의해 높은 산 위에로, 그리고 성전의 작은 뾰족탑 위에로 이끌리셨다‘=가장 극심한 시험과의 전투 안으로.

장 (curtain)

* 커튼(curtain)을 보라.

장막 (tabernacle)

* dwell, tent도 참조.
레23:39-44, 신16:13, 호12:9-태고 교회가 주님에 의해 더 사랑되었기에…그리고 또한 그들은 자신들에 의해 홀로 살았기 때문에,,,그리고 자기들의 천막 안에서 아주 거룩한 예배를 거행했었다, 그러므로 천막은 모독되어져 왔었던 성전 보다 더 거룩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래서 이를 기억하고자 장막의 절기가 제정되었다. 그들이 토지의 소출을 그러모을 때, 태고인들 같이 그들은 천막에서 거주했다.
시27:5-‘그분의 장막의 은밀한 곳에 그분은 나를 숨길 것이다’=신성한 선 안에서 간직되는 것, 그리고 악들로부터 보호되는 것.
시15:1-‘누가 당신의 장막에 거할 것입니까?’ ‘장막’에 의해 사랑의 선 측면에서의 교회가 의미된다. 고로 사랑의 선도 의미된다.
시61:4-‘나는 당신의 장막에서 영원히 거할 것입니다’=사랑의 신성한 선 안에 있는 것.
이33:20-사랑의 선 그리고 교리 속의 진리 측면에서의 천국과 교회가 ‘조용한 주거지, 그리고 무너져 내리지 않을 장막’이다. ‘결코 제거되지 않을 말뚝’=신성의 진리들을 수단으로 강화됨. 그리고 ‘끊어지지 않는 끈’=신성의 선을 통하여 결합.
예10:20-‘내 장막은 황폐되어 있다’=더 이상 어떤 선도 있지 않은 교회.
예6:3-‘그들이 그녀에 맞서 장막을 칠 것이다’=교회를 황폐하게 하는 악들과 거짓들.
호9:6-거짓으로부터의 악들이 모든 그들의 선을 파괴할 것임이 ‘가시가 그들의 장막 안에 있을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호12:9-‘그럼에도 나는 네가 장막 안에 거주하게 만들 것이다’=그럼에도 그들은 선이 있는 교회 안에 있을 것이다.
호12:7-‘유다의 장막들’=말씀으로부터의 선들, 그리고 교회로부터의 선들.
시19:4-‘하늘들에 그분은 태양을 위해 장막을 세우신다’=사랑의 선으로부터 주님의 천국 안에.
시91:9,10-‘주택’에 의해 진리들 측면에서의 천국과 교회, 그리고 ‘장막’에 의해 선들 측면에서의 천국과 교회가 의미되어진다.
시52:5-그는 교회의 모든 선으로부터 추방되어짐에 틀림 없다는 것이 ‘그는 너를 장막으로부터 잡아 뗄 것이다’에 의해 의미되어 있다.
마17:4-‘나는 여기에 세 장막들을 짓겠습니다’…‘장막들’에 의해 사랑의 선으로부터, 그리고 이 선에서 파생되는 진리들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이 의미되고 있다.

제단 (altar)

호10:8-‘제단에 가시와 엉컹퀴’=모독
창8:20-‘노아는 여호와께 제단을 쌓았다’=주님의 표현…고대 교회의 모든 의식들은 주님을 표현했는데, 그중 제일 중요한 것은 제단, 그리고 번제 였다.
신33;10-‘제단’=주님을 표징, 그리고 그때부터 번제로 주님을 예배함.
창12:7-아브람은 ‘거기서 자기에게 보여졌던 분, 여호와께 제단을 세웠다’=주님께서 사랑의 천적인 것으로부터 그분의 아버지께 처음 예배드림.
창12:8-아브람은 ‘여호와께 제단을 건립했다’=이 상태로부터 그분의 아버지에 대한 바깥쪽 예배.
창13:18-아브람은 ‘거기에 여호와께 제단을 세웠다’=이 상태로부터 예배함…’제단’=일반적인 모든 예배에 대한 표징.
창22:9-‘그리고 아브라함은 거기에 제단을 세웠다’=주님의 신성한 인간에 대한 준비. 제단들은 모든 예배를 일반적으로 의미한다. 제단은 예배를 표현하는데 있어 제일가는 표현물들이고, 예배를 일반적으로 의미하기 때문에 제단은 주님의 신성한 인간을 의미했다. 그이유가 주님의 신성한 인간은 모든 예배와 모든 교리, 마찬가지로 그것은 예배 자체와 교리 자체도 의미한다. 이는 제단, 번제, 제물을 계승한 성만찬으로부터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창22:9-‘제단’=주님의 신성한 인간.
창26:25-이삭은 ‘거기에 여호와께 제단을 세웠다’=주님을 표시하고 의미함. ‘제단’=주님을 표현하는 제일의 표현물.
이19:19-‘그 날에 이집트의 한가운데에서 여호와께 대한 제단이 있을 것이다’…’제단’=일반적 측면에서 신성한 예배. 제단은 에벨로부터 시작을 가졌던 두 번째 고대 교회의 예배를 표현하는 제일 가는 표현물이 되어왔다.
출24:4-‘모세는…시내산 근처에 제단을 건립했다.’ 여기서도 제단은 모든 예배를 표현하고 있다. 참으로 예배 안의 선인 것을 표현하고 있다.
출34:13, 신7:15, 12:3-이방인들 역시 전통을 통하여 예배의 거룩한 것이 제단과 기둥 같은 것에 의해 표현되어진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간직했지만, 그들은 악과 거짓 안에 있었는 바, 이방인들과 더불은 ‘제단’은 예배의 악, 기둥은 예배의 거짓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파괴되어야 한다고 명령되었다.
출31:45,46-‘쌓아올린 것, heap’=선, 그 이유는 그들이 제단을 세우기 앞서 그들은 돌더미를 만들고 자기들이 사랑 안에서 결합했다는 증거로 돌더미 위에서 먹었기 때문. 그러나 후에, 그들이 고대인들의 표현물을 신성시하게 되었을 때, 돌더미 대신 그들은 돌로도 제단을 세웠는데, 이 때의 경우는 보다 정교한 건축 기술을 발휘해서 돌을 쌓았다. 이로부터 ‘쌓아올린 것’은 제단과 비슷한 의미, 즉 사랑의 선, 그것의 재료인 돌은 신앙으로부터의 진리를 의미하고 있다.
여22:28,34-‘제단’=사랑으로부터의 선, 그리고 최고 높은 의미에서는 주님 자신.
창33:20-야곱은 ‘거기에 제단을 세웠다’=내면의 예배. ‘제단을 세우는 것’=예배. 그이유가 제단은 주님에 대한 제일가는 표현물, 이로 인해 예배에 대한 제일의 표현물이기도 했다.
창35:1-‘너에게 보여졌던 하느님에게 제단을 만들라’=거기는 거룩인 것. ‘제단’=주님에 대한 제1의 표현물, 이 구절의 경우, 예배의 거룩인 것이 ‘하느님에게 제단을 만드는 것’에 의해 의미되고 있다.
창35:7-‘그는 거기에 제단을 건립했다’=신성화함(sanctification)을 통하여. ‘제단’=주님에 대한 제1의 표시, 그리고 이 경우 예배의 거룩인 것, 그리고 주님에 관해 서술할 경우, 그분의 신성한 인간 그리고 그로부터 진행하는 거룩함.
출17:15-‘모세는 제단을 건립했다’=예배 속의 거룩한 것과 기억 속의 거룩한 것을 위하여. ‘제단’=주님의 제1의 표현물, 이로부터 예배의 거룩인 것. 또한 기억을 위한 것이기도 한 이유는 고대 시대 때 그들은 증거로 삼고 뭔가를 기억해두려 할 때 쌓아놓은 것(돌더미 등등)을 똑바로 세웠다…후에 제단.
출20:21-‘흙의 제단을 너는 나에게 만들 것이다’=선으로부터 일반적인 예배를 표현함.
출20:22-‘그리고 만일 너희가 나에게 돌의 제단을 만든다면’=진리들로부터 일반적인 예배를 표현함.
출21:14-‘너는 그가 죽도록 나의 제단으로부터 그를 데려갈 것이다’=비록 그가 주님에게로 도망하고, 용서를 빌고, 회개를 약속한다 해도 정죄됨. 여호와의 제단=주님에 대한 예배의 제1의 표현. 이렇게 예배의 표현이기 때문에 ‘제단으로 도망함’은 주님에게로 도망함, 용서를 간청함, 회개를 약속함이다.
마23:17,19-‘어느 것이 더 크냐? 예물이냐? 아니면 예물을 성화하는 제단이냐?’ ‘제단’에 의해 주님 자신이 표현되어졌다, 그리고 ‘예물’, ‘제물’에 의해 주님으로부터의 신앙과 선행인 것이 표현되어져 있다.
출24:4-모세는 ‘산 아래 제단을 세웠다’=그분으로부터의 신성한 선에 관련하여 주님의 신성한 인간을 표징. 제단=주님의 신성한 인간을 표현, 그리고 그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의 제1의 표현.
출24:6-‘그는 피의 절반을 제단 위에 뿌렸다’=주님의 신성한 인간으로부터의 신성한 진리.
출27:1-‘너는…제단을 만들 것이다’=주님을 표현, 그리고 주님에 대한 예배를 표현. 번제와 제물을 위해 있었던 제단=주님을 표현. 그리고 번제와 제물에 의해 주님에 대한 예배의 모든 것이 의미되기에 제단은 그분에 대한 예배를 표현했다.
애2:7-‘주님은 그분의 제단을 버리셨다’=사랑의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의 표징을 폐지함.
겔6:4,5,6-‘너의 제단들은 파괴될 것이다. 나는 너의 뼈들을 네 제단들 주위에 뿌릴 것이다. 네 제단들은 황폐되고 삭막해지고 부셔질 것이다’=표현적 예배가 파멸, 황폐, 삭막해짐.
이17:7,8-‘그 날에…사람들은 제단을, 자기 손의 작품을, 자기들의 손가락이 만들었던 것을 쳐다보지 않을 것이다’=그들 자신의 총명으로부터 예배하는 것.
호8:11-‘에브라임은 죄를 범하려 제단들을 불렸다(많이 건축했다)’=예배를 헛되고 텅빈 것으로 꾸미는 것.
이19:19-‘그 날에 이집트 한가운데에 여호와를 향한 제단이 있을 것이다’=주님을 예배함.
출28:43-‘그들이 거룩함(거룩한 장소)에서 섬기기 위해 제단으로 접근할 때’=주님 자신을 표현하는 예배에서. 제단은 신성한 선의 측면에서 주님을 표현하는 제 1의 표현물이었다…주님이 표현된 예배의 제일 가는 것은 제단에 바쳐진 번제와 제물이었다….신성한 측면의 주님이 표현된 예배의 표현물은 제단이, 신성한 진리 측면의 주님이 표현된 예배의 표현물은 회중의 천막이다.
출29:12-‘너는 제단의 기초에 모든 피를 쏟을 것이다’=신성한 진리의 전부는 인간 생명의 최말단인 감각 부분에 있다…제단은 주님의 신성한 인간의 표현물이었다. 그러므로 제단의 기초=인간에 있는 생명의 최말단인 것…이것은 외적 감각이라 불리운다.
출29:13-‘너는 제단(에서) 태울 것이다’=주님의 신성한 사랑으로부터…제단은 사랑으로부터의 신성한 선에 관련한 주님의 표현물이다.
출29:16-‘너는 제단을 빙둘러 뿌릴 것이다’=신성한 선과 결합함…제단은 신성한 선에 관련되는 주님의 표현물이다.
출29:18-‘너는 숫양 전부를 제단에서 태울 것이다’=주님의 신성한 인간의 내적 부분이 그분 자신이었던 그분의 신성한 사랑으로부터의 신성한 선에 결합되었다…제단은 주님의 신성한 선에 관련하여 그분의 신성한 인간을 표현하는 제일가는 것이었다.
출29:20-‘너는 빙둘러 제단에 피를 뿌릴 것이다’=신성한 진리가 신성한 선에 결합함…’제단’=신성한 선에 관련한 주님의 표현물.
출29:36-‘너는 제단에서 죄로부터 깨끗하게 할 것이다’=천국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악들로부터 깨끗해짐…’제단’=신성한 선에 관련한 주님의 표현물, 그분을 예배함에 대한 표현물. 여기서의 경우, 천국과 교회에서 신성한 선에 관련한 주님의 표현물. 주님의 현존, 영접, 유입이라는 주제가 아직 계속되고 있는 동안, ‘제단’은 거기서 주님으로부터 신성한 선을 받음에 관련한 천국과 교회 또한 의미했다. 그 이유가 주님께서 인간의 자아 안에서가 아닌 그분 자신의 것 안에 거주하신 이래, 주님의 신성이 천국과 교회를 만들기 때문. 이로부터 또한 ‘제단’은 천국이 존재하는 인간 자신, 교회가 존재하는 인간 자신, 고로 주님이 존재하시는 인간 자신이 의미되었다. 그리고 추상적으로 인물로부터, ‘제단’은 교회의 사람과 천국의 천사와 더불어 있는 주님으로부터의 선 자체이다.
계11:1-‘그리고 나에게 지팡이를 닮은 갈대가 주어졌다. 그리고 천사가 가까이 서서, 말하기를, 일어나라, 그리고 하느님의 성전과 제단, 그 안에서 숭배하는 그들을 측량해보라.’ 여기서 ‘하느님의 성전’과 ‘제단’은 천국과 교회이다, ‘성전’은 영적 교회를, ‘제단’은 천적 교회이다.
계16:7-‘다시 나는 제단으로부터 또다른 천사가 , 오 주 하느님 전능하신 분, 진실과 정의가 당신의 심판들입니다 하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제단으로부터’란 천적인 선으로 지배되는 곳, 가장 깊은 천국으로부터 이다.
애2:7-‘주님은 그분의 제단을 버리셨고, 그분은 그분의 성소를 몹시 싫어하셨다.’ ‘제단과 성소를 버리심’이란 교회의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다. ‘제단’은 선의 측면에서 교회의 모든 것을, ‘성소’는 진리 측면에서 교회의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다.
출29:37-‘제단은 거룩들 중의 거룩일 것이다’=천적 왕국, 거기서 주님은 사랑의 선 안에서 현존하신다…’제단’=신성한 선에 관련한 주님을 표현하는 표현물, 여기서는 천국과 교회에 있는 신성한 선에 관련한 주님을 표현하는 표현물.
출29:38-‘이것은 네가 제단 위에 바쳐야 하는 것들이다’=천국과 교회에서 주님을 영접함에 일반적으로 관심되는 것들…’제단’에 의해 천국들에 있는 주님의 신성이 의미되고, 또한 그분을 영접함도 의미한다.
출29:44-‘나는…제단을 신성하게 할 것이다’=보다 높은 천국들에서 주님으로부터 신성인 것을 받음…’제단’=신성한 선에 관련한 주님의 표현물. 여기서는 천국들에서 그분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한 선에 관련한 주님의 표현물. 신성한 선이 받아지는 곳은 보다 높은 천국들에서이다.
출30:1-‘너는 향을 태우는 제단을 만들 것이다’=예배의 모든 것을 사랑과 선행으로부터 예배의 모든 것을 주님을 수단으로 감사히 받고 청종함을 표현함…..’분향단’=주님께로 승강하는 예배 속의 것들에 대한 표현물…제단은 제단 위에 놓이는 것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 그 이유가 제단은 그릇 역할을 하고 그것 위의 것은 내용물이기 때문, 따라서 그릇과 내용물은 하나를 만든다.
암3:14-‘벧엘의 제단들’과 제단의 ‘뿔’에 의해 ‘그들이 잘라내야 할 것’이라고 말해지는 것들인 교회의 선과 진리를 파괴하는 악들과 거짓들이 의미되고 있다.
출30:9-‘분향단 위에서 승강하도록 태워 바침과 식사 바침을 만들지 않는 것’에 의해 신앙으로부터, 그리고 사랑으로부터 선들과 진리들을 통하여 있는 거듭남의 표현은 거기에 있지 않다는 것, 그러나 거기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의 표현은 있다는 것…그러므로 분향단을 수단으로 예배가 표현되는바 마지막에서 서술되고 있다.
출30:20-‘섬기기 위해 제단 가까이 오는 것’=사랑의 선에 관련하여 주님이 표현되는 것.
출30:27-‘향의 제단’=주님으로부터 사랑과 선행으로부터 있는 예배의 모든 것의 표현물.
출30:28-‘태워 바침은 주님의 신성한 인간을 표현하는 것들 중 가장 중요한 표현물이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그분을 예배함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표현물이었다.
출31:9-‘태워 바침의 제단과 그것에 딸리는 집기들’=사랑과 사랑으로부터의 진리들로부터 있는 예배의 표현물…’태워 바침의 제단’=주님을 표현하는 표현물, 그리고 사랑의 선으로부터 그분을 예배하는 것에 대한 표현물.
출32:5-‘아론은 그것(금송아지) 앞에 제단을 지었다’=예배…’제단’=신성한 예배를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표현물. 그러나 여기서는 악마적인 예배.
출34:13-‘그러므로 너는 그들의 제단들을 헐어야 할 것이다’=이 광신적 신앙의 악과 그로부터의 예배는 파괴되어야 할 것이다…’제단’=주님 그리고 선으로부터 그분을 예배함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표현물. 그러나 그 반대 의미는 악으로부터의 우상적 예배의 표현물.
출34:13-이 절에는 ‘제단들’, ‘기둥들’, ‘숲’이 언급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것들은 우상적 예배의 모든 것들을 의미하고 있다. ‘제단’은 악으로부터의 예배, ‘기둥’은 악의 거짓으로부터의 예배, ‘숲’은 그것들의 교리적인 것들이 의미된다.
계6:9-‘나는 제단 아래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위하여, 그리고 그들이 붙들고 있었던 증거를 위해 죽임을 당한 이들의 혼을 보았다’=주님의 신성한 인간을 인정하고 말씀 속의 진리들에 의거한 삶 때문에 악한 자들에 의해 거절되고 학대당하고 미움을 받았던 이들, 그리고 잘못된 쪽으로 가지 않게 주님에 의해 보호 안내를 받은 이들. ‘제단 아래’= (영계의) 보다 더 낮은 땅, 거기는 그들이 주님에 의해 보호 안내되어진 곳. ‘제단’=사랑의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함.
계8:3-‘금향로를 가진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에 서있었다.’=영적 예배, 이 예배는 신앙으로부터의 진리들을 통하여 선행의 선으로부터 거행된다. 천사가 서있던 제단, 그가 그의 손에 들고 있었던 금향로는 영적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을 의미한다. 이 예배는 신앙 속의 진리들을 통하여 선행의 선으로부터 이다.
계8:5-‘천사는 향로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것을 제단의 불로 채웠다, 그리고 그것을 땅으로 내던졌다’=천적 사랑이 있는 영적 사랑, 그리고 선행으로부터 분리된 신앙 안에 있는 이들이 있는 더 낮은 영역들 안으로 그것이 유입됨…태워 바침의 제단의 불에 의해 신성한 천적 사랑이 의미되었다…그리고 가장 높은 의미에서 ‘불’은 신성한 사랑이 의미된다.
계9:13-‘나는 하느님 앞에 있는 금빛의 제단의 네 뿔로부터 음성을 들었는데, 트럼펫을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고 있었다’=점검하고 명명백백하게 만드는 이들에게 영적 천국(둘째 천국)의 안으로부터 밖으로 나오는 주님에 의한 명령…’금빛의 제단’, 또는 그들이 향을 바치는 제단은 영적 천국을 의미한다. 제단의 ‘네 뿔’은 제단의 힘을 의미한다…
계11:1-‘천사가 가까이 서서 말하기를, 일어나라, 그리고 하느님의 성전과 제단, 그리고 그 안에서 숭배하는 그들을 측량하라’=주님의 현존, 그리고 그는 새 천국에 있는 교회의 상태를 알고 보아야 할 것이라는 그분의 명령…’성전, 제단, 그 안에서 숭배하는 이들’에 의해 새 천국에 있는 교회의 상태가 의미된다. ‘성전’은 교리 속의 진리에 관련된 교회, ‘제단’은 사랑의 선에 관련한 교회를, ‘그 안에서 숭배하는 이들’은 이 둘로부터 예배함에 관련한 교회를 의미한다.
계14:18-‘또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갔는데, 불을 다스리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주님으로부터 사랑의 선 안에 있는 왕국, 즉 주님의 천적 왕국 속의 천국들. 여기서 ‘또 다른 천사’에 의해 주님의 천적 왕국의 천국들이 의미된다. 그 이유는 그가 제단으로부터 나갔기 때문. ‘제단’에 의해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이 의미된다…그리고 ‘제단 위 불’에 의해 신성한 사랑이 의미된다.
이19:2,18,19-‘이집트 한가운데에서 여호와를 향한 제단.’ ‘여호와를 향한 제단’=사랑의 선으로부터 예배함.
계9:13-‘향의 제단’, 역시 ‘금빛의 제단’이라 불리고 있는데, 이는 주님으로부터, 사랑과 선행으로부터 있는 예배의 모든 것을 듣고 받음에 대한 표현물, 고로 주님에 의해 승강되는 예배 속의 것들을 받음에 대한 표현물.
마23:30,34,35, 눅11:50,51-‘그들은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죽였다’=갖가지 방법에서 주님을 거절함. ‘성전’=신성한 진리 측면에서의 주님, ‘제단’은 신성한 선 측면에서의 주님, 그리고 ‘그것들 사이에서’=둘 모두에서를 각기 의미한다.
계6:9-‘나는 제단 아래를 보았다’=천국 아래에 보존되어 왔던 이들…’제단’, 개략적 의미에서=주님 사랑으로부터의 선으로 예배함. 보다 더 내면적 의미에서 이 사랑에 있는 천국과 교회. 그리고 가장 깊은 의미에서 신성한 사랑으로부터의 신성한 선에 관련한 주님의 신성한 인간.
계6:9-‘제단 아래’=천국 아래 인 이유는 ‘제단’, 가장 높은 의미에서=주님이기 때문, 관계적 의미에서, 천국과 교회, 그 이유는 주님이 천국과 교회이기 때문…일반적 의미에서 ‘제단’=주님에 대한 모든 예배. 특별하게는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예배에 관련해서는 표현적 예배, ‘제단’=모든 예배인 이유는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예배는 번제와 제물을 바침이었기 때문…
시43:3,4-‘제단’, 가장 높은 의미에서=신성한 사랑의 신성한 선 측면에서의 주님의 신성한 인간, 관계적 의미에서 천국과 교회, 일반적으로 모든 예배, 그리고 특별한 측면에서 표현적 예배.
시43:3,4-‘당신의 빛과 진리를 보내주소서….제가 하느님의 제단으로 나아가리이다.’ 여기서 ‘하느님의 제단’에 의해 신성한 인간에 관련한 주님으로 이해된다…’하느님의 제단’은 주님이 사랑의 선 안에 계신 곳으로 이해된다.
마23:16-22-‘성전은 그 안에 있는 금을 신성해지게 한다, 그리고 제단은 그 위에 있는 공물을 신성해지게 한다’ 고 말해진다. 고로 성전과 제단으로부터 모든 신성해짐이 있는바 이는 가장 거룩한 것들이었다. 그러므로 ‘성전’과 ‘제단’에 의해 신성한 인간 측면의 주님이 의미된다. 그 이유가 이로부터 천국과 교회의 거룩한 모든 것이 진행되기 때문…
출29:37-이것이 제단에 의해 의미되기 때문에, 그러므로 그것에 접촉한 모든 것은 신성해지었다….주님 자신이 제단에 의해 의미된다. 그 이유는 거룩해지는 근원은 주님 외 없기 때문…’제단’에 의해 신성 자체가 의미되고, 이 신성은 주님의 신성한 인간이다.
이60:7-‘그것들은 내 제단 위에 올라와서 열납될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내 영광의 집을 영광되게 할 것이다’=그들은 주님의 신성한 인간 안에서 있어야 할 것이다. ‘제단’=신성한 선 측면에서의 그분의 신성한 인간, 그리고 ‘영광의 집’=신성한 진리 측면에서의 그분의 신성한 인간.
이60:7-‘제단’, 최고의 의미에서 주님의 신성한 인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제단’에 의해 천국과 교회가 의미된다, 그 이유가 그 자체로 간주하면, 천사들의 천국은 주님의 신성한 인간으로부터 진행하는 신성으로부터 있기 때문….이로부터 또한 ‘제단’은 사랑의 선으로부터 진행하는 모든 예배를 일반적으로 의미한다.
시84:3-‘새가 집을 발견했고 제비는 자신을 위한 둥지를 틀었습니다, 당신의 제단들(에서), 만군의 여호와여.’ 여기서 ‘제단들’은 천국들로 이해되어진다.
시26:6-‘여호와 당신의 제단을 일주하는 것’=사랑의 선으로부터 예배함을 통하여 주님과 결합함.
이19:18,19-‘그 날에 이집트의 한가운데에 여호와를 향한 제단이 있을 것이다’=그 때에 자연적 인간에 있는 과학적인 진리들을 통하여 사랑의 선으로부터 주님을 예배함이 있을 것이다.
이27:9-예배의 진리 측면에서의 교회의 파멸이 ‘제단의 돌이 분필 가루 같이 되어 흩어짐 같이 놓일 것’에 의해 의미되었다.
애2:7-모든 선들 측면에서 교회의 황폐해짐이 ‘주님께서 그분의 제단을 버리셨다’로 의미되었다.
이56:7-‘그들의 번제와 그들의 제물은 내 제단에서 매우 기뻐하는 것으로 있을 것이다’=영적인 진리들을 통하여 사랑의 선으로부터 있어 응낙할 수 있는 예배…’제단 위에’=천국과 교회에서.
시51:19-선행의 선으로부터의 예배가 ‘그 때에 그들은 당신의 제단에 올라가 수소를 바칠 것’에 의해 의미되었다.
마5:23,24-‘만일 네가 제단에 네 예물을 가져온다면’=하느님을 예배하는 것…=모든 예배에서.
이17:8-반대적 의미에서 ‘제단’=우상적, 또는 지옥의 예배,
이17:8-‘자기 손으로 만든 제단들’=자기 고유의 사랑에 걸맞는 예배, 이로부터 생활의 악이 온다.
출24:4-‘모세는 시내산 아래 제단을 건립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위해 열 두 기둥을 세웠다.’ ‘제단’=교회의 선, 그리고 ‘기둥들’=교회의 진리들, 이로부터 ‘제단’과 ‘열 두 기둥’ 다함께=선으로부터의 모든 진리들, 이를 통하여 교회는 존재한다.
왕상18:31-‘엘리야는 열 두 돌을 가져왔다, 그리고 제단을 세웠다.’ ‘제단’=교회의 선, 그리고 ‘돌’=교회의 진리들.
여22:9-끝절-외적 교회와 내적 교회의 결합, 이는 자연적 인간과 영적 인간의 결합과 비슷한데, 이것이 르우벤, 갓, 므낫세의 아들들이 요단 근처에 세운 ‘제단’에 의해 표현되어졌다. 이 제단을 두고 세 지파와 그 나머지 지파들 사이에 언쟁이 있었다. 그러나 비록 그들이 요단 건너 거주한다 해도 자기들은 여전히 그 나머지 지파와 더불어 계속 여호와를 섬길 것이라는 증거를 위한 것이라고 말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제단을 ‘우리 사이에서 여호와가 하느님이시다’의 증거라고 불렀다…제단=양쪽 교회의 공통되는 예배, 고로 결합.
계8:3-‘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에 섰다’=천적인 선을 통하여 주님과 더불어 천국이 결합됨…’제단’=주님 사랑으로부터의 선.
* 계9:13-‘나는 하느님 앞에 있는 제단의 네 뿔로부터 음성을 들었다’=영적 천국(둘째 천국)의 안으로부터 밖으로 나오는 주님으로부터의 계시…’하느님 앞에 있는 금빛의 제단’=영적 왕국으로부터 있는 신성(the Divine Spiritual).
예11:13-‘창피하게도 너희는 예루살렘 도로의 숫자에 따라 제단들을 놓았다’=교리의 거짓들 만큼 많은 예배들…여기서 이것이 거짓들로부터의 예배라고 이해되는 이유는 ‘제단들’이 분향단들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이19:18-‘여호와를 향한 제단’=선행의 선으로부터 예배함.
계14:18-‘또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갔다’=사랑과 선행의 선 측면에서 교회의 황폐해짐에 관하여 주님께서 분명히 하심…’제단’, 가장 높은 의미에서=신성한 사랑의 신성한 선, 그리고 관계적 의미에서 주님 사랑의 선과 이웃을 향한 선행의 선.
계16:7-‘나는 제단으로부터 또 다른 (소리)를 들었는데, 말하기를’=주님의 천적 왕국으로부터 주님의 정의가 설교됨…’제단으로부터의 천사’=주님의 천적 왕국, 그 이유가 ‘제단’에 의해 신성한 선 측면의 주님이 의미되기 때문, 고로 또한 신성한 선 안에 있는 천국도 의미. 이 천국, 또는 이런 천국들이 주님의 천적 왕국을 구성한다.

지붕 (roof)

창8:13-‘노아는 방주의 덮개를 제거했다’=거짓들을 제거함…‘덮개’=인간이 하늘을 보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 또는 빛을 차단하는 것들; 이것은 거짓이다.
마24:17-인간이 선으로부터, 또는 의지로부터 행동하는 상태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전의 상태에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자기 집으로부터 어떤 것을 가져오려고 자신을 내려가게 하지 마라’에 의해 의미되어져 있다. (이 말들=교회 내에서 인간의 두 번째 등급-이웃을 향해 선행 안에 있는 이들.)
출30:3-‘(제단의) 지붕’=가장 안쪽의 것. 지붕=가장 안쪽인 이유는 지붕=집의 가장 높은 것이기 때문. 또한 지븡=인간의 머리 위치와 비슷하기 때문.
마24장-‘집의 지붕’=진짜 진리들로부터 있는 총명.

집 (house)

창7:1-‘너와 네 모든 집은 방주 안으로 들어가라’=의지 속에 있는 이런저런 것들…‘집’=의지, 그리고 의지 속의 것들.
창12:1-‘네 아버지의 집으로부터’=내면의 육체적이고 세상적인 것들, 이는 애착들과 과학물들이다.
창12:15-‘여인은 바로의 집으로 데려가졌다’=그들은 더 낮은 마음을 현혹시겼다.
창12:17-‘그리고 그의 집’=그가 그러모았던 것들. ‘집’, 여기서는,=그러모아진 과학물들. 과학물들을 그러모으는 것, 이것들을 수단으로 외적 인간을 짓는 것은 집을 짓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65:21-‘집들’=지혜와 총명이 있는 곳, 고로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이 있는 곳.
암6:11-‘집들’=거짓들과 이로부터 파생된 악들.
창14:14-‘그의 집에서 태어난 이들’=같은 선들과 진리들이 그분 자신의 힘에 의해 획득되어왔다.
창15:3-‘내 집의 아들이 내 상속자이다’=주님의 왕국 안에 외적인 것만 있으리라는 것.
창17:12-‘집 안에서 태어난 자’=천적 평면…집 안에서 태어난 이들=집 안쪽에 있는 이들. ‘집’, 말씀에서,=천적인 것, 그이유는 이것이 가장 안쪽이기 때문. 그러므로 ‘하느님의 집’은 보편적 의미에서는 주님의 왕국, 덜 보편적일 경우, 교회, 특별한 의미에서는 주님의 왕국, 또는 교회가 있는 인간 자신이 의미된다. 인간이 ‘집’이라 불릴 때, 그와 더불은 신앙의 천적인 것이 의미된다. ‘성전’일 경우, 그와 더불은 신앙의 진리가 의미된다.
창18:19-‘집’=선들 안에 있는 모든 이.
창19:2-‘네 종의 집으로’=선행의 선 안에. ‘집’=천적인 선, 이는 오로지 사랑과 선행으로부터서만 있다.
창19:3-‘그들이 그의 집에 왔다’=선 안에서 확증함. ‘집’=천적인 선.
창19:4-‘그들이 집을 에워쌌다’=그들이 선행의 선에 맞서 있는 것.
창19:10-‘그들은 롯을 집 안으로 자신들에게로 데려왔다’=주님께서는 선행의 선 안에 있는 이들을 보호하신다…‘집 안으로 데려와지는 것’=선 안으로…그리고 선 안으로 데려와진 이들이 천국 안으로 데려와진다…하여 혼(soul) 측면의 모든 악의 감염으로부터 안전하다.
창19:11-‘집의 문에서 있는 사람들’=합리적인 것들과 이로부터 파생하는 교리적인 것들, 이를 수단으로 폭력이 선행의 선에 가해진다. ‘집’=선행의 선.
눅17:31-‘집 위에 있는 것’=선 안에 있는 것…‘집에 있는 집기들’=선으로부터 있는 진리들.
창20:13-‘집’=선. 여기서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것의 외관으로부터 있는 즐거움의 선. 그이유가 모든 즐거움은 선 같이 나타나기 때문.
창20:18-‘아비멜렉의 집’=신앙의 교리로부터의 선.
이24:10-‘모든 집이 닫힐 것이다’=선이 결핍된 인간의 마음.
창24:7-‘내 아버지의 집’=주님께서 (세상에서) 싸우시고 정복하신 어머니쪽으로부터 유전받은 악.
창24:23-‘우리가 이 밤을 지날 수 있는 장소가 당신 아버지의 집 안에 있는지?’=선행의 선에 관하여 조사함. ‘집’=선.
창24:27-‘여호와께서 저를 내 주인의 형제의 집으로 인도했습니다’=진리의 선 쪽으로. ‘형제의 집’, 이로부터 리브가가 있었던바,=진리가 있게 한 선.
창24:28-‘그녀는 이 말들에 따라 자기 어머니의 집에 말했다’=계발이 가능한 자연적 선이면 무엇이든지에. ‘어머니의 집’=외적 인간의 선, 즉 자연적 선.
창24:31-‘나는 집을 청소했다’=모든 것들은 준비되어 선들로 가득찼다…‘집’=선; 그리고 인간 자체는 안에 있는 선으로부터 ‘집’이라 불려진다.
창24:32-‘사람이 집에 왔다’=거기서 선 안으로 유입됨이 있다. ‘집’=선.
창24:40-‘내 가족으로부터, 그리고 내 아버지의 집으로부터’=거기 신성으로부터 있는 선과 진리로부터.
시23:6, 27:4-‘여호와의 집에서 거주하는 것’=사랑의 선 안에 있는 것, 그리고 사랑의 선 안에서 사는 것. 그이유가 이것이 ‘여호와의 집’이기 때문.
욜2:9-‘집안으로 올라가는 것’=의지 속에 있는 선들을 파괴하는 것.
예22:13-‘정의 없이 집을 짓는 것, 공정 없이 침실들을 짓는 것’=비-선과 비-진리로부터 신앙심을 건축하는 것.
창27:15-‘집에서 그녀와 함께 있던 것’=신성의 합리성의 신성한 진리를 통하여 신성한 선으로부터 있는 것.
합3:13-‘불경한 자의 집으로부터 머리를 쳐부수는 것’=거짓의 원리들을 파괴하는 것.
창28:17-‘이것이 과연 하느님의 집이다’=질서의 최말단에 있는 주님의 왕국.
창28:21-‘나는 내 아버지의 집으로 평화로이 되돌아 갈 것이다’=완전한 합일(union)에 이르기까지. ‘내 아버지의 집’, 주님에 관해 서술할 경우,=신성 자체, 이 안에 주님께서는 임신 때부터 계셨다; 그리고 집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버지’라 불리는 신성의 선으로 되돌아가는 것.
창29:13-‘그는 그를 집으로 데려왔다’=결합함 쪽으로.
겔12:2-‘반역의 집’ 인 악들.
이14:1-‘야곱의 집으로 자신들을 연합하는 것’=선행의 선 안에 있는 것.
창30:30-‘언제 나는 내 집을 위하여 할 수 있을까?’=지금 그의 자신의 선은 거기로부터 열매맺을 것임. ‘집’=선; 여기서, ‘내 집’=야곱에 의해 의미된 선.
창31:14-‘우리는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더 이상 몫도 상속분도 없지 않는가?’=라반에 의해 의미된 선으로부터 분리되는 첫 상태. ‘우리 아버지의 집’=라반에 의해 표현된 선.
창31:30-‘너는 네 아버지의 집을 무척 그리워했다’=직접적으로 흐르는 신성의 선과 결합하기를 갈망함. 여기서의 ‘아버지의 집’=아브라함, 이삭의 집=직접적으로 흘러드는 선.
창33:17-‘(야곱은) 자신에게 집을 지었다’=이 상태에서 진리로부터 선이 증가함. ‘집을 짓는 것’=총명과 지혜 안에서 외적 인간을 가르치는 것; 그리고 총명은 진리로부터, 지혜는 선으로부터 있는바, 여기서는 진리로부터 선이 증가함.
창34:26-‘그들은 세겜의 집으로부터 디나를 데리고 나갔다’=그들이 진리에 애착함을 거두어갔다는 것. ‘세겜의 집’은 또다른 교회의 진리의 선이 의미된다.
겔9:7-‘집을 오염시키는 것, 그리고 살해된 자로 뜰을 채우는 것’=선들과 진리들을 모독하는 것.
창34:29-‘집 안에 있는 모든 것’=교회의 모든 것. ‘집’=선 측면에서의 교회, 고로 교회의 모든 것.
창34:30-‘나와 내 집’=진리와 선 측면에서…‘집’=선 측면에서의 교회.
예6:1-‘예루살렘’=영적 교회; 그리고 ‘포도원의 집’, 또는 ‘벳학게렘’
마12:44-‘텅빈 집’=인간의 내면들이 다시 불결함으로, 즉 악으로부터의 거짓들로 가득참.
신25:9,10-‘자기 형제의 집을 세우기를 하지 않는 자에게 그와같이 그에게 해줘라; 그러므로 그의 이름은 이스라엘에서 신을 벗기운 자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자식 없이 있는 것은 선과 진리의 결핖이 의미되는바, 그 집에서는 교회의 표현이 더 이상 없다는 것.
창39:2-‘(요셉은) 자기 주인 이집트인의 집 안에 있었다’=그는 자연적 선 안에서 개시될런지 모른다는 것…‘집 안에 있는 것’=개시되는 것인 이유는 ‘집’=선이 있는 마음, 여기서는 자연적 마음, 더구나 ‘집’은 선을 서술하기 때문.
창39:5-‘여호와께서는 요셉 때문에 이집트인의 집을 축복하셨다’=신성으로부터 자연적 평면에 천적인 것을 가졌다는 것…‘이집트인의 집’=자연적 마음의 선.
창39:16-‘그녀의 주인이 집에 올 때까지’=그것은 자연적 선과 교통될런지 모른다는 것. ‘집’, 내적 의미에서,=자연적 마음; 자연적 마음, 또는 합리적 마음은 집과 비슷하다; 집안의 남편은 선, 아내는 진리, 딸과 아들은 선과 진리에 애착함, 남종과 여종은 섬기고 확인하는 과학물과 쾌락이다.
눅11:24-‘집’=자연적 마음, 이 집이 텅비고 청소되었다고 말해진다. 이는 남편과 아내인 선들과 진리들이 없을 때, 딸들과 아들들인 선과 진리에 애착함들이 없을 때, 남종, 여종들인 확증하는 것들이 없을 때이다. 인간 자신이 ‘집’인 이유는 합리적, 자연적 마음이 인간을 만들기 때문.
눅11:17, 막3:25,27-인간의 마음이 ‘집’에 의해 뜻해진다…‘집’=고명해지려 있는 선.
창40:14-‘이 집으로부터 나를 데려가주오’=악들로부터의 해방…‘집’=선, 반대 의미는 악.
욜2:9-‘그들이 승강할 집’=그들이 파괴하는 선.
창41:40-‘너는 내 집을 다스려라’=자연적 마음은 그 속으로 복종되고 종속될 것이다. ‘집’=마음, 여기서는 자연적 마음, 그이유는 ‘내 집’이 바로에 의해 말해지기 때문.
창41:51-‘(하느님께서는 나로 ) 모든 내 아버지의 집을 (잊게 해주셨다)’=유전적 악들의 제거…‘집’=인간; 그리고 사실상, 합리적 마음, 또는 자연적 마음; 그러나 특별한 측면에서, 거기 있는 자발성; 결과적으로 선, 또는 악…그러므로 ‘아버지의 집’=유전적 악들.
창42:19-‘너희 집의 기근을 위해 농산물을 가지고 올라가라’=한동안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의견을 구하도록 자유했다는 것…‘너의 집’=특별한 측면에서의 각각의 진리들이 거주하는 곳, 고로 자연적 마음.
이46:3-‘야곱의 집’=외적 교회; ‘이스라엘의 집’=내적 교회.
창43:16-‘그는 자기 집을 다스리는 자에게 말했다’=외적 교회 속에 있는 것에.
창43:16-‘사람들을 집으로 데려와라’=자연 평면에 있는 진리들이 저쪽에 소개되어짐.
창43:17-‘그리고 사람은 요셉의 집으로 사람들을 데려왔다’=천적 평면으로부터의 영적인 것으로부터 있는 선 안으로 처음 소개됨…‘집’=선; 그러므로 또한 ‘집’=교회, 그 이유는 교회는 선으로부터 교회이기 때문.
창43:18-‘(사람들은) 자기들이 요셉의 집으로 데려와졌기 때문에 (두려웠다)’=자연 평면의 진리들이 내적인 것에 인접되고 종속 되었기 때문에 (주춤함…‘집’에 의해 인간의 내적, 외적 모두가 의미되는데, 여기서는 요셉의 집인고로 내적 측면이 의미된다.
창44:14-‘(그들은) 요셉의 집으로 (들어갔다)’=내적 평면과 교통함…‘집으로 들어가는 것’=교통하는 것인 이유는 ‘집’에 의해 인간 자신, 고로 인간을 만드는 것, 즉 진리와 선과 더불은 인간 마음이 의미되기 때문. 그러므로 ‘집으로 들어간다’고 말해질 때, =그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것, 고로 교통을 가지는 것.
창45:18-‘네 아버지와 네 집들을 데려오라, 그리고 나에게 오라’=자연 평면의 과학물에 영적 선의 접근, 그리고 교회의 진리들의 접근…이스라엘의 아들들=자연 평면에 있는 교회의 진리들, 그 속의 모든 것들이 ‘그들의 집들’이다.
창46:31-‘(요셉은) 그의 아버지의 집에게 말했다’=거기서 선들을 지각함이 있음. ‘집’=선.
창47:12-‘요셉은 빵을 가지고 모든 그의 아버지의 집을 떠받쳤다’=천적 평면의 내적인 것으로부터 자연 평면에 있는 교회의 진리들과 영적 선 안으로 선의 유입이 계속 있었다는 것…‘모든 그의 아버지의 집’=한 개의 복합체 안에서 영적 선 속에 있는 모든 것, 그리고 영적 선으로부터 있는 모든 것.
창47:24-‘네 식품을 위하여, 그리고 네 집에 있는 이들을 위하여’=그러므로해서 진리의 선이 각각에, 모든 것 안에 있음…‘집에 있는 이들’=진리로부터 선의 각각 그리고 모든 것들.
창50:4-‘요셉은 바로의 집에 이야기했다’=내적인 것이 자연적 마음 안으로 유입됨. ‘집’=마음.
창50:7-‘그의 집의 원로들’=선과 일치한 것들…‘집’=선.
창50:8-‘요셉의 모든 집’=영적 평면 속의 천적인 것들.
창50:8-‘그리고 그의 아버지의 집’=영적 선. ‘이스라엘’=영적 선; 그러므로 그의 ‘집’=이 선으로부터 있는 복합체 안의 모든 것들.
창50:22-‘그와 그의 [아버지의] 집’=내적 측면으로부터와 그것의 선…‘집’=선.
출1:1-‘남자와 그의 집이 왔다’=진리 측면에 관련하여, 그리고 선 측면에 관련하여…‘집’=선.
출1:21-‘그분께서는 그들을 집으로 만드셨다’=그들은 천국적 형체로 배치되어졌다.
출2:1-‘레위의 집의 사람이 갔다’=선으로부터 진리의 근원…‘집으로부터 있는 것’=근원.
출7:23-‘바로는 뒤를 돌아 보았다. 그리고 자기 집에 왔다’=거짓들로부터 생각함과 되새겨 봄….‘바로의 집’=거짓.
출7:28-‘그것들은 올라와서 네 집으로, 네 침실로 갈 것이다’=그것들은 마음을 채울 것인데 그것의 내면들 까지 채울 것이다. ‘집’=인간의 마음.
출7:28-‘네 종들과 네 백성의 집 안으로’=자연 평면 안에 있는 모든 것들.
출8:9-‘집들’=자연적 마음 속에 있는 것들. ‘집’=자연적 마음; 그리고 ‘집들’, 복수일 경우,=그 안에 있는 것들.
출8:17-‘집들 안에’=자연적 마음의 내면들 안에도.
출8:17-‘이집트인들의 집들에’=자연적 마음의 내면들.
출8:20-‘바로의 집, 그의 종들의 집, 그리고 모든 토지’=자연 평면에 있는 각각 그리고 모든 것들; 여기서, 각각 그리고 모든 것들로부터, 또는 모든 측면들로부터.
출9:19-‘집으로 모아들이지 않은 것’=보존되지 않은 것…‘집’=내면의 자연적 마음, 여기서 선은 진리와 함께 있다; 합리적 마음 역시 그러한바, 인간 자신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집으로 모아들이는 것’=안쪽에 모아들이는 것, 그리고 비축되는 것.
출9:20-‘그는 그의 종들과 그의 가축들을 집으로 피신하게 했다’=그것들은 내면들 안에 비축되고 보존되었다…‘집들’=인간 내에 있는 것들, 거기에 선과 진리가 주님에 의해 비축되고 보존되었다.
출10:6-‘네 집들, 모든 너희 종들의 집들, 그리고 이집트인들의 집들을 채울 것이다’=거짓이 자연 평면에서 각각 그리고 모든 것을 내면으로부터 그것의 맨끝 까지 지배할 것이다.
출12:3-‘그의 아버지들의 집을 위하여, 집을 위하여 작은 가축’=각각의 특수한 선에 따라서. ‘그의 아버지들의 집’=다른 가족의 선과 구분되는 이쪽 가족의 선. ‘그의 아버지의 집’에 의해 내적 선 측면에서의 사람이 의미되어져 있다.
출12:4-‘만일 집이 작은 가축인데도 너무 작다면’=만일 특별한 선이 순진을 위해 충분치 않다면. ‘집’=특별한 선.
출12:7-‘집들 위에’=선으로부터의 의지 속에 있는 것들.
출12:13-‘네가 있는 집들이라는 표시’=그것은 선으로부터의 의지에 관한 증거이다는 것. ‘집들’=선으로부터의 의지 속에 있는 것들.
출12:15-‘첫째 날에 너희는 네 집들로부터 누룩이 중지되게 만들어라’=선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거짓은 하나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 ‘집’=선.
출12:22-‘너희는 집의 문으로부터 누구도 나가지 말 것이다’=그들은 선 안에 꾸준히 머물러야 한다는 것, 진리로부터 응시되어져서는 안될 것. ‘집’=선…‘집 안에 남는 것’은 성 안에 남는 것이다. 그러나 ‘집의 문으로부터 나가는 것’은 선으로부터 진리쪽으로 가는 것이다. 그이유가 선은 안쪽에 있으나 진리는 바깥쪽에 있기 때문.
출12:23-‘그분은 파괴자에게 네 집들에 오는 것을 주지 않을 것이다’=지옥들로부터 있는 거짓과 악은 의지에는 조금도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출12:27-‘그분은 이스라엘의 집은 지나치셨다’=저주함이 주님을 수단으로 그들이 붙잡고 있는 선들로부터서는 도망쳤다…‘집들’=선들.
출12:29-‘구덩이의 집 안에 있는 포로된 자’=마지막 장소 안에 있는 이들…
출12:30-‘죽은 자가 한명도 없는 집은 하나도 없었다’=지옥에 떨어지지 않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
출12:46-‘한 집안에서 그것이 먹어져야 할 것이다’=하나의 선을 만들기 위해서 서로 일치하는 선이 제휴함. (그이유가)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각 집은 천국의 사회를 세부적 측면에서 표현했기 (때문).
출12:46-‘너희는 집으로부터 바깥으로 고기를 가져가지 마라’=이 선은 또 다른 한 개의 선과 섞지 마라.
출20:2-‘나는 너희를 이집트의 토지로부터, 종들의 집으로부터 데려왔다’=지옥으로부터 그분에 의해 해방됨…‘종들의 집’=영적 포로됨.
시69:9-‘여호와의 집의 열정’=선과 진리를 받는 이들을 향한 사랑. 그이유가 이들이 ‘여호와의 집’이기 때문.
욥24:16-‘집을 관통하여 파는 것’=또다른 사람의 선을 은밀하게 가져가버리는 것.
출22:7-‘도둑에 의해 그것이 사람의 집으로부터 가져가버림을 당했을 때’=기억으로부터 이런 것들의 손실이 있음.
출22:8-‘집의 주인을 하느님에게 데려와야 한다’=선으로부터 면밀하게 조사함…선이 ‘집’이라 불리운다. 그이유는 진리들과 과학물들이 그것들의 집 안에 있듯 선 안에 있기 때문.
이22:9-‘다윗의 집’=주님의 교회
이23:1-‘집이 없다, 하여 들어가지 못한다’=진리가 심어질 수 있는 선이 더 이상 없다는 것.
출23:19-‘하느님의 집 안으로 가져오는 것’=주님에게 가져오는 것, 하여 그것들은 거룩해질런지 모른다. ‘하느님의 집’=주님.
마11:8-‘왕들의 집’=천사들이 있는 대저택들; 보편적 의미에서 천국; 그이유가 ‘집’들이 선으로부터 라고 말해지기 때문.
출25:27-‘장대들을 위한 집을 위해’…‘집을 위해’라고 말해지는 이유는 이것이 천적 선을 취급하기 때문, 그리고 그것의 용기(그릇)으로부터의 힘을 취급하기 때문…또한 ‘집’에 의해 최말단들에 있는 선이 의미되어진다. ‘집’=선.
겔40장-여기서 새 집이 취급되는데, 이를 수단으로 주님의 새 교회가 의미되어져 있다.
겔46장-거기서 ‘성전’ 또는 집에 의해 천국과 교회가 의미되어져 있다.
* ‘왕의 집’=신성의 진리 측면에서의 교회 (이22:21,22, 계3:7 참조).
요19:27-‘자기의 집(home)으로 그녀를 데려가는 것’=교회는 선행의 선이 있는 곳에 거주할 것이다.
예5:7-교리 측면에서 이런 교회가 ‘간음녀의 집’이다.
겔7:24-‘그들의 집들을 차지하는 것’=그들의 마음들을 차지하는 것.
마12:25-‘서로 맞서 갈라진 모든 성이나 집은 서있지 못한다.’ ‘성’과 ‘집’=교리로부터의 진리와 선, 이것들은 만장일치로 동의하지 않으면 서있지 못한다.
예31:27-‘이스라엘의 집’, 그리고 ‘유다의 집’=진리 측면에서의 교회와 선 측면에서의 교회.
학2:9-‘하느님의 집’=교회; ‘이전의 집’=주님의 강림 이전에 있던 교회; 그리고 ‘이후의 집’=그분의 강림 후에 있었던 교회.
이60:7-‘우아한 집’=신성의 진리 측면에서의 신성의 인간.
예6:1-‘포도원의 집’=그 교회 자체.
이22:10-‘예루살렘의 집들을 세는 것’=진리의 선들을 왜곡하는 것.
암6:11-‘큰 집’=학식 있는 사람. ‘작은 집’=학식 없는 사람.
호11:11-‘나는 그들이 자기들의 집에서 거주하게 만들 것이다’=진리를 이해하고, 선한 의지로부터 사는 것. 인간의 마음은 이 두 가지 것들에서 존재하는바 ‘집’에 의해 뜻해진다.
예2:14-‘집으로부터 태어난 자’=선들 안에 있는 이들.
신6:11-‘갖가지 좋은 것이 가득한 집들’=사랑과 지혜로 가득한 마음의 내면들.
애5:2-‘우리의 집이 외국인들에게’=교회의 선들이 악들에게 돌아갔다.
이5:9-‘황폐를 위해 있을 많은 집들’=특별히 선으로부터의 진리들 측면에서의 교인들.
겔26:12-원하고 바라는 집들을 그들은 무너뜨릴 것이다‘=마음 속의 것들, 즉 이해성과 의지 속의 것들; 그이유는 거기에 인간이 거주하기 때문.
왕상22:39-마음 속의 것들 측면에서의 인간이 ‘집’에 의해 의미되는바, 그러므로 아합에 관련해 읽는바, 그들은 이전에는 집들을 상아로 지었다. 상아 집을 수단으로 합리성 측면에서의 인간이 의미되어져 있다.

창고 (store house)

출1:11-‘그들은 바로를 위해 창고의 성읍을 건설했다’=자연 평면에서 왜곡된 진리들로부터의 교리들. ‘창고’=왜곡된 진리들.

창문 (window)

창6:16-(방주의) ‘창문’=지적 평면
이54:12-‘태양들’, 또는 창문들=선행으로부터의 지적인 것들.
왕상6:4-성전의 모든 창문들은 같은 것을 표현했다; 가장 높은 창문은 지적인 것들, 중간 창문은 합리적인 것들, 아래쪽 창문은 과학물들과 감각적인 것들을 표현하였다.
예9:21-중간 층의 창문이 뜻하여진다=합리적인 것들.
창8:6-‘노아는 방주의 창문을 열었다’=두번째 상태, 즉 신앙으로부터의 진리가 그에게 나타났을 때이다…‘창문’=지적인 것, 그러므로 신앙으로부터의 진리들.
창26:8-‘아비멜렉은…창문을 통하여 쳐다보았다’=(영적) 지식들 안에서 합리적인 것을 찾는 신앙 속의 교리…’창문을 통하여 쳐다보는 것’=내적 시야를 수단으로 나타나는 것들을 지각하는 것. 이는 일반적으로 외적 인간 속에 있는 영적 지식들이다.
욜2:9-‘도둑 같이 창문을 수단으로 들어오는 것’=진리들과 진리들에 관한 지식들을 파괴하는 것.
습2:14-‘목소리가 창문들에서 노래할 것이다’=진리의 황무함, 고로 진리 측면에서의 지적 자질이 황폐함.
사5:28-‘창문을 통하여 밖을 보는 것’=진리를 부정하는 이들의 추론들을 수단으로…
이60:8-‘비둘기 같이 창문 쪽으로 나는 것’=진리의 탐구를 통하여…‘창문들’=빛 안에 있는 진리.
예9:21-‘죽음이 창문들을 통하여 왔다’=지옥의 거짓이 이해성 안으로 들어왔다.
말3:10-‘하늘의 창문들을 여는 것, 그리고 축복을 쏟는 것’=신성이 유입(inflowing)됨, 이로부터 총명과 영원한 생명이 온다.

창살 (grating)

* 체로치다(sift)를 보라.

천막 (tent)

창4:20-‘천막 안에 거주하는 것’=사랑은 거룩하다.
* 천막=천적인 것.
시78:51-‘함의 천막들’=거기로부터 예배.
창9:21-‘천막 한가운데’=신앙 속의 제1순위; 그이유가 ‘천막’=선행, 또는 선행으로부터의 예배. 선행은 신앙과 예배의 가장 깊은 것; 그리고 이것은 ‘천막의 한가운데’ 이다. ‘천막’=사랑으로부터의 거룩한 것, 또는 선행.
창9:27-‘그는 셈의 천막들에 거주할 것이다’=예배의 내적 부분들은 외적 부분들 안에 있을런지 모른다.
창12:8-‘그는 그의 천막을 펼쳤다’=신앙으로부터의 거룩한 것들; 그이유가 ‘천막’=사랑으로부터의 거룩한 것, 결과적으로 사랑으로부터 신앙의 거룩한 것. 그의 천막을 거기에 펼침=이것이 지금 시작되고 있다는 것.
창13:3-‘그의 천막이 전에 있었던 장소로까지 조차’=전에 있었던 거룩한 것들 쪽으로…‘천막’=신앙의 거룩한 것들…고로 주님이 가자셨던 천적인 것들…
창13:5-‘(롯은) 양떼, 그리고 가축떼, 그리고 천막들을 가졌다’=외적 인간에게 풍부히 있는 것들.
창13:12-‘그는 소돔 가까이 천막을 쳤다’=탐욕들에로 뻗쳐감.
창13:18-‘아브람은 천막을 쳤다…’…‘천막을 치는 것’, 즉 천막을 움직이고 고정하는 것=결합되는 것; 그이유가 ‘천막’=예배의 거룩한 것, 이를 수단으로 외적 인간은 내적 인간과 결합된다.
창18:1-‘그는 천막의 문에서 앉아 있었다’=주님이 그당시 있으셨던 사랑의 거룩한 상태.
창18:9-‘보라 천막 안에’=거룩이었인 것 안에.
창18:10-‘사라는 천막의 문에서 들었다’=합리적 진리가 거룩이었인 것 근처에 있었다.
창24:67-‘그의 어머니 사라의 천막’=신성한 인간 안에서 진리의 거룩한 장소. ‘천막’=거룩인 것, 고로 거룩한 장소.
창25:27-‘천막들 안에서 거주함’=거기로부터 예배함.
암9:11-‘다윗의 천막’=교회와 주님을 예배함.
창26:25-‘이삭은 거기에 자기 천막을 펼쳤다’=거기 거룩이었인 것.
창31:25-‘야곱은 산에 자기 천막을 고정시켰다’=이 사랑의 상태.
창31:33-‘라반은 야곱의 천막 안으로, 그리고 레아의 천막 안으로, 그리고 두 몸종의 천막 안으로’=그들의 거룩한 것들 안에 이런 진리들은 있지 않았다.
출16:16-‘천막’ 여기서=선 측면에서의 공동체; 그이유가 여기서의 천막은 집(house)과 비슷한 의미를 지녔기 때문.
출18:7-‘그들은 천막 안으로 왔다’=합일의 거룩함…그이유는 사랑이 합일이기 때문. 그러므로 ‘천막 안으로 가는 것’=거룩한 사랑으로부터 하나로 되는 것.
이54:2-‘네 천막의 장소를 확장함’=사랑의 선으로부터 있는 예배의 거룩함.
예4:20-‘내 천막들이 황폐된채 있다’=사랑의 선으로부터 있는 거룩한 예배.
출27:21-‘만남의 천막에서’=주님의 현존하심; 그 이유가 천막은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 또한 이스라엘의 아들들을 거기서 만나려 만들어졌기 때문; 이 때문에 예배의 거룩함이 거기서 조직되어졌다.
출28:43-‘그들이 만남의 천막 안으로 갈 때’=천국과 교회의 모든 것들을 표현하는 예배에서…그이유가 천막은 주님이 계신 천국을 표현했기 때문…더 나아가 그 당시 모든 예배가 천막에서 거행되었다.
출29:10-‘만남의 천막 앞에’=순수해짐을 위해, 천국으로부터 진리를 받기 위해, 그리고 받은 진리가 선과 결합하기 위해; 그이유가 ‘만남의 천막’=주님이 계시는 천국이기 때문.
출29:44-‘나는 만남의 천막을 신성해지게 할 것이다’=보다 낮은 천국들에서 주님을 받는 것. ‘만남의 천막’=더 낮은 천국들인 이유는 ‘제단’=더 높은 천국들이기 때문.
출30:16-‘너는 그것을 만남의 천막의 일을 위해 주어라’=모든 진리들과 선들은 주님으로부터 있음을 인정함을 통하여 천국과 결합함.
출30:20-그들이 만남의 천막 안으로 들어감에서=신앙의 선으로부터 예배함.
출30:26-너는 그것 가지고 만남의 천막에 기름 부을 것이다=천국들 안에서 주님의 신성을 표현하기 위하여…‘만남의 천막’=전체 복합체에서의 천국.
출30:36-‘너는 그것을 증거의 궤 앞에 놓을 것이다’=천국과 교회 안에서 주님을 예배함.
출31:7-‘만남의 천막과 증거를 위한 궤’=주님이 계신 천국을 일반적 측면에서 표현함.
출33:7-‘모세는 천막을 가져갔다’=예배의 거룩함, 교회의 거룩함, 그리고 말씀의 거룩함; 그이유가 ‘천막’=최고 의미에서 주님, 또한 천국과 교회이기 때문; 관계적 의미에서 천국과 교회의 모든 거룩함, 그러므로 또한 예배의 거룩함과 말씀의 거룩함.
예4:20-‘천막들’=교회의 선들; ‘커튼들’=교회의 진리들.
출33:7-‘천막을 펼치는 것’=교회와 예배 속의 것들을 설비하고, 배치하고, 배열하는 것.
출33:7-‘그는 이 천막을 만남의 천막이라 불렀다’=안에 내적인 것들이 있는 예배와 교회와 말씀의 외적인 것들.
슥12:7-‘유다의 천막들’=천적 왕국.
이32:18-‘안전한 천막들’=악들과 거짓들의 출몰함 없이 파생되는 사랑의 선들과 예배의 선들.
시21:20-‘네 천막에 숨는 것’=신성의 진리 안에.
시132:3-‘확실하게 나는 내 집의 천막 내부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그는 교회의 거룩한 것들 안으로 들어가 알려하지 않을 것이다.
예30:18-‘야곱의 천막들’=교회의 모든 것들…‘천막들’=교회의 선들; ‘주택들’=교회의 진리들.
시78:60-‘천막’=교리의 진리들 안에 있는 교회.

침실 (bedchamber)

창43:30-‘그는 침실 안으로 와서 거기서 울었다’=가상적이 아닌 본래대로에서.
눅12:3-‘너희가 침실에서 귀에 말했던 것을 지붕들 위에서 전파할 것이다.’ ‘침실’=인간의 내면의 것들, 즉 그가 생각한 것, 의도한 것, 그리고 시도한 것.
마6:6-‘침실로 들어가는 것, 그리고 기도함’=가상적으로 (그것을 행하는 것이) 아닌.

커튼 (curtain)
앙장 (curtain)
장 (curtain)
피륙 (curtain)

출26:7-암염소의 털(wool)로 만들어지는 천막 주택의 ‘커튼들’, 이는 그 안에서 표현되는 거룩한 모든 것들은 그것의 본질 측면에서 순진으로부터 파생되고 있다는 표시를 위해서이다. 암염소의 털=순진의 최말단, 또는 가장 바깥쪽, 이는 무지 안에 있는 순진, 즉 이방인들이 지닌 순진과 같은 것, 이 이방인들이 내적 의미에서 성막의 커튼들이다.
출26:1-‘열 커튼들’=이 천국을 존재하게 하는 모든 진리들.
출26:3-‘다섯 커튼들이 거기서 함께, 각각이 다른 것과 결합된다, 그리고 다섯 커튼들은 함께 각각이 다른 것과 결합된다’=진리가 선과, 선이 진리와 끈임없는 교통이 있다.
출26:7-‘너는 주택 위 천막을 위하여 염소들로부터 커튼을 만들어라’=천적 선의 외적 부분으로부터 있는 진리들로부터 있는 천국의 외적 부분.
이19:9-‘커튼들’=영적 근원으로부터의 자연적 진리들; 그리고 ‘그것들을 만들고 짜깁는 것’=가르치는 것.
예10;20-‘커튼들과 실’=거기로부터 파생된 영적인 것들.
합3:7-‘미디안 토지의 커튼들’=거짓으로 있는 광신적인(religiosity) 신앙.
예49:29-‘커튼들’과 ‘집기들’=(영적 왕국의 교회의) 진리들.
이54:2-‘주택의 커튼들을 펼치는 것’=신앙의 진리들로부터 있는 예배의 거룩함.
예10:20-‘커튼들’=이 선으로부터 진행하는 진리들, 그리고 그것을 덮음.

탈 것 (carriage)

이66:20-‘말, 병거, 마차’=지적, 교리적인 것들.
계18:13-‘말들, 그리고 탈 것들’=말씀을 이해함에 따른 이런 모든 것들. 그리고 거기로부터 파생되는 교리.
이66장-‘마차들’=진리에 관한 지식들.
계18장-‘탈 것들’=합리적 근원으로부터의 선들, 그 이유는 그것들이 말들에 의해 견인되기 때문, 이를 수단으로 그 근원으로부터 진리들이 의미된다.
이66장-‘마차들’=선으로부터의 교리적인 것들.

탑 (tower)

* 경비원도 참조.
창9:4-‘도성과 탑을 건설하자’=그들은 어떤 교리와 어떤 예배를 창안했다는 것.
* 탑=자아를 예배함.
* 망루(감시탑)=몽상들
* 산들과 탑들=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주님은 악마에 의해 높은 산과 성전 꼭대기로 이끌려졌다.
창35:21-‘에델 망대를 넘어’=그것의 내면 안으로.
이30:25-‘탑들’=거짓의 교리. (=악들과 악으로부터의 거짓들 안에 있는 이들, 특히 교회의 거룩한 것들을 수단으로 지배욕 안에 있는 이들). (=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으로부터 있는 교리 속의 거짓들…그 이유가 영계에서 교회 속의 것들을 수단으로 지배하려드는 이들은 자신들을 위해 높은 장소에 탑을 건설하고 있기 때문.
이2:15-‘탑’ 그리고 ‘벽’=교리 속의 확증된 거짓들.
시48:12-‘그 탑들을 세어보는 것’=이 교회의 더 높은 진리인 내면의 진리들을 생각해보는 것.
이33:18-‘탑들’=내면의 진리들.
겔29:10-‘스웨네의 탑으로부터 구스의 경계까지’=첫 순위로부터 최말단에 까지.
이5:2-‘그들은 그것의 한가운데에 탑을 지었다’=내면의 것들 안으로 유입이 있다, 이를 통하여 천국과 소통함이 있다.
마21:33-‘그리고 탑을 건축했다’=이 선으로부터의 내면의 진리들, 이 진리가 천국을 찾는다.

테두리 (border)

출25:11-‘(궤 위에서 금으로) 테두리’=그들이 접근하여 악들에 의해 상처받지 않도록 선으로부터 종결함. ‘테두리’=종결함, 마무리함.
출25:24-‘너는 (탁자)를 위해 금으로 테두리를 빙둘러 만들어라’=주님의 신성한 선으로부터 선의 영역을 마무리함.
출28:32-‘입술’, 또는 ‘테두리’, ‘도포의 위쪽을 둥글게 염(open)’=모든 측면에서 종결되고 마감된 것.

판금 (plate)

출28:36-‘너는 순금으로 판금을 만들어라’=주님의 신성한 선으로부터의 예증. ‘판금’=예증함.

판 table
널판 (board)

겔27:5-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이 ‘널판(plank) 같은 배(ship)’에 속하는 것에 의해 묘사되어 있다.
출24:12-‘나는 네게 돌판을 줄 것이다’=전체 복합체에서 있는 법의 책, 또는 말씀.
신9:9,11,15-판이 하나가 아니고 둘인 이유는 주님이 말씀을 통하여 교회와, 그리고 교회를 통하여 인류와 결합함을 표현하기 때문. 그러므로 그것들은 ‘언약의 판’이라 불리운다.
출27:8-‘속이 비게, 널판으로, 너는 그것을 만들어라’…‘속이 빈, 널판으로,’ 이는 제단을 두고 말해졌는바…=적용함.
출31:18-‘그분은 모세에게…증거의 두 판들을 주었다’=말씀을 통하여 주님과 인간은 결합함…‘두 판들’=전체 복합체에서의 법, 고로 말씀…결과적으로 인간과 더불은 결합이 판들이 둘임에 의해 의미되고, 그리고 언약을 기억함에서 함께 결합함도 의미되어 있다.
출31:18-‘하느님의 손가락으로 쓰인 돌판들’=주님 자신으로부터 있는 신성의 진리.
출32:15-‘그리고 그의 손에는 증거의 두 판들이…’=특별한 측면에서와 일반적 측면에서 주님의 말씀….=전체 복합체에서의 말씀.
출32:15-‘판들은 그것들 양쪽을 횡단함에 의해 씌여졌다 (직역하면 그것들의 두 횡단들로부터, from their two passingovers), 이것으로부터와 이것으로부터 그것들은 쓰여졌다’=이를 수단으로 주님이 인류와의 결합, 또는 천국이 세상과의 결합이 있다는 것.
출32:16-‘이 판들은 하느님의 일이었다, 그리고 이 필체는 하느님의 필체였다, 돌들에 새겼다’=신성으로부터 있는 말씀의 외적, 내적 의미, 그리고 신성한 진리.
출34:28-‘그분은 언약의 말들을 판 위에 쓰셨다’=말씀, 이를 통하여 천국이 인간과 결합한다는 것.
예17:1-내부에 뿌리박은 악이 ‘그들의 심정의 판에 새겨 있다’에 의해 뜻해진다.

휘장 (veil)
덮개 (veil)
베일 (veil)
출26:31-34, 36:35,36- 성막에는 세 개의 휘장이 있다. 첫째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가르기 위해. 두 번째 휘장은 성막의 문으로 사용되는 걸이용 휘장, 셋째는 성막뜰의 문으로 사용되는 걸이용 휘장이다. 첫 번째 휘장은 합리적 평면의 가장 (주님에게) 가깝고 가장 안쪽에서의 나타남들을 표현했는데, 이 안에 셋째 천국의 천사들이 있다. 이 나타남들이 ‘푸른색, 심홍색, 두 번 물들인 심홍색, 꼬아만든 고운 아마포’에 의해 묘사되어 있다. 이 묘사 안에서 빨간 색은 사랑의 선을, 흰색은 그것의 진리들을 표현했다.
마27:51, 막15:38, 눅23:45-‘성전의 휘장이 두 폭으로 찢어짐’이란 주님께서 신성 자체 안으로 들어가셨다는 것, 모든 나타남들이 사라졌다는 것; 그리고 동시에 그분은 그분의 인간을 신성으로 만드심을 통하여 신성 자체에 접근함을 여셨다는 것이 의미되어 있다.
출26:36,37, 36:37,38-두번째 휘장은 첫 번째 휘장의 선과 진리 보다 더 낮고 더 외적인 선과 진리의 나타남을 표현했다. 즉 합리적 평면의 중간에서의 나타남들, 이 안에 둘째 천국의 천사들이 있다…
출27:16,17, 38:18,19-세 번째 휘장이 묘사되어 있다. 이 걸이용 휘장은 한층 더 낮고 한층 더 외적인 합리적 평면의 나타남들을 표현했다, 이 안에 첫 번째 천국의 천사들이 있다…
겔12:12-‘얼굴을 덮는 것’=진리가 전혀 보여지지 않는 것.
출26:31-‘너는 휘장을 만들어라’=(두 천국들을) 하나로 묶는 매체, 고로 천적 선과 더불은 영적 선.
레16장-신성의 선으로까지 주님의 인간을 신성화 하심이 아론이 휘장 안쪽 지성소 안으로 들어갈 때 속죄의 과정에 의해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같은 과정에 의해 천적 선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거듭남도 묘사하고 있다.
출26:35-‘너는 휘장 바깥쪽에 탁자를 놓아라’=사랑의 천적인 것들을 통하여 유입이 있음.
출27:21-‘증거궤 넘어 있는 휘장 밖으로부터’=교통함이 있는 곳, 그리고 하나로 묶는 매체를 통하여 가장 안쪽의 천국에서 주님과 결합함.
출30:6-‘너는 휘장 앞에 (향 제단을) 놓아라’=가장 안쪽의 천국과 결합되어지는 내면의 천국 안에.
출34:28-‘모세는 백성들과 대화할 때, 자기 얼굴을 덮개로 가렸다’=말씀의 내적 의미는 이 백성에게서는 덮어졌다는 것, 하여 그 의미는 이 백성에게 불명료해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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